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세계의 창] 스토리가 있는 도시

[세계의 창] 스토리가 있는 도시

봄이 무르익기도 전에 꽃부터 피었다. 3월이면 벌써 협죽도꽃이 티그리스 강변에서 시위하듯이 진분홍빛을 발산했다. 강변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살갗을 태울 듯 뜨거운 여름이 오기 전, 바그다드의 봄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저녁 무렵 아부누아스 거리는 외식하러 나온 가족들로 붐볐다."그에 대한 사랑으로 나는 죽네, 그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내 눈은 그의 멋진 몸에 머물러 있고, 나는 그의 아름다움에 놀라지 않지…."아랍 문학 사상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꼽히는 아부누아스 시 속의 주인공 같은 남성들도 영화 장면처럼 지나갔다. 가족들이 아부누아스를 찾는 것은 마스구프 때문. 티그리스강에서 잡은 잉어 요리다. 테이블을 잡아 놓고 손님은 먼저 수족관 속의 잉어를 고른다. 잉어는 벌써부터 펄떡펄떡 힘 자랑을 한다. 그러면 종업원은 뜰채 속의 잉어를 기절시키고 요리 준비를 한다. 식당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호부즈(빵)가 구워져 나온다. 잘 반죽된 밀가루를 둥글넓적하게 빚어 화덕 속 벽에 철썩 붙이면 반죽은 떨어지지도 않고 노릇하게 구워진다. 바구니에 담은 호부즈는 식탁으로 옮겨지고 손님들은 후후 불어가며 뜨끈뜨끈한 빵을 뜯어먹는다. 그러는 동안 종업원은 모닥불처럼 세워진 장작불 가장자리에 쇠꼬챙이에 꽂은 잉어를 세운다. 옆구리를 갈라서 속이 다 보이게 손질된 잉어가 익어가는 동안 손님들은 메자라고 불리는 전채 요리를 먹으면 된다. 홈모스, 바바간누시, 팔라펠, 타불레 같은 반찬을 먹고 있으면 종업원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마스구프를 큰 쟁반에 담아서 가져다준다. 토마토, 양파, 피망, 파슬리를 다진 데다 카레, 큐민, 고춧가루를 적당량 넣은 페이스트를 잉어에 고루 얹어 구운 마스구프, 손이 가기도 전에 군침부터 먼저 고인다. 석양 무렵 티그리스 강변 마스구프 식당에서 친구 A는 아부누아스의 시를 읊어주었다. 마스구프가 이라크의 대표 요리로 꼽히는 것은 맛도 맛이지만 티그리스강과 아부누아스가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일 것이다.금요일이면 무타나비 책 시장으로 갔다. 이라크 사람들은 책 시장에 압바시드 시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 무타나비의 이름을 붙였다. 금요일은 우리로 치면 일요일, 휴일이었다. 이날이 되면 바그다드의 지식인들이 무타나비로 몰려왔다. 걸프전으로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던 시절, 무타나비는 더욱 붐볐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새 책은 언감생심 구경도 못 하고 무타나비의 헌 책방에서 억누를 수 없는 탐구욕과 지식욕을 채웠다. 돌아다니다 지칠 때쯤이면 아부 알리의 노천 찻집으로 갔다. 커다란 장독처럼 생긴 오븐에는 숯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그 위에는 주전자들에서 보글보글 차가 끓고 있었다. 아부 알리는 핀잔으로 불리는 유리잔에 티스푼으로 하얀 설탕을 듬뿍 깔고는 솜씨 좋게 차를 부어주었다. 차는 은은한 숯 향이 배어나서인지 더욱 감칠맛을 냈다. 전쟁 때문에 더 늙었다며 한숨을 짓던 아부 알리는 아직 살아 있을까?아부누아스와 무타나비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거리들이다. 지금 이라크는 방문 금지 국가로 지정되어 일반인은 여행할 수 없는 곳이지만 이라크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이 거리들은 반드시 들러야 하는 명소들이다. 시와 음식과 차, 스토리가 있어서 가보고 싶은 욕망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언제나 취해서 다녔다는 아부누아스, 아홉 살부터 시를 썼다는 지적인 시인 무타나비, 그리고 마스구프와 아부 알리의 차, 이런 것들이 거리에 환상과 상상을 덧입히기 때문이다. 대구에도 '상화로'가 있지만 그곳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입시철이면 기도를 하러 몰려드는 팔공산 갓바위,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서문시장, 최초의 백화점 미나까이가 있었다는 북성로, 비극적인 생애를 살다간 김광석의 이름을 붙인 김광석 거리…. 대구에도 스토리가 있는 장소들이 알고 보면 꽤 많다. 이야기를 발굴하고 스토리를 덧입히면 세계적인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는데도 "대구에는 갈 곳이 없어"라고 자조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2021-04-12 11:23:27

[세계의 창] 시진핑 주석 방한에 목매는 문재인 정부

[세계의 창] 시진핑 주석 방한에 목매는 문재인 정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한국을 방한할 것인가?시 주석은 이 정부 출범 후 4년이 지난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방한하지 않았다. 남은 임기는 1년여. 시 주석은 2019년 김정은 집권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지만 방한에 대해서는 요지부동이다.문 대통령이 임기 첫해인 2017년 12월 중국을 국빈 방문한 데 이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19년 12월 다시 중국을 방문한 바 있지만 시 주석은 문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답방은 고사하고 방한 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다.시 주석이 방한하지 않는 것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코로나 사태 등 여러 가지 변수에 따른 대외 환경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우리 정부가 시 주석의 방한에 목을 매는 등 집착하고 있는 데 반해, 중국 측은 시 주석의 방한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3일 중국 푸젠성 샤먼(厦门)에서 열린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중국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의 '한중 외교장관회담'에 대한 양국의 발표문은 크게 달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정 장관은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가급적 조기에 시 주석의 방한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등 조기 방한 추진에 합의했다며 시 주석의 방한 문제에 대해 양국이 논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그러나 중국 외교부가 홈페이지에 밝힌 발표문에는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한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한중 양국이 코로나 백신 여권과 코로나 백신 협력에 대해 합의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양국 정부의 발표문을 보면 우리 정부가 중국 측과 만날 때마다 시 주석의 방한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중국은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오히려 시 주석의 방한은 어렵다는 분명한 거절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코로나 백신 수급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백신 접종을 통한 코로나 사태 조기 안정 계획도 사실상 불투명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 주석의 방한은 이 정부 임기 내에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올 초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시 주석의 방한과 관련해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고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조기 방한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바 있지만 코로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으면서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문 대통령의 회견에 앞서 방한했던 왕 부장도 우리 정부가 강하게 요청한 시 주석의 방한 문제와 관련, "여건이 성숙하자마자 (시 주석의) 방한이 성사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면서 기자들이 쓰고 있던 마스크를 가리켰다.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지 않으면 시 주석의 방한은 성사되기 어렵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셈이다.사실 시 주석의 방한은 문 대통령의 방중 이후 중국 측이 의지만 있었다면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다. 두 차례 문 대통령의 방중 이후에도 시 주석은 지난해 1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사태가 확산되기 시작한 엄중한 상황에서 미얀마를 국빈 방문한 바 있다. 이는 중국이 우리 정부를 미얀마보다도 중요하지 않게 보거나 시 주석의 방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집권 5년 차로 접어든 지금 시점에서 한중 관계에 획기적인 관계 개선이나 시급한 현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시 주석의 방한 문제는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게 외교 관례상 정상이다. 이 정부의 시 주석 방한 카드는 아마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호재로는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는 중국이 경색돼 있는 남북 관계와 미북 관계에 돌파구나 지렛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야만 성사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다.문제는 중국 측이 판단하기에도 시 주석이 방한을 하더라도 '임기 말'로 접어든 문재인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선물이나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우리 정부가 시 주석의 방한에 목을 매는 상황이 수년간 이어지면서 양국 관계는 대등하지 않은 굴욕 외교 기조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 보다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구걸하듯 시 주석의 방한을 요청하는 것은 국격을 던져버린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우려를 겸허하게 되돌아볼 때다.시 주석의 방한이 한중 관계를 한 방에 풀어줄 '요술 방망이'는 아니지 않은가?

