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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희 전 주 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북핵 해결 없이는 한반도 평화 불가미국과 긴밀한 공조체제 유지 필요대북 제재 강화, 경제 인센티브 늘려핵포기 유도하고 검증 장치 마련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발표 하루 만인 지난 24일(현지시간) 돌연 방북 취소를 발표하였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방북이 취소됨에 따라, 북핵문제는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시작하여 판문점 남북 정상회의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 이르는 평창 프로세스는 김정은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무력사용도 불사할 것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과 중국까지 가담하여 더욱 강화된 제재 조치로 궁지에 몰렸던 김정은은 양 정상회담을 통하여 완전히 상황을 역전시켰다. 김정은은 형을 암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한 패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국 지도자로 변신하였을 뿐 아니라, 대남 및 대미 협상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김정은은 또한 미국 대통령과 대등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함과 동시, 북한을 '깡패국가'에서 '보통국가'로 바꾸어 놓았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결과 채택한 공동선언문에서는 회담 전날까지도 미국 측이 공언하였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비핵화"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그러면 북핵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에 혹시나 하며 가졌던 일괄타결에 대한 기대는 접고, 과거 실패한 북한과의 교섭사를 반면교사 삼아, 현실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첫째,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비핵화 대화에 응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함과 동시 핵 포기 시 제공할 인센티브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대북 협상이 본격화되면 결국 북한의 핵 포기와 이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연계시키느냐가 협상의 관건이 될 것이다. 북한이 핵 포기 이후에도 정권이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안전보장 장치는 마련해 주어야 하겠지만, 북한의 상응한 비핵화 조치 없이 보상이나 제재 완화를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또한, 북한의 약속 위반이 드러날 시 언제라도 제재를 복원할 수 있는 스냅 백 조항은 필수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싱가포르 방문 시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게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나 종전선언이 단순한 정치적 선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임에 비추어, 이는 북한 비핵화가 본격화되는 단계에서 검토할 사안이다. 둘째, 북한은 2013년 '핵경제 병진 노선'을 채택하였으나, 금년 4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정책 노선으로 채택하였다. 6차 핵실험까지 실시하여 핵에 대한 자신감을 확보한 김정은이 이제 경제발전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러나 핵 포기 없이는 경제발전이 절대 불가능함을 주지시킴과 동시 핵 포기 시 제공할 경제적 인센티브를 극대화하여 북의 핵 포기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과거 북핵 협상은 항상 검증 문제에서 좌초되었다는 점을 유념하여 핵폐기에 따른 검증 장치 마련에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NPT 및 IAEA 안전조치협정에 복귀하고, 추가의정서 가입을 통하여 의혹 시설에 대한 무제한 접근을 포함한 강화된 검증을 수용하도록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핵 해결과정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관계 유지는 필수다. 최근 우리 정부가 보여준 북한 석탄 밀반입 사건 처리 과정, 빈번한 대북 제재 예외 요청, 성급한 종전선언과 경협 추진, 개성공단 남북사무소 설치 등에 대하여 미국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24일 한미 간 불화가 고조되고 있다고까지 보도했다.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 없이 남북관계 진전이나 한반도 평화는 불가하다는 현실을 깨닫고,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하에 북핵문제 해결에 매진해 줄 것을 당부한다.

2018-08-27 10:29:56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폭염, 기후변화와 환경의식

전 지구적 자연 재해인 불볕더위해가 갈수록 여름 더 길고 더워져 누구나 '지구 온난화' 걱정하지만자가용'에어컨의 편리함에 의존 올여름 7월 말부터 몇 주째 강렬히 내리쬐는 뙤약볕, 도심 속 수많은 자동차와 건물 외벽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와 달구어진 아스팔트로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연일 열대야로 숨이 턱턱 막힌다. 정부는 에어컨 가동으로 인한 세금 폭탄을 방지하고자 폭염을 자연 재난 현상으로 간주하여 폭염 대책을 강화시키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이러한 불볕더위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현상이다. 8월 초 독일 쾰른의 낮 최고 기온이 38℃, 스페인 마드리드는 40도, 프랑스 파리 35도, 포르투갈 리스본은 44도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2003년 독일 여름 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건물(대학 강의실, 도서관, 관공서 등)에는 에어컨이 없어 무더위와 씨름하며 보낸 기억이 난다. 독일 미디어에서는 무더위를 이기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도심 속 나무 심기, 도로 물 뿌리기, 매일 2ℓ 물 마시기 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전 세계적인 폭염과 가뭄 현상은 일시적이고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기후 변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과학 전문가들에 의하면 앞으로 여름이 더 길고 더워질 뿐만 아니라, 겨울도 더 추워진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는 우리 인간이 초래한 것이고, 그것은 인류가 산업화 과정(화석 연료 사용, 자동차, 비행기 운항, 건물 냉난방, 개발의 명목하에 일어나는 무분별한 산림 벌채 등)에서 온실 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한 것에 기인한다.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어떤 노력을 하는가? 인간을 육체적 노동과 자연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 준 기술의 발전과 경제 성장은 자연의 희생을 대가로 이루어졌다는 성찰과 비판이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환경 파괴의 경각심과 경제 성장의 한계를 인식한 학자들은 보고서(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 개렛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와 책(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통해 천연자원의 고갈, 생태계의 변화, 환경의 위기를 경고하였다. 한편, 국제사회에서 기후 변화에 의한 영향과 인류 생활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는 1980년대 말부터이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인류 모두가 협력하고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큰 국제회의로 리우 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여러 국제적 협약의 가장 중요한 기본 원칙인 리우 선언이 채택되었다. 2015년에는 세기 말까지 선진국, 개발도상국 관계없이 각국이 산업화 시대 이전 대비 지구의 온도 상승을 낮추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자 서명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하였고, 그 협약은 2020년 이후 적용하기로 하였다. 또한 성장 중심의 경제주의에 따른 부작용을 인식하고, 이에 개발을 하더라도 환경을 고려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 용어는 '친환경 도시 계획' '지속 가능한 소비 및 생산 체제' '지속 가능 발전 교육' 등의 개념으로 확산되었고, 각 개인들이 국제적, 지역적 차원에서 인류, 사회, 환경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유지하기 위한 책임을 가지고 노력하는 실천적 과정을 뜻한다.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국제사회의 협약과 지속 가능성의 이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에 담긴 원칙은 우리의 일상에서 여전히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필자 역시 지구 온난화를 우려하면서 동시에 자동차가 제공하는 편익성과 이동성, 건물 냉난방에 의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상이 된 폭염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 마련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환경 의식이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8-08-20 10:23:34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세계의 창] 북유럽 학생들은 어디서 무엇을 배우나

입시 무관한 북유럽 취미사회활동정규교육만큼 중요한 학습 과정부모의 적극적 관심과 도움이 한몫대학과 노동시장서 높은 성과 보여 지난 7월, 스웨덴 친구의 초청으로 노르쇠핑 도시의 한 기계체조 공연에 참석했다. 아마추어 학생 행사여서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뜻밖에 북유럽 교육의 속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다와 숲이 가까운 가설공연장에 도착하니 60명의 학생이 부모 30여 명과 텐트촌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매일 저녁 공연을 하고 바비큐 파티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주일간의 여름 캠프였다. 2시간 동안 지구환경을 주제로 수준급의 체조 공연이 펼쳐졌고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은 신속히 무대 장치를 걷고 설치하며 손발을 맞춰냈다. 기획에서 실행까지 학생들의 아이디어 회의와 연습이 일궈낸 멋진 작품이었다. 행사 주체인 노르쇠핑 청소년서커스단(Norrköpings Ungdomscirkus)은 40년 역사의 인기 높은 기계체조 단체이고 6~19세 지역 청소년을 회원으로 받는다. 인구 12만의 노르쇠핑에는 스포츠 단체 200여 개를 포함, 650개의 다양한 자유 단체가 있고 대다수는 학생 활동과 연관된다. 그런데 이 모든 청소년 활동은 입시나 성적과 무관하고 학교, 교사와는 더더욱 별개로 행해진다. 노르쇠핑 청소년서커스단은 회비와 25%의 정부 지원, 그리고 부모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체조 교사는 특정 기간에만 초청되고 평시에는 회원 선후배 간의 전수로만 서로 배우고 훈련한다. 전문체조선수를 기대하는 것도 아닌데 부모들은 열성적으로 자녀를 뒷바라지한다. 평소에는 장비 점검, 청소, 간식 준비에 손을 보태고 행사 때면 함께 무대복을 만들며 의료인은 의료 처치를, 엔지니어는 장비 관리를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한다. 학교나 성적과 상관없는 이런 활동을 왜 할까. 학생들의 대답은 하고 싶어서, 재미있어서, 멋져 보여서 등이었다. 부모들은 '아이가 원하니까'에 더하여 자녀 건강에 도움이 되니까, 공동체에서 책임과 신뢰를 배울 테니까, 부모끼리 친분을 쌓고 아이 문제를 상의할 수 있어서 등을 거론했다. 북유럽 교육에는 학교 정규 수업 못지않게 가정과 자유 단체, 사회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덴마크는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적극 인정하는 대표적인 나라인데, 법률상 의무교육의 개념을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닌 '교육을 받는 것'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덴마크의 한 여의사는 청소년 시절 체조 단원으로 유럽 각국 대회에 출전한 경험을 소중히 여겼고, 축구선수 호날두 사진으로 방을 도배한 코펜하겐 의과대학의 여학생은 고교 때까지 한 청소년 축구클럽의 그 나름 스타 공격수였다. 스톡홀름에서 만난 여성 엔지니어는 초중고 동안 치어리더 단체 트위스터(Twisters)의 일원으로 국제경연대회에 수차례 참가했다. 어린 나이의 취미 활동과 여행, 부모와의 친밀한 관계는 학교 수업 못지않게 일반적이고 중요한 이곳의 학습 과정이다. 인생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경험들이 있고 특히 어린 나이에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그리고 학교가 이 모두를 책임질 수는 없다. 우리가 교육의 이상과 현실을 고민하는 동안, 북유럽은 다양하고 폭넓은 교육을 제도적 관습적 문화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덕분에 여기 학생들은, 핀란드를 제외하면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에서 겨우 중간치에 불과한데 대학이나 상급직업학교에서 전공과 실무 역량에 집중하며 국제성인역량평가(PIAAC), 학문 역량, 노동생산성 등에서 한국을 앞질러 선두그룹에 나선다. 여전히 해가 중천이던 스웨덴의 여름밤. 90명 대가족의 바비큐 테이블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날 파티에서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 국영수 문제를 푸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지 않았을까.

