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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학과 교수

[세계의창] 중남미에서 민주주의를 배우다  

깨어있는 시민·책임있는 정치인함께 만드는 대화와 타협의 문화보수·진보 편싸움 바쁜 한국 사회선거때만 민주주의 외쳐선 곤란우리의 중남미에 대한 인식은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특히 정치에 대해서는 정치인들과 학자들조차도 중남미를 정치 후진국 혹은 '중남미식' 정치 불안정이라고 비하하며 우리도 중남미처럼 될 수 있다거나 중남미만도 못하다거나 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부적절한 표현이다.중남미 33개국에는 다양한 나라가 존재한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도 있지만, 한국보다 높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국가들도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8년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우루과이와 코스타리카가 20위 안에 들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고, 한국은 21위에, 그리고 칠레가 23위에 올랐다.중남미에서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이들 세 국가는 대통령제와 다당제 국가이면서도 정당 연합을 통해, 또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합의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안정된 국정 운영을 지속해 왔다.우루과이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Jose Mujica) 전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의 월급 기부 목적에서 나타나듯 우루과이에서 정치는 모두가 행복한 정치, 정당 간 컨센서스, 시민의 공무원에 대한 견제, 평등한 시민, 사회적 연대, 즉 공화주의의 실천을 말한다.이를 위해 1917년 국가 차원의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여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를 시행하고 있다. 국민발안은 유권자의 10% 서명, 국민투표는 유권자 25%의 서명을 충족해야 국민투표로 이어질 수 있는데, 제도 도입 이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시민 주도의 국민투표가 있었다. 유권자 서명을 받고 국민투표를 시행하기까지 2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고 국민투표에서 패배할 때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시민들은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안다. 서명 기간 동안 다른 시민들을 만나 입법 과정에 참여하고 토의하면서 일상의 정치를 즐겼기 때문이다.우루과이의 직접민주주의는 강한 대의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세 개의 주요 정당 중 홍당과 백당은 미국 민주당과 영국 보수당에 이어 1836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창당됐으며, 이것은 세계 최초로 복수의 정당이 정당 경쟁을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여당인 광역전선은 반독재 민주화 세력의 정당 연합이다. 직접민주주의 과정에서 시민들은 늘 정당과 연대하였고, 그만큼 유권자의 정당에 대한 신뢰는 크다.코스타리카도 시민의 정치 참여와 합의를 강조한다. 1964년부터 시작된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행하는 시민을 국가의 교육 목표로 하여 공동체 안에서 도덕적이고 참여하는 성숙한 시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권리와 의무를 교육한다. 유치원 때부터 시작하는 민주주의 교육을 통해 시민은 절차와 제도를 넘어 내 삶의 가치가 되는 민주주의를 체득하여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함으로써 국가의 근원이 된다. 시민 주도의 자치와 공고한 민주주의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코스타리카가 민주주의와 평화의 나라가 된 것은 1948년 군대를 폐지하면서부터다. 정당 간 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나 3천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군대를 없애고 국방비를 교육 예산에 쏟았다. 그렇게 시작한 민주주의 교육은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상징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우리와 같은 시기 군사독재를 겪었고 민주화를 이뤄낸 중남미 국가들은 대통령제라는 공통점도 있다. 중남미 정치에는 반면교사로 삼을 일도 있지만, 깨어 있는 시민과 책임 있는 정치인이 함께 만들어 가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도 있다.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커져 가는 한국 사회. 민주주의는 선거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2019-03-25 11:26:54

이성환 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일본이 왜 저럴까

위안부·강제징용 사사건건 생트집핵 존재하는 한반도 통일 두려워해'韓은 日의 관할' 과거적 사고 여전양국 관계 새로운 인식 프레임 필요작년 11월 일본 니가타의 한일포럼에 갔다. 최근 한국과 일본은 상대 국가에 대한 중요성이 낮아졌다. 이 때문에 관계 회복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어졌고 정부도, 여론도 무관심하다. "일본이/한국이 이상하다"고 서로 비난만 하고 있다.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이에 동의했다. '일본 모델을 이탈한 한국'의 성장으로 괴리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일본 측의 분석이 있었다. '한국의 성장으로 인한 괴리'라는 말이 거슬렸다. 한국이 성장하지 않았으면 한일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일본이 왜 저럴까 생각했다.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삐걱거린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초계기 위협, 강제징용 판결, 위안부 문제 등 사안마다 일본이 트집이다. 북한 핵 문제와 남북 관계에서 희망의 신호가 보이면 일본은 불편한 듯 애써 외면한다. 급기야 지난 1월 말 국정 방향을 밝히는 시정연설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중국을 강조하면서 한국은 없는 양 취급했다.지난달 28일 북미회담 결렬에 대한 일본의 반응에 갸우뚱했다. 관련국들이 아쉬움을 보이는 가운데 아베 총리는 기다린 듯이 "안이한 양보를 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한다"고 했다.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일본은 웃고 있다"고 했다. 일본 언론은 하노이 북미회담 전부터 부정적 평가를 많이 했다. 자체 분석인지 미국 정보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그들의 예상이 맞았으나, 한국 입장에서는 그것이 그들의 바람인지 방해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함이 있었다. 일본이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미국에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일본은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만을 없애고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 사정권 안에 남게 되거나, 핵을 가진 상태에서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일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면 계속 반대할 것이다.또 일본은 한국이 중국에 접근하는 데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일본에서 한국의 중국 경사(傾斜)론과 혐한(嫌韓)론이 거의 동시에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한반도에서 일본에 비우호적인 세력이 존재하거나, 동북아에서 고립되는 구도를 매우 꺼린다.일본의 미국 '추종'에는 이 같은 우려를 방지하거나 보완하는 방편으로서의 의미가 크다.일본의 이런 인식은 근대이행기에서부터 형성된 오랜 것이다.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며, 이토 히로부미와 쌍벽을 이뤘던 야마가타 아리토모 총리는 1890년 첫 의회 시정연설에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는 주권선(국경)이며, 주권선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익선을 지켜야 한다. 조선은 일본의 이익선이다"고 선언했다. 이후 일본은 한반도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일본이 안심하기 위해서는 조선(한국)은 일본의 수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 한일 간의 힘의 관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 청과 러시아의 세력이 강해지자 일본은 조선을 확보하기 위해 청일,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자국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으며, 한일병합은 그 연장이었다일본의 인식과 한일의 역학(力學) 관계는 한국의 독립 후에도 단절되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은 일본 '관할'하의 존재여야 했으며, 과거 침략에 대한 반성은 한국의 희망일 뿐이었다.그런데 삼성이 소니를 제쳤듯이 근대 이후에 형성되었던 한일 간 힘의 관계는 근본적 변혁을 맞고 있다. 중국의 굴기(崛起·벌떡 일어섬)로 1840년 아편전쟁 이후의 대국 관계가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일본이 이러한 변혁에 대한 현실 인식을 가지지 않으면 한일 관계는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다. 일본에게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한일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프레임이 필요하다.

2019-03-11 11:16:19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남긴 것

아무런 합의 보지 못하고 끝났지만사전조율 없는 회담의 위험성 각인북핵문제 올바르게 이해한 트럼프제대로 된 북핵협상 시작할 모멘텀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를 보지 못하고 끝났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소위 빅딜로 끝날지, 스몰딜로 끝날지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이렇게 아무런 결과 없이 끝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미·북 합의를 계기로 대북 경협을 본격화해보려던 우리 정부로서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기와 영변 핵시설 동결 정도의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를 볼까 걱정하던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잘못된 합의보다는 무합의가 낫다"(No deal is better than bad deal)는 것이다.그러나 금번 하노이 정상회담을 마냥 실패라고 할 필요는 없다.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모두에게 사전 조율 없는 정상회담의 위험성을 잘 깨우쳐 주었다.외교가에서 흔히 하는 말로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상회담은 협상하는 자리라기보다 외교관과 전문가들이 이미 협상을 완료한 사항을 확인, 공표하는 자리라는 의미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가 마지막까지 실무협상을 하고, '정상회담 합의문 초안'까지 마련하는 등 싱가포르 회담 때보다는 톱다운 방식의 문제점을 상당히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무협상을 제대로 가동하기도 전에 정상회담 날짜까지 미리 잡아 놓고 시작한 것은 문제가 있다.다음으로, 하노이 정상회담은 양 지도자에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김정은은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 때 팔아먹은 적이 있는 '영변'이라는 말(馬)을 세 번째로 팔아먹으려 했다.김정은은 대가로 유엔 제재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 '영변'이라는 말이 안보리 제재 결의 11건 중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의 해제 값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러나, 트럼프는 영변 핵시설의 영구폐기 정도로는 불충분하다며, 북한의 제안을 걷어찼다.이는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2005년의 9·19 공동성명과 2007년의 이행합의서를 통하여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 그리고 "검증"까지 약속한 바 있다.그리고 이행 초기 조치로 "재처리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을 약속하였다.이 당시만 하더라도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시설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트럼프는 '영변+알파'를 요구했다. 즉, 영변 이외 숨겨둔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와 미사일, 탄두 등이 포함된 신고 리스트 제출을 요구한 것이다.트럼프는 또한 북한이 "인민생활에 영향을 준다"며 해제 요구한 안보리 결의 5건이 사실상 북한의 기름과 돈줄을 옥죄는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트럼프는 영변에 있는 낡은 핵시설 해체와 가장 실효성 있는 대북 제재 해제를 맞바꾸자는 김정은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하노이 회담은 이제 제대로 된 북핵 협상을 개시할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 이번 회담을 통하여 미·북 양측은 상대방이 생각하는 거래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확인했다. 또한, 대북 협상의 가장 유용한 지렛대가 북한의 기름과 돈줄을 막아버린 5개 제재 결의임을 재확인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2017년 말 최대의 압박을 통한 극적인 북핵 해결 기회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 이번 회담이 10여 년간 중단되었던 제대로 된 북핵 협상을 되살릴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종종 실패한 정상회담으로 치부되는 1986년의 레이건-고르바초프 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이 이후 실무협상을 거쳐 이듬해인 1987년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19-03-04 13:42:23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학과 교수

