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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과학의 부작용은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광장] 과학의 부작용은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마당 구석에 텃밭을 만들고 나니 주위에서 흙을 분석하고, 결과에 따라 필요한 성분을 보충해야 한다고 충고를 했다. 검사 결과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성분인 질소, 인, 칼륨이 턱없이 부족했다. 시멘트로 가려진 척박한 도시 땅에 영양분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비료를 쓰기는 싫었다. 야생에서도 그냥 식물들이 자라는데 인간이 너무 보호를 해서 식물들의 자립성을 해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런 땅에 식물을 심었더니 확실히 성장이 느렸다. 나무는 죽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다 치고, 채소는 크기가 작았고 특히 열매를 맺는 채소는 열매가 달리자마자 쭈그러들면서 떨어져 버렸다. 농부들같이 퇴비를 만들어 사용할 수도 없었고, 기껏 음식물쓰레기로 만든 흙을 사용했지만 열매는 아예 맺히지를 않았다. 그래서 토마토 등 열매 맺는 채소 재배를 포기해 버렸다.1798년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주장하면서 식량 문제를 언급했다. 100년이 지나 맬서스의 주장대로 점차 식량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과학자들은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1800년대는 과학의 시대였다. 새로운 현상들을 발견하고 산업에 반영하는 것이 국가의 경쟁력과도 직결되었기 때문이었다.식물을 키우는 비료는 독일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식물이 자라는 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질소는 공기 중에 무궁무진하게 있지만, 워낙 단단한 2중 구조로 묶여 있어 분리가 어려웠다. 촉매제를 이용하고 고온으로 처리하면서 화학자 하버는 질소 분리에 성공했다. 여기에 물에서 분리한 수소를 붙여 암모니아를 만드는 기계는 보슈가 개발했다. 그렇게 질소비료는 하버-보슈 공법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질소비료 덕분에 식량 문제는 일시에 해결됐다. 그 당시 16억 명이던 지구 인구는 현재 70억 명이 되었지만 기아를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넘쳐 나고 오히려 비만을 21세기 최고 적이라고 하고 있다. 인구론은 50년 전 우리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진실이었지만 현재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질소비료 탄생 과정과 고등학생 때 배웠던 화학 원자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비료 사용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과학이 만든 성과는 무시하고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가 요사이 넘쳐 나고 있다. 발달된 기술을 포기하고 원시시대같이 돌아가야 해결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과학적인 사실을 공부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질소비료의 경우 질소는 그냥 질소다. 다른 의미가 없다. 퇴비에서 생긴 질소나 공기에서 분리한 질소나 똑같은 질소다. 하수도 물을 정화해서 깨끗한 물이 되었다면 원자 차원에서 얘기하면 중금속이나 다른 오염물질들만 없으면 물은 물이다.현재 나는 농사에 질소비료를 사용하지 않지만 대량 재배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비료의 과다한 사용 때문에 생긴 질산염으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는 질소비료의 문제가 아니라 과다한 사용이 문제다. 즉 인간의 문제다.과학이 현대문명의 많은 부분을 발전시켰다. 부작용이 있다고 과거의 불편한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해결도 과학이 답이다.코로나19 발생과 백신에 대한 음모론 등 소문이 무성하다. 코로나의 원인이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해서 생긴 것은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해결은 방역 수칙 준수와 백신을 포함한 과학적인 방법이 답이다.

2021-04-02 17:15:08

[광장] 수직정원은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환경 정원이다

[광장] 수직정원은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환경 정원이다

얼마 전 여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시에 향후 21개의 수직정원을 조성하고 이들 수직정원이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기능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건축물의 벽면을 식물로 장식하는 수직정원은 현재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는 정원으로 실제 조성되어 있는 곳도 여럿 있다. 나 역시 수년 전 파리에서 수직정원을 보고는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 이제 우리 정치인들도 도시 조경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수직 숲이라고 불리는 '보스코 베르티칼레'라는 80m와 112m 높이로 건설된 2개의 고층 건축물에 수직정원이 조성되었다.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는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전통적인 이탈리아 탑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가구마다 개별적인 숲과 정원으로 조성된 발코니형 테라스를 계획하여 디자인했다"고 한다. 건축가의 이와 같은 적극적인 시도 덕분에 유럽의 도시 중 대기 오염도가 높은 밀라노는 도심 건물군 주변의 대기 오염을 20%나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수직정원은 도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자연을 더하는 방법으로 도시민의 심리적 웰빙을 높이면서 온도를 낮추고 대기질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한다. 수직정원 연구가인 패트릭 블랭크에 따르면 "식물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는 빛과 이산화탄소, 물과 그 안에 녹아 있는 양분으로 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며, 수직정원용 식물의 뿌리는 흙이 아닌 부직포 속에서도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다"고 한다.우리나라의 조경 전문가 역시 수직정원을 조성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수직정원은 벽면에 세워질 수 있는 정원 틀과 식물, 그리고 식물의 뿌리가 살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부직포(흙 대체물)로 구성된다. 여기에 더하여 식물에게 물과 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관수시설과 과도한 물을 제거할 수 있는 배수시설이 필요하다. 이렇게 조성된 수직정원은 단열 효과가 있어서 겨울 추위를 막아주고, 여름에는 자연 냉각 기능을 가동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식물의 잎과 뿌리, 그리고 이들 속에서 살고 있는 모든 미생물이 광범위하게 공기를 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식물의 뿌리가 있는 부직포에 갇힌 오염 입자는 천천히 분해되어 식물 비료가 된다. 이런 기능을 잘 활용하면 수직정원은 중국발 미세먼지를 감소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환경 문제가 인류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는 이때, 수직정원 조성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계속적인 실험을 통해서 우리의 기후 환경에 적합한 식물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직정원의 성공적 사례인 밀라노 고층 아파트의 수직정원 경우, 3년에 걸친 기간 동안 직접 재배를 하는 등의 연구와 실험 끝에 마침내 밀라노 도심에 적합한 식물을 선정했다고 했다.범조경단체가 특정 정당에만 수직정원 조성 정책을 제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여러 정당에 메시지를 넣었을 것이다. 단지 그 제안을 여당 후보가 자신의 선거 공약으로 채택했을 뿐이다. 수직정원은 우리의 미래와 연결된 것이므로 정당, 진영에 관계 없이 조성되어야 하는 사업이다. 조경학회와 협회, 그리고 관련되는 여러 기관과 업체들이 함께 수직정원 조성에 힘써 내가 파리에서 느꼈던 신선함이 우리 도시 전체에 전해지길 희망한다.

2021-03-26 19:05:04

[광장] “주사위는 던져졌다”…‘부패완판’의 슬로건 정치

[광장] “주사위는 던져졌다”…‘부패완판’의 슬로건 정치

3월 15일, 4·19 혁명 도화선이 된 1960년 3·15 부정선거가 떠오른다. 역사의 시곗바늘을 돌려 이탈리아 로마로 가면 B.C. 44년 3월 15일에 이른다. 로마 공화정을 지키려는 절박한 칼부림 속에 난세 영웅 카이사르가 57세에 나뒹군 날이다. 브루투스를 비롯해 공화파 의원들이 카이사르를 쓰러트린 곳은 공화국 청사 코미티움 앞이었다. 건물은 사라졌지만, 터는 남았다. 로마포럼(포로 로마노) 서쪽 끝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앞이다. 여기서 동쪽 콜로세움 방향 150여m 지점에 카이사르 신전이 자리한다. 탐방객들은 여기서 로마의 위세를 떨친 영웅이지만, 공화정을 독재정으로 바꾼 카이사르의 역설적 삶을 곰곰 되새긴다.카이사르의 공과를 일단 뒤로 제쳐 두고, 그의 탁월한 언어 감각, 지지자들을 결집해 반대파를 제압하는 메시지 정치의 구호를 살펴보자. 먼저 '이악타 알레아 에스트'(Iacta Alea Est·주사위는 던져졌다). 사전에는 '일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단행하는 수밖에 없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121년 '황제전'(De vita Caesarum)에서 카이사르가 B.C. 49년 1월 10일 이탈리아 반도 중동부의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행진하며 휘하 병사들에게 이 말을 했다고 적는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B.C. 509년 공화국으로 전환한 로마는 소집된 군대가 해외 작전을 마치고 귀국할 때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자동 해산하도록 했다. 군 지휘관이 시민병사들을 사병화해 쿠데타로 공화정을 뒤엎지 못하도록 한 조치다. 갈리아(프랑스)에 나가 공을 세운 카이사르는 제왕의 야망을 품고, '권력을 잡아 새로운 로마를 건설할 테니 나를 따르라'는 불가역의 정치 메시지로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병사와 로마 시민에게 외친 것이다. 이 말의 원작자는 B.C. 4세기 탁월한 그리스 극작가 메난드로스다. 적절한 시점에 재활용한 카이사르의 언어 감각이 돋보인다. 카이사르의 창작 구호도 귀에 익숙하다. '베니 베디 베키'(Veni Vedi Ve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루비콘강을 건넌 쿠데타로 공화파 폼페이우스를 물리친 카이사르는 B.C. 48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간다. 여기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22세 꽃다운 여왕 클레오파트라(그리스 혈통)와 사랑을 나눈다. 그때 터키 땅 폰투스 왕국이 로마에 반기를 들자 클레오파트라 품을 떠나 출정 나팔을 분다. 터키 수도 앙카라 북쪽 젤라 전투에서 B.C. 47년 승리를 거둔 뒤, 로마 원로원에 '와서 보고 이겼다'고 서한을 보냈다. 치기 어린 자랑질이 아니다. 아직 공화파를 모두 제거하기 전이다. 이 구호를 통해 누구든 자신에게 대항하면 보는 순간 제압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띄운 것이다. 2년 뒤 공화파에 암살당하고 말지만…. 링컨 미국 대통령이 아직 남북전쟁의 포성이 멎기도 전인 1863년 11월 19일,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의 게티즈버그에서 행한 몇 분짜리 짧은 연설 속 구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는 그 간결함에도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간명한 말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난 3월 4일 사퇴 하루 전 대구고검에서 "'부패완판' 속 법치 수호"라는 창작 구호를 화두로 던졌다. LH 관련 투기가 국민 가슴에 불을 지른 형국에 '부패가 완전히 판친다'는 메시지는 아직 정치의 '정' 자도 꺼내지 않은 그를 단박에 대선 지지율 1위로 올려놓았다. 서양 명의 히포크라테스는 '예술(의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간명한 아포리즘으로 2천400여 년 지나서도 회자된다. '역사는 길고 정치는 짧다.' '부패완판'의 법치 수호 슬로건으로 쏘아올린 정치 주사위 숫자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6으로 역사에 항성처럼 남을지, 1로 유성처럼 사라질지는 전적으로 그의 몫에 달렸다.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2021-03-19 14:05:46

