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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매일춘추] 위도일손(爲道日損)

노자의 도덕경 48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무위이무불위. 취천하상이무사,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원문에 충실해서 번역하면 이렇다 한다. '배움이라 함은 나날이 더하는 것이고 도라 함은 날마다 던다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에 이르게 된다. 무위란 하지 못하는 것(불위)이 없다. 천하를 얻으려 한다면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없다.' 노자의 무위란 개념은 도에 이르는 방법이긴 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개념이다. 그래서 문장 전체의 뜻은 접어두고 맨 앞의 두 문장, 爲學日益, 爲道日損에만 국한해서 살펴보고 이 두 문장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자 한다.우리는 삶의 경쟁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줄곧 '爲學日益'의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왔다. 국어, 영어, 수학뿐만 아니라 역사, 경제, 과학, 컴퓨터 등 지식과 정보로 머리가 꽉 찰 정도로 지식인이 되어야했다. 그래서 성공은 할 수 있을지언정 마음의 평화가 있었을까? 영혼은 지식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날마다 신음하지 않았을까? 나도 그렇게 살아왔으므로 나의 이 질문이 우문일 수도 있고 자가당착일 수도 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드니 저절로 지식보다는 마음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말 중에 하나가 '爲道日損'이 아닐까 한다.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젊은 날에는 실천이 쉽지 않았던 말이지만 나이가 들면 몸도 마음도 괴롭게 되어 실천해야할 덕목으로 자리 잡게 되는 말이 '爲道日損'일 것이다.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을 하루에 하나씩만 덜어내자. 집안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하루에 하나씩만 버리면 금세 집안이 말쑥해지듯 머릿속의 잡다한 지식이나 상념 쪼가리를 하루에 하나씩만 내던져 버리자. 불가의 8가지 고통인 팔고에는 '오음성고(혹은 오온성고)'가 들어있다. 내 존재(몸과 마음)를 구성하는 지표인 오온(色⋅受⋅想⋅行⋅識) 즉, 몸의 감각, 느낌, 생각, 의욕, 인식이 너무 발달하면 오히려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아마도 성철스님이 '나돌아 다니지 말고 책 읽는 일을 삼가라'고 일갈했다고 본다. 세상을 너무 알려고 하고 그것도 머리로 살피면 결코 평화를 얻지 못한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머리를 비우고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좀 더 편해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머리로 하는 배움(學)은 더하는 것이지만 마음으로 구하는 도(道)는 더는 것이다.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2019-04-08 02:30:00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매일춘추]나만의 더늠을 찾자

지난 주말 거리거리마다 꽃은 만발하고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파랗고 또 파랬다.따사로운 햇살에 봄은 부지런히 무르익고 푸르고 흰 봄이 주는 설레임을 만끽하기에 제격인 날이었다. SNS에는 꽃놀이로 바쁜 주말을 보내는 주변인들의 꽃 사진, 하늘을 담은 사진, 행복한 웃음이 담긴 사진으로 가득했다. 이따금 봄날을 시샘하는 찬 기운이 옷을 여미게 만들었지만 고개를 들기만 해도 슥 한번 둘러보기만 해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온 천지에 꽃비가 내리는 그야말로 완연한 봄이다.해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봄 가면 여름이 오는 사계절의 이치에 아, 벌써 때가 그렇게 되었나보다 하고 당연한 듯 지내오고 있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볕과 비를 온몸으로 감내하고 싹과 꽃을 맺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가감 없이 그 절경을 뽐내는 봄과 그 계절이란 것이 마치 필자가 하고 있는 판소리의 더늠과 닮았기 때문이다.더늠은 판소리 명창이 독창적으로 소리와 사설 및 발림을 짜서 연행한 판소리의 한 대목으로서 그 명창의 장기로 인정되고, 또 다른 창자들에 의해 널리 연행되어 후대에 전승된 것을 말한다. 더늠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더 넣다'에서 왔다는 견해로서, 판소리 전승에서 없던 것을 독창적으로 짜 넣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겨루다'라는 뜻의 고어 '던다(더느다)의 명사형 '더늠'에서 왔다는 견해로서, 창자가 다른 창자와의 판소리 경쟁에서 자신 있게 내 놓는 대목으로 보는 것이다.어떤 특정한 대목이 더늠이 되기 위해서는 독창적이면서 예술적으로 뛰어나야 하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더늠 역시 무척이나 독창적이고 또 형언하기 힘들도록 완벽한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봄의 더늠은 두꺼운 가지를 뚫고 올라오는 세상 무엇보다 강한 여린 초록색, 노란빛과 분홍빛으로 수놓는 찰나의 고움이 있다. 여름의 더늠은 타는 햇살로 대지를 데워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고, 푸르름으로 우거지는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과 쏟아지는 장마의 시원함이 있다. 가을의 더늠은 선선한 바람과 함께 붉게 붉게 타들어가다 하릴없이 떨어지지만 그 또한 가을만이 뽐낼 수 있는 운치이다. 겨울의 더늠은 시리도록 차갑지만 오히려 따듯한 정이 넘치지 아니한가.이렇듯 하물며 철마다 제 멋을 뽐내는 더늠이 있는데 우리에게도 분명 비교할 필요도, 같을 필요도 대단할 필요도 없는 나만의 색깔, 개성, 가치관, 정체성, 재주, 재능의 더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2019-04-05 03:30:00

