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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애 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매일춘추]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한때 이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에서 "항일을 하자니 몸이 고단할 것 같고 친일을 하자니 마음이 고단할 것 같고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말이오."라는 대사가 유행하면서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바람이나 별, 꽃, 웃음, 농담 같은 무용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위무해 준다. 돈벌이에, 아이들 교육에, 인간관계에 지치다 보면 이런 무용한 것들이 우리를 위로하고 지친 마음을 달래 준다. 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런 무용한 것으로 살겠다고 나서는 것이 예술이다.따지고 보면 예술이 언제 무용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예전에는 자식이 예술을 하겠다면 부모들은 가난하게 산다고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말렸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굶어 죽기까지는 아니어도 여전히 가난한 생활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예술은 성행하고 앞으로 더 성행할 것이라고 본다. 바로 그 무용성 때문에.예술은 '즐긴다'라는 말을 흔히 쓴다. 돈벌이를 '즐긴다'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일상적인 생활을 즐긴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부처가 생노병사를 고통이라고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는 것을 고통까지는 아니어도 힘겨워한다. 나는 바로 그 고통 때문에 예술이 여전히 명맥을 이어갈 것이며, 미래에 더욱 더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고통을 겪으면 회피하고 치유하려는 본능이 있는데 예술에는 고통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숨 막히는 교통체증을 감수하면서 도시를 떠나는 이유는 바로 이 바람이나 별, 꽃, 나무, 햇살 같은 무용한 것들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이 무용한 것들을 화가는 화폭에, 작가는 책에, 배우는 스크린으로, 음악가는 노래로 옮겨 놓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예술가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창작한 예술작품을 향유하고 스트레스를 풀며 즐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현상인가. 생활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예술로 치유하면서 예술은 여전히 무용한 것으로 치부한다. 예술이 당장 의식주의 기본적인 생활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 이래로 예술 없는 생활을 상상해 보라. 건축물은 실용적인 뼈대만으로 단조로울 것이며, 옷은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역할로도 충분할 것이며, 생활은 먹고 사는 일로만 영위될 것이다. 죽고 사는 일에 예술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에는 예술이 필요하다. 인간은 동물처럼 먹이와 잠자리만 구하지 않아서 인간이고, 사유와 예술이 있어서 인간이다.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어서 안타깝다. 무용한 것들이 정작 인간의 영혼에는 가장 유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천영애 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2019-01-17 11:58:07

이현석

[매일춘추] 이 시대의 베리즈모(Verismo)를 꿈꾸며..

'왜 사람들은 오페라를 어렵게 생각할까?' 이런 저런 여러 고민을 하던 끝에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냈다. 그건 오페라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상 그러하다, 오페라 연출, 제작하는 사람으로서도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오페라를 접할 때가 있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로 오페라는 음악 외에도 미술, 문학,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들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지는 말 그대로 종합예술인 것이다. 이런 뻔한 오페라의 자랑을 늘어놓는 이유는, 그만큼 제작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수의 오페라를 작곡한 작곡자는 그만큼의 막강한 후원자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의 반증(反證)이 되는 것이다.오페라라는 장르의 시초로 알려진 16세기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다프네(Daphne)부터 바로크시대, 고전파, 낭만파를 거치며 많은 수의 오페라가 등장을 했다. 이러한 시대를 미루어 짐작하더라도 아마, 주요 관객층과 후원 층은 귀족이나, 왕족, 종교계가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부(富)와 재력(財力)이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기에, 그들의 구미(口味)에 맞는 왕족, 귀족, 영웅, 신화, 종교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하지만, 오페라는 그렇게 어려운 귀족의 전유물로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18세기 산업혁명(産業革命)으로 시민계층의 경제적 성장이 가속화 되었으며, 이로 인해 여러 경제활동을 통해 부(富)를 축적한 일반 시민계층 중 일부가 재력가(財力家)층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점차 귀족들의 향유문화인 오페라의 강력한 후원자로 성장하였다.오페라는 전(前) 시대와 마찬가지로 후원자들과 주요 관객층들의 구미(口味)에 맞는 시민계층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 소재로 하여 제작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나타난 오페라가 바로 베리즈모 오페라(Verismo Opera)이다. '베리즈모'라는 말은 사실, 진실의 뜻인 이탈리아어 베로(Vero)라는 말에서 나온 사실주의 진실주의라는 뜻이다. 낭만주의의 시대의 비현실적인 신화적 주제를 거부하고, 평범한 배경의 시민계층의 인물이나 그들의 일상사(日常事)에서 가능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음악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비제(Bizet)의 카르멘(Carmen)이 대표적인 작품이다.지난해 70주년을 맞은 우리의 오페라 제작은 어떠한 모습일까. 어느 계층의 구미(口味)에 맞는 소재로 제작되고 있는 것일까. 강력한 후원자와 주요 관객층은 과연 누구이기에 왕족이나 귀족, 신화 영웅의 이야기에 이처럼 목을 매는 것일까. 이 시대의 베리즈모(Verismo)를 꿈꾸는 것이 아마도 이 시대의 오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해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2019-01-17 11:49:43

김은혜

[매일춘추]단 한사람

좋아하는 동화책 중 미야니시 타츠야 작가의 '고 녀석 맛있겠다'시리즈가 있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처음 이 책을 읽고는 주인공이 희생을 통해 죽거나 다치게 되어 '무슨 동화책이 이렇게 슬프지...' 싶었고, 다시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하고 읽었을 때는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그들은 나에게,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동화는 사납고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육식공룡이 자신을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약하고 작은 공룡에 의해 변해가면서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모습인 '희생'의 가치를 보여주며 오히려 행복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생태계의 법칙을 따른다면 이 동화의 내용은 마땅히 약자는 늘 두려움에 떨거나 죽고 강자는 살아남아 계속해서 포악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야하지만, 이 동화 속에서는 그 강자 역시 사실은 굉장히 외로웠고, 친구가 필요했으며, 때로는 슬프고 괴로웠지만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작은 한 공룡을 만나 그의 삶이 새롭게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사람마다 책을 읽고 느낌은 다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단 한사람, 나를 알아주는 단 한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생태계의 법칙을 무시하고 천적관계에 있으면서도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희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희생을 오히려 기쁨으로 느끼게 된다는 내용은 내 주위에서 힘들어하는 그 누군가를 살펴볼 겨를이 없이 경쟁이 빗발치고, 서로 밟고 일어서야 살아남는다는 우리 삶에서 '진짜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내담자들도 세상에 아무 기댈 곳이 없고 허망하여 무너지려고 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한 사람 앞에서 새 희망을 가지고 다시 탄력성을 회복하여 나가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단 한사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 중 이런 시가 있다. '애 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 한 생명의 아픔 덜어 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 헐떡이는 작은 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오늘 하루 내 삶이 가치 있게 빛날 수 있도록 누군가를 알아주는 단 한사람이 되어 보면 어떨까. 그것은 돌고 돌아 또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삶은 경쟁에서 이길 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살아남게 된다.김은혜 이화아동연구소 연구원

