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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응백 문학평론가

[광장] 정조 임금의 양어장 낚시

조선 22대 임금 정조는 낚시를 좋아했다. 창덕궁 규장각 앞 연못에서 신하들과 낚시를 하였다는 기록이 실록에 여러 번 나온다. 정조의 낚시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낚시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연출이었다.정조는 1795년, 꽃이 한창인 창덕궁 내원(內苑)으로 영의정을 비롯한 신하 54명을 초대해 연회를 열었다. 정조는 "올해야말로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사스러운 해이다. 그러니 이런 기쁜 경사를 빛내고 기념하는 일을 나의 심정 상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서두를 연다. 천 년에 한 번 경사스러운 해라고 말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 전달에 수원 화성으로 행차했던 '을묘원행'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화성 건설이 진행되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내밀하게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추모 사업이 정점을 찍은 해이니 정조로서는 그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그런 심정을 감격적으로 말하지만, 그 말에는 화성 건설이나 아버지 추모에 토를 달지 말라는 경고도 포함되어 있다.이어서 정조는 내원에서의 연회는 원래 임금의 친인척만 참여하는 것이지만, 자신은 친인척을 멀리하고 어진 사대부를 가까이하기에 특별히 신하들을 초대했음을 밝힌다. 생색을 있는 대로 다 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발언을 한다."필경 귀근(貴近)의 폐단이 일어나더니 요즘에 이르러서는 그 극에 달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아오면 물러가게 되고 느슨해지면 펼쳐지게 되는 것이야말로 정상적인 이치라고 할 것이니, 척신(戚臣)이 이 뒤를 이어 나아오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귀근이란 왕의 최측근 인물을 말한다. 정조는 즉위 때부터 정동준(鄭東浚)을 가까이 두면서 신임했다. 하지만 정동준은 권력 남용과 부정 축재 혐의로 탄핵을 받았고, 조사도 시작되기 전에 자살해 버렸다. 정조는 정동준 사건을 환기시킨 것이다. 자신은 신하를 가까이 해서 궁궐까지 불러서 낚시를 같이 할 정도로 총애하지만, 그렇다고 임금의 총애를 믿고 신하의 도리를 벗어나는 경우에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경고를 날린 것이다.신하들은 등골이 서늘했을 것이다. 이때 영의정 채제공이 대표로 발언을 한다. 예로부터 밝은 임금의 성덕(盛德)은 친인척과 척신을 배척하는 데서 나온다고 하면서, "신들로 말하면 직접 성대한 이 기회를 만나 특별한 은혜를 입고 있으니, 어찌 감히 스스로 순결한 마음을 지니고 만분의 일이라도 성상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한다. 충성 맹세이자 청렴 서약인 셈이다. 정조 치세(治世)의 바탕에는 이토록 철저한 측근이나 관료 관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물고기들도 정조의 양어장 낚시 연출에 협조했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신하도 많았지만 이날 정조는 네 마리나 잡았다. 임금이 낚시할 자리에 미리 밑밥을 듬뿍 뿌려 놓았을 것이다. 임금이 물고기를 잡을 때마다 뒤에서는 풍악이 울렸다. 출연한 물고기는 도로 놓아주었다고 한다.

2018-11-10 05:00:00

[광장] 새로운 시대는 말씀과 함께 왔다.

새로운 시대는 '말씀'과 함께 왔다. 벼락처럼 느닷없이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온갖 매스컴이 하나같이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즉,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의 '말씀'을 전했지만 선뜻 와 닿진 않았다. 그가 누군지도 몰랐고 무엇보다 당장의 내 삶이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었다. 어제도 오늘처럼 살았고 내일도 오늘같이 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처음엔 약간의 저항도 있었다. 진짜 새로운 세상이 온 게 맞는지 한번 따져보자는 거였다.하지만 그런 목소리들은 끊임없이 전해지는 '말씀'에 묻혀 사라져 갔다. 그리고 '말씀'이 계속될수록 사람들은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게 뭔지, 세상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아야만 했다. 특히나 대한민국은 지난 몇 년간 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느라 온 나라가 들썩였다. 별안간 수많은 전문가가 나타나 4차 산업혁명을 설파했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갈수록 더해질 태세다. 그들의 가르침은 대개 '슈바프'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인공지능, 빅 데이터, 초연결사회 등을 열거한 다음 우리 앞에 다가온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면 살 것이요, 외면하면 몰락할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얼핏 결론만 보면 무슨 종교 같기도 하다. 전문가는 사도처럼,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새로운 세상은 믿음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낙원처럼 말이다.그런데 이토록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말씀'의 성지가 된 데는 이른바 '리더'라 불리는 이들과 정부의 역할이 매우 컸다. 분야를 막론하고 어찌나 4차 산업혁명을 강조했던지 이젠 4차 산업혁명 없이는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어떤 것도 도모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것 같은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그렇다면 잠시 이전 시대, 그러니까 2016년 1월 '슈바프'의 선언이 있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도 일상에서 지금과 거의 같은 성능의 스마트폰을 지금과 거의 같은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따지자면 우리의 생활에 연결, 공유, 개방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요소들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는 이야기다. 인공지능, 빅 데이터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 조금 더 이전으로 돌아가 보면 어땠을까?대한민국은 국민 2명 중 1명이 소위 '싸이질'을 했을 만큼 연결과 공유에 있어 세계 최강국이었다. 서드파티(third party)를 창출하는 강력한 플랫폼을 '아이폰'의 등장 훨씬 이전에 이미 만들고 경험한 것이다. 요즘 '말씀'마다 따라붙는 과거 '추격형 인재'(Fast Follower)의 시대가 가고 '도전형 인재'(First Mover)의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호들갑은 그래서 더 뜬금없다.2000년 한 해 동안 1만 개가 넘는 벤처기업이 탄생했고 그 주역들은 모두 '퍼스트 무버'였다. '말씀'만 넘치는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을 담고 있는 아직은 불확정적인 하나의 용어일 뿐이다. 이것으로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말은 그냥 막연히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사회적 토양과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사라진 '퍼스트 무버'들부터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한다.

2018-11-01 11:40:58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 케이팝의 고향을 찾아서

한글날 징검다리 연휴를 이용해서 도쿄에 다녀왔다. 지난 6일 태풍 콩레이의 북상 영향으로 대구공항 도쿄행 항공편이 결항됐다. 항공기 결항은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예정보다 하루 늦게 출발은 했지만 미리 계획한 여행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키노쿠니야 서점과 가까운 신주쿠의 호텔을 이용했다. 대구 출신의 한국인 직원이 근무하고 있어서 편리했다. 지난 3월 키노쿠니야 서점 건물 8층에 중고 음반 매장이 문을 열었다. 규모가 크고 음반 가격이 저렴하다. 이번 주말 가수 이은하 콘서트가 열리는 대구에서도 김광석 길 야외공연장 앞에서 제1회 대구 레코드 페어가 열린다.7일 저녁 산토리홀에서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의 피아노 독주회를 관람했다. 폴리니는 아직 한국 땅을 못 밟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다. 객석을 가득 채운 2천 명의 관객들은 다시 보기 힘든 거장의 연주를 숨죽이며 관람했다. 산토리홀은 1986년 개관한 도쿄 최초의 클래식 전용홀이지만 대중가수의 공연도 열리고 있다.2005년 10월 김연자는 도쿄교향악단과 함께 산토리홀 무대에서 아리랑을 열창했다. 김연자의 일본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에는 길옥윤 선생이 88서울올림픽을 위해 작곡한 '아침의 나라에서'가 수록되어 있다.8일 오후 도쿄에서 드라마 '옥중화'의 주인공인 진세연의 첫 팬 미팅과 '더블에스501'(SS501) 출신 가수 김규종의 콘서트가 열렸다. 신주쿠역 가까운 곳에서 열린 김규종 콘서트를 선택했다. 해외에서 처음으로 한국 가수의 공연을 봤다. 관객 대부분이 다양한 연령대의 일본 여성이었다.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옆자리의 20대 일본 여성과 인사를 나눴다. 공연이 끝난 뒤 콘서트홀 입구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할머니와 어머니도 김규종의 팬이라고 했다. 김규종 때문에 최근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자신의 한국식 이름도 지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가방에는 한글로 김규종 이름이 새겨진 명찰이 붙어 있었다. 한국에 가서 김규종의 고향도 꼭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방탄소년단(BTS) 멤버 2명이 대구 출신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해외에서 방탄소년단을 특집으로 다룬 서적에는 방탄소년단의 팬이라면 한국에서 꼭 방문해야 할 성지(聖地)가 여러 곳 소개되어 있다. 대구와 경북도 각각 한 곳이 포함되어 있다. 방탄소년단의 콘서트가 대구경북에서 자주 열린다면 뷔와 슈가의 고향 방문과 성지 순례를 겸해서 찾아오는 해외 팬(아미)들이 무척 많을 것 같다. 이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다.'레드벨벳'의 아이린, '걸스데이'의 소진 등 여성 아이돌그룹 멤버 중에 대구경북 출신이 적지 않다. 2일 SBS MTV '더쇼'에서 '부탁해'라는 노래로 첫 음악방송 1위의 영광을 차지한 '우주소녀'의 보나는 대구 출신이다. 우주소녀 보나는 지난 8월 종영한 KBS 드라마 '당신의 하우스헬퍼'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열연을 펼치는 등 최근 활약이 눈부시다. 우주소녀의 단독 콘서트가 열리면 꼭 관람하고 싶다. 대구경북 출신 케이팝(K-POP) 스타의 공연을 보기 위해 어쩌면 다시 신주쿠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2018-10-25 15:55:38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학생'의 참 의미

