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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자란다고 아프다

흔히 어르신들은 심한 감기같은 질병으로 아픈 아기를 보며 두발 동동거리는 어린 부모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란다고 아프다!". 나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님께 여러 차례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정말 신기하게 맞았다. 심한 감기를 앓고나면 기어다니던 내 딸은 두발에 힘을 주며 일어섰고, 또 아들은 생애 첫 걸음을 떼었다. 정말 자란다고 아픈거구나!또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있다. 뜨거운 사랑 끝에 이별을 경험해 본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아픈 가슴이 있다는 건 그 만큼 뜨거운 심장을 가졌다는 증거야"라고 첫 사랑의 아픔을 겪는 후배에게 토닥이며 해준 말이다. 정말 자란다고 아픈 거였다!그런데 나도 내 아이들처럼, 내 후배처럼 최근 들어 이곳 저곳이 아프기 시작한다. 젊은 날 놀면서도 밤을 지새운 적이 없는 내가 어느날 갑자기 별일도 없는데 잠 못 이루기도 하고, 감기가 걸리면 한달씩 간다는 부모님 말씀처럼 여러 날 병원에 다녀도 감기가 잘 낫지 않는다. 나도 자란다고 아픈걸까?나보다 두 서너 살 많은 지인은 늘 손수건을 가지고 다닌다. 예쁘게 화장하고 공식석상에 가지만 연신 흘러내리는 땀방울 때문이다. 더군다나 추운 겨울이라면 그 민망함은 최고조가 된다. 많은 중년 여성들이 우울증과 관련하여 약물복용을 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런 변화는 단지 여성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상담실에 찾아온 중년 남성들은 요즘 자신들이 이상하다고 토로한다. 왕년에 잘 나가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의 중년남자는 드라마 시청에 갑자기 눈물이 나고, 후배들에게 저하된 업무능력을 들키지 않으려 노심초사하며 지낸다. 갑자기 나는 왜 이럴까? 남들이 흔히 말하는 여성 호르몬이 많이 생겨서 그럴까? 예전에는 거뜬이 해낸 일들이 자신이 없어지고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않아 긴장까지 한다. 그리고 아무일 없는 듯 또 아침이면 묵묵히 출근한다.갑작스레 체감하는 노화현상은 성인이 된 지 20년이 지난 중년기에게 적지않은 당혹감으로 다가온다.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어느날 낯설어지는 느낌 그게 바로 중년기이다. 정말이지 신체적 변화와 심리적 변화가 동시에 찾아와 격동하는 '제 2의 사춘기'란 표현이 확 와닿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중년기의 힘든 상황에 대한 위로와 격려는 대학입시 속에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하고, 사춘기 자녀만큼 당혹스런 경험은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듯 상담실에 와서 겨우 하소연할 뿐이다. 왜 이들은 아픔을 숨겨야만 할까?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처럼 당당히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지시라도 받은 걸까? 내 생각에 그건 노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노화는 자라는 성장이 아니라 퇴화되는 소멸로 보기 때문이다.'반백년을 살아온 어느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어느날 자궁에 병이 생겨 자궁적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전날 밤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모여 내일이면 사라질 자궁과 이별의식을 치렀다. 딸 둘! 아들 하나! 열 달동안 잘 품고 튼튼히 나아줌으로써 이제 자궁의 역할을 다 한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했다, 그리고 그녀의 늘어진 배 위에 가족들은 따스한 손을 얹고 고별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내일이면 임무를 완결하고 떠나는 자궁에게 말이다.이처럼 노화는 소멸이 아니라 완성되기 위한 자람이다. 소멸되고 퇴화하는 아픔으로 참고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서 완성되려 아픈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예외없이 자신의 생명을 완성하는 그날까지 모두 자란다고 아프다. 중년기도 자란다고 아프다!.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2018-10-09 10:43:46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매일춘추]분위기 전환, '막간을 이용해서'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 가운데 '막간을 이용해서'라는 표현이 있다. 전·후반을 구분하는 경기 사이, 프로그램들 사이 틈새시간을 이용해서 뭔가를 시도할 때 우리는 '막간을 이용해서'라고 운을 뗀다. 심각하며 지루한 어떤 일을 잠시 접었을 때,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막간을 이용해서'라고 말을 시작하면 듣기에 기분이 상쾌하다. 무엇인가 재미있는 일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막간을 이용해서 하는 말들은 대체로 좋은 정보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일종의 분위기 대전환이다.물론 원래의 표현대로 오페라나 연극 같은 공연예술 장르에서 막과 막 사이를 가리킬 때도 '막간'이라고 한다. 실제로 오페라를 구분하는 용어 중에 '막간극'(幕間劇)이 있는데, '인터메조'(intermezzo)라고도 한다. 메조 소프라노나 메조 포르테 등의 음악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어에서 메조란 절반을 뜻한다. 막과 막 사이를 인터메조라고 하며, 나아가 막간극, 또는 간주곡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막간극 인터메조는 역시 그 출발에서부터 분위기 전환이 목적이었다. 17, 18세기 길고 지루한 오페라가 주로 유행이었던 무렵,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 프로그램으로 막간극을 끼워 넣었다. 그런데 이 막간극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주객이 전도됐다는 배경도 있다. 상큼하고 재미있는 막간극을 보기 위해 지루한 오페라를 견뎠다는 이야기다. 훗날 막간극은 '오페라 부파' 즉 희가극으로, 한 발 더 나아가 '오페레타', 그리고 '뮤지컬'로 발전해갔다.막간극으로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가 내일 무대에 오른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통해 소개될 소극장 오페라로서,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가 그 대표작이다. 대담하고 영리한 하녀가 주인을 쥐락펴락하다가 마침내 마님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내용으로, 가벼우면서 풍자가 넘치는 매력이 있어 기대된다.지난달 14일에 시작한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절반이 넘어 지나갔다. 개막작 '돈 카를로'에 이어 창작오페라 '윤심덕, 사의 찬미'까지 전석 매진의 열기 속에 숨가쁘게 달렸다. 매번 무겁고 진지하기만 하면 탄력이 떨어지기 쉬우니, 실상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이의 어느 시간일 지도 모르겠다. 막간에 기쁨과 휴식을 주는 인터메조처럼 우리네 바쁜 일상 역시 오페라와 함께 잠시 쉬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8-10-08 14:50:45

임재양 외과 전문의

[매일춘추]왜 그럴까?

