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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하얀 제비꽃

[춘추칼럼] 하얀 제비꽃

모처럼 데레사 수녀님이 공주에 왔다는 전갈에 서둘러 외부 일정을 마치고 루치아의 뜰로 갔다. 루치아의 뜰은 공주의 옛 거리에 있는 찻집으로 오래된 한옥 하나를 고쳐서 만든 찻집이다. 공주 바닥 사람들에게보다는 외부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잘 알려진 찻집이다.왜 루치아의 집인가 하면 찻집 주인의 세례명이 루치아이기 때문이다. 짐작하시겠지만 루치아는 천주교 신자. 그래서 찻집 이름도 '루치아의 뜰'인데 이 집에는 그런 연고로 바깥에서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자주 찾아오신다.내가 찻집에 들어섰을 때 수녀님 세 분과 운전을 맡은 남자 한 분이 루치아 내외와 함께 있었다. 데레사 수녀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안의 수녀님이다. 마치 동화 나라에서 등불 하나를 들고 이 세상으로 나왔다가 다시 이 세상의 등불로 바꿔 들고 동화 나라로 돌아가는 아이와 같다.그렇구나. 데레사 수녀님에게는 우리 공주가 동화 나라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세상일 수도 있겠구나. 그러기에 그렇게 수녀님은 수녀원에서 짬만 생기면 공주를 찾는 것이고 또 루치아의 뜰과 우리 풀꽃문학관을 방문하는 것이겠구나.들어 보니 수녀님 일행은 이미 풀꽃문학관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나 마침 월요일이라 직원이 출근하지 않았으므로 문학관 안은 들어가 보지 못하고 집 둘레와 꽃밭만 보았노라 한다. 그런데 일행 가운데 나이가 좀 드신 수녀님이 문학관의 꽃밭에서 제비꽃 사진을 여러 장 찍었노란다.알고 보니 그 수녀님이 데레사 수녀님이 머물고 있는 수녀원의 원장 수녀님. "수녀님, 왜 제비꽃 사진을 찍으셨어요? 다른 꽃들도 많은데." "네, 보통 제비꽃은 보랏빛인데 문학관의 제비꽃은 하얀 색깔이더라구요. 그래서 찍었어요."그러하다. 우리 문학관에는 하얀 제비꽃이 있다. 있더라도 아주 많이 있다. 본래 문학관에는 하얀 제비꽃이 없었는데 문학관 관장 일을 보는 조동수 선생이 다른 데서 캐다가 심어서 하얀 제비꽃이 살고 있다. 심더라도 아주 많이 심었다. 문학관 둘레 마당과 담장 아래에 촘촘히 가득 심었다.그걸 또 야생화 연구가인 백승숙 여사가 와서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원장님, 이 제비꽃 이렇게 많이 심으면 안 돼요. 이 녀석들 번식력이 강해서 나중에는 아예 제비꽃 밭이 됩니다." 그래서 꽃을 심어 준 조동수 선생의 눈치를 살피며 제비꽃들을 대충 뽑아냈다.결국은 지금 문학관 뜨락에 피어 있는 모든 하얀 제비꽃들은 그때 조동수 선생이 심었는데 뽑지 않은 몇 그루 제비꽃들의 후손이다. 말하자면 조동수 선생의 제비꽃인 셈이다. 그래서 나도 더러는 그 꽃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둔다.그러면 왜 조동수 선생은 그렇게도 많은 제비꽃을 캐다가 문학관 뜰에 심었을까?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조동수 선생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이미 오래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므로 한 분밖에 남아 있지 않던 육친마저 돌아가신 것이다.젊은 나이이고 집안 대소가도 많지 않아 두서없이 간소하게 어머님 상을 치렀다 한다. 적적하게 어머니 상여 뒤를 따라가면서 둘러보니 자기의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더란다. 그때 문득 눈에 들어온 꽃이 길가에 피어 있는 하얀 제비꽃이었다는 것이다. '그래, 내 슬픔을 알아주는 것은 너뿐이구나.' 그런 뒤로 조동수 선생에게 하얀 제비꽃은 어머님의 꽃이 되었고 어머님을 생각하는 꽃이 되었단다. 그러니 어찌 내가 문학관 뜰에 심은 하얀 제비꽃을 깡그리 뽑아낼 수 있었겠나. 몇 그루라도 하얀 제비꽃을 그냥 놔두기를 잘했다 싶다.이런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 해마다 하얀 제비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하얀 제비꽃이 조동수 선생의 어머니이고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다. 이것을 원장 수녀님이 느끼시고 영혼의 손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그래서 수녀님은 다른 예쁜 꽃들, 화려하고 큰 꽃들을 제치고 초라하고도 작은 하얀 제비꽃을 사진기에 담으신 것이리라.그러고 보면 또 수녀님 마음이 하얀 제비꽃의 마음이고 조동수 선생의 마음이고 또 조동수 선생 모친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세상의 일들은 참으로 깊고도 멀고도 아득하다. 유정하다. 서럽도록 아름답다. 노을 속으로 꽃잎을 싣고 가는 저녁 강물 하나를 본다.

2020-05-28 16:30:00

[춘추칼럼] 한 사람의 힘

[춘추칼럼] 한 사람의 힘

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는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2020)라는 책에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전염병은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유예된 활동, 격리된 시간들은 그 초대에 응할 기회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이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생각의 시간'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 어떻게 되돌아가고 싶은지 등을 생각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서 "이 모든 고통이 헛되이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고 말한다.정확한 지적이다. 이 '전염의 시대'에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거나 쓸모없는 생각을 한다. 그저 매일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보면서 불안과 안도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리고 불안을 야기하는 바이러스 확산 주범을 찾아 분노하고 비난한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빠져 있기도 한다. 사람들은, 언제쯤이면 상황이 나아질 것인지,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묻는다. 하지만 묻는 이들도 알고 있다. 여기에 정확한 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그저 서로에게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잠시나마 불안을 떨쳐보려고 애쓸 뿐이다. 수많은 예측은 빗나가고, 막연한 희망은 무너진다.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다. 우리가 원하는 일상으로의 복귀가 지연될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지만 다시 제자리에 서 있다. 이 지연과 반복을 견디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이다.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의 한복판에서 그나마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건너가고 있는 이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고, 여기까지 이르게 된 인류의 삶을 생각하고, 언젠가 종식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상황 이후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으면서 국가의 역할과 정체성, 기본소득의 필요성, 수많은 방역과 검사와 역학조사, 진료 등을 통해 지방정부와 공공의료에 대해 생각한다. 일상의 변화에 따라 삶과 인생, 가족, 공동체, 생태환경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한다.그중에서도 '감염'과 '전염'의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해본다. 언론에 보도된 '학원강사발 코로나19 감염 확산'이라는 감염 경로는 '한 사람'이 어디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일터와 삶터를 통해 만나는 타인에게 일종의 '감염'이 진행되고, 감염된 주체는 또 다른 타인을 감염시킨다. 이렇게 반복되는 감염이 결국 전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모든 전염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이 귀하다는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전염병 대란이 고작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한 사람은 대구 신천지 신도나 인천 학원강사의 사례처럼 부정적인 사례인 것은 맞지만, 역설적으로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생각해보면 다른 상상이 가능하다. 바이러스 감염의 주범으로서 한 사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회적 가치들을 감염시키고 확산시키는 '한 사람'을 상상하는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의 힘'을 생각하자는 말이다. 이때 '힘'은 일방적인 권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효과'에 가까울 것이다. 한 사람이 무제한적인 힘을 행사함으로써 어떤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구조와 관계, 우연성, 상호성 등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것이다. 한 사람이 의도하거나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시작점을 찍는 행위에 가깝다. '한 사람'은 악하고 부정적인 것의 숙주가 될 수도 있지만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나누는 최소이자 최선의 단위이다.그 '한 사람의 힘'을 주목해보자. 내가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 동물, 풍경에 보내는 눈빛과 몸짓, 말이 모여 그 사람이 감염되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고 상상해보자.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공존과 협력, 연대와 희망, 우정과 환대, 공감과 위로, 감동과 찬사를 전파하고 전염시키자.