학생(學生)은 '배우는 사람'이고 영어의 student는 '공부하는(study) 사람(-ent)'이다. 인간은 배움과 공부를 통한 앎·깨침을 사랑하는 동물이다. 길을 가면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저기 왜 사람들이 몰려 있지?" "저 강아지는 종(種)이 뭐지?"와 같은 의문을 던지게 된다. 연구와 사색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하는 일이며, 그것을 통한 깨침은 열락(悅樂)을 준다. 이런 뜻에서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모두가 학생이다.학생의 본래 뜻이 이러하지만 보통은 학생을 '학교에 다니는 사람'으로 본다. 이러한 정의는 좁은 의미의 학생이다. 넓은 의미의 학생은 우리 모두이다. 교육자도 학생이다. 학자로 불러도 마찬가지이다. 학자(學者)도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 분야에서 깨침의 경험을 더 쌓았기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깨침의 길로 안내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된다.첫째, 배웠느니 못 배웠느니 하는 심리적인 차별이 없어질 것이다. 넓은 의미의 학생 개념으로 보면 살아온 세월만큼 누구나 학생이었다. 더불어 노인들에 대한 존경심도 자연히 생길 것이다. 지나온 세월만큼 지혜가 켜켜이 쌓인 분들이 아닌가?둘째, 공교육의 질을 높여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자가 수업 내용과 방법에서 어떻게 사교육자에게 뒤처질 수 있는가? 임용되는 순간부터 공교육자의 지위만 누렸고 학생·학자의 신분임을 망각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공교육자도 갈고닦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학생·학자이기 때문이며 갈고닦음 없이 수업과 강의의 질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셋째, 교실의 분위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업과 강의는 교육자가 학생들에게 깨치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들을 깨닫게 하는 행위 예술이다. 깨치는 과정과 깨친 것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앎을 사랑하는 인간의 또 다른 욕구이다. 깨친 것을 자랑하는 아이의 신난 눈망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수업은 신명나는 잔치판이 될 것이고 수업이 힘들다거나 학생의 태도가 나쁘다는 푸념도 사라질 것이다.넷째, 대한민국을 초일류 국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학생·학자의 자세로 연구와 사색을 한다면 최고의 문화·문명국가가 될 것이고 부강한 나라도 될 것이다. 앞선 나라의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면 책을 읽고 있는 시민들을 더 많이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끝으로, 졸업과 퇴직을 이유로 책을 놓아서도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평생교육, 독서의 생활화 등도 자연히 실현되며 노년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시험의 계절이다. 수험생 누구나 깨침의 환희를 체험하기 바란다. 작든 크든 새로운 것을 스스로 깨쳐보라. 세상이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연구와 사색을 해보라. 깨친 기쁨의 눈물을 흘려보라. 눈물이 당신의 책장을 적시면 문을 열고 새벽을 맞아보라. 신선한 공기가 밤의 피로를 씻어주는 순간, 이 길을 가다 죽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두려워말고 나아가라. 가다 죽어도 된다는데 어떤 장애가 당신을 막겠는가? 꿈은 이루어진다. 힘이 들거든 기억하라. 시련이 크면 당신의 깨침도 커지고, 따라서 꿈도 커진다는 것을.

2018-10-18 13:17:24

하응백 문학평론가

[광장]인구 정책, 이제 가보지 않은 길을 찾자

"아, 칵, 이장입니다. 안녕하시지라우. 어제는 금산면 청년 체육대횔 했는디, 우리 마을은 청년이 없는 관계로, 아, 출전은 못하고 술만 디지게 마싰지라요. 다 잘 계시고 이장은 추석 때 서울 아들집에 가서 없을꺼이. 아, 칵. 마을에 별 일 없을꺼구만요. 그럼 잘 계시지라우. 방송 끝."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 방파제에서 낚시하다가 들었던 마을 방송의 멘트다. 웃다가 고기 한 마리를 놓치고, 그 멘트의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체육대회에 나갈 청년조차 없는 마을…. 청년이 없으면, 결혼하는 남녀도 없고, 당연히 아이들도 없다.청년이 없는 섬이 어디 거금도 뿐일까? 섬과 같은 도서지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농촌 지역도 청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포항과 구미를 제외한 경상북도의 21개 시군도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농어촌 지역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가 전체의 출산율이 점점 낮아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이비붐 시대에 한 해 90만 명에 이르던 신생아 수는 곧 30만 명 선으로 줄어든다. 이민을 받아들이는 등의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전체 인구는 당연히 감소하게 되어 있다.지난 10년간 정부에서는 저출산 대책에 13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했다.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가동 중이다. 하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결혼과 출산 장려금, 아동 양육수당 지급 등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각종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도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헛돈만 퍼붓는 셈이다. 차라리 인구 감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미래지향적이지 않을까?우리나라만큼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도 드물다. 5천만 명이 10만㎢의 땅에 살고 있다. 1인당으로 나누면 약 200㎡가 할당된다. 우리는 그 좁은 땅을 학대하고 착취하면서, 집값과 땅값이 오른다고 악다구니를 써가며, 개발과 환경보호를 양쪽에서 외치며 살고 있다. 뉴질랜드에는 대구 인구의 두 배가량인 약 500만 명이 우리나라 면적의 약 2.5배 정도 땅에서 '널널하게' 살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이나 뉴질랜드와 같이 땅덩어리에 비해 인구가 적은 나라도 얼마든지 잘 살고 있다. 국민의 행복지수는 오히려 더 높다.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지 말고, 엄청난 국가 예산을 인구 증가 대책에 투입하지 말고, 인구가 줄어들어도 잘 살 수 있도록 국가 개조 설계에 착수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침 인류의 기술적 진보는 눈부신 것이어서, 자율주행 자동차와 같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각 분야의 여러 자동화 시스템은 곧 현실화될 것이기에 노동력의 부족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가보지 않은 길은 개인이나 국가나 다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인구가 감소한다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률과 증가율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 길로 가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2018-10-10 14:29:17

권은태 사) 대구콘텐츠플랫폼 이사

[광장] 청년문제만 문제인가?

