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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브랜드, 그게 뭐라고?

브랜드는 이름이다. 정확히는 세상 유일한 것에 붙는 단 하나의 이름이다. 사람의 이름도 그렇다. 하나의 이름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다. 내 아이의 이름처럼 말이다. 그래서 둘은 닮았다. 내친김에 나란히 놓고 정리해 보자.아이가 태어나 이름을 지었다. 즉, 브랜드의 탄생이다. 아이의 부모가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고 했다. 이건 브랜드 슬로건, 혹은 도시로 치면 정책 슬로건이다. 아이의 할머니가 "어이구! 우리 강아지"라고 했다. 강아지는 어쩌면 이 브랜드의 캐릭터가 될지도 모른다. 아이가 자라 조금씩 '자기만의 것'을 찾기 시작했다. 옷 하나를 고를 때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한다. 이른바 브랜드의 정체성 확립이다. 갈수록 아이를 알아보고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이건 브랜드의 확산이다. 훌륭히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세상에 이름을 떨친다. 그 이름 하나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세상이 바뀐다. 다름 아닌 '브랜드 파워'다. 이게 전부다.다시 풀어 보면 이렇게 된다. 맨 처음 브랜드는 단지 하나의 이름일 뿐이었다. 브랜드의 전개, 즉 브랜딩은 부모가, 할머니가 그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브랜드의 비전은 한 가족의 문화와 그 구성원들의 생각과 바람으로 설정된다. 브랜드의 정체성은 부모의 영향과 아이의 노력이 모여 만들어지고 '자기다움'을 지켜 가는 것으로 유지된다. 브랜드 파워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면 솟아나고 정체성을 지켜낼수록 세지며 아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만큼 커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성공한 브랜드의 모든 전개 과정에는 손자를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처럼 지극한 사랑이 녹아 있다. 그건 아이디어를 곧 창의성으로 여기는 사이비 전문가들의 얄팍한 기술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다.그렇다면 이쯤에서 브랜드와 그 정체성에 관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대구로 가져와 보자.지난 2015년 11월 2일, '대구 도시 브랜드를 만드는 시민모임'의 출범식이 있었다. 그때, 대구시는 '도시의 핵심 가치와 비전을 반영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담아내며 시민의 집단 지성과 공감을 이끌어내 긍정과 희망의 공동체 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도시의 100년 가는 브랜드'를 만들겠노라 천명했다.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건 없다. 설사 있다 해도 이런 정도의 것이 무슨 시민모임에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치자. 그게 뭐라고? '로고 타이프'와 '심벌마크', 기껏해야 글자 몇 개에 약간의 이미지가 다가 아닌가! 그건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다.브랜드는 만드는 게 '1'이라면 그다음에 있을 과정이 '99'이다. 다만 그 '1'이 중요한 건 그것이 '99'를 방해하거나 제한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그래서 필요한 거다. 전문가는 그 이름이 진짜 '사람의 이름'으로 적합한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다. 전문가는 그 뒤에 올 '99', 즉 브랜드의 운용 및 전개 과정에서 제약이 될 요소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미리 찾아내 고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가는 상징이 아니라 합리적 운용이 가능한 '상징 체계'를 만드는 사람이다.'99'에 선행하는 '1'을 만드는 작업, 이건 우주선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전문적인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시민모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아마추어 프로축구선수'가 없듯이 '시민전문가'라는 말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컬러풀대구'를 대신할 브랜드가 필요하면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진짜 전문가라면 한동안 미친 듯이 대구를 사랑할 테고 가짜 전문가는 뉴욕은 어떻고 코펜하겐은 어떠니 하며 낡은 이야기를 하려 들 것이다. 진짜 전문가라면 하염없이 시민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할 테고 가짜 전문가는 시민에게 대구의 정체성을 가르치고 일깨우려 들 것이다. 그러니 대구 도시 브랜드, 할 거면 전문가 그룹에 맡겨 제대로 하고 아니면 말아야 한다. 그다음에 진행될 '99'는 시와 시민의 몫이다.

2019-05-19 14:58:31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헬렌 토머스. 언론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다 아는 전설적 이름이다. 1961년 여성 최초로 백악관 출입 기자가 되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하며 50여 년간 백악관 기자실 맨 앞줄을 지켰다. 백악관 기자회견의 첫 질문과 마지막 인사는 항상 그녀의 몫이었다.토머스 기자는 특히 직설적인 질문으로 유명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들이 곤혹스러워하는 부분을 집요하게 물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는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는 이란 인질 사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는 그라나다 공격과 이란-이라크 전쟁,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성추문에 대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질문했다. 이라크 침공에 대한 비판적 질문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출입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복귀 후에도 이라크 전쟁의 부당성을 추궁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토머스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진실을 캐기 위한 질문과 무례한 질문을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물음에 "무례한 질문이란 건 없다"고 답했다. "기자는 질문하는 것이 특권이고, 대통령은 기자의 질문에 답할 의무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대통령을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대통령이 '왕'이 되기를 원하는가?"2013년 토머스 기자가 별세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했다. "헬렌은 민주주의를 향한 집요한 신념으로 미국 대통령들을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다." 토머스의 일화나 오바마 대통령의 성명이 말하는 바는 같다. 기자는 무례해도 좋은 특권을 누려야 한다는 게 아니다.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권력에 대한 기자의 질문은 기자 개인이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 묻는 것이라는 확고한 의식이다.지난 9일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혹은 대담)에 대한 후폭풍이 일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문 대통령의 답변 내용이 화제가 되어야 한다. 취임 2주년의 소회와 향후 국정 운영의 비전이 조명을 받아야 한다. 엉뚱하게도 대담을 진행한 송현정 한국방송(KBS) 기자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인상을 쓰며' '답변에 끼어들고' '독재자'라는 표현을 쓰는 등 무례했다는 인신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본인뿐 아니라 사촌 동생인 가수에게까지 이른바 신상털이가 진행 중이다. 한마디로 어이 없는 반응이다. 대담 진행을 잘 했는지, 질문 내용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딜 감히"라거나 "박근혜 시절에는 찍소리 못하더니"라는 식의 비판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그런 '비정상의 정상화'가 문재인 정부의 목표 아닌가 말이다.관점에 따라 지지자들에게 불편해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 물론 있었다. 하지만 송 기자의 다소 공격적인 자세가 오히려 대담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처음 접하는 방식 때문이었을까. 회견 중반까지 문 대통령은 긴장감을 벗어나지 못해 보였다. 말이 꼬이고 답변은 겉돌기 일쑤였다. 만약 송 기자가 웃음 띤 얼굴로 답변을 그냥 듣고 있었다면 오히려 비난이 빗발쳤을 것이다. 역시나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고. 무엇보다 당사자인 문 대통령이 불쾌해 하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전언이다. 좀 더 공세적인 대화가 오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반응도 전해진다.해법은 간단하다. 이런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이다. 대통령도 언론도 국민도 처음 접하는 생소한 광경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이다. 문 대통령만이 아니라 그동안 대통령 기자회견은 연례행사였다. 행사 기획이 필요한 거창한 이벤트 성격이 강했다. 민감한 현안을 놓고 대통령이 기자들과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먼 나라'의 일일 뿐이었다.대통령이 청와대 기자실에도 자주 들르고, 현안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언론을 만나야 한다. 자연스레 민주주의 훈련이 되면 '무례' 운운하는 말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 마음속 '제왕적 대통령'을 없애는 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헬렌 토머스의 말을 상기해야 한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2019-05-12 15:33:34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축제의 계절, 통제의 거리  

5월이 왔다. 거리에 서면 사방팔방 보이는 글자가 다 '교통통제'다. 빨강 바탕, 노랑 고딕의 현수막, 이젠 스쳐봐도 뭐라 쓰인 건지 짐작이 간다.사실 5월 거리에 '교통통제'라 적힌 깃발이 나부끼면 그건 십중팔구 '대구컬러풀페스티벌'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그 옆 또는 아래에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이라는 이름과 날짜도 적혀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자세히 봐야 보인다. 휙 지나쳐도 뇌리에 남을 정도인 '교통통제'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이건 단순히 글자의 크기나 색깔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컬러풀페스티벌'의 시그니처(Signature)가 해마다 바뀌는 데다 실제로도 눈에 잘 띄지 않게 써 놓아서 그렇다. 그에 비하면 몇 년째 일관된 서체와 색상을 유지해온 '교통통제' 글귀는 예쁘진 않아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쉽게 읽힌다. 말하자면 정체성이 생겨난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교통통제'라는 보통명사의 조합이 브랜드가 될 수야 없다. 그리고 어떤 도시도 '교통통제'를 브랜드화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즉, 우리가 정체성을 불어넣어야 할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교통통제'가 아니라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이라는 이야기다.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같은 현수막 안에서도 영역을 다퉈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시선을 붙잡아야 하는 게 광고의 텍스트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교통통제'와 '컬러풀페스티벌'의 거리전(戰)은 '교통통제'의 압도적 승리가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대구컬러풀페스티벌'에서는 별다른 이미지 전략조차 찾을 수가 없다. 도리어 브랜드의 정체성을 흩어놓은 과정들이 보일 뿐이다.2016년 '컬러풀페스티벌'을 상징하는 기본 색상은 빨강이었다. 그런데 다음 해인 2017년에는 빨강과 파랑 계열, 두 종류의 색을 동시에 기본색으로 사용하는 황당한 일이 있었고, 다시 2018년엔 명도가 높아진 또 다른 빨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올해 2019년에는 대구시의 브랜드 슬로건 '컬러풀대구'를 차용한, 즉 브랜드 아이덴티티(B·I) 사용 규정을 침범해 만든 함량 미달의 시그니처가 등장했다.지난 몇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축제의 시각적 정체성을 깨뜨리지 않은 해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2016년부터 2018년까지는 축제의 이름이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이 아니라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이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국제뮤지컬대구페스티벌'이 된 셈이고 '함평나비축제'가 '나비함평축제'가 된 격이니 축제의 독자성과 차별성을 스스로 뭉개버린 것이다.'시민의 축제'임을 내세우면서 이처럼 심벌과 로고타이프를 해마다 바꾸고 이름마저 이랬다저랬다 하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매년 형편없이 디자인되어 배포되는 전단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올해는 첫머리에 '대중교통 이용을 당부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당부한다'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250만 대구시민을 상대로 감히 그렇게 말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당부드립니다'는 '교통이 통제됩니다'처럼 어법에도 맞지 않는 문장이니 더욱 쓰면 안 된다.도심에 즐비한 현수막도 그렇다. 보이는 건 온통 '통제'뿐이다. 어디에도 '오시라'는 말은 없다. '함께하자'는 말도 없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통제'는 단속, 금지, 차단으로 읽힌다. 그러니 길 이쪽에 '통제'가 있으면 그 옆이나 저쪽 어딘가에 하나쯤은 '환영' 또는 '개방'을 뜻하는 메시지도 같이 걸려 있어야 한다.덧붙여 '비가 와도 축제는 열립니다'라든가 자동차가 아니면 올 수 없는 장애인이나 노약자의 경우 어떻게 하면 참여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현수막도 간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축제가 끝나면 특정업체가 아니라 대구시민이 행복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대구다운 축제, 즉 대구사람이어서 더 멋과 흥이 나는 축제, 대구에서 열려야만 제대로 신명나는 그런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을 만들어가야 한다. 거리는 '통제'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5월은 의심할 바 없는 '축제의 계절'이다.

