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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매일춘추] 현대인의 가면

현대인들은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오죽하면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라는 심리적 용어가 쓰이고 있을까.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스트레스 증상으로 일본의 나쓰메 마코토로 인해 널리 알려졌다. 그렇듯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혹은 인간관계에서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가면의 역사는 원시시대부터 시작되어, 동·서양을 불문하고 나타나기 시작됐다. 인류의 가면은 동굴에서 살던 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가는데, 주로 제의(하늘이나 자연에 드리는 제사)와 관련이 있었다. 가면이 연극에서 사용되어진 시기는 그리스 시대로부터 현대까지 내려온다. 우리나라의 여러 제의에도 가면이 사용되었고, 이집트의 귀족들은 미라에 가면을 씌우기도 하였으며 그리스와 같은 고대 문명에서도 가면이 등장한다. 현재에는 미국,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의 원주민들이 있는 곳에서도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알게 해주는 역사적 자료로도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가면의 의미는 단순한 치장의 도구가 아닌 그 사회의 종교를 포함한 사회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 존재한다. 현대에 '페르소나'라고 일컫는 말은 흔히 비유적으로 '가면'이라는 말로 통용되는데, 사실은 '인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말의 어원은 고대왕국 에트루리아 지방의 죽은 자에게 씌우는 가면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대부분의 가면은 성격과 지위 그리고 인격을 나타내는데, 가면을 이용한 공연예술 중에는 이탈리아의 코메디아 델아르테(Commedia dell'arte)와 우리나라의 가산 오광대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두 공연 양식의 공통점은 가면 자체가 극중 인물의 운명을 결정지었으며, 배우가 표현하는 감정의 핵심이었다. 실제로 나는 코메디아 델아르테의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 적이 있었다. 6·25 참전용사가 자신의 일화를 이야기는하는 것이었는데, 즉흥적으로 5분만에 만들어냈다. 가면의 모양을 분석하고 써보니 막힘없이 대사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면 때문에 자신을 숨길 수 있어 편하기도 했지만, 당시를 회상하면 가면이 주는 묘한 두려움도 느꼈다. 현대인들도 이중, 삼중, 다중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서 다른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가면의 이면 속에 감춰진 진실과 본질이 탈로날까봐, 두려움도 느낀다. 적당한 선에서의 선한 가면은 우리 삶에 윤활유 역할을 하겠지만, 위선을 포장한 악을 탈은 본인 뿐 아니라 주변까지 피폐하게 만든다.

2018-08-08 11:49:16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합창' 이후 섬뜩한 9번의 저주

연말이 되면, 의례 연주되는 것이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다. 관현악 오케스트라 4악장에 대규모 합창이 더해지며, 풍성한 화음으로 공연장은 물론 듣는 이의 마음까지 가득 채우며 '환의의 송가'로 한 해의 끝을 장식하곤 한다. 베토벤은 이 교향곡에 '9번'이라는 번호만을 주었지만, 교향곡에 합창이 포함되었다는 것이 당대에는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나중에 '합창'이라는 부제도 얻었다. 초연 당시 베토벤은 콘서트마스터였던 움라우프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지휘했다. 연주 후 객석이 깨질 듯한 박수를 받았다. 이미 청력을 잃어 박수소리를 듣지 못했던 베토벤은 알토 솔리스트가 관중의 환호를 알려준 후에야, 비로소 관객 쪽으로 돌아서 답례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지금까지도 인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런 걸작에 섬뜩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니, 이는 바로 교향곡 9번의 저주다. 자신보다 더 위대한 교향곡이 나올까 질투라도 했던 베토벤의 저주였을까. 베토벤이 교향곡 9번 '합창'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사망한 이후로, 후대 작곡가들은 9번을 넘어서는 교향곡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슈베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이 9번 '그레이트', 브루크너의 교향곡 번호는 0번부터 시작하지만 미완성 교향곡 9번을 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드보르자크의 유명한 교향곡 '신세계' 역시 9번이 마지막 작품이다. 그리고 말러는 9번 교향곡의 저주를 스스로 두려워해, 9번째 교향곡을 작곡하고는 번호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이름을 붙여 죽음을 피해가고자 했다. 하지만 이후 10번째로 작곡한 곡에 9번의 타이틀을 남겼는데, 9번의 저주를 증명이라도 하듯 10번째 교향곡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이 믿거나 말거나 한 저주를 토대로 실제로 행해진 한 조사에 따르면, 19세기 9곡 이상의 교향곡을 남긴 작곡가는 33명, 이중 9번째를 쓰고 사망한 사람은 18명이나 됐다. 딱 50%에 해당되는 사망률이다. 교향곡 작곡가로서 명성을 남긴 작곡가들은 모두 명단에 올라, 저주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의학기술이 저조했던 19세기, 몸을 사리지 않고 교향곡 작곡에 투혼하던 작곡가들이 9번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 무시무시한 저주는 20세기에 들어서야 끝을 맺는다. 유명한 교향곡 작곡가로서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극복한 유일의 인물로 여겨지는 쇼스타코비치는 총 15곡의 교향곡을 남겼다. 저주가 사라진 21세기는 이름하여 교향곡 다작의 시대. 2005년에 사망한 영국의 로완 테일러는 생전 265곡의 교향곡을 남겼다. 산타클로스라는 별명을 가진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레이프 세게르스탐은 무려 300개가 넘는 교향곡 넘버를 썼으며, 현재도 진행중이다.

