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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우리가 버린 과거에 미래가 숨어 있었네

100년 넘은 벽난로'조상 쓰던 가구북유럽 가정은 함부로 버리지 않아우리가 매정하게 과거 지우는 동안그들은 건강한 전통을 소중히 보존스웨덴 친구인 폴슨 부인과 덴마크 가정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코펜하겐 역에서 만난 우리는 수수한 종이 포장의 꽃을 한 단 샀다. 그런데 폴슨 부인은 초청해준 부부와 인사하며 그 종이마저 풀어버리고 맨 꽃다발만 건네는 것이 아닌가. "스웨덴에서는 꽃을 선물할 때 포장을 안 하는 편이에요. 최대한 자연 그대로 전하려는 것이겠지요."부인의 설명에 문득, 어린 시절 할머니 꽃밭이 떠올랐다. 학급 당번 날 아침이면 할머니는 화단과 뒤뜰에서 꽃을 골라 들려주셨다. 신문지 안의 목단, 붓꽃, 찔레꽃은 소박하나마 진솔하기 그지없는 멋진 꽃다발이었다.향수(鄕愁)로 번역되는 노스탤지어(nostalgia)는 그리스 어원으로 "누군가에게, 어딘가에게 되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채워지지 않아서 겪는 고통"이다. 지난 일이란 그 자체로 그리운 세계이지만 우리가 버린 과거가 실은 귀한 미래였다는 것은 북유럽에 와서야 깨달았다.북유럽 가정에 초대받으면 백 년도 넘은 벽난로, 증조모가 쓰던 주전자와 접시, 고조부의 의자, 외할머니의 손뜨개 탁자보와 조각천 방석보 등 오래된 소품과 가구를 쉽게 만난다. 주인은 집을 안내하며 옛날 물건과 가족사를 함께 소개한다. 스웨덴의 가정 폐기물은 99%가 재생·재활용되고 1%만 매립되는 현실, 도처에 중고품 가게를 두고 활성화시킨 소비생활 등은 함부로 버리지 않는 오랜 관습과 무관하지 않다.물건만이 아니다. 북유럽의 현재 생활방식은 더더욱 우리 옛 모습을 옮겨놓았다. 추위가 떠나는 봄부터 주말이면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나가 산딸기와 블루베리를 따고 버섯을 채취한다. 이는 가장 익숙한 그들의 여가 방식인데 많은 이들이 식용식물에 전문가 수준이다.북유럽의 자연은 사유지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오랜 관습법을 거쳐 공식 법으로 인정된 '자연접근권 또는 자연산책권'(Allemansratten) 덕분이다. 상업 목적이 아니면 어디서든 자연의 과실·작물과 꽃을 취할 수 있다. 가옥과 일정 거리만 떨어져 있으면 사유지에서도 야영이 가능하며 주인이 이를 거부할 경우 스스로 기관에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물론 여행객이 지켜야 할 자연보호의 규정과 책임은 엄중하다.개인 주택에서는 텃밭이 없어도 씨앗으로 날아와 마당에 절로 자란 식용식물을 그대로 식재료로 쓰곤 한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집 근처 호수, 강, 바다에서 '수영 혹은 목욕(bathing)'을 일상으로 즐긴다. 집에서부터 수영복에 수건만 걸치고 맨발로 아파트 마당이나 동네 골목을 지나 물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이곳이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2, 3배 많은 나라의 21세기가 맞나, 초현실주의 그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그러나 이 모두는 한때 우리의 모습이었다. 색동 조각보, 손 수예품, 옛날 그릇과 가구는 어느 집에서든 낯설지 않았다. 봄이면 뒷산 언덕에서 쑥과 냉이를 캐고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이 실개천에 모여 멱을 감던 풍경은 오래 전 일도 아니다. 사유지인 산과 들도 지금만큼 배타적 독점권으로 닫혀 있지 않았다. 우리가 개발과 근대화의 이름으로 과거를 매정하게 지우는 동안 북유럽에서는 건강한 전통과 깨끗한 자연으로 살아남았다. 문명이 자연과 과거를 대체하는 것도 아니었고 자본주의가 공유와 반대되는 것도 아니었다.너무 쉽게 떠나왔고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상실감-이에 더하여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우리 모두의 고통으로 남았다. 전통과 서양화라는 대책 없는 이분법을 넘어 '오래된 미래'라는 창조적 상상력을, 미세먼지에 가려진 푸른 하늘만큼이나 간절히 소망해본다.

2018-11-12 11:05:47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창] 일본을 지배한 이념 '와(和)'

