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종교칼럼] 베풀 수 있는 마음

[종교칼럼] 베풀 수 있는 마음

예부터 우리 민족은 베풀고 나누어 주는데 익숙해 있다. 음식을 장만해도 이웃을 생각해 양을 많이 하여 함께 나누는 정이 있고, 가을이 되어서 감나무에 감을 따더라도 매정하게 모두 따는 것이 아니라 한두 개는 까치밥으로 두어서 겨울에 굶어 죽지 않게 하는 자비심이 있다. 논두렁에 콩을 심을 때도 "콩을 하나만 심어도 되는데 왜 세 알씩 넣습니까?" 하고 여쭈어 보면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날아 다니는 새도 한 알 먹어야 되고 기어 다니는 벌레도 한 알 먹어야 하고 나머지 남는 것은 싹을 틔운다"라고 말씀하신다.그리고 차와 술을 드릴 때도 잔을 넘치도록 드리는 것은 그릇보다 곱으로 줘야 되겠다는 넉넉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재물이 넘쳐서 그런 마음을 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쓰는 것을 조금 아껴서 나누고 함께했던 것이다.이렇듯 많지는 않지만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요즘 근래에 와서는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해가고 있다. 베풀기보다는 남의 재물을 탐하려 들고 옆집이 굶어 죽어도 모르고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피해가 올까 봐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먼저 벽을 쌓는다. 아니 이기적인 생각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부모 친지들에게까지도 너무 멀어져만 간다. 혼자 외로움에 지쳐서 죽어가는 사람도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점점 삭막해져가는 인심을 보면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탐내고 인색하며 가난을 벗어나지 못함은 전에 은혜로 베풀지 않았던 것이며 은덕을 누리고자 한다면 마땅히 널리 베풀어야 하리라"라고.(잡아함경) 베푼다는 뜻은 보시한다는 뜻과 같다.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 주는 것을 뜻한다. 남에게 보시하려는 자는 내 것은 없으면서 남에게 주는 습관이 들어 있고 남에게 보시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항상 내 것은 있고 남에게 줄 것은 없다. 재산이 모이면 그때 해야지 하고 미루기가 일쑤다. 백유경에 보면 "잔칫날을 앞두고 손님들에게 대접할 우유를 짜 모으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날마다 우유를 짜 모으면 저장할 곳도 맛도 덜하니 아예 배 속에다 고이도록 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짜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잔칫날이 되어 소에게 가서 젖을 짜려 했으나 젖은 매일 짜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짜도 나오지 않았다."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 재산이 모이면 그때 한꺼번에 보시하면 되지! 하고 다음으로 미루지만 재산이 모이기도 전에 쓸 일이 더 많이 생겨 복도 짓지 못하고 인연만 놓치고 마는 것이다. 자비로써 베푸는 것은 반드시 악한 길을 막고 아무리 원결이 있다 하여도 베푸는 것에는 이기지 못하며 삿된 것이 무너지고 죽음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도리이다. 있을 때 베풀지 않으면 자신이 궁핍할 때 도와주는 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방등경에는 "음식을 보시하면 큰 힘을 얻고, 의복을 보시하면 좋은 얼굴을 얻고, 수레를 보시하면 안락을 얻고, 등불을 보시하면 밝은 눈을 얻고, 집에서 손님을 기다리면 그것을 일체 보시라 하고 법으로써 중생을 가르쳐 주면 그것을 곧 단 이슬 보시라 한다"라고 되어 있다.그러나 보시를 하는 데는 세 가지가 청정(삼륜청정)해야 한다. 첫째, 보시자가 베푼다는 상에 집착하여 내가 하니까 받아야 된다는 보상 심리가 있어서는 안 되며 바람이 없는 무주상 보시를 해야 한다. 둘째, 받는 사람이다. 받는 사람도 받았다는 생각도 없어야 하며 부담스럽다든가 따진다든가 하는 헤아림이 없어야 한다. 셋째, 보시하는 물건이 뇌물이 되어서도 안 되고 무엇을 바라고 하는 물건도 안 된다. 이 세 가지가 청정해야 진정한 보시라고 할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아 추석이 다가오니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여 찾아보지 않았던 인근 친척, 이웃 등 모든 분들을 생각할 때인 것 같다.(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전화라도 한 통하는 자비스러움이 깃들여진다면….)

2020-09-23 09:56:39

[종교칼럼]아상에 집착하지 말라

[종교칼럼]아상에 집착하지 말라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 앞에서 드러내 뽐내고 자랑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하고 살았다.음식이 많지 않고 귀하던 시절, 자기 집에 제사라도 있는 날이면 떡이라도 갖고 동네에 나가서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나누어 주기도 하고 손님이 와서 맛있는 것을 싸오는 날엔 친구들에게 인기가 그만이었다. 그러면 한층 더 친구들에게 으스대고 큰소리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너는 이 다음 내 말을 안 들으면 떡 하나 안 준다"고 엄포를 놓는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는 제사가 있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이러한 마음이 자라서 돈이 생기고 여유가 있어지면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먼저 일어나서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아도 우리는 외부에 드러내는 것을 중요시 여겨 명품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 신발, 옷, 자동차 할 것 없이 가짜 브랜드라도 붙이고 다니면 남에게 있어 보이기도 하고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정 형편이 안 되는데도 외제 중고차라도 사서 뽐내야 자신이 부의 대열에 서 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누가 봐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문제이다.이것은 우리 마음속에 아상(我相)이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상에는 첫째, 내면적으로 일어나는 상(相)과 둘째, 표면으로 보여지는 겉치레의 상이 존재하는데 내면에서 일어나는 상은 자기의 고집, 이념, 아만, 아집, 관념 등등의 생각으로 실체적인 자아가 아닌데 마음에 어떤 모양을 굳게 그려서 만들어 가지고 있는 그릇된 관념을 말한다. 말하자면 나는 윗사람이라서 아랫사람에게 절대 굽히지 못한다. 나는 상사라서… 나는 남자라서… 나는 누구라서… 내가 왜… 내가 어떻게… 이러한 나의 고집의 테두리에 싸여 자아 성취를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인생을 대화와 소통이 안 되게 하며 타인과 대립관계가 되는 안타까운 사람들로 변해간다.두 번째, 겉으로의 상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상으로 나는 부잣집 아들인데 저 사람들과는 달라… 나는 서울대를 나왔는데… 내가 옛날에는 직장이 무엇이었는데… 나는 차를 어떤 것을 타고 다니는데와 같은 자기 우월감에 사로잡혀 자기만의 세계에 도취되어 바깥 세계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어려운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직장을 쉽게 구하지 못하고 끝내는 방에서 한 달 두 달 아니 1년, 2년 세월없이 밖으로 못 나오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그뿐인가. 남성들은 퇴직하면 다시 직장 갖기가 힘들어진다. 예전의 직위와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그것을 버리면 내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집착에 빠져 이웃과 친구 심지어 가족까지도 잃어버리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예전의 위치를 빨리 내려놓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모든 것이 즐거워지는데….아상은 무지의 뿌리이며 사견을 일으키는 토대이다. 나라는 관념과 집착은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면서 대상을 바르게 관찰하지 못하고 오만과 분노, 고통을 초래한다.내 마음속에 있는 아집이 진실한 나 자신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저절로 세상이 보여지고 가까이 있는 사람이 친구도 될 수 있고 모든 이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용기도 생기며, 좋은 인연이 되어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쓸모 없는 고집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별것 아님에 고마워하고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며 주변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09-02 09:35:10

