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매일춘추]이제 우리는 놀아야 할 때

연극은 영어로 'Play'. 많은 사람들이 연극을 영어로 쓸 때에 'Theatre'를 사용하거나 'Drama'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극을 'Play'라고 불러야 할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Theatre는 고대 그리스의 무대에서 객석을 뜻하는 Theatron이 어원이기 때문에 Theatre를 연극이라고 부르기에는 타당성이 부족하다. Theatre는 극장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둘째, Drama는 문학적 형태로 분류하자면 총체적인 연극을 다 담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연극의 형태는 다양함으로 문학적 형태를 보이지 않는 연극이 많기 때문이다. 셋째, 연극의 발단은 기록상으로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제의와 놀이의 형태로 시작됐다. 이런 이유는 나는 연극을 'Play'로 해석한다. 연극은 놀이의 성향이 다분하다. 가끔 강단에 서게 되면, 학생들에게 연극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연극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극은 문학적이며 예술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그저 논다'는 것이 한국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왔기 때문이리라 여겨진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는 '욜로족'(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 현재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만큼 '노는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반대편에선 미래를 위해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며 조소와 야유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회가 경직되어 있다는 반증이며, 이 속에서도 경직된 문화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무미건조한 사회는 연극에서도 보여 진다. 특히나 배우들에게서 많이 보여지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행위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하지 못하는 것이다. Play 안의 Player는 바로 Actor(배우). Act는 '행동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행동하지 못하는 Actor들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를 주변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것. 연출가 혹은 작가들의 힘이 너무 강해서 배우들의 행동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 연기 테크닉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일반인들도 인생이라는 Play 안의 Player 즉, 배우다. 하지만 연극에서 배우가 행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사회라는 무대에서 맘껏 놀지 못하고 있다. 노동에도 자신만의 '놀이' 혹은 '여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을 강요하고 '놀이'에는 비뚤어진 시각을 보내기가 일쑤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놀이 테크닉을 잊어버리고, '놀지 못하는' 성인들이 생겨난다. 그 결과는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사회다. 자! 우리는 놀아야 한다. 예전의 유명한 광고가 있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놀아라!"

2018-09-05 11:18:02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매일춘추]오후 3시, '검은 악마'를 만나는 시간

오후 3시의 커피 한잔. 어느덧 일상의 작은 즐거움으로 자리잡고 있다. 친구들과 수다자리, 장거리 운전에도 기꺼이 함께 해 준다. 이렇듯 대한민국 대표 음료이자 문화로 자리잡은 커피는 한국전쟁 후 미국의 영향으로 전해졌다. 이에 비해 유럽의 커피역사는 1천년이나 됐다. 1천년 전 아라비아 제국으로부터 유럽에 전해져, 처음에는 약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커피가 막 전해졌을 무렵, 이슬람교의 음료를 그리스도 교도가 마신다는 것에 대한 찬반양론도 있었다. 당시의 교황 클레멘스 9세는 커피의 마력에 깊이 빠져, 이렇게 맛있는 것을 이교도들만이 마신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리스도교는 커피에 세례를 행하여 자신들의 음료로 받아들였고, 이후 커피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전 지역에 급속도로 퍼졌다. 18세기 독일 라이프치히에서는 커피중독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고, 이는 "하루에 3번 커피를 거르면, 메마른 염소처럼 시들어버린다"라는 가사에서도 알 수 있다. 커피가 얼마나 좋았으면,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샤를 모리스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라고도 표현해, 커피CF에 인용되기도 했다. 음악가로서 독일의 3대 'B'로 불리는 바흐(Bach), 베토벤(Beethoven), 브람스(Brahms)도 커피광이었다. 먼저 바흐는 그의 작품 '커피 칸타타'(BWV211)로 유명하다. '칸타타'는 이탈리어로 칸타레 '노래하다'라는 뜻이다. 칸타타는 아버지가 딸의 커피중독을 걱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부모들은 커피의 카페인 성분이 딸의 임신에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딸은 '1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다'며 커피에 대한 사랑노래를 부른다. 원래 해학적인 작품이지만, 그 뒷이야기도 재미있다. 아버지는 '커피를 끊지 않으면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엄포를 놓는다. 이에 딸은 일단 커피를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실은 결혼상대의 조건으로 "원할 때 언제든지 커피를 마시게 해주는 것"을 걸었다. 결국 아버지는 딸의 고집에 두 손을 든다. 작곡가 바흐는 하루에도 수십 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전해지며, 그 증표로 1750년 65세의 나이로 사망한 그의 유산목록에는 악보, 악기와 함께 5개의 커피주전자와 컵세트가 포함되어 있다. 베토벤은 모닝커피를 위해 커피콩 60개를 세는 것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브람스도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자신만의 아주 진한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오늘도 나른한 오후 3시. "자~, '검은 악마' 커피를 노래해 볼까. 아니면 그가 나를 노래하는 것일까…."

