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상대와 절대

요즘 교육계의 가장 큰 화두가 되는 말은 '상대'와 '절대'이다. '상대적'이라는 것은 사전으로 말하면 '서로 맞서거나 비교되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반의어는 '비교하거나 상대될 만한 것이 없는'을 뜻하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이라는 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 보면, 때와 상황에 따라 위치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무슬림들에게는 불경한 것이 된다. 이것은 문화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화 상대주의이다. 시골에서는 나름 지역 유지에 부자라고 힘주는 사람도 진짜 부자들 사이에 가면 부자도, 영향력 있는 인사도 아닌 그저 그런 촌사람이 되는데, 이것은 위치의 상대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적이라는 말의 반의어에는 '고정', '불변'이라는 말도 추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계는 내신이나 수능 모두 상대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선택형 교육과정을 시행하면서 과목간 문제의 난이도에 따른 유불리를 없애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학생이 받은 점수는 상대적 위치로 환산이 되다 보니 학생의 노력보다 집단의 특성이 점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자신의 점수가 오른다는 것은 객관적인 실력이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한 명을 제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협력보다는 경쟁이 강조된다. 경쟁을 통해서 실력을 키우는 것이 나름 의의는 있다 하더라도, 진짜 문제는 공부하기가 어렵고 우수한 학생이 많이 선택하는 과목은 기피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과 학생들은 공대나 자연대에 꼭 필요한 물리Ⅱ, 화학Ⅱ는 선택하는 학생이 1%밖에 선택하지 않는다. 문과 학생들은 경제 과목이 어렵고 우수한 학생들이 선택한다고 해서 2%밖에 선택하지 않는다. 제2외국어는 찍어도 3등급을 맞을 수 있다고 소문난 아랍어 선택자가 2/3 이상을 차지한다. 수능 선택 과목이 그렇다 보니 학교교육과정도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수능에서 과목 선택을 늘리고 상대평가를 고수할 경우, 필요한 과목보다 당장 진학에 유리한 과목으로 쏠림 현상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 영어처럼 1점 차이로 등급이 나뉘고, 9점 차이는 같은 점수로 인정되는 절대평가 방식도 공정하지는 못하다. 그럴 바엔 차라리 원점수를 활용하고, 대학에서는 경제, 경영학과에 오려면 경제 과목을, 공대에 오려면 물리Ⅱ를 선택해야 한다고 지정해 주는 것이 문제가 덜한 방법이 될 수 있다.

2018-08-05 14:35:20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인간에 대한 예의

문명사회의 언어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 성(性)적인 것처럼 사회적으로 금기된 것을 이야기할 때는 모호하고 우회적인 말로 이야기하는 완곡어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은 완곡어법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완곡어법을 사용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욕설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이나 정신적 타격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완곡어법으로 변환해야 하는 말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욕설에 배설물이나, 성과 관련된 신체 기관, 죽음과 관련된 말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의 여러 언어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완곡어법은 죽음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문화가 달라도 죽음이라는 것은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피하고 싶은 것인 동시에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는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 '운명(殞命)하다'나 '유명(幽明)을 달리하다'와 같은 표현들을 사용한다. '운명하다'라는 것은 목숨이 사라지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유명을 달리하다'에서 '유명'(幽明)은 빛과 어둠, 이승과 저승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이승과 저승의 세계를 달리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계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세계로 간다는 것이고, 죽음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진다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 다른 능력과 환경을 가지고 태어난다. 타고난 능력과 환경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든 인간이라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죽는 순간에는 능력도, 환경도 모두가 똑같아진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는 사랑, 미움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모두 내려놓고 경건해지는 것이 한때 같은 세상에서 살았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할 수 있다. 지난주에는 두 분의 유명 정치인이 유명을 달리하셔서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두 분의 일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자기와 반대 진영에 있다고 해서 죽음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말을 인터넷 공간에 마구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지천명을 넘은 어른이나 정치인, 언론인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죽음까지도 진영 논리로 이해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일도, 인간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2018-07-29 14:36:12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구지가

거북아 거북아 龜何龜何(귀하귀하) 머리를 내놓아라 首其現也(수기현야) 내놓지 않는다면 若不現也(약불현야 구워서 먹겠노라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우리나라에서 향가 이전의 고대가요로는 '공무도하가', '황조가', '구지가' 세 편이 한역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 중 앞에 제시한 '구지가'는 집단적 제의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 다른 두 작품과 달리 해석이 명확하지 않고 그에 따라 여러 설들이 있다. '구지가'의 해석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거북', '머리', '구워서 먹겠다'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가락국의 건국 설화 속에 삽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거북'을 토템으로 하는 사회에서 '우두머리'(수로왕)를 내려달라고 기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해석은 토템인 동물에게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고 위협한다는 문제가 있다. 정병욱 교수는 거북의 머리에서 연상되는 것을 통해 집단적인 성적 욕망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는데, 얼마 전 인천의 한 국어 교사가 '구지가' 수업을 하다 성희롱으로 징계를 받은 것은 바로 이 해석과 관련된 것이다. '구지가'는 노래가 나온 맥락을 통해서 학생들이 다양하게 해석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교육의 현장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배경 설화를 보면 계욕일에 구지봉(거북이 엎드린 모양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림)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구간들이 모인다. 하늘에서는 '구지가'를 부르면서 춤을 추면 대왕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 거북은 구지봉의 정령이나 천상의 명을 대행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신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구워서 먹으리라고 위협할 수도 있는 가까운 존재로 볼 수 있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면서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라고 할 때의 두꺼비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학생들이 문학 시간에 배워야 할 것은 학자들의 학설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스스로 근거를 찾아 해석을 하는 것이다. 아마 논란이 된 국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성적인 해석을 이야기했을 수도 있지만, '구지가'만이 아니라 '가락국기'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충분히 제시하고,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석하고 감상하는 활동을 했다면 불필요한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2018-07-22 14:43:11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만하다

