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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윤 수필가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봄을 본 적 있나요

폭설이 쏟아졌어요. 가뭄으로 퍼석대던 겨울이 모처럼 차분해지네요. 폭설을 목격한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겨울이라 말하지 않았어요. "봄이 오려는 게야. 암, 봄은 이렇게 오는 게야." 남산동 재개발구역 골목에는 짐승의 발자국도, 사람의 발자국도 선명하게 놓였어요. 아직 떠나지 못한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발자국들이 말하고 있네요. 하늘이 맑고 햇살이 따습고, 바람이 상쾌하던 어느 날, 우연히 이 골목을 걸었던 적이 있어요.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 이쯤에서 시작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거든요. 길가엔 건물보다 훨씬 키가 큰 은행나무들이 늘어 서 있었지요. 구불텅하게 굽어 도는 길은, 은행나무에 노랗게 물이 들어 초입에서부터 보기가 참 좋았어요. '○○인쇄소'라는 간판이 수없이 보였어요. 문이 열린 곳이 있어 빠끔히 들여다보았죠. 종이 수백, 수천 장이 눈 깜짝할 새 움직이곤 했는데 순식간에 글자가 새겨지고 그림이 옮겨졌죠. 조금 더 깊숙이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분명 늦은 오후임에도 하나같이 문을 열지 않았어요. 집들은 유리창이 깨지거나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고, 길가엔 폐가전들이 놓여 있었죠. 응달진 곳엔 이끼가 자리를 틀었고, 지붕에 올려진 폐타이어들이 눈에 띄었어요. 길엔 온통 은행나무 열매가 수북이 떨어져 불쾌한 냄새가 났어요. 사람은 오간 데 없고 고양이만 득실거렸어요. 폐허처럼 무서웠어요. 담벼락 군데군데 빨간색 X표가 커다랗게 그어져 있었는데 그제야 재개발구역이라는 걸 알았어요.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바삐 걸음을 옮기는데 구멍가게 앞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네댓 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어요. 모처럼의 인기척이 반가웠죠. 두어 평 남짓한 가게에 들어서니 숨이 막힐 듯 많은 물건들이 두서없이 쌓여 있었어요. 곧 떠나야 할 걸 알면서도 언제 누가 와서 뭘 찾을지 몰라 매일 물건을 들인다는 안주인의 말에 물 한 병을 사면서 나는 큰 고마움을 느꼈죠. 나는 곧 철거가 시작될 것이고 머지않아 아파트가 들어선다는데 왜 아직도 남아 있느냐고 물었죠. 40, 50년 몸 뉘이고 살아온 터를 하루아침에 어찌 쉽게 떠날 수 있겠느냐며,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어 집이 뜯기는 마지막 날까지 있겠노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내가 숙연해진 까닭이었어요. 낡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낡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서로 즐거움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그해 가을은 아름답게 무르익고 있었죠. 오전 늦게야 폭설이 멎었네요. 창문을 열고 볕을 집안으로 들이는데 바람에서 물 냄새가 나네요. 흙냄새가 나네요. 먼 곳을 보다 시야를 당겼는데 그때 그 마을이 눈앞에 나타났어요. 남산동 재개발구역. 가을날의 그곳을 나는 왜 그토록 멀리 있다고 느꼈을까요. 얼른 그리로 나가보아요. 어르신들은 보이지 않고 구멍가게도 문을 열지 않았네요. 대신 나무들이 서 있었는데 곧 봄이 오려는지 물이 바짝 올랐네요. 이곳에도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 다시 따뜻한 봄이 올까요. 박시윤 수필가