현동헌 테너

[매일춘추]나의 노래는

우리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필자는 성악가이자 문화기획자이며 제작자이다. 대기업의 기술연구원에서 음악을 사랑한 나머지 나의 노래를 하며 살겠다는 생각 하나로 안정된 삶보다 행복한 삶을 찾아 지금도 철없이 살아가고 있다. 내가 여기서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이 화제에서 자유롭기 때문도 아니요 그것이 잘 못되었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거론하려함도 아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들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환기의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을 것이다.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창의적인 순수예술이라는 분야에서 특히나 음악가들은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간다. 다른 이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며 그 결핍에 대한 목마름으로 안간힘을 쓰며 사는 것에 익숙해져가는 현실이 가끔 서글퍼지는 때가 있다.송인규 교수가 쓴 '세 마리 여우 길들이기'라는 책에서 그는 인류 역사상 순화되었다는 보고나 기록이 발견되지 않을 만큼 길들여지지 않는 여우에 빗대어 인간 내면에 다스리기 힘든 세 마리 여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야망, 질투, 경쟁심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 속에 비교함과 질투는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평생 모차르트를 시기한 요세프 2세의 궁정 음악장인 살리에르(Antonio Salieri: F. 머레이 에브람 분)가 그럴 것이며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을 죽을 때까지 자신과 비교하며 시기한 사울 왕이 그럴 것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자신의 장점마저 결국은 잃게 되고 정서적인 문제를 야기하게 됨과 동시에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반면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인 헬렌 켈러는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것이 주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무엇이 없는지 생각하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말한바 있다. 태어난지 19개월 만에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어버렸음에도 꿋꿋이 삶을 헤쳐나간 여인 헬렌 켈러, 혹시 내게 주어진 여건과 상황 가운데 없는 데만 마음을 두고 원망, 불평하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필자도 장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발전시켜나간 결과 내가 하고 싶은 인생의 말들을 음악에 녹여 표현하는 공연들을 제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작지만 좋은 결과들을 만들어 가고 있음에 감사한다.고(故) 김광석의 '나의 노래' 라는 곡의 가사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닯은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빛, 자그맣고 메마른 씨앗 속에서 내일의 결실을 바라보듯이 자그만 아이의 읊음 속에서 마음의 열매가 맺혔으면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이렇게 나는 오늘도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내가 잘 하는 것에 더 집중하며 나의 노래를 만들어가려 한다. 현동헌 테너

2019-04-03 13:18:14

김동훈 연극 배우

[매일춘추]무용지용의 예술

무명배우의 글을 기고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걱정이 앞섰습니다. 저는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관객 분들을 만나왔지 지면을 통해 독자(관객)분들과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연극을 하는 무명배우의 사색이 글로써 독자 여러분들께 어떻게 읽힐지 또는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킬지 무척 궁금하기도 합니다.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흔적을 진지하게 남겨보는 묵상의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범람하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오늘날 신문 지면의 글은 과거와는 다르게 별 볼일 없는 삶의 퇴적물로 남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지하철이나 버스, 길거리에서 각자의 휴대폰으로 의사소통하고, 사진이나 영상으로 정보를 파악하며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루 주어진 시간동안 우리는 얼마나 직접 글을 쓰고 읽어볼까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연극'도 신문 지면의 글과 유사한 입장인 것 같습니다.연극은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대중예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연극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와 영상매체가 등장하고 발전하면서부터 연극은 자연스레 관객들의 흥미를 잃어갔고 과거에 비해 극장으로의 발걸음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이와 같은 오늘날의 현실을 시장경제와 실용주의 관점에서 연극을 바라본다면 연극은 상업적으로 별 가치가 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지고 활용하는 재원에 비해 얻어지는 결과가 너무나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연극에 도가사상가인 장자(莊子)의 사유를 대입해보려 합니다. 바로 '장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 나오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입니다. 지면에는 한계가 있으니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방식대로 풀이해보자면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들여다보면 쓸모가 있다'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산에 있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은 사람들에 의해 베어지고 뽑혀지지만 못생기고 투박한 나무는 사람들에게 뽑히지 않은 채 나무 본연의 몫을 지녀 자연을 이룬다는 풀이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장자의 사유는 연극이 마주한 작금(昨今)의 현실에 대해 반성하고 비판적 관점을 정립하게 합니다.오늘날 연극이 장자의 사유와 맥을 함께 하는지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연극은 인간과 인간이 한 공간에서 만나 관계를 맺고, 호흡하고, 느끼고, 변화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원시적인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은 우리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가치들과 더불어 가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숭고함을 지닌 것 같습니다.매일의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러분들은 쓸모없어 보이는 '무용지물'은 무엇인가요? 자신의 일상과 주변을 반추해본다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무용지용'을 발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동훈 연극배우

2019-04-02 11:09:48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매일춘추] 젊은 무용수의 동전 파스

필자가 근무하는 공간과 같은 층에는 대구시립무용단 연습실이 있다. 연습시간 동안에는 문틈 새 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이 덤으로 주어지는 꽤 괜찮은 사무환경이다. 가끔, 무용단원들과 함께 쓰는 여자 화장실 휴지통에는 한국인이 싹쓸이 해온다는 일본의 동전 모양 파스들이 버려져 있곤 한다. 20, 30대의 젊은 무용수일텐데 벌써부터 근육통에 시달리나 싶어 안쓰러웠다.공연을 볼 때는 몸으로 그려내는 언어들에 취해 무용수들의 신체적 고통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전방의 무대는 언제나 예술의 고고함만을 전달해 주었다. 무용수들의 몸은 패딩 속 깃털보다 가벼운 듯 펄펄 날아다녔다. 작품에 흡수되는 동안 무용수들이 겪어야 하는 관절들의 통증이 오죽했을까.정하해 시인은 '뼈를 고아내듯 시에 내 전부를 집어넣고 달이는 그 혹독한 날 밤을 숱하게'라며 창작의 어려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떤 일이든 성과에는 노력과 인내가 따르겠지만 특히나 예술 분야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기에 더한 것 같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창작의 고통은 비록 예술가가 아니어도 짐작이 된다.예술 분야만큼은 인공지능에 점령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도 잠시, AI예술가가 속속 등장했다. 유명화가의 화풍을 따라하는 AI 화가가 나타나고 작곡하는 컴퓨터도 있다.지난 해에는 인공지능이 그린 초상화가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의 경매에 출품되어 5억여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기술인지 예술인지 모호한 AI 예술작품은 계속 업그레이드되면서 예술가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물이 보고 듣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지는 의문이다. 가슴을 뒤흔드는 '예술'에는 모름지기 예술가의 스토리와 피 땀 눈물이 녹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아쉽게도, 오랜 반복의 시간으로 발목 인대가 늘어나고 허리가 끊어지는 인고와 노력에 대한 대가는 미비하다. 2012년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되어 7년이 지났다. 시립예술단처럼 매월 급여라도 받는 경우는 덜하지만 아직도 창작 환경들은 불안정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밴드를 접고 그림붓을 내려놓는 상황이 낯설지 않다.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시를 쓰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이어 가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직업예술인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제도적 시스템 보완은 여전히 문화예술지원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그나마 녹록치 않은 환경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적잖은 예술인들이 대구에 거주하고 있음에 안도한다. 이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 혹독한 담금질을 반복하는 예술인들에게는 고통을 식혀 줄 파스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2019-04-01 10:27:37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매일춘추] 동행을 위한 마음 나누기, 배려 

