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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미국의 총기폭력과 규제

미국 시민 1인당 총기 1.2정 보유한 셈매년 거의 300건 집단 총격 사건 발생수정헌법 2조'NRA 격렬 반대 넘어서엄격한 규제 법안 제정 목소리 쏟아져미국에서는 매년 총기 폭력(gun violence)으로 수만 명씩 죽거나 다치고 있다. 최근에는 학교, 극장, 나이트클럽, 교회, 야외공연장, 슈퍼마켓 등 공공장소에서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집단 총격 사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총기 폭력을 관찰하는 한 사이트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매년 거의 300건의 집단 총격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보다 대중의 관심을 덜 받는 총기에 의한 자살, 우발적인 사고, 개인적인 살인 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미국 질병통제예방본부에서 나오는 사망률을 자료를 기초로 만들어진 통계에 의하면 매년 11만3천108명이 총기 관련 사고를 당하고, 3만6천383명이 사망한다고 한다.이와 같이 미국에서 총기 관련 사고가 일상화된 이유는 일차적으로 총기 보유율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데서 찾을 수 있다.미국 인구는 약 3억 명이고 이들이 보유한 민간 총기는 총 3억9천300만 정으로, 1인당 1.2정을 보유한 셈이다. 세계 인구의 4%인 미국인이 세계 민간 총기의 42%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지속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경찰관의 비무장 흑인들에 대한 총격 사고도 흑인에 대한 경찰의 편향된 조직문화에 크게 기인하지만, 결국은 누구나 총기를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으로 인한 경찰의 과잉 대응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미국의 높은 총기 보유율 배경에는 수정헌법 2조와 NRA(National Rifle Association'전미총기협회)가 있다.시민이 총기를 보유하고 소지할 권리를 명시한 200년 이상 유지된 수정헌법 2조는 연방정부의 권한을 제한하는 목적으로 탄생했지만, 그 당시 국가가 개인을 온전히 보호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광활한 땅을 개척해야 했던 미국에서는 총기 보유는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권리로 간주됐고, 수정헌법 2조가 이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인식되었다.NRA는 1871년에 설립해 현재 500만 회원을 보유하고 엄청난 예산을 활용해 정치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며 총기규제 법안 반대를 위한 로비에 집중하고 있다. 정치인과 NRA 사이의 이해 사슬은 총기로 인한 사망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음에도 보다 엄격한 총기 규제를 위한 노력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이뿐만 아니라 NRA는 '총기 보유'를 마치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지키고, 불의에 항거하는 책임감 있는 시민 등 긍정적 이미지로 전환해 미국의 풀뿌리 총기문화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이 문화는 특히 보수 성향을 가진 유권자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했다. 따라서 정치인들도 이들의 표를 의식하여 총기 규제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총기의 구입, 판매 및 보유에 대해 매우 관대한 법규를 가지고 있으며, 이마저도 많은 허점을 지니고 있다. 그 결과 집단 총격 사건에 사용된 대용량 탄창과 이를 장착할 수 있는 군사용 자동 및 반자동 살상무기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뉴질랜드는 지난 3월 이슬람교 사원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반자동 소총으로 51명이 사살된 후 총리 주도로 신속하게 엄격한 총기 규제 법안을 제정하였다. 그녀는 총기 규제와 관련해 솔직히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그러나 총기 보유가 뉴질랜드에서는 특권이지만 미국에서는 권리라는 차이가 있다. 권리는 특권보다 제한하기 훨씬 어렵다.지난 8월 연이어 발생한 텍사스주 엘파소와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의 집단 총격 사건이 발생한 뒤 75% 이상의 미국인이 총기 구매자의 신원조회 확대 등 보다 엄격한 총기 규제 법안의 제정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이번에도 과거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될지, 아니면 미국의 수정헌법 2조, NRA의 규제 반대 노력 및 뿌리 깊은 총기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최소한의 의미 있는 총기 규제 법안이라도 제정될 수 있을지 지켜볼 뿐이다.

2019-11-11 11:26:14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교수

[세계의 창] 솔론의 행복

재물과 권력 가진 정복자 왕보다 아테네 시민이 행복하다는 솔론금수저·흙수저 논란의 우리 사회 금권 신분제도 자리 잡을까 우려그리스는 어떤 나라일까? 우리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이렇다 할 교류도 별로 없다 보니 북한이나 미국, 또는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에 비교해 보면 전해 오는 뉴스가 많지 않다. 최근에는 어려워진 경제 상황이나 불안한 정치 소식만 이따금 들려올 뿐이다.하지만 고대의 그리스는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를 배출해 사상과 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서양 고전 100선에 반드시 포함되는 그리스 신화를 비롯해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 현대 민주주의의 기원이 된 아테네 민주정 등을 통해 인류 역사에 매우 굵직한 역할을 담당하여 그 영향력이 현대에까지 미치고 있다.아테네 민주정의 기초는 솔론(Solon)이라는 인물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원전 6세기에 활약한 정치가로,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이기도 한 까닭에 법률을 시로 표현할 정도였다고 한다.당시의 상황을 보면, 도시국가인 아테네의 시민들은 원래 균등한 경제적 상황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져 곡물 생산량으로 환산한 소득의 차이가 무려 500대 1에 이르게 되었다.상업과 무역에 종사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빈민으로 전락하여 정치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급기야 신체를 저당 잡히는 일까지 발생했다.솔론은 부의 불균등한 배분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해악과 그 심각성을 깨닫고, 이른바 '솔론의 개혁'으로 불리는 입법을 단행했다. 신체 저당 금지와 부채 말소를 중심으로 한 경제 개혁과 귀족세력 약화와 민중 법정 창설을 골자로 한 법질서 확립이 주된 내용이었다. 안타깝게도 솔론 이후 아테네는 여러 당파로 분열되어, 솔론의 개혁이 열매를 맺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솔론은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그가 추구했던 것이 단순히 경제적 부의 균등한 배분이었다면, 그의 이름이 현인(賢人)으로 기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솔론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한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크로이소스는 엄청난 부와 권력을 배경 삼아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라고 물었는데, 물론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칭송을 듣기 원했을 것이다.하지만 뜻밖에도 솔론은 아테네의 평범한 시민인 '텔루스'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텔루스는 크로이소스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서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고,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웠으며 조국을 지키다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 행복의 이유였다.왕은 재차 "그 사람 다음에는 누가 행복한가?"라고 물었다. 솔론은 '클레오비스와 비토'라는 아테네 형제를 소개하며, 그들이 용감하며 서로를 아끼고, 어머니에 대해 효성이 지극했기 때문에 역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자 분노한 왕에게 솔론은 지상의 재물과 권력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니 그것으로 행복을 가리는 것은 헛된 일일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에게 패하여 화형당하게 되자, 뒤늦은 후회와 함께 솔론의 이름을 크게 세 번 외쳤다고 한다.우리 사회는 어떨까?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금권정적 신분제도가 자리 잡아가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한 달 수업료가 200만원을 훌쩍 넘는 영어 유치원이 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만족하는 일반 시민으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솔론과 크로이소스의 대화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정직하고 용감하고 자식을 정성껏 키우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평범한 서민들이 행복한 사회이기를 희망한다.

2019-11-04 11:17:38

이성환 계명대 교수 (일본학전공)

