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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환상적

'꿈을 꿨다. 마음이 아리다. 꿈은 지나버린 시간처럼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더 아리다. 환상 속에 환상적인 기억. 그리움을 동반한 이 음악 안에서 생황은 계속 뛰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그곳에서….꿈(夢)은 현실적이지 않은 환상적인 것. 또한 꿈(dream)은 희망을 담을 수 있고 현실에 이룰 수 있는 것. 알 수 없는 그 길 위에서도, 닿지 않을 그곳에서도 꿈을 품고 나아간다면 그것은 이룰 수 있는 환상이 된다. 환상적으로.'위의 글은 나의 생황 연주곡 '환상적'의 곡해설이다. 아름다웠던 꿈이 너무 아쉬워 곡을 썼고 곡을 쓰면서 그 꿈에 대한 아련함이 희망과 열정으로 바뀌었다. 아름다운 꿈, 그 아련한 환상에 대한 생각을 하며 현실을 고민하고 그 속의 나를 돌아보았다. 꿈이 아닌 생각으로부터 마음속 정리가 되며 더욱 환상적인 것을 그렸다.가끔 우리는 깊은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생각은 생각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시간들을 스스로 인지하고 멈추지 않는 이상 그것은 계속된다. 끝나지 않는 그 생각 속에는 여러 고민들이 있을 수 있고 어떤 때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또한 추억을 회상하거나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꿈속의 환상을 깊은 생각으로 정리하였지만, 그렇다고 생각만으로 머무르지는 않아야 한다. 꿈이 아닌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현실에서는 눈으로 보고 행동하는 것과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또 다르다. 생각 속에서만 머물러 있으면 그것 또한 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상으로 머물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생각을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또는 즉흥적임에만 이끌려 다니는 것도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모두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꿈을 꾸고 생각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인간은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추억을 회상하고 후회와 회한의 안타까움을 느끼며, 고독과 외로움, 또는 집착과 욕망, 슬픔과 괴로움, 또 기쁨, 의지, 열정…. 이러한 감정들은 생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휘몰아치게 된다. 바로 이때 상념들을 인지하고 느끼며 관찰하고 결국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인데, 그것들이 조그마한 테두리 안에 갇혀서 부질없는 몽상적 상념에 머문다면 우리의 정신과 삶에 유해할 것이다. 좀 더 진선미를 추구하며 진리를 향해 달려가는 이상향적 상념들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더욱 풍부하고 유익한 삶과 자유로운 상상의 날개를 달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 의지를 향해 행동하여야 한다. 어둡고 무거운 그림자의 옷을 벗고 한결 밝고 힘찬 열정의 빛을 향해 자유로운 날갯짓을 하길 바란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9-17 11:28:41

손호석 극작가, 연출가

[매일춘추] 취향의 문제

뮤지컬을 만들다보면 가끔 갈등이 생긴다. 정정하겠다. 자주 갈등이 생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참여하는 모든 예술가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다.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은 열의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만나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발생한다. 만약 아무런 다툼도 없다면 구성원들의 열의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좋은 작품은 갈등의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면서 완성된다.하지만, 이러한 갈등이 너무 심해지는 것도 좋지 않다.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공유하되 어느 지점에서는 접점을 찾아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이것이 뮤지컬 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고 또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모두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는 없기에 누군가는 자신의 주장이 거절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이 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자신의 주장이 좌절되면 그때부터 예술가는 창의성과 영감을 잃고,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종류의 일만 책임감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하는 상태가 된다. 이것은 팀에 큰 손실이다.그래서, 필자는 처음 제작을 시작할 때 구성원 모두에게 강조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라고. 모든 취향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지만 이번 작업에는 이 사람의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기로 했으니 그렇게 진행 하겠다고. 결국은 누구의 취향이 가장 존중받을 것인가의 문제로 정리가 된다. 내가 틀린 것이 아니고 그저 이번엔 저 사람의 차례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용납하기 쉬워 진다. 언젠가 내 차례가 오면 나의 취향도 존중받으리라는 기대도 할 수 있다.영역에 따라 의사결정의 권한을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음악에 관해서는 음악감독이, 미술적인 부분은 미술감독이, 조명에 관해서는 조명감독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내 맘에 안 들지만 내 영역이 아니니 내 취향을 강요하지 말자고 생각하게 된다. 그 대신 자신의 영역에서는 자신의 취향이 충분히 존중을 받게 된다.그래서, 우리 팀의 갈등은 대부분 이 말로 정리가 된다. "나는 이게 마음에 듭니다. 취향이니 존중해 주십시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9-16 11:24:24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베일에 싸인 '연인들(The Lovers)'

한 시간을 달려 고도의 도시 경주에 닿았다. 분황사와 황룡사지 절터를 지나쳐 미술관을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해가 남아 있으면 절터에 들를 생각인데 시간이 좀 늦은 감이 있었다. '생각을 그리는 화가'라는 네임 밸류답게 미술관 마당에 알을 보고 새를 그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통찰'이 있고, 그 앞에 두 개의 푸른 사과가 서늘한 빛을 뿜고 있었다. 한 그림 속에 낮과 밤이 함께 존재하는가 하면 바다에 큰 바위가 떠 있고,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쓴 '이미지의 배반'과 상체는 물고기인데 하체는 사람인 초현실적인 상상력의 인어를 그린 마그리트의 그림을 직접 보게 된 것이 내게는 슬쩍 다가온 행운 같기만 하다.마그리트의 많은 대표작들 중에서 유독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작품이 있었다. 얼굴에 베일을 두른 두 사람이 키스를 하는 그림 '연인'을 보는 순간 가슴에 뭉클한 감동이 일었다. 입술을 대고 있지만 두 사람은 얼굴을 감은 베일 때문에 서로에게 가닿지 못한다. 롤랑바르트의 말대로 '현존하는 나는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는 기다림과 부재를 대변한 환각이련가. 사랑의 본질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마그리트 14세 때에 우울증을 앓던 그의 어머니가 잠옷 자락을 덮어쓰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그는 잠옷자락이 달라붙은 어머니의 주검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고 전한다. 그 슬픈 기억이 그의 작품 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도 한 어머니의 자살이 남겨주었을 파문이 얼굴을 가린 여러 형태의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짐작되기도 한다. 한 겹의 베일 너머에서 느끼게 될 외로움과 고독이 이리도 마음 저리게 와 닿은 것은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내 상투성에 기인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생각'에 초점을 실은 '연인들'의 고독을 실감나게 느낀 탓이려니 여겨본다.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는 동안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연인이나 가족, 동료, 친구들과 수많은 관계를 이루고 살지만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얼마만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지, 혹은 그들에게 자신을 얼마만큼 내어주고 있는지, 사랑하는 이를 맞은편에 앉혀두고 얼굴에 베일을 두른 듯 곁에 있는 이를 '부재하는 사람' 취급한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돌아오는 길에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일몰을 안고 왔다. 화염의 잔영처럼 아름다웠다. 사랑은 소금처럼 자신을 녹이는 아픔이고 촛불처럼 자신을 태우는 고통이라던가. 짧은 일몰처럼 인간의 생이 한 자락 꿈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장정옥 소설가

