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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트로트와 오페라는 평등하다

대중적인 것은 저급하다는 인식 문화예술 대하는 정부의 현주소 모든 정책의 중심에 국민을 놓고 국민의 음악을 더 소중히 여겨야'국민 MC'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데뷔했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아침 생방송에도 나와 반짝이 옷을 입고 메뚜기 춤을 추며 자신을 어필했다. 그의 깜짝 등장에 시청자들은 손뼉을 쳤고 나중에 알게 된 사람들도 놀라워했다. 특히나 트로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유재석이 트로트 중흥에 불씨를 댕겼다며 반색했다."트로트는 돌려서 얘기 안 하거든요." 그의 말처럼 트로트는 직설적이다. 당신이 부르면 태평양을 건너서라도 무조건 달려갈 거라고 속 시원하게 말해준다.출근길 버스부터 돌아오는 월급날까지, 내내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에게 음악은 느긋하게 기다리며 음미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먹고사느라 숨 가쁜 이에게 음악을 듣고 이해하려면 먼저 학습과 훈련을 통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속 모르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트로트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듣고 즐기면 된다. 듣고 있으면 위로가 되고 함께 부를 땐 하나가 되며 혼자 흥얼거릴 땐 맺힌 것이 풀리기도 하는 그런 국민의 음악이다. 그래서 '국민 MC'와 트로트는 꽤 잘 어울린다.사실, 이전부터 트로트는 세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두와 잘 통했다. '소녀시대' 서현은 주현미와 듀엣 곡 '짜라자짜'를 발표했고 '레드벨벳'은 TV에 나와 배호의 '안녕'을 노래했다. '슈퍼주니어'의 김희철은 록밴드인 '트랙스'의 김정모와 함께 '울산바위'를 불렀고 태연도 '사랑밖엔 난 몰라'를 그만의 감성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걸 그룹 '티아라'의 수많은 히트곡에도 '희자매'와 닮은 듯한 이른바 '뽕필'이 있었다.이렇듯 트로트는 우리 음악 곳곳에 영감을 불어넣고 세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감동을 전해주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예술이 아니다. 이는 대중음악의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다. 팬, 음반 제작사, 연예 기획사, 그리고 방송국에서까지 모두 대중음악을 예술이라 하고 대중가수를 '아티스트'라 칭하지만 정부는 그러지 않는다. 앞에 '대중'이 붙는 건 예술이 아니고 그걸 창작하고 표현하는 사람 또한 예술인이 아니다.얼마 전 방탄소년단의 군 입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나라가 부르면 가면 되고, 우리는 기다리면 되고'라며 팬들이 일찌감치 멋지고 현명한 답안을 내놓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논란은 아무 현실성 없는 헛된 것일 뿐이다. 정부의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방탄소년단이 병역특례의 대상이 되려면 일단 '예술인'부터 되어야 한다. 국위 선양을 얼마만큼 했느냐는 그다음의 문제다. 즉, 그들은 그들의 춤이 아니라 이를테면 발레를 춰야 하고 힙합이나 랩 대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불러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정해 놓은 예술인에 속하게 된다.그런 다음 병역특례의 대상이 되려면 '그래미'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아니라 유럽의 어느 이름 모를 콩쿠르라 할지라도 클래식 경연대회에 가서 상을 받아 와야 한다.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문화예술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정책이자 시스템이다. 그야말로 대중적인 것은 곧 저급한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가장 대중적인 음악인 트로트는 가장 낮은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건 결국 대중도 저급한 존재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이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범죄 전력이 있는 연예인을 종신토록 방송에 못 나오게 하자는 내용이다. 범죄가 조장될 수 있으니 그걸 막자는 취지에서란다. '직업 수행의 자유'에 관한 위헌 소지는 차치하고서도 어이없고 황당하다. 대중과 대중문화를 업신여기는 인식의 전형처럼 보인다.그럴 거면 세금으로 사는 자신들에게 먼저 그런 제재를 가하는 게 맞다. 음주운전이라도 하다 걸리면 평생 출마를 못 하도록 말이다. 더불어 자신들이 함부로 여기는 그 연예인들만큼이라도 국민을 기쁘게 해 준 적이 있는지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그리고 이젠 문화예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관련된 모든 정책의 중심에는 국민이 있어야 한다. 트로트와 오페라를 평등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하고 그래도 굳이 한 가지를 고르라면 국민을 존중하듯 국민의 음악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2019-12-15 14:56:26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필리버스터가 아니라 무제한 토론이다

국회선진화법 일환으로 만들어 의제와 무관한 발언 허용 안 돼 다음 회기 때 첫 번째 안건 표결 제대로 된 무제한 토론 봤으면모두가 필리버스터라고 한다. 언론은 물론 심지어 국회의장과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이 199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결과 국회가 마비되었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이를 필리버스터라고 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틀렸다. 자유한국당이 신청한 것은 필리버스터가 아니라 무제한 토론이다. 두 가지는 전혀 다르다. 필리버스터와 달리 무제한 토론은 긍정적인 제도이다. 무제한 토론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거나 본질을 외면한 채 필리버스터라고 부르는 것이 좋은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일 수 있다.필리버스터(Filibuster)는 미국 상원의 독특한 의사 진행 모습이다. 하원에서는 엄격한 발언 시간 제한이 있지만 상원의원의 발언 시간은 원칙적으로 무제한이다. 한 의원이 단상에서 발언을 계속하는 경우 재적 5분의 3 이상의 동의가 없이는 중단시킬 수 없다. 동화책, 요리책, 헌법전 낭독 등 의제와 관련 없는 발언도 무한정 허용된다. 그 결과 의원의 발언 중 회의가 지연되는 '의사진행방해'가 된 것이다. '해적'을 뜻하는 단어가 어원이라는 말처럼 회기를 넘겨 특정 의안을 폐기시키려는 게 필리버스터의 목적이다.무제한 토론은 다르다. 관행적으로 인정된 필리버스터와 달리 국회선진화법 일환으로 우리 국회법 제106조의 2에 명확히 규정된 제도이다. 한 사람에 의한 단상 점거 발언인 필리버스터와 달리 무제한 토론은 재적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의원들이 발언을 이어간다. 의제와 무관한 발언이 허용되지 않는 점도 다르다. 필리버스터는 시간을 끌어 회기를 넘기면 해당 의안이 폐기돼 버린다. 회기불계속의 원칙 때문이다. 반면 회기계속의 원칙이 적용되는 우리 국회에서는 회기가 끝나도 해당 의안이 폐기되지 않는다. 회기 종료 후 다음 회기 첫 번째 안건으로, 무제한 토론 종결 즉시 해당 안건을 표결해야 한다.필리버스터는 '의사진행방해'를 통한 법안 폐기에 목적이 있는 반면 우리는 말 그대로 쟁점 사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무제한 토론은 본질적으로 "쟁점 안건의 심의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건이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심의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 개정 이유이다.문제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가 무제한 토론 제도를 정쟁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데 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테러방지법'에 대한 무제한 반대 토론을 실시한 바 있다.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총 38명 의원이 192시간 27분 동안 발언을 이어나갔다.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이라지만 그런 기록은 의미가 없다. 여야의 '토론'이 아닌 야당의 일방적 연설로 그쳤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의 의견이 함께 표출될 때만이 국민이 진실을 알 수 있다. 무제한 토론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한 반쪽짜리로 그친 것이다.현재 문제는 선거법과 공수처법이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당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까지 법안 상정을 마치겠다고 한다. 한국당이 무제한 토론을 신청하더라도 정기국회 후 바로 임시회를 소집, 법안을 처리하려는 것이다.문 의장과 여야 모두에게 호소하고 싶다. 제대로 된 무제한 토론을 한번 해 보라고.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좌파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 주장한다. 민주당과 일부 야당은 국회와 검찰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라고 한다. 최종적으로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법안 내용도 아직 확실치 않거니와 솔직히 국민들은 진영을 갈라 싸우는 각 당의 주장에 동조할 뿐 그 내용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화와 타협을 위해' 국회의원들 스스로 도입한 제도가 무제한 토론이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치열한 토론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엄청난 성능의 최신 스마트폰을 가지고도 전화기 정도로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의외로 많다. 사용설명서를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사용법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가 그런 사람들을 그대로 닮았다. 무제한 토론이라는 스마트폰급 제도가 있음에도 여전히 돌멩이 싸움 수준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 지금이라도 무제한 토론 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읽어보기 바란다.

2019-12-08 15:48:55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국민의 자존심도 국익이다