[세계의 창] 천황과 한일 관계

이낙연 총리 日 새 천황 즉위식 참석살얼음 양국 관계 돌파구 될지 관심日에 천황은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한국, '뇌관' 건들지 않는 절제 필요오늘은 일본의 새 천황(일왕의 일본 호칭)의 즉위식 날이다. 190개 이상의 국가와 기관을 초청한 일본 최고의 축제일이다. 한국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사절로 참석한다. 즉위식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개선될지에 관심이 크다.한일 관계의 결정적 변곡점은 2012년이다. 일본 내각부가 매년 가을쯤 일본 국민을 상대로 실시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11년까지는 '한일 관계가 양호하다'는 평가가 약 60%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12년에는 '양호하다'가 18.5%, '양호하지 않다'가 78.8%로 급변하고 우익들의 혐한 활동도 본격화했다.그 후 계속해서 '양호하다' 30% 대 '양호하지 않다' 70% 정도가 유지되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였다.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도 이러한 상황에서 나왔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의 조치는 돌발적이 아니라 누적된 불만의 폭발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면 2012년의 무엇이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았을까.그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 표시로 독도를 방문했다. 며칠 후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천황의 사죄를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일본 국민들은 격앙했고 "한국을 적국으로 보자" "천황 폐하에 대한 모욕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등 우익 성향 정치인의 발언과 기사가 일본 언론을 장식했다. 일본 국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의 사죄 요구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독도 방문과 천황의 사죄 요구 중 어느 쪽이 한일 관계에 더 크게 영향을 미쳤을까. 둘 다 민감한 문제이나 후자가 일본 국민의 감성을 더 자극했다는 평가가 많다. 외국에서도 천황의 전쟁 책임을 추궁하는 경우가 있으나, 국가원수가 직접 천황을 겨냥한 적은 없다. 한국을 비롯해 외국에서 볼 때 천황은 여느 나라의 왕에 지나지 않으나, 우익 성향의 일본 국민들은 천황에 대한 비난을 일본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들에게 천황은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인 것이다. 과거 식민지였던 한국으로부터의 비난은 그들에게 더욱 충격이었다.천황을 빼고 일본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번에 즉위하는 나루히토(徳仁)는 126대 천황(25대까지는 신화의 영역)이다. 일본은 그동안 천황가의 대가 끊기지 않은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한다. 한 번도 왕조 교체가 없었다는 의미에서 안정의 표상으로 해석을 하나, 반대로 변화의 동력이 없는 정체(停滯)로 보는 시각도 있다.그렇다고 천황이 늘 일본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794년부터 시작되는 헤이안(平安) 시대에 들어오면 천황을 대신해 귀족이 실권을 장악했다. 뒤이은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에도 막부 등은 장군 중심의 무가(武家) 지배체제였다. 지배체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천황은 있어도 없는 듯 명맥을 이어갔는데, 수수께끼이다.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굳이 그 존재를 없애거나 바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천황이 정치의 중심에 복귀한 것은 메이지유신을 전후해서다. 하급 무사들이 중심이 된 유신세력은 천황을 막부 타도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 연장 선상에서 그들은 메이지 헌법에서 천황을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주권과 대권을 부여했다. 이로써 천황은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現人神)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일본 역사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지금과 같은 상징 천황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며 메이지유신 이후의 근대 천황제는 오히려 예외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 국민들에게는 근대 천황제가 각인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천황의 권력과 권한은 사라졌으나, 그는 여전히 일본 국민의 심저(心底)에 절대적 존재로 남아 있다. 1945년 8월 15일 천황이 항복 방송을 할 때 일본 국민들은 황궁을 향해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절대적 존재에게 굴욕적인 항복 방송을 하게 한 죄스러움 때문이었다.천황이 한일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 적은 없으나, 뇌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한국이 이를 신성시할 필요는 없으나 국가 간 절제는 필요하다. 양국 관계를 위해서도.이성환 계명대 교수 (일본학전공)

2019-10-21 10:28:00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북핵 플랜 B를 준비할 때다

합의·파기 거듭하며 핵 발전시킨 北美 압박에 포기? 섣부른 기대 금물동맹 우습게 아는 트럼프 믿기 곤란우리도 자체 핵무장 방안 검토 필요지난 5일(현지시간) 열린 스톡홀름 미·북 실무회담이 별 성과없이 끝났다. 북한 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이날 오후 실무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미국이 빈손으로 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미국이 스웨덴 측의 2주 내 실무협상 재개 초청을 수락한 데 반해, 김명길은 "미국이 판문점 회동 이후 아무런 셈법을 만들지 못했는데 2주 안에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는 협상장에서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중단으로 선제적 비핵화 조치를 취했다며, 미 측의 상응조치가 없으면 실험 재개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다.앞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금년 말까지 시한을 정해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이쯤 되면 미·북 회담의 목적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무엇이 북한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자신감과 고압적 자세를 갖게 했는가?첫째는 북한이 핵 무력 완성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간 6차례에 걸친 핵실험으로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 소형화까지 거의 성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핵탄두도 30개 이상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난 2일에는 동해상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성공, SLBM 실용화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SLBM은 오키나와는 물론 괌, 하와이 그리고 미 본토도 사정권에 둘 수 있다.북한 내 지상 핵무기가 다 파괴된다 해도 SLBM은 북한이 2차 반격을 할 수 있게끔 해 준다. 즉, 상대방이 함부로 공격할 수 없도록 북한에 최소 억제전략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둘째는 안보리 제재의 무력화다. 2017년 말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로 러시아와 중국까지 제재에 적극 가담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김정은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향해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 이후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과 2차에 걸친 미·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를 가라앉히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절차를 밟았다.아울러 지난 6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북 이후 중국 당국은 대규모 식량 원조에 더해 북한 방문 관광객을 대대적으로 늘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다. 이는 결국 외환 고갈 위기에 처한 북한에 안보리 제재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숨통을 터준 셈이다.셋째는 미국 국내정치 상황에 대한 고려다. 김정은은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탄핵까지 거론되는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에 조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김정은이 금년 말까지 시한을 못박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정치 스케줄을 감안한 것으로 추정된다.결국 2년에 가까운 지난 시간은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협상력 강화에 기여한 것으로 판명났다. 지난 20년간 합의와 합의 파기를 번갈아가며 핵 능력을 발전시켜 온 북한이 쉽게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는 북핵 협상이 실패로 끝날 경우에 대비한 플랜 B를 준비할 때다.핵은 절대무기다.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해서는 핵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방법은 미국의 핵우산 강화나 자체 핵무장뿐이다.그러나 "동맹은 매우 쉽다"(Alliances are very easy)며 동맹을 언제나 파기 가능한 계약 정도로 여기는 트럼프에 마냥 의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북한 핵이 미 본토를 타격할 능력까지 갖췄을 때, 미국이 과연 희생을 감수하며 우리에게 핵우산을 제공해 줄지 의문이다.그렇다면 우리도 자체 핵무장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같은 동맹국에게 우호적 핵 확산을 허용하는 것이 동북아 핵 세력균형을 이루고, 더욱 효과적으로 북핵에 대응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동맹국 스스로 방위능력을 갖출 것을 주문하는 트럼프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기회는 스스로 찾는 자에게 찾아온다.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대사·국제법 법학박사)

2019-10-14 10:35:27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4차 산업혁명: 기회와 도전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시스템 변화새로운 시장 열리고 삶의 질 높아져기술 종속·빈부 격차 심화 위험성도모든 분야 통합'포괄적 방안 모색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일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기존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기술 혁신이 임박한 시점에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변환은 그 규모, 범위 및 복잡성 면에서 인간이 지금까지 경험한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우리는 이 새로운 변환이 어떻게 전개될지 잘 모르나, 분명한 것은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모든 분야의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이 새로운 변환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4차 산업혁명은 증기와 수력에 의한 생산의 기계화, 전기와 조립 라인에 의한 대량생산, 컴퓨터(디지털)화로 인한 생산의 자동화로 각각 특징되는 이전의 세 산업혁명과는 그 변화의 속도와 범위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 매우 다르다.4차 산업혁명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비선형적으로 변화하며, 모든 국가의 거의 모든 기존의 산업을 파괴(Disrupt)하고, 그 변화의 폭과 깊이는 생산, 경영 및 거버넌스 시스템 전체의 거대한 변환을 예고하고 있다.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기술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사물인터넷(IoT), 바이오테크놀로지, 로보틱스,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3D 프린팅 등 다양하다. 이들 가운데 많은 기술은 이미 기업과 우리 일상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들 기술은 더욱 발전할 것이며 나아가 서로 융합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래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과 응용 분야가 나타날 것이며 이로 인해 모든 분야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기회와 동시에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우선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산업혁명들과 같이 글로벌 소득수준을 향상시키고 세계 전 인구의 삶의 질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에는 기술혁신으로 인해 장기적인 효율성 및 생산성의 증대와 함께 공급 측면에서 수송 및 통신비용이 절감되고, 물류와 글로벌 공급사슬이 보다 효과적이 되어 거래비용이 절감됨으로써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이는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그 결과 기업에는 더 많은 기회가 열리고, 소비자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기고, 새로운 직업의 출현과 업무 방식의 변화로 직장인은 더 편리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더 많은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창의성, 공감 능력, 청지기 정신 등과 같은 인간 본성을 높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동시에 많은 경제학자들은 급격한 기술혁신으로 노동시장이 파괴되고 자본 수익률과 노동 수익률의 격차가 가속화될 수 있으며 그 결과 빈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예를 들면,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달로 음성 챗봇(Chatbot)이 콜센터 직원을 대신할 것이고, 자율주행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국 화물트럭 운전기사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 긴장과 갈등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통제되지 않은 기술혁신으로 사람이 기술에 종속되고 인간성이 박탈되어 삶의 질이 오히려 떨어질 위험도 있다.이와 같이 불확실한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개인, 연구기관, 기업 또는 정부 등 어느 한 주체에 맡길 수는 없다. 전 세계의 모든 주체가 지금부터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여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인간 중심의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서 우선 기술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경제, 사회, 문화 및 환경을 새롭게 형성할지에 대한 포괄적이고 글로벌하게 공유된 관점을 도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이를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공동 목표와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모든 관련 주체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19-10-07 10:23:12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세계의 창] 대왕고래의 희망