여기 큰 배가 있다 하자. 그 옆엔 작은 배도 있다. 이 배들은 모두 '사회'라는 바다에 떠 있다. 부두에 가득한 사람들은 이제 막 길을 나선 새내기 여행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큰 배를 타고 싶어 한다. 번듯한 배에 올라 근사한 여행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배웅 나온 부모도 그걸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바람을 만나도 안전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에 오르는 게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청년의 사회 진출, 즉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뜻이다.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생각은 이렇다. '청년들이 취업을 못 하니 사는 게 힘들어지고 결혼마저 미루게 된다. 이렇게 되면 출산율이 떨어지고 언젠가는 나라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라가 나서 청년을 구해야 한다.' 정부의 뜻도 다르지 않다. 청년 정책의 골자는 첫째도 둘째도 '일자리 창출'이다. 저간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루가 멀다고 청년 일자리 대책이 쏟아진다. 다만, 유난을 떠는 셈 치곤 아직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일자리로 시작하는 청년 문제는 매스컴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하다. 청년은 부채, 좌절, 포기 등과 이미지가 포개진다. 그런 와중에도 매번 빼놓지 않고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보태긴 하지만 그래도 큰 효과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언제쯤이면 청년이 빛난다는 소식을 듣게 될지도 짐작하기 어렵다.당사자인 청년들은 할 말이 많다. '어학연수에 봉사 활동, 실무 경험까지, 취업을 위해선 갖춰야 할 스펙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앞 세대는 우리를 구해야 한다고 하지만, 심지어 어떤 이는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번다지만 우린 노력에 비해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세상이 청년에게 불리한 구조로 짜여 있다는 이야기다.그런데 맥락을 조금 달리하는 이야기도 있다. '청년들은 우리를 하찮게 여긴다. 채용 공고를 내도 좀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면접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노쇼(No-Show)는 허다하고 심지어 확인 차 연락하면 전화도 안 받는다. 시간도 빼앗기고 기운도 빠지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이건 중소기업 대표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요즘 분위기상 꺼내기 조심스럽다. 자칫하면 강퍅한 '꼰대'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없이 전한 위로의 말과 수없이 내놓은 갖가지 정책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더러는 다른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짚어봐야 한다. 우리의 청년들이 작은 배의 가치를 알고 있는지, 함께 노 젓는 법을 잊은 건 아닌지,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약자를 외면하면 그 다음 순서는 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큰 배든 작은 배든 배에 오르는 목적은 결국 그 배에서 내리는 데 있다. 하늘도 보지 않고 바람도 느끼지 않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오직 큰 배에 올라 안전하기만을 바란다면 진짜 소중한 걸 잃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이렇게 말했다. '달리 차이가 없으니 스펙을 볼 뿐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사랑하듯 조금만 더 이웃과 세상에도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우린 토익점수의 차이보다 사람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를 더 많이 본다.' 이쯤에서 슬그머니 묻고 싶어진다. 청년 문제만 문제인가? 청년도 문제인가?

2018-10-05 17:12:53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 돈의문이 열려있다

지난 9월 1일 서울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시간안의 상처' 컨템포러리 발레 공연을 관람했다. 미국 애틀랜타 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약했던 안무가 김유미 씨가 연출과 안무를 맡았다.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공연을 펼친 김유미 씨의 모습을 지난 2월 KBS '요리인류 서울의 맛'에서 시청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강북삼성병원과 서울역사박물관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일주일 뒤 다시 찾았다. 돈의문(서대문) 터 근처의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조선시대 한옥과 일제강점기 가옥, 근현대 골목길까지 옛 시간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시간안의 상처' 공연이 열렸던 서울도시건축센터부터 들렀다. 무용 공연 때는 임시로 설치된 무대 때문에 제대로 관람하기 힘들었던 '돈의문이 열려 있다' 사진 전시회를 살펴봤다. 보도사진가 이경모(1926~2001) 작가가 촬영한 1957년 여의도 공항과 시기미상의 덕수궁 사진 작품을 구입했다. 옛 국세청 남대문 별관 자리에 들어서는 서울도시건축박물관을 소개하면서 마음에 드는 이름과 로고 디자인에 투표해 달라는 안내문도 눈에 띄었다.경주의 한옥호텔 '라궁'과 대구 '임재양외과'를 설계한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대표의 해설과 함께 돈의문박물관마을 개발 과정이 돈의문 전시관에서 상세히 소개되고 있었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연대표가 인상 깊었다.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의 신간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에서 강조하고 있는 '자기 역사 연표' 만들기는 지역사회에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울로 올라와서 한식집을 운영하면서 2015년 이사 갈 때까지 동네 얼굴 같은 역할을 했던 '안동회관' 김여환 사장의 인터뷰 동영상이 흥미로웠다. MBC 드라마 수사반장을 제작할 때 중국집 배달통 등 소품을 빌려주었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손님으로 수사반장 최불암과 킹레코드에 소속됐던 가수들을 꼽았다.커뮤니티센터에서 커피 한잔을 마신 뒤 돈의문박물관마을 방문을 마무리하려고 대로변으로 이동했다. '고스트타운레코즈' 간판이 걸린 1층 점포가 눈에 들어왔다. 고스트타운레코즈는 음악가, 퍼포머, 디자이너들이 본인의 작품 소개와 홍보,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쇼케이스 형태의 공간으로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새로 시작한 음악, 예술 프로젝트다.고스트타운레코즈에서 싱어송라이터 이인혜가 이끄는 드림팝 밴드 '변화무쌍'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도심 대로변에서 홍대 인디밴드의 공연을 무료로 관람하게 되어 반가웠다. 13㎡(4평) 규모의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변화무쌍'이 발표한 2장의 앨범을 구입해서 들어봤다. '바람'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는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은 더 이상 하나의 공간에 하나의 장르나 형식을 다루는 것이 무의미하게 된 데서 생겨난 것'이라는 어느 신문 기사에 공감한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서울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역동적인 복합문화공간이 공연문화도시 대구에서도 늘어나길 소망한다.

2018-09-27 15:28:13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택민(澤民)선생 옛이야기

택민은 김광순 경북대 명예교수의 아호이다. 한문학의 거두였던 고 연민(淵民) 이가원 연세대 교수가 선사했다. 택민(澤民)은 '사람들에게 베풀다'라는 뜻이다. 그는 평생 모은 자료로 이 분야를 전공하는 후학들에게, 나아가서 우리 모두에게 혜택을 베풀고 있다.그는 반세기 동안 우리 옛이야기들을 수집·정리·분석해 왔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지(韓紙)에 붓으로 쓴 옛이야기 500편을 모아 84권의 고소설전집으로 출판했고 정리가 덜 된 것도 300여 편이나 있다. 출판된 것 중에는 오일론심기, 승호상송기와 같은 10여 종의 국내 유일본과 남계연담, 미인도와 같은 20여 종의 희귀본도 포함되어 있다. 정리가 덜 된 자료를 놓고는 아직도 그는 씨름하고 있다. 한마디로 택민의 문헌은 고전문학의 보고(寶庫)이다.그는 필사본 고소설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 고소설이 발견되면 값에 상관 않고 수집했다. 소장자가 기증해 줄 때도 있었다. 그런 경우엔 작품 해제 속에 내력을 세밀하게 밝혔다. 기증을 받을 수 없을 때는 월급 전액을 들여 구입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구매도 불가한 경우에는 복사본을 만들어 보관해 왔다. 이렇듯 긴 세월 동안 자료 수집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다.택민이 수집한 자료는 전달 매체의 특성에 따라 오페라, 연극, 영화, 만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자료의 문학, 교육 및 경제적 가치는 지대하다. 고유한 문화유산이고, 국어국문학 연구에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초석이며, 문화 콘텐츠 산업 육성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고소설을 현대국어와 외국어로 옮기는 작업과 자료의 보존 및 연구를 위한 공간과 인력을 확보하는 숙제는 남아 있다. 정부가 자료의 가치를 인정하고 과제를 해결하는데 발 벗고 나서길 바란다.그가 설립한 택민국학연구원의 학술지 「국학연구론총」은 지난 11년간 21집까지 발행됐다. 600여 명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학회가 되었고 여기서 간행되는 학술지는 한국연구재단이 공인한 등재지가 되었다. 한국은 물론 미국'중국'일본을 비롯한 세계 70여 개국의 한국학 연구기관들이 구독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부가 공인한 등재지가 되어 외국의 연구기관들까지 독자로 두게 된 연구원(院)의 성취에 박수를 보낸다.필자는 40년 전에 택민 선생의 강좌를 수강한 적이 있다. 하루는 조식의 '칠보시'(七步詩)를 일필휘지한 후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했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어찌 이다지 급히 삶아대는가/" 조조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조비는 동생 조식을 불러 "네가 시를 잘 짓는다고 하니, 내가 '일곱 걸음'(七步)을 걷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중벌을 내리겠다"고 했다. 이때 조식이 지은 시이다. 원문에 나오는 '동근생'(同根生)은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자매'를 뜻한다.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동근생인 '콩'과 '콩깍지' 간의 달라진 운명에 비유한 시이다. 이렇듯 택민 선생은 제자들의 인성교육에도 열정을 보였다.추석이다. 뿌리(根)인 부모와 조상께 감사하고, 동근생(同根生)끼리 정을 나눌 때이다. 더불어 우리 것, 그중에서도 옛이야기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18-09-19 15:50:24

