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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생산적인 한글날을 위하여

한글날만 되면 언론사에서는 으레('으례'가 아니다.) 외래어 사용, 청소년들의 비속어, 은어 사용, 누리꾼들의 한글 파괴에 관한 기사 한 꼭지씩을 꼭 쓴다. 기사의 공통점을 보면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10~30대 젊은 사람들의 언어 습관이다. 그들은 아주 나쁜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두었다가는 우리말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그들은 교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 기사를 인터넷 기사로 접한 누리꾼들은 대부분 '꼰대 소리'로 생각하고 무시해 버리지만, 종이 신문으로 접한 50, 60대들은 크게 공감하면서 세상을 개탄한다. 모두 알고 있듯이 한글날은 현재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 중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원리로 만들어진 우리 한글을 기념하는 날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하고, 스마트폰 하나로도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모두 한글의 덕이다. 그러므로 한글날은 모든 국민들이 다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축제의 날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언론에서는 한글날만 되면 연례행사로 젊은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기사를 내다보니 한글날은 매우 불편한 날이 되어 버렸다. 한글날에 나오는 기사 중 상당수는 말한다고 해서 바뀔 리가 없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이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은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문제 삼는 기사를 한글날에 낸다고 해서 은어가 없어질 리는 만무하다. 청소년들의 은어 사용을 개탄하는 기사를 쓴 기자들도 뒤돌아서면 "팩트 있어? 야마(핵심)가 뭐야?" 하고 자기들끼리의 은어를 사용한다. 은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은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독재자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강제적인 수단으로 말을 바꾸는데,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좋은 세상이 아니라 통제와 억압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한글날에 좀 더 의미 있고 생산적인 논의를 하려면 언론에서는 지금과 같은 기사들 대신 한글날을 어떻게 축제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휴대전화 타자 왕 선발대회가 사실은 한글날의 취지에 가장 맞는 행사이다.) 그리고 굳이 우리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1988년 개정 이후 30년이 된 현재의 어문 규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한 공론화를 제기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다. 현재의 어문 규정에는 30년이나 지나도 정착이 안 되는 '삐악삐악'('삐약삐약'이 아니다.), '늴리리' 같은 잘못 선정한 표준어들이 있다. 그리고 사이시옷 규정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 많고, '밤길'이 [밤낄]로 변하는 사잇소리 현상을 음의 첨가에 넣어서 학교 문법 교육에 혼란을 일으키는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모으는 계기로 한글날을 이용한다면, 한글날은 축제의 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17-10-09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경황(景況) 혹은 경황(驚惶)

대학시절 내가 PC 통신을 처음 시작하면서 가입했었던 동호회가 그룹 동물원의 팬클럽이었다. 그때 당시 동물원 팬클럽은 요즘 아이돌 팬클럽들과는 달리 소규모이고, 동물원의 노래 가사들처럼 친근하고 편안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오프라인에서도 자주 만났었다. 모임에는 의사, 회사원으로 바쁜 생활을 하던 동물원 멤버들도 가끔씩 참석을 했었다. 동물원 멤버들이나 일찍부터 팬클럽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동물원 원년 멤버였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하던 이야기는 아름다운 추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요즘 같으면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과 같은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지난주에는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가 증폭되면서 김광석의 부인인 서해순 씨가 마침내 언론에 전면적으로 등장하였다. 언론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면서 과도한 손짓을 하는 것이나 '저기, 이렇게, 저렇게' 등의 지시할 말이 없는 지시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만, 인터뷰를 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다른 말은 없고 '경황'이라는 말만 남았다는 것이다. 아이의 사망 신고를 왜 하지 않았느냐, 왜 아이의 죽음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느냐, 왜 현장에는 두 종류의 담배가 있었느냐, 왜 김광석이 자살했다고 진술했는가 등등 핵심적인 질문에는 모두 '경황이 없어서 그랬다'는 말로 일관을 했다. 우리말에서 '경황'이라는 말은 두 가지가 있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쓰이지만 의미는 약간 다르다. 하나는 '경황이 있다/ 없다'의 형태로 많이 쓰이며 한자로는 景況으로 쓰는 것이다. 이때의 '경황'은 '정신적'시간적인 여유'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황이 없다'는 것은 다른 중요하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쓸 정신적'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여유가 없을 때는 '겨를이 없다'는 식의 표현을 주로 쓴다.) 어쨌든 '경황이 없다'고 할 때는 아이의 사망 신고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어서 정신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망 신고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 된다. 또 다른 말은 '경황 중'의 형태로 많이 쓰이며 한자로는 驚惶이라고 쓰는 것이다. 이때의 의미는 사전적으로 보면 '놀라고 두려워 허둥지둥함'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당황스러운 일을 당하여 정신이 나간 상태를 이야기하므로 요즘 신조어 중 '멘탈붕괴(멘붕)'와 가장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 서해순 씨가 놀랍고 당황스러운 일을 당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멍한 상태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경황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황 중이어서'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서해순 씨가 쓴 '경황'이 어떤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대구 능인고 교사

