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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천연기념물 제435호 달성 비슬산 암괴류

2019년 기해년도 이제 12월 달력 1장을 남겨 두고 있는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 지난 10월과 11월에는 빙하기와 관련하여 대구 선사시대 인류를 얘기했다. 내친김에 빙하기 얘기 하나 더 해보자.빙하기와 관련한 대구의 소중한 이야기는 비슬산 암괴류다. 대구에는 천연기념물이 2곳에 있다. 하나는 천연기념물 제1호인 대구 도동 측백나무숲이고, 다른 하나는 천연기념물 제435호인 달성 비슬산 암괴류다. 제1호가 대구에서 탄생했고 세월이 한참 흘러 달성 비슬산 암괴류가 제435호로 지정되었다.대구에는 천연기념물은 물론 국보·보물급, 더 나아가 세계유산급에 해당하는 중요한 문화재가 있음에도 지역민의 성향 탓인지 별 관심이 없다. 비슬산 암괴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계기는 2000년대 초반 본인의 연구와 언론의 노력 결과다. 암괴류는 일본식 지형 용어라서 별로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 학술용어로 굳어져 있어 달리 방법이 없다. 필자는 여기에서 암괴류라는 용어 대신 '돌강'(바위강)으로 부르고자 한다. 돌강은 영어로 'block stream' 'boulder stream'으로 표시한다. 말 그대로 돌이나 바위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모습에서 붙여진 명칭이다.비슬산 돌강은 원래 길이가 약 2㎞에 달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1㎞를 조금 넘어가는 정도다. 실제로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에도 현재의 상태만 보고 세계 최장(最長)이라 하지 않았다면 천연기념물 지정이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돌강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 채 개발에만 목맨 결과다.돌강 곳곳에 개발로 인한 상처가 생겨 안타깝다. 소재사 입구 다리 아래 있었던 돌강의 바위를 모두 걷어내 조경석으로 장식한 일이나, 인공폭포를 만든 것이 그렇다. 돌강 중간에는 작은 사방댐을 조성했고, 연못까지 만들어 놓아 참으로 가관이다.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잘된 일이라 생각된다.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에도 지속적인 난개발이 있어 여러 차례 얘기를 했음에도 신통치 않다. 최근에는 케이블카도 설치하려 한다니 가슴이 답답하다. 돌강 최고 전문가가 지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 허가만 바라보고 있는 지자체가 안쓰럽다. 비슬산 돌강은 최종 빙하기(10만 년 전〜1만 년 전) 때 거대한 기반암에서 분리되어 만들어진 돌들이 산지 상부에서 아래로 조금씩 이동하여 형성된 지형이다. 2017년 세계적 학술지에 필자와 공동연구진은 비슬산 돌강을 연구논문으로 게재하였다. 지역의 지형과 관련하여 세계적 학술지에 게재된 경우로는 첫 사례다.비슬산 대견사 주변 스님바위, 코끼리바위 등으로 이루어진 기반암은 7만9천 년 전에 노출되어 풍화를 받았고 이때 기반암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들이 아래쪽으로 느리게 이동하였다. 즉, 산 정상부인 대견사에서 아래쪽인 비슬산관리사무소로 갈수록 나이가 많은 돌이 위치한다. 예를 들면, 대견사 주변 돌강의 바위들은 빙하기가 끝나가던 시기인 약 9천700년 전에 형성된 가장 젊은 돌인 반면 비슬산관리사무소 부근에 위치하는 돌강의 바위들은 대견사 부근 기반암에서 약 6만5천 년 전에 떨어져 나온 바위들이 이동한 것이다. 돌강의 바위들이 1천 년에 26m의 아주 느린 속도로 이동한 것임을 알 수 있다.비슬산 돌강의 바위들이 주빙하적 기후환경(알래스카와 비슷한 기후)에서 한창 이동하고 있을 무렵, 2만 년 전 백두산 일대에서 대구로 이주해 온 대구 최초의 인류인 구석기 인류도 이 광경을 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2만 년이라는 긴 시간조차 짧게 여겨진다.

2019-12-06 19:37:54

송석화 메시지 캠프 대표

[광장] 너만 모르고 다 알아

누구나 알 법한 유명 정치인이 뉴스에 나왔다. 축하하는 장면,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이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나온 표정이었을 테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게 저 사람의 진짜 모습이다.' 우리는 종종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싶은 순간들이 있다. 보여지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노출되는 모든 순간, 모든 모습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우리가 본래의 모습을 장식품으로 꾸미고 뒤덮는다 한들 내면의 속성은 우연한 기회에 수면 위로 노출되기 마련이다.우리는 겉모습이 진정한 자아인 줄 착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마음의 창은 다르다. 요하리의 창(Johari's window)은 한 개인의 자아가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4가지 영역으로 구분했다.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아는 '열린 자아', 상대방은 알고 있으나 정작 나는 모르는 '눈먼 자아', 나는 알고 있지만 상대방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자아',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자아'가 그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너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눈먼 자아다. 국민이나 타 조직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잘 보이는 문제점을 정작 그 내부에서는 집단사고에 빠져 깨닫지 못하거나 외면하려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국민 정서와 괴리'됐다고 표현하기도 한다.서두에 나왔던 유명 정치인은 왜 눈먼 자아에 빠져 있었을까. 언론 노출이 잦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신체언어가 반복되는 것은 주변에서 아무도 그의 눈먼 자아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직급이 올라가고 조직 내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리더십의 사각지대도 커지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승진과 연봉을 결정하는 사람에게 돌직구를 날릴 만큼 용기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정치는 소망의 총체라고 했다. 때로는 지나친 자기합리화로, 때로는 감언이설에 둘러싸여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놓치곤 한다. 본인에 대한 눈은 객관적이기 어렵다. 대개 리더들은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고 하지만 막상 결점을 지적하면 속상해 하거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십상이다. 나를 무한히 사랑해주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객관적인 현실 인식으로 조언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 또한 복이다. '내가 모르는 나'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자기 이해는 정확해진다. 눈먼 자아는 피드백 즉, 상대방의 조언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게 되고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타인과 소통하는 영역이 넓어질 뿐 아니라 우리 사회도 보다 수용적인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아프지만 필요한 것이다. 그 가능성을 위해서는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열린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적인 조언을 사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보복하는 것은 입을 닫게 할 뿐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외골수형 리더들이 어떠한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는지 확인해 왔다. 자신을 향한 조언은 달콤하지는 않지만 성장에는 무한한 자양분이 된다. 조직의 발전으로도 연결된다.나에 대한 진실은 상대방의 마음속에 있지 그들이 내게 하는 말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리더의 자리, 갑의 자리에 있어서 들려오는 좋은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대승적인 관점에서 애정 어린 조언을 포용할 줄 아는 권력자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2019-11-29 19:53:54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일정하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다. 가령 1년, 하루, 한 시간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시간, 즉 '객관적'인 시간이다.크로노스는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간다. 막을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 크로노스 앞에서 인간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역동 우탁 선생은 고려 말에 지은 '탄로가'에서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드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 탄식했는데, 역동 선생이 한탄한 시간이 바로 크로노스이다. 가수 서유석이 '가는 세월'에서 잡을 수 없다고 한 '세월'도 크로노스이다.반면에 카이로스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이다. 시간이 길다거나 짧다는 것은 물리적, 객관적 길이에 따른 판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루를 한 시간처럼, 또는 한 시간을 1년처럼 느낄 수도 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은 시간이 빠르게,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라는 말은 더디게 감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때의 시간이 카이로스이다.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인 카이로스에는 사람의 마음과 의지가 개입될 수 있다. 마음과 의지가 담긴 특별한 시간이며 우리가 능동적으로 무엇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때'나 '기회'이다.크로노스는 흘러가고 만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잠든 순간에도 크로노스는 흐른다. 그러나 카이로스는 마음속에 기억과 경험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들뢰즈(Deleuze)는 '들뢰즈, 유동의 철학'(2008)에서 현재는 "과거가 되어버리는 점(點)과 같은 것"이 아니라 "현재란 언제나 현재와 과거의 복합체이고 결정체(結晶體)"라고 했다. 그가 여기서 '현재' 또는 '과거'라고 한 말은 카이로스적 현재 또는 과거를 말한 것이다.그렇다면 흘러가버리는 크로노스는 무의미한가? 그렇지는 않다. 그 누구도 하루 24시간을 카이로스만으로 채울 수는 없다. 적당한 휴식과 수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 멍 때림조차도 삶을 더 활력 있게 해주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지혜롭게 조합시킬 필요가 있다.작가 김선영은 '시간을 파는 상점'(2012)에서 "삶은 시간의 내용"이라 했다. 다시 말해 삶은 자신이 사는 동안에, 카이로스적으로 살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추억들이다. 마지막 순간, 보람과 추억으로 가득 찬 생을 회고하고 싶다면 적어도 깨어서 활동하는 동안은 카이로스로 채우려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때와 기회를 기다린다면 더더욱 그러하다.카이로스를 위해서는 시간을 '자기 주도적'으로 쓸 필요가 있다. 시간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 매사에 적극적,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독서, 취미, 운동, 사교, 종교, 봉사 등 그 무엇이든지 간에 진실로 하고 싶은 활동을 찾아 자발적, 능동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직업상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차피 해야 하고, 보내야 할 시간이라면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즐기면서 참여하자. 시간의 주인으로서, 때로는 왔다가 사라지고, 때로는 마음과 몸에 기억과 경험으로 쌓이는 시간을 정중하게 맞이한다면, 삶의 질과 행복지수는 높아질 것이다.

