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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시인·수필가

[광장] 전문가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전문가라는 의미의 한자어는 선비 사(士)이다. 우리 주위 직업군에서 그 분야 전문가를 모두 다 士자로 칭한다. 석사, 박사, 변호사, 의사, 기술사는 물론 일반 기능직 분야에서도 미용사, 기능사, 요리사, 강사 등 수없는 전문가를 통칭하여 士라 부른다.먼저 한자에서 말하는 전문가인 士의 의미를 분석해보자. 士란 글자는 十(10) 자에 一(1) 자를 합한 글자이다. 전문가란 의미의 士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한 가지(一)를 들으면 열 가지(十)를 안다는 聞一知十(문일지십), 다른 하나는 열 가지(十)를 하나(一)로 묶을 수 있는 推十合一(추십합일)을 포함하고 있다.먼저 聞一知十은 똑똑한 사람들을 일컬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속담과 같이, 상당히 뛰어난 기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어릴 적 신동이나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런 유형이다. 과거에는 남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빨리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識者(식자)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결국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를 정보의 비대칭 구조 속에서는 경쟁력이자 경제적 가치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전문화가 요구되는 2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미국의 헨리 포드가 주창한 3S 운동(제품의 표준화, 부분품의 단순화, 작업의 전문화)에 필요한 인재형이 聞一知十型(문일지십형)이었다.그러나 현대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 내지 정보보다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즉 AI가 훨씬 방대하고 깊은 지식이나 정보를 많이 알고 잘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과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그래서 단순히 지식, 정보를 많이 알고 처리할 능력을 가진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 요즘 빅데이터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推十合一의 전문가를 요한다. 즉 열 가지의 다른 지식이나 정보를 하나로 묶어 내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각자 다른 기능들을 한곳에 모아 인간이 가장 편리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아이폰을 개발한 推十合一의 상징적 인물이다. 각각 다른 분야의 기술이나 재능들을 하나로 만들어 내는 융합이나 통합의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옛날에는 어느 한 분야에 한 가지만을 잘해도 전문가로 능력을 인정받고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분야라도 열 가지를 묶어 하나로 통합해 낼 수 있는 멀티 사고와 기술이 있어야 진정한 전문가로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이와 관련하여 그동안의 지식 전달 위주의 암기형 교육에서 정보를 어떻게 하면 인간을 위해 유익하고 효율적으로 융합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느냐에 중점을 둔 교육으로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과거에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학원이나 학교 교육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융합 내지 통합형의 미래형 전문가의 개념으로 교육 및 사고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단순 계산이나 반복은 기계가 훨씬 뛰어난 수준으로 잘하기 때문에 굳이 인간을 교육해 경쟁시킬 필요는 없다.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문가의 개념도 지식이나 정보의 양으로 승부하는 聞一知十의 과거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推十合一의 미래형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이다.

2019-08-17 02: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연경동 화암(畵巖)

고문헌에 전해오는 대구를 대표하는 두 개의 바위 중, 삿갓바위로 불렸던 입암(笠巖)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지난번 글에서 다루었다. 이번에는 사라질 뻔했던 대구의 대표 바위 연경동 화암(畵巖·그림바위)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매암 이숙량은 1567년에 작성한 연경서원 '기'(記)에서 화암과 연경서원 일대의 조화로운 풍광을 시각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전략) 연경서원 북쪽은 성도산(成道山)이다. 산봉우리가 나지막하고 골짜기가 고요하다. 서쪽으로 흰 돌과 푸른 솔이 언뜻 언뜻 이어지다 천 길이나 깎아지른 듯 큰 바위에 이르니 이것이 화암이다. 우뚝 솟은 붉고 푸른 절벽의 기이함이 그림과도 같아 화암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화암 아래 깊고 맑은 푸른 물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노닐고 있어 연경서원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한편 '대구읍지' '제영'(題詠) 편에 소개된 퇴계 이황의 한시인 '연경화암'(硏經畵巖)에서도 화암과 연경서원이 소개되고 있다.畵巖形勝畵難成(화암형승화난성) 화암의 좋은 경치 그리기도 어렵네立院相招誦六經(입원상초송육경) 서원을 세우고 서로 모여 육경을 배우리라從此聞佇明道術(종차문저명도술) 이제 도술을 밝혀가며 듣게 될 테니可無呼寐得群醒(가무호매득군성) 능히 몽매한 자 깨우치지 못하겠는가시에서도 언급했듯이 퇴계 이황은 '화암의 멋진 경치를 그리기조차도 어렵다'고 하였다.연경서원 근처에 있다고 고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화암은 동화천변에 위치하는 강가 바위 절벽인 하식애(河蝕崖)다. 바위 하부는 약간 붉은 빛을 띠는 사암층과 세일층으로 되어 있고, 상부는 역암층으로 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억여 년 전 호수에서 형성된 퇴적암이다. 화암을 이루어 놓은 퇴적암은 대구 분지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과 같은 종류다.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팔공산이 흰 빛깔의 밝고 수려한 외양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화암은 다소 짙은 빛깔을 나타낸다. 이처럼 짙은 빛깔의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화암은 암석의 구조적 특성과 기묘한 외양으로 인하여 신비감을 더해 준다. 풍화작용으로 역암층에 박혀 있던 둥근 돌이 빠져나간 자리의 모습이 벌집을 닮았다 하여 벌집바위로 불리는 타포니(tafoni)와 상부의 돌출 부위로 인한 기묘한 형상이 화암을 예로부터 특이하고도 신비롭게 인식하게 하는 원인으로 판단된다.화암은 그 앞을 흐르는 동화천과 더불어 수려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하다. 한때는 산악인들의 암벽 훈련 등반지로 이용됐을 뿐만 아니라 왕복 2차로 도로에 접해 있어 차량에서 배출되는 매연으로 많이 변색되었다. 더군다나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곳곳에 사람의 이름이 페인트나 조각 도구로 새겨져 있어 안타깝다. 화암 옆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연경서원은 대구지역에서는 최초로 설립된 서원으로 의미가 크다.현재도 연경동 일대에서 진행 중인 대구 4차 순환도로 공사와 대규모 아파트 공사는 화암과 일대 동화천 풍광의 근본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고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오는 대구에 마지막 남은 바위 화암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동화천에 대한 보존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겠다. 아울러 연경서원 터에 대한 정밀 조사와 발굴 및 복원이 이루어져 교육도시로서의 대구 자존심과 품격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2019-08-06 11:28:13