2019-09-16 06:30:00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대구 춤의 창조적 정신

대구는 현대무용의 표상이라 할 만큼 전국유일의 국공립단체인 현대무용 시립무용단이 창단되었는가 하면 정연한 무용철학 및 미학적 관점에서 현대무용이 창작되었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체계화시키고 과학적으로 재정립한 많은 무용인들의 창조적 정신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대구에서 현대무용이 시작된 시기는 1930년대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지금의 대구 현대무용을 존속케 하는 역사적 효시에는 김상규(金湘圭,1922~1989)가 있었다. 김상규는 첫 발표회 때부터 '현대무용'이란 표현을 프로그램 속에 사용하여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현대무용을 전파시켰으며 모더니즘 현대무용의 도입과 더불어 김상규는 안무가의 자각으로 새로운 공연어법을 모색하고 전통적인 것과 시대적인 것을 접목시켜 봄으로써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 나가려는 시도를 통해 대구의 춤을 발전시켜 왔다.김상규의 정신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제자 및 대구 출신 무용가들은 현재 대구를 중심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초창기 김상규의 춤파트너에서 아내가 된 고(故) 최원경은 김기전(대구시립무용단 초대안무자)이 운영했던 대구바레아카데미학원을 넘겨받아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제자를 양성하였으며 딸 김소라가 어머니곁인 대구에 머물게 되었기도 하다. 김상규의 혈육 중 유일하게 춤을 물려받은 딸이자 제자인 고(故) 김소라는 대구가톨릭대학 무용과 교수로 재직중에 소라댄스앙상블무용단을 결성, 많은 제자들을 양성해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아버지의 철학과 사상을 이어왔었다. 역시 제자에서 반려자로 인연 맺은 주연희는 김상규의 철학과 사상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제자를 양성하며 작품활동에 힘썼다. 김기전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대구시립무용단의 초대(1981~1988년) 안무자로 대구시립무용단을 직업무용단으로 이끌어오며 대구 현대무용 발전에 힘써온 인물이다.대구 출신 재경 무용가로 김복희, 이숙재, 박인숙 등이 있다. 김복희(한양대 명예교수, 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는 한국적 현대무용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근간으로 윤회와 참선 같은 동양적인 관념, 한국의 관습, 전통문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등의 주체를 추구하며 많은 작품으로 세계무대에 진출시켜 한국의 특색을 강조한 무용가이다. 이숙재(전 한양대 교수, 밀물예술진흥원 이사장)는 1984년 밀물현대무용단을 창단하여 많은 작품활동을 하였고, 한국 1세대 현대무용가로 김상규에게 사사받은 제자이며 한글춤을 개발해 한글을 우리나라 대표 문화브랜드로 키워낸 공로로 '2018 무용 분야 예술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박인숙(전 한성대 교수)은 지구댄스시어터 예술감독으로 1975년에 설립된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창단 단원이기도 하다.이처럼 대구시립무용단의 창단과 대구 출신 현대무용가들의 창조적인 작품 활동은 오랜 대구 현대무용의 역사와 오늘날 지역 춤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소통의 연결로 이어질 수 있는 지역 춤 발전의 밑거름이다.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2019-09-11 11:11:02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샛별

하루의 해가 뜨고 가장 밝은 빛을 내었다가 지상 저편으로 점점 넘어간다. 그리고는 황혼의 붉은 빛이 온 하늘을 물들였다가 이윽고 완전히 넘어가면 어둠이 찾아온다. 어둠이 오고 나서야 비로소 달과 별이 영롱한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때는 어둠 속의 길잡이가 되어 우리에게 길을 인도한다. 그 빛은 새벽녘 동이 틀 때까지 어둠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요즘엔 도시에서 밤하늘을 보면 별들을 찾기가 힘들다. 공기 좋은 시골에 가면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나에게 떨어지듯 아름답게 수를 놓아 그 빛을 뽐내고 있어서 정말 아름다운데,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북두칠성만이 그 자리를 지키며 나의 시선 속으로 들어온다. 계절에 따라 별자리를 찾는 재미도 있을 텐데….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서 삶의 여유를 찾을 시기가 온다면 나는 별이 많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선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우리 전통 여창가곡 중에 '계면 평롱 북두칠성' 이라는 곡이 있다. 작자 미상의 아름다운 시조에 음률을 붙여 노래하는데, 여창 특유의 부드러움과 격렬함이 내포되어 있는 긴 호흡의 정가곡이다. 간절히 그리워하였던 임을 만났지만 날이 밝아 오면 다시 이별해야 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북두칠성 별님에게 아침이 오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다.'북두칠성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별님에게/ 안타까운 마음에 소원 하나 아뢰나이다/ 그리던 님을 만났지만/ 정다운 말을 채 나누기도 전에/ 날이 새려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오늘밤만 삼태성에 명을 내려/ 샛별을 거두어 주소서'여기서 삼태성은 북두칠성 아래에 있는 세 개의 별을 가리키는데, 북두칠성과 삼태성 모두가 오늘날에는 큰곰자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북두칠성이 임금님과 왕후로 보고, 삼태성이 임금 바로 아래의 신하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북두칠성에 소원을 빌며 삼태성에게 명을 내려 달라고 부탁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시조 마지막 부분에 샛별(사잇별)을 거두어 달라고 하였는데, 이는 금성(金星)을 말하는 것이다. 금성은 태양계의 두 번째 행성으로 지구에서 볼 때 태양, 달, 다음으로 밝게 빛나는 천체이다. 그래서 가장 밝은 곳에 있을 때는 대낮에도 육안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금성이 지구 궤도보다 태양에 더 가까이 있어서 언제나 태양 주변에 보이는데, 초저녁 무렵 서쪽하늘에 보이는 금성을 '저녁별', '태백성'이라 하고 새벽에 동쪽하늘에서 보이는 금성을 '샛별', 또는 '계명성'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동쪽하늘에 샛별이 뜨면 곧 아침이 되어 사랑하는 임과 다시 헤어져야 하니 여명이 밝아오지 못하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풍성한 한가위를 맞아 우리도 각자가 바라는 소망을 저 북두칠성 일곱 별님께 간절히 전하여 보면 좋을 듯하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9-10 11:12:15

