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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경북부 기자

[취재현장] 성범죄 2차 피해 '모르쇠'한 도교육청

최근 경북 울릉군의 한 초등학교에서 성범죄와 관련한 2차 피해가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교육 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학교 교장이었던 A씨(직위해제 상태)가 학교 공사 업체로부터 현금 50만원을 받은 뒤 피해 교직원에게 이를 학교 회식비로 집행하라고 했지만, 피해 교직원인 행정실장이 이를 거부하자 성희롱과 강제추행을 했다"는 게 경찰 수사로 밝혀진 1차 피해다. 현재 A씨는 '강제추행과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1차 피해에 대한 형사적인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또 다른 문제는 학교 안팎에서 가해진 2차 피해에 있다. 일부 학부모가 피해자인 교직원에게 성범죄 피해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는 행위가 수차례 일어났다. 학부모 대표들은 '학교를 떠나달라'는 요구도 했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진위를 묻거나 근무지를 옮겨라'고 하는 행위 모두 명백한 성범죄 2차 피해다. 해당 학교 학부모들은 피해자를 보호해주지는 못할망정 '피해 교직원의 전보조치를 요구'하며 집단으로 학생들을 이틀간 등교 거부까지 시키는 일을 벌였다. 결국 학생들은 무단결석 처리됐다.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교장 A씨가 피해 교직원을 학교에서 쫓아낸 후, 자기의 잘못을 덮으려고 학부모와 교사를 동원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학생들까지 동원된 등교 거부 사태의 전말이다. 학부모들의 주장과 집단행동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피해자인 교직원에게 성범죄 사건으로 학교가 시끄러워졌으니 학교에서 떠나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뇌물수수와 강제추행을 일으킨 '교장 A씨가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요구했어야 했다.그런데도 교육 당국은 실태조사조차 않고 있다. 피해자가 2차 피해 조사를 요청하지 않는다며, 2차 피해 조사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피해 교직원은 '2차 피해에 대해 진상조사를 요청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직장 내 따돌림 등 지금껏 일어난 2차 피해보다도 더 큰 피해를 걱정하기 때문이다.학부모들의 집단행동도 문제였지만, 경북도교육청 등 교육 당국의 성범죄와 2차 피해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대처가 문제를 더욱 키웠다. 피해자의 권리 회복과 건강한 근로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교육 당국을 향한 지탄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인 교직원을 전보 조치해 달라'는 탄원서를 작성한 교사는 말할 필요도 없다. 도교육청 감사관실 직원이 해당 학교 교감에게 문제의 탄원서에 대해 물었지만, 교감은 알면서도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감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알면서도 보고하지 않는 '학교', 보고하지 않고 대답하지 않는다고 조사할 수 없다는 '울릉교육지원청'과 '경북도교육청' 모두 2차 가해자다. 2차 피해 예방에 나서야 하는 교육 당국의 태도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경북도교육청과 울릉교육지원청, 해당 학교 등 교육 당국은 성범죄 2차 피해 사건을 은폐·묵인할 의도인가.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을 살펴보면, 성 관련 비위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히는 불법행위를 할 경우 관련 직원에 대해 교육 당국은 최대 파면까지 할 수 있다.가해자인 교장 A씨는 피해자인 교직원에 대해 업무상 '갑'의 위치에 있다. 뇌물수수와 강제추행 그리고 2차 가해는 '갑'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가 범죄불법행위까지 용납할 것을 기대하며 행한 '갑'의 횡포다.'갑'의 횡포를 막지 않고, 방조한 교육청 또한 나쁜 '갑'이다.

2019-08-13 14:00:52

경북부 전병용 기자

[취재현장] 구미형 일자리에 거는 기대

장기적인 경기 불황으로 침체 길만 걷던 경북 구미에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구미형 일자리 만들기에 ㈜LG화학이 6천억원 규모의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 생산 공장을 2021년 하반기까지 구미5국가산업단지(이하 구미5산단)에 건설할 예정이다. LG화학은 시장 수요·기술 경쟁력 유지를 고려했을 때 국내에선 완제품인 '배터리 셀'보다는 양극재 등 소재 공급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이에 경북도와 구미시는 LG화학의 투자 입맛에 맞는 유치 계획도 내놓았다. 11일부터 경북도와 구미시, LG화학 등은 구미5산단에 배터리 양극재 생산 공장 신설을 두고 실무 협상에 들어갔다.장세용 구미시장은 "광주형 일자리 때와는 달리 구미는 고임금 문제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특히 외국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던 공장 건설 사업을 국내 투자로 돌렸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고무됐다. LG화학의 구미 투자는 구미형 일자리를 놓고 여야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 얻어낸 산물이다.구미는 올해 초 120조원 규모의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사업 유치 실패의 쓴잔을 맛봤다.그만큼 구미 경제 부활을 기대했던 시민들의 상실감과 허탈감이 컸다. 비록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사업 유치는 실패했지만, 구미형 일자리 사업에 LG화학이 투자하기로 결정한 만큼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먼저 구미형 일자리 사업 성공을 위해서 시민의 환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지난해 연말부터 들불처럼 일어났던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조성사업 유치 운동처럼 시민이 합심해야 한다.또 구미시는 구미형 일자리 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친화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김현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 5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구미형 일자리 사업과 관련해 LG와 논의를 시작할 때 LG 측이 과거 구미에 대한 서운했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적이 있다"며 "고압적이고 관료적인 데다 마치 '갈 테면 가라'는 식의 행정이었다. 어떠한 요구를 해도 수용해 주지 않고 무관심했다"며 구미시에 일침을 놨다.또한 김 의원은 "LG가 정주 여건 개선에 관한 투자와 지원을 구미에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가 LG화학을 성공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선 구미를 기업친화적 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구미시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 만들기'를 추진해 왔지만, 김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기업체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LG화학이 구미5산단에 유치되기 위해서는 폐수처리장, 전력 공급, 부지 제공, 정주 여건 및 교육 환경 개선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이제는 구미 경제 부활이 절박한 시점에 다다랐다. 이러한 시민들의 절박함에 구미시가 답해야 한다.구미시는 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원스톱으로 가장 먼저 문제를 해결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어렵게 구미 투자를 확정한 LG화학이 구미 경제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도록 구미시는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지원 사격에 나서야 한다.

