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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캐러밴의 비극과 미국 이민정책

얼마 전 미국과 멕시코 국경인 리오그란데강에 빠져 사망한 한 남성과 아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미국으로 불법 입국하기 위해 강을 건너려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엘살바도르 국적의 젊은 아빠와 23개월 된 딸로 밝혀졌다.이 사진 한 장으로 미국의 이민정책이 재조명되고 있다. 소위 '캐러밴'(Caravan)으로 불리는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미 출신의 이주자들이 미국-멕시코 국경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본국의 절망적인 폭력과 치안 부재 그리고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목숨을 건 미국행을 택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 국경수비대에 의하면 2018년 한 해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숨진 이주자 수는 적어도 283명이라고 한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상황을 '침입'(invasion)이라 규정하고, 강경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남부 국경을 넘어오는 이주자들을 마약 밀거래, 테러, 성범죄, 성매매 등의 범죄와 연계해 이들의 이주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가족 분리' 정책으로 체포된 불법 이주자와 난민 신청자의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분리시켜 수용하였고(이 정책은 '아동 인권 침해'라는 연방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난해 6월 중단됨), 무관용 이민정책을 도입해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범죄자로 기소하여 감옥으로 보내고 있다.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려 2019년 2월에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의 논리는 보다 강경한 이민정책으로 이들이 미국행을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구체적 수치를 들어 강경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미국 남부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이주자 수는 2000년 164만 명을 기록한 후 지난 18년간 감소해 트럼프 대통령 집권 1년 차인 2017년에는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2018년에는 조금 증가한 약 40만 명을 기록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국가비상사태가 결코 아니며 정치적 목적으로 '가공된 위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법 월경은 남부 국경뿐만 아니라 북쪽의 캐나다 국경과 해안 국경을 따라서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7년 캐나다 및 해안 국경에서 체포된 불법 입국자 수는 각각 3천27명과 3천588명이었다.또 매년 미국에 정착하는 불법 이민자의 가장 많은 수는 비자가 만료된 후 계속 불법으로 체류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공식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2016년 불법 월경자 수는 56만3천204명인 데 비해 비자가 만료된 불법 체류자 수는 이보다 많은 73만9천478명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마약 밀거래자, 테러 용의자, 성범죄자 등은 대부분 공항과 같은 공식 출입국사무소를 통해 입국했으며, 중남미 이주자들에 의한 범죄율은 내국인들의 범죄율에 비해 오히려 낮다고 한다. 남부 국경을 통해 입국하는 이주자들 가운데는 난민 지위를 획득하려는 사람이 많은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이 난민 판결을 받을 때까지 미국 입국을 불허하고, 국경 공무원들이 하루에 처리하는 난민 신청 건수를 축소하고 난민 허가 기준을 높임으로써 대기일이 길어지고 난민 지위 거부율이 높아짐에 따라 불법 입국을 시도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사진 속 남성도 아내와 딸을 데리고 난민 신청을 하려 했으나 미국행 길이 막히고, 난민 신청 대기일이 너무 길다는 것을 알고, 가족과 함께 불법 입국을 시도하다 변을 당한 것이다.전문가들은 중남미 국가들로부터의 이주자 수는 미국의 이민정책보다는 이들 국가의 치안 및 경제 상황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미국 정치인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미국의 전통적 가치, 보편적 인권과 인도주의 그리고 이들 중남미 국가들의 현재 상황에 대한 미국의 책임 의식을 기반으로 포퓰리즘이 아닌 사실에 기초해 합리적인 이민제도에 하루속히 합의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2019-07-15 11:36:56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세계의 창] 살아 있는 문화유산-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먼 곳에 떠나가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한 기분이 들면서 집 근처에 가까이 올수록 마음이 점차 편안해지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느낌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익숙한 풍경과 눈에 익은 건물들, 곧게 뻗은 도로 옆으로 난 좁은 골목, 내가 다니던 카페와 세탁소의 크고 작은 간판들,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 깃든 추억…. 이 모두가 나를 이루는 부분, 즉 나의 '문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생활방식이나 작은 습관 등이 모여서 '문화'가 되고, 자기와 같은 문화에 속해 있을 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동질감과 친밀감을 쉽게 느끼게 된다. 문화는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서 역사성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문화유산'이다.지난 4월 전 세계를 안타깝게 했던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 화재 사건은 문화유산의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파리 중심부의 시테(Cite) 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12~13세기에 지어진 이래로 근 860년을 프랑스인들과 함께해 오면서, 최초의 고딕 양식 가운데 하나라는 건축적 가치 이외에 프랑스의 상징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이 되었다.화재 당시, 노트르담 대성당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면류관이 보관되어 있었고, 이 성유물을 구해온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의 튜닉(tunic겉옷)도 남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철저한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정치와 교육 등 사회의 모든 공공 분야에서 종교적 색채가 가려졌지만, 5세기 말 클로비스 왕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 '교회의 맏딸'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서구 그리스도교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프랑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또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삼부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고, 프랑스의 구국(救國) 성녀로 불리는 잔 다르크의 명예 회복 재판이 진행된 곳이기도 하다. 18세기에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건물과 조각상이 훼손되었지만, 나폴레옹 1세는 그 유명한 대관식을 이곳에서 거행하였고, 19세기에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의 배경으로서 새삼 주목받게 된 후 대대적인 재건 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노트르담 대성당은 돌로 쌓아 올린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역사의 질곡을 함께한 프랑스의 상징이기에, 그 화재를 목격한 시민들은 마치 프랑스가 불타는 것처럼 느꼈다고 증언한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성가를 부르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고, 성당이 타들어 가는 동안 시민들은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유물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고 한다. 문화유산은 한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 국민 절반 이상이 노트르담 대성당을 이전의 모습대로 복원하기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건축물이기 이전에 자신들에게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우리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숭례문 방화 사건 때, 많은 사람이 마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가슴 아파하지 않았는가? 문화유산은 나의 근원을 생각하게 해준다. 과거와 미래로 나를 확장시키며, 먼 곳으로부터 고향으로 돌아오듯 역사 속에서 나의 좌표를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문화유산은 공동체라는 의미 속에 너와 나를 이어주는 고리 같은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라는 가치는 인간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문화유산은 '연대와 일치'의 가치를 일깨워줌으로써, 개인주의의 가벼움 속에 낱낱이 흩어져버리는 존재의 무상함을 극복하도록 해준다.

2019-07-08 10:19:18

이성환 계명대 교수 (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적과의 대화

1997년 6월 하노이에서 맥나라마 전 미 국방장관, 응우엔 꼬탁 전 베트남 외무장관 등 베트남전쟁 지도자들이 비공개리에 모였다. 왜 더 빨리 전쟁을 끝내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적과의 대화'는 이 회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3일째, 이틀간의 토의를 바탕으로 각자 의견을 정리했다. 당시 북베트남 외무부 대미정책국장은, "미국은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와 같았다. 대국은 소국을 장기판 위의 말로 생각하면 안 된다. 소국에도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전쟁 주역인 맥나라마는 "베트남이 소련(현 러시아)과 중국의 앞잡이가 되어 미국을 위협한다고 봤다. 역사적으로나 베트남은 앞잡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존슨 대통령 특별보좌관 바터는 "공습을 통해 베트남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 했다. 군사적 위협이 대화를 견인한다는 가설이 잘못됐음을 알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베트남 측은 "폭탄을 퍼부으면서 협상을 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기만으로 생각했다"고 응수했다.맥나라마는 결론적으로 "쌍방에 오해가 있었다. 상대방의 목적과 의지를 알았다면 협상을 통해 해결이 가능했다. 종전 협상은 훨씬 이전에 가능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에 베트남 측이 그것을 언제 알았느냐고 묻자, 맥나라마는 "그저께 밤이었다. 너무 늦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전쟁 중에 미국이 한 평화 제안을 믿는가"라고 물었다. 베트남 측은 "지금이라면 당신 말을 믿을 수 있다"고 했다.뒤돌아보면, 베트남에 미국은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가 아니었으며, 베트남은 중국의 앞잡이로 미국을 위협하지 않았다. 베트남은 1979년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기도 했다. 이 회의를 통해 베트남전쟁은 서로에 대한 무지와 불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정설이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베트남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는 한 번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런 어리석음은 왜 반복되는가.공교롭게 지난 2월 같은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으나 실패했다. 현재도 양측은 자기중심적 사고로 암중모색을 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중국의 앞잡이로 핵으로 미국을 위협한다고 여기고,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공격하려 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제재가 대화를 촉진시킨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북한은 비핵화를 하는 순간 미국이 자신들을 말살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이런 오해를 풀려는 한국의 노력을, 미국은 북한의 대변인이라 여기고, 북한은 왜 같은 민족끼리 외세에 맞서지 않느냐고 따진다. 중국이 가세하려 한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이 한패가 되면, 일본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국은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방해할 것이라 여긴다. 그러면서 각자는 자기의 셈법만을 고집한다.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이 미국에 핵공격을 하리라는 것도, 미국이 북한의 목을 조여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것도 모두 비현실적이다.30년 후, 남북미중이 만나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아마 "그때 알았더라면" "30년 전에도 비핵화가 가능했었다"고 할 것이다. 상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 대화이고, 협상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국제사회이다.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깜짝 조우했다. 1시간의 단독 회동에서 무슨 말이 오갔을까. 사진 찍기용이라는 일부의 의심도 있으나, 실무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능력 없음이 홀로코스트라는 악을 낳았다고 했다.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다. 비핵화의 당사자들은 악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만 없었다.

