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나의 '50년지기' 대구은행

배성훈 디지털국장 배성훈 디지털국장

나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아도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절친' 하나가 있다. 친구와 만난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다. 당시 학교에서는 30년 후 자화상에 대해 쓰는 글짓기가 유행이었다. 고교 1학년 시절 친구가 쓴 글에는 30년 뒤 친구는 법무부 장관이 되고 나는 장관을 취재하는 기자가 되어 있었다.

같은 나이, 같은 동네, 덩치도 비슷했던 친구와 나는 어렴풋한 미래를 그리며 3년 밤낮을 함께 뛰어다녔다. 이후 친구는 서울로 진학, 대학을 마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대구에 남아 신문사에 들어가 어설픈 글을 쓰는 기자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근 30여 년 우정을 키워왔어도 '눈에서 멀면 마음에서도 멀다'고 보이지 않는 친구를 때때로 잊고 산다.

최근 안타깝게도 마음이 멀어졌지만, 잃고 싶지 않은 친구가 또 하나 생겼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근 50년, 반백 년을 동고동락하며 친구로 살아온 이다. 1967년생 같은 나이로 내 인생의 전환점마다 등장하는 친구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한 번도 대구를 벗어나지 못한 점도 나와 많이 닮았다. 그 친구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지 잘 모르지만 나는 그 친구를 진정한 벗이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는 다름 아닌 대구은행이다.

'동갑내기 절친' 대구은행은 1967년 10월 순수 지방 민간상업은행을 향한 대구 상공업계의 오랜 열망과 노력에 힘입어 국내 최초 지방은행의 역사를 시작했다. 10월 7일 박정희 대통령의 창립 축하 제1호 정기예금증서를 접수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당시 대구은행은 '대구은행은 우리의 은행' '대구의 돈은 대구은행으로'라는 구호 아래 골목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소형 점포 서비스를 갖추며 지역 은행의 위상을 갖춰갔다.

몇 년 동안 또래들의 돼지저금통들은 모두들 대구은행으로 몰려들었다. 꼬깃꼬깃 접혀진 세뱃돈들도 어김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어린 손에 쥐어진 대구은행 통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이었다. 인연은 학창 시절에도 쭉 이어졌다. 수업료, 등록금 등 모든 돈은 대구은행으로 납부했다. 대학 시절 학교금고가 서울 시중은행이란 점이 못 마땅할 정도였다. 입사 후 급여통장, 신용카드도 대구은행이었다. 신혼 시절 첫 아파트 대출도 마찬가지이다. 반세기 동안 지역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역 경제와 함께한 대구은행은 대구 토박이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더 가까운 친구이다.

하지만 최근 절친에게 좋지 않은 소리가 많이 들린다. 여직원 성추행과 비자금 조성, 채용 비리, 펀드 손실금 특혜 보전 등 각종 악재로 친구의 이미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50년 넘게 대구은행의 성장을 지켜보며 성원한 지역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점에서 참담함마저 느낀다. 새 아버지(김태오 DGB지주 회장)가 왔지만 아직까지는 집안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1967년 생일 이후 가장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지난 2년간 친구 앞에는 비바람,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대구은행 창립 50주년 기념 동영상에서 고 김준성 초대 총재는 "대구은행에는 좋은 후배들이 많아 걱정할 일이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올해는 친구가 어린 시절 소풍 가듯 희망을 안고 걸어가길 간절히 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무지개도 뜨지 않는 법이야. 동갑내기 친구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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