2019-06-11 11:10:40

박기호 경북부 기자

[취재현장] 경북 울릉군, 공무원이 변해야 한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기에 업무 처리에 있어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그 처신 또한 올곧아야 한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시점에 울릉군 공무원들은 여전히 1970년대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울릉군의 한 건설폐기물처리업체가 수년 동안 갖가지 불법을 저질렀고, 울릉군 공무원들은 이를 묵인하고 심지어 업체 대표의 불법행위를 돕기까지 했다.업체 대표가 건설폐기물을 일주도로변에 수년간 불법 야적해도 공무원들은 단속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무원이 나서 불법 야적장을 임야에서 잡종지로 지목변경까지 해준 것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15년 전 울릉군 내부 서류가 유출돼 지목변경 근거 서류로 사용됐으니 말이다.또 허가와 달리 사업장에 인접한 타인 소유 토지에 방진벽을 두르고 건설폐기물과 순환 골재를 불법 야적해도 울릉군 공무원들은 '몰랐다'고 한다. 건설폐기물처리업체 실소유주의 부동산실명법 위반 등 불법은 오랜 기간 이어졌다. 결국 이들은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지난 몇 달간, 울릉군 행정의 또 다른 문제가 잇따라 드러났다. 취재현장에서 드러난 사건들 행태는 비슷했다. 울릉군 행정은 힘 있고 빽(?)있는 자들과 공무원 스스로 매우 관대했다.수년째 농지를 불법으로 개발해도 울릉군은 어떠한 행정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병원 건물인 행정재산을 마을회에 임의로 위탁해줘 주민들이 주택으로 사용했고, 그들은 병원 건물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마을권역별사업으로 십수억원을 들여 지은 자치센터는 건축물이 도로를 침범해 건축 승인을 못 받아 수년째 방치돼 있다. 또 다른 행정재산은 옥상을 개인에게 임의로 임대한 후, 불법 건축물을 짓도록 허가까지 해줬다.울릉군 행정, 이번 기회에 바꾸자. 원칙이 무너진 행정에 더 이상 울릉군민들이 따르지 않는다.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모두가 한목소리다. 대다수의 사건은 지역민들 입에 먼저 올랐던 것이다. 유독 공무원들만 듣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지난 잘못을 왜 자꾸 들추느냐' '공무원들이 의기소침해 일하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지난 잘못에 대한 반성과 마침이 없다면, 새로운 시작도 힘들다. 대충 지나가면 누구에게는 이득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 대다수에게는 큰 손해다. 이런 행정의 폐해는 고스란히 주민들 몫이다.'법을 어겨도 시간만 지나면 그만이다'는 생각과 관행을 바꾸는 변화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준을 바로잡아 누구에게나 공평한 행정을 펼친다면, 신뢰받는 공무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공무원의 행정행위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언론이나 수사기관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공무원 스스로 변해야 한다. 공무원은 특정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군수나 상사를 위해 일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당당한 공무원 자신과 울릉군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울릉군민 모두는 공적인 일을 하는 공무원을 기대한다.

2019-05-14 11:30:44

강은경 서울정경부 기자

[취재현장] 물산업클러스터 순항을 위한 돛

'물기술인증원이 물산업클러스터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취재 과정에서 들었던 수많은 얘기 중 한국물기술인증원의 가치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던 말이다. 물기술인증원의 향방에 지역사회의 관심이 이토록 쏠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그만큼 물기술인증원이 국가물산업클러스터가 있는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 이로 인한 된서리가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으로 치면 '몸통'(물산업클러스터)만 대구에 남고 '뇌'(물기술인증원)는 다른 곳에 가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물기술인증원 없는 물산업클러스터는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대구시와 인천시, 광주시가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물기술인증원은 지난해 6월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물기술인증원은 윤재옥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대구 달서을)이 발의한 '물관리 기술 발전 및 물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해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설립 근거가 마련됐다. 품질과 성능을 보장하는 인검증 업무를 맡게 될 물기술인증원은 물기술산업법에서도 핵심이다.대구시는 가장 물망에 올랐지만 법에 설립 지역이 명시되지 않아 처음부터 험로가 예고됐다. 물기술인증원을 중심으로 관련 공공기관 추가 이전 가능성과 기업 투자 등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자 인천시와 광주시를 비롯해 대전시, 경기도까지 경쟁에 뛰어들어 한동안 안갯속이었다.결정적으로는 지난해 말 대구가 후보지 가운데 가장 유리한 여건을 갖췄다는 환경부 자체 용역 결과가 나온 이후 대구 유치 당위성은 점차 무르익었다. 대구가 물산업에만 최적화된 시설과 장비, 인력을 갖추고 있고 관련 기관이 집중돼 업무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쉽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를 위한 테스트, 해외 진출까지 모두 한곳에서 가능한 것이다.또 지난 3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를 찾아 "연구개발, 기술 성능 확인과 인증, 사업화, 해외시장 진출까지 물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지원하겠다"고 언급했고, 지난 4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지도부도 대구를 찾아 물기술인증원 유치 지원을 약속하면서 분위기는 고조됐다.하지만 환경부가 지난 1월 물기술인증원 설립위원회를 구성한 이후 늦어도 4월 초까지는 입지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선정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오는 6월 준공이 임박한 물산업클러스터 핵심인 물기술인증원 설립 지역이 확정되지 않아 기업들이 입주와 투자를 꺼리는 등 자칫 클러스터 운영 채비가 늦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소재지 발표가 10일쯤으로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 열린 설립추진위원회 4차 회의에서는 물기술인증원 소재지 논의 결과, 대구에 설립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전해지면서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물기술인증원이 물산업클러스터에 설치돼 국가 물산업 허브 조성과 수출 도약의 계기가 되고, 대구가 글로벌 물산업 중심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돛을 비로소 올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9-05-07 17:07:50

엄재진 경북부 기자

[취재현장] 경쟁자들의 의미있는 '포옹'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말한다.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주인 되는 축제라고도 말한다.하지만 선거판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선거 때만 되면 지연·학연·혈연에 얽매이고, 세균처럼 솟아나는 각종 선거 브로커들에 의해 민심이 갈라진다. 네 편, 내 편이 명확해지고, 이웃 간에도 내 편이 아니면 원수처럼 으르렁대고 할퀴어댄다.그러니 선거가 끝나면 승자도, 패자도 결국엔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몸과 마음에 파인 깊은 생채기를 안고 어떻게 건전한 정책을 만들고, 건강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는가?인구 1만7천 명. 대도시 아파트 한 개 단지에 불과한 전국 최소 규모 영양군은 그동안 선거로 인한 편 가르기가 심각했다. 인구가 많은 지역보다 주민들끼리 갈등하고 반목하는 느낌이 상대적으로 컸다.선거 결과, 승자는 공직사회와 지역사회의 각종 공공단체를 점령군처럼 자기 사람들로 장악했고, 이는 패자들을 곧바로 지역 개발의 반대편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니 지역이 사그라들고 지역 소멸 위기가 바로 눈앞에 다가와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15일 영양군청 대회의실에서는 이런 영양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의미 있는 '포옹'이 있었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맞붙어 경쟁했던 오도창 영양군수와 박홍열 영천시장애인복지관장이 지역 발전을 위해 손을 맞잡고 포옹한 것이다.선거가 끝난 지 300여 일 만이다. 두 사람은 50여 명의 기자와 20여 명의 지역 어르신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 갈등을 조장하거나 화합을 저해하는 어떤 말이나 행위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이날의 '포옹'은 선거 역사상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일대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적 뒷거래' '내년 총선을 겨냥한 포석' '오 군수 딸의 법적 문제 해결을 위한 뒷돈 거래' 등 억측들이 난무했다.하지만 두 사람이 맞잡은 손 어디에도 그런 구린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어려워지는 지역 현실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이 서로를 향했던 것이다. 오 군수는 선거로 인해 상처를 준 선배인 박 관장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고, 박 관장은 모든 것을 털고 오 군수의 손을 잡은 것이다.이들이 3년여 후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다시 경쟁자로 맞붙을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이날의 '포옹'은 지역 발전이나 개인의 정치적 행보로나 단연 필요했고,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다.박 관장은 이날을 위해 일주일여를 영양으로 퇴근해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켰다. 오 군수 딸의 연설과 동영상 배포가 59표 차 석패의 이유라 믿고 있는 지지자들을 지역 발전 동반자로 돌려세우기란 힘들었을 것이다.이제, 공은 오 군수에게 넘어갔다. 군정을 책임진 사람으로 이날 '포옹'의 의미를 어떻게 실천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약속대로 공직사회나 지역사회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어떤 행위도 경계해야 한다.특히 오 군수 주변에서 논공행상으로 호가호위하면서 '인의 장벽'을 치고 있는 몇몇 인사들부터 스스로 지역과 오 군수의 성공을 위해 물러서야 한다.

