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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국민을 빚더미에 앉힌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가

[매일칼럼] 국민을 빚더미에 앉힌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가

"이번 추경은 전적으로 정부의 무능으로 인한 것이다. 정부가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그리고 경제 실패로 세수 손실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렇게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이 추가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2015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메르스 추경 편성을 요청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쏘아붙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었다. 이젠 문 정부가 11조7천억원+α의 대규모 추경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도 최소 10조3천억원의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적자 추경이다. 문 대통령이 던졌던 말이 4년여 만에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향하고 있다.문 대통령은 나랏빚을 내는 데 거침이 없다. 지난해 정부 예산을 9.5% 증액했고 올해 또 이보다 9.3% 늘렸다. 2017년 401조원이던 예산이 올해 512조원까지 치솟았다. 예산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4~5배 웃돈다. '일자리' '보편적 복지' 같은 정책 실패를 세금을 풀어 해결하려 들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벌이는 시원찮은데 쓸 데는 많으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올 예산 중 빚이 60조2천억원이다. 지난해 연말엔 불용 예산을 남기지 말라고 각 부처를 닦달하기까지 했다.예산을 허투루 쓰면 정작 필요할 때 돈이 없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 사태가 터진 지금이 그렇다. 진작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해 지금 같은 때 쓰면 됐을 터인데 대규모 적자 추경이 불가피하다. 또 빚으로 때워야 한다. 메르스 추경을 편성했던 2015년 591조원이던 국채가 추경을 더하면 815조원으로 늘어난다. 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660조원이던 나랏빚이 3년 만에 150조원 더 늘었다.국채가 급격히 늘면 건전재정 기조가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는 불문율처럼 지켜온 마지노선이다. 이를 언급했던 이 역시 문 대통령 자신이다. 4년 전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며 "국가채무비율 40%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이라 했다. 2017년 34.2%던 이 비율은 추경을 반영하면 올해 41.2%로 치솟는다. 대통령은 이를 허물면서도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다.세금이라도 잘 걷히면 다행인데 그렇지도 않다. 3년을 지속한 경제 추락은 세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지난해 세수는 정부 목표보다 1조3천억원 줄었다. 올해는 더하다. 1월 세수만 지난해보다 6천억원이 줄었다. 코로나 영향을 받기도 전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0년 래 최악이었다. 올해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줄줄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최악의 경우 0.4%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경제성장이 반토막, 반의 반토막 나면 세수 감소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문 대통령은 '빚을 내서라도 추경' 효과를 기대하는 빛이 역력하다. 하지만 비관론이 더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내리 4년째 추경을 했지만 경제성장률은 곤두박질쳤다. 이번 추경도 나랏빚만 늘리고 기대는 접으려는 분위기다. 오히려 선거 후 증세를 통한 경기 악순환을 걱정하는 전문가가 많다.세금을 덜 풀어 경제가 나빠진 것이 아니다. 정책 실패로 인해 경제가 어렵게 된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설상가상이다. 건전재정을 자랑하던 나라가 이제 빚으로 버티는 나라가 됐다. 나랏빚은 국민들이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현세대가 당겨 쓰는 과도한 빚은 미래세대엔 폭탄이다. 물론 그 폭탄이 터지는 것은 문 대통령 퇴임 이후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랏빚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문 대통령을 미래세대를 빚더미에 앉힌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다.

2020-03-16 06:30:00

[매일칼럼] 우리가 영웅이다

[매일칼럼] 우리가 영웅이다

#친구 L이 저녁 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간 좀 바쁘다고 했다. L은 작사 작곡까지 겸해 기타를 치면서 아이들에게 동요를 가르친다. '코로나 사태로 일거리도 없을 텐데, 뭘 그리 바쁠까'라고 생각했다. 혹 바이러스 감염이 겁나 만남을 꺼리는 건 아닌지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중구 동산동에서 한복 짓는 부인과 마스크를 만들고 있었다. 부인이 재봉틀 바느질로 모양을 내면 L이 귀 줄을 붙였다. 재료는 서문시장에서 사온 알록달록한 천과 유기농 면이었다. 밤낮으로 꼬박 3일을 매달렸다고 한다. L은 "마스크 살 돈도, 구할 방법도 없는 쪽방촌 노인들과 어린이집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잘 아는 K법무사의 전화를 받았다. 숙박업 하는 지인이 방을 좀 내주고 싶어 하는데, 관공서와 연결해 줄 수 있느냐고 했다. 뭔 말인지 헛갈렸다. 한참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지인은 코로나로 힘겨운 의료진에게 '내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깊이 고민했다고 했다. 처음엔 마스크를 대량 구입해 전하려다 여의치 않자 결국 자신이 운영하는 숙소를 제공하기로 한 것. 마침 숙소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과 경북대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구역 곁에 있었다.지인은 이후 타지에서 대구 지원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의료진들을 위해 숙소 한 동을 통째로 내놓았다고 K법무사가 전했다.#자활을 준비하는 노숙인과 쪽방 주민 7, 8명이 2년 전 만든 모임 '나눔과 베풂'. 이들은 요즘 대구역과 동대구역, 도시철 반월당역을 누빈다. 회원들이 준비한 도시락, 후원받은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들고서.이들은 방역은커녕 무료급식소 끼니조차 끊긴 노숙자들에게 코로나를 이겨낼 나눔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우리 주변엔 이처럼 '작은 전사(戰士)'들이 움직이고 있다.의료 현장에는 방호복 대신 비닐로 몸을 감싼 '의병'(醫兵)들까지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컵라면과 김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이마와 어깨, 발이 쑤시고 상처가 나도 완치 퇴원자가 나올 때면 미소를 머금기도 한다. 가쁜 숨과 구슬땀, 쪽잠으로 심신을 달래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있다.지원군들도 대구경북을 외롭지 않게 하고 있다."진료 의사가 부족하다"는 대구시의사회장의 간절한 호소에 약 300명이 응답했고,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간호장교 75명이 대구로 왔다. 환자 이송에 손이 달리자, 강릉·익산·용인의 구급 전사들도 동참했다. 심지어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부모님 몰래 한걸음에 달려온 전사도 있다.달빛동맹 광주의 남구의사회장은 직접 동산병원으로 달려왔고, 광주시와 광주은행, 광주경실련은 물품 등으로 달구벌을 응원했다.코로나 초기 대구에서 마스크 등을 지원받았던 중국 상하이 현지 교민들은 이번엔 대구를 위해 물품 지원과 함께 성금 모금에 나섰다. 40대 핀란드 교민의 마스크까지 바다 건너 도착하는 등 해외 지원군의 응원 행렬도 끊이지 않고 있다.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병상 부족에 허둥거릴 때 천주교대구대교구는 한티 피정의 집을, 대구은행은 칠곡연수원을 선뜻 내놓았다. 정부가 마스크 구입을 위해 우체국과 마트 앞에 시민들을 줄 세울 때 작은 전사들은 미싱을 돌렸다.관(官)은 우왕좌왕했고, 민(民)은 차분했다.의병과 작은 전사들, 지원군으로 대구경북은 외롭지 않다. 이들이 있는 한 코로나를 딛고 봄은 기어코 올 것이다. 이들이 진정한 영웅이다.

