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낮에 하고 밤에 얻다

'낮에 함이 있으면 밤에 얻음이 있다'(晝有爲 宵有得). 1960년대 서울 충무로에 있던 매일신문 서울분실 사무실 벽에 걸렸던 액자 속 글귀다. 촬영 시기가 정확하지 않은 낡은 옛 사진 속 이 글귀를 해독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옛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얻은 한 가르침의 개인적인 소득이다.

더듬어보면 1954년 2월, 서울에 첫 진출한 매일신문의 옛 선배들이 충무로 사무실에서 활동할 즈음 매일 한 번씩은 다졌을 각오를 드러낸 글이 아닐까 여긴다. 물론 옛 사람이 흔히 학문하는 자세를 이야기할 때 사용했던 글귀를 따온 것이다. 6'25전쟁이 끝나기 바쁘게 폐허 속에 첫발을 내디딘 당시 서울분실 옛 선배들은 척박한 낯선 서울 환경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낮과 밤을 이어 버틸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바로 그런 힘들고 고달픈 시련의 시절을 버티게 한 글로는 더없이 적합했던 모양이다. 액자 속 검은 먹글씨를 등대 삼아 지내온 앞선 사람들의 바탕이 있었기에 필자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지사장으로 무사히 근무하며 2014년 서울 진출 60년이라는 조촐한 자축까지 하고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다. 이처럼 세상 일은 이어지고 연결돼 있다. 필자가 지난해 12월 초청받아 참석한 '구당회'라는 작은 모임의 송년회에서 겪은 일도 마찬가지다. '구당회'는 구미가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구미로 옮겨 삶터를 이어가며 자신의 작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다양한 형태로 자원봉사에 나선 '이주'(移住)한 구미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모임의 출발에 인연이 있다. 구미에 근무하던 시절인 2009~2011년 자원봉사에 참여한 70여 명의 보람된 삶을 알고 모두 30사례로 나눠 소개했고 2012년 '구미 당기는 구미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작은 책으로 엮어 선물해서다. 그리고 한동안 잊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변화는 이후였다. 2014년 2월, 책 속 주인공 10여 명이 '구당회'를 만들면서부터다.

친목을 꾀하면서 따로였던 종전의 봉사활동을 연계해 시작하기로 뜻을 모으며 활동에 나선 것이다. 게다가 '구당회'는 지난해 송년회를 계기로 새로운 변신에 나섰다. 2017년부터 바로 자신들보다 나은 '제2의 구미 당기는 사람들'을 길러내자는데 뜻을 모았다. 이런 결의는 지난 2년 동안의 여러 '구당회' 활동을 통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구당회 회원의 돋보인 활동은 여럿이었다. 한 동네 어르신의 방과 후 청소년 돌보기 성공 이야기와 '학교 밖' 청소년 돌보기 사례, 어르신이 어르신을 보살피는 소위 '노노 보살핌'(老老 케어) 등이다. 특히 해평 낙산리 시골 동네 마을 어르신들의 어르신 보살핌 활동은 정부의 '힘센' 부처에서 사업 제안 요청이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좀 더 내실있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민간 차원의 활동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방송의 자세한 소개는 덤이었다.

일이 이어지고 연결됨이 이러하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벌인 촛불 행위도 앞선 두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과거의 잘못된 것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모습의 나라로 탈바꿈시켜 보고자 한 일이었다. 1천만 촛불이 2016년 부지런히 밤을 밝히는 '함'(有爲)이 있었기에 올해 2017년에는 '얻음'(有得)이 있음이 틀림없다. 그 얻음은 바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결과와 그에 따라 새롭게 펼쳐질 앞날이다.

헌재의 탄핵 심판이 인용으로 결론나면 곧 새로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제대로 된 대통령 뽑기를 통한 나라 바꾸기가 될 것이다. 기각 판정이 나게 될 경우 촛불 민심을 통해 표출된 성난 민심을 잘 받드는 정치다운 정치 혁신을 통한 나라 세움이다. 어떤 결정이 나오든 대한민국은 지금과는 달라져야만 한다. 나라 안팎에서 조여오는 국제 정세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다.

앞선 사람들의 땀으로 일궈낸 기업체나 사적 모임조차도 새로운 도약을 위한 나날을 보내는데 하물며 1천 번 가까운 외침(外侵)으로부터 지켜온 나라임에랴. 지난해 했으니 올해는 기필코 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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