2019-11-22 21:10:55

이상일 시인, 수필가

[광장]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조성해 보자

몇 년 전 공익광고에 "어린 시절에 보았던 공연의 감동은 집으로 오는 길에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리고 지금까지 제 가슴에 살아있습니다. 작은 문화체험들이 더 큰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문구와 같이 대구의 문화정책에 대한 하나의 제언으로 대구 대공원 개발에 가칭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조성해 보자고 제안해 본다.세계는 지금 로봇, 인공지능(AI) 등 첨단 제조기술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제조업 및 서비스업까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어,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관광이나 문화 콘텐츠 분야가 각광을 받고 있다. 국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문화의 정체성을 찾고 미래를 창출할 수 있는 글로벌 한류로 지속 가능한 콘텐츠와 정책 개발에 힘써오고 있다.인구 240만 명이 넘는 대도시답게 대구도 다양한 공연장과 전시실이 많다. 특히 국내 최초 단독 오페라 전용 극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콘서트하우스를 비롯한 음악공연장과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미술관 등 전시실은 물론 각 구청마다 복합문화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문화를 총괄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국과 공연문화도시 조성사업과 문화예술인 가치 확산 사업을 주도하는 대구문화재단 등도 대구예술문화계를 이끌어 가고 있어, 문화 예술 인프라 측면에서는 크게 뒤처질 것이 없다.문화는 다양한 장르로 시민의 삶과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대구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볼 때 통합적인 이미지가 없다는 점에서 아쉽다. 시민이 먼저 대구지역에서 성장하고 활동했던 미술·음악·문학 등 예술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이 고장 사람들부터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작품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지역 출신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대구가 문화예술의 도시임을 부각시키고 홍보할 콘텐츠 개발 차원에서 가칭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만들어 우리 고장 사람부터 친숙하도록 해보자.내가 근무하고 있는 창원시(구 마산시)만 해도 지방 소도시이지만, 이미 2008년 시(詩)의 도시로 선포하고 임항선 그린웨이와 산호공원, 돝섬 등 7곳을 '시인의 길'이라 명명하고 이 지역 출신 문학가를 중심으로 시비나 팻말 100여 개를 세워 시민들에게 잔잔한 문화체험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구도 전문가의 공연과 전시도 좋지만, 누구나 쉽게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작은 문화공간이 많아져야 하는 차원에서 대구 예술인 산책로를 조성해 자연스럽게 건강과 레저와 문화가 함께하는 복합시민문화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일환으로 대구미술관을 중심으로 새로 조성 예정인 대구대공원, 이미 조성되어 있는 대구스타디움과 연계해 명품 산책길을 조성해 대구 출신 미술, 문인, 음악인들을 중심으로 테마길(미술길, 문학길, 음악길 등)을 조성해 작품을 감상토록 하고 음악도 들려준다면 좋은 문화공간이 될 것으로 본다.산책하면서 대구 문화도 알고 긍지를 갖도록 인프라를 갖춘다면, 도심과 가깝고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부모님과 아이들이 교육 차원에서 많이 찾으리라 본다. 먼 훗날 이런 작은 체험들이 모여 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 구축은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더 큰 세계 속의 문화계를 빛낼 사람으로 키우는 공간과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2019-11-15 19:37:48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대구 인류의 원류를 찾아

2006년 달서구 월성동 777-2번지 아파트 부지 일대에서 1만3천 184점에 이르는 다량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의 발굴은 대구지역 인류 역사를 신석기시대에서 구석기시대로 앞당겨주었다.월성동 구석기 유물 발굴 중 특이한 점은 구석기 제작지의 존재였다. 이곳에서는 석기 제작의 원석인 몸돌, 몸돌을 가공하는 데 사용했던 망치돌, 몸돌로부터 떼어 낸 격지(몸돌에서 산출된 가공 돌), 긁개, 새기개, 찌르개, 흑요석 등 다양하고도 많은 석기들이 발굴됐다. 그리고 받침돌(臺石)을 비롯해 모룻돌도 함께 출토되었다. 특히 화산분출 때 형성되는 유리질 화산암인 흑요석은 최근 구성광물 분석결과 백두산 기원으로 밝혀져 대구 최초 인류 기원지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동 중에 다른 지역 구석기 인류와의 물물교환으로 흑요석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장소 관련성을 입증하는 데 있어 흑요석은 가장 중요한 과학적 수단이다.후기 구석기시대로 입증된 달서구 월성동 유적과 유물은 약 2만여 년 전의 것으로, 2만 년 전 보다 훨씬 이전에 백두산 일대를 출발하여 대구로 구석기인류가 이주해왔다고 볼 수 있다.그런데 백두산 일대에서 살다가 이동해 온 대구 최초 인류는 또 다른 외부 이주 세력과의 혼혈로 인해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2017년 언론에 공개된 신석기시대 인류의 유전체(게놈) 비교분석 관련 연구에 의하면 한민족의 기원이 알타이산맥에서 몽골, 중국 대륙을 거쳐 한반도로 이동했다는 기존의 북방계설(언어, 외모 등 유사성) 보다 오히려 동남아시아에서 올라 온 남방계설에 무게가 더 실리는 과학적 증거가 드러났다. 즉, 우리 민족의 유전체는 고립된 현대 베트남, 타이완 원주민 유전체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북동쪽 프리모레 지방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인류 두개골 유전체에 결합시켰을 때 가장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특히 고구려, 동부여, 옥저 영토였던 프리모레 지방의 동굴(악마의 문 동굴, Devil's Gate Cave)에서 발굴된 약 7천 700년 전 신석기시대의 40대 여성, 20대 여성 유골에서 채취한 유전체 분석에서 드러난 연구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현재의 한국인과 같은 갈색의 눈, 앞니가 삽처럼 생긴 수렵채취인으로 밝혀졌다. 또한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게 나는 유전자, 마른 귓밥 등의 유전자 특성이 현대 동아시아 유전체 특성과 유사하다고 한다.'악마의 문 동굴'에서 발굴된 유전체는 주변에 거주하는 울치족을 제외하면 한국인과 가장 비슷하다.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도 한국인의 특성과 일치해 모계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리하면, 한민족은 남방계와 북방계의 혼혈이며, 유전체 특성에서 볼 때 남방계 농경민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한민족 기원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와 월성동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유물과 유적을 고려해 볼 때, 대구 최초의 인류는 빙하기의 추운 날씨를 피해 백두산 일대로부터 이주해온 구석기 인류가 대구 최초의 토착민이었다. 한편 고조선 원조 인류는 3〜4만 년 전과 약 1만 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극동으로 각각 이주해간 수렵채취인들과 농경인들 간 혼혈로 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고조선의 멸망으로 남하하던 유민들이 대구 최초 토착민과 혼혈로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될 거 같다. 현재 달서구 진천동 상화로 변에 설치되어 있는 '대구 2만년 역사가 잠든 곳' 조형물(길이 20m, 높이 6m)은 이곳이 대구 최초의 인류 거주지였음을 알게 해준다.

