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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신천(新川) 지명에 대한 오해

신천은 비슬산 북동사면에서 발원하는 용계천과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우미산 남서쪽 밤티재 부근에서 발원하는 또 하나의 지류가 가창면 사방산 부근에서 만나 북쪽으로 흘러 침산 부근에서 금호강으로 유입한다. 신천은 금호강(대구권) 최대 지류로 길이 27㎞, 유역 면적 165㎢에 달한다. 비교적 큰 하상경사 탓에 유속도 빨라 가창교에서 상동교까지는 초속 4∼5m, 상동교로부터 침산교까지는 초속 2∼3m를 보인다.신천의 활발한 침식작용은 신천변 곳곳에 수려한 지형 경관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지난 시절 개발 과정에서 정겹고 흥미로운 전설과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던 신천의 풍광이 하나둘씩 사라져, 남아 있는 자연경관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나마 앞산 용두골∼고산골 구간에 남아 있었던 용두산(앞산)의 하식애(강가의 바위 절벽)와 문화 역사적 가치가 큰 문화 지형조차도 신천 좌안도로 공사와 앞산터널 공사로 인해 상당 부분 훼손돼 안타깝다.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신천은 항상 대구의 중심 하천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금호강이 있음에도 대구지역민에게 있어 신천의 의미는 거의 절대적 가치로 인식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민 대부분은 신천의 정체성과도 같은 지명 유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설령 알더라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신천 지명과 관련하여 대구지역민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구 한가운데를 흘러가는 신천이 자주 범람하여 많은 피해를 주었다. 그러자 1778년 대구 판관 이서가 주민의 기부금과 자신의 사재를 들여 신천 물줄기를 지금의 유로로 변경시킨 탓에 새로 낸 물줄기, 즉 신천(新川)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판관 덕에 대구지역민들은 수해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어 그 보답으로 이공제비(李公堤碑)를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신천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서는 잘못된 부분이 있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판관 이서가 신천의 물길을 돌렸다고 전해지는 시기인 1778년 이전에 발간된 해동지도(18세기 초)와 동국지도(18세기 중기)에 표시된 신천의 위치는 현재 신천 위치와 동일하다. 경상도지리지(1425년),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등의 고문헌 대구편에는 이미 신천이라는 지명이 나오고 있다. 신천(新川) 지명이 존재하는 지역으로 경남 창원, 경북 성주, 전남 진도, 경기 시흥, 서울 잠실 등이 있다. 창원의 경우는 동쪽의 의미를 가지는 '새'가 '신'(新)으로 한자화 되었고, 서울은 샛강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대구 신천의 지명 유래를 판관 이서가 물길을 돌려 새로 조성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신천은 수성현과 대구현(달구벌) 사이를 흐르는 하천이라는 뜻에서 '사이천', '새천'(샛강)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신천'(新川)으로 오기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달구벌 동편에 있는 하천이라 '새내'로 부르다가 한자화 과정에서 '신천'으로 바뀌었다는 해석도 고려해볼 만하다. 상동교 동편에 위치하는 '이공제비'에 새겨진 글에는 신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은 있어도 신천의 물줄기를 돌렸다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다.

2019-05-17 06:30:00

최경규 행복강연가·작가

[광장] 행복을 채울 수 없는 욕심의 그릇

욕심(慾心)이라는 그릇은 채워도 채워도 넘치지 않는다. 분명 넘치도록 채웠음에도 채울수록 부족하다. 온전히 이기적으로 채우려 하기에 욕심의 무딘 존재는 채움으로 끝이 없다. 욕심이 없어야 행복이 담긴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다.중국 명나라 시대 묘협 스님은 보왕삼매론에서 10가지 금언을 말하였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으로 삼으라'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제 잘난 체하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성인의 말씀이다.그렇다. 살아가면서 모든 일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은 정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힘든 일을 거치는 동안,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행복하였는지를 깨닫고 그 차이를 느끼고 다시금 내일을 살아간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고통 총량 등가의 법칙이 있다고들 한다. 이 말은 살면서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너무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품고 살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들이 온다는 말이다.욕심의 반대말은 무엇인가?만남의 반대는 이별이고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의 반대말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우연히 행복의 반대말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불행이라 쉽게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욕심이라 생각한다. 즉 불행 역시 그 근원은 욕심에서 발원(發源)한다고 볼 수 있다.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렵다는 취업 분위기에서 입사만 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이 시작될 거로 생각하지만 그 생각도 1년이 채 가지 않아 새로운 환경 속에 다른 이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야근에 주말 출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대리, 과장을 지나간다. 쉴 새 없이 자신을 경쟁 사회에 내미는 동안 우리 명함의 직함은 더 그럴싸하게 보이고 통장의 잔고는 더 늘어날지 모르지만 이러한 욕심이란 독이 수십 년 흐르다 보면 그 욕심이란 포장에 감추어진 스트레스는 우리 몸과 마음을 서서히 병들게 한다.지금 가장 소중한 사람을 떠올려보라.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한번 계산해 보라. 얼마나 될 것 같은가? 10년, 20년 될 것 같은가? 어쩌면 그보다 짧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내일의 성공만을 외치며 오늘의 욕심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사랑하는 이와의 소중한 시간은 점차 사라져가고 심지어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소중함을 깨달았을 때는 그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수 있다.과연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속에 살면서도 정말 무엇이 소중한지를 잊고 사는 듯하다. 자본주의 시대에 돈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돈을 좇고 명예를 바라다 보면 가장 소중한 자신의 건강과 소중한 사람은 멀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꼭 새겨야 한다. 조건만 보고 살았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 조건에 갇혀 있지 말고 햇빛을 보러 나와야 한다. 뒤늦게 깨닫는다. 늦게 멀어진 행동에 대해 후회하는 비율이 높고 세상은 내 생각과 다르게 돌아갈 때가 많다. 행복의 볼륨을 높이는 방법을 배우자.