[세계의창] 칠레의 환경정책과 인간 삶의 질

오존층 파괴·대기오염 몸살 칠레단순 규제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미세먼지 저감만 신경 쓰는 한국원인 규명·국제적 협력이 먼저다남반구 최남단 도시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 칠레)에 6개월이 넘는 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찾아왔다.햇볕이 그립기도 하겠지만, 자외선이 너무 강해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실외 활동을 할 때는 긴 소매와 긴 바지, 목을 덮는 모자 착용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자외선 차단제 사용도 필수다. 등하교 때에는 선글라스를 착용한 학생들까지 보인다. 오존층 구멍이 가장 크게 관측된 2000년대 초반에는 낮 시간 외출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을 만큼 이 지역의 환경 문제는 인간 삶을 위협하고 있다.남극 대기권 상공의 오존층에 구멍이 생기면서 강한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인데 자외선은 피부암, 백내장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고, 동식물에도 영향을 미쳐 생태계를 파괴시킨다.1985년 오존층 구멍이 처음 관측된 이후 오존층 보호를 위한 비엔나협약, 몬트리올협약 등 지구적 차원의 협력을 통해 프레온 가스 사용이 줄면서 오존층 구멍이 줄어들긴 하였으나 최근에는 사염화탄소 사용 증가로 그 회복 속도가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칠레는 오존층 파괴의 직접 당사국이 아니면서 피해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국가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와 협력함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2006년 자외선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목적의 환경법을 제정하였다.국민건강 보호를 위해 정부는 국민들이 언제든 정확한 자외선 지수를 알고 대응할 수 있도록 오존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전국의 자외선 지수를 지역별로 발표하고, 모든 언론이 오존 예보를 하도록 했다. 위험 단계에 이르면 학생들의 야외 활동은 물론 야외 작업장 노동자들의 야외 노동도 제한한다.학생들에게는 오존 센서를 제공하고, 자외선 노출의 위험을 알리는 시민교육을 강화하기도 했다.칠레의 환경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겨울이 되면 장작 난방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해진다. 칠레 중남부 가정의 77%가 장작 난방을 하는데, 노후화된 보일러가 미세먼지를 필터링하지 못하면서 밀폐된 가정 내의 공기뿐만 아니라 집 밖의 대기 질을 떨어뜨린다.또한 충분히 건조되지 않은 장작 사용이 많아 불을 붙이면 수분 때문에 점화가 잘 되지 않고 그을음을 내면서 불완전연소를 하게 되는데, 이때 생성되는 일산화탄소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다. 날이 추워지는 4월부터는 중남부 지역의 각 가정에서 배출하는 굴뚝 연기가 도시를 뒤덮어 앞이 보이지 않고, 호흡기 질환과 심폐 질환 환자가 증가한다.칠레 정부는 1991년부터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권고 수준에 그쳤다.그러나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업, 환경단체, 학자들이 모여 오랜 기간 숙의의 과정을 통해 지구 환경을 보존함으로써 개인의 삶의 질을 확대한다는 인식 기반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환경법 합의에 이르렀다. 자동차 5부제, 장작 보일러 사용 금지와 같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산림 조성 단계부터 장작 유통, 소비윤리, 환경보호, 국민건강 등 지속 가능한 발전의 관점에서 실질적인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실효성 있는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는데, 대기환경 측정소를 확대하여 대기환경 경보 시스템을 강화함으로써 시민들이 미세먼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였으며, 미세먼지의 위험성과 친환경 소비에 대한 시민 교육을 강화하였다.최근 우리 정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특별법은 원인 규명과 국제적 협력보다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 휴교 권고나 노후 차량 진입 규제와 같은 저감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속적인 저감 정책과 더불어 현재 미세먼지에 노출된 국민 건강과 환경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재정립되기를 바란다.

2019-02-25 16:13:59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세계의창] 결혼은 미친 짓인가

연애 결혼 포기하는 청춘남녀 늘며출생률도 덩달아 떨어져 위기 상황법률혼 중심 전통 관념에서 벗어나佛 계약결혼 가족형태 도입 고민을2002년 유하 감독이 만든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영화가 인기리에 상영되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준영(감우성 분)과 연희(엄정화 분)는 처음 만나 스스럼없이 성관계를 한다. 얼마 후 그들은 결혼한 척 가족을 속이고 신혼여행을 가고 부부처럼 행동한다. 이 영화는 속칭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이성교제란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어야 한다는 도덕적 엄숙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여전히 서로 사귀면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앞다투어 결혼하지는 않을 것 같다. 기성세대의 바람과는 달리 청년들은 아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통계청이 발표하고 있는 최근 혼인 통계를 보면, 청년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과 세태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2017년 기준 혼인 건수는 26만4천500건으로 1974년(25만9천600건) 이후 가장 낮다. 20대 10명 중 6명은 결혼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니 앞으로도 혼인 건수는 계속 줄어들 전망이다. 적정 인구 규모를 국가경쟁력의 근간으로 보고 있는 시각에서 보더라도 청년들의 혼인율 감소는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우리 민법은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부부관계를 인정하는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제812조 1항) 사실혼 부부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으니 서로 아무리 사랑하고 오래도록 살아도 법률상 인정되는 부부가 아니다. 형식적 절차 요건인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사실혼 부부와 법률혼 부부를 이렇게 차별해도 좋을까? 또한 법적 문제를 떠나 사실혼 부부는 '불륜관계'라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평생 심적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다.인구절벽으로 국가경쟁력 저하 운운하면서도 구태의연한 결혼제도만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의 태도는 바람직할까? 사회가 발전하고 진보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걸맞은 합리적이고 새로운 가족제도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가족 형태로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프랑스에서 부부가 함께 사는 방식에는 동거, PACS, 법적 결혼 등 3가지가 있다.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전통적인 결혼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PACS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2012년의 통계에 의하면, 이성 남녀 가운데 94%가 PACS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전체 혼인에서 결혼이 차지하는 비율은 6%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적잖은 충격이다.PACS로 대표되는 다양한 가족정책의 실시는 곧바로 출생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1970년 2.64명이던 프랑스의 출생률은 2000년 1.97명으로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적극적인 출생장려정책으로 2010년 1.97명으로 높아졌고, 2015년에는 2.1명으로 유럽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우리나라에서도 PACS와 같은 제도 도입이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4년 당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약칭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준비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혈연과 혼인관계로 이뤄지지 않은 동거 가구도 가족으로 보고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게 하자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었더라면, 애인'친구와도 법적 가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이다.이제 우리 사회도 법률혼 중심의 전통 관념에서 벗어나 PACS와 같은 새로운 가족제도를 도입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동반자로 살고 있다면, 그들의 권리를 법'제도적으로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청년들이 결혼은 더 이상 미친 짓이 아니라 축복임을 아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2019-02-18 11:14:56

