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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종교칼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여름 안거가 시작됐다. 산중에는 나무들이 초록의 숲을 이루고 생명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공기를 내뿜고 있다. 나무와 나무들은 푸른 사원을 만들어 총림이 되었다. 텃밭에서는 상추와 고추, 가지 토마토가 쑥쑥 자란다. 사람이 행복과 불행을 이기는 길은 삶 전체가 온전하게 하나가 되는 일이다. 삶이란 온통 질문뿐이지만 그 속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고심한다. 자신이 몸담아 사는 일상에서 언제나 홀로 무심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깨어있는 사람이다. 삶의 희노애락과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수행이란 무엇인가? 수행은 나를 겸손하게 하고 단순하게 하는 거기에서 깊은 체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지만 이웃을 위해서 자비심이 싹트게 되면서 본래의 나로 드디어 태어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슴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없어지고 있다. 밤 하늘의 별이나, 속삭이는 바람, 춤추는 나무들의 자태를 기쁨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는 일에 급급하여서 자연의 소리를 멀리하게 되었다. 달이 뜨고 새가 나는 모습들을 눈 여겨 보지도 않는다. "사람과 기도와 명상이 그대 가슴에 중심이 되게하라 (팃낙한)"모든 경전과 스승들은 '나를 보라'고 하지 않는다. '나를 초월하여 보라'고 외친다. 이 초월함은 내면의 고요와 평화로움에서 얻어질 수 있다.정욕에 휘둘리고 티끌만한 명예를 쫓아가는 사람은 홀로 있지 못하고 윤회의 업력에 끌려가는 사람이다.승복 입은 도독들이 설치고 있고 세상이 절을 걱정하는 세태가 되었다. 참회와 민망함으로 같은 옷을 입고 얼굴을 들수 가 없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서 부모형제와 살던 집을 등지고 출가 하였는지 깎은 머리를 자주 만져본다.주지 자리를 서로 다투고, 은처 자에 학력위조까지 다반사가 되었다.출가가 집에서 뛰쳐나오는 단순한 일인가? 온갖 욕망과 세속적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일상화되고 참선하고 기도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화하기 위해 안과 밖으로 자신을 갈고 닦지 않는 사람은 수행자가 아니다. 말할 것도 없이 승가의 생명은 청정함에 있다. 청정성을 잃으면 더 이상 승가가 아니다. 지금 참선하고 염불하는 그 일 말고는 어떤 욕망도 비워 내야하며 그 수행과 정진을 통해서만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만일 겉으로만 수행자처럼 꾸미고 돈이나 명예 그 밖의 것을 생각했다면 그런 사람은 불자가 아닌 가사 입은 도둑놈들이다.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이 한탄하며 말씀 하셨다."어찌하여 도둑들이 내 옷을 꾸며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악업을 짓고 있는가"고통스런 과거와 업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비록 머리를 깎았을 지라도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 못하고 있는 것이다."재물과 이성을 바른 생각(正念)으로 대하라" 몸을 해치는 것은 이성보다 더한 것이 없고 도를 잃게 하는 것은 재물에 미칠 것이 없다.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마련해 경책하고 계신 것이다. "출가하여 수행승이 되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인가,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것도 아니며, 명예나 지위 혹은 재물을 구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며, 번뇌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이어 끝없는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이다."서산대사 휴정스님이 선가귀감에서 하신 말씀이다.세속적인 명예와 지위에 연연하지 않는 그런 사람을 수행자라고 말한다.무엇이 참이고 진리인가, 참 수행자는 모든 것으로부터 훌쩍 뛰어 넘어서 자유로운 사람이다.장미 꽃 붉게 지는데 부끄럽고 부끄럽다.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6-01 14:19:45

[종교칼럼] 여성가족부에 묻습니다 1

[종교칼럼] 여성가족부에 묻습니다 1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에서 헌법재판소에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현행 형법이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낙태 시술이 불법적, 음성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 임신·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재생산권이 심각하게 침해 받고 있다"는 것이 여가부의 입장이라고 합니다. 여성가족부의 이 주장이 왜곡된 근거에서 도출된 일방적인 의견 아닌가 싶어서 지면을 빌려 몇 가지 여쭙습니다. 먼저 낙태가 불법이라서 낙태 시술이 불법적, 음성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그 결과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침해받는다고 하셨지요. 세계보건기구(WHO)가 만든 '안전한 낙태(Safe Abortion):보건 시스템에 활용하기 위한 기술 및 정책 지침'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2012년 갱신된 'Safe abortion'에서 WHO는 낙태에 관해 폐쇄적인 법률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행해지는 낙태시술 4건 중 3건이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루마니아 같은 나라에서는 낙태가 불법인 탓에 무허가 업자들에게 임신중절시술을 받다가 건강을 잃거나 위험에 빠진 사례가 적지 않게 보고됩니다. 아마 이런 통계와 권고에 입각해서 여성가족부도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하지만 한국의 실태와 자료에 정통할 여가부에서 WHO의 권고가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왜 설명하지 않으시는지요?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는 불법 낙태와는 달리 한국의 임신중절수술은 대부분 병의원에서 숙련된 의사에 의해 시행되고 있음을 여가부에서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음성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으레 그러하듯, 불법 낙태 비용이 워낙 비싸서 병원 대신 다른 곳을 찾을 것이라는 예측도 우리 현실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OECD 주요국 중에서 높은 수준의 중절률을 보이는 우리나라에는 이미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낙태 비용이 상당히 내려와 있다는 점을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도 굳이 개발도상국의 통계에 근거해서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낙태 수술로 인해서 자궁 천공 등의 손상이나 골반 염증성 질환 같은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성의 건강권은 왜 언급하지 않으시는지요? PASS(Post Abortion Stress Syndrome)라 불리는 정서적인 후유증을 환자와 의사 모두 경험하게 되는 현실은 건강권과 전혀 상관없는 것입니까? 낙태로 인해서 위험해지는 임신부의 생명권과 건강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여가부가 언급하는 "임신·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재생산권"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2011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낙태 여성의 60%가 피임을 하지 않았고, 피임한 경우도 무려 82%가 피임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색한 방법을 썼다고 합니다. 여성이 '애 낳는 기계냐!'고 강변하기 전에, 이른바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할 수 있는 피임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피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는 권리가 태아를 죽일지 살릴지 선택하는 권리보다 훨씬 인간적이면서 우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하는 정부 부처로서, 무엇보다 여성과 가족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켜야할 정부 부처로서 여가부가 책임 있는 자세와 대안 제시를 통해 제 역할을 다 해주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5-28 10:28:36

[종교칼럼] 여성가족부에 묻습니다 1

[종교칼럼] 여성가족부에 묻습니다 1

여성가족부(이하 여성부)에서 헌법재판소에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현행 형법이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낙태 시술이 불법적·음성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 임신·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재생산권이 심각하게 침해 받고 있다"는 것이 여성부의 입장이라고 합니다. 여성부의 이 주장이 왜곡된 근거에서 도출된 일방적인 의견이 아닌가 싶어서 지면을 빌려 몇 가지 여쭙습니다. 먼저 낙태가 불법이라서 낙태 시술이 불법적·음성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그 결과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침해받는다고 하셨지요. 세계보건기구(WHO)가 만든 '안전한 낙태(Safe Abortion): 보건 시스템에 활용하기 위한 기술 및 정책 지침'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2012년 갱신된 'Safe abortion'에서 WHO는 낙태에 관해 폐쇄적인 법률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행해지는 낙태 시술 4건 중 3건이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루마니아 같은 나라에서는 낙태가 불법인 탓에 무허가 업자들에게 임신중절시술을 받다가 건강을 잃거나 위험에 빠진 사례가 적지 않게 보고됩니다. 아마 이런 통계와 권고에 입각해서 여성부도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실태와 자료에 정통할 여성부에서 WHO의 권고가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왜 설명하지 않으시는지요?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는 불법 낙태와는 달리 한국의 임신중절수술은 대부분 병·의원에서 숙련된 의사에 의해 시행되고 있음을 여성부에서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음성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으레 그러하듯, 불법 낙태 비용이 워낙 비싸서 병원 대신 다른 곳을 찾을 것이라는 예측도 우리 현실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OECD 주요국 중에서 높은 수준의 중절률을 보이는 우리나라에는 이미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낙태 비용이 상당히 내려와 있다는 점을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도 굳이 개발도상국의 통계에 근거해서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낙태 수술로 인해서 자궁 천공 등의 손상이나 골반 염증성 질환 같은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성의 건강권은 왜 언급하지 않으시는지요? PASS(Post Abortion Stress Syndrome)라 불리는 정서적인 후유증을 환자와 의사 모두 경험하게 되는 현실은 건강권과 전혀 상관없는 것입니까? 낙태로 인해서 위험해지는 임신부의 생명권과 건강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성부가 언급하는 "임신·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재생산권"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2011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낙태 여성의 60%가 피임을 하지 않았고, 피임한 경우도 무려 82%가 피임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색한 방법을 썼다고 합니다. 여성이 '애 낳는 기계냐!'고 강변하기 전에, 이른바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할 수 있는 피임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피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는 권리가 태아를 죽일지 살릴지 선택하는 권리보다 훨씬 인간적이면서 우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하는 정부 부처로서, 무엇보다 여성과 가족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켜야할 정부 부처로서 여성부가 책임 있는 자세와 대안 제시를 통해 제 역할을 다 해주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5-26 00:05:16