'믿을만한 정보', '콩알만한 돌', '형만한 아우'. 이 중에서 띄어쓰기가 맞는 것은 몇 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어문규정상 정답은 '믿을만한 정보' 한 개다. 그것도 원칙적으로는 맞지 않는데 허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 대부분 바로잡는데, 이 문제에서는 틀린 것을 고쳐도 또 틀리는 경우가 많다. 띄어쓰기를 바로 하면 '콩알만∨한∨돌', '형만∨한∨아우' 이렇게 된다. 의미상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만한'의 띄어쓰기가 이렇게 다른 것에는 우리말 형태소 분석에 대한 여러 난제들이 있다. '믿을 만한'의 경우 '믿을'이 '만한'을 수식하는 형태이다. 관형사형인 '믿을'이 용언을 수식한다는 것은 어법상 맞지 않기 때문에 현재 문법 체계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만하다'를 보조형용사로 분류하고 있다. 보조형용사는 '먹고 싶다'에서 '싶다'처럼 본용언에 '-아/-어, -고, -지'로 연결되어 의미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말인데, '믿을 만하다'는 형태가 일반적인 보조용언과는 많이 다르다. '만하다'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말로는 '듯하다', '척하다' 등이 있는데, 이 말들의 공통점은 의존 명사 '만, 듯, 척'에 '하다'가 붙어서 한 단어로 쓰이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믿을 만도 하다', '맞는 듯도 하다', '아는 척을 하다'와 같은 형태도 가능하다. '만하다'를 한 단어가 아니라 '앞말이 뜻하는 동작이나 행동에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나타내는 의존명사 '만'과 '하다'로 본다면 관형사형이 용언을 수식하는 모순은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만∨하다'가 아닌 '만하다'의 형태로 많이 쓰기 때문에 설명이 꼬일 수밖에 없다. '만하다'를 한 단어로 취급할 경우 '형만한'의 경우는 앞에 체언인 '형'이 오기 때문에 보조형용사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앞에 체언이 오는 경우 '만한'을 '형만한', '콩알만한'과 같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조사처럼 앞말에 붙여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에도 '형만하고, 형만하지'처럼 서술격 조사도 아닌데 활용을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만하다'가 한 단어가 아니라 '앞말이 나타내는 대상이나 내용 정도에 달함'을 나타내는 보조사 '만'과 '하다'로 보아 '형만∨한∨아우'와 같은 식으로 띄어 쓴다는 것이 현재의 규정이다. 우리말은 규정이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냐고 욕을 하게 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그렇게 된 사정을 자세히 알고 보면 고충이 이해될 '만하기도' 하다.

2018-07-12 12:00:53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고2병

2000년쯤에 생겨난 신어 중에는 '중2병'이라는 단어가 있다. 보통 사춘기가 되면 자아에 대한 의식이 강해지면서 세상을 다 아는 듯이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사춘기 특유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보통 그 시기가 중학교 2학년 무렵이어서 그런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이 병의 특징은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치유가 된다는 것이며, 치유가 된 후에는 병을 앓던 시절이 매우 부끄러운 기억, 즉 흑역사로 남는 후유증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학계에는 보고가 되지 않았지만 '고2병'이라는 새로운 병이 창궐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은 다들 자기가 서울대나 의대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1학년 성적표를 받고 난 후에는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고2병의 발병 원인은 바로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 중에는 자기가 갈 수 있는 대학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고3 가서 수능 한 방으로 역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주사제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 수능 전형은 인원이 적은 데다 재수생 비율이 워낙 높은지라 희망이 되지 못한다. 1학년 때 평균 4등급을 받았다면 죽어라 공부해서 등급을 더 올린다 하더라도 서울 상위권 대학이나 지방 국립대학을 가기는 어렵다. 고2병의 중요한 특징은 '안고수비'(眼高手卑)로 요약할 수 있다. 눈은 높지만 실력도, 현실적인 여건도 받쳐주지 않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각성해서 실력을 키우면 좋으련만,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게임이나 유튜브 같은 엉뚱한 것에 몰입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부모님과의 갈등도 많아진다. 부모님으로부터 혼이 났으면 각성해서 올바른 길로 가면 좋으련만, 혼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또 엉뚱한 일을 한다. 내신 성적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학교에 오면 자는 경우가 많다. 고3이 되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가능한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고2병은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 2학년 때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도 시험 하나를 망치는 일이 발생하면 고3이 되어서 고2병이 발생한다. 그렇다 보니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있는 3년은 살얼음판 그 자체다. 대학 입시에서 정시를 늘리는 안이 지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학 줄 세우기, 교육과정의 왜곡과 같은 부작용 때문에 정시를 늘리는 것이 어렵다면 성적 향상자 전형과 같은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

2018-07-08 15:41:05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양심

지난주 헌법재판소에서는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라 입영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를 적시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런 내용의 기사가 나올 때마다 인터넷 댓글에는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이 "그러면 우리는 비양심적이어서 군대를 갔나?" 하는 분노에 찬 목소리들이 올라온다. 그렇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는 말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양심적'이 '병역 거부자'를 수식하는 구조이다. 즉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병역 거부자' 중에서 비양심적인 사람과 상반되는 개념이지 '병역 이행자'와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양심은 사전적으로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규정된다. 맹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고 남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미워하는 본성을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양심에 대한 또 다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양심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고,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의미가 강하다. 헌법재판소에서는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에 명시된 양심에 대해서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에서 양심은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와 관련된 것으로 보편적인 도덕법칙에서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떤 관점을 취하든 양심은 선악을 판단하는 능력이자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며 인간답게 살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쉽고, 편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또 다른 경향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들은 도덕에 어긋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양심이 제동을 건다. 양심이 있는 사람에게 양심은 '양심의 가책'이라는 말처럼 의무와 불편함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양심을 지키며 살 때에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을 한다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군대에는 취사, 간호, 행정과 같이 총을 잡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살리는 병과도 많다. 그런 병과에 30개월 정도 복무를 하게 하면, 양심을 지키며 살려는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대구 능인고 교사