[광장]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중요하다

[광장]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중요하다

마당 구석의 조그만 땅은 음식 쓰레기를 처치하는 공간이다. 따뜻한 날씨에는 1주일만 지나면 흔적도 없이 흙으로 변한다. 하지만 겨울은 땅이 딱딱하게 얼기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다. 언 땅은 곡괭이로 파도 쉽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다. 겨울 땅은 어떤 생명체도 허용하지 않는 죽음의 흙 같다. 그런데 겨울 끝자락이 되면 흙에 변화가 생긴다. 춥고 따뜻한 날씨가 반복되면 흙도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흙은 부드러워지고 부피도 부풀어 오른다.곡괭이의 강한 힘조차도 허용하지 않던 얼었던 흙이 부풀어 오르면 그 사이를 뚫고 연약한 식물의 새싹이 모습을 비춘다. 봄의 새싹은 아주 여리다. 너무나 신기해서 새싹을 관찰하려고 흙을 팠더니 그냥 부러질 정도로 약하다. 그런 연약한 새싹이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비결은 강한 힘이 아니다. 그냥 힘으로 뚫고 올라오려고 한다면 새싹은 부러질 것이다. 연약한 새싹은 부드러워진 흙을 밀고 밖으로 나온다.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는 겨울이 지나면 점차 따뜻한 날과 추위가 반복된다. 시샘 추위라고도 하고 봄이 눈앞인데 웬 강추위가 몰아치느냐고 하지만 사실 땅속 생명체를 위한 흙의 준비 작업이다. 봄을 준비 중인 흙을 밟으면 새싹이 올라오는 데 방해를 줄까 봐서 조심스럽지만, 봄 흙을 밟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푹신한 카펫을 밟는 기분이다.나는 유도 유단자였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이 유도의 핵심이다.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과 같이 쉽지 않다. 항상 힘이 들어간다. 이건 유도뿐만이 아니다. 모든 운동에서 귀가 따갑도록 힘을 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끊임없는 반복 연습으로 동작의 패턴을 익혀서 힘을 빼고 부드럽게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유도를 오래전에 해서 잊고 있었던 사실을 흙을 만지면서 매일 다시 명심하고 있다. 힘을 빼자. 부드러움을 유지하자.이것은 몸과 마음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건강을 얘기할 때 항상 강함을 권유한다. 정신력을 강화해야 하고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중년이 넘으면 근육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물론 근육 강화가 중요하지만 50대가 넘으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이를 유지할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이 근육을 만들어 방송에 나오는 특수 상황에 속지 말자. 일반인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력도 군대의 유격훈련같이 한다고 단련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 가진 정신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어려운 일을 따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사실 건강 유지에는 정신력, 근육 강화보다 균형 유지가 더 중요하다. 현대에 중요한 정신 건강은 느긋한 여유로움에서 온다. 긴장과 느긋함이 반복되는 삶에서 현대인은 긴장이 과도하게 많다.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 배워야 한다고 핸드폰을 켜고 남 이야기를 듣지 말자. 새로 배운다고 성공한 사람들을 전부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쉬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그리고 몸 건강에서 중요한 것은 울퉁불퉁한 큰 근육이 아니라 평소 사용하지 않던 작은 근육들이다. 몸의 균형을 잡아 준다. 꾸준하게 작은 노력만 해도 발달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음식을 먹을 때 천천히 씹고, 앉을 때 똑바로 앉고 걸을 때 바른 자세로 한발 한발 내딛는 연습만으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들이다.이제 봄이다. 밖으로 나가 흙을 밟자. 신발을 벗고 맨발이면 더 좋다. 흙에서 올라오는 푹신한 땅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자.

2021-03-06 06:30:00

[광장] 정원이 있는 병원을 꿈꾼다

[광장] 정원이 있는 병원을 꿈꾼다

최근 정부는 요양병원에서 수천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이들 중 70세 이상의 노인 환자들이 많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요양병원은 의학적 치료뿐 아니라 환자들이 앓고 있는 만성질환과 일상생활의 수행능력 저하 등 취약한 여건을 장기적으로 보살펴서 초기 환자의 상태를 오래도록 유지시켜 주는 곳이다. 즉 요양병원은 질병 치료와 거주라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시설이다.일반적으로 '치유정원'이 정원을 통해 병을 고칠 수 있는 '치료정원'의 개념으로 잘못 인식되는 바람에 우리나라의 병원들은 정원 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정원 자체가 암 환자를 치료하거나 부러진 다리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에게 호스피스 정원은 다시없이 소중한 명상의 장소이며, 병원 방문자와 직원들에게 정원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휴식의 장소다.이와 같은 치유 효과에 주목하여 치유정원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과학자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로저 울리히(Roger Ulrich) 교수는 병실 창으로 자연 풍경이 내다보일 때 환자들은 더 빨리 건강을 회복한다는 사실을 과학적 측정을 통해 입증했다. 또한 그는 환자가 나무, 꽃 또는 물과 같은 자연의 대상을 3~5분만 보아도 분노, 불안 및 고통을 줄이고 뇌의 활동을 좋게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실물이 아닐지라도 물과 나무가 있는 자연 풍경 사진을 본 환자는 추상미술을 보거나 그림을 전혀 보지 않는 환자보다 불안감이 적고 진통제가 덜 필요하다고 했다.조경가와 의료 분야 종사자들은 이처럼 의학적으로 규명된 정원의 치유 효과를 실천할 수 있는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경가 쿠퍼 마르쿠스(Cooper Marcus)는 잘 설계된 정원에서 자연과 교류하는 것이 암을 치료하거나 심하게 화상을 입은 다리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환자의 고통과 스트레스 수준은 낮출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환자는 심각한 스트레스로부터 마음을 쉬게 하고, 정서적 회복을 위해 정원을 방문하는데 그들은 나무와 꽃이 많으며 물이 있는 정원을 선호한다.그래서 마르쿠스는 병원 정원 조성의 경우 식물이 있는 녹지 공간이 최소 7대 3의 비율로, 많은 것을 권고한다. 서구의 병원은 치유정원의 존재 여부에 따라 환자들이 병원을 결정할 정도로 치유정원은 그들의 중요 관심의 대상이다. 이는 건강관리 환경을 위해 좋은 정원설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과학에 기반을 둔 정원설계가 자연적 치유력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는 인식이 높음을 의미한다.한국의 경우, 잘 꾸며진 정원을 가진 병원이 거의 없다. 간혹 옥상정원을 갖추고 있는 대형병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정원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우리 사회도 이제 병원의 형태가 종합병원이든 요양병원이든 간에 병원 내부에 치유를 목적으로 한 정원이 반드시 조성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환자들이 막힌 병실을 벗어나서 숲길을 걷거나, 휠체어에 앉아 휴식을 하는가 하면 방문객과 담소하기도 하고, 작은 폭포가 있는 물 공간 가장자리에 눕거나 기대어 햇살을 쪼이는 등 치유의 과정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특히 요양병원은 치료와 거주가 함께 이루어지는 시설이다. 법적 규제를 통해서라도 환자에게 자연 사용 권리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2021-02-27 05:00:00

