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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세계의 창]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전쟁 위험 없는 한반도는 헛꿈일까모범 사례 유럽연합서 찾을 수 있어새해 평화 염원 꽃 한송이 품어보자남북 모든 경계 무너지길 기원하며당신은 어떤 모습의 국가를 원하는가? 이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까?만일 누가 이 질문을 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국가를 원하오. 혹자는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누군들 평화로운 국가를 원하지 않겠는가고. 그들은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전쟁을 하더라도 국익을 지켜야 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냉정한 현실이 아니겠는가.해방 이후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남북이 분단되었고, 급기야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전쟁까지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랜 세월 동안 남북은 극한의 군사적 대립을 하면서 일촉즉발의 전쟁 위험 속에서 살아왔다.다행히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어 한반도에도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봄바람이 불고 있다. 비로소 우리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시금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전쟁 위험 없이 살 수는 없을까?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삼지 않고 사랑과 평화의 정신으로 포용하고 연대하며 살 수는 없을까?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정치 이념에 따라 한반도 미래를 바라보는 입장은 서로 달라 그 간극이 너무 크다.또한 미국'중국'러시아'일본 4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니 남북이 넘어야 할 산은 높고도 험하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 없는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그저 허황된 꿈이나 이상에 불과한 것인가. 우리는 그 모범 사례를 유럽연합(EU)에서 찾을 수 있다.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1952년 프랑스와 독일 양국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설립하기로 정치적 합의를 한다.이에 따라 1953년에는 ECSC가, 1958년에는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가 공식 출범하였다. 유럽공동체가 출범한 날부터 오늘날까지 60년 이상 EU 회원국 사이에는 한 번도 전쟁이나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유럽대륙의 역사에서 이 사실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최근 브렉시트로 영국의 이탈 논란이 있지만 EU는 28개국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지역공동체이다.국제사회에서 EU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막강한 지위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EU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없앤 지역공동체를 만든 것이다.오늘날 EU로 대표되는 유럽연방을 통한 평화체제의 건설은 '유럽 통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 모네의 구상에서 비롯한다."만약 국가주권의 기반 위에 국가를 재건설한다면 이 땅에 평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유럽 국가들은 자국 국민의 번영과 발전만을 보장하기에는 지리적으로 너무 인접해 있다. 따라서 유럽의 국가들은 공동경제를 중심으로 한 단일통합체를 건설해야만 한다."단일 유럽 건설이라는 장 모네의 구상은 그저 허황된 꿈에 그치지 않았다. 그 꿈은 현실이 되어 EU에서는 사람과 상품, 자본과 서비스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다.함민복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노래한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시인의 바람대로 남북을 경계 짓는 철책이 무너지고 삼천리강산을 화려하게 수놓는 무궁화 꽃이 피어날까. 그 꽃이 활짝 피어나는 날 남북을 가르는 모든 경계가 무너져 내릴까.기해년 새해다. 우리의 가슴에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꽃 한 송이를 품으면 어떨까. 100년 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유관순 열사도 같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2019-01-14 11:42:06

이성환 계명대 교수

[세계의 창] 아베 신죠와 이토 히로부미

아베 정치 슬로건은 '아름다운 일본'2차 대전 이전 군국주의 침략 미화역사 트라우마 아직 치유되지 않아위안부 문제·강제징용 등 한국 반발아베 신조와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인에게 특별 각인된 일본 총리들이다. 두 사람은 일본 보수 정치의 산실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닮았다.이토는 일본 역사상 최연소(44세) 총리이며, 유일하게 네 번 총리를 역임했다. 아베도 2차 세계대전 후 최연소(52세) 총리이며, 2021년 9월의 예정된 임기를 마치면 재임 기간이 가장 긴 총리가 된다. 두 사람은 근대 일본의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요시다 쇼인을 스승으로 두고 있다.이토는 그의 문하생이었으며, 아베는 그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이토는 메이지 헌법 제정을 통해 천황을 제도적으로 신격화했으며, 아베는 지금의 헌법을 개정해 천황의 신성(神性)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두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요시다 쇼인은 이토를 '협상력 좋은' 보통 학생 정도로 평가했다. 이토는 협상력으로 수많은 정적을 제치고 평민에서 총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아베도 학력이 우수한 편은 아니었으나, 총리 및 장관을 지낸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에 입문했다.두 사람은 한반도를 탐욕의 대상으로 삼고, 시대의 흐름을 왜곡한 점도 닮았다. 이토는 한반도 지배가 일본 안전의 필수 요건이라 믿었다. 청일 전쟁의 주역으로서 한반도 병탄의 길을 열었다. 그 후 일본은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통해 근대 제국주의의 반열에 올랐다. 이토를 근대 제국주의 국가 일본을 만든 사나이라 일컫는 이유이다.아베는 1980년대 말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외무장관인 아버지의 비서로 이 문제를 담당했다. 납치자 문제와 북한 때리기는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2002년 일시 귀국한 납치 생존자 5명의 북한 귀환을 저지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고, 이를 배경으로 2006년 총리가 되었다. 그가 일본 외교의 첫 '사명'으로 납치자 문제를 내세우는 배경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문제에 매진할 때도 아베는 납치자 문제를 우선했다. 지금껏 납치자 문제는 성과가 없다. 그러나 그는 개헌, 군비 강화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 위협론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꺼낸다.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를 두고 한일 관계의 법적 기반이 무너졌다고 비난했다. 지난 연말부터 사격통제 레이더와 근거리 위협 비행 문제로 공방 중이다. 아베는 무리하게 영상을 공개하도록 해 논란을 더욱 키웠다.그는 왜 한국에 대해 공세적일까. 아베의 정치 슬로건은 '아름다운 일본'이다. 그의 아름다운 일본은 2차 대전 이전의 군국주의 일본이다. 이토가 닦아 놓은 아시아 침략을 미화한 것이다. 과거 주변국 침략을 정복의 영광쯤으로 생각하는 그에게 평화헌법은 굴욕이며, 국군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위대는 부끄럽다. 헌법 개정과 국가주의 교육을 통해 그는 2차 대전 이후의 평화국가 일본을 전쟁국가로 만들려 하고 있다.아베의 군국주의 회귀에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이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등에 대한 한국의 반발은 군국주의 국가 일본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국제적으로도 호소력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징용 피해자들이 아베의 '아름다운 일본'을 '범죄 국가 일본'으로 만들고 있다. 아베가 과거사에 대해 과잉 반응하며 뜬금없이 한국을 겨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아베는 2차 대전 이후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총리이다.아베 정권이 계속되는 한 한일 관계는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이토의 한국 식민지화로 시작된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트라우마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아베가 추구하는 군국주의 일본은 또다시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한다. 아베는 이토를 닮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한반도가 아니다.

2019-01-07 13:38:50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독일 연말 분위기에 대한 회상과 한 해의 반성

크리스마스카드 손수 적어 보내고집집마다 진짜 나무 트리 사서 장식독일 성탄절은 가족과 보내는 명절한 해 조용히 돌아보고 충분히 휴식필자가 스무 살에 독일 유학을 가기 전, 독일의 연말 분위기 하면 대중매체에서 접한 네온 불빛이 반짝거리는 화려한 도시와 거리를 가득 메우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막연하게 상상했던 독일의 연말 이미지는 미국식 연말 풍경이었다. 필자가 경험한 12월의 독일 분위기는 고요하고 쓸쓸하다. 평소 매우 검소한 독일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쇼핑센터가 붐비는 광경을 제외하면, 연말은 대체로 온 가족과 함께 조용히 보내는 휴일이며 대중교통 운행은 많이 제한된다.독일에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그 당시, 연말이 되면 직장 동료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사고 직접 손으로 쓰는 일에 분주하다. 정성스럽게 수기로 쓴 카드 선물을 자신의 사무실에 펼쳐놓고 고마운 마음을 되새기는 독일 사람들에게서 화려함보다 소박함과 진정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엿볼 수 있다.12월이 되면 대림절 때 가정마다 대림환(環)을 만들거나 구입해서 대림 시기 4주에 맞춰 매주 1개씩 대림초에 불을 붙인다. 또한 집집마다 조형물이 아닌 진짜 나무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서 장식하고, 각 도시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여러 가판대 상점이 줄지어 서 있고 회전목마가 있다. 추운 겨울 날씨에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전통 수공예품과 크리스마스 전통 쿠키를 구경하고 글뤼바인(Gluhwein)이라고 하는 따뜻한 와인을 마시면 연말 분위기를 한층 더 느낄 수 있다.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은 전통과 풍습을 지키려는 독일인들의 성향 때문인지 가판대 상점 장소, 볼거리와 먹거리 메뉴가 매년 똑같아서 지루하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성탄절 전날까지 열리고, 12월 31일(새해를 맞는 전날 불꽃 파티인 Silvester)까지 독일 거리는 정말 매우 조용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느라 분주했던 사람들과 거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성탄절에 교회를 가고, 가족과 함께 직접 구운 크리스마스 쿠키와 거위 구이를 먹고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은 선물을 주고받고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성탄절을 보낸다. 독일 성탄절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명절이다.한편, 대부분 유학생들에게 2주간(12월 23일부터 1월 첫째 주까지)의 크리스마스 방학은 쓸쓸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이처럼 독일의 연말은 시끌벅적한 축제보다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이지만,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보고 충분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나는 이번 연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이번 학기 마무리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학교 일과 관련해서 마음의 여유는 여전히 없다. 해 놓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벌써 12월 말이 되었다. 필자는 지금까지 스스로 모든 일을 준비하는 '모범생'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에 몸담은 지 몇 년 만에 나도 모르게 뭐든지 '닥쳐야 하는' 성향으로 젖어 버렸다. '미리미리모드'일 때에는 계획했던 일을 마치지 못하면 불안해서 잠이 안 왔건만, 막상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하니까 어디선가 초인적인 능력(?)이 솟아나는 듯, 제출 일정이 다가오면 컴퓨터의 자판은 언제나 '경이로운 허구'를 생산해내곤 했다. 물론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 내 양심은 이렇게 거짓말해도 되는거냐고 외치고 있었지만.누군가가 채근하지도 않고, 무엇인가 다급한 일이 닥치지도 않는데 무슨 일을 계획해서 실천에 옮기기란 웬만한 결심으론 이행하기 어려운 것 같다. 칸트의 정언명법은 어쩌면, 그야말로 불가능한 이상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선택과 자유로운 선택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하고 있다.

