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취재현장] 현장 목소리 빠진 '언어재활' 급여화

[취재현장] 현장 목소리 빠진 '언어재활' 급여화

뇌병변 1급의 중증장애아 김건우(13) 군은 전국 병원을 떠돌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2살 때 장애를 얻은 뒤 11년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권 후보 시절, 김 군을 앞에 두고 약속했다. 재활을 받으러 전국을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김 군처럼 병원을 옮겨다니는 아이들을 '어린이 재활 난민'이라고 부른다. 재활을 받을 어린이병원이 국내에 충분치 않아 이런 아이들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운영 중인 민간 어린이재활병원은 1곳. 일본이 200곳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보건복지부가 다음 달 추진 예정인 '어린이 재활의료기관 지정·운영 시범사업'은 '어린이 재활 난민'을 막기 위한 사업이다. 장애아동이 가까운 곳에서 전문 재활 치료를 받게 하겠다는 것이 사업의 취지다. 강원, 경북, 경남, 충북, 충남, 전북, 전남, 제주지역이 대상이다.하지만 정작 장애아동 부모들은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린이 재활 난민' 문제가 더 커질까 하는 우려다.이 사업이 추진되면 그동안 비급여 항목이었던 인지언어기능검사와 1대1 언어재활 등에 건강보험이 2년간 시범 적용된다. 시범 적용 뒤에는 이 항목들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 여부가 재검토된다. 문제는 향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재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장애아동 부모들이 '접근성 부족'을 걱정하는 이유다. 기존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를 사용할 때보다 언어재활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까운 언어재활제공기관에서 언어재활을 받지 못하고 대학병원까지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곧잘 사용하고 있던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가 사라질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이 사업 내용과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가 중복되는 탓이다. 이미 10여 년 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지난 2009년 정부는 재활치료 지원을 확대한다면서 장애아동 물리·작업치료를 바우처 혜택에서 제외했다. 치료 가능한 의료기관이 대도시에 몰렸던 탓에 시간과 비용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지역 아동들도 있었다.언어재활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소수의 의료기관에서 언어재활을 진행하게 되면 대형병원 시스템에 따라 상담 시간이 줄고 대기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이다.이런 엇박자는 현장 목소리가 충분히 담기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고 있다. 당장 부모들은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 등 기존에 장애아동이 이용해 온 언어재활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꿀 우려가 있어 반발이 큰 것이다. 굴러들어온 돌이 잘 자리 잡힌 돌을 빼낸다는 것이다.올해 기준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를 이용하는 장애아동은 대구가 1만5천969명, 경북이 7천859명으로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 바우처를 이용해 평균 주 2회, 1회당 50분씩 언어재활 서비스를 받는다. 현재 대구경북에서 바우처를 이용할 수 있는 언어재활제공기관 또한 각각 167곳, 144곳에 달한다. 하지만 향후 건강보험이 적용돼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언어재활 서비스를 받게 되면 이후에는 각각 20여 곳, 10여 곳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줄어든다.어린이 재활의료기관을 만들어 재활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취지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번 시범 사업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정책 당사자격인 이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시범 사업이 진행되는 2년 동안 '어린이 재활 난민' 문제를 해결하고 장애아동 부모들의 우려를 덜 만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20-09-23 06:30:00

[취재현장] 셧다운 일상화된 국회

[취재현장] 셧다운 일상화된 국회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긴급 방역을 실시할 예정이오니 출입기자분들은 즉시 퇴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코로나19가 여의도 국회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 놓고 있다. 국회 내 확진자 발생으로 올 들어서 총 4번의 '셧다운'이 발생했고, 그 가운데 3번이 최근 보름 새 이뤄졌다. 확진자도 외부인(1명)에서 보좌진(1명), 출입기자(2명) 등으로 그 범위가 확산하는 형국이다.확진자 발생 시 그의 모든 동선이 공개되고,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는 사람은 즉각 검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 국회의원들도 예외일 순 없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무려 4번의 코로나19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기자실이 있는 소통관은 '절반 근무'가 일상화돼 분위기가 황량하기까지 하다. 국회사무처가 지난달부터 단계별 거리두기에 따라 출입 인원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현 2단계(2.5단계 포함) 상황에선 언론사별 출입 인원을 30~50%로 축소 권고하고 있는데, 3단계로 격상할 경우 이를 70%까지 올리거나 아예 출입을 전면 제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의원회관 역시 보좌진 재택근무 지침에 따라 한산한 모습이다.일부 의원실은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모든 출입자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취재를 위해 일상적으로 의원회관을 찾아야만 하는 기자들 사이에선 "눈치 보여서 의원실에 갈 수가 없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의원회관에서 하루 수십 차례 열리던 각종 토론회도 모두 순연되거나 취소되는 중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원천 배제하기 위해 의원회관 및 소통관 내 라운지에선 의자들이 전부 치워져 창고에 쌓이고 있다.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국회 의사일정은 연기되기 일쑤다.지난 7일에는 국회 본회의 도중 박병석 국회의장이 "국회 출입기자 한 분이 코로나19 확진자로 확인됐다"고 알리며 의원들에게 동선 최소화를 당부하기도 했다. 확진자 발생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본회의는 어수선하게 산회가 선포됐다.당연히 국회 취재에도 제한이 걸렸다. 본회의 및 각종 상임위는 풀 취재(합동 취재)로 운영되고 있지만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기자단 협의를 통해 소수의 대표 취재진을 구성, 취재 내용을 공유하는 식이다.하지만 비공식 브리핑인 이른바 '백브리핑'마저 풀 취재로 운영되자 독자의 가려움을 긁어줄 송곳 같은 질문들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당장 10일 예정된 박병석 국회의장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도 화상 방식으로 열린다. 입법부 수장의 기자간담회에도 단 16명의 취재기자가 그것도 '선착순' 방식으로 비대면 질문권을 가진다는 데 대해 언론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9월 정기국회가 이제 막 시작했고 곧이어 국정감사, 내년도 예산안 처리 등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국회 의사일정은 켜켜이 쌓여 있다. 국회는 원격 회의·표결 시스템 구축을 서두르고 있지만 비대면 방식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특히 21대 국회는 여대야소 국면에다가 상임위원장 전(全) 석을 여권이 석권한 탓에 만약 원격 방식까지 더해진다면 입법 폭주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야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뉴노멀' 국회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입법부의 기능도 정상화시킬 묘책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2020-09-08 14:56:43

[취재현장] 뒷맛 개운치 않은 지진특별법 시행령

[취재현장] 뒷맛 개운치 않은 지진특별법 시행령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 논란이 '피해구제 비율 80%'로 일단락됐다. 뒷맛은 개운치 않지만 포항지진 그날 이후를 돌아보자.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 31초, 경북 포항에서 촉발지진이 난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기자는 포항 남구 상대동 매일신문 동부본부빌딩 7층(총 8층) 사무실에서 공포를 경험했다. 건물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이후로 포항에선 2019년 8월까지 규모 2.0 이상의 여진이 모두 100여 차례 발생한 것으로 기상청은 발표했다.행정안전부의 2017 포항지진 백서에 따르면 포항촉발지진으로 100여 명이 부상당했고 1천6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주택·상가 등 3만3천여 곳과 공공시설 317곳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한국은행 포항본부는 2018년 5월 포항지진 피해를 자산 손실액 2천566억원, 간접 피해액 757억원 등 총 3천323억원으로 분석했다. 2018년 1월 정부가 최종 집계한 피해액 672억원의 5배에 가까운 규모다.지진 원인을 밝히고 보니 2010년부터 시작된 포항 북구 흥해읍의 메가와트(㎿)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사업 때문이었다. 다행히 포항은 지진 도시의 오명을 벗었다. 올해 4월 감사원 감사 결과에선 정부의 위법 부당한 귀책사유 20건이 확인되기도 했다. 포항은 하지만 차분하게 지진 피해에 대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해 지진특별법을 이끌어냈다.'포항지진의 진상조사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포항지진특별법) 제1조와 2조에는 "포항지진이란 (중략)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발생한 지열발전사업으로 촉발된 지진을 말한다"고 돼 있다. 같은 법 14조는 "국가는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위한 지원금을 지급한다"라고 명시했다.포항지진특별법의 조항만 읽고 나면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의 지진 피해구제 비율 제한을 두고 벌인 몇 개월의 논란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시행령의 피해 지원 한도 70%도 당초에는 60%부터 출발했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정부는 못 이기는 척하고 70%로 하고 계속 논의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정부는 포항이 가만히 있을 경우 그대로 밀어붙이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포항 정치권과 시민들 그리고 경북도, 포항시가 100% 요구를 하며 펄펄 뛰자 시행령 시행 열흘을 앞두고 정부는 80%안을 들이밀었다. 나머지는 경북도, 포항시가 부담하라는 것이었다.더 이상의 반발은 실리적으로 이득(?) 될 게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완강하던 범시민지진대책위원회도, 포항시도 이를 수용했다. 포항 시민단체 관계자는 "돌아보면 정부의 행태는 어쩌면 흥정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포항을 가지고 논다는 표현은 좀 과할지 모르지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다.포항촉발지진 1년 뒤인 2018년 10월 경북 영덕에 태풍 콩레이가 물폭탄을 퍼부었다. 며칠 뒤 매일신문에 잠정 피해액이 보도되자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언론 플레이 하느냐"며 영덕군을 질책했다.행안부의 질책과 관련된 보도가 나가자 이번에는 발설자를 찾는다며 영덕군을 들들 볶았다. 재난 피해는 매뉴얼에 따라 조사하고 집계하고 검증한다. 언론 플레이 한다고 피해 액수가 늘지도 않는데 말이다.지방정부를 대하는 중앙정부의 행태는 아직도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재난 상황에서조차 고압적이거나 시혜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2020-08-25 15:12:39

