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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사담은 떠나고

[세계의 창] 사담은 떠나고

1990년 5월, 필자는 바그다드에 있었다. 티그리스강 변에 위치한 호텔에 묵었는데, 그 이름도 '바그다드 호텔'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유서 깊은 호텔은 티그리스강 서쪽의 카르흐 지역에 있었다. 5월이면 흐드러지게 핀 협죽도가 티그리스강 변을 분홍빛으로 물들였고 간혹 바람이 불면 강변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지금이야 이라크 하면, 도시를 뒤집을 듯 퍼붓던 포탄과 함께 불의 도시가 된 바그다드를 떠올리지만 1990년 5월만 해도 바그다드는 평온한 도시였다. 저녁이면 손에 손을 잡은 가족들이 잉어 구이 마스구프를 먹으러 티그리스강 변의 아부누아스 거리로 몰려들었고, 식당에서는 원시적 욕망을 일깨우는 아랍 음악들이 귀를 사로잡았다. 그때만 해도 이라크는 '정상 국가'였다는 말이다.1990년 5월의 바그다드는 그랬다. 1980년에서 1988년까지 무려 8년을 지속하던 이란과의 전쟁은 승자 없는 전쟁으로 끝이 났고, 국민들은 이제야 미래를 위한 설계를 할 수 있겠구나 믿었다. 희망은 석 달 만에 끝이 났다. 1990년 8월 2일 사담 후세인의 명령을 받은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의 국경을 넘었다. 당시 쿠웨이트 군대는 1만6천 명, 이라크 군대는 정규군만 95만 명이었다. 전력만으로 보아도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쿠웨이트는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라크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20세기 마지막 전쟁의 시작이었다.사담 후세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전쟁은 명분이 있었다. 이란과의 8년 전쟁은 사실상 미국을 위한 대리전이었다.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은 친미 팔레비 정권을 무너뜨렸고, 미국민들은 외교관 등 52명의 미국인들이 444일 동안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에 인질로 붙잡혀 있던 악몽을 겪어야 했다. 1980년 이라크가 이란과 전쟁을 벌였을 때 미국은 얼마나 이를 환영했겠는가. 반미를 부르짖는 이슬람근본주의를 사담 후세인이 막아 주었으니 말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후에 국방장관이 되는 도널드 럼스펠드를 특사로 파견해 사담 후세인을 만나도록 할 만큼 이라크는 미국에 필요한 존재였다. 각종 지원도 했다. 그러나 1990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하면서 미국은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고 '마지막 인류'로 스스로를 기록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작이었다.미국을 위한 대리전을 치렀는데,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아랍국들에 거액의 빚만 지게 되었다. 쿠웨이트에 진 채무만도 140억달러(15조원)로 기록된다. 사담 후세인은 사우디와 쿠웨이트에 채무 탕감을 요구했지만 두 나라는 거부했다. 게다가 쿠웨이트는 하는 일마다 눈엣가시였다. 이라크의 주 수입원은 원유 수출, 그런데 쿠웨이트는 오펙(OPEC)의 생산 할당량보다 증산을 해서 유가를 떨어뜨리는가 하면 이라크와의 국경지대에서 이라크 쪽 원유를 빼가는 것이었다.(이라크 측 주장) 이라크 국민들의 불만도 한몫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귀가한 청년들에게 일자리는 없었고, 클린턴이 부르짖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이라크에서도 작동했다. 내부 불만을 돌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전쟁이라는 말을 사담 후세인은 믿었을까, 걸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1991년의 걸프전과 2003년의 이라크전은 사담 후세인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두 차례의 대전으로 이라크는 삼등분되었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사실상 독립 상태이고, 시아파가 권력을 잡았다. 수니파는 해체되어 일부는 21세기의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Islamic State)로 흡수되었다. 아들과 사위들은 살해되고 부인은 망명, 후세인 가문은 공중분해되었다. 그 가족뿐인가. 1991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서른 살이 된 지금, 삶 전체를 전쟁과 함께 보내야 했다. 이라크 사람들은 한 세대를 압류당한 셈이다. 폭포처럼 쏟아지던 포탄에 목숨을 잃거나 사지를 절단해야 했던 국민들, 그들은 누구의 잘못으로 삶을 압류당했나. 그것은 지도자의 판단 때문이었다. 지도자가 잘못된 판단을 하면 그 결과는 본인은 물론 국민 전체가 뒤집어쓴다. 지도자의 판단력이 중요한 이유이며, 지도자 선택을 잘 해야 하는 이유이다.

2021-01-18 11:48:54

[세계의 창] 미중 최고지도자의 건강이 문제다

[세계의 창] 미중 최고지도자의 건강이 문제다

시진핑 주석의 동정에 대해 중국 인민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러나 지난 연말 시 주석이 뇌동맥류 이상으로 긴급 입원했다는 건강이상설이 나돌면서 중국 인민들도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단순한 해프닝이자 '가짜 뉴스'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중국 관영매체인 CCTV와 인민일보는 시 주석의 건강이상설에 대해 직접 대응하는 대신, 시 주석의 동정이나 시 주석이 주재하는 정치국 상무위원회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시 주석의 건강이상설을 일축했다.'시 황제'(习 皇帝)로 불릴 정도로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막강한 지도력을 갖추고 있는 시 주석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면 강경한 자세로 일관해 온 중국의 대미 관계도 급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건강이상설이 제기된 직후부터 '웨이보'(微博)와 웨이신 등 중국 SNS를 뒤졌지만 시 주석의 건강과 관련한 소식은 전혀 없었다. 물론 중국 내에서 최고 지도자의 건강에 대한 언급은 엄격하게 통제되거나 금지돼 있다.1953년생인 시 주석이 최고 지도자에 오른 지 10년이 다 돼감에 따라 후계 구도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시 주석이 '격대(隔代) 지정'이라는 후계 구도 관행을 깨고 아직도 차기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음에 따라 덩샤오핑 이후 관행이 된 최고 지도자의 한 차례 연임을 깨고 장기 집권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현실화하고 있다.그런 와중에 시 주석의 건강이상설이 터져 나왔다.이에 CCTV는 시 주석이 지난해 12월 28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중앙농촌공작회의에 참석했다며 시 주석의 영상을 공개했고, 이어 31일 생방송으로 신년사를 방송하면서 시 주석의 건강 문제는 일단락됐다.그럼에도 해외 매체들은 계속해서 시 주석의 건강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0월 14일 광둥성 선전(深圳) 경제특구 지정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시 주석의 모습에서 건강 이상 논란을 빚은 장면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기념식에 예정보다 30분 지각하기도 한 시 주석은 연설 도중 심하게 기침을 했고, 이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생중계하던 CCTV가 급하게 화면을 돌리기는 했지만 기침 소리는 그대로 방송됐다. 시 주석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다음 날 시 주석은 예정된 다른 행사에 참석하는 등 선전 방문 일정을 이어 나갔다.최고 지도자의 건강 상태는 그 나라의 국가 안보와 직결될 수 있는 극도의 보안 사항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구체적인 건강 상태 역시 국가 기밀 사항에 해당한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도중에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일본 매체에 의해 포착된 바 있다. 그때 김 위원장 바로 옆에서 김여정이 재떨이를 들고 있다가 담배꽁초를 수거한 것은 자칫 담배꽁초로 인해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가 드러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이번 반중 유튜버의 시 주석 건강이상설 제기가 뜬금없는 것은 출처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홍콩의 뇌종양 전문의사를 건강이상설의 근거로 제시했지만 중국 최고 지도자가 외부로 건강 상태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은 홍콩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했다.이번에는 유튜버에 의한 해프닝이지만 이전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나 뉴욕타임스(NYT) 같은 영향력 있는 미국의 유력 매체가 시 주석의 건강이상설과 중국 지도부 내 권력투쟁설을 보도한 적도 있다. 미국 언론이 중국 최고 지도자의 건강을 걱정할 리는 없다. 건강이상설이 거짓으로 드러나더라도 중국이 시 주석에게 권력이 집중된 독재체제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비판적 효과는 충분히 거뒀다.취임식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최고령 미국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42년생으로 우리 나이로는 80세다. 뇌출혈로 인해 두 번이나 수술한 전력이 있어 대통령의 건강 문제에 대한 우려가 선거 과정에서 여러 번 제기된 바 있다. 시 주석보다 바이든 당선자의 건강 상태가 더 위험한 셈이다.어쨌든 새해부터 미국과 중국, 두 초강대국 최고 지도자의 건강 상태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시대가 열리게 됐다.

2021-01-11 11:34:12

[세계의 창]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문제: 저성장과 불평등

[세계의 창]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문제: 저성장과 불평등

일본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한 문제는 장기 저성장과 불평등이다. 코로나19와 같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쇼크가 일어나면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치지만, 불평등도 심화시킨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계층, 세대, 지역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반면 경제적 기반이 충분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계약 해제나 임금 삭감과 같은 고용 형태의 차이에 의한 불평등, 구인 기업이 없어 취직을 못하는 노동시장 진입 시기에 의한 불평등, 경제의 중심인 도쿄와 관광에 크게 의존하는 지방 간의 불평등, 재택근무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간의 불평등 등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2020년 12월 30일 도쿄 주식시장의 평균 주가가 2만7천444엔으로 버블경제의 정점에 있었던 1989년 다음으로 높았다는 것이다. 주가를 제외하면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줄고, 실업률은 늘고, 자살률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고, 인구 감소의 트렌드는 강화되는 등 일본의 많은 경제, 사회지표들이 좋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불평등의 심화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퍼트넘(Putnam) 교수가 말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훼손시켜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큰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은 대인관계의 신뢰와 유대를 나타내는 개인 간의 사회적 자본과 정부의 행정과 법 집행 등에 대한 신뢰, 즉 정부의 질을 나타내는 사회적 자본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요인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인 간의 사회적 자본이 높은 나라, 정부의 질이 높은 나라일수록 경제성장률이 더 높다고 한다. 이는 아무리 큰 충격이라도 충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개인 간의 사회적 자본과 정부의 사회적 자본이 높아질 수 있으면 경제는 회복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나 코로나19는 사회적 자본을 훼손시키기 때문에, 사회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즉 코로나19처럼 계층, 세대, 지역 등에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면 사람들 간에 분단과 불평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개인 간의 신뢰가 높아질 수 없고, 개인 간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코로나19로 단기적으로 나빠진 경제는 코로나19 이후에 더 악화될 수 있다. 또한 경제성장과 감염증 확산 방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정책에 관한 신뢰도 급격하게 나빠지게 된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낮아지게 되면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회복과 불평등의 개선은 요원해진다.일본 사회의 불평등 문제는 경제가 저성장에 돌입한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는 경제의 성장과 분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동시에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장이 멈춘 경제에서 불평등이 오히려 심화된다는 사실을 일본이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일본 경제뿐만 아니라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상태의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성장률은 더 낮아졌고,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한 승자 독식 구조가 강화되면서 경제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한국 경제도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1995년 이후 5년마다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씩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전체 소득(근로소득+자산소득) 상위 1% 소득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이와 같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국도 일본처럼 저성장과 불평등의 심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년에 한국에서 크게 오른 것은 부동산 가격과 주가지수뿐임을 감안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불평등은 생각 이상으로 심화되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백신의 개발로 해결되어도, 사회적 자본이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너무 무겁다.