2018-12-24 10:39:09

장동희, 새마을세계화 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스리랑카 새마을 국제포럼을 다녀와서

국제기구, 새마을 공동수행 제안유엔 지속가능 개발과 잘 부합해한국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사업공적개발원조 브랜드로 키워야지난주에는 스리랑카의 콜롬보에서 개최된 새마을 국제포럼에 다녀왔다. 새마을세계화재단이 지금까지 시행한 새마을 사업을 통한 개도국 지원사업의 성과를 공유하고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이다.'찬란히 빛나는 섬'이라는 뜻을 가진 스리랑카는 '인도양의 진주'라고도 불리며, 여기서 생산되는 '실론티'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우리 일행이 머무는 호텔로부터 이어지는 해변도로에는 아름다운 서양식 건축물이 늘어서 있어 옛날 영국 식민지 시절의 향취를 흠뻑 느끼게 해준다. 포럼을 마치고 주요 인사를 초청하여 만찬을 개최한 '마운트 레이비니아(Mount Lavinia)호텔'은 옛 영국 총독의 로맨스 내지 스캔들이 깃든 곳이라 하니 더욱 귀가 솔깃해진다. 2대 총독 토마스 메이트랜드 경(Sir Thomas Maitland)은 레이비니아라는 혼혈 댄서와 염문을 뿌려 본국으로 소환된다. 메이트랜드 총독이 해변가에 거대한 총독 관저를 짓고, 그 댄서 이름을 따서 'Mount Lavinia House'로 명명한 것이 호텔 이름의 유래라 한다.콜롬보는 또한 고교시절 사회과목에서 배운 '콜롬보 플랜' 때문에 귀에 익은 이름이다. 콜롬보 플랜은 1950년 콜롬보 개최 영연방 외무장관회의 제안으로 1951년 발족한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기술 및 경제 원조계획을 말한다. 발족 당시에는 영연방국가들만 참가했으나, 이후 확대되어 영연방 이외의 국가도 참가하고 있다. 필자의 한 친구가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1980년대 초에 이 콜롬보 플랜에 따라 유엔개발계획(UNDP) 지원을 받아, 콜롬보에 가서 연수를 받고 온 적이 있다 한다. 우리가 가서 연수를 받던 곳에 와서 새마을 사업을 통한 지원 사업을 하니 격세지감이 든다.포럼 참석 계기에 케골 지역의 새마을 시범마을을 방문했다. 재단은 현재 케골 지역 3개 시범마을에서 버섯 재배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2014년 지원을 시작한 이래 마을 소득이 평균 3배 증가했다며, 마을 주민들뿐 아니라 주지사를 비롯한 정부 각계 인사들도 재단에 대한 고마움을 금치 못한다. 새마을 사업을 접목시켜 버섯 재배의 생산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케골 새마을 버섯'이란 고유 상표까지 창안, 사용하도록 하고 주요 슈퍼마켓에 납품하는 유통망까지 확보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자극받은 사바라가무와주(州) 정부는 주 자체 예산으로 새마을 시범마을을 10개 더 조성하기로 결정하였다 한다. 재단이 추구하고 있는 시범마을의 지속 가능성 및 자립성 제고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포럼에서는 스리랑카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르완다 등에서 온 새마을 지도자들의 성공사례 발표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르완다의 무심바 마을은 불모지를 개간하여 연 2, 3모작의 벼농사를 지음으로써 연소득이 7년 동안 10배 증가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야말로 가슴 뭉클한 휴먼드라마다.이러한 성공사례를 전해 들은 각국 정부 지도자들로부터 새마을 사업 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UNDP나 OECD와 같은 국제기구는 새마을 사업을 "개도국 농촌 개발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평가하였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과 국제농업개발기금(IFAD)은 재단에 공동사업 수행을 제안하여 왔다. 새마을 사업을 통한 개도국 지원은 단순한 물자 지원이 아니라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새마을 정신을 통하여 마을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엔이 추구하고 있는 지속가능개발(Sustainable Development)과도 부합한다. 게다가 새마을 사업은 대한민국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이다. 새마을 사업을 통한 개도국 지원을 대한민국 고유의 공적개발원조(ODA) 브랜드로 키워 나가야 할 이유다.

2018-12-17 11:54:25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세계의 창] 낯선 타인에 대한 예의

낯선 이와 쉽게 친분 나누는 북유럽타협과 합의의 정치 문화 만들어내친해야 할 사람끼리만 친한 우리들모르는 이들에 좀 더 포용적이어야지난 이맘때, 덴마크 한국 식당에서 몇 사람과 점심을 하고 있었다. 한 부인이 우리 쪽으로 오더니 갑자기 필자의 스웨터 색상이 예쁘다고 칭찬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놀라 얼결에 고맙다고만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세실리아 박사가 이내 그 말을 받아, "나는 당신 코트 색이 마음에 든다"며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다. 소소한 주제로 한참을 웃으며 얘기가 오갔고, 합석이라도 할 기세였을 즈음 부인은 자리를 떴다.그런데 이런 풍경은 덴마크에서 낯설지 않다. 한번은 동료들과 미술관에 갔는데 스티그 박사가 지나가던 이와 반갑게 인사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한참 후 스티그 박사는 필자까지 불러 소개시켰다. 자신의 이름과 전공을 밝힌 그 사람은 필자의 연구에 대해 물었고 한동안 대화가 오갔다. 그런데 그와 헤어진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은 뜻밖이었다. 필자와 인사한 이는 덴마크국립박물관의 관장이었고 스티그 박사는 그와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었다. 'TV 등에 출연하는 걸 몇 번 봤는데 마침 지나가기에 평소 궁금했던 예산 문제를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그 후 문헌을 통해, 낯선 이와 쉽게 친분을 여는 덴마크 사람들의 성향은 오랜 관습임을 알 수 있었다. 금년으로 개장 175주년을 맞은 놀이공원이자 공연센터인 티볼리는 일찍부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격의 없이 만나고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1874년, 영국 작가 에드먼드 고시가 묘사한 당시 티볼리의 모습이다. "저녁이면 매우 민주적인 덴마크 생활이 티볼리에 펼쳐진다. 노동자가 외무장관에게 담뱃불을 빌리고 상인 가족이 대사와 함께 어울리는 곳."이와 대비되는 일화도 있다. 인류학자 베스터고드 부부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한 무리의 중국 학생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가벼운 인사에 응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지나가는 이들과 인사를 건네거나 눈을 마주치는 학생도 없어 부부는 놀랍기도 하고 무례하다고도 느꼈는데,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으려니 짐작했다고 한다.낯선 타인을 대하는 예법은 동서양 간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 예법은 친분 있는 이들 간의 것이었으며 생면부지의 타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 친우, 동문, 동향, 사제 관계 등 어떤 형태로든 연고가 중요했고 대부분의 예의는 연고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유교는 연고에 한정되는 규범이란 뜻으로, 친해야 할 사람끼리만 친한 '친친'(親親)주의라는 지적도 있다.이에 반해 '우리' 밖의 낯선 타자에 대한 사회 규범은 특별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모르는 사람에겐 기본적으로 무관심하고, 여기에 안전과 신뢰 문제가 더해져 경계하고 외면하는 방책이 굳어진 것 같다. 낯선 이가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말고 피하라는 행동 수칙이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걸 보면 '대문 밖 지옥'이란 표현이 과장만도 아니다.사회는 가정과 친분 밖의 낯선 이들을 포괄하는 범주이다.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누구와도 대화하기 어려운 사회가 있다. 타인과의 격의 없는 관계가 기반이 되었을까. 북유럽은 지난 100년간 타협과 합의의 정치 문화를 만들어냈다. 노사대타협을 이끌고 경제위기에선 보수와 진보가 협력했으며, 실리를 위해서는 지금도 좌우가 기꺼이 손을 잡는다.그러나 그들도 최근 대거 유입된 난민과 이민자 앞에서는 일정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북유럽의 관용주의 역시 최소한의 동질성을 전제로 했던 것 같아 씁쓸하다.우리는 모르는 타인에게 좀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내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승강기 안 낯모르는 타인끼리의 가벼운 인사, 출입문을 밀면서 뒷사람을 위해 잠시 잡아주는 배려-작지만 중요한, 타인에 대한 예절이 새해에는 일상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2018-12-10 11:27:26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 창] 마스크로 숨긴 내 마음, 다테 마스크