[종교칼럼] 나를 울린 독일 통일

[종교칼럼] 나를 울린 독일 통일

1982년 9월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니콜라이교회에서 '평화기도회'가 열렸다. 이 기도회는 8년째 지속되었다. 1989년 9월 4일에는 평화기도회 후 1천 명의 시민이 '자유'를 외치며 대규모 거리 행진을 시작했다. '평화기도회'는 '월요시위'가 되었다. 이어서 참가자가 매주 1만 명, 2만 명, 7만 명, 12만 명 규모로 확대되었다. 시위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은 천안문 학살과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지 몰라 두려워했다. 그러나 시위 진압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경찰 병력에게 철수 명령이 내려졌다. 심지어 군인과 경찰도 시위에 참여했다. 1989년 11월 9일에 동서독 사이의 국경 제한이 풀렸다. 많은 동독 사람들은 전에 자동 살상 장치가 설치되어 있던 베를린 장벽을 뛰어 올라가 서베를린으로 넘어갔다. 동'서베를린을 가로막던 검문소가 없어졌다.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던 국경의 장벽을 허물고 동독의 자동차가 서독으로 넘어왔다. 나는 이때 독일에서 유학 중이었다. 이런 급변하는 상황을 매 순간 TV를 통해 보고 있던 나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흘렸던 눈물처럼 펑펑 터져 나오는 눈물이었다. 부러움의 눈물이었다. 또한 가능성의 눈물이었다. '지구 상의 두 분단국가 중에서 한 나라가 이렇게 극적으로 통일이 되는구나! 정말 부럽다! 우리에게도 통일의 그날이 빨리 오게 하소서!' 나는 다음 날 당장 동료와 함께 1시간을 운전하여 가장 가까운 국경도시로 가보았다.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는 동독 차량 행렬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역사적 풍경이었다. 감격이었다. 또 눈물이 터졌다. 당시 동독의 자동차는 '트라비'(Trabi)라고 하는 소형차였다. '트라비'란 애칭으로, 원이름은 구 동독의 국민차 '트라반트'(Trabant)였다. 2기통 엔진, 최대 속력 60마일, 차체는 강화 플라스틱, 무게는 600㎏ 정도 되는 초경량이었다. 차를 신청한 후 12년을 기다려야 했던 동독 주민에게 자부심을 주었던 차였다. 꼬리에 꼬리를 문 트라비 자동차가 뿜어내는 시커먼 연기에 도로는 매연이 자욱해 눈을 뜰 수 없었고, 목이 아팠다. 또다시 눈물이 터졌다. 이제는 조금 전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트라비의 매연 때문이었다. 트라비는 동독 경제의 상징이었다. 나의 눈물 또한 동독민의 현실에 대한 아픈 마음이었다. 통일 이후 동독의 기업들은 경쟁력이 없어서 거의 망하게 되었다. 동독 출신 중년 여인의 TV 인터뷰가 기억난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다. "나는 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실업자입니다. 나는 정부의 구제금을 받고 살아가기가 싫습니다. 나에게 일자리를 주십시오. 나는 건강한 시민으로 당당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마음이 짠했다. 또다시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바람직한 체제의 변화도 모든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서독 정부는 통일 전에도 탈동독 이주민에게 서독 사람들과 똑같은 복지 혜택을 주려고 애썼다. 통일된 후에 독일 정부는 여전히 구 동독 지역민의 복지와 생활수준을 구 서독 주민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수많은 반대에도 꾸준한 독일 정부의 노력 또한 눈물겹다. 독일 통일은 이래저래 내 눈물샘을 자극한다.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5-19 00:05:00

[종교칼럼] 행복으로 가는 길

[종교칼럼] 행복으로 가는 길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우리들 자신도 부처에 이르게 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동시에 우리들 자신도 부처의 경지에 오르는 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일평생 많은 가르침을 펴셨다. 그 가운데 핵심이 '자비'이며 '사랑'이라 할 것이다. 부처님은 자비를 이야기했고, 스스로 실천하셨다. 자비를 실천하셨기에 종교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의 깨달음만 말했다면 불교는 종교로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종교는 사랑을 말한다. 그것은 인간 중심의 사랑에 그치지 않고 만물과 더불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화와 균형 속에서 이루어진다. 자비는 사람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까지 이르게 된다. 불교 초기경전인 '자비경'에서 사물을 통달한 사람은 평화로운 경지에 이르러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고 했다, '유능하고 정직하고 말씨는 상냥하고 부드러우며 잘난 체하지 말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알고 많은 것을 구하지 않고, 잡일을 줄이고 생활을 간소하게 한다. 또 모든 감각이 안정되고 지혜로워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남의 집에 가서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보호하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발하라.' 자비경에서는 '모든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자비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마치 어머니가 외아들을 보호하듯이 무한한 자비심을 행하라고 하며, 온 세상에 대해서 자비심을 행하고 위로 아래로 옆으로 그 어떤 장애도 원한도 적의도 없는 자비를 행하며 서 있거나 길을 갈 때 앉아 있거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 한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고 한다. 이런 상태를 최고의 경지라고 한다. 여기서 자비심을 발하라, 자비심을 행하라,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등은 깊은 의미가 있다. 자비심이 곧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자비의 자(慈)는 함께 기뻐하는 일이며, 비(悲)는 함께 신음한다는 뜻이다. 남이 잘되면 기뻐하고 남의 고통을 그냥 바라보지 않고 신음하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인 자비의 실천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가 될 수 없듯이 중생이 있기에 부처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은 나를 일깨워주는 선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을 만나서 자비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수행자가 아니다. 수행은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비심이 준비되어 있고 일상의 삶 자체에 깨어 있다면 그는 지혜 있는 사람이며 수행하는 사람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순간순간 새로워지고 새롭게 눈이 열리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갖추어지고 성숙되어지는 것이다.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에서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우리들을 이롭게 하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욕심을 버리고 견디기 어려운 수행을 겪었기 때문이요, 중생들이 괴로워하는 것은 끝없는 세월을 두고 탐욕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부족할 것이다. 행복은 자기 분수에 맞게 절제하는 데 미덕이 있다. 부처님께 으뜸 가는 행복에 대해서 물었다.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고, 어진 사람과 가깝게 지내며,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하라. 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가르침을 들으라.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이것이 바로 불타 석가모니의 행복론이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행복이다. 부처님오신날과 더불어 모두 행복하시길….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5-12 00:05:10

[종교칼럼] 남과 북이 만나면

[종교칼럼] 남과 북이 만나면

1995년으로 기억한다. 어쩌다 한 재중동포의 장례비용을 모금하게 되었다. 지하철역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흔두 살의 젊은 아내요 어머니에게 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연변에 병든 남편과 두 아들을 둔 어머니는 첫 아들을 명문 북경대에 합격시키는 경사를 맞았다. 멀리 북경에 유학을 보내기엔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그는 빚을 내서 산업연수생으로 등록하고 한국에 왔다. 열심히만 일하면 빚도 갚고 아들 교육비도 마련하리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사정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산업연수생 신분으로는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을 면할 길이 없어서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체류 신분으로 빠져나갔는데, 이 어머니도 대열에 합류해서 한식집에 일을 구하게 되었다.하지만 식당일도 생각과는 달랐다. 밥상에서 술을 따르라거나 손목을 잡아끄는 취객들에게 수모를 당해가며 일했건만, 사장은 월급날이면 이 핑계 저 핑계로 월급을 깎거나 미뤘고, 심지어 불법체류 단속이 나왔다며 도망가기를 종용했다. 놀란 마음에 2층에서 뛰어내리는 와중에 동료는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하고, 이 어머니도 몸을 다쳤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다시 출근을 했지만 약속했던 월급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데다 병원에도 가지 못했다. 연변에서 보내온 싸구려 약으로 버텨가며 악착같이 일을 했지만, 다친 허리보다 더 크게 다친 마음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던가 보다. 다친 지 여섯달 만에 이 어머니는 철길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보탠 돈으로 남편을 모셔 와서 장례를 치르던 날, 영정을 들고선 남편은 눈물만 뚝뚝 흘리더란다.연변에 남한 사람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던 초창기 풍경이 그랬다. 없던 유흥업소들이 생겨서 처자들을 술자리 시중에 불러내기 시작했고,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을 우려먹으려는 행렬이 이어졌다. 독립운동의 큰 뜻을 품고 연변에 왔던 조상들까지 사기극의 미끼로 던졌으니, 이른바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 사기라는 낯부끄러운 짓을 벌인 자도 있었다. 당신네 조부가 남한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서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연금도 받을 수 있으니, 수수료를 내면 그 수속을 대행해주겠다며 여러 동네를 통째로 털어간 사건이었다. 여차 하면 한민족의 우수성을 찬양하면서도,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민낯을 너무 많이 보였다.판문점 선언 이후로, 장밋빛 전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철도로 파리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들리고, 엄청난 분단 비용을 덜어낼 수 있으리라는 낙관도 있다. 토목건설의 호황을 점치는가 하면, 북한의 싼 노동력과 상당한 수준의 지하자원에 대한 기대도 있다. 그러나 무려 칠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전혀 다른 체제 안에서 살아온 남과 북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게 될지, 어떻게 화해와 용서를 이뤄낼지 지혜를 모으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독일 통일 이후, 오씨(Ossi)와 베씨(Wessi)로 반목하던 사람들을 화해하고 일치시키는데 그리스도교 교회가 큰 역할을 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의 한 계기였던 1989년의 범유럽 피크닉 사건 때, 밀려드는 동독 난민들에게 긴급 자금과 생필품을 나눠 줄 수 있었던 데에는 오스트리아 시민들의 그리스도교적 형제애가 한몫 단단히 했다. 우리는 북에서 온 겨레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용서와 화해와 형제애를 실천할 마음을 품고 있는가.

