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5060세대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복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와 교복을 벗어던지고 우물가로 나가니 커다란 수박 한 덩이가 대야의 찬물 속에 담겨 있었다. 갈증이 심하던 차에 군침을 흘리며 수박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뒤에서 어머니의 경고가 귓전을 때린다. "아부지 오실 때까지 손대지 마라." 먼 훗날 중년의 가장이 되었을 때이다. 무더운 여름 퇴근하자마자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여니 잘 익은 수박 반 통이 들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꺼내 먹으려고 하는데 뒤에서 아내가 일침을 한다. "얘들 학원 갔다 올 때까지 손대지 말아요!"

5060세대는 이렇게 살아왔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게 당연한 도리였고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 헌신하는 게 마땅한 의무였다. 그러나 5060세대는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까지 부양하고도 대우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 이른바 '더블케어'(Double Care)의 상황이다. 6·25전쟁 후 베이비 붐 세대인 5060의 삶은 한마디로 험난했다.

먼 길을 걸어서 통학하기 일쑤였고,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향학열을 불태웠다. 김치나 고추장 반찬이 전부인 도시락도 꿀맛이었다. 청소년기에 새마을운동을 경험하며 군사교육도 받았다. 대학 시절에는 독재에 저항하는 데모로 최루탄 가스를 질리도록 마셨다.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화 항쟁을 목격했다. 군대 생활을 할 때는 한바탕 얼차려나 구타를 당하고 잠자리에 드는 게 차라리 편했다.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이룬 후에는 내 집 마련과 아이들 교육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화와 정보화 사회로, 군부 통치에서 민주화와 중우정치의 사회로 옮겨가는 혼란과 격동의 세월을 고스란히 겪었다. 소비보다는 절약을, 개인보다는 조직을 우선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흰머리가 늘어나고 사회에서 은퇴하면서 이제는 보수와 권위만 남은 '꼰대'라 손가락질을 받는다. 아직도 연로한 부모를 돌봐야 하고 취직 못한 자식도 품고 살아야 하는데…. 명색이 청와대 경제보좌관이란 사람까지 나서서 "한국에서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동남아로 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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