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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윤 수필가

[에세이 산책] 이내 가을이 기운다

새벽을 걷는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도시는 고요와 적막으로 젖었다. 나는 가로등 불빛을 피해 어두운 도시를 배회한다. 우러러 풍성했던 것들은 모두 바닥으로 내려와 뒹군다. 바스락이 말랐던 낙엽도 이슬에 젖어 무거워졌다. 어둠은 때론 가벼운 것을 무거워지게 한다.나는 목적할 수 없는 목적을 향해 어둠 속으로 몸을 민다. 스스로 어두운 것을 즐기니 나는 어둠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어둠과 내가 서로 합일을 도모하니 어둠을 모른다, 말할 수 없다. 감정의 과잉과 결핍 사이에 나는 어느 밤 국경을 넘어도 보고, 어느 계절과 깊은 통정도 해 보았으니 또 다른 어둠을 손꼽아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내가 뜬 눈으로 새벽을 걷는 일은 어둠이 가지는 어떤 습성 때문이다. 그것도 바싹 마른 어둠이 아니라 오래오래 눅눅해져 무거운 어둠. 나는 천 개의 메마른 생각보다 한 개의 눅눅한 느낌을 동경하고 갈망하니 이 물기 머금은 낙엽과 내 눈과 그리고 사방의 눅눅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몽롱한 의식으로 오래오래 바라본 날들은 이제 잠시 뒤로 물리고, 이 늦은 계절만이 지닌 눅눅한 어둠을 오래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동공 속에 서서히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것들. 내 의식 속에 저것은 어느 산이고, 저것은 어느 빌딩이고, 저것은 그 누구와 앉았던 나무 아래라는 것을 의식할 때, 나는 비로소 원치 않는 아침을 맞는다. 어두워서 더 많은 소리를 듣고, 더 많은 생각을 하고, 그것을 내가 통역할 때 어둠은 비로소 내가 되고 나는 어둠이 된다. 번잡한 도심의 새벽이 이토록 고요하고 차분한지를 새벽이 일러 주듯, 쇠락해가는 계절의 끝에서 나는 비로소 초연할 수 없는 어둠을 덥석 건져 올린다. 눈 끝으로 밀려오는 외로움과 허허로운 마음들을, 물러가는 계절만이 위로해 준다.내가 무모하게 새벽과 통정하는 일은 몽롱하게 밀려오는 어떤 허접스러운 의식이 아니라 결국 나를 찾아가는 오래된 순례이니 매일 새벽이면 나는 나를 깨워 거리로 내모는 것이다. 걸음마다 천 개의 손이 천 개의 이야기로 다가올 것이니, 나는 어두운 내면을 열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번안하고 통역할 것이다. 날이 밝고 나는 걸어갔던 길을 되돌아온다. 해가 뜨면 낙엽들은 더욱 바스락하게 말라 부서질 테고, 이내 가을은 홀연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국경도 없이 멀리 날아갈 것이다. 쇠락의 이야기를 나는 어떻게 통역할 것인가를 두고, 초연할 수 없어 오래오래 고민할 것이다.수필가

2018-11-12 10:22:03

김일광 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오징어 불배

오징어잡이 배 불빛이 눈부시다. 여러 해 동안 오징어가 앞바다로 내려오지 않으면서 어민들의 애를 태웠다. 그러나 다행히 올해는 그런대로 오징어가 잡힌단다. 바다로 낸 창에는 어김없이 불빛이 환하게 어렸다. 영일만 안까지 들어온 배들의 불빛에 마음까지 환해졌다. 예전처럼 수평선을 이을 만큼 진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밤바다를 환하게 밝히며 조업하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다.불빛에 이끌려 밤바다로 나갔다. 집집마다 덕장을 기대놓고 오징어를 말리고 있다. 피덕피덕 말라가는 오징어가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까꾸리개로 나간 김에 호미곶 자락을 걸었다. 오징어 배 불빛 덕에 밤길을 더듬대지도 않았다. 파도도 철썩대며 따라붙었다. 덩달아 걸음이 가벼워졌다. 호미곶 둘레길이 만들어지면서 해안을 따라 걷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저께는 걷기 축제까지 있었다. 사람 구경하기 힘들던 호미곶 길이 요즘 들어 찾는 발길이 부쩍 많아졌다. 이 길은 걷는 재미도 있지만 '호랑이 꼬리'라는 점에서 묘한 매력을 더해 주고 있다.우리에게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는 참 많다. 단군 신화에서 여인이 되고 싶어 환웅을 찾아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호랑이와, 호랑이 처녀를 사랑한 김현의 이야기는 참으로 애절하다. 그런가 하면 과부 호랑이가 성골 장군을 구해주고 그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호환이라는 무서운 기억이 있다. 호미곶 강사리에도 그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우리는 호랑이를 무서워하거나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친근하게 접근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DNA에는 호랑이가 무섭기보다 이웃처럼 친근한 심상으로 그려져 있는 게 분명하다.그래서일까. 옛이야기 곳곳에는 꼭 호랑이가 등장한다. 사람이 되려다가 탄로 나서 쫓겨나는, 힘을 과시하다가 혼이 나는, 토끼의 꾀에도 속을 만큼 어리석거나 혹은 익살스러운 우리 이웃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이웃으로, 때로는 귀신을 막아주는 액막이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호담지국(虎談之國)이라고 불렀다. 이는 우리에게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라고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들 자연스레 호미곶을 찾아 걷는 걸까.호랑이 꼬리에서 밤바다를 바라본다. 여전히 오징어 배 불빛이 밝다. 불빛과 어울려 가을 밤바다가 조화롭다. 그 배들을 지키는 등대가 말을 걸어온다. 파란빛이 호랑이 눈빛처럼 정겹다.동화작가