2021-04-05 11:20:32

[세계의 창] 주택시장의 버블은 한국경제에 매우 위험하다

[세계의 창] 주택시장의 버블은 한국경제에 매우 위험하다

시장경제에서의 가격은 재화와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가장 원하는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시그널이다. 이 시그널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거래 당사자가 거래 대상이 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거래가 실현되기 위한 추가적인 비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 조건하에서 형성된 시장가격은, 우리가 매일 슈퍼에서 사는 물건들처럼 누가 계획하고 지시하지 않아도 기업은 사회가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소비자는 원하는 만큼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의 역할을 한다.재화의 특성에 따라 가격이 시그널로서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주택이다. 주택시장은 슈퍼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시장과는 많이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주택은 완전히 같은 품질의 주택이 존재하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수만 개의 메모리 반도체는 같은 품질이지만, 삼성중공업이 건설하는 래미안 아파트는 위치, 면적, 층수, 방향 등 아파트 고유의 특성과 주위의 교통, 교육, 의료 등 사회자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같은 품질의 아파트는 없다. 둘째, 첫 번째 특성 때문에 구매자가 원하는 주택을 찾기 위한 정보 획득 비용과 탐색 비용 등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거래비용(Transaction costs)이 든다. 셋째, 주거에 대한 수요와 공급으로 이루어지는 주택시장과, 투자와 담보의 대상인 금융시장이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갖는다. 즉 주택시장에서 균형이 이루어져 있어도 금융시장에서 주택에 대한 투자 수요가 증가하면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투자 수요가 감소하면 주택가격은 하락한다. 넷째, 토지 이용과 건축에는 수많은 정부 규제가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주택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다고 해서 다른 재화와 서비스처럼 기업이 즉시에 공급할 수 없다.주택시장이 갖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특성 때문에, 2001년에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미국의 조지 아서 애컬로프(George Arthur Akerlof) 교수가 말한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발생해 시장가격으로 주택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이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고 있다.세 번째와 네 번째 특성으로 인해서는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버블이 발생하기도 하고, 주택가격이 폭락하는 버블이 터지기도 한다. 버블의 생성과 붕괴는 경제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사실 일본은 1991년에 버블이 붕괴하면서 막대한 자산 손실을 경험했다. 일본의 국민계정 통계를 보면 버블 붕괴 전인 1990년에 토지자산이 2천456조 엔이었는데, 2019년에는 약 50% 정도 하락한 1천250조 엔으로 기재돼 있다. 이는 30년 동안 1천206조 엔의 토지자산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부동산시장이 금융시장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부동산가격의 폭락으로 금융권은 엄청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다. 부실채권의 정리 과정에서 시중은행들이 도산하거나 합병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 정부도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104조 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막대한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데 일본은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동안 금융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서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한국도 버블 붕괴 전 일본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가계가 보유하는 자산 중에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고, 이 자산의 대부분이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로 확보된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김세직 교수와 주택금융연구원의 고제헌 연구위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세부채를 포함한 가계부채의 규모가 2016년에 2천78조 원으로 GDP 대비 127%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6년 이후의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의 상승을 고려하면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더 크게 증가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처럼 갑자기 버블이 붕괴하면 한국의 금융권은 치명상을 입게 되고, 주택에 거의 올인한 가계는 자산의 거의 대부분을 잃게 돼 한국 경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주택시장에서 가격 형성의 특수성을 고려한 정책으로 부동산 가격 변화를 서서히 조정하지 않으면 우리의 피땀으로 축적한 자산가치의 대부분이 신기루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

2021-03-29 11:38:27

[세계의 창] 미국의 인종갈등

[세계의 창] 미국의 인종갈등

애틀랜타의 마사지 팔러에서 일어난 총격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이며 4명은 한인으로 밝혀졌다. 아시아계 혐오 범죄인지 불분명하지만 충격적이다. 중국발 코로나19 감염이 시작된 이후 아시아계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태가 뉴욕, LA 등 대도시에서 일어나면서 동양인 차별이 부각되고 있다.2020년 현재 미국 인구의 인종 분포를 보면 백인(히스패닉 포함) 76.5%, 흑인 13.4%의 순이다. 아시아계는 그다음으로 5.9%에 불과하지만 인구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인종이다. 편견이 없어지지 않으면 인구 증가와 함께 아시아계 차별과 혐오범죄도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모든 사회가 인종차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미국과 같은 다인종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는 인종 갈등의 뿌리가 특히 깊다. 17세기 이후 영국에서 종교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신교도의 후예인 WASP(백인-앵글로-색슨-청교도)가 성골이라면 비슷한 시기에 독일로부터 역시 종교적 자유를 찾아 이주해 온 독일계(Tutonic)가 진골에 해당한다. 법조문에 독일어를 병기하자는 입법안이 41대 40으로 1775년 의회에서 부결된 것을 보면 독일계의 영향도 컸다. 이들 게르만 인종이 지배층을 이루고 하층은 보호구역에 갖힌 원주민 인디언과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흑인 노예였다.이후 정치적 격변을 피해 많은 이주자들이 유럽에서 건너왔다. 대량 이민은 현지인과 문화-종교의 차이, (특히 저임금 노동자층과) 경제적 이해 충돌을 낳아 이민자에 대한 박해를 불렀다. 아일랜드는 1845년 시작된 감자 마름병으로 인한 대기근으로 이후 10년간 인구 800만 명 중 100만 명이 사망하고 150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아일랜드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상당 기간 계속되었고 그들의 천주교 성당은 방화를 당하기도 했다. 19세기 말에 대거 이민 온 이탈리아 이민자 역시 천주교도들로서 린치와 성당의 방화를 당하는 등 박해를 받았다.제정 러시아의 유태인은 1880~1924년 사이 벌어진 수천 건의 유태인 대학살(pogrom)로 25만 명이 사망하고 200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이들 러시아 유태인의 사회주의 성향은 미국의 반유대주의 정서를 악화시켰다.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도 유태인의 입학을 제한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러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인, 유태인, 폴란드인 등 동유럽 이민자들은 백인으로 취급받게 되고, 인종 구분은 백인 대 유색인종이 대세가 된다.동양인의 집단이민은 1848~1855년 사이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와 대륙 간 철도 건설로 중국인 노동자가 대거 채용되면서 시작되었다. 골드러시와 대륙 관통 철도 사업이 끝나자 중국인들은 저임금 직장을 찾아 샌프란시스코 등 도시로 이주하였다. 남북전쟁 이후 경기 불황이 오자 현지인들은 임금 하락의 원인을 중국인 탓으로 돌리면서 중국인에 대한 폭행, 살인, 그들의 집과 상점 방화 등을 저질렀다. 미국의 차이나타운은 중국인 이민자들이 함께 거주함으로써 현지인의 위협을 공동 방어하자는 자구 수단으로 형성된 것이다. 반중국인 여론을 배경으로 하여 입법화된 것이 중국인의 이민을 금지한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 1882)이다. 특정 국가나 인종에 대한 이민 금지법으로는 미국 최초다.역시 동양계인 일본계 미국인 약 12만 명은 1942~1945년 사이 수용소에 보내졌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에 따른 여론 악화가 원인이다. 독일과 이탈리아 역시 적국이지만 독일계와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수용소 감금은 없었다.중국인 금지법도 없어지고 2차대전 중 일본계가 당한 고초에 대한 배상과 사죄도 이루어졌다. 흑인 그리고 최근 급격히 증가한 히스패닉 등 유색인종에 대한 법적 차별도 1960년대의 민권법안과 함께 종식되었다. 그럼에도 인종 간 갈등이 계속되는 것은 차별 금지법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를 수용하지는 않지만 인정하는 열린 자세가 있어야 한다. 자기 문화에 대한 긍지를 갖되, 타 문화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거부해야 인종 갈등이 종식된다고 본다. 쉽지 않은 먼 길이다.

2021-03-22 11:29:03

[세계의 창] 여성 혁명

[세계의 창] 여성 혁명

"사상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운전을 하고 있어요. 정말 흥분이 돼요. 역사적인 순간이죠."누가 이런 말을 했을까.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도로 주행을 한 사람의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자동차를 사고 시험 운전을 하는 사람의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카리마 부카리다. 2018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상 처음으로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3천 달러를 넘는 나라에서 여성이 운전을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말로 들린다. 카리마는 캐나다에서 운전을 배웠지만 사우디아라비아로 귀국하는 순간 운전을 할 권리를 빼앗겼었다.중동의 일부 나라에서는 21세기인 지금도 여성을 소유물로 보는 부족 관습이 남아 있다. 여성의 운명은 세 남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은 여기에서도 통한다. 어려서는 아버지의 엄한 보호 아래, 결혼을 하면 남편에게, 그리고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에게 '보호권'은 이전된다는 것.'중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일부다처제이다. 하지만 일부다처제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매우 인도주의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자원이 부족하던 6~7세기, 다른 부족을 침입해서 식량과 자원을 빼앗아야 했고, 그래서 종교도 생존을 위한 전쟁은 용인해 주었다. 이슬람 이전에는 여아가 태어나면 사막에 묻어버리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전해진다. 성장하기 전에 입을 줄여버리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할까. 전쟁이 잦아지면 인구의 불비례 현상이 발생한다. 전투가 이어지면서 많은 미망인들이 생겨났는데, 전근대 부족사회에서 미망인이라는 지위는 요즈음으로 치면 한순간에 길바닥으로 나앉는 신세와 비슷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는 남성 한 명이 네 명의 여성과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현재의 사회보장제도와 비슷한 역할을 하도록 했다는 것. 전쟁으로 줄어든 남성 인구와 여성 인구의 비율이 1대 4 정도가 되었으며 이것이 일부사처제의 기원이라는 설명이다.물론 21세기에 이런 설명은 현실감이 전혀 없다.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진 나라에는 사회보장제도가 있고 생존을 위한 전투도 일상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도 제도는 남았다. 남성들은 가부장적인 제도와 일부다처제를 유지했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막았다. 결혼 전에 연애를 하면 가문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아버지나 오빠가 딸(동생)을 살해하는 '명예 살인'(Honor Killing)은 지금도 왕왕 발생한다. 요르단처럼 개방이 진행된 나라들에서는 전근대적 전통주의가 많이 사라졌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에게 운전이 허용된 것이 2018년이라면 놀랄 일이 아닌가.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 운전을 허용한 것을 두고 아랍 문화권에서 여성을 보는 시각이 변화했다는 상징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전근대적인 일부다처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보장하는 나라일수록 경제 발전 수준이 더 높다는 통계가 있는데, 이는 중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동에서 가장 부자 나라는 이스라엘, 1인당 국민소득은 2020년 기준 3만3천 달러에 이른다. 노동부 장관, 외교부 장관을 거쳐 총리까지 오른 골다 메이어의 사례가 보여주듯 이스라엘은 건국 초기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을 보장했고 2020년 UNDP 조사에 따르면 여성 불평등지수는 19위를 기록하고 있다(수치가 낮을수록 여성 지위가 높다). 반면, 여성의 사회 진출이 상대적으로 더딘 팔레스타인(107위), 이집트(110위), 시리아(118위), 이라크(120위), 예멘(154위)의 경우 경제적 발전도 크게 뒤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또 대구는 어떨까. 1981년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14명의 시장 가운데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국회의원은 어떤가. 16대부터 21대까지 20년 동안 대구·경북 지역구 국회의원 150여 명 가운데 여성은 단 5명(8선)에 불과했다. 3대 도시였던 대구가 현재 4대, 5대 도시로 떨어진 배경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여성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1-03-15 11:40:54

