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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슬픈 시기를 지내십니까

1549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선교로 시작된 일본 가톨릭의 역사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인해서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뒤이어 도쿠가와 막부가 박해를 가한 결과, 가혹한 탄압과 세금의 이중고를 견디다 못해 4만여 천주교인들이 농민 봉기를 일으켰다가 학살되고 만다. 시마바라의 난이라 불리는 이 봉기로 인해 박해는 극한으로 치닫게 되었고, 가톨릭 신앙인들은 지하로 숨어서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고자 했다. 이들을 일컬어 '가쿠레 키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당시 순교자 중의 한 사람인 '바스찬'은 7대가 지나면 신앙의 자유를 얻으리라 예언했는데, 이 예언처럼 250여 년이라는 박해의 시간을 견뎌낸 가쿠레 키리시탄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 1865년의 일이었다. 일본 당국이 개항을 단행하면서 외국인들을 위한 성당 건축을 허가하자, 파리 외방전교회의 쁘띠쟝(Bernard Thadée Petitjean) 신부는 나가사키의 언덕 위에 오우라 천주당(현재 정식 명칭은 일본 26성 순교자 천주당)을 지어서 숨어 살던 그리스도인들을 불러내고자 했다. 하지만 워낙 길고 가혹한 박해를 겪은 탓인지 찾아온 일본인들이라고는 서양식 성당을 보러온 구경꾼뿐이었고, 쁘띠쟝 신부도 낙담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던 1865년 3월 17일, 이사벨라 유리와 가족을 비롯한 십수 명의 가쿠레 키리시탄들이 천주당을 찾아왔다. 경계심을 풀지 못한 그들은 구경꾼을 가장한 채 쁘띠쟝 신부에게 다가와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먼저 성모님을 공경하는지, 사제가 결혼했는지, 끝으로 '슬픈 시기'를 지내는지 물었던 것이다. 이에 쁘띠쨩 신부가 성모님을 공경하고 사제는 결혼하지 않으며 '슬픈 시기'를 지낸다는 점을 확인해 주자, 비로소 가쿠레 키리시탄들은 '저희 마음도 신부님과 같습니다'라며 신앙을 드러내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가톨릭 신앙인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핵심 질문이 '슬픈 시기'의 준수 여부에 달려 있었던 셈이다. 가쿠레 키리시탄들이 말하는 '슬픈 시기'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서 사순 시기를 말한다. 사순 시기는 말 그대로 40일간의 성찰과 회개의 때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을 광야에서 떠돌며 정화의 과정을 거쳤던 히브리 사람들처럼, 그리고 40일간 광야에서 유혹과 맞서며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였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순 시기 동안 거짓으로 감출 수 없는 광야의 삶을 자처하면서 거룩한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과연 가리지 않은 인간의 민낯을 보는 일은 슬픈 일이다. 허세와 거짓으로 분칠되어 있는 일상을 파헤쳐서, 그 두터운 위장막 아래에 숨어 있는 뒤틀린 욕망과 이기심의 깊은 상처를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숨기려고 허세를 부리거나 남 탓을 하고 분노하는 악습 속에 있다. 그렇게 죄와 죽음으로 한계 지어진 자신을 보는 일은 인간에게 슬픈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순 시기를 슬픈 시기로 지내는 참뜻은 단지 자기 연민과 비관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데 있지 않다. 천주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인간의 죄와 죽음을 대신 떠맡는 것으로 이해했고, 따라서 스승의 모범을 따라 세상의 죄와 고통을 대면하는 것을 제자 된 도리로 삼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죄와 고통과 죽음은 분노와 책임 전가의 계기가 아니라 연민과 연대의 계기였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고 연민하며 함께 슬퍼할 줄 아는 것은 천주교식으로 말하자면 빠스카의 신비를 삶 속에서 체험하는 첫 단계이다. 그리스도인은 남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슬퍼할 줄 알고, 남을 위해 대신 울어줌으로써 구원의 희망에로 나아간다. 이웃의 고통에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면, 구원은 요원하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런 슬픈 시기를 지내고 있는가.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3-03 00:05:04

[종교칼럼] 사랑으로 기억하자!