이틀에 한 번씩 가는 교내 수영장에서 역시나 이틀에 한 번씩 와서 자주 만나는 70대 노인, 평생교육원 서예반 학생이기도 한 그 노인, 오늘도 사우나실에서 만났더니 또 옥상 텃밭 자랑이다.본인의 집 이층옥상에서 가꾸고 있는 대추와 배, 포도, 부추, 그리고 작은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방울토마토 등에 대해서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한다. 고추는 벌써 몇 근을 땄고, 고구마도 작년에는 두 포대나 캤고, 부추는 베어 이웃에게 나눠주기도 했단다. 지나가는 뭇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이층에서 일층으로 늘어진 덩굴에 달린 호박이나 가을에 붉게 익은 감을 보며 감탄하기까지 한다는 옥상 텃밭 자랑, 흥이 나면 옥상 텃밭을 만들었을 때의 피땀 어렸던 일을 승전보 알리듯 들려준다. 배자못(지금의 복현 오거리 주변에 있었던 큰 연못)에서 퍼 와서 백 번도 더 등짐을 지고 이층까지 올린 흙이란다.(이 무용담은 벌써 몇 번이나 들었다.) 나는 노인의 위업(?)에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추어주었고 하루에 텃밭에 들어가는 수돗물의 양에 감탄해주기도 했다.그러나 이따금씩 문제로 제기되는, '도시에서 배출되는 다이옥신이나 중금속 등 각종 오염물질을 식물이 흡수, 축적하고 이를 사람이 섭취했을 때 위험하다'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이 문제는 진위가 아직 확인이 덜된 상태이며 그보다는 자칫하면 그 노인을 실망시켜 행복을 송두리 채 빼앗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배려) 때문이었다. 노인이 옥상에서 거두는 야채나 과일에 중금속이 없기를 바라지만 정말 중금속이 들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도시의 옥상에는 먹거리보다는 볼거리인 꽃이나 나무를 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배려란 것을 돌아보게 된다.배려란 것이 엄청난 것인 줄 알면 베풀기 힘들게 된다. 배려란 것은 내미는 손을 뿌리치거나 외면하지 않고 지그시 잡아주는 것이며 머리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대접하는 마음 나누기인 것이다.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그가 하고 싶은 말이나 일을 하도록 하고 그가 서 있고자 하는 곳에 서있게 해줌으로서 그로 하여금 잠시나마 행복하도록 해주는 게 배려가 아닌가 한다. 타인의 어려움이나 바람을 이해하고 배려함으로써 상대가 귀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 하나를 마련해 주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팍팍한 삶 속에서도 우리는 상대를 배려함으로써 상대를 기쁘게 하고 나도 즐거워지는 복록을 누릴 수 있다.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2019-04-01 01:30:00

이현석

[매일춘추]경북문화재단 출범에 거는 기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으로서 최근 무척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유일하게 지역문화예술의 컨트롤타워인 문화재단이 없었던 경상북도가 드디어 문화재단을 설립한다는 소식이었다.1997년 경기도가 전국에서 최초로 문화재단을 설립한 이래 23년 만에 경북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모든 광역지자체는 지역의 문화재단을 설치하게 된 것이다. 전국 광역시도 중 가장 늦은 출발이지만 그만큼 오랜 시간 기다려온 지역의 예술인으로서 경북문화재단의 출범에 거는 기대는 커다.지금의 사회는 빠른 속도로 각 분야의 기능과 특성이 분화와 전문화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절이다. 특히, 창의성과 자율성이 강조되는 문화예술분야는 더욱 그러한 변화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행정조직은 유연성이 부족한 조직의 특성상 이러한 빠른 변화를 주도하기엔 다소 역부족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의 보완을 위해 민간영역의 유연성과 전문성 있는 역량의 활용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문화예술분야에 있어 이러한 필요에 의해 공공과 민간의 연계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관련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의 주도적 참여를 보장하도록 만들어진 장치가 바로 문화재단인 것이다.이러한 원론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지역의 문화재단은 재정 확충의 면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지자체로서는 어려움이 있는 후원을 통한 사업비 확보 및 각종 정부의 공모사업을 통한 문화예술의 보조금 형태의 재원 확보 및 메세나(Mecenat), 문화예술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한 재원의 마련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재원의 확대는 온전히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창작기회의 확대와 지역민들의 문화향유권 신장에 쓰여 질 것이다. 또한, 지역 고유 문화예술의 전문적, 체계적, 지속적인 기획을 통한 지역문화예술의 실질적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는 것이다.새롭게 출범하는 경북문화재단은 그 시작의 단계에서부터 재단의 주인이 도민임을 명심하고 최우선적으로 지역예술인 및 지역민들의 문화예술에의 요구를 충실히 수용할 수 있는 체계의 구성을 해 주기를 바란다. 또한 타 지역 문화재단의 성패(成敗)를 타산지석(他山之石)삼아 경북만의 특화된 운영을 통해 우수한 경상북도의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지역의 문화브랜드 형성과 다양한 문화기획을 통해 문화예술 콘텐츠를 경북 관광 인프라로 만드는 중추적 역할도 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재단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2019-03-28 10:19:45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매일춘추]생각의 패턴 바꾸기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에 위치한 고개에는 예수님 동상이 하나 있다. 이 동상은 양국의 국경 분쟁이 평화롭게 타결된 것을 기념하여 제작되었는데, 지형과 여러 가지 조건들을 따지다보니 자연스레 동상이 아르헨티나 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자 칠레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이 자신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때 어느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다음과 같은 사설을 통해 이 논란을 잠재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예수님 상이 아르헨티나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아직 더 많이 돌봐줘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세상을 살다보면 화를 부르는 순간도 많고, 의도치 않게 오해를 사는 일도 많으며, 노력의 대가가 전혀 없거나 쓸모없어져 나의 존재감이 무너지거나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순간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주어진 환경이 걸림돌이 되어 상황을 악화시킬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계가 되어 다시 일어설지는 결정된다. 관점을 달리했을 때 동일한 조건이 전혀 다르게 다가오며 해석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새옹지마의 이야기처럼, 우리에겐 모든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연자약(泰然自若)의 자세가 필요할 때가 있다.대뇌의 변연계는 감정을 거르는 여과장치와 같아서 부정적인 생각은 계속 부정적인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한다. 계속되는 좌절과 실패에 부정적인 생각의 악순환 고리로 들어가는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생각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나는 모든 일에 우연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고, 내가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일이 또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의 패턴을 조정하려고 날마다 애를 쓴다. '오늘의 복이 내일의 화가 될 수 도 있고, 오늘의 화가 내일의 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워야 할 까닭이다. 오늘의 화로 가득찬 상황을 지혜롭게 수용하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길은 또 열린다. 산을 넘으면 또 산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지금 넘은 산은 절대로 헛 넘은 산이 아니라는 마음가짐, 남들은 쉽게 잘만 가는 것 같은데, 나는 늘 걸림돌이 많은 것 같아도, 그 돌을 넘을 때마다 나는 매일 더 단단해진다는 믿음, 나는 나의 길을 간다는 뚝심과 같은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탓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 오늘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오늘 의식적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생각의 패턴을 바꾸어 또 다른 상황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본다.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2019-03-27 11:18:53