2018-08-13 14:36:10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 창] 일본 강타한 옴진리교 사형 집행

사형수 13명에 대한 형집행 완료무라카미 하루키도 찬성 글 기고교주 죽었다고 옴진리교 사라질까시신 인도 요청 등 신격화 움직임 태풍 종다리가 일본 본토에 상륙해서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있는 와중에, 일본은 '사형 집행'에 대한 이야기로 연일 시끄럽다. 지난 7월 26일 옴진리교도 전 간부 6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고, 이것으로 옴진리교 사건 사형수 13명에 대한 형 집행이 완료되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형제도 그 자체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적어도 이번 집행에 대해서는 반대한다고 할 수 없다'는 글을 29일 마이니치신문에 기고했다. 하루키는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와 옴진리교 신자를 인터뷰해서 정리한 책 '언더그라운드'(1995년)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을 접했기 때문이다. 한편 '사형 집행으로 옴진리교와 관련된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하고, '이것으로 사건을 끝내겠다는 의도나, 사형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이런 전략은 용서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옴진리교는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본명 마쓰모토 지즈오·63)가 1986년에 창시한 신흥종교다. 공중부양을 한다는 등의 황당한 신비체험으로 세력을 확장했고 한때 1만 명이 넘는 신자가 존재했다. 여기에는 명문대 출신, 의사, 은행원 등 엘리트도 상당수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없지만,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宮台眞司)가 1980년대 한 발언이 설득력 있다. "당시 사람도 사회도 위만 바라보는 고도 경제성장기에 성장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대학에 입학할 무렵, 혹은 사회에 진출할 무렵 고도성장기는 막을 내렸다. 일본은 1973년부터 저성장시대가 되었고, 1980년대는 축제 분위기의 버블시대였다. 이런 사회에 자신이 몸담을 곳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여기에 달리 의지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옴진리교가 등장한 것이다." 옴진리교는 1989년 사카모토 변호사 가족 3명 살해 사건, 1994년 나가노현 사린 사건, 1995년 지하철 사린 사건 등 일련의 사건을 일으켰다. 지하철 사린 사건은 출근시간대 도쿄 중심의 지하철역에서 맹독성 사린가스를 뿌려 일반 시민 13명이 죽고 6천300여 명이 쓰러졌다. '왕이 되어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교주의 교의에서 비롯된 사건인데, 이것으로 일본 전역은 공포에 휩싸였으며 전 세계가 경악했다. 과연 '형 집행 완료'는 옴진리교의 사건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을까. 옴진리교는 법원의 명령으로 1995년 해체되었지만, 일부 신도들이 '알레프' 등 이름을 달리하고 옴진리교의 뒤를 잇고 있다. 이전에 신자였다는 한 50대 남자는 "종교는 교주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신자가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보다 신격화될 것이다"는 말을 했다. 지금 일본 사회는 1980년대와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위에서 미야다이 신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지금 이 사회에 몸담을 곳을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결국 자신을 담을 수 있는 세계, 이른바 신흥종교에 의지할 것이다. 내년에 새 천황이 탄생한다. 연호도 바뀔 것이다. 그러니 사형집행은 헤이세이 시대의 흉악한 사건을 헤이세이 시대에서 마무리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뜻이겠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소외되는 사회라면 신흥종교의 늪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옴진리교 사건은 합법적 죽음으로 그들을 사회에서 배제했다고 해도 그 유령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일본의 신흥종교 옴진리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알레프와 관계 있는 부인과 자녀들은 시신 인도를 요청했다. 유골을 가지고 순교자처럼 신격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2018-08-06 11:09:00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독일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본 교육자의 과제

학교 밖 단체서 민주시민교육 맡아민족사회주의·반유대주의·인종 등역사적 테마에 접근 깊이 있게 토론정치적 판단력 갖춘 시민 되게 도와 지난 6개월간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작용하였지만 은폐되었던 성차별적 구조, 권력과 폭력의 문제를 가시화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의 젠더 기반 폭력과 공포와 혐오를 생산해내는 폭력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이끌어내지 못하고, 단순히 성별 간 대결 양상을 보이고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각 개인들이 오늘날 정보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접하고 있는 '미투 운동'과 같은 시사적인 이슈나 사회 논쟁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타인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장(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고 다양한 입장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가치와 관계한다.그러나 모든 입장이 다 재현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인권을 무시하는 견해나 차별, 비하 등 반인륜적인 표현을 여타 견해들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교육자는 보편성을 거부하는 입장을 지닌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비난하거나 그러한 논쟁을 수업에서 다루지 않기보다, 인권을 무시하거나 차별의 발언이 나올 수 있는 담론을 만드는 사회 구조에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교육과 관련해서 잠시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에 눈을 돌려보자.독일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정치교육'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우리는 정치교육이라 하면,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교육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시민교육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치교육'이라는 용어는 능동적인 시민의 형성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정치적 분별력을 키워주는 것을 의미한다.필자는 200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안네 프랑크 교육소라는 학교 밖 민주시민교육기관에서 3개월간 교육 활동가 양성 과정에 참가하였다. 이 교육기관은 나치스가 유대인을 박해하자 프랑크 가족이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살았던 프랑크푸르트의 적극적인 지역 주민에 의해 설립된 단체이다. 가족 중 유일하게 생존한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안네 프랑크의 이름으로 청소년 만남의 장소가 생겼으면 하는 입장을 표명했었고 그의 희망은 구체화되었다. 안네 프랑크 교육소는 인권의 존중을 중요 가치로 삼는 정치교육의 장이 되었다. 이때 안네 프랑크의 자서전과 일기는 교육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서 안네가 던진 세 가지 질문(나는 누구인가? 나를 둘러싼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가?)에서 출발하여, 이 물음과 현 시대와의 관련성을 학습하게 된다. 독일의 현 세대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독일 민족사회주의, 반유대주의, 이민, 홀로코스트, 인종주의 등과 같은 역사적 테마에 접근하게 하고, 참가자와 안내자 간의 토론과 대화를 통해 역사의 현재성을 다룬다. 청소년들이 주로 이 기관을 방문하는데, 이곳에서 역사적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관심 있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것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까닭은 동년배의 안내자가 참여 집단을 위한 안내를 담당하기기 때문이다.이처럼 안네 프랑크 교육소는 교육 주체들이 다양성의 인식과 존중을 배우면서 정치적으로 성숙하고 판단력을 갖춘 시민이 되도록 돕고 있다. 이때 교육자들은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를 학습자들에게 강압하지 않아야 하고 동시에 스스로 비정치적이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열정을 갖고 교육 주체의 경험과 신념을 논쟁과 성찰이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으로 끌어들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18-07-30 10:26:59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 전 주 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국제 핵비확산 체제와 북핵문제

