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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이른 아침에] 대구경북이 만만한가?

서문시장 한 바퀴 휙 돌고 나서는TK가 자기 것이라도 되는 양 행세미래통합당의 내리찍는 공천 행태지역 정서 안중에도 없는 업신여김역동적이다. 그리고 변화무쌍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나뉘고 더불어민주당은 줄곧 이어져 이달 들어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낳았다. 그새 국민의당은 바른정당을 만나 바른미래당이 되었고 이때, 민주평화당이 갈라져 나왔으며 민주평화당은 지난 1월 대안신당을 파생시켰다. 바른미래당은 파행을 거듭한 끝에 양대 세력이 당을 나가 새로운보수당과 한 번 더 국민의당을 만들고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이 껍데기만 남은 바른미래당과 살림을 합쳐 민생당이 되었다. 이게 다 3년 남짓 만에 일어난 일이다.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잘 모른다.다시, 새누리당이 이름을 바꿔 자유한국당이 되고 지난달에 새로운보수당과 미래를향한전진4.0 등 군소 정당을 통합해 미래통합당이 되었다. 이어 스스로 자매정당이라 일컫는 미래한국당을 낳았다. 다른 한편으로 자유한국당 출신이 만든 대한애국당은 우리공화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유통일당을 만나 자유공화당이 되었으나 금세 또 헤어져 지난주부턴 도로 우리공화당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우리공화당에서 갈라져 나온 친박신당도 있다. 이것도 3년 남짓 만에 일어난 일이다.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어렵지만 이건 집안 족보 꿰듯이 안다. 대구경북 사람들이 그렇다.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다시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으로 이어지는 이 정당을 우리 편, 우리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이 정당과 관련된 일 또한 우리 동네 우리 일처럼 받아들인다. 스포츠로 치면 대구FC나 삼성라이온즈 격인 셈이다. 물론 대구경북 사람들이 시민축구단 만들 듯 힘을 모아 자발적으로 이 정당을 만든 건 아니다. 그리고 원래부터 이렇게 애착했던 것도 아니다.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에 대한 지지율은 부산경남이 대구경북보다 훨씬 더 높았다. 즉, 이 정당의 가장 강력한 연고 지역이 TK가 아니라 PK였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신한국당의 전신인 민자당과 민정당에 대한 정서도 지금과는 성격이 좀 달랐다. 그땐 우리 정당이라기보단 집권여당 또는 전국정당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덧붙여 이보다 더 전인 1971년의 제7대 대통령선거는 영호남 지역 간의 표 쏠림 현상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고 또 더 전인 1960년에는 이 당의 원조 격인 자유당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TK 지역에서 제일 먼저 터져 나오기도 했다.하지만 이 모든 과거를 뒤로한 채 지금, 면면히 이름을 바꿔온 이 미래통합당의 가장 강력하고도 확실한 연고지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대구경북이다. 오래전 이 지역 출신들이 대통령을 할 때에 비해 근래 특별히 더 그럴 만한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고 대구경북에 사는 사람들이 이 정당으로부터 무슨 대단한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현재 미래통합당은 보수정당의 맥을 잇는 적장자, 그리고 대구경북은 그 보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내지는 보수의 심장이 되어 있다. 1990년 민자당 창당 당시 노태우 최고위원의 인사말이 '우리 당은 중도, 민주, 민족 세력의 믿음직한 결집처'였던 것에 비하면 지금 맹렬히 나부끼는 보수의 깃발이 좀 맥락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 최후의 보루, 즉 보수지킴이 역할을 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지난 총선 때는 소위 진박감별사의 온갖 추태를 참아내야 했고 어느 날 갑자기 내려온 이른바 서울 TK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4년을 감내했건만 이번 4·15 총선의 미래통합당 공천 행태를 보면 그건 약과였다. 사천, 막천, 기원전공천, 호떡공천 등 별별 말이 나올 만큼 기준도 원칙도 없이 일방적으로 내리찍은 공천이었고 어찌나 만만하게 보였는지 그 대부분이 대구경북에서 행해졌다. 그야말로 TK의 정서나 형편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대구경북 사람들을 철저하게 업신여긴 '능천'(凌薦)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그러고 보면 근래에 들어 이 정당에서 득세한 이들이 서문시장 한 바퀴 휙 돌고 나선 마치 TK가 자기 것이라도 되는 양 행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신동이 어딘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말이다. 우리가 무슨 보수지킴이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이제 그만하자. 대구 사람들은 그냥 대구를 지키고 경북 사람들도 그냥 경북을 지키자. 이 끝 모를 업신여김을 더는 못 하게 해야 한다.

2020-03-29 16:35:32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절망의 늪, 희망의 늪

제 밥값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절망의 늪이 아닌 희망이 가득한 늪대구여! 경북이여! 대한민국이여!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힘을 냅시다!'밥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밥을 먹는 데 드는 값'이 본디 뜻이겠지만 '밥을 먹은 만큼의 일이나 대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더 많이 쓰입니다. 밥값을 해라. 밥값 좀 했다. 밥값을 하고 있다. 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밥값은 하며 사는지 묻는 것이지요. 강의 등으로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는 내가 선생으로서 밥값 하며 살고 있는지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는데 나 덕분에 용기를 얻어 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는 학생의 고백을 들을 때 그래도 밥값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따분하지만 아주 드문 이런 경험을 통해 그나마 밥값과 삶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정호승, '밥값') 시인은 밥값을 하기 위해 지옥에 다녀와야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지옥은 종교와는 관계 없는 인생의 바닥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한번 성찰해 보기 위해서는 인생의 바닥에 다시 가봐야 한다는 게 시인의 생각입니다.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어 보이는 절망의 늪이 곧 바닥이요 지옥일 것입니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마찬가지겠지요.작금의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바닥이요 지옥입니다. 누가 원해서 이런 바닥에 이르렀겠습니까. 시인의 비유처럼 아무리 '밥값'하는 사람이 된다 해도 일부러 경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특히 대구경북 주민들에게는 정말 날벼락이지요. 외환위기와 같이 모든 국민이 겪는 위기라면 다를 수 있습니다. 대구경북 지역과 주민들에게만 유독 가혹한 시련은 더 견디기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런 바닥의 경험을 통해 더욱 성숙한 사람들로 거듭난 전력이 있습니다. 외환위기를 함께 극복해낸 경험이 그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감추기 바빠야 할 금붙이를 꺼내든 대한민국 국민들을 보고 외국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도 그랬습니다. 시커먼 기름에 전 바위를 맨손으로 닦아내다니. 미친 거 아닌가라는 게 외부 관찰자들의 솔직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달려온 수많은 국민이 함께 자갈과 바위의 기름을 닦아낸 태안은 놀랄 만큼 빠르게 자연을 회복했습니다. 대구도 그럴 것입니다. "대구에는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다. 고요함만 있다." 대구가 조용한 가운데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하는 날, "대구가 코로나19 극복 모델이 될 것"이라는 외신의 관측은 과장이 아닙니다. 이제 바이러스와의 공존은 인류의 일상이 될 것입니다. 그때 대구는 집단적 인생의 바닥을 경험한 시민들 모두가 밥값을 해내는 지역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의료진과 공직자들의 헌신 역시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히포크라테스 선서).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나이팅게일 선서). 의료진이 멘 십자가는 피하려 했으면 피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감염의 위험을 느끼며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는 전신 방호복을 그들은 기꺼이 입었습니다. 인류에 대한 봉사와 헌신이라는 숭고한 첫 맹세를 지키고 있는 것이지요. 생명을 구했다는 보람, 밥값을 제대로 했다는 충만함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의료인이 된 것은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습니까.다시 시인의 말입니다. "지금부터/ 절망의 늪에 빠졌다고 말하지 않겠다/ 남은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희망의 늪에 빠졌다고 말하겠다…만일 절망의 늪이 있다면/ 희망에도 늪이 있다/ 희망의 늪에는/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가득 빠져 있다."(정호승, '늪'). 아무리 어둡고 힘들어도 절망의 늪이라고 하지 맙시다. 모두가 제 밥값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희망의 늪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구여! 경북이여! 대한민국이여! 힘을 냅시다!