손호석 극작가, 연출가

[매일춘추] 과정도 중요하다

예술가는 결과물을 대중에서 선보이기 위해서 아주 오랜 기간을 투자한다. 공연을 예로 들자면 어떤 공연을 할지 구상하고, 작품을 쓰고, 사람들을 모으고, 연습하는 시간을 보낸 후에야 공연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 몇 달 동안 준비해서 며칠간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공연을 하는 시간보다 그 공연을 준비하는 기간이 훨씬 더 긴 것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작품과 연관되지 않은 일상생활이라고 부를만한 시간들도 보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술가의 삶이 얼마나 안정되고 행복한가에 따라 예술가가 선보이는 작품의 내용이나 질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지역이 좋은 예술을 창조해내려면 예술가의 일상생활과 작품을 준비하는 시간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술정책의 대부분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예술가로 분류된다. 상당한 금액이 투자되는 예술 관련 건축물만 봐도 이러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 지역은 좋은 예술회관이 많은 도시라는 자부심이 있다. 시에서 운영하는 공연장, 미술관과 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회관만 해도 예술의 결과물들을 보여줄 충분한 장이 마련된다. 그에 반해 예술을 준비하는 공공건물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미술 작가를 위한 창작 스튜디오 몇 군데와 대명동의 연습공간 정도만 떠오른다. 결과물을 보여주는 건물에 비해 그 결과물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건물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일상생활의 영역으로 가면 더 심각하다. 예술가도 먹고, 자고, 아이를 낳고, 휴식을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 이것은 예술 활동과 전혀 상관이 없고 그저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믿는다면 예술가들은 균형 잡힌 일상은 포기하고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결과물 만들기에 몰두하거나 예술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예술가를 위한 식당, 예술가를 위한 보육시설, 예술가를 위한 임대 주택, 예술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 당장의 결과물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예술가가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돕는 인프라 구축과 프로그램 개발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인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예술을 창조하는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 말이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9-09 11:10:01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주고 있는가?

책을 한 권씩 낼 때마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글을 쓰는 동안 작업에 얼마나 즐겁게 몰두했나 하는 물음이다. 새로운 글을 생각하며 쫓기듯 살아가는 일상이 즐겁기만 할까. 그렇다 해도 소설을 쓰는 순간만은 작가가 행복하고 글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읽는 사람에게 그 느낌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순간이 작가에게 비타민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마침표를 찍고도 마음이 찜찜하면 그 작품은 아직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책도 마찬가지다. 출간을 앞두고 뭔가 미진하고 불안하면, 그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건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글을 잠시 밀쳐두었다 다시 읽으면 앞서 찾아내지 못한 부분이 보인다.소설을 끌고 가는 것이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작업에서 손을 떼고 밖으로 나간다. 인고의 고통은 육체보다 정신이 괴로울 때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터여서. 그럴 때는 밖으로 나가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며 정신이 쉴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한층 효과적임을 여러 번 경험했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소설 한 편 완성하자면 몸과 영혼이 그 작업을 함께 수긍하며 '됐어, 잘했어!' 하고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끝난다.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 그 괴로운 순간마저 견뎌내는 것이 작가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환담을 나누다 보면 자신의 고민이 의식의 부동에서 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언제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소설이 다가왔고, 책 비슷한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문화의 시작은 이렇듯 자아의 표출에서 출발한다. 농부가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열매를 기다리는 것처럼 작가는 늘 기다리고 캐낸다. 새로운 발상과 적확하고 매력적인 문장을 갈고 닦으며. 문화의 어원을 살펴보면 경작 또는 재배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기록이 있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듯이 문화는 영혼의 채움을 대신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그곳의 문화를 만나고, 활자를 통해 세계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책 속에 자아를 내려놓을 시간을 가지는 것도 채움에 대한 헛헛한 갈망 때문이 아닐지.가끔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는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주고 있는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온갖 책임과 의무를 지고 살아가지만, 책임과 의무만으로 살아가기에 인간의 심성은 너무 감성적이고 미묘하다. 이제 풀잎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안개가 자욱할 시즌이니 영혼의 충전을 위하여, 천천히 활자를 음미하는 기쁨을 맛보면 어떨지. 장정옥 소설가

2019-09-05 11:21:57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연극예술의 위대성

고대로부터 예술의 존재 의의와 목적에 대해 많은 질문이 제기되어 왔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해왔다. 그 가운데 예술의 영향력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예술은 오로지 그 자신의 내적 가치를 위해 존재하며 외적인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주지도 받지도 아니하는 것과,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 시킬 수 있도록 하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겠다. 예술 일반의 범주 아래, 연극예술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연극은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재구성된 인간의 경험을 몸짓과 언어로 표현하며 우리의 삶을 가장 유사하게 담아내는 종합예술로서 실제 인간의 삶을 모방하고 이를 허구로 가공하여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순간순간 메시지를 전하는 역동적인 예술이며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측면중 후자에 가장 많은 기능을 가진 예술이라 할수 있겠다.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역할로서의 연극적 기능을 가지고 교육이라는 명목아래 많은 대중들과 만남을 가졌으며 이는 내가 직접 무대화할 때와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주었고 내가 왜 연극을 하는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지난 9월 3일 오후 7시 대구 서구문화회관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퍼블릭 프로그램인 '연극 울고넘는 박달재' 발표회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시민들의 문화참여 기회와 문화향유 기회가 확대되기를 바라면서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놀라운 점은 여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30대에서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이 다양했으며 직업 또한 다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극을 처음 접했으며 자기 스스로 '끼'를 가지고 무대에 서고 싶어서 참여했다기 보다는 내성적인 자신의 변화와 또 다른 세계의 경험을 하고 싶어서 참여했다는 쪽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약 4개월간의 교육기간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읽고 노래하고 움직이고를 반복하면서 이들은 나이도 잊고 직업도 잊은채 연극 공연이라는 하나의 공동된 목표를 두고서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워 주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난뒤 이들의 표정은 묘한 행복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연극이 가지는 매력, 즉 혼자만이 아닌 다같이 참아내고 극복하며 오늘을 성취했기에 나누는 기쁨이었으리라.어는 참가자가 이런 말을 한다. "전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연극을 하는 동안 정말 행복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연극할 때처럼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30이든 70이든 "내년에도 꼭 할꺼에요" 라고 어리광을 부린다.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맨 마지막 대사 때 객석에서 울었어요. 여러분들의 진심이 들려서요. 연극예술은 정말 위대 한 것 같아요. 그러니 여러분 주변에 많이 알려주세요. 같이 할수 있도록."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9-05 10:25:44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초상

