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괴리(乖離)

성격이 별나고 까다로워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이를 때 흔히 '괴팍하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괴팍'은 순우리말이 아니고 '乖愎'으로 쓰는 한자어이다. 한자가 어렵지는 않지만 좀 낯선 느낌이 드는데, 특히 '괴팍할 퍅'으로 읽는 '愎'의 음은 많이 낯설다. 원래 한자대로라면 '괴퍅하다'가 맞지만 사람들이 많이 쓰는 '괴팍하다'가 표준어가 되었기 때문에 '괴퍅할 퍅'이 아닌 '괴팍할 퍅'으로 읽는 것이다. '乖' 자는 '千'과 '北'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한자 같지만 익숙하지는 않은 한자이다. 이 글자는 일반적으로 '어그러질 괴'로 읽는다. 어그러진다는 것은 맞물린 물체들이 틀어져서 잘 맞지 않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사람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어그러지다'는 말을 사용한다. '乖' 자를 쓰는 말 중에서 우리말에서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어휘는 '괴리'(乖離)이다. 괴리는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할 것들이 어그러져서 삐걱대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멀어진 상태를 이야기한다. 이상과 현실, 생각과 행동, 말과 실제 등은 꼭 맞아야 하지만 둘이 어그러지다 못해 한참 멀어졌을 때 '괴리'라는 말을 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학교 교육에서 '괴리'라는 말이 참 많이 등장한다. 언론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적용을 받는 지금 고1부터는 문이과 구분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실 지금도 문이과라는 것은 없고 학생들의 과목 선택에 따라 편의상 계열 명칭을 붙일 뿐이다. 그것은 지금 고1들이 2, 3학년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문이과 통합의 상징처럼 이야기되는 통합과학, 통합사회는 현재 1학년에서 과학과 사회를 배우는 것에 '통합'이라는 말이 들어가면서 교과 내용이 일부 달라진 것뿐이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문이과 통합과 실제 학교 교육과정은 괴리가 있다.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달리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파급력이 큰 것은 일반선택 과목과 진로선택 과목을 둔 것이다. 새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이 진학하려는 과에 맞는 진로선택 과목을 이수하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경제학과로 진로를 선택한다면 수학 교과에서 '경제 수학'을 선택하는 것이 대학 진학에 가장 유리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학교에 경제 수학이 개설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고, 경제 수학이 개설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수강을 하는 학생이 10명밖에 안 되어서 1등급이 안 나오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또 진로선택 과목은 수능 시험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자칫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교 학점제, 내신 절대평가, 수능 영향력 약화와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가 이루어져야 맞아떨어진다. 그렇지만 그것은 국민 다수가 바라는 방향이나 현실적 상황과 괴리가 있다 보니 교육부에서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2018-03-19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교육계의 '미투'

최근 한 달간 우리 사회를 뒤덮은 것은 권력형 성폭력을 폭로하는 '미투' 열풍이다. 지난주에는 남북정상회담 발표라는 중대한 뉴스조차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할 정도로 이 열풍의 위력은 엄청났다. '미투'(me too)에 대해서 언론에서는 '나도 당했다'라고 번역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번역하는 것은 어감도 좋지 않을뿐더러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me too'를 그대로 번역하면 '나도 (그렇다)'이다. 이 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누군가가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미투'의 시작은 미국의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로부터 시작되었다. 거기에서부터 여성들이 '미투'를 한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당했다'라고 번역을 한다면 지금까지 '미투'를 외친 여성들이 모두 와인스틴에게 당했다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으므로 적절한 번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투'는 권력을 가진 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여성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에 대한 연대의 표시이자, 자신도 용기를 내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폭력,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용기이다. 또 '미투'는 직접적으로 당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권력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권력의 억압이나 자신에게 가해질 불이익 때문에 침묵해야 했던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미투'가 하나의 운동으로 번져나갈 수 있는 것은 약자가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미투'는 '나도 당했다'보다는 '나도 말할 수 있다'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속해 있는 교육계는 지금 '미투' 폭풍 전야이다. 문화계, 정치계 유명인들의 사건에 묻혀 있기는 하지만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고 주로 남성이 권력을 가진 환경, 공사 구분이 불분명한 온정주의 문화가 만연한 교육계의 특성을 감안하면 교육계에서 터져 나올 '미투'의 규모는 지금까지 나온 '미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친목회 여행 가서 술 먹고 추태 부리는 정도는 학교들마다 워낙 흔해서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다. 지금까지 교육계 성폭력 사건들을 보면 가해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피해 여성을 챙겨 준 친근한 사이라고 생각해서 여성을 함부로 대한 경우가 많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관리자로서 근무평정을 하거나 교육청 사업의 담당자로 있으면서 자신이 힘을 썼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일도 안 했는데 높은 평점을 받아 원하는 학교에 발령을 받거나, 능력이 안 되어도 중요한 경력들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누군가는 부당하게 원치 않는 학교에 가야 하고, 능력 있는 교사가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투'의 끝은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길, 바로 공정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2018-03-12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특별(特別)과 차별(差別)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큰 오점이었던 것은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일어난 이른바 왕따 논란이었다. 사람들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단정하고 일방적으로 비난을 하지만 전후의 과정과 인터뷰들을 보면 그렇게 간단하게 규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특히 일련의 과정을 보면 학교들이 처해 있는 '특별'과 '차별'의 문제와 많이 겹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따 피해자라고 이야기되는 노선영 선수는 올림픽 전에 연맹에서 메달권에 있는 특정 선수들만 '특별' 관리한다고 폭로한 적이 있다. 이 폭로는 선수들 간 불화의 근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특별'하다는 것은 능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아주 못하거나 해서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이다. 특별한 사람을 특별하게 대하는 것은 좋게 말하면 맞춤형 대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특별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일부는 자기도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은 부당함, 불공정의 의미가 담겨 있는 '차별'이라는 말로 쉽게 대체가 된다. 경기에서 차별로 인해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차별의 수혜자들이 그 책임을 차별의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듯한 인터뷰를 보았기 때문에 대중들은 분노한 것이다. 그러나 빙상연맹이 특정 선수들을 특별 관리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지금 학교들이 처한 현실과 너무나 흡사하다. 고등학교들은 지역 사회, 동창회, 학부모들로부터 더 나은 입시 실적을 요구받고 있다. 이때의 입시 실적은 상위권 대학의 합격자 수이다. 하위권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서 중간 정도 대학을 보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해서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들어가는 것이 대단한 일이기는 해도 메달을 못 따면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빙상에서 메달권에 있는 선수들을 특별 관리해서 실적을 내려 하듯, 입시 실적이 우수한 고등학교들은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서 야간에 자습을 시키는 특별반을 운영한다. 특별반을 운영하는 것이 옳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특별반 편성이 실력에 따라 이루어지는 만큼 학교가 처해 있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비난하기도 어렵다. 스포츠계나 교육계에서 진짜 문제는 특별 대우와 차별이 실력과 상관이 없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빙상의 경우 선수 생활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선수 부모들은 투자한 만큼의 보상을 얻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승자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보니 반칙이 난무했었다. 특히 작전과 심판의 영향이 큰 종목에서는 실력 없는 선수를 위해 실력 있는 선수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부끄러운 일들도 있었다. 이것도 잘살고 엄마가 학교에 자주 오는 아이들에게 특별 대우를 하던 교육계의 어두운 시절과 겹쳐진다. 우리 사회가 분노해야 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없는 자들이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이다.