2019-01-16 11:47:28

서영완 작곡가

[매일춘추] 창조적 문화콘텐츠가 경쟁력

예전에 흥행했던 영화를 다시 스크린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을 때가 있다. 배급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개 작품의 흥행을 만들어 내기 위해 쓰게 되는 천문학적인 홍보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너무나 매력적인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그 형식이 이미 필름으로 완성된 콘텐츠이기 때문에 그 결정과 실행이 비교적 간단하다. 이와는 다르게 뮤지컬처럼 완성된 작품을 다른 나라에서 새로 재탄생시켜야 하는 경우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엄청난 라이선스 금액을 지불하면서까지 미국의 브로드웨이나 영국의 웨스트엔드에서 성공한 뮤지컬을 여기 한국 무대로 가지고 오는 이유는 물론 뮤지컬의 심장부에서 흥행몰이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홍보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지에서 캐스팅 된 주연과 기획팀이 그 작품을 무대에 올리더라도 원작 그대로의 수준을 유지하게 만드는 아주 까다로운 조건이 지불된 라이선스 비용과 함께 의무적으로 따라온다는 점이다.일례로 2011년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TV쇼 포맷을 수입, 국내의 정서에 맞게 자체 제작한 적이 있다. 이때 미국으로부터 도착한 것이 프로그램 제작에 관련한 아주 두꺼운 라이센스 매뉴얼 북이다. '바이블' 이라고 불리는 이 책은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필수적으로 지켜져야 할 사항들을 빼곡히 기록한 책으로, 예를 들면 프로그램에 사용해야하는 자막은 어떤 폰트의 어느 정도의 크기로 할 것, 사용되는 카메라는 특정 회사에서 제작한 모델이거나 그 이상의 성능을 지닌 것으로 할 것, 녹음을 위한 마이크는 어떠어떠한 모델로 사용해야만 한다 등등의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 아주 세세한 항목들의 조건이 기록된 책이었다. 물론 이런 조건들이 하나라도 어겨질 시에는 엄청난 액수의 위약금을 저작권사에 배상해줘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문화콘텐츠 계약 매뉴얼'을 제작한 적이 있었지만 이는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콘텐츠 제작사간의 계약에 국한된 것이었고, 이처럼 미국 내에서 자국이 아닌 외국으로 자신들의 콘텐츠를 수출하기 위해서 만든 매뉴얼 북을 우리나라 PD들이 직접 두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일은 국내에서 제작된 프로그램들에 대한 외국의 관심이 증가하던 시점과 맞물렸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경험과 참고자료가 되기에 충분했다.우리는 한때 인터넷 강국으로서 소프트웨어개발을 통한 경제도약을 꿈꾸었던 적이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자체생산한 문화를 무기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으며 급기야 지난 2014년에는 우리가 순수 제작한 음악프로그램의 포맷을 미국 방송국으로 수출하기에 이르렀고 올해 2019년 1월 2일, 미국에서의 첫 방송과 함께 현재 가장 주목받는 TV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는 대기업의 지원이 이루어지는 문화에 국한되어있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우리는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문화콘텐츠를 우리의 실정에 맞게 국내에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왔으며 이렇게 쌓아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문화콘텐츠의 본격적인 생산·수출국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2019-01-15 13:32:43

세한도(歲寒圖) 단상

얼어붙은 한겨울. 초라한 집 한 채를 사이에 두고 앙상한 고목이 가지에 듬성듬성 잎을 매단 채 떨고 있는 한 폭의 그림은 바라보기만 해도 으스스 한기가 든다. 조선조 후기 명필가이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무슨 말을 남기고자 했을까?'세한도'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너무도 단조롭고 살벌한 그림의 배경에 의아해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이 그림은 궁중 도화서(圖畵署) 전문화원의 그림도 아닌 선비가 그린 단순한 문인화(文人畵)에 불과하지만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추사는 1840년 54세 무렵 사색당파에 희생되어 바다 멀리 외딴 섬 제주도에서 혹독한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었다. 조강지처를 잃고 절친한 친구의 부음까지 전해 듣었으나 갈 수 없는 죄인의 몸이었다.그 무렵 제자 이상적(李尙迪․1804-1865)은 역관(譯官)으로 사신을 따라 중국에 오가며 경세문편(經世文編) 등 귀중한 서적을 구해 추사에게 보냈다. 홀로 힘든 유배생활을 보내고 있는 스승을 위로함이었다. 권력자에게 이 서적을 상납했더라면 출세길이 여릴 수도 있었으나 그는 결코 스승을 잊지 않았다. 이에 감동한 추사는 무언가 선물로 보답하고 싶었지만 유배된 신세라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전하는 것 뿐이었다.하여 문득 떠오른 것이 공자의 논어 한 구절. '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 즉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이 구절을 떠올리며 붓을 든 그는 자신의 처지와 제자 이상적의 변함없는 의리를 절감하며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여기에 '歲寒圖'라는 화제(畵題)를 덧붙이고 혹한에도 시들지 않는 늘푸른 소나무와 잣나무를 비유해 '長毋相忘(장무상망), 즉 나는 그대의 마음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이니 그대 또한 나를 잊지 말게나'를 일필휘지(一筆揮之)했다.유난히 추운 올 겨울, 새삼 '세한도'가 생각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절박한 나랏일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의 눈치나 보면서 연연하려는 자들에게 한겨울을 맑은 정신 하나로 견뎌내는 선비의 절개와 의리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2019-01-14 11:43:50

천영애 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매일춘추]흑과 백,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