1881년 문을 연 런던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규모와 더불어 외벽을 장식한 갈색과 회색 테라코타의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이 인상적인 곳으로, 런던을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로 소개되곤 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더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탁 트인 넓은 공간에 거대한 대왕고래가 마치 헤엄치듯 유유히 떠 있기 때문이다.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이 화석은 길이가 자그마치 25m에 달하며, 지구상 현존하는 동물 중 가장 큰 대왕고래의 모습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준다. 박물관에 전시된 각종 동식물의 화석과 표본은 생명체의 다양함과 풍부함, 더 나아가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한다.하지만 그것들 대부분이 절멸하였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면, 갑자기 텅 빈 마당에 혼자 서있게 된 사람처럼 허전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최근 들어 동식물의 개체 수 급감이나 멸종에 관한 뉴스가 늘어나는 추세라 더 그렇다. 대왕고래도 한때는 인간의 마구잡이식 고래 사냥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무분별한 포획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이 체결된 후 가까스로 멸종 위기는 넘긴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라져가는 동식물이 희귀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늘상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던 그 많던 참새들, 다 어디로 갔을까? 포장마차마다 참새구이를 팔던 시절을 분명히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 흔하던 참새를 잘 찾아볼 수 없다. 어머니께서 가끔 옥상에 새 모이를 한 줌 뿌려주시면 참새 떼가 금방 모여들어 짹짹거리곤 했었지만, 이제는 쌀을 뿌려주어도 찾아드는 참새가 별로 없다. 꿀벌이 사라져서 인공수분을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다. 사라져가는 동물들은 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다급한 경고가 아닐까?생물 다양성의 파괴를 불러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요즘 전 세계의 화두가 된 기후변화도 그 주된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서유럽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에서 빙하가 녹아내려 붕괴 위기에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지구 곳곳에서 태풍과 홍수, 그리고 가뭄과 기근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일대는 지난해 극심한 가뭄으로 사람과 동물 모두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고, 유럽은 폭염과 홍수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가 하면, 브라질과 볼리비아는 아마존의 산불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 지난달 20일,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런던, 베를린, 함부르크, 나이로비, 멜버른, 마닐라, 리우데자네이루 등 전 세계의 수천 개 도시에서 기후변화 반대 시위가 열렸고, 여기에 수백만 명이 참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극의 과학자들도 동참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화석연료 감축이나 소비와 생산 방식의 재검토라는 문제에 가로막혀 정치권과 기성세대가 머뭇거리는 사이, 젊은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이번 시위가 '하나의 이념으로 뭉친 전 세계적 청년 운동'이 된 것은 기후변화와 그 원인인 환경파괴에 대해 젊은이들이 절박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미래가 있어야 한다"는 스웨덴 16세 소녀의 외침은 어떤 꾸지람보다도 호되다.젊은이들의 요구에 솔직하고 책임감 있는 답을 해야 한다. 디스토피아가 아닌 희망의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혹독해지는 자연재해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바꾸라는 신호이며 문명의 도전이다. 소비문화에 근거한 개발과 경제발전 논리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환경을 돌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류의 과제다.자연사박물관의 대왕고래에게 '희망'(Hope)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를 생각할 때다.

2019-09-30 14:05:33

이성환 게명대 교수

[세계의 창] 하이켄크로이츠는 안 되고 욱일기는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과 일본은 어떻게 다를까. 독일은 과거를 멀리하고 일본은 과거를 가까이 한다고 한다. 독일은 2차 대전 이전의 나치 체제와의 단절에서 국가의 정당성을 구축했고,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의 연속선상에서 국가의 정통성을 찾았다. 독일 초대 총리 아데나워는 1951년 의회연설에서 "독일의 이름으로 일어난 전쟁 범죄에 대해 현재와 미래에도 도의적 금전적 보상 의무가 있다"며 과거와의 단절과 반성을 선언했다. 맥아더 점령군 사령관의 지시를 받기는 했으나, 일본은 이전의 메이지헌법 체제하에서 제국의회의 심의와 천황의 재가를 거쳐 신헌법을 제정, 공포했다.독일은 연합국에 의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더해 스스로 국내법을 만들어 전범을 처벌했다. 일본은 연합국의 도쿄 국제군사재판을 부정하고 연합국의 군사점령이 끝나자 전범을 석방했다. 1952년 일본 국회는 원호법과 연금법을 개정하여 전사자와 마찬가지로 전범과 그 유족에게 연금과 위로금을 지급했다.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전범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같은 논리에서 전쟁 중에 그들이 저지른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은 범죄가 아니며 배상의 의무도 없어진다.내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와 욱일기(旭日旗, 떠오르는 아침 해와 같은 기세)가 논란이다. 욱일기는 태양을 상징하는 일장기에 황실의 문양인 국화의 꽃잎을 햇살 무늬(光線)로 형상화한 것이다. 욱일기는 1870년과 1889년에 각각 육군과 해군의 정식 군기로,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처음 편성된 항공부대도 사용하면서 일본군의 상징이 되었다. 육군은 "무용(武勇)으로 국위를 세계에 떨친다"는 의미로, 해군은 "햇살 무늬는 세계에 천황의 위엄을 빛나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에서 만든 전쟁 홍보영화에는 침략 전쟁의 상징으로 하이켄크로이츠(逆卍字)와 함께 반드시 욱일기가 등장했다. 패전과 함께 욱일기도 사라졌으나, 1954년 육상 자위대와 해상 자위대가 발족하면서,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말한, "옛 제국군의 전통을 잇는다"는 취지로 다시 사용되었다.1945년을 기점으로 한 독일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국가 상징의 연속과 단절일 것이다. 독일은 2차 대전 이전 나치의 당기와 국기에 사용되었던 하이켄크로이츠를 금지하고 나치 시절 애창되던 국가의 1, 2절 가사는 삭제하고 3절만 사용한다. 일본의 경우는 군국주의의 상징인 천황제를 비롯해 일장기, 욱일기, 국가(기미가요)를 그대로 사용한다. 왜 욱일기는 사용되고 하이켄크로이츠는 금지되었을까. 왜 독일은 반성하고 일본은 하지 않을까. 독일 할레대학 맨프레드 교수는 주변국과의 관계도 한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2차 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영국, 프랑스, 폴란드 등 주변국으로부터 나치의 부활을 계속 감시받았고,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유럽통합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반성이 필요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을 받은 아시아 각국은 일본을 감시할 여력이 없었다. 중국은 내전에 시달렸고, 한반도는 전쟁 와중에 있었고, 동남아의 신생국들은 내부 정비에 바빴다. 경제적으로 일본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아시아 각국은 일본을 추궁하지 못했고, 이를 이용한 일본은 경제적 지원이라는 형태로 그들과 쉽게 타협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위안부라는 인권문제가 등장하고 아시아 각국이 성장하면서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일본 정부는 욱일기는 풍어, 출산 등에도 사용되었으며, 군국주의 상징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과거 역사를 상기시키는 욱일기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팸플릿을 만들어 중국 방문객들에게 배포했다. 일본은 한국만이 욱일기를 문제 삼는다고 하나 중국도 공감을 표하고 국제축구연맹(FIFA)도 금지한 경우가 있다. 내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과거와 단절한 일본을 볼 수 있을까.