2018-07-01 14:50:18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비난과 비판

"한국 축구 자존심도 끈기도 없어, 투지마저 실종", "한국 축구 테스트만 하다 날 샌다." 위의 기사 제목은 최근의 것이 아니라 4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2002년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2002년 초의 기사 제목들이다. 그때 당시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에 대한 기사들은 조금 더 신랄하다. 축구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여 '무지에서 비롯된 테스트를 즉각 중단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고종수나 이동국을 안 뽑고 황선홍과 같은 퇴물이나 박지성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선수를 뽑은 것을 가지고도 문제 삼았다. 한 신문의 기사들을 보면 이런 구절들이 있다. "전쟁터에 나간 장수가 여자 친구를 대동해 물의를 일으키는 모습 역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형 전술'을 개발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반면, 필립 트루시에는 독특한 일본형 수비 전술을 개발해 성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말을 교묘하게 바꿔가며 '6월을 목표로 세운 계획에 맞춰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히딩크의 태도다. (중략) 한국 축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언어의 마술사'가 아니라 능력 있는 축구 지도자다." 이 기사의 내용을 보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히딩크와는 사뭇 다르다. 히딩크가 이러한 기사들을 보고 자신의 계획을 바꿔서 4강을 간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사가 나간 뒤에도 그는 여자 친구를 데리고 다녔고, 더 현란한 '언어의 마술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계획과 전술을 밀어붙여 결국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다. 히딩크가 그 기사들에 휘둘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기사들을 보면 '비판'과 '비난'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비판을 하는 목적은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함께 책임을 지고자 하는 의식도 반영되어 있다. 이에 비해 '비난'은 남의 잘못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는 것이다. 비난을 하는 이유는 누구를 하나 희생양으로 해서 감정을 해소하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싫다는 감정 외에 다른 근거는 필요 없으며, 책임 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망해가는 집안에서는 원래 비판보다는 비난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비난이 난무하는 곳에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게 마련이다. 일이 되게 하려면 칭찬은 앞당기고, 비난은 뒤로 미뤄야 한다. 그리고 건전한 비판을 통해 문제점들을 고쳐 가면 좋은 날이 올 수 있다.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2018-06-25 05:00: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인지환 재호위인사(人之患 在好爲人師)

내가 대학교 때 '교육사상사' 수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이야기는 『맹자』 '이루(離婁)장'에 나오는 '사람의 병은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人之患 在好爲人師)라는 구절에 관한 것이었다. 남의 스승이 되려고 사범대에 온 사람들에게 '네가 하려는 것이 사람의 가장 큰 병이야.'라고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때 교수님은 남을 가르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스승 되기를 '좋아한다'에 방점을 찍으셨다. 스승 되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남은 미숙한 존재이고, 나는 우월한 존재라는 태도가 굳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배우려는 자세가 없기 때문에 스승이 될 역량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맹자집주』에는 이 구절에 "학문에 남음이 있어 남들이 자문을 구하면 마지못해 응하는 것이 옳다. 만약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여 스스로 만족하게 되면 다시 나아갈 수 없게 되므로 사람의 병이 되는 것이다."라는 주석이 달려 있는데 교사로서, 글 쓰는 사람으로서 늘 되새기는 구절이다. 우리 사회에는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교사들이 아니라 바로 정치인들이다. 야당에서 이번 선거 내내 유권자들에게 했던 말을 요약하면 '지금 여러분들은 위장 쇼에 속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나는 알고 있는데, 너희들은 미숙하여 모르고 있다. 그러니 내 말을 따르라.'는 상당히 불편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우리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이 일일이 가르쳐야만 아는 미숙한 존재들이 아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에게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가는 꼰대 소리를 듣고 외면을 받는데, 성인인 유권자들에게 그런 말을 계속하니 비호감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40대 중후반의 사람들은 한 해 태어난 인원이 100만 명을 넘는다. 한편으로는 대학 진학률도 높고, 대학 때는 누구나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민주화의 과정과 공산주의의 종말을 보았기 때문에 무엇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도 않는다. 그런 점들 때문에 바로 앞 세대인 50대와도 정치적 성향이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보수 정당들이 비합리적인 논리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보수 정당이 배움의 자세가 없이 지금과 같은 말하기 방식을 고수한다면 앞으로도 그들의 지지를 얻기는 힘들다.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2018-06-14 16:25:54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원산폭격