전에는 병의 원인에 일정한 패턴이 있었고 예측이 가능했다. 담배 피우면 폐암이 걸리고, 자극성 있는 음식을 먹으면 위암에 걸리고, 술을 많이 마시면 간암에 걸리고, 육식을 좋아하면 대장암에 걸리다고 얘기를 했다.그때는 환자에게 얘기하기가 쉬웠다. 담배를 피우지 마세요. 술을 많이 마시지 마세요. 채식 위주의 건강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면 효과도 있었고 끝이었다.젊은 사람들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검진을 하러 오면 그냥 진찰만 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고 다른 검사를 하지 않았다. 대부분 암은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나이 70세 넘으면 암 검진을 하지 말라고도 했다. 진행도 느리고 증상이 있고 발견을 해도 치료가 잘되었기 때문이었다.요사이는 이런 상관관계가 무너졌다.폐암의 40%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다. 유방암의 90%는 집안에 암이 없고 수유를 했어도 걸린다. 채식을 하고 살이 찌지않고 자주 운동을 하는데도 고혈압,당뇨가 있고 뇌졸증이 생기기도 한다.나이가 10대인데도 암이 걸리고, 나이가 80대인데도 암이 빠르게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많은 원인들이 있지만 큰 줄기로 보면 주위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먹는 음식, 숨쉬는 공기는 급격하게 나빠졌고, 화학 제품으로 만든 편리한 생활 용품은 우리 몸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열악한 조건에서 살아남은 인간의 진화 능력으로 볼 때 분명 몇 백년이 지나면 이런 상황을 이겨내고 다른 형태의 인간으로 살아 남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우리들이 아프다. 그리고 혼동스럽다. 복잡해진 원인들을 모두 조심하기도 힘들 뿐더러 완벽하게 조심해도 100% 병을 예방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복잡한 원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 나가자. 우선은 조기 검진을 하면서 병을 빨리 발견해서 치료의 확률을 높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 다음 가장 중요한 원인들을 이해하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면 의외의 결과를 얻으리라고 확신한다.임재양 외과 전문의

2018-10-04 11:48:54

유병천 E.World 대표이사

[매일춘추]83타워에서 대구를 보다

벌써 4년이 흘렀다. 오늘도 대구83타워길을 걸으며 첫 출근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새벽녘,설렘과 긴장 속에오른 KTX는 1시간 40분만에 동대구역에 나를 내려 놓았다. 그동안 서울 출근길도 매일 아침 1시간이 넘게 걸렸던 걸 생각하면 대구는 서울에서 아주 가까웠다."대구 83타워 가 주세요""어디라꼬요?"내가 첫 만난 택시 기사님은 그곳을 몰랐다. 다시 "이월드요!" 또 모른다. 급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우방타워"라고 이야기 했다. 그제서야 기사님은 "아! 우방랜드"라며 길을 찾아 가기 시작했다.사물의 이름은 존재를 규정한다고 했던가? 지금은 대구 83타워, 이월드를 대구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으니 4년의 노력과 세월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다. 멀리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83타워가 우뚝 서 오늘도 나를 맞아준다. 양 옆으로는 여의도 윤중로 보다 3배나 많은 벚꽃나무들이 가지런히 펼쳐져 있다. 매년 벚꽃축제 기간에는 수십 만명이 걸어가기도 하고, 몇시간 뒤 타워가 개장을 하면 하루에 수천 명이 대구의 풍경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나무 위를 뛰어다니는 청설모들과 인사도 하고 ,타워 뒷동산에서 살고있는 꿩이 유유자적 걷는 장면을 목격할 수도 있다.이 멋진 도로 위를 걸어가며 고목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듬뿍 들이 마시며 출근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하고 남다르다는 생각에 마음속에서 삶에 대한 감사가 올라온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발 312미터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가면 기압차이로 인하여 귀가 약간 먹먹해 지면서 굵은 침을 한번 삼켜야 하고, 평소보다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 하는 것을 느낀다. 대구의 심장이며 상징인 이곳 전망대에서 360도 돌아보면 883.63㎢ 대구시 전역이 시야에 들어온다.대구의 젖줄인 금호강과 신천은 오늘도 유유히 대구의 역사와 함께 흐르고, 3년전 개통한 지하철 3호선 역들은 도심의 곳곳을 연결하고 있다. 동쪽을 바라보면 수성구의 높은 주상복합빌딩들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서쪽을 바라보면 반짝이는 금호강을 배경으로 드넓은 성서산업단지가 펼쳐진다. 가까이 있는 달구벌대로를 따라서 보면 대구 근대역사의 상징인 계산성당이 보이고 반월당 백화점 건물들 사이로 복잡하면서 활기찬 대구 도심의 모습이 펼쳐진다.대구가 한 눈에 보이는 83타워. 그 시선을 따라 대구의 역사와 대구 사람의 삶들이 흘러간다. 대구는 대표적인 분지형 도시의 모습답게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들 곁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 왔다. 시야에 들어온 탁 트인 대구 풍경에 '와우~~'감탄사가 절로 나온다.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선선한 날씨는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려온 우리를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이번 주말에는 대구 83타워 전망대에서 대구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 보며, 잠시 가을을 즐겨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 하다.