2020-03-08 15:38:32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이른 아침에] '세상의 하루'를 지키는 힘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 들 때까지 어제처럼 하루를 보내지 못하면 그런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변고가 생긴 것힘든 세상이다. 봄이면 찾아오는 황사 걱정하던 그때가 차라리 호시절이었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시커먼 수돗물, 원인을 알 수 없는 유독가스, 여기에 더해 일본 정부는 120만t에 달하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겠다고 한다. 이래저래 걱정거리가 사방에서 옥죄어 온다. 그래도 사람들은 열심히 산다. 먹는 물이 걱정되면 정수기를 사고 마시는 공기가 나쁘다고 하면 공기청정기를 들여놓는다. 밖에 나갈 땐 KF80 황사마스크를 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KF94, KF99를 착용한다. 그렇게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매우 나쁜 날'에도 출근을 하고 수돗물 파동이 터져도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공기가 나빠 밖에서 운동을 못하면 집에서 이른바 '홈 트레이닝'이라도 한다. 그만큼 일상은 소중하다. 누구도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이 돌아간다. 각자의 하루가 모여 세상을 만들고 각자의 하루가 이어져 세상이 계속된다. 그렇기에 각자의 일상이 깨지면 세상도 깨진다.아침에 일어나서 늘 하던 일을 못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어제처럼 하루를 보내지 못하면, 그리고 그런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다면 세상에 변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건 대개 전쟁 아니면 질병에서 온다. 이번에도 그랬다. 우리가 그토록 아득바득 지켜온 일상이 코로나19에 흔들리고 있다. 늘 하듯이 출근을 못하고 늘 하듯이 쇼핑을 못하며 늘 하듯이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서로들 안녕하시라 말은 하지만 속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티를 내진 않는다. 두려운 마음도 꾹꾹 눌러 참는다. 이런 비정상적인 날들이 끝나지 않을 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쨌든 버티려 애쓴다.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동료와 이야기할 때도 몇 발짝 떨어져서 하며 점심은 가급적 도시락을 싸 오거나 배달시켜 먹는다. 손을 자주 씻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또다시 열심히 산다. 바이러스에 밀려나 확 좁아진 영역에서도 어떤 이는 운전을 하고, 어떤 이는 배달을 하며,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서류 더미와 씨름을 하며 각자의 하루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여전히 세상은 계속된다. 그들이 일상의 끈을 부여잡고 놓지 않는 이상 세상은 삐걱대도 멈춰 서지 않는다.박 사장은 벌써부터 다다음 달을 걱정한다. 지금 영업을 못하니 그때 가면 더 어려워질 거란 이야기다. 그에겐 코로나19 못지않게 그것도 무섭다. 어쨌든 월세는 내야 하고 월급날은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처져 있던 목소리를 높이며 성을 낸다. 이 판국에 틈만 나면 대통령 비난하고 대구시장 욕하고 정부 관계자들의 말꼬리를 잡아 시비 거는 사람들은 대체 뭐냐는 거다. 하긴, 그건 적군이 앞마당까지 쳐들어왔는데 우리 장수에게 돌을 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의 처절한 모습과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대구시장의 얼굴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부르튼 입술이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서울 사는 최모 씨도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다 '문재인폐렴 대구시민 다 죽인다!'는 피켓을 들고 있는 한 예비후보의 사진을 본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구사람인 것이 부끄러워졌다고 한다. 그 역시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지키려 애쓰는 '각자' 중의 한 사람이다.사실 이들의 말처럼 변고가 생기면 "이건 다 쟤 때문이야"라며 증오를 부추기는 자들은 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갖다 대는 이유가 쉽고 빠르고 간단할수록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낳았다. 중국과의 내왕을 제한했을 때, 우리 자동차 생산라인이 멈춰 섰다고 난리를 치던 사람들이 왜 더 세게 막지 않았냐며 아우성이다. 코로나19를 빌미로 국민혈세를 퍼붓지 말라던 야당대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부를 비난한다. 이웃집에 암 환자가 있다고 해서 그들을 '암 가족'이라고 부르지 않는 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최소한의 양식임에도 여전히 코로나19를 우한폐렴, 대구폐렴이라 부르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그렇게 전열을 흩트러뜨린다. 하지만 역사에서 그들은 이긴 적이 없고 '세상의 하루'를 만드는 그 '각자'들은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그러니 이번에도 버티고 버텨 이길 것이다. 이겨서 빼앗긴 우리의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2020-03-01 15:21:32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다

스산한 대구 거리 풍경에 마음 아파'지역민 힘내시라' 응원메시지 보내정부·시민 협력하면 통제 가능 질병전문가 말 경청·중국인 입국 제한을폭발적인 증가세.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지난주 순식간에 400명을 넘어 버렸다. 22일 하루 새 확진자가 229명 늘어 지난달 20일부터 한 달간 발생한 확진자(204명)보다 많아졌다. 광역단체 기준 전국 17개 시도가 모두 환자 발생 지역이 되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런 기세가 쉽사리 꺾일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학이 개강하면 중국인 유학생들의 복귀와 함께 또 한 번 증가세가 폭발하지 않을까 걱정이다.특히 마음이 아픈 것은 SNS에 올라오는 대구 지역 풍경이다. 한마디로 스산하다. 텅 빈 거리가 마치 전쟁을 피해 사람들이 사라진 도시를 연상케 한다. 1992년 LA 폭동 당시 휑한 거리 한복판에서의 두려움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흑인 폭도들과 북쪽에 경계선을 설치한 경찰 사이에 낀 코리아타운에서 느끼던 공포감과 무력감. 시시각각 전해지는 전염병 소식에 조금이라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대구경북 지역민들이 있다면 힘내시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지금은 우리가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 정부와 시민들의 협력을 통해 충분히 통제 가능한 질병이라는 점, 많은 국민들이 응원하고 있음을 알고 기운 내실 것을 당부드린다. 정부의 말이 아니라도 지금은 여야, 이념, 지역을 떠나 모두 손을 잡고 마음을 모아 사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일 때다.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환자가 있는데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를 따질 때가 아니라는 말도 당연히 공감한다. 일선에서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은 물론 질병관리본부, 지방자치단체 관련 공무원들께 특별히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너무 과로해서 다른 불상사가 없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모든 국민들의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전제로 지금 시점에서 짚어야 할 건 반드시 짚을 필요가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정부에 우선 촉구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전문가들의 말을 경청하라! 의료 전문가들은 사태 초기부터 중국발 감염자의 강력한 유입 차단 조치와 지역사회 확산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을 줄곧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지역사회 감염 확산도 미리 경고해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런 충고와 지적을 흘려들었다. 전문가들은 이제부터 시작일 수 있다는 말로 장기전을 예고해왔지만, 정부의 인식과 대응은 단기전에만 쏠려 있었다. 정부 입장이 의료 전문가들과 똑같을 수는 물론 없다.정부는 의학적 견해 외에 정치, 경제, 외교 등 수많은 다른 변수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정무적 판단의 최우선 고려 사항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어야 한다.코로나19 사태가 아니라도 정부와 국가의 일차적 존재 이유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시절 박근혜 정부를 호되게 비판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 등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에 미흡했기에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신천지 신도들의 행태는 물론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신천지 신도도 어딘가에서 감염된 것이고 그 근원은 중국인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의료 전문가들의 견해를 경청하고 중국인 입국 제한 등의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컨트롤 타워의 부재 역시 야당이 정부를 비판하던 단골 메뉴였다. 이번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지방으로 갈수록 마스크나 일상 생활용품의 결핍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대구에 파견된 의료 인력 등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일은 이런 것이다. 일차적 대처는 의료인에게 맡기되 그들의 지원에 추호의 소홀함이 없도록 대응해야 한다. 곧 끝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나 세계가 칭찬한다는 자화자찬은 금물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소홀히 한다면 선거도, 정권도, 그보다 더한 어떤 명분도 국민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 모두가 그런 결과를 직접 목격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2020-02-23 15:44:41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이른 아침에] '많이 본 뉴스'

포털 제공 '연령별 많이 본 뉴스' 1020과 5060 관심 완전히 달라세대 간의 공감은 관심에서 생겨 한 번씩 서로 곁눈질이라도 하길하루 몇 번은 휴대폰으로 뉴스를 본다. 실은 포털 사이트가 차려주는 대로 읽는 거지만 꽤 장점이 있다. 우선, 언제 어디서고 주요 뉴스를 한눈에 훑을 수 있다. 그리고 뉴스 정보를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한 결괏값, 즉 실시간으로 생산되는 부가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뉴스포털 'N'사의 '연령별 많이 본 뉴스'는 그렇게 제공되는 서비스 중 하나다.지난달 24일, 역시나 폰으로 뉴스를 뒤적이다 이곳에 눈길이 꽂혔다. 한 종류의 뉴스가 화면 가득 줄지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데 1020세대가 '많이 본 뉴스'의 헤드라인이 모조리 '신종 코로나' 아니면 '우한 폐렴'이었다.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사람도 잘 없을 때였고 첫 번째 환자가 발생했다고는 하나 분위기가 그렇게까지 심각하진 않았다. 그건 바로 옆, '3040세대가 많이 본 뉴스'만 눌러 봐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코로나 관련 뉴스가 단 한 건도 순위에 올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러다 바이러스보다 괴담이 더 빨리 퍼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랬다. 아래 세대의 관심은 여전히 '신종 코로나'에 있었고 위 세대의 관심은 역시 다른 곳에 있었다.그런데 1월 말을 지나며 상황이 급전직하 나빠졌다. 감염 지역과 의심 환자 수가 대폭 증가하고 감염 환자 수도 두 자리로 늘었다. 사람들은 부랴부랴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찾았다. 수요가 폭증하자 물품은 금세 동나고 화면에 뜨는 '품절' 표시는 다시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켰다. 상황을 설명하는 정부 관계자들 얼굴에도 긴장이 묻어 났다. 사태의 추이를 전하는 속보가 이어졌고 확인을 하려면 더 자주 휴대폰을 꺼내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5060세대의 '많이 본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1위에서 5위까지를 남김없이 정치 관련 뉴스가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사회 공통의 관심사로 떠올랐음에도 그곳은 그야말로 '코로나 무풍지대'였다.이 '많이 본 뉴스'를 확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슬며시 궁금해졌다. '세상이 온통 난리인데 여긴 언제쯤 순위에 올라올까?' 하지만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5060세대는 끄떡하지 않았다. 그날, 50대가 '많이 본 뉴스' 1위에서 5위까지의 모든 헤드라인은 '추미애 아들 군 휴가 미복귀'였고 60대 이상은 여기에 '조국 아들 인턴 증명서'가 하나 더 있었다. 그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다. 태풍 '링링'이 왔을 때도, 고성에 산불이 났을 때도, 화성연쇄살인의 범인이 잡혔을 때도 이들 세대가 '많이 본 뉴스'는 언제나 '정치'였다. 그리고 지난주,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는 꿈같은 일어 벌어졌을 때도 이들 세대가 제일 많이 본 뉴스의 헤드라인은 '사법 농단 폭로자라던 이수진의 두 얼굴'이었다.그런데 같은 맥락에서 보면 아래 세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나라의 중대사보단 언제나 '연예인 스캔들'이 먼저이고 자신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고 모르는 것을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듯 말하기 일쑤다. 이토록 위 세대와 아래 세대의 관심이 한 번을 겹치지가 않는다. 나라가 휘청거릴 만한 일이 생겨도 그런다. 대신 '꼰대'니 뭐니 하는 부박한 말들은 일상에 잦아들었다. 영국의 BBC는 '본인이 늘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을 '꼰대'라고 소개했지만 그건 나이 어린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들 사이에 공감대란 없다. 심지어 나와 다른 세대의 사람 또한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어쩌면 이게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세대 간의 공감과 연대가 사라지면 사회가 황포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회를 유지 존속하게 하는 힘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연령별 많이 본 뉴스'를 쉽게 보아 넘기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지닌 내력은 이렇지 않다. 국채보상운동 때도, 2·28민주운동 때도 세대와 세대가 공감하고 연대하며 서로를 지켜주려 애썼다. 이해는 관심에서 생기고 공감과 연대는 이해의 바탕에서 자란다.오는 21일은 국채보상운동의 '그날'을 기려 새롭게 제정된 '대구 시민의 날'이다. 그런 만큼 다른 세대가 '많이 본 뉴스'에 한 번씩 곁눈질이라도 해보자.

