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

[세계의 창] 세네갈 새마을운동과 고레(Goree)섬

지난주 세네갈 출장을 다녀왔다.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차로 9시간 거리에 있는 움보르비란 마을에서 거행된 모내기 시범행사 참석을 위해서다. 이날 행사에는 관할 주지사, 시장뿐 아니라, 주세네갈 한국 대사도 먼 거리를 마다 않고 달려와 참석하는 등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에서 도입한 이앙기를 이용해 순식간에 한 마지기 논의 모내기를 마치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그간 세네갈에서는 논에 직접 씨를 뿌리는 직파 방식을 통하여 연간 ㏊당 3~4t의 쌀을 생산했다. 새마을세계화재단의 안덕종 세네갈 사무소장(농학박사)은 못자리에서 모를 기른 다음 논으로 옮겨 심는 한국식 농법을 적용할 경우, ㏊당 10t의 쌀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이를 통하여 세네갈에서 농업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한다. 104㏊(31만 평)의 황무지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농토로 만든 그다. 더욱 놀라운 일은 양 몇 마리를 들에 풀어놓고 그늘에서 낮잠만 즐기던 마을 주민들이 이제는 땡볕에도 논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것이다. 바로 새마을정신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이번 방문의 또 다른 목적은 세네갈 내 새마을 사업의 효과적 추진을 위한 본부협정 체결이었다. 협정 서명 후 아마두 바 세네갈 외무장관은 경북도와 새마을세계화 재단이 지금까지 세네갈 내에서 시행한 새마을세계화 사업의 성공적 수행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또한, 현재 진행 중인 시범마을 사업도 성공리에 마쳐서 새마을 정신이 세네갈 전역으로 확대되어 나가길 희망한다고 말하였다.이날 서명한 본부협정은 세네갈 주재 우리 재단 사무소에 외교 공관에 준하는 특권면제를 부여하는 협정이다.외교 공관이나 국제기구가 아닌 법인이나 단체에 이러한 특권면제를 부여하는 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선례가 없는 일이다. 외무장관이 직접 나와서 필자와 나란히 앉아 협정에 서명한 것도 세네갈 정부가 새마을 사업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를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세네갈 주재 재단 사무소 차량 번호판은 'SAEMAUL xxxx' 로 표기 되어 있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새마을 홍보물이다. 세네갈 출장길에 16~19세기 아프리카 노예 무역의 중심지였던 고레(Goree)섬을 방문할 기회를 가진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다. 수도 다카르에서 3㎞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섬은 자색, 노란색, 흰색 등의 예쁜 건물이 어우러져 유럽의 여느 시골 마을을 연상시킨다.그러나 300년 동안 2천만 명의 흑인 노예를 송출한 슬픈 역사를 지닌 섬이다. 이 상흔을 기리기 위하여 1978년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섬 중앙에는 아직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노예의 집'이 있다. 2.6㎡ 크기의 방에 노예 20여 명씩을 가두어 두었다 한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서로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잤다고 한다. 젊은 여성 노예들의 유일한 희망은 노예 무역상과 성관계를 해서 임신을 하는 것이다. 백인의 아이를 갖게 되면 풀려났기 때문이다.또 다른 막사에는 젊고 건강한 흑인 여성들을 수용, 체격이 건장한 남성들과 관계를 갖게 해서, 튼튼한 아이를 생산하도록 하였다. 사육해서 팔아먹을 새끼 노예인 것이다.바다 쪽으로 난 통로를 지나면 '돌아올 수 없는 문'이 나온다. 이 문을 나서면 배에 실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팔려 나간다. 배에는 노예들을 눕혀서 한 층, 한 층 짐짝 싣듯이 실었다.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동물보다 못한 상품에 지나지 않았다. 가이드로부터 이런 설명을 들으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내내 생각하게 되었다.우리의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이들이 좀 더 잘살 수 있게 된다면, 같은 인류로서 이전 세대가 범한 못된 짓에 대한 조금의 속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새마을운동에서 승화된 박애주의를 느낀다.

2019-09-16 11:20:08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새마을운동'을 대한민국의 브랜드로

지난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은 50명의 석사 졸업생을 배출했다. 영남대는 대한민국의 국제개발협력 실천에 동참하고 나아가 국격 향상 및 인류 공영에 기여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 2011년 개발도상국의 지속 가능한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주도할 인재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을 설립했다.박정희새마을대학원은 개원 이래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등의 67개국에서 온 667명의 학생들을 교육해오고 있다. 이들 학생들은 대부분 개도국의 공무원 또는 이들 국가들의 개발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다. 박정희새마을대학원에서는 새마을운동을 포함한 한국의 개발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개도국에 자조 역량 개발을 촉진할 자기개발 원조 모델을 확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론과 실무 교육 및 정신(태도) 변화를 통한 지도자로서의 실천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대부분의 졸업생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정부 및 비정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마을운동을 소개하고 또한 실천하고 있다. 필리핀과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졸업생들이 직접 새마을운동을 현지 마을에 적용하여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 등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탄자니아에서는 졸업생이 시장이 되어 본인의 시뿐만 아니라 빅토리아호수 연안에 있는 탄자니아, 우간다, 케냐 등 3개국 113개 지방정부 및 자치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빅토리아호수지역 지자체연합(LVRLAC)과 함께 새마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새마을운동 방식의 농촌 개발에 농업관개축산부에 근무하는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졸업생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새마을운동의 효과성에 대한 확신과 전문 지식으로 무장된 두 졸업생의 노력으로 암하라주와 SNNPR주에서 새마을운동을 농촌 개발 모델로 채택해 시행하고 있다.한편 지금까지 선진국을 중심으로 많은 예산이 개도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투입됐지만 수혜국 주민들의 주인 의식 부족과 역량 부족 등으로 인해 대부분 지속 가능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민 참여 유도, 자조와 자립 정신 배양, 교육과 역량 강화, 공정한 평가와 성과에 따른 차등 지원 등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면 보다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ODA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미국, 유럽, 일본 및 중국의 개도국에 대한 유무상의 원조액에 비해 한국의 원조액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국제사회에서 ODA는 단순히 개도국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 개도국과의 외교 및 경제적 협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개도국에 대한 지원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은 개도국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발전 경험을 '새마을운동'으로 브랜드화하여 앞으로 개도국에 대한 모든 ODA와 경제 지원을 일관성 있게 이 브랜드로 시행하면 적은 예산으로 보다 효과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현재 새마을운동중앙회와 경상북도 새마을세계화재단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개도국 지도자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단기 연수,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에서 하고 있는 개도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새마을운동 기반의 지역사회 개발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화된 이론 및 실무 교육, 그리고 모든 ODA 사업에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는 정책이 함께 시행될 필요가 있다. 단기 연수를 통해서 개도국에 새마을운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개발 동기를 부여하고, 정규 학위 과정에서 체계적이고 심화된 새마을운동과 개발 정책에 대한 교육으로 개발을 주도할 개도국 공무원과 지도자들의 실행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여 ODA 사업을 수행하도록 일관성 있게 지원 및 관리하면 한국의 ODA 사업은 보다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2019-09-09 10:28:05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교수

