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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칼럼] 숨겨진 기도

전쟁 시기였다. 거리는 온통 애국의 물결로 일렁였고, 분연히 일어난 젊은이들은 열의로 충만했다. 전선으로 나가는 군홧발은 북소리처럼 우렁찼다. 그런 가운데 내일이면 전선에 투입될 장병들과 가족들, 막 전장에서 돌아온 영웅들이 이 교회에 모여서 환송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그런데 목사님의 길고 감동적인 기도가 모두의 마음을 뜨겁게 할 즈음, 긴 머리를 늘어뜨린 한 사내가 교회 복도를 조용히 걸어와 설교대에 섰다. 몰입한 목사님은 눈을 감은 채 기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리 조국과 국기의 수호자이신 오 주 하느님 아버지, 저희 무기를 축복하시고 저희에게 승리를 주소서!"그 때였다. 형형한 눈으로 교회 안을 흩어 보던 사내는 목사님을 옆으로 물리고 입을 열었다. "나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옥좌로부터 파견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여러분의 목사님이 바친 기도를 들으셨다. 여러분이 방금 들은 그 기도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내가 설명할 테니, 들어보고 그대로 이루어지길 원한다면 하느님께서 여러분 뜻대로 해주실 것이다. 방금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했다.""늘 자애로우시고 관대하신 우리 모두의 아버지시여! 우리 귀한 병사들을 지켜주시고, 이들이 조국을 위해 싸울 때 도우시고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시며, 이들에게 은총을 내리시고 전투의 날 위급한 순간에 방패로 막아주시고 전능하신 손으로 감싸주시고, 힘과 자신감을 북돋아주시고 잔학한 습격에도 끄떡없게 하시며, 이들이 적을 쳐서 무찌르도록 도우시어 이들과 이들의 깃발과 조국에 불멸의 명예와 영광을 주시옵소서."사내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 기도 뒤에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말해지지 않은 기도도 함께 들으셨다. 여러분이 말로 바쳐 올린 기도 안에 숨겨진 그 기도를 여러분에 알려주라고 주님께서 명하셨으니 들어 보아라.""우리를 도우시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포화로 저들의 누추한 집들을 잿더미로 화하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의 죄 없는 과부들이 비통에 빠져 가슴 쥐어뜯게 하소서. 우리를 도우시어 저들이 집을 잃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흙바람 이는 황폐한 땅을 떠돌게 하소서. 주님, 당신을 경외하는 저희를 위하여 저들의 희망을 말라붙게 하시고, 힘겨운 인생길에 눈물을 흩뿌리고 다친 발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적시게 하여 그 발걸음을 무겁게 하소서. 겸손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도우심을 청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변함없는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사랑의 원천 하느님께 사랑의 정신으로 이 기도를 바치옵니다, 아멘!"사내가 물었다. "여러분이 바친 기도의 실상은 이러하다. 그래도 여러분이 바친 기도가 이루어지길 원하는가? 말해 보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사자(使者)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대개 동화작가로 알려진, 미국 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의 'The war prayer'를 줄여서 옮겨 보았다. 우리가 기도를 말로 표현할 때, 거기에는 표현되지 않은 숨겨진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가. 그 기도에 숨겨진 부분은 무엇인가. 주어진 일상을 전쟁터로 착각하면서 전사(戰士)의 기도를 바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10-26 11:07:52

각정스님 청련암 암주

[종교칼럼]머무르지 않고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모든 나무와 풀들도 사색과 사려가 시작 되었다.먼 산이 가까이 다가오고 따뜻한 가을 햇볕은 황금이 만냥이다.슈만의 연가곡 소품 '트로이메라이'를 정명훈 피아노 연주로 자주 듣는다.어린 슈만의 문학적 감수성은 13살 때 '음악미학에 관하여'를 써서 잡지에 발표했었다.10월, 빛바랜 여름의 거미줄을 걷어 내고 읽었던 책들도 뒷방으로 옮겼다.창문에 창호지를 새로 바르니 한결 환해지고 넓어진 차실에 장욱진 화가의 목판화'응무소주'(應無所住)를 걸었다.단색판화는 먹색을 위주로 한 작업으로 적은 색을 사용한다. 여러 색을 사용해야 할 작품들도 대부분 먹과 잘 조화되도록 목판화의 간결한 멋으로 이어지도록 한다.한 폭의 그림을 두고, 사심 없는 맑은 시를 읽고, 그리고 도자기 가마에서 찻잔 하나 소유하는 일은 누구나 좋아하는 일이다. 그것들은 그냥 봄에 피는 꽃처럼 사랑하고, 고민없이 소유 할 뿐이다.한 점의 그림과 한편의 짧은 시는 창조의 행위이며 작은 우주이기도 하다.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좋은 그림 앞에 서면 즐거워지고 더 격이 높은 그림을 만나면 말을 잃고 벙어리가 되기도 한다.추사의 '세한도'와 '부작란'은 예술정신의 정수이며 문득 그려내는 작가정신의 극점을 보여주었다.머무르지 않는 마음은 - 선종 6대조 대감 혜능스님이 세속생활을 버리고 출가 하게 된 '금강경'구절이다."어디에나 하늘의 구름처럼 흐르고 물처럼 머물지 않아 머무름 없는 마음을 닦아라. 말이나 글을 쫒지 말고 오히려 그 뜻을 파들어 가라. 진리는 말에 있지 않다."화가는 우리문화의 정신을 전통 민화에서 착안하여 아름다움을 창안해 낸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민화의 매력은 "쉽고 간단하다, 솔직하다, 익살스럽다, 꿈이 있다, 믿음이 있다, 따뜻하다, 조용하다, 자랑하지 않았다, 멋이 있다, 깨달음이 있다, 신바람이 있다"로 압축했었다.이와 같이 우리문화의 정신에 민화가 감당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에는"살을 깎아내고 피로 그린다."는 내공이 마침내 고독한 자유인의 길을 만들어 내었다.화엄경에도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차별이 없다"고 한다.동양의 지혜 그 가운데에서도 선불교는 특별하다.자기 집중과 인내를 통해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깨달음을 얻는 것, 사물을 직관으로 있는 그대로의 보는 사유가 선이다.석존이 영축산 집회에서 꽃 한송이 높이 들어 청중을 둘러 보았다. 긴 침묵이 흐르고 가섭만이 미소를 지었다. "가섭아 나는 너에게 진실의 깊이를 통찰하고 자유로운 마음, 상이 없는 참된 모습, 아름다운 실상을 밝혀 주노라"이렇게 선(禪)의 전통은 시작되었다.예술의 목표는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자유인이 되는 길이다.철학자 헤겔은"예술이란 종교 및 철학과 함께 사람들의 가장 깊은 문제와 정신의 가장 높은 진리를 의식하게 하고, 또한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라고 말했다.아름다운 것에는 친구가 있다.양산 통도사 경봉스님이 장욱진에게 무엇하는 사람이냐 물었다. 선생이 까악까악 까치 그리는 사람이라 대답했다."너와 나와 대립이 없으면 자유인이다. 공과 색의 분별이 없다면 여래를 본다" 비공(非空) 거사의 선시를 주었다.참선이 무엇인가 물으면 "우리 자신, 우주, 그리고 마음을 묻는 그 마음"이라고 말한다.루오의 '미세레레' 판화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장욱진의 목판화집 판선(板禪)이 있다.청련암 암주

2018-10-12 10:45:51

유재경 교수(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영성)