日 젊은이 '멋 부린' 마스크 패션 유행타인에게 본심 들킬까 두려워하고상처받지 않으려고 미리 방어막 쳐여드름이 싱그러운 얼굴 보고 싶어한 학기 내내 마스크를 한 학생이 있어서 "감기가 오래 가네"라고 했더니, "화장을 안 해서"라는 대답에 황당했다. 중국발 스모그에 황사까지 겹쳐 국내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되는 날이 늘어나면서 외출을 삼가라, 불가피하게 외출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마스크를 꼭 착용하라는 말을 한다. 그러니 마스크를 하고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무엇이라 할 말은 없지만, 외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학생들의 입 모양도 보고 표정도 읽고 싶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마스크' 하면 일본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거리를 걷다 보면 마스크를 착용한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시작은 2009년 신형인플루엔자가 유행하면서부터다. 당시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했는데, 그래도 그때는 마스크를 보고 "아직도 감기입니까?" "아니, 알레르기입니다"라는 인사말이 오갔다. 그런데 1, 2년 후 '다테 마스크'(伊達マスク)라는 용어와 함께 일본 젊은이들의 마스크 집착에 대해서 염려하는 소리가 일 정도로 마스크가 많아졌다. 마스크 시장은 날로 확대되었고, 후지경제마켓 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가정용 마스크 시장 규모가 약 280억엔을 돌파했다. 10년 사이에 5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얼마 전 도쿄를 방문해서 친구네 가족이랑 여행을 갔는데, 그 집 딸아이에 대한 기억은 검은색 마스크밖에 없다. 사진을 찍을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으니 얼굴을 기억할 수가 없다. "이 아이는 우리랑 같이하는 시간이 싫었던 걸까" 사진을 보면서 살짝 섭섭한 마음에 내뱉은 말을 듣고, 우리 딸 왈 "마스크 하니 눈이 반짝반짝 크게 보이면서 예쁘네. 얼굴도 작아 보이고. 이게 신세대 패션이야".마스크가 패션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김이 서려 안경이 뿌옇게 되어도, 숨 쉬기가 답답해도 감기라서 어쩔 수 없이 착용하는 마스크가 아니라 패션의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단다.'다테 마스크'의 '다테'는 멋을 부린다, 호기를 부린다는 뜻이다. '마스크를 하면 20% 더 귀엽다'는 일본 잡지 문구에 물음표를 달면서도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보인다면 인정해야 할 거라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다테 마스크를 하는 이유 중에는 '마음이 안정된다' '시선을 피할 수 있다' '사람과 말하지 않아도 된다' '얼굴에 자신이 없다' 등이 있으니 마냥 패션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다.어른에게는 보이지 않는 지금의 젊은이들의 본질을 이해하고 라이프 스타일 연구와 각종 마케팅 솔루션 개발을 한다는 '하쿠호도 젊은이 연구소'(博報堂若者硏究所)에서 지금의 젊은이들의 문제점으로 다테 마스크를 지목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소통을 한다는 것은 말투나 상대의 표정도 함께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문자만으로 소통하면서 이런 요소가 없어지고 서로 본심을 숨기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본심이 들킬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다"는 지적을 했다.마스크 속에 얼굴을 가리고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고집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관계가 서툴고, 인간관계를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성가신 관계를 싫어하고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미리 방어막을 치는 그런 행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사실 살아가면서 인간관계보다 더 어려운 게 있겠는가. 관계를 잘하려고 노력한다고 반드시 잘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숨기만 하면 되겠는가. 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환한 얼굴을 보고 싶다. 터질 거 같은 여드름 몇 알이 싱그러운 그 얼굴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8-12-03 11:18:10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어린이를 위한 뉴스

독일 공영방송 'LOGO!' 프로그램어린이에 어려운 뉴스 용어와 내용사진 삽화 그래픽 곁들여 쉽게 설명우리도 아이들 알 권리 충족해줘야평소 뉴스와 시사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지금도 독일 TV와 라디오를 꾸준히 듣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ZDF 프로그램 중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LOGO!'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1989년에 처음 방송되었는데, 8세부터 12세까지의 어린이를 주 타깃으로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는 뉴스이다. 어린이들에게 어려운 뉴스 용어와 내용을 사진·삽화·그래픽을 곁들여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어른들의 일반 뉴스 방송처럼 LOGO 프로그램 역시 정치, 역사, 교육, 환경, 문화, 스포츠, 날씨 분야의 뉴스를 전하고, 어린이들이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또래 친구)과 이야기하고 궁금해 할 수 있는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LOGO 방송 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것은 어린이가 직접 방송 리포터가 되어 실제로 정치인, 축구선수, 유명 연예인 등을 만나 인터뷰하는 코너이다. 어린이는 주체가 되고, 정치라는 단어를 자신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LOGO 프로그램은 어린이의 시각과 생활세계를 담으려는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LOGO 방송에서 예컨대 정치인과 인터뷰하는 코너는 어린이들이 딱딱한 정치 주제에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은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다루었던 뉴스 내용과 연관된 배경 지식을 방송 홈페이지에서 심화할 수 있고, 블로그를 통해 제작진과 시청자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또한 LOGO 방송에서 필자의 눈에 띄는 점은 어린이가 주체가 되어 어른을 인터뷰하는 장면과, 어린이 리포터를 그저 보호해야 하고 길들여야 하는 존재가 아닌 어른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어른들의 시선과 태도이다. 그러한 자세에는 어린이는 경험이 적어서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아동기는 성인기의 준비에 불과하다는 견해와 달리, 어린이의 자기 결정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인식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이에 반해 한국의 대중매체 속에 비쳐진 어린이의 이미지는 필자의 과대 해석일지 모르지만, 세상에 당당하게 질문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어른 흉내(예컨대 성인가요, 아이돌 노래와 춤을 따라하는 행동)를 내거나 퀴즈를 잘 푸는 영재 어린이의 모습을 자주 접한다. 대중매체에서 재현되는 이러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 하고 즐거워하는 어른들의 반응에는 아마도 어른들의 기대와 욕구를 어린이에게 투사함으로써 어른들의 지배 욕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유엔 아동권리협약 17조에 의하면, 어린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며 각자가 마주한 세계에 많은 질문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들은 세상을 알고 싶고 스스로 탐색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어린이를 위한 뉴스는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듣고 보는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며 세상을 보는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이런 점에서 필자는 우리 사회에 어린이를 위한 TV 뉴스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활성화되기를 희망한다. 물론 어린이 뉴스를 위한 화제 선별에는 제한이 없지만,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과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이 담긴 콘텐츠를 어린이에게 그대로 노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어린이 뉴스는 복잡한 세상과 사회의 연관성을 단순화시켜 재구성함으로써 문제 상황을 축소시키는 것은 아닌지 지속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디지털기기를 접하며 자라난 디지털 세대 어린이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오늘날 어린이를 위한 뉴스의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18-11-26 11:20:03