2018-08-07 11:54:16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 당신의 역지사지(易地思之)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권력을 추구하는 자와 가치를 추구하는 자. 고슴도치처럼 까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대충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 얼리어답터의 이면에는 디지털 디톡스(해독)의 필요성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마음의 속도도 다르다. 불도저 같은 상대방이 부담스러워서 호감이 있음에도 지레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단지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를 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한 이유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듯이, 사람은 유기체적으로 변한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람과 완벽한 결과물로부터 자기만족을 얻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합의를 해야하는 상황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보고서를 완성해야 한다면, 입찰에 응해야 하는데 마감기한이 정해져 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만, 계속 늦추다 보면 말짱 '꽝'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양 극단은 조금씩 중도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을 테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했던가. 한 회사에서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성격테스트를 했는데, 전원이 '성향 없음'으로 나와 당황했다는 웃픈 이야기가 있다. 중간관리자는 상사의 지시도 따라야 하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불만도 조율해야 하는 위치다 보니, 자신의 의견을 가지는 것이 더 피곤하다. 차라리 위에서 시키는대로 하는 성향없는 상태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색일 지도 모른다. 중세시대에 '지구가 둥글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말을 부정한 것처럼, 우리는 한정된 경험 속에서 살고 있다. 당신이 아무리 많은 경험을 했더라도, 그 생각과 가치관은 당신의 경험을 통해서만 정립된 것이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고 했다. 그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굶주린 민중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냐'고 반문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심정을 일변 이해할 것도 같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처지가 변하면서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된 경험이 한번 쯤은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상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직접 겪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다. 하나의 일을 설명하기까지 서두가 너무 길어서, 그렇게 노력을 들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기에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그것이 팍팍하고 이기적인 세상에 작은 배려가 될 수 있다면.

2018-08-06 11:02:31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기획팀장

[매일춘추] 예술에 더 큰 힘을 싣자

"더 큰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사회 전 영역에서 예술가적 상상력이 커지고 있다. 공장의 연기 한 줄 내지 않고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고, 바이로이트나 잘츠부르크 같은 축제는 티켓 값에 상관없이 몇년 전에 공연예약이 끝나버릴 만큼 세계적 인기 문화상품이 되어 있다. 피카소의 그림 한 점이 2천억원 가까이에 팔렸고, 조선시대의 진귀한 청화백자 하나가 홍콩 소더비에서 경매가 164억원에 팔리고 있다. 디자인만 해도 자동차에서부터 고급 의류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같은 나라가 한 해에 전 세계로부터 거둬들이는 디자인 로열티가 얼마일지를 생각해보면 예술의 고부가가치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해마다 수많은 예술인력이 배출되지만, 우리 사회는 그 예술적 자원들의 장래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예술은 여전히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그 무엇일 뿐이다. 대학에서 예술의 처지는 예산이나 인력배분에서 실용학문 분야에 그 우선순위를 내주고 있다. 시대가 바뀐 만큼, 대구 문화예술인들의 의식전환이 절실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인력을 길러, 국제 무대에 진출시키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반도체 수출도 중요하지만 오자와 세이지를 세계적인 지휘자로 키워내고, 파리에 갤러리 '요미우리'를 진출시킴으로써 일본이 얻게 된 국가적 차원의 문화 이미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 이미지로 일본은 전 세계에 문화선진국의 위상을 떨치게 됐다. 청년 예술가를 키워내는 대학 안에서 예술진흥의 새 장이 이뤄져야 한다. 1960~70년대에 공학 분야에 힘을 실어줬듯이, 21세기에는 예술계 대학에 인력 및 예산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산업화(경제적)의 차원에서만 예술진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정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선진국마다 앞다퉈 미술관을 짓고 음악당을 세우는 것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무려 5천여 개의 크고 작은 미술관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청소년기와 그 때의 예술체험이 얼마나 인격형성에 중요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예술교육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붓는 것이다. 성인들 역시 평생 문화예술과 함께 살아야 인생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사진을 생각해 보라. 그가 켠 바이올린 선율이 과학적 사고에 영감의 깊이를 더해 주었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이제 대구경북은 예술에 더 큰 힘을 실어줘야 한다.

2018-08-02 11:33:31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 '미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권리

인간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여성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예로부터 미색이 뛰어난 여인은 세상 사람들로 부터 많은 관심과 유혹을 받아왔다. 나라마다 미인을 뽑는 대회도 많다. 미인대회는 신들의 세계에도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세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이 쓰여진 황금사과를 놓고 다투었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겼다. 황금사과의 주인이 되기 위해 헤라는 세계의 주권을, 아테네는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고 파리스에게 제안했고, 파리스는 아름다움을 사랑한 나머지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줬다. 파리스 역시 미인을 사랑하는 어쩔 수 없는 로맨티스트였던 탓이었을까(ㅋㅋㅋ). 1930년 월간 삼천리가 주최한 대한민국 미인대회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지식미인 선발대회가 열리면서, 1957년 한국일보사 주관으로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렸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향토 특산물 미인 선발대회, 직장인 미인대회, 대학생 미인대회, 미스월드 선발대회 등 다양한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중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여전히 우리나라 대표 미녀를 뽑는 대회로 인정받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미의 기준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변했다. 조선시대에는 '3백 3흑 3홍'이라 하여 하얗고 고운피부,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 불그스름한 볼과 입술이 미인의 기준이었다. 이후 1960년대와 70년에는 서양문화를 동경하는 시대인 만큼 도톰한 입술, 맑은 피부, 또렷한 눈망울 같은 서구적인 외모가 미인의 기준이었다. 1980년대에는 아치형의 눈썹과 볼록한 이마, 오똑한 콧날을 연상케 하는 도시형 얼굴이 미인으로 평가받았고, 1990년대에는 하얀 피부와 갸름한 턱 선과 같은 청순미가 미인의 기준이 됐다. 최근에는 또렷한 이목구비와 건강미가 느껴지는 피부와 서구적인 몸매가 미인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최근 온라인에서 '백 년 동안의 미녀변천사'라는 제목으로 백 년 동안 미녀가 10년 단위로 변화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 게재되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와 함께 장면마다 눈썹과 입술 모양 등을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로 변화시켜 시대가 요구했던 미인의 모습으로 바뀌는 장면에서도 이제 꾸미는 아름다움의 중요해졌음을 알 수 있다. 미의 기준은 달라지긴 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들의 욕심만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쫓고 있고, 얼굴과 몸매, 개성 있는 옷차림 등은 실제 현실에서 비싼 가치로 측정되고 있다.

