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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문 대통령 지지율과 레임덕

[춘추칼럼]문 대통령 지지율과 레임덕

대통령 임기 1년 4개월을 남겨 둔 연말 연초에 여러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각종 신년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35% 전후까지도 내려가는 등 대체로 35∼40%의 지지율을 보였다. 최근 한길리서치 1월 2주 조사에서는 40.7%, 갤럽 1월 2주 조사는 38%였다.그럼 대통령 지지율이 얼마가 되었을 때 레임덕으로 봐야 할까? 물론 이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없다. 단지 역대 대통령의 4・5년 차 무렵 레임덕 현상을 보인 시기의 지지율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대체로 역대 대통령의 경우 30%가 무너지면 레임덕 현상을 보이고 20%가 무너지면 레임덕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단순 지지율로만 판단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레임덕 여부를 판단하려면 단순 지지율뿐만 아니라 지지율의 강도와 정치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 지지율은 정량적 측면이고 지지율 강도는 정성적 측면이다. 그리고 정치적 상황은 수치와 강도의 역학이 작동되는 에너지의 장이 된다.먼저 문 대통령의 단순 지지율로 레임덕 여부를 보면, 현재 문 대통령의 35% 전후∼40% 초반 지지율로는 레임덕이라 보기는 어렵다.그러나 정성적 측면 즉 지지율의 강도를 보면 달라진다. 한길리서치 1월 2주 조사의 대통령 긍정평가는 40.7%지만 아주 잘하고 있다는 20.9%, 다소 잘하고 있다는 19.8%다. 반면 부정평가는 56.9%인데 아주 잘못하고 있다는 41.3%, 다소 잘못하고 있다는 15.6%다. 이러한 문 대통령 지지율 분포 모양은 바가지를 엎어 놓은 모양(정규분포)이 아니라 바가지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분포다.즉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중립적 합의형이 아니라 대립적 갈등형 분포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지지율의 전체 긍정평가(40.7%) vs 부정평가(56.9%) 배율이 1.40이지만, 매우 긍정(20.9%) vs 매우 부정(41.3%) 배율은 1.98로 더 커진다. 결국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의 힘도 크지만, 레임덕 원심력인 비토층의 힘이 두 배나 더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통령의 레임덕에 대한 심리적 체감 현상이 나타난다.마지막으로는 정치적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당선된 대통령이다. 다시 말해서 생태적으로 적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탄핵을 처음부터 반대했던 보수층의 반동적 저항은 당연히 강하다. 또한 중도층도 탄핵에 동의했기에 현 정부에 대한 잣대나 기대치는 전 정부보다 더 높고 엄격하다. 이런 정치적 역학의 상황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전의 대통령에 비해 10%포인트 정도는 더 높아야 한다. 즉 정치적 역학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40% 지지율은 과거 대통령의 30% 정도 지지율의 국정 장악력이 된다.결론적으로 말해 문 대통령의 단순 지지율 35∼40% 수준으로는 레임덕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비토 그룹의 크기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한 체감 지지율은 레임덕 상황이다. 그래도 현시점에서 이 정도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이전 정권보다는 선방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대통령 지지율은 4년 동안의 국정 수행에 대한 결과적 평가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의 국정 운영의 동력이다. 그럼 문 대통령의 임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지지율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앞서 말한 대로 과거 정권 말기 레임덕이 시작된 30%보다는 10%포인트 더 높은 40% 수준이다.그런데 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임기 말은 국민들이 임기 초기 기대감으로 바라보던 허니문 기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내심으로 4년을 기다린 국민들은 구체적 성과를 보고 평가한다. 따라서 임기 말 대통령이 정쟁을 통한 비교우위나 책임 전가, 현란한 언변(레토릭), 인사나 국면 전환용 대증요법으로 국정 운영을 하면 역효과가 나타난다.국민의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진정성과 소통의 리더십을 통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 사회 양극화가 해소되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문 대통령도 이 기대에 대한 성과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2021-01-21 12:15:31

[춘추칼럼]호로고루 사적지에서

[춘추칼럼]호로고루 사적지에서

새해 들어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늙는다는 실감이 또렷해진다. 눈이 침침하고 근력은 떨어졌다. 명민함과 정기도 사라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나이 듦의 기색이 완연한 내 모습에 놀란다. 늙는 건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이다. 노년의 실감이 늘 생경하고 쓸쓸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듦과 죽음은 노력하지 않아도 맞는 실존 사건이다. 오늘 아침 라디오 국영방송 채널을 틀어 놓은 채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죽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전두엽에 번개처럼 꽂혔다. 나는 죽음을 걱정했던가? 그건 우주의 섭리이고, 풀어야 할 실존의 수수께끼일 뿐인 것을.북극의 한랭전선이 남진하며 매운 추위가 몰려왔다. 한강이 얼음으로 덮이고, 중부 내륙도 얼었다. 오후에 집을 나서 호로고루(瓠蘆古壘) 사적지를 찾았다. 집에서 멀지 않아 답답할 때면 찾는 곳이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비강(鼻腔)으로 밀려든 찬 기운이 식초인 듯 따가웠다. 평지로 내려서니, 언 강과 응달 쪽 잔설, 쨍하니 파란 하늘, 임진강 너머에서 남쪽을 향해 나는 쇠기러기 떼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지역에서 쇠기러기나 두루미 같은 겨울 철새가 자주 목격되는 것은 철새들 먹잇감이 흔한 들녘과 장항 습지, 임진강이 한데 몰려 있기 때문이리라.호로고루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의 임진강변 현무암 절벽 위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 사적지다. 호로고루는 임진강의 옛 이름을 '호로하'(瓠蘆河)라 불렀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일대는 기원 6세기 중엽 이후 200여 년간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 지역이었다. 누군가의 아버지, 삼촌, 아들이던 이들이 고향에 부모 형제 처자식을 두고 떠나와 낯선 땅에서 무장을 한 채 국경을 지키느라 낮과 밤을 흘려보냈으리라. 스무 해 전쯤 유적 발굴조사로 땅 속에 묻혀 있던 삼국시대의 성벽과 우물이 나오고, 다수의 연화문·와당, 토기, 철기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 지금은 평평한 구릉에 고구려 점령기에 쌓은 성벽과 성곽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강변 갈대숲에서 날지 않는 쇠기러기를 만났다. 깃털은 윤기를 잃고, 사체는 얼어서 딱딱했다. 함부로 방치된 조류 사체는 죽음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사건임을 말한다. 천지간에서 나고 죽는 건 사람이나 조류나 마찬가지다. 1천500년 전 번성하던 고대 국가의 흔적을 밟고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고 묻는 일은 범상하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성벽을 쌓고 전쟁을 치른 이들은 무명의 병사들이다. 더러는 전쟁 중 팔다리를 잃은 채 귀향하고 더러는 차디찬 주검이 되어 낯선 땅에 묻혔으리라.공자는 물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흘러감이 마치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 시간은 저 아득한 근원에서 흘러와서 현재에 닿건만 현재는 유동하는 가운데 또 다른 현재에 닿는다. 인간은 그 유구한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멸의 연쇄라는 굴레를 벗지 못한다. 하지만 내 생명은 나만의 것인가? 생명은 부모에게 받은 것, 내 의지로 살아낸 것, 미래 세대에 물려줄 것이다. 세 겹인 것을 굳이 내 것으로 한정할 때 생명이 품은 뜻은 협소해진다. 사람도, 새도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간다. 오래된 경전에서 말하듯이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티끌은 티끌로 돌아가는 것이다.젊을 땐 이런저런 걱정을 하느라 세월을 헛되이 썼다. 괴로워 술을 마시고 방황하던 젊은 날의 내 어리석은 선택과 행위들이 뼈에 사무친다. 결핍에 허덕이느라 현재에 더 충실하지 못했다. 너무 젊었던 탓이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한 줌 지혜도 품지 못한 채 늙고 죽음을 맞는다는 생각에 쓸쓸해진다. 나이 들어 대리석을 깎아 새 집 지을 욕망 따위는 품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무덤을 생각하며 비감에 젖는 자에게 한 줌의 지혜가 있으리라. 이제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는 걱정거리는 내려놓자고 다짐한다. 오늘은 호로고루 사적지를 다녀왔고, 날 풀리면 속초의 겨울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2021-01-14 11:24:56