2018-09-04 11:50:16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인생의 정답과 오답 사이를 오가며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정답 고르기에 심혈을 기울였던 학창시절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단다.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정답이 있지 왜 없나.모두가 마음으로는 알고 있지만 드러내놓고 인정하지 못할 뿐. 이 순간에도 정답에 비추어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있지 않나. 가슴 깊숙한 곳이 아리겠지만, 그나마 버티던 희망의 빛 한 줄기마저 사라질지라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남들이 가는 길을 나도 가면 안 되나, 많은 사람들이 가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지나고 나서야 아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가끔은 당신을 인도해줄 나침반이 필요하다. '누구나 겪는다'는 흔해 빠진 이야기, 그러니 '순응하며 살라'는 조언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다. 경험적으로 습득된 확률은 쉬운 길, 행복한 길,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길이라는 정답을 만든다. 물론 사회가 모범답안같은 삶을 강요하는 면도 없지 않다. 사람들이 던지는 참견이랄까, 간섭이랄까. 그것이 당사자에게 입히는 내상이 깊은 데도 말이다. 그에 대한 치기 어린 반항은 대가도 크다. 로버트 프로스트처럼 '가지 않은 길'을 가다가 가시덤불에 베이고 넘어질 수 있으니까.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만 톡 튀어나온 것 같은 두려움이 따라다닐 테니까. 세상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지금 당장은 괜찮은 선택을 했다 싶어도 나중에 후회할 때가 있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좋은 직장을 선택하고 결혼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와 달리 현실의 문제들은 문제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거나 답이 변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업가의 방식이 회자되다가도 그가 실패하면 그것은 정답이 아니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되돌아보면 선배들이 늘어놓았던 조언이 꼭 맞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매일 처음을 살아가니까.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이 똑똑하게 살지 못한 탓이라 하겠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는 오히려 줄을 잘 서고, 잘 찍는 것이 실력일지도 모르겠다. 수능을 많이 틀렸어도 인생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망설이는 것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는 법륜 스님의 말이 아픈 곳을 찌른다. 남들이 좋다는대로 사는 것은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수한 경험을 통해 정립된 사회적인 정답에도 합리적인 의심은 필요하다. 믿지만 검증하라는 말처럼. 정답같은 인생이어도 나름의 고민은 있다. 하지만 나도 내 몫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정답과 오답 사이를 오가면서.

2018-09-03 12:21:01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기획팀장

[매일춘추]대구 청소년들 '오케스트라는 내 친구'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올해는 20세기 최고의 클래식 스타였던 번스타인의 탄생 100주년이다. 덕분에 세계 방방곡곡에선 그를 추억하는 음악회가 수없이 열리고 있다. 카라얀, 숄티 등과 함께 20세기 음악계를 주름잡았던 번스타인은 25세에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임명되며 주목받았다. 이후 40세에 최연소로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며,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지휘자로 또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던 번스타인이 개인적으로 가장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는 정작 '음악을 가르치는 일'이었다고 한다. 특히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는 아직도 많은 음악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회 시리즈 중 하나로 오케스트라 연주와 청소년을 위한 음악해설을 결합한 독특한 공연이었다. 특히 실력과 쇼맨십을 겸비한 번스타인의 해설은 기존의 음악적 개념과 역사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고, 어린이와 어른 모두 고전음악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게 도와줬다. 국내에서는 지휘자 금난새가 한국의 번스타인으로 비견된다. 세련된 외모, 관객을 사로잡는 쇼맨십, 번스타인에 버금가는 해설 등 우스갯소리로 클래식은 몰라도 금난새는 다 안다고 할 정도다. 특히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는 1994-99년까지 전회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지휘자 금난새를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도 '오케스트라는 내 친구'라는 이름으로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악기의 구조에서부터 쉬운 해설을 곁들인 음악 감상까지, 보고 듣고, 체험까지 할 수 있는 렉처(강의)콘서트 형식이다. 수많은 자료와 연구결과들이 말하듯 음악교육은 창의력, 표현력 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전반적인 학습능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전국의 공연장과 오케스트라들 역시 이러한 청소년 클래식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이다. 일단 쉽고 즐겁게 시작해보자. 클래식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2018년 가을, 세계 각국의 유명 오케스트라들이 대구로 몰려온다. 이 계절이 지나면 더 많은 청소년들이 클래식과 가까워져 있길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번스타인과 금난새 같은 톱스타들이 청소년 클래식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구에는 수많은 클래식 팬들이 있으며 오케스트라를 꿈꾸는 세대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2018-08-30 15:13:47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마음과 육체의 안식이 '참행복'

행복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는 없다. 좋은 차와 좋은 집을 갖는 것처럼 행복을 물질을 평가하는 다수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이란 단어가 왜곡되고 있다. 행복이란 기쁘고 들뜨는 기분이 아니라,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마음의 상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자연스러움을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삶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거나 또는 정답이 없는 듯한 현실의 문제에 대해 똑부러지는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행복에 대한 개개인의 시각차는 항상 존재한다. 보통 사람들은 저 멀리 있는 행복을 자신의 곁으로 가져와야 행복해지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행복의 속성을 잘 들여다보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저것만 있으면 행복할텐데….'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렇지만 그걸 갖게 되면, 또 다른 것을 갖고 싶은 게 사람의 욕심이다. 그렇게 많은 것을 갖게 되어도, 욕심은 결국 끝나지 않는다. 그럼 언제쯤 행복하다고 여기게 될까. 결국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은 저만치 멀어져 있게 되는 셈이다. 삶이 끝날 때 소유한 모든 것들 역시 사라진다는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삶이 바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스스로 바쁜 사람이란 자기최면을 걸고 정신없이 살아간다. 우리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안식할 필요가 있다. 안식은 국어사전에 '편히 쉬다'라는 간단명료한 의미를 지닌 단어다. 하지만 평소에 안식을 하지 못해서인지, 우리는 이 단어를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경우 외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안식을 이야기하면서 특정 종교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달력체계는 그 종교가 말하는 천지창조의 일정과 일치되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쉬는 날은 기독교나 천주교의 안식일과 관련성이 있다. 이것은 창조의 흐름 속에 포함되어, 인간의 안식과 깊은 연관을 가진 정신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분명 쉴 수 있는 휴일이 늘어났다. 물리적 또는 신체적으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라도 푹 쉬어봤으면….'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것은 진정으로 원하는 마음의 안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안식은 삶의 균형을 제공하고 자신의 신념을 굳건하게 지켜주는 힘의 원동력이다. 인생의 고됨을 안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신에게 안식의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 형벌이 아닐까 싶다.

