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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라캉의 팔루스…색즉시공의 권력

[광장] 라캉의 팔루스…색즉시공의 권력

"나는 떠나요, 영원히" 이 말을 남기고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인에게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노래 '돌아오라 소렌토로'. 아름다운 해안 도시 소렌토에서 나폴리까지 'ㄷ' 자로 파인 바다를 나폴리만(灣)이라 부른다. 허리춤이 잘렸지만, 그림 같은 곡선미의 베수비오 화산이 쪽빛 바다 한쪽으로 아름답다. 호사가들이 나폴리를 세계 3대 미항이라 입방아 찧을 만하다. "내 배는 살같이…" 명곡 '산타루치아'의 선율이 어린 산타루치아항 달걀성(Castle dell'Ovo)에서 시내 안쪽으로 나폴리 국립박물관이 자리한다.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묻혔던 폼페이 출토 유물들이 경이로운 로마 문명의 실상을 전해 준다. 2층 '비밀의 방'에는 낯 붉히는 각종 음화와 조각들이 탐방객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중 하나가 거대한 남근(男根)이다.로마인들은 번영과 행복을 바라는 의미로 남근 조각을 실내에 두거나 대문에 그렸다. 기호학 창시자 소쉬르의 용어로 해석하면 남근은 기표(記標)이고, 행복이 기의(記意)다. 남근 조각 밑에 'FELICITAS'(행복)라고 쓴 폼페이 유물에 일상의 쾌락을 삶의 기쁨으로 여겼던 로마의 가치관이 잘 묻어 난다. 현실을 즐기는 로마의 카르페디엠 문화가 2천 년 넘게 면면히 이어진다.19세기 스위스의 프로이트가 인간의 의식 너머에 잠재된 무의식을 들추며 정신분석학을 연다. 프로이트는 리비도(성적 에너지)를 삶의 동력으로 삼는다. 프랑스의 라캉은 프로이트 사상을 계승하며 팔루스(Phallus·남근 이미지) 개념으로 진화시킨다. 라캉은 '주체'(나) 이외의 모든 것을 '타자'(他者)로 명명한다. 프랑스어로 남을 가리키는 'Autre'의 대문자 'A'를 써서 '대타자 A'라고 부른다. '주체' 이외의 삼라만상이 '대타자 A'다. 이 가운데, '주체'의 마음, 충동(drive)이 꽂혀 향하는 대상을 소문자 'a'를 써 '소타자 a'라고 이름 짓는다. '주체'가 추구하는 모든 것, 가령 갖고 싶은 옷, 살고 싶은 집, 사랑, 심지어 권력 모두가 '소타자 a'다. 라캉은 '주체'의 욕망을 남근 이미지, '팔루스'로 규정한다. 팔루스 추구로 얻는 대상 즉, '소타자 a'는 판타지(fantasy·환상)로 텅 빈 공허함이라고 설파했다. 라캉에 앞서 이를 꿰뚫은 동양철학이 반야심경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형상 즉, 색(色)은 텅 빈 공(空)이라는 의미다. 정치에 빗대면 권력무상(權力無常)이다.문재인 정부 집권 5년 차다. 2020년은 권력의 주역 청와대, 추미애 법무부 장관, 민주당이 혼연일체로 법치와 상식을 무너트린 해였다. 추미애 장관은 임명장을 받자마자 서울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부터 없앴다. 권력 연루설이 돌던 각종 금융 범죄 수사는 좌초됐다. 정권 관련 수사 검사들을 좌천시켰다. 결과는 문재인 정권 지지율 하락과 윤석열의 대권 후보 등극이었다.민주당 전략기획위윈장 출신 이근형이 대주주인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신문 의뢰로 조사 발표한 1월 19일 자 여론조사에 답이 들었다. 양자 대결에서 윤석열(46.8%) 대 이낙연(39%), 윤석열(45.1%) 대 이재명(42.1%)으로 윤석열이 누구랑 붙어도 이겼다. 추 장관은 언론에서 사라졌다. 추 장관의 욕망, 즉 팔루스가 서울시장 혹은 대통령이라는 '소타자 a'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게 공(空)이 됐다. 영원한 2인자 김종필이 죽기 전 읊은 "정치는 허업(虛業·헛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2021-01-23 05:00:00

[광장] '뉴TK 문화운동'을 시작하자

[광장] '뉴TK 문화운동'을 시작하자

'백범일지'(白凡逸志)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이다. 이 책은 종교 경전을 제외하고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할뿐더러 많이 읽힌 책일 것이다. 보물 1245호로 지정돼 있다. 책이 보물로 지정된 예는 그리 흔치 않다. 그만큼 이 책의 가치와 중요성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독서 풍토를 보면 이 책의 존재와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실제로 꼼꼼히 완독한 사람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할 수 없다. 내가 그런 본보기이다. 나도 이 책을 초등학교 때 요약본을 읽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나의 소원' 부분을 읽고는 이 책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보니 제목이 공무적인 일기에 해당하는 '일지'(日誌)가 아니라 '일지'(逸志)라는 한자 표기도 눈에 띈다.1990년대 후반 우연히 백범의 손자인 김진 선생에게 친필 사인을 한 '백범일지'(도진순 교수 주해)를 받아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니 하면서 책장에 모셔 두었다가, 최근에 이사하면서 발견해 다시 읽었다. 모든 책이 읽는 시기나 환경, 독 횟수에 따라 느낌이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개인의 내면이 드러난 일기이면서, 성장 소설이면서,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이면서 웅혼한 정치적 포부를 드러낸 정론서라는 인상을 받았다.이 책 상권의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백범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갔다가 과거가 매관매직되고 있는 현실에 좌절하고 시험을 포기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께서 백범에게 과거는 포기하고 풍수나 관상 공부를 하라고 권한다. 실제로 백범은 관상 공부를 한다. 관상은 우선 거울로 자신의 관상부터 공부하기 시작하는데, 백범이 본 자신의 관상은 '어느 한 군데 귀격(貴格), 부격(富格)의 좋은 상은 없고, 얼굴과 몸에 천격(賤格), 빈격(貧格), 흉격(凶格)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비관에 빠진다. 그러다가 그 책의 구절 중에 '관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구절을 읽고 관상 좋은 사람(好相人)보다 마음 좋은 사람(好心人)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이 결심의 결과가 짐작하건데 백범이 동학(東學)에 입교해 접주가 되고, 그 이후 생사를 뛰어넘는 지난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암살로 생을 비극적으로 끝마치는 게 그의 전 생애라 할 수 있다.이 책의 뒷부분에 실린 '나의 소원'에 보면 백범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잘사는(부강한) 나라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있어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나라도 아니다. 그러면서 오직 한 가지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이유는 인의(仁義)와 자비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런 마음을 키우는 게 바로 문화라고 주장한다.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형세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찍이 우리 앞에 이런 세상이 있었던가?' 하는 깊은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된다. 정치는 정치대로 진영이 나뉘어져 옳고 그름을 분별할 만한 합리적 정론이 실종된 지 오래고, 경제는 비정규직으로 인한 소득 격차, 부동산에 의한 불로소득, 지방 소멸로 양극화가 심화된 지 오래이다. 언론도 사회의 목탁으로 효력을 상실한 지 오래된 듯하고 지식인도 소금 역할을 잃어버렸다. IT의 발달로 SNS 등에서 막말과 가짜 뉴스의 범람, 민초들의 과잉된 의사 표시로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혼탁한 현실이 돼버렸다.고결하고 기개 높은 영남 사림의 자긍심과 오랜 선비 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백범 선생의 말씀처럼 먼저 문화를 통한 마음 공부, 상대편을 존중하는 겸손과 관대함, 열린 태도, 올바름을 지키는 정의감을 갖는 문화운동을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뉴TK 문화운동, 정신운동을 통해 우리나라와 세계 인류에 새 마음과 희망을 주는 신축년 새해가 됐으면 참 좋겠다.