최경규 경영학 박사, 스트레스 행복강연가

[광장] 행복에도 단식이 필요하다

여름 휴가철, 사람들은 도시를 비운다. 텅 빈 공간 위 뜨거운 아스팔트만이 다가온 8월을 체감하게 한다. 휴가를 위해서는 아니지만 다른 계절에 비해 상대적 노출이 심한 여름을 위해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한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최근 의학계나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간헐적 단식'이다.간헐적 단식(IF: Intermittent Fasting)이란, 1주일에 이틀은 24시간 단식을 하고 1주일에 3~5번 정도는 아침을 걸러 일상 속에서 공복감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우선 24시간 단식은 아침과 점심을 거르고 저녁에 600k㎈가량을 섭취하고, 16시간 단식은 아침만 거르고 점심, 저녁은 평소대로 먹는다. 이러한 간헐적 단식은 체내 인슐린 수치를 줄일 수 있다고까지 하여 한때 홈쇼핑 채널에서는 단식 대용품으로 선식이나 기타 건강식품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스트레스와 행복 강연을 하는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간헐적 단식이 비단 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의 마음에도 나쁜 습성을 버릴 간헐적 단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당분과 나트륨에 익숙해진 몸처럼,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우리는 진정으로 가야할 길,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경우를 자주 본다. Pew Research Center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 1위 수준이며, 총인구의 88%가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대학생들에게 언제 가장 불안하냐는 질문에 스마트폰을 두고 나왔을 때라 한다.무엇이든 적절한 사용의 범위를 벗어나면 중독이 된다.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유를 묻는 리서치에서 나타난 재미난 사실 하나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 등 SNS에서의 '좋아요' 때문이라 한다. 즉 자신이 올린 글에 사람들이 '좋아요'라고 많이 대답해주면 행복하고, 댓글이 많으면 기분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좋아요'를 인위적으로 올려주는 대행 업체까지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누구나 자신을 좋아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자신을 호응해주면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래와 같은 공허함 위에 무거운 집을 지으려는 욕망과도 같다. 진정성이 있는 글로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그만이다. 남들이 덜 알아주어도, 자신이 좋고 만족하면 그걸로 행복해야 한다. 즉 '좋아요'의 수치가 절대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이번 한 주 몸과 마음에 간헐적 단식을 권해본다. 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스마트폰을 찾지 말자. 성인이 무의식중에 스마트폰을 보는 횟수가 하루 150회 이상이라는 통계를 볼 때, 우리는 이유 없이 스마트폰을 보는 것에 습관화되어 있다. 어머니의 손맛을 잊은 채 조미료에 익숙해진 우리는 정이 담긴 말을 건네기보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을 보며 SNS로 소통을 한다. 이번 한 주만이라도 간헐적으로 스마트폰과의 단식을 해보자. 그리고 자신이 올린 글에 대한 반응에 연연해하지 말자.스스로 당당해지면 살아가는 세상도 더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을 만드는 것도 나의 몫이다.무더운 8월, 시원한 수박화채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어느 새 여름도 저만큼 달아나 있을지 모른다.

2019-08-01 11:29:3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뫼비우스의 띠

작가 조세희가 1970년대 후반에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열두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며 첫 번째가 '뫼비우스의 띠'이다. 이것은 첫 단편의 제목일 뿐만 아니라 나머지 단편들을 관통하는 주제를 나타내며 세상사 많은 시시비비가 이 띠의 성격을 닮았음을 시사하고 있다.종이를 잘라 띠를 만든 후 띠의 양 끝을 한 번 꼬아 붙이면 뫼비우스의 띠가 된다. 뫼비우스의 띠에선 어느 지점에서나 띠의 중심을 따라 한 바퀴 이동하면 출발한 곳에서 정반대 지점에 도달할 수 있고, 계속 나아가 두 바퀴를 돌면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우선 뫼비우스의 띠 각 지점에서는 안팎이 구분된다. 안이 없이 밖이 있을 수 없고 밖이 없이 안이 있을 수 없듯이 이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공존한다. 이처럼 선과 악, 긍정과 부정, 옳고 그름처럼 가치가 대립되는 것들도 야누스의 두 얼굴같이 서로 다르면서도 공존함을 시사하고 있다.연작 중 두 번째 단편 '칼날'의 주인공인 주부 신애는 난장이를 불러 수도꼭지를 교체시킨다. 이때 펌프가게를 운영하는 사나이가 나타나 자신의 사업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난장이에게 심한 폭력을 가한다. 이를 제지시키기 위해 신애가 식칼을 휘둘러 사나이의 팔에 상처를 입힌다. 여기서 난장이가 수도꼭지를 교체해 주는 행위는 신애 입장에선 선이고 사나이 입장에선 악이다. 그리고 신애가 칼을 휘두르는 행위는 난장이에겐 선이지만 사나이에겐 악이다. 이처럼 어떤 행위가 보는 관점에 따라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띠고 있는 것이다.또한 뫼비우스의 띠에선 특정한 지점에서 이동함에 따라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된다. 이동, 즉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선과 악, 옳고 그름, 강자와 약자의 역할이 뒤바뀔 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연작 중 네 번째 단편은 연작소설과 이름이 같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재개발 지역에서 집을 팔아도 아파트 입주권을 살 형편이 안 되는 난장이 가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결국 난장이가 집을 판 날 막내 영희가 가출을 한다. 영희는 자기 집을 산 사나이를 따라 가서 그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때때로 성적 유린까지 당한다. 남자로부터 신임을 얻은 영희는 잠든 남자를 마취시키고 자기 집 관련 서류와 아파트 입주에 필요한 돈을 챙겨 달아난다. 지금까지 영희는 약자이며 피해자인 선을 나타냈고 사나이는 강자이자 가해자인 악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날 밤엔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뀌었다. 영원히 약자나 강자로 살 수 없고 영원히 선하거나 악하지도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때로부터 40여 년이 흘렀지만 세상은 여전히 시시비비가 넘치고 있고, 옳고 그름에 관한 가치관조차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립은 발전을 위한 지난한 몸부림이다. 몸부림이 긍정의 열매를 맺기 위해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인정하고, 소통하고, 곡진하게 설득해야 한다.그러함에도 자기와 자기 집단만이 선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자신이 바라보는 동굴 밖 세계만 인정하는 사람들, 권력에 취해 '완장'(윤흥길 작)의 주인공 종술처럼 공격적이지만 없는 것은 대책이고 있는 것은 무능인 사람들도 있다. 오늘 하는 행위가 선하게 보일지라도 절대선(絶對善)은 아니며 긍정적 효과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있을 수 있음을 통감(痛感)해주길 바란다. 오늘 선을 행하여도 내일은 어쩌다 악을, 그리고 훗날엔 다시 선을 행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그래서 동과 서, 여와 야,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견제하며 보듬어주는 세상을 꿈꾼다.

2019-07-25 11:23:17

이상일 시인·수필가

[광장] 평범이 가장 큰 행복의 지름길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스펜서(Spencer)는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때 사회는 인간 한 사람(人)이 아닌 두 사람 이상의 사이(間)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동양에서 사람을 단순히 인(人)이라 하지 않고 인간(人間)이라고 했다.이 사회에 사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행복의 기준은 시대와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편적인 행복은 지금 현재의 인간관계 속에서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현실은 늘 끊임없는 갈등과 모순이지만 그 시대와 같이 사는 사람들과 동떨어져 지구 밖에서나 과거나 미래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옛 선조들도 세상 살면서 세 가지는 피하라고 했다. 첫째가 소년등과(少年登科), 둘째가 장년상처(壯年喪妻), 셋째가 말년궁핍(末年窮乏)이라 했다. 이 중 소년등과는 너무 일찍 출세하면 인생의 산전수전을 경험해 보지 못함으로써 정상에서 추락하는 절망감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하거나 망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피하라 했다.행복은 성적순도 아니며, 천재나 영재로 사는 것이 성공이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도 아니다. 'IQ 210'의 세계 10대 천재 한국인 김웅용 씨는 12세에 NAS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지만 또래와의 '관계 맺기'와 '소통'에 실패해 NASA에서도 늘 혼자였고, 결국 우울증과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다 못해 19세 때 '평범하게 살겠다'며 한국으로 돌아와 검정고시로 초중고를 거쳐 지방대를 졸업한 후 공기업에 다니다 지방대학 교수로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최근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재 소년 송유근도 만 6세의 나이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8세에 인하대에 입학해 최연소 박사 학위를 취득하려다 논문 표절 등의 시비에 휘말려 모든 것을 중단하고 작년 말 군에 입대했다.외국 사례로 2008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세계적 수재들만 모인 미국의 하버드대 학생 268명의 인생을 추적한 연구 결과, 47세 무렵까지 형성돼 있는 인간관계가 이후 생애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였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가장 안정적인 성공을 이뤘다는 결론이다.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다.사람의 일생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면 열광하는 삶보다는 한결같은 삶이 훨씬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안다. 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단순하듯 이미 유치원에서 배운 정직하라, 성실하라, 사랑하라 이 세 마디이다. 이렇게 사는 길이 가장 심플하면서 이 땅 위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한때 우리나라에서 조기교육 붐이 일어나 혀도 잘 못 굴리는 아이에게 3개국의 외국어를 시키는 등 과열풍이 있었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영재 내지 천재교육으로 아이들을 혹사시키거나 별나게 키우려고 하기보다는, 같은 또래집단과 자연스럽게 인격 형성이 되도록 평범하게 키우는 것이 한 사람 일생으로 봐서는 가장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 법칙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사는 이유가 행복하기 위해 산다면 행복은 결국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의 평범한 교류와 가장 단순한 진리 속에 있기 때문이다.