2018-05-05 00:05:03

[종교칼럼] 꽃피듯 만나자!

[종교칼럼] 꽃피듯 만나자!

독일에서 유학할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세미나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우리 집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타우누스라는 650m 높이의 큰 산자락에 있어서 도심과 비교하면 공기가 신선하고 계절의 변화를 맛볼 수 있는 곳에 있었다. 나는 그날도 집 앞 역에 도착하여 전철 문이 열리는 순간 저녁이지만 여전히 상큼하고 향긋한 봄 내음을 맡았다. 그런데 바로 앞의 벤치에서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며 슬프게 울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몇 번을 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던 할머니가 아닌가? 물론 '안녕하세요. 좋은 날입니다'가 전부였지만 얼굴만큼은 낯설지 않았다. "할머니 웬일이세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아들이 보고 싶어서 그래요." "아드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아들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우시죠?" "오늘 아들 집에 가려고 했는데 바쁘다고 오지 말라 해서…." "아, 네! 그래서 우시는군요. 그럼 다음에 가시죠. 얼마 전에 다녀오신 적이 있어요?" "3년 전에요." 나는 멈칫했다. "아드님이 어디 사시는데 3년 전에 다녀오셨어요?" 할머니의 대답에 의하면 아들은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에 살고 있었다. 전철로 30분 거리였다. 30분 거리가 3년 이상 걸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나는 노년의 외로움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 사회가 이렇게 부모와 자식 간에 정이 없구나. 한국의 가정은 정이 있어서 좋다'는 민족적 자존심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요즘 내가 느끼는 바는 한국의 가정도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족 관계가 마르고 말라 부서져 먼지가 날 정도인 가정도 꽤 있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아파트 이름을 늙은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국적 불명의 외국어풍으로 길게 짓는다고 한다. 이런 조크를 들으면 웃음이 나와야 하는데 진지하게 들린다. 하루는 아내와 산책을 하는데 벌이 나만 따라오는 것이었다. 평상시에는 아내의 화장품 향기 때문에 벌이 아내에게만 가까이 와서 힘들었는데 그날만은 예외였다. 이유는 내가 밝은 옷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체험을 통해 한 가지를 공부했다. '봄의 꽃들이 이래서 밝고 화려하구나!' 나무가 겨울에 죽은 듯 있다가 봄이 되어 화려한 꽃을 피우며, '나 여기 살아있어, 한번 찾아와 줘'라며 벌과 나비를 초대한다. 벌과 나비는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겨우내 움츠렸던 날개를 펴며, 반가운 만남을 하고 꿀을 빨며 기쁨의 축제를 벌인다. 그 덕에 꽃은 수분을 하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생명을 이어간다. 이처럼 생명은 반가운 만남을 통해 이어지는 것이다. 만남의 기쁨이 서로를 사랑하게 하고, 사랑은 서로를 풍성하게 하고, 사랑이 서로에게 생명을 준다. 예수님도 모든 교훈의 결론은 '사랑'이라 했다. 사랑 속에 생명이 있다. 서로 사랑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몇 주 전 설교 시간에 내가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씨 사랑해!"라며 고백을 하였다. TV 방송을 통해 내 설교를 보았던 아내의 6촌 동생이 갑자기 아내에게 전화를 하였다. 까마득한 옛날에 본 어린 시절의 모습만이 서로의 기억에 있는 명목상의 친척 언니 동생 사이였다. 이번에는 정말 반갑게 서로 살아온 시간들을 알려주느라 두 시간을 통화했다고 한다. 아내가 다니는 헤어살롱의 원장님은 최근에 동창회에서 남이섬을 다녀왔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 인원이 60명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그 모임이 반갑고 즐거운 만남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봄은 만남의 계절이다. 하나님께서 반가운 만남을 위해 축제의 자리를 만드셨다. 온 세상이 이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때가 있는가? 아름다운 시간, 아름다운 곳에서 만나면 그 만남이 더 아름다워진다. 가족들아, 친구들아, 봄날에 만나자. 꽃 피는 계절에 꽃 같은 모습으로 만나자. 봄날에 꽃 피듯, 활짝 웃으며 만나자!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4-28 00:05:00

[종교칼럼] 홍도 피는 날

[종교칼럼] 홍도 피는 날

새봄의 흙냄새를 맡는다. 꽃이 피고 진 자리에 새 잎이 난다. 대문 앞에 늦은 홍도화가 활짝 펴 온종일 문밖에서 서성거렸다. 홍도화는 장미보다 붉고 꽃송이가 겹겹이 둘러싸여 만첩홍도화라고 한다. 꽃만 피는 꽃 복숭아이다. 봄비 오는 날 스승을 찾아갔다. 매순간 스승에게 배우는 일은 여러 해를 지난 지금도 똑같은 가르침을 받는다. 빵을 굽듯이 불길에 잘 구워지고 속까지 잘 익어서 거죽까지 까맣게 그을리면 영혼도 골고루 숙성되어지는 것이다. 돌아보면 지난 시간 그분이 보내준 따뜻함과 아름다운 신뢰를 잊을 수 없다. 어떻게 온전하게 다 배울 수 있을까? 주변에 깨달음과 참 나를 찾는 프로그램과 속성반이 유행처럼 넘쳐나고, 수십 년씩 한 스승을 뫼시고 밥 짓고 공양하는 수행이 사라져가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어리석음에 이뤄질 수 없음을 몰랐던 것이다. 매 순간, 그분에게 주어진 일, 그것을 지켜보며 모든 일을 감내하며 수행의 지남으로 삼았었다. 그런 스님의 살아있는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출가 이후 60년 동안 수행과 방편을 함께하셨다. 성파 스님은 단절된 불교문화 복원이라는 서원을 세우고 문화 전도와 정진에 힘을 쏟고 계신다. 서운암에 주석하시면서 4만 평에 감나무를 심으셨다. 4월이 되면 5천 평 들꽃 가득한 정토세계를 만드셨다. 우리 들꽃의 소중함과 꽃 공양이 으뜸이라며 야생화를 심어서 종교화합의 축제를 해마다 열었다. 불모지의 서운암에 가마를 짓고 흙을 구워서 도자불상 3천불을 조성하고 1991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고려대장경의 정신을 잇는 16만도자대장경을 봉안하셨다. 더구나 대장경을 봉안할 판전과 3천불전을 마무리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과정이 28년 세월이 지났다. 산중 생활에도 시조를 짓고 시조문학에도 지원해 성파시조문학상을 34년째 진행하며 전국 시조백일장을 운영하고 있다. 수행자로서의 이런 일탈은 수행과 일상이 같아야 하며 일상이 생활로 정착돼 세상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사찰의 너른 공간은 무한대의 학습장임을 증명하며 여기에서 우리가 바라는 생산품이 만들어져야 한다. 스님은 사라졌던 염색문화를 위해 전통 쪽을 심고 염색한 감지와 색지, 그리고 들기름을 바른 유지를 되살렸다. 식물의 꽃과 잎, 뿌리와 열매에서 초목염재를 개발해 천연염색의 길을 열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스님의 손길이 가면 예술이 되고 수행이 돼 일상으로 연결되었다. 게으를 수 없었다. 닥나무를 심어 직접 한지를 제작하고 감지에 사경과 불화를 그렸다. 그리고 그 위에 1천 년의 보전을 위해 옻칠을 올렸다. 해와 달은 쉬지 않는다. 수행과 방편도 둘이 아니다. 마음 가는 곳에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길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전통문화에 천착한 스님은 감지은니사경, 서예, 도자, 산수화, 제지술, 천연염색, 옻칠화 등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작업을 이룩하셨다. 지금도 스님의 원동력은 마르지 않고 진행 중이다. 79세의 노인이 아니다. 2017년에는 흙과 종이로 단절되었던 북위 시대의 불상을 건칠로 조성해 신기원을 만드니 그 열정과 수행은 신라의 양지 법사가 살아온 듯하다고 하셨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스님과 나눈 대화보다도 그분이 길을 만들며 이루어가는 작업량과 결과의 수준이 오랜 시간 위에 역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분 곁에서 누리고 배우며 지켜보는 순간들은 자급자족하며 손수 솔선하며 배웠던 기억들이다. 나는 봄에 세 번이나 스승을 만났다. 그때마다 내가 그분 옆에 있는 시간은 고작 한나절이었다. 그분은 최근 산중의 최고 어른인 방장으로 취임하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 자신이 조금씩 익어가고 많은 세월이 어떤 불길 하나가 내 곁에서 활활 타고 있음을 생각하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4-21 00:05:00