[세계의 창] 벨파스트 평화의 벽

북아일랜드의 도시 벨파스트(Belfast)에는 '평화의 벽'(Peace Walls)이 있다. 벨파스트의 여러 곳에 설치된 이 벽들은 크기가 다양한데, 몇백m에 불과한 짧은 것이 있는가 하면 5㎞에 달하는 매우 긴 것도 있다. '평화의 벽'이라는 이름 대신 종종 '평화선'(Peace Lines)이라 불리기도 하며 모양도 여러 가지여서, 아무도 넘어갈 수 없는 높고 튼튼한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철책을 둘러치거나 또 어떤 곳은 도로표시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밋밋한 벽도 있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벽화가 많고, 몇 해 전에는 영국의 유명한 그라피티 미술가 뱅크시(Banksy)가 이곳에 그림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근래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차츰 늘어나자 택시 관광(Taxi Tour)이라는 것이 생겨났는데, 어떤 여행객은 평화의 벽에 자신의 메시지와 서명을 남겨 놓고 가기도 한다.그런데 벽과 평화라는 두 단어는 서로 어울리기나 한 것일까? 가만 생각해보면, 벽이라는 단어에는 분리, 단절, 고립, 방어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조화, 연결, 소통, 일치를 속성으로 하는 평화와 연결되는지 의아해진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기묘하게 조합된 이 구조물은 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일까?벨파스트가 속해 있는 북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와 함께 영연방을 이루는 영국 영토이다. 아일랜드(에이레)와 같은 섬에 있으면서도 별개의 나라가 된 것은, 수백 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독립할 때 북아일랜드 지역은 영국령으로 남아 있기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생겨났다. 북아일랜드에는 아일랜드와 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영국 정부에 그대로 소속되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이 상황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심각한 폭력사태로 치달았다. 특히 벨파스트에서는 1980, 90년대의 유혈 투쟁으로 무고한 많은 시민이 희생되었고, 억울함과 적개심,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자, 서로를 분리하기 위한 장벽이 도시 곳곳에 세워졌다. 그들의 상반된 주장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그 뿌리가 중세에까지 닿아 있는 오랜 적대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일랜드인과 영국인, 구교도와 신교도, 공화파와 왕당파, 독립파와 통합파, 민족주의자와 연합주의자로 그들은 서로를 분리하고 배척했다. 1998년의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이른바 성금요일 평화협정 체결로 벨파스트의 무장투쟁은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영국의 브렉시트 결과가 북아일랜드에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시민들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벨파스트 곳곳에 세워졌던 벽은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행의 즐거움 대신 역사의 무거운 메시지를 전해준다.시야를 조금 넓혀 보면, 평화의 벽이 북아일랜드에만 세워진 것은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평화를 빙자한 벽 세우기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화의 시대를 사는 것일까? 정치적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빈부의 갈등, 남성과 여성의 갈등, 북한과의 갈등, 이웃한 나라들과의 갈등. 매일 쏟아지는 갈등 뉴스의 홍수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진다.나와 너를 가르는 정체성의 기준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 기준들이 서로를 적대시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허무는 것이 평화다. 높은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기 위해 마주 앉는 것이 평화다. 대화를 통해 협조하고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잘잘못을 따지고 주먹을 불끈 쥐는 것보다, 인내와 오랜 기다림으로 대화를 맞이하는 것이 훨씬 인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평화가 찾아들어, 갈등으로 쌓아 올린 높은 벽들이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변모하기를 희망한다.

2019-09-02 10:53:34

이성환 계명대 교수 (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아베는 헌법 개정을 할 수 있을까

올해는 메이지유신 151주년이다. 1945년까지의 77년간은 침략전쟁으로 일관했고, 그 후 현재까지 74년간은 평화로웠다. 근대 일본은 전쟁과 평화의 시대가 반반이다.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하는 현행 헌법 9조는 일본을 평화 국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다시 전쟁 국가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헌법 9조를 개정해 군대를 보유하여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려는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론이 그것이다.아베가 이끄는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정권은 2014년과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인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했다. 연립정권은 2016년의 참의원 선거에서도 3분의 2를 넘겼다. 참의원 선거 직후 아베는 "중의원도, 참의원도 3분의 2를 넘겼다. 이제 헌법 개정이다"고 외쳤다. 그럼에도 아베는 왜 헌법 개정을 못 했을까. 일본의 헌법 개정 절차 때문이다. 국회 발의 후 국민투표를 거치는 것은 한국과 같으나, 국민투표 방식이 다르다. 한국은 개정 조항을 일괄하여 한 번 투표한다. 반대 조항이 있어도 찬성표를 던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본은 개정 조항별로 찬반을 표한다. 개정 조항이 10개이면 투표용지도 10장이다. 번거로움을 약간 줄이는 방법으로 국회에서 합의하여 관련 조항들을 묶어 항목별로 투표할 수 있다. 자민당은 9조의 자위대 명기, 긴급사태 관련, 교육 무상화 관련, 참의원 선거구 조정 등 4개 항목을 예상하고 있다.문제는 여론조사를 보면 3개 항목에 대해서는 찬성률이 높으나 9조 개정에는 찬반이 팽팽하다. 국민투표에서 헌법 개정의 핵심인 9조 개정은 통과 가능성이 낮다. 아베가 밀어붙이지 못한 이유이다. 9조 개정에 실패하면 다시 헌법 개정을 시도하기까지는 요원한 세월이 필요하다. 수출규제 조치가 취해진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8석이 줄었다. 개헌에 찬성하는 무소속 의원을 합쳐도 참의원에서 개헌 세력은 3분의 2에 못 미친다.(최근 일부 야당의 동조 움직임이 있다). 수출규제로 한국 때리기를 하면서까지 심혈을 기울였던 아베에게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는 실패였다.아베는 왜 헌법 개정에 집착할까. 그는 2006년 '아름다운 일본'을 슬로건으로 52세의 최연소 총리가 되었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1년 만에 사임했다. 2012년에는 '강한 일본'을 내걸고 두 번째 총리에 취임했다. 둘을 합치면 '아름다운 강한 일본'이 그의 정치적 목표이다. 지향점은 2차세계대전 이전의 대일본제국이다. 침략전쟁으로 국가 '위신'을 높여가던 강한 일본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이런 그의 정치적 지향을 뒷받침하는 것이 '일본회의'다. 일본회의는 1960년대 반미와 천황제 폐지를 주창하는 좌익 학생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대일본제국헌법 체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신도(神道) 계열의 우익 학생운동의 연합체가 그 모태다. 그때의 우익 학생 지도자들이 지금의 일본회의를 지도하고 있다. 그들은 태평양전쟁 시기 대동아공영권을 기치로 아시아를 침략하던 그때를 일본 최고의 순간이라 한다.그 기저에는 경기침체, 노령화,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사회적 활력이 없어지고, 한국과 중국의 추격으로 존재감이 저하하는 데 대한 불안이 있다.이러한 불안이 침략전쟁 시대의 개인의 궁핍은 망각하고 펄럭이던 일장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2차대전 이전의 국가 상징을 모두 폐기했다. 일본은 천황제, 일장기, 욱일기를 여전히 국가 상징으로 사용한다.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의 포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배경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종료됐다. 한일 간의 군사협력의 상징이 사라졌다. 이를 핑계로 아베는 안보 위기론을 부추기며 헌법 개정에 박차를 가할 것이나, 쉽지 않다. 일본에게도 좋다.

2019-08-26 11:17:24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 핀란드대사/국제법 박사