[춘추칼럼]국민의 마음 읽기

[춘추칼럼]국민의 마음 읽기

영하 15℃에 눈까지 내려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달력을 보니 소한이 지났다. 어른들이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 '소한 추위는 꾸어라도 한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소한이 지나면 멀지 않은 곳에 봄이 있다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일간지의 뉴스를 훑어보니 이번 주는 부동산에 관한 뉴스와 주식 뉴스가 크게 보인다. 작년 한 해 동안 아파트값이 20%나 올랐고 올해도 오른다고 한다. 주식도 코스피 3천을 넘어섰다. 이렇게 다 오르는데 어째 내려가는 것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 지지율이 36.6%로 최저치를 기록했다.지지율 하락의 주원인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인가 보다. 대통령은 공공임대주택을 방문해 '2022년까지 총 650만 호를 공급하겠다'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공공임대주택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신임 국토부 장관은 '양질의 값싼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줘서 집값을 안정시키겠다' '설날 이전에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국민은 또다시 스물다섯 번째로 발표되는 '특단의 대책'에 관심을 가져 본다.1970년대에 방주연이라는 가수가 '당신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모래밭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 코, 입 모두 그리고 입가에 미소도 그렸지만 당신의 마음 그 한 가지는 몰라서 못 그렸다는 내용이다. 마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요즘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걸 보니 현 정부가 한 가지 놓친 것이 있다. 무엇이든 단숨에 다 이루고 성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 국민의 마음 읽기를 간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이 시대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첫째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스마트폰에서 화면을 누르지 않아도 전화를 걸어 달라고 하면 전화를 걸어 준다. 자율주행차도 타게 된다고 한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했더니 이런 변화가 모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둘째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하여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상을 살아내기에 힘들다. 젊은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도 집 한 채 살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 있고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서 한 칸 장만한 사람들은 세금 때문에 시름이 깊다.셋째 정부와 소통이 안 돼서 힘들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려나 보다. 기자회견이라는 단어도 오랜만에 듣는다. 왕이 종과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노래를 하자 백성들은 왕이 우리의 삶을 이렇게 곤궁하게 해 놓고 뭐가 좋다고 저렇게 시끄럽게 노래를 하느냐며 이마를 찌푸렸다. 왜냐하면 임금이 백성과 함께하지 않고 혼자서 즐겁게 놀았기 때문이다.그런데 임금이 종과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노래를 했더니 백성들이 우리 임금님께서 편찮으신 데는 없으신가. 음악 소리가 참으로 즐겁다고 했다. 이는 임금이 백성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맹자 '양혜왕 하' 편에 있는 내용인데 '소통'과 '함께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구절이다.중국 청대 문인이면서 관직에 종사했던 원매 선생은 그가 지은 조리서 '수원식단'에서 위정자가 할 일은 한 가지 정책을 더 만드는 것보다 국민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폐단 한 가지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본다면 스물다섯 번째 발표될 부동산 정책 특단의 조치는 새로운 묘수를 만들어 내는 그것보다는 이미 있는 정책 중 폐단으로 여겨지는 한 가지를 빼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이것은 그동안 각계각층에서 정부에 대고 수도 없이 외쳐 온 '규제 철폐'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나라이건 기관이건 간에 리더가 몇 명의 참모만 가지고 좋은 나라 좋은 기관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국민이 원래 자기가 살아오던 방식대로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어 가는데 무엇이 불편한지 그 불편함을 제거해 주는 것이 정치다. 어디 그런 세련된 정치를 할 사람 없는가?

2021-01-07 14:01:47

[김성호의 춘추칼럼]쥐의 해 가고 소의 해 오라

[김성호의 춘추칼럼]쥐의 해 가고 소의 해 오라

콜레라, 말라리아, 독감, 에이즈 등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한 수많은 전염병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黑死病)과 지금은 박멸된 적사병(赤死病)이라고도 불리던 천연두가 아닐까 한다.흑사병은 페스트균을 벼룩이 쥐로부터 사람에게 옮기는 병으로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희생시키면서 중세 암흑기를 끝내고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역사를 바꾼 전염병이다.흑사병은 14세기 중앙아시아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하여 몽골군이 서쪽으로 침략할 때 따라왔다. 1346년 몽골군은 흑해 북쪽 제노바 무역 기지 카파를 포위 공격하면서 흑사병으로 숨진 흉측하게 썩은 시신을 성벽 안으로 던져 넣어 적의 사기를 꺾으려 했다. 생화학 테러의 원조인 셈이다. 그 시체에 있던 페스트균은 벼룩을 통해 쥐에게 옮겨갔고 그 쥐는 상인들의 화물선에 무임 승선하면서 이탈리아반도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한때 배고픈 고양이들이 쥐들을 열성적으로 공격한 덕분에 흑사병은 조금 주춤하기도 했으나 가톨릭 교회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불태워 없애기 시작하면서 마르세유에서는 고양이 보기가 어렵게 되었고 그로 인해 쥐들은 대거 흑사병을 퍼뜨렸다. 마침 수년간의 대기근으로 허약해진 유럽인들은 속수무책 쓰러졌고 유럽 사회는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절대 진리로 군림하던 가톨릭교회조차 어쩔 도리가 없었다.사람들은 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 회개하고 고행을 하거나, 반대로 종교를 버리고 '어차피 죽을 거 즐기다 죽자'며 쾌락주의로 빠져들었다. 전염병이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감염자, 유대인, 이교도, 나병 환자를 악마로 몰아 화형시켰다. 인구가 너무 많이 줄어들어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농노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장원제도는 붕괴되고 중세를 지배하던 종교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르네상스가 싹트기 시작했다. 쥐들이 퍼뜨린 흑사병이 중세를 무너뜨린 것이다.흑사병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무서웠던 전염병으로 천연두가 있다. 천연두는 오랜 기간 인류를 괴롭혀 왔는데 이집트 파라오 미라에도 천연두 마마 자국이 남아 있고 수백 명에 불과한 스페인 군대가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것도 우수한 무기보다는 신대륙에 옮겨간 천연두가 원인이었다. 18세기 이전까지 유럽에서 매년 40만 명이 천연두로 죽었으며 감염자의 20~60%, 소아는 80%가 사망한 무서운 질병이었다. 살아남아도 얼굴에 마마 자국이 남거나 합병증으로 실명하는데 18세기 런던 수용소의 시각장애인 중 3분의 2는 천연두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 천연두가 1979년 드디어 지구상에서 영원히 박멸되었는데 거기에 소가 큰 역할을 했다.예로부터 천연두를 막기 위한 시도로 천연두 환자의 고름 딱지를 피부나 코에 접종하는 인두법이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시행되었지만 인두법은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감염시키기 때문에 심각한 부작용이나 사망,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위험성이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소젖 짜는 여인들이 우두(牛痘)를 앓고 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우두를 접종하면 소가 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어 우두 접종이 쉽지 않았다. 1796년 5월 소젖 짜는 여인 사라 넬름즈의 손에 있는 우두 고름을 하인의 아들 8세 제임스 핍스의 팔에 접종한 후 2개월이 지나 천연두 고름을 접종시켰으나 천연두가 생기지 않았다. 이를 왕립협회에 보고했으나 인증을 받지 못하자 제너는 자비로 우두법에 대한 논문을 발간하며 홍보했고, 많은 시간이 지난 끝에 인증을 받았다. 제너는 자신의 이 예방 접종법을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가져와 백신(vaccine)이라고 명명하였다. 암소 덕분에 전 인류는 천연두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쥐의 해 2020년이 지나가고 소의 해 2021년이 밝았다.쥐의 해에는 쥐가 퍼뜨린 흑사병만큼이나 코로나 대유행으로 전 인류가 힘들었다면, 소의 해에는 소(vacca)로부터 시작된 백신으로 인류가 코로나19로부터 해방되기를 기대해 본다.희망찬 새해!