2020-02-16 15:08:43

노동일 경희대 교수. 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이른 아침에] 법무부 장관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8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을 갑자기 경질하였다. 형식은 사임이지만 사실상 해임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세션스 장관 본인이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사임한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세션스는 2016년 대선에서 상원의원 중 최초로 트럼프 후보를 공개 지지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트럼프 내각 초대 법무장관은 당연한 포상이었다. 세션스 장관은 그러나 대통령의 수족 역할을 거부하였다. 그는 이른바 러시아 대선 개입 스캔들을 수사하는 특별검사를 해임하거나 예산 지원을 중단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수사 불개입 입장을 공개한 후 실제로 수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법무장관이 없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경질이 사임이 아닌 해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장관 시절 세션스는 이런 성명을 낸 바 있다. "내가 취임한 뒤 연방 법무부가 미국 시민의 안전과 권리 보호, 경제성장 촉진, 범죄 경감, 이민정책 강화, 그리고 종교자유 증진 등 대통령 정책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장관직에 있는 동안 연방 법무부는 정치적 고려에 부적절하게 영향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훌륭한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대통령의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은 것은 장관으로서의 소신이 뚜렷한 게 큰 이유일 수 있다. 정치적 고려에 부적절한 영향을 받지 않아야 오히려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여론의 분위기도 한몫했을 수 있다. 권력자나 외부 세력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심각한 사안이라는 인식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 결정과정을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는 중차대한 범죄라는 것이다.법무부의 영어 명칭(Ministry of Justice)을 직역하면 '정의부'이다. 우리뿐 아니라 미국 등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법에 관한 일'(Legal Affairs)을 다루는 부서가 아니라 '정의 실현'을 담당하는 부서라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의 참모 이전에 한 국가의 법치와 정의를 수호하는 부서 책임자가 법무부 장관이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우리 법무장관의 행태는 걱정스럽다. 조국 전 법무장관에 이어 추미애 장관 역시 취임 직후부터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검찰 힘 빼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전 정권을 수사할 때 검찰에 보내던 박수와 환호가 미처 잦아들기도 전이다. 자신들을 수사하는 검찰을 향한 증오와 분노의 언사는 참으로 낯설다. 며칠 전 공개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을 보면 현 정권이 왜 그토록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찰 수사 방해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공소장에는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내용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경찰이 권력의 수족처럼 하명수사 정도가 아니라 청부수사를 한 정황도 담겨있다. 아직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로 확정되지는 않았기에 사실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사실로 드러난다면 실로 엄청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이 선거에 직접 개입했다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하는 것으로서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이다. 미국과 한국이 다를 바 없다. 추 장관이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도 정파적 고려에 따라 공소장 비공개를 고집한 것은 한마디로 자충수를 둔 것이다. 공개재판의 원칙상 공소장은 어차피 공개될 수밖에 없다.공소장 비공개 결정은 오히려 내용에 대한 관심만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 법무부가 홈페이지에 공소장을 실명까지 공개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범죄사실을 기록한 공소장은 사생활 영역이 아닌 공적 사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프라이버시를 상실함으로써 더 이상 사생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론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정파적 이익 수호에 매달리는 법무부 장관이 정의실현 부서의 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추 장관은 이른바 '큰 꿈'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욱 달라져야 한다. 이제라도 특정 정파의 전위대 역할을 거부하고 대한민국의 정의를 실현하는 부서의 수장이 되어야 마땅하다. 법무부가 왜 '정의'를 표방하는 부서인지 본질부터 숙고하기 바란다.

2020-02-09 15:39:56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모든 권력은 절제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헌법은 제1조에서 이를 명확히 하고 있다. 조문이 없어도 대의민주주의의 당연한 원리를 이처럼 명시해 놓은 이유가 있다. 국민만이 모든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며 국민으로부터 유래된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등은 제한적이고 상대적 권력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최대한 절제해야 한다는 원리가 이에서 나온다. 국민의 위임 범위 내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든, 검찰이든 다를 바 없다. 무절제한, 자의적 권력 행사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나오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도, 검찰의 수사권도 본래 그들의 권력이 아닌 국민의 권력이기 때문이다.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에서 지금까지 헌정 체제의 기본 골격을 유지할 수 있는 비밀이 바로 권력 행사의 절제와 관용이라는 분석이 있다. 대통령제 헌법은 입법, 사법, 행정권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기본으로 한다. 헌법에 담긴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상호 관용과 자제라는 불문율이 필요하다. 헌법 체제의 이상과 그 체제가 작동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우는 규범이 상호 관용과 자제라는 말이다. 대통령제 기반의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권력기관이 그들에게 주어진 제도적 특권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자제의 규범이 무너질 때 권력균형도 무너지며, 권력자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힘을 행사할 때 민주주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정부의 검찰 인사를 두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폭적인 검사장 인사에 이어 중간 간부급 인사가 있을 경우 더 큰 파열음이 예상된다. 검사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맞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대로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한다. 하지만 실제 인사권 행사 과정은 상당한 정도의 자제와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헌법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자제와 관용이라는 불문율이 필요하듯 말이다. 정기인사철도 아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 업무도 제대로 파악하기 전이다. 거의 모든 검찰 지휘부를 한꺼번에 '유배 보내듯' 한 것은 맨주먹의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이다. 권력층 관련 사건 수사를 못하게 하겠다는 노골적인 권력남용 행태이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규정 준수 여부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형식적 의견 청취가 아닌 실질적 협의를 위해 전임 장관까지 지켜온 관행을 '초법적 권한 행사'라는 말로 일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 줄로 규정된 헌법과 법률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권력 행사의 자제와 상호 관용이라는 불문율이다.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취임사를 내놓았다. 권력 행사에 자제와 관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언급이다. 먼지털이식 수사, 무분별한 압수수색, 별건 수사, 망신주기식 소환 조사. 그동안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인권보호에 소홀했던 점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추 장관의 언급처럼 정밀하게 칼을 휘두르는 명의가 되어야 한다.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수사권 행사 과정에 대한 반성이라면 당연하다. 일부의 관측처럼 현재 권력에 대한 수사 자체를 절제하거나 자제하려는 것이라면 문제가 크다. 범죄 혐의가 있어 진행 중인 수사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은 절제가 아니다. 검사의 직무유기로서 그 자체 범죄를 구성하게 된다.흔히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한다. 현재의 청와대만이 아니라 과거 모든 대통령들의 인식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이 아니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국민을 위해 행사하도록 국민으로부터 대통령의 임기 동안 잠시 위임받은 권력이다. 검찰권도 국민이 권력의 원천이다. 대통령이든 검찰이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마찬가지다.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관용과 자제를 잃을 경우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다시 상기시키고 싶다.

2020-01-19 15:45:07

권은태 (사)대구콘텐츠플랫폼 공동대표

[이른 아침에] 공멸할 것인가 공존할 것인가

지난 한 해 시종일관 싸워댄 정치권사회 전체가 온통 싸움판으로 보여지도자라면 모두가 싸우자고 할 때공존의 길 찾아 보여 줄 수 있어야 '킹덤 오브 헤븐'은 십자군 전쟁을 다룬 영화다.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이 영화의 막바지쯤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예루살렘은 무엇이오?" 발리안(올랜도 블룸 분)이 불현듯 묻는다. 그러자 살라딘(가산 마소드 분)이 태연스레 "아무것도 아니오" (Nothing)라고 답한다. 그런 다음 씩 웃으며 "모든 것이기도 하고"(Everything)라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이슬람 양쪽 모두의 성지다. 발리안은 그 예루살렘을 지키는 십자군의 대장이고 살라딘은 자신들의 성지를 되찾으려 군대를 몰아온 이슬람의 왕이다. 양측은 몇 날 며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하지만 승부는 나지 않고 계속되는 싸움에 병사들의 희생만 늘어 갔다. 게다가 도시마저 점차 파괴되자 두 사람은 결국 얼굴을 마주한 채 협상을 시작한다. 발리안은 예루살렘을 내어주고 살라딘은 기독교인들의 안전한 철수를 보장할 것, 둘은 그렇게 합의함으로써 상황을 타결한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살상과 파괴도 막을 내린다. 위의 장면은 협상을 막 끝내고 돌아가던 살라딘을 향해 발리안이 혼잣말처럼 던지는 질문으로 시작된다.사실, 종교적 또는 상징적 의미를 제외하고 나면 예루살렘이 그리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땅은 아니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이교도를 모조리 멸해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발리안은 기독교인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으로, 그리고 살라딘은 이슬람의 자존심을 지켜낸 것으로 충분했다. 그들은 그들과 그들 세상의 평화와 번영을 원했고 그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할 때만 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둘은 서로 통했고 의표를 찌르는 질문과 절묘한 답변이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 비록 영화 속 이야기지만 천 년 전에도 그랬다. 상대를 쳐서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세상을 덮을 때도 그렇게 하면 결국은 공멸하고 만다는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지도자들이 있었다.조금 뜬금없을지 모르겠으나 올해는 우리 정치도 좀 그랬으면 좋겠다. 지난 한 해 국회는 문 연 날 치고 안 싸운 날이 없다시피 했다. 심지어 문을 열기 전에도 싸웠고 문을 닫은 후에도 싸웠으며 급기야 문을 어떻게 열 것인가와 어떻게 닫을 것인가를 두고도 싸웠다. 물론 국민을 대신해 싸움도 하라고 국회로 보낸 국회의원들이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였다. 그들은 등 뒤로 수천 만의 국민이 지켜보고 있거나 말거나 한 번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들끼리만 웃다가 삐치고 화내고 비난하더니 결국엔 몸싸움까지 해가며 시종일관 싸워댔다. 예전에 한 초선 국회의원이 그랬다. 그 안에 들어서면 그곳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고.여론조사기관들과 미디어도 한몫했다. 눈만 뜨면 정당 지지율과 대통령 지지율이 보수 대 진보, 몇 대 몇으로 나뉘어 흘러나왔다. 마치 격투기 선수들이 매 라운드 상대를 가격해 따낸 점수처럼 말이다. 때론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체가 온통 싸움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더구나 보수와 진보는 실체조차 모호하다. 정치적 이념이 실제적 의미를 지니려면 그것에서 그 사람의 정치적 행위가 비롯되고 그것으로 그 사람의 정치적 선택이 매듭지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다. 이념에 따라 정치적 선택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정치적 선택에 따라 이념이 달라진다. 그러니 누가, 무엇 때문에, 왜 그 편에 서서 싸우는지 설명이 안 된다. 심지어 보수 정치인도 보수의 가치를 모르고 진보 정치인 또한 진보가 뭔지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여론조사기관들은 새해에도 변함없다. '당신의 이념적 성향은 무엇입니까?'를 무슨 인적사항 묻듯이 반복한다. 다른 결괏값들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리고 굳이 그게 필요하다면 그 값을 구해내는 건 자기들 몫의 일일 텐데 말이다.올해는 총선까지 있는 해라 더 난망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좀 하자. 그까짓 이념, 배고플 때 밥 한 그릇만도 못 한 것 아닌가? 역사에서 증오와 저주, 대결과 적개심이 시대정신을 대신했던 적은 없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모두가 싸우자고 할 때에도 협상하고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 공존의 길을 찾아내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올해는 그렇게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한다.

