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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문재인 정부 들어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던 일자리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생계를 잇던 일자리는 위태로워졌고 물가는 다락같이 올랐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등 사회적 약자층을 위한다는 선의를 내걸었지만 결과는 '없는 사람일수록 더 힘들어지는' 역설로 나타나고 있다.없는 사람, 못 배운 계층일수록 힘들게 됐다는 사실은 몇몇 수치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지난달 고졸 취업자는 1년 전에 비해 28만8천 명 줄었다. 이들은 주로 기능·기계조작·조립·단순노무직으로 일한다. 반면 회사 사장이나 임원 등 고위직이나 변호사 같은 고임금 전문직은 호황이다. 1년 전보다 14만 명 가까이 일자리가 늘었다. 포퓰리즘 경제정책들이 서민 일자리만 잡았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 40대 가장 등 전통적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다. 올 상반기 10~299인 규모 중소기업 4만5천여 곳이 문을 닫았다. 새로 문을 연 중소기업보다 1만1천여 곳이 더 많았다. 그만큼의 일자리도 허공에 떴다. 요즘 기업인들은 경기 침체에 가중되는 인건비 부담, 노조와의 갈등을 우려해 사업 확장이 아닌 접을 궁리만 하고 있다.자영업자들은 그들대로 아우성이다. 대표적인 서민 창업 대상인 음식점은 열고 닫는 속도가 비슷해졌다. 지난해 문을 연 음식점이 18만1천여 곳, 문을 닫은 곳은 16만6천여 곳이다. 10곳이 문을 여는 동안 9.2곳은 간판을 내렸다. 고용원 없이 혼자 가게를 운영하다 접은 경우도 10만2천 곳에 달한다. 최저임금이 대폭 오른 올해 폐업신고는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문을 닫고 여는 업소가 역전했을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거리마다 임대 현수막이 나부끼고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은 거리로 나서고 있다.직장에선 40대 가장들이 밀려나고 있다. 지난달 말 40대 취업자수는 1년 전보다 14만7천 명이 줄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유례가 없는 일이다. 40대면 가정에서 한참 어린 자녀를 양육해야 할 시기다. 그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가정의 위기로 연결된다.세계가 다 우리나라 같다면야 이해하겠는데 그렇지 않다. 소득주도성장을 실험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세계는 대부분 호황이다. 미국과 일본은 완전고용을 자랑한다. 미국은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나서 "완전고용상태이거나 이를 넘어섰다"고 말하고, 일본은 공무원들의 '투잡'을 권할 정도로 인력난에 시달린다.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누구나 이유는 안다. 대다수의 손가락이 소득주도성장을 지목하고 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손가락만 쳐다본다. 그것도 보고 싶은 손가락만 본다. 매번 더 나빠진 경제지표를 받아들면서도 날씨 탓, 인구구조 탓을 하기 일쑤다. 이명박·박근혜 전 정부 탓도 빠지지 않는다. 중국인 관광객 감소 탓도 나왔다. 소득주도성장엔 시간이 필요하다며 둘러댄다. 고용 쇼크에 19일 당·정·청이 긴급회의를 열고 '송구스럽다'며 내놓은 대책이 '재정확대'다. 문 정부는 지난 2년간 일자리 창출에 37조원을 쏟아부었다. 소득주도성장 아닌 세금주도성장이란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그런데도 정부는 세금 쏟아붓는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더러 불통 정부라 욕하더니 이보다 더한 불통 정부다.

2018-08-20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문 정부의 경제 브랜드 체인지(Brand Change)

청와대의 경제 노선 투쟁이 심상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인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했던 '일자리 창출' 부탁을 잊었는지 청와대 참모들은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이 부회장을 만나는 것에 대해 '투자고용 구걸'을 하는 것이냐며 딴죽을 걸었다. 김 부총리가 이 부회장을 만나는 것이 '구걸'이라면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했던 부탁 역시 '구걸'인데 이는 청와대 실세들과 문 대통령 간 경제 노선을 두고 심각한 이견이 표출된 것이어서 보통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8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다 최근의 지지율은 58% 전후로 떨어졌다. 여론조사 회사별로 평균 20% 가까이 하락했다. 이를 국민 대비 단순 수치로 환원하면 약 800만 명이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하락 요인은 바로 악화일로인 경제 때문이다. 해프닝 같은 사건 같아 보이지만 이번 '투자고용 구걸' 논란은 향후 문 정부의 공과(功過)를 가를 수 있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는 결국 문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력을 위해 좀 더 시장기업친화적으로 가느냐, 아니면 저소득층에 대한 분배 중심의 소득주도성장을 그대로 밀어붙이느냐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 달리 말하자면 앞으로 문 대통령이 어떤 경제 브랜드로 마케팅할 것이냐로 귀결된다. 싱가포르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 리센룽 총리는 2005년 4월 의회를 찾았다. 카지노가 낀 복합리조트 개발계획을 관철시키기 위해 의원들을 만나러 갔다. 그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카지노는 안 된다"고 한 아버지는 겨우 설득했지만 의원들은 '사행심을 조장하고, 전 국민의 도박중독 위험' 이 있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다. 이에 리 총리는 "자신도 한때 카지노를 반대했다. 다른 글로벌 도시들에 뒤처지는 싱가포르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카지노가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카지노가 싱가포르 사회에 끼치는 마이너스 요인들을 열거한 뒤 이렇게 얘기했다. "창문을 열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지만 동시에 파리 같은 곤충과도 싸워야 한다. 곤충이 싫다고 문을 안 열 수는 없다." 싱가포르 경제를 일으킨 '신의 한 수'라고 평가받는 마리나베이샌즈(MBS)는 이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 경제를 흔드는 이들은 국민과 기업이 아니라 오히려 청와대, 이 정권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했다고 자부하는 얼치기 진보 좌파 이론가들과 시민단체이다. 문 대통령이 규제혁파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이를 대기업에 대한 특혜로 규정해온 일부 좌파들은 문 정부가 대기업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데 대해 불만을 쌓아 왔다. '투자 구걸' 주장은 이념적 선명성을 유지하려는 세력의 집단적 불만이 투영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진정 리센룽 총리처럼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정권을 받치는 내부 파리들과 과감히 싸우고, 여의치 않을 경우 결별까지 감수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고용을 늘릴 수 있다면 경제부총리가 아니 대통령이 구걸을 한들 어떻고, 읍소를 한들 어느 국민이 싫어하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우군이었던 좌파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은 흔들어도 경제는 흔들지 말아주십시오".

2018-08-13 05:0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갈등 권하는 정부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필요한 것을 갖기 위해 다툰다고 한다.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인간 사회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다투기만 했다면 오늘날 인류가 공존하고 있을 리 없다. 인간은 투쟁의 장을 공존의 장으로 바꾸는 기술을 찾았다. 바로 정치다. 이를 두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류 사상 최초의 직업이 정치'라고 짚었다. 정치인을 욕하지만 인간은 더불어 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상생의 장치로 정치를 택했다.정치는 독이기도 하고 약이기도 하다.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정치는 치열한 투쟁의 장이 된다. 온갖 이해 집단들의 이해관계는 난마처럼 얽혀 갈등이 분출한다. 훌륭한 리더는 이를 뚫고 큰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간다. 이엔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한때 그것이 부족한 리더는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했다. "여기에 앉은 내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 미국 대통령(하딩)도 있었다. 물론 그는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엉킨 실타래를 단칼에 베어 해결하려는 시도는 현명하지 않다.요즘 국민들 마음이 편치 않다. 엉킨 실타래를 풀 생각은 않고 단칼에 베려 든다는 생각이다. 갈등은 분출하고 출구는 암흑천지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갈등 조정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2년간 최저임금을 30% 가까이 올리면서도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등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해 비롯된 일이다. 소상공인들은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며 아우성이다. 갈등의 골은 깊어 가는데 청와대는 그저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 일일 뿐이란다. '최저임금 이의신청'이란 소상공인들의 마지막 몸부림마저 가벼이 걷어차 버렸다. 물론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하지만 진정한 대책은 '나를 잡아가라' 아우성치는 소상공인의 뜻을 깨우치고 연착륙 기회를 주는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조급하다.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할 때 밀어붙이자는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점은 득은 적고 실은 많다는 것이다. 북 비핵화를 확인도 않은 채 남북경협부터 추진하는 것이 그렇다. 덜컥 탈원전부터 선언해 잘 가동 중인 원전을 세운 것도 마찬가지다. 정작 일자리를 만드는 주역인 기업은 후려치면서 성장과 일자리를 강조하는 대목은 코미디 수준이다. 덕분에 일자리 전광판은 싸늘하게 식었다. 내 편만 챙기는 사이 갈등은 지역, 세대, 노사를 넘어 남녀 성 간 갈등까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사회 갈등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다 보니 세계 경제는 호황인데 우리나라 경제만 곤두박질치고 있다.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성공하기 어렵다. 지금 박수소리가 크다고 그 정책이 훗날의 박수로 이어질 리도 만무하다. 갈등을 해소한답시고 막대한 예산을 들이미는 것은 임시방편은 될지 모르나 미래의 화를 키울 뿐이다.19세기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는 나라 밖으로 유럽의 세력 균형을 주도하고, 안으로 사회주의자들을 회유하며 불만을 누그러뜨려 독일제국을 일궜다. 그의 리더십 아래 독일은 통일되고 융성했다. 그는 정치를 두고 '통치의 예술'이라 했다.문 대통령에게서 '예술 같은 통치'를 기대하는 것은 허튼 꿈인가.