日 여자계주 마라톤 19세 선수 투지넘어져 구간 종점까지 기어서 골인자기 몫 완수 못하면 남에게 폐 끼쳐'메이와쿠'(迷惑) 않도록 '와'에 최선마라톤 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지난 주말에도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가 있었고, 우리 집 앞을 달리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우리와 같이 사계의 아름다움을 가진 일본도 지금이 마라톤 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지난 10월 21일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전 일본 실업단 여자계주 예선전이 있었다. 42.195㎞를 6개 구간으로 나누어서 이어달리기하는 경기인데 모두 27개 팀이 출전했고, 상위 14개 팀만 본선에 진출하는 중요한 경기였다. 사실 이런 대회가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겠는가만, 어린 한 선수의 모습에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했다.이와타니 사업 소속 이이다 레이(飯田怜) 선수가 제2구간을 달리다가 넘어졌다. 그 충격으로 오른발 골절상을 입었고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다음 이야기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19살 어린 선수는 구간 종점 약 200m를 더 남긴 지점에서 두 손과 두 발로 아스팔트를 기기 시작했다. TV 카메라는 그녀를 쫓았고, 현장 담당자는 조용히 그녀의 옆을 지켰다. 감독은 대회 본부에 기권하겠다고 한 모양이지만, 이이다는 이 방법밖에 없고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묵묵히 기어갔다. TV 중계 아나운서는 "힘내라 이이다!"라는 성원을 보냈고, 다음 주자는 눈물을 닦으면서 긴 시간 그녀를 바라보면서 기다렸다. 한 손에는 다음 주자에게 넘겨야 할 어깨띠를 꽉 쥐고, 무릎은 까지고 피가 맺혔다. 급기야 어깨띠를 넘기고서야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조용히. 어깨띠를 받은 다음 주자는 꼴등이지만 뛰었다.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드라마가 아니다. 그래서 감동도 하고 화도 났다. 무엇이 이렇게까지 하게 했을까. 이이다는 최소 3, 4개월 치료가 필요한 중상을 입었고, 무릎에는 후유증이 있었다. 병원을 찾은 감독에게 이이다는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는 뒷이야기도 들렸다. 일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배턴을 넘기는 프로 정신에 감동했다"는 글이 대다수이지만, "주최 측은 왜 중지시키지 않았는가"라는 비난도 적지 않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를 탓하는 소리도 있다.일본을 일컬어 '일'(日)이라고 하지 않는다. '와'(和)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 음식을 '와쇼쿠'(和食), 다다미방을 '와시쓰'(和室), 기모노를 '와후쿠'(和服)라고 한다. 우리가 잘 먹는 '화과자'는 일본의 전통 과자이다. 이렇게 '와'는 일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다.604년 일본 최초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17개조'가 제정 반포되었는데, 그 제1조가 '와(和)를 존중하라'였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일본을 지배한 이념이며 일본인의 생활 깊숙한 곳에 자리한 '와'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이원복 교수는 '먼나라 이웃나라-일본'에서, 일본은 섬나라인지라 '와'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고 풀었다. 사방이 바다라 도망갈 데가 없는 섬나라 사람들은 '와=사이좋게 지내다'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서로 다투게 되면 결국 모두가 망한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은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여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 자신의 자리를 정확하게 지키고 자신의 맡은 몫은 완벽하게 해야만 했다. 만약 누구 하나라도 제 몫을 완수하지 못하면 사회는 무너진다. 제 몫을 완수하지 못하면 바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되고, 이것이 '메이와쿠'(迷惑)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메이와쿠'가 되지 않는 행동을 최우선한다.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이다 선수의 투혼은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잘잘못을 따지는 여러 말이 많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이런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야 한다. 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한 그녀에게 마냥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18-11-05 11:39:18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사유재산'과 교육의 공공성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 이라며원아모집 중단으로 학부모 불안모든 아동이 특별히 보살펴지는유아교육 공공성 의미 되새겨야정부 지원을 받는 사립유치원의 비리 문제가 최근 폭로되기 오래전부터, 필자는 사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유치원 운영은 원장의 가족 모두를 '먹여 살리는' 하나의 사업이고, 원장이 되면 엄청 부자가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지인의 말에 의하면 영어, 수학과 미술을 가르치는 작은 규모의 한 학원에서조차도 원장이 매우 작고 어두운 공간에 아이들을 앉게 하고 마치 '꿀꿀이죽'과 같은 형편없는 급식을 주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 작은 학원에서도 아동의 권리와 원장의 교육철학은 온데간데없고 돈벌이가 우선시되고 있으니, 현재 연일 쏟아지는 사립유치원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안 그래도 필자가 길을 걷는데 유치원의 크고 화려한 외관 건물이 눈에 띄었다. 지난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이었던 최순실도 별다른 자격 없이 유치원 원장이었다고 하지 않는가.필자는 이번 비리 사건으로 모든 유치원 원장의 교육 자격을 운운하고 사립유치원 전부를 포함시켜 사태를 일반화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립유치원 운영을 둘러싼 비리와 아동학대 문제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임을 방증하고 있다. 사립유치원의 여러 비리와 횡포는 그간 국가의 감시 밖에 있었던 사립유치원의 운영과 함께 눈덩이처럼 커져 갔고, 더 이상 교육자가 아닌, 스스로 '사업가'로 여기는 원장의 안이하고 무반성적인 태도로 이어갔다.그래서 이번 사태에서도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는 국공립유치원보다 사립유치원을 다니는 학생 수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볼모로 원아모집을 중단한다며 학부모를 불안하게 하고 사립유치원의 공교육화를 당당하게 저지하고 있다. 한유총의 이런 태도는 학부모들의 분노를 더욱 높이고 있다. 현재 정부의 유아교육의 공공성 정책과 회계 감시 시스템 도입에 맞서 한유총이 언급한 '사유재산'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시민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념이 법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실제로 균열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독일의 교육학자 코네프케는 '사유재산'이라는 말의 의미는 진공에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봉건사회 지배의 붕괴와 인간 해방과 자유의 이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중세 봉건사회의 신분질서가 붕괴하고, 자본주의적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누구나 신분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자유의지에 따라 일할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갖게 되었고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법적 자유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돈을 축적할 수 있는 시민계급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재산을 투자할 수 있었다.즉 신분질서로부터 해방된 사회라 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하에서 개인의 자유는 실제로 재산을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는 사적 소유권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제도권 밖의 교육은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교육방법을 시도할 수 있는 교육과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 그러나 계층, 장애 여부, 피부색, 종교, 출신 등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들이 평등하게 자신의 다양한 능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동의 권리가 실현되는 교육이 필요하며, 이런 차원에서 필자는 유아교육의 공공성 의미가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어린이들은 자신의 욕구와 관심에 따라 특별히 보살펴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국가는 이러한 유아교육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를 목도하며 우리 사회의 시민 모두가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18-10-29 10:15:34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판문점선언은 국회 비준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남북관계 이끌고 갈 정치적 선언조약 발효에 필수적인 조항 없어북핵문제 진전 전혀 없는 현 상황종전선언은 우리가 할 약속 아냐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에 대한 정부, 여당의 압력이 거세다. 정부, 여당은 국회 비준 동의 요청 근거로 두 가지를 든다. 첫째로는 남북관계 합의 사항을 정권 교체에 관계없이 이행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필요성을, 두 번째로는 동 선언이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상 국회의 비준 동의를 요하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에 해당된다는 것이다.우선,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이행해 나가야 할 합의 사항이라면, 추진 과정에서 공론화 과정 내지 야당과 최소한의 협의 과정이라도 거쳤어야 한다. 정부 여당의 태도는 일방적으로 합의한 선언에 대하여, '당신네들이 정권 잡더라도 이 합의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하라고 다그치는 격이다. 선언문 내용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동 선언은 작금의 한반도 위기 상황을 초래한 북핵문제에 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선언문 마지막 항 말미에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것이 전부다. 과거 6자 회담에서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와 '모든 핵시설 불능화와 검증'까지 약속하고도 6차에 걸친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이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미국과의 긴밀한 조율하에 북핵 폐기 단계에서 북한에 제공할 반대급부이지, 북핵문제에 진전이 전혀 없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약속할 사항이 아니다.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은 안보리 결의 위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보리 결의 2397호는 기계류, 산업장비, 운송수단 등의 대북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다음으로, 남북관계발전법상 '남북합의서' 문제를 살펴보자. 본디 조약의 체결 및 비준에 관한 업무는 외교부 소관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임을 감안, 남북합의서 체결 및 비준에 관한 업무는 2005년 12월 법제정을 통해 통일부 소관으로 하였다. 그러나 절차는 조약체결 절차를 그대로 준용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발전법이 규율하는 '남북 합의서'는 쉽게 말해서 '남북 간 조약'을 의미한다. 그러나 판문점선언은 남북 양 정상이 남북관계를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표현한 정치적 선언 내지 신사협정이지 '남북 간 조약'이라 할 수 없다.왜냐하면 첫째, 조약에 '선언'이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법적 권리, 의무 관계를 설정하는 조약에는 합의 사항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판문점 선언과 같이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거나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조약에는 권리, 의무 관계 발생 방법과 시점을 규정하는 발효 조항이 필수적이나, 판문점 선언에는 이러한 조항이 없다. 결국, 판문점 선언은 내용이나 형식, 모든 면에서 남북 간의 조약, 즉 남북관계발전법상 '남북 합의서'에 해당되지 않으며, 따라서 비준 대상이 될 수 없다.백 번 양보해서 동 선언이 비준 대상인 '남북합의서'에 해당된다고 가정해보자. 정부는 9월 11일 국회에 제출한 비준 동의안에서 판문점선언 이행과 관련된 비용으로 2019년 소요 예산 4천712억원을 명시했다. 총 소요 예산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추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항간에는 총 소요 비용이 최소 50조원에서 최대 15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정부가 소요 예산을 추산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연한 문서에 대하여 국회의 동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헌법 75조가 금하고 있는 포괄적 백지위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비준 대상이 되지 않는 문서를 제시하며, 헌법에 반하는 포괄적 백지위임을 요구하는 비준 동의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국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전 주핀란드 대사

2018-10-22 11:37:22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세계의 창] 스웨덴식 사랑법(Swedish Theory of Love)

스웨덴 체제 핵심 개인 독립·자율성어떤 형태로든 의존하는 것 싫어해온정주의 벗고 사회 보편 관계 조성한국도 보수·진보 통합 가치 모색을스웨덴의 민물가재 파티(crayfish party)는 북반구의 여름 절정에서 만나는 축제다. 스톡홀름대학의 한 파티에 초청받아 그들의 놀이 문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 민물가재 그득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왁자하게 먹고 마시던 중 누군가 술잔을 스푼으로 부딪쳐 주목을 끌더니 짧은 인사에 노래 한 소절을 선창한다. 참석자들이 일제히 다음을 받아 멋진 합창이 되었는데 노래가 끝나 건배를 하고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잠시 후 다시 누군가 선창을 하고 합창을 일궈내고 서너 시간의 파티는 그렇게 이어졌다.하지축제, 성탄시장, 가족모임에서도 스웨덴 놀이의 공통점은 합창과 군무이다. 부모와 아이, 모르는 사람끼리도 함께 어울려 100년, 200년도 더 된 전통 민요와 동요를 부르며 기막히게 율동을 맞춰낸다. 이쯤 되면 개들도 주인을 따라 들고 뛰며 대동사회 분위기에 동참한다.우리의 놀이 문화를 새삼 짚어본다. 명절 가족모임에서 아이들이 '곰 세 마리'를 부르면 어른들은 손뼉을 치며 흥을 돋운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공연하고 어른은 관객으로 남는다. 아이로서는 평생 치르게 될 개인 플레이를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랄까.노래방에서 만나는 어른들의 놀이 문화를 보자.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로 어깨동무하는 순간은 마지막 곡이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개별 독창의 연속이다. 탬버린과 춤으로 흥을 맞추는 이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조연 내지 관객이며 주인공은 분명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다. 재미를 위해서지만 화면의 점수를 확인해가며 내기를 하는 건 역시 성과주의 경쟁에 익숙한 우리의 모습이다.북유럽은 어느 나라보다 사회 중심의 공공가치에 강하다. 연대성과 협력은 이들에게 절대 덕목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북유럽의 사회공공가치가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에서 출발하고 개인주의와 밀착되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역설이다.역사학자 트래고드(Trägårdh)가 명명한 '스웨덴식 사랑법'은,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의존하거나 불평등한 관계가 아닌 독립된 주체 간에서만 가능함을 의미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의존하는 것을 싫어한다. 한 세기를 거쳐 스웨덴이 추구해온 정책과 제도의 핵심은 개별 주체가 모든 형태의 종속과 의존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자선으로부터, 노동자는 고용주로부터, 아내는 남편에게서, 아이는 부모로부터, 노년의 부모는 장성한 자녀에게서 독립하는 것." 법과 정책의 기본 목표는 개별 주체가 주변의 사적 의존에서 벗어나 사회 일반의 보편적 관계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었다.가까운 이들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심리적 의존과 부담이 없다는 건 어떤 뜻일까? 가족 친지에게 대하듯 타인에 대해서도 배려, 칭찬, 평가, 비판 등을 공정히 동등하게 할 수 있는 사회. 특별히 챙기고 봐줘야 할 이유도, 잘 보이고 비굴해야 할 이유도 없는 관계. 내 가족, 내 친구, 내 사람이라는 온정주의와 배타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사회중심가치에서 개인주의가치로, 확장과 수렴이 유연한 체제-일단의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정반대일 것 같은 개인주의와 사회공공가치가 북유럽에서는 실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온 점을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다.이를 보면, 한국 보수세력의 자유주의론과 진보세력의 민주주의론이 스웨덴식 통합의 길을 함께 모색해보는 건 어떨까. 합리적 개인가치와 공동체 사회가치를 결합한 한국식 사랑법이 나올 법도 하다.