[종교칼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장이

[종교칼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장이

12세기의 신(新)플라톤주의 철학자 베르나르두스는 훗날 길이길이 회자되는 구절을 남겼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장이'(Nanos gigantum humeris insidentes)라는 그의 표현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식견과 성과가 선학(先學)들의 축적된 업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경구로 쓰인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소개한 아이작 뉴턴 경은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 바 있고, 얼마 전에 작고한 스티븐 호킹 박사 또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라는 제목으로 물리학과 천문학의 거장들을 조명하는 책을 썼다. 무릇 탁월한 업적과 놀라운 혜안은 혼자만의 영감과 천재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앞서 디딤돌을 놓고 생각의 물길을 틔워 준 이들이 없었다면, 그 어떤 거장이나 대가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쟁이로 하여금 더 넓게, 더 멀리 볼 수 있도록 해준 그 거인들이 반드시 학문의 대가이거나 그 분야의 거장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컨대 최초로 실험실(In Vitro)에서 성공적으로 배양, 증식되어 의학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던 헬라 세포주(HeLa Cell line)의 경우를 보자. 이 인간 세포주가 있기 전까지 인간 세포를 이용한 실험과 연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인간의 세포는 배양 접시에서 적절한 조건만 갖춰 주면 무한정 배양하거나 증식시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까닭에 연구자들은 세포에 대한 실험 자체보다 세포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할 지경이었다. 생리학, 병리학, 세포생물학, 면역학 등 의학 및 관련 학문의 연구에 있어서 인간 세포 실험은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인간 세포를 배양하는 첫째 관문조차도 채 넘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가운데 1951년 자궁경부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가난한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1920~51)에게서 유래한 세포 조직이 세포주로 확립돼 수없는 생명을 살리고 의학의 도약을 가능하게 한 디딤돌이 되었다. 제약회사들과 병원들이 이 세포주로 인해서 얻게 된 금전적 이익은 도무지 얼마나 될지 추정하기도 어려울 만큼 컸다. 하지만 헨리에타 랙스와 그의 가족들이 얻은 것은 저 획기적인 세포주가 헨리에타 랙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는 사실 하나뿐이었고, 그 외에 어떤 경제적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곤궁한 삶을 견뎌야 했다. 그뿐 아니라 세포의 채취와 이용, 그리고 상업적 활용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고, 동의 과정도 없었다. 훗날 헨리에타 랙스의 딸 데보라는 이렇게 묻는다. '엄마 세포가 의학 발전에 그렇게 큰일을 했다는데, 왜 우리 가족은 마음 놓고 병원에 갈 수도 없는 것인가?' 의학 연구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들과 자료들은 결코 책상에서 몇 가지 공식을 풀어냄으로써 얻어낸 것이 아니다. 의학은 질병과 통증에 신음하던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죽음을 데이터의 원천으로 삼는다. 오늘날 병원에서 생검을 통해 채취된 환자의 세포들부터 수술실에서 새로운 수술법의 적용을 받는 환자의 몸,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했던 환자들의 사연까지 모두가 의학 연구와 의료 발전의 도구로 사용된다. 최근 등장한 인공지능 진단 프로그램 Dr. Watson이 사용하고 있는 빅데이터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신체 정보이며 누군가가 겪었던 고통의 기록이다. 오늘을 사는 난쟁이들은 자신이 구사하는 현묘한 학문과 압도적인 기술에 스스로 도취되곤 하지만, 그 밑에는 누구인지 얼굴조차 모르는 수많은 거인들의 어깨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결국 다른 이의 기여와 희생을 바탕에 두고 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전문지식과 기술이라고 그것에 대한 독점적인 권한과 보상만을 바라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가진 기술과 학문적 역량이 공공을 위해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지 고민해야만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4-14 00:05:04

[종교칼럼] 가상현실

[종교칼럼] 가상현실

인터넷은 가상세계를 열었다. 우리는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간다. 꿈의 세계가 열린다. 손끝으로 터치만 하면 전 세계의 폭포가 눈앞에 와 있고, 꽃이란 꽃은 다 감상할 수 있고, 웬 나비가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음악세계가 열린다. 손끝으로 터치하면 우리의 목소리가 광장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 세상에 퍼져 나간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가 우리의 손바닥에 와 있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났다. 한 친구가 시국에 관해 열을 토하며 말했다. 그는 가짜 뉴스로 만들어진 가짜 세계에서 온 듯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연실색하며 할 말을 잃었다. 재치 있는 친구가 화제를 급하게 다른 데로 돌리고 나서야 어색한 분위기가 해소되었다. 나는 이 사건 이후로 가짜 뉴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때로는 이 말이 얼마나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지 3년 전의 가짜 뉴스가 토씨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올 때도 있다. 가짜 뉴스는 오해로 인해서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의도를 가지고 치밀한 기승전결을 만든다. 상징과 함축과 비유, 구호를 적절하게 이용한다. 누군가 이 가상현실을 이용하여 어떤 유익을 얻으려는 의도다. 거짓말이 선할 리가 있는가? 거짓말을 사용하여 대상을 혐오스러운 색으로 칠하고, 이념의 낙인을 찍고, 비인간화하고, 악마화하고 증오한다. 가짜 뉴스의 간단한 판별법은 '긴급뉴스, 무슨 파를 사수하자. 무슨 파를 박멸하자'는 구호, 증오와 조소의 내용이 있는가이다. 목사로서 한 교회를 지키기에도 힘이 벅찬데, 무슨 파를 사수하라니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성직자에게 증오의 메시지를 보내는 용기도 발칙스럽다. 나는 개인적으로 삼진아웃제를 도입했다. 내게 가짜 뉴스를 세 번 이상 보내면 나는 가차없이 그를 차단한다.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구차스레 보일까를 염두에 두라. 내가 가짜 뉴스를 싫어하는 이유는 가장 먼저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나를 어떻게 보았기에 이런 가짜 뉴스를 읽고 동조하거나 키득거리며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가짜 뉴스로 내게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는가?' 거짓말로 내 마음속에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주입하려고 했다면 내 마음의 도둑이다. 내 마음의 주머니에 슬쩍 들어온 검은손이다. 결국 나는 범행 대상이 된 것이다. 가짜 뉴스는 나 개인의 자존심뿐만이 아니라, 내 페르조나(사회적 자아)의 품격에도 손상을 줄 것이다. 거짓말을 가지고 성직자에게 증오와 미움을 부추긴다면 말이 되는가? 성직자에게 거짓말이라도 사랑과 평화와 화해의 말을 하고, 자비의 시늉이라도 보여야 예의가 아닐까? 우리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와 미디어를 통해서 가상현실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 가상현실이 천국 같은 현실이면 좋겠는가? 지옥 같은 현실이면 좋겠는가? 당연히 천국 같은 현실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가상현실이 현재는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꽃피울 찬란한 미래를 미리 보여주면 어떨까? 가짜 뉴스를 가지고 아름다운 현실을 만들 수 없다. 편 가르고 증오를 심는 가짜 현실에 속지 말자. 인터넷 게시판 댓글로 인해 상처 받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증후군의 공간이 아닌 치유의 공간으로 가꾸자. 격려와 용기를 북돋워주는 회복의 공간으로 가꾸자.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광장으로 만들어보자. 이해와 화합의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가상현실을 악몽의 세계가 아닌 꿈의 세계로 가꾸자. 가상현실을 희망찬 세계로 가꾸자! 얼마 후 현실이 될 것이다. 가상현실을 가짜 현실로 만들지 말자. 가상현실을 최상의 현실로 만들자.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4-07 00:05:00

[종교칼럼] 열반절 아침

[종교칼럼] 열반절 아침

남도여행을 다녀왔다. 암자에 돌아오니 산길에 온통 진달래꽃이 가득했다. 꽃 소식은 남쪽에서 먼저 올라온다. 꽃이 없는 봄은 봄이 아니다. 꽃이 피기 때문에 봄이다. 봄이 되면 시선이 문밖으로 고정되고 방안의 사물들은 낡아 보이고 허접스럽게 느껴진다. 나그네는 머물 수 없으면 떠나라고 재촉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청정한 대나무 숲과 정겨운 토담들, 그리고 장독대의 신성함, 노란 산수유와 하얀 목련, 매화꽃, 더구나 붉은 동백꽃이 피었을 때 그 집은 가난하게 보이지 않는다. 꽃이 피고 훈김 나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고 내 집 같다. 해남에서 완도까지, 그리고 순천에서 벌교와 고흥까지 내려갔다. 바닷가 마을은 조는 듯 낮은 지붕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촌의 풍경들이 꽃 대궐을 이루며, 남도 특유의 향토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고흥안의 방조제에서 해 넘어가는 장엄한 일몰은 눈시울을 붉히게 하였다. 대서정류장에서 마중 나온 제석 스님과 조우했다. 제석 스님은 30년 넘게 고흥 봉황산에서 차밭을 일구고 도량을 가꾸며 요가와 밭농사를 짓는 농부 스님이다. 혼자 사는 수행자의 산중생활이 만만하지 않을 터지만 의연하고 건강한 생활에 머리가 숙여진다. 온돌방은 군불을 미리 지펴놓아 꽃샘추위에도 열기로 후끈거렸다. 차를 마셨다. 찻잔과 종류가 다른 차를 바꿔가며 밤늦도록 마셨다. 차를 마실 때마다 수행의 공력이 출렁거렸다. 새벽이 되었다. 창문을 열어젖히니 짙은 매화 향이 훅하고 방안 깊숙이 스며든다. 혼자 또 차를 마셨다. 차 맛이 없다. 저녁 늦게까지 차를 마셨기 때문일까? 매화 향기 때문일까? 차흥이 도망가고 차가 식어 버렸다. 멀리 바다가 아득하게 나타났다. 차에 취한 불면의 밤이 비로소 전해왔다. "어째서 푸른 산중에 혼자 사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웃는다. '마음 한가하여 도화꽃이 물에 떠서 표연히 흘러가니 여기는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유천지라네'(산중문답) 아침 공양을 마치고 또 차탁에 앉았다. 식은 차가 생각나서 무심히 찻잔을 들었다. 앗! 맛있다. 이 맛이다. 감로처럼 달달했다. 어째서 식은 차가 나를 비로소 차 맛에 이르게 하였을까? 경봉 큰스님 법문집에 '바다에 보물이 있으니 천연산 김이다. 해풍 씻겨서 자연산 김이 제일 좋다. 그러나 맛이 있으면 참 맛이 없고, 맛이 없는 가운데 참 맛이 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참 맛인가, 그냥 맛이다.' 차를 마시고 있으니 제석 스님이 맨발로 차실에 들어왔다. 차밭에 새순이 나오기 전에 덩굴과 잡목을 제거하고 서리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제석 스님! 네가 어째서 건강하고 매사에 당당한지 오늘 알았다. 그리고 시골에 살아도 스님이 부자처럼 살고 있는지"라고 칭찬하며 둘이서 크게 웃었다. 흙 묻은 작업복과 거친 손, 그은 얼굴 등은 무소유로 가는 비구가 연상된다. 무소유는 완전한 거지가 된다는 것이다. 비구는 필추에서 왔지만 큰 거지 또는 밥을 비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정신과 육신이 있지만 무소유로 가는 수행자는 거지처럼 몸에 걸친 것이 없어야 한다. 가지고 있는 것이 한 가닥이라도 있으면 비구는 아니다. 그러므로 비구의 무소유는 너무나 무서운 말이다. 고타마 싯타르타처럼 맨발이 소중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무소유에 얼마나 가까이 갔을까? 식은 차가 맛있다.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3-31 00:05:00