[광장] 오병이어…집권 4년 “잔치는 한창이다”

[광장] 오병이어…집권 4년 “잔치는 한창이다”

예수님이 나신 땅, 이스라엘로 가보자. 성모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음을 전달받은 수태고지 교회의 나자렛에서 동쪽으로 달리면 갈릴리 호수가 나온다. 연중 아름답게 넘실대는 푸른 물결은 황량한 불모지 가나안 땅의 젖줄이자 꿀물이다. 갈릴리 호수 주변에 발달한 여러 도시 가운데 카파르나움(가버나움)이 눈에 들어온다. 로마 시대 군대가 주둔하고, 세관이 있을 만큼 번성하던 도시다. 물론 그보다는 예수님이 초기 설교를 진행하며 베드로와 마태오 등의 제자를 얻은 곳으로 더 이름 높다. 그림 같은 갈릴리 호수를 배경으로 카파르나움에 남은 로마 시대 유적과 베드로 동상을 보면 경건함이 절로 솟는다.카파르나움에 붙은 타브가 마을 작은 교회에 순례객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교회 입구에 짙푸른 녹음을 드리운 중동 지방 특유의 시카모어 고목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아담한 자태의 교회로 들어서면 어둑한 분위기 속에서도 눈길이 바닥을 향한다. 역사적 무게와 종교적 메시지의 아우라에 탐방객의 시선이 압도된다. 바구니에 든 빵(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묘사한 '오병이어(五餠二魚) 모자이크'.한국 컴퓨터선교회가 펴낸 마가복음 6장 41절에서 44절을 펼쳐보자.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41절), 다 배불리 먹고…(42절),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44절)."타브가에 처음 교회가 들어선 것은 기독교가 공인된 4세기다. 동로마제국 시절 5세기 증축을 거쳐 '오병이어' 모자이크가 설치된 것은 6세기라고 유적 안내판은 소개한다. 7세기 파괴된 교회 터를 1889년 독일성지협회(DVHL)가 찾아 매입하고, 1932년 모자이크를 발굴해 냈다. 1천500년 된 모자이크 유물에 스민 종교 절대자 예수님의 기적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예수님이 타브가에서 "민중을 만났을 때 귀와 마음을 열고, 그들의 고민과 슬픔, 소원을 들었다"는 현지 안내문의 추가 설명에 오병이어의 진정한 의미가 새롭게 읽힌다.명절 선물로 들어온 고기를 아껴 먹으며 한 달 60만원 생활비로 산다고 알려진 분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됐다. 자린고비 생활비임에도 스페인으로 가족 여행을 다니고, 중산층 지역 목동에 살며 국회의원이 됐다. 질타가 이어지자 가족의 신용카드 1년 사용액이 720만원(한달 60만원)일 뿐, 실생활비는 300여만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자신은 혼자 살아도 1년 카드 사용액이 1천만원이라면서 이태백류의 즉흥 시어를 써 내렸다. "이 정권에서 출세하려면 부패 타락이 필수". 국민은 안다. 한달 카드 사용액 60만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지만, 청와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야당 동의 없이 29번째로 장관 임명장을 준 것도 모자라, '역경에 굴하지 않는' 꽃말의 캐모마일과 '행복' 꽃말의 스위트피 꽃다발까지 안겼으니 말이다.장관의 신기한 공력은 돈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모 대학에서 도시공학 박사 학위를 영어로 받았는데, 한글 원본 파일이 없단다. 장관으로 어떤 기적을 또 일궈 낼지 걱정이 앞선다. 현 정권 첫 환경부 장관이 청와대가 점찍은 인물들을 산하기관에 앉히기 위한 직권남용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찌 환경부뿐이겠는가. 문재인 정권 집권 4년째. '우리 편 죄 덮고, 우리 편 챙기기'에 골몰하는 행태는 "민중의 고민과 슬픔, 소원에 귀와 마음을 열었다"는 오병이어의 참뜻에서 크게 벗어난다.

2021-02-20 06:00:53

[광장] 과학적 사고 그리고 의심

[광장] 과학적 사고 그리고 의심

현대인의 일상에서 달력은 중요하다. 물론 양력이다. 음력은 부정확한 옛날 유물이라고 생각했고 추석이나 설 이외에 나에게 중요한 의미는 없었다. 입춘, 처서, 대한 같은 절기도 나하고 관계없는 음력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영하의 날씨인데도 입춘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직 무더위가 있는데 가을이 시작되는 처서라는 말이 현실감이 없는 것 같았다.그런데 땅과 나무를 관찰하면서 절기를 비교해 보니 놀랄 정도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알아보니 절기는 음력이 아니라 양력이었다. 수천 년 전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고 생각한 태양의 길을 황도라고 하고 24등분해서 각자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물론 농사를 위해서 관찰한 결과물이다. 천문을 읽어서 천재지변을 예측하고 농사가 잘되도록 하는 것은 고대 왕들의 통치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당연히 자연의 변화에 대해 깊은 관찰을 하고 자료를 모아서 결과물을 만들었을 것이다. 수천 년 전 관찰한 것들이 오늘날 수학, 천문학 등 과학의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다.우리는 과학적인 기초에서 모든 자연현상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온을 측정해서 영하의 날씨면 그냥 겨울이라고 생각한다. 절기로 2월 3일은 봄의 입구라는 입춘이다. 하지만 밖은 여전히 영하 10℃를 오르내리는 날이 많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하니 땅이나 나무가 1월과는 다름이 있다. 땅은 얼었지만 중간중간 따뜻한 날씨에 얼음이 풀리면서 1월에 비해 모든 것이 부드러워졌다. 나무는 잎의 눈이 달라졌다. 겨울 동안에는 두꺼운 껍질에 꽁꽁 싸여 있었는데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지면서 제법 파란 빛을 띠고 있다. 현대인들은 피상적인 온도만 보고 아직 겨울이라고 생각하지만, 고대인들은 이렇게 작은 자연의 변화를 보고 겨울이 끝나 가고 봄이 온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내가 의사 생활을 시작하던 40년 전에는 CT나 초음파 같은 진단 장비들이 없었다. 자연히 진단을 내리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아파서 병원에 오면 간단한 복부 사진을 찍고, 청진기를 대고 장의 움직임은 어떤지, 배를 만지고 또 만지면서 배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추측했다. 판단이 틀리고 진단명이 달리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수술은 신중하게 결정했다. 요사이 진단 기계의 발달은 눈부시다. 몸 구석구석 구조물을 파악할뿐더러 구조의 변화 없이 화학적인 변화만 있는 단계에서도 조기에 병의 유무를 진단한다. 당연히 병의 진단 확률도 높아지고 의사들의 진단 기계 의존도 높아졌다. 이제는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도 의사가 배 한 번 만져 보지 않고 사진 찍고 피 검사부터 먼저 하고 병을 판단한다. 환자가 아무리 아파도 검사에서 문제가 없으면 괜찮다는 진단을 받고, 아무런 불편이 없어도 검사에 문제가 있으면 약을 먹고 수술을 하기도 한다.하지만 기계가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다. 기계의 정확함에 의사의 경험이 합쳐져야 한다. 드물지만 기계 진단과 경험으로 판단한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과학적인 사고는 합리적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도 한계가 있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기술을 알고 있어도, 실수의 여지는 항상 남아 있다." 유명 과학자의 말이다. 그래서 과학에 대한 맹신은 피해야 한다. 알려진 사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소문을 사실로 착각하지 말자. 주위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의심하면서 변수를 생각하자. 더구나 사람이 대상인 경우는 감정이란 변화무쌍한 변수가 있다.