2019-05-05 15:42:37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이건 명백히 불법이다

이른바 국회 선진화법 이후 국회에서 험한 꼴은 다시 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선진화' 이름이 붙었다고 곧바로 선진 국회를 기대한 건 물론 아니다. 그냥 법 취지대로 몸싸움 대신 말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할 것이라 믿었다.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을 엄격히 제한한다. 천재지변, 비상사태 혹은 여야 합의 외에는 불가하다. 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여당과 이를 막으려는 야당 사이에 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신속처리안건 지정 제도, 이른바 패스트트랙은 그에 대응하는 법안 처리 방식이다. 여야 합의가 안 될 경우 의장의 강행 처리 대신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동의로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게 된다.멱살잡이와 주먹다짐은 기본이요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 최루탄 등이 난무하던 국회 풍경을 바꾸기 위해서다. 국회법에 처벌 조항까지 신설되었다. 선진화법은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주도로 만들어졌다. 효과도 있었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폭력 사태가 마지막 '동물국회'였다. 2016년 테러방지법 직권상정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통한 민주당의 의사 진행 방해가 있었을 뿐 몸싸움 없이 처리되었다. 그와 함께 '동물국회'라는 조롱도 사라졌다. 한마디로 패스트트랙은 국회법에 정해진 법안 처리 절차의 하나이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을 물리적으로 저지한 행위는 자신들이 만든 규칙을 위반한 것이다.국회법 위반은 이뿐이 아니다. 바른미래당과 문희상 국회의장은 의원 사·보임에 관한 국회법을 어겼다. 국회법 48조 6항이 문제의 조항이다. "(생략) 위원을 개선할 때 임시회의 경우에는 회기 중 개선될 수 없고, 정기회의 경우에는 선임 또는 개선 후 30일 이내에는 개선될 수 없다. 다만, 위원이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의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로 되어 있다.임시회 회기 중인 현재 (상임위) 위원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규정상 명백하다. 단서에 해당하려면 '위원' 자신이 질병 등을 이유로 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 않다. 2003년 만들어진 해당 조문의 입법 취지는 분명하다. 의원의 개인적 의사에 반해 강제로 상임위원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2001년 당시 한나라당 소속 김홍신 의원은 보건복지위 소속으로 건강보험 재정 통합이 소신이었다. 한나라당은 재정 분리 당론에 반대하는 김 의원을 환경노동위원회로 강제 사·보임했다. 김 의원이 청구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헌재는 '의원 개인의 소신'보다 당론을 강제할 수 있는 '정당의 권한'이 우선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후 만들어진 게 국회법 48조 6항이다.앞서 본 대로 임시회 기간 등에는 의원 개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사·보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오신환, 권은희 의원을 강제로 사·보임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행위는 국회법을 위반한 것이다. 이를 허가한 문 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2017년 정세균 의장은 자유한국당이 요청한 김현아 의원의 사·보임을 거부한 바 있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이유였다. 당론도 아니고, 사·보임 요청서를 팩스로 제출하고, 의장은 병상에서 구두로 결재하고, 직전 의장의 선례와도 맞지 않고…. 갖은 꼼수까지 곁들인 것은 몸싸움 못지않게 '선진'과는 거리가 멀다.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손쉬운 양비론, 양시론이 아니다. 국회가 보이는 온갖 추태는 모두가 규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지 싶다. 선거제 개혁, 검찰 개혁, 독재 타도, 헌법 수호. 명분이야 얼마든지 댈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모두 스스로 정한 법과 원칙을 위반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이제라도 제 논에 물 대기식 해석을 멈추고 모두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언론은 다시 동물국회라고 비웃지만 국민은 웃고 싶지 않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는가. 자신이 규칙을 정하고 그것이 불리하더라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아니겠는가. 선진화는 멀어도 좋다. 어떤 이유라도 동물국회는 안 된다.

2019-04-28 14:46:1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당부하지 마시라

누구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는대한민국 국민의 대표 될 수 없어국민에 '당부하겠다' 말하지 말고'부탁의 말씀을 드리겠다'고 해야 제국주의가 몰려오던 서세동점의 시대, 고종은 대신(大臣) 수십 명만으로 조선을 지켜내려 했다. 당연히 힘에 부쳤지만 그래도 궁궐 밖의 다른 선비, 다른 백성과는 의논하거나 소통하려 들지 않았다. 대개의 양반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어도 백성의 힘에 기댈 생각은 없었다. 그들에게 백성은 훈육의 대상이지 자신들처럼 조선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서구 열강과 바로 옆 일본이 제각기 수천만 시민계급의 힘을 바탕으로 강력한 무기와 남아도는 힘을 분출하며 짓쳐들어오던 때였다. 그 어마어마한 힘과 맞서야 함에도 고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매국노 이완용,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우국지사 이범진 등의 근왕주의자들에만 의지해 국체를 보존하려 했다. 양반이라도 자신이 모르는 사람은 빼고 여자는 말할 것도 없이 빼고 대다수 상민(常民)도 빼야 했으니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그것밖에 안 된 건 어찌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유림, 즉 선비들에게도 함께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충절의 선비, 매천 황현(黃玹)도 그랬다. 그는 경술년의 국치가 있자 "나라가 500년이나 사대부를 길렀음에 망국의 날을 맞아 죽는 선비 하나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할 노릇이 아니겠는가?"라며 음독 자결했다. '무궁화 이 강산이 속절없이 망하였구나'라는 절명시를 남긴 그가 동학교도들을 동비(東匪) 또는 비적(匪賊)이라 칭하며 비하하기를 서슴지 않았으니 신분의 벽은 그만큼 두껍고도 높았다.모든 백성의 힘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도 세계사적 격랑 속에 버티고 서 있기조차 힘든 19세기 후반이었다. 이래서 저들과는 함께 못 하고 저래서 이들과는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하니 그렇게 해서 나라를 지켜낸다는 건 기실 가당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 나름 애쓰며 버티던 왕과 그의 신하들은 자신들의 안녕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일제에 나라를 넘겼다. 주먹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않았던 그들에게 백성의 존재는 마지막 순간까지 머릿속에 없었다.하지만 그렇게 버려진 백성들은 스스로 일어나 자신들이 주인인 나라, 즉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웠다. 과정은 길고 힘들었지만 그 간난의 세월은 전과 달리 평민과 양반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했다.경북의 혁신 유림들은 솔선해 노비를 해방시키고 가진 재산 모두를 송두리째 독립운동에 바쳤다. 평생 한학을 갈고닦은 유학자였음에도 먼저 나서 수학과 과학 등의 서양 학문을 배웠고 나이 어린 제자에게도 진심으로 존대하며 독립운동을 함께하는 동지로 대했다.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 양반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되었다.1917년, 예관 신규식(申圭植) 등은 '대동단결선언'에서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바로 민권이 발생한 때임을 밝힘으로써 나라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1919년 3월, 그 나라의 주인들은 선언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사실이었음을 3·1만세운동으로 증명했다. 이어 4월 11일, 이국땅 상하이에서 민주와 공화를 기치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을 임시헌장 제1조로 채택했다.그로부터 지금까지 100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이제 누구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는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없고 시민과 함께하지 않고는 시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을 수 없다. 정치를 하겠다면 그 마음이 참이든 거짓이든 형식과 절차만큼은 따라야 하고 그렇게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국민이 분명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어느덧 내년이면 총선이다. 미리 말하건대 '소통하겠다' 함부로 말하지 마시라. 나라의 주인과 소통하고 싶다면 부탁처럼 말해야지 시혜처럼 말하면 안 된다. 우리의 선조들은 나라의 주인인 왕과 소통하려 신문고를 두드리고 격쟁을 해가며 고생고생 애를 태웠다. 그리고 만약 선출되거든 국민에게, 시민에게 '당부한다'는 말하지 마시라. 유권자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나라를 위해, 지역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당부'가 아니라 '부탁의 말씀'을 드리는 게 맞다. 100년 전에 이미 결정된 일이다.

