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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매진복

만병통치약 같은 홍보 방법은 없다. 공연을 할 때 필수적인 세 가지 과정은 기획, 연출, 홍보로 나눌 수 있다. 현재 거의 예술가 대다수는 이 과정을 혼자서 담당하고 있다. 각 과정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으면 좋겠지만, 여건상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이 중 한 가지 일을 대신 해주길 바란다면 99%가 홍보를 이야기할 것이다.홍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거칠게 표현하면 표를 팔아내는 것이다. 표 팔기에 좋은 공연은 모두가 다 아는 스타가 공연하는 것이다. 작년 대구에서 가장 빨리 표를 판 공연은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진행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공연이었다. 예매 5분도 안 돼서 1천 석 모두 매진되었다.다음은 스타와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공연이다. 내가 매니지먼트하는 월드뮤직 앙상블 비아트리오 연주팀이 이제껏 가장 비싸면서도 표를 많이 판 공연이 2013년 아양아트센터에서 10센치와 컬래버레이션을 했던 공연이다.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스타 마케팅을 활용한 것이다.스타 없이 공연을 홍보하는 방법은 기능성 공연을 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비아트리오 연주팀의 사례를 들자면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비아트리오 단독콘서트'를 한다고 홍보를 하면 그 홍보의 대상은 비아트리오를 이전에 알고 있던 사람들뿐이다.하지만 '비아트리오의 가족콘서트'라고 하면 비아트리오를 아는 사람들과 가족콘서트에 관심 있는 사람 모두 홍보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비아트리오는 '비아트리오의 가족콘서트' 외에도 '비아트리오의 데이트콘서트' '비아트리오의 동화 음악이 되다' 등의 제목으로 특정 대상에게 필요한 공연을 지속적으로 기획, 제작했다.그 결과는 놀라웠다.'동화 음악이 되다' 라는 공연은 내용의 특성상 대구경북의 국공립 학교 선생님들의 연수 때마다 모두 공연하게 됐고 그 덕에 대구경북의 국공립 학교 선생님들 모두가 비아트리오를 알게 되는 홍보 효과를 보았다. 실제로 대구경북의 학교에서 비아트리오의 섭외가 끊이지 않고 있다."관객을 웃고 울게 할 자신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 관객을 공연장에 오게 할 자신이 없다."공연을 만드는 예술가 대다수의 마음이고 현실이다. 하지만, 그 부담감을 이겨내고 관객을 오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위의 기능성 공연도 해결책을 찾으려다가 발견한 것이다. 모든 공연에 맞는 만병통치약 같은 홍보 방법은 없다. 각자의 홍보 방식과 티켓 판매 방식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만드는 수밖에는.

2018-02-22 00:05:01

[매일춘추] 군자불기

매년 정초부터 2월까지는 면접 기간이다. 대학 입학부터 여러 기관 채용까지 다양한 종류의 면접이 있다. 자신을 소개하고 평가받는 과정은 새로운 집단의 일원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다. 이맘때면 몇 해 전 대학원 면접 볼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조별로 집단 면접을 하는 형식이라 자연히 다른 사람의 답변과정도 지켜보게 된다. 그중 내 앞의 여학생이 면접관들의 질문에 어찌나 크고 당찬 목소리로 대답하던지, 그 뒤 차례인 나를 주눅 들게 할 정도였다. 당황해서 제대로 답변도 하지 못한 채 면접을 마쳤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접심사 경험이 있는 중견기업 임원인 한 선배의 말에 의하면 지원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음걸이와 표정만 봐도 어느 정도 당락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매년 비슷한 수준의 지원자들을 수없이 보기 때문에 이력서 자체에는 큰 차이점을 찾을 수 없고 당당한 걸음걸이와 또렷한 목소리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오히려 부족한 이력서를 채워주고 지원자를 돋보이게 한단다.여러 후배들에게 면접의 기술을 전수한 자칭 '면접의 달인'이라는 나의 친구는 면접의 제1순위로 자신감을 꼽는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자신을 완벽하게 믿을 때만 제대로 발휘되는 기술이라며 자기 확신을 강조한다. 수십 번 연습을 해도 실수나 떨림은 있을 수 있고, 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믿음이 부족한 결과다.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기에 자신감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면접론이다.돌이켜 보면, 처음으로 강단에 서서 대중 강의를 할 때 이상하리만치 많이 떨렸다. 처음이라는 부담감에 많은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만족스러운 강의를 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다. 또, 열심히 듣고 있는 청중 100여 명의 눈빛에 압도되어 그들을 휘어잡을 자신감도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된다.어떻게 하면 실력 이상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방편 중 하나는 스스로 어떤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조금 부족하더라도 미래에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더 당당할 수 있다. 그래서 논어에 나오는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람은 만들어가는 대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으니 자신의 한계에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을 '흙수저'라고 규정짓고 능력과 성장 가능성마저 제한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들도 반복된 실패로 스스로 믿음이 부족해진 나머지 자신의 그릇을 한정지은 것이 아닐까.나 또한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고 포기하거나 자신감을 잃어버린 일은 없었는지 반성하며, 지금도 나의 큰 그릇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다.

2018-02-21 00:05:00

[매일춘추] 외로움과 국가

얼마 전 영국은 외로움을 사회적 질병으로 보고 '외로움담당 장관' 직을 신설했다."행정은 정의될 수 없고 다만 기술할 뿐이다"라는 격언이 요즘처럼 와 닿을 때가 없다.노동당 의원이 발의한 것을 보수당이 추진한 것을 보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보수도 진보도 없는 모양이다.OECD 국가 중 자살률 최상위권인 우리나라도 많은 이들이 외로움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고독사하기도 한다. 특히, 1인 가구 비율이 약 27%로 고독사는 앞으로 더 늘어날 우려가 있다. 또, 스스로 혼자이기를 원하는 문화도 팽배하다. 그래서 항간에 이런 말도 떠돈다. "함께 있으면 괴롭고, 혼자 있으면 외롭다."늘 타인의 평판을 의식하고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심리는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내면의 고립감을 심화시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마크 트웨인은 "최악의 외로움은 자기 자신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그래서인지 고령 국가로 유명한 일본에서는 '외로움 비즈니스'가 번성하고 있다.한 슈퍼마켓 체인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배달서비스뿐 아니라 전구를 갈아주거나 잔디를 깎아주는 등의 일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또한, 포옹과 대화만 가능한 애인대행 서비스, 가족대행 서비스, 안부전화 걸어주기 등의 사업이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결국 외로움이나 고독사의 문제는 전통적인 공동체 해체 이후 등장한 것이므로, 지금 추진되는 도시재생사업은 경제나 정치논리에 기댄 대단위 토목공사 위주의 재개발이 아니라 회복과 재생의 관점에서 해체된 지역의 커뮤니티를 복구하고 골목상권 활성화 등 교류와 소통이 가능한 방식으로 조성되었으면 좋겠다.외로움에 대한 글을 쓰니 문득 가수 남진의 노래 '빈잔'의 가사가 생각난다."외로운 사람끼리 아~ 만나서 그렇게 또 정이 들고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 그대여 나머지 설움은 나의 빈 잔에 채워주오."옆사람의 빈 잔을 행복으로 채워주자. 빈 잔을 행복으로 채워줄 사람이 없다면 국가가 채워줘야 한다. 아랍에미리트에는 '행복을 담당하는 장관'이 있다고 한다.국가란 무엇인가? 수많은 학자들이 정의했지만 그중 가장 공감되는 것이 하나 있다."개인은 국가와 두 가지 관계만을 맺고 있을 뿐이다. 보호를 받거나 고통을 받는 관계."국가여! 외로운 자의 빈 잔을 채워주고 건배사를 이렇게 한번 외쳐보자."국가는 국민을 포기하지 않는다."