2020-01-12 15:43:27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검찰은 검찰의 일을 하면 된다

새해 첫 칼럼이다. 지인들과의 사이에는 아직도 새해 인사가 오가는 중이다. 뭔가 새해에 걸맞은 글을 한참 궁리하다 포기했다. 공허한 "새해 복 많이" 대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 화두를 차지하며 새해 벽두부터 화제에 오르고 있는 검찰에 관한 의견이다. 정부는 '대구 세탁소 집 둘째 딸' 추미애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2020년을 열었다. 1월 2일 아침 7시. 문재인 대통령이 추 장관 임명을 재가한 시각이다. '이례적'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릇 모든 정치행위에 메시지가 있다면 청와대의 뜻은 분명해 보인다. 법무부를 통한 '검찰 통제'가 너무도 화급한 과제라는 사실이다.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권력기관 개혁'이나 추 장관 취임사의 검찰 개혁은 같은 맥락이다. 추 장관이 이번 주부터 신속한 인사를 통해 검찰을 장악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다. 추 장관이 인사권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의 손발을 자를 것이라는 섬뜩한 표현도 볼 수 있다. 권력 핵심을 향한 검찰 수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도 한다. 조국 의혹 수사,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수사, 울산 선거 개입 의혹 수사, 관련 수사 팀 검사들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마디로 불편하다.문 대통령 말대로 대통령은 권력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헌법상 권한이 있다. 법무 장관 또한 인사권, 감찰권, 수사지휘권 등 법률적 권한을 통해 검찰 사무를 지휘감독한다. 하지만 그 권한은 어디까지나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것이다. 국민의 위임 범위 내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 인사철도 아닌데 갑작스레 인사를 한다? 국민의 주목을 받는 수사 관련자들을 모두 교체한다? 이른바 윤 총장 라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인사를 한다? 언론의 관측이 사실일 경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권한 행사로 설득력을 갖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과 추 장관 모두 합리성을 중시하는 법률가들이다. '조자룡 헌 칼 쓰듯' 권한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검사는 범죄의 혐의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검사의 의무이다. 수사는 검사의 권한이자 의무이다. 언제가 되었든 검사들은 인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의혹 수사 담당 검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 보임된 검사가 이른바 윤 총장 라인이 아니라면 사건을 유야무야 할 수 있을까. 언론의 관측이 현실화 될까. 다시 말하지만 범죄 혐의가 있다면 검사는 수사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 라인이건 장관 라인이건 '수사하여야 한다'는 법률의 명령에서 예외가 있을 수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수사가 범죄 혐의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상당수 국민들이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이유를 검사들은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죽은 권력에는 맹견, 산 권력에는 충견으로 비쳐진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인권 보호보다 조직의 이익 보호를 위해 권한을 남용해왔기 때문이다. 국민에게는 가혹하면서 검사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웠기 때문이다. 비리라는 인식조차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오죽하면 없어져야 할 조직이라는 말까지 구성원 입에서 나올 수 있겠는가. 이제 공수처 설치가 확정된 마당이다. 기존의 의식과 관행 모두 혁명적으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검사와 검찰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검사들은 우선 출세의 의미부터 인식을 달리 해야 한다. 권력자의 눈에 들어 소위 요직을 독점하는 게 출세 코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는 비겁한 검찰 조직 탄생의 근본 원인이 된다. 좌천이라는 관점도 마찬가지로 달라져야 한다. 어디에 근무하든 대한민국 검사는 검사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공익을 대표한다는 명예와 자존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특정 정치 세력과 대립각을 세우라는 주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언급처럼 장관은 장관의 일을, 검찰은 검찰의 일을 한다는 당당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헌법과 법률, 국민에게만 충성하는 검찰. 국민이 검찰에게 듣기 원하는 "새해 복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는 바로 그런 것이다.

2020-01-05 17:36:44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어떤 시청을 지을 것인가?  

시민 민주주의 새 역사를 쓴 대구신청사 건립 마침내 본궤도 올라새 랜드마크'관광명소도 좋지만'시민의 행복'을 최우선 목표로달서구 옛 두류정수장 터가 대구의 새로운 시청이 들어설 장소로 확정되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간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처음 대구시가 공론 민주주의를 들고 나왔을 때, 그리고 그것으로 신청사 입지를 결정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괜히 일만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거 아이가? 오로지 시민의 뜻대로? 말이야 좋지 그게 되나?" 곧이어 비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어떤 이는 '대구시의 백년대계를 지식과 전문성이 부족한 보통 시민들이 결정한다는 게 과연 타당한가?'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중구와 북구 말고는 더 참여할 지역도 없을 텐데 괜스레 대구시 전역으로 일을 확대해 복잡하고 시끄럽게 만든다'고 했다. '탈락한 지역이 승복하지 않을 게 불 보듯 뻔한데 그 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공박하는 이도 있었다.게다가 공론화위원회의 핵심가치 '시민의 뜻대로'조차 잘 믿으려 들지 않았다. 말만 그렇게 해놓고 실제로는 '시장(市長)의 뜻대로' 할 게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찌 보면 새로운 방식, 즉 공론화를 통해 신청사의 입지를 선정한다는 건 어설프고 비현실적이며 비효율적인 데다 심지어 위선적이고 나쁘기까지 했다.물론 이 모든 건 지난 22일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달서구와 달성군이 참여함으로써 북구와 중구가 전부일 거라던 예측은 일찌감치 깨졌다. 시민 참여단이 보여준 진정성과 성실함은 전문성 부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지금까지의 과정과 선정 결과를 보면 시민의 뜻대로 진행되었다는 것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다.일주일이 지난 지금, 아무도 지난 일을 두고 다투지 않는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지역 또한 당연히 없다. '신청사 유치 과정에서 보여준 군민들의 단합된 모습과 에너지는 절대로 헛되지 않은 소중한 자산'이라고 한 달성군수의 말처럼 경쟁한 지역들은 신청사 유치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과 긍지를 확인하고 대구시민들에게 그들의 비전과 희망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선정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과거가 아니라 함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구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이로써 대구시의 신청사 건립이 마침내 궤도에 올랐다. 시민을 믿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대구시와 공론화위원회는 훌륭했고 그걸 받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쓴 대구시민은 더 위대하고 훌륭했다. 이젠 '어떤 시청을 지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보다 새롭게 해야 한다.2002년에 완공된 런던시청의 모습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원형이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원래 직사각형으로 디자인했다가 '친환경'이라는 런던시의 철학에 맞춰 다시 고친 것이다. 건물 전체를 구성하는 투명유리, 3층 회의실 안에 마련된 시민을 위한 방청석 등이 런던이 어떤 도시인가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청을 짓는 과정에서 한 번도 다른 도시를 본보기로 들지 않았다.대구시청을 도쿄도청처럼 만들겠다는 것도, 두류공원을 센트럴 파크처럼 되게 하겠다는 것도 다 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지만 지금은 말조차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말이 쌓이면 의식이 되고 습관이 되어 결국 방향성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대구의 새로운 시청은 오직 대구답게 짓겠다고 말해야 한다. 세계적인 관광명소, 새로운 랜드마크도 되어야겠지만 그보단 '시민의 행복'이 진짜 목표라고 말해야 한다. 즉, 대구의 새로운 시청은 대구의 산천과 대구의 역사를 닮아야 하고 대구의 색깔, 대구 사람들의 성정을 닮아야 한다. 그리고 대구의 산업과 대구의 미래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도쿄와 뉴욕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에 더 집중해야한다.뻔한 해외 사례가 순서대로 나오는 보고서 형식 같은 접근은 이번엔 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의 모델을 따라갈 게 아니라 대구가 세계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도시를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시민을 위한다면 시청을 저렇게도 지을 수 있구나' 하는 본보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공론 민주주의를 통한 신청사 입지 선정이라는 전례도 없고 사례도 없는 일을 해냄으로써 다시 한 번 '시작의 도시'임을 보여준 대구다. 그걸 왜 못 해내겠는가?