[취재현장] 개 식용업소 규제 근거 없으면 개시장 폐쇄가 무슨 소용

[취재현장] 개 식용업소 규제 근거 없으면 개시장 폐쇄가 무슨 소용

지난달 16일 초복을 맞아 오랜만에 활기를 띤 칠성 개시장에서 기자는 달갑지 않은 방문객이었다. 상인들은 수첩을 들고 기웃거리는 기자를 향해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아마도 매년 복날 찾아와 꽹과리를 치며 '전업'을 요구하는 외부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같은 날 대구시청 앞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동물보호특별위원회가 권영진 시장을 향해 칠성 개시장 폐쇄와 상인들의 전업 대책 마련을 이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1년 전, 권 시장은 '개 식용이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고 도살장이 도심에 위치해 정서적으로 맞지 않다'며 칠성 개시장을 정리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진전은 없었다.동물보호단체들이 대구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남 모란과 부산 구포의 개시장이 사라지면서 칠성 개시장이 전국 유일의 개시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북구청 민생경제과에는 매년 복날이면 전국으로부터 개시장 폐쇄를 요구하는 항의가 쏟아진다고 했다. 빗발치는 항의에도 권 시장의 약속을 실행에 옮길 법적 근거가 현재로서는 없다.대구시와 북구가 칠성시장 일대에 재정비 사업이 예정돼 있어 사업 진행에 따라 개고기 골목이 자연스레 사라진다는 수동적인 대답만 내놓는 이유도 법적으로 개 식용업소를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결국 칠성 개시장 폐쇄를 외치는 이들이 기대를 거는 것은 칠성시장 일대에 진행 중인 정비 사업이다. 지난해 10월 북구청으로부터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칠성원‧경명‧상가 시장정비사업' 구역 안에 개고기 골목도 포함돼 있다. 사업이 진행되면 개고기 골목 안에 있는 점포들이 자연스레 사라질 거라는 바람이다.그러나 사업 계획이 기존 상가에서 주상복합형 건물로 변경되고, 코로나19 여파로 총회 개최 등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사업시행인가 단계까지 갔던 정비사업이 사업 추진 계획 수립 단계로 되돌아가게 됐다. 조합 측은 추진 계획을 변경하는 데만 앞으로 두세 달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업 진행 일정이 연기되며 개시장 폐쇄 수순 역시 연기된 일정만큼이나 늦춰지게 됐다.연기된 일정보다 더 큰 문제는 개고기 골목이 사업 구역 안에 들어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칠성시장 일대에서 개 식용업을 이어가는 점포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칠성시장 개고기 골목 안팎에는 18개의 개 식용업소가 있지만 정비사업 구역 안에 들어가 있어 사업 진행 단계에서 사라질 곳은 4개 업소에 불과하다. 더욱이 동물 학대의 온상이 되는 도축시설 역시 정비사업 구역 바깥에 있는 실정이다.새로운 사업 계획이 구청 심의를 통과해 사업시행인가가 다시 나기까지 약 4~5개월이 더 걸릴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개고기 골목 내 상점들의 이주 철거 일정은 1년 6개월 이상 늦춰지게 된다.북구청 민생경제과 관계자는 쏟아지는 민원에도 마땅한 대안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개시장을 폐쇄하면 개 식용 점포가 사라질 것이라고 이해하지만 개고기 골목에 속해 있지 않은 개별 업소들이 더 많은 게 사실"이라고도 했다.개 식용업과 도축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면 전국 각지에서 쏟아지는 민원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근거 없는 약속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제도 마련 없이는 대구시장의 약속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청 관계자의 약속도 일대에 진행 중인 정비사업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2020-08-19 06:30:00

[취재현장] 창업도시, 대구의 미래

[취재현장] 창업도시, 대구의 미래

"대구에 이런 숨은 보석 같은 기업이 있다니 놀랍네요."최근 만난 바이오헬스 분야 모 대구 기업인이 회사를 방문한 중앙 부처 관계자에게 들었다는 말이다. 이 기업인은 기자에게 "보석이 한 종류는 아니잖아요. 돌아보면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대구에 유망한 기업이 정말 많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자동차 부품 제조업, 섬유업 등 대구 경제를 지탱했던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대구의 기반 산업을 다각화하는 것이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은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쉽게 되겠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올해 초부터 약 7개월간 스타트업, 중소기업 등 대구에 뿌리를 둔 여러 창업기업을 만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지방 도시, 그것도 대구에서 되겠냐'는 편견에 맞서 각자의 신념으로 도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사람, 기업들이 분명 대구에서 희망찬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특히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아기유니콘에 선정된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입주 신약 개발 기업 ㈜아스트로젠은 바이오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자폐 스펙트럼 장애 치료제 임상 2상 시험계획 승인을 받기도 했다.해당 소식을 접하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 증상을 보이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세계적 기업이 되길 기원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창업 3년의 대구 기업이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지역의 창업 생태계 변화는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아스트로젠 외에도 최근 코스닥에 상장한 임플란트 등 치과용 기기 제조업체 ㈜덴티스, 대구시 Pre-스타기업으로 선정된 단열재 및 패키징 솔루션 제조기업 에임트㈜,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대표 아기유니콘 ㈜쓰리아이, 영상정보 암호화 전문업체 ㈜우경정보기술 등의 수많은 유망 창업기업이 대구에서 미래를 그리고 있다.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대구는 앞으로 지식, 정보, 기술산업을 특화해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하며 "아직 많은 사람의 눈에 띄진 않아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힘주어 말했다.창업 생태계 활성화에 긍정적인 신호도 감지된다.지난 6월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으로 취임한 이재일 전 삼성전자 상무는 대표적인 스타트업 보육 프로그램인 C-LAB 액셀러레이팅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구를 창업도시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대구는 비교적 창업 인프라가 탄탄하고 창업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와 유관 기관의 관심도 많아 긍정적인 조건을 충분히 갖췄다는 것이 이 센터장의 견해다.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대구테크노파크 등 기업 지원사업 담당 기관에 대한 창업기업 관계자들의 좋은 평가도 창업도시 대구의 미래를 그리는 데 중요한 요소다."대구에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수의 창업기업 관계자는 "지원기관이 창업기업에 주는 관심과 혜택이 수도권보다 크다. 소통을 더욱 쉽고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했다.한 가지 과제는 대구 시민을 비롯한 소비자의 관심이다. 창업기업이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지칠 수밖에 없다. 이들이 꾸준히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역민이 응원과 쓴소리를 마다치 않는다면, 대구는 역동적인 창업도시로의 미래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2020-08-11 14:10:43

