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폭로자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영화 '트럼보'(2016년)는 1950년대 '빨갱이'로 몰려 고난과 좌절을 겪은 천재 시나리오 작가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달튼 트럼보는 먹고살기 위해 11개의 가명으로 시나리오를 썼는데 올드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작품이 여럿이다. '로마의 휴일' '카우보이' '영광의 탈출' '스파타커스' '빠삐용' '추억'….

그는 13년 뒤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고는 회한과 슬픔으로 가득한 소감을 밝혔다. "이 작고 값어치 없는 금 조각상은 내 친구들의 피로 뒤덮여 있다."

트럼보는 당시 공직·일자리에서 쫓겨난 1만 명 중 한 명일 뿐이다. 1950년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 "내 손에 205명의 공산당원 명단이 있다"고 폭로하면서 미국은 10년 가까이 공포의 시대를 보냈다.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폭로가 얼마나 사회를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는지 알 수 있다. 출세를 위해 인격 살인을 서슴지 않은 매카시는 미국의 수치로 남았다.

매카시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최순실 재산을 300조원이라고 폭로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4선·경기 오산)이 떠오른다. 안 의원은 2017년 "박정희 전 대통령 통치자금 규모가 당시 8조9천억원, 지금 돈으로 300조원이 넘고, 최순실 일가로 흘러 들어갔다"고 했다. 300조원은 세계 최고 부호 1~4위 재산을 모두 합한 금액이고 보면 터무니없는 액수다.

안 의원은 지난 6일 "최순실 재산에 대해 독일 검찰을 통해 확인해 보니 돈세탁 규모가 수조원대"라고 했다. 최순실 재산을 2년 새 300조원에서 100분의 1로 줄인 것을 두고 일부 언론은 '민주당 최고의 소설가'라는 별명을 붙였다.

안 의원이 이번에는 '윤지오와 함께하는 의원 모임' 결성을 주도해 네티즌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는 SNS에 "선한 의도였다.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했을 만큼 국민이 어리석지는 않다"고 해명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자는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정치 선동과 비뚤어진 가치관에서 비롯됐기에 자신의 폭로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평했다. "의도가 선하다고 모든 게 정의롭다는 생각부터 틀려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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