2020-05-21 17:30:00

[춘추칼럼]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의 길

[춘추칼럼]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의 길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3년(5월 10일)을 맞이했다. 집권 후반기로 들어섰지만 국정 운영 지지도는 71%(한국갤럽 5월 1주 조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과거 조사한 역대 대통령의 취임 3주년 무렵 지지도는 박근혜 대통령 42%, 이명박 대통령 43%, 노무현 대통령 27%, 김대중 대통령 27%, 김영삼 대통령 41%, 노태우 대통령 12%였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70%를 넘은 건 지난 2018년 7월 이후 1년 10개월 만이다.전례 없는 압도적 지지 속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통해 남은 임기 2년 동안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겠다는 비전을 밝혔다.최근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지난 3년간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 때문이라기보다는 코로나 사태에 따른 반사이익 성격이 강하다.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자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가 53%로 가장 많았다. 그런데, 정책 항목인 '복지 확대'는 4%에 불과했다. 대구경북에서 긍정 대 부정이 53% 대 30%였다. 60대 이상에서도 그 비율이 64% 대 26%였다.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 성과가 없고 전통적인 보수 진영에서조차 문 대통령 지지에 대한 긍정 평가가 상당히 높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제임스 데이비스(James C Davis)가 제시한 J-커브 이론을 적용하면, 코로나 사태 해결에 대한 기대와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취 간에 인내할 수 없는 격차가 커지면 민심이 폭발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3년을 아주 냉정하게 평가하면 코로나 방역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국민이 기대했던 성과는 아직 요원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구상과 약속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지 못했고,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지 못했으며, 대통령부터 새로워지지 못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지 못했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도 끝내지 못했으며, 대통령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지 않았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도 체감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통합과 공존'이 아니라 '분열과 독존'이 판을 쳤다.문 대통령이 그토록 갈망하는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한 도덕성, 예리한 역사의식, 저항하기 어려운 설득력, 누구나 희구하는 미래의 비전,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상징성을 토대로 '변혁적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과 대통령과의 관계는 승화되어 정치 과정을 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국민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 국가가 지향하는 큰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국민의 에너지를 최대한도로 끌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용기와 협치, 그리고 겸손이 필요하다. 티머시 스나이더 미국 예일대 교수는 '코로나 이후 인류가 경계해야 할 것'으로 '전체주의 확산, 포퓰리스트 득세, 이념적 편 가르기, 사실을 무시한 선전·선동, 정부의 공포 마케팅' 등을 제시했다. 그는 "위기 상황인 지금이야말로 공포가 아닌,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냉철한 판단이 중요하다"면서 "코로나라는 위기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 정부가 무엇이든 해도 되는 기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따라서, 선도형 경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척, 전 국민 고용보험 실시, 한국판 뉴딜 구축, 연대와 협력의 국제질서 선도 등과 같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 못지않게 지금까지 추진했던 핵심 정책들이 왜 성과를 내지 못했는지 깊이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책 오류가 발견되면 정책 기조를 과감히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강성 친문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지지와 성원을 받는 통합 대통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단언컨대, 겸손한 권력만이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 행동하지 않는 도전은 기만이고, 성과 없는 비전은 허구다.

2020-05-14 15:51:13

[춘추칼럼] 좋아요 어법

[춘추칼럼] 좋아요 어법

최근 몇 년, 청소년들을 만나고 젊은이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 아니, 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날마다의 생활이기도 했다. 거의 날마다 전국의 중학교나 공공기관을 찾아다니면서 문학 강연을 했기 때문이다.젊은이들, 특히 10대나 20대 젊은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동안 새롭게 느끼고 배운 것이 있다. 그들의 어법이 매우 분명하고 깔끔하다는 것이다. 주저함이 없고 굴절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라는 말은 아니다. 말하자면 자신감 같은 것이다.이것은 매우 반갑고 좋은 현상이고 하나의 바람직한 변화이다. 그만큼 그들의 내면세계가 클린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여유로움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증거이다. 예를 들어 '좋다'는 말도 그렇다. 예전 사람들은 직접 대고 좋다고 말하지 않았다.약간은 미온적이고 보류하는 쪽의 표현이라 할까.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정도로 에둘러 얼버무렸다. 그러나 요즘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냥 곧바로 '좋아요'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것도 번번이 그렇게 말하고 주저하지 않는다.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바로 이거야.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어법이야. 그만큼 우리의 삶의 형편이 좋아지고 젊은 사람들의 세상이 밝아진 것이다. 이러한 어법 하나에도 우리의 소망이 들어 있고 내일에의 가능성이 숨 쉬고 있음을 본다.나의 시 가운데 이런 짧은 시 하나가 있다. '좋다'란 이름의 작품이다. 언뜻 보면 뭐 이런 글이 무슨 시인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분명히 시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시를 한 번 들여다보자. 시의 제목까지 합쳐서 총 15개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좋다'는 뜻의 단어가 역시 제목까지 합쳐서 네 번이나 나온다. '좋다'란 말이 아닌 말은 '하니까'와 '나도' 두 개의 단어뿐이다. 시 전체가 '좋다'란 단어가 변형되어 반복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그런데도 독자들은 이 시에 그 나름대로 감동이 있다고 반응한다. 지금 우리는 서로서로 좋다는 느낌을 많이 가져야 하고 또 그렇게 말하면서 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렇다. 아니다, 싫다가 아니고 그렇다, 좋다이다. 그래야 한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처음 내가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우리 집 손자 아이 때문이다. 세 살쯤 되었을까. 마침 아이가 말을 배울 때였는데 우리 집에 오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영화를 자주 보았다. 아이가 좋아라 보는 프로그램 가운데 붉은색 커다란 부리를 가진 앵무새가 나오는 영화가 있었다.그 앵무새는 툴툴거리기를 잘하고 화를 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영화를 자주 보아서 그랬을까. 아이에게 말을 걸면 제일 자주 하는 말이 '싫어요'였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부르는데도 '싫어요'라고 말하는 저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말을 할까.그런 생각을 바탕에 두고 쓴 시가 바로 '좋다'란 시이다. 그렇다면 이 시를 한번 '싫다'는 말을 넣어서 바꾸어 읽어보자. '싫어요/ 싫다고 하니 나도 싫다.' 대번에 분위기가 달라지고 세상 모습까지 뒤집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말 한마디가 중요하고 무섭다.이제 우리는 부디 좋다는 말을 자주,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나아가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좋다는 말이나 긍정적인 말을 자주, 많이 하면서 살다 보면 우리들의 삶이나 세상이 조금씩 좋아지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정말로 그건 그렇다. 상황이나 삶이 긍정적이고 좋아서 좋고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좋다는 말,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고 자주 들어서 상황이나 삶이 좋은 것이 되고 긍정적으로 바뀌는 세상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세상이 아닐까.그것이 진정 그러할 때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좋아요 어법'은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꿈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디 우리 좋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2020-04-30 18:30:00

[춘추칼럼] 뉴노멀사회와 수축사회

[춘추칼럼] 뉴노멀사회와 수축사회

우리는 과거의 일상(Normal)을 잃어버렸고,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하는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직면하고 있는 뉴노멀이 일종의 트렌드라기보다는 인류의 삶을 통째로 바꾸는 중요한 개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상황은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분야,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문제라는 점에서 총체적 대변동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그렇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떤 삶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과거를 회상하거나 추억하는 것은 그것이 사라져서 지금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의 삶터를 바꾼 '신도시'와 '아파트'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살던 동네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몇 년 후 그 자리에는 뉴타운이나 신도시가 들어서곤 했다.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렇게 우리의 삶과 사회는 바뀌어왔다. 그럼에도 지금의 대변동은 전혀 다른 충격을 던지는 것이 분명하다.최근 김호기 교수는 이중적 뉴노멀의 미래를 전망했는데, 경제 영역의 불확실성과 국가의 귀환, '제3의 자리'로 이동하는 사회였다. (국민)국가와 경제의 변화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회에서 '제3의 자리'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개인적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이러한 흐름이 함의하는 바는, 코로나 광풍이 그치면 우리가 돌아갈 자리는 옛날의 자리가 아닌 제3의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제3의 자리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연결이 강화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더욱 중첩되는 공간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혹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결되거나 중첩되는 공간으로서 제3의 자리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두 세계 사이에서 어떤 대안이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이 문제는 국가와 경제(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 이번 사태로 분명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지만, 여전히 세계화와 지역화는 치열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단기적으로 국가의 귀환은 당연해 보이지만 국가의 역할과 기능, 시민의 역할과 정체성의 문제는 또 다른 논의를 필요로 한다.그런 점에서 2018년 말 출간된 '수축사회'(홍성국 지음·메디치)는 중요한 문제 의식을 준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 '낯선 세계의 문턱에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가 '팽창사회'였다면, 2008년 금융위기 전후로 '수축사회'로 진입하면서 제로섬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축사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기주의, 모든 분야에서의 투쟁, 현재에만 집중하는 태도, 팽창사회를 지향하는 집중화, 심리적 문제 등.수축사회는 어쩌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수축사회를 돌파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인류 모두가 이타적으로 바뀌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타적으로 바뀐다는 것은 시스템의 문제이기 이전에 마음의 문제이다. 사람들이 어떤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회는 달라진다. 따라서 경제적자본 이전에 사회적자본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팽창사회에서 붙잡고 있던 효율성과 합리성이 아닌 도덕과 윤리를 통한 사회적자본의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우리는 '낯선 세계의 문턱'에 서 있다. 결국 각자의 삶을 살펴야 한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삶이라는 일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이것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해야 하는 물음이다. 개인의 질문이 우리의 질문으로 바뀔 때 출구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순서를 잊지 말자. 시장과 국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다음은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만하다."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그림자를 스스럼없이 당신 머리 위로 던져 주겠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두운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 안에서 당신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끄집어내십시오."(나쓰메 소세키 '마음' 중)