[취재현장] 신뢰 회복이 먼저다

[취재현장] 신뢰 회복이 먼저다

5일 대구 시민들의 먹는 물 문제가 분수령을 맞는다. 이날 환경부가 주관하고 있는 '낙동강 유역 통합 물관리 방안' 연구 용역, '구미산단 폐수 무방류 시스템 실용화 검증 및 적용 방안' 타당성 용역의 중간 결과가 발표되기 때문이다."낙동강 물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6월 대구에서 이같이 언급한 이후 낙동강 수질 개선 대책의 밑그림이 처음으로 나오는 것이다.대구시가 지역 내부 취수원과 외부 취수원을 혼용하는 '다변화' 방식으로 낙동강 물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만큼 중간 결과 역시 '취수원 다변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대구 시민들은 근본적으로 수돗물 불신 문제를 갖고 있다. 대구 식수 문제는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가 터진 이후 대구 시민 75%가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낙동강 본류 수질 안전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대구 취수원 이전은 2009년 2월 구미산단 유해 화학물질이 대구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매곡·문산취수장 원수를 오염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대구시가 정부에 건의하면서 시작됐으나 구미시와의 갈등으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04년 다이옥산 검출, 2006년 퍼클로레이트 검출, 2009년 다이옥산 가이드라인 초과 배출 사태 등 유해물질 오염 사고가 되풀이되면서 시민들의 수돗물 불신은 쌓이고 쌓여왔다.2018년 6월에는 '대구 수돗물 과불화화합물 검출 사태'가 발생하면서 불신은 폭발했고 시민들이 대거 생수 구입에 나서면서 '생수 대란'까지 빚어졌다. 수년째 이러한 사태를 겪어온 지역사회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먹는 물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번 중간 결과에 집중하고 있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환경부는 이미 올해 2월부터 '취수원 다변화' 방식을 포함한 복수의 대안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지방자치단체 간 협의를 이유로 대책 발표를 미뤄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환경부는 약속한 시점까지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용역 종료 기간을 세 번이나 미뤘다.환경부는 지난해 3월 용역을 발주했으나 애초 그해 12월 종료에서 올해 초, 그리고 7월까지 연장한 데 이어 오는 9월 28일까지 또 미뤘다. 시급한 현안 관련 용역을 세 번이나 연장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지역 환경 전문가들의 설명이다.물 문제로 수년간 애를 태우고 있는 시민들의 심정과 불안감을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고려했는지, 지연된 대책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사과는 있었는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환경부의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감사원은 환경부가 대구 국가 물산업클러스터 위탁운영 기관으로 한국환경공단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위법 사항을 확인하고 환경부 장관에게 주의 조치를 내린 바 있다.선정 과정에서 구체적인 오류가 발견됐고,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는 등 평가 방식 변경과 회의록 작성 부분에서 2건의 위법·부당 사항이 확인됐다. "평가 결과가 변별력을 상실하고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에도 환경부는 어떠한 사과와 반성도 없었다.환경부는 제대로 된 대책으로 지역민의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 단기적인 대책이 아닌 책임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환경부가 본연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내야 한다.또한 대책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일지 않도록 지자체 당사자 간 과제로 방치하는 것이 아닌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조정 역할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08-04 14:59:28

[취재현장] '만인소' 닮은 경북 유림의 '호소문'

[취재현장] '만인소' 닮은 경북 유림의 '호소문'

'만인소'(萬人疏)는 1만 명이 연명해 올렸던 상소를 말한다. 조선시대 1만여 명에 달하는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왕에게 청원했던 상소문이다.이는 당시 여론을 하나의 문서로 만들어 정책에 반영시키려 했던 거대한 '언론 운동'을 의미한다.감히 누구도 거론하지 못했던 사회적 문제와 시대적 사명을 철저한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한목소리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1만 명의 뜻'은 곧 모두의 '공론'(公論)을 의미하고, 그렇게 인정됐다.28일 대구경북의 최대 염원인 '통합신공항 이전부지' 선정이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북 도내 유림들이 공동후보지 결단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김영만 군위군수에게 전달했다.경북의 유림 단체 회원 1천119명이 연명해 길이가 80m에 달하는 호소문은 궤짝 속에 소중히 담겨 전해졌다. 영남 선비 1만 명이 연명한 '만인소'를 임금에게 전하듯 멍석을 깔고, 전통 유림 복장을 갖추고, 예를 다해 호소문을 낭독하고 전달했다"경북의 유림은 유도가 지향하는 대동 사회 구현을 위해 우리 역사의 굽이마다 선도적으로 앞장서 민족과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경북의 유림들은 510만 시도민의 염원을 깊이 가슴에 담아 간절한 심정으로 호소한다"고 했다.유림들은 "군위군은 앞으로 다시는 없을 기회인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과 우리 경북의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바람직한 결단을 내려 주시길 간절히 청한다"며 군위 군민들에게 통합신공항 유치를 위한 유림들의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호소했다.이날 유림들의 호소문 전달 모습에서 1792년(정조 16년)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사도세자 신원 만인소' 이후 19세기 말까지 모두 7차례 이어진 조선 선비들의 목숨을 건 '만인소'를 보는 듯했다.영남 선비들은 '만인소'의 내용과 연명 과정에서 철저하게 민주적 절차와 정당성을 지켜 왔다. 개인적 사욕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직 '대의'(大義)에 따라 목숨을 내걸었다.경북향교재단과 경북성균관유도회, 경북성균관청년유도회 등 경북 유림을 대표하는 유림 지도자들의 마음도 그러했다.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에 직면한 대구경북의 쇠락을 돌파할 '대의'를 통합신공항 이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유림들의 간절함과 절절함이 고스란히 담겼다.이날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통 유림 복장으로 군위군청 앞 멍석에 부복한 유림 어르신 100여 명은, 자신들의 절박한 호소가 시대적 과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했으리라.경북 유림들은 "통합신공항은 지역 경제를 일으켜 대구경북을 역사의 중심에 다시 우뚝 세울 천재일우의 기회이자,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담보할 유일한 희망이다"고 호소했다.그동안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부지 선정을 둘러싸고, 관·관 갈등과 민·민 갈등이 극한 대결로 치달아 왔다. 그 대결 속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도, 과거에 대한 정당성도 온데간데없었다.이날 경북 유림들과 함께 경북의 청년, 장애인 단체 등이 잇따라 군위 군수와 군위 군민들의 '공동후보지 유치 신청'이라는 결단을 촉구하는 호소에 나섰다. 지금 대구경북의 '대의'가 통합신공항 이전이기 때문이다.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대의'에 목소리를 담았던 '1만 명의 청원, 만인소'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들의 '호소'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대해 본다.

2020-07-28 15:31:07

[취재현장] 대구시 유관기관장 인선, 비판에 귀 기울여야

[취재현장] 대구시 유관기관장 인선, 비판에 귀 기울여야

최근 한국안광학산업진흥원(KOIA)과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대경경자청)이 새 기관장을 맞이했다.두 기관장은 모두 대구시 간부 공무원 출신이다. 우선 진광식 전 대구시 자치행정국장(3급)이 이달부터 KOIA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최삼룡 전 대구시 시민안전실장(2급)이 지난 10일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으로 취임했다.두 기관장 모두 대구시에서 헌신하며 쌓은 높은 평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를 얻었지만 모든 사람이 결과에 박수를 친 것은 아니었다.특히 지역 시민사회계로부터는 우려 섞인 반응을 낳았다. 두 신임 기관장 모두 퇴직을 앞둔 데다 경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통'으로 보기 어려워 인선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KOIA는 정부, 대구시, 관련 기업이 설립한 기관으로 대구시가 운영비와 사업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고, 대경경자청은 대구시와 경북도의 지방자치단체조합으로 시도가 번갈아 가며 청장 인사권을 행사한다. 2014년 권영진 시장이 취임사에서 "대구에서만큼은 '관피아'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무색한 상황이 됐다.특히 위기 상황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의 엔진이 돼야 할 경제 관련 기관장 인선이 이 같은 잡음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우려스럽다는 지역 경제계 반응도 있다. 정작 이 기관들이 설득하거나 협력해야 할 사람들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중앙정부 관계자나 관련 산업계 종사자인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선택이란 지적이다.인선 결정 과정에서도 일부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결과가 뒤집히진 않았지만 퇴직을 앞둔 공무원이 올 자리가 아니라는 여론이 있었다는 후문이다.공식적으로는 대구경실련이 먼저 KOIA 원장 인선 직후 성명을 내고 비판에 나섰다. 대구경실련은 "안광학산업진흥원장 공모에 모두 16명이 응시했다고 한다. 심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다면 현 원장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임된 것이지만 지난 5월부터 돌았던 원장 내정설 등을 감안하면 공정한 경쟁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더구나 그는 안광학이나 경영 분야 전문가도 아니다"고 꼬집었다.대구경실련은 아울러 대구시 산하기관과 유관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지만 실제로 회의를 공개하는 곳은 거의 없으며,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여러 이유를 들어 공개하지 않아 외부에서 관련 정보에 접근할 방법이 없는 점도 지적했다.물론 간부급 시 공무원이 유관기관장으로 옮기는 게 그 자체만으로 흠이 될 것은 아니다. 거대한 관료 조직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경험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고, 대구시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매끄러울 테다.하지만 반대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는 전직 대구시 고위 공무원이 수장인 조직을 대구시가 제대로 관리감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공무원들이 퇴직 후의 자리에 연연하게 되면 잠재적으로 공직사회에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가장 큰 문제는 투명성 논란을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무원 모시기'가 반복된다면 추후 유능한 인재의 지원을 저해하고, 빈약한 인재풀에서 기관장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지난해 비슷한 상황에서 대구시 출자·출연기관장 공모에 지원했다 떨어진 인물이 기자에게 남긴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저는 떨어져도 괜찮습니다만, 이런 인사가 반복되면 대구시가 정작 사람을 찾아 나설 때 우수한 자원을 구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2020-07-14 14:26:15

[취재현장] 우리도 내 집 마련하면 안 될까요?