2018-11-05 10:25:15

박시윤 수필가

[에세이 산책] 가을이라서 그래

날이 맑아 시야가 멀어지고, 때로는 한 치 앞도 사라지는 안개의 날이 반복되는 계절이다. 집 안에 있으면 어떤 허허로움이랄까, 이유 모를 감정의 기복이 불안처럼 잠식한다. 불면의 밤이 찾아오고, 그 밤 한가운데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를 앞날을 걱정한다. 소란한 주변을 싫어했으나 불안은 종종 나를 인파 속으로 몰고 간다. 어떤 강연을 찾아 나서고 무기력하게 앉아 강연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행복하십니까?"라는 강연자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예"라고 대답하고는, 그것이 곧 행복을 세뇌당하며 살아온 자의 무의식의 대답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강연 내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중견 화가의 전시회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동안, 나는 몹시 쓸쓸했다. 우울함과 쓸쓸함의 극치에서도 나는 왜 그토록 그런 느낌들에 강한 동질감과 희열을 느꼈을까. 우리는 왜 마음껏 쓸쓸하면 안 되는지, 우리는 왜 마음껏 외로워하면 안 되는지. 어떤 불경스러운 마음을 가진 것처럼.거리는 온통 쓸쓸함뿐이고, 어떤 고독들은 꿈을 꾼 것처럼 일순간 밀려왔다 밀려난다. 지나가다 들은 말은 쉽게 상처가 되고,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너무 더딘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몸서리치도록 어떤 인연을 증오해 보았거나, 어떤 사람을 외면해 보았거나, 어떤 사랑을 훔쳐보았거나, 자학의 날들이 많아지거나. 마치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지을 때, 나는 내 안의 차갑디차가운 이중성에 놀라곤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정갈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어떻게든 매일 인연을 엮고 있다는 것이다.돋아나는 마음들은 늘 새싹 같아서 또 다가서고 다가서는 것이다. 한번 베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누군가와 인연을 엮고, 머지않아 미련 없이 서로 흩어져버리는 것이다. 어느 날, 저 메마른 씨방이 열리고 씨앗들이 와르르 쏟아져 다음 생을 또 잇겠지만 메마른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씨앗을 틔워 하얀 아스타가 피고, 하얀 쑥부쟁이가 피고, 하얀 개망초, 하얀 프록스, 하얀 코스모스, 하얀 부추꽃이 노지에 마구마구 피는데, 쓸쓸한 마음들은 저 하얗디하얀 꽃밭에서도 그저 쓸쓸함만 보는 것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서 왜 과잉된 열정을 누르지 못하고 환멸, 권태, 좌절, 절망의 단어들을 떠올리는 것일까.목화같이 따뜻하게 풀어진 억새 숲에서 마지막 힘을 다해 씨앗을 날려 보내는 열정의 노래를 들으며 쓸쓸함 또한 곧 사라질 감정이라는 걸 세뇌하는 중이다.비워진 들판에 이제 곧 긴 겨울이 닥치리라.

2018-10-29 10:17:31

[에세이 산책] 우리들의 축제

주말마다 축제다. 마침 작업실에서 나오는 길에 축제가 있다는 면민운동장으로 가 보았다. 한데 어울려야 할 축제가 왠지 연출자와 구경꾼이 나누어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축제 마당을 둘러보면서 여행 중에 만났던 한 도시를 떠올렸다. 찾아간 그날도 마침 축제일이었다. 작은 시골 도시 페르덴을 만든 알러강은 크지 않았다. 형산강보다 훨씬 작았다. 그러나 그 강을 따라 펼쳐진 숲과 들녘은 정말 탐이 났다. 해 질 무렵, 말 등에 앉아서 강가를 거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동화의 장치들이었다. 그들이 바로 백조의 왕자였으며, 착한 한스였다. 이 도시의 중심 번화가는 보행자 전용도로였다. 포항의 중앙상가와 비슷하였다. 성장을 하고 차분하게 앉아 있는 아가씨를 보는 듯하였다.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축제를 위하여 준비된 배우처럼 그 자리에 꼭 어울렸다. 그만큼 연출되지 않은 축제였다.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곳에는 전통문화에 그 기원과 뿌리를 둔 축제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종교적인 의미보다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장이 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우리'라는 통합적 개념보다는 '나'라는 해체적 개념 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를 회복하고 구성원의 동질성과 정체성을 확인하려면 문화적 기제로서 축제의 활용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페르덴 사람들은 바로 그런 축제를 만들어 대대로 이어온 자신들의 원형, 바로 그 동화의 세계를 지켜가고 있었다.여행 생각에서 벗어나 어릴 때 보았던 우리 마을 놀이를 떠올렸다. 벼를 베 낸 넓은 논배미에다 대나무 기둥을 박고 얼기설기 무대를 만들었다. 아마 농사일을 끝낸 뒤에 노동의 피로감과 일제 수탈에 대한 분노를 떨쳐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힘으로 경쟁하던 경기가 어느 정도 지칠 때면 무대에서 노래자랑이 펼쳐졌다.그런 마을 고유의 전통과 일제에 대한 저항과 단합이라는 정신에 따라 펼쳐지던 마을 놀이는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말았다. 자연 부락이라는 공동체 인식이 사라지면서 마을 놀이 문화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새로 등장했다는 축제마저 특산품 판매장터로 변하고 말았다.축제에서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는 얼굴을 만났다. 점심 전에 왔다면 점심밥까지 제공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러고는 본부석으로 달려가더니 기념품까지 안겨 주었다.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가 횡재한 셈이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축제 모습이 아쉽기만 했다.동화작가

2018-10-22 10:22:56

박시윤 수필가

[에세이 산책] 가을에는 연서

그냥 참 좋았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그림자가 되어 뒤를 따라 걷고 있을 때, 당신은 모르는 척 혼자 걸었습니다. 가을볕 가득히 떨어지던 그 교정, 그 나무. 그늘을 키우던 나무 아래서 우리는 그저 까르르 웃음을 키웠고, 꿈도 키웠습니다. 당신은 그런 우리를 그저 모르는 척하셨지요.옛날이야기군요. 시간은 어느덧 이토록 멀리 와 버렸네요. 이제야 고백하지만 그때 우리들은 온 밤을 숱하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설익은 시절이었다고 말씀하신다면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저무는 거리를 걸을 때, 깊은 새벽에 잠에서 깨었을 때, 혹은 어느 성악가의 노래를 들을 때, 가을볕 내리는 어느 교정에 서 있을 때, 당신이 문득문득 떠올랐습니다. 오늘처럼 노을이 짙거나 혹은 청명하게 맑은 날엔 누군가에게 연서를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는 바람에 띄우고 싶습니다. 시간 지나고 나면 설령 이런 감정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할지라도 꼭 한 번은 그래 보고 싶습니다. 저무는 거리를 바라보며 어느 찻집 구석에 앉아 누군가가 읊어주는 시도 듣고 싶습니다.어느 시절, 내가 그토록 즐겨 읽던 시집의 한 페이지에 집을 짓고 있는 당신. 그 페이지에서 나는 영원히 살고 있으니, 기록된 시처럼 당신은 허공의 연인 되어 영원히 내 가슴에 살고 계십니다. 나는 매 순간 세상의 언어를 엮어 그대에게 화답하고 싶으나 아직은 내 언어 한없이 서툴러 그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계절이 무르익는 오늘, 가을볕 쏟아지는 교정에서 조금은 어색해도 좋으니 뒤돌아보지 않는 그대를 따라 나도 걷고 싶습니다. 행여 우리 눈이 마주친다면 내가 먼저 수줍어 고개부터 숙일지 모르나, 꼭 한 번은 그리해 보고 싶습니다.바라건대, 내가 그대를 연모하는 마음, 평생 그대는 알지 못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들꽃 흐드러지게 피는 금오지 둑길 다시 걸으며,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나는 차마 고백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우리들의 여고시절은 고백하지 못해 더 아름다웠습니다. 누군가의 뒤에서 연모하는 마음으로 따라 걷는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설령 설익은 사랑이었다 할지라도 그때는 최선이었고, 실로 어마어마한 떨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살면서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다는 건 아름다운 일입니다.지금도 계절은 깊어지고 있고, 심연 깊은 곳에서부터 설렘이 일어납니다. 운동장 저만치에 꼭 당신이 서 있을 것만 같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못한 이 말, 그저 당신이어서 그랬습니다.