2018-08-06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좌파 권력과 시장 권력

노무현 정부 때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로 아파트 공급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시민단체들은 공사 원가 공개를 요구했다. 정부가 의지만 있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정부 통제 아래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하여금 원가를 공개토록 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는 상황이었다.하지만 노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스스로 고백했듯이 재임기간 내내 신자유주의를 정책의 틀로 삼았다.외환위기 후의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 정부에서도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지배 원리로 작동하면서 비정규직과 청년실업가계 부채의 증가, 아파트가격 폭등,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를 가져왔다.노 전 대통령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시민사회단체와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한미 FTA 체결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 정부는 시장이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도록 해주면 경제 전반이 활성화되면서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한 실패였다.이에 대한 반작용일까? 프레임 설정에 강한 노무현 후계자들, 문재인 대통령과 정책 참모들은 노 정부의 실패를 교훈 삼아 '시장 중심주의'에서 국가의 시장 개입과 통제를 정책 작동 원리로 신봉하고 있다.문재인 정부는 사사건건 정부 재정을 투입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국가의 힘으로 시장을 제어조율할 수 있다고 맹신하는 듯하다. '재정 중독증 정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문 정부는 정부 재정을 투입해 공무원 수를 늘리고 공공 부문 비정규직을 줄이는 방법 등으로 81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약했다. 더불어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 주 52시간 근무 정착, 청년실업 해소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문 정부는 공공 부문이 모범적인 고용주 역할을 하면 그 효과가 일반 기업에까지 전파된다고 보는 듯하다. 1990년대 이전까지와는 달리 시장에 대한 국가의 우위는 사라졌다. 기업 중심의 경제 권력이 국가 중심의 정치 권력을 능가하고 있다.국가가 시장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보면 큰 오산이다. 우리 경제와 기업은 이미 국가 간, 지역 간 경계가 없는 글로벌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다.문 정부의 취지는 좋다. 그러나 결과는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보고, 기업주들은 문 정부의 바람과는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 기업들은 문 정부의 노동조건 개선에 맞서 고용을 늘리기보다는 자동화, 해외 이전, 사업 축소 혹은 포기 등 다양한 형태로 대응하고 있다.문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고용의 80% 이상을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 정부가 그토록 의식하는 대기업 중심의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는 5%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주와 그곳 노동자들의 눈물도 닦아주는 대책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다.'시장을 이기는 정책 없다'는 지적을 문 정부는 곱씹어 봐야 한다. 해결 방향은 단순하다. 국가와 시장이,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뿐이다.문 정부 브레인들과 여당 일각에서 기업 성장 원인을 노동자 착취로 보는 이상 아무리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경제 활력은 찾을 수 없다. 문 정부와 여당이 한때 해체 대상이라고 주장했던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에게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을 부탁하지 않았던가.

2018-07-29 15:26:14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착한' 정부의 함정

문재인 정부는 '착한' 정부를 표방한다. '착한'이란 말이 늘 따라 다닌다. 문 정부가 편성한 예산은 착한 예산이 되고 착한 추경이 된다. 부자과세는 착한 과세고 청와대 초청 기업은 착한 기업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착한 경제요 착한 성장이다. 해주지 않고서야 착하다는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근로자 최저임금을 서둘러 1만원까지 올리려는 것부터가 그렇다. 올해 최저임금을 10.9% 올린 후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가 사실상 어려워지게 된 것'에 대해 대통령이 나서 사과했다. 내년부터 300만 가구가 근로장려금을 받게 된다. 예산은 4조원으로 늘었다. 저소득층 노인 기초연금은 30만원으로 올렸다. 노인층에 60만개의 일자리도 제공한다. 저소득층 청년은 현재 최대 90만원인 구직활동 지원금을 내년부터 최대 3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환자가 전액 부담했던 비급여 진료를 단계적으로 급여화하는 '문재인 케어'도 현실화하고 있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일단 해주고 보자는 취지다. 취지가 착하다고 모든 정책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특히 미래 국민의 삶의 질이 담보되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재정이다. 문 정부는 지난 정부가 편성한 일자리 예산 17조9천억원에 더해 지난해 7월 추경 11조원을 편성했다. 올해도 본예산 19조2천억원에 추경 3조9천억원을 더했다. 2년간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도 받아든 성적표는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고용쇼크다. 정부는 나아가 내년 470조원에 이르는 슈퍼 팽창 예산을 계획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이후 2년간 연 20조원이상씩 세금이 더 걷히고 있는데 이를 아낌없이 쓸 계획이다. 지금이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청구서는 이 정권 이후에나 날아들게 돼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복지 확대를 위한 적자재정이 지속되면 2060년 국가 채무가 기존 예상보다 3천400조원 폭증한다고 경고했다. 각종 기금도 줄줄이 바닥난다. 지난 정부에서 20조원이상 쌓였던 건강보험적립금은 2026년이면 고갈되게 생겼다. 이후 건보료 인상 외엔 답이 없어보인다. 지난해 말까지 10조원 정도를 모아둔 고용보험기금도 실업수당 급증으로 2020년까지 버티기도 힘들게 됐다. 국민대다수가 노후를 의존해야 할 국민연금은 새 정부 코드에 맞는 기금운용본부장을 구하지 못해 수익률이 코스피 수익률을 한참 밑돈다. 현재 42조원의 여유자금을 가진 주택도시기금도 현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에 따르면 빠르게 말라간다. 값싸고 안정적인 원전을 줄여나가면 머잖아 전기료를 안 올릴 재간이 없다. 국민들에게 많이 해주려면 많이 벌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돈 벌 궁리는 않고 저지레를 하고선 뒷수습은 고스란히 기업과 국민 세금에 떠넘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이 아우성을 치자 김상조공정거래위원장은 예정에도 없던 대기업 갑질 조사 카드를 디밀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삼성이 협력업체를 쥐어 짜 세계 1위를 만들었다'며 화살을 한국대표 기업에 돌렸다. 그러는 사이 한국에서 2만3천개 대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문정부 출범후 불과 2년사이 벌어진 일이다. 자영업 매출은 1년 새 12%가 급감했다. '착한' 경제는 허울 뿐이다. 이쯤 되면 착한 정부가 아니다. 그저 착한 척하고 있을 뿐이다.대통령부터 미래를 위해 '착한'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독해져야 한다. 지금 정부는 정치에만 독하고 경제에는 무르다. 이래서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다.