평창동계올림픽대회가 내일이면 막을 내린다. 올림픽 때문에 몇 년 만에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기록을 경신했다. 이번에는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전력 질주하고 도전하고 경쟁하는 모습이 참으로 진지하게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금메달리스트에게 박수를 보내고, 은메달 동메달을 따고 해맑게 미소 짓는 아름다운 모습에 더 큰 환호를 보낸다. 여자 컬링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과 겨루었던 덴마크 대표팀이 7엔드가 끝나고 9대3 스코어에서 '굿 게임'을 선언했다. 한국이 기권승을 거두었다. 예선전을 1위로 끝낸 한국 대표팀에서는 당연히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카메라가 지나가면서 보여진 한 장면이 나를 감동케 했다. 덴마크 선수단 4명 모두의 표정이 일반적인 패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 '오늘 게임 참 좋았어. 한국선수들 정말 대단해. 우리는 졌지만 최선을 다했고,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해.' 이런 표정이었다. 모든 시선과 환호가 한국팀에 집중되는 순간, 박탈감과 허탈감을 느껴야 당연할 것 같은 순간, 이들은 조금도 아쉬움이 없는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덴마크 여자 컬링 대표들이 나에게 아름다운 평창동계올림픽 기억을 선물해 주었다. 우연히 올림픽 기간 중에 설이 있었다. 많은 가정에서 온 가족이 함께 올림픽을 시청했다고 한다. 정치가들이 쟁점화되기를 바랐던 정치적 이슈조차 올림픽의 열기에 힘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설도 지나갔고, 올림픽도 내일이면 끝난다. 가족의 만남도 올림픽의 명장면도 모두 기억의 창고로 들어간다. 기억은 과거의 현재화다. 사람은 기억을 통해서 과거를 새롭게 한다. 과거의 사건은 바꿀 수 없지만 우리 마음속의 기억은 바꿀 수 있다.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기억은 없다. 기억에 색깔을 칠하고 배경음악을 넣는 일은 현재의 몫이다. 설과 추석 명절에 사람들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차례를 지내고, 추모예식을 거행한다. 부모님을 새롭게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을 기억하기 위해서 기념한다. 기념을 하면 기억이 새로워진다.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부모님과의 섭섭한 기억보다 고마운 기억이 더 많아진다. 웬일인지 나는 아버지께 섭섭한 기억이 많았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에도 나는 극단적인 가난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하고 싶었던 일 중에서 상처가 남을 정도로 하지 못한 일도 없다. 모두 아버지 덕이 아니겠는가? 지금 내 나이와 같은 때의 부모님의 모습은 나보다 훨씬 성숙한 분이었다. 같은 부모님인데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부모님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우리가 축복을 기억하면 축복이 현재화된다. 우리가 감사한 일을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지속적인 감사의 현재화다. 그래서 행복한 기억은 큰 축복이다. 곧 다가올 3'1절 99주년을 잘 기억하고 기념하자. 기념은 어떻게 하나? 우리는 기념비를 세우고, 예식을 거행하고, 사건을 재연한다. 축제와 연극을 한다. 그 속에는 노래, 춤, 증언, 선언이 있다. 이와 같이 기념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현재화한다. 사랑으로 과거를 기억하자. 사랑의 기억이 미래를 연다. 우리의 상처가 너무 깊으면 우리가 치유받기 전에는 현실과 미래를 살 수 없다.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이 아이는 미지의 세계로 탐험에 나설 수 있다. 충분한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으면 그 사랑이 충족될 때까지 아이는 불안해서 엄마의 품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사랑과 행복을 경험한 사람이 미래를 믿고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사랑과 행복의 기억이 필요하다. 사랑과 행복의 기억이 미래로 나갈 수 있는 동력을 준다. 평창동계올림픽대회도 부모님도 3'1운동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하자. 인류사랑, 부모사랑, 민족사랑의 모습으로 기억하자.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2-24 00:05:00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종교칼럼] 겨울 세한도