2021-01-04 12:09:51

[세계의 창]전통과 현재: 공자가 살아야 나도 산다

[세계의 창]전통과 현재: 공자가 살아야 나도 산다

미국의 최대 명절은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부활절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예전만 못하지만 한국의 추석 대이동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공항과 고속도로가 미어진다.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가 된다.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 장식하고 캐럴을 듣는다. 장성한 자식들이 부모의 집으로 찾아와 며칠씩 묵고 간다.우리 한국도 명절이 되면 자식들이 고향의 부모를 찾아온다. 조상에 제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미풍양속도 여전하다. 제삿날에는 형제들이 모여 선조에 대한 예를 차린다.제사치레에 소요되는 노동이 전적으로 여성들의 부담인 것은 부당하다. 제사 때 여자들이 음식을 마련하느라 부엌에서 연기를 마셔야 하는 동안 남자들은 안방에서 환담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화투나 마작을 하던 어릴 때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제사의 가부장적 폐습을 다룬 '나는 제사가 싫다'(2000)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제사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에게 올리므로 불합리하다는 데는 반대한다. 현재는 과거를 통하여 연결되기 때문이다.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연으로 형제자매, 사촌, 6촌으로 현 세대가 연결된다.한국의 가부장제 전통을 보여주는 전형이 족보다. 순전히 부계 중심, 남자 위주이다. 여성들은 아예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다. 시부의 이름만 있다.미국에는 족보가 없다. 한국처럼 친사촌, 외사촌, 고종사촌, 이종사촌의 구별 없이 모두 사촌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친가, 외가 구별이 없다. 남녀평등의 면에서 좋지만 가계도를 만들기는 어렵다. 부모 2명, 조부모 4명, 증조 8명, 고조 16명이 된다. 10대까지 올라가면 직계만 1천24명이고 형제자매를 포함하면 전 국민이 포함되지 않을까? 미국인들은 족보의 전통이 없다 보니 그것이 아쉬워 가계도를 마련하려 업체에 의뢰하기도 한다. 한국의 족보가 남존여비의 폐단이 있지만, 남성 중심이었기 때문에 표준화된 장부 입력이 가능했었고 가계도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한국의 제사가 가부장적인 것은 제사상 마련을 여성 노동에 의존하는 점도 있지만, 모시는 대상이 부모, 조부모, 증조, 고조 모두 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계에 대한 도외시라고 볼 수만은 없다. 외할머니는 외가에서 제사를 지내준다.'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도 '나는 제사가 싫다'와 같은 시기에 나왔다. 세계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문화적 폐쇄성을 유교 전통에서 찾고 제사(조상 숭배)와 남존여비를 비판한다. 유교의 맹점을 지연, 학연, 혈연에 의존하는 인치의 정치로 본다. 법치 실종의 근원을 유교의 인문의식 온고지신 조상숭배에서 찾는다.법치가 중요하지만 법만으로는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다. 많은 국민이 불법을 일삼는다면 공권력은 역부족이 된다. 법치가 제대로 작용하자면 대다수 국민의 윤리 수준이 높아 법 집행이 필요 없고 공권력은 예외적인 경우에 동원되어야 한다. 법치와 윤리 도덕은 상호보완적이다.국가마다 윤리 도덕은 전통에서 나온다. 서양은 기독교의 죄의식, 동양은 유교의 수치심을 윤리의 기반으로 한다. 유교가 조선 사회의 후진성에 기여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우리의 전통이다. 우리의 뿌리가 유교에 있다.서양의 제국주의가 중남미를 지배하면서 원주민 고유의 문화를 말살하고 기독교를 이식하였다. 그 결과는 미주 인디언 사회의 높은 실업률, 알코올 중독, 범죄율, 그리고 인구 감소로 나타났다. 전통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혁신도 딛고 설 바탕, 즉 전통이 있어야 가능하다.이집트와 그리스 사람들이 조상들이 세운 피라미드와 신전 덕분에 관광 수입을 올리듯이 우리도 공자 덕을 보고 있다. 한국의 높은 교육 수준과 경제 발전은 배움을 강조하는 유교 전통에 힘입은 바 크다. 혈연, 지연, 학연의 폐쇄성은 극복해야 하지만 이들 인연을 매개로 자율적인 공동체가 형성되고 사회의 안정적 기반이 마련된다. 공자가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제사도 없앨 것이 아니라 제사 준비에 남자들이 노동을 분담하고 미풍양속으로 보전할 일이다.

2020-12-28 13:31:04

[이성환의 세계의 창] 법치주의, 그리고 다시 민주주의

[이성환의 세계의 창] 법치주의, 그리고 다시 민주주의

진(秦)나라는 중국의 첫 통일 왕조이며, 동아시아 최초의 황제국이다. 그러나 제국으로서의 진나라는 15년 만에 멸망했다. 여기에는 약 100년의 시차를 두고 법치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걸출한 두 인물이 있다. 상앙(商?)과 이사(李斯)이다.어릴 때부터 형명((刑名·법률)학에 재능을 보인 상앙은 왕 효공에게 엄격한 법으로 중앙집권제를 도입하고 군사력을 키울 것을 설파하여 등용되었다. 법 지상주의자인 그는 백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법으로 구속했다. 도둑이 줄고, 군율을 무서워한 병사들은 전쟁에서 용감했다. 진나라는 강성해지고 천하 통일의 바탕을 갖추게 된다. 그의 가혹한 법 집행은 많은 억울한 사람과 반대자를 만들었다. 효공이 죽자 그는 반대파에게 몰려 도망을 갔으나, 처벌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그를 숨겨주지 않았다. 그는 사지가 찢기는 형벌을 받았고, 가족도 모두 죽임을 당했다.이사는 순자의 제자로 법가(法家) 사상을 이어받았다. 영정(후에 진시황)에게 천하 제패의 계책으로 이간책(離間策)을 제시하고, 천하 통일을 도왔다. 진시황은 이사의 군현제를 받아들여 중앙집권제의 통일 국가를 완비했다. 이사는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하고, 혼란스러운 문자도 전서체로 획일화했다.또 엄격한 법 집행으로 국가 기강을 세운다며 법가 사상에 반대되는 유학 관련 책들을 불사르고, 유생들을 생매장했다. 살벌한 분서갱유(焚書坑儒)이다. 급작스레 시 황제가 죽자 그는 권력 유지를 위해 황제의 유언을 위조한다. 엄격한 법 집행으로 생활이 피폐해진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아들이 반란군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쓴 그는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腰斬刑)을 받았고, 가족도 몰살당했다. 2년 후 진나라는 멸망했다. 백성들의 반란은 그의 가혹한 법 집행이 원인이었으며, 요참형은 그가 만든 것이다.상앙과 이사는 법으로 진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천하를 통일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만들고 집행한 법에 의해 결국 죽임을 당하고, 진나라도 단명했다. 이처럼 법으로 다스리면 한때는 강해질 수 있으나, 오래가지 못한다. 오래가지 않는 것은 강한 것이 아니다. 법치주의는 통치의 본질이 아니며, 문제 해결을 위한 만능 열쇠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나라 멸망 후 유학이 중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국가의 지배 이념이 된 것도 상앙과 이사에 대한 반동 때문이다.법치주의에 대한 논란이 치열하다. 법을 만드는 국회와,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와 검찰이 그 중심에 있다. 국회를 통과한 권력 기관 개혁에 대한 입법,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에 대해 야당과 검찰은 법치주의의 파괴라 하고, 여당과 법무부는 민주적 통제라 한다. 인민의 지배(rule by the people)를 뜻하는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를 뜻하는 법치주의는 양립 불가능할까. 상앙과 이사의 예처럼, 법치주의는 전제군주제나 독재체제에서도 가능하다. 야당이나 검찰이 말하는 법치주의는 이런 의미는 아닐 것이다.법치주의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국가권력 발동의 근거로서 기능과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권력에 대한 통제 기능이다. 국가권력 발동으로서의 법치주의는 전체주의나 독재국가 등 모든 국가에서 작동할 수 있다. 국가권력을 제한, 통제하는 의미에서의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만 볼 수 있다. 후자가 우리가 추구하는 법치주의다. 다시 말하면 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법치주의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권력기관에 대해 행하는 적법한 민주적 통제는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요소이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와 같다.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니고 민주정치이다. 민주정치의 본산인 국회가 고소, 고발을 통해 법으로 문제 해결을 꾀하는 것은 몰(沒)정치다.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와 검찰이 갈등 해결을 위해 또 다른 사법기관인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정치를 살리고 모순을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살아남는다. 한국은 전쟁과 분단을 뚫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기적'을 개척했다. 다시 한국 민주주의가 도전받는다.