2018-08-30 11:17:26

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매일춘추]우리는 모두가 이어져 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 아주 작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내 주변을 형성시킨다. 많은 사람들은 관계라는 것을 가지며, 인격을 형성한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살아가는 셈이다. 연극에서도 마찬가지로 관계라는 것이 중요하다. 키스 존스톤의 책 '즉흥연기'에서 지위 거래놀이를 보면 관계가 극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인간은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은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예술이다. 아니 모든 예술은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왜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가 있었겠는가. 그만큼 사회와 예술은 공존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고전주의 극작가들은 한 국가를 움직이는 조율사이자 정치철학자들이었다. 프랑스의 거장 몰리에르 또한 사회에 일어나는 일들을 왕궁에서 올리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과학을 기반으로 한 자연주의 등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무대 또한 그렇다. 디오니소스제에서 시작된 연극축제의 원형무대에는 제단이 존재한다. 그 시대에는 제사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또, 로마의 원형무대는 어떠한가. 관객들이 서로 바라볼 수 있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프로시니엄 무대는 다빈치의 원근법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미술과 연극의 접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파생되어 '제4의 벽'이라는 구조도 생겨났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를 형성할 때에는 많은 주변의 환경이 존재한다. 얼마 전, 식당에서 초등학생들이 뛰어다니며 시끄럽게 구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 방 안에 식사하던 내 손을 밟고 그냥 지나갔다. 그래서 아이를 혼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부모님이 '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했다. 인터넷에서만 봤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크게 대응하지는 않았다. 물론 제 옆에 있던 사람들이 더 크게 대응했다. 중재를 하고 차분히 생각을 해봤다. 저 초등학생들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환경은 어디일까. 분명히 '가정'일 것이다. 하지만 가정에서조차 저렇게 아이들을 방치한다면, 보호라는 미명 아래 주변의 환경들이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것에 대해 아무렇치 않게 여겨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관계는 서로에게 피해를 주고,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에서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국가에서도 관계(연결)의 시너지 효과가 좋은 사회적 에너지로 발현된다.

2018-08-29 11:45:19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매일춘추]'지옥'은 인간을 다스리는 좋은 계명

오늘을 보내고 일어나면 내일이 되어 있다. 하루가 가고, 그것이 1년이 지나고 10년이 되고 한 평생이 된다. 인간은 이런 오늘이 영원히 계속되리란 착각에 빠지기 쉽다. 조금 늦을지 빠를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찾아오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인생은 언젠가 막을 내리게 된다. 삶에서 죽음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것이다. 그 정답은 알 길이 없고, 각 종교에 따라서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다. 서양에서는 그리스도교가 번성하였고, 사후세계를 믿고 있다. 천국과 지옥을 테마로 만들어진 신화나 그림 등의 예술작품들이 적지 않으며, 죽음 이후를 의식하며 현세를 사는 것은 윤리관으로도 이어진다. 단테의 신곡에 따르면, 지옥은 여러 층으로 그려진다. 무시무시한 가시밭, 불구덩이 등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 그에 반해 천국은 부족함 없는 풍족한 낙원으로, 사람들은 이곳에 가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한다. 때로는 평소의 행동을 반성하기도 한다. 이는 마치 죄를 지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생전에 착하게 사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지옥이라는 존재만으로도 욕심 많고 의지가 약한 우리 인간을 다스리는 좋은 계명인 것이다. 사후세계를 그린 '오르페오'(몬테베르디, 최초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글룩)라는 오페라가 있다. 죽은 아내인 에우리디체를 만나고 싶은 오르페오가 산 몸으로 죽은 자의 세계에 뛰어 들어가는 스토리다. 로빈 윌리엄스의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도 그렇고, 작품 속에서의 사후세계는 아름다운 음악과 모네의 점묘화같이 부드럽고 온화한 천국을 보여준다. 반면, 지옥은 거친 음악과 어둡고 무서움만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된다. 육체가 죽은 후에도 영혼은 남아있다는 생각에서, 가톨릭 교회에서는 죽은 자를 위한 미사를 올린다. 이것이 '레퀴엠'(진혼곡)이다. 모차르트와 베르디, 포레의 작품이 3대 레퀴엠으로서 유명하다. 레퀴엠은 원래 '안식'이라는 의미이지만, 죽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살아있는 자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불교의 환생은 현세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그것이 쌓여서, 다음 생에서 보상이 된다는 윤회사상에 근거한다.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면, 전생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을 쌓으면 좋은 신분으로 거듭나는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고, 악을 축적하면 축생(짐승) 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설파한다. 죽음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은 어쩌면 인간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종교도 예술도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2018-08-28 11:50:29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조급한 한 사람이 있다. 누군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잰걸음을 치는 사람. 뒤에 몇 명이 있느냐는 관심사항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보이고, 누군가 앞질러 가기라도 하면 그것이 마음을 콕콕 찔렀다. 어렸을 때부터, 단거리 달리기는 젬병이었던 나.하지만 딱 하나 잘하는 달리기가 있었다. 장거리 달리기다. 언제 쉬어야 할지 몰라 참고 달리다보면, 나쁘지 않은 기록을 내곤 했다. 힘들지 않고 이기는 달리기가 어디있냐고 되뇌면서. 이젠 장거리 달리기마저 못하게 된 기분이지만. 때로는 전력질주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 앞만 보고 달리면 되니까. 그러다 지칠 때, 이것조차 견디지 못하는 나를 나약하다 채찍질하면서.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일본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려본다. 바쁘게 살면 잊어버린다고 하지 않는가. 달리는 법만 아는 사람들은 멈출 줄을 모른다. '작작 뛰라'는 몸의 신호를 무시할 테다. 하나가 끝나면 다음 목표를 내놓으라고 닥달하면서. 쉬는 시간을 알아차리는 것 또한 능력이다. 지쳐 쓰러지고 나서야 한참이나 오버페이스를 했다는 걸 알아차릴 테니까. 달리고 있자니 걱정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똑바로 달려왔을까. 뒤를 돌아볼까 고민한다.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쉽게 멈출 수 없는 건, 누군가 나를 추월할까 겁나기 때문이다. 더불어 혹여 엉뚱한 방향으로 왔다는 사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일을 외면하고, 그때 그때 열심히 사는 척 고민으로 얼버무리고 있다'는리틀 포레스트의 대사처럼. 멈춰서서 내가 온 길을, 앞으로 갈 길을 돌아보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지금 쉬어도,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토끼의 여유. 동화는 늘 교훈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잘 쉬는 사람이 되면 좋으련만, 멈추는 것에 대한 묘한 두려움이 있다. 멈춤이란 쉼표일까, 마침표일까. 분노와 절망의 유혹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용기다. 그저 목적없이 바쁘게만 이어온 삶, 무언가 바쁘게 살기는 하는데, 잡히는 것은 없는 이상한 공허함이 있다. 어쩌면 세상은 내게서 멈출 수 있는 자유를 앗아갔는지도 모르겠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쉬어 본 적 없어서 쉴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고 외쳐대던 광고 카피가 주는 함의가 있다.