2018-03-05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의성 마늘 소녀'가 어때서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의성 출신들이 주축이 된 여자 컬링 팀이었다. 경북 북부지역 사투리로 스톤을 어떻게 던질지 협의를 하는 모습은 서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지만 우리 지역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 친근한 모습이었다. 스톤을 던지고 나서 김은정 선수가 외치는 "영미~"는 새로운 컬링 응원 구호로 자리 잡기도 했다. 영미가 그렇게 많이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영미와 영미 친구, 영미 동생, 영미 동생 친구로 구성된 팀의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컬링 팀의 애칭으로 많이 사용된 '의성 마늘 소녀'(혹은 '갈릭 걸스')는 같은 동네 출신들이라는 팀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이름이기도 했다. 그런데 컬링 팀의 감독이 '마늘 소녀'보다 더 예쁜 이름으로 부르거나 주장의 성을 딴 공식 명칭인 '팀 킴'으로 불러달라고 하고, 그에 맞춰서 방송사에서 새로운 애칭을 공모하는 이벤트를 한 것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물론 '마늘 소녀'로 부르는 것이 부당하다는 의견에도 그 나름의 타당한 근거가 있다. 마늘이라는 특산품이 컬링과 상관이 없으며, 의성 지역을 강조한 이름을 쓰면 경기도 출신인 김초희 선수는 소외가 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팀 킴'이라는 이름은 그런 문제가 없으며,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모든 선수의 성이 '킴'이라는 것이 매우 신기한 일이기 때문에 가장 적절한 애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김씨는 흔한 성이다 보니 김씨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어렵다. 또 선수들이 의성 출신이 아니더라도 의성에서 컬링에 입문하고 훈련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성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빼놓고 이들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선수들이 웅녀처럼 마늘을 먹고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을 리는 없겠지만, 흔한 중국산 마늘과 달리 단단하고 매운 특성을 가진 의성 마늘은 우리 컬링 팀의 경기 스타일을 대표한다는 그 나름의 의미도 있다. 스노보드의 이상호 선수는 정선 고랭지 배추밭이 있는 곳에서 자란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배추 보이'라고 불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근거가 되는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경상도 사람들은 자신을 '보리 문디'라고 하는 것에 대해 비하로 생각하지 않고 지역적 유대감의 표시로 생각한다. 보리밥을 별로 안 먹고 자랐어도 그런 별칭을 붙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는 이유도 바로 자기 지역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지방 출신들에게는 서울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그런 정서가 있다. 이번 컬링 팀의 활약은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침체되어 있는 의성 지역에 모처럼 활기를 불어넣은 좋은 소식이었다. 그들이 계속 '마늘 소녀'로 남아 분위기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2018-02-26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허심탄회(虛心坦懷)

우리 시골 마을 입구에는 1년 넘게 '오리 농장 결사반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지리멸렬한 싸움을 하고 있지만 대책위 사무실이 마을 사랑방이 되었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끼리는 더 돈독해지는 효과는 있었다. 이것과는 좀 다르게 의성에 있는 처가 동네에는 '대구 공항 유치 적극 찬성'과 '결사반대' 플래카드가 나란히 걸려서 경쟁을 하고 있다. 어느 사회든 갈등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주민들끼리 의견이 갈라져서 대치하면 인심이 좋지 않게 된다. 그렇게 갈등이 커지면 결론이 나더라도 지역 공동체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되고, 사사건건 반목하는 일이 많아지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는 처음부터 모든 가능성을 닫아 놓고 말을 너무 세게 하기 때문에 곧바로 감정싸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뒤에는 대화를 해 보자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공항을 유치하자는 쪽은 공항 유치만이 지역이 살길이라고 말하며, 다른 가능성을 닫아 버린다. 그러고는 토론을 하기보다는 반대쪽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린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러한 갈등의 상황에서 꼭 새겨 보아야 하는 것은 '허심탄회'(虛心坦懷)라는 말이다. '허심탄회'는 한자 그대로 욕심을 비우고, 품고 있는 것들을 모두 솔직하게 드러내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욕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 외에는 다른 가능성을 보지 않는다. 욕심을 관철하기 위해 강경하게 말하고 불리한 것은 숨긴다. 그러나 욕심을 비운 사람은 오로지 대의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들을 열어 놓고 생각할 수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한 충정에서 공항을 유치하자고 한 사람들은 더 좋은 방안에 대해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공항이 들어오면 어느 지역이 어느 정도의 소음 피해를 입는지에 대한 정보를 숨기지도 않는다. 그런 선의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려면 현상에 대한 처방보다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왜 자꾸 젊은 사람들은 우리 지역을 떠나는가? 관광객은 왜 오지 않는가? 공장들은 왜 오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누구든 자기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 본다면 공항 유치는 지역 발전을 위한 하나의 방안은 될 수 있어도 유일한 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지방자치단체장이 행정에 반영하면 지역의 상황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불신이 많이 남아 있어서 허심탄회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만, 조금씩이라도 노력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2018-02-19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미세 먼지와 가상 화폐