2020-12-21 11:15:55

[세계의 창] 45년전 체험한 화랑도 교육과 그 현대적 의미

[세계의 창] 45년전 체험한 화랑도 교육과 그 현대적 의미

교장선생님께서 나를 찾으셨다. 경주의 교육기관에서 교육과정을 성실히 이수하여 반드시 우수상을 받아 오라고 말씀하셨다. 동해안 면 단위 영해고에 다니던 나는 친구 둘과 같이 1975년 가을 어느 날 1주일 과정에 입교를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수료하기 전에 시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대구를 포함한 경북 각 고등학교에서 학생 100여 명이 모였다. 당시 고2였던 나는 대학 진학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 진학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당시 모교의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우수상을 받기 위해 1주일 교육 기간 내내 긴장했다. 명문 K고등학교 학생들과 같은 방에 배정받은 것도 해보자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그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나를 대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을 경쟁 상대로 보았다. 강사들의 강의를 듣고 복습에 복습을 거듭했다. 대부분은 쉬는 시간에 잡담을 하며 지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최대한 시간을 아꼈다. 보초 역할을 하는 당직을 서는 시간에도 쪽지를 만들어 시험에 대비했다.드디어 5일 차를 마치고 졸업시험을 보았다. 객관식 시험인데 잘 보았다. 수료식에서 기대했던 우수상을 받았다. 단상에 올라가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K고 친구들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학교로 복귀해 선생님들께 수상 결과를 말씀드리니, 크게 기뻐해 주셨다. 당시 경상북도의 동료 고등학생들과 경쟁을 하면서 시험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나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크게 얻게 되었다.이때 체득한 경쟁하는 방법과 자신감은 그 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목표가 주어지면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냈고 열성을 보였다. 그때로부터 45년이 지났고 나는 세칭 성과를 거둔 인생이 되었다. 시골 면 단위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평생의 인생을 좌우할 자신감을 심어준 교육기관은 어디인가? 그 기관은 바로 화랑교육원이었다.경상북도는 신라를 통일한 인재였던 화랑들의 정신을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1973년 화랑교육원을 설립했다. 2019년까지 40만 명이 교육을 받았다. 설립 초기에는 필자와 같은 고등학교 학생들을 모아서 교육을 시켰다. 신라시대에 화랑들이 익혔다는 세속오계(世俗五戒)를 가르쳤다. 경주 유역의 산야를 다니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 주었다.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과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화랑교육원은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하여 충효사상, 신의를 중시하는 행동 방식, 그리고 자신감을 학생들에게 길러 주었던 것이다.현재 화랑교육원은 고등학생들에게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화랑교육원은 대구경북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해 왔다. 화랑이 익히고 실천했다는 세속오계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효용가치가 있다. 사군이충(事君以忠)과 사친이효(事親以孝)는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가르침으로 오늘날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교우이신(交友以信)은 친구들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임전무퇴(臨戰無退)는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해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약 1천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없는 삶의 자세를 포함하고 있어 오늘날에도 충분히 활용도가 높다. 전통적인 자기 수양과 행동 양식을 지역의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전수하는 것은 화랑교육원의 핵심 기능으로 이어져 가야 한다. 경상북도와 대구의 정신적인 정체성이라고 하면 바로 이런 화랑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우리만의 정신적인 정체성은 계속 지켜나가야 한다.이제는 전 국민, 전 세계인을 교육 대상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화랑교육원은 전통적인 화랑정신의 교육에 더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행동 방식도 교육과정에 가미하면 좋을 것이다. 전국의 학생들이나 외국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순기능이 될 것이다. K-팝(pop), K-방역이 세계로 뻗어가듯이, K-화랑정신이 세계로 뻗어가길 바란다. 그 중심에 화랑교육원이 있다.

2020-12-14 13:57:42

[세계의 창]내부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 장래는 어둡다

[세계의 창]내부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 장래는 어둡다

일본 경제는 1991년 버블 경제 붕괴라는 엄청난 위기 이후에 기록적인 저성장을 아직도 경험하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의 단초가 된 버블 경제 붕괴 이후에도 1998년의 아시아 통화 위기, 2001년의 IT 버블 붕괴,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2011년의 동일본 대재난과 같은 큰 경제적인 충격이 이어져 왔다.그러나 엄청난 자연재해와 세계 규모의 경제적인 충격에도 일본 경제는 위기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했다. 하지만 버블 경제 붕괴의 충격은 네 번에 걸친 큰 위기와 달리 버블 붕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경제성장 추세도 바꾸어 놓았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MIT대학 솔로 교수의 표준적인 경제성장 이론에 의하면 자산 가치의 붕괴로 인한 금융 충격은 1인당 소득에 장기적인 효과를 미치지 않아야 하는데, 이 이론은 지난 30년 동안 일본 경제의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한 위기와 네 번에 걸친 경제위기는 발생원이 어디인지에서 차이가 있다. 네 번에 걸친 경제위기처럼 외생적으로 주어진 일시적인 충격은 경제 내부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버블 경제의 붕괴와 같은 내부적인 모순에 의해 발생한 구조적인 충격은 일시적인 방편으로 회복될 수 없고, 경제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일본 경제의 내부적인 모순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일본의 눈부신 경제적인 성공을 가져다 준 고용과 생산 시스템에 있다. 종신고용제, 연공임금제,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이루어진 경직적인 고용 시스템은 버블 경제 붕괴로 생긴 불황의 국면에서 새롭게 고용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채용을 어렵게 했고, 1993년에서 2004년 사이에 졸업한 취직 빙하기 세대를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계열화로 이루어진 생산 시스템은 내수 침체와 국제경쟁력의 상실로 대기업이 어려워 지면서 대기업에 의존해 온 중소기업을 더 어렵게 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중 구조의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나게 했다.취직 빙하기 세대(현재 35~49세)의 취직이 어려워지고, 일본 전체 고용의 70%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에 취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지면서 청년 세대의 결혼율은 급격히 낮아졌고, 저출산으로 일본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일본은 취직 빙하기가 끝나는 시점인 2004년부터, 산업혁명 이래 전쟁과 재난 없이 총인구가 감소하는 첫 나라가 되었다.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내수 침체를 가져와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발생시켰고, 이로 인해 기업의 수익은 악화되어 설비 투자 감소와 고용 축소로 이어져 다시 내수 침체와 물가 하락이 일어나 경기가 악화되고 청년 세대의 결혼율과 출생률의 하락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 청년들에 대한 앙케트 조사에서 결혼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결혼자금과 결혼 후의 주거 문제와 같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버블 경제 붕괴는 결과적으로 일본 경제가 내포하고 있었던 내부적인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나게 했다. 일본은 드러난 내부적인 모순에 대해 근본적인 수술을 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대응한 결과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는 시대를 낳고 말았다.일본 경제가 장기적인 저성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한국 경제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일본과 가장 근접한 1인당 소득 수준에 이를 정도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한국 경제는 세계에서 일본 경제와 가장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경직적인 노동 관행,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중구조, 정부 주도의 경제 등을 들 수 있다. 비슷한 경제구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의 일본과 현재의 한국은 청년실업으로 인한 세대 간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지역 간・계층 간 소득과 자산의 격차 등 겹치는 부분이 많다. 현 정부는 이 같은 한국 경제의 내부적인 모순을 해결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집권했지만, 잘못된 진단과 정책들로 역설적으로 내부적인 모순을 더 강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코로나19가 끝나도 한국의 청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2020-12-07 11:16:01

[세계의 창] 미국의 정권 교체와 한일관계

[세계의 창] 미국의 정권 교체와 한일관계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투표의 성격이 강했고, 종래의 선거와는 양상이 달랐다. 선거는 끝났으나, 정권교체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정권교체로 국제정세도 유동적이다. 그에 연동해서 한일관계도 꿈틀거리고 있다.일본은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그리고 직접적으로 받는 나라일 것이다. 일본의 정치 속설에는 미국이 싫어하는 정치인은 총리가 될 수 없고, 되어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한다. 일본 국민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서민 재상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그랬고, 실질적으로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룬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도 그랬다. 그래서 일본은 종종 말 잘 듣는 미국의 푸들로 묘사되기도 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확정되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고 한다. 전임 아베 총리는 취임식 전에 트럼프의 사저로 찾아갔다.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일본은 당혹해 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일본은 트럼프의 당선을 기대 했다고 한다. 중국을 견제하는 데에는 온건한 바이든 보다는 좌충우돌하는 트럼프가 더 낫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오바마와 클린턴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의 대중국정책에 대한 불안이 있다. 오바마와 클린턴 정권은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변화시킨다는 관여정책을 기조로 했다. 그런데 그 사이 중국의 힘이 커지면서 일본을 직접 위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다시 오바마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우려한다.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3번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의 구체적 성과는 없으나, 정상끼리의 대화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는 크다. 정상회담이 계속되는 동안 북한의 도발은 없었고,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도 없었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북한은 전략을 새로 짜야 할 것이다.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군사적 도발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또 다시 미사일 대피훈련을 해야 할지 모른다.한국도 미국의 영향력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문제를 비롯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한일 양국은 서로 몸짓을 하고 있다. 지난주 박지원 국정원장과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일본을 방문해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아베 정권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다.그 배경에는 트럼프와 달리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은 대북정책과 대중국정책에서 한미일의 협력을 강조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것이다.특히 일본은 바이든 정부에 접근하기 위해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선물'이 필요한지 모른다는 관측이다. 2015년 연말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한일 간 위안부합의도 한일관계 개선을 바라는 미국의 종용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당시 바이든은 오바마 정권의 부통령이었다. 아베 정권의 정책 계승을 전제로 지난 9월 출범한 스가 정권이지만,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바뀐 미국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미국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아베정권 시대에 워낙 뒤틀려버린 한일관계가 풀리기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8일자 마이니치신문의 사설이 눈길을 끈다.사설은 최근의 정세변화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악화된 양국관계를 방치할 여유가 없다면서,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일본은 이러한) 급속한 역학관계의 변화가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遠因)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한국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되며, 상대의 체면을 세우면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한국을 한 수 아래 국가로 취급하던 일본이 한국을 대등한 상대로 대우해야 한다는 '의외'의 인식전환이다. 미국의 정권교체를 비롯한 정세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일까. 아니면 한국의 존재감을 직시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일까. 알 수 없다.어쨌든 관계개선을 필요로 하는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신호를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정권교체를 한일관계 개선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