2019-07-20 00: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건들바위(立巖)와 삿갓바위(笠巖)

고문헌에 전해오는 대구를 대표하는 바위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입암(笠巖)이고 다른 하나는 화암(畵巖)이다. 안타깝게도 입암은 사라지고, 화암만 남아 있다. 입암은 삿갓바위로도 불렸다.15세기 대구를 대표하는 대문장가로 사가 서거정(1420~1488)이 있다. 서거정의 본관은 대구(大丘)다. 대구에 뿌리를 두는 서씨의 경우, 달성(達城) 서씨를 향파(鄕派), 대구(大丘) 서씨를 경파(京派)로 구분한다. 서거정은 자신이 생존했던 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 열 곳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었는데, 그의 문집 「사가집」에 실려 있는 '대구십영'(大丘十詠)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제2영의 입암조어(笠巖釣魚)에 나오는 입암이 삿갓바위고, 이 삿갓바위에서 낚시하는 풍광을 한시로 묘사한 글이 '입암조어'(笠巖釣魚)다.한때 대봉동 건들바위(대구광역시기념물 제2호)를 삿갓바위로 잘못 알고 있기도 했다. 건들바위는 기자신앙(祈子信仰)의 대상지로도 유명했다. 아기를 가지지 못한 부녀자가 여기 와서 치성을 드리면 아기를 가진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했다. 건들바위 역시 입암이지만, 한자로 표기하면 선바위(立巖) 의미를 가진다.건들바위는 대구천에 의해 깎여 만들어진 바위 절벽으로 학술 용어로는 하식애(河蝕崖)다. 즉, 대구천변에 서 있는 바위인 건들바위를 중심으로 동편에 위치한 마을과 서편에 위치한 마을을 각각 대구부(大丘府) 하수서면(下守西面) 동변입암리(東邊立巖里)와 서변입암리(西邊立巖里)로 불렀다. 이런 내용은 '대구읍지'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대구지역을 비교적 상세하게 표현한 고지도로 18세기 초에 발간된 해동지도(대구부)를 보면 삿갓바위의 위치가 도청교 서편 부근(침산동)에 표시되어 있다. 예전에 도청교 주변에는 대구천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물줄기 하나가 신천으로 합류했다. 지금은 복개된 상태라 볼 수 없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또는 광복 이후의 개발 시절에 훼손돼 사라졌다고 한다.「경상도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고문헌 '대구 편'에도 입암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다. "대구부에서 동으로 5리쯤 떨어진 신천변에 있다. 운석이 떨어져 이루어진 돌이다. 생긴 모양이 삿갓처럼 생겨 입암이라 한다."「세종실록지리지」 '대구군 편'에도 나온다. "입암은 군 동쪽 2리가량 되는 신천(新川)에 있다. 돌이 높이 서 있고, 시속에서 삿갓바위(笠岩)라고 부른다. 세상에 전하기를 별이 떨어져서 돌이 되었다고 한다."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2영인 '입암조어'(笠巖釣魚) 시에서 보면 삿갓바위 정체를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입암조어(笠巖釣魚): 삿갓바위에서 고기를 낚으며'연우공몽택국추(煙雨涳濛澤國秋): 이슬비 자욱이 내리는 어두운 호숫가 가을날수륜독좌사유유(垂綸獨坐思悠悠): 낚싯줄 곧게 드리우고 홀로 앉아 한가로이 생각에 잠겼네섬린이하지다소(纖鱗餌下知多少): 미끼 아래 작은 물고기 다소 있음이야 알겠지만부조금오조불휴(不釣金鰲釣不休): 금자라 낚지 못해 쉬지를 못 하네.한시 내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삿갓바위에서 낚시하는 강태공과 주변의 풍광이 대구를 대표할 만한 경관이다. 그런데 건들바위는 탑처럼 생겨 폭이 좁고 길쭉하다. 게다가 운석처럼 단단한 재질이 아닌 약한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풍화도 많이 되었고, 여러 곳에 균열된 틈이 있어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바위 윗면도 좁아 낚시는커녕 올라 앉아 있기조차 거의 불가능하다. 생김새도 삿갓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그런데 대구를 소개하는 각종 홍보물에는 여전히 건들바위를 삿갓바위로 소개하고 있어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2019-07-12 01:30:00

최경규 행복강연가·국제경영학 박사

[광장] 용기 있는 자만이 행복할 수 있다

경영학에서는 표준화(standardization)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이 말은 주로 자동차산업과 같은 생산 공정 라인에서 형상과 품질을 정형화함으로, 시간을 절약하고 투입되는 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전략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요즘처럼 다품종, 대량생산이 많이 이루어지는 시대, 시내에 가보면 지난주 홈쇼핑에서 판매된 옷들로 거리가 가득하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트렌드라는 이름에 무임승차하다보면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나, 정작 자신의 정체성 (Identity)은 점차 사라질 수 있다.사람은 저마다의 타고난 성품과 기질이 있고, 그 인생의 색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르게 비춰진다. 하지만 이러한 각자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남들만 따라간다면 삶의 기곡의 막다른 길에 멈추어 섰을 때 스스로는 아무런 답을 구할 수 없다.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인다고해서 자신이 반드시 행복하다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반대로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것은 행복이 맞다. 그러기 위해서 행복해지고 싶다면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과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필자는 행복강연 때 "우리는 자아결핍(ego deficiency)의 시대에 살고 있다"라는 말을 한다. 쉽게 말해 밑 빠진 독에 물을 아무리 부어도 물이 차지 않듯이 정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정말 자신이 결핍된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구멍을 매워가는 노력과 시간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학병원에 가면 작은 병원에서 하지 않는 많은 검사들을 한다. 아파서 갔는데 빨리 치료해주기를 바라지만, 대기시간만큼이나 여러 검사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하지만 수많은 검사를 하는 이유는 정확한 진단이 좋은 결과를 위해 치료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 자신을 그리고 오늘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내일의 행복이 더 클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희망,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누각(砂上樓閣)과 같은 불안정한 토대 위에 사는, 로또와 같은 삶은 바람직하지 않다. 즉 오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나를 직시할 수 있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많은 이들이 미래 자신의 모습이 어떨 것인가에 대하여 묻는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 당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는지에 따라 당신의 미래는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정신과 전문의 역시 미래에 대하여 오늘을 얼마나 노력하며 사는지에 따라 그 환자의 예후(豫後)를 가늠 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오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삶을 산다 하더라도 마음이 곪고 있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지 않는 자는 결국 힘든 삶을 살 것이나, 비록 오늘 죽고 싶더라도 내일을 위한 계획이 있고, 실천을 하는 사람은 밝아지고, 그 힘듦은 반드시 극복될 것이라고 말이다. 경영학 표준화에 반대되는 의미로 현지화(localization)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부터는 다른 이들의 공통된 사고에서 벗어나 진정한 내 안의 자아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남들이 눈치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리고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일들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 안에 머물러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너무나 빠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정말 소중한 것을 보지도 못하고 볼 생각조차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지금 거울을 보라. 그 안에 담겨있는 당신의 눈동자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이야기 해 줄 것이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이 있듯이, 용기 있는 자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의 시작은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2019-07-05 06: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말의 대상과 의의, 그리고 품격

