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문 정부의 녹슨 칼에 우는 서민·중산층

이춘수 편집국부국장

이춘수 편집국부국장 이춘수 편집국부국장

송(宋)나라 때 한 농부는 자기 논에 심은 모가 빨리 자라지 않자 상심이 컸다. 농부는 매일 같이 나가서 지켜봐도 모가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억지로라도 모가 자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는 모를 하나하나 뽑아서 크기를 높게 했다.

금세 모들이 커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아침부터 해가 서산에 떨어질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모를 뽑는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식구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한 일을 자랑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황급히 논으로 달려가 보니 모가 모두 뽑혀서 말라 죽어 있었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의 고사다.

소득주도성장론에 기초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와 탈원전 정책 등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어 시행하고 있는 일련의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득 자체를 올려 주기 위한 노력은 정의감에 입각한 선한 의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최저임금은 꼭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그 최저임금제로 살길이 막힌 600만 자영업자 예컨대 편의점과 치킨 점주, 미용실 원장 등 영세 자영업자들은 "노동자만 국민이냐, 우리도 국민이다"며 광화문 거리에서 절규했다.

그동안 좀처럼 단체행동에 나서지 않았던 사람들이 집단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늘린다는 일자리는 거꾸로 줄어들고, 줄어야 할 실업자는 늘어만 가고 있다. 문 정부의 방향과 목표가 백만 번 옳더라도 모를 빨리 키우고자 한 송나라 농부의 노릇처럼 모를 죽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최근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하루아침에 1억원씩 오르기도 했다. 이런데 소득주도성장을 떠들어 본들, 어떤 규제를 내놓은들 서민·중산층은 일할 맛이 나겠는가? 이대로 가다간 서민과 중산층의 허탈과 불만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 문 정부의 위기다.

문 정부의 위기는 민심 향배를 최종 결정짓는 경제정책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다기한 경제 현장에서 과거 개발시대의 만능이었던 규제와 정부 재정만으로 접근하니 시장에서 약발이 전혀 먹혀 들지 않는 것이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노라면 허물어진 담벼락에 기대 녹슨 칼을 마구 휘둘러 대는 꼴이다.

여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와 여당은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이 폭등하자 돈줄을 더 조이기로 했다. 정부·여당은 물이 꽉찬 수도꼭지를 틀어막으려 하지만 투기 세력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대출 규제는 녹슨 칼에 불과하다.

경제 문제는 '뜨거운 가슴'으로만 풀어갈 수 없다. 섣부른 경제정책은 자칫 갈등만 키울 수 있다. 문 정부는 쉬었다 갈 수도, 돌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

핵심 정책을 중간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초에 자신이 반대하던 한미 FTA를 앞장서 체결했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후퇴할 수 있는 것도 지혜요, 용기다. 그렇지 않으면, 또 때를 놓치면 폭삭 망한다. 불행해지는 것은 국민뿐이다. 이런 사태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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