[세계의 창]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보고서

주말에 넷플릭스를 이용,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봤다. 필자가 좋아하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TV를 켜자마자 바로 몰입되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둘러싼 사건이 나의 중견 외교관 시절 추억이 서린 비엔나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사건 전개 과정에서 펼쳐지는 법리 논쟁, 그것도 약탈 문화재 반환에 관한 문제는 필자가 줄곧 관심을 갖고 지켜봐 온 이슈 중 하나다.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주인공인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 분)의 삼촌인 페르디난트가 클림트에게 부탁하여 그린 부인 아델레의 초상화이다. 찬란한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갸름한 얼굴의 여인을 그린 이 초상화는 1938년 나치에 의하여 압류당한다. 나치는 1941년 이 그림을 비엔나에 있는 벨베데르궁으로 옮기고, 그림의 주인공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그림 제목을 'Woman in Gold'로 바꾼다. 바로 영화 제목이다.한편, 페르디난트는 모든 재산을 유일한 혈육인 질녀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남기고 1945년 사망한다. 영화는 나치의 점령에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망명한 마리아가 나치에게 빼앗긴 그림을 되찾아 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그림 시가가 1억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알고 사건에 뛰어들었던 신출내기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 분)는 비엔나에서 자신의 증조부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다는 것을 알고는 돈을 떠나 그림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소명 의식을 느낀다. 랜디와 마리아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나치 약탈 예술품 반환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설치한 반환위원회에 그림 반환을 요청하지만, 위원회는 아델레가 그림을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에 기증하도록 유언을 남겼다며 반환 불허를 결정한다. 랜디는 그림의 소유자는 아델레가 아닌 페르디난트이기 때문에 아델레는 그림을 기증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뉴욕으로 돌아온 랜디는 어느 날 책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클림트 화보를 발견하고는 환호한다.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미국의 주권면제법(FSIA)이다. 주권면제법은 원칙적으로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허용하지 않는다. 단, 외국 정부기관이 미국 내에서 영리행위를 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이와 관련된 소송은 허용된다. 화보 판매를 영리행위로 판단한 랜디는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미 연방법원에 그림 반환 소송을 제기한다. 오스트리아 측은 1976년 제정된 주권면제법은 동 사건에 소급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미 법원은 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 대법원은 동 법은 기존 국제법을 성문화한 것이기 때문에 소급 적용이 아니라며 오스트리아 측 주장을 배척한다. 재판 과정에서 양측은 미 국내 법원보다 중재를 통하여 사건을 해결하기로 합의한다. 중재재판소는 2006년 마리아 측의 손을 들어주고, 결국 그림은 벨베데르궁을 떠나 마리아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이 사건은 한 개인이 외국 정부기관이 소유한 나치의 약탈 문화재를 되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사건이 '약탈 문화재는 원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양시키는 데 기여한 면은 있겠지만, 많은 이가 관심을 갖고 있는 2차대전 이전 반출 문화재 환수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 우선, 이 사건 대상물 자체가 반출 문화재가 아니다. 이 분야 국제조약으로는 '문화재 불법 수출입 및 소유권 이전 금지에 관한 UNESCO 협약'과 '도난 및 불법 반출 문화재에 관한 UNIDROIT(사법통일국제협회) 협약'이 있으나, 두 협약 모두 협약이 채택되기 이전 발생한 사안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우먼 인 골드'를 보고 고무되었던 많은 이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법의 현실이다. 언젠가는 이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도록 국제법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2019-08-19 12:31:46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개인적 차이의 인정과 공정한 경쟁에 대한 논쟁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자 육상 중장거리 선수 '캐스터 세메냐'의 국제대회 여자부 경기 출전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두 번의 올림픽 육상 800m 우승자인 세메냐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과 테스토스트론 수치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이 대립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메냐가 18세의 나이로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대회 800m에서 우승한 후 IAAF는 그녀에 대한 '성판별 과정'을 진행했고, 2010년 7월 그녀는 즉시 모든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고 했다.지난해 4월 IAAF는 "선천적으로 테스토스트론 분비량이 많은 여자 선수들은 국제대회 개막 6개월 전부터 약물 처방을 받아 일정 수치(5nmol/L) 이하로 낮추지 않으면 국제대회의 제한된 종목에 출전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성 발달 차이'(DSD)에 대한 규정을 채택했다. 세메냐는 이 규정을 "그녀를 겨냥한 불평등한 규정"이라고 항의하면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으나 지난 5월에 패소했다. 세메냐는 불복해 스위스 연방법원에 항소했다. 스위스 연방법원은 지난 6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IAAF 규정은 한시적으로 효력이 정지되고 세메냐는 제한 없이 여자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고 했으나 56일 만인 7월 30일, 이전 결정을 번복하고 스위스 연방법원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여자부 400m와 1천500m 사이의 종목에 출전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세메냐 사례는 많은 논란과 관련 기관들의 반복적으로 서로 상반되는 결정을 불러왔다. 이는 근본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개인적 차이에 대한 인정과 공정한 경쟁에 관한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IAAF는 높은 테스토스트론 수치가 여자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이를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IAAF는 테스토스트론 수치가 경기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다양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예를 들면 2천127명의 선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약물을 복용(doping)하여 인위적으로 테스토스트론 수치를 높인 여자 선수들의 경기 성과가 몇 가지 종목에서 현저하게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한편 지금까지 여성으로서의 인생을 살아온 세메냐에게 이 규정의 적용은 차별적이고, 개인의 인권 침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부 과학자와 의사들도 IAAF의 규정과 그 기반이 된 연구 방법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우선 다른 변수들에 대한 통제 없이 단순히 테스토스트론 수치에만 초점을 맞추어 테스토스트론 수치가 경기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들은 농구에서의 큰 키와 수영에서의 긴 팔 등과 같이 어느 정도의 육체적 이점과 유전적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이들은 2018년 런던 마라톤대회 상위 10위 이내에 든 남녀 마라톤 선수들은 모두 아프리카 출신이었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유하고 있을지 모르는 어떤 유전적 특성도 찾아내 제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이 규정의 또 다른 문제는 약물을 투여하여 인위적으로 선수의 테스토스트론 수치를 낮추게 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이며 선수의 건강에 미칠 위험은 없는지에 관한 것이다.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공정한 경쟁이라는 명분으로 유전적 차이와 같은 다양한 기준에 의한 새로운 구분과 규정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과연 이와 같은 현상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어디까지 구분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나아가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기준에 의해 인간을 구분하고 개인을 그 틀 속에 가두려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을 어떤 범주로 구분하기 전에 다양한 개인적 차이를 가진 같은 인간으로서 인식하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2019-08-12 10:24:17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세계의 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지난달 6일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여기 포함된 서원은 연속 유산 형태의 9곳으로, 영주의 소수서원,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의 옥산서원, 달성의 도동서원, 함양의 남계서원, 정읍의 무성서원, 장성의 필암서원, 그리고 논산의 돈암서원이다. 각 매스컴에서는 '한국의 서원'이 우리나라의 14번째 세계유산이 되었다는 뉴스를 앞다투어 전하였고, 많은 사람이 이 반가운 소식에 뿌듯해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알아야 할 것, 즉 서원의 세계문화유산 선정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도되지 않아서, 내용보다는 겉모습이나 상대적 순위가 중요시되는 세태를 보는 듯하여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무엇이 '한국의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든 것일까? 그것은 뛰어난 건축술이나 주변 풍경과 어울리는 시각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라는 영문명처럼 서원이 성리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문의 장소였기 때문이며, 사람들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교적 문화와 전통의 특출한 증거였기 때문이다.서원의 역사는 조선 중기인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관학으로는 한양에 성균관, 그리고 지방에는 향교(鄕校)가 있었는데, 이들과 달리 서원은 지방의 지식인이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한국의 서원'은 학문기구일 뿐 아니라, 서적을 펴내는 출판, 책의 보관과 대여를 담당하는 기구이기도 하였다.또한 서원은 지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를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삼고 선현의 제사를 지내는 제향 시설이기도 하였으며 지역사회 유지를 위한 향촌 자치 운영 기구의 역할도 겸하였으므로, 교육, 종교, 행정의 여러 분야에 걸쳐 성리학이 조선 시대의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서원은 성리학 가치에 부합하는 지식인을 양성했고, 충과 효, 그리고 예를 강조하는 사회 전통을 자리 잡게 하였다.서원을 방문하면 놀라게 될 때가 있는데, 입구가 생각보다 작고 높이도 낮아서 키가 아주 큰 사람의 경우는 머리를 숙이거나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궁궐 문이라도 되는 듯 엄청나게 큰 입구를 가진 요즘 대학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데, 학문을 하는 겸손한 태도와 검소한 선비의 모습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물론 서원이 항상 긍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만은 아니다. 붕당정치에 휩쓸리기도 하고 급기야 '서원철폐령'까지 내려졌던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는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주는 서원의 역사로서 간직되고 연구되어야 한다.'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철저한 보존관리를 약속하였다. 하지만 보존관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여태 해오던 것처럼 기껏해야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거나 주변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유네스코로부터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로서 인정받은 문화유산을 제대로 이어나갈 적극적 발전 방안이 필요하다.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문화유산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에게 시사점이 많은 곳이다. 루브르는 원래 도시 방어를 위해서 지어진 요새에 불과했지만,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 확장되면서 왕궁이 되었고, 베르사유 궁전에 정궁의 자리를 내준 이후에는 왕실 아카데미와 살롱으로 사용되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에 박물관으로 탄생하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다녀가는 박물관이기에 상업화로 치우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나, 프랑스 역사의 산실로서 풍부한 자료를 다양한 매체로 제공하려는 노력은 매우 진지하다.'한국의 서원'. 미래 세대와 더불어 향유할 수 있도록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가꾸어 나가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19-08-05 11:13:54

이성환 계명대 교수(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한국은 '조선'이 아니고, 고통은 탈(脫)일본을 촉진한다