겨울 북서풍 한파가 매섭게 불었다. 온대성 식물들이 추운 겨울을 나기에는 강수량도 부족하고 건조하다. 이 혹독한 추위를 이기며 나무들은 잘 견디고 있었다. 자연은 사람과 솔기 없이 이어져 있다. 자연 정원이 사계절 아름다운 것은 자연성이 인공의 시간을 이겨낸 결과이다. 아침, 조성진의 드뷔시 피아노곡을 듣는다. 방안 가득한 여리면서도 섬세한 색채를 간직한 조용한 건반 두들기는 소리들. 숲속을 걷는 속도로 연주될 때 매우 느리게 안단테로 이어졌다. 드뷔시는 프랑스 생 제르망 앙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프랑스풍이 아니다. 오히려 이질적인 '가믈란' 음악에 심취했었고, 서양미술과 다른 모네와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동양화를 좋아했다. 그는 피아노 시인이었다. 모네가 사랑한 '수련' 앞에서 오랫동안 서성대며 그 아우라를 흡수하려 했다. 연못에 수련이 피면 꽃잎에 부서지는 햇살을 포착하며 피아노 건반 위에 그대로 옮겨서 연주했다고 조성진은 말한다. 그의 음반은 시가 되었고 상상력의 정원에 연꽃을 피워 올린다. 차분한 아침 햇살과 오후의 따뜻한 햇볕은 연극 무대 조명만큼 경이롭기만 하다. 겨울에는 꽃을 보기 어렵고 그나마도 색채감이 부족한 계절이다. 그렇다고 아주 색채가 없는 것도 아니다. 갈색의 수피와 키 큰 상록수들은 겨울 정원의 골격을 세우고 감각적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겨울 정원에는 꽃이 피는 찰나와 꽃가루를 모으는 꿀벌들의 부지런함이 없지만, 아침 햇살에 투영되는 창호지의 불투명한 따뜻함이 영혼의 심지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봄의 정원이 생명이 움트게 하는 축복이라면, 여름은 혈기 방장한 청춘의 에너지가 되리라. 가을의 그것들은 단풍의 컬러와 원숙함의 여유가 있다. 겨울 추위는 추위대로 내쉬는 숨길에 하얀 김이 서리고 나무는 나무끼리 부딪치는 그 몸짓과 소리들에 모든 것이 차갑게 얼어버렸지만 생명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안으로 치열하게 봄이 오는 생명의 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겨울에는 안으로 갈무리하며 고요하고 깊은 호흡으로 대지와 함께 숨 쉬고 있다. 산책로를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면 붉은 백당나무 열매와 망개 열매가 푸른 이끼 사이에서 그 붉음을 간직하고 있다. 어쩌다 쑥부쟁이 마른 꽃대 사이에서 먹이를 찾다가 추운 몸을 내보이며 고라니가 후다닥 눈앞에서 도망가기도 한다. 겨울 정원은 어떤 계절보다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봄과 여름은 꽃으로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무채색으로 즐기는 겨울의 정원은 단순히 겨울 정원이 아니다. 겨울 정원은 겨울의 풍경화이다. 이미 공산 무인도를 즐기고 세한도를 완성시켰다. 사철 푸른 호랑이가시나 태산목 같은 상록수의 그 푸르름을 겨울에도 감상할 수가 있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길로 들어갈 때 소나무와 바람은 풍입송(風入頌)을 악보 없이 연주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 혼자서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보라. 물론 우리는 환경의 차이로 영국의 윈터가든과 같은 겨울 정원을 연출하기 어렵지만 가까운 대구수목원이나 동명의 경상북도 지정 1호 민간 정원이 20년의 노력으로 최고의 정원이 되었다. 금년 겨울에는 하루 두 끼만 먹는다. 오후에는 차를 마시거나 손님이 오면 시늉만 내는 것이다. 마음도 한가하고 몸이 가벼워진다. 옛 선인들이 "말이 적고 일이 없어서 배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고 하였다. 홀로 있는 사람은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집을 며칠 비웠더니 우물의 배관이 꽁꽁 얼어 버렸다. 폭설이 내려서 길이 없어지고 폭우에 귀가 먹먹해졌다면, 차라리 한 사나흘 고립되었다면 오히려 반가웠으리. 며칠 큰절에서 물을 길어다 차를 마시고 있다. 일상적인 사소한 일은 불편함과 부족함에서 배우기도 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고마움과 기쁨을 누릴 줄 안다면 그곳에도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홀로 있을 때 더 진리와 멀어질 수 있다고 한다. 사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행복한 삶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간다.