2021-01-16 05:00:00

[광장]추위를 즐겨야 건강하다

[광장]추위를 즐겨야 건강하다

추운 영하의 날씨는 생명체들에게 혹독한 시기이다.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고 움츠려서 겨울을 나지만, 동물은 다양한 방법으로 겨울을 견딘다. 동물의 체격과 추위와의 연관 관계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847년 독일의 동물학자 카를 베르그만은 가까운 종 사이에서 추운 지방에 살수록 체격이 커진다는 주장(베르그만의 법칙)을 했다. 동물 몸집이 커지면 늘어난 근육으로 열 발생이 증가하고, 노출되는 전체 체표면적 비율을 낮추어서 열의 발산을 줄이므로 추위에 잘 견딘다는 이론이다. 또 다른 동물 학자 알렌은 같은 종이라도 추운 지방에 살수록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말초 기관이 짧아진다는 이론(알렌의 법칙)을 얘기했다. 곰이나 사람이나 추운 지방일수록 덩치는 커지고 코, 귀, 팔, 다리 등 말초 기관은 짧아진다는 이론이다.그럼 그 많던 흙 속의 작은 벌레들은 어떻게 겨울을 버틸까? 나는 이제까지 동물들은 겨울에는 에너지를 축적하고 잠을 자거나, 두꺼운 피하지방을 가지고 북극에 살거나, 따뜻한 털을 가지고 추위를 견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동물의 99%를 차지하는 작은 벌레들은 겨울잠을 자지도 않고, 털이 있지도 않고, 두꺼운 피하지방도 없다. 그들이 어떻게 겨울을 지내는지 관심도 없었고 배워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자 마당의 개미가 보이지 않았다. 음식 쓰레기가 쌓인 흙을 뒤져도 그 많던 벌레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무얼 먹고 살까?있을 곳은 뻔했기 때문에 흙을 파고 30㎝ 깊이로 내려가자 지렁이를 포함한 벌레들이 보였다. 바글바글했다. 동작은 아주 느렸다. 낙엽을 뒤졌다. 햇볕이 잘 드는 두껍게 쌓인 낙엽 뒤쪽에 서로 몸을 붙이고 모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옛날 추억이 살아났다. 그리고 저절로 웃음이 났다. 어린 시절 겨울은 참 추웠다. 방 구들목은 따뜻했지만 아이들 차지는 아니었다. 밖으로 나왔지만 옷이 따뜻한 것도 아니었다. 솜을 누빈 옷은 사치품이었고, 스펀지를 넣은 옷은 바람이 숭숭 통했다. 아이들은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었다. 심심하기도 하고 열을 내기 위해서 멸치야 꽁치야 하면서 좌우로 밀치는 놀이로 추위를 견디곤 했었다. 벌레들 모습이 딱 그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처음 인간은 추위가 없는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종이 번성하면서 추운 지역으로 옮겼지만 그곳에 정착해서 집을 짓고 불이 발견되고 옷도 생겼다. 당연히 추위에 적응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인간은 현재 살아가는 지역의 기후에 맞게 적응해 가는 단계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4계절이 뚜렷한 지역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4계절을 온전히 몸으로 느끼는 것이 건강에 좋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이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살고 있다. 나는 추위를 즐긴다. 겨울에 내복을 입지 않는다. 추운 밖에서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면 몸 구석구석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일본의 한 과학자는 여러가지 실험을 한 후 추위를 견디는 것도 습관이라고 결론 내렸다. 연습만 하면 추위에 견디는 힘은 길러지고 더 건강해진다는 주장이다. 통증이 있을 정도로 운동을 해야 근육에 염증이 생기고 근육량이 늘어나듯이, 추위와 더위를 반복하는 가운데 우리 몸의 건강을 챙기는 균형 기능은 살아나게 된다. 겨울을 좀 더 춥게 즐기자. 실내 온도를 1℃라도 낮추자. 겨울에는 조금 쌀쌀한 실내에서 털옷을 입고 따뜻한 차 한잔하는 여유를 가지자. 건강도 챙기고, 낭만도 즐기고.

2021-01-09 06:30:00

[광장] 건강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다

[광장] 건강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다

겨울이 다가오면 사람은 옷을 더 입고 불을 때면서 추위를 준비하지만, 나무는 가진 것을 줄이기 시작한다. 사람은 주위 자원을 이용하지만 나무는 스스로 해결한다. 이런 차이는 추위를 견디는 방법만이 아니라 생존 방식도 그렇다. 식물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살아간다.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공기 중의 산소를 햇빛의 작용으로 광합성을 해서 에너지를 만든다. 동물은 스스로 살지 못하고 밖에서 영양분을 취해야 한다. 풀만 먹는 초식동물이 있고, 풀을 먹고 자란 동물만 먹는 육식동물이 있다.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식물이 지구의 중심이다. 식물이 없으면 지구의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끼부터 시작한 식물은 지구의 시작인 45억 년 전부터 살아왔지만, 동물은 5억 년 전에 나타났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법은 식물에 배워야 하는 이유다.나의 이런 결론은 작은 의문에서 출발했다. 마당에 어떤 나무를 심을지 생각하다가 회화나무를 떠올렸다. 과거 유적지 답사를 다니면 선비들 집에는 공부방 앞에 회화나무가 보였다. 아이들 회초리 만드는 나무라도 얘기도 있었고, 하여튼 선비 집에 있어야 할 나무라는 기억은 남아 있었다. 8년 전 평생 환자들을 보고 싶어서 한옥으로 병원을 지으면서 자연히 떠올린 나무였다. 줄기가 곧고 색깔도 품위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도시 작은 마당에 심을 나무는 아니었다. 키가 거의 10m는 넘게 자라는 큰 나무였다.그런데 식물은 어떻게 스스로 살아가는지 관찰하다가 의문이 들었다. 나무가 광합성을 하기 위해 땅에서 물을 흡수하면, 뿌리에서 10m 높이의 잎까지 어떻게 물을 끌어 올릴까 궁금했다. 뿌리에서 밀어 올릴까? 잎에서 끌어 올릴까? 만약 인간에게 이런 문제가 주어진다면 해결은 아주 간단하다. 모터로 물을 끌어 올리면 된다. 전기 에너지를 쓰고 항상 웅웅거리는 소리가 날 것이다. 그런데 식물은? 그냥 자연의 원리-표면장력을 이용해서 잎에서 조용히 물을 끌어 올리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그것도 수십 미터 높이로.날씨가 추워지면 나무들도 바쁘다. 남는 당은 뿌리나 열매로 저장을 하고 잎은 물을 최소로 끌어 올린다. 겨울 동안 물이 얼어버리면 세포가 파괴되고 식물은 죽기 때문이다. 수분을 점차 잃은 잎은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기온이 좋을 때는 자연 현상을 이용해서 잎에서 에너지를 만들고, 겨울이 되면 불필요한 부분을 몸에서 떨구고 추위를 견뎌 낸다. 식물이 추위를 견디는 방법은 바로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고 움츠리는 것이다.연약한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 남은 것은 놀라운 적응 능력 때문이다. 의사로서 중요한 문제점만 해결하고 지켜보면 몸은 저절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수술은 최종적인 수단으로 남겨 두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사람들은 항상 좋은 것을 찾아다닌다. 중년이 지나면 비타민을 포함한 건강 보충제를 챙겨 먹는다. 암이나 난치병이 걸리면 숨겨진 좋은 것이 없는지 궁금해 한다. 열이 나고 몸살을 앓고 드러누우면 무언가라도 먹어야 힘을 차린다고 귀한 것을 차려 준다. 설사를 하고 배탈을 앓으면 죽이라도 먹인다.하지만 나는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나쁜 것을 피하는 것이 건강의 핵심이라고 얘기한다. 열이 나고 감기 들면 푹 쉬자.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면 굶자. 나는 몇 년에 한 번은 지독한 몸살을 한다. 그때는 며칠이고 잠만 잔다.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렇게 쉬고 나면 몸은 날아갈 듯이 개운하다.건강은 더하기가 아니고 빼기다.