2018-08-02 11:06:44

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매일춘추] 연극의 3요소와 2요소

흔히들 알고 있는 연극의 3요소는 무대, 관객, 배우다. 그렇다면 연극의 2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배우와 관객이다. 그만큼 배우와 관객은 연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며, 관객의 수와 호응에 따라서 연극의 흥행과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특히 요즘은 관객이 참여하는 형태의 공연들이 많아지면서, 배우와 관객의 소통이 필수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배우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희곡 안의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필자는 배우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르다. '배우'(俳優)란 한자를 뜯어보면, '배'는 사람 인(人) 변에 아닐 비(非) 자가 합쳐졌다. '우'는 사람 인(人) 변에 근심 우(憂) 자가 더해졌다. 가만히 풀어보면 배우는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을 걱정한다' 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동서양의 많은 연극들이 세상을 조롱하고 잘못된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배우는 그리스 시대의 '테스피스'(Thespis)부터 현대까지 관객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대에 와서 더욱 많은 양식의 연기를 소화하는 기술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을 무시하며 감정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배우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 기술적인 부분이 진정성을 떨어뜨린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왜 배우와 관객이 연극의 2요소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관객은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참여형 공연들이 만들어지면서 관객들이 간접적인 배우 역할도 한다. 더불어 현대 연극에서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 흥행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프로시니엄 무대가 나타나고 D.디드로가 주장한 제4의 벽이 만들어지면서 관객들은 참여보다는 관람이 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관객들은 어떠하였을까. 셰익스피어시대의 연극들만 보더라도 아니 우리나라의 오광대 놀이만 보더라도 관객들은 공연에 참여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야유를 보내거나 신나게 웃기도 하고, 토마토를 던지고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그만큼 연극에 대한 개입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은 일방적인 정보들을 받아들이며 수동적인 존재가 되었다. 배우와 관객은 서로에게 에너지를 준다. 배우들은 제4의 벽을 깨부수고 나와야 하고, 관객들은 제4의 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당당하게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현대 연극이 더욱 재미있고, 역동적인 공연예술로 거듭날 수 있다.

2018-08-01 11:48:21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당연한 오늘의 재발견

출출한 저녁엔 치킨 한마리를 주문, 불과 30분이면 문 앞까지 배달된다. 서울-대구도 KTX로 1시간 50분이면 도착하고, 연착되는 일은 거의 없다. 컨디션이 나빠지면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가 진료를 받고, 보험 혜택도 누린다. 속도가 생명인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인데, 해외에선 사치에 가까운 일이 될 수 있다. 10여년 전 독일에서의 유학생활 시절을 떠올려본다. 처음 홈스테이를 했던 곳은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집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할머니는 커다란 부엉이를 키우고 있었다. 이 부엉이는 가끔 좁은 통로를 퍼덕이며 날개짓을 하기도 했지만, 주로 할머니 어깨 위에 앉아 무서운 눈을 부릅 뜨고 나를 쳐다보며 겁주는 것을 즐겼다. 사실 부엉이의 눈도 무서웠지만, 할머니의 절약정신이 날 더 힘들게 했다. 한 여름에도 세탁기는 일주일에 한번만 허락되고,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Nein! Nein!"(영어로 No! No!)만 연거푸 외쳐댔다. 세탁기는 할머니 옷과도 같이 돌려지는데, 그나마 원색에 가까운 옷들은 손빨래를 해야만 했다. 이 할머니와의 인연은 행운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시작됐다. 한가지 확실한 건, 불편했지만 절약에 대해 배웠다. 기독교 안식일 때문일까. 일요일이면 열려있는 마트가 없다. 깜박이라도 해서 생수가 남아있지 않다면,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가야 한다. 물과 간단한 과자 정도를 구할 수 있었다. 평일도 오후 8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 아픈 날에는 서럽기까지 하다. 유학생의 보험으로는 개인병원에서 바로 진료를 봐주지 않는다. 지독한 감기에 이비인후과를 찾아갔지만, 1주일 뒤에나 진료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당일 진료를 보려면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2~3시간의 웨이팅(기다리는 것)은 기본이고, 식중독 증상으로 정말 많이 아팠던 날은 차라리 저녁까지 기다려 응급실로 가는 게 바로 입원할 수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할 수 있었다. 무더웠던 그 여름 어느 날, 힘겹게 기차역에 도착했다. 조용한 플랫폼엔 답답한 연착 화면만 계속된다. 수십분이 지나서야 도착한 기차에 올랐지만 에어컨은 고장이다. 이것도 모자라 다음은 기차가 고장났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고장난 기차 대신 임시 버스가 수송을 담당했다. 그날 어떻게 귀가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대프리카의 찌는 더위에 모든 의욕이 상실이 되는 요즘, 좌충우돌 독일 유학시절의 웃지 못할 하루를 떠올리며 생각항본다. 대한민국의 편리함이 주는 사치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2018-07-31 11:45:42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 당신의 위선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사람을 만났다. 어려움이라고는 겪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그렇기에 세상의 좋은 모습만 바라보는 당신.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고, 더 높은 자리에 있지만, 한낱 나보다 이상적이고 순진하다 생각했다. 당신은 편하게 살아온 덕에 이 바닥의 추악함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착하다는 말은 더 이상 칭찬이 아니게 됐다.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가엾음의 탄식일지도. 한때는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저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이제는 대나무로도 부족해 강철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그 약간의 흔들림조차 용납하기 싫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내가 너무도 유약한 것 같을 때가 있다. 별 것 아닌 일에 상처받고 혼자 아파하기에.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처럼 위악(僞惡)을 방패막이로 삼아 의지할 때가 있다. 혹자는 사회생활을 하면 성악설을 믿게 된다고 했다. 호의를 권리인 줄 아는 세상이다. 내가 할 일은 밀어내고 타인의 공을 가로채며, 내가 잘하기 보단 타인을 짓밟음으로써 위로 올라가는 쉬운 길을 택하려 한다. 무시당하지 않도록, 음해하는 자가 있다면 징벌할 수 있도록 내게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차라리 상처를 주는 쪽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위선(僞善)의 가면을 놓지 못하는 인간의 표리부동함이란! 위선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거부할 수 없다. 상처받기 싫고 이기적으로 굴고 싶지만, 동시에 그와 같은 이유로 비난 받고 싶지 않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나는 종종 방관자가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자신과의 타협 하에 말이다. 방관자만큼 비겁한 것이 있을까. 그러나 정무적인 판단이란 그런 것이다. 옳고 그름이 아닌,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여론에 환영 받을 수 있는지는 따지는 것이다. 세상에 용기를 냄으로써 비난의 최전선에 내몰렸을 때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기에. 언제부터인가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기 시작했다. 나는 단정 지어 말하지 않는다. 지금의 생각도 삶을 겪고 겪어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과 같이 순수한 열정이 넘쳤던 내가 위선의 갑옷에 숨어살게 된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굳은 살이 생긴 지금이 스스로를 위해 더 좋은 것 같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만은, 꺾이지 전까지만 흔들릴 수 있기를.