2018-02-10 00:05:00

[종교칼럼] 더 빠르게 더 힘차게 더 높이

1840년 프랑스 알프스 끝자락의 르 뚜베에서 태어난 앙리 디동(Henry Didon)은 론도라는 소도시의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소신학교는 신학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공부하는 초중등 교육과정을 말한다. 한창 혈기 왕성한 남학생들이 모여 사는 기숙학교이다 보니 여러 가지 운동 경기가 곧잘 열렸는데, 그중에서도 학생들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론도 올림픽'이었다. 서기 393년을 끝으로 옛 헬레니즘 문화의 결정체였던 고대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다툼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공통의 가치를 위해 일시적이나마 화합을 도모했던 올림픽의 이상은 군데군데 그 이름을 빌려주고 있었고, 론도 올림픽도 그중의 하나였다. 아무튼 디동은 열다섯 살 때 이 대회에 나가서 삼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소신학교에서 건강한 신체와 명민한 지성을 갈고닦아 로마의 교황청립 안젤리쿰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무사히 철학과 신학 과정을 마친 끝에 사제 서품을 받고 프랑스로 돌아온 디동 신부는 당대의 설교가로 이름을 떨치면서 신학자요 교육자로서 활동하게 된다. 강건한 신체와 격정적인 음성, 그리고 고전 학문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춘, 그야말로 지덕체를 겸비한 교육자였던 디동 신부는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체육 활동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운동 경기를 교육과정에 도입했다. 그리하여 디동 신부는 1891년 아퀘이(Arqueil)에서 청소년 운동대회를 열게 되는데, 이 자리에서 명설교가답게 인상적인 권고로 장내를 뒤흔든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citius, fortius, altius)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행사를 후원했던 디동 신부의 친구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이 말을 기억했다가 1894년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첫 회의에서 올림픽의 모토로 제시하여 이후로 올림픽 하면 떠올리는 구호가 되었다. 그런데 디동 신부가 제시했던 모토가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서 살짝 변형되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처음 디동 신부가 제시했던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가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로 순서를 바꾼 것이다. 단지 단어 순서의 차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다르다. 디동 신부가 '더 높이'를 강조하면서 구호의 마지막에 놓은 뜻은, 신체를 단련하고 정정당당하게 겨루면서 화합하는 운동 경기를 통해 더 높은 이상에 다다르자는 다분히 윤리적인 권고에 있었다. 반면 쿠베르탱 남작은 '더 강하게(힘차게)'를 강조하면서 올림픽이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마당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으리만치 좋은 뜻이 담겨 있지만, 아무래도 천주교 신부 입장에서는 디동 신부의 모토가 좀 더 솔깃하다. 특히 이번 평창올림픽에 걸린 시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칼럼을 쓰는 오늘도 CNN 뉴스는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주한 미대사로 내정되었던 빅터 차라는 분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가 내정 철회되었다는 해설이 뒤따른다. 미 대선 기간에 벌어졌던 '러시아 스캔들'로 특검이 진행되고 있는 워싱턴 정가에서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 대북 강경책이 모색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을 평화를 갈구하는 마지막 기회로 삼으려는 시도는 가벼이 폄훼될 것이 아니다. 대결과 갈등을 넘어서 평화를 희구하는 세계인의 대축제, 평창올림픽이 그런 기대를 채울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더 빨리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더 강하게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이라는 더 높은 이상에 도달하는 기회가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2-03 00:05:00

[종교칼럼] 인사하며 삽시다!