하응백 문학평론가

[광장]세종 7년 한 갖바치의 죽음

세종 7년(1425년) 가죽신을 만드는 이상좌라는 사람이 집 앞의 홰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개국 초기부터 조선 조정은 화폐개혁에 착수했다. 고려 때부터 화폐를 만들어 거래에 사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으나 거의 실패를 했기에, 태종은 종이돈인 저화(楮貨)를 본격적으로 유통시켰다. 하지만 저화의 화폐 가치가 날로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태종은 "나중에 명군이 나오면 이를 시행할 것이다(後有明君出而行之)"라는 말을 남기며 저화 유통 정책에서 한 발 물러났다. 세종은 아버지의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로운 시도를 했다. 저화와 함께 조선통보라는 동전을 제조하여 온 백성이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세종 5년부터 조선통보를 제작, 유통에 착수해 세종 7년 2월 18일 공식적으로 이를 사용하게 했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백성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백성들은 포나 쌀로 교환하는 관습을 바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에 세종은 벌금이나 세금도 조선통보를 내도록 했으며 일반 소액 상거래에도 반드시 조선통보를 사용하도록 했다. 만약 상인이나 장인들이 조선통보를 사용하지 않으면, 중범은 사형에 처하고 경범은 장 100대에 가산 몰수 후 수군(水軍)에 편입시키도록 하는 어마어마한 처벌 조항을 함께 제시했다. 이런 조치가 시행된 직후에 갖바치 이상좌는 자신이 만든 가죽신을 쌀 1말 5되와 바꾸었다가 돈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시서(京市署·상인 및 시장 감독관청)에 잡혔다. 법대로 하자면 가죽신을 팔아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쌀을 사야 했으나 그는 관습대로 거래했던 것이다. 경시서에서는 이상좌의 나이를 감안하여 곤장을 때리지 않고 8관의 벌금을 내도록 했다. 가난했던 이상좌는 이웃에게 빌려 1관의 벌금을 냈으나 경시서의 독촉이 계속되자, 자살로 삶을 마감해 버렸던 것이다. 이 사건을 보고받은 세종은 깜짝 놀라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나라에 입법(立法)한 것은 돈을 많이 이용하도록 하려는 것이지 사람을 죽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상좌가 죽은 것은 반드시 경시서에서 가혹하였기 때문이니 내 마음이 아프다. 너희는 그 실정을 조사하여서 아뢰어라. 만약 가혹하였다면 죄를 용서하지 않겠다." 더불어 이상좌의 집에 쌀 3섬을 주고, 받았던 속전은 되돌려 주도록 명했다.(1425년 8월 23일 실록) 국가의 재정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의 삶을 기름지게 하려 했던 태종과 세종의 화폐개혁은 결국 실패했다. 숙종 대에 이르러 상평통보가 주조되면서 태종과 세종이 그토록 바랐던 동전화폐의 유통은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라의 새로운 정책이 백성을 위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정책 입안자의 의욕이나 논리적 당위성만으로는 백성들의 삶이 실제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책의 입안이나 입법도 중요하지만, 세종도 그랬듯이 그 시행 과정에서의 부작용을 세심히 살피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부작용이 심하다면 그 입안 자체를 무효화할 수도 있어야 한다. 세월이 몇 백 년 지났어도 그러한 원칙은 변함이 없다.

2018-09-13 11:15:59

권은태 사)대구콘텐츠플랫폼 이사

[광장] 청년이 안 보인다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어떤 교수가 새로 산 컴퓨터를 두고 "왜 야후가 안 깔려 있느냐?"며 역정을 냈다. 막 설치를 끝내고 자리를 뜨려던 컴퓨터 기사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 게 아니라고, 웹사이트는 소프트웨어와는 다른 거라고 잘 설명해야 하는데 하다 보니 자꾸 변명처럼 되고 말았다. 결국 하릴없는 사과와 함께 웹브라우저의 초기 화면을 '야후'로 바꿔 놓고서야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말, 포털 사이트 '야후'의 위상이 그랬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야후는 삼위일체처럼 거의 동급에 가까웠다. 그때쯤이었다. 대한민국의 한 청년 기업이 좀 별난 광고를 냈다. 광고의 헤드카피가 '이순신 장군님, 야후는 다음이 물리치겠습니다'였다. 사실 그걸 처음 본 순간 피식 웃고 말았다. 가당찮은 만용이나 치기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게 조금씩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야후코리아는 그들에게 밀리고 또 다른 한국의 청년기업 N사에도 계속해서 시장을 빼앗겼다. 그리고 2012년 말, 검색 시장 점유율 0.25%라는 초라한 성적을 끝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그렇게 말도 안 돼 보이던 일이 진짜 일어난 것이다. 현재 이 토종 기업에는 2천 명이 넘는 청년들이 일하고 있다. 또, 그런 적도 있었다. 미국 B사가 출시한 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세계적인 대박을 터뜨렸다. 혁신적인 콘텐츠와 기술로 게임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고 스스로 e-스포츠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PC방이라는 새로운 업종의 탄생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동시에 프로게이머라는 직업도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스타'로 시작하는 이름의 이 게임대회를 한국의 청년들이 모조리 석권하다시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청년들은 그걸 능가하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겠노라며 덤벼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B사의 독점적 지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의 청년 기업들은 게임 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고 B사가 지배하던 게임 시장은 군웅할거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현재 이 청년 기업들은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다. 한때,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인터넷과 콘텐츠 산업에 뛰어든 적이 있다. 막강한 자본과 조직으로 게임 퍼블리싱 분야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없다. 그들이 자랑하던 포털 사이트들은 이제 이름조차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살아남은 기업은 오직 그때의 그 청년들이 세우고 끌어온 회사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야후와 맞장 뜨던 그런 청년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꽤 오랫동안 그랬다. 미국의 청년들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중국의 청년들은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축했지만 한국의 청년들은 내내 아프고 힘들기만 하다. 미국의 청년 기업 알파벳(구글의 모기업)에 대항하는 이도 여전히 '그때의 청년', 지금의 장년들이다. '오늘의 청년'들은 대신 '구글 입사'를 꿈꾼다. 정부는 날마다 혁신성장을 말하지만 늘 그랬듯 혁신은 청년정신과 도전에서 비롯된다. 공무원시험과 대기업의 문만 두드리는 절대다수의 청년들에게 몇 달 더 버틸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는 청년도 구하지 못할뿐더러 성장의 새로운 동력 또한 얻지 못한다. 청년을 가르는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정신이다.