"지소미아(GSOMIA)? 그게 뭐지?", 대개의 반응은 이랬다. 그러다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라 하면 "아! 그거"라고 하다가도 이내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일본과 무슨 군사 협정이냐는 거였다. 그것도 그렇게나 급하게', 사실이 그랬다. 지난 정부가 국민정서상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협정을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치워버렸다. 일본이 우리에게 요청하고 실무자회의 달랑 두 번하고 협정까지 체결하는데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그게 지소미아였다.반대 여론도 물론 있었고 여기저기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오래 세간의 관심을 끌진 못했다. 2016년 11월 23일,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뒤 집권당이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당론으로 결정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튼 그때의 지소미아는 지금과 좀 달랐다. 국가안보를 위해 세계 각국과 맺은 30여 개의 지소미아 중 '추가된 하나'였다. 다만 상대가 일본이라는 게 문제였다. 광복 이후 처음 맺는 일본과의 군사 협정, 그걸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무조건 고울 순 없었다.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말이다. 지난여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의 맞대응 카드로 지소미아를 거론하자 '해선 안 될 협정이었으니 이참에 아예 끝내자'고도 하고 '함부로 그래선 안 된다'고도 했지만 대략 그 정도였다. 지소미아는 우리 안보의 근간이자 핵심이니 없으면 큰일 난다고까지 하지 않았다. 그저 일본에 대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 다행이라 여겼고 여론이 그랬듯 언론과 정치권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지소미아는 일본이 아쉬워서 우리에게 먼저 맺자고 한 협정, 그러니까 우리에게 유리한 카드였다. 따라서 '일본이 안보상 우리를 믿지 못해 백색국가에서 배제하고 수출규제를 하겠다는데 우린들 왜 그런 국가를 상대로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하느냐?'는 정부의 주장은 하나 잘못된 게 없어 보였다. 그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그런데 돌연 상황이 급변했다. 이 지소미아가 우리에게 유리한 카드가 아니라 놓치면 죽는 카드가 되었다. 그런 만큼 지소미아 종료를 예고한 정부 또한 단박에 성토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리 급해도 건드릴 게 따로 있지 어떻게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가지고 도박을 하느냐?"는 질책이 쏟아진다. 지소미아 종료는 미국의 뜻에 반하는 행동이고 그렇게 되면 한미 동맹이 깨질 것이고 결국 우리의 안보는 파국을 맞게 될 거란 이유에서다. 지소미아의 역할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필요한 하나의 연결고리에서 전체 전략을 지탱하는 중심축, 또는 기둥으로 급진전했다. 어떨 땐 반세기 훨씬 넘게 이어온 한미상호방위조약보다 더 중요해 보이기까지 한다. 결국 지소미아 카드를 꺼내든 정부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게 되었다.그런데 지소미아가 그렇다 치면 그럼 우리가 일본에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선 별 말들이 없다. 그래서 불현듯 궁금해진다. '미국이 한일 간의 지소미아 종료를 싫어하는 건 맞지만 그것 하나로 한미 동맹이 끝장나고 진짜 나라가 망하기까지 할는지?' '그럼 지소미아가 없었던 그 긴 세월을 우린 어떻게 살아낸 건지?' 자꾸 따져보게 된다. 일본이 강제 동원 노동자를 여전히 '조선반도 노동자'라 부르며 시종일관 거짓말을 일삼아도 우린 그저 가만히 참고만 있어야 하는지도 묻고 싶어진다.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발표한 청와대도 참 이해하기 힘들다. 국민에게 말 한마디 없다가 일본 정부가 '한국이 완전히 항복한 것'이라고 하자 "쟤네들이 또 거짓말했어요"라고 이른다. 불매 운동하느라 고생한 국민에게, 그렇게 하면 나라가 곧 망할 것같이 이야기한 사람들로부터 사과조차 받지 못한 국민에게, 늘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며 훈계를 받던 그 감정적이기만 한 국민에게 다시 기댄다. 국민의 자존심을 다치게 해놓고 국익을 위해 그랬으니 또 참으라고 한다.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면 국민의 자존심도 국익이다. '그 덕분에 대일 협상이 잘 되었다'며 야당 대표를 찾아 인사를 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기대에 못 미쳐 미안하다'고 해야 하고 국민에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해야 한다. 매번 급할 때만 국민을 찾아 뒤치다꺼리해 달라고 하면 안 된다. 그건 염치없는 짓이다.

2019-12-01 15:33:43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지소미아 사태, 복기와 반성이 필요하다

국민과 국가의 안위 걸린 지소미아조건부 종료 유예 결정 다행이지만처음부터 양국 정부 대화 나섰다면엄청난 사회적 비용 들지 않았을 것일단 다행이다. 22일 자정 종료를 몇 시간 앞두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연장이 결정되었다. 조건부 종료 유예지만 사실상 연장이다. 시중에는 지소미아 종료 시 후폭풍에 대한 별의별 시나리오가 돌아다니던 참이다. 그걸 감안할 때 다행스럽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미국의 금융 제재 등 현실화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상당수 국민들이 불안감 속에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정치의 요체 중 하나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번 지소미아 소동은 명백한 정치 실패의 사례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미국의 전방위적 압력, 경제적 파장 등을 생각했을 때 사실 지소미아 종료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표면적인 강경 자세와 달리 정부 관계자들도 오래 물밑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대처했다면 전혀 필요 없었던 비용이다.새삼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정부·여당을 비난하거나 특정인의 책임을 추궁하자는 게 아니다.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어떤 단추들을 잘못 끼웠는지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바둑처럼 복기를 해보자는 제안이다. "괴롭지만 복기를 해야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넘어갈 수 있다." 현재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인 조훈현 국수가 한 말이다. 바둑 팬은 다 아는 얘기지만 그만큼 바둑에서는 복기가 중요하다. 이번 지소미아 사태도 우리 역사상 주요 사건으로 기록될 게 분명하다. 국민과 국가의 안위가 걸린 걸 생각하면 바둑과 비교할 수도 없는 엄중한 문제이다.시작은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한 게 아니어서 일본 기업이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의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당시 이미 "일본 정부와 언론은 강한 반발을 예고하는 등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일본의 반발에 대한 철저한 대책 마련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일본 정부는 2019년 1월 9일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해 왔다. 우리 정부가 답이 없자 일본은 5월 20일 제3국 위원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다시 요청해 왔다.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였다.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일반 외교 채널을 통한 협의를 지속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대항 조치 발동을 검토'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었지만 일본 정부의 요구에 우리 정부는 무대응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이어진 사태 전개는 다 아는 대로다.사실상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다. 이런 분석에는 "일본 편을 든다"는 비난이 따른다. 결과는 어떤가. 지소미아 종료 유예는 한일 양국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협상 노력을 기울인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한일 '정부 간 협의'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결과이다. '1+1+알파' 등 판결에 대한 그 나름의 해결책도 논의되고 있다. 처음부터 양국 정부 간 대화에 나섰다면 기업들의 어려움은 물론 첨예한 국론 분열, 국민 편 가르기 등 엄청난 사회적 갈등은 겪지 않았어도 되는 일이었다. 사태가 마무리된 것도 아니다. 680여 개 시민사회단체 연대체는 "새로운 한일 관계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면서 "지소미아 연장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는 회견을 가졌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해법 마련도 쉽지 않다.한일 양국이 일단 사태를 봉합한 데는 미국이 두 나라 모두를 강하게 압박한 것이 주효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때 일본에 대한 미국의 중재를 요청하는 것은 '글로벌 호구'가 되는 일이라고 했다. 지소미아 종료 시한이 다가오자 우리 정부는 공개적으로 일본에 대한 미국의 중재를 요청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 등과 관련, 완전한 '갱신'(renewal)을 거론하는 미국 앞에서 글로벌 호구가 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다시 한 번 조 국수의 말을 인용한다. "괴롭지만 복기를 해야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넘어갈 수 있다." 지소미아 소동에 대한 복기는 그만큼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2019-11-24 16:03:51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신청사 유치경쟁이 달라졌다

주장만 앞세운 전투적 구호 대신간결하고 공손한 현수막에 미소지자체 장점과 매력 앞세운 경쟁시민의 관심과 참여 긍정적 효과대구시 신청사 유치 경쟁이 달라졌다. 신문이나 TV광고를 보면 한번씩 빙긋이 웃음이 난다. 거리의 현수막을 볼 때도 그렇다. 그동안 대구시의 이런저런 광고를 볼 때마다 고구마 100개쯤 먹은 듯했던 답답함이 한번에 사라지는 기분이다.이렇게 청량할 수가 없다. 달서구, 달성군, 북구, 중구(가나다순) 모두 그렇다. '우리 지역에 신청사를 지으면 뭐가 좋은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난잡한 레이아웃도 없고 '캘리그래피'의 남용도 없으며 뜬금없는 사투리, 유치한 말장난도 없다. 그리고 빽빽하게 제 할 말만 때려 넣어 코앞으로 들이미는 위압도 없다. 간결하고 산뜻하며 공손하다. 눈길을 끌고 마음을 붙잡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그런데 이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봄만 해도 구호로만 채워진 전투적인 현수막들이 즐비했다.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회'가 홍보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거꾸로 '공론화위원회'가 '공론'을 막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고, 심지어 이미 정해 놓고 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 저러다 말겠지' 하는 시선들이 많았다.2004년 이래 두 번의 시도와 크고 작은 논의들이 모두 흐지부지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장소와 비용이 걸림돌인 터라 필요성 같은 걸 강조해봤자 달라질 게 없었다. '있던 자리에 다시 지어야 한다'와 '옮겨서 새로 지어야 한다'로 공방만 계속 오갔다.단체장이라면 누구라도 부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의 시청이 좁고 대구시의 격에도 안 맞는 건 알지만 잘못 나섰다간 돈 많이 쓴다고 괜한 욕만 먹을 수 있는 데다 자칫하면 청사 건립을 둘러싼 분란의 책임마저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권영진 시장이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그로부터 채 1년이 안 된 지금, 놀랍게도 신청사 건립 예정지 선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장장 15년을 끌어온 일인데 말이다. 4월에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으니 7개월 남짓 만에 여기까지 온 셈이다.출발부터 이번엔 좀 달랐다. '공론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김태일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장은 '오직 시민의 뜻대로'를 대원칙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새로운 시청이 어디에 어떻게 지어질 것인가는 모두 시민의 뜻과 판단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예상과 달리 북구와 중구에 더해 달서구와 달성군이 경쟁에 참여했다. 대구의 미래를 짓는 일, 신청사 건립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그만큼 더 커졌다.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에서 시민을 향해 호소하고 설득하는 것으로 신청사 유치 활동의 흐름도 바뀌었다.당연히 광고도 달라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제대로 된 광고들이 등장했다. 사실, 대구의 홍보는 진작부터 이래야 했다. 시민에게 가 닿으려는 절실한 마음, 그게 보였어야 했다. 광고의 본질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진심이고 광고의 힘도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론화위원회의 '광고 횟수 제한'이 그런 절실함을 더욱 증폭시켰다.제대로 된 광고들은 신청사 유치 경쟁에 참여한 지역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주었다. 그래서 달서구가 대구의 요충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달성군이 대구의 절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북구가 지닌 잠재력과 장점도 알게 되었으며, 중구가 대구의 중심이라는 것도 새로운 느낌으로 알게 되었다.이렇듯 스스로의 장점과 매력을 앞세운 경쟁은 각각의 '다름'이 브랜드로 이어지고 그것이 강화되고 확산되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이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각 지역의 차별화된 유치활동, 대구시와 공론화위원회의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이기도 하다.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대구시의 CI(Corporate Identity)와 BI(Brand Identity)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 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건 새로운 청사 건립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도가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구다운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혀 서성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만간 겪게 될 경쟁의 후유증에 대한 대비책도 있어야 한다. 선정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함께 손잡고 나아갈 수 있도록 대구시가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시민이 다함께 이기는 신청사 유치 경쟁이 되도록 해야 한다.