2019-04-16 11:09:58

김윤기 경제부 기자

[취재현장] 우리나라 로봇산업이 성장하려면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지역 로봇기업인들에게 며칠째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로봇산업 집중 육성 의지를 밝히면서 추후 국가 차원의 지원책 마련에 대해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161개 로봇기업이 연간 7천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약 3천 명이 로봇산업에 종사하는 대구시 역시 2024년까지 3천억원을 투입해 로봇혁신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로봇산업은 자동차 등 전통적 주력 산업이 주춤한 우리나라로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분야다. 2011년부터 연평균 13.4% 성장하는 등 성장세가 가파르고 스마트팩토리 등 4차 산업혁명에도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로봇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은 무엇일까? 문전일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은 수요처 확보를 꼽았다. 로봇을 쉽게 쓸 수 있게 해주면 안정적인 수요처를 바탕으로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거대 내수 시장을 앞세워 2017년 기준 세계 로봇 판매량의 3분의 1을 가져가는 중국이 제조업 로봇시장의 26.9%를 차지하고 있는 것, 현대자동차란 안정적 수요처를 확보한 현대로보틱스가 세계 5위 수준의 로봇기업으로 자리한 것 모두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다.하지만 막상 로봇산업 종사자들은 우리나라에서 로봇 수요처 확보가 쉽지 않음을 토로한다. ㈜큐라코의 배설케어로봇은 이 같은 문제점을 겪은 대표 사례다. 이 업체의 이훈상 대표는 2012년 외상 환자였던 아버지를 모신 경험에서 환자의 대소변을 자동으로 흡입해 처리해 주는 배설케어로봇을 개발했다.하지만 국내에서는 좀처럼 수요처를 찾지 못했다. 2007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됐지만 '복지용구 렌털 비용'으로 연간 160만원을 지원할 뿐이었고 그나마 배설케어로봇은 항목에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그렇다고 대당 1천만원 정도의 제품을 선뜻 구매할 사람도 드물었다.같은 시기 일본은 달랐다. 일본은 2012년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 격인 '개호보험'을 통해 배설케어로봇 제품 구매 비용의 90%를 지원받을 수 있게 돼 시장이 열리고 다수의 기업이 자리 잡았다.내수 시장이 사실상 없어 어려움을 겪던 큐라코는 다행히 기체와 액체, 고체를 동시에 흡입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일본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외산 제품이란 한계를 극복하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00억원 이상의 매출이 예상되는 등 선전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는 국내에서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사회적 약자 편익 지원사업'에 선정돼 광양시에서 배변케어로봇 64대를 도입해 평가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우수한 기술력을 확보한 큐라코는 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성장하는 로봇시장에서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지원사업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제2의 큐라코가 탄생할 수 있을까?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대당 1억원을 호가하는 각종 재활치료로봇 개발업체도 큐라코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아직까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탓에 이용 단가가 높아지면서 환자가 외면하고, 결국 수요처를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로봇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규제 개혁 등 정부의 전향적인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2019-03-26 15:53:25

[취재현장]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

일자리 감소와 임금체불 등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이 우리 주변에서 현실화하고 있다.대학생인 기자의 동생은 지난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휴수당까지 포함해 시급이 1만원을 넘자 호주머니가 두툼해질 생각에 동생은 고된 하루를 마치고 계산기를 두드렸다.첫 월급을 받으면 기자에게도 선물을 해주겠노라고 호기롭게 약속했지만 3월이 된 지금도 기자는 그 선물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임금을 받지 못해서다.기자 역시 화나고 속상한 마음에 임금체불 신고를 하려는데 동생이 그동안 사장에게 받았던 문자를 보내줬다. 다 읽고 나니 망설여졌다."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노동부에 현 상황을 전달하고 자금계획 방법들을 전달하겠습니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피로감을 제공해 너무 미안합니다."줄어든 매출에 인건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사업 장비들을 모두 매각하는 방법으로 전국 업체들을 접촉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알바생의 경쟁자는 사업자가 아니라 같은 알바생이었고 그마저도 근무시간이 줄어 월급이 쪼그라들었으며, 고용주도 줄어든 매출에 결국 모두의 벌이가 열악해진 상황이었다.2년 새 30% 가까이 급등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는 이미 지표로 확인되고 있다.한국은행이 최저임금과 고용구조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오히려 근로 시간과 급여가 줄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 임금체불액은 1조6천억원을 넘어선 가운데 임금을 받지 못한 사람은 35만여 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여러 사정으로 물질적 어려움과 정신적 불안함, 사업주에 대한 원망을 겪는 근로자들이 주변에 적지 않음을 말해준다.대구경북 등 지방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수도권보다 영세업체들이 많고 지역 경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지난주에는 기자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복도 집집마다 종이가 붙어있길래 전단인가 봤더니 현관 앞에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입주자님들, 저희 관리사무소 직원 16명이 모두 해고통지를 받았습니다." "저희 직원들은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로서 관리단과 용역회사의 '을 중의 을'이지만 한편으로는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부모 또는 남편들입니다."수백 장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을 심정을 떠올려봤다. 피부에 닿는 현실은 정책에 쓰여 있지 않는다는 생각에 답답했다.2020년 적용할 최저임금도 심의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현행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해야 한다.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급속히 올린 최저임금 이후 오히려 일자리 감소와 소득분배 격차는 최대치로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선의에 기반한 정책이라도 현실과 괴리를 좁히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해법이 시급하다.사람 뽑기는 어렵고 자르기는 쉬운 세상이 된 가운데 최하층 임금노동자들이 감당하고 있는 최저임금의 역설이자 현실이다.

2019-03-12 17:26:55

이통원 기자

[취재현장] 작은 불씨가 대형화재로 '예방은 없나'

"작은 구멍이 큰 배를 가라앉힌다."작은 문제가 큰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뜻의 영국 속담이다.최근 대구에서는 작은 분진으로 인해 시작된 화재로 92명의 시민이 피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심지어 3명은 목숨을 잃었고, 4명은 중상을 입어 치료 중이다. 바로 지난달 19일 발생한 대보사우나 화재 사건이다.이날 화재는 목욕탕 구둣방 내부에 있던 콘센트에서 불이 시작됐다. 경찰은 2차례에 걸친 정밀 감식 결과 콘센트에 꽂힌 플러그에서 발화가 시작됐다고 결론을 내렸다.화재 당일 대보사우나 인근은 아수라장이었다. 구도심 지역에 위치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오거나 고정적으로 목욕탕을 들르던 고객이 많았던 만큼 피해자들은 서로 친분이 있는 이들도 있었다. 혹시나 지인이 피해를 입진 않았는지 물어보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주민들을 통제하는 경찰과 불을 끄는 소방관 등이 뒤섞이면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이른 아침부터 비까지 내려 스산한 가운데 연기는 불이 꺼진 뒤에도 몇 시간 동안이나 건물 위로 뿌옇게 치솟았다.기자가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잔불 정리 작업을 하고 있던 내부에 들어가자 매캐한 냄새와 함께 재와 검게 그을린 벽만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된 천장은 모두 타버린 상태였다.노후된 플러그에서 트래킹(tracking) 현상으로 시작된 불꽃이 대형 화재로 번진 것은 내부 인테리어가 불에 잘 타는 가연물이 많았던 데다, 스프링클러가 없어 초기 진화가 되지 않았던 탓이다.대보사우나 건물 위층의 아파트 주민들은 한동안 전기와 수도 등이 끊어지며 여기저기서 이재민 생활을 하다 주말을 기점으로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시름은 여전하다. TV도 안 나오는 등 생활의 불편이야 조만간 해결되겠지만 가장 큰 고민은 언제 또다시 불이 날지 모르는 노후된 주거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불안감이다.이번 화재 피해는 단 19분 만에 발생했다.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이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12분 만에 큰 불길을 잡았지만 3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나마 신속한 출동과 진압으로 손을 썼지만 인명 피해는 컸다. 만약 이용객이 더 많고 차량 통행이 많은 낮시간대에 화재가 발생했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아찔할 정도다.경찰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전기적 요인으로 봤다. 이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선 각 가정마다 사용하는 각종 전기 장치에 대한 각별한 주의와 관리가 절실하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사용하지 않을 때 전기 플러그를 뽑아 두고 노후된 설비는 제때 교체해야 한다. 특히 콘센트 등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꼼꼼히 관리해야 한다. 이곳은 플러그를 꽂고 빼는 과정에서 스파크가 튀며 먼지에 옮겨붙어 화재 발생 가능성이 상존한다.법적으로 설치 의무가 있는 화재 장비들은 화재 발생 시 각종 감지기와 스프링클러, 소화기 등이 작동하며 발생 후 피해를 줄이기 위하는 데만 맞춰져 있다.불이 나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화재 발생 소지를 미리 예방하는 것이 진정한 소방활동의 시작이 아닐까.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2019-03-06 06:30:00