언젠가부터 세상은 흑과 백으로 나뉘어졌다. '모 아니면 도'여야 한다는 선명성이 정직함, 의리와도 같은 것으로 해석되면서 부터이다. 모 아니면 도 말고도 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데, 다른 경우의 수는 회색인간 같은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중간지대에 선 사람들은 흑 쪽도 백 쪽에도 포함되지 못한다. 중간색, 즉 회색은 흑이기도 백이기도 한데 흑과 백 어느 쪽도 회색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탓이다. "세계를 흑백으로 보지 않으려 했으며, 오히려 다양한 명암이 있다고 보았다." 세계 최장수 총리 연임을 앞둔 독일 메르켈 총리의 말이다.세계를 흑과 백으로 보는 논리는 위험하다.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보이는 세계를 흑과 백으로만 나누려 한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면서 한번도 문학을 놓아본 적이 없었고, 문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을 놓아본 적이 없다. 철학도이면서 문학도이고 싶었고, 문학도이면서 철학도이고 싶었다. 그러나 철학 쪽에 가면 철학이 아니라고 거부당했고, 문학 쪽에 가면 문학이 아니라고 거절당했다. 문학을 통한 철학, 철학을 통한 문학을 하고 싶었는데 사람들은 철학이거나 문학의 선명한 자리를 요구했던 것이다. 유행하는 학문 간의 융합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두 학문은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통해 자신을 더 폭넓게 드러낸다. 결국 중간에서 그만두긴 했지만 철학을 통해 문학을 해석하고 싶었던 작업은 아직도 미련으로 남아 있다.정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어디로 봐도 중간지대에 서 있다. 중도를 지향하는 많은 대구경북 사람들처럼 보수 쪽에도, 그들이 경원시하는 진보 쪽에도 서지 않는다. 스스로를 '회색인간'이라고 칭한다. 회색인간이라는 부정적 느낌을 가만히 생각하다가 모던 시대를 넘어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회색인간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인간이라면 어떨까.흑과 백은 다양성을 방해한다. 이 시대의 회색인간 안에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의 다채로운 씨앗이 들어 있어, 그것은 언제라도 다양한 색으로 싹이 틀 수 있다. 경제는 보수의 파란색으로, 사회와 복지는 진보의 빨간색으로, 안보는 중도의 남색으로, 교육은 순수한 초록으로 향을 나누어보면, 내 안에도 수많은 색들이 들어 있다. '시'라는 문학 속에 발을 깊이 담그고 있으면서도 다른 학문에 여전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듯이, 그리고 그 관심들이 다양한 색으로 피워 올려지듯이 회색지대에 선 사람은 '빨주노초파남보'처럼 다양성을 가진 인간일 뿐이다. 현대는 무엇보다 다양성의 시대가 아니던가. 패거리 문화가 여전히 성하고, 모 아니면 도를 원하는 대한민국의 기질은 메르켈 총리의 말처럼 다양한 명암을 가지기 힘들다.

2019-01-14 04:30:00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매일춘추]서울과 지방 부추의 차이 '500원'

'지역의 예술인으로 살아가기'란 그리 녹록치 않다. 이 제목만으로도 참 많은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역 예술인의 정의를 내리자면, 지역을 기반으로 그 예술 창작활동을 영위하고 있는 각 분야의 전문 아티스트들이라고 할 수 잇다.며칠 전 아내와 동네 마트에 갔다가, 참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해서 그 웃음을 독자들과 함께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추(정구지)를 파는 코너였다. 한참을 그 앞에 서서 피식피식 웃고 있을 때, 아내가 물었다. "부추 집에 있는데요." 부추를 사고자 그 앞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가지 부추가 판매가 되고 있었는데, 그 부추들의 이름이 참 기이했다. 서울과 지방으로 구분돼 있었다. 더 재밌는 것은 한 단의 가격이 500원이나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당연히 서울 부추가 더 비싼 상황이었다.한참을 그 부추를 살펴봤지만, 도무지 서울과 지방 부추의 차이를 알 수가 없었다. 문득 든 생각 '아! 부추도 서울과 지방의 차이는 뉘앙스?'.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물론, 어떤 차이가 있기에 그런 가격 차이를 났을 것이라 여긴다.문화예술 쪽의 경우는 어떨까. 서울 혹은 중앙과 지역이 그런 가치(價値)의 평가 부분에서 구분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 서울 말고 지방 부추도 엄연히, 판매대에서 당당히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가격적인 면 외에 지방 부추의 다른 가치(價値)가 존재할 것이다.거대 자본이 투자되고, 또 큰 시장을 가진 서울이나 수도권의 예술을 모방(模倣), 재현(再現)하는 형태가 아닌, 우리 지역만의 고유한 예술적 형태를 표현하는 우리만의 예술 창작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몇해 전,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중앙의 우수한 공연예술들을 지역에 두루 파견해 지역민들의 문화향유권 신장을 꾀해야 한다는 식의 차별적이고 괴이한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 정책이 발표된 적이 있다. 이렇듯 지역 문화예술 활성에 대한 시각(視覺)이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 지역 예술인 및 단체들이 그 존재의 가치를 각인(刻印)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우리가 창작한 작품을 향유하는 대상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서야 한다. 예술적 가치, 프로필(Profile)에만 포커스(focus)를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 작품의 관객인 우리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들이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소재와 형식을 발굴해야 한다. 서울 부추는 능가하는 대구경북의 부추를 내놓는 것만이 살 길이다.