[취재현장] 우리도 내 집 마련하면 안 될까요?

"자고 일어나니 가격이 2천만원 뛰어오르니 마음이 안 급할 수가 있겠느냐."6일 저녁 지인이 막걸리 한잔에 내뱉은 푸념이다. 서울에 사는 그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서울 강동구 둔촌동부터 동작구 흑석동, 강서구 염창동까지 그야말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마음이 혹하는 집을 발견하고 다음 날 계약하려고 하면 집값이 올라 있어 미칠 노릇이랬다. 그러다 보니 그의 마음속에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야 나도 이득을 보지'라는 오기도 생겼다고 했다.순간 전날 밤에 본 TV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5일 방송된 MBC '구해줘 홈즈'에서 두 MC는 매물을 소개하기 전 "방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1년 만에 서울 집값이 너무 뛰었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웃자고 보는 예능에서 이토록 처연하게 현실이 묻어 났다.부동산, 더 적확하게 말해 집값이 민심의 화약고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집값 상승을 막고자 부동산 정책을 여럿 내놓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어서다.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2일 청와대 참모들의 솔선수범을 강조하며 1주택 외 주택 처분을 강력 권고했지만, 이 과정에서 그가 과거 지역구인 충북 청주 소재 집을 팔고 서울 반포 소재 아파트를 남겨 두기로 하면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지역구 유권자 전체의 가치가 서울 '똘똘한 한 채'보다 못하다는 것이냐"는 지적이다.반대로 지난해 말 노 실장이 같은 권고를 한 뒤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강남 아파트를 처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의도 정가에는 "문재인 측근이 아니란 걸 보여준 것"이라는 우스개도 나온다. 심지어 "돈 벌고 싶으면 정부의 '약속'을 믿지 말고 청와대 참모들의 '행동'을 믿으면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돈다.그러자 야권은 본격적으로 대여 공세를 펼친다. 7일에는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조차 부동산 문제를 들어 정부 여당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코호트(cohort)라는 말이 있다. '코호트 격리'라는 말로 익숙한 표현일 텐데 사실은 오늘날의 소대나 중대처럼 고대 로마에서 300~600명으로 구성된 보병부대를 일컫는 말이다. 어원인 라틴어 'cohors'에서 co는 뜰을, hors는 훈련받은 사람들로 '같은 뜰에서 훈련받은 무리'라는 의미인데, 사회학에서는 여기에 착안해 '코호트 효과'(cohort effect)라는 말을 쓴다. '같은 시기에 같은 사건을 경험하며 의식과 행동이 비슷해진 한 세대'를 이르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른바 86세대가 대표적 예이다.어쩌면 국내에서 대표 사례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앞둔 20대 중후반부터 생애 첫 내 집 마련을 해 보려는 40대까지 현재 2040세대가 공유하는 강력한 공동 경험이 부동산 시장에서 '신규 진입자 타격'이어서다.이는 비단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구 수성구의 한 입주 전 아파트의 전용 면적 98.99㎡(39평) 분양권 매매가가 15억7천90만원이다. 이곳 분양가는 5억7천90만원이었다. 분양권에 프리미엄만 10억원이 붙은 것이다. 가히 시장은 정상이 아니다. 또 그 벽은 공고하기 그지 없다.이러한 '충격'은 연령과 상관없이 2040을 하나의 코호트로 묶어 주고 있다. 2040세대는 개인화된 세대이다. 이들에게 지역이나 이념이 설 자리는 좁다. 그보다는 '내 문제'를 해결시켜 줄 현실적 대책과 이슈에 집중한다. 여든 야든 다음 선거에서 이기고 싶다면 당명을 어떻게 바꿀지보다 이 문제에 천착하길 권해 본다.

2020-07-07 15:57:17

[취재현장] K-방역의 뚫린 구멍

[취재현장] K-방역의 뚫린 구멍

"지금 아프면 정말 큰일인데."대구에서만 하루 확진자가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명씩 생기던 지난 2월과 3월 대구경북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해본 걱정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병상과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 '확진자가 발생해 상급병원 응급실이 폐쇄됐다'는 보도들이 쏟아지던 때였다.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 공백'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더러 나왔지만 중요하게 다뤄지진 않았다. 대부분은 혼란한 시기에 아프지 않았다는 '행운'에 안도할 따름이었다.3월에 들린 고(故) 정유엽 군의 사망 소식은 우리가 그저 안도하고 지나쳤던 의료 공백 문제를 눈앞에 드러내 보였다. 유족들에 따르면 3월 10일 갑작스러운 고열 증세에 시달리던 정 군은 사흘 뒤 인근의 경산중앙병원을 찾았지만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다음 날 오전 다시 병원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의료 공백 속에서 정 군의 병세는 점차 악화됐고 결국 같은 달 18일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 정 군이 10여 차례 받은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왔다. 모두 '음성'이었다.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정 군과 비슷한 일을 겪은 사례는 더러 있었다. 2월 말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대구 남구에 사는 46세 남성 A씨의 글이 올라왔다. 기침과 미열 증세를 보이던 A씨는 보건소에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신천지 교인도 아니고 해외여행도 다녀오지 않았으니 자가격리하라"는 것이었다.사흘 뒤 열이 더 오르는 등 증세가 심해진 A씨는 보건소에 선별진료소 방문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보건소는 "체온이 38℃가 넘어야 선별진료소에 갈 수 있다"며 재차 자가격리를 권했다고 한다. 이틀 뒤 A씨는 39도의 고열로 쓰러졌고 대구의료원 선별진료소에서 폐렴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A씨의 코로나19 검사 결과도 '음성'이었다.한밤중에 맹장염 증세가 나타나 응급실을 찾았지만 체온이 38도까지 올라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할 뻔한 경산의 대학생 이야기도 있다. 지난 3월 그는 자신을 받아주는 병원을 전전하고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오는 걸 기다리느라 수술을 받기까지 14시간을 통증 속에 허비해야 했다. 국가의 지침을 잘 준수한 이들이 이처럼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렸던 것이다.지난 2월과 3월은 비감염병 환자도 위태로운 시기였다. 동시에 이들 모두를 잘 치료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 우리에겐 없음을 알려준 시기였다. 특히 고 정유엽 군의 사례는 우리에게 국가의 역할이 단순한 치료와 방역 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보건소와 병원이 명확한 운영 방식과 기능 등을 정립하고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것 역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고 정유엽 군 유족들이 지난 3개월간 주장한 바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기자는 이달 16일 정 군의 부모와 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가 청와대로 기자회견을 하러 가는 것을 동행취재했었다. 버스에서 유족과 나눈 대화 중에서 가장 가슴을 후벼팠던 건 "아들의 죽음이 개인의 불행으로 취급당할 때가 가장 힘들다"는 정 군 아버지의 말이었다.이들이 계속 싸우는 건 피해자의 위치에서 동정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의료 공백의 문제를 드러내고 개선할 수 있다면 "임종조차 지켜주지 못한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K-방역은 이런 의료 공백 문제까지 돌아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지 않을까.