[세계의 창] 중국 양회에 주목하라

[세계의 창] 중국 양회에 주목하라

'양회'가 열리는 중국 베이징의 하늘을 엷은 스모그가 덮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일은 더욱 불편해졌다.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에는 3월에 열지 못하고 5월에 개최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예정대로 지난 4일 정치협상회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5일 전국인민대표회의 등 양회는 예정대로 열렸다. 통상 보름 정도의 일정이었지만 올해는 10일과 11일 각각 폐회하는 일주일짜리 단축 일정이다.원래 양회 기간 베이징은 인민대회당이 있는 톈안먼광장에 대한 통행금지 등 초긴장 상태로 돌입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방역 비상까지 겹치면서 베이징의 분위기는 중국 최대 정치행사가 열리는 '축제'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삼엄한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조성돼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달랐다.양회에 참석하는 정치국 상무위원을 비롯해 전인대 의원 등 5천여 명은 모두 중국 국영 제약사인 '시노팜'이 개발한 백신을 사전에 접종했다. 백신 덕분에 방역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 것인지 시진핑 국가주석 등 당 지도부는 주요 회의에 참석할 때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연설을 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교적 자유로운 취재가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외신기자들의 취재는 선발된 20여 명으로 제한했다. 그나마 주요 인사들의 기자회견은 화상으로 진행하는 등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과거와 같은 내외신기자들의 직접 취재는 사라졌다.두 가지 정치기구인 '정치협상회의'(정협)와 우리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가 통상적으로 3월에 동시에 개최된다는 점에서 '양회'라고 부른다.그중에서도 전인대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결정한 당의 주요 정책을 추인하는 당의 최고 의결 기구다. 따라서 양회 기간 중 전인대에서 추인되는 경제성장률과 각 분야 발전 방향 및 목표는 중국이 추구하는 올해의 주요 정책을 짐작할 수 있는 주요 지표로 활용된다.이번 양회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체제 출범에 대한 중국의 대응 방안의 윤곽이 드러나고,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준비하는 성격도 있다는 점에서도 양회가 끝나면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 포석이 자연스럽게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2012년 최고지도자에 오른 시 주석은 집권 10년이 다 된 지금도 자신의 후계 구도를 결정하지 않았다. 과거 같으면 차기 지도자가 지명돼 권력 인수 준비에 나설 때다. 시 주석 역시 조기에 차기 지도자로 지명돼 지도자 수업을 쌓은 바 있지만, 지금의 후계 구도는 오리무중에 빠져 있다.여전히 공식화되거나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시 주석은 최소 5년은 더 집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이후 3세대 지도자인 장쩌민 전 주석 체제 이래로 10년을 넘겨 집권한 경우가 없다는 점에서 시 주석의 관례를 깨는 집권 구상은 국내외적으로도 적잖은 파장을 야기할 전망이다.시 주석 집권 연장의 근간이 지난해 제시된 '14차 5개년 계획'(14.5규획)과 2035년까지의 장기 전략 목표다. 초강대국 미국과의 경쟁 구도를 염두에 둔 2035년 초강대국 실현은 시 주석의 장기 집권 구상의 기본 포석이었다. 양회를 시작으로 오는 7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10월 19기 중앙위 6차 전체회의,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 등 굵직굵직한 정치 일정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중국공산당의 관례대로라면 내년 10월 당 대회에서 권력을 이양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장기 집권이든, 후계 구도든 시 주석은 차기와 관련한 정치 일정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문제는 권력이 강화된 시 주석을 견제할 정치세력이 없다는 데 있다.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의 공고화와 1인 장기 집권은 마오쩌둥 이후 새로운 시도이다.시 주석이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전략에 맞춘 대미 대응 방안의 핵심으로 장기 집권을 제시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반발이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다.현재의 중국 정치 구도상 시 주석의 지도력에 도전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전무하다. 장쩌민 전 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은 와해 상태에 있다. 베이징 교외에 위치한 '친청교도소'에 갇혀 있는 저우융캉 전 정법위 서기와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등 정적들의 위상은 중국 인민들의 머릿속에서는 사라졌다.시 주석의 장기 집권 구상은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중국의 2035년 목표의 첫 단계인 14.5규획의 성공적인 출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03-08 11:31:09

[세계의 창] 반과학 운동

[세계의 창] 반과학 운동

현대인의 긴 수명과 높은 생활수준은 농업, 의료, 산업에 적용된 과학과 기술에 기인하는 바가 커다. 과학기술의 채택에는 불합리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무조건적 환경 제일주의, 충동적 백신 불신이 그 예다.지난주에 닥친 한파로 텍사스주에서 전력 수요가 급등하고 전력 생산은 급감하면서 수백만 가구가 정전을 겪고 있다. 근본 원인은 과학을 무시한 탈화석연료 정책이다. 환경운동가들의 영향으로 미국 정부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많은 보조금을 주어왔다. 그 결과 텍사스주는 풍력이 전체 발전의 42%에 이르게 되었다. 한파로 풍력발전의 93%가 중단되자 정전 사태가 난 것이다. 석탄 발전과 천연가스 발전을 각각 47%와 450%로 늘렸지만 역부족이었다.GM(유전자 변형) 기술이 농작물에 적용되면 생태계가 파괴된다면서 GM 반대 운동을 벌이는 사람도 있다. GM을 이용한 대규모 기업농은 환경을 오히려 개선한다. 미국은 GM의 도입으로 작물 생산량이 44% 증대한 반면, 화학비료 사용량은 불변이고, 살충제 사용은 44% 감소했다.백신 보급에도 반과학 운동이 있다. 안티 백서(Anti-Vaxxer)라 불리는 백신 접종 거부자는 백신의 안전성이 검증되어도 이를 불신하고 대량 접종을 반대한다.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발명한 것은 1796년이지만 천연두가 세계적으로 퇴치된 것은 1980년이다. 백신의 완전 보급에 약 200년이 걸린 것이다.천연두 백신의 종주국 영국도 천연두 백신을 대량 보급하는 데 오랜 기간이 걸렸다. 백신이 살을 파낸다는 등 낭설과 의학 불신 때문이다. 1867년 들어 아동의 백신 접종이 의무화되자 10만 데모대가 죽은 아동의 관을 따라 행진하면서 제너의 화형식을 행하자 정부는 의무 조항을 폐지해야 했다.미국의 경우 현재까지 화이자나 모더나가 제조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접종 횟수는 5천800만 회이다. 이미 1천600만 명이 풀 도스(2회 접종)를 받았다. 공급량이 더욱 증대한다지만 예상 밖의 변수가 있다. 연방식약청이 엄격한 안전성 검증을 통과했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인구의 31%가 백신을 맞지 않고 안전성을 더 지켜보겠다고 한다. 이 백신 유보파 비율은 흑인 43%, 히스패닉 37%로 특히 소수인종에서 높다.백신 전반에 대한 불신과 거부는 오래된 사회운동이다. 하나의 예는 미국의 라임병(Lyme disease) 백신 거부 운동이다. 라임병은 사슴에 기생하던 진드기가 풀에서 사람의 몸으로 옮겨와 전염을 일으킨다. 관절염, 만성피로증, 심장병, 신경계 질환, 그리고 사망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병이다.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진단이 늦어 시기를 놓치면 완치가 힘들므로 예방이 최선이다. 라임병은 1970년대 초 코네티컷주의 라임시 아동들에게서 발견된 이래 급격히 증가해 왔다.라임 백신은 이미 1990년대 말에 개발되었다.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의 리메릭스(LYMErix) 백신은 80%의 예방 효과가 인정돼 1998년에 식약청의 승인을 받았다. 2001년까지 투여된 140만 도스 가운데 불과 905건의 가벼운 반응이 보고되었고 관절염 발생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백신 저항 운동가와 이에 동조한 언론은 백신 부작용을 과대 선전했다. 여론 악화로 매출이 격감하자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자발적으로 2002년에 판매를 중지했다. 경쟁사인 파스퇴르메리유콘놋(Pasteur Merieux Connaught)도 백신 이뮤라임(ImuLyme)을 개발했지만 식약청에 승인 신청을 취소했다.라임병은 미국에서 현재 매년 40만 명 이상의 신규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질병통제예방센터가 10대 매개체 전염병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인체용 라임 백신은 생산되지 않지만 애완동물용 라임 백신은 이미 나와 있다. 라임 백신은 사람보다 동물이 먼저라는 웃지 못할 일이다.17세기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다 교회의 박해를 받았듯이 반과학 세력은 지금도 건재하다. 21세기 한국의 감사원장은 월성원자력발전소의 경제성을 밝히려다 탈원전 정권의 미움을 받고 있다. 일부 과격 운동가가 아니라 정권에 의한 반과학 운동이어서 충격이 더하다.