이성환 계명대 교수

[세계의창] 두 가지의 타락

박근혜 정부 입맛 맞춘 양승태 사단日 배상 뒤집을 궁리하며 판결 지연이래저래 만신창이 된 한국 사법부日, '야만적'이라 해도 할 말 있겠나1891년 5월 11일 시베리아 철도 기공식 참석차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에 일본을 방문한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황태자의 경비를 맡고 있던 '쓰다 산죠'라는 경찰이 차고 있던 칼로 황태자를 찔렀다. 우측 머리에 9㎝의 상처를 입은 황태자는 평생 두통에 시달렸다. 그는 3년 후 황제로 즉위했다.사건 다음 날 천황은 황태자가 치료를 받고 있는 호텔에서, 일주일 후에는 그가 머물고 있는 군함에서 사죄했다. 아직 소국이었던 일본은 당시 세계 최대의 대륙 세력으로 불리던 러시아가 선전포고를 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였다. 국가 존망의 위기였다.국민들은 길거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학교는 휴교를 하고 전국의 신사와 절에서는 황태자의 쾌유를 비는 기도회가 열렸다. 심지어 생선 가게 점원인 하다케야마 류코는 황태자에게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글을 보내고 교토부 청사 앞에서 자결하기도 했다.주일러시아 대사는 범인의 처형을 요구했고, 일본 정부도 사형 방침을 밝혔다. 문제는 형법에 일본 황실에 위해를 가한 자(대역죄)는 사형시키도록 되어 있으나, 니콜라이 2세는 일본 황족이 아니었다. 정부는 대역죄를 적용해 사형 판결을 내리도록 고지마 고래카타 대심원장(대법원장)을 압박했다. "법을 엄히 지켜 나라가 망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고지마는 "형법에 없는 죄명을 적용하여 처벌하면 일본은 법치주의를 모르는 야만국이 된다"며 거부했다. 그러자 헌법 제정자이며 귀족원 의장인 이토 히로부미는 계엄령을 선포해서 그를 처형하자고 했다.정부 대신 중에는 재판 없이 즉시 납치, 총살하자는 자도 있었다. 러시아의 보복을 두려워한 행동들이었다. 그럼에도 산죠는 살인미수죄를 적용받아 무기징역에 처해졌다(두 달 후 폐렴으로 옥사). 러시아는 보복하지 않았고, 사건 당시 산죠 검거에 도움을 준 일본인 인력거꾼에게는 상금과 평생 연금을 제공했다.국가 존망의 위기에서도 고지마 대심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을 지켰다. 그의 판결은 국제적으로 일본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높였고, 문명국가 일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3년 후 일본은 니콜라이 2세의 제정 러시아와 전쟁에서 승리했다. 사법부 독립의 전통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현재 일본 헌법은 어떠한 경우에도 특별재판소의 설치를 금지해, 다른 권력의 재판 개입을 막고 있다. 대법원 판사는 10년마다 투표로 국민의 신임을 받아야 하며, 법률 전문가가 아닌 유식자도 대법관에 임명될 수 있다.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완성자로 평가받는 프랑스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두 가지의 타락이 있다. 국민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와 법 때문에 국민이 타락하는 경우이다"고 했다.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여 적용하는 사법부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사법부 및 법관의 양심의 독립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법복이 검은 이유는 어떤 색깔에도 물들지 말라는 뜻이다. 일본은 한국 법원이 강제징용 판결을 잘못하면 "한일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 사전 경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나라 망신이 안 되도록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양승태 사법부는 기민하게 한국과 일본 정부에 발 맞추려 했다. 사법부의 독립을 포기한 '야만'이다.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을 궁리를 하면서 판결을 계속 미뤘다. 소송 당사자들의 사망을 기다리는 듯했다.한국 사법부가 이래저래 만신창이다. '야만'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발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자기 나라의 법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한국 사법부의 '야만성'을 엿본 것일까. 자기만의 논리에 젖어있는 섬나라 근성일까. 일찍이 사법의 독립은 근대국가 문명의 척도였다.

2019-02-11 14:03:35

장동희 새마을 세계화재단 대표/전 주 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기해년 새해 아침에 바라본 한반도 풍향계

북핵 해결 없이 한반도 평화는 없어北, 中·러와 관계 공고히 해가는데한국은 美·日과 사사건건 불협화음신뢰 회복·협상 과정 긴밀한 협의를2차 미북 정상회담이 2월 말 개최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친서 교환과 스웨덴 미북 실무회담 개최로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는 한층 높아지고 있다. 이는 김정은의 방남에 대한 기대와 한반도에 훈풍이 불어올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이어진다.그러나 기해년 새해 한반도 풍향계는 그렇게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면서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천명하였다.그러고는 미 대통령과 회담할 용의가 있으나, 미국이 제재를 계속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협박성 발언도 덧붙였다. 즉, 핵확산금지조약(NPT)상 핵 보유국 지위를 천명하며, 미국에 핵 군축 협상을 제안한 것이다. 김정은은 또한 "외세와의 합동 군사훈련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전략 자산을 비롯한 전쟁 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반도 비핵화'는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미국의 핵우산 철폐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한편, 4차에 걸친 김정은의 방중 이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거론되던 지난 1월 초 김정은이 방중함으로써 북중 간 사전 조율이 정례화되는 모양새다.김정은을 만난 자리에서 시진핑은 "조선이 주장하는 원칙적인 문제들은 응당한 요구이며 조선 측의 합리적인 관심 사항이 마땅히 해결돼야 하는 데 전적으로 동감한다"며 북한에 대한 지지를 확실히 하였다. 2017년 후반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던 중국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김정은은 또한 러시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외무성 부상을 파견한 데 이어,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서 러시아와의 실무 협상도 진행했다.이에 반하여, 우리 측 사정은 여러 면에서 여의치 않아 보인다. 한미 동맹도 옛날 같지 않다.사드 배치 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에 미국 측이 수차례 불만 표시를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9·19 남북 군사합의서에 대해서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항의까지 하였다. 방위비 분담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12월 말 시한을 넘기면서, 방위비 분담 협상과 주한 미군 철수 연계설까지 나돌고 있다.일본과의 관계는 악화 일로에 있다. 위안부 합의 파기로부터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과 뒤이은 강제집행 판결, 해상에서의 레이더 조준 논란과 우리 해군 함정에 대한 일본 초계기의 근접 비행 등으로 양국 관계는 끝 모르게 추락하고 있다.과거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형성된 구도는 일반적으로 3(한·미·일)대 3(북·중·러)이었다. 그러다가 2017년 북한이 잇따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고 9월에는 6차 핵실험까지 감행하자, 중국과 러시아까지 대북 제재에 적극 가담하면서, 이 구도는 1(북)대 5(한·미·일·중·러)로 바뀌었다. 그러나 3차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4차에 걸친 김정은의 방중을 거치면서 북한과 중, 러의 관계는 공고화되는 반면, 한·미·일 관계는 삐꺽거리며 각개약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미 조야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ICBM 폐기와 핵 동결 수준에서 북한과의 핵 협상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우리로서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신뢰 회복과 협상 과정에서의 긴밀한 협의가 필수적이다. 북핵 문제에 관한 한 한국과 일본은 운명공동체다. 북핵 문제 해결 없는 한반도 평화는 허구다. 한·미·일 간의 긴밀한 공조 관계가 한반도 평화에 긴요한 이유다.

2019-01-28 11:28:17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학과 교수

[세계의 창] 사람 중심의 스페인 스마트시티

기술은 수단…시민이 지속 발전 중심 기존 시설·가치 보존하며 도시 재생농어촌 인구 감소·고령화 문제 해결지역공동체 수평 연대 삶의 질 향상지난주 한국과 스페인 국토부는 스마트시티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스페인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활용하는 스마트시티 선도 국가이자 우수 사례로 손꼽히는 국가로 현재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65개 도시가 스마트시티로 등록돼 있다.스페인 정부는 스마트 국토 전략을 통해 국가의 주 수입원인 관광산업과 스마트시티에 포함되지 않은 농어촌 지역으로도 스마트화를 확산하고 있다. 기술 혜택에서 소외되는 지역과 계층이 없도록 하여 농어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해결하고, 관광객들의 여행 만족도와 현지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그러나 스페인의 스마트시티는 우리 상상 속의 스마트시티와는 다르게 '스마트'하지 않다. 2011년 구축된 스페인 스마트시티 네트워크(RECI)는 65개 스마트시티의 목적과 방향을 명시하고 있는데, 어느 도시도 기술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기술은 스마트시티를 구성하기 위한 당연한 수단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스마트시티의 중심에는 시민이 있어야 하고, 개발은 지속 가능한 발전이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지역공동체는 물론 지구적 차원에서 발전 방향을 고려해야 하고, 발전을 주도해 갈 시민적 역량과 자질 향상은 필수적이다.우리에게 스마트시티로 가장 많이 알려진 바르셀로나의 경우 도심으로 진입하는 자동차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시 한복판의 차로를 축소하여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슈퍼블록'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자동차가 다니던 도로는 시민 공동의 휴식 공간으로 녹지화했다.한편 시 정부는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스마트 모빌리티를 도입하여 공공 운송 서비스를 강화하였고, 인터넷 연결 서비스를 확대하여 이를 바탕으로 이동 정보 데이터를 분석하고 버스 노선을 수정함으로써 이용 시간을 단축시켰다.또한 환승 시간을 줄이기 위해 플랫폼으로 자동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를 늘리고 있다. 이러한 바르셀로나의 친환경 정책은 디젤 차량 도시 진입 금지와 공공 자전거 서비스 확대로 이어졌다. 시민들이 교통 불편을 감수하며 삶의 질을 선택한 것이다.스페인에서 ICT 기술 인프라가 가장 탄탄한 북부 공업도시 산탄데르는 대학, 민간기업, 시민단체, 행정기관 등이 스마트시티 운영에 참여하여 기술적으로 협업하고, 소규모 지역 단위로 시민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이 도시의 스마트시티는 일상생활에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스마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공동체가 수평적으로 참여하고 연대하면서 공동의 문제에 대처할 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에 사회적 기업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순례자의 길'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도 스마트시티다.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 도시는 도시의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순례자들을 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스마트시티의 목적이다.따라서 자동차의 도시 진입을 최소화하여 순례자들의 묵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교통 시스템을 정비하고, 전기차 도입을 장려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시행하는 등 기존의 시설과 가치를 보존하는 도시 재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스페인은 도시의 특징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스마트시티를 발전시키고 있지만, 기술을 매개로 하여 사람이 사는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스페인의 스마트시티다.시민이 주도하여 행복을 증진하고, 서로 마주 보고 관계를 맺으며 시민공동체를 복원하는 것. 여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스마트시티의 목적과 방향이 있다.