2018-10-15 10:12:10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 창] 한국의 추석과 일본의 '오본'

日 양력 8월 15일 전후 조상 혼 모셔위패 놓인 상에 과일·꽃 공물도 올려신사·절에서 유카타 입고 춤추기도친목 다지는 한여름밤 즐거운 축제9월 말 한국을 찾겠다는 일본 친구에게 "추석 연휴니 날을 달리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추석, 그게 뭐야"란다. 대한민국 큰 명절의 하나인 추석을 설명하기에 부족해서 '한국의 오본'이라고 얼렁뚱땅 내뱉었는데, 뜻밖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고 고향을 찾는 이가 많아서 교통이 매우 혼잡하다는 사실, 긴 휴일이 이어지고 사회 전체가 기능을 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 등등이 매한가지라 명절의 분위기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추석이 음력 8월 15일, 오본은 양력 8월 15일 전후의 행사이니 양력과 음력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잘못이다.석가모니 10대 제자 중 신통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목련존자가 여름 수행 안거를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도에 떨어져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음식을 드리려고 하지만, 음식은 입에 들어가기 전에 불에 타 재가 되어서 공양할 수가 없었다. 이에 석가모니에게 도움을 청하자, "승려들이 여름 수행을 마치는 마지막 날에 비구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독경을 하면 그 공덕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했고, 그 말을 따랐더니 어머니만이 아니라 아귀도의 망자들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이후 불가에서는 수행을 마치는 음력 7월 15일을 백중날이라고 하며 돌아가신 조상님을 공양하는 날로 정했다. 그리고 아귀보를 받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법회 우란분(盂蘭盆)을 열었다. 오본(お盆)은 여기서 비롯된 단어이다. 이른바 일본 고유의 민속행사와 우란분의 습합(習合)이 지금의 오본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음력을 쓰지 않으니 음력 7월 15일에 대한 개념은 없고, 그 언저리 양력 8월 15일 전후를 오본이라고 한다.오본은 시기만이 아니라 행사 내용, 풍습이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다음과 같다. 8월 13일 아침, 조상의 혼을 모시기 위한 상을 차린다. 우리의 차례상처럼 온갖 음식이 정성스럽게 올라가는 그런 상이 아니다. 가정에 상시 모시고 있는 불단 안에 만들거나, 불단 앞에 작은 상을 놓는다. 이 상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과일, 꽃, 경단 정도의 공물을 올린다.여기에 꼭 올라가는 것 중에는 가지와 오이가 있다. 가지는 소, 오이는 말을 뜻하는 것으로 각각 나무젓가락 4개를 꽂아 그 모양을 형상화한다. 조상의 혼이 이승에 올 때는 말을 타고 빨리 오고, 저승으로 돌아갈 때는 소를 타고 천천히 돌아가라는 뜻이란다. 처음에는 단순히 다리 4개만 달더니 이제는 가지와 오이를 가지고 만든 재미난 모양의 소와 말이 SNS를 통해서 소개된다. 해마다 예술적 가치가 더해져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들이 쏟아진다. 오이를 가지고 오토바이를 만들고, 로켓을 만드니 찾아오는 조상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만 같다. 여하튼 조상을 맞이해서 아침저녁으로 참배하고 15일경에는 승려를 불러 독경을 하고 조상에게 감사를 표한다. 8월 13일 밤에는 저승에서 찾아오는 조상의 혼이 헤매지 않고 잘 찾아오도록 불을 피우고, 16일에는 바로 이 장소에서 조상의 혼을 저승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불을 피운다.또 하나, 이 기간 중 신사와 절을 중심으로 유카타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추는데 이것이 본오토리다. 지옥에서 벗어난 죽은 자들이 즐거워서 춤을 추는 형상이라고도 하고, 조상의 혼을 기분 좋게 돌려보내기 위한 춤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종교적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지역사회의 친목을 위한 여름밤의 즐거운 '마쓰리'의 하나가 되었다.나라마다 특별한 날이 있다. 우리의 추석을 그들의 오본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같은 날 같은 행사는 아니지만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2018-10-08 11:15:30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난민'을 둘러싼 담론과 권력의 문제

지구촌 난민 6천800만명에 이르러대학 교양과목 토론 주제로도 부각안전한 곳을 찾는 세계적 이주 현상민족적 경계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필자가 맡고 있는 교양과목에서 수강생들은 팀별로 자유롭게 사회 주제를 정해서 그것에 관해 조사하고 발표를 하게 된다. 몇몇 수강생들은 자유탐구 주제 선정에 막막해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목차를 간략하게 구성한다. 지난 학기까지 사회 이슈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다문화' '난민' 관련 이슈가 이번 학기에는 수강생들이 가장 많이 다루고 싶은 주제가 되었다. 왜 특별히 '난민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때 '난민'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 어떤 '이미지', 타자관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가?2018년 전 세계 각지에서 국경을 넘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난민은 약 6천800만 명에 이른다. 전 지구적 망명과 이주의 발생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자국에서의 내전,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른 나라의 공격,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고 안전한 곳을 찾아 거주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 환경 재해, 자국의 산업 착취 현실과 같은 경제적 환경으로 인한 극도의 빈곤을 들 수 있다.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난민 문제'라는 말은 한국으로 대량 유입하는 난민으로 인해 문제가 비로소 발생하는 사안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요컨대 '난민 문제'라는 말 자체는 난민 유입과 관련한 복잡한 사회정치적, 경제적 연관 관계보다 단순히 '난민'에 초점을 두고 문화적, 민족적, 종교적 출신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난민에 대한 '불법이주자' '우리'와 완전히 다른 '그들' '자살폭탄테러' '범죄' 등을 연상케 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다. 몇몇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퍼뜨리고 있는 단어와, 제주에 입국한 난민들을 '잠재적 테러범'과 '가짜 난민'으로 설명하는 내용은 난민 반대를 심화하고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독일에서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난민 유입을 둘러싼 갈등과 반이민 정서는 2015년 연말 쾰른에서 일어난 이민자 집단 성범죄와 지난달 동부 작센주의 소도시 켐니츠 사태를 통해 강화되고 있다. 이때 켐니츠에서 일어난 극우단체의 폭력시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독일 사회 내부에 여전히 존재하는 극우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하는 계기를 촉발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극우세력과 분리시키며 자신과 인종주의 문제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간과하는 데 기능하고 있다.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현대 사회에 작용하는 권력을 단순히 개인을 억압하는 힘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 간의 사회적 관계 속에 내재한 것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권력은 특정한 계급이 소유하는 것을 넘어, 개인들이 자기 확신에 차 있는 가운데 지배 담론을 사용하고 지식을 생산함으로써 공고화되고 있다. 푸코는 그의 후기 사상에서 '통치성'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면서 인간이 권력에 종속되는 동시에 스스로 주체가 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1948년 선포한 세계인권선언에 의하면 망명이란 '모든 사람이 박해를 피해 타국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라는 사실, 즉 인권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국제적으로 합의하고 우리나라도 가입한 난민 협약의 단어조차도 '우리'와 '그들'을 가르고 서열화하는 난민 지배 담론에 편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적 이주 현상에 직면하여,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게 굳건해지고 있는 민족적 경계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고, 난민을 포함한 이주자들이 한국의 난민 정책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망명과 이주가 세계화로 인해 강화되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갈등 상황과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8-10-01 10:13:14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 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판문점선언 영문본 파문과 비준 문제