2018-03-13 00:05:00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제대로 된 반란

아들 내외가 동시에 출장이라며 조심스럽게 손자를 부탁해왔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었다가 저녁 무렵에 데려와서 함께 지내면 된다고 하였다. 우리 내외는 기꺼이 허락했다. 손자를 독차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아들 내외를 도울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며느리는 우리와 아이가 먹을 음식은 물론 집안 살림살이 활용 방법 등을 일일이 메모해 두었다. 아이를 맡긴 며느리의 미안해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었다. 손자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아파트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려니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평생을 주택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아파트는 답답함 그 자체였다. 창을 열어도 보이는 대상은 발을 내딛고 다가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아득히 먼 허상과도 같았다. 언제든지 마당으로 나가서 만지고 느끼고 기대던 자연이 아파트에서는 그저 그 먼 곳에 무심히 설치된 조형물 같았다. 보이는 사물이 우리네 삶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존재, 결국 내 삶과 유리된 대상에 불과했다. 어린 손자가 그런 관계에 익숙해지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아내와 나는 의기투합하여 반란을 시도하였다. 손자를 밖으로 빼돌리기로 했다. 아들 내외가 퇴근하면서 데리고 오던 시간에 비하여 한참 일찍 손자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무작정 손자를 유모차에 태워서 햇살 좋은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그 길 끝에 작은 하천이 나타났다. 요즘은 지역마다 하천 가꾸기 사업이 참 잘 되어 있었다. 산책길을 물 가까이 만들어 두었다. 아이는 답답한 유모차에서 내려달라고 발을 뻗댔다. 전들 그런 길을 걷고 싶지 않았을까. 유모차에서 벗어난 아이는 신이 나서 잘도 걸었다. 우리도 아이의 걸음에 맞추느라 보폭을 줄였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 마음이 느긋해지면서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음에서 풀려난 개울물이 노고지리처럼 재잘거렸다. 그 물을 따라 오리 한 쌍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장자리에는 갯버들이 움을 한껏 부풀리고 있었다. 그동안 차 소리만 들렸는데 그게 아니었다. 단지 손자 아이를 따라 걸음만 늦추었는데 회색빛 존재들이 푸르게 살아나고 있었다. 갑자기 두껍게 걸친 외투가 짐스러워졌다. 봄이 와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미 봄이었다. 자연은 제때에 맞추어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때를 따라가지 못하고 늘 허둥대는 꼴이다. 하천으로 또 한 쌍의 오리가 날아왔다. 물고기들이 흩어진다. 회색빛 도시 공간에 흘러가는 물이 있고 푸른 생명들이 계절을 맞고 있다는 게 신비롭다. 아이의 가녀린 손가락이 가리키는 갯버들 잔가지 빛깔이 유난히 푸르다. 아이가 생명과 새롭게 관계를 형성해 가는 모습이다. 하늘이 내려와 앉은 맑은 물을 바라본다. 어느새 다가온 새봄, 생명들과 더욱 친밀해진 느낌이다. 인생의 봄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손자와 함께 생명을 체험한다. 제대로 된 반란이었다. 김일광 동화작가

2018-03-06 00:05:04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그해, 교복

길을 지나다 현수막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교복나눔행사', 한참을 서성이다 자원봉사센터 문을 열었다. 누가 기증했는지 수많은 교복이 말쑥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왼쪽 가슴엔 이름표를 떼어낸 흔적 또는 미처 떼어내지 못한 이름들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의 청춘의 시간들이 잠재된 듯 교복들은 참 고요했다. 누군가의 것에서 또 누군가의 것이 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교복들 사이에서 나는 지난한 시간들을 떠올렸다. 25년 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입학식 날 교복을 착용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넉넉하지 못했던 집안 형편이 열일곱의 나를 초조하게 했다. 새 교복을 맞춰달라는 말은 사치라는 걸 잘 아는 나였으므로,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때 불현듯 떠올랐던 건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S의 누나가 그해, 그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당장 S에게 전화를 걸어 교복을 확보해야 함이 옳았으나 열일곱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남자 동기에게 헌 교복을 구걸해야 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부끄러움을 감수해야 함이었다. 걱정과 고민은 불면으로 이어졌다. 내가 고민하는 동안 시간은 물처럼 흘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도가 없었다. 입학을 며칠 앞두고 어렵사리 S에게 전화를 했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는 허례허식의 인사를 시작으로 다른 동기들은 잘 지내는지 등의 안부까지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참 번지르르하게 해댔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입을 뗐다. "누나 ○○여고 올해 졸업하셨지? 혹시 교복… 버렸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글쎄? 혹시 너 그 학교 입학하냐? 누나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있음 줄까?" S는 눈치가 참 빨랐다. 늦은 밤, S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 앞인데 빨리 나와. 교복 가져왔어." 가로등 불빛 아래 S가 서 있었다. S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 버스로 족히 한 시간은 되는 거리였다.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S가 먼저 말했다. "욕심도 많지. 무슨 교복을 두 벌씩이나 준비하냐." S는 헌 교복을 부탁하는 내가 행여 무안해할까 봐, 새 교복과 헌 교복을 교차해서 입을 요량으로 부탁하는 것처럼 여겨 주었다. 와이셔츠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붉은빛 체크무늬 조끼와 스커트, 재킷을 입으니 내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3년 동안 나는 S의 누나에게서 물려받은 교복으로 참 반듯하려 애썼다. 나는 어디를 가든 교복을 입었다. 비록 헌것이었지만 새로운 감정들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시절의 유일한 복장이었다. 오늘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은 과거의 궁핍함과 절실함이 만들어낸 결과이리라. 행복지수는 처음부터 부유한 사람보다 결핍을 헤쳐 나온 사람에게서 더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결핍의 시간이 결코 부끄럽고 아픈 것만이 아니라는 것은, 결핍을 이겨낸 자들만이 알 것이다. 내가 졸업하던 날, 2학년 후배가 찾아왔다. "언니… 교복 저 주시면 안 돼요? 올해 제 동생이 우리 학교에 입학합니다." 내 청춘의 시간이 실루엣처럼 스며든 교복은 누군가의 여고 시절이 되어 또다시 파릇파릇하였다. 박시윤 수필가