서영완 작곡가

[매일춘추]도시소음

시각은 우리 인간에게 엄습하는 많은 위험을 직접 감지하고 그 정보로부터 스스로를 대처 하게 한다. 하지만 청각의 경우는 어떤 위험에 대한 경고를 다른 무리구성원들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더 많이 사용되었고 그 용도에 맞게 우리의 귀는 진화했다.소리의 특징을 크게 나누면 소리의 크기와 높이이다. 그중 소리의 높낮이를 보면, 인간은 높은 소리를 더 분명하게 듣고 낮은 소리를 덜 뚜렷하게 혹은 작게 듣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는 '플레쳐먼슨 커브'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평상시 대화를 분명하게 하는 부분이 고음에 속해있고 또 경고목적의 소리들은 중음과 고음에 많이 배치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저음의 경우 우리를 자극하고도 남을 만큼 굉장히 큰 소리가 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몸이 받아들이는 충격은 고음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해서 잘 들리지 않는 저음의 경우는 우리에게 많은 충격을 주고 있다 하더라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소리의 크기의 경우, 우리는 청각적 경고만으로는 전혀 그 위험의 규모를 알아차리기란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 크기에 의존하게 된다. 더 큰소리는 작은 소리보다 더 큰 위험을 나타내는 방향이다.소리의 높이와는 달리 소리의 크기를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들린다. 나는 크게 듣지만 다른 사람은 참을 만한 소리일수 있다. 그렇게 해서 경고성 소리는 일단 누구에게나 참기 힘들만큼 커야 한다. 그래서 소방차나 경찰차의 알람은 우리를 지극히 자극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이렇듯 많은 도시의 소음들은 그 자체가 어떠한 리액션을 즉각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은 우리에게 일종의 스트레스로 인식되기도 한다. 물론 더 큰소리는 더 큰 스트레스를 야기한다.소리가 우리의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구체적으로 연구하기란 굉장히 까다롭다. 일반 음향학을 기본으로 해서 심리음향학으로까지 확장되는 연구로, 일단 실험이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하고 평균적으로 일반화 할 수 있는 수치화를 위해서는 그 연구군이 다양하고 많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알려진 소리에 대한 연구는 클래식 음악과 록음악을 들려주었을 때의 식물과 동물들의 반응 정도로 아주 미약하다. 사실 소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수치화하려면 심장의 박동과 땀 분비물의 양과 같은, 혹은 뇌파의 측정에 의해 그 변화관계를 수치화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하지만 또 그 결과만으로 정확한 소음과 신체의 인과관계를 도출하기란 힘든 부분이 있는 꽤나 복잡한 연구가 될 것이다. 그래서 구글에서는 전 세계 도시들의 지도위에 그 도시의 소음정도와 성분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포함시키기 위해 NYU(New York University)와 함께 연구중에 있다. 이러한 활동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여러 소음들을 자각하게 하고 또한 그런 도시소음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으로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서영완 작곡가

2019-03-26 13:27:28

[매일춘추] 대체 투자 대상이 된 미술품

한때 주식시장으로 몰리던 개미(소자본가)들이 최근엔 화랑가 중심의 미술시장을 찾고 있다고 한다. 장기 불황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그림이나 조각·도자기 등 미술품이 대체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수집하기 편리한 현역 작가들의 그림 작품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그 중에서도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에 거래되는 작은 그림, 즉 소품이 인기다. 미술품이 대중화 추세를 보이면서 대체 투자보다 일반적으로 미술을 애호하는 사람들은 서울 인사동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의 화랑가에서 전시 중인 6∼10호 짜리를 선호하고 있다. 가격도 최하 30만 원에서 최고 300만 원대로 부담감이 적어 투자가치도 높은 편이다. 게다가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도 있어 재테크의 동기 부여를 충족시켜 준다고 한다.지난해 국내 미술시장 매출액이 5000억 대를 돌파했다. 이는 역대 처음으로 5년 전의 3000억 대에 비해 70%나 성장한 것이다. 전문 컬렉터들에 의해 경매로 거래되는 작품 낙찰가는 평균 1385만 원(2017년 기준). 하지만 화랑가의 중소규모 갤러리 중저가 작품이 전체 매출 신장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문체부는 올해 미술품 소비 촉진을 위해 현행 100만 원 이하로 제한하고 있는 기업의 미술품 구입 비용을 문화접대비에 포함하고 전시 목적으로 미술품을 구입할 땐 500만 원 한도를 1000만 원으로 올리는 세제 개선안을 마련했다. 경매시장에서도 '착한 가격'에 그림을 공급하기 위해 중저가 위주로 최소 10만 원부터 응찰할 수 있는 온라인 경매에 나서고 있다.그러나 국제적 거래 규모인 대형 경매시장은 일반 투자가들에게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특히 타계한 화가들의 유작은 입찰가가 워낙 고가(高價)인 데다 작품도 많지 않아 가격이 엄청 뛰고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고(故) 김환기(1913~1974) 화백의 작품은 최고 85억 원. 하지만 동시대의 박수근(1914~1965)과 이중섭(1916~1956) 화백의 작품도 이에 못지 않다.특히 박수근과 이중섭은 생전에 찌든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며 불운한 삶을 살았던 탓으로 남긴 작품이 적어 위작도 많이 나돌고 있다.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2019-03-25 11:27:32