2021-02-06 05:00:00

[광장] 코로나 시대, 옛 선비들 정원산책 생각나

[광장] 코로나 시대, 옛 선비들 정원산책 생각나

코로나바이러스 시대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방역의 최선책으로 권장하고 있다. 외국 전문가에 의하면, 이런 정책 지침은 몇 년간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고밀집 아파트에 사는 우리는 그 답답함과 우울함을 풀기 위해 집 주변에 있는 공원을 찾게 된다. 그곳에서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아름다운 꽃과 푸른 나무를 감상하면서 머물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재의 공원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효과적으로 실시하기에는 힘든 공간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원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일 것을 염려하여 일단 공원을 폐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충분히 예상되는 바다. 현재의 공원은 많은 사람이 동시에 모일 수 있는 광장형, 집합형이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폐쇄 정책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전무후무한 코로나바이러스 시대를 맞이하여 세계 모든 나라들은 공원의 이상적인 공간구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방법을 지키면서 어떻게 공원 본연의 기능을 달성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해법을 내놓기 시작하고 있다. 도시민의 위락과 건강을 주제로 하는 공원은 도시의 꼭 필요한 시설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간은 가족 단위와 친구 단위의 바비큐를 즐기는 모습도, 동호회별로 축구를 하거나 단체 운동을 하는 모습도 공원에서 볼 수 없을지 모른다.최근 외국 사례를 보면 가장 중요한 공원의 요소는 산책길이다. 공원 설계가는 남들과 마주치지 않고 20분에서 30분 정도의 산책길을 만드는 것을 제안했는데, 그들은 이것을 손가락에 있는 '지문형 산책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산책길 끝에 군데군데 화려한 화단이나 분수와 같은 물의 공간, 그리고 혼자서 쉴 수 있는 벤치를 조성해 두는 공간구성을 제안하고 있다.공원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전통 정원에서 선비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에서 찾는 것도 흥미로운 방안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 정원은 내원과 외원으로 구별된다. 내원은 집 주변의 정원이며, 외원은 선비가 산책하는 길로 정원 형태가 아닌 자연경관으로 집에서 10리쯤 되는 먼 거리를 포함하는 공간이다. 즉 외원은 선비들의 산책 영역인 것이다. 선비들은 자연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자연의 모습을 시로 남겨 두었는데, 영양 서석지를 조성한 정영방 선생은 본인이 산책하는 장소를 시로 남겨 두었다.이웃과 만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적어도 닭장과 같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공원에 나와 자연의 공기를 마시며 건강과 힐링을 위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자유만은 가지기를 원한다. 지금이라도 지방자치단체는 공원을 다중이용시설로 인식하여 전면 폐쇄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일부라도 개방하여 시민들이 건강을 위하여 사색과 산책하는 것을 허용하여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도시의 산들에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산책길을 조성하여야 한다. 그래서 외국처럼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장기전에 대비해 가야 할 것이다.코로나 시대, 공원은 옛 선비의 정원처럼 도시민이 자연 속을 산책하면서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산책길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이 동시에 모이더라도 혼자 사색하고 혼자 생각하는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꽃과 나무가 많은 산책길과, 물의 공간과 벤치, 그리고 운동 공간이 일정 간격으로 배치되어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앞으로 우리는 당분간 옛 선비들이 정원을 거닐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그 모습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어서 씁쓸하기 그지없다.

2021-01-30 06:30:00

[광장] 라캉의 팔루스…색즉시공의 권력

[광장] 라캉의 팔루스…색즉시공의 권력

"나는 떠나요, 영원히" 이 말을 남기고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인에게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노래 '돌아오라 소렌토로'. 아름다운 해안 도시 소렌토에서 나폴리까지 'ㄷ' 자로 파인 바다를 나폴리만(灣)이라 부른다. 허리춤이 잘렸지만, 그림 같은 곡선미의 베수비오 화산이 쪽빛 바다 한쪽으로 아름답다. 호사가들이 나폴리를 세계 3대 미항이라 입방아 찧을 만하다. "내 배는 살같이…" 명곡 '산타루치아'의 선율이 어린 산타루치아항 달걀성(Castle dell'Ovo)에서 시내 안쪽으로 나폴리 국립박물관이 자리한다.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묻혔던 폼페이 출토 유물들이 경이로운 로마 문명의 실상을 전해 준다. 2층 '비밀의 방'에는 낯 붉히는 각종 음화와 조각들이 탐방객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중 하나가 거대한 남근(男根)이다.로마인들은 번영과 행복을 바라는 의미로 남근 조각을 실내에 두거나 대문에 그렸다. 기호학 창시자 소쉬르의 용어로 해석하면 남근은 기표(記標)이고, 행복이 기의(記意)다. 남근 조각 밑에 'FELICITAS'(행복)라고 쓴 폼페이 유물에 일상의 쾌락을 삶의 기쁨으로 여겼던 로마의 가치관이 잘 묻어 난다. 현실을 즐기는 로마의 카르페디엠 문화가 2천 년 넘게 면면히 이어진다.19세기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가 인간의 의식 너머에 잠재된 무의식을 들추며 정신분석학을 연다. 프로이트는 리비도(성적 에너지)를 삶의 동력으로 삼는다. 프랑스의 라캉은 프로이트 사상을 계승하며 팔루스(Phallus·남근 이미지) 개념으로 진화시킨다. 라캉은 '주체'(나) 이외의 모든 것을 '타자'(他者)로 명명한다. 프랑스어로 남을 가리키는 'Autre'의 대문자 'A'를 써서 '대타자 A'라고 부른다. '주체' 이외의 삼라만상이 '대타자 A'다. 이 가운데, '주체'의 마음, 충동(drive)이 꽂혀 향하는 대상을 소문자 'a'를 써 '소타자 a'라고 이름 짓는다. '주체'가 추구하는 모든 것, 가령 갖고 싶은 옷, 살고 싶은 집, 사랑, 심지어 권력 모두가 '소타자 a'다. 라캉은 '주체'의 욕망을 남근 이미지, '팔루스'로 규정한다. 팔루스 추구로 얻는 대상 즉, '소타자 a'는 판타지(fantasy·환상)로 텅 빈 공허함이라고 설파했다. 라캉에 앞서 이를 꿰뚫은 동양철학이 반야심경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형상 즉, 색(色)은 텅 빈 공(空)이라는 의미다. 정치에 빗대면 권력무상(權力無常)이다.문재인 정부 집권 5년 차다. 2020년은 권력의 주역 청와대, 추미애 법무부 장관, 민주당이 혼연일체로 법치와 상식을 무너트린 해였다. 추미애 장관은 임명장을 받자마자 서울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부터 없앴다. 권력 연루설이 돌던 각종 금융 범죄 수사는 좌초됐다. 정권 관련 수사 검사들을 좌천시켰다. 결과는 문재인 정권 지지율 하락과 윤석열의 대권 후보 등극이었다.민주당 전략기획위윈장 출신 이근형이 대주주인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신문 의뢰로 조사 발표한 1월 19일 자 여론조사에 답이 들었다. 양자 대결에서 윤석열(46.8%) 대 이낙연(39%), 윤석열(45.1%) 대 이재명(42.1%)으로 윤석열이 누구랑 붙어도 이겼다. 추 장관은 언론에서 사라졌다. 추 장관의 욕망, 즉 팔루스가 서울시장 혹은 대통령이라는 '소타자 a'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게 공(空)이 됐다. 영원한 2인자 김종필이 죽기 전 읊은 "정치는 허업(虛業·헛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2021-01-23 05:00:00

[광장] '뉴TK 문화운동'을 시작하자

[광장] '뉴TK 문화운동'을 시작하자

'백범일지'(白凡逸志)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이다. 이 책은 종교 경전을 제외하고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할뿐더러 많이 읽힌 책일 것이다. 보물 1245호로 지정돼 있다. 책이 보물로 지정된 예는 그리 흔치 않다. 그만큼 이 책의 가치와 중요성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독서 풍토를 보면 이 책의 존재와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실제로 꼼꼼히 완독한 사람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할 수 없다. 내가 그런 본보기이다. 나도 이 책을 초등학교 때 요약본을 읽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나의 소원' 부분을 읽고는 이 책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보니 제목이 공무적인 일기에 해당하는 '일지'(日誌)가 아니라 '일지'(逸志)라는 한자 표기도 눈에 띈다.1990년대 후반 우연히 백범의 손자인 김진 선생에게 친필 사인을 한 '백범일지'(도진순 교수 주해)를 받아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니 하면서 책장에 모셔 두었다가, 최근에 이사하면서 발견해 다시 읽었다. 모든 책이 읽는 시기나 환경, 독 횟수에 따라 느낌이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개인의 내면이 드러난 일기이면서, 성장 소설이면서,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이면서 웅혼한 정치적 포부를 드러낸 정론서라는 인상을 받았다.이 책 상권의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백범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갔다가 과거가 매관매직되고 있는 현실에 좌절하고 시험을 포기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께서 백범에게 과거는 포기하고 풍수나 관상 공부를 하라고 권한다. 실제로 백범은 관상 공부를 한다. 관상은 우선 거울로 자신의 관상부터 공부하기 시작하는데, 백범이 본 자신의 관상은 '어느 한 군데 귀격(貴格), 부격(富格)의 좋은 상은 없고, 얼굴과 몸에 천격(賤格), 빈격(貧格), 흉격(凶格)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비관에 빠진다. 그러다가 그 책의 구절 중에 '관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구절을 읽고 관상 좋은 사람(好相人)보다 마음 좋은 사람(好心人)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이 결심의 결과가 짐작하건데 백범이 동학(東學)에 입교해 접주가 되고, 그 이후 생사를 뛰어넘는 지난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암살로 생을 비극적으로 끝마치는 게 그의 전 생애라 할 수 있다.이 책의 뒷부분에 실린 '나의 소원'에 보면 백범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잘사는(부강한) 나라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있어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나라도 아니다. 그러면서 오직 한 가지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이유는 인의(仁義)와 자비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런 마음을 키우는 게 바로 문화라고 주장한다.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형세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찍이 우리 앞에 이런 세상이 있었던가?' 하는 깊은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된다. 정치는 정치대로 진영이 나뉘어져 옳고 그름을 분별할 만한 합리적 정론이 실종된 지 오래고, 경제는 비정규직으로 인한 소득 격차, 부동산에 의한 불로소득, 지방 소멸로 양극화가 심화된 지 오래이다. 언론도 사회의 목탁으로 효력을 상실한 지 오래된 듯하고 지식인도 소금 역할을 잃어버렸다. IT의 발달로 SNS 등에서 막말과 가짜 뉴스의 범람, 민초들의 과잉된 의사 표시로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혼탁한 현실이 돼버렸다.고결하고 기개 높은 영남 사림의 자긍심과 오랜 선비 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백범 선생의 말씀처럼 먼저 문화를 통한 마음 공부, 상대편을 존중하는 겸손과 관대함, 열린 태도, 올바름을 지키는 정의감을 갖는 문화운동을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뉴TK 문화운동, 정신운동을 통해 우리나라와 세계 인류에 새 마음과 희망을 주는 신축년 새해가 됐으면 참 좋겠다.