2019-05-10 06: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반중 조홍감이

자식의 날은 없는데 어버이날이 따로 정해진 이유가 뭘까? 혹시 어른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어른 중심으로 정한 탓일까? 아니다. 자식을 향한 어버이의 사랑은 거의 본능적인 것이며 365일 한결같아 따로 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1년 내내 자식의 날인 것이다. 그러하다면 어버이날을 따로 정한 이유는 분명해진다. 자식들이 어버이께 보내는 사랑은 어버이의 그것 같이 본능적이지도, 한결같지도 않을 수가 있으므로 이날을 맞아서라도 다하지 못했던 효를 되새겨 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필자의 장인은 11개월간 암 투병 끝에 어느 해 9월 1일 새벽 2시에 영면하셨다. 장인은 5남매를 두었는데 그중에 맏이가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 당시 필자의 처형인 맏이는 8여 년간 유학한 후 몇 해 동안 비정규교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다행히도 모 국립대 교수 공채를 통과하여 9월 1일 임용을 앞두고 있었고 처형은 그 대학이 있는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처형은 미처 임명장도 받지 못한 채 달려와야만 했다. 맏이가 정규직 교수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자 했던 간절한 기원이 그분 생의 마지막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으며 임용이 예정된 당일 새벽에는 힘이 부쳐 운명하신 것이다. 이것이 한결같은 어버이의 마음이다.어버이는 자식을 마음속에 품고 살지만 자식들은 생업에 쫓겨 그러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효를 행하려 할 때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나타내는 '풍수지탄'(風樹之歎), 즉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라는 말이 회자하는 것 같다. 한시외전에 나오는 말로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문장에서 유래했다.풍수지탄의 회한을 가장 절실하게 나타낸 시조는 노계 박인로가 그의 나이 마흔 하나였던 1601년에 지은 '조홍시가'(早紅柹歌)의 첫 수이다. 쟁반에 담긴 일찍 잘 익은 홍시를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고 싶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고 안 계셔서 그럴 수 없음을 한탄하는 시조이다./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뵈이ᄂᆞ다/ 유자 아니라도 품엄즉도 ᄒᆞ다마ᄂᆞᆫ/ 품어가 반길 사람 없으니 그걸 셜워 ᄒᆞᄂᆞ이다./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시조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이 고인이 된 후로는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멋진 경치를 볼 때, 문득 문득 떠오르는 모습을 어찌할 수가 없다. 부모 돌아가셔 산에 묻는다는 말도 다 거짓이더라. 내 아버지는 열일곱 해 전, 어머니는 열세 해 전에 돌아가셨지만, 내 가슴에 묻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빙긋이 미소 지으며 떠오르더라. 갚아드리지 못한 은혜가 한이 되어 효의 대명사인 노래자의 옷을 입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지만 풍수지탄만 메아리가 되어 울릴 뿐이더라.노계는 조홍시가 세 번째 수에서 부모가 늙어 감을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수만 근 쇠를 늘려 길게 길게 노끈을 꼬아/ 구만리 먼 하늘에 가는 해를 잡아매어/ 북당의 머리 흰 양친 더디 늙게 하리다./ 어느 누가 세월을 비껴갈 수 있겠는가? 오는 어버이날, 공경하는 마음으로 찾아뵙고 무고하게 지내고 있음을 보여드리자.

2019-05-04 02:30:00

김계희 그림책 화가

[광장] 어린이 미술 공모(共謀)전

미술을 좋아하는 준혁이는 혼자서 그림을 그렸다. 언젠가 한번 미술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매번 누군가가 그린 그림을 따라 그려야 했고, 특히 대회에 앞서 선생님이 그려준 그림을 여러 번 반복해서 연습을 해야 했다. 그게 싫었던 준혁이는 미술 대회에서 학원에서 연습한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그린 그림을 제출했고 준혁이는 상을 받지 못했다. 연습한 것을 그려 제출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이 누군가의 검열을 받고 질책을 받게 되는 고통스러운 경험은 준혁이가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봄과 함께 어린이 미술 공모전의 시즌이 왔다. 많은 학원에서 선생님들은 여러 종류의 공모전을 준비하는 일에 바빠지고, 아이들 또한 선생님들이 구성한 그림을 외우는 일에 바빠진다. 소도시에서 큰 규모의 어린이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지인은 미술 대회에서 아이들에게 상을 받아주지 않으면 학원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 말은 대회에서의 입상을 위해 교사가 구성한 그림을 아이들이 따라 그리게 하고 외우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그리는 것이 습관이 된 아이들은 자신이 다루어 보지 않은 주제가 제시될 경우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이런 폐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설 교육 현장에서 행해지는 수업 방식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사장시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고, 부모님들 또한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주고자 하는 이유로, 그렇게 받아 온 명예롭지 않은 상장을 묵인한다. 재능이 있는 학생을 발굴하기 위한 공모전의 본래 취지와 달리 상당수 미술 공모(公募)전이 어른들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공모(共謀)의 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인 듯하다. 이러한 순환의 원인에는 그림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의 선별 방식 또한 크게 일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다 어른들의 생각을 그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매년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를 해야 하는지, 그걸 하는 의미가 무언지 모르겠어요."이 말은 이제 아홉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내게 했던 말이다. 교육에 있어 어른들의 개입은 지나치다 못해 때로는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많은데, 그 과정에서 아이의 순수성과 창조성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 아랑곳없는 무책임한 교육 현실은 아이들의 삶 전반에 스며들어 그들의 가치관을 흔들고 있다.이 같은 순환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먼저 공모전에서 심사를 담당하는 심사위원들의 통찰력 있는 눈으로 어른의 개입이 들어간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을 구별해서 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의 그림에 교사들의 개입은 줄어들 것이고, 부모님들은 아이가 받아온 정직한 상장에 대해 안심하고 칭찬과 격려를 줄 수 있을 것이고, 아이 또한 자신의 성과에 정당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쪽으로 흐른다. 오늘의 교육 현실이 우리의 동의만큼의 결과라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것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 질문 속에 항상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는 오류를 바로잡아갈 수 있고, 교육은 진실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19-04-27 02: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갓바위 불상에 관한 단상(斷想)

팔공산 주 능선 동편 끝자락 관봉(冠峰, 853m) 정상부에는 갓바위 부처로 불리는 보물 제431호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다.2015년 국립공원연구원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00여 평도 채 되지 않는 관봉 정상부의 갓바위 불상을 보기 위해 연간 약 250만 명(경산 쪽에서 오르는 사람 178만 명, 대구 쪽에서 오르는 사람 72만 명)이 방문한다는 공식 통계가 있다. 단위 면적당 세계 최고의 탐방객 수를 보여주고 있어 세계문화유산급에 해당하는 중요 문화재다.평면적 신체 탄력성이 약해 8세기 불상과는 구별되는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게 불교미술사적 해석이다. 본 불상은 7세기 후반과 8세기 중반에 각각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아미타여래좌상)과 국보 제24호이자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된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석가여래불상)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선본사 사적기'를 발굴하여 그 내용을 불교신문에 게재한 기사(2013년 5월 15일)를 보면 이러한 추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전략) 이 불상을 보고 감흥이 일어나 기도와 축원을 올리면서 감응을 얻은 사람이 많다. 승려들만 불상을 보고 발심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남녀들도 깊은 신심을 일으켰다. 이것은 의현(義玄) 화상의 공(功)이고 불일(佛日)이 멀리 비추어준 덕(德)이라 할 것이다.-도광 원년(1821, 순조 21년) 하안거 해제일에 쓰다. 이때의 주지 범해(梵海)가 분향하고 삼가 쓰다-"의현 대사는 화랑의 '세속오계'를 만든 원광 법사의 제자로 전해져 오던 인물이다. '선본사 사적기'에서 의현 대사의 실명이 사실로 밝혀져 갓바위 불상 조성 시기에 대해 재조명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금까지는 불상이 9세기에 조성되었고 불상 머리 위에 얹혀져 있는 갓 모양의 평평한 돌은 후대인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선본사 사적기'의 기록과 최근에 밝혀진 갓 모양의 바위에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보상화 무늬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기존의 판단에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불상 머리에 얹혀져 있는 갓모양의 돌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라면, 불상은 통일신라 이전 시기에 조성돼야 논리적으로 맞다. 부연하면, 갓바위 불상은 7세기경에 조성되었고, 갓 모양의 넓적한 돌은 8세기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 불상 위에 올려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과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의 영향을 받아 갓바위 불상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갓바위 불상의 영향을 받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본존불과 석굴암 본존불이 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불상의 왼손에 작은 약합이 있어 약사여래불로 인식되어 왔으나 실은 약합이 아니라 엄지손가락이며, 갓을 쓰고 있어 미륵불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대좌(臺座)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갓바위 불상은 돌 하나조차도 훼손하지 않으려는 불교적 자연 존중 사상이 오롯이 녹아 있는 위대한 작품이다. 바라건대,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갓바위 불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이 함께 공유할 날을 기대해 본다.