유치원생 손자가 "할아버지, 일본이 왜 우리나라를 못살게 해요" 했다. "한국이 미운가 봐"라고 하자, "왜 미워하는 데?" 더 이상 대화를 잇지 못했다. 어린아이 눈에도 일본의 급작스러운 수출규제 조치가 걱정스러운가 보다. 일본은 왜 이럴까.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 때문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나 일본 정부는 아니라면서도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외교로 풀어야 할 과거사 문제를 경제력으로 덮으려니 대답이 궁색하다. 아베 총리는 한일 간의 신뢰 문제라고 했다. 신뢰가 없어도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장사인데, 일본은 아예 가게를 걸어 잠갔다. 물건을 팔지 않겠다니 누가 그 가게를 믿을까. 이제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만은 '신뢰'라는 단어를 쓰지 못한다. 어쨌든 쌓인 불만을 못 이긴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서의 군사 침략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왜 물건을 팔지 않는가. 안 팔아서 생기는 손해보다 고객의 손실이 더 클 터이니 백기 투항할 것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필요한 물건이 그곳에만 있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물건은 없다. 발품이 들고 질이 조금 떨어질지 모르나 못 구하지는 않는다. 가게는 어떻게 될까. 손님이 다시 찾지 않으니 폐업하게 될 것이다.(일본 전체는 아닐지라도 그 물건을 파는 가게는 그럴 것이다)일본을 분노케 한 불만은 무엇일까.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위안부 문제는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의 책임이 인정되었고,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은 중국과 미국에 책임을 인정했고,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점은 일본도 인정해 온 것이었다. 이 때문에 과거사 문제는 이번 사태의 빌미이지 본질이 아니다. 한마디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불만은 총체적이다. 식민 지배의 연장선에서 과거에 말 잘 듣던 한국이 언제부터인가 자기 목소리를 내니 얄밉고, 분통이 터진다. 한국도 되돌아보니 과거에 당한 것이 너무 부당하고 억울해 따져야겠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수직적인 한일 간의 역학(力學)이 수평적으로 바뀌고 있는 전환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 한국을 '조선'이라 여기고 과거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본질이다.게다가 미래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다. 일본은 한반도가 언젠가는 통일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에 물결이 더 빨라졌다. 그런데 자기 '관할'이었던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은 닭 쫓던 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정은에게까지 러브콜을 보냈지만, 욕설만 돌아왔다. 일본은 핵무장을 한 통일 한반도, 그리고 중국에 경도된 통일 한국이 두려워진다. 일본에 대해 역사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통일 한국과 중국이 스크럼을 짜면 일본은 어떻게 될까. 존재감이 커진 한국과 중국이 버티는 아시아에서 일본은 미국에만 매달려 생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일본은 한국을 계속 말 잘 듣는 '착한 조선'으로 두고 싶어 한다. 75년 전에 소멸한 '대일본제국'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말하는 영광의 일본이다.미중 무역전쟁에서도 가격을 올리겠다고는 해도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는다.그래서 일본의 이번 조치는 경제 행위가 아니고 '침략'이다. 물건을 팔지 않으면 고객은 잠시 힘들지 모르나 고객을 잃은 가게는 문을 닫는다. 지금 한국의 기업과 국민은 힘들다. 그러나 지금의 고통에 비례해 한국의 탈일본화가 촉진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조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금의 한일 관계가 최악의 위기라고 한다. 기존의 한일 관계 틀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최악도 위기도 아니다. 과거의 조선과 일본제국의 관계가 현재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로 바뀌는 산통일 것이다. 견디면 반드시 이기고, 새로워진다.

2019-07-29 11:11:51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한일 간 갈등, 어떻게 풀 것인가?

일제강점하 강제징용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로 야기된 한일 간 갈등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상 분쟁 해결 절차인 외교적 협의와 중재위 설치를 제안했지만 한국 정부는 응하지 않았다.일본이 오사카 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우리 핵심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쓰이는 3대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하자, 한국 정부와 국내 민심은 격앙되었다. 죽창가와 국채보상운동, 12척의 배, 심지어 의병이라는 대일 항전 의지를 다지는 결기 어린 단어들이 등장했다.이런 가운데 일본이 청구권 협정상 마지막 단계로 제안한 '제3국 정부에 의한 중재위 설치' 기한이 지난 18일로 끝났다.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다음 날 "한국에 대한 필요한 조치를 궁리하겠다"고 협박조로 말했다. 일본은 지난 7월 1일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시키기 위하여 8월 말까지 관련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조치가 실행되면 일본 정부는 자동차, 가전, 전자 등 한국의 산업 전반으로 수출규제를 확대할 수 있다.일본은 규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이 아니며 안보상의 이유로 수출 관리 운용을 재검토하는 차원이라고 강변한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무역규제 조치 금지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는 '국가 안보상 수출입 제한 조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본이 항상 주장하는 법치(法治)의 왜곡일 뿐 아니라,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자유무역 이념과도 상치되는 꼼수이다.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경제무역 전쟁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비롯한 국제질서를 훼손시킬 뿐 아니라, 양국 모두에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그러면 양국 간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일본의 여러 가지 구차한 핑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무역규제 조치는 지난해 우리 대법원이 내린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따라서 갈등 해소는 사태 발단의 직접적 원인이 된 대법원 판결을 치유하는 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해결 방안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관련 기업이 기금을 조성해서 보상하는 방안(1+1), 여기에 한국 정부가 참여하는 1+1+알파 등의 방안이 거론되곤 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이 군대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였고, 54년간 일관되게 유지되어온 협정을 뒤집는 믿지 못할 나라라며 분개한다. 따라서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자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어떤 안도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로서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할 수도 없다. 이러한 딜레마를 타개하는 방안으로 국제사법절차에 호소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통한 해결을 제안하기도 하나, 제국주의 통치에 대한 ICJ의 비교적 관대한 태도와 일본의 ICJ 재판관 배출 경력 등을 감안할 때, ICJ보다는 청구권 협정에 규정된 중재위를 통한 해결이 더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이 경우 청구권 협정상 분쟁 해결 절차를 수용함으로써 대한민국이 국제법상 법치국가임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중재위 수락 시 이미 발표한 3개 규제 품목 철회를 조건으로 요구할 수 있으며, 일본의 추가 제재 조치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중재 과정에서 외교적 타협 도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유의할 점은 이 중재위 심리를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제로섬 게임으로 몰고 가지 말아야 한다. 향후 분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양국 간 의견을 달리하는 협정에 대하여 제3의 권위 있는 객관적 기관에 유권해석을 의뢰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염두에 두고 대비하여야 한다. 양측 다 국수주의에 호소하는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성숙한 자세로 문제해결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대사·국제법 법학박사)

2019-07-22 11:34:27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캐러밴의 비극과 미국 이민정책

얼마 전 미국과 멕시코 국경인 리오그란데강에 빠져 사망한 한 남성과 아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미국으로 불법 입국하기 위해 강을 건너려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엘살바도르 국적의 젊은 아빠와 23개월 된 딸로 밝혀졌다.이 사진 한 장으로 미국의 이민정책이 재조명되고 있다. 소위 '캐러밴'(Caravan)으로 불리는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미 출신의 이주자들이 미국-멕시코 국경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본국의 절망적인 폭력과 치안 부재 그리고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목숨을 건 미국행을 택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 국경수비대에 의하면 2018년 한 해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숨진 이주자 수는 적어도 283명이라고 한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상황을 '침입'(invasion)이라 규정하고, 강경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남부 국경을 넘어오는 이주자들을 마약 밀거래, 테러, 성범죄, 성매매 등의 범죄와 연계해 이들의 이주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가족 분리' 정책으로 체포된 불법 이주자와 난민 신청자의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분리시켜 수용하였고(이 정책은 '아동 인권 침해'라는 연방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난해 6월 중단됨), 무관용 이민정책을 도입해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범죄자로 기소하여 감옥으로 보내고 있다.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려 2019년 2월에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의 논리는 보다 강경한 이민정책으로 이들이 미국행을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구체적 수치를 들어 강경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미국 남부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이주자 수는 2000년 164만 명을 기록한 후 지난 18년간 감소해 트럼프 대통령 집권 1년 차인 2017년에는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2018년에는 조금 증가한 약 40만 명을 기록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국가비상사태가 결코 아니며 정치적 목적으로 '가공된 위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법 월경은 남부 국경뿐만 아니라 북쪽의 캐나다 국경과 해안 국경을 따라서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7년 캐나다 및 해안 국경에서 체포된 불법 입국자 수는 각각 3천27명과 3천588명이었다.또 매년 미국에 정착하는 불법 이민자의 가장 많은 수는 비자가 만료된 후 계속 불법으로 체류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공식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2016년 불법 월경자 수는 56만3천204명인 데 비해 비자가 만료된 불법 체류자 수는 이보다 많은 73만9천478명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마약 밀거래자, 테러 용의자, 성범죄자 등은 대부분 공항과 같은 공식 출입국사무소를 통해 입국했으며, 중남미 이주자들에 의한 범죄율은 내국인들의 범죄율에 비해 오히려 낮다고 한다. 남부 국경을 통해 입국하는 이주자들 가운데는 난민 지위를 획득하려는 사람이 많은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이 난민 판결을 받을 때까지 미국 입국을 불허하고, 국경 공무원들이 하루에 처리하는 난민 신청 건수를 축소하고 난민 허가 기준을 높임으로써 대기일이 길어지고 난민 지위 거부율이 높아짐에 따라 불법 입국을 시도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사진 속 남성도 아내와 딸을 데리고 난민 신청을 하려 했으나 미국행 길이 막히고, 난민 신청 대기일이 너무 길다는 것을 알고, 가족과 함께 불법 입국을 시도하다 변을 당한 것이다.전문가들은 중남미 국가들로부터의 이주자 수는 미국의 이민정책보다는 이들 국가의 치안 및 경제 상황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미국 정치인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미국의 전통적 가치, 보편적 인권과 인도주의 그리고 이들 중남미 국가들의 현재 상황에 대한 미국의 책임 의식을 기반으로 포퓰리즘이 아닌 사실에 기초해 합리적인 이민제도에 하루속히 합의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2019-07-15 11:36:56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세계의 창] 살아 있는 문화유산-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먼 곳에 떠나가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한 기분이 들면서 집 근처에 가까이 올수록 마음이 점차 편안해지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느낌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익숙한 풍경과 눈에 익은 건물들, 곧게 뻗은 도로 옆으로 난 좁은 골목, 내가 다니던 카페와 세탁소의 크고 작은 간판들,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 깃든 추억…. 이 모두가 나를 이루는 부분, 즉 나의 '문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생활방식이나 작은 습관 등이 모여서 '문화'가 되고, 자기와 같은 문화에 속해 있을 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동질감과 친밀감을 쉽게 느끼게 된다. 문화는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서 역사성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문화유산'이다.지난 4월 전 세계를 안타깝게 했던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 화재 사건은 문화유산의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파리 중심부의 시테(Cite) 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12~13세기에 지어진 이래로 근 860년을 프랑스인들과 함께해 오면서, 최초의 고딕 양식 가운데 하나라는 건축적 가치 이외에 프랑스의 상징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이 되었다.화재 당시, 노트르담 대성당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면류관이 보관되어 있었고, 이 성유물을 구해온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의 튜닉(tunic겉옷)도 남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철저한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정치와 교육 등 사회의 모든 공공 분야에서 종교적 색채가 가려졌지만, 5세기 말 클로비스 왕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 '교회의 맏딸'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서구 그리스도교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프랑스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또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삼부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고, 프랑스의 구국(救國) 성녀로 불리는 잔 다르크의 명예 회복 재판이 진행된 곳이기도 하다. 18세기에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건물과 조각상이 훼손되었지만, 나폴레옹 1세는 그 유명한 대관식을 이곳에서 거행하였고, 19세기에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의 배경으로서 새삼 주목받게 된 후 대대적인 재건 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노트르담 대성당은 돌로 쌓아 올린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역사의 질곡을 함께한 프랑스의 상징이기에, 그 화재를 목격한 시민들은 마치 프랑스가 불타는 것처럼 느꼈다고 증언한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성가를 부르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고, 성당이 타들어 가는 동안 시민들은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유물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고 한다. 문화유산은 한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 국민 절반 이상이 노트르담 대성당을 이전의 모습대로 복원하기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건축물이기 이전에 자신들에게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우리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숭례문 방화 사건 때, 많은 사람이 마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가슴 아파하지 않았는가? 문화유산은 나의 근원을 생각하게 해준다. 과거와 미래로 나를 확장시키며, 먼 곳으로부터 고향으로 돌아오듯 역사 속에서 나의 좌표를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문화유산은 공동체라는 의미 속에 너와 나를 이어주는 고리 같은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라는 가치는 인간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문화유산은 '연대와 일치'의 가치를 일깨워줌으로써, 개인주의의 가벼움 속에 낱낱이 흩어져버리는 존재의 무상함을 극복하도록 해준다.