2020-03-08 19:24:29

[매일칼럼]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

[매일칼럼]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

'코리아 포비아' 확산세가 매섭다. 세계가 앞을 다퉈 한국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한국인들이 이젠 '코로나 원조' 중국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다. 미국조차 한국에 빗장을 걸기 시작했다.그럴 만하다. 한국에서 하루 확진되는 환자 수가 중국을 추월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환자 수가 폭증하며 병상을 구하지 못한 환자가 1천600명을 넘었다. 환자가 병원 밖에서 숨진 일도 잇따랐다. 중국 우한에서 벌어지던 일이 불과 한 달여 만에 한국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상황이다. '무엇보다 국민 안전이 우선'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허언이 됐다.지금의 수모는 '국민 안전'이 뒷전으로 밀린 결과다. 대한의사협회는 일찌감치 "감염병 관리의 핵심은 해외 유입 환자 차단"이라 했다. 지난 1월 26일을 시작으로 무려 7차례나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를 촉구했던 이유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도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입국 금지가 당연히 좋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대한감염학회가 "입국자 제한 지역을 중국 후베이성 이외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한 것이 지난달 2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모두를 무시했다. 대신 중국 시진핑에게 전화해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했다.발열이나 기침 같은 증상이 없는 무증상 감염자가 속출하며 전문가 집단의 판단이 옳았음이 입증되고 있다. 대만, 러시아, 몽골, 북한 등 일찌감치 중국을 봉쇄했던 나라들은 아직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앞에서 '국민 안전 우선'을 말하고 뒤에선 '정치 우선'을 한 결과는 아는 대로다. 대통령은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무시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대통령은 긴장의 끈까지 놓게 만들었다. 기껏 재벌 총수들을 불러모아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는 질병관리본부가 "변곡점을 맞거나 정점을 지나지 않았다"는 입장을 견지할 때였다.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정세균 국무총리)", "우리 방역과 의료체계, 시민의식은 세계 수준(이해찬 민주당 대표)", "미국은 완전히 입국 차단하는데 우리는 실효적인 차단을 하니, (중국이) 아주 감사해했다(추미애 법무부 장관)" 같은 정치권의 자화자찬이 쏟아졌다. 후회 막심한 오판이었다. 믿었던 국민들만 속절없이 당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대가가 큰 실수'라고 제목 활자를 뽑아 꼬집었다. 대통령의 입은 진중해야 하고 판단은 정확해야 한다. 대통령은 이 오판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그래도 남았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경제는 더 없이 나빴다. '거지 같다'는 시장 상인의 말이 이를 함축한다. 국민들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대통령이 꺼내든 카드가 추경이다. 이는 문 대통령의 낡은 경제 대응 방식이다. 집권 후 내리 4년째 경제를 살린다며 추경을 했지만 집권 후 경제성장률은 3.7%에서 2.0%로 곤두박질쳤다. 슈퍼 예산에다 계속된 추경까지 지속된 확장 재정 여파로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한 경제 체력만 급격히 떨어졌다. 이번 추경도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나라 곳간을 거덜내고 국채 추경을 요구하려면 대통령은 사과부터 해야 한다.억울할 수도 있다. 취임 1천 일이 넘도록 '일, 일, 일, 또 일만 했는데'라며 '내가 왜'란 말이 나올 법하다. 숨겨 병을 터뜨린 신천지를 탓할 수도 있다. 그래도 대통령은 국정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을 이 지경으로 내몰고도 사과하지 않는다면 온 나라를 환자 천지로 만들어 놓고도 반성 않는 신천지보다 더 무섭다.

2020-03-01 19:06:21

[매일칼럼] 코로나 사태, 우리 함께 이겨내리라!

[매일칼럼] 코로나 사태, 우리 함께 이겨내리라!

코로나19 사태가 위기 국면이다. 특히 대구경북은 초비상이다. 확진자가 급증하고, 발생지는 확대되고 있다. 감염원을 알 수 없는 환자가 늘고 있다. 이제는 내 집 앞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화된 것이다.대구 도심 거리는 한산하다. 환자가 다녀간 곳곳이 휴점에 들어갔다. 문을 연 곳도 손님이 없다. 임시 휴업을 한 놀이공원과 전통시장도 있다. 결혼식은 취소 또는 연기되고 있다. 대구의 각급 학교 개학이 1주일 연기됐다. 미사와 예배, 법회도 중단됐다. 감염병에 오염된 인구 250만 명 대도시의 모습이다.이번 사태는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능력을 벗어났다. 정부는 대구·청도를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가용자원을 총동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역사회 감염 단계에서는 공동체 전체가 총력을 쏟아야 한다. 방역당국의 힘만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지역사회 감염은 일상생활 속 감염을 뜻한다. 따라서 이제는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확진자 숫자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의료 수준은 높다. 환자를 조기 발견하면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현재로선 확산 방지가 최대 과제다. 입국자 검역과 접촉자 격리 등 '봉쇄 전략'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 감염 차단 전략'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시민들은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방역당국의 권고나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 손 씻기, 마스크 쓰기, 기침 예절은 필수다. 외출은 삼가야 한다. 직장에서도 밀접 접촉을 줄여야 한다. 재택근무와 근무시간 유연제가 대안이다.지역사회에 공포와 고립감이 고조되고 있다. 대구는 여행은 물론 출장 기피 지역이 됐다. '대구 코로나', '대구는 한국의 우한' 같은 지역 혐오도 나오고 있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가짜 정보 유포, 개인 신상 털기, 낙인 찍기 등도 성행하고 있다. 박멸돼야 할 행동이다. 유언비어는 바이러스보다 무섭다. 과도한 공포는 사태를 악화시킨다.좋은 소식들도 있다. SNS에는 응원 글이 많다. "대구경북의 저력을 믿고 있다. 잘 이겨내리라 생각한다", "단합된 힘을 발휘해 전화위복이 되길 기원한다", "시민들이 개인위생을 잘 지키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에는 우수한 의료기관이 있어 믿음이 간다" 등의 게시물이 이어지고 있다. '#힘내라 대구경북'이란 해시태그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또 "격려 전화와 함께 마스크를 보내주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마스크를 지원하라"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서문시장에는 한 달간 월세를 받지 않겠다는 착한 건물주도 있다. '연대와 배려'라는 공동체의식이 발휘되고 있다.남모르는 희생과 노력도 있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공무원들, 불편을 견디며 자가격리 중인 시민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금을 모아 외환위기 극복에 앞장선 곳, 담배 끊고 패물 모아 국권회복운동을 펼친 자랑스러운 곳, 바로 대구경북이다. 대구경북은 이 고난을 잘 극복할 것이다. '상록수' 노랫말이 위로와 힘이 됐으면 한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2020-02-23 15:42:24