2020-11-23 14:58:27

[세계의 창] 해양환경 해설사를 양성, 동해안 관광의 질을 높이자

[세계의 창] 해양환경 해설사를 양성, 동해안 관광의 질을 높이자

지난주 울진 소재 환동해산업연구원이 개최한 경북 해양환경해설사 과정에서 특강을 했다. 수강생들이 공감을 하면서 의외로 강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의의 제목은 '내가 경험한 바다와 수산'이었다. 축산항에서 수산업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나 상선의 선장까지 마치면서 경험한 바다와 수산업 체험을 그냥 전달했다. 정치망 어장과 관련, "여름 방어는 먹지 못한다" "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은 상태라도 검사님의 서명이 있어야 시판이 되기 때문에 동해안에서는 검사를 친근하게 '고래검사'라고 부른다"고 설명해 주었다. "명란에 대한 기록이 최근 양천세헌록에서 밝혀졌다. 1839년 이장우 영덕 현감이 축산항의 김제진 선생에게 '선생께서 보낸 명란이 너무 맛이 있어서 밥을 많이 먹었다'고 답장을 했다"는 수산물의 역사도 이야기했다. 수강생들은 공감하면서 좋아라 했다.동해안에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그냥 이들이 바다를 보고 생선회를 먹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관련된 각종 스토리를 들으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해양수산 관련 지식도 얻게 된다면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 동해안을 방문하면 해변가에 말리고 있는 오징어, 꽁치, 그리고 미역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헤아리는 숫자의 단위가 다른 것을 알면 재미있을 터이다. 오징어는 20마리를 살았을 때에는 한 두름, 말린 것은 한 축이라고 부른다. 미역은 한 올이라고 한다. 우리 국민들은 동해안을 방문할 때 그냥 눈으로 바다를 즐길 뿐이다. 앞으로는 이들에게 바다 관련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고 고차원의 즐거움을 주도록 하자.바다에 관련된 산업으로는 해양, 수산, 그리고 해운이 있다. 해양은 심층수의 개발과 같이 바닷물을 이용한 산업을 말한다. 수산은 바다에 사는 수산물을 어획하는 1차 산업이다. 해운은 바다를 이용해 상품을 이동시켜 주는 3차 산업이다. 이렇게 관광객들에게 바다에 대한 전체 그림을 먼저 그려준다. 그다음 어판장을 다니면서 꽁치, 대구, 청어, 오징어 등 생선에 대한 품평과 어구·어법의 차이점, 수협과 어촌계의 관계를 설명한다. 동해안은 샛바람(북동풍)이 불어와서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북쪽의 것이 남쪽보다 길게 그리고 높게 나가 있다는 점, 등대는 등질이 달라서 불빛이 반짝이는 주기가 다르다는 점도 설명해주면 간단한 지식 습득에도 관광객은 좋아할 것이다. 그물 등 어구가 고기잡이에 꼭 필요하지만 바다에 버려지게 되면 바다 환경을 해치게 된다는 점, 동해안 해안가 모래사장의 침식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을 해보기도 한다.각 단위 수협과 면사무소에는 이들 해양환경해설사를 등록, 관리하게 한다. 관광객은 이들 해설사를 찾아서 해설을 듣도록 한다. 해설사들은 협회를 조직하여 좀 더 체계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수고비를 받을 수 있다. 관광 장려 차원에서 군에서 재정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적정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기관에서 교육 과정을 이수한 자들에게 해설사 자격증을 부여하고 관리하게 되면 이 직종은 공신력도 갖추게 된다.이런 점을 농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도 얼마든지 관광상품화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영양의 특산물인 고추 재배, 영덕의 송이버섯과 시금치, 어느 군에나 있는 과수원의 일상들, 이런 것에 대한 설명에 스토리를 곁들인다면 관광객들은 지식도 얻고 행복해할 것이다. 숲이 좋은 곳은 숲해설사도 필요하다.농어촌에 대한 관광 수요를 창출하는 한편, 현재 양성 중인 해양환경해설사, 농촌생활해설사, 숲해설사를 더 체계적으로 양성, 보급하여 관광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도 창출해보자. 2028년에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의성과 군위 사이에 건립된다. 포항, 청송, 영양, 영덕 등은 모두 1시간 내의 거리에 국제공항이 있게 된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이 인천공항을 거쳐 우리 고장으로 오기까지는 6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1시간 거리에 있다. 앞으로 관광 수요는 엄청날 것이다. 이들 해설사들은 영어로 해설이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표지판도 영문, 일문, 중문이 병기되는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경북 해양환경해설사 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경북도 산하 환동해산업연구원의 탁견에 감사하게 된다.

2020-11-16 15:56:15

[세계의 창] 증거에 기반하지 않는 경제정책의 위험성

[세계의 창] 증거에 기반하지 않는 경제정책의 위험성

유럽은 15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를 대발견의 시대(Age of Discovery)라고 부른다. 이 기간 중에 남북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발견과 인도로 가는 항로의 발견이 이루어졌다. 이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이 경쟁적으로 선단을 만들어서 대항해를 한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선원 200만 명이 괴혈병으로 죽었다. 이 엄청난 사망자 수는 적과의 전투, 폭풍, 난파 등으로 죽은 선원의 합계보다도 많다고 한다. 괴혈병이 왜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낫는지 오랫동안 전혀 알지 못해서, 유럽의 항구를 출발하는 선단은 사망 확률을 계산해서 더 많은 선원을 싣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한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이 항해를 끝냈을 때 선원의 3분의 2를 괴혈병으로 잃었다고 한다.이러한 비극을 종결할 수 있는 방법을 쓴 책이 1753년에 스코틀랜드의 젊은 의사인 제임스 린드에 의해 출간되었다. 린드는 괴혈병이 생기는 원인은 밝히지 못했지만, 괴혈병을 치료하는 정확한 처방을 책에 기술했다. 200년 동안 2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무서운 괴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단지 오렌지와 레몬을 먹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괴혈병이 비타민 C가 부족해서 생기는 병임을 알지만, 책이 출간된 당시에는 그 처방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린드의 처방이 받아들여지기까지 무려 50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1980년대까지의 경제학이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이론이 지배했었다면, 현대 경제학은 데이터에 기반한 증거(Evidence)가 지배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 이루어지는 정책의 효과는 수많은 경제학자에 의해서 분석, 평가가 거의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고, 많은 분석 결과들을 이용한 메타 분석(Meta-analysis)을 통해서 경제정책의 효과에 대한 컨센서스를 만들어 가는 작업도 쉬지 않고 하고 있다. 그래서 '꼭 해야 할 경제정책'과 '해서는 안 될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은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분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은 경제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은 카이스트의 이병태 교수, 서울대의 김대일 교수·이정민 교수, 서강대의 전현배 교수가 경고했지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밀어붙였다. 부동산 임대차 3법에 대해서도 공공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된 '정책의 배신'이라는 책을 쓴 윤희숙 의원이 국회 연설로 분명하게 경고했음에도, 여당은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문재인 정부의 선의로 실시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일괄 적용,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및 강사법 시행, 임대차 3법의 시행 결과는 참혹한 통계 수치와 가진 것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일방적인 피해로 드러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일괄 적용 등은 고용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과 대학에 큰 타격을 주어 전체 취업자 수를 줄였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는 오히려 늘었으며, 대학의 시간강사는 58% 줄었다. 임대차 3법의 시행으로 그 법을 만든 경제부총리는 뒷돈을 주고 들어갈 집을 찾아 웃음거리가 되는 정도에 그쳤지만,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전세로 살던 많은 사람들은 갈 집을 잃고 헤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데이터에 기반한 증거에 근거한 경제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예상 가능한 결과이다. 현 정부는 이 참혹한 결과 앞에서 반성하고 고치기보다는, 손쉽게 재정을 풀어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고 하거나 전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경제의 원리와 경제학이 발견한 정형화된 사실을 무시하고 행해지는 경제정책은 린드의 발견을 무시해서 50년 이상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것처럼, 많은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해치고 상하게 한다. 현 정부의 경제 팀은 책임을 지고 모두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증거에 기반해서 경제정책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경제 팀을 일신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020-11-09 14:48:29