2019-12-29 15:44:35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개혁으로 포장한 민심왜곡 선거법

탈선 위기에 놓인 선거법 개정안특정 정당 지지하는 국민 뜻 왜곡캡을 씌우느니 석패율제 하느니범여권 볼썽사나운 모습만 연출"국민들은 산식을 몰라도 된다."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관해 한 말이다.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연동형비례제 찬성론자들의 논리이다.'민심'이란 소박하게 말해 국민들의 뜻이다. 나의 한 표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게 민심일 것이다. 국민의 뜻이 제대로 형성되려면 선거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민심 그대로를 반영하는 제도라고 하니 선거법에 대한 이해는 더 중요하다. 패스트트랙에 의해 본회의에 부의된 선거법 개정안에는 다음과 같은 '산식'이 포함되어 있다.연동배분의석수=[(국회의원 정수-의석 할당 정당이 추천하지 않은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인 수)×해당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 득표 비율-해당 정당의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인 수]÷2.이해가 되시는지? 명색이 법학자인 나도 이런 종류의 6개 수식이 포함된 선거법의 전체 구조를 알기 어렵다. 거기에 또 '권역별'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석패율'까지 도입하는 선거법이라니. '전문가'의 해설을 들어도 오리무중이긴 마찬가지다. '개혁'이라니까,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제도라니까 무조건 지지했던 국민들도 있을 것이다.한 번이라도 선거법 개정안을 읽어보면 '민심 그대로' 주장의 허구성을 알 수 있다. 물론 반론도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산식을 몰라도 된다. 정확한 계산은 컴퓨터가 하면 되니까. 국민은 그저 지지 후보나 정당에 한 표를 던지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다.'연동형' 선거법의 치명적 약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현재 선거제도에서 나의 한 표는 지지 후보의 당선에 기여할 수 있다. 내가 선호하는 정당에 던진 한 표는 그 당이 비례대표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연동형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은 정당 투표에서 아무리 많은 지지를 얻어도 비례대표는 한 석도 얻지 못할 수 있다. 지역구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될 의석을 이미 얻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정당득표율과 전체 의석수가 '연동'된다는 뜻이 바로 그것이다. 특정 정당을 지지한 국민들의 뜻은 완전히 무시되고 오히려 민심을 엄청나게 왜곡하는 제도에 다름 아니다. 연동형이든 준연동형이든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그런 결과를 막으려면 국회의원 정수를 넘어 의석을 늘리는 초과 의석을 인정해야 한다. 싸늘한 국민 여론을 알면서도 의원 수 증원을 떠 보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패스트트랙과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공조하던 민주당과 군소 정당들이 삐걱거리는 원인은 명확하다. 진짜 개혁이 아니라 당리당략에서 출발한 열차가 탈선에 직면한 것이다. 민주당은 선거법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처리에 마음이 있었다. 정의당과 여타 정당들은 자신들의 의석 늘리기라는 의도를 감추고 왜곡된 선거제를 개혁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진정한 개혁 법안이라면 자신들의 유불리를 떠나 국민 앞에 당당하게 대의명분을 설득해야 한다.선거가 코앞에 다가오자 지역구 225, 비례대표 75에서 각각 250, 50으로 후퇴했다. 캡을 씌우느니, 석패율 제도를 하느니 마느니 볼썽사나운 모습만 연출하고 있다. 250+50은 현재와 거의 차이가 없다. 동물국회, 장외투쟁, 예산안 편법 처리, 국회 점거 투쟁. 모든 일의 단초가 무리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와서 보니 거의 1년여 정치를 실종시킨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선거법과 맞바꾸려 한 공수처 설치 역시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 때문이 아니라 현재 권력을 향하는 검찰의 칼날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정통 연극을 기대한 관객을 기만하는 황당한 정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개혁'이라 무조건 지지한 국민에게는 슬픈 내용일 수도 있다.같은 내용의 되풀이는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 이제라도 정치는 코미디가 아니라 정극(正劇)을 공연해야 한다. 의회주의의 기본 정신인 협상을 통한 대화와 타협이 그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코미디인지 정극인지 정치 연극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관람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2019-12-22 15:46:23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트로트와 오페라는 평등하다

대중적인 것은 저급하다는 인식 문화예술 대하는 정부의 현주소 모든 정책의 중심에 국민을 놓고 국민의 음악을 더 소중히 여겨야'국민 MC'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데뷔했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아침 생방송에도 나와 반짝이 옷을 입고 메뚜기 춤을 추며 자신을 어필했다. 그의 깜짝 등장에 시청자들은 손뼉을 쳤고 나중에 알게 된 사람들도 놀라워했다. 특히나 트로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유재석이 트로트 중흥에 불씨를 댕겼다며 반색했다."트로트는 돌려서 얘기 안 하거든요." 그의 말처럼 트로트는 직설적이다. 당신이 부르면 태평양을 건너서라도 무조건 달려갈 거라고 속 시원하게 말해준다.출근길 버스부터 돌아오는 월급날까지, 내내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에게 음악은 느긋하게 기다리며 음미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먹고사느라 숨 가쁜 이에게 음악을 듣고 이해하려면 먼저 학습과 훈련을 통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속 모르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트로트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듣고 즐기면 된다. 듣고 있으면 위로가 되고 함께 부를 땐 하나가 되며 혼자 흥얼거릴 땐 맺힌 것이 풀리기도 하는 그런 국민의 음악이다. 그래서 '국민 MC'와 트로트는 꽤 잘 어울린다.사실, 이전부터 트로트는 세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두와 잘 통했다. '소녀시대' 서현은 주현미와 듀엣 곡 '짜라자짜'를 발표했고 '레드벨벳'은 TV에 나와 배호의 '안녕'을 노래했다. '슈퍼주니어'의 김희철은 록밴드인 '트랙스'의 김정모와 함께 '울산바위'를 불렀고 태연도 '사랑밖엔 난 몰라'를 그만의 감성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걸 그룹 '티아라'의 수많은 히트곡에도 '희자매'와 닮은 듯한 이른바 '뽕필'이 있었다.이렇듯 트로트는 우리 음악 곳곳에 영감을 불어넣고 세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감동을 전해주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예술이 아니다. 이는 대중음악의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다. 팬, 음반 제작사, 연예 기획사, 그리고 방송국에서까지 모두 대중음악을 예술이라 하고 대중가수를 '아티스트'라 칭하지만 정부는 그러지 않는다. 앞에 '대중'이 붙는 건 예술이 아니고 그걸 창작하고 표현하는 사람 또한 예술인이 아니다.얼마 전 방탄소년단의 군 입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나라가 부르면 가면 되고, 우리는 기다리면 되고'라며 팬들이 일찌감치 멋지고 현명한 답안을 내놓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논란은 아무 현실성 없는 헛된 것일 뿐이다. 정부의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방탄소년단이 병역특례의 대상이 되려면 일단 '예술인'부터 되어야 한다. 국위 선양을 얼마만큼 했느냐는 그다음의 문제다. 즉, 그들은 그들의 춤이 아니라 이를테면 발레를 춰야 하고 힙합이나 랩 대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불러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정해 놓은 예술인에 속하게 된다.그런 다음 병역특례의 대상이 되려면 '그래미'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아니라 유럽의 어느 이름 모를 콩쿠르라 할지라도 클래식 경연대회에 가서 상을 받아 와야 한다.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문화예술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정책이자 시스템이다. 그야말로 대중적인 것은 곧 저급한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가장 대중적인 음악인 트로트는 가장 낮은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건 결국 대중도 저급한 존재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이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범죄 전력이 있는 연예인을 종신토록 방송에 못 나오게 하자는 내용이다. 범죄가 조장될 수 있으니 그걸 막자는 취지에서란다. '직업 수행의 자유'에 관한 위헌 소지는 차치하고서도 어이없고 황당하다. 대중과 대중문화를 업신여기는 인식의 전형처럼 보인다.그럴 거면 세금으로 사는 자신들에게 먼저 그런 제재를 가하는 게 맞다. 음주운전이라도 하다 걸리면 평생 출마를 못 하도록 말이다. 더불어 자신들이 함부로 여기는 그 연예인들만큼이라도 국민을 기쁘게 해 준 적이 있는지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그리고 이젠 문화예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관련된 모든 정책의 중심에는 국민이 있어야 한다. 트로트와 오페라를 평등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하고 그래도 굳이 한 가지를 고르라면 국민을 존중하듯 국민의 음악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2019-12-15 14:56:26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필리버스터가 아니라 무제한 토론이다