2018-02-20 00:05:00

[매일춘추] 2월에 부는 바람

겨울의 마지막 달인 2월은 봄을 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남녘으로부터 올라오는 성급한 봄소식을 전해주는 달이기도 하다. 2월에 부는 바람은 아무리 세차도 애써 숨을 고르며 훈훈하다고 느낀다. 동네 공원의 거무스레한 나무 표피도 조금씩 맑아지고, 수액의 흐름도 활기차게 움직이는 것을 엿듣는다. 껴안은 나무가 살아있음을 알 때, 한고비를 넘긴 사람처럼 한겨울을 넘어온 나무가 대견해 보인다. 움츠리고만 있던 몸을 곧게 세우는 2월이다.겨울이라 갇혀 지내다가 갑갑한 마음에 바람을 쐬러 울산 대왕암 공원으로 달려갔다. 울산은 20여 년을 산 곳이라 낯설지 않아 한 번씩 찾는 곳이다. 한파가 곧 닥칠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어 그 사이에 다녀오리라 했다. 오후 3시에 출발해서인지 도착한 그곳은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해안가인데도 폭풍 전야의 고요처럼 바람 한 점 없는 보드랍고 따뜻한 밤이 열리고 있었다. 해송이 드리워진 해안 공원길은 흑백사진을 넣어 둔 한 장면의 액자 같았다. 등대는 먼 곳으로 불빛을 쏘고 있었고,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와 해초들의 상큼한 향내를 머금은 바다 냄새가 가슴속 깊이 스며 들어왔다. 둥근 달과 고요한 해안이 더욱 분위기를 자아내어 순간적으로 울컥했다.대왕암까지는 가로등이 설치되어 밤에도 거닐 수 있었다. 보통 날에는 바람이 세차 머리카락이 동서남북으로 날렸는데, 이날만은 바람조차 잠들어 버린 천국의 해안가에 와 있는 듯했다. 이 공원을 수없이 찾아왔지만 이런 날은 처음이었다. 가까운 풍광들은 보이나 먼 곳은 어둠이 덮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전에 봤던 멋진 풍경들과 파도 소리를 들으며 기억으로 어렴풋이 그려냈다. 선명하진 못하나 마음으로 그려낸 풍경화였다. 대왕암 전설에서 역사적 충렬을 본받고, 울기 등대를 바라보고는 길 잃은 배만이 아닌 마음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에게도 길잡이가 되어 주길 바랐다.고요한 해안가를 거닐며 파도 소리를 들었고, 잠든 바람 속에서 이미 와버린 봄을 만끽하고 온 나였다. 그날, 방어진항 전통시장이 파하기 전에 바삐 서둘러 서둘러 생미역과 해물들을 사들고 돌아왔다. 생미역은 우리집 빨랫줄에 줄줄이 늘어놓고, 2월의 바람으로 말렸다. 며칠 전, 내 생일상에 올려놓았던 미역국은 방어진 미역으로 끓인 것이다. 방어진은 바람이 많고 파도도 세차, 그 덕에 미역이 굵고 힘이 좋아 맛이 있기로 소문나 있다.대왕암을 다녀온 다음 날부터 한파는 몰아쳤다. 찬바람이 내 살갗을 스쳤지만 겨울바람 같지 않았다. 짧은 여정이었으나 숨은 봄을 가슴에 담고 와서인지, 겨울은 점점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2월의 바람 앞에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것은 곧 봄이 온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리라.

2018-02-19 00:05:00

[매일춘추] 칭찬합시다

'e나라도움'이 말썽이다. 문화계에 도움이 되고자 만들었을 텐데 한국 문화계의 적폐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다. 작년 e나라도움 사용이 어려워 지원을 받고도 사업을 포기한 사례가 이전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구문화재단 출범 후 몇 번의 시스템 변화가 있었지만 잘 적응했다. 근데 e나라도움은 이전 시스템과의 연속성이 없었다. 인터넷의 발전은 사용자 위주로 바뀌고 있는데 e나라도움은 반대로 관리자 위주로 바뀌었다. 너무 어려워 처음으로 지원받은 것을 포기할까 생각했다. 어렵게 받은 지원을 포기하면 다음 해에 지원 자격이 박탈된다는 걸 아는데도 말이다.거기다 더 황당한 건 e나라도움은 전화 문의가 안 됐다. 너무 많은 전화 문의로 모든 전화가 통화 중이라는 알림만 듣고 있어야 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면서 팝업창이 동시에 몇 개가 떴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하고 화가 났다. 도저히 혼자 해결할 수가 없어 대구문화재단에 전화를 했다. 대구문화재단에 직접 방문해서 함께 문제점을 해결해 보자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담당 직원과 약속 시간을 잡고 필요한 서류 등을 전달받았다.다음날 서류를 꼼꼼히 챙겨 대구문화재단을 방문했다. 막상 갔더니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었다.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내 차례가 되어 컴퓨터 앞에 직원과 함께 앉아 차근히 입력했다. 그런데 숙달된 직원이 하는데도 프로그램이 다운되어 몇 번이나 지우고 깔고 지우고 깔고를 반복했다. 직원도 도움받을 것이 있어 e나라도움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역시 e나라도움과는 통화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람 속을 몇 번 뒤집어 놓고 나서 결국 해결했다. 그리 길지 않은 일처리 시간에도 옆의 직원은 전화로 계속 상담을 했다. 바로 옆이라 통화를 듣게 되었는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e나라도움에 대한 불만과 하소연을 하는 내용이 더 많았다. 어제의 나처럼 말이다.이 일을 다 처리하기까지 모두 세 번 대구문화재단을 방문했다. 그때마다 전문적인 도움을 친절함 속에 받았다. e나라도움이 문제를 만들었다면 그 문제 해결을 대구문화재단 직원들이 하고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e나라도움. 문화, 예술계 전체가 보이콧하고 심지어 서명운동까지 하며 반대하는데도 2018년도에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아마 나는 올해도 대구문화재단에 자주 방문할 것 같다.