2018-07-30 10:39:43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기획팀장

[매일춘추] 직장인의 소확행, '문화회식'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을 가진 '워라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 등 최근 들어 거창한 업적보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되면서 직장인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던 '저녁이 있는 삶'도 현실이 되고 있다. 특히 직장 회식문화가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과거에는 회식이라 하면 부서원들끼리 조직을 탄탄하게 만들고 팀워크를 다지는, 어쩌면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취지는 좋지만 조직단합을 위해서는 술이 빠질 수 없었고, 덕분에 회식 다음 날이면 전날의 실수와 사건사고를 수습하기 바쁜 사람들도 많았다.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뻔한 회식! 이젠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는 2년 전부터 술이 아닌 문화에 취하고 싶은 직장인들 위해 색다른 회식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이름하야 '문화회식'. 70분 남짓의 시간동안 미니콘서트를 포함한 공연장 투어를 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조심스러웠던 마음과 달리 50여 개 회사가 신청해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문화회식 당일,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공연장 로비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졌고, 공연장의 안팎을 둘러보며 연주자로, 지휘자로, 관객이 되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케스트라 연습실을 찾아가고 무대에 앉아 공연을 보며, 평소에 경험하지 못한 시간에 푹 빠져들었다. 이런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준 직장이라면 팀워크가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문화회식은 직장생활에 새로운 재미이자 술 뿐이었던 회식의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공연을 보거나 여행을 하는 등 우리의 오감을 발달시켜줄 다양한 방법이 많다. 이 모든 것들이 새로운 회식 모델이 된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가 크다. 물론 문화회식 기획은 보통의 큰 공연보다 몇 배의 수고(맞춤형 공연, 지휘자 및 연주자 일정 조율, 대관일자 조정 등)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사소한 문화가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문화회식이 일상이 되어, 삶의 한 부분은 문화에 젖어있는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문화는 직장인에게 더이상 사치가 아니다. 일상의 한 부분으로 주중에도 주말에도 정신과 영혼을 맑게 해주는 비타민이나 청량제로 곁에 둬야 한다. 그래야 '워라밸'도 균형지수가 높아지고, '소확행'도 누릴 수 있다.

2018-07-26 13:37:10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 전문 직업인에 대한 단상

요즘 초등학생 장래희망 중에 '유투브 크리에이터'가 인기다. 이유는 단지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란다. 초등학생들의 대략 난감한 이 대답은 돈을 향한 사회적 갈망을 대변하고 있다. 돈이 이 시대 가장 강력한 존재이며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 현실에도 돈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며 또 그 속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직업인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당신은 돈을 위해 일을 하는 직업인인가, 열정과 철학으로 일을 하는 전문가인지 한번 돌아보자. 돈을 벌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빠질 수 없는 질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정규직보다 차라리 아르바이트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하지만 수명이 늘어감에 따라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전문가 시대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아무도 대신할 사람이 없는, 즉 대체불가의 인력이 전문가다. 전문가 집단을 굳이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특정분야에 학문을 쌓아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대학교수, 연구원 등의 집단과 기술적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해 '장인'이라 불리는 집단이 있다. 그들은 종사하는 분야에서 남다른 솜씨와 전공의식을 가지고 철학과 열정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특히 장인들은 혼신의 노력으로 만든 결과물을 '분신'으로 여길 정도로 아낀다. 요즘 우리나라 취업준비생들은 자격증, 어학, 학점관리, 봉사활동, 토익, 인턴 등 스펙쌓기에 목숨을 건다. 심지어 어떤 구직자들은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으면서도, 더 높은 연봉을 주는 또다른 직장을 구하기 찾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반해 실제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를 구하기가 힘이 들 뿐 아니라 기업을 위해 헌신할 신입사원을 찾기 힘들다고 얘기한다. 초등학생의 난감하고도 앙증맞은 돈을 향한 장래희망처럼, 단지 취업을 위해 무작정 스펙을 쌓거나, 기업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수시로 이직을 꿈꾸는 그런 사람들은 기업 입장에서 원하는 인재는 아닐 것이다. 기업과 사회에서는 오랜 시간 어려움을 이겨낸 끈기와 열정, 그리고 자신만의 소신을 가진 전문가를 원한다. 요즘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취업준비생들이 직업에 대해 갖고 있는 얕은(?) 생각은 전문가의 열정과 패기·끈기와는 거리가 멀어보여서 내내 아쉽다.