2019-09-23 11:09:14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

[세계의 창] 세네갈 새마을운동과 고레(Goree)섬

지난주 세네갈 출장을 다녀왔다.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차로 9시간 거리에 있는 움보르비란 마을에서 거행된 모내기 시범행사 참석을 위해서다. 이날 행사에는 관할 주지사, 시장뿐 아니라, 주세네갈 한국 대사도 먼 거리를 마다 않고 달려와 참석하는 등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에서 도입한 이앙기를 이용해 순식간에 한 마지기 논의 모내기를 마치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그간 세네갈에서는 논에 직접 씨를 뿌리는 직파 방식을 통하여 연간 ㏊당 3~4t의 쌀을 생산했다. 새마을세계화재단의 안덕종 세네갈 사무소장(농학박사)은 못자리에서 모를 기른 다음 논으로 옮겨 심는 한국식 농법을 적용할 경우, ㏊당 10t의 쌀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이를 통하여 세네갈에서 농업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한다. 104㏊(31만 평)의 황무지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농토로 만든 그다. 더욱 놀라운 일은 양 몇 마리를 들에 풀어놓고 그늘에서 낮잠만 즐기던 마을 주민들이 이제는 땡볕에도 논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것이다. 바로 새마을정신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이번 방문의 또 다른 목적은 세네갈 내 새마을 사업의 효과적 추진을 위한 본부협정 체결이었다. 협정 서명 후 아마두 바 세네갈 외무장관은 경북도와 새마을세계화 재단이 지금까지 세네갈 내에서 시행한 새마을세계화 사업의 성공적 수행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또한, 현재 진행 중인 시범마을 사업도 성공리에 마쳐서 새마을 정신이 세네갈 전역으로 확대되어 나가길 희망한다고 말하였다.이날 서명한 본부협정은 세네갈 주재 우리 재단 사무소에 외교 공관에 준하는 특권면제를 부여하는 협정이다.외교 공관이나 국제기구가 아닌 법인이나 단체에 이러한 특권면제를 부여하는 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선례가 없는 일이다. 외무장관이 직접 나와서 필자와 나란히 앉아 협정에 서명한 것도 세네갈 정부가 새마을 사업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를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세네갈 주재 재단 사무소 차량 번호판은 'SAEMAUL xxxx' 로 표기 되어 있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새마을 홍보물이다. 세네갈 출장길에 16~19세기 아프리카 노예 무역의 중심지였던 고레(Goree)섬을 방문할 기회를 가진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다. 수도 다카르에서 3㎞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섬은 자색, 노란색, 흰색 등의 예쁜 건물이 어우러져 유럽의 여느 시골 마을을 연상시킨다.그러나 300년 동안 2천만 명의 흑인 노예를 송출한 슬픈 역사를 지닌 섬이다. 이 상흔을 기리기 위하여 1978년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섬 중앙에는 아직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노예의 집'이 있다. 2.6㎡ 크기의 방에 노예 20여 명씩을 가두어 두었다 한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서로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잤다고 한다. 젊은 여성 노예들의 유일한 희망은 노예 무역상과 성관계를 해서 임신을 하는 것이다. 백인의 아이를 갖게 되면 풀려났기 때문이다.또 다른 막사에는 젊고 건강한 흑인 여성들을 수용, 체격이 건장한 남성들과 관계를 갖게 해서, 튼튼한 아이를 생산하도록 하였다. 사육해서 팔아먹을 새끼 노예인 것이다.바다 쪽으로 난 통로를 지나면 '돌아올 수 없는 문'이 나온다. 이 문을 나서면 배에 실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팔려 나간다. 배에는 노예들을 눕혀서 한 층, 한 층 짐짝 싣듯이 실었다.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동물보다 못한 상품에 지나지 않았다. 가이드로부터 이런 설명을 들으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내내 생각하게 되었다.우리의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이들이 좀 더 잘살 수 있게 된다면, 같은 인류로서 이전 세대가 범한 못된 짓에 대한 조금의 속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새마을운동에서 승화된 박애주의를 느낀다.

2019-09-16 11:20:08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새마을운동'을 대한민국의 브랜드로

지난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은 50명의 석사 졸업생을 배출했다. 영남대는 대한민국의 국제개발협력 실천에 동참하고 나아가 국격 향상 및 인류 공영에 기여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 2011년 개발도상국의 지속 가능한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주도할 인재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을 설립했다.박정희새마을대학원은 개원 이래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등의 67개국에서 온 667명의 학생들을 교육해오고 있다. 이들 학생들은 대부분 개도국의 공무원 또는 이들 국가들의 개발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다. 박정희새마을대학원에서는 새마을운동을 포함한 한국의 개발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개도국에 자조 역량 개발을 촉진할 자기개발 원조 모델을 확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론과 실무 교육 및 정신(태도) 변화를 통한 지도자로서의 실천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대부분의 졸업생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정부 및 비정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마을운동을 소개하고 또한 실천하고 있다. 필리핀과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졸업생들이 직접 새마을운동을 현지 마을에 적용하여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 등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탄자니아에서는 졸업생이 시장이 되어 본인의 시뿐만 아니라 빅토리아호수 연안에 있는 탄자니아, 우간다, 케냐 등 3개국 113개 지방정부 및 자치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빅토리아호수지역 지자체연합(LVRLAC)과 함께 새마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새마을운동 방식의 농촌 개발에 농업관개축산부에 근무하는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졸업생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새마을운동의 효과성에 대한 확신과 전문 지식으로 무장된 두 졸업생의 노력으로 암하라주와 SNNPR주에서 새마을운동을 농촌 개발 모델로 채택해 시행하고 있다.한편 지금까지 선진국을 중심으로 많은 예산이 개도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투입됐지만 수혜국 주민들의 주인 의식 부족과 역량 부족 등으로 인해 대부분 지속 가능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민 참여 유도, 자조와 자립 정신 배양, 교육과 역량 강화, 공정한 평가와 성과에 따른 차등 지원 등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면 보다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ODA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미국, 유럽, 일본 및 중국의 개도국에 대한 유무상의 원조액에 비해 한국의 원조액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국제사회에서 ODA는 단순히 개도국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 개도국과의 외교 및 경제적 협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개도국에 대한 지원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은 개도국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발전 경험을 '새마을운동'으로 브랜드화하여 앞으로 개도국에 대한 모든 ODA와 경제 지원을 일관성 있게 이 브랜드로 시행하면 적은 예산으로 보다 효과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현재 새마을운동중앙회와 경상북도 새마을세계화재단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개도국 지도자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단기 연수,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에서 하고 있는 개도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새마을운동 기반의 지역사회 개발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화된 이론 및 실무 교육, 그리고 모든 ODA 사업에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는 정책이 함께 시행될 필요가 있다. 단기 연수를 통해서 개도국에 새마을운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개발 동기를 부여하고, 정규 학위 과정에서 체계적이고 심화된 새마을운동과 개발 정책에 대한 교육으로 개발을 주도할 개도국 공무원과 지도자들의 실행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여 ODA 사업을 수행하도록 일관성 있게 지원 및 관리하면 한국의 ODA 사업은 보다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2019-09-09 10:28:05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교수

[세계의 창] 벨파스트 평화의 벽

북아일랜드의 도시 벨파스트(Belfast)에는 '평화의 벽'(Peace Walls)이 있다. 벨파스트의 여러 곳에 설치된 이 벽들은 크기가 다양한데, 몇백m에 불과한 짧은 것이 있는가 하면 5㎞에 달하는 매우 긴 것도 있다. '평화의 벽'이라는 이름 대신 종종 '평화선'(Peace Lines)이라 불리기도 하며 모양도 여러 가지여서, 아무도 넘어갈 수 없는 높고 튼튼한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철책을 둘러치거나 또 어떤 곳은 도로표시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밋밋한 벽도 있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벽화가 많고, 몇 해 전에는 영국의 유명한 그라피티 미술가 뱅크시(Banksy)가 이곳에 그림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근래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차츰 늘어나자 택시 관광(Taxi Tour)이라는 것이 생겨났는데, 어떤 여행객은 평화의 벽에 자신의 메시지와 서명을 남겨 놓고 가기도 한다.그런데 벽과 평화라는 두 단어는 서로 어울리기나 한 것일까? 가만 생각해보면, 벽이라는 단어에는 분리, 단절, 고립, 방어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조화, 연결, 소통, 일치를 속성으로 하는 평화와 연결되는지 의아해진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기묘하게 조합된 이 구조물은 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일까?벨파스트가 속해 있는 북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와 함께 영연방을 이루는 영국 영토이다. 아일랜드(에이레)와 같은 섬에 있으면서도 별개의 나라가 된 것은, 수백 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독립할 때 북아일랜드 지역은 영국령으로 남아 있기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생겨났다. 북아일랜드에는 아일랜드와 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영국 정부에 그대로 소속되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이 상황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심각한 폭력사태로 치달았다. 특히 벨파스트에서는 1980, 90년대의 유혈 투쟁으로 무고한 많은 시민이 희생되었고, 억울함과 적개심,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자, 서로를 분리하기 위한 장벽이 도시 곳곳에 세워졌다. 그들의 상반된 주장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그 뿌리가 중세에까지 닿아 있는 오랜 적대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일랜드인과 영국인, 구교도와 신교도, 공화파와 왕당파, 독립파와 통합파, 민족주의자와 연합주의자로 그들은 서로를 분리하고 배척했다. 1998년의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이른바 성금요일 평화협정 체결로 벨파스트의 무장투쟁은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영국의 브렉시트 결과가 북아일랜드에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시민들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벨파스트 곳곳에 세워졌던 벽은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행의 즐거움 대신 역사의 무거운 메시지를 전해준다.시야를 조금 넓혀 보면, 평화의 벽이 북아일랜드에만 세워진 것은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평화를 빙자한 벽 세우기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화의 시대를 사는 것일까? 정치적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빈부의 갈등, 남성과 여성의 갈등, 북한과의 갈등, 이웃한 나라들과의 갈등. 매일 쏟아지는 갈등 뉴스의 홍수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진다.나와 너를 가르는 정체성의 기준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 기준들이 서로를 적대시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허무는 것이 평화다. 높은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기 위해 마주 앉는 것이 평화다. 대화를 통해 협조하고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잘잘못을 따지고 주먹을 불끈 쥐는 것보다, 인내와 오랜 기다림으로 대화를 맞이하는 것이 훨씬 인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평화가 찾아들어, 갈등으로 쌓아 올린 높은 벽들이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변모하기를 희망한다.