[종교칼럼] 프로파간다

[종교칼럼] 프로파간다

선전(Propaganda)이라는 말은 로마 교황청의 기구인 '포교성성'(Sacra 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에서 기원한다. 교황 클레멘스 8세는 1599년 '포교성'을 설립하면서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를 처음 선보였다. 이어서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한동안 활동이 멈춰져 있던 이 기구를 포교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재가동하면서 프로파간다는 역사의 전면으로 떠오른다. 포교성성의 주 임무가 가톨릭 신앙의 확산을 촉진하고 비가톨릭 국가들에서의 가톨릭 선교 상황을 관리하는 데 있었던 만큼, 프로파간다는 곧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활동을 뜻했고, 가톨릭 선교사들과 함께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도 세계 각지로 퍼져 갔다. 여기까지만 해도 프로파간다는 종교적 의미로 통용되었을 뿐, 특별히 정치적인 뜻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프로파간다가 오늘날의 정치적 의미를 얻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부터다. 각국이 국수주의적인 프로파간다 캠페인을 펼치면서 프로파간다는 종교적 선교활동에서 정치적 주장의 선전과 선동 활동을 뜻하는 말로 쓰임새가 달라졌는데, 여기에 오명을 덧붙인 주범은 아무래도 나치의 선전상 파울 요셉 괴벨스일 것이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며 기세를 올렸던 괴벨스는 선전 선동에 악마적 재능을 발휘한다. 제3제국의 허세 다분한 이데올로기에 충실히 복무한 괴벨스의 프로파간다는 가톨릭교회로 하여금 더 이상 이 단어를 쓸 수 없게 했다.(포교성성은 현재 전 세계 교회의 일치와 선교 활동을 주 업무로 하는 인류복음화성으로 개칭되었다) 괴벨스에 따르면 선전은 본질상 일종의 예술이었고, 선전원은 민중 심리 예술가였다. 집단 대중의 심리 파악에 능통했던 그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전의 가장 큰 적은 '지식인주의'이다"라고 외치던 그는,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고 일갈하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과 왜곡도 가리지 않는 대담함을 드러냈다. 과연 괴벨스의 선전 선동, 즉 프로파간다는 일반적인 정보 전달이나 교육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정보 전달이 청중에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라면, 선전은 일정한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그런 사실들을 '가공'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한 방울의 잉크가 깨끗한 물 한 잔을 더럽히듯, 교묘하게 편집되고 맥락 없이 삽입된 거짓은 진실을 압도한다. 또 교육이 사람들에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법을 알려주려는 것이라면, 선전은 사람들에게 특정한 내용이나 시각만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정보 전달과 교육이 청중의 시야를 넓히고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 데 역점을 두는 데 반해, 선전은 대롱을 통해 세상을 보듯 한정된 시야와 닫힌 마음을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오늘날 언론이나 여러 종류의 매체를 통해서 이런 선전 선동이 기승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 특정한 경제 세력이나 이윤, 또는 파당적 이익에 이끌린 나머지, 진실을 왜곡하고 단편적인 시각을 강요하는 움직임이 도처에서 목격된다. 사회의 공기(公器)여야 할 언론뿐만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이런 혼란상은 쉽게 감지된다. 그렇게 쏟아지는 프로파간다에 숱한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타격을 입는 것은 당연히 따라오는 현상이다. 시민사회가 건전한 상식과 진실에 기반을 둔 건강한 의견을 키워가자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분별의 기준을 분명히 세우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 기준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지금 내가 들은 이 정보가 내 시야를 좁히고 마음을 닫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공동선을 지향하는 넓은 시야와 열린 마음을 불러일으키는가. 이 한 번의 물음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3-24 00:05:00

[종교칼럼] 마음의 장애

[종교칼럼] 마음의 장애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TV에서 스포츠 중계를 찾는 나에게는 대부분의 방송이 빈 채널과 같았다. '이제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나니 재미있는 것이 없네.' 그러던 중 지난 주말에 패럴림픽이 개막되었다. 미디어가 패럴림픽에는 관심이 없을 거라는 미디어의 부정적 자기 예언에도 불구하고 경기 중계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나는 관심을 갖고 패럴림픽 중계 채널을 찾아 몇 경기를 보았다. 내 눈에는 경기에 출전한 모든 선수가 영웅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잘할 수가!' 한결같이 장애를 훌쩍 뛰어넘은 승리자의 모습이었다.황민규 선수가 출전한 알파인스키 남자 대회전 시각장애 경기는 선수를 앞서서 인솔하는 가이드러너를 따라 시각장애 선수가 경주하는 경기였다. 선수가 청각과 기타 감각을 이용해서 가이드러너를 따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장애인과 정상인이 어우러져 함께 만드는 작품이었다. 시각장애 선수는 가이드러너를 완벽하게 보고 있었다. 가이드러너의 안내가 바로 시각장애인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기적이 아닐까? 우리가 일상에서도 이렇게 기적같이 살 수는 없을까?수년 전 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가 장애인학교 신축 예정지 옆 아파트 주민들에게 큰절을 하는 장면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아파트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은 아파트값 상승의 장애물이란다. 장애인학교는 혐오시설이란다. 내가 달려가 절하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 사회를 대신해서 용서를 빌고 싶었다. 마음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육신의 장애인들을 괴롭히는 형국이다.아파트 앞 장애인 주차 구역에 한 정상인이 주차했다. 이것을 본 아내가 물었다. "저 사람은 왜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세우지?" 내가 대답했다. "아마도 마음에 장애가 있겠지."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한 정상인은 마음의 장애인이다. 장애인의 삶의 현실을 잘 보지 못하는 마음의 장애인이다. 육체적인 장애인은 자신의 삶을 힘들게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의 장애인은 타인의 삶을 힘들게 한다.소위 정상인이라는 사람들이 도리어 타인을 향해 장애물을 쌓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잘 달리는 장애인, 잘 듣는 장애인, 말 잘하는 장애인, 잘 보는 장애인이 한결같이 마음의 장애인이다.하나님은 마음의 장애인도 고치시길 원하신다. 이번 패럴림픽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많이 일어나길 바란다.사람들은 장애를 장애인과 동일시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장애인에게 투영한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장애인을 피하고 싶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병든 마음이 만들어내는 악마적 허상에 더 이상 속지 않으리라.세상의 모든 인류는 서로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다. 각자는 서로에게 타인이다. 장애인이란 그저 다른 사람들 중의 한 사람 아닌가? 장애인 중에는 뛰어나게 다른 사람도 있다. 며칠 전에는 세계적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별세했다. 향년 76세. 21세 때 몸의 근육이 위축되는 '루게릭병'을 얻었지만 그는 발군의 업적을 남겼으며, 유머러스하고 정열적인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과 달라도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타인은 다르다는 이유로 나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경계의 대상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편견을 부수어야겠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부수자.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한 명의 타인에 불과한 것을 알자. 나 역시 다른 사람의 배려가 필요하고, 친절이 필요한 사람이다. 때로는 긴박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나 역시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존재다.타인의 마음속에 있는 타인으로서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나부터 내 마음속의 타인에게 친절히 다가가야겠다. 우리 집 반려견을 잘 다루어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듯이, 자기 마음을 잘 다루어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겠다. 내 마음속의 장애인이 문제이지, 길에서 만나는 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속의 장애를 더 잘 보살피자.