사회에 새로운 현상이 생겨나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기존의 말을 조합하여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존의 말이 가진 의미 때문에 새로운 현상을 잘못 파악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미세 먼지'라고 하면 먼지 중에 입자가 미세한 것이라는 의미가 직관적으로 떠오른다. 그 때문인지 미세 먼지가 중국의 황사나 매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NASA와 환경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서울의 미세 먼지는 절반 정도가 국내에서 생긴 것이다. 국내 발생의 75%는 주로 자동차나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 등이 화학 작용을 하면서 생긴 2차 생성물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티끌이나 흙먼지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유해 미세 입자' 정도가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있다. 최근 이슈의 중심에 있는 '가상 화폐'라는 말 역시 그 이름 때문에 여러 가지 오해를 낳고 있다. '화폐'는 동전이나 지폐처럼 다른 물건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가상'이라는 말을 붙이니까 '가상 세계에서 거래에 사용되는 화폐'라는 의미가 직관적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 화폐를 설명하면서 '사이버 머니'나 카카오톡의 초코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화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가상 화폐에 대한 논쟁은 '통화'로서의 '신용' 문제가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화폐에다 통장에 찍힌 돈까지 합쳐서 이야기를 할 때는 '통화'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는 원가가 1천원도 안 되는 5만원권, 통장에 숫자로 존재하는 1억원과 같은 통화로 그만큼에 해당하는 실물을 살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은행이나 국가가 신용을 보증해 주기 때문이다. 달러화가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근원은 미국에 대한 신용이 있기 때문이다. 가상 화폐가 등장한 것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 은행들이 무너지고 여러 나라들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화폐를 마구 찍어내자 국가와 은행의 신용에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는 농협 해킹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트코인은 믿음이 안 가는 국가나 은행의 인증 대신 이용자들이 그물망처럼 얽혀 신용을 보증해 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기업이 신용을 보증하는 카카오톡의 초코와는 다른 것이다. 본질적 성격을 보자면 '가상 화폐'보다 '이용자 신용 보증 통화'가 더 적절한 이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름을 어떻게 하든 문제는 그런 세계를 만들어낸 이도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가 그 세계의 코드를 조작하거나 해킹을 당하면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것을 보증할 주체가 없다. 불로소득을 바라고 그 세계로 뛰어드는 모험을 하는 것은 젊은 세대가 할 일이 아니다.

2018-02-12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오죽과 물론

얼마 전 인터넷상에서는 '평화올림픽'과 '평양올림픽' 실시간 검색어 대결이 있었다. 그것은 세대나 이념에 따라 보는 것이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건전한 토론이 불가능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정치인들이야 올림픽이 망해서 대통령 지지율이 폭락하면 선거에서 이기고,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는 실익이 있어서 그렇다고 치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열성적으로 올림픽의 가치를 깎아내릴 필요까지야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익이 없는 일을 그렇게까지 열성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항상 옳으며, 반대쪽 사람들을 그대로 두면 나라가 위험해진다는 이야기를 한다. 반대쪽의 의견을 원천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에 사실상 대화는 불가능하다. 학생들에게 논술이나 토론 수업을 하게 해 보면 미숙한 학생들은 반대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승부욕만 넘쳐서 억지 논리와 상대에 대한 비방까지 동원하면서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학생들도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 반대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 논리에서 지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도 잘 안 될 때는 아주 구체적인 주문을 한다. 글을 쓰거나 토론을 할 때 '오죽'과 '물론'을 꼭 한 번씩 쓰라고. '오죽'이라는 말은 "오죽 어려웠으면 도둑질까지 했겠어?"처럼 도둑질을 했다는 표면적 사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심층의 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은 "물론 복지도 중요하지만 성장 없이는 복지도 없다."처럼 반대의 논리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논리가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이 두 말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만큼 시야는 넓어지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기분 나쁘지 않은 토론도 가능해진다. 이를 올림픽에 적용해 보자. 최고 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는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에서 불참을 통보하고, 스포츠 강국 러시아는 IOC 징계로 국가 자격으로 참여를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세계인들은 연일 한반도의 핵전쟁 위기를 전하는 한국발 기사를 접하며 곧 전쟁이 일어나는 줄 알고 있다. 한 가닥 희망이었던 것이 중국인들이 춘절 기간에 대거 방한하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사드 문제로 막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홀대를 받을 줄 알면서도 중국에 갔겠나. '오죽'했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한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까지 북한의 참여에 공을 들였겠나. '물론' 중국에 굴욕 외교를 한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고, 북한에 저자세로 일관한다는 비난도 들을 수 있다. 정부가 그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한다면, 반대쪽에서는 자신들이 프로답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굴욕 외교, 저자세'로 비난하는 것보다는 더 책임 있는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2018-02-05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동사와 형용사 두 번째

지난주에 품사의 구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우리말에서 동사는 명령형, 청유형, 의도의 연결어미 '-러', 진행형 '-고 있다', 욕구를 나타내는 '-고 싶다'를 쓸 수 있지만, 형용사는 쓸 수 없다. 현재 시제 관형사형 어미로는 동사는 '-는', 형용사는 '-(으)ㄴ'을 쓴다. 보통 사람들이 이 구분과 관련해 접할 수 있는 내용은 딱 두 가지 경우이다. 하나는 '건강하세요.'와 같은 표현은 형용사에 명령형을 쓴 것이기 때문에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알맞다, 걸맞다'가 형용사이기 때문에 '알맞는, 걸맞는'으로 쓰면 맞춤법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우리말 어휘들을 적용해 보면 명확히 나누어지지 않는 애매한 말들이 참 많다. 당장 이 글의 첫 단락만 보아도 '관련해', '틀렸다'와 같은 말들이 있다. '관련하다'는 동사지만 '관련해라, 관련하자, 관련하는'과 같은 형태를 사용하지 않는다. '틀리다'는 최근에 형용사 '다르다'를 대체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형용사가 아닌 동사로 분류한다. 그리고 '허구하다', '막다르다', '서슴다'의 경우는 '허구한 날', '막다른 골목', '서슴지 말고'와 같이 한 가지 형태로밖에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형태나 기능으로는 품사를 따질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전적으로 의미에 의존해 '허구하다', '막다르다'는 형용사로 '서슴다'는 동사로 분류한다. 국어 문법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 이처럼 어렵다. 지난 12월 국립국어원에서는 '낡다', '못나다', '못생기다', '잘나다', '잘생기다' 5개 어휘를 형용사에서 동사로 분류했는데, 핵심적인 근거는 이 어휘들이 기본형으로는 쓰이지 않고 '낡았다', '잘생겼다'처럼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었-'이 결합해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는 특수한 성질을 가진다는 것이다. '잘생기다'는 '잘+생기다'의 합성어이므로 뒤에 오는 '생기다'가 동사이므로 동사로 보아야 한다는 어원상의 기준도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학교 문법에서 품사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들이 무력화되고, 앞으로 더 많은 어휘들의 품사를 변경해야 한다. 그런데 '공돈이 생기다'와 '예쁘게 생기다'를 비교해 보면 의미상으로 전자는 동사에, 후자는 형용사에 가깝다. 그래서 '공돈이 생기는 일', '예쁘게 생긴 아이'와 같은 표현이 자연스럽다. 이는 현재 시제 관형사형 어미로 동사는 '-는', 형용사는 '-(으)ㄴ'을 쓴다는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닮다, 얼빠지다'도 '생기다'와 마찬가지로 사전에는 동사로 분류되지만 의미적으로 형용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닮은, 얼빠진'과 같은 형태가 나타난다. 사전 수정은 형용사 어휘들을 동사로 재분류하는 방법과 동사 어휘에 형용사 뜻풀이를 추가하는 방법 중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 것인지 보다 신중히 검토한 후에 해도 늦지는 않다.