천영애 시인

[매일춘추]여성성과 남성성

여성으로만 구성된 대법관을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미국의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인터뷰를 통해 "법정은 또 한 명의 여성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한 명의 여성만이 연방대법관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였다.우리나라의 여성 대법관 전수안은 "여성법관들에게 당부합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전체 법관의 다수가 되고 남성법관이 소수가 되더라도, 여성대법관만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도 여성이 사회에서 고위직을 차지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대법관은 상상해본적도 없다. 남성대법관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여성대법관은 다소 경이의 눈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이다.여성들이 고위공직에 다수 진출하고, 여성들의 파워가 커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남성들의 파워가 전부였을 때 남성들은 전혀 우려하지 않았다. 세상의 반이 남자이고 반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대부분은 남성들이 차지하고 남은 극히 일부분의 자리를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여성의 존재감은 늘 미미했고, 그나마 여성들의 파워가 조금 커진다고 남성들은 마치 자기들의 당연한 자리를 빼앗기는 것처럼 법석을 떤다.여성은 언제나 남성의 보조자 역할을 잘 하는 것에서 가치를 찾고, 여성이 주도적으로 해나가면 센 여자, 특별한 여자 취급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했을 때는 성을 초월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그 여성대통령이 탄핵되었을 때는 여성이란 할 수 없다는 조롱어린 말들이 만연했었다. 한 사람의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이다.특정한 남성이 문제되었을 때는 남성이란 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남성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여성은 성공해도 실패해도 항상 여성을 수식하는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유럽권에는 여성과 남성을 굳이 분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동등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성적 구분을 하지 않음으로서 사회적 역할의 구분도 하지 않으려 한다. 여성만으로 구성된 대법관을 다시 한번 상상해 보자. 당연하게 다가오는가? 당연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여성을 어떤 위치에 두고 보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천영애 시인

2019-03-25 02:30:00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매일춘추]나의 성실한 연출자

연출가, 특히 극(劇) 연출가는 문자(文字)로 된 작가의 대본을 현실화(現實化)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공연장이 되었든 혹은 길거리가 되었든 작가가 그의 상상력과 사상을 발휘하여 문자로 만들어 놓은 허상(虛像)의 것을 현실에 실현(實現)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그래서 무엇보다도 대본을 면밀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퇴고(推敲)라는 말에서 보듯 작가가 그 시대적 상황과 등장인물들의 여러 배경 상황을 고려하여 각고(刻苦)의 노력 끝에 쓴 대사의 어휘를 연출자의 무지(無知)로 마음대로 그 어휘를 바꿔 버린다면 아마도 그 극의 전체 내용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바뀌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 연출자가 조금씩은 의도적으로 작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대본을 바라보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작가의 사상이나 시간적, 공간적 배경과 주제에 맞게 대본에 쓰여진 텍스트를 왜곡 없이 표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녀야 할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연출가는 무조건 대본에 쓰인 대로만 작품을 만드는 맹목적인 존재는 아니다. 작가의 의도를 면밀하게 파악한 한 후 그 작품을 무대에 표현하는 과정에서 연출자만의 사고와 생각의 방식을 접목하여 현실화시킨다. 그래서 같은 대본이지만, 연출자가 누구인지 그 연출자가 얼마만큼의 역량을 가졌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본다면 연출가는 어쩌면, 누군가의 꿈을 현실화(現實化)시키기는 아주 매력적인 일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작가가 머릿속으로 자신이 꿈꾸던 상상의 이야기를 글로 써 놓으면 연출가는 그것을 현실에서 직접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우리는 누구나 꿈을 가지고 미래의 인생을 계획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인생이 하나의 공연 작품이라면, 나의 인생이라는 작품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대본을 쓰고 내가 직접 연출을 해야만 한다. 연출자가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잘 쓰여진 대본을 원하듯이 우리가 원하는 멋진 인생의 연출을 위해 내 인생의 대본을 써 나가야 하는 시기부터 그것이 잘 현실화될 수 있도록 탄탄한 내용과 구성의 대본을 먼저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또한, 연출의 과정에서는 성실한 연출자의 자세로 나의 대본에는 나의 어떤 사상과 가치관을 담아 놓았는지 면밀한 대본의 파악 과정을 진행해야 함으로써, 다가올 나의 인생이라는 무대를 잘 연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내가 꿈꾸던 나의 인생은 지금의 나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 있는 것일까? 삶이 팍팍하고, 상황이 어렵다는 핑계로 충실히 순수한 마음으로 잘 써 놓은 대본을 무시한 채 대본과는 동떨어진 연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다가올 나의 인생무대를 위해, 성실한 연출자로서 한번 더 나의 인생대본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제안 해 본다.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이현석

2019-03-21 11:05:19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매일춘추]분노에서 벗어나기