2019-07-01 10:28:32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 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화웨이 사태, 원칙과 일관성 있는 외교 각성 계기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엄중하다. 북핵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사카 G20 정상회담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일 정상회담 개최조차 불확실할 정도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어 있다.미국의 중국 상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로 시작된 미중 간의 무역전쟁은 5G, 인공지능, 사이버 등과 같은 기술 분야를 넘어 양국 간의 패권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한국은 화웨이 사태를 둘러싸고 미·중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우리나라가 이렇게 외교적으로 사면초가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그간 우리 외교는 국제 규범에 입각한 원칙과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미·중 간 대립 양상을 보이는 이슈마다 한국은 양측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다 양국의 신뢰를 모두 잃었다. 미·일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 한국은 결국 RCEP에 참가한다. 미국이 반대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동맹국인 미국을 거슬러가며 중국이 주도하는 무역과 국제금융체제에 가입하고서도 중국으로부터 평가를 받지 못했다.사드(THAAD) 배치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 정부의 태도는 더더욱 실망스럽다. 사드 발사대 반입 보고 누락, 환경영향 평가 미실시, 국회 비준 동의 필요성 등 제반 이유를 들어 사드 배치를 지연시키다가 미국 조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017년 6월 9일 "정부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약속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꿀 의도가 없다"고 발표한다. 이후 우리 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조건으로 사드를 임시 배치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은 사드 철수를 요구하며 우리나라에 대하여 전 방위적 제재를 가한다. 사드 최종 배치가 지연되자 미국은 미국대로 우리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을 권유하였지만, 청와대 대변인은 북핵 공조 필요성을 들어 제소 불가 입장을 밝혔다. 결국 우리 정부는 국제 규범이나 원칙보다는 시류를 선택했다. 이는 2017년 10월 말 국회 국정감사 시 강경화 외교장관의 삼불 발언으로 이어져 주권 포기 논란까지 야기시켰다.이러한 상황에서 맞이한 화웨이 사태는 우리에게 더욱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보안 문제를 들어 화웨이 5G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옳고 그름을 잘 따져 판단하라고 겁박한다.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이달 초 서울에서 개최된 한 콘퍼런스에서 "신뢰할 만한 5G 공급자 선택이 중요하다"며 공개리에 한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후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화웨이와 화웨이 장비를 쓰는 'LG유플러스'를 콕 집어 '안보 위협'을 거론했다 한다. 지난 6월 7일 청와대 관계자가 "(화웨이 장비 사용이) 한미 군사 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말하자, 해리스 대사는 "나는 그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정면 반박했다. 화웨이 장비 사용 문제는 단순한 제품 구매 문제가 아니라,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전초전이다.사드 사태가 '국가 안위에 관한 사항은 주권 사항으로서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만 고수하면 되는 2차 방정식이었다면, 화웨이 사태는 경제, 기술, 안보, 국제 전략이 혼재되어 있는 고차 방정식이다. 사드와 화웨이 같은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미·중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며 시류에 편승하는 태도를 지속할 경우, 한국은 양측 모두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위기를 잘 극복하면 기회가 된다. 화웨이 사태가 한국이 국제 규범과 원칙에 따른 일관성 있는 외교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보약이 되길 기대한다.

2019-06-24 14:09:18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세계의 창] 스페인 문화를 만드는 디자인의 힘

스페인 빌바오(Bilbao)는 유럽의 철강, 화학, 조선 산업, 무역의 중심이었으나 1980년대 경제 불황을 맞으면서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지역의 경제 상황이 심각해지자 빌바오시는 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여 쇠락한 도시를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한다. 스테인리스가 춤추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기 위해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도시를 찾으면서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스페인의 디자인은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가우디의 성가족성당과 같은 건축물뿐만 아니라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 속에도 스며들어 있다. 문화가 주도하는 도시의 공공디자인에서도, 또 일상의 생활용품 디자인에서도 사람에 대한 배려가 묻어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스페인 문화가 담겨 있고, 강렬한 색상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일상 속에 함께하는 것이 특징이다.음식 문화에도 디자인을 입혔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막대 사탕 츄파춥스 로고를, 디자이너 마누엘 에스트라다는 후추통의 이미지를 디자인했다. 스페인 와인 레이블과 병 모양 디자인은 독특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하다.영화배우 페넬로페 크루스와 축구 선수 박지성 같은 유명인이 등장하기도 하고, 와인으로 잉크를 만들어 레이블 작업을 한다거나, 여러 병의 그림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그림이 되기도 한다. 병이 갖고 싶어 와인을 사게 할 만큼 와인 품질은 물론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감으로써 와인 소비뿐만 아니라 와이너리를 찾는 관광객의 수도 늘었다.음식과 결합한 디자이너의 상상력은 감각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주방용품에서도 볼 수 있다. 팔레트 모양의 개인용 스탠딩 뷔페 접시, 음식이 묻은 채 식탁에 놓아도 바닥에 닿지 않아 위생적인 포크와 스푼, 식재료를 분쇄하는 데 쓰는 핸드믹서기도 스페인에서 탄생했다. 주방용품 디자인은 음식을 예술로 만들어 스페인을 미식의 나라로 알려지게 하였고, 또 스페인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식품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음식과 디자인의 상호 영향은 전통시장을 살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전통시장이라는 본래의 공간적기능적 원형은 유지하면서 창의적인 디자인 요소를 도입한 것인데, 지역 주민들을 위한 전통시장의 기능에 주차장과 음식점 등 편의시설을 추가하여 관광객 유치에도 나섰다. 이제 스페인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유명한 전채요리 타파스(tapas)를 맛보기 위해 레스토랑보다 전통시장을 먼저 떠올릴 만큼 시장은 가고 싶은 곳이 됐다. 1800년대 중반 문을 연 마드리드의 산미겔(San Miguel) 시장은 2009년 혁신적인 디자인을 적용하여 다시 문을 열었는데 기둥, 철재 골조는 그대로 남기고 사면을 외벽 통유리로 마감해 안쪽이 투명하게 보이도록 했다. 마드리드시가 이 건물을 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을 만큼 건축적 가치를 보존하였고, 연간 400만 명 이상 방문할 정도로 인기다.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는 의류, 음료수, 핸드폰, 침구류 등과 같은 일반 소비 제품에 젊은 디자이너의 작품을 삽입하여 시장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라이선싱 판매 수입뿐만 아니라 생산 기업의 매출 확대로 이어졌다. 한국의 한 화장품 회사가 스페인에 진출하면서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화장품 용기에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삽입하였을 만큼 스페인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디자인 혁신을 강조하며 세계 패스트 패션을 주도하는 패션기업 인디텍스도 스페인 기업이다. 이렇듯 스페인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경제 불황을 녹이는 원동력이었다.