2020-12-31 14:44:19

[춘추칼럼] 눈으로 말하기와 경청하기

[춘추칼럼] 눈으로 말하기와 경청하기

이제 우리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바깥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됐다. 자기 집 문밖을 나서는 순간 그 무엇보다 먼저 챙겨야 할 물건이 마스크다. 마스크 착용 없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고 공공장소는 물론 공원이나 예식장, 헬스클럽조차 드나들기 어렵게 됐다.심지어 가게나 식당에 갈 때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안 된다. 이제 마스크는 생활필수품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오죽하면 속옷 없이는 살아도 마스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 다 나왔을까. 그런데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니 언뜻 사람을 알아보기 어렵고 대화하기도 힘들다. 더러는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싶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특히 마스크를 쓴 여성분들은 이쪽에서 헤아려 알기가 쉽지 않다. 마스크가 입술과 코를 비롯한 얼굴 아랫부분을 모두 가리는 바람에 이마와 눈썹과 눈만 빼꼼히 나와 있는 모습으로는 상대방의 특징이나 표정을 읽기가 어렵다. 도무지 누구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눈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마스크를 쓰면서 알게 된 것은 의사소통에 있어 입술과 볼의 기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소리로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만, 입술의 움직임이나 볼의 움직임으로 먼저 상대방의 의중을 짚어 알게도 된다. 그런데 그 입술과 볼이 가려진 형편이니 답답한 일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그래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인간에게 눈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는 것 말이다. 눈이야말로 마음의 창이다. 영혼의 거울이다. 마음의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얼굴의 기관이 바로 눈이다. 마스크 차림으로 사람들과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전보다 훨씬 밀도 있는 대화를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이것도 실은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역작용으로의 효능이다. 더러 젊은 여자분들 말을 들어보면 마스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얼굴 화장을 하더라도 윗부분만 하게 돼 오히려 편해졌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래선지 여자분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마스크 벗기를 꺼리는 추세이기도 하다. 이 또한 마스크가 가져다준 새로운 삶의 풍조 가운데 하나다.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 사람이 살아서 알아야 할 것은/ 오직 이것뿐/ 나는 지금도 술잔에 입술을 대고/ 그대를 바라보며 눈물 글썽이고 있다.이것은 내가 자주 외우는 시로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술 노래'라는 작품이다. 글의 제목은 '술 노래'지만 글의 내용은 사랑이다. 마스크를 쓰면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새삼 이런 시가 가까이 다가오는 요즘이다.더하여, 최근 우리에게 생긴 것은 경청의 문화다. 경청이란 글자의 뜻 그대로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래도 예전에는 경청하는 문화가 있었다. 어른이 말하든 아이가 말하든 누군가 말을 하면 귀를 기울여 정성껏 들었고 또 거기에 정성껏 반응했다.그런데 세상이 복잡해지고 피차간 하는 일이 바빠지다 보니 이야기할 때도 상대방의 말에 정성껏 귀 기울여 듣고 조심스럽게 말해주는 대화 문화가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수월찮게 소원해지고 데면데면해진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사는 날들이 지속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경청하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를 하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만 해도 문학 강연에 가서 독자들이 책을 들고 와 사인을 해 달라고 할 때 그 이름을 물어 적어 주는데 경청이란 것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다른 건 몰라도 이름을 잘못 쓸 때는 저쪽도 불편하고 이쪽도 민망한 일이 된다. 그래서 아예 복사지를 하나 준비해서 거기에 이름을 적어 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가 코로나19 이후 마스크 쓰기를 하면서 새롭게 생긴 삶의 형태, 문화 풍조다.그렇다. 이참에 우리도 이런 것들을 새롭게 익히면서 조금쯤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됐으면 싶다. 코로나 19가 우리의 삶의 형태를 바꿔 놓기는 했지만 이렇게 좋은 쪽으로도 바꿔 놓았노라 자위 아닌 자위를 해 보기도 한다.

2020-12-17 11:51:00

[춘추칼럼] 삶은 선택이다

[춘추칼럼] 삶은 선택이다

성경의 마가복음 6장에는 '오병이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과 5천여 명의 무리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는 해석과 논쟁보다는 그 자체 상황에 주목해 보자.일단 당시 상황을 보면 네 종류의 주체가 등장하는데, 예수와 제자들, 5천여 명으로 표현되는 성인 남성들, 그리고 무리 속에 있었지만 기록되지 못한 여성과 아이들이 그들이다. 무엇보다 이 주체를 바라보는 예수와 제자들의 시선이 다르다. 제자들은 본인들이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예수와 모인 무리들의 관계로 바라본다. 제자들이 말하기를,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헤쳐, 제각기 먹을 것을 사 먹게 근방에 있는 농가나 마을로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예수와 무리의 관계가 있을 뿐, 예수와 제자의 관계, 제자와 무리의 관계는 빠져 있다. 예수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항상 제자의 역할, 제자의 길을 강조한 것은 이유가 있다. 본인이 모든 일을 하지 않고 제자들이 일을 하도록 한다.제자들은 선택하지 않았다. 빈 들에 모인 배고픈 무리들의 현실을 자신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는 제자들이 상황을 회피한 것을 알고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럼에도 제자들은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다. 퇴로는 없다. "너희에게 빵이 얼마나 있느냐? 가서, 알아보아라." 그 후에 나온 결과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라는 대답이다. 비로소 제자들은 무리의 굶주림과 결속되었다.앞서 소개한 성경 본문에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빈 들'과 '날이 저문' 것은 우리 앞에 주어진 현실이자 조건이다. 예수는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있는 곳이 '빈 들'이니까 속히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날이 저물었으니 흩어져 집으로 가야 한다는 제자들의 말을 뒤집는다.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꽃이 지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것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한없이 오만하여 맘대로 살거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체념 속에 빠질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해가 지는 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비구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해가 진 다음에, 바람이 불 때, 비가 내릴 때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요청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정작 바람을 멈추게 하려는 이들은 바람이 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걸 막으려고 했던 이들은 정작 비가 내리면 나 몰라라 한다. 우리가 처한 시간과 공간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지금 '날이 저문 시각'에 '빈 들'에 서 있다. 이곳이 갑자기 아름다운 숲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고 태양이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남은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삶은 선택이다. 선택은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선택하는 삶이야말로 개인을 존중한다. 계부에 의해 죽임을 당한 다섯 살 아이는 삶을 선택할 수 없었다. 선택할 수 없는 삶이 늘어가는 시대에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권리보다는 책임에 가까운 것은 아닐지."다섯 살 아이에게는 삶이나 죽음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그 어린이는 다른 사람의 의지로 인해 죽었다. 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날마다 살기로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나처럼 선택의 순간을 가졌든 아니든 간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나아가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아가려면 외면할 수 없으니까. 나아가려면 맞서야 하니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김소영, 사계절, 165쪽)

2020-12-10 14:02:50

[김형준의 춘추칼럼]불통과 침묵은 파멸의 전주곡이다

[김형준의 춘추칼럼]불통과 침묵은 파멸의 전주곡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월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기습적으로 징계 요청과 직무 정지 처분을 명령했다. 그러자 전국 59개 검찰청의 모든 평검사와 검사장, 고검장들이 "부당하고 위법하다"며 들고일어났다. 급기야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검란(檢亂)이라고 부른다.하지만 법을 수호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헌법과 법치를 훼손한 것에 대해 검찰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총체적으로 저항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정치가 검찰을 내려친 '추미애의 난'(秋亂)은 법원과 검찰 감찰위원회에서 제압됐다. 법원은 윤 총장 직무 정지 명령이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몰각하는 것"이라면서 윤 총장 복귀 결정을 내렸다. 감찰위는 추 장관의 조치에 대해 "중대한 절차적 흠결이 있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했다.사태가 이쯤 되면 추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문재인 대통령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럼에도 징계위원회를 강행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발상으로 법과 국민에 대한 도전이다. 리처드 E. 뉴스타트는 「대통령의 권력」이라는 책에서 대통령의 힘은 설득에서 나온다고 했다. 대통령의 간결하고 명쾌하며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는 설득의 요체가 될 수 있다. 검찰이 집단 반발하는데 "모든 공직자는 집단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받들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공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검사와의 담판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야 울림이 생기는 법이다. 대통령의 침묵은 설득의 적이고, 불통보다 더 나쁘다.문 대통령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성 1호기 평가 조작, 윤석열 직무 배제 등 현 정부에 불리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침묵을 지켜 왔다. 근본 이유는 자기부정에 대한 부담감 때문으로 보인다. 가령, 문 대통령은 과거 "검찰 독립이 중요하고 검찰 독립에는 검찰총장 임기 보장이 결정적이다"고 했다. 따라서, 윤 총장 해임은 문 대통령이 공언했던 검찰권 독립 및 검찰 개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여하튼 대통령이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스스로 권위를 훼손시키고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다.「대통령의 위기」라는 책을 쓴 크리스 윌리스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16명 대통령의 통찰력과 결단력을 분석했다. 핵심은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추 장관의 일탈과 독선은 결국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 3년 6개월이 경과하면 예외 없이 위기를 맞고 레임덕에 빠졌다. 실패한 대통령의 공통점은 위기인데도 위기인지 모르거나, 위기인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는 유아적인 생각과 "자신은 역대 대통령과는 다르다"는 허황된 믿음 때문이다.현 정권은 경기 침체, 부동산 정책 실패, 추미애의 난 등으로 위기로 치닫고 있다. 최근 문 대통령 지지도는 작년 조국 사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여권의 유력 대권 후보들의 지지도는 링에도 오르지 않은 윤석열 총장에게 역전되기도 했다. 심지어 유권자 절반이 내년 재·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 지지 의사가 있다는 조사도 나왔다. 문 대통령이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추미애 블랙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국민 10명 중 6명(59.3%)은 추 장관과 윤 총장에 대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지금 문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지지층으로부터 미움을 받더라도 국민들의 이런 요구를 관철시키는 책임과 용기다.우리는 평소 대통령제를 '대통령 중심제'라고 부른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대통령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한국 정치의 비극은 대통령이 중심에만 있고 침묵하면서 책임지지 않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대통령 책임제'로 전환해야 한다. 설득과 용기는 위기 극복의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지만, 불통과 침묵은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를 종식시킬 수 없다.