[매일칼럼] 탓할 거리가 더 필요한가

[매일칼럼] 탓할 거리가 더 필요한가

어느 정부치고 그렇지 않을까만 문재인 정권의 남 탓은 유별나다.'내 잘못 아닌 네 잘못'의 시작은 요즘 말 많고 탈 많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 때는 2017년 8월로 거슬러 오른다. 추 장관은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2개월여 만에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졌다. 정부의 대처는 갈팡질팡 그 자체였다.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를 두고 혼선을 빚더니 검사 항목이 누락돼 또 혼란을 더했다. 그동안 살충제 검출 농가에서 생산된 달걀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오리무중이었다. 정부가 갈피를 못 잡자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이 폭발 지경이었다. 그때 추 대표가 등장한다. "대통령을 보좌했던 사람들의 직무유기가 바로 이번 사태의 근본 문제"다. 국민은 정부의 미숙한 대응을 문제 삼는데 여당 대표는 사실상 전 정권 탓, 공무원 탓을 한 셈이다.'잘하면 내 덕, 못하면 남 탓'은 정권의 오랜 특성이다. 어지간해서는 '내 덕'과 '남 탓'이 팽팽하다. 그런데 최근 내 덕이라 자랑할 일을 선뜻 떠올리기 어렵게 됐다. 정치는 내로남불로 요약된다. 이념 대립은 격화하고 국론은 분열됐다. 경제는 고용 참사에 자영업자 몰락, 저성장 고착화, 적자 재정, 빈부 격차 확대, 수출 급감, 부동산 폭등, 건강보험 재정 고갈, 공기업 적자 행진 등 부정적 요인투성이다. 외교적으로는 북 비핵화 달성은커녕 국제적 고립무원의 처지라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내 덕'이 사라지니 남은 것은 '남 탓'이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음에도 청년취업률이 곤두박질치자 "지난 10년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성장 잠재력이 매우 낮아져서"라거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산업 전반의 구조 개선에는 소홀한 채 사회간접자본에만 집중해서"라며 전 정권, 전전 정권 탓이 나왔다. 지난해 경제 위기론이 대두되었을 때는 "성장률이 2%를 달성하지 못하면 책임은 특히 자유한국당이 져야 한다"며 야당을 탓했다.이젠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경제에 위기감이 가중되고 있다. 올해 성장률이 급락해 1%대에 그칠 것이란 예상이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올해 우리나라 GDP 성장률을 2.5%에서 1.5%로 낮췄다. 정부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2.4%)와 거리가 멀다.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바이러스 탓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경기가 살아나는 듯해서 기대가 컸었는데, 뜻밖의 상황을 맞게 됐다"며 코로나 탓에 가세했다. 그러잖아도 문 정부 출범 후 경제는 기저효과를 기대해야 할 정도로 더 없이 나빠진 상태다. 2017년 3.2%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0%까지 곤두박질쳤다. 가뜩이나 나쁜 경제에 코로나19라는 악재가 하나 보태졌을 뿐이다. 코로나 탓으로 악화된 경제를 덮을 수는 없다.정부의 남 탓이 두려운 것은 정책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서다. 대통령이 자꾸 탓할 거리를 찾고 있다면 왜 그런지 스스로 둘러보는 것이 먼저다. 반구저기(反求諸己)라 했다. 맹자 공손추에 나오는 말이다. 활을 쏘아 적중하지 않으면 다른 탓을 하기보다 '돌이켜서 자기에게서 찾는다'는 뜻이다. 기분 좋게 여행을 떠났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흠뻑 젖었다고 하늘을 탓할 것인가.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고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자신을 탓해야 한다.시장 상인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친다면 코로나가 아닌 자신부터 둘러볼 일이다. 그래야 문제 해결책이 나온다.그러고 보니 어제는 '내 탓이오' 운동으로 세상에 큰 울림을 남긴 김수환 추기경의 11주기였다.

2020-02-16 20:50:08

[매일칼럼] 눈뜬 자들의 나라

[매일칼럼] 눈뜬 자들의 나라

대낮 도시에서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며 차 안에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이 멀게 된다. 눈이 멀게 되는 전염병은 급속히 확산되어 도시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든다. 당국은 전염병 차단을 위해 눈먼 사람들을 치료하는 대신 낡고 더러운 한 병동으로 강제 격리시킨다. 병동에는 눈먼 이들이 수십, 수백 명으로 급속히 늘어난다. 눈먼 사람들의 수용소 격리, 이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군인들, 전염병 억제를 명분으로 대책 없는 조치만 내리는 정치인. 추악한 인간 본성이 낱낱이 드러난다.1998년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도시에서 발생한 실명이라는 전염병을 통해 인간 본성에 강한 의문을 던진다.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후베이성 우한시를 필두로 이 전염병은 중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9일 0시 현재 누적 확진자가 전국 31개 성에서 3만7천198명, 사망자는 81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중증 환자만 6천여 명에 달해 사망자는 계속 늘 것으로 보인다.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이날 오후 5시 현재 확진자가 27명으로, 이 중 2명은 퇴원했다고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밝혔다. 25명이 격리 병상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대다수 상태는 안정적이고, 중증 환자는 없다고 한다.우리나라는 일본 89명, 싱가포르 40명, 태국 32명에 비해 확진자 수도 적고 관리도 비교적 잘 되고 있는 편이다.신종코로나를 가볍게 여기거나 방치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특정인이나 국가를 탓하거나 감염자를 외면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바이러스는 바이러스로 물리쳐야 한다. 신종코로나에 대응할 바이러스는 '나눔과 살핌의 바이러스'다.그 나눔과 살핌은 국내 자가 및 병원 격리자, 충북 진천과 충남 아산의 격리자, 일본 크루즈선, 중국 현지 교민 등을 향해야 하겠다.나아가 후베이성을 비롯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노력에 우리도 일조해야 할 때다.중국은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다. 신종코로나의 중국 전역 확산이 한반도로의 전이와 무관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비롯해 생필품과 의료 장비 등 한국이 통 큰 도움과 나눔의 바이러스를 전파할 적기다.중국에 불어닥친 신종코로나 위기는 수개월은 몰라도 수년을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렁에 빠진 중국에 손 내밀어 줄 때 그 손은 더 큰 손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는 중국의 '꽌시(관계)문화'와도 무관치 않다.주제 사라마구도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인간성 상실과 절망만을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다.처음 눈이 멀어 수용소에 들어가게 된 집단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며 도와가는 인간관계의 회복을 역설했다. 특히 그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를 통해 눈먼 자들의 도시를 따뜻한 인간사회로 만들어가는 연대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대구 미르치과와 대구의료관광진흥원 등이 중국 상하이에 나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등 대구와 경북이 앞장서 나눔과 살핌에 적극 나서고 있다.우리 정부와 민간이 국내외에 나눔 바이러스의 적극적 전파를 통해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길 기대한다.한국이 눈먼 자들의 나라가 아니라 '눈뜬 자들의 나라'임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2020-02-09 21:00:42