각종 학교의 졸업식이 다가온다.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번의 졸업을 했지만 졸업식 때 교장 선생님과 총장님의 훈사가 어떤 내용인지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10년도 더 넘게 지난 딸아이의 중학교 졸업식 때 하신 교장 선생님의 훈사 주제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주제는 '인사 잘 해라' 였다. 교장 선생님은 별다른 예화도 없이 인사 잘 하라는 주제로 30분의 지루한 화법을 이어갔다. 어린 졸업생들은 힘들게 훈사 시간을 버티어 냈다. 성인이 된 나로서는 '인사만 잘 해도 밥은 먹고 산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지만, 이제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그 주제가 그토록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택시 이용객이 택시를 타면서 '어서 오세요. 어디 가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이 세 마디 인사를 정확히 듣는 것은 기본적인 일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까지 포함하여 네 마디가 된다면 더 좋겠다. 나는 대구에서 10년을 살면서 이 세 마디 인사를 하는 기사를 만난 적이 드물다. 나만의 불행일까? 내가 택시를 탔을 때의 상황을 시나리오로 적으면 이렇다. (택시 문 열고 손님 탐) 기사: (침묵). 손님: 안녕하세요. 00동 00아파트 가주세요. 기사: (침묵). (아파트 도착) 손님: 감사합니다. (손으로 요금 건냄) 기사: (침묵하며 자동기계처럼 거스름돈 내줌) 손님: (하차 후 차 문 닫음). 택시 기사들의 너무나 한결같은 반응에 어느 날은 택시 탑승 후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 침묵했다. 자동기계처럼 출발하던 택시가 속도를 늦추더니 짜증과 공격성이 섞인 한마디가 투포환 경기의 포환처럼 묵직하게 뒷좌석으로 날아온다. "손님, 어디 간다고 말을 해야지요." '어디 가는지 자기가 먼저 물어보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두려움 때문에 황급히 꼬리를 내렸다. 기사와의 기 싸움에서 내가 졌다. 하루는 일정도 바쁘고 마음도 바쁜 날이었다. 택시 기사가 인사를 하건 말건 "동대구역 가주세요" 한마디 후 일에 골몰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 올 무렵 "박병욱 목사님이시죠? 목소리가 그런 거 같아서, 제가 목사님 방송을 잘 듣고 있습니다". 깜짝 놀랐다. '그래, 지금까지 다른 기사들도 다 나를 알아보고 내 행동을 관찰했는지도 모르겠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불편한 기색이 백미러를 통해 비추어지지는 않았을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기사가 진상 손님을 한 번 만나고 나면 핸들 잡기도 싫을 거야. 기사가 친절한 인사보다도 목적지에 잘 데려다 주기만 해도 소명을 이룬 것 아닌가?' '여러 인생을 위로하며 동행하는 목사나 먼 길을 인도해주는 택시 기사나 여러 사람의 길동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상황도 대응하는 방법에 따라 현실이 다르게 흘러가지 않는가? 같은 대상도 관계 맺기에 따라 다른 관계가 되지 않는가?' 두서없는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실명 공개의 힘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가 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열심히 인사하며 감사하게 택시를 이용한다. 기사들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인사만 잘 해도 밥은 먹고 사는데, 인사 못 해도 밥을 잘 먹으면 좋겠다. 그래, 어차피 만남의 끈을 가꾸려면 굳이 남에게 기댈 이유가 없지 않은가? 너와 나의 만남이라면, 비록 돈을 주고받을지라도, 잠시라도 한 차를 타고 가는 길동무라면 반가운 만남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각자가 참 대단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사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고, 침묵을 통해서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다. 행복한 만남의 끈을 내가 먼저 가꾸자. 일상의 사사로운 만남 속에서도 축복이 넘치면 좋겠다. 행복의 아우라, 미소의 아우라를 비추며 살자. 칼럼의 끝에 추신을 달고 싶다. 졸업생들, 택시 기사들뿐만 아니라, 내가 자주 가는 병원의 김 박사, 자주 만나는 최 사장에게도 꼭 이 말을 해야겠다. 우리 인사나 제대로 하면서 삽시다.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1-27 00:05:00