1985년 '핵비확산조약' 가입한 북1993년 탈퇴로 1차 북핵 위기 발생'비핵화' 약속 깨고 6차례 핵실험미북 싱가포르 성명 큰 의미 없어 "1945년 7월 16일 새벽 5시 30분,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 공군기지 먼 외곽지역에서 최초로 완전한 규모의 핵분열 폭탄 폭발 실험을 실시하였음. 방출된 에너지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TNT 1만5천t 내지 2만t 이상으로 추산됨." 처칠 총리 등 연합국 수뇌부와 일본의 전후 처리문제 논의를 위하여 포츠담에 체류 중인 트루먼 대통령에게 최초의 핵무기 탄생을 보고하는 전문이다. 이어 소련(1949), 영국(1952), 프랑스(1960), 중국(1964)까지 핵실험에 성공하는 가운데,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핵 확산 차단 필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1953년 12월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핵'(Atoms for Peace) 제하 유엔총회 연설을 통하여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제창한다. '핵비확산' 의무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양 축으로 하는 핵비확산 체제의 기본 골격이 제시된 것이다. 1959년 아일랜드의 유엔총회 결의안 제출을 시발점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핵비확산조약(NPT)은 1968년 6월 12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후 1970년 3월 5일 발효된다. NPT는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에 성공한 위 5개국만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그 외 국가는 핵무기를 제조하거나 획득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NPT 신규 가입국은 가입 후 18개월 이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안전조치협정(Safeguards Agreement)을 체결, IAEA에 사찰 권한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1985년 NPT에 가입한 북한은 1992년 4월이 되어서야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한다. 이 협정에 따라 북한이 제출한 핵 관련 신고서가 사찰 결과와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한 IAEA가 이의 규명을 위한 특별사찰을 요구하고, 북한이 이에 반발, 1993년 3월 NPT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다. 카터 전 미 대통령의 중재로 1차 위기를 극복하고, 미북 간에 합의를 본 것이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다. 제네바 합의에서 미측은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제공하고, 북한은 모든 핵시설 동결과 궁극적 철거, 사용 후 핵연료봉 8천 개 모두 해외반출, IAEA 특별사찰을 통한 검증을 약속한다. 그러나 이 제네바 합의는 2002년 비밀 농축우라늄 시설이 발각됨으로써 파기된다. 2005년 9월 19일 채택된 6자 회담 공동성명은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 폐기와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를 규정하고 있다. 후속 합의에서 북한은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정확한 공표 및 2007년 12월 31일까지 모든 핵시설의 불능화를 약속한다. 그러나 이 합의도 검증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대포동 2호 발사, 북한의 2차에 걸친 핵실험으로 수포로 돌아간다. 이후 북한은 2012년 2월 미국의 식량원조 대가로 IAEA 사찰관 감시하 영변 우라늄 농축 가동 중단과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 유예를 약속한다. 그러나 이 약속 또한 두 달 후인 4월 13일 은하 3호 발사로 무위로 끝난다. 이에 앞서 남북한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합의한 바 있다. 이 합의는 핵통제공동위원회 설치와 상호 사찰까지 규정하였으나, 사찰 대상과 방법을 둘러싼 이견으로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결국, 북한과의 핵 협상 역사는 북한의 살라미 전술과 약속 불이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4·27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 미북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약속했다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란 문구가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이유다.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이래 누대에 걸친 선대의 유훈이라고 주장하며 6차에 걸친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이다. 약력: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 전 주 핀란드 대사

2018-07-23 10:35:43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세계의 창] 북유럽 이민정책의 오해와 이해

북유럽 이민정책 보수 우경화 논란과거보다 엄격해도 포용주의 유지가족주의·납세윤리 문화권별 차이감정적 혐오 아닌 합리적 정책 필요 최근의 제주 난민사태를 계기로 북유럽 이민정책이 새삼 우리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기사들은 주로 북유럽의 난민 규제와 보수 우경화에 초점을 두고 한국 상황을 빗대고 있는데, 그 논리와 해석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북유럽은 19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며 약 100년간 포용주의 이민 노선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에 비서구권, 즉 남미·중동·아프리카 등에서 분쟁과 내란을 피해 난민들이 유입되며 분위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무슬림 난민 수가 급증하고 2015년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그 규모가 정점을 찍으면서 북유럽에도 국경 통제와 난민 심사가 강화되었다.그러나 전반적으로 북유럽 이민정책은, 지난해 US News & World Reports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여전히 지구상에서 이민자들에게 가장 우호적이다. 난민들에게 제공되는 공공서비스는 무상의 언어교육·정규교육·직업교육, 낮은 비용의 임대주택, 무료에 가까운 의료혜택은 물론이고 떠나온 모국의 언어·종교·문화를 보존토록 하는 지원에까지 이른다. 무슬림 종교 계통의 사립중고등학교를 설립할 경우, 일반 사립학교 설립에서와 같이 정부로부터 약 75%의 재정을 지원받는다. 스웨덴은 국가예산으로 무슬림 종교지도자까지 양성하고 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난민들이 장차 시민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하지만 이 기대가 다시 갈등의 기점이 되기도 한다. 필자가 현장조사에서 확인한 이민 갈등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가족주의와 사회교육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크다. 북유럽 아이들은 이르면 생후 6개월부터 보육원이나 유치원 등에서 돌봄과 교육을 받는다. 육아는 가족을 넘어 사회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에서는 '내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한다'는 전통 가족의식이 강하다. 이민가정의 사회보육시설 이용률은 60%로, 북유럽가정의 95~98%에 크게 못 미치는데 결국 난민아동은 북유럽 언어 습득과 학습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 덴마크 정부가 난민아동을 대상으로 강압적인 육아교육제도를 실시하면서 또 다른 갈등이 되고 있다. 둘째, 근로와 납세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북유럽 제도는 자발적 노동윤리, 그리고 조세제도에 대한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된다. 각종 복지수당은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동시장으로 돌아와 일하고 세금을 내라는 의도이며 웬만큼 질환이 있거나 장애가 있어도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세금을 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부당한 공권력을 겪고 피해 온 난민들이 수당에 안주하지 않고 낯선 일자리를 수용하며 정부와 조세제도를 신뢰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사회문화적인 차이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스웨덴의 공식 여론조사에서와 같이 여전히 시민 다수는 난민을 포함한 이민자들에게 긍정적이다. 필자가 만난 이들도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를 경계했으며 주변의 긍정적인 이민 사례를 들며 난민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곤 했다. 다만 북유럽 이데올로기의 다양성과 비례대표제도의 특성상 나라마다 십수 개의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고 매번 여러 정당 간의 연합정권 형성이 불가피한데, 극우정당의 연정 참여가 실제 시민들의 바람 이상으로 이민정책 보수화를 확대시키기도 한다.우리나라는 이민자 비율도 낮고 정책적인 준비도 아직 부족하다. 높아진 국민소득과 그간 세계화·국제화를 외쳐온 국가정책이나 기업문화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가장 관대한 북유럽 이민정책을 기준으로 보수화의 논리를 구하는 것은 적합지 않아 보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혜를 모으고 합리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8-07-16 11:28:03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 창] 후쿠오카에서 듣는 '그리운 금강산'

일본 사람이 그 맛 그대로 연주 한국 사람 노래 더하니 하나 돼 월드컵 독일전 승리 축하 세례 벨기에와 싸운 일본 응원 화답 전주에서는 국제영화제가 있었고, 영화제와 함께하는 음악회도 있었다. 나는 여기서 사회를 봤다. 끝나고 인사말을 할 기회가 있어서 "전주에서 대구 사투리로 사회를 본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자, 큰 박수를 받았다. 대구를 떠난 지 몇십 년이 되었건만 말끔한 서울말이 서투른 사람이다. 그러니 전주에서의 대구 사투리는 나 자신에 대한 극복이고 영남과 호남의 화합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었다. 지난 6월 27일 밤, 후쿠오카 중심가에서 음악회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도 사회를 봤다. 일본과 오랫동안 무역업을 하는 나래코리아의 김생기 대표는 우리의 아름다운 음악을 일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국에서 음악가들을 모시고 일본의 음악가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마련했다. 김 대표의 거래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 홀을 자주 찾는 사람들까지 약 50여 명이 공간을 꽉 메웠다. 푸치니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베르디의 '여자의 마음'으로 시작되었는데 모두 참 잘한다는 박수 소리가 넘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데 2부에서는 특별했다. '그리운 금강산'의 피아노 전주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후쿠오카에서 나고 자란 후쿠오카의 딸이 내가 알고 있는 그리운 금강산의 그 냄새 그 맛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우리의 성악가가 노래를 더하니 일본인지 한국인지,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이어서 메이지의 대표적 문학가 이시카와 다쿠보쿠 작시의 '첫사랑'이 일본말이라고는 무엇 하나 모르는 우리 성악가의 풍부한 음색으로 울려 퍼지니 모두 숙연해졌다. 26세에 요절한 슬픈 시인을 기억하는 것일까. 아니다, 저마다 가슴에 담은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는 듯했다. "나의 첫사랑은 일본분이었습니다"는 말에 모두가 웃음을 나누고,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흔하디 흔한 멘트이지만 나는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남과 호남의 화합'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한일의 가교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벅찼다. "첫사랑의 아픔을 아련히 내 마음에 떠올리는 날"이라는 가사를 따라 부르고, 내 입에서 떠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6월 27일의 밤이다. 그렇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FIFA 세계 랭킹 1위인 독일을 2대 0으로 이긴 바로 그날이다. 음악회를 마치고 이자카야에서 뒤풀이를 하는데,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우리 스태프 하나가 큰소리로 "대한민국이 독일을 1대 0으로 이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흥분해서 텔레비전을 켜라, 볼륨을 높여라 하는데, 또 한 골이 터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기쁨의 술잔을 돌리면서 일본 친구들은 우리를 축하한다고 했고, 우리는 아시아의 힘이 바로 이거라면서 일본의 8강 진출도 꿈이 아니라고 덕담을 나누었다. 축구라고는 커다란 둥근 공을 발로 찬다는 거 외에 아는 것이 없지만, 나는 지난 3일 새벽 8강 진출을 놓고 치러진 일본과 벨기에의 경기를 지켜봤다. 후쿠오카의 그 친구들과 공간은 달리하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장면을 보고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3위 벨기에를 상대로 전반전부터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후반에 연속 2골을 넣으면서 8강 진출에 성공하는 듯했다. 그런데 벨기에는 만회골에 이어 동점골, 결국 추가 시간에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일본 선수들은 경기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일본에 골을 내준 벨기에의 분발을 촉구했고 벨기에가 추격골을 잇따라 터뜨리자 마치 한국팀이 골을 넣은 듯 흥분하는 생중계 해설자가 야속하기만 했다. 숱한 슬픈 이야기 속에서 선뜻 가까워질 수만은 없는 나라 일본이지만, 나래코리아의 작은 음악회에서 마음을 나눈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싸운 일본 선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2018-07-09 10:28:47