[종교칼럼] 화성여행을 위한 꿈

[종교칼럼] 화성여행을 위한 꿈

21세기 들어서 알게 된 우주에 관한 새로운 지식은 참으로 대단하고 앞으로 더욱 대단해질 것이다. 그런데 우주에 관한 지식들이 쌓일수록 더욱더 분명해지는 것은 지구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사실이다.금성은 지구에서 거리가 가장 가까워 일찍부터 천문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1970년대에 소련과 미국이 금성으로 탐사선 보내기를 거듭하여 많은 것을 알아냈다. 심지어 금성의 두터운 구름 속을 뚫고 들어가는 장비를 개발하여 그 안을 살피기까지 했다. 그 결과 금성의 대기는 90기압이나 되고 온도는 400℃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결코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그렇게 하여 관심을 돌린 곳이 바로 화성이다. 21세기 들어설 무렵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머지않은 시기인 2020년경 사람이 탄 우주선을 화성에 도달하게 하겠다는 야심 찬 발표를 했다. 그러나 2020년이 왔는데 NASA는 다시 20년 가까운 기간을 뒤로 늦추는 발표를 했다. 2030년대에는 유인우주선을 화성에 보내겠다는 것이다.그런데 놀랍게도 그 유인우주선에 우주인으로 승선하기를 지원한 사람의 수가 2만 명이 넘었다. 이들 중 가장 적합한 일부를 선발하여 조만간 훈련에 돌입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다.화성에 도착할 유인우주선은 지구에서 바로 출발할 수 없는 크기이기에 달에서나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우주선에 필요한 온갖 장비들을 달로 옮겨서 그곳에서 조립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먼저 물도 공기도 없으며 밤낮의 온도 차이가 엄청난 달 표면에 우주정거장을 지어야 할 것이다.지구 궤도에 우주정거장을 올려놓고 인류는 그동안 지구 표면이 제공하는 조건에서만 생명 유지가 가능한 인간이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조건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비롯한 온갖 실험을 해왔다. 1년 정도 우주정거장에서 생활했던 우주인이 자신의 체험들을 우리와 공유하고자 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여러 가지 많은 난관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만 든다면, 우주선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최대 78일이었다. 화성까지 가는 데에만 이보다 몇 배나 더 긴 시간이 걸리고 지구로 귀환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화성에 가서 그곳에서 계속 생존해야 하는데 공기 밀도가 지구의 100분의 1에 지나지 않고 평균기온 영하 60℃인 곳에 착륙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내 죽음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화성 여행에 대한 꿈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하고 성장하게 할 수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꿈으로 머물 것이다.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란 사실을 더욱더 인정하고 겸손할 필요가 있다. 지구는 엄청나게 큰 우주에 비해 대단히 작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그 표면에 살면서 누리는 정신적 공간의 크기는 대단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적 공간은 온 우주를 다 담고도 그보다 더 큰 여유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이고, 물질적 공간과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다.물질적인 차원으로만 본다면 광대한 크기의 공간과 엄청난 길이의 시간에 비해, 지구는 조그마한 천체이고 우리의 몸과 일생은 너무 작고 짧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과 신의 세계가 살아가기에는 충분히 크고 길다고 할 수 있다.물질적 차원의 공간과 시간의 세계에서 한계를 인식해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는 이제 물질적 차원을 넘어선 영적 세계의 가능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좀 더 힘차게 나아가야겠다.

2020-08-26 09:41:59

[종교칼럼] 코로나19와 진정한 종교 생활

[종교칼럼] 코로나19와 진정한 종교 생활

조깅을 아침마다 학교 안에서 하지만 옆 조산천 변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럴 때에는 넓은 바위 위나 모래사장에 촛불, 쌀, 과일들을 차려 놓은 모습들을 만나곤 한다. 다른 곳에서도 경험한 것이기에 이것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하고 간 자취란 것을 짐작한다.예전에는 이런 것을 미신 행위로 여기고 눈살을 찌푸리며 사과나 배를 한두 개 주워 들고 가면서 먹거나 아는 사람에게 주곤 했다. 요즘은 아직도 이런 행위가 있는 것을 의아해하며 그곳에서 기도한 사람의 청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된다.오래전 하양성당의 주임신부로 일할 때 이곳의 종교 분포를 어느 정도 파악한 적이 있다. 성당 하나에 열 개 정도의 개신교 교회가 있고 이보다 많은 수의 절이 있으며, 남묘호렌게쿄 등 각종 종교들이 마치 종교박람회처럼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다. 대문 옆에 대나무를 세워 놓은 무당집들도 있고 점집들도 있으며 어떤 낯선 이름의 도사를 앞세워 운세를 봐주는 시설도 있다. 이러한 각종 종교 시설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이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기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들로 하여금 좀 더 깨어나게 하여 일반 생활 영역에서는 물론 종교 영역에서도 진위 여부를 냉철하게 가려 보게 하고 있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각종 의식들을 동원하고 수많은 말들로 장식을 했지만 모아서 종합해 보면 결국 막연한 주술적인 행위나 그러한 기도에 불과한 것은 코로나19 사태에서 어떤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 못하기에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여러 가지로 우리를 힘들게 해온 코로나19는 다른 편으로 우리에게 많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들을 한 종교단체들 중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할 수 있는 종교와 그렇지 않은 종교를 분별할 잣대를 알려주고 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올바르고 진정한 종교는 다시 활력을 찾아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나갈 것이다. 다른 기회에는 처리하기 힘들었던 자신 안에 있는 쇄신되어야 할 요소들을 이번 기회에 쇄신하여 신선함을 회복하기도 할 것이다.많은 화려한 말들과 의식들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왔지만 진정성이 결여되어 결국은 그들을 속이며 등쳐 먹기만 했던 사이비 종교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의식이 깨어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에는 역부족일 것이고, 시간 속에서 서서히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종교가 사람들의 구원에 도움이 되는 진짜 종교이고 어떤 종교가 그렇지 않은 가짜 종교인지 알게 될 것이다.코로나19는 또한 우리에게 긴급히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참으로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하는 것이 좋은 것과 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들을 분별할 잣대들도 알려주고 있다. 지금 일자리를 잃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을 보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식주를 마련하는 일자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기에 일자리 유지와 창출은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다른 편으로는 덜 움직이고 덜 소비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만남들과 부산함으로 정작 매우 중요한 나 자신과의 만남, 나 자신이 되는 데 필요한 고요한 시간, 독서와 성찰, 명상과 기도를 소홀히 해왔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비록 코로나19에 의해 강요되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다소 고요해진 삶의 방식과 현명한 판단력을 유지하여 참된 종교적 삶으로 진정한 나 자신이 되고 이웃도 그렇게 되는 데 한몫해 나간다면 삶의 보람을 느끼며 행복해질 것이다.

2020-08-05 10:05:46

[종교칼럼] 코로나의 죽음 앞에서

[종교칼럼] 코로나의 죽음 앞에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터뜨리며 수채화 같은 색감을 느끼게 한다. 산자락도, 나무들도, 풀들도, 새들도 인고의 겨울을 감내했기에 따뜻한 봄을 맞는다. 뒷산에는 잿빛 숲속 사이로 노란 생강꽃과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난다. 봄은 이와 같이 찬란한데 코로나19로 축제들은 취소되고 발이 묶인 시민들은 불안하다. 큰 사찰들도 산문을 폐쇄하고 작은 사찰들도 모임도 법회도 취소되어 더욱 적막하다.근대 한국 선불교의 선각자 경허(鏡虛·1849~1912) 선사는 1879년(고종 16년) 여름, 어린 시절의 스승인 계허 화상을 찾아뵙기 위해 길을 떠났다.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민가의 추녀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에게 거절당했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모두 내쫓아서 이유를 묻자 "이 마을에 전염병이 창궐해 걸리기만 하면 서 있던 사람도 죽으니 어찌 감히 손님을 받겠는가?" 콜레라에 걸려 줄초상을 당한 마을에서 죽음의 그림자와 마주한 그는 경전의 지식은 죽음 앞에서 생사(生死)를 면치 못함을 깨닫고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때였다. 경허 선사는 동학사로 돌아온 뒤 공부하던 제자들을 모두 하산하게 했다.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단정히 앉아 화두를 참구했다. 다리를 송곳으로 찌르고 머리를 부딪쳐서 수마를 쫓았다. 그렇게 참구하기를 석 달 만에 문 밖에서 "스님들이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신도의 시주만 받아 생활하다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면 소가 되는데 콧구멍 없는 소가 된다 하지 않소?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되지요" 하는 소리에 활연히 큰 깨달음을 얻었다.경허는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그 기쁨을 노래했다.'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문득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온 우주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六月燕岩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野人無事太平歌(야인무사태평가) 일 없는 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실제로 1879년 고종 16년 일본에서 전염된 콜레라가 전국에 퍼져서 수많은 사망자를 냈다. 4, 5년 동안 조선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졌던 전염병은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 내는 것처럼 아프다고 하여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렸으며 치사율은 80~90%에 달했고 2001년을 기점으로 사라졌다.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염병 중 또 하나는 1918년에서 1920년까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스페인 독감'이다. 지구촌을 휩쓸면서 2천500만~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때 우리나라는 740만 명이 감염되었고, 14만여 명이 사망했다.이달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를 세계적 감염병이라는 '팬데믹' 선언을 했다.이제 세계는 너와 나를 가르는 단절의 강을 넘어 하나로 연결되었다. 모든 존재는 분절되고 고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하나이다. 양보 없는 이기심으로 자신만 살려고 하면 감염병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을 한 형제로 생각하고 혐오하지 말고 자애로 보살펴야 한다.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치유하는 명상하기를 권하고, 업무에 지친 담당 공무원과 의료진들의 피곤함을 달랠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기부자들과 봉사자들의 봉사에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한다. 서로를 염려하고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경허 선사가 죽음의 길에서 깨달음으로 성취하듯 이번 국가적 위기를 공존의 길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서로가 소중한 사회가 된다면 우린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2020-03-18 14:42:08