2018-02-27 00:05:00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동해선

아내가 동해선 기차를 타고 소풍 가자고 하였다. 승용차로 잠깐 다녀올 길을 구태여 기차를 타자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1월 말 포항에서 영덕까지 철길이 개통되었다. 중간에 월포역, 장사역, 강구역 단 세 개의 역이 있다고 하였다. 마치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재미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월포, 장사, 강구 하면 더없이 넓고 푸른 바다를 품고 있는 곳이 아닌가. 운전하느라 앞만 보고 달렸던 그 길을 느긋하게 앉아서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한몫했다. 김새기 전에 얼른 다음 날 표를 예약했다. 가벼운 차림으로 소풍을 나섰다. 새로 만든 포항역이 깔끔한 차림으로 우리를 맞았다. 역을 지을 때 고래 형상이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새것을 보니 옛것이 생각났다. 옛 포항역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 역은 1904년에 간이 역사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기차가 운행된 것은 1908년이었다. 경동선이라는 이름의 협궤열차가 대구와 포항을 오고 갔다. 영일만의 해산물과 흥해, 연일, 안강 일대에서 생산된 곡물 운송을 담당했다. 침략자들에 의한 수탈의 길이었다. 일제가 계획했던 동해선도 다름 아니었다. 대구 방향이 아닌 영덕 방향으로 기차가 출발하였다. 예쁜 그림을 곁들인 기차는 일제 침탈의 수모를 떨치고 동해안 지역 주민들의 삶을 싣고 달렸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월포역이었다. 역시 바다가 환하게 열려 있었다. 사람들은 오른쪽 창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그다음 역은 장사역이었다. 바다는 물론이지만 멀리 바닷가에 있는 유럽풍의 마을이 눈길을 끌었다. 이를 본 승객들은 자치단체에서 조성 지원을 했다느니, 주민들의 협조를 구했다느니, 예쁜 마을이 조성된 연유를 놓고 한참을 떠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강구역이었다. 강구 하면 떠오르는 바다와 대게 이미지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들 혀를 찼다. 영덕역에 내려서 북으로 놓인 철길을 바라보았다. 곧 울진과 삼척까지 이어질 계획이라고 하였다. 따지고 보면 동해선 철도는 이번에 새로 생긴 게 아니다. 6·25전쟁 전까지 양양에서 원산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포항에서 강릉까지는 부지뿐만 아니라 노반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상태였다. 이번 개통은 70년 넘게 기다려온 철로이며, 대기하고 있던 기차가 달리게 된 셈이다. 지난 2002년 납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합의에 따라 동해선을 복원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미뤄지고 있다. 동해선의 가치는 경의선과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경의선은 중국 철도와 연결되지만 동해선은 나진,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연결되어 유럽으로 이어진다. 탑승시간 25분, 너무 아쉬웠다. 문득 내처 동해선 기차로 휴전선을 넘고, 시베리아를 지나서 유럽으로 달리고 싶었다. 객차 벽면 '영덕행' 글자가 '유럽행'으로 바뀌었으면 참 좋겠다. 마법처럼 수리수리 마하수리…. 김일광 동화작가