2019-01-21 16:11:27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세계의 창]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전쟁 위험 없는 한반도는 헛꿈일까모범 사례 유럽연합서 찾을 수 있어새해 평화 염원 꽃 한송이 품어보자남북 모든 경계 무너지길 기원하며당신은 어떤 모습의 국가를 원하는가? 이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까?만일 누가 이 질문을 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국가를 원하오. 혹자는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누군들 평화로운 국가를 원하지 않겠는가고. 그들은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전쟁을 하더라도 국익을 지켜야 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냉정한 현실이 아니겠는가.해방 이후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남북이 분단되었고, 급기야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전쟁까지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랜 세월 동안 남북은 극한의 군사적 대립을 하면서 일촉즉발의 전쟁 위험 속에서 살아왔다.다행히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어 한반도에도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봄바람이 불고 있다. 비로소 우리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시금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전쟁 위험 없이 살 수는 없을까?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삼지 않고 사랑과 평화의 정신으로 포용하고 연대하며 살 수는 없을까?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정치 이념에 따라 한반도 미래를 바라보는 입장은 서로 달라 그 간극이 너무 크다.또한 미국'중국'러시아'일본 4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니 남북이 넘어야 할 산은 높고도 험하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 없는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그저 허황된 꿈이나 이상에 불과한 것인가. 우리는 그 모범 사례를 유럽연합(EU)에서 찾을 수 있다.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1952년 프랑스와 독일 양국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설립하기로 정치적 합의를 한다.이에 따라 1953년에는 ECSC가, 1958년에는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가 공식 출범하였다. 유럽공동체가 출범한 날부터 오늘날까지 60년 이상 EU 회원국 사이에는 한 번도 전쟁이나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유럽대륙의 역사에서 이 사실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최근 브렉시트로 영국의 이탈 논란이 있지만 EU는 28개국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지역공동체이다.국제사회에서 EU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막강한 지위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EU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없앤 지역공동체를 만든 것이다.오늘날 EU로 대표되는 유럽연방을 통한 평화체제의 건설은 '유럽 통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 모네의 구상에서 비롯한다."만약 국가주권의 기반 위에 국가를 재건설한다면 이 땅에 평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유럽 국가들은 자국 국민의 번영과 발전만을 보장하기에는 지리적으로 너무 인접해 있다. 따라서 유럽의 국가들은 공동경제를 중심으로 한 단일통합체를 건설해야만 한다."단일 유럽 건설이라는 장 모네의 구상은 그저 허황된 꿈에 그치지 않았다. 그 꿈은 현실이 되어 EU에서는 사람과 상품, 자본과 서비스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다.함민복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노래한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시인의 바람대로 남북을 경계 짓는 철책이 무너지고 삼천리강산을 화려하게 수놓는 무궁화 꽃이 피어날까. 그 꽃이 활짝 피어나는 날 남북을 가르는 모든 경계가 무너져 내릴까.기해년 새해다. 우리의 가슴에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꽃 한 송이를 품으면 어떨까. 100년 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유관순 열사도 같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2019-01-14 11:42:06

이성환 계명대 교수

[세계의 창] 아베 신죠와 이토 히로부미

아베 정치 슬로건은 '아름다운 일본'2차 대전 이전 군국주의 침략 미화역사 트라우마 아직 치유되지 않아위안부 문제·강제징용 등 한국 반발아베 신조와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인에게 특별 각인된 일본 총리들이다. 두 사람은 일본 보수 정치의 산실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닮았다.이토는 일본 역사상 최연소(44세) 총리이며, 유일하게 네 번 총리를 역임했다. 아베도 2차 세계대전 후 최연소(52세) 총리이며, 2021년 9월의 예정된 임기를 마치면 재임 기간이 가장 긴 총리가 된다. 두 사람은 근대 일본의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요시다 쇼인을 스승으로 두고 있다.이토는 그의 문하생이었으며, 아베는 그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이토는 메이지 헌법 제정을 통해 천황을 제도적으로 신격화했으며, 아베는 지금의 헌법을 개정해 천황의 신성(神性)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두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요시다 쇼인은 이토를 '협상력 좋은' 보통 학생 정도로 평가했다. 이토는 협상력으로 수많은 정적을 제치고 평민에서 총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아베도 학력이 우수한 편은 아니었으나, 총리 및 장관을 지낸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에 입문했다.두 사람은 한반도를 탐욕의 대상으로 삼고, 시대의 흐름을 왜곡한 점도 닮았다. 이토는 한반도 지배가 일본 안전의 필수 요건이라 믿었다. 청일 전쟁의 주역으로서 한반도 병탄의 길을 열었다. 그 후 일본은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통해 근대 제국주의의 반열에 올랐다. 이토를 근대 제국주의 국가 일본을 만든 사나이라 일컫는 이유이다.아베는 1980년대 말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외무장관인 아버지의 비서로 이 문제를 담당했다. 납치자 문제와 북한 때리기는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2002년 일시 귀국한 납치 생존자 5명의 북한 귀환을 저지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고, 이를 배경으로 2006년 총리가 되었다. 그가 일본 외교의 첫 '사명'으로 납치자 문제를 내세우는 배경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문제에 매진할 때도 아베는 납치자 문제를 우선했다. 지금껏 납치자 문제는 성과가 없다. 그러나 그는 개헌, 군비 강화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 위협론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꺼낸다.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를 두고 한일 관계의 법적 기반이 무너졌다고 비난했다. 지난 연말부터 사격통제 레이더와 근거리 위협 비행 문제로 공방 중이다. 아베는 무리하게 영상을 공개하도록 해 논란을 더욱 키웠다.그는 왜 한국에 대해 공세적일까. 아베의 정치 슬로건은 '아름다운 일본'이다. 그의 아름다운 일본은 2차 대전 이전의 군국주의 일본이다. 이토가 닦아 놓은 아시아 침략을 미화한 것이다. 과거 주변국 침략을 정복의 영광쯤으로 생각하는 그에게 평화헌법은 굴욕이며, 국군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위대는 부끄럽다. 헌법 개정과 국가주의 교육을 통해 그는 2차 대전 이후의 평화국가 일본을 전쟁국가로 만들려 하고 있다.아베의 군국주의 회귀에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이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등에 대한 한국의 반발은 군국주의 국가 일본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국제적으로도 호소력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징용 피해자들이 아베의 '아름다운 일본'을 '범죄 국가 일본'으로 만들고 있다. 아베가 과거사에 대해 과잉 반응하며 뜬금없이 한국을 겨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아베는 2차 대전 이후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총리이다.아베 정권이 계속되는 한 한일 관계는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이토의 한국 식민지화로 시작된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트라우마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아베가 추구하는 군국주의 일본은 또다시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한다. 아베는 이토를 닮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한반도가 아니다.