2018-02-15 00:05:00

[매일춘추] 소통의 약효

먼 타지에서 공부 중인 내 친구 K가 있다. 그는 이미 외국 생활을 한 지 10여 년이 된 터라, 고등학교 졸업하고 거의 보지 못했던 친구이다. 큰 키와 큰 덩치에 백인들보다 창백해 보일 때도 있는 피부를 가진 K와는 고교 시절부터 자주 대화하며 서로의 미래를 그렸다. 서로 힘들 때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려 노력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며 꿈을 키워갔다. 그러다 얼마 전, 그가 있는 '패서디나'(Pasadena)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K는 바쁜 와중에 나의 숙소까지 찾아와서 자신이 자주 가는 펍(Pup)으로 나를 데려갔다. 우리는 시원한 맥주에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앞에 두고 밀린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미 성공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진행 중이었고,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자 친구도 있었다. 무엇보다 주위에서 인정받는 과학도이자 연구자였기에 늘 믿음직한 친구였다. 몇 년 만에 얼굴을 맞대고 식사를 하면서 뭔지 모르게 달라진 친구의 표정이 읽혔다.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은 '무정동증'(Anhedonia)이 의심될 정도로 감정표현이 무뎌 보였고, 학창시절 그렇게 잘 웃던 웃음은 온데간데없었다. 타국생활이 마치 인내의 연속이었던 것처럼 마냥 지쳐 보이기만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음 날 K의 학교 근처 다운타운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몇 년 만에 자신을 본 나의 솔직한 느낌을 전하며 끝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혹시나 힘든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다독이기도 했다. 그제야 K도 봇물 터진 듯 한참을 쉴 새 없이 떠들더니, 무언가 응어리졌던 막힌 감정들이 뻥 뚫렸다고 시원해한다. 씩 웃어 보이는 친구의 모습에 새삼 소통이 주는 효과를 절감하면서 안도했다. 나의 진료실에도 원활한 소통 부재로 생긴 정신적 육체적 불편함을 호소하는 분들이 종종 찾아온다. 배우자와 이별을 하거나 자식들과의 단절로 우울증이 찾아온 노인 환자들,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평생 가족들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들 등. 다양한 환자들을 마주할 때면 K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소통의 약효가 나타나길 기대하며 감정을 풀어낼 수 있게 도와주거나 공감하며 들어주기만 해도,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곤 한다. 그리고 기분이 나아졌다고 편안해하는 환자들을 보면 나 자신도 가슴 한구석이 뚫린 듯 시원해진다.최근 K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었다. 유명 저널에 자신의 논문을 게재하고, 많은 연구기관으로부터 채용 제의를 받는 중이라고 한다. 수많은 경쟁과 난관을 버텨내고 이겨낸 그의 인내가 결실을 맺는 것 같아 대견하고 기뻤다. 이제 곧 샌프란시스코로 연구실을 옮길 예정인 친구가 또다시 소통의 부재로 힘들어지지 않게 수시로 내 목소리를 전해볼까 한다.

2018-02-14 00:05:00

[매일춘추] 어머니의 이름을 부를 때

탈무드는 "신은 도처에 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머니를 보냈다"고 기술하고 있다.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의 말대로 모세를 낳은 이도, 마호메트를 낳은 이도, 예수를 낳은 이도, 모두 어머니이다.하지만 어머니도 때로는 슬픔 속에서 모든 걸 내던지고 싶은 약한 여자이기에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머니는 금방 눈물을 훔쳐내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식을 바라본다. 그리고 스스로 맹세한다. 자식을 위해 다 주고 다 비우고 가겠노라고.'어머니'라는 이름은 고통을 이겨내는 끈질긴 의지와 생명력이라는 영감을 주기에 영원한 예술의 주제이자 소재이기도 하다.소설가 한승원은 강인하게 세상을 산 한 여인, 자기의 어머니를 위하여 소설을 쓴다고 고백하였으며 소설가 이청준도 소설을 쓰게 해주는 힘과 인연이 어머니에게서 비롯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그리고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는 자식들을 위해 음악을 포기한 어머니야말로 지금의 조수미를 있게 만들었다며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았었다.대중가요에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노래가 많다.'사모곡'의 작사가 이덕상은 "자나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 전 빌고 빌어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라고 그의 애타는 마음을 표현하였다.'칠갑산'의 작사가 조운파도 텃밭 한가운데 어머니가 쭈그려 앉아 풀을 매고 계신 모습을 보고 곡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노래가 된 것이다.'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는 나훈아의 '홍시' 가사처럼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늘 생각나는 엄마에 대한 감성이 예술이 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어머니'라는 이름은 예술뿐만 아니라 방송 콘텐츠에서도 흥행 소재인 듯하다.작년 SBS 연예대상에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는 어머니들이 대상을 받았는데 노총각인 스타 아들들의 철부지 같은 일상과 늘 자식 걱정인 나이 든 엄마의 육아 일기라는 포맷이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자식들이 환갑에 가까워도 아기로 보인다는 말은 '사실 아닌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나는 가장 슬픈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코제트에게 친어머니의 이름을 알려주는 장면이 늘 생각난다."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인, 그 이름을 부를 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라. 네 어머니의 이름은 판틴이다. 네 행복은 네 어머니의 불행에 대한 보상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배려였다."세상의 모든 불효자여, 어머니의 이름을 부를 때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2018-02-13 00:05:00

[매일춘추] 오메 쑥덕 길

나의 외가는 경남 의령군 의령 읍내의 한 모퉁이에 자리한 작은 집이었다. 대구를 벗어나 멀리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그런 외가로 가는 길을 퍽이나 기다렸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 식구들은 차멀미가 심했으나 외갓집 가는 것만은 무척 좋아하였다. 외가는 마음의 고향처럼 아늑하기만 했다. 완행버스였을 것이다. 가다가 쉬는 일도 많았고, 산길을 돌고 돌며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어느 집 마당 앞에서 손님을 내리고 태워주던 일도 있었으니까. 그리운 외가는 엄마의 고향이지만 우리들의 고향이기도 했던 것이다.외할머니는 봄이 되면 의령 들판에서 뜯은 쑥으로 떡을 하여 우리 집으로 갖고 오셨다. 우리보다 차멀미가 더 심하여 차를 아예 못 타시고 대구까지 걸어서 오셨다. 아마도 사오일은 걸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보따리의 쑥떡이 우리 집에 도착 될 즈음엔 가지고 온 반이 없어졌다. 대구 딸네 집까지 걸어오시다가 할머니 식사로 한 줄을 드실 때도 있고, 툇마루나 대청마루, 방 한 켠에서 하룻밤을 자면 인사로 한 줄을 또 그렇게 덜어 내어 주셨다. 그 먼 길을 걸어오시는 동안, 어깨에 두른 끈은 떡 무게로 끊어지지나 않았는지. 외할머니의 어깨는 얼마나 아팠을지. 고무신을 신고서 지팡이를 내딛으며 걸어오셨을 외할머니의 모습이 새삼 아련하게 떠오른다. 비가 오면 더 늦게 대구에 도착 되었고, 봄이라도 기온이 올라가면 떡이 쉬어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져온 귀한 쑥떡이었다. 몇 번은 조금 쉰내가 나는 쑥떡도 먹은 적이 있었다.세월은 너무나 많이 흘러갔고, 외할머니와 엄마는 이미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난 해마다 사월이면 쑥떡을 해 먹는다. 외할머니가 가져다준 그 쑥떡의 맛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쑥떡을 먹으며 엄마와 외할머니를 생각해 보곤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오매"라고 불렀다. 의령 사투리인지 모르지만 엄마가 불러준 "오매"는 분명 외할머니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어쩌면 희미해진 사랑을 다시금 재확인해 보려는 시간의 의미로 쑥떡을 콩고물에 치대어 먹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외할머니께서 쑥떡을 메고 오신 그 먼 길을 언제 한 번 찾아서 따라 걸어가 보고 싶어진다. 쑥떡을 해서 등에 메고 딸네 집에 찾아가는 그 마음을 따라 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외할머니의 깊고 진한 사랑을 느껴 보리라. 그 먼 날의 고마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길가에 아직 피고 지는 들꽃에라도 고마운 인사를 해 주어야지. 달려가던 바람이 내 곁에 앉으면 그때를 물어보리라. 시간은 스쳐 지나가고 되돌아오는 것은 내 가슴에 새겨진 추억만이 출렁이게 할 뿐이다. 쑥떡을 메고 가는 외할머니의 구부러진 등이 힘겨우면서도 행복하게 그려진다. 입가에 맴돌던 웃음이 그 길 위에 오롯이 남아 들꽃으로 피어나 있을 것만 같다.