논리철학자 프레게는 말의 '대상'(對象)과 '의의'(意義)를 구분하였다. 가령 '책'이라는 말은 세상에 있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며, "지식을 글로 표현하여…"와 같은 의의가 있다. 또한 '동그라미'라는 말은 세상에 있는 대상인 '○'를 가리키며,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와 같은 의의가 있다.말과 대상의 관계를 자의적(恣意的)이라고 하는데 특정한 대상을 반드시 그렇게 불러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가령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대상을 영‧미인은 'book'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말과 대상의 관계가 자의적일지라도 말은 그 나름의 의의도 갖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좋은 의의를 지닌 말을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 또는 단체의 이름을 지을 때 남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개명할 때도 있다.대체로 대상이 하나의 말을 갖지만 두 개 이상일 때도 있다. 지구보다 태양에 더 가까운 금성이 새벽에 보일 때는 '샛별'이라 부르고 해질녘에 보일 때는 '개밥바라기'라 부른다.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금성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지만 '샛별'은 "새벽에 뜨는 새로 난 별", '개밥바라기'는 "개의 밥그릇을 연상시키는 해질녘에 뜨는 별"이라는 서로 다른 의의를 지니고 있다.'샛별'과 '개밥바라기'는 의의가 다르지만 어느 것이 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지는 않다. 이런 경우에는 의의의 차이가 가치중립적인데, 이때는 언어 표현을 더 풍부하게 해줄 뿐 특정한 말의 선택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말들이 가치중립적이지 않을 때는 어느 말을 선택하는가가 논란의 소지가 있고 말의 품격과도 연관되므로 말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특히 감정과 이념이 개입되어 있을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최근에 특정 그룹을 '달빛 기사단' 대신 '달창'(달빛 ○○단), 대통령의 '외교 순방'을 '천렵질'이라고 불러 논란이 되었다. 각각의 전자는 긍정, 후자는 부정적인 의의를 지녔으므로 의의의 차이가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그래서 논란이 된 것이다. 한국이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부르는 상(像)을 일본은 '위안부상'이라 부른다. 이 두 말의 차이도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므로 한일 간에 명칭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은 좋은 말을 써 대중들이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일본은 나쁜 말을 써 혐오의 대상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말은 말을 하는 사람의 품격도 나타내지만 듣는 사람의 품격도 나타낸다. 특히 정치인의 언어는 본인의 인격뿐만 아니라 국민의 품격도 보여주는 것이기에 품위 없는 말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처사이고 청소년들에게도 본이 될 수가 없다. 말의 격(格)에서 인격이 나오기 때문에 감정과 이념이 개입된 영역에서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뿐만 아니라 의의도 특히 더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듣는 이의 출신 지역, 인종, 종교, 계층뿐만 아니라 이념, 학력, 연령, 성별까지 고려하여 역지사지함이 말의 격을 높이는 길이다.김윤나의 '말 그릇'(2017)에 따르면 말은 그 사람의 내면과 닮았다고 한다. 나를 닮은 말을 생각나는 대로 내뱉어 나의 말이 막말의 대명사인 '귀태'(鬼胎)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서는 안 된다.

2019-06-28 06:30:00

김계희 서양 화가

[광장] 천변의 노을

방과 후엔 언제나 학교 옥상에서 그림을 그렸다. 학교 뒤편 화조동(선산군 선산면)의 기와를 그리고, 기와에 드리운 감나무를 그리고, 그 뒤로 봄가을 달라지는 비봉산의 색을 그렸다.일요일 아침이면 그곳에 올라 매일 똑같은 산, 똑같은 지붕을 그렸다. 겨우 달라지는 게 있다면 산빛이거나 하늘빛이거나, 감꽃이 피거나 지는 모습이 다였는데도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선생님은 매일 아침저녁 우리를 그곳으로 불렀다.계절이 바뀌면 버스를 타고 대회에 가고, 수선스레 분주한 도시의 선생님들 속에서 여전히 아무 말 없으신 선생님이 주신 카스텔라를 먹고, 다음 날이면 또 운동장에 남아 그림을 그렸다. 텅 빈 운동장에서, 그 삼 년 동안 나는 천 번이 넘게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노을의 끝에는 언제나 노랗게 물든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나는 자라 어른이 된 후에도 선생님이 그때 무엇을 가르쳐 주셨는지 알지 못했다.훈련을 통하지 않고도 이미 영적인 존재들, 아이들의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그들의 언어가 어느 먼 아름다운 세계에서 오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이미 창조를 그친 우리가 이토록 창조적인 그들에게 어떻게 별과 밤의 속삭임을, 그 아래 피어나는 백합의 지혜를, 바람이 나무에 들려주는 비밀의 말을, 서로 얼싸안고 공존하는 치열한 포옹을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가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말들과 도저히 떠올릴 수 없게 된 떠나온 세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까? 온종일 창조를 학습하느라 진정 창조할 여력이 없는 아이들이 창조하지 못하는 선생님에게 창조를 배우러 와서 묻는다."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칠 건가요?"그럴 때면 나는 내 기억 속 마을을 떠올린다. 숲이 있고 냇물이 흐르고 멀리 강이 보이는 곳. 나무가 잎을 털기 전 무어라 속삭이는지, 텅 빈 운동장에 날리는 태극기가 어떻게 음악이 되고, 그날의 회화가 어떻게 먼 시간을 돌아 마음 깊은 곳에 힘으로 자리하는지 가르쳐 준 내 선생님의 천 번의 노을을 생각한다.우리는 거기에서 사철을 머물며 숲이 우수수 잎을 터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리는 놀다가 놀다가, 매일매일 놀다가 지겨워 잠이 들것이다. 그리고 흰 눈 쌓인 어느 아침, 아이들은 헛간을 뒤져서 찾은 연장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고 철사를 구부리는 광경을 나는 멀리서 지켜볼 것이다. 비로소 미술과 과학이 창조되는 모습을, 토론과 배려와 협력이 드러나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해거름 내리는 저녁, 우리의 썰매는 드디어 완성될 것이다.그 저녁, 겨울 강가에서 흠뻑 젖은 시린 무릎을 안고 돌아오는 길, 노을 가득 까마귀가 울고, 문득 나뭇잎 스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볼 때, 우리는 쌓인 흰 눈 속에 먹이를 찾아 내려온 고라니의 선연한 눈망울과 마주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이끌고 이끌 거룩한 비밀의 순간,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동화는 그렇게 탄생할 것이다.그곳에서라면 우리는 따로 미학을 배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도덕을, 사랑을, 경건한 예배를 공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삶을 거쳐 가끔은 외롭고 헐벗은 모습으로 헤매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을 다시 아름다움 속에 세워 놓을 수 있도록, 그날의 빛은 가슴 속에 고요히 뿌리내려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김계희-그림책 화가

2019-06-20 15:20:47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고운(孤雲) 최치원과 대구 호국성(護國城)