[매일칼럼] 이 판국에 공수처 속도 내라 한 대통령

[매일칼럼] 이 판국에 공수처 속도 내라 한 대통령

'우한폐렴' 사태가 엄중하다. 세계보건기구가 신종코로나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중국으로 오가는 하늘길이 하나둘 막히고 있다. 중국 현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가동 중단은 마냥 길어지고 있다. 사스나 메르스의 전파 속도를 훨씬 능가한다는 바이러스의 확산은 그 자체로 공포다.그럼에도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인이 하루 1만 명을 넘는다. 미국은 중국을 방문한 외국 국적자에 대한 입국을 일찌감치 금지했다. 일본은 2주 내에 중국 후베이성에 체류한 적이 있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원칙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북한조차 중국을 오가는 모든 항공편과 열차 노선 운행을 잠정 중단했다.국내적으로도 심각하다. 15명째 확진자가 나왔다. 의심 환자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공연은 연기됐다. 영화관은 텅 비었다. 주식시장은 요동치고 내수 경기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대로라면 가뜩이나 뚝 떨어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신종코로나 여파로 올해 우리나라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0.1~0.2%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두 번 했다. 2003년 발병한 사스는 우리나라 GDP 연성장률을 0.25%포인트 낮췄다. 또 2015년 국내에서만 186명의 환자와 38명의 사망자를 낸 메르스 사태도 GDP를 0.2%포인트 감소시켰다. 내수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신종코로나를 제때 다스리지 못할 경우 또 국민 삶이 얼마나 더 피폐해질지 가늠조차 어려운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당연히 신종코로나 대응을 국정 제1순위에 두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메르스 사태 때 '정부 무능이 빚은 참사'라며 전 정부를 공격했던 이들이 지금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도대체 어디가 컨트롤타워냐는 말이 또 나온다. 우한 교민을 실어 나를 전세기 운항과 수용 지역을 두고 혼선을 빚더니 잠재적 의심 환자에 대한 관리도 허점을 드러내기 일쑤다. 2차, 3차 감염자까지 나온 상황도 판박이다. 일본에서 감염된 중국인 환자가 국내에 들어와 2주간이나 버젓이 활보하는 일이 벌어졌다. 누가 봐도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 정부가 뒤늦게 중국 후베이성 방문·체류 외국인 입국 전면 금지조치를 내놓았지만 후회막급이다. 정부가 선제적 조치들을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발 빠르게 시행하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공허해졌다.엄중한 시기 문재인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주말 정세균 국무총리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모아 공수처 설치를 독려했다. 최강욱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이 자신을 기소한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향후 공수처 수사를 통해 범죄행위가 낱낱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던 그 공수처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이를 "어디까지나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다.국민은 지금 경제난에 이어 덮친 신종코로나 때문에 겹고통을 겪고 있다. 공수처니 검찰 개혁이니 하는 말은 사치다. 오히려 '권력형 비리 수사'에 칼을 들이댄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족을 자르고 수사를 방해하는 모습을 보며 검찰 인사와 공수처 설치에 분노하는 쪽이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위하는 국민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 국민인가. 대통령은 공수처를 들먹일 것이 아니라 경제 부처 장관들을 불러 모아 신종코로나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를 고민했어야 했다.

2020-02-02 19:32:35

[매일칼럼] 어설픈 경제 낙관론이 나라를 망친다

[매일칼럼] 어설픈 경제 낙관론이 나라를 망친다

국민은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거리마다 빈 점포를 보기가 어렵지 않다. 텅 빈 가게엔 어김없이 임대를 알리는 쪽지나 현수막이 붙어 있다. 그 빛이 바래도록 가게는 새 주인을 찾지 못한다. 영업하는 가게들도 손님이 줄었다고 아우성이다. 한때 잘나가던 상권이라고 다르지 않다. 내수 부진에다 높은 임대료, 최저임금 인상을 견디지 못한 자영업자들은 매일매일 폐업을 고민한다. 이들의 몰락은 수치로 확인된다. 가장 소득이 높은 5분위(소득 상위 20%)에서 자영업자는 지난해 5만700가구가 줄었다. 반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소득 하위 20%)는 6만6천400가구가 늘었다. 소득이 한두 단계씩 내려앉으면서 자영업자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있다.청년들은 '일자리 정부'가 만들어 낸 고용절벽에 허우적대고 있다. 직업도 없는데 결혼은 언감생심이다. 어쩌다 결혼해도 아이 낳기가 겁난다.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3%다. 청년 4, 5명 중 한 명꼴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나라가 됐다. 2016년 이후 내리 4년째 실업자 수는 100만 명 이상이다. 경제 활동의 허리인 40대는 민간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은퇴한 60대를 세금으로 유혹해 일자리 머릿수를 채우고 있다. 경제는 어렵고 국민은 걱정이 많다.거시경제라고 다를 바 없다. 경제성장률은 바닥을 긴다. 한국은행은 지난 한 해 동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네 번이나 낮췄다. 그렇게 낮춘 목표가 2%다. 정부는 이나마 달성할 수 있기를 학수고대 한다. 그래도 한국의 잠재성장률 2.5%에는 한참을 못 미친다. 잠재성장률은 한 국가의 노동과 자본을 최대로 활용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이의 하락은 경제성장의 둔화를 뜻한다. 한국은 2년 연속 성장률도 떨어지고 잠재성장률도 하락했다. 반면 미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잠재성장률이 올랐다. 최근 2년간 한국보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진 나라는 OECD 국가 중 터키와 아일랜드뿐이다.수출로 일으킨 나라에서 수출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2018년 6천억달러를 달성했던 우리나라 수출은 지난해 10%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세계와 함께'라면 좋겠지만 지난해 전 세계 10대 수출국 중 한국의 수출 감소폭이 가장 컸다. 한국이 경제 대국에서 탈락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지금 한국은 절벽에 서 있다. 떨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처한 경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경기가 바닥을 찍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거시경제가 좋아진다'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고용지표가 브이(V)자 반등에 성공했다'고 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매달 발행하는 'KDI 경제 동향'에서 '경기 부진'이란 표현을 '낮은 성장세'로 바꿨다. 대통령과 관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제 낙관론을 펼친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3%로 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늘 높은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하고 시간이 흐르면 하향 조정하는 것을 반복해 왔다. 고성장을 말하고 저성장에 그치는 정부는 양치기 소년일 뿐이다. 낙관론의 근거 역시 지난해 고용이건, 수출이건 워낙 부진했던 데 대한 기저효과일 가능성이 크다.어설픈 경제 낙관론은 나라를 망친다. 여기에 기대다 보면 대책을 내놓을 수 없고, 대책을 내놓아도 현실과 동떨어지기 쉽다. 핑크빛 경제 전망에 민심이 차가운 이유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청와대, 그 주변 관료들의 부창부수는 계속된다. 아! 그러고 보니 4월 선거가 코앞이다.