2021-01-16 05:00:00

[광장]추위를 즐겨야 건강하다

[광장]추위를 즐겨야 건강하다

추운 영하의 날씨는 생명체들에게 혹독한 시기이다.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고 움츠려서 겨울을 나지만, 동물은 다양한 방법으로 겨울을 견딘다. 동물의 체격과 추위와의 연관 관계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847년 독일의 동물학자 카를 베르그만은 가까운 종 사이에서 추운 지방에 살수록 체격이 커진다는 주장(베르그만의 법칙)을 했다. 동물 몸집이 커지면 늘어난 근육으로 열 발생이 증가하고, 노출되는 전체 체표면적 비율을 낮추어서 열의 발산을 줄이므로 추위에 잘 견딘다는 이론이다. 또 다른 동물 학자 알렌은 같은 종이라도 추운 지방에 살수록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말초 기관이 짧아진다는 이론(알렌의 법칙)을 얘기했다. 곰이나 사람이나 추운 지방일수록 덩치는 커지고 코, 귀, 팔, 다리 등 말초 기관은 짧아진다는 이론이다.그럼 그 많던 흙 속의 작은 벌레들은 어떻게 겨울을 버틸까? 나는 이제까지 동물들은 겨울에는 에너지를 축적하고 잠을 자거나, 두꺼운 피하지방을 가지고 북극에 살거나, 따뜻한 털을 가지고 추위를 견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동물의 99%를 차지하는 작은 벌레들은 겨울잠을 자지도 않고, 털이 있지도 않고, 두꺼운 피하지방도 없다. 그들이 어떻게 겨울을 지내는지 관심도 없었고 배워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자 마당의 개미가 보이지 않았다. 음식 쓰레기가 쌓인 흙을 뒤져도 그 많던 벌레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무얼 먹고 살까?있을 곳은 뻔했기 때문에 흙을 파고 30㎝ 깊이로 내려가자 지렁이를 포함한 벌레들이 보였다. 바글바글했다. 동작은 아주 느렸다. 낙엽을 뒤졌다. 햇볕이 잘 드는 두껍게 쌓인 낙엽 뒤쪽에 서로 몸을 붙이고 모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옛날 추억이 살아났다. 그리고 저절로 웃음이 났다. 어린 시절 겨울은 참 추웠다. 방 구들목은 따뜻했지만 아이들 차지는 아니었다. 밖으로 나왔지만 옷이 따뜻한 것도 아니었다. 솜을 누빈 옷은 사치품이었고, 스펀지를 넣은 옷은 바람이 숭숭 통했다. 아이들은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었다. 심심하기도 하고 열을 내기 위해서 멸치야 꽁치야 하면서 좌우로 밀치는 놀이로 추위를 견디곤 했었다. 벌레들 모습이 딱 그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처음 인간은 추위가 없는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종이 번성하면서 추운 지역으로 옮겼지만 그곳에 정착해서 집을 짓고 불이 발견되고 옷도 생겼다. 당연히 추위에 적응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인간은 현재 살아가는 지역의 기후에 맞게 적응해 가는 단계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4계절이 뚜렷한 지역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4계절을 온전히 몸으로 느끼는 것이 건강에 좋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이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살고 있다. 나는 추위를 즐긴다. 겨울에 내복을 입지 않는다. 추운 밖에서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면 몸 구석구석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일본의 한 과학자는 여러가지 실험을 한 후 추위를 견디는 것도 습관이라고 결론 내렸다. 연습만 하면 추위에 견디는 힘은 길러지고 더 건강해진다는 주장이다. 통증이 있을 정도로 운동을 해야 근육에 염증이 생기고 근육량이 늘어나듯이, 추위와 더위를 반복하는 가운데 우리 몸의 건강을 챙기는 균형 기능은 살아나게 된다. 겨울을 좀 더 춥게 즐기자. 실내 온도를 1℃라도 낮추자. 겨울에는 조금 쌀쌀한 실내에서 털옷을 입고 따뜻한 차 한잔하는 여유를 가지자. 건강도 챙기고, 낭만도 즐기고.

2021-01-09 06:30:00

[광장] 건강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다

[광장] 건강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다

겨울이 다가오면 사람은 옷을 더 입고 불을 때면서 추위를 준비하지만, 나무는 가진 것을 줄이기 시작한다. 사람은 주위 자원을 이용하지만 나무는 스스로 해결한다. 이런 차이는 추위를 견디는 방법만이 아니라 생존 방식도 그렇다. 식물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살아간다.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공기 중의 산소를 햇빛의 작용으로 광합성을 해서 에너지를 만든다. 동물은 스스로 살지 못하고 밖에서 영양분을 취해야 한다. 풀만 먹는 초식동물이 있고, 풀을 먹고 자란 동물만 먹는 육식동물이 있다.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식물이 지구의 중심이다. 식물이 없으면 지구의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끼부터 시작한 식물은 지구의 시작인 45억 년 전부터 살아왔지만, 동물은 5억 년 전에 나타났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법은 식물에 배워야 하는 이유다.나의 이런 결론은 작은 의문에서 출발했다. 마당에 어떤 나무를 심을지 생각하다가 회화나무를 떠올렸다. 과거 유적지 답사를 다니면 선비들 집에는 공부방 앞에 회화나무가 보였다. 아이들 회초리 만드는 나무라도 얘기도 있었고, 하여튼 선비 집에 있어야 할 나무라는 기억은 남아 있었다. 8년 전 평생 환자들을 보고 싶어서 한옥으로 병원을 지으면서 자연히 떠올린 나무였다. 줄기가 곧고 색깔도 품위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도시 작은 마당에 심을 나무는 아니었다. 키가 거의 10m는 넘게 자라는 큰 나무였다.그런데 식물은 어떻게 스스로 살아가는지 관찰하다가 의문이 들었다. 나무가 광합성을 하기 위해 땅에서 물을 흡수하면, 뿌리에서 10m 높이의 잎까지 어떻게 물을 끌어 올릴까 궁금했다. 뿌리에서 밀어 올릴까? 잎에서 끌어 올릴까? 만약 인간에게 이런 문제가 주어진다면 해결은 아주 간단하다. 모터로 물을 끌어 올리면 된다. 전기 에너지를 쓰고 항상 웅웅거리는 소리가 날 것이다. 그런데 식물은? 그냥 자연의 원리-표면장력을 이용해서 잎에서 조용히 물을 끌어 올리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그것도 수십 미터 높이로.날씨가 추워지면 나무들도 바쁘다. 남는 당은 뿌리나 열매로 저장을 하고 잎은 물을 최소로 끌어 올린다. 겨울 동안 물이 얼어버리면 세포가 파괴되고 식물은 죽기 때문이다. 수분을 점차 잃은 잎은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기온이 좋을 때는 자연 현상을 이용해서 잎에서 에너지를 만들고, 겨울이 되면 불필요한 부분을 몸에서 떨구고 추위를 견뎌 낸다. 식물이 추위를 견디는 방법은 바로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고 움츠리는 것이다.연약한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 남은 것은 놀라운 적응 능력 때문이다. 의사로서 중요한 문제점만 해결하고 지켜보면 몸은 저절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수술은 최종적인 수단으로 남겨 두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사람들은 항상 좋은 것을 찾아다닌다. 중년이 지나면 비타민을 포함한 건강 보충제를 챙겨 먹는다. 암이나 난치병이 걸리면 숨겨진 좋은 것이 없는지 궁금해 한다. 열이 나고 몸살을 앓고 드러누우면 무언가라도 먹어야 힘을 차린다고 귀한 것을 차려 준다. 설사를 하고 배탈을 앓으면 죽이라도 먹인다.하지만 나는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나쁜 것을 피하는 것이 건강의 핵심이라고 얘기한다. 열이 나고 감기 들면 푹 쉬자.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면 굶자. 나는 몇 년에 한 번은 지독한 몸살을 한다. 그때는 며칠이고 잠만 잔다.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렇게 쉬고 나면 몸은 날아갈 듯이 개운하다.건강은 더하기가 아니고 빼기다.