2020-04-23 15:36:00

[춘추칼럼]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라

[춘추칼럼]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라

문재인 정부 집권 중반 들어서 치러진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전례 없는 압승을 했다. 국민들은 코로나19 국난 앞에 '견제'보다 '안정'을 택했다. 민주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포함해 네 차례 연속 승리한 최초의 정당이 됐다. 180석의 '슈퍼 여당'이 된 민주당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국회까지 독차지하면서 개헌 빼고는 다 할 수 있게 됐다. 모든 법안·예산·정책을 정부·여당 마음대로 추진할 수 있고, 단독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가 가능해 국회선진화법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이번 총선 결과가 주는 함의는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주류 세력인 보수 산업화 세력이 진보 민주화 세력으로 교체되어 기존의 '보수·진보 양당 체제'가 무너지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진보 좌파 1.5 정당 체제'가 구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차지하는 의석은 1이고, 그 외 정당들은 모두 합쳐도 0.5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다. 일본 자민당이 1955년 창당부터 50년간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이런 정당 체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2018년 8월 5일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국 순회 연설회에서 "2020년 압도적 총선 승리와 2022년 재집권을 통해 앞으로 20~30년은 집권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적이 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서 벗어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용어는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업의 M&A 경쟁에서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에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에 많이 사용된다. 특정 정당이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패배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을 빗대어 사용될 수 있다.지난 2008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153석을 획득했다. 여기에 '친박 연대' 14석과 '친박 무소속 연대' 13명을 더하면 범여 의석은 180석을 차지하게 됐다. 그런데 총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현재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미래 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와 내전이 시작됐다. 필자가 2010년 10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소속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권교체라는 응답이 무려 33.6%나 됐다. 박 전 대표는 전략적으로 국민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시종일관 '여당 속의 야당'이라는 이미지 마케팅을 구사했다. 현직 대통령과의 이런 차별화 전략이 2012년 대선에서 인기 없는 여당인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51.6%의 득표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한국 정치에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하는 것은 철칙이다. 조국, 임종석 등과 같은 현재 권력인 대통령 세력(친문)과 현재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며 미니 대선인 서울 종로에서 낙승한 이낙연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 권력(친이) 간 대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첨예화될 수 있다. 이런 갈등은 문재인 정부 3년 6개월이 끝나는 시점인 올 연말부터 본격화될 개연성이 있다. 여기에 민주당과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만들려다가 민주당으로부터 팽당한 원로 진보 인사들이 중심 된 정치개혁연합 세력과 친문·친조국 세력 간의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진보의 분열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분명, 절대 권력은 절대 분열될 수 있다.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분명, 민주당이 이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긴 것이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압승은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성과에 대해 심판받았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민주당이 승리에 도취해 '협치와 포용'보다 극단과 배제의 정치에 몰입해 갈등과 분열을 가져오면 그것이 바로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 이제부터 통합과 공존의 정치에 앞장서야 미래가 있다.

2020-04-16 15:18:47

[춘추칼럼] 어둠 속의 희망

[춘추칼럼] 어둠 속의 희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가득한 하루 코로나는 근본적 삶의 성찰 요구 산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 희망하는 것은 두려움의 반대다"미래는 어두운데, 내 생각에는 이것이 대체로 미래가 띨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다."1915년 1월 18일, 버지니아 울프가 쓴 일기의 한 대목이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이다. 지금처럼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왠지 위로가 된다. 재난과 위기에만 그런 것은 아니고 미래는 항상 어두운 것이다.'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자본과 경제에 대한, 노동과 시간에 대한 사유를 통째로 바꾸고 있다.주변의 일상은 그야말로 대혼란과 격변의 시대이다. 유치원'초'중'고는 개학을 연기하고, 대학은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고 있다. 영화관을 찾는 사람도 급감해서 단축 운영 및 휴관이나 폐관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공공시설은 대부분 휴관 상태이다.문제는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측은 있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지금 사태는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았다.우리의 삶 역시 언제 끝날지 모른다. 평균수명과 기대수명으로 90, 100세를 예측할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질병으로, 누군가는 사고로 일찍 죽는다. 이 불확실성은 우리를 어둠으로 이끈다. 그 결과 불안과 두려움을 낳는다. 그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거나 아프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어쩌면 삶의 여정에서 어둠은 당연한 것이기에 그 속에서 '희망'을 떠올린다.'어둠 속의 희망'이라는 책에서 리베카 솔닛은 말한다. "희망하는 것은 도박하는 것과 같다. 희망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산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기에, 희망하는 것은 두려움의 반대다. 희망이란, 약속되거나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솔닛이 생각하는 '희망'은 '세계의 상태'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성취와 성공 가능성이 아니라 '선한 일을 바라보고 그 일을 해나가는 능력'을 의미한다.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흔들리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지키는 일이다.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좀 더 삶의 근본을 생각하게 된다. 개인은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개인과 공동체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노동을, 시간을, 돈을, 기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삶과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다음은 리베카 솔닛의 책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어느 날 아침 비를 맞으며 케네디의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노라니 참으로 바보 같고 부질없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여성파업' 소속의 그 여성은 말했다. 몇 년 후 그는, 가장 주목받는 반핵행동 중 한 사람이 된 벤저민 스팍 박사가 자기 삶의 전환점은 한 작은 무리의 여성들이 비를 맞으며 백악관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어둠 속에서 희망을 만드는 일은 대단한 성공도 아니고 거대한 악을 제거하는 일도 아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키고 서 있는 일이다.누군가는 하찮은 것이라고 비웃을지라도, 비록 큰 목소리는 아닐지라도 작은 위로와 격려의 문자를 보내는 것처럼. 그 일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선을 향해,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하나씩 쌓아갈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만약 그것을 일상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면 비록 연약할지라도 작은 승리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치와 사회 각 영역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어떤 기준으로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서로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하는 일, 서로의 필요를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 있는 희망이 아니겠는가.

2020-03-26 14:54:07

[춘추칼럼] 국민은 무엇을 기준으로 투표하나?

[춘추칼럼] 국민은 무엇을 기준으로 투표하나?

지난 3년 대국민 약속 잘 지켜졌는지총선은 정권과 집권당 향한 심판대상식·원칙 통하는 정당이 어디인지미래 이끌 역량 판단 신중한 선택을4·15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면접촉 선거운동이 금지되면서 '깜깜이 선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구나, '비례 위성정당' 출현에다 첫 시행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유권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여야 모두 제대로 된 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혼돈과 혼란이 지배하는 미증유의 선거가 되고 있다. 이번 총선 판을 흔들 최대 변수는 무엇일까? 경제 침체, 여야 공천 평가, 코로나 사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논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 중도·무당층 표심 등이 될 것이다.그러나 총선은 본질적으로 정권과 집권당에 대한 회고적 심판이 핵심이다. 이런 정권 심판론은 크게 3가지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다. 첫째, 문재인 정부가 지난 3년 동안 핵심적으로 추진했던 정책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냈는지 여부다. 현 정부의 양대 핵심 정책은 소득주도성장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수단인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 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재인 케어 등이 제대로 작동되어 저성장과 소득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했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대북 정책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중요한 평가 대상이다. 그런데, 현 정부 핵심 정책에 대해 민심의 빨간불이 켜졌다.한국갤럽이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6개월 시점에 실시한 여론조사(2019년 11월 12~14일) 결과, 경제 정책에 대해 긍정 27%, 부정 57%였다. 집권 초기에는 반대로 긍정 54%, 부정 17%였다. 대북 정책도 긍정(38%)보다 부정(49%)이 많았다. 제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5월에 긍정(83%)이 부정(7%)을 압도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둘째,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것들을 얼마나 잘 지켰느냐이다. 통상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정 철학이 반영되어 향후 국정 운영의 방향이 제시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 "국민 모두의 대통령"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 "공정한 대통령"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이런 철학적 기조 속에서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진영의 논리에 갇히고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판을 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다.셋째, 정부의 도덕성과 정체성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통해 특권과 차별이 없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현 정부의 도덕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검찰 개혁은 사라지고 검찰 장악이 부각되면서 청와대와 검찰 간의 갈등,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이 도를 넘었다. 누가 원칙을 지키고 누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행보를 했는지 평가받을 것이다.작년 12월 27일 여권은 '4+1협의체'(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를 만들어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을 개정했다. 미래통합당이 선거법 개정안의 허점을 파고들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하자 민주당은 "정치를 장난으로 만드는 것" "쓰레기 가짜 정당"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을 얕잡아 보고 눈속임으로 만드는 위성정당 앞길에 오직 유권자의 거대한 심판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17일 친문 성향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거대 양당이 유례없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국회 구성원의 다양성과 대표성을 높인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이제 가장 큰 관심은 누가 제1당이 될 것인가 여부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과연 어느 정당이 꼼수와 반칙을 일삼고 있는지, 어느 정당이 상식과 원칙을 지키는지, 누가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지, 누가 미래로 나아가는지를 기준으로 준엄하게 심판할 것이다.