2018-07-23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취수원 문제 우(禹)가 물길 트듯이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농업용수 문제가 심각했다. 마른장마에 가뭄이 닥치면 천수답의 말라 죽는 벼와 함께 농부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도랑물을 가두는 보매기(보막이)는 벼농사의 성패를 좌우했다. 날이 가물면 물을 지키고, 빼가려는 농부들 사이에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졌다.보 싸움과 물꼬 싸움에는 이웃사촌도 없었다. 육두문자가 오가는 것은 기본이고 논두렁에서 육탄전을 벌이는 것도 다반사였다.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와 이웃 부족인 콜리야는 로히니강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양쪽 부족 사람들은 물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해 강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었다.처음에는 몇 사람의 입씨름에서 비롯된 싸움이 급기야 군대까지 동원되기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접한 부처님은 분쟁 지역으로 달려갔다. "그대들은 물과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소중하오?" "물보다는 사람이 훨씬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물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버리려고 합니까?" 부처님의 중재로 싸움은 끝났다. 하마터면 피로 물들 뻔한 로히니강은 다시 두 부족의 소중한 식수원이 되었다.대구권 취수원의 구미 이전 문제가 꽉 막힌 채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물꼬 싸움하듯 격렬한 대치만 있다. 낙동강 페놀오염 사태와 최근의 과불화화합물 유출 파동에서 보듯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는 대구권 300만 주민들에게 생명선이나 다름없다.생명을 담보하는 안전한 취수원 확보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부, 대구시, 경북도, 구미시 4자가 마주 앉아 해법을 찾아야 한다. 먼저 대구시는 시장, 국회의원, 경제계 및 민간대표들로 사절단을 꾸려 구미시민을 만나라. 만남을 거부하면 수십 번이라도 찾아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 만나서 대구시민들의 절박한 사정을 진정성 있게 이해시켜라.행정적으로는 정부가 나서 구미시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공업용수 부족과 취수원 이전 지역의 재산권 침해에 대한 보상을 약속해야 한다. 공업용수 부족이 사실이라면 이에 대한 대책도 만들어야 한다.이에 더해 구미지역의 각종 인프라 건설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역대 총리가 취수원 이전 문제 해결을 약속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다. 정부도 낙동강 수계오염이 '물복지' 차원에서 국가적 비상 상황으로 인식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구와 구미 간 중재에는 경북도의 역할도 중요하다.구미는 대구에 사는 내 친구의 고향이고, 대구가 고향인 나의 사촌은 구미에서 다섯 식구가 오손도손 살고 있다. 구미와 대구는 한 우물을 파서 먹고 살아가야 할 이웃사촌이다.왕조시대에도 물을 다스리는 것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과제였다. 요(堯) 임금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황하의 범람이었다. 신하들은 곤(鯀)을 천거했다. 그는 흙으로 높은 방죽을 쌓아 물을 가두려고만 했다.그러나 아무리 둑을 높이 쌓아도 폭우가 쏟아지면 무너졌다. 9년 동안 둑 쌓기를 반복했지만 황하의 범람을 막을 수 없었다. 곤은 치수사업 실패로 죽임을 당했다.다음 해결사로 우(禹)가 천거됐다. 그는 둑을 쌓기보다는 물길을 돌리는데 주력했다. 물길을 터서 흘러가게 했으며 물길을 분산시켜 힘을 약화시켰다. 우는 인심을 얻어 결국 왕이 되었다.대구 취수원 이전과 관련된 지도자들은 '지혜롭기가 우가 물길 트듯이' 결단해야 한다.

2018-07-16 05:0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한전 사장의 두부값 타령

기업의 가장 큰 목표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얻는 것과 살아남는 것이다. 세계 3대 경영 석학으로 평가받는 마이클 포터 미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지적이다. 기업이 이윤을 내야 살아남고, 살아남으려면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다.그런데 예외가 있다. 최소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최대 이익을 남기지 않아도 계속 존속할 수 있는 기업들이 있다. 이른바 공기업이다. 공기업은 공익을 앞세운다. 이를 이유로 대개 독점적 지위를 부여받지만 실은 수익도 비용도 고스란히 국민 호주머니서 나온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문 닫을 염려도 없다. 방만 경영으로 부실해지면 요금을 올리면 그만이다. 공기업 사장이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업가로서 주인의식을 갖지 않으면 국민이 괴로워지는 이유다.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두부값 타령을 했다. '콩을 가공해 두부를 생산하고 있다' 했으니 자신을 영락없는 두부공장 사장에 빗댔다. 두부값이 콩값보다 싸졌다며 '두부공장의 걱정거리'라 했다. 여기서 '두부공장'은 한전이다. '두부'는 전력이고, '콩'은 석탄, LNG, 석유가 된다. 콩값이 올랐는데 두부값을 제때 올리지 않아 적자로 돌아섰다며 은근슬쩍 전기료 인상을 시사한 것이다.그런데 찜찜하다. 멀쩡하던 콩값은 갑자기 왜 올랐을까. 값싸고 질 좋은 콩은 값이 하나도 안 올랐다. 비싸고 질 떨어지는 콩만 올랐다. 그런데 안 오른 콩은 버리고 오른 콩만 골라 두부를 만들더니 두부값 타령이 나왔다. 비싼 콩만 사들인 것은 두부공장 사장이고, 이를 시킨 것은 그 위의 회장이다.한전은 2015년부터 2년간 매년 1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러다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한 지난해 영업이익은 5조원 밑으로 반 토막이 났고 급기야 지난해 4분기 1천294억원, 올 1분기 1천276억원 등 2분기 연속 손실을 봤다. 80%대를 웃돌던 원전 가동률은 50%대로 떨어졌다. 올 1분기 발전원별 전력단가는 ㎾h당 원자력은 67원, 석탄은 92원, LNG는 125원, 신재생에너지는 165원이다. 2016년 29%이던 원전 생산 비중은 올 1분기 18%로 줄었고, 석탄 비중은 같은 기간 39.8%에서 43.4%, LNG 비중은 23%에서 30%로 늘었다. 콩값이 올라 두부값과 역전한 것이 아니다. 무리해서 비싼 두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원자력발전은 미세먼지(PM10)나 초미세먼지(PM2.5)의 원인이 되는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모두 0g/㎿h다. 반면 석탄발전은 질소산화물을 무려 411g/㎿h를 내놓는다. '친환경 발전'으로 포장한 LNG 발전소는 인체에 해로운 초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원이다. 기체 형태를 포함하면 석탄발전에 비해 초미세먼지 발생량이 최고 7.6배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미세먼지로 매년 460만 명이 사망한다.이쯤 되면 한전 사장의 두부값 타령은 선후가 바뀌었다. 정부가 비중을 늘리고 있는 태양광풍력발전을 모두 포함해도 모든 발전 수단 중 원전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낮다. 특히 우리가 사용 중인 가압경수로형 원전의 경우 세계적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없다. 한전 사장의 비싼 두부는 이를 버린 탓이다.공기업도 기업이다. 최대 이윤은 몰라도 최소 비용으로 양질의 재화와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진다. 값 싸고 질 좋은 에너지원이 무조건 우선이다. 그렇잖으면 '두부공장의 걱정거리'가 '국민의 걱정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2018-07-09 05:00:00

이춘수

[매일칼럼] 친문 패권과 한국 리스크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8월 25일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치른다. 새로 선출될 당 대표는 2020년 21대 총선 공천권을 갖고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어 민주당의 3선급 이상 의원 다수가 욕심을 내고 있다. 하마평에 오른 친문(親文) 후보만 줄잡아 10명이 넘고 나머지 도전자들도 범문(汎文)임을 자임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진문(眞文)이 누구를 미느냐로 당권이 교통정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친문의 권력 독과점은 2016년 8·27 전당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이때 친문은 당 대표, 최고위원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또 민주당은 최근 3년간의 선거에서 트리플크라운(20대 총선, 19대 대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을 기록했다. '보수 폭망'에 따른 반사이익도 있었지만 모두 친문에 의한. 친문을 위한, 친문의 정치로 국민의 평가를 받은 결과였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정치 시계는 친문의 선택이고, 한국의 권력 지도는 친문의 향배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는 생물이라지만 보수가 지리멸렬한 현재의 여건상 친문의 위상과 국정 주도력은 당분간 불가역적일 정도로 철옹성에 가까워 보인다. 친문은 친노(친노무현)에 뿌리를 두고 한때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지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처지)을 자처했다가 문재인 대통령을 얼굴로 내세워 권력을 다시 잡았다. 친문을 좀 더 확장하면 정부와 국회의 기성 정치인, 민주당을 떠받치는 대의원권리당원 중심의 풀뿌리층, 혐(嫌)보수가 본질인 좌파 이데올로그와 열혈 지지층으로 세분화할 수 있겠다. 현재 여권은 친문을 중심으로 구심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집권 초반인 점, 웬만한 정치 이슈와 정책어젠다를 삼키는 한반도 정세, 보수든 당 내부이든 대체 세력의 부재로 친문의 길은 현재 탄탄대로이다. 그러나 친문의 위기는 시작됐다. 역설적이게도 여권 내부에서 반문(反文) 기치가 전혀 없다는 점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불가역적일 것 같은 친문의 철옹성은 독단과 교조적 행태를 양산해 나라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원전을 폐기하자면서도 수출은 하겠다는 이중성, 자신들이 임명한 경제부총리가 소득주도성장의 문제점과 폐해를 강력히 제기하고 시간당 최저임금 때문에 청년과 서비스 부문 실업이 늘고 있는데도 홍보 부족이라며 귀를 막는 현장 괴리 포퓰리즘, 북측 김정은 독재정권에는 핵폐기와 인권 개선 요구는 못하면서 동맹국에는 '할말 하겠다'는 역주행 안보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리스크로 심화될 것이다. 친문의 또 다른 위기는 내부 세력 간 주도권 싸움으로 권력의 사유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내 사람 심기가 진행되면서 친문의 분화는 필연적이다. 친문 분화가 계파 갈등의 출발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특히 문 대통령의 임기가 종반으로 접어드는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선 친문의 분열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친임(친임종석)이든, 친이(친이낙연)든 차기 대권으로 시선이 옮겨갈 것이다. 친문의 원심력이 본격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친문 성향의 권리당원과 대의원, 중앙위원이 80%에 가깝다는 말들이 나온다. 이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반문은커녕 비문(非文)을 자처하지 않는다. 친문이 지금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花樣年華)를 구가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친이와 박근혜 정부의 친박이 어디에 있는지 보라.