2020-01-19 19:57:52

[매일칼럼] 퍼져라, 공동체 바이러스

[매일칼럼] 퍼져라, 공동체 바이러스

겨울에 씨게토(썰매) 타고, 여름엔 멱을 감았다. 동네 배꾸마당(바깥마당)에 아이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마때치기(자치기)나 오징어가생 진용을 꾸렸다. (나무)칼싸움, 솔방울 던지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다. 엄마가 저녁에 "밥 무러(먹으러) 안 오나"라고 할 때가 제일 싫었다.1970년대 중반까지 대다수 시골 아이들은 학원을 몰랐다. 하루 종일 심심하거나 따분할 겨를이 없었다.어른들은 설날 차례 지낸 뒤 배꾸마당에 모여 새끼줄 쳐놓고 윷을 놀았다. 정월대보름, 어른들은 달집을 태우고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즐겼다. 모내기와 벼 베기 철에는 품앗이가 대세였다. 새참으로 막걸리를 마시며 시끌벅적했다. 조상 제사를 지낸 뒤에도 음식은 이웃과 나눴다. 어느 집 묘사든 동네 아이들에겐 잔치나 다름없었다.마을 공동체는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고독이나 외로움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배고팠던 시절 마음의 풍요를 잉태했다.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는 공동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배꾸마당이나 놀이터 대신 학원으로 향했다. 청년들은 산업현장을 찾아 도시로 뿔뿔이 흩어졌다. 옛 공동체 놀이문화는 그렇게 사라졌다.시골에는 노인들만, 도시에는 그 아들 딸, 손주들이 둥지를 틀면서 '대가족'이란 단어는 생소해졌다.산업화에 이어 1980년대부터 번진 공동주택(아파트, 다세대주택·오피스텔), 특히 아파트는 공동체의 분화를 더 가속했다.대구 남구 대명동 공무원아파트(1966년), 공·시영아파트(1970년대 초반)를 거쳐 1980년대부터 아파트는 단독주택을 넘보기 시작했다. 2005년 대구 모든 주거 건물의 60%를 아파트가 차지했다.산업화와 공동주택의 성행은 마을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웃 단절과 고독사(死)를 부르기도 했다.2018년 경북 구미 한 원룸의 30대 아버지와 2살 아들의 죽음은 월세 체납 쪽지, 단전 통지서와 함께 1주일 뒤에 알려졌다. 2015년 2월 대구 대명동 한 빌라에서는 아내와 사별한 뒤 홀로 살던 이모(61) 씨가 숨진 지 20여 일 만에 발견됐다. 같은 해 11월 대구 한 원룸의 68세 할아버지의 주검이 발견된 것은 두 달여나 지난 뒤였다.마을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했던 시절이라면 이 같은 죽음과 단절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공동체의 부활이 다시 얘기되고 있다. 의식(衣食)이 아니라 삶의 풍요를 위해 더 절실해지고 있다.희망도 있다. 마을 공동체의 부활, 아파트 공동체의 활성화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대구 만촌동 주민들로 뭉친 '만촌백인회'."앞으로 주민 백 명을 모으면서 동네 이웃을 돕는 좋은 일을 하자"고 2007년 10명이 첫 모임을 가졌다. 그늘진 이웃을 찾아 십시일반 모은 돈을 전하고 노력봉사를 했다. 13년이 흐른 2020년 현재 70여 명이 돈과 몸을 보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이혼한 할아버지와 손주 3남매, 홀몸할머니, 소년소녀가장, 장애가정 등이 모두 만촌백인회가 살피는 이웃이다.대구 봉덕동 '할벤져스'.봉덕동 효성백년가약아파트 경로당 회원들이다. 이들 할벤져스는 눈비를 개의치 않고 8년 동안 폐지를 모아 마련한 돈(1천만원)을 지난해 7월 아동시설에 오롯이 내놓았다. 서영자(79) 경로당 총무는 "회원들이 폐지를 계속 모은다. 언젠가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또 좋은 일에 써야지"라고 했다.이 같은 공동체·나눔 바이러스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길 기대해 본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2020-01-12 22:45:25

[매일칼럼]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다   

[매일칼럼]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다  

지난해 말 세계적으로 가동중인 원전은 450기에 이른다. 건설중인 신규원전은 53기다. 원자력발전을 하는 나라가 30개국에 달한다. 아직 원전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28개국이 대열에 합류할 채비를 차리고 있다. 건설 예정인 원전만 109기에 이른다. 건설 검토 단계에 있는 원전은 330기다. 우리가 아무리 원전 없는 세상을 외쳐도 세계는 원전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일찌감치 원전 비중 축소에 나섰던 나라들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때 이미 원전 건설 재개를 선언했다. 트럼프 정부는 60년이던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인근 터키 포인트 3·4호기 원전수명을 80년으로 연장했다. 프랑스는 유럽형 3세대 원전 6기의 건설을 검토 중이다. 영국은 잉글랜드 북서부 지역에 차세대 원자로 3기를 건설하는 '무어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03년 탈원전 선언후 전력난에 시달리던 벨기에에서도 원전 수명을 연장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EU 전체가 원전 비중 축소에서 원전에 의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다시 원전이 주목받는 것은 '기후변화' 때문이다. 이젠 '기후변화'라는 말 대신 '기후위기'라는 용어가 쓰일 정도로 지구촌은 위협받고 있다. 원자력은 현존하는 에너지원 중 가장 에너지효율이 높으면서 온실가스 같은 오염물질 배출은 거의 없다. 원전을 폐쇄하고서는 2050년까지 '탄소제로'라는 EU의 목표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원전 비중을 줄이겠다던 EU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은 기후 변화 목표 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결의안을 채택한 이유다. EU가 방향을 튼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기후위기엔 우리나라도 큰 몫을 한다. 한국은 세계 7위 CO₂ 배출국이다. 기후변화대응지수(CCPI)에서 총 61위까지 매기는 순위 중 58위다. 유엔이 '배출량 격차 보고서(EGR) 2019'에서 한국을 종전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국가 명단에 올렸을 정도다.기후위기를 막는데 원자력 이상의 대안은 없다. 위기의 주범인 석탄이나 석유, 천연가스 같은 화석 에너지원을 무한정 태울 수 없다면 대안은 원전뿐이다. 원전의 효율은 석탄화력발전보다 300만배 좋다. 1기가와트(GW·100만kw)의 전력을 생산하는데 농축우라늄 21t이면 된다. 같은 전력을 얻기 위해 LNG는 95만t, 석유는 115만t, 석탄은 235만t을 태워야 한다. 1GW 전력을 얻기 위해 원전 설비 면적 0.92㎢로 족하다면 태양광은 15.62㎢가 있어야 한다.준비 안 된 나라의 위기가 준비된 나라에서는 기회가 된다. 세계원자력협회(WNA)가 추정하는 향후 30년간 글로벌 원전 건설시장 규모는 약 500~600조원에 달한다. 한국은 지난 60년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원자로를 만들어냈다. 제3세대 원자로 APR-1400은 유럽사업자 요건인증(EUR)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인증을 모두 받은 세계 유일의 원자로다. 한국이 바라카 원전 1기를 건설하는데 약 6조원이 들었다면 신규 원전 6기 건설을 검토중인 프랑스는 1기당 10조원의 비용을 예상한다. 한국은 준비된 나라다. 다만 그 기회를 날리고 있을 뿐이다.탈원전이 한국에겐 위기가 되고 중국과 러시아엔 기회가 되고 있다. 그들이 가진 원자로는 우리 것에 비해 결코 안전하지 않다. 러시아는 유럽 인증만 받았고, 중국은 어느 곳으로부터도 인증을 받지 못했다. 중국은 48기의 원자로를 운영 중이고 11기의 원자로를 짓고 있다. 파키스탄에 원전을 수출하기까지 했다. 러시아는 중국 터키 등 해외에서만 앞으로 10년간 1천335억달러(약 160조원)상당의 일거리를 따놓았다. 사고가 터진다면 우리 원자로가 아니라 이들 원자로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은 황해안을 따라 원전을 짓고 있다. 사고시 우리나라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우리는 안전성도 보장 받지 못하면서 경제성도 날리고 있다.우리가 탈원전을 고집하든 않든, 세계는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그렇다면 회피할 것이 아니라 주도해야 한다. 1·2세대 원자로를 갖고도 "40년동안 사고 한 번 없었다"고 자랑한 대통령이다. 세계가 인정한 3세대 이상의 원자로를 썩혀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2020-01-05 20:00:00