2018-07-26 10:13:48

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매일춘추] 연극도 다양성의 시대로

현대의 연극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아니 사실 과거에도 다양성은 존재해왔다. 이탈리아의 'Commedia dell'arte'(arte:기술, Commedia:희극)가 가면을 이용하여 다양성을 유지하고, '순환극'(Cycle play)가 공간을 보는 시점을 순환하며 다양성을 유지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텍스트 위주의 공연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현재에도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배우들 중에는 텍스트가 있지 않으면 연기 자체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나는 텍스트를 벗어나 즉흥적인 요소와 신체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연극을 주로 하는 편이다. '나의 것이 맞다'라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서커스에서도 다양성을 추구하여 성공한 실제적 예도 있지 않은가. 1984년에 '기 랄리베르테'(Guy Laliberté)의 주도로 창단된 태양의 서커스의 이야기이다. 거리예술가들로 시작한 그들은 세련된 형태의 서커스를 고민하다가 연극적 요소를 도입하여 '종합 극장'(Total theatre)의 형태를 띠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는 그야말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다양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시기는 2006년 대학생 시절의 일이다. 연극과를 다니던 나는 대사법, 호흡법 등을 훈련하며 연기의 꿈을 키워가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 해 3월 개강을 하면서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새로 부임한 교수가 전혀 다른 연기법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폴크방 예술대학에서 '신체극'(Physical Theatre)을 전공한 그 교수는 몸으로 우선 움직여보라며, 연기의 신체성과 즉흥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도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즉흥성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대사 위주의 공연들이 주류를 이뤘으며 '어떻게 대사를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당시 좁은 시야의 필자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사실 연극은 다양한 표현양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 텍스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 편이다. 연극의 3요소가 '무대, 관객, 배우'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다양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기에 주류를 이루는 대사극의 형태도 유지하면서도, 신체극·음악극·서사극·넌버벌극·무용극·마임극·거리극 등 다양한 형태의 연극에 도전하여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이 유지된다면, 대구는 공연예술의 도시로 한발 더 다가 설 수 있지 않을까.

2018-07-25 12:13:07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음악의 기원과 효용

휴가철인가보다. 평일 오후인데도 고속도로엔 평소보다 많은 차들. 다들 어디로 가는 건지, 부러운 마음에 내심 우울하기도 하지만, 잠도 쫓을 겸 비트감 있는 음악을 틀고서 나도 무료함을 달래본다. 댓바람에 '음악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크게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알게 모르게 음악의 영향권 안에 살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누구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음악에 의해 벌써 긴장감이 몰려오거나, 마음 속 깊은 슬픔이 북 받쳐 올랐던 경험을 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개인적으로 운전을 할 때면 영화나 드라마의 OST를 즐겨 듣곤 하는데, 듣다 보면 반대로 스토리의 잔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레스토랑이나 카페, 마트나 백화점에서도 마케팅을 위해 음악을 고심한다. 그만큼 고객의 구매의욕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목소리를 낸 것이 말을 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보다 50만 년을 앞서였을 거라고 한다. 고로 인류와 함께 음악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울음소리를 내며 욕구를 표현한다. 그 소리가 단순한 발성에 지나지 않다고 해도, 욕구에 따라 소리를 내고 음악과 말로써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고대 전 유물을 살펴보면, 박수와 발구르기 리듬 등을 돌과 나무를 이용해 새겨온 것을 볼 수 있다. 정서의 평화를 위해서는 물론, 집단 사회에서 마음을 공유하기에 음악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가죽을 당겨 북을 만들었고, 사냥에 필요한 생동감과 흥분을 불어넣었다. 노래로 멋지게 구애도 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눴다. 언어가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음악을 통한 교감은 녹록치 않은 인생에 개인과 공동체를 위해 위안이 되지는 않았을까. 음악은 일찍이 정신을 움직이는 마력이 있다고 생각되어 종교의례나 의료수단으로도 신성시 되어왔다. 요즘에 들어 음악이 면역체계를 강화해준다는 연구, 그리고 치매나 우울증의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게다가 음악을 틀어주면 가축의 스트레스 및 과일과 야채, 달걀의 생산 등에도 영향을 준다는 연구를 보면, 비단 사람에게만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이처럼 수억 년의 역사가 지나오는 동안에도 끄떡없이 음악은 제자리를 굳건히 해왔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논하는 현재 그리고 미래, 음악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해본다.

2018-07-24 11:22:30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세상은 불공평하다. 원래 그렇다. 세상이 정의로웠던 적이 있었던가. 또 앞으로는 있을까.강자중심, 부익부빈익빈, 로열패밀리가 아니면 오를 수 없는 임원 자리, 금수저가 아니면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세상, 그 앞에서 좌절한 적 없는 이가 몇이나 될까. 막연한 희망과 냉정한 현실인식 사이에서 한 동안을 머뭇거릴 때가 있다. 마이클 샌델의 역작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 열풍 만큼이나 우리에게 세상의 정의를 찾아줬던가. 대체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민심을 선동하는가. 우리가 유전무죄 그리고 낙하산 인사에 좌절하고, 그것을 넘어 공분하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 부조리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은 그만큼 기존의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반증이리라. 희망은 의지를 결정한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이유는 노력하면 유리천장 너머의 풍경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견고한 유리천장이 있는 삶이라면, 차라리 노력하지 않는 편이 나을까. 노력해도 되지 않는 좌절도 지겨워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우리가 배워온 정의와 현실은 너무도 다르다. 요즘은 나에게 유리하면 좋은 세상이다. 우리는 이기적인 사람이지, 성인군자는 아니니까. 정의의 편에 섰다고 믿고 있지만, 자신도모르는 사이에 불의의 손을 들어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출발선이 똑같을 수는 없다.마음이 아프지만 실력과 성공이 비례하지 않는다. 계급사회는 법적으로 종식됐지만, 부와 사회적 지위가 상속되는 신(新)계급사회에 살고 있다. 세상이 정의롭다는 믿음은 오히려 위험할 지도 모르겠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옛 말이 무색하게 현실에서는 악당들이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밝혀지지 않은 악당들 또한 있다는 것도. 세상이 그다지 이상적이지 않음을 알 때,부조리에 분노하지 않을 때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는 것 같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은 생각보다 쉽게 좌절된다. 이 나라를 탈출하면 달라질까. 정권교체가 되면 세상이 뒤집어질까. 혹자는 선거가 최악과 차악 사이의 선택이란다. 권력의 이동에 불과할 뿐임을. 저런 자들에 의해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모르고는 살아도 알고는 못 사는 기분이 든다. 현 상황에서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세상살이에 무관심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길게, 크게, 멀리는 세상이 선(善)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믿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테니까.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미약하나마 응원을 보내고 싶다.