2018-10-15 10:19:19

김일광 동화작가

[에세이산책] 고구마 추수

고구마를 캤다.봄날, 읍내 장에서 모종 한 단을 샀다. 모종 파는 젊은이는 말끝마다 "아버지요!"라며 살갑게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 모종은 꼭 그 젊은이에게 샀다. 그런데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그는 모종을 팔면서 키우는 방법까지 일러주었다. "심은 지 100일 뒤에 캐세요. 더 두면 심이 생겨요. 일찍 캐면 전분 형성이 되지 않아서 당도가 떨어진답니다." 흙 만지는 재미로 농사를 하는 나는 그의 가르침이 다디단 지식이었다. 모종 심은 날에서 100일 뒤에 다가올 날짜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두었다.오랜만에 찾아온 손주들과 고구마 밭에 들어갔다. 손주들에게 구경시키려고 동그라미 날짜를 조금 미루어 두었다. 푸른 잎과 줄기가 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비료와 농약을 한 번도 주지 않았는데도 잘 자라 주었다. 양파 사이에 심었는데 자리 탓인지, 양파 세력에 눌려서인지 처음에는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자람이 무척 더디었다. 양파를 뽑아내고 난 뒤에는 그나마 제자리를 잡는 듯했으나 이어진 무더위 탓에 낮이면 비실비실 마르기까지 했다. 새 잎과 줄기를 만들어 뻗어나가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일은 해 질 무렵에 물이나 뿌려주는 게 고작이었다. 다행히 더위가 숙지막할 무렵부터 뒤늦게 힘을 얻은 고구마는 쑥쑥 자라서 밭을 덮었다. 그런 게 불과 한 달여를 지났을까. 100일이 되었다.그 한 달여 만에 땅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땅을 헤집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팔뚝만 한 고구마들이 마치 꺼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불쑥불쑥 드러냈다. 걸음마를 막 벗어난 손주들은 하나씩 들고 낑낑대며 날랐다. 한 포기를 캐낼 때마다 환호가 이어졌다. 그야말로 울퉁불퉁, 제멋대로 생긴 놈들이 땅 위로 올라왔다. 손주들의 '우와! 우와!' 내지르는 환호와 어울려 텃밭은 온통 축제를 연출하였다.달게 먹었던 고구마가 땅에서 올라온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손주 녀석들은 여전히 고구마를 하나씩 껴안고 깔깔댔다. 새삼스럽게 고구마처럼 훌쩍 커버린 손주들의 모습이 다가왔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이런 기쁨과 행복감을 주다니 놀랍고 신기했다. 모든 생명의 변화가 바로 신비라는 사실이 크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게 아니었다. 하늘과 햇살과 땅, 그 속을 흐르는 물과 그 위를 떠도는 맑은 공기가 뭇 생명을 끊임없이 도와주고 있었다. 자연이 내미는 손길이었다. 세상이라는 소쿠리에 가득한 생명의 신비가 놀라웠다.

2018-10-08 11:19:08

박시윤 수필가

[에세이산책] 노인의 숲

오래된 나무가 있다. 가파른 둔덕 구석에 서 있는 나무. 요즘은 가던 길 멈추고 나무를 올려다보게 된다. 무질서한 듯 질서를 지키며 뻗은 가지들, 가지들을 따라 질서를 지키며 돋아난 잎들. 더위가 온 도시를 휘덮던 지난여름, 숨통 옥죄는 더위를 이기지 못해 밤낮을 에어컨으로 견딜 때, 나무는 말없이 제 몸만큼의 넓고 깊은 그늘을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나무가 거기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고 있었다. 노인들이 돗자리를 깔고 장기를 두고 있었다. 고요한 한낮에 딱, 딱, 딱, 장기 두는 소리만 더디게 들렸다. "장 받으시게." 노인의 음성이 제법 격조 있게 들렸다. 돗자리 밖에 가지런히 벗어 놓은 신발과 지팡이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늘은 놀이터 가는 길목 그 어디쯤에서 나와 마주쳤다.가을 초입, 그늘 아래 낯선 의자가 하나 놓였다. 하루가 지나니 또 하나의 의자가 더해졌다. 며칠이 지나니 의자는 네댓 개가 되어있었다. 모양도 높이도 모두 제각각이고, 흠집이 나거나 색깔이 벗겨진 오래된 것들이었다. 의자는 거기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 비어 있는 듯했으나 그늘이 넓어지는 오후 무렵이면 노인들은 성치 않은 걸음으로 의자를 찾아오곤 했다.오래된 나무 아래 낡은 의자들이 있고, 노인들이 앉아 있다. 살아온 시간을 구경하듯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엔 때론 쓸쓸하고 적막함이 묻어 있다. 명절에 다녀간 자식들은 다음 명절이 되어야 온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노인은 습관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아이들이 놀이터로 가는 모습을 보며 내 손자 남의 손자 가리지 않고 그저 "예쁘다, 예쁘다" 할 것이고, "몇 살이니? 밥은 묵었나?" 살펴줄 것이고, "엄마, 아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착한 어린이 되거라" 다독여 주시리라. 바람에 묻어 가는 그 말씀 매일매일 듣고 또 들으며, 내 아이는 그 말씀들 가슴에 품고 저도 모르게 예쁘고 착하게 자라날 것이라 믿는다.나는 가만히 노인들이 떠난 빈 의자에 앉는다. 스치는 바람은 맑고, 시간은 고요하며, 주변은 적막하며, 그리하여 지나간 기억은 더 또렷해져서 그리워진다. 모든 것은 순간이 아닐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청춘도 소리 없이 저물 것이고, 언젠가는 내 걸음도 느려지고 둔해지겠지. 걸음이 느려지는 동안 내 모든 것은 또 얼마나 더뎌질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오래된 나무는 알고 있으리. 늙는다는 것은 더디고 낡은 것이 아니라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것을 이 의자는 알고 있으리.

2018-10-01 11:24:46

김일광 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그립다

문화원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회의가 주제와는 달리 구도심 재생 문제로 흘러갔다. 누군가가 옛 지도를 만들어서 이를 오늘날 도시 위에 얹어 보는 작업에서 도심 재생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도심 재생에는 옛 모습과 이야기를 찾아가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었다.포항의 옛 모습은 어땠을까. 불과 몇 년 전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버렸다. 발전이라는 명분 앞에 모든 게 다 사라진 꼴이었다. 씁쓸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오랜만에 형산강 둑길을 걸으며 옛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친구들과 내달리던 들과 강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형산강은 양산목을 지나 영일만과 만나면서 넓고 기름진 삼각주를 만들었다. 상도, 하도, 분도, 죽도, 해도 다섯 마을이 생겨났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중섬과 안터라는 마을이 더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일곱 개 마을인 셈이다. 마을 어른들은 칠성강 이름이 달리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하늘의 별처럼 곱고 아름다운 섬 일곱을 품고 흐른다고 칠성강이라고 했단다. 섬안들을 흐르던 모든 물줄기가 칠성강이었던 셈이다.하늘의 별 같았던 섬안 마을. 곳곳이 둠벙이었으며, 샛강이었다. 샛강과 둠벙에는 물풀 사이에 알을 붙이는 가물치, 메기가 넘쳐 났다. 뜸닭이라고 불렀던 뜸부기가 알 품는 모습을 훔쳐보는 일은 일상이었다. 오리정에서 섬안들을 가로지르는 신작로를 걷다 보면 해도 쪽은 온통 푸른 갈대밭이었다. 갈대밭에 집을 짓고 살던 개개비와 도요새는 그야말로 지천이었다. 갈대 홰기가 올라오면 이를 지키려고 원두막이 곳곳에 설치되었다. 홰기는 빗자루로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귀한 취급을 받았다.이렇듯 형제산을 지나온 물줄기가 영일만에서 만나 포항이라는 터전을 만들었다. 섬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만든 마을이 섬안이었으며, 들은 섬안들이었다. 봄이면 물안개 피어나던 형산강, 칠성강, 샛강과 수많은 둠벙, 여름이면 서걱대던 갈대숲과 물새들, 가을이면 오곡 넘실대던 들녘. 벼 익는 색깔만큼이나 평화롭고 풍요롭기만 했던 시간이고 공간이었다.포항 근대교육도 섬안에서 비롯되었다. 호상학교, 민족교육을 지향했던 이 학교는 1909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었으나 그 건물은 1970년대까지도 남아 있었다. 우리들은 그 집을 '꽃밭집'이라고 부르며 개구멍을 뚫고 드나들었다. 여름 한철을 환하게 밝혀주던 배롱나무 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이제는 그 모든 게 사라져 버렸다. 눈 깜박할 사이에. 아, 그립고, 그립다.