2020-06-24 06:30:00

[취재현장] 온실 속에 갇힌 대구시

[취재현장] 온실 속에 갇힌 대구시

8년을 이어온 대구치맥페스티벌의 올해 개최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지난달 초에 관련 기사를 준비하면서 대구시 직원들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다.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인 만큼 다들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이 이 축제로 새롭게 도약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앞섰다. 이런 차원에서 대구시가 개최 여부를 고심하고 있고, 방역 상황에 따라 달라질 거란 기사를 보도했다.기사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온통 비판 일색이었다. 시민들은 방역 상황에 따라 개최 여부를 결정할 거란 대구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산세를 고려한다면 지금 당장 전면 취소해야 한다는 말을 시민들은 기대했다. 대구시와 일반 시민들과의 온도 차를 새삼 느꼈던 계기가 됐다.대구시 긴급생계자금을 둘러싼 공무원들의 '부정 수급' 논란은 그 온도 차를 한 번 더 실감하게 했다. 시민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대구시가 처음 내놓은 반응은 부정 수급자가 나올 수 있다고 사전에 공지했다는 자기방어와 앞으로 철저히 환수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시민들은 관련자 징계를 원하는데 대구시는 내부 논리를 다지는 데 급급했다.물론 타 시도와 비교해 보면 부정 수급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정이 많이 있었지만, 대구시가 나서서 논란을 초래한 공무원들을 조사해 보고 사안에 따라 징계를 고려한다고 밝혔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대구시가 이달 처음 선보인 지역사랑상품권(대구행복페이)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그동안 대구시는 역외 수입이 많은 대구는 지역사랑상품권과 맞지 않는다며 출시를 미뤄 왔다. 하지만 막상 출시하자 일주일 만에 발행 금액이 1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반응은 상당했다. 자기방어와 내부 논리에 갇혀 버린 대구시에 변화와 혁신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면이 돼 버렸다.대구시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권영진 대구시장에 대한 지지율로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3월 권 시장의 지지도는 전달보다 4.9%포인트(p) 오른 58.2%로 17개 시도지사 가운데 5위였다. 하지만 4~5월 동안 18.8%p가 빠지면서 39.4%로 주저앉았다. 당시 긴급생계자금 지급 시기와 방법을 두고 곤욕을 치른 권 시장은 시의회에서 쓰러진 뒤 한동안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전국 시도지사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물게 됐다.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전국 시도지사 지지도 조사에서 전달보다 2.7%p 오른 70.3%를 기록하면서 또다시 자신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도지사의 지지도는 모든 경기도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힌 3월부터 급등하기 시작했다. 재난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시군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화끈한 발언으로도 주목받았다.관료 출신이 아닌 권 시장도 한때는 기존 논리에서 벗어난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신천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셀 때면 직접 현장 조사에 나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과감함이 과거 그 언젠가 대구시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권 시장은 최근 모든 시민에게 골고루 나눠 주는 방식의 2차 긴급생계자금 지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긴급생계자금과 관련해 공무원 부정 수급 등 각종 논란이 끊이질 않자 시 간부들과는 전혀 교감이 없는 상태에서 지원 계획부터 밝혔다고 한다. 무리수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의 과감한 발언에 이은 향후 행보를 기대해 본다.

2020-06-16 16:28:18

[취재현장]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푸른 산과 들을 지키자

[취재현장]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푸른 산과 들을 지키자

대한민국 푸른 산, 푸른 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푸른 산 푸른 들'이라는 동요가 전래(傳來) 동요가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몇 년간 태양광 발전시설이 무서운 속도로 이 땅의 산과 들을 초잠식지(稍蠶食之·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점차 조금씩 침략하여 먹어 들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초잠식지란 사자성어 그대로다. 태양광 발전시설이 지역의 산과 들을 조금씩 침략하고 있다. 기자가 나고 자란 경북 예천 고평들에도 태양광 발전시설 축사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매일신문 5월 26일 자 8면)는 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신재생에너지라는 명분을 방패 삼은 태양광 발전시설은 먼저 산을 잠식했었다.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에 따른 산지 훼손 면적은 2016년 528㏊에서 문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1천434㏊, 2018년 2천443㏊로 크게 늘었다. 축구장 6천40여 개 규모다.태양광 발전시설 설치로 인한 산지 훼손 규모가 수치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산지 태양광 발전시설 허가 기준을 강화했다. 경사도는 당초 25도 이하에서 15도 이하로, 산지 전용 영구허가는 일시허가로 변경됐다. 최대 20년이 지나면 산지를 원상복구하라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정부가 태양광 난개발 우려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내놓은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사업자들은 비상하게도 대안을 찾아냈다. 산지 개발에 제동이 걸리자 태양광 발전시설의 인기는 건축물로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기존 건축물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갖출 경우 전력 거래 시 가중치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사업자들의 관심은 더욱 집중됐다.그 결과 수십 수백 년간 농지로 이용되던 들(野)까지 태양광 발전시설이 침식하기 시작했다. 절대농지에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설 수 없지만 농지 내 준공된 건축물만 있다면 그 위로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산지보다 사고에 안전하면서 대규모로 개발이 가능하고 전력 거래 가중치까지 적용되다 보니 농지에 축사, 재배사 등 영농을 목적으로 한 건축물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건축물 지붕 위에는 어김없이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고 있다.단순히 보면 농업용 건축물 지붕 위에 조성되는 태양광 발전시설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영농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듯도 싶다.그러나 이 단순한 생각은 태양광 발전시설 축사가 들어선 농지를 직접 둘러본 뒤 바뀌었다. 지난달 찾은 예천 고평들 축사 대부분은 태양광 시설을 갖춰 완공됐거나 건립 중이었으나 소를 사육할 만한 시설은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육시설이 갖춰진 축사도 있었지만 큰 규모가 민망할 정도로 소의 수가 적었다. 소를 사육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를 위해 마련된 뼈대 같았다.마을 주민들은 "고평들에 축사 허가를 낸 사람들은 모두 외지인이고 태양광을 목적으로 왔다"면서 "정작 자신들은 소도 직접 키울 생각이 없는지 축사를 임차할 사람만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속을 들여다보면 이 사업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영농을 목적으로 건축 허가를 받지만 실제 목적은 태양광 개발에 있다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을 방패 삼은 태양광 발전시설이 영농 발전이라는 위장막까지 덮어쓰고 산지에서 농지까지 넘어와 난개발을 부추기고 있다.탈원전 정책이 빛을 보기 위해선 태양광 난개발 방지책도 내놔야 한다. 이대로는 푸른 산과 들의 훼손을 막을 수 없다.

2020-06-02 15:03:31

[취재현장] 명품이든 돼지고기든 소비심리만 살릴 수 있다면

[취재현장] 명품이든 돼지고기든 소비심리만 살릴 수 있다면

지난 2월 중순 코로나19가 대구에 상륙한 이후 3개월 만에 지역 경제는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소강 국면에 접어드는가 싶던 코로나19는 서울 이태원 클럽발(發) 집단감염 확산으로 재차 기세를 떨치고 있다. 조금씩 기지개를 켜던 소비심리가 다시금 위축되진 않을지 염려스러운 이유다.이 가운데 지난주 대구 한 백화점에서는 재밌는 광경이 펼쳐졌다. 최상위 명품 브랜드인 샤넬의 가격 인상 예정 소식이 들리자 아침 일찍부터 제품을 사기 위한 줄이 백화점 건물을 둘러싸고 길게 이어졌다.코로나19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라는 비판은 제쳐 두고, 소비의 관점에서만 보면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명품 소비는 구매자 자유로 왈가왈부할 대상이 아니라는 시선과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데 줄까지 서 가면서 명품을 사는 것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해 불편하다는 시선이었다.해당 기사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려 난장판이 됐다. '자기 돈으로 산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의견부터 '줄을 선 사람에게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까지 갑론을박이 이어졌다.샤넬 백을 사려는 긴 줄이 침체된 대구 경제 현장과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코로나19 이후 대구 경제는 유통업, 숙박업, 여행관광업 등에서부터 피해가 시작돼 ICT(정보통신기술)·SW(소프트웨어)업계, 스타트업 등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지역 경제 현장의 목소리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대구 업체라는 낙인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대구 지역 기업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대구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지역 제조업 동향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10곳 중 8곳(78.3%)은 2분기부터 본격적인 실적 감소가 예상된다고 답했다.대구경북 시도민은 소비를 주저하고 있다.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최근 발표한 '최근의 대구경북지역 실물경제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가 가계 재정 상황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나타내는 현재생활형편 CSI(소비자 동향지수)는 지난 2월 87, 3월 73, 4월 69로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그만큼 지역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고 있고 불확실한 경기 전망에 돈 쓰기를 꺼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그나마 최근에는 정부 긴급재난지원금과 대구시 긴급생계자금 등 현금성 지원이 이뤄지면서 밑바닥 경기가 조금씩 올라오는 모습이다. 재난지원금 사용 첫 주말인 지난 16일에는 대구 중구 서문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되찾아 많은 시민들로 붐비기도 했다. 온라인으로는 결제를 할 수 없어서 시민들이 돈을 쓰려고 시장과 소매점으로 나오기 시작했다.샤넬 줄 서기와 붐비는 전통시장 모두 방역적 측면에서는 해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 명품 브랜드를 소비하는 일은 지역 내수 경기 활성화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어 비난의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샤넬 줄 서기를 무작정 비난만 하기 힘든 이유는 이것이 지역 소비심리 회복의 신호이자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대구 최대 번화가 동성로가 텅 비었던 지난 2월 말, 3월 초였다면 과연 샤넬 매장 앞 긴 줄이 생겼을까. 일부를 제외하고 '셀프 자가격리' 수준의 인고의 시간을 보낸 대구 시민은 비로소 돈을 쓰려고 밖으로 나오고 있다.회복되는 소비심리의 대상이 명품이 됐든 돼지고기가 됐든 지금은 소비를 북돋워야 할 때다. 이것이 방역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대구 경제는 최악이다. 소비심리 회복에는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다.