[매일칼럼] 한국  2019: 헛것들이 판친 '탈진실 사회'

[매일칼럼] 한국 2019: 헛것들이 판친 '탈진실 사회'

대한민국의 2019년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해 질 무렵 언덕 너머에서 다가오는 실루엣이 기르던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런 한 해였다. '조국 사태'는 배신감과 분노를 안겼다. 국민을 갈라놓기까지 했다. 정치인의 '내로남불'은 진저리 날 정도였다. 국회는 1년 내내 패스트트랙을 놓고 동물국회, 식물국회를 연출했다. 적폐 청산은 또 다른 적폐로 이어졌다. 불통(不通) 화법도 넘쳐났다. 서민들은 죽겠다는데, 높은 분들은 경기가 괜찮다고 했다. 정치권은 '우리는 항상 옳다'며 자기 진영만 대변한다. 정치는 이념 대립과 국론 분열을 더 부추겼다.이념 갈등은 국민의 큰 걱정거리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밝힌 '2019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는 이념 갈등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91.8%가 우리 사회가 겪는 갈등 중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을 꼽았다. 다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85.3%), '대기업과 중소기업'(81.1%), '부유층과 서민층'(78.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념 갈등은 2016년만 해도 순위가 다섯 번째(77.3%)였다. 3년 사이 14.5%포인트나 상승했다.한국 사회는 '누구 편이냐'에 따라 선악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틀에 갇혀 있다. 가짜 뉴스와 선전선동은 춤을 추고 있다. 민주화를 이끈 광장정치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광화문 vs 서초동'의 분열정치로 변질됐다. 공동체 의식, 사회정의는 공허해졌다.2019년은 '탈진실(post-truth) 사회'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영국 옥스퍼드사전은 '탈진실 사회'를 "대중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객관적 사실이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적은 환경"이라고 정의한다. 진실과 사실이 이전처럼 중요하지 않게 돼버렸다. '탈진실'은 1992년 미국 작가 스티브 테쉬흐가 잡지 '네이션'에 기고한 에세이에 처음 등장했다. 이 용어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고 있다. 이제는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데 용이한 용어가 됐다.교수신문은 올해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뽑았다. 공명조는 '아미타경'(阿彌陀經) 등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졌다. 한 머리는 낮에,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다른 머리가 이를 질투했다. 다른 머리가 화가 나서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었다.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됐다. 즉 공명지조는 서로가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공멸하게 되는 '운명 공동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공명지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대단히 심각한 이념의 분열 증세를 겪고 있다"며 "양 극단의 진영을 만들어 서로 적대시하며 혈전 중이다. 그러는 동안 모두 위험한 이분법적 원리주의자가 돼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공명조 전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분열된 우리 사회가 부디 대승적으로 상생의 지혜를 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곧 2020년 새날이 온다. 바른 성찰과 새 의지로 희망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통합에 나서주길 바란다. 정치권은 진영 놀음을 걷어치워야 한다. 국민들은 내년 4·15 총선에서 준엄해야 한다.

2019-12-30 00:29:17

[매일칼럼] 반세기를 쌓아 온 공든 탑이 무너진다

[매일칼럼] 반세기를 쌓아 온 공든 탑이 무너진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잘사는 나라'다. 선진국그룹이라 할 OECD에 가입한 것이 23년째다. 아시아 최초로 G20 회의 유치에 성공했을 정도로 국제적인 대접도 나쁘지 않다. 문재인 정부 자랑처럼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에 들었다. 세계 여섯 번째 수출 대국이기도 하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 부자나라라 치켜세운다. 이 모든 것이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가 경제적 파이를 지속적으로 키워온 결과다. 국민은 이제 '잘사는 나라'에 익숙해 있다.하지만 우리나라는 원래 잘사는 나라는 아니었다. 까마득히 잊었거나, 경험하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지지리도 못살았다. 빈곤과 질병, 무지를 떠올리던 후진국이었다. 1961년 한국의 1인당 GDP는 89달러로 전 세계 125개국 중 101위, 북한은 320달러로 50위였으니 그럴 만했다.우리는 그런 절망을 딛고 기적을 일궜다. 기적의 토대를 마련한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는 분명한 철학의 소유자였다. "후손에게 가난한 조국을 물려주지 않겠다." 이 말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실천 방법을 찾았다.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내건 구호는 간단명료했다. '공업 입국', '전 산업의 수출화'. 전남 여수공단을 시작으로 포항제철, 구미공단을 세웠다. 고속도로를 건설해 동맥을 뚫고, 댐을 만들어 용수를 확보했다. 원자력 발전소를 세워 값싸고 안전한 에너지를 공급했다.한국 경제는 연평균 9%씩 성장했다. 1961년 4천만달러던 수출은 1979년 151억달러가 됐다. 연평균 40%씩 늘었다. 수출이 느니 효과는 전 산업에 파급됐다. 고용도 급격히 좋아졌다. 소득은 높아졌고 삶은 나아졌다. 구체적 수치로 드러난 결과 앞에서 공과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우리는 그 과실을 따먹으며 오늘을 살고 있다.박 전 대통령은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다. "이 땅에서 가난을 추방하는데 구호가 화려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국정 목표를 미사여구로 제시한 적이 없다. 올해 목표는 '수출 10억달러 달성', '성장률 목표는 10%' 하는 식으로 늘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수치로 표시된 국정 목표는 국민이 이해하기 쉬웠다.승승장구하던 한국 경제가 문 정부 출범 2년여 만에 곤두박질치고 있다. 어떤 역경을 딛고서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창조해왔던 한국 경제에 이상 징후가 뚜렷하다. 이러다가 "후손들에게 빚만 물려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시 가난의 역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저어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든든한 버팀목이던 수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12개월째 내리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17년 3.2%던 성장률은 올해 2%까지 내려앉았다. 기업들은 엑소더스 행렬에 올라타고 있다. 직장에서 밀려난 40대는 대통령이 걱정할 정도다. 한 해 문 닫는 자영업자가 100만 명을 넘게 생겼다. 공단 가동률도 뚝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산율은 1명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애써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다.그런데도 대통령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단다. '나라다운 나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 같은 미사여구가 남발된다. 올해 신년사 제목도 '오늘이 행복한 나라'였다. 수치로 뒷받침되지 않는 미사여구에 국민은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세계 최고의 리더십 전문가로 꼽히는 존 맥스웰은 말했다. "목표를 설정할 때보다 목표를 실현할 때 감동을 받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꼭 새겨야 할 말이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간다.