장동희 경북대 겸임교수

[세계의 창]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을 반추한다  

한국 사법부 내린 판결 거칠게 비난일본 외무상의 행동 너무나 편협해양국 지도자 국수주의 언동 삼가고자국민 설득할 용기·결단 보여줘야대법원이 지난달 30일 내린 일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 격렬하다. 판결이 나오자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일한 우호협력 관계의 법적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판결로…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국제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고노 외상은 심지어 이 판결에 대해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 '폭거'라는 거친 용어까지 사용했다.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은 이미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는데 왜 또 합의를 뒤집느냐는 것이다.타국 사법부가 내린 판결을 두고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비난을 하더라도 우리 정부 입장이 나온 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제강점기 동안 자행한 온갖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눈감고, 협정 문안 하나하나에 집착하여 우리 사법부의 판단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행동이다.그러나 사법부가 외교 사안에 대하여 이렇게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외교 활동에 관해서는 사법적 판단을 자제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 경향이다.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 정부가 미국인 소유 설탕 공장을 무단 국유화한 데 대해, 미연방 대법원은 1964년 "외국 정부가 그 영토 안에서 재산을 수용한 경우 비록 그 수용 행위가 국제관습법을 위반했다고 해도… 미국 법원은 그 수용 행위의 효력을 사법적으로 검토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국가행위이론'을 적용하여 외교 사안에 대한 사법부 관여 자제를 언명한 것으로 유명한 '사바티노 사건'이다.이번 대법원 판결은 강제징용이라는 일제의 불법행위에 기한 배상 청구권이 1965년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지만, 일제 식민 지배의 법적 성격에 대한 논란을 다시 수면 위로 불러냈다. 대법원 판결은 일제 강점은 불법이며, 따라서 강제징용도 불법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일본 입장은 아베 신조 총리가 강제 징용자들을 당시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에 따른 징병이라고 말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일본의 조선반도 지배는 한일합방조약에 따른 합법적 조치이며, 일본 법령에 따라 행한 징집 조치도 합법적이라는 것이다.외교 협상에서는 '의견을 달리 하기로 합의'(agree to disagree)하는 경우가 있다. 특정 사안 하나 때문에 전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 사안에 대하여는 각자 자기 식으로 해석하도록 묵시적 양해를 하는 것을 말한다."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규정된 한일기본조약 2조가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 정부는 1910년의 한일합방조약이 강박에 의한 조약이므로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과 더불어 동 조약이 무효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외교적으로 남겨둔 의도적 모호성(intentional ambiguity)에 사법부가 개입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이번 대법원 판결은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사법 거래 의혹의 사회적 파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전 대법원은 강제징용 사건의 경우, 한일 양국 간 외교 관계에 미칠 파장을 감안, 판결을 가능한 한 뒤로 미룬 것으로 추정된다. 사법부가 외교 사안에 관여하는 것이 적절치 않음을 법리적으로 당당히 천명하지 못하고, 판결을 미룸으로써 관여를 자제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한 것은 비겁하다. 그러나 판결은 이제 내려졌다. 이제는 이 판결을 전제로 양국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양국 정치 지도자들은 국수주의에 호소하는 언동을 삼가고, 자국민들을 설득할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어야 한다. 등지고 살기에는 두 나라가 너무나 많은 가치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2018-11-19 11:27:37

[세계의 창] 우리가 버린 과거에 미래가 숨어 있었네

100년 넘은 벽난로'조상 쓰던 가구북유럽 가정은 함부로 버리지 않아우리가 매정하게 과거 지우는 동안그들은 건강한 전통을 소중히 보존스웨덴 친구인 폴슨 부인과 덴마크 가정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코펜하겐 역에서 만난 우리는 수수한 종이 포장의 꽃을 한 단 샀다. 그런데 폴슨 부인은 초청해준 부부와 인사하며 그 종이마저 풀어버리고 맨 꽃다발만 건네는 것이 아닌가. "스웨덴에서는 꽃을 선물할 때 포장을 안 하는 편이에요. 최대한 자연 그대로 전하려는 것이겠지요."부인의 설명에 문득, 어린 시절 할머니 꽃밭이 떠올랐다. 학급 당번 날 아침이면 할머니는 화단과 뒤뜰에서 꽃을 골라 들려주셨다. 신문지 안의 목단, 붓꽃, 찔레꽃은 소박하나마 진솔하기 그지없는 멋진 꽃다발이었다.향수(鄕愁)로 번역되는 노스탤지어(nostalgia)는 그리스 어원으로 "누군가에게, 어딘가에게 되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채워지지 않아서 겪는 고통"이다. 지난 일이란 그 자체로 그리운 세계이지만 우리가 버린 과거가 실은 귀한 미래였다는 것은 북유럽에 와서야 깨달았다.북유럽 가정에 초대받으면 백 년도 넘은 벽난로, 증조모가 쓰던 주전자와 접시, 고조부의 의자, 외할머니의 손뜨개 탁자보와 조각천 방석보 등 오래된 소품과 가구를 쉽게 만난다. 주인은 집을 안내하며 옛날 물건과 가족사를 함께 소개한다. 스웨덴의 가정 폐기물은 99%가 재생·재활용되고 1%만 매립되는 현실, 도처에 중고품 가게를 두고 활성화시킨 소비생활 등은 함부로 버리지 않는 오랜 관습과 무관하지 않다.물건만이 아니다. 북유럽의 현재 생활방식은 더더욱 우리 옛 모습을 옮겨놓았다. 추위가 떠나는 봄부터 주말이면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나가 산딸기와 블루베리를 따고 버섯을 채취한다. 이는 가장 익숙한 그들의 여가 방식인데 많은 이들이 식용식물에 전문가 수준이다.북유럽의 자연은 사유지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오랜 관습법을 거쳐 공식 법으로 인정된 '자연접근권 또는 자연산책권'(Allemansratten) 덕분이다. 상업 목적이 아니면 어디서든 자연의 과실·작물과 꽃을 취할 수 있다. 가옥과 일정 거리만 떨어져 있으면 사유지에서도 야영이 가능하며 주인이 이를 거부할 경우 스스로 기관에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물론 여행객이 지켜야 할 자연보호의 규정과 책임은 엄중하다.개인 주택에서는 텃밭이 없어도 씨앗으로 날아와 마당에 절로 자란 식용식물을 그대로 식재료로 쓰곤 한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집 근처 호수, 강, 바다에서 '수영 혹은 목욕(bathing)'을 일상으로 즐긴다. 집에서부터 수영복에 수건만 걸치고 맨발로 아파트 마당이나 동네 골목을 지나 물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이곳이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2, 3배 많은 나라의 21세기가 맞나, 초현실주의 그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그러나 이 모두는 한때 우리의 모습이었다. 색동 조각보, 손 수예품, 옛날 그릇과 가구는 어느 집에서든 낯설지 않았다. 봄이면 뒷산 언덕에서 쑥과 냉이를 캐고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이 실개천에 모여 멱을 감던 풍경은 오래 전 일도 아니다. 사유지인 산과 들도 지금만큼 배타적 독점권으로 닫혀 있지 않았다. 우리가 개발과 근대화의 이름으로 과거를 매정하게 지우는 동안 북유럽에서는 건강한 전통과 깨끗한 자연으로 살아남았다. 문명이 자연과 과거를 대체하는 것도 아니었고 자본주의가 공유와 반대되는 것도 아니었다.너무 쉽게 떠나왔고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상실감-이에 더하여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우리 모두의 고통으로 남았다. 전통과 서양화라는 대책 없는 이분법을 넘어 '오래된 미래'라는 창조적 상상력을, 미세먼지에 가려진 푸른 하늘만큼이나 간절히 소망해본다.

2018-11-12 11:05:47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창] 일본을 지배한 이념 '와(和)'