[종교칼럼] 진세(塵世)를 버렸어라

[종교칼럼] 진세(塵世)를 버렸어라

수도자나 사제가 되려는 첫 출발점은 세속적 욕망들을 끊는 큰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이 결심을 옳게 하지 않고는 다음으로 나아가는 일에서 많은 곤란을 겪게 된다. 다른 어떤 숨은 의도를 지니고 있으면 자신도 괴롭고 주변 사람들도 괴롭히는 일들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길로 들어서기 전에 속세에 대한 마음을 싹 비워야 하고 덜 비워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알아내는 대로 비워야 한다.이 길에 들어설 것인지 다소 긴 기간 고심하면서 모든 욕망들을 비우려는 노력을 한다고 한 후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어리고 미숙했던 그 당시 그렇게 마음먹는 것으로 모든 세속적 욕망들이 정리될 수 있는 것이고 정리된 것으로 생각했다. 모든 것이 미숙했지만 마음만은 생기 있고 순수한 새내기로 첫 학기를 지내고 방학을 맞이할 시기에 이르렀다. 이 길에 이미 10년 전에 들어선 최고참부터 새내기였던 우리에 이르기까지 모두는 방학에 앞서 9일 기도를 하면서 날마다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다졌다."진세를 버렸어라. 이 몸마저 버렸어∼라. 깨끗이 한 청춘을 부르심에 바쳤어라…."그런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맞이한 방학은 참으로 달콤할 것 같았다. 학기 중에 아침 6시 일어나서 밤 11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꽉 짜인 규칙들을 어김없이 지켜내느라 몸과 마음은 언제나 긴장 상태였고 엄격히 제한된 외출 규정에 매여 바깥세상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던 삶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로부터의 해방은 좋았지만 가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이 길에 들어서면서 떠난다고 여기는 어려운 결심을 했던 부모님 집이었다. 당시 그곳 말고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방학 동안 기거할 수 없었다.진세를 버리는 삶을 추구하든 진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삶을 추구하든, 우리는 지구가 제공하는 삶의 조건에 따라 지구 표면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다. 살고자 하는 수많은 생명체들로 둘러싸여 살아가는 생명체이고, 생명체들 중 일부를 희생시키며 날마다 먹어야만 유지할 수 있는 목숨이다.물리학, 천문학, 지리학 등 이과를 좋아한 나는 공부란 모두 명백한 결론에 이르는 것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인간의 삶과 의식 세계를 다루는 문과는 달랐고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은 존재하시는가?'를 정확한 논리로 확실하게 알고 싶은데, 신학개론 강의는 '하느님은 존재하신다'로 시작했다. 마치 수학에서 공리와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공부를 계속하기도 힘들었고 그만두지도 못했다. 그만두고 달리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 나은 곳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오랜 기간 지속된 혼란과 고통 그리고 서서히 회복되어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있는 지금까지의 과정들을 자세하게 기록하자면 긴 시간과 지면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종합하여 짧은 글로 '이 모든 것은 은유이고 믿음, 희망, 사랑의 삶을 위한 한 편의 시다'로 정리하고 싶다. 진세를 버린다는 것도 글자 그대로가 아니라 은유로 알아듣고 해야 하는 것이고 이 세상을 위한다는 것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 것 같다. 이것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여 그대로 실천하겠다고 애를 썼던 초년생 시절, 얼마 못 가서 완전히 번아웃 상태로 빠져들었다. 회복하기까지 길고 긴 시간이 걸렸던 그 엄청난 고통은 나에게 언제나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너는 지구 환경의 조건들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이웃을 배려하며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는 가능성과 한계를 지닌 생명체다.'

2020-03-11 11:36:04

[종교칼럼] 귀를 막고 종을 치다

[종교칼럼] 귀를 막고 종을 치다

긴 겨울 만물은 뿌리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성숙시킨다.겨우내 오지 않던 비가 내리고 며칠 날이 따뜻해지자 뒤뜰 매화나무 가지가 파릇해지고 움이 맺혔다. 움이 꽃을 피우고 눈이 내리면 눈 속의 꽃인 설중매가 된다. 다른 꽃나무들은 아직도 겨울인 양 깊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일컬어지는 매화는 계절을 알리기 위해 맹추위를 뚫고 봄을 준비하고 움직인다.산책을 위해 망월사 주변을 걷다 보면 낙화담의 청둥오리들이 물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편대비행을 하더니 수면에 내려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자맥질을 하며 은빛 날개로 물살을 가른다. 물 위에 앉은 오리 떼를 바라보며 보케리니의 첼로 협주곡 9번 2악장을 들으며 나라를 생각한다.'여씨춘추'(呂氏春秋)에 범씨가 다스리던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한 백성이 혼란을 틈타 범씨 집안의 종을 훔치려고 했다. 종이 너무 커서 도둑은 망치로 종을 깨 가지고 나가려 했다. 그 도둑은 종소리가 크게 울려 펴져 다른 사람이 올까 봐 두려워서 자기의 귀를 막고 종을 깼다.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이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엄이도종·掩耳盜鐘). 송나라 주희는 이 일화를 인용해 "종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는 지도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문재인 정부가 보복인사를 통해 검찰총장의 손발을 잘라내고 탄압하고 부정을 덮으려는 짓이 위와 같다. 정권의 비리가 드러날까 봐 수사를 막고 무력화하려는 것은 귀를 막고 종을 깨는 행위이다. 권력의 힘으로 정의를 뭉개고 가겠다는 정권의 시도는 반드시 국민의 분노와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공정을 외치며 반칙과 특권을 일삼는 측근들을 물리치지 않는 한 정의의 종소리는 더욱 크게 울려 펴지고 성난 민심은 개혁되지 않으면 정권을 무너트릴 것이다. 이제 겨우 임기 반환점을 넘긴 이 정권은 측근들의 부패가 심각하다. 문 정권은 역사에서 부침(浮沈)을 배우며 읍참마속하는 지혜를 자연에서 얻어야 한다.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어린 동승이 개구리와 뱀, 물고기를 잡아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트리며 실로 돌에 매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승은 자고 있는 동승의 몸에 돌을 묶어 동일한 업보로 보상을 받게 한다.부처님은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라 하시면서 "부끄러워할 줄 알고 마음으로 행동을 삼가면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김수환 추기경은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 걸렸다"고 했다.인간의 삶은 수많은 행위의 집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에 의해 그 사람의 귀함과 천함이 나눠진다. 보람과 가치가 있는 삶인지 후회만 남는 삶인지 결정된다. 좋은 행위를 한다면 점점 귀해지고 나쁜 행위에 길들여지면 점점 천해진다.인생(人生)이란 바로 이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한 조각 구름이 아닌가. 일순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순간 사라져버리는 것들. 고정된 실체 없이 찰나생멸(刹那生滅)하는 이 세상에 단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갈 뿐. 왜 위정자들은 나눔과 평화의 상생을 연주하지 못할까?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어둡고 마음이 밝으면 세상이 밝다.