2018-07-02 05:0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다

서울 구청장 선거 당선자 수 25대 0.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아니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 일이다. 싹쓸이한 것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전북 단 한 곳에서만 당선자를 냈다. 이어 열린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대권을 거머쥐었다. 여세를 몰아 2008년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둔다. 보수 정당은 내리 3연승 했다.2018년 6월엔 뒤집어졌다. 서울 구청장 당선자 수 24대 1. 이번에는 여당이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를 낸 곳은 TK뿐이었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에서 승리했고 앞서 2016년 총선에선 제1당으로 부상했다. 이번엔 진보 정당의 3연승이다. 여론은 이렇듯 표변한다. 다만 먼저 3연승 했던 한나라당은 오만해지면 망한다는 선례를 남겼다.영국의 정치철학자 로저 스크러튼은 "보수는 훌륭한 유산은 쉽사리 창조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보수란 "과거를 지키면서 현대적이어야 하고 전통을 지키면서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서서히 진화하며 어렵게 만들어진 긍정적 유산과 전통, 문화를 지녀야 진정한 보수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지도층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보수는 수구가 된다. 오만해진 한나라당이 그 길을 걸었다. 물론 위기의 순간마다 새누리당으로, 또 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본질을 바꾸지 못했다.보수 정당이 사라지는 것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 정당이 끊임없이 견제와 균형을 이룬 나라일수록 발전해 온 역사가 말한다. 보수당과 노동당이 대립한 영국이 그렇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을 세운 미국이 그렇다.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가 선진국 문턱을 넘은 사례가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정권 역시 유정회를 만들며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깨트린 후 10년을 넘기지 못했다.수구로 몰락한 한국당은 갈 길을 잃었다. 보수를 표방한 정당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후에도 그 단초가 됐던 계파 싸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친박의 망령'이니 '목을 친다'느니 하는 계파 다툼이 여전하다.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홍준표 전 대표는 이를 '고관대작 지내고 국회의원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나 '국비로 세계 일주가 꿈인 사람' 등으로 잘 요약했다. 이쯤 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한 것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 정당이란 점이 너무나 분명해졌다.민주당은 이런 수구 정당의 궤멸을 즐기고 있다. '20년 진보 집권론'을 공공연히 흘리며 들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을 느낀다'면서도 소득주도 성장과 탈원전 등 국민이나 기업을 볼모로 삼거나 미래 국민에게 부담을 떠안기는 경제정책을 밀어붙일 명분을 삼았다. 제대로 된 보수 정당이 존재했다면 정책 논의라도 해 보겠지만 지금 해체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당은 그럴 여력이 없다.한쪽 날개로 날 수 있는 새는 없다. 보수의 구심점이 될 정당이 사라진 것이지 적어도 40% 이상으로 추정되는 보수 세력이 사라진 적은 없다. 민주당은 비대해진 한쪽 날개로 기꺼이 날아보겠다지만 자칫하면 또 10년 전의 데자뷔가 될 수 있다. 현 정부가 많은 국민들이 수긍하기 어려운 정책을 마냥 밀어붙일 수만은 없는 이유다.정신줄 놓고 있다 사라진 새누리당이 벽에 붙여 놓았던 구호는 이랬다.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

2018-06-25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TK의원들 참회하고 결단하라

침묵과 보신에 대한 경고였다. 대구경북(TK)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았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여러 차례 경고음을 보냈건만 TK 국회의원들은 의식조차 못 했던 자신들의 적폐(積弊) 때문에 살을 에는 채찍을 맞았다.6·13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사실상 한국당을 정치적으로 파면시켰다. 한국당에 더 충격적인 사실은 보수의 텃밭이라 여겼던 TK에서의 선거 결과다.TK 민심도 한국당에 마지막일지도 모를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구 광역의원 30명 가운데 9명, 기초의원 116명 가운데 50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수성구는 재적의원 20명 가운데 10명이 민주당이다.한국당 대구 기초단체장 당선인들은 4년 전 평균 득표율이 67%였지만 이번엔 48% 득표에 그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가 가장 짙게 남아 있는 구미에서 민주당 후보 당선은 이번 선거의 결정판이다.이번 선거는 TK 정치 기반과 유권자 의식이 뿌리에서부터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일시적인 바람이 아니다. TK 유권자들은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한국당 국회의원들만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권이 진보·좌파일 때는 보수의 목청만 높이면 당선됐고, TK 출신 대통령일 때는 줄만 잘 서고 친이·친박·보수 물결에 편승만 하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TK 한국당의 실패는 국회의원들이 시대 변화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태어나 19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유권자가 이제 40대 중반이 되었다. 이들과 그 밑의 세대들은 진보냐, 보수냐는 관심 없다. '박정희 시대'를 살아본 50대 이상의 장노년층과 달리 정책과 신념에 대한 접근이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또 어느 당과 후보가 나의 삶과 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느냐로 행동한다.이런데도 한국당은 한반도 정세 변화를 맹목적 색깔론 프레임으로 맞섰고, 대안 제시 없이 '샤이 보수'의 결집에만 기대었다. 20, 30대에겐 한국당 대표의 '꼰대' 이미지가 싫었고, 막말이 혐오스러웠고, 심술부리는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이 무조건 싫었다.또 TK 유권자들은 국회의원들이 행동해야 할 때 침묵하는 무소신과 존재감 없음에 더 실망하고 분노했다. 친박비박 패권 다툼이 있을 때, 당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누구도 "이건 아니다"라고 외치지 못했다. 친박을 자처했던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는데도 "내 탓이오" 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는 의원 하나 없었다. 오히려 친박 색채를 빼려 하고, 당 지도부에 빌붙어 후일을 기약하기에 바빴다.사실상 '한국당 붕괴'의 채찍을 내려친 민심은 이제 TK 정치권에 '어디로 갈 것이냐'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보수의 본류'였던 TK 보수의 새로운 상(像)을 정립하고 새판을 짜야 한다. 먼저 보수재건, 보수혁명의 그림부터 그려야 한다.시대의 변화를 읽고 보수 노선을 재정립해야 한다. 전통적 보수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자유, 안보와 경제성장 가치 지향을 근본으로 한다. 적어도 이에 동의하는 인사들이라면 야당 전체의 새 판을 짜야 한다. 또 외부에서 보수 혁신과 야권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인물을 당의 얼굴로 영입하는 데 TK 의원들이 주도하고 궐기해야 한다.이대로라면 2020년 4월 치러질 총선에서 TK 한국당 의원 대다수가 살아남기 힘들다.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더 이상 숨어있지 마라. TK발 보수재건, 보수혁명을 위해 온몸을 던지라는 것이 지역 유권자들의 마지막 명령이다.