[종교칼럼] 가을의 미학, 아름다운 환대

리듬은 음악의 시작이자 존재의 근원이다. 음악의 선율이 리듬에서 나오듯이 우리 인생의 여유와 충일함도 리듬에서 나온다. 그러면 삶의 리듬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삶의 리듬은 축제와 휴식에 있다. 우리 삶의 축제 가운데 최고의 축제는 바로 명절이라 하겠다. 그런데 웃음과 기쁨이 되어야 할 명절이 온통 슬픈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명절이 끝난 뒤 90%의 직장인들이 명절증후군으로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축제와 환대의 시간이 눈물과 아픔의 역사로 바뀌고 있다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서양에서 축제(festival)는 라틴어 '페스티발리스'(festivalis)에서 유래된 말로 종교적 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축제는 공동체 성원들이 만남을 통해 자신의 억압된 본능을 해소하고,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며,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축제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고, 사람들의 만남에는 서로를 향한 환대가 있었다. 축제는 타인에 대한 환대를 통해 그 진정한 의미가 살아난다.환대(歡待)는 낯선 사람이나 손님을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즐겁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환대는 주인과 손님이 만남을 통해 서로의 관계가 친밀해지는 과정이다. 그레그 모텐슨이 파키스탄 코르페 마을에서 경험한 이야기는 이러한 환대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텐슨은 그의 책 『세 잔의 차』에서 환대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발티 사람과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이방인이다. 두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손님이다. 그리고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가족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네."환대는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의 문화에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환대는 사랑과 섬김과 더불어 신약성경의 핵심적 주제를 이루고 있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손님과 주인 사이에 주고받는 평범한 일상, 즉 식탁의 대화(table talk)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경험한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구원과 가장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단어는 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0:40)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환대는 나를 변화시키는 배움의 터전이다. 환대는 나를 열어 낯선 사람을 나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공간은 나의 집이나 방과 같은 물리적 장소일 수도 있고,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나의 내면의 세계일 수도 있다. 물질적 공간이든 정신적 공간이든 타인을 향해 나의 공간을 열어줄 때 우리는 변화를 경험한다. 내면 깊이 감추어진 자신의 감정을 열어보이는 과정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지적인 솔직함을 드러내는 자리에서 지식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다. 자신의 세계를 열어 타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환대(hospitality)의 라틴어 어원 '호스페스'(hospes)는 주인(host)과 손님(guest)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진정한 환대의 아름다움은 주인과 손님의 뒤바뀜에 있다. 환대는 주인과 손님이 서로 간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로 머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주인이 손님이 되고 손님이 주인이 되는 데까지 나아간다. 환대는 상대를 받아들이고, 나의 것을 내어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손님을 극진하게 섬기는 세계로 향한다. 그래서 성경의 이야기는 극적이다. 레위라는 세관원이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고, 많은 손님들이 잔치에 찾아왔다. 예수님도 그 자리에 함께한 손님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잔치가 진행되면서 예수님의 역할이 손님에서 주인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누가복음 5:27-39). 여기에 축제의 절정이 있고 환대의 아름다움이 있다. 성경은 이러한 환대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낯선 사람을 받아들여 주인으로 섬기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가을에도 우리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 낯선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간다. 타인을 만나는 우리의 마음은 평안하고 환영하는 마음인가 아니면 거부감과 적개심으로 가득 찬 마음인가? 우리의 만남이 서로에게 즐거운 축제의 자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름다운 환대의 자리에서 가을의 미학이 꽃피기를 소망한다.유재경 교수(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영성)

2018-10-05 10:20:59

[종교칼럼]적선

적선 적선(積善)은 원래 도교의 수행 방법 한 가지를 일컫는 말이다. 불로장생을 지향하는 도교에서는 '적선'을 모든 수행의 전제조건으로 봐서, 선행만 쌓으면 별다른 수행을 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때 이른 죽음은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적선이라면 아무래도 걸인에게 돈이며 물건 따위를 거저 주는 일일 텐데, 굳이 도교 수행자가 아니라도 동냥하는 이에게 적선하는 일은 우리 민족의 전통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마라'는 속담은 오랜 기간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는 기본적인 규범 역할을 했다. 그런데 동냥은 못 주겠고, 쪽박도 깨지기를 바라는 목소리를 한가위 연휴 끝에 들었다. 지역의 아무개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보도된 어느 르포 기사의 제목은 "김정은한테 다 퍼준다는데… 제발 경제 좀 살려 달라"였고 "초선 의원이 전하는 추석 민심"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일련의 활동들에 침을 뱉을 수는 없으니, 살림살이 어렵다는 푸념에다 슬쩍 '다 퍼준다'는 식의 선동을 얹어서 여론의 이름으로 내민 형국이다.그 여론을 전하는 국회의원께서 불과 두 해 전 쯤 재경부에 근무하실 때는 "북핵 포기시 매년 630억 달러 인프라투자 지원할 것" 같은 통 큰 퍼주기 약속이 정부의 공식 발표로 나왔다. 대략 70조 쯤 되는 거액을, 그것도 해마다 북으로 보내겠다고 할 때는 조용하던 목소리가 왜 지금에는 민심의 이름을 등에 업고 신문 지상을 채우고 있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는 국회의원이라면 근거 없는 퍼주기 주장 정도는 옳고 그름을 딱딱 짚어주실 만한데 그러지 않으시는 것은 그만큼 흉흉한 민심이 지역에 존재한다는 뜻이겠다.그런데 그 '민심'을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국제적인 대북 제재 중이라 인도적 지원조차 쉽지 않은 지금 상황에 도대체 무엇을 퍼주었는지 물어보면, '하여간에 다 퍼줬다'는 대답 밖에 없다. 북에서 선물로 보낸 송이버섯 2톤을 받았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우리 정부가 '피 같은 세금으로' 북에 무엇을 보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백보를 양보해서 설사 퍼준 게 있다 해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2018년을 기준으로 3만2,775달러, 이탈리아와 스페인 가운데 위치한 세계 27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2016년 기준 648달러로 세계 176위에 머무르고 있다. 참혹한 기아와 내전으로 유명한 르완다에 비교해도 한참 모자란다. 한 마디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 방송에는 매일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한 달 얼마라도 보내자는 광고가 나오고 동남아 빈국에는 한국인 자원 봉사자가 넘쳐 나는데 북에는 어찌나 인색하고 각박한지 모른다. 다 퍼줬다는 주장의 속내는 어떻게든 저들에게 흠집을 내고 불만을 투영하겠다는 메마른 마음이 깔려 있는 게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그 흠집 내고 싶은 상대가 누구건 간에 말이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충분히 이견이 있을 수 있고, 또 생각이 다른 만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본이다. 하지만 비판에도 격이 있어야 하는 법, 비판을 하면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을 일컬어 비난이라 한다. 자고로 비난의 목소리에서 점잖은 품격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적선도 아깝다며 비난에 힘을 쓰는 것은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다.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 교실 주임교수

2018-09-28 11:40:13

[종교칼럼] 나는 토끼인가? 라이카인가?

나는 토끼인가? 라이카인가?동창 한 명은 부부 금실이 좋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부간에 스킨십이 너무 많으니까 불륜관계로 여긴 한 파파라치가 사진을 찍어서 협박하는 일까지 있었단다. 아내를 향해 늘 '산소 같은 여자'라고 칭찬한다. 다른 동창 부인들로부터 "그럼 우린 이산화탄소 같은 여자냐"라고 항의받기도 했다. 아내만 곁에 있으면 생동감이 넘친다. 그런데 나는 '산소 같은 아내'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오직 '산소'에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영화의 추억이다. 어릴 때 학교에서 단체 영화를 관람하면 나는 으레 졸기 바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두통약을 먹어야 했다.기독교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상영할 때였다. 이 영화는 기독교인으로서는 꼭 봐야 하는 영화였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반은 졸고 반은 영화를 보았다. 얼마 후 다시 그 영화 관람에 도전했다. '졸지 말고 명화를 감상해야지!' 이번에는 신경 써서 준비했다. 전날 잠도 충분히 자고 점심 먹고 식곤증도 사라진 시간에 '비장한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또다시 졸음 귀신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기차의 공기가 너무 답답하여 승무원에게 공기 순환 장치를 어떻게 운용하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승무원은 눈만 껌벅거릴 뿐 대답을 못 한다. 머뭇거리다가 하는 말이 '자동으로 조절되어 자신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따뜻한 공기나 시원한 공기가 아니라, 신선한 공기다.독일에서 ICE 고속열차를 타면 공기의 신선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까지 가면서 책을 한 권 독파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차는 어떤가? 승차 후 책장이 두세 번 넘어가면 벌써 무릉도원에 간 듯 정신이 몽롱해진다.우리 주택의 베란다 창호도 밀폐와 열 차단에만 신경을 썼지, 공기 유입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공기 유입을 할 수 있는 작은 환기 구멍들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이제 추석 명절을 앞두고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자동차 실내도 알고 보면 큰 통이다. 운전하는 것이 큰 상자 속에 앉아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랫동안 운전하면서 산소 공급에 신경을 쓰기 바란다.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이웃이요 국민이기에 이렇게 부탁을 드린다.오늘 박 목사의 칼럼은 온통 하소연이다. 요즘 정부는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나같이 산소에 민감한 소수의 인권을 보호해주면 더없이 고맙겠다.최초로 우주여행을 경험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었다. 미국은 1948년 V2 로켓에 원숭이 '알버트'를 실어 보냈으나 질식사했다. 1957년 11월 3일 카자흐스탄의 우주기지에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되었다. 무게 508㎏의 작은 캡슐에는 '라이카'라는 개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소련 정부는 태양광선과 온도와 압력 등을 점검하는 간단한 기기들과 라이카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생명유지장치와 먹이 공급장치를 인공위성에 장착했다고 밝혔다. 발사 엿새째 라이카는 산소가 바닥나 숨졌다. 동물의 우주 생존 실험에서도 고온 고압을 견디는 일보다 산소공급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드러났다.잠수함의 초기에는 토끼를 태우고 관찰했다. 공기의 변화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토끼에게 먼저 이상 징후가 생기면 곧이어 잠수함을 부상하여 공기를 교체했다. 소설 '25시'의 저자 게오르규는 지성인의 역할이 잠수함의 토끼와 같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선구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고상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 집회 장소에서 내게 산소를 달라는 것이다. 나야말로 영락없는 잠수함의 토끼다.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9-21 11:33:21