2019-01-09 18:28:28

김은혜 세종사이버대학교 외래교수

[매일춘추]'나혼자 산다'의 역설

상담실에 오는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왕따나 따돌림과 같은 또래 관계문제로 고민하며, 그 이유는 단지 '나와 달라서', '맘에 안 들어서' 등의 구체적인 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를 짊어지고 내일도 학교를 가야하는 아이들의 얼굴엔 불안과 근심이 가득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실에 와서 위로를 얻고, '혼자가 아니라는' 용기를 내어 또다시 세상으로 한발짝 나가는 아이들이 대견하다.얼마 전 연말 시상식에서 한 연예인이 이런 소감을 이야기 했다. "우리 프로그램은 '나혼자 산다'이지만 저는 한번도 외로웠던 적이 없었어요. 그것은 우리가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에요."요즈음 예능 브랜드 평판 1위라는 이 프로그램은 각자의 개성이 너무나도 다른 출연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한데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상승작용)를 내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화합하는 과정을 통해 프로그램은 많은 공감과 위로를 이끌어냈다. 결국 제목은 '나혼자 산다'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간다'를 알려주고 있고, '넌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세지로 위로를 선사했다.이렇듯 세상에 단 한명도 같은 사람은 없으며, 각자가 다 특별한 존재이다. 기질이 다르고, 외모가 다르고, 취향과 말투도 다르다. 이것은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다. 모두가 똑같다면 세상이 얼마나 심심하고 단조로울까. 톱니바퀴는 들어간 이와 나온 이가 서로 맞물려야 하는데, 이가 다 튀어나와 있다면 공존자체가 불가능해 튕겨 나갈 것이다. 즉, 타인이 나와 달라서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달라서 더 멋지게 맞물려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세상은 절대 혼자 살수가 없고, 어리면 어릴수록 더 그러하다. 우리가 인지하든 그렇지 못하든 그 누군가의 도움으로 우리는 빚진 자로 살아가고 있고, 또 그 빚을 어느 누군가에게 주며 살아간다. 그렇게 '관계'라는 것은 이루어진다. 우리가 서로 경쟁하고 시기하면서 나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내가 가진 것이 사회의 유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내 자신이 된다.물론 우리 아이들이 서로 수용하지 못하고, 갈수록 또래 관계문제가 더 심화되는 것은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적 제도의 문제들도 있겠지만,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편견없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가르쳐주자. 한사람 한사람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어른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2019-01-09 13:48:55

작곡가 서영완

[매일춘추]문화도시 대구, 영국 리버풀처럼

문화의 발전은 단기간의 계획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인 비전과 계획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성이 중요하다. '바람직한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한 정책 제안'(임동근)에 이러한 지속성의 중요성을 잘 설명하고 있는데,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도시'라는 용어의 정의도 없이 문화도시로 선정한 한 도시에 거의 2천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정권이 바뀌게 되면서 그 방향성을 잃어버렸고, 모든 사업의 이름 또한 새롭게 변경됐다. 당연히 애초에 기획했던 의도도 변질됐다.우리가 잘 아는 팝 그룹 '비틀즈'는 그 이름만으로도 하나의 도시를 대변할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영국 리버풀 이외에 어떤 도시가 그 이름을 간판으로 내 걸 수 있을까. 사실 리버풀은 1990년 후반까지 전쟁으로 황폐해진 패망한 산업도시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1980년대 '머지사이드 구조계획' 이후 다시 국제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내는 중요한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 내부의 에너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리버풀이 선택한 무기는 도시를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문화중심 정책이었다. 리버풀은 문화를 통한 도시의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다는 원대한 꿈을 시민들에게 꾸준히 설득했고, 목표를 공유했다.그 결과, 2008년 유럽연합 선정 문화도시로 지정됐고, 이어 '리버풀 컬처 컴퍼니'를 설립·운영하면서 이 모든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해 나갔다. 2010년 중반부터는 문화도시의 변모해, 인구는 물론 관광산업을 통한 큰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대구 역시 문화 인프라가 대단한 도시이다. 뮤지컬·오페라 그리고 교향악단·극단·무용단· 국악단 등이 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대구콘서트하우스와 대구미술관, 예술발전소 등과 각 구마다 운영되고 있는 문화회관 등을 열거하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또, 대구(경산 포함)는 많은 대학을 도시 내에 품고 있다. 각 대학은 음대와 미대 그리고 문화 전반에 걸친 전공학과를 갖고 있다. 대학에서 매년 문화 전문인력을 배출하고 있으며, 거기에 더 나아가 2017년에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된 바 있다. 외국의 문화도시들과의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장해가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문화도시의 이점은 세심한 배려를 통한 장기적인 계획이 없이는 의미있는 하나의 결과로 모아지기 힘들다. 국민소득 3만불은 그 나라 국민의 문화산업 소비의 분기점으로 사용된다. 앞으로 활력 넘치는 문화도시 대구를 위해 대구시와 시민들이 함께 문화를 어떻게 융성시킬 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2019-01-08 13:04:50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매일춘추]새해에 생각나는 '세화'(歲畵)

'세화'(歲畵)의 사전적 의미는 새해를 축복하는 뜻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 받는 그림을 말한다. 요즘 청년세대에겐 생소한 낱말로 들리겠지만, 장년이나 은퇴세대는 새삼 추억으로 떠오르는 정감 어린 민화(民畵)의 형태로 보면 된다.예부터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 질병이나 재난을 막고 행운을 기원하는 '벽사기복'(辟邪祈福)의 상징으로 '춘축문'(春祝文)을 덧붙인 그림 한 폭씩 그려 새해 인사를 나누는 세시풍속이다.화법(畵法)이나 필력(筆力)에 상관없이 화선지에 아무나 마음내키는 대로 십이지상(像) 중 그 해의 띠 동물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고 여백에 춘축문을 일필휘지(一筆揮之)한 것이다. 주로 집 대문짝에 붙이는 일종의 부적(符籍)으로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畵)라고도 하지만,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은 예부터 요사스러운 귀신을 쫓아낸다는 이른바 문신(門神)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온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1980년대 이후 대대적인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대도시 뿐 아니라 중소도시나 농촌지역에 이르기까지 대문 달린 주택이 점차 줄어들고, 이 같은 미풍양속도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요즘엔 전문화가들이나 취미삼아 서화를 익힌 사람들에 의해 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마땅히 붙일 곳이 없다고 한다. 세화를 그려준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 아파트 현관 벽면에 붙여두고 드나들며 한번씩 눈여겨 보기도 하지만 이마저 우수·경칩이 지나 봄이 오면 떼어낸다.올해는 기해년(己亥年) 돼지띠 해. 60년 만에 황금돼지가 돌아왔다며 새해 벽두부터 행운을 바라는 기복적 수사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여기에 얄팍한 상혼이 스며들어 시중 금은방엔 각양각색의 선물용 황금돼지상이 등장하고, 역술인들은 신년 신수를 보는 고객들을 상대로 '액땜을 한다'며 고사상에 흔히 쓰이는 돼지머리를 부적으로 그려주고 있다.맹목적인 기복 신앙보다 일상의 마음자리를 올바르게 지키기 위해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송축(頌祝) 세화 한 폭씩 주고 받으며, 고유의 미풍양속을 되살리는 것도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지고, 세대가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좋은 전통과 양식은 새 시대에 맞게끔 변형해서, 이어가는 것이 좋다. 서투르지만 돼지 그림을 그린 다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모든 일이 잘 돼지!' 등 간단한 축문을 쓴 이메일을 보내거나, SNS 상에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019-01-07 12:38:16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매일춘추]2019년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자