2020-12-04 15:51:14

[광장] 산남의진과 지역문화콘텐츠

[광장] 산남의진과 지역문화콘텐츠

산남의진(山南義陣)! 경북 영천시를 비롯해 포항, 영일, 청송 등 경북 동남부 지역에서는 제법 많이 알려진 사실(史實)이지만 학자나 향토사가를 비롯한 전문 연구자들 외 일반 지역민들이나 국민들에게는 아직까지 조금은 낯선 이름이다. 산남의진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던 의병운동 중 대표적인 항일 의병운동이다.여러 자료에 의하면 산남의진은 을사늑약 이후 고종이 중추원 의관이던 영천 출신의 정환직에게 밀서를 전해 의병 궐기를 촉구하고, 정환직은 아들 정용기에게 창의할 것을 지시해 영천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우던 중, 아들 정용기가 전사하고 이어 정환직마저 일본 군인들에게 순국한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물론 이 두 부자만 의병으로 싸운 게 아니고 최세진 의병장을 비롯해 많은 이름 없는 의병들이 합세해서 싸웠다. 그 기간은 대략 1906년 3월부터 1910년까지이고, 130여 차례 전투에서 700여 명이 사상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주 활동 무대는 태백산 줄기인 경북의 보현산과 동대산 일대이다.지난여름(2020. 8. 21.), 나는 우연한 인연으로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영천의병 좌담회-영천의병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 좌담회는 '임란영천성수복대첩기념사업회'와 '산남의진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영천시'가 후원하는 행사였다. 두 기관의 관계자뿐 아니라 지역 향토학자, 콘텐츠 전문가, 시인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해 이 문제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이는 모습이 내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이 자리에서 지역문화콘텐츠의 국제 교류와 관련해 짧은 코멘트를 했다. 20세기 산업화 시대가 끝나고 21세기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문화나 콘텐츠에 대한 개념이 많이 변하고, 또 콘텐츠의 생산이나 유통의 형태가 바뀌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문화콘텐츠는 대중성과 독창성이 적절히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문화콘텐츠의 관점에서 본다면 산남의진을 비롯한 임란 때의 영천 지역 의병 활동은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특히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희미해져 가는 민족성과 애국심(물론 둘 다 너무 폐쇄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이어서는 안 되겠지만)을 환기시키는 데 이만한 지역의 원형적 소재가 있기도 어렵다. 각 지역에 묻혀 있는 지역 고유의 전통을 발굴해 문화콘텐츠로 만들고 이를 세계화시킨다면 지역문화 발전과 문화 분권에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게 분명하다.정환직-정용기 부자 의병장에 대해 나는 1990년 한 일간지에 지역의 의병장들에 대해 연재할 때 두 분의 행적을 다룬 적이 있다. 그 연재물에는 두 분 부자 의병장 외에도 구미의 왕산 허위, 영해의 신돌석 장군을 비롯해 경북 지역의 의병장을 새롭게 발굴해 조명했다. 당시 영천시 자양면과 같은 산골짝은 물론 포항시 죽장면 입암 등을 들러보았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먼지가 풀풀 날리던 비포장 산길, 도로 포장은 물론 교량이 제대로 건립이 안 된 오지여서 물이 흐르던 하천을 과감하게 지프로 돌진해 건너다가 차바퀴가 자갈밭에 빠졌던 기억, 내가 힘들게 탐방했던 그 산골짝 오지가 구한말 당시 의병들이 맨몸으로 진퇴를 거듭하던 죽음의 전장과 우국충절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느끼며 숙연하면서도 비감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오지 중의 오지인 죽장면 입암에 들렀을 때 그 황홀하게 아름답던 비경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의병들의 거점이 됐던 보현산에 있는 사찰 거동사와 두 부자 의병장을 기리는 충효재 등에서는 의병들 추모제와 기념 백일장과 같은 행사를 하고, (사)산남의진기념사업회는 산남의진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지역의 전문 학자나 향토사 연구자들뿐 아니라 뜻있는 시민들이 힘을 합쳐 산남의병들의 애국심을 기리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런 좋은 지역 원형 재료를 문화콘텐츠로 변화시켜 세계화하는 일은 지역문화가 담당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0-11-20 19:13:35

[광장] 개미, 그리고 소중한 노동

[광장] 개미, 그리고 소중한 노동

어린 시절, 마당에서 개미를 관찰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개미가 먹이를 발견하면 동료들에게 더듬이로 신호를 보내고 쉴 틈 없이 집을 들락거리는 모습은 박진감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개미집은 어떨까 궁금해서 병 속에 흙과 개미를 넣고 물을 부어 관찰하면서 곤충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기도 했었다.마당이 생기고 벌레들을 관찰하자 개미가 가장 먼저 보였다.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무얼 하는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밤새 폭풍우가 몰아친 어느 날 아침. 마당에 나갔더니 어제 떨어져 있던 빵 조각에 개미가 새까맣게 붙어 있었다. 밤새 일을 한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개미들은 밤새 일을 하고 있었네? 너희들은 뭐하니?" 아들 카톡이 왔다. "나도 밤새 밀린 일 하고 이제 잠깐 쉬고 있어요."그런데 내가 잠자는 사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개미나 아들만이 아니었다. 한번은 새벽 4시경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을 깬 적이 있었다. 문 밖에 차 소리, 사람 소리가 들려서 내다봤더니 쓰레기를 청소하고 있었다. 구청에서 골목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이른 새벽에 움직이는지 몰랐다. 한번은 골목 맨홀 뚜껑을 열고 사람이 들락거리는 것이 보였다. 전기선 공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공사를 자주 했는데 처음 보느냐고 되물음이 왔다.내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나 가스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한테까지 오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 날 받는 편리한 세상이라고만 생각했지 어떻게 배달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버리는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내가 먹고 배설하는 것이 그냥 물을 내리면 내 눈에서 사라지는 것만 봤지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그런데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니까 내가 잠자는 중에도,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도, 까마득한 공중에서도 매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편리하고 당연한 내 일상생활을 유지해 주는 공사들이었다. 그렇게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떨어져서, 기계에 끼어서, 가스에 질식해서 죽는 사람이 하루에 7명, 1년에 2천400명인지 몰랐다. 내가 먹는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일을 하다가 죽는 사람이 하루에 2명, 1년에 700명인지 몰랐다. 나에게 빨리 물건을 배달해 주는 택배기사가 소변 볼 시간도 없이 일하다가 올해 들어 8명이 과로로 죽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사용하는 수술기구가 누구의 녹은 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최근 시를 통해서 알았다.'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자동차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의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 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그 쇳물 쓰지 마라')어린 시절 개미와 베짱이는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마음을 잡아주는 동화였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면 한 가족이 먹고살고 자식들 공부도 시켰다. 하지만 요즘은 노동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노동 현장도 안전하지 않다. 노동만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젊은이들이 주식시장에 위험한 개미로서 뛰어들고 있다. 안전하고 소박하게 개미같이 일하는 노동이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0-11-13 17:33:01

[장병관의 광장] 코로나 19 시대 텃밭정원이 다시 유행한다

[장병관의 광장] 코로나 19 시대 텃밭정원이 다시 유행한다

화단이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한다면 텃밭은 먹거리용 채소 및 기타 식물을 재배하기 위해 존재하는 밭이다. 코로나19 시대 우리 모두 사회와의 거리두기를 권유받고 있다. 이때 작은 땅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족의 건강한 식단을 위해서 텃밭에서 채소 가꾸기를 시도해 봤을 것이다.텃밭은 과거 한때 사회경제공동체의 매개체로서 큰 기여를 했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는 텃밭이 너무 많아서 규제를 할 정도였다. 이 시대 사람들은 생산량 대부분을 이웃과 나누면서 자급자족의 행복을 누렸다. 서양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도시 텃밭이 많은 사람들을 기아로부터 구제한 덕에 텃밭정원을 '승리정원'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텃밭에 미와 멋을 더하는 정원 즉 텃밭정원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키친가든과 프랑스의 포타제(Potager) 그리고 허브정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정원의 일부분을 활용하여 채소, 허브, 과일나무 등으로 꾸민 공간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먹을거리만을 목적으로 한 텃밭의 기능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채소의 색채와 질감을 이용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원의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21세기에 접어들어 웰빙문화가 확산되면서부터 다시 키친가든과 포타제, 허브정원이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원과 텃밭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식용 및 관상용 정원을 한데 모으는 아이디어로 텃밭정원은 세련되게 발달하고 있다. 사회 격리 지침을 준수해야 하는 코로나19 시대 세계 도처에서 텃밭정원이 다시 대유행하고 있다. 이 작고 매력적이며 생산적인 텃밭정원은 일상의 텃밭이 아니라 디자인된 공간으로, 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예쁘기도 하다.10여 년 전 북유럽 공동주택 단지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 전면 공간이 텃밭정원과 어린이 놀이터로 함께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곳을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생각해 텃밭정원과 아이들의 놀이공간으로 조성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 주거공간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햇빛을 가장 잘 받는 앞마당에는 식물을 심지 않고 빈터로 남겨 두었다. 아마 사람의 건강에 햇빛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아파트는 도시의 열섬효과 차단과 시원한 휴식공간 조성을 위해 주차장과 놀이터를 제외한 모든 땅에 나무를 심고 있다. 그리고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건강한 땅인 건물의 전면 공간은 자동차 주차장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의 건강보다 자동차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걷지 않아도 된다는 편의성 때문에 생명의 소중함을 애써 외면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독일 프라이부르크시의 보봉 마을 경우, 자동차를 사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입주하는 아파트도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당시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아파트에 텃밭정원이 있다는 사례를 절대로 발표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전공하는 조경산업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텃밭정원이 우리의 아파트에도 조성된다면 그만큼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녹지공간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아파트 마당을 비롯한 주차장 등의 공동 주거공간 구성에 변화가 필요할 듯하다. 획일적인 주거공간 조성의 지침에 따르기보다는 주민들 스스로가 제안하는 다양한 생활공간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공동 주거공간에서도 다양하고 아름답고 멋진 텃밭정원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0-11-06 14:19:39

[이상호의 광장] 우리의 고기 밥상은 지속 가능할까?