2020-01-15 13:54:20

[종교칼럼] 경전, 산 이들의 이야기

[종교칼럼] 경전, 산 이들의 이야기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명작으로 알려진 책들을 읽어야 하고 그중에서도 고전부터 읽어야 한다"는 말은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늘 들어온 말이고 나름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해 온 말이다. 고전 중에서도 성경, 불경, 논어, 도덕경, 장자는 독서의 최우선 순위에 해당하는 책들이다.논어와 도덕경은 문학이나 철학 서적을 읽듯이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며 실천하려고 결심하는 정도에 머물러도 된다. 그리스도교의 성경도 그렇게 읽어도 된다. 어렵지도 않아서 술술 읽어 나갈 수 있다. 불경도 한문으로 된 것은 언어문제 때문에 읽기가 어렵지, 우리말로 번역해 놓은 것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유교와 도교는 오늘날 우리에게 종교라기보다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에 굳이 신앙적 자세로 이들을 대하라고 요구하는 곳은 없다.그런데 그리스도교와 불교라는 대단히 큰 종교의 경전인 성경과 불경은 문학 서적을 대하듯 하고 만다면 아직 표면에 머무는 것이 되기에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읽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까지 언급하자면 할 말이 너무 많아지게 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성경과 불경도 결국 살아 있던 사람들이 한 말과 행적을 살아 있던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라는 사실이다.불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이후 80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살아 있던 45년 동안 한 말과 행적을 기록한 것을 기본으로 하여 이후 많은 사람들이 덧붙인 것이다. 여기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나 세상을 떠난 사람은 어떤 기여도 할 수 없었다. 그러한 것을 단순히 읽기만 한 사람, 다른 언어로 번역한 사람, 상당히 복잡했을 출판과정에 기여한 사람들. 모두 살아 있던 사람이 한 것이고,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이 읽고 해석하고 실천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약성경이 기록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여러 단계에 걸쳐 수백 년의 시간이 걸렸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출발점으로 하여 많은 수의 편지글과 묵시록으로 구성되어 있는 신약성경이 모두 기록되는 데는 수십 년의 시간과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수고를 했다. 이 역시 당시 살아 있던 사람들이 한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한 예수가 부활했고 제자들과 만나 함께 먹기도 하고 대화를 했다는 초자연적인 사실에 대한 보도가 있지만 이 역시 당시 살아 있던 사람들이 기록했다.오늘날 내가 불경과 성경을 읽을 수 있기까지 지난 2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수의 살아 있던 사람들의 수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가고 오늘날 살아 있는 내가 이것을 읽으면서 문학 서적으로 읽는 것을 넘어 신앙의 차원으로 읽으려 애쓰고 있다. 그러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알려주는 내용들로 구성된 글들이다. 그리고 결국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하면 옳게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알기 위해 읽는다. 죽어서 천국 가기 위해서 바르고 착하게 살려고 하는 경우에도 결국 이 땅에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성경과 불경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이고 살아 있는 내가 성경과 불경을 읽는 이유다. 나는 이 땅에서 한 개인으로서 살고 있고, 또한 살아 있는 개인들로 구성된 단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개인인 내가 혼자 있을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이웃 사람들과 더불어 있을 때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결국 이것이 관건이고 성경과 불경에서 하고 있는 말들도 이것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2020-01-08 09:45:35

[종교칼럼]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

[종교칼럼]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

초겨울 산사는 나목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한 해 내내 풍성했던 푸른 풍경들이 허공 속으로 사라져 이제는 흑백사진으로만 보인다. 허공 속에 남은 나무들의 선은 담백하다. 버릴 것을 다 버려서인지 가지들은 자신의 존재를 맑게 드러낸다. 새들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텅 빈 곳 사이로 바람만 지나간다. 개울의 물소리와 달빛에 비친 낙화담은 더욱 차갑게 푸르다.빈 들녘들은 자신의 피부를 드러내고 봄의 생명을 싹 틔우기 위해 태양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한 해를 살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고 용서할 줄 아는 삶을 살았는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지 않았는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지 않았는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본다.내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이기적으로 성내며 나누지 못했다. 가슴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고 슬프게 했던 소중한 인연들께 참회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도한다. 안락한 삶이 되게 칭찬하며 자비와 사랑을 나누는 이웃이 되길 염원한다.영겁의 세월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세월의 빠름은 달리는 말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다. 궁수가 활을 쏘아 놓고 즉시 달려가 붙잡는다면 이 사람은 굉장히 빠른 사람이다. 해와 달이 하늘을 달리는 속도는 그보다 더 빠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빠른 것이 있다. 인간의 수명이다. 해와 달이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빠르므로 누구든지 게으르지 말고 불방일(不放逸)로 이 세상에 온 가치를 완수해야 한다.한 해를 돌아보며若人壽百歲(약인수백세) 不知大道義(부지대도의) 不如生一日(불여생일일) 學推佛法要(학추불법요)"어떤 사람이 백 년을 살더라도 진리를 모르고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진리를 알고 사는 삶이 훨씬 낫다"고 법구경에서 말한다.공자(孔子)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子曰 朝聞道 夕死可矣)고 했다.'세상 사람들은 눈멀었고 몇몇 사람만이 진리를 보네, 몇몇 새만이 그물을 벗어나듯 몇몇 사람만이 하늘 세계로 가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진리를 알 때 비로소 고통의 그물을 벗어날 수 있다.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대리석 덩어리를 그저 재료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돌 안에 갇힌 위대한 형태를 바라봤다.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 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 그는 형상을 만들거나 다듬는 게 아니라 재료에서 모습을 찾아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 냈다. 신라인들의 예술문화도 그러했다. 경주 남산의 수많은 석불, 석탑들이 그와 같이 온화하다. 지금의 정치, 경제, 노동, 사회 분야에서도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 내고 정치가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좀 더 안락하고 행복한 제도를 제공해야 한다. 한 해를 반성하며 되돌아본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시간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또 새해가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다짐과 목표를 세운다. 나 또한 건강한 한 해를 보낼 수 있게 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한 해의 감사와 새해의 희망을 발원한다. 우리네 삶도 불필요한 부분들을 덜어 내며 사는 것이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모습이다. 가족과 주변 이웃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새해는 더 큰 기쁨의 한 해가 되길 바라며 두 손을 모은다.

2019-12-25 10:22:08

[종교칼럼] 산 이들의 이야기

[종교칼럼] 산 이들의 이야기

식물들은 화학적 분비물을 통해서, 동물들은 소리와 표정, 몸동작을 통해서 각자 나름대로 서로 의사전달을 한다. 그러나 자음과 모음을 엮어서 다양하고 깊은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생명체는 오로지 사람뿐이다.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과 이 세상에서 살다가 떠난 사람, 그리고 현재 살아 있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이들 중에서도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그들이 어떤 세계에 들어서 있는지 대단히 궁금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이기에 상상과 믿음으로만 무엇인가를 그려볼 뿐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태어나서 이 세상 삶의 주인공이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주인공은 바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언제 살아 있는가? 바로 현재 이 순간을 살고 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 수가 77억 명이나 되는데, 지구촌 위치에 따라 오전이나 오후를 살고 있는 사람, 잠을 자는 사람이 있지만 모두 현재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이것은 남녀노소, 지식, 지위, 재산 등의 많고 적음, 높낮이에 상관없이 같다.유아는 유아대로 살아 있고 유치원생, 초·중·고등·대학생, 가정주부, 직장인, 은퇴인 등 각자 나름대로 살아 있다. 알고 있는 지식과 체험한 것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르지만 다 같이 현재 이 순간에 살아 있다. 각자 머릿속에 들어있는 온갖 욕구와 생각을 내놓고 이야기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의 분량이 많고 복잡하여 듣다가 피곤해질 것이고 마침내 감당이 안 될 것이다.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킨다 하더라도 1천억 개의 신경세포와 1조 개의 교세포로 구성된 우리 두뇌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몸 안의 온갖 생명 현상을 주도하고 꿈을 꾸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의 온갖 것들을 인지하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오감에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고요한 곳에 혼자 있어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과거의 온갖 추억과 상처들을 회상하다가 미래로 가서 아직 현실이 아닌 온갖 생각과 걱정거리들을 더듬는다. 살아 있는 것은 현재 이 순간인데 생각은 과거와 미래에 더 많이 가 있다. 이것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잡념이 되고 정신을 분산시켜 심하면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조금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종교 이야기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살았을 때 종교에 대해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무종교인으로 산 사람들은 종교 없이 살기로 마음먹었겠고 특정 종교 단체의 일원으로 산 사람들은 그들만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할 상태에 있지 않다.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우리 살아 있는 자들은 궁금하지만 건널 수 없는 한계에 의해 궁금증을 해소할 수는 없다.필자가 지면이 대단히 제한된 이 칼럼에서 이 이야기를 이렇게 강조해가며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사실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들은 이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이 살았던 생각과 삶의 자취를 안고 있다. 그래서 각 시대와 지역의 문화적 요소들이 들어 있고 참된 진리와 주변 진리가 섞여 있으며 진리와는 거리가 먼 불편한 요소들도 들어 있다.진정성을 가진 성직자와 수도자는 자신이 믿고 전하고자 하는 종교적 진리가 가능한 대로 참된 것이기를 원할 것이다. 일반 신자라 할지라도 주변 진리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진리가 아닌 것과는 거리를 멀리 두려고 할 것이다.