2017-10-02 00:05:05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하늘이 맑다

올해 EBS 수능 완성 교재에서 학생들의 질의 및 이의제기가 가장 많은 것은 '읽고, 넓다'의 발음에 적용된 규칙이다. '읽고'가 일꼬로 발음될 때는 '읽꼬'로 경음화가 먼저 일어난 후, 겹받침에서 ㄱ이 탈락하면서 일꼬가 된다. 이 설명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것은 주로 음운 현상이 일어난 순서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과 다른 문제집이나 참고서들에서는 '읽고→일고→일꼬'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EBS 교재가 오류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의제기는 '일고→일꼬'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 우리말에서 '(아들을) 삼고'나 '(아이를) 안고'처럼 비음(ㄴ,ㅁ,ㅇ) 뒤에 어미가 올 때는 삼꼬, 안꼬처럼 경음화가 일어나지만 '(바람이) 일고', '(대구에) 살고'처럼 유음(ㄹ) 뒤에 어미가 올 때는 경음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고→일꼬'의 음운 현상은 일어날 수 없다. 대신 '잡고, 먹고'와 같이 파열음(ㄱ,ㄷ,ㅂ) 뒤에서는 잡꼬, 먹꼬로 경음화가 일어난다. 음운 현상의 순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음운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과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읽고'에서 경음화가 일어나는 원인은 받침 'ㄺ'에 있는 파열음 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ㄱ은 경음화 현상에 영향을 준 후 탈락해 버린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설명이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우리말에서 더 어려운 것은 겹받침의 표준 발음이다. 요즘처럼 '하늘이 맑다'고 할 때 사람들은 말따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지만 '맑다'의 표준 발음은 막따이다. 표준 발음 규정에 의하면 용언에 사용된 겹받침 ㄺ은 'ㄱ, ㄷ, ㅈ' 앞에서는 ㄹ이 탈락하고, '맑게(말께)'처럼 ㄱ 앞에서는 ㄱ이 탈락한다. 이런 것까지 외워야 바른말 고운말을 쓰는 사람인가 싶지만 실제로 외울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나 아나운서 지망생들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은 몰라도 그냥 가장 자연스러운 대로 발음하고, '하늘이 말따'고 해도 다 알아듣는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들이 겹받침 발음을 제대로 한다고 '맑다', '밟다'를 막따, 밥ː따로 발음하는 것을 보면 말따, 발ː따로 발음하는 것보다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받침에 비음이나 유음이 들어갈 때는 소리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파열음이 들어가면 발음도 어렵고 약간 답답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그렇게 어렵게 막따로 발음하면 '(길을) 막다'와 발음이 같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맑다'를 말따로 발음하는 것은 ㄱ이 경음화에 영향을 준 후 탈락한 것이기 때문에 '맑다'나 '막다'와 구별해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굳이 '하늘이 막따'로 발음해야 한다고 고집할 이유는 약해 보인다.