2020-12-04 15:51:14

[광장] 산남의진과 지역문화콘텐츠

[광장] 산남의진과 지역문화콘텐츠

산남의진(山南義陣)! 경북 영천시를 비롯해 포항, 영일, 청송 등 경북 동남부 지역에서는 제법 많이 알려진 사실(史實)이지만 학자나 향토사가를 비롯한 전문 연구자들 외 일반 지역민들이나 국민들에게는 아직까지 조금은 낯선 이름이다. 산남의진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던 의병운동 중 대표적인 항일 의병운동이다.여러 자료에 의하면 산남의진은 을사늑약 이후 고종이 중추원 의관이던 영천 출신의 정환직에게 밀서를 전해 의병 궐기를 촉구하고, 정환직은 아들 정용기에게 창의할 것을 지시해 영천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우던 중, 아들 정용기가 전사하고 이어 정환직마저 일본 군인들에게 순국한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물론 이 두 부자만 의병으로 싸운 게 아니고 최세진 의병장을 비롯해 많은 이름 없는 의병들이 합세해서 싸웠다. 그 기간은 대략 1906년 3월부터 1910년까지이고, 130여 차례 전투에서 700여 명이 사상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주 활동 무대는 태백산 줄기인 경북의 보현산과 동대산 일대이다.지난여름(2020. 8. 21.), 나는 우연한 인연으로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영천의병 좌담회-영천의병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 좌담회는 '임란영천성수복대첩기념사업회'와 '산남의진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영천시'가 후원하는 행사였다. 두 기관의 관계자뿐 아니라 지역 향토학자, 콘텐츠 전문가, 시인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해 이 문제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이는 모습이 내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이 자리에서 지역문화콘텐츠의 국제 교류와 관련해 짧은 코멘트를 했다. 20세기 산업화 시대가 끝나고 21세기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문화나 콘텐츠에 대한 개념이 많이 변하고, 또 콘텐츠의 생산이나 유통의 형태가 바뀌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문화콘텐츠는 대중성과 독창성이 적절히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본다면 산남의진을 비롯한 임란 때의 영천 지역 의병 활동은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특히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희미해져 가는 민족성과 애국심(물론 둘 다 너무 폐쇄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이어서는 안 되겠지만)을 환기시키는 데 이만한 지역의 원형적 소재가 있기도 어렵다. 각 지역에 묻혀 있는 지역 고유의 전통을 발굴해 문화콘텐츠로 만들고 이를 세계화시킨다면 지역문화 발전과 문화 분권에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게 분명하다.정환직-정용기 부자 의병장에 대해 나는 1990년 한 일간지에 지역의 의병장들에 대해 연재할 때 두 분의 행적을 다룬 적이 있다. 그 연재물에는 두 분 부자 의병장 외에도 구미의 왕산 허위, 영해의 신돌석 장군을 비롯해 경북 지역의 의병장을 새롭게 발굴해 조명했다. 당시 영천시 자양면과 같은 산골짝은 물론 포항시 죽장면 입암 등을 들러보았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먼지가 풀풀 날리던 비포장 산길, 도로 포장은 물론 교량이 제대로 건립이 안 된 오지여서 물이 흐르던 하천을 과감하게 지프로 돌진해 건너다가 차바퀴가 자갈밭에 빠졌던 기억, 내가 힘들게 탐방했던 그 산골짝 오지가 구한말 당시 의병들이 맨몸으로 진퇴를 거듭하던 죽음의 전장과 우국충절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느끼며 숙연하면서도 비감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오지 중의 오지인 죽장면 입암에 들렀을 때 그 황홀하게 아름답던 비경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의병들의 거점이 됐던 보현산에 있는 사찰 거동사와 두 부자 의병장을 기리는 충효재 등에서는 의병들 추모제와 기념 백일장과 같은 행사를 하고, (사)산남의진기념사업회는 산남의진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지역의 전문 학자나 향토사 연구자들뿐 아니라 뜻있는 시민들이 힘을 합쳐 산남의병들의 애국심을 기리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런 좋은 지역 원형 재료를 문화콘텐츠로 변화시켜 세계화하는 일은 지역문화가 담당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0-11-20 19:13:35

[광장] 개미, 그리고 소중한 노동

[광장] 개미, 그리고 소중한 노동

어린 시절, 마당에서 개미를 관찰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개미가 먹이를 발견하면 동료들에게 더듬이로 신호를 보내고 쉴 틈 없이 집을 들락거리는 모습은 박진감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개미집은 어떨까 궁금해서 병 속에 흙과 개미를 넣고 물을 부어 관찰하면서 곤충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기도 했었다.마당이 생기고 벌레들을 관찰하자 개미가 가장 먼저 보였다.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무얼 하는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밤새 폭풍우가 몰아친 어느 날 아침. 마당에 나갔더니 어제 떨어져 있던 빵 조각에 개미가 새까맣게 붙어 있었다. 밤새 일을 한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개미들은 밤새 일을 하고 있었네? 너희들은 뭐하니?" 아들 카톡이 왔다. "나도 밤새 밀린 일 하고 이제 잠깐 쉬고 있어요."그런데 내가 잠자는 사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개미나 아들만이 아니었다. 한번은 새벽 4시경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을 깬 적이 있었다. 문 밖에 차 소리, 사람 소리가 들려서 내다봤더니 쓰레기를 청소하고 있었다. 구청에서 골목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이른 새벽에 움직이는지 몰랐다. 한번은 골목 맨홀 뚜껑을 열고 사람이 들락거리는 것이 보였다. 전기선 공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공사를 자주 했는데 처음 보느냐고 되물음이 왔다.내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나 가스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한테까지 오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 날 받는 편리한 세상이라고만 생각했지 어떻게 배달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버리는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내가 먹고 배설하는 것이 그냥 물을 내리면 내 눈에서 사라지는 것만 봤지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그런데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니까 내가 잠자는 중에도,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도, 까마득한 공중에서도 매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편리하고 당연한 내 일상생활을 유지해 주는 공사들이었다. 그렇게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떨어져서, 기계에 끼어서, 가스에 질식해서 죽는 사람이 하루에 7명, 1년에 2천400명인지 몰랐다. 내가 먹는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일을 하다가 죽는 사람이 하루에 2명, 1년에 700명인지 몰랐다. 나에게 빨리 물건을 배달해 주는 택배기사가 소변 볼 시간도 없이 일하다가 올해 들어 8명이 과로로 죽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사용하는 수술기구가 누구의 녹은 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최근 시를 통해서 알았다.'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자동차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의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 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그 쇳물 쓰지 마라')어린 시절 개미와 베짱이는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마음을 잡아주는 동화였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면 한 가족이 먹고살고 자식들 공부도 시켰다. 하지만 요즘은 노동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노동 현장도 안전하지 않다. 노동만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젊은이들이 주식시장에 위험한 개미로서 뛰어들고 있다. 안전하고 소박하게 개미같이 일하는 노동이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0-11-13 17:33:01