2019-04-20 03:30:00

최경규 행복강연가·작가

[광장] 오늘을 제대로 살면 더 행복할 수 있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그 일을 하지 못하는 차이, 즉 괴리감에서 오는 부분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현실과 자신이 바라는 기대의 차이가 클수록 행복감도 낮아지며, 자존감도 점차 떨어질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누가 들어도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애착을 우리는 욕심, 과욕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욕심이 때로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동기 유발과 지속적인 성장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점은 언제나 그러하듯 네거티브한 부분, 성취에 대한 작은 자기 보상도 없는 끝없는 욕심은 지금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란 감정조차 메말라가게 한다.행복에 대한 강연과 상담을 하다 보면 행복의 기준점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라 답한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할 때나 가족과 여행을 할 때이다. 비싼 세계 여행도, 최고급 스포츠카를 갖는 것도 아닐진대, 우리가 행복을 지금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 이유는 바로 남들과의 비교, 경쟁의 마음에서 비롯된 자기만족 불감증 때문이다. 이웃이 해외여행을 가고 비싼 수입차를 타더라도, 가까운 바다라도 갈 수 있고 오래된 차라도 있으면 행복하다고 느끼면 된다. 그런데 수많은 시간들을 남들보다 더 잘하고자, 내일의 행복이란 명분 아래 오늘을 희생하고 살아간다. 좋은 차, 해외여행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행복을 무시한 채 내일을 위하여만 살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인생의 황혼기에 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생의 정답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행복한 삶이라 그들은 자신있게 말한다.최고급 양주를 마시며 일등석에 타는 사람이나 맥주를 마시며 이코노미석에 앉은 사람이나 도착 시간과 도착하는 장소는 같다. 100평의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20평에 사는 사람보다 삶의 외로움을 덜 느끼는 것은 아니다. 삶의 기준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정을 나누고 추억을 만들어가며 인간답게 사는 것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그리 영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은 무엇이고 오늘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어떠한 것을 할 수 있는가? 여러 가지 변명과 이유들로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의 가치를 잊고,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기쁨의 권리를 억누르고 있지는 않은가?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내일이 아닌 오늘을 소중히 생각할 때 행복의 씨앗은 무럭무럭 잘 자랄 것이다. 그리고 비록 이 작은 사고의 전환은 수십 년이 흐른 어느 날, 행복하게 한평생 즐기다 간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2019-04-13 01: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생각하다'의 참 의미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에 비유했던 파스칼은 '팡세'에서 "사람은 생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생각은 사람의 모든 존엄성이고 모든 가치이다"라며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던 데카르트는 생각 또는 의심을 극한까지 실천한 학자였다. 의심할 여지 없는 확실한 것을 찾으려고 자신의 존재조차 의심했지만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의심하고 있는 그 무엇'이며 '그 무엇이 자신'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라고 했을 때 '무엇을 생각한다'라고 그 '무엇'을 밝히지 않았다. 그 무엇은 무엇일까? 앞에서 밝혔듯이 생각은 사람됨의 전부이지만, 생각의 대상이 되는 그 '무엇'에 대한 규명은 부족했다.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필자가 다다른 결론은 '개체들의 속성과 개체들 간의 관계'이다. '개체'는 흔히 '대상'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이 붙여진 '책'과 같은 물건, '태풍'과 같은 현상 및 '미'(美)와 같은 상태를 말한다.가령 세 개의 개체가 그려져 있는 도화지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첫눈에 3개의 개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세 개체에 차례로 주의를 쏟으면 세모(△), 네모(□) 및 동그라미(○)임을 알게 된다. 주의를 색상에 쏟으면 세모는 파랑, 네모는 노랑, 동그라미는 붉은색임도 알게 된다. 주의를 세 개체의 위치 관계에 기울여 보면 네모 위에 세모가, 네모 오른쪽에 동그라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껏 우리가 생각한 것은 세 개체의 형태와 색상의 속성, 그리고 세 개체의 위치 관계였다.눈앞에 있는 두 그루의 나무를 볼 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두 그루의 버드나무가 서 있다. 왼쪽 것이 오른쪽 것보다 더 크다. 나뭇가지들이 머릿결처럼 출렁인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한 것은 개체인 버드나무들의 속성(서 있는)과 또 다른 개체들인 나뭇가지들의 속성(머릿결처럼 출렁이는), 그리고 두 나무의 관계(왼쪽 것이 더 큰)이다. 결국 개체들의 속성과 그것들 간의 관계를 생각한 것이다. 나무를 쳐다보며 온종일 생각해도 결국 나무와 관련된 그것들 외엔 생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생각의 본질이다.이제 이것을 수업 현장에 적용해 보자. 각 과목, 각 단원에 나오는 모든 명사는 개체들의 이름이다. 모든 개체는 그 나름의 속성이 있고 존재 이유가 있다. 그리고 각 개체들 간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다. 속성과 존재 이유, 그리고 관계를 끝까지 규명하라. 이것이 공부의 전부이다.30년 전 미국 브라운대학의 교양수학 문제 중에 '자연수 5가 3보다 큰 것을 증명하시오'가 있었다. 5와 3의 속성과 그것들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문제였다. 그 강의를 청강했던 필자는 아직도 정확한 답을 모른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공자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정확한 답을 해주는 분은 만나지 못했다. 이것이 이 나라 교육의 실상이다. 모래 위에 바벨탑을 짓고 있는 격이다.나와 울산바위도 존재 이유가 있고 모종의 관계가 있다. 나뭇잎이 피고 지는 데도, 그리고 각각의 색깔로 변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이유가 없다"거나 "관계가 없다"라고 함부로 결론짓지 마라. 단지 현재로선 그 이유와 관계가 명확하지 않을 뿐인 것이다.

2019-04-04 14:24:20

김계희 서양 화가

[광장] 재능의 위험

나는 재능이라는 것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재능을 향상하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그 재능은 있으나 마나 한 공허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똑똑한 머리 혹은 선천적인 재능은 본인의 노력 없이 저절로 타고난 부분이다. 그런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감각이 탁월해 한 번 본 것을 빨리 외우고, 쉽게 모방하며, 처음 접하는 분야라도 조금만 연습하면 실력이 빠르게 향상된다. 하지만 이러한 재능이 내포한 가장 큰 위험성은, 노력하지 않아도 늘 좋은 결과가 오기 때문에 노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노력이라는 경험을 일찍부터 훈련하지 못한 아이는 재능에 버금가는 성과물을 내지 못하기 쉽고, 그 재능으로 인해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수월히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힘든 공부도 끈질기게 하지 않을 것이고, 낮은 성적을 받을 것이고 그러므로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그 재능의 기대치보다 훨씬 낮은 현실에서의 성취가 그를 불행으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이른바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만날 때, 나는 그들의 재능에 주목하지만 그 재능은 그 이상의 노력이 수반될 때에만 확대되고 지킬 수 있는 것이기에, 나는 노력, 집요함, 끈질긴 태도를 재능에 포함하고, 그것을 훈련하려 노력한다. 재능을 가진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것에 버금가는 집요한 노력을 수행하지 않아서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점에 이르지 못하고 좌절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재능'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있다. 자신이 어떤 길을 갈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는지를 이미 알고 태어난 사람은 그 길로 가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재능이란 자신의 삶에 대한 열망이며, 그 열망은 살아가는 동안 열렬한 노력을 경주하지 못하는 자신과 계속 충돌할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는 그런 아이들이 그들의 열망대로 살 수 있도록 준비해주고 자신을 극복하는 노력의 습관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오래 전, 백건우 씨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다 연주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정진한 후 개최한 공연에서 악보 없이 몇 시간 동안 피아노를 연주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경외심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의 연주에 감동을 받았던 이유는 단순히 그의 피아노 연주가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성취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전곡을 다 연습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지만, 그의 그러한 도전은 나에게 천재와 무능의 경계를 다시금 상기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성취를 위한 노력이 습관을 만들고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서게 하고, 결국 인생을 변화시킨다. 성공의 기준은 어디까지 올라갔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출발점으로부터 얼마만큼 올라갔느냐" 일 것이다. 최선을 다한 경험이 몸에 각인된다면 그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최고의 자리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2019-03-30 02: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왜 팔공산인가?