2019-04-21 15:46:10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인사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소선(小船)은 난감중재(難堪重載)요, 심경(深逕)은 불의독행(不宜獨行)이라."(명심보감) "작은 배는 무거운 짐을 감당하기 어렵고, 으슥한 길은 혼자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앞부분은 "자신의 능력을 감안해서 행동하라", 뒷부분은 "어려움이 예상되면 미리 그것을 피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라"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른바 '인사 참사'로 시끄러운 정국을 보며 떠오른 말이다. '소선은 난감중재', 자신이 어느 정도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공직 후보자들이 우선 문제다. 말 그대로 작은 배에 무거운 짐을 싣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배가 침몰하거나 파선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제 분수에 넘치는 과욕을 부리면 망하기 십상이다.아무리 좋은 옷도 자기 몸에 맞아야 입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지위도 자기에게 버거우면 실패하거나 견디지 못하는 것은 자명하다. 공직에 적합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버젓이 심판대에 오르는 일이 많다. 용감한지 무모한지 모를 일이다. 침몰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살아온 인생 전체가 난파한 줄도 모른 채 고위직에 오른 것만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보인다. 검증자들이 새겨야 할 경구가 '심경은 불의독행'이다. 으슥한 길을 홀로 가면 험한 일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런 길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가야 한다면 봉변당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어두운 길을 혼자 가다가 문제에 봉착하면 지혜롭지 못하다. 함량 미달인 후보를 국민 앞에 내놓는 것은 으슥한 길을 홀로 가려는 것과 비슷하다. 길을 막고 시비 거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음을 예상하고 대비했어야 한다.7명 후보자 모두에게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던 장관 인사 추천이 그랬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식투자 자체야 문제될 것 없다. 액수가 많은 것도 비난의 대상일 수 없다. 문제는 당사자가 판사, 남편도 판사 출신 변호사라는 사실이다. 거래 과정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것을 예상하고 더욱 면밀하게 점검했어야 한다. 뒤늦게 당사자에게 사실관계를 해명하도록 하는 것은 자신들의 직무를 소홀히 했다는 방증이다. 무능했거나 알고도 강행했다면 오만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책망 받아 마땅하다. 청와대 인사 검증이 허술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오죽했으면 정홍원 전 총리가 인사 검증 과정에서 "젖 먹을 때부터 지은 죄가 다 생각나더라"는 말까지 했겠는가.'우리 편'은 적당히 넘기려는 동무 의식이 문제다. 유독 문재인 정부만도 아니다. 과거 정권도 다를 바 없었다. 우리 정치에서 인사 문제야말로 여야 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특히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갈등과 파열음은 증폭된다. 고위공직자의 철저한 검증을 위해 도입된 인사청문회가 정쟁의 주 무대가 된 느낌이다. 신상털기식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종종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이쯤에서 필요한 것은 인사 검증과 청문회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도입한 미국식 공직자 검증과 인사청문회는 애초부터 '좋은 사람'을 뽑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좋지 않은 사람'이 고위 공직에 임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데 근본 목적이 있다. '잘된 임용'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임용'을 방지하는 게 더욱 긴요하다는 인식이다. 문제 인사에 의한 국가적 손실이 유능한 사람에 의한 이익보다 더 크다는 게 인사 검증과 인사 청문 제도의 본질적 존재 이유이다. 미국에서 인사 대상자에게 보내는 수많은 질문 마지막에 꼭 포함되는 게 있다. '(그 외에) 당신의 지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를 진술하라'는 것이다. 무거운 직책을 맡길 만한 사람인지, 으슥한 길에서 봉변을 당할 일은 없는지 묻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좋지 않은 사람을 걸러내는 게 인사 검증이다.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본인이나 검증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2019-04-14 09:53:25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창조경제와 혁신성장

'아무도 모르는 3가지'가 있었다. 2013년 3월경부터 시중에 돌던 우스갯소리로 안철수의 새 정치, 김정은의 생각, 박근혜의 창조경제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창조경제는 시대의 화두였다.그때 막 출범했던 정부는 이것으로 경제를 살리고 나라도 발전시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막상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가 잘 보이지 않아 그걸 빗댄 유머까지 등장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잘될 거라 믿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는 데 반대할 이유도 없었을뿐더러 창조경제는 이미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대세로 떠올라 있었다.정부의 손길이 미치는 곳마다 창조경제의 복음이 전파되었고 언론도 덩달아 창조경제만이 '우리의 나아갈 길'이며 그 끝에는 선진국 반열에 우뚝 선 대한민국과 행복한 우리가 있을 거라 전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신을 부정하면 안 되는 것처럼 창조경제가 뭔지 잘 안 보인다고 해서 그 권능까지 의심해선 안 될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지난 정부가 처음 창조경제를 들고나왔을 때부터 의문은 들었다. 이미 알려진 '문화산업', 같은 의미로 쓰이는 영국의 '창조산업'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전전(前前) 정부의 '창의한국', 즉 '창의산업'과는 또 무엇이 다른지 의아했다. 다만 취임 직후 있은 3·1절 기념사에서 당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 개개인의 행복이 국력의 토대가 되도록 만들 것입니다"라고 하니 그저 좋은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었다.하지만 갈수록 배가 산으로 갔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만들어지는 광역단체의 장들은 '대통령 먼저 모시기'와 '대통령 눈에 들기'에 온 힘을 다했다. 모든 빛은 대통령을 향했고 거기서 창조경제를 짊어지고 갈 청년과 기업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창조적이지 않기로 제일가는 대기업들을 순서대로 불러 하나씩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맡겼다. 삼성이 끌어주니, SK그룹이 밀어주니 여기 있는 청년과 기업들이 얼마나 잘되겠냐며 박수 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그게 다가 아니었다. 대통령은 수시로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될 것을 강조했고 정치권을 향해서는 한마음 한뜻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창조경제도 성공하고 나라의 미래도 있을 것이라 했다. 창조경제를 가장 반(反)창조적인 말로 독려한 셈이다. 압권은 2016년 어린이날, 청와대에서 있은 질문과 대답이었다. "발명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어린이에게 대통령은 전국 17곳에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거기에 가면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고 수출까지 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결국 창조경제는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그게 뭔지 모른 채 껍데기만 남기고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지난달 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 벤처 붐 확산 전략'을 발표했다. '이제 와서 벤처 붐이라니?' 할 거면 진즉 했어야 했다. 내용도 규제완화, 금융지원의 또 다른 버전인 데다 6개에서 20개까지 늘리겠다는 '유니콘 기업'은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그야말로 미국식 기준일 뿐이다.출범 당시 현 정부는 새로운 경제 전략으로 혁신성장과 4차 산업혁명을 내세웠다. 하지만 처음 1년은 비트코인 논쟁에 끌려 다녔고 그 후로는 기억나는 게 없다. 내놓겠다던 한국형 4차 산업혁명의 모델은 소식이 없고 대통령 직속의 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존재감이 없다.지금까지 '클라우스 슈밥'의 명성을 드높이고 기업들의 제안서 내용을 '창조경제 구현'에서 '4차 산업혁명 선도'로 바꿔 놓은 것 말고 또 무슨 성과를 냈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을 목 놓아 부르짖는 나라도 우리밖에 없다. 구글의 검색 횟수 기준으로 보면 2위인 미국의 100배에 달한다.혁신성장을 하려거든 말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소리도 이제 그만해야 한다. 이대로면 문재인의 혁신성장 또한 아무도 모르는 한 가지가 될 판이다. 그렇게 되면 그 부담은 다시 국민이 지게 된다.

2019-04-08 02:30:00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문 대통령, 직접 분명한 메시지 보내야