2018-09-06 15:47:49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삿포로에서 보낸 여름 휴가

지난달 삿포로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김해공항과 아사히카와공항을 이용하는 패키지여행이었다. 김해공항에서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의 콘서트 화보가 실린 롯데면세점 잡지를 챙겼다. 아사히카와공항은 수하물 찾는 곳의 높이가 낮고 청결해서 좋았다. 최근 공항 입국장 면세점 설치가 거론되고 있다. 인천공항 KTX 운행이 중단되면 해외에서 인천공항을 거쳐 대구공항에서 입국하는 '환승 전용 내항기' 승객이 늘어날 것 같다. 내항기 운항 편수가 적어서 인천공항 면세구역에서 장시간 대기해야 한다. 환승 전용 내항기 승객에게 출국장 면세점 이용을 허용하면 좋겠다. 삿포로에서 열린 '홋카이도 명명 150주년 기념식' 행사에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참석했다는 소식을 현지 신문에서 접했다. 1871년 미국 농무부 장관을 역임한 호레스 케프론을 고문으로 초빙해 홋카이도 개발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가이드의 설명은 정확했다. 2년 전 삿포로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삿포로 쿠우'에서 오카모토 마요(岡本真夜)의 피아노 연주회를 관람했다. 삿포로 쿠우는 25평 규모의 라이브 음악 공연장으로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서 좋았다. 음반을 구입하면 공연이 끝난 뒤 뮤지션과 악수하면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 7월 유원대학교 실용음악과 양하영 교수의 콘서트를 관람했다. 공연이 열린 서울 삼익악기 엠팟홀은 아늑한 분위기가 삿포로 쿠우와 비슷했다. 양하영은 가슴앓이, 갯바위 등 왕년의 히트곡과 자신이 작곡한 최신곡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를 열정적으로 불렀다. 함께 무대에 오른 김수한의 색소폰 연주도 깊은 감동을 줬다. 대구찬가를 만든 길옥윤 선생(1927~1995)의 색소폰 연주를 듣고 싶어졌다. 길옥윤 선생의 친필 사인이 담긴 '그 세월이 아쉬워도·1990년' 앨범을 구했다. 삿포로의 추억을 회상하는 길옥윤 선생의 글이 '당신만을 사랑해' 가사와 함께 실려 있었다. '나는 이 도시를 사랑했다. 가을밤이면 강냉이 굽는 냄새가 마로니에와 플라타너스가 늘어선 거리로 번져 나왔고, 삿포로 라면을 파는 포장집의 등불이 정겹게 밝혀졌다. 겨울이면 세상을 덮을 듯이 눈이 쏟아져 이 감상적인 이국 사내를 한없이 걷게 했다.' 비에이의 대표적인 전망 화원인 '시키사이노오카'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여행 예능프로그램인 '플랜맨 뉴비기닝' 북해도 편 촬영을 위해 은지원, 장수원, 달샤벳 수빈이 작년 7월 이곳을 방문해 마스코트 롤군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이 입구에 게시되어 있었다. 지난 3월 걸그룹 블랙핑크가 제주도를 여행하는 모습을 TV로 시청하면서 홍보 효과가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에서도 그런 장면을 자주 보고 싶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2001년 개장한 삿포로돔은 축구와 야구 경기를 모두 개최할 수 있는 돔구장이다. 롤링 스톤스, 에어로스미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콘서트가 열렸고 한국의 빅뱅과 동방신기도 이곳에서 공연을 펼쳤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냉방 복지'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시원한 실내에서 스포츠 경기와 각종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도시가 부럽다. 더위도 식힐 겸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삿포로를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2018-08-30 14:23:11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간송(澗松), 계곡 물가의 솔

형필이란 이름은 조부가 지어 주었다. '형'(鎣)은 '줄'로 '거친 쇠를 갈아 매끈하게 하는 공구'이며 '필'(弼)은 도지개로 '뒤틀린 활을 바로잡는 틀'이다. '거친 것을 갈아 빛을 내고 뒤틀린 것을 곧게 펴는 연장'이 되라는 선대(先代)의 기원을 담았다. 스승인 위창은 '간송'이라는 아호를 선사했다. '간'(澗)은 '계곡물 간'자이다. 그래서 간송은 '계곡 물가의 솔'이다. 한문학자 황위주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추적해 보면, 송나라 시인 황정견이 스승인 소식의 사람됨을 칭송한 시에 '청송출간학'(靑松出澗壑)이 나온다. '푸른 솔이 물 흐르는 계곡에 솟아 있으니'라는 뜻이다. 첫 자와 끝 자를 지우면 '송출간'이 된다. 여기에 '출'자를 지우고 글자 순서를 바꾸면 '간송'이 된다. 간송 전형필, 줄(鎣)과 도지개(弼)로 살아, 계곡 물가에 선 솔이 되었다. 그의 초년의 삶은 믿기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작은집으로 입양되었고 열 살에서 스무세 살 사이에 본가와 양가의 모든 어른들이 돌아가셨다. 생의 근본 문제인 '나는 누구이며 무엇하고 살 것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2천644만6천여㎡(800만 평) 이상의 땅을 상속받았다. 이제 '유산을 어떻게 잘 관리하고 쓸 것인가?'라는 숙제까지 맡게 되었다. 입양과 가족들의 죽음 앞에서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생의 이치는 이미 깨치고 있던 터였다.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제국주의적 약육강식의 물결이 세상을 휩쓸고 있었다. 열강들은 약소국의 영토를 식민지화했으며 문화재를 마구잡이로 수집했다. 그렇게 수집된 유물은 런던, 파리 등지의 박물관을 지금도 가득 채우고 있다. 경술국치로 국권을 잃은 우리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일제 도굴꾼과 영리 목적의 수집가들은 문화재 반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와세다대학을 1930년, 24세에 졸업한 간송은 그런 모습을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보고 들었다. 다 털려 빈 깡통이 된 나라를 후대에 물려줄 수는 없었다. 그의 뜻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았다. 역사와 민족의식을 심어준 월탄,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워준 춘곡, 심미안을 길러 주었고 문화재가 곧 '민족의 혼'임을 일깨워 준 위창 등 많은 분들이 있었다. 그는 문화재가 만들어진 시기, 당시의 평가, 그리고 가격에 상관 않고 수만 점을 수집하였다. 그중엔 훈민정음 해례본같이 훗날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많은 문화재도 포함되어 있었다. 보존하는 일은 더 어려웠다. 6·25 발발 사흘 만에 서울은 적의 수중에 넘어갔다. 유물을 보화각(현 간송미술관 전신)에 남겨둔 채로 납북을 피하기 위해 그곳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은신했다. 보화각을 지켜보며 9·28 서울 수복 때까지 아흔이틀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가 살았던 을사늑약 이듬해부터 5·16 이후까지, 그가 터 잡은 계곡의 물은 거셌다. 비라도 쏟아지면 거침없이 불어난 물이 그의 종아리를 후려쳤다. 쓸려 가지 않으려, 않으려고 기슭을 향해 휘어져 버티다 아침을 맞았다. 그렇게 지켜낸 것들 중에서 조선 회화 명품을 9월 16일까지 대구미술관에 전시하고 있다. 거기 간송이 있다. 그는 정선의 삼부연과 박생연 같은 산수화 속 맑은 물가에서 솔이 되어 우리를 반기고 있다.

2018-08-23 11:40:47

하응백 문학평론가

[광장]대프리카의 사하라, 동대구역 광장

올여름 뭐니 뭐니 해도 최대의 화제는 더위다. 아니 더위보다는 폭염이라고 해야 적당할 것 같다. 1907년 근대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올해는 연일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 올림픽 신기록이 경신되듯 계속 신기록이 세워지면서, 한편으로는 신기록 행진에 어쩔 수 없이 평등하게 동참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해지기도 한다. 더위하면 역시 대구다. 강원도 홍천이 신기록을 작성했다지만, 꾸준히 오래도록 그리고 역사적으로 대구는 폭염의 도시였다. 오죽하면 대프리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폭염의 도시를 상징하는 달걀 프라이 조형물까지 만들었겠는가. 서울에서 뜨거운 여름에 주위를 잘 살펴보면, 유독 더위를 잘 참는 사람들 중에는 대구 출신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사람들이 덥다고 연신 땀을 훔쳐대면, 대구 출신 족속들은 '뭐 이 정도 가지고 호들갑을 떠나'면서, 무표정하게 인내한다. 그러면서 자긍심을 가진다. 서울의 더위 정도는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다는 그 강건한 자긍심. 한때 경북고나 대구상고의 야구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통합 우승에서 자긍심을 드러냈듯이, 이제는 패배하지도 않고 해마다 찾아와 대구를 뜨겁게 달구는 그 폭염에서 대구 출신들은 생뚱맞은 자긍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 자긍심은 긍정적으로 본다면, 타향살이의 삶의 혼탁 속에서도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대프리카 출신이니만큼, 대구의 폭염도 잘 견뎌냈듯이, 어려운 일도 참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 사람으로서 동대구역 광장에 대해 한마디 말할 게 있다. 냉방이 잘 된 KTX 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기 위해, 이제 공사가 끝난 동대구역 광장을 한여름 오후에 가로질러 가 본 적이 있는가? 역사에서 광장으로 나오자마자 훅 숨이 막힌다. 곧이어 온 몸의 땀샘에서는 물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그늘 하나 없는 동대구역 광장의 그 삭막하고 넓은 콘크리트 덩어리는 대프리카 중의 대프리카, 대프리카의 사하라다. 대구 사람이 아닌, 함께 간 내 안의 '서울 사람'이 그 광장을 가로질러 택시를 타고나서 내뱉은 일성(一聲)은 '역시 대프리카,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대구는 대구의 대표적인 관문인 동대구역에서부터 이렇게 방문객들에게 대프리카의 '본때'를 보여준다. 그 '서울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아예 동대구역 광장에 모래를 깔아 낙타 두어 마리 가져다 놓고 대구를 상징하는 '사하라 체험' 관광 상품을 개발하든지, 아니면 나무도 심고 차양막을 설치해 그늘도 만들지. 곳곳에 다양한 분수를 설치해 분수 광장으로 만들어도 좋고, 분수가 많으면 밤에는 시민들이 새로 생긴 백화점에 왔다가 광장에서 놀 수도 있을텐데. 그 광장에서 대구가 자랑하는 '치맥'을 팔아도 좋을텐데. 밤에는 분수에 조명을 예쁘게 설치하면 교통 편리한 대구의 새로운 명소가 대구 시민뿐만 아니라 외지인도 끌어들이는 관광 상품도 될 수 있을텐데…."