2020-12-03 14:26:29

[춘추칼럼] 다시 좋은 세월이 오면

[춘추칼럼] 다시 좋은 세월이 오면

최근 코로나19 대란으로 우리의 삶은 많이 제한적이다. 예전에 일상적으로 편안하게 하던 일들조차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모여서 식사를 한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하는 일조차 편안하지 않고, 교회에서 예배 보는 일도 쉽지 않고, 대단위 회의나 축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그런 가운데 가장 아쉬운 것은 외국 여행이다. 가끔 여행 가방을 들고 인천 영종도 공항을 거쳐 외국 바람을 쐬고 오는 것도 우리들 삶의 에너지를 보충해 주고 지루한 일상을 새롭고 싱싱하게 만들어 주는 요인이었다. 그런데 그 길이 아주아주 막혀버린 것이다.나는 외부 나들이가 잦아 공주 시외버스 터미널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다. 이것도 코로나 이후에 일어난 변화인데 시외버스 시간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표구 앞에 걸려 있는 시간표를 보면 검은색으로 가려진 부분이 많은데 그것은 모두 버스 노선을 줄인 증거다. 아예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는 완전히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아예 공주에서는 인천공항으로 버스가 한 대도 가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것은 또 그만큼 비행기가 안 뜬다는 얘기다. 그러니 관광업이든 숙박업이든 제대로 되겠는가.이제는 누구나의 꿈일 것이다. 하루속히 코로나 대란이 평정돼 예전처럼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외국 여행 한번쯤 다녀오는 것 말이다. 만약 나에게 시간의 여유가 생겨 다시금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스페인을 들고 싶다. 그냥 멀리서 생각할 때는 투우의 나라, 집시의 나라, 피카소의 고국 정도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정작 가 보니 스페인이야말로 자연이 아름답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였다. 햇빛이 다르고 바람이 달랐다. 가슴이 확 열리는 느낌, 자유스러운 느낌이 있었다.그런 가운데 똘레도가 가장 좋았다. 내가 똘레도를 찾은 것은 오후의 시간 한나절. 똘레도의 골목과 관광 명소들을 둘러보며 기분이 좋았다. 발길이 허뚱허뚱 허공을 딛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백두산에서나 미국 세도나에서 느꼈던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그렇지만 더욱 좋았던 것은 저녁 식사 시간. 여행사 직원이 준비한 식당이 그럴듯했다. 포도주와 애저꼬치뇨 요리가 메뉴였다. 애저는 새끼돼지를 이르는 말이고, 꼬치뇨는 돼지 통구이의 스페인 말이란다. 이른바 새끼돼지 바비큐. 돼지 다리 하나씩을 줬다. 조그맣고 먹음직스러웠으나 나는 차마 그것을 먹을 수가 없었다. 애기돼지를 죽여 바비큐로 만들었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다. 나는 내 차례로 온 바비큐를 다른 사람에게 밀어 주고 대충 요기를 한 다음, 음식점 밖으로 나와 한동안 서성였다. 골목길이 아주 좁았다.그 길을 사각형 조그만 자동차들이 요리조리 빠져 다녔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 사람들은 길가에 만들어 놓은 턱에 올라가 자동차를 피했다. 자동차들도 조심조심 지나갔다. 그럴뿐더러 거리의 불빛이 매우 흐렸다. 어른어른 먼 거리에 있는 것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더욱 애상적이고 환상적이었다. 어디선가 문득 카르멘의 후예인 예쁘고 젊은 아가씨가 불쑥 나타나 나에게 웃어줄 것만 같았다. 나는 한동안 길거리에 버려진 돌멩이처럼 멍하니 서서 울먹이고 있었다. 울먹임. 까닭도 없는 울먹임. 울먹임 그 자체의 울먹임.그런 애상 때문에 그랬을까. 나는 골목길을 저만큼 걸어 낯선 가게를 하나 발견하고 불쑥 그 가게 안으로 들어가 플라멩코 춤을 추는 집시 아가씨 인형을 두 개 사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 안 될 것 같은 목마름이 그때 있었다.아, 다시금 좋은 세월이 오면 스페인이란 나라에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도 좋고, 프라도 미술관도 좋고,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도 좋고, 가우디의 성가족성당은 더욱 좋았지만, 그 어디보다도 똘레도에 한 번만 더 가보고 싶다. 몬주익 언덕에서는 황영조 선수의 조각상을 보기도 했었지!하루만 똘레도의 골목길을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서성이고 싶다. 낯선 가게, 낯선 음식 앞을 기웃거리며 걷고 싶다. 그런 날이 과연 오기나 할 것인지! 어쩌면 이것은 나 혼자만의 꿈이 아닐 것이다. 하도 지루하고 답답하고 우울한 날이 계속되다 보니 내가 별별 생각을 다 해 본다.

2020-11-19 14:40:11

[춘추칼럼] 백넘버 51

[춘추칼럼] 백넘버 51

취미로 야구를 시작했다. 공을 좋아해서 축구와 농구, 당구, 족구, 탁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했지만, 야구는 주로 '시청'하는 것에 만족했던 종목이다. 운동 역시 자신과 맞는 것이 있어서인지 주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것을 좋아하면서 야구라는 스포츠는 직접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야구 경기라는 것을 해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투수로 나서 '완투'했던 기억인데, 경기 후 한동안 팔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이번에 야구를 시작한 것은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과 몇 경기 안 되었지만 현재까지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타율도 아직은 좋은 편이다. 직접 선수로 뛰면서 느낀 것은 그동안 야구라는 스포츠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구나 하는 점이다. 흔히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야구 선수들은 거의 뛰지 않고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는 식으로 약간의 조소가 담긴 표현이다. 그런데 야구는 축구나 농구와 같은 체력을 요하진 않지만 매우 섬세한 집중력을 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비 위치를 선정하는 것이나 공을 잡고 던지는 것, 심지어 주루를 할 때 베이스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를 하거나 부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격을 하는 것도 투수가 던진 공을 배트 중심에 맞힌다는 것이 확률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무엇보다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은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축구는 한두 사람이 잘 못 뛰거나 실수를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축구 경기에 퇴장을 뜻하는 '레드 카드'가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야구 경기는 9명의 선수가 수비와 공격에서 자신의 자리와 타석에서 고유의 역할을 해야 한다. 수비에서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날아오는 공을 온전히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타석에 들어서서도 투수의 공을 보고 치는 것은 자신만의 몫이다. 물론 투수의 비중이 절대적이고 소위 강타자의 역할이 큰 것은 맞지만,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퍼즐을 맞추듯이 모여서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그럼에도 야구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각자 다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배치가 가능하다. 투수와 포수, 내야수와 외야수 등 각자의 포지션에 따라 다른 역량이 요구된다. 유격수처럼 순발력과 강한 어깨가 더 요구되는 포지션이 있는가 하면, 1루수처럼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많지 않은 자리도 있다. 타선 역시 1번부터 9번까지 그 나름의 배치 이유가 존재한다.각자의 자리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야구의 본질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야구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세 명이 아웃되지 않으면 이닝이 끝나지 않는다. 축구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면 끝이 난다. 후반전에는 힘이 있는 선수가 더 많이 뛰어 경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야구는 각 선수가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인생도 그 끝을 알 수 없다. 어려운 순간이나 절망이 찾아오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집중하고 걸어갈 때에야 공격과 수비가 교체되듯이 상황은 바뀔 것이다.유니폼 뒤에 새겨진 백넘버는 51번이다. 51세에 야구를 시작했다는 의미로 정해 주었다. 지금은 신발과 헬멧 외에 글러브와 배트 등 대부분을 빌려 쓰고 있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축구나 농구를 할 때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있다. 내가 다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잘 못하는 것을 보면 답답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역량과 역할을 생각하고, 내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들이 내게 부족한 것들이다.

2020-11-12 15:23:45

[김형준의 춘추칼럼] 역사를 잊은 정당에게 미래는 없다.

[김형준의 춘추칼럼] 역사를 잊은 정당에게 미래는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악수를 뒀다. 당헌을 바꿔 가면서 속전속결로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민주당 당헌(제96조 2항)에 따르면,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모두 성 추문으로 인해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무공천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며, 오히려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게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는 구차한 논리로 약속을 뒤집었다. 이런 민주당의 태도는 자기부정의 참 나쁜 정치다. 더욱이, 여성시민단체의 지적처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2월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4월에 치러진 네 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모두 패배했다. 정치적 타결책으로 문 대표는 5월에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김상곤 혁신위는 사무총장제 폐지, 부정부패 등으로 직위 상실 시 재보선 무공천, 당원소환제 도입 및 당무감사원 설립 등의 혁신안을 제시했다. 문 대표는 2015년 10월 새누리당 소속 경남 고성 군수의 선거법 위반으로 재보궐선거가 열리게 되자, 현장 유세에서 "새누리당이 책임져야죠, 후보 내지 말아야죠"라고 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불과 5년 전에 문 대통령이 정치 발전의 출발점이라고 자랑했던 '무공천 당헌'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는 것은 반개혁의 적폐다.민주당은 지난달 14일 당 체질 개선을 위한 가칭 '2020 더혁신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런데 혁신위 구성 2주 만에 당헌을 바꿔 스스로 가장 혁신적인 방안이라고 자랑했던 무공천 약속을 파기하는데 더 이상 무슨 혁신을 하겠다는 것인가? 국민 기만이고 우롱이다. 절차적 정당성에 기대어 당헌을 편의에 따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근간을 마음대로 흔들 수 있다. 명분은 없고 탐욕만 취하는 것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3마리 원숭이'에 빗대어 눈 가린 문재인 대통령, 귀 막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 입 닫은 이재명 경기 지사가 차례로 등장하는 만평을 게재했다. 문 대통령이 민주당의 서울·부산 후보 공천 결정을 못 본 척하고, 이 대표가 비난 여론을 못 들은 척하며, 이재명 지사가 신뢰를 쌓을 목적으로 일부러 함구하고 있다는 것을 풍자했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오만과 입만 열면 거짓 혁신을 외치는 위선의 대가는 즉시적이다.한국갤럽 조사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지난 5월 1주 71%였지만 지금은 40%대로 추락했다. 최근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10월 26~30일)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17.2%로 자체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이낙연 대표(21.5%)와 이재명 지사(21.5%)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윤 총장은 전달 대비 6.7%포인트 급상승하면서 범야권 1위 후보가 됐다. 당분간 대선 판세는 이낙연·이재명·윤석열 '빅3' 구도로 형성된 흐름이 유지될 전망이다.윤 총장의 지지도 상승이 던지는 메시지는 다차원적이다. 윤 총장 지지도는 추미애 장관과의 대립과 국정감사 때 여권과 확실히 각을 세우면서 급상승했다. 결국 윤 총장을 키운 것은 오만한 권력이다. 권력이 윤 총장을 때리면 때릴수록 오히려 존재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대선 경기장'에 들어와 트랙을 돌고 있는 이재명·이낙연과 비교해 아직 경기장에 들어오지도 않은 윤석열이 오차범위 내에서 선두를 뒤쫓고 있고, 이낙연·이재명의 지지도가 20% 안팎에 머무르는 정체 현상을 보이는 것은 분명 여권엔 위기 상황이다. 특히, 지지도가 지속 하락하고 있는 이 대표에게는 빨간불이 켜졌다. 유력 여권 대선 주자들이 외연을 확장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권력과 전략적 차별화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국민과 함께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비겁하게 권력 눈치만 보면 결코 미래는 없다.