'죄송' '반성' 넘쳐난 장관 청문회이런 사람만 일부러 고른 것인가자진사퇴·지명철회로 2명 낙마文대통령이 명확한 사유 밝혀야대통령의 모든 행위는 이유가 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국민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언론과 국민은 대통령이 어느 곳을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를 보며 대통령과 정권의 의도를 짐작하려 촉각을 곤두세운다. 때로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메시지가 더 의미 있는 경우도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서해수호의 날에 "마음 한쪽은 서해로"라는 말을 남기고 대구로 향했다. 국민들이 문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지 발걸음에 주목했을지는 물으나 마나다. 정치인들의 말보다 실제 행동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다 알기 때문이다.대통령의 정치 행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중 하나로 국무위원, 즉 장관 선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제하의 장관은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최고 참모이다. 대통령과 정권의 이념과 철학을 국정 일선에서 구현할 최전방 지휘관이기도 하다. 당연히 대통령이 가장 신임할 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 일을 맡겨야 한다. 도덕성도 중요하다. 일을 잘하는 게 중요하지 도덕성을 까다롭게 따질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처럼 굴곡진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제대로 된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말도 있다. 안 될 말이다. 한 사람의 과거를 따지는 것은 이른바 신상털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미래는 예측 못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장차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국민이 청문회를 주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개각 명단에 오른 7명 장관 후보들의 청문회가 끝났다. 어쩌면 하나같이 '죄송'하고 '송구'하고 '반성'한다는 사람들만 있을까. 이념보다 전문성 위주로 찾다 보니 이런 지경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고른 것은 아닌지 의아할 정도이다. 대한민국을 책임질 장관들이 정말 이 정도 인물들밖에 없나 화가 치밀어 오른다. 투기, 탈세, 위장전입, 저질 막말. 청문회의 원조 격인 미국 같으면 모두가 아예 청문회 석상에 오르지도 못할 사람들이다. 자녀 특혜 채용, 특혜 분양 의혹 등은 수사 대상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 등 과거를 깡그리 부인하고, 자리를 구걸하는 면면은 자세히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어이없는 것은 애당초 청와대의 반응이다. 검증 과정에서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춘풍추상'이라는 말의 뜻이 '우리 편에게는 봄바람처럼, 다른 편에게는 서릿발처럼'이란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가장 궁금한 점은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이들을 내세워 국민들에게 전하려 한 메시지가 무엇일까. 이들처럼 살아야 장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지금까지는 아니었어도 앞으로 이들처럼 살라는 것인지. '정의' '공정' '촛불 정신'은 이제 폐기했다는 말인가. 여권에서는 최정호, 조동호 두 사람의 낙마로 곤경을 모면하려는 모양이다. 내심 '정치 공세' '국정 발목잡기'라고 규정하고 싶지만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은 그렇게 슬그머니 넘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지금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대통령의 분명한 메시지다. "검증 과정에서는 몰랐어도 청문회를 보니 안 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문제 후보들의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다. 자진사퇴 사유, 지명철회 이유를 직접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처럼 명확한 태도 표명은 정치적으로 밀리는 게 아니다. 오히려 여론과 국회를 존중하는 모습으로 박수를 받을 것이다.문 대통령은 과거 "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일을 더 잘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번에도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여러 장관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많아 보이는 이유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식의 발언은 삼가 주었으면 좋겠다. 청문회 제도와 국회, 국민 여론을 무시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문제들을 장관들은 잘 알고 있을 줄 압니다. 그런 우려들을 잘 새겨서 몸가짐을 조심하고 국정 운영에 전념하여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랍니다." 이런 대통령의 메시지를 듣고 싶다는 국민의 바람은 누군가의 말처럼 '연목구어'일까.

2019-03-31 17:06:04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3월이 지나고 있다

3월 거리가 '100'으로 넘실댔다. 100년의 봄, 100년의 기억, '100'으로 시작하는 현수막들이 곳곳에서 살랑이며 100번째 3·1절을 알렸다. 텔레비전도 연이어 특집방송을 내보냈고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대통령직속 위원회는 일찌감치 숫자 '100'과 태극기, 그리고 촛불을 형상화한 엠블럼과 '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이끌 나라'라는 슬로건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돋웠다.지방자치단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저마다 향토출신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소개하며 자기 지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드러냈다. 마치 100년 전 온 나라가 만세소리로 들끓었듯 이번엔 온 나라가 그날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행사 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100주년답게, 지난 100년의 역사를 대하는 시선도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3·1운동의 배경이 된 2·8독립선언과 신한청년당의 활동이 100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회자되었고 빛나는 활약에 비해 그동안 제대로 현창되지 못했던 김마리아, 정정화 등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집중적으로 재조명되었다.그런데 그게 99주년이든 100주년이든 3·1절이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날이라는 건 실상 차이 날 게 없다. 그날은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기준과 삶의 방식을 처음으로 우리가 정한 날이기 때문이다. 왕의 다스림 없이, 양반의 가르침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그것을 선언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우리는 우아하고 당당하게 '나는 나답게, 우리는 우리답게' 살 것임을 만방에 천명했다. 그건 불타는 적개심으로 일본을 멸하겠다는 선전포고를 넘어, 왕조의 회복을 향한 유교적 충의와 이념을 넘어, 인류공영의 방법과 당위를 일깨우는 커다란 울림이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과 당당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민족대표 33인은 모두 우리를 대신하는 우리 중의 한 사람들이었다.이처럼 그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시작을 만든 사람들, 거리에 나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사람들, 그렇게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까지 바꾸어 놓은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우리처럼 손만 뻗어도 닿을 만큼 평범한 '그때의 우리들'이었다. 그런 만큼 3·1절 100주년에 대한 기억과 기념이 '100인의 특별한 독립영웅 이야기'처럼 흐른다 해도 나쁠 건 없지만 그것에 더해 온 강토를 덮었던 이름 없는 함성의 주인들도 함께 헤아려야 한다.3·1운동이 일어나자 이완용은 "동포여! 살길이 있는데도 왜 무모하게 죽을 길로만 가려 하느냐?"고 했다. 그리고 당시 조선총독이던 사이토의 관저를 찾아가 '의무교육을 보급하고 토목공사는 농번기를 고려하여 진행할 것, 그리고 단순 시위가담자에겐 관용을 베풀 것 등의 3·1운동에 대한 13가지 대책을 전달했다. 반면 2·8독립선언을 주도한 김마리아는 참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너희가 아무리 그래도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내 안에서 빼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 거기 있었다면 김마리아와 이완용 둘 중 누구의 선택을 따랐을까? 그때의 눈으로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는 노력도 함께 있어야 한다.만약 우리가 '우리 만난 지 100일째 날'처럼 3·1절보다, 독립운동보다 '100번째'라는 것에 더 호들갑을 떤다면, 100년 전 우리의 이야기를 지금의 우리와는 관계없는 특별한 사람들의 지난 이야기로만 여긴다면, 그리고 그렇게 세월 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피 흘리며 만세를 불러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년 3·1절에도 그다음 3·1절에도 한 번씩 잠깐이라도 그날의 우리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길 끝에서 저 건물 벽까지, 돌아보면 어디에나 '100'이 눈에 띌 만큼 100주년의 '100'으로 분주했던 올 3월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문득 궁금해진다. 지난 한 달 그 '100'들은 우리를 얼마나 바꿔 놓았을까? 희뿌연 미세먼지 속에서 '100'이라는 숫자와 '반민특위가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기막힘을 뒤로한 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3월이 지나고 있다.

2019-03-24 14:51:22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트럼프를 움직이는 나경원?