2019-07-08 10:19:18

이성환 계명대 교수 (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적과의 대화

1997년 6월 하노이에서 맥나라마 전 미 국방장관, 응우엔 꼬탁 전 베트남 외무장관 등 베트남전쟁 지도자들이 비공개리에 모였다. 왜 더 빨리 전쟁을 끝내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적과의 대화'는 이 회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3일째, 이틀간의 토의를 바탕으로 각자 의견을 정리했다. 당시 북베트남 외무부 대미정책국장은, "미국은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와 같았다. 대국은 소국을 장기판 위의 말로 생각하면 안 된다. 소국에도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전쟁 주역인 맥나라마는 "베트남이 소련(현 러시아)과 중국의 앞잡이가 되어 미국을 위협한다고 봤다. 역사적으로나 베트남은 앞잡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존슨 대통령 특별보좌관 바터는 "공습을 통해 베트남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 했다. 군사적 위협이 대화를 견인한다는 가설이 잘못됐음을 알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베트남 측은 "폭탄을 퍼부으면서 협상을 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기만으로 생각했다"고 응수했다.맥나라마는 결론적으로 "쌍방에 오해가 있었다. 상대방의 목적과 의지를 알았다면 협상을 통해 해결이 가능했다. 종전 협상은 훨씬 이전에 가능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에 베트남 측이 그것을 언제 알았느냐고 묻자, 맥나라마는 "그저께 밤이었다. 너무 늦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전쟁 중에 미국이 한 평화 제안을 믿는가"라고 물었다. 베트남 측은 "지금이라면 당신 말을 믿을 수 있다"고 했다.뒤돌아보면, 베트남에 미국은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가 아니었으며, 베트남은 중국의 앞잡이로 미국을 위협하지 않았다. 베트남은 1979년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기도 했다. 이 회의를 통해 베트남전쟁은 서로에 대한 무지와 불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정설이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베트남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는 한 번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런 어리석음은 왜 반복되는가.공교롭게 지난 2월 같은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으나 실패했다. 현재도 양측은 자기중심적 사고로 암중모색을 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중국의 앞잡이로 핵으로 미국을 위협한다고 여기고,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공격하려 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제재가 대화를 촉진시킨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북한은 비핵화를 하는 순간 미국이 자신들을 말살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이런 오해를 풀려는 한국의 노력을, 미국은 북한의 대변인이라 여기고, 북한은 왜 같은 민족끼리 외세에 맞서지 않느냐고 따진다. 중국이 가세하려 한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이 한패가 되면, 일본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국은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방해할 것이라 여긴다. 그러면서 각자는 자기의 셈법만을 고집한다.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이 미국에 핵공격을 하리라는 것도, 미국이 북한의 목을 조여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것도 모두 비현실적이다.30년 후, 남북미중이 만나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아마 "그때 알았더라면" "30년 전에도 비핵화가 가능했었다"고 할 것이다. 상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 대화이고, 협상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국제사회이다.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깜짝 조우했다. 1시간의 단독 회동에서 무슨 말이 오갔을까. 사진 찍기용이라는 일부의 의심도 있으나, 실무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능력 없음이 홀로코스트라는 악을 낳았다고 했다.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다. 비핵화의 당사자들은 악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만 없었다.

2019-07-01 10:28:32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 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화웨이 사태, 원칙과 일관성 있는 외교 각성 계기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엄중하다. 북핵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사카 G20 정상회담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일 정상회담 개최조차 불확실할 정도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어 있다.미국의 중국 상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로 시작된 미중 간의 무역전쟁은 5G, 인공지능, 사이버 등과 같은 기술 분야를 넘어 양국 간의 패권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한국은 화웨이 사태를 둘러싸고 미·중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우리나라가 이렇게 외교적으로 사면초가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그간 우리 외교는 국제 규범에 입각한 원칙과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미·중 간 대립 양상을 보이는 이슈마다 한국은 양측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다 양국의 신뢰를 모두 잃었다. 미·일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 한국은 결국 RCEP에 참가한다. 미국이 반대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동맹국인 미국을 거슬러가며 중국이 주도하는 무역과 국제금융체제에 가입하고서도 중국으로부터 평가를 받지 못했다.사드(THAAD) 배치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 정부의 태도는 더더욱 실망스럽다. 사드 발사대 반입 보고 누락, 환경영향 평가 미실시, 국회 비준 동의 필요성 등 제반 이유를 들어 사드 배치를 지연시키다가 미국 조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017년 6월 9일 "정부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약속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꿀 의도가 없다"고 발표한다. 이후 우리 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조건으로 사드를 임시 배치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은 사드 철수를 요구하며 우리나라에 대하여 전 방위적 제재를 가한다. 사드 최종 배치가 지연되자 미국은 미국대로 우리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을 권유하였지만, 청와대 대변인은 북핵 공조 필요성을 들어 제소 불가 입장을 밝혔다. 결국 우리 정부는 국제 규범이나 원칙보다는 시류를 선택했다. 이는 2017년 10월 말 국회 국정감사 시 강경화 외교장관의 삼불 발언으로 이어져 주권 포기 논란까지 야기시켰다.이러한 상황에서 맞이한 화웨이 사태는 우리에게 더욱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보안 문제를 들어 화웨이 5G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옳고 그름을 잘 따져 판단하라고 겁박한다.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이달 초 서울에서 개최된 한 콘퍼런스에서 "신뢰할 만한 5G 공급자 선택이 중요하다"며 공개리에 한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후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화웨이와 화웨이 장비를 쓰는 'LG유플러스'를 콕 집어 '안보 위협'을 거론했다 한다. 지난 6월 7일 청와대 관계자가 "(화웨이 장비 사용이) 한미 군사 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말하자, 해리스 대사는 "나는 그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정면 반박했다. 화웨이 장비 사용 문제는 단순한 제품 구매 문제가 아니라,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전초전이다.사드 사태가 '국가 안위에 관한 사항은 주권 사항으로서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만 고수하면 되는 2차 방정식이었다면, 화웨이 사태는 경제, 기술, 안보, 국제 전략이 혼재되어 있는 고차 방정식이다. 사드와 화웨이 같은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미·중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며 시류에 편승하는 태도를 지속할 경우, 한국은 양측 모두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위기를 잘 극복하면 기회가 된다. 화웨이 사태가 한국이 국제 규범과 원칙에 따른 일관성 있는 외교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보약이 되길 기대한다.