2020-11-05 12:32:11

[춘추칼럼] 근근이 먹고산다

[춘추칼럼] 근근이 먹고산다

'우리 집은 아빠가 선생질을 해 근근이 먹고산다.' 지금도 이 문장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온다. 이 문장은 우리 집 아들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다닐 때 여름방학 숙제로 쓴 일기장에 들어 있던 문장이다. 마침 그때는 나도 아들아이가 다니던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던 시절인데 여름방학이 지나고 여름방학 숙제 검사를 하던 아들아이 담임 선생님이 일부러 나를 불러서 보여준 문장이기도 하다. 아들아이가 일기장에 쓰기는 했지만 이 말은 애당초 아들아이의 것이 아니다. 아이의 엄마가 아들아이에게 자주 해준 말이다. 그러기에 아이가 그것을 외워두었다가 마침 일기장에 아무것도 쓸 거리가 없는 날 이 말을 기억해내고 무심히 옮겨 적은 것이다.우리가 살던 집, 아주 작은 단독주택 앞에는 동네 사람들이 홍가가게라고 부르던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아이는 그 장난감들에 눈독 들여 살았다. 들락날락 가게 문을 드나들며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장난감을 넉넉하게 사줄 만한 돈이 아내에게 있을 까닭이 없었을 터. 늘 푼돈으로 쪼개어 써도 돈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쌀값, 연탄값, 반찬값을 제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으니까 말이다.그런데도 아이는 새로운 장난감에 마음을 뺏기고 자꾸만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으리라. 그럴 때마다 아내가 아이의 등짝을 한 대씩 때리면서 했던 말이 바로 그 말이다. "우리 집은 아빠가 선생질을 하여 근근이 먹고산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나 아이의 등짝을 때리며 경각심을 심어주던 아이의 엄마나 그것을 바라보던 나나 참으로 한심한 인물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한심한 사람은 바로 나. 그래, 학교 선생으로 일한다는 사람이 아이에게 장난감 하나 시원시원 사주지 못하고 아내에게 그런 소리를 하게 만들고 또 아이에게는 그걸 또 일기장에 쓰게 했단 말인가!이제 와서 가족들에게 참 미안하고 송구한 심정이다. '근근이'란 말은 일상 흔하게 쓰이는 말이 아니다. '어렵사리 겨우'란 뜻의 부사이다. 또 이 말은 한자에 그 뿌리를 둔 말이기도 하다. '근근이'에 쓰여지는 근(僅)이란 글자는 여러 가지 뜻인데 한결같이 부정적이며 마이너의 뜻이다. '겨우, 거의, 가까스로, 다만, 단지(但只), 희미(稀微)하게, 적게'의 뜻이 그것들이다.정말로 그 시절 우리 가족의 삶이 그러했다. 매우 왜소하고 매우 부족하고 매우 썰렁하고 매우 춥게 살던 시절이다.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형편이나 상황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우리가 사는 것은 근근이 어렵게 사는 삶이다. 시간이 그렇고 건강이 그렇고 인간관계가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두루 그러하다.오늘날 우리는 단군 임금 이래 가장 잘 사는 세상을 살고 있다. 들쑥날쑥이 있기야 하겠지만 의식주가 그런대로 해결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한껏 보장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이런 나의 발언이 선뜻 짐작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대로 나잇살이나 먹은 내 눈으로 보기엔 우리는 지금 분명히 잘 사는 사람들이다. 그냥이 아니라 기적처럼 잘 사는 사람들이다.그런데도 사람들은 불평불만이 많고 자기만 낙오자라고 투덜거린다. 마이너라고 루저라고 한숨을 짓는다. 모두가 상대적 비교 탓이다. 자기의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남의 것만 흘낏거린 탓이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기에 앞서 자기의 것을 소중히 아름답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을 보다 더 사랑하고 아끼고 자랑스럽게 여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자존감을 높여야 할 일이다.'근근이 먹고산다'는 이 말을 우리는 지나치게 부끄럽게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상 우리는 모두 오늘날도 여전히 근근이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안쓰럽고 아름답고 눈물겨운 사람들이다. 비록 근근이 먹고살지만 마음만은 더욱 너그럽게 부드럽게 풍부하게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길이 정말로 물질로 마냥 풍요로운 오늘날 우리가 잘 사는 길이라 생각한다.

2020-10-22 15:25:56

[춘추칼럼] 체념과 희망

[춘추칼럼] 체념과 희망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그동안 삶에서 익숙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훅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주름, 흰머리, 뱃살, 노안 등이 대표적이다. 이것들이 주로 외모나 신체와 관련된 것이라면, 실패와 좌절, 절망, 불안, 우울 등은 심리적이고 정서적 표현들이라 할 수 있다. '체념'이라는 단어 역시 그중 하나다. 실패나 좌절이 더 깊고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라면, 체념은 기대를 접는 데 있어서 뭔가 순간적 감정이나 판단 등 일시적 느낌으로 남는 듯하다.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체념은 항상 인간에게 힘과 새로운 희망의 샘이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그것을 기초로 삼아 자신의 이승에서의 삶의 의미를 쌓아 올리는 법을 배웠다'라고 썼다. 칼 폴라니는 죽음이라는 좀 더 궁극적인 절망 앞에서 '체념'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은 일상의 다양한 체념에 익숙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의 시간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제 그것을 할 수 없다는 체념 사이에서 흘러간다.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곳을 갈 수 있고,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던 꿈은 이제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체념의 숫자를 늘려가는 중이다.이처럼 우리의 삶은 수많은 체념으로 구성된다. 동그란 공으로 하는 스포츠라면 거의 좋아했다. 잘한다는 말도 꽤 들었다. 하지만 이제 내 몸은 과거의 몸이 아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부모들이 이어달리기에서 많이 넘어지는 이유도 머리가 과거의 몸을 기억하고 달려가기 때문이다. 이제 조심해야 할 때가 되었다. 무엇보다 체념할 때가 된 것이다. 가장 정확하게 내 몸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체념과 포기는 다르다. 체념이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시간에 따른 판단 행위를 뜻한다면, 포기는 미래를 포함한 시간에 대한 판단과 결정이다. 그런 점에서 체념은 새로운 시작과 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체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체념 이후의 판단과 행위가 중요하다. 체념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체념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찾거나 발견하기도 한다. 체념이 없다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아 새로운 것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체념한다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나 과거와 단절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한 단절이야말로 새로운 상상,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 절망과 죽음이라는 극단의 비극에서 비로소 희망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살면서 더 필요한 일은 수많은 체념 속에서 희망을 엿보는 일이다.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Lady Windermere's Fan)라는 작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빠져 있다네. 하지만 우리 중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지."(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사실, 언제나 그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희망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인간은 항상 '시궁창' 같은 현실에 절망했고 좌절했다. 그 속에서 체념은 지극히 당연한 대다수의 선택이었다.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체념 가운데 별을 바라보는 일이다. 시궁창에서 허우적대면서도 별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저 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시궁창에 있다는 사실을 잘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시궁창 안에서도 탐욕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기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있다고 말을 해주어야 한다. 칼 폴라니가 말한 '죽음이라는 현실을 기초로 삶의 의미를 쌓아 올리는 것'은 어쩌면 이 땅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현실적인 노력이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온통 주식과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하는 방법만 강조할 때, 누군가는 저기 사람이 살고 있다고,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있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체념 가운데 삶의 의미를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2020-10-15 13:57:49