2018-08-15 18:31:3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플래폼 이사

[광장] 대한민국 첫 번째 사람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다. 일본은 조선의 해안을 탐사하고 항구를 사용할 권리를 얻었다. 조선은 부단히 노력하여 '일본을 황제의 나라로 명기하지 않는 것'을 얻어냈다. 조선의 관리는 '일이 타당하게 되었다'고 했고 조선의 조정은 그들이 무엇을 잃게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조선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그해 1876년 여름, 황해도 해주의 한 가난한 부부가 어렵게 아들을 얻었다. 난산이었고 젖조차 마음껏 물릴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도 아이는 자못 굳세었다. 서너 살 무렵엔 천연두를 이겨냈고 예닐곱에 이르자 둘도 없는 개구쟁이가 되었다. 하루는 부러진 숟가락을 가져오면 엿을 준다는 엿장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선 아버지의 멀쩡한 숟가락을 부러뜨려 꾸중을 들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엔 장맛비로 마당에 작은 도랑 두 개가 생겨나자 집에 있던 염색 통 두 개를 꺼내와 통째로 들이부었다. 그리고 물길이 합쳐지는 곳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이 서로 만나는 장관을 즐기다 어머니에게 끌려가 매를 맞기도 했다. 돌아보면 누구나 그렇듯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그러나 좋은 날들은 거기까지였다. 집 안은 반상의 차별에 짓눌렸고 나라는 외세의 침탈에 허덕였다. 아이는 일찍 철이 들었고 어린 나이에 세상으로 들어갔다. 뜻을 세워 맹렬하게 공부했으며 사람을 대할 땐 진심을 다했다. 옳은 일을 하려 애썼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 분투했다. 그러나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신산한 삶이 계속되고 아이는 소년이, 소년은 어른이 되었다. 그동안 나라는 끝없이 기울다 기어이 일제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그때부터였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긴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세 차례의 투옥과 무수한 형벌, 그리고 모진 고문으로 온몸이 찢기고 부서지기를 반복했고 망명 생활 27년 동안 갖은 풍파와 시련을 겪어야 했다. 가족도 온전하지 못했다. 하나뿐인 딸아이가 일곱 살 나이로 눈을 감을 때 그는 형무소에 갇혀 있었다. 타국을 전전하다 아내를 잃었고 아들마저 그를 따르다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하루도 성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 헌병에 끌려가 밤새 매달려 매질을 당하면서도 '나는 이들처럼 밤을 새워가며 독립운동을 했던가?'라고 자문할 만큼 늘 스스로를 다잡았다.일제가 패망하고 몇 달 뒤, 그는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편할 날이 없었다. 미처 빼내지 못한 총탄과 온갖 상흔을 몸에 지닌 채 조국이 남북으로 동강나는 것을 막으려 동분서주하다 끝내 흉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죽자 흰옷 입은 사람들이 길마다 거리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백만의 상주가 상여를 따랐고 걸음걸음 사람들이 애달피 울고 또 울었다. 노산 선생이 조사를 지었다."어허 여기 발 구르며 우는 소리/ 지금 저기 아우성치며 우는 소리/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이 겨레 이 강산이 미친 듯 우는 소리를/ 임이여 듣습니까?/ 임이여 듣습니까?"그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햇살처럼 따스했다. 평생을 배우고 또 가르치며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이 문화가 꽃피는 나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첫 번째 대한민국 사람, '백범 김구'였다. 다시 광복절이다.

2018-08-09 13:48:06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 손에 손잡고 홍화자

지난 7월 7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제3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 개막작 '씨네라이브: 손에 손잡고'를 관람했다. 임권택 감독의 88서울올림픽 공식 기록영화를 처음으로 접했다. 조동희, 조동익 음악감독의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30년 전 올림픽 현장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조동희 음악감독과 장필순, 문제호가 함께 부른 '손에 손잡고'는 진한 여운을 남겼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 가을학기에 나는 경희대 한의대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의 철학사 강의를 청강했다. 심오한 동양철학의 언어로 올림픽을 해석하는 영화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학창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먼 훗날 영화 '손에 손잡고'가 우주보(宇宙寶)로 자처했던 도올 선생의 천재성을 뒷받침해 주는 작품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손에 손잡고'를 다시 보고 싶었다. 통나무출판사에 문의를 했지만 관련 자료가 전혀 없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에서 1912년부터 2012년까지 제작된 올림픽 기록영화를 DVD와 블루레이 세트로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이 비싸지만 3편의 서울올림픽 공식 기록영화를 살펴보고 싶어서 아마존에서 주문을 했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손에 손잡고'를 열창했던 코리아나의 근황이 궁금했다. 4명의 멤버 중 여성 리드싱어였던 홍화자씨는 대구 출신이다. 남서울대 실용음악학과 김석원 교수의 도움으로 연락이 닿았다. 암 진단을 받았지만 적극적인 치료로 극복했고, 코리아나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요즘도 봉사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했다. 홍화자씨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출신 학교로 최근 화제가 된 대구 남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60년 경북여고 재학 중에는 2·28 민주운동 시위에 참여했다. 2004년 발표한 홍화자의 솔로 앨범에는 '손에 손 잡고'와 함께 어린 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멋진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88서울올림픽 공식주제가인 '손에 손잡고'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조르지오 모로더가 만든 곡이다. 아이린 카라의 'What a Feeling'도 그의 작품이며 서울올림픽과 인연이 있다. 서울올림픽 공식문화행사로 1988년 9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88서울국제가요제'에서 아이린 카라는 'What a Feeling'을 불렀다. 아이린 카라는 나나 무스꾸리, 조용필, 패티김 등 국내외 인기가수와 함께 '손에 손잡고'도 불렀다. '손에 손잡고'의 주인공인 코리아나는 서울, 부산 등 여러 도시에서 공연을 펼쳤지만 대구에서는 단독 콘서트가 열린 적이 없다. 로열 앨버트홀은 런던에 위치한 영국 최대 규모의 콘서트홀이다. 영국 BBC 방송에서 주최하는 세계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가 열리는 곳이다. 팝송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데뷔 60주년 공연도 10월에 예정되어 있다. 1988년 11월 미스월드 선발대회가 열린 로열 앨버트홀에서 코리아나는 '손에 손잡고'를 열창했다. 지난 달 '위풍당당, 영국을 만나다!'를 주제로 열린 '서머 페스티벌 인 대구' 공연을 관람했다. 범어대성당 드망즈홀에서의 공연이 특히 인상 깊었다. '듀오 비비드'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음악과 어울리는 회화 작품이 스크린에 소개됐다. 영화와 음악의 만남이 이곳에서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틀스의 명곡을 감상하면서 더위를 식힐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대구에서도 위풍당당하게 '손에 손잡고'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18-08-04 05:0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마음과 말