2018-01-29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동사와 형용사

영어를 배우다 보면 문법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것이 'be 동사'라는 것이다. 영어의 be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리말의 서술격 조사에 해당하는 '이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임이나 변화, 작용의 의미를 가진 '동사'(動詞)라는 말을 쓰는 것이 매우 어색하다. 의미로 따지면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 왜 동사라고 할까? 여기에는 우리말 문법과 영어 문법의 차이, 단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방법인 품사(品詞)에 대한 내용들이 관련되어 있다. 품사는 단어를 의미, 기능, 형태적 특성에 따라 분류를 한 것이다. 우리말의 9품사 중 동사, 형용사는 의미를 중심으로 한 명칭이고, 관형사나 부사, 조사는 기능을 중심으로 한 명칭이다. 이러한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품사는 하나의 일관된 기준으로 명쾌하게 나누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영어에서 동사를 뜻하는 verb는 의미보다는 기능과 형태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분류한 것이다. verb는 문장에서 사람이나 사물의 동작이나 상태를 서술하는 역할을 하며, 인칭이나 시제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는 특징을 보인다. be의 경우 'I am a boy.', 'She was pretty.'처럼 명사나 형용사를 주어와 연결시켜 서술하는 역할을 하며, 인칭이나 시제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verb라는 것이 명확하다.(영어의 verb는 우리말의 '동사'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서술사' 정도의 명칭이 정확했을 수도 있다.) 우리말에서 동사와 형용사는 의미를 기준으로 한 분류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의미로만 따지면 '손님이 있다.', '나는 거짓말이 싫다.'처럼 동작인지 상태인지 모호한 말이 있고, 관형사나 부사도 의미적으로는 상태나 동작의 의미를 가진 말들이 많다. 그리고 의미를 기준으로 한 분류에서 그친다면 단어를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없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하기도 어렵다. 단어들에서 의미 때문에 형태나 기능상의 차이가 나타나야 품사 분류의 의미가 있다. 우리말에서 동사와 형용사는 활용을 하고, 서술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용언'으로 묶을 수 있다. 그리고 동사는 동작을 나타내기 때문에 '먹어라, 먹자, 먹고 있다'와 같이 명령형, 청유형, 진행형이 가능하지만, 형용사는 그러한 형태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분류를 해 왔다. 사람들이 '걸맞는, 알맞는'으로 많이 쓰지만 '걸맞은, 알맞은'으로 써야 하는 이유는 '걸맞다, 알맞다'가 형용사로 분류되기 때문에 현재형 어미 '-는'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류법은 간단하면서도 사람들의 상식과 잘 부합된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는 지난해 말 '잘생기다', '못나다', '낡다' 등을 형용사에서 동사로 분류했다. 일부에서는 '잘생기다'가 동작이냐 하는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의 제기를 위해서는 형태나 기능에 대한 면도 함께 고려해서 어떤 것이 더 합리적인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이야기를 하려 한다.