2018-02-12 00:05:00

[매일춘추] 평생 반대만 하며 살아 온 니체

독일이 낳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성 중심의 철학과 결별을 선언했다. 말보다는 몸을, 몸보다는 정신을 강조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로 가득 찬 철학책이 아닌 시적 언어와 일상어의 나열로 시민들이 구독 가능한 책들을 출간해 철학의 난해함을 타파하는 데 힘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서의 근대철학을 느끼고 상상하는 방식으로 전환시키는 데 일조했다.어떻게 보면 니체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니체의 세계관에 추파를 던졌고, 적당한 수사로 눈을 홀리는 이방인으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그런 그가 스물네 살에 대학교수로 임용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동시에 크리스천 집안에서 자란 아이가 신은 없다고 외친 사건은 더욱 부조리하기도 하다. 왜 그는 평생을 반대하는 삶을 살았을까?나는 이 문제의 해답을 그가 창조한 인간, 차라투스트라에서 발견한다. 신의 죽음을 외치고 또 하나의 신으로 명명한 인간이 그러하다. 니체의 말을 바라보자."차라투스트라의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내게 물어보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는 도덕이라는 오류를 최초로 고안해낸 인간이다. 그렇기에 그는 도덕의 오류를 최초로 인지한 인간임이 분명하다. 성실성을 통한 도덕의 자기 극복, 이것이 차라투스트라의 이름의 의미다."그가 바라본 인간상은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게 의존하는 객체가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를 희랍인처럼 용기를 갖고 세계와 마주할 줄 아는 인간을 의미했다. 그것은 곧 세상의 중심에서 자기 존재를 선언하는 주체정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질서와 질서가 교차하는 현재의 굴레에서 실존의 방향을 자아에서 출발할 때에 비로소 완전한 무언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신념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우리는 지금 도덕이라는 미명으로 자기 합리화에 물들어 있을 수도 있다. 1984를 쓴 조지 오웰의 메시지도 이것과 일치한다. 국가가 만든 시스템은 정의와 도덕을 부르짖지만 개인의 정신은 말살당하고 자유는 굴종당하고 마는 체제. 오웰도 인간의 조건은 자유에 있다고 말한다. 시대의 인간으로 남기 위해 제시한 니체와 오웰의 대안은 부조리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아포리즘으로 남아 있다.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사회는 리더를 원한다. 대중을 더 나은 질서로 살아가게 만드는 누군가를 갈구한다. 늘 기대하며 새로운 인간을 찾지만, 가혹하게도 현실은 늘 실망과 우려를 낳아 희망의 줄기를 사그라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실에 당당히 맞서줄 이를 기다리고 있다. 이왕이면 전장의 최전선에 서 줄 이를 원한다. 만약, 니체가 21세기에 살고 있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주장할까? 아마도 한결같을 것 같다. "과거의 정신을 재현하는 이가 아니라 현재의 시대정신을 갖는 인간이 필요하다."나 또한 광기 가득한 시인이자 지식인의 외침을 온몸으로 새겨듣길 원한다. 보다 인간다운 인간이 도착할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어도 말이다.

2018-02-09 00:05:01

[매일춘추] 대구는 문화 불모지가 아니다

문화기획 관련 대표로 있으면 종종 언론매체와 인터뷰할 일이 있다. 많은 질문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대구라는 문화 불모지에서 활동 중인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는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질문 속에 답을 강요한다. 대구는 문화의 불모지가 사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기대와는 다른 대답을 하게 된다. 대구가 문화의 불모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는 문화의 생산과 소비 자립도가 서울을 제외한 어떤 도시보다도 높다.먼저 생산 자립도에 대해 말하자면 짧은 시간에 대구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두 개의 문화관광 상품을 만들어 냈다. 근대골목과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다. 이 두 곳 모두 지역의 예술가들과 정책가들이 함께 아이디어를 내 김광석의 스토리를 만들고 과감히 실행한 결과물들이다. 지역의 유물, 건축물에만 기대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회의하고 토의해서 만들어낸 문화기획 관광상품인 것이다.또, 대구는 페스티벌의 도시이다. 음악 관련 페스티벌만 추려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대구국제재즈페스티벌, 청춘힙합페스티벌, 대구포크페스티벌 등이 있다. 이뿐 아니라 공연장 수도 많다. 먼저 한국 유일의 오페라 전용극장이 대구에 있다. 이 페스티벌과 공연장들은 많은 공연 콘텐츠를 필요로 한다. 외부에서 사오는 것도 많지만 필수적으로 지역의 공연 콘텐츠를 필요로 한다. 이 부분에서 지역의 예술가들은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공급하고 있다.이렇게 대구가 생산 자립도가 높은 첫 번째 근거는 대구와 인근(경산'칠곡)에 예술 관련 학과가 많고, 졸업한 인재들이 대구의 예술계에 유입되어서라고 볼 수 있다.다음은 소비 자립도, 즉 티켓을 사는 관객의 힘에 대해 살펴보자. 한 예로 2009년 오케스트라와 합창 음반을 준비하면서 대구시립교향악단의 공연을 그해 매번 관람한 적이 있었다. 티켓의 가격은 5천원 정도였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했었는데, 관객은 반 이상 든 적이 거의 없었고 표를 사고도 오지 않는 '노쇼'(No Show)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대구시립교향악단의 공연 티켓은 3만원 정도로 올랐으며, 티켓 오픈을 하자마자 매진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지난해 15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은 11회를 맞이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티켓 판매량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대학 예술학과 학생들의 개인 레슨과 예술동호회 활동도 활발하다. 악기를 배우면서 연주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공연의 즐거움을 맛본 사람이 주축이 된 예술동호회가 예술문화 소비의 단단한 지층을 만들어주고 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2018년 대구는 분명 문화 부흥 도시다.