홍은영 교수

[세계의 창]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우리의 자세

김정은 위원장 '판문점 발표문'에핏줄 혈통 민족 강조 부담감 느껴감성에 호소 판단 흐리게 할 수도남북 이질성·내부 차이 고려해야 지난 4월 27일 남북 양 정상이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산책과 회담을 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었다. 양 정상이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발표문을 읽던 모습 역시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4·27 남북 정상회담은 이 회담을 지켜보는 동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 그리고 평화에 대한 기대를 안겨준 분명 특별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러한 감정은 남북 정상회담으로 온라인에서 '핫'하게 되었던 평양냉면과 대동강 맥주의 인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필자는 언론이 중계한 남북 정상회담을 실시간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저녁에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상회담 소식을 접하면서 감동을 받았고, 정상회담 전 개최된 '봄이 온다' 공연을 시청하면서도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문화 교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남북 관계에 대한 희망을 전달해주었다. 그러한 희망은 공동 번영과 활발한 남북한의 교류(문화예술, 여행, 경제 등)에 대한 기대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남쪽, 특히 서울은 대학을 포함하여 많은 분야에서 이미 '포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을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보고 남북 교류와 대북 사업 관련 기회를 엿보는 기대감도 들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보고 희망을 느끼는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발표문'에서 강조한 표현을 들었을 때, 복잡 미묘한 감정과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필자 역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지만,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 하나의 문화를 가진 북과 남', '한 혈육, 한 형제, 한민족'과 같은 말을 들었을 때, 무언가 무거운 부담감과 폭력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한 체제로의 흡수 통일의 폭력성을 뜻하는 것을 넘어, '핏줄' '혈통' '하나' '민족'이라는 말이 듣는 사람의 감성을 호소하여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고, 이러한 단어들 자체가 폭력적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혈통' '민족'이라는 개념은 국민국가의 역사적 과정에서 타자와 비동일자를 내부에서 배제시키면서 자신의 단일한 정체성을 구성해왔다. 동질적인 '자신'이라는 정체성은 자기동일적이지 못한 이질적, 혹은 자신에게 상반되기 때문에 배제된 속성을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거부하면서 획득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민족' '혈통' '하나'의 호명과 단일한 정체성의 옹호는 엄연히 역사 속에서 존재했지만, 이름을 가지지 못했고 그들의 개별적 삶의 특수성을 배제하는 대가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필자가 독일 유학시절 포스트식민 이론을 배우는 세미나에서 일본계 독일의 영상 작가이자 저술가인 히토 슈타이얼의 '텅 빈 중앙'이라는 영상의 한 부분을 감상한 적이 있었다. 그 영상은 독일 베를린 장벽 흔적을 담은 '포츠다머 플라츠'(포츠담 광장)를 둘러싼 8년간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변화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때 그녀는 베를린 도시의 변화를 주류에서 배제된 소수자의 목소리와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1997년 독일은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곳에 포츠다머 플라츠를 조성하였고, 대규모 도시 개발 사업을 추진하였다. 국가의 강한 중심의 형성이 전 세계 유명기업이 투자하고 세운 현대식 고층 빌딩 건설과 같은 세계적 구조화와, 외국인에 대한 사회정치적 경계 짓기가 함께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민족'을 강조하기보다, 남과 북의 이질성과 내부의 차이를 늘 고려하고 존중하는 보편적 인식과 사회적 풍토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2018-07-02 11:02:52

황일순 교수

[세계의 창] 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전쟁 시대

美 로봇·AI 공장 다시 본토 이전트럼프의 기술보호전쟁 선포국가경제 4차 혁명 진검 승부젊은 과학기술자에게 희망을 매년 여름철이면 스톡홀름의 스웨덴 한림원은 큰 열기에 휩싸인다. 엄선된 노벨상 후보 중에서 최종 수상자를 선정하는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평화상만은 당시 스웨덴의 연방국이었던 노르웨이가 맡고 있다.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세계적 불안을 확산하던 북한의 지도자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핵화에 성공하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올해 추천 시한인 1월 말을 넘겼으니 연말까지는 뚜렷한 성과를 내어 내년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오는 11월에 중간선거까지 있어 일석이조를 노릴 만하다. 그러나 세상의 관측과 달리 트럼프는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난민들에게 문을 닫으니 노벨평화상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사업가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북핵 해결 후 천문학적 보상은 한국에 떠넘기고 미군 주둔 비용까지 줄이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과학기술 전쟁 시대가 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20여 년 전 클린턴 대통령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일갈로 패권을 잡고 세계화를 주창하며, 당시 미국 내 사양화되던 제조산업을 인건비가 낮은 중국으로 옮겨 경쟁력을 강화했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무인화된 공장들을 미국으로 다시 옮겨 최강의 과학기술로 생산한 다양한 제조품들을 전 세계로 수출하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선포한 기술보호전쟁은 그래서 우리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며, 첨단 기술에 대한 보호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선진국들이 다시 공장을 옮겨가면 원료 생산지에 공장을 세워 수출하던 때에 비해 물동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슈퍼컴퓨터와 로봇이 움직이는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 에너지 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점점 심해지는 미세먼지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에도 첨단 환경 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에 에너지 수요는 더 늘어나고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층 더 커질 것이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절약이 답이라던 '에너지 전환' 정책도 최근 독일 정부가 스스로 실패했다고 인정하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멈추지 않는 에너지 소비의 증가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경제를 위해 과학기술 개발로 진검 승부를 펼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알프레드 노벨이 전 재산을 기탁하며 인류의 새 지평을 여는 선각자를 포상하는 깊은 뜻이 120년이 지나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900명이 넘는 노벨 수상자가 나왔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기술 분야의 수상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오늘의 위기를 설명해주고 있다.사실 그간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은 40년 전 과학기술 최우선 정책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전자, 자동차, 조선, 원자력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산업을 일으키긴 했으나, 우리 사회는 공론화라는 미명하에 국민 정서에 따라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포퓰리즘 때문에 성장 엔진이 꺼지고 있다. 청년 실업 문제에도 임시방편만 동원하고 근본적 대책을 고민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지적 호기심을 접고 공무원, 연예인, 스포츠인을 부러워하고 비트코인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능한 인재들은 우리 사회에서 냉대받고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들이 일어나서 힘찬 미래의 청사진을 만들고 이를 위해 과학기술에 몸을 던지는 사회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선진국 진입은커녕, 구한말의 비참한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황 일 순(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2018-06-25 13:45:26