2018-01-22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바람이 불어오는 곳

가수 김민기가 1971년에 발표한 노래 '아침 이슬'은 민주화의 중요한 순간마다 사람들에게 불리며 민주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노래이다. 그런데 이 노래 가사를 자세히 뜯어보면 민주화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하나도 없다. 노래 가사의 흐름을 짚어 보면 고뇌에 찬 '긴 밤'을 보낸 화자는 현재 '아침 이슬'이 맺힌 풍경을 차분히 바라본다. 그러면서 '묘지'와 같은 곳에 태양이 떠오르면서 올 '한낮의 찌는 더위'와 같은 예정된 시련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전까지와 달리 '저 거친 광야'에 '이제' 당당히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가사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멜로디와 어우러져 마지막에는 아주 비장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작가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 노래의 원래 의도는 윤동주 시인의 시들처럼 혹독한 시대를 사는 나약한 지식인의 자기반성, 성찰, 그리고 다짐을 담은 것이다. 이 노래는 원래 B면 두 번째 곡으로 수록되었는데, 바로 앞에는 '길'이라는 노래가 있다. "여러 갈래 길 누가 말하나/ 이 길뿐이라고… 여러 갈래 길 다시 걸어갈/ 한없이 머나먼 길"이라는 가사는 남들이 옳다고 하지만 내키지 않는 길, 즉 적당히 세상과 타협해서 안락하게 사는 길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험한 길 사이에서 생각하는 젊은이의 고뇌가 들어 있다. 이는 '아침 이슬'로 이어지면서 고뇌하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고뇌하는 한 젊은이의 모습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모두에게 불리면서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고 생각했던 그 다짐들이 모여 결국 우리 사회를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민주적인 사회로 만들었다. 이처럼 노래 가사는 때로는 시대의 정신이 될 수도 있는 큰 울림을 가지고 있다. 지난주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들이 많았지만 내가 제일 인상적으로 보았던 것 중 하나는 대통령이 퇴장할 때 들려오던 노래였다. 그 노래는 김광석이 작사 작곡을 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노래다. 그 노래 가사 중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새로운 꿈이 있는 도전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그곳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하는 곳이고, '아침 이슬'처럼 힘겨운 과정이 있는 길이다. 그렇지만 현실에 머물지 않고 기꺼이 가려 한다는 것은 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대통령의 배경으로 그런 노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아직 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8-01-15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십 구문 반의 신발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 구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 「가정」 중에서 시를 읽는 묘미 중 하나는 똑같은 시를 읽더라도 읽는 시점에 따라서 눈에 띄는 부분이 다르고 시에서 받는 느낌도 다르다는 것이다. 학생 시절에 이 시를 읽을 때는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이 '십 구문 반의 신발'이라는 부분이었다. 작가가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느끼는 책임감을 그렇게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으니 가장 먼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엄격하고 호통을 치시던 우리 아버지와 자식들을 보며 미소하는 시 속의 아버지가 연결이 잘 안 되었다. 대신 나의 관심은 엉뚱하게도 '십 구문 반'이 오늘날의 단위로 환산하면 470㎜, 한 짝은 235㎜였을 테니까 박목월 시인의 발은 참 작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 읽어보면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강아지 같은 것들이 없었더라면 좀 더 여유 있게 살 수도 있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아지 같은 것들 때문에 힘이 난다. 막내둥이를 보고 있으면 그냥 웃음이 나온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된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아버지 역할은 아직도 어설프기만 하다. 특히 예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십 구문 반의 신발'과 연결되는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이라는 시구는 더 잘 눈에 띈다. 자존심을 지키며 고고(孤高)하게 살고 싶은 맘이야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혼자라면 어디를 가든 큰소리치고 마음에 안 들면 판을 엎고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굴욕의 길도 감수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밖에 나가서 잘 대접받고 남들한테 인심 쓰면서 돌아다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외출은 나중에 힘겨운 청구서가 되어 가족에게 돌아온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굴욕의 길도 마다 않는 세상의 아버지들에게는 가족의 위로와 응원이 필요하다.

2018-01-08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수능 국어의 뒷이야기들

수능 시험에는 다양한 이의 제기들이 나오는데 국어에서는 동음이의어를 묻는 문제에서 부호(符號)와 부호(富豪)가 음의 장단이 다르기 때문에 동음이의어가 아니라는 이의 제기도 있었다. 이의 제기를 한 사람이 만약 이 칼럼 10월 16일 자 '새(新)와 새(鳥)'에서 이야기한 '언어유희나 문학적 표현에서는 소리의 장단을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동음어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라는 부분을 읽었다면 그런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도 있다.(그때 우리 교무부장이 아재 개그를 '열심히' 한다고 했었는데, 자신은 아재 개그를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라고 정정 보도를 요구했다.) 수능 문제가 나왔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경제, 기술에 대한 독서 지문이 어려워서 등급 컷이 작년과 비슷하거나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가채점 결과 실제 점수는 2~3점 오른 것으로 나타나 불수능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 이유는 전문가들이 어렵다고 한 경제, 기술 지문이 모두 EBS 교재에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환율, 통화량, 금리의 관계에 대해 다룬 경제 지문은 체감 연계도가 매우 높았는데,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그 지문의 정답률은 높은 편이었다. 수능에 연계된 EBS 교재의 두 지문은 모두 내가 집필한 것이다. 경제 지문은 정부의 외환 시장 개입이라는 약간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목할 때마다 새로 쓰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지문을 쓰고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 책과 논문을 읽고 내용을 완전히 소화해야 해서 그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독서 지문으로 사용하는 주제들은 학생들의 사회나 과학 선택과목에 따라 유불리가 없도록 가급적이면 학생들이 다 잘 모르는 대학교 교양 수준의 내용을 택한다. 그런데 대학교 수준의 지문은 그 분야의 전문 용어가 많고, 기본적인 내용은 안다는 전제하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읽기에는 어렵다. 이를 짧은 지문 안에서 고등학생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변별할 수 있는 수준의 지문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여 지문의 내용을 적용할 때 가끔씩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경제 지문에서 처음에 환율이 하락할 때 정부가 시장 개입을 하면서 통화량의 변동이 없도록 하는 내용으로 문제를 만들었는데, 전공 교수가 그렇게 하면 금리가 상승해서 역효과가 난다고 해서 지문 내용을 수정하고 문제를 다시 낸 일도 있었다. 그런데 어렵기는 하지만 그런 지문과 문제들을 계속 접하면서 잡학다식해지는 즐거움이 있다. 시험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EBS 교재나 수능 기출문제집은 어떤 책보다도 잘 다듬어진 유용한 교양서이다. 집에 고등학생이 있다면 아이와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다.

2017-12-11 04:55:42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학가선용(鶴駕仙容)과 학가선객(鶴駕仙客)