2020-05-19 13:58:02

[취재현장] 가장 큰 위험신호는 방심

[취재현장] 가장 큰 위험신호는 방심

코로나19의 폭발적 확산세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서울 이태원 클럽발(發) 집단감염으로 다시금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방역 당국은 사태를 예견한 듯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가장 큰 위험신호는 방심'이라며 강력히 경고해 왔다.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은 "방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거듭 냈다. 이번 사례에서 재확인된 것처럼 한순간의 방심이 언제든 대규모 감염으로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천지 사태로 거센 후폭풍이 일었던 대구경북(TK)은 정부 지침보다 더 강한 수준의 방역 대책을 유지하며 방심을 경계하고 있다.코로나19 대응에 모든 역량이 집중된 지금, 또 하나의 '방심'이 TK에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바로 국무총리실의 '김해신공항 사업 재검증'이다.김해신공항 재검증은 지난 2019년 6월 총리실에서 추진하기로 결정한 이후 거의 1년간 시간을 끌어왔다. 같은 해 12월부터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안전 ▷소음 ▷환경 ▷시설·운영·수요 4개 분야 14개 쟁점을 검증하고 있으나 '깜깜이' 상태다. 최근엔 4·15 총선이 끝나 정치적 부담이 줄면서 더 이상 미룰 명분도 사라져 발표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그런데 이 중차대한 시기에 지역 일각에서는 묘한 안도감이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하면서 김해신공항 사업이 탄력을 받고, 그의 최우선 공약인 가덕도 신공항 추진은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다.TK와 부산·울산·경남(PK) 5개 광역자치단체 간에 합의한 2016년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김해신공항 안'을 뭉개고 오 전 시장 주도로 밀어붙인 김해신공항 백지화 요구가 동력을 잃을 거라는 것이다.하지만 돌아가는 흐름을 보니 이는 안일한 발상과 나태한 상황 판단력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시정 공백'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PK 정치권이 단합하며 오히려 치밀하고 일사불란하게 막판 정부 압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2년 후 대선·지방선거를 앞두고 오 전 시장의 성추행 사태로 들끓는 '여권 책임론'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지역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선 사실상 PK 최대 숙원 사업인 신공항 해결 카드가 유일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당장 부산의 최인호·전재수·박재호, 울산의 이상헌, 경남의 김두관·민홍철·김정호 등 PK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 전원은 12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만나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논의했다.반면 TK는 총선 이후 여권 인사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이 적지 않은 핸디캡이다. 특히 김부겸 민주당 의원(대구 수성갑)은 김해신공항 문제에 대해 지역 민심을 대변한 사이다 발언으로 날을 세워 왔다.김 의원은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지난 합의를 무시하고 또다시 검증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다음에 정권이 바뀌면 또 바뀔 수 있는 것이냐"며 일갈했고 "한 지역에서 주장하면 우르르 따라가는 식의 국정 운영은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야 한다"며 정부를 질타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또 "5개 지자체가 합의하고 정부도 동의해 결정된 사안을 총리실이 일방적으로 깰 수는 없다"며 강한 브레이크를 걸어 왔다.이제 TK를 대변할 여권 인사는 전무하다. 소통 창구가 좁아진 환경에 '방심'은 가장 큰 위험신호다. 결과에 따라 지역에 미칠 충격은 지금까지의 어떠한 국책사업·현안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늠하기 어렵다. TK의 방심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2020-05-12 11:43:46

[취재현장]  울릉도 여객선 약속 지켜 주세요

[취재현장] 울릉도 여객선 약속 지켜 주세요

경북 울릉도 주민들 사이의 화두(話頭)는 단연 대형 여객선 문제다.울릉군에서 추진하던 신조 대형 여객선 공모 사업이 수개월째 표류하자, 주민들이 나서 범군민연대를 만들고 '이철우 도지사에게 전달한다'며 서명운동까지 돌입했기 때문이다.울릉군은 썬플라워호(2천394t) 운항 중단에 대비해 2017년부터 대형 여객선 유치를 시작했다. 민선 7기 김병수 군수는 대형 여객선 유치·취항을 1호 공약으로 내걸었고, 대형 여객선 조례 제정, 울릉항로 대형 여객선 공모 등 사업을 궤도에 올렸다.이 과정에서 이철우 도지사의 지원도 컸다. 이 도지사는 울릉 군민에게 "대형 여객선은 인권이다"며 "대형 여객선을 취항시키겠다"는 약속도 했다. 거기다 대형 여객선 공모 사업에 전폭적인 지원도 했다.울릉군은 지난해 10월 대형 여객선(규모 2천t 이상, 속력 40노트 이상, 파고 4.2m 미만)을 공모했고, 여객 전용 대형 여객선을 제안한 ㈜대저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해 12월 이철우 도지사·김병수 군수·박석영 ㈜대저건설 대표가 공동협약도 맺었다.울릉군이 공모한 대형 여객선은 기존 여객선과 달리 오전에 울릉에서 출항해야 한다. 주민 일일생활권 보장이 사업 목적이다. 사업성이 매우 낮은 시스템이다. 그래서 울릉군과 경북도가 정책적 재정지원을 하는 조건으로 사업자 공모를 한 것이다. 대형 여객선 공모와 공동협약 체결 그리고 재정지원 등 협상을 마치고 실시협약만을 남겨둔 상태. 갑자기 마지막 단계에서 대형 여객선 문제는 꼬였다.지난 3월 울릉군과 ㈜대저건설의 실시협약 서명 후, 경북도 서명 당일 남진복 도의원(울릉군)이 "울릉 주민들은 기존 썬플라워호처럼 화물 겸용 여객선을 원한다"는 의견을 도지사에게 전했고, 도지사가 서명을 보류했다. 울릉군이 경북도와 협의 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사업자 공모와 공동협약을 체결했고, 당사자 간 협상을 마무리한 상태에서 어떻게 도의원 말 한마디에 주민 숙원사업 추진이 지체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행정행위는 절차와 합의를 지켜야 한다. 아무리 경북도 재정지원에 관한 사항이더라도 지금껏 수많은 절차와 합의를 무시하는 처사다.다음으로 울릉에서 오전 출항하는 여객선은 화물과 택배 시스템이 기존 썬플라워호(오전 포항 출항)와 다르며, 하루가 더 걸려 화물선 시스템과 같다.울릉도에는 대형 화물선이 2대나 있다. 또한, 실시협약의 당사자는 울릉군과 ㈜대저건설이다. 둘은 실시협약에 서명한 상태다. 경북도는 정책적 재정지원 역할이다. 울릉군과 ㈜대저건설이 경북도의 재정지원 조례 제정을 요청했으나, 경북도가 실시협약에 참여하는 것으로 합의됐다.현재 울릉항로 대형 여객선 공모 사업과 행정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다. 이제 군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대형 여객선이 취항할 수 있도록 '이철우 도지사님 약속을 지켜 주세요'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4월 23일 경북도 홈페이지 '도지사에게 쓴소리' 코너에도 실시협약 서명을 간곡히 요청하는 '이철우 도지사님께 드리는 울릉 주민의 편지'라는 글이 올랐다. 이 코너가 생기고 가장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정경호 울릉노인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범군민연대인 '울릉도 대형 여객선 조속한 추진을 위한 협의회'는 4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울릉군의 대형 여객선 공모 사업에 동의하며 대형 여객선의 조속한 운항을 촉구한다"며 "이철우 도지사에게 실시협약 서명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2020-05-05 14:34:20