2018-10-04 11:39:21

김영남 카이로스 댄스컴퍼니 대표

[매일춘추]'어른'이 된다는 의미

"철들자 죽는다"는 말이 있다.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면 안다', '어른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말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한번 쯤은 하는 말일 것이다. '어른답지 못하다', '어른이 그러면 안되지' 등도 손아랫 사람이 손윗 분의 부적절한 행동을 보고 한번씩 불평삼아 툭 내뱉는 말이다. 새삼 '어른'이라는 말을 한번 꼽씹어보게 된다. 시대적인 변화 속에서 어른의 의미도 조금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결혼한 사람 #3. 나이나 지위 등 항렬이 높은 윗사람. 하지만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말도 사전적 의미만으로 어른의 속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우리가 흔히 어른이 된다고 하는 나이는 주민등록증이 나오는 성인이 되는 만 19세를 말한다. 성인이 된다는 성인식을 치르고도 사전적 의미처럼 결혼을 해야 어른이다 아니면 자식을 길러야 어른이 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형식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어른의 길은 멀기만 한 것 같다.인간은 어릴수록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고, 남의 의견을 받아드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말을 하게 되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높아진다. 경험과 지식이 빈약해 자신의 판단을 행동으로 옮길 때 어려움을 겪는 어린 사람, 쌓인 지식과 경험은 풍부하지만 고집과 아집에 사로잡혀 자신과 맞지 않거나 다른 생각을 가지 사람을 다양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틀린 것으로 간주하거나 고치려고 득달하는 이들이 많이 본다. 어른이 될수록 더 유연해져야 함에도, 마음의 여유는 더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유연한 사고를 가지면서도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바른 판단을 내릴 줄 알고, 다름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이라는 나이는 어디쯤 일까. 정답은 사람마다 천차만별.공자는 '논어'에서 70세를 '뜻대로 행하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하여 '종심'(從心)이라고 불렀다. 대략 정년퇴직도 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나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의미에서 보면 70세의 어른으로서 인격이 완성되는 나이를 말한다. 만 19세만 넘어도 사전적 의미의 어른에서 그 속에 담긴 진정한 뜻을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2018-10-03 13:17:31

[매일춘추]느낌잡기

몇 해 전 상담실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마트의 음료수를 선택하는 순간에도 너무 많은 생각들이 파도처럼 일어나 선택을 잘 못할 때가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선택의 고민은 자신의 색깔을 찾고 싶다는 어느 여대생과 결과에 대한 낙심으로 자신의 선택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취준생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나는 최근의 상담 주제이다.심리학자 로저스는 '인간은 생득적으로 실현경향성을 갖고 태어나며 이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킨다'고 하였다. 하지만 자라는 나무가 주변의 환경을 통해 일그러지기도 하고, 또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부분도 생겨나는 것처럼 인간의 성장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유기체인 인간의 욕구는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 싶어 하는 욕구로 인해 억제되고 변형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적절한 사회적 적응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불행한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선택은 두 개 이상의 욕구가 충돌할 때 고민하게 된다. 또 어느 혹자의 말처럼 선택의 망설임이 자녀 대신 부모가 선택해주는 과잉 양육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결과일 때만 선택의 가치를 부여하는 평가적인 분위기가 하나의 이유가 될 지도 모른다. 아무튼 햄릿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길만큼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하지만 나는 사회적인 걱정과 안타까운 시선과 달리, 이러한 고민을 갖고 상담실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행운아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선택의 어려움을 갖고 상담실에 찾아오는 이들은 적어도 자신의 욕구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욕구를 지나치게 억압하여 온 사람은 자신의 욕구가 있는지조차 구별 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선택이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움직임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 느낌이 있을 때 비로소 선택을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마트의 음료수를 선택하는 것이 고민인 그 아이는 자신의 느낌이 좀 더 선명해진다면 선택의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자기 내부에 귀 기울이고 작은 느낌을 소중히 다루기 시작하는 그 아이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2018-10-02 11:25:01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매일춘추] 천금같은 삶

지난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저녁 무렵이었다. 어정어정 휴일 다 보내고 나니 급기야 남은 시간이 아쉬워서 영화관을 찾았다. 몇 안 되는 관객들 사이에서 본 것은 동화작가 타샤 튜더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였다. 타샤 튜더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막상 이 사람의 책이나 그림을 보면 대개는 아하, 알 것 같다고 할 만큼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타샤 튜더는 그림책의 노벨상이라는 미국 칼데콧 상을 두 번이나 받은 인물로서, 70년 동안 100권이 넘는 그림책을 내놨다. '비밀의 화원' '소공녀'의 삽화를 그렸고 '코기빌 마을축제' 등 코기빌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백악관 크리스마스카드 그림도 유명하다. 살던 곳을 떠나 버몬트주 산골에 30만평 땅을 사들였을 때 이미 쉰 중반의 나이였다. 그리고 30여 년 동안 온갖 꽃들이 흐드러진 정원을 정성껏 가꿈으로써 '천상의 화원'을 얻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사계절 매력적인 타샤의 정원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정원뿐인가. 옛날 방식으로 양초를 만들어 쓰는 모습, 품안에 비둘기를 넣어 기르고, 인형을 만들고, 볕 좋은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는 일상의 여러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10년 전쯤 생을 마쳤으니, 동시대를 산 것과 진배없는데 평범한 우리네 모습과는 자못 달랐다.놀라운 것은, 영화에서 만난 그의 나이가 아흔이라는 점. 할머니 타샤는 카메라 너머의 나를 향하는 듯 지긋한 눈길을 보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꽃들을 보면 행복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다면 사는 장소를 옮겨줘야 하며, 당신도 좋아하지 않는 곳에 산다면 어서 떠나라는 말이다. "인생은 너무 짧다." 즐기라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한다. "예스, 예스 해놓고는 내식대로 했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세상 사람들의 훈수를 밀쳐두고 자신의 주관대로 살라는 충고다. 우리 식으로 치면 조선시대 여인 같은 차림으로 곱게 웃으며 이토록 진보적이고 분명한 조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행복이라는 '천금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하며, 인생은 짧으니 시간을 '천금처럼' 소중하게 쓰라는 말이겠다.타인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살피니,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터덜터덜 갔다가 잰걸음으로 돌아오니 막 새 날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2018-10-01 10:12:26