2019-11-17 15:35:24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오징어잡이 배 선원 추방, 뭔가 이상하다

왜 그렇게 서둘러야 했을까. 좀 더 시간을 갖고 그들의 범죄 혐의와 귀순의사 등을 철저히 확인하는 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지난 2일 해군이 나포한 북한 선원들을 7일 돌려보낸 우리 정부의 처사에 대한 이야기다. 사후에도 여러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정부의 대응이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3명의 선원이 16명을 선상에서 살해한 게 사실일까. 공개된 사진의 낡고 좁은 오징어잡이 배 위에서 한 사람씩 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실이라 해도 범죄 정보는 어떤 경로로 얻은 것인가. 선원들이 자발적으로 범죄행위를 진술했을까. 북한 측이 먼저 정보를 제공하고 송환을 요구한 것인가. 배는 또 왜 그토록 신속히 반환했나. 청와대 관계자의 휴대전화 문자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면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건가. 의문점은 많지만 일단 정부의 발표를 믿기로 하자.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번 사안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에는 의구심에 앞선 본질적 문제점들이 허다하다."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헌법 제3조의 이른바 '영토조항'이다. "북한 지역은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에 속하므로 북한 국적의 주민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유지함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는 따라서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한마디로 북한 주민도 헌법상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지금까지 모든 판례와 정부 정책이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통일부 대변인은 "이들이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로 보호 대상이 아니며, 우리 사회 편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흉악 범죄자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정부 부처 협의 결과에 따라 추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마치 중국 정부가 탈북민 추방을 결정할 때의 발표문을 보는 듯하다. 특히 헌법상 우리 국민으로 간주해야 하는 북한 주민을 '국제법상 난민' 운운하는 부분이 그렇다.'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로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해석 또한 동의하기 어렵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살인 등 범죄자의 경우 보호 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 동 법은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려는 북한 주민이 "신속히 적응·정착하는 데 필요한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흉악범의 경우 우리 정부가 필요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규정일 뿐이다.일단 우리 관할구역에 들어 온 북한 주민을 추방(혹은 송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아니다. '추방' 역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용어이다. 북한 주민을 그의 의사에 반해 북한으로 강제 추방할 수는 없다. 추방이 아닌 송환이라 표현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지만 헌법상 우리 국민이기 때문이다.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선원들의 "귀순 의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선원들이 귀순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는 말이다. 공개된 문자에 따르면 선원 송환 시 '자해 우려' 때문에 적십자사 요원이 아닌 경찰관이 동행했다고 한다. 그들이 북송에 극렬히 저항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범죄자, 더구나 귀순 시도자에 대한 북한의 처우가 어떤지는 다 아는 바이다. 우리 정부가 '고문당할 위험이 있는 나라로 개인을 추방, 송환, 인도해서는 안 된다'는 유엔 고문방지협약을 위반했다는 국제적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이번 사안은 귀순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을 강제 송환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이다. 기밀 운운하며 유야무야 넘길 사안이 아니다. 북한 주장에 따라 살인자라는 선입견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중요 탈북자들에 대해 항상 '범죄자'로 규정하곤 한다. 북한 측이 중대 범죄자로 지목하면 송환하는 선례가 될 위험도 있다. 우리의 주권과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국민적 동의를 얻어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통일, 민족 등도 예외가 아니다. 자유와 인권의 보장, 법치주의라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버리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19-11-10 17:34:01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 펭수, 어른들의 뽀로로

우주대스타 꿈꾸는 자이언트 펭귄 캐릭터 인기에 제작사 EBS도 놀라많은 돈'기술 없이도 탄생한 펭수 그런 콘텐츠 만드는 건 우리의 몫요즘 '펭수'가 대세다. 검색창에 '펭'을 치면 펭귄보다, 페이스북보다 '펭수'가 먼저 뜬다. 한마디로 '핫'하다는 이야기다. 제작사인 EBS조차 이만큼 잘 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부랴부랴 연말까지 '굿즈'를 내놓겠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니 잠시 펭수에 대해 알아보자.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 펭수는 '자이언트 펭 TV'의 주인공 캐릭터, 우주 대스타를 꿈꾸는 펭귄이다. 올해 10살, 키 2m10㎝, 그래서 자이언트 펭귄이다. 남극에서 한국까지 헤엄쳐 왔다고 한다. 방송국 소품실 한 구석에서 먹고 자며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하는 EBS 연습생, 준비된 글로벌 스타이기도 하다. 당연히 모국어는 펭귄 말이다. 랩도 하고 비트박스도 조금 하며 심지어 프레디 머큐리처럼 록도 한다. 오는 길엔 스위스에 들러 요들송도 마스터했단다.지난 4월 초, 첫 이야기가 전파를 탔고 9월에 방영된 이육대(EBS아이돌육상대회) 편이 온라인상에서 히트를 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인기가 올라가자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됐다. 펭수가 펭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즉 카메라가 켜져 있을 때만 펭귄인 척하는 게 아니냐는 거였다. 일부 네티즌들은 '뽀로로'가 펭귄을 꼭 닮은 것에 비해 펭수는 너무 인간을 닮았다며 꼬집었다. 의혹이 점점 커지자 EBS 측은 자이언트 펭 TV, '펭수가 알고 싶다' 편을 긴급 편성했다.방송을 보면 EBS 취재진이 하루 종일 펭수를 따라다닌다. 그러다 급기야 "당신은 펭귄이 맞습니까?"라며 차마 못할 질문을 날린다. 하지만 펭수는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면 기자님은 사람이 맞습니까?"라고 되받는다. 고향 남극에서 부모 펭귄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줘도 취재진이 영 못 믿겠단 눈치를 보이자 결국 동물병원을 찾아 엑스레이 사진까지 찍는다. 그리고 99.99% 펭귄이라는 수의사의 판정이 있고서야 사태가 일단락된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았지만,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엉성했지만 이 검증과정을 지켜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어떤 이는 잠시나마 펭수의 정체를 의심했던 나를 용서하라며 EBS 만세를 외쳤고, 또 어떤 네티즌은 탈을 썼든 그 안에 누가 있든 펭수는 펭수일 뿐이라는 말로 격정을 토했다. 그러자 다른 네티즌들이 '펭수는 펭수다'에 울컥했다며 지지와 공감을 표했고, 이로써 펭수의 정체성 논란은 끝이 났다. 펭수는 자신이 펭귄임을 믿어 달라 했고 팬들은 그러기로 했다.이젠 누구라도 펭수를 보고 탈 속에 있는 사람이 궁금하다거나 고생이 참 많겠다고 하면 그야말로 물색없는 사람으로 몰리기 딱 좋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세칭 전문가들은 제각각 견해를 쏟아내고 있다. B급 캐릭터의 새로운 전성시대가 왔다고도 하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도발적 캐릭터가 대중에게 어필했다고도 한다. 넌버벌(non-verbal)이 아니라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하지만 우리가, 특히 서울 아닌 지역의 사람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돌아보면 '마시마로' '뿌까', 강남스타일, K팝이 그랬듯 새로운 기술은 늘 새로운 기회를 가져왔다. 펭수도 마찬가지다. 우주 대스타로 목표를 상향 조정하기 전까진 꿈이 최고의 크리에이터였던 것처럼 정규 방송에 앞서 유튜브 채널 '펭 TV'를 먼저 오픈했다. 즉 새로운 기회, 새로운 플랫폼을 작정하고 겨냥했던 것이다.하나 더, 펭수는 돈이 아주 많이 드는 것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무엇보다 서울이라야만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다, 다만 '온라인 탑골공원'으로 통칭되는 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꿰뚫고 있을 뿐이다. 사실, 산업으로서의 캐릭터는 늙지 않고 죽지 않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펭수를 100% 캐릭터로 보기엔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을 표방하는 터라 예기치 못한 실수나 돌발 상황에 쉽게 노출될 수 있고 생각보다 빨리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펭수는 지금 잘나간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어른들의 뽀로로'가 되었다.문화산업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고 말한 지도 십수 년이 지났다. 펭수에서 보듯 기회는 늘 있다. 그걸 잡는 건 우리의 몫이다.