신라를 대표하는 학자로 고운 최치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신선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는 최치원의 마지막 흔적이 대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최치원은 강수(强首), 설총(薛聰)과 더불어 '신라 3문장'(新羅 三文章)의 한 분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신라의 주도 세력인 진골 출신이 아닌 6두품 출신으로 868년 12세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874년 18세에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할 정도의 수재였다. 876년 당나라의 선주(宣州) 율수현위(漂水縣尉)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에 올랐고, 885년 귀국할 때까지 많은 글을 남겼다. 역사에 잘 알려진 일명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도 불리는 '격황소서'(檄黃巢書)는 명문으로 유명하다.29세에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은 헌강왕으로부터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사(侍讀兼翰林學士守兵部侍郎知瑞書監事)로 임명된다. 그런데 당시 신라는 지방의 호족세력이 등장하면서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894년(진성여왕 8)에는 최치원이 개혁의 청사진을 담은 시무책(時務策) 10여 조를 왕에게 올리고 6두품 최고의 관직인 아찬(阿飡)이 되었지만 진골 귀족들의 극심한 반발로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진성여왕 후임으로 효공왕이 즉위하자 최치원은 40대 초반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산천을 두루 다니다 가야산 입산 후 속세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최치원이 사라진 후 그의 나이 52세에 남긴 마지막 글이 바로 대구 수창군과 관련된 글이어서 대구로서는 큰 의미를 가진다.908년(효공왕 12) 최치원이 지은 '신라 수창군 호국성 팔각등루기'(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가 바로 그 작품이다. 수창은 대구 수성의 전신에 해당하는 신라시대 지명이다. '수성'(壽城)이 신라 때는 '위화'(喟火), '수창'(壽昌)으로 불렸다. 수창군 속현으로 대구현(달구화현), 화원현(설화현), 하빈현(다사지현), 팔거현이 있어, 대구 전신인 달구벌보다 수성구 전신인 수창이 상위 행정구역이었다.'팔각등루기'에 의하면 대구지역 상류층인 호국의영도장(護國義營都將) 중알찬(重閼粲) 이재(異才)가 남령(南嶺)에 팔각등루를 세웠고 그의 부탁으로 최치원이 기문을 쓴다고 기록되어 있다. 앞산 대덕산성을 호국성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아래 기문 내용을 고려한다면 앞산 용두토성이 호국성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험한 산을 등지고 높은 언덕 위에 있으며, 절벽 아래 강물이 흐르고, 성곽 형태가 구름처럼 길쭉하다."그러나 기문 내용의 지리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호국성을 중심으로 서쪽에 불좌(佛佐)못, 동남쪽으로 불체(佛體)못, 동쪽에 따로 천왕(天王)못이 있고, 서남쪽에 고성(古城)이 있는데 이것을 달불(達佛)이라 하며, 호국성의 남쪽에 산이 있는데 불(佛)산이라 한다." 즉, 달불성은 달성토성을, 불산은 앞산(성불산)을 의미한다. 이런 내용을 고려한다면 금호강변의 검단토성이 호국성이 될 수도 있다.아무튼 신라 3문장의 한 분인 최치원이 남긴 마지막 글이 대구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구로서는 엄청난 홍보거리를 얻은 셈이다. 차제 교육도시 대구의 이미지 제고와 도시 브랜드 홍보에 적극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06-11 17:20:02

최경규 행복강연가·작가

[광장] 구글(Google)은 출근하면 무엇을 하는가?

시간의 효율적 사용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기업 구글에서는 요즘 새로운 업무 방식이 도입되어 화제이다. 바쁜 하루 일과 중, 그것도 아침에 30분이나 직원들에게 명상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구글이라는 현시대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기업이 동양에서 주로 연구하는 분야인 명상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명상 자체가 직원들에게 주는 이로운 점은 집중력 향상과 창의성 증대라는 점을 먼저 손꼽을 수 있고, 이러한 내용은 실제 리서치 결과를 보더라도 약 91%가 명상을 한 후, 업무 성과가 좋아진 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눈이 파란 외국인들이 회사에서 눈을 감고 명상한다는 것을 말하는 데 있지 않다. 바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우리나라는 1970, 80년대 고속 성장에 이어 아직도 주위를 둘러보기보다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향이 많다. 물론 사회적 환경 자체가 다른 나라와 차이가 있음도 무시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잔디 깎는 기계 몇 대만 있고, 부지런하기만 하다면 고등학교 선생님보다 수입이 더 좋을 수 있다. 그러기에 굳이 대학에 가려 하지도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고 진로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고속 성장이라는 이면 아래 우리나라는 비교와 편견이라는 두 단어로 심한 성장통을 국민 전체가 겪고 있다.필자가 행복 강연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지만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을 자주 들여다본다는 사실이다. 굳이 명상이 아니더라도 기도를 통해서도 오늘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고,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부족한 행동을 수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복한 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실질적으로 거울을 자주 들여다본다. 얼굴에 무엇이 묻어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에 근심이나 스트레스가 묻거나 얼룩져 있는지 보는 것이다. 소위 요즘 잘나간다는 기업체 대표를 만나보면 너무 바빠서 거울 볼 시간도 없다고 한다. 그러는 그의 얼굴 위에는 어느새 근심과 화병의 씨앗이 보이고 있었다. 즉 거울을 보지 않았고 자신을 살피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다.모든 병에 예방이 최고의 약이듯 마음의 병 역시, 미리 자신을 돌보고 살피는 예방 조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괜찮다. 우리 자식만 행복하다면 또는 우리 부모님만 좋으시다면. 물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세상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보는 세상이 삐뚤어져 있다면 아무리 좋은 세상도 아름답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하루는 24시간이며, 1천440분이 매일 우리에게 주어진다. 매일 되풀이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행복과 희열을 로또처럼 꿈꾸는 건 아닌가? 어제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 내일 새로움을 바란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내일이 새롭기 위해서는 오늘 새로운 씨앗을 반드시 뿌려야 한다. 그렇지만 녹록지 않은 삶에 여건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구글의 명상하는 아침처럼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다독이며 위로하고 살아야 한다.

2019-06-06 16:20:3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안전인지 감수성

지난달 15일 호텔인터불고 대구에서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 의해 방화가 일어났다. 다행히 이번 사건에서 직원과 소방대원의 신속한 대처로 중상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6년 전엔 우울증 환자로 인한 대구지하철 방화로 340명의 사상자가 났었다. 이번 사건으로 아직도 사회 곳곳에 구멍이 뚫린 것이 드러났으므로 이미 참사를 경험했던 우리로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안전에 대한 심려(深慮), 즉 '안전인지 감수성'(safety awareness)을 높여야 한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에 의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중앙 및 지방정부는 각종 인재(人災)에 대처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다중이용시설을 운영하는 업주들, 그리고 시민 모두도 각자의 위치에서 안전인지 감수성을 높여 사람이 있는 모든 곳에서 안전을 생활화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첫째, 방화혐의자는 시내 주유소에서 20ℓ 휘발유 8통, 총 160ℓ를 별 제지 없이 구입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4ℓ 통에 담긴 소량의 휘발유로 인해 일어났다. 그때 사용된 양의 40배가 넘는 160ℓ를 대도시에서 신분 확인도 없이 사고파는 사회 시스템이 놀랍지 않은가? 인화성 및 유독성 물질의 생산‧유통‧판매에 보다 엄격한 규정을 정하고 감시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구매 사유와 구매자 신분을 확인하고, 수상한 느낌이 들면 신고하고, 개인 용기에 판매할 수 있는 양을 제한해야 한다.둘째, 호텔 별관 2층 로비에 8통 중 6통, 총 120ℓ의 휘발유를 혼자서 운반하고, 뿌리고, 불을 질렀는데 이 과정에서 아무런 제지도 없었다. 한밤중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루가 시작된 아침 아홉 시 이후에 일어난 일이라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다중이용시설에 24시간 보안요원을 배치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셋째,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다. 당국은 소방시설 구비 및 작동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고 호텔 측에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넷째, 혐의자는 필로폰을 투약하고 환각 상태에서 일을 저질렀다. 여타의 사건에서 보듯이 우리는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며 마약류의 불법 거래와 사용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당국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끝으로, 이 사건 혐의자도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건도 최근에 발생한 조현병 환자들의 사건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정부는 의료제도를 혁신해 조현병과 같이 개인과 가족이 감당하기 힘든 병을 사회가 개입해 치료해줄 수 있는 제도 마련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우리 모두도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 병을 앓는 사람이 거리낌 없이 병원을 찾을 수 있고 주변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겠다.마음이 만사(萬事)다. 선조들은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을 돌아보라고 했다. 인구 및 교류가 많아진 지금은 일일십성(一日十省)하며 마음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마음을 심중(心中)에 잘 잡아매고 돌봐 자신과 가족은 물론이고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겠다.