팔공산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문헌은 '점필재집'이다. '점필재집'은 김종직의 시문집으로 김종직 사후(死後) 5년째인 1497년에 간행되었다. 팔공산 지명은 '점필재집' 제7권 '시편'에 수록된 한시 '범어역 노상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적는다'(凡於驛路上記所見)의 내용 중 '팔공산 아래는 의당 가을이 아니로구나'(八公山下不宜秋)에서 확인할 수 있다.조선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팔공산은 중악(中岳), 부악(父岳), 공산(公山) 등으로 불려져 왔다. 중악의 기원은 '삼국사기' 권 제32 '잡지' (雜志)의 '제사(祭祀)와 樂(악)'에 잘 나타난다. "3산(山)·5악(岳) 이하 명산대천을 나누어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구분하고, 그중에 중사는 5악으로 동악을 대성군의 토함산(吐含山), 남악을 청주(菁州)의 지리산(地理山), 서악을 웅천주(熊川州)의 계룡산(鷄龍山), 북악을 내사군(奈巳郡)의 태백산(太伯山), 중악을 동·서·남·북악의 중간에 위치하는 압독군(押督郡)의 공산(公山)으로 한다."이처럼 팔공산은 신라시대 이래 중악, 부악, 공산 등으로 불려져 오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비로소 팔공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팔공산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 8개 고을에 걸쳐 있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팔공산이 행정구역상으로 8개 지역에 걸쳐 분포한 적은 없다.둘째, 동화사 창건 설화에 나오는 팔간자설이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의 이념체계를 지향하던 시대다. 따라서 불교와 관련된 팔간자의 '팔'(八)을 차용하여 공산을 팔공산으로 개칭했을 리는 없다.셋째,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간에 벌어진 팔공산의 공산전투에서 왕건이 크게 패하여 도주할 때, 왕건의 여덟 장수가 팔공산에서 순절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는 설이다. 그러나 공산전투에서 왕건과 함께 전투를 하다 순절한 장수로는 신숭겸과 김락 두 명이다. 그래서 고려 예종은 두 장수의 원혼을 달래주려고 '도이장가'를 짓기도 했다.넷째, 중국 지명을 차용했다는 설이다. 사대부의 중국에 대한 모화(慕華)사상이 강했던 조선시대에는 중국 지명을 차용한 경우가 많았다. 383년 전진(前秦)과 동진(東晋) 간에 벌어진 비수전투의 격전지에는 팔공산(八公山)이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아마도 당시 비수전투가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간에 벌어진 공산전투만큼이나 치열했던 탓에 팔공산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이처럼 팔공산의 지명 유래에 대한 설이 다양하게 전해오고 있으나 가장 합리적인 유래설은 중국 안휘성(安徽省)의 팔공산 지명 차용설이라 생각된다. 팔공산은 전라북도에도 한자어까지 동일한 지명이 존재한다. 섬진강 발원지로 진안군과 장수군에 걸쳐 있는 해발 1,151m에 달하는 높은 산이다. 즉 한자어까지 동일한 지명이 2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특정 지명을 차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능케 해준다.조선시대에 제·개정된 지명 대부분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팔공산 지명의 중국 유래설을 중국 관광객 유치에 활용해보면 어떨까?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재물과 관련된 '8'(八)이고, 정성껏 기도하면 한 번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갓바위가 있는 팔공산은 중화권 관광객에게는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갈 것이다.

2019-03-23 02: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성인지 감수성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안희정 사건에서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후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가끔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에서 '성'은 영어의 'sex'가 아니라 'gender'이다. sex는 생물학적, 신체적 기준으로 사람을 나눈 것이고 gender는 특정 사회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사회·경제적 역할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성인지 감수성은 '사회·경제적 활동을 할 때 이성(異性)이 지닌 약점, 어려움, 정신적 및 육체적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마음의 준비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이것을 갖추고 상대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고, 상대에게 말과 행동을 해야 함을 뜻한다. 이론적으로 이것은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가져야 할 감수성일 뿐만 아니라 여성이 남성을 상대로도 지녀야 할 감수성이다. 하지만 이것은 약한 상대에 대한 상대적으로 강한 쪽의 이해와 공감의 문제이기 때문에 남성 중심인 현실에서는 남성이 갖춰야 할 감수성으로 이해된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는 남성 중심이었으며 여성은 사회·경제적으로 차별을 받아 왔다. 문화권에 따라 다르지만 심한 경우엔 아직도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전면 금지되거나 부분적으로만 허용되는 지역이 있다. 그리고 법적으로는 전면 허용된다고 할지라도 명목뿐이고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우리들의 인식, 언어 습관, 교육 과정, 교육 제도, 취업, 직장 및 가정 내의 역할, 그리고 종교 및 정치 제도 등 사회 각 분야에 똬리를 틀고 있다.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큰 인기를 끌었고 최근엔 일본에서도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작품은 김지영의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30대 중반까지의 평범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직접 쓰진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인 김지영이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에워싸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출생 시의 남녀 구별부터 초, 중, 고, 대학 생활 및 취업 과정에서의 차별, 경력단절과 독박육아까지 그녀가 겪은 성차별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안희정의 1심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시 말해 피해를 당한 후에도 평소처럼 행동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다움에 정답이 없으므로 '피해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것도 남성중심사회가 만든 프레임이다. 피해자가 스스로 최후진술서에서 밝혔듯이 막강하게 불의한 권력 앞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매장당할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처신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어쩌란 말인가?할머니 세대의 짐을 어머니 세대가, 어머니 세대의 차별을 누이가 이었는데, 딸과 손녀들에게도 똑같이 물려줄 것인가?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서는 이미 2004년 200쪽이 넘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 매뉴얼'을 발행하였다. 교육부, 여성가족부, 각급 교육기관 및 직장의 인사 관리팀은 성 평등과 성인지 감수성 교육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모든 이를 위한 교양 및 인성교육이고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이로운 교육이기 때문이다.