2019-12-23 06:30:00

[매일칼럼] 공천기준 물갈이

[매일칼럼] 공천기준 물갈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체제에서 내년 총선의 최대 화두는 물갈이다.물갈이 대상은 3선 이상 중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황 대표를 주축으로 한 지도부는 불출마자를 포함해 현역 국회의원 50% 이상 물갈이를 공언하고 있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이 지난 12일 공천 혁신을 명분으로 내세운 주 대상도 청년과 신인이다.만 34세까지 청년 경선자 중 정치 신인에 50%, 비신인에 40% 가산점을 주고, 만 35~39세 청년 경선자의 경우 신인 40%, 비신인 30%의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또 만 40~44세 청년 경선자는 신인 30%, 비신인 20%의 가산점을 받는다. 한국당은 당헌당규에 만 45세 미만을 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치 신인의 범위는 당내 경선을 포함해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하는 모든 선거에 출마 경험이 없어야 한다.또 여성 정치 참여를 위해 만 59세 이하 여성 중 신인에게는 30%, 비신인에게는 10%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만 44세 이하 여성은 가산점 비율이 더 높은 청년 가산점을 적용받는다.결국 청년 신인 가산점을 최대 50%까지 부여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3선 이상 중진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청년과 신인을 다수 포진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한국당의 내년 총선 공천 방향을 보면 물갈이 자체가 곧 혁신인 것처럼 비친다.물갈이는 혁신의 좋은 명분이기는 하다.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나 정치 지망생들도 물갈이란 듣기 좋은 구호일 뿐 아니라 필요성도 절감한다.하지만 중진들을 대상으로 한 마구잡이식 '묻지마 물갈이'의 결과는 어떠한가. 특히 대구경북을 반추해 보자.국회 의정 활동의 키를 쥔 상임위원장 대다수는 3선 또는 그 이상의 중진이 맡는다.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핵심 보직 대다수도 초·재선은 자리를 차지하기는커녕 출마 명함을 내밀기도 어렵다. 더욱이 지역구 현안 해결을 비롯해 지역 발전 전략을 위한 예산 확보나 정책 추진에서도 초·재선은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대구는 매번 총선 때마다 물갈이를 거듭한 끝에 현재 한국당 국회의원 8명 가운데 3선 이상 중진은 주호영 의원 1명뿐이다. 재선인 윤재옥·김상훈 의원을 제외한 5명이 모두 초선이다. 이 때문에 이번 20대 국회에서 대구에서는 대표나 원내대표에 어느 누구도 출사표를 던지지 못했다.최근 국회에서 처리된 2020년도 국가 예산을 살펴보면 대구의 국비 예산 증가율은 고작 1.9%로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꼴찌다. 16위를 기록한 전남의 증가율 5.6%와도 격차가 크다. 만년 꼴찌인 대구 1인당 국내총생산(GRDP)을 비롯해 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구 경기의 허물도 지역 경제 환경과 함께 대구 정치인들의 책임과 전혀 무관하다고만 할 수 없다.초선이든 중진이든 물갈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맛이다. 하지만 단순히 선수(選數)를 기준으로 한 솎아내기식 물갈이는 곤란하다.일하지 않거나 지역 현안에 무관심하거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으면 초선이든 중진이든 반드시 물갈이를 해야 한다.그동안 한국당의 물갈이는 이 같은 기준이 아니라 계파, 당과 공천권자에 대한 충성도, 공천 헌금 등이 주요 기준이 됐기에 공천을 받은 이들은 다시 계파나 공천권자에 매몰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과정으로 배지를 단 의원들이 지역 현안이나 유권자들에게 더 관심 가지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다.한국당이 정말 물갈이해야 할 대상은 중진이 아니라 바로 공천 기준이다.

2019-12-16 06:30:00

[매일칼럼] 국민은 진실에 목마르다

[매일칼럼] 국민은 진실에 목마르다

청와대가 난리 법석이다. 조국 사태로 시작된 구설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옮겨붙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감찰 무마 의혹 사건에서도 회자된다. 청와대는 사사건건 해명해야 한다. 그러나 진실이 담기지 않은 해명은 뒤집히기 일쑤다. 청와대의 말이 다르고, 사건 당사자의 말이 다르다.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도 벌어진다. 덮고 속여 적당히 넘어가려는 수 싸움이 가당찮다. 야당은 청와대가 "검찰을 속이고 국민을 기만하려 든다"고 공격한다. 청와대는 "문재인 청와대는 거짓을 사실처럼 발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 국민은 진실에 목마르다.검찰이 진실을 캐고 있다. 이는 진실을 갈구하는 국민에게 큰 위안거리다.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아니면 난공불락이다. 그냥 검찰이 아니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검찰이라야 한다. 청와대에 대한 수사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수사라는 주장은 인정하기 어렵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평지풍파 수사라면 검찰이 얻을 것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다. 개혁을 내세워 수사 중인 검찰의 예봉을 꺾으려는 것이야말로 정치 행위다. 되짚어 보면 검찰이 권력 핵심에 칼을 겨눈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 총장님'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엄정한 자세"를 직접 당부한 것은 문 대통령이다. 이제와 '네 편', '내 편'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면 내로남불이 된다.검찰에 재갈을 물리려는 청와대의 몸부림은 그래서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하물며 국가 법질서 확립을 위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할 법무부와 검찰을 갈라치기한 것은 도를 넘었다. 법무부는 조국 사태 이후 '검찰 개혁'을 한답시고 검찰의 입을 틀어막았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바꿔 검사와 기자의 접촉을 금지했다. 검찰이 입을 다물면 언론은 진실을 캘 수 없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은 험난해진다. 청와대는 목적을 이룬 듯하다. 청와대를 향한 수사는 그렇게 '깜깜이 수사'가 됐다. 그런 청와대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지명하며 '사법 개혁'을 말하고 '공정과 정의의 법치국가 확립'을 이야기한 것은 난센스다. 지금 국민 이목은 검찰 개혁이 아니라 법무부가 감찰권과 인사권을 동원해 윤석열 검찰의 수족을 자를 것인가에 쏠려 있다.검찰을 꺾기 위해 법무부를 선봉에 세웠다면 공수처는 그 결정판이다. 개혁으로 포장했지만 공수처가 검찰 개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공수처는 권력자가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는 새로운 절대 권력기관의 탄생일 뿐이다. 자신의 비리는 덮고 남의 비리를 무지막지하게 캘 수 있게 된다. 공수처 체제였다면 지금 검찰이 수사 중인 울산시장 하명 수사·선거 개입 의혹 등 권력형 비리의 실체를 밝히기는커녕 그런 사건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삼권분립의 원칙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국민들은 진실을 알기를 원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시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고도 했다. 지금이야말로 그 말을 실천해야 할 때다. 검찰이 진실을 밝혀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국민 여론이다. 공수처가 아니다. 그 결과 잘못이 드러나면 잘못했다고 해야 한다. 법무부나 공수처를 내세워 여론을 덮으려 하거나 검찰의 힘을 뺄 때가 아니다.