[장병관의 광장] 코로나 19 시대 텃밭정원이 다시 유행한다

[장병관의 광장] 코로나 19 시대 텃밭정원이 다시 유행한다

화단이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한다면 텃밭은 먹거리용 채소 및 기타 식물을 재배하기 위해 존재하는 밭이다. 코로나19 시대 우리 모두 사회와의 거리두기를 권유받고 있다. 이때 작은 땅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족의 건강한 식단을 위해서 텃밭에서 채소 가꾸기를 시도해 봤을 것이다.텃밭은 과거 한때 사회경제공동체의 매개체로서 큰 기여를 했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는 텃밭이 너무 많아서 규제를 할 정도였다. 이 시대 사람들은 생산량 대부분을 이웃과 나누면서 자급자족의 행복을 누렸다. 서양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도시 텃밭이 많은 사람들을 기아로부터 구제한 덕에 텃밭정원을 '승리정원'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텃밭에 미와 멋을 더하는 정원 즉 텃밭정원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키친가든과 프랑스의 포타제(Potager) 그리고 허브정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정원의 일부분을 활용하여 채소, 허브, 과일나무 등으로 꾸민 공간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먹을거리만을 목적으로 한 텃밭의 기능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채소의 색채와 질감을 이용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원의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21세기에 접어들어 웰빙문화가 확산되면서부터 다시 키친가든과 포타제, 허브정원이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원과 텃밭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식용 및 관상용 정원을 한데 모으는 아이디어로 텃밭정원은 세련되게 발달하고 있다. 사회 격리 지침을 준수해야 하는 코로나19 시대 세계 도처에서 텃밭정원이 다시 대유행하고 있다. 이 작고 매력적이며 생산적인 텃밭정원은 일상의 텃밭이 아니라 디자인된 공간으로, 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예쁘기도 하다.10여 년 전 북유럽 공동주택 단지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 전면 공간이 텃밭정원과 어린이 놀이터로 함께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곳을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생각해 텃밭정원과 아이들의 놀이공간으로 조성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 주거공간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햇빛을 가장 잘 받는 앞마당에는 식물을 심지 않고 빈터로 남겨 두었다. 아마 사람의 건강에 햇빛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아파트는 도시의 열섬효과 차단과 시원한 휴식공간 조성을 위해 주차장과 놀이터를 제외한 모든 땅에 나무를 심고 있다. 그리고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건강한 땅인 건물의 전면 공간은 자동차 주차장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의 건강보다 자동차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걷지 않아도 된다는 편의성 때문에 생명의 소중함을 애써 외면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독일 프라이부르크시의 보봉 마을 경우, 자동차를 사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입주하는 아파트도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당시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아파트에 텃밭정원이 있다는 사례를 절대로 발표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전공하는 조경산업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텃밭정원이 우리의 아파트에도 조성된다면 그만큼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녹지공간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아파트 마당을 비롯한 주차장 등의 공동 주거공간 구성에 변화가 필요할 듯하다. 획일적인 주거공간 조성의 지침에 따르기보다는 주민들 스스로가 제안하는 다양한 생활공간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공동 주거공간에서도 다양하고 아름답고 멋진 텃밭정원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0-11-06 14:19:39

[이상호의 광장] 우리의 고기 밥상은 지속 가능할까?

[이상호의 광장] 우리의 고기 밥상은 지속 가능할까?

우리의 밥상이 바뀌고 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 136㎏에서 2019년에는 59㎏으로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육류 소비량은 5㎏에서 60㎏으로 12배 가까이 늘어났다. 소득 증가와 서구의 식문화 영향으로 이제 고기 없는 밥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러한 육류 소비 증가로 인해 소비량이 많은 상위 10위 농식품에는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계란, 우유 등 축산물이 6종류를 차지하고 있다.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육류 소비도 50년 동안 7천만t에서 3억3천만t으로 5배 증가했다. 2016년 기준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미국 97㎏, 호주 93㎏, 아르헨티나 87㎏이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 등 인구 대국의 소득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육류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그렇다면 전 세계적인 육식 소비 증가는 앞으로 지속 가능할까? 경제적 측면에서는 낙관적이지만 환경 문제와 농경지 부족, 동물복지라는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연간 71억t인데 이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에 해당한다. 축산업의 온실가스 감축 규제가 강화되면 생산비용 증가로 인해 육류의 안정적 공급이 위협받을 수 있다.축산은 사육 과정에서 곡물용 사료에 의존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체 농경지의 80%가 필요하다. 하지만 육류를 통해 인간이 얻는 칼로리는 18%에 불과하기 때문에 농경지 이용에 따른 식량 공급의 효율성은 매우 낮다. 도시화와 산업화, 그리고 사막화로 인해 전 세계의 농지가 감소하는 지금 축산 사료 공급을 위한 농경지는 충분하지 않다.이러한 환경 및 농경지 문제뿐만 아니라 동물복지라는 윤리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동물의 삶은 집단 밀식 사육, 수송, 도살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윤리적 문제에 대해 동물복지가 강조되고 있다. 사육 동물도 적절히 보호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이제 우리 모두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축산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육식은 불가능할까? 대안은 식물성 고기와 배양육이다. 식물성 고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하지만 배양육은 아직 낯설다. 배양육은 동물을 도축하여 얻는 고기가 아닌 배양시설에서 동물의 세포를 키워서 만들어내는 고기로 '인공고기'로도 불린다. 배양육은 사료와 물 등 자원을 절약함으로써 식량 공급의 안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메탄 등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환경을 보전할 수 있다.배양육은 아직까지 식감이 좋지 못하고 맛이 없다는 불평과 세포 배양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제품의 생산 비용이 높은 편이다. 배양육은 제조 과정에서 유전공학 기술이 사용되는데 식품안전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축산업은 시장점유율이 높아 안정적 이윤을 창출할 수 있지만 미래 성장 가능성이 낮은 경영학에서 말하는 '캐시카우'(cash cow) 산업이다. 배양육은 아직 수익성은 낮으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프로블럼 차일드'(problem child) 산업에 속한다. 불확실성은 높지만 성장 가능성은 아이들처럼 무궁무진하다.대안적 육식 소비는 우리에게 가 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이며,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점과 위험들이 각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사료용 농경지 부족과 동물복지의 숙제를 해결하는 뉴노멀의 육식 문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 육식 소비의 변화를 준비하지 못한 미래는 축산업의 위기이지만, 준비된 미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2020-10-30 15:14:15

[광장] 객토(客土)와 글로벌 대구

[광장] 객토(客土)와 글로벌 대구

객토(客土)라는 낱말을 한자로 풀이해 본다면 손(님) '객'에 흙 '토'이니 '손님 흙'이라는 말이다. 어느 집에 식구가 아닌 바깥사람이 올 때 손님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내부 구성원이 아닌 바깥사람, 객식구를 손님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시골에서 농사짓는 논이나 밭에 본래부터 있던 흙이 아니라 외부에서 덧붙여진(지는) 흙을 객토라고 한다. 한마디로 손님 흙이라는 뜻이다.고래로 우리 지역은 이 손님을 매우 정중하게 대우했다.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즉 조상의 제사를 잘 받들고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 으뜸가는 예의범절이요,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집에 손님이 오면 융숭하게 대접한 후 돌아갈 때는 여비까지 후하게 줘서 보내드렸다. 그러니 아침저녁으로 거지가 밥을 얻으러 와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자기들이 먹는 밥상 못지않게 한 상 잘 차려 같은 마루에서 동석해서 먹거나 아니면 마루 아래 섬돌에서라도 편안하게 먹게 하는 대우는 했다.왜 그랬을까? 거지들을 대접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리학에서도 '남을 불쌍히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쳤으니까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거지들에게 측은지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건 과거 전통적인 우리 사회가 가졌던 매우 귀중한 가치이자 덕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이런 생각들이 발전해 근대에 와서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거대한 사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손님을 귀하게 대접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손님을 통해 바깥세상의 소식도 듣고 견문도 넓히는, 즉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있는 열린 통로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개방된 사회로의 메신저가 바로 손님이었다.객토는 학문적으로는 "농지 또는 농지가 될 토지에 흙을 넣어서 토층(土層)의 성질을 개선하고, 그 토지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실시하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고 "객토의 역사는 1429년에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의 종도조(種稻條)에 '정월에 얼음이 풀리면 갈고, 거름을 넣거나 혹은 새 흙을 넣음이 또한 득이 된다'라는 구절로 보아 500∼600여 년 전부터 지력 증진 수단으로 실시해 온 것 같다"(네이버 지식백과)고 밝히고 있다.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쯤에 늦가을 나락 타작을 끝내고 나면 나는 리어카를 끌고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동네 야산 비탈이나 이웃 논에서 남는 흙을 퍼다 우리 논에 객토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추위가 막 닥치던 때인데도 야산 비탈의 그 싱싱하고 풍성해 보이던 탐스럽던 흙에 대한 기억은 회갑을 지낸 지금도 내 마음을 설레고 따뜻하게 한다.현재 고향 단촌에서 마늘과 벼농사를 짓고 있는 초등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해 확인해 보니 1모작을 하는 논에는 12월이나 1월쯤 객토를 하고, 2모작을 하는 논에는 10월 말까지는 타작(추수)을 하고 곧이어 마늘을 심기 때문에 기간이 짧아 객토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객토는 바깥 흙을 끌어와 농지의 흙을 좋게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한다. 한때 대구광역시의 시정 슬로건이 '컬러풀(colorful) 대구'였다. 굳이 우리말로 풀어보자면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대구'쯤이 될 것이다. 지심을 돋우기 위해 논밭에 객토를 하듯, 선진적인 대구의 정치사회 문화를 키우기 위해 폐쇄된 정신을 객토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바깥의 새로운 흙을 받아들이고, 열린 사회, 개방된 글로벌한 국제도시 대구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2020-10-23 15:10:24