2019-12-18 09:58:14

[종교칼럼] 일상 같은 성탄절

[종교칼럼] 일상 같은 성탄절

교회 집무실 창가에 성탄 촛불을 켰다. 흰색 양초 모양의 램프 열 개가 나란히 서 있는 전등이다. 켜고 끄는 것이 그저 스위치를 한 번씩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도 기분은 켤 때와 끌 때가 사뭇 달라진다. 책상에 앉아 있다가 시선이 창가로 가면 성탄 촛불이 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지금이 성탄의 계절임을 기억한다.교회 봉사부 교인들은 이미 김장을 하여 필요한 이웃에 나누었다. 수고 하는 중에도 다들 즐거운 표정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양념을 버무렸다.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과일과 금일봉도 드릴 예정이다.시내 중심가에는 대형 트리가 세워졌고, 불빛 찬란한 포토존에서 너도나도 셀카 촬영에 열중이다. 한결같이 환한 표정이다. 거리에는 빨간색의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구세군이 종을 치며 관악기를 연주한다. 상점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방송에서도 캐럴이 자주 나온다. 빨간 코트, 빨간 머플러, 빨간 모자가 어울리는 계절이다.연말연시의 아름다운 리추얼이다. 리추얼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회행위이다. 때로는 기계적으로 반복된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퇴근하여 저녁을 먹고 그냥 눕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지는 것이 행복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직업과 직장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출근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냥 시계추가 흔들리듯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하루 세 끼 먹는 것은 그냥 끼니때가 되어 먹는 것이다. 세 끼가 걱정거리가 된다거나 가치와 의미를 반드시 물어보고 감격하여 눈물 콧물 쏟아가며 먹는 식사라면 아마도 행복한 형편은 아닐 것이다.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경우이다. 그래서 대단히 중요한 일도 리추얼의 반복인 것이 더 행복한 삶의 증거일 때가 많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 행복이 있다.우리가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운 삶이지만, 선을 베푸는 일을 아무것도 아닌 양, 그저 반복되는 일상인 양 여긴다면 이것이 행복한 삶이다. 의미와 가치를 물을 것도 없이 그냥 해야 되는 일이니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한다면 아름다운 것이다.올해도 작년처럼, 아니 작년보다 더 태연히 성탄절을 보내자.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듯, 서로 도우며 사는 삶이 너무나 당연한 리추얼로 살아가자. 이것이 더 성스러운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구세주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다. 구세주는 특별한 곳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평범한 삶의 자리에 오셨다. 예수님은 특별할 것 없는 목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목수 청년이었다. 매일 열심히 일하여 생계를 꾸리는 일상적 삶이 성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의미를 묻지 않는 곳에 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내가 피하고 싶은 비참한 현실로서가 아니라,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일상의 현실로 여기자. 아무렇지도 않게 자비를 베풀고, 특별하지 않은 마음으로 봉사하고, 즐겁게 남의 짐을 지고, 기쁘게 섬기자.연말이 되면 마음속에 우울한 바람이 불어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든다. 해마다 찾아오는 성탄절은 겨울의 우울을 떨쳐버리고 새 시간을 맞는 리추얼이다. 성탄의 불빛이 거리마다 밝혀져 있다. 마음까지 환해지면 좋겠다.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올린다.

2019-12-11 10:33:29

[종교칼럼] 강산(江山)은 둘러두고 보리라

[종교칼럼] 강산(江山)은 둘러두고 보리라

서리 내린 울 밑의 황국화는 소설(小雪)이 지났건만 아직도 절개를 지키려는 듯 꽃이 향기롭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시를 읊조려 본다. 이성계에게 나라를 뺏긴 고려 말의 충신 이곡(李穀)은 정신적으로 기댈 곳 없을 때 찬 기운에 핀 국화로부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계절은 낮이 짧고 밤이 긴 동지로 달린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진다. 자연도 사람도 휴식이 길어지며 기운을 얻는다. 농부들은 가을 추수를 곳간에 쌓아두고 안정과 여유를 찾는다. 낮보다 밤이 긴 시간 속에 가족을 살피며 내면이 충만하다.'세상의 모든 것은 한쪽으로 무한정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달도 차면 기울게 하고 기울기가 극에 달하면 다시 차오르도록 한다.올라가면 내려가야 하고 내려가면 올라가야 한다.잘 간다고 경거망동하지 말고 못 간다고 기죽지 말아야 한다.늘 그대로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한다.'내가 다니는 보이찻집 주인이 며칠 전 이사를 했다. 수십 년을 고민하다가 거처를 옮겼다. 남들은 시골에서 대구로 나오는데 이분은 반대로 시골로 갔다. 집 앞 둥근 연못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터를 닦고 축대를 쌓고 집을 새로 지었다. 산 공기와 마시는 차와 커피가 훨씬 맛있다고 했다. 수돗물을 계곡물에 견줄 수 없듯이, 도시의 탁한 공기가 시골의 맑은 공기를 따라갈 수 없듯이 더 맑은 산과 물 그리고 공기를 찾아 숲을 찾는다. 산이나 들이나 바닷가에서 마시는 음료나 음식은 집 안에서 먹을 때보다 더욱 맛이 있다. 자연에서 맑은 산소와 햇볕이 음식과 같이할 때 몸이 활성화되므로 침샘을 자극해 맛을 돋운다.조선 중기의 문신 송순은 이렇게 읊었다.'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어내니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淸風) 한 칸 맡겨두고강산(江山)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초가집 한 채 지어놓고 세상을 다 들여놓았다. 내가 묵을 방 한 칸, 달이 들어올 방 한 칸, 청풍명월(淸風明月) 방 한 칸, 모두 가까이 불러들여 벗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자기 자신은 남들이 보는 것처럼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다.더 들여놓을 데 없는 강산(江山)은 집 밖에 병풍처럼 둘러놓고 보니 남부러운 것 없는 집이다. 20년을 경영하여 왜관 금남리로 떠난 라온커피, 보이찻집 주인과 성향이 비슷하려나?금강경 야부송에 이런 말이 나온다.'竹密不防流水過(죽밀불방류수과) 대나무가 아무리 빽빽해도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고山高豈碍白雲飛(산고기애백운비) 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떠가는 구름을 막을 수 없다.'인생과 자연은 물과 구름처럼 막을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집은 초려삼간보다 크고 화려하니 위로받고 이 정권이 하수상하여도 자꾸만 자살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어떤 역경이라도 뚫고 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네 삶의 흐름이다. 어제의 결과는 오늘에 있고 오늘의 결과는 내일에 있다. 오늘을 성실히 보내야 내일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진리이다."산은 커다란 생명체요, 시들지 않는 영원한 품속이다. 산에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일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종교가 있다.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나 종교가 시멘트로 된 교실이 아니라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숲속에서 움텄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맑은 산 공기와 청풍명월 가득한 시골집에서 탈속(脫俗)한 풍류를 그리는 그분을 보고 싶다.

2019-12-05 06:30:00

[종교칼럼]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종교칼럼]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오늘날 우리 인류가 누리고 있는 과학문명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 땅에서 약 800만 년 전에 시작된 인간의 생존 이래로 이런 일은 처음이다. 불과 10년 후 과학문명이 어떻게 발전해 있을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이전에는 과학문명의 발전을 기대하고 기뻐하기만 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우려도 함께 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우려의 강도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이러한 것은 자연과학과 응용과학의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에도 해당되는 것으로서 인류가 그동안 축적해온 지식의 양은 대단히 많다. 필자가 속한 대학교는 도서관에 약 100만 권 정도의 각종 책들과 다양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회 도서관은 약 1천만 권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지구촌에서 출판되는 책의 양은 대단하여 우리나라에서만 해마다 약 5만∼6만 권의 신간 서적들이 출판되고 있다. 각종 신문, 잡지, 논문, 수필 등으로 기록되는 지식들도 대단히 많다. 이러한 작업은 앞으로도 지속되어 인류가 쌓아 올릴 지식의 양이 얼마나 될지 짐작하기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이러한 일들은 인류가 알 수 있는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인데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알 수 없는 영역은 이보다 훨씬 더 넓다. 인간이 인식하는 것은 공간, 시간, 인과율이라는 틀 안에 들어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지닌 인식의 틀 안에 들어오는 것조차 인식하는 데에는 제약들이 많다. 대표적 예로 인류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가시광선으로 탐구할 수 있는 물질은 존재 세계의 4∼5%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역의 물질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는 것이 대단히 많아서 호기심 많은 인류가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알아내는 기쁨을 누릴 것이고 그것을 응용한 과학기술의 편리함도 누릴 것이다.알 수 없는 영역은 알 수 있는 영역에 속한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어서 대단할 것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무엇을 알아낼 때 사용하는 감각, 감성, 이성을 초월한 영역이기에 지금까지 무엇을 알기 위해 동원했던 것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소용없다. 그래서 이 영역에 대해서는 차라리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고 쉬울 것이다.그런데 이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조차 궁금하기 그지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순히 호기심이 강해서 그럴까. 에너지 절약의 법칙에 따라 자신이 참으로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이 영역에 대해 이렇게도 지속적인 관심이 가는 것은 내가 알려고 해서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이러한 현상은 인간 인식의 틀을 넘어선 믿음, 희망, 사랑이라는 영성의 틀로 가야 하는 그분이 우리에게 자꾸만 관심을 보이고 당신에 대해 알아보도록 유도하기 때문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이토록 이 영역에 대한 강한 관심을 지니고 오늘도 어제와 같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완전히 없는 영역에 대한 헛된 관심만이 아닌 것은 틀림없다. 또한 나의 호기심이나 힘으로만 그러는 것이 아닌 것도 분명한 것 같다.이 영역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면 보이는 세계의 적지 않은 것들을 희생하거나 포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관심과 열망으로 이 세계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려고 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웬만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곧 보이는 현상세계와 죽음을 넘어선 어떤 것을 열어주는 구원의 세계이기에 이러는 것 같다.