2018-02-20 00:05:00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마음을 전해요

늦은 저녁 시간, 나는 큰 방에 앉아 책을 읽는다. 고등학생인 큰아이는 제 방에서 과제를 하는 중이고, 아홉 살 작은아이는 방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남편은 혼자 거실에 있다. 인기척이 없는 걸 보니 아마도 피곤함에 겨워 잠이 들었을 것이다. 한집에 살면서도 가족 모두가 다른 공간에서 다른 것에 심취해 있다. 익숙한 일이다. 나는 책을 덮고 목청을 높인다. "모두, 손!"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풋잠에서 깬 남편도 손을 내민다. 나는 제일 먼저 작은아이의 손부터 살핀다. 앙증맞다. 지금까지 험한 것 한 번 만져보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손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예쁜 손이다. 나는 작은아이의 손을 살포시 잡아 내 손바닥 위에 올린다. "무지개를 그리다 왔구나. 손톱 아래에 빨주노초파남보! 크레파스가 골고루 끼었네." 아이는 양 볼에 보조개가 깊게 패도록 활짝 웃는다. "씻고 올게요." 얼른 세면대로 향한다. 큰아이의 손을 살핀다. 불혹을 넘긴 내 손보다 더 커지고 있는 손이다. 보면 볼수록 흐뭇해지는 손이다. 밤이 새도록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손. 내가 열일곱 시절보다 훨씬 조밀한 시대를 살고 있는 탓일까. 중지손가락 마디에 굳은살이 박여 있다. 그래도 불평 한 번 않는 착한 손이다. "손톱이 좀 길지 않아?" 큰아이가 제 방으로 간다. "깎고 올게요."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손을 살핀다.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슬며시 내미는 손. 보면 볼수록 마음이 짠해지는 손이다. 나는 태연한 척 스웨터 주머니에 감춰 두었던 영양크림을 꺼낸다. 그리고는 수북이 덜어 고르게 발라준다. 서른 살 그의 손은 상처 하나 없는 손이었다. 그저 편안하게 공부만 했을 것 같은 귀족의 느낌이 났다. 보얀 손등에 비치는 푸른 혈관에서 귀태가 흘렀다. 그 손을 잡으면 나조차도 귀하게 변화시켜 줄 것만 같았다. 벌써 십수 년이 흘렀다. 어느 날 밤, 늦게 귀가해 거실에 쓰러진 채 잠이 든 남편을 깨우다 우연히 손을 보았다. 베이고, 터진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상처투성이인 그의 손은 서른 시절의 귀태 나는 손이 아니었다. 마흔 후반의 그의 손도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날 밤 아껴두었던 영양크림을 꺼내 잠든 남편의 손에 발라주었다. 볼펜대 굴려가며 승승장구하던 회사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자신이 꿈꿔왔던 일을 시작했다. 나는 남편이 시작한 일이 탐탁잖아 아예 관심을 접었다. 그간 남편은 수시로 연고와 밴드를 요구했다. 약품함을 챙겨준 것 외엔 남편의 상처를 살갑게 살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남편은 밴드를 요구하며 잘살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고 났더니 손이 달라졌다며, 밤새 우렁각시가 다녀갔느냐고 좋아하던 그를 위해 나는 종종 잠든 남편의 손에 영양크림을 바르곤 했다. 남편의 손에 영양크림이 스며들 무렵 "다 씻었어요", "다 깎았어요" 하며 아이들이 거실로 온다. 나는 얼른 아이들 손에도 영양크림을 발라준다. 박시윤 수필가