[춘추칼럼] 야당이 야당다워야 나라가 바로 선다

[춘추칼럼] 야당이 야당다워야 나라가 바로 선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약 1년 6개월 정도 남았다. 역대 정부에서는 통상 이 시점이 되면 대통령의 지지도가 30%대 이하로 추락하면서 레임덕이 시작됐다.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기대와 성취 간의 인내할 수 있는 격차가 커지고, 대통령의 핵심 지지 계층에서 균열과 이탈이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추석 이후 문 대통령 지지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면서 이런 패턴이 재연될지 주목받고 있다.데일리안·알앤써치가 추석 직후에 실시한 조사(10월 5~6일)에서 문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42.3%다. 반면, 부정 평가는 53.2%였다.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인 40대에서 긍정 평가는 전주보다 19.6%포인트(p) 급락한 44.6%, 부정 평가는 18.8%p 급등한 51.7%였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군 복무 특혜 의혹, 북한의 공무원 피살 사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론된다.문재인 정부의 지난 40개월을 회고해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우선, 정부는 정책 실패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줄기차게 야당 탓, 언론 탓을 한다. 가령,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의 정규직화로 불공정 논란이 확산되자 보수 언론의 가짜뉴스와 왜곡 보도 탓으로 돌렸다. 정부의 미숙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민생 경제가 나빠져도 야당의 정치 공세와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정부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는 정책 방향(목적)이 옳으면 그것을 추진하는 방식이 잘못돼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기인한다.둘째,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위선의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집권 세력은 줄곧 표현의 자유를 외쳤지만 자신들을 비판하면 고소·고발을 남발했다. 입만 열면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었지만 조국 사태에서 보듯이 권력을 이용한 특권과 반칙이 판을 쳤다. 문 대통령은 신임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해놓고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자 검찰을 무력화시켰다.셋째,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닮아가고 있다. 현 집권 세력은 자신들의 의견이나 가치만 옳다고 주장하고, 국민들을 노골적으로 갈라치기하면서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힘에만 의존하는 정치로 야당과의 대화·타협은 실종되었다.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8월 '한국의 리버럴 정권이 내면의 권위주의를 드러내다'는 기사에서 "현 정부가 민주를 표방하면서 권위주의적 통치를 한다"고 비판했다.그렇다면 촛불로 탄생한 자칭 민주주의 정부에서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문 대통령의 독특한 인지 스타일,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학습, 소위 '문빠' 팬덤 정치에 대한 과신 등이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그러나 야당이 야당답지 못한 것이 핵심 이유다. 야당은 분열되고, 무능하고, 비겁해서 2016년 총선 이후 지난 네 번의 전국 선거에서 연패했다. 그런데 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여전히 친박과 비박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고, 정부 여당에 대해 비판만 하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이런 정당에 국민이 어떻게 호감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한국갤럽 조사(9월 22~24일)에 따르면, 국민의힘에 '호감이 간다'는 비율은 겨우 25%였다. 18~29세와 30대에서는 그 비율이 각각 15%와 17%에 불과했다. KBS 조사(9월 26~28일)에서는 국민의힘의 쇄신 노력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비율은 38.6%인 반면,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잘못하고 있다'(39.4%) 또는 '모르겠다'(22.0%)고 했다.집권 세력이 유례없는 야당 복을 타고 났다는 것이 빈말이 아니다. 정부 여당은 호감도 가지 않고 혁신도 제대로 못하는 야당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국민들이 야당보다 가수 나훈아의 말에 더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언컨대, 야당이 힘이 있어야 정부 여당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함부로 못한다. 보수 야당은 참회하고, 실력을 쌓고, 혁신해야 한다. 그래야만 존재할 수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2020-10-08 14:18:03

[춘추칼럼] 사람 나이 50쯤이면

[춘추칼럼] 사람 나이 50쯤이면

사람이 나이 50살쯤이면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좀 어려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공자님은 사람의 나이 50을 일러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라고 하셨다. 지천명이라? 공자님 당신께서 50 나이에 이르러 하늘의 명령, 하늘이 뜻을 헤아려 알게 됐다는 말씀이다.글쎄. 보통 인간들도 50쯤 나이가 되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될까? 어림없는 말씀이시다. 그것은 오직 공자님이니까 그렇게 아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대놓고 자기 나이가 50이 됐으니 지천명의 나이라고 말하는 것은 망발 가운데 망발이다.나이 50과 관련 지어 또 생각나는 사람은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다. 톨스토이는 50세 이전까지는 아주 자유롭고 호기롭게 산 사람이었다.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누릴 것은 모두 누리며 산 사람이었다. 건강과 돈과 명예와 사랑이 모두 그와 함께 있었다. 모든 일을 가능한 일로 알고 살았던 톨스토이. 그는 50세에 이르러 자신의 인생을 스톱시켜 놓고 회심(回心)의 기회를 갖고 통렬히 반성하고 나서 그 이후의 삶을 완전히 바꿔 살았다 한다. 지금까지 산 인생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 인생이었다면 그 이후의 인생은 남을 위한 인생이었다. 비로소 자기가 쓰고 싶은 작품을 쓰면서 자기가 얻은 재화를 자기가 아닌 타인, 세상을 위해서 사용하면서 나머지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32년. 참으로 장한 인생이고 보통 사람은 꿈꾸기조차 어려운 아름다운 인생이다.인도 사람들은 또 어떻게 인생을 경영했을까? 인도의 힌두교에는 인생 4단계론이 있는데 25세까지를 학습기(學習期), 50세까지는 가주기(家住期), 50세를 넘어 75세까지를 임서기(林棲期), 75세가 넘으면 유랑기(流浪期)라 한다고 한다. 참 특별한 인생 경영이다. 어쨌든 인생살이에서 50살은 매우 중요한 나이이고 계기로 보인다. 50살이 돼 무언가 이전의 삶과 다르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로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늘의 보살핌이 있고 신의 도움이 큰 사람, 행운의 사람이라 하겠다.나의 생각은 그렇다. 사람이 비록 50살이 돼 그렇게 분명하게 구분 지어 살 수는 없는 일이지만 무언가는 좀 다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전의 삶과는 다르게 살아보려는 노력, 자기 삶의 족적을 돌아보고 스스로 반성해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누구나 유소년기에 사람은 자신의 완성을 위해서 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가족이 생기고 이웃이 생긴 뒤로는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 산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사람으로 사는 삶이다. 그렇게 살아 늙은 사람이 된다. 필경 그가 늙은 사람이 되어 신의 축복을 받고 선택을 입은 사람이라면 그에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시간이 허락되리라고 본다. 누군가의 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나, 독립된 한 개체로 살아가는 기간이 열리리라고 본다. 더욱 좋은 축복이 있고 신의 선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자기를 위해서 살면서 다시금 타인을 위해서 사는 삶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혼자만의 능력으로 늙은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과 협력 안에서 늙은 사람이 된 것이다.늙은 사람이 된 것도 커다란 은혜 입음이다. 그러므로 갚음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나눔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내가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식을 나누고 내가 재능이나 재물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들을 나눠야 한다. 그것만이 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나누게 되면 늙은 사람의 한탄과 고독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늙어서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젊은이 흉내를 내는 일이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늙은 사람은 늙은 사람이다. 만족이 있어야 한다. 유지하려고 해야지 확장하려고 해서는 낭패다. 진정 그렇게 사는 것이 늙은 사람의 삶이고 또 그것이 늙은 사람의 명예를 지켜주는 좋은 길이다. 요즘 인생은 60부터다, 70부터다 하는 말은 지나친 억지다. 거짓말이다. 속지 말고 속이지 말 일이다. 나는 70살이 넘어서 조금이라도 타인을 생각하면서 사는 삶을 알게 돼서 매우 기쁘다.