日 여자계주 마라톤 19세 선수 투지넘어져 구간 종점까지 기어서 골인자기 몫 완수 못하면 남에게 폐 끼쳐'메이와쿠'(迷惑) 않도록 '와'에 최선마라톤 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지난 주말에도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가 있었고, 우리 집 앞을 달리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우리와 같이 사계의 아름다움을 가진 일본도 지금이 마라톤 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지난 10월 21일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전 일본 실업단 여자계주 예선전이 있었다. 42.195㎞를 6개 구간으로 나누어서 이어달리기하는 경기인데 모두 27개 팀이 출전했고, 상위 14개 팀만 본선에 진출하는 중요한 경기였다. 사실 이런 대회가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겠는가만, 어린 한 선수의 모습에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했다.이와타니 사업 소속 이이다 레이(飯田怜) 선수가 제2구간을 달리다가 넘어졌다. 그 충격으로 오른발 골절상을 입었고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다음 이야기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19살 어린 선수는 구간 종점 약 200m를 더 남긴 지점에서 두 손과 두 발로 아스팔트를 기기 시작했다. TV 카메라는 그녀를 쫓았고, 현장 담당자는 조용히 그녀의 옆을 지켰다. 감독은 대회 본부에 기권하겠다고 한 모양이지만, 이이다는 이 방법밖에 없고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묵묵히 기어갔다. TV 중계 아나운서는 "힘내라 이이다!"라는 성원을 보냈고, 다음 주자는 눈물을 닦으면서 긴 시간 그녀를 바라보면서 기다렸다. 한 손에는 다음 주자에게 넘겨야 할 어깨띠를 꽉 쥐고, 무릎은 까지고 피가 맺혔다. 급기야 어깨띠를 넘기고서야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조용히. 어깨띠를 받은 다음 주자는 꼴등이지만 뛰었다.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드라마가 아니다. 그래서 감동도 하고 화도 났다. 무엇이 이렇게까지 하게 했을까. 이이다는 최소 3, 4개월 치료가 필요한 중상을 입었고, 무릎에는 후유증이 있었다. 병원을 찾은 감독에게 이이다는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는 뒷이야기도 들렸다. 일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배턴을 넘기는 프로 정신에 감동했다"는 글이 대다수이지만, "주최 측은 왜 중지시키지 않았는가"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를 탓하는 소리도 있다.일본을 일컬어 '일'(日)이라고 하지 않는다. '와'(和)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 음식을 '와쇼쿠'(和食), 다다미방을 '와시쓰'(和室), 기모노를 '와후쿠'(和服)라고 한다. 우리가 잘 먹는 '화과자'는 일본의 전통 과자이다. 이렇게 '와'는 일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다.604년 일본 최초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17개조'가 제정 반포되었는데, 그 제1조가 '와(和)를 존중하라'였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일본을 지배한 이념이며 일본인의 생활 깊숙한 곳에 자리한 '와'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이원복 교수는 '먼나라 이웃나라-일본'에서, 일본은 섬나라인지라 '와'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고 풀었다. 사방이 바다라 도망갈 데가 없는 섬나라 사람들은 '와=사이좋게 지내다'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서로 다투게 되면 결국 모두가 망한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은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여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 자신의 자리를 정확하게 지키고 자신의 맡은 몫은 완벽하게 해야만 했다. 만약 누구 하나라도 제 몫을 완수하지 못하면 사회는 무너진다. 제 몫을 완수하지 못하면 바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되고, 이것이 '메이와쿠'(迷惑)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메이와쿠'가 되지 않는 행동을 최우선한다.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이다 선수의 투혼은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잘잘못을 따지는 여러 말이 많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이런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야 한다. 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한 그녀에게 마냥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18-11-05 11:39:18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사유재산'과 교육의 공공성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 이라며원아모집 중단으로 학부모 불안모든 아동이 특별히 보살펴지는유아교육 공공성 의미 되새겨야정부 지원을 받는 사립유치원의 비리 문제가 최근 폭로되기 오래전부터, 필자는 사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유치원 운영은 원장의 가족 모두를 '먹여 살리는' 하나의 사업이고, 원장이 되면 엄청 부자가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지인의 말에 의하면 영어, 수학과 미술을 가르치는 작은 규모의 한 학원에서조차도 원장이 매우 작고 어두운 공간에 아이들을 앉게 하고 마치 '꿀꿀이죽'과 같은 형편없는 급식을 주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 작은 학원에서도 아동의 권리와 원장의 교육철학은 온데간데없고 돈벌이가 우선시되고 있으니, 현재 연일 쏟아지는 사립유치원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안 그래도 필자가 길을 걷는데 유치원의 크고 화려한 외관 건물이 눈에 띄었다. 지난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이었던 최순실도 별다른 자격 없이 유치원 원장이었다고 하지 않는가.필자는 이번 비리 사건으로 모든 유치원 원장의 교육 자격을 운운하고 사립유치원 전부를 포함시켜 사태를 일반화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립유치원 운영을 둘러싼 비리와 아동학대 문제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임을 방증하고 있다. 사립유치원의 여러 비리와 횡포는 그간 국가의 감시 밖에 있었던 사립유치원의 운영과 함께 눈덩이처럼 커져 갔고, 더 이상 교육자가 아닌, 스스로 '사업가'로 여기는 원장의 안이하고 무반성적인 태도로 이어갔다.그래서 이번 사태에서도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는 국공립유치원보다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학생 수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볼모로 원아모집을 중단한다며 학부모를 불안하게 하고 사립유치원의 공교육화를 당당하게 저지하고 있다. 한유총의 이런 태도는 학부모들의 분노를 더욱 높이고 있다. 현재 정부의 유아교육의 공공성 정책과 회계 감시 시스템 도입에 맞서 한유총이 언급한 '사유재산'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시민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념이 법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실제로 균열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독일의 교육학자 코네프케는 '사유재산'이라는 말의 의미는 진공에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봉건사회 지배의 붕괴와 인간 해방과 자유의 이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중세 봉건사회의 신분질서가 붕괴하고, 자본주의적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누구나 신분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자유의지에 따라 일할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갖게 되었고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법적 자유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돈을 축적할 수 있는 시민계급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재산을 투자할 수 있었다.즉 신분질서로부터 해방된 사회라 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하에서 개인의 자유는 실제로 재산을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는 사적 소유권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제도권 밖의 교육은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교육방법을 시도할 수 있는 교육과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 그러나 계층, 장애 여부, 피부색, 종교, 출신 등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들이 평등하게 자신의 다양한 능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동의 권리가 실현되는 교육이 필요하며, 이런 차원에서 필자는 유아교육의 공공성 의미가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어린이들은 자신의 욕구와 관심에 따라 특별히 보살펴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국가는 이러한 유아교육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를 목도하며 우리 사회의 시민 모두가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18-10-29 10:15:34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판문점선언은 국회 비준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남북관계 이끌고 갈 정치적 선언조약 발효에 필수적인 조항 없어북핵문제 진전 전혀 없는 현 상황종전선언은 우리가 할 약속 아냐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에 대한 정부, 여당의 압력이 거세다. 정부, 여당은 국회 비준 동의 요청 근거로 두 가지를 든다. 첫째로는 남북관계 합의 사항을 정권 교체에 관계없이 이행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필요성을, 두 번째로는 동 선언이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상 국회의 비준 동의를 요하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에 해당된다는 것이다.우선,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이행해 나가야 할 합의 사항이라면, 추진 과정에서 공론화 과정 내지 야당과 최소한의 협의 과정이라도 거쳤어야 한다. 정부 여당의 태도는 일방적으로 합의한 선언에 대하여, '당신네들이 정권 잡더라도 이 합의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하라고 다그치는 격이다. 선언문 내용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동 선언은 작금의 한반도 위기 상황을 초래한 북핵문제에 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선언문 마지막 항 말미에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것이 전부다. 과거 6자 회담에서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와 '모든 핵시설 불능화와 검증'까지 약속하고도 6차에 걸친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이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미국과의 긴밀한 조율하에 북핵 폐기 단계에서 북한에 제공할 반대급부이지, 북핵문제에 진전이 전혀 없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약속할 사항이 아니다.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은 안보리 결의 위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보리 결의 2397호는 기계류, 산업장비, 운송수단 등의 대북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다음으로, 남북관계발전법상 '남북합의서' 문제를 살펴보자. 본디 조약의 체결 및 비준에 관한 업무는 외교부 소관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임을 감안, 남북합의서 체결 및 비준에 관한 업무는 2005년 12월 법제정을 통해 통일부 소관으로 하였다. 그러나 절차는 조약체결 절차를 그대로 준용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발전법이 규율하는 '남북 합의서'는 쉽게 말해서 '남북 간 조약'을 의미한다. 그러나 판문점선언은 남북 양 정상이 남북관계를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표현한 정치적 선언 내지 신사협정이지 '남북 간 조약'이라 할 수 없다.왜냐하면 첫째, 조약에 '선언'이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법적 권리, 의무 관계를 설정하는 조약에는 합의 사항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판문점 선언과 같이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거나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조약에는 권리, 의무 관계 발생 방법과 시점을 규정하는 발효 조항이 필수적이나, 판문점 선언에는 이러한 조항이 없다. 결국, 판문점 선언은 내용이나 형식, 모든 면에서 남북 간의 조약, 즉 남북관계발전법상 '남북 합의서'에 해당되지 않으며, 따라서 비준 대상이 될 수 없다.백 번 양보해서 동 선언이 비준 대상인 '남북합의서'에 해당된다고 가정해보자. 정부는 9월 11일 국회에 제출한 비준 동의안에서 판문점선언 이행과 관련된 비용으로 2019년 소요 예산 4천712억원을 명시했다. 총 소요 예산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추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항간에는 총 소요 비용이 최소 50조원에서 최대 15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정부가 소요 예산을 추산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연한 문서에 대하여 국회의 동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헌법 75조가 금하고 있는 포괄적 백지위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비준 대상이 되지 않는 문서를 제시하며, 헌법에 반하는 포괄적 백지위임을 요구하는 비준 동의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국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전 주핀란드 대사

2018-10-22 11:37:22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세계의 창] 스웨덴식 사랑법(Swedish Theory of Love)