2017-09-25 00:05:04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민폐(民弊)

'과반수 이상', '역전앞', '토요일날'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말은 학교 문법에서 가르치는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의 한 유형에 속한다. 어법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잉여적 표현이 있는 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오히려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일단 한자의 의미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중복되는 부분을 줄였을 경우 동음이의어가 늘어나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해(被害)를 입다'는 말에서 피(被)에는 '입다, 당하다'의 뜻이 있기 때문에 잉여적 표현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바로잡는다고 '해를 입다'라고 한다면 10개가 넘는 동음이의어 '해' 중에서 문맥에 맞는 것을 찾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피해를 입다'고 하면 간단하게 해결되기 때문에 잉여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추가로 말을 더 넣어 의미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에는 '피해를 입다'와 같이 같은 의미의 말을 결합하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널리 사용되고 있는 '민폐'(民弊)라는 말은 그런 말들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민폐라고 하면 보통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서 남들을 힘들고 번거롭게 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맨날 일 저지르면서 수습은 하지 못하거나 남들이 일을 해 보려고 하면 방해만 하는 인물들을 '민폐 캐릭터'라고도 한다. 이때 사용하는 '민폐'는 '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을 뜻하는 '폐'(弊)와 의미가 거의 일치한다. 그냥 '폐'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허파를 뜻하는 '폐'(肺)이기 때문에 앞에 말을 하나 더 넣어 의미를 분명하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가 확실해지기 때문에 '민폐 캐릭터'와 같은 말도 사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앞에 붙는 '민'(民)은 '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말의 구조를 본다면 '폐'의 종류나 성격을 나타내는 말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은 보통 민간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폐'가 있다면 '관폐'(官弊)도 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실제 사용된 말을 보면 '민폐'는 관의 행위로 인해 백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뜻하는 말로 널리 사용된 반면, '관폐'는 잘못된 관행이나 관리들의 부정으로 인해 쌓인 폐단을 말하는 것으로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민폐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민간의 의미는 약해져 '폐' 대신 '민폐'를 사용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혹여 민폐가 있는지 살펴보라."나 "병력을 늘리면 민폐가 극심할 것입니다."와 같이 정치인들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지 성찰하기 위해 '민폐'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지금의 정치인들은 그냥 '민폐'가 되고 있는 느낌이다.

2017-09-18 00:05:03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촛불'의 표준발음

학교 수업에서 탐구 학습의 형태로 문법 수업을 하다 보면 1988년 제정된 현재의 어문 규정에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사잇소리에 관한 규정이다. 사잇소리 현상은 합성명사를 만들 때 경음화 현상이 일어나거나 'ㄴ'이 첨가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합성명사를 만들 때 항상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논밭, 손발'과 같이 두 단어가 대등한 관계이거나 '나무젓가락, 전기밥솥'과 같이 앞의 말이 뒤에 오는 말의 재료나 수단일 때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같은 음운 환경임에도 '논배미(논빼미), 손바닥(손빠닥), 나뭇재(나무째), 전깃줄(전기쭐)'에서는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예들이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법칙성을 따지기는 힘들지만 모국어 화자들은 법칙을 몰라도 발음은 제대로 한다. 그런데 현재 어문 규정에는 이 부분에 대한 진술이 좀 애매하다. 한글맞춤법 제30항에는 '사이시옷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받치어 적는다.'라고 하여 합성어에서 경음화나 'ㄴ' 첨가 현상을 이야기한다. 이 표현대로라면 'ㅅ'의 정체는 소리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단순 표기일 뿐이다. 그리고 표준발음법 제30항에는 '사이시옷이 붙은 단어는 다음과 같이 발음한다.'라고 하여 'ㅅ'이 소리를 표기한 것이 아니라 단순 표기일 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받침의 'ㅅ'이 사이시옷인지 아닌지를 모르면 발음도 제대로 못 한다.) '촛불'을 표기 그대로 읽으면 음절의 끝소리 규칙에 의해 '촏불'이 되고, ㄷ 뒤에서 경음화 현상이 일어나 '촏뿔'로 발음하게 된다. '촛농'의 경우 '촏농'이 된 뒤 비음화(예전에는 자음동화, 자음접변이라고 배웠던 것이다.)되면서 '촌농'이 된다. 어렵게 설명할 것 없이 'ㅅ'이 첨가된 것으로 보면 표준발음법 제30항은 굳이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표준발음법에서는 '초뿔'로 발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촏뿔'로 발음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ㅅ'의 정체는 중세 국어의 관형격 조사 'ㅅ'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현재는 '나무의'라고 쓰지만 중세에는 '나못(나모+ㅅ)'으로 썼었다. 사잇소리 현상의 근원을 이 'ㅅ'으로 본다면 대등한 관계일 때는 사잇소리가 나타나지 않는 원인을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받침에 사용하는 'ㅅ'은 현재와 성격이 다르다. 중세의 'ㅅ'은 현재와 달리 뒤의 자음에 이어지면서 된소리를 만들 수 있었다. 한 예로 현대어 '어찌'는 중세에 '엇디>어ᄯᅵ'와 같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니까 '촛불'은 '초ᄲᅮᆯ>초뿔'과 같은 변화를 겪었으므로 [초뿔]로 읽는 것을 원칙으로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발음 하나 하려고 중세 국어까지 알라고 하는 것보다 좀 더 쉽고 현실에 맞게 규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2017-09-11 00:05:01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이거 실화냐?