박상구 경제부 기자

[취재현장] 최고의 자영업자 대책은 양질의 일자리 발굴

지난달 매일신문 지면에 '자영업자 희망프로젝트' 연재를 시작했다.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경북 자영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가 되기를 바라는 취지다.취재차 만난 자영업자들에게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 외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낙후된 상권에 자리 잡았다는 점과 혼자 일한다는 점이었다. 지역 자영업자들이 주로 호소하는 최저임금 인상, 임대료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이었다. 또 다른 특징은 처음부터 자영업을 생각한 경우가 생각보다 적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만난 자영업자 대부분은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했거나 취업난에 창업을 택했다. 남다른 아이템으로 성공을 거둔 그들에게도 자영업은 '차선책'이었다.수년째 취업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카페를 차렸다는 한 자영업자는 "대구는 경쟁이 치열해 뼈 빠지게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이 일반 직장인 월급과 큰 차이가 없다"며 "어느 정도 매출이 확보된 지금도 그냥 취업하고 회사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다 안 되면 카페나 차려야지'라는 말은 현실적이면서도 정말 위험한 얘기"라고 했다.지역 자영업자들이 전례 없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월 기준 자영업자가 대다수인 도·소매, 숙박음식점업 취업자는 경기 부진 영향으로 전년 대비 3천 명 줄었다. 빚을 내가며 버티는 자영업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자영업자 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자영업자의 대출액은 432조2천억원에 달했다. 일반 가계대출까지 합하면 자영업자 빚 규모는 7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최저임금 인상, 카드 수수료, 비싼 임대료 탓도 물론 있겠지만 핵심은 아니다. 자영업자 인건비 지원, 임대료 인상 폭 제한 등 정부 지원책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이유다.지역 자영업자 어려움의 근본적 문제는 지나친 경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수는 564만 명에 이른다. 전체 취업자의 25%를 넘는 수치로 일본의 2배 수준이다. 한정된 시장에 자영업자가 너무 많아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기 힘든 구조다.근본적 해결책은 결국 양질의 일자리 확보다.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골목상권 르네상스 프로젝트,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 같은 자영업자 대책도 중요하지만 기존 고용시장에서 밀려나 불가피하게 자영업에 뛰어드는 이들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그런 면에서 대구의 최근 고용지표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지난달 대구 취업자 수가 120만 명으로 전년 대비 6천 명 늘어나는 동안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도·소매, 숙박음식점업 취업자는 3천 명 줄었다. 자영업자 비중이 조금이나마 줄어든 셈이다.취재를 위해 자영업자들을 만나며 느낀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자리의 중요성이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자영업자마저 여전히 취업해서 월급 받는 것이 낫다고 얘기할 만큼 지역 자영업자들이 놓인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아니면 최소한 인건비나 임대료 부담에서라도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자영업자는 극소수다. 최고의 자영업자 지원책은 결국 '경쟁자 제거'(?)다. 양질의 일자리를 발굴해야 지역 청년들도, 자영업자도 웃을 수 있다.

2019-02-19 10:20:24

신동우 경북부 기자

[취재현장] 탈원전을 바라보는 울진 군민의 애증

"원자력발전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죠.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밥그릇마저 뺏으려는 방식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울진은 원전도 돈도 아닌 시간이 필요합니다."장시원 울진군의회 의장과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장 의장은 국내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인 울진에서도 대표적인 반원전 인사로 꼽힌다. 그는 신한울원전 건설 계획이 발표됐을 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갑상선암에 걸린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의 피해 보상을 위한 소송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그이기에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는 시선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장 의장의 말에서 지금의 탈원전 사태를 바라보는 울진 군민들의 평론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울진 군민에게 원전은 달콤하면서도 위험한 '짐 덩어리'이다. 이 나라가 선진화될수록 사양화돼야 할 사업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지금의 탈원전 정책은 울진을 포함해 원전 지역사회의 특수성이 빠져 있다.울진에 원전 건립 계획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80년 군부 정권 시절. 이후 1988년 9월 한울원전 1호기가 건립되고, 2005년 6호기까지 우후죽순처럼 원전이 늘어섰다.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국내 원전 초기에는 국가 정책에 감히 일개 국민이 토를 달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당연히 피해 보상이 없었고, 탈핵 논리는 국가반역죄처럼 다뤄졌다. 원전 건립을 앞두고 지역민들과 국가가 처음으로 머리를 맞댄 것은 2010년쯤으로 봐야 한다. 기존 6기에 더해 추가로 4기를 짓기로 한, 신한울원전 건립 계획이 발표된 시기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30년이나 흐르고, 지역민들의 선택은 공존이 전부였다.원자력학회에 따르면, 울진의 산업구조는 원전 의존도가 상당해 원전의 직접적인 비용으로만 35%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간접적 영향까지 합하면 최소 60% 이상은 원전산업에서 파생하는 비용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공존인 셈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운 탈원전은 생활 터전을 앗아가는 것과 같다.금강소나무와 온천을 비롯해 대게, 송이 등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원전 보유 지역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광, 교통, 특산물 홍보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지을 때도 그렇지만, 철수할 때도 지역사회의 목소리는 전혀 없다. 무조건 일방적인 지시에 군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울진에서도 신규 원전 건립을 촉구하는 목소리와 위험시설의 추가 건립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하지만, 양측 모두 갑작스러운 탈원전으로 인해 지역이 떠안게 될 피해를 우려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다행히 최근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참여해 청와대, 한국수력원자력, 산업통상자원부, 지역민이 참여하는 소통 협의체를 구성키로 협의해 지역에 작은 희망을 주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청와대가 협의체의 직접 참여를 거부하고, 단순히 컨트롤타워의 역할만을 자처한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스스로의 책임을 버리고 단순히 시간끌기를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지역민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아무쪼록 청와대가 지역에서 더 이상 불안과 불만의 덩어리가 커지지 않도록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2019-02-12 10:17:08