1년~10년~30년이 후딱 지나갑니다. 30년이면 한 세대(Generation). 대략 청년 30년, 중년 30년이면 인생은 노후로 접어든다. 그 때는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정리하는 시간이다. 벌써 2019년. 지천명(50세)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다. 뭘 열심히 하든 안 하지 않던,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새해 벽두에 지난 시간을 잠시 반추해본다. 몇해 전 한 지역의 시립박물관에 방문을 했다가 우연히 사진전시회를 보게 됐다. 1990년대 우리 지역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놓은 무척 흥미로운 전시회였다. 1993년도에 찍은 지역의 기차역 사진 또 역 앞 도로의 사진 등 많은 수의 예전 사진을 보며, 한마디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분명 우리가 살아온 시간인데, 그 시간 우리가 살았던 사진 속의 모습은 어느 역사책에나 나오는 조선시대의 사진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왜 였을까. 아마 우리는 그렇게 많은 것들을 현재의 모습으로 덮고 잊어가며 까마득한 과거로 여기며 혹은 그런 시간이 아예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지내온 것들은 아닐까.요즘처럼 빠르게 세상이 발전하고 변해가는 시간에 20~30년 정도의 시간이라면 분명 그런 느낌을 주기엔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사실 잘 늙지 않는 것 같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어느새 늙어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세월은 그런가보다. 80년을 살아도, 죽을 때쯤 되돌아보면 십여 분의 파노라마 정도로 압축된다.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 10년, 20년 후에는 우리의 역사가 된다"라는 생각으로 우리의 현재를 살아간다면 어떨까. 아마도 지금보다는 현재의 시간에 조금 더 많은 가치(價値)와 의미(意味)를 부여하며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게 되지 않을까. 또, 이 순간의 우리의 모습을 더욱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까. 누군가 말했다. 삶은 되돌아오지 않기에 아름답다고. 맞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도 곧 과거가 된다. 2019년 힘차게 시작했지만, 벌써 4일째 과거로 넘어가고 있다.2019년은 머지않은 미래 우리의 역사책에 어떤 제목을 가진 페이지가 될 것인지는 오늘부터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구라는 축복된 행성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인간으로 30년을 살든 50년을 살든 100년을 살든,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가자. 특히 기해년 2019년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차도록.

2019-01-03 14:07:44

천영애 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매일춘추]어쩌다보니, 2019년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라고 묘지명에 썼다. 죽음에 임박해서야 우물쭈물 보낸 세월을 탄식했으리라. 어쩌다보니 2019년이다. 삶이란 게 계획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고, 그렇게 살아지지도 않아서인지 2019년을 맞이하는 마음은 '어쩌다보니'이다.시간은 시계추처럼 정확히 분침으로 재단되지 않는다. 어떤 순간의 시간은 너무 짧고 어떤 순간의 시간은 너무 길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간이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상대적인 시간으로 증명되지 않았는가.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정확하게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굴곡에 따라 휘어지거나 늘어나고 줄어든다.나는 호적 나이가 1년 늦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부모님이 기억하는 내 나이와 호적의 나이는 다르다. 예전에는 그게 불만이었지만 지금은 1년이 어딘가 싶어서 감사할 지경이다. 거기에다 만 나이로 계산하면 무려 2년이 내려간다. 2년이라면 한라산을 백두산으로 옮겨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세월이다. 2년이나 더 젊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여유가 생기고, 좀 더 게으름을 피우며 느긋하게 살아도 별 일이 없을 것 같다. 가끔씩 혼자서 나이 계산을 하다가 웃는 이유이다.따지고 보면 그렇게 숨 가쁘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버나드 쇼처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도 죽음에 임박해서는 자신의 삶을 우물쭈물했다고 표현했다. 편의에 의해서 하루를 정하고 1년을 재단했을 뿐 시간의 흐름은 유장하다. 시작과 끝이 없고 당연히 여기서 저기까지라는 시간도 존재할 수 없다. 그냥 편의에 따라 재단한 시간에 쫓길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한겨울 찬바람 부는 어제와 오늘이 2018년과 2019년으로 해가 바뀌는 특별한 이틀이 되기도 할 뿐이다.만 나이를 세는 외국으로 이민간 지인은 갑자기 한 살이 적어지니까 삶의 여유가 생기고, 지금부터 뭘 시작해도 그리 급할 것 없는 나이다 싶어서 갑자기 뭔가에 도전해볼 용기가 생기더라고 했다. '이 나이에 뭘' 이라고 생각하다가 '이제 겨우 이 나이'라는 전혀 다른 나이 관념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도전했고, 그 도전은 성공을 앞두고 있다.새해가 온다고 시간에 쫓기지 말자. 우주적인 시간으로 보면 인간의 시간은 한 점 먼지에 불과할 뿐, 나이라는 것은 관념에 불과하다. 2년이나 나이가 적다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인정된다. 어쩌다보니 2019년이 되었지만 시간을 얼마나 밀도 있게 보내느냐가 중요할 뿐 시계에 새겨진 절대적 시간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2019-01-03 13:50:51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연구원

[매일춘추]"괜찮아! 잘 될 꺼야! 2019"

2019년 기해년이 찾아왔다. 매년 그렇듯, 12월 31일 오후부터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제야의 종 타종행사를 보기 위해 모여들거나, 새해 첫 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동해안으로 떠난다. 미국 뉴욕에서는 종일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최대 200만명 가량이 운집해, '볼드롭 카운트다운'을 지켜봤다고 한다. 전 세계의 시민과 관광객들은 일제히 1월1일 0시에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를 외치며 환호했고, 그 모습은 전파를 통해서도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대체 우리는 왜 이토록 새해에 열광할까. 밤이 지나 아침이 오는 것은 이전 날과 동일하며, 단지 날짜의 숫자가 바뀌는 것 뿐인데도 말이다. 문득 그것은 이전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우리의 열망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까지의 좌절과 상처, 무기력, 분노, 슬픔을 떠나보내고 '뉴'(New)라는 새로운 단어가 그저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그것 때문에 우리는 새해를 기다리고 소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해가 되면 새 마음, 새 계획, 새 물건'' 등 더욱 'New'를 강조하며 다시 시작하고 싶어한다.사실 돌이켜보면, 새 것이란 없다. 갑자기 어제의 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그대로다. 실상은 변화하고자 하는 내 마음가짐과 변화된 내 의지만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새해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것만 같은 기분좋은 느낌을 주는 선물같은 존재다.우리가 할 일은 하나, 이미 지나간 실수를 잊고 다시 출발하는 것이다. 지난 실수와 상처와 실패에 스스로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주자. "수고했어, 이제 잊어버려". 그리고 스스로 다독이자. "이제 다 잘 될 거야!"정채봉 시인의 '첫 마음'이라는 시 중 이런 구절이 있다.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중략) 이 사람은 그 때가 언제이든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2019년(기해년) 내 인생의 핸들을 어느 누구도 아닌 내가 쥐고, 후회없는 한 해를 보내기 위해 지금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새 마음'을 잘 간직하길 바란다. 물론 때로는 넘어지고 좌절도 있겠지만, 다시 일어서 '새 마음'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말도 자주 건네고자 한다. "돼지 해는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다 잘 될 거야."