[종교칼럼] 조주의 신발

햇살 천지였다. 노랗고 하얀 아침 햇살이 마침내 차실 창호지 깊숙이 닿고 있었다. 아침 햇살은 보석처럼 눈이 부시고 이마와 찻잔 위에 쏟아져 내렸다. 눈이 밝아지고 방 안이 따뜻해졌다. 시계 소리는 이어서 아홉 번을 쳤다. 투명한 창호지를 사이에 두고 바깥에서는 추운 고라니가 울었다. 그날그날 햇볕이 조금씩 천천히 길어지고 있다. 종문(宗門)에는 차 향기가 가득했다.조주 스님은 120세까지 사신 고불이다. 남전 선사의 제자가 돼 스승을 모시고 안목을 갖춘 선사의 정법안장을 이었다. 남전 선사의 회상에 700여 명의 많은 대중들이 모여서 정진하고 있었다. 선원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어 동서 양쪽의 선원 스님들이 서로 자기네 선원 고양이라고 주장하며 시비로 떠들썩했다. 그때 남전 선사가 운집종을 치고 대중들을 강당에 모이게 했다. 선사께서 시자에게 "고양이와 칼을 가져오라" 하니 시자가 그것을 법상 위에 올려놓았다. 남전 선사께서 고양이를 치켜들었다. "이 고양이로 인해 시비가 분분하니 오늘 그간의 공부를 점검하겠으니 한마디 말해보라. 제대로 말하는 자가 있으면 고양이를 살려 두겠거니와 만약 이르지 못한다면 단칼에 고양이를 두 동강 내버리겠다. 속히 일러보라!" 이렇게 세 번을 재촉했다.아무도 벙어리가 되어 말하는 자가 없었다. 700명의 대중은 그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남전 선사는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어버렸다. 그리고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방장실에서 쉬고 있을 때 출타 중이던 조주 스님이 돌아와서 인사를 올렸다. 남전 선사께서 오늘 일을 들어서 말씀하셨다."조주 너라면 무엇이라 답하겠는가?"조주 스님은 곧바로 일어나 벗었던 짚신을 머리에 이고 방장실을 총총히 나가 버렸다. 남전 선사는 그 광경을 보고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렸을 것을…"하고 혼자 중얼거렸다.이는 이전에 달마 대사가 신발 한 짝을 들고 웅이산으로 돌아가라고 일갈하셨다. 절대의 순간에서 처음부터 논리가 봉쇄되어 애초부터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뛰어들어 말하는 것이 선의 본질이 된다.조주 스님은 120세를 살았다. 누구나 관음원에 찾아오면 차를 마시게(喫茶去) 하고 차를 권했다. 80세가 되어서 비로소 행각을 그치고 처음으로 관음원 주지를 하시며 40년 동안 신도 집에 도움의 편지 한 장 보내지 않았다.스승 남전 선사의 '평상시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씀을 쉬운 말과 비유로 중생을 제도하셨다. 스스로에게 경계하시길"일곱 살 먹은 어린 사미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세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조주 스님은 친절하셨다.서양 기자가 달라이라마에게 물었다.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나의 종교는 친절(Kindness)입니다."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차 한 잔에 무량락이 있으니 서로 눈을 마주하며 만복! 만복! 하고 축원했다. 영설 차인은 차회 일기를 21년째 기록하고 있다. 흥이 나면 동다송 긴 문장 전문을 암송하기도 한다. 모든 일상의 하나하나가 일상 속에서 공감하며 생활이 되며 수행이 되는 것이다. 차인의 마음에는 하찮고 소소한 기억이 모두 기록되고 그 마음에는 아름다움의 정토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6일 내가 좋아했던 이승훈 교수가 작고했다. 그는 자유로운 아방가르드 시인이었다. 문득 이 교수의 시가 생각이 나 옮겨 본다."식탁엔 마늘 파 하얀 마늘 푸른 파가 나를 부르네,천성이 아둔한 내가 마늘 먹는 늦은 봄마을 앞엔 사람 하나 없고 지나가는 바람이 묻는다.어디서 오시오?그대 떠난 봄 하얀 마늘 먹으며 식당 구석 작은 방에 누워쉬고 싶어라.문득 창문 넘어온 햇살이 말하네,너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왔어."-이승훈의 봄날 오후