2019-03-08 02:30:00

김계희 서양 화가

[광장] 영화로 가르치라

감성 교육에 있어서 나는 부모님들께 아이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편씩 영화 보기를 권하곤 한다. 일 년 동안 꾸준히 영화 보기를 진행한 아이들은 상황 해석력이나 미묘한 감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여느 아이들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탄탄한 스토리와 영상, 음악이 합쳐진 종합 예술인 만큼 그 체험이 아이의 몸에 수년 동안 쌓여서 발휘하는 힘은 어마어마할 것이지만, 영화를 보여주는 더 중요한 이유는 감정을 다루고 이해하는 교감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교감 능력이 사회생활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듯, 상황의 맥락을 해석하는 이해력과 깊은 교감 능력은 행복한 관계를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부모님의 각별한 관리를 받으며 공부로 대부분의 활동을 채우는 요즘 아이들은 다양한 상황을 몸으로 체험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자신의 체험을 정서적으로 환원하는 폭 또한 점점 좁아지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경험하는 감정의 영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에, 상대방의 감정의 깊이 또한 자신이 체험한 감정의 제한된 무게로밖에 다룰 수 없을 것이다.아이들에게, 교감의 능력을 만들어 주기 위한 대안이 있다면 바로 영화 보기일 것이다. 간접적인 체험이긴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실제처럼 자신에게 이입시킬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바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스토리가 있는 관계의 구조 속에서 자신이 어렴풋하게 체험한,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없었던 감정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어 줄 때도 있고, 또한 이해할 수 없었던 타인의 감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체험은 사유를 일으키고, 사유는 스스로와의 토론의 장을 마련해 줄 것이다. 거기에 감동이라는 파도가 마음을 휘젓고 지나간다면 커다란 마음의 재산이 생기는 셈이다.개인들의 역량이 더 중요했던 지금까지의 흐름과는 달리, 앞으로의 직업들은 지금보다 더 다양한 분야로부터 온, 능력 있는 개개인들이 팀을 구성하여, 보다 나은 결과물을 협업으로 만들어 내는 형태로 변화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팀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소통 능력이 매우 중요하게 평가될 것이고, 결국 팀원들의 가려진 마음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교감 능력을 갖춘 리더가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교육이 감성의 리더십을 기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고, 예술과 인문학 등의 교육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감성 교육에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가정에서 일주일에 한 편씩 오랜 기간 꾸준히 좋은 영화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기존의 교육이 줄 수 없는 놀라운 효과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영화를 고를 때는 아이들의 선호도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어느 정도 영화를 접하게 한 후에는 좋은 내용의 영화라면, 다양한 분야와 소재를 가진, 연령대가 높은 영화들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좋겠다. 잠시도 한눈팔 수 없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익숙한 아이들은 조금 지루한 장면에서 집중력이 흐려져 이야기의 맥을 놓치는 경우가 많지만, 몇 달만 꾸준히 영화를 보게 하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상황과 감정에 대한 해석력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 조금만 노력한다면 아이들에게 상상 이상의 값진 마음의 재산을 만들어 줄 수 있다.

2019-03-02 04: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유불선(儒佛仙), 가톨릭이 조화를 이루는 팔공산

팔공산의 다양한 문화적 자원 중에서도 종교적 문화의 다양성은 팔공산을 대표하는 가치임에 틀림없다. 팔공산은 통일신라시대 중악으로서 왕이 천신께 제사를 지내온 이래 홍익인간을 구현하려는 선도(仙道)문화와 도교적 색채가 곳곳에 배어 있다.천왕봉(비로봉) 서편에 위치하는 마애약사여래좌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에는 연화대좌 아래에 쌍룡(청룡과 황룡)이 조각돼 있다. 이것은 불교가 이 땅에 자리 잡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우리의 토속신앙적 색채가 혼합돼 나타나는 것으로 팔공산이 토속신앙지의 메카였음을 잘 알 수 있다.김유신 장군 설화의 배경이 되는 명마산의 용왕당을 비롯하여 기생바위와 천왕나무(소나무), 능성동 내릿골의 당산, 동화사 부도암 주변 기자석(祈子石) 등지에는 지금도 많은 무속인들이 찾는다. 또한 마을 당제와 동제의 존재는 팔공산 일대의 토속신앙이 여전히 전승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당제와 동제는 토속신앙의 요소에 불교적, 유교적, 도교적 의례가 혼합된 방식을 보이며 나무, 돌탑, 돌무더기, 솟대, 선돌 등을 수호신으로 삼고 있다.팔공산에서 토속신앙과 도교에 뒤이어 나타나는 종교 문화적 색채는 불교문화이다. 신라의 불국토라 불릴 정도로 불교 유적과 문화재가 많은 팔공산은 신라시대 이래 역대의 여러 왕들과 불교적 인연을 가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국보 2점, 보물 12점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와 유적을 품고 있는 팔공산에는 남사면의 동화사, 북사면의 은해사 등 조계종 본사가 2곳이나 소재하고 있어 현재도 불교적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정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로 유명세를 더하는 갓바위(보물 제431호 관봉석조여래좌상)의 존재는 팔공산이 왜 불교의 성지인가를 잘 보여준다.신라시대 이래 융성하게 발전해 오던 불교문화는 유교적 사상이 국가의 이념으로 설정되었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침체의 길로 들어선다. 팔공산의 유교적 문화 색채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을 비롯해 군위의 양산서원, 동구 용수동의 농연서당과 농연구곡, 영천의 귀천서원, 동화천의 문암구곡 존재는 팔공산의 유학적 사상과 이념을 풍성하게 해준다. 특히 명유들의 팔공산 산행기나 유람기는 팔공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유려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어 팔공산의 멋을 한층 돋보이게 해준다.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는 유·불·선과는 확연히 다른 가톨릭이 서구로부터 유입되어 오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유교적 이념이 강했던 경북에서는 1800년대 유교적 이념과 대립되던 가톨릭 종교의 보급으로 인해 가톨릭이 배척당하던 시기로, 많은 순교자가 생겨났다. 특히 팔공산 한티에 위치한 한티성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톨릭 성지다. 이처럼 팔공산에는 우리의 토속신앙을 비롯해 유·불·선 그리고 가톨릭이 공존하면서도 조화로움을 추구해나가는 특이한 장소성을 보이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곳이다.21세기 혼돈의 시대에 각각 다른 종교적 이념을 가지는 다양한 종교가 한 지역에 온전히 둥지를 틀고 상생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2019-02-23 04:30:00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 대구에는 왜 아레나급 공연장이 없나

재작년 12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뮤지컬 '오! 캐롤'을 관람했다. 팝의 거장 닐 세다카(Neil Sedaka)의 주옥같은 명곡을 주크박스 뮤지컬로 감상하면서 문득 닐 세다카의 근황이 궁금했다. 올해 팔순의 고령이지만 공연을 활발히 펼치고 있었다. 지난 설 연휴 기간에 닐 세다카의 공연이 열린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를 다녀왔다.영국 BBC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1위로 선정한 그랜드캐니언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라스베이거스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경비행기를 타고 지구의 20억 년 역사가 담겨 있는 그랜드캐니언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여행의 백미였다.라스베이거스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매년 개최되는 비즈니스 컨벤션의 메카이다. 연중 매일 수십 편의 쇼와 뮤지컬, 팝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아무 때나 방문해도 실내 공연장에서 다양한 장르의 볼거리가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공연문화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닐 세다카의 콘서트는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아담한 공연장에서 열렸다. 닐 세다카가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오 캐롤'을 부르고 때로는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여독이 확 풀렸다.당대 최고의 팝 아티스트 레이디 가가의 재즈&피아노 콘서트도 관람했다. 공연이 열린 MGM 파크 시어터는 5천2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실내 공연장이지만 무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좌석까지의 거리가 44m에 불과하다. 7년 전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레이디 가가의 내한 공연을 관람했을 때와는 달리 무대가 잘 보였고 차분하게 음악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파크 시어터 옆에는 다목적 실내 경기장인 T-모바일 아레나가 눈에 띄었다. 2017년 5월 이곳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방탄소년단(BTS)은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최대 2만 명의 관객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아레나가 라스베이거스에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대구는 왜 아레나급 공연장을 꿈꾸지 않는 것일까? 이미 고척스카이돔과 올림픽공원의 여러 공연장에서 케이팝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 서울에서 창동역 인근에 '서울아레나'를 건립하려는 것은 아레나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1950년대, 60, 70년대는 물론이고 방탄소년단에 이르기까지 대구에는 수많은 음악적 스토리가 있다. 그럼에도 대구는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 대구에도 아레나급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이 들어선다면 그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단순히 음악 공연 산업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당장 어렵다면 실내 공연장이 아니지만 새로 개장하는 '포레스트 아레나'를 케이팝 공연장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다.짧은 여행의 마지막 날 밤 MGM 그랜드 호텔에서 데이비드 카퍼필드 쇼를 관람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매직쇼였다. 카퍼필드가 오래전 세상을 뜬 부친과 극적으로 재회하는 장면을 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봤다.부모님을 떠나보낸 뒤 삶의 유한함을 절감하고 여행을 통해 힐링하는 삶을 지향하고자 했다. 정신과 진료와 여행을 병행하면서 칼럼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부족한 글을 읽고 성원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9-02-14 13:50:38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2‧28 민주운동의 근간, 왜 대구인가?