[윤봉준의 세계의 창] 트럼프와 바이든

[윤봉준의 세계의 창] 트럼프와 바이든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왔다. 미국 정치의 판도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역 정서가 강하다. 태평양과 (남부 제외) 대서양 연안주들이 민주당의 텃밭이라면 내륙과 남부의 주는 공화당이 강세를 보여왔다. 동일한 주에서도 도시는 민주당, 시골은 공화당으로 갈린다. 캘리포니아와 함께 민주당 일당독재주(州)로 불리는 뉴욕주의 경우 '다운스테이트'(뉴욕시와 근교) 민주당의 독주에 식상해하는 보수적 '업스테이트'는 한때 북뉴욕주로 독립하자는 움직임도 보였다. 또 대학 소재지는 민주당이 우세하다. 예컨대 코넬대학이 있는 이타카는 시골이지만 '이타카 인민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어울리게 좌파 성향이 강하다.동네를 걸으면서 잔디밭에 꽂힌 대통령 후보 지지 팻말을 본다. 여론조사는 바이든이 트럼프에 8% 앞선다고 하지만 팻말은 거의 전부가 바이든-해리스이고 트럼프-펜스는 보이지 않는다. 격차가 훨씬 커 보인다. 샤이 보수 때문인가? CNN, ABC, NBC, CBS 등 주요 TV 방송사, 그리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및 주요 지역 신문들은 민주당과 함께 지난 4년간 집요하게 트럼프를 공격해 왔다. 이들 언론은 민주당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문화의 실천에 앞장섰다. 유색인종 우대, 이민자나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 그룹의 권익 향상, 탈화석연료, 의료와 교육의 공공화 등에 반대 의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당연한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 것을 보았다. 주눅이 드는 것은 자유를 앞세우는 공화당 당원이다. 그러다 보니 트럼프 지지 팻말도 잔디밭에 세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트럼프 지지자들이 나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트럼프의 인격 문제가 아닌가 한다. 거친 언어, 자만심,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족, 네 번의 비서실장 교체에서 보는 아랫사람에 대한 신의 결여 등 많은 인간적 결함을 보인 트럼프다. 그래서 그에게 존경이나 애정을 보내기 어렵다.트럼프는 경제와 외교에서 좋은 업적을 냈고 코로나바이러스 대처도 반대파의 주장과 달리 무난하게 대처해왔다고 생각된다. 특히 경제에 있어서는 법인세를 35%에서 21%로 낮춘 감세 정책, 그리고 1개의 규제가 신설될 때마다 8.5개의 기존 규제를 없애온 획기적인 규제 완화로 지속적인 호황을 이루어 내었다. 코로나 사태 직전인 지난 1월에는 실업률이 미국 경제학자들이 완전고용으로 정의해온 5%를 훨씬 밑도는 3.6%를 달성했으며,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의 실업률은 6%와 4.1%로 1972년 이래 최저 수준이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우려되는 것은 정책의 좌경화이다. 오카시오-코테즈, 틀라입, 오마르, 프레슬리 등 AOC+3으로 불리는 극좌파 하원의원이 주도권을 장악한 민주당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그들의 사회주의적 정책 선회에 제동을 걸기가 어렵다. 바이든의 대통령 선거공약에 이미 좌경화 정책이 명시되어 있다.조세 정책을 보면 트럼프는 양도소득세를 현재의 23.8%에서 15%로 낮추어 투자를 증진시키겠다는데, 바이든은 역으로 양도소득세를 39.6%로 거의 배로 올리고 트럼프가 21%로 낮춘 법인세를 28%로 다시 올리겠다고 한다.바이든은 또 연소득 12만5천달러 이하인 가구에 대해 대학등록금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하며 기후변화(환경개선)를 위해 2조달러를 투입하고 2050년까지 폐기물 순방출량 제로를 달성한다고 한다.바이든의 선거공약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 경제는 부진을 면치 못할 듯하다. 물론 내년에 코로나 백신이 보급되면 경제가 단기간에는 급속한 회복을 보이겠지만, 이후 장기적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샤이 보수를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트럼프의 재선은 불가능해 보인다. 왕성한 정력으로 하루 4, 5개 주의 유세를 소화해내는 트럼프의 열정은 대단하다. 진작 민심에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과 같은 힘든 선거전이 아니었을 터인데. 후일 역사가들은 현재의 언론과 평론가들과 달리 트럼프의 파격적인 면모로 인해 여러 가지 제도 개혁이 가능했었다고 긍정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2020-11-02 15:26:11

[세계의 창] 10월 26일에 대한 단상, 박정희와 이토 히로부미

[세계의 창] 10월 26일에 대한 단상, 박정희와 이토 히로부미

10월 26일은 공교롭게도 70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상징할 두 인물이 암살당한 날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62세 때, 일본 초대 총리를 역임하고 한국 통감으로 있던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68세 때였다. 두 사람은 160㎝ 정도의 단신이었으며, 장례식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최초의 국장으로 치러졌다. 총을 맞은 직후 박정희는 "나는 괜찮아"라는 외마디를 남겼고, 이토 히로부미는 "누가 쏘았나"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두 사람이 마지막 남긴 말의 맥락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긴 여운으로 남았다. 그들의 업적은 한국과 일본에서 더 큰 영향을 남겼다.박정희와 이토 히로부미의 삶에는 닮은 구석이 많다. 두 사람은 지독히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성장 과정은 끊임없는 성취욕으로 점철되어 있다. 박정희는 사범학교 졸업 후 발령받은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거치며 위를 향해 달렸다. 해방 후에는 남로당에 가입을 하고, 군에서 퇴출당하고, 다시 군으로 돌아가는 등 순조롭지 않았다. 첫째 부인과는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으며, 둘째 부인과의 결혼 후에도 여성 편력이 회자되기도 했다.이토 히로부미는 가난을 못 이겨 아버지가 최하급 무사 집안의 양자로 입적하면서 신분이 바뀌었다. 어릴 때는 나무칼을 차고 동경하던 무사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일본 우익의 정신적 지주인 요시다 쇼인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으나, 공부보다 중재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21세 때 양이(洋夷)를 위해 영국 공사관에 불을 지르고 천황 옹호를 위한 암살 사건에도 가담한다. 이듬해 영어사전 하나에 의지해 영국 유학을 결행하여 근대문명에 눈을 뜬다. 약 반년간의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를 할 줄 아는 신지식인으로 메이지 신정부에 참여했다. 첫째 부인과는 몇 번의 만남도 없이 이혼을 하고, 둘째 부인과 결혼을 했으나 여성 편력이 심했다고 한다.이러한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은 업적 지향적이고 권력욕도 강했다. 박정희는 한국 역사상 가장 긴 18년간 장기 집권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27세 때 효고현 지사를 시작으로 일본 역사상 유일하게 총리를 4번 역임했다. 헌법과 내각제도는 그가 만들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국가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불리는 이유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근대 일본을 만든 사나이'라는 별칭답게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박정희는 일본의 경험에서 국가 발전의 영감을 얻었고, 이토 히로부미는 영국 유학을 통해 근대국가 일본을 착상했다. 일본이 동양의 영국을 지향했고, 한국의 경제발전이 일본 따라가기를 한 배경이다. 이토 히로부미 총리가 일으킨 청일전쟁의 배상금은 일본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고, 베트남전쟁의 참전 대가는 한국 경제성장의 견인력이 되었다. 국가 발전에 전쟁의 이용도 불사하는 점도 닮았다고 할까. 물론 다른 점도 많다.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는 거사에 가담한 부하에게 "좋아, 자유민주의를 위하여"라는 말을 남기고 권총을 받아 갔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격을 가한 후 "꼬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다.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은 비교적 유복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사건 후 엄청난 고초를 당하며 4개월, 7개월 만에 각각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그 후 한국은 이토 히로부미를 극복하고 안중근 의사가 꿈꾸던 독립국가가 되었고, 박정희의 기반 위에 김재규가 '그리던' 민주화를 이루었다. 박정희와 김재규,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은 서로 생사를 가른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에서는 모두 '조국을 위해서'라는 점으로 수렴되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위인(爲人)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걸리고, 위인(偉人)들에게는 시대 소명이 있는 것 같다.이 글은 위 인물들을 칭송, 비난하고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박정희와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일이 같고 죽음의 모습이 비슷하기에 그들의 궤적을 더듬다가 발견한 행적을 열거한 것일 뿐이다.

2020-10-26 13:23:11

[세계의 창] 문무대왕 수중왕릉의 현대적 의미

[세계의 창] 문무대왕 수중왕릉의 현대적 의미

지난여름 감포를 방문하여 문무대왕의 수중왕릉과 감은사지탑을 둘러보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무대왕은 자신이 죽으면 화장을 하여 바다에 무덤을 만들라고 명했다고 한다.사후 자신이 용이 되어 일본으로부터 신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이런 유언대로 문무대왕은 680년경 죽은 다음 화장되어 현재의 대왕암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바다에 무덤을 만들어 두면 후손들이 제사를 지낼 때마다 동해로 오면서 일본을 생각할 것이고 이렇게 해야 나태함으로부터 후손들을 일깨울 수 있다고 보았다는 해석이다. 당시 일본은 패망한 백제의 유민을 받아들여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로서는 일본을 경계할 필요성이 컸다.국왕으로서 바다에 무덤을 만들어 용이 되어 통일신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 정신에 가슴이 숙연해졌다. 아들인 신문왕은 바로 이웃에 감은사를 설치하고 용이 된 아버지가 바다를 타고 놀러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한 물을 흐르게 한 돌들이 발견되어 감은사지 터에 배치되어 있었다. 인근의 땅에서 염분이 출토되어 삼국유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대왕암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문무대왕의 수중왕릉 설화가 오늘날 우리, 특히 대구경북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첫째, 문무대왕의 수중왕릉은 대외관계에서 바다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538년경부터 신라는 선박을 관리하는 최고 행정청인 선부(船府)를 설치했다. 통일 후에는 선부를 독립시켰다. 이를 수중왕릉의 설화와 같이 보면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이후 해군과 해운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해군과 해운력을 바탕으로 150년 뒤 830년경 해상왕 장보고가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730년경 일본이 300척의 선박으로 통일신라를 공격했지만 선부를 통하여 해군과 해운력을 기른 신라는 이를 능히 무찔렀다. 이렇게 바다를 중요시한 신라의 정신은 고려에까지 이어졌다. 바다를 경시한 조선은 외세의 침입을 막지 못했고 쇄국정책은 결국 조선을 망하게 한 큰 원인이 되었다. 수중왕릉 설화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해군과 해운을 키워서 국방을 튼튼히 하고 대외관계를 중요시하라고 일깨워준다.둘째, 문무대왕 수중왕릉은 동해안 항구를 더 활용하고 발전시킬 것을 시사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부산항과 인천항이 2대 항구로 자리 잡고 있다. 지리적으로 부산은 일본과 태평양으로 향하는 뱃길이 가깝고 인천은 중국과의 지리적 관계 때문에 중시된다. 그렇지만, 북극항로가 개척되는 지금 경북 동해안의 항구들이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에 가깝다. 그리고 태평양으로 가는 관문인 일본의 스가루해협으로 향하는 뱃길도 경북의 항구가 더 가깝다. 이미 이러한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하여 포항-블라디보스토크-일본 서해의 마이즈루항을 잇는 3국 간 크루즈 및 카페리 항로가 개척되어 있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더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남미에서 부산항으로 수입된 오징어 등은 경북 지역 해안가로 이동하여 건어물 건조 과정을 거친다. 경북의 항구로 바로 수입되면 상품화에 이르는 시간과 비용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경북 동해안 항구의 운송 기능을 다시 활성화시켜야 한다.셋째, 문무대왕 수중왕릉은 경북의 바다를 물류와 관광에 최대한 활용할 것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동해안 지역은 해양관광지로서 기능할 뿐만 아니라, 풍력발전, 심해 양식도 새로운 분야로서 개척할 수 있다. 특히 2028년 완공되는 의성-군위에 설치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포항과 영덕 등에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 인천공항까지 6시간 걸리던 것과 큰 차이가 있다. 동해안에서 잡은 대게를 포함한 싱싱한 생선, 송이, 복숭아 등이 미국 LA의 교포들에게 하루 안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감포-경주, 구룡포-포항, 영덕-울진을 잇는 해양관광단지는 이제는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등 유럽의 관광객을 바로 유치할 수 있다. 이는 해외 진출을 강조한 문무대왕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기도 하다.