2019-06-17 11:28:06

이성환 게명대 일본학과 교수

[세계의 창] 중국몽(中國夢)과 아메리칸 드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미중 무역협상 결렬 후 인터뷰에서 "중국은 세계를 장악하려 한다. 그들에게는 차이나 2025가 있다"고 했다. 중국이 2025를 통해 세계 장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말이다. 2025(Made in China 2025)는 중국의 첨단 제조업 육성 프로젝트이며, 세계 패권 구상으로 알려진 '중국몽'(Chinese Dream)의 핵심이다. 무역협상은 중국의 도전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의 의미가 있다. 미국은 2025의 폐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중 무역협상이 녹록지 않은 이유이다.그리스 아테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패권이 국가 간의 관계를 지배하며,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신흥 강국 아테네에 불안감을 느낀 스파르타의 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 G. 앨리슨(Allison) 교수는 신흥 세력이 기존 지배 세력의 지위를 위협할 때 발생하는 이러한 불안정한 대결 국면을 '투키디데스의 함정'(Tuchididdes Trap)이라 부른다. 이 함정이 불러온 두 나라의 전쟁에서 스파르타는 승리했으나, 오래가지 못해 멸망했다. 근대에 와서는 불멸의 대영제국에 대한 후발국 독일의 부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독일의 도전은 1차 대전의 원인을 제공했고, 승리한 영국은 미국에 패권을 넘겨야 했다.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가. 시카고대학 J. 미어샤이머(Mearsheimer) 교수는 '강대국 정치의 비극'에서 국제사회에는 국가 간 갈등을 제어할 경찰이 없고,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모든 국가는 자국의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군사력을 키우고 상대를 자기 의도하에 두려 한다. 패권국이 탄생하는 과정이다.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설명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패권국의 불안을 드러낸 것이고, 국가의 존엄을 앞세우며 버티고 있는 중국은 전형적인 도전국의 모습이다.패권국과 도전국은 반드시 전쟁을 할까. 16세기 이후 패권국과 도전국의 대립 국면은 15번 있었으며, 그중에서 11번의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확률은 70% 이상이다. 그래서 앨리슨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 2017)이라 했다. 미중 전쟁이 발발한다면 어디일까. 대만해협이 될 것이라고 하나, 한반도도 그중 하나다.미중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아직 중국은 종합 국력에서 미국을 능가하지 못한다. 중국의 목표는 아직 세계 패권이 아니라 지역 패권 추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또 미국은 스페인, 영국 등 소국이며 자원 빈국이었던 종래의 패권국과는 다르다. 미국은 자원이 많은 대국으로 역사상 거의 '완벽한' 패권국의 조건을 갖고 있다. 미국은 전쟁을 하지 않고도 경제 패권을 넘보던 일본을 굴복시켰다. 군사적 위협을 일삼던 소련(현 러시아)도 붕괴시켰다.그러면 패권국은 안전할까. 킨들버거의 함정이 있다. 킨들버거 전 MIT 교수는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에서 미국이 패권국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재앙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그것도 고율의 관세로. 지금의 흐름을 단순화하면, 중국은 미국의 유일 패권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미국은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American First)는 이전투구로 보인다. 시진핑은 중화제국의 부흥을, 트럼프는 미국 백인들의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한다. 중국몽과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두 개 꿈의 충돌이다. 거기에는 양패구상(兩敗俱傷둘 다 패하고 상처를 입음)의 위험도 있다.두 강대국이 꿈을 좇는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려는 한국의 꿈(Korean Dream)이 멍들까 염려된다.이성환(계명대학교 교수, 일본학전공, 국경연구소장)

2019-06-03 13:38:51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창] 명품 경북도청 신도시 탄생을 기대하며

일전 업무 협의차 세종시 정부청사를 방문했다. 일을 마친 후 관계관의 안내로 청사 옥상정원을 구경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 정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표지석이 세종시 정부청사 건축이 이룩한 업적(?)을 뽐내고 있었다. 옥상에 산책로를 만든 것도 신선한 아이디어였고, 굽이쳐 흐르는 건물 배치도 과거의 전형적인 정부청사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로 보였다. 그러나 명품 건축물이라 하기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청사 설계자인 다이아나 발모리가 2013년 완공된 청사를 보고는 망연자실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원로 건축가 승효상에 의하면, 원래 설계는 아름다운 구릉지를 둘러싸고 옥상정원이 물 흐르듯이 연결되게 되어 있었는데, 구릉은 사라지고 '물 흐르듯 연결되어야 하는 건물은 부처마다 쇠 울타리로 절단하며 파편화'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행정안전부가 나중에 이전하면서 마스터플랜상의 고도 제한과 건물의 흐름을 무시하고 청사 한가운데 우뚝 솟아오른 신청사를 짓는다고 한다.명품도시를 짓겠다며 국제 공모까지 하여 선정한 마스터플랜이 수시로 훼손되는 것을 보고는 필자가 핀란드의 위바스퀼라(Jyvaskyla) 대학 방문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헬싱키 북쪽으로 약 270㎞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대학 캠퍼스는 핀란드의 위대한 건축가인 알바르 알토(Alvar Aalto)의 작품이다. 캠퍼스 마스터플랜과 주요 건물이 알토의 손에 의하여 탄생했다. 르 꼬르뷔지에 등과 더불어 근대 건축의 4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토의 건축철학은 주변 환경 및 에너지와의 조화이다. 위바스퀼라 대학 캠프스 역시 완만한 구릉과 호수를 끼고 숲속에 다소곳이 내려앉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캠퍼스 확장 공사를 할 때 후임 건축가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사항은 기존 캠퍼스 건물과의 조화였다 한다. 마띠 마니넨 총장이 필자에게 선물한 캠퍼스 소개 책자에는 알토의 설계 초안부터 최종 설계에 이르는 단계별 설계 도면이 다 실려 있었다. 캠퍼스와 각 건물의 역사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훌륭한 건축물은 주변 환경과 서로 호흡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낙수장(Fallingwater)과 함께 알바르 알토의 마이레아주택(Villa Mairea)을 꼽는다. 마이레아주택은 헬싱키 북서쪽으로 200㎞ 떨어진 해변가 도시 포리(Pori) 근교에 위치하고 있다. 적송과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숲속에 위치한 이 주택은 실내 분위기 자체도 숲의 일부를 이루는 것 같다. 또한 부족한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도록 실내 배치를 하고 여러 가지 장치를 고안해 놓았다. 주택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다.지형과 주변 환경을 감안하는 알토의 모습은 로바니에미(Rovaniemi)시 설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산타클로스 마을로 더 잘 알려진 로바니에미는 2차 대전 때 패퇴하는 독일군이 불태움으로써 도시의 90%가 전소된다. 신도시 설계를 위탁받은 알토는 도시 기본 설계 개념을 순록으로 잡는다. 순록 뿔과 같이 도로가 뻗어 나가도록 하고, 축구 스타디움을 순록의 눈으로 삼는다. 이 또한 로바니에미의 지형과 함께 그 지방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순록을 형상화한 것이다.마침 경북도청 신도시 건설 계획이 추진 중이다. 이철우 도지사는 "인근의 하회마을과 함께 훗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 만한 명품도시"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도지사는 "신도시 건설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맞는 이야기다. 어설픈 관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세종시의 실수와 알토를 교훈 삼아 진정한 명품 신도시가 탄생하길 빌어 마지않는다.

2019-05-27 11:52:44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세계의 창] 중미 불법 이민, 강경 이민정책으로 억제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고학력자와 숙련 기술자를 우대하는 능력 기반 이민정책 계획을 발표했다. 새 이민정책의 핵심은 학력과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 취업 이민 우선권을 줌으로써 가족 단위 이민을 막아 자국민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국가 안보를 강화하는 데 있다.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대부분 가족 단위로 구성된 중미 출신 불법 이민자, 즉 캐러밴(Caravan·중미 출신 이민 행렬)의 미국 유입은 어려워진다.캐러밴은 미국 이민을 목적으로 집단을 이뤄 미국 국경으로 이동하는 중미 사람들의 행렬을 말한다. 이들은 수백에서 수천 명 단위로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데, 이는 갱단 등의 표적이 되어 범죄에 희생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온두라스에서 출발한 캐러밴 행렬은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를 거쳐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멕시코 티후아나까지 4천300㎞를 도보로 혹은 기차 지붕과 트럭 짐칸에 매달려 목숨을 건 이동을 하고 있다. 중미 국가들의 치안이 매우 불안하고 빈곤이 심각해지면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희망하며 미국행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캐러밴 행렬은 2013년부터 시작됐지만, 작년 10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이민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새 이민법도 2020년 재선 성공을 위해 반(反)이민 정책을 다시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캐러밴은 멕시코로 계속 유입되고 있지만, 미국의 초강경 대응에 멕시코 국경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은 멕시코가 불법 이민을 해결하지 않으면 미·멕시코 국경 폐쇄, 멕시코산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 등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멕시코는 합법적 절차와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며 멕시코에 입국한 캐러밴의 임시 체류와 본국 송환을 돕고, 멕시코 통행허가증을 발급하거나 멕시코 이민을 허가했었다. 국민들도 멕시코를 통과하는 캐러밴에 음식과 차량, 거처 등을 제공하였지만 캐러밴 행렬이 계속 밀려들자 예전만큼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멕시코는 중미 3개국에 대한 원조를 중단한 미국에 원조 지속을 요구하면서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은 중미 3개국이 불법 이민 억제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며 원조 중단을 선언했지만, 멕시코는 미국의 원조로 중미 지역의 정치적 안정과 빈곤을 해소하게 되면 이 지역 출신 불법 이민자의 미국 유입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캐러밴의 80% 이상은 온두라스에서 출발한다. 1980년대 온두라스는 친미 정권과 그에 대항하는 공산 반군 사이의 내전이 치열했지만, 이웃 니카라과에 산디니스타 혁명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이 니카라과 혁명정부를 전복시킬 반군 훈련 기지를 온두라스에 설치하는 등 중미 지역 공산화 저지를 위한 미국의 거점 역할을 하였고, 미국의 원조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1990년대 들어 중미 지역의 내전이 끝나면서 미국이 원조를 줄이자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내전 이후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 치안 불안과 가난이 심각해졌다. 2009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지난해 대선 부정선거로 혼란이 지속되면서 미국 이민을 감행하는 캐러밴이 급격히 증가했다.캐러밴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이동한다. 그러나 미국의 입국 심사가 매우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다 또 모든 밀입국자는 형사기소되기 때문에 멕시코 국경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린이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수감될 수 없는 18세 미만 자녀와 부모가 분리 수용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족분리 정책이 불법 이민자 축소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는 트럼프 정부. 국내 정치와 캐러밴의 인권은 분리해야 한다.