최희경 교수

[세계의 창]  루이지애나 미술관에는 미술관이 없다

우리나라 일정 규모 이상 문화사업콘크리트 건설 경쟁에 내용 후순위관람자에 감상의 즐거움 돌려주고미술관 찾는 이들 편안한 장소 돼야 코펜하겐에서 동부해안선을 따라 열차로 30분을 달리다 보면 21세기형 미술관으로 주목받는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을 만날 수 있다. 풍성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미술관 입구의 첫인상은 오두막인가 싶게 소박하다. 그러나 작은 마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탁 트인 정원 너머로 청록 바다가 시원하고, 해안으로 이어지는 내림 경사면에는 숲과 숨바꼭질하듯 전시관들이 흩어져 있다. 그 전시장들은 다시 풍광을 끌어들인 회랑으로 연결되며 자연 속의 미술관이자 미술관 속의 자연을 편안히 연출한다. 로댕 이후 가장 주목받는 실존철학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은 한쪽 벽이 통유리로 훤히 트인 전시실에 자리하고 있다. 밀림 속 호수 같은 정경을 뒤로, 마르고 단단한 청동 입상이 처연히 드러나고 그의 형형한 눈빛은 공간 가득 조용하다. 절경과 최고의 작품이 어우러진 전시 공간의 백미를 마주하는 순간, 이 작품은 이 장소를 위해 태어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발걸음 가는 대로 즐기다 보면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주목해야 할 작가를 찾아내어 눈앞에 진열해주는 미술관의 배려가 돋보인다. 햇볕 잘 드는 어린이 방에선 바람 부는 숲의 정경이 특히 빼어난데, 그곳에서 만들고 그리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미술품 같았다. 문득 이곳의 주인공이자 가장 큰 작품은 관람자임을 깨닫는다. 경사진 잔디밭을 구르는 쾌활한 청소년부터 바다를 마주하고 기타 공연에 행복한 노년의 커플까지, 숱한 예술품은 기꺼이 배경이 되어주고 주연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며 시선 닿는 모든 곳은 그 사람만의 볼거리가 된다. 미술관 설립자 크누이드 옌슨(Knud Jensen)은 관람객을 사랑했다. 모든 작품과 공간이 사람과 감각, 감정과 지성에 있는 그대로 말을 건네고 소통하기를 바랐다. 미술관은 기관이나 종교시설이 아니고 예술품을 위한 성소도 아니며, 찾는 이를 위한 편안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관객을 경계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작품을 유리관에 보호하기보다는 손과 시선이 닿는 곳에 두어 관람자를 믿고 예우하는 신뢰형 미술관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렇게 50년에 걸쳐 완공된 곳에서 사람들은 예술의 전문성에 긴장할 필요도 없고 배워야 한다는 강박도 없이, 모두를 위한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미술관을 갖게 되었다. 필자는 한때 우리나라의 일정 규모 이상 문화사업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미술관, 박물관, 기념관 건립을 포함한 매분기 수천 페이지의 기획안을 확인하며, 콘크리트 건설 경쟁 같은 사업 내용에 종종 당황했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건물을 올리는 것이 목표인 듯했고 방문객은 물론 문화적 취지나 내용도 후순위였다. 많은 시설이 놀랄 만큼 빠른 완공을 약속하며 어디서도 볼 수 없을 것처럼 제안되었지만 정작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은 생태와 관람자에게 주권을 돌려주고 감상의 즐거움을 재설계한 미술관이다. 이런 철학을 어떻게 잘 표현하느냐가 21세기 문화시설의 핵심이 아닐까.미술관 없는 미술관을 거닐던 중, "제 소리가 너무 크지 않나요?"(Am I too loud?)라던 피아노 반주자 제럴드 무어가 떠올랐다. 세계적인 성악가와 연주자들이 앞다투어 함께 공연하고 싶어 했던 피아니스트. 마지막 무대에서 독주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가 택한 곡은 연주시간 1분 20여 초의 슈베르트 소품이었다. 사람을 끄는 것은 강한 웅변이나 화려한 형상이 아니라 조용한 배려와 함께하는 모습이라는 걸, 바닷가 작은 마을을 떠나며 소중히 챙긴다.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2018-06-18 11:30:56

고선윤 백석예술대학교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 창] 마쓰리, 신들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간과 공간

암흑 속에서 태양신 찾는 축제세상 질서 바로잡는 퍼포먼스지역마다 고유의 색깔 마쓰리새로 시작하는 시간 의미 내포 일본의 여름은 '마쓰리'로 기억된다. 동네 곳곳 신사와 사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마쓰리가 열리고, 사람들은 들뜬 마음을 "어샤 어샤" 큰 소리로 표현하면서 커다란 무리를 이룬다. 사실 마쓰리는 여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교토의 기온 마쓰리, 아오모리의 네부타 마쓰리와 같은 큰 마쓰리가 여름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리 기억하는지도 모른다.여기서 마쓰리를 '일본의 축제'라고 하지 않고, 고유명사를 고집하는 것은 마쓰리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에 다가가고 싶기 때문이다. 마쓰리는 신에 대한 기원과 감사의 종교적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나는 노래 가사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 설명을 대신하겠다. 엔카 가수 기타지마 사부로의 '마쓰리'라는 곡이다. 엔카는 대중음악 장르의 하나인데, 박력 넘치는 이 노래의 가사는 마쓰리를 참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교과서에도 실린 곡이다."남자는 마쓰리를 통해서 자란다"고 시작하는 이 노래는 "산신이여, 바다신이여, 감사하다"고 한 다음 1절에서는 "풍년 마쓰리다! 흙냄새 품고 있는 아들놈의 손이 보배지", 2절에서는 "풍어 마쓰리다! 아들이여, 첫배를 저어라"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식을 들먹인다. 마쓰리란 신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의 삶도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일본은 지역마다 수많은 신사가 있고, 신사마다 모시는 신이 각각 다르다. 일본은 참으로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나라이고, 마쓰리는 신에 대한 제사라고 할 수 있다. 마쓰리는 제사의 '제'(祭) 자를 쓰고 그렇게 읽는다. 그런데 신들과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고기잡이를 하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으로 보아 마쓰리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하나의 시간이자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그 시작은 무엇일까, 나는 마쓰리의 시작을 일본 건국신화에서 찾는다. 동생의 심한 장난에 화가 난 태양신 아마테라스가 동굴 안으로 숨고 바위 문을 닫아버리는 일이 있었다. 하늘은 완전히 암흑이 되고, 지상에서는 생명이 자라지 않게 되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신들이 모여서 궁리한 끝에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였다. 요란스럽게 춤을 추는 한 여신의 옷이 흘러내려 가슴이 드러나자 신들은 손뼉을 치면서 웃어댔고, 동굴 속의 태양신은 궁금한 나머지 바위 문을 살짝 열었다. 이 틈에 힘센 신이 태양신의 손을 잡아 끌어내자 세상은 다시 밝은 세상으로 돌아왔다. 암흑 속에서 다시 태양의 빛을 찾는 일, 이것은 세상의 '일그러짐'을 원래의 질서로 되돌리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툼, 슬픔, 재해, 갈등, 노여움 등등 감당하기 어려운 일상의 일그러짐을 재정비하기 위한 하나의 행위가 마쓰리라고 감히 말한다. 여기에는 열심히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능동적 의지가 보인다.그래서일까. 일본에서는 물을 뿌린다거나 물에 씻는다거나 물에 뭔가를 떠내려 보낸다거나 하는 행위가 주가 되는 마쓰리를 볼 수 있다. 일본 3대 마쓰리 중 하나인 오사카 덴진 마쓰리가 대표적이다. 300여 명이 마을 강가에서 몸을 청결히 하고, 나무로 만든 창을 물에 떠내려 보내는 의식으로 마쓰리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일본에서 "물에 떠내려 보낸다"는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으로 끝을 내자"는 뜻이 담겨 있다. 이른바 마쓰리를 통해서 이제까지 갈등은 모두 끝내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를 가진다. 지난 억울함을 기억하고 한을 품는 것이 아니라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시작'의 시간을 마련하는 의식이다.마쓰리는 각각 고유의 색을 가지고 의미를 담고 있어서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신들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일그러진 세상을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시간임을 말하고 싶다.

2018-06-11 11:53:32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해외봉사프로그램– 이상과 현실 사이