[이상호의 광장] 우리의 고기 밥상은 지속 가능할까?

우리의 밥상이 바뀌고 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 136㎏에서 2019년에는 59㎏으로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육류 소비량은 5㎏에서 60㎏으로 12배 가까이 늘어났다. 소득 증가와 서구의 식문화 영향으로 이제 고기 없는 밥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러한 육류 소비 증가로 인해 소비량이 많은 상위 10위 농식품에는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계란, 우유 등 축산물이 6종류를 차지하고 있다.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육류 소비도 50년 동안 7천만t에서 3억3천만t으로 5배 증가했다. 2016년 기준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미국 97㎏, 호주 93㎏, 아르헨티나 87㎏이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 등 인구 대국의 소득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육류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그렇다면 전 세계적인 육식 소비 증가는 앞으로 지속 가능할까? 경제적 측면에서는 낙관적이지만 환경 문제와 농경지 부족, 동물복지라는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연간 71억t인데 이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에 해당한다. 축산업의 온실가스 감축 규제가 강화되면 생산비용 증가로 인해 육류의 안정적 공급이 위협받을 수 있다.축산은 사육 과정에서 곡물용 사료에 의존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전체 농경지의 80%가 필요하다. 하지만 육류를 통해 인간이 얻는 칼로리는 18%에 불과하기 때문에 농경지 이용에 따른 식량 공급의 효율성은 매우 낮다. 도시화와 산업화, 그리고 사막화로 인해 전 세계의 농지가 감소하는 지금 축산 사료 공급을 위한 농경지는 충분하지 않다.이러한 환경 및 농경지 문제뿐만 아니라 동물복지라는 윤리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동물의 삶은 집단 밀식 사육, 수송, 도살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윤리적 문제에 대해 동물복지가 강조되고 있다. 사육 동물도 적절히 보호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이제 우리 모두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축산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육식은 불가능할까? 대안은 식물성 고기와 배양육이다. 식물성 고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하지만 배양육은 아직 낯설다. 배양육은 동물을 도축하여 얻는 고기가 아닌 배양시설에서 동물의 세포를 키워서 만들어내는 고기로 '인공고기'로도 불린다. 배양육은 사료와 물 등 자원을 절약함으로써 식량 공급의 안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메탄 등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환경을 보전할 수 있다.배양육은 아직까지 식감이 좋지 못하고 맛이 없다는 불평과 세포 배양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제품의 생산 비용이 높은 편이다. 배양육은 제조 과정에서 유전공학 기술이 사용되는데 식품안전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축산업은 시장점유율이 높아 안정적 이윤을 창출할 수 있지만 미래 성장 가능성이 낮은 경영학에서 말하는 '캐시카우'(cash cow) 산업이다. 배양육은 아직 수익성은 낮으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프로블럼 차일드'(problem child) 산업에 속한다. 불확실성은 높지만 성장 가능성은 아이들처럼 무궁무진하다.대안적 육식 소비는 우리에게 가 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이며,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점과 위험들이 각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사료용 농경지 부족과 동물복지의 숙제를 해결하는 뉴노멀의 육식 문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 육식 소비의 변화를 준비하지 못한 미래는 축산업의 위기이지만, 준비된 미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2020-10-30 15:14:15

[광장] 객토(客土)와 글로벌 대구

[광장] 객토(客土)와 글로벌 대구

객토(客土)라는 낱말을 한자로 풀이해 본다면 손(님) '객'에 흙 '토'이니 '손님 흙'이라는 말이다. 어느 집에 식구가 아닌 바깥사람이 올 때 손님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내부 구성원이 아닌 바깥사람, 객식구를 손님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시골에서 농사짓는 논이나 밭에 본래부터 있던 흙이 아니라 외부에서 덧붙여진(지는) 흙을 객토라고 한다. 한마디로 손님 흙이라는 뜻이다.고래로 우리 지역은 이 손님을 매우 정중하게 대우했다.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즉 조상의 제사를 잘 받들고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 으뜸가는 예의범절이요,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집에 손님이 오면 융숭하게 대접한 후 돌아갈 때는 여비까지 후하게 줘서 보내드렸다. 그러니 아침저녁으로 거지가 밥을 얻으러 와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자기들이 먹는 밥상 못지않게 한 상 잘 차려 같은 마루에서 동석해서 먹거나 아니면 마루 아래 섬돌에서라도 편안하게 먹게 하는 대우는 했다.왜 그랬을까? 거지들을 대접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리학에서도 '남을 불쌍히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쳤으니까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거지들에게 측은지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건 과거 전통적인 우리 사회가 가졌던 매우 귀중한 가치이자 덕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이런 생각들이 발전해 근대에 와서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거대한 사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손님을 귀하게 대접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손님을 통해 바깥세상의 소식도 듣고 견문도 넓히는, 즉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있는 열린 통로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개방된 사회로의 메신저가 바로 손님이었다.객토는 학문적으로는 "농지 또는 농지가 될 토지에 흙을 넣어서 토층(土層)의 성질을 개선하고, 그 토지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실시하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고 "객토의 역사는 1429년에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의 종도조(種稻條)에 '정월에 얼음이 풀리면 갈고, 거름을 넣거나 혹은 새 흙을 넣음이 또한 득이 된다'라는 구절로 보아 500∼600여 년 전부터 지력 증진 수단으로 실시해 온 것 같다"(네이버 지식백과)고 밝히고 있다.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쯤에 늦가을 나락 타작을 끝내고 나면 나는 리어카를 끌고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동네 야산 비탈이나 이웃 논에서 남는 흙을 퍼다 우리 논에 객토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추위가 막 닥치던 때인데도 야산 비탈의 그 싱싱하고 풍성해 보이던 탐스럽던 흙에 대한 기억은 회갑을 지낸 지금도 내 마음을 설레고 따뜻하게 한다.현재 고향 단촌에서 마늘과 벼농사를 짓고 있는 초등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해 확인해 보니 1모작을 하는 논에는 12월이나 1월쯤 객토를 하고, 2모작을 하는 논에는 10월 말까지는 타작(추수)을 하고 곧이어 마늘을 심기 때문에 기간이 짧아 객토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객토는 바깥 흙을 끌어와 농지의 흙을 좋게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한다. 한때 대구광역시의 시정 슬로건이 '컬러풀(colorful) 대구'였다. 굳이 우리말로 풀어보자면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대구'쯤이 될 것이다. 지심을 돋우기 위해 논밭에 객토를 하듯, 선진적인 대구의 정치사회 문화를 키우기 위해 폐쇄된 정신을 객토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바깥의 새로운 흙을 받아들이고, 열린 사회, 개방된 글로벌한 국제도시 대구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2020-10-23 15:10:24

[광장] 공존의 정원 랑데부 정원

[광장] 공존의 정원 랑데부 정원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최근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관심이 강해지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란 인간도 자연계의 일원으로, 다른 생물들과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겸손함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일반 정원은 물론 생태정원을 돌아봐도 이와 같은 공존의 개념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 곳이 그리 흔하지 않다. 우리 대다수는 정원을 생물이 살아가는 장소로서보다는 인간이 최대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의 공간을 순수히 생물에게 내어준 사례도 있다.파리시 센 강변에 미테랑도서관이 있다. 책을 세워둔 듯한 도서관 건물 외형도 독특하지만, 도서관 건물 내부로 산소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조성된 정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정원은 석회암 땅을 약 3m 정도 파서 식물이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1만㎡에 달하는 정원의 전체 면적 중 4분의 3 이상이 숲이며 나머지는 초지이다. 침엽수 위주의 큰 나무가 숲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그중 100여 그루의 구주소나무는 노르망디 지역 숲에서 옮겨온 것이다.미테랑도서관의 정원 조성에서 가장 특별한 점은 조성 후 13년 동안 정원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정원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곳은 요즘도 사람들에게 쉽게 개방되지 않고 있다. 매년 6월 랑데부의 날 3일간만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있고, 방문 예약의 경우도 월 2~4회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정원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45분 이내이며 가이드가 동반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수많은 동식물과 곤충이 이 정원에 터전을 잡고 안전하게 살고 있다. 말 그대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정원 조성을 놓고 본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존의 참의미에 닿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연못 정원을 조성할 때 물 안과 물 밖을 경계 지어 안은 생물의 공간, 밖은 사람의 공간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세밀하게 둘러보면 작은 동물이나 곤충은 한곳에서만 붙박은 듯 살지 않는다.그들은 물가에서 알의 형태로 있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풀숲에서 생활하는데 풀숲은 이미 사람의 공간으로 정해져 있어 그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을 다른 생물들에게 양보해 주지 않는다면, 인간만 존재하는 기묘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람과 식물만으로 자연이 지속될 수는 없다. 그곳에는 작은 동물과 곤충도 있어야 한다. 생물다양성이 존재해야 인간의 삶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오래전 가족과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여행하다가 철나비가 서식하는 여관에서 묵은 적이 있다. 마침 나비가 부화하는 시기로 여관 한쪽에는 집 뒷마당 출입을 통제한다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나비에 대한 주인의 세심한 배려 때문에 조용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참으로 감동적인 경험이었다.21세기, 인간의 최대 화두가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의 증진이다. 구호에 그치지 말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도시 정원 어딘가에 작은 생물들의 서식 공간을 조성하여 작은 동물이나 곤충이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서 그 첫걸음을 시작해보자. 아침이 되면 사람은 활동이 시작되지만 자연 속의 생물은 대개가 야행성이므로 수면을 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사람과 생물의 공존은 이처럼 사람이 자연 세계를 이해할 때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20-09-25 15:22:35