무용은 원시시대 때부터 시작하여 공연예술의 모태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무용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무용은 상류층의 무용과 서민층의 무용이 뚜렷하게 갈라져 있어 궁중무용은 의례용으로 활용되었고, 민속무용은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춤으로 단순한 오락적 차원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 이처럼 무용은 여타 공연예술처럼 천민층이 맡아왔으며 무용가들은 사회적으로 대우를 제대로 받아오지 못했었다. 보수적인 기질이 농후한 대구지역에서 1930년대를 시작으로 현대 춤이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이자 춤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지난 3월, 2019년 대구문화재단 문화인물컨텐츠제작지원사업 선정작인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예술감독 박현옥)의 '김상규를 춤추다-강건너 언덕 너머...'는 대구 근대춤의 아버지인 김상규를 기리고 그의 작품을 통해 현재 속에서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며 동시대의 시·공간성을 추구한 소리(음악)·몸짓(드라마)·춤의 예술형식으로서 지역의 문화예술 창달과 김상규를 통한 대구 현대춤의 자긍심을 일깨우는데 일조한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김상규는 어려운 시대적 상황과 보수적 색채가 특히 뚜렷한 대구의 지역적 특색에도 불구하고 무용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으로 대구의 현대무용이 발전할 수 있도록 중추적인 역할을 한 현대무용의 선구자이며 최초의 남성무용가 이자 역사·행정·교육에 관련된 업적을 남긴 대구 무용계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육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면적 사고를 중요시 해야 된다 했으며 그것은 다양한 작품안에서 그의 내면적 정신, 자연적 회귀, 윤회, 생명의 본질은 곧 인간 존재에 작용하는 사상으로 춤으로 나타내었다.한 시대의 예술가는 당대의 새로운 예술을 창출해내고 그 예술은 후대에 이어져 또 다른 예술가를 탄생시킨다. 그가 남겨놓은 현대무용의 정신과 자연의 법에 따라 시간이 지나도 더욱 깊이 있는 가치로 피어날 그의 초상. 이러한 예술을 모체로 김상규에 의한 대구 무용의 발전은 현대무용의 정신적 이정표이며 대구 현대무용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 자체이기도 하다.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의 '강건너 언넘너머' 작품 중 '초상' 을 오는 9월 18일 대구국제무용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을 통해 바라본 초상은 앞으로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며 역사적 정신을 다음세대에 물려줌으로써 예술의 꽃은 영원히 살아남으리라 기대한다.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2019-09-04 11:22:33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살아 있는 음악

지난주에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재개관 기념공연 시리즈 중 타악페스타 '태양을 두드리다' 공연이 성황리에 이뤄졌다. '날이 밝아오다' 라는 타이틀로 공연의 대서막을 대북가락과 함께 멋진 춤으로 보여준 '장유경무용단', 국악타악기 기반의 깊이 있는 창작음악을 리드미컬하게 연주한 타악집단 '일로', 길놀이 속에 전통연희를 아기자기하게 꾸미며 관객과 함께 즐겨준 연희팀 '오락', 아프리카 음악과 춤으로 젊음의 에너지와 해방감을 무대에서 전해준 '포니케', 브라질 삼바 리듬을 아주 강렬하고 뜨겁게 표현해준 '라 퍼커션'의 연주가 이어지면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문화,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 무대가 됐다.나는 이번 공연의 전체 음악을 맡아 진행했는데, 주로 신경 쓴 부분은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며 전통에 머무른 음악이 아니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문화라는 것, 그리고 세계화에 발맞춰서 다른 나라의 전통 타악기도 지금 우리의 마음에 충분히 어필이 됨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나라뿐 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미디(MIDI) 중심의 전자음악이 홍수를 이루는 이 시대에 어쿠스틱한 음악이 전해주는 생명력 가득한 살아 숨 쉬는 음악, 열정과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넘치는 이 음악으로써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이날 보여준 음악과 퍼포먼스는 인류가 오랜 시간 살아오며 그들의 사상과 본능적인 세포를 갈고닦아 발전시킨 결과물로서 우리나라, 브라질, 아프리카의 지구 각각의 반대편에 살던 사람들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들의 다양한 리듬은 심장박동소리처럼 가슴을 뛰게 했고, 그러한 직설적인 타악 표현이 '살아 있는 음악'으로 만들었다.음악을 듣고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일상에서의 쉼표가 된다. 나는 한동안 이런 공연을 직업적인 일로서 공적으로 대하다보니 온 마음으로 공연관람을 할 수 없었다. 나의 생명력은 바쁜 일정 속에 오로지 곡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며 소진되고 있었는데, 이날의 살아 숨 쉬는 음악들을 보니 나 스스로에게도 에너지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햇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을텐데, 그 하나의 쉼표를 찍고 간다면 훨씬 좋은 삶의 질을 얻으리라 생각된다.여기 대구문화예술회관은 기획도 하고 공연 자체를 제작하는 제작극장이다. 양질의 공연콘텐츠를 개발해 대구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팔공홀도 다양한 첨단시스템으로 재개관했으니 더더욱 활성화되어 좋은 무대를 보여줄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두류공원 산책로와 붙어있어서, 가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공기 좋은 숲속 산책과 더불어 저녁즈음 펼쳐지는 멋진 공연을 관람한다면 풍부한 마음적 휴식이 될 것이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9-03 11:24:12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매일춘추] 예술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그 시대와 지역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사회적 관습이나 윤리, 도덕적 기준들에 대해 '정말로 그것이 당연한가?' 라는 질문을 던져 왔다. 필자가 올해 초 대구시립극단의 객원 연출로서 무대에 올렸던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이라는 작품도 당시에는 당연하고 올바르다고 여겨졌던 여성의 역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 결과 유럽과 전 세계에서 여성운동이 일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모두가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 일에 대해서 반성을 촉구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자고 외치는 것도 예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지만, 정말로 그것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 다각도의 질문을 던지는 것도 예술이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인 것이다.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주 훌륭한 예술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 예술은 그 이상의 논쟁적인 화두를 사회에 던져야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애국은 항상 개인의 행복에 우선하는가?', '세계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개별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애국심이 대치하는 경우에는 어떠한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가?', '애국이라는 대의를 내세워 개인의 인권을 제한할 가능성은 없는가?' 끊임없이 당대의 주된 의견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은 없는지 경고하는 것이 예술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한다.그런데, 이러한 당대의 올바름을 넘어서는 문제제기는 그 사회가 얼마나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라는 부분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일본 정치권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상황일 때는 한일 양국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각도의 주제를 다루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적반하장으로 행동할 때는 '일본의 경제 침략에 맞서 우리나라를 지키자'는 방향성 이외의 이야기는 다루기가 어렵다. 예술의 주제가 심각하게 제한되는 것이다.그래서, 예술가는 앞장서서 상식이 통하는 사회, 조금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안 그러면 죽을 때까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이웃 간에 화목하자는 주제의 이야기만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9-02 11:18:03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연꽃이 필 즈음에