현재 40대 이상인 남자들이 군대 생활을 떠올릴 때 제일 익숙하면서 끔찍한 단어가 바로 '원산폭격'이다. '원산폭격'은 '한강철교'와 함께 군대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얼차려 방법이었다. 그런데 '원산폭격'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사람들에게 뒷짐을 진 채 몸을 굽혀 머리를 땅에 박으라는 구령, 또는 그 구령에 따라 행하는 동작.'으로 등재가 되어 있지만, 얼차려 '한강철교'는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 아마 엎드려뻗쳐서 뒷사람의 어깨에 발을 올리는 '한강철교'는 단체에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산폭격'보다 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강철교'와 마찬가지로 '원산폭격'도 그 이름이 6·25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래 원산은 명사십리가 있는 갈마반도와 북쪽의 호도반도가 마주 대하면서 자연적으로 방파제의 역할을 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적어서 항구가 들어서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전국 어디서나 상엿소리에는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진다 설워마라/ 명년삼월 봄이오면 그꽃다시 피건마는/ 인생한번 사라지니 다시필줄 왜모르나"와 같은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명사십리 해당화와 같은 원산 지역의 풍경이 이승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임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천혜의 환경 때문에 원산은 조선시대부터 동해안의 중심지였으며, 경원선 철도가 생긴 뒤에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전략적인 요충지가 되었다. 6·25 전쟁 때는 인천과 함께 상륙작전 후보지로 거론될 만큼 중요한 지역이었고, 평양과 함께 집중적인 폭격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원산 지역은 성한 건물이 하나 없을 정도로 초토화가 되었는데, 그 결과 '원산'과 '폭격'은 오늘날의 연관 검색어처럼 묶이게 되었다. 그런데 한강철교는 얼차려를 받는 모양이 다리와 비슷해서 알겠는데, 원산폭격은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원산폭격의 정석적인 자세는 공중에 뛰어올라 머리부터 땅에 박는 것이다. 이때 손은 완충 작용을 하고, 재빨리 열중 쉬어 자세를 한다. 그 모습을 보면 포탄이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지면서 원산폭격과 같은 가혹 행위들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원산은 폭격의 폐허를 복구하고,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서 가장 먼저 개발될 지역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앞으로 원산폭격이라는 말은 실제로 쓰이지는 않고 문헌상에만 존재하는 화석과 같은 형태로 남을 것이다. 대구능인고 교사

2018-06-11 05:00:00

민송기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반모음

올해 수능 연계교재인 'EBS 수능특강'의 문법 부분에서 가장 많은 이의제기와 질문을 받는 것이 반모음(半母音)에 관한 문제이다. 반모음은 발음할 때 공기의 흐름이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모음과 비슷하고, 홀로 발음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자음과 비슷하다. 이처럼 모음과 자음의 중간적인 위치를 지닌다고 해서 반모음이라고 부른다. 영어의 경우에는 'y'(발음기호로는 j)와 'w'처럼 반모음을 나타내는 문자가 있어서 모음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모음 앞에서는 'an apple'처럼 부정관사 'an'을 사용하지만 'a young boy'처럼 반모음 앞에서는 자음과 마찬가지로 부정관사 'a'를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말에서는 반모음을 따로 문자를 정해 놓지 않고 '야(ya)', '와(wa)'처럼 기존의 모음 글자들을 이용해서 반모음을 표기한다는 점이 다르다.문제는 '가시어→가셔', '쏘아→쏴'와 같이 한 음절을 줄여서 발음하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데 있다. 대부분의 문법 교과서들에서는 이 현상에 대해 모음이 '축약'되는 현상이라고 기술을 한다. 축약은 '독해'가 '도캐'로 발음되는 것처럼 두 음운(ㄱ과 ㅎ)이 합쳐져 하나의 음운(ㅋ)이 되는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교과서들에서는 두 개의 모음이 합쳐져 새로운 모음 하나로 축약되는 현상이라고 기술한다. 그런데 이 말들을 실제 발음해 모습을 보면 [gasiə]가 [gasyə]가 되었고, [soa]가 [swa]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축약이 일어났다면 음운 개수가 줄어야 정상인데, 'i'가 'y'로, 'o'가 'w'로 교체되는 현상만 일어났을 뿐 음운 개수는 같다. 현행 고등학교 문법 교과서들에서는 모두 반모음을 자음, 모음과 같은 음운으로 설정을 하고 있다. 반모음을 음운으로 인정한다면 '가시어→가셔'가 되는 것은 음운 개수는 그대로이므로 축약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i'가 'y'로, 'o'가 'w'로 교체되는 것을 음운의 축약으로 기술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한 음절에는 반드시 모음이 있어야 하므로 모음의 수가 줄면 자동적으로 음절의 수도 줄어들게 된다. 모음의 수가 줄어드는 방식은 '가아서[gaasə]→가서[gasə]'가 되는 것처럼 모음 하나가 탈락되는 경우, '아이[ai]→애[ӕ]'처럼 하나의 음운으로 축약되는 경우, 그리고 앞에서 설명한 반모음으로 교체되는 경우로 설명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외우면 명쾌하지만 현상의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어렵고 애매하게 느껴지는 것이 문법 공부의 특징이다.대구능인고 교사

2018-06-04 05:00: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협상

2007 개정 교육과정부터 국어 교과에서는 '협상'을 화법의 중요한 내용 중 하나로 다루고 있다. 협상은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의견 차이로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타협하고 조정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협상이 국어과 교육과정에 중요한 내용으로 들어온 이유는 우리 사회에는 개인이나 집단 간에 견해와 주장 차이로 인한 갈등을 협상을 통해 타협하고 조정하면서 풀어가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이해 당사자끼리 서로의 이익과 주장이 상반될 때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하는 생각은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다. 반면 서로의 의견과 주장의 차이를 협상을 통해 조정하고 서로 만족하는 대안을 찾아가는 방법은 힘에 의한 일방적인 해결보다 훨씬 비용을 적게 치르는 방법이다.협상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협상을 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때의 이익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명분, 자존심, 평화 등과 같은 무형의 것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남북 간의 협상은 대치 상태로 이익을 보는 세력에게는 필요가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대치 상태나 전쟁보다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기 때문에 성립한다. 협상이 시작되면 협상 당사자들은 최대한 이익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관계이면서 협상 타결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된다. 이 말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지키면서 교섭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의 상황과 상대방의 요구와 이익을 정확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을 갖추어야 하며, 자신의 제안이 상대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려시대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왔을 때 서희는 거란 장수 소손녕이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바다 건너 송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말을 듣고 거란의 요구와 이익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송나라와 단교하고 요나라 연호를 사용하기로 하는 명분을 주고 거란군을 돌아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압록강 주변의 여진족 때문에 왕래가 드물었다는 이유를 들어 압록강 유역의 땅까지 얻게 되었다. 서희는 거란의 의도를 간파하고 적절하게 교환할 수 있는 이익을 제시했기에 고려를 구해낼 수 있었다. 협상을 할 때 아무것도 주지 않고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민송기 대구능인고 교사