2018-06-18 05:00:00

[매일칼럼] 누구를 뽑을 것인가

정치판이 절정이다. 지방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마다 플래카드가 넘쳐난다.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와 문자가 홍수를 이룬다. 듣도 보도 못했던 유권자를 향해 후보들은 깍듯이 절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몸값이 치솟는 세상이다.선거 열기가 뜨거울수록 공약(公約)인지 공약(空約)인지가 난무한다. 구청장 선거에조차 대통령이 나서도 힘든 공약이 등장한다. 대구공항은 과연 옮겨야 하는지, 군공항만 옮겨가는 것은 또 가능한지가 화두다. 초중등교육을 담당할 교육감 선거에서 대학교수 경력이 강조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어떤 후보는 장관 경력을 내세운다. 유권자들은 헷갈린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공약을 보면 더 헷갈린다. 투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감한 상황이다.아쉽게도 이를 극복하는 것은 오롯이 유권자 스스로의 몫이다. 지방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역 발전을 고려해 선거를 치러 본 적이 거의 없다. '묻지 마' 선거는 일상이다.정치인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금물이다. 정치인의 자질은 동서고금을 통해 국민 눈높이에 맞은 적이 없다. 유권자가 깨어나지 않으면 정치는 영원한 삼류다. 고대 그리스 최대의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오늘날 정치인은 학식 있는 사람이나 성품이 바른 사람이 아니다. 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은 직업이 정치"라고 했다. 여기서 '오늘'이란 것이 2천400여 년 전이다. 민주주의가 처음 싹을 틔운 시절부터 정치란 것이 그랬던 모양이다. 프랑스 극작가 카뮈는 "자신 속에 위대함을 지닌 자들은 정치하지 않는다"고 했고, 독일의 막스 베버는 "어중이떠중이가 다 뛰어드는 것이 정치판"이라 했다.정치인의 자질이 떨어진다고, 찍을 사람이 없다고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나쁜 선택이다.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포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찍어야 하나.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최악을 피하려면 차악이라도 택해야 한다.최근 가정마다 배달된 선거공보물엔 의외로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후보의 면면을 파악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후보자의 인적 사항과 재산, 납세 실적, 전과 등 기본 사항은 물론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지 살피는 것은 필수다.파렴치한 범죄 경력은 없는지, 세금은 제대로 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공약을 제대로 살피는 것은 후보자 선택의 바로미터다. 실현가능한 공약인지, 지킬 수도 없는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눈과 귀만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약을 지켰을 때 진정 주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 일인지, 당장은 좋아 보이지만 결국 살림만 거덜 내는 것은 아닌지 꼼꼼한 판단이 필요하다.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파트 단지 우편함엔 아직 찾아가지도 않은 선거공보물이 상당수 남아 있다. 뜯지도 않고 버려진 것이 얼마나 될 지도 알 수 없다.이래서야 후보자들의 유권자 대접은 시한부다. 딱 이틀 남았다. 깍듯한 인사도, 따듯한 메시지도, 이틀이면 끝이다. 그냥 끝내지 않으려면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떠야 한다. 감시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기대에 못 미치면 4년 후 갈아치운다는 각오가 서야 선거 이후에도 유권자들이 대접 받을 수 있다.프랑스 사상가 루소가 남긴 통찰은 깊다. "많은 정치인은 선출과 동시에 지배하고 군림하려 든다. 지도자를 뽑았는데 지배자가 되려 한다." 우리는 이런 지역 정치인을 막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2018-06-11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6·13 의미와 옥석 가리기

613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과 달리 워낙 후보가 많은 데다 대형 이슈에 가려 있어 '깜깜이 투표'로 치러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다룰 북미 정상회담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국민의 눈과 귀가 온통 여기에 쏠려 있다. 그 때문에 이번 선거는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 지역 단위, 그리고 정당과 인물 대결 위주로 치러지는 흐름이다.다른 지역과 달리 대구경북(TK)은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적으로 많은 변곡점을 그릴 수도 있다. 지금까지 TK 주축 정치세력인 자유한국당의 수성 여부와 지지율, 더불어민주당의 득표력과 단체장 배출 여부, 바른미래당의 의미 있는 득표율이 관전 포인트이자 지역 정치권 개편의 변수다. 넓게는 향후 TK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는 촉매로도 작용, 2020년 총선을 앞두고 TK가 여야 전체의 정계개편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한국당이 지역에서 일부 단체장을 잃고, 득표율에서 민주당을 압도하지 못할 경우 TK가 주축인 한국당은 진앙에서 정계개편의 회오리바람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 후보들이 유세 지원을 거부할 정도인 홍준표 대표 체제에 대한 불신임도 발화될 전망이다.민주당은 TK에서 기초단체장 몇 곳을 차지하고 정당 득표율이 30%를 넘길 경우 확실하게 지역에 착근할 수 있게 된다. 지역에서 민주당에 대한 변화는 공천 과정에서 예년에 없던 경쟁률을 보인 데서 전조를 보였다.바른미래당은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국회의원과 당원들이 또 다른 야당으로 이탈할 여지가 많고, 당의 간판인 유승민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크게 약화된다. 야권 전체가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 경우 어느 한쪽으로의 쏠림보다는 '헤쳐 모여'식 정계개편이 이뤄질 수도 있다.613 지방선거가 깜깜이 선거로 진행되고 있지만 TK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양상도 읽힌다. 4일 발표된 본지 여론조사에서 보듯 대구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한국당을 앞섰다. 보수 텃밭이라는 대구에서의 이런 흐름은 다수의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이 한국당을 추월하거나 근접 추격하는 모양새다.그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1, 2위를 다투고 있다. 최종 당락은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전 선거와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모든 것은 TK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렸다.이번 선거의 정치적 함의와는 별도로 최악의 인물이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도민들이 선거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옥석을 가릴 책임과 권한은 유권자들에게 있다.유권자가 지역 주민의 살림살이를 책임질 일꾼을 뽑는 데 소홀히 하면 부도덕하고 무능한 후보들이 활개를 치게 된다.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 명부를 보면 전체 후보자의 38.1%가 벌금 100만원 이상의 전과기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보 10명 중 4명꼴이다.유권자들이 '밝은 눈'으로 정책과 공약을 꼼꼼히 비교해 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정책공약 알리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빅데이터로 분석한 '우리동네 공약지도' 역시 유용한 사이트다. 여기서는 유권자들이 직접 희망하는 공약을 제안할 수도 있다.지방자치는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으면 꽃을 피울 수 없다. 주거교통환경교육 등 주민 삶과 밀접한 정책과 집행을 다룰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못지않게 중요하다.

2018-06-05 05:00:00

[매일칼럼] 외눈박이 일자리 정책

어느 나라 대통령이나 취임하면 일자리에 욕심을 내기 마련이다. 경제가 정부 명운을 가르고, 일자리는 그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취임 일성이 일자리였다.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그랬다. 대통령의 일자리 욕심은 바른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이룰 수 있다.마크롱은 취임하자마자 프랑스 노조의 철밥통을 깨트리는 것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 '저성장-고실업'으로 대변되는 '프랑스 병'은 깊다. 마크롱은 그 원인을 각종 고용 보장 장치가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은 탓이라고 봤다. 누구도 손 못 대던 노동개혁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고용 10인 이하 소기업은 1분기, 49인 이하 기업은 2분기 연속 매출 감소만으로도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산별 노조의 협상 권한은 대폭 축소했다. 임기 5년간 공무원 일자리 12만 개를 줄이겠다는 폭탄선언도 내놨다. 만성적자에 빚투성이인 국영철도공사부터 메스를 들이댔다. 그의 철학은 '해고를 더 쉽게, 고용도 더 쉽게'로 요약할 수 있다.고용시장이 유연해지자 기업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앞다퉈 프랑스로 몰려들고 있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3억유로를,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는 9억유로를 투자했다. 이렇게 끌어들인 해외자본이 우리 돈 4조원이 넘는다. 기업이 몰려들자 성장률은 두 배로 뛰고, 양질의 일자리는 25만 개 이상 늘었다. 늘 두 자릿수였던 프랑스의 실업률은 지난해 4분기 8.6%까지 떨어졌다. 반면 고용률은 65.7%로 올라 1980년대 이후 최고다.문 대통령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고용의 유연성 보장이 아닌 소득 주도 성장론을 들고나온 것부터 그렇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실험을 한다며 최저임금을 충격적인 수준으로 올렸고, 더 올리겠다고 벼른다. 가뜩이나 강성 소리를 듣는 노동계의 목소리는 커지고 기업은 아예 입을 닫았다.성적은 시원찮다. 기업은 기업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아우성이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인 제조업의 몰락이 심상찮다. 지난 3월 중 생산과 투자가 동시에 큰 폭 하락했다. 공장 가동률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이고, 제조업 재고율은 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다.지난해 세금 25조원을 일자리정책에 쏟아부었지만 청년들은 반듯한 일자리는커녕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지난 3월 실업률은 17년 만에 최악이다. 올 1분기 하위 20% 계층의 소득은 1년 전보다 8%나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자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동네 식당은 속속 문을 닫고 있다. 물가는 다락처럼 올랐다.그런데도 경제 정책 라인의 해석은 '제 편한대로'다.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 수석은 일자리 감소 지적에 "사실 일자리는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장하성 대통령 정책실장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는 없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침체 국면 초기 단계'라고 하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성급하다'고 반박했다. 경제 전반에 걸쳐 울리는 경고음은 묻히고 '이대로'라는 외침만 강하다.정부는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한다. 이대로라면 세계적 호황 속 불황을 겪는 우리 경제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일을 잘못 하는 데 있지 않다. 일을 거꾸로 하는 데 있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프랑스 따라잡기는 영 글렀다.