2019-11-09 06:30:00

이예식 경북대학교 사범대 학장

[광장] 정시확대, 무엇이 문제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부정 대학입시 의혹으로 촉발된 대학입시제도 공정성의 문제는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입시 공정성 제고 방안으로 정시 비율 확대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대통령의 지시를 따르려면 이미 공론화를 통하여 결정된 2022학년 대학입시제도의 정시 비율 30%에서 각 대학들은 적어도 10% 이상 확대하여 신입생을 선발해야 할 것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정시 비율 확대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대통령이 바라는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나라 교육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심히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전망된다.첫째, 정시는 객관식 시험인 수능 성적을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4차 산업혁명 변화의 파고를 넘기 위해 우리 아이들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창조 능력,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수행할 수 없는 비자동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비자동화 영역에 속하는 일들은 하나의 답이 아닌 다양한 답을 창의적으로 찾는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대학입시에 유일한 하나의 답만을 찾게 하는 수능의 중요성을 확대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역행하는 교육적 조치이다.둘째, 수능 성적에 근거한 정시 전형이 비교과 활동 스펙을 이용하는 학종 수시제도보다 더 공정하다는 보장이 없다.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수능 성적도 부모의 학벌, 경제 능력에 상당히 좌우된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1분위 상승할 때마다 수능 1, 2등급을 획득하는 자녀들의 수가 두 배로 증가된다. 결국 수능 성적에 기반한 정시도 온전히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셋째, 수능시험과 같은 객관식 시험은 다른 차원에서 공정성도 결여되어 있다. 언어학을 전공한 필자의 견해로는 수능 영어 문제 중 답으로 적합한 선택지가 없는 문항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험생은 어쨌든 선택지 하나를 답으로 골라야 한다. 출제자가 답으로 정한 선택지를 고른 수험생들만 점수를 획득한다. 이렇게 받은 점수로 대학입시의 당락이 좌우된다면 이 또한 결과의 공정성조차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다.위에서 언급한 문제 외에도 정시 비율 확대는 대학의 교육에 악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야기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보면 거의 모든 학과에서 정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가장 낮다. 그 이유는 단순히 하나의 답을 고르는 객관식 문제풀이에만 익숙한 정시로 입학한 학생은 수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에 비에 대학의 논술형 문제나 다양한 프로젝트형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향을 보이는 학생이 더 많이 대학에 들어오면 올수록 그만큼 대학 교육의 수월성은 저하될 것이다.우리나라는 대학입시의 교육 역류효과가 너무 크다. 대학입시에 있어 객관식 시험인 수능을 위주로 하는 정시 비율을 확대한다면 초·중등 모든 교과 과정은 객관식 문제풀이 능력인 수렴적 사고력의 향상에 집중할 것이다. 따라서 확산적 사고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는 2015 개정 초·중등 교육과정의 정상화는 물 건너 갈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의 결과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정시 비율의 확대는 우리 교육 경쟁력을 갉아먹고 국가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교육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2019-10-31 11:31:26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아날로그와 디지털

'아날로그'(analogue)와 '디지털'(digital)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는 나타내는 방법의 차이'를 뜻한다. '나'라는 실체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초상화를 그리거나 필름을 쓰는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을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초상화 혹은 아날로그 사진은 서로 연결된 선과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아날로그는 '연결된/연속형의'라는 뜻을 얻게 되었다.그러나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의 출현으로 전통적 아날로그 방식과는 다른 방법이 등장했다. 화면을 '화소'(畵素, pixel)라는 작은 칸들로 나눈 다음, 각 화소의 색상을 조절하여 사진을 완성하는 방법이다. 가령 1인치(2.54㎝)를 10등분, 100등분, 혹은 그 이상으로도 나눌 수 있는데 각 화소의 칸을 잘게 나눌수록 실물에 더 가까운 해상도(解像度)가 높은 사진을 얻게 된다.색의 3원색에 컴퓨터에서 쓰는 0과 1로만 이루어진 이진법 수를 각각 부여한 후 그 숫자의 조작과 처리를 통해 각 화소의 색상을 조절한다. 이 새로운 방법은 연속된 선이나 면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수치상의/단절형의' 정보를 이용하게 되고, 여기서 디지털이 '수치상의/단절형의'란 뜻을 얻게 되었다. 숫자는 각기 독립적이므로 '수치상의'란 말은 '단절형의'란 말과 사실상 일치한다.단절형의 데이터만을 다루는 것이 컴퓨터 소프트웨어이며 이것의 발달로 스마트폰을 포함한 각종 전자제품이 생겨났고, 인공지능의 출현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 결과, 디지털은 '컴퓨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컴퓨터의 웹사이트에 있는 정보를 이용하는'이라는 뜻도 얻게 되었다. 우리가 '디지털 혁명',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할 때는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디지털의 두 번째 뜻과 함께, 그 대척점에 있는 아날로그 또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은 전통방식의'라는 의미를 얻게 되었다. 컴퓨터의 정보처리에 의존한 '디지털 뮤직'이란 말과 전통적인 녹음테이프나 레코드판에 담긴 '아날로그 뮤직'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다시 아날로그의 본래 뜻인 '연속형의', 디지털의 본래 뜻인 '단절형의'를 염두에 두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펴보자. 세상은 아날로그적 연속된 면과 디지털적 단절된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해운대에 서보라. 바다와 육지가 연결되어 있는가, 분리되어 있는가? 을숙도에 가보라. 낙동강과 남해는 어떠하던가? 팔공산 동봉에 올라보라. 바람과 구름은 또 어떠하던가? 김민기의 노래 '친구'의 가사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를 떠올리지 않아도 삶과 죽음조차도 연결된 것 혹은 분리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아날로그는 종합 또는 통섭(統攝)하는 정신이고, 디지털은 분석하는 정신이다. 아날로그가 수학의 적분이라면 디지털은 미분이다. 합치고, 나누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의 큰 몫이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적 시각과 디지털적 시각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디지털적 시각만 가지면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다. 나와 내 가족은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결국 부정과 불법까지도 서슴지 않을 수가 있다. 아날로그적 시각만 가지면 의타적(依他的)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자기희생적일 수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독립적이지만 지구 표면을 딛고 살고 있고 그래서 너와 나는 지구 표면을 매개로 인연을 맺고 있다. 결국 '같이&따로'이다.

2019-10-25 19:45:25

이상일 시인, 수필가

[광장]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단순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단순하다. 이미 유치원에서 배운, 정직하라, 성실하라, 사랑하라 이 세 마디다. 뜻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문제는 실천이다. 개인적으로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다시 뽑으라면 誠(정성 성)이라고 말한다. 誠을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言+成으로 즉 말대로 행동한다는 언행일치를 뜻한다. 이것은 또한 우주철학과 관련된 덕목이다.동양철학을 명쾌하게 정리한 中庸(중용) 20장에서도 誠者(성자)는 天之道也(천지도야)요 誠之者(성지자)는 人之道也(인지도야)라 하고(정성이란 하늘의 도요, 정성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다), 誠者(성자)는 物之終始(물지종시)니 不誠(부성)이면 無物(무물)이라(誠이라는 것은 만물의 마침과 시작이니, 진실이 없으면 어떠한 사물도 없다) 했다. 이 세상의 처음과 끝도 결국 부지런하지 않으면 생성도 멸함도 없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부지런해야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곧 至誠感天(지성감천)과 至誠無息(지성무식)과 연결되어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감동시키고, 誠(성)은 결코 쉼이 없다고 했다.생활에서 가장 기초적인 민법에서도 권리의 행사나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는 기본 원리로 성실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를 자연의 이치에 적용시켜 보면, 천지는 이때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부지런히 돌아가기 때문에 밤낮과 계절이 생기어 모든 만물들은 이 환경에 맞추어 살 수 있다. 만약에 천지가 한 번이라도 멈추거나 계절의 순서가 바뀌면 세상이 뒤죽박죽이 되어 모든 생물들이 멸할 것이다. 이것은 오직 변하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쉼 없이 돌아가는 우주의 자연법칙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사랑도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아니, 백 번이라도 찍으면 안 넘어가는 사랑이 없듯이, 지극한 성의에는 하늘이 감동해서라도 사랑이 이루어진다. '근면과 성실로 재산을 모은 것은 신의 섭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종교개혁자 캘빈이 말하여 자본주의 탄생에 기여했고, '성실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이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예는 이제까지 하나도 없고, 성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남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예도 이제까지 하나도 없다'며 맹자도 성실에 대해 언급했다. 나의 평소 철학은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이다.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길만이 인생의 의미를 알고 허무를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삶에서 경험하듯 生于憂患 死于安樂(생우우환 사우안락:어려운 상황은 사람을 분발하게 하지만 안락한 환경에 처하면 쉽게 죽음에 이른다)과 같이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으면 공부도 하고 무엇이든 잘할 것 같지만, 막상 시간과 여유가 많으면 오히려 더 나태해져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는 이치다. 진정한 행복은 꾸준한 일이나 행동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고 편리한 것에만 올인하는 가치와 논리 속에 때론 느리고 여유롭게 사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몸과 생각의 기본 바탕은 늘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삶이란 성실하게 사는 것만이 이 세상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고 의미를 남길 수 있기에, 3대 액체(피, 땀, 눈물)를 흘리지 않는 사람은 결코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없다. 그러기에 그 어떤 가치보다 숭고한 誠을 바탕으로 노력하다 보면 사랑도 사람도 재물도 다 이룰 수 있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사람도 미물도 감동시키며 존재 가치를 부여하기에 끊임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2019-10-18 19:15:21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선사인류와 빙하기 이야기