대학생 국제 경험 타 문화 이해 높여세계 시민 삶 배우고 교육성장 도모서구 식민지 역사 경험한 아프리카세계 사회 불평등 구조도 새겨봐야 'N포 세대' '니트족'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고, 취업난과 불안정 노동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도 청년들은, 예컨대 필자가 매학기 새롭게 만나는 대학생들은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 사회에서 효용성을 발휘하는 각종 시험(토익 등)과 공모전에 대비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점 관리에 신경을 쓰고, 동아리 회장, 대외활동, 어학연수, 인턴, 기업 탐방, 봉사와 같은 스펙을 쌓으면서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다.지방에 살고 있는 대학생들은 방학 때 토익 점수와 영어회화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량진의 '메가스터디'에 다니러 서울로 올라가는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 청년들에게 요구하는 스펙은 경쟁을 부추기는 상황과 함께 높아지고 있으며, 대학생들의 취업 준비는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캠퍼스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자유로운 대학'은 온데간데없고, 대학 생활은 주로 경쟁을 배우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다.이런 맥락에서 국내외 자원봉사도 이력서 한 줄을 위한 대외활동으로 청년들의 스펙 쌓기에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대학 게시판에 붙은 다양한 포스터를 관심 있게 보는데, 그 가운데 최근 해외자원봉사 프로그램 사진과 '내 청춘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때 그 포스터에는 '청춘' '팔아'와 '사고'라는 단어가 크게 표기되어 있다.해외봉사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타인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통해 성장하고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고, 문화 교류를 체험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두고 있다. 해외봉사는 참가자들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고, 궁극적으로 주체적인 세계 시민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월드 봉사단'은 홈페이지에서 봉사활동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지구촌 이웃들과 우리의 발전 경험을 나누고 그들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때 지구촌 이웃은 '제3세계'를 가리킨다. '제3세계'라는 용어는 '근대화이론'에 의해 널리 유포된 '저개발국가'라는 말과 유사하게 이해되고 있고, 선진국의 발전단계에 훨씬 뒤처진 빈곤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이러한 시각에서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 아동들의 이미지는, 한편으로 불평등하게 구조화된 세계사회에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희생자의 이미지로 재현되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타자의 재현이 '제3세계' 사람들의 온전한 자립성과 행위능력을 부정하고 수동적인 객체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제3세계라는 단어에는 이미 산업화된 '우리'의 삶의 방식과 다른 '자본주의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그들'의 삶에 대한 '우리' 자신의 욕망과 동경이 반영되어 있다.해외봉사 프로그램의 교육활동가와 행정 운영자는 포스터에 적절한 표현과 문구를 만들면서 타자에 '대해' 말하는 주체의 자리에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도움을 받는 사람의 목소리를 침묵하게 하는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자신의 선한 의지와 반대로) 공고화하는 데 관련하고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해외봉사 프로그램은 대학생들이 국제 경험을 습득하고 타 문화를 이해하고 연대성과 세계 시민적 삶의 의미를 배우면서 교육적 성장을 도모하고자 한다. 그러나 서구의 식민주의 역사로 인해 형성된 불평등한 세계 구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모순적인 것이다. 이러한 내적 모순을 자각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해외봉사 프로그램의 진정한 의미와 해방적 계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2018-06-05 05:00:00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해외봉사프로그램–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N포 세대' '니트족'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고, 취업난과 불안정 노동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도 청년들은, 예컨대 필자가 매학기 새롭게 만나는 대학생들은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 사회에서 효용성을 발휘하는 각종 시험(예컨대 토익)과 공모전에 대비하기 위해 불철주야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점 관리에 신경을 쓰고, 동아리 회장, 대외활동, 어학연수, 인턴, 기업탐방, 봉사와 같은 스펙을 쌓으면서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다. 지방에 살고 있는 대학생은 방학 때 토익 점수와 영어 회화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량진의 '메가스터디'를 다니러 서울로 올라가는 열정을 보이기도 한다. 청년들에게 요구하는 스펙은 경쟁을 부추기는 상황과 함께 높아지고 있으며, 대학생들의 취업 준비는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캠퍼스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자유로운 대학'은 오간 데 없고, 대학생활은 주로 경쟁을 배우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다.이런 맥락에서 국내외 자원봉사도 이력서 한 줄을 위한 대외활동으로 청년들의 스펙 쌓기에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대학 게시판에 붙여진 다양한 포스터를 관심 있게 보는데, 그 가운데 최근 해외자원봉사 프로그램 사진과 "내 청춘을 팔아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때 그 포스터에는 '청춘', '팔아'와 '사고' 라는 단어가 크게 표기되어 있다.해외봉사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타인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통해 성장하고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고, 문화 교류를 체험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두고 있다. 해외봉사는 참가자들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고, 궁극적으로 주체적인 세계시민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월드 봉사단'은 홈페이지에서 봉사활동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지구촌 이웃들과 우리의 발전 경험을 나누고 그들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때 지구촌 이웃은 '제 3세계'를 가리킨다. '제 3세계'라는 용어는 '근대화이론'에 의해 널리 유포된 '저개발국가'라는 말과 유사하게 이해되고 있고, 선진국의 발전 단계에 훨씬 뒤쳐져 있는 빈곤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 아동들의 이미지는, 한편으로 불평등하게 구조화된 세계 사회에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희생자의 이미지로 재현되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타자의 재현이 '제 3세계'의 사람들의 온전한 자립성과 행위 능력을 부정하고 수동적인 객체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제 3세계라는 단어에는 이미 산업화된 '우리'의 삶의 방식과 다른 '자본주의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그들'의 삶에 대한 '우리' 자신의 욕망과 동경이 반영되어 있다. 해외봉사 프로그램의 교육활동가와 행정 운영자는 포스터에 적절한 표현과 문구를 만들면서 타자에 '대해' 말하는 주체의 자리에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도움을 받는 사람의 목소리를 침묵하게 하는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자신의 선한 의지와 반대로) 공고화하는 데 관련하고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해외봉사 프로그램은 대학생들이 국제 경험을 습득하고 타문화를 이해시키고 연대성과 세계시민적 삶의 의미를 배우면서 교육적 성장을 도모하고자 한다. 그러나 서구의 식민주의 역사로 인해 형성된 불평등한 세계구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모순적인 것이다. 이러한 내적 모순을 자각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해외봉사 프로그램의 진정한 의미와 해방적 계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2018-06-05 05:00:00

[세계의 창] 북유럽식 '우리가 남이가'

북유럽 복지 설계 핵심은 시민책임놀고먹는 복지 아닌 근로'납세 중요우리에게 부담 공론화 필요한 시점비용 설득에 당당한 선거후보 기대'국민의 집'(Folkhemmet)은 1928년 등장한 스웨덴 복지의 상징어이다. 국가는 하나의 가정이고 국민 모두는 한 가족이라는 의미이다. 같은 시기 덴마크에서는 '국민을 위한 덴마크'(Danmark for Folket)가 경제난 극복과 복지체제 형성의 정치 모토로 활용되었고, 노르웨이에서는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다'는 구호가 선거전을 달궜다. 이들 모두 이를테면 북유럽식 '우리가 남이가'이다.그러나 지향점은 한국에서와 달랐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책임과 의무, 비용부담을 같이하자는 독려였으며 특정 집단 구성원끼리 혜택을 보자가 아니었다.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해주겠다는 약속 대신, 근로와 높은 세금을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설득했다. 2005~2013년 노르웨이 노동당의 선거 공약은 '세금을 낮추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연이어 집권에 성공했다.약 100년 전, 복지제도를 설계하면서 북유럽의 각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인 부문은 시민책임이었다. 복지예산을 부담해야 하는 주체는 결국 일반 시민이다. 정치권은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에 솔직했고 사회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일을 하고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설득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들에게 복지는 처음부터 공짜가 아니었고 의존이 아니었다.오늘날 북유럽 복지가 변화하는 이유는 이런 전통가치에 익숙지 않은 이민자난민 출신 인구가 20~30%에 이르기 때문이고 이들을 통합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데 시장 원리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 등록금은 무료이고 부모를 떠나 생활하는 대학생들은 매월 100만원까지 장학금을 받는다. 개인 의료비가 연간 30만~40만원 넘어가면 그 시점부터 사회구성원은 무료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그 대신, 일을 할 수 있는 한 어떤 일이든 해야 하고 소득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을 정직하게 납부하는 것은 이들에게 상식이고 윤리이다. 최근 덴마크에서는 이런 가치를 '사회민주주의 DNA'라고 부른다. 이민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책임과 기여를 강조한 사회민주당은 6개월 전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우리 얘기를 해보자. 한국 복지 프로그램의 원산지는 대부분 유럽 내지 북유럽이다. 그러나 외국산 복지제도가 수입되면서 기본 취지와 중요한 사용설명서가 빠졌다. 정치권은 예산 문제를 솔직히 거론하고 국민을 설득하며 합의를 유도해야 한다는 정공법을 놓쳤고, 시민들은 근로와 납세가 권리이며 복지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이해할 기회가 없었다.그 결과, 한국에서 복지는 정치인들의 선심이 되었고 어느새 공짜처럼 여겨지고 있다. 부족한 재정으로 공급되는 복지서비스는 시장서비스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역대 정부는 앞다투어 복지의 혜택만 강조했고 덕분에 재정적자는 이리저리 떠넘겨지고 있다. 미래 세대에 적자를 넘기는 건 많은 복지 프로그램에서 상습이 되었고 누리과정사업(3~5세 무상보육사업)에서처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을 미루는 불상사도 있었다. 과거 의료보험제도에서처럼 무리하게 낮은 수가를 책정하여 그 간극을 '약가 마진'(리베이트)의 불법 재원이 메우도록 방기한 전력까지 있다.가장 아픈 사실은 납세자들이 책임과 의무에 당당한 시민이 아닌, 정부에 계속 선물을 기대하고 조르는 의존인처럼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복지 재정을 전담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혜택에 앞서 돈 문제와 내용을 먼저 고민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다시 선거철이다. 이제는 복지사용법을 바꿔볼 때도 되었다. 자기 돈을 쓰는 양 해주겠다 생색내는 후보 대신, 비용을 공론화하고 감당하자 설득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등장해주기를. 우리 모두가 남이 아니며 필요한 부담은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책임시민이기 때문에.