2018-09-17 10:17:48

수필가 박시윤

[에세이 산책] 봉숭아

섬마을 외딴집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붉은 양철 지붕은 참 요란하였지요. 빗소리에 밤새 잠을 설치고, 다음 날 비가 그치면 방문을 활짝 열었어요. 시야를 멀리 뻗으면 파도 소리와 보이는 건 망망대해뿐이었어요. 큰 바다와 집 사이에 자그마한 폐교가 있었어요. 온통 잡초가 자리를 튼 운동장을 나는 천천히 걷곤 했죠. 녹슨 그네며, 화단이며, 뒤란이며 구석구석 살피는 걸 즐겨 했지요. 주인 없는 고양이가 뒤란 어느 틈에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비에 젖은 유기견이 바들바들 떨며 나를 경계하다 달아났죠. 나는 종종 개에게 먹을 것을 덜어주곤 했지요. 나는 알아요. 그 개가 내 집 앞을 서성이다 가곤 했다는 걸요. 화단에서 만나는 꽃들은 참 반가웠습니다. 기름지게 핀 수국이며, 해국이며, 과꽃, 채송화가 앞다투어 피고 졌습니다. 돌배가 혼자 주렁주렁 열리고, 버찌 열매는 흑비둘기가 수시로 날아와 먹고 갔습니다. 나는 가족이 그리울 때면 더 자주 폐교를 서성였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봉숭아였습니다. 여름이 떠나갈 이맘때쯤 봉숭아는 그리움, 그 자체였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 집 마당에, 옆집 마당에, 건넛마을 집집마다 마당에, 내 발길 닿는 곳곳마다 피어 있던 그 봉숭아입니다. 나는 섬에서 봉숭아를 보며 육지를 그리워했고, 그리고 지금 봉숭아를 보며 육지에서 다시 섬을 그리워합니다. 흙 한 줌 없는 이 삭막한 도심의 집에서 섬 기슭 빨간 양철 지붕 그 집을 그리워합니다. 봉숭아 몇 닢 따다 곱게 짓이겨 손톱 위에 올려놓고, 풀 냄새 속에 고향을 그리워하고, 청춘의 도심을 그리워하고, 그리고 마흔의 섬을 그리워하고, 여리기만 했던 지나간 모든 시간을 그리워합니다. 봉숭아는 그리움의 꽃일까요? 고려시대 충선왕(忠宣王)이 몽골에 끌려갔을 때, 함께 간 시녀가 조국을 그리워하며 봉숭아물을 들인 것을 보고, 마음을 다스리며 견뎠다 합니다. 짓이겨 쥐어 짜낸 그 새빨간 꽃물을 작은 손톱에 올려 두고 내 유년은 참 곱게도 부유했지요. 더 바랄 것도 없던 딱 그만큼의 행복이 봉숭아 꽃물 발갛게 든 작은 손톱 위에 오래오래 머물렀다는 걸 기억합니다. 스물이 되던 해엔 새하얀 첫사랑을 기다리며 오지도 않을 누군가를 뜨겁게 기다려도 보았지요. 봉숭아 꽃물을 들인 사람을 만날 때면 어떤 그리움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반가웠지요. 어느 집 화단에 봉숭아가 피었기에 몇 송이 얻어서 돌아온 저녁입니다. 곱게 찧어 손톱 위에 올려 두고 밤새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할 참입니다.

2018-09-10 10:10:55

김일광 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나들이

영양으로 나들이를 떠났다.몇 년 전부터 아내는 영양 현지에 가서 고춧가루를 구입하였다. 식품만큼은 믿을 수 있는 것을 구하려는 아내의 고집에서 비롯되었지만 나는 시골 풍광과 공기를 마시는 즐거움에 기꺼이 따라나섰다. 그곳 산채 정식도 맛있고, 외씨버선길이라는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서 아내와 느긋하게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아내가 굳이 먼 길, 영양으로 향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듯했다.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현지 상품을 구하기 위한 나들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고춧가루를 산 뒤에 특판장 뜰에서 쉴 때 아내는 고춧가루보다 판매원의 친절을 입에 올리곤 했다.지금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말았는데 올해는 아내의 그 말과 흐뭇해하는 표정이 떠올라서 넌지시 판매원과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손님이 아니라 마치 친언니를 대하듯 조곤조곤 상품을 설명하는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남 같지 않았다. 지난해보다 가격이 올랐다며 안타까워하며 설명하는 모습은 오른 가격을 잊게 했다. 아내는 고춧가루보다 친절이라는 보너스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물론 고춧가루의 품질도 믿을 수 있지만 아내의 발걸음을 수년째 영양으로 향하게 한 것은 바로 그 친절이었다.외씨버선길을 쉬엄쉬엄, 느릿느릿 걸어보라는 말을 미련처럼 남겨 놓고 읍내로 들어갔다.시골 식당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싶었다. 약간 짭조름하지만 맛깔스러운 묵나물 반찬을 곁들인 시골 인심을 먹고 싶었다. 차를 몰면서 아내에게 맛집 검색을 재촉했다. 군청 옆에 좋은 집이 있단다. 일단 관공서 옆이면 깨끗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살기 좋은 세상이다. 맛집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가는 길까지 안내를 맡아주었다.'휴대전화 없던 시대에는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었다. 그때도 사람살이는 똑같았던 것 같다. 오히려 길을 모르면 내려서 물어보고, 손가락으로 일러주고, 조금만 가면 된다고 용기를 주며 살았다. 어떻게 보면 요즘은 사람보다 기계에 의지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해졌다.그래도 시골 밥상이 주는 인심은 살아 있었다. 밥맛도 좋았다. 일을 하는 분들이 모두 이주여성이었다. 그런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그들의 손길에도 이미 우리네 시골 맛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친절 한 자루 사러 다닌 거 맞지?' 아내는 대답대신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 사람살이란 게 바로 이 맛이 아닐까.동화작가