김정은'트럼프의 하노이회담 결렬나경원 원내대표 탓이라는 민주당北美 잘못 없음을 강변하려다 보니만만한 야당 대표를 표적으로 비판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특이한 발언을 내놓았다. 미국과 북한의 하노이 2차 정상회담 결렬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희상 국회의장과 미국을 방문해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등과 만나 '종전선언은 안 된다, 평화선언은 안 된다'고 얘기했다"며 "그런 것들이 워싱턴에서 (하노이 회담 결렬) 분위기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문 특보의 발언에 앞서 정의당 김종대 의원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김 의원은 "한반도 주변 정세가 '나경원 프레임'으로 짜여지고 있다"며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벌인 나 원내대표의 방미 외교 활동을 비난했다.글머리에 '특이하다'고 표현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이들의 발언이 비난인지 칭찬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을 나 원내대표 탓으로 돌리려는 두 사람의 의도는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나 원내대표의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의미도 된다. 한국의 야당 원내대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이고 미국의 외교 정책을 바꿀 수 있을 정도라니. 급기야는 한반도 주변 정세가 '나경원 프레임'으로 짜여지고 있다니. 역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미국에 이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대한민국에 있었던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문 특보와 김 의원은 현 정부 여당과 궤를 같이하는 인사들이다. 빅딜이든 스몰딜이든 하노이 합의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충격적인 회담 결렬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북한 책임론은 처음부터 내놓기 어려운 분석이다. 완전한 핵 폐기를 약속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최선희의 공언은 안 들은 걸로 하고 싶은 것이다.트럼프 대통령의 강공을 탓하기는 힘에 부친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당사자들을 거론하다가는 자칫 우리가 판을 깨는 데 앞장설 수도 있는 형국이다. 미국도 북한도 잘못이 없음을 강변하려다 보니 결국 만만한(?) 야당 대표를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이들의 인식과 분석이 초래할 후과이다. 나는 두 사람이 진심으로 나 원내대표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실이라면 맥을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북한 문제에서 이른바 최고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인사들 아닌가.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입장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게임의 판세를 그처럼 단순하게 읽을 정도로 수준 이하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결국 북한 (핵) 문제에서 이성적·객관적 분석보다 감성적·주관적 희망을 앞세워 온 평소의 시각이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이다.북한은 우리가 말하는 '북한 핵 문제'가 '조선반도 핵 문제'임을 줄기차게 주장해 오고 있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고 있는 사실을 우리 정부만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트럼프가 정면으로 '북한 핵 포기'를 압박하는 순간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트럼프가 김정은과 마주 앉은 이유는 한 가지다.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궁지에 몰린 국내 정치 상황에서 숨을 돌릴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재선에 도움이 되는 정치적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북한이 고집하는 어정쩡한 합의로는 효용 가치가 없을 것으로 본 트럼프의 판단 역시 당연지사다.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우리가 미북 간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미국과 북한이 상대방 최고지도자에 대한 직접 비난을 자제하는 상황은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중재자를 넘어 당사자인 우리 정부도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트럼프를 움직이는 나경원' 식의 공허한 수사부터 그쳐야 한다. 특히 북한에 대한 낭만적이고 주관적인 희망 대신 냉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이 우선되어야 한다. 양쪽으로부터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는 신뢰를 받아야만 우선 중재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03-17 15:34:34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적일많버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의 줄임말최근 '워라밸' 시대의 덕담으로 등장이걸 상대에 말할 때 부끄럽지 않고들어도 불쾌하지 않다면 그게 잘못지금도 생생하다.그분은 강렬했고 광고주는 집요했으며 TV와 라디오는 끊임없이 나르고 또 퍼뜨렸다. 그 덕에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를 하루도 빠짐없이 보거나 들어야 했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일인데도 뇌리에 박힌 듯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다.그때, 그분은 빨간 옷을 입고 입가에 두 손을 모아 "여러부~운"하고 우리를 불렀다. 그런 다음 주목하지 않거나 못 들은 척 뻗대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한 번 더 "여러부~운"을 외쳤다. 그리고 예쁘면서도 힘찬 목소리로 "모두 부~자 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부~자'의 '부'에 세게 악센트를 준 이 한마디로 광고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사람들은 상대가 누구든 '부자 되시라'는 말을 덕담처럼 거리낌 없이 쓰기 시작했다. 전에 없던 인사법 '부자 되세요'는 그때, 그렇게 생겨났다.새해 인사, 세시풍속도 덩달아 변화를 맞았다. 흔히 쓰는 인사말 메뉴에 '돈 많이 버시라'가 올랐고 변명이나 핑계가 될 만한 피치 못할 사정에도 '돈 벌려다 보니'와 '먹고살려다 보니'가 잘 먹히는 순서의 윗자리를 차지했다.대세가 대세인지라 크게 내색은 안 했지만 그런 현상들이 달갑지 않았다. '행복하세요'나 '건강하세요'가 '부자 되세요'에 밀려나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애타도록 부자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자꾸자꾸 부자가 되라며 강요하는 것 같아 더 싫었다.물론 자본이 본위인 세상에서 '돈'이라는 게 마트에서 물건 살 때만 필요한 정도의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초기에 늘어나는 재산으로 신의 은총을 확인했던 것처럼 돈은 한 사람의 재능과 노력, 그리고 그 사람의 가치까지 수치로 환산해 보여주고 확인시켜준다. 돈이 있어야 사람 구실을 하고 그래야 사람 대접도 받는다는 통설도 무척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심지어 돈이 없어 사랑을 못한다는 말이 나온 지도 오래니 이래저래 돈의 힘은 크고 세다. 그리고 그만큼 모두의 삶에 절대적, 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그러나 뻔한 레퍼토리 같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돈이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 될 수 없고 '절대적'을 넘어 '절대가치'가 될 수는 없다. 절제니 금욕이니 하는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분고분 '돈'과의 긴장관계를 포기할 때, 돈이 권력이 되고 정의가 돈의 힘에 짓밟힐 때, 그리고 인간의 존엄마저 돈의 위엄에 짓눌릴 때,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야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야만이 가져올 황폐와 피폐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모두를 덮칠 것이기 때문이다.2년 남짓 전에 '10억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은가?'라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이 질문에 고등학생 중 56%가 '그렇다'라고 답변을 했다.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겠지만 어쨌든 죄를 범하더라도 즉, 타인에게 부당한 손해를 끼치거나 아픔을 주더라도 10억원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고등학생이 무려 반을 훌쩍 넘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지금도 유럽 여러 나라가 그렇고 우리도 오랫동안 그랬듯 돈 자랑을 부끄럽게 여기는 건 이제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부자 되세요'란 말이 더는 특별할 것도 없는 보편적 언어, 다시 말해 모두가 추구하는 공통의 목표이자 제1의 가치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최근 '부자 되세요'의 업그레이드 버전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줄여서 '적일많버'가 등장했다. '워라밸'시대의 덕담이라고들 하지만 말 그대로 일은 조금하고 돈은 많이 받자는 거다. 여기서 핵심은 '나'와 '돈'이다. 타자, 즉 회사도 동료도 없다. 뭐 그렇게까지 해석할 필요가 있느냐고? 편의상 '언어인지감수성'이라고 해두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의식을 휘젓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기준을 만든다.'적일많버', 이걸 말할 때 부끄럽지 않고 들어도 불쾌하지 않다면 그게 잘못된 거다. 그리고 이것이 흔한 말이 되고 나면 다음에 올 덕담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만 많이 버세요'가 될 것이다.

2019-03-10 14:56:06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자유한국당 황교안 호의 과제

제1야당 당권 거머쥔 황교안 대표가시밭길 헤쳐 나가는 시험대 올라자신 안위보다 자신 희생할 각오로당·보수세력 바로 세우기에 나서야'어대황'(어차피 대표는 황교안). 정답은 결국 달라지지 않았다. 세간의 관측대로라면 황교안 대표 출마를 부추긴(?) 당내 조직의 탄탄함을 보여준 결과이다. 오세훈, 김진태 후보의 순위도 같은 맥락이다. 자유한국당 내 세력 분포도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정치 신인 황 대표는 단숨에 대한민국 제1야당의 당권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황 대표의 앞날이 탄탄대로일 것으로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는 게 중론이다. 가시밭길을 홀로 헤쳐 나가야 하는 어려움에 처했다고 보는 게 맞다.황 대표는 왜 이 시점에 자유한국당 당권에 도전했을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갖는 부분이다. 황 대표 당선에는 이른바 '신상효과'가 한몫했다. 때 묻지 않은 정치 신인에게 쏠리는 관심이다. '안철수 현상'이나 '반기문 돌풍' 등이 대표적이다. 여론조사에서 황 대표가 보수 진영 1위를 달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황 대표나 주변 인물들이 이를 의식했다면 당 대표 출마는 너무 이르다. 대선으로 직행했어야 마땅하다. 당 대표는 잘해야 본전이다. 자칫하면 당내 계파 갈등으로 상처만 입기 십상이다. 대선 국면쯤 되면 만신창이가 되어 대선 후보조차 기약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지금 황 대표를 끌어낸 사람들의 가장 큰 목적은 자신들의 공천 기득권 지키기였다고 보아야 한다. 황 대표나 한국당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에이, 나쁜 X들 같으니." 지난해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씁쓸한 한마디였다. 반 전 총장의 '대통령 출마' 에피소드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준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와 출마를 부추겼다고 한다. 그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총장님이 나서기만 하면 저희들이 모든 걸 책임지고 돕겠습니다." '모든 것'이란 말 속에는 돈 문제도 물론 포함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깃발을 들자 그들은 완전히 표변했다. 모든 걸 책임지기는커녕 현실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더라는 것이다. 평생 공무원 생활로 일관한 반 전 총장이다. 배신과 식언을 일삼는 정치권에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만난 황 대표가 같은 '공무원'이었음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반 전 총장 사례가 황 대표에게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황 대표의 자세이다. 자신을 찾아와 공언한 '직업 정치꾼'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거나 그들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검사부터 장관, 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이른바 '늘공'(직업공무원)은 모범생으로 충분하다. 틀을 벗어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정치인은 때로 변칙 플레이도 필요하다. 링컨의 말처럼 북극성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진흙탕 길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소문이겠지만 '공천 약속'도 혹시 했다면 잊어야 한다. 당 대표가 된 이상 모든 결정에 있어 대의(大義)를 우선한다면 소리(小利)를 앞세우는 자들은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황 대표가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여론조사 지지율 1위가 동력이 된 점이나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아 그럴 것이라 짐작해 본다. 황 대표의 목표가 대선에 있다면, 아니 그럴수록 우선순위가 자신의 안위에 쏠려서는 안 된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당과 보수 세력을 바로 세우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당권 경쟁 과정에서 황 대표는 "과거보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자"는 말을 무수히 반복했다. 어쩔 수 없이 탄핵 등 논란에 끌려 들어갔지만 여전히 애매모호함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과감한 화법으로 과거를 정리하고 당과 보수의 미래 어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미래도 열릴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비대위가 부활할지 모른다는 냉소도 흐른다. '어대황'이 대표로 끝날지, '어차피 대세는 황교안'으로 굳어질지 여부는 다름 아닌 황 대표 본인에게 달려 있다.