2·28 민주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후 두 번째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8개 공립학교 학생들이 "학원을 정치 도구화 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서 분연히 일어났다.경북고에서는 학생들의 의기가 달아오르자 학생부위원장 이대우와 학생위원 안호영이 단상에 올라 "인류 역사 이래 이런 강압적이고 횡포한 처사가 있었던고"로 시작하는 결의문을 선언하고 교문 밖으로 진출하였다. 매일신문사, 경북도청, 도지사 관사로 나아가 결의문을 재차 선언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호소하였다. 나머지 일곱 개 학교에서도 시간, 경로, 학생 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궐기하였다.조동걸(1997)과 윤순갑(2000)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28 민주운동은 시대의식을 반영한 이성적 운동이며, 여러 학교가 동시에 궐기한 조직적 운동이고, 부정선거와 독재에 항거하는 목적이 분명한 의거였다. 나아가서 2·28은 3·15 마산의거의 배경이 되었고 4·19 혁명의 꽃을 피움으로써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그렇다면 왜 하필 대구에서 2·28 민주운동이 일어났는가? 2·28의 배경으로 꼽히는 이승만 정권의 부패, 독재정권의 강권적 억압, 경제 불황과 토지개혁 실패 등은 남한 전역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따라서 대구와 2·28의 개연성을 설명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다. 오히려 대구가 지닌 역사성, 영남인이 지닌 역사의식 속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 영남은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 원광(경주 출생)은 전쟁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나지 않는 정신을 강조했고, 원효(경산)는 모든 대립적인 논쟁과 갈등을 화합과 조화로 바꿀 수 있음을 설파했다. 이런 정신들이 삼국통일과 단일민족개념 형성에 밑거름이 되었다.여말선초엔 절의(節義)의 대명사이며 성리학의 비조(鼻祖)인 정몽주(영천)가 있었고, 조선 성리학의 학맥은 길재(구미), 김숙자(선산), 김종직(밀양), 김굉필(달성), 정여창(함양), 이언적(경주)을 통해 이어졌으며 이황(안동)에 이르러 사물과 사태의 본질 및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그래서 불의에 비타협적인 학풍을 꽃피웠다.근대에 와서 최제우(경주)는 동학을 창시했고,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그의 인내천 사상은 사회 모순에 저항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사상을 심어 주었다.이처럼 영남의 사상적 전통은 영남이라는 지역을 넘어 민족사상의 큰 물줄기를 형성해 왔다. 이런 정신적 근간(根幹)이 역사의 고비마다 영남이 앞장섰던 이유이고 영남의 중심인 대구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운동이 일어났던 까닭이다. 선조들이 각각의 시대 상황에서 처절하게 고민하여 시대의 물줄기를 바꿨듯이 59년 전의 선배들도 독재정권의 불의에 고뇌하고 맞서 한국현대사를 바꿨다.그런데 현재 대구의 모습은 어떠한가? 노력 없이 상속받은 '보수의 심장'이라는 브랜드에 취해 선배들이 지녔던 문제의식, 역사의식 그리고 엄한 도덕성에 바탕을 둔 진취적 기상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2·28 민주운동 59주년을 맞아 영남인 본래의 정신적 유산과 가치를 고양시킬 때이다.

2019-02-09 03:30:00

김계희 그림책 화가

[광장] 창조를 이끄는 힘, 몰입

어린이 미술 지도는 쉽고 재미있기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교육 과목이다. 그래서 학교 밖 미술교육 시장에서는 쉽고 재미있는 것에 중점을 둔 커리큘럼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재미는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아직 집중력이 약한 어린아이들에게는 특히 그럴 것이다.하지만 재미에 치중한 나머지 그 이상의 몰입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 현재 미술 교육 현장의 한계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몰입을 끌어내지 못하면 아이 스스로 능동적인 연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스케치를 할 때 이미 그려진 도안을 아이가 따라 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도안을 따라 그리게 하면 초반에 드로잉에 빠른 발전이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아이의 상상력이나 관찰력, 실험정신은 막을 내리게 되기 십상이다. 또한 밑그림 자료가 제공되지 않으면 스스로의 힘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힘들어 하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힘이 바탕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모든 분야가 그렇듯, 몰입을 통해 자신 이상의 것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참다운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기존에 알고 있는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힘은 몰입에서 나온다. 몰입의 시기에는 드로잉이 무척 섬세하고 견고해지며 구성에 자유로움이 깃든다. 이것이 바로 형태나 디테일을 맨 뒤 순서에 두어도 되는 이유다. 가르치는 사람은 기술이나 디테일보다는 단지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예를 들어, 아이가 기존의 사물을 그릴 때, 지금까지 그려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그려보도록 제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를테면 세상에 없는 나무, 세상에 없는 꽃, 자신이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독특한 의자 등을 그려보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그림에서 독특한 부분을 찾아내어 그것이 얼마나 멋있는지에 대해 진심으로 감탄하고 칭찬을 해 주면 된다. 그럴 때 아이는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어 더욱 새로운 형태를 시도하게 된다.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자꾸 넘어지고 실패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에 페달을 세게 밟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릎을 다쳐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페달을 세게 밟을 수 있도록, 틀려도 괜찮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면 아이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페달을 세게 밟을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핸들에 중심이 잡히고 자전거는 앞으로 달려간다.물론 칭찬과 격려가 아이에게 정확히 전달되려면 아이의 전반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이 있어야 한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정면에서가 아닌 보이지 않는 뒤편의 어느 곳을 건드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섬세하고도 지속적인 터치 속에서 아이의 눈도 함께 섬세해진다. 눈이 섬세해진다는 것은 뇌가, 생각이 섬세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형태와 디테일은 스스로 자연스러운 발전을 이룬다.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을 만큼 자신감이 있는 아이는 바퀴가 제대로 구르고 있는지 고개를 숙여 확인하지 않는다.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바퀴가 제대로 구르고 있는지 확인하는 한 자전거는 달릴 수 없다. 가르치는 일을 맡은 모든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눈에 띄지 않게 톡톡 자극하는 것이다.