2021-02-22 11:24:15

[세계의 창]메흐메트의 혁명

[세계의 창]메흐메트의 혁명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 이스탄불을 꼽겠다. 한 작가는 이스탄불을 일곱 개의 베일을 쓴 살로메에 비유하면서, 서서히 한 겹씩 그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썼다. "…수백 년에 걸쳐 그녀는 수많은 남성들의 유혹을 받았지만 그녀를 차지한 이는 많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남성들이 그녀의 춤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유스티니언, 콘스탄틴, 정복자 메흐메트가 그녀를 제국의 황녀로 만들었다. 이들과 결혼하면서 그녀는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었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 주면서 두 대륙을 안고 있는 이스탄불에서 "점심은 아시아에서 먹고 저녁은 유럽에서 먹는다"는 말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수많은 이야기와 도시의 역사를 담고 있는 모스크, 케밥, 돌마, 고등어 케밥, 샤월마 등 군침 돌게 하는 먹거리, 그리고 현기증 나게 달콤한 바클라와가 여행객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이스탄불이 이처럼 찬양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유럽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노쇠한 제국의 쇠락을 목격하고 있었다. 반면 오스만제국의 새 술탄으로 등극한 메흐메트 2세는 스물한 살의 청년, 젊은 지도자였다. 메흐메트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지 않고는 유럽으로의 진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열아홉 살에 술탄이 된 메흐메트는 즉위 2년 만에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계획하고 1453년 4월 6일 작전을 개시했다.전쟁은 쉽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로 들어가려면 육상과 해상의 두 개 진입로를 뚫어야 했다. 이 전쟁에서 메흐메트는 거대한 공성포를 세계 전쟁사에 소개한다. 대포 제조자 우르반이 제작한 공성포는 포 길이가 8m가 넘고 지름은 75㎝에 이르는, 당시로는 최초의 거대한 신무기였다. 대포는 544㎏의 포탄을 1.6㎞까지 날려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거대한 대포조차도 비잔티움을 함락시키는 결정적 무기가 되지는 못했다. 제노아 공화국 출신의 용병 지오반니 쥬스티니아니가 이끄는 비잔티움의 군대는 무너진 성벽을 복원하면서 맞섰다. 전투는 장기전으로 가고 있었고 신하들은 메흐메트를 흔들어 댔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다음 기회를 찾자고. 콘스탄티노플을 눈앞에 둔 메흐메트에게는 두 개의 선택이 남았다. 콘스탄티노플로 진입해서 승패를 하늘에 맡기든가, 아니면 후퇴하든가 양단의 길이었다.궁즉통이라고 했던가. 개전 2주일 뒤인 4월 20일, 메흐메트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생각을 해냈다. 배를 산으로 보내는 방법이었다. 해상 진입로를 뚫기 위해서는 전함들을 골든혼 해협 안으로 진입시켜야 했지만 입구를 쇠사슬로 막아 두어서 진입이 차단된 상태. 메흐메트는 육상의 통나무들을 잘라서 기름칠을 하고 이 통나무들 위에 전함을 끌어올려 해협 안쪽으로 이동시키도록 했다. 배를 산으로 끌어올리는 이 작전은 비잔틴 군대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반대쪽 육상 성벽을 방어하던 군대가 해변 쪽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방어 병력이 분산되었다. 얼마나 타격을 입었으면 비잔틴 쪽은 오토만 포로 260여 명을 성벽에 끌어올려 오토만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하나 처형했다고 한다. 해변 쪽 방어선이 뚫리면서 오토만 병력의 사기는 크게 높아졌고 이를 계기로 메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은 성공으로 끝났다.만약 메흐메트 2세가 배를 산으로 올리는 기막힌 생각을 해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메흐메트 2세는 중간에서 후퇴한 그저 그런 존재로 기록되었을지 모른다.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목표와 의지가 배를 육상으로 옮긴다는 발상을 하게 만들었다. 혁명적인 생각만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고 혁명적인 생각만이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이전에 하던 대로 한다면, 이전에 했던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다면 변화는 없고 혁명은 불가능하며 성공은 없다. 이전과는 다른 사람, 이전과는 다른 방법, 이전과는 다른 생각이 필요하며 그것이 혁명이다.

2021-02-15 11:07:48

[세계의 창] 대기업 경영권 승계, 새로운 사회적 합의 필요

[세계의 창] 대기업 경영권 승계, 새로운 사회적 합의 필요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 과정에 있어 기업집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발도상국의 기업집단은 다각적 사업 전개, 피라미드형 소유 구조, 동족에 의한 소유 경영 지배라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기업집단을 '동족기업'(Family firms)이라고 부른다. 동족기업의 생성, 발전, 존속은 법 제도, 정부 정책, 국민적 공감대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을 제외하고, 동족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로 멕시코와 일본을 들 수 있다.우선 멕시코의 경우를 살펴보면, 멕시코에서 동족기업의 유지와 번영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요인은 상속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동족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한 자금 마련 때문에 동족이 가진 주식의 감소나 경영권의 상실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또한 의결권 제한 등의 조건을 덧붙인 복수 의결권 제도와 동족이 가진 주식을 관리하는 지주회사의 존재도 동족기업의 유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1961년 상속세를 폐지한 이후 재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고, 대규모 기업집단이 출현하기 전에 도입된 복수 의결권 제도나 지주회사에 대한 법률은 기업가들의 설득에 의해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멕시코의 상위 20개 동족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고, 동족기업 간의 경쟁도 심하지만 경영권 승계에 관한 잡음은 없다.한편으로 일본의 상속세는 최고 55%까지 높고, 미국에서조차도 허용하는 복수 의결권 제도를 허용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피라미드형 소유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멕시코와 같이 소유와 경영을 같이하고 있는 동족기업이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중 1천200사 정도 있다. 최근에 교토산업대학의 심정욱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이 동족이 소유한 주식 지분은 5% 미만임에도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전체 상장기업 중 7.4%이고, 그중 대표적인 기업이 토요타 자동차, 스즈키 자동차, 카시오 등과 같은 동족기업이 있음을 밝혔다.일본은 법 제도와 정부 정책에 있어 멕시코와 아주 극적으로 대비됨에도 동족기업이 유지 존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최대 기업인 토요타 자동차 사장에 창업자의 손자인 토요타 아키오 씨가 취임할 때 아무런 반대도 없었고, 오히려 기대와 찬사가 쏟아졌었다. 일본의 동족기업은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는 회사보다도 성과가 더 낫고, 경영이 어려울 때 노동자를 해고 정리하는 확률이 낮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동족기업은 미국형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보다도 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좋은 이미지가 일본 국민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본의 동족기업은 경영권 상실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주식 공개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키는 선택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소유와 경영을 완전히 장악한 전통적인 동족기업에서 경영권만 가진 동족기업으로, 결국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된 비동족기업으로 변해 간다. 심정욱 교수의 연구 결과는 일본에서 동족기업에서 비동족기업으로 바뀌는 요인은 동족 내의 전략적 자원의 감소에 있음을 밝혔다.한국에서 재벌이라 불리는 기업집단도 동족기업의 한 형태이다. 한국의 재벌기업은 상속세가 높고, 복수 의결권 제도를 허용하지 않는 면에서는 일본과 비슷하고, 피라미드형 소유 구조를 허용하는 면에서는 멕시코와 비슷하다. 두 나라의 동족기업들과 비슷하게 기업의 성과는 비동족기업보다 좋음에도, 동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영권 승계에 있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최근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삼성전자의 돈으로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이라는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경영권 승계가 창업자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면, 기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시키려는 인센티브가 낮아져 한국의 경제성장과 고용 창출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결국 우리 안에서 우리가 키운 기업이 경영권 승계의 논란으로 어려워지면, 우리 모두가 피해의 당사자가 된다. 동족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1-02-01 11:11:54

[세계의 창] 바이든 취임 이후

[세계의 창] 바이든 취임 이후

미국에서 12월부터 코비드-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의료인과 장기요양시설 거주자가 선두 접종 그룹이었고, 2차 그룹이 75세 이상 고령자와 일선 필수 근로자(긴급구조원, 교사, 대중교통 근로자, 식품점 직원)였다. 3차 그룹에 해당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주 금요일 접종 신청을 했다. 뉴욕 주정부의 보건국 홈페이지에 들어가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되는데 5분마다 시스템이 오작동되거나 다운되었다. 친구들로부터 그래도 계속해 보라는 말을 듣고 그날 오후 내내 온라인 신청에 매달렸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청자가 많아져 더욱 힘들 것이 예상돼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다시 컴퓨터를 켜고 수차례 에러 메시지를 받은 끝에 마침내 신청에 성공했다.공화당이 행정부를 장악한 플로리다, 웨스트 버지니아, 텍사스 등은 백신 접종도 효과적으로 진행하고, 코비드 규제도 최소한으로 하고 있지만 사망률이 높지 않다. 유독 민주당이 장악한 주들, 특히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 과도한 코비드 규제에도 불구하고 사망률이 높고 백신 접종도 비효율적이다. 왜 그럴까?민주당은 정부 우선주의다. 사회현상에서 억압과 부조리를 강조하고 희생자를 돕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따라서 경제, 환경, 의료, 문화에서 정부 규제가 강화된다. 규제를 담당하는 사람은 책상머리의 관료들이다. 백신 접종을 담당한 공무원들이 월마트비전(안과)센터 직원들처럼 열심으로 일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인센티브가 약하고 현장 경험도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효율이 발생한다.반면 공화당은 민간 우선주의이다. 개인, 지역의 사정은 그들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는 것이다. 정부 개입은 필수적인 것에 한정하는 민간 주도 원칙이 공화당 주정부의 코비드 대응 성공에 기여했다고 본다. 경제도 '작은 정부'가 힘을 발휘한다. 세금이 과도하고 규제가 센 중서부, 캘리포니아, 북동부로부터 민간 주도의 남부로 인구 이동이 계속되는 것은 그곳이 살기가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지난 11월 선거에서 미국 유권자는 민주당에 행정부, 하원 그리고 상원까지 넘겨주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민주당 일당 국가가 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과연 바람직한 정부를 선택하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민주주의가 시작된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는 노예와 여성을 제외한 자유인만이 투표권을 가졌으며 이들은 성인 남성 인구의 30%에 지나지 않았다. 18세기 미국의 유권자는 국가와 운명을 함께한다는 이해당사자(stake holder) 원칙에 따라 토지 50에이커 상당의 재산을 가진 백인 남성에게 한정됐다. 이제 많은 나라에서 모든 성인이 선거권을 갖게 되어 민주주의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최대 약점인 다수의 독재는 상존한다. 집권당의 정책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헌법으로 다수당의 횡포를 견제한다지만 한계가 있다.다수의 독재를 해결하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중세의 네덜란드는 연방국가로서 연방 내의 주민은 지역에 관계없이 국가를 택할 수 있었다. 취향에 따라 다른 국가를 선택하면 세법, 경찰, 소방 서비스가 이웃마다 서로 달랐다. 이 제도가 없어진 것이 애석하다.바이든 신임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통합(unity)과 겸허(humility)를 내세웠다. 취임 바로 당일, 임기가 10개월 남은 노사관계이사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의 감사(general counsel)를 파면하였다. 대통령에게 해고권이 없는 소비자재정보호국(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의 국장도 잔여 임기가 2년여 남았음에도 해직을 받아냈다. 둘 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또 캐나다-미국 간의 키스톤 파이프 라인 설치의 허가를 취소했다. 이어 30여 개에 달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뒤엎는 것으로 친노조, 친환경 등 좌파 지지자들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말로는 통합이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앞으로 4년간 미국 정치의 좌우 대결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양당이 모두 2년 후의 중간선거 심판을 의식한다면 협상에 의한 상호 협조가 가능하다. 취임 첫 주의 바이든 행정부의 진행을 보면 전조가 불안해 보인다.