2019-11-03 16:02:51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한국 정치 타락과 한국당의 책임

'직업으로서의 정치'(막스 베버)는 잘 알려진 책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정치 관련 서적이지 싶다. 책을 통해 베버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을 설명하고 있다. 무려 100년 전인 1919년, 독일을 배경으로 한 책이 아직도 우리에게 통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정치인들은 권력도 없고 책임도 없으며 동종 직업집단인 '길드'와 같이 단지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고 파벌 본능에 빠져 있다." 베버가 진단한 독일의 무기력한 정치 상황이 우리와 흡사한 때문일 것이다.베버는 그런 상황을 타개할 정치 지도자의 덕목으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적 판단을 제시했다. 대의명분에 헌신하는 열정,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책임의식,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판단하는 덕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이 대의에 헌신하지 않고 책임의식과 균형감각을 상실했을 때 정치 타락이 발생한다"고 말했다.이른바 '조국 사태'를 통해 국민들이 목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의 타락'이다. 국민과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의에 봉사하는 정치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모두 동종집단인 정파적 이해관계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권력자가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책임의식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어제까지 칭찬해 마지않던 검찰을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정치인들의 권력 남용이 도를 넘었다. 베버가 "정치 지도자가 책임의식이라는 자질로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지 않으면 지극히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 대로다. 균형감각의 상실은 또 어떤가. 정치인들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들도 궤변과 요설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우리 모두 진영 논리 속에 이성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 정도다.조국 장관 사퇴 후 조금씩이나마 회복의 기운이 돌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표창원 두 초선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정치 전반에 대한 실망도 있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며 느꼈던 좌절감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두 의원 모두 가장 공방이 치열한 법사위에서 조국 옹호에 앞장서야 했던 정신적 분열상을 토로하고 있다. 역시 초선인 조응천 의원도 "조국 사태로 지옥을 맛봤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 의원은 소위 '계엄령 문건'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지도부를 향해 "낡은 정치이고 사라져야할 정치 문법"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20명이 넘는 여당 의원들이 불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는 말도 있다.그와 비교되는 한국당의 반응은 지켜보는 지지자들마저 당혹스럽게 한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조국 TF' 의원들이 모여 표창장을 주고받은 것부터 어이없다. 혹시 조국 패밀리의 표창장 의혹에 대한 패러디인가 싶기도 했지만 진짜(?) 표창장 수여식이었다. 50만원 상품권까지 곁들여 박수 치며 웃고 환호하는 장면은 총선 승리 축하 자리를 방불케 했다. 그동안 고생한 의원들과 격려하는 자리를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공개된 자리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국민 여러분께서 직접 거리로 나와 표출해 주신 뜻을 엄중하게 받들겠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기득권과 불공정을 시정해 나가는 데 지금부터 한국당이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 조국 사태 속에서 보수 야당이 발견했어야 할 대의는 그런 것이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기득권과 불공정을 타파하고 상식을 회복해 달라는 외침 말이다. 상장과 상품권을 돌리고 공천 김칫국을 마시는 모습에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인을 찾기는 어렵다. 하긴 자신들이 모시던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는 수모를 당해도 의원직 사퇴 등 확실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사람들이다. 친박 혹은 친이 정치인들 모두 마찬가지다.광화문의 시민들은 상식을 망각한 정치에 분노한 것이지 한국당을 지지해서 나온 게 아니다. 그 사실을 잊고 잠시 반짝한 지지율에 취한다면 내년 총선 결과는 보나마나다. 한국당은 여당보다 더 처절한 쇄신 경쟁에 나설 때만이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살릴 수 있다. 출발은 책임지는 정치인들이 줄을 잇는 것이어야 한다. 역시 베버가 강조한 대로다.

2019-10-27 16:12:52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시월단상

예전엔 상대의 행위를 욕했지만지금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대의민주주의 보완 기능 있다며대통령 권한을 광장에 던져버려우린 그렇게 컸다. '어떤 사람이 될까?'는 상상했어도 '어떤 나라를 만들까?'는 꿈꿔 보지 않았다. 그런 건 대통령의 일이었고 국민이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제1차부터 2차, 3차까지 연이어 성공시킨 나라, 10월 유신으로 장밋빛 미래를 약속받은 나라, 어디에도 우리처럼 승승장구하는 나라는 없었다. 우린 위대한 나라에 살고 있었고 그건 오로지 뛰어난 대통령의 특출한 영도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만에 하나, 그것이 우리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이거나 이웃집 누나가 공장에서 쏟은 땀과 눈물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꿈에도 하지 않았다. 아무쪼록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게 국민이 할 일이었다.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주어진 삶의 지표는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가 부르면 언제든 나아가 싸우고, 싸우면 이기는 어른이 되어야 했다. 학교에선 그런 각오를 담아 시시로 노래도 불렀다. "우리들은 대한 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중략)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대통령의 말과 나라의 정책은 언제나 옳기에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이기자 대한 건아'를 목청껏 부르게 한 힘도, 길고 어려웠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만든 열의도 그런 믿음에서 나왔다.그러던 어느 날, 지금 같은 가을 이달에 그토록 믿고 따랐던 대통령이 갑자기 떠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둑길 위에서 아이들은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이대로만 가면 곧 우린 최고(선진국)가 되는데, 애타는 마음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백억불 아니라 천억불 수출을 달성한다 해도, 암만 고속도로를 닦고 국산 자동차를 만들어낸다 해도 그런 것만으론 선진국 되기가 어렵다는 건 알 길이 없었다.민주주의가 없으면 다양성이 없고 다양성이 없으면 문화가 쇠락한다는 것, 그러므로 선진국이 되려면 민주주의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것, 그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일찍이 김구 선생이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준다"고 역설했음에도 말이다.내 삶의 방식을 결정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것,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주인은 그 나라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권리는 어디서 나오고 또 행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둑길 위의 아이들 누구도 배워보지 못했다.차차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의 꿈도 조금씩 변해 갔다. '나라를 위해 무엇이 될 것인가'에서 '나라에서 무엇이 될 것인가'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름과 공존의 가치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어른, 더 나은 내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은 꿈 꿔본 적 없는 어른들이 자꾸자꾸 생겨났다.저 '높은 자리'에 오르기까지 세상은커녕 타인의 삶에는 아무 관심조차 없던 자들이 그 자리를 발판 삼아 국민을 위한다며 금배지를 달았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건지 고민해본 적이 없으니 국민에게 내놓을 철학도 비전도 딱히 없다. 잘하는 거라곤 싸움질하거나 싸움을 부추기는 것뿐이다. 그 옛날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로 기초를 닦아서 그런지 대체로 그건 잘한다.한동안 3김 시대가 끝나야 우리 정치가, 역사가,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거라고들 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YS도 가고 대통령 각하를 대통령님으로 바꾼 DJ도 가고 기자들에게 '몽니'란 단어를 선사한 JP도 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대통령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며 자신이 위임받은 권한을 증오와 혐오로 가득한 광장에 던져버렸다. 권력의 언저리엔 얄팍한 자들이 자기들 먹을 것만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시절 윗사람의 눈치만 살피던 이들은 이제 서로 자기가 대장이 되겠다며 저열하게 다툰다.예전엔 그래도 상대의 행위를 비난하고 욕했지 지금처럼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저주하고 증오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래도 서로가 그리는 나라, 꿈꾸던 세상이 달라서 싸웠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나라는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끄떡없는 철옹성이 아니다. 대통령은 책임져야 하고 주권자인 국민은 더 늦기 전에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2019-10-20 15:48:07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국민은 정치인의 팬이 아니다

조국 장관과 관련된 여러 사안의 진상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모펀드, 웅동학원 등의 문제는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조 장관 딸 논문에 관한 그의 증언은 거짓이라고. 학교와 관련된 문제만은 분명한 진상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처지이다.조 장관은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학교에서 사용한 중고 컴퓨터(PC)를 집에 가지고 갔고, 딸이 서재에 있는 그 컴퓨터로 논문을 작성했다." 딸이 제1저자로 등재된 논문 초안의 문서 속성에 작성자와 수정자 모두 '조국'이라고 나타난 데 대한 설명이었다. 딸의 논문을 전혀 몰랐다는 선행 증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내가 속한 대학에서도 연구실 컴퓨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해 준다. 중고 컴퓨터를 집으로 가져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구실 컴퓨터는 대학의 재물이기 때문에 관재팀에서 반드시 회수한다. 돈을 주고 구입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절차를 밟게 되어 있다. 혹시나 해서 대학 관재팀 관계자에게 확인해 보았다. "말도 안 되죠"가 답이었다. 하물며 국립서울대학교의 물품관리 규정이랴.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은 기억할 것이다. 서울대 규정을 근거로 재차 추궁하는 의원에게 조국 후보자가 답하던 모습을. "PC를 들고 나왔는지 프로그램만 복사한 것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중고 컴퓨터는 나중에 반납했다는 말도 있었다.새삼 조국 장관의 위선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언론들은 대부분 '맹탕 청문회'라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상식과 합리로 보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조국 후보자의 본 모습을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청문회에서 주어졌다. 계속 드러나는 사실도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의학 논문은 이미 취소되었고, 서울대, KIST 인턴 등도 실체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통탄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조국 수호' 구호가 난무하고 있는 사실이다. 심지어 '내가 조국이다' '우리가 조국이다'라는 말들도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혹자는 검찰과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수구 세력의 반격이기 때문에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검찰 수사가 과도하다는 지적은 할 수 있지만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동의어로 쓰는 것에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눈과 귀를 모두 가린 외곬 진영 논리라는 것 외에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다.'정치인의 팬 문화가 민주주의를 삼킨다.' 지난 9월 11일 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아만다 헤스의 칼럼은 시사적이다. 헤스의 글은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유력 정치인들을 영화 주인공, 유명 가수 등 연예인들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오늘날 정치에 대한 경험은 과거와 달리 주로 이러한 팬덤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사실 정치인에 대해 열광하는 정치적 팬덤 현상은 오래된 일이다. 영국의 대처 총리,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 등도 열렬한 팬 층을 거느린 정치인이었다. 문제는 단순한 지지와 성원이 광적인 팬덤으로 변할 때 생겨난다. 연예인에 열광하는 팬은 대부분 스스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주체가 아닌 조작과 선동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특정 정치인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국민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지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원리가 실종되어 버린다는 말이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난 시절 촛불 시위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헌법 구절이다.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민주공화국의 핵심 원리이다. 국민이 주인이요, 정치인은 주인인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 공복일 뿐이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성원과 지지를 넘은 정치인에 대한 무조건적 열광은 주권자의 지위를 스스로 팽개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 수준을 넘는 정치를 갖기 어렵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도 진리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민이 주인이다. 주인이 하인에게 열광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주권자는 정치인의 감시자일지언정 팬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19-10-13 14:41:0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창천불부고심인(蒼天不負苦心人)