2019-01-31 18:09:53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살고 싶은 대구

필자는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대구를 제대로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대구에 대한 좋지 않은 얘기를 들을 때면 이성을 차리기 전에 흥분부터 되는 거 역시 대구 사람이기 때문이다.과거 대구경북이 잘나가던 시절에는 타 지역민들로부터 적잖은 시샘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잘나간 것은 일부 기득권층에 한정될 뿐 보통의 대구 사람은 득은 못 보고 욕만 함께 얻어먹기 일쑤였다.사실 대구는 한국사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다. 대구 지역에 대한 학문을, 이른바 지역학의 범주로 본다면, 학창 시절 우리가 배워온 한국사는 중앙학이지 지역학이 아니다. 중앙의 권한이 절대적인 현재의 사회제도에서 지역학은 늘 무시되어 왔다.이제 우리 지역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약 2만 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 이래 인류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삶의 터전이 지속되어온 대구는 오늘날 인구 250만에 이르는 거대 도시로 발전했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신문왕 9년(689년)에 왕은 통일신라의 수도를 경주에서 대구로 천도하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대구로의 천도가 성립되지 못한 구체적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새로운 천도지로 대구를 택했다는 것은 삶터로서의 대구가 매우 길지였다는 얘기다. 아마도 경주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탓에 자연재해가 거의 없으면서도 넓은 평야를 가진 대구가 천도지로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고려 현종 때는 합천 해인사에 보관돼 있는 팔만대장경(1236∼1251년 제작)보다 200년가량 앞서 제작을 발원한 호국의 초조대장경이 팔공산 부인사에 보관되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 총사령관인 사명대사가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 주둔하면서 승병사령부를 지휘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군 이여송과 함께 참전한 풍수 전문가 두사충은 대구가 좋아 이곳에 둥지를 튼 이래 지금까지 많은 그의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다.한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 부대 좌선봉장이었던 사야가(沙也可 혹은 沙也加, 김충선) 역시 아름답고 인심 좋은 대구에 반해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왔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거두 한강 정구 선생을 비롯해 많은 선비들이 강학을 하고 충효를 다짐하고 동기 간 의리를 지키며 살아온 곳이 대구다.1601년에는 경상도의 중심인 경상감영이 경주, 상주, 안동을 거쳐 대구로 옮겨와 대구는 명실상부 영남 최고의 도회(都會)로 자리 잡았다. 1907년 서상돈 등의 제안으로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천300만원의 채무를 민족의 힘으로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결의했던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도 대구였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지켜낸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된 곳도 대구다. 4·19의거의 도화선이 된 2·28민주학생의거가 일어난 곳도 대구다.인구 250만의 대도시 인근에 1,000m가 넘는 세계적 명산 팔공산과 비슬산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볼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 대구 말고는 세계 그 어디에도 없다. 인문과 자연이 조화로움을 이루고, 정의감과 의리가 넘치는 대구야말로 최고의 인문적·자연적 환경을 갖춘 삶의 터전이다.

2019-01-25 06:30:00

김요한 대구시 청년정책과장

[광장] 새해에는 '꼰대 탈출' 합시다

인터넷에서 '꼰대'라고 검색하면, '꼰대 테스트', '꼰대 6하원칙' 등 젊은이들이 '꼰대'를 풍자한 글과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꼰대'는 이미 '꼰대 문화'로 우리 생활 속에 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꼰대'는 '늙은이'를 뜻하는 은어 혹은 학생들이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는 현대적 의미의 '꼰대'는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근거 없이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다. "나는 꼰대가 아냐!"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꼰대 테스트'를 먼저 추천한다.청년들에게 '꼰대 문화'는 직장을 떠나게 하고, 도시를 떠나게 하는 청년들이 탈출하고 싶은 갑갑한 문화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입사 후 1년 이내 퇴직하는 비율은 2012년 23.6%였던 것이 2014년 25.2%, 2016년 27.7%로 꾸준히 늘고 있다. 어렵게 입사하고도 4명 중 1명이 1년 안에 회사를 떠난다.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조직이나 일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업 문화로 인한 이직이나 퇴사가 53.9%로 나타났는데, 남성보다 여성, 직급이 낮은 사람일수록 비율이 높았다.이미 기업에서는 '꼰대 문화'를 '꼰대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다. '꼰대'는 사고의 경직성으로 인한 조직의 비효율을 발생시키고, 공감력 부족으로 인한 조직원의 몰입 저하와 이탈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또 업무의 자율성을 저하시켜 직장인 10명 중 4명이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도시의 '꼰대 문화'는 청년이 떠나는 도시를 만든다.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화를 성취한 기성세대의 눈에는 청년세대가 나약하게만 보인다. "우리 때는 말이야…, 요즘 애들은 근성이 없어서…"라며 기성세대가 왕년을 이야기할 때, 청년은 미래를 말한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와 소통이 불가능한 꼰대세대가 되었다. 꼰대들의 조직 문화는 많은 젊은이들이 보수적인 대구의 직장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도시를 떠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2016년 대구청년실태조사에 의하면, '좋은 취업 기회를 얻기 위해서(43.0%)'뿐만 아니라, 보수적폐쇄적인 지역 분위기(19.4%)도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주요한 이유로 나타났다. 그만큼 '꼰대 문화'가 강하단 말이다.지난 11월, 대구경실련에서 흥미로운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른바 '꼰대 탈출 프로젝트'다. 청년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는 취지였다. 많은 기성세대 참석자들이 처음에는 '꼰대 문화' 지적에 약간의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때와 태도'가 중요함에 공감하게 됐다. 토론시간 이후에는 세대 간 '시간과 경험의 격차'를 인식하면서 우선 자신의 자녀부터 새로운 자세로 대해보겠다는 이들도 많았다.'꼰대 탈출'은 떠나는 청년을 위해서도, 외로운 기성세대를 위해서도, 우리 도시의 역동성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청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새해에는 '꼰대 탈출'에 함께 동참해보자. 2019년 새해, '꼰대 탈출' 준비되셨습니까?

2019-01-18 20:19:1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현재, 과거의 지배자

우리 아파트의 승강기는 느려서 17층까지 43초가 걸린다. 관리실에서 주민들을 위해 승강기에 좋은 글귀를 붙이곤 한다. 한번은 "세상에서 제일 비싼 금(金)은?"이라는 퀴즈를 붙여 놓았었다. '황금' '백금' 등을 생각하며 답을 보니 '지금'이다. 지금(只今)의 '今'을 '金'으로 바꿔치기한 솜씨가 놀랍다. 지나간 과거나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가 더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현재 중심의 이러한 관(觀)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에 잘 반영되어 있다.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지배하는 당의 슬로건인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는 말 속에 잘 압축되어 있다. 여기서 '지배한다'는 말은 '조절·조작한다'(control)는 말을 의역한 것인데 원문의 의미를 살리면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조절'조작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기록국 직원이다. 빅 브라더가 공언한 약속이 실현되지 못했을 때 약속을 했던 과거의 기록(신문, 서적, 사진 등)을 모조리 찾아 과거의 약속과 현재가 일치하도록 조작하는 것이 임무이다.가령 내년도 초콜릿 배급량을 줄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해가 바뀌고 4월쯤에 30그램을 20그램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고 치자. 그러면 '줄이지 않겠다'는 작년의 기록을 모두 찾아 '내년 4월경엔 배급량을 20그램으로 줄인다'라고 조작하여 과거를 현재와 일치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빅 브라더는 공약을 완벽하게 지켜내는 지도자로 우상화된다.비슷한 맥락에서 황보영조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기억의 정치와 역사'에서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이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고, 그 기억마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렇게 보면 역사 바로 세우기와 역사 조작은 종이 한 장 차이이며 현재 권력이 완벽한 도덕성을 갖추지 않았다면 조작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황보 교수의 지적은 긴 여운을 남긴다.이처럼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미화 또는 폄하할 수도 있다는 것은 문제다. 미화나 폄하의 대상이 개인의 주관적인 호불호에 따라 달라지고 개인의 호불호는 개인의 이념, 출신 지역 및 계층에 따라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이념, 지역 및 계층 간에 생각의 편차가 큰 편이라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우호적인 사람이나 단체의 과(過)는 무조건 감싸며 편들고 공(功)은 역사적인 업적이라며 선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적대적인 사람이나 단체의 공은 무조건 깎아내리고 과는 부풀리는 사람도 있다. 이런 무조건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문제다.새해는 왔고 무술년은 기억 공간에 저장되었다. 과거를 재단할 수 있는 힘을 현재가 지녔지만 현재도 곧 과거가 됨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현재를 사는 우리는 현재가 과거가 된 후 그때의 현재도 우리를 재평가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념, 지역 및 계층에 바탕을 둔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어떤 것을 미화하거나 폄하하는 일이 새해엔 없길 바란다. 잘하는 정책엔 박수를 보내고 잘못하는 정책엔 회초리를 드는 객관적 대한민국 시민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2019-01-11 06:30:00