이번 수능 시험에 출제된 이정환의 시조 '悲歌'(비가)는 재야에 있던 선비가 병자호란의 치욕과 세자가 볼모로 잡혀가는 상황에 대한 원통함을 표현한 연시조이다. 제1수는 청나라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가는 소현세자의 모습을 꿈속에서 본 소회를 밝히면서 '반갑다 학가(鶴駕) 선객(仙客)을 친히 뵌 듯 여라'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鶴駕(학가) 仙客(선객)'에 대해 한 학원 강사가 비슷한 한자인 '鶴駕(학가) 仙容(선용)'을 잘못 쓴 것이라는 이의제기를 하였고, 한 언론에서는 이 이의제기의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였다. 그 뉴스에는 출제자의 자질이 없느니 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문학 작품의 경우 여러 이본들이 존재하고 필사본인 경우 다르게 판독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맞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최초본이 확인이 되면 최초본을 기준으로 하고, 작가가 나중에 오탈자를 교정하고 미세한 표현의 조정을 한 경우에는 나중에 나온 기록을 기본으로 한다. 판본의 선후 관계의 확인이 어려운 경우에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의 주도로 편찬된 기록을 기본 텍스트로 삼는다. 그런데 이 기본 텍스트는 표기와 어휘 등이 현재와 많이 달라 교육의 현장에 그대로 가져오기는 어렵다. 그래서 현대어에 맞게 약간의 수정을 하는데, 고전 시가의 경우 운율과 예스러운 멋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당연히 표현이나 표기는 약간씩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정환의 '비가'가 학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31년 5월 16일 자 동아일보에 이은상 시인이 '송암유고'에 있던(원본의 소재는 알 수 없다.) 시조와 한역시를 소개하면서이다. 그후 영남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하셨고 시조 분야 권위자였던 심재완 선생이 집대성한 '교본역대시조전서'에도 실리게 되었는데, 제2수에서 동아일보에서 '北來使者'(북래사자)라고 한 것을 '此來使者'(차래사자)라고 한 것과 같은 미세한 차이가 난다. 이 두 본에서는 모두 제1수에서 '鶴駕仙容'(학가선용)이라고 되어 있지만 최근 방대한 자료 수집과 정밀한 고증으로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고시조대전'에는 '鶴駕仙客'(학가선객)으로 기록하고 있다. '鶴駕'(학가)라는 말은 주나라 영왕의 세자가 도술을 닦아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다녔다는 데서 비롯된 말로 왕이 타는 가마인 어가(御駕)와 짝을 이루어 세자가 타는 가마를 의미한다. 그 유래를 알면 '학가를 탄 신선(鶴駕仙客)'이나 '학가를 탄 신선의 용모(鶴駕仙容)'나 모두 소현세자를 표현하는 것으로 볼 타당한 이유가 있다. 내가 출제자였어도 충분히 고민하고, 최근 인정받고 있는 자료를 기본 텍스트로 썼을 것이다. 이런 사정들은 알아보지 않고 일단 논란을 만들고 보는 우리나라 언론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여론을 보면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2017-12-04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되므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이 시는 김종삼 시인이 작고하기 2년 전에 발표한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의 전문이다. 시가 뭐냐는 질문에 자신은 시인이 못 되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당대 순수시 계열의 거목이었던 분의 대답이라니 좀 생뚱맞기도 하다. 그렇지만 각자 자기 분야에서 지내 온 내력을 생각해 보면 첫 두 행의 의미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대학시절 나도 문학동아리에서 합평회를 하면 무게를 잡으면서 '시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둥 '리얼리즘에 철저하지 못한, 가치 없는 글이다'는 둥의 말을 쉽게 했었다. 얄팍한 문학 이론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렇게 함부로 평가하는 말들을 했었다. 그렇지만 시를 써 가면 갈수록 내 마음에 드는 시를 쓰는 것은 더 어려워지고 시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어쩌다 등단하게 되어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남들처럼 어디 글을 낼 때 '시인'교사'라고 쓰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서 그냥 '교사 민송기'로만 쓴다.(요즘 들어 생각해 보면 좋은 교사가 되지 못한 관계로 '교사'를 쓰는 것도 부끄럽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시가 무엇인지 거창한 이론으로 말하는 것이 어려울 때, 남들이 암송해줄 위대한 작품에 대한 욕심을 포기했을 때 시에서 사람 냄새가 나고 시가 재미있어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찾던 위대함은 저 높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속에 있었던 것이다. 지난주에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이진성 헌재소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앞서 이 시를 암송하는 모습이었다. 이 시에 '시'라는 말 대신 '법'이라는 말을 넣어도 성립된다. 젊은 법관들은 완벽한 법의 논리로 정의를 세울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하지만, 세상에는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법을 잘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선량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려 깊은 법관은 법을 법전의 논리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탐구와 이해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그런 생각들을 압축해서 시로 낭송하는 헌재소장 후보자를 보면서 저런 분들은 국민 청문위원단이 같이 소주 한잔 마시며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인사청문회를 대신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7-11-27 00:05:01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풍자란 무엇인가?

얼마 전 국회에서 KBS 감사를 하면서 개그 프로그램에서 왜 대통령은 풍자하지 않느냐는 국회의원들의 질책이 있었다. 풍자라는 것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인데, 왜 살아 있는 권력은 비판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이의 제기를 한 의원들은 심각하게 이야기를 한 것이겠지만 '풍자'라는 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말을 한 국회의원들이 풍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풍자'(諷刺)는 한자 뜻 그대로 보면 비유하고 찌르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인 방법을 통해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고, 대상의 도덕적인 문제를 아프게 찌르는 것이 풍자이다. 그래서 풍자는 주로 위선적인 자, 억압적인 자,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에 있는 자들처럼 도덕적인 결함이 있는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대상의 문제점을 폭로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풍자의 대상이 될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권력을 가졌다는 것이 풍자의 대상이 되는 필요조건은 아니다. 채만식의 소설 '치숙'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폐인이 된 오촌 고모부를 일본인 상점의 조수로 일하는 '나'가 비난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나'는 현실에 적응하면서 일본을 최고로 생각하고, 일본화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부정적인 인물이다. 이렇게 무지하고 반민족적 성격을 가진 인물도 권력은 없지만 풍자의 대상이 된다. 문제가 있는 대상을 폭로하고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풍자는 억눌린 자들의 감정을 표출하거나 문제의 개선을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풍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도덕적 문제가 없는 대상을 공격하는 악의적인 비방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풍자가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방법이라는 점은 풍자를 하는 사람이 풍자의 대상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에서 하인인 '말뚝이'는 무지하면서도 위선적인 양반들을 가지고 논다. 관객들 역시 입으로는 도덕을 이야기하면서 행동은 그렇지 못한 양반들의 모습에 공감하며 즐긴다. 탈춤을 추는 사람들이나 관객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양반들처럼 위선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세종대왕과 같은 성군이 있다면 그 사람은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풍자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일단 풍자할 지점이 보이지 않는 것도 있지만, 내가 그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확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성군에게도 개인적으로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앙심을 품고 공격을 하면 그것은 풍자가 아니라 비방이 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도 풍자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지적하지 않아도 풍자의 효과는 자연히 사라진다. 지금 국회의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개그 프로그램 하나까지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왜 국회의원이 가장 큰 풍자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2017-11-20 00:05:07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수능으로 본 대표 시인