국회선진화법 일환으로 만들어 의제와 무관한 발언 허용 안 돼 다음 회기 때 첫 번째 안건 표결 제대로 된 무제한 토론 봤으면모두가 필리버스터라고 한다. 언론은 물론 심지어 국회의장과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이 199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결과 국회가 마비되었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이를 필리버스터라고 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틀렸다. 자유한국당이 신청한 것은 필리버스터가 아니라 무제한 토론이다. 두 가지는 전혀 다르다. 필리버스터와 달리 무제한 토론은 긍정적인 제도이다. 무제한 토론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거나 본질을 외면한 채 필리버스터라고 부르는 것이 좋은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일 수 있다.필리버스터(Filibuster)는 미국 상원의 독특한 의사 진행 모습이다. 하원에서는 엄격한 발언 시간 제한이 있지만 상원의원의 발언 시간은 원칙적으로 무제한이다. 한 의원이 단상에서 발언을 계속하는 경우 재적 5분의 3 이상의 동의가 없이는 중단시킬 수 없다. 동화책, 요리책, 헌법전 낭독 등 의제와 관련 없는 발언도 무한정 허용된다. 그 결과 의원의 발언 중 회의가 지연되는 '의사진행방해'가 된 것이다. '해적'을 뜻하는 단어가 어원이라는 말처럼 회기를 넘겨 특정 의안을 폐기시키려는 게 필리버스터의 목적이다.무제한 토론은 다르다. 관행적으로 인정된 필리버스터와 달리 국회선진화법 일환으로 우리 국회법 제106조의 2에 명확히 규정된 제도이다. 한 사람에 의한 단상 점거 발언인 필리버스터와 달리 무제한 토론은 재적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의원들이 발언을 이어간다. 의제와 무관한 발언이 허용되지 않는 점도 다르다. 필리버스터는 시간을 끌어 회기를 넘기면 해당 의안이 폐기돼 버린다. 회기불계속의 원칙 때문이다. 반면 회기계속의 원칙이 적용되는 우리 국회에서는 회기가 끝나도 해당 의안이 폐기되지 않는다. 회기 종료 후 다음 회기 첫 번째 안건으로, 무제한 토론 종결 즉시 해당 안건을 표결해야 한다.필리버스터는 '의사진행방해'를 통한 법안 폐기에 목적이 있는 반면 우리는 말 그대로 쟁점 사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무제한 토론은 본질적으로 "쟁점 안건의 심의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건이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심의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 개정 이유이다.문제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가 무제한 토론 제도를 정쟁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데 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테러방지법'에 대한 무제한 반대 토론을 실시한 바 있다.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총 38명 의원이 192시간 27분 동안 발언을 이어나갔다.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이라지만 그런 기록은 의미가 없다. 여야의 '토론'이 아닌 야당의 일방적 연설로 그쳤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의 의견이 함께 표출될 때만이 국민이 진실을 알 수 있다. 무제한 토론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한 반쪽짜리로 그친 것이다.현재 문제는 선거법과 공수처법이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당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까지 법안 상정을 마치겠다고 한다. 한국당이 무제한 토론을 신청하더라도 정기국회 후 바로 임시회를 소집, 법안을 처리하려는 것이다.문 의장과 여야 모두에게 호소하고 싶다. 제대로 된 무제한 토론을 한번 해 보라고.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좌파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 주장한다. 민주당과 일부 야당은 국회와 검찰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라고 한다. 최종적으로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법안 내용도 아직 확실치 않거니와 솔직히 국민들은 진영을 갈라 싸우는 각 당의 주장에 동조할 뿐 그 내용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화와 타협을 위해' 국회의원들 스스로 도입한 제도가 무제한 토론이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치열한 토론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엄청난 성능의 최신 스마트폰을 가지고도 전화기 정도로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의외로 많다. 사용설명서를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사용법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가 그런 사람들을 그대로 닮았다. 무제한 토론이라는 스마트폰급 제도가 있음에도 여전히 돌멩이 싸움 수준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 지금이라도 무제한 토론 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읽어보기 바란다.

2019-12-08 15:48:55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국민의 자존심도 국익이다

"지소미아(GSOMIA)? 그게 뭐지?", 대개의 반응은 이랬다. 그러다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라 하면 "아! 그거"라고 하다가도 이내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일본과 무슨 군사 협정이냐는 거였다. 그것도 그렇게나 급하게', 사실이 그랬다. 지난 정부가 국민정서상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협정을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치워버렸다. 일본이 우리에게 요청하고 실무자회의 달랑 두 번하고 협정까지 체결하는데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그게 지소미아였다.반대 여론도 물론 있었고 여기저기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오래 세간의 관심을 끌진 못했다. 2016년 11월 23일,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뒤 집권당이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당론으로 결정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튼 그때의 지소미아는 지금과 좀 달랐다. 국가안보를 위해 세계 각국과 맺은 30여 개의 지소미아 중 '추가된 하나'였다. 다만 상대가 일본이라는 게 문제였다. 광복 이후 처음 맺는 일본과의 군사 협정, 그걸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무조건 고울 순 없었다.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말이다. 지난여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의 맞대응 카드로 지소미아를 거론하자 '해선 안 될 협정이었으니 이참에 아예 끝내자'고도 하고 '함부로 그래선 안 된다'고도 했지만 대략 그 정도였다. 지소미아는 우리 안보의 근간이자 핵심이니 없으면 큰일 난다고까지 하지 않았다. 그저 일본에 대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 다행이라 여겼고 여론이 그랬듯 언론과 정치권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지소미아는 일본이 아쉬워서 우리에게 먼저 맺자고 한 협정, 그러니까 우리에게 유리한 카드였다. 따라서 '일본이 안보상 우리를 믿지 못해 백색국가에서 배제하고 수출규제를 하겠다는데 우린들 왜 그런 국가를 상대로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하느냐?'는 정부의 주장은 하나 잘못된 게 없어 보였다. 그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그런데 돌연 상황이 급변했다. 이 지소미아가 우리에게 유리한 카드가 아니라 놓치면 죽는 카드가 되었다. 그런 만큼 지소미아 종료를 예고한 정부 또한 단박에 성토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리 급해도 건드릴 게 따로 있지 어떻게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가지고 도박을 하느냐?"는 질책이 쏟아진다. 지소미아 종료는 미국의 뜻에 반하는 행동이고 그렇게 되면 한미 동맹이 깨질 것이고 결국 우리의 안보는 파국을 맞게 될 거란 이유에서다. 지소미아의 역할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필요한 하나의 연결고리에서 전체 전략을 지탱하는 중심축, 또는 기둥으로 급진전했다. 어떨 땐 반세기 훨씬 넘게 이어온 한미상호방위조약보다 더 중요해 보이기까지 한다. 결국 지소미아 카드를 꺼내든 정부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게 되었다.그런데 지소미아가 그렇다 치면 그럼 우리가 일본에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선 별 말들이 없다. 그래서 불현듯 궁금해진다. '미국이 한일 간의 지소미아 종료를 싫어하는 건 맞지만 그것 하나로 한미 동맹이 끝장나고 진짜 나라가 망하기까지 할는지?' '그럼 지소미아가 없었던 그 긴 세월을 우린 어떻게 살아낸 건지?' 자꾸 따져보게 된다. 일본이 강제 동원 노동자를 여전히 '조선반도 노동자'라 부르며 시종일관 거짓말을 일삼아도 우린 그저 가만히 참고만 있어야 하는지도 묻고 싶어진다.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발표한 청와대도 참 이해하기 힘들다. 국민에게 말 한마디 없다가 일본 정부가 '한국이 완전히 항복한 것'이라고 하자 "쟤네들이 또 거짓말했어요"라고 이른다. 불매 운동하느라 고생한 국민에게, 그렇게 하면 나라가 곧 망할 것같이 이야기한 사람들로부터 사과조차 받지 못한 국민에게, 늘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며 훈계를 받던 그 감정적이기만 한 국민에게 다시 기댄다. 국민의 자존심을 다치게 해놓고 국익을 위해 그랬으니 또 참으라고 한다.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면 국민의 자존심도 국익이다. '그 덕분에 대일 협상이 잘 되었다'며 야당 대표를 찾아 인사를 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기대에 못 미쳐 미안하다'고 해야 하고 국민에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해야 한다. 매번 급할 때만 국민을 찾아 뒤치다꺼리해 달라고 하면 안 된다. 그건 염치없는 짓이다.

2019-12-01 15:33:43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지소미아 사태, 복기와 반성이 필요하다

국민과 국가의 안위 걸린 지소미아조건부 종료 유예 결정 다행이지만처음부터 양국 정부 대화 나섰다면엄청난 사회적 비용 들지 않았을 것일단 다행이다. 22일 자정 종료를 몇 시간 앞두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연장이 결정되었다. 조건부 종료 유예지만 사실상 연장이다. 시중에는 지소미아 종료 시 후폭풍에 대한 별의별 시나리오가 돌아다니던 참이다. 그걸 감안할 때 다행스럽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미국의 금융 제재 등 현실화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상당수 국민들이 불안감 속에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정치의 요체 중 하나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번 지소미아 소동은 명백한 정치 실패의 사례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미국의 전방위적 압력, 경제적 파장 등을 생각했을 때 사실 지소미아 종료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표면적인 강경 자세와 달리 정부 관계자들도 오래 물밑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대처했다면 전혀 필요 없었던 비용이다.새삼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정부·여당을 비난하거나 특정인의 책임을 추궁하자는 게 아니다.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어떤 단추들을 잘못 끼웠는지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바둑처럼 복기를 해보자는 제안이다. "괴롭지만 복기를 해야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넘어갈 수 있다." 현재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인 조훈현 국수가 한 말이다. 바둑 팬은 다 아는 얘기지만 그만큼 바둑에서는 복기가 중요하다. 이번 지소미아 사태도 우리 역사상 주요 사건으로 기록될 게 분명하다. 국민과 국가의 안위가 걸린 걸 생각하면 바둑과 비교할 수도 없는 엄중한 문제이다.시작은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한 게 아니어서 일본 기업이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의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당시 이미 "일본 정부와 언론은 강한 반발을 예고하는 등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일본의 반발에 대한 철저한 대책 마련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일본 정부는 2019년 1월 9일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해 왔다. 우리 정부가 답이 없자 일본은 5월 20일 제3국 위원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다시 요청해 왔다.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였다.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일반 외교 채널을 통한 협의를 지속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대항 조치 발동을 검토'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었지만 일본 정부의 요구에 우리 정부는 무대응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이어진 사태 전개는 다 아는 대로다.사실상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다. 이런 분석에는 "일본 편을 든다"는 비난이 따른다. 결과는 어떤가. 지소미아 종료 유예는 한일 양국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협상 노력을 기울인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한일 '정부 간 협의'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결과이다. '1+1+알파' 등 판결에 대한 그 나름의 해결책도 논의되고 있다. 처음부터 양국 정부 간 대화에 나섰다면 기업들의 어려움은 물론 첨예한 국론 분열, 국민 편 가르기 등 엄청난 사회적 갈등은 겪지 않았어도 되는 일이었다. 사태가 마무리된 것도 아니다. 680여 개 시민사회단체 연대체는 "새로운 한일 관계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면서 "지소미아 연장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는 회견을 가졌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해법 마련도 쉽지 않다.한일 양국이 일단 사태를 봉합한 데는 미국이 두 나라 모두를 강하게 압박한 것이 주효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때 일본에 대한 미국의 중재를 요청하는 것은 '글로벌 호구'가 되는 일이라고 했다. 지소미아 종료 시한이 다가오자 우리 정부는 공개적으로 일본에 대한 미국의 중재를 요청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 등과 관련, 완전한 '갱신'(renewal)을 거론하는 미국 앞에서 글로벌 호구가 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다시 한 번 조 국수의 말을 인용한다. "괴롭지만 복기를 해야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넘어갈 수 있다." 지소미아 소동에 대한 복기는 그만큼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2019-11-24 16:03:51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신청사 유치경쟁이 달라졌다