채원영 사회부 기자

[취재현장] 상리동 기피시설, 대구시가 나서라

대구시 서구 상리동 주민들의 설움이 폭발하고 있다. 워낙 여러 가지 기피시설이 이곳에 집중된 탓이다. 상리동에 지어질 예정이었던 동물화장장 건립 논란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안으로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최근 새방골 자동차정비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다시 분노를 토해냈다.상리동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부에서는 '님비'(NIMBY·지역이기주의)로 몰아갔다. 하지만 그곳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보면 이들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오랜 세월 쌓여온 답답함이 응어리져 있었다. 상리동 주민들은 "그동안은 살기 바빠 뭐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며 "이제는 우리도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했다. 상리음식물처리장, 분뇨처리장, 하폐수처리장, 염색산단, 와룡산 넘어 방천리매립장까지 이 모든 게 한동네에 밀집돼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배려는커녕 돌아오는 건 무관심뿐이라는 주장이다.돌이켜보면 상리동은 동물화장장과 자동차정비공장 이전에도 여러 번 언론에 오르내렸다. 2016년 모 전 대구시의원이 상리동 임야에 도로 건설 예산을 빨리 배정해 달라고 압력을 넣었다가 구속된 전례나, 1965년 도시계획도로로 지정되고도 50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새방골~가르뱅이 도로 신설 문제 등은 상리동 주민들에게 소외감을 가져다줬을 것이다. 법적 요건을 모두 갖추고, 심지어 건축허가를 완료하고도 주민 반대에 부딪혀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업자는 억울하겠지만 법과 현실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오랜 세월 갖가지 기피시설이 모두 집적된 곳에서 살아왔던 주민들에게 또다시 전해진 달갑잖은 소식은 마치 기름에 불을 붙인 것처럼 순식간에 분노로 번져나갔다. "이 정도의 심각한 반발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한 사업주의 말은 켜켜이 쌓인 주민들의 설움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반면 관할 지자체인 서구청은 주민들과 사업주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도돌이표 같은 말에 주민들은 가슴을 쳤고, 사업주는 "법적 문제가 없는데 왜 허가를 내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항의했다. 주변에 어떤 시설이 들어서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재산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주민들에게 기피시설을 받아들이라고 밀어붙일 수는 없다. 요즘은 상당수 지자체가 주민 공모를 통해 기피시설 부지를 선정하는 대신,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는 주민편익시설 건설비와 주민지원기금 등 혜택을 준다.포항시는 최근 음식물처리장 신규 부지를 주민 공모를 통해 선정하기로 했다. 달성군 서재리 생활폐기물매립장의 경우 인근 주민 2만여 명에 대해 대구시 환경자원시설 주변영향지역 조례에 따라 연 20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반면 상리동 주민들은 2011년 도시가스 무상 지원, 지난해 태양광발전기 설치 비용 일부를 지원받은 것이 고작이다. 최근에야 일부 서구의원이 나서 대구시에 지원 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행동에 나서고 있지만, 갖가지 기피시설 속에서 살아온 상리동 주민들의 해묵은 상처를 보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누구나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이제는 대구시가 나서야 할 때다.

2019-01-22 17:28:10

서광호 경제부 기자

[취재현장] 약속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일까?

지난달 25일 인사 확정 전날 대구은행 부장급 2명이 임원 발탁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몇 시간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임원 발탁의 기쁨이 퇴직의 아픔으로 바뀌었다. 이들의 인사기록 중 일부가 누락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수인지 고의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조사가 없어서다.같은 달 31일 DGB금융지주는 강면욱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DGB자산운용 대표로 선임하려 했다. 같은 날 정부는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기업을 공시했다. 다음 날인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여기에 DGB자산운용이 포함돼 있었고, 강 전 본부장은 취업 제한을 받는 신분이었다. 하루라는 틈을 노렸지만 논란 끝에 결국 낙마했다.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5월 취임하면서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약속했다. 하지만 지주는 잇따라 검증에 실패하면서 인사시스템의 허술함을 노출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에 대한 약속이 지켜졌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 같은 인사 실패를 책임지는 사람은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김 회장이 말한 또 하나의 약속이 시험대에 올랐다. 은행장을 겸직하지 않겠다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달 11일 '자회사 최고경영자 후보 추천위원회'(자추위)는 차기 은행장 후보에 적임자가 없다며 김 회장이 은행장을 겸직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에 과도한 권한 집중과 장기 집권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장이 아닌 지주 이사회(의장 조해녕)가 나서서 공정한 인사관리와 권력 독점을 없애겠다는 약속을 했다. 경영의 최종 책임자인 지주 회장은 보이지 않았다.같은 날 은행 임원들은 내부 인터넷 게시판에 회장의 은행장 겸직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직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란다. 그런데 이들 임원 16명(감사 제외) 중 11명은 김태오 회장 때 발탁됐다. 나머지 5명은 올해 12월 26일에 임기가 끝이 난다.현재 은행 임원은 회장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한목소리가 단합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문제는 '조직의 안정과 발전'을 최고경영자가 아니라 임원들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복기(復棋)이자 미래의 데자뷔와 같은 장면이 다음 날 펼쳐졌다. 이들 임원의 선배가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억울하게 비리 인사로 낙인찍혔다고 하소연했다. 수십 년간 은행에 몸담으며 헌신한 대가가 후배로부터의 명예훼손이라는 회한도 담겨 있다.열심히 일하거나 한목소리를 내도 미래는 약속돼 있지 않다. 달콤한 말과 뜨거운 확신은 때론 쓰고 차가운 현실에 부딪힌다. '분리'라는 약속이 1년도 안 돼서 '겸직'이 된 것처럼.학창 시절 힘 있는 친구들이 버스 뒷자리를 장악했듯 권력의 징후는 '보이지 않음'에 있다. 지배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권력의 욕망이자 척도이다. 부메랑이 될 약속을 굳이 나서서 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미 지배하는 것이다. 겸직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최고경영자가 지역사회에 직접 입장을 밝힐 때다.지주 자추위나 은행 임원들이 대신할 수 없다. '약속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2019-01-16 06:30:00

경북부 엄재진

[취재현장] 안동시의회 신청사, 민의 전당되기를

지난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안동시의회 조달흠 시의원은 '안동시의회 신청사 시대 개막! 신뢰 정치에 기반한 민의의 전당을 만들자!'라는 주제의 5분 자유발언에 나섰다.그는 지방의회의 역량 강화에 따른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조한 나머지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거나 월권하는 등 의회의 오만과 독선이 도를 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질타했다. 시민에게 신뢰와 존중을 한몸에 받는 지방의회로 발전해 나가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지방의회 공무 국외 연수 등 시의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됐던 '안동시의회 청사 건립'에 대한 호된 여론의 질책도 빼놓지 않았다.안동시의회 독립 청사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건립이 추진되자 집행부 예산 낭비를 감시해야 하는 의회가 오히려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데 대한 우려도 밝혔다."이제 의원 스스로 변해야 한다. 소신 있는 의정 활동이 필요하다. 내실 있는 의회가 되어야 한다. 오만과 아집을 버려야 한다.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며,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안동시의회를 실현해야 한다. 의회 청렴성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조 시의원은 안동시의회의 방향성에 대해 조목조목 언급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이런 조 시의원의 5분 발언을 둘러싸고 안동시의회는 조심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시의원 개개인의 이러저러한 입장과 신청사를 둘러싼 비난적 여론을 의식한 분위기라는 전언이다.그러는 사이에 안동시는 온갖 말썽이 불거졌던 안동시의회 신청사를 슬그머니 준공 처리했다. 공사 과정에서 드러난 금품 수수 사건은 '감독 공무원'과 '현장소장'의 개인적 비위로 경찰 수사가 일단락돼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게다가 언론과 신청사 원설계자가 꾸준히 지적해 온 설계 변경과 석연찮은 공사 자재 변경 사용 등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조처가 없었다. 언제라도 불거질 불씨를 여전히 남겨둔 채다.어찌 됐든 안동시의회 신청사를 둘러싼 논란은 이제 '집행부'에서 '의회'로 넘어갔다. 오는 2월 안동시의회는 신청사에 입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 년 집행부 더부살이를 마감하고 독립 청사 시대를 시작하게 된다.의회는 그동안 신청사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이렇다 할 입장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시민들의 비난 여론이 집행부가 아닌 의회로 쏟아졌지만 귀 막고 눈 가린 채 시간만 보내는 엉거주춤한 모양새였다."자신들이 들어가 살 청사가 얼룩지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의회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철저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상식 아니냐?"는 한 시민의 볼멘소리에 안동시의회가 이제 답해야 할 때다.조달흠 시의원의 5분 발언처럼, 지난 연말 예산 심의에서 보여준 초선 시의원들의 결기 있는 의정 모습처럼, 신청사가 그야말로 오명을 벗어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민의의 전당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9-01-08 15:04:40