올 한 해 정부 청년정책 예산 20조그럼에도 현실은 나아지는 게 없어청년이 힘든 건 구조적 문제이지만스스로 애쓰면 하늘은 버리지 않아20조7천917억원, 올 한 해 정부의 청년정책 관련 예산이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17개 부, 보훈처 등 3개 처, 조달청·병무청 등 7개 청,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한 3개의 위원회가 이 돈(세금)을 썼거나 쓰고 있다. 청년일자리 사업, 청년고용지원 사업, 청년병사목돈마련지원 사업,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 등 해당 사업의 수만 153개에 이른다.내년엔 '햇살론 유스'도 나온다. 청년에게 생활자금을 저리로 빌려줘 취업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신경을 많이 쓴다. 대구시의 '대구형 청년보장제', 서울시의 '청년자율예산제' 등이 모두 청년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에서 나온 정책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과 정책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여전히 힘들다.지금 "청년은?"이라고 물으면 거의 공식처럼 '힘들다'가 따라붙는다. 정책만 보면 우리만큼 청년을 위하는 곳도 잘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심지어 매번 선거 때마다 청년공약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나름 말발 있는 인사들이 하나같이 청년을 외치는데도 현실은 좀체 나아지는 게 없다. 오히려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를 거쳐 'N포 세대'에 이르기까지, 청년은 사랑을 포기하고 우정을 포기하고 희망과 꿈을 포기하고 마침내 이것저것 다 포기하는 포기의 아이콘처럼 되고 말았다. 그간 '포기'의 개수만 늘어난 셈이다.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정부의 시각에서 보면 청년세대는 사회적 약자에 가깝다. 정책도 여기서 출발한다. 즉, 청년이 힘든 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 최대한 청년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들도 맥락이 비슷하다. 청년이 어려운 건 시대의 잘못이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성찰해야 하고 정부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주류적 견해로 정설처럼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청년에겐 잘못이 없으니 그들을 탓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박 사장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가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일자리가 없다고? 하루 이틀 출근하다 안 나오거나 채용면접에 연락도 없이 안 나타나는 청년이 부지기수다. 그들은 사회로 내딛는 첫발을 거짓말과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옆에 있던 김 부장도 거든다. "위에선 누르고 밑에선 치고 올라와서 힘들다는 거 있죠? 그거 다 옛날 말입니다. 요즘 애들은 스펙은 그렇게 쌓으면서 정작 실력은 쌓으려 들지 않습니다." 듣고 있던 최 사장도 한마디 보탠다. "그저 자기 것만 챙기려드니 원, 요즘 청년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며? 허허."참았다는 듯 이 과장도 입을 연다. "요즘 애들은 연애 말고는 딱히 관심 있는 게 없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못하는 건 뭐라 안 해도 이성 친구가 없으면 '루저'라고 하거든요. 진짜 청년정신을 가진 청년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들 자리만 차지하려 드는 겁니다."이들의 발언은 위험하다. 요즘 같은 분위기상 낡은 사고에 젖은 '꼰대'로 찍히기 십상이다. 말하다가도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걸 보면 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N포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온 지도 수년이 지났고 갖은 정책들도 별 효과를 못 거두고 있다면 한 번쯤 청년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도도 있어야 한다. 한 청년은 단군 이래 지금이 돈 벌기 가장 좋은 시대라 하고 다른 청년은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 부모가 가난해 유학을 못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한 세대로 묶기 어려울 만큼 큰 차이를 보이는 게 요즘 청년세대의 특징이다. 따라서 청년정책에 대한 기준도 좀 더 다양해져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스스로의 의지로 도전하는 청년이 있다면 그들에겐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 그들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과 사회적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덧붙여, 청년에 대한 비판과 요구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고로 낡아(?) 보이는 박 사장 일행의 말에 낡은 스타일로 한 줄을 더 보탠다. "창천불부고심인(蒼天不負苦心人) 즉, 하늘은 스스로 애쓰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2019-10-06 18:52:49

노동일 경희대 교수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이른 아침에] 원칙대로 수사할 수밖에 없다

'절제된 검찰권 행사' 대통령 발언윤 총장 그만두라는 말과 같지만검찰 수사 받는 법무장관 나라서총장이 물러나지 않은 것은 당연이른바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경우이다. 박지만 씨 친구라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세월호 유족 사찰' 죄목 때문이었을까. 검찰은 그에게 유독 가혹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나타난 그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검은 헝겊인지 수건인지를 덮었지만 선명한 검찰 마크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수갑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검찰의 관행이라고 하기에는 무리한 법집행이었다. 흉악범도 아니고 도주 우려도 없었다. 포토라인에 선 유명인치고 영장심사 과정에서 수갑을 채운 경우는 없었다.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안희정 전 지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도 그랬다. 집권층의 심기를 헤아린 검찰의 과잉행동이었는지는 모르겠다.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군인의 명예에 대한 의도적인 짓밟기였다. 이 전 사령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에는 그 같은 모욕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지인들에 대한 수사 등 검찰의 끊임없는 괴롭힘이 있었다고도 한다. 현직 신분의 변창훈 검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역시 비슷한 충격이었다. 오전 7시 아이들 보는 앞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한 검찰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을까 싶다.인권 보호, 엄정하고 절제된 검찰권 행사. 지난 정권 관련 수사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여권 누구도 말하지 않던 단어였다.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건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정치공세라며 일축했다. 더욱 철저한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검찰에 대한 독려만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유이다. "검찰은 국민을 상대로 공권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기관이므로 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검찰권 행사'의 핵심 지침으로 검사들의 가슴에 담아야 할 내용이다.문제는 발언 시점이다. 앞서 본대로 검찰 수사가 숱한 부작용을 나을 때 문 대통령이 같은 발언을 했다면 어땠을까. 반대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천금의 무게로 작용했을 게 틀림없다. 검찰 조직 전체가 스스로 조심하며 절제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조국 법무부 장관 집 압수수색에 대한 불만 표출로 해석될 뿐이다. 적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혹독해도 우리 편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워야 한다는 주문으로 들린다.다행인 것은 과거와 같은 구도가 되풀이 되지 않은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각영 검찰총장은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 사표를 던졌다. 강정구 교수 수사에 대한 천정배 법무장관의 지휘권 행사로 김종빈 총장이 물러난 적도 있다. 관행적으로 볼 때 문 대통령의 발언은 윤석열 총장이 그만두라는 말과 진배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 진중권 교수의 말대로 "청문회를 통해 도덕성을 상실한"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도 직을 유지하고 있다. 수사는 "아내와 검찰 사이의 다툼일 뿐"이고 본인은 검찰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한다.임기가 보장된 윤 총장이 물러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어떤 압력이 있어도 중도 사퇴라는 '과거의 관행'을 따라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재차 "검찰이 해야 할 일은 검찰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검찰은 원칙대로 수사를 하면 된다. 빠른 시간 내에 조 장관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조 장관 아들 수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검찰이 비판 받는 별건 수사이기 때문이다. 애초 제기된 의혹에만 집중하여 결과를 밝혀야 한다.여권 전체도 영웅시하던 윤석열 검찰에 돌을 던지는 행위를 멈추고 국정에 집중해야 한다. 조 장관 수사에 보복하듯 '검찰 개혁'을 외칠수록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검찰 개혁의 요체임은 다 알고 있다. 검찰이 개혁을 방해해도 필요하다면 국회의원들이 법을 통과시키면 된다. "조국만이 할 수 있다"거나 촛불집회가 있어야만 한다면 스스로 의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 말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문 대통령, 조 장관, 정치권, 윤 총장, 검찰 모두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다.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제 할 일을 할 때 국민들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9-09-29 16:36:0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언제까지 싸움만 할 건가?

이건 좀 심하다. 싸워도 너무 싸운다. 국회의원들은 왜 맨날 싸움질만 해대느냐며 사람들이 비난할 때도 그러지 마라고 했다. 국회는 원래 싸우는 곳이라고, 유권자들이 서로 내편 들어달라며 뽑아줬으니 좀 싸워도 된다고 했다. 지난 정부가 걸핏하면 일치단결, 혼연일체를 강조할 때도 그건 아니라고 했다. 때가 어느 땐데 병영국가에서나 나올 법한 소릴 하느냐고, 사람 사는 곳은 어느 정도 티격태격하기 마련이라고, 그게 다양성이고 거기서 새로운 게 나온다고 했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말문이 막힌다. '수꼴' '좌빨' '꼰대' '극혐' 등 증오와 멸시를 꾹꾹 눌러 담은 말들이 온 나라에 넘쳐난다. 나이 따라 세대가 반목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과 지역이 갈라져 서로를 백안시하고 여성이 남성을, 남성이 여성을 서로 깎아내린다. 이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적당히 싸움에 편승하거나 갈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잇속을 챙긴다. 심지어는 싸움을 은근히 부추기기까지 한다.이건 다양성이 넘치는 사회도 아니고 좋게 말해 정치적으로 역동적인 사회도 아니다. 그저 난장판에 가까울 뿐이다. 이번 정부 들어 내내 그랬다. 처음 문재인 대통령이 홍은동 자택을 나와 청와대로 향할 때, 거리에서 시민과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을 때, 그때 잠시 조용했을 뿐이다. 그 후론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곱씹어 보면 나라가 이처럼 사분오열된 가장 큰 원인은 정치에 있다. 취임 초, 쪼그려 앉아 어린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국민과의 스킨십을 즐기는 대통령을 보며 여당은 '불통의 시대가 가고 소통의 시대가 왔다'고 했다. 그러자 야당은 그건 소통이 아니라 그저 보여주기식 '쇼통'일 뿐이라 받아쳤다.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어 사사건건 끊임없이 이어졌다.크게는 탈원전 문제로 싸우고 4대강 보 해체를 두고 싸우고 대북 정책을 놓고도 싸우고 또 싸운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에 관해선 전쟁을 벌이다시피 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대선 후보들의 선거공약을 보면 이런 문제들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도 말이다.작게는 대통령의 옷차림, 여당 정치인의 말 한마디, 야당 대표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정쟁거리가 되었다. 싸움이 격화될수록 양쪽은 유리한 판세를 점하려 각각 기를 쓰고 국민을 끌어들였다.한쪽은 내 뜻대로 돼야 나라가 제대로 설 거라 하고 다른 쪽은 그렇게 되면 나라가 거덜날 거라고 했다. 그러다 점점 국민을 향한 호소는 협박이 되고 국민과 국민을 갈라놓는 이간질이 되었다. 그렇게 논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편향된 믿음과 불굴의 투쟁심만 남았다. 저런 수구세력이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할 리가 없고, 저런 좌파세력이 올바른 생각을 할 리가 없다는 식이다.어느 한쪽의 논리로만 본다면 아직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이렇게 되면 굳이 뭐가 옳고 더 좋은 건지 논쟁을 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 시간에 저 나라를 좀먹는 나쁜 무리를 향해 증오와 저주를 퍼붓는 것이 지지자 규합에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한 달 넘게 나라의 모든 이슈를 집어 삼키고 있는 조국 논란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린 게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막으려 했다면 인사청문회를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강남 좌파 조국은 틀림없이 위선자에 악인일 거라는 확신과 적개심을 앞세우기보다 그에 관한 의혹을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따져 물었어야 했다.짧은 기간, 어마어마한 양의 조국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 그 과정에서 육두문자 빼곤 한 인간과 그의 가족에게 퍼부을 수 있는 모든 모욕과 비난은 다 본 듯하다. 어떤 이는 아침부터 밤까지 서로 싸우고 비난하는 뉴스만 접하다 보니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라고 한다.이제 그만 좀 하자. 대한민국이 무슨 조국 이전 시대와 조국 이후 시대로 나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오죽하면 대한상의 회장이 "정치는 끝없이 대립하고 우리 경제는 버려지고 잊힌 자식 같다"며 한탄을 할까? 조국 장관이든 그의 가족이든 죄가 있다면 재판을 통해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경제도 돌아보고 태풍이 오는지도 살피고 가을 하늘도 한 번씩 쳐다보자. 그렇게 다른 이야기도 좀 하고 살자.