2019-06-24 14:09:18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세계의 창] 스페인 문화를 만드는 디자인의 힘

스페인 빌바오(Bilbao)는 유럽의 철강, 화학, 조선 산업, 무역의 중심이었으나 1980년대 경제 불황을 맞으면서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지역의 경제 상황이 심각해지자 빌바오시는 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여 쇠락한 도시를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한다. 스테인리스가 춤추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기 위해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도시를 찾으면서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스페인의 디자인은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가우디의 성가족성당과 같은 건축물뿐만 아니라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 속에도 스며들어 있다. 문화가 주도하는 도시의 공공디자인에서도, 또 일상의 생활용품 디자인에서도 사람에 대한 배려가 묻어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스페인 문화가 담겨 있고, 강렬한 색상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일상 속에 함께하는 것이 특징이다.음식 문화에도 디자인을 입혔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막대 사탕 츄파춥스 로고를, 디자이너 마누엘 에스트라다는 후추통의 이미지를 디자인했다. 스페인 와인 레이블과 병 모양 디자인은 독특하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하다.영화배우 페넬로페 크루스와 축구 선수 박지성 같은 유명인이 등장하기도 하고, 와인으로 잉크를 만들어 레이블 작업을 한다거나, 여러 병의 그림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그림이 되기도 한다. 병이 갖고 싶어 와인을 사게 할 만큼 와인 품질은 물론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감으로써 와인 소비뿐만 아니라 와이너리를 찾는 관광객의 수도 늘었다.음식과 결합한 디자이너의 상상력은 감각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주방용품에서도 볼 수 있다. 팔레트 모양의 개인용 스탠딩 뷔페 접시, 음식이 묻은 채 식탁에 놓아도 바닥에 닿지 않아 위생적인 포크와 스푼, 식재료를 분쇄하는 데 쓰는 핸드믹서기도 스페인에서 탄생했다. 주방용품 디자인은 음식을 예술로 만들어 스페인을 미식의 나라로 알려지게 하였고, 또 스페인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식품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음식과 디자인의 상호 영향은 전통시장을 살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전통시장이라는 본래의 공간적기능적 원형은 유지하면서 창의적인 디자인 요소를 도입한 것인데, 지역 주민들을 위한 전통시장의 기능에 주차장과 음식점 등 편의시설을 추가하여 관광객 유치에도 나섰다. 이제 스페인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유명한 전채요리 타파스(tapas)를 맛보기 위해 레스토랑보다 전통시장을 먼저 떠올릴 만큼 시장은 가고 싶은 곳이 됐다. 1800년대 중반 문을 연 마드리드의 산미겔(San Miguel) 시장은 2009년 혁신적인 디자인을 적용하여 다시 문을 열었는데 기둥, 철재 골조는 그대로 남기고 사면을 외벽 통유리로 마감해 안쪽이 투명하게 보이도록 했다. 마드리드시가 이 건물을 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을 만큼 건축적 가치를 보존하였고, 연간 400만 명 이상 방문할 정도로 인기다.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는 의류, 음료수, 핸드폰, 침구류 등과 같은 일반 소비 제품에 젊은 디자이너의 작품을 삽입하여 시장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라이선싱 판매 수입뿐만 아니라 생산 기업의 매출 확대로 이어졌다. 한국의 한 화장품 회사가 스페인에 진출하면서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화장품 용기에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삽입하였을 만큼 스페인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디자인 혁신을 강조하며 세계 패스트 패션을 주도하는 패션기업 인디텍스도 스페인 기업이다. 이렇듯 스페인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경제 불황을 녹이는 원동력이었다.

2019-06-17 11:28:06

이성환 게명대 일본학과 교수

[세계의 창] 중국몽(中國夢)과 아메리칸 드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미중 무역협상 결렬 후 인터뷰에서 "중국은 세계를 장악하려 한다. 그들에게는 차이나 2025가 있다"고 했다. 중국이 2025를 통해 세계 장악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말이다. 2025(Made in China 2025)는 중국의 첨단 제조업 육성 프로젝트이며, 세계 패권 구상으로 알려진 '중국몽'(Chinese Dream)의 핵심이다. 무역협상은 중국의 도전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의 의미가 있다. 미국은 2025의 폐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중 무역협상이 녹록지 않은 이유이다.그리스 아테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패권이 국가 간의 관계를 지배하며,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신흥 강국 아테네에 불안감을 느낀 스파르타의 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 G. 앨리슨(Allison) 교수는 신흥 세력이 기존 지배 세력의 지위를 위협할 때 발생하는 이러한 불안정한 대결 국면을 '투키디데스의 함정'(Tuchididdes Trap)이라 부른다. 이 함정이 불러온 두 나라의 전쟁에서 스파르타는 승리했으나, 오래가지 못해 멸망했다. 근대에 와서는 불멸의 대영제국에 대한 후발국 독일의 부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독일의 도전은 1차 대전의 원인을 제공했고, 승리한 영국은 미국에 패권을 넘겨야 했다.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가. 시카고대학 J. 미어샤이머(Mearsheimer) 교수는 '강대국 정치의 비극'에서 국제사회에는 국가 간 갈등을 제어할 경찰이 없고,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모든 국가는 자국의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군사력을 키우고 상대를 자기 의도하에 두려 한다. 패권국이 탄생하는 과정이다.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설명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패권국의 불안을 드러낸 것이고, 국가의 존엄을 앞세우며 버티고 있는 중국은 전형적인 도전국의 모습이다.패권국과 도전국은 반드시 전쟁을 할까. 16세기 이후 패권국과 도전국의 대립 국면은 15번 있었으며, 그중에서 11번의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확률은 70% 이상이다. 그래서 앨리슨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 2017)이라 했다. 미중 전쟁이 발발한다면 어디일까. 대만해협이 될 것이라고 하나, 한반도도 그중 하나다.미중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아직 중국은 종합 국력에서 미국을 능가하지 못한다. 중국의 목표는 아직 세계 패권이 아니라 지역 패권 추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또 미국은 스페인, 영국 등 소국이며 자원 빈국이었던 종래의 패권국과는 다르다. 미국은 자원이 많은 대국으로 역사상 거의 '완벽한' 패권국의 조건을 갖고 있다. 미국은 전쟁을 하지 않고도 경제 패권을 넘보던 일본을 굴복시켰다. 군사적 위협을 일삼던 소련(현 러시아)도 붕괴시켰다.그러면 패권국은 안전할까. 킨들버거의 함정이 있다. 킨들버거 전 MIT 교수는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에서 미국이 패권국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재앙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그것도 고율의 관세로. 지금의 흐름을 단순화하면, 중국은 미국의 유일 패권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미국은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American First)는 이전투구로 보인다. 시진핑은 중화제국의 부흥을, 트럼프는 미국 백인들의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한다. 중국몽과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두 개 꿈의 충돌이다. 거기에는 양패구상(兩敗俱傷둘 다 패하고 상처를 입음)의 위험도 있다.두 강대국이 꿈을 좇는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려는 한국의 꿈(Korean Dream)이 멍들까 염려된다.이성환(계명대학교 교수, 일본학전공, 국경연구소장)

2019-06-03 13:38:51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창] 명품 경북도청 신도시 탄생을 기대하며