2019-01-02 12:27:06

작곡가 서영완

[매일춘추]음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까?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의 메시지, 즉 가사로 인해서 새로운 인생의 길을 선택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게 된다. 과연 어떻게 음악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을까. 사실 이러한 선례는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 한 곡만을 연속으로 듣는 기질이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간혹 일어나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성인이 된 우리는 음악을 그렇게 깊이있게 듣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에게는 음악이 우리의 인생에 얼마만큼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작곡가 베토벤이 활동하던 시대를 생각해보자. 18세기 고전음악 시대의 이야기다. 라디오도 없던 시기라 음악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지금과는 달리, 길을 걷는다고 해서 음악을 접할 수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마차를 타고, 아주 먼 길을 가야 할 정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음악은 적극적인 감상자들의 노력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1개의 악장은 10분 정도가 되고, 한 곡은 보통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패스트푸드처럼 음악도 즉흥적이고, 빨리 좋은 가사와 음을 전달해줘야 한다. 대중가요 즉, 팝(Pop) 음악계에서 내려오는 말이 있다. "3분이라는 시간동안 귀 기울일 만큼 현대인은 그렇게 한가하지 못하다." 지금은 음악의 질 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시대다. 이런 흐름은 장점도 있겠지만, 아주 심각하고 지독한 문화적 퇴행을 가져온 측면도 없지 않다. 지금은 온갖 압축방식으로 음악파일이 너무나 쉽게 공유되고 운반된다. 전화기 안에는 결코 플레이되지 않을 수도 있는 많은 음악파일들이 저장되어 있고, 이제는 음악을 골라서 플레이하지도 않는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나오는 음악들을 랜덤으로 듣게 된다. 마치 라디오처럼. 너무 흔해진 것이 음악이고, 또한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음악이기도 하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바하의 음악에서 숨막힐 듯한 감동을 느껴보지 못했고, 베토벤 음악이 전해주는 인간적 승리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드뷔시의 그 영롱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도 않는다. 존 케이지의 새로운 음악에서 깜짝 놀라지도, 충격을 받지도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 하루, 음악 한곡을 선택해서 완벽하게 음악과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건 어떨까. 가사가 있는 음악이면 그 가사를 음미하면서, 연주곡이면 그 소리가 이끄는 저 먼 상상의 나라로 눈을 감고 여행을 떠나자. 과연 음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가는, 우리가 얼마나 음악을 깊이있게 감상하려 하는가의 문제인 것 같다.

2019-01-01 14:25:02

임재양 외과전문의

[매일춘추]친환경적 생활의 제도적 뒷받침

개인이 건강을 위해 조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회적·제도적으로 환경호르몬을 줄이고 건강을 챙기도록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차를 타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우리가 시작할 가장 쉬운 방법이다. 나는 15년 전 그렇게 걷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걷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요즘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날이 너무 많아 걷기는 아예 포기했다.쾌적하게 걷고 싶도록 도심 차량진입을 통제해야 한다. 차선을 줄이고 주차료를 올리면서 차를 모는 것이 불편하도록 해야, 걷는 것을 장려할 수 있다. 자전거도 마찬가지. 인도로 다니면 불법이고, 도로에 다니다 사고가 나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크게 다치기 일쑤다. 자전거 도로는 많지도 않지만,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안전운전을 강조하는 것도 맞지만 자전거만 규제를 점점 강화시키고 있다. 편리하게 자전거를 타도록 만들지도 않으면서, 올해부터는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타면 처벌하고 헬멧을 사용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도록 규제 위주로 나간다. 급증하는 자전거 사고는 안전수칙 위반 때문이 아니라, 안전하고 편리하게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도시 농업은 좀 더 근본적인 접근을 제안한다. 현재 아파트 단지에는 꽃밭, 놀이터가 기본으로 되어 있다. 꽃밭의 일부는 공동 텃밭과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소로 활용하자. 놀이터와 더불어 주민들 소통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노인은 아이들을 돌보고, 무료하거나 치매에 걸린 노인은 꽃이나 채소를 가꾸는 일을 하도록 주선하자. 건강한 흙과 농산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환경보호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된다. 음식물쓰레기로 퇴비를 만든 흙은 각 가정 베란다에 식이섬유가 많은 채소를 키워서 먹도록 안내를 해준다. 독일의 가정 텃밭(Klein garten)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단독 주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작은 텃밭이라도 가지도록 권장한다.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땅에서 처리하는 방법과, 쉽고 건강하게 채소를 키우는 방법을 알려준다.좀 더 확장하면 각 동네마다 빈터를 주차장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꽃밭이나 텃밭을 만들면 세금 혜택을 줘야 한다. 삼삼오오 모여서 자기들끼리 문제점을 발견하고, 직접 해결책을 찾도록 유도해 나간다.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농사를 살려야 한다. 현재와 같이 유통업자가 중간에 끼는 경우, 미끈하고 깨끗한 모양 위주의 농산물을 비싸게 사먹을 수밖에 없다. 제대로 원칙을 지키는 농부는 마음 놓고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소비자는 건강한 농산물을 믿고 사먹을 수 있도록 직거래를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흐름을 각 지자체가 나서야 조정할 수 있다.