홍준표 기자

[취재현장] 개인 미디어와 민주주의

2018년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 오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고자 국회 로텐더홀에 올랐다. 국회 안에 있던 모든 언론의 카메라가 그를 향했다. 순간 내 눈은 조 수석이 아닌 다른 이에게 가 있었다. 현장에 개인 미디어가 나타나서다. 이들은 국회 기자회견장인 정론관에 이따금 모습을 보이긴 했다. 그런데 이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매단 채 '백블' 현장에도 등장했다. '백블'은 기자들이 흔히 쓰는 줄임말이다. 공식적 브리핑 외에 사안을 추가 설명하거나 부연을 위해 기자회견장 밖에서 행해지는 또 다른 회견인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이른다. 독자들이 매체를 통해 흔히 보아온 대로 종전에는 기성 언론 기자로 복도를 가득 메웠다. 국회 취재 현장의 변화상이다.최근 눈에 들어온 흥미로운 모습이 또 하나 있다. 지난달 18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TV홍카콜라'가 문을 열었다. 첫날 구독자가 2만 명을 넘었고, 같은 달 31일에는 16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확보했다. 구독자 수로는 주요 정치인 중 가장 많다. 최저 조회 수가 5만 건대, 대개는 10만 건을 훌쩍 넘기고 있다. 누적 조회 수도 400만 건을 돌파했다고 한다. 31일에는 한꺼번에 1만2천 명이 홍 전 대표의 콘텐츠를 보기도 했다. 콘텐츠의 질은 차치하자. 성과만 놓고 보면 신규 채널치고는 대단한 수준이다.이는 콘텐츠 시장의 변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이 두 가지를 목도하며 19세기 말을 떠올린다. 1880년대 초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은 직류라는 송전 방식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는 직류에 의한 발전, 송전 시스템에 많은 투자를 했다. 직류는 먼 거리까지 송전하기에 전압이 낮았고 전력손실 문제로 3~5㎞ 거리밖에 송전할 수 없었다. 에디슨사의 연구원이었던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 유도와 송전에 적합한 변압기를 내놓았다. 이는 도시 전체를 밝힐 만큼 넉넉한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할 수 있게 했다. 교류는 변압이 쉽고 고압으로 먼 거리까지 송전할 수 있었다. 에디슨의 필사적인 공격과 반론에도 불구하고 직류와 교류 논쟁에서 교류가 승리했다.최근 개인 미디어를 보며 '민주주의의 변압기와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방적이고 독점적인 직류로 전달되던 정보 체계를 엄청난 파급 효과를 지닌 교류 방식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기존 언론은 모든 뉴스를 전한다.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알아야 한다고 강요한다. 개인 미디어는 시청자가 '내가 보고 싶은 주제'를 취사 선택할 수 있다.직류 방식의 일방적인 정보 전달과 독점은 정계와 언론계의 힘을 키워줬다. 개인 미디어가 소비되는 플랫폼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세대, 지역을 넘어서는 공론장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정치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더욱이 개인 미디어에서는 다루지 못할 주제조차 없다. 과거에는 언론의 그물망에 걸린 주제만 공론장의 의제가 됐다. 이제는 수많은 스몰브라더에 의해 언론이 선별하지 않은 주제도 의제가 될 수 있다. 물론 교류에도 고압이라는 단점이 있듯 개인 미디어도 '가짜뉴스'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겠다. 정치권 가까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의 상징 중 하나인 기성 언론이 개인 미디어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할지 자못 궁금하다.

2019-01-01 16:40:21

채원영 사회부 기자

[취재현장] 보이지 않는 살인마

지난 10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한 해 700만 명이 대기오염 때문에 조기 사망하고, 사망자 중 절반이 넘는 400만 명이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이 대기오염을 '보이지 않는 살인마'(invisible killer)로 규정한 이유다.최근 입수한 '도시 및 산단 지역 유해 대기오염물질 모니터링' 보고서는 대구 공기도 살인마로 변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300쪽에 달하는 보고서에는 대구 대기 중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2군 발암물질이 늘 떠다니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같은 발암물질은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과 인천, 창원 등 국내 주요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문제는 파악됐지만 해답은 마땅치 않았다. 일부 물질을 제외하면 마땅한 관리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환경보전법은 저농도에서 장시간 노출될 경우 건강에 직간접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물질 35종을 특정대기유해물질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그보다 위해성이 덜한 물질까지 포함해도 관리 대상인 대기오염물질은 64종에 불과하다. 실제로 발암유발물질로 지정됐는데도 관리 대상에선 빠진 물질이 부지기수였다. 이 때문에 지난 8월 환경부는 1군 발암물질인 벤조피렌 등 8개 특정대기유해물질에 대한 배출허용기준 신설을 입법 예고했다. 일반 대기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 등 10종에 대해 배출허용 기준을 30% 강화하는 등 규제 강화에 나섰다.그러나 배출구나 정화시설을 거치지 않고 퍼져 나가는 비산(飛散) 오염원은 사실상 관리 대책이 전무했다. 그마저도 대기환경기준이라도 있는 물질은 벤젠과 납 두 종류뿐이다. 대구시가 내놓은 대책도 배출구가 특정되는 사업장에 대한 배출허용기준만 확대, 강화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대구의 우선 관리 물질로 파악한 6가 크롬과 비소 등은 별다른 기준 강화나 대기환경기준이 여전히 없다.대기 중 발암물질을 바라보는 대구시의 시각도 아쉬웠다. 관련 공무원들은 "발암물질은 어느 도시를 가도 다 똑같다"거나 "당장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대꾸했다. 대구 취수원 이전이나 성서 바이오SRF열병합발전소 건립 문제 등 시민 여론이 들끓는 환경 이슈가 아니면 그저 '별일 아닌 일'이 돼버리는 것이다.대기오염물질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건 현장 근로자들이다. 따라서 대기오염 여부는 근로자들의 건강권과 직결된다. 그러나 지역 노동단체의 움직임은 미미했다. 매일신문 보도 이후 민주노총 경남본부가 경상남도와 창원시에 화학물질안전관리위원회의 운영과 기술·행정 지원 등을 요구하고 나선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대기 중 발암물질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구시의 대책 마련과 노동단체의 인식 개선 외에도 개별 사업장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사업장에서 유해물질 배출을 줄이려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각 산업단지들은 자발적인 저감 대책을 마련하고 현장 노동자와 시민의 건강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보이지 않는 살인마에게 미래와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 건 대구 시민 모두다. 대기 중 발암물질 문제는 특정 기관이나 단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 사회가 모두 힘을 합쳐 책임감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2018-12-26 21:30:00