2019-05-20 11:11:58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세계의창] 한반도선언을 남북평화체제의 출발점으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한반도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을 계기로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개성에 공동연락사무소가 설치되는 등 남북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 통일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하지만 평화의 길은 멀고 더디기만 하다. 남한은 보수와 진보로 갈려 여야 정치권의 입장이 다르고, 북한은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엇박자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의 복잡한 상황을 타개하고,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대안적 모델을 유럽 통합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오늘날 EU로 대변되는 유럽 지역 공동체 설립을 통한 평화 체제의 구축은 '장 모네 구상'에서 시작된다. 만약 국가 주권의 기반 위에 국가를 재건설한다면 유럽에 평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공동경제를 중심으로 한 단일 통합체를 건설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세계대전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45년 모네는 먼저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을 요구한다. 양국이 석탄 철강 분야에서 협력함으로써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유럽 지역 통합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였다. 그의 구상은 로베르 슈망을 비롯한 유럽 통합론자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고, 급기야 유럽 공동체의 결성으로 이어진다.1950년 5월 9일 슈망은, "유럽은 한순간에, 또 한꺼번에 건설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은 우선 핵심 사항에 대해 연대함으로써 확고하게 실현될 것이다"라며 유럽 통합을 실행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선언을 발표한다(슈망선언). 이 선언에 따라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6개국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1953년), 유럽경제공동체 및 유럽원자력공동체(1958년)를 설립한다. 그 결과 유럽 대륙에서는 더 이상 서로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총칼로 죽고 죽이는 전쟁 위험이 사라지고, 평화롭게 상호 공존하고 협력하는 유럽 공동체가 출범하였다.유럽 통합 과정에서 회원국들은 철저히 기능주의적 접근 방법을 선택하였다. 슈망은 "행위의 연대를 창설하는 경제적 관계를 통한 정치적 관계를 준비함으로써 유럽의 기능적 건설에 주력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를 수용한 유럽은 이념적으로 전쟁 없는 평화 체제 구축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사람과 상품, 자본과 서비스의 자유 이동이 보장되는 경제 중심의 지역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이 전략은 주효하여 유럽은 점진적·지속적인 통합과 확대를 거듭하였고, 자유무역지대'관세 동맹'단일시장(공동시장)'경제 통합을 거쳐 현재 연방 설립을 향한 정치 통합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일 년 전 남북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지금 읽어도 가슴 벅찬 한반도 선언이 그저 꿈이나 바람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남북 통일과 평화 정착으로 실현될 수는 없을까? 유럽 통합은 그 현실적 대안 모델이 될 수 있다.역사적으로 유럽은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간의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 공동체가 출범한 1958년부터 6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 적어도 EU 회원국 간에는 한 차례의 전쟁이나 내전도 일어나지 않았다.이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반도에도 남북경제공동체를 넘어선 정치평화공동체가 필요하다. 현실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평화를 향한 꿈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남북은 문호를 활짝 열고 우선 경제 협력을 위한 정치 대화를 전격 재개해야 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시아의 장 모네와 로베르 슈망이 되기를 바란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한반도의 미래를 여는 그의 역사적 역할을 기대한다.

2019-05-13 11:04:59

이성환 계명대 일본학전공 교수/국경연구소장

[세계의창] 미국과 '천황'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가장 먼저 달려갔다. 지금까지 10번이나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5일 국빈방문, 6월 28일 G20 정상회의로 일본에 온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26일 미국을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생일 축하를 위해서였다.미국 ABC방송은 트럼프는 협상의 기술자이지만, 아베는 한 수 위 아첨의 달인이라 평했다. 일본 언론은 양국의 친밀함이라고 했다. 아베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외교의 최우선으로 삼고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도 했다. 5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나루히토 천황(일본 왕의 고유명사)의 즉위를 축하하는 첫 국빈이다. 아베가 멜라니아 여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데 대한 답방 격이다. 지금 미일 관계는 전통적으로 최고의 동맹이라 평가받는 미국과 영국의 관계를 능가한다.불과 70년 전 미국과 일본은 서로를 귀축(鬼畜·아귀와 축생)이라 비난했다. 일본은 미국 영토를 공격한 최초의 국가이며 자살특공대로 결사 항전했다. 미국은 원자폭탄으로 응수했다. 일본 국민은 천황 수호를 위해 옥쇄를 다짐했다. 자기 목숨보다 천황이 소중했다.8월 9일 소련(현 러시아)이 참전했다. 천황도 군부도 항복을 택했다. 원자폭탄보다 소련이 더 무서웠다. 공산 국가 소련이 점령하면 봉건제의 잔재인 천황제는 소멸하기 때문이다. 당시까지(지금도) 일본은 천황의 나라, 즉 황국(皇國)이었다. 일본의 군대가 아니라 천황의 군대(皇軍)이며, 국민이 아니라 적자(赤子·왕의 사랑을 받는 갓난아이)이며, 일본 만세가 아니라 천황 만세였다. 소련이 상륙하기 전 미국에 항복하는 것이 천황을 지키는 길이었다.일본 정부는 국영매춘소(특수위안시설)를 설치하고, 미군의 상륙을 환영했다. 어제의 적을 해방군으로 맞았다. 마지막 저항을 우려했던 맥아더는 혼란스러웠다. 맥아더 상륙 약 한 달 후 천황은 그를 찾았다. 늠름한 맥아더 옆에 서 있는 왜소한 천황의 모습이 당시 미국과 일본을 상징했다.연합국은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맥아더는 비무장과 상징천황제로 연합국의 분노를 달랬다.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공산 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한 방파제로 천황의 나라 일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천황제는 살아남았으며, 일본은 미국에 항복한 목적을 달성했다. 맥아더는 귀국 후 상원 공청회에서 일본을 '12살의 교육 가능한 소년'이라고 했다. 소년은 미국의 보호 속에 1969년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항복 이후 일본은 미국에 한 번도 각을 세우지 않았다. 각을 세우면 정권이 붕괴한다는 설도 있다. 여기에 가장 충실한 정치인이 아베 총리이다.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은 일본의 미국 의존성을 강자에의 편승으로 설명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강한 미국, 중국, 러시아와 전쟁을 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생존 전략일까, 천황을 지켜준 고마움 때문일까.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의 사죄 요구 발언 이후 한일관계는 회복 불능의 늪에 빠진 듯하다. 일본이 겉으로는 독도 문제를 내세우나, 천황 사죄 발언이 훨씬 충격이었다고 한다. 천황의 사죄를 요구할 만큼 국력이 커진 한국의 존재감에 대한 시의심(猜疑心)도 작용했다.천황이 바뀌었으니 한일 관계에도 변화가 올까. 지금 미일 관계와 한일 관계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미일 관계가 한반도 정세와 한미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배경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제안하고 있다. 비핵화보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앞서 가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한일 관계가 우려스러운 이유이다. 게다가 G20에서의 한일 정상회담도, 트럼프의 한국 방문도 미정이다.계명대 일본학전공 교수/국경연구소장