2020-03-19 15:19:14

[춘추칼럼] 슬럼프에 대하여

[춘추칼럼] 슬럼프에 대하여

일단은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물러서 그 나름 궤도 수정도 필요하다눈앞에 보이는 유익이나 편리보다먼 날의 성공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가끔 문학 강연을 하면서 젊은 친구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글쓰기에 대해서, 독서에 대해서, 더러는 인생에 대해서. 한결같이 쉽게 대답해줄 수 없는 무거운 문제들이다. 가장 까다로운 질문은 사랑에 관한 것이고 그다음은 슬럼프에 관한 것이다.나이가 많은 사람이니 경험도 있고 그런 경험 가운데 사랑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알고 있겠고 슬럼프 극복에 대해서도 무언가 묘안을 갖고 있지 않겠나 싶어서 하는 말일 것이다. 사랑에 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고 있으니 다음으로 미루자고 얼버무리지만 슬럼프에 대해서는 나 나름대로 답을 내놓기도 한다.슬럼프.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다. 일종의 고난이고 고통이겠다. 슬럼프가 뭐 별것일까. 내내 잘 굴러가다가 주춤주춤하는 것이 슬럼프다. 그러다가 심해지면 가속도가 떨어져 아예 제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막막한 일이고 답답한 일이다. 이러한 절망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각자 나름대로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냥 모든 걸 포기해버리고 마는 것인데 우리가 살아있는 한은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제대로 된 답이 아니다. 어찌해야 좋은가? 이쯤에서 나는 나의 지난날 경험을 불러내야만 한다. 그러한 때 나는 어찌했던가? 그 대답을 듣기 위해 젊은이들도 나에게 묻는 것이리라.그러하다. 나에게도 몇 차례 슬럼프가 있었다. 인생의 슬럼프가 있었고 시인으로서 시가 제대로 써지지 않는 슬럼프가 있었다. 처음엔 무척 당황해하고 답답해하고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던 기억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우선은 기다려야 하고 생각을 좀 더 느슨하게 가져야 했다. 단기전으로 생각하지 말고 장기전으로 접근해야 했다. 거기에 첫 번째 항목이 기다림이고 느긋함이다. 시간의 은택을 입어야 한다. 시간이란 참으로 은혜로운 존재이다. 많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새로운 능력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사막에 사는 전갈의 이야기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전갈은 사막의 맹독성 절지동물이다. 생김새도 흉측하지만 꼬리 부분에 치명적인 독침이 있어 이 독침으로 먹잇감을 공격하고 나서 그 대상이 죽기를 기다렸다가 식량으로 삼는다고 한다. 때로는 그 먹잇감 가운데 제법 큰 동물도 걸려든다고 한다.그런데 이 천하무적 같은 전갈도 잡아먹히는 때가 있다고 한다. 바로 독침으로 먹잇감을 쏘았을 때이다. 그 순간을 노려 사막여우 같은 짐승이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전갈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갈은 일단 상대방을 쏘고 난 다음에는 재빨리 모래 속으로 몸을 숨긴다고 한다. 한참 동안 있다 몸에서 빠져나간 독이 새로 생겼을 때 슬그머니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바로 이것이다. 기다림이고 물러섬이고 인내이고 시간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 안에서 새롭게 생기는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비록 작은 동물이지만 우리 인간도 이러한 전갈에게서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하겠다. 이것이 하나의 지혜요 현명이다.나에게 문제가 있는가? 슬럼프에 빠졌는가? 그렇다면 일단은 참을 줄 알아야 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그 나름 궤도 수정도 필요하다. 터닝 포인트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힘을 비축할 때 새로운 출구가 열린다.나 자신만 해도 여러 차례 슬럼프가 있었고 위기도 있었다. 인생의 위기, 시인의 슬럼프. 그 슬럼프와 위기가 그 이후의 나의 인생과 시를 새롭게 좋은 쪽으로 바꾸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고마운 일이고 다행한 일이다.오늘날 우리는 너나없이 성급하다. 기다릴 줄 모르고 참을 줄 모르고 물러날 줄 모른다. 그러니 나날이 고달프고 지치고 답답한 것이다. 목전의 유익이나 편리보다는 보다 먼 날의 성공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인생은 의외로 길고 지루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기도 하다.

2020-03-05 14:58:48

[춘추칼럼] 코로나19와 봄이라는 기적

[춘추칼럼] 코로나19와 봄이라는 기적

일상을 송두리째 흔드는 코로나19 복잡하고 바쁜 삶을 새롭게 성찰불안과 공포 확산에 공동체 약화 지금의 고통 견뎌내면 봄은 올 것매년, 그리고 매일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계획한다. 그리고 대부분 새로운 삶을 만들기보다는 실패하고 만다. 본인의 의지와는 사실상 무관하다.실패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삶을 위한 계획이 내적 의지만 있을 뿐 외부 환경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계획한 사람은 저녁 회식을 줄이거나 취침 시간을 앞당겨야 하는데, 실제로는 환경은 그대로 두고 의지로만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코로나19만큼 우리의 삶의 조건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사례는 근래 없었던 것 같다. 정치적 혹은 경제적 상황 역시 큰 충격이 있었지만 개인의 일상을 이렇게까지 바꾸지는 못했다.이 상황은 거의 전쟁이나 쓰나미를 겪은 지역의 '그라운드 제로'와 같은 현실에 가깝다. 그 결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나는 불안과 공포가 확산되면서 공동체가 약화되고 있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복잡하고 바쁜 삶이 새롭게 성찰되고 있는 점이다. 사람들의 삶이 단순해지고 있다.수많은 사회적 관계는 가장 중요한 관계로 축소되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된 이후 이 두 가지 특징이 어떤 양상으로 이어질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정보 과잉의 측면에서 '마스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 전문가와 비전문가, 일반인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이 언론과 SNS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양산되고 확산된다.전문가들 또한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대표적인 예가 '마스크'에 대한 관점이다. 최소한 국가인증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입장부터 해외 사례를 들면서 굳이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다는 관점까지 서로 다른 정보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지금처럼 감염 확산이 빠르게 진행되는 현실에서 대중은 불안 속에 극도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으며, 마스크를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대형마트 앞에 줄을 서는 풍경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태도로 이 과정을 견뎌야 하는 걸까? 우선 수많은 정보 가운데 핵심 원칙을 가려내서 준수하고, 나아가 삶의 불필요한 요소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수행하는 일이 필요하다. 동시에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일상화되고 현실에서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남과 접촉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은 맞지만, 지금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도 결국 공동체의 힘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지난겨울은 유난히 온화했다. 과일이나 벼농사 등 열매를 맺어 추수하는 것들은 추운 겨울을 지나야 속이 꽉차고 맛이 난다고 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 없는 인생이야 없지만, 이러저러한 고통을 견디고 어려운 시간들을 거친 이들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문제는 그러한 순간들을 어떤 자세로 직면하고, 그 시간들을 어떻게 건너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우리는 자연이 제공하는 추위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있다. 언젠가, 봄은 올 것이다. 분명, 봄은 올 것이다.시인 김소연은 '봄'을 가리켜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기적'이라고 했다. 그 '기적'을 위해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시점에서 봄이 오는 순간까지 어떤 시간으로 채우는가 하는 점이다.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혐오,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 채울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맞이할 봄에 더 많은 꽃을 피우기 위해 땅을 다지고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만 하리./ 그럭저럭 정돈된 꼴을 갖추려면/ 뭐든 저절로 되는 법은 없으니.// ……// 누군가는 벽을 지탱할/ 대들보를 운반하고/ 창에 유리를 끼우고/ 경첩에 문을 달아야 하리.//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끝과 시작' 중에서)

2020-02-27 14:35:44

[춘추칼럼] 통합 보수 정당이 나아가야 할 길

[춘추칼럼] 통합 보수 정당이 나아가야 할 길

통합 잉크 마르기도 전에 불협화음 황교안·유승민·김형오 빨리 만나야반대를 위한 반대 국민 지지 못 얻어 인재 충원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야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 전진당이 합당해서 '미래통합당'(통합당)으로 17일 공식 출범했다. 지난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보수가 뿔뿔이 흩어진 지 3년 만이다.통합당 지도부는 한국당 체제가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고, 기존 한국당의 김형오 공관위원장 체제도 이어받기로 했다.일단 야권 정계 개편의 가장 큰 축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총선을 두 달 정도 남기고 그동안 파편화된 보수 정당들이 하나로 통합된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보수가 힘을 합치라"는 국민의 뜻에 부응했다고 볼 수 있다.지난 설 연휴 직전에 KBS와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1월 18~21일)에 따르면, "선거 전에 보수 야당 간 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필요하다'(50.7%)는 응답이 '필요하지 않다' (37.5%)보다 훨씬 많았다. 특히 보수의 텃밭인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에서는 통합 필요성에 각각 59.9%와 55.3%가 동의했다. 통합당은 일단 탄핵의 강을 건너 새로운 집을 짓고 개혁 보수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다.그러나, 여전히 넘어야 할 산도 많아 보인다. 통합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벌써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통합의 한 축이었던 유승민 의원은 통합당 출범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지역구 공천을 둘러싼 통합 세력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김형오 위원장이 "갈수록 이상해진다"며 총선 공천 작업에서 새보수당 인사들이 부당 대우를 받고 있다는 취지의 불만을 표출했다. 여하튼 유승민 의원의 '전략적 두문불출'이 길어지면 그만큼 통합의 시너지 효과는 반감된다. 통합의 화룡정점을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황교안 대표, 유승민 의원, 김형오 위원장 간의 3자 회동이 추진되어야 한다.공천을 포함해 정치로 풀어야 할 것은 정치로 풀어야 통합의 강을 건널 수 있다. 단언컨대, 흩어졌던 보수 세력이 단순히 합치는 것만으로는 보수가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확보하고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통합당이 다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정당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표출된 국민들의 이해를 잘 집약해서 좋은 정책을 만들고,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어 나갈 인재들을 충원하고 육성해야 한다. 정파적 이익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민생을 챙기고, 국익을 위해 봉사하는 국민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진영의 논리에 빠져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과 정책을 갖고 경쟁하는 정책 정당이 되어야 한다. 낡은 이념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미래통합당이 당명과는 달리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에만 얽매이거나, 통합에 앞장서지 않고 분열에만 치중한다면 오히려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원내 113석의 통합당 출범으로 이번 총선은 '1여다야' 구도가 아니라 '진보 대 보수' 간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은 본질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하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통합당이 내세운 정권심판론이 보수 세력 결집과 중도 표심 확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가 최대 관심사다. 한국갤럽의 2월 둘째 주 조사(11~13일)에 따르면,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 지원론'(43%)보다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 견제론'(45%)이 앞섰다. 한 달 전 조사(1월 7~9일)에서는 정부 지원론이 견제론보다 무려 12%포인트 앞섰으나, 이번에 역전됐다. 민주당의 잇단 악재에 불만이 쌓인 중도층에서도 지원론(39%)보다 견제론(50%)이 훨씬 많아졌다.보수 통합으로 지금까지 진보로 기울어졌던 운동장이 이제 겨우 평평해졌다. 선거는 통상 새로움의 경쟁이다. 어느 정당이 더 큰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지가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변화가 최상의 전략이다.