2018-05-28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태영호와 문정인

1583년 조선 병조판서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시무육조'(時務六條)를 지어 바치며 십만양병설 등의 개혁안을 주장했다. 나라가 오랫동안 태평하다 보니 군대와 식량이 모두 준비되어 있지 않아, 큰 적이 침범해 왔을 때 어떤 지혜로도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진언했다. 마침 북쪽에서 여진족과 크고 작은 전투가 있던 터라 율곡의 주장은 제법 진지하게 검토되었지만 미봉에 그쳤다.얼마 뒤 일본에서 심상치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이 통일되면서 머지않아 조선을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조정에서는 통신사를 보내 이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두 사신의 의견이 달라 조정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높으니 서둘러 전쟁에 대비할 것을 주장했으나 학봉 김성일은 침략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이에 반대하였다. 조정은 갑론을박만 한 채 시간만 지체했다. 결국 조선은 1년 뒤 조총을 비롯한 신무기로 무장한 20만 일본군의 침략을 받았다. 준비 안 된 탁상공론의 이상 정치는 백성들에게 더 큰 수탈을 초래했다.한반도 비핵화 해법을 두고 극명하게 대비되는 시각을 보이는 두 사람이 있다. 탈북 외교관 태영호 전 공사와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그렇다. 마치 율곡과 학봉을 보는 듯하다. 두 사람이 대변하듯 나라 전체도 보수 우파와 야권, 진보 좌파와 집권 여당으로 나뉘어 서로를 공박한다.태 전 공사는 강연회 등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에서 '진정한 핵 폐기'를 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북은) '비핵국가'라는 종이로 핵보유국인 북한을 포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나아가 "북의 '체제 안전 보장'은 김씨 가문의 세습통치를 영원히 존속시키는 것"이라며 완전한 북핵 폐기는 '환상', '허상'이라고 말한다.반대로 문 특보는 "일반적으로 (한미)동맹은 부자연스럽다. 내게 있어 최선은 동맹을 없애는 것" "현재의 한미동맹이 장기적으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로 전환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중국도, 미국도 편들 필요가 없다"는 요지의 주장을 쏟아낸다. 문 특보는 또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임진왜란 직전의 공론처럼 집권 여당은 "태영호가 북한에 적대적 행위를 내질렀다" "그가 김정은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느냐"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고 힐난했다. 문 특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보수 야당은 문 특보의 해임을 촉구하고 차라리 북으로 가라고 말한다.태 전 공사는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어려울 경우 혹시도 모를 어정쩡한 타협을 하는 것에 우려와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가족친지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자유를 찾아 남으로 왔다. 정부 여당은 그의 행보를 비난만 하지 말고 오히려 유비무환의 계(計)로 삼아야 한다. 문 특보도 외교 분야엔 일가견이 있고 국제 정세 판단에 능한 분이다. 문 특보의 말대로 한반도에 핵이 없어지고, 미중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세상을 누가 바라지 않겠는가.임진왜란 당시처럼 '전쟁이 난다, 안 난다'의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한반도 비핵화 해법을 두고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 담보되느냐, 아니면 더 긴 세월을 대치 상태로 보내느냐가 갈린다. 6월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면 누가 또 어느 쪽이 현실을 직시했는지, 아니면 순진한 환상으로 접근했는지 드러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극한 대결과 전쟁이란 비극 대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8-05-21 00:05:04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단지 TK라는 이유만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1년 전 취임사에서 많은 약속을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재를 발탁하겠다'는 대목이 TK의 기대를 갖게 했다. 이른바 탕평 인사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래도 의심하는 국민을 위해 문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못을 박았다. 취임 1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니 더 멀어져 가고 있다. 대통령이 되면 누구나 자신의 지지 기반 출신을 끌어다 쓰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대부분 그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결과는 늘 허망하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모두 코드와 인연에 맞춘 인사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문성이 결여된 진보 성향 인사 중심의 '코드 인사'로 제 무덤을 팠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학연'지연 중심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로 국민 신뢰를 잃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첩 인사'와 '회전문 인사'로 시작해 '비선 인사' 끝에 몰락했다. '코드 인사' '고소영 인사' '수첩 인사' 모두 말만 다를 뿐 '내 편만 쓰겠다'는 오만은 똑같다. 문 대통령을 두고서는 '캠코더(캠프 출신'코드 인사'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란 말이 따라붙었다. 최근엔 참여연대 출신이 주요 요직을 장악한 것을 두고 "대학을 나오긴 나왔는데 '참여연대'를 나왔다"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가 유행한다. 이명박 시대의 '만사형(兄)통'은 '만사참(참여연대)통'으로 바뀌었다. 역시 탕평 인사와는 거리가 멀다. 또 다른 '내 편 골라 쓰기'일 뿐이다. '캠코더 인사' '참여연대 출신' 인사 논란 와중에 TK 출신 공무원들만 중앙 무대에서 길을 잃었다. TK라는 이유만으로 혹독한 시련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는 지난해 마무리된 문 정부의 초대 장'차관급 인사 114명 가운데 호남이 29명, PK(부산'경남)가 27명인 데 비해 TK 출신은 11명에 불과했던 것에서 예감할 수 있었다. 장'차관에서 밀려난 TK는 12개 정부 주요 부처 1급 인사에서도 주변부로 전락했다. 정치 바람을 탈 수밖에 없는 고위 공직자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앙부처 국'과장급 공무원까지 요직에서 자취를 감췄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현 정부에서 적폐 청산을 주도하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공무원은 사람이 아닌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다. 업무 외적인 의도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특히 지역 출신 공무원들은 출신 지역 현안과 예산을 챙기는 등 중앙정부가 소홀하기 쉬운 지방과의 가교 역할을 한다. 지역 균형 발전에 그 나름대로 기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위 공무원의 지역 안배에 실패하면 국토 균형 발전은 헛구호에 그치기 쉽다. 현 정부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도 중앙 공무원의 지역 안배가 그만큼 중요하다. 대통령은 의도했건 않았건 탕평 인사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이에 대한 비판은 사상 초유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란 이슈에 묻혔다. 물론 최근 남북 관계의 극적 반전은 다른 모든 이슈를 덮기에 충분하다. 북의 완전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전제 아래 아낌없는 박수를 받아 지나침이 없다. 덕분에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편향 인사를 지적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서는 안 된다.