2019-03-03 14:55:54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이른 아침에] 5·18망언, 관점의 문제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하는 것2·28 민주운동 폄훼와 다르지 않아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킨 유산숭고한 희생정신 모독하지 말아야20대는 "설마요?" 할지도 모르겠다. 경찰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지나가던 사람의 가방을 함부로 뒤졌다고 하면 말이다. 30대도 "정말요?" 하며 되물을 것 같다. 폭동 진압용 장비로 무장한 전투경찰들이 교문을 가로막고 등교하는 학생을 검문했다고 하면 말이다.이상한 시절이었다. 머리에 염색을 해서도 안 되었고 옷을 너무 특이하게 입어도 안 되었으며 노래도 정부의 허락을 받은 것만 듣거나 불러야 했다. 책은 특히 위험했다. 소위 불온서적을 사거나 읽다가 적발당하면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 학습' 또는 '반국가단체 찬양 및 고무' 등의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그땐 그랬다. 모든 건 정부의 방침에 맞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머릿속 생각까지 정부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라도 체포될 수 있었고 그럴 가능성만 보여도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학교엔 학생회가 없었다. 대신 학도호국단이 있었고 임원을 맡은 학생들은 연대장, 중대장으로 불렸다. 열일곱 나이에 군사훈련을 받았고 총기를 얼마나 빨리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는지로 시험을 치러야 했다. 가끔씩 운동장엔 북한을 지배하는 반인반수의 괴물을 불태우는 화형식도 있었다. 모두 30여 년 전쯤의 이야기다.지금의 청년 또는 그보다 더 어린 세대에겐 쉽사리 와 닿지 않을 낯선 이야기이기도 하다. 낯선 이야기는 내게도 있었다. 예전, 어른들이 주고받던 한국전쟁 이야기가 딴 세상 먼 옛날의 일처럼 들렸다. 전쟁의 포성이 멎은 게 1953년이었으니 따져보면 그 또한 이상했던 그 시절에서 30년 전쯤이었다.아무튼 그때의 나든, 지금의 청년이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위 세대의 이야기가 실감 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의 모든 이야기가 그들이 직접 보고 듣고 겪었던 살아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한국전쟁 때 쇠솥을 등에 지고 피란 갔던 이야기도,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이상한 시절의 이야기도 당사자에겐 모두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삶 속에서 함께하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라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지난 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것도 대구·경북을 주요 근거지로 삼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최한 공청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향한 망언이 쏟아졌다. 당사자들이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그들의 가족과 친구를 북한군으로 둔갑시키고 그들을 괴물이라 불렀다. 이를 두고 원내대표인 나경원 의원은 역사적 사건은 관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에겐 5·18이 그저 지나간 역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에겐, 세상 전부인 어버이를 잃은 아이에겐 살아있는 동안 계속될 지금 당장의 아픔이다. 또한 그날 친구를 잃은 청년에겐 반란군의 총칼에 스러져 간 잊히지 않는 눈빛이며 지금도 끝없이 들려오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이다.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인류의 유산이다. 30여 년 전, 그 이상했던 시절에도 가족과 이웃을 지키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적의 침략에 맞서 싸운 사람을 욕보이는 패악은 없었다. 이런 건 우리답지도 않고 인간답지도 않은 일이다.때마침 대구에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구 사람들이 이렇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남의 가슴에 대못 박는 비인간적인 짓은 용인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광주시장에게 보낸 권영진 대구시장의 사과문도 그렇다. 대구와 광주의 시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사람들까지 답답한 마음을 적시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것은 대구의 228 민주운동을 폄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날, 2·28 민주운동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훨씬 더디게 왔을 것이다. 그날, 광주의 시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상했던 그 시절을 훨씬 더 오랫동안 견뎌야 했을지도 모른다. 허무맹랑한 북한군 개입설 등 5·18 민주화운동을 향해 내뱉는 망언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숭고한 희생을 모독하고 저주를 퍼붓는 무도한 패역(悖逆)일 뿐이다.

2019-02-24 14:47:12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홀로코스트 부인론과 5·18 왜곡론

5·18 운동을 폭동으로 단정짓거나북한군 600명 개입설 어이없지만아직 실체적 진실 규명 덜 된 상태형사처벌 움직임 동의하기 어려워홀로코스트 부인론(Holocaust denial)은 홀로코스트, 즉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집단 살해를 부인하는 행위를 말한다. 독일오스트리아 등 많은 유럽 국가와 이스라엘에서 홀로코스트 부인론을 처벌한다. 홀로코스트 부인론이라지만 한마디로 포괄하기 어려운 다양한 견해가 있다. 홀로코스트는 조작이라는 말 그대로의 부인론은 드물고 설득력도 그다지 없는 경우다. 증거가 잘못되었다거나 살해된 유대인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수정론이다.홀로코스트 부인론을 처벌하는 국가에서는 이런 것도 금지 대상이다. 2006년 오스트리아 법원에서 징역형에 처한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나치 정권에 의한 유대인 학살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죽은 유대인 수가 과장됐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사망자 대부분이 독가스가 아닌 전염병 등으로 죽었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이처럼 단순한 의사 표현에 대한 형사처벌은 이례적이다. 유럽을 폐허로 만든 히틀러와 나치 정권의 트라우마가 우선 작용할 것이다.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는 고심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세계를 흔드는 유대인 파워와 미국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홀로코스트는 말 그대로 천인공노할 범죄행위이다. 형사처벌의 타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이를 완전히 부인하는 행위는 정당화되기 어렵다.문제는 홀로코스트 '성역화'의 부작용이다. 1950년대에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로 죽은 유대인이 약 200만 명 정도라고 했다. 이후 희생자 수가 늘었다면서 독일에 더 많은 보상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유대인인 미국 학자 노암 촘스키도 나중에는 알고 보니 1천만 명이 죽었다고 주장하며 돈을 더 달라고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600만 명 학살' 주장도 당시 유대인 인구로 볼 때 불가능한 숫자라고 한다. 가스실 학살에 필요한 가스나 엄청난 사망자의 화장에 들었을 에너지도 당시 독일이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었다고 한다. 이미 종교처럼 되어 버린 홀로코스트는 이런 검증조차 불경죄로 취급해서 아예 입을 막아버린다.스위스은행 휴면계좌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예금 3천만달러에 대한 보상으로 1998년에 12억달러를 받아낸 유대인 단체도 있다. 희생자에게는 그 돈의 5%도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유대인 노먼 핀켈슈타인이 '홀로코스트 산업'(Holocaust Industry)에서 폭로한 내용이다. 홀로코스트의 진정한 의미와 보상금 등이 엉뚱하게 이용되는 데 대한 유대인들 스스로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4당이 5·18 민주화운동 왜곡 행위를 처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홀로코스트 부인론 처벌법이 모델이라고 한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나 그들이 벌여놓은 판에서 나온 얘기들은 너무도 상식과 부합하지 않는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단정하거나 북한군 600명 개입설 등의 주장은 어이없다. 그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다.하지만 합리적 비판과 별개로 지금 벌어지는 소동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형사처벌 운운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특히 그렇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들먹이기도 면구하다. 법적 평가와는 달리 5·18 민주화운동의 실체적 진실 규명은 완결되지 않았다. 진상규명 특별법에 민주당도 동의한 것은 아직 밝혀야 할 진실이 남아 있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책임자로 지목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무엇을 '왜곡'이라고 규정할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다.홀로코스트 부인론 처벌 역시 앞서 설명한 대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성스러운 모델이 아니다. 징역형에 처해진 어빙과 달리 핀켈슈타인은 형사처벌은 받지 않았다. 대신 재직하던 대학에서 졸지에 쫓겨나고 온갖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하거나 사실을 밝힌 대가였다.5·18을 성역화하여 우리도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 홀로코스트 부인론과 5·18 왜곡론을 같이 취급하려거든 제대로 된 공부부터 먼저 하기를 권한다.

2019-02-18 05:30:0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성리학과 도시브랜드

기술·전문성 천대한 성리학 습성아직도 정부 당국자에 뿌리 깊어전문성 필요한 도시 브랜드 개발 시민 투표 아닌 전문가에 맡겨야조선은 단연 성리학의 나라였다. 세상만사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성리학의 틀 안에 집어넣었다. 이조판서든 공조판서든 따지고 보면 다 성리학자였고 그림 그리는 도화서도 의약을 다루는 내의원도 모두 성리학자의 통솔 아래 놓여있었다. 결론적으로 성리학은 경계를 넘어선 무불통지(無不通知)의 학문, 절대 권위의 이념 체계처럼 사람의 일상과 머릿속을 속속들이 관장하고 지배했다. 그리고 그런 성리학의 절대적 권위는 오직 사대부, 즉 양반들의 것이었다.양반들은 성리학을 앞세워 무엇에든 간섭하고 무엇이든 평가를 내리며 내내 조선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했다. 그들에게 있어 성리학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 즉 인간의 재능과 노력이 만들어내는 기타의 결과물이나 지식들은 다 하찮은 것일 뿐이었다. 조선은 그런 나라였다. 사람에 더해 학문과 지식까지 차별할 만큼 온갖 것에 차등을 두었다. 그리고 대략 100여 년 전, 그랬던 조선이 몰락했다.지금의 세상은 그때와는 모든 것이 딴판이다. 나라의 형태와 권력의 구조가 바뀌었고 경제와 산업의 생태계도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당연히 양반도 없고 하늘의 해처럼 모든 곳을 내리쬐던 성리학도 위력을 잃은 지 오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습성, 기술을 천대하고 전문성을 무시하던 그 뿌리 깊은 습성만은 곳곳에 살아남아 자리를 틀고 있다. 거기엔 대개 조선의 양반이 그랬던 것처럼 나 정도 되면 웬만한 건 다 지도 편달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한류가 뜨니 온갖 정책에 무시로 K-POP을 갖다 붙이고 걸핏하면 연예인을 행사에 동원하는 정부 당국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다.여기에는 오페라도 아닌 대중음악쯤이야 쉽게 개입하고 참견해도 되는 것쯤으로 낮춰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들 대부분이 정작 K-POP을 알지도 못하고 평소 즐겨 듣지도 않으면서 말이다.10여 년 전 SM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가 한 모임에서 정부 관계자들에게 호소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는 아무것도 안 도와줘도 되니 제발 자기들을 그냥 좀 내버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현 정부는 급기야 한류 팬을 1억 명까지 늘리는 것을 국정과제로 삼았다.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히트를 칠 때 그를 독도 홍보대사로 위촉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처럼 SM엔터테인먼트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부의 '지원과 격려'는 어렵게 개척한 해외시장을 위협하는 하나의 불안 요소일 뿐이다.같은 맥락, 즉 이념이나 권위에 짓눌린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서울시의 황당한 도시 브랜드 'I.SEOUL.U'도 마찬가지다. 운용이 불가능해 보였을 뿐만 아니라 더 황당했던 건 당시 서울시의 설명이었다. 새 도시 브랜드는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의견을 모아 함께 결정한 것이므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냐는 거였다. 세상에! 이런 식이라면 환자의 치료 방법도 의사가 아니라 시민의 투표로 결정하는 게 맞다.도시 브랜드에 관해선 대구시 또한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무려면 '컬러풀 대구' 이상 나올 게 없을 만큼 대구란 곳이 콘텐츠와 정체성이 빈약한 도시일까? 그건 아니다. 시간과 돈을 들이고도 '핫플레이스 대구'라는 어이없는 결과가 나온 건 그것밖에 못 내놓을 사람들이 그 일을 했거나 그런 사람들이 간섭했기 때문이다.브랜드 개발은 브랜드 전문가가 하는 일이다. 서울시처럼 시민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국문학자나 역사학자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애플을 비롯해 다양한 BI(Brand Identity) 프로젝트를 수행한 마티 뉴마이어(Marty Neumeier)는 '브랜드란 당신이 말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그 무엇이다'라고 했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말에 집중할 줄 아는 사람, 정체성을 이해하고 콘셉트를 수립하며 직관, 유추, 통찰, 공감, 몰입을 통해 그것을 형상화시키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 브랜드 개발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전문성이 필요한 일은 제발 전문가에게 좀 맡기자. 오죽하면 한 젊은 디자이너의 새해 소원이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기'일까?