대구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살았던 인류는 약 2만 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 인류로 보고되고 있다. 구석기시대 이래 대구지역에서 살아온 우리 인류의 이야기를 필자는 기후적 환경과 관련하여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첫 주제는 선사 인류와 빙하기 이야기다.지구상에는 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빙하기가 실제로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빙하기는 또 올 수 있다. 그렇다면 빙하기는 왜 생겨나는 걸까?지구상에 빙하기가 발생하는 것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지구 공전궤도와 자전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바퀴 도는 것을 공전이라 하고, 공전하는 동안에도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 돌게 되는데 이것을 자전이라 한다. 그런데 공전궤도와 자전축의 기울기 그리고 자전축의 회전(세차운동)은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라 수만 년을 주기로 조금씩 변한다는 것이 과학계의 설명이다. 바로 이러한 공전궤도와 자전축 기울기 변화 그리고 자전축의 회전으로 인해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하는 에너지는 변한다. 즉 공전궤도가 지금의 궤도보다 약간 바깥으로 이동하면 지구상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는 감소하게 돼 혹독한 추위가 나타나고 그것이 바로 빙하기가 발생하는 이유다. 반대로 공전궤도가 좀 더 안쪽으로 이동하면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는 증가하여 빙하기는 끝나고 고온의 지구, 즉 간빙기가 나타난다.지구 생성 이래 이러한 현상은 지속되어 왔다. 현재 우리가 사는 기후 환경보다 더 추운 빙하기가 오면 바닷물이 증발하여 눈으로 변해 녹지 않고 육지에 쌓여만 갈 것이다. 그러면 육지에 쌓여가는 눈의 양만큼 바닷물은 줄어 해수면은 낮아진다. 반대로 지구의 대기온도가 점점 높아지면 육지에 쌓여 있던 눈(빙하 포함)이 녹아 바다로 흘러가게 돼 바닷물은 불어나 결국 해수면은 높아진다. 이처럼 지구상에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나타나면서 지구상에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다.지구적 기후변화는 우리 인류 문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에는 지구상에 마지막 빙하기가 존재했던 시기다. 역사에서는 이러한 1만 년 전을 기준으로 인류의 문명 역시 큰 전환점을 가지는 시기라 보고 1만 년 이전의 빙하기를 구석기시대로, 그 이후의 시기를 신석기시대로 구분한다.지금의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가르는 서해는 평균 수심 44m, 최저 수심 103m로 빙하기 당시 평균 해수면이 지금보다 약 120m가량 낮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서해는 육지로 드러난 상태이다. 또한 남해 역시 평균 수심 101m, 최저 수심 227m여서 제주도까지 육로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는 생각을 가능케 해준다.빙하기에는 혹독한 추위로 인해 동물은 먹잇감을 찾아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인류 역시 추위를 피하고 먹잇감을 쫓아 남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동한 구석기시대 인류는 제주도까지 이르게 되었고, 그 후 빙하기가 끝나 날씨가 따뜻해져 북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해수면이 높아져 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당시 제주도에 머물게 된 인류가 제주도 최초의 인류가 되는 것이다.한편 빙하기에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해 온 구석기 인류는 이전의 지역에서 사용했던 도구나 중요 유물들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 또한 이동 중에는 필요에 따라 물물교환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빙하기와 같은 지구적 환경변화는 오늘날 지구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유적이나 유물의 유사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2019-10-11 20:33:30

최경규 '최경규의 행복학교' 교장

[광장] 2020 행복 프레임 만들기

해외를 갈 때마다 내가 탄 비행기는 어느 정도의 연료를 담고 출발하는지 궁금하다. 공중급유를 하지 않는 이상 비행기는 제한된 연료를 탱크에 담아 목적지를 향해 이륙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만약 이륙한 후에서야 목적지가 정해지거나 갑자기 변경된다면 연료가 부족하여 비행기는 중간에 불시착할 수밖에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보이지 않는 남은 인생의 게이지를 무시한 채, 오늘을 의미 없이 살아가다가 푸른 가을빛이 아름다운 오늘 같은 날, 진실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나의 목적지를 문득 찾았을 때는 이미 늦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삶이라는 인생 항로를 어떻게 설계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늘 돌아보고 자신을 살펴야 한다.행복을 강의하는 필자에게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요? 과연 나는 누구를 만나면 행복할까요?"라고 묻는다. 행복은 극히 주관적이라 수학 공식처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이야기로 대신하곤 한다. "바르게 사는지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지금 당신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화려했던 과거 무용담만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당신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 있는 사람 말이죠."자극적인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매력은 진정한 삶을 향한 식지 않는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 매력적인 사람들과 함께하면 우리 인생은 한결 소확행의 길로 들어가기가 쉬워진다.장성미 작가의 '아내가 화를 자주 내요'를 보면 우울증 환자의 78.8%가 여성이고, 그중에서도 기혼 여성이 다른 집단에 비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즉 주부는 극히 제한적인 사람을 만나기에 새로운 자극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풀이된다.사람은 자극이 없을 때 정체된다. 정체는 때로는 어지러워진 마음 안에서 끊임없는 돌림노래로 정신을 피폐하게도 만든다. 정신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먼저 마음의 창문을 열어야 한다. 기존 틀에 박혀 있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결과주의에서 벗어나 여정을 즐기는 과정주의로 우리 머릿속 센서를 교체할 필요가 있다. 정체라는 그늘 아래에서도 노력하다 보면 온화함과 만나는 순간이 있다. 이러한 순간은 백화점에서 판매되지 않는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다.'나를 바꾸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의 저자 주얼 테일러 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민과 아픔 같은 부정적인 요소는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긍정의 씨앗이 된다. 고민하고 아픈 상황에서도 좀처럼 이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겠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불현듯 그때 그 고민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납득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강조하였다.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19년도 두 달을 남겨두고 있다. 우리가 탄 인생이라는 이름의 비행기가 이륙한 지는 이미 오래다. 목적지가 분명한가? 연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가?만약 얼마만큼의 연료가 남아 있는지 모른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척 분명하다. 오늘부터라도 주위에 당신을 자극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인간관계를 재정리해보자. 새로움이라는 인간관계의 프레임이 당신을 자극시켜 줄 것이며, 새로운 사람들은 당신에게 신선한 행복의 밑그림을 그려 줄 수 있을 것이다.

2019-10-05 06: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광장으로!