2021-01-25 11:44:49

[세계의 창] 사담은 떠나고

[세계의 창] 사담은 떠나고

1990년 5월, 필자는 바그다드에 있었다. 티그리스강 변에 위치한 호텔에 묵었는데, 그 이름도 '바그다드 호텔'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유서 깊은 호텔은 티그리스강 서쪽의 카르흐 지역에 있었다. 5월이면 흐드러지게 핀 협죽도가 티그리스강 변을 분홍빛으로 물들였고 간혹 바람이 불면 강변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지금이야 이라크 하면, 도시를 뒤집을 듯 퍼붓던 포탄과 함께 불의 도시가 된 바그다드를 떠올리지만 1990년 5월만 해도 바그다드는 평온한 도시였다. 저녁이면 손에 손을 잡은 가족들이 잉어 구이 마스구프를 먹으러 티그리스강 변의 아부누아스 거리로 몰려들었고, 식당에서는 원시적 욕망을 일깨우는 아랍 음악들이 귀를 사로잡았다. 그때만 해도 이라크는 '정상 국가'였다는 말이다.1990년 5월의 바그다드는 그랬다. 1980년에서 1988년까지 무려 8년을 지속하던 이란과의 전쟁은 승자 없는 전쟁으로 끝이 났고, 국민들은 이제야 미래를 위한 설계를 할 수 있겠구나 믿었다. 희망은 석 달 만에 끝이 났다. 1990년 8월 2일 사담 후세인의 명령을 받은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의 국경을 넘었다. 당시 쿠웨이트 군대는 1만6천 명, 이라크 군대는 정규군만 95만 명이었다. 전력만으로 보아도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쿠웨이트는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라크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20세기 마지막 전쟁의 시작이었다.사담 후세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전쟁은 명분이 있었다. 이란과의 8년 전쟁은 사실상 미국을 위한 대리전이었다.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은 친미 팔레비 정권을 무너뜨렸고, 미국민들은 외교관 등 52명의 미국인들이 444일 동안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에 인질로 붙잡혀 있던 악몽을 겪어야 했다. 1980년 이라크가 이란과 전쟁을 벌였을 때 미국은 얼마나 이를 환영했겠는가. 반미를 부르짖는 이슬람근본주의를 사담 후세인이 막아 주었으니 말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후에 국방장관이 되는 도널드 럼스펠드를 특사로 파견해 사담 후세인을 만나도록 할 만큼 이라크는 미국에 필요한 존재였다. 각종 지원도 했다. 그러나 1990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하면서 미국은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고 '마지막 인류'로 스스로를 기록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작이었다.미국을 위한 대리전을 치렀는데,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아랍국들에 거액의 빚만 지게 되었다. 쿠웨이트에 진 채무만도 140억달러(15조원)로 기록된다. 사담 후세인은 사우디와 쿠웨이트에 채무 탕감을 요구했지만 두 나라는 거부했다. 게다가 쿠웨이트는 하는 일마다 눈엣가시였다. 이라크의 주 수입원은 원유 수출, 그런데 쿠웨이트는 오펙(OPEC)의 생산 할당량보다 증산을 해서 유가를 떨어뜨리는가 하면 이라크와의 국경지대에서 이라크 쪽 원유를 빼가는 것이었다.(이라크 측 주장) 이라크 국민들의 불만도 한몫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귀가한 청년들에게 일자리는 없었고, 클린턴이 부르짖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이라크에서도 작동했다. 내부 불만을 돌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전쟁이라는 말을 사담 후세인은 믿었을까, 걸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1991년의 걸프전과 2003년의 이라크전은 사담 후세인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두 차례의 대전으로 이라크는 삼등분되었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사실상 독립 상태이고, 시아파가 권력을 잡았다. 수니파는 해체되어 일부는 21세기의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Islamic State)로 흡수되었다. 아들과 사위들은 살해되고 부인은 망명, 후세인 가문은 공중분해되었다. 그 가족뿐인가. 1991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서른 살이 된 지금, 삶 전체를 전쟁과 함께 보내야 했다. 이라크 사람들은 한 세대를 압류당한 셈이다. 폭포처럼 쏟아지던 포탄에 목숨을 잃거나 사지를 절단해야 했던 국민들, 그들은 누구의 잘못으로 삶을 압류당했나. 그것은 지도자의 판단 때문이었다. 지도자가 잘못된 판단을 하면 그 결과는 본인은 물론 국민 전체가 뒤집어쓴다. 지도자의 판단력이 중요한 이유이며, 지도자 선택을 잘 해야 하는 이유이다.

2021-01-18 11:48:54

[세계의 창] 미중 최고지도자의 건강이 문제다

[세계의 창] 미중 최고지도자의 건강이 문제다

시진핑 주석의 동정에 대해 중국 인민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러나 지난 연말 시 주석이 뇌동맥류 이상으로 긴급 입원했다는 건강이상설이 나돌면서 중국 인민들도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단순한 해프닝이자 '가짜 뉴스'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중국 관영매체인 CCTV와 인민일보는 시 주석의 건강이상설에 대해 직접 대응하는 대신, 시 주석의 동정이나 시 주석이 주재하는 정치국 상무위원회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시 주석의 건강이상설을 일축했다.'시 황제'(习 皇帝)로 불릴 정도로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막강한 지도력을 갖추고 있는 시 주석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면 강경한 자세로 일관해 온 중국의 대미 관계도 급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건강이상설이 제기된 직후부터 '웨이보'(微博)와 웨이신 등 중국 SNS를 뒤졌지만 시 주석의 건강과 관련한 소식은 전혀 없었다. 물론 중국 내에서 최고 지도자의 건강에 대한 언급은 엄격하게 통제되거나 금지돼 있다.1953년생인 시 주석이 최고 지도자에 오른 지 10년이 다 돼감에 따라 후계 구도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시 주석이 '격대(隔代) 지정'이라는 후계 구도 관행을 깨고 아직도 차기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음에 따라 덩샤오핑 이후 관행이 된 최고 지도자의 한 차례 연임을 깨고 장기 집권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현실화하고 있다.그런 와중에 시 주석의 건강이상설이 터져 나왔다.이에 CCTV는 시 주석이 지난해 12월 28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중앙농촌공작회의에 참석했다며 시 주석의 영상을 공개했고, 이어 31일 생방송으로 신년사를 방송하면서 시 주석의 건강 문제는 일단락됐다.그럼에도 해외 매체들은 계속해서 시 주석의 건강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0월 14일 광둥성 선전(深圳) 경제특구 지정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시 주석의 모습에서 건강 이상 논란을 빚은 장면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기념식에 예정보다 30분 지각하기도 한 시 주석은 연설 도중 심하게 기침을 했고, 이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생중계하던 CCTV가 급하게 화면을 돌리기는 했지만 기침 소리는 그대로 방송됐다. 시 주석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다음 날 시 주석은 예정된 다른 행사에 참석하는 등 선전 방문 일정을 이어 나갔다.최고 지도자의 건강 상태는 그 나라의 국가 안보와 직결될 수 있는 극도의 보안 사항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구체적인 건강 상태 역시 국가 기밀 사항에 해당한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도중에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일본 매체에 의해 포착된 바 있다. 그때 김 위원장 바로 옆에서 김여정이 재떨이를 들고 있다가 담배꽁초를 수거한 것은 자칫 담배꽁초로 인해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가 드러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이번 반중 유튜버의 시 주석 건강이상설 제기가 뜬금없는 것은 출처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홍콩의 뇌종양 전문의사를 건강이상설의 근거로 제시했지만 중국 최고 지도자가 외부로 건강 상태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은 홍콩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했다.이번에는 유튜버에 의한 해프닝이지만 이전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나 뉴욕타임스(NYT) 같은 영향력 있는 미국의 유력 매체가 시 주석의 건강이상설과 중국 지도부 내 권력투쟁설을 보도한 적도 있다. 미국 언론이 중국 최고 지도자의 건강을 걱정할 리는 없다. 건강이상설이 거짓으로 드러나더라도 중국이 시 주석에게 권력이 집중된 독재체제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비판적 효과는 충분히 거뒀다.취임식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42년생으로 우리 나이로는 80세다. 뇌출혈로 인해 두 번이나 수술한 전력이 있어 대통령의 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가 선거 과정에서 여러 번 제기된 바 있다. 시 주석보다 바이든 당선자의 건강 상태가 더 위험한 셈이다.어쨌든 새해부터 미국과 중국, 두 초강대국 최고 지도자의 건강 상태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시대가 열리게 됐다.

