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닮은꼴 3대

1994년 6월 30일, 세상을 뜨기 불과 8일 전이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윌프레드 마르텐스 벨기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만났다. 김 주석은 이 자리에서 돈 얘기를 꺼냈다. 그는 "북과 남이 합작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신의주와 개성 사이 철길을 복선으로 만들고, 남한으로 들어가는 중국 상품을 날라 주기만 해도 1년에 4억달러 이상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러시아나 중국 흑룡강성에서 수출되는 물자를 두만강역에서 넘겨받은 뒤 동해안 철길로 날라 주면 거기서도 한 해 10억달러 이상을 벌 수 있다." 김 주석은 실제 주판알을 튕겨본 듯 자세하게 설명했다.

김 주석의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先軍)정치를 했지만 2003년 6월 시작된 개성공단 조성 과정에서 결단을 내렸다. 개성공단 용지 및 그 인근 지역에 주둔하던 북한군 2군단 소속 6사단과 62포병연대 등을 5~10㎞가량 후방 배치시킨 것이다. 6사단은 남침 주력 부대로 유사시 서울 등 수도권을 기습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알려져 있었다.

김 주석의 손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말 남북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했다. 김 위원장은 핵을 갖고 있는 상황을 "어렵게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군사적 대결보다 평화와 교류를 하는 방법이 더 쉽고 편안한 길이니, 그 길로 가겠다는 의미였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代)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이 잘사는 길이고, 편한 길인지를. 하지만 그들은 아는 것을 실천할 수 없었다. 체제 붕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70년 세월 동안 3대를 에워쌌던 두려움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는 없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던가? 하지만 남북 관계에서만큼은 이 속담 적용이 금물이다. 남북 고위급회담을 연기해 버린 북한의 모습만 봐도 427 판문점 선언이라는 '한 방'만으로는 '경기 끝'이라 할 수 없다. 지난 70년이 그랬던 것처럼 장기전이다.

외교는 내치(內治)의 연장이라는 외교가의 격언이 있다. 특정 지역 배제에 대한 하소연, "너무 힘들다"는 산업현장 소상공인들의 아우성 등 나라 안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들의 손도 꼭 잡아주면 어떨까? 한반도 평화 외교전의 제트엔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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