2018-05-28 05:00: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수필과 벼룩시장

우리나라에서 생활정보지의 대명사처럼 된 '벼룩시장'은 영어의 'flea market'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flea market은 중고 물품을 파는 노천시장이었는데, 워낙 낡은 물건들이 많아 벼룩(flea)들이 들끓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미국 중소도시 지역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리면 지역민들의 축제가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물들을 들고나와 사고팔면서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고 사람을 만나는 재미를 즐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벼룩시장은 청계천 8가 인근의 황학동 벼룩시장이었다. 서울에 살던 시절 나도 황학동 벼룩시장을 꽤 자주 갔었다. 가난한 대학생이 헌책방을 찾아 나선 길이었지만, 거기에 가면 낡고 신기한 물건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의 내 몸으로는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의 좁은 골목, 무질서하게 벌여 잡동사니들 속에서는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똑같은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공장에서 나올 때는 똑같이 만들어진 물건이라 하더라도 주인이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색깔도 모양도 달랐다. 벼룩시장의 이러한 특징을 문학계의 거목인 김열규 교수는 글쓰기와 연관시켜서 이야기를 했다. 수필은 이 벼룩시장을 닮았다. 얼핏 보아 하찮은 것 같은 물건들, 그냥 놓쳐 버리던 우리의 마음에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을 수도 있을 일들, 그러나 우리들의 생활 속을 언제나 어디에서나 굴러다니기에 신통스러울 것이 없으면서도 생활의 때가 낀 것들, 그래서 이미 우리들 자신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 수필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래서 수필은 그러한 물건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수필은 그 사소한 것, 그 미미한 것에 대한 애정이다. 생활의 때가 낀 물건이나 일을 두고서 하는 생활의 때가 낀 얘기, 깊이 인간화된 물건과 일에 대한 인간적인 얘기, 이러한 얘기일 때 수필은 더없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래서 수필은 가장 손때 묻은 글이 된다. 생활에 푹 절여져서 익은 글, 생활에 김치처럼 익은 글, 그게 수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라고 말한 피천득 교수의 말보다 수필에 대한 상이 좀 더 분명해진다. 자신의 소소한 삶의 기록들을 놓치지 않고,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수필가가 될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2018-05-21 00:05:04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스승의 날과 교사의 날

교직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스승의 날이 부담스럽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스승'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 때문이다. '스승'은 사전적 의미로는 '가르쳐서 이끌어주는 사람'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스승의 가르침은 지식보다 도덕적인 감화라는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스승이라는 말은 도덕적인 감화를 주로 하는 종교인들에게는 어울리지만, 교육과정에 따라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중심인 교사들에게는 약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교직 초기에는 스승이라고 불릴 만큼 연륜이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부담스러웠고,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지금은 그때에 비해 열정이 많이 떨어진 것에 대한 반성부터 하게 된다. 다른 때에는 없던 부담감이 스승의 날이 되어서, 스승이라는 말을 들으면 생겨난다. 엄밀하게 말하면 스승의 날은 학교에서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종교 단체나 사회 전체적으로 기념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건강한 인격체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데에는 많은 스승들이 영향을 미쳤다. 나도 부모님으로부터 시작해서 누님들, 형님, 그리고 학교 선생님, 선배,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 후배들 중에도 스승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많았다.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 만난 스승도 있다. 그런 스승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스승의 날이라면 부담 없이 스승의 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은 모범이 되는 교육자와 관련된 날이 아니라 모두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스승의 원래 의미에 비추어 본다면 충분히 기념할 수 있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승의 날이 교사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교권을 존중하는 취지로 만든 날이라면 '근로자의 날'처럼 '교사의 날'로 정하는 것이 교사들을 위한 배려가 될 수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돈독한 관계를 다지는 날이라면 '사제동행의 날'로 하는 것이 옳다. 교사들은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촌지 문제, 교권 침해 문제와 같은 신문 기사들을 보는 것이 달갑지 않다. 그래서 스승의 날을 없애거나 근로자의 날처럼 쉴 수 있도록 청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스승의 날에 학교가 휴업을 한다면 언론에서는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어디에 맡기라고', '아이들을 PC방으로 내모는 스승의 날', '스승은 없고 교사만 있는 학교'와 같은 기사들이 나올 것이다. 교사들을 위한 날이라고 해 놓고 정작 스승이라는 말로 성직자와 같은 의무만을 강요한다. 스승의 날이 가진 불편함의 본질은 바로 그런 것이다.