2018-02-13 00:05:00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출판기념회

젊은 후배가 작품집을 냈다며 따끈따끈한 새 책을 보내왔다. 그는 대학 다닐 때부터 여러 문학상에 이름을 올릴 만큼 능력을 보여 왔기 때문에 좋은 작가로 자리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시, 동시, 동화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차근차근 문학 세계를 열어가고 있었다. 보내준 책을 들고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는데 아쉽게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틀쯤 지난 뒤에 전화가 왔다. 자주 연락하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형식적인 자리를 내켜 하지 않는 내 마음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조촐하게 그동안 보고 싶던 선배들을 모신다고 하였다. 그래서 쾌히 승낙을 하고는 달력에 표시를 해두었다. 약속한 날은 몹시 추웠다. 아침 일찍 문자가 왔다. '잡은 날이 하필 제일 춥네요. 그래도 꼭 오실 거죠? 보고 싶습니다.' 책 내고, 출판기념회를 하는 일이 너무나 가벼워진 세상이다. 접수처에서 얼굴 도장 찍고, 밥 먹고, 후다닥 헤어지는 게 요즘 출판기념회 모습이다. 몇 년 전 우리 지역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이 퇴임을 앞두고 잡문 나부랭이로 책을 엮어 낸 적이 있었다. 지역 기업체에다 얼마나 압력을 넣었는지 거둬들인 돈이 수천만원이 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심지어는 그 돈으로 자녀 결혼을 시켰다는 말까지 들렸다. 선거철이 가까워지면 이름을 알리려고 출판기념회를 많이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출판기념회 하면 고개를 흔들게 되었다. 그냥 넘길 수 없는 게 그로 인해 순수하게 책 낸 기쁨을 나누려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기념회 초청장이 오면 먼저 어떤 성격의 자리인지를 따져 보고 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초청장이 따로 없는 후배의 출판기념회 자리에 기쁘게 참석하였다. 열 사람이 모인 조촐한 자리였다. 그야말로 꼭 불러야 할 사람, 함께 기뻐할 사람, 진정으로 축하해 줄 사람만이 모인 셈이었다. 무슨 회장, 무슨 대표가 줄줄이 단상에 올라가서 영양가 없이 풀어내는 지루한 연설을 듣지 않아서 좋았다. 감동 없는 박수를 쳐대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그동안 혼자서 키워낸 딸이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후배의 말에 모두들 진심을 담아 축하하였다. 실은 그 말을 다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후배는 작품집보다 더욱 자랑스럽게 딸 자랑을 하여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축사도, 격려사도 없었지만 모두 같은 마음으로 축하하고, 격려를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후배의 자랑이 전혀 밉지 않았으며, 이를 축하해 주는 우리의 이야기에도 어색함이 없었다.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자리를 옮겨서 차까지 마시며 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가장 추운 날씨였지만 마음은 최고로 따뜻해진 출판기념회였다. 김일광 동화작가

2018-02-06 00:05:00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저녁이 있는 풍경

집 안이 휑하다. 형광등 불빛이 무의미하게 쏟아지는 거실엔 부재중인 가족들을 대신해 TV가 인기척을 내고 있다. 종일 음식을 준비했다. 시어머님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고르게 장만했다. 오늘 저녁 밥상은 꽤 푸짐하겠다 싶어 뿌듯했다. '엄마 웬일이야? 누구 생일이야?' 하며 눈이 동그래질 아이들과 내 요리를 맛있어할 시어머님과 남편을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저녁에 일찍 오세요." 남편과 출타하신 어머님께 그러겠다는 답을 들은 후에야 막바지 정리를 했다. 살어둠이 죽은 듯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서 가족들을 기다렸다. 전화가 울렸다. 남편은 일이 끝나지 않아 늦을 거라 했다. 고등학생인 큰아이는 학원 보강수업이 있다 했다. 어머님은 나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지인들과 식사를 하셨다 했다. 작은아이는 소파 위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저녁 먼저 먹어!" 다들 그렇게 내게 말했다. 섭섭함과 쓸쓸함이 교차한다. 기분 탓일까. 언제부터 가족들이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듯했다. 큰아이의 학교생활을 들은 지 오래됐고, 남편이나 어머님의 바깥 생활을 듣거나 내 이야기를 한 기억도 오래됐다. 한 끼 밥마저도 함께 먹을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아야 하는 건가. 바쁜 중에 우리는 서로 단절되고 있는 걸까. 우리 집은 주말 저녁만큼은 가족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무언의 규칙이 있었다. 꼭 지켜야 할 약속처럼 모두 해가 저물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빨리 가고 싶은 곳, 늦으면 미안해지는 곳, 집은 그런 존재였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놓고 출타한 아버지를 기다리곤 하셨다. 찬바람이 들고, 해가 저물면 샛별이 반짝거리는 신작로를 수십 수백 번씩 내다보셨다. 밥상 위 찌개가 다 식어가도 아버지가 오시기 전까지는 숟가락조차 들 수 없었다. 우리는 배고픔을 참으며 꾸벅꾸벅 졸곤 했다. 아버지의 늦은 귀가에 그제야 동그란 밥상을 가운데 두고 여섯 식구가 빙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아버지는 늦은 귀가에도 저녁만큼은 가족들과 드셨다. 다 식은 밥이지만 첫술을 덜어 장손인 오빠를 시작으로 4남매의 밥그릇에 한술씩 얹어 주시곤 하셨다. 그것이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베푸는 사랑의 증표였으리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버지는 우리들의 중심이었고 우리들은 아버지의 중심이었다. 그러기에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모두가 예의로 지켜야 할 숙명 같은 것이었다.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가족들에게 베푸는 내 사랑의 증표는 무엇이었을까. 밥조차 함께 먹을 수 없을 만큼 우리가 바쁘게 좇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부족함 없이 꽉 채워진 도심의 중심에서 텅 빈 느낌의 한기가 든다. 차가운 계절이다. 살갑게 나누는 저녁 시간이 그립다. 열한 시가 다 되어 큰아이가 돌아왔다. 늦은 시간이지만 아이는 맛있게 밥을 먹었다. '내 사랑의 증표에 응답해준 아들 고맙다.' 나는 오랫동안 비워진 그릇들을 치우지 못한다. 박시윤 수필가