광장(廣場)은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자리이다. 쾌적한 공간이 있고, 그 주변엔 커피숍, 서점 같은 상가가 있으며 바닥엔 잔디나 붉은 벽돌이 깔려 있을 법하다. 둘레엔 드문드문 벤치가 있고 마로니에나 라일락 또는 배롱나무가 서 있을 법도 하다. 한쪽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 다른 쪽엔 청소년을 위한 농구대 하나쯤도 마련되어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광장은 우리 시대에 정신적으로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우선 광장은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적이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적절하게 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선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남에게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하며, 자유롭게 차려입을 수 있지만 풍속을 해치지 않아야 하고,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자유와 평등도 소중하기 때문이다.평등하다면 반칙과 특권이 없어야 한다. 그것을 누리는 사람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고 결국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놀이를 할 때도 부잣집 아이든 그렇지 않든 똑같이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먼저 온 사람이 벤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늦게 온 사람은 지위가 높아도 기다려야 한다.둘째, 광장엔 자정(自淨)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보장하면 평등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고,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의 균형이 깨어지는 곳에 불화가 생긴다.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잡는 것, 그것이 시민들의 협의에 의해 도출된 정의이다. 정의와 양심의 순(順)기능으로 인한 정화(淨化) 작용, 그것이 자정 능력이다. 편향된 이념에 중독된 집단이나 사이비 종교엔 바로 이 자정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끝으로, 광장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신체적 제약, 이념,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 때문에 그 누구라도 배제되어선 안 된다. 광장에 두 명 이상이 있다면 위의 두 가지 원칙 모두가 지켜져야 한다. 혼자 있어도 스스로 어긋남이 없도록 신독(愼獨)함에 힘써 자정 능력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위의 조건이 맞지 않는 비민주적 공간, 즉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지 않고, 반칙과 특권은 묵인되며, 자정 능력은 실종되고 없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열린 폐쇄적인 공간을 '밀실'(密室)로 규정한다. 밀실은 혼자 있는 공간이 아니다. 정의가 죽어버린 공간이다. 홀로 거(居)해도 바르게 처신하면 그곳은 광장이다. 무리를 지어도 동반 타락하면 그곳은 밀실이 되고 만다.결국 바람직한 삶은 밀실을 떠나 광장으로 가는 쉽지 않은 여행이다. 용기와 지혜로써 불의한 이익을 멀리하고 이웃과 함께 광장에 서고자 하는 지난(至難)한 몸짓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거하는 곳을 광장으로도, 밀실로도 만들 수 있다. 마음을 잘 쓰면 온 누리가 광장이고, 잘못 쓰면 처처(處處)가 밀실인 것이다. 가자! 광장으로! 그곳은 반칙과 특권이 없고, 너와 내가 공정하게 공부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울 수 있는 곳! 그곳으로 가자!전 정부가 '광장의 밀실화'로 탄핵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러함에도 현 정부는 반칙과 부정을 일삼고 특권은 누릴 대로 누리며 밀실에서 살았던 가정의 가장을 광장의 관리인으로 고용했다. 잘못된 인사다. 계속 국민과 역사에 눈감으면 파국을 부른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본 칼럼의 모티브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얻었다. 그러나 광장과 밀실의 개념은 작품 속의 그것들과 다르며 필자가 내린 정의임을 밝힌다.-

2019-09-28 02:30:00

이상일 시인, 수필가

[광장]귀곡천계의 습성을 버리자

귀곡천계(貴鵠賤鷄)란 고니를 귀하게 여기면서 닭을 천하게 여긴다는 사자성어로, 멀고 드문 것은 귀하게 여기는 반면, 가깝고 흔한 것은 천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닭은 가까이 자주 접하는 가축으로 자주 볼 수 없는 고니보다는 천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같은 조류(鳥類)라는 측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 우리의 문화나 역사의 인식에 있어 이런 귀곡천계의 습성이 남아 있어 안타깝다.지리적 여건으로 대륙인 중국 옆에 있는 한반도의 숙명 때문에 오랫동안 중국의 문화나 영향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현대에 와서도 외세에 의한 개방으로 그동안 내려오던 과거의 전통이나 문화와는 전혀 다른 서양의 교육이나 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우리 것 대부분은 부정되었다. 속된 말로 무조건 먼 곳이나 남의 것은 좋은 것이라 여기고, 우리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는 버려야 하고 천하게 여겼다. 이런 오랜 중국의 사대주의 전통이나 맹목적 서양문화의 도입으로 인한 귀곡천계 습성이 우리의 가치관이나 문화에 많이 스며들어 있다특히 고대사 분야가 매우 심하다. 중국의 삼황오제나 제가백가들을 신봉하여 과거시험 과목으로 달달 외울 정도이고, 현대에도 서양의 그리스로마신화는 수백 권의 책으로 출간될 뿐만 아니라, 도표를 그려가면서 그 어려운 신들의 이름과 계보를 다 외우고 있으면서, 정작 우리의 단군신화나 고대에 대해서는 미신이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무시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현실이다. 고대사는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후대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각색된 신화나 소설이기에 역사적 사실에 바탕 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중국이나 서양 것은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신뢰하면서, 정작 우리의 단군신화나 환단고기, 천부경 등 고대사에 대해서는 미신 내지 허무맹랑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 같은 신화이고 그 내용의 진실성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똑같다. 이는 그동안 우리의 근대교육이 서양 문화에 대해 맹목적으로 선진국이라고 단정하고 비판 없이 세뇌 교육을 받은 영향이라고 본다.문화나 역사는 상대성이고 그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준이나 격을 논할 수 없는 분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 찬란했던 사라진 고대문화도 지금 거꾸로 볼 때,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듯이 오늘날 각자 이어져 온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도 고유성을 인정해야 한다. 설사 우리의 고대사가 다소 비현실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 해도, 전혀 근거나 스토리가 없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가 우리 것을 사랑하고 가꾸고 전승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것을 지켜 주리요.오늘날 국제화 시대라지만 현재 자기가 살고 있는 말과 문화와 정신을 버리고 후손들이 어떻게 잘될 수 있다고 보는가.그런 의미에서 최근 대구경북지역이 그동안 보수적 전통으로 지켜온 지난날의 문화나 정신적 가치들을 세계인들이 같이 공감하고 지켜야 할 문화와 전통으로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 14곳 중 5곳이 등재되었다.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 그래서 서양과 중국 위주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귀하게 여기는 습성을 버리고, 비록 초라하고 볼품없더라도 우리 것을 우리가 사랑하고 지키겠다는 생각으로의 전환과 교육이 뒷받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2019-09-21 06: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연귀산(連龜山) 거북바위를 보며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대구도호부 '산천'(山川)조(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연귀산은 부의 남쪽 3리에 있는데, 대구의 진산(鎭山)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마을을 형성할 때 돌 거북을 만들어 산정부에 머리는 남쪽으로, 꼬리는 북쪽으로 향하도록 묻어 지맥을 통하게 한 까닭에 연귀라 부른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연귀산과 거북바위에서 대구의 진산이 연귀산임을 알 수 있다. 진산은 풍수적 용어다. 즉, 마을이나 도읍지 뒤편에서 진호(鎭護)하는 산으로 주산(主山)이라고도 부른다. 연귀산은 현재 제일중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조 순조 때는 연귀산에서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를 알리는 포를 쏘았다고 해서 '오포산'으로 불리기도 했다.제일중학교를 방문하게 되면 학교 건물 앞쪽에 머리를 앞산 쪽(남쪽 방향)으로 꼬리는 팔공산 쪽(북쪽 방향)으로 향해 있는 돌로 만든 거북이를 실제 볼 수 있다. 연한 자줏빛을 보이는 모래 질 암석인 자색(紫色) 사암에 거북 형상을 새겨 놓았다. 거북바위는 타원형을 보이며 여러 곳에 성혈(性穴, cup-mark)도 보인다. 과거 대구지역 선사인들의 무덤인 고인돌의 덮개석이라 전해 온다.연귀산 거북바위는 고문헌에 기록된 대구 최초의 유물로 대구를 상징하는 보물이다. 팔공산과 비슬산(앞산) 사이에 위치해 있는 대구분지는 풍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맥이 단절된 모습이다. 그래서 단절된 지맥을 잇기 위해 작은 언덕에 불과한 연귀산에 거북바위를 묻어 지맥을 연결한 것이다. 더욱 신통한 일은 앞산이 약 7천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화산임을 어떻게 알았는지 불기운이 강한 앞산의 화기(火氣)를 다스리기 위해 물의 신에 해당하는 거북이를 만들어 비보(裨補)한 것이다.유럽 여행 중 프랑스를 들를 때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평평한 도시 파리에 있는 해발고도 129m 높이의 '몽마르뜨 언덕'을 어김없이 찾는다. 몽마르뜨 언덕은 군신의 언덕 또는 순교자의 언덕이라 불리는 명소로, 인근에는 유명한 예술인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지역에는 몽마르뜨 언덕보다 더 가치 있고 대구의 정체성과도 같은 연귀산이 있지만 지역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대구를 상징하는 동물을 거북이로 하고 거북바위가 있는 연귀산에 대구의 대표 광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달구벌 최초의 성인 달성(達城)보다 시대가 앞서는 연귀산을 중심으로 선사시대의 이야기, 역사시대의 이야기, 근대화 골목의 이야기 등을 풀어나간다면 대구가 보다 매력 넘치는 도시가 될 것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역사 관광지로 근대화골목이 지나치게 부각된 것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이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이야기를 간직한 근대화골목이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관광산업 역시 올바른 역사적 토대에서 성장해나갈 때, 우리의 자긍심과 자존감 또한 고취되리라 믿는다.대구 출신 대문장가인 사가 서거정 선생은 그의 한시 대구십영(大丘十詠)에서 연귀산과 거북바위를 읊고 있다. 여기에 서거정 선생의 '귀수춘운'을 소개한다.귀수춘운(龜岫春雲): 연귀산의 봄구름귀잠은은사오잠(龜岑隱隱似鼇岑): 거북 뫼 은은하여 자라 뫼 닮았네.운출무심역유심(雲出無心亦有心): 무심히 피어난 구름 또한 의미가 있네.대지생령방유망(大地生靈方有望): 바야흐로 대지의 생명과 영혼들이 바라듯,가능무의작감림(可能無意作甘霖): 아무 뜻 없이 단비를 내리겠는가?