2018-05-14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왕상의 잉어 잡고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꺾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생에 양지성효(養志誠孝)를 증자같이 하리이다. 이 시조는 박인로의 「조홍시가」(早紅歌) 제2수이다. 「조홍시가」는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로 시작하는 제1수의 내용 때문에 붙인 이름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효(孝)와 관련된 여러 내용들을 엮은 총 4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이다. 제1수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 즉 풍수지탄(風樹之嘆)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제2수에서는 유명한 효자들을 열거하면서 자신도 살아계신 부모님께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맹종은 늙은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어 하는데 구할 길이 없었다. 그가 대숲에 가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데 그 자리에서 죽순이 나왔다고 한다. 눈 밑에 있던 죽순을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으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노래자는 숨어 사는 현자(賢者)로 유명했는데, 나이 70이 되어서도 색동옷을 입고 부모님께 재롱을 부렸다고 한다. 부모로서 가장 행복할 때가 아이의 재롱을 보는 것이니까 노래자의 방법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공자의 제자 중 효자로 유명한 증자는 아버지가 "남은 음식이 있느냐?"라고 물으면 아버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항상 "네,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뜻을 헤아려 부모님이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양지'(養志)라는 증자의 효도 방법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실천이 가능하다. 그런데 제일 먼저 이야기한 왕상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왕상은 계모가 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어 하자 맨몸으로 강물을 녹여 잉어를 잡으려 하였다. 때마침 강에서 잉어가 튀어나와 어머니께 드릴 수 있었다고 하는데, 만약 잉어가 안 튀어나왔으면 왕상은 동상에 걸려 죽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부모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유명한 인물이 되지 못했을 수 있다. 부모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자식이 잘되는 것이다.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 자세야 십분 이해가 가지만 자기 몸을 상하면서까지 하는 일은 효도의 적절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섬김에 어떤 것이 큰가? 어버이 섬기는 게 가장 크다. 지킴에는 어느 것이 중한가, 자기 몸을 지킴이 중하다. 자기 몸을 지키면서 부모를 섬기는 것은 들었으나, 자기 몸을 잃고서 그 어버이를 능히 섬긴 것은 내 아직 들은 바 없다."

2018-05-07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댓글

예전에 국립국어원에서 제안한 순화어들은 널리 쓰이는 말들을 무리하게 순우리말로 바꾸려 한 것들이 많았다. 컴퓨터를 '슬기틀', 스마트폰을 '똑똑전화', 하이힐을 '까치발구두'로 순화하자고 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런 말들은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는 말을 사람들의 언어 감각과 맞지 않는 말로 순화를 하려다 보니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았다. 한 국어학자가 이화여자대학교를 '배꽃 계집 큰 배움터'라고 순화하자고 한 것은 국어 사랑이 아니라 사람들의 언어 감각을 무시한 잘못된 순화의 대표적인 예로 이야기가 되고 있다. 계집과 여자는 어감이 다르고 배움터와 학교는 의미도 다르다. 그런 식의 순화는 이화여대처럼 줄여서 쓰기도 어렵고 새로운 단어를 생성해 내기도 어렵다. 이와 달리 의미와 사람들의 언어 감각을 고려하여 이른 시점에 순화한 말들은 외래어, 외국어를 밀어내고 정착되기도 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댓글'이다. 댓글은 영어의 '리플라이'(reply), 줄여서 '리플'이라는 말을 순화한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다른 사람이 올린 글에 대해 답변을 하거나, 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올리는 'reply'라는 기능이 있었다. '리플'이라는 말은 현재도 '악플(惡+-ply), 선플(善+-ply)'과 같은 말에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말만 들었을 때는 의미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리꾼들이 제안한 말이 '답글, 덧글, 댓글'이었다. '답글'이라는 말은 reply의 뜻을 반영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쓴 글에 대한 응답이라는 의미가 좀 더 강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은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상정하고 쓴 것이기 때문에 답글이라고 하면 의미가 안 맞는 부분이 있다. '덧글'의 접두사 '덧'은 '덧붙이다, 덧대다'에서 볼 수 있듯이 보충하거나 추가하는 글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쓴 글에 대해 평가하는 내용들은 덧글이라는 말로 포함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댓글'은 한자어 '대'(對)와 '글'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사잇소리 규칙에 의해 '댓글'이 된 것이다. 이 말은 원래 글에 대한 글이라는 뜻이므로 원래 글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 원래 글에 내용을 추가, 보완하고 평가한다는 점을 포함할 수 있어서 가장 널리 쓰이게 되었다. 예전에는 언론사들이 뉴스를 독점하고 독자들은 그것을 수용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의 독자들은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읽고 언론사 간 비교를 하며 댓글을 통해 기사를 보완하고 평가한다. 때로는 기사보다 댓글에 더 많은 정보들이 있으며, 댓글을 통해서 여론의 흐름을 읽을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조작을 해서라도 여론을 선점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조작된 댓글은 타인을 비하하는 표현, 욕설에다 허위 사실까지 포함되어 있는데도 추천을 많이 받는다. 그런 댓글만 거를 수 있으면 댓글은 원래의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2018-04-30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화수분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전영택의 소설 '화수분'은 1920년대 비극적인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화수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행랑아범은 궁핍함을 이기지 못하여 큰딸은 쌀가게 아주머니에게 주고, 결국 내외도 눈밭에서 얼어 죽고 만다. 다만 얼어 죽은 내외의 품속에서 둘째 아이가 살아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면서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읽을 수 있다. 행랑아범의 이름 '화수분'은 재물을 넣어두면 계속해서 그 재물이 생겨서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 설화에 등장하는 보물단지를 이른다. 평생 돈 한 번 제대로 만져보지 못한 사람의 이름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할 수 있는 물건인 화수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비극적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한 반어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화수분 설화는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오는데, 약간의 변형은 있지만 이야기의 골격은 대체로 비슷하다. 가난하지만 착하게 사는 주인공이 도둑질의 유혹을 이겨냈거나 불쌍한 짐승을 살려주거나 해서 그에 대한 보답으로 화수분을 얻게 된다. 화수분의 효능을 알게 된 주인공은 가난을 벗어나게 되지만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이 정해진 것 이상을 얻으려고 하는 탐욕을 부리게 되면서 화수분의 효능은 사라진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와 비슷한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 바탕에는 먹고사는 걱정 없이 사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던 민중들의 소망과 탐욕에 대한 경계 심리가 있다. 그런데 현대 경제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해석해 보면 화수분과 같은 물건이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화수분에서 돈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그 돈을 시장에 유통시키게 되면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른 조정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물가가 상승하게 되고, 출처도 모르는 돈이 유통됨으로 인해 화폐에 대한 신용이 떨어져 부동산이나 금값이 급등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경제 교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얼마 전 한 증권사에서 실체도 없는 주식을 직원들에게 배당해 주고, 직원들이 그것을 판 사건은 화수분 이야기가 실제로도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건들에 묻혀서 더 이상 이야기가 되지 않고 있지만 현대의 화수분은 시장경제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화수분 이야기가 합당한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화수분에서 나온 재물이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물에서 빼온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도둑질처럼 보이기 때문에 매우 불편하다. 가장 정당하고 행복한 화수분 이야기는 화수분에서 재물이 계속 생겨난 이유가 자신의 정당한 노동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2018-04-23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공휴일, 어버이날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하자는 것은 대통령 공약 사항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시일이 촉박하고, 이런저런 반대가 많은 데 대해 부담이 있었던지 올해는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이 되었다. 어버이날 공휴일 지정에 반대하는 논리로 언론에 소개된 것 중에는 '공휴일 지정하면 시어버이의 날이 될 것이다' '부모님께 가지 못하는 불효자를 양산한다'와 같은 말들이 있었다. 그 말들은 그냥 '나는 시댁 식구들과 있는 게 싫어요' '나는 일하는데 남들 노는 꼴을 못 보겠다' 하면 될 말이지, 공휴일 지정과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는 말이다. '공휴일'(公休日)은 한자 뜻 그대로 국가나 사회에서 약속으로 정해 공적으로 쉬는 날이다. 여기에는 어린이날, 현충일과 같은 국가기념일,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같은 국가경축일이 있으며, 일요일이나 신정, 설날, 부처님 오신 날, 성탄절같이 대통령령으로 정한 국가 공휴일도 있다. 공휴일은 그날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가 부과되어 있는 날이 아니라 휴식을 하면서 편한 마음으로 그날의 의미를 새겨보는 날이다. 광복절이나 한글날에 국민들이 할 일은 잘 쉬고, 잘 놀면서 현재의 우리에게 휴식을 준 그날의 의미를 잊지 않는 것이다. 성탄절은 기독교를 안 믿어도 쉴 수 있는 날이고, 어린이날은 집에 어린이가 없어도 쉬는 날이다. 그날에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든지, 사람들 미어터지는 놀이공원에 가서 시간을 보내든지, 하루 종일 방안에서 게으름을 피우면서 보내든지 그것은 자유다. 아이와 잘 못 놀아 주었던 부모라면 어린이날을 기회로 아이와 같이 놀면 되고, 아니면 그냥 같이 쉬면 된다. 이런 공휴일들은 특별한 행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기회를,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휴식을 주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어버이날이 공휴일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공휴일로 지정된다는 것이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충'(忠)의 의미를 되새기는 현충일과 비교해 보면 우리 민족이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해 온 '효'(孝)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보면 꼭 필요한 날이기도 하다. 효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부모님께 평소 하지 못했던 안부 전화도 할 수도 있고, 어린이날 아이와 함께하는 정도의 마음을 내어 부모님 모시고 외식을 하거나 야구장을 갈 수도 있는 일이다. 부모가 되어 보면 안다. 자신한테 돈을 쓰는 데는 단돈 몇 푼에도 벌벌 떨지만 자식한테는 기죽지 말라고 땡 빚을 내서라도 돈을 크게 쓰는 부모의 그 마음을.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 금전으로 보상받기 위해 한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건강하고 올바르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은 부처님, 예수님만큼이나 숭고한 부모님의 그 마음을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18-04-16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칭찬과 신