2019-02-10 14:53:12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자유한국당은 대안 정당인가

조롱거리가 된 한국당 릴레이 단식계속해야 하는 의원들이 안쓰러워대통령과 현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전략 전술 부족한 한국당에도 갸웃요즘 아이들 말대로 '빵 터졌다'. 자유한국당의 릴레이 단식 시간표를 보고서다. 곡기를 끊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단식은 목숨을 거는 것이다. 정치적 단식은 투쟁 가운데서도 특히 엄중한 의미를 가진다. 극한 상황에서 다른 대안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택하는 방법이다. 상대가 양보할 수밖에 없도록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 수단이다. 그런 만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명분과 시기가 중요하다. YS와 DJ의 단식이 그랬다. 가혹한 군사독재 시기, YS의 단식은 '재야인사의 식사 문제'로 거론되면서 민주화의 물꼬를 튼 계기가 되었다. 헌법에 규정된 명목상의 지방자치를 전면적으로 실시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게 DJ의 단식이었다. 최근에는 손학규, 이정미 대표의 단식도 있었다. 여야가 마지못해 '연동형 비례대표' 합의서를 쓴 것은 두 대표의 단식이 여론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자유한국당의 단식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역사를 말하기 전 국민 여론은 이미 낙제점을 주고 있다. 한국당의 투쟁 계획은 거창하다. '좌파독재 저지 및 초권력형 비리규탄 릴레이 단식 계획(안)'. 총 110명의 의원들이 1월 24일부터 2월 1일까지 릴레이로 단식에 참여한다. 단식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30분, 혹은 오후 2시 30분부터 오후 8시. 의원 1인당 각각 '5시간 30분' 동안 곡기를 끊는다는 계획이다. 의원들 앞에는 '조해주 임명 강행 즉각 중단하라', '선거 승부조작 즉각 중단' 등의 피켓이 보인다. '5시간 30분' 단식으로 이런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딜레이 식사'라는 촌철살인의 댓글, 쇼라도 제대로 하라는 댓글들을 일별해 주기를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조롱거리로 전락한 단식을 계속해야 하는 의원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국회 보이콧 전략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국회가 야당의 무대라는 것은 상식이다. 국회에서 야당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정부여당은 곤혹스러워진다. 국회가 안 열린다고 조바심 낼 정부도 아니다.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이 커지면서 대안 세력에 대한 목마름도 커지고 있다. 그런 기류를 감지한 한국당 등 야당은 내년 총선에 큰 기대를 거는 듯하다. 스스로를 "총선 효자"로 규정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속내가 그런 것이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다른 후보들 역시 비슷하다. 자신이 한국당 대표가 되면 총선에서 쉬운 승리를 거둘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를 비판만 하면 실망한 국민이 저절로 한국당 지지자가 될까. 떡 줄 국민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형국이다. 이른바 보수 세력 저변의 기류는 냉정하다. 더불어민주당이 마땅치 않지만 한국당도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단식 관련 한국당의 행보가 단적으로 증명한다. 정치인의 일거수 일투족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다. 국민이 어떻게 볼 것인가가 첫 번째 고려 사항이어야 한다. 전략도 전술도 없는 '무작정' 행보는 한국당을 향해 고개를 젓는 국민만 늘어났을 뿐이다.가뜩이나 인물도 비전도 없는 한국당이다. 비상대책위원회는 한국당의 환골탈태를 위한 '비상한 대책'을 결국 만들어 내지 못했다. 변죽을 울리며 시간만 죽인 셈이다. 새롭지도 않고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나선 전당대회도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다. 누가 이를 대안 야당이라고 볼까. 강력한 야당이 있어야 여당도 긴장하는 법이다. 집권 세력이 야당과 국민을 의식하는 것은 선거에서 교체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한국당의 주장처럼 집권층이 독주하고 있다면 다름 아닌 대안 세력의 부재가 이를 부채질하는 것이다.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 있는 바탕 역시 같은 맥락이다. 더 바닥을 쳐야 한다는 말 외에 충고할 만한 대안 부재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2019-01-27 15:55:23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그들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니 간 고등어 머어 봤나?"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전라도 음식에 대한 폭풍 찬사가 쏟아지는 자리에서 떡하니 내지른 한마디, 저자는 이것을 가리켜 '안동의 자존심'이라 했다. 하긴 그곳의 음식은 명실상부한 그곳의 문화이니 안동 사람이 어찌 문화로 꿀릴까? 설령 바다와 떨어진 입지 조건에서 비롯된 때문이라 해도 세월 지나 이름 앞에 '안동'이 붙는 순간, 소금에 절인 고등어는 새로운 의미의 특별한 무엇이 되었을 것이다.고등어 하나로 산해진미와 대적하고 대세를 거슬러 외로이, 그러나 당당하게 고향을 외치게 하는 '안동의 자존심'처럼 말이다. 이처럼 안동 사람이 '안동의 것'을 대하는 태도에는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이 있다.그런데 찾아보면 이러한 조합이 어디 안동과 간고등어뿐이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고향의 것'은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마을마다 도시마다 자기만의 이야기와 색깔이 있고 그것이 빚어낸 '자기만의 것'이 있다. 우연히 만나면 반갑고 오래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생각나는 것들, 떠올리면 애틋해지고 까닭 모를 힘을 샘솟게도 하는 '고향의 것', 즉 '우리만의 것'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함께 느끼는 공통의 정서이다. 그래서 그 '우리만의 것'이 주는 특별함, 그것을 대하는 남다른 시선과 뿌듯함이 긍지와 자부심으로 이어지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옆옆이 자리한 마을과 이웃한 도시들이 모여 경북이 되고 대구가 되었으니 대구경북의 사람들 또한 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그걸 가리켜 일명 'TK 정서'라 일컫든 아니면 다른 뭐라 부르든 '따로 또 같이' 공통의 정서가 생겨난 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따라서 다양한 지역 정서를 대함에 개인적 취향과 성향에 따른 호불호는 있을 수 있겠으나 어느 한 지역의 정서만을 따로 떼어 보편성을 부정하거나 시빗거리로 삼는다면 그건 가당찮은 일이다.그런데 요즘 들어 대구경북의 이 'TK 정서'가 마치 미풍양속을 해치는 나쁜 습속이라도 되는 양 치부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더군다나 이것이 빌미가 되어 대구경북 사람, 특히 대구경북의 청년들이 타지, 특히 수도권에서 무단히 눈총이나 면박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가끔 툭하고 던져지는 적의(敵意) 섞인 질문 "거긴 왜 그래요?", 이 한마디의 근저에는 대구경북에 대한 얕고 편향되며 부실한 인식이 깔려 있다.질문을 풀어보면 대강 이렇게 된다. '당신네 지역은 왜 그렇게 수구적이며 정치적으로 한쪽으로만 편향되어 있는가?', 여기에 더해 '그 동네 사람들은 장인어른을 영감탱이라 부른다면서?'라는 힐난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이건 사실이 아닐뿐더러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이렇게까지 답을 해야 하나 싶지만 일단, 대구경북 사람들은 장인어른을 영감탱이라 부르지 않는다. 알고 보면 정치적 지형과 색도 무척 고르고 다양하다. 그리고 다 떠나서, 대구경북의 청년들은 그냥 그들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그럴 리 없겠지만 서울에 살고 있는 현 정권의 주류세력들, 그리고 그 줄에 닿은 사람들의 대구경북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이 질문처럼 얕고 편향되어 있다면, 그래서 저 높은 곳에서 중앙과 지방이 서로 잘해보자며 그들끼리 악수와 덕담을 주고받을 때 정작 대구경북의 청년들은 어디 몹쓸 곳에서 온 사람처럼 눈치를 봐야 한다면 이건 이만저만 잘못된 일이 아니다.조금만 상기해보자. 경북은 동학의 발원지이다. 또한 항일의병의 본거지이며 혁신유림의 본향이다. 대구는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에서 알 수 있듯 시대의 부름에 늘 앞서 응답을 한 곳이다. 그리고 대구경북은 대한민국에서 독립유공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그러니 누구든 대구경북에 마뜩잖은 시선을 보내고 싶다면 먼저 오늘 자신의 삶이 대구경북에 빚진 건 없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시라. TK 정서는 시비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대구경북의 청년들이 출신지로 인해 주눅 들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들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2019-01-20 15:40:51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하려면

