[야고부] 문산호 선원의 부활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1950년 여름이 무르익으면서 한반도의 포성은 더욱 거세졌다. 전선이 남쪽으로 확대되자 전투 인력은 물론 운송 장비도 모두 전장에 긴급 투입되었다. 2천700t급 LST(상륙선) '문산호'도 그중의 하나였다. 문산호는 동해안에서 석탄을 실어 나르던 민간 수송선이었다. 그런데 6·25전쟁이 터지자 참전 장병을 이송하는 군용선이 된 것이다.

그해 9월 문산호는 800여 명의 학도병과 해군 지원병들을 싣고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해안에 도착했다. 이른바 '장사상륙작전'의 모선(母船)이 된 것이다. 장사상륙작전은 인민군에 대한 기만전술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양동작전의 하나였다. 작전명령은 '장사 해안에 적전상륙, 보급로를 차단하고 후방을 교란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동해안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배가 암초에 걸린 가운데, 빗발치는 인민군의 총탄 속에 필사적인 상륙이 감행되었다. 10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고지를 점령하면서 보급로 차단과 교란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서 140명에 이르는 학도병이 꽃잎처럼 스러져갔다. 학도병뿐만 아니었다. 선원 10여 명도 함께 싸우다 총탄에 쓰러지고 파도에 휩쓸렸다. 그중에는 열아홉 살 소년도, 백일 된 딸을 둔 스물네 살 선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사자 명단에 없었다. 선원들의 이름을 찾아 69년 만에 훈장을 안겨준 사람은 6·25 참전 용사로 문산호에 함께 있었던 한 예비역 해군 대령이었다. 지난주 충남 계룡대 해군본부에서 열린 '6·25전쟁 장사상륙작전 문산호 전사자 서훈식'에서 해군은 바닷속에 잠겼던 선원 10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참석한 유족들은 "우리 아부지 69년 잠수 타다 이제 올라와 빛을 보네"라고 했다. 국가는 이렇게 무심했다. 전사(戰史)에서조차 외면당했던 장사상륙작전 현장에 전몰용사위령탑을 세운 것도 살아남은 학도병 전우들이었다. 총성과 포연으로 얼룩졌던 문산호, 그리고 학도병과 선원들의 선혈이 낭자했던 장사리 해안을 기억하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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