2019-09-07 01:30:00

최경규 경영학 박사, 스트레스 행복강연가

[광장] 마음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세상을 호령한다 하였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고양이를 잡기 위해서는 목을 잡으면 되고, 뱀을 잡기 위해서는 머리를 잡아야 한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목을 잡을 수도 없고 멱살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 무엇을 잡아야만 하는가? 바로 마음을 잡아야 한다. 신은 인간에게 세상을 보라 눈을 주셨지만, 오직 사람 마음만은 눈에 보이질 않는다. 그러면 누군가의 마음을 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오늘 자기 마음을 닦는 일'이라 말하고 싶다.필자가 강연을 하며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바로 "지금을 살아야 한다", "一日一念"이라는 말이다. 하루를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 마음을 잘 잡아야 한다고 풀이한다. 생각 '염'(念) 자는 참 의미가 있는 한자이다. 지금을 뜻하는 '금'(今)에 '심'(心)이 합쳐져서 지금의 마음을 뜻한다.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오늘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때로는 사람의 눈으로도 다른 이의 마음이 보일 때가 있다. 내일 해야 할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현재 눈앞의 어떤 것도 보이질 않는 사람, 과거 속에 살고 오늘을 원망하며 어둡게 사는 사람들은 눈에 보인다.오늘을 제대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맑고 거침이 없다. 사람들과의 만남에 숨김도 과장도 없다. 왜냐하면 지나간 화려했던 과거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포장할 필요도 없고, 미래의 계획으로 잘난 척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오늘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은 향기로운 꽃처럼 늘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들게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을 굳이 알려고 그리고 얻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마치 마음의 문을 지키는 병사가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것처럼 타인들도 편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바닥만 보아서는 앞도 옆도 뒤도 볼 수 없다. 그래서 바닥"이라 했던 김별아 작가의 말처럼 과거라는 울타리에 갇혀 사는 사람은 바닥만 보는 사람들과 같다. 날아오는 삶의 기쁨도 바닥만 보아서는 잡을 수 없다. 과학의 발전으로 신선초가 홈쇼핑에 나오지 않는 이상, 누구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제한된 시간이란 물리적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더 이상 과거 속에서 후회로 오늘을 살지 않았으면 한다.또한 필자의 두 번째 책, '나는 행복을 선택했다'에서 말했듯이 내일만을 꿈꾸는 사람은 오늘의 상처를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일의 행복만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내일이 된다 하더라도 오늘 자신의 소중한 것이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에 자신하지는 못한다. 즉 10년 노력 끝에 얻은 미래의 행복 앞에 이미 무너진 건강이나 가족 관계는 더 이상 행복일 수 없기 때문이다.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남이 아닌 자신의 오늘을 살아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말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보고 나 자신을 항상 아기 돌보듯 사랑해 주어야 한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지 않고 내일의 나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 행복도 불행도 타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에 행복하고 불행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2019-08-28 11:57:39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사랑하다'의 참뜻

"철수가 영희를 사랑하다"에서 '사랑하다'는 철수와 영희라는 두 사람의 '관계의 이름'이다. 말의 참뜻을 설명할 때 그 말을 다른 말로 풀이하는 것을 기대할 것이다. 학교에서 말의 뜻을 편의상 그렇게 풀이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로써 말을 완전하게 풀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에 우리가 '사랑하다'라는 말을 알고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보일지라도 이 방법을 쓴다.'사랑하다'를 안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우선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 중에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것들을 {(철수愛영희), (영희愛철수), (영철愛순자), (영수愛앞산)}처럼 쌍으로 묶은 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철수愛영희)는 "철수가 영희를 사랑하다"를 나타낸다. 네 쌍만 열거했지만 현실에선 훨씬 더 많은 쌍이 있다.둘째, 리스트에 있는 모든 쌍들의 관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찾아진 관계의 공통점, 그것이 '사랑하다'의 참뜻이다. 이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말의 참뜻을 알고 있는 것으로 언어학에선 인정한다.'사랑하다'의 참뜻이 이러하다면 결국 사람마다 다소 다른 정의를 갖게 된다. 각자가 열거하는 쌍의 리스트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의사소통이 될까? 그것은 열거된 쌍의 리스트 자체보다 열거된 쌍들이 갖는 관계의 공통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리스트엔 차이가 있을지라도 찾아낸 관계의 공통점엔 큰 영향이 없다. 비유하자면 풍기산 인삼이든, 금산산 인삼이든 같은 사포닌이 추출되는 원리이다. 그래서 의사소통엔 지장이 없다.위에서 (철수愛영희), (영희愛철수)를 동시에 열거했다. 서로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영철愛순자)에선 그 반대 쌍이 없다. 영철이 짝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영수愛앞산)처럼 의식이 없는 어떤 것을 사랑한다면 그 역은 성립될 수 없다. 평생 짝사랑인 것이다.만일 두 사람이 각자가 사랑하는 쌍의 리스트를 만든다면 거기엔 두 사람의 인생관‧세계관이 드러난다. (철수愛산)이지만 (영희愛바다), (철수愛돈)이지만 (영희愛명예)일 수가 있다.벗이 "사랑도, 우정도 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랑이 변한다는 것은 '사랑하다'를 나타내는 쌍의 리스트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주목할 점은 변화가 생겨도 우리가 지닌 사랑의 개념은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리스트엔 수많은 쌍이 있고 그중에 한두 쌍이 사라지거나 더해져도 추출되는 공통 속성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닌 사랑의 리스트는 때때로 변할지라도 평생 지속되는 쌍들도 있다. 변화무상한 세상에서 어떤 대상들과 평생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그런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국가 간에도 애증 관계가 있다. (한국愛북한)인가? 여기서 국가는 국민 전부가 아니라 정부를 이끄는 지도자들을 지칭한다. 그러하다. 그러나 역이 성립되지 않은 짝사랑이다. 짝사랑의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 번 빠진 사랑에서 헤어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북한愛한국)으로 만드는 데는 애원(哀願) 대신 실력이 필요하다.(한국愛일본)인가? 아니다. 한일 관계에 대해서 책임 있는 분들이 허(虛)하거나 죽창(竹槍) 같은 격한 말을 한다. 이 염려의 바다를 넘어 극일(克日)하자면 엄포 대신 또 실력이 필요하다. 실력을 기르자면 정치가 경제와 교육을 놓아주어야 한다. 정치로부터 주눅 들어 움츠린 시녀들은 갈팡질팡할 뿐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2019-08-24 01:30:00