2020-02-20 15:18:15

[춘추칼럼] 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춘추칼럼] 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 벗어나야 반대편 사람 배려하고 함께 나눔을찬조자의 특별한 의도·사심 색안경 자기가 하지 못하면 말이나 말든지내 생애 가운데 좋았던 시절을 꼽는다면 우선은 외할머니와 함께 지낸 초등학교 시절과 교장이 되어 8년 동안 시인 교장 소리를 들으며 살던 시절일 것이다. 거기다 더 하나를 보탠다면 교직에서 정년 퇴임을 한 뒤, 8년 동안 공주문화원장으로 일하며 지내던 시절을 들어야 할 것이다.나는 공주 태생이 아니다. 서천 출신인데 30대 초반부터 공주에 와서 사는 사람이다. 어느 고장이든 문화원장은 그 고장 출신을 앉히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자존심 높은 공주 사람들이 나를 문화원장으로 허락해준 것이다. 두고두고 감사할 노릇이다.만약 나에게 문화원장 경험이 없었다면 나의 생애는 매우 단조롭고 조그마했을 뻔했다. 교직 생활은 어린 학생들과 엇비슷한 성향을 지닌 교직원들과 어울려 약간은 울타리 안에 갇혀진 생활이고 소극적인 생활이다.하지만 문화원장은 어른들을 상대로 하면서 문화 일반에 폭넓게 관여하는 자리다. 그러므로 나의 생애는 비로소 문화원장의 날들을 추가해야만 어렵사리 완성된다고 본다.내가 문화원장이 되어 시도한 일 가운데 하나가 찬조금을 많이 받아 문화원의 재정을 보다 부드럽게 하는 일이었다. 나부터 찬조금을 많이 내도록 노력했다. 그런 다음 그 찬조금 명세를 문화원 소식지에 상세히 밝혔다. 그것이 찬조금을 낸 분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찬조금을 더 많이 받아내는 길이라 여겼던 까닭이다.몇 차례 찬조금 명세를 밝히고 났더니 조금씩 반응이 왔다. 소식지를 받아본 분들 가운데 생각이 깊은 분들이 찬조금을 내 주기 시작한 것이다. 찬조금은 점점 늘어났다. 나중에는 목표했던 것보다 더 많은 찬조금이 들어왔다. 바로 이것이다 싶어 쾌재가 나왔다. 내가 처음 의도했던 것이 들어맞은 것이다.그런데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회원 한 분이 말했다. 왜 찬조금 명세를 자꾸만 밝히느냐고. 그렇게 하면 안 낸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겠느냐고. 실은 찬조금을 낸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면서 찬조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명세를 밝히는 거라고 대답해 줬다. 그랬더니 그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이제 우리는 생각을 많이 바꾸어야만 한다. 모든 일에 있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좀 생각해 주어야 한다.돈이나 학식이나 교양이나 지위나 권력이나 명예나 모든 면에서 많이 가진 사람은 그 반대편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 사람들을 배려해 주어야 한다. 나누어 줄 것이 있다면 기꺼이 나누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문화원장을 하는 동안 나에게 모범과 교훈을 보여 주신 분이 한 분 계신다. 그분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이신데 내가 문화원장이 되면서 고문으로 모신 분 가운데 한 분이다. 그분은 내가 문화원장이 된 뒤부터 해마다 상당한 액수의 찬조금을 주셨다. 그것도 당신이 손수 연금 통장에서 돈을 찾아 가지고 문화원장실로 와 살그머니 봉투를 놓고 가시는 것이었다.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 여러 가지를 깨치고 결심하는 기회를 가졌다. 가능하면 나도 선생님처럼 남들에게 베풀면서 살자! 여유 있는 돈이 생기면 그 돈을 문화계를 위해서 쓰자! 참 이런 생각은 이전의 나로선 불가능했던 생각이다. 선생님이 몸으로 본을 보여 주셨기에 스스로 배운 결과이다.그 뒤로 나는 해마다 수월찮은 액수를 문화계를 위해서 사용해 오고 있다. 고향 서천의 신석초문학상 제정을 지원하고 미주의 시인들을 위해 해외풀꽃시인상을 제정하여 시상하는 것도 바로 그런 차원에서 하는 일들이다.그런데 가끔 어이없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내가 무슨 특별한 의도나 사심이 있어 그런 일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자기가 하지 못하면 말이나 하지 말 것이지!

2020-02-06 15:23:35

[춘추칼럼] 총선의 본질은 정권 심판이다

[춘추칼럼] 총선의 본질은 정권 심판이다

야당 심판 여론 도취 위기 자초 여당연일 정권 심판 매 버는 행위 일삼아꼼꼼히 따져 후회 없는 소중한 한 표이제 유권자의 시간 다가오고 있다총선이 8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신년 여론조사에서 이례적으로 정권 심판론보다 야당 심판론이 높게 나왔다. 하지만 총선의 본질적 속성은 정권 심판론이다. 대통령 임기의 중반기에 치러진다는 점에서는 정권의 중간 평가 성격도 갖는다. 국민은 정부의 정책성과 도덕성, 그리고 책임성을 토대로 잘했으면 지지하고 못했으면 응징하는 회고적 투표를 한다.1988년 이후 여덟 차례 총선 동안 집권당이 단독 과반 승리를 한 것이 단 세 차례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실시된 2004년 총선 때 열린우리당(152석), 새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153석), 대선이 있는 해에 치러진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152석)이 각각 과반 승리했다.2016년 총선에선 야권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어 새누리당은 압승을 기대했지만 제2당(122석)으로 전락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깊숙이 개입하면서 촉발된 막장 공천 파동 때문에 완패했다.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보여준 선거였다.최근 정부 여당이 허황된 '야권 심판론'에 도취되어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 대학살과 검찰 직제 개편 추진', 이해찬 대표의 '장애인 비하 발언', 청와대 정무수석의 '부동산 매매 허가제 도입 주장', 신임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의 '조국 무혐의 의견 개진', 문희상 국회의장 아들의 지역구 세습 논란 등 연일 악재가 터져 나왔다. 이런 와중에 진보 성향 검사가 최근 단행한 검찰 고위직 인사를 두고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공개 비판했다. 한때 진보 논객이었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공직에 적합한 사람인지 근본적 회의가 든다"고 날을 세웠다. 이런 정부 여당의 악재와 비판이 쌓이면 정권 심판론은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다.최근 정부 여당을 향한 민심이 악화되고 있다. 리얼미터·tbs의 1월 셋째 주 조사(13~15일)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45.1%인 반면, 부정 평가는 51.2%였다. 같은 조사에서 부정 평가가 절반을 넘은 것은 지난해 11월 3주 차(50.8%) 이후 8주 만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민심의 풍향계라고 할 수 있는 중도층에서 긍정 평가가 40%대 초반으로 하락(42.2%)한 반면, 부정 평가는 50%대 중반(55.2%)을 상회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37.0%, 자유한국당은 32.4%를 각각 기록했다. 두 정당 간의 지지율 격차가 4.6%포인트로 오차 범위 내로 좁혀졌다. 더구나 한국당과 새보수당 지지도(5.3%) 합이 37.7%로 민주당보다 높게 나왔다. 중도 진보가 이탈하고 정통 보수가 결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이런 민심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당과 새보수당 간의 합당 논의가 본격화되고,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도 "진영 정치에서 벗어나 실용적 중도 정치를 실현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정치 복귀를 선언했다. 이들 중도·보수 세력의 공통점은 여권 독주 저지다. 이제 유권자의 선택 시간이 다가온다. 문 대통령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인지 아니면 '열혈 지지층만의 대통령'인지,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인지 아니면 '외골수 오기를 부리는 대통령'인지,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인사를 했는지" 아니면 '캠코더(문재인 캠프·코드 인사·더불어민주당) 낙하산 인사에 치중했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해서 심판할 것이다. 또한 '소득주도 성장'을 했는지 아니면 '소득주도 빈곤'을 가져왔는지, 검찰 개혁을 한 것인지 아니면 검찰 장악을 한 것인지,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에 질질 끌려다닌 것인지를 놓고 심사숙고해 후회 없는 선택을 할 것이다.만약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청와대 참모 출신을 대거 영입해 문 대통령 친위 체제 구축에 앞장선다면 스스로 정권 심판론의 매를 버는 것이다. 단언컨대, 보수 통합이 되면 총선 판도가 야권 심판론에서 정권 심판론으로 급전환될 것이다. 그래서 선거는 청와대가 아니라 민주당이 주도권을 갖고 치러야 한다.