남북 공동으로 UN에 제출한 문서 '양측이 금년 중 종전선언 합의' 명시 문대통령 '금년 내 목표' 발언과 딴판 불분명한 문서로 비준 요구는 억지 우리 정부와 북한이 지난 6일 유엔에 공동 제출한 판문점선언 영문본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는 선언문 3조 3항이다. 종전선언과 관련, 우리 정부는 '남북한은 금년 내에 종전선언을 하기 위하여 (with a view to declaring an end to the War) 3자 혹은 4자 회담을 적극 추진키로 합의하였다(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actively pursue…)'로 번역하였다. 즉, 종전선언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및 평화체제 구축과 함께 3자 회담 혹은 4자 회담 개최를 통하여 적극 추진할 대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남북이 공동으로 유엔에 제출한 문서에는 '양측이 금년 중 종전선언에 합의하였다'(The two sides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고 하여, 금년 중 종전선언을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는 지난 4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북측 영문본과 정확히 일치한다. 통상 우리나라가 조약을 체결할 경우, 상대국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때는 한국어본과 영어본 두 언어본을 준비하고, 영어 이외 언어를 사용할 경우에는 상대국 언어본과 한국어본, 그리고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국제 공용어인 영어본, 이렇게 3개 언어본을 보통 작성한다. 그리고 해석에 차이가 있을 경우, 어떤 언어본이 우선한다는 언어조항을 반드시 넣는다. 영어 이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와 조약을 체결할 경우, 영어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조약문은 영어로 먼저 작성한 후, 각각 자국어로 번역을 한다. 따라서 '해석에 차이가 있을 경우 영어본을 따른다'고 규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판문점선언의 경우, 협상도 우리말로 하였고, 선언문도 한글로 작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에 해석에 이견이 생겼으며, 이 해석상 이견에 대하여 유엔에 제출한 영어 번역문이 유권해석을 해주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북한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식으로 말이다. 정부 측은 유엔에 제출한 문서는 단순 번역본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보는 것은 한글본이 아닌 영어본이며, 그것도 유엔 문서로 회람되었을 때 그 문서가 갖는 공신력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동 선언문을 유엔 문서로 회람하고자 했다면 영문본에 대한 협상이나 공표도 선언문과 함께 이루어졌어야 마땅하다. 또한 정부가 의도하는 바가 '금년 내에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유엔 제출 영어본 표현대로라면, '종전선언 등은 남북만이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3자 또는 4자 회담을 추진해 나가기로 한 것'이라 했던 통일부 대변인의 말이나 '금년 내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 발언의 진의는 무엇인지도 밝혀야 할 것이다. 정부는 지난 11일 판문점선언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조속한 동의를 주장하며 야당을 압박 중이다. 그러나 종전선언과 같은 핵심적 사항에 대하여 합의사항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문서를 내밀며, 동의를 하라는 것도 억지 춘향이다. 나아가 판문점 선언은 북한이 국가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체결 절차, 형식, 내용 등 모든 면에서 조약으로서 필요한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서명과 동시에 발효한다'든지, 혹은 '상호 간 비준서를 교환할 때 발효한다'든지 하는 조약에는 필수적인 발효 조항도 없으니, 비준 근거는 더더욱 없다.

2018-09-17 11:36:46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세계의 창] 중소기업강국 덴마크의 다른 길

中企 기술혁신 중심의 덴마크 경제 정부역량·정책대응이 기업에 호재 한국 中企 근로자 비중 OECD 최고 불공정거래·기술도용 등 개선해야 코펜하겐의 도심 상가는 다른 수도에서처럼 세계적인 명품매장으로 가득하다. 입구에는 쇼핑객을 줄 세워 통제하는 양복차림의 가드들이 서 있는데 기묘한 조화랄까 부조화랄까. 그들 뒤로 오래된 수제 모자점, 개인 양장점, 중고 옷가게 등이 개성 있는 간판을 걸고 꼿꼿이 성업 중이다. 소상공업체를 비롯한 덴마크 중소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거리 풍광이다. 덴마크는 수년째 호경기를 이어오고 있고 지난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세계경쟁력 지수에서 6위에 올랐다.(한국은 27위) 덴마크 경제의 중심에는 강한 중소기업이 자리하고 있는데 기업 수로는 전체 기업의 99%, 근로자 수로는 64%, 부가가치에서는 60%의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2년 중소기업의 고용증가율과 부가가치 성장률은 각각 4%, 9%이다. 덴마크 기업의 제일 장점은 현장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실용 위주의 기술 혁신이다. 현재의 대기업도 혁신을 거듭하여 성장한 어제의 중소기업이며, 지금의 중소기업도 혁신 끝에 변신할 내일의 대기업이다. 예를 들면, 라슨 회사(Larsen Strings)의 창업주는 오케스트라의 첼로 주자였는데 현재는 20여 명의 직원과 세계 최고의 현악기 줄을 생산, 99%를 수출하고 있다. 리낙(LINAK)은 세계 최초로 수평 전동모터를 개발한 업체인데, 부모의 농기계공장을 물려받은 한 기술자가 직원 7명으로 시작하여 오늘날 2천 명 직원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현재 2만7천 명의 직원에 매출액 7조5천억원을 기록하는 댄포스(Danfoss) 역시 농부의 아들이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다락방에서 혼자 기계부품을 만들며 시작한 에너지 기계기술업체이다.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과 성장에 정부가 주된 공신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특히 부러운 대목이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유럽연합은 '중소기업 우선정책'(Think Small First)을 법제화했는데 덴마크는 이를 자국에 모범적으로 안착시켰다. 모든 분야, 모든 부처의 정책에서 중소기업 관련 규제를 대폭 줄이고 법규를 실용화하며, 신설 정책의 초기부터 작은 기업을 우선 배려, 보호하고 있다. 2017년 유럽연합위원회(EC)는 덴마크의 중소기업 친화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높이 평가하며, 그 근거로 창업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고 행정과 규제의 부담이 적으며 공무원의 역량이 뛰어나고 정부가 효과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덴마크 중소기업의 출발점은 초'중학교부터 진행되는 창업교육이다. 기업은 학교에 교육 자료를 제공하고 교사들을 교육하여 어린 학생들이 창업을 꿈꾸고 기업가 정신을 배우도록 지원한다. 실용적인 직업교육은 국제적으로도 정평이 있는데 교육 과정이 현장실습과 훈련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총리의 점심 샌드위치를 인턴 요리사가 만든다는 이야기는 이미 수십 년 전에 회자되었을 만큼 현장훈련이 일반화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기업 근로자 가운데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이 OECD 국가 중 그리스와 함께 가장 높다. 구조적으로는 분명 중소기업형 국가이지만 사업 환경과 운영 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려서부터 창업기술보다 대학 진학 위주의 교육을 받아 중소기업 진로를 희망하기 어렵고, 대학생들은 대기업공직 취업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요독점적 상하구조는 불공정 거래와 기술도용을 낳고 그 부담과 피해는 차례로 떠넘겨져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에 종착되고 있다. 이러한 틀과 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자금지원 등은 단발성 휘발 정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거리는 덴마크보다 더욱 촘촘히 자영 중소업체로 채워져 있다. 중소기업이 설자리를 잃으면 대기업도 경제 전체도 길을 잃는다는 생각에, 오랜만의 익숙한 거리가 반가우면서도 내딛는 발걸음이 편치 않았다.

2018-09-10 10:16:22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 창] 책방에서 공부하기 '션샤인 학당'

차 마시고 담소 나누는 책방의 학당타임머신 타고 19세기 말 역사 탐험당시 일본이 가장 자랑스럽기보다평범한 일본인들은 아파하는 시대 책방이 바뀌고 있다. 책을 손으로 만지고 직접 구매하는 공간에서, 차도 마시고 담소를 나누며 세상을 향해 소통하는 그런 공간이 되고 있다. 경복궁 영추문 앞 '역사책방'도 그 하나다. 매주 1회 이상 글쓴이들이 강연하고, 글쓴이를 만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인다. 전시회도 음악회도 한다. 책방 주인이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미스터 션샤인'에 빠진 탓일까. 화요일 밤마다 '션샤인 학당'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어 19세기 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악령이 출몰하는 조선의 바다', 두 번째는 '아메리카 유진초이의 탄생', 세 번째는 '구동매, 김희성이 본 일본'이라는 주제로 각각 19세기 말의 조선의 역사, 미국의 역사, 일본의 역사를 공부한단다.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는 날에는 나에게도 참석해주기 바란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니 할 말이 없다고 했지만, 학자가 아니라 평범한 일본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그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화요일은 야간 수업이 있어서 가지 못한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자, 수화기 너머 책방 주인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19세기 말이야말로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일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시대가 아니었을까"라는 말에 나는 "NO"라는 답을 하고, 그들도 이 시대를 아파하고 피해자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을 더했다. 19세기 말 일본을 이야기하면서 '피해자'라는 위험한 발언을 했다. 내뱉은 말이니 그럴싸하게 설명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책방 주인을 위해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가 1972년에 완결한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NHK 대하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을 들먹였다. NHK는 이 소설을 2009년 13부작 드라마로 만들어 3년간 방영했다. 시바 료타로는 의화단 사건을 빌미로 비롯된 러시아의 만주 지배에서 러일전쟁의 직접 원인을 찾는다. 러시아가 만주를 지배한다는 것은 대륙으로 이어진 조선반도까지 진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반도에 러시아 세력이 진출하면 일본 역시 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 방어를 위해서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러일전쟁은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구하기 위한 애국적 전쟁, 국가적 위기에 맞선 일본의 자위적 노력이었다고 합리화한다. 이른바 먹히지 않기 위해서 먹어야 했다는 러일전쟁에 대한 설명은 러일전쟁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희석하고, 이후 계속되는 근대 일본의 전쟁에 대한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역사관'이라고 했지만, 러일전쟁에 대한 이런 인식은 어떤 특별한 사학자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안방극장을 장악한 대하드라마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갔고, 이것이 평범한 일본인의 머릿속에 그렇게 그려졌다. 시바 료타로의 기본 생각은 '당시 일본에는 조선이 러시아의 영토가 될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본인들은 최선을 다했다.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고, 러일전쟁이다'. 이 생각은 '언덕 위의 구름'을 통해서 평범한 일본 사람들의 역사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에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전쟁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뻔뻔한 자기변명뿐이다. 그렇다고 일본 사람 모두가 양심이 없는 악한 사람들이라 역사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양심을 건드리지 않는 역사관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른바 전쟁을 해야만 했고 제국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알기는 해야 할 것 같다. 화요일 오늘밤에도 션사인 학당에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를 항해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벼슬보다 더 좋은 총 쏘는 것보다 어렵고 그보다 더 위험하고 그보다 더 뜨거워야 하는 '러브' 그런 것이나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이다.