사람에게서 몸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마음'이다. 마음은 몸이라는 그릇에 담긴 정신 또는 의식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허전하고, 때로는 기쁘다. 보이지 않아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귀중한 우리 몸을 이리저리 몰고 다닌다. 그래서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탄식할 때가 많으며, 같은 이름의 가요와 영화까지 나왔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말과 행동을 통해서다. 몸짓, 표정 등과 같은 행동은 보조 수단이며 마음을 표현하는 주된 도구는 말이다. 그래서 철학자 라이프니츠(Leibniz)는 말을 '마음의 거울'이라 했고, 언어학자 촘스키(Chomsky)도 그의 글을 인용하면서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 말인 것이다. 마음과 말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표현이 많은데, 그중에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한자어를 살펴보자. 예로부터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아왔던 말이다. 신(身)과 언서판(言書判)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과 그리고 마음이 지닌 능력 3가지를 중요도에 따라 열거한 것이다. 몸이 없으면 언서판(言書判) 자체가 불가능해지므로 신(身)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몸을 제외한 마음의 3가지 능력, 즉 말하기, 글쓰기, 그리고 판단력 중에서는 말하기를 제일 앞자리에 두었다. 이처럼 마음과 말, 그중에서도 말의 중요성은 예부터 늘 중시되어 왔던 것이다. 마음과 말, 이것은 개인과 집단의 흥망과 성쇠를 좌우하며, 행복에 이르는 수단이며,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 학생들에게는 공부를 잘하는 비결이 된다. 언어 과목뿐만 아니라 외국어, 사회 및 과학 탐구, 그리고 수학까지 몽땅 '언어'로 작성된 과목들을 공부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을 편하게 하는 법, 자신의 주장을 펴는 법, 남을 설득하는 법, 장사를 잘하는 법, 유머와 위트로 사랑을 받는 법과 같은 세상사 모든 것이 결국 마음과 말인 것이다. 그런데 마음과 말이 항상 친하다면, 그래서 같이 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말이 마음의 거울이 되는 것은 말을 하는 사람이 진실을 말할 때에만 그러하다.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말은 들리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남이 듣는 말은 조심하면서도 남이 볼 수 없는 마음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서 마음과 하는 말이 다른, 다시 말해서 거짓을 말하는 상황에 처할 수가 있다.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한 선의의 거짓말, 즉 예법(禮法)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은 도리어 권장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악의적인 거짓말은 절대 삼가야 한다. 그러한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진실한 삶을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경계하여 마음과 말이 따로 노는, 즉 악의적 거짓말을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사정(思正), 바른 것을 생각하고, 언정(言正), 바른 것을 말하는 것이 그러한 상황을 피하는 길이다. 그리고 바르게 표현한 것을 실천까지, 즉 행정(行正)까지 하면, 가히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 신오현은 '선(禪)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되도록 부단히 정진(精進)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선(禪)은 모든 이가 추구해도 좋은 삶의 지향점이 될 것이다.

2018-07-28 05:00:00

하응백 문학평론가

[광장]경북여고 여학생의 일기

여학생의 일기하면 '안네의 일기'가 떠오른다. 나치 점령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은신처에서 숨어 지냈던 유대인 안네가 약 2년 동안 기록한 일기다. 은신처가 발견되어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간 안네는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3월경, 장티푸스에 걸려 16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안네의 일기'는 2차 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로 번역되어, 전체주의의 폭압과 인간의 자유를 환기하는 교과서 구실을 했다. 그녀는 일기에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라고 썼다. 폭압의 종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한국판 '여학생의 일기'도 있다. 일본 동지사대학의 오타 오사무 교수는 2007년 서울의 한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대구의 한 여학생의 일기를, 2013년 '식민지 조선의 일상을 묻다'라는 책자를 발간하면서 소개했다. 대구교육박물관에서는 개관기념으로 일본어로 되어 있는 이 일기를, '여학생의 일기'란 이름으로 지난 6월 번역 발간했다. '소심'이라는 이름의 이 여고생은 경북여고의 전신인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당시 이 학교는 4년제였다. 일기를 보면 이 여학생은 4학년 학생으로 졸업 후 경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기가 작성되던 1937년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도발하던 바로 그 해. 대구의 여학교에서도 일제는 전시동원 체제를 가동하고 황국식민화를 위해 여학생까지 총력으로 동원하고 있었음을 일기는 증언하고 있다. "오늘 가사 시간에 재봉을 했습니다. 추위가 다가오는 중국에서 싸우는 용사는 여름옷 한 벌 뿐이니 경북의 위문품으로 조끼를 드리고자 해서 그 재단을 했습니다."(10월 9일) "우리들이 노력해서 바느질한 끝에 벌써 512벌의 조끼를 완성했습니다."(10월 16일) 당시의 조선 여학생까지 군수물자 조달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봉사라 이름하여, 일본인 교장과 담임은 수시로 여학생들을 독려하고 채근했다. 일인당 10전씩 돈(애금헌금)을 거두어 군용 장갑을 제작하게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황국신민의 서사, 전우의 노래와 일본 육군가를 외우게 하고, 각종 일제 관용 행사에 학생들을 수시로 동원했다. 반장이었던 이 여학생은 선생님들의 말을 적극 수용하고 애국하려고 노력했다. 바로 그것이 지금의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안네는 비록 쪽방에 갇혀 있기는 했지만 자유로운 상상으로 일기를 썼다. 하지만 이 여학생은 일기마저 일본인 선생에게 검사를 받아야만 하는 처지였다. 담임은 일기에 도장을 찍어주고 격려의 코멘트를 달았다. 일제의 검열 혹은 사상통제는 작가나 지식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이 일기는 전 교육기관을 통해 전체 조선인의 정신을 통제하려 했던, 일제의 치밀한 사상통제에 대한 기장 기초적이면서도 명백한 증거자료라고 할 수 있다. 후배가 말을 안 들어 속상해 하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시험을 망쳤다고 허탈해 하기도 하는 이 여학생의 1937년 12월 8일 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황군의 그 아픈 몸, 괴로움, 힘듦에 동정하는 마음이 일어나며, 함께 남경 함락을 기뻐했습니다." 그로부터 5일후, 일본군이 난징에서 대학살을 자행된 것을 역사는 또한 기록하고 있다.

2018-07-21 05:00:0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플랫폼 이사

[광장]보수와 진보 타령

이렇지 않았다. 이런 적도 없었다. 이렇게 눈만 뜨면 온통 보수 아니면 진보로 세상이 가득 찬 적이 없었다. '보수'란 말은 사회적으로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말은 아니었다. 그게 불과 2년 전이었다. 그런데 벌써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지금은 TV도 신문도 인터넷에도 '보수' 또는 '진보'가 안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다. 명칭부터 그렇다. 보수 매체, 보수 정당, 보수 지지층, 보수 또는 진보적 기업과 학자, 예술가까지 그동안 이 말을 안 쓰고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다. 이젠 사람과 세상, 사람의 일과 세상의 모든 일이 진보와 보수의 기준으로 나뉘고 보수와 진보의 논리로 설명되고 가치가 매겨지는 것처럼 보인다.사실, 진보와 보수라는 말이 이렇게 성행하게 된 데는 한 라디오 방송 진행자의 역할이 컸다. 이젠 학자들도 앞 다투어 보수와 진보를 말하고 여론조사기관은 보수층과 진보층의 지지율 추이와 상관관계를 자세하게 분석해 결과를 발표한다. 이런 식이라면 세상에 남녀가 있듯이 우리 사회엔 '보수'와 '진보'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는 셈이다. 만약 그 밖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중도'로 분류될 것이다.난감하다. 세태가 이런데도 지금 당장 누가 혈액형 묻듯이 "넌 뭐냐?"고 하면 정확히 답을 할 수가 없다. 보수가 뭔지 진보가 뭔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겸연쩍은 마음보다 몇 가지 따져보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돌이켜 보면 진보가 뭔지, 보수가 뭔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따로 배운 적이 없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만 빼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어디 가서 공부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명확히 그게 뭘 뜻하는지 난 아직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이토록 짧은 기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알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예전엔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릴 것 없이 자기들이 바로 서민의 대변자라 했다. 그런데 지금은, 특히 우리 지역에 연고한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보수의 대변자'라고 말한다. '보수의 마지막 보루에서 위기의 보수를 구해 내겠다'고도 한다. 다만 그 보수의 가치가 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정치적 '보수주의' 또는 '진보주의'는 유럽과 미국인들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빚어낸 인간과 인간의 삶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에 관한 '그 무엇'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집단 구성원이 지녀야 할 태도나 마음가짐과 관련해 학교에서 배운 건 '국기에 대한 맹세'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다음으론 '나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이 떠오른다. 그뿐이다. 토리당과 휘그당의 면면을 배운 적이 없고 미국 건국 초기 '연방주의자'들의 이상과 철학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이 지녔던 생각의 내력이 우리의 역사와 정치문화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다양성의 확산'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의 핵심 가치임에도 '혼연일체'만을 강조하다 급기야 가당치도 않은 '보수 혁명'까지 외치는 걸 보면 저 보수지킴이들 또한 보수가 뭔지 알기나 할까 싶다. 우리에겐 오랫동안 건전 세력과 불건전 세력, 아니면 민주와 반(反)민주주의자들이 있었을 뿐이다. 느닷없는 보수와 진보 타령은 나라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 아니고 우리를 태우고 갈 양 날개도 아니다. 단지 그렇게 보이려는 속임수일 가능성이 크다.