2018-09-03 10:12:18

박시윤 수필가

[에세이 산책] 서정의 밤

가끔은 막차를 타고 오래된 마을로 가고 싶다. 구불텅한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외딴 마을 칠흑의 밤이 나를 기다리고, 나는 그 마을로 가는 마지막 버스의 마지막 승객이고 싶다. 종점, 인가의 불빛이 드물게 있는 그곳으로 가 깊고 오래된 잠을 청하고 싶다. 마을엔 인기척조차 귀해서, 나를 맞이하는 건 조금은 쌀쌀한 밤공기가 전부이리. 나는 달빛 환히 비추는 오솔길을 따라, 소쩍새 울음소리 들으며 어느 외딴집으로 갈 것이고, 대문이 없는 그 집 삽짝에 서서 아주 익숙한 듯 노파를 부르리. 낯선 인기척에 개들이 먼저 짖어댈 것이고, 그제야 초저녁잠 곤히 청하던 노파는 방문을 열고 삽짝을 살피리. "뉜교?" 나는 노파에게 염치없이 하룻밤을 청해볼 참이다. 노파가 골방을 허락하면 나는 그 방의 주인이라도 된 듯 당당히 방 안으로 몸을 밀어 넣을 것이고, 조금 더 염치없는 부탁으로 늦은 저녁을 얻어먹을 것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노파의 이야기를 들으리. 자식들 외지로 다 떠나고, 영감마저 세상을 버린 뒤, 혼자 오막살이 지키고 있다는 노파의 이야기는 이 세상 든든히 지키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어머니의 이야기로 남으리. 나는 어느새 노파와 마주 앉아 오래된 본능으로 밤을 지새우리. 호박이며, 노각이며, 호박잎이며, 고구마 줄기며…. 저 푸성귀, 어느 도회지 젊은 새댁네 저녁상에 오를까. 날이 밝으면 노파는 첫차를 타고 푸성귀를 팔러 장에 갈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시장 한 귀퉁이에 난전을 깔고 이 예쁜 것들을 보기 좋게 내어놓고 흥정을 기다릴 것이다.늦은 밤, 방 안은 온통 나 닮은 추억으로 가득하리. 사랑과 믿음이 설렘으로 얼룩졌던 내 청춘이 시작될 무렵, 나를 비추던 저 백열등은 얼마나 환희에 찼던가. 인연 다한 사랑에 아파할 무렵, 저 문풍지 사이로 시린 바람은 또 얼마나 무수히 드나들었던가. 저 앉은뱅이책상에서 이 집 딸은 오늘 나처럼 잠들지 못한 밤을 수도 없이 쓰고, 지웠을 것이다. 오래된 마을에는 오래된 밤이 살아서, 낯선 객이 와도 마다 않을 늙은 어머니가 아직도 살 것만 같고, 나는 그 어머니의 오래된 기억에서 또 다른 딸이 되고 싶다. 나는 평생, 낯설지 않은 것들에게 오래된 기억을 떠올릴 것이고, 그 기억들에 대해 몸서리치던 또 다른 기억을 더듬을 것만 같다. 푸르스름하게 달려오는 저 새벽녘에서 어젯밤의 객기들이 부끄러워질 때면,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 집을 빠져나와 물안개 피는 들판을 지나 첫차를 타리.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을 살아가리.수필가

2018-08-27 10:07:22

김일광 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헌책

배롱나무꽃이 참 예쁘다.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싱겁게도 나무 둥치를 간질여 보았다. 가지 끝이 약간 간지럼을 타는 것 같았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그 반응이 맞다고, 아니 그렇게 느꼈을 따름이라고' 혼자서 티격태격해 본다. 멀지 않은 곳, 구룡포 아라장터 구경 나선 길에 배롱나무꽃에 그만 마음을 빼앗겼다. 하기야 바쁜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와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었다. 걸음을 바쁘게 옮겨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아라장터, 벼룩시장. 올망졸망한 상품들이 장터 가장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좌판에 나와 앉은 물건들 얼굴이 모두 선하다. 직접 만든 액세서리, 향초, 수예, 헌 옷가지 등등.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돌고 손이 갔다. 만져보고 놓고, 들어보고 다시 놓고. 참 예쁘다. 사지 않는 게 미안해질 때쯤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 나타났다. 무료란다. 그 앞에서 우연히 아는 분을 만났다. 장바닥에 나란히 서서 찻잔을 든 채 그동안 안부를 나누었다. 시골 인심이 차만큼이나 맛깔스럽다. 뭔가를 사야 할 텐데 하면서 돌아보는데 한쪽 구석에 책이 쌓여 있었다. 헌책이 까치발을 하고는 손짓을 하였다. 다른 곳과는 달리 지키는 사람은 없고 책만이 삐쭉거리며 앉아 있었다. 헌책을 사러 오는 사람이 없으니까 주인마저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한 권을 골랐다. 책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주인이 알아채 주기를 기다리는데 저만큼에서 주인이 달려왔다. 책값을 물으니 엄청나게 싸다. 새 책값의 반의반도 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훑어봐도 새 책과 다를 바 없었다. 그냥 한 권만 사고 말기에는 덤을 마다하는 것만 같았다. 다시 책들을 골라보았다. 볼 만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세 권을 골랐다. 새 책 한 권 값도 채 되지 않았다. 마치 횡재한 기분이었다. 가슴 뿌듯하게 안겨오는 행복감. 책을 사고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책은 읽지 않아도 사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변화시킨다.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려 본다. 선뜻 믿어지지는 않지만 그럴싸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책을 꽂을 곳이 없었다. 책꽂이마다 꽉꽉 찼다. 한쪽에는 책들이 아예 몇 겹으로 누워 있다. 장서가는 결코 아니지만 사 모은 책이 집 안에 차고 넘친다. 아내는 보지 않거나 다 본 책은 좀 버리자고 잔소리다. 그런데 버릴 수가 없다. 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아라장터에서 사온 책을 책상 위에 눕혀 놓는다. 책이 참 예쁘다.