2019-05-31 06:30:00

김계희 서양 화가

[광장] 사랑과 의도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특별히 안정감 있고 여유가 느껴지는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들은 밝고 낙천적이고 뇌가 건강한 느낌이 드는데, 학습에 있어서도 그런 아이들은 지구력 있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어머니를 만나보면 그 안정감이 어머니의 풍부하고 깊은 사랑에서 연유된 것임을 알게 된다.오랫동안의 교육 현장 경험으로 2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특이한 점은, 많은 아이들에게서 사랑에 대한 무언가의 결핍감이 느껴진다. 부모의 사랑이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 아닐 수 없고, 아이에 대한 부모님의 관심도와 보살핌은 예전보다 더 높아지고 섬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사랑 속에 점점 더 많은 요구와 의도가 담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이 오롯이 아이 자체가 아닌, 아이가 서 있는 그 뒤편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선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그리고 그 시선이 끝나는 지점에는 아이가 아닌 부모 자신이 있음을 본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에 부모 자신의 욕망, 성취, 그런 소망이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조바심과 불안이 혼합된 그야말로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런 까닭에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아이들이 결핍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언젠가 영화 보기에 대한 장점을 들으신 어머니께서 특별히 선별한 영화를 아이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서정적인 내용의 좋은 영화였지만 그런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는 지겨움을 토로했고 결국 영화 보기는 중단되었다.어머니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화가 났다고 한다. 화가 난 이유는 영화를 선별하기 위해 공들여 노력한 것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이었을 것이고, 아이가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이다.영화 한 편을 보여주는 것에도 이처럼 복잡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면, 부모님의 아이를 향한 많은 행위 속에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기대와 욕구 그리고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님의 사랑 속에 은밀히 감추어진 의도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 칭찬이, 이 격려가 어떤 요구를 품은 것임을 아는 아이들은 그 수많은 의도 속에서 피로해져 가고 있다.피로가 축적되면 예민해지고, 예민함은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결국엔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무기력해진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NO를 선언하게 되는데, 집중력이 좋던 아이가 집중력이 흐려진다거나, 낙천적이던 아이가 지나치게 예민한 성향으로 변한다거나, 그래서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게 된다거나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우리의 사랑이 정확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지 못해서 불안하고 피로한 것은 아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가는 아이에게 날아 보라고 등을 떠미는 사랑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온전하고 풍부한 사랑 속에 머물게 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을 딛고 아이는 결국 날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2019-05-24 11:46:38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신천(新川) 지명에 대한 오해

신천은 비슬산 북동사면에서 발원하는 용계천과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우미산 남서쪽 밤티재 부근에서 발원하는 또 하나의 지류가 가창면 사방산 부근에서 만나 북쪽으로 흘러 침산 부근에서 금호강으로 유입한다. 신천은 금호강(대구권) 최대 지류로 길이 27㎞, 유역 면적 165㎢에 달한다. 비교적 큰 하상경사 탓에 유속도 빨라 가창교에서 상동교까지는 초속 4∼5m, 상동교로부터 침산교까지는 초속 2∼3m를 보인다.신천의 활발한 침식작용은 신천변 곳곳에 수려한 지형 경관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지난 시절 개발 과정에서 정겹고 흥미로운 전설과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던 신천의 풍광이 하나둘씩 사라져, 남아 있는 자연경관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나마 앞산 용두골∼고산골 구간에 남아 있었던 용두산(앞산)의 하식애(강가의 바위 절벽)와 문화 역사적 가치가 큰 문화 지형조차도 신천 좌안도로 공사와 앞산터널 공사로 인해 상당 부분 훼손돼 안타깝다.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신천은 항상 대구의 중심 하천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금호강이 있음에도 대구지역민에게 있어 신천의 의미는 거의 절대적 가치로 인식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민 대부분은 신천의 정체성과도 같은 지명 유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설령 알더라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신천 지명과 관련하여 대구지역민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구 한가운데를 흘러가는 신천이 자주 범람하여 많은 피해를 주었다. 그러자 1778년 대구 판관 이서가 주민의 기부금과 자신의 사재를 들여 신천 물줄기를 지금의 유로로 변경시킨 탓에 새로 낸 물줄기, 즉 신천(新川)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판관 덕에 대구지역민들은 수해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어 그 보답으로 이공제비(李公堤碑)를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신천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서는 잘못된 부분이 있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판관 이서가 신천의 물길을 돌렸다고 전해지는 시기인 1778년 이전에 발간된 해동지도(18세기 초)와 동국지도(18세기 중기)에 표시된 신천의 위치는 현재 신천 위치와 동일하다. 경상도지리지(1425년),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등의 고문헌 대구편에는 이미 신천이라는 지명이 나오고 있다. 신천(新川) 지명이 존재하는 지역으로 경남 창원, 경북 성주, 전남 진도, 경기 시흥, 서울 잠실 등이 있다. 창원의 경우는 동쪽의 의미를 가지는 '새'가 '신'(新)으로 한자화 되었고, 서울은 샛강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대구 신천의 지명 유래를 판관 이서가 물길을 돌려 새로 조성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신천은 수성현과 대구현(달구벌) 사이를 흐르는 하천이라는 뜻에서 '사이천', '새천'(샛강)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신천'(新川)으로 오기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달구벌 동편에 있는 하천이라 '새내'로 부르다가 한자화 과정에서 '신천'으로 바뀌었다는 해석도 고려해볼 만하다. 상동교 동편에 위치하는 '이공제비'에 새겨진 글에는 신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은 있어도 신천의 물줄기를 돌렸다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다.

2019-05-17 06:30:00

최경규 행복강연가·작가

[광장] 행복을 채울 수 없는 욕심의 그릇

욕심(慾心)이라는 그릇은 채워도 채워도 넘치지 않는다. 분명 넘치도록 채웠음에도 채울수록 부족하다. 온전히 이기적으로 채우려 하기에 욕심의 무딘 존재는 채움으로 끝이 없다. 욕심이 없어야 행복이 담긴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다.중국 명나라 시대 묘협 스님은 보왕삼매론에서 10가지 금언을 말하였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으로 삼으라'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제 잘난 체하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성인의 말씀이다.그렇다. 살아가면서 모든 일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은 정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힘든 일을 거치는 동안,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행복하였는지를 깨닫고 그 차이를 느끼고 다시금 내일을 살아간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고통 총량 등가의 법칙이 있다고들 한다. 이 말은 살면서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너무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품고 살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들이 온다는 말이다.욕심의 반대말은 무엇인가?만남의 반대는 이별이고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의 반대말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우연히 행복의 반대말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불행이라 쉽게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욕심이라 생각한다. 즉 불행 역시 그 근원은 욕심에서 발원(發源)한다고 볼 수 있다.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렵다는 취업 분위기에서 입사만 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이 시작될 거로 생각하지만 그 생각도 1년이 채 가지 않아 새로운 환경 속에 다른 이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야근에 주말 출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대리, 과장을 지나간다. 쉴 새 없이 자신을 경쟁 사회에 내미는 동안 우리 명함의 직함은 더 그럴싸하게 보이고 통장의 잔고는 더 늘어날지 모르지만 이러한 욕심이란 독이 수십 년 흐르다 보면 그 욕심이란 포장에 감추어진 스트레스는 우리 몸과 마음을 서서히 병들게 한다.지금 가장 소중한 사람을 떠올려보라.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한번 계산해 보라. 얼마나 될 것 같은가? 10년, 20년 될 것 같은가? 어쩌면 그보다 짧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내일의 성공만을 외치며 오늘의 욕심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사랑하는 이와의 소중한 시간은 점차 사라져가고 심지어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소중함을 깨달았을 때는 그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수 있다.과연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속에 살면서도 정말 무엇이 소중한지를 잊고 사는 듯하다. 자본주의 시대에 돈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돈을 좇고 명예를 바라다 보면 가장 소중한 자신의 건강과 소중한 사람은 멀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꼭 새겨야 한다. 조건만 보고 살았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 조건에 갇혀 있지 말고 햇빛을 보러 나와야 한다. 뒤늦게 깨닫는다. 늦게 멀어진 행동에 대해 후회하는 비율이 높고 세상은 내 생각과 다르게 돌아갈 때가 많다. 행복의 볼륨을 높이는 방법을 배우자.