2019-09-22 14:55:43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조국 법무부장관께

한가위는 잘 보내셨는지요. 상투적인 명절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짐작건대 가족들이 모두 모이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가족들 거의 모두가 수사대상이 된 상황이네요. 명절 기분은커녕 황망하고 어수선하기만 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생각하면 국외자인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장관 자리가 뭐라고. '검찰 개혁을 위한 소명'이 뭐라고. 가족들이 그 정도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들이 원망 대신 전폭적인 지지를 표해 주었기를 바랍니다. 어찌되었든 이제는 '대한민국 법무부장관 조국'이 되었습니다. 무려 66대 장관이더군요. 우여곡절이 너무 심했고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높지만 기왕 취임한 마당입니다. 과거 청문회 등에서 수십 번 나왔던 얘기를 다시 끄집어내지는 않으렵니다. 당부라는 말은 주제넘은 것 같고 장관으로서 기대하는 바를 적으려 합니다.저는 앞서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이라는 말을 일부러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조국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장관이 아닙니다. 진보진영 장관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국무위원이 된 것입니다. 장관으로서, 특히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법무부장관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사실입니다.자주 인용하시는 헌법에 공무원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비록 정무직 공무원이지만 장관은 특정 정당이나 정파 혹은 진영에 충성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특히 조 장관님에게는 이 헌법 조문이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장관님의 행보에 비추어 그렇다는 말입니다.1만5천 개가 넘는 트위터 글로 '조국 어록'이 생겼다는 얘기는 아실 겁니다. 극단의 '당파성'과 '편 가르기', 그리고 '언행 불일치'가 조국 어록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일일이 예를 들지 않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념과 지역 등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입니다. 장관님의 청문회와 임명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마음은 더더욱 나누어지고 찢겨졌습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추석 상 앞에서 '조국 장관' 문제로 다툰 가정이 많았을 겁니다. 장관님은 청문회 과정에서 '성찰'이라는 말을 수십 번은 되풀이했을 것입니다. 그 말대로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일개 정파의 전위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으로 말입니다.고 신영복 교수를 존경하시겠죠? 문재인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인물입니다. 진보진영의 이데올로그이기도 합니다. 장관님도 신 교수의 생각을 흠모하고 따를 것으로 믿습니다. '담론'이라는 책에서 신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남철의 여윈 바늘 끝처럼 불안하게 전율하고 있어야 하는 존재가 지식인의 초상입니다. 어느 한쪽에 고정되면 이미 지남철이 아니며? 참다운 지식인이 못 됩니다." '떨리는 지남철'이라는 시를 인용하여 지식인의 역할을 말한 것이지요.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라고 할 수 없는 열린 생각을 가진 지식인의 고뇌와 방황은 지남철의 바늘 끝을 닮았습니다.지식인은 경계 지점, 회색지대에 살아갑니다. 옳고 그름은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고, 절대적으로 옳은 사상이나 논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는 회색분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식인의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말이야 개의치 않아도 좋습니다. 신영복 교수는 무게가 다르지 않겠습니까.'앙가주망', 즉 지식인의 현실 참여는 의무라고 하셨죠. 사르트르가 그 말을 사용한 맥락은 지식인이 권력의 중심에 서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권력이 엇나가지 않도록 비판하고 견제하는 '나침반'의 역할로서 지식인의 현실 참여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 장관님입니다. 험난한 과정을 통한 성찰의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열린 생각을 가진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기를 말입니다. 그토록 소명으로 여기던 검찰 개혁도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정파의 시각이 아닌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의 시각에서, 독선이 아닌 열린 생각으로 추진해야만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19-09-15 15:36:15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같은 땅, 다른 세상

'매장별 재고 및 위치'란 게 있다. 국내 대형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가끔 클릭하는 항목이다. 그런데 이게 창이 열릴 때마다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한다. 책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데 전국을 세 영역으로 나눠 놓았다. 하나는 서울, 또 하나는 수도권,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지방이다. 세상에 무슨 이따위 분류가 있나 싶다. 게다가 '지역'도 아닌 '지방'이란다. 북부권, 중부권, 남부권이라 해도 되고 그게 싫으면 수도권, 비수도권으로 구분해도 될 텐데 말이다. 서울 중심 사고의 전형이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자기네들 중심으로 서울발 부산행 열차를 상행이라 하고 그 반대를 하행선이라 표시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그런데 이런 건 흔하다. 뉴스에서 "국민 여러분 종일 내린 비로 불편하셨죠?"라고 아나운서가 인사를 하면 속으로 '아니거든, 서울 말고 전국이 쨍쨍했거든' 하다가도 이젠 그러려니 한다. 또, 대구 청년이 입사지원서에 어떻게든 서울 친척집 주소라도 적어놓은 걸 보면 참 씁쓸하지만 이 또한 잦다 보니 그러려니 한다. 심지어 이젠 시위조차 광화문에서 해야 뭔가 하는 것 같다고 보지만 이마저 익숙해졌다. 같은 크기, 같은 무게라도 장소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격이다. 이렇듯 서울과 서울 아닌 지역은 같은 땅 다른 세상을 산다. 그리고 그 사이로 넘지 못할 벽을 계속 쌓아 올린다. 주로 서울 사람들이 그런다.요금제를 바꿔볼까? 휴대폰 요금내역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매번 데이터는 모자라고 통화량은 남아서다. 그러다 우연히 꽤 괜찮은 요금제를 발견했다. 가격은 싼데 제공되는 데이터 용량은 오히려 더 크다. 더구나 하루 중 2시간은 데이터가 무제한이다. 곧장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로그인을 했다. 상품을 선택하고 '데이터 프리' 시간대는 하루 중 언제로 할지 심사숙고해 정했다. 그런 다음 여러 차례 '동의'에 체크를 하고 마지막으로 확인 버튼까지 눌렀다. 그런데 웬걸? 가입이 안 된단다. 해당 요금제는 25세 이하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뜬다. 괜히 시간만 버렸다.그런데 가만 보니 다른 요금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연령대에 맞춰 상품이 구성되어 있다. 내가 노렸던 요금제는 야외 활동이 비교적 잦은 20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상품이었다. 한마디로 난 자격 미달이었다. 예외는 없었다. 적어도 휴대폰요금제만 놓고 보면 누구든 나이 따라 정해 놓은 표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 만약 그렇게 살지 않을 거면 손해가 나도 참아야 한다. 모바일 뉴스도 나이에 맞춰 제공된다. 사용자 중심 인터페이스라지만 나이 고정 인터페이스에 가깝다.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이 주로 어떤 뉴스를 보는지 알고 싶다면 일일이 찾아 눌러야 한다. 화면을 쓱 미는 정도로는 안 된다. 이래저래 모바일 세계에선 나이가 영역을 가른다. 그리고 벽을 쌓고선 각기 따로 산다.여론조사기관들은 놀랍다. 매번 국민을 보수와 진보로 딱딱 나눠서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이게 가능할까? 보수라서, 진보라서 견해가 다르다는 데 정말 그럴까? 우리에겐 그런 정치적 내력도 없고 그런 걸 배운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자꾸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모든 국민의 정치적 정체성이 칼같이 정돈되어 버렸다. 혹시라도 이게 틀렸다면? 진보와 보수로 국민을 가르는 게 엉터리라면? 하지만 그런 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말하는 사람도 어차피 잘 없다. 그저 두 개의 진영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훅, 스트레이트, 잔 펀치, 큰 거 한방' 등의 단어가 하루 종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권투 중계가 아니라 법무장관 후보의 인사청문회 중계다. 양 진영은 조국을 지키느냐, 조국을 쫓아내느냐에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것처럼 싸운다. 조국은 조국(祖國)이 아님에도 말이다. 지난 한 달 내내 그랬다. 하나의 건으로 이렇게 많은 뉴스와 논평이 쏟아지는 걸 본 적이 없다. 머릿속이 더부룩할 지경이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며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들은 같은 땅 다른 나라를 산다.정말이지 나라가 온통 이러면, 사는 곳 따라, 나이 따라, 진영 따라 모두가 같은 땅 다른 세상을 산다면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는 없다. 상대를 인정하고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그래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2019-09-08 14:52:38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윤석열 검찰'의 '조국 수사' 국민이 지켜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스'의 실소유주인가. 다스 수사와 재판은 우리 검찰의 민낯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200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다스 실소유주 등 논란이 불거지자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선거를 2주일 앞둔 시점에서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는 모두 아는 바대로다. 다스 등 이 전 대통령 관련 모든 의혹은 무혐의. 논란이 이어지자 이듬해에는 정호영 특검이 나섰다. 특검 수사 결과 역시 혐의 없음이었다.우리가 목격한 대로 문재인 정부 들어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취임 후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2018년 3월 다스를 통한 339억원의 비자금 조성과 348억원 횡령 혐의로 이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했다. 1심은 일단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와 재판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자임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이쯤 되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검찰과 현재의 검찰 중 어느 검찰을 믿어야 하는가. 현재의 검찰이 맞다면 과거의 검찰은 왜 무혐의 결정을 내렸을까. 능력 부족인가 다른 정치적 고려가 있었을까. 잘못된 수사 결과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자.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규명해야 한다. 현재의 결론을 미래의 검찰이 뒤집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을까.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냉소가 답으로 돌아올 것 같다.살아 있는 권력에 굴종하고 죽은 권력에 가혹한 검찰. 정권의 향배에 따라 표변하는 검찰. 다스의 문제만도 아니고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어느덧 우리는 그런 검찰의 모습이 당연한 것인 양 길들여진 게 아닐까 싶다. '윤석열 검찰'의 '진짜 의도'에 의구심을 갖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는 가히 전격적이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장관 후보자 관련 수사도 초유의 일이거니와 대대적인 압수수색 또한 심상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조국 법무부장관을 임명할 게 확실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수사를 개시한 검찰의 의지를 이번에는 믿어볼 만하다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 반면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맹탕 청문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중요한 이유로 든다. 조 후보자와 증인이 진술을 회피하고, 제출할 자료가 없다는 근거로 검찰 수사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어느 쪽이든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검찰이 조 후보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일 수도 물론 있다. 조 후보자는 사과를 하면서도 불법은 없었다, 법과 제도를 따랐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검찰 수사로 위법은 없었다고 확인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들 사이의 재산 관계, 석연치 않은 사모펀드 투자, 자녀 논문 및 장학금 관련 문제 등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수사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예단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점은 또다시 특검 혹은 미래의 검찰 수사가 필요하지 않도록 의혹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윤석열 검찰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국민의 검찰"이라는 말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말대로만 하면 된다. 사람 혹은 정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수사하도록 검찰을 지휘해야 한다.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에도 엄정하라"는 주문을 한 바 있다. 본인의 언명대로 하려면 문 대통령은 여당과 청와대 일각의 검찰 비판에 제동을 걸어야 마땅하다.조 후보자는 말빚이 너무 많다. 과거의 조국이 오늘의 조국에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느냐." 과거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남긴 그의 말이다."조선 시대 언관(言官)에 탄핵당한 관리는 사실 여부를 떠나 사직해야 했고, 무고함이 밝혀진 후 복직했다"는 말도 있다. 역시 말한 대로 하면 된다. 언관에 탄핵당한 정도가 아니라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인물이 장관직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 다른 장관도 아닌 법무부장관이다. (검찰 수사로) 무고함이 밝혀진다면 다시 등장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모두가 자신이 한 말의 엄중함을 새기고 행동할 때 검찰 수사, 특검 수사, 검찰의 재수사로 이어지는 검찰의 흑역사 또한 청산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2019-09-01 16:59:27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순종어가길, 결단이 필요하다