임재양 외과 전문의

[매일춘추]이상하다

17살 먹은 여고 2학년생이 유방에 혹이 만져진다고 왔다. 기다리는 동안 엄마와 깔깔거리는 소리가 진료실까지 들려왔다. 첫인사로 뭐가 그리 재미있니 물었더니 그냥 사는 모든 것이 재미있다고 해맑게 웃었다.만지는 순간 놀랐다. 암이었다.지리산 골짜기에 살고있는 지인이 자꾸 기침이 난다고 병원을 찾아왔길래, 폐 검사를 권유했더니 폐암이 나왔다. 담배를 피운 적도 없고 한국에서도 가장 맑은 공기를 가진 산골에 있었는데 폐암이라니?나와 비슷하게 현미 채식을 하고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매일 운동을 하는 사람이 검진을 했더니 고혈압, 당뇨, 고지혈 흔히 말하는 성인병 3종 세트가 모두 보인다고 상담을 왔다. 약은 먹기 싫다니까 생활습관을 바꾸라고 병원에서 건강한 생활 습관을 권유하는데 자기가 참고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당황스럽다고 했다.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세상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대표적으로는 기후 변화를 얘기하고 있고 점점 이상하게 변하는 계절의 변화를 걱정하고 있지만, 병을 다루는 의사들 또한 병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아토피가 많아졌고, 아이들 주의 결핍인 ADHD 가 많아져서 수업이 지장 받을 정도라고 한다. 생리 이상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20%에 육박하고, 남자들 정자 수가 25%는 줄었다. 결혼도 적게 하지만 애기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각종 암은 관리 가능할 정도로 치료 기술이 발달했지만 매년 생기는 암의 숫자가 치료하는 숫자를 넘어서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주위에 왜 이렇게 암 환자가 많은가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암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증가하리라는 전망이다.나는 의사생활 38년째이다. 경험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과거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사는 것이 마냥 재미있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환경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 이상하다.앞으로 10여차례에 걸쳐 무엇이 문제이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실마리를 풀어 보고자 한다.

2018-09-27 14:45:38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적절한 나아감과 물러남의 미학

중국 남북조 시대에 '장승요'라는 인물은 안락사라는 절의 주지 스님의 부탁으로 벽화를 그렸다. 구름을 가르며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같이 꿈틀거리는 몸통과 단단해 보이는 비늘, 날카롭게 뻗은 발톱이 그려진 그야말로 생동감 넘치는 용 그림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용의 눈에 눈동자가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용의 눈동자를 그려넣으라고 요구했고, 장승요는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눈동자를 그렸다. 그 순간 용은 용솟음치며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마지막 점 하나로 그림속의 용은 실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화룡점정'에 대한 이야기다. 그냥 두어도 완벽할 것 같지만 무언가 하나만 더한다면, 더 이상 건드릴 것이 없는 최고의 걸작이 된다는 의미이다.영화든 소설이든 역시 끝(마무리)이 좋아야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어떤 작품이든 끝이 허무하면, 뭔가 허전하면서 공연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삶에 있어서도 고진감래(고생 끝에 즐거움이 있다)하면서, 정상에 올라가는 것 못지 않게 명예롭게 내려올 줄 아는 것도 인생의 긴 여정에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일 것이다.영원함이란 없는 것이 우주만물의 이치인데, 평생 지속되는 청춘이나 성공을 바라는 인간의 욕구는 어차피 불가능하다. 단지, '자신만은 영원하리라'는 착각을 하고, 욕심에 얽매여 물러남을 거부하다 결국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적절할 때 물러나는 것을 '호둔'(好遯)이라고 한다. 군자는 호둔하기에 명예롭고 아름답다 하였는데, 소인은 그렇치 못하고 물러나기를 거부하다 추하게 된다고 했다. 또한 물러남의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면, 오히려 그동안 쌓은 공적과 명예가 빛을 발하지 못한다.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지도자로 불리던 우루과이 호세무히카 대통령은 성공적인 경제성장 뿐 아니라 소통과 믿음의 리더십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퇴임할 무렵 지지율이 무려 63%나 되었고, 국민의 간곡한 연임의 청을 뿌리치고 취임식 때 몰고 왔던 28년 된 낡은 자동차로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누군가로부터 칭송받고 인기가 높아지면,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한 법이니, 항상 지나침을 경계해야 한다. 시작보다 어려운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며, 나아감보다 더 힘든 것이 물러남이라 했다. 물러남에는 용기있는 결단이 필요하고, 시기를 놓치면 매사가 작아진다. 대나무는 마디가 있어 옹골차게 높이 자라듯, 우리의 인생도 적절한 나아감과 물러남이 있을 때 화룡점정의 기회도 누릴 수 있다.

2018-09-27 11:04:05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당신의 당신

이상적인 당신을 꿈꾸지 말라. 갖고 싶은 것과 가질 수 있는 것, 누구에게나 이 사이의 간극은 존재한다. 얼마 전 야망으로 가득한 당신을 봤다. 당신 곁에는 오롯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연인이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보다 나은, 그럼으로 인해 신분을 상승시켜줄 수 있는 배우자를 원했다. 그런 배우자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당신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일, 돈, 명예 등 당신 만큼이나 중요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인과 같은 사람만이 당신을 감당할 수 있음을 알았다.당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이상적인 나와 실제의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상적인 기준을 향해 갈 때는 자존감이 생긴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준에 미달하면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이상적이라는 것은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계획대로 되겠지만, 이내 좌절하게 될 것이다. 가장 좋은 성과를 기준으로 매일을 산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으니까. 환상은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나에게 맞는 이상사회를 찾아 영원히 방황해야 할 테니까.직함은 당신이 아니다. 직장에서 존경받지만, 가정에서는 외면받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생활에서는 직위, 재산, 명예에 대한 존중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남의 시선이 곧 나인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다.국회에서 일할 때다. 국회는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이 있으니, 소위 '갑중의 갑'이라고 불린다. 대기업 총수가 국정감사에 불려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부터, 지역구 사업예산을 달라며 읍소하는 이들을 자주 봤다. 하지만 그들의 속이 겉과 같겠는가. 이 분에 겨운 대우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착각하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국회를 나오는 순간 한낱 보통사람이 될 테니까.집과 회사를 오가는데 치여서 '진짜 나'가 사라진 것 같을 때가 있다. 관계는 있지만 '함께' 하지는 않는다. 관계를 감당하는 것마저 노동일 때가 있다. 이렇게 아프고 귀찮은 감정에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받아야 하는 것일까. 당신도 나도 외롭고 나약한 존재인데, 환상적인 존재인 것처럼 보여야 할 때가 있다. 그 괴리에서 오는 공허함과 부담감은 생각보다 크다. 누군가는 '신속하게 돌아가는 채널처럼 어지럽고, 최대로 키운 볼륨처럼 시끄러운'이라고 표현한 이 세상에서 화려함 속의 고독함을 찔릴 때, 그 부끄러움을 애써 감추려 하고 있다. 그 비뚤어진 자의식이 당신에게 상처주지 않기를.