2018-05-14 00:05: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

1980년대 중반 미국과 소련의 핵 경쟁은 극에 달했다. 두 나라는 아프간 사태를 두고 반목했다. 미국은 최신형 중거리 퍼싱-2 핵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하며 소련을 압박했다. 핵과학자협회가 만든 지구 종말의 날 시계(Doomsday Clock)는 지구 멸망 3분 전을 뜻하는 밤 11시 57분까지 다가섰다. 당시 미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레이건은 소련을 '범죄와 거짓과 속임수를 일삼는 집단'이라 몰아붙였다. 그에게 소련은 '악의 제국'에 다름 아니었다. 극한 대결은 극한 타협을 부른다. 두 나라는 핵전쟁의 위기 앞에 극적으로 타협했다. 1987년 12월 8일 핵무기 개발 이후 처음으로 두 정상은 사거리 300~3천400마일의 중거리 핵미사일 2천611기를 폐기하기로 합의했다. 서명식은 미 백악관에서 열렸다. 레이건의 파트너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다. 고르바초프를 만날 때마다 레이건은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소련 속담을 앞세웠다. 소련 작가 수잔 매시가 "소련인들은 속담을 인용하며 대화하면 좋다"고 귀띔한 결과였다. 소련에 대한 불신이 깊던 레이건은 이 속담을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서명식에서도 레이건은 어김없이 이 속담을 끄집어냈다. 서류만 남기고 속일 생각은 말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고르바초프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또 그 소리입니까." 궁즉통인가. 믿기는 하되 검증은 한다는 소련 격언은 레이건의 집념 아래 잘 지켜졌다. 어느 때보다 확실한 핵폐기 검증 시스템이 마련됐다. 쌍방의 기술자가 상대방의 민감한 기관에 머물며 철저히 핵폐기 진행사항을 감시했다. 언제라도 의심스러운 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했다. 비밀주의에 머물던 소련으로서는 힘든 선택이었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1991년 6월까지 2천692기의 미사일이 폐기됐다. 당초 약속보다 더 많은 미사일이 사라졌다. 같은 해 미국과 소련은 이에서 나아가 첫 전략핵무기 감축 협상에도 서명했다. 그해 지구 종말 시계는 밤 11시 43분까지 늦춰졌다. 아직까지 시계가 그때만큼 늦춰진 적은 없다. 2018년 현재 이 시계는 오히려 인류 파멸의 시간인 자정에 가장 가까운 밤 11시 58분까지 당겨져 있다. 북핵을 둘러싼 국제 긴장 고조가 기후변화와 맞물린 탓이다. 이럴 때 남북 정상이 만났다. 두 정상이 만나 악수하고 포옹하고, 덕담을 나누는 것은 감성적으로는 국민들 마음을 휘젓기에 충분하다. 북한과 미국 정상이 각자 가진 핵 버튼의 유용성을 두고 '자랑질'하던 때에 비춰보면 그 자체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 두 정상이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자' '종전을 하자'고 했으니 낙관론이 싹트고 안도감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남북관계 진전의 낙관론 토대를 깔아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앞으로 이뤄져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이 낙관론에 묻혀서는 안 될 일이다. 마냥 감동하고 있을 수만도 없다. 검증이란 절차가 남아 있어서다. 남북이 정상회담을 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고, 비핵화 합의도 마찬가지다. 남북은 주요 고비마다 만나 주요 합의를 했지만 3년을 넘긴 경우는 드물다. 이번 선언 역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핵 폐기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김정은은 여전히 우리 국민을 핵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독재자일 뿐이다. 게다가 이번 판문점 방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했지만 김정은은 이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않았다. 적어도 비핵화에 대한 육성 메시지 정도는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런 때 레이건이 '또 그 소리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조했다는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제대로 된 검증이 가능해야 북핵 사태로 인해 당겨진 지구 종말 시계를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을까 싶어서다.

2018-04-30 00:05: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관행이라는 이름의 적폐

뭔가 잘못이다 싶었다. 사면초가인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문재인 대통령이 감싸는 이유 말이다.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김 원장은 그저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에 나가 잘 먹고 잘 놀았던 인물일 따름이다. 그것도 여성 인턴을 대동하고서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에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김기식 금감원장 관련 문재인 대통령 입장문) 그런 인물이 애초 아니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국민 생각이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입장문을 낸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피감기관 지원 해외 출장이)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과 해임 요구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했다. 관행이라면 봐주고 싶다는 뜻을 에둘러 내비쳤다.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법이 아니라는 결론'에 대한 기대가 물씬 풍긴다. 위법 사실이 드러난다면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사법 처리는 당연한 귀결이다. 위법행위를 저지른 자는 애초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다. 이런 경우라면 대통령이 할 역할은 없다. 김 원장을 둘러싸고 나오는 비리 의혹은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다. 청와대는 이 중 달랑 4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법 여부를 질의했다. 국회의원 재임 말기 남은 후원금으로 다른 의원을 후원하고 보좌직원 퇴직금을 준 사실과 피감기관의 돈을 받아 나선 세 차례 외유의 적절성 여부다. 선관위가 답해야 할 것도 있고 답하기 적절치 않은 것도 있다. 그저 선관위가 범법행위가 아니라고 하거나, 답변을 하지 않는다고 그냥 덮을 빌미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 원장의 일탈이 위법이든 아니든, 관행이든 아니든 국민들은 이미 그를 떠나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서 드러났듯 국민들이 공직자에 대해 치는 그물망이 촘촘해졌다. 김 원장은 이미 '공직자의 도덕성'이란 그물망에 걸렸다. 오죽하면 늘 여권 입장에 섰던 정의당이 자진사퇴 촉구를 당론으로 정했을까. 그런데 대통령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국민 눈높이와 대통령의 눈높이가 달라도 한참 달라졌다. 지난해 5월 10일 대통령의 취임사를 되짚어보자. 그날 대통령은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다"고 다짐했다. 관행이란 그 사회의 공공성과 통한다. 사회적 제재가 따르게 마련이다. 해묵은 관행과의 단절이 필요한 이유다.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관행과의 결별을 이야기한 것은 다분히 이를 의식해서 일 것이다. 실제로 '국정원 특활비의 청와대 상납은 관행이었다'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과거 권력자들을 재판대에 세운 것이 현 정부다. 이제 대통령이 그 관행의 그림자에 숨으려 드는 것은 옳지 않다. 하물며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일이 다급해지자 청와대는 19대 20대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해외 출장에 나선 사례를 캐보니 한국당이 더 많더라고 했다. 한국당 의원이 금감원장에 오른 것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더 철저히 검증하고 걸렀어야 할 터다. 대통령은 나아가 인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고 했다. 이 호소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과감한 선택이 국민 눈높이에 맞거나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취임사에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이를 맡기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두고 보자고 한다. 대통령이 훌륭한 인재를 찾아 삼고초려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대통령은 지우지 못하고, 김 원장은 버티고 있다. 버틸 만큼 버티다 물러나는 것이 공직계의 관행이다. 그 관행은 문 대통령이 없애겠다는 적폐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2018-04-16 00:05: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TK 우상(偶像)의 파괴

박근혜 전 대통령이 6일 정치적 파산을 선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은 참 굴곡 많고 파란만장했다. 부모님을 흉탄에 잃고 청와대를 나온 그는 18년 동안 칩거하다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마감하려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대구경북(TK)에서 아성을 쌓았고, 열혈 지지층을 만들며 정치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아버지에 버금가는 '역사적 사명'을 기대한 TK민들은 아낌없는 애정을 주었다. 어느 순간 박 전 대통령은 TK의 우상이 됐다. 지역민들은 그가 누구인지, 어떤 모습인지는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좌파나 진보 진영이 싫어, 또 대안 인물이 없어 그를 지지하고 우상을 만들었다. 이런 배경에는 TK민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환생을 기대한 측면도 있었다. 딸에게서 박정희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좌우 진영을 떠나 역대 대통령 중 경제 치적만큼은 단연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30년에 가면 일본을 제치고 남녀 공히 세계 최장수국이 된다고 한다. 특히 여성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평균수명이 90세를 넘는다고 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7년 시행한 의료보험 덕분이다.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도 신속한 시스템으로 평가받는 의료보험제도가 없었으면 우리는 최장수국의 꿈을 꿀 수 없었다. 박정희 정부가 1970년대 양성한 100만 명이 넘는 기능공은 1980년대에 중화학공업을 꽃피우고 오늘날 세계 7대 공업국의 기관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 이뿐이랴. 박정희 정부는 구미에 내륙공단을 세워 현재의 300억달러 수출도시를 만드는 기초를 세웠다. 이것은 북한 수출의 10배에 가깝다. 포항에는 중국이 부러워한 포스코를 세워 포항을 세계적인 철강도시로 만들었다. 박정희 정부는 나라의 명운을 걸고 과학기술 인재를 키웠으며 자주국방의 토대를 세워 오늘의 한국을 있게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처럼 우리 민족의 앞길을 열어준 선각자이기도 했다. TK민들은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느라 가슴 졸이며, 국익을 위해 온몸을 불사를 줄 알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의 철학과 통치력을 계승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의 실패 요인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을 꼽자면 '진실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데 있다. 직언 잘하는 진실한 참모는 내치고, 아첨 잘하는 배신의 부하만 곁에 두었다. 박 전 대통령 주변엔 그를 어디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헌신하는 눈먼 충성파들만 득실거렸다. 권력기관도, 각 부처도 대통령의 눈치 보기에 바빴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시대 변화를 읽지 못했다. 아버지 박정희와 35년여의 터울을 두고 맞이한 박근혜 시대는 정치사회적 환경이 급변했다. 국민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졌고 눈과 귀가 열려 있었다. 국가적 고비마다 보여준 국민의 힘은 지도자들에게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정치적 형틀이 됐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다수 국민들이 TK의 우상을 허물었다. 이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불쌍하다고 눈물만 흘리는 TK의 모습, 특정인'특정 세력에 대한 맹목적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라면 TK발 보수혁명의 마중물을 더욱 세차게 퍼 올려야 한다.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좌우 양 날개가 있어야 새가 잘 날 수 있듯 정통 보수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보수를 키워야 한다. 민생과 국민 여론을 외면하고, 패권적 정치 세력을 만들고, 부패와 부정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발붙일 수 없게 해야 한다. 보수를 표방하든, 진보를 표방하든 불의·불공정·부도덕한 정치인은 시도민의 혜안으로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새로운 대구경북을 열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놓아줄 때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