2018-05-22 00:05:01

[세계의 창] 5월 가정의 달

경제 문제에 육아 부담 만만치 않아 日 남성 4명 중 1명 50세까지 미혼 결혼 전제한 사회제도 바뀌고 있어 비슷한 한국 '가정의 달' 변화 주목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어찌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겠다고 왔느냐?" 나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항상 이런 질문을 했고, 그때마다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고 거창한 설명을 했다. 실은 딸아이 제대로 시집보내려면 이국땅이 아니라 한국에서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엄마의 고집을 따랐을 뿐이다. 그런데 잘못된 말은 아니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비행기라고는 신혼여행 때 처음 타본다는 남자랑 결혼을 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다. 아들을 군에 보내면서 "대한민국 여자로서 더 이상의 애국이 있겠는가"라면서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그러니 결혼은 바로 나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일이었다.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남동생은 마흔이 넘어서 결혼을 했고, 부인은 일본 여자다. 노총각이 미국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노랑머리도 좋고 검은 피부도 좋으니 짝을 찾아오라고 간절히 바랐는데, '오카상'이라고 말하는 며느리를 데리고 왔으니 감지덕지하다. 일본도 5월은 어린이날 어머니날로 분주하다.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날이다. 아버지날은 6월 셋째 주 일요일이다. 그나저나 나는 왜 이 시점에서 인구학을 전공한 게이오대학 쓰다 노리코(津谷典子) 교수의 말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사회제도는 모든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질 것이라고 대부분 전제하고 있지만, 이런 전제가 바뀌고 있다." 일본의 출산율은 2015년 기준으로 1.45명. 출산장려 지원 등으로 출산율이 소폭 올라가고 있다고 하지만 출산을 할 수 있는 여성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출생아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가장 큰 요인은 결혼의 감소"라고 보았다.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서는 50세까지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생애 미혼율'을 조사했는데, 2015년 기준 남성은 23.4%, 여성은 14.1%로 나타났다. 이른바 일본인 남성 4명 중 1명, 여성 7명 중 1명은 50세가 될 때까지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셈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경제적 문제를 그 첫째로 꼽는다. 육아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것만이겠는가. 결혼해서 엄마가 되는 것보다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이 늘어났다. 자신의 정체성을 가정보다는 사회에서 찾고자 한다. 일본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만화 원작의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서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일본의 결혼에 대한 생각을 엿보았다. 주인공의 계약결혼을 중심으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 현상을 다양한 남녀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있다. 좀 잘난 남자가 ①결혼의 메리트는 무엇일까? ②굳이 없어도 되는 물건을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③혼자서 결정해도 되는 일이 상호 동의가 필요한 번거로움으로 발전 등을 말하면서 결혼을 거부한다. 한편 미혼보다는 돌싱이 낫다는 '고령 처녀'는 ①왜 아직 미혼인가 탐색당하지 않는다. ②단 한 사람의 상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선택받고 싶다. 여기 있어 달라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아줌마들 마음에도 쏙 드는 대사를 늘어놓는다. 일본은 2000년에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됐지만, 연금 납입자가 수급자보다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5월 가정의 달은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 것인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생각하는 5월이다.

2018-05-15 00:05:00

[세계의 창] 청년 실업률과 연구개발 생산성

한국 원전기술 안전성·경제성 우수방대한 수출시장 최고 경쟁력 갖춰연구개발 성과관리 전문가에 맡겨유망 산업 정치논리에 희생 안돼야청년들이 어버이날을 두려워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올해 11%를 넘은 후 악화일로에 놓인 영향이다. 예전의 경제 위기와 달리 지금은 우리나라만 유난히 어려운 상황에 있다. 미국은 실업률이 4% 이하로 60년 만의 호경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일본을 비롯한 몇몇 OECD 국가들은 2%대의 실업률에 국민들이 활력에 차 있다.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일등산업들이 있었다.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 반도체는 너무도 기반이 튼튼하여,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을 오랫동안 지탱할 것으로 믿었다. 세계경제포럼이 평가한 우리나라의 경쟁력 순위는 26위로 10년 전에 11위였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언제부터인가 총수출액은 늘지 않는데 해외공장만 늘어나서 국내 일자리는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우리 주요 수출국이 기술 수준이 높고 경쟁이 치열한 미국 시장에서 느슨한 중국 시장으로 옮기면서 우리나라 기술개발의 고삐마저 풀린 듯하다. 그사이 중국은 기술을 따라잡아 우리의 일등상품들을 낚아채고 있다.고질적인 혁신의 부진과 노사 갈등 악화에 대해 각계에서 끊임없는 경종을 울려왔으나 효과적인 대응에 실패하고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많은 OECD 국가들이 비슷한 과정의 난관을 돌파해왔으나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성과도 못 내면서 민간의 혁신에도 짐이 되고 있다.문제는 산업혁신을 위한 연구개발의 실패다. 연간 20조원 이상의 국책연구를 주도하는 정부 공무원들은 잦은 부서 이동으로 연구개발 관리의 전문성이 부족한 데다 정부 정책에 지나치게 민감하다.세계의 과학기술 경쟁은 갈수록 더 치열해지고 있다. 국제화를 통하여 수많은 신흥국들이 경제개발에 돌입하면서 끊임없는 혁신 없이는 이길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가연구개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구개발의 정책수립부터 성과관리의 일체를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정부 간섭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연구개발 생산성이 매우 높은 미국은 2차 대전 직후 연구재단을 만들어 연구개발 관리를 전문가들에게 넘겼고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계속 기술혁신을 통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데에 있어 세계를 리드하여 왔다. 독일도 통독 후에 미국 방식을 도입하여 산업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과거 우리 산업계는 미국 방식으로 신상품 개발에서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호황 속에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청년실업은 국책연구에서 후속 신상품에 필요한 신기술이 산업화되지 못한다는 데에서 하나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시장가치가 큰 유망 기술이 개발되면 정책을 떠나 산업화를 지원해야 한다.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 기술은 안전성, 경제성, 친환경성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화석에너지는 물론 재생에너지보다 우수하다. 나아가 방대한 수출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망산업이 정치적 논리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국책연구는 과감한 기술개발과 혁신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혁신은 세계 누구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일이다.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이 예산을 끌어오고 혁신사업가들이 치어리더가 되어 과학기술자 한 명 한 명이 도전적인 연구개발에 몰입할 도전적 환경이 만들어져 한다. 그래서 청년실업 문제가 하루빨리 해소되기를 바란다.

2018-05-08 00:05:04

[세계의 창] 독일의 직업교육과 자아탐색

대학공부 중단 요리사 직업교육취업보다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한국에선 돈벌이 되는 것만 추구자신의 존재 의미 망각해선 안 돼'직업'에 해당하는 독일어 'Beruf'라는 단어는 신으로부터 주어진 소명(召命, Berufung)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하느님의 부르심으로서 직업은 각자의 인생에서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필자는 독일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며 용기 있게 자아를 찾아가는 자의식이 강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학창시절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발도르프 학교(전인교육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예술, 신체, 지성교육을 조화롭게 통합시킨 교육을 실시하는 특징을 지닌다)를 다녔다. 발도르프 학교와 가정교육의 영향인지 그 친구는 인간이 정신적 활동(머리)을 수공예 작업(손을 움직여 사물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면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과 결합하면서 창의적인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해나가고,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 내면의 자유를 표현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어느 날 그 친구는 대학 공부(학문적 활동)가 자기의 적성에 맞지 않아서 학업을 중단하고 요리사 직업교육을 받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아비투어(대학 입학 자격요건의 시험)를 치고 정신적 사유를 즐겨 하였던 친구가 갑자기 직업교육(실업계)의 길을 선택한 것에 필자는 솔직히 당황했었다. 독일에서도 교육학과 같이 인문사회 분야 전공자들의 취업은 이공계 졸업자보다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고, 현재도 그러한 상황은 지속적이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 요리사의 진로 선택은 취업을 염두에 두기보다, 인간이 육체(손의 이용)와 정신적 사고활동을 연결해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체험하고 자아를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독일의 직업교육은 국가로부터 승인된 산업체에서의 실습과 직업학교에서의 이론교육이 결합된 이원화 방식으로 이뤄진다. 초등학교 4학년 후 실업학교와 주요 학교를 졸업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양한 전문 직종(치과보조사, 미용사, 간호사, 자동차기술자, 제빵사, 정육사 등)에서 3년 과정의 직업교육을 받고 있다. 일주일에 1, 2일간은 직업학교에서 일반 교양과목(제2외국어로 프랑스어, 물리, 화학, 영어, 수학 등)과 해당 전문 분야의 이론적 지식이 교육되고, 3, 4일간은 산업체에서의 실습이 실시된다. 그러나 필자의 친구가 대학 입학 자격을 가졌기 때문에, 도제훈련(Lehre) 기간이 6개월 단축될 수 있었다. 도제훈련을 하면서 매년 증가하는 훈련수당을 받는다. 직업교육 과정을 거치면 졸업시험을 통해 수료 증서를 받게 된다. 한편, 직업교육을 통해 자아를 찾으려 했던 친구의 이상(理想)은 레스토랑의 현장실습에서 구현되지 않았고, 힘든 직업교육 과정을 마치면서 졸업시험을 무사히 치렀다.19세기 말 일반 교육보다 낮게 평가되었던 직업교육의 위상을 높였던 '직업학교의 아버지'로 알려진 독일 교육학자 케르센슈타인은, 지식교육뿐만 아니라 수공업 수업, 노작교육, 체험활동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초 직업학교는 이 단어가 함의하는 본래적 의미와 이념과 달리 청소년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노동시장 정책의 도구로 전락하였다. 실제로 직업교육은 독일 청소년 실업률을 감소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개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경쟁력을 갖춰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친구의 자아탐색과 결단은 현재 우리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망각한 채 취직에 유리한 것, 돈벌이가 되는 것만을 추구하고 사회문화적 요구에 기계적으로 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자신의 삶을 주도하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2018-05-01 00:05:00

