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부울경의 그물에 걸린 권 시장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동남권 신공항과 관련한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의 생떼가 점입가경이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불가능한 일에 매달려 '분탕질'을 놓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부울경의 요구가 관철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부울경은 지난달 20일 국토교통부와 김해신공항 재검증 문제를 국무총리실로 이관하기로 합의했으니, 누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떼쓰기가 결국 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토부 관료들이 "2016년 결정된 국가사업을 되돌려선 안 된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청와대·여당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공무원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부울경은 김해신공항 재검증 문제에 대해 애초부터 국토부를 패싱하고 총리실로 이관하는데 사활을 걸었으니 자신들의 계획대로 순항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여권 고위 관계자는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김해신공항 백지화는 여권 내부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다만 백지화 이후 동남권 신공항 입지가 가덕도로 될지, 다른 곳으로 될지는 알 수 없다." 청와대·여당은 대강의 시나리오를 짜놓고 김해신공항 백지화에 이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필자가 이 얘기를 듣고 '놀랍다'고 하지 않고 '흥미롭다'고 표현한 이유는 신공항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2월 문재인 대통령의 '김해신공항 검증' 발언, 3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동남권 신공항 적극 지원' 발언도 있지만, 현 정권의 속성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현 정권은 '정권 유지'라는 지상 명제에 부합하는 일 빼고는 관심이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가 되는 일'에 몰두할 뿐, 국가 운영의 원칙이라든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책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달콤한 꿈에 젖어 있는데 반해 대구는 통합신공항 이전 문제에 온통 매달려 있다. 대구시는 몇 달 전만 해도 정부가 이전 후보지 선정에 아예 꿈쩍도 하지 않더니, 이제는 오히려 적극적이라며 즐거운 표정이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 방문 후 정부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권영진 시장이 잘해서도 아니고, 시민의 정성에 감동했기 때문도 아니다. 지역의 반발을 잠재우면서 가덕도 신공항으로 가는 길을 열려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부울경이 'TK는 TK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각자 공항을 하면 그만'이라고 논리를 펴는 만큼 대구는 완전히 그물에 걸려들었다.

대구시는 엉뚱하게도 김해신공항 백지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며 통합신공항 이전 문제는 순풍에 돛 단 듯 해결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야 무슨 일을 할까. 어디에서 나온 낙관론인지 모르겠으나, 대구의 미래를 망치는 길로 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가덕도 신공항이 생기면 군위·의성에 들어서는 통합신공항은 '동네 공항'으로 전락한다.

권 시장은 이전 추진 작업을 그만 둘 수도 없고, 계속하기도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였지만, 성향에 비춰 '계속 추진'을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 권 시장이 새로운 투쟁 방향을 세우고 공론을 모으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우환을 남길지 모른다. 공항 이전은 K2 부지를 팔아 짓는 만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한 템포 쉬며 대세를 관망하는 것도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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