근래 학생들이나 누리꾼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 중 하나가 '이거 실화냐?'라는 말이다. 주로 누리꾼들 사이에서 믿기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진짜냐?' 대신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었는데, 인터넷 쇼핑몰들에서는 유행어를 반영하여 가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싸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 가격 실화냐?'와 같이 쓰기도 한다. 주로 온라인상에서 사용하던 이 말은 일상생활에서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올해 삼성과의 경기에서 사이클링 안타를 완성한 두산의 선수가 더그아웃에 들어와서 동료들에게 제일 먼저 한 말도 '실화냐?'였다.(중계 화면의 입 모양을 보고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레알?'이라고 말하던 상황에 쓰이고 있다. 혹 나이 많은 사람이 자신은 젊은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열린 아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레알?'이라는 말을 쓴다면 그냥 아재가 될 수 있으니 주의를 해야 한다. '레알?'이라는 말이 그랬듯 '실화냐?'라는 말도 한때의 유행어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유행어들이 생겨날 때마다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실화냐?'에 대해서는 입장이 갈린다. '레알'이라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실화'라는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니까 나을 수 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설명을 했을 때 전에는 아주 싸가지 없이 "레알?"이라고 툭 던지는 학생도 있었는데, 지금은 "샘, 그거 실화예요?"라고 하게 되니까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법상 맞지 않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 말이 유행어의 단계를 지나 오래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예를 들어서 다른 사람이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이야기를 듣고 "실화냐?"라고 하면 어법에 맞는 말이 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예는 어법에 맞지 않는 것이다. 1) "연휴 끝나고 중간고사 친대."/ "헐, 실화냐?" 2) "이 옷 5천원에 샀어."/ "대박! 실화냐?" '실화'라는 말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야기)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과 같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실화인지 묻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는 것이다. 2)의 경우에는 '옷을 샀다'는 과거의 사건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고 '5천원'이라는 기준점의 진위 여부에 대해 놀라는 것이므로 사건을 뜻하는 '실화'라는 말을 쓰는 것은 어법상 맞지 않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예전에는 믿기지 않아서 거짓말처럼 느껴질 때는 '소설 쓴다' '만화 같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소설이나 만화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실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이다 보니 '실화냐?'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실화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17-09-04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보조개 사과