2020-10-19 16:17:06

[세계의 창] 일본은 아베노믹스가 남긴 부(負)의 유산을 잘 처리할 수 있을까?

[세계의 창] 일본은 아베노믹스가 남긴 부(負)의 유산을 잘 처리할 수 있을까?

2020년 9월 16일 아베 총리의 건강을 이유로 2기 아베 내각이 총사직을 하면서, 7년 8개월간 이어져 온 역대 최장 정권이 돌연 막을 내리게 됐다. 아베 정권이 이전 정권과 아주 크게 다른 부분은 이차원의 금융완화정책(양적・질적 금융완화), 기동성 있는 재정정책, 그리고 성장전략정책이라는 소위 '세 개의 화살'로 구성된 아베노믹스이다. 그중 적극적으로 추진된 앞의 두 개 화살이 남긴 부의 유산을 살펴보고자 한다.장기간 지속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3년 4월 첫 번째 화살인 이차원의 금융완화정책을 실시했고, 수차례에 걸쳐 수정 확대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첫 번째 화살은 소비자물가상승률 2%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본원통화 증가와 국채 매입 외에 회사채, 상장투자신탁(ETF) 등 다양한 금융자산을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행은 이차원 금융완화정책 도입 시점에 비해 본원통화를 약 4배 정도 늘렸고, 국채 매입 규모도 매년 80조엔까지 늘려 전체 국채의 약 절반을 매입하고 있고, ETF를 통한 상장기업 주식 매입을 19배 증가시켰다. 일본은행은 곧 일본 국내 주식시장에서 일본연금기구를 제치고 최대 기관투자가로 부상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이례적인 금융완화정책하에서 일본은행의 자산 규모는 605조엔으로 2013년 3월 말 시점의 자산 규모와 비교해 3.7배나 증가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유동성이 공급됐지만, 물가상승률 2%는 달성하지 못했다.금융정책뿐만 아니라 두 번째 화살인 재정정책도 확장 기조를 유지해 2019년부터 정부의 일반 예산이 100조엔을 넘었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채무 총액은 1천182조엔(GDP 대비 207%)이 되었고, 아베 정권 동안 약 260조엔이 증가했다.아베노믹스의 시나리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돈을 퍼부으면 물가가 상승하는 한편으로 엔화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기업, 특히 수출 대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어 국내 설비 투자 확대와 새로운 고용 창출이 이루어져, 그 결과로 가처분 소득이 증가해서 내수 확대로 이어지고 다시 물가 상승과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확립될 것으로 상정했다. 더불어 선순환 구조의 확립에 따라 세입이 늘고, 물가 상승으로 명목 정부 채무의 부담이 낮아지면 정부의 채무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았다.시나리오의 예상대로 기업의 수익은 극적으로 개선되었고, 고용도 늘고, 물가도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디플레이션 상태에서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작년까지 노동력이 부족할 정도로 고용 환경이 개선되었음에도 일본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997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상승하지 않았다. 명목임금 상승이 낮은 물가 상승에도 미치지 못한 관계로 실질임금은 오히려 감소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베노믹스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기업 부문에서 임금을 올리지 않아서 생긴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민간 소비지출은 억제되고 있고, 소비 성향이 왕성한 청년층의 평균 소비 성향이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수를 늘리고, 그에 따라 물가를 올려 기업의 수익을 높이고, 그 결과로 다시 투자와 고용을 확대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선순환 구조의 확립은 어렵다.아베노믹스가 상정한 시나리오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공급된 유동성과 GDP의 2배가 넘는 정부 채무는 문제인 채로 고스란히 남게 된다. 환율과 주가에 큰 변동이 생기면 이미 일본은행이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처할 여지가 많지 않고,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 공급으로 유지되고 있는 제로금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자율이 상승하면 국채 등 채권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국채 보유가 많은 일본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은 큰 손실을 입게 되고, 기업도 주식 가격의 하락과 이자 부담 증가로 이익 감소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와 고용은 감소하고, 경제는 불황에 빠질 것이다. 정부도 국채의 이자 부담 증가와 국채 발행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가장 규모가 큰 사회보장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어 경제 회복은 요원하게 될 것이다.아베노믹스가 남긴 부의 유산을 어떻게 잘 처리하느냐에 일본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을 뿌려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큰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아베노믹스의 다른 이름이다.

2020-10-12 14:51:55

[세계의 창] 강남좌파와 리무진 리버럴

[세계의 창] 강남좌파와 리무진 리버럴

립셋 가설에 의하면 경제발전이 되어야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빈곤을 벗어나 교육 수준도 향상되면 정치 선동가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여러 민간단체도 형성이 되어 독재를 견제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대만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증명이 되었다.역으로 민주주의는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로버트 배로우의 실증 연구를 보면 민주화 초기에는 민주주의가 정부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고 개인의 재산권을 신장시켜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 민주화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척되면 경제에 역기능을 일으킨다. 소득 재분배 요구가 거세져 투자 재원이 복지 프로그램으로 사용되므로 경제성장이 둔화된다는 것이다.복지 프로그램의 수혜층은 좌파 정당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미국 유권자의 47%는 무조건 오바마를 찍는다. 그들은 세금(소득세)을 내지 않고 정부 보조로 살아간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정부가 자신을 부양할 책임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라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민주주의의 발달로 저소득층의 발언권이 증대하여 정부 보조금 수혜층이 증가하면 할수록 좌파 정당의 지지 세력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그리스, 베네수엘라가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경제가 쇠락했다.문재인 정권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규제, 부동산에 대한 세금 폭탄, 기업 옥죄기 규제, 탈원전 등 좌파적 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로 인해 경제 사정은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이미 악화되었다. 또 거듭되는 집권 세력의 범죄 혐의의 은폐, 권력 남용, 고위직의 거짓말 등 적폐의 누적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집권당은 탄탄한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좌파 정당의 지지층은 누구인가?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저소득자들은 좌익을 선호할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30~50대의 사무직 근로자들도 좌파 지지도가 높다. 이들을 중상류층으로 보면 소위 강남좌파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즉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의식은 사회주의인 사람들이다.미국에도 강남좌파가 있다. 리무진 리버럴이다. 소득 수준이 높아 리무진을 타고 다니고 학력 수준도 높다. 자본주의 체제의 최대 수혜자이지만 자본주의를 적대시한다. 소득재분배, 무상 대학교육, 사립학교 폐지, 국가의료보험제 등의 경제민주화와 지구온난화 방지 , 화석연료 사용 금지를 주장한다.리무진 리버럴의 위선에 대한 비판도 많다. 대표적 사례로 오바마 대통령은 사립학교제도를 비판했지만 자기 아이들은 사립학교에 보냈다. 무탄소 생활 양식을 주장하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은 자택의 전력사용량이 일반 가정의 20배였다.부유한 전문직 종사자(주로 백인)들은 흑인들의 BLM(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지지하고 도심 흑인 거주지의 경찰서 해체를 주장한다. 막상 자신들은 시위대의 폭력, 방화로부터 안전한 도심 우범지대에서 먼 교외에 산다.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지만, 강제적인 영업 금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좌익 성향의 중상류층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근로자가 많다. 시민의 건강을 내세우지만 원격 근무를 하는 자신은 타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강남좌파의 위선은 리무진 리버럴을 능가한다. 고가 주택 소유자 혹은 다주택자인 집권 인사들이 국민에게는 부동산 세금 폭탄과 가혹한 규제를 안긴다. 또 교육 평준화를 외치고 특수목적고를 없애자는 집권당 의원들이 자기 자녀는 외국어고에 보낸다. 최저임금 급등으로 실업과 자영업자 도산이 속출해도 자신들의 피해가 없으므로 집권세력을 계속 지지한다. 인권단체가 북한 주민의 인권 유린 사태는 무시하고, 환경을 위한다면서 태양광의 환경오염에는 함구하는 것, 이 모두가 강남좌파의 위선적 행동이 아닌가?좌파가 20년 집권하여 경제 파탄, 국가재정 파탄을 경험하면 강남좌파가 위선과 미망에서 깨어날지 모른다. 하지만 베네수엘라가 되어 회복 불능이 될까 우려된다. 강남좌파를 키운 것은 리무진 리버럴과 마찬가지로 책임이 상당 부분 교육에 있다. 전교조 교사와 좌익 교수의 영향력을 학생들에게서 불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2020-10-05 15:35:15

[세계의 창] “‘적’은 더 가까이에”

[세계의 창] “‘적’은 더 가까이에”