[취재현장]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해지는 두 순간

[취재현장]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해지는 두 순간

지난 주말 가족과 달성군 강정보로 드라이브를 갔을 때였다.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향했지만 바글바글하던 사람들로 바람을 쐬기는커녕 핸들을 다시 되돌려야만 했다. 실은 그리 놀랍지 않은 풍경이었다. '코로나19' 현장을 취재하며 이미 많이 마주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지난 두 달간 시행했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옅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지면서 지침은 단지 참고할 매뉴얼에 불과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결이 다른 두 모습으로 좁혀졌다. 내일이란 없는 듯 하루살이 불나방 같던 이들에게는 수오지심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생업을 이어가던 이들에게는 측은지심이 든 것이었다.수오지심은 주말마다 일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어울려 부둥켜 안고 마셨다. 동성로의 노래방에는 평일 낮임에도 마치 불타는 금요일 밤을 연상시키듯 직원들이 서빙으로 분주했다. PC방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가 무색할 만큼 손님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고, 보드게임 카페에는 학생들이 마스크를 입에 걸친 채 한창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밤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술집은 지금이 2020년 4월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손님과 종사자 대부분은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거리두기'란 단순 구호에 그친다는 듯 귓속말을 하거나 상대방과 몸을 접촉한 채 춤을 추기도 했다. 인기 있는 술집에 들어가기 위해 좁은 계단에 다닥다닥 서서 줄지어 기다리는 것은 물론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는 이들도 수두룩했다.측은지심은 절박한 삶에서 나왔다. 생계의 '절박함' 앞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치였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말에서는 서글픈 비장함마저 묻어났다. 취업준비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코로나 감염이라는 전선을 뚫어야 했다.대구의 한 공무원 학원 자습실의 열기는 꺼질 줄 몰랐다. 자습실 책상 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 칸씩 띄어 앉아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자리가 다 찬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코로나19로 불안하지 않으냐는 물음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에 가까웠다."그런 것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냐. 시험이 다시 언제 진행될지 불안한 게 제일 크다"는 답이었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그 공간에서 수험생들은 거리를 두라며 밀어내는 사회에서 밀려날까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대구도시철도에서 전동차와 역사를 청소하는 노동자들도 잊히지 않는다. 온갖 이물질과 취객을 싣고 오는 전동차 안에서 취객을 흔들어 깨우다 보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온데간데없었다. 두렵지만 낯선 이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고 어깨를 흔들어 '접촉'해야 했다. 그게 그들의 밥줄이었다.가족의 생계를 위해 거리를 좁혀가는 이들과 따분함을 떨쳐내려 거리를 좁혀버린 이들의 간극은 커 보였다. 여러 사람을 태워야 해 미안하다며, 결제를 끝낸 신용카드를 살며시 의자 위에 얹어주며 또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택시운전사의 모습은 벚꽃 풍경 대신 올해 봄 뇌리에 박힌 기억이 됐다.코로나19에서 그를 지켜주는 방패, 마스크와 택시에 비치된 소독제 하나만 들고 생계 전쟁에 뛰어든 누군가의 가장이었다. 그는 또다시 누군지도 모를, 미지의 손님을 찾으러 바쁘게 떠나고 있었다.

2020-04-28 20:05:22

[취재현장] 대구 자영업자, 앞으로 한두 달이 고비다

[취재현장] 대구 자영업자, 앞으로 한두 달이 고비다

"하루 매출보다 전기세가 더 나갈 정돕니다. 한두 달 버텨보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가게 문을 닫으려 합니다."대구 중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서 캘리그래피와 그림을 그려 기념품을 만들어 팔던 A씨는 그동안 꾸려온 가게의 폐업을 고민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지난달까지 가게에서 발생한 매출은 29만9천원으로 같은 기간 전기 사용료 56만원의 절반 수준이었다.신한카드가 최근 대구시에 제공한 '코로나19에 따른 대구광역시 소비 동향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에서 발생한 신한카드 매출액은 96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9% 줄었다. 매달 임차료와 직원 인건비, 재료비로 인한 고정비용이 평소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적잖은 점을 감안하면 자영업자들의 실제 수익 감소 폭은 이보다 훨씬 큰 상황이다.지역에서도 최근 코로나19 글로벌 확산으로 타격을 입은 자동차부품, 기계, 섬유 등 제조업도 문제지만 자영업자 대책이 시급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만난 한 지역 경제 전문가는 "제조업의 경우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그동안 교역 단절로 늦춰진 설비투자나 납품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자영업자들에게는 그런 희망조차 없다"며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근로자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서 평년 수준까지의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실제로 상당수 대구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발생할 '보복소비'도 남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시민들의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지역 영세 가게가 아닌 백화점, 호텔로 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식당이나 카페 등 음식을 팔거나 마진을 남기지 않고 박리다매식으로 파는 자영업자 가게들은 사실상 매출 반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지역 자영업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데도 불구하고 이들을 위한 지원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도 어려움을 더한다. 실제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작년 기준 대구 자영업자 비중은 전체 취업자 중 23.1%에 달하지만 코로나19 긴급대출 등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소상공인진흥공단 지원센터는 이달 초만 해도 전국에서 가장 적은 6곳에 불과했다. 피해 자영업자는 많은데 지원센터는 부족해 대출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자영업자가 속출하는 등 논란이 일면서 소진공은 부랴부랴 16일과 20일 경북 영주센터와 대구 서부센터를 개소했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는 얘기가 많다.벌써부터 매출 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자영업자도 속출하고 있다. 동북지방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경북에서 감소한 취업자 수는 11만2천 명으로 이 중 6만 명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비중이 높은 도소매숙박음식점업과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 취업자였다.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산다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소비심리가 회복될 향후 한두 달이 고비다. 최근 대구 신규 확진자가 진정세에 접어들며 시민들이 조금씩 거리로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작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20~30% 적은 상황이다. 매출 감소 폭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만이라도 지원이 절실하다.그래서 대구시가 자영업자를 비롯한 시민들에 대한 생존자금을 본격 지원하는 등 경제 방역에 집중하기로 한 점은 반가운 얘기다. 긴급생계자금과 소상공인 생존자금,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 지원 등 지원 예산이 이달부터 5월까지 줄줄이 풀릴 예정이다.대구시도 곳곳의 아낀 예산을 끌어모아 지원을 결정한 만큼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이들에게 지원이 돌아가야 한다.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채 소상공인지원센터 앞에 줄을 섰던 자영업자들은 한시가 급하다.

2020-04-21 16:47:19

[취재현장] 보수 지역 단체장의 진보로 가는 길

[취재현장] 보수 지역 단체장의 진보로 가는 길

보수 텃밭 단체장의 진보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권영세 안동시장의 더불어민주당 입당 관련 발언 이후 보수 세력들의 저항이 노골적이기 때문이다.정치적 욕심 없는, 지역 발전만을 생각해 내린 '육참골단'의 진보로 가는 길에 보수 세력들은 '배신' '선거 개입' 등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프레임을 덧씌우고 있다.사실 권 시장은 세 번의 선택을 받는 동안 두터운 보수층의 지지를 받았다. 재선은 보수당 공천을 통해, 3선 때는 보수당을 나왔지만 여전히 보수층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이 때문에 보수 세력의 반발은 불 보듯 했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꾸준히 민주당 입당 얘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입당에 대한 입장을 밝힌 시기가 민감한 총선 정국이기에 더욱 그러하다.보수를 대표하는 미래통합당이 안동예천 선거구에 공천한 김형동 후보는 연일 정체성, 자격 시비에 휘말려 있는 데다, 보수층 무소속 후보가 무섭게 쫓아오고, 이삼걸 민주당 후보조차 만만찮은 지지세를 보이는 상황이니 더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이 때문에 보수당과 무소속 후보들은 '보수에 대한 배신 행위' '공무원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등 잇따라 맹공을 퍼부으며, 권 시장의 민주당 입당으로 흔들릴 중도층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여기에 미래통합당 소속 안동시의회 의원들도 권 시장의 민주당 입당을 규탄하는 성명과 시위를 벌이면서 권 시장의 민주당 입당에 대한 흠집 내기에 앞장서고 있다.권영세 안동시장은 지난달 30일, 안동시청 브리핑룸을 조용히 찾아 몇몇 언론사 기자들에게 담담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이나, 무소속 단체장으로서의 한계 등을 얘기하면서 "여당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고 했다.남은 임기 2년, 지난 10년 단체장 재임 동안 이런저런 일들로, 이런저런 외부의 간섭으로, 이런저런 부족함으로 지역 현안을 살피지 못했던 권 시장으로서는 짧은 시간이라는 생각이다.국회의원을 꿈꾸지도 않았다. 단체장을 끝내고 중앙정부 진출에도 욕심을 낸 적이 없다. 한때는 4·15 총선 출마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오로지 3선 단체장으로 지역 발전의 획을 그어 놓고 퇴임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보수층의 지지를 얻었지만, 진보 정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 TK 지역의 현실을 분명히 보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수 세력 정치인을 배출했지만, 해결하지 못한 지역 숙원은 여전히 숙제로 남겨져 있다.안동댐 주변 개발을 옥죄고 있는 '안동댐 주변 자연환경 보전지역', 눈앞에 왔지만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철도역사 부지 개발, 도청 신도시와 안동 구도심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엮어내기 위해 시급하지만 여전히 엄청난 예산이 가로막고 있는 '옥동~신도시 직항로' 등 지역 현안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 뚜벅뚜벅 가는 길이 '지역 발전'이라면 당당한 걸음, 가벼운 걸음이 되도록 믿어줘야 한다.단순히 표 계산에만 매몰돼 대안도 없는 비난이 아니라, 보수 세력 지지로 얻은 단체장이기에 보수층에 충성해야 한다는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양으로 남은 2년의 시간을 지역 발전에 '올인'하려는 권 시장의 진정성을 살펴주어야 하지 않을까?지난 수년 동안 지역을 대표했던 보수 정치 세력들은 자신들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봐야 한다. 지역 발전을 위한 대안 없는 비난을 그만두고, 스스로를 지역 발전을 위한 희생양이 되려는 권 시장의 진보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도록 해줘야 한다.