2020-09-17 14:30:00

[춘추칼럼]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법

[춘추칼럼]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법

지금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기차를 타고 '코로나'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는 중이다. 도착지는 서로 다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암울한 나날이다. 잠시 출구가 보이는가 싶더니, 다시 어두운 터널이 계속되고 있다. 모든 세대, 모든 공간에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답답한 심정만 토로할 따름이다. 남아 있는 것은 터널을 달리는 규정 속도와 안전 수칙뿐이다. 기차 객실을 나와서 돌아다니는 것도 쉽지 않고, 최소한의 이동만 가능하다. 객실에서 웃거나 떠들 수도 없고, 음식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긴장감은 높아지고, 감정은 날카롭다.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설프게 제안하거나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모두의 견제를 받게 된다.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언제쯤이면 이 터널의 끝을 만날까?' 정도이다. 아무도 알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질문만 붙잡고 하루하루 살아간다.더 큰 문제는 달리는 기차 안에도 다양한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똑같은 상황에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누군가는 생존 자체가 위태롭고, 답답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가는 이도 있다.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삶의 질적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터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편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우리의 상태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우두커니'라는 단어가 아닐까. '우두커니'라는 단어는 사전에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한자리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으로 정의되어 있다. 처음에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우두커니 있었다면, 지금은 우두커니 있는 모습이 일상이 되고 말았다. 언제 나올지 모를 출구를 기다리면서 마냥 '우두커니' 있을 것인가. 혹여 지금 지나고 있는 터널의 끝을 만날 수 있겠지만, 만약 또 다른 터널이 그 앞에 놓여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두커니'라는 단어를 만난 시를 읽어본다."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전문(문학과지성사/1989)대부분의 사람들은 터널의 끝과 출구만 생각하고 기다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한 게 없으면 추억도 없다. 삶의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지속가능성'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 처음 이 개념을 사용한 것은 임업 분야였다. '나무를 베는 만큼 나무를 심는다'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현재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는 일은 미래를 상상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10년 후, 100년 후, 나아가 1천 년 후를 상상하는 일이다. 지금 모든 것이 멈추고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우리의 삶은 끝을 모르는 터널의 연속이다. 코로나라는 터널이 아니라도 원래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게 삶이다. 시인의 말처럼,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하자'. 우두커니 앉아 있지 말자. 일어나 걷자. 홀로, 같이 걷자. 서로 안부를 묻자. 더 많이 보고, 더 자주 듣고, 더 깊이 생각하자. 누군가는 터널을 탈출해야 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속지 말자. 터널 안이든 밖이든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자. 그 결과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만약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10년 후, 100년 후, 1천 년 후 미래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2020-09-10 14:57:19

[춘추칼럼] '이낙연 정치'로 협치하고 혁신하라

[춘추칼럼] '이낙연 정치'로 협치하고 혁신하라

이낙연 국회의원이 8·29 전당대회에서 60.8%의 압도적 득표로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로 선출되었다. 결국 '어대낙'(어차피 당 대표는 이낙연) 이변은 없었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코로나 전쟁 승리, 국민의 삶 지키기, 코로나 이후 미래 준비, 통합의 정치, 혁신 가속화' 등 "5대 명령을 이행하는 데 역량을 쏟아 넣겠다"고 다짐했다. 가장 시급한 건 "코로나19 극복"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대표에게는 이에 못지않은 중대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무엇보다 '이낙연 독자 정치'를 펼쳐야 한다. 핵심은 대통령과 당·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민주당 정부'는 사라지고 오직 청와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청와대 정부'만 존재했다. 청와대는 민주당을 수직 통치했고, 민주당은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했으며 청와대가 집권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는 정치 적폐가 지속되었다. '엄중 낙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대표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역력하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두드러진다. 통상 대통령과의 관계는 크게 일체화, 독자화, 차별화로 구별된다. 이 대표는 현직 대통령과 섣부른 차별화를 했다가 실패한 2002년 새천년민주당 이인제 후보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이 대표가 6개월 남짓한 임기 동안 대통령과 철저하게 일체화하면서 친문에 얹혀 가려고 한다면 이재명 경기지시와의 경쟁 구도에서 밀릴 수도 있다. 국민들은 '문재인 시즌 2'를 선호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범주류였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일체화되기보다는 독자화 노선을 걸으면서 성공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둘째, 인식의 대전환을 통해 '용기 있는 협치'를 실천해야 한다. 이 대표는 "원칙은 지키면서도 야당에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원칙 있는 협치'에 나서겠다"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친박 일색으로 망한 게 미래통합당인데, 민주당은 친문 일색으로,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칙 있는 협치"란 친문의 눈치를 보면서 야당이 협조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대표가 진정 통합 정치의 물꼬를 트기 위해선 야당과의 '닥치고 협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자신의 지지층으로부터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셋째,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과 가치를 제시해 호남과 친문을 넘어 확장성을 확보해야 한다. 역대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는 예외 없이 자신이 추구하려는 가치를 통해 '이슈 파워'를 선점했다. 가령, 노무현 후보의 '특권과 차별이 없는 사람 사는 세상', 박근혜 후보의 '원칙과 신뢰' 등이 대표적이다. 김해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임기를 마치면서 "지도부가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국민께 진솔하게 말씀드려야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정부와 여권 인사들에 대해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고 지적했다. 현 집권 여당이 안고 있는 거짓과 위선, 무능과 교만의 한계를 극복하고 향후 유력한 대권 후보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선 이 대표가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로 '정직과 소통'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를 기반으로 '모두가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넷째, 정책 성과를 통해 혁신의 가속화를 이뤄내야 한다. 집권당이 중심이 되어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효과가 없으면 혁신 성장으로, 수요 억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집값 폭등의 주범이라면 공급 확대 정책으로, 회전문 인사가 잘못되었으면 대탕평 인사로 기조와 방향을 바꾸어 성과를 내야 한다. 이 대표는 국무총리 시절 정책 세부 영역까지 관장한다고 '이테일'(이낙연+디테일)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정책으로 촉발된 의료계 파업은 국회가 문제 해결에 나서고 협의체를 통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향후 정책을 추진하는 데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실용과 디테일로 성과를 내야 한다. 이것이 혁신이다.

2020-09-03 15:39:00

[춘추칼럼] 마당을 쓸었습니다

[춘추칼럼] 마당을 쓸었습니다

나는 어려서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로부터 별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학력이라야 고작 고등학교 졸업. 12년 동안 나를 특별하게 귀여워해 줬다든가 사랑해 준 선생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키가 작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가 아니었으므로 특별히 미움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그저 그런 아이였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데 어른이 돼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한 선생님을 다시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름 아닌 김기평 선생님. 그분은 내 고등학교 시절인 공주사범학교 학생 때 국어 선생님이셨던 분이다.1979년 30대 초반의 나이로 공주교육대 부설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부터이다. 그 학교로 내가 갈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다. 선생님은 당시 공주교육대학 교무과장 직책에 있으면서 내가 그 학교로 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아주셨다.그로부터 40년 세월이다. 나는 선생님을 지근거리로 만나면서 인생 후반기에 많은 교훈을 얻었다. 먼저 온유한 성품이다. 선생님은 어떤 경우에도 말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든 겸허하게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는 분이었다. 몸에 밴 인품이었다.그다음은 호학(好學)과 성실함이었다. 선생님은 65세 대학에서 정년 퇴임하신 뒤 26년 동안 혼자서 공부해 중국의 고전인 사서삼경을 완역해 주해서를 출간하셨다. 인생 후반부의 삶과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란 것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신 실례다.그리고 무욕의 삶이다. 선생님은 식사나 일상생활, 대인관계에도 일말의 사심이 없었고 무엇이든지 줄여서 조그만 인생을 사시려고 애썼다. 그리고 부지런하셨다. 90대에 들어서 시력이 극도로 나빠지신 후에도 선생님은 하루하루 무언가를 하시면서 부지런히 사셨다.어쩌다 선생님 댁을 방문해 보면 무슨 일이든 일을 하고 계신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을 읽지 못하니까 정원의 꽃들을 살핀다든지 텃밭에 나가 채소를 가꾼다든지 그런 일을 하면서 소일하시는 것을 보았다. 틈이 나시면 몽당비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와 도로를 쓸기도 하셨다.나의 대표작 가운데 한 편이기도 한 '시'라는 작품을 쓴 것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영감 덕분이다. 대문 밖 도로를 쓰시는 모습이 나에겐 그렇게 잔잔한 감동이었다."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2009년 내가 공주문화원장이 돼 선생님을 고문으로 모셨을 때 선생님은 흔쾌히 수락하시면서 나의 강력한 후원자가 돼 주셨다. 해마다 1월 초순이면 어김없이 후원금을 들고 원장실로 오신 선생님은 조용히 돈을 놓고 가시면서 절대로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시곤 했다. 액수도 적지 않았다. 어느 해는 100만원을 주시고 어느 해는 200만원을 주시기도 했다. 일단 돈을 주셨다면 선생님의 기준은 100만원이셨다. 노인이 연금으로 생활하시면서 어쩜 그렇게 배포가 크신지 번번이 놀라는 바가 있었다.2017년 7월 문화원장의 임기를 마치고 이임식이 있던 날, 나는 비로소 해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선생님'이 바로 그분임을 말했다. 그 자리에도 선생님은 와 계셨다. 이미 90대 중반의 노인인지라 지팡이에 의지하고서도 따님과 사위 되는 분의 부축을 받고 계셨다.왈칵 눈물이 솟았다. 문화원장에서 물러나는 것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보살핌과 사랑이 마음에 와닿아 그랬다. 그로부터 3년. 선생님은 건강이 아주 힘들어지셨고 드디어 100세가 됐다. 놀라운 일이다. 내 생전에 100세 되신 분을 가까이서 뵙다니!비록 나는 정식으로 학교 다니던 시절 학생으로서 선생님들로부터 두루 사랑을 받지는 못한 사람이었지만 학교를 떠나 어른이 돼 살면서 한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또 그분으로부터 인생의 교훈을 얻은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한다.