일제 식민지와 6·25전쟁 중 어느 쪽의 상처와 피해가 더 크고 깊을까. 양이나 질로 가늠하기 어렵다.전쟁 중이라도 일본이 개입하면 총구를 그들에게로 돌리겠다고 한 이승만 대통령의 일화가 있고, 북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도 있다.일본과 북한, 어느 쪽이 진정한 '적'일까. 이념 지향, 시대 상황, 정파 등에 따라 답이 갈린다. 우문(愚問)이라 할지 모른다.북한 같은 공산 치하가 좋은가, 일제 식민지 지배가 좋은가라는 유아적 문답으로 치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념이나 현실에서 이 두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친일 청산은 시대의 과제이며, 북한은 안보의 '주적'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친일과 용공(친북)이 우리의 사고와 심리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친일과 용공이 반드시 한국에 굴레와 손실로만 작동했을까.식민지 지배가 없었다면 한국은 자생적 근대화를 했을 것이고, 6·25로 나라가 초토화되지 않았으면 더 순조롭게 발전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성립한다.반면에 일본과 북한의 존재가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국에 포위된 홍콩,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된 도시국가 싱가포르, 중국 공산주의와 대치하는 타이완, 북한의 위협과 일본의 신식민주의를 마주한 한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위기의식이 가장 높은 국가들이다.이들 국가는 위기의 일상 속에서 생존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용들이 되었다는 주장이다.그런데 한국이 일본과 북한을 대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다. 곡절은 많으나 일본과는 수교를 해 가까이 지내왔으나, 북한과는 아직 전쟁 상태를 끝내지 못했다.일본은 심리적인 '적'으로 남고, 북한은 현실적 '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일본을 가까이하지 않았으면 한국은 어땠을까. 경제발전은 더디고, 그 때문에 민주주의도 늦어졌을지 모른다.일본의 도움이 아니라 그들을 가까이 두고 활용한 한국의 지혜가 일본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게 만든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북한이 가상의 '적'이든 동족이든 멀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까이하지 않으면 원수를 갚지도 못한다.외나무다리에서라도 만나야 원수를 갚을 기회가 생긴다. 같은 민족이면 더더욱 가까이해야 하지 않을까. 1961년 8월 동독은 예고 없이 베를린시를 동서로 가르는 철조망을 치기 시작했다. 약 7만 명의 시민들이 동서 베를린을 왕래하며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후에 동방정책으로 독일 통일의 초석을 깔았다고 평가받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베를린 시장은 야간 열차 침대에서 잠결에 보고를 받고 경악했으나, 동독의 조처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호소했다."그걸 바꾸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으나 그걸 위해 아무도 전쟁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브란트는 참모들에게 "전부 아니면 전무를 버리고, 접촉을 통한 변화를 찾자"(Wandel durch Annäherung)고 했다. 2년간의 지난한 저자세의 협상 끝에 통행증 협정으로 베를린의 숨통을 뚫었다.지난주 북한과 관련하여 상반된 흐름의 두 사건이 발생했다.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실종된 후 북한 수역에서 피살되었다.23일 오전 1시부터 청와대에서는 관계장관회의가 열렸고, 같은 시간대에 15일 녹화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이 공개되었다. 국제사회에 남북한의 종전선언을 호소한 것이다.피살 사건은 지난 6월의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폭파의 재연이다. 종전선언 제안은 지난 8일과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고받은 친서의 연장이다.종전선언 제안과 피살 사건의 연관성에 대한 해석과 대처가 혼돈스러운 와중에 피살 사건 공개 하루 만에 김정은 위원장이 사과를 표명했다. 매우 이례적 조치이다.영화 대부에서는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에'를 가족(family)의 영속적 생존 원리로 하고 있다. 북한을 우리 손이 닿는 곳에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김정은의 진정성을 따지고, 재발 방지, 책임 추궁 등도 할 수 있다. 대화로 이어가면 더 좋다.

2020-09-28 14:51:07

[세계의 창] 양천세헌록이 주는 시사점

[세계의 창] 양천세헌록이 주는 시사점

양천(陽川)은 경북 영덕군 축산 2리인 염장의 옛 이름이다. 1800년대 전반 염장에 살던 (신)안동김씨 김병형·성균·제진 3대가 효자로서 유명했다. 경상·충청도 등지의 유생들이 영해부사와 경상관찰사에게 포상을 위한 상소를 30년간 23차례 했다. 1857년 철종이 김병형·성균 부자를 표창했고 정효각이 내려졌다. 상소문, 포상 관련 결정문, 그리고 김제진·관진 형제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글 등을 책자로 만든 것이 양천세헌록(陽川世獻錄)이다. 이번에 국문 번역 작업이 완성되어 출간되었다.노모의 근력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김병형은 하인이 대신하여 자신에게 회초리를 때리게 했다. 김성균은 3년상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부모의 묘소를 찾아 산속에 길이 났는데 그 길은 효자길, 염장은 효자마을로 불렸다.비록 주인공들이 동해안의 변방에 살고 있었지만, 김병교 이조판서, 김응균 참판 등 20여 명과 한문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서울 기거 중이던 이장우 영덕 현감은 1839년 김제진이 보낸 명란이 워낙 맛있어서 밥을 많이 먹었고 답례로 붓 2자루를 보낸다는 편지를 보냈다. 동해안의 명란이 이때 선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840년 김제진에게 지인인 담양 사람이 참빗을 팔러 축산항에 가는데 잘 부탁한다고 한다. 지인은 보부상으로 보인다. 서울 조정 가까이에서 포상 청원 운동을 하던 김제진은 1853.2.23.자 편지에서 도승지가 김병국에서 조태순으로 교체되었고, 예조판서는 이경재라고 알린다. 김제진은 1856.6.27. 김관진에게 계획한 일은 예조판서 남병철에게 달려 있는데, 그를 만나기 위해 예조의 대청까지 3번이나 들어갔다가 물리침을 받았다고 불평한다.김성균의 효행에 감동해 남포에서 실어오는 비석의 운반료를 상인이 받지 않았다는 내용도 있다. 남포에서 경상도 동해안까지 바닷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상소문마다 15명에서 120여 명이 연명을 했기 때문에 수백 명 선조들에 대한 행적을 추적할 수 있다. 1860년 염장 동민 15명의 이름이 나온다.이 기록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김제진 집안은 안동에서 축산항으로 내려와 200년 동안 벼슬 없이 지냈다. 3대에 걸친 효행 이후 1900년대부터 후손들이 크게 번성했다. 김창진·정한 천석꾼, 김용한·수영 도의원(초대, 3대), 김호동 군수(안동), 외손으로 한국원(2대 국회의원), 정수창(전 상공회의소 회장), 한용호(전 대우건설 사장)를 배출했다. 효행을 대를 이어하게 되면 자손들이 번창한다는 점을 말해준다.둘째, 유생들이 20여 회의 상소를 조정에 보냈지만 포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정에서 상소 내용을 조사 보고하라는 명을 관찰사에게 내려보내고 확인이 된 다음에야 포상이 이루어졌다. 3번에 걸친 예조판서 면담도 모두 거절되었다. 이렇게 정효각이 내려지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조선시대는 엄격한 절차에 따라 행정이 집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셋째, 김병교 이조판서가 보낸 편지글에서 당시 사대부들의 마음가짐을 알 수 있다. 1858년 그는 아들의 과거급제 소식을 알린다. "영광과 감축이 극에 달하여 절로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적었다. 겸손과 자중하는 모습이다. 그는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겸손한 인품을 갖출 것을 훈계하는 것 같다.양천세헌록은 사적기록에 더하여 서울 조정에서의 사무, 정효각을 받기 위한 과정, 사대부와 양반들의 품격 있는 교류의 방식, 동해안 바닷가 수산물의 활용 등 19세기 초중반의 사회·경제상을 알 수 있게 한다.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AI) 등이 출현, 인간관계를 삭막하게 할 것이다. 양천세헌록은 인간관계의 출발점인 부자간의 효행에 대한 스토리이다. 경북에 산재해 있는 선조들이 남긴 아름답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발굴, 교화의 도구로 활용하면 좋겠다. 외국어로 번역해 한국정신문화의 우수성을 해외에도 알리면 우리의 국격도 높아질 것이다.

2020-09-21 15:36:10

[세계의 창] 왜 주택시장에서 최적의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세계의 창] 왜 주택시장에서 최적의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경제학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일반적으로 '국부론'이라 불림)의 출간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에서 아담 스미스는 시장 참여자들이 각자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이기적인 행동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즉 시장의 가격 조정 기능에 의해 이상하게도 사회 전체의 이익도 최대화시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이 주장을 증명하고 실제 경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은 발전해 왔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판된 해에 시장경제 원리인 보이지 않는 손을 완전히 적용한 나라인 미국이 탄생했다. 활발한 시장은 미국을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된 나라로, 신뢰와 호혜 정신이 풍부한 사회로 만들어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따라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경제적으로 부유해졌고,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었다. 우리나라도 그중 한 나라이다. 시장의 가격 조정 기능이 잘 작동하기만 하면 시장 참여자 누구도 불만 없이 최고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가격이 형성될 뿐만 아니라 그 가격 수준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도 증대된다는 것이 경제학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이다.물론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드는 가격이 정확한 정보를 담지 못하게 되면,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이 경우 시장을 대체하는 기업과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의 거래 비용이 높거나, 시장 참여자 간 보유 정보의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기업(경영사 분야의 대가인 알프레드 챈들러는 기업을 '보이는 손'(Visible hand)이라고 함)이 시장의 대안으로 경제 안에서 시장과 공존하며 경쟁한다. 시장에 독점자가 존재하는 경우, 대가 없이 이익과 손해를 보는 것과 같은 외부성이 존재하는 경우, 시장에 맡기면 공급되기 어려운 공공재가 존재하는 경우, 즉 시장 실패가 발생하면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정보통신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발생하면서 시장 거래 영역은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가격에 기초해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방식과 비교해서 정보통신혁명으로 탐색 비용이 낮아지고, 정보처리 능력의 향상과 수요자와 공급자를 가장 정확하게 연결하는 알고리즘의 개발에 의해 시장 거래는 비약적으로 개선되었다. 경제학 분야에서는 이와 같은 기술 혁신을 이용해서 그동안 시장 거래 방식이 도입되지 않았던 분야에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최적의 매칭을 제공하는 마켓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생겼다. 이 분야의 연구 결과는 장기 기증자와 환자의 연결, 인턴의 수련병원 배정, 학생들의 학교 선택, 결혼을 원하는 남녀 커플의 매칭, 노동자와 기업의 매칭 등 가격만으로 담아낼 수 없었던 다양한 인간 활동에 응용되고 있다. 마켓 디자인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앨빈 로스 교수와 로이드 새플리 교수는 2012년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위와 같은 시장의 진화와 경제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왜 주택시장에서 최적의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주택 가격이 시장 참여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함에도 주택 가격만을 기준으로 정책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택 가격을 내리기 위해 종부세, 취득세, 양도세 등을 높이고, 전월세 신고제,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임대차 3법의 개정과 같은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했다. 특정 지역의 급격한 주택 가격 상승은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경제활동이 활발하고, 다양한 산업구조를 가진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의 실질 주택 가격이 지난 30년 동안 2배 이상 상승한 반면 다른 지역의 주택 가격은 큰 변화가 없었다. 영국과 일본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런던과 도쿄 등의 대도시의 주택 가격만 크게 상승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이러한 지역의 공통점은 경제활동이 활발하고, 토지 이용과 건설에 대한 많은 규제로 새로운 주택 공급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는 주택 수요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주택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택시장에서 거래 자체를 막는 극단적인 규제보다는 최적의 매칭이 이루어지도록 마켓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0-09-14 15:04:17

[세계의 창] 트럼프의 부활?