대한정신건강의학회 조사 결과 우리나라 성인 절반 이상이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도 우리는 도로 위, 직장, 가정 등 일상 생활 속에서 분노에 사로잡혀 스스로 감당이 안 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물론 흔히 화병이라고 부르는 증상처럼 분노를 자신 안에 꽁꽁 싸매어 놓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타인을 향해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건강과 사회에 모두 큰 피해를 끼친다. 미국은 한 해 분노로 인한 총기사고로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한다고 한다.화가 나는 상황은 계속 곱씹다보면 더 화가 난다. 분노는 일종의 생각의 습관과도 같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화는 더 절정에 달한다. 그리고 이렇게 타인을 공격하던 화살은 결국 다시 자기를 공격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들은 일관되게 분노가 절정에 올랐을 때는 차라리 그 상황을 벗어나거나 안정을 취하는 감정완화시간을 가져 화를 피하라고 이야기한다.대체 왜 이렇게 분노하는가? 우리는 대개 분노의 원인을 상황과 환경 등의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원인은 마음속에 있다. 외부의 요인들은 늘 끊임없이 불공평했고, 부당해왔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하는 내 기준의 판단과 증오심이다. 내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타인이 나의 판단에 맞지 않거나 혹은 특정한 누군가에 대한 증오뿐 아니라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불특정한 대상에 대한 내면의 증오심과 같은 것들이 조그만 잘못에도 불같은 분노를 뿜게 한다.결국은 상황이 바뀌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어야 분노는 해결이 된다. 나는 다름을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가? 내가 항상 옳을 수 없든, 타인도 늘 그를 수 없다. 타인의 잘못에 내가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합리화해서는 안된다. 물론 분노의 감정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분노는 어떤 식으로든 건강하게 발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람에게 향하게 되면 또 다른 분노와 분쟁을 낳는다. 분노의 표현은 솔직하게 내 감정을 드러내되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여야 한다.성경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는 말씀이 있다. 사실 돌아보면 분노의 상황은 도처에 깔려 있다. 그러나 거기서 넘어져 다 잃고 상처만 남는 사람이 될지, 분노를 다스리는 깊은 통찰력으로 진정 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지는 나의 선택이다. 오늘 하루, 화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만으로 내 삶이 한층 더 건강해지는 경험을 해보길 권해본다.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2019-03-20 11:19:52

서영완 작곡가

[매일춘추]DCDC의 DCDC

얼마전 러시아의 발레단체가 우리 대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방송에서도 연신 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려 갔다. 많은 시민들은 신선한 느낌으로 그리고 기대감으로 관람했을 것이다. 하지만 초대한 단체에 의해 공연이 얼마나 무성의하게 준비되었고 또 실망스럽게 마무리 되는가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더 값진 보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DCDC는 Daegu City Dance Company의 이니셜을 딴 약자이면서 또한, 지난주 금요일(15일) 있었던 대구시립무용단의 제75회 정기공연 제목이기도 했다.이번 작품의 구상은 김성용 예술감독에 의해 작년 12월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디어는 '대구시립무용단의 모습 그대로를 무대에 올린다'였다. 이는 대구시립무용단 자체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그래서 이 단체를 대구시민들이 사랑하고 아끼고 응원하는 단체로 만들고 싶은 의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공연의 제목이 단체 이름 그대로인 'DCDC'이다. 이 작품은 각 단원들 사이에서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로부터 나오는 긴장감과 유기적 밸런스, 전체적 DCDC의 다양한 분위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면 가장 오래된 단원과 가장 신입단원의 미묘한 긴장을 작품으로 가져온다든지, 아니면 연습실에서 생길 수 있는 미묘한 다툼이 싸움으로 번지는 장면을 과감하게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이번 작품의 특징은 세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대학생 서포터즈 '몸짓's'를 모집, 운영했다는 점이다. 이는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의 SNS의 활용도가 높은 젊은이들과 일반시민을 DCDC와 조금 더 가깝게 호흡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들만의 젊은 아이디어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들의 다양하고 산뜻한 아이디어와 노력들은 수성아트피아 대공연장의 1,2층 매진에 크게 작용하게 된다.두 번째로는 퇴직한 단원들의 귀환이다. 이번 공연의 오프닝을 장식한 그들의 움직임은 DCDC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선배들이 연습실 바닥에 뿌린 땀방울 또한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들 또한 분명히 존재하는 DCDC의 모습이다.세 번째로 DCDC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한 무대에 집약했다는 점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만족시켰다는 점이다. 작품의 제목 그대로 DCDC의 모든 단원들 하나하나의 반짝이는 실력과 개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완성했다. 이는 비단 김성용 예술감독의 역할 뿐만 아니라 단원들 자신들의 열정이 쏟아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DCDC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서영완 작곡가

2019-03-19 11:00:17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매일춘추]석조(石彫)유물에 대한 단상

조선조의 석조유물 문인석(文人石) 한 쌍이 해외로 불법유출된 지 36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다. 문인석이란 바윗돌에 조각한 문신(文臣) 형상의 미술품. 왕이나 왕후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석조물로 세워두는 일종의 능지기이자 수호신의 상징이다. 하지만 우리는 귀중한 문화유산인 문인석은 물론 무인석(武人石)과 망주석(望柱石)도 대수롭잖은 돌조각품으로 여겨왔다.그러나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박물관의 눈길은 달랐다. 최근 동아시아문화재 수장고의 미술품을 점검하던 중 16∼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문인석 한 쌍을 발견했다. 반입과정을 조사한 결과 1983년 한국에 주재하던 독일인 사업가가 서울 인사동 골동품상에서 이 문인석을 매입해 이사용 컨테이너에 숨겨 밀반입한 것을 1987년 박물관에서 구입한 사실을 밝혀냈다.로텐바움박물관은 "남의 나라 귀중한 문화재가 불법유출된 사실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점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반환키로 결정해 한국국립민속박물관이 인수하게된 것이다. 세계 각국의 문화재 불법반출과 양도를 금지한 유네스코협약 정신을 살린 독일 정부와 로텐바움박물관의 모범사례로 알려지고 있다.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은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수집하는데 혈안이 되었으나 석조유물에도 관심이 높았다는 얘기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석조유물은 아직도 전국 곳곳에 흔하게 널려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일본인들은 우리 민속미술품에 유달리 눈독을 들여 정원석으로 사용해 왔다고 한다. 1970년대엔 일반 묘지의 망주석까지 뽑아 일본으로 밀반출하려다 적발된 일도 있었다.일본 열도는 고온다습한 섬나라여서 습기를 빨아들이는 한국의 석조유물이 정원을 가꾸는데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때문에 집을 지켜주는 벽사수복(辟邪守福)의 상징인 데다 정원의 운치를 높여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연유다.도쿄의 일부 특급호텔 정원에는 아직도 조선시대 문인석과 무인석, 석등을 장식용 석물 조각상으로 버젓이 전시하고 있다. 강자의 논리로 남의 나라 역사까지 바꾼 일본 정부가 독일 정부의 문화재 반환 결정을 본받아야 얼어붙은 한·일 관계가 제대로 풀려나갈 것이다.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2019-03-18 11:08:57