2018-04-09 00:05:03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적은 인구로 살아가기

우리나라에서 저출산 문제가 불거진 것은 10년을 훌쩍 넘긴다. 2006년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빗 콜맨 교수가 한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지목한 것이 충격의 서막이었다. 그 전해인 2005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이미 1.08명까지 떨어졌다. 인구 학자들은 한 국가가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산율을 2.1명으로 본다. 그 시절 이미 그 수준을 한참 밑돌았던 것이다. 따져보면 우리나라가 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의 초저출산 국가에 든 것은 이보다 한참 전인 2002년이었다. 그해 출산율은 1.17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고정관념이 지배하던 시절, 아무도 그 심각성을 몰랐다.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킨 것도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5년의 일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지목된 후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동안 200조원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재정이 그동안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만큼 저출산 대책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저출산 대책들은 실패했다"고 고백했을까. 정부의 대책이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된 사이 인구 관련 비관적 기록은 다달이, 해마다 경신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사망자는 2만6천900명, 출생아 수는 2만5천 명이었다. 1970년 출생아 수 집계 이후 처음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선 것이다. 올 1월에는 사망자가 3만1천600명으로 늘어 1월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반면 출생아 수는 3만2천100명으로 1월 역대 최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구 증가보다 감소 요인이 더 커진 셈이다. 이 사이 우리나라 출산율은 1.05명까지 떨어졌다. 다시 역대 최저다. 경제활동가능인구(14~65세)는 가파르게 줄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인구(707만 명)가 처음으로 14세 이하 유소년 인구(675만 명)보다 많아졌다. 젊은이들은 결혼하지 못한다. 지난해 인구 1천 명당 혼인 건수는 5.2건까지 줄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것은 대부분 경제적 이유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결혼하지 못한다. 어쩌다 일자리를 구해도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살 집을 구하기 힘들다. 맞벌이 부부라면 육아는 또 다른 부담이다. 남자의 초혼 연령은 32.9세, 여자는 30.2세로 자꾸 늦어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는 2~3년 후 출생아 수 급감의 예고편이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35만7천 명으로 줄었다. 이대로라면 2023년이면 출생아 수가 20만 명대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전망은 현실이 될 것이다. 오히려 당겨질지도 모른다. 2016년 혼인 건수가 7% 줄어들자 이듬해 신생아 수는 12% 줄었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출산율에 집착하고 있다. 지난 16년 동안 200조원을 쏟아붓고도 성공하지 못한 집착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출산율을 0.1~0.2 높인다고 인구절벽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정부가 '출산율' 이상을 바라봐야 할 시기가 왔다. 이제 정부가 할 일은 '적은 인구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더 이상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적은 인구로 살아가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사회 전체의 인구 정책 패러다임을 거기에 맞춰 나가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주기 위한 노력은 가속화해야 한다. 일부 젊은이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다수 젊은이들에게만 부담을 안기는 공공 일자리는 해결책이 아니다. 국가 채무를 늘리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노인층은 후손들을 위해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 올해 나오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는 지금보다 4배 이상 커진다. 지금 노인 복지를 위해 국채를 늘리는 일을 삼가야 하는 이유다. 적은 인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을 펑펑 쓰기보다는 꼭 필요한 곳에 돈을 쓰는 짠돌이 정부가 필요해 보인다.

2018-04-02 00:05: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물러남의 리더십

지난 2월 초 영국에서 한 고위 관료의 사임이 화제가 됐다. 특별히 잘못된 정책을 입안한 것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내세운 사임 이유는 상원 출석에 몇 분가량 지각했다는 것.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마이클 베이츠 영국 국제개발부 부장관은 상원 질의에 참석하기로 예정됐었다. 베이츠 부장관은 질의에 몇 분가량 지각했다. 통상적으로 사과 정도로 끝날 일이었지만 베이츠 부장관의 자세는 달랐다. 그는 "아주 중요한 질의의 첫 부분에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결례를 범하게 된 데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즉각 사임안을 총리에게 제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베이츠 부장관의 사임은 실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이쯤 되면 공직자로서의 처신에 관한 한 결벽증에 다름없다. 20세기 최고의 리더로 불리는 잭 웰치는 1981년 제너럴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해 과감한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회사에 만연한 관료주의를 청산했다. 또한 사업 다각화를 꾀하면서 20년 동안 회사의 가치를 무려 4천% 이상 성장시킨 후 2001년 은퇴했다. 웰치는 은퇴를 5년이나 앞두고 GE를 이끌 후계자를 기르는 '승계계획'(succession plan)을 가동했다. GE는 그의 은퇴에 맞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은퇴 패키지(총 4억1천700만달러)로 회사를 발전시킨 공로에 보답했다. 장수하는 세계적인 기업들을 보면 그 회사의 CEO들은 가장 잘나갈 때, 가장 권위 있을 때 과감히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경우가 많았다.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혁신을 이루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직을 던졌다. 나아가 그들은 시대변화에 맞춰 자신의 리더십을 허물게 하면서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하지만 정점에 있을 때 리더가 물러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이룬 결과와 자리를 뒤로하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는 것이 억울하고 서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몸담았던 곳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일터로 남기를 바란다면 아쉬울 때 물러나야 한다. 김범일 전 대구시장과 우동기 현 대구시교육감은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두 분이 3선 욕심을 냈으면 아마도 당선 가능성이 높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 전 시장은 시장직에서 물러난 후 명예직 자리도 사양하며 여유롭게 자연인의 삶을 즐기고 있다. 우 교육감은 3선 불출마 선언 후 온갖 루머에 시달리고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모두 웃으며 얘기할 에피소드가 될 것"이라며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우 교육감은 3선을 권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급변하는 교육상황에 대구 교육이 정체하지 않으려면 새 인물이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구은행이 요즘 꽤 시끄럽다. 수장의 퇴진을 두고서다.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지난 23일 주주총회에서 은행장 사퇴를 선언했다.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직원 채용비리,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된 의혹이 단초가 됐다. 이 의혹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제기된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 박 회장의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대구은행은 대구경북 시도민의 무한애정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시도민의 은행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시도민이 키워준 대구은행의 미래를 위해 이제 박 회장이 결단할 때가 왔다. 박 회장은 상반기 중으로 금융지주 회장도 내놓겠다고 했다. 시도민들은 박 회장 개인의 인연보다는 대구은행을 진정 도약시킬 수 있는 능력과 비전, 인품을 가진 후임자에게 물려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람의 됨됨이를 보려면 그 사람이 어느 때 나아가고, 어느 때 물러나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물러나야 할 때 결단 못 하는 리더는 그 기업과 조직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신뢰 토양을 무너뜨린다. 리더십의 완성은 잘 물러나는 데 있다.

2018-03-26 0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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