2021-01-11 11:34:12

[세계의 창]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문제: 저성장과 불평등

[세계의 창]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문제: 저성장과 불평등

일본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한 문제는 장기 저성장과 불평등이다. 코로나19와 같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쇼크가 일어나면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치지만, 불평등도 심화시킨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계층, 세대, 지역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반면 경제적 기반이 충분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계약 해제나 임금 삭감과 같은 고용 형태의 차이에 의한 불평등, 구인 기업이 없어 취직을 못하는 노동시장 진입 시기에 의한 불평등, 경제의 중심인 도쿄와 관광에 크게 의존하는 지방 간의 불평등, 재택근무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간의 불평등 등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2020년 12월 30일 도쿄 주식시장의 평균 주가가 2만7천444엔으로 버블경제의 정점에 있었던 1989년 다음으로 높았다는 것이다. 주가를 제외하면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줄고, 실업률은 늘고, 자살률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고, 인구 감소의 트렌드는 강화되는 등 일본의 많은 경제, 사회지표들이 좋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불평등의 심화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퍼트넘(Putnam) 교수가 말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훼손시켜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큰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은 대인관계의 신뢰와 유대를 나타내는 개인 간의 사회적 자본과 정부의 행정과 법 집행 등에 대한 신뢰, 즉 정부의 질을 나타내는 사회적 자본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요인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인 간의 사회적 자본이 높은 나라, 정부의 질이 높은 나라일수록 경제성장률이 더 높다고 한다. 이는 아무리 큰 충격이라도 충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개인 간의 사회적 자본과 정부의 사회적 자본이 높아질 수 있으면 경제는 회복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나 코로나19는 사회적 자본을 훼손시키기 때문에, 사회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즉 코로나19처럼 계층, 세대, 지역 등에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면 사람들 간에 분단과 불평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개인 간의 신뢰가 높아질 수 없고, 개인 간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코로나19로 단기적으로 나빠진 경제는 코로나19 이후에 더 악화될 수 있다. 또한 경제성장과 감염증 확산 방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정책에 관한 신뢰도 급격하게 나빠지게 된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낮아지게 되면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회복과 불평등의 개선은 요원해진다.일본 사회의 불평등 문제는 경제가 저성장에 돌입한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는 경제의 성장과 분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동시에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장이 멈춘 경제에서 불평등이 오히려 심화된다는 사실을 일본이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일본 경제뿐만 아니라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상태의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성장률은 더 낮아졌고,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한 승자 독식 구조가 강화되면서 경제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한국 경제도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995년 이후 5년마다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씩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전체 소득(근로소득+자산소득) 상위 1% 소득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이와 같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국도 일본처럼 저성장과 불평등의 심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년에 한국에서 크게 오른 것은 부동산 가격과 주가지수뿐임을 감안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불평등은 생각 이상으로 심화되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백신의 개발로 해결되어도, 사회적 자본이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너무 무겁다.

2021-01-04 12:09:51

[세계의 창]전통과 현재: 공자가 살아야 나도 산다

[세계의 창]전통과 현재: 공자가 살아야 나도 산다

미국의 최대 명절은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부활절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예전만 못하지만 한국의 추석 대이동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공항과 고속도로가 미어진다.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가 된다.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 장식하고 캐럴을 듣는다. 장성한 자식들이 부모의 집으로 찾아와 며칠씩 묵고 간다.우리 한국도 명절이 되면 자식들이 고향의 부모를 찾아온다. 조상에 제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미풍양속도 여전하다. 제삿날에는 형제들이 모여 선조에 대한 예를 차린다.제사치레에 소요되는 노동이 전적으로 여성들의 부담인 것은 부당하다. 제사 때 여자들이 음식을 마련하느라 부엌에서 연기를 마셔야 하는 동안 남자들은 안방에서 환담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화투나 마작을 하던 어릴 때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제사의 가부장적 폐습을 다룬 '나는 제사가 싫다'(2000)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제사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에게 올리므로 불합리하다는 데는 반대한다. 현재는 과거를 통하여 연결되기 때문이다.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연으로 형제자매, 사촌, 6촌으로 현 세대가 연결된다.한국의 가부장제 전통을 보여주는 전형이 족보다. 순전히 부계 중심, 남자 위주이다. 여성들은 아예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다. 시부의 이름만 있다.미국에는 족보가 없다. 한국처럼 친사촌, 외사촌, 고종사촌, 이종사촌의 구별 없이 모두 사촌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친가, 외가 구별이 없다. 남녀평등의 면에서 좋지만 가계도를 만들기는 어렵다. 부모 2명, 조부모 4명, 증조 8명, 고조 16명이 된다. 10대까지 올라가면 직계만 1천24명이고 형제자매를 포함하면 전 국민이 포함되지 않을까? 미국인들은 족보의 전통이 없다 보니 그것이 아쉬워 가계도를 마련하려 업체에 의뢰하기도 한다. 한국의 족보가 남존여비의 폐단이 있지만, 남성 중심이었기 때문에 표준화된 장부 입력이 가능했었고 가계도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한국의 제사가 가부장적인 것은 제사상 마련을 여성 노동에 의존하는 점도 있지만, 모시는 대상이 부모, 조부모, 증조, 고조 모두 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계에 대한 도외시라고 볼 수만은 없다. 외할머니는 외가에서 제사를 지내준다.'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도 '나는 제사가 싫다'와 같은 시기에 나왔다. 세계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문화적 폐쇄성을 유교 전통에서 찾고 제사(조상 숭배)와 남존여비를 비판한다. 유교의 맹점을 지연, 학연, 혈연에 의존하는 인치의 정치로 본다. 법치 실종의 근원을 유교의 인문의식 온고지신 조상숭배에서 찾는다.법치가 중요하지만 법만으로는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다. 많은 국민이 불법을 일삼는다면 공권력은 역부족이 된다. 법치가 제대로 작용하자면 대다수 국민의 윤리 수준이 높아 법 집행이 필요 없고 공권력은 예외적인 경우에 동원되어야 한다. 법치와 윤리 도덕은 상호보완적이다.국가마다 윤리 도덕은 전통에서 나온다. 서양은 기독교의 죄의식, 동양은 유교의 수치심을 윤리의 기반으로 한다. 유교가 조선 사회의 후진성에 기여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우리의 전통이다. 우리의 뿌리가 유교에 있다.서양의 제국주의가 중남미를 지배하면서 원주민 고유의 문화를 말살하고 기독교를 이식하였다. 그 결과는 미주 인디언 사회의 높은 실업률, 알코올 중독, 범죄율, 그리고 인구 감소로 나타났다. 전통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혁신도 딛고 설 바탕, 즉 전통이 있어야 가능하다.이집트와 그리스 사람들이 조상들이 세운 피라미드와 신전 덕분에 관광 수입을 올리듯이 우리도 공자 덕을 보고 있다. 한국의 높은 교육 수준과 경제 발전은 배움을 강조하는 유교 전통에 힘입은 바 크다. 혈연, 지연, 학연의 폐쇄성은 극복해야 하지만 이들 인연을 매개로 자율적인 공동체가 형성되고 사회의 안정적 기반이 마련된다. 공자가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제사도 없앨 것이 아니라 제사 준비에 남자들이 노동을 분담하고 미풍양속으로 보전할 일이다.

2020-12-28 13:31:04

[이성환의 세계의 창] 법치주의, 그리고 다시 민주주의

[이성환의 세계의 창] 법치주의, 그리고 다시 민주주의

진(秦)나라는 중국의 첫 통일 왕조이며, 동아시아 최초의 황제국이다. 그러나 제국으로서의 진나라는 15년 만에 멸망했다. 여기에는 약 100년의 시차를 두고 법치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걸출한 두 인물이 있다. 상앙(商?)과 이사(李斯)이다.어릴 때부터 형명((刑名·법률)학에 재능을 보인 상앙은 왕 효공에게 엄격한 법으로 중앙집권제를 도입하고 군사력을 키울 것을 설파하여 등용되었다. 법 지상주의자인 그는 백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법으로 구속했다. 도둑이 줄고, 군율을 무서워한 병사들은 전쟁에서 용감했다. 진나라는 강성해지고 천하 통일의 바탕을 갖추게 된다. 그의 가혹한 법 집행은 많은 억울한 사람과 반대자를 만들었다. 효공이 죽자 그는 반대파에게 몰려 도망을 갔으나, 처벌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그를 숨겨주지 않았다. 그는 사지가 찢기는 형벌을 받았고, 가족도 모두 죽임을 당했다.이사는 순자의 제자로 법가(法家) 사상을 이어받았다. 영정(후에 진시황)에게 천하 제패의 계책으로 이간책(離間策)을 제시하고, 천하 통일을 도왔다. 진시황은 이사의 군현제를 받아들여 중앙집권제의 통일 국가를 완비했다. 이사는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하고, 혼란스러운 문자도 전서체로 획일화했다.또 엄격한 법 집행으로 국가 기강을 세운다며 법가 사상에 반대되는 유학 관련 책들을 불사르고, 유생들을 생매장했다. 살벌한 분서갱유(焚書坑儒)이다. 급작스레 시 황제가 죽자 그는 권력 유지를 위해 황제의 유언을 위조한다. 엄격한 법 집행으로 생활이 피폐해진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아들이 반란군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쓴 그는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腰斬刑)을 받았고, 가족도 몰살당했다. 2년 후 진나라는 멸망했다. 백성들의 반란은 그의 가혹한 법 집행이 원인이었으며, 요참형은 그가 만든 것이다.상앙과 이사는 법으로 진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천하를 통일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만들고 집행한 법에 의해 결국 죽임을 당하고, 진나라도 단명했다. 이처럼 법으로 다스리면 한때는 강해질 수 있으나, 오래가지 못한다. 오래가지 않는 것은 강한 것이 아니다. 법치주의는 통치의 본질이 아니며, 문제 해결을 위한 만능 열쇠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나라 멸망 후 유학이 중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국가의 지배 이념이 된 것도 상앙과 이사에 대한 반동 때문이다.법치주의에 대한 논란이 치열하다. 법을 만드는 국회와,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와 검찰이 그 중심에 있다. 국회를 통과한 권력 기관 개혁에 대한 입법,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에 대해 야당과 검찰은 법치주의의 파괴라 하고, 여당과 법무부는 민주적 통제라 한다. 인민의 지배(rule by the people)를 뜻하는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를 뜻하는 법치주의는 양립 불가능할까. 상앙과 이사의 예처럼, 법치주의는 전제군주제나 독재체제에서도 가능하다. 야당이나 검찰이 말하는 법치주의는 이런 의미는 아닐 것이다.법치주의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국가권력 발동의 근거로서 기능과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권력에 대한 통제 기능이다. 국가권력 발동으로서의 법치주의는 전체주의나 독재국가 등 모든 국가에서 작동할 수 있다. 국가권력을 제한, 통제하는 의미에서의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만 볼 수 있다. 후자가 우리가 추구하는 법치주의다. 다시 말하면 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법치주의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권력기관에 대해 행하는 적법한 민주적 통제는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요소이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와 같다.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니고 민주정치이다. 민주정치의 본산인 국회가 고소, 고발을 통해 법으로 문제 해결을 꾀하는 것은 몰(沒)정치다.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와 검찰이 갈등 해결을 위해 또 다른 사법기관인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정치를 살리고 모순을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살아남는다. 한국은 전쟁과 분단을 뚫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기적'을 개척했다. 다시 한국 민주주의가 도전받는다.