천영애 시인

[매일춘추]환경의 공습

물을 사먹게 되었을 때 머지 않아 공기도 사서 쓰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했다. 공기야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 흔하디 흔한게 공기이고, 도대체 공기를 어떻게 사 쓸 것인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공기를 사서 쓰고 있다. 미세먼지가 대기를 강타하면서 공기청정기 없이는 견디기 힘든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실외보다는 공기청정기가 있는 실내를 더 선호하게 되고,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런 현상은 봄에 더 심하니 춥고 지루한 겨울을 견디고 맞이하는 봄치고는 잔인한 봄이다.공기가 부족해서 사서 쓰는 것이 아니라 오염된 공기 때문에 맑은 공기를 사서 쓰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예전에도 황사라고 해서 봄이면 흐린 날들이 지속되곤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처음 미세먼지를 제대로 실감한 날은 서울에 갔을 때였다. 서울에 들어서자 한강변이 흐릿했다.무슨 안개가 오후까지 이렇게 짙은가 싶어서 처음에는 오히려 그 풍경을 즐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그것이 미세먼지라는 것을 알게 되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이 막힐 것 같아 부랴부랴 대구로 돌아왔다. 대구 역시 서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미세먼지의 공습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일이 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그런데 더 엄청난 것은 그 미세먼지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미세먼지라는 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한 국가가 아무리 애쓴들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그러니 국민들이야 속수무책으로 견디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문명의 수준은 올라갔을지 모르나 인간이 근본적으로 기대고 살아야 하는 환경의 질이 떨어지면서 삶의 질도 하락하고 있다. 물을 사먹은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이제 공기까지 사서 쓰는 시대가 되었으니 과연 문명의 발달만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인지 되돌아 봐야 할 시점이 되었다.인간은 자연과 떨어져 살 수가 없다. 자연은 인간이 기대고 살아가야 하는 근원적인 터전과 같은 것이어서 자연이 건강을 잃으면 인간 역시 건강해질 수 없다. 아무리 의학의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도 자연의 공습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이유이기도 하다. 맑은 공기를 위해서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들을 포기해야 할 때가 온 게 아닌가 싶다. 천영애 시인

2019-03-14 11:19:39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매일춘추]공평하지 않은 잣대

우연히 길을 가다 들은 소리이다. "그럼, 애기도 걸어가라고 해. 그래야 공평하지."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동생을 업고 있는 엄마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아마도 자기도 업어달라 떼를 쓰다가 엄마에게 혼이 난 상황인 듯했다.그러고 보니 이 공평(公平)이란 말은 참 불완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참 좋은 의미를 지니는 듯하지만, 그 의미가 너무 강조되다 보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평의 기본 의미는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름'을 뜻하는데 사람의 경우라면 '누구에게나 똑같게'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00m 달리기를 한다면 누구나 똑같이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상당히 합리적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결코 간과(看過)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생김새도 다르고, 각자 처해있는 상항도 그 차이가 있을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20대 청년과 70대 노인을 공평하게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공평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異見)이 없을 것이다.아마도 우리는 공평이 아닌 공정(公正)을 꿈꾸며, 세상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전적 의미를 보더라도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공평한 것에 올바른 것을 더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사람들은 누구 하나도 같을 수가 없다. 누구나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 각자가 처해있는 환경이나 상황들이 다 제각각이기 마련이다. 하물며, 쌍둥이를 보더라도 조금만 면밀히 관찰하면 특성과 개성의 차이점을 금방 구분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김새도 분명 다른 곳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방식으로 사람을 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공정(公正)한 태도일 것이다. 공평(公平)한 세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공정(公正)이 필요한 것이다.문화예술 지원사업에 있어서도 이러한 공정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역별로 서울과 지방의 기준의 그 차이를 인지하고 장르별로도 대중성 있는 장르와 다소 대중성은 떨어지지만 육성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장르의 구분 하여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시장성과 창작의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의 경우와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지역의 경우를 같은 잣대로 평가하고 마찬가지로 계량적 성과를 강조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향유 하는지에만 치중하여 판단하여 공평한 기준에 의한 판단이라 주장하고 그에 따라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불공정(不公正)한 상황이라 할 것이다. 부디 그 다양성을 인지하여 공평하지 않은 잣대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2019-03-14 11:14:35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매일춘추]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

나는 간혹 누군가를 만날 때, 자신의 드러내기 힘든 일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사람들을 보며 존경의 마음을 느낀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자기다움을 찾을 때라는데, 사실 이 자기다움을 찾는 데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더욱이 인생이라는 것이 평온하게만 살 수 없는 것이어서 폭풍을 만나면 피하고 보던가, 부정하거나 남 탓하고 싶어 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 순간에 직면하여 그 고통까지도 자신의 몫임을 받아들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사실 우리는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기준을 세워놓고 타인의 말에 좌지우지하며 살아 피곤할 때가 많다. 사람은 자기다울 때 빛이 난다.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모방하고 비슷해지려고 시도하는 순간 우리는 타고난 광채를 상실한다. 그리고 그 삶을 좇기를 희망하는 순간부터 현실과의 괴리와 모순에 부딪히며 좌절하고 불안해하며, 그 삶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진다. 사람들은 남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소문을 만들어내지만, 그 속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진실이고, SNS속의 그럴듯한 삶이 좋아보일지 몰라도, 사진 한 장만으로 그들의 삶을 알 수가 없다.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가장 큰 체력소모와 위축은 자신의 결점을 감추는 데서 온다고 한다. 타인에게 나의 결점을 감추느라 거짓말이 꼬리를 물게 되고 피곤한 인생이 된다. 차라리 과감히 드러냄으로 에너지 낭비를 절약하고, 그 에너지로 내가 가진 장점을 통해 더 큰 매력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내가 결점을 드러냈다고 나를 비난하고 무시하는 사람이라면, 언제가 됐든지 나를 떠날 사람이었다 생각하고 미련 둘 필요가 없다. 차라리 일찍 헤어져 내 인생이 더 잘될 것일지도 모른다.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사람은 앞으로의 나의 삶을 자신 있게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행복한 미래가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주어진 인생의 고해와 희노애락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너그러움과 유연성이 있고, 자신의 짐을 담담히 지고 나가는 용기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사람만의 아우라를 뿜어내게 한다. 나는 내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가 아니라, 남에겐 없을 수도 있지만 '나한테만 주어진 것이 있다'라고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아무리 훈수를 두어도,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나의 행복의 방향성과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나에게 있다. 내 삶은 내 몫이다.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2019-03-13 12:58:18