[광장] 공존의 정원 랑데부 정원

[광장] 공존의 정원 랑데부 정원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최근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관심이 강해지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란 인간도 자연계의 일원으로, 다른 생물들과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겸손함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일반 정원은 물론 생태정원을 돌아봐도 이와 같은 공존의 개념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 곳이 그리 흔하지 않다. 우리 대다수는 정원을 생물이 살아가는 장소로서보다는 인간이 최대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의 공간을 순수히 생물에게 내어준 사례도 있다.파리시 센 강변에 미테랑도서관이 있다. 책을 세워둔 듯한 도서관 건물 외형도 독특하지만, 도서관 건물 내부로 산소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조성된 정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정원은 석회암 땅을 약 3m 정도 파서 식물이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1만㎡에 달하는 정원의 전체 면적 중 4분의 3 이상이 숲이며 나머지는 초지이다. 침엽수 위주의 큰 나무가 숲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그중 100여 그루의 구주소나무는 노르망디 지역 숲에서 옮겨온 것이다.미테랑도서관의 정원 조성에서 가장 특별한 점은 조성 후 13년 동안 정원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정원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곳은 요즘도 사람들에게 쉽게 개방되지 않고 있다. 매년 6월 랑데부의 날 3일간만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있고, 방문 예약의 경우도 월 2~4회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정원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45분 이내이며 가이드가 동반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수많은 동식물과 곤충이 이 정원에 터전을 잡고 안전하게 살고 있다. 말 그대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정원 조성을 놓고 본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존의 참의미에 닿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연못 정원을 조성할 때 물 안과 물 밖을 경계 지어 안은 생물의 공간, 밖은 사람의 공간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세밀하게 둘러보면 작은 동물이나 곤충은 한곳에서만 붙박은 듯 살지 않는다.그들은 물가에서 알의 형태로 있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풀숲에서 생활하는데 풀숲은 이미 사람의 공간으로 정해져 있어 그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을 다른 생물들에게 양보해 주지 않는다면, 인간만 존재하는 기묘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람과 식물만으로 자연이 지속될 수는 없다. 그곳에는 작은 동물과 곤충도 있어야 한다. 생물다양성이 존재해야 인간의 삶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오래전 가족과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여행하다가 철나비가 서식하는 여관에서 묵은 적이 있다. 마침 나비가 부화하는 시기로 여관 한쪽에는 집 뒷마당 출입을 통제한다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나비에 대한 주인의 세심한 배려 때문에 조용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참으로 감동적인 경험이었다.21세기, 인간의 최대 화두가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의 증진이다. 구호에 그치지 말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도시 정원 어딘가에 작은 생물들의 서식 공간을 조성하여 작은 동물이나 곤충이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서 그 첫걸음을 시작해보자. 아침이 되면 사람은 활동이 시작되지만 자연 속의 생물은 대개가 야행성이므로 수면을 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사람과 생물의 공존은 이처럼 사람이 자연 세계를 이해할 때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20-09-25 15:22:35

[광장] 기후변화, 이변이 아니라 일상이 되다

[광장] 기후변화, 이변이 아니라 일상이 되다

기후변화의 시대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기후는 변화를 넘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빅 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우리는 엄청난 양질의 데이터시대에 살고 있지만, 기후나 기상에 대한 예측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기후 위기는 변동성이 클 뿐만 아니라 예측도 어렵기 때문에 파급영향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변화를 수십 년 혹은 그 이상 오래 지속되는 기후 상태의 평균이나 변동성의 변화로 정의한다. 이는 자연적 변동성을 포함하여 인간 활동과 시간 경과에 따른 모든 기후변화를 포괄한다.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완화와 적응 활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완화는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인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는 활동이다. 그리고 적응은 온실가스를 감축한다 하더라도 미래에 나타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적합한 행동과 기후변화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기후변화는 우리 삶뿐만 아니라 특히 농업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은 기후 노출, 민감도와 적응 능력으로 이루어지는데, 농업 생산은 기후 노출과 이로 인한 민감도가 가장 높은 산업이다. 농업은 작물의 재배 시기, 작부 체계 변화, 수확량 및 품질, 병해충 발생 등 기후변화의 영향이 다양하다. 축산업은 온도, 습도의 변화로 인한 가축 스트레스 심화와 각종 전염병 발생으로 생산성 저하 문제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의 취약성에 따른 농식품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실천 가능한 적응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기후변화의 시대, 농업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농가에 농업 생산의 위험과 불확실성은 피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생명보험을 들 듯이 농가도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함으로써 일정 보험료를 납입하고 기상재해 발생 시 피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재해보험의 보상금 지급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가 농업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산업은 농업이지만 우리 모두는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방관만 할 상황이 아니다. 일상이 되어가는 기후변화는 우리의 인식을 무디게 만든다. 항아리 속의 개구리는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죽어간다. 그러한 개구리를 미련하다고 비웃을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우리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 속의 개구리 같은 존재가 아닐까?기후변화의 거대 담론은 마치 딴 세상의 먼 미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되다 보면 미래세대의 구슬을 빼앗을 수 있다. 구슬 뽑기 게임에서 바구니 속의 구슬을 뽑은 다음에 다시 집어넣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기회는 줄어든다. 뽑은 구슬을 바구니에 복원하는 것이 하나의 지구를 함께 나누는 현명한 방법이다.기후변화는 현재에 멈추어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도, 내일도 기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변화한다. 변하기 때문에 알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해결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기에 현재 시점에서의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후 위험을 바로 인식하고 공통의 가치에 기반한 협력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의 연대, 단기 이익이 아닌 장기의 지속 가능성 가치를 세워야 한다.이상호 영남대학교 식품경제외식학과 교수

2020-09-18 14:02:25

[광장] 의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

[광장] 의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

지금부터 45년 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2학년 진급을 앞두고 문과·이과를 나눌 때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당시 학제로 이과를 선택해서 '수학2'라는 과목을 배워야 했다. 병원도 없는 산골 깡촌 무의촌에서 태어나 자란 내가 의사에 대해 무얼 알고 의대를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본 영화 한 편 때문이었다. 제목이 '청녀'(靑女, 1974년)인데 아마 영화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분들도 이 영화는 처음 들어볼 정도로 영화사는 물론이고 일반 팬들에게도 잊힌 영화이다.나는 당시 이 영화를 지금은 없어진 대구 비산동 오스카극장에서 봤다. 내용은 의사가 낙도에 의료봉사를 하러 가서 시각장애(장님)에다가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어린 소녀를 구해서 치료하고 돌봐준다는 휴머니즘이 바탕에 깔린 그런 영화였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큰 감동을 받았고, 주인공 남자 의사에 대해 너무나 강렬한 매력과 선망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 나도 의사가 되어 낙도와 같은 무의촌에 가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고쳐주는 휴머니즘 의사가 되자!' 하고 15세 소년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사실 이 영화는 194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프랑스의 A. 지이드라는 작가의 '전원교향악'이라는 소설을 번안한 것이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의사가 아니라 목사인데 주인공 목사 역시 매우 훌륭한 선행을 베풀고 헌신하는 사람으로 나온다.나중에 알게 된 터이지만 이 영화는 '만추'로 유명한 이만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당시 민청학련이라는 시국 사건에 연루돼 수배 중이던 김지하 시인이 조감독이라는 직책으로 당국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지하 시인은 영화 촬영 현장이던 서해 대흑산도에서 잡혀 서울로 압송돼 10년 가까이 징역을 살았다는 후일담도 있다.중국 근대 사상가이자 작가인 루쉰(魯迅)은 '아큐정전' '광인일기' 같은 문학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특히 1980, 90년대에는 경북 봉화 출신의 걸출한 산문가인 전우익 선생이나 신영복 같은 사상가들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널리 소개되고 많이 읽혔다. 루쉰은 몰락한 지주의 아들인데 의사가 되기 위해 일본 센다이 의과대학에 유학을 갔다. 당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었는데 의과대학 실습시간에 환등기로 생체해부학을 공부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일본 군인들이 중국 민중들을 짓밟는 영화를 보고 사람의 육체를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정신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의과대학을 자퇴하고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실제로 루쉰은 20세기 신문명 초기 중국 민중들뿐만 아니라 세계 지식인들에게 정신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친 좋은 글을 많이 썼다.아마 근래 우리 사회의 빅 데이터를 돌려본다면 아마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목사' '의사'가 아닐까 싶다. 종교 유무를 떠나 보통의 장삼이사들이 생각하기로 목사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의 영성을 높이고 사랑과 평화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의사는 몸이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내 영혼이 힘들 때 누군가가 곁에서 해주는 진실한 기도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가. 몸과 마음이 고단하고 아플 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은 얼마나 큰 위안과 치유가 되었던가?오늘은 문득 중학생 때 읽었던 A. 지이드의 소설 '전원교향악'과 이만희 감독의 영화 '청녀'가 생각나면서 45년 전 잠시 의사가 되고자 했던, 분별없으나 아름다웠던 청춘의 내 모습을 회상해본다.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2020-09-11 14: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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