2020-12-21 11:15:55

[세계의 창] 45년전 체험한 화랑도 교육과 그 현대적 의미

[세계의 창] 45년전 체험한 화랑도 교육과 그 현대적 의미

교장선생님께서 나를 찾으셨다. 경주의 교육기관에서 교육과정을 성실히 이수하여 반드시 우수상을 받아 오라고 말씀하셨다. 동해안 면 단위 영해고에 다니던 나는 친구 둘과 같이 1975년 가을 어느 날 1주일 과정에 입교를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수료하기 전에 시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대구를 포함한 경북 각 고등학교에서 학생 100여 명이 모였다. 당시 고2였던 나는 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 진학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당시 모교의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우수상을 받기 위해 1주일 교육 기간 내내 긴장했다. 명문 K고등학교 학생들과 같은 방에 배정받은 것도 해보자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그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나를 대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을 경쟁 상대로 보았다. 강사들의 강의를 듣고 복습에 복습을 거듭했다. 대부분은 쉬는 시간에 잡담을 하며 지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최대한 시간을 아꼈다. 보초 역할을 하는 당직을 서는 시간에도 쪽지를 만들어 시험에 대비했다.드디어 5일 차를 마치고 졸업시험을 보았다. 객관식 시험인데 잘 보았다. 수료식에서 기대했던 우수상을 받았다. 단상에 올라가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K고 친구들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학교로 복귀해 선생님들께 수상 결과를 말씀드리니, 크게 기뻐해 주셨다. 당시 경상북도의 동료 고등학생들과 경쟁을 하면서 시험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나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크게 얻게 되었다.이때 체득한 경쟁하는 방법과 자신감은 그 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목표가 주어지면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냈고 열성을 보였다. 그때로부터 45년이 지났고 나는 세칭 성과를 거둔 인생이 되었다. 시골 면 단위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평생의 인생을 좌우할 자신감을 심어준 교육기관은 어디인가? 그 기관은 바로 화랑교육원이었다.경상북도는 신라를 통일한 인재였던 화랑들의 정신을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1973년 화랑교육원을 설립했다. 2019년까지 40만 명이 교육을 받았다. 설립 초기에는 필자와 같은 고등학교 학생들을 모아서 교육을 시켰다. 신라시대에 화랑들이 익혔다는 세속오계(世俗五戒)를 가르쳤다. 경주 유역의 산야를 다니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 주었다.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과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화랑교육원은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하여 충효사상, 신의를 중시하는 행동 방식, 그리고 자신감을 학생들에게 길러 주었던 것이다.현재 화랑교육원은 고등학생들에게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화랑교육원은 대구경북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해 왔다. 화랑이 익히고 실천했다는 세속오계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효용가치가 있다. 사군이충(事君以忠)과 사친이효(事親以孝)는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가르침으로 오늘날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교우이신(交友以信)은 친구들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임전무퇴(臨戰無退)는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해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약 1천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없는 삶의 자세를 포함하고 있어 오늘날에도 충분히 활용도가 높다. 전통적인 자기 수양과 행동 양식을 지역의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전수하는 것은 화랑교육원의 핵심 기능으로 이어져 가야 한다. 경상북도와 대구의 정신적인 정체성이라고 하면 바로 이런 화랑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우리만의 정신적인 정체성은 계속 지켜나가야 한다.이제는 전 국민, 전 세계인을 교육 대상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화랑교육원은 전통적인 화랑정신의 교육에 더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행동 방식도 교육과정에 가미하면 좋을 것이다. 전국의 학생들이나 외국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순기능이 될 것이다. K-팝(pop), K-방역이 세계로 뻗어가듯이, K-화랑정신이 세계로 뻗어가길 바란다. 그 중심에 화랑교육원이 있다.

2020-12-14 13:57:42

[세계의 창]내부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 장래는 어둡다

[세계의 창]내부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 장래는 어둡다

일본 경제는 1991년 버블 경제 붕괴라는 엄청난 위기 이후에 기록적인 저성장을 아직도 경험하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의 단초가 된 버블 경제 붕괴 이후에도 1998년의 아시아 통화 위기, 2001년의 IT 버블 붕괴,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2011년의 동일본 대재난과 같은 큰 경제적인 충격이 이어져 왔다.그러나 엄청난 자연재해와 세계 규모의 경제적인 충격에도 일본 경제는 위기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했다. 하지만 버블 경제 붕괴의 충격은 네 번에 걸친 큰 위기와 달리 버블 붕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경제성장 추세도 바꾸어 놓았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MIT대학 솔로 교수의 표준적인 경제성장 이론에 의하면 자산 가치의 붕괴로 인한 금융 충격은 1인당 소득에 장기적인 효과를 미치지 않아야 하는데, 이 이론은 지난 30년 동안 일본 경제의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한 위기와 네 번에 걸친 경제위기는 발생원이 어디인지에서 차이가 있다. 네 번에 걸친 경제위기처럼 외생적으로 주어진 일시적인 충격은 경제 내부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버블 경제의 붕괴와 같은 내부적인 모순에 의해 발생한 구조적인 충격은 일시적인 방편으로 회복될 수 없고, 경제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일본 경제의 내부적인 모순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일본의 눈부신 경제적인 성공을 가져다 준 고용과 생산 시스템에 있다. 종신고용제, 연공임금제,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이루어진 경직적인 고용 시스템은 버블 경제 붕괴로 생긴 불황의 국면에서 새롭게 고용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채용을 어렵게 했고, 1993년에서 2004년 사이에 졸업한 취직 빙하기 세대를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계열화로 이루어진 생산 시스템은 내수 침체와 국제경쟁력의 상실로 대기업이 어려워 지면서 대기업에 의존해 온 중소기업을 더 어렵게 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중 구조의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나게 했다.취직 빙하기 세대(현재 35~49세)의 취직이 어려워지고, 일본 전체 고용의 70%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에 취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지면서 청년 세대의 결혼율은 급격히 낮아졌고, 저출산으로 일본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일본은 취직 빙하기가 끝나는 시점인 2004년부터, 산업혁명 이래 전쟁과 재난 없이 총인구가 감소하는 첫 나라가 되었다.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내수 침체를 가져와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발생시켰고, 이로 인해 기업의 수익은 악화되어 설비 투자 감소와 고용 축소로 이어져 다시 내수 침체와 물가 하락이 일어나 경기가 악화되고 청년 세대의 결혼율과 출생률의 하락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 청년들에 대한 앙케트 조사에서 결혼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결혼자금과 결혼 후의 주거 문제와 같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버블 경제 붕괴는 결과적으로 일본 경제가 내포하고 있었던 내부적인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나게 했다. 일본은 드러난 내부적인 모순에 대해 근본적인 수술을 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대응한 결과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는 시대를 낳고 말았다.일본 경제가 장기적인 저성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한국 경제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일본과 가장 근접한 1인당 소득 수준에 이를 정도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한국 경제는 세계에서 일본 경제와 가장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경직적인 노동 관행,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중구조, 정부 주도의 경제 등을 들 수 있다. 비슷한 경제구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의 일본과 현재의 한국은 청년실업으로 인한 세대 간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지역 간・계층 간 소득과 자산의 격차 등 겹치는 부분이 많다. 현 정부는 이 같은 한국 경제의 내부적인 모순을 해결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집권했지만, 잘못된 진단과 정책들로 역설적으로 내부적인 모순을 더 강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코로나19가 끝나도 한국의 청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2020-12-07 11:16:01