2019-11-27 10:24:00

[종교칼럼]정치와 자살

[종교칼럼]정치와 자살

아버지께서 노년에 접어드시자 하시던 일을 접으셨다. 동네에서 친구분의 부동산 중개소를 돕기로 하셨다. 당시는 복덕방이라 했다. 요즘처럼 에어컨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여름이면 사무실 앞 가로수 그늘 밑 평상 위에서 장기를 두시며 시간을 보내셨다. 그런데 자주 마음이 상하여 퇴근하시곤 했다. 정치 의견이 달라 다투셨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연세에 다 고만고만한 의견을 가지셨는데 말이다. 얼마 안 있어 아버지는 출근을 그만하셨다. 건강하셨던 아버지는 다른 일을 찾으셨다. 거의 50년 전 일이다.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명절에 모인 가족 간에조차 정치 이야기는 금기어 일순위다. 정치 이야기는 부자 관계도 멀어지게 한다. 선진국에서는 대를 이어 같은 정당을 지지한다고 하지 않는가? 분명 한국 정치가와 정치 모두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정치가들은 국론 분열의 원인이 서로 상대방에게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정치구조적인 문제다.우리나라 자살률이 십수 년간 부동의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 원인 통계에 의하면 2018년 자살로 숨진 사람은 1만3천670명으로 1년 전보다 9.7% 늘어났다. 하루 평균 3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사망률(인구 10만 명당)은 26.6명으로 OECD 평균 11.5명의 두 배가 넘고, OECD 국가 가운데 단연 1등이다.특히 노인일수록 자살률이 높았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을 보면 60대 32.9명에서 70대 48.9명, 80대 이상 69.8명으로 70대 이후 자살률이 급격히 늘었다. 노인 자살 이유는 1위가 바로 경제적 어려움이다. 2014년 기준으로 노인들의 상대빈곤율은 우리나라 48.8%, 미국 21%, 독일 8.5%였다. OECD 평균 12.1%의 4배가 되는 수치다. 이 통계는 자살이 결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빈곤의 문제라는 것을 말해준다.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토록 오랜 시간 자살률 세계 1위를 한다면 집단적 원인, 구조적 원인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개인의 자살은 그 자체로 사회적 사건이요, 사회적 타살이 되는 것이다. 돈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비극이다. 이 비극보다 더 큰 비극은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다.'자살'의 음절 순서를 뒤집으면 '살자'가 된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국민의식도 뒤집어져야 살 만한 세상이 온다. 판을 뒤집어서 최소한 자살은 멈추어야 하지 않겠는가?자살을 막는 방법은 상담사를 양성하는 것만이 아니다. 간암으로 열이 나는데 해열제 아스피린 처방이 될 말인가? 이와 같다. 자살 예방 대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살 만한 세상을 만든다면 누가 스스로 죽겠는가? 정치가 더 민주화되고, 경제가 더 인간적이 되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도, 능력이 좀 부족해도, 취업이 잘 안 되어도, 사업에 실패를 해도, 나이를 먹어도 극단으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총선이 다가온다. 그런데 왜 총선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 한 표를 주고 싶은 사람이 없다. 우리는 선거가 정치의 전부인 양 여긴다. 어느 누구든 한 명은 반드시 국회의원에 당선될 것이고 그 사람이 자기면 좋겠다고 출마한다. 완전 로또심리학이다. 이런 사람이 자기 혼자 잘 살자고 국민을 자살로 내몰지는 않을까? 자살이 정신과 의사의 몫이 아니고 정치가의 책임인 것을 아는 정치가, 국민의 자살을 멈출 정치가가 있다면 기꺼이 내 소중한 한 표를 주겠다.

2019-11-20 10:09:01

[종교칼럼] 중앙분리대에서 자란 이름 모를 풀

[종교칼럼] 중앙분리대에서 자란 이름 모를 풀

어제도 여느 때와 같이 앞산 밑 북카페에서 수요일마다 하는 강의를 위해 길을 나섰다. 태풍이 부는 상황이긴 했지만 특별한 일은 없는 일상의 날이었다. 그런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키가 1m 정도는 될 그 풀이 지난 봄부터 그 자리에서 자라고 있었겠는데 어제 처음 나의 인식 범위에 와닿은 것이다. 범안로에서도 고가도로인 롯데플라자 옆을 지나 시내로 가는데 저 앞에서 그 풀이 태풍에 흔들리고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흔들렸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건강한 모습으로 가지마다 씨앗을 잔뜩 달고 있었다.중앙분리대 콘크리트 틈새에 바람을 타고 모인 먼지들과 각종 풀잎과 낙엽들에 뿌리를 박고 자라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 거다. 그의 동료들이 씨앗으로 저 넓은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며 자라는 동안 그는 저 좁고 열악한 곳에 떨어졌건만 발아하여 자라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동안 나의 차를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차들이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 흔들어댔으며 소음과 매연은 또한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비오는 날들이 있어서 저렇게 자랐겠지만 지난여름 한낮의 강력한 햇빛은 얼마나 목마르게 했겠는가.그의 건강한 모습은 이 모든 열악한 상황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여 그 자신이 되어갔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도대체 어떤 힘이 그로 하여금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라고 그 모든 분란을 견디게 했는지 궁금하다. 그가 그곳에서 자라는 동안 어떤 의식과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도 궁금하다.그 풀은 금년 봄에 그곳에서 발아할 만큼의 조건이 되지 않았더라도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 씨앗의 상태 그대로 여러 해들을 기다릴 것이다. 태풍도 지나가고 가을이 짙어지면 그가 맺은 수많은 열매들은 다음 해를 위한 씨앗이 되어 이리 저리 흩어져갈 것이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는 알 수 없지만 강력한 생명력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그러면서 나는 그동안 어떤 의식과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의 수고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육십 중반에 이르도록 살면서 겪었던 온갖 일들은 글로 소상하게 쓴다 하더라도 제대로 다 기록할 수 없을 것이고 망각의 세계로 접어든 부분 또한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앙분리대에서 자란 그 풀만큼 의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부모님을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왔는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고 기억에 떠올릴 수도 없으며 말로 다 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국과 국제사회가 나의 생존과 성장 그리고 교육을 위해 제공한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대충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이 역시 다 헤아릴 수 없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나의 생존을 위해 지구환경이 나에게 제공한 것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도 절실하게 필요한 이 공기를 아무런 조건 없이 무상으로 계속 제공하고 있다. 지면 관계로 물과 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하자. 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날마다 먹는 음식을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희생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들어가 있는가.그런데 나는 나의 삶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왔는가. 이 수많은 요소들에 대해 인식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얼마나 갖고 살아왔는가. 참으로 반성하며 다시 생각해 볼 부분이 너무도 많이 보인다.