[종교칼럼] 가을– 시간의 숨결

가을 장마가 길었다. 오랜만에 키 큰 나무들 아래 길을 쓸었다. 산중의 시간은 해와 달, 자연의 시간이다. 계곡 물소리와 나무들, 숲에서 새들이 먼저 새벽을 알린다. 도시에서는 빌딩과 자동차 그리고 속도의 시간이다. 여기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거기서는 빠르고 숨 가쁘게 진행되어진다. 괴테가 가을 숲을 걷다가 '보아라, 이 지상의 것이 아닌 위대함이 저기 있지 않느냐?'가 떠오른다. 우리가 외우는 '주여, 때가 왔습니다'로 시작하는 릴케의 가을은 시간의 그림자가 들판의 열매들을 살찌게 하며 포도송이에 단맛이 들게 한다고 기도한다. 자연의 신호와 소리들은 어떤 경전과도 비교 되지 않는다. 금년 여름 초유의 혹서와 가뭄은 아마도 벌레들도 발버둥 쳤을 것이다. 가을비가 흡족하게 내리고 공기까지 맑으니 이 무슨 청복이요 선물인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은 듯 손상 된 삶에 불이 켜지며 점화 된 기분이다. 자연의 신호와 소리는 사람의 생각과 언어를 압도하는 질서가 있다. 지구의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난은 앞으로 일어날 더 큰 지구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힌두교 경전인 '우파니샤드'에 옛날 구루(Guru)가 제자에게 법을 전할 때 그 제자의 귀에 대고 마치 숨을 불어 넣듯이 속삭였다. 아마도 그 스승은 제자의 귀에 속삭였다고 하지만, 무슨 말을 속삭인게 아니라 그냥 숨을 불어 넣었을 뿐이었다. 진리란 아마 큰소리로 말하면 사라지거나 깨졌을 것이다. 이미 말씀이란 그 이전에 그 참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숨결이 없는 말은 공허하고 쓸쓸하다. 자연의 소리와 신호는 언제나 둥근 소리이다. 누구나 알아듣고 접속 할 수 있어야 한다. 화엄경에서 '해인삼매'를 말 할 때, 물결이 잔잔해진 바다에 삼라만상이 비추듯 너와 나도 비추면 서로가 비추게 된다. 서로가 서로 속에 감싸고, 세계가 세계 속에 포함된다. 누구나 똑같이 꾀꼬리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고, 너와 내가 또 쳐다보며, 눈을 마주치면 미소 짓는 것이다.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근접 할수록 시간은 느려진다.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아지면 시간은 정지한다.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있을 때 마음의 '무시간성'(akalika)이라고 한다. 그럴 때 몸은 빛 속으로 해체되어서 스스로 빛나게 되며 참다운 빛이 되는 것이다. 모든 외로움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한때라도 시간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빛이 되어야 한다. 아니면 별 수 없이 시간을 끌어안고 고민 속에서 뒹굴며 '무시간성'은 수행자들의 몫이라고 핑계 삼는 것이다. 시간은 느낀대로 존재하고 생각한대로 정해진다. 각자의 목숨도 그렇게 인과가 만들어진다. 이미 빛이 된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시간의 '무시간성'을 이루고 별이 되었다. 20세기 시인 중 라이너마리아 릴케도 우리에게 많은 행운과 영감을 주었다. 그중에 붓다를 기리는 세편의 시를 남겼다. '빛 속의 붓다'를 읊어본다. 모든 중심들의 중심, 속 중의 속, 알몬드, 스스로에 둘러싸여 향미(香味) 깊어지는― 이 만물, 더 먼 별들 그리고 그 너머까지 모두가 당신의 살, 당신의 과일입니다. 이제 당신은 느끼십니다. 그 어떤 것도 당신한테 매여 있지 않음을 당신의 광활한 외피(外皮)는 끝없는 공간에 닿아 있고 거기 진한 즙이 솟아나와 흐릅니다. 당신의 무한 평화로 빛을 얻어, 수없는 별들 밤새 회전하며 당신 머리 위 높이 타는 듯 빛납니다. 그러나 당신 속에 앞으로 있을 것이 이미 있습니다, 모든 별들이 죽을 때에도.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9-14 11:58:07

[종교칼럼]사회적 뮌하우젠 증후군

사회적 뮌하우젠 증후군 올 봄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명석한 두뇌만큼이나 강렬한 삶의 의지를 불태운 사람이었다. 평생 동안 그를 따라다닌 루게릭병을 처음 진단받고 한두 해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호킹의 나이는 스물 하나였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박사 학위를 받고 여러 업적을 남기며 쉰다섯 해를 더 살았으니 강철 같은 정신력이라 부를 만하다.그런 호킹 박사도 감당하기 어려워 한 사람이 있었는데, 재혼한 아내 일레인 호킹이 그랬다. 일레인은 호킹 박사의 간호사였다가 부부의 연을 맺었고, 혼자 힘으로는 고개도 채 가누지 못하는 호킹 박사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모습을 통해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동정을 받았다. 그러나 호킹의 아들과 이웃의 고발로 드러난 일레인의 숨겨진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남들이 보지 않는 데서 호킹을 학대하고 폭행한 다음, 다친 상처를 치료하고 돌보는 헌신적인 모습만을 대중 앞에 노출하는 가증스런 이중생활은 결국 폭로되고 말았고, 일레인은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Münchausen Syndrome By Proxy·MSBP)으로 진단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뮌하우젠 증후군은 신체적인 징후나 증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타인의 관심과 동정을 이끌어 내는 정신적 질환을 말한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꾀병을 부리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과는 달리,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는 구체적인 목적 없이 타인의 관심을 끌고자 아픈 척하거나 허언을 내뱉는다. 일레인 호킹이 진단받은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은 예컨대 자신의 아이나 애완동물이 아프다며 타인의 관심과 주목을 끌려는 것을 말한다. 정도가 심하면 자신이 돌보는 대상을 실제로 아프게 만든 후에 극진히 간호하는 모습을 연출하는데,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그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했다가 훗날 사실이 밝혀진 후에 머쓱해지곤 한다.조지아 주립대학의 네이트 베넷 교수는 뮌하우젠 증후군이 조직과 단체를 파괴하는 사회적 형태로 출현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조직과 단체 내에서 이간질과 모략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키고 난 다음에 자신이 해결사로 나서면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경우가 그러하다. 베넷 교수가 'Münchausen at Work'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 따르면 조직 내에서 뮌하우젠 증후군은 다음과 같이 발현한다. 먼저 누군가가 다른 조직원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한 후, 자신이 해결사로 나서는 척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상사나 동료는 그 사람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실은 이런 갈등을 거치면서 조직의 사기는 떨어지고 결속력이 약화되며 효율성은 침식당한다는 것이다.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뮌하우젠 증후군을 통해서 일종의 방어기제를 발동시키듯, 타인의 인정을 정도 이상으로 갈망하는 이들이 갈등과 분열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고자 하는 것이다.뮌하우젠 증후군이든, 사회적 뮌하우젠 증후군이든 그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인 셈인데, 끝 간 데 없이 욕망을 채우라고 부추기면서 정작 그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한 오늘의 우리 사회가 이런 증후군을 배태하고 있는 듯하다. 욕망은 스스로 다스리지 않으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잡아먹을 수 있는 무서운 힘이다. 종교적 영성이 강조하는 겸양과 절제가 요청되는 까닭은 여기에도 있다.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 교실 주임교수

2018-09-06 14:14:46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종교칼럼]비닐 라떼 한 잔 드실래요?

