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한류의 열풍과 굴욕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유교는 천(千)의 얼굴을 가진 문화 현상'이라고 한다.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일상과는 무관할 듯한 유교 이야기를 이렇게 새삼 끄집어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방탄소년단'이 이끌어낸 한류 열풍의 최고조와 '버닝썬 스캔들'이 촉발한 한류의 굴욕이 바로 유교와 깊은 연관성이 있어서이다.

사실 우리가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유교는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과 양식을 지배하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 전 세계가 열광하는 한류의 원천이 바로 유교에서 비롯되었다면…. 유교는 그리 단순한 사상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유교는 혁명적 실천 기능을 과시했다.

사화(士禍)로 얼룩진 16세기 조선의 위기와 혼돈의 시대를 극복하려 했던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사상과 철학을 보면 그렇다. '백성은 물과 같아서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는 남명의 논변은 다분히 민중적이다. 실용 학문을 강조했던 남명의 유학은 역동성과 다원성 그리고 개방성을 지녔다. 그리고 세상의 변혁을 지향하면서도 인간의 혁신 문제에 주목했다. 하지만 남명의 유학 정신은 인조반정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고 말았다.

퇴계의 방법은 남명과는 조금 달랐다. 기묘사화로 조광조의 개혁이 좌절하는 현실을 보면서 소수 엘리트에 의한 급진적인 변혁에 한계를 느낀 것이다. 퇴계가 택한 노선은 학문과 교육이었다. 철학적인 재무장으로 시대정신을 바로 세우고 신세대 교육을 통한 개혁의 저변 확대를 도모한 것이다. 주자학을 창조적으로 변용하며 기대승과 '사단칠정논변'을 벌인 것도 그 일련의 과정이었다.

문제는 인간이었다. 세상을 타락하게 하는 본질도, 시대를 변화시키는 주체도 바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인간 심성의 이기론(理氣論)적 규명이 바로 그 고뇌의 산물이었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사회적 혼란과 더불어 유교가 관념적으로 기울고 형식화되었지만, 그 사상과 정신은 면면히 흘러 17, 18세기 실학(實學)으로 거듭났다.

서세동점의 충격에는 서학(천주교)과 접목했고, 19세기 민초들의 함성과 함께 동학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동력이 되었고, 해방 후 산업화와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었다가,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아 한류의 물결로 거듭난 것이다. 한류의 대명사인 '대장금'이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안방극장을 사로잡은 것도 드라마에 면면히 흐르는 유교적인 역사와 정신문화의 가치가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와 맞닿았기 때문이다.

학문과 교육의 가치를 존중하며 개인의 인격 수양을 전제로 바람직한 공동체 이상을 구현하려는 실천철학, 그것은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 자강을 이루어낸 한국 역사의 원동력이었다. 한류 생성의 동인이었다. 그것은 방탄소년단의 노랫말 속에도 어김없이 스며 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쾌거 이면에 버닝썬 게이트에 휘말린 한류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섹스 스캔들에 흔들리는 K팝' '도덕시간을 희생해서 탄생한 현란한 노래와 안무' 등의 외신기사 제목은 인성교육 부재의 공장형 K팝 시스템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류 또한 개인의 도덕성과 국가의 품격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거품으로 스러지기 십상이다. 500년 전 남명과 퇴계도 그래서 인간과 인격에 천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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