2019-01-07 13:38:50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독일 연말 분위기에 대한 회상과 한 해의 반성

크리스마스카드 손수 적어 보내고집집마다 진짜 나무 트리 사서 장식독일 성탄절은 가족과 보내는 명절한 해 조용히 돌아보고 충분히 휴식필자가 스무 살에 독일 유학을 가기 전, 독일의 연말 분위기 하면 대중매체에서 접한 네온 불빛이 반짝거리는 화려한 도시와 거리를 가득 메우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막연하게 상상했던 독일의 연말 이미지는 미국식 연말 풍경이었다. 필자가 경험한 12월의 독일 분위기는 고요하고 쓸쓸하다. 평소 매우 검소한 독일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쇼핑센터가 붐비는 광경을 제외하면, 연말은 대체로 온 가족과 함께 조용히 보내는 휴일이며 대중교통 운행은 많이 제한된다.독일에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그 당시, 연말이 되면 직장 동료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사고 직접 손으로 쓰는 일에 분주하다. 정성스럽게 수기로 쓴 카드 선물을 자신의 사무실에 펼쳐놓고 고마운 마음을 되새기는 독일 사람들에게서 화려함보다 소박함과 진정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엿볼 수 있다.12월이 되면 대림절 때 가정마다 대림환(環)을 만들거나 구입해서 대림 시기 4주에 맞춰 매주 1개씩 대림초에 불을 붙인다. 또한 집집마다 조형물이 아닌 진짜 나무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서 장식하고, 각 도시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여러 가판대 상점이 줄지어 서 있고 회전목마가 있다. 추운 겨울 날씨에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전통 수공예품과 크리스마스 전통 쿠키를 구경하고 글뤼바인(Gluhwein)이라고 하는 따뜻한 와인을 마시면 연말 분위기를 한층 더 느낄 수 있다.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은 전통과 풍습을 지키려는 독일인들의 성향 때문인지 가판대 상점 장소, 볼거리와 먹거리 메뉴가 매년 똑같아서 지루하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성탄절 전날까지 열리고, 12월 31일(새해를 맞는 전날 불꽃 파티인 Silvester)까지 독일 거리는 정말 매우 조용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느라 분주했던 사람들과 거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성탄절에 교회를 가고, 가족과 함께 직접 구운 크리스마스 쿠키와 거위 구이를 먹고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은 선물을 주고받고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성탄절을 보낸다. 독일 성탄절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명절이다.한편, 대부분 유학생들에게 2주간(12월 23일부터 1월 첫째 주까지)의 크리스마스 방학은 쓸쓸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이처럼 독일의 연말은 시끌벅적한 축제보다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이지만,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보고 충분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나는 이번 연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이번 학기 마무리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학교 일과 관련해서 마음의 여유는 여전히 없다. 해 놓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벌써 12월 말이 되었다. 필자는 지금까지 스스로 모든 일을 준비하는 '모범생'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에 몸담은 지 몇 년 만에 나도 모르게 뭐든지 '닥쳐야 하는' 성향으로 젖어 버렸다. '미리미리모드'일 때에는 계획했던 일을 마치지 못하면 불안해서 잠이 안 왔건만, 막상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하니까 어디선가 초인적인 능력(?)이 솟아나는 듯, 제출 일정이 다가오면 컴퓨터의 자판은 언제나 '경이로운 허구'를 생산해내곤 했다. 물론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 내 양심은 이렇게 거짓말해도 되는거냐고 외치고 있었지만.누군가가 채근하지도 않고, 무엇인가 다급한 일이 닥치지도 않는데 무슨 일을 계획해서 실천에 옮기기란 웬만한 결심으론 이행하기 어려운 것 같다. 칸트의 정언명법은 어쩌면, 그야말로 불가능한 이상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선택과 자유로운 선택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하고 있다.

2018-12-24 10:39:09

장동희, 새마을세계화 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스리랑카 새마을 국제포럼을 다녀와서

국제기구, 새마을 공동수행 제안유엔 지속가능 개발과 잘 부합해한국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사업공적개발원조 브랜드로 키워야지난주에는 스리랑카의 콜롬보에서 개최된 새마을 국제포럼에 다녀왔다. 새마을세계화재단이 지금까지 시행한 새마을 사업을 통한 개도국 지원사업의 성과를 공유하고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이다.'찬란히 빛나는 섬'이라는 뜻을 가진 스리랑카는 '인도양의 진주'라고도 불리며, 여기서 생산되는 '실론티'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우리 일행이 머무는 호텔로부터 이어지는 해변도로에는 아름다운 서양식 건축물이 늘어서 있어 옛날 영국 식민지 시절의 향취를 흠뻑 느끼게 해준다. 포럼을 마치고 주요 인사를 초청하여 만찬을 개최한 '마운트 레이비니아(Mount Lavinia)호텔'은 옛 영국 총독의 로맨스 내지 스캔들이 깃든 곳이라 하니 더욱 귀가 솔깃해진다. 2대 총독 토마스 메이트랜드 경(Sir Thomas Maitland)은 레이비니아라는 혼혈 댄서와 염문을 뿌려 본국으로 소환된다. 메이트랜드 총독이 해변가에 거대한 총독 관저를 짓고, 그 댄서 이름을 따서 'Mount Lavinia House'로 명명한 것이 호텔 이름의 유래라 한다.콜롬보는 또한 고교시절 사회과목에서 배운 '콜롬보 플랜' 때문에 귀에 익은 이름이다. 콜롬보 플랜은 1950년 콜롬보 개최 영연방 외무장관회의 제안으로 1951년 발족한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기술 및 경제 원조계획을 말한다. 발족 당시에는 영연방국가들만 참가했으나, 이후 확대되어 영연방 이외의 국가도 참가하고 있다. 필자의 한 친구가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1980년대 초에 이 콜롬보 플랜에 따라 유엔개발계획(UNDP) 지원을 받아, 콜롬보에 가서 연수를 받고 온 적이 있다 한다. 우리가 가서 연수를 받던 곳에 와서 새마을 사업을 통한 지원 사업을 하니 격세지감이 든다.포럼 참석 계기에 케골 지역의 새마을 시범마을을 방문했다. 재단은 현재 케골 지역 3개 시범마을에서 버섯 재배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2014년 지원을 시작한 이래 마을 소득이 평균 3배 증가했다며, 마을 주민들뿐 아니라 주지사를 비롯한 정부 각계 인사들도 재단에 대한 고마움을 금치 못한다. 새마을 사업을 접목시켜 버섯 재배의 생산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케골 새마을 버섯'이란 고유 상표까지 창안, 사용하도록 하고 주요 슈퍼마켓에 납품하는 유통망까지 확보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자극받은 사바라가무와주(州) 정부는 주 자체 예산으로 새마을 시범마을을 10개 더 조성하기로 결정하였다 한다. 재단이 추구하고 있는 시범마을의 지속 가능성 및 자립성 제고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포럼에서는 스리랑카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르완다 등에서 온 새마을 지도자들의 성공사례 발표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르완다의 무심바 마을은 불모지를 개간하여 연 2, 3모작의 벼농사를 지음으로써 연소득이 7년 동안 10배 증가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야말로 가슴 뭉클한 휴먼드라마다.이러한 성공사례를 전해 들은 각국 정부 지도자들로부터 새마을 사업 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UNDP나 OECD와 같은 국제기구는 새마을 사업을 "개도국 농촌 개발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평가하였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과 국제농업개발기금(IFAD)은 재단에 공동사업 수행을 제안하여 왔다. 새마을 사업을 통한 개도국 지원은 단순한 물자 지원이 아니라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새마을 정신을 통하여 마을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엔이 추구하고 있는 지속가능개발(Sustainable Development)과도 부합한다. 게다가 새마을 사업은 대한민국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이다. 새마을 사업을 통한 개도국 지원을 대한민국 고유의 공적개발원조(ODA) 브랜드로 키워 나가야 할 이유다.

2018-12-17 11:54:25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세계의 창] 낯선 타인에 대한 예의

낯선 이와 쉽게 친분 나누는 북유럽타협과 합의의 정치 문화 만들어내친해야 할 사람끼리만 친한 우리들모르는 이들에 좀 더 포용적이어야지난 이맘때, 덴마크 한국 식당에서 몇 사람과 점심을 하고 있었다. 한 부인이 우리 쪽으로 오더니 갑자기 필자의 스웨터 색상이 예쁘다고 칭찬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놀라 얼결에 고맙다고만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세실리아 박사가 이내 그 말을 받아, "나는 당신 코트 색이 마음에 든다"며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다. 소소한 주제로 한참을 웃으며 얘기가 오갔고, 합석이라도 할 기세였을 즈음 부인은 자리를 떴다.그런데 이런 풍경은 덴마크에서 낯설지 않다. 한번은 동료들과 미술관에 갔는데 스티그 박사가 지나가던 이와 반갑게 인사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한참 후 스티그 박사는 필자까지 불러 소개시켰다. 자신의 이름과 전공을 밝힌 그 사람은 필자의 연구에 대해 물었고 한동안 대화가 오갔다. 그런데 그와 헤어진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은 뜻밖이었다. 필자와 인사한 이는 덴마크국립박물관의 관장이었고 스티그 박사는 그와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었다. 'TV 등에 출연하는 걸 몇 번 봤는데 마침 지나가기에 평소 궁금했던 예산 문제를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그 후 문헌을 통해, 낯선 이와 쉽게 친분을 여는 덴마크 사람들의 성향은 오랜 관습임을 알 수 있었다. 금년으로 개장 175주년을 맞은 놀이공원이자 공연센터인 티볼리는 일찍부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격의 없이 만나고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1874년, 영국 작가 에드먼드 고시가 묘사한 당시 티볼리의 모습이다. "저녁이면 매우 민주적인 덴마크 생활이 티볼리에 펼쳐진다. 노동자가 외무장관에게 담뱃불을 빌리고 상인 가족이 대사와 함께 어울리는 곳."이와 대비되는 일화도 있다. 인류학자 베스터고드 부부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한 무리의 중국 학생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가벼운 인사에 응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지나가는 이들과 인사를 건네거나 눈을 마주치는 학생도 없어 부부는 놀랍기도 하고 무례하다고도 느꼈는데,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으려니 짐작했다고 한다.낯선 타인을 대하는 예법은 동서양 간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 예법은 친분 있는 이들 간의 것이었으며 생면부지의 타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 친우, 동문, 동향, 사제 관계 등 어떤 형태로든 연고가 중요했고 대부분의 예의는 연고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유교는 연고에 한정되는 규범이란 뜻으로, 친해야 할 사람끼리만 친한 '친친'(親親)주의라는 지적도 있다.이에 반해 '우리' 밖의 낯선 타자에 대한 사회 규범은 특별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모르는 사람에겐 기본적으로 무관심하고, 여기에 안전과 신뢰 문제가 더해져 경계하고 외면하는 방책이 굳어진 것 같다. 낯선 이가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말고 피하라는 행동 수칙이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걸 보면 '대문 밖 지옥'이란 표현이 과장만도 아니다.사회는 가정과 친분 밖의 낯선 이들을 포괄하는 범주이다.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누구와도 대화하기 어려운 사회가 있다. 타인과의 격의 없는 관계가 기반이 되었을까. 북유럽은 지난 100년간 타협과 합의의 정치 문화를 만들어냈다. 노사대타협을 이끌고 경제위기에선 보수와 진보가 협력했으며, 실리를 위해서는 지금도 좌우가 기꺼이 손을 잡는다.그러나 그들도 최근 대거 유입된 난민과 이민자 앞에서는 일정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북유럽의 관용주의 역시 최소한의 동질성을 전제로 했던 것 같아 씁쓸하다.우리는 모르는 타인에게 좀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내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승강기 안 낯모르는 타인끼리의 가벼운 인사, 출입문을 밀면서 뒷사람을 위해 잠시 잡아주는 배려-작지만 중요한, 타인에 대한 예절이 새해에는 일상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2018-12-10 11:27:26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 창] 마스크로 숨긴 내 마음, 다테 마스크