서영완 작곡가

[매일춘추]'백색소음'들으러 숲속으로?

위키피디아에서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이라는 신조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율 감각 쾌락(혹은 쾌감)반응은 주로 청각을 중심으로 하는 인지적 자극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 따위의 감각적 경험이다. 흔히 심리 안정과 집중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백색소음 등의 새로운 활용으로 볼 수도 있다.'유튜브를 검색해 보면 자주 귓속말하듯 속삭이는 소리와 함께 비닐과 같은 사물을 비벼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마이크 가깝게 녹음해서 오랜 시간 들려주는 영상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이러한 소리가 심리적 안정감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게 들렸다. 그리고 이런 소리를 '백색소음(White Noise)'으로 소개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우려는 백색소음을 즐기러 숲속에 가자는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절정에 다다랐다.먼저 '백색소음'의 정확한 의미는 아주 낮은 소리로부터 높은 소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영역에 걸쳐 똑같은 볼륨의 에너지를 동시에 방출시킬 때 들리는 소리를 말한다. 이는 헤어스프레이를 뿌릴 때 나는 소리와 흡사하다. 또한, 폭포수 소리와 매우 비슷한 성질의 소리이기에 이 백색소음을 폭포수영상에 덧입히더라도 사람들은 눈치채기 어렵다. 물론 핑크노이즈라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와야 더욱 자세한 설명이 되겠지만 그러면 이야기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먼저 백색소음의 특징은 불규칙한 소리의 집합체라는 점이다. 마치 삼원색의 빛을 합하면 하얀색이 되듯이 모든 소리를 매우 복잡하고 랜덤하게 합쳐버리면 백색소음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 백색소음에 익숙하게 되면 이 백색소음보다 작은 생활잡음, 예를 들어 냉장고 소리, 층간소음, 모기소리와 같은 원하지 않는 잡음들을 가릴 수 있게 된다. 이는 멜로디와 코드, 그리고 리듬을 가진 음악을 듣는 것과는 달리 우리에게 어떠한 감성이나 이미지를 만들게 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원하지 않는 소리를 다른 소리로 가리는 것을 마스킹효과(masking Effect)라고 하는데 백색소음이 가장 좋은 도구로 이 소리에 익숙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다양한 불필요한 소음들로부터의 해방을 경험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해방을 통해 우리는 심리적인 안정감과 집중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즉 백색소음은 ASMR에 포함되지만 ASMR이 백색소음이라고 소개 하는 것은 부적절 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ASMR은 자연잡음까지 포함하고 있는 상위개념이지만 백색소음은 인공잡음(전기기계로 만든 잡음)에 속한다. 즉 숲속에는 백색잡음이 없다. 아주 복잡한 자연의 소리가 우리를 편안하게 할 뿐이다. 서영완 작곡가

2019-03-12 11:24:19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매일춘추]  한글 전용시대에 외래어 남용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과거사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으나 항간에는 어이없게 뜻도 모르는 일본 용어가 남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뿌리박힌 잠재의식이 대물린 탓인가? 조선총독부의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이른바 '나이센 잇타이(內鮮一體)' 정책으로 우리 문화를 짓밟고 민족의 고유한 성명과 언어까지 말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지난 3·1절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한 인사가 주최 측의 행사 진행이 친일잔재 청산에 소홀했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도분이 나고 야마가 돌 것 같았다"고 일본 용어를 혼용하곤 눈도 한 번 깜짝하지 않았다. '도분'이란 일본 용어는 화가 난다는 뜻이고 '야마'는 머리를 뜻하는 표현이라고 한다.어쩌면 '야마'라는 용어는 국민을 계도하는 언론사 기자들 사이에도 깊은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많이 순화되었다곤 하나 걸핏하면 신문이나 방송의 머릿기사를 두고 '야마'라든가 기사 제목을 '미다시'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특종이나 단독보도를 가리켜 '독고다네'가 아닌 '독고다이'라고 서슴없이 내뱉는 언론인도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 항공모함을 향해 돌진하는 제로센 전투기의 자살특공대 '가미카제 독고다이'를 오해한 게 아닌지?국경없는 글로벌시대에 굳이 외래어를 배척하는 건 아니지만 정치권에서도 흔히 일본어 뿐 아니라 외래어를 즐겨 차용한다. 듣기 좋은 우리말보다 사뭇 프레임(틀)이니 어젠다(과제), 레토릭(논리), 스케일(규모), 모멘텀(탄력) 등 영어 문자를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외래어를 한 자라도 내뱉으면 자신의 품위를 높여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대기업이나 금융권에서도 보기 좋고 쓰기 편리한 우리글을 외면하고 굳이 영어 이니셜(머리글자)로 사명(社名)을 바꾸고 로고(조립문자)를 고집한다. 어디 그뿐인가. 도심지 상가의 상호까지도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국적 불명의 외래어 간판이 즐비하게 눈길을 어지럽히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도 국가원수의 공식 기념사에 걸맞지 않은 '빨갱이'라는 용어를 일제의 잔재로 언급하며 청산대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어원은 20세기 초 미국의 급진주의자들이 외친 공산주의의 상징 '레즈(REDS)'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부디 반일보다 극일을 위한 '우리 말'을 듣고 싶다.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2019-03-11 11: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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