2018-12-27 12:00:47

유병천 E.World 대표이사

[매일춘추]"무술년, 참 멋지게 잘 살았다"

이제 몇장 남지 않아 앙상해진 달력을 한장 더 뜯어내며, 숨차게 달려온 한 해를 뒤돌아본다. 매년 12월 이맘 때면, 직원들과 모여 조촐하게 김밥 한 줄 싸먹고, 미리 준비해온 편지를 공개하는 감사 송년회를 정기적으로 해왔다. 함께 수고하고 고생했던 직원들이 모여서 한해 동안의 감사를 이야기하고 나눈다.서로를 향한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기도 하고, 업무상 서로 힘들게 하고 마음 상하게 했던 것을 솔직히 고백하며 미안함을 표시하기도 한다. 직원들이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상한 감정을 회복하는 감사송년회는 그 어떤 업무시간보다도 소중한 시간인 것 같다.지난주 직원들과 감사 편지를 서로 읽으며, 2018년이 어떤 의미였는지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쉽고 미련이 남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기다려 주심에 감사합니다." 20여명이 넘는 중간관리자들이 사뭇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처음부터 완전한 누군가는 없다. 한 직원이 성과를 내기까지는 성장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정작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내 지식이 온전하지 않고 부족한 상태에서 직원들에게 결과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나'라는 반성을 해 본다.'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한다. "함께 즐길 수 있는 2019년을 만들고 싶다"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든 생각이다. 경영은 리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위임하고 함께 하는 것이다. 협력 없이는 되는 일은 없다.올해도 직원들과 함께 웃고 때로는 힘든 일을 헤쳐나가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많은 일들도 많이 겪었다. 그 일들을 극복해가는 시간 속에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간다.삶이라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연속이다. 모든 일들이 예상한대로 움직이고, 계획대로 정확하게 돌아간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기에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며 극복해 가는 것이다.인생을 여행에 자주 비교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부푼 꿈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막상 여행하는 과정은 예측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어서 힘들고 지쳐버린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그런 어려운 일들이 최고의 추억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2018년 올 한해도 쉽지 않은 여행길이었음을 고백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지 못할 보석 같은 시간이었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이라는 것을 마음 속에 새기며, 멋지게 하루 하루 채워갈 기해년을 기다려본다. 무술년도 참 멋지게 잘 살았다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2018-12-27 10:18:03

김영남 카이로스 댄스컴퍼니 대표

[매일춘추]슬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도움들

또 다시 한해가 저물어 간다. 올 한해는 슬픈 일이 많았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할머니가 떠났고, 어제까지 함께 했던 친구가 떠났고, 사랑했던 고모와 고모부가 한꺼번에 떠나셨다. 슬픔에 젖어 별 생각없이 명복공원이라는 화장터에 처음으로 갔었는데, 몇 달 후 다시 그곳을 찾게 되었다. 내 감정과 관계없이, 이곳을 방문할 일은 앞으로도 많이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간들은 온 몸으로 서서 버티며 그 자리를 지켜나가는 것 또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디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어르신들이 대단하게 보였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있어 그 사람의 존재가 가지는 무게가 얼마인지를 몰랐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다. 아이들 같이 웃고 떠들며 그 순간이 즐거워 그렇게 행복이 지속되길 바랬던 그날들,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은 친구가 떠난 후에 더 깊이 느꼈다.갑작스런 사고로 고모와 고모부가 떠났을 때는 차원이 다른 슬픔이었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맞닿아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육체가 곁에 있고 머릿속 가득한 생각으로 함께 있는데, 어디까지가 죽음이고 어디까지가 삶인가. 무척이나 슬펐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았다. 누구는 심장이 멈춘 사람 때문에 울고, 누구는 남겨진 이들 때문에 울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어줬다. 많은 이들이 위로해 주셨다. 도움이 되고, 힘이 되었다. 감사했다. 그 많은 도움을 받고나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평소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사회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고 상당부분 비판적이었다. 많은 도움들이란 사고현장에서 도와준 이웃들, 불길 속을 뛰어들어 진화한 소방관들, 구급차가 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사람들,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의료진들, 먼 길을 달려와 손을 잡고 위로해준 많은 사람들, 슬퍼하고 걱정해준 분들, 사고 지원팀과 사회지원 부서에서 받았던 도움들 등. 나는 하루하루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유치원 때 배웠던 것이 떠올랐다. '벼 한 톨, 한 톨에 농부 아저씨의 땀과 수고가 담겨 있으므로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어야 한다.'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수고와 노력, 희생과 투자로 많은 이들이 잘 살아간다.다가오는 2019년 돼지해에는 올해보다 더 따뜻하고 더 나은 대구 나아가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도한다.

2018-12-26 12:04:07

김정희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매일춘추]성숙한 인간다움을 향한 항해

다양한 사람들이 상담실을 방문한다. 사람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그들의 이야기도 각양각색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저 같은 사람이 또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자신만이 갖는 고유한 어려움을 누구나 가질법한 보편성에 포함되기를 바란다.사람이 살면서 크고 작든 간에 고민은 늘 있다. 그렇지만 상담 경험은 극소수이다. 심각한 문제를 가졌거나 나약한 인간의 경험이라는 편견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기쁜 일로 상담실에 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다. 바로 편견에도 불구하고 자기 성장을 위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 '저 같은 사람이 또 있나요'라는 질문은 개인의 고통을 타인에게 이해받고, 스스로 변화하고 싶다는 용기있는 자의 또다른 표현이다. 설령 편견이 사실이라고 할 지라도, 즉 상담이 불행하고 나약한 사람이라는 '주홍글씨'를 의미한다고 할 지라도, 가장 진정한 인간의 징표일 것이다.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은 유일하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솔직하고 겸허한 자기이해와 수용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편견에 맞서는 용기와 편견을 수용하는 태도는 삶에 대한 책임과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바로 이 때, 성숙한 인간다움을 향한 출항은 시작된다.다행스럽게도, 심리적 어려움을 성장의 기회로 재해석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외부의 시선으로 삶을 평가하기보다 자기 내부의 평가로 삶을 성장시키고자 한다. 고유한 개인적 특성을 중요시하기에, 있는 그대로를 존중받고 나아가기를 원한다. 이는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책임지는 태도,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보이는데 도움이 된다.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칫 자기 성장에 지나치게 몰두할 때, 공동체의 외톨이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삶이 더 중요시되다보니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소홀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렇게 된다면 성숙한 인간다움을 갖기 위한 항해는 위태로워진다. 순항을 위한, 아니 이 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기꺼운 마음'이다. 기꺼운 마음이란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의 삶에 관여됨을 수용하고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자, 실천적 행위로 표현되는 것이다. 실천적 행위는 각자가 할 수 있을만큼, 타인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주고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과 행동을 포함한다.우리는 이렇게 모두가 연결되어 성숙한 인간다움을 향해 오늘도 항해 중이다. 이것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인간다울 때 가장 반짝인다. 그것도 성숙한 인간다움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오늘도 나는 상담실에서 출항을 준비하는 이들을 기다린다.