몇 년 전까지 우리 집에서는 수박 농사를 지었다. 30년 넘게 수박 농사짓는 집 아들이었지만 나는 수박 순을 치는 것 같은 고급 기술은 배우지 못하고 거적 열고 덮고, 수박 나르는 일밖에 하지 못했다.(내가 농사일을 잘 못하기도 해서 부모님께서 많이 시키지도 않으셨다.) 가끔씩 수박을 나르다가 꼭지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수박이 아무리 크고 잘 익었어도 꼭지가 떨어지면 하자가 있는 것으로 취급되어 제값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꼭지가 없다고 해서 품질이 떨어지는 게 아닌데, 단지 보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불량품 취급을 받는 것은 농사짓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기도 했다. 지난 6월 영주에서는 우박이 내려 작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우박을 맞은 사과들은 품질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군데군데 흠이 생기고 못생겨서 꼭지 떨어진 수박보다도 값을 받지 못한다. 농가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농협에서 '보조개 사과'라는 이름을 붙여 팔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참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약간의 흠이 있지만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고,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버려질 뻔한 과일들을 팔 수 있으니 참 다행한 일이다. 이것을 보면 말이 가진 힘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김춘수의 시 '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말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어떤 말을 사용하고, 어떻게 말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별난 사람'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사람'은 따지고 보면 같은 사람이다. '통치 철학을 같이하는 사람을 등용'하는 것과 '코드 인사'도 같은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별난 사람', '코드 인사'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어떤 말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우박 맞은 불량 사과'라고 하면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사료나 퇴비로밖에 쓸 수 없는 것 같지만, '보조개 사과'라고 하면 다른 사과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못생긴 모양이 귀여운 느낌까지 든다. 불량 사과라고 할 때는 공짜로 줘도 먹지 않을 것 같은데, 보조개 사과는 반값에 산 것이 큰 이득을 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말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부정성을 극대화하는 말을 너무 쉽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제도 먹었던 달걀을 갑자기 먹으면 바로 죽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살충제 달걀'이라고 하고, 세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내라고 하는 것도 세금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세금 폭탄'이라고 한다. '보조개 사과'처럼 우리 사회의 긍정성을 좀 더 끌어내기 위해서는 말의 선택도 중요하다.

2017-08-28 00:05:04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민족의 죄인

채만식의 소설 '민족의 죄인'은 반민특위 활동이 한창이던 1948년에 친일 행적이 있었던 작가가 자신의 행적에 대한 일종의 반성문처럼 쓴 소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소설이 친일 행각에 대한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혹평을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민족의 죄인'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의 양심이 있고, 진짜 민족의 죄인들은 반성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꽤 솔직하고 용기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실제 작가 채만식인 주인공 '나'는 일제강점기 때 '나'를 따르던 문학청년들이 사상 문제로 붙잡혀 가면서 아무 죄도 없이 일본 형사에게 구타를 당하고, 구치소에 수감되어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러다 조선문인협회에서 보낸 황국위문대 활동을 하러 오라는 엽서를 통해 수감 생활을 빠져나오게 된다. 구치소를 나온 '나'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위해 물산을 독려하는 강연을 하러 다닌다. 수감 생활이 싫어서,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강연을 하고 다니는, 수렁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고는 시골로 들어가 살기로 결심을 한다. 시골로 들어간 것은 자신에게 죄를 강요하는 일제로부터의 도피였을 뿐, '나'는 이미 지은 죄가 사라질 수 없다고 느낀다. '나'는 자신의 죄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많은 수효의 영리한 사람들이 저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진심으로 일본 사람을 따랐다. 역시 적지 아니한 수효의 사람이 핍박을 받을 용기가 없어 일본 사람에게 복종하였다. 복종이 싫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달리어 민족해방의 투쟁을 하였다. 더 용맹한 사람들은 외국으로 망명도 않고 지하로 숨어다니면서 꾸준히 투쟁을 하였다. 용맹하지도 못한 동시에 영리하지도 못한 나는 결국 본심도 아니면서 겉으로 복종이나 하는 용렬하고 나약한 지아비의 부류에 들고 만 것이었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두 번째 부류는 친일파로 분류되고, 세 번째, 네 번째는 독립운동가로 분류된다. 소설에서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나'와 친구 '김'은 친일 행위가 집안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무겁게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정작 청산이 되었어야 할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두 번째 부류와 같은 상황이었다며 변명하거나, 과(過)도 있지만 공(功)도 있다면서 은근슬쩍 이념 대결로 몰고 가기도 한다. 그게 먹혀들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후손들은 공에 초점을 맞추어 미화하려고까지 한다. 광복 70년이 넘어도 아직 논쟁 중인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채만식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여린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2017-08-21 00:05:01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중용(中庸)과 극중(極中)