일전 업무 협의차 세종시 정부청사를 방문했다. 일을 마친 후 관계관의 안내로 청사 옥상정원을 구경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 정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표지석이 세종시 정부청사 건축이 이룩한 업적(?)을 뽐내고 있었다. 옥상에 산책로를 만든 것도 신선한 아이디어였고, 굽이쳐 흐르는 건물 배치도 과거의 전형적인 정부청사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로 보였다. 그러나 명품 건축물이라 하기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청사 설계자인 다이아나 발모리가 2013년 완공된 청사를 보고는 망연자실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원로 건축가 승효상에 의하면, 원래 설계는 아름다운 구릉지를 둘러싸고 옥상정원이 물 흐르듯이 연결되게 되어 있었는데, 구릉은 사라지고 '물 흐르듯 연결되어야 하는 건물은 부처마다 쇠 울타리로 절단하며 파편화'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행정안전부가 나중에 이전하면서 마스터플랜상의 고도 제한과 건물의 흐름을 무시하고 청사 한가운데 우뚝 솟아오른 신청사를 짓는다고 한다.명품도시를 짓겠다며 국제 공모까지 하여 선정한 마스터플랜이 수시로 훼손되는 것을 보고는 필자가 핀란드의 위바스퀼라(Jyvaskyla) 대학 방문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헬싱키 북쪽으로 약 270㎞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대학 캠퍼스는 핀란드의 위대한 건축가인 알바르 알토(Alvar Aalto)의 작품이다. 캠퍼스 마스터플랜과 주요 건물이 알토의 손에 의하여 탄생했다. 르 꼬르뷔지에 등과 더불어 근대 건축의 4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토의 건축철학은 주변 환경 및 에너지와의 조화이다. 위바스퀼라 대학 캠프스 역시 완만한 구릉과 호수를 끼고 숲속에 다소곳이 내려앉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캠퍼스 확장 공사를 할 때 후임 건축가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사항은 기존 캠퍼스 건물과의 조화였다 한다. 마띠 마니넨 총장이 필자에게 선물한 캠퍼스 소개 책자에는 알토의 설계 초안부터 최종 설계에 이르는 단계별 설계 도면이 다 실려 있었다. 캠퍼스와 각 건물의 역사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훌륭한 건축물은 주변 환경과 서로 호흡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낙수장(Fallingwater)과 함께 알바르 알토의 마이레아주택(Villa Mairea)을 꼽는다. 마이레아주택은 헬싱키 북서쪽으로 200㎞ 떨어진 해변가 도시 포리(Pori) 근교에 위치하고 있다. 적송과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숲속에 위치한 이 주택은 실내 분위기 자체도 숲의 일부를 이루는 것 같다. 또한 부족한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도록 실내 배치를 하고 여러 가지 장치를 고안해 놓았다. 주택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다.지형과 주변 환경을 감안하는 알토의 모습은 로바니에미(Rovaniemi)시 설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산타클로스 마을로 더 잘 알려진 로바니에미는 2차 대전 때 패퇴하는 독일군이 불태움으로써 도시의 90%가 전소된다. 신도시 설계를 위탁받은 알토는 도시 기본 설계 개념을 순록으로 잡는다. 순록 뿔과 같이 도로가 뻗어 나가도록 하고, 축구 스타디움을 순록의 눈으로 삼는다. 이 또한 로바니에미의 지형과 함께 그 지방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순록을 형상화한 것이다.마침 경북도청 신도시 건설 계획이 추진 중이다. 이철우 도지사는 "인근의 하회마을과 함께 훗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 만한 명품도시"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도지사는 "신도시 건설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맞는 이야기다. 어설픈 관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세종시의 실수와 알토를 교훈 삼아 진정한 명품 신도시가 탄생하길 빌어 마지않는다.

2019-05-27 11:52:44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세계의 창] 중미 불법 이민, 강경 이민정책으로 억제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 고학력자와 숙련 기술자를 우대하는 능력 기반 이민정책 계획을 발표했다. 새 이민정책의 핵심은 학력과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 취업 이민 우선권을 줌으로써 가족 단위 이민을 막아 자국민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국가 안보를 강화하는 데 있다.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대부분 가족 단위로 구성된 중미 출신 불법 이민자, 즉 캐러밴(Caravan·중미 출신 이민 행렬)의 미국 유입은 어려워진다.캐러밴은 미국 이민을 목적으로 집단을 이뤄 미국 국경으로 이동하는 중미 사람들의 행렬을 말한다. 이들은 수백에서 수천 명 단위로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데, 이는 갱단 등의 표적이 되어 범죄에 희생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온두라스에서 출발한 캐러밴 행렬은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를 거쳐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멕시코 티후아나까지 4천300㎞를 도보로 혹은 기차 지붕과 트럭 짐칸에 매달려 목숨을 건 이동을 하고 있다. 중미 국가들의 치안이 매우 불안하고 빈곤이 심각해지면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희망하며 미국행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캐러밴 행렬은 2013년부터 시작됐지만, 작년 10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이민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새 이민법도 2020년 재선 성공을 위해 반(反)이민 정책을 다시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캐러밴은 멕시코로 계속 유입되고 있지만, 미국의 초강경 대응에 멕시코 국경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은 멕시코가 불법 이민을 해결하지 않으면 미·멕시코 국경 폐쇄, 멕시코산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 등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멕시코는 합법적 절차와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며 멕시코에 입국한 캐러밴의 임시 체류와 본국 송환을 돕고, 멕시코 통행허가증을 발급하거나 멕시코 이민을 허가했었다. 국민들도 멕시코를 통과하는 캐러밴에 음식과 차량, 거처 등을 제공하였지만 캐러밴 행렬이 계속 밀려들자 예전만큼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멕시코는 중미 3개국에 대한 원조를 중단한 미국에 원조 지속을 요구하면서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은 중미 3개국이 불법 이민 억제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며 원조 중단을 선언했지만, 멕시코는 미국의 원조로 중미 지역의 정치적 안정과 빈곤을 해소하게 되면 이 지역 출신 불법 이민자의 미국 유입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캐러밴의 80% 이상은 온두라스에서 출발한다. 1980년대 온두라스는 친미 정권과 그에 대항하는 공산 반군 사이의 내전이 치열했지만, 이웃 니카라과에 산디니스타 혁명정부가 들어서자 미국이 니카라과 혁명정부를 전복시킬 반군 훈련 기지를 온두라스에 설치하는 등 중미 지역 공산화 저지를 위한 미국의 거점 역할을 하였고, 미국의 원조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1990년대 들어 중미 지역의 내전이 끝나면서 미국이 원조를 줄이자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내전 이후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 치안 불안과 가난이 심각해졌다. 2009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지난해 대선 부정선거로 혼란이 지속되면서 미국 이민을 감행하는 캐러밴이 급격히 증가했다.캐러밴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이동한다. 그러나 미국의 입국 심사가 매우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다 또 모든 밀입국자는 형사기소되기 때문에 멕시코 국경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린이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수감될 수 없는 18세 미만 자녀와 부모가 분리 수용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족분리 정책이 불법 이민자 축소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는 트럼프 정부. 국내 정치와 캐러밴의 인권은 분리해야 한다.

2019-05-20 11:11:58

채형복 경북대 로스쿨 교수

[세계의창] 한반도선언을 남북평화체제의 출발점으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한반도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을 계기로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개성에 공동연락사무소가 설치되는 등 남북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 통일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하지만 평화의 길은 멀고 더디기만 하다. 남한은 보수와 진보로 갈려 여야 정치권의 입장이 다르고, 북한은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엇박자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의 복잡한 상황을 타개하고,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대안적 모델을 유럽 통합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오늘날 EU로 대변되는 유럽 지역 공동체 설립을 통한 평화 체제의 구축은 '장 모네 구상'에서 시작된다. 만약 국가 주권의 기반 위에 국가를 재건설한다면 유럽에 평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공동경제를 중심으로 한 단일 통합체를 건설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세계대전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45년 모네는 먼저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을 요구한다. 양국이 석탄 철강 분야에서 협력함으로써 더 이상 전쟁이 없는 유럽 지역 통합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였다. 그의 구상은 로베르 슈망을 비롯한 유럽 통합론자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고, 급기야 유럽 공동체의 결성으로 이어진다.1950년 5월 9일 슈망은, "유럽은 한순간에, 또 한꺼번에 건설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은 우선 핵심 사항에 대해 연대함으로써 확고하게 실현될 것이다"라며 유럽 통합을 실행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선언을 발표한다(슈망선언). 이 선언에 따라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6개국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1953년), 유럽경제공동체 및 유럽원자력공동체(1958년)를 설립한다. 그 결과 유럽 대륙에서는 더 이상 서로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총칼로 죽고 죽이는 전쟁 위험이 사라지고, 평화롭게 상호 공존하고 협력하는 유럽 공동체가 출범하였다.유럽 통합 과정에서 회원국들은 철저히 기능주의적 접근 방법을 선택하였다. 슈망은 "행위의 연대를 창설하는 경제적 관계를 통한 정치적 관계를 준비함으로써 유럽의 기능적 건설에 주력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를 수용한 유럽은 이념적으로 전쟁 없는 평화 체제 구축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사람과 상품, 자본과 서비스의 자유 이동이 보장되는 경제 중심의 지역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이 전략은 주효하여 유럽은 점진적·지속적인 통합과 확대를 거듭하였고, 자유무역지대'관세 동맹'단일시장(공동시장)'경제 통합을 거쳐 현재 연방 설립을 향한 정치 통합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일 년 전 남북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지금 읽어도 가슴 벅찬 한반도 선언이 그저 꿈이나 바람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남북 통일과 평화 정착으로 실현될 수는 없을까? 유럽 통합은 그 현실적 대안 모델이 될 수 있다.역사적으로 유럽은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간의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 공동체가 출범한 1958년부터 6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 적어도 EU 회원국 간에는 한 차례의 전쟁이나 내전도 일어나지 않았다.이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반도에도 남북경제공동체를 넘어선 정치평화공동체가 필요하다. 현실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평화를 향한 꿈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남북은 문호를 활짝 열고 우선 경제 협력을 위한 정치 대화를 전격 재개해야 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시아의 장 모네와 로베르 슈망이 되기를 바란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한반도의 미래를 여는 그의 역사적 역할을 기대한다.