2018-09-03 12:54:40

장동희 전 주 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북핵 해결 없이는 한반도 평화 불가미국과 긴밀한 공조체제 유지 필요대북 제재 강화, 경제 인센티브 늘려핵포기 유도하고 검증 장치 마련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발표 하루 만인 지난 24일(현지시간) 돌연 방북 취소를 발표하였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방북이 취소됨에 따라, 북핵문제는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시작하여 판문점 남북 정상회의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 이르는 평창 프로세스는 김정은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무력사용도 불사할 것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과 중국까지 가담하여 더욱 강화된 제재 조치로 궁지에 몰렸던 김정은은 양 정상회담을 통하여 완전히 상황을 역전시켰다. 김정은은 형을 암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한 패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국 지도자로 변신하였을 뿐 아니라, 대남 및 대미 협상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김정은은 또한 미국 대통령과 대등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함과 동시, 북한을 '깡패국가'에서 '보통국가'로 바꾸어 놓았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결과 채택한 공동선언문에서는 회담 전날까지도 미국 측이 공언하였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비핵화"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그러면 북핵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에 혹시나 하며 가졌던 일괄타결에 대한 기대는 접고, 과거 실패한 북한과의 교섭사를 반면교사 삼아, 현실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첫째,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비핵화 대화에 응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함과 동시 핵 포기 시 제공할 인센티브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대북 협상이 본격화되면 결국 북한의 핵 포기와 이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연계시키느냐가 협상의 관건이 될 것이다. 북한이 핵 포기 이후에도 정권이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안전보장 장치는 마련해 주어야 하겠지만, 북한의 상응한 비핵화 조치 없이 보상이나 제재 완화를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또한, 북한의 약속 위반이 드러날 시 언제라도 제재를 복원할 수 있는 스냅 백 조항은 필수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싱가포르 방문 시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게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나 종전선언이 단순한 정치적 선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임에 비추어, 이는 북한 비핵화가 본격화되는 단계에서 검토할 사안이다. 둘째, 북한은 2013년 '핵경제 병진 노선'을 채택하였으나, 금년 4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정책 노선으로 채택하였다. 6차 핵실험까지 실시하여 핵에 대한 자신감을 확보한 김정은이 이제 경제발전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러나 핵 포기 없이는 경제발전이 절대 불가능함을 주지시킴과 동시 핵 포기 시 제공할 경제적 인센티브를 극대화하여 북의 핵 포기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과거 북핵 협상은 항상 검증 문제에서 좌초되었다는 점을 유념하여 핵폐기에 따른 검증 장치 마련에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NPT 및 IAEA 안전조치협정에 복귀하고, 추가의정서 가입을 통하여 의혹 시설에 대한 무제한 접근을 포함한 강화된 검증을 수용하도록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핵 해결과정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관계 유지는 필수다. 최근 우리 정부가 보여준 북한 석탄 밀반입 사건 처리 과정, 빈번한 대북 제재 예외 요청, 성급한 종전선언과 경협 추진, 개성공단 남북사무소 설치 등에 대하여 미국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24일 한미 간 불화가 고조되고 있다고까지 보도했다.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 없이 남북관계 진전이나 한반도 평화는 불가하다는 현실을 깨닫고,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하에 북핵문제 해결에 매진해 줄 것을 당부한다.

2018-08-27 10:29:56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폭염, 기후변화와 환경의식

전 지구적 자연 재해인 불볕더위해가 갈수록 여름 더 길고 더워져 누구나 '지구 온난화' 걱정하지만자가용'에어컨의 편리함에 의존 올여름 7월 말부터 몇 주째 강렬히 내리쬐는 뙤약볕, 도심 속 수많은 자동차와 건물 외벽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와 달구어진 아스팔트로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연일 열대야로 숨이 턱턱 막힌다. 정부는 에어컨 가동으로 인한 세금 폭탄을 방지하고자 폭염을 자연 재난 현상으로 간주하여 폭염 대책을 강화시키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이러한 불볕더위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현상이다. 8월 초 독일 쾰른의 낮 최고 기온이 38℃, 스페인 마드리드는 40도, 프랑스 파리 35도, 포르투갈 리스본은 44도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2003년 독일 여름 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건물(대학 강의실, 도서관, 관공서 등)에는 에어컨이 없어 무더위와 씨름하며 보낸 기억이 난다. 독일 미디어에서는 무더위를 이기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도심 속 나무 심기, 도로 물 뿌리기, 매일 2ℓ 물 마시기 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전 세계적인 폭염과 가뭄 현상은 일시적이고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기후 변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과학 전문가들에 의하면 앞으로 여름이 더 길고 더워질 뿐만 아니라, 겨울도 더 추워진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는 우리 인간이 초래한 것이고, 그것은 인류가 산업화 과정(화석 연료 사용, 자동차, 비행기 운항, 건물 냉난방, 개발의 명목하에 일어나는 무분별한 산림 벌채 등)에서 온실 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한 것에 기인한다.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어떤 노력을 하는가? 인간을 육체적 노동과 자연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 준 기술의 발전과 경제 성장은 자연의 희생을 대가로 이루어졌다는 성찰과 비판이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환경 파괴의 경각심과 경제 성장의 한계를 인식한 학자들은 보고서(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 개렛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와 책(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통해 천연자원의 고갈, 생태계의 변화, 환경의 위기를 경고하였다. 한편, 국제사회에서 기후 변화에 의한 영향과 인류 생활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는 1980년대 말부터이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인류 모두가 협력하고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큰 국제회의로 리우 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여러 국제적 협약의 가장 중요한 기본 원칙인 리우 선언이 채택되었다. 2015년에는 세기 말까지 선진국, 개발도상국 관계없이 각국이 산업화 시대 이전 대비 지구의 온도 상승을 낮추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자 서명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하였고, 그 협약은 2020년 이후 적용하기로 하였다. 또한 성장 중심의 경제주의에 따른 부작용을 인식하고, 이에 개발을 하더라도 환경을 고려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 용어는 '친환경 도시 계획' '지속 가능한 소비 및 생산 체제' '지속 가능 발전 교육' 등의 개념으로 확산되었고, 각 개인들이 국제적, 지역적 차원에서 인류, 사회, 환경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유지하기 위한 책임을 가지고 노력하는 실천적 과정을 뜻한다.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국제사회의 협약과 지속 가능성의 이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에 담긴 원칙은 우리의 일상에서 여전히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필자 역시 지구 온난화를 우려하면서 동시에 자동차가 제공하는 편익성과 이동성, 건물 냉난방에 의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상이 된 폭염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 마련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환경 의식이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8-08-20 10:23:34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세계의 창] 북유럽 학생들은 어디서 무엇을 배우나