2018-08-20 11:09:49

박시윤 수필가

[에세이 산책] 한여름 밤

옆집 뒤란을 지나면 큰 우물이 있었다. 두레박을 내려 휘휘 저으면 저 깊은 곳에서 시원한 물이 한가득 올라왔다. 찰랑거리는 물을 꿀꺽꿀꺽 마시면 아무리 땡볕의 더위도 시원하게 느껴지곤 했다. 마을 사람들은 우물에 수호신이 살고 있는데, 물을 낭비하거나 우물을 더럽히면 신이 노하여 마을에 궂은일을 내릴 거라 믿었다. 옆집 상 할머니는 어린 내가 우물에 드나드는 게 영 못 미더웠던지, 해가 지면 신이 짐승이나 사람으로 둔갑하여 나만 한 아이를 잡아간다고 했다. 나는 상 할머니의 말을 찰떡같이 믿었으므로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물을 길어 물두멍을 채워야 했다. 늦게 귀가하신 아버지는 짐승들의 여물을 챙긴 뒤, 마당 구석에 쑥대'익모초 말린 것들과 추진 풀 몇 아름 얹어 모깃불을 놓으셨다. 연기는 바람이 통하는 어디든 들락거렸는데, 그럴 때면 온 집안에 쑥뜸을 놓은 듯 목구멍이 칼칼하고 눈이 매웠다. 갓 지은 보리밥을 고봉으로 푸고, 된장'호박'풋고추만 성글게 썰어 넣어 끓인 된장찌개와, 텃밭에서 갓 따온 가지를 쪄 만든 냉국과, 푸성귀 한 움큼 숭숭 썰어 간장'마늘'고춧가루에 참기름 한 방울 대충 버무린 나물무침으로 차린 밥상은 허기를 달래기에 더없는 만찬이었다. 마당 한가운데 평상을 놓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면 누렁이도 입맛을 다셨다. 어디서 왔는지 두꺼비도 두어 마리 와 있곤 했다. 누가 온들 한 숟가락 밥이 아까우랴. 우리는 곧잘 밥덩이를 짐승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담장이 없는 우리 집은 한없이 너그러웠으며 마당에 발 들이는 생명은 다 한 식구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서로 나눠 먹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금방 밥상을 물리고도 허기진 시절이었다. 갓 쪄낸 감자와 옥수수를 먹으며 온 저녁을 재잘대다 눈꺼풀이 풀리면 평상 위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잠이 들었다. 밤이슬에 이불이 눅눅해질 무렵, 부풀어 오른 오줌보를 어찌하지 못해 그만 스르르 흘려버린 그 따뜻하고도 민망한 액체에 놀라 눈을 떴다. 하늘엔 무수히 많은 별과 환한 달이 밤새 나를 비추고 있었다. 밝아서 더 민망해지는 시간, 아랫도리를 수습하기 위해 슬그머니 마당을 나섰다. 우물이 있는 곳은 이상하리만큼 달빛도 별빛도 미치지 못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함 속에 풀벌레 소리는 등골마저 서늘하게 했다. 보이지 않아 더욱 선명해지는 건 상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결국 우물에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고 돌아서던 내 유년의 여름밤은,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왜 그렇게도 서늘하기만 했던 것일까.

2018-08-13 10:15:16

김일광 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부채바람

이른 아침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집 에어컨이 고장인데 수리 기사가 일주일 뒤에나 올 수 있단다. 그간 어머니를 에어컨 있는 집으로 모시자고 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침 시간 급한 일을 서둘렀다.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애프터서비스(AS) 요청이 폭주한다지만 일주일을 기다리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구나 설치한 지 겨우 2년 된 제품이 고장이라니 슬그머니 화가 났다. 오전 11시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찜통이었다. 승용차까지 가는 사이에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머니가 벌써 인기척을 느끼고 마루로 나오셨다. 에어컨 고칠 동안 우리 집으로 가자는 말을 꺼냈다. 내 말에 어머니는 오히려 의아한 얼굴을 하셨다. 무슨 소리냐고 선풍기도 없이 이보다 더 더운 시절을 지내왔다면서 고개를 저으셨다. 그래도 이번 더위는 예전보다 더우며, 오래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선풍기가 두 대나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웃으셨다. 그러고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뙤약볕 아래에서 밭을 매던 이야기며, 해 어스름에 돌아와서는 마당에 멍석을 내놓고 매운 모깃불 곁에서 저녁을 먹던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하루 종일 밭 자락에 버티시다가 돌아와서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가족들 저녁을 챙기시느라 더위를 더위로 느낄 새도 없었단다. 그때도 더위는 마찬가지였지만 가족이 부채 바람 하나로 너끈히 더위를 쫓을 수 있었다고 하셨다. 특히 우리 집에는 호박 농사를 많이 지어서 여름 내내 호박죽을 먹어야 했다. 우리 형제는 식은 호박죽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호박죽 한 그릇을 남겨서 뒤뜰 장독 위에 얹어 두셨다. 우리 형제들은 둠벙에서 목물로 더위를 쫓고 와서는 장독에 얹힌 호박죽을 밤참으로 먹곤 했다. 어머니는 이튿날 아침, 비워진 그릇을 보는 게 그렇게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여름이면 그 생각으로 더위를 쫓는다고 하셨다. 에어컨 고장으로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러 갔다가 오히려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옛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 나는 어머니에게 한 번 더 졸랐다. 그러면서 수리기사의 늑장을 짜증스럽게 나무랐다. 어머니가 나를 보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너무 나무라지 마라, 이 더운 날 이집 저집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겠냐. 그 사람도 누구네 집 자식일 텐데." 어머니의 그 말씀 끝에 예전 그 부채 바람이 지나갔다. 더위가 더위로 느껴지지 않았다.

2018-08-06 10:13:36

박시윤 수필가

[에세이 산책] 소나기

연일 폭염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습니다. 가로수도 지쳤는지 잎사귀가 죄다 늘어집니다. 살수차가 도로에 연신 물을 뿌려 대지만 달아오른 지열을 식히기엔 역부족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얼굴이 빨갛습니다. 찬물 샤워를 하고, 얼음과자를 먹고, 냉방기 바람을 쐰 후에야 살 것 같다 합니다. 이럴 때 소나기라도 한차례 쏟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소나기를 기다리는 것 비단 저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테지요. 소나기는 언제나 반가운 존재였습니다. 바싹 마른 황톳길 위로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면 풀숲에서 메뚜기도, 개구리도 놀라 팔딱팔딱 뛰어나왔습니다. 개미의 행렬은 아수라장이 되지만 금방 대열을 가다듬습니다. 잠자리들은 젖은 날개가 무거워 옥수수 대궁이든 빨랫줄이든 몸을 내립니다. 강가에서 풀을 뜯던 소들은 그 먼 길을 더듬어 혼자 집을 찾아오곤 했지요. "비 온데이, 빨래 걷어래이." 이웃집 상 할머니의 목소리가 소나기만큼 다급합니다. 어린 나는 잽싸게 빨래를 걷고, 농기구도 처마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는 마루에 앉아 소나기가 내리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합니다. 학교가 파할 무렵 언니와 오빠를 마중하기 위해 주섬주섬 우산을 챙깁니다. 잠을 자는 동생을 두고 갈 수 없어 깨웁니다. 나는 커다란 우산을 활짝 펼칩니다. 꿈을 찾아 떠나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우리는 비장한 모습으로 삽짝을 나섭니다. 후드득후드득~.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겁나게 좋습니다.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가 줄 것만 같습니다. 점점 거세지는 비바람에 우산이 사방으로 흔들립니다. 우리는 더 세게 우산대를 움켜잡고 고인 물을 첨벙첨벙 튀기며 걷습니다. 세찬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때로는 저 멀리 날아가 버리지요. 옷이 젖을까 조심하다가 옷이 다 젖은 걸 안 후에는 슬그머니 우산을 접습니다. 그리고는 마구 빗속을 뛰어다닙니다.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유! 비를 흠뻑 맞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누릴 수 최대한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죠. 흠뻑 젖을 수 있는 권리를 알게 된 건 내 나이 불과 일곱 살이었습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젖을 수 있는 자유가 그립습니다. 천진하게 자유를 누리던 소나기는 언제쯤 내릴까요? 폭염 이어지는 삶의 길에서 소나기 다시 한 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마흔을 넘긴 동생을 불러다 마음껏 빗속을 뛰어다니고 싶습니다.살면서 소나기를 만난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니까요.