2018-03-17 00:05:00

[종교칼럼] 매화가 필 때

[종교칼럼] 매화가 필 때

매화는 춘삼월에 피웠다. 꽃 한 송이 피어날 때 그 꽃은 우주의 생명을 만들어 낸다. 봄은 달팽이처럼 더디고 느리다. 나무들은 서서 잠을 자고 있지만 성급한 개구리들은 연못에서 떼창으로 울었다. 바람은 어느새 겨울 산을 넘었다. 봄은 어젯밤에 보았던 별빛처럼 다시 돌아 땅 위에 복수초를 피우고 화단에 영춘화를 장식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바람은 아직 잠자는 꽃을 조심스럽게 깨우며 추위를 떨쳐내고 꽃송이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겨울나무들도 동안거를 마치고 잎 푸른 상록수들은 대부분 동상에 멍들어 있었다. 금년에도 영취산 통도사에서 혼자 수행하는 도반인 청강 스님이 카톡으로 봄을 보내왔다. 자장홍매가 만개하였다고. 작년 일기를 확인하니 2017년 2월 10일에 꽃이 만개했었다. 금년은 추위가 길어져서 20일 정도 늦게 피었다. 통도사 자장매는 수령 350여 년이나 되었다. 조사영각을 지을 때 나무도 함께 심었다. 통도사 개창주인 자장정율 스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 자장매라고 명명한 것이다. 주변의 다른 매화보다도 빨리 피고, 꽃이 곱고 짙은 향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날도 모든 사람들은 사진기를 들고 나무 주위에 몰려 있었다. 물론 봄의 전령은 영춘화가 봄볕을 먼저 맞이했다. 선종과 함께 전래되었던 매화는 항벽 스님의 오도송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티끌세상 벗어나는 일이 쉬운 일 아니다. 화두 단단히 붙잡고 애쓸지어다. 찬 기운 한 번 뼛속에 사무쳐야만, 짙은 매화향을 얻을 수 있으리요." 가까운 통도사 매화는 절경이다. 법당 앞마당에 홍매화가 만발하니까, 야위고 마른 선암사 담장의 70그루 터널 풍경들과 구례 화엄사의 추녀와 푸른 하늘이 맞닿은 듯 눈이 부시고 시려서 누구나 도취되게 하는 것이다. 매화는 그 생태적 특성이 장미과 낙엽수로 추운 겨울을 이기며 꽃을 피우는 오래 사는 나무이다. 중국의 700년 찰미과와 일본의 400년 수령의 와룡매가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600년의 선암매와 정당매가 고매로 남아 있다. 범성대는 "매화나무는 천하에서 으뜸가는 꽃으로 지혜롭거나 어리석은 사람 그리고 어진 사람과 어느 사람도 매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매화를 그리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몸은 늙어서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듯하며, 둘째는 굵은 나무가 뒤틀려 기괴하여야 하며, 셋째는 쇠처럼 곧은 가지가 맑아야 하며, 넷째는 어린 가지는 튼튼해야 하며, 다섯째는 꽃이 기이하고 아리따워야 한다"고 하였다. 매화나무를 자르지 않는 바보와 벚나무를 자르는 바보가 있다고 한다. 매화는 적당히 잘라주어야 나무가 잘 자라고, 벚나무는 가지를 자르게 되면 그 자리가 썩어들어가기 때문에 잘 자르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설중 삼우인 매화, 동백, 수선화 가운데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3월에 오는 비는 매우(梅雨)라 한다. 5월에 오는 비는 송매우(送梅雨)이다. 매실이 노랗게 익는 6, 7월에 오는 비는 황매우(黃梅雨)라고 한다. 매화 가지에 앉은 새가 향기를 듣는 매조문향은 한 차원 높은 문향을 말하기도 한다. 봄을 기다리며 눈 내리는 날 탐매는 매화를 찾아가는 심매의 길이다. 그림으로는 조희룡의 '매화서옥도'가 있다. 그는 매화를 좋아해서 자신이 그린 병풍을 치고, 벼루에 벼루시를 새기고 먹에 매화를 사용하며, 매화시를 즐겨 낭송하였다. 목이 마르면 매화 차를 달여 마셨다. '진기'의 '매화초목도'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눈 덮인 하얀 초당에 문 열어 놓고 찾아올 친구를 기다리는 훈훈한 풍경이 묻어나는 그림이다. 봄의 산뜻함과 즐거움이 느껴진다. 오늘날, 지리산을 지나서 남쪽 섬진강의 섬진마을의 드넓은 10만 그루 매화 숲과 해남의 보해매실 농원, 그리고 칠곡 송광설중매원 등은 매실 산업과 탐매하기 좋은 매화 마을이 되었다. 선암사 매화 터널과 화엄사 원통사전 사이의 매화는 붉고 고혹적인 풍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게 하는 곳이다. 매화를 찾아가는 발길에는 조심스럽게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의 봄이 되고 싶다.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3-10 00:05:00

[종교칼럼] 슬픈 시기를 지내십니까

[종교칼럼] 슬픈 시기를 지내십니까

1549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선교로 시작된 일본 가톨릭의 역사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인해서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뒤이어 도쿠가와 막부가 박해를 가한 결과, 가혹한 탄압과 세금의 이중고를 견디다 못해 4만여 천주교인들이 농민 봉기를 일으켰다가 학살되고 만다. 시마바라의 난이라 불리는 이 봉기로 인해 박해는 극한으로 치닫게 되었고, 가톨릭 신앙인들은 지하로 숨어서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고자 했다. 이들을 일컬어 '가쿠레 키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당시 순교자 중의 한 사람인 '바스찬'은 7대가 지나면 신앙의 자유를 얻으리라 예언했는데, 이 예언처럼 250여 년이라는 박해의 시간을 견뎌낸 가쿠레 키리시탄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 1865년의 일이었다. 일본 당국이 개항을 단행하면서 외국인들을 위한 성당 건축을 허가하자, 파리 외방전교회의 쁘띠쟝(Bernard Thadée Petitjean) 신부는 나가사키의 언덕 위에 오우라 천주당(현재 정식 명칭은 일본 26성 순교자 천주당)을 지어서 숨어 살던 그리스도인들을 불러내고자 했다. 하지만 워낙 길고 가혹한 박해를 겪은 탓인지 찾아온 일본인들이라고는 서양식 성당을 보러온 구경꾼뿐이었고, 쁘띠쟝 신부도 낙담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던 1865년 3월 17일, 이사벨라 유리와 가족을 비롯한 십수 명의 가쿠레 키리시탄들이 천주당을 찾아왔다. 경계심을 풀지 못한 그들은 구경꾼을 가장한 채 쁘띠쟝 신부에게 다가와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먼저 성모님을 공경하는지, 사제가 결혼했는지, 끝으로 '슬픈 시기'를 지내는지 물었던 것이다. 이에 쁘띠쨩 신부가 성모님을 공경하고 사제는 결혼하지 않으며 '슬픈 시기'를 지낸다는 점을 확인해 주자, 비로소 가쿠레 키리시탄들은 '저희 마음도 신부님과 같습니다'라며 신앙을 드러내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가톨릭 신앙인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핵심 질문이 '슬픈 시기'의 준수 여부에 달려 있었던 셈이다. 가쿠레 키리시탄들이 말하는 '슬픈 시기'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서 사순 시기를 말한다. 사순 시기는 말 그대로 40일간의 성찰과 회개의 때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을 광야에서 떠돌며 정화의 과정을 거쳤던 히브리 사람들처럼, 그리고 40일간 광야에서 유혹과 맞서며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였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순 시기 동안 거짓으로 감출 수 없는 광야의 삶을 자처하면서 거룩한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과연 가리지 않은 인간의 민낯을 보는 일은 슬픈 일이다. 허세와 거짓으로 분칠되어 있는 일상을 파헤쳐서, 그 두터운 위장막 아래에 숨어 있는 뒤틀린 욕망과 이기심의 깊은 상처를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숨기려고 허세를 부리거나 남 탓을 하고 분노하는 악습 속에 있다. 그렇게 죄와 죽음으로 한계 지어진 자신을 보는 일은 인간에게 슬픈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순 시기를 슬픈 시기로 지내는 참뜻은 단지 자기 연민과 비관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데 있지 않다. 천주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인간의 죄와 죽음을 대신 떠맡는 것으로 이해했고, 따라서 스승의 모범을 따라 세상의 죄와 고통을 대면하는 것을 제자 된 도리로 삼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죄와 고통과 죽음은 분노와 책임 전가의 계기가 아니라 연민과 연대의 계기였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고 연민하며 함께 슬퍼할 줄 아는 것은 천주교식으로 말하자면 빠스카의 신비를 삶 속에서 체험하는 첫 단계이다. 그리스도인은 남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슬퍼할 줄 알고, 남을 위해 대신 울어줌으로써 구원의 희망에로 나아간다. 이웃의 고통에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면, 구원은 요원하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런 슬픈 시기를 지내고 있는가.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3-03 00:05:04

[종교칼럼] 사랑으로 기억하자!

[종교칼럼] 사랑으로 기억하자!