2020-04-07 14:14:33

[취재현장] 코로나19 경제대책, 대구경북에 집중돼야

[취재현장] 코로나19 경제대책, 대구경북에 집중돼야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19가 '10년 주기 경제위기설'까지 다시 불러왔다. 1997년 IMF,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약 10년 만에 경제위기가 다시 찾아왔다는 것이다.신호탄은 지난 설 연휴 직후 중국의 춘절 연휴가 일주일 이상 연장되는 등 '세계의 공장'에서 생산이 멈춰 선 일이다. 설 연휴가 끝나고는 국내에서도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했다. 최근 국내 확진자 증가세가 주춤하자 이제는 유럽, 북미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결국 이번 주 들어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 인도 공장이 멈춰 섰다. 세계 최대 시장 미국도 지난 23일 기준 확진자가 4만 명을 돌파하며 비상이다. 생산기지와 소비시장이 모두 흔들린다. 국가가 돈을 쥐여 줘도 사람들이 소비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소비심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지역 경제계는 "지난해 한일 갈등,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해 느꼈던 위기감이 지극히 사소해 보일 지경"이란 반응마저 보이고 있다.더 걱정스러운 대목은 대구경북 지역 기업이 처한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는 점이다. 대구경북에선 24일 오전 기준 각각 6천442명, 1천257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는데 이는 국내 전체 확진자의 82.7%에 달한다.한 지역 경제 전문가는 "대구경북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주력산업이 시대 변화를 못 따라가면서 생긴 구조적 위기를 안고 있었던 점이 문제다. 경제 기초체력이 약한 상태에서 '역대급 위기'까지 겹쳤으니 극복할 여력이 있을지 걱정스럽다"는 진단을 내놨다. 비유하자면 이미 기저질환으로 기력이 떨어진 고령층이 또 다른 병을 얻은 상황이다.지역 기업들도 코로나19로 인한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구상공회의소가 이달 중순 지역 기업 336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한 현재 체감경기'에 대해 68.5%가 더 나쁘다고 답했다. 더 낫다는 응답은 4.5%에 그쳤으니 그 위기감을 짐작할 수 있다.응답 기업의 35.4%가 올해 기존 계획했던 채용을 축소하거나 39%는 채용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근래 전국 평균보다 나쁜 성적표가 익숙했던 지역 고용지표도 악화될 것이 염려된다.그런 점에서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회의에서 100조원 규모의 기업 구호 긴급 자금을 투입해 '코로나 도산'을 막겠다는 반응은 반갑다. 다만 고령자, 기저질환자에 대해 우선적으로 입원 치료를 실시했듯이 경제 대책에 있어서도 취약 지역에 대한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대구경북에 코로나19가 확산한 직후부터 대통령, 국무총리, 경제부총리가 차례로 다녀갔음에도 현장에서의 지원 체감은 미미하다는 반응이 계속 나온다.정부는 대구경북 소상공인들과 기업인들의 절박한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 대구상공회의소는 이미 특별재난지역 소재 기업의 세제혜택 확대, 원활한 기업자금 지원, 기업용 마스크 특별 배정을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다.지역 기업인들은 구체적으로 특별재난 중소기업에 한정된 소득·법인세 감면을 중견기업에까지 확대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또 매출 감소에도 고용을 유지하는 특별재난지역 소재 기업에 대해서도 고용 증대 세액공제 금액과 기간 확대, 사후 관리 완화 등 보다 과감하고 폭넓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대구경북 경제에는 정부의 신속하고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역 경제 고사를 막고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

2020-03-24 15:30:02

[취재현장] "부총리, 대구 갔다 왔습니까?"

[취재현장] "부총리, 대구 갔다 왔습니까?"

"가려고 하니 일단 방역에 중점을 둬야 하기 때문에 좀 나중에 와달라는…."윤재옥 미래통합당 국회의원(대구 달서을)이 지난 11일 국회 예결위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관련 질의 도중 "홍남기 부총리, 대구 현장 한 번 갔다 왔습니까?"라고 추궁하자 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놓은 답변이다. 이러한 대답에 윤 의원은 "한 번 가서 봐라. 지금 얼마나 민생이 피폐해 있는지 봐라"면서 "현장을 가보고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달라"며 현장형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비슷한 일은 전날에도 있었다. 추경호 통합당 의원(대구 달성)은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대구에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게 2월 19일부터"라며 "부총리는 대구 한 번 방문한 적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홍 부총리는 "국무총리가 방역을 진두지휘하고 있어 적당한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고 답했고, 추 의원은 "경제 사정이 엄중한데 부총리가 진작 갔어야 했다"며 "한 번 와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추경안을) 하는 건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이 두 장면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추경안이 왜 지역에서 실질적 대책이 빠진 '맹탕 처방'이라는 후폭풍이 일었는지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현장과 온도차가 큰 대책들을 누더기식으로 나열하다 보니 추경안 지원 사업이 지역경제 회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코로나19 직격탄으로 대구 산업과 경제가 빈사 상태에 처하면서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매출 급감으로 현금 흐름이 꽉 막힌 상황. 하지만 긴급경영자금 융자, 특례보증, 매출채권보험 등은 대출 중심의 간접 지원에 그치고, 기존 대출이 있거나 신용등급이 낮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하소연이 현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또 정책자금 지원 신청도 급증한 영향으로 심사에서 자금 수령 단계까지 병목 현상이 발생하면서 지역 소상공인들은 답답함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 지원 역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시민들이 외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고, 지역 전통시장과 골목상권도 자체 휴점·휴업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현장을 제대로 모르다 보니 한마디로 격화소양(隔靴搔癢)식의 대책이 나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추경 심의를 앞두고 경제 수장이 현장을 찾아 직접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추경안에 이를 반영했더라면 야권의 반발도 최소화했을 수 있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 추경안 상정이 예정됐던 17일까지도 홍 부총리는 지역 민생 현장을 끝내 찾지 않았다.앞서 홍 부총리는 국회에서 코로나19 관련 답변 중 무심코 '대구 사태'라고 말했다가 이를 황급히 정정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11일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물러나라고 할 수 있다"고 거취를 압박하며 질책했고, 홍 부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나갈 것"이라며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추경 증액에 반대 입장으로 맞서면서 파열음이 증폭됐다. 논란과 갈등을 빚을 순 있으나 문제는 경제난 극복에 손발을 맞춰도 어려운 시점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을 만큼 지역민들이 처한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지역 경제가 장기 침체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해소할 특단의 경기부양책이 시급하다.이달 2일 추경안 당정 협의에서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피해를, 불만을, 요청을 더 깊이 헤아리겠다"면서 "모든 정책 역량을 동원해 최대한 버팀목으로서 뒷받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울먹였던 홍 부총리가 진정성을 다시 꺼내 보일 때다.

2020-03-17 15:33:49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