스웨덴 체제 핵심 개인 독립·자율성어떤 형태로든 의존하는 것 싫어해온정주의 벗고 사회 보편 관계 조성한국도 보수·진보 통합 가치 모색을스웨덴의 민물가재 파티(crayfish party)는 북반구의 여름 절정에서 만나는 축제다. 스톡홀름대학의 한 파티에 초청받아 그들의 놀이 문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 민물가재 그득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왁자하게 먹고 마시던 중 누군가 술잔을 스푼으로 부딪쳐 주목을 끌더니 짧은 인사에 노래 한 소절을 선창한다. 참석자들이 일제히 다음을 받아 멋진 합창이 되었는데 노래가 끝나 건배를 하고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잠시 후 다시 누군가 선창을 하고 합창을 일궈내고 서너 시간의 파티는 그렇게 이어졌다.하지축제, 성탄시장, 가족모임에서도 스웨덴 놀이의 공통점은 합창과 군무이다. 부모와 아이, 모르는 사람끼리도 함께 어울려 100년, 200년도 더 된 전통 민요와 동요를 부르며 기막히게 율동을 맞춰낸다. 이쯤 되면 개들도 주인을 따라 들고 뛰며 대동사회 분위기에 동참한다.우리의 놀이 문화를 새삼 짚어본다. 명절 가족모임에서 아이들이 '곰 세 마리'를 부르면 어른들은 손뼉을 치며 흥을 돋운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공연하고 어른은 관객으로 남는다. 아이로서는 평생 치르게 될 개인 플레이를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랄까.노래방에서 만나는 어른들의 놀이 문화를 보자.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로 어깨동무하는 순간은 마지막 곡이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개별 독창의 연속이다. 탬버린과 춤으로 흥을 맞추는 이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조연 내지 관객이며 주인공은 분명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다. 재미를 위해서지만 화면의 점수를 확인해가며 내기를 하는 건 역시 성과주의 경쟁에 익숙한 우리의 모습이다.북유럽은 어느 나라보다 사회 중심의 공공가치에 강하다. 연대성과 협력은 이들에게 절대 덕목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북유럽의 사회공공가치가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에서 출발하고 개인주의와 밀착되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역설이다.역사학자 트래고드(Trägårdh)가 명명한 '스웨덴식 사랑법'은,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의존하거나 불평등한 관계가 아닌 독립된 주체 간에서만 가능함을 의미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의존하는 것을 싫어한다. 한 세기를 거쳐 스웨덴이 추구해온 정책과 제도의 핵심은 개별 주체가 모든 형태의 종속과 의존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자선으로부터, 노동자는 고용주로부터, 아내는 남편에게서, 아이는 부모로부터, 노년의 부모는 장성한 자녀에게서 독립하는 것." 법과 정책의 기본 목표는 개별 주체가 주변의 사적 의존에서 벗어나 사회 일반의 보편적 관계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었다.가까운 이들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심리적 의존과 부담이 없다는 건 어떤 뜻일까? 가족 친지에게 대하듯 타인에 대해서도 배려, 칭찬, 평가, 비판 등을 공정히 동등하게 할 수 있는 사회. 특별히 챙기고 봐줘야 할 이유도, 잘 보이고 비굴해야 할 이유도 없는 관계. 내 가족, 내 친구, 내 사람이라는 온정주의와 배타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사회중심가치에서 개인주의가치로, 확장과 수렴이 유연한 체제-일단의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정반대일 것 같은 개인주의와 사회공공가치가 북유럽에서는 실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온 점을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다.이를 보면, 한국 보수세력의 자유주의론과 진보세력의 민주주의론이 스웨덴식 통합의 길을 함께 모색해보는 건 어떨까. 합리적 개인가치와 공동체 사회가치를 결합한 한국식 사랑법이 나올 법도 하다.

2018-10-15 10:12:10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 창] 한국의 추석과 일본의 '오본'

日 양력 8월 15일 전후 조상 혼 모셔위패 놓인 상에 과일·꽃 공물도 올려신사·절에서 유카타 입고 춤추기도친목 다지는 한여름밤 즐거운 축제9월 말 한국을 찾겠다는 일본 친구에게 "추석 연휴니 날을 달리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추석, 그게 뭐야"란다. 대한민국 큰 명절의 하나인 추석을 설명하기에 부족해서 '한국의 오본'이라고 얼렁뚱땅 내뱉었는데, 뜻밖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고 고향을 찾는 이가 많아서 교통이 매우 혼잡하다는 사실, 긴 휴일이 이어지고 사회 전체가 기능을 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 등등이 매한가지라 명절의 분위기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추석이 음력 8월 15일, 오본은 양력 8월 15일 전후의 행사이니 양력과 음력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잘못이다.석가모니 10대 제자 중 신통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목련존자가 여름 수행 안거를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도에 떨어져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음식을 드리려고 하지만, 음식은 입에 들어가기 전에 불에 타 재가 되어서 공양할 수가 없었다. 이에 석가모니에게 도움을 청하자, "승려들이 여름 수행을 마치는 마지막 날에 비구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독경을 하면 그 공덕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했고, 그 말을 따랐더니 어머니만이 아니라 아귀도의 망자들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이후 불가에서는 수행을 마치는 음력 7월 15일을 백중날이라고 하며 돌아가신 조상님을 공양하는 날로 정했다. 그리고 아귀보를 받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법회 우란분(盂蘭盆)을 열었다. 오본(お盆)은 여기서 비롯된 단어이다. 이른바 일본 고유의 민속행사와 우란분의 습합(習合)이 지금의 오본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음력을 쓰지 않으니 음력 7월 15일에 대한 개념은 없고, 그 언저리 양력 8월 15일 전후를 오본이라고 한다.오본은 시기만이 아니라 행사 내용, 풍습이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다음과 같다. 8월 13일 아침, 조상의 혼을 모시기 위한 상을 차린다. 우리의 차례상처럼 온갖 음식이 정성스럽게 올라가는 그런 상이 아니다. 가정에 상시 모시고 있는 불단 안에 만들거나, 불단 앞에 작은 상을 놓는다. 이 상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과일, 꽃, 경단 정도의 공물을 올린다.여기에 꼭 올라가는 것 중에는 가지와 오이가 있다. 가지는 소, 오이는 말을 뜻하는 것으로 각각 나무젓가락 4개를 꽂아 그 모양을 형상화한다. 조상의 혼이 이승에 올 때는 말을 타고 빨리 오고, 저승으로 돌아갈 때는 소를 타고 천천히 돌아가라는 뜻이란다. 처음에는 단순히 다리 4개만 달더니 이제는 가지와 오이를 가지고 만든 재미난 모양의 소와 말이 SNS를 통해서 소개된다. 해마다 예술적 가치가 더해져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들이 쏟아진다. 오이를 가지고 오토바이를 만들고, 로켓을 만드니 찾아오는 조상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만 같다. 여하튼 조상을 맞이해서 아침저녁으로 참배하고 15일경에는 승려를 불러 독경을 하고 조상에게 감사를 표한다. 8월 13일 밤에는 저승에서 찾아오는 조상의 혼이 헤매지 않고 잘 찾아오도록 불을 피우고, 16일에는 바로 이 장소에서 조상의 혼을 저승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불을 피운다.또 하나, 이 기간 중 신사와 절을 중심으로 유카타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추는데 이것이 본오토리다. 지옥에서 벗어난 죽은 자들이 즐거워서 춤을 추는 형상이라고도 하고, 조상의 혼을 기분 좋게 돌려보내기 위한 춤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종교적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지역사회의 친목을 위한 여름밤의 즐거운 '마쓰리'의 하나가 되었다.나라마다 특별한 날이 있다. 우리의 추석을 그들의 오본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같은 날 같은 행사는 아니지만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2018-10-08 11:15:30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난민'을 둘러싼 담론과 권력의 문제

지구촌 난민 6천800만명에 이르러대학 교양과목 토론 주제로도 부각안전한 곳을 찾는 세계적 이주 현상민족적 경계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필자가 맡고 있는 교양과목에서 수강생들은 팀별로 자유롭게 사회 주제를 정해서 그것에 관해 조사하고 발표를 하게 된다. 몇몇 수강생들은 자유탐구 주제 선정에 막막해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목차를 간략하게 구성한다. 지난 학기까지 사회 이슈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다문화' '난민' 관련 이슈가 이번 학기에는 수강생들이 가장 많이 다루고 싶은 주제가 되었다. 왜 특별히 '난민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때 '난민'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 어떤 '이미지', 타자관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가?2018년 전 세계 각지에서 국경을 넘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난민은 약 6천800만 명에 이른다. 전 지구적 망명과 이주의 발생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자국에서의 내전,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른 나라의 공격,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고 안전한 곳을 찾아 거주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 환경 재해, 자국의 산업 착취 현실과 같은 경제적 환경으로 인한 극도의 빈곤을 들 수 있다.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난민 문제'라는 말은 한국으로 대량 유입하는 난민으로 인해 문제가 비로소 발생하는 사안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요컨대 '난민 문제'라는 말 자체는 난민 유입과 관련한 복잡한 사회정치적, 경제적 연관 관계보다 단순히 '난민'에 초점을 두고 문화적, 민족적, 종교적 출신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난민에 대한 '불법이주자' '우리'와 완전히 다른 '그들' '자살폭탄테러' '범죄' 등을 연상케 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다. 몇몇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퍼뜨리고 있는 단어와, 제주에 입국한 난민들을 '잠재적 테러범'과 '가짜 난민'으로 설명하는 내용은 난민 반대를 심화하고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독일에서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난민 유입을 둘러싼 갈등과 반이민 정서는 2015년 연말 쾰른에서 일어난 이민자 집단 성범죄와 지난달 동부 작센주의 소도시 켐니츠 사태를 통해 강화되고 있다. 이때 켐니츠에서 일어난 극우단체의 폭력시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독일 사회 내부에 여전히 존재하는 극우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하는 계기를 촉발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극우세력과 분리시키며 자신과 인종주의 문제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간과하는 데 기능하고 있다.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현대 사회에 작용하는 권력을 단순히 개인을 억압하는 힘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 간의 사회적 관계 속에 내재한 것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권력은 특정한 계급이 소유하는 것을 넘어, 개인들이 자기 확신에 차 있는 가운데 지배 담론을 사용하고 지식을 생산함으로써 공고화되고 있다. 푸코는 그의 후기 사상에서 '통치성'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면서 인간이 권력에 종속되는 동시에 스스로 주체가 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1948년 선포한 세계인권선언에 의하면 망명이란 '모든 사람이 박해를 피해 타국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라는 사실, 즉 인권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국제적으로 합의하고 우리나라도 가입한 난민 협약의 단어조차도 '우리'와 '그들'을 가르고 서열화하는 난민 지배 담론에 편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적 이주 현상에 직면하여,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게 굳건해지고 있는 민족적 경계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고, 난민을 포함한 이주자들이 한국의 난민 정책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망명과 이주가 세계화로 인해 강화되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갈등 상황과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8-10-01 10:13:14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 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판문점선언 영문본 파문과 비준 문제