2018-08-27 14:26:55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기획팀장

[매일춘추]제 성공비결은요? "인내와 노력"

'첼로의 성자'로 불렸던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그에게 젊은 기자가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인정받는 당신이 아직까지 하루에 여섯 시간씩 연습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카잘스는 머뭇거리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내 연주 실력이 아직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 당시 카잘스의 나이는 95세였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카네기홀 주변을 걷고 있던 중 지나가던 한 젊은이가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카네기홀은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이에 루빈스타인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연습, 그리고 연습, 또 연습 뿐이지." 음악인들 사이엔 다음과 같은 명언이 있다. "연습을 하루 거르면 내가 알고, 이틀을 거르면 평론가가 알고, 일주일을 거르면 청중이 안다." 운동이든, 학문이든, 음악이든, 심지어 퍼즐을 맞추는 일조차도 인내심이 없으면 금세 포기하고 만다. 그러곤 노력보다 빠른 지름길을 찾기 바쁘다. 때론 자신이 포기한 분야에 성공한 사람에게 성공비결을 묻지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답처럼 성공의 비결은 언제나 인내와 노력이란 뻔한 답이 돌아오는 것은 당연지사다. 지금 2018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이 한창이다. 경기를 보면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이 상처를 숨기고 고통을 참아가며 피나는 연습을 해온 과정들을 볼 수 있다. 때론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 또한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는 선수들의 인터뷰가 뭉클한 감동으로 느껴진다. 계속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주자와 운동선수, 그리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목표를 향해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몸에 밸 때까지 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참 대단해 보인다. 그 과정에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른다는 걸 알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견뎠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걸어다니기 싫은 사람이 자동차를 만들었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귀찮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듯이, 어려움이 닥쳤을 땐 피하기보다 차라리 부딪혀 넘어지는 선택을 하는 편이 낫다. 고단해서 쉬고 싶을 땔수록 주저앉기보다 한발 더 내딛는 용기를 내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내 인생에서 터득한 나만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자세이다. 비록 오늘 하루는 인생의 작은 점이겠지만, 그 점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가는 일, 내가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아닐까.

2018-08-23 11:36:49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인간의 본성, 선(善)일까?

19세기에 쓰여진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숨겨진 본성을 치밀하게 그려내어 시대의 파장을 일으킨 작품이다.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해 통제할 수 있다면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생각한 지킬박사는 수없이 많은 실험을 반복한 끝에 시약을 개발하여 인체 실험을 시도한다. 사람들로부터 신성모독이라 비난받자 자신에게 그 약을 주사하며 본성을 분리하려 하였지만 결국 선한 지킬은 악한 하이드를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경건하고 선한 겉모습 속에 숨겨진 사악한 욕망이 가득한 인간의 내면이 도사리고 있다. 보통 사람들도 밝은 모습의 선과 어두운 모습의 악이 공존할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다양한 조직과 환경 속에서 자발적으로 선과 악을 반복하면서 더 많은 자아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자신의 모습을 제 때에 조절하지 못하면, 자기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고 우울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드러낸다 하더라도 지인인 경우에 한정되며, 어떤 사람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찍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혼네'와 '다테마에' 라고도 한다. 속마음(혼네)과 겉마음(다테마에)을 이야기한 것인데,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과 솔직함을 장점으로 주장하는 한국인 사이의 차이는 있다. 어떠한 태도가 더 좋은 것인지는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지나친 솔직함은 부작용이 따르기 쉽고, 예의를 갖춘다고 해서 늘 신뢰되는 것도 아니다. 지성과 교양에 대한 추구가 강한 사회의 사람들은 금기된 행동을 스스로 억압하면서 숨기려 하지만 안전한 장소에서는 본심을 드러낸다. 교양사회 일수록 대중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은밀하게 즐길 때의 모습은 차이가 더 크다. 인간의 특징 중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속마음은 울면서 겉으로는 웃고, 속마음은 싫은데 겉으로는 좋다는 말을 내뱉는 것이 인간이다. 속으로 자신의 칼을 꽂기 위해 겉으로는 듣기 좋은 말과 웃음을 던지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거짓을 사실처럼 말한다. 특히 현대인들은 화려한 말에 속지 않아야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그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공자는 참된 본성이란 정성이 지극한 것이라 하였다. 참된 본성이 마음 속에 있는 사람은 그 정신이 밖으로 빛을 발하여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2018-08-23 11:25:36