이상일 시인·수필가

[광장] 전문가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전문가라는 의미의 한자어는 선비 사(士)이다. 우리 주위 직업군에서 그 분야 전문가를 모두 다 士자로 칭한다. 석사, 박사, 변호사, 의사, 기술사는 물론 일반 기능직 분야에서도 미용사, 기능사, 요리사, 강사 등 수없는 전문가를 통칭하여 士라 부른다.먼저 한자에서 말하는 전문가인 士의 의미를 분석해보자. 士란 글자는 十(10) 자에 一(1) 자를 합한 글자이다. 전문가란 의미의 士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한 가지(一)를 들으면 열 가지(十)를 안다는 聞一知十(문일지십), 다른 하나는 열 가지(十)를 하나(一)로 묶을 수 있는 推十合一(추십합일)을 포함하고 있다.먼저 聞一知十은 똑똑한 사람들을 일컬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속담과 같이, 상당히 뛰어난 기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어릴 적 신동이나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런 유형이다. 과거에는 남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빨리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識者(식자)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결국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를 정보의 비대칭 구조 속에서는 경쟁력이자 경제적 가치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전문화가 요구되는 2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미국의 헨리 포드가 주창한 3S 운동(제품의 표준화, 부분품의 단순화, 작업의 전문화)에 필요한 인재형이 聞一知十型(문일지십형)이었다.그러나 현대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 내지 정보보다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즉 AI가 훨씬 방대하고 깊은 지식이나 정보를 많이 알고 잘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과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그래서 단순히 지식, 정보를 많이 알고 처리할 능력을 가진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 요즘 빅데이터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推十合一의 전문가를 요한다. 즉 열 가지의 다른 지식이나 정보를 하나로 묶어 내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각자 다른 기능들을 한곳에 모아 인간이 가장 편리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아이폰을 개발한 推十合一의 상징적 인물이다. 각각 다른 분야의 기술이나 재능들을 하나로 만들어 내는 융합이나 통합의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옛날에는 어느 한 분야에 한 가지만을 잘해도 전문가로 능력을 인정받고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분야라도 열 가지를 묶어 하나로 통합해 낼 수 있는 멀티 사고와 기술이 있어야 진정한 전문가로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이와 관련하여 그동안의 지식 전달 위주의 암기형 교육에서 정보를 어떻게 하면 인간을 위해 유익하고 효율적으로 융합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느냐에 중점을 둔 교육으로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과거에는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학원이나 학교 교육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융합 내지 통합형의 미래형 전문가의 개념으로 교육 및 사고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단순 계산이나 반복은 기계가 훨씬 뛰어난 수준으로 잘하기 때문에 굳이 인간을 교육해 경쟁시킬 필요는 없다.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문가의 개념도 지식이나 정보의 양으로 승부하는 聞一知十의 과거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推十合一의 미래형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이다.

2019-08-17 02: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연경동 화암(畵巖)

고문헌에 전해오는 대구를 대표하는 두 개의 바위 중, 삿갓바위로 불렸던 입암(笠巖)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지난번 글에서 다루었다. 이번에는 사라질 뻔했던 대구의 대표 바위 연경동 화암(畵巖·그림바위)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매암 이숙량은 1567년에 작성한 연경서원 '기'(記)에서 화암과 연경서원 일대의 조화로운 풍광을 시각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전략) 연경서원 북쪽은 성도산(成道山)이다. 산봉우리가 나지막하고 골짜기가 고요하다. 서쪽으로 흰 돌과 푸른 솔이 언뜻 언뜻 이어지다 천 길이나 깎아지른 듯 큰 바위에 이르니 이것이 화암이다. 우뚝 솟은 붉고 푸른 절벽의 기이함이 그림과도 같아 화암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화암 아래 깊고 맑은 푸른 물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노닐고 있어 연경서원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한편 '대구읍지' '제영'(題詠) 편에 소개된 퇴계 이황의 한시인 '연경화암'(硏經畵巖)에서도 화암과 연경서원이 소개되고 있다.畵巖形勝畵難成(화암형승화난성) 화암의 좋은 경치 그리기도 어렵네立院相招誦六經(입원상초송육경) 서원을 세우고 서로 모여 육경을 배우리라從此聞佇明道術(종차문저명도술) 이제 도술을 밝혀가며 듣게 될 테니可無呼寐得群醒(가무호매득군성) 능히 몽매한 자 깨우치지 못하겠는가시에서도 언급했듯이 퇴계 이황은 '화암의 멋진 경치를 그리기조차도 어렵다'고 하였다.연경서원 근처에 있다고 고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화암은 동화천변에 위치하는 강가 바위 절벽인 하식애(河蝕崖)다. 바위 하부는 약간 붉은 빛을 띠는 사암층과 세일층으로 되어 있고, 상부는 역암층으로 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억여 년 전 호수에서 형성된 퇴적암이다. 화암을 이루어 놓은 퇴적암은 대구 분지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과 같은 종류다.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팔공산이 흰 빛깔의 밝고 수려한 외양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화암은 다소 짙은 빛깔을 나타낸다. 이처럼 짙은 빛깔의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화암은 암석의 구조적 특성과 기묘한 외양으로 인하여 신비감을 더해 준다. 풍화작용으로 역암층에 박혀 있던 둥근 돌이 빠져나간 자리의 모습이 벌집을 닮았다 하여 벌집바위로 불리는 타포니(tafoni)와 상부의 돌출 부위로 인한 기묘한 형상이 화암을 예로부터 특이하고도 신비롭게 인식하게 하는 원인으로 판단된다.화암은 그 앞을 흐르는 동화천과 더불어 수려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하다. 한때는 산악인들의 암벽 훈련 등반지로 이용됐을 뿐만 아니라 왕복 2차로 도로에 접해 있어 차량에서 배출되는 매연으로 많이 변색되었다. 더군다나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곳곳에 사람의 이름이 페인트나 조각 도구로 새겨져 있어 안타깝다. 화암 옆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연경서원은 대구지역에서는 최초로 설립된 서원으로 의미가 크다.현재도 연경동 일대에서 진행 중인 대구 4차 순환도로 공사와 대규모 아파트 공사는 화암과 일대 동화천 풍광의 근본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고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오는 대구에 마지막 남은 바위 화암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동화천에 대한 보존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겠다. 아울러 연경서원 터에 대한 정밀 조사와 발굴 및 복원이 이루어져 교육도시로서의 대구 자존심과 품격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2019-08-06 11:28:13