입시 무관한 북유럽 취미사회활동정규교육만큼 중요한 학습 과정부모의 적극적 관심과 도움이 한몫대학과 노동시장서 높은 성과 보여 지난 7월, 스웨덴 친구의 초청으로 노르쇠핑 도시의 한 기계체조 공연에 참석했다. 아마추어 학생 행사여서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뜻밖에 북유럽 교육의 속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다와 숲이 가까운 가설공연장에 도착하니 60명의 학생이 부모 30여 명과 텐트촌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매일 저녁 공연을 하고 바비큐 파티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주일간의 여름 캠프였다. 2시간 동안 지구환경을 주제로 수준급의 체조 공연이 펼쳐졌고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은 신속히 무대 장치를 걷고 설치하며 손발을 맞춰냈다. 기획에서 실행까지 학생들의 아이디어 회의와 연습이 일궈낸 멋진 작품이었다. 행사 주체인 노르쇠핑 청소년서커스단(Norrköpings Ungdomscirkus)은 40년 역사의 인기 높은 기계체조 단체이고 6~19세 지역 청소년을 회원으로 받는다. 인구 12만의 노르쇠핑에는 스포츠 단체 200여 개를 포함, 650개의 다양한 자유 단체가 있고 대다수는 학생 활동과 연관된다. 그런데 이 모든 청소년 활동은 입시나 성적과 무관하고 학교, 교사와는 더더욱 별개로 행해진다. 노르쇠핑 청소년서커스단은 회비와 25%의 정부 지원, 그리고 부모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체조 교사는 특정 기간에만 초청되고 평시에는 회원 선후배 간의 전수로만 서로 배우고 훈련한다. 전문체조선수를 기대하는 것도 아닌데 부모들은 열성적으로 자녀를 뒷바라지한다. 평소에는 장비 점검, 청소, 간식 준비에 손을 보태고 행사 때면 함께 무대복을 만들며 의료인은 의료 처치를, 엔지니어는 장비 관리를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한다. 학교나 성적과 상관없는 이런 활동을 왜 할까. 학생들의 대답은 하고 싶어서, 재미있어서, 멋져 보여서 등이었다. 부모들은 '아이가 원하니까'에 더하여 자녀 건강에 도움이 되니까, 공동체에서 책임과 신뢰를 배울 테니까, 부모끼리 친분을 쌓고 아이 문제를 상의할 수 있어서 등을 거론했다. 북유럽 교육에는 학교 정규 수업 못지않게 가정과 자유 단체, 사회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덴마크는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적극 인정하는 대표적인 나라인데, 법률상 의무교육의 개념을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닌 '교육을 받는 것'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덴마크의 한 여의사는 청소년 시절 체조 단원으로 유럽 각국 대회에 출전한 경험을 소중히 여겼고, 축구선수 호날두 사진으로 방을 도배한 코펜하겐 의과대학의 여학생은 고교 때까지 한 청소년 축구클럽의 그 나름 스타 공격수였다. 스톡홀름에서 만난 여성 엔지니어는 초중고 동안 치어리더 단체 트위스터(Twisters)의 일원으로 국제경연대회에 수차례 참가했다. 어린 나이의 취미 활동과 여행, 부모와의 친밀한 관계는 학교 수업 못지않게 일반적이고 중요한 이곳의 학습 과정이다. 인생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경험들이 있고 특히 어린 나이에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그리고 학교가 이 모두를 책임질 수는 없다. 우리가 교육의 이상과 현실을 고민하는 동안, 북유럽은 다양하고 폭넓은 교육을 제도적 관습적 문화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덕분에 여기 학생들은, 핀란드를 제외하면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에서 겨우 중간치에 불과한데 대학이나 상급직업학교에서 전공과 실무 역량에 집중하며 국제성인역량평가(PIAAC), 학문 역량, 노동생산성 등에서 한국을 앞질러 선두그룹에 나선다. 여전히 해가 중천이던 스웨덴의 여름밤. 90명 대가족의 바비큐 테이블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날 파티에서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 국영수 문제를 푸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지 않았을까.

2018-08-13 14:36:10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 창] 일본 강타한 옴진리교 사형 집행

사형수 13명에 대한 형집행 완료무라카미 하루키도 찬성 글 기고교주 죽었다고 옴진리교 사라질까시신 인도 요청 등 신격화 움직임 태풍 종다리가 일본 본토에 상륙해서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있는 와중에, 일본은 '사형 집행'에 대한 이야기로 연일 시끄럽다. 지난 7월 26일 옴진리교도 전 간부 6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고, 이것으로 옴진리교 사건 사형수 13명에 대한 형 집행이 완료되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형제도 그 자체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적어도 이번 집행에 대해서는 반대한다고 할 수 없다'는 글을 29일 마이니치신문에 기고했다. 하루키는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와 옴진리교 신자를 인터뷰해서 정리한 책 '언더그라운드'(1995년)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을 접했기 때문이다. 한편 '사형 집행으로 옴진리교와 관련된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하고, '이것으로 사건을 끝내겠다는 의도나, 사형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이런 전략은 용서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옴진리교는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본명 마쓰모토 지즈오·63)가 1986년에 창시한 신흥종교다. 공중부양을 한다는 등의 황당한 신비체험으로 세력을 확장했고 한때 1만 명이 넘는 신자가 존재했다. 여기에는 명문대 출신, 의사, 은행원 등 엘리트도 상당수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없지만,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宮台眞司)가 1980년대 한 발언이 설득력 있다. "당시 사람도 사회도 위만 바라보는 고도 경제성장기에 성장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대학에 입학할 무렵, 혹은 사회에 진출할 무렵 고도성장기는 막을 내렸다. 일본은 1973년부터 저성장시대가 되었고, 1980년대는 축제 분위기의 버블시대였다. 이런 사회에 자신이 몸담을 곳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여기에 달리 의지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옴진리교가 등장한 것이다." 옴진리교는 1989년 사카모토 변호사 가족 3명 살해 사건, 1994년 나가노현 사린 사건, 1995년 지하철 사린 사건 등 일련의 사건을 일으켰다. 지하철 사린 사건은 출근시간대 도쿄 중심의 지하철역에서 맹독성 사린가스를 뿌려 일반 시민 13명이 죽고 6천300여 명이 쓰러졌다. '왕이 되어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교주의 교의에서 비롯된 사건인데, 이것으로 일본 전역은 공포에 휩싸였으며 전 세계가 경악했다. 과연 '형 집행 완료'는 옴진리교의 사건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을까. 옴진리교는 법원의 명령으로 1995년 해체되었지만, 일부 신도들이 '알레프' 등 이름을 달리하고 옴진리교의 뒤를 잇고 있다. 이전에 신자였다는 한 50대 남자는 "종교는 교주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신자가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보다 신격화될 것이다"는 말을 했다. 지금 일본 사회는 1980년대와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위에서 미야다이 신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지금 이 사회에 몸담을 곳을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결국 자신을 담을 수 있는 세계, 이른바 신흥종교에 의지할 것이다. 내년에 새 천황이 탄생한다. 연호도 바뀔 것이다. 그러니 사형집행은 헤이세이 시대의 흉악한 사건을 헤이세이 시대에서 마무리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뜻이겠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소외되는 사회라면 신흥종교의 늪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옴진리교 사건은 합법적 죽음으로 그들을 사회에서 배제했다고 해도 그 유령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일본의 신흥종교 옴진리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알레프와 관계 있는 부인과 자녀들은 시신 인도를 요청했다. 유골을 가지고 순교자처럼 신격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2018-08-06 11:09:00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세계의 창] 독일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본 교육자의 과제

학교 밖 단체서 민주시민교육 맡아민족사회주의·반유대주의·인종 등역사적 테마에 접근 깊이 있게 토론정치적 판단력 갖춘 시민 되게 도와 지난 6개월간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작용하였지만 은폐되었던 성차별적 구조, 권력과 폭력의 문제를 가시화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의 젠더 기반 폭력과 공포와 혐오를 생산해내는 폭력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이끌어내지 못하고, 단순히 성별 간 대결 양상을 보이고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각 개인들이 오늘날 정보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접하고 있는 '미투 운동'과 같은 시사적인 이슈나 사회 논쟁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타인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장(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고 다양한 입장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가치와 관계한다.그러나 모든 입장이 다 재현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인권을 무시하는 견해나 차별, 비하 등 반인륜적인 표현을 여타 견해들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교육자는 보편성을 거부하는 입장을 지닌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비난하거나 그러한 논쟁을 수업에서 다루지 않기보다, 인권을 무시하거나 차별의 발언이 나올 수 있는 담론을 만드는 사회 구조에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교육과 관련해서 잠시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에 눈을 돌려보자.독일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정치교육'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우리는 정치교육이라 하면,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교육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시민교육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치교육'이라는 용어는 능동적인 시민의 형성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정치적 분별력을 키워주는 것을 의미한다.필자는 200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안네 프랑크 교육소라는 학교 밖 민주시민교육기관에서 3개월간 교육 활동가 양성 과정에 참가하였다. 이 교육기관은 나치스가 유대인을 박해하자 프랑크 가족이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살았던 프랑크푸르트의 적극적인 지역 주민에 의해 설립된 단체이다. 가족 중 유일하게 생존한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안네 프랑크의 이름으로 청소년 만남의 장소가 생겼으면 하는 입장을 표명했었고 그의 희망은 구체화되었다. 안네 프랑크 교육소는 인권의 존중을 중요 가치로 삼는 정치교육의 장이 되었다. 이때 안네 프랑크의 자서전과 일기는 교육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서 안네가 던진 세 가지 질문(나는 누구인가? 나를 둘러싼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가?)에서 출발하여, 이 물음과 현 시대와의 관련성을 학습하게 된다. 독일의 현 세대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독일 민족사회주의, 반유대주의, 이민, 홀로코스트, 인종주의 등과 같은 역사적 테마에 접근하게 하고, 참가자와 안내자 간의 토론과 대화를 통해 역사의 현재성을 다룬다. 청소년들이 주로 이 기관을 방문하는데, 이곳에서 역사적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관심 있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것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까닭은 동년배의 안내자가 참여 집단을 위한 안내를 담당하기기 때문이다.이처럼 안네 프랑크 교육소는 교육 주체들이 다양성의 인식과 존중을 배우면서 정치적으로 성숙하고 판단력을 갖춘 시민이 되도록 돕고 있다. 이때 교육자들은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를 학습자들에게 강압하지 않아야 하고 동시에 스스로 비정치적이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열정을 갖고 교육 주체의 경험과 신념을 논쟁과 성찰이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으로 끌어들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18-07-30 10:26:59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 전 주 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국제 핵비확산 체제와 북핵문제