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매일춘추] 편집의 시대에 연극이 살아남는 길

우리는 현재 편집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오죽하면 '에디톨로지'(김정운 작)라는 책이 나왔겠는가. 모든 미디어들은 뉴스를 편집해 시청자들이나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SNS까지도 편집된 자료나 정보들이 올라오는 추세이다. 어쩌면 '진실을 왜곡하여 바라보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보고있는 것이다. 정치는 더 그렇다. 여당은 여당이 보고 싶은 것을, 야당은 야당이 생각하는 방향만을 고집한다. 남녀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화성에서 온 남자들과 금성에서 온 여자들이 극단적 입장에서만 자기 주장을 하고 있다. 이번주 목요일부터 골목실험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우리들의 행복한 마지막을 위하여'를 연습하면서 편집의 무서움을 느꼈다. 필자는 연기를 하기 위하여 분석을 할 때, 팩트를 철저히 체크하는 편이다. 그런데 친한 후배가 팩트를 철저히 체크하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편집해 캐릭터 자체가 구축이 안되는 과정을 봤기 때문이다. 줄 곧 연기가 안된다는 호소에 분석과정을 보았더니, 팩트가 아닌 편집된 상상력으로 분석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대본을 같이 보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 과정에서 실마리가 풀렸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7명의 배우 중 5명이 그런 식으로 분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극을 풀어가는 연출가이기도 하고, 무대에 서는 배우이기도 하다. 배우 혹은 연출가가 팩트를 체크하지 않은 채,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것만을 바라보며 편집을 한다면 관객들은 의아하기는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배역을 완성하고 무대를 만들어 극은 올라가겠지만, 극 스토리 자체가 혼돈스럽게 될 것이다. 연극에서도 편집은 필요하다. 희곡에서 공연대본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편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연 관계자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편집의 시대에서 연극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편집된 매체들에 밀려나고 있는 연극의 현실을 보며 안타까워만 할 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정화)의 과정이 일어나게 하려면, 편집의 기술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누구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이롭고, 편하게 생각하는 방편이 될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자신의 개똥철학만을 팩트라 여기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는 이념 편향에 편집이 기술이 더해지면, 그 사건의 본질마저 왜곡된다. 연극 역시 순수예술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과도한 편집은 진실을 가릴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2018-08-22 10:28:59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마에스토로의 필요성과 그 힘

악기도 하나 지니지 않은 채, 넓은 무대의 정중앙에서 얇은 봉 하나만을 움직이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 지휘자 없이는 연주가 불가능할까. 정확히 언제부터 지휘자가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등장은 약 17세기 쯤으로 추정된다. 작은 앙상블의 연주라면 연주자간에 긴밀히 눈빛과 서로의 몸짓을 교류하는 것으로 음악의 호흡을 맞추어 나갈 수 있다. 처음엔 바이올린 수석 등 연주 구성원 중의 대표자가 음악을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휘자의 등장배경은 연주자가 많아지면서 더 이상은 한 사람이 연주와 전체를 리드하는 역할을 동시에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이다. 일반적으로 오케스트라의 크기는 목관악기의 개수로 가늠한다. 총 인원수가 50명 미만일 경우 '챔버 오케스트라'라고하며, 2관 또는 4관 편성인가에 따라 일반적으로 80~100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극단적인 예로 말러의 '천인교향곡' 연주실황을 보면, '지휘자가 없이는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와닿을 것이다. 100명의 연주자가 한자리에 모여, 하나의 선율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여러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전체를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 통솔하는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휘자는 기본적으로 곡의 템포와 박자를 통일시켜야 한다. 더불어 각각의 악기들이 마치 하나의 악기가 울리는 것처럼 고루 사운드를 조절하고, 음악의 전체적인 흐름 또한 선도해야 한다. 카리스마도 필요하지만 독재자처럼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서는 안된다. 리더의 카리스마 그 내면에는 지휘자의 뛰어난 곡 해석 능력이 먼저 검증되어야만 하고,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와 동의가 이뤄져야 하기에 연주자를 설득할 때에는 적절한 논리성이 바탕되어야 할 것이다. 합창지휘 같은 경우에는 손으로만 지휘하는 경우가 많지만, 오케스트라는 많은 인원과 넓은 공간을 차지하므로 지휘봉을 사용하여 지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휘자와 관련해 흥미로운 얘기도 하나 덧붙인다. 지휘봉으로 인해 죽게 된 지휘자가 있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궁정 음악가이자 작곡가인 륄리. 그는 금속재로 만든 무거운 지휘봉을 바닥에 두드리며, 오케스트라 음악을 정리하곤 했다. 한번은 음악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르자 포르테시모를 이끌고자 혼신의 힘으로 바닥을 두드렸고, 자신의 오른발을 때리고 말았다. 결국 그 상처로 들어온 세균 때문에 패혈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재의 지휘봉은 나무나 유리 섬유로 만들어져 보다 안전하다. 지휘자의 지위는 갈수록 높아져, 우리는 명 지휘자를 존칭하여 '마에스트로'(장인)라고도 부른다.

2018-08-21 11:44:45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 그들의 신화는 '사상누각'

자수성가의 신화는 무너졌다. 배우자로 자수성가한 사람은 별로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경영실패와 부정부패 등 자수성가자들의 자살골이 영향을 미치기는 했다. 하지만 언론이 만들어낸 휴머니즘 가득한 스토리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똑똑해진 탓일까. 이제 사람들은 평사원으로 시작해 대기업 임원이 되기까지 얼마나 독하게 경쟁자들을 짓밟고 올라섰는가에 주목한다. 좋게 말해 잡초 같은 생명력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습자본주의가 얼마나 나쁜 지에 대해 말하려고 애썼다. 부모 덕분에 돈과 권력을 얻은 전과자들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끈다면서. 자수성가자들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됐고, 누군가에게는 '너는 왜 그렇게 못하냐'는 타박이 됐다. 금수저들은 사업을 말아먹어도 툭툭 털고 새 사업을 시작하면 됐지만, 자수성가자들이 추락하는 데는 날개가 없었다. 어쩌면 그들의 신화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맨손으로 시작해 성공한 사람들이 잘 빠지는 함정이 있다. 모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성품이 나쁘게 변할 만한 환경을 갖지 않는다. 반면 간단한 것조차 투쟁해서 얻어야 하는 사람들은 매 순간이 생존경쟁이다. 그런 상황을 버텨내는 방법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포기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을 때, 성공한 경험에 기반해 강한 자기 확신을 갖게 된다. 자수성가형 인물들은 자신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나약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또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수용하기 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을 가르치려 들기도 한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거칠고 궁핍한 환경에서 살아남았기에 더 강한 아버지에게 느꼈던 소통의 단절, 그에서 오는 절망감은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도 잘 드러난다. 대개는 성공을 원하지만 자기 혼자만 살아남은 무인도에서의 생존력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부가 주는 혜택은 바로 자유다. 창업을 하든, 기부를 하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수고한다'며 고기 깨나 사 먹이거나 용돈을 쥐어주려 해도 그렇다. 자수성가 신화를 비판하는 것조차 구태인 시대가 됐다. 차라리 솔직한 절망을 제시하는 편이 환호를 받는다. 샐러리맨의 감동 신화가 디즈니 동화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해피엔딩으로 박제됐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학 무용론을 뒷받침하는 모델로 자주 등장하는 빌 게이츠는 '나를 따라하지 말라'고 했다. 대학 학위를 받는 게 성공으로 가는 더 확실한 길이라면서.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2018-08-20 14:18:37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기획팀장