남북 공동으로 UN에 제출한 문서 '양측이 금년 중 종전선언 합의' 명시 문대통령 '금년 내 목표' 발언과 딴판 불분명한 문서로 비준 요구는 억지 우리 정부와 북한이 지난 6일 유엔에 공동 제출한 판문점선언 영문본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는 선언문 3조 3항이다. 종전선언과 관련, 우리 정부는 '남북한은 금년 내에 종전선언을 하기 위하여 (with a view to declaring an end to the War) 3자 혹은 4자 회담을 적극 추진키로 합의하였다(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actively pursue…)'로 번역하였다. 즉, 종전선언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및 평화체제 구축과 함께 3자 회담 혹은 4자 회담 개최를 통하여 적극 추진할 대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남북이 공동으로 유엔에 제출한 문서에는 '양측이 금년 중 종전선언에 합의하였다'(The two sides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고 하여, 금년 중 종전선언을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는 지난 4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북측 영문본과 정확히 일치한다. 통상 우리나라가 조약을 체결할 경우, 상대국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때는 한국어본과 영어본 두 언어본을 준비하고, 영어 이외 언어를 사용할 경우에는 상대국 언어본과 한국어본, 그리고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국제 공용어인 영어본, 이렇게 3개 언어본을 보통 작성한다. 그리고 해석에 차이가 있을 경우, 어떤 언어본이 우선한다는 언어조항을 반드시 넣는다. 영어 이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와 조약을 체결할 경우, 영어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조약문은 영어로 먼저 작성한 후, 각각 자국어로 번역을 한다. 따라서 '해석에 차이가 있을 경우 영어본을 따른다'고 규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판문점선언의 경우, 협상도 우리말로 하였고, 선언문도 한글로 작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에 해석에 이견이 생겼으며, 이 해석상 이견에 대하여 유엔에 제출한 영어 번역문이 유권해석을 해주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북한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식으로 말이다. 정부 측은 유엔에 제출한 문서는 단순 번역본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보는 것은 한글본이 아닌 영어본이며, 그것도 유엔 문서로 회람되었을 때 그 문서가 갖는 공신력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동 선언문을 유엔 문서로 회람하고자 했다면 영문본에 대한 협상이나 공표도 선언문과 함께 이루어졌어야 마땅하다. 또한 정부가 의도하는 바가 '금년 내에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유엔 제출 영어본 표현대로라면, '종전선언 등은 남북만이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3자 또는 4자 회담을 추진해 나가기로 한 것'이라 했던 통일부 대변인의 말이나 '금년 내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 발언의 진의는 무엇인지도 밝혀야 할 것이다. 정부는 지난 11일 판문점선언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조속한 동의를 주장하며 야당을 압박 중이다. 그러나 종전선언과 같은 핵심적 사항에 대하여 합의사항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문서를 내밀며, 동의를 하라는 것도 억지 춘향이다. 나아가 판문점 선언은 북한이 국가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체결 절차, 형식, 내용 등 모든 면에서 조약으로서 필요한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서명과 동시에 발효한다'든지, 혹은 '상호 간 비준서를 교환할 때 발효한다'든지 하는 조약에는 필수적인 발효 조항도 없으니, 비준 근거는 더더욱 없다.

2018-09-17 11:36:46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세계의 창] 중소기업강국 덴마크의 다른 길

中企 기술혁신 중심의 덴마크 경제 정부역량·정책대응이 기업에 호재 한국 中企 근로자 비중 OECD 최고 불공정거래·기술도용 등 개선해야 코펜하겐의 도심 상가는 다른 수도에서처럼 세계적인 명품매장으로 가득하다. 입구에는 쇼핑객을 줄 세워 통제하는 양복차림의 가드들이 서 있는데 기묘한 조화랄까 부조화랄까. 그들 뒤로 오래된 수제 모자점, 개인 양장점, 중고 옷가게 등이 개성 있는 간판을 걸고 꼿꼿이 성업 중이다. 소상공업체를 비롯한 덴마크 중소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거리 풍광이다. 덴마크는 수년째 호경기를 이어오고 있고 지난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세계경쟁력 지수에서 6위에 올랐다.(한국은 27위) 덴마크 경제의 중심에는 강한 중소기업이 자리하고 있는데 기업 수로는 전체 기업의 99%, 근로자 수로는 64%, 부가가치에서는 60%의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2년 중소기업의 고용증가율과 부가가치 성장률은 각각 4%, 9%이다. 덴마크 기업의 제일 장점은 현장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실용 위주의 기술 혁신이다. 현재의 대기업도 혁신을 거듭하여 성장한 어제의 중소기업이며, 지금의 중소기업도 혁신 끝에 변신할 내일의 대기업이다. 예를 들면, 라슨 회사(Larsen Strings)의 창업주는 오케스트라의 첼로 주자였는데 현재는 20여 명의 직원과 세계 최고의 현악기 줄을 생산, 99%를 수출하고 있다. 리낙(LINAK)은 세계 최초로 수평 전동모터를 개발한 업체인데, 부모의 농기계공장을 물려받은 한 기술자가 직원 7명으로 시작하여 오늘날 2천 명 직원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현재 2만7천 명의 직원에 매출액 7조5천억원을 기록하는 댄포스(Danfoss) 역시 농부의 아들이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다락방에서 혼자 기계부품을 만들며 시작한 에너지 기계기술업체이다.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과 성장에 정부가 주된 공신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특히 부러운 대목이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유럽연합은 '중소기업 우선정책'(Think Small First)을 법제화했는데 덴마크는 이를 자국에 모범적으로 안착시켰다. 모든 분야, 모든 부처의 정책에서 중소기업 관련 규제를 대폭 줄이고 법규를 실용화하며, 신설 정책의 초기부터 작은 기업을 우선 배려, 보호하고 있다. 2017년 유럽연합위원회(EC)는 덴마크의 중소기업 친화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높이 평가하며, 그 근거로 창업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고 행정과 규제의 부담이 적으며 공무원의 역량이 뛰어나고 정부가 효과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덴마크 중소기업의 출발점은 초'중학교부터 진행되는 창업교육이다. 기업은 학교에 교육 자료를 제공하고 교사들을 교육하여 어린 학생들이 창업을 꿈꾸고 기업가 정신을 배우도록 지원한다. 실용적인 직업교육은 국제적으로도 정평이 있는데 교육 과정이 현장실습과 훈련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총리의 점심 샌드위치를 인턴 요리사가 만든다는 이야기는 이미 수십 년 전에 회자되었을 만큼 현장훈련이 일반화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기업 근로자 가운데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이 OECD 국가 중 그리스와 함께 가장 높다. 구조적으로는 분명 중소기업형 국가이지만 사업 환경과 운영 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려서부터 창업기술보다 대학 진학 위주의 교육을 받아 중소기업 진로를 희망하기 어렵고, 대학생들은 대기업공직 취업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요독점적 상하구조는 불공정 거래와 기술도용을 낳고 그 부담과 피해는 차례로 떠넘겨져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에 종착되고 있다. 이러한 틀과 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자금지원 등은 단발성 휘발 정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거리는 덴마크보다 더욱 촘촘히 자영 중소업체로 채워져 있다. 중소기업이 설자리를 잃으면 대기업도 경제 전체도 길을 잃는다는 생각에, 오랜만의 익숙한 거리가 반가우면서도 내딛는 발걸음이 편치 않았다.