[광장] 기후변화, 이변이 아니라 일상이 되다

[광장] 기후변화, 이변이 아니라 일상이 되다

기후변화의 시대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기후는 변화를 넘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빅 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우리는 엄청난 양질의 데이터시대에 살고 있지만, 기후나 기상에 대한 예측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기후 위기는 변동성이 클 뿐만 아니라 예측도 어렵기 때문에 파급영향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변화를 수십 년 혹은 그 이상 오래 지속되는 기후 상태의 평균이나 변동성의 변화로 정의한다. 이는 자연적 변동성을 포함하여 인간 활동과 시간 경과에 따른 모든 기후변화를 포괄한다.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완화와 적응 활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완화는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인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는 활동이다. 그리고 적응은 온실가스를 감축한다 하더라도 미래에 나타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적합한 행동과 기후변화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기후변화는 우리 삶뿐만 아니라 특히 농업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은 기후 노출, 민감도와 적응 능력으로 이루어지는데, 농업 생산은 기후 노출과 이로 인한 민감도가 가장 높은 산업이다. 농업은 작물의 재배 시기, 작부 체계 변화, 수확량 및 품질, 병해충 발생 등 기후변화의 영향이 다양하다. 축산업은 온도, 습도의 변화로 인한 가축 스트레스 심화와 각종 전염병 발생으로 생산성 저하 문제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의 취약성에 따른 농식품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실천 가능한 적응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기후변화의 시대, 농업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농가에 농업 생산의 위험과 불확실성은 피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생명보험을 들 듯이 농가도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함으로써 일정 보험료를 납입하고 기상재해 발생 시 피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재해보험의 보상금 지급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가 농업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산업은 농업이지만 우리 모두는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방관만 할 상황이 아니다. 일상이 되어가는 기후변화는 우리의 인식을 무디게 만든다. 항아리 속의 개구리는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죽어간다. 그러한 개구리를 미련하다고 비웃을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우리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 속의 개구리 같은 존재가 아닐까?기후변화의 거대 담론은 마치 딴 세상의 먼 미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되다 보면 미래세대의 구슬을 빼앗을 수 있다. 구슬 뽑기 게임에서 바구니 속의 구슬을 뽑은 다음에 다시 집어넣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기회는 줄어든다. 뽑은 구슬을 바구니에 복원하는 것이 하나의 지구를 함께 나누는 현명한 방법이다.기후변화는 현재에 멈추어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도, 내일도 기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변화한다. 변하기 때문에 알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해결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기에 현재 시점에서의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후 위험을 바로 인식하고 공통의 가치에 기반한 협력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의 연대, 단기 이익이 아닌 장기의 지속 가능성 가치를 세워야 한다.이상호 영남대학교 식품경제외식학과 교수

2020-09-18 14:02:25

[광장] 의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

[광장] 의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

지금부터 45년 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2학년 진급을 앞두고 문과·이과를 나눌 때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당시 학제로 이과를 선택해서 '수학2'라는 과목을 배워야 했다. 병원도 없는 산골 깡촌 무의촌에서 태어나 자란 내가 의사에 대해 무얼 알고 의대를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본 영화 한 편 때문이었다. 제목이 '청녀'(靑女, 1974년)인데 아마 영화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분들도 이 영화는 처음 들어볼 정도로 영화사는 물론이고 일반 팬들에게도 잊힌 영화이다.나는 당시 이 영화를 지금은 없어진 대구 비산동 오스카극장에서 봤다. 내용은 의사가 낙도에 의료봉사를 하러 가서 시각장애(장님)에다가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어린 소녀를 구해서 치료하고 돌봐준다는 휴머니즘이 바탕에 깔린 그런 영화였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큰 감동을 받았고, 주인공 남자 의사에 대해 너무나 강렬한 매력과 선망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 나도 의사가 되어 낙도와 같은 무의촌에 가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고쳐주는 휴머니즘 의사가 되자!' 하고 15세 소년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사실 이 영화는 194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프랑스의 A. 지이드라는 작가의 '전원교향악'이라는 소설을 번안한 것이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의사가 아니라 목사인데 주인공 목사 역시 매우 훌륭한 선행을 베풀고 헌신하는 사람으로 나온다.나중에 알게 된 터이지만 이 영화는 '만추'로 유명한 이만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당시 민청학련이라는 시국 사건에 연루돼 수배 중이던 김지하 시인이 조감독이라는 직책으로 당국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지하 시인은 영화 촬영 현장이던 서해 대흑산도에서 잡혀 서울로 압송돼 10년 가까이 징역을 살았다는 후일담도 있다.중국 근대 사상가이자 작가인 루쉰(魯迅)은 '아큐정전' '광인일기' 같은 문학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특히 1980, 90년대에는 경북 봉화 출신의 걸출한 산문가인 전우익 선생이나 신영복 같은 사상가들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널리 소개되고 많이 읽혔다. 루쉰은 몰락한 지주의 아들인데 의사가 되기 위해 일본 센다이 의과대학에 유학을 갔다. 당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었는데 의과대학 실습시간에 환등기로 생체해부학을 공부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일본 군인들이 중국 민중들을 짓밟는 영화를 보고 사람의 육체를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정신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의과대학을 자퇴하고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실제로 루쉰은 20세기 신문명 초기 중국 민중들뿐만 아니라 세계 지식인들에게 정신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친 좋은 글을 많이 썼다.아마 근래 우리 사회의 빅 데이터를 돌려본다면 아마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목사' '의사'가 아닐까 싶다. 종교 유무를 떠나 보통의 장삼이사들이 생각하기로 목사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의 영성을 높이고 사랑과 평화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의사는 몸이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내 영혼이 힘들 때 누군가가 곁에서 해주는 진실한 기도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가. 몸과 마음이 고단하고 아플 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은 얼마나 큰 위안과 치유가 되었던가?오늘은 문득 중학생 때 읽었던 A. 지이드의 소설 '전원교향악'과 이만희 감독의 영화 '청녀'가 생각나면서 45년 전 잠시 의사가 되고자 했던, 분별없으나 아름다웠던 청춘의 내 모습을 회상해본다.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2020-09-11 14:30:05

[광장] 치유정원은 “건강에 초점을 둔 특수 정원이다”

[광장] 치유정원은 “건강에 초점을 둔 특수 정원이다”