2018-07-30 10:30:12

김일광 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라디오

시간에 맞추어 라디오를 켠다. FM 라디오 오프닝 멘트가 하루 종일 쫓기던 마음을 차분히 붙잡아 앉힌다. 소곤소곤 속삭여 오는 DJ에게 시간을 넘기고 시트에 등을 기댄다. '보석을 세공하는 장인들에게는 보석을 다루는 순서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 개의 보석이 동시에 들어가는 경우 상처를 입기 쉬운 진주를 가장 마지막에 얹는다고 하지요. 쪼개 상처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진주는 상처에 가장 취약한 보석이어서 마지막이 다룬다고 합니다. 마음의 영역에서는 정반대로 …. 무더위 속에서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라디오를 즐겨 듣는 편이다. 지금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그래서 라디오를 따로 마련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라디오를 처음 대한 것은 어릴 때 외가에 갔을 때였다. 시골마을에 집집마다 스피커를 설치해 놓고, 방송을 중계해 주었다. 참 신기하였다. 그때부터 라디오를 통해 시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발음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 팝송을 흥얼거리곤 했다. 나만의 라디오를 가지게 된 것은 진학으로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라디오를 껴안고 지내면서 겉멋에 취하여 머리를 기르다가 단속에 걸려 파출소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라디오를 늘 곁에 두었다. 소리를 들으면서 상상하는 재미도 좋았지만 라디오는 일을 방해하지 않았으며, 라디오를 듣기 위해 따로 시간을 마련할 필요도 없었다. 승용차를 가질 때도 음악을 듣기 위한 장치를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라디오만 나오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특히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음악 방송을 즐겨 듣는다. 그 시간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부쩍 신경을 쓴다. 그래서 고가의 라디오를 따로 마련하기도 했으며, 휴대전화와 연결하여 들을 수 있는 스피커를 구입하기도 했다. 홈시어터로 들어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듣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모든 방법이 성에 차지 않았다.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청취 방법은 따로 있었다. 승용차에서 들어야 제 맛이다. 차분차분 마음을 다독여주는 멘트와 선곡된 음악을 들으면 몽환의 세상으로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만 같다. 먼 길을 떠났다가 집 가까이 왔을 때 느끼는 안도감을 갖게 해준다. 때로는 일상을 잠시 내려두고 여행에 나서는 설렘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집을 비켜서 운전을 계속할 때도 많다. 오늘도 FM 라디오에서 음악과 멘트가 흐른다. 자동차 한 대가 라디오에 빠졌다.

2018-07-24 05:00:00

박시윤 수필가

[에세이 산책] 다시, 떠남

방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힌다. 노트를 넘기는 바람, 일상을 기록한 습작 노트 위로 육지의 시간은 고단했다. 설익은 문장들이 씨앗처럼 화르르 일어나 바람을 따라갈 채비를 한다. 비밀을 들킨 듯 쿵쾅이는 심장, 분명 나는 요동하고 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바람, 내 안에 웅크린 백색의 자아가 범람한다. 혼돈에 빠진 영혼을 핑계로 나 다시 이대로 떠나도 괜찮을까. 몸 붙이고도 마음을 정착하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 간신히 마음을 다독이고, 간신히 목숨을 지켜왔으나 바람이 내 안에 들면 천명처럼 육신이 아팠다. 육신이 아파지면 영혼에 구멍이 뚫리고 더욱 또렷하게 바람이 들고 났다. 그럴 때면 슬픈 천명을 안고 미지의 세상을 동경하곤 했다. 몇 해 전, 바람을 따라 동쪽 바다를 건넌 적이 있다. 나를 쥐어흔들던 바람은 맑았으며 싱싱하였으며 한결같았다. 바람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내 영혼이 자유할 것이고 그리하여 내 꿈이 몇 곱절의 자신감으로 부풀어 오를 것만 같았다. 육지 밖으로 벗어나는 일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었으나 확고한 의지가 나를 이끌었다. 그리하여 나는 연고도 없는 섬에 다다랐다. 분명 사람이 살고 있으나 사람의 소리가 아닌 바람의 소리가 났고, 메아리를 가진 소쩍새 울음소리와 울울창창한 나무들의 소리가 났다. 퍼드덕대며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에서도 바람이 일었다. 바람, 참 맑은 것이었다. 섬에 사는 동안 한 번도 내 바람에 의심을 품은 적이 없었다. 내 기억이 싱싱하게 머무는 곳, 사계절을 돌고 돌아 두 해를 살고도 여전히 속살이 그리운 곳, 나는 겉도는 육지의 시간을 안고 다시 섬으로 간다. 육지의 밖, 혹은 바다, 그리하여 섬, 울릉도는 내게 그런 곳이다. 작동하지 못하는 내 영혼을 불러다 정착을 이루게 하는 곳. 바람은 대체로 맑았으며 혼돈하는 내 영혼을 또렷하게 깨우는 곳. '어제는 개망초꽃을 피웠어. 오늘은 해국과 달맞이꽃을 피웠어. 그리고 내일은 네가 지나는 길목길목에 접시꽃을 피울 거야.' 바람이 속삭인다. 근 몇 달, 육지의 시간을 살면서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나는 다시 혼돈의 시간을 걷고 있다. '나 다시 떠나는 거야. 그 섬 한 번 더 훔쳐보는 일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거야.' 나는 본능을 일으켜 바람이 일어서는 섬 울릉도로 간다. 울릉도 깊은 골짜기엔 새벽이면 싱싱하게 환생하는 바람의 골이 있다. 먼 곳, 아득한 곳, 그래서 더 궁금한 땅.전설 같은 섬에서 나 무한히 싱싱해져서 바람과 함께 다시 돌아올게요.수필가