우리말에서 한자어 '극'(極)은 남극, 북극, 음극, 양극처럼 자연과학에서 쓰일 때는 부정적인 의미가 없지만 정치나 사회 분야에서 쓰일 때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폭정, 수탈, 광란)이 극에 달했다'는 자연스럽지만 괄호를 친 자리에 '선정, 혜택, 평화'와 같은 긍정적인 말을 넣으면 조금 어색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극'은 한쪽으로 치우침을 말하는 것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의 성인들이 경계를 했던 것이다. 치우침이 일어나는 이유는 세상을 두루 살펴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우(極右)나 극좌(極左)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신봉하는 것만이 절대적인 선(善)이나 정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자기가 생각하는 선을 이루기 위한 길이라면 어떤 방법도 합리화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사고에 이르게 된다. 극좌나 극우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의 위험 요소가 된다. 치우침을 나타내는 '극'과는 달리 '중'(中)은 치우치지 않고, 알맞고 적당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알맞고 적당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실천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중용'(中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덕은 과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의 태도라고 하였다. 용기가 부족하면 비겁이 되고, 지나치면 만용이 되기 때문에 적당해야지 진정한 용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공자께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자의 중용이란, 군자답게 때에 맞는 것이며, 소인의 중용이란, 소인답게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군자의 중용이 때에 맞는다는 것은 중용에는 절대적인 기준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 기강이 흐트러졌을 때에는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중용이 될 수 있고,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울 때는 법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것이 중용이 된다. 똑같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할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용기가 되지만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만용이 된다. 소인의 중용은 거리낌 없이 자기 소신을 밀어붙이는 것이므로 군자의 중용보다 멋있게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위한 고민의 깊이에서는 군자의 중용을 따라가지 못한다. 얼마 전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당의 지향점에 대해 극단적인 중간점이라는 '극중(極中)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실제 내용을 보면 '중도'나 '중용'의 길을 선택하겠다는 취지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모순적인 '극중'(極中)이라는 어휘를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휘 선택의 차별화로 인해 중용의 길은 보이지 않고 군대에서 말하는 '중간만 하라'는 적당주의나 옛 성인이 경계했던 소인의 중용만 보인다는 것이 함정이다.대구 능인고 교사

2017-08-14 00:05:07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독후감상문 쓰기

방학 숙제로 학교에서 가장 많이 내는데, 학생들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독후감상문 쓰기 숙제이다. 어떤 학생들은 (핑계일 수 있지만) 독후감상문에 대한 부담 때문에 책 읽는 것도 힘들다는 말까지 한다. 사정이야 어떠하든 책 읽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낸 숙제가 학생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학생부 독서 기록이 학생부 종합전형의 평가 자료가 되는 고등학생들에게는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독후감을 쓰는 데 투입되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만큼 교과 공부에 투입할 시간이 줄어드는 문제도 발생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독후감상문 쓰기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독서 기록'을 숙제로 내 주었다. 독서 기록은 말 그대로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책의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요 내용이나 자기 생각을 메모 형태로 기록하는 것이다. 그게 독후감상문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독서 기록은 자유롭게 기록한 기초 자료이고 독후감상문은 그런 기초 자료들을 엮어 만든 한 편의 완결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독후감상문을 쓴다는 것은 수필 한 편을 창작하는 작업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솔직히 말하면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의 글을 쓰는 나도 매일신문 토요일판에 나오는 '내가 읽은 책' 란에 나오는 정도의 독후감이나 서평을 쓸 자신은 없다. 그래서 독후감상문 쓰기를 숙제로 강요할 수는 없었다.) 학생들은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니까 인터넷을 찾아보는데, 보통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처음 부분에서는 책을 접하게 된 계기나 감상문을 쓰게 된 동기를 이야기한다. 가운데 부분에서는 글쓴이와 작품의 배경에 대한 정보, 인상적인 내용이나 줄거리를 소개한 뒤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된 생각이나 느낌을 이야기한다. 끝 부분에서는 책의 내용과 자신의 생활을 연결하여 성찰하거나 앞으로의 다짐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독후감상문 쓰기법을 그대로 실천한 학생들의 독후감을 보면 첫 부분부터 개성이 없고 밋밋해서 계속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읽은 책과 관련된 현상들이나 자신의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면서 인상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읽은 책의 성격에 따라 글의 구성에 변화를 줄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 학생부 종합전형을 잘 준비하는 학생들의 경우는 고등학교 3년간 30~40편 정도의 독후감상문을 내는데, 그만큼의 독후감상문을 쓰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감은 없어진다. 그렇지만 독후감상문 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질 때면 개성 없는 글이 몸에 밸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2017-08-07 00:05:01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연수(硏修)