2018-02-08 00:05:04

[매일춘추] 당신의 취미는 뭔가요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여러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젊은 남녀가 모이는 파티, 의료정책가들의 모임, 와인동호회 등 분야도 다양했다. 이렇게 새로운 모임에 참여할 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는데 항상 취미를 묻는 칸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에게 어떤 취미가 있는지, 그 취미는 왜 생겼는지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나의 취미가 왜 궁금한지.초등학생 시절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의 취미 등을 조사해 교실 뒤 게시판에 붙여뒀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만화책, 컴퓨터 게임 등 좋아하는 것이 많았으나 주로 '책 읽기'라고 적어내곤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야구를 꽤 열정적으로 했지만, 지나친 승부욕을 발휘하다가 어깨관절 오목테두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 이후로는 야구뿐 아니라 승부를 가리는 취미는 멀리하게 됐다. 한동안은 미술작품 감상에 빠져 주말마다 전시관을 찾아다녔다. 특히 네덜란드 화가 얀 반 하위쉼(Jan van Huysum)의 작품에 심취해, 런던과 로스앤젤레스의 미술관까지 그의 작품을 찾아다니고 관련 책자를 탐독하는 열정을 뿜었지만 지금은 조금 시들해졌다.이러한 단기적 관심사가 취미로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단순히 흥미만으로는 취미가 되지 않는가보다. 취미를 뜻하는 영어단어 'Hobby'의 어원을 보면, 아이들이 말을 타는 흉내를 내며 놀기 위해 만들어진 양철이나 나무 모양의 말을 'Hobby horse'라고 지칭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 취미는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니 취미를 '놀이처럼 할 수 있고 즐거워야 하는 것' 정도로 정의해도 되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즐거움' 또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뇌과학적으로 인간이 어떤 일에 재미를 느껴 그 행위를 반복하려면, 아주 작은 변화라도 성장이 느껴질 때라고 한다. 반복적인 단순작업이라도 그 안에서 성장이 있을 때, 희열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모아서 그것이 차곡차곡 쌓일 때, 한 장 한 장 넘기다 어느새 한 권 두 권 쌓일 때, 매일 연습을 해서 점점 기록이 좋아질 때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결국 취미로 고착된다는 것이다.취미는 그 사람이 어떤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지 알게 해 주는 또 다른 정체성이기 때문에 자기소개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인 것이다. 최근에 나의 취미를 묻는 공란에 '글쓰기'라고 채웠다. 기록하는 것이 좋아 써 두었던 소소한 글들이 한 편 두 편 쌓이는 것을 보면서 재미를 느꼈나 보다. 글쓰기를 취미라고 공표해 버린 것은 누군가에게 말하고 기록으로 명시해두어 더욱 강렬한 내적 욕구가 작용하길 바라서일까. 간신히 찾은 새로운 취미가 계속 진행형이 되길 기대해본다.

2018-02-07 00:05:03

[매일춘추] 강한 문화, 순혈이 아닌 혼종

옛말에 좋은 며느리를 얻으려면 큰 산을 두 번 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정된 유전자군 내에서 교배를 반복하면 생존에 불리한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알았던 것이다.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지배체제의 확립과 권력세습을 위해 폐쇄적 혼인관계를 맺은 왕족이 단명한 경우가 많다. 문화도 마찬가지인데 조선 말 붕당은 패거리 문화를, 잘못된 연고주의는 기득권을 위한 순혈주의를 낳았다. 인간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그 사회의 전통과 가치관의 모문화(母文化)라고 볼 때, 문화적 순혈주의는 어쩌면 종족적 순혈성보다 더 집요하고 위험할 수도 있다.자신의 편견을 재확인하는 뉴스와 의견만을 들으려 하는 오늘날의 현실은 자칫 '문화적 근친상간'을 초래하고 근본적으로 나와 다른 것은 적이라고 인식하는 '사회적 질병'이 될 수 있다. 호환이 되는 문화, 다양성을 용인하는 문화는 그 사회의 진화와 경쟁에 유리하다.예를 들면, 시리아 출신 아버지를 둔 스티브 잡스, 러시아 출신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오바마가 공존하는 미국이나 신라, 발해, 티베트 등 이민족의 인재를 관료로 포용하여 문화 강대국이 된 당나라를 들 수 있다.동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호랑이, 사자 등 고양이과(科) 동물은 교배로 1대 잡종은 가능하나 2대 잡종은 불가능하다. 반면, 개, 코요테, 자칼 등 개과(科) 동물은 세대를 거쳐 번식이 가능하다. 그 결과 개과(科) 동물은 약 10억 마리로 늘어났으며, 야생에서 살던 개는 인간의 보호 아래 애완견으로, 더 나아가 인간의 동반자인 반려견으로 그 신분이 격상됐다.문화도 그래야 한다.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가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통해 문화적 자산이 되어 권력의 옆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강한 문화'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는 외부적으로 세계화, 탈민족주의 등의 '글로벌 담론'과 내부적으로는 새터민, 조선족, 다문화 가정 등의 실체적 공동체 속에 살고 있다.지금까지 인류사회가 도구의 발전에 따른 획일적인 분업의 문화였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협력과 연결, 모방과 창조가 동시에 일어나는 융복합의 혼종문화가 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다양성과 호환성이 인정되는 혼종문화는 내일 제출해야 할 오늘의 숙제인 것이다. 동종교배와 순혈의 '약한 문화'가 아닌 이종교배와 혼종의 '강한 문화'를 만들어 보자."힘을 동반하지 않은 문화는 내일이라도 당장 사멸하는 문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윈스턴 처칠의 의견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2018-02-06 00:05:00

