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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한 초부의 구미 사랑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구미라는 말에는 '붓다' 즉 부처라는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구미 금오산 정상의 모습을 일컫는 '와불상' 또는 '거인상'을 두고 필자가 쓴 '야고부'(11월 5일 자)를 보고, 구미에 사는 이종원(82) 전 구미문화원 이사는 긴 설명과 함께 구미의 지명에 얽힌 흥미로운 내용을 전했다.

과거 문화원 일을 보면서 16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모아 2009년 '구미의 지명 유래'라는 44쪽짜리 자료집까지 냈다는 그는 지금의 구미(龜尾)는 1914년 일제강점기 때부터 썼고 그 이전에는 '仇彌'였다고 했다.

고려(989년)부터 조선(1896년)까지 뭇 사료에 나오는 구미(仇彌)는 인도 출신 가야 왕후 허황옥이 이 땅에 온 것처럼 불교 역시 북쪽으로 들어오기 전 남쪽에서 먼저 온 만큼 인도 범어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붓다' 즉 부처를 뜻하는 한자인 불(佛)이 없던 터라 구(仇)를 썼을 것이라 추정했다. 옛날 가야와 백제, 신라의 왕과 왕족들에 구(仇)가 여덟 번이나 쓰인 것도 지금처럼 원수의 뜻인 구(仇)와 달리 붓다를 의미한 때문이라 덧붙였다.

따라서 과거 저명 사학자처럼 '신라 이두문자로 뜻이 없어 구미(仇彌)를 구미(龜尾)로 바꿨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고, 당시 일본 사전의 원수(仇)란 풀이 탓에 멋대로 거북(龜) 글자로 바꾼 일제의 잘못을 이제라도 제대로 유래를 따져 걸맞은 이름을 찾을 때라 강조했다.

스스로 '나무하는 늙은이'라며 '초부'(樵夫)라 밝힌 그는 "옛 구미 이름에 깃든 사연과 금오산 정상의 부처 모습에다 이후 산업화 시절 구미의 역할까지 따지면 구미는 예사 고을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고장에 대한 자부심마저 감추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필 일이다. 그러나 한 초부의 사연을 굳이 꺼낸 까닭은 자신의 고장을 아끼고 역사를 알려는 관심이 놀라워서다. 16년 발품으로 책자까지 낸 초부의 정성과 사랑은 결코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어느 시인의 노래를 빌려 '한 초부가 있어 구미는 다행입니다'라고 하면 지나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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