2018-07-14 05:00:00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 인디밴드 콘서트 락락락

지난 6월 14, 15일 저녁 '인디밴드 콘서트 락락락'이 개최된 대구문화예술회관 숲속공연장을 찾았다. 첫째 날 출연한 '락키즈'(Rock Kids)라는 효성초등학교 록밴드가 궁금했다.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에 창단한 스쿨밴드다. 무대에 오른 여섯 명의 락키즈 멤버는 모두 여학생이었다. 여성 록밴드는 해외에서도 흔하지 않다. 락키즈는 영국 가수 아델(Adele)의 대표곡인 'Rolling in the Deep', 걸그룹 트와이스의 'CHEER UP',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등의 노래를 들려줬다. 최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트와이스의 단독 콘서트가 떠올랐다. 댄스가 없더라도 독특한 음색의 록밴드 연주를 가까이서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난 5월 미국 뉴욕에서 뮤지컬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을 관람했다. 다양한 피부색의 아역 배우들로 구성된 록밴드가 기타, 드럼, 키보드를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대구의 락키즈가 '스쿨 오브 락'에 나오는 밴드와 실력을 겨뤄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3명의 친자매로 구성된 여성 록밴드 '하임'(HAIM)의 공연을 참관했다. 관객들은 뜨겁게 환호했다. 기타를 연주하던 여성 멤버가 환상적인 드럼 연주 실력을 보이기도 했다. 라디오시티 뮤직홀은 6천 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는 대규모 공연장이다. 10년 전 조용필은 국내 가수로는 최초로 이곳에서 공연했다. 인디밴드 콘서트 둘째 날 공연은 싱어송라이터 조진영의 무대로 시작됐다.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흘러나왔다. 조동희가 가사를 쓰고 조동익이 작곡한 이 노래는 조진영이 무대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사가 무척 아름다운 곡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기록영화 '손에 손잡고'가 이번 주말 열리는 제3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 개막식에서 처음으로 일반 관객에게 공개된다. 임권택 감독과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함께 만든 기록영화다. 조동희, 조동익 음악감독은 '손에 손잡고' 영화를 라이브 음악으로 재창조한 무대를 선보인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DAC 인문학극장 등 다양한 장르의 수준 높은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공연이 펼쳐진 숲속공연장은 분위기는 좋았지만 날씨가 추워서 아쉬웠다. 첫날 무대에 오른 '슬로십'은 "추우시죠. 덜덜 떨다 올라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둘째 날 '밴드카노'도 무대에 올라와서 생각보다 너무 춥다고 말했다. 인디밴드 콘서트가 열린 주말에 월드컵 특집으로 꾸며진 'SBS 인기가요'를 시청했다. 여성 듀오 밴드 '볼빨간사춘기'가 '여행'이라는 노래로 아이돌 그룹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TV 방송 출연을 거의 하지 않고 이룬 쾌거다. 인디밴드 특유의 감성이 듬뿍 담긴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볼빨간사춘기의 멤버 안지영과 우지윤은 경상북도 영주 출신이다. 볼빨간사춘기의 1위 등극은 '대구FC의 데 헤아' 조현우 선수의 활약 못지않게 반가운 일이다. 다음번 인디밴드 콘서트 락락락은 편하게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실내 공연장에서 열리면 좋겠다. 볼빨간사춘기가 초대가수로 출연한다면 방탄소년단 서울 공연처럼 티켓이 바로 매진될 것 같다. 객석 1만~2만 석 규모의 '아레나'급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이 대구에 건립되어 폭우, 폭염, 미세먼지 등 기후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세계적인 가수의 공연을 안방에서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2018-07-07 05:00:00

성석제 소설가

[광장]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

여름 저녁 동네 카페에서 노트북을 앞에 놓고 앉아 있노라면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대화가 들려온다. TV 속에서 유명 시사평론가가 하는 말이든, 이웃의 탁자에서 들려오는 대화이든 그것은 글(文)이 아닌 말(言)이다. 그런데 이런 말과 대화, 이야기 속에 '없어도 되는 것'들이 글 쓰는 게 직업인 내 귀에는 유난히 잘 들려온다. 말과 글은 같은 언어에 속해 있으니 어쩌면 간섭하기 좋아하는 친척처럼 누가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교정, 교열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의 예에는 '아니…근데…있잖아…어떻게 보면' 같은 '발어사'나 간투사가 있다. 이런 것들은 대개 '쓸데없는 군더더기 말'이라는 뜻의 췌사(贅辭)에 해당하나 전혀 뜻이 없는 건 아니다. 말과 취사선택된 단어에는 그것을 쓰는 사람의 태도가 엿보이게 마련이다. 그 사람이 논리적인가,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과시형인가, 실속형인가…. 습관적으로 '아니', '근데'를 반복하는 사람은 타인에 비해 논리적이고 타인을 설득하여 자신과 같은 편으로 이끌거나 논파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있잖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유형이다. '어떻게 보면'은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에 대비하는 신중함이 느껴진다. 대화에 흔히 동원되는, 유행을 타는 부사어들도 있다. 단독적으로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앞뒤의 단어, 형용사, 동사 등을 부연하고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진짜(정말), 엄청나게(엄청), 조금(약간), 굉장히(굉장하게), 사실(사실은, 사실상)' 같은 것들이다. 진실성을 강조하고(진짜, 정말, 사실), 그것이 거창하고 의미가 큰일임을 설득하기 위해 과장하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살짝 결정을 유보하거나 보험을 들어놓는다(조금, 약간은). 간투사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이야기 한 문장에 어떤 부사어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관찰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혈액형보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발어사나 간투사, 부사어는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 뒤나 앞에 오는 '본체'를 수식하고 강조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그 본체라는 것 또한 특별할 게 없다. 이미 스마트폰 속의 뉴스나 언론과 SNS의 이슈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소비되고 말았거나, 단지 자극적이고 이목을 끌기 쉽다는 이유로 우리의 삶과 별 관련이 없으면서도 우리의 주의력을 강탈해간 것들이다. 요점은 사람들이 나누는 '그 이야기의 본질은 내용이 아니고 이야기 그 자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를 하기 위해 적당한 화제로 '본체'를 등장시킨다. 중요한 것은 서로 이야기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대화는 지속된다. 세상이 두 쪽 나도, 저녁을 먹은 뒤 여름 밤의 산책과 카페에서의 나직한 이야기와 두런거림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얼마전까지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던 두 나라 정상끼리의 역사적 회담 못지 않게 중요하다. 비록 그것이 "아니…진짜…그래서…그러니까…아주 조금…굉장히…있잖아…사실은…말이지"로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사람과 사람 피아 간의, 지성체 간의 대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중하고 단 한 번, 한 순간뿐인 우리의 삶이자 비전이며 성스러움에서 비루함까지 인간 세상의 표리를 명경처럼 반영하는 것이니.

2018-06-3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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