2018-07-23 12:47:57

[매일춘추] 피서

18세기 초 왕실의 음악가였던 헨델은 갑작스런 왕권 교체로 왕실 음악가로서 입지가 위태로워지자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물 위에서 연주하는 이른바 '수상음악'을 작곡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50여명의 악사들을 배에 태워 한여름 템즈강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는 왕 주위를 돌면서 연주를 해 여흥을 돋우었고, 왕이 이날의 특별한 이벤트에 감동하여 헨델은 계속해서 왕실 음악가로 남을 수 있었다. 18세기 당시 왕실의 전유물이었던 물위의 음악회가 300여년이 지난 오늘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대중문화가 되어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바로 '브레겐츠 페스티벌'이다. 7, 8월 여름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의 보덴호수 위에서 열리는 이 축제를 위해 매년 30여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물 위에 설치된 거대하고도 환상적인 무대와 현대적인 연출이 조화를 이루어 '클래식이나 오페라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오페라를 몰라도 심지어 줄거리를 몰라도 보고만 있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이 펼쳐진다. 이탈리아에서도 무더운 여름이면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축제는 1913년에 이탈리아의 국민 작곡가 베르디와 푸치니를 기리는 축제로 시작해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대 2만 2천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로마시대에 지어진 원형극장을 가득 메운 관중과 세계 최정상의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오페라가 공연되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그밖에도 유럽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야외무대를 설치해서 밤마다 공연을 한다. 어느 곳에서는 불꽃이 쏘아 올려지고, 또 어느 곳에서는 음악소리와 밤바람 소리, 파도 소리가 함께 들려오는 곳도 있다. 여름밤의 낭만적인 분위기와 아름다운 경관이 더위를 잠시 잊게 하기도 하고 어쩌면 무더위에도 음악을 찾는 열정이 타들어가는 여름의 태양보다도 더 뜨거워서 무더운 이 여름이 견뎌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대구를 대표하는 여름 축제가 열려 더위를 피해 야외로 찾아든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대구치맥페스티벌, 대구국제호러페스티벌, 대구포크페스티벌, 신천돗자리음악회 등 곳곳에서 열리는 여름 축제를 찾아 뜨거운 열정으로 뜨거운 여름을 이겨보자.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기획팀장

2018-07-19 14:25:49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 낡고 오래된 소중한 것들

내 책장 한 중간에는 색깔이 바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수십 개의 메모장이 있다. 그 메모장에는 뷰티업계에 발을 디디면서 시작된, 나의 노력과 열정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메모장을 꺼내볼 때마다 그 시절의 기억으로 가슴이 벅차 오른다. 닳아빠진 종이가 조금이라도 더 찢어질까 조심스레 만지작거리며 읽고 또 읽는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금에도 그 메모는 항상 새롭기만 하다. 이처럼 오래된 물건에는 분명히 스토리가 흐르고 있다. 손 때가 묻은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물건에 얽힌 추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이들에게 단 한번이라도 선택된 모든 것들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감동스런 역사가 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은 예전에 쓰던 TV나 냉장고 같은 물건을 다 버리고, 새 가전제품들로 채워 넣는다. 깔끔하고 좋긴 하지만, 왠지 과거를 버리고 현재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아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다. 요즘 유행에 뒤쳐져 입지 못하던 옷들, 손때 묻은 그릇들, USB나 실시간 음악을 제공하는 스트리밍으로 인해 이젠 더 이상 듣지도 못하는 음악 테이프, 장식장으로 사용하는 CD 플레이어 등을 만지거나 닦을 때 마다 과거를 회상하며 콧노래를 부른다. 남들에겐 철 지난 고물이나 골동품이겠지만, 나에겐 개인 애장품이자 값비싼 보물들이다. 새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해 옛 것을 버려야 한다지만 정작 마음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 걸 보면 나도 구세대일까.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되었든 흘러간 시간의 무게만큼, 가치의 소중함이 낡은 무언가에 스며들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은 조금만 다듬고 숨을 불어넣으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새로움은 화려함으로 무장되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뭔가 따스함은 없다. 손때 묻은 낡은 것은 흐릿하고 무뚝뚝하긴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은근한 정이 있어 살가움으로 다가온다. 살다보면 마음 속 깊이 묻어뒀던 뭔가가 소리없이 나타나, 잠자던 감수성를 자극해 코끝을 시큰하게 하면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은 비록 자리를 차지하긴 하지만 눈물을 참으며 어딘가를 달려가고 있는 현실의 힘든 나를 조용히 감싸안으며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게 한다. 현대인들은 강박적으로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만을 찾는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여유가 생긴다. 주위에 있는 오래된 낡은 것들로부터 삶의 위로와 마음의 평온을 가진다면 원인 모를 불면증으로부터 해소되지 않을까.