[매일춘추]진정한 관객

10여년전 미국 '위싱텅 포스트'지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워싱턴 랑팡플라자역에서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에게 거리의 악사처럼 허름한 옷을 입고, 35억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거리에서 연주해 보라고 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스타인 조슈아 벨을 알아본 사람들이 사인해 달라고 마구 덤비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행인들은 그를 알아보기는커녕 그 아름다운 음악을 귀담아듣는 사람조차 없었다. 다들 휴대전화로 통화하느라 정신 없었고, 바삐 출근하느라 걸음을 멈추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역내의 구두닦이만이 그 음악을 알아들었다고 한다. 조슈아 벨은 이날 35억짜리 바이올린으로 45분간 연주하여 150달러를 벌었다. 영국 런던의 워털루역에서도 미모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타스민 리틀이 같은 이벤트를 했다. 45분간 길러리에서 연주하는 동안 다녀간 1000여 명의 행인 가운데 8명만이 발길을 멈추었고, 이날의 연주로 그녀는 14파운드 10실링(2만 5000원 정도)을 벌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교수가 출근길에 청바지와 허름한 남방을 입고 강남역에서 70억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연주를 했다. 이날 5명의 관객만이 그의 연주에 귀를 귀울였고, 그는 연주로 1만 6900원을 벌었다. 이 실험 결과들을 보면 브랜드, 스타성에 영향받고 좌우되는 건 비단 우리나라뿐만은 아닌 것 같다. 클래식 문화의 선진국 미국에서도 꽃미남 조슈아 벨을, 영국에선 타스민 리틀을 몰라보고, 탁월한 그들의 연주를 알아채지 못했다니 말이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악기들로 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스타의 명성을 좇아 티켓을 사고, 공연장을 달려간건 아닌지, 남들이 박수를 보내니까 덩달아 그들의 연주에 열광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그리고 국제적 명성이나 개런티, 과대광고 등에 현혹되어 내 귀를 맡겨버린 것은 아닌지, 티켓이 비쌀수록 좋은 연주, 실력 있는 연주자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진정한 관객은 화려하게 포장되지 않아도 묵묵히 실력을 쌓아온 내실 있는 연주를 알아듣고, 나태해진 스타연주자의 추락한 연주를 꾸짖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이라 생각한다. 음악회의 계절이 다가온다. 진정한 귀를 가진 관객을 만나길 기다려 본다.

2018-08-16 11:48:08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 대머리 예찬 '독두대감'

전두환 정부가 들어설 즈음 '독두회'라는 이름의 모임이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한자의 대머리 '독'(禿)과 머리 '두'(頭)를 사용하여 '머리숱이 적은 대머리들의 모임'이었는데, 대머리가 약간은 속된 표현이라 '독두대감'이라는 별칭을 쓰기도 했다. 우습기는 하지만 당시 입회 희망자들이 많이 몰려 성황을 이뤘고, 벗겨진 머리가 가로 13cm, 세로 12cm의 심사기준을 통과해야 정식회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세월이 오래되어 근거가 불명확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의 동호회 모임이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더불어 한 때는 머리가 벗겨진 것이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인류의 반은 대머리라고도 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대머리가 될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배우인 브루스 윌리스, 숀 코넬리, 스포츠 스타인 마이클 조던(농구)과 지네딘 지단(축구),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역시 탈모가 더 당당한 유명 톱스타들이다. 한국인들의 경우는 서양과는 다르게 모발에 극히 예민한 것은 사실이다. 탈모를 숨기고 결혼한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할 생각이라는 여성과 친구의 대머리 놀림에 화가 난 살인청부, 대중교통 이용시에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의자에 않지 못하는 우리나라 탈모인들의 웃지 못할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이는 분명 문화의 차이가 큰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머리를 보기에 좋지 않다는 약점으로 생각하지만 서양에서는 대머리가 총명한 이미지와 특별함으로 인정된다. 영어로 대머리를 2가지로 분류하자면, 'Bald'와 'Egghead'로 나뉜다. 'Bald'는 머리가 벗겨진 상태나 사람을 의미하고, 'Egghead'는 머리카락이 없음과 인텔리한 사람 모두를 뜻한다.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스티븐슨은 대머리였다. 그는 똑똑하고 명석한 인텔리 이미지를 가진 지식인의 상징이었는데, 어느 칼럼니스트는 그를 'Egghead'라 부르며 칼럼에서 "모든 지식인은 스티븐슨을 사랑한다"라고 적기도 했다. 이후 'Egghead'라는 단어는 지성적으로 부각되면서 리더와 권위, 영향력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표현됐다. 밤 기운이 서늘해지는 입추와 한창 더운 말복이 지나면서, 곧 가을을 맞이하면 머리카락도 더 많이 빠진다.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에 서러위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맞는 기분처럼 슬픔을 느낄 것이다. 이처럼 머리숱과 낙엽 타령하는 것도 어쩜 뭔가를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남성으로서 여성에게 관심받고 싶은 마음, 타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우월감,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내 마음의 고집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누구든 맨머리의 결핍만 본다면 상대의 지성을 알지 못할 것이고, 스스로 수신하고 있다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18-08-15 18:22:55