비닐 라테 한 잔 드실래요?'손님 여러분, 우리 카페에서 새롭게 선보일 메뉴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퍼 올린 35년산 비닐 폐기물을 주성분으로 하는 비닐 라테랍니다.' 하면서 신메뉴를 소개하는 카페가 있다면….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이름은 올리브나무카페다. 우리 동네에서는 주민들로부터 꽤나 사랑받는 카페다. 메뉴를 보면 커피와 케이크를 포함하여 63가지나 된다. 라테만 해도 카페 라테, 바닐라 라테, 녹차 라테, 고구마 라테, 홍차 라테, 오곡 라테, 팥 라테, 민트초코 라테 등 8가지다.대표목사인 내가 사장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운영은 매니저에게 일임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내가 명실상부한 사장이 되어 이 많은 메뉴를 직접 주문받고 만들어 서빙하겠다는 다부진 꿈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는 나만의 새로운 메뉴도 개발하겠다는 소망도 있다. 그 꿈의 하나가 '비닐 라테' 개발이다. 아니 당장 메뉴에 첨가할 수 있는 라테도 하나 있다. '낙동강 표 녹조 라테'가 그것이다.바닷가에서 죽은 채 발견된 갈매기의 위에서 플라스틱 조각들이 나왔다. 플라스틱 장난감, 일회용 라이터, 음식물 포장지가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자연은 경고가 아닌 재앙을 통해 사람에게 반격과 보복을 시작했다. 그동안 자연의 신음을 무시하고 흘려버렸던 사람에게 이제는 도저히 흘려버릴 수 없는 고통으로 갚아주고 있다.인류는 연간 3억톤의 플라스틱을 생산한다. 그중 8백만톤 이상이 바다로 유입된다. 현재까지 인류가 생산한 플라스틱의 누적량은 8조kg 이상이고, 현재 거의 전량이 쓰레기의 형태로 지구상에 쌓여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연 216억개의 플라스틱 제품을 소비한다. 국민 일인당 연 460개의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고 버린다.이 중에서 1억 5천만톤 이상의 플라스틱이 바닷속에 이미 유입되었다. 하와이 인근에 남한 면적 14배 되는 쓰레기 섬이 형성되었다. 전 세계 해안에 30m 높이의 쓰레기 벽을 쌓을 수 있는 양이다. 진작 알았다면 이 폐기물들을 집적하여 웬만한 쓰나미도 막을 수 있는 해안 방어벽이라도 만들 것을 그랬다.바다는 정직하다. 바다는 침전물의 마지막 저장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대로 간직한다. 바닷속으로 오랜 시간 흘러 들어간 많은 양의 비닐이 분해되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다의 생명체가 바다 공해 물질의 정화기가 될 것이다. 바다의 생물이 공해의 피해자로서 죽임당하듯, 사람 또한 자신이 버린 공해 물질을 자신의 세포 속에 가득 담으며 죽게 될 것이다.사람은 생명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다. 자연을 착취하고 학대했다. 사람과 자연이 피조물로서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되었다. 우리가 자연에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자연도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오늘날 인류는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 동물, 식물, 땅과 바다, 우주 공간을 마구잡이로 사용, 이용, 과용, 오용, 악용, 학대한다.우리가 생명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렸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관심사가 경제적인 이용 가치에만 머물러 있다. 이제 그동안 무시되었던 생명의 관점에 무게를 두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긴급한 상황이다.지금이라도 카페 메뉴에 태평양 비닐 라테, 낙동강 녹조 라테를 넣으면 어떨까? 우리 후손들이 비닐 라테에 고문당하듯 매일 마시게 될 날이 곧 올 것 같다. 후손들이 마시게 될 음료를 조상인 우리가 미리 맛이라도 보아야 하는 것이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8-31 13:35:56

[종교칼럼]하안거 해제날

새벽에 창문을 여니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이슬이 내린 소나무와 옥잠화 너른 잎에도 달빛이 고였다.하안거 해제날 이다.불전에 예불을 올리고 이른 삭발을 했다. 이 날은 출가 수행자에게는 특별한 시간이다. 수행자의 나이가 한 살 더 보태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뜨거운 여름과 더위로 게으름 속에서도 이미 가을은 와 있었다. 뒤뜰에 상사화가 잎도 없이 백중에 맞춰서 꽃 장엄을 올리고 있다. 백중날 치러지는 우란분재는 선망부모의 왕생 축원과 망자를 위한 천도의식이 베풀어진다.이때 안거(安居)에 들어갔던 스님들이 수행을 마치고 정진이 끝나는 날이 7월 보름인 것이다. 수행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부처님 제자인 목련 존자가 어머니를 구원했던 내용이'우란분경'과'목련경'에 자세히 전한다.지금도 대만에서 열리는 공승법회(供僧法會)는 4천여명이나 모여서 대규모의 축제가 된다. 불광산사의'부모친숙일'은 출가한 스님과 그의 부모가 함꼐 상봉하며 축복속에서 행사가 이루어진다. 물론 여기에는 대만에 유학 온 세계의 모든 스님들도 초청되어진다. 이날은 신도들이 정성껏 마련한 보시금과 선물을 스님들 모두에게 공양 올리는 성대하고 장엄한 의식이 된다.동아시아의 문화전통은 강력한 조상숭배가 으뜸이었다. 조상을 존중하는 제사와 부모에게 하는 효는 불교 안에서 포교의 방편으로'우란분절'이 크게 부각 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효가 강조되어서 남성주의 사회에 가려진 어머니에 대한 역할을 불교가 찾아 낸 것이다. 여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인도문화가 한몫을 만들어 내었다. 불교의 구원에는 직계혈통이 아니더라도 모든 존재에까지 확대된다. 이는 부계에 한정된 동아시아 전통을 불교포교의 수단으로는 가장 위력적인 코드가 되었다.우리가 노래하는 양주동 작시, 이홍렬 작곡'어머니의 마음'도 양주동 선생이'부모은중경'을 읽고 만든 노래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창조력을 지닌 사람은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우주의 생명력을 탄생시키며 그 생명을 사랑으로 가꾸어 낸다. 낳기만 한다면 무엇하랴. 기르고 가르쳐야 하기에 어머니는 얼굴에 주름이 지고 근심이 그칠 날이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어진 어머니는 백 사람의 교사에 견줄 만하다고 한다. 그 어머니 밑에서 뛰어난 성인도, 흉악한 도둑도, 인류역사의 큰 영웅도 어머니들의 자식인 것이다.백중날 형님 절에 갔다. 고모와 어머니로 만난 우리는 형님의 권유로 출가하게 되었다. 어머니 1주기에 합동으로 제를 올리고 국수를 함께 먹었다."때를 알고, 때에 맞게 먹고, 때를 따른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맞춰서 살아가는 일이다. 어머님 안 계신 지금 어릴 때"때를 거르지 말라"고 하신 목소리를 듣는다.부처님의 상수제자 가섭 존자에게 출가를 허락하시면서"가섭아 너는 높은 가문에 태어나서 자존심이 큰 사람이다. 그래서 나이가 많은 이거나 중간이거나 적은이거나 같이 지내는 대중에게 크게 부끄러워할 것이 있는 것처럼 수행해야 한다."시간은 여름의 깊은 시름을 아물리며 대추를 붉게 익게 하고, 담장의 박덩이 꼭지를 마르게 하며, 들판의 곡식을 익게 한다. 7월 보름달 크고 부드러운 달이 떠오른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감사합니다.청련암 암주

2018-08-24 10:33:53

[종교칼럼] 프로페셔널

박용욱 신부 종교칼럼 '프로페셔널'오늘날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별하라면 대부분은 급여와 보수의 차이를 떠올릴 것이다. 풋내 나는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페셔널이라면 그 일을 통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던 무렵에는 그 뜻이 전혀 달랐다. 프로페셔널리즘, 곧 전문직업성 또는 전문가윤리의 등장은 중세 대학의 설립과 궤를 같이 한다. 12세기 경, 세계 최초의 서구식 대학교인 볼로냐 대학, 파리 대학 등이 설립되는데, 이들 대학교는 당시 서구 정신문화의 정점이요 강력한 후원자였던 가톨릭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대학이 파리 대학의 중심으로 기능했고, 볼로냐와 파도바, 몽펠리에 같은 남유럽 도시에서는 인간의 신체의 건강을 돌보는 의학대학과 세속 권력을 뒷받침하고 제어하는 법학대학이 명성을 쌓아갔다.이렇게 대학들을 통해 배출된 성직자와 의사, 법률가들은 당시 사회에서 면허 제도나 허가 제도를 통한 여러 가지 특전을 얻어 각각의 분야를 전문직화하게 된다. 권리가 있으면 자연히 의무도 따르는 법이니, 이들 집단은 자신들의 일을 통해서 사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공익에 봉사하고 직업상 요구되는 특별한 윤리 규정을 지킬 것을 요구받게 되었고, 이를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서약(profession)을 통해 표현하게 된 것이 전문직업성 또는 전문직 윤리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과 의학과 법학, 이 세 분야에 요구된 특별한 윤리규정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의료윤리학자 에드문드 펠레그리노에 따르면, 최초의 전문가집단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된 특징적인 규범은 비밀 준수의 의무였다. 과연 이들 세 집단은 무엇보다 인간의 비밀을 다루는 사람들이었다. 우선 성직자는 인간의 내적 비밀을 다루는 사람들이라 하겠고, 법률가들은 인간의 외적, 사회적 관계의 비밀을, 의료인은 인간의 내, 외적 비밀 모두를 취급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늘날도 사제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아무도 알 수 없는 내적 비밀을 듣게 되고, 법률가들이 숨겨진 인간관계와 이해관계를 보게 되며, 의료인들이 인간의 내밀한 치부까지 다루게 되는 것을 보면 이들 세 집단에게 전문직윤리를 요구한 중세인의 통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엄중한 윤리규범을 준수하는 전문가 집단을 일컫던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윤리보다는 돈과 더 가까워져 버린 듯하다. 세태를 보건대, 오늘날 전문직과 결부되는 관형어는 '윤리'나 '숙련'이 아니라 '고소득'이 아닐까 싶다.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들면서 고용의 안정성을 누리는 고소득 직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될 뿐, 특별히 엄중한 윤리적 요구나 헌신성과는 연관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전문직으로 대접받기 원하는 많은 직종에서 책임과 노고는 비정규직이나 하급자들에게 떠넘기고, 자신들의 직업적 자부심은 오직 급여나 보수에만 달려 있는 것처럼 여기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일반인의 범접을 허용하지 않는 높은 진입 장벽과 전문용어의 가림막 뒷켠에서 과연 헌신의 마음과 윤리의식이 얼마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헌신하지 않는 프로를 프로라 할 수 있을까.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8-17 14:08:18