2019-09-02 10:53:34

이성환 계명대 교수 (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아베는 헌법 개정을 할 수 있을까

올해는 메이지유신 151주년이다. 1945년까지의 77년간은 침략전쟁으로 일관했고, 그 후 현재까지 74년간은 평화로웠다. 근대 일본은 전쟁과 평화의 시대가 반반이다.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하는 현행 헌법 9조는 일본을 평화 국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다시 전쟁 국가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헌법 9조를 개정해 군대를 보유하여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려는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론이 그것이다.아베가 이끄는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정권은 2014년과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인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했다. 연립정권은 2016년의 참의원 선거에서도 3분의 2를 넘겼다. 참의원 선거 직후 아베는 "중의원도, 참의원도 3분의 2를 넘겼다. 이제 헌법 개정이다"고 외쳤다. 그럼에도 아베는 왜 헌법 개정을 못 했을까. 일본의 헌법 개정 절차 때문이다. 국회 발의 후 국민투표를 거치는 것은 한국과 같으나, 국민투표 방식이 다르다. 한국은 개정 조항을 일괄하여 한 번 투표한다. 반대 조항이 있어도 찬성표를 던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본은 개정 조항별로 찬반을 표한다. 개정 조항이 10개이면 투표용지도 10장이다. 번거로움을 약간 줄이는 방법으로 국회에서 합의하여 관련 조항들을 묶어 항목별로 투표할 수 있다. 자민당은 9조의 자위대 명기, 긴급사태 관련, 교육 무상화 관련, 참의원 선거구 조정 등 4개 항목을 예상하고 있다.문제는 여론조사를 보면 3개 항목에 대해서는 찬성률이 높으나 9조 개정에는 찬반이 팽팽하다. 국민투표에서 헌법 개정의 핵심인 9조 개정은 통과 가능성이 낮다. 아베가 밀어붙이지 못한 이유이다. 9조 개정에 실패하면 다시 헌법 개정을 시도하기까지는 요원한 세월이 필요하다. 수출규제 조치가 취해진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8석이 줄었다. 개헌에 찬성하는 무소속 의원을 합쳐도 참의원에서 개헌 세력은 3분의 2에 못 미친다.(최근 일부 야당의 동조 움직임이 있다). 수출규제로 한국 때리기를 하면서까지 심혈을 기울였던 아베에게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는 실패였다.아베는 왜 헌법 개정에 집착할까. 그는 2006년 '아름다운 일본'을 슬로건으로 52세의 최연소 총리가 되었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1년 만에 사임했다. 2012년에는 '강한 일본'을 내걸고 두 번째 총리에 취임했다. 둘을 합치면 '아름다운 강한 일본'이 그의 정치적 목표이다. 지향점은 2차세계대전 이전의 대일본제국이다. 침략전쟁으로 국가 '위신'을 높여가던 강한 일본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이런 그의 정치적 지향을 뒷받침하는 것이 '일본회의'다. 일본회의는 1960년대 반미와 천황제 폐지를 주창하는 좌익 학생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대일본제국헌법 체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신도(神道) 계열의 우익 학생운동의 연합체가 그 모태다. 그때의 우익 학생 지도자들이 지금의 일본회의를 지도하고 있다. 그들은 태평양전쟁 시기 대동아공영권을 기치로 아시아를 침략하던 그때를 일본 최고의 순간이라 한다.그 기저에는 경기침체, 노령화,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사회적 활력이 없어지고, 한국과 중국의 추격으로 존재감이 저하하는 데 대한 불안이 있다.이러한 불안이 침략전쟁 시대의 개인의 궁핍은 망각하고 펄럭이던 일장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2차대전 이전의 국가 상징을 모두 폐기했다. 일본은 천황제, 일장기, 욱일기를 여전히 국가 상징으로 사용한다.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의 포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배경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종료됐다. 한일 간의 군사협력의 상징이 사라졌다. 이를 핑계로 아베는 안보 위기론을 부추기며 헌법 개정에 박차를 가할 것이나, 쉽지 않다. 일본에게도 좋다.

2019-08-26 11:17:24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 핀란드대사/국제법 박사