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매일춘추] 험한 세상, '연극처럼 생각하기'

어느 때 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분노조절 장애'라는 단어가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조절 장애를 앓고 있고, 또 이를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의학 용어로는 '외상 후 격분장애'인데 우울증, 불안증이 비슷한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조절 장애는 정신적 고통 혹은 충격을 겪지 않고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사회에 대하여 모멸감, 좌절감, 무력감을 느끼는 시대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지난주 칼럼에서 언급했던 '가면'의 한계가 다 했을지도 모른다. 연극 연출을 하다보면, 출연 배우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한 부분이 '감정의 통제'. 무대에 서는 배우는 자기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연극에서 살인을 하는 장면이 있다고 해서, 실제 살인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떤 관객이 안전하게 연극을 볼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우리는 안전이 보장되어 있기에 연극을 보며 웃고 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에게는 '감정의 통제'가 더더욱 필요하다. 사실 감정이라는 것은 만들어 낼 수 없는 요소다. 순간적인 자극과 생각들이 모여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오죽하면 뇌과학자들도 감정이란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아직까지 못찾아 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감정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나의 해법은 '연극처럼 생각하기'다. 연극은 극의 형태를 한 예술이다. 또한 체험의 예술이기도 하다. 감정의 통제가 이루어지기 어려울 때에는, 이 모든 상황이 연극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처럼 말이다. 사실 이와 같은 방법은 현재 쓰여지고 있는 기법 중 하나이다.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에서도 여러 연극인들을 기업으로 파견해 연극수업을 하고 있다. 앞서 말한 '연극처럼 생각하기'가 직장 내 동료 혹은 고객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감정의 통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선의의 관계가 무너지고, 감정의 통제가 이뤄지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상상하지도 못한 충격적이고, 끔찍한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살아간다. 사람들이 격분하는 경우가 잦은 시대다. 이 험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사회라는 연극 무대 위에서 어떤 특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렇다면 감정통제가 불가능한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극' 쯤으로 여기며, 조금 덜 분노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2018-08-15 12:50:22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빗물에 실려 온 150여년 전의 일기

이번주 16일(목)이 말복, 다음주 23일(목)이 처서다. 이젠 더위도 한풀 꺾일 때가 됐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다. 한달 가량 계속됐던 폭염이었지만 며칠 전에도 스콜(열대성 강우)처럼 간간이 단비가 내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내가 즐겨듣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병약했던 쇼팽은 요양을 위해 연인과 함께 마요르카 섬으로 장기여행을 나선다. 쇼팽의 나이 서른 살 무렵의 이야기다. 하지만 마요르카 섬에서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 만큼 탐탁치 못했다. 지중해성 기후로 비가 계속 내리는 날들이 이어졌고, 폐결핵 증상을 보였던 쇼팽을 받아주는 곳이 없어 거처도 가까스로 구해야만 했다. 쇼팽은 자신이 머물던 집을 '바람의 집'이라고 불렀다는 걸 보면, 바람마저도 거셌던 모양이다. '피아노의 시인'이라고도 불렸던 '쇼팽의 24개 전주곡(24 Prerules, Op.28)은 이렇게 그가 요양하고 있는 동안 작곡됐다. 이 작품은 간결하고, 각각 서로 다른 주제의 선율로 이뤄져 있어 '오선지의 일기'라고도 불린다. '빗방울 전주곡'은 이 중 15번째 곡이다. 거센 비가 몰아치던 날, 식료품을 구하러 간 연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쇼팽이 외로이 홀로 피아노에 앉아서 불안한 맘으로 빗소리를 들으며 이 곡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첫 소절부터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려오고, 중간 부분으로 넘어가면 먹구름이 점차 짙어져 폭풍우처럼 묘사된 부분이 있다. 조용히 음미하면, 무겁고 깊게 느껴지는 어두움에 죽음의 공포와 절망감까지도 함께 묻어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소설가)가 무사히 집에 도착했을 때, 쇼팽은 눈물 범벅이 되어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상드의 저서에는 당시 쇼팽이 "물방울들이 가슴을 내리친다"며 환각에 괴로워했다고 적고 있다. 그녀는 그날의 비를 '쇼팽의 눈물'이라고 남겼다. 당시의 악보를 보면, 각혈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병세의 심각함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쇼팽은 그 이후 얼마 가지 못하고, 향후 39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감미롭고도 섬세한 그의 작품은 사후 150년을 넘기고도 여전히 변함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주 듣는 빗방울 전주곡이지만, 매일 다른 하루처럼 매번 다른 느낌으로 들리는 것이 신기하다. 대프리카(더운 대구)의 한 여름에 가끔 듣고 있는 빗소리를, 먼 옛날 지구 반대편의 쇼팽도 듣고 있었을까.