[종교칼럼] 창조적 인생

창조적 인생사람의 삶은 근본적으로 창조적이다. 창조적 삶의 조건은 내 삶을 내가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내가 내 삶의 맥락을 바꾸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사람은 사물과 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발견하고, 자기에게 의미 있는 것을 편집하여 조합한다. 창조란 편집을 통한 조합이다.우리 인생의 조합이 너무 많으면 선택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하루 생활에서 선택의 폭이 그렇게 넓은 것은 아니다. 우리 각자는 순간순간 몇 가지 다른 선택을 통해 전혀 다른 인생을 만들어간다.우리가 같은 섬유 원단을 가지고 전혀 다른 디자인의 옷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같은 건축 재료를 사용하여 학교, 주택, 백화점, 주차장 등 다양한 건물을 지을 수 있다.태국 치앙라이 매사이의 '무빠' 축구클럽에 소속된 선수들과 코치는 지난 6월 23일 한 선수의 생일파티를 위해 탐루엉 동굴에 들어갔다. 폭우로 동굴 안 물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당국은 외국 동굴탐사 및 구조 전문가들을 초청해 조난 17일 만에 동굴 안에 있던 13명 전원을 안전하게 구출했다.이때 맹활약을 한 구조대원 중에 호주에서 마취과 의사로 활동하는 '리처드 해리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동굴 잠수 및 구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30년 동안 호주는 물론 중국, 크리스천 아일랜드, 뉴질랜드 등에서 동굴 잠수를 통한 탐사 활동과 구조 활동을 해왔다. 그는 태국 동굴에서 5㎞ 넘는 구간을 잠수해 들어가 생존자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구조했다.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굴속, 그것도 물속 5km를 헤엄쳐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물이 고요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땅 속으로 흐르는 급류였다. 만약 떠내려가면 지하 땅속으로 쓸려 들어가서 시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만다. 구조대원들의 행동은 영웅적 행동을 넘어 초인적 행동이었다.의사 리처드 해리스 하면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 호주 의사, 스쿠버다이빙, 동굴 탐사, 태국 동굴 구조. 이 단어들의 조합을 통해 해리스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전 세계에 수많은 의사, 수많은 스쿠버다이버, 수많은 구조대, 수많은 탐사자가 있다. 해리스는 이 연관 단어를 조합하여 '잠수하는 의사'라는 말을 만들었다. 이 얼마나 창조적인가? 해리스는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의 맥락을 편집하여 창조적 인생을 살고 있다.우리가 창조적으로 되려면 주도적으로 계획할 수 있는 삶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 시간적 여백이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 시간 자산이 없는 인생은 스스로 투자할 여력이 없다.내 삶의 맥락이 남에 의해서 끌려가면 인생이 힘들어진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아이의 매니저가 되어서 단 5분의 오차도 없이 시간표를 짜서 아이를 뺑뺑이 돌린다. 아이는 전혀 자유가 없다. 친구와 팽이 시합, 딱지치기도 하고 싶은데 자기 삶의 맥락을 스스로 짤 수 없다. 창조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엄마를 향한 분노가 쌓인다.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이 너의 생일인데 무슨 선물을 최고로 받고 싶어?" "저는 생일 선물로 계모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왜 계모가 좋으니?" "계모는 간섭을 안 하잖아요."삶의 맥락을 주체적으로 바꾸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일상적인 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 방학 때 아이들이 뒹굴뒹굴 놀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고 부모 마음이 편치 않다면 아이의 마음속에도 여유가 사라진다. 먼저 아이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도록 부모 마음의 공간이 넓어져야 한다.창조적 삶을 위해서는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고독, 휴식, 자기반성이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으로 이끈다. 이번 휴가를 내 삶을 주체적으로 편집할 시간으로 활용하자.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8-10 11:52:33

[종교칼럼] 연꽃 향기는

8월이 되었다.연일 가마솥 더위에 담장 위 능소화는 폭염에도 굿굿하게 도량을 장엄하고 있다.마당을 비질하고 있으면 능소화 오렌지 꽃이 툭하고 통째로 지는 것이다.백일홍도 환한 얼굴에 미소로 대답한다.동양인에게 산수와 자연사랑은 종교와 다름 없었다.좋은 터를 고르고 물을 끌어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정자를 짓는다.삶의 희노애락이 우리를 가두고 욕망이 가득할 때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우리들의 일상이 지루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사는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그것들은 우리가 만들고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지천 망월사에 백련이 만개하였다는 소식이다.하련지에는 연꽃 천지였다.연밭에는 백련이 불국토를 만들었다.생명의 창조는 순결과 청정에 있다. 연화화생이다.모든 생명들이 연꽃에서 태어났다. 망월사 연꽃은 하련(荷蓮)이라고 한다물위에 솟아 피며 꽃말은 군자이다.백련과 홍련이 있다. 문헌에는 청련과 홍련도 있다고 하며 근래에는 가끔씩 볼 수 있다고 한다.동진 스님은 애련가이다. 연밭을 직접 가꾸며 정자를 지어 차회를 주재하며 '연꽃과 백련차'라는 제목의 논문집을 출간했다. 일찍 대구경북지역에 연꽃사랑을 알린 수행자이다.스님의 백련예찬은 새벽까지 장광설이다.대개 하련은 250여종이 있으며 인도,스리랑카,그리스,이집트 그리고 러시아,중국,일본,한국등에 고루 분포하며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까지 자생한다고 하였다.보통 볍씨나 콩,밀, 채소등은 10여년 개체가 보존 되지만 연씨는 500년에서 1000년을 넘어서는 우주적 생명력을 가졌다고 한다.우리가 보는 연뿌리는 사실은 땅속 줄기라고 한다.뿌리는 따로 있고, 땅 속 줄기는 약 10마디에서 12마디가 되며 길이가 7~8m까지 형성된다고 한다.연꽃은 물론 진흙탕 속에서 자란다.진흙속에 있지만 꽃과 잎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물위로 솟아 나와 깨끗한 꽃을 피우는 품성 때문에 군자라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자연스럽게 연꽃 차 만드는 법을 일러 주었다.⓵ 동트기 전이나 해가 지려고 할 때가 좋다.⓶ 연꽃에 이슬이나 물기가 없을 때⓷ 꽃잎이 필 때 모시주머니에 차를 넣는다.⓸ 차주머니는 꽃봉오리를 모시실로 묶어둔다.⓹ 백련향이 새지 않게 비닐로 포장해 준다.⓺ 꺼낸차는 약한불에 덖어서 차통에 보관한다.마시는 방법은 차를 꺼내 우려마시는 방법과 연지에 연꽃을 띄워 감상하며 마시는 2가지방법이 있다고 한다.연차는 여름에는 차게 마셔야 은은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마시면 운치가 있다.차만 마시면 냉, 온수로 작설차처럼 우리고 연꽃과 같이 감상하며 마시는 경우 연지에 물을 담고 냉동된 연잎을 대나무가지로 한 잎 두잎 펴서 모시주머니의 연차를 물어 넣어서 우려내는 것이다.가장 향기롭고 운치 있는 백련차는 냉동 백련이 아닌 활짝 핀 백련을 절취하여 연지에 띄우고 백련향이 배인 모시주머니를 물에 담가 표자로 떠서 마시는 방법이라고 한다.새벽5시 우리들은 자리를 옮겨 의자를 들고 해뜨기전에 연밭으로 갔다.연꽃 가까이 꽃봉오리를 주시하며 앉았다.개화를 들었다. 미증유의 체험이었다.꽃잎은 아주 천천히 숨소리도 멈추며 비밀의 문을 열었다.장자는 하루종일 꽃밭에서 꽃을 관찰하며 식물의 미동과 소리와 향기를 기록하였다고 전해 진다.'진흙에서 나와도 더럽지 않고,교태가 없어서 안은 비우고 밖은 곧으니 덩굴도 없고 가지도 치지않네향기도 멀어도 더욱 새로워서 바라보고는 희롱할 수 없으니'(애련설)뜨거운 여름입니다.시원한 연꽃 차 한잔 마시고 삶 전체가 행,불행이 없는 좋은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청련암 암주