2019-05-06 14:46:00

장동희 새마을세계화 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창] 국민이 행복한 나라, 핀란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룩하자마자 발생한 극심한 좌우 대립 정국에서 좌익을 제압하고 자유민주공화국의 기틀을 확립한 인물. 식민지 시절 종주국 군 장교를 지낸 인물. 장기집권과 권위주의 통치로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국가의 안위를 지키고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위대한 정치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 핀란드의 '만네르하임' 장군과 '케코넨' 대통령 이야기다.1909년 이래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오던 핀란드는 1917년 12월 6일, 러시아 혁명을 틈타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자 핀란드의 좌파가 들고일어난다. 친볼셰비키파인 홍(紅)군과 친원로원파인 백(白)군 간의 충돌은 내전으로 치닫는다. 이때 백군을 지휘하여 홍군을 진압한 이가 카를 구스타프 만네르하임 장군이다. 러시아 제국군에서 중장까지 역임한 만네르하임은 1919년 초대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실권을 행사하며 정국을 안정시키고 헌법까지 제정한다.1939년 소련이 침공해 왔을 때(겨울전쟁), 그리고 재개된 계속전쟁(1941 ~1944)에서 핀란드군을 이끌고 소련에 맞서 싸운 사람도 만네르하임이다. 특히 겨울전쟁은 핀란드의 10배 가까운 사상자를 냄으로써 소련에는 수치스러운 전쟁으로 기억된다. 반면에 핀란드는 패하기는 했으나 겨울전쟁을 자랑스러운 전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기억의 중앙에 만네르하임이 위치하고 있다. 계속전쟁 종전 1개월 전인 1944년 8월 대통령에 취임한 만네르하임은 핀란드의 주권은 지켜낼 수 있었지만, 가혹한 휴전 조건과 일부 영토 할양, 그리고 막대한 전쟁 배상 책임을 져야 했다. 영토 할양으로 발생한 난민 문제를 비롯한 전후 처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만네르하임은 1946년 3월 사임한다.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만네르하임은 핀란드의 국부(國父)로 칭송받고 있다. 러시아에서 3성 장군까지 지낸 그의 과거 경력을 문제 삼는 핀란드인은 없다. 그런 경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수많은 전투를 치러 낼 수 있었겠는가?1956년 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우르호 케코넨 대통령은 1982년까지 무려 26년간 권좌에 머문다.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자, 케코넨은 국가안보가 위협받는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73년 1월 자신의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장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런 과정에서 야당 세력을 무력화시킨 케코넨은 1975년 헬싱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성공리에 개최함으로써 권력의 절정을 맞으며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케코넨 대통령은 야당 탄압 등 장기간에 걸친 제어받지 않는 권력 행사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주변 국가들이 소련에 병합되거나 위성국가화될 때, 핀란드가 독립과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시장경제 체제를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이 케코넨 대통령 덕분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핀란드인은 드물다. 즉 핀란드인은 장기집권과 권위주의 통치라는 과(過)보다 국가의 안위를 지켜내고 국가발전을 이룩한 케코넨의 공(功)을 훨씬 더 높이 평가한다. 1986년 케코넨이 사망하자 핀란드 우정청은 케코넨을 기리는 조문(弔問) 우표까지 발행한다. 그 이름을 따서 명명한 '우르호 케코넨 국립공원'도 있다.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SDSN)는 핀란드를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했다.독립 초기 이념 대립으로 내전까지 겪었지만, 아픈 과거를 들춰 내어 생채기를 내기보단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나라. 과거 흠이 있더라도 공이 더 큰 인물은 그 공을 높이 사서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하는 나라. 국민 대다수가 신뢰하고 존경하는 훌륭한 정치가(stateman)를 가진 핀란드, 그래서 핀란드인은 행복한가?새마을세계화 재단 대표이사/전 주 핀란드 대사

2019-04-29 11:16:00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세계의창] 미국과 쿠바의 화해 무드는 끝났는가

미국 정부는 지난 17일 '헬름스-버튼법' 제3조에 대한 효력 발동 유예 조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헬름스-버튼법은 쿠바 정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1996년 제정된 법으로 정식 명칭은 '쿠바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법'이다. 그중 제3조는 다른 외국인이 몰수된 재산을 취득하거나 그 재산을 이용해 이득을 얻을 경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환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법의 핵심 조항이다.1959년 쿠바혁명 이후 쿠바 정부가 미국인들을 추방하면서 쿠바 내 재산을 몰수했는데, 내달 2일 이 조항이 효력을 발휘하면 미국인들은 쿠바가 국유화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동안 미국은 이 법을 제정하고도 쿠바 투자가 가장 많은 유럽과 캐나다 등 동맹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6개월 단위로 효력 발동을 유예해 왔다.중남미 정책을 총괄하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이날 발표에서 미국 내 쿠바인들이 쿠바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송금액을 제한하고, 가족 방문을 제외한 미국인들의 쿠바 여행을 금지한다고도 밝혔다. 이는 여행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쿠바 정부에 미국 달러가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목적에서다. 해외 거주 쿠바인들의 송금과 관광 수입이 쿠바 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이기 때문이다.그뿐만 아니라 "먼로주의는 살아있다"며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와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3개국을 '폭정의 트로이카'로 규정하고 강도 높은 제재를 쏟아냈다. 먼로주의는 제임스 먼로 미국 대통령이 1823년에 주창한 것으로 미주 대륙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거부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실제로 멕시코와의 전쟁, 중남미 공산화를 막기 위한 민주정권 붕괴 공작과 군사독재정부 지원, 파나마 침공 등 오랫동안 미국의 중남미 국가에 대한 개입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었고, 이렇게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이 되었다.그러다 9·11 테러 이후 중남미는 미국 대외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멀어졌고, 트럼프 정부 역시 국내 문제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쿠바의 베네수엘라 지원,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러시아·중국과의 갈등, 중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개입 가능성과 같은 미국의 중남미 안보 개입을 불러왔다.이날 존 볼턴 보좌관이 발언한 곳은 피그스만 침공 58주년 기념식장에서였다. 피그스만 침공은 쿠바 혁명정부를 전복시켜 다른 중남미 국가로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케네디 정부가 계획한 일이었지만 실패하였고, 후에 쿠바 미사일 위기의 원인이 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 쿠바와의 데탕트 종식을 선언하고, 먼로 독트린과 폭정의 트로이카를 언급한 것은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는 쿠바에 대한 경고를 넘어 이제 다시 중남미에 개입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주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의도인 것이다.이에 맞서 유럽연합(EU)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미국 소송에 대한 맞소송 등의 방식으로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쿠바 정부도 헬름스-버튼법이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미국의 쿠바 재식민지화 의도가 분명하다는 내용의 강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과거 미국의 금수 조치와 동맹국의 붕괴 등에도 쿠바는 살아남았다. 오히려 먼로주의 이후 미국의 지나친 내정간섭이 중남미 국가들의 반미주의를 확산시켰다. 미국의 대중남미 압박 전략이 중남미 국가들 간의 혼란만 가중시켜 역효과를 낼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2019-04-22 11:14:04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세계의 창] 브렉시트: 영광스러운 고립주의가 낳은 예견된 혼란

브렉시트(Brexit)란 영국의 EU 탈퇴(British+Exit)를 뜻하는 말이다.우리와 특별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말이 신문의 국제 면을 차지하는 단골 뉴스가 되었다. 브렉시트를 두고 영국은 심각한 정치사회적 갈등과 혼란에 빠져 있고,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2016년 6월 23일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예상을 깨고 51.9%의 영국민들은 EU 탈퇴에 찬성했다. 그로부터 2년 8개월이 지났지만 영국은 EU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무슨 이유로 브렉시트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까. 영국 특유의 고립주의와 유럽회의주의에서 그 본질적 이유를 찾을 수 있다.전통적으로 영국은 "유럽 대륙의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며, 유럽의 어느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고립주의에 의거한 대외 정책을 취하고 있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유럽 대륙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멀리 떨어져 있는 영국은 고립주의에 따라 대륙의 복잡한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국은 독자적인 정치제도와 대외 정책을 실시하여 영연방국가를 통합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고립주의는 영국에 빛과 영광을 안겨준 훌륭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1950년대에 접어들어 유럽 통합이 본격화되면서 영국의 고립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의 6개국은 1953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필두로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원자력공동체로 이뤄진 유럽공동체(EC)를 설립하였다. 그 후 EC는 발전과 심화를 거듭하여 28개 회원국을 거느린 거대 통합체인 EU로 확대되었다.유럽 통합이 국가 체제에 미친 영향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EU의 설립으로 물리적 국경이 철폐됨으로써 '국가의 퇴각'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유럽 당국은 회원국들에 끊임없이 주권의 제한과 양보를 요구했다. 이에 회원국들은 농업과 통상 정책 등 일부 산업 부문에 대해 자발적으로 자국이 가진 주권을 공동체로 이전했다. EU 체제를 제외하고 근대 역사에서 국가가 자국의 주권을 자발적으로 이전하거나 양도한 사례는 없다. 오랜 세월 국가주의에 빠져 있던 영국은 이를 영토 주권의 침해로 받아들였다.영국 특유의 고립주의는 유럽 통합 과정에서는 그 모습을 바꿔 유럽회의주의로 나타났다. EC가 출범할 당시 영국은 대륙 중심의 유럽 통합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의 이러한 태도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영국 침공에 대한 앙금이 가시지 않은 탓도 있지만 고립주의가 직접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영국은 197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EC에 가입한다.회원국이 되고 나서도 영국의 회의주의적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영국은 유로존 가입을 유보하는 등 유럽 당국이 추진하는 통합 정책에 줄곧 미온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최근에는 리비아 난민과 테러 정책에 대한 이견으로 영국과 유럽 당국은 다시 심하게 부딪쳤다. 영국은 유럽 통합의 적극적 협력자라기보다는 줄곧 반대자나 회의주의자의 입장에 서 있는 셈이다.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보고 프랑스의 어느 언론인은 말했다. "유럽인들은 한배에 타고 있다." 그의 말대로 영국은 EU를 탈퇴하지 않고 유럽인들과 운명을 같이할까? 아니면 EU를 버리고 다시 '영광스러운 고립주의'로 돌아갈까?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영국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21세기는 모든 국가와 민족이 고립이 아니라 연대를, 폐쇄가 아니라 결속을 통한 평화로운 사회를 원한다. 이를 위해 영국은 전근대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버려야 한다.EU와 이혼 혹은 혼인 유지? 세계의 이목이 브렉시트에 쏠리고 있다. 이제 영국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