며칠 있으면 수능 시험이 실시된다. 국어 영역에서 출제되는 문학 작품들은 70만에 가까운 독자들에게 동시에 읽히고, 기출문제로 공부할 수백만 명의 독자들에게도 읽힌다. 그런데 이 독자들이 작품을 깊이 음미해 볼 시간 없이 짧은 시간에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의 감동을 잘 느끼기 어렵다는 맹점은 있다. 어떤 독자들은 작품을 읽고 오히려 작가들을 미워하기도 한다. 수능에 가장 많이 출제된 작가는 단연 송강 정철인데, 고전시가이다 보니 내용 해석도 어려워 어떤 학생들은 타임머신으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정철의 유배지에 가서 사약을 내리고 오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수능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들을 출제하기 때문에 출제 작품들은 문학사적 가치나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이라는 점이다. 수능에 출제된 작품들 중 현대시는 문제의 분량 때문에 장편의 시를 출제하기 어렵다는 점, 기출문제를 피해야 한다는 점과 같은 시험 출제 상황으로 인한 제한이 있어서 문학사적 평가를 정확히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25년 동안 출제 목록이 쌓이면서 출제 횟수는 작가에 대한 평가와 가까워지는 면이 보이기도 한다. 수능에 가장 많이 출제된 작가는 윤동주, 김수영, 정지용 시인으로 모두 4번 출제되었다. 그런데 평가원 모의고사까지 범위를 확대해 보면 윤동주 시인은 9번 출제되어 5번 출제된 김수영, 정지용 시인보다 많다. 대신 김소월과 신경림, 서정주 시인이 6회로 더 많이 출제되었음을 볼 수 있다. 평가원 시험에 4회 이상 출제된 작가는 김광균, 김영랑, 박목월, 백석, 신석정, 이육사, 조지훈, 한용운 시인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한국의 대표 작가 목록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생존해 있는 시인들만 보면 곽재구 시인이 3회로 가장 많이 출제되었고, 황동규 시인이 2회 출제되었다. 평가원 모의고사를 포함하면 신경림 시인이 6회로 가장 많고 황지우 시인이 4회로 곽재구, 황동규 시인보다 많이 출제되었다. 김광규, 나희덕 시인의 경우 평가원 시험에서는 두 번 출제되었지만 2010년 이후 전국 단위 모의고사에서는 압도적인 빈도를 보여준다.(흥미로운 것은 20년 가까이 노벨문학상 후보인 고은 시인은 수능에 한 번밖에 출제되지 않았고, 평가원 모의고사에서도 한 번밖에 출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경림, 황지우, 곽재구, 황동규, 김광규, 나희덕 시인의 시들을 읽어 보면 우리의 역사나 시인 개인의 아픔과 성장을 담고 있으면서도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도 있다.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읽으면 참 좋은 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고은 시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고은 시인만 후보로 내세울 뿐이다.

2017-11-13 00:05:06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귤화위지(橘化爲枳)

군 복무시절 우리 부대장은 사병들의 인성 함양에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어디서 편지쓰기가 인성 함양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와서 저녁 시간이나 점호 전 정훈교육 시간에 편지쓰기를 장려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장려까지만 하면 문제가 없었는데, 중대별로 월별 편지쓰기 실적이 가장 우수한 분대에 포상 특박을 내걸면서 문제는 달라졌다. 포상이 군인 특유의 승부욕을 자극하면서 처절하고도 참혹한 편지쓰기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열심히 편지를 썼었는데, 상병 밑으로 하루 의무적으로 5통씩을 쓰게 한 분대가 첫 포상 특박을 나가자 다른 분대들도 똑같이 하기 시작했다. 군사우편은 보안 검열이 있었기 때문에 몇 줄만 써도 안 되고, 군대 생활 이야기를 써도 안 되는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편지를 제대로 쓰려면 하루 1통도 힘들었다. 그때 나는 기본 할당량 5통 이상에 글을 못 쓰는 고참의 편지까지 떠맡아야 했다. 나중에는 편지 보낼 데가 없어서 당시 인기 있던 가요책 뒤에 있는 펜팔난에 있는 주소마다 다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다. 훈련과 작업, 내무생활에 야간 경계 근무까지 피곤한 생활 중에 편지쓰기까지 더해져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편지쓰기로 인해 일어난 구타 사건이 알려지면서 6개월 만에 끝이 났다. 편지쓰기 광풍이 지나고 나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아주 단순하고 분명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군대에 들어오면 군대화된다는 것이다. 편지쓰기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었고, 인성을 함양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도 맞았다.(엉뚱하지만 나는 그때의 혹독한 편지쓰기로 필력이 상승해서 공장 기계 돌리듯 쉽게, 빨리 글을 쓰는 기술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좋은 것도 경쟁 체제 안에 들어오면 본질은 사라지고 경쟁의 한 수단이 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사용하는 사자성어가 바로 귤화위지(橘化爲枳)이다. 귤화위지는 귤이 풍토가 다른 곳에 가면 탱자가 되듯, 사람이나 제도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좋은 사람이나 좋은 제도도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장점이 드러날 수 없다는 것과, 장점이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풍토를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무사고 운동, 학교 폭력 제로 운동 같은 것은 취지는 좋을지라도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토 속에 들어가면 작은 사고들을 은폐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것은 선진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접했을 때 무엇을 주의해서 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준다. 지금 교육계에서는 교육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핀란드식 교육 방법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의 교육 풍토에서 그쪽의 수업 방법이 좋아 보인다고 우리나라 학교에 그대로 가져온다면 혼란만 가중될 것은 뻔한 일이다. 우리가 핀란드에서 먼저 보아야 할 것은 교육 방법이 아니라 교육 풍토이다.