얼마 전 자신들의 지역구에 큰 수해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세금으로 외국으로 나갔던 네 명의 지방의원들이 엄청난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그중 국민들을 설치류에 비유해서 분노를 샀던 한 의원은 SNS에 억울함을 토로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가난하고 불우했던 자신의 개인사부터 시작해서 관광산업을 자기 지역의 새로운 먹거리로 만들겠다는 충정, 그리고 사태가 터지고 난 뒤부터 겪었던 괴로움들을 구구절절이 이야기했다. 가난했다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도, 자랑할 일도 아니기 때문에 내세울 것이 못 된다. 그런데 가난했던 과거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자기 혼자 힘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독선적인 성향과 피해 의식이 단단해진 경우가 많다. 그 의원의 글을 읽으면서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은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끼리 가질 수 있는 유대감이나 인간미는 보이지 않고 독선과 피해 의식이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또 그 의원은 자신이 외국으로 나간 목적이 '관광'(觀光)이 아니라 관광산업 선진국에 '연수'(硏修)를 받으러 간 것이라고 강변했다. 예전에 여행과 관광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관광'은 원래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선진 문물을 둘러보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연수'는 학문, 기술, 인성 등을 갈고닦기 위해 공부하고 배우는 것을 말한다. 이번에 비난을 받은 충북도의회 의원들뿐만 아니라 전국 지방 의회들의 해외 연수 실태를 보면 해외에 가서 배우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관광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는 수준의 배움을 얻어오라고 혈세를 들여서 보낸 것은 아니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지방의원들이 가는 것은 '연수'가 아니다. 해외로 나간 명분을 그대로 믿어주면 '관광'의 원래 의미와 부합하고, 실제 일정이나 형태를 보면 '휴양'이나 '여행'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 관광산업 개발을 위한 것이라면 계획을 담당할 공무원들을 외국 지자체에 파견해서 배우게 하는 것이 진짜 연수이지, 임기도 얼마 안 남은 지방의원들이 외국에 며칠 나가는 것을 연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 진짜 관광산업을 위한 것이라면 국내 여행 실태를 분석하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가진 다른 지역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 로마처럼 원래부터 유적지가 많은 곳에 가서 무엇을 배우고 돌아올 수 있을까? '연수'는 배움을 통해 인간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교육'이라는 말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자신이 항상 옳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연수가 필요 없는 사람이다. '외유성 연수'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지만 배우고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아니거나 배울 준비가 없는 사람이 갈 경우 그냥 '외유'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있다.

2017-07-31 00:05:01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잔치와 회식

지금 우리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는 문학 책에는 소설 '완득이' 바로 다음에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이 나온다. 기말고사를 치고 난 다음 여유가 있을 때 학생들에게 영화 '완득이'를 보여주는데, 두 작품에는 크게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 '완득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마지막에 교회에서 다문화센터 개소식 잔치를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는 장애인, 바보, 문제아, 모범생, 제멋대로인 선생, 욕쟁이 화가, 외국인 노동자, 노인, 아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어우러진다. 평소에는 갈등도 많았던 사람들이지만 신명이 나는 그 순간만은 하나가 되고, 우리는 공동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여우난골족'이 보여주는 세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명절날 어린 '나'는 이름부터 뭔가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여우난골에 있는 큰집에 간다.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山)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이렇게 제각각 다른 가족들이 모여 있고, 잔칫날처럼 음식도 풍성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밤늦게까지 놀이를 하고,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한 방에 웃고 떠들며 논다. 그때의 '나'는 아침 해가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들어올 때까지 엄마들이 끓이는 무이징게국 냄새를 맡으며 행복하게 잠을 잔다. 이 시에서도 보이듯 '공동체'라는 것은 유사한 성질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이질적인 사람들이 잔치를 통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은 근심을 잊을 수 있는 풍성함이 있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잔치의 순간만은 모두가 평등한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직장에는 잔치와 비슷한 회식이 많다. 회식은 공동체의 잔치가 되지 못하고 그냥 업무의 연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회식에는 풍성함은 있지만, 그 순간에도 모두가 평등한 관계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17-07-24 00:05:04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자음의 막내 'ㅎ'