2019-05-13 11:04:59

이성환 계명대 일본학전공 교수/국경연구소장

[세계의창] 미국과 '천황'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가장 먼저 달려갔다. 지금까지 10번이나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5일 국빈방문, 6월 28일 G20 정상회의로 일본에 온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26일 미국을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생일 축하를 위해서였다.미국 ABC방송은 트럼프는 협상의 기술자이지만, 아베는 한 수 위 아첨의 달인이라 평했다. 일본 언론은 양국의 친밀함이라고 했다. 아베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외교의 최우선으로 삼고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도 했다. 5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나루히토 천황(일본 왕의 고유명사)의 즉위를 축하하는 첫 국빈이다. 아베가 멜라니아 여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데 대한 답방 격이다. 지금 미일 관계는 전통적으로 최고의 동맹이라 평가받는 미국과 영국의 관계를 능가한다.불과 70년 전 미국과 일본은 서로를 귀축(鬼畜·아귀와 축생)이라 비난했다. 일본은 미국 영토를 공격한 최초의 국가이며 자살특공대로 결사 항전했다. 미국은 원자폭탄으로 응수했다. 일본 국민은 천황 수호를 위해 옥쇄를 다짐했다. 자기 목숨보다 천황이 소중했다.8월 9일 소련(현 러시아)이 참전했다. 천황도 군부도 항복을 택했다. 원자폭탄보다 소련이 더 무서웠다. 공산 국가 소련이 점령하면 봉건제의 잔재인 천황제는 소멸하기 때문이다. 당시까지(지금도) 일본은 천황의 나라, 즉 황국(皇國)이었다. 일본의 군대가 아니라 천황의 군대(皇軍)이며, 국민이 아니라 적자(赤子·왕의 사랑을 받는 갓난아이)이며, 일본 만세가 아니라 천황 만세였다. 소련이 상륙하기 전 미국에 항복하는 것이 천황을 지키는 길이었다.일본 정부는 국영매춘소(특수위안시설)를 설치하고, 미군의 상륙을 환영했다. 어제의 적을 해방군으로 맞았다. 마지막 저항을 우려했던 맥아더는 혼란스러웠다. 맥아더 상륙 약 한 달 후 천황은 그를 찾았다. 늠름한 맥아더 옆에 서 있는 왜소한 천황의 모습이 당시 미국과 일본을 상징했다.연합국은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맥아더는 비무장과 상징천황제로 연합국의 분노를 달랬다.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공산 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한 방파제로 천황의 나라 일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천황제는 살아남았으며, 일본은 미국에 항복한 목적을 달성했다. 맥아더는 귀국 후 상원 공청회에서 일본을 '12살의 교육 가능한 소년'이라고 했다. 소년은 미국의 보호 속에 1969년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항복 이후 일본은 미국에 한 번도 각을 세우지 않았다. 각을 세우면 정권이 붕괴한다는 설도 있다. 여기에 가장 충실한 정치인이 아베 총리이다.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은 일본의 미국 의존성을 강자에의 편승으로 설명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강한 미국, 중국, 러시아와 전쟁을 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생존 전략일까, 천황을 지켜준 고마움 때문일까.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의 사죄 요구 발언 이후 한일관계는 회복 불능의 늪에 빠진 듯하다. 일본이 겉으로는 독도 문제를 내세우나, 천황 사죄 발언이 훨씬 충격이었다고 한다. 천황의 사죄를 요구할 만큼 국력이 커진 한국의 존재감에 대한 시의심(猜疑心)도 작용했다.천황이 바뀌었으니 한일 관계에도 변화가 올까. 지금 미일 관계와 한일 관계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미일 관계가 한반도 정세와 한미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배경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제안하고 있다. 비핵화보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앞서 가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한일 관계가 우려스러운 이유이다. 게다가 G20에서의 한일 정상회담도, 트럼프의 한국 방문도 미정이다.계명대 일본학전공 교수/국경연구소장

2019-05-06 14:46:00

장동희 새마을세계화 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창] 국민이 행복한 나라, 핀란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룩하자마자 발생한 극심한 좌우 대립 정국에서 좌익을 제압하고 자유민주공화국의 기틀을 확립한 인물. 식민지 시절 종주국 군 장교를 지낸 인물. 장기집권과 권위주의 통치로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국가의 안위를 지키고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위대한 정치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 핀란드의 '만네르하임' 장군과 '케코넨' 대통령 이야기다.1909년 이래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오던 핀란드는 1917년 12월 6일, 러시아 혁명을 틈타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자 핀란드의 좌파가 들고일어난다. 친볼셰비키파인 홍(紅)군과 친원로원파인 백(白)군 간의 충돌은 내전으로 치닫는다. 이때 백군을 지휘하여 홍군을 진압한 이가 카를 구스타프 만네르하임 장군이다. 러시아 제국군에서 중장까지 역임한 만네르하임은 1919년 초대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실권을 행사하며 정국을 안정시키고 헌법까지 제정한다.1939년 소련이 침공해 왔을 때(겨울전쟁), 그리고 재개된 계속전쟁(1941 ~1944)에서 핀란드군을 이끌고 소련에 맞서 싸운 사람도 만네르하임이다. 특히 겨울전쟁은 핀란드의 10배 가까운 사상자를 냄으로써 소련에는 수치스러운 전쟁으로 기억된다. 반면에 핀란드는 패하기는 했으나 겨울전쟁을 자랑스러운 전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기억의 중앙에 만네르하임이 위치하고 있다. 계속전쟁 종전 1개월 전인 1944년 8월 대통령에 취임한 만네르하임은 핀란드의 주권은 지켜낼 수 있었지만, 가혹한 휴전 조건과 일부 영토 할양, 그리고 막대한 전쟁 배상 책임을 져야 했다. 영토 할양으로 발생한 난민 문제를 비롯한 전후 처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만네르하임은 1946년 3월 사임한다.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만네르하임은 핀란드의 국부(國父)로 칭송받고 있다. 러시아에서 3성 장군까지 지낸 그의 과거 경력을 문제 삼는 핀란드인은 없다. 그런 경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수많은 전투를 치러 낼 수 있었겠는가?1956년 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우르호 케코넨 대통령은 1982년까지 무려 26년간 권좌에 머문다.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자, 케코넨은 국가안보가 위협받는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73년 1월 자신의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장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런 과정에서 야당 세력을 무력화시킨 케코넨은 1975년 헬싱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성공리에 개최함으로써 권력의 절정을 맞으며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케코넨 대통령은 야당 탄압 등 장기간에 걸친 제어받지 않는 권력 행사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주변 국가들이 소련에 병합되거나 위성국가화될 때, 핀란드가 독립과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시장경제 체제를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이 케코넨 대통령 덕분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핀란드인은 드물다. 즉 핀란드인은 장기집권과 권위주의 통치라는 과(過)보다 국가의 안위를 지켜내고 국가발전을 이룩한 케코넨의 공(功)을 훨씬 더 높이 평가한다. 1986년 케코넨이 사망하자 핀란드 우정청은 케코넨을 기리는 조문(弔問) 우표까지 발행한다. 그 이름을 따서 명명한 '우르호 케코넨 국립공원'도 있다.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SDSN)는 핀란드를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했다.독립 초기 이념 대립으로 내전까지 겪었지만, 아픈 과거를 들춰 내어 생채기를 내기보단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나라. 과거 흠이 있더라도 공이 더 큰 인물은 그 공을 높이 사서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하는 나라. 국민 대다수가 신뢰하고 존경하는 훌륭한 정치가(stateman)를 가진 핀란드, 그래서 핀란드인은 행복한가?새마을세계화 재단 대표이사/전 주 핀란드 대사

2019-04-29 11:16:00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