[세계의 창] 북유럽의 교육은 무엇을 바라보는가

다양한 분야의 기초역량 중시해정보통신역량, 내용에서 큰 차이어려서부터 정기 체육활동 필수초등생부터 창업취업 인지토록가장 최근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가 나왔던 2016년 말, 노르웨이는 처음으로 언어, 수리, 과학의 모든 과목에서 OECD 평균점수를 넘었다. 스웨덴과 덴마크도 상황은 비슷했다. 만 15세의 학습역량을 평가하는 PISA에서 우리 학생들은 늘 선두권이고 온 국민이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북유럽에서는 PISA형 학습과 성과가 전부가 아니다. 북유럽 교육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을까?1. OECD 국가 16~19세 청년들의 정보통신역량 평가 결과는 그야말로 의외이다. IT 강국으로 자부하는 한국이 상당히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금융'환경'재정 뉴스와 정보를 얼마나 검색하고 접하는가, 사회이슈의 온라인 토론에 얼마나 적극 참여하는가 등의 지표에서 우리 청년 세대는 북유럽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어려서부터 자기 통장을 가지고 주식투자를 고민하며, 일찍부터 국제뉴스를 접하고 시민교육을 받으며 자라는 북유럽 청소년들. 이들의 모바일과 컴퓨터 용도는 우리 학생들과 사뭇 다른 듯하다.2. 50개국 9~17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기초체력 테스트에서 북유럽은 최상위권, 우리 아이들은 최하위권이었다. 체력은 그야말로 북유럽 교육의 꽃이다. 90~95%의 유아들은 2살부터 유아원'유치원을 다니며 아무리 눈비 오고 추워도 매일 한 번, 무조건 밖에서 놀며 뒹군다. 덴마크의 초중등 학생들은 매일 45분 이상 운동을 해야 한다. 스웨덴에서는 11살이면 의무적으로 200m 수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2017년, 스웨덴은 초등학교 여아의 22%, 남아의 44%만이 매일 1시간 운동을 실천할 뿐이라는 '충격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의회의 질타를 받은 정부는 아이들의 운동량을 늘릴 수 있는 대책을 고심 중이다.3. 최근 오르후스 대학은, 10여 년 전보다 덴마크 9~12세 아이들의 독서량이 늘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초등학교에서 매주 한 권을 선택하여 읽도록 하고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교육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전 국민의 독서량과 독서수준을 평가한 미국 센트럴 코네티컷 주립대학(CCSU)의 지표에서는 북유럽 5개국이 1~5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61개국 중 22위이다.4.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교육은 이들의 강점이다. 초등학생부터 창업, 직업의 개념을 알아가는 데 기업과 사회가 적극 나선다. 스웨덴의 기업은 초등학생들이 기업 활동과 기업가 정신을 접할 수 있도록 교사를 교육하고 비즈니스에 관한 학습도구와 교육방식을 제공한다. 스웨덴의 기술협회와 발명가협회는 문제 해결 방식의 교육기법과 기자재를 모든 중고등학교에 제공한다. 또한 매년 어린이 발명대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여 창의성을 격려한다. 일반 고등학생들은 '기업가정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경영 방식을 배우고 가상의 창업을 체험한다. 매년 4월이면 열리는 덴마크 과학축제는 전국에서 700여 개의 프로그램으로 청소년을 끌어들인다. 최고의 과학기술자들이 학생들을 만나 최신 연구 동향을 직접 설명하고 소통한다.이렇듯 다양한 학습과 경험을 한 아이들에게 대학입시와 공직 취업이 장래 희망의 전부일 리 없다. 북유럽의 많은 학생들은 창업을 희망하고 대학 진학률은 우리보다 훨씬 낮으며 청년 고용률은 우리보다 훨씬 높다. 내용이 다른 교육이어서 결과도 다른 것일까.덴마크에도 순식간에 봄이 왔다. 키 낮은 꽃 가득한 잔디밭에서, 모래 풍성한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맨발로 그저 뒹굴며 즐겁다. 못지않게 예쁘고 빛나는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어른이어서 부끄럽고 교육계의 한 사람으로서 더없이 미안해하며 낯선 땅에서 보는 봄꽃들이 낯설기만 하다.

2018-04-24 00:05:01

[세계의 창] 미야자키공항 면세점에서

주머니에 남은 동전 970엔으로 쇼핑1천엔짜리 생라멘 사기에는 부족해"깎아 줄 수 있느냐" 하자 점원 거절해옆 매장 아주머니 30엔 더해줘 감동공항은 만남의 설렘과 이별의 아쉬움을 오롯이 담은 공간이다.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지구에 존재하는 많은 공항을 드나들었다. 인천공항처럼 크고 화려한 공항도 시골 버스터미널보다 작은 공항도 경험했다. 공항에는 특별한 향이 있다. 면세점의 화장품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사람들이 뿜어내는 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작년 여름 나는 미야자키를 방문했다. 규슈 남동부에 위치한 미야자키는 야자수가 남국의 풍경을 연출하는 아름다운 지역이다. 1970년대 엔고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하와이 등으로 눈을 돌리기 전까지 일본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주목을 받았던 관광지이다. 1인당 소득을 보면 약 256만엔으로 전국 평균 308만엔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고, 도쿄의 440만엔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저소득 지자체다. 일본 행정구역 47개 중 37위라니 상당히 가난한 지자체로 보이는데, 통계국의 '소비자물가 지역차지수'를 보면 미야자키가 전국에서 가장 낮다. 이 말은 물가가 낮아 소득격차만큼 생활수준이 낮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미야자키공항은 시내 중심지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이용하기가 편리하기로 손꼽힌다. 지금은 연간 이용객이 국내선 280만 명, 국제선 8만 명 정도의 크지 않은 공항인데 우리나라 인천공항에서 직항이 있다. 유명 여행지가 아니라 일본 소도시에서 자연을 느끼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적지 않은 관광객이 모이는 매력적인 도시다.미야자키를 소개하고자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 해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주머니에 남아 찰랑거리는 동전은 항상 문제다.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온 동전은 '다음에 써야지' 하지만 집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없어지기 일쑤다. 동전을 없애야 한다는 마음에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들어보기도 하지만, 이래저래 적당한 물건을 찾지 못하면 결국 유니세프가 마련한 모금함 앞에서 상당한 박애정신의 사람인 양 동전을 탈탈 털고 온다. 이런 사람이 나만이겠는가.미야자키공항에서의 이야기를 하겠다. 역시 주머니에 100엔짜리 동전 9개 10엔짜리 동전 7개가 꽤 무거웠다. 참 애매한 돈이다. '미야자키 생라멘'을 사면 딱 좋겠는데, 이게 1천엔이니 30엔이 부족했다. 부족한 30엔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만지작만지작하면서 30엔을 깎아줄 수 있느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젊은 남자가 생긋생긋 웃으면서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딱 부러지게 거절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남겼다. 이때 옆 매장의 아주머니가 '잠깐만'이라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자신의 지갑을 들고 와서 30엔을 더하고 라멘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이것이 국제공항 면세점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는가. 융통성이라곤 바늘구멍 하나 찾기 힘든 일본이 아닌가. 감동이었다.미야자키는 특별하다.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등 메이지 유신의 굵직한 주인공들을 배출한 사쓰마번(薩摩藩)이 이 언저리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규슈에 대한 재평가를 시작했다.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전 사업장의 근로자 법정 정년을 60세로 의무 규정했다. 이에 한국고용복지학회는 우리보다 먼저 60세 정년제 시대를 맞이한 일본을 찾아 기업의 전직 지원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래서 찾아간 첫 번째 회사가 미야자키공항이었다. 나가하마 야스히로 회장을 만나 고령자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내용에 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여하튼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나는 지난여름의 이야기를 했다. 나가하마 회장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60세가 정년이고 본인이 원한다면 65세까지 연장되는데, 이분들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이런 '야사시이' 마음이다"라고 했다. '야사시이'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참으로 어려운 단어다. 단순히 친절하다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뜻을 담고 있다. 연륜이 가진 따뜻함이야말로, 나가하마 회장이 말하는 '야사시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야자키 공항의 특별한 향이 바로 그것이라고, 그래서 아름답게 기억된다고 감히 말하겠다.

2018-04-17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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