[세계의 창] 미국의 정권 교체와 한일관계

[세계의 창] 미국의 정권 교체와 한일관계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투표의 성격이 강했고, 종래의 선거와는 양상이 달랐다. 선거는 끝났으나, 정권교체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정권교체로 국제정세도 유동적이다. 그에 연동해서 한일관계도 꿈틀거리고 있다.일본은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그리고 직접적으로 받는 나라일 것이다. 일본의 정치 속설에는 미국이 싫어하는 정치인은 총리가 될 수 없고, 되어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한다. 일본 국민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서민 재상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그랬고, 실질적으로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룬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도 그랬다. 그래서 일본은 종종 말 잘 듣는 미국의 푸들로 묘사되기도 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확정되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고 한다. 전임 아베 총리는 취임식 전에 트럼프의 사저로 찾아갔다.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일본은 당혹해 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일본은 트럼프의 당선을 기대 했다고 한다. 중국을 견제하는 데에는 온건한 바이든 보다는 좌충우돌하는 트럼프가 더 낫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오바마와 클린턴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의 대중국정책에 대한 불안이 있다. 오바마와 클린턴 정권은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변화시킨다는 관여정책을 기조로 했다. 그런데 그 사이 중국의 힘이 커지면서 일본을 직접 위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다시 오바마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우려한다.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3번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의 구체적 성과는 없으나, 정상끼리의 대화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는 크다. 정상회담이 계속되는 동안 북한의 도발은 없었고,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도 없었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북한은 전략을 새로 짜야 할 것이다.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군사적 도발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또 다시 미사일 대피훈련을 해야 할지 모른다.한국도 미국의 영향력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문제를 비롯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한일 양국은 서로 몸짓을 하고 있다. 지난주 박지원 국정원장과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일본을 방문해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아베 정권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다.그 배경에는 트럼프와 달리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은 대북정책과 대중국정책에서 한미일의 협력을 강조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것이다.특히 일본은 바이든 정부에 접근하기 위해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선물'이 필요한지 모른다는 관측이다. 2015년 연말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한일 간 위안부합의도 한일관계 개선을 바라는 미국의 종용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당시 바이든은 오바마 정권의 부통령이었다. 아베 정권의 정책 계승을 전제로 지난 9월 출범한 스가 정권이지만,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바뀐 미국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미국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아베정권 시대에 워낙 뒤틀려버린 한일관계가 풀리기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8일자 마이니치신문의 사설이 눈길을 끈다.사설은 최근의 정세변화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악화된 양국관계를 방치할 여유가 없다면서,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일본은 이러한) 급속한 역학관계의 변화가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遠因)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한국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되며, 상대의 체면을 세우면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한국을 한 수 아래 국가로 취급하던 일본이 한국을 대등한 상대로 대우해야 한다는 '의외'의 인식전환이다. 미국의 정권교체를 비롯한 정세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일까. 아니면 한국의 존재감을 직시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일까. 알 수 없다.어쨌든 관계개선을 필요로 하는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신호를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정권교체를 한일관계 개선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

2020-11-23 14:58:27

[세계의 창] 해양환경 해설사를 양성, 동해안 관광의 질을 높이자

[세계의 창] 해양환경 해설사를 양성, 동해안 관광의 질을 높이자

지난주 울진 소재 환동해산업연구원이 개최한 경북 해양환경해설사 과정에서 특강을 했다. 수강생들이 공감을 하면서 의외로 강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의의 제목은 '내가 경험한 바다와 수산'이었다. 축산항에서 수산업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나 상선의 선장까지 마치면서 경험한 바다와 수산업 체험을 그냥 전달했다. 정치망 어장과 관련, "여름 방어는 먹지 못한다" "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은 상태라도 검사님의 서명이 있어야 시판이 되기 때문에 동해안에서는 검사를 친근하게 '고래검사'라고 부른다"고 설명해 주었다. "명란에 대한 기록이 최근 양천세헌록에서 밝혀졌다. 1839년 이장우 영덕 현감이 축산항의 김제진 선생에게 '선생께서 보낸 명란이 너무 맛이 있어서 밥을 많이 먹었다'고 답장을 했다"는 수산물의 역사도 이야기했다. 수강생들은 공감하면서 좋아라 했다.동해안에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그냥 이들이 바다를 보고 생선회를 먹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관련된 각종 스토리를 들으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해양수산 관련 지식도 얻게 된다면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 동해안을 방문하면 해변가에 말리고 있는 오징어, 꽁치, 그리고 미역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헤아리는 숫자의 단위가 다른 것을 알면 재미있을 터이다. 오징어는 20마리를 살았을 때에는 한 두름, 말린 것은 한 축이라고 부른다. 미역은 한 올이라고 한다. 우리 국민들은 동해안을 방문할 때 그냥 눈으로 바다를 즐길 뿐이다. 앞으로는 이들에게 바다 관련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고 고차원의 즐거움을 주도록 하자.바다에 관련된 산업으로는 해양, 수산, 그리고 해운이 있다. 해양은 심층수의 개발과 같이 바닷물을 이용한 산업을 말한다. 수산은 바다에 사는 수산물을 어획하는 1차 산업이다. 해운은 바다를 이용해 상품을 이동시켜 주는 3차 산업이다. 이렇게 관광객들에게 바다에 대한 전체 그림을 먼저 그려준다. 그다음 어판장을 다니면서 꽁치, 대구, 청어, 오징어 등 생선에 대한 품평과 어구·어법의 차이점, 수협과 어촌계의 관계를 설명한다. 동해안은 샛바람(북동풍)이 불어와서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북쪽의 것이 남쪽보다 길게 그리고 높게 나가 있다는 점, 등대는 등질이 달라서 불빛이 반짝이는 주기가 다르다는 점도 설명해주면 간단한 지식 습득에도 관광객은 좋아할 것이다. 그물 등 어구가 고기잡이에 꼭 필요하지만 바다에 버려지게 되면 바다 환경을 해치게 된다는 점, 동해안 해안가 모래사장의 침식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을 해보기도 한다.각 단위 수협과 면사무소에는 이들 해양환경해설사를 등록, 관리하게 한다. 관광객은 이들 해설사를 찾아서 해설을 듣도록 한다. 해설사들은 협회를 조직하여 좀 더 체계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수고비를 받을 수 있다. 관광 장려 차원에서 군에서 재정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적정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기관에서 교육 과정을 이수한 자들에게 해설사 자격증을 부여하고 관리하게 되면 이 직종은 공신력도 갖추게 된다.이런 점을 농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도 얼마든지 관광상품화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영양의 특산물인 고추 재배, 영덕의 송이버섯과 시금치, 어느 군에나 있는 과수원의 일상들, 이런 것에 대한 설명에 스토리를 곁들인다면 관광객들은 지식도 얻고 행복해할 것이다. 숲이 좋은 곳은 숲해설사도 필요하다.농어촌에 대한 관광 수요를 창출하는 한편, 현재 양성 중인 해양환경해설사, 농촌생활해설사, 숲해설사를 더 체계적으로 양성, 보급하여 관광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도 창출해보자. 2028년에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의성과 군위 사이에 건립된다. 포항, 청송, 영양, 영덕 등은 모두 1시간 내의 거리에 국제공항이 있게 된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이 인천공항을 거쳐 우리 고장으로 오기까지는 6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1시간 거리에 있다. 앞으로 관광 수요는 엄청날 것이다. 이들 해설사들은 영어로 해설이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표지판도 영문, 일문, 중문이 병기되는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경북 해양환경해설사 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경북도 산하 환동해산업연구원의 탁견에 감사하게 된다.

2020-11-16 15:56:15

[세계의 창] 증거에 기반하지 않는 경제정책의 위험성

[세계의 창] 증거에 기반하지 않는 경제정책의 위험성

유럽은 15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를 대발견의 시대(Age of Discovery)라고 부른다. 이 기간 중에 남북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발견과 인도로 가는 항로의 발견이 이루어졌다. 이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이 경쟁적으로 선단을 만들어서 대항해를 한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선원 200만 명이 괴혈병으로 죽었다. 이 엄청난 사망자 수는 적과의 전투, 폭풍, 난파 등으로 죽은 선원의 합계보다도 많다고 한다. 괴혈병이 왜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낫는지 오랫동안 전혀 알지 못해서, 유럽의 항구를 출발하는 선단은 사망 확률을 계산해서 더 많은 선원을 싣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한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이 항해를 끝냈을 때 선원의 3분의 2를 괴혈병으로 잃었다고 한다.이러한 비극을 종결할 수 있는 방법을 쓴 책이 1753년에 스코틀랜드의 젊은 의사인 제임스 린드에 의해 출간되었다. 린드는 괴혈병이 생기는 원인은 밝히지 못했지만, 괴혈병을 치료하는 정확한 처방을 책에 기술했다. 200년 동안 2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무서운 괴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단지 오렌지와 레몬을 먹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괴혈병이 비타민 C가 부족해서 생기는 병임을 알지만, 책이 출간된 당시에는 그 처방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린드의 처방이 받아들여지기까지 무려 50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1980년대까지의 경제학이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이론이 지배했었다면, 현대 경제학은 데이터에 기반한 증거(Evidence)가 지배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 이루어지는 정책의 효과는 수많은 경제학자에 의해서 분석, 평가가 거의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고, 많은 분석 결과들을 이용한 메타 분석(Meta-analysis)을 통해서 경제정책의 효과에 대한 컨센서스를 만들어 가는 작업도 쉬지 않고 하고 있다. 그래서 '꼭 해야 할 경제정책'과 '해서는 안 될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은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분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은 경제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은 카이스트의 이병태 교수, 서울대의 김대일 교수·이정민 교수, 서강대의 전현배 교수가 경고했지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밀어붙였다. 부동산 임대차 3법에 대해서도 공공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된 '정책의 배신'이라는 책을 쓴 윤희숙 의원이 국회 연설로 분명하게 경고했음에도, 여당은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문재인 정부의 선의로 실시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일괄 적용,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및 강사법 시행, 임대차 3법의 시행 결과는 참혹한 통계 수치와 가진 것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일방적인 피해로 드러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일괄 적용 등은 고용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과 대학에 큰 타격을 주어 전체 취업자 수를 줄였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는 오히려 늘었으며, 대학의 시간강사는 58% 줄었다. 임대차 3법의 시행으로 그 법을 만든 경제부총리는 뒷돈을 주고 들어갈 집을 찾아 웃음거리가 되는 정도에 그쳤지만,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전세로 살던 많은 사람들은 갈 집을 잃고 헤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데이터에 기반한 증거에 근거한 경제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예상 가능한 결과이다. 현 정부는 이 참혹한 결과 앞에서 반성하고 고치기보다는, 손쉽게 재정을 풀어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고 하거나 전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경제의 원리와 경제학이 발견한 정형화된 사실을 무시하고 행해지는 경제정책은 린드의 발견을 무시해서 50년 이상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것처럼, 많은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해치고 상하게 한다. 현 정부의 경제 팀은 책임을 지고 모두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증거에 기반해서 경제정책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경제 팀을 일신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020-11-09 14:48:29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완독률이 좋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