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신성모독과 폭력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1990년 1월 18일 오후 3시 일본 나가사키 시청 현관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승용차를 타던 모토지마 히토시(本島等·1922~2014) 나가사키 시장은 우익단체 조직원이 쏜 총에 맞았다. 왼쪽 흉부가 관통되는 중상이었으나 다행히 심장을 피했다.

그가 총을 맞은 이유는 1988년 시의회에서 발언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가사키 시의회에 참석해 공산당 소속 시의원의 질문에 "덴노(天皇)에게도 전쟁 책임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때부터 모토지마 시장과 가족은 정상적인 삶을 포기해야 했다.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자민당에서 쫓겨났고, 사무실·집에는 살해 협박이 쏟아졌다. 시청 앞에는 전국 62개 우익단체가 80여 대 가두선전 차량을 몰고 와 연일 '천주'(天誅·하늘을 대신해 벌을 주다)를 외쳤다.

모토지마 시장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총 한 방 맞고 '면죄부'를 받아 1991년 선거에 당선돼 4선 시장이 됐다. 후임 이토 잇초(伊藤一長) 시장은 2007년 폭력조직원의 총격을 받고 사망, 시장 두 명이 연속으로 테러의 희생자가 됐다. 범행 동기는 불명확했지만, 이토 시장이 '미군·핵무기 반대' '평화공원 조성' 등을 강하게 주창하다 우익의 반감을 샀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에서는 일왕을 비판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일왕에 대한 불경은 테러로 이어지기 때문에 금기 중의 금기다. 일왕은 논리와 이성이 필요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 사과'를 요구했을 때 일본은 난리가 났다. '한국을 적국으로 보겠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경제·문화 교류가 중단됐고, 한류는 된서리를 맞았다.

며칠 전 문희상 국회의장이 "전범의 아들인 일왕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얘기지만, 일본에서는 역시 시끌벅적하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부는 강하게 성토했다. 국회의장의 발언이기 때문인지, 이명박 전 대통령 때에 비해 강도는 약하지만, 아직 확전 여부는 미지수다. '살아 있는 신(神)'이라는 전근대적 가치에 목숨을 거는 일본인의 정신세계는 아무리 봐도 불가사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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