日 젊은이 '멋 부린' 마스크 패션 유행타인에게 본심 들킬까 두려워하고상처받지 않으려고 미리 방어막 쳐여드름이 싱그러운 얼굴 보고 싶어한 학기 내내 마스크를 한 학생이 있어서 "감기가 오래 가네"라고 했더니, "화장을 안 해서"라는 대답에 황당했다. 중국발 스모그에 황사까지 겹쳐 국내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는 날이 늘어나면서 외출을 삼가라, 불가피하게 외출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마스크를 꼭 착용하라는 말을 한다. 그러니 마스크를 하고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무엇이라 할 말은 없지만, 외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학생들의 입 모양도 보고 표정도 읽고 싶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마스크' 하면 일본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거리를 걷다 보면 마스크를 착용한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시작은 2009년 신형인플루엔자가 유행하면서부터다. 당시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했는데, 그래도 그때는 마스크를 보고 "아직도 감기입니까?" "아니, 알레르기입니다"라는 인사말이 오갔다. 그런데 1, 2년 후 '다테 마스크'(伊達マスク)라는 용어와 함께 일본 젊은이들의 마스크 집착에 대해서 염려하는 소리가 일 정도로 마스크가 많아졌다. 마스크 시장은 날로 확대되었고, 후지경제마켓 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가정용 마스크 시장 규모가 약 280억엔을 돌파했다. 10년 사이에 5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얼마 전 도쿄를 방문해서 친구네 가족이랑 여행을 갔는데, 그 집 딸아이에 대한 기억은 검은색 마스크밖에 없다. 사진을 찍을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으니 얼굴을 기억할 수가 없다. "이 아이는 우리랑 같이하는 시간이 싫었던 걸까" 사진을 보면서 살짝 섭섭한 마음에 내뱉은 말을 듣고, 우리 딸 왈 "마스크 하니 눈이 반짝반짝 크게 보이면서 예쁘네. 얼굴도 작아 보이고. 이게 신세대 패션이야".마스크가 패션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김이 서려 안경이 뿌옇게 되어도, 숨 쉬기가 답답해도 감기라서 어쩔 수 없이 착용하는 마스크가 아니라 패션의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단다.'다테 마스크'의 '다테'는 멋을 부린다, 호기를 부린다는 뜻이다. '마스크를 하면 20% 더 귀엽다'는 일본 잡지 문구에 물음표를 달면서도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보인다면 인정해야 할 거라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다테 마스크를 하는 이유 중에는 '마음이 안정된다' '시선을 피할 수 있다' '사람과 말하지 않아도 된다' '얼굴에 자신이 없다' 등이 있으니 마냥 패션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다.어른에게는 보이지 않는 지금의 젊은이들의 본질을 이해하고 라이프 스타일 연구와 각종 마케팅 솔루션 개발을 한다는 '하쿠호도 젊은이 연구소'(博報堂若者硏究所)에서 지금의 젊은이들의 문제점으로 다테 마스크를 지목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소통을 한다는 것은 말투나 상대의 표정도 함께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문자만으로 소통하면서 이런 요소가 없어지고 서로 본심을 숨기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본심이 들킬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다"는 지적을 했다.마스크 속에 얼굴을 가리고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고집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관계가 서툴고, 인간관계를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성가신 관계를 싫어하고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미리 방어막을 치는 그런 행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사실 살아가면서 인간관계보다 더 어려운 게 있겠는가. 관계를 잘하려고 노력한다고 반드시 잘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숨기만 하면 되겠는가. 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환한 얼굴을 보고 싶다. 터질 거 같은 여드름 몇 알이 싱그러운 그 얼굴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8-12-03 11:18:10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어린이를 위한 뉴스

독일 공영방송 'LOGO!' 프로그램어린이에 어려운 뉴스 용어와 내용사진 삽화 그래픽 곁들여 쉽게 설명우리도 아이들 알 권리 충족해줘야평소 뉴스와 시사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지금도 독일 TV와 라디오를 꾸준히 듣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ZDF 프로그램 중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LOGO!'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1989년에 처음 방송되었는데, 8세부터 12세까지의 어린이를 주 타깃으로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는 뉴스이다. 어린이들에게 어려운 뉴스 용어와 내용을 사진·삽화·그래픽을 곁들여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어른들의 일반 뉴스 방송처럼 LOGO 프로그램 역시 정치, 역사, 교육, 환경, 문화, 스포츠, 날씨 분야의 뉴스를 전하고, 어린이들이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또래 친구)과 이야기하고 궁금해 할 수 있는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LOGO 방송 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것은 어린이가 직접 방송 리포터가 되어 실제로 정치인, 축구선수, 유명 연예인 등을 만나 인터뷰하는 코너이다. 어린이는 주체가 되고, 정치라는 단어를 자신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LOGO 프로그램은 어린이의 시각과 생활세계를 담으려는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LOGO 방송에서 예컨대 정치인과 인터뷰하는 코너는 어린이들이 딱딱한 정치 주제에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은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다루었던 뉴스 내용과 연관된 배경 지식을 방송 홈페이지에서 심화할 수 있고, 블로그를 통해 제작진과 시청자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또한 LOGO 방송에서 필자의 눈에 띄는 점은 어린이가 주체가 되어 어른을 인터뷰하는 장면과, 어린이 리포터를 그저 보호해야 하고 길들여야 하는 존재가 아닌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어른들의 시선과 태도이다. 그러한 자세에는 어린이는 경험이 적어서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아동기는 성인기의 준비에 불과하다는 견해와 달리, 어린이의 자기 결정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인식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이에 반해 한국의 대중매체 속에 비쳐진 어린이의 이미지는 필자의 과대 해석일지 모르지만, 세상에 당당하게 질문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어른 흉내(예컨대 성인가요, 아이돌 노래와 춤을 따라하는 행동)를 내거나 퀴즈를 잘 푸는 영재 어린이의 모습을 자주 접한다. 대중매체에서 재현되는 이러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 하고 즐거워하는 어른들의 반응에는 아마도 어른들의 기대와 욕구를 어린이에게 투사함으로써 어른들의 지배 욕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유엔 아동권리협약 17조에 의하면, 어린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며 각자가 마주한 세계에 많은 질문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들은 세상을 알고 싶고 스스로 탐색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어린이를 위한 뉴스는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듣고 보는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며 세상을 보는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이런 점에서 필자는 우리 사회에 어린이를 위한 TV 뉴스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활성화되기를 희망한다. 물론 어린이 뉴스를 위한 화제 선별에는 제한이 없지만,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과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이 담긴 콘텐츠를 어린이에게 그대로 노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어린이 뉴스는 복잡한 세상과 사회의 연관성을 단순화시켜 재구성함으로써 문제 상황을 축소시키는 것은 아닌지 지속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디지털기기를 접하며 자라난 디지털 세대 어린이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오늘날 어린이를 위한 뉴스의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18-11-26 11:20:03