2018-09-10 10:16:22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 창] 책방에서 공부하기 '션샤인 학당'

차 마시고 담소 나누는 책방의 학당타임머신 타고 19세기 말 역사 탐험당시 일본이 가장 자랑스럽기보다평범한 일본인들은 아파하는 시대 책방이 바뀌고 있다. 책을 손으로 만지고 직접 구매하는 공간에서, 차도 마시고 담소를 나누며 세상을 향해 소통하는 그런 공간이 되고 있다. 경복궁 영추문 앞 '역사책방'도 그 하나다. 매주 1회 이상 글쓴이들이 강연하고, 글쓴이를 만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인다. 전시회도 음악회도 한다. 책방 주인이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미스터 션샤인'에 빠진 탓일까. 화요일 밤마다 '션샤인 학당'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어 19세기 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악령이 출몰하는 조선의 바다', 두 번째는 '아메리카 유진초이의 탄생', 세 번째는 '구동매, 김희성이 본 일본'이라는 주제로 각각 19세기 말의 조선의 역사, 미국의 역사, 일본의 역사를 공부한단다.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는 날에는 나에게도 참석해주기 바란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니 할 말이 없다고 했지만, 학자가 아니라 평범한 일본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그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화요일은 야간 수업이 있어서 가지 못한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자, 수화기 너머 책방 주인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19세기 말이야말로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일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시대가 아니었을까"라는 말에 나는 "NO"라는 답을 하고, 그들도 이 시대를 아파하고 피해자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을 더했다. 19세기 말 일본을 이야기하면서 '피해자'라는 위험한 발언을 했다. 내뱉은 말이니 그럴싸하게 설명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책방 주인을 위해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가 1972년에 완결한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NHK 대하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을 들먹였다. NHK는 이 소설을 2009년 13부작 드라마로 만들어 3년간 방영했다. 시바 료타로는 의화단 사건을 빌미로 비롯된 러시아의 만주 지배에서 러일전쟁의 직접 원인을 찾는다. 러시아가 만주를 지배한다는 것은 대륙으로 이어진 조선반도까지 진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반도에 러시아 세력이 진출하면 일본 역시 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 방어를 위해서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러일전쟁은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구하기 위한 애국적 전쟁, 국가적 위기에 맞선 일본의 자위적 노력이었다고 합리화한다. 이른바 먹히지 않기 위해서 먹어야 했다는 러일전쟁에 대한 설명은 러일전쟁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희석하고, 이후 계속되는 근대 일본의 전쟁에 대한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역사관'이라고 했지만, 러일전쟁에 대한 이런 인식은 어떤 특별한 사학자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안방극장을 장악한 대하드라마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갔고, 이것이 평범한 일본인의 머릿속에 그렇게 그려졌다. 시바 료타로의 기본 생각은 '당시 일본에는 조선이 러시아의 영토가 될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본인들은 최선을 다했다.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고, 러일전쟁이다'. 이 생각은 '언덕 위의 구름'을 통해서 평범한 일본 사람들의 역사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에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전쟁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뻔뻔한 자기변명뿐이다. 그렇다고 일본 사람 모두가 양심이 없는 악한 사람들이라 역사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양심을 건드리지 않는 역사관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른바 전쟁을 해야만 했고 제국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알기는 해야 할 것 같다. 화요일 오늘밤에도 션사인 학당에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를 항해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벼슬보다 더 좋은 총 쏘는 것보다 어렵고 그보다 더 위험하고 그보다 더 뜨거워야 하는 '러브' 그런 것이나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이다.

2018-09-03 12:54:40

장동희 전 주 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북핵 해결 없이는 한반도 평화 불가미국과 긴밀한 공조체제 유지 필요대북 제재 강화, 경제 인센티브 늘려핵포기 유도하고 검증 장치 마련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발표 하루 만인 지난 24일(현지시간) 돌연 방북 취소를 발표하였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방북이 취소됨에 따라, 북핵문제는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시작하여 판문점 남북 정상회의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 이르는 평창 프로세스는 김정은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무력사용도 불사할 것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과 중국까지 가담하여 더욱 강화된 제재 조치로 궁지에 몰렸던 김정은은 양 정상회담을 통하여 완전히 상황을 역전시켰다. 김정은은 형을 암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한 패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국 지도자로 변신하였을 뿐 아니라, 대남 및 대미 협상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김정은은 또한 미국 대통령과 대등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함과 동시, 북한을 '깡패국가'에서 '보통국가'로 바꾸어 놓았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결과 채택한 공동선언문에서는 회담 전날까지도 미국 측이 공언하였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비핵화"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그러면 북핵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에 혹시나 하며 가졌던 일괄타결에 대한 기대는 접고, 과거 실패한 북한과의 교섭사를 반면교사 삼아, 현실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첫째,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비핵화 대화에 응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함과 동시 핵 포기 시 제공할 인센티브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대북 협상이 본격화되면 결국 북한의 핵 포기와 이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연계시키느냐가 협상의 관건이 될 것이다. 북한이 핵 포기 이후에도 정권이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안전보장 장치는 마련해 주어야 하겠지만, 북한의 상응한 비핵화 조치 없이 보상이나 제재 완화를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또한, 북한의 약속 위반이 드러날 시 언제라도 제재를 복원할 수 있는 스냅 백 조항은 필수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싱가포르 방문 시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게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나 종전선언이 단순한 정치적 선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임에 비추어, 이는 북한 비핵화가 본격화되는 단계에서 검토할 사안이다. 둘째, 북한은 2013년 '핵경제 병진 노선'을 채택하였으나, 금년 4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정책 노선으로 채택하였다. 6차 핵실험까지 실시하여 핵에 대한 자신감을 확보한 김정은이 이제 경제발전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러나 핵 포기 없이는 경제발전이 절대 불가능함을 주지시킴과 동시 핵 포기 시 제공할 경제적 인센티브를 극대화하여 북의 핵 포기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과거 북핵 협상은 항상 검증 문제에서 좌초되었다는 점을 유념하여 핵폐기에 따른 검증 장치 마련에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NPT 및 IAEA 안전조치협정에 복귀하고, 추가의정서 가입을 통하여 의혹 시설에 대한 무제한 접근을 포함한 강화된 검증을 수용하도록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핵 해결과정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관계 유지는 필수다. 최근 우리 정부가 보여준 북한 석탄 밀반입 사건 처리 과정, 빈번한 대북 제재 예외 요청, 성급한 종전선언과 경협 추진, 개성공단 남북사무소 설치 등에 대하여 미국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24일 한미 간 불화가 고조되고 있다고까지 보도했다.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 없이 남북관계 진전이나 한반도 평화는 불가하다는 현실을 깨닫고,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하에 북핵문제 해결에 매진해 줄 것을 당부한다.

2018-08-27 10:29:56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폭염, 기후변화와 환경의식

전 지구적 자연 재해인 불볕더위해가 갈수록 여름 더 길고 더워져 누구나 '지구 온난화' 걱정하지만자가용'에어컨의 편리함에 의존 올여름 7월 말부터 몇 주째 강렬히 내리쬐는 뙤약볕, 도심 속 수많은 자동차와 건물 외벽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와 달구어진 아스팔트로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연일 열대야로 숨이 턱턱 막힌다. 정부는 에어컨 가동으로 인한 세금 폭탄을 방지하고자 폭염을 자연 재난 현상으로 간주하여 폭염 대책을 강화시키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이러한 불볕더위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현상이다. 8월 초 독일 쾰른의 낮 최고 기온이 38℃, 스페인 마드리드는 40도, 프랑스 파리 35도, 포르투갈 리스본은 44도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2003년 독일 여름 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건물(대학 강의실, 도서관, 관공서 등)에는 에어컨이 없어 무더위와 씨름하며 보낸 기억이 난다. 독일 미디어에서는 무더위를 이기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도심 속 나무 심기, 도로 물 뿌리기, 매일 2ℓ 물 마시기 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전 세계적인 폭염과 가뭄 현상은 일시적이고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기후 변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과학 전문가들에 의하면 앞으로 여름이 더 길고 더워질 뿐만 아니라, 겨울도 더 추워진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는 우리 인간이 초래한 것이고, 그것은 인류가 산업화 과정(화석 연료 사용, 자동차, 비행기 운항, 건물 냉난방, 개발의 명목하에 일어나는 무분별한 산림 벌채 등)에서 온실 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한 것에 기인한다.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어떤 노력을 하는가? 인간을 육체적 노동과 자연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 준 기술의 발전과 경제 성장은 자연의 희생을 대가로 이루어졌다는 성찰과 비판이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환경 파괴의 경각심과 경제 성장의 한계를 인식한 학자들은 보고서(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 개렛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와 책(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통해 천연자원의 고갈, 생태계의 변화, 환경의 위기를 경고하였다. 한편, 국제사회에서 기후 변화에 의한 영향과 인류 생활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는 1980년대 말부터이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인류 모두가 협력하고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큰 국제회의로 리우 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여러 국제적 협약의 가장 중요한 기본 원칙인 리우 선언이 채택되었다. 2015년에는 세기 말까지 선진국, 개발도상국 관계없이 각국이 산업화 시대 이전 대비 지구의 온도 상승을 낮추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자 서명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하였고, 그 협약은 2020년 이후 적용하기로 하였다. 또한 성장 중심의 경제주의에 따른 부작용을 인식하고, 이에 개발을 하더라도 환경을 고려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 용어는 '친환경 도시 계획' '지속 가능한 소비 및 생산 체제' '지속 가능 발전 교육' 등의 개념으로 확산되었고, 각 개인들이 국제적, 지역적 차원에서 인류, 사회, 환경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유지하기 위한 책임을 가지고 노력하는 실천적 과정을 뜻한다.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국제사회의 협약과 지속 가능성의 이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에 담긴 원칙은 우리의 일상에서 여전히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필자 역시 지구 온난화를 우려하면서 동시에 자동차가 제공하는 편익성과 이동성, 건물 냉난방에 의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상이 된 폭염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 마련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환경 의식이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8-08-20 10: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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