1985년 '핵비확산조약' 가입한 북1993년 탈퇴로 1차 북핵 위기 발생'비핵화' 약속 깨고 6차례 핵실험미북 싱가포르 성명 큰 의미 없어 "1945년 7월 16일 새벽 5시 30분,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 공군기지 먼 외곽지역에서 최초로 완전한 규모의 핵분열 폭탄 폭발 실험을 실시하였음. 방출된 에너지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TNT 1만5천t 내지 2만t 이상으로 추산됨." 처칠 총리 등 연합국 수뇌부와 일본의 전후 처리문제 논의를 위하여 포츠담에 체류 중인 트루먼 대통령에게 최초의 핵무기 탄생을 보고하는 전문이다. 이어 소련(1949), 영국(1952), 프랑스(1960), 중국(1964)까지 핵실험에 성공하는 가운데,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핵 확산 차단 필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1953년 12월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핵'(Atoms for Peace) 제하 유엔총회 연설을 통하여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제창한다. '핵비확산' 의무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양 축으로 하는 핵비확산 체제의 기본 골격이 제시된 것이다. 1959년 아일랜드의 유엔총회 결의안 제출을 시발점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핵비확산조약(NPT)은 1968년 6월 12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후 1970년 3월 5일 발효된다. NPT는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에 성공한 위 5개국만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그 외 국가는 핵무기를 제조하거나 획득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NPT 신규 가입국은 가입 후 18개월 이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안전조치협정(Safeguards Agreement)을 체결, IAEA에 사찰 권한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1985년 NPT에 가입한 북한은 1992년 4월이 되어서야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한다. 이 협정에 따라 북한이 제출한 핵 관련 신고서가 사찰 결과와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한 IAEA가 이의 규명을 위한 특별사찰을 요구하고, 북한이 이에 반발, 1993년 3월 NPT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다. 카터 전 미 대통령의 중재로 1차 위기를 극복하고, 미북 간에 합의를 본 것이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다. 제네바 합의에서 미측은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제공하고, 북한은 모든 핵시설 동결과 궁극적 철거, 사용 후 핵연료봉 8천 개 모두 해외반출, IAEA 특별사찰을 통한 검증을 약속한다. 그러나 이 제네바 합의는 2002년 비밀 농축우라늄 시설이 발각됨으로써 파기된다. 2005년 9월 19일 채택된 6자 회담 공동성명은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 폐기와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를 규정하고 있다. 후속 합의에서 북한은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정확한 공표 및 2007년 12월 31일까지 모든 핵시설의 불능화를 약속한다. 그러나 이 합의도 검증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대포동 2호 발사, 북한의 2차에 걸친 핵실험으로 수포로 돌아간다. 이후 북한은 2012년 2월 미국의 식량원조 대가로 IAEA 사찰관 감시하 영변 우라늄 농축 가동 중단과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 유예를 약속한다. 그러나 이 약속 또한 두 달 후인 4월 13일 은하 3호 발사로 무위로 끝난다. 이에 앞서 남북한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합의한 바 있다. 이 합의는 핵통제공동위원회 설치와 상호 사찰까지 규정하였으나, 사찰 대상과 방법을 둘러싼 이견으로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결국, 북한과의 핵 협상 역사는 북한의 살라미 전술과 약속 불이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4·27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 미북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약속했다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란 문구가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이유다.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이래 누대에 걸친 선대의 유훈이라고 주장하며 6차에 걸친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이다. 약력: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 전 주 핀란드 대사

2018-07-23 10:35:43

최희경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세계의 창] 북유럽 이민정책의 오해와 이해

북유럽 이민정책 보수 우경화 논란과거보다 엄격해도 포용주의 유지가족주의·납세윤리 문화권별 차이감정적 혐오 아닌 합리적 정책 필요 최근의 제주 난민사태를 계기로 북유럽 이민정책이 새삼 우리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기사들은 주로 북유럽의 난민 규제와 보수 우경화에 초점을 두고 한국 상황을 빗대고 있는데, 그 논리와 해석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북유럽은 19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며 약 100년간 포용주의 이민 노선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에 비서구권, 즉 남미·중동·아프리카 등에서 분쟁과 내란을 피해 난민들이 유입되며 분위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무슬림 난민 수가 급증하고 2015년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그 규모가 정점을 찍으면서 북유럽에도 국경 통제와 난민 심사가 강화되었다.그러나 전반적으로 북유럽 이민정책은, 지난해 US News & World Reports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여전히 지구상에서 이민자들에게 가장 우호적이다. 난민들에게 제공되는 공공서비스는 무상의 언어교육·정규교육·직업교육, 낮은 비용의 임대주택, 무료에 가까운 의료혜택은 물론이고 떠나온 모국의 언어·종교·문화를 보존토록 하는 지원에까지 이른다. 무슬림 종교 계통의 사립중고등학교를 설립할 경우, 일반 사립학교 설립에서와 같이 정부로부터 약 75%의 재정을 지원받는다. 스웨덴은 국가예산으로 무슬림 종교지도자까지 양성하고 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난민들이 장차 시민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하지만 이 기대가 다시 갈등의 기점이 되기도 한다. 필자가 현장조사에서 확인한 이민 갈등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가족주의와 사회교육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크다. 북유럽 아이들은 이르면 생후 6개월부터 보육원이나 유치원 등에서 돌봄과 교육을 받는다. 육아는 가족을 넘어 사회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에서는 '내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한다'는 전통 가족의식이 강하다. 이민가정의 사회보육시설 이용률은 60%로, 북유럽가정의 95~98%에 크게 못 미치는데 결국 난민아동은 북유럽 언어 습득과 학습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 덴마크 정부가 난민아동을 대상으로 강압적인 육아교육제도를 실시하면서 또 다른 갈등이 되고 있다. 둘째, 근로와 납세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북유럽 제도는 자발적 노동윤리, 그리고 조세제도에 대한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된다. 각종 복지수당은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동시장으로 돌아와 일하고 세금을 내라는 의도이며 웬만큼 질환이 있거나 장애가 있어도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세금을 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부당한 공권력을 겪고 피해 온 난민들이 수당에 안주하지 않고 낯선 일자리를 수용하며 정부와 조세제도를 신뢰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사회문화적인 차이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스웨덴의 공식 여론조사에서와 같이 여전히 시민 다수는 난민을 포함한 이민자들에게 긍정적이다. 필자가 만난 이들도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를 경계했으며 주변의 긍정적인 이민 사례를 들며 난민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곤 했다. 다만 북유럽 이데올로기의 다양성과 비례대표제도의 특성상 나라마다 십수 개의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고 매번 여러 정당 간의 연합정권 형성이 불가피한데, 극우정당의 연정 참여가 실제 시민들의 바람 이상으로 이민정책 보수화를 확대시키기도 한다.우리나라는 이민자 비율도 낮고 정책적인 준비도 아직 부족하다. 높아진 국민소득과 그간 세계화·국제화를 외쳐온 국가정책이나 기업문화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가장 관대한 북유럽 이민정책을 기준으로 보수화의 논리를 구하는 것은 적합지 않아 보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혜를 모으고 합리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8-07-16 11:28:03

고선윤 백석예술대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세계의 창] 후쿠오카에서 듣는 '그리운 금강산'