2018-07-16 10:29:46

김일광·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바다계단

다행히 태풍이 대한해협으로 빠져나갔다. 잠깐 비가 그친 사이에 혹시나 해서 텃밭에 나가 보았더니 역시나 토마토 가지가 여럿 꺾어져 있었다. 미리미리 대비해야 하는데 게으름 탓에 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 그나마 성한 토마토 줄기를 찾아 지주를 세우고, 줄기가 약한 오이도 단속을 하였다. 비는 다시 쏟아졌다. 대문 밖 길바닥이 온통 물길로 변했다. 지붕을 치는 빗소리와 흐르는 물소리가 낭만적이라며 빗발이 치는데도 아내는 문을 열어두려고 했다. 비가 들이친다고 나는 문을 닫고 아내는 또 열고. 비 오는 날마다 실랑이를 벌인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비가 그쳤다. 창을 여니 해무가 창 밑까지 밀려와 있었다. 비 때문에 갇혀 있던 갑갑함을 떨쳐내려고 산책을 나섰다. 까꾸리개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따라 해무 속으로 들어갔다. 태풍 뒤끝인지 제법 파도가 높았다. 해안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던 표지판 하나가 해무를 잔뜩 얹은 채 눈에 들어왔다. '바다계단 200m' 화살표와 함께 그렇게 적혀 있었다. '바다계단?' 아내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길에서 바다계단을 본 적이 없었다. 200m쯤 되는 곳에 이르러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았다. 영해기준점이 보였다. 그리고 눈앞에 파란 물등대가 버티고 있었다. 문득 잊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교석초 전설이었다. '옛날 범꼬리인 구만리에는 마고할멈이 살고 있었다. 이 할멈은 종종 영덕 축산 나들이를 하였다. 축산까지는 길이 멀고 험했다. 그래서 바다에다 돌다리를 놓고 싶었다. 그런데 영일만을 건너는 바다는 파도가 셀 뿐 아니라 물도 깊었다. 마고할멈은 물살이 잔잔한 날을 잡아 구만리 앞에서 징검다리를 놓기 시작하였다. 치마폭에 큰 바위를 싸서 옮기는 사이에 그만 날이 새고 말았다.' 마고할멈이 운반하다가 그친 바윗돌이 구만에서 축산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바다 밑에 고스란히 남아 있단다. 마치 정으로 다듬어 놓은 것 같은 바위 구조물이 있다고 하였다.영일만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먼 옛날 마고할멈도 영일만대교 건설을 꿈꾸었던 것일까. 오늘날처럼 그 옛날에도 바닷길 건설을 시도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어제와 오늘이, 또 내일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지된 시간 속에 아내와 나는 파도가 연주하는 자갈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마고할멈이 갖다 놓은 바위에 앉아 있었다. 해무와 어둠과 우리가 다른 모습이 아닌 한무리가 되어 갔다.

2018-07-09 10:24:44

박시윤 수필가

[에세이 산책] 장마

잠결에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비 냄새가 났던 것도 같습니다. 이불을 끌어당기며 비가 오나 보다 했습니다. 아침이 오고 산을 엉금엉금 기어 내려오는 구름과, 젖은 도시를 바라보며 열 살의 장마를 기억합니다. 열 살의 내가 폴짝폴짝 뛰면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개울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차례로 징검다리를 건너는 동안, 나는 징검다리가 싱거워 물속으로 첨벙첨벙 걸어갔습니다. 송사리를 잡겠다고 안간힘을 쓰면 친구들은 개울 건너에서 나를 기다려주었습니다. 가끔 수양버들 아래서 무언가가 떠내려오곤 했는데, 한 치 앞에 다다라서야 그것이 슬금슬금 물살을 탄다는 걸 알았습니다. "배… 뱀이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뱀은 어느새 제 갈 길 가고, 남은 건 흠뻑 젖은 나 혼자였습니다. 저벅저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께 야단맞을 일이 한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징검다리를 밟지 않았지요. 어느 아침이었던가요.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어머니는 조신하지 못한 내게 고무신을 신기셨습니다. 빨갛고 노란 꽃이 정신없이 그려진 고무신을요. 아무리 어렸어도 내가 좋아할 리 없잖습니까. 심통이 난 나는 질벅한 마당을 쫓아다니며 발자국을 마구 찍어댔습니다. 아버지가 아시면 경을 칠 일이란 걸 잘 알면서도. 개울은 물이 불어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기 위해 모인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몇 해 전 이 개울에서 아이 하나가 물살에 휩쓸려 죽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모두를 '죽음'이라는 공포로 몰아갔습니다. 중학생 오빠들이 물살을 이겨보려 했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아이들은 경운기에 실려 학교로 향했습니다. 곱절의 거리를 우회해서 다다른 학교. 거센 빗줄기 속에서도 누군가의 은혜가 차고 넘쳤습니다. 오늘 마흔둘의 장마를 겪습니다. 빨래가 꿉꿉하게 말라가는 건 좀 싫지만 무엇인가가 쑤욱 쑥- 자라는 냄새가 나서 참 좋습니다. 이젠 흠뻑 젖어도 좋을 그런 나이인 것 같습니다. 열 살의 폐가에는 장마가 난 후 풀들이 쑤욱 쑥- 자라 숲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떤 외로움과 곤궁이 밀려오곤 하는데 그 풀숲의 풀들은 그곳으로 나를 불러들여 은둔하게 합니다. 비가 흘러들어간 내면의 구석에선 열 살의 내가 아직도 쑤욱 쑥- 자라고 있죠. 슬레이트 지붕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 그 물소리에 빠진 내 안의 숨소리는 또 얼마나 깊어질까요. 그리하여 내가 웃자라기 시작하는 장마, 나는 아직도 새 날을 꿈꾸는 그 소리가 참 듣기 좋군요. 박시윤 수필가

2018-07-02 10:57:32

김일광 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비취색 바다와 메밀밭

'비취색 바다와 메밀꽃', 언제부터인가 펼침막이 호미곶을 지나는 도로변에 나붙었다.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미곶이 무슨 봉평도 아니고 메밀꽃이라니? 싱거운 사람이 선거철에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두 곳도 아니고 지나다니는 길목마다 펼침막이 나타나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차를 세우고 길 위로 나서보았더니 와우! 별세상이었다. 호미곶에는 보리밭과 유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새천년 광장 주변 들녘이 온통 하얀 메밀꽃이었다. 도래솔을 품으며 펼쳐진 메밀꽃도 장관이지만 곰솔 숲 너머에서 출렁거리는 바다와 어우러진 메밀밭은 가슴까지 철렁이게 하였다. 지금까지 보아온 호미곶 풍광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일부러 달이 뜬 날 밤에 나가서 과연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은지를 확인해 보기도 하였다. 달빛이 내려앉은 메밀밭은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까. 매혹적이었다. 몇 차례 드나들며 이색적인 정경을 보고는 그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다. 휴대전화기로 사진을 주고받는 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잡아 가며 여러 장을 찍었다. 그 자리에서 이곳저곳 친한 사람들에게 보냈다. '호미곶 비취색 바다와 메밀꽃을 보러오세요' 라는 문자와 함께. 사진을 받은 사람들마다 '가까운 곳에 이런 모습이 있느냐'며 메밀꽃 구경을 오겠다고 하였다. 그 이튿날부터 친지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시절이 하지 무렵인지라 퇴근하고 와도 해는 중천이었다. 해넘이와 함께 메밀밭에서 오랜만에 사진을 찍었다. 물론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바로 나가서 안내를 맡았으며,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을 짚어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면 아예 몇 팀이 오겠다는 연락을 주기도 하였다. 지난 주말에는 한꺼번에 여러 가족이 오는 바람에 서로 낯선 이들끼리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메밀꽃을 핑계로 한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찾아왔다. 일부러 오지 않으면 또 몇 년이 흐를 것 같아서 애써 달려왔다고 하였다. 누가 어떻게 조성한 메밀밭인지는 모르겠지만 활짝 핀 그 꽃 덕분에 톡톡히 손님을 치고 있다. 우리는 반갑게 만나서 꽃을 보며, 오랜만에 꽃처럼 활짝 웃으며, 꽃 가운데서 사진을 찍었다. 가슴 가득히 숨을 들이마시며 활짝 웃어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하였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짬 내기조차 어렵다고도 하였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함께하는 게 행복인데 우리는 너무 바빠서 그런 꽃을 피울 시간조차 잊고 사는 것만 같다.동화작가

2018-06-25 13: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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