2018-01-20 00:05:00

[종교칼럼] 큰 손해가 아니라면

지난 11월,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준비하는 출장을 가서 겪은 일이다. 캄보디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150만원쯤 되는 극빈국이다. 대중교통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가까운 거리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로 다니고 먼 거리는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굴러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차들이다.30℃가 넘는 더위 속에 긴 회의를 하고 진료 예정지들을 답사하다가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불렀다. 두 시간쯤 걸리는 거리를 25달러에 흥정하고 길을 가다가 기사 아저씨가 잠시 차를 세우고 급한 일을 해결하는 참이었다. 순간 지나가던 화물차가 리어뷰 미러를 들이받고 지나간다. 갑자기 거울이 논바닥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급히 따라붙었다. 맹렬한 추격전 끝에 가해차량을 붙잡았는데, '여기서 동남아 킥복싱을 실황으로 보겠구나' 했던 기대와는 달리 두 사람이 조곤조곤 대화를 하더니 30달러를 받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되었다.오는 길에 30달러로 수리가 되는지 물었다. 40달러는 줘야 한단다. 하루 일해서 10달러를 벌기가 힘든데 홀랑 날린 셈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데 기사 아저씨 대답이 이랬다. "보다시피 나나 저 기사나 다 가난하다. 없는 처지에 다 물어주고 나면 화물차 기사도 밥 먹고 살기 힘드니 이쯤에서 그만 하는 것이 옳다."결국 공항에서 택시비 25달러에 10달러를 얹었다. 사고가 나긴 했어도 이 정도면 손해는 안 보실 거라고 드렸더니 아저씨 입이 귀에 걸린다. 서로 땡큐를 몇 번씩 주고받다가 왔는데 여태 그 아저씨 말씀이 여운으로 남는다. 나나 저 사람이나 힘들게 사는 처지에 어떻게 다 받겠느냐는 말씀 말이다.캄보디아 국민소득이 1천500달러를 좀 넘는 수준인 데 비해서 우리나라 국민 소득은 3만달러에 이른다. 단순히 비교해도 스무 배가 넘는 차이다. 전 세계 국가 242개 중에서 우리 경제규모가 대충 11위쯤 되니까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충분히 이야기할 만하다.그런데 우리는 저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보다 스무 배쯤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을 이루고 있는 걸까. 내가 받을 것 다 받으면 저 사람은 어떻게 살겠느냐고 상대방을 헤아리는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간직하고 있는가. 조금도 피해를 봐서는 안 되고 한 푼도 손해를 봐서는 안 되겠다는 강퍅한 마음을 우리는 칼날처럼 갈아가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그렇게 준비했던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마치고 이제 대구로 가는 버스 안이다. 다섯 개 진료과목 열세 명의 스태프들과 스물한 명의 의대생, 간호대생으로 구성된 봉사단원들이 캄보디아의 시골 마을을 순회하는 일정은 녹록지 않았다. 삼복더위 못지않은 날씨 속에 흙길을 달렸다. 만성 질환을 수년 간 앓으면서도 의사를 만나보지 못한 노인부터, 일자리를 찾아 이웃 나라로 떠난 부모를 그리워하며 조손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야 했다. 병원 봉사 동아리에서 바자회로 모아주신 성금을 아껴 현지 진료소에 승합차도 한 대 기증할 수 있었다.작지만 보람 있는 성과와 함께 귀갓길에 오른 단원들의 얼굴을 살핀다. 피로한 기색은 감출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얼굴이다. 극한의 경쟁사회에서는 맛보기 힘들었던 내적인 충만함이 엿보인다. 긴장을 늦추면 따라 잡히지 않을까 조급해하던 경쟁의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난 결과가 그러하다. 큰 손해가 아니라면, 살면서 겪는 손해와 피해에 조금 덜 예민해져도 되지 않겠는가. 극빈의 사회에서도 배려와 역지사지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어떠한가.