지난주로 이 칼럼을 시작한 지 만 5년이 지났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면 매주 글을 쓰는 것이 힘든 일이기는 했지만 나태해지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해 계속 생각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해 올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 잎새에 이는 바람과 같은 댓글이나 반응 하나에도 괴로워하는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칭찬(稱讚)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윗사람의 명령을 받고 일하는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시간을 내서 글을 쓰는 것이 참 힘들다 생각을 하다가도, 독자들께서 해 주시는 '공감한다.', '유익했다.' 이런 말 한마디를 들으면 언제 그렇게 힘들었냐는 듯 또 글을 쓰고 있었다. 칭찬하는 말이 좋은 것은 그 말 한마디가 사람 안에 있는 '신' 또는 '신명'이라는 것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신 또는 신명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에 흥미나 열성이 생겨 매우 좋아진 기분'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사용하는 예나 '-나다'라는 말과 결합하는 것을 보아서는 '흥미, 열정, 즐거운 기분'이 융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신을 '정신'(精神)의 '신'(神)에서 온 한자어로 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신명'도 신의 명령을 뜻하는 '신명'(神命)이나 천지의 신을 뜻하는 '신명'(神明)에서 온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신난다는 의미로 그런 한자어를 사용한 기록을 찾기 어려워서 어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옛 기록에서 신나게 어떤 일을 한다는 의미를 기록할 때는 주로 미칠 '광'(狂) 자나 유쾌할 '쾌' (快) 자를 사용했다. '광' 자는 '독서광, 야구광'처럼 무엇인가에 미친 듯이 열정을 쏟는 사람을 지칭하는 접사로 사용되는데, '신'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안에 있는 신을 내면, 그렇게 해서 신바람이 나면 그 사회는 유쾌하고, 좋은 성과도 이루어낼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한 사회 내에 칭찬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의 영역을 보면 칭찬에 지나치게 인색한 것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상대방의 작은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비난하는 데 신을 낸다. 지난 동계올림픽 때를 한번 기억해 보자. 야당에서는 정부에 반대하는 데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유치하고 준비한 대회를 현 정부가 잘 마무리해서 고맙다고 칭찬했으면 어땠을까? 그런다고 자기 지지자들이 여당으로 가지는 않을뿐더러 올림픽 성공의 덕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면 나중에 정권을 잡았을 때도 충분히 할 말이 있다. 치열한 경쟁의 상황에서 경쟁자를 칭찬하는 것은 경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더 잘하기 위한 다짐과 채찍질이 될 수 있다. 우리 정치에는 누가 더 좋은 정책으로 신을 내는가 하는 경쟁이 필요하다.