2017-11-06 00:05:04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말의 품격

얼마 전 신고리 원전 공사 재개가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결정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여전히 뒷말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결정의 과정이 이전보다 '품격'이 있었다는 점이다. 야당에서는 정부의 결정에 대해 무책임하다거나 경제적 피해를 책임지라는 논평을 내지만, 야당이 정권을 잡았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에 대해 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결정과 같은 방식이 아니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경험으로 보면 아마 정부는 정부안을 밀어붙이고, 친정부 언론이나 단체, 댓글 부대 등을 동원하여 여론전을 폈을 것이며,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격렬한 시위를 했을 것이다. 서로의 목소리만 컸을 뿐 진정한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품격'이 있다는 것은 상황이나 기대하는 정도에 맞는 수준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기대하는 정도'는 바로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물리적 힘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과 관련된 것이다. 실제로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판단 능력이 있다고 가정을 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던 시대를 지나 사회가 이만큼 발전해 온 것도 그러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품격이 없는 말은 일단 큰 소리를 내면서, 원색적으로 상대를 비난하고, 욕하고, 상대의 약점을 잡아서 협박하는 것이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사람들은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똑같이 품격 없는 말로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점점 해결 방법은 멀어지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철천지원수가 되는 일이 많은데, 대부분은 품격 없는 말에서 시작된다. 신라시대 설총은 신문왕이 인사를 잘못하는 것에 대해 '화왕계'라는 우화를 지어 왕을 일깨웠다고 한다. 만약 그때 왕에게 "주위에 간신배들이나 모으고 말이야, 왕 노릇 똑바로 하십시오." 하고 큰소리를 쳤다면 왕이나 주변 신하들은 그 말을 듣기는커녕, "저, 저 미친놈, 어느 안전이라고." 하면서 도리어 역정을 냈을 것이다. 설총은 상대방을 비판하더라도 품격 있게 우회적으로 풍자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갈등이 존재하는데 모든 사안에 대해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을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엄연히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있는데, 다른 경로를 통해 결정을 한다는 것은 낭비 요소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공론화위원회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합리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는 우선 말의 품격부터 높여야 한다.

2017-10-30 00:05:01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대박과 쪽박

수능이 얼마 남지 않으면서 학교나 종교 단체에서는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행사들이 많다. 마음 같으면 모든 학생들이 다 대박이 났으면 좋겠지만 일렬로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 시험에서는 모든 학생이 대박이 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수능이라는 상황이 주는 압박감 때문에 지나치게 긴장하여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상황에 빨리 적응하고 승부에 따른 긴장감을 덜기 위해 시합 때까지 일정한 규칙과 순서에 따라 준비를 한다. 경기 전 일어나는 시간, 밥 먹는 시간부터 세부 훈련 순서 등 흔히 루틴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절차들을 꾸준히 해 나가면 실전에서도 평상시처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조급하게 생각하고 무리해서 공부하는 것보다 수능 날의 리듬에 맞추어 일정한 루틴을 지키는 것이 대박이 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말에서 운이 좋아서 크게 이득을 보는 일이나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대박'이라는 말은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대박이 나다/터지다'나, '대박을 터뜨리다/치다'와 같은 말은 20세기 후반에 영화계에서 많이 쓰던 말이었는데, 2002년 국립국어원의 신어(新語) 조사 때 처음 기록되었다. 이 말은 영화가 크게 성공을 거두었을 때 사용했던 '빅 히트'(big hit)를 대체해서 쓰였던 것으로 보아서는 크게 망했을 때 사용하는 말인 '쪽박'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전부터 완전히 망했다는 의미를 표현할 때는 관용적 표현으로 '쪽박/깡통을 차다'는 말을 흔히 사용해 왔다. 쪽박이나 깡통은 거지들이 구걸을 할 때 사용하는 필수품으로, 이것을 '(허리에) 차다'는 것은 완전히 망해서 거지가 되었다는 것을 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쪽박이다', '쪽박 나다'와 같은 형태로도 사용되면서 '쪽박'은 관용적 표현으로 사용되지 않아도 완전히 망했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대박이라는 말은 완전히 망한 것을 뜻하는 '쪽박'(작은 박)과 반대되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이익을 낸 영화를 말할 때 '중박'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을 보면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박 재미있다", "대박!"처럼 명사로 사용되던 '대박'이 부사어나 감탄사로도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유행어로 사전에 등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 사회에는 '대박'을 좇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박이라는 것도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영화 '넘버 3'의 대사처럼 잠자는 개에게는 태양이 비치지 않는 법이다.

2017-10-23 00:05:03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새(新)와 새(鳥)

연휴 마치고 오자 교무실 옆 자리에 있는 교무부장이 뜬금없이 묻는다. "민 선생, 중국에는 양을 많이 키우는데, 기후가 비슷한 우리나라에서는 왜 안 키우는지 아나?" 진지하게 묻지만 요즘 말하는 아재 개그를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 학술적인 내용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니면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정답이 뭔지 물어보면 이렇게 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도 소득세'를 내야 하니까." 이런 아재 개그는 아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요즘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집에 가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가 '아빠 한 번 맞혀 보세요.'라며 문제를 낸다. '바람이 가장 귀엽게 부는 동네는?' '분당~.', '서울이 추울 때 하는 말은?' '서울 시립대~.' 등등. 이런 언어유희들은 우리말에서 음은 같지만 뜻은 다른 '동음어'를 이용한 것이다. '춘향전'에서 월매가 거지가 되어 돌아온 이몽룡을 가리키며 "네 서방인지 남방인지 거지 하나 왔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보면 '서방'을 '서방'(西方)으로 보고 '남방'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동음어를 이용한 언어유희의 한 모습이다. 가끔씩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도 이런 언어유희를 이용하기도 한다. 파일 압축 프로그램인 알집이 설치된 컴퓨터에서는 폴더를 더 만들기 위해 '새 폴더'를 실행하면 '직박구리, 나무발발이, 논병아리, 고니, 느시'와 같은 이름의 폴더가 만들어진다. 이것들은 모두 새[鳥] 이름들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새[新] 폴더'를 만들려고 한 것을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새[鳥] 폴더'가 생성되도록 한 것이다. 아마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좋게 말하면 엉뚱하면서 재치 있다고 할 수 있고, 그냥 말하면 아주 썰렁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어 선생님들이 시험 문제를 낼 때 늘 논쟁이 붙는 것이 단음으로 발음하는 '새'와 장음으로 발음하는 '새'가 동음어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말에서 모음의 장단은 비분절 음운이라고 하여 문자로 나타내지는 않지만 음운으로 취급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두 '새'는 동음어가 아니다. 그리고 '깊이'와 '기피(하다)'처럼 형태나 철자는 다르지만 동음어인 경우도 있고, '낮'과 '낯'처럼 뒤에 오는 말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음운 현상에 의해 일시적으로 동음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전국 단위 시험 문제에서 동음어에 대한 문제를 낼 때는 이런 애매한 부분은 빼고 확실한 부분만으로 문제를 낸다. 여기에 대해 음운론 전공자들은 완전 동음어, 이철자 동음어, 부분 동음어로 나누어 동음어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언어유희나 문학적 표현에서는 소리의 장단을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동음어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

2017-10-16 00:05:00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