[세계의 창]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보고서

주말에 넷플릭스를 이용,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봤다. 필자가 좋아하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TV를 켜자마자 바로 몰입되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둘러싼 사건이 나의 중견 외교관 시절 추억이 서린 비엔나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사건 전개 과정에서 펼쳐지는 법리 논쟁, 그것도 약탈 문화재 반환에 관한 문제는 필자가 줄곧 관심을 갖고 지켜봐 온 이슈 중 하나다.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주인공인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 분)의 삼촌인 페르디난트가 클림트에게 부탁하여 그린 부인 아델레의 초상화이다. 찬란한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갸름한 얼굴의 여인을 그린 이 초상화는 1938년 나치에 의하여 압류당한다. 나치는 1941년 이 그림을 비엔나에 있는 벨베데르궁으로 옮기고, 그림의 주인공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그림 제목을 'Woman in Gold'로 바꾼다. 바로 영화 제목이다.한편, 페르디난트는 모든 재산을 유일한 혈육인 질녀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남기고 1945년 사망한다. 영화는 나치의 점령에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망명한 마리아가 나치에게 빼앗긴 그림을 되찾아 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그림 시가가 1억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알고 사건에 뛰어들었던 신출내기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 분)는 비엔나에서 자신의 증조부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다는 것을 알고는 돈을 떠나 그림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소명 의식을 느낀다. 랜디와 마리아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나치 약탈 예술품 반환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설치한 반환위원회에 그림 반환을 요청하지만, 위원회는 아델레가 그림을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에 기증하도록 유언을 남겼다며 반환 불허를 결정한다. 랜디는 그림의 소유자는 아델레가 아닌 페르디난트이기 때문에 아델레는 그림을 기증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뉴욕으로 돌아온 랜디는 어느 날 책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클림트 화보를 발견하고는 환호한다.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미국의 주권면제법(FSIA)이다. 주권면제법은 원칙적으로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허용하지 않는다. 단, 외국 정부기관이 미국 내에서 영리행위를 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이와 관련된 소송은 허용된다. 화보 판매를 영리행위로 판단한 랜디는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그림 반환 소송을 제기한다. 오스트리아 측은 1976년 제정된 주권면제법은 동 사건에 소급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미 법원은 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 대법원은 동 법은 기존 국제법을 성문화한 것이기 때문에 소급 적용이 아니라며 오스트리아 측 주장을 배척한다. 재판 과정에서 양측은 미 국내 법원보다 중재를 통하여 사건을 해결하기로 합의한다. 중재재판소는 2006년 마리아 측의 손을 들어주고, 결국 그림은 벨베데르궁을 떠나 마리아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이 사건은 한 개인이 외국 정부기관이 소유한 나치의 약탈 문화재를 되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사건이 '약탈 문화재는 원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양시키는 데 기여한 면은 있겠지만, 많은 이가 관심을 갖고 있는 2차대전 이전 반출 문화재 환수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 우선, 이 사건 대상물 자체가 반출 문화재가 아니다. 이 분야 국제조약으로는 '문화재 불법 수출입 및 소유권 이전 금지에 관한 UNESCO 협약'과 '도난 및 불법 반출 문화재에 관한 UNIDROIT(사법통일국제협회) 협약'이 있으나, 두 협약 모두 협약이 채택되기 이전 발생한 사안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우먼 인 골드'를 보고 고무되었던 많은 이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법의 현실이다. 언젠가는 이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도록 국제법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2019-08-19 12:31:46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개인적 차이의 인정과 공정한 경쟁에 대한 논쟁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자 육상 중장거리 선수 '캐스터 세메냐'의 국제대회 여자부 경기 출전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두 번의 올림픽 육상 800m 우승자인 세메냐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과 테스토스트론 수치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이 대립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메냐가 18세의 나이로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대회 800m에서 우승한 후 IAAF는 그녀에 대한 '성판별 과정'을 진행했고, 2010년 7월 그녀는 즉시 모든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고 했다.지난해 4월 IAAF는 "선천적으로 테스토스트론 분비량이 많은 여자 선수들은 국제대회 개막 6개월 전부터 약물 처방을 받아 일정 수치(5nmol/L) 이하로 낮추지 않으면 국제대회의 제한된 종목에 출전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성 발달 차이'(DSD)에 대한 규정을 채택했다. 세메냐는 이 규정을 "그녀를 겨냥한 불평등한 규정"이라고 항의하면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으나 지난 5월에 패소했다. 세메냐는 불복해 스위스 연방법원에 항소했다. 스위스 연방법원은 지난 6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IAAF 규정은 한시적으로 효력이 정지되고 세메냐는 제한 없이 여자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고 했으나 56일 만인 7월 30일, 이전 결정을 번복하고 스위스 연방법원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여자부 400m와 1천500m 사이의 종목에 출전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세메냐 사례는 많은 논란과 관련 기관들의 반복적으로 서로 상반되는 결정을 불러왔다. 이는 근본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개인적 차이에 대한 인정과 공정한 경쟁에 관한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IAAF는 높은 테스토스트론 수치가 여자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이를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IAAF는 테스토스트론 수치가 경기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다양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예를 들면 2천127명의 선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약물을 복용(doping)하여 인위적으로 테스토스트론 수치를 높인 여자 선수들의 경기 성과가 몇 가지 종목에서 현저하게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한편 지금까지 여성으로서의 인생을 살아온 세메냐에게 이 규정의 적용은 차별적이고, 개인의 인권 침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부 과학자와 의사들도 IAAF의 규정과 그 기반이 된 연구 방법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우선 다른 변수들에 대한 통제 없이 단순히 테스토스트론 수치에만 초점을 맞추어 테스토스트론 수치가 경기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들은 농구에서의 큰 키와 수영에서의 긴 팔 등과 같이 어느 정도의 육체적 이점과 유전적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이들은 2018년 런던 마라톤대회 상위 10위 이내에 든 남녀 마라톤 선수들은 모두 아프리카 출신이었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유하고 있을지 모르는 어떤 유전적 특성도 찾아내 제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이 규정의 또 다른 문제는 약물을 투여하여 인위적으로 선수의 테스토스트론 수치를 낮추게 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이며 선수의 건강에 미칠 위험은 없는지에 관한 것이다.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공정한 경쟁이라는 명분으로 유전적 차이와 같은 다양한 기준에 의한 새로운 구분과 규정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과연 이와 같은 현상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어디까지 구분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나아가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기준에 의해 인간을 구분하고 개인을 그 틀 속에 가두려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을 어떤 범주로 구분하기 전에 다양한 개인적 차이를 가진 같은 인간으로서 인식하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2019-08-12 10:24:17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세계의 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지난달 6일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여기 포함된 서원은 연속 유산 형태의 9곳으로, 영주의 소수서원,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의 옥산서원, 달성의 도동서원, 함양의 남계서원, 정읍의 무성서원, 장성의 필암서원, 그리고 논산의 돈암서원이다. 각 매스컴에서는 '한국의 서원'이 우리나라의 14번째 세계유산이 되었다는 뉴스를 앞다투어 전하였고, 많은 사람이 이 반가운 소식에 뿌듯해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알아야 할 것, 즉 서원의 세계문화유산 선정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도되지 않아서, 내용보다는 겉모습이나 상대적 순위가 중요시되는 세태를 보는 듯하여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무엇이 '한국의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든 것일까? 그것은 뛰어난 건축술이나 주변 풍경과 어울리는 시각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라는 영문명처럼 서원이 성리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문의 장소였기 때문이며, 사람들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교적 문화와 전통의 특출한 증거였기 때문이다.서원의 역사는 조선 중기인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관학으로는 한양에 성균관, 그리고 지방에는 향교(鄕校)가 있었는데, 이들과 달리 서원은 지방의 지식인이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한국의 서원'은 학문기구일 뿐 아니라, 서적을 펴내는 출판, 책의 보관과 대여를 담당하는 기구이기도 하였다.또한 서원은 지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를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삼고 선현의 제사를 지내는 제향 시설이기도 하였으며 지역사회 유지를 위한 향촌 자치 운영 기구의 역할도 겸하였으므로, 교육, 종교, 행정의 여러 분야에 걸쳐 성리학이 조선 시대의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서원은 성리학 가치에 부합하는 지식인을 양성했고, 충과 효, 그리고 예를 강조하는 사회 전통을 자리 잡게 하였다.서원을 방문하면 놀라게 될 때가 있는데, 입구가 생각보다 작고 높이도 낮아서 키가 아주 큰 사람의 경우는 머리를 숙이거나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궁궐 문이라도 되는 듯 엄청나게 큰 입구를 가진 요즘 대학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데, 학문을 하는 겸손한 태도와 검소한 선비의 모습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물론 서원이 항상 긍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만은 아니다. 붕당정치에 휩쓸리기도 하고 급기야 '서원철폐령'까지 내려졌던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는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주는 서원의 역사로서 간직되고 연구되어야 한다.'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철저한 보존관리를 약속하였다. 하지만 보존관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여태 해오던 것처럼 기껏해야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거나 주변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유네스코로부터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로서 인정받은 문화유산을 제대로 이어나갈 적극적 발전 방안이 필요하다.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문화유산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에게 시사점이 많은 곳이다. 루브르는 원래 도시 방어를 위해서 지어진 요새에 불과했지만,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 확장되면서 왕궁이 되었고, 베르사유 궁전에 정궁의 자리를 내준 이후에는 왕실 아카데미와 살롱으로 사용되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에 박물관으로 탄생하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다녀가는 박물관이기에 상업화로 치우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나, 프랑스 역사의 산실로서 풍부한 자료를 다양한 매체로 제공하려는 노력은 매우 진지하다.'한국의 서원'. 미래 세대와 더불어 향유할 수 있도록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가꾸어 나가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19-08-05 11:13:54

이성환 계명대 교수(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한국은 '조선'이 아니고, 고통은 탈(脫)일본을 촉진한다

유치원생 손자가 "할아버지, 일본이 왜 우리나라를 못살게 해요" 했다. "한국이 미운가 봐"라고 하자, "왜 미워하는 데?" 더 이상 대화를 잇지 못했다. 어린아이 눈에도 일본의 급작스러운 수출규제 조치가 걱정스러운가 보다. 일본은 왜 이럴까.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 때문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나 일본 정부는 아니라면서도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외교로 풀어야 할 과거사 문제를 경제력으로 덮으려니 대답이 궁색하다. 아베 총리는 한일 간의 신뢰 문제라고 했다. 신뢰가 없어도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장사인데, 일본은 아예 가게를 걸어 잠갔다. 물건을 팔지 않겠다니 누가 그 가게를 믿을까. 이제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만은 '신뢰'라는 단어를 쓰지 못한다. 어쨌든 쌓인 불만을 못 이긴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서의 군사 침략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왜 물건을 팔지 않는가. 안 팔아서 생기는 손해보다 고객의 손실이 더 클 터이니 백기 투항할 것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필요한 물건이 그곳에만 있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물건은 없다. 발품이 들고 질이 조금 떨어질지 모르나 못 구하지는 않는다. 가게는 어떻게 될까. 손님이 다시 찾지 않으니 폐업하게 될 것이다.(일본 전체는 아닐지라도 그 물건을 파는 가게는 그럴 것이다)일본을 분노케 한 불만은 무엇일까.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위안부 문제는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의 책임이 인정되었고,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은 중국과 미국에 책임을 인정했고,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점은 일본도 인정해 온 것이었다. 이 때문에 과거사 문제는 이번 사태의 빌미이지 본질이 아니다. 한마디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불만은 총체적이다. 식민 지배의 연장선에서 과거에 말 잘 듣던 한국이 언제부터인가 자기 목소리를 내니 얄밉고, 분통이 터진다. 한국도 되돌아보니 과거에 당한 것이 너무 부당하고 억울해 따져야겠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수직적인 한일 간의 역학(力學)이 수평적으로 바뀌고 있는 전환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 한국을 '조선'이라 여기고 과거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본질이다.게다가 미래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다. 일본은 한반도가 언젠가는 통일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에 물결이 더 빨라졌다. 그런데 자기 '관할'이었던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은 닭 쫓던 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정은에게까지 러브콜을 보냈지만, 욕설만 돌아왔다. 일본은 핵무장을 한 통일 한반도, 그리고 중국에 경도된 통일 한국이 두려워진다. 일본에 대해 역사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통일 한국과 중국이 스크럼을 짜면 일본은 어떻게 될까. 존재감이 커진 한국과 중국이 버티는 아시아에서 일본은 미국에만 매달려 생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일본은 한국을 계속 말 잘 듣는 '착한 조선'으로 두고 싶어 한다. 75년 전에 소멸한 '대일본제국'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말하는 영광의 일본이다.미중 무역전쟁에서도 가격을 올리겠다고는 해도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는다.그래서 일본의 이번 조치는 경제 행위가 아니고 '침략'이다. 물건을 팔지 않으면 고객은 잠시 힘들지 모르나 고객을 잃은 가게는 문을 닫는다. 지금 한국의 기업과 국민은 힘들다. 그러나 지금의 고통에 비례해 한국의 탈일본화가 촉진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조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금의 한일 관계가 최악의 위기라고 한다. 기존의 한일 관계 틀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최악도 위기도 아니다. 과거의 조선과 일본제국의 관계가 현재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로 바뀌는 산통일 것이다. 견디면 반드시 이기고, 새로워진다.