일본 사람이 그 맛 그대로 연주 한국 사람 노래 더하니 하나 돼 월드컵 독일전 승리 축하 세례 벨기에와 싸운 일본 응원 화답 전주에서는 국제영화제가 있었고, 영화제와 함께하는 음악회도 있었다. 나는 여기서 사회를 봤다. 끝나고 인사말을 할 기회가 있어서 "전주에서 대구 사투리로 사회를 본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자, 큰 박수를 받았다. 대구를 떠난 지 몇십 년이 되었건만 말끔한 서울말이 서투른 사람이다. 그러니 전주에서의 대구 사투리는 나 자신에 대한 극복이고 영남과 호남의 화합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었다. 지난 6월 27일 밤, 후쿠오카 중심가에서 음악회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도 사회를 봤다. 일본과 오랫동안 무역업을 하는 나래코리아의 김생기 대표는 우리의 아름다운 음악을 일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국에서 음악가들을 모시고 일본의 음악가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마련했다. 김 대표의 거래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 홀을 자주 찾는 사람들까지 약 50여 명이 공간을 꽉 메웠다. 푸치니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베르디의 '여자의 마음'으로 시작되었는데 모두 참 잘한다는 박수 소리가 넘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데 2부에서는 특별했다. '그리운 금강산'의 피아노 전주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후쿠오카에서 나고 자란 후쿠오카의 딸이 내가 알고 있는 그리운 금강산의 그 냄새 그 맛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우리의 성악가가 노래를 더하니 일본인지 한국인지,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이어서 메이지의 대표적 문학가 이시카와 다쿠보쿠 작시의 '첫사랑'이 일본말이라고는 무엇 하나 모르는 우리 성악가의 풍부한 음색으로 울려 퍼지니 모두 숙연해졌다. 26세에 요절한 슬픈 시인을 기억하는 것일까. 아니다, 저마다 가슴에 담은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는 듯했다. "나의 첫사랑은 일본분이었습니다"는 말에 모두가 웃음을 나누고,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흔하디 흔한 멘트이지만 나는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남과 호남의 화합'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한일의 가교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벅찼다. "첫사랑의 아픔을 아련히 내 마음에 떠올리는 날"이라는 가사를 따라 부르고, 내 입에서 떠나지 않는 시간이었다. 6월 27일의 밤이다. 그렇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FIFA 세계 랭킹 1위인 독일을 2대 0으로 이긴 바로 그날이다. 음악회를 마치고 이자카야에서 뒤풀이를 하는데,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우리 스태프 하나가 큰소리로 "대한민국이 독일을 1대 0으로 이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흥분해서 텔레비전을 켜라, 볼륨을 높여라 하는데, 또 한 골이 터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기쁨의 술잔을 돌리면서 일본 친구들은 우리를 축하한다고 했고, 우리는 아시아의 힘이 바로 이거라면서 일본의 8강 진출도 꿈이 아니라고 덕담을 나누었다. 축구라고는 커다란 둥근 공을 발로 찬다는 거 외에 아는 것이 없지만, 나는 지난 3일 새벽 8강 진출을 놓고 치러진 일본과 벨기에의 경기를 지켜봤다. 후쿠오카의 그 친구들과 공간은 달리하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장면을 보고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3위 벨기에를 상대로 전반전부터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후반에 연속 2골을 넣으면서 8강 진출에 성공하는 듯했다. 그런데 벨기에는 만회골에 이어 동점골, 결국 추가 시간에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일본 선수들은 경기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일본에 골을 내준 벨기에의 분발을 촉구했고 벨기에가 추격골을 잇따라 터뜨리자 마치 한국팀이 골을 넣은 듯 흥분하는 생중계 해설자가 야속하기만 했다. 숱한 슬픈 이야기 속에서 선뜻 가까워질 수만은 없는 나라 일본이지만, 나래코리아의 작은 음악회에서 마음을 나눈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싸운 일본 선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2018-07-09 10:28:47

홍은영 교수

[세계의 창]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우리의 자세

김정은 위원장 '판문점 발표문'에핏줄 혈통 민족 강조 부담감 느껴감성에 호소 판단 흐리게 할 수도남북 이질성·내부 차이 고려해야 지난 4월 27일 남북 양 정상이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산책과 회담을 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었다. 양 정상이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발표문을 읽던 모습 역시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4·27 남북 정상회담은 이 회담을 지켜보는 동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 그리고 평화에 대한 기대를 안겨준 분명 특별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러한 감정은 남북 정상회담으로 온라인에서 '핫'하게 되었던 평양냉면과 대동강 맥주의 인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필자는 언론이 중계한 남북 정상회담을 실시간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저녁에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상회담 소식을 접하면서 감동을 받았고, 정상회담 전 개최된 '봄이 온다' 공연을 시청하면서도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문화 교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남북 관계에 대한 희망을 전달해주었다. 그러한 희망은 공동 번영과 활발한 남북한의 교류(문화예술, 여행, 경제 등)에 대한 기대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남쪽, 특히 서울은 대학을 포함하여 많은 분야에서 이미 '포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을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보고 남북 교류와 대북 사업 관련 기회를 엿보는 기대감도 들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보고 희망을 느끼는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발표문'에서 강조한 표현을 들었을 때, 복잡 미묘한 감정과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필자 역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지만,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 하나의 문화를 가진 북과 남', '한 혈육, 한 형제, 한민족'과 같은 말을 들었을 때, 무언가 무거운 부담감과 폭력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한 체제로의 흡수 통일의 폭력성을 뜻하는 것을 넘어, '핏줄' '혈통' '하나' '민족'이라는 말이 듣는 사람의 감성을 호소하여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고, 이러한 단어들 자체가 폭력적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혈통' '민족'이라는 개념은 국민국가의 역사적 과정에서 타자와 비동일자를 내부에서 배제시키면서 자신의 단일한 정체성을 구성해왔다. 동질적인 '자신'이라는 정체성은 자기동일적이지 못한 이질적, 혹은 자신에게 상반되기 때문에 배제된 속성을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거부하면서 획득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민족' '혈통' '하나'의 호명과 단일한 정체성의 옹호는 엄연히 역사 속에서 존재했지만, 이름을 가지지 못했고 그들의 개별적 삶의 특수성을 배제하는 대가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필자가 독일 유학시절 포스트식민 이론을 배우는 세미나에서 일본계 독일의 영상 작가이자 저술가인 히토 슈타이얼의 '텅 빈 중앙'이라는 영상의 한 부분을 감상한 적이 있었다. 그 영상은 독일 베를린 장벽 흔적을 담은 '포츠다머 플라츠'(포츠담 광장)를 둘러싼 8년간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변화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때 그녀는 베를린 도시의 변화를 주류에서 배제된 소수자의 목소리와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1997년 독일은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곳에 포츠다머 플라츠를 조성하였고, 대규모 도시 개발 사업을 추진하였다. 국가의 강한 중심의 형성이 전 세계 유명기업이 투자하고 세운 현대식 고층 빌딩 건설과 같은 세계적 구조화와, 외국인에 대한 사회정치적 경계 짓기가 함께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민족'을 강조하기보다, 남과 북의 이질성과 내부의 차이를 늘 고려하고 존중하는 보편적 인식과 사회적 풍토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홍은영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2018-07-02 11:02:52

황일순 교수

[세계의 창] 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전쟁 시대

美 로봇·AI 공장 다시 본토 이전트럼프의 기술보호전쟁 선포국가경제 4차 혁명 진검 승부젊은 과학기술자에게 희망을 매년 여름철이면 스톡홀름의 스웨덴 한림원은 큰 열기에 휩싸인다. 엄선된 노벨상 후보 중에서 최종 수상자를 선정하는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평화상만은 당시 스웨덴의 연방국이었던 노르웨이가 맡고 있다.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세계적 불안을 확산하던 북한의 지도자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핵화에 성공하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올해 추천 시한인 1월 말을 넘겼으니 연말까지는 뚜렷한 성과를 내어 내년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오는 11월에 중간선거까지 있어 일석이조를 노릴 만하다. 그러나 세상의 관측과 달리 트럼프는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난민들에게 문을 닫으니 노벨평화상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사업가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북핵 해결 후 천문학적 보상은 한국에 떠넘기고 미군 주둔 비용까지 줄이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과학기술 전쟁 시대가 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20여 년 전 클린턴 대통령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일갈로 패권을 잡고 세계화를 주창하며, 당시 미국 내 사양화되던 제조산업을 인건비가 낮은 중국으로 옮겨 경쟁력을 강화했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무인화된 공장들을 미국으로 다시 옮겨 최강의 과학기술로 생산한 다양한 제조품들을 전 세계로 수출하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선포한 기술보호전쟁은 그래서 우리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며, 첨단 기술에 대한 보호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선진국들이 다시 공장을 옮겨가면 원료 생산지에 공장을 세워 수출하던 때에 비해 물동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슈퍼컴퓨터와 로봇이 움직이는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 에너지 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다. 점점 심해지는 미세먼지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에도 첨단 환경 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에 에너지 수요는 더 늘어나고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층 더 커질 것이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절약이 답이라던 '에너지 전환' 정책도 최근 독일 정부가 스스로 실패했다고 인정하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멈추지 않는 에너지 소비의 증가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경제를 위해 과학기술 개발로 진검 승부를 펼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알프레드 노벨이 전 재산을 기탁하며 인류의 새 지평을 여는 선각자를 포상하는 깊은 뜻이 120년이 지나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900명이 넘는 노벨 수상자가 나왔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기술 분야의 수상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오늘의 위기를 설명해주고 있다.사실 그간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은 40년 전 과학기술 최우선 정책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전자, 자동차, 조선, 원자력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산업을 일으키긴 했으나, 우리 사회는 공론화라는 미명하에 국민 정서에 따라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포퓰리즘 때문에 성장 엔진이 꺼지고 있다. 청년 실업 문제에도 임시방편만 동원하고 근본적 대책을 고민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지적 호기심을 접고 공무원, 연예인, 스포츠인을 부러워하고 비트코인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능한 인재들은 우리 사회에서 냉대받고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들이 일어나서 힘찬 미래의 청사진을 만들고 이를 위해 과학기술에 몸을 던지는 사회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선진국 진입은커녕, 구한말의 비참한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황 일 순(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2018-06-25 13: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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