2018-09-26 15:32:19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하루 12번 포옹 어때요?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아래에서 정상까지 사랑을 빼고 인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크고 작은 사랑 속에서 살아간다.사랑은 큰 바다와 같으면서도, 누구에게나 가슴 떨리는 늦었지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살아있는 진정한 자기계발의 일면도 담고 있다. 때론 애정과 집착의 경계가 모호하여 질투와 배신의 양면성이 있긴 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근본적으로 그것을 품고 있다.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4번의 포(Four?)옹이 필요하고, 그럭저럭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하루에 8번의 포옹이 필요하며, 풍요로운 삶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12번의 포옹이 필요하다는 버지니아 사티어의 말이 의미심장하고 흥미롭다.'안아주다'라는 말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끌어안다'라는 뜻으로 우리말에 '얼싸안기'라는 말과 비슷하다. '얼싸안는다'는 말은 '몸을 끌어 안는 것이 아니라 얼 즉 정신을 감싸 안는다'는 뜻이다.진실로 사랑하는 남녀는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된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효과로 서로를 닮아가는 것이다. 자주 밥만 같이 먹어도 입맛이 닮아가고, 자신의 감정을 허물고 대화하다 보면 생각도 닮는다. 함께 웃고 울다보면, 두 사람의 얼굴 주름까지 비슷해진다고 한다.아버지가 어린 아이를 하늘로 높이 던지고 받기를 반복할 때, 아이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재밌어 깔깔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한다. 아버지가 받아줄 것을 확실히 믿고 있고, 이러한 신뢰와 믿음의 관계는 서로를 강하게 엮어 준다.사랑에는 대상에 따라 수없이 다양한 양상이 존재한다.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형태 외에도 남녀의 뜨거운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스승과 제자 또는 형제간의 사랑, 동료 간의 사랑도 있다.사랑이 이토록 많은 것은 사랑이야말로 서로 다른 감정들을 하나로 모으는 총체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보편적이고 영원하다고 말하는 이유와 문학에서 가장 일반적인 주제로 치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인간의 감정에서 사랑만큼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관계에서도 보듯 인류 최초의 사건도 사랑이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을 때, 쳐다만 봐도 마음이 뜨거워지고 견딜 수가 없어서 그녀를 위해 7년 동안 종살이도 감수했다. 이처럼 사랑은 눈을 멀게 하고, 상상할 수 없는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사랑에 그 어떤 미사어구를 가져다 붙인들 틀린 말이 될 수 있을까.

2018-09-20 11:35:21

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매일춘추]버려진 시장통 무대를 살려보자

얼마 전, 한 시장의 무대에서 공연을 한 적 있다. 아,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여러 군데의 시장에서 공연을 해 왔었다. 나도 거리에서 경력을 쌓은 것이 많기 때문에, 시장이라는 공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또한 우리네 연극은 시장통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이 열리면 광대들이 찾아가 엽전 몇푼 그리고 밥과 찬을 얻기 위하여 광대들은 움직여 왔다.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다. '버스킹'이라는 개념이 왜 생겨났을까. 대구에서 큰 축제인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은 서양에서 많이 했던 거리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대구의 중심인 동성로 자체가 무대가 되는 것이다. 엄청난 장비와 인력이 동원이 되며 전문가들이 동원된다.분명 시장통에서의 공연이었다. 험난함은 준비되어 있었으며, 돌발적인 상황 또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곳에서 고난은 다가왔다. 바로 버려진 듯한 무대에서의 고난이었다. 시장이라는 곳은 분명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대기업이 만들어낸 대규모 마트에게 밀려나기는 하였지만, 향수에 떠밀려 그리고 아날로그적 감성에 이끌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연극쟁이의 시선으로 보자면 관객천지의 공간이다. 그런데 그곳의 무대들은 버려져 있었다. 관리의 소홀과 전문가들의 부재 때문이었다. 시장 공연장 담당자들의 대부분은 전문가가 아니라 첫 공연기획자가 손을 대놓은 상태 그대로 똑같은 패턴의 공연들만 반복하는 공무원 혹은 비전문가들이었다.시장통 무대의 담당자들에게 "여기 전기는 몇 킬로와트까지 끌어 쓸 수 있나요", "이곳의 사운드는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나요" 등 공연상황에 대해 물으면 당황한다. 더불어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물어보면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르겠습니다" 혹은 "제가 그쪽 담당은 아니어서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이 돌아오기 일쑤다. 시장의 무대만이 아니다. 야외무대의 담당자는 보통 그런 식이다. 그러면 그 때부터는 버려진 무대가 시작된다. 조명과 음향에 대한 시스템을 모르니 공연을 실행하는 이들에게 끌려간다. 하지만 배우나 스태프는 관객이 아니다.시장통 관객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왔으나 끌려가니 속이 상할 수도 있다. 만약 전문가가 한명이라도 있다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버려진 무대들이 나타났을까? 가끔 시장 혹은 관광지에 가서 무대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왜 이런 공간들을 버려두고 있을까. 이 버려진 무대들은 자신의 역할을 하려고 세워졌는데 왜 버려져야만 할까. 이 버려진 무대들을 십분 활용한다면, 대구가 말했던 공연예술의 도시로 한발 도약하지 않을까라는 생각한다.