김계희 그림책 화가

[광장] 사랑이 커리큘럼이다

오래전 아이들을 가르칠 때 미술학원을 개원하려는 친구들이 커리큘럼에 관해 자주 묻곤 했다. 그럴 때 나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교수법이니 커리큘럼이니 하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을 진실로 사랑하면 그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고 모든 언어와 행동이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 나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수업 방식은 사라지고 그 아이에게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교수법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그게 아니라면 모든 계획과 수업법은 그저 커리큘럼을 채우는 수많은 답습에 불과해진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 사랑이 처음인 남자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방법이 사랑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사랑 속에서 저절로 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서툰 솜씨의 화살이라도 진정한 사랑에서 쏘아 올린 화살은 정확히 심장에 가서 꽂힌다. 그러니 나의 말이, 나의 칭찬이, 나의 방법이 이 아이의 심장에 닿고 있는가에 대한 매 순간의 인식이 필요하다.사랑은 물이 끓는 온도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비등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감동을 줄 수 없고 상대방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많은 교육이 참사랑을 기반으로 하지 못해 우리는 아이들에게 헛된 노력을 강요하며 소중한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우리는 과연 아이들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많은 부분 그렇지 않을 수 있다.아이가 공모전에 나가기 위해 선생님이 구성한 그림이나 공모전 입상작을 조합해 몇 번씩 따라 그리고 그것으로 상을 받아올 때 부모가 기뻐한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거짓과 불명예를 가르치는 것이다.많은 어머니가 말한다. "아니라는 건 알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그냥 두었어요."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그것은 불명예스러운 상이라고 왜 말하지 못하는가? 이 단적인 예를 보더라도 우리는 아이를 참사랑으로 기르고 있지 못한 부분이 많다.자부심과 명예가 무엇이며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할 어른들이 불명예를 가르치는 일에 공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자라 다시 교육을 하고 사업을 하고 정치를 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교육이 바뀌어야 하고 교육이 바뀌려면 사랑을 찾아야 한다.코엘료의 '오자히르'에는 단테의 신곡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인간이 진실한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날, 잘 짜여 있던 모든 것은 혼란에 빠지고 확고한 진실로 여겨졌던 것들은 모두 뒤흔들릴 것입니다. 인간이 사랑하는 법에 눈뜰 때, 비로소 참된 세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사랑을 안다고 생각하면서 살겠지만, 사랑을 있는 그대로 대면할 용기는 갖지 못할 겁니다."우리는 탐욕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짓의 삶을 생산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진실로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면 그들의 미래와 삶을 염려하게 되고, 지금 하고 있는 많은 방식이 틀렸음을 알게 될 것이다.단테가 지적한 바대로 우리가 진실로 사랑할 때 확고한 진실로 여겼던 모든 것들이 거짓의 실체를 드러내며 뒤흔들릴 것이고, 교육은 바뀔 것이고, 세상은 변화될 것이다. 우리의 비정상은 정상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2019-01-03 14:03:51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광장]回(돌아올 회)

어영부영 많은 시간이 지났다. 앞마당 채마밭엔 뭐가 자라고 있었는지, 뒤꼍 앵두나무 옆에는 김장독이 몇 개나 묻혀 있었는지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마루 밑에는 감 따는 장대(전짓대) 말고 또 뭐를 쟁여두었는지도 역시 세월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다만 그 겹겹의 시간에도 한 가지, 반질반질 윤기 나던 툇마루만큼은 여전히 또렷하다. 하루 한 번씩 꼬박꼬박 햇살이 찾아와 쉬고 가던 그곳은 네댓 살 남자아이에겐 무척 특별한 공간이었다. 어른들이 없을 때, 거기에선 요새가 생겨나고 진지도 만들어졌다. 섬돌 위 난간 따라 곧게 뻗은 찻길도 있었는데 트럭이 아슬아슬 잘도 달렸다.어느 가을날이었다. 마당 건너 신문지 조각 하나가 바람을 타고 툇마루로 날아들었다. 그걸 주워든 아이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엄마를 찾았다. "엄마 이것도 글자가? 네모 안에 네모가 있다." "아 이거 한문이다. 돌아올 회자다." "돌아올 회?, 뱅글뱅글 돌 거면 동그라미를 하지 와 네모를 하노?"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툇마루로 돌아오다 생각을 했다. "우리 엄마는 참 모르는 게 없다니까!"그게 아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물음이었다. 그리고 '回'(회)자는 태어나 알게 된 첫 번째 한자였다. 그 후로도 아이는 궁금한 게 생길 때면 엄마를 찾았고 그때마다 답을 얻었다. 그런데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다. '난 엄마가 낳고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낳고 그렇게 계속 올라가면 시작은 누구며 그 사람은 또 누가 낳았느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엄마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곤 잠시 머뭇거리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물어보라고 했다. 아이의 마음 가득 섭섭함이 일었다. 엄마가 모를 리 없는데 알면서도 안 가르쳐 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생님께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곧 잊었다. 어차피 학교에 가면 알아야 할 것들과 외워야 할 것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학년이 올라갈수록 엄마에게 묻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가끔 옛날이야기, 정확히는 옛날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몇 백 년 전의 조선 사람부터 더 멀리 삼국시대의 사람들까지, 그리고 가깝게는 조봉암과 해공 신익희를 들었고 시인 한하운도 이야기로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들이 재미있긴 했어도 궁금한 게 단박에 풀렸을 때처럼 그런 알싸한 맛은 없었다. 게다가 엄마의 이야기는 크게 실익이 없었다. 그런 건 학교 숙제에도 시험에도 잘 나오지 않았다.돌아보면 그때, 세상이 참 조용했다. 매미가 잠시 울음을 멈추면 적막한 여름소리가 들렸다. 겨울에도 눈 내리는 날이면 이불 속에서도 그 소리가 들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도 늘 그대로였다. 길가의 풀꽃도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피었고 돌담 사이 구멍도 더 커지거나 줄지 않았다. 틀림없이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 몰랐던 거다.엄마는 영원할 줄 알았다. 더는 물을 수 없는 날이, 더는 들을 수 없는 때가 올 줄 몰랐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어른이 된 아이는 엄마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땐 아주 천천히 왔던 연말이 이젠 순식간에 돌아온다. 새해도 많이 새롭지 않다. 대신 이맘때가 되면, 아무도 없을 때면 가끔 혼잣말을 한다. '돌아올 回(회)'자처럼, 햇살 들던 그 툇마루도 좋고 아니라도 좋으니 '엄마, 언젠간 어디서든 우리 꼭 다시 만납시다'.

2018-12-26 14: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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