2018-01-30 00:05:00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땡감나무

포항 호미곶 내 작업실 앞에는 나이가 지긋한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사한 첫날, 마주 선 늙은 감나무는 왠지 기분을 좋게 하였다. 마음씨 좋은 이웃처럼 푸근한 느낌을 주었고, 슬며시 가을에 대한 달콤한 기대감도 갖게 하였다. 이듬해 봄이 되자 감나무는 일찌감치 연두색 순을 틔우더니 노란 꽃을 피웠다. 과연 감은 어떤 모습일까? 내 생각은 벌써 가을날 빨간 감에 가 있었다. 그런데 봄이 짙어지고 감이 달리면서 뭔가 조짐이 좋지 않아 보였다. 감이 굵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단감 모습과도 영 거리가 멀었다. 그야말로 쓸모없는, 돌감에 가까운 땡감이었다. 그래도 그늘은 좋겠거니 생각했는데 여름이 되었지만 그늘에 대한 시원함도 누릴 수가 없었다. 감나무는 자리 하나 펼 수도 없는 돌담 짬에 있었다. 돌덩이들이 거칠어서 발 디디기도 힘들었다. 더구나 숲 모기까지 잉잉대는 바람에 들어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감나무에 대한 즐거운 기대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오히려 가을이 되자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을 떨어뜨렸다. 잎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근처 텃밭까지 어지럽게 만들었다. 밉다고 하면 미운 짓을 찾아가며 한다는 말처럼 가지가 꺾어지고 나뭇잎이 떨어지면 고스란히 돌덩이 사이로 들어가서 그 일대는 늘 지저분했다. 청소를 해도 울퉁불퉁, 삐죽삐죽한 돌밭을 깨끗하게 치울 수는 없었다. 감나무를 다스리고, 매실나무를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봄에 활짝 피어나는 꽃도 좋지만 꽃 진 자리에 달릴 매실은 작업실을 더욱 밝게 할 것 같았다. 내친김에 담벼락을 따라 유실수를 여러 그루 심었다. 호두, 석류, 대추, 블루베리 등 종류별로 줄을 맞추어서 심었다. 그런데 호미곶은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손꼽을 정도였다. 바람에 적응하지 못한 이 나무들은 샛바람이라도 불고 나면 꽃은 고사하고 잎까지 새카맣게 말라버렸다. 다시 싹을 틔우고, 잎을 만들고, 열매 맺는 시늉만 하다가 가을을 맞았다. 그런데 땡감나무는 신기하게도 그 바람을 견디며 감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쓸데없는 일에 용쓰고 있는 것만 같아서 핀잔을 주곤 했다. 땡감나무는 나의 핀잔과 무시를 뚫고 작고 야문 열매들을 조롱조롱 매달고는 발갛게 익혔다. 겨울이 오고 작업실 창에 고드름이 달릴 무렵이었다. 감나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가슴을 열고 손님을 불렀다. 개구쟁이 참새, 목소리가 예쁜 박새, 깃털이 어여쁜 딱새, 수다쟁이 직박구리가 수시로 들락거리며 감을 먹었다. 감나무는 아무도 가져가지 못하도록 못난 감을 매달았다가 고이고이 익혀서는 배고픈 겨울새들을 위하여 마음껏 내어주고 있었다. 감나무는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쓸모의 기준을 나에게 맞추어 왔던 내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땡감나무! 세상에는 쓸모없이 존재하는 생명이 하나도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다. 김일광 동화작가