창녕 수생식물원과 수목원에 빅토리아연이 피었더라고, 사진작가 친구가 일러주었다. 꽃 중의 여왕으로 찬사를 받는 빅토리아연의 생멸 과정을 보기 위해 수목원으로 갔다. 빅토리아연은 흰 봉우리가 열리고 왕관을 쓴 채로 스러지기까지 사흘 안에 생멸 과정을 다 한다.사진작가들이 수목원 연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모기 때문에 일찍 자리를 뜨지 않기 위해 긴 셔츠와 긴 바지를 입었다. 등으로 땀이 흘렀다. 사람이 올라앉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크고 단단한 잎사귀 십여 장이 물에 떠 있고, 뜨거운 해를 받으며 연꽃 두 송이가 피어 있다. 열 송이 스무 송이도 아닌 달랑 한 송이, 인심 쓰듯이 그 옆에 또 한 송이. 그 두 송이의 꽃이 사진작가 삼십여 명을 불러 모았다. 빅토리아 연꽃 피어 있는 곳이 수목원뿐이랴. 지난 밤에 생을 마감한 꽃은 생을 다하고도 여전히 붉기만 한데.새벽에 흰색이었던 꽃이 분홍빛으로 변하다 오후부터 초벌 꽃잎을 벗기 시작했다. 연이 꽃잎을 한 겹 열고 나머지 한 겹마저 열고 있을 때 연지에 꽃의 몸 내음인 듯 향기가 가득 서렸다. 단단히 오므리고 있던 꽃잎이 손으로 젖힌 듯 발딱 일어서며 천천히 뒤로 젖혀지는 모양을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긴 오후가 지나고 어둠이 덮일 즈음 대관식이 가속화되었다. 한 장씩 벗겨진 꽃잎이 꽃받침인 듯 몸을 눕히자 가운데서 꽃술이 올라왔다. 소복하게 자란 꽃술 끝부분이 살짝 젖혀지고 왕관모양이 되며 절정을 이루었다. 서른 명 넘는 사람이 연지를 둘러싸고 있지만 비어 있는 듯 조용했다. 카메라는 꽃이 변하는 매순간을 잡아채어 자동접사로 저장하고, 여왕은 왕관을 쓴 채로 우아하게 스러진다.단 하루 만에 최고의 순간을 누리고 미련 없이 생을 접는 꽃, 빅토리아연은 겸손과 절제를 아는 꽃이었다. 여느 연과 달리 푸른 잎사귀는 최대한 몸을 낮춰 수면에 납작하게 깔려 있고, 물 위로 얼굴만 살짝 내민 꽃은 그 낮음으로 하여 바라보는 사람들을 고개 숙이게 만든다. 사진작가들이 빅토리아 연의 생멸을 두고 단순히 연꽃이 핀다고 하지 않고, 여왕의 대관식이 열린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에 공감했다. 그 찬란한 지존의 아름다움을 꽃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빅토리아 연이 하루 이틀 사흘이 아니라 열흘 보름 끄떡없이 피어 있어도 그렇게 여왕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환호할까. 여름 끝자락의 후덥지근한 더위에 온몸이 땀에 젖고 모기가 극성을 부려 연신 긁어대면서도 차마 발길을 돌리기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저물고 만 것이 아쉬웠던지, 스러진 꽃 옆에 어느새 흰 봉우리 하나가 솟아오르고 있어서 내일을 예약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꽃 또한 내일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보여줄 터여서. 장정옥 소설가