2020-01-23 15:49:04

[춘추칼럼] 빨라도 너무 빠르다

[춘추칼럼] 빨라도 너무 빠르다

서두르고 조급해하는 한국 사회그러다 보니 집단 어지럼증 앓아자신을 느긋하게 좀 살펴야 한다그래야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와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서두르고 조급해하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속도 제일주의, 조급증이다. 도무지 진득하지 못하다. 무엇이든지 빠르게 뚝딱 해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참지를 못한다. 기다리지 못한다. 특히 남의 일에 관한 한 더욱 그렇다. 그러고는 쉽게 결론을 내리고 돌아서 버린다.우리가 예전에도 그랬을까? 내가 살기 이전 세상은 모르겠거니와 내가 어려서 보아온 세상은 조금은 여유가 있고 그윽한 정취가 있었던 세상이었다. 궁핍한 가운데서도 타인에게 좀 더 너그러웠으며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도 오늘날 우리들처럼 과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이렇게 조급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우선 자동차가 달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번 서울서 저녁 행사를 마치고 후배 시인이 운전하는 자동차 편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귀가한 적이 있다. 마침 밤이었고 그 운전자가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사람이라서 한껏 속도를 낮추어 한참을 달렸다. 많은 차들이 비켜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차를 세웠을 때 경찰 한 사람이 다가와 후배 시인을 불러세우는 거였다."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신고해서 왔습니다. 혹시 약주를 잡수셨습니까?" 그러더니 음주측정기를 들이댔다. 결과가 술을 먹지 않은 것으로 나오니 다시 물었다. "혹시 몸이 아프신 건 아닙니까?" 후배 시인이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경찰은 몇 마디 조언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고속도로에서는 어느만큼은 속도를 내어 달려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자동차 운전자들이 신고를 합니다."나는 옆에서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착잡했다. 내가 보기론 정상적인 속도로 달리는 것 같던데 그것이 신고의 대상이라니! 그러니까 이것은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으로 통하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으로 통하는 실례라 하겠다. 우리들 사는 세상이 모두 이렇다.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자동차가 웬만큼 달려서는 달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갑갑하다. 너나 할 것 없이 그건 마찬가지다. 날마다 사용하는 컴퓨터도 그렇다. 컴퓨터가 얼마나 빠르고 좋은 기계인가. 그런데도 컴퓨터가 느리다고 불평한다. 도대체 얼마나 빨라야 빠른 것이 될 것인가. 이는 속도 불감증 수준이다. 일 처리 하나하나가 그렇고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이 모두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빨리만 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지 모르겠다.그렇다고 속도를 아주 내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나 빨리 가자는 말을 하고 싶다.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지금 충분히 빠르다는 걸 알게 되면 저절로 속도가 조절될 것이다.무엇보다도 자신을 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음의 방책이 나오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무조건 서두르고 빨리만 가자고 재촉할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으로 잘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부족감을 느끼고 불만을 말한다. 심한 경우는 화가 나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우리들의 속도감에 있지 않나 싶다.'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 이것은 괴테의 충고다. 방향을 잘못 정하고 속도만 낸다면 망하는 길이 빠를 뿐이다. 속도를 좀 줄이자. 쉽게 줄어들지 않겠지만 지금 내가 빠르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조절을 해보자.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러다 보니 어지럼증을 앓는 것이다.

2020-01-09 16:20:39

[춘추칼럼] 북한의 신년사 예상과 우리의 대응전략

[춘추칼럼] 북한의 신년사 예상과 우리의 대응전략

북의 인위적 긴장 고조'통미봉남 2020년 한반도 정세 엄중함 예고한미 간 긴밀한 공조로 북핵 대응 북미의 '코리아 패싱' 현상 막아야북한의 신년사는 한 해의 정책 방향이 담겨 있다. 2020년 신년사의 대미 부분에 있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 및 미국에 지난 연말까지 시한을 주었으나 미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선제 조치를 자신의 과실로서만 활용했다. 부득불 새로운 길로의 전환을 천명한다. 우리가 선의로서 취한 핵과 장거리미사일 시험 유예를 해제하고 다시 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우리는 단계적으로 조치를 확대해 나갈 것이며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바뀔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 우리의 자위적 국방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이 제 정신을 차리고 적대시 정책 철회와 제재 해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는다면 우리의 조치들은 다시 철회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기간을 설정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갈 길을 갈 것이다. 우리는 미국 대통령의 재선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미국의 어떤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대남 부분에 있어, "2019년 남한이 대미 굴종적 태도를 일관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는 격화되었다. 금강산 및 개성공단 재개 등에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전의 눈치나 보면서 기회를 저버렸다. 남북공동선언 이행이 미진한 것은 전적으로 남한의 책임이다. 지난해 북미관계 개선은 남한의 도움으로 된 것이 아니다. 북미 정상 간 신뢰에 따른 것이며 비핵화 협상과 관련하여 앞으로 남한 대통령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남한과 대화·교류를 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남한이 계속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외세 의존적으로 나아가고 환경과 여건을 만들지 않으면 더 이상의 대화나 교류는 없을 것이다. 특히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할 경우 9·19 군사 분야 합의서의 무효화와 함께 남북관계는 파탄 날 것이다. 남한 보수 세력의 비난의 도가 참을 수 있는 인내를 넘어가고 있다. 반북 분위기를 계속 조성한다면 남북관계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남한 내 평화세력과 연대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는 내용이 예상된다.대외 부분에 있어 "중국과 쿠바, 러시아 등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단결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며 제국주의 미국이 펼치는 압살정책의 부당함을 계속 전파해 나갈 것이다"가 주요 내용으로 담길 듯하다.2020년도 한반도 정세는 엄중함을 예고한다. 엄중할수록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원칙적 입장 견지가 중요하다. 북한의 인위적인 긴장 고조와 통미봉남, 총선을 앞둔 국내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위한 마지막 시도라는 생각으로 원칙에 흔들림 없이 버텨 나가야 한다. 긴 호흡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경험적으로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발전해 왔다. 정권 담당자가 성과에 서두르게 되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통한 북핵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도 완전히 판을 깨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고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역할은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속적인 관여를 해야만 나중에 북미 대화 구도가 정립되더라도 '코리아 패싱'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남북관계 차원에서 어떤 비핵화 상응 조치를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지속적인 협의가 요구된다.한반도 문제에 있어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따른 우리의 독자성 확보도 중요하다. 당장 내년 초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관광·인프라 구축·사회문화·국제경기·대북 지원 등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업들에 대한 인내심 있는 관여 노력이 요구된다. 반드시 9·19 군사 분야 합의는 지켜야 한다. 이것이 무효화되면 남북관계의 보루가 무너지는 것이다. 접경지역의 긴장 관계에 적절히 대응하고 불필요하게 쟁점화하거나 악재로 작용되지 않도록 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사업은 지속 추진되어야 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의 1.5트랙 수준에서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분야 개발이 시급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중국의 참여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한중 정상의 상호 방문 등 정상 차원에서 한중 공조를 해나가는 동시에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진영 구도로 가지 않도록 균형 외교를 펼쳐야 한다. 위기와 기회는 모두 사람이 만든다. 우리가 노력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위기 극복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2019-12-19 18:41:09