2019-04-15 09:58:06

이성환 게명대 일본학과 교수

[세계의창] 연호(年號)에 집착하는 일본

1980년대는 일본의 시대였다. 하버드대 교수 에즈라 보겔(Ezra F. Vogel)의 '세계 최고의 일본: 미국을 위한 교훈'(Japan as Number One: Lessons for America, 1979)과, 소니 회장 모리타 아키오와 우익정치가 이시하라 신타로가 함께 쓴 '노(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1989)이라는 두 권의 책이 이를 상징한다(한국에 모두 번역 출간됨). 시차는 있지만 두 권은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전자는 부제가 말하듯이, 추락하는 미국경제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며, 후자는 미국의 무역흑자 해소 압력에 대해 할 말은 하자는 것이다. 이 일본 예찬론을 배경으로 일본 배우기 열풍이 일었으며, 팍스 니포니카(pax-nipponica, pax-japonica)의 도래를 예견하는 시나리오도 등장했다. 지금의 중국몽(中國夢, pax-sinica)과 미중 무역전쟁과 닮은 구석이 있다.일본 예찬론은 일본 이질론(특수론)과 다름이 없었다. 일본의 성장은 일본만의 이질적이고 특수한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논의다. 자민당 장기집권, 일본적 경영, 천황제, 일본 문화론 등이다. 일본은 일당 장기집권과 균등한 소득분배, 저항하지 않는 국민을 가진 세계 유일의 성공한 '공산국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에 대해 일본 연구자들은 일본 보편론을 주장하며, 경제대국이지만 세계에 통용되지 않는 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자 했다. 일본 이질론은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을 '국화와 칼'(1946)이라는 정반대의 이중 상징으로 논했듯이, 일본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나라(enigma of japan)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1996)에서 세계 문명을 지역별로 8개로 분류하면서 유독 일본만은 하나의 특수문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이질론은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걸쳐 일본과 미국 사이에 '구조장벽협의'(Structural Impediments Initiative)의 갈등을 낳았다. 무역 장벽이 되고 있는 일본의 이질적인 사회 경제구조를 보편적 기준으로 바꿔 무역 흑자를 개선하라는 미국의 압력이었다. 그 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장기불황을 맞는다.일본과 가장 가까운 한국인들도 '가깝고도 먼' '알 수 없는 일본' 등으로 표현한다. 외국인에게 일본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천황제이다. 천황제의 특수성은 어느 나라에도 통용되지 않는 연호 사용에서 잘 드러난다. 세계적으로 보면 이슬람력, 북한의 주체력, 대만의 민국력 등이 있긴 하나 일본처럼 군주 교체 때마다 새 연호를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일본의 연호 사용은 오랜 관습이나, 현재의 연호 사용의 법적근거는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제정된 1979년의 원호법이다. 이 법은 천황 계승 때 정령(政令: 대통령령에 해당)으로 새 연호를 정한다고 되어있으며, 사용을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문서의 서식에는 연호만 있고 서력을 쓰는 공간이 없어 실제로는 연호 사용을 강제한다. 기독교 단체에서는 이를 국가가 천황의 지지를 강요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4월 1일 일본 정부는 '레이와'(令和)라는 새 연호를 발표했다. 지금의 천황이 퇴위하고 5월 1일부터 새 천황의 즉위와 함께 사용한다. 레이와는 겨울 추위를 견딘 매화처럼 내일을 향한 희망을 꽃피우는 나라이기를 소망한다는 뜻이란다. 평화를 명령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한다.지금까지 연호는 중국의 동양 고전에서 따왔으나, 이번에는 아베 신조 총리의 의지를 담아 처음으로 고대 일본의 시가집인 만엽집(萬葉集)에서 발췌했다. 동양의 보편성이 아니라 일본의 이질성을 강조하는 것일까. 아베와 일본의 국수주의가 아니기를 바란다.계명대 일본학과 교수/국경연구소장

2019-04-08 11:55:19

장동희 새마을세계화 재단 대표이사

[세계의창] 헬싱키 프로세스와 중재외교

핀란드 공평하고 중립적인 역할동서 진영 모든 국가로부터 신임북핵문제 해결 중재자 역할 자임우리 정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2015년 7월 6일, 헬싱키의 핀란디아 홀이 40년 만에 다시 세인의 주목을 잔뜩 끌었다. 핀란드가 자랑하는 세계적 건축가 알바르 알토가 설계한 이 순백의 대리석 건물에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원국 고위급 대표 300여 명이 모여들었다. 냉전시대 데탕트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헬싱키 의정서 채택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헬싱키 정신을 회상하며'라는 주제로 개최된 OSCE 24차 총회 개막식에서 핀란드의 니니스퇴 대통령은 "오늘 OSCE가 핀란디아 홀에 되돌아왔다"고 엄숙하게 선언하였다.1975년 8월 1일, 미국'소련을 포함한 동서 양 진영 국가원수 35명이 핀란디아 홀에 모여 서명한 헬싱키 의정서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탄생시킨다. 유럽 내 동서 양 진영 간 화해 협력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는 CSCE는 냉전 종식 후 국제기구로 승격되고, 이름도 '회의'(CSCE)에서 '기구'(OSCE)로 개칭된다.흔히 '헬싱키 프로세스'로 명명되는 이 의정서 채택 과정에서 핀란드가 보여준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 역할은 중재 외교의 모범사례로 꼽을 만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은 서방으로부터 전후 새로 형성된 국경에 대한 현상 유지를 승인받고 싶은 마음에 유럽안보회의 개최를 희망한다. 소련은 폴란드와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통하여 이러한 구상을 제안하지만, 서방 국가로부터 의혹의 눈초리만 받을 뿐이다. 이때 소련의 시야에 잡힌 것이 핀란드다. 1966년 파시오 핀란드 총리의 모스크바 방문 시 소련은 핀란드가 이 회의 소집에 총대를 메 줄 것을 요청한다.소련과 두 차례의 전쟁(1939년의 겨울전쟁과 1941~44년의 계속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서방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을 절감한 핀란드는 소련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중립 추구를 궁극적 외교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하여 소련이 핀란드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대하여 갖고 있는 의구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한다. 핀란드는 절대 반소 동맹의 전초기지가 되지 않을 것임을 수시로 확약한다. 1972년 동·서독을 모두 승인한 것도 이를 위한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핀란드는 유럽안보회의의 중립적 주창자가 될 경우, 소련의 신뢰를 확보함과 동시에 자국의 중립적 지위를 고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소련이 전 유럽국가에 회의 개최 제안서를 발송하자, 핀란드는 1969년 5월 5일 미국, 캐나다, 그리고 전 유럽국가에 각서를 발송, 핀란드가 유럽안보회의와 그 준비회의까지 개최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다.그러나 핀란드는 동서 양 진영으로부터 모두 의심을 받는다. 서방국가들은 핀란드가 소련의 하수인이 아닌가 의심한다. 동구 국가들은 핀란드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유럽안보회의의 성공 여부는 동서 양 진영으로부터의 신뢰 확보라는 것을 확신한 핀란드는 이를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한다. 본디 대상국가가 아니었던 미국과 캐나다를 초청한 것도 서방의 신뢰 확보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1972년 11월 22일 헬싱키 교외 디폴리에서 개최된 준비회의는 1973년 8월 향후 회의 진행 방법과 절차를 담은 소위 'Blue Book'을 채택한다. 이 과정에서 핀란드는 공평하고 중립적인 개최국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핀란드의 외교적 노력은 진영을 초월, 모든 참가국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이후 제네바 협상을 거쳐 1975년 헬싱키 의정서가 채택되는 데에는 당시 조성된 데탕트 분위기를 도외시할 순 없다.하지만 동서 양 진영으로부터 확보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핀란드의 정직하고 공평한 중재 외교가 큰 역할을 하였음도 부인할 수 없다.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재자 내지 촉진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2019-04-01 14:52:14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학과 교수