2019-08-29 11:08:20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시의 상상력으로

나는 흔히 사람들이 일컫는 연극쟁이다. 그것도 현장성을 매우 중요시 하는 현장예술인이다. 이 말인 즉, 감성과 이성 그리고 충동의 본질을 행동하고 표현하여 그것으로 인해 관객과의 소통을 바로 그 순간의 찰나를 통하여 교감하고 짜릿함을 느끼며 내가 비로서 무엇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쟁이인 것이다.이러한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굉장히 이성적이면서도 지적인 면을 갖추면서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으며 자기 스스로의 본능과 감정 그리고 자기의 억압욕구를 자아세계에 맞춰 비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전자는 이론적 무장으로 인하여 굉장히 논리적이나 약간의 딱딱함을 주며 후자는 감성적이고 창의성은 있으나 자아도취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며 전자에 대해 약간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 그것에 대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한다.그러나 작금에 들어서는 이성적이든 논리적이든 본능적이든 감성적이든 간에 예술에 있어서는 '재미 있는' 것이 최고의 화두가 되고 있으며 재미나게 표현할줄 알아야지만 살아남는 시대가 된듯하다. 그래서 많은 쟁이들이 자기의 유형을 버리고 너도 나도 재미를 쫒다보니 각자의 색깔이 없어지고 일률적이며 보편적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그런데 '시' 라는 존재는 이러한 경향이 완전히 무시되는 그야말로 인간에 의한 자연의 예술물인것 같다. 왜냐하면 시는 느끼는 대로 말하고 인식되는 대로 표현하며 깨닫는 대로 충만해진다. 이 과정들 속에서 어느 한가지만 '의미'를 가지더라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만족하고 흥얼거리며 묘한 자기 만족감을 준다. 시는 압축적이며 무한하여 모든 것을 만들게 해준다. 아름다운 시 한편은 미술로도 음악으로도 연극으로도 탄생될수 있다. 또 역으로 모든 예술장르를 한편의 시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만큼 시는 우리에게 다양성을 준다. 바로 각기 다른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어느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한편의 시를 흥얼 거렸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해 보았다. "난 네가 정말 좋은데 넌 내가 그렇게 싫어 한번 말해봐! 말해보라구! 왜 말이없지. 그래 이제와서 내가 역겹다 이거지. 날 사랑한다 말할 땐 언제고 다른 여자라도 생긴거야! 이 비열한 자식 가! 가버려! 너같은 자식 두 번다시 보기싫어 다시는 내곁에 있어 달라고 말하지도 않을거야. 어서 가버려!"시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감정으로 느끼고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다양성을 연극하는 나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수 있는 해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8-29 10:24:34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매일춘추] 예술강사의 힘

학교 공교육 안에서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의해 가능해졌다. 예술강사라면 보통 예술장르를 가르치는 사설 학원의 강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르고 바른 인성을 갖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 전문 강사(이하 예술강사)를 학교로 파견·지원하는 정책 사업이다.이 사업은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및 문화예술·체육교육 활성화를 위한 교육부-문체부 공동협렵의 정부 정책에 의한 사업으로 2006년은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2007년은 기획재정부 사회서비스일자리 사업으로 포함되었고, 2011년은 고용노동부의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가이드라인(합동지침)이 마련되면서 체계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예술강사의 근로 신분은 기간제 근로자로 시·도 교육청 및 지방자치단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시·도 광역센터 및 국악운영단체, 공모사업에 선정된 민간운영단체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강사가 기간제 근로자인 이유는 매년 3월부터 10개월 간 배치 받은 학교에 출강하여 교육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필자는 26일자 매일신문 1면에 '예술강사들, 일자리일몰제에 내몰릴 위기'라는 기사를 접하면서 학교에서 예술이라는 특성의 교육으로 학생들과 교감하고 있는 전국의 5천 500여 명의 예술강사들의 열정과 패기가 가슴 뜨겁게 전해 오는 듯 했다.만약 일자리일몰제로 인해 예술강사 지원사업이 폐지된다면 예술강사들의 일자리 박탈과 더불어 학생들이 더 이상 학교안에서 예술가(예술강사)와 함께한 국악·연극·영화·무용·만화·공예·사진·디자인의 예술교육의 혜택도 빼앗기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의해 학생들은 문화예술교육을 통하여 그들의 창의성이나 적성 등과 같이 기존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잠재적 소질을 일깨우고 그로 인하여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 및 감수성의 증가, 정규 학교수업에 있어서 태도의 개선, 그리고 학생 상호간의 이해수준 증진과 그를 통한 유대감 증진 등의 경험을 가질 수 있게 된다.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활동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예술강사의 수업은 지식습득이나 기능의 숙달차원에 한정된 교육적 효과에만 주목하지 않고, 학생들의 정서적 태도의 환기와 각성을 유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과정으로 재편된 예술교육이 아닌 진정한 예술가로부터 생생한 예술적 체험을 접함으로써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이 나타날 수 있는 교육이다. 일자리일몰제로 인한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폐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기재부는 다른 일자리 사업과는 다른 예술강사의 지원사업이 우리 사회에서 교육적 역할과 공교육안에서 많은 학생들이 얻고 있는 효과성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2019-08-28 11:33:56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산조의 멋

국악의 대표적인 민속 기악곡 중에 '산조'라는 음악이 있다. 지난 칼럼에서 무속음악에 뿌리를 둔 '시나위'에 대하여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산조는 이 시나위 같은 민속기악합주곡에서 파생되어 독주악기로 연주되면서 기교가 확대되었고, 거기에 판소리의 진양, 중모리 장단의 선율들과 합해지면서 산조의 형식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진양조의 느린 장단에서 시작하여 중모리, 중중모리를 거쳐 점점 빨라지며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의 아주 빠른 장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속도와 리듬 속에서 선율들이 자유롭게 춤을 춘다. 아주 기교적이며 깊이 있는 성음이 요구되는 이유로 대다수의 국악 연주자들이 평생에 걸쳐서 이 산조음악을 연구하고 내공을 만들어 간다. 류파에 따라 휘모리, 단모리 장단이 빠지기도 하고, 엇모리, 굿거리 장단이 추가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류파 라는 것은 그 가락을 구성하고 작곡한 이의 이름을 따른다. 예를 들어 '김윤덕류 가야금산조' 라고 하면, 김윤덕 명인이 가락을 정리한 가야금산조라는 것이다.산조의 종류는 19세기 말 김창조 명인의 가야금 산조를 시작으로 거문고, 대금, 해금, 피리, 아쟁 등의 악기가 산조로 생기며 발전하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전해지는 산조는 각 악기에 따라 그 종류가 많은데, 가야금에는 앞서 언급한 김윤덕류 가야금산조를 비롯하여, 김병호류, 강태홍류, 최옥삼류,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등과 거문고는 신쾌동류,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대금에는 김동진류, 서용석류, 원장현류, 이생강류 대금산조 등이 있고, 이 밖에도 각 악기에 따라 일일이 나열하기에도 많은 다양한 산조들이 그 뛰어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나의 곡 '김동진류 대금산조협주곡 '은 제목에서 보이듯이 김동진류 대금산조 가락을 국악관현악과 함께 협연형태로 연주한다. 전통 민속기악독주곡인 산조를 협주곡으로 만들어 창작국악 장르로 불러들인 것인데, 이는 산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곡 '부활'을 통해서 김동진류 대금산조가 모든 분들의 마음에 새로운 모습으로 각인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애원성과 절도있는 가락이 돋보이는 김동진류 산조에 국악관현악의 장중함이 더해지고, 또한 산조의 민속악적 선율과 서양화성의 클래식컬한 국악관현악의 색다른 융합은 기존의 다른 산조협주곡과 차별성을 두면서 음악의 정답이 아닌 또 하나의 다양성을 부여하고자 하였다.깊이 있는 내면의 소리는 울림 또한 강하다. 지금은 '김윤덕류 가야금산조협주곡'을 새롭게 쓰고 있다. 이 곡을 통해 또 다른 하나의 다양성을 부여하며, 깊은 가야금의 울림을 더욱 극대화하여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나는 이 시대를 살면서 전통의 소리를 가치있게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아가는 숙명적 의무를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행해 가려 한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정진해 나아가서 언젠간 위의 위대한 산조의 명인들처럼 내 음악에도 어떠한 일가를 이루게 되길 바라면서….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8-27 11:18:41