달성공원 정문 '순종 황제 동상'이토에 끌려다닌 굴종의 상징철거 요구에 중구청 반대하지만'다크투어리즘' 아닌 '다크'할 뿐 달성공원 하면 '달성공원 앞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세상 느긋한 표정으로 쪼그려 앉은 어르신들, 담벼락 따라 길게 늘어선 노점들, 찻길을 꺾어 들면 금세 색다른 공간을 만나게 된다. 어떤 이에겐 키다리 아저씨의 추억으로, 또 어떤 이에겐 여름날 사 먹던 냉차로 기억되는 그곳, 그 안에 서면 시간이 살짝 느리게 흐른다. 코끝에 잦아들던 공기도 슬며시 나른하고 잔잔해진다. 알고 보면 일제의 신사가 들어섰다 쫓겨난 곳, 돌문도 세워졌다 무너진 곳, 달성공원은 지난 시대의 요동과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낸 곳이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공원 밖 담장 아래가 더 평화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느긋하게 펼쳐진 진입로가 오히려 더 공원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런데 이 모든 게 한꺼번에 옛일이 되었다. 중구청의 각별한 노력으로 '달성공원 앞'의 고유했던 장소성이 그예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게 2017년 5월, 순종 황제의 동상이 들어서고 나서였다. 예의 '달성공원 앞길'이 더는 느긋하지도 잔잔하지도 않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이 구역의 주인공이었던 달성공원 정문도 저 멀리 동상의 배경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이제 '달성공원 앞'은 커다란 금빛 동상이 홀로 위용을 뽐내고 바닥엔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널브러진, 희한한 방식으로 버려진 길이 되었다.사람과 자동차 모두가 외면하는 좁고 불편한 길, 중구청이 70여억원의 돈과 4년여의 시간을 투자해 추진한 '순종황제어가길 조성 사업'의 성과가 이렇게 마무리된 셈이다. 사실,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이 사업엔 의구심을 품거나 반대한 사람이 시작 전부터 많았다. '어가길'이라기보단 순종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끌려다닌 '굴종의 길'일진대 굳이 복원할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일장 연설과 그에 대한 만세 삼창으로 채워진 황제의 순행(巡幸)인 터라 자칫 '이토 히로부미의 길'이 될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기에 대한 중구청의 답은 간단했다. 이른바 '다크투어리즘'이라는 거였다. 순종황제어가길에 숨겨진 구국 정신을 다크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켜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동시에 주변 상권도 활성화시킬 것이라 했다.하지만 5.5미터 높이의 동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거기에 '먼 곳을 응시하는 순종이 백성들에게 희망의 다리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표현했다'는 설명이 더해지자 여기저기서 역사 왜곡이라는 항의가 잇달았다. 당장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게 일었다. 이에 대한 중구청의 답은 전과 같았다. '다크투어리즘'이라는 거였다. 순간, "서양의 것이라면 양잿물도 마시려 들겠다"며 혀를 끌끌 차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려 '구국 정신'이 승화되어 '다크투어리즘'이 된다니?'다크투어리즘'은 그처럼 숭고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슨 신기술도 아니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기에도 부족한 그저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 기를 쓰고 조성하거나 육성해야 할 만큼 엄청나게 좋은 그 '무엇'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래서 난 이런 건 '다크투어리즘'이 아니라고 지면에 썼다. 하늘을 난다고 다 비행기가 아니듯 말이다. 약간의 역사성에 교훈을 쥐어짠다고, 거기에 적당량의 슬픔과 우울을 버무린다고 다크투어리즘이 될 것 같으면 월요일 출근길도 '다크투어리즘'이 될 판이기 때문이었다. 중구청은 역시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달부턴 순종황제어가길 동상이 전국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한일 관계의 이상 기류를 타고 친일 역사 왜곡의 사례로 언론이 집중 조명한 까닭이다. 대구 달성공원이 엉뚱한 이유로 유명세를 타게 된 셈이다.화가 난 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의 도시 대구'에 있어서는 안 될 조형물이라며 다시 한 번 철거를 요구했다. 이번에도 중구청은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취지를 봐 달라고 했다. 뉘앙스도 같았다. 어디까지나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수준 높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가 낮아서 발생한 소동이었다. 답답해진 시민들이 정 그렇다면 달성공원 안이나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중구청의 답은 같았다. '그래도 다크투어리즘'이었다.시민을 우롱하는 것도 아니고 이쯤 되면 차라리 고백을 하는 게 맞다. 국비와 시비를 받아 쓴 탓에 입장이 난처하다고. 하지만 방법을 찾겠다고 말하는 게 맞다. 동상 하나가 시민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제 그만 좀 하자. '순종황제어가길'은 '다크투어리즘'이 아니라 그냥 '다크'할 뿐이다. 중구청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2019-08-25 14:53:12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강남좌파와 조국 교수