주장만 앞세운 전투적 구호 대신간결하고 공손한 현수막에 미소지자체 장점과 매력 앞세운 경쟁시민의 관심과 참여 긍정적 효과대구시 신청사 유치 경쟁이 달라졌다. 신문이나 TV광고를 보면 한번씩 빙긋이 웃음이 난다. 거리의 현수막을 볼 때도 그렇다. 그동안 대구시의 이런저런 광고를 볼 때마다 고구마 100개쯤 먹은 듯했던 답답함이 한번에 사라지는 기분이다.이렇게 청량할 수가 없다. 달서구, 달성군, 북구, 중구(가나다순) 모두 그렇다. '우리 지역에 신청사를 지으면 뭐가 좋은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난잡한 레이아웃도 없고 '캘리그래피'의 남용도 없으며 뜬금없는 사투리, 유치한 말장난도 없다. 그리고 빽빽하게 제 할 말만 때려 넣어 코앞으로 들이미는 위압도 없다. 간결하고 산뜻하며 공손하다. 눈길을 끌고 마음을 붙잡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그런데 이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봄만 해도 구호로만 채워진 전투적인 현수막들이 즐비했다.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회'가 홍보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거꾸로 '공론화위원회'가 '공론'을 막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고, 심지어 이미 정해 놓고 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 저러다 말겠지' 하는 시선들이 많았다.2004년 이래 두 번의 시도와 크고 작은 논의들이 모두 흐지부지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장소와 비용이 걸림돌인 터라 필요성 같은 걸 강조해봤자 달라질 게 없었다. '있던 자리에 다시 지어야 한다'와 '옮겨서 새로 지어야 한다'로 공방만 계속 오갔다.단체장이라면 누구라도 부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의 시청이 좁고 대구시의 격에도 안 맞는 건 알지만 잘못 나섰다간 돈 많이 쓴다고 괜한 욕만 먹을 수 있는 데다 자칫하면 청사 건립을 둘러싼 분란의 책임마저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권영진 시장이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그로부터 채 1년이 안 된 지금, 놀랍게도 신청사 건립 예정지 선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장장 15년을 끌어온 일인데 말이다. 4월에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으니 7개월 남짓 만에 여기까지 온 셈이다.출발부터 이번엔 좀 달랐다. '공론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김태일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장은 '오직 시민의 뜻대로'를 대원칙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새로운 시청이 어디에 어떻게 지어질 것인가는 모두 시민의 뜻과 판단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예상과 달리 북구와 중구에 더해 달서구와 달성군이 경쟁에 참여했다. 대구의 미래를 짓는 일, 신청사 건립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그만큼 더 커졌다.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에서 시민을 향해 호소하고 설득하는 것으로 신청사 유치 활동의 흐름도 바뀌었다.당연히 광고도 달라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제대로 된 광고들이 등장했다. 사실, 대구의 홍보는 진작부터 이래야 했다. 시민에게 가 닿으려는 절실한 마음, 그게 보였어야 했다. 광고의 본질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진심이고 광고의 힘도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론화위원회의 '광고 횟수 제한'이 그런 절실함을 더욱 증폭시켰다.제대로 된 광고들은 신청사 유치 경쟁에 참여한 지역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주었다. 그래서 달서구가 대구의 요충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달성군이 대구의 절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북구가 지닌 잠재력과 장점도 알게 되었으며, 중구가 대구의 중심이라는 것도 새로운 느낌으로 알게 되었다.이렇듯 스스로의 장점과 매력을 앞세운 경쟁은 각각의 '다름'이 브랜드로 이어지고 그것이 강화되고 확산되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이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각 지역의 차별화된 유치활동, 대구시와 공론화위원회의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이기도 하다.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대구시의 CI(Corporate Identity)와 BI(Brand Identity)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 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건 새로운 청사 건립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도가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구다운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혀 서성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만간 겪게 될 경쟁의 후유증에 대한 대비책도 있어야 한다. 선정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함께 손잡고 나아갈 수 있도록 대구시가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시민이 다함께 이기는 신청사 유치 경쟁이 되도록 해야 한다.

2019-11-17 15:35:24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오징어잡이 배 선원 추방, 뭔가 이상하다

왜 그렇게 서둘러야 했을까. 좀 더 시간을 갖고 그들의 범죄 혐의와 귀순의사 등을 철저히 확인하는 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지난 2일 해군이 나포한 북한 선원들을 7일 돌려보낸 우리 정부의 처사에 대한 이야기다. 사후에도 여러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정부의 대응이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3명의 선원이 16명을 선상에서 살해한 게 사실일까. 공개된 사진의 낡고 좁은 오징어잡이 배 위에서 한 사람씩 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실이라 해도 범죄 정보는 어떤 경로로 얻은 것인가. 선원들이 자발적으로 범죄행위를 진술했을까. 북한 측이 먼저 정보를 제공하고 송환을 요구한 것인가. 배는 또 왜 그토록 신속히 반환했나. 청와대 관계자의 휴대전화 문자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면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건가. 의문점은 많지만 일단 정부의 발표를 믿기로 하자.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번 사안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에는 의구심에 앞선 본질적 문제점들이 허다하다."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헌법 제3조의 이른바 '영토조항'이다. "북한 지역은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에 속하므로 북한 국적의 주민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유지함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는 따라서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한마디로 북한 주민도 헌법상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지금까지 모든 판례와 정부 정책이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통일부 대변인은 "이들이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로 보호 대상이 아니며, 우리 사회 편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흉악 범죄자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정부 부처 협의 결과에 따라 추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마치 중국 정부가 탈북민 추방을 결정할 때의 발표문을 보는 듯하다. 특히 헌법상 우리 국민으로 간주해야 하는 북한 주민을 '국제법상 난민' 운운하는 부분이 그렇다.'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로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해석 또한 동의하기 어렵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살인 등 범죄자의 경우 보호 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 동 법은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려는 북한 주민이 "신속히 적응·정착하는 데 필요한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흉악범의 경우 우리 정부가 필요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규정일 뿐이다.일단 우리 관할구역에 들어 온 북한 주민을 추방(혹은 송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아니다. '추방' 역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용어이다. 북한 주민을 그의 의사에 반해 북한으로 강제 추방할 수는 없다. 추방이 아닌 송환이라 표현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지만 헌법상 우리 국민이기 때문이다.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선원들의 "귀순 의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선원들이 귀순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는 말이다. 공개된 문자에 따르면 선원 송환 시 '자해 우려' 때문에 적십자사 요원이 아닌 경찰관이 동행했다고 한다. 그들이 북송에 극렬히 저항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범죄자, 더구나 귀순 시도자에 대한 북한의 처우가 어떤지는 다 아는 바이다. 우리 정부가 '고문당할 위험이 있는 나라로 개인을 추방, 송환, 인도해서는 안 된다'는 유엔 고문방지협약을 위반했다는 국제적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이번 사안은 귀순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을 강제 송환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이다. 기밀 운운하며 유야무야 넘길 사안이 아니다. 북한 주장에 따라 살인자라는 선입견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중요 탈북자들에 대해 항상 '범죄자'로 규정하곤 한다. 북한 측이 중대 범죄자로 지목하면 송환하는 선례가 될 위험도 있다. 우리의 주권과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국민적 동의를 얻어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통일, 민족 등도 예외가 아니다. 자유와 인권의 보장, 법치주의라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버리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19-11-10 17:34:01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 펭수, 어른들의 뽀로로