2018-08-03 12:04:01

박병욱 목사

[종교칼럼]한여름 밤의 두 남자

"박 목사! 잘 지냈고? 여기 프랑크푸르트 공항인데, 집은 전에 그 주소 그대로지? 곧 갈 테니 봅시다." 전화기에서 친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웬일로? 프랑크푸르트는?" "내가 곧 갈 테니 만나서 얘기하자."이렇게 무더운 날이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아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두 달쯤 지났을 때 갑자기 한 친구가 우리 집에 오겠다고 연락을 했다. 잠시 후 도착한 친구는 혼자가 아니었다. 일년 후배와 함께 왔다. 그 친구는 주변 관광도 할 겸 한 이틀 머물다 가겠다고 선포를 했다. 국외교포가 간혹 당하는 황당한 경험이다.그때 우리 집은 좁은 거실과 작은 침실 하나가 전부였다. 우리 네 식구가 살기에도 비좁은데 손님을 맞을 형편이 아니었다. 집이 비좁아 불편하지 않겠냐고 몇 번을 물어도 질문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들은 거실 바닥에서 자면 충분하다고 말했다.때는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아내는 출산 후 부기도 채 빠지지 않았고, 직장 생활을 그만 둔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주부로서의 일솜씨도 많이 서툴렀다. 우리 집에서 손님을 맞는 것은 처음이었다.나는 이틀 간의 시간이 엉망이 되었다. 논문 작성, 세미나 준비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나는 며칠 간의 일정을 포기했다. 처음에 아까운 시간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때는 마음이 언짢았는데 포기하고 나니 한결 편한 마음으로 친구와 후배를 대할 수 있었다.그때 우리 큰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집에 손님이 온다니까 마냥 즐겁고 반가운 모양이다. 하루 저녁에 삼촌이 두 명이나 왔으니 아이는 흥분했다. 아이는 두 삼촌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다. 첫날 저녁 식사 후 후배는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중국 역사 이야기를 해주었다. 왕조의 이름을 약자로 외우면서 살을 입혀나가는 방식이었다. 아이도 어른들도 함께 들으며 감탄하는 명강의였다. 둘째 날 저녁 후 후배는 한국사 이야기를 해주었다. 역시 아이도 어른들도 얼굴이 벌게지도록 재미있는 강의였다.그 친구가 돌아간 후 우리 아이는 도서관에서 한국 역사 전집을 늘 빌려서 읽었다. 아이가 한국 역사 전집류를 독파하더니 독일어로 된 세계 역사서를 즐겁게 읽곤 했다.그 친구가 우리 집에 보물을 놓고 간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 아이에게는 그만큼 값진 교훈을 주었던 스승이 없었고 그렇게 즐거운 만남이 없었다. 지나고 보니 그토록 귀찮았던 손님이 우리 인생에 너무나 귀한 추억과 즐거움을 주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에게 사정이 있었다. 친구는 이혼을 하고 울적한 마음에 여행을 시작했는데, 호텔 방에 외로이 혼자 있기가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후배와 여행길을 함께했고 우리 집에 와서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나 보다.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쓸쓸한 호텔 방보다는 학생 시절처럼 허물없이 밤을 지새울 수 있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필요했었나 보다. 우리 아들과 같은 나이의 아들을 가진 아버지로서 많은 감정과 생각이 교차했을 것이다.문득 이양하의 수필 '신록예찬'이 생각난다. "또 사람이란 모든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사람이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것이 참 행복이 아닐까? 더불어 사는 삶이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 주고 참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삶이 아닐까?인간관계는 참 묘하다. 무례해도 우정이 쌓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려하고 예의를 갖추어도 일정한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7-20 11:41:10

각정 스님

[종교칼럼] 꽃이 드니 웃다

여름 장마로 비가 자주 내렸다. '눈물이 없는 사랑의 영혼에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는 인디언의 말처럼 비가 오지 않는 여름을 생각할 수 없다.7월의 나무들은 비를 먹고 훌쩍 키가 커 버린다. 비 설거지를 마치고 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자연 가운데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하거나 놓치는 것이 많다. 더구나 밤비 오는 소리는 쉽게 들리지 않는다. 계곡 물소리가 높아지면 연잎에 떨어지는 비소리가 일품이다. 소낙비가 지나가며 후드득 두들기는 진동과 여운은 잎의 무게만큼 채우고 비워내는 조화는 감탄과 탄성을 자아낸다.깨끗한 벗(淨友)으로 불리는 연꽃은 연못에서 자란다. 그래서 꺾어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연못으로 찾아가는 꽃이다.꽃은 취하지 않고 가슴에 담아야 한다.원산지가 열대아시아인 연꽃은 관상용으로 즐기지만 약재와 식용으로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장수와 건강 등 종교와 문화의 아이콘으로도 꾸준한 사랑을 이어왔다. 연꽃은 물이 깊지 않은 수심 아래서 잘 자라며 수생식물과 함께 여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수면 위에서 떠있는 작은 연꽃도 있다.꽃과 잎이 너르며 큰 것은 연꽃이며, 잎이 작고 물 위에 부착된 작은 꽃은 수련이다. 그 밖의 노란색의 자생인 개연꽃도 있다.한여름 연못에 연꽃이 피면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다. 연꽃 위에서 모든 생명이 태어난다. 연화화생(蓮華化生)이다.연꽃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연화화생이 포현된 것은 불교에서의 창조의 개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무량수경에 '여래의 몸은 털 구멍마다 빛이 나오고 빛줄기 하나하나의 끝에 연꽃이 피고 그 연꽃마다 화불이 있어서, 이를 둘러싸고 대중에게 설법을 한다.'하나의 빛이 무수한 부처를 만들어내고 하나의 진리로부터 무량한 빛이 나와서 이 우주를 진리로 가득차게 한다는 것이다. 탄생 주체는 여래이며 진리이며 마음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一切唯心造) 연꽃은 염화시중(拈華示衆)에서 비롯되어 불교의 상징이 되었다.어느날 석가모니가 영산회상에서 많은 대중과 설법을 하던 중 말을 멈추고 문득 연꽃 한 송이를 높이 들었다. 대중이 의아해 하였지만 제자 마하가섭이 미소를 지었다. 부처님께서 "나의 정법안장은 가섭에게 전했다."이심전심(以心傳心:마음과 마음으로)이었던 것이다.총림의 방장이나 조실 스님이 머무는 방에는 염화실(拈華室)이라고 현판이 걸려 있다. 연꽃을 예찬한 송대의 주돈이의 '애련설'은 명문장이다. 선비들이 즐겨 외우고 연꽃의 군자다움을 명쾌하게 일곱 가지로 정리한 명문이다.한자 문화권이 아닌 서양에서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클로드 모네는 연못과 정원을 가꾸며 250여 점의 '수련' 대작을 남겼다. 모네의 정원(지베르니)에는 지금도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문학작품에 심복의 자서전인 '부생육기'가 있다. 아침 연꽃이 이슬에서 벌어질 때 전날 꽃 심에 넣어 두었던 차 주머니를 꺼내서 맑고 향기로운 차를 다리는 그녀는 운(雲)이었다. 운부인의 지혜와 재치 있는 맵시는 아직도 중국인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임어당은 극찬하였다.인생의 아름다움과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상황과 연결되어진다. 그대여, 비 갠 날 샘물을 길어 차 한 잔 마시자. 맑고 향기로운 차 한 잔을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7-13 12:59:34

[종교 칼럼]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자

아름다움이 비난 받는다. 상상할 수 있는가. 나오미 울프는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에서 '아름다움의 신화'를 고발했다. 아름다움은 사회적 욕구이고, 그것이 여성의 몸과 정신을 파괴한다고 역설한다. 여성은 '아름다움'의 사회적 덫에 걸려,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름다움에 대한 현대 사회의 메커니즘이다. 불행이다.우리말 '아름다움'에서 '아름'은 '알다', '이해하다'를 의미하고, '다움'은 '아름'의 성격이나 특성을 나타낸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美)을 '에우리드미아'보다 '심메트리아'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이 두 단어 모두 비례나 질서, 조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 두 단어가 의미하는 질서와 조화에는 차이가 있다. 심메트리아는 눈에 보이는 질서가 아니라 머리로 이해하는 지성적 질서를 의미한다. 그것은 감각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지성적인 아름다움이다. 반면에 에우리드미아는 청각적, 시각적 질서를 뜻한다.하지만 아름다움은 감각적인 것 이상이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미(美)는 신의 빛이며 그 빛을 받아 완전한 형태로 빛나는 것"이라고 했다. 아름다움은 외양의 웅장함이나 화려함에 있는 것도 아니고 소리의 감미로움에 있는 것도 아니다.중세 교회는 외적인 아름다움의 과잉이었다. 교회 건축물은 금과 은으로 휘감겨 있었고, 스테인드 글래스와 갖가지 그림으로 치장된 예배당은 천상의 세계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시토 수도회와 카르투지오 수도회는 그러한 감각적인 미를 비판했다. 그들은 외적인 미가 신앙인들의 마음을 현혹하고, 기도와 경건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했다. 이뿐인가. 아퀴나스는 예배에서 기악곡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기악곡이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여 쾌락으로 이끈다고 보았다."감각적 미는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지만, 내면적 미는 그것을 관조하는 영혼을 기쁘게 한다."는 기욤 도베르뉴의 말은 옳다. 내면적 아름다움은 그 영혼으로 창조주를 향하게 한다. 나는 한 화가의 그림에서 그러한 아름다움을 찾고 싶다.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반 라인의 그림은 감동적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풍부한 붓놀림과 극적인 명암의 대비에서 오는 것인가? 그가 남긴 60여점의 자화상이 그것을 말해 준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고 있으면 살아 있는 그를 보는 것 같다.현대 기독교인들에게 금욕은 금기어다. 건강을 위한 단식과 절제는 있어도 신앙을 위한 금욕은 찾기 힘들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금욕이 진정한 자유의 길이며, 아름다움을 향한 노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육체적 욕망과 정신적 갈망이 가라앉아야 비로소 마음의 평정이 찾아온다.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져야만 말씀이 묵상되고 기도가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했다.내적인 아름다움은 곧 외적인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외적인 아름다움과 내적인 아름다움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래서 육체는 영혼의 이미지라고 했다. 인간 영혼의 아름다움은 육체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이 영혼 깊숙한 곳에 가득 채워지면 그 아름다움은 숨겨진 등불과도 같이 바깥으로 드러나게 된다. 인간 영혼의 내적인 아름다움도 이와 마찬가지다. 참된 아름다움은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영남신학대학교 유재경 교수