[춘추칼럼] 진정한 힐링

[춘추칼럼] 진정한 힐링

자연 상황서 안빈낙도 현실선 불가 방송 보며 대리만족 착각은 아닌지차라리 책하고 노는 게 진정한 힐링 독서는 마음만은 부자로 만드니까별생각 없이 리모컨을 돌린다. 유독 자주 나오는 프로가 있다. 동시에 무려 다섯 개 채널에서 나온다. 하도 자주 나오니 조금이라도 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처럼 연속성이 없으니 부담도 없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내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된다. 나처럼 그 프로를 '자주 본다'는 분을 꽤 만났다. 보면서도 스스로 이해가 안 된다. 도대체 왜 저것을 보고 있는 건가? 재미라고는 있을 수가 없잖은가. 출연자는 달랑 두 명뿐이다. 예능인이 산속에 홀로 사는 나이 든 남성(아주 가끔 여성도 있지만)을 찾아가 2박 3일을 보낸다. 산속 사람만 달라질 뿐 대동소이하다. 나물이나 약초나 버섯을 채집한다. 나무를 하거나 오르거나 옮긴다. 밭에 무엇을 심거나 풀을 맨다. 잡거나 낚시하거나 사냥한다. 그리고 푸짐하게 먹는다. 샤워라고 말하면 적당하지 않은 것 같은 목욕신도 툭하면 나온다. 산속인의 기이한 언행? 독특하다는 것 말고 무슨 느낌을 가져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분들이 날것 연기를 참 잘한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 글로벌한 자연이 등장하는 프로들에 비하면 참 소박한 풍경이다.모든 힐링(치유)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의 짜깁기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프로그램'들 말이다. 세계를 찾아다니는 글로벌 여행으로 유명한 두 프로그램도 3분의 1은 오지를 찾아다닌다. 세계의 오지에서 산속인과 비슷한 이들을 만난다. 무수한 '먹방' 프로와도 궤를 같이한다. 밥 해먹는 장면만 떼어 보면 '세끼'류와 판박이다. 시골 가서 시골 사람 만나는 '고향'류와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산속인이 힘든 일을 할 때는 '체험'류를 방불케 한다. 시련 이야기가 꼭 나오니 '인생'류와도 상통한다. '동물'류 예능과 비슷한 장면도 적잖다. 숱하게 제작, 방영되었던(중인) 소위 '힐링' 프로의 클리셰(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장면)만 모아 가장 저렴하게 만든 듯하다. 그러니까 방송인들이 말하는 힐링은 '시골 가서 맛있는 거 해먹고 일도 좀 하고 놀다가 이야기하는 것'이다.'자주 본다'는 자체가 착각이 아닐까. 여러 채널에서 무수히 재방송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가 많아서 그것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 실은 돈 문제. 무수한 채널은 자체 제작으로 24시간을 채울 수 없으니 저렴한 프로를 사다가 수시로 틀어줘야 한다. 그처럼 저렴한 콘텐츠는 없을 테다. 싸게 만든 것이니까 싸게 사서 마구 틀 수 있다. 연출된 촬영과 선정적 편집과 그에 따른 조작 의혹과 비판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조작이든 왜곡이든 사실이든, 아무튼 '힐링'류가 시청자의 마음을 자극한다면, '자연에서의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일 테다.사람은 문득문득 꿈꾼다.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져,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 무인도 같은 곳에서 홀로 유유자적 살고 싶다.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런 삶은 도시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고 오로지 자연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힐링 프로는 자연을 찾아간다.그런 동경은 말 그대로 동경일 뿐이다. 현대인의 생존 필수품(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자동차 등)이 없는 자연 상황에서 하루 이상 안빈낙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신해 주는 방송이라도 본다. 그런데 나는 정말 '힐링'하고 있는 걸까? 하고 있다고 그저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지난한 삶에 즐거움과 감동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힐링일 테다. 대부분의 사람이 '힐링'하지 못하는 건 자연에 못 가서가 아니다. 끝없이 가난하고 힘이 없고 끝없이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휴식이 불가능하다. 굳이 자연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차라리 책하고 노는 게 진정한 힐링일 테다. 독서는 노동을 멈추게 하고, 마음만은 특권층·부자로 만들어주니까.

2019-12-12 14:47:42

[춘추칼럼] 무엇을 남길 것인가   

[춘추칼럼] 무엇을 남길 것인가  

지역 공공 문화 행사'예술 한 해 성적프로그램 개수로 평가받는 시대 끝나도시 공간은 수년 만에 변화 가능하나문화를 바꾸는 데는 수백 년 세월 걸려열두 달 기준으로 올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맘 때가 되면 대부분 한 해를 정리하거나 마무리한다. 개인은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조직은 다양한 방식으로 성과를 살필 것이다. 조직도 그 성격에 따라 수익을 따져 평가하거나 성과라는 이름으로 평가를 진행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이때 수익은 수입과 지출 항목의 비교를 통해 객관적 자료가 추출된다는 점에서 그 나름 명확한 기준을 갖게 된다. 하지만 '성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일을 많이 한 사람과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할 것인가. 이러한 기준은 조직이나 기관의 목표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그런 점에서 공공기관, 특히 수익을 주로 창출하지 않는 곳에서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기준에 따라 조직 운영과 사업 방식 등이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거 공공의 문화 행사나 프로그램은 가능하면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전국노래자랑'와 같은 행사를 떠올리면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므로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고, 그 결론은 유명 연예인을 불러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지금도 지역축제에 연예인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물론 주민 참여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행사와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활동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러한 활동이 지역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중요한 성과가 측정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실제로 정책 차원에서도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과거 '행사'나 '프로그램' 중심에서 '일상' 혹은 '활동'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와 광역단체의 문화정책이 생활문화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처럼 주민들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문화/예술을 창조하거나 생산하는 주체로 드러나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요한 것은 다양한 주민들이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와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일종의 플랫폼 조성이다. 공공의 방향은 이렇게 가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플랫폼이 주민들이 이용할 때 불편하거나 여러 제한을 겪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과 규정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주민들이 직접 공간을 운영하거나 기획하는 자산화 단계가 될 것이다. 이는 주민들이 단순히 관람객이나 소비자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주도하는 생활예술인, 동네예술가, 마을활동가로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적어도 지역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성과'로 경쟁해야 할 것은 사람과 경험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맞닿아 있으며 같이 움직인다.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과 행사를 진행했는가 하는 것으로 경쟁하는 시대는 끝났다. 아무리 많은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사람을 남기지 못하고, 그 사람의 경험을 남기지 못한다면 그 지역의 문화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도시의 공간을 바꾸는 것은 몇 년 만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도시의 문화를 바꾸는 것은 수 십 년, 아니 수 백 년이 쌓여야 한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이윤주 작가의 '나를 견디는 시간'(행성B, 2019)을 읽다가 오랜만에 만난 구절이다."단 하루의 무상한 삶을 영위하는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한편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10억분의 1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칼 세이건, '코스모스')

2019-12-05 17:16:08

[춘추칼럼] 무엇을 위한 선거법 개정인가?

[춘추칼럼] 무엇을 위한 선거법 개정인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배분 방식 복잡유권자 투표 선택권 훼손시킬 우려어떤 경우에도 힘이 아닌 합의 전제공수처법 연계 밀어붙이기는 곤란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1' 협의체를 가동해 처리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상황에서 극적으로 합의 처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한 사회의 제도는 규칙과 절차의 집합으로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이 전개되는 틀을 제공한다. 한편 선거제도는 정치 게임의 주요 기본 규칙으로 민주정치의 핵심인 대의 과정의 본질을 규정해준다. 따라서 선거제도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에 따라 대의 민주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고, 반대로 퇴보할 수도 있다. 각 정당이나 후보가 얻은 득표를 의석으로 전환시키는 장치인 선거제도가 소수 득표를 한 정당이 다수 의석을 점유하면 민의를 의정에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해 대의 민주주의가 퇴보할 수 있다.지난 2016년 총선에서 거대 정당들은 자신들이 얻은 득표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가령 민주당은 정당 득표에서 25.5% 득표했지만 총의석수에서 41%(123석)를 얻었다. 무려 15.5%의 보너스율(의석률-득표율)을 획득했다. 반면 국민의당은 26.7%의 정당 득표를 했지만 실제 의석률은 12.7%(38석)에 불과했다.거대 정당에게 유리한 기존 선거제도에서 비례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하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은 몇 가지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의석 배분 방식이 너무 복잡해서 유권자의 투표 선택권을 훼손시킬 수 있다. 유권자는 자신이 던진 표가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알아야 의미 있는 투표를 할 수 있다. 가령 기존 선거제도에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후보가 지역구에서 당선 가능성이 없으면 사표를 생각해 다른 정당 후보를 찍고, 정당 투표에서는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에게 투표할 수 있다. 이른바 '전략적 분리 투표'가 가능하다. 2016년 총선 직후 한국선거학회가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던 유권자의 12.6%가 정당 투표에서는 국민의당을 지지한 것으로 분석됐다.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선거법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은 당별 득표비율에 따라 산정한 의석수에서 해당 정당의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인 수를 뺀 후, 그 수의 50%를 먼저 배분하고, 잔여 의석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의 득표비율에 따라 산정한 의석수를 배분한다. 그다음 6개 권역별로 최종 의석을 배분한다'고 되어 있다.이렇게 복잡한 배분 방식을 이해하고 투표할 유권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비례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유권자의 전략적 선택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개정인가? 더구나 지역주의 타파 명분으로 지역구(225석)의 3분의 1에 불과한 비례대표 75석을 6개 권역으로 나눠 배분한다는 것도 난센스다.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지역구와 비례구 의석수가 298명으로 동일하다. 일본에서는 지역구 289석, 비례구 176석, 뉴질랜드에서는 지역구 63석, 비례대표 50석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는 적정 규모의 비례대표 의석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를 간과한 채 적은 비례대표 숫자로 비례성 강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전 세계적으로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는 없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간의 조화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되면 다당제가 부상되고, 이념과 노선이 다른 정당들 간에 '권력 나눠 먹기식 연대'가 이뤄질 수도 있다.어쩌면 정치 갈등과 정치 불안정이 일상화될 개연성이 있다. 미국 정치에서 보듯이, 다당제는 선이고 양당제는 악이란 명제는 없다. '게임의 룰'을 정하는 선거제도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연계해 처리하는 식의 정치 공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어떤 경우에도 힘의 논리가 아니라 합의 처리돼야 한다. 득표-의석 간 비례성 증대도 중요하지만 정치제도 간의 조화성,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당정치의 제도화, 그리고 정치 신뢰 회복과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2019-11-28 11:14:10