장동희 경북대 겸임교수

[세계의 창]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을 반추한다  

한국 사법부 내린 판결 거칠게 비난일본 외무상의 행동 너무나 편협해양국 지도자 국수주의 언동 삼가고자국민 설득할 용기·결단 보여줘야대법원이 지난달 30일 내린 일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 격렬하다. 판결이 나오자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일한 우호협력 관계의 법적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판결로…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국제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고노 외상은 심지어 이 판결에 대해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 '폭거'라는 거친 용어까지 사용했다.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은 이미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는데 왜 또 합의를 뒤집느냐는 것이다.타국 사법부가 내린 판결을 두고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비난을 하더라도 우리 정부 입장이 나온 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제강점기 동안 자행한 온갖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눈감고, 협정 문안 하나하나에 집착하여 우리 사법부의 판단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행동이다.그러나 사법부가 외교 사안에 대하여 이렇게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외교 활동에 관해서는 사법적 판단을 자제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 경향이다.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 정부가 미국인 소유 설탕 공장을 무단 국유화한 데 대해, 미연방 대법원은 1964년 "외국 정부가 그 영토 안에서 재산을 수용한 경우 비록 그 수용 행위가 국제관습법을 위반했다고 해도… 미국 법원은 그 수용 행위의 효력을 사법적으로 검토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국가행위이론'을 적용하여 외교 사안에 대한 사법부 관여 자제를 언명한 것으로 유명한 '사바티노 사건'이다.이번 대법원 판결은 강제징용이라는 일제의 불법행위에 기한 배상 청구권이 1965년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지만, 일제 식민 지배의 법적 성격에 대한 논란을 다시 수면 위로 불러냈다. 대법원 판결은 일제 강점은 불법이며, 따라서 강제징용도 불법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일본 입장은 아베 신조 총리가 강제 징용자들을 당시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에 따른 징병이라고 말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일본의 조선반도 지배는 한일합방조약에 따른 합법적 조치이며, 일본 법령에 따라 행한 징집 조치도 합법적이라는 것이다.외교 협상에서는 '의견을 달리 하기로 합의'(agree to disagree)하는 경우가 있다. 특정 사안 하나 때문에 전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 사안에 대하여는 각자 자기 식으로 해석하도록 묵시적 양해를 하는 것을 말한다."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규정된 한일기본조약 2조가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 정부는 1910년의 한일합방조약이 강박에 의한 조약이므로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과 더불어 동 조약이 무효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외교적으로 남겨둔 의도적 모호성(intentional ambiguity)에 사법부가 개입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이번 대법원 판결은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사법 거래 의혹의 사회적 파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전 대법원은 강제징용 사건의 경우, 한일 양국 간 외교 관계에 미칠 파장을 감안, 판결을 가능한 한 뒤로 미룬 것으로 추정된다. 사법부가 외교 사안에 관여하는 것이 적절치 않음을 법리적으로 당당히 천명하지 못하고, 판결을 미룸으로써 관여를 자제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한 것은 비겁하다. 그러나 판결은 이제 내려졌다. 이제는 이 판결을 전제로 양국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양국 정치 지도자들은 국수주의에 호소하는 언동을 삼가고, 자국민들을 설득할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어야 한다. 등지고 살기에는 두 나라가 너무나 많은 가치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2018-11-19 11:27:37

[세계의 창] 우리가 버린 과거에 미래가 숨어 있었네

100년 넘은 벽난로'조상 쓰던 가구북유럽 가정은 함부로 버리지 않아우리가 매정하게 과거 지우는 동안그들은 건강한 전통을 소중히 보존스웨덴 친구인 폴슨 부인과 덴마크 가정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코펜하겐 역에서 만난 우리는 수수한 종이 포장의 꽃을 한 단 샀다. 그런데 폴슨 부인은 초청해준 부부와 인사하며 그 종이마저 풀어버리고 맨 꽃다발만 건네는 것이 아닌가. "스웨덴에서는 꽃을 선물할 때 포장을 안 하는 편이에요. 최대한 자연 그대로 전하려는 것이겠지요."부인의 설명에 문득, 어린 시절 할머니 꽃밭이 떠올랐다. 학급 당번 날 아침이면 할머니는 화단과 뒤뜰에서 꽃을 골라 들려주셨다. 신문지 안의 목단, 붓꽃, 찔레꽃은 소박하나마 진솔하기 그지없는 멋진 꽃다발이었다.향수(鄕愁)로 번역되는 노스탤지어(nostalgia)는 그리스 어원으로 "누군가에게, 어딘가에게 되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채워지지 않아서 겪는 고통"이다. 지난 일이란 그 자체로 그리운 세계이지만 우리가 버린 과거가 실은 귀한 미래였다는 것은 북유럽에 와서야 깨달았다.북유럽 가정에 초대받으면 백 년도 넘은 벽난로, 증조모가 쓰던 주전자와 접시, 고조부의 의자, 외할머니의 손뜨개 탁자보와 조각천 방석보 등 오래된 소품과 가구를 쉽게 만난다. 주인은 집을 안내하며 옛날 물건과 가족사를 함께 소개한다. 스웨덴의 가정 폐기물은 99%가 재생·재활용되고 1%만 매립되는 현실, 도처에 중고품 가게를 두고 활성화시킨 소비생활 등은 함부로 버리지 않는 오랜 관습과 무관하지 않다.물건만이 아니다. 북유럽의 현재 생활방식은 더더욱 우리 옛 모습을 옮겨놓았다. 추위가 떠나는 봄부터 주말이면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나가 산딸기와 블루베리를 따고 버섯을 채취한다. 이는 가장 익숙한 그들의 여가 방식인데 많은 이들이 식용식물에 전문가 수준이다.북유럽의 자연은 사유지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오랜 관습법을 거쳐 공식 법으로 인정된 '자연접근권 또는 자연산책권'(Allemansratten) 덕분이다. 상업 목적이 아니면 어디서든 자연의 과실·작물과 꽃을 취할 수 있다. 가옥과 일정 거리만 떨어져 있으면 사유지에서도 야영이 가능하며 주인이 이를 거부할 경우 스스로 기관에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물론 여행객이 지켜야 할 자연보호의 규정과 책임은 엄중하다.개인 주택에서는 텃밭이 없어도 씨앗으로 날아와 마당에 절로 자란 식용식물을 그대로 식재료로 쓰곤 한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집 근처 호수, 강, 바다에서 '수영 혹은 목욕(bathing)'을 일상으로 즐긴다. 집에서부터 수영복에 수건만 걸치고 맨발로 아파트 마당이나 동네 골목을 지나 물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이곳이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2, 3배 많은 나라의 21세기가 맞나, 초현실주의 그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그러나 이 모두는 한때 우리의 모습이었다. 색동 조각보, 손 수예품, 옛날 그릇과 가구는 어느 집에서든 낯설지 않았다. 봄이면 뒷산 언덕에서 쑥과 냉이를 캐고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이 실개천에 모여 멱을 감던 풍경은 오래 전 일도 아니다. 사유지인 산과 들도 지금만큼 배타적 독점권으로 닫혀 있지 않았다. 우리가 개발과 근대화의 이름으로 과거를 매정하게 지우는 동안 북유럽에서는 건강한 전통과 깨끗한 자연으로 살아남았다. 문명이 자연과 과거를 대체하는 것도 아니었고 자본주의가 공유와 반대되는 것도 아니었다.너무 쉽게 떠나왔고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상실감-이에 더하여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우리 모두의 고통으로 남았다. 전통과 서양화라는 대책 없는 이분법을 넘어 '오래된 미래'라는 창조적 상상력을, 미세먼지에 가려진 푸른 하늘만큼이나 간절히 소망해본다.