2018-08-14 12:00:10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 당신의 분노조절 장애

누군가를 미움을 넘어 경멸해 본 적 있는가. 사람에 대한 분노가 그것을 용납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로 번진 적 있는가. 그것이 돌고 돌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자신에 대한 분노가 된 적은. 하필 그 때, 당신이 내 앞을 지나가다 기폭제가 된 것일지도, 물벼락을 맞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분노가 나를 갉아먹을 때가 있다. 상대방은 기억도 못하는 상처를 혼자 입고 아파할 때가 있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지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좌절이나 분노처럼 보기 싫은 감정일수록, 방어적으로 행동하거나 상대를 외면하기 쉽다. 내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비난의 화살을 바깥으로 돌릴 때도 있다. 내 안에 머물게 하다가는 내 속이 다 타버릴것 같거나, 자신의 무능한 모습을 직면하기 두렵기 때문이다. 분노조절 장애인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사자일 수도 있고, 공작일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다. 그를 대하는 사람들은 똥이 무서워 피하는 것일 수도 있고, 더러워 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화를 참을 필요가 없어서, 분노조절 불능의 상태에 이른 사람들도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화나는 일도 있고, 억울한 일도 겪게 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상급자나 갑의 위치에 있으면, 충동을 억제해야 하는 의지나 필요성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반면 하급자나 을의 입장은 화를 참을 수 있어서 참는 것이 아니라 참아야 하기에 참는 것이다. 반면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또한 분노조절 장애가 아닐까. 사람이 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처럼 화를 내야할 때와 표출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오히려 엉뚱한 시점에 누적된 화가 폭발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부인해오던 사람이 스스로 감정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이는 전통적으로 화를 참고 타인을 용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지나친 분노억제 또한 스스로를 병들게 만든다. 분노조절 장애는 의학적인 정의일 뿐만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사회에 대한 절망 때문일까. 분노에 대한 임계치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 듯하다. 감정은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그것을 흘려보내는 과정도 중요하다. 괜찮은 척, 아닌 척했던 감정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한다. 어쩌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하다는 자기고백일지도 모르겠다.

2018-08-13 13:35:14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기획팀장

[매일춘추]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

위대한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리스트였다. 심한 근시였던 그는 앞에 놓인 악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어, 매번 연주 때마다 외워서 연주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은 오페라 공연 중간에 청중들의 조소와 야유로 지휘자가 더 이상 공연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황한 오케스트라 단원과 가수들은 고육지책으로 토스카니니를 대리 지휘자로 추천했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 곡을 전부 외우고 있던 사람은 오직 토스카니니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을 계기로 위대한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했다. 레너드 번스타인 또한 대타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25세 때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임명되었었는데, 당시의 객원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독감으로 앓아눕자 대신 지휘대에 올랐다. 이 연주회는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에 전파됐다. 이로 인해 잘 생긴 청년 지휘자 번스타인은 역사상 최초로 자국(미국) 출신의 뉴욕필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게 되었다.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완성한 지휘자 유진 오르먼디에게도 이런 행운이 찾아왔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주가를 올리던 그는 생계를 위해 삼류 뮤지컬 극장에서 콘서트마스터로 일을 했다. 위대한 음악가를 꿈꾸던 그가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내던 중 기회가 왔다. 갑자기 병마로 쓰러진 지휘자를 대신해 지휘봉을 잡아 대성공을 이뤄냈고, 지긋지긋한 삼류극장을 탈출하게 됐다. 그에게는 또 한번의 기회가 있었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던 토스카니니가 병으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을 못하게 되자, 그 대역으로 지휘를 하게 됐다. 마침내 그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성악계에서도 스타의 탄생은 있었다. 196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테너 프랑코 코렐리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공연을 취소하자, 당시 27세의 무명 테너가 대역을 맡았다. 그가 세계 3대 테너로 칭송받고 있는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역시 1963년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라 보엠' 첫날 공연 직후 갑작스럽게 출연을 취소하게 되자, 남은 공연을 맡게 되면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대타가 '새로운 스타'로 뜬 경우는 음악계에선 종종 있으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면 대신 연주를 하거나 지휘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이다.

2018-08-09 11:44:30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 365일인 이유는 36.5℃로 살아라

그리스의 어떤 철학자는 "환자에게 열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어라. 그렇게 하면 나는 어떤 질병도 치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아인슈타인 의과대 아르투로 카사데발 교수는 체온에 따라 사람이 사용하는 에너지와 세균이 줄어드는 비율을 이용한 방정식을 만들었다. 이 방정식을 분석한 결과 35.9℃에서 37.7℃ 사이가 가장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세균감염을 잘 막는 온도라는 결과가 나왔고, 이 온도가 사람의 평균 체온인 36.5℃와 일치했다. 사람의 평균 체온에서 1℃씩 떨어질 때마다, 기초 대사량과 면역력 그리고 혈액순환이 현저하게 저하된다. 저체온화가 지속되면 체내의 당분과 고지방 등이 연소되지 않아 살이 찌는 것은 물론이며 고혈당과 고지혈증, 암과 같은 질병이 찾아오기도 한다. 열은 몸 속에서 질병의 원인이 되는 노폐물을 태워 폐 또는 피부를 통해 바깥으로 배출시켜 피를 맑게 해준다. 이는 근본적인 질병치료에 아주 필수적인 요인이다. 체온을 올려 질병을 치유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운동과 소식, 복식호흡, 릴렉스 등이 있는데 여기에 더하여 중요한 것은 불을 이용한 경락관리다. 화룡 경락관리는 불을 피부에 간접적으로 자극시키는 바디 관리이다. 불이 가지고 있는 양의 기운으로 인체를 자극하여 체온를 높여주고 경락의 흐름, 즉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음과 양의 부조화를 잡아준다. 몸 속의 차갑거나, 따뜻한 기운을 조화시킴으로써 면역력을 증가시키고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들어준다는 이론이다. 더불어 각 장부의 기능을 원활하게 하여 배변활동과 혈액순환을 돕고, 수족냉증에는 일반 경락의 10배에 해당하는 효과가 있다. 화룡경락은 동양 마사지의 대표적인 관리방법으로서 중국이 시초이며, 고대 황제들이 궁궐에서 받아왔다고 한다. 마사지의 기원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것이 치료수단으로서 학문적으로 확립된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 아라바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몸은 100조 개의 세포가 살아있는 하나의 세계다. 사람도 너무 춥거나 더우면 생활하기 힘든 것처럼, 우리 몸의 세포도 생명활동을 하는 데 적당한 열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건강함은 얼마나 적절한 체온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사람의 건강한 온도는 36.5℃. 그 이유는 1년 365일을 36.5℃의 온도로 늘 변함없이 건강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하늘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2018-08-09 10:31:52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