2019-11-06 10:13:57

[종교칼럼]제왕절개 분만과 지능

[종교칼럼]제왕절개 분만과 지능

십여 년 전, 당시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이태성 교수는 국내에서 제왕절개수술로 아이를 낳는 빈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그때 나는 '요즘 젊은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을 때 따르는 고통을 견디어낼 인내가 부족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런 주제로 대화가 다소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런데 후버 교수의 저서를 읽으면서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신학박사 겸 의학박사인 독특한 이력의 후버 교수 역시 산부인과 전문의다. 그에 의하면 비엔나 의과대학병원이 50년 전부터 신생아 8만여 명을 연구한 결과 엄마 배 속에서 태아가 점점 더 크게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가 지속돼 아이를 잉태한 여성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진 덕분이었다.그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의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 때문에 비엔나 의과대학에서 제왕절개수술로 아이를 분만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제 인류는 이와 같은 상황들 앞에서 문제를 잘 극복하여 보다 나은 인류로 진보해 나갈 것인지, 한계에 부딪혀 퇴보와 몰락으로 갈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새로운 세대의 체격은 앞선 세대보다 현저하게 더 크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때 체격이 반에서 가장 컸던 후버 교수가 제자들과의 만남에서는 그들을 위로 쳐다보아야 한다고도 했다. 새로운 세대는 두뇌도 크기에 당연히 뇌세포도 더 많다. 좋은 머리는 뇌세포의 수보다 연결망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후버 교수에 의하면 뇌세포의 수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뇌세포의 수 증가에 의해 새로운 세대의 IQ가 점점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평균 100을 기준으로 만든 IQ 테스트로 이들의 IQ를 측정하면 130은 된다고 한다.새로운 세대는 좋아진 경제력과 높아진 교육열 덕분에 어릴 때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여행도 많이 하며 유익한 놀이도 많이 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고 생각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머릿속에 많이 갖게 한다. 이것은 두뇌의 뇌세포들을 활발하게 하여 시냅스 연결망이 촘촘해지고 튼튼해지며 뇌세포 수도 늘리기에 당연히 IQ도 높아진다. 여행을 많이 하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으며 오감을 활성화시키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것은 또한 두뇌를 활발히 하여 뇌세포의 수를 늘리고 연결망을 훨씬 더 좋게 한다. 건전하고 즐거운 놀이를 많이 하는 것도 두뇌를 좋게 하는 데 일조한다. 발달된 컴퓨터와 스마트폰 덕분에 순발력을 요하는 게임을 많이 하는 새로운 세대의 IQ는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좋아진 삶의 환경 덕분에 IQ가 높아지고 성격도 부드러워진 새로운 세대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좋아한다. 지구촌에서 아직도 전쟁, 테러, 다툼, 궁핍 등에 시달리는 지역이 있지만, IQ가 높고 평화를 사랑하는 새로운 세대는 시간 속에서 이런 문제들을 줄여나가고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궁의 산도를 통과하기엔 너무 커진 태아가 그 안에 갇혀 버리는 것과 같은 비극적 상황이 우리 지구촌 현대문명에서 발생할 때는 어떻게 될까? 평화를 사랑하는 새로운 세대가 현명한 방법을 동원하여 인류를 구출해 낼 수 있을까? 그러한 방법이 있기나 할까? 여전히 염려된다. 지구촌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는 통합된 의식을 가진 성숙한 종교인은 그런 문제가 오지 않게 하거나 오더라도 해결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현명한 새로운 세대에서 이런 종교인이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되도록 두 손을 모아본다.

2019-09-25 11:16:09

[종교칼럼] 진짜 커피를 찾아서

[종교칼럼] 진짜 커피를 찾아서

입추가 지나도 늦여름 더위는 맹렬하다. 아마도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오면 선선해지려나 보다. 이번 여름에는 차보다 더 맑은 커피를 찾아 그 향과 산미를 즐겼다. 요즘 절집에서도 작설차와 보이차에 이어 커피가 '제삼의 차'로 대세다. 품질 좋은 빈과 드립으로 풍미를 즐기고 수행에 각성을 일깨운다.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비영리단체가 스타벅스와 피츠커피 등 유명 커피 제조사 70여 곳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3월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은 커피 생두를 볶는 로스팅 과정에서 발암물질 '아크릴아마이드'가 생성되는 만큼 "커피 유통업체들은 앞으로는 판매하는 커피에 발암물질 경고문을 부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2019년 6월 3일 커피를 암 유발 경고문 부착 품목에서 제외했고 미국 커피협회 회장은 "이 소식으로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이 다시 커피의 향과 맛을 주저 없이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했다.커피계의 애플이라는 블루보틀(Blue Bottle Coffee)이 한국에 상륙했다. 도올 김용옥은 최근 서양철학사 02에서 신의 커피에 대해 말했다. 커피 맛은 생두의 품질이 절대적이다. 생산된 주재료 생두 품질은 어떤 방법으로도 향상시킬 수 없다. 그래서 커피를 다루는 방법은 생두 품질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커피콩에는 유분과 배아, 세포, 섬유조직이 있다. 낮은 열과 긴 시간으로 1차 팜핑이 되지 않은 상태로 생두의 속을 익히므로 겉이 타지 않은 비교적 건강한 커피 맛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을 과도하게 배전해 버리면 커피콩의 구조와 성분을 화학적으로 변화시켜 탄화되고 질이 떨어진다. 배전된 원두는 공기, 습도, 온도에 의하여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지므로 가능하면 배전 후 10시간 이내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배전된 원두의 분쇄는 모래알 같은 입자를 가져야 커피 맛이 상쾌하다. 농한 커피의 탕색이 녹차나 홍차와 유사하다면 건강한 커피이다. 수돗물로 커피를 추출하면 수돗물에 들어 있는 염소 성분이 향과 맛을 감소시킨다. 물의 입자가 많은 생수를 선택해야 한다. 좋은 물과 도구를 사용하여 낮은 온도로 추출해야 한다.철분과 커피는 상극이다. 스텐이나 구리 기구는 물을 끓일 때 미량의 철 성분의 영향을 받는다. 이 철분은 물의 성질을 경질로 바꾸어 타닌의 용해를 방해하고 위장의 수축 운동을 방해한다. 철을 피해 유리 기구를 사용하는데 유리 제품은 납, 아연, 카드뮴 등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중금속 없는 유리 제품을 사용해야 안전하다. 추출하는 과정도 흰색 종이 필터는 염소 표백을 하기에 미국 FDA로부터 인체에 무해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극소량의 다이옥신이 우러난다. 브라운 종이 필터는 마분지 냄새가 배어 나오기 때문에 드립 커피의 부드러운 특성을 살리기 어렵다.이러한 문제점을 정제한 커피는 없는가? 차보다 더 맑은 커피는 없는가? 좋은 땅에서 유기농으로 자란 생두를 찾고 좀 더 나은 조건에서 볶고 내린 커피는 없는가?맑은 커피는 온몸의 청소부와 같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고 목이 칼칼하지 않고 입안에 단침이 고이고 사포닌 향과 성분이 나타나는 커피라면 좋은 정도가 아니라 명약이다.이 모든 사항을 갖춘 커피를 칠곡 라온에서 만난다. 라온 커피를 완성한 김대환 선생은 커피콩을 태우지 않는다. 차나 커피에서 인체에 유해한 물이나 도구를 100여 가지나 밝혀낸 선각자이다. '문명사회의 최고 음료'라는 커피를 모든 분들이 품어 행복한 문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2019-08-21 14:30:37

[종교칼럼] 생존과 궁극적 관심

[종교칼럼] 생존과 궁극적 관심

수백 년 지속되었던 신(神) 중심적인 삶에서 서구인들은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관심을 인간에게 돌렸다. 그 이후 계몽주의, 낭만주의, 이성주의를 거치면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인간의 지성으로 산업화의 물결과 더불어 보다 나은 삶을 구축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희망했던 것과는 달리 1차 세계대전에서 약 2천만 명, 2차 세계대전에서 약 6천만 명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이 참담하게 파괴된 것이었다.이런 엄청난 비극을 겪고는 생철학, 실존철학이란 사조로 불리는 생각과 글을 쓴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여기에 속한 철학자로부터 유래한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는 말은 제법 오랫동안 대학의 강단과 여러 책들에 소개되고 한동안 지식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누군가가 '던져진 존재'라는 내용의 말을 '피투된 존재'라고 번역하여 '우리가 무슨 야구공이냐?'라며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하여간 우리는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 땅에 태어났다. '이 땅에 던져졌다'는 표현이 조금 강하긴 하지만 같은 의미다.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생존, 성장하는 데에 필요한 요소들을 필사적으로 했다는 것을 부모는 기억하겠지만 나는 모른다. 의식이 없으면서도 강력한 생명력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고, 그 이후에도 그 생명력에 힘입어 오늘날까지 이렇게 살아있다.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무조건 살아야 하고 살고 싶은 것이다. 언제까지 살고 싶으냐? 묻는다면 영원히 살고 싶다는 말로 답하는 것이 내면세계의 욕구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일 것이다.하지만 우리의 유일한 삶의 장(場)인 지구의 크기는 고정되어 있고 여기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모두 삶에 대한 강력한 본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이 충돌하여 '약육강식'이라는 법칙으로 조절되고 있다. 인간도 큰 시각으로 보면 이 법칙의 지배권 안에 있다. 1, 2차 세계대전도 생존투쟁이었고, 종교전쟁으로 분류되는 이슬람권과의 갈등도 깊이 들여다보면 생존투쟁임이 틀림없다.하지만 인간은 생존권 확보에만 머물러서 인간이 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아는 자의식으로 약자를 보호하고 사랑을 나누고자 하여 인간이 된 것이다. 약육강식 이외의 법칙을 모르는 동물들은 살아있음에도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의욕이 무엇인지도 모르기에 일반 동물로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아는 것을 넘어서서 그 의미를 알고 싶어 하고 반드시 있을 육체적 죽음을 넘어서는 어떤 영원한 삶을 꿈꾸며 사랑의 삶을 살고자 애쓰기에 인간이다.이 땅에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던져진 존재인 우리는 먼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성심을 다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의무이고 권리이다. 육체적·정신적 건강, 물질적 조건, 가족 관계, 자연과의 관계, 사회 관계, 절대자와의 관계 등이 어느 정도 균형 잡히고 안정되어야 우리는 안정감을 느끼고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에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불안정해지고 심하면 생존을 위해 사나워지기까지 한다.인간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단계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 이후의 과정에서 약자 보호와 이웃 사랑을 위해 마음 쓰고 자신의 존재 의미와 삶과 죽음의 현상에 대해 알기 위해 애를 쓸 때 인간이 되고 보다 나은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존재다.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2019-08-14 10:18:04