[세계의창] 중남미에서 민주주의를 배우다  

깨어있는 시민·책임있는 정치인함께 만드는 대화와 타협의 문화보수·진보 편싸움 바쁜 한국 사회선거때만 민주주의 외쳐선 곤란우리의 중남미에 대한 인식은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특히 정치에 대해서는 정치인들과 학자들조차도 중남미를 정치 후진국 혹은 '중남미식' 정치 불안정이라고 비하하며 우리도 중남미처럼 될 수 있다거나 중남미만도 못하다거나 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부적절한 표현이다.중남미 33개국에는 다양한 나라가 존재한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도 있지만, 한국보다 높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국가들도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8년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우루과이와 코스타리카가 20위 안에 들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고, 한국은 21위에, 그리고 칠레가 23위에 올랐다.중남미에서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이들 세 국가는 대통령제와 다당제 국가이면서도 정당 연합을 통해, 또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합의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안정된 국정 운영을 지속해 왔다.우루과이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Jose Mujica) 전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의 월급 기부 목적에서 나타나듯 우루과이에서 정치는 모두가 행복한 정치, 정당 간 컨센서스, 시민의 공무원에 대한 견제, 평등한 시민, 사회적 연대, 즉 공화주의의 실천을 말한다.이를 위해 1917년 국가 차원의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여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를 시행하고 있다. 국민발안은 유권자의 10% 서명, 국민투표는 유권자 25%의 서명을 충족해야 국민투표로 이어질 수 있는데, 제도 도입 이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시민 주도의 국민투표가 있었다. 유권자 서명을 받고 국민투표를 시행하기까지 2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고 국민투표에서 패배할 때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시민들은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안다. 서명 기간 동안 다른 시민들을 만나 입법 과정에 참여하고 토의하면서 일상의 정치를 즐겼기 때문이다.우루과이의 직접민주주의는 강한 대의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세 개의 주요 정당 중 홍당과 백당은 미국 민주당과 영국 보수당에 이어 1836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창당됐으며, 이것은 세계 최초로 복수의 정당이 정당 경쟁을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여당인 광역전선은 반독재 민주화 세력의 정당 연합이다. 직접민주주의 과정에서 시민들은 늘 정당과 연대하였고, 그만큼 유권자의 정당에 대한 신뢰는 크다.코스타리카도 시민의 정치 참여와 합의를 강조한다. 1964년부터 시작된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행하는 시민을 국가의 교육 목표로 하여 공동체 안에서 도덕적이고 참여하는 성숙한 시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권리와 의무를 교육한다. 유치원 때부터 시작하는 민주주의 교육을 통해 시민은 절차와 제도를 넘어 내 삶의 가치가 되는 민주주의를 체득하여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함으로써 국가의 근원이 된다. 시민 주도의 자치와 공고한 민주주의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코스타리카가 민주주의와 평화의 나라가 된 것은 1948년 군대를 폐지하면서부터다. 정당 간 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나 3천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군대를 없애고 국방비를 교육 예산에 쏟았다. 그렇게 시작한 민주주의 교육은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상징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우리와 같은 시기 군사독재를 겪었고 민주화를 이뤄낸 중남미 국가들은 대통령제라는 공통점도 있다. 중남미 정치에는 반면교사로 삼을 일도 있지만, 깨어 있는 시민과 책임 있는 정치인이 함께 만들어 가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도 있다.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커져 가는 한국 사회. 민주주의는 선거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2019-03-25 11:26:54

이성환 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일본이 왜 저럴까

위안부·강제징용 사사건건 생트집핵 존재하는 한반도 통일 두려워해'韓은 日의 관할' 과거적 사고 여전양국 관계 새로운 인식 프레임 필요작년 11월 일본 니가타의 한일포럼에 갔다. 최근 한국과 일본은 상대 국가에 대한 중요성이 낮아졌다. 이 때문에 관계 회복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어졌고 정부도, 여론도 무관심하다. "일본이/한국이 이상하다"고 서로 비난만 하고 있다.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이에 동의했다. '일본 모델을 이탈한 한국'의 성장으로 괴리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일본 측의 분석이 있었다. '한국의 성장으로 인한 괴리'라는 말이 거슬렸다. 한국이 성장하지 않았으면 한일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일본이 왜 저럴까 생각했다.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삐걱거린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초계기 위협, 강제징용 판결, 위안부 문제 등 사안마다 일본이 트집이다. 북한 핵 문제와 남북 관계에서 희망의 신호가 보이면 일본은 불편한 듯 애써 외면한다. 급기야 지난 1월 말 국정 방향을 밝히는 시정연설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중국을 강조하면서 한국은 없는 양 취급했다.지난달 28일 북미회담 결렬에 대한 일본의 반응에 갸우뚱했다. 관련국들이 아쉬움을 보이는 가운데 아베 총리는 기다린 듯이 "안이한 양보를 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한다"고 했다.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일본은 웃고 있다"고 했다. 일본 언론은 하노이 북미회담 전부터 부정적 평가를 많이 했다. 자체 분석인지 미국 정보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그들의 예상이 맞았으나, 한국 입장에서는 그것이 그들의 바람인지 방해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함이 있었다. 일본이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미국에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일본은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만을 없애고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 사정권 안에 남게 되거나, 핵을 가진 상태에서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일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면 계속 반대할 것이다.또 일본은 한국이 중국에 접근하는 데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일본에서 한국의 중국 경사(傾斜)론과 혐한(嫌韓)론이 거의 동시에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한반도에서 일본에 비우호적인 세력이 존재하거나, 동북아에서 고립되는 구도를 매우 꺼린다.일본의 미국 '추종'에는 이 같은 우려를 방지하거나 보완하는 방편으로서의 의미가 크다.일본의 이런 인식은 근대이행기에서부터 형성된 오랜 것이다.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며, 이토 히로부미와 쌍벽을 이뤘던 야마가타 아리토모 총리는 1890년 첫 의회 시정연설에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는 주권선(국경)이며, 주권선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익선을 지켜야 한다. 조선은 일본의 이익선이다"고 선언했다. 이후 일본은 한반도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일본이 안심하기 위해서는 조선(한국)은 일본의 수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 한일 간의 힘의 관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 청과 러시아의 세력이 강해지자 일본은 조선을 확보하기 위해 청일,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자국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으며, 한일병합은 그 연장이었다일본의 인식과 한일의 역학(力學) 관계는 한국의 독립 후에도 단절되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은 일본 '관할'하의 존재여야 했으며, 과거 침략에 대한 반성은 한국의 희망일 뿐이었다.그런데 삼성이 소니를 제쳤듯이 근대 이후에 형성되었던 한일 간 힘의 관계는 근본적 변혁을 맞고 있다. 중국의 굴기(崛起·벌떡 일어섬)로 1840년 아편전쟁 이후의 대국 관계가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일본이 이러한 변혁에 대한 현실 인식을 가지지 않으면 한일 관계는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다. 일본에게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한일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프레임이 필요하다.