2018-01-13 00:05:03

[종교칼럼] 희망

쥬렉 베커(Jurek Becker)라는 작가가 쓴 '거짓말쟁이 야곱'(Jakob the Liar)이라는 소설이 있다. 쥬렉 베커는 헝가리 출신 유태인으로서 유태인 대량 학살을 직접 경험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작가와 같은 나이의 유태인으로서 같은 비극을 경험한 영화감독 피터 카소비츠가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명은 '제이콥의 거짓말'이다.2차 세계 대전 중 나치가 점령한 폴란드 내 유태인 게토 지역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제이콥(로빈 윌리엄스 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람에 날리는 신문을 쫓아갔다. 정신없이 신문을 쫓아다니던 제이콥은 게토 지역을 벗어나게 되고 통금 시간이 임박하여 초소병들에게 붙들려 장교의 사무실에 끌려갔다.그곳에서 처벌을 기다리는 동안 제이콥은 소련군이 400㎞ 떨어진 폴란드의 가까운 지역에서 독일군을 물리쳤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 라디오 방송을 몰래 엿듣게 되었다. 제이콥은 친구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이 일과 함께 제이콥이 라디오를 가지고 있다는 헛소문도 함께 퍼져 나갔다. 라디오를 소유하고 있으면 사형을 당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제이콥은 연합군이 나치를 물리치고 진격하고 있다는 뉴스를 전한다.희망 없이 살아가던 유태인들 중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소련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제이콥의 말을 듣고는 자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곧 소련군이 와서 자기들을 구해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거짓으로 꾸며낸 이 소식은 주민들에게 활기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사람들의 희망을 꺾을 수 없는 제이콥은 매일 매일 자신이 꾸며낸 라디오 방송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그러나 수용소 내부에 정보원이 있었다. 제이콥이 라디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독일군은 제이콥을 붙잡았다. 점령군 사령관은 게토의 주민들을 모아놓고 제이콥에게 라디오가 없었다고 얘기하라고 고문했다. 그러나 제이콥은 끝까지 라디오가 없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라디오가 없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사형을 당했다.그는 있지도 않은 라디오 때문에 죽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라디오는 희망이었다. 그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준 희망의 불씨를 끌 수가 없었다. 희망이 목숨보다 소중했다.새로운 소식에 대한 갈망으로 공중으로 날아가던 신문을 쫓아가던 야곱은 정말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더 나가서 새로운 소식의 창조자가 되었다. 그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었다. 도리어 희망의 창조자였다.희망은 창조성의 무한한 창고다. 희망은 사랑을 위한 아름다운 환상이다. 희망은 미래의 밝은 빛 아래서 현실을 보는 것이다. 희망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새롭게 열리는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희망은 언제나 가능한 것에 대한 정열을 불러일으킨다. 희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능성을 따라서 살게 한다.그리고 옛것을 쳐서 부수고 새것을 만드는 독창성을 제공한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사람은 과거와 현재에 고착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서 과감히 전진한다.우리에게 희망을 지키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을 가꾸는 인내가 필요하다. 성경 시편 126편은 노래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2018년을 시작하면서 모든 이들이 희망을 갖기를 바란다. 고난의 현실 가운데서 희망을 심은 결과는 반드시 기쁨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인내로써 오늘날 희망을 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희망의 농부, 희망의 창조자가 되자.

2018-01-06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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