경북서부본부 신현일 기자

[취재현장] 크리스마스 이브엔 산모들에게 행복한 선물이 전해지길

"산골이나 섬처럼 오지도 아닌데 내년에는 애를 낳으려면 구미나 대구 등으로 원정출산을 가야 하나요."김천지역의 한 산모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이다.지역에서 유일하게 산후조리원과 분만산부인과를 운영해오던 김천제일병원이 적자를 이유로 올해 말 산후조리원 폐업을 예고한 데다가 내년 초에는 분만산부인과 문을 닫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출산을 앞둔 산모들이 불안해하고 있다.이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 김천시는 김천시의회에 지역의 산후조리원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으로 '김천시 출산장려 지원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조례안'을 상정했다.김천시는 조례를 제정해 예산으로 분만의료기관 지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산후조리원에 매년 운영비 2천만원과 시설보강비 8천만원을 합해 1억원씩 5년간 5억원을 지원할 계획이었다.하지만 이 조례는 일부 시의원의 반대 때문에 김천시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조례가 보류된 후 기다렸다는 듯 김천제일병원은 산후조리원의 폐업을 예고했다.조례에 반대했던 시의원들은 "김천제일병원이 산모들을 볼모로 김천시의회에 대한 공갈·협박을 하는 것"이라고 발끈했다.조례에 반대한 한 시의원은 "적자라고 주장하는 근거자료를 달라고 해도 아직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특정 의료기관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직접 산모가 혜택을 받도록 조례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한 해 1천여 명의 지역 산모 중 400명에 못 미치는 인원만이 산후조리원을 이용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산모에 대한 직접 지원으로 더 많은 산모가 산후조리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적자를 이유로 산후조리원 문을 닫는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이 시의원은 "조례 심의과정에서 김천시보건소에 조례를 변경해 다시 상정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김천시보건소가 응하지 않았다"며 "자신이 직접 조례를 발의하겠다"고도 했다.이런 논란 속에 김천의료원이 "김천제일병원이 분만산부인과 문을 닫는다면 공공병원에서 분만산부인과 개설을 고려하겠다"고 밝혀 지역의 산모들이 주변 도시나 대도시로 원정출산을 하게 될 것이란 우려는 덜게 됐다.하지만 김천시의회와 김천제일병원 간의 기 싸움은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다.김충섭 김천시장이 강병직 김천제일병원 이사장을 만나 산후조리원 폐업을 고려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이 병원 관계자는 "폐업은 예고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김천시의회도 12월 정례회를 열었지만 보류됐던 조례는 아직 상임위원회에 상정조차 못 하고 있다. 다만 시의회는 이번 정례회가 끝나는 24일 이와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24일은 크리스마스이브다. 김천시의회와 김천시, 김천제일병원이 기 싸움을 끝내고 해결책을 마련해 지역 산모들에게 크리스마스 산타처럼 행복한 선물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2018-12-11 15:50:41

홍준헌 사회부 기자

[취재현장] 메시지 반박할 수 없으면 메신저 공격하라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정치권의 격언(?)이 있다. 의혹에 휩싸인 당사자가 문제 제기를 한 상대방을 '피장파장'이라는 식으로 공격하면, 지켜보던 관중들은 비판의 내용보다는 누가 더 나쁜가를 판가름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는 것이다.최근 잇따라 보도한 '대구경북패션사업협동조합(이하 대구패션조합) 보조금 유용 의혹'의 취재 과정도 그랬다. 대구패션조합은 2000년대 중반 공금 유용으로 일부 구성원이 법적 처벌을 받고 와해된 뒤, 2011년 재건된 협동조합이다. 과거 전철을 밟지 않고자 비교적 엄격하게 지켜지던 사업비 집행 규정과 원칙은 지난해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일주일에 한두 차례 출근하는 이사장은 직원의 제안이나 결재 요청을 검토한 뒤 서명을 하는 데 그쳤다. 사실상 조합 업무의 전권을 장악한 건 조합 실무 책임자였다. 해당 책임자는 자신에게 반발하는 직원이나 조합 회원사 대표들을 배제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업무를 좌지우지했다.취재 초기만 해도 각종 의혹들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던 그는 기사 게재를 며칠 앞두고 태도를 바꿨다. 자의적으로 고발자로 추정한 이들을 상대로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말라"거나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기자에게도 "모욕감을 크게 느낀다, 허위 사실을 말한 제보자가 누구냐, 거짓허위 기사를 쓰는 게 기자의 본분이냐"고 따졌고, "허위 기사와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모욕으로 법적 대응하겠다"는 문자메시지도 보냈다.그가 배포한 '해명자료'에는 정작 '해명'은 없었다. 대신 "수년 연속 일감을 가져간 업체가 다른 초보 업체에 일감을 뺏기자 밥그릇 싸움에 나섰다"고 주장했다.그의 '해명'에는 과거 대구패션조합 행사를 맡았던 수도권의 패션쇼 업체들이 대구시의 지원 예산 축소로 수익성이 떨어지자 입찰을 포기하면서 응찰 업체 자체가 줄었다는 사실이 빠져 있다. 이 해명을 두고 지역 시민단체들은 '전형적인 물타기'라고 비판했다.수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도 태무심했던 대구시의 반응도 비슷했다. 대구패션조합을 담당하는 대구시 섬유패션과는 '국비 횡령' 의혹을 아직 벗지 못한 인물이 대구패션조합 국·시비 사업 수행 담당자로 이직하도록 방치했다.더구나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오히려 전·현직 직원들을 상대로 제보자 색출에 나서기까지 했다. 대구시는 의혹 당사자들을 상대로 해명 취재가 시작된 지난 9월 이후로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보도 이후에야 느릿느릿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관련 의혹 수사에 관심을 보인 한 경찰 관계자는 "현재 대구시의 태도에 비춰볼 때 자체 감사 결과에 수사기관 고발 등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면서 "차라리 감사원이 나서거나 검·경 등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과이불개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도 잘못'이라고 했다. 대구패션조합과 대구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메신저의 허물과 법적 책임을 지적하는 식으로 입막음까지 시도했다. 숨겨야 할 비밀이 있지 않고서야 납득하기 어려운 반응이다. 자신의 허물을 타인이 묻지 못한다 해서 그 허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2018-11-27 07:30:00

경북부 김대호 부장

[취재현장] "태풍 피해 언론플레이하나?"

"피해액 가지고 언론플레이하느냐?"영덕군이 태풍 콩레이로 물 폭탄을 맞아 사경을 헤매던 9일 본지를 통해 피해 예상액이 보도되자 중앙부처로부터 영덕군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다.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을 모두 합쳐 200억원 정도 된다는 보도였다. 영덕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기 위해서는 피해액 60억원이 넘어야 하는데 3배나 넘는 수치였다.이 수치를 선뜻 믿지 못해 걸려온 전화였다.단순한 확인 전화 해프닝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이번 영덕 수해에 대한 무관심이나 왜곡된 지방 비하 시선이 담겼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한편으로는 태풍 콩레이가 동해상을 빠져나가면서 부산·울산·포항 등 인구가 많은 지역의 피해 상황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으니 '시골' 사정에 어두웠다는 점도 이해는 간다.인구 3만8천 명,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35%에 육박하는 영덕에서 다들 대피하기 바빴던 지경에 당시 상황을 유튜브나 방송사에 재빠르게 제보할 사람도 없었으니 제대로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던 탓도 있다. 하지만 '언론플레이라니…'. 기자는 이를 기사화하려 했지만 영덕군 관계자가 만류하기까지 했다.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받아야 하는데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됩니다"라고.피해 초기 영덕군의 추산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영덕군은 1991년 태풍 글래디스 때 328㎜의 기록적인 폭우로 193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이번 콩레이는 영덕에 이달 5, 6일 이틀 동안 314㎜의 비를 뿌렸다.사실 이번 태풍 콩레이로 영덕보다 비가 더 많이 온 곳은 포항 북구 죽장면 하옥리로 479.5㎜나 됐다. 영덕과 맞닿은 포항 북구 죽장면 향로봉(해발 932m)과 영덕군 달산면 팔각산(632m) 사이 계곡물은 북으로는 영덕 오십천으로 흘러 이번 범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집과 논밭이 잠기고 길이 끊기고 산사태에다 배도 떠내려갔다. 임시 대피자만 2천200명이다. 중소기업 10여 곳도 공장이 잠겼다. 침수 차량도 300대 정도로 집계됐다. 인구 3만8천 명의 작은 시골에 인구 절반 가까이가 몰린 주요 3개 읍면 소재지가 완전히 초토화됐다.이 때문에 피해액 200억원 이상이라는 수치는 영덕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한 고참 공무원들의 축적된 현장 경험과 상황, 자료를 종합해 추산한 것으로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피해 상황은 재난관리시스템에 입력 후 정부 실사가 뒤따른다. 거짓말을 하거나 언론플레이할 이유도 없다. 23일 현재 잠정 집계된 공공 부문 피해액 184억원, 민간 부문 피해액 140억원 등 300억원이 넘는다. 군의 판단이 그리 틀린 것이 아닌 것이다.사정이 이런데도 영덕 피해에 대한 국민 관심도 정치권의 관심도 거의 무시 수준이다. 피해 2주가 지나면서 자원봉사자도 급감해 군청 공무원들이 주말까지 피해 현장에서 청소와 수리에 투입되고 있다. 성금도 포항 지진의 5% 수준이다. 관심은 고사하고 되레 태풍 피해 초기 인터넷 뉴스 댓글에 '대게 바가지 씌우더니 고소하다. 앞으로 바가지 씌워 피해 벌충하라'는 식의 비아냥이 등장하기도 해 가뜩이나 힘든 영덕을 아프게 하고 있다."서울이었다면…" "호남에서 이랬다면…" 하는 말도 들린다. 설마 그랬겠느냐마는 설마가 사람 잡지 않기를.