우주대스타 꿈꾸는 자이언트 펭귄 캐릭터 인기에 제작사 EBS도 놀라많은 돈'기술 없이도 탄생한 펭수 그런 콘텐츠 만드는 건 우리의 몫요즘 '펭수'가 대세다. 검색창에 '펭'을 치면 펭귄보다, 페이스북보다 '펭수'가 먼저 뜬다. 한마디로 '핫'하다는 이야기다. 제작사인 EBS조차 이만큼 잘 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부랴부랴 연말까지 '굿즈'를 내놓겠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니 잠시 펭수에 대해 알아보자.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 펭수는 '자이언트 펭 TV'의 주인공 캐릭터, 우주 대스타를 꿈꾸는 펭귄이다. 올해 10살, 키 2m10㎝, 그래서 자이언트 펭귄이다. 남극에서 한국까지 헤엄쳐 왔다고 한다. 방송국 소품실 한 구석에서 먹고 자며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하는 EBS 연습생, 준비된 글로벌 스타이기도 하다. 당연히 모국어는 펭귄 말이다. 랩도 하고 비트박스도 조금 하며 심지어 프레디 머큐리처럼 록도 한다. 오는 길엔 스위스에 들러 요들송도 마스터했단다.지난 4월 초, 첫 이야기가 전파를 탔고 9월에 방영된 이육대(EBS아이돌육상대회) 편이 온라인상에서 히트를 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인기가 올라가자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됐다. 펭수가 펭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즉 카메라가 켜져 있을 때만 펭귄인 척하는 게 아니냐는 거였다. 일부 네티즌들은 '뽀로로'가 펭귄을 꼭 닮은 것에 비해 펭수는 너무 인간을 닮았다며 꼬집었다. 의혹이 점점 커지자 EBS 측은 자이언트 펭 TV, '펭수가 알고 싶다' 편을 긴급 편성했다.방송을 보면 EBS 취재진이 하루 종일 펭수를 따라다닌다. 그러다 급기야 "당신은 펭귄이 맞습니까?"라며 차마 못할 질문을 날린다. 하지만 펭수는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면 기자님은 사람이 맞습니까?"라고 되받는다. 고향 남극에서 부모 펭귄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줘도 취재진이 영 못 믿겠단 눈치를 보이자 결국 동물병원을 찾아 엑스레이 사진까지 찍는다. 그리고 99.99% 펭귄이라는 수의사의 판정이 있고서야 사태가 일단락된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았지만,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엉성했지만 이 검증과정을 지켜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어떤 이는 잠시나마 펭수의 정체를 의심했던 나를 용서하라며 EBS 만세를 외쳤고, 또 어떤 네티즌은 탈을 썼든 그 안에 누가 있든 펭수는 펭수일 뿐이라는 말로 격정을 토했다. 그러자 다른 네티즌들이 '펭수는 펭수다'에 울컥했다며 지지와 공감을 표했고, 이로써 펭수의 정체성 논란은 끝이 났다. 펭수는 자신이 펭귄임을 믿어 달라 했고 팬들은 그러기로 했다.이젠 누구라도 펭수를 보고 탈 속에 있는 사람이 궁금하다거나 고생이 참 많겠다고 하면 그야말로 물색없는 사람으로 몰리기 딱 좋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세칭 전문가들은 제각각 견해를 쏟아내고 있다. B급 캐릭터의 새로운 전성시대가 왔다고도 하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도발적 캐릭터가 대중에게 어필했다고도 한다. 넌버벌(non-verbal)이 아니라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하지만 우리가, 특히 서울 아닌 지역의 사람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돌아보면 '마시마로' '뿌까', 강남스타일, K팝이 그랬듯 새로운 기술은 늘 새로운 기회를 가져왔다. 펭수도 마찬가지다. 우주 대스타로 목표를 상향 조정하기 전까진 꿈이 최고의 크리에이터였던 것처럼 정규 방송에 앞서 유튜브 채널 '펭 TV'를 먼저 오픈했다. 즉 새로운 기회, 새로운 플랫폼을 작정하고 겨냥했던 것이다.하나 더, 펭수는 돈이 아주 많이 드는 것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무엇보다 서울이라야만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다, 다만 '온라인 탑골공원'으로 통칭되는 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꿰뚫고 있을 뿐이다. 사실, 산업으로서의 캐릭터는 늙지 않고 죽지 않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펭수를 100% 캐릭터로 보기엔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을 표방하는 터라 예기치 못한 실수나 돌발 상황에 쉽게 노출될 수 있고 생각보다 빨리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펭수는 지금 잘나간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어른들의 뽀로로'가 되었다.문화산업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고 말한 지도 십수 년이 지났다. 펭수에서 보듯 기회는 늘 있다. 그걸 잡는 건 우리의 몫이다.

2019-11-03 16:02:51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한국 정치 타락과 한국당의 책임

'직업으로서의 정치'(막스 베버)는 잘 알려진 책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정치 관련 서적이지 싶다. 책을 통해 베버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을 설명하고 있다. 무려 100년 전인 1919년, 독일을 배경으로 한 책이 아직도 우리에게 통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정치인들은 권력도 없고 책임도 없으며 동종 직업집단인 '길드'와 같이 단지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고 파벌 본능에 빠져 있다." 베버가 진단한 독일의 무기력한 정치 상황이 우리와 흡사한 때문일 것이다.베버는 그런 상황을 타개할 정치 지도자의 덕목으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적 판단을 제시했다. 대의명분에 헌신하는 열정,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책임의식,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판단하는 덕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이 대의에 헌신하지 않고 책임의식과 균형감각을 상실했을 때 정치 타락이 발생한다"고 말했다.이른바 '조국 사태'를 통해 국민들이 목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의 타락'이다. 국민과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의에 봉사하는 정치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모두 동종집단인 정파적 이해관계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권력자가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책임의식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어제까지 칭찬해 마지않던 검찰을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정치인들의 권력 남용이 도를 넘었다. 베버가 "정치 지도자가 책임의식이라는 자질로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지 않으면 지극히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 대로다. 균형감각의 상실은 또 어떤가. 정치인들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들도 궤변과 요설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우리 모두 진영 논리 속에 이성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 정도다.조국 장관 사퇴 후 조금씩이나마 회복의 기운이 돌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표창원 두 초선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정치 전반에 대한 실망도 있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며 느꼈던 좌절감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두 의원 모두 가장 공방이 치열한 법사위에서 조국 옹호에 앞장서야 했던 정신적 분열상을 토로하고 있다. 역시 초선인 조응천 의원도 "조국 사태로 지옥을 맛봤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 의원은 소위 '계엄령 문건'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지도부를 향해 "낡은 정치이고 사라져야할 정치 문법"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20명이 넘는 여당 의원들이 불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는 말도 있다.그와 비교되는 한국당의 반응은 지켜보는 지지자들마저 당혹스럽게 한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조국 TF' 의원들이 모여 표창장을 주고받은 것부터 어이없다. 혹시 조국 패밀리의 표창장 의혹에 대한 패러디인가 싶기도 했지만 진짜(?) 표창장 수여식이었다. 50만원 상품권까지 곁들여 박수 치며 웃고 환호하는 장면은 총선 승리 축하 자리를 방불케 했다. 그동안 고생한 의원들과 격려하는 자리를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공개된 자리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국민 여러분께서 직접 거리로 나와 표출해 주신 뜻을 엄중하게 받들겠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기득권과 불공정을 시정해 나가는 데 지금부터 한국당이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 조국 사태 속에서 보수 야당이 발견했어야 할 대의는 그런 것이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기득권과 불공정을 타파하고 상식을 회복해 달라는 외침 말이다. 상장과 상품권을 돌리고 공천 김칫국을 마시는 모습에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인을 찾기는 어렵다. 하긴 자신들이 모시던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는 수모를 당해도 의원직 사퇴 등 확실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사람들이다. 친박 혹은 친이 정치인들 모두 마찬가지다.광화문의 시민들은 상식을 망각한 정치에 분노한 것이지 한국당을 지지해서 나온 게 아니다. 그 사실을 잊고 잠시 반짝한 지지율에 취한다면 내년 총선 결과는 보나마나다. 한국당은 여당보다 더 처절한 쇄신 경쟁에 나설 때만이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살릴 수 있다. 출발은 책임지는 정치인들이 줄을 잇는 것이어야 한다. 역시 베버가 강조한 대로다.

2019-10-27 16:12:52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시월단상

예전엔 상대의 행위를 욕했지만지금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대의민주주의 보완 기능 있다며대통령 권한을 광장에 던져버려우린 그렇게 컸다. '어떤 사람이 될까?'는 상상했어도 '어떤 나라를 만들까?'는 꿈꿔 보지 않았다. 그런 건 대통령의 일이었고 국민이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제1차부터 2차, 3차까지 연이어 성공시킨 나라, 10월 유신으로 장밋빛 미래를 약속받은 나라, 어디에도 우리처럼 승승장구하는 나라는 없었다. 우린 위대한 나라에 살고 있었고 그건 오로지 뛰어난 대통령의 특출한 영도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만에 하나, 그것이 우리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이거나 이웃집 누나가 공장에서 쏟은 땀과 눈물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꿈에도 하지 않았다. 아무쪼록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게 국민이 할 일이었다.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주어진 삶의 지표는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가 부르면 언제든 나아가 싸우고, 싸우면 이기는 어른이 되어야 했다. 학교에선 그런 각오를 담아 시시로 노래도 불렀다. "우리들은 대한 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중략)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대통령의 말과 나라의 정책은 언제나 옳기에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이기자 대한 건아'를 목청껏 부르게 한 힘도, 길고 어려웠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만든 열의도 그런 믿음에서 나왔다.그러던 어느 날, 지금 같은 가을 이달에 그토록 믿고 따랐던 대통령이 갑자기 떠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둑길 위에서 아이들은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이대로만 가면 곧 우린 최고(선진국)가 되는데, 애타는 마음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백억불 아니라 천억불 수출을 달성한다 해도, 암만 고속도로를 닦고 국산 자동차를 만들어낸다 해도 그런 것만으론 선진국 되기가 어렵다는 건 알 길이 없었다.민주주의가 없으면 다양성이 없고 다양성이 없으면 문화가 쇠락한다는 것, 그러므로 선진국이 되려면 민주주의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것, 그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일찍이 김구 선생이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준다"고 역설했음에도 말이다.내 삶의 방식을 결정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것,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주인은 그 나라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권리는 어디서 나오고 또 행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둑길 위의 아이들 누구도 배워보지 못했다.차차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의 꿈도 조금씩 변해 갔다. '나라를 위해 무엇이 될 것인가'에서 '나라에서 무엇이 될 것인가'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름과 공존의 가치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어른, 더 나은 내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은 꿈 꿔본 적 없는 어른들이 자꾸자꾸 생겨났다.저 '높은 자리'에 오르기까지 세상은커녕 타인의 삶에는 아무 관심조차 없던 자들이 그 자리를 발판 삼아 국민을 위한다며 금배지를 달았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건지 고민해본 적이 없으니 국민에게 내놓을 철학도 비전도 딱히 없다. 잘하는 거라곤 싸움질하거나 싸움을 부추기는 것뿐이다. 그 옛날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로 기초를 닦아서 그런지 대체로 그건 잘한다.한동안 3김 시대가 끝나야 우리 정치가, 역사가,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거라고들 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YS도 가고 대통령 각하를 대통령님으로 바꾼 DJ도 가고 기자들에게 '몽니'란 단어를 선사한 JP도 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대통령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며 자신이 위임받은 권한을 증오와 혐오로 가득한 광장에 던져버렸다. 권력의 언저리엔 얄팍한 자들이 자기들 먹을 것만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시절 윗사람의 눈치만 살피던 이들은 이제 서로 자기가 대장이 되겠다며 저열하게 다툰다.예전엔 그래도 상대의 행위를 비난하고 욕했지 지금처럼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저주하고 증오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래도 서로가 그리는 나라, 꿈꾸던 세상이 달라서 싸웠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나라는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끄떡없는 철옹성이 아니다. 대통령은 책임져야 하고 주권자인 국민은 더 늦기 전에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2019-10-20 15:48:07

제21대 국회의원선거
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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