2019-07-29 11:11:51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한일 간 갈등, 어떻게 풀 것인가?

일제강점하 강제징용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로 야기된 한일 간 갈등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상 분쟁 해결 절차인 외교적 협의와 중재위 설치를 제안했지만 한국 정부는 응하지 않았다.일본이 오사카 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우리 핵심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쓰이는 3대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하자, 한국 정부와 국내 민심은 격앙되었다. 죽창가와 국채보상운동, 12척의 배, 심지어 의병이라는 대일 항전 의지를 다지는 결기 어린 단어들이 등장했다.이런 가운데 일본이 청구권 협정상 마지막 단계로 제안한 '제3국 정부에 의한 중재위 설치' 기한이 지난 18일로 끝났다.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다음 날 "한국에 대한 필요한 조치를 궁리하겠다"고 협박조로 말했다. 일본은 지난 7월 1일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시키기 위하여 8월 말까지 관련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조치가 실행되면 일본 정부는 자동차, 가전, 전자 등 한국의 산업 전반으로 수출규제를 확대할 수 있다.일본은 규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이 아니며 안보상의 이유로 수출 관리 운용을 재검토하는 차원이라고 강변한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무역규제 조치 금지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는 '국가 안보상 수출입 제한 조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본이 항상 주장하는 법치(法治)의 왜곡일 뿐 아니라,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자유무역 이념과도 상치되는 꼼수이다.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경제무역 전쟁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비롯한 국제질서를 훼손시킬 뿐 아니라, 양국 모두에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그러면 양국 간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일본의 여러 가지 구차한 핑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무역규제 조치는 지난해 우리 대법원이 내린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따라서 갈등 해소는 사태 발단의 직접적 원인이 된 대법원 판결을 치유하는 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해결 방안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관련 기업이 기금을 조성해서 보상하는 방안(1+1), 여기에 한국 정부가 참여하는 1+1+알파 등의 방안이 거론되곤 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이 군대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였고, 54년간 일관되게 유지되어온 협정을 뒤집는 믿지 못할 나라라며 분개한다. 따라서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자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어떤 안도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로서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할 수도 없다. 이러한 딜레마를 타개하는 방안으로 국제사법절차에 호소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통한 해결을 제안하기도 하나, 제국주의 통치에 대한 ICJ의 비교적 관대한 태도와 일본의 ICJ 재판관 배출 경력 등을 감안할 때, ICJ보다는 청구권 협정에 규정된 중재위를 통한 해결이 더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이 경우 청구권 협정상 분쟁 해결 절차를 수용함으로써 대한민국이 국제법상 법치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중재위 수락 시 이미 발표한 3개 규제 품목 철회를 조건으로 요구할 수 있으며, 일본의 추가 제재 조치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중재 과정에서 외교적 타협 도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유의할 점은 이 중재위 심리를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제로섬 게임으로 몰고 가지 말아야 한다. 향후 분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양국 간 의견을 달리하는 협정에 대하여 제3의 권위 있는 객관적 기관에 유권해석을 의뢰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염두에 두고 대비하여야 한다. 양측 다 국수주의에 호소하는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성숙한 자세로 문제해결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대사·국제법 법학박사)

2019-07-22 11:34:27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캐러밴의 비극과 미국 이민정책

얼마 전 미국과 멕시코 국경인 리오그란데강에 빠져 사망한 한 남성과 아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미국으로 불법 입국하기 위해 강을 건너려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엘살바도르 국적의 젊은 아빠와 23개월 된 딸로 밝혀졌다.이 사진 한 장으로 미국의 이민정책이 재조명되고 있다. 소위 '캐러밴'(Caravan)으로 불리는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미 출신의 이주자들이 미국-멕시코 국경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본국의 절망적인 폭력과 치안 부재 그리고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목숨을 건 미국행을 택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 국경수비대에 의하면 2018년 한 해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숨진 이주자 수는 적어도 283명이라고 한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상황을 '침입'(invasion)이라 규정하고, 강경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남부 국경을 넘어오는 이주자들을 마약 밀거래, 테러, 성범죄, 성매매 등의 범죄와 연계해 이들의 이주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가족 분리' 정책으로 체포된 불법 이주자와 난민 신청자의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분리시켜 수용하였고(이 정책은 '아동 인권 침해'라는 연방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난해 6월 중단됨), 무관용 이민정책을 도입해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범죄자로 기소하여 감옥으로 보내고 있다.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려 2019년 2월에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의 논리는 보다 강경한 이민정책으로 이들이 미국행을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구체적 수치를 들어 강경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미국 남부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이주자 수는 2000년 164만 명을 기록한 후 지난 18년간 감소해 트럼프 대통령 집권 1년 차인 2017년에는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2018년에는 조금 증가한 약 40만 명을 기록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국가비상사태가 결코 아니며 정치적 목적으로 '가공된 위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법 월경은 남부 국경뿐만 아니라 북쪽의 캐나다 국경과 해안 국경을 따라서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7년 캐나다 및 해안 국경에서 체포된 불법 입국자 수는 각각 3천27명과 3천588명이었다.또 매년 미국에 정착하는 불법 이민자의 가장 많은 수는 비자가 만료된 후 계속 불법으로 체류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공식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2016년 불법 월경자 수는 56만3천204명인 데 비해 비자가 만료된 불법 체류자 수는 이보다 많은 73만9천478명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마약 밀거래자, 테러 용의자, 성범죄자 등은 대부분 공항과 같은 공식 출입국사무소를 통해 입국했으며, 중남미 이주자들에 의한 범죄율은 내국인들의 범죄율에 비해 오히려 낮다고 한다. 남부 국경을 통해 입국하는 이주자들 가운데는 난민 지위를 획득하려는 사람이 많은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이 난민 판결을 받을 때까지 미국 입국을 불허하고, 국경 공무원들이 하루에 처리하는 난민 신청 건수를 축소하고 난민 허가 기준을 높임으로써 대기일이 길어지고 난민 지위 거부율이 높아짐에 따라 불법 입국을 시도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사진 속 남성도 아내와 딸을 데리고 난민 신청을 하려 했으나 미국행 길이 막히고, 난민 신청 대기일이 너무 길다는 것을 알고, 가족과 함께 불법 입국을 시도하다 변을 당한 것이다.전문가들은 중남미 국가들로부터의 이주자 수는 미국의 이민정책보다는 이들 국가의 치안 및 경제 상황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미국 정치인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미국의 전통적 가치, 보편적 인권과 인도주의 그리고 이들 중남미 국가들의 현재 상황에 대한 미국의 책임 의식을 기반으로 포퓰리즘이 아닌 사실에 기초해 합리적인 이민제도에 하루속히 합의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2019-07-15 11:36:56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세계의 창] 살아 있는 문화유산-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먼 곳에 떠나가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한 기분이 들면서 집 근처에 가까이 올수록 마음이 점차 편안해지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느낌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익숙한 풍경과 눈에 익은 건물들, 곧게 뻗은 도로 옆으로 난 좁은 골목, 내가 다니던 카페와 세탁소의 크고 작은 간판들,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 깃든 추억…. 이 모두가 나를 이루는 부분, 즉 나의 '문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생활방식이나 작은 습관 등이 모여서 '문화'가 되고, 자기와 같은 문화에 속해 있을 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동질감과 친밀감을 쉽게 느끼게 된다. 문화는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서 역사성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문화유산'이다.지난 4월 전 세계를 안타깝게 했던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 화재 사건은 문화유산의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파리 중심부의 시테(Cite) 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12~13세기에 지어진 이래로 근 860년을 프랑스인들과 함께해 오면서, 최초의 고딕 양식 가운데 하나라는 건축적 가치 이외에 프랑스의 상징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이 되었다.화재 당시, 노트르담 대성당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면류관이 보관되어 있었고, 이 성유물을 구해온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의 튜닉(tunic겉옷)도 남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철저한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정치와 교육 등 사회의 모든 공공 분야에서 종교적 색채가 가려졌지만, 5세기 말 클로비스 왕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 '교회의 맏딸'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서구 그리스도교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프랑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또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삼부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고, 프랑스의 구국(救國) 성녀로 불리는 잔 다르크의 명예 회복 재판이 진행된 곳이기도 하다. 18세기에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건물과 조각상이 훼손되었지만, 나폴레옹 1세는 그 유명한 대관식을 이곳에서 거행하였고, 19세기에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의 배경으로서 새삼 주목받게 된 후 대대적인 재건 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노트르담 대성당은 돌로 쌓아 올린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역사의 질곡을 함께한 프랑스의 상징이기에, 그 화재를 목격한 시민들은 마치 프랑스가 불타는 것처럼 느꼈다고 증언한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성가를 부르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고, 성당이 타들어 가는 동안 시민들은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유물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고 한다. 문화유산은 한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 국민 절반 이상이 노트르담 대성당을 이전의 모습대로 복원하기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건축물이기 이전에 자신들에게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우리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숭례문 방화 사건 때, 많은 사람이 마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가슴 아파하지 않았는가? 문화유산은 나의 근원을 생각하게 해준다. 과거와 미래로 나를 확장시키며, 먼 곳으로부터 고향으로 돌아오듯 역사 속에서 나의 좌표를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문화유산은 공동체라는 의미 속에 너와 나를 이어주는 고리 같은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라는 가치는 인간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문화유산은 '연대와 일치'의 가치를 일깨워줌으로써, 개인주의의 가벼움 속에 낱낱이 흩어져버리는 존재의 무상함을 극복하도록 해준다.