최근 산림청은 영주에 국립산림치유원을 건립하면서 숲 자원을 활용한 건강관리 전문교육과 치유 시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산림청 산하 녹색사업단은 사회적 약자 계층에 치유정원을 조성해 주면서 정서적 안정감 및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사업을 하고 있다.필자는 15년 전 모 대학교 원예학과 교수분이 원예치료학 분야를 개척하면서 '치유정원론'이란 주제로 몇 시간 강의를 부탁한 적이 있어서 이를 계기로 치유정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당시 국내에는 두서너 군데 비슷한 성격의 치유정원이 있었으나 교과서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치유정원은 마음과 몸의 병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직접적인 치료의 개념보다는 대체요법의 성격이 강한 간접 치료의 의미를 가진 정원이다. 요즘 눈에 급격하게 띄고 있는 병원 옥외 정원이 그 한 예이다. 병원 옥외 정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원예 활동과 다양한 체험을 통해 병이 나아지도록 돕는 간접적인 치료의 공간이다.치유정원의 역사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궁정 의사는 왕과 귀족들이 정치적 일로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면 "정원을 산책하십시오"라고 권유했다는 기록이 있다.이후 치유정원은 중세 시대 수도원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수도원 정원이라고 하면 어린 시절 본 미국 영화 '기적'이 떠오른다. 수녀와 군인 간의 금단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부상병과 간호사의 관계로 만난 두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속삭이면서 거닐던 곳이 바로 수도원의 정원이었다. 남자 주인공은 건강이 빠르게 회복되어 예정보다 일찍 전쟁터로 떠나게 되는데 그들이 거닌 그 정원이 바로 치유정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17~18세기, 서구는 그야말로 치유정원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폐결핵과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 환자처럼 대량 발생했지만 그 당시 의학이라고는 대체의학뿐이어서 신선한 공기와 태양광선이 내리쬐는 곳, 즉 음이온이 많은 해변가나 숲 근처 병원에서 요양하는 것이 치료의 전부였다. 그래서 환자들은 다양한 기능의 치유정원이 있는 병원 시설에서 생활하였다. 이후 첨단의학의 발달로 대체의학이 쇠퇴 일로를 걸으면서 특수목적 치유정원의 의미도 점점 옅어졌다.오늘날 도시의 환경이 나빠지자 도시민들이 쾌적한 외부 공간으로 관심을 옮겨가면서 치유정원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치유정원은 건강에 초점을 둔 특수 정원이다. 일정한 양의 나무와 물이 흐르는 공간, 향기로운 허브와 약용식물 등으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치유정원이라고 하면 따뜻한 햇살 아래 데크에 편안히 누워 있거나, 휠체어를 탄 환자가 향기로운 식물에 코를 대고 있거나, 녹음수 아래 환자와 식구, 또는 의료진이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면서 담소하는 모습의 정원이 연상된다.여기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정원으로 나갈 수 없는 소녀가 병실 침대 옆 창문을 통해 치유정원에 펼쳐진 자연의 풍경을 보는 모습이다. 굳이 정원에 가지 않더라도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쾌적해져서 치유의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치유정원이 필요한 곳이 어디 병원뿐일까? 우리들은 만성 스트레스에 더하여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까지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전 시대 사람들보다 몸을 앉히고 마음을 내려 둘 치유정원이 더 필요하다. 굳이 거창한 시설이 아니어도 된다. 건강을 생각하는 작은 정원이 도시 곳곳에 만들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장병관 대구대 도시조경학부 교수

2020-08-28 15:18:30

[광장] 바보야! 농업은 환경이야!!

[광장] 바보야! 농업은 환경이야!!

52조5천198억원, 1.8%. 이 수치는 무엇일까? 답은 2018년 우리나라 농업 생산액, 그리고 농업이 경제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한마디로 농업을 통해 생산되는 경제적 가치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많은 사람들이 농업의 생산, 고용, 부가가치의 감소를 이야기하며 한국 농업의 쇠퇴를 당연시한다. 1970년 한국 농업은 고용의 50%, GDP의 26%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 경제의 근본이었다. 하지만 경제 발전 과정을 거치며 농업에서 제조업,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돈이 되는 산업에 인력과 자본이 이동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시작으로 56개 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수입 농산물이 국내 시장에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다. 이로 인한 공급의 수요 초과로 농산물 가격이 저렴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농산물 가격은 생산 작목과 생산량을 결정 짓는 주요 잣대이며, 이를 통해 농업 생산 체계의 변화가 발생한다.특히 WTO, FTA에 따른 농산물의 무역자유화는 단일 작물 체계를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상위 10개 작물이 전체 농업 생산액의 58%를 차지할 정도로 특정 품목의 생산 집중도가 높다. 특정 품목의 집중도가 높아질수록 농촌 환경 및 자원 이용은 단순화된다. 또한 농업 생산 작물의 단순화는 경기 변동 및 기후변화 등 외부 환경 영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농업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농업이 가진, 농업을 통해 창출되는 다양한 가치들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선진국은 농업을 경제, 사회, 환경, 그리고 생태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가격이라는 경제적 잣대로만 농업을 평가하는 근시안적 태도로는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시키는 우를 범하게 된다.농업 생산은 그 자체가 생태 활동이다. 농산물 시장 개방의 첨병 역할을 하는 WTO조차도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 농업의 생태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 농산물이 값싼 수입 농산물에 밀려 낮은 시장 가치로 평가받고 있지만 농업은 그런 일차원적 잣대로만 볼 수 없다. 경제 이상의 생태적 가치, 현 세대를 넘어선 미래 세대의 생존 문제를 고려한 다차원적 측면에서 농업을 평가해야 한다.과거 습지는 쓸모 없는 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순천만 습지를 보자. 작년 한 해 순천만국가정원과 습지에 무려 1천3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다. 순천만 습지는 생명의 보고이자 환경의 파수꾼을 넘어 훌륭한 관광 자원이다. 심지어 순천은 몰라도 순천만은 알고 있다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다. 지금 당장 쓸모 없다고 버린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한다. 문제는 후회해도 버려진 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농업은 생태의 보고(寶庫)이자 환경 그 자체이며, 농산물은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상품 그 이상의 다원적 가치를 가진다.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만 얻을 수 있는 홍수 조절, 생물 서식지, 탄소 저장 등의 환경 가치가 있는데 한 번 파괴된 생태계는 복원이 불가능하거나 복원을 위해 천문학적 비용이 발생한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선진국들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여 농업을 환경과 공동체라는 측면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농업은 환경'이라는 진리를 먼저 깨달은 선진국의 길이 우리 앞에 있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2020-08-21 14:27:30

[광장]죽음에 대한 상념

[광장]죽음에 대한 상념

죽음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다양한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죽음에 대한 가장 절대적이고 예각화된 이데올로기는 종교가 아닐까. 내 생각으로 세상의 모든 종교는 죽음을 전제로 하고 죽음에 대한 탐구를 가장 본질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고 본다. 그다음으로 문학이라든가, 철학과 같은 인간의 정신 영역을 다루는 학문이 뒤를 잇는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을 통해 현재의 삶을 성찰하는 게 인간의 지혜이다.나는 올여름 너무나 인상적인 세 죽음을 가까이서 목도했다. 세 사람 다 예순을 넘긴 나이어서 젊어 요절한 죽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애석함이 덜한 죽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죽음이 그렇듯 죽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죽음과 혈육이거나 정신적으로 깊은 연대감이 있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비록 나이 든 죽음이라 해도 그 슬픔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다.김종철(1947~2020) 선생이 지난 6월 하순에 작고하자 그의 죽음을 알리는 한 유력 중앙 일간지의 헤드라인이 '한국 생태주의 운동의 대부'라고 붙였다. 이런 사회적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는 이 분야에 몰두했고 그에 상응하는 업적을 남겼다. '시와 역사적 상상력' '대지의 상상력'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등은 그가 남긴 저서의 제목이다. 이런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는 대지(大地)의 흙을 사랑했고, 근대문명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 많은 노력을 바쳤다. 그는 대구 영남대에서 20년 넘게 교수로 근무했고, 격월간 '녹색평론'이라는 기념비적인 잡지를 대구에서 창간했다. 그가 남긴 많은 육성과 저서를 통해 한 발언의 최종적인 의미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겸손'과 욕망의 자기 '절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런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기던 그는 어이없게도 새벽 산책길에서 실족사한 걸로 알려졌다.박원순(1956~2020) 선생은 사회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그 와중에 지난 7월 초 극단적인 방식으로 삶을 마감했다. 현재 그는 정치적 지지자나 반대자들에게 많은 논란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의 삶의 실존적인 측면만 보면 그는 농경문화의 마지막 세대에 속하는 1950년대 중반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신화와 같은 인물이었다. 양파 농사를 하는 지방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한국 최고의 명문고와 명문대에 들어갔고, 학생운동으로 제적되고 옥살이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해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가뿐하게 뛰어올랐다. 그러나 그는 그 권좌의 핵심인 검사를 곧바로 치우고 시민운동가로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 등 그때까지 한국 사회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이슈와 희망의 상상력을 우리 사회에 불어넣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그가 언젠가 외국에 나갔다가 귀국하면서 수천 권의 책을 구입해 비행기 화물로 부치고 몸만 들어왔다는 기사를 읽고 너무 부러웠던 적이 있다.서오년(1927~2020)은 나의 어머니다. 안동 낙동강 변의 조그만 산골에서 태어나 일제 식민지의 보국대 송출을 피해 열다섯 살에 결혼해 우리 6남매를 두셨다.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다 그렇듯 가난하고 힘겨운 일생을 보냈다. 흰 수건을 쓰고 긴 밭이랑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호미로 하염없이 밭을 매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하다. 유난히 삶과 자식들에게 집착하셨지만 마지막 2년을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보냈고, 코로나19로 6개월은 자식들 얼굴을 화상으로만 보다가 가셨다. 죽음이란 이런 것이다. 불쑥 예고 없이 오기도 하고 예견된 방식으로 오기도 한다. 이 죽음에 대해 명복을 빌면서 현재의 내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2020-08-14 13:24:01