2019-03-11 11:16:19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남긴 것

아무런 합의 보지 못하고 끝났지만사전조율 없는 회담의 위험성 각인북핵문제 올바르게 이해한 트럼프제대로 된 북핵협상 시작할 모멘텀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를 보지 못하고 끝났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소위 빅딜로 끝날지, 스몰딜로 끝날지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이렇게 아무런 결과 없이 끝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미·북 합의를 계기로 대북 경협을 본격화해보려던 우리 정부로서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기와 영변 핵시설 동결 정도의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를 볼까 걱정하던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잘못된 합의보다는 무합의가 낫다"(No deal is better than bad deal)는 것이다.그러나 금번 하노이 정상회담을 마냥 실패라고 할 필요는 없다.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모두에게 사전 조율 없는 정상회담의 위험성을 잘 깨우쳐 주었다.외교가에서 흔히 하는 말로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상회담은 협상하는 자리라기보다 외교관과 전문가들이 이미 협상을 완료한 사항을 확인, 공표하는 자리라는 의미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가 마지막까지 실무협상을 하고, '정상회담 합의문 초안'까지 마련하는 등 싱가포르 회담 때보다는 톱다운 방식의 문제점을 상당히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무협상을 제대로 가동하기도 전에 정상회담 날짜까지 미리 잡아 놓고 시작한 것은 문제가 있다.다음으로, 하노이 정상회담은 양 지도자에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김정은은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 때 팔아먹은 적이 있는 '영변'이라는 말(馬)을 세 번째로 팔아먹으려 했다.김정은은 대가로 유엔 제재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 '영변'이라는 말이 안보리 제재 결의 11건 중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의 해제 값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러나, 트럼프는 영변 핵시설의 영구폐기 정도로는 불충분하다며, 북한의 제안을 걷어찼다.이는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2005년의 9·19 공동성명과 2007년의 이행합의서를 통하여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 그리고 "검증"까지 약속한 바 있다.그리고 이행 초기 조치로 "재처리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을 약속하였다.이 당시만 하더라도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시설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트럼프는 '영변+알파'를 요구했다. 즉, 영변 이외 숨겨둔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와 미사일, 탄두 등이 포함된 신고 리스트 제출을 요구한 것이다.트럼프는 또한 북한이 "인민생활에 영향을 준다"며 해제 요구한 안보리 결의 5건이 사실상 북한의 기름과 돈줄을 옥죄는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트럼프는 영변에 있는 낡은 핵시설 해체와 가장 실효성 있는 대북 제재 해제를 맞바꾸자는 김정은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하노이 회담은 이제 제대로 된 북핵 협상을 개시할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 이번 회담을 통하여 미·북 양측은 상대방이 생각하는 거래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확인했다. 또한, 대북 협상의 가장 유용한 지렛대가 북한의 기름과 돈줄을 막아버린 5개 제재 결의임을 재확인한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2017년 말 최대의 압박을 통한 극적인 북핵 해결 기회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 이번 회담이 10여 년간 중단되었던 제대로 된 북핵 협상을 되살릴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종종 실패한 정상회담으로 치부되는 1986년의 레이건-고르바초프 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이 이후 실무협상을 거쳐 이듬해인 1987년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을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19-03-04 13:42:23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학과 교수

[세계의창] 칠레의 환경정책과 인간 삶의 질

오존층 파괴·대기오염 몸살 칠레단순 규제 아닌 지속 가능한 정책미세먼지 저감만 신경 쓰는 한국원인 규명·국제적 협력이 먼저다남반구 최남단 도시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 칠레)에 6개월이 넘는 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찾아왔다.햇볕이 그립기도 하겠지만, 자외선이 너무 강해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실외 활동을 할 때는 긴 소매와 긴 바지, 목을 덮는 모자 착용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자외선 차단제 사용도 필수다. 등하교 때에는 선글라스를 착용한 학생들까지 보인다. 오존층 구멍이 가장 크게 관측된 2000년대 초반에는 낮 시간 외출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을 만큼 이 지역의 환경 문제는 인간 삶을 위협하고 있다.남극 대기권 상공의 오존층에 구멍이 생기면서 강한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인데 자외선은 피부암, 백내장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고, 동식물에도 영향을 미쳐 생태계를 파괴시킨다.1985년 오존층 구멍이 처음 관측된 이후 오존층 보호를 위한 비엔나협약, 몬트리올협약 등 지구적 차원의 협력을 통해 프레온 가스 사용이 줄면서 오존층 구멍이 줄어들긴 하였으나 최근에는 사염화탄소 사용 증가로 그 회복 속도가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칠레는 오존층 파괴의 직접 당사국이 아니면서 피해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국가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와 협력함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2006년 자외선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목적의 환경법을 제정하였다.국민건강 보호를 위해 정부는 국민들이 언제든 정확한 자외선 지수를 알고 대응할 수 있도록 오존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전국의 자외선 지수를 지역별로 발표하고, 모든 언론이 오존 예보를 하도록 했다. 위험 단계에 이르면 학생들의 야외 활동은 물론 야외 작업장 노동자들의 야외 노동도 제한한다.학생들에게는 오존 센서를 제공하고, 자외선 노출의 위험을 알리는 시민교육을 강화하기도 했다.칠레의 환경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겨울이 되면 장작 난방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해진다. 칠레 중남부 가정의 77%가 장작 난방을 하는데, 노후화된 보일러가 미세먼지를 필터링하지 못하면서 밀폐된 가정 내의 공기뿐만 아니라 집 밖의 대기 질을 떨어뜨린다.또한 충분히 건조되지 않은 장작 사용이 많아 불을 붙이면 수분 때문에 점화가 잘 되지 않고 그을음을 내면서 불완전연소를 하게 되는데, 이때 생성되는 일산화탄소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다. 날이 추워지는 4월부터는 중남부 지역의 각 가정에서 배출하는 굴뚝 연기가 도시를 뒤덮어 앞이 보이지 않고, 호흡기 질환과 심폐 질환 환자가 증가한다.칠레 정부는 1991년부터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권고 수준에 그쳤다.그러나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업, 환경단체, 학자들이 모여 오랜 기간 숙의의 과정을 통해 지구 환경을 보존함으로써 개인의 삶의 질을 확대한다는 인식 기반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환경법 합의에 이르렀다. 자동차 5부제, 장작 보일러 사용 금지와 같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산림 조성 단계부터 장작 유통, 소비윤리, 환경보호, 국민건강 등 지속 가능한 발전의 관점에서 실질적인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실효성 있는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는데, 대기환경 측정소를 확대하여 대기환경 경보 시스템을 강화함으로써 시민들이 미세먼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였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였으며, 미세먼지의 위험성과 친환경 소비에 대한 시민 교육을 강화하였다.최근 우리 정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특별법은 원인 규명과 국제적 협력보다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 휴교 권고나 노후 차량 진입 규제와 같은 저감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속적인 저감 정책과 더불어 현재 미세먼지에 노출된 국민 건강과 환경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재정립되기를 바란다.

2019-02-25 16:13:59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세계의창] 결혼은 미친 짓인가

연애 결혼 포기하는 청춘남녀 늘며출생률도 덩달아 떨어져 위기 상황법률혼 중심 전통 관념에서 벗어나佛 계약결혼 가족형태 도입 고민을2002년 유하 감독이 만든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영화가 인기리에 상영되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준영(감우성 분)과 연희(엄정화 분)는 처음 만나 스스럼없이 성관계를 한다. 얼마 후 그들은 결혼한 척 가족을 속이고 신혼여행을 가고 부부처럼 행동한다. 이 영화는 속칭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이성교제란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어야 한다는 도덕적 엄숙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여전히 서로 사귀면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앞다투어 결혼하지는 않을 것 같다. 기성세대의 바람과는 달리 청년들은 아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통계청이 발표하고 있는 최근 혼인 통계를 보면, 청년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과 세태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2017년 기준 혼인 건수는 26만4천500건으로 1974년(25만9천600건) 이후 가장 낮다. 20대 10명 중 6명은 결혼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니 앞으로도 혼인 건수는 계속 줄어들 전망이다. 적정 인구 규모를 국가경쟁력의 근간으로 보고 있는 시각에서 보더라도 청년들의 혼인율 감소는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우리 민법은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부부관계를 인정하는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제812조 1항) 사실혼 부부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으니 서로 아무리 사랑하고 오래도록 살아도 법률상 인정되는 부부가 아니다. 형식적 절차 요건인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사실혼 부부와 법률혼 부부를 이렇게 차별해도 좋을까? 또한 법적 문제를 떠나 사실혼 부부는 '불륜관계'라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평생 심적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다.인구절벽으로 국가경쟁력 저하 운운하면서도 구태의연한 결혼제도만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의 태도는 바람직할까? 사회가 발전하고 진보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걸맞은 합리적이고 새로운 가족제도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가족 형태로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프랑스에서 부부가 함께 사는 방식에는 동거, PACS, 법적 결혼 등 3가지가 있다.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전통적인 결혼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PACS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2012년의 통계에 의하면, 이성 남녀 가운데 94%가 PACS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전체 혼인에서 결혼이 차지하는 비율은 6%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적잖은 충격이다.PACS로 대표되는 다양한 가족정책의 실시는 곧바로 출생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1970년 2.64명이던 프랑스의 출생률은 2000년 1.97명으로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적극적인 출생장려정책으로 2010년 1.97명으로 높아졌고, 2015년에는 2.1명으로 유럽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우리나라에서도 PACS와 같은 제도 도입이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4년 당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약칭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준비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혈연과 혼인관계로 이뤄지지 않은 동거 가구도 가족으로 보고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게 하자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었더라면, 애인'친구와도 법적 가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이다.이제 우리 사회도 법률혼 중심의 전통 관념에서 벗어나 PACS와 같은 새로운 가족제도를 도입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동반자로 살고 있다면, 그들의 권리를 법'제도적으로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청년들이 결혼은 더 이상 미친 짓이 아니라 축복임을 아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2019-02-18 11: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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