손호석 극작가, 연출가

[매일춘추] 주도권을 잃지 않는다는 것

필자는 주로 뮤지컬 작품의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있다. 뮤지컬 제작에는 상당한 자본이 투입되기 때문에 청년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자도 딤프 창작지원작 선정, 봉산문화회관 상주단체 선정 등의 기회를 얻었기에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런 기회들이 없었다면 아마 단 한 편의 작품도 선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운이 좋은 편이고 본인의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일 기회를 얻지 못하는 젊은 예술가들도 상당히 많다. 공연을 만들 기회를 얻지 못했을 때는 참으로 답답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보여 주고 싶은 작품이 있는데 제작비를 구할 방법은 없고 마냥 기다리자니 꿈이 꺾여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낭독 공연이었다. 세트를 만들고, 의상도 제작하고, 조명 작업도 하면서 제대로 된 공연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자본을 구할 수는 없기에 대본과 음악만이라도 관객에게 선보이는 형식의 공연을 제작했었다. 비록 의자에 앉아서 대본과 악보를 보면서 하는 쇼케이스 같은 형식의 공연이었지만 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음악과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쁘고 감격적인 시간들이었다. 물론 이런 형식의 공연을 만드는 것도 상당한 제작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청년 예술가가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도전해 볼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불러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뭐라도 해 보는 것. 뜻 있는 분들의 노력과 같은 마음을 가진 젊은 팀들의 의지가 모여 몇 년 동안 작은 축제를 이어오고 있다. 대구 영 뮤지컬 아티스트 페스티발, DYMAF 라는 축제이다. 지금은 그저 본 공연에 앞선 쇼케이스 느낌의 공연이라는 개념을 넘어, 낭독이기에 가능한 규모의 이야기를 시도해 본다거나 국악,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통한 실험적인 음악극을 선보이는 자리로도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다. 기회는 한정되어 있고 모든 이가 선택을 받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지치고 포기하게 된다. 반대로, 너무 무리를 해도 쓰러지기 쉽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고 계속 시도해 나가는 것. 뻔한 소리지만 그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8-26 11:21:38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영원회귀의 오솔길

더위를 밀치고 9월이 온다. 내 가을은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되곤 했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긴 후 귀뚜라미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가을보다 먼저 다가와, 문풍지를 흔들듯 삶의 틈새를 비집고 들던 그 소리가 몹시 그립다. 귀뚜라미 소리는 여리면서도 강하다. 기분 좋은 음악처럼 끼륵대던 그 소리는 창을 닫아도 용케 잠결을 비집고 들어 가을이 끝나도록 내 삶의 언저리를 지켰다. 젖먹이들이 성인으로 자라도록 주택에서 살았다. 온 세상이 재개발로 뒤집어지지 않았으면 아름드리 라일락나무가 있던 그 집에서 아직 살고 있을 것이다. 주택의 소멸과 함께 4월마다 골목어귀까지 향기를 날리던 보라색 라일락꽃을 잃었고, 가을 벌레소리를 잃었고, 마당에서 탁구를 치던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를 잃었다. 주택에서만 들을 수 있는 가을 전령사들의 우짖음과 함께 디테일한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삶은 급격히 단순화되었다. 가을이 오는데, 벌레울음소리 대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더니 옆집에서 벽을 쿵쿵 두드렸다. 음악이 들릴 정도로 벽이 얇은가?32세의 슈트라우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연주 시간 33분의 교향시를 지었다.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강의를 들을 때였다. 그는 니체의 원작 서문을 교향시 서두의 표제로 사용했고, 에피소드를 가져와 제목도 붙이고 설명을 곁들여 아홉 개의 곡으로 나누었다. 슈트라우스는 인간의 기원이 담긴 니체의 사상을 극적으로 구성해내고, 1896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직접 초연을 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한 것이 1884년이고, 12년 후 곡이 발표되었다. 니체가 살아 있을 때였다. 당시 생존했던 두 사람이 직접 만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혼이 교감을 이루었으리란 연상은 충분하다.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 생각해보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의 전부일 것 같기도 하다.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하고 출판사를 찾았지만 책을 내주겠다는 곳이 없어서 자비로 출판했다. 그는 친구가 많지 않아서 고작 일곱 명에게 책을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책의 맨 앞장에 씌어 있는 글귀가 책의 내용만큼이나 심오하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아마도 니체는 이 책이 쉽게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리란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니체는 살아서 그 책을 위한 교향시를 받았다. 작가에게 이보다 큰 선물이 또 있을까. 장정옥 소설가

2019-08-22 11:19:41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소극장은 문화운동이다!