2018-09-19 12:19:17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매일춘추]초상화와 프로필 사진의 이면

아직 사진이 없던 옛날, 사람들은 초상화를 그려 자신의 얼굴을 남겼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가의 얼굴은 거의 초상화의 이미지일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식탁 위에 놓인 과일 등 유화를 생각해보면, 원근감과 원래의 질감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며 당대 실물 묘사의 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악가들의 초상화 중에서 베토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저분하게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입을 꾹 다문 채 한쪽을 노려보고 있다. 그의 제자가 남긴 기록에는 초상화 당일에 아침식사에 대한 불만으로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다고 남겨져 있다. 그의 작품 또한 얼굴처럼 강한 인상을 풍기기는 것이 많기에, 왠지 악보도 불같이 써 내려갔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베토벤만의 카리스마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옷도 너무 허름하게 입고다녀, 길을 걷다 부랑자으로 오인받아 체포된 적도 있다. 이 일로 나중에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장의 사과를 받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로시니의 초상화는, 넓고 퉁퉁한 얼굴에 우람한 몸집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미식가로 먹는 것을 엄청 좋아했다. 37세에 완성한 오페라 '윌리엄 텔'을 뒤로는 오페라 작곡도 그만두고, 요리의 창작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경영에 힘을 쏟으며 남은 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처럼 초상화는 당대 인물들의 특징을 잘 파악해, 후세의 우리들에게 그 모습을 정확하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야흐로 시대는 발전하였고, 화가의 초상화는 이제 사진으로서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어쩌면 실연보다 오래 남겨지는 것이 공연 팜플렛이기에, 연주 만큼이나 신경써써 준비하는 것이 프로필 사진이 아닐까.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헤어 및 메이크업은 필수사항이다. 오늘 멋진 사진을 남겨보리라며 굳은 각오로 스튜디오에 들어서지만, 조명과 반사판이 들어선 낯선 환경과 바로 코앞에서 이뤄지는 근접 촬영에 어색한 미소만 반복된다. 카메라맨의 직업 칭찬에 긴장도 조금씩 풀려가고, 연예인이 된 듯 카메라맨의 세세한 지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수고하셨습니다'란 인사를 끝으로 촬영이 끝난다. 하지만 진짜 중요작업은 어쩌면 여기서부터다. 100여 장에 달하는 사진 속에서 매의 눈으로 최고의 사진을 선정하고, 최종 완성본 사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몸무게 -5kg, 실제 나이보다 -5세 정도는 기본이다. 만족스런 나의 프로필 사진 완성. 사진이란 본래 초상화보다 정확하게 피사체를 비춰내는 것이지만, 최근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기술의 진보와 함께 도리어 실물 묘사의 정확성은 떨어졌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초상화이든 사진이든 공통점은 그 한 장을 위한 남다른 수고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2018-09-18 11:55:29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자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해야 한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뜻일까. 남의 돈벌기란 쉽지 않다. 사람은 저마다 재능이 다르다. 모든 분야에서 잘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평균을 바란다. 잘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부족함을 채우는 '열심히'의 방식에 너무도 익숙하다. 잘할 수 없는 것을 꼭 해야 할까. 어떤 일을 좋아하면 잘할 가능성이 높고, 잘하면 만족하게 된다. 하지만 이 둘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원하는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 힘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별히 못하는 일은 아니지만 해야만 해서 하는 사람이라면 이 갈등어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이 둘이 일치하는 사람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자기계발서라면 한번쯤은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임질 수 없는 희망을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그리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인생에서 단 하루도 일을 안하는 셈이란다. 말은 쉽다. 가슴이 뛰는 일을 찾은 이가 몇이나 될까. 평생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메세지가 중요하긴 해도 현명하지는 않은 것 같은 세상이다. 좋아하는 일이 업(業)이 되었을 때, 더 이상 그 일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성과가 주는 스트레스는 같을 테니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이 어른스러운 조언은 성취를 중시해 온 우리 사회의 면면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을 이기적이거나 먹고살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치부한 면이 없지 않다.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는 동기부여 전문가 앤드류 매튜스의 쪽이 맞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대신 목적을 갖고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잘하지도 않더라도, 어떤 일이든 있기만 하면 좋겠다는 청년들에게는 사치스러운 고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을 하다보면, 금세 이 둘 사이의 줄다리기를 겪게 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보다 우월하거나 고귀한 것은 아니다. 혹자는 잘하는 것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란다.잘하는 일을 하면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다. 그런데 늘 못하는 일을 잘하려고 하니 열심히 할 수밖에.

2018-09-17 11:32:13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기획팀장

[매일춘추]불광불급(不狂不及)

베토벤의 생가에는 그가 생활하던 거실 한가운데 생전에 베토벤이 사용하던 피아노가 놓여 있다. 그 피아노의 건반은 온통 움푹움푹 패여 있는 모습이다. 그 흔적은 그가 얼마나 열심히, 쉬지 않고 절실히 수많은 시간을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며 작품을 만드는데 몰두하며 살았는가를 증명해 준다. 참으로 천재는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이다, 피아노의 대가 루빈스타인은 평소 여행을 가게 되면 소리가 나지 않는 작은 피아노를 가지고 다니며 연습하였다고 한다. 자동차 안이든, 화장실 안이든 틈만 나면 소리가 나지 않는 피아노로 연습을 한 것이다. 누구도 근접하지 못할, 더 이상의 경지가 없다고 인정받는 세계적인 대가인 그가 왜 그렇게까지 연습을 하는지 그의 제자가 물었다고 한다. 이에 루빈스타인은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자신이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들이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이 압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피카소는 그림에 미쳤었고, 베토벤은 음악에 미쳐서 평생을 살았다. 포드는 자동차에 미쳐 있었고 에디슨은 전기에 미쳐 있었다. 축구선수 박지성, 프로 골퍼 박세리,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상화, 피아니스트 조성진. 그들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신의 분야에 미친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성공을 위해 쏟아낸 과정은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만큼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큰 감동을 준다. 트리나 폴러스의 '곷들에게 희망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간절히 원하면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그럼,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하고는 다르단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애벌레로 사는 것을 포기할 만큼 간절히 원해야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간절했던 적이 있었는지, 진정 미쳐 본적이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직 그 만큼 미쳐서 해 본 것이 없음이 안타깝기도, 후회가 되기도 한다. 미쳐야 미친다고 했다. 한번 사는 인생이다. 단 한번이라고 신명나게 미쳐서 살아보고 싶다.