[종교칼럼] 침묵

[종교칼럼] 침묵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나에게 있어서 휴가란 언어와 생산의 시간에서 벗어나 침묵과 관찰과 수용의 시간이다. 매일 듣던 라디오 뉴스도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전혀 보지 않았다. 새로운 소식이 없을까 하여 틀었던 텔레비전에서 종일 무한 반복되는 같은 내용으로부터 해방되어 마음의 공간이 시원해졌다.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았다.사건 사고 소식은 앵커가 소개해 주는 제목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잔혹한 범죄에 관하여 시청자의 호기심이 충족될 정도로 보도한다면 그것은 이미 과잉 보도다. 전 국민의 범죄 지식이 올라가는 시간이다. 그러면서 걱정이 시작된다. '모방 범죄를 촉발시키는 거 아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경찰이 부실 수사로 종결 짓는 건 아닐까?'사건이 보도되고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보험은 들었대? 보상액은 얼마래? 그만하면 많이 받았네' 같은 루머가 퍼지고 성급한 언론 보도까지 나간다. 곧바로 관계자의 신상털기가 시작된다. 불과 며칠 안 되는 애도 기간을 지내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빈소에 영정이 아직 걸려 있는데, 사람들은 애도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다. 유족들은 슬퍼할 시간도 없이 온갖 루머에 고통을 당한다. 사회적 애도의 기간이 너무 짧아져버렸다.우리는 극심한 고통에 처한 이를 어떤 언어로 위로해야 하나? 위로에는 말로 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언어가 관계의 경계선에서 멈추는 것이 침묵이다. 그때는 언어가 아닌 침묵과 동반과 공감으로 위로하는 것이다. 슬픔은 당사자가 스스로 감당해야만 하는 영역이 있다. 극도의 슬픔 가운데서도 스스로 애도할 충분한 시간과 분위기가 주어져야 한다. 침묵의 때에는 존재로서 위로한다. 존재로서 소통하고 느낀다.성경에 욥이라는 의인이 나온다. 그가 하루 만에 전 재산을 자연재해와 강도를 당해 다 잃고, 10자녀가 다 죽고, 몸에는 불치의 병이 찾아왔다. 아내는 그를 저주하며 떠났다. 욥의 세 친구는 욥을 위로하러 찾아갔다. 그들은 위로의 말조차 찾지 못해 침묵하며 슬픔을 함께했다. 언어의 소통 대신 존재의 소통이다. 좀 더 원초적이다. 위로의 시선, 따뜻한 포옹, 꽉 잡아주는 악수, 음식과 잠자리를 챙겨주는 행위로 소통하는 것이다. 이때가 참 위로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말을 시작했을 때 이것은 위로가 아니라 훈계와 저주와 심판의 말이 되었다. 욥에게는 더 큰 고난이었다. 욥은 너무나 억울하여 자신의 고난도 잊은 채 친구들과 논쟁에 몰입한다.우리는 사고의 궁금증을 어디까지 물어보아야 하는가? 당사자가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서 꼭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은 유혹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언어 과잉이 문제다. 바닷속의 쓰레기처럼, 우주를 떠도는 쓰레기처럼, 우리 언어가 존재의 쓰레기가 되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 언행이 SNS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우리가 평생 소리 내어 말한 음성이 우주를 떠돌며 메아리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어리석은 말들, 성급한 말들, 잔혹한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우리 영혼의 빈약함과 사악함을 만방에 알려주고 있다. 빨리 거두어 들이는 방법은 없을까? 중세의 침묵수도회는 1천 년 전에 이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새로 생산되는 언어 쓰레기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언어 소비도 줄이자.

2019-06-26 10:43:43

[종교칼럼] 따뜻한 종교 이야기?

[종교칼럼] 따뜻한 종교 이야기?

아침에 공양을 마치고 암자에 오면 대문을 열어놓는다. 새싹을 틔우기 위해서 나뭇가지에 물이 통통하게 오르고 바람에 묻어오는 온기는 봄기운을 완연하게 느끼게 한다. 얼었던 땅이 녹고 부풀어 오른 틈새로 녹색의 생명을 본다. 땅으로부터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쫑긋 솟아오른 수선화는 봄이 오는 게 궁금한지 땅 위로 초록색 촉수를 안테나처럼 밀어 올린다. 땅에 낮게 붙어서 피는 작은 풀꽃들의 활동이 먼저 시작되었다. 나뭇가지들은 새잎이 아직 돋지 않아 겨울잠이 든 것처럼 보이지만 땅속 뿌리들은 이미 깨어서 가지 끝으로 물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3월의 봄은 대지로 허리를 낮추고 보는 사람에게 먼저 보인다. 그래서 '밀라레파'는 가장 낮은 곳을 차지하면 높은 곳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3월의 숲은 갈색의 수묵화 같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들어가면 이미 초록색으로 바림질하며 아주 작고 귀여운 봄꽃들이 숲 바닥을 바느질하듯 수(繡)를 놓고 있었다. 특히 복수초가 곳곳에 피어서 숲을 장엄하게 했다. 아직 키 큰 나무들은 잎이 나지 않아서 숲의 지붕은 열려 있었다.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은 바닥까지 내려간다. 식물학자들은 이 순간을 '기회의 창'이 열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작은 풀꽃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는다.이 시간의 봄은 낮은 데서 피며 꿈틀대는 이끼와 제비꽃처럼 눈에 잘 띄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지 않으면 그냥 밍밍하게 후르륵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3월이 지나면 새잎과 꽃잎이 앞다투어 피어나고 그 양도 많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져서 그만 봄 속에 갇히게 된다. 자연은 종교다. 3월의 숲은 황량하지만, 자세히 보면 구석구석에서 봄이 오고 볼을 스치는 바람에 음악이 있었다.가객 강권순이 부르는 정가(正歌) '산천초목'을 들으면 신비롭다. 정좌하고 무릎에 손을 얹고 허공을 바라본다. 소나무에 부는 바람처럼 읊조리는 가곡은 남자의 소리도 좋지만, 공기를 안고 나비처럼 솟아오른다. 소리의 너비와 마음의 평화가 우리의 서정을 극점으로 끌어올린다. '루미'는 음악과 시는 신에게 가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따뜻한 종교는 친절한 마음이다. 거기에 자비와 지혜가 있어야 한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훨씬 행복하다.물론 무종교인도 있지만 연민이 있으면 다행이다. 믿음에는 건강한 믿음과 불신도 있다. 바른 믿음은 자신과 남을 지키며 자신과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우리나라 불자들이 불교를 어려워할 때 서구의 일반인들은 행복과 성공을 부처님 말씀에서 발견하고 있다. 다종교 사회에서는 종교 간 이동이 빈번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해탈, 열반이라는 목표 이전에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대안을 불교에서 발견했다.부처님 말씀은 대체로 쉽고 선문답은 어렵다. 가장 쉬운 게 가장 어려운 것이다. 자비심이 없는 지식은 마른 지혜이다. 가짜 뉴스가 가짜 부처님을 만든다. 티베트 속담에 "만약 두 철학자의 의견이 일치한다면 둘 중 하나는 철학자가 아니다"라고 한다. 지금은 봄이다. 봄은 어디서 오는가?

2019-03-06 11:18:34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