2018-12-25 14:37:59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매일춘추]반성 2018

오래전 어느 날 우연히, 참 재미있는 시를 한 편 읽고는 아예 통째로 외어 두었다. '술에 취하여 수첩에다가 뭐라고 썼는데, 술이 깨니까 알아볼 수가 없었고(괴발개발 필체), 술 몇 병을 마신 다음에(취기 충만하여) 봤더니,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고 써 있었다'는 내용의 시다. 이 시를 외우고 보니 제법 요긴했다. 어쩌다 가진 술자리에서 은근히 암송해주면, 누구든 자기 얘기인양 공감하고 즐거워했기 때문이다.시의 제목은 '반성 16'이다. 1980년대, 김영승 시인이 『반성』이라는 이름으로 낸 첫 시집에 수록돼 있었는데, 이후로도 '반성' 연작은 이어졌다. 최근에는 '반성 827'도 읽은 적이 있다. 앞으로도 그의 반성은 계속될지 모르겠다.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소박한 이웃들의 모습에서, 심지어 키우는 개의 행동을 통해서 끊임없이 삶에 대한 성찰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사랑받는 것은 '공감'의 힘이라고 느낀다. 눈꼽 만큼도 반성할 게 없는 사람, 한번도 되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시는 누가 읽어도 자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가릴 것도 꾸밀 것도 없이 진솔하게 말이다.오랫동안 사용했던 물건들을 통해서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반성에 이르기도 한다. 한 TV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수십년 동안 썼던 낡은 지갑을 잃어버리고 그 지갑과 함께 한 긴 시간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했다. 마치 '고해'처럼 들렸다. 지금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는 푸치니 걸작 오페라 '라보엠'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4막에서 철학자 콜리네가 죽어가는 미미를 위해 한 벌 뿐인 외투를 팔러가면서 부르는 '외투의 노래'라는 아리아.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외투를 벗으며, "낡은 외투야, 그동안 감사했다. 부자와 권력자에게 등을 굽히지 않았고, 동굴 같은 주머니에 수많은 철학자와 시인의 책을 넣게 해주었던 너에게 작별을 알린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내용을 울림이 깊은 베이스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사람은 누구나 반성을 하며 산다. 필자 역시 감히 시(詩)를 운운할 수는 없지만, 빈 종이에 메모도 하고, 때로는 반성문 같은 일기도 쓴다.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새해가 시작된다. 책상 위에는 받아둔 새 달력과 다이어리가 있는데, '2019'라는 숫자가 영 어색하다. 남은 며칠이 쏜살처럼 사라지기 전에, 만사 제쳐놓고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반성 2018'이다.

2018-12-24 12:01:40

임재양 외과 전문의

[매일춘추]연말, 포트락 파티를 즐기자

현재 많은 이상한 병들이 생겨나고 있다. 누군가는 이미 편리하게 적응해 버린 현대화로 인해 환경호르몬 피해에서 늦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는 뛰어난 인간의 현실적응 능력으로 시간이 지나면 이 상황을 극복하리라고 속단한다. 미래야 어찌되었던지 현재 우리들이 힘들고 아프다. 포기할 수 없고, 미룰 수도 없다. 원인은 복합적이라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렵다. 하지만 우선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자. 그렇게 하면 한가지씩 해결책이 보인다.우선 개인적으로 환경호르몬 섭취를 줄이는 불편한 생활습관을 익혀야 한다. 제일 큰 문제는 플라스틱과 비닐. 조그만 에코백을 항상 들고 다니자. 의외로 쓰임새가 많다. 컵, 젓가락을 비롯해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자. 에코백에는 자기가 사용할 유리컵을 들고 다니자. 더불어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계단이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서 올라가자. 높은 계단일수록 더욱 반기자.건강한 음식의 첫 출발은 집밥이다.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 고기를 먹어도 되고, 꼭 채식이 아니어도 된다. 하지만 문제의식은 가져야 한다. 맛이 아니라 건강 위주로 메뉴를 짜야 한다. 자극적이지 않고, 조리과정이 쉽도록 해야 한다. 식재료 자체의 맛을 느끼도록 입맛을 훈련시켜야 한다. 기본은 파이토케미컬이 많은 식이섬유를 먹는 조리법을 점차 익혀 나가자. 그러면 재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농산물이 어떻게 생산되는 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게 된다. 성가신 일이 아니라 내 몸이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투자로 생각하면 재미가 있다.늘 집밥을 강조하지만 밖에서 모임이 많아 외식을 하기 일쑤다. 기존의 모임 형태를 조금 바꾸었으면 한다. 현재는 식당 밥을 모두 부담스러운 메뉴로 생각하면서도 쉽게 바꾸지 않는다.이제는 음식 위주가 아니라 만남, 얘기에 초점을 맞추자. 간단하고 건강한 샐러드 접시와 차 한잔을 두고, 대중 교통이용이 쉬운 장소에서 만나자. 주차가 쉬운 곳인지, 음식이 맛있는 곳인지가 만나는 장소의 중요 요인이 아니라 건강하고 간단한 음식이 고려대상이 되도록 우리들 인식을 바꾸자.저녁 만찬의 만남 역시 거나하게 한상을 차려주는 장소가 아니라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는 모임으로 바꾸자. 역시 음식이 모임의 주요 요인이 아니라 만남과 대화가 주제가 되도록 하자. 더 나아가면 모임은 각자 집에서 만나면 좋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만난다. 간단한 몇가지 음식에 같이 준비도 하고, 설거지도 같이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내가 준비하는 음식만 보면 실망할 수가 있지만, 음식보다 모임이 주가 된다. 더 나아가면 간단한 음식을 1,2개씩 준비해오고, 쓰레기는 각자 가져가는 포트락 파티를 꿈꾼다.

2018-12-20 11:42:30

기획 & 시리즈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