2018-07-19 11:21:05

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매일춘추] 실험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2000년대 후반 대학을 갓 졸업하고 대학로에서 활동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날을 회상하면, 참 비통함을 느꼈던 것 같다. 대학로에 광고물을 부착하는 곳에 늘 붙어있었던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라는 문구가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연극에 대한 나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소모품이 되어간다'는 회의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나를 버티게 한 힘은 바로 그 문구였기 때문이다.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구로 돌아왔다. 그 이후 지금도 대학로를 가면 씁쓸함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실험보다는 흥행을 위주로 한 상업적인 공연들이 즐비한 모습 속에 나 역시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라는 문구가 잊고 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2010년대 후반,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는 아직도 그 문구를 가슴에 담고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실험이 이뤄져야 하고, 연극이 아닌 다른 공연예술분야에서도 그래야 발전이 있다고 여기고 있다. 스타니 슬라브스키의 시스템에서 '반응'을 집중적으로 실험해, '아메리칸 액팅 메소드'를 구축한 샌포드 마이즈너가 그러했다. 실험적인 연극을 주도하며 연극계의 피카소로 불렸던 메이어홀드(스타니 슬라브스키의 후배이자 제자)의 제자 두브로빈 또한 메이어홀드의 신체역학을 집중적으로 실험했다. 두브로빈은 또 제자인 레프도진에게 신체역학을 전수했으며, 현재까지 세계적인 말리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실험적이며 진취적인 연극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공연예술의 발전은 기초예술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10월에 최영주 대표가 골목실험극장에서 진행하는 '실험극 페스티벌, Sound of 골목실험극장'은 희망적이다. 최 대표로부터 트레이너 및 연출자로 제안을 받았을 때, 다시금 머릿 속에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라는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실험을 통해 새로운 메소드에 대한 고찰을 하며, 관객들에게 통상적인 연극의 시각이 아닌 새로운 연극의 시각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시대에 대한 고찰이 다양하게 이뤄지도록 제시할 것이다. 공연예술 중 연극은 관객과 직접적인 만남이 있는 분야다. 그렇기에 무대와 관객이 주고받는 에너지도 크다. 특히 소극장 공연은 배우의 연기력과 에너지, 나아가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다. 실험적인 공연은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줄 수도 있다. 현대 공연예술은 선택을 해야 한다.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 될 것인지 아니면 시대에 편승하여 단순한 버라이어티가 될 것인지 말이다.

2018-07-18 11:17:51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한여름의 클래식

이제 겨우 초복이거늘, 한달 동안 지속된다는 올 여름 폭염을 어떻게 버텨낼까 싶다. 여름 휴가를 위해 미뤄왔던 다이어트를 하루 빨리 시작해야 하지만 과일과 야채, 냉면이 날 유혹한다. 일단은 유리잔 한 가득 얼음을 채우고, 시원한 보리차로 마음을 달래보자. 이번 주는 카랑카랑 울리는 얼음소리처럼, 더위를 식혀줄 클래식 작품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먼저 리스트(F.Liszt) 작곡의 '에스테장의 분수'(Les jeux d' eau a la villa d' Este), '피아노의 마술사'라고도 불리는 리스트는 유난히 긴 손가락과 화려한 손놀림 때문에 손가락이 6개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에스테장의 분수'는 어지러울 정도로 빼곡히 들어선 32분 음표에, 피아노 독주임에도 3단으로 기보된 부분까지 있다. 에스테장의 분수는 실제 이탈리아 티볼리에 위치한 에스테 별장에 위치하고 있으며, 16세기 건축물로 로마의 3대 별장이자 물의 정원이라고도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수압차로 연주되는 '오르간 분수', 포세이돈을 형상화했다는 '넵튠 분수'. 달걀 모양의 '오바토 분수', 가로수 길에 늘어선 '100개의 분수'(첸토폰타나)까지 500개이상의 자연분수들이 정원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이 곡을 들어보면, 분수의 물방울이 절묘하게 묘사되어 있어 화려함과 함께 청량감을 느껴볼 수 있다. 열대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멘델스존(F. Mendelssohn)의 '한 여름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과 함께 하는 건 어떨까. 1826년, 당시 17세였던 멘델스존이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밤의 꿈'을 읽고 바로 서곡을 작곡하였다고 하며, 그로부터 다시 17년 후인 1843년 국왕 빌헬름 4세의 명을 받들어 나머지 12곡을 작곡했다. 여기에는 지금도 결혼식에 울려퍼지는 결혼 행진곡도 포함되어있다. 한 여름밤이란 '하지' 무렵의 성요한축일(6월24일) 전야를 의미한다. 이날이 되면 요정들에 의해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전설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한 여름밤의 숲속, 젊은 연인 두커플과 요정의 사랑이 모두 이루어진다는 해피엔딩 스토리이다. 슈만(R.Schumann)도 "마치 요정들이 직접 연주하는 듯하다"며 극찬을 보냈다. 나 또한 행복한 꿈을 그려보고 싶은 여름이다. "사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것, 그래서 날개 달린 큐피트는 장님으로 그려져 있다네."(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 1막1장 중에서)

2018-07-17 11:42:00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 당신의 발상

미니언즈를 아는가. 최고의 악당만을 보스로 섬기는 영화 '슈퍼배드'의 캐릭터다. 추종자라고 했을 때 우리가 흔히 요구하는 충성심도 없다. 더 센 악당이 나타나면 가차없이 보스를 바꿔버리고, 평화의 시대에는 오히려 무기력한 그들이다. 노란 알약 같은 생김새만 가지고는 정체도 불분명한 생물체지만, 미국식 영웅주의, 권선징악이라는 프레임을 완전히 뒤집었다. 게다가 이 귀여운 악당들은 영화의 주인공도 아닌데 어떤 주인공보다도 인기를 끌고 있다. 겉으로는 사악함을 열망하지만 내면은 선하기 때문일까.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다. 남들과, 또 기존과 다른 새로운 생각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에도 몇 편씩 쏟아지는 광고시장에서도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홈런은 드문 법이니까. 크리에이티브라면 한 가닥씩 한다는 광고쟁이들도 그럴진대. 혹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기존의 변형과 응용일 뿐,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그래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주어질 때면 회사의 미관말직들은 으레 사례조사부터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마다 성향에 따라 잘하는 일이 있다. 분석적인 사람은 있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것을 잘하고, 창의적인 사람은 기존의 해결책이 벽에 막혔거나 벽 너머의 세계를 추구할 때 빛을 발한다. 분석적인 동시에 창의적이면 좋겠지만, 두 성향이 상반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창의성은 분석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자주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새로운 생각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기존의 방식에 얽매여 새로운 생각을 담지 못할 때도 있다. 우리는 절대 법칙, 절대 전략이라는 것이 없는,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조직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남들과 다름이 환영 받기 어려울 때가 있다. 회사에서도 군계일학(群鷄一鶴)이 아닌, 시키는 일을 불만 없이 이행할 수 있는 적당한 지능과 인간관계 능력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 또한 일리가 있다. 현실에서는 관례를 존중해야 할 때가 있으며,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는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틀에 박힌 자기자신을 바라보며 나와 다름에 대해 지나친 거부감을 갖는 것은 아닌지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나와 다른 너, 주류와 다른 소수를 인정하고 교육하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임을.