'법학계의 장동건'. 교수들 사이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를 지칭하던 말이다. 농반진반이지만 조 교수의 준수한 외모를 보면 전혀 근거 없는 별명은 아니다. 서울대 교수에, 미남에, 게다가 부자이기까지. 부러우면 진다지만 솔직히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조 교수는 스스로를 '강남좌파'로 규정하는 데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강남좌파라는 비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곤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조지 클루니 입 닥치라는 것"과 같다는 말로 응수한 바 있다. 서구의 이른바 '캐비어 좌파' '리무진 리버럴'이나 '샴페인 사회주의자'와 강남좌파를 동일시한 것으로 보인다.왜 하필 조지 클루니인지는 의문이다. 많은 서구 좌파 인사들 중 조 교수와 가장 비슷한 인물은 교수인 노엄 촘스키 같은데 말이다. 미상불 클루니를 닮기는 했다. 늘 의식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는 제스처에, 멋지게 들리는 말을 골라 쓰고, 매일 새로운 텀블러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서는 등 연예인적(?)인 기질이 비슷하긴 하다. 그렇더라도 조 교수가 이런 용어들의 진짜 뉘앙스를 아는지 모르겠다.스티브 프레이저가 같은 이름의 저서에서 묘사한 '리무진 리버럴'은 일반적으로 고학력에 부유한 상류층이면서 진보적 이념을 추구하는 (주로 민주당) 정치인을 일컫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역사학자인 저자는 리무진 리버럴이 실제로는 위선적인 진보 정치인을 비아냥거리는 말로 굳어진 역사를 천착하고 있다.겉으로는 서민과 약자를 위하는 척하지만 본인은 부자 동네에 살면서 고급 리무진을 타고 자식들을 서민들은 감당하기 힘든 비싼 사립학교에 보내는 진보주의자들의 위선과 가식을 꼬집는 부정적인 용어인 것이다. 단순히 부자이면서 진보적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과는 다른 뉘앙스이다. 강준만 교수가 강남좌파라는 용어를 쓴 이유도 마찬가지다. 특히 범여권 386 등 의식과 물질이 따로 노는 가진 자의 위선이나 허위 의식을 비판할 때 주로 쓰인다. "강남좌파가 많아져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식의 긍정적 의미는 아닌 것이다.그동안 숱하게 목격한 강남좌파들의 행태는 그 용어의 부정적 인상을 굳게 해준다. 말로는 재벌 해체를 외치면서 속으로 그 재벌 기업들에 투자하여 부를 쌓는다. 외고 폐지 등 평등 교육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자녀들은 주로 외고나 유학 등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낼 교육을 시킨다. 자신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면서도 겉으로는 그 모순을 지적하며 사회주의를 꿈꾼다. 환경주의자로 원자력을 사갈시하면서 태양광 설치 명목으로 국토가 유린되는 데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경우도 이 같은 부정적인 강남좌파의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시도조차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조국 교수이다. 정부를 비판하면 친일파요 매국노로 단정한 '조국 민정수석'은 다른 사람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조국 법무부장관'은 정부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가짜 뉴스'로 규정하고, 박멸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극도의 편향성과 당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인사가 법무부장관의 생명인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킬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법무부의 영문 명칭(Ministry of Justice)은 정의 자체를 표상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폴리페서 논란, 위장 전입과 재산 및 가족 관련 각종 의혹 등은 어떤 해명을 내놓는지 일단 지켜보겠다. 중요한 것은 논점을 흐리지 않는 것이다. 임명직이냐 선출직이냐는 폴리페서 논란의 본질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특정 정치세력의 전위대 노릇을 하던 지식인이 그에 따른 정치적 반대급부를 받는 게 옳은 처신이냐 하는 게 핵심이다.위장 전입이 2005년 이후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본인은 위장 전입을 생각도 않았기에 과거 위장 전입을 그토록 비난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사모펀드 투자가 불법인지 이익을 냈는지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왜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는지가 관심이다. 역시 상식으로는 이해 불가인 가족들 문제도 사생활 문제라고 피해 갈 수 없다. 본인과 부인, 그리고 모든 가족들이 밀접하게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이다.본인의 말처럼 진솔하게 사실대로 해명해야 한다. 하루만 맞고 가면 끝날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단순히 부자이면서 좌파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위선과 이중성이 문제인 것이다.

2019-08-18 16:26:4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말 안 듣는 청년이 이긴다

'보이콧 재팬'(Boycott Japan)의 로고타이프는 딱 떨어진다. 명확하고 직관적이다. 슬로건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도 한눈에 쏙 들어온다. 적절한 두께와 정직한 서체, 젊고 간결한 데다 확장성까지 갖췄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시선을 잡고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잇는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만든 사람은 누굴까? 확인해 보니 서울 사는 디자이너 김용길 씨다. 누가 시켰거나 뭘 바라고 한 건 당연히 아니란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자신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그랬다고 한다. 강요가 아니라 참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시민들의 의사를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상징을 기획했다고 한다. 보이는 그대로다. 그리고 아베 신조 총리에겐 '후쿠시마산 복숭아 많이 드시라'는 말도 남겼다. 창의성에 시의성까지 갖춘 순발력 있는 재능기부인 셈이다.하나 더, 노노재팬 닷컴(nonojapan.com)은 사용자 중심 UI(유저 인터페이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군더더기는 다 빼고 방문자에게 필요한 것만 딱딱 눈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네티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한 기능도 갖췄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공개했다. 지난달 중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접속자가 폭주해 한때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운영자 김병규 씨는 일제의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에게 위로와 공감을 표시하려 이 사이트를 개설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재능과 창의성에 참여 의지가 더해진 결과다.김용길 씨와 김병규 씨는 모두 대한민국의 청년들이다. 이들과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함께하는 청년들에게선 한 가지 분명한 게 느껴진다. 일본에 진다거나 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에 위축되지도 않고 그들을 별스레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심지어 위 세대만큼 일본에 대해 한 맺힌 것도 없어 반일 감정도 덜하다. 그러니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혹시 모를 열패감도 있을 리 없다. 어찌 보면 아직 젊어서 그런 거라고, 일본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 나라인지 몰라서 그런 거라고, 심지어 철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하지만 이것만으론 이들의 행동이나 태도가 다 설명되지 않는다. 일본을 옆 마을 가듯 하는 청년이 수십만 명이다. 일본을 직접 보고 듣는 기회도 예전에 비해 훨씬 많다. 일본이 우리보다 인구도 많고 땅도 넓으며 기초기술마저 앞서 있다는 사실 또한 이들도 잘 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들은 일본에 고분고분 져줄 의사가 추호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역력하다. 수적 열세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승부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뜻이다."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다"는 드라마 대사가 있다. 안동에서 촬영한 '미스터 선샤인'에서 주인공 '유진 초이'가 대한제국의 관리에게 한 말이다. 시세를 따라야 할 일과 마땅히 해야 할 일, 이 둘을 짐작보다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이 이미 구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칙을 두고 타협하지 않을 때, 믿음이 올바른 방향을 향할 때, 더구나 그 주인공이 청년일 때, 거기서 나오는 힘은 몇 배로 커진다. 그리고 그것에 남다른 재능과 창의성이 더해지면? 이런 건 수치로 설명되지 않는다.돌아보면 지난 30년, 우리는 무서운 속도로 일본을 따라잡았다. 소니 워크맨의 추억은 이미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고 차세대 통신의 결정판 5G도 우리가 멀찌감치 앞섰다. 이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일본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한국의 청년들이 만든 시스템으로 일본 청년들이 SNS(소셜네크워크서비스)를 하고 한국의 청년들이 만든 MMORPG(다중접속역할게임)로 일본 청년들이 게임을 한다. 일본의 아이돌 AKB48이 '귀엽다는 칭찬'에 안달할 때 한국의 아이돌 '블랙핑크'는 당당하고 씩씩하게 '걸 크러시'를 뿜는다. 연결에 관한 것과 역동성, 창의성이 필요한 건 한국의 청년들이 압도적으로 잘한다는 이야기다.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지 한 달여,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청년들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에 정략적으로 숟가락 얹지는 말자. 그렇다고 말리지도 말자. 고래로 이 땅의 청년들은 고분고분했던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면 언제나 득달같이 달려와 맨 앞에서 싸웠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두자. 말 안 듣는 대한민국 청년이 일본을 이긴다.

2019-08-11 14:55:07

노동일 경희대교수.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이른 아침에] 집권층이 편 가르기를 중지해야 이긴다

우리 국민 모두는 대한민국 편정부 비판한다고 일본 편 아냐해결책 낼 책임있는 사람들이편 가르기에 몰두해서는 안 돼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게 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대한민국 편이라는 사실이다. 아베 편, 일본 편인 사람은 없다. 평소에는 물론이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일본을 편드는 '친일파' 한국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분명히 하고 싶은 게 있다. 대한민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과 대한민국 편이 아니라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라는 사실이다.내친김에 한 가지 더 분명히 해두자. 사법부, 특히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것과 그 판결을 부인하는 것 또한 다르다는 사실이다.대한민국 편이지만 대한민국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 특히 현안이 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 방식은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지금까지보다 더 나은 대응 방법은 없었는가, 앞으로 현명한 대처 방법은 무엇인가. 야당과 언론은 물론 국민 누구든지 얼마든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생각과 다른 비판적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런저런 생각들을 모아 최선의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고 현명한 당국자의 의무이다.대법원 판결은 물론 존중해야 한다. 판결 결과에 승복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극히 예외적인 재심 사유 외에는 말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징용 배상 판결 역시 대법원의 결론에 대한 불복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판결에 승복하는 것과 논리적 비판은 모순되지 않는다. 대법원 판결이라 해도, 아니 대법원 판결일수록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판례가 시대에 맞게 바뀔 수 있는 원동력이 판례 비평에서 나온다. 징용 배상 판결 자체가 그 같은 비판과 논쟁의 결과물이다.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것을 판결 부인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판례는 불가능하다.우리 정부나 판결을 비판하면 친일파라고 하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일본과 (경제)전쟁 중이니 안 된다는 논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국민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던 역사가 있었다. 너는 누구 편인지 밝힐 것을 강요하던 때가 있었다. 군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은 머지않은 과거이다.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노리는' 북한의 존재만 들먹이면 만사형통이었다. 당시 그 같은 억압에 대항해 싸우던 사람들이 현재 집권 세력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친일파 낙인은 빨갱이 딱지의 새로운 형태에 다름 아니다. 누구 편인가를 묻고 함부로 친일파 딱지를 붙이는 데 더욱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대법원 판결 후 우리 정부의 대처 방식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현재의 대응 방식 역시 아쉬움이 있다. 중재위 카드를 택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지난 칼럼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일본 대사를 지낸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도 같은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이런 의견들은 우리 정부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더 좋은 방안을 찾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판을 자제하고 싶다. 어쨌든 전쟁이 벌어진 이상 우리의 수장인 대통령과 정부에 힘을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엄중한 상황을 신중하게 지켜볼 필요도 있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할 일은 바로 이런 것이다. 편가르기와 선동적 언어 대신 모든 국민의 힘을 모으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국민들이야 일제 안 사고, 일본 안 가면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일제 차를 부수고, 안 되면 죽창이라도 들겠다는 각오로 애국심을 시전하면 된다. 고위 공직자들은 다르다. 정부와 의견이 다른 상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나부터 친정부 여론 형성에 앞장설 용의가 있다. 친일파 색출로 한일 갈등이 해소된다면 5천만 커밍아웃 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편가르기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 분열의 언어를 그치고 통합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비판마저도 대한민국을 위한 애국심의 발로임을 인정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반일 감정을 선거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문 대통령의 각오처럼 일본에 다시 지지 않으려면 집권층의 편 가르기 언어부터 달라져야 한다.

2019-08-04 15: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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