[세계의 창] 트럼프의 부활?

미국의 메이저 언론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탈세, 문란한 여성 관계, 거짓말, 사기 등으로 인간 이하의 쓰레기이다. 이러한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것은 트럼프의 자식들이 모두 반듯하게 잘 컸다는 점이다. 도널드 주니어, 이방카, 에릭, 타파니 모두 제 몫을 하는 성인이고 14세 배런도 축구를 좋아하는 건전한 소년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MSNBC, CNN이 연일 보도하는 트럼프의 약점은 근거가 없거나 과장된 경우가 많다.트럼프 같은 인간을 대통령으로 용납할 수 없던 민주당은 여러 혐의(러시아와 선거부정 공모, 뮬러 특검 방해, 우크라이나에 바이든 수사 압력 등)로 탄핵을 시도했으나 증거 확보에 모두 실패했다. 좌파가 장악한 언론과 함께 대통령 발목 잡기로 3년을 허송하면서 국력 소비가 엄청났다.사실 트럼프는 비신사적이다. 여성, 소수인종,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말은 충동적이다. 사실 확인 없이 루머를 공언하기도 하고 트위터 사용이 도를 넘어 하루 10회 이상이다. 주요 발표도 트윗으로 보좌진의 점검 없이 하고는 뒷수습으로 진땀을 빼고, 아랫사람을 일회용 상품처럼 무자비하게 해고하기도 한다. 자신의 과거 세금 보고 내역은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널리 알려진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권자가 트럼프를 택한 것은 민주당의 사회주의 경향이 하나의 원인이다. 다른 하나는 흑인, 성소수자, 불법이민자, 지구온난화에 반대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민주당의 '정치의견 통제'(Political Correctness) 문화에 식상한 점이다.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막말에 환호하는 이유다.트럼프의 지난 3년간 치적은 양호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초기 대처는 느렸으나 국경 폐쇄, 의료 장비 공급, 백신 개발 지원으로 파국을 막았다. 직장 폐쇄를 풀자는 그의 주장도 인정을 받는다.외교는 미국 우선주의로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증가를 요구하며 북이라크에서 철군했다.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여 중국의 미국 기술 탈취를 견제하고 미·일·인도·호주의 4각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중동평화도 성과가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의 평화협정 진전, 허점투성이였던 이란 핵협정 탈퇴, 이란의 테러지도자 술레이마니 제거, 테러단체 ISIS의 와해 등이다. 북한 비핵화가 무위로 끝났지만 대북 제재는 효과적으로 유지하고 있다.트럼프는 선거 유세 당시부터 법과 질서의 집행을 내세웠다. 집권 초기에는 중동 테러분자의 미국 잠입을 막기 위해 회교 국민의 미국 방문을 막았으며, 불법 이민 차단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불법 월경을 막기 위한 멕시코-미국 국경의 장벽도 일부 설치했다.트럼프의 경제정책은 (특히 중국의 부당한 무역 관행과 불법적 기술 이전에 대처한) 보호무역을 제외하고는 시장경제에 충실하다. 첫째는 감세이다. 법인세를 21%로 줄이고 개인소득세도 내리고 상속세 면세점을 1천100만달러로 올렸다. 둘째 탈규제로 국가의료보험의 강제 가입을 없애고 에너지와 환경 등의 기업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따라 2020년 2월 실업률이 3.5%로 50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하는 호황을 가져왔었다.코로나 사태로 2020년 4월 실업률이 14.7%로 1939년 이래 최악을 기록하면서 트럼프의 지지율도 40%로 추락했다. 그러나 코로나에 따른 폐쇄됐던 직장의 영업 재개가 늘어나면서 8월 실업률은 8.4%로 경제가 급격히 회복되고 있다.최근 경찰의 흑인 범죄 용의자 사살에 따른 항의 시위대가 폭도화한 지역은 대부분 민주당이 장악한 도시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바이든은 폭도들에 대한 비판을 아껴왔다가 며칠 전에야 성명서를 냈다. 그것도 폭도의 주체(과격파 흑인과 극좌단체 ANTIFA)를 적시하지 않은 미지근한 것이었다. 폭동 지역의 흑인 주민과 외곽 고급 주택가에 사는 중상류층이 안전을 우려하여 트럼프 표로 이탈할 수도 있다. 회복되는 경제와 좌파 폭동에 대한 피로감이 경제성장, 법질서의 수호를 내세우는 트럼프에게 유리한 국면이 될 수 있다.트럼프의 지난 금요일 지지도는 코로나 사태 이전의 최고치인 52%로 돌아왔다.(Rasmussen poll) 바이든의 대선 승리가 따논 당상은 아닌 듯하다.

2020-09-07 15:10:35

[세계의 창] 친일과 반일의 어스름을 벗자

[세계의 창] 친일과 반일의 어스름을 벗자

지난 8월 29일은 한일병합조약 공포 1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조약 제1조는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완전하게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양여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약은 1904년 한일협약 이후 일본 침략을 '정당화'한 각종 조약의 완결판이다. 전쟁에 패한 것도 아니고 이들 조약을 통해 나라를 갖다 바치고 식민지가 된 것이다. 그 '공로'로 그들은 일본으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갖다 바친 나라가 일본의 일부로 잘 통치되도록 협조한 자들도 생겨난다. 이들을 통틀어 친일반민족행위자(줄여서 친일파)라 한다. 이들의 취급 문제는 해방 직후부터 민족적 과제였다. 해결되지 못한 이 문제는 7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국립묘지에 묻힌 그들의 묘를 옮겨야 한다거나, (애)국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국민' 통합을 해친다며 반발도 적지 않다. 그들도 신생 대한민국의 건설과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국립묘지에 안장된 백선엽 장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만주의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하고,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해방 후 6·25 때는 다부동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국군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래서 그는 친일과 애국 논란의 중심에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김원봉은 일제강점기하에서 가장 치열하게 무력투쟁을 전개한 의열단을 이끌었다. 해방 후 일제 형사 출신의 경찰들에게 수모를 겪고 북으로 가서 북한 정권 수립에 일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는 애국과 용공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으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왜 백선엽은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김원봉은 독립유공자에서 배제되었는가. 백선엽이 해방 후 친일로 처벌받았으면, 그 후 그의 이력은 없을 것이다. 해방 직후 독립유공자 대우를 받았다면 김원봉은 북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해방 직후 한반도의 정치적 이념 공간이 그들에 대한 평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에는 미군과 소련(현 러시아)군의 진주로 남북 분단이 현실화했다. 남에서는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라며 일제강점기 때의 '기술자'들을 필요로 했다. 엄습한 냉전체제가 친일 세력들의 활동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 후 그들은 반공 한국의 기득권층으로 흡수되어 보수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상대적으로 국가 건설 과정에서 소외되고 평가절하되었다. 냉전체제가 친일 청산, 즉 탈식민주의를 가로막은 결과였다.친일파 청산 담론은 프랑스의 예를 자주 든다. 프랑스는 독일 점령하에서 나치 정권에 조금이라도 부역을 한 자들을 가차 없이 처벌했다. 100만 명가량이 체포되고, 이 중 6천763명은 사형, 2만6천529명은 징역형에 처해졌다. 정치인, 언론인, 기업가, 종교인 등 사회 지배층에게는 중형을 선고했다. 9만5천 명에게는 시민권을 박탈하는 '비국민' 선고를 내렸다. 나치 협력자 색출은 40년간 계속된다. 독일의 침략을 받은 다른 유럽 국가들은 더 가혹했다. 민족 반역 행위로 구속된 사람이 프랑스는 10만 명당 94명, 벨기에 596명, 네덜란드 419명, 노르웨이 633명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부일(附日) 협력자 청산에 대부분 실패한다. 유럽 국가들의 철저한 탈나치화는 새로운 독일을 필요로 했고, 독일은 반성했다. 피식민지였던 동아시아에서의 친일 세력 건재는 일본제국 부활의 동력을 제공하고, 일본은 반성할 필요가 없었다.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왜 다른가. 독일 침략 이전에 근대국민국가의 경험을 가진 유럽 국가들에 나치에 협력한 '비국민'은 새로운 국가 건설 장애 요소였다. 일본 침략 이전 전근대국가에 머물렀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해방 후 근대국민국가 건설에 직면한다. 일제강점기하에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근대'를 경험한 그들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동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은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국민국가 형성을 향해 가고 있다. 백년대계를 위해 이제라도 '비국민'적 요소를 걷어낼 필요성을 지각하고, 그럴 만한 힘이 생겼는지 모른다. 친일과 반일이 뒤섞인 어스름한 혼돈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옥석을 가리면서 때로는 단호한 걸음으로.

2020-08-31 17: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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