2018-10-24 05:00:00

[취재현장] 소비자 '눈 가리고 아웅'한 LG전자

"믿고 샀더니 제품은 오지 않고,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면 배송만 더 늦어진 데요."대구 한 백화점에 입점한 LG전자 매장에서 발생한 물품 대금 횡령 사건(본지 8월 29일 자, 9월 8일 자, 9월 14일 자 8면 보도) 피해자들은 "대기업마저 믿을 게 못 된다"고 하소연했다.지난달 혼수로 전자제품을 산 예비신랑 A(30) 씨의 얘기를 들으며 마음이 무거웠다. A씨는 TV와 냉장고, 건조기, 세탁기, 청소기 등 1천132만원 상당의 전자제품을 구매했지만, 부지점장이 물품 대금을 횡령한 뒤 잠적해 발만 동동 구르던 상황이었다. 소중한 신혼살림이 도착하지 않는 심정은 얼마나 타들어 갈까.A씨의 사연이 보도되자, 다른 피해자들의 제보도 잇따랐다. 지난 4월 결혼 15주년을 맞아 새 보금자리로 이사를 앞둔 B(50) 씨도 같은 매장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B씨는 '주문한 제품의 발주가 늦어져 배송이 늦어질 것 같으니 매장에 방문해달라'는 판매점의 통보를 받았고, 물품 대금을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B씨는 제품을 구입한 지 5개월 만에 구입을 취소했다.지난 8월 같은 매장에서 혼수용품을 구입한 C(31·여) 씨도 마찬가지였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C씨에게 '주문한 제품명이 변경돼 확인할 사항이 있으니 매장에 방문해달라'는 문자메시지가 온 것. 판매점 측은 사건이 발생한 후 보름이 지나서야 C씨에게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이처럼 피해자는 계속 나타나고 있었지만, LG전자 측은 피해 규모나 피해 보상 방식 등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일부 피해자들에겐 모두 23명이 물품 대금을 사기당했고, 피해액은 2억원 정도라고 설명했지만, 언론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피해 규모 등을 확인하고자 수차례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시도하고, 매장도 여러 차례 방문한 끝에야 어렵게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LG전자 제품의 판매, 유통을 맡고 있는 자회사인 하이프라자 측은 "최선을 다해 보상을 진행하고 있다. 피해 규모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더욱 황당했던 건 LG전자 본사의 대응 방식이었다. 십수 차례에 걸쳐 연락을 해도 받지 않던 LG전자 본사 측은 피해 규모의 축소 은폐 정황이 드러났다는 기사가 게재된 뒤 금요일 밤에야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그러나 LG전자 측은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만 강조할 뿐, 정확한 피해 금액이나 피해자 수, 현재 보상 진행 상황 등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도리어 해당 기사를 게재 취소해달라고 요구했다.기자는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과 함께 업무 시간인 월요일에 다시 연락해달라고 요청했지만, LG전자 관계자는 "월요일에 기사를 내리면 주말 내내 온라인에 노출된다"면서 "당장 기사를 내려달라"고 막무가내였다.이후 보상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자 LG전자 측에 세 차례나 연락을 취했지만,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자신들이 할말만 하고 취재 요청은 또다시 거부한 셈이다.소비자를 우롱한 물품 사기에, 감추기에만 급급한 대응 태도, 황당한 보도 취소 요구까지.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꼽히는 LG전자의 민낯을 고스란히 들여다본 씁쓸한 사건이었다.

2018-10-03 05:00:00

이상준 기자

[취재현장] 담뱃세보다 못한 종부세?

"종부세가 엄청나게 오른답니다. 18억원짜리 1주택 보유자는 1년에 104만원이라는 살인적인 세금 폭탄을 맞게 된다네요. 어떤 분들은 자살 직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집이 없는 저로서는 큰 다행입니다. 저는 그저 담배 한 갑에 3천318원, 하루 한 갑, 1년에 121만원이라는 푼돈을 세금으로 낼 뿐이라서요."14일 배우 김의성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시작으로 '담뱃세보다 못한 종부세'가 회자하고 있다.전날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강화를 골자로 하는 '9·13 부동산대책'을 발표한 가운데 SNS를 중심으로 "흡연자인 내가 18억원 아파트 보유자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게 말이 되느냐?"는 풍자글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정부는 이번 9·13 부동산대책을 통해 현행 종부세 과표 체계에 3억~6억원 구간을 신설해 세율을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과표 3억~6억원은 시장 거래 가격으로는 18억원에서 23억원의 고가주택들에 해당한다.그러나 이 같은 종부세 강화가 서울발 미친 집값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8억원짜리 집을 가진 1가구 1주택의 세금 부담은 현재 94만원에서 104만원으로 1년에 고작 10만원 오르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과표 12억원 기준으로는 1주택자(시가 34억원) 357만원, 다주택자(합산 시가 30억원) 717만원씩 각각 세 부담이 증가하지만, 2016년 귀속 기준 과표 12억원 이상 종부세 대상자는 전국에 걸쳐 8천895명뿐이다.'담뱃세보다 못한 종부세'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지는 모양새다.현재 정부가 종부세로 걷는 돈은 1조5천억원 정도로, 그나마 70%가 기업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중산층이 내는 종부세는 4천500억~5천억원 수준에 그친다. 이번 종부세 강화에 따른 증세 효과도 4천200억원 안팎이다.이에 반해 2017년 기준 담뱃세는 11조원으로, 2014년 7조원과 비교해 4조원이나 급증했다. 앞서 정부가 흡연율을 낮춘다며 2015년 1월 1일부터 기존 2천500원의 담뱃값을 4천500원으로 올린(담뱃세 2천원 인상) 탓이다.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담뱃세로 서민들에게 걷은 것이 11조원인데, 종합부동산세 강화로 대상자 27만 명에게 4천200억원을 더 걷어 서민주거에 쓰겠다고 한다"고 혹평했다.무늬만 종부세 강화가 시장에 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현장의 일선 공인중개사들은 이번 규제 정도로는 고가주택자들의 기를 꺾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억대의 시세차익이 발생하는 고가주택시장에서 몇십만~몇백만원의 세금이 무슨 효과를 내겠느냐는 것이다.종부세 강화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7월 첫 발표 당시 종부세 강화안 역시 '종이 호랑이'에 불과했고, 약한 규제가 오히려 서울 집값 광풍의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타초경사'(打草驚蛇)라는 말이 있다. '수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 공연히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한다는 뜻이다. 이번 정부 정책도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우를 거듭할까 걱정이다.

2018-09-18 15: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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