2018-11-12 11:05:47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창] 일본을 지배한 이념 '와(和)'

日 여자계주 마라톤 19세 선수 투지넘어져 구간 종점까지 기어서 골인자기 몫 완수 못하면 남에게 폐 끼쳐'메이와쿠'(迷惑) 않도록 '와'에 최선마라톤 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지난 주말에도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가 있었고, 우리 집 앞을 달리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우리와 같이 사계의 아름다움을 가진 일본도 지금이 마라톤 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지난 10월 21일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전 일본 실업단 여자계주 예선전이 있었다. 42.195㎞를 6개 구간으로 나누어서 이어달리기하는 경기인데 모두 27개 팀이 출전했고, 상위 14개 팀만 본선에 진출하는 중요한 경기였다. 사실 이런 대회가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겠는가만, 어린 한 선수의 모습에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했다.이와타니 사업 소속 이이다 레이(飯田怜) 선수가 제2구간을 달리다가 넘어졌다. 그 충격으로 오른발 골절상을 입었고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다음 이야기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19살 어린 선수는 구간 종점 약 200m를 더 남긴 지점에서 두 손과 두 발로 아스팔트를 기기 시작했다. TV 카메라는 그녀를 쫓았고, 현장 담당자는 조용히 그녀의 옆을 지켰다. 감독은 대회 본부에 기권하겠다고 한 모양이지만, 이이다는 이 방법밖에 없고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묵묵히 기어갔다. TV 중계 아나운서는 "힘내라 이이다!"라는 성원을 보냈고, 다음 주자는 눈물을 닦으면서 긴 시간 그녀를 바라보면서 기다렸다. 한 손에는 다음 주자에게 넘겨야 할 어깨띠를 꽉 쥐고, 무릎은 까지고 피가 맺혔다. 급기야 어깨띠를 넘기고서야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조용히. 어깨띠를 받은 다음 주자는 꼴등이지만 뛰었다.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드라마가 아니다. 그래서 감동도 하고 화도 났다. 무엇이 이렇게까지 하게 했을까. 이이다는 최소 3, 4개월 치료가 필요한 중상을 입었고, 무릎에는 후유증이 있었다. 병원을 찾은 감독에게 이이다는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는 뒷이야기도 들렸다. 일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배턴을 넘기는 프로 정신에 감동했다"는 글이 대다수이지만, "주최 측은 왜 중지시키지 않았는가"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를 탓하는 소리도 있다.일본을 일컬어 '일'(日)이라고 하지 않는다. '와'(和)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 음식을 '와쇼쿠'(和食), 다다미방을 '와시쓰'(和室), 기모노를 '와후쿠'(和服)라고 한다. 우리가 잘 먹는 '화과자'는 일본의 전통 과자이다. 이렇게 '와'는 일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다.604년 일본 최초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17개조'가 제정 반포되었는데, 그 제1조가 '와(和)를 존중하라'였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일본을 지배한 이념이며 일본인의 생활 깊숙한 곳에 자리한 '와'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이원복 교수는 '먼나라 이웃나라-일본'에서, 일본은 섬나라인지라 '와'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고 풀었다. 사방이 바다라 도망갈 데가 없는 섬나라 사람들은 '와=사이좋게 지내다'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서로 다투게 되면 결국 모두가 망한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은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여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 자신의 자리를 정확하게 지키고 자신의 맡은 몫은 완벽하게 해야만 했다. 만약 누구 하나라도 제 몫을 완수하지 못하면 사회는 무너진다. 제 몫을 완수하지 못하면 바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되고, 이것이 '메이와쿠'(迷惑)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메이와쿠'가 되지 않는 행동을 최우선한다.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이다 선수의 투혼은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잘잘못을 따지는 여러 말이 많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이런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야 한다. 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한 그녀에게 마냥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18-11-05 11:39:18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사유재산'과 교육의 공공성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 이라며원아모집 중단으로 학부모 불안모든 아동이 특별히 보살펴지는유아교육 공공성 의미 되새겨야정부 지원을 받는 사립유치원의 비리 문제가 최근 폭로되기 오래전부터, 필자는 사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유치원 운영은 원장의 가족 모두를 '먹여 살리는' 하나의 사업이고, 원장이 되면 엄청 부자가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지인의 말에 의하면 영어, 수학과 미술을 가르치는 작은 규모의 한 학원에서조차도 원장이 매우 작고 어두운 공간에 아이들을 앉게 하고 마치 '꿀꿀이죽'과 같은 형편없는 급식을 주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 작은 학원에서도 아동의 권리와 원장의 교육철학은 온데간데없고 돈벌이가 우선시되고 있으니, 현재 연일 쏟아지는 사립유치원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안 그래도 필자가 길을 걷는데 유치원의 크고 화려한 외관 건물이 눈에 띄었다. 지난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이었던 최순실도 별다른 자격 없이 유치원 원장이었다고 하지 않는가.필자는 이번 비리 사건으로 모든 유치원 원장의 교육 자격을 운운하고 사립유치원 전부를 포함시켜 사태를 일반화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립유치원 운영을 둘러싼 비리와 아동학대 문제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임을 방증하고 있다. 사립유치원의 여러 비리와 횡포는 그간 국가의 감시 밖에 있었던 사립유치원의 운영과 함께 눈덩이처럼 커져 갔고, 더 이상 교육자가 아닌, 스스로 '사업가'로 여기는 원장의 안이하고 무반성적인 태도로 이어갔다.그래서 이번 사태에서도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는 국공립유치원보다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학생 수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볼모로 원아모집을 중단한다며 학부모를 불안하게 하고 사립유치원의 공교육화를 당당하게 저지하고 있다. 한유총의 이런 태도는 학부모들의 분노를 더욱 높이고 있다. 현재 정부의 유아교육의 공공성 정책과 회계 감시 시스템 도입에 맞서 한유총이 언급한 '사유재산'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시민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념이 법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실제로 균열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독일의 교육학자 코네프케는 '사유재산'이라는 말의 의미는 진공에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봉건사회 지배의 붕괴와 인간 해방과 자유의 이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중세 봉건사회의 신분질서가 붕괴하고, 자본주의적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누구나 신분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자유의지에 따라 일할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갖게 되었고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법적 자유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돈을 축적할 수 있는 시민계급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재산을 투자할 수 있었다.즉 신분질서로부터 해방된 사회라 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하에서 개인의 자유는 실제로 재산을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는 사적 소유권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제도권 밖의 교육은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교육방법을 시도할 수 있는 교육과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 그러나 계층, 장애 여부, 피부색, 종교, 출신 등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들이 평등하게 자신의 다양한 능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동의 권리가 실현되는 교육이 필요하며, 이런 차원에서 필자는 유아교육의 공공성 의미가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어린이들은 자신의 욕구와 관심에 따라 특별히 보살펴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국가는 이러한 유아교육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를 목도하며 우리 사회의 시민 모두가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18-10-29 10:15:34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판문점선언은 국회 비준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남북관계 이끌고 갈 정치적 선언조약 발효에 필수적인 조항 없어북핵문제 진전 전혀 없는 현 상황종전선언은 우리가 할 약속 아냐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에 대한 정부, 여당의 압력이 거세다. 정부, 여당은 국회 비준 동의 요청 근거로 두 가지를 든다. 첫째로는 남북관계 합의 사항을 정권 교체에 관계없이 이행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필요성을, 두 번째로는 동 선언이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상 국회의 비준 동의를 요하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에 해당된다는 것이다.우선,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이행해 나가야 할 합의 사항이라면, 추진 과정에서 공론화 과정 내지 야당과 최소한의 협의 과정이라도 거쳤어야 한다. 정부 여당의 태도는 일방적으로 합의한 선언에 대하여, '당신네들이 정권 잡더라도 이 합의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하라고 다그치는 격이다. 선언문 내용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동 선언은 작금의 한반도 위기 상황을 초래한 북핵문제에 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선언문 마지막 항 말미에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것이 전부다. 과거 6자 회담에서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와 '모든 핵시설 불능화와 검증'까지 약속하고도 6차에 걸친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이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미국과의 긴밀한 조율하에 북핵 폐기 단계에서 북한에 제공할 반대급부이지, 북핵문제에 진전이 전혀 없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약속할 사항이 아니다.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은 안보리 결의 위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보리 결의 2397호는 기계류, 산업장비, 운송수단 등의 대북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다음으로, 남북관계발전법상 '남북합의서' 문제를 살펴보자. 본디 조약의 체결 및 비준에 관한 업무는 외교부 소관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임을 감안, 남북합의서 체결 및 비준에 관한 업무는 2005년 12월 법제정을 통해 통일부 소관으로 하였다. 그러나 절차는 조약체결 절차를 그대로 준용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발전법이 규율하는 '남북 합의서'는 쉽게 말해서 '남북 간 조약'을 의미한다. 그러나 판문점선언은 남북 양 정상이 남북관계를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표현한 정치적 선언 내지 신사협정이지 '남북 간 조약'이라 할 수 없다.왜냐하면 첫째, 조약에 '선언'이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법적 권리, 의무 관계를 설정하는 조약에는 합의 사항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판문점 선언과 같이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거나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조약에는 권리, 의무 관계 발생 방법과 시점을 규정하는 발효 조항이 필수적이나, 판문점 선언에는 이러한 조항이 없다. 결국, 판문점 선언은 내용이나 형식, 모든 면에서 남북 간의 조약, 즉 남북관계발전법상 '남북 합의서'에 해당되지 않으며, 따라서 비준 대상이 될 수 없다.백 번 양보해서 동 선언이 비준 대상인 '남북합의서'에 해당된다고 가정해보자. 정부는 9월 11일 국회에 제출한 비준 동의안에서 판문점선언 이행과 관련된 비용으로 2019년 소요 예산 4천712억원을 명시했다. 총 소요 예산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추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항간에는 총 소요 비용이 최소 50조원에서 최대 15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정부가 소요 예산을 추산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연한 문서에 대하여 국회의 동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헌법 75조가 금하고 있는 포괄적 백지위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비준 대상이 되지 않는 문서를 제시하며, 헌법에 반하는 포괄적 백지위임을 요구하는 비준 동의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국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전 주핀란드 대사

2018-10-22 11: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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