2018-07-06 12:15:08

박병욱 목사

[종교칼럼 ] 통일은 배려부터

아내와 선을 보고 얼마 후 결혼을 약속하고 만남을 이어갔다. 나는 대학원생이고 아내는 직장인이었다. 어느 날 아내는 나에게 조심스레 봉투를 건넸다. 그 돈으로 데이트 비용을 나보고 결제하라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지불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 우리의 경우 데이트 비용을 여자가 지불하게 되니 그 모습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사실은 자신이 매번 카운터에서 결제하는 모습이 혹시라도 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을까 하는 배려였다. 나는 배려심 있는 여자와 결혼하여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독일 통일 전 동독 사람에게 서독 땅은 미지의 세계였다. 동독 주민이 서독을 방문하면 서독 정부는 1인당 100마르크의 현금을 선물로 주었다. 1989년 국경선이 열리자 동독 시민이 밀물같이 몰려들어서 100마르크 선물을 받기 위해 은행 창구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서독에 왔으면 먹어야 하고 자야 하는데 그들에게 넉넉한 돈이 없지 않은가? 서독 정부가 동독 방문자의 처지를 배려해 준 것이다. 동독 방문객들이 타고 온 트라비 자동차마다 뒷유리 안쪽에는 큼지막한 바나나 송이가 놓여 있었다. 동독은 공산주의 체제라서 서방세계와 무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나나는 아주 귀한 과일이었다. 그러니 서독 정부로부터 일인당 100마르크 선물도 받았겠다 가장 먼저 값싸고 커다란 바나나를 샀던 것이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바나나가 얼마나 맛있었을까? 독일의 주변 국가들 모두, 미국과 구소련까지도 독일의 통일을 예상치도 못했고, 반기지도 않았다. 독일은 전범 국가가 아닌가. 독일에는 '우리의 소원' 노래도 없었고, 통일 이데올로기도 없었다. 동독 라이프치히의 촛불 시위 현장에서도 여행자유화를 외쳤을 따름이다. 그 어디서도 꿈에서조차 통일을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그만큼 독일 통일은 예상치 못한 기적이었다.나는 독일 통일 당시에 유학생으로 독일에 있으면서 혼자 예상하기를 당시 30세 이상의 기성세대는 시장경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한 보고서에 의하면 통일 당시의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14~15세에 통일을 맞은 사람들조차도 현재 중년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체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지금도 독일은 구동독 지역의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매년 1000억 유로 이상의 돈을 지불한다.우리도 남북통일을 준비하려면 해야 될 의무가 많다. 어떤 사람은 우리의 내수시장이 커진다고 밝은 전망을 하지만 북한이 구매력을 갖춘 시장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통일은 국경선만 없어진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달랐던 문화와 삶이 하나가 되고, 경제 수준과 정치 시스템이 하나가 되고 또 역사적 경험이 하나가 될 때만이 진정한 통일은 찾아올 것이다.먼저 우리 마음 속에 북한 주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때 진정한 통일이 올 것이다. 최근 한 TV에서 한 강연자가 통일시대의 유망 직업이 부동산 중개업이라 했다. 문제 많은 천박한 시각이다. 통일이 되더라도 상당기간 북한 땅은 북한 주민만이 소유할 수 있도록 법 제정을 하게 될 것이다.희생과 배려가 개인적인 덕목에서만이 아니라, 제도 속에서도 실현되어야 우리나라에 미래가 있다. 북한 주민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의 마음을 먼저 준비하자.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6-29 14:11:18

각정 스님

[종교칼럼] 저녁에

푸른 물이 뚝뚝 묻어나는 6월의 나무들은 강건하다. 오월이 지나간 산 길에는 보랏빛 하고초(꿀풀)가 향기롭다. 뒤뜰에 잡초와 돌을 걷어내고 계단 위에 옹기종기 작은 장독대를 구성했다. 옹기는 가마에서 한번 구어 낸다. 그래서 자연의 통기성이 강하고 사용하다 금이 가도 흙으로 회기하는 복원력이 우수한 그릇이다.산중생활의 무심한 여가에 미술평론가 강 교수와 오랜만에 아름답고 황홀한 꿈 같은 시간을 가졌다.대구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우리 미학의 선구자 수화 김환기 대구전에 참관하게 된 것이다.아름다움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방편이 있지만 그 중에 예술이 으뜸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미학 기조에 문화코드로 자리 매김한 달 항아리, 사방탁자, 옹기, 막사발 등은 그림과 시로 만나게 되었다. 소유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즐기는 무소유를 만끽한 하루였다.강 교수와 함께 아침 일찍 출발해 오전 10시에 미술관에 도착하였다. 대구미술관 개관 후 지역에서도 수준 높은 전시가 많이 열려 대중들의 안목도 높아졌다. 이미 유치원 꼬맹이들이 조잘조잘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로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시대정신을 생각하게 되었다.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에도 기개와 멋을 잃지 않았었다. 조선백자를 사랑해서 마당 곳곳에 항아리를 장독처럼 세워두고 비가 오면 비가오는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과 함께 보름달이 떠오르면 매화나무를 심어서 꽃을 그리고 즐겼다.화가 김환기와는 대면한 적은 없지만 그의 작품과 간명한 수필과 일기는 산문시라 할 수 있었다. 아직도 소장품 중에는 지금도 자주 꺼내서 읽는 빛바랜 산문집 1977년 초판 '그림에 붙치는 시'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화가 김환기의 인간됨을 표현한다면 '멋'이라고 쓰고 '멋쟁이'라고 호칭하고 싶다. 한국미의 본질은 폭넓게 그 대상을 말할 때 '멋'의 세계이다. 한국의 멋은 만져지거나 잡히지 않고 아리송하다. 그것이 우리 멋이 지닌 정서이며 우리의 멋은 문학과 미술 그리고 음악과 춤 등 인간의 군상 속에 흥건하게 스며 들어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계시던 때 나지 못하고, 성인의 얼굴 뵙지 못하지만, 성인의 말씀 들을 수 있으니 성인의 마음 볼 수 있다네 ' -옛 말씀에우리나라 서양화가 그 중에서 김환기 만큼 동양정신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예술가는 많지 않다. 더구나 서양화가임에도 한국적 정서로 우리의 일상이었던 선비의 문방사우와 함께 있었다. 이산 김광섭의 시와 미당 서정주의 시가 항아리가 되어 매화꽃으로도 만개하였다.화가는 동양과 서양을 두루 관통하였다. 파리의 지붕 밑에서, 광막한 평야 뉴욕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찍는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 만큼 하늘 끝에 닿았을까. 눈을 감으면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강산(중략) 일을 할 때, 음악을 들을 때,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모두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화가의 일기 중)무수한 점들로 이어진 마치 세포의 줄기처럼 가로와 세로로 줄 그으면서 점을 찍고 작품을 완성했다. 그 작품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작품을 완성하고 화가는 비로소 울 수 있었다고 한다.철학자 헤셀은 '예술은 종교와 철학과 함께 정신의 가장 높은 진리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김환기는 21세기 한국미술사에서 축복받는 국민의 별이 되었다.누가 또 위대한 예술가의 길을 갈 것인가?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6-22 11:34:04