[매일춘추] 자석 같은 사랑

우리는 대개 그와 다름을 이해하지 않고, 다름으로 인해 다투거나 같지 않아 불편해한다. 성격이 달라서 살 수 없다는 부부도 있고, 가끔은 다르기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날, 자석을 만지다가 문득 자석의 성질을 알고, 서로 다른 현상이 더욱 감미로운 사랑이 될 것이란 생각이 번갯불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히려 같은 극끼리는 밀어내고 다른 극끼리 붙는 자석을 보며 달라서 싫다는 말이 어불성설처럼 들렸던 것이다. 이 세상엔 나와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없고, 나의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사람도 없다. 나 또한 남의 모든 것을 다 받아주지 못한다. 사람들이 자석처럼 서로 다름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다면 어떨까.선거 때가 되면 상대를 끌어내리는데 총력전을 벌이는 것을 많이 봤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일등 아닌 이등에게 당선의 영광을 준다면 서로를 인정하는 좋은 말들을 해주고, 상대가 나보다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선거문화가 될 것 같다. 민주주의의 장점인 선거는 한 표라도 더 받아내면 승리의 월계관을 쓴다. 대표가 되면 반대자들을 껴안으려 하나 그들은 절대로 당겨 오지 않았고, 반대자들은 대표를 찾아가 다가가려 하면 잘 품어 주질 않았다. 언제나 한편에만 있어 주어야 하는 의리라는 것은 잘하든 못하든 일방통행으로 가고 마는 참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결국 민주주의의 한 단점도 되어 버린 선거를 보고 추대로 점수를 매겨 대표를 정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영악한 무리에 또 적잖은 잡음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여 혼자 답을 내어본다고 시간만 보내고 말았다.이 극과 저 극이 달라도 끌어주고 당겨주는 자석 같은 사랑이 몹시 그리운 세상이다. 그 옛날에는 중매로 얼굴도 모르고 하룻밤에 부부가 된 사람들도 자식 낳고 살아내지 않았던가. 다 좋아서 산 것은 아니었을 것이며 그 속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과 방법을 찾았던 것이리라. 맞지 않으면 맞추려 했고 멀리 가려 하면 당기면서 애써 한울타리를 보듬어낸 집안은 화목하였다. 불만이 가득하여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해 도망쳐 나온 사람의 끝은 집안이 복잡 미묘하게 돌아갔다. 작금의 시대에 옛 방식을 들먹이는 것이 자못 당혹스러울 수 있겠으나 현재에서 타당성을 찾아가는 방법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본다.그와 다르다면 그와 다름을 이해하기 위한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연구하는 동안 어느새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된 것에 놀라워할 것이다. 지금의 내 선상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살이가 되었으면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많이 품어주는 세상은 온기가 가득할 것이다. 자석은 쇠붙이에 불과했고 차가운 감촉이었지만 그 안에 뜨거운 사랑이 숨어 있어 잡은 손이 후끈거렸다.

2018-02-05 00:05:00

[매일춘추] 길고양이가 준 메시지

하루를 보내다 보면 간혹 무기력할 때가 있습니다. 삶에 의욕이 없어지고, 나 자신을 향한 믿음이 점점 사라지고는 합니다. 그럼에도 일상은 일상대로 바쁘게 보냅니다. 연극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날은 당혹감을 받곤 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이상은 언제 있었던 것인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는지 잊어버리곤 합니다. 마치, '불안'이라는 침묵이 온몸을 감싸는 상태라 할까요. 그럴 때면 저는 산책을 나가고는 합니다. 그다지 이로움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대충 옷을 걸쳐 입고 거리를 누빕니다. 길가에서 들리는 소리들, 느리게 흐르는 건반 소리, 대중음악 소리, 자동차 배기통에서 나는 소리 따위가 한눈을 팔게 해줍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나의 연극실험실 '노아'로 돌아오면서 잠깐 생각에 잠겨 봅니다. '나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나는 무얼 향해 살아가는 걸까'. 아무리 생각을 쥐어짜내도 항상 답은 별 소득 없이 막을 내립니다. 우리는 왜 이리도 자주 열 수 없는 문 앞에 서게 될까요. 만약 신이 있다면, 그들은 내게 어떤 답을 주기 위해서 이런 상황을 주는 걸까요.저는 길고양이를 보면 약간 힌트를 얻습니다. 길고양이들은 목적도 이유도 없이 생존본능만 가진 채 거리를 배회합니다. 그들에게 욕심이라 한다면 당장 오늘을 살기 위한 약간의 먹거리나 보금자리 정도죠. 고양이는 문을 찾거나 기다리지 않습니다. 오늘을 보내면, 내일을 살고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생각보다 별것 아닌 것에 천착해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 때로는 특별한 목적 없이 보내는 것이 이로울 수 있다."제게 그들은 새로운 거울 역할을 해줬습니다. 가끔은 길고양이처럼 살아보자. 생각이 많아지면 되레 죄의식이 생기고, 불안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멀어져 그들의 살 냄새 또한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으니까. 저는 인생에서 외롭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고 보니 외로움은 나의 주변에 있었습니다. 프랑스 작가 장 콕토의 말처럼, '외로움을 가진 인간은 무서운 아이들'이 됩니다. 주위에 저와 시간을 공유할 이가 없다면 우리는 금방이라도 고꾸라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삶이라는 것 자체는 유한하지만 삶의 의미는 무한하기에 저는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나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흘러서 지금의 세계를 물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을 찾고, 권력에 저항하고, 약자에 연민을 드리우며, 위선을 뿌리쳐 진실의 문을 향해 발을 뻗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며 살고 싶습니다. 나 자신을 믿으며 나와 함께하는 분을 믿으세요. 결코, 오늘의 무기력이 내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2018-02-02 00:05:01

[매일춘추]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해주기

난 스물일곱에 회사를 만들었다. 문화공연을 기획하는 회사였다. 1년을 하다가 음반회사도 만들었다.1년간 공연기획사를 하면서 다른 연주팀 전국투어를 기획하게 됐는데 흥행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공연팀은 공연이 망하면 그걸로 끝이지만, 연주팀은 어쨌든 홍보와 공연을 했으니 이득을 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나도 연주팀을 만들고, 연주팀의 음반을 내기 위해 음반사도 만들었다. 1년 뒤 첫 음반이 나왔다. 좋은 성과를 냈지만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성공이었다. 이후 음반시장이 음원시장으로 급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때에 나는 급변하는 시장을 읽지 못했고, 계속적으로 여러 연주팀을 섭외해서 새로운 음반을 만들었다. 그렇게 10장 이상의 음반을 만들고 나서야, 음반시장의 어두운 현실을 알게 됐다.회사는 급속도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는 걸 깨닫고 정리의 수순을 밟았다. 그중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이 진행된 음반들에 대해 계속 진행이냐 포기냐의 기준을 정해야 하는 문제였다. 회사의 어려움으로 이미 지칠 때로 지쳤기 때문에 그 기준을 성가시냐 성가시지 않으냐를 기준으로 삼아버렸다.다시 말해, 연주자에게 당신의 음반을 회사 사정상 더 이상 진행 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순순히 받아들이는 연주자의 음반은 그대로 끝내고,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끝까지 만들어 달라고 하는 연주자는 음반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자의적인 이 판단기준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이후 결정한 대로 일이 진행되었고, 회사는 오랫동안 회복기를 가져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중 고마운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장기간 애쓰고 노력한 음반 진행을 나의 말에 순순히 포기해준 연주자들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자기보다는 회사와 나를 먼저 생각해 준 것이었다.'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해준다'는 말은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더 소홀하게 된다. 오히려 일 못하고 나에게 무례하고 말 많은 사람에게 신경이 더 쓰이고, 잘해주게 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지만 지금 현실에서 이 속담은 틀린 말처럼 들린다. 공적'사적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공과 사라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에 따른 공정한 상벌의 원칙이 관계 안에서의 신뢰를 만든다.인간관계에 대한 격언 중에 '편한 사람 편하게 대해라. 쉽게 대하지 말고'라는 말이 있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가. "잘해줘라."