2018-09-13 11:32:31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2018년 추석 단상

유난히 푹푹 쪘던 여름 날씨가 9월 들면서 거짓말처럼 선선해져 간다. 그러면서 갑자기 가을이란 단어가 생각나고 가진 것이 없어도 풍요롭게 느껴지는 추석이 다가왔다. 알차게 익었을 곡식과 과일의 추수에서 오는 수확의 기쁨도 크겠지만, 물질적인 가득함과는 또 다른 풍요로움이 추석에는 깃들어 있다. 우리나라 고유 명절인 한가위라 불리는 추석은 가을 중에서도 달빛이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날이라 하여 '중추지월'이라 불리기도 한다. 고대사회에 있어 달은 매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한 달에 한 번은 보름달로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혀 공포와 두려움을 없애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여인의 다산을 달의 정기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영화 '씨받이'를 보면 아들 자손을 낳게 해달라고 보름날 달을 보고 숨을 크게 들이키길 아홉차례, 81번 기통(氣通)시키는 흡월정(吸月情)을 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 민족은 농사를 지으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 농경민족이기 때문에 달을 신성시 했을 것이다. 때문에 1년 보름달 중 가장 큰 보름달이 뜨는 음력 8월15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으로 지내는 것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추석이 다가오는 절기가 되면 어김없이 밤낮으로 날씨가 쌀쌀해져, 사람들은 서서히 가을옷으로 갈아입는다. 오래 입으라고 제 몸보다 훨씬 큰 옷을 사주신 부모님께 불평 한마디 없이 팔소매와 바지단을 접고, 벗겨지는 새 신을 신고 커다란 사과와 배를 주머니에 넣고 손에는 송편을 들고 다녔던 추석날을 기억한다. 달력에 빨간 날이라고는 며칠 없었던 시절 추석은 내 기억에 왜 그리 기다려지던 날이었는지, 눈을 처음 보는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뛰어다녔던 모습이 아련하다. 추석을 맞이할 때 항상 생각나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고향은 내 과거가 있던 곳, 정든 곳, 마음이 쉽게 떠나지 않는 소중한 공간이다. 그곳의 하늘 아래에는 흰 구름이 둥둥 떠다니며, 그리운 어머님의 얼굴이 구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나타났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이렇듯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고전음악 만큼이나 우리의 영혼과 정신을 맑게 해준다. 비록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고 개울이 복개되어 큰길이 났지만, 그래도 그곳에 가면 뭔지 모를 힘이 나고 세상과 맞설 자신감이 차오른다. 요즘처럼 경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고향에 대해 무덤덤해질 때, 꽉 찬 보름달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눠먹고 놀이를 즐기는 즐거운 한가위가 되었으면 한다.

2018-09-13 11:10:59

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매일춘추] 관성의 법칙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이라는 것이 있다. 운동의 상태를 계속하려고 하는 성질이다. 물리적이라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 혹은 정신이 관성의 자세를 가지는 것은 필자가 무서워하는 부분이다. 연극을 만들다 보면 관성이라는 것이 생기는 시기가 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연극을 할 때에 과정이 있다. 우선 작가를 분석하고 적힌 시기를 분석하며 인물을 분석, 상황을 분석하는 과정이 있다. 하지만 연극의 과정에서 관성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하면 분석의 과정보다는 감에 의지한 그리고 하던 대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알맹이가 없는 허울뿐인 작품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연출자 보다는 연기자가 관성의 법칙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보다 많은 작품을 다음 때문이기도 한데 그런 배우들에게 열정을 찾기는 쉽지가 않다.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그런 배우들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배우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우리들의 생활 또한 마찬가지로 관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살던 대로 사는 것이다. 어쩌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우리네 인생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관성과 마찬가지로 내가 경계하는 것은 당연시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관성과 당연시를 같은 말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행동들을 당연시 하는 것들이 나는 관성으로 보는 듯하다. 그것을 경계하는 이유들이 있다. 첫 번째는 작은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연인 혹은 부부 관계에서 그리고 친구 관계에서 관성은 섭섭함을 낳는다. 관계에서의 실수들이 반복되는 것들을 나는 관성으로 본다. 그런 관성들은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이 사람은 이 행동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크나큰 타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크나큰 사고가 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안전 불감증이 관성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인터넷 뉴스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소화전이 울리고 있었다. 그렇다, 고장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신속히 처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반복되다보니 저건 고장이 났으니 저런 거야라는 생각으로 당연시하기 시작했고 고치지도 않았다. 학부모가 학교를 방문하고 그것을 보고 물었을 때 선생님이 고장이 나서요라는 대답을 들은 후 아이를 곧바로 전학을 보냈다고 한다. 물론 큰 사고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겪지 않았던가 당연시하다가 관성적으로 생각하다가 삼풍백화점을 성수대교를 세월호를.우리는 가끔 관성적으로 살던대로 살자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관성에서 벗어나 인지하고 시도하고 새로운 발상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2018-09-12 11:16:29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매일춘추]무대 위의 별별 사건사고