박용욱 신부

[종교칼럼] 병원의 탄생과 인간의 가치

고대 건축이 보여주는 놀라운 성취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경탄하게 한다. 기원전 2천500년 무렵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피라미드들은 건축학적 놀라움뿐 아니라 그만한 규모의 토목건축을 뒷받침한 효율적 행정체계와 생산력을 증언한다. 서기 125년 경 재건된 로마의 판테온은 무려 2천여 년의 풍파를 견뎌내며 아직도 현역의 위용을 뽐내며, 기원전 19세기 무렵 고대 바빌로니아에 설치된 하수도와 수세식 화장실은 생활에 필수적인 건물과 구조물들이 고대 사회에도 이미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그런데 어지한간 것은 모두 갖춘 이집트와 로마 제국에서 찾을 수 없는 건물이 있으니, 그것은 병원이다. 이집트 의학의 창시자요 최초의 의사라 불리는 임모텝은 역사상 최초의 체계적 의학 기록을 남겼지만, 이집트 어디에도 병원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명실상부 세계의 중심(Axis Mundi)으로 기능했던 로마에도 병원 건물은 없었다. 오늘날의 병원과 비슷한 발레뚜디나리아(Valetudinaria)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여기에는 오직 군인들과 노예들만 드나들 수 있었다. 환자들을 위한 돌봄의 기관이라기보다는 손상된 노동력을 보충하는 일종의 수리소였다는 뜻이다. 임모텝이 환자들을 돌본 것도 그가 최초의 피라미드 설계자요 건축가였다는 사실과 연관된다. 임모텝의 의료는 근본적으로 건설에 동원된 수많은 인적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요컨대, 고대 사회는 더 이상 생산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노동력을 보충하는 데 관심을 두었고, 병원을 세워 환자를 돌보는 것은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는 이들에게 자원을 낭비하는 일로 여겼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무엇을 생산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서양 최초의 병원이 체사레아의 주교 바실레이오스(성 바실리오)에 의해 등장한다. 바실레이오스 주교는 그리스도교 복음 정신으로 사회적 이상을 구체화시킨 일종의 사회복지 복합 건물을 세워 여행자와 가난한 이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주교는 여기서 친히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며 음식과 영혼의 양식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호스피치움(Hospicium)이라 불리는 이런 건물들이 곳곳으로 퍼져나가 훗날 병원의 모태가 된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17개의 치유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고 어떤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느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존재로 격상되었다.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진"(마태 8,16~17) 예수의 모범을 따라 환자를 돌보는 일은 하느님 나라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일이 되고, 마지막 날의 심판을 통해 하느님께서 그 수고를 갚아주시리라는 희망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인간 생명의 가치를 그의 생산력과 분리하게 되는 이 지점이야말로 인간의 가치와 품위가 복음 정신으로 새 옷을 갈아입은 생생한 예일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에 매이지 않는다. 오늘날 의료와 관련된 여러 가지 논쟁에서, 그러니까 낙태 합법화라든가 안락사 논쟁 같은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이 명료한 진실을 자주 잊는다. 참으로 안타깝게도.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6-15 14:07:28

박병욱 목사

[종교칼럼] 미움이여, 안녕!

내가 처음 본 김일성의 얼굴은 오동통한 우량아의 얼굴이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보릿고개가 있었고, 우량아 대회도 있었다. 얼마나 먹고 살기가 힘들었으면 요즘 시각으로 보면 영락없는 비만아를 건강의 상징처럼 여기고 상까지 주었을까? 김일성의 살진 얼굴이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정치 프로파간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그들은 그런 식으로 김일성의 얼굴을 상징화했다. 금강산 관광을 갔을 때 본 풍경이다. 북한 마을 입구에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같은 모양의 기둥을 높이 세우고 이렇게 써 놓았다. "위대한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성경의 예수님 말씀을 흉내 낸 문구다. 이쯤 되면 김일성은 예수님 급이다. 요즘은 이 구호에 '김정일 동지'가 첨가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북한에서는 김일성 '신격화'가 진행되었다.남한에서는 김일성 '악마화'가 진행되었다. 군대 내무반 벽에 그려져 있는 김일성의 얼굴은 뿔이 난 빨간 도깨비였다. 그리고 집합을 하면 예외 없이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구호를 반복해서 외쳤다. 우리는 미국에서 구호 물자로 온 딱딱한 옥수수 빵을 씹으며 마을회관, 면사무소, 학교 등 관공서 담벼락에 써있는 이 구호를 읽었다.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반공 글짓기 대회, 반공 그림 그리기 대회를 했다. 이때 '공산당, 김일성'은 반드시 빨간색 크레용을 쓰는 것이 공식이었다. 일 년에 한 번 반공 웅변 대회를 하면 어린 학생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었다. "공산당을 때려잡자."이렇게 북한에서나 남한에서나 김일성 종교화가 진행된 것은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신의 모습으로, 남한에서는 악마의 모습으로 종교화된 것이다.남한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종교화된 증오였다. 북한에 강한 증오심을 가질수록 증오종교의 진골 선봉자로 높임 받는 세상이었다. 많이 미워할수록 증오종교의 헌신자이기 때문이다.특별히 기독교 지주계급은 종교적 경제적 이유로 공산정권에 의해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그들의 아버지가 제대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잔혹하게 처형당하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아야 했다. 평생을 지고가야 하는 고통이었다. 악마가 아니고는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김일성과 공산당 정권은 악의 화신을 넘어 악 그 자체였다. 북한 지역에서 소위 유산자 계급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또한 6·25의 참상은 어떠했는가? 형편이 이러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공산당에게는 예외조항이었다.우리 사회에 분노와 적개심이 왜 이렇게 많은가? 왜 사람들은 내편과 적을 만들어 놓을까? 누구든 증오하도록 만들어진 결과다. 증오의 종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집단적 트라우마가 분노와 적대감의 씨앗으로 심겨져 남한 사회에서 증오의 싹이 돋아나고 증오의 열매가 맺혀가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분열의 씨앗이다.우리는 정전 이후 65년을 지내오면서 트라우마가 주도하는 삶만을 살아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경제 발전도 이루었고, 민주화도 이루었고, 지구촌 이웃의 살아가는 모습도 보았고, 지구촌 인류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도 배웠다. 선진국 국민으로서의 교양도 익혔다.전쟁의 원한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여전히 분단의 시대에 붙잡혀 있다면 불행한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분단의 시대를 끝내야 하지 않을까?우리가 여전히 증오의 종교를 섬긴다면 불행한 일이다. 증오의 종교도 사라져라. 증오의 시대여 떠나가라. 빨리 새 시대가 열렸으면 좋겠다. 사랑의 종교로 돌아가야 한다. 빨리 돌아가자.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6-08 10:35:42

각정 스님

[종교칼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여름 안거가 시작됐다. 산중에는 나무들이 초록의 숲을 이루고 생명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공기를 내뿜고 있다. 나무와 나무들은 푸른 사원을 만들어 총림이 되었다. 텃밭에서는 상추와 고추, 가지 토마토가 쑥쑥 자란다. 사람이 행복과 불행을 이기는 길은 삶 전체가 온전하게 하나가 되는 일이다. 삶이란 온통 질문뿐이지만 그 속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고심한다. 자신이 몸담아 사는 일상에서 언제나 홀로 무심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깨어있는 사람이다. 삶의 희노애락과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수행이란 무엇인가? 수행은 나를 겸손하게 하고 단순하게 하는 거기에서 깊은 체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지만 이웃을 위해서 자비심이 싹트게 되면서 본래의 나로 드디어 태어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슴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없어지고 있다. 밤 하늘의 별이나, 속삭이는 바람, 춤추는 나무들의 자태를 기쁨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는 일에 급급하여서 자연의 소리를 멀리하게 되었다. 달이 뜨고 새가 나는 모습들을 눈 여겨 보지도 않는다. "사람과 기도와 명상이 그대 가슴에 중심이 되게하라 (팃낙한)"모든 경전과 스승들은 '나를 보라'고 하지 않는다. '나를 초월하여 보라'고 외친다. 이 초월함은 내면의 고요와 평화로움에서 얻어질 수 있다.정욕에 휘둘리고 티끌만한 명예를 쫓아가는 사람은 홀로 있지 못하고 윤회의 업력에 끌려가는 사람이다.승복 입은 도독들이 설치고 있고 세상이 절을 걱정하는 세태가 되었다. 참회와 민망함으로 같은 옷을 입고 얼굴을 들수 가 없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서 부모형제와 살던 집을 등지고 출가 하였는지 깎은 머리를 자주 만져본다.주지 자리를 서로 다투고, 은처 자에 학력위조까지 다반사가 되었다.출가가 집에서 뛰쳐나오는 단순한 일인가? 온갖 욕망과 세속적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일상화되고 참선하고 기도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화하기 위해 안과 밖으로 자신을 갈고 닦지 않는 사람은 수행자가 아니다. 말할 것도 없이 승가의 생명은 청정함에 있다. 청정성을 잃으면 더 이상 승가가 아니다. 지금 참선하고 염불하는 그 일 말고는 어떤 욕망도 비워 내야하며 그 수행과 정진을 통해서만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만일 겉으로만 수행자처럼 꾸미고 돈이나 명예 그 밖의 것을 생각했다면 그런 사람은 불자가 아닌 가사 입은 도둑놈들이다.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이 한탄하며 말씀 하셨다."어찌하여 도둑들이 내 옷을 꾸며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악업을 짓고 있는가"고통스런 과거와 업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비록 머리를 깎았을 지라도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 못하고 있는 것이다."재물과 이성을 바른 생각(正念)으로 대하라" 몸을 해치는 것은 이성보다 더한 것이 없고 도를 잃게 하는 것은 재물에 미칠 것이 없다.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마련해 경책하고 계신 것이다. "출가하여 수행승이 되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인가,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것도 아니며, 명예나 지위 혹은 재물을 구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며, 번뇌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이어 끝없는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이다."서산대사 휴정스님이 선가귀감에서 하신 말씀이다.세속적인 명예와 지위에 연연하지 않는 그런 사람을 수행자라고 말한다.무엇이 참이고 진리인가, 참 수행자는 모든 것으로부터 훌쩍 뛰어 넘어서 자유로운 사람이다.장미 꽃 붉게 지는데 부끄럽고 부끄럽다.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6-01 14: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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