2018-07-16 10:27:38

[매일춘추] 학생석

공연계에서 학생(청소년)관객들은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통한다. 성인에 비해 학생관객의 티켓가격이 20∼30% 정도 저렴하다 보니 공연 주최측에겐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떨떠름 하기는 마찬가지. 이른바 목 좋은 좌석은 대부분 어른들 차지여서 학생들은 객석 2층 구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외국에선 대접이 180도 다르다. 뮤지컬의 본고장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학생티켓은 하나의 '특권'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평균 티켓 가격은 대략 100∼300달러 정도. 오케스트라석(1층 가운데 좌석)과 프론트 매즈닌석(2층 앞쪽 좌석)은 이보다 더 비싸다.그런데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이들 '로얄석'에서 폼나게 뮤지컬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뮤지컬 공연사들이 운영하는 '러쉬티켓(rush ticket)' 덕분이다. 러쉬티켓은 선착순으로 특정 블록의 좌석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으로 '제너럴 러쉬(general rush)'와 '스튜던트 러쉬(student rush)'가 있다. 제너럴 러쉬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돌아가는 반면, 스튜던트 러쉬는 티켓 구매시 학생증을 제시한 학생들에게 주어진다. 청소년들에게 고가의 공연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학생증을 제시하면 고가의 뮤지컬도 25∼35 달러에 볼 수 있다.스튜던트 러쉬 티켓은 클래식 공연에서도 폭넓게 통용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은 공연 당일 오전부터 29세 이하 학생들에게 100달러 이상의 티켓을 25∼35달러에 할인 판매한다.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클래식카드를 구매하면 베를린 전역에서 열리는 공연을 공연 당일 공연장을 방문하여 남아있는 좌석 중 가장 좋은 자리를 10유로에 판매한다.최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도 청소년 관객들을 겨냥한 할인 좌석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콘서트하우스의 모든 기획공연과 대구시립교향악단과 대구시립합창단의 공연에서 학생석을 별도로 지정하여 공연에 상관없이 1만원에 판매를 하고 있다. 운이 좋다면 10만원짜리 공연을 단돈 1만원에 볼 수도 있다. 일부 좌석에 한정해서 운영되는 학생석은 큰 호응을 얻어 가장 먼저 매진되는 좌석이기도 하다.청소년 관객은 미래의 문화애호가다. 어린 시절의 예술체험이 먼 훗날 문화관객으로 성장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학생티켓은 음악 저변층을 확대할 수 있는 '골든티켓'이다. 문화수도 대구의 공연계가 '스튜던트 마케팅'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기획팀장

2018-07-12 12:12:23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 머리카락(가발) 이야기

1960년대의 구로공단 가발공장(현 가산디지털단지)은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 여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녀들의 노동으로 60년대 우리나라 가발산업은 빠르게 성장했고, 70년대 초반에 이르러 가발 수출 1억 달러로 가발수출국 세계 1위라는 쾌거를 거뒀다. 1억 달러 수출은 우리나라 총 수출량의 10%를 차지할 정도였다. 당시 구로공단 여공들은 이 나라의 큰 산업역군이었다. 그 때문에 1975년 구로공단 여공들의 삶이 그려진 '긴 머리 소녀'라는 대중가요가 있었고, 1987년 구로공단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1인칭 시점으로 쓴 이문열 소설가의 '구로 아리랑'이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가발의 역사는 5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가발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과 햇빛으로 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것으로 쓰여졌고, 로마시대에는 남자들은 대머리를 감추고 변장을 위해 그리고 여자들은 다양한 헤어스타일과 색상을 원해서 가발을 썼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삼국사기'에 신라 성덕왕 때 당나라에 다리(옛날에 쓰던 가발)를 예물로 가져갔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고구려 고분벽화의 여인 역시 머리에 다리를 이용했다. 조선 영조 때는 가채(머리털이나 이와 유사한 것으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쓰는 것)가 크게 유행했는데, 다리값이 너무 비싸서 국법으로 가채를 금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가발이 유행한 이유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이야기를 빠뜨릴 수가 없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탈모를 숨기기 위해 항상 가발을 착용했고, 10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색상의 가발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가발산업은 1970년대 중·후반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값싼 노동력을 가진 나라에서 가발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다만 탈모시장에서는 기술력이 동반된 가발이 여전히 수요가 있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가발은 어떠한 재료를 이용하더라도 기계나 로봇이 대체하기란 어렵다.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으로 머리카락을 일일이 꿰매어야 하는 특징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가발 생산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손재주가 뛰어난 한국인들의 특징 때문이 아닌가 싶다. 화려한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졌던 한국의 가발산업은 다시 한 번 패션의 한 축으로써 재기를 꿈꾸어야 한다. 나 역시 K-뷰티를 이끌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이 다시 가발종주국이 되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2018-07-12 10: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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