2018-04-09 00:05:03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잘못하다'와 '잘 못하다'

국립국어원의 2017년 4분기 표준국어대사전 수정 항목 중에는 '잘못'을 '잘-못'으로 바꾼 것이 있다. 이것은 '잘못'이라는 말이 부사인 '잘'과 '못'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합성어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작년 평가원의 6월 모의고사에서 부사와 부사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명사의 예로 '잘못'이 나왔을 때, 일부 학생들은 표준국어대사전을 근거로 정답이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에는 '잘하지 못하여 그릇되게 한 일. 또는 옳지 못하게 한 일.'이라고 하여 이 단어가 '잘'과 '못'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런 점들을 반영하여 뜻풀이와 표제어가 맞지 않는 것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잘못'의 뜻풀이를 보면 '잘하지 못하여'와 '그릇되게 한 일'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잘(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나 숙련도가 부족하여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속도와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들어있지 일의 방향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잘 못'하는 것은 일을 옳지 못한 방향으로 수행한다는 의미를 가진 '잘못'과는 많이 다르다. 이것은 '잘못'이라는 말이 '잘 못'에서 온 것이기는 하지만 명사나 부사로 굳어지면서 그릇된 것, 옳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잘 못'하는 것도 많고, '잘못'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잘 못하는 것은 많이 연습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잘하게 될 수도 있다. 능력이 있고, 자신감이 있고, 노력하는 사람은 짧은 시간에도 잘하게 된다.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꾸준히 노력하게 되면 조금 시일이 걸릴 수는 있어도 누구나 잘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능력과 노력은 없지만 자신감만 있는 경우에는 잘못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잘못을 한 경우에는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고, 고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덮어 버리려고 할 때 발생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잘못된 길을 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고치려고 해도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되어 고치기 어렵다. 잘못을 덮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요하고, 그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리수들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잘못'에 대해서 관대하지 못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잘못을 드러내고 사과하는 것보다는 숨기는 것이 확률상 유리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잘못을 고치는 경우에는 당장 원상복귀는 어렵다 하더라도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 반면 잘못 끼워진 돌 하나가 거대한 성을 무너뜨리듯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는 권력도 은폐된 '잘못' 하나 때문에 무너진다는 것을 최근의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2018-04-02 00:05:00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몰빵

우리말 맞춤법 중에서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것이 된소리의 표기에 대한 것이다. 된소리에 대한 맞춤범 규정은 제5항 "한 단어 안에서 뚜렷한 까닭 없이 나는 된소리는 다음 음절의 첫소리를 된소리로 적는다."라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이에 따라 '잔뜩, 절뚝거리다'처럼 된소리로 나는 것은 된소리로 적어 준다. 여기에서 '뚜렷한 까닭 없이'라는 말이 들어간 이유는 뚜렷한 까닭이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뚜렷한 까닭'은 된소리로 나는 필연적인 음운 환경을 말한다. 예를 들어 받침 'ㄱ, ㅂ' 뒤에서는 '국수'가 [국쑤]로 소리가 나는 것처럼 뒤 음절 첫소리가 된소리로 발음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된소리로 적지 않는다. 많이 틀리는 맞춤법 중 '싹둑, 납작'의 경우는 [싹뚝], [납짝]으로 소리가 나지만 뚜렷한 까닭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정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이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쓱싹'의 경우는 쉽게 쓰던 말이었는데, 규정을 적용하면 '쓱삭'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에 대해서는 맞춤법 규정 제5항에 "다만, 'ㄱ, ㅂ'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는,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 나는 경우가 아니면 된소리로 적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다. '쓱싹'은 같은 음절이나 비슷한 음절이 겹쳐나는 예에 해당하므로 된소리로 적어준다. 맞춤법 규정 제5항에서 '된소리로 나는 것'에 대한 판단도 애매한데, '어쭙잖다'와 같은 경우는 맞춤법에 맞게 써도 어색해 보인다. 그런데 파생어나 합성어에서는 앞의 규정과 또 다르다. 맞춤법 규정 제54항에는 '-꾼, -깔, -꿈치, -때기, -빼기, -쩍다'와 같은 접사는 된소리로 적는다고 규정을 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일꾼, 빛깔, 팔꿈치'와 같은 말들은 실제 발음과 차이가 없기 때문에 어렵지 않지만, '곱빼기, 코빼기(콧배기는 틀림), 귀때기(귓대기는 틀림), 객쩍다'와 같은 것은 제5항에서 규정한 것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맞춤법이 어렵다. 이와 유사한 사례이지만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리지 않은 예로는 '몰빵'이라는 말이 있다. 스포츠나 도박, 주식 투자 등에서 모든 자원을 한 곳으로 몰 때 흔히 '몰빵'한다고 말한다. 배구에서 외국인 선수 한 명만 공격을 하고 나머지 우리나라 선수들은 수비에 집중하는 것을 '몰빵 배구'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를 총포나 기타 폭발물 따위를 한 곳을 향하여 한꺼번에 쏘거나 터뜨린다는 뜻의 '몰방'(沒放)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그렇게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몰방'의 발음이나 사전의 의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몰빵'과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몰빵'을 '몰다'의 어간 '몰-'에 '생일빵, 만원빵' 등에 쓰이는 속어의 접사 '-빵'이 합쳐진 말로 인식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더 합리적인 설명으로 보인다.

2018-03-26 0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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