2019-07-08 10:19:18

이성환 계명대 교수 (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적과의 대화

1997년 6월 하노이에서 맥나라마 전 미 국방장관, 응우엔 꼬탁 전 베트남 외무장관 등 베트남전쟁 지도자들이 비공개리에 모였다. 왜 더 빨리 전쟁을 끝내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적과의 대화'는 이 회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3일째, 이틀간의 토의를 바탕으로 각자 의견을 정리했다. 당시 북베트남 외무부 대미정책국장은, "미국은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와 같았다. 대국은 소국을 장기판 위의 말로 생각하면 안 된다. 소국에도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전쟁 주역인 맥나라마는 "베트남이 소련(현 러시아)과 중국의 앞잡이가 되어 미국을 위협한다고 봤다. 역사적으로나 베트남은 앞잡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존슨 대통령 특별보좌관 바터는 "공습을 통해 베트남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 했다. 군사적 위협이 대화를 견인한다는 가설이 잘못됐음을 알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베트남 측은 "폭탄을 퍼부으면서 협상을 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기만으로 생각했다"고 응수했다.맥나라마는 결론적으로 "쌍방에 오해가 있었다. 상대방의 목적과 의지를 알았다면 협상을 통해 해결이 가능했다. 종전 협상은 훨씬 이전에 가능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에 베트남 측이 그것을 언제 알았느냐고 묻자, 맥나라마는 "그저께 밤이었다. 너무 늦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전쟁 중에 미국이 한 평화 제안을 믿는가"라고 물었다. 베트남 측은 "지금이라면 당신 말을 믿을 수 있다"고 했다.뒤돌아보면, 베트남에 미국은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가 아니었으며, 베트남은 중국의 앞잡이로 미국을 위협하지 않았다. 베트남은 1979년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기도 했다. 이 회의를 통해 베트남전쟁은 서로에 대한 무지와 불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정설이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베트남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는 한 번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런 어리석음은 왜 반복되는가.공교롭게 지난 2월 같은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으나 실패했다. 현재도 양측은 자기중심적 사고로 암중모색을 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중국의 앞잡이로 핵으로 미국을 위협한다고 여기고,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공격하려 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제재가 대화를 촉진시킨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북한은 비핵화를 하는 순간 미국이 자신들을 말살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이런 오해를 풀려는 한국의 노력을, 미국은 북한의 대변인이라 여기고, 북한은 왜 같은 민족끼리 외세에 맞서지 않느냐고 따진다. 중국이 가세하려 한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이 한패가 되면, 일본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국은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방해할 것이라 여긴다. 그러면서 각자는 자기의 셈법만을 고집한다.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이 미국에 핵공격을 하리라는 것도, 미국이 북한의 목을 조여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것도 모두 비현실적이다.30년 후, 남북미중이 만나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아마 "그때 알았더라면" "30년 전에도 비핵화가 가능했었다"고 할 것이다. 상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 대화이고, 협상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국제사회이다.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깜짝 조우했다. 1시간의 단독 회동에서 무슨 말이 오갔을까. 사진 찍기용이라는 일부의 의심도 있으나, 실무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능력 없음이 홀로코스트라는 악을 낳았다고 했다.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다. 비핵화의 당사자들은 악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만 없었다.

2019-07-01 10:28:32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 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화웨이 사태, 원칙과 일관성 있는 외교 각성 계기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엄중하다. 북핵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사카 G20 정상회담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일 정상회담 개최조차 불확실할 정도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어 있다.미국의 중국 상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로 시작된 미중 간의 무역전쟁은 5G, 인공지능, 사이버 등과 같은 기술 분야를 넘어 양국 간의 패권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한국은 화웨이 사태를 둘러싸고 미·중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우리나라가 이렇게 외교적으로 사면초가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그간 우리 외교는 국제 규범에 입각한 원칙과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미·중 간 대립 양상을 보이는 이슈마다 한국은 양측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다 양국의 신뢰를 모두 잃었다. 미·일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 한국은 결국 RCEP에 참가한다. 미국이 반대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동맹국인 미국을 거슬러가며 중국이 주도하는 무역과 국제금융체제에 가입하고서도 중국으로부터 평가를 받지 못했다.사드(THAAD) 배치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 정부의 태도는 더더욱 실망스럽다. 사드 발사대 반입 보고 누락, 환경영향 평가 미실시, 국회 비준 동의 필요성 등 제반 이유를 들어 사드 배치를 지연시키다가 미국 조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017년 6월 9일 "정부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약속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꿀 의도가 없다"고 발표한다. 이후 우리 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조건으로 사드를 임시 배치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은 사드 철수를 요구하며 우리나라에 대하여 전 방위적 제재를 가한다. 사드 최종 배치가 지연되자 미국은 미국대로 우리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을 권유하였지만, 청와대 대변인은 북핵 공조 필요성을 들어 제소 불가 입장을 밝혔다. 결국 우리 정부는 국제 규범이나 원칙보다는 시류를 선택했다. 이는 2017년 10월 말 국회 국정감사 시 강경화 외교장관의 삼불 발언으로 이어져 주권 포기 논란까지 야기시켰다.이러한 상황에서 맞이한 화웨이 사태는 우리에게 더욱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보안 문제를 들어 화웨이 5G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옳고 그름을 잘 따져 판단하라고 겁박한다.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이달 초 서울에서 개최된 한 콘퍼런스에서 "신뢰할 만한 5G 공급자 선택이 중요하다"며 공개리에 한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후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화웨이와 화웨이 장비를 쓰는 'LG유플러스'를 콕 집어 '안보 위협'을 거론했다 한다. 지난 6월 7일 청와대 관계자가 "(화웨이 장비 사용이) 한미 군사 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말하자, 해리스 대사는 "나는 그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정면 반박했다. 화웨이 장비 사용 문제는 단순한 제품 구매 문제가 아니라,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전초전이다.사드 사태가 '국가 안위에 관한 사항은 주권 사항으로서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만 고수하면 되는 2차 방정식이었다면, 화웨이 사태는 경제, 기술, 안보, 국제 전략이 혼재되어 있는 고차 방정식이다. 사드와 화웨이 같은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미·중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며 시류에 편승하는 태도를 지속할 경우, 한국은 양측 모두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위기를 잘 극복하면 기회가 된다. 화웨이 사태가 한국이 국제 규범과 원칙에 따른 일관성 있는 외교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보약이 되길 기대한다.

2019-06-24 1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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