2019-05-10 06: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반중 조홍감이

자식의 날은 없는데 어버이날이 따로 정해진 이유가 뭘까? 혹시 어른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어른 중심으로 정한 탓일까? 아니다. 자식을 향한 어버이의 사랑은 거의 본능적인 것이며 365일 한결같아 따로 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1년 내내 자식의 날인 것이다. 그러하다면 어버이날을 따로 정한 이유는 분명해진다. 자식들이 어버이께 보내는 사랑은 어버이의 그것 같이 본능적이지도, 한결같지도 않을 수가 있으므로 이날을 맞아서라도 다하지 못했던 효를 되새겨 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필자의 장인은 11개월간 암 투병 끝에 어느 해 9월 1일 새벽 2시에 영면하셨다. 장인은 5남매를 두었는데 그중에 맏이가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 당시 필자의 처형인 맏이는 8여 년간 유학한 후 몇 해 동안 비정규교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다행히도 모 국립대 교수 공채를 통과하여 9월 1일 임용을 앞두고 있었고 처형은 그 대학이 있는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처형은 미처 임명장도 받지 못한 채 달려와야만 했다. 맏이가 정규직 교수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자 했던 간절한 기원이 그분 생의 마지막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으며 임용이 예정된 당일 새벽에는 힘이 부쳐 운명하신 것이다. 이것이 한결같은 어버이의 마음이다.어버이는 자식을 마음속에 품고 살지만 자식들은 생업에 쫓겨 그러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효를 행하려 할 때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나타내는 '풍수지탄'(風樹之歎), 즉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라는 말이 회자하는 것 같다. 한시외전에 나오는 말로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문장에서 유래했다.풍수지탄의 회한을 가장 절실하게 나타낸 시조는 노계 박인로가 그의 나이 마흔 하나였던 1601년에 지은 '조홍시가'(早紅柹歌)의 첫 수이다. 쟁반에 담긴 일찍 잘 익은 홍시를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고 싶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고 안 계셔서 그럴 수 없음을 한탄하는 시조이다./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뵈이ᄂᆞ다/ 유자 아니라도 품엄즉도 ᄒᆞ다마ᄂᆞᆫ/ 품어가 반길 사람 없으니 그걸 셜워 ᄒᆞᄂᆞ이다./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시조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이 고인이 된 후로는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멋진 경치를 볼 때, 문득 문득 떠오르는 모습을 어찌할 수가 없다. 부모 돌아가셔 산에 묻는다는 말도 다 거짓이더라. 내 아버지는 열일곱 해 전, 어머니는 열세 해 전에 돌아가셨지만, 내 가슴에 묻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빙긋이 미소 지으며 떠오르더라. 갚아드리지 못한 은혜가 한이 되어 효의 대명사인 노래자의 옷을 입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지만 풍수지탄만 메아리가 되어 울릴 뿐이더라.노계는 조홍시가 세 번째 수에서 부모가 늙어 감을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수만 근 쇠를 늘려 길게 길게 노끈을 꼬아/ 구만리 먼 하늘에 가는 해를 잡아매어/ 북당의 머리 흰 양친 더디 늙게 하리다./ 어느 누가 세월을 비껴갈 수 있겠는가? 오는 어버이날, 공경하는 마음으로 찾아뵙고 무고하게 지내고 있음을 보여드리자.

2019-05-04 02:30:00

김계희 그림책 화가

[광장] 어린이 미술 공모(共謀)전

미술을 좋아하는 준혁이는 혼자서 그림을 그렸다. 언젠가 한번 미술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매번 누군가가 그린 그림을 따라 그려야 했고, 특히 대회에 앞서 선생님이 그려준 그림을 여러 번 반복해서 연습을 해야 했다. 그게 싫었던 준혁이는 미술 대회에서 학원에서 연습한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그린 그림을 제출했고 준혁이는 상을 받지 못했다. 연습한 것을 그려 제출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이 누군가의 검열을 받고 질책을 받게 되는 고통스러운 경험은 준혁이가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봄과 함께 어린이 미술 공모전의 시즌이 왔다. 많은 학원에서 선생님들은 여러 종류의 공모전을 준비하는 일에 바빠지고, 아이들 또한 선생님들이 구성한 그림을 외우는 일에 바빠진다. 소도시에서 큰 규모의 어린이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지인은 미술 대회에서 아이들에게 상을 받아주지 않으면 학원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 말은 대회에서의 입상을 위해 교사가 구성한 그림을 아이들이 따라 그리게 하고 외우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그리는 것이 습관이 된 아이들은 자신이 다루어 보지 않은 주제가 제시될 경우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이런 폐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설 교육 현장에서 행해지는 수업 방식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사장시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고, 부모님들 또한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주고자 하는 이유로, 그렇게 받아 온 명예롭지 않은 상장을 묵인한다. 재능이 있는 학생을 발굴하기 위한 공모전의 본래 취지와 달리 상당수 미술 공모(公募)전이 어른들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공모(共謀)의 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인 듯하다. 이러한 순환의 원인에는 그림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의 선별 방식 또한 크게 일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다 어른들의 생각을 그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매년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를 해야 하는지, 그걸 하는 의미가 무언지 모르겠어요."이 말은 이제 아홉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내게 했던 말이다. 교육에 있어 어른들의 개입은 지나치다 못해 때로는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많은데, 그 과정에서 아이의 순수성과 창조성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 아랑곳없는 무책임한 교육 현실은 아이들의 삶 전반에 스며들어 그들의 가치관을 흔들고 있다.이 같은 순환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먼저 공모전에서 심사를 담당하는 심사위원들의 통찰력 있는 눈으로 어른의 개입이 들어간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을 구별해서 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의 그림에 교사들의 개입은 줄어들 것이고, 부모님들은 아이가 받아온 정직한 상장에 대해 안심하고 칭찬과 격려를 줄 수 있을 것이고, 아이 또한 자신의 성과에 정당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쪽으로 흐른다. 오늘의 교육 현실이 우리의 동의만큼의 결과라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것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 질문 속에 항상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는 오류를 바로잡아갈 수 있고, 교육은 진실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19-04-27 02: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갓바위 불상에 관한 단상(斷想)