[광장] 잡초

[광장] 잡초

마당이 있으면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정말이었다.봄에는 전쟁이 아니라 놀이다. 쉬엄쉬엄 놀이 삼아 뽑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장마에 접어들면 모기에 물리고 땀 범벅이 되면서 잡초를 뽑지만 돌아서면 또 무성하게 자란다. 오기가 생기고 잡초에 대해 적개심도 생긴다. 바둑 둘 때는 누워서 천장을 보면 벽지 무늬가 전부 바둑판으로 보이더니, 잡초와 싸움을 벌일 때는 어디를 가나 잡초만 보인다. 그리고 적개심으로 뽑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걷다가 도로의 잡초를 보면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 그것을 뽑고 있다. 거리의 잡초는 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데 왜 뽑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냥 잡초이니까?3년 전부터 잡초는 정리만 하고 완전 제거하기를 포기했다. 처음에는 내가 키우는 채소, 꽃을 방해하는 잡초를 그냥 둔다는 것이 속이 상했다. 그런데 잡초 뽑기를 포기하자 또 다른 재미있는 현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잡초의 사전적인 의미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면서, 농작물 성장에 방해를 주는 풀이다. 그렇다면 잡초를 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도록 이해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잡초에 대해 적개심을 버리고 관찰을 하고 공부를 하자 잡초의 다양한 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선 꽃이 예쁘다. 민들레의 노란 꽃이 화려하게, 개망초의 흰꽃이 우아하게, 토끼풀의 작은 분홍꽃이 귀엽게 보였다. 정리되지 않고 어지러운 면은 있었지만 따로 돈 들이고 공들일 필요 없이 꽃밭이 되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잡초도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개망초 잎을 전으로 구워도 좋고, 민들레 잎을 샐러드에 섞어도 약간 쓴맛이 입맛을 돋우었다.과거 요리하는 사람이 텃밭에서 금방 따온 허브로 음식을 내면 우선 기가 죽었다. 뭔가 우아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런데 알아보니 지금 허브란 것이 애초에는 들에 피는 잡초였다. 허브라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내 텃밭에도 처음 씨를 뿌려 둔 것이 몇 년이 지나자 알아서 자라고 있다. 관리하지도 않는데 매년 넘쳐날 정도로 자란다. 땅을 뒤집고 흙을 갈아도 집요하게 자란다. 손님이 오면 그냥 허브 가지를 꺾어서 유리병에 꽂고, 잎으로 요리만 해도 손님들은 기가 죽는다. 우리가 이용하기에 따라 잡초가 되기도, 음식 재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다.대표적인 잡초는 토끼풀이다. 번식력이 놀랍다. 그런데 토끼풀을 뽑으면서 뿌리를 보니 주위에 작은 혹이 보였다. 자료를 찾으니 질소균을 고정하는 뿌리혹이었다. 질소는 식물이 자라는 데 꼭 필요하다. 스스로 질소 고정을 못 하는 다른 식물 입장에서는 질소를 공급하는 토끼풀이 꼭 필요한 친구인 셈이다. 농부에게 그런 사연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몰랐지만 척박한 땅에는 먼저 토끼풀을 심으라고 어른들이 얘기한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땅에 토끼풀이 많은 이유를 알게 되니 토끼풀이 귀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모든 잡초는 자기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자연에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닐까?무엇보다 잡초를 이해하니까 잡초에 대한 적개심이 없어졌다. 이제는 길에 보이는 잡초를 뽑지도 않는다. 어떤 꽃이 피었는지 살피기도 하고, 시멘트로 꼭꼭 눌러도 틈으로 풀이 자라 나오는 우리나라가 축복받은 땅이라는 생각도 든다.잡초 때문에 느낀 것들이 있다. 고정관념이나 여론에 사로잡혀 사물이나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대상을 천천히 관찰하고 최종 판단은 나중에 하자.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하자. 모든 사람이 해롭다고 생각해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보자.

2020-08-07 09:48:41

[광장] 퇴계 선생은 매화와 친구였다

[광장] 퇴계 선생은 매화와 친구였다

최근 산림청에서는 정원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원부서를 발족시키고 '수목원·정원법'을 제정하였다. 제정된 정원법에서는 국가정원, 지방정원 그리고 민간정원 등 여러 유형으로 정원을 구분하고 있는데 국가정원 제1호로 순천만 정원이 지정되었다. '정원은 자연이다'라는 말을 생각한다면 정원이 산림청에 소속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동시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정원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큰 이유는 정원이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깨닫고 존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퇴계 이황은 대유학자이자 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정원설계가였다. 그는 이론의 틀을 벗어나 항상 자유롭고 독창적인 생각으로 집과 정원을 조성했다. 퇴계 선생은 공직에서 물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집 한서암을 지을 때 개울에 인접해서 초가집을 지었다. 홍수의 피해를 모를 리 없었지만 물소리가 좋아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집 주위에 소나무·대나무·매화나무, 즉 삼우(三友)를 심어 작은 정원을 만들었으며, 이에 더하여 국화와 과(오이 또는 모과로 해석), 즉 이우(二友)를 더하여 오절(五節)이라 하였다.지금 우리의 시각에서 한서암은 어찌 보면 정원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 조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의 물소리와 절개를 뜻하는 다섯 종류의 나무와 식물로 이루어진 초기 정원은 청빈과 절개를 자연의 순리로서 마음에 익히고 실천해 간 퇴계의 사상을 실현한 장소였다.한서암 시절 몇 년 후 퇴계는 계상서당을 짓고 이곳에서 10여 년을 보냈는데 그 정원에는 직사각형의 작은 못을 조성하고는 과를 대체해서 연(蓮)을 심었다. 연과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국화, 여기에 퇴계 자신을 더하여 이 정원을 육우원(六友園)이라 했다. 이처럼 퇴계는 자신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생각했음은 물론 다섯 가지의 식물을 인격화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몸소 보여 주었다.자연 속 개울을 낀 정원은 도산서당에도 조성되었다. 도산서당에 퇴계는 정사각형 연지(蓮池)인 정우당과 작은 개울 건너 화단을 만들었다. 거기에 평생의 친구였던 매화, 대나무, 소나무 그리고 국화를 심고 이곳을 절우사라 했다. 그는 식물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두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그렇게 삶을 보냈다. 한서암의 조촐한 정원도, 계상서당과 도산서당의 정원도 모두 퇴계 선생이 평생 추구해 온 자연 합일의 삶을 보여주는 곳, 말하자면 이상과 삶이 하나로 어우러져 만들어진 곳이었다.소박하면서 상징적인 퇴계형 정원 양식 즉 연지와 인격화된 식물이 하나의 세트로 조성된 정원은 그를 따르는 많은 후학들의 정원 구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전통정원의 식물 선택과 배치에는 유학자들의 사상이 깃들어 있었다. 전통정원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정원의 주체자인 유학자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퇴계 선생은 "저 매화에게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남기고 운명하셨다고 한다. 긴 세월이 흐른 현재, 절우사도 육우원도 퇴계 선생의 손길이 닿았던 그 시대의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리되지 않은 채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정원은 우리가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자연이다. 우리는 4계절 정원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찾고 생명의 소중함을 배운다. 이번 여름 모두 한번쯤은 정원에 서서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기를 희망한다.