인터넷에서 댓글을 보다 보면 '둘 중 누가 더 낳냐?'로 쓴 것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낫냐'의 맞춤법을 몰라서 그렇게 쓴 것도 있고, 그냥 장난스럽게 그렇게 쓴 것들도 있다. '(아이를) 낳다'와 '(누가 더) 낫다'는 어미 '-아'를 붙이면 발음이 [나아]로 같다. '낫다'의 경우 '낫아>나ᇫ아>나ᅀᅡ>나아'로 변한 것이다. 'ㅿ'(반치음)은 'ㅅ' 발음이 약화된 것인데, 약화된 소리가 아예 나지 않게 된 것이다. 같은 원리로 '마ᅀᆞᆯ'이 '마을'이 되었다. (경상도에서는 'ㅿ'이 약화되지 않고 '병이 나샀다', '마실 간다'와 같이 사용되기도 한다.) 'ㅎ'이 탈락하는 현상은 소리 자체가 약하기 때문이다. 'ㅎ'은 목청을 좁히어 숨을 내쉴 때 그 가장자리를 마찰하여 나오는 마찰음이다. 발음 방법이 그렇다 보니 자음 중에서는 소리가 가장 약하게 나기 때문에 탈락이 잘 된다. 현대어 '개'가 '가히>가이>개'와 같은 변화를 겪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에서 막내 자음인 'ㅎ'은 받침에 쓰일 때에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휘 수는 많지 않지만 표준 발음법 규정에는 'ㅎ' 받침에 대한 규정을 따로 모아 놓고 있다. '아이를 낳다'에서 '낳'은 단독으로 읽으면 [낟]으로 발음이 된다. '낳다'처럼 뒤에 'ㄱ, ㄷ, ㅈ'이 올 때는 두 소리가 하나로 축약이 되면서 [나타]로 발음된다. 다른 자음들은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나 조사가 올 때 '쫓아', '짚이'가 [쪼차], [지피]가 되는 것처럼 받침이 연음된다. 그러나 'ㅎ'은 알아서 탈락하기 때문에 [나하]로 발음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불규칙 활용들이 '눕+-어'를 '누워'처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는 것과 달리 그냥 '낳아'로 쓴다. 그런데 겹받침이 있는 경우의 발음은 애매한 부분이 있다. '않다'처럼 'ㅎ'이 앞에 있는 경우 뒤의 자음과 축약되어 [안타]로 발음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 그런데 '닭하고 돼지'에서처럼 뒤에 'ㅎ'이 있는 경우는 애매하다. 겹받침 뒤에 자음이나 실질 형태소가 오면 '밟고'가 [밥꼬]가 되거나 '닭오리'가 [닥오리>다고리]가 되는 것처럼 겹자음 중 하나가 탈락된다. 대신 조사나 접사, 어미 같은 형식 형태소가 오면 '닭+이'가 [달기]가 되는 것처럼 두 자음이 모두 소리가 난다. '닭하고'는 뒤에 형식 형태소인 조사가 붙는 것이기 때문에 둘 중 어느 한 쪽의 원칙을 따른다면 두 자음 모두 살아서 [달카고]로 발음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실제 표준 발음은 [닥하고>다카고]이고, 더 익숙한 느낌이다. 이게 지난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논란이 되었을 때 이 분야 권위자로 꼽히는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 나고 문법 났지, 문법 나고 사람 난 건 아니야." 문법이라는 게 절대적인 원칙이 아니고,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좀 더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라는 뜻일 것이다.

2017-07-17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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