대구를 공연문화예술의 도시라고 한다. 공연 유료관객과 공연 인프라가 지방도시 중 1위이며 풍부한 관련 학과의 인력배출 및 수많은 공연을 볼 수 있는 공연장 의 수가 서울을 제외한 전국 최다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문화예술인들은 이러한 상황들이 실감나지 않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유료관객들 중 90% 이상이 기획사와 방송사 공연장 등이 합심하여 서울공연이나 관 주도의 기획상품으로 만들어진 공연들 위주로 채워졌다는 사실은 대구예술인들의 사기저하는 물론 자생력을 퇴보시키고 대구예술의 근간을 흔들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기초예술에 기반을 두고 산업으로 가야하는 정상구조의 현상을 탈피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근간을 흔들고 있을 때 대구 소극장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이 그 나라의 민주화를 완성시켰듯이 풀뿌리 예술운동의 중심에 서서 기초예술의 기틀을 다시 한번 정립하고 대중과 상업성에 마비되어 버린 관객들에게 문화의 향수를 고취시켜 예술로서의 살아있는 도시, 창조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공연문화도시 대구를 만들어가는 근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대구의 소극장은 1980년대 이후 대구공연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역사적으로 낙후된 극장문화를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다양성과 전문성을 성취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며 문화운동의 장이 되어주었고 창작실험과 무대미학의 다변화, 무대와 객석 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 인재 양성, 관객의 저변확대와 연극의 대중화 등 대구연극의 형성과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2019년 오늘도 소극장에서는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영상문화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대형뮤지컬이나 상업공연이 관객몰이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소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것은 소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과 생동감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소극장은 과거 소극장 운동의 본질적 의미를 구현하는 장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소극장은 동시대의 삶을 치열한 예술정신으로 담아내고 관객과 함께 미래를 고민하는 장으로 존재하고 있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그것은 발전을 위한 고통이고 성숙의 과정이다. 소극장 운동은 대구공연예술의 기반이자 발전의 토대이다. 이것은 한국공연의 발전사와 세계공연사가 증명하는 사실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현재 대구의 소극장 운동은 대명공연거리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운동이 부흥 확대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호응이 있길 바란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8-22 11:18:13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매일춘추] 청년의 춤

필자에게 청년은 희망과 용기의 수식어가 떠오르지만 좌절과 포기의 수식어들도 어색하지 않다. 우리에게 청년은 오늘날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눈물이고 한숨이며 해탈이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청년의 주기에 대한 개념적 의미는 생애주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입하는 '이행기'에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우리 엄마 세대의 이행기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육아를 스스로 해냈던 용감함의 시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청년 고용 사정이 악화되면서 청년의 나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해선 15~29세로 정해졌다. 우리나라는 높은 대학진학률과 군 복무 기간 등으로 2014년부터 15~29세 기준이었던 청년의 나이를 공공기관의 청년 의무고용 등 일부 정책에 의해 34세로 늘리기도 했다.'루마니아의 청년의 춤(Jocul Fecioresc din România, Lad's dances in Romania)'은 결혼식이나 축일과 같은 연주 축제 행사에서 공동체 활동 가운데 하나로 연행되었으며, 춤꾼들은 각자의 춤 기교와 동작을 선보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나타내는 표식이기도 했다. 이 춤은 지방과 지역 차원에서 화려한 기교를 뽐낼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겨 2015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루마니아의 지역민들은 공연자로서든 관객으로든 춤판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지역적 결속력을 강화하기도 한다.우리 지역에서 청년들을 위한 창작 춤 발표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공동체 전체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안무중심 국제적 무용페스티벌인 대구세계안무축제의 청년작가전은 청년안무자들에게 작품제작비를 지원하여 그들의 참신하고 창의적인 무용작품 발굴의 목표로 매년 6월에 그들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일침, 그들의 철학적 정신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다. 또한 지역 전문 현대무용단체인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예술감독 박현옥)은 젊은 청년 안무가들이 스스로 자립하여 성숙한 창작활동을 하기 전까지 청년 안무자들의 창작 의식 함양을 목표로 폭넓은 작품발표 기회를 통해 1994년부터 대구지역 최초 소극장 무용공연, 거리공연 등의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문화적 패러다임에 따른 공연형태를 선보이기도 했다.지역에서 활동하는 신진 무용단체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의 공동기획으로 이끄는 창조와 융합시리즈는 2015년부터 청년 안무자들에게 풍부한 작품발표 경험을 통해 획득되어진 장르간의 협업 및 분리된 형태의 예술공연의 장·단점을 긴밀하게 파악하고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 오는 8월 31일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라온에서는 팝댄스컴퍼니와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의 공동기획으로 꾸며진 청년들의 춤을 볼 수 있다. 스물여덟살의 가장으로, 스트릿댄스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현욱(팝댄스컴퍼니 대표) 청년의 춤, 그가 느끼는 가족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2019-08-21 11:15:44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시간적 예술

음악은 시간적 예술이다. 그림의 경우에는 그림을 감상하는 순간 느낄 수 있는 공간적, 시각적 예술인 반면에 음악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 나타나는 예술, 즉 시간의 흐름이 있어야 음악을 연주 또는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적 예술이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에 또 다른 하나의 시간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미 들어봤던 음악을 들으면 처음에 그 음악을 듣던 당시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마법의 힘이 있다. 누구나 겪어 보았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문득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인해 떠나는 시간여행을.나는 지금 이병기 작사 이수인 작곡을 한국가곡 '별'을 해금을 위한 곡으로 편곡 중이다. 이 곡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유명한 한국가곡이기에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모두가 한번쯤 들어보거나 노래를 불러보았을 것이다. 해금의 서정적인 선율과 함께 연주되는 '별'을 새롭게 만드는 중인데, 이 곡을 들으며 잠시 그때의 그 추억으로 빠져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모두에게 그리운 음악이 될 것이다.'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이병기 시/이수인 곡 '별'나에게도 추억이 담긴 음악 몇몇 곡들이 있다. 그중 한 곡은 전통 정악합주 유초신지곡 중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 이 그러하다. 유초신지곡은 향피리가 중심이 되는 영산회상으로 평조회상이라고도 한다. 화려하고 웅장하며 유창한 멋이 돋보이는 곡인데, 이 곡을 대학교 1학년 입학하고 나서 한 달 뒤에 있을 신입생음악회를 준비하면서 한 달 동안 매일 모여 연습하였었다. 나는 작곡 전공이었지만 거문고를 연주할 수 있었던 까닭에 거문고 연주를 하기도 하였고, 타악 인원이 부족할 때는 좌고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그때 연습이 끝나고 음악대학에서 학교 밖까지 걸어 나가는 봄의 밤거리, 그때 불었던 바람,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생각난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가 버려서 아련하게 그 추억이 남아있지만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의 시원시원한 곡조가 들리면 그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여러분의 추억이 담긴 음악은 어떠한 곡인가? 각자마다 사연과 스토리가 있는 음악이 있을 것이니 그중에 한 곡을 찾아 들어보며 늦여름의 하루를 보내시길 바란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8-20 1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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