팔공산 주 능선 동편 끝자락 관봉(冠峰, 853m) 정상부에는 갓바위 부처로 불리는 보물 제431호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다.2015년 국립공원연구원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00여 평도 채 되지 않는 관봉 정상부의 갓바위 불상을 보기 위해 연간 약 250만 명(경산 쪽에서 오르는 사람 178만 명, 대구 쪽에서 오르는 사람 72만 명)이 방문한다는 공식 통계가 있다. 단위 면적당 세계 최고의 탐방객 수를 보여주고 있어 세계문화유산급에 해당하는 중요 문화재다.평면적 신체 탄력성이 약해 8세기 불상과는 구별되는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게 불교미술사적 해석이다. 본 불상은 7세기 후반과 8세기 중반에 각각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아미타여래좌상)과 국보 제24호이자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된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석가여래불상)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선본사 사적기'를 발굴하여 그 내용을 불교신문에 게재한 기사(2013년 5월 15일)를 보면 이러한 추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전략) 이 불상을 보고 감흥이 일어나 기도와 축원을 올리면서 감응을 얻은 사람이 많다. 승려들만 불상을 보고 발심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남녀들도 깊은 신심을 일으켰다. 이것은 의현(義玄) 화상의 공(功)이고 불일(佛日)이 멀리 비추어준 덕(德)이라 할 것이다.-도광 원년(1821, 순조 21년) 하안거 해제일에 쓰다. 이때의 주지 범해(梵海)가 분향하고 삼가 쓰다-"의현 대사는 화랑의 '세속오계'를 만든 원광 법사의 제자로 전해져 오던 인물이다. '선본사 사적기'에서 의현 대사의 실명이 사실로 밝혀져 갓바위 불상 조성 시기에 대해 재조명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금까지는 불상이 9세기에 조성되었고 불상 머리 위에 얹혀져 있는 갓 모양의 평평한 돌은 후대인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선본사 사적기'의 기록과 최근에 밝혀진 갓 모양의 바위에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보상화 무늬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기존의 판단에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불상 머리에 얹혀져 있는 갓모양의 돌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라면, 불상은 통일신라 이전 시기에 조성돼야 논리적으로 맞다. 부연하면, 갓바위 불상은 7세기경에 조성되었고, 갓 모양의 넓적한 돌은 8세기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 불상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과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의 영향을 받아 갓바위 불상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갓바위 불상의 영향을 받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과 석굴암 본존불이 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불상의 왼손에 작은 약합이 있어 약사여래불로 인식되어 왔으나 실은 약합이 아니라 엄지손가락이며, 갓을 쓰고 있어 미륵불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대좌(臺座)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갓바위 불상은 돌 하나조차도 훼손하지 않으려는 불교적 자연 존중 사상이 오롯이 녹아 있는 위대한 작품이다. 바라건대,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갓바위 불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이 함께 공유할 날을 기대해 본다.

2019-04-20 03:30:00

최경규 행복강연가·작가

[광장] 오늘을 제대로 살면 더 행복할 수 있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그 일을 하지 못하는 차이, 즉 괴리감에서 오는 부분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현실과 자신이 바라는 기대의 차이가 클수록 행복감도 낮아지며, 자존감도 점차 떨어질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누가 들어도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애착을 우리는 욕심, 과욕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욕심이 때로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동기 유발과 지속적인 성장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점은 언제나 그러하듯 네거티브한 부분, 성취에 대한 작은 자기 보상도 없는 끝없는 욕심은 지금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란 감정조차 메말라가게 한다.행복에 대한 강연과 상담을 하다 보면 행복의 기준점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라 답한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할 때나 가족과 여행을 할 때이다. 비싼 세계 여행도, 최고급 스포츠카를 갖는 것도 아닐진대, 우리가 행복을 지금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 이유는 바로 남들과의 비교, 경쟁의 마음에서 비롯된 자기만족 불감증 때문이다. 이웃이 해외여행을 가고 비싼 수입차를 타더라도, 가까운 바다라도 갈 수 있고 오래된 차라도 있으면 행복하다고 느끼면 된다. 그런데 수많은 시간들을 남들보다 더 잘하고자, 내일의 행복이란 명분 아래 오늘을 희생하고 살아간다. 좋은 차, 해외여행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행복을 무시한 채 내일을 위하여만 살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인생의 황혼기에 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생의 정답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행복한 삶이라 그들은 자신있게 말한다.최고급 양주를 마시며 일등석에 타는 사람이나 맥주를 마시며 이코노미석에 앉은 사람이나 도착 시간과 도착하는 장소는 같다. 100평의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20평에 사는 사람보다 삶의 외로움을 덜 느끼는 것은 아니다. 삶의 기준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정을 나누고 추억을 만들어가며 인간답게 사는 것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그리 영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은 무엇이고 오늘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어떠한 것을 할 수 있는가? 여러 가지 변명과 이유들로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의 가치를 잊고,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기쁨의 권리를 억누르고 있지는 않은가?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내일이 아닌 오늘을 소중히 생각할 때 행복의 씨앗은 무럭무럭 잘 자랄 것이다. 그리고 비록 이 작은 사고의 전환은 수십 년이 흐른 어느 날, 행복하게 한평생 즐기다 간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2019-04-13 01: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생각하다'의 참 의미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에 비유했던 파스칼은 '팡세'에서 "사람은 생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생각은 사람의 모든 존엄성이고 모든 가치이다"라며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던 데카르트는 생각 또는 의심을 극한까지 실천한 학자였다. 의심할 여지 없는 확실한 것을 찾으려고 자신의 존재조차 의심했지만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의심하고 있는 그 무엇'이며 '그 무엇이 자신'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라고 했을 때 '무엇을 생각한다'라고 그 '무엇'을 밝히지 않았다. 그 무엇은 무엇일까? 앞에서 밝혔듯이 생각은 사람됨의 전부이지만, 생각의 대상이 되는 그 '무엇'에 대한 규명은 부족했다.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필자가 다다른 결론은 '개체들의 속성과 개체들 간의 관계'이다. '개체'는 흔히 '대상'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이 붙여진 '책'과 같은 물건, '태풍'과 같은 현상 및 '미'(美)와 같은 상태를 말한다.가령 세 개의 개체가 그려져 있는 도화지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첫눈에 3개의 개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세 개체에 차례로 주의를 쏟으면 세모(△), 네모(□) 및 동그라미(○)임을 알게 된다. 주의를 색상에 쏟으면 세모는 파랑, 네모는 노랑, 동그라미는 붉은색임도 알게 된다. 주의를 세 개체의 위치 관계에 기울여 보면 네모 위에 세모가, 네모 오른쪽에 동그라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껏 우리가 생각한 것은 세 개체의 형태와 색상의 속성, 그리고 세 개체의 위치 관계였다.눈앞에 있는 두 그루의 나무를 볼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두 그루의 버드나무가 서 있다. 왼쪽 것이 오른쪽 것보다 더 크다. 나뭇가지들이 머릿결처럼 출렁인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한 것은 개체인 버드나무들의 속성(서 있는)과 또 다른 개체들인 나뭇가지들의 속성(머릿결처럼 출렁이는), 그리고 두 나무의 관계(왼쪽 것이 더 큰)이다. 결국 개체들의 속성과 그것들 간의 관계를 생각한 것이다. 나무를 쳐다보며 온종일 생각해도 결국 나무와 관련된 그것들 외엔 생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생각의 본질이다.이제 이것을 수업 현장에 적용해 보자. 각 과목, 각 단원에 나오는 모든 명사는 개체들의 이름이다. 모든 개체는 그 나름의 속성이 있고 존재 이유가 있다. 그리고 각 개체들 간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다. 속성과 존재 이유, 그리고 관계를 끝까지 규명하라. 이것이 공부의 전부이다.30년 전 미국 브라운대학의 교양수학 문제 중에 '자연수 5가 3보다 큰 것을 증명하시오'가 있었다. 5와 3의 속성과 그것들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문제였다. 그 강의를 청강했던 필자는 아직도 정확한 답을 모른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공자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정확한 답을 해주는 분은 만나지 못했다. 이것이 이 나라 교육의 실상이다. 모래 위에 바벨탑을 짓고 있는 격이다.나와 울산바위도 존재 이유가 있고 모종의 관계가 있다. 나뭇잎이 피고 지는 데도, 그리고 각각의 색깔로 변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이유가 없다"거나 "관계가 없다"라고 함부로 결론짓지 마라. 단지 현재로선 그 이유와 관계가 명확하지 않을 뿐인 것이다.

2019-04-04 14: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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