2020-07-31 20:25:31

[광장] 풍요의 시대, 식량 부족을 생각하다

[광장] 풍요의 시대, 식량 부족을 생각하다

단연코 먹방의 시대다. 유튜브나 케이블 채널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에서도 먹방은 대세가 되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8천원대의 한식 뷔페식당, 1만원대 초중반의 무한 리필 고깃집과 패밀리 레스토랑이 주위에 널려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저렴한 식자재 가격 때문이다.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걱정했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발생하는 식량 부족 문제는 해결된 듯 보인다. 세계 인구 78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전 세계 유통망을 통해 공급되고, 우리는 돈만 있으면 어디서든 무엇이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남녀노소를 막론한 다이어트 열풍과 넘쳐 나는 음식물 쓰레기 시대를 살면서 식량 부족을 고민하면 이상한 사람일까? 아프리카 등 빈곤국 8억 명의 기아 문제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도 미래 식량 부족은 지나친 기우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왜 먹방과 다이어트 시대에 식량 부족을 걱정해야 하나? 세계 인구 증가와 중국, 인도 등 인구 대국의 경제성장으로 식품 소비가 '곡물'에서 '육류'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인구의 양적 증가는 식량 수요 확대의 직접 요인이며, 육류 소비 급증은 사료용 곡물 수요를 촉발시켜 더 많은 식량 생산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식량 수요를 충당했던 공급 방식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인가? 비농업용 토지 수요 증가에 따른 농지 부족, 기후변화의 불확실성, 농업용수 고갈 등이 식량 생산의 장애 요인이다. 우리가 식량 부족을 걱정하는 이유는 수요 증가와 공급 불안정성 때문이다. 맬서스의 악령은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다.세계적 투자가인 짐 로저스는 "모든 사람이 농업을 등한시하고 도시로 몰려나올 때 역으로 농부가 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농업이 미래 산업이자 유망 산업이라 강조한다. 또한 식량은 필수재이기 때문에 농업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반드시 먹어야 한다. 하지만 식량이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으면 돈으로도 살 수가 없다. 이윤 추구 생산자가 팔지 않는다는 상상은 지나친 일일까? 만약 판매할 농산물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연재해나 기후변화로 농산물 생산이 감소한다면 농산물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질까? 코로나19로 우리는 이미 선진국의 텅 빈 식품 매장을 눈으로 목격했다.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은 전 세계의 자유로운 식량 이동을 촉진한다.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국가 간 이동이 식량 문제를 해결한다는 논리로 식량 생산이 국가 단위에서 글로벌 단위로 확대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는 수입국의 수입하지 않을 권리는 허용하지 않지만, 수출국의 수출 금지는 허용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와 같은 식량 수입국은 아무리 달러가 많아도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밀, 콩 등을 수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되자 인도, 태국, 베트남이 쌀 수출을 금지하였으며, 2010년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 금지로 세계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식량이 풍족한 먹방의 시대, 우리는 식량안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돈으로 얼마든지 식량을 수입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 미래 세대에게 식량 재난을 물려줄 수 있다. 식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에 안정적 국내 생산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농식품은 생명을 지탱하는 원천일 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지키는 파수꾼임을 기억해야 한다.

2020-07-24 14:30:00

[광장] 한류(韓流)와 문화예술도시 대구

[광장] 한류(韓流)와 문화예술도시 대구

한류(韓流)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활발히 공연되고 수용되는 현상을 말한다. 영어로는 K-Waves(물결)로 표기되는 이 문화의 물결 현상은 1997년 한국의 TV 드라마가 중국에 방영되면서 인기를 얻게 되자 생긴 현상을 말한다. 한류는 점차 케이팝(K-Pop)이나 케이드라마(K-Drama) 외에 영화(K-Movie), 화장품류(K-Beauty), 한식류(K-Food)에서 게임(Game)에 이르기까지 넓은 의미의 문화 전반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류라는 이 용어는 1998년 중국의 '북경청년보'라는 신문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라고 한다.한류는 문화현상이다.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말할 수 있겠지만 비교적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해보면, 한 사회는 경제적 토대와 그 경제적 토대를 기반으로 하는 정신적 현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학연구자들은 이것을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라는 식으로 개념 지어 말하는데, 말하자면 하부구조는 생산양식이 밑바탕이 된 경제적(물질적) 토대를 이르는 것이고, 상부구조는 그 경제적 토대에 상응하는 정신 영역 가령 문화예술, 정치, 법률, 종교 같은 범주를 말한다.한류라는 문화현상도 급성장한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세계적 수준을 선도하는 IT 기술의 발전과 결부시켜 이해해야 한다. 한류하면 방탄소년단(BTS)이 곧바로 떠오를 정도로 이들이 한류현상을 주도해 왔다. 미국의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이들과 몇몇 아이돌 가수 그룹이 지난 수년간 이룬 업적은 독보적이다. 여기다가 올 초 할리우드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을 비롯한 한국 영화의 성과 역시 눈부시다.이런 한류의 대대적인 성공 주역들 중 대구 출신이 많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7인으로 구성된 방탄소년단 중 뷔와 슈가, 두 사람이 대구에서 고교까지 학창시절을 보냈다. 레드벨벳의 인기 높은 보컬 아이린 역시 대구에서 고교를 마쳤다.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도 대구 출신이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대구에서 출생해 성장하고 초등학교 때 부친의 임지를 따라 서울로 이주했고, 세계적인 예술영화 감독 이창동 역시 대구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마쳤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한때 대구는 문화예술 도시로 이름을 떨쳤다. 서울 못지않은 수준 높은 음악대학과 미술대학에서 배출한 많은 인재들이 대구 문화예술의 기반을 이루어 왔다. 여기다가 근대문학의 별들인 이육사, 이상화 등 숱한 문인들이 한국문학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눈여겨보면 이들이 대구에서 출생해 성장하고, 예술의 원초적 감수성을 싹 틔웠지만 예술의 꽃을 피운 건 다 서울에 가서이다. 이런 배경에는 유난히 중앙집권적인 한국의 문화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이런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대구에서 성장시키고 배출하면 어떨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구에는 이미 어리고, 젊은 많은 예술 인프라가 있다. 이 미완의 재목을 발굴하고, 훈련시키고, 기획하고, 마케팅해서 국내 무대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 내놓는다면 어떨까? 영국의 전설 비틀스(The Beatles) 때문에 전 세계 팬들이 리버풀과 함부르크로 몰려들었듯이 전 세계 팬들이 글로벌 문화예술 도시 대구로 쇄도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탄생시킬 창의적인 고민을 제대로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2020-07-17 15:24:09

[광장] 뭔가 이상하다

[광장] 뭔가 이상하다

나는 아파트에 살면서 식물과는 인연이 없었다. 식물이 우리 집에만 오면 살지 못했다.아파트는 층수가 높고 실내 공기가 안 좋아서 그렇다고 핑계를 댔지만, 내가 식물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8년 전 한옥으로 병원을 짓고, 마당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처음 2년간은 나무들이 무수히 죽어 나갔다. 소문으로 좋다는 것에 욕심을 내고 심었다가 관리가 되지 않아서 수시로 파고 뒤집었다. 그런 시간이 지나자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아파트 생활에서는 몰랐던 계절의 변화를 나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꽃은 각자가 원하는 시간 간격을 두고 피었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는 이른 봄에 매화가 피면 뒤이어 수선화, 벚꽃, 라일락, 수국이 뒤를 이었다. 그렇게 몇 달간 꽃을 즐기면 더운 여름이 왔다. 이런 간단한 즐거움만을 가지고 꽃에 관심을 가지니 나무가 죽는 일이 없었다. 몇 년이 지나자 언제, 어떤 꽃이 피는지 알게 되고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런 순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봄이 되면 꽃은 한꺼번에 폈다가 같이 사라졌다. 뭔가 자연의 질서가 무너진 느낌이다.올해 의사 된 지 40년이다. 의사로서 경험이 쌓이면 환자 보기가 쉬워야 하는데 점점 더 어려워진다.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서 금연하고, 운동하고, 붉은 고기 적게 먹고, 채소 많이 먹으라고 하지만, 폐암의 30%가 비흡연자이고, 수유를 하고 채소만 먹어도 유방암, 대장암에 걸리는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 과거 젊은이들이 암을 걱정하면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안심시켜 돌려보냈다. 노인이 암 검진을 계속 받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암이 생길 수도 있지만 성장이 느리니까 이상을 느끼면 방문하고, 그 돈으로 고기나 사 드시라고 돌려보냈었다. 그런데 요즘 20대 젊은이들 암이 늘어나고, 80대 암도 예측 불가능하게 자라는 속도가 달라졌다.뭔가 이상하다. 식물들은 지구상에서 긴 시간 동안 각자 자라기에 맞는 장소를 찾고, 언제 꽃을 피워야 자기 종에 유리한지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런 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은 주위 환경이 식물에 혼동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아주 뛰어난 적응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로 병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인간이 암에 걸리는 것은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이다. 그런데 암이 증가한다는 것은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는 외부 환경이 우리 몸의 해결 능력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변화의 원인은 단순히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다. 원인을 쉽게 찾아서 명쾌하게 해결을 못 하는 이유다.몇 년 전부터 나는 이런 이상한 현상의 원인을 찾다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호르몬이라고 부르는 화학물질과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현재의 불건강한 먹거리로 인해 인류에 무언가 큰 위협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재앙이었다. 그런데 몇 달간 찬찬히 점검해 보니 그게 전혀 다른 현상이 아니었다. 모습만 달리한 재앙이었다.연결 고리는 흙을 만지면서 알았다. 나무를 키우면서 흙을 만지니 뿌리와 그 주위의 벌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도우면서 각자 살아가는 이치가 재미있다. 흙과 벌레들의 변화를 관찰하며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현재 복잡하게 얽힌 이상한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직감에 따라 그렇게 하고 있다.

2020-07-10 14: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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