평창동계올림픽대회가 내일이면 막을 내린다. 올림픽 때문에 몇 년 만에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기록을 경신했다. 이번에는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전력 질주하고 도전하고 경쟁하는 모습이 참으로 진지하게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금메달리스트에게 박수를 보내고, 은메달 동메달을 따고 해맑게 미소 짓는 아름다운 모습에 더 큰 환호를 보낸다. 여자 컬링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과 겨루었던 덴마크 대표팀이 7엔드가 끝나고 9대3 스코어에서 '굿 게임'을 선언했다. 한국이 기권승을 거두었다. 예선전을 1위로 끝낸 한국 대표팀에서는 당연히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카메라가 지나가면서 보여진 한 장면이 나를 감동케 했다. 덴마크 선수단 4명 모두의 표정이 일반적인 패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 '오늘 게임 참 좋았어. 한국선수들 정말 대단해. 우리는 졌지만 최선을 다했고,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해.' 이런 표정이었다. 모든 시선과 환호가 한국팀에 집중되는 순간, 박탈감과 허탈감을 느껴야 당연할 것 같은 순간, 이들은 조금도 아쉬움이 없는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덴마크 여자 컬링 대표들이 나에게 아름다운 평창동계올림픽 기억을 선물해 주었다. 우연히 올림픽 기간 중에 설이 있었다. 많은 가정에서 온 가족이 함께 올림픽을 시청했다고 한다. 정치가들이 쟁점화되기를 바랐던 정치적 이슈조차 올림픽의 열기에 힘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설도 지나갔고, 올림픽도 내일이면 끝난다. 가족의 만남도 올림픽의 명장면도 모두 기억의 창고로 들어간다. 기억은 과거의 현재화다. 사람은 기억을 통해서 과거를 새롭게 한다. 과거의 사건은 바꿀 수 없지만 우리 마음속의 기억은 바꿀 수 있다.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기억은 없다. 기억에 색깔을 칠하고 배경음악을 넣는 일은 현재의 몫이다. 설과 추석 명절에 사람들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차례를 지내고, 추모예식을 거행한다. 부모님을 새롭게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을 기억하기 위해서 기념한다. 기념을 하면 기억이 새로워진다.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부모님과의 섭섭한 기억보다 고마운 기억이 더 많아진다. 웬일인지 나는 아버지께 섭섭한 기억이 많았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에도 나는 극단적인 가난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하고 싶었던 일 중에서 상처가 남을 정도로 하지 못한 일도 없다. 모두 아버지 덕이 아니겠는가? 지금 내 나이와 같은 때의 부모님의 모습은 나보다 훨씬 성숙한 분이었다. 같은 부모님인데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부모님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우리가 축복을 기억하면 축복이 현재화된다. 우리가 감사한 일을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지속적인 감사의 현재화다. 그래서 행복한 기억은 큰 축복이다. 곧 다가올 3'1절 99주년을 잘 기억하고 기념하자. 기념은 어떻게 하나? 우리는 기념비를 세우고, 예식을 거행하고, 사건을 재연한다. 축제와 연극을 한다. 그 속에는 노래, 춤, 증언, 선언이 있다. 이와 같이 기념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현재화한다. 사랑으로 과거를 기억하자. 사랑의 기억이 미래를 연다. 우리의 상처가 너무 깊으면 우리가 치유받기 전에는 현실과 미래를 살 수 없다.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이 아이는 미지의 세계로 탐험에 나설 수 있다. 충분한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으면 그 사랑이 충족될 때까지 아이는 불안해서 엄마의 품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사랑과 행복을 경험한 사람이 미래를 믿고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사랑과 행복의 기억이 필요하다. 사랑과 행복의 기억이 미래로 나갈 수 있는 동력을 준다. 평창동계올림픽대회도 부모님도 3'1운동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하자. 인류사랑, 부모사랑, 민족사랑의 모습으로 기억하자.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2-24 00:05:00

[종교칼럼] 겨울 세한도

[종교칼럼] 겨울 세한도

겨울 북서풍 한파가 매섭게 불었다. 온대성 식물들이 추운 겨울을 나기에는 강수량도 부족하고 건조하다. 이 혹독한 추위를 이기며 나무들은 잘 견디고 있었다. 자연은 사람과 솔기 없이 이어져 있다. 자연 정원이 사계절 아름다운 것은 자연성이 인공의 시간을 이겨낸 결과이다. 아침, 조성진의 드뷔시 피아노곡을 듣는다. 방안 가득한 여리면서도 섬세한 색채를 간직한 조용한 건반 두들기는 소리들. 숲속을 걷는 속도로 연주될 때 매우 느리게 안단테로 이어졌다. 드뷔시는 프랑스 생 제르망 앙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프랑스풍이 아니다. 오히려 이질적인 '가믈란' 음악에 심취했었고, 서양미술과 다른 모네와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동양화를 좋아했다. 그는 피아노 시인이었다. 모네가 사랑한 '수련' 앞에서 오랫동안 서성대며 그 아우라를 흡수하려 했다. 연못에 수련이 피면 꽃잎에 부서지는 햇살을 포착하며 피아노 건반 위에 그대로 옮겨서 연주했다고 조성진은 말한다. 그의 음반은 시가 되었고 상상력의 정원에 연꽃을 피워 올린다. 차분한 아침 햇살과 오후의 따뜻한 햇볕은 연극 무대 조명만큼 경이롭기만 하다. 겨울에는 꽃을 보기 어렵고 그나마도 색채감이 부족한 계절이다. 그렇다고 아주 색채가 없는 것도 아니다. 갈색의 수피와 키 큰 상록수들은 겨울 정원의 골격을 세우고 감각적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겨울 정원에는 꽃이 피는 찰나와 꽃가루를 모으는 꿀벌들의 부지런함이 없지만, 아침 햇살에 투영되는 창호지의 불투명한 따뜻함이 영혼의 심지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봄의 정원이 생명이 움트게 하는 축복이라면, 여름은 혈기 방장한 청춘의 에너지가 되리라. 가을의 그것들은 단풍의 컬러와 원숙함의 여유가 있다. 겨울 추위는 추위대로 내쉬는 숨길에 하얀 김이 서리고 나무는 나무끼리 부딪치는 그 몸짓과 소리들에 모든 것이 차갑게 얼어버렸지만 생명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안으로 치열하게 봄이 오는 생명의 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겨울에는 안으로 갈무리하며 고요하고 깊은 호흡으로 대지와 함께 숨 쉬고 있다. 산책로를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면 붉은 백당나무 열매와 망개 열매가 푸른 이끼 사이에서 그 붉음을 간직하고 있다. 어쩌다 쑥부쟁이 마른 꽃대 사이에서 먹이를 찾다가 추운 몸을 내보이며 고라니가 후다닥 눈앞에서 도망가기도 한다. 겨울 정원은 어떤 계절보다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봄과 여름은 꽃으로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무채색으로 즐기는 겨울의 정원은 단순히 겨울 정원이 아니다. 겨울 정원은 겨울의 풍경화이다. 이미 공산 무인도를 즐기고 세한도를 완성시켰다. 사철 푸른 호랑이가시나 태산목 같은 상록수의 그 푸르름을 겨울에도 감상할 수가 있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길로 들어갈 때 소나무와 바람은 풍입송(風入頌)을 악보 없이 연주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 혼자서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보라. 물론 우리는 환경의 차이로 영국의 윈터가든과 같은 겨울 정원을 연출하기 어렵지만 가까운 대구수목원이나 동명의 경상북도 지정 1호 민간 정원이 20년의 노력으로 최고의 정원이 되었다. 금년 겨울에는 하루 두 끼만 먹는다. 오후에는 차를 마시거나 손님이 오면 시늉만 내는 것이다. 마음도 한가하고 몸이 가벼워진다. 옛 선인들이 "말이 적고 일이 없어서 배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고 하였다. 홀로 있는 사람은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집을 며칠 비웠더니 우물의 배관이 꽁꽁 얼어 버렸다. 폭설이 내려서 길이 없어지고 폭우에 귀가 먹먹해졌다면, 차라리 한 사나흘 고립되었다면 오히려 반가웠으리. 며칠 큰절에서 물을 길어다 차를 마시고 있다. 일상적인 사소한 일은 불편함과 부족함에서 배우기도 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고마움과 기쁨을 누릴 줄 안다면 그곳에도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홀로 있을 때 더 진리와 멀어질 수 있다고 한다. 사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행복한 삶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간다.

2018-02-10 00:05:00

[종교칼럼] 더 빠르게 더 힘차게 더 높이

[종교칼럼] 더 빠르게 더 힘차게 더 높이

1840년 프랑스 알프스 끝자락의 르 뚜베에서 태어난 앙리 디동(Henry Didon)은 론도라는 소도시의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소신학교는 신학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공부하는 초중등 교육과정을 말한다. 한창 혈기 왕성한 남학생들이 모여 사는 기숙학교이다 보니 여러 가지 운동 경기가 곧잘 열렸는데, 그중에서도 학생들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론도 올림픽'이었다. 서기 393년을 끝으로 옛 헬레니즘 문화의 결정체였던 고대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다툼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공통의 가치를 위해 일시적이나마 화합을 도모했던 올림픽의 이상은 군데군데 그 이름을 빌려주고 있었고, 론도 올림픽도 그중의 하나였다. 아무튼 디동은 열다섯 살 때 이 대회에 나가서 삼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소신학교에서 건강한 신체와 명민한 지성을 갈고닦아 로마의 교황청립 안젤리쿰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무사히 철학과 신학 과정을 마친 끝에 사제 서품을 받고 프랑스로 돌아온 디동 신부는 당대의 설교가로 이름을 떨치면서 신학자요 교육자로서 활동하게 된다. 강건한 신체와 격정적인 음성, 그리고 고전 학문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춘, 그야말로 지덕체를 겸비한 교육자였던 디동 신부는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체육 활동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운동 경기를 교육과정에 도입했다. 그리하여 디동 신부는 1891년 아퀘이(Arqueil)에서 청소년 운동대회를 열게 되는데, 이 자리에서 명설교가답게 인상적인 권고로 장내를 뒤흔든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citius, fortius, altius)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행사를 후원했던 디동 신부의 친구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이 말을 기억했다가 1894년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첫 회의에서 올림픽의 모토로 제시하여 이후로 올림픽 하면 떠올리는 구호가 되었다. 그런데 디동 신부가 제시했던 모토가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서 살짝 변형되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처음 디동 신부가 제시했던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가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로 순서를 바꾼 것이다. 단지 단어 순서의 차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다르다. 디동 신부가 '더 높이'를 강조하면서 구호의 마지막에 놓은 뜻은, 신체를 단련하고 정정당당하게 겨루면서 화합하는 운동 경기를 통해 더 높은 이상에 다다르자는 다분히 윤리적인 권고에 있었다. 반면 쿠베르탱 남작은 '더 강하게(힘차게)'를 강조하면서 올림픽이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마당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으리만치 좋은 뜻이 담겨 있지만, 아무래도 천주교 신부 입장에서는 디동 신부의 모토가 좀 더 솔깃하다. 특히 이번 평창올림픽에 걸린 시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칼럼을 쓰는 오늘도 CNN 뉴스는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주한 미대사로 내정되었던 빅터 차라는 분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가 내정 철회되었다는 해설이 뒤따른다. 미 대선 기간에 벌어졌던 '러시아 스캔들'로 특검이 진행되고 있는 워싱턴 정가에서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 대북 강경책이 모색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을 평화를 갈구하는 마지막 기회로 삼으려는 시도는 가벼이 폄훼될 것이 아니다. 대결과 갈등을 넘어서 평화를 희구하는 세계인의 대축제, 평창올림픽이 그런 기대를 채울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더 빨리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더 강하게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이라는 더 높은 이상에 도달하는 기회가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2-03 00:05:00

[종교칼럼] 인사하며 삽시다!