2018-01-23 00:05:00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겨울나무

칼바람 들어찬 대지 위로 시린 침묵이 자리를 튼다. 터를 나누어 뜨겁게 포옹하던 것들은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났다. 황량하게 비워진 들판, 쩡쩡쩡-저 끝단에서부터 대지는 말없이 얼고 터졌다. 나를 기억하던 잎들은 얼마나 아득한 세월 뒤로 흩어졌을까.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이제 잊어야 하나 보다. 나는 오늘도 언 땅에 버티고 서서 지독한 몸살을 앓는다. 순조롭게 뻗어가던 생장점 끝이 몹시도 시리다. 봄나물의 새순처럼 보드랍던 끝단조차 곁가지로 남아야 하는 계절은, 독한 진통제로도 막아낼 수 없는 잔인한 통증이었다. 인연은 그런 것이었다. 뿌리 끝부터 수액이 흐르던 봄날, 몸뚱어리마다 연둣빛 여린 잎 틔우고 도란도란 꽃잎 같은 속마음을 주었다. 그것은 내게 찾아온 행복이었고 삶이었다. 뙤약볕 강렬하던 한낮에 우리는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 낮잠을 청하곤 하였다. 이따금 새들이 찾아와 낮잠 속에서 맑게 우짖곤 하였다. 내가 꿈을 꿀 때마다 잎들은 '우리'라는 울타리를 치며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되었다. 살가운 체온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살아있음의 증거였다. 나는 산이 되고 싶었다. 나 혼자 산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곁가지들이 거추장스러웠다. 지독한 가뭄이 들던 계절, 나는 툭툭 인연을 털어냈다. 영원히 무성한 푸르름을 자랑하며 천지를 버티고 서서, 오직 혼자 이 대지의 주인으로 남고 싶었다. 그것이 내 젊음의 자존심이었으니까. 눈이 내린다. 투박하게 들어박힌 옹이들 위로 눈이 내린다. 한뎃잠에 언 몸을 녹여주려는 듯 눈은 나를 덮고 또 덮는다. 포근하다. 나른한 잠이 쏟아진다. 아득히 멀고도 먼 발아의 기억이 스친다. 척박하고 단단한 대지에 미미하게 뿌리내린 생장점 끝에 시원한 물이 감지되던 순간이 스친다. 비바람 몰아치는 중에도 힘껏 버티어낸 격동의 시간들이 움찔하다. 버티어낸 세월을 지날 때마다 동그랗게 그려지던 나이테가 뿌듯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마흔 개를 훌쩍 넘긴 나이테들. 곁가지 끝에 매달린 마른 잎새 위로 소복소복 눈이 쌓인다. 맞이하고 놓아주는 것도 때가 있던가. 마지막까지도 내 손을 놓지 않고 박제된 잎새에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 처연하게 매달린 잎새 위로 눈은 자꾸만 무게를 지운다. '신이시여, 제게 저당 잡힌 그의 영혼과 육신을 고이 내려 주소서. 수많은 날 동안 그의 기도는 제가 사는 것이었습니다. 부디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저 남은 잎새를 고이 내려 주소서.' 들녘에 겨울나무 한 그루 섰다. 얼고 터지는 고통을 버티어 내야만 더 푸르고 싱싱한 제 빛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저 들판의 나무는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삶은 이기는 것도, 가지는 것도 아니라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스스로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은 추한 것이 아니라 지혜라는 것을 오늘에야 깨닫는다. 나무, 한 생애의 삶이 얼마나 정직한가. 한 그루의 겨울나무 아래서 처연하게 일그러지고 있는 내 안의 자존심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 박시윤 수필가

2018-01-16 00:05:00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황금 아기들

외손녀를 돌봐주는 아내를 따라 딸네 집에서 새해를 맞았다. 올해 태어날 아이들은 특별히 황금 개띠라고 한다. 기사를 함께 보던 딸아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한마디했다. "제가 태어날 때는 무슨 개띠였어요?" "글쎄." 그러고 보니 36년 전 딸아이를 낳았을 때는 그런 말이 없었다. 온 사회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로 무장되어 있을 때였으니까 띠 앞에 수식어를 붙일 수도 없었다. 아기 낳는 게 마치 국가에 큰 짐을 지우는 것처럼 생각할 때였다. 출산을 막던 그때도 아이를 낳았는데, 요즘은 각종 혜택을 주는데도 아기 출산은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띠 앞에 복권 같은 행운의 말을 붙이는 게 아닐까. 붉은 닭, 황금 돼지, 청양 등, 사실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그 어떤 꾸밈말을 붙여도 아깝지 않은 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젊은 부부들은 아이 낳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취업이 늦어지고, 집값이 하늘처럼 뛰고, 자녀 교육비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더더욱 힘든 문제는 육아가 만만치 않다. 딸이 아기를 낳으면서 소위 말하는 기러기 할아버지가 된 지 2년이 넘었다. 손녀를 돌보느라 딸네 집에 머무는 아내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어서 결혼한 아들도 고맙게 아기를 얻었다. 1년을 사이에 두고 경사가 겹쳐졌다. 축복에 따른 기쁨만큼 육아는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돌이 지나면서 어린이집에서 아기들을 맡아주었다. 그러나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아내와 나는 양쪽 집을 오가며 손주를 거두어 주어야 했다. 이런 어려움을 알고 있는 젊은 부부들은 아이 낳을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신이 아직 인간 세상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신의 그런 희망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은 희망이 없다. 정부는 저출산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우리의 출산장려 정책은 아기를 당당하게 낳고, 안심하고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었다. 출산 결과에 이런저런 혜택을 주겠다는 지극히 형식적인 것이었다. 젊은 부부가 왜 출산을 망설이고, 많은 자녀를 갖지 못하는 걸까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이제 육아를 한 가정에 오롯이 맡겨두는 우리네 사회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육아는 우리 사회 공동의 몫이 되어야 한다. 당당하게 아기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직장 분위기 변화가 출산장려의 시작이다. '한 마을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아이 하나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의 격언이다. 그들의 지혜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황금 개띠, 새해가 밝았다. 생명을 어찌 황금에 비할 수 있을까마는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과 올해 태어날 아기들 모두 귀하디 귀한 대접을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김일광 동화작가