2018-02-01 00:05:00

[매일춘추] 나만의 맛집

2년 전 의사가 아닌 요리사라는 직함을 달고 주말마다 서울 청담동의 M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 적이 있다. 일이 끝나면 요리의 감각을 기른다는 핑계로 서울시내 유명하다는 식당을 부지런히 다녔다. 한 끼로는 만만치 않은 가격들이 책정된 식당이 대부분이라 동료 요리사들에게 꼭 가볼 만한 곳을 추천받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방문한 유명식당의 음식이 항상 맛있다거나 특별한 것을 먹는다는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최근 몇 년 사이에 맛있는 음식이나 유명한 요리사 그리고 소문난 식당 등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관련 미디어의 정보가 넘쳐흐르고, 그 정보들은 맛있는 식당이라는 뜻의 '맛집'으로 포장돼 우리에게 자주 소개된다. 음식의 가장 손쉬운 평가가 그 음식이 잘 팔리고 있는 식당을 방문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음식도 하나의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다른 예술작품과 확연히 다른 요소들이 있다. 그중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감상과 동시에 소멸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 요리사인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는 음식에 대해 '파괴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음식은 먹으면 없어진다. 10여 초 입안에 맛과 향이 돌고 나면, 저작운동에 의해 마구 뒤섞이고 연하운동으로 식도와 들문(Cardia)을 지나 위액에 의해 스멀스멀 녹아내린다. 이것이 과연 예술이었는지 알 수도 없게 된다.또 다른 특징은 보관과 복제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다른 예술인 음악과 미술은 현물 또는 저장매체로 소장 가능하여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 다시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음식은 상해버리기에 다른 예술처럼 오랫동안 보관할 수도 없고, 재료, 환경, 시현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에 비슷하게 재현만 할 수 있을 뿐, 복제한다는 개념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 너무나 맛있었던 식당도 다시 방문하면 실망할 수 있고, 그다음 방문에서 극도의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 음식이다.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맛집'이라고 일컬어지며 소개되는 정보들에 대한 회의감이 없지 않다. 알려진 '맛집'들은 그날 그 음식을 먹은 누군가의 감동일 뿐, 내가 똑같이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나만의 맛집'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이런 음식 철학 때문에 언젠가부터 굳이 '맛집'에 얽매여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추천하는 이 식당이 누군가에게 큰 실망감을 줄 수도 있고, 우연히 방문하여 먹게 된 다른 식당이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음식이다. 그저 자기 입맛에 맞춰 마음 가는 곳에서 순간순간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 음식이라는 예술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2018-01-31 00:05:01

[매일춘추] 프레임을 깨는 '모난 돌'

작은 어항에서는 최대 8㎝, 연못에서는 최대 15㎝, 강물에 방류하면 최대 120㎝까지 자라는 '코이'라는 비단잉어가 있다. 결국 '코이'는 환경에 따라 피라미가 될 수도 있고, 대어가 되기도 한다. '코이'를 보면 고려시대 노비인 '만적'의 말이 생각난다."왕후장상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다."이 말은 원래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진승'이 한 말이다. 만적이 비록 노비였지만 중국 사서를 섭렵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적이 신분제에 불만을 품고 능력 사회를 갈구했음을 알 수 있다.요즘 '프레임에 갇혔다'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생각의 틀' 또는 '사고의 범주'라고 정의되는 프레임은 우리를 낡은 질서와 고정관념에 얽매이게 하거나 편견이나 오류 등에 빠지게 한다.프레임은 때로는 잘못된 유산과 역사의 이름으로 계승된다. 조선 후기 우암 송시열의 '사문난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송시열은 "주자 이후로 하나의 이치도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며 여기에 반하는 학설을 모두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이에 반발한 윤휴는 "어찌 천하의 이치를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르겠는가?"라고 하며 그 시대의 프레임을 깨고자 했으나 결국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윤휴의 죽음으로 주자에 대한 교조주의가 득세하게 되어 그 후 조선은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너를 죽여야만 하는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프레임의 유산은 조선 말 세도정치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로 흘러 내려왔다.국어사전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를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로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과연 윤휴는 '모난 돌'이었다.젊은 시절 송시열은 윤휴와 사흘간 토론한 후 "30년간 나의 독서가 참으로 가소롭다"고 했을 정도로 윤휴를 극찬하였지만 결국 그를 죽였다.니체는 "젊은이를 추락시키는 확실한 방법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대신,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이를 존경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못난 사회적 유전자는 다음 세대를 프레임에 갇히게 할 수도 있다.'사마천의 사기'에서 두 번이나 강조한 말이 있다."나라가 망하려면 어진 사람은 숨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난신들이 귀한 몸이 된다."영혼 없이 순종하는 '팔로어'보다 혁신의 '모난 돌'을 팔로잉해 보는 것은 어떨까.

2018-01-30 00:05:00

[매일춘추] 흔한 얼굴

'첫인상이 좋으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는 말도 있다. '첫인상은 좀 그랬지만 계속 사귀어 보니 좋더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에게 엄청 공을 들인 사람일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첫인상은 수고로움 없이 자신을 인정받기에 좋은 기회이기에 혹자는 첫인상에 무척 신경을 쓰곤 한다.흔하디 흔한 얼굴을 가진 난 어디를 가도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 '옛 친구를 닮았다'고 하거나, '첫사랑과 닮았다'고 할 때가 많았다. 한 번은 은행 볼일을 보는데 한 여인이 '합천의 제 친구'라며 붙잡고 늘어졌다. 목덜미의 점이며 눈의 쌍꺼풀이 짝눈인 것도 맞다고 했다. 가무잡잡한 피부까지 말하며 웃는 모습도 같다고 "너 맞지?"를 연신 외치며 수십 분을 우겨댔다. 같이 온 그녀의 남편에게도 확인을 요청하기까지 이르렀으나, 분명 난 그녀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음이 변한 친구라서 자신을 모른다고 시치미 떼는 거라며, 서운한 표정까지 지으며 은행 문을 나갔다.사실 난 쌍꺼풀 없는 눈이었다. 큰집 언니가 책 살 돈을 용돈으로 다 써버려, 혼자 집으로 가면 많이 혼날 것을 알고 나에게 같이 가주지 않겠느냐고 부탁을 했다. 흔쾌히 따라나섰고 곧 큰집 대문을 들어섰다. 그 자리에서 쌍꺼풀 하나를 얻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시던 큰어머니가 언니를 보자 담배를 던지셨다. 내 왼쪽 눈에 담뱃불이 떨어졌고 그 자리는 붉게 데여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가 아물면서 자연스럽게 쌍꺼풀이 되었던 것이다. 큰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회초리에 스쳐 그런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나만 알고 지켜온 비밀이 됐다.불에 데인 상처는 아직도 살아 내 눈을 예쁘게 해주고 있다. 나머지 한 눈은 눈꺼풀이 얇아서인지 한 번씩 유리 테이프를 붙이면 쌍꺼풀이 되다가 어느 날 진짜 쌍꺼풀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두 딸은 쌍꺼풀이 있는 눈이라 모두 엄마 눈 닮았다고 말해 준다.때로는 둥글고 넓적한 얼굴이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오랜만에 만나니 얼굴이 더 넓어졌네. 파운데이션이 많이 들어가겠어." 갸름하지 못한 얼굴이라 들려오는 슬픈 소리도 참아내야 했던 얼굴이다. 그렇지만 '인상이 좋다'는 말도 듣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닮았고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그것은 오랜 세월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낯이 익은 얼굴은 아니었을까. 서구화로 인한 뾰족한 얼굴이 대세라서 둥근 얼굴을 한 사람은 기가 죽는 세상이 되어 버렸지만 내 둥근 얼굴을 고쳐볼 생각은 없다.흔한 얼굴이라 개성은 없지만 내 얼굴은 나를 나타내는 데 충분하다. 친근한 모습이야말로 첫인상 못지않은 좋은 효과를 거둘 수도 있으리라. 둥글어도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흔해도 내가 좋아하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줬다.