몇년 전, 독창회를 보러 갔을 때에 일이다. 관객 모두 음악에 흠뻑 빠져있을 때, 갑자기 좌석이 움직이는 듯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더니 무대 위에 조명이 흔들거리고, 긴급재난을 알리는 문자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관객이 수근대고, 곧 지진임을 알 수 있었다. 연주는 지진에도 미동없이 이어졌고 흔들림도 곧 잦아들었지만, 일부 관객들은 자리를 뜨기도 했다. 사람 일이란 한치 앞을 알 수 없듯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건 무대 위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흔한 사고는 연주 도중 현악기의 줄이 끊어지는 것이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연주자 간의 배려와 약속으로, 오케스트라의 경우 콘서트마스터부터 옆 주자, 또 그 옆, 그리고 뒤줄 순서로 악기를 이어받아 연주한다. 끊어진 악기는 맨 뒤까지 전달되어 현 교체를 하게 된다. 솔리스트의 악기가 끊어진 경우도 재빨리 콘서트마스터의 악기와 교환하여 연주를 그대로 이어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때때로 관객의 양해를 구하고 무대 위에서 교체를 하는 경우도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굵직한 저음파트의 현이 끊어지면, 연주를 중지하고 현 교체부터 하게 된다. 냉정한 무대의 세계에선 연주자의 컨디션 또한 하나의 실력으로 평가받는다. 연주가라면 공연 당일 컨디션 난조도 본인 책임이다. 이런 탓에 여러 사람이 함께 오르는 오페라의 경우에는 주요 역할 출연자들의 대기역을 언더 캐스팅해서 만약을 대비하기도 한다. 연주 당일의 부상에도 멋진 연주를 해낸,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의 일화가 흥미롭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앞두고, 연주 당일 아침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깊은 상처에도 관객들을 위해 연주투혼을 보였던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완벽한 연주에 앙코르까지 해냈다. 하지만 연주 후의 건반과 바닥에는 보기만 해도 고통이 전해지는 수많은 핏자국을 남겼다고 한다. 무대의 사건사고를 몰래 카메라 마냥 일부러 연출한 작곡가도 있다. 관객을 놀라게 하는 특기를 가진 현대 작곡가 마우리치오 카겔이다. 그는 '실내악을 위한 피날레'라는 작품의 악보에 "지휘자 쓰러질 것", 그 후 "콘서트마스터가 이어 지휘할 것"을 기보했다. 또한 '팀파니 협주곡'이라는 작품에서는 연주 전 미리 팀파니 1개의 가죽면을 아무도 모르게 종이로 조립해 둘 것을 지시하며,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는 악기 속으로 머리를 박으며 뛰어들라며 악보에 친절히 그림까지 그려져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을 다시금 생각해보면, '무대 위의 사건사고' 역시 예술의 한 부분으로서 보게되는 새로운 관점이 아닐까 한다. 무대의 예술가여. 어쩔 수 없는 사건사고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2018-09-10 16:30:19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먼저 태어난 사람 '선생'(先生)

선생님이란 존재를 삶의 대부분에서 잊고 지낸다. 미디어를 통해 교권추락을 접하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는 비단 외부환경의 탓만은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지나온 선생님들 중에는 수줍은 성격을 탓했던 사람도 있었고, 마음의 그늘에 호기심을 보인 이도 있었으며, 수능만이 존재의 이유인 것 같은 사람도 있었다. 다행인 것은 내 글재주를 알아본 선생님 덕에 이렇게 살고 있다는 점이다. 학창시절 선생님은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모든 상처를 포용하고 위로하는 '굿 윌 헌팅'의 로빈 윌리엄스 같은 선생님은 영화나 드라마에나 있었다. 나 또한 사회와 같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시간이 지나서 내 친구들이 선생님이 됐다. 어쩌면 '선생'(先生)이란 말 그대로 먼저 태어났을 뿐. 그 시절의 나는 우리나라 입시제도에 썩 부합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서툰 이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대했다. 하지만 어엿하게 자라지 않았는가. 그들이 보는 건 아주 단편적인 시간이니까. 교사의 역할론에 대한 의문도 든다. 항상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배웠지만, 당신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줬어야 했다. 그렇게 믿었기에 지금 더 아프니까. '정의에는 힘이 없어 정의력이라는 말이 없지만, 권력과 금력에는 그 자체에 힘이 있어 권력과 금력이라 쓴다'는 홍세화 선생의 말을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일부 교사들은 부조리를 방관하거나 일조하는 쪽이기에 전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선생들은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자신부터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 '접인춘풍 임기추상'(接人春風 臨己秋霜)이 좋은 것만이 아니다. '타인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나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냉엄하게'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측면이 있다. 내 안에 자리잡은 아픔이 나를 더 아프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정욕구 만큼이나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법을 몰랐듯이. 이 유난스러운 우울과 좌절이 누군가의 동의를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줬어야 했다. '죽는 것만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에 너무 성실하기 때문'이라는 나카시마 미카의 가사처럼 자신과의 자존심 싸움에서 질 줄도 알아야 하니까. 성적이 전부인 줄 알았던 세상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무너졌다.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와 선택이 버거울 때가 있다. 교사란 성장기에 합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니까, 비단 지식에만 그 역할이 있지 않으리라. 이 세상을 버티는 법, 중간에서도 행복해지는 법,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할 때 그것을 감당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2018-09-10 12:00:52

강두용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기획팀장

[매일춘추]사형수의 사형집행 전 마지막 5분 발언

사형을 집행하던 날, 형장에 도착한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사형수는 마지막으로 주어진 최후의 5분을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작별기도를 하는데 2분 ▷28년간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곁에 있는 다른 사형수들에게 한마디씩 작별인사를 나누는데 2분 ▷눈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지금 최후의 순간까지 서 있게 해준 땅에 고마움을 표현하는데 1분으로 나눠썼다. 5분 발언 도중에 기적이 생겼다. 계획한대로 눈물을 삼키며 가족들과 친구들을 생각하며, 작별인사와 기도를 하는데 벌써 2분이 지났다. 그 다음 2분 발언에서는 지나가버린 28년이란 세월을 소중하게 쓰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 기적적으로 사형집행 중지명령이 내려와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그는 그 후, 사형집행 직전에 주어졌던 그 5분 동안의 시간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그 사형수는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영화 '버킷리스트'(Bucketlist)로 화제를 돌려보자. 불치병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두 사람이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일들(버킷리스트)을 실행하기 위해, 병원을 뛰쳐나와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희망목록들을 실천하고, 세상과 이별하게 되지만 그들이 겪어내는 죽음을 향한 여정이 코믹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그려진다.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일,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일, 잠시 잊고 있는 일들이 우리의 버킷리스트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는 35세에 요절하기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우리에게 남겼다. 한 백작이 먼저 간 아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을 의뢰했다.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쓰며 '이것은 날 위한 음악이 될 것이다'라며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 그리고는 혼신을 다하여 창작에 매달렸으나, 그가 불길한 미래를 예측한대로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제자가 나머지 부분을 완성시킨 이 '레퀴엠'은 불후의 명작으로서 진혼곡 중 단연 최고로 손꼽힌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날들,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집행 전 마지막 5분 발언을 한 것처럼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도 기적처럼 달라질거라 생각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를 후회없이 살아야한다.

2018-09-06 14: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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