최경규 경영학 박사, 스트레스 행복강연가

[광장] 행복에도 단식이 필요하다

여름 휴가철, 사람들은 도시를 비운다. 텅 빈 공간 위 뜨거운 아스팔트만이 다가온 8월을 체감하게 한다. 휴가를 위해서는 아니지만 다른 계절에 비해 상대적 노출이 심한 여름을 위해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한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최근 의학계나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간헐적 단식'이다.간헐적 단식(IF: Intermittent Fasting)이란, 1주일에 이틀은 24시간 단식을 하고 1주일에 3~5번 정도는 아침을 걸러 일상 속에서 공복감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우선 24시간 단식은 아침과 점심을 거르고 저녁에 600k㎈가량을 섭취하고, 16시간 단식은 아침만 거르고 점심, 저녁은 평소대로 먹는다. 이러한 간헐적 단식은 체내 인슐린 수치를 줄일 수 있다고까지 하여 한때 홈쇼핑 채널에서는 단식 대용품으로 선식이나 기타 건강식품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스트레스와 행복 강연을 하는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간헐적 단식이 비단 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의 마음에도 나쁜 습성을 버릴 간헐적 단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당분과 나트륨에 익숙해진 몸처럼,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우리는 진정으로 가야할 길,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경우를 자주 본다. Pew Research Center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 1위 수준이며, 총인구의 88%가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대학생들에게 언제 가장 불안하냐는 질문에 스마트폰을 두고 나왔을 때라 한다.무엇이든 적절한 사용의 범위를 벗어나면 중독이 된다.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유를 묻는 리서치에서 나타난 재미난 사실 하나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 등 SNS에서의 '좋아요' 때문이라 한다. 즉 자신이 올린 글에 사람들이 '좋아요'라고 많이 대답해주면 행복하고, 댓글이 많으면 기분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좋아요'를 인위적으로 올려주는 대행 업체까지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누구나 자신을 좋아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자신을 호응해주면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래와 같은 공허함 위에 무거운 집을 지으려는 욕망과도 같다. 진정성이 있는 글로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그만이다. 남들이 덜 알아주어도, 자신이 좋고 만족하면 그걸로 행복해야 한다. 즉 '좋아요'의 수치가 절대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이번 한 주 몸과 마음에 간헐적 단식을 권해본다. 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스마트폰을 찾지 말자. 성인이 무의식중에 스마트폰을 보는 횟수가 하루 150회 이상이라는 통계를 볼 때, 우리는 이유 없이 스마트폰을 보는 것에 습관화되어 있다. 어머니의 손맛을 잊은 채 조미료에 익숙해진 우리는 정이 담긴 말을 건네기보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을 보며 SNS로 소통을 한다. 이번 한 주만이라도 간헐적으로 스마트폰과의 단식을 해보자. 그리고 자신이 올린 글에 대한 반응에 연연해하지 말자.스스로 당당해지면 살아가는 세상도 더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을 만드는 것도 나의 몫이다.무더운 8월, 시원한 수박화채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어느 새 여름도 저만큼 달아나 있을지 모른다.

2019-08-01 11:29:3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뫼비우스의 띠

작가 조세희가 1970년대 후반에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열두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며 첫 번째가 '뫼비우스의 띠'이다. 이것은 첫 단편의 제목일 뿐만 아니라 나머지 단편들을 관통하는 주제를 나타내며 세상사 많은 시시비비가 이 띠의 성격을 닮았음을 시사하고 있다.종이를 잘라 띠를 만든 후 띠의 양 끝을 한 번 꼬아 붙이면 뫼비우스의 띠가 된다. 뫼비우스의 띠에선 어느 지점에서나 띠의 중심을 따라 한 바퀴 이동하면 출발한 곳에서 정반대 지점에 도달할 수 있고, 계속 나아가 두 바퀴를 돌면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우선 뫼비우스의 띠 각 지점에서는 안팎이 구분된다. 안이 없이 밖이 있을 수 없고 밖이 없이 안이 있을 수 없듯이 이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공존한다. 이처럼 선과 악, 긍정과 부정, 옳고 그름처럼 가치가 대립되는 것들도 야누스의 두 얼굴같이 서로 다르면서도 공존함을 시사하고 있다.연작 중 두 번째 단편 '칼날'의 주인공인 주부 신애는 난장이를 불러 수도꼭지를 교체시킨다. 이때 펌프가게를 운영하는 사나이가 나타나 자신의 사업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난장이에게 심한 폭력을 가한다. 이를 제지시키기 위해 신애가 식칼을 휘둘러 사나이의 팔에 상처를 입힌다. 여기서 난장이가 수도꼭지를 교체해 주는 행위는 신애 입장에선 선이고 사나이 입장에선 악이다. 그리고 신애가 칼을 휘두르는 행위는 난장이에겐 선이지만 사나이에겐 악이다. 이처럼 어떤 행위가 보는 관점에 따라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띠고 있는 것이다.또한 뫼비우스의 띠에선 특정한 지점에서 이동함에 따라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된다. 이동, 즉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선과 악, 옳고 그름, 강자와 약자의 역할이 뒤바뀔 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연작 중 네 번째 단편은 연작소설과 이름이 같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재개발 지역에서 집을 팔아도 아파트 입주권을 살 형편이 안 되는 난장이 가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결국 난장이가 집을 판 날 막내 영희가 가출을 한다. 영희는 자기 집을 산 사나이를 따라 가서 그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때때로 성적 유린까지 당한다. 남자로부터 신임을 얻은 영희는 잠든 남자를 마취시키고 자기 집 관련 서류와 아파트 입주에 필요한 돈을 챙겨 달아난다. 지금까지 영희는 약자이며 피해자인 선을 나타냈고 사나이는 강자이자 가해자인 악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날 밤엔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뀌었다. 영원히 약자나 강자로 살 수 없고 영원히 선하거나 악하지도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때로부터 40여 년이 흘렀지만 세상은 여전히 시시비비가 넘치고 있고, 옳고 그름에 관한 가치관조차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립은 발전을 위한 지난한 몸부림이다. 몸부림이 긍정의 열매를 맺기 위해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인정하고, 소통하고, 곡진하게 설득해야 한다.그러함에도 자기와 자기 집단만이 선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자신이 바라보는 동굴 밖 세계만 인정하는 사람들, 권력에 취해 '완장'(윤흥길 작)의 주인공 종술처럼 공격적이지만 없는 것은 대책이고 있는 것은 무능인 사람들도 있다. 오늘 하는 행위가 선하게 보일지라도 절대선(絶對善)은 아니며 긍정적 효과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있을 수 있음을 통감(痛感)해주길 바란다. 오늘 선을 행하여도 내일은 어쩌다 악을, 그리고 훗날엔 다시 선을 행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그래서 동과 서, 여와 야,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견제하며 보듬어주는 세상을 꿈꾼다.

2019-07-25 11:23:17

이상일 시인·수필가

[광장] 평범이 가장 큰 행복의 지름길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스펜서(Spencer)는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때 사회는 인간 한 사람(人)이 아닌 두 사람 이상의 사이(間)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동양에서 사람을 단순히 인(人)이라 하지 않고 인간(人間)이라고 했다.이 사회에 사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행복의 기준은 시대와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편적인 행복은 지금 현재의 인간관계 속에서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현실은 늘 끊임없는 갈등과 모순이지만 그 시대와 같이 사는 사람들과 동떨어져 지구 밖에서나 과거나 미래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옛 선조들도 세상 살면서 세 가지는 피하라고 했다. 첫째가 소년등과(少年登科), 둘째가 장년상처(壯年喪妻), 셋째가 말년궁핍(末年窮乏)이라 했다. 이 중 소년등과는 너무 일찍 출세하면 인생의 산전수전을 경험해 보지 못함으로써 정상에서 추락하는 절망감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하거나 망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피하라 했다.행복은 성적순도 아니며, 천재나 영재로 사는 것이 성공이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도 아니다. 'IQ 210'의 세계 10대 천재 한국인 김웅용 씨는 12세에 NAS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지만 또래와의 '관계 맺기'와 '소통'에 실패해 NASA에서도 늘 혼자였고, 결국 우울증과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다 못해 19세 때 '평범하게 살겠다'며 한국으로 돌아와 검정고시로 초중고를 거쳐 지방대를 졸업한 후 공기업에 다니다 지방대학 교수로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최근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재 소년 송유근도 만 6세의 나이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8세에 인하대에 입학해 최연소 박사 학위를 취득하려다 논문 표절 등의 시비에 휘말려 모든 것을 중단하고 작년 말 군에 입대했다.외국 사례로 2008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세계적 수재들만 모인 미국의 하버드대 학생 268명의 인생을 추적한 연구 결과, 47세 무렵까지 형성돼 있는 인간관계가 이후 생애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였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가장 안정적인 성공을 이뤘다는 결론이다.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다.사람의 일생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면 열광하는 삶보다는 한결같은 삶이 훨씬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안다. 가장 위대한 진리는 가장 단순하듯 이미 유치원에서 배운 정직하라, 성실하라, 사랑하라 이 세 마디이다. 이렇게 사는 길이 가장 심플하면서 이 땅 위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한때 우리나라에서 조기교육 붐이 일어나 혀도 잘 못 굴리는 아이에게 3개국의 외국어를 시키는 등 과열풍이 있었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영재 내지 천재교육으로 아이들을 혹사시키거나 별나게 키우려고 하기보다는, 같은 또래집단과 자연스럽게 인격 형성이 되도록 평범하게 키우는 것이 한 사람 일생으로 봐서는 가장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 법칙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사는 이유가 행복하기 위해 산다면 행복은 결국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의 평범한 교류와 가장 단순한 진리 속에 있기 때문이다.

2019-07-20 0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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