2018-01-29 00:05:00

안민열

[매일춘추] 자신의 결핍과 만나는 배우

내가 소속된 백치들의 연극배우들과 작업을 할 때 유념하는 질문이 있다. "저 친구가 숨기고 싶은 것을 드러내자." 연기할 인물을 해석하고, 인물이 존재하는 세계를 발견하고, 대사를 외워서 극장이라는 빈 공간에서 행위함으로써 또 하나의 현실을 건설하는 것이 연극이라 본다면 나는 이 질문을 가지며 작업에 임한다.연극을 선택한 이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결핍이 있어서 이곳을 찾는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타인과 만나고 싶은 의지, 환상의 힘을 빌려 현실을 잊으려는 충동 등이 주를 이룬다. 이런 점들을 외로워서 찾는다고 생각한다. 막연히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싶어서 연극을 선택하진 않는다. 즉,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다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서 발을 딛는다. 그런 그들의 의식'무의식적 자아를 자신이 발견해,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날 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가령 그런 자극을 받을 때 배우들은 굉장히 불편해한다. '네가 뭘 안다고 나를 판단하냐' '나를 그런 식으로 정의하지 마라' '나는 내가 잘 안다'는 식의 대답으로 응수하곤 한다. 그래서 연습을 진행한다는 건, 배우와 연출이 논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말도 틀리지 않다. 타인이 자신에게 내린 평가를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연극의 세계는 그런 행위의 반복이다. 연출은 늘 배우의 시간을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배우는 연출의 눈을 의식하며 행위를 판단받게 된다. 그러한 교차 속에서 개인과 개인은 현재를 진단한다. 이런 노동은 왜 필요한 것일까. 극장이라는 빈 공간이 객관적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함이다. 보다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말 한마디와 제스처를 관객에게 제시하는 것이 연극의 존재 이유라면 이러한 절차를 준수할 필요가 있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하나의 공간으로 발화되는 것은 중간지대에서 만날 때에 가능하다. 그 지점은 배우가 이끌고, 그다음 관객이 따라 함께 흘러간다. 극 중 환상의 껍질이 벗겨져 실재하는 인간에게 도달한다. 실제(Reality)는 더 이상 실제가 아니게 되고, 피부로 자각하는 지금, 이 순간이 된다.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연극을 선택한 인간, 즉 배우를 꿈꾸는 이들은 자신의 결핍을 발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현실이 기가 차서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배우들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나의 연극을 바라보았다. 벤치에 앉아 잠깐 생각하고 바로 자리를 일어났다. 내겐 그 질문이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런 상황일수록 배우와 만나고, 관객을 기다리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답을 내렸다. 배우의 결핍은 곧 나의 결핍이다. 세상이 비극으로 향할수록 예술가가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갈 것이다.

2018-01-26 00:05:00

[매일춘추] 정치인의 문화적 감수성

최근 SNS 친구 신청에 정치인들이 많다. 시대가 많이 변해, 선거의 계절이 왔다는 것을 이젠 이렇게도 알 수 있다. 지난 선거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경기도에 있는 한 도서관 개관식 공연에 초대를 받았다. 오후 2시 개막식 후에 바로 30분 동안 공연을 하기로 했다. 악기 세팅과 음향 체크, 리허설을 위해 낮 12시 전에 도착하기로 하고, 오전 8시에 멤버들을 모아 대구에서 경기도로 출발했다.일찍 서둘렀던 덕에 여유 있게 도착해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식이 진행되고, 관련 단체장들의 인사말들이 있었다. 그런데 예정에 없는 지역의 몇몇 정치인들이 인사말을 하길 원했고, 도서관 측은 거절하지 못하고 마이크를 내줬다. 이 인사말들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대의상을 입고 악기를 든 채, 무대 뒤에서 계속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 담당자는 우리에게 미안해하며 공연시간을 줄여주길 원했다. 행사 진행팀의 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상황에 맞게 공연시간을 조절하겠다'고 말하고, 인사말이 끝나는 대로 무대에 오르길 기다리고 있었다.인사말은 끝없이 이어졌다. 결국엔 공연을 포함한 전체 행사시간을 넘겨버렸고, 많은 손님들이 자리를 떠났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인사말이 끝나고 공연을 하려고 하는데, 인사말을 했던 분들이 밖으로 나가면서 그분들을 의전하느라 무대 앞이 소란스러웠다. 행사 담당자가 행사시간이 지났지만 공연을 하지 않으면 사례를 받지 못하니, '멘트 없이 1곡만 하고 내려와 달라'고 했다. 30분의 공연이 단 1곡으로 줄어들었고, 그렇게 1곡을 하고 내려오려는데 관객들이 앙코르를 외쳤다. 1곡만 하기로 했지만 관객들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어 앙코르를 하고 내려왔다.반전은 또 있었다. 행사 담당자가 "왜 약속과 달리 앙코르를 한 거냐?"고 역정을 냈다. 우리도 그 말을 듣자 참았던 화가 터져버렸다. 사실은 서로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 정치인들의 인사말에 지쳐버렸기 때문에 화풀이 대상을 찾았는지 모른다.위와 같은 일은 선거철이 아니어도 예술인들은 종종 겪는 일이다. 이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은 정치인의 문화적 감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문화적 감수성이 발휘되어 사람들의 갈채를 받은 일화도 있다. 지난해 11월 1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 복지박람회' 개막식 때 특별 연설을 위해 단상에 올라온 서울시장이 정성을 기울여 준비한 연설을 추운 날씨에 떠는 시민을 위해 포기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적 감수성이 뭔지 모르겠는가? 그럼 어릴 적 추운 겨울 운동장 조회시간에 길게 설교하던 교장선생님을 떠올려 보자.

2018-01-25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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