2020-08-20 14:49:29

[춘추칼럼] 내가 살고 싶은 동네

[춘추칼럼] 내가 살고 싶은 동네

코로나와 장마, 부동산과 주식.만약 지금 한국 사회를 표현한다면 이 4개 단어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 단어들이 함축하는 바와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 이 단어들을 구분하자면, 코로나와 장마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큰 영역이라고 한다면, 부동산과 주식은 개인의 선택과 관심, 조건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이다.예를 들어, 코로나 확산을 개인위생과 방역을 통해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지만 코로나의 발생과 소멸을 인간이 통제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장마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520억원짜리 슈퍼컴퓨터를 갖고 있는 기상청을 비난하지만, 사실상 오늘날 기후변화는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 가깝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일은 더 자주, 더 강하게 닥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부동산과 주식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온 나라가 부동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다양한 조건들을 제외하고 보면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욕망의 격전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다양한 생활문화시설 등 인프라를 갖춘 시설, 출퇴근 등 이동이 편리한 교통 환경 등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추구하는 동시대인의 욕망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주식은 또 어떤가. 요즘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주식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물론 주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테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탐욕의 리그가 안타까울 뿐이다. 적절한 노동과 그에 따른 보상, 그리고 공동체와 사회 등 온전한 삶이 불가능해지고 있다.결국 인간의 삶은 욕망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부동산과 주식이라는 영역을 놓고 보면 더 나은 돈과 환경 등 물적 자원을 확보하려는 욕망의 결과이다. 문제는 '더 나은'이라는 상대적 비교에 그치지 않고 점차 '모든'이라는 절대적 목표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필자 역시 어렸을 때는 삶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 거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결코 그렇지 않음을, 절대 그럴 수 없음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부추긴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그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과연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대단한 지름길이나 확실한 해법은 아닐지라도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발견하는 일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가 아무리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삶을 꾸려가야 한다. 삶의 대부분을 살아가는 지루한 일상을 건너뛰고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외치면서 우리를 유혹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목소리도 있다.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논리와 힘을 갖고 있다. 그 유혹을 이기는 힘은 오히려 가장 작은 일상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동네'에서 가능하다. 동네는 군 단위나 작은 도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 '동네'가 있다.2020년은 문명의 전환을 이야기할 정도로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이다. 코로나와 기후 위기만 생각하더라도 삶의 방식 자체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결국 '가치'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앞자리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의 학습과 경험 또한 이 문제를 중심으로 펼쳐질 필요가 있다.동네는 그러한 학습과 경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어 공동체를 경험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를 향한 욕망이 생겨날 것이다. 서로의 욕망이 모여 지금까지와 다른 욕망의 길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삶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법을 찾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는 동네를 만들어가자. 17개 광역시·도가 아니라, 226개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1천 개의 동네, 아니 1만 개의 동네를 만들자.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자.

2020-08-13 14:23:28

[춘추칼럼] 찰나의 권력으로 오만에 빠지면 실패한다

[춘추칼럼] 찰나의 권력으로 오만에 빠지면 실패한다

민주국가 의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0일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일방 표결로 통과시켰다.지난 4일에는 세금 인상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3법(소득세·법인세·종부세법)도 표결로 일방 처리했다. 민주당은 국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법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회법(제58조)이 규정한 소위원회 법안 심사, 축조 심사, 찬반 토론 같은 절차를 무시했다. 21대 국회는 삼권분립 헌법 정신과 국회법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오로지 청와대 하명에 따라 군사 작전하듯 법안을 밀어붙이는 통법부로 전락했다. 미래통합당은 "입법 독재의 완성"이라고 반발했고, 정의당조차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원의 입법권마저 침해했다"고 비판했다.현재 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유신 독재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하명을 받아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했던 '유정회'가 떠오른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작심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선출된 권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작금의 '신종 독재' 상황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당장 정부 여당에 역풍이 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고, 서울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도가 통합당에 역전되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향후 정부 여당이 정책 실패에 무감각해지고 국민 공감 능력을 잃는다면 이런 추세는 더 악화될 것이다.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정치에서 경험적으로 입증된 이른바 '집권 4년 차 증후군'이 있다. 절대 권력을 누렸던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4년 차로 접어들면서 예외 없이 국정 운영 리더십에서 큰 위기를 맞이했다. 통상 역대 정부는 집권 초기엔 인사 실패로 휘청거리고 중반에는 정책 실패로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며 임기 말엔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인사 비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레임 덕'(lame duck)이 아니라 정치적 뇌사 상태에 빠지는 '데드 덕'(dead duck)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현 정부는 작년 조국 장관 임명과 같은 인사 대참사로 도덕적 파탄을 맞이했고, 올해는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 경색,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과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란 등으로 민심이 급격하게 이반되고 있다. 향후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비리가 터지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현 상황으로 봐서 민주당이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 후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의 충돌로 집권 세력은 깊은 혼돈에 빠져들지 모른다. 임기 말에 관료 사회가 등을 돌리면 권력 누수 현상이 심화되고 결국 현 정부도 역대 정권과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런 실패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정부는 인적 쇄신을 통해 최고 정책 전문가를 등용하고, 새로운 국정 과제의 성과를 도출해야 하며, 야당과의 협치를 강화해야 한다.한국리서치는 매월 정부가 추진하는 12개 정책에 대한 국민 평가를 실시한다. 7월 3주 차 조사 결과, 주거·부동산 정책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19%로 가장 낮았다. 정책 중요도 평가에선 일자리∙고용 정책을 최우선으로 꼽은 응답이 58%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사회 안전(47%)과 주거·부동산(45%)이었다. 주거∙부동산 정책은 3월 넷째 주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중요도가 10%포인트 증가했다. 주거·부동산을 최우선 과제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아주 높은 반면, 긍정 평가가 지극히 낮다는 것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당은 집값 폭등을 이전 보수 정부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협치를 통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최고의 부동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단언컨대, 정부가 정책 실패를 무시하고 찰나의 권력에 도취되어 다수결 폭력이라는 오만함에 빠지면 결국 '집권 4년 차 증후군'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2020-08-06 13:32:38

[춘추칼럼] 회복기의 삶

[춘추칼럼] 회복기의 삶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따분하고 지루하다. 그날이 그날 같고 하나도 신나는 일, 즐거운 일이 없다. 그렇지만 말이다. 여기서 한번 생각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관점과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에머슨이라는 미국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헛되게 불평하면서 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살고 싶었던 내일이다."바로 이것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날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치 있는 날은 오늘뿐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날인가!그래서 나는 오늘은 나의 생애에 남은 날 총량 가운데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새날이고 첫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또 어떤 사람들인가? 그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새날과 첫날에 있어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첫 사람이고 또 새 사람이다.이런 생각 하나만 바꿔도 세상은 갑자기 눈을 뜨는 세상이 되고 눈부신 세상, 찬란한 세상이 된다. 부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루한 세상, 짜증 나는 세상, 누더기같이 낡은 세상이라고 꾸중하지 말기 바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만 그런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이다.이쯤에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말을 인용해 보고 싶다. 보들레르는 시를 이야기하면서 시를 쓰는 시인은 회복기에 이른 환자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회복기란 마치 어린 시절로의 회귀와도 같다. … 아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본다. 그는 언제나 도취해 있다. 우리가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아이가 형태와 색채를 흡수하는 기쁨과 가장 닮아 있다."우리도 주변에서 가끔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암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시라. 그에게 세상은 오직 눈부신 세상이고 새로운 세상이고 아름다운 세상이고 찬란한 세상일 뿐이다. 그에게 있어 무엇 하나 새롭지 않고 감사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그는 조그만 일에도 흥분하는 사람이고 감동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암이란 질병에 걸렸던 것은 분명히 불행이고 악운이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그 이후의 날들은 축복의 날들이 될 것이다. 실은 나도 그런 일을 겪은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2007년의 일이니까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분명히 죽을병에 걸렸었지만 끝내 살아서 병원을 빠져나왔다.그런 이후 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날마다 나는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 됐고 사소한 일에도 취한 사람이 됐고 의미를 찾는 사람이 됐다. 보는 것마다 새롭고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그것은 취한 삶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취하는 날들이었다.믿지 못하실 것이다. 그냥 그것은 터닝포인트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반전의 인생이었다. 비록 몸은 병들고 왜소해졌으며 많은 가능성이 사라져 버렸지만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충분히 감사하고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겨우 이만큼밖에 남지 않았다고 투정하는 사람에서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진정 인생이 지루하신가? 따분하신가? 아무것에도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시나? 그렇다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져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만사 살아가는 기대 수준을 조금쯤 낮출 필요가 있다. 조금쯤 부드럽고 다정한 눈길이 준비되어야 한다.지금 우리는 너무나 외부 지향적이고 타인 지향적이다.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그런 경험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일상적인 일, 흔한 일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립게만 느껴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도 한 사람 한 사람 보들레르식으로 말한다면 회복기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부디 자기 자신을 해바라기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때로는 채송화라고 여겨 보시라. 세상이 대번에 달라져 보일 것이다. 큰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채송화는 애당초 키가 작은 꽃이기에 해바라기처럼 넘어지거나 줄기가 부러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2020-07-23 15: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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