[춘추칼럼] 주한미군 주둔은 특혜가 아니다

[춘추칼럼] 주한미군 주둔은 특혜가 아니다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 세계 패권 전략 수행 비용과 연계한국 방어에 한정된 범위 벗어나 한반도'동북아 평화에 도움 안돼20일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3차 협상이 결렬됐다. 협상은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으면서 입장 차이를 좁혀 가는 과정이다. 국가 간 협상은 이해관계의 정도와 협상 의지에 따라 합의되기도 하고 결렬되기도 한다. 동맹은 상호 존중의 자세와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일반 국가 관계와 다르다. 미국은 다음 협상 날짜도 잡지 않고 협상장을 나가버렸다. 냉전시대 남북 협상에서 북한의 행동에서나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이미 한국민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기에 스스로 동맹의 가치를 손상시켰다.방위비분담금의 개념은 주한미군 주둔 경비 일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말한다. 법적 근거는 주둔군 지위협정(SOFA) 5조에 대한 특별조치협정 및 이행약정에 있다. 5조에는 '미국은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시설·구역(토지)·통행권을 부담한다'고 명시되어 있다.한국이 부담해야 할 항목은 인건비·군사건설비·군수지원비 등이 핵심이다. 인건비는 주한미군사령부가 고용한 한국인 근로자에 대한 비용이다. 100% 현금 지원이다. 군사건설비는 막사·훈련장·환경시설 등 비군사시설에 사용되는 비용이다. 88%의 현물과 12%의 현금 지원이다. 한국이 계약권을 가진다. 군수지원비는 탄약 저장·정비·수송·장비 물자·시설 유지 등에 사용되는 비용이다. 100% 현물이다. 미국이 계약권을 보유하고 한국은 승인권을 가진다.방위비분담금 지원은 1991년부터 시작됐다. 이전에는 미국이 대부분 부담했다. 1991년 이후부터는 한국의 경제력 신장으로 지원 규모가 점점 증가되어 왔다. 1991년 1천73억원을 시작으로 2019년에는 1조389억원을 지원했다. 29년 동안 지원 규모가 10배 증가했다. 지원 비용 결정은 전년도 총액에 매년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하고 인상률 상한선은 4%를 적용했다.2020년도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분담금은 50억달러이다. 미국이 스스로 책정한 2020년도 주한미군 주둔 경비는 44억6천만달러이다. 44억6천만달러 속에는 주한미군 인건비 21억달러, 운영유지비 22억달러, 가족 숙소 관련 비용 1억4천만달러, 기타 군사건설비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2020년도 분담금 요구액이 주둔 경비 책정액을 능가한다. 주한미군에 대한 모든 비용을 한국이 책임지라는 것이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에는 주한미군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 경비 일부를 지원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미국의 요구는 부당할 뿐만 아니라 한미 간 특별협정을 스스로 위배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인건비까지 한국이 부담한다면 주한미군이 한국의 용병이 되어야 한다.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는 인도·태평양 전략 등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 수행 비용과 연계되어 있다. 한미 연합연습에 참가하는 해외 미군, 항모전단 등 전략자산의 전개, 호르무즈 해협과 남중국해 작전 등의 비용 요구에 잘 나타난다. 주한미군 순환 배치 비용, 주한미군 작전준비태세 비용 등의 작전지원 신설 항목 요구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 실행 비용 요구는 한국 방어에 한정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넘어선다. 한국을 패권 전략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것은 동맹 가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 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한국은 충분한 수준의 안보 분담을 해 왔다. 미국의 주요 동맹·우방국들 가운데 국내총생산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의 국방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카투사 지원·세금 감면·공공요금 감면 등 상당한 수준의 직·간접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평택·오산 등 주한미군 재배치를 위한 사업비 108억달러를 충당하였다. 주한미군은 세계 최대 규모와 최적의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군은 월남전·이라크전·아프간전 등 미국 주도의 다국적 군사 활동에 모두 동참해 왔고 최근까지 12개국에서 파병 활동을 하고 있다. 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의 한반도 방위 기여도, 한국의 재정 부담 능력, 한반도 안보 상황,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 보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공평성에 토대한 합리적인 수준에서 책정되어야 한다. 무임승차론이나 주한미군 철수론 같은 낡은 주장은 미국 스스로 논리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오늘날 주한미군 주둔은 더 이상 한국에 대한 특혜가 아님을 미국만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2019-11-21 13:00:12

[춘추칼럼] 기억하는 법

[춘추칼럼] 기억하는 법

기억을 스마트폰이 담아내는 세상기억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조작'삭제 바로잡는 기능 무궁무진특권층'연예인 모르쇠 전략 안 통해스무 살 때 강원도의 어느 호수 안에 있는 무슨 섬으로 엠티를 갔었다. '바퀴벌레 한 쌍'이라고 불리던 두 친구의 언약식을 치러주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추억이었다. 어이없게도 나만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동기들에 의하면, 우리는 그곳에 엠티를 간 적이 없었다. 대학 다니는 내내 '언약식' 따위를 치러준 커플이 전혀 없었단다. 순전히 나만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그 기억을 믿고 있다.그런데 만약 그것이 정말 없었던 일의 기억이라면? 아마도 공상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기억으로 자리 잡은 것일 테다. 꿈이었을 수도, 상상한 스토리일 수도, 망상일 수도 있다. 엠티 가서 언약식하는 이야기, 얼마든지 공상할 수 있다. 내 바람의 변형이었을 수도 있다. 언약식 같은 특별한 체험을 해보고 싶었던 어쭙잖은 청춘의 간절한 몽상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실제 기억처럼 대뇌피질 어딘가에 박힌 것이다.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내가 들었던, 보았던, 읽었던 장면들이 한 줄기로 꿰어져 내가 겪은 일로 둔갑한 것. 누군가에게 '바퀴벌레 한 쌍'으로 불리는 커플 얘기를 들었고, 어느 드라마에서 대학생들이 언약식 치르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것을 조합하여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일로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나만 이렇게 이상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확신하지만, 어쩌면 실제로는 없었던 일일 수도 있는 기억. 나처럼 극단적인 기억의 모순은 드문 일일지라도,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은 흔한 일일 테다.남자들의 군대 얘기가 그토록 길고 격렬한 것은 기억의 불일치 때문인 경우가 많다. 수십 년 만에 만난 동창들 모임이 학교 때 얘기만으로 밤을 새울 수 있는 것은 기억들의 중구난방 때문이다. 분명히 같은 사람들이 같은 일들을 겪었는데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흥미로운 것은 기억을 대하는 태도다. 나처럼 내 기억이든 타인의 기억이든 모조리 의심하는 이도 있다. 대개는 내 기억도 타인의 기억도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리다는 식의 열린 자세를 유지한다. 그래야 그 판이 유지되니까. 물론 판이 깨지든 말든 자신의 기억을 맹신하는 이들이 있다. 내 기억은 무조건 틀림없고, 타인의 기억은 무조건 틀렸다는 거다. 이런 사람이 둘 이상이면 필시 고성이 오가게 된다.왜 기억을 나누다가 싸우지는 않더라도 마음이 상하게 되는 걸까. 나는 타인에게 잘 기억되고 싶었던 것일 테다. 이를테면 일관되게 괜찮은 언행을 한 사람으로. 내 기억으로 나는 일관되게 점잖게 말하고 행동했는데, 타인이 몹쓸 언행불일치자로 기억하고 있으니 언짢아질 수밖에 없다.어쨌든 오래도록 다채로운 기억은 사람의 것이었다. 실제기억이든, 공상기억이든, 표절기억이든 내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억을 스마트폰이 하는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폰에 담아버리면 끝인 거다.물론 제일 고통받게 될 사람들은 특권층이나 연예인처럼 온 국민이 다 아는 분들, 이른바 '공인'일 테다. 공인의 말과 행동은 실시간으로 국민에게 기억된다. 하기는 연예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특권층은 별로 문제될 게 없을 수도 있겠다. 그분들의 주특기가 '모르쇠'와 '아니라고 딱 잡아떼기'와 '내로남불'이니까. 그래도 과거처럼 대놓고 적폐를 저지를 수는 없겠다. 딱 잡아떼고 말면 되는 언행도 있겠지만, 감옥에 가야 할 언행도 있으니까.법으로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왜곡하거나 조작하거나 삭제한 기억을 바로잡아주거나 복원해주는 등 스마트폰의 순기능은 상당하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서글픈 일이다. 반주 없이도 외워 부르는 노래가 수두룩하던 사람이 노래방 기계 없이는 노래를 못 부르듯, 그렇게 길을 잘 찾던 사람이 내비게이션 없으면 길치가 돼버리듯, 스마트폰이 없으면, 그때 내 마음을, 내 생각을, 풍경을, 타인의 언행을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떤 기억일지라도, 기억 행위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도록 했다. 기억하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억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2019-11-14 11: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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