공약 파기된 '대통령 광화문 집무실'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현안 있으면 수시로 기자회견 열고구체적 질문 응답으로 소통 나서야지난 대선 당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 조명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보았다. 번잡한 경호 등을 고려할 때 대통령 광화문 집무실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당선 후 사흘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대신 여민관 집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이전하기 전까지 여민관에서 업무를 볼 계획이라는 소식과 함께였다.문 대통령이 1호 공약을 실제로 이행하겠다고 무리수를 둘까 걱정스러웠다. 공약 포기를 권하는(?) 칼럼을 쓰고 싶었다. 내심 생각한 제목은 이랬다. "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합니다." 여민관은 참여정부 시절 완공된 비서실 건물이다. '광화문 대통령' 공약의 취지는 '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국민이 '광화문 대통령'에 주목한 것은 소통하는 대통령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다.실제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구중궁궐과 같은 청와대를 나와 국민 속으로 들어가 늘 소통하겠다"는 문 후보 자신의 말 속에 답이 들어 있다.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은 거대한 공간에 홀로 떨어진 섬 같은 존재이다. 참모들도 쉽게 만나기 어렵다. 청와대 본관 집무실은 그래서 단순한 공간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비서진과도 그런데 하물며 국민의 목소리가 들리겠는가라는 불통의 상징이었다. 대통령과 비서들이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논의한다면 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하다.광화문 대통령 공약 파기 자체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 따져보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과연 문 대통령이 '소통하는 대통령'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며칠 전 신년 기자회견이 있었다. 예년처럼 거창한 '행사'로 치러졌다. 취임 3년 차를 맞는 문 대통령이지만 제대로 된 기자회견은 세 번째이다. 말 그대로 연례행사이다. 수시로 국민을 만나겠다는 다짐과는 거리가 멀다. "소통 강화라는 이념적 취지에서" 광화문 대통령 공약을 만들었다는 설명도 무색하다. 국무회의나 수석'보좌관회의 등에서의 대통령 '말씀'은 소통이 아니다. 과거 익숙하게 보아온 일방통행이다.문 대통령은 참모들과는 밀접한 소통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현안에서 대통령과 비서진의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문제가 드러난다. 국민 여론이나 인식과 거리가 먼 확증편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위기론을 야당과 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으로 일축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하려면 그래서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수시로 기자들을 만나야 한다. 매월, 아니면 현안이 있을 때 수시로 회견을 해야 한다. 심금을 울리는 음악과 영상을 준비하는 등 '행사'로 치르는 것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 항상 대기하는 청와대 기자실에 서면 된다. 특별한 격식이 필요하지 않다. 모든 현안을 몰아서 하다 보니 문답이 수박 겉 핥기로 그치는 것이 사실이다. 특정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이 추가로 이어지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어야 한다. 국내 언론과 인터뷰도 자주 해야 한다.지금까지 문 대통령은 외신과 인터뷰는 수시로 있었지만 국내 언론과 제대로 된 인터뷰가 한 번도 없었다.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언론뿐 아니라 야당 의원들과도 만날 필요가 있다. 상임위별로 여야 의원들을 함께 초청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최근 문 대통령은 부쩍 소통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장관들도 유튜브에 출연하라는 독려도 있었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소통하면 총리, 장관 등이 다투어 나서지 않겠는가. 그럴 때 국민들은 비로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민관 대통령으로 충분합니다."

2019-01-13 15:43:49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시작은 늘 대구였습니다

시작은 늘 대구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이 그랬고 2·28민주운동이 그랬습니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나랏빚을 갚자며 온 국민이 들불처럼 일어난 국권회복운동이었습니다. 십시일반 모두 힘을 모았습니다. 하루치 일당을 의연하는 사람도 있었고 제법 큰돈을 쾌척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도적과 걸인들까지도 동참하여 힘을 보탰다고 합니다.국채보상운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경주, 서채봉, 김달준, 정말경, 최실경, 이덕수 그리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배씨까지. 모두 대구의 여성들입니다. 나라 위하는 마음은 남녀가 다르지 않다며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고 앞장서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이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여성 국채보상운동의 불씨가 되었고 동시에 근대여성운동의 효시가 되어 대구를 상징하는 또 하나, '시작의 역사'로 남았습니다. 현재 국채보상운동에 관한 기록물들은 세계유네스코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1960년의 2·28민주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는 '리승만 박사! 대통령으로 모시자'라는 현수막이 버젓이 나붙던, 즉 국민이 대통령을 '모시던' 시절이었습니다. 독재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져도, 불의가 횡행하고 민주주의가 쪼그라들어도 누구 하나 말 못하고 숨죽여 살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이들이 대구의 앳된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그날 2월 28일, 자유당 정권은 같은 날 수성천변에서 있을 예정이던 제4대 정부통령선거 야당 후보의 유세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일요일임에도 학생들을 등교케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대구의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와 당시 지역 최고의 권부였던 경북도청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의 결기가 어떠했는지는 시위를 이끌었던 경북고등학교 이대우 군이 쓰고 읽었던 결의문의 한 부분만 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 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련다.'정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이들의 외침은 3·15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초, 2·28민주운동은 늦게나마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대구의 시작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섬유산업이 그랬고 IT산업이 그랬듯 나라 경제의 시작도 대구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 우리를 일으켜 세운 것은 대구의 섬유산업이었습니다. 꺼져 가던 경제의 불씨를 되살리고 대한민국을 정보통신산업의 강국으로 거듭나게 한 곳도 이곳 대구경북이었습니다.그러고 보면 독립운동에서 해방 후 민주화운동, 그리고 경제부흥운동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 고비고비마다 대구만큼 결정적 역할을 한 곳도 없습니다. 모두가 막막해할 때 먼저 시작하고 새로운 길을 내어 보였습니다. 결코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았으며 언제나 용서와 화해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그러니 대구는 앞으로도 시작의 도시다워야 합니다. 기분 좋은 시작, 새로운 희망이 자꾸자꾸 생겨나는 도시, 대한민국의 청년이면 누구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하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곳이 대구라야 합니다.2019년,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삶의 방식도 바뀌고 있습니다. 인류 문명이 4.0 초(超)연결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대구가 한 번 더 힘을 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늘 그랬듯 대구의 힘은 곳곳에 있습니다. 남일동의 부인처럼, 2·28의 학생처럼 서로가 서로를 북돋우고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을 때 진짜 대구의 힘이 생겨납니다. 곳곳의 힘들이 모여, 곳곳의 힘들이 이어져 함께 새로운 대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물산업, 로봇산업, 의료산업, 에너지산업, 미래형자동차산업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시작의 도시는 그래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대한민국을 리드해야 합니다.

2019-01-06 15:48:51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도…

文대통령에 대한 평가 급전직하'소통' 아이콘서 '고집' 상징으로디지털시대 사공 많은 우리나라힘 합쳐 노 저을 수 있는 새해를몇 년 전 나름의 노후 대책(?)을 마련한 게 있습니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입니다. 퇴직 후 강의 경험도 살리면서 봉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아직 본격적인 교습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외국인 대상 우리말 교육에서 느끼는 애로와 보람 등은 들을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속담을 가르칠 때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속담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뜻을 설명하는 것은 더 난제입니다. 말은 알아들어도 배경 지식 없이 그 속뜻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한 가지 예를 들지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 무슨 뜻인지 우리는 다 압니다. '어떤 행동을 당장 해치우지 못하여 안달하는 조급한 성질을 이르는 말'이라거나 '행동이 매우 민첩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서 설명하고 있군요.외국인들에게도 말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뭘 뜻하는지 물어보면 난감해 합니다. 한참 생각하다 이런 답을 내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죽으려고 별짓을 다한다.' 재미있지 않습니까?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우리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주관하는 사람이 없이 여러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자기주장만 하면 일을 이루기 어렵다.' 사공이 노 젓는 사람이라는 걸 설명해 주어도 금방 그 뜻을 이해하는 외국인은 많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런 대답을 합니다.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노를 저으면 바다로 가야 할 배가 산으로 가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생각일까요?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웃고 말았습니다.그런데 요즘 그 뜻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면 될 일도 안 된다? 그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게 더 좋은 의미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 공감 가는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워낙 말들이 많아진 주변을 돌아보며 의식적으로 그렇게 관점을 바꾸어 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는 것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입니다.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급전직하는 너무 뜻밖입니다.포용과 소통의 아이콘에서 불통과 고집의 상징이란 평가로 바뀌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혹평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경제는 물론이요, 장기로 여겨지던 남북관계도 부정 평가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안타깝습니다. 정책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문 대통령만은 역대 대통령의 불행한 말로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성향 여부를 떠나 많은 국민이 그런 기대를 했던 게 사실 아니겠습니까.사실 중구난방은 민주주의의 특징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주권자인 국민이 자기 할 말을 하겠다는 데 누가 막겠습니까. 디지털 시대를 맞아 목소리를 크게 증폭시킬 수 있는 수단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공이 많은 것이지요. 그만큼 어려운 게 민주주의입니다. 자칫하면 바다로 가야 할 배가 산으로 가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걸 낭패라 생각하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제도입니다. 많은 사람이 힘을 합치니 불가능한 일이 없더라는 쪽으로 생각합시다. 수많은 목소리가 결국 화음을 이루도록 하는 게 지도자들의 지휘 역량입니다. 소리가 음정을 너무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민 각자의 몫이겠고요.새해에는 모쪼록 사공들이 즐거이 힘을 합쳐 노를 저을 수 있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8-12-30 15: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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