[종교칼럼] 인사하며 삽시다!

각종 학교의 졸업식이 다가온다.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번의 졸업을 했지만 졸업식 때 교장 선생님과 총장님의 훈사가 어떤 내용인지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10년도 더 넘게 지난 딸아이의 중학교 졸업식 때 하신 교장 선생님의 훈사 주제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주제는 '인사 잘 해라' 였다. 교장 선생님은 별다른 예화도 없이 인사 잘 하라는 주제로 30분의 지루한 화법을 이어갔다. 어린 졸업생들은 힘들게 훈사 시간을 버티어 냈다. 성인이 된 나로서는 '인사만 잘 해도 밥은 먹고 산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지만, 이제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그 주제가 그토록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택시 이용객이 택시를 타면서 '어서 오세요. 어디 가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이 세 마디 인사를 정확히 듣는 것은 기본적인 일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까지 포함하여 네 마디가 된다면 더 좋겠다. 나는 대구에서 10년을 살면서 이 세 마디 인사를 하는 기사를 만난 적이 드물다. 나만의 불행일까? 내가 택시를 탔을 때의 상황을 시나리오로 적으면 이렇다. (택시 문 열고 손님 탐) 기사: (침묵). 손님: 안녕하세요. 00동 00아파트 가주세요. 기사: (침묵). (아파트 도착) 손님: 감사합니다. (손으로 요금 건냄) 기사: (침묵하며 자동기계처럼 거스름돈 내줌) 손님: (하차 후 차 문 닫음). 택시 기사들의 너무나 한결같은 반응에 어느 날은 택시 탑승 후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 침묵했다. 자동기계처럼 출발하던 택시가 속도를 늦추더니 짜증과 공격성이 섞인 한마디가 투포환 경기의 포환처럼 묵직하게 뒷좌석으로 날아온다. "손님, 어디 간다고 말을 해야지요." '어디 가는지 자기가 먼저 물어보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두려움 때문에 황급히 꼬리를 내렸다. 기사와의 기 싸움에서 내가 졌다. 하루는 일정도 바쁘고 마음도 바쁜 날이었다. 택시 기사가 인사를 하건 말건 "동대구역 가주세요" 한마디 후 일에 골몰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 올 무렵 "박병욱 목사님이시죠? 목소리가 그런 거 같아서, 제가 목사님 방송을 잘 듣고 있습니다". 깜짝 놀랐다. '그래, 지금까지 다른 기사들도 다 나를 알아보고 내 행동을 관찰했는지도 모르겠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불편한 기색이 백미러를 통해 비추어지지는 않았을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기사가 진상 손님을 한 번 만나고 나면 핸들 잡기도 싫을 거야. 기사가 친절한 인사보다도 목적지에 잘 데려다 주기만 해도 소명을 이룬 것 아닌가?' '여러 인생을 위로하며 동행하는 목사나 먼 길을 인도해주는 택시 기사나 여러 사람의 길동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상황도 대응하는 방법에 따라 현실이 다르게 흘러가지 않는가? 같은 대상도 관계 맺기에 따라 다른 관계가 되지 않는가?' 두서없는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실명 공개의 힘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가 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열심히 인사하며 감사하게 택시를 이용한다. 기사들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인사만 잘 해도 밥은 먹고 사는데, 인사 못 해도 밥을 잘 먹으면 좋겠다. 그래, 어차피 만남의 끈을 가꾸려면 굳이 남에게 기댈 이유가 없지 않은가? 너와 나의 만남이라면, 비록 돈을 주고받을지라도, 잠시라도 한 차를 타고 가는 길동무라면 반가운 만남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각자가 참 대단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사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고, 침묵을 통해서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다. 행복한 만남의 끈을 내가 먼저 가꾸자. 일상의 사사로운 만남 속에서도 축복이 넘치면 좋겠다. 행복의 아우라, 미소의 아우라를 비추며 살자. 칼럼의 끝에 추신을 달고 싶다. 졸업생들, 택시 기사들뿐만 아니라, 내가 자주 가는 병원의 김 박사, 자주 만나는 최 사장에게도 꼭 이 말을 해야겠다. 우리 인사나 제대로 하면서 삽시다.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1-27 00:05:00

[종교칼럼] 조주의 신발

[종교칼럼] 조주의 신발

햇살 천지였다. 노랗고 하얀 아침 햇살이 마침내 차실 창호지 깊숙이 닿고 있었다. 아침 햇살은 보석처럼 눈이 부시고 이마와 찻잔 위에 쏟아져 내렸다. 눈이 밝아지고 방 안이 따뜻해졌다. 시계 소리는 이어서 아홉 번을 쳤다. 투명한 창호지를 사이에 두고 바깥에서는 추운 고라니가 울었다. 그날그날 햇볕이 조금씩 천천히 길어지고 있다. 종문(宗門)에는 차 향기가 가득했다.조주 스님은 120세까지 사신 고불이다. 남전 선사의 제자가 돼 스승을 모시고 안목을 갖춘 선사의 정법안장을 이었다. 남전 선사의 회상에 700여 명의 많은 대중들이 모여서 정진하고 있었다. 선원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어 동서 양쪽의 선원 스님들이 서로 자기네 선원 고양이라고 주장하며 시비로 떠들썩했다. 그때 남전 선사가 운집종을 치고 대중들을 강당에 모이게 했다. 선사께서 시자에게 "고양이와 칼을 가져오라" 하니 시자가 그것을 법상 위에 올려놓았다. 남전 선사께서 고양이를 치켜들었다. "이 고양이로 인해 시비가 분분하니 오늘 그간의 공부를 점검하겠으니 한마디 말해보라. 제대로 말하는 자가 있으면 고양이를 살려 두겠거니와 만약 이르지 못한다면 단칼에 고양이를 두 동강 내버리겠다. 속히 일러보라!" 이렇게 세 번을 재촉했다.아무도 벙어리가 되어 말하는 자가 없었다. 700명의 대중은 그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남전 선사는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어버렸다. 그리고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방장실에서 쉬고 있을 때 출타 중이던 조주 스님이 돌아와서 인사를 올렸다. 남전 선사께서 오늘 일을 들어서 말씀하셨다."조주 너라면 무엇이라 답하겠는가?"조주 스님은 곧바로 일어나 벗었던 짚신을 머리에 이고 방장실을 총총히 나가 버렸다. 남전 선사는 그 광경을 보고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렸을 것을…"하고 혼자 중얼거렸다.이는 이전에 달마 대사가 신발 한 짝을 들고 웅이산으로 돌아가라고 일갈하셨다. 절대의 순간에서 처음부터 논리가 봉쇄되어 애초부터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뛰어들어 말하는 것이 선의 본질이 된다.조주 스님은 120세를 살았다. 누구나 관음원에 찾아오면 차를 마시게(喫茶去) 하고 차를 권했다. 80세가 되어서 비로소 행각을 그치고 처음으로 관음원 주지를 하시며 40년 동안 신도 집에 도움의 편지 한 장 보내지 않았다.스승 남전 선사의 '평상시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씀을 쉬운 말과 비유로 중생을 제도하셨다. 스스로에게 경계하시길"일곱 살 먹은 어린 사미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세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조주 스님은 친절하셨다.서양 기자가 달라이라마에게 물었다.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나의 종교는 친절(Kindness)입니다."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차 한 잔에 무량락이 있으니 서로 눈을 마주하며 만복! 만복! 하고 축원했다. 영설 차인은 차회 일기를 21년째 기록하고 있다. 흥이 나면 동다송 긴 문장 전문을 암송하기도 한다. 모든 일상의 하나하나가 일상 속에서 공감하며 생활이 되며 수행이 되는 것이다. 차인의 마음에는 하찮고 소소한 기억이 모두 기록되고 그 마음에는 아름다움의 정토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6일 내가 좋아했던 이승훈 교수가 작고했다. 그는 자유로운 아방가르드 시인이었다. 문득 이 교수의 시가 생각이 나 옮겨 본다."식탁엔 마늘 파 하얀 마늘 푸른 파가 나를 부르네,천성이 아둔한 내가 마늘 먹는 늦은 봄마을 앞엔 사람 하나 없고 지나가는 바람이 묻는다.어디서 오시오?그대 떠난 봄 하얀 마늘 먹으며 식당 구석 작은 방에 누워쉬고 싶어라.문득 창문 넘어온 햇살이 말하네,너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왔어."-이승훈의 봄날 오후

2018-01-20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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