2018-01-09 00:05:00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떡국 한 그릇

아침놀이 동쪽 수평선을 물들인다. 사람들은 더디기만 한 해를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 차가운 바람 온몸으로 맞으며 지나간 시간과 어지러운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으리라.말간 이마를 내밀며 해가 돋는다. 동쪽의 섬을 지나, 바다를 건너, 빛은 뭍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든다. 수만 개로 분열하여 수만 명의 동공에서 살아 있는 해. 세상의 습하고 어두운 곳까지 파고들어 환하게 불을 밝힌다. 오늘을 기도하는 사람, 큰 목소리로 자신에게 '괜찮아!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 지금보다 조금 더 괜찮은 내일을 염원하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한 해를 소원하고 있다. 공허했던 날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어 나는 오래오래 해를 바라본다. 붉디붉은 빛이 내 안에 가득 채워졌으니 올 한 해 더는 시리지 않고 따뜻했으면 좋겠다.어린아이는 제 몫의 떡국을 앞에 놓고 방금 떠오른 햇살보다 더 환하게 웃는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에 쉴 새 없이 숟가락질을 해댄다. 두 그릇을 먹으면 두 살 더 먹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아이. 나도 아홉 살 무렵엔 정말 그런 줄만 알았다. 아이들은 먹은 떡국 그릇 수에 따라 나이를 셈했고 '내가 형이니, 네가 아우니' 하며 실랑이를 벌이다 누구 하나는 서럽게 울곤 했다. 아이들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른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였고,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걸 이루었다는 것과도 같았다. 어른이 되면 뭐든 다 가질 수 있고, 어디든 다 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지금 나는 얼마만큼의 어른이 되어 있는 걸까. 먹은 떡국 그릇 수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어른으로 잘 성장해 가고 있는 것일까.떡국은 새해 첫날 정갈한 마음으로 먹기에 제격의 음식이다. 옛날 설날은 태양이 새로 태어나는 날로 여겼다. 양의 기운이 새로 돋아나고, 깨끗한 기운이 질병을 막아주는 신성한 날이었다. 쌀이 귀했던 옛날엔 빚을 내서라도 귀한 쌀을 구해 가래떡을 만들었다. 떡을 길게 뽑아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망을 담아 떡국을 나눠 먹으면 한 해 동안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새해 하루만큼은 잘 먹어야 한 해 동안 배곯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방앗간 앞엔 불린 쌀 대야가 줄지어 있곤 했다. 반나절은 족히 기다려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래떡을 받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한 접시 덜어 시렁에 얹어 기도를 하셨고, 또 한 접시를 덜어 아버지 몫으로 내어 놓은 후에야 우리 4남매를 먹이셨다. 가래떡 한 줄씩 받아들고 설탕이며, 조청에 찍어 오래오래 아껴 먹곤 했는데 그날은 저녁밥을 걸러도 밤새 포만감으로 숨이 가쁘곤 했다.그러고 보니 우리는 모두 떡국으로 나이를 먹으며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다. 요즘에야 쌀도, 먹을 것도 흔하다지만 옛날 떡국은 새해 첫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얼고 녹기를 반복했던 이 땅 위에서, 덥고 시리기를 반복하는 우리의 허한 마음들에게 떡국 한 그릇으로 오래오래 배가 불렀으면 좋겠다.

2018-01-02 0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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