2019-12-08 19:31:21

[매일칼럼] 우리나라가 중병을 앓고 있다

[매일칼럼] 우리나라가 중병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중병에 들어 있다. 그 징후가 심각하지 않은 분야를 찾기 어렵다.주요 경제지표는 올 들어 급락했다.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다. 과거 정부가 사수했던 GDP 대비 국채 비율 40% 붕괴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온 국민이 나라 살림살이를 걱정한다. 수출은 11개월째 마이너스다. 기업들의 사기는 바닥이다. 탈한국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기업은 널렸어도 돌아오겠다는 기업은 찾기 힘들다. 자영업자 소득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최대로 떨어졌다. 생산성을 고려 않은 임금 인상과 고용 강요는 만성병을 일으킨다. 직격탄을 맞은 공기업은 속속 적자로 돌아서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은 바닥을 드러내고 건보료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전기료 인상은 시간문제다. '역대 정부 중 단기간 내 최고로 집값을 올린 정부'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집값은 폭등했다. 소득주도성장을 한다며 없는 집일수록 더 쓸 돈이 없도록 만들었다. 50년 이상을 승승장구해 온 한국 경제에 '역대 최저'니 '역대 최악'이라는 말이 일상이 됐다.북한은 남한을 하대(下待)한다. 남한을 향한 비방과 무시가 갈수록 도를 더해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비밀리에 보낸 부산 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그냥 거절한 것이 아니라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과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비아냥댔다. 문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평화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평화가 왔다는 자화자찬은 빛이 바랬다. 그 사이 북핵은 더욱 공고해졌다.한미동맹은 파열음이 요란하다. 지소미아 파기를 임시 봉합하고서 한국과 일본 정부는 여전히 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드 보복을 내세우며 중국은 한반도를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있다. 사드로도 막을 수 없는 극초음속 둥펑-17 미사일로 한국의 목줄까지 거머쥐었다. 동맹이 약화되자 한반도 운전자론도 힘을 잃었다. 구한말 조선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국민은 늘었다.중병의 원인은 리더십에 있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방향도, 방법도 틀렸다. 문 대통령보다 사흘 뒤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업적은 시사적이다. 마크롱 취임 후 '저성장 고실업'으로 대변되는 프랑스병이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과감한 노동 개혁과 감세를 지목했다. 국민과의 집요한 소통도 한몫을 했다.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았기에 국민 설득이 가능했다. 우리는 반대 방향을 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시아에서 가장 급진적인 좌파 정책'이라 표현했다. 애초 방향을 거꾸로 잡았으니 기대할 게 없었다. 프랑스는 독일을 제치고 유럽 경제 모범국으로 거듭날 기세다. 반면 한국은 주변국으로부터 동네북 신세거나, 패싱을 우려해야 하는 처지다.말 따로 행동 따로 요설(妖說)은 국민을 일시적으로 기망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국민은 허망한 말보다 실적을 내는 정부를 원한다.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흔들림이 없다.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워 정상화했다"고 한다. 남북 관계는 여전히 '굉장히 보람을 느끼는 분야'다. "부동산 정책에서는 자신 있다"는 장담도 늘어놓았다.중국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명의로 이름을 떨친 편작은 어느 명의도 고칠 수 없는 6가지 병을 들었다. 그 일불치(一不治)가 교만하고 방자하여 내 병은 내가 안다는 환자다. 주관적 판단만 갖고, 의사의 진료와 충고를 따르지 않는 교만한 환자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하물며 병든 줄도 모르는 환자라면 어찌 고쳐야 할지 난감한 일이다.

2019-11-24 20:47:09

[매일칼럼] 앙천대소(仰天大笑)

[매일칼럼] 앙천대소(仰天大笑)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최근 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을 향해 내년 총선에서 서울 강북 험지에 출마할 것을 권유했다. 자신은 서울 동대문에서 내리 3선을 하고 민주당에 빼앗겼던 경남지사직을 되찾았는데, 황 대표나 김 전 위원장은 당을 위해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핀잔과 함께.또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서는 지역 초·재선을 향해 가소롭다는 듯이 꾸짖었다. (지역 초·재선들은) 따뜻한 고향에 앉아 매년 출마하면서 선배들 보고 험지 가라고 하는 것을 보니 영화 친구의 '니가 가라 하와이'가 생각난다고 꼬집었다.그동안 당을 위해 헌신해 온 자신만이 따뜻한 지역에 그저 내려앉을 자격이 있고, 황 대표와 김 전 위원장, 초·재선들은 지역에 안주하지 말고 험지로 가라고 쏘아붙인 셈이다.앙천대소(仰天大笑)할 일이다.한국당에 헌신하고 대권에 관심 있는 자신은 그만큼 고생한 큰 인물이기 때문에 정치적 연관성이 크게 없는 지역이라도 당선되기 쉬운 곳에 낙하산 공천을 받아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보수 진영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모두 '따뜻한' 지역을 찾아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모양새가 볼썽사납다.대구경북의 현안이나 지역 발전에 대해서는 관심도, 언급도 없던 이들이 너도나도 어릴 적 추억이나 어쭙잖은 명분을 내세워 지역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으니 웃어야 할지, 반겨야 할지 모를 일이다.황 대표는 '보수 재건'을, 홍 전 대표는 '서문시장 추억'을, 김 전 위원장은 '제 역할 하는 영남 지도자'를 내걸고 대구를 비롯한 따뜻한 지역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특히 홍 전 대표와 김 전 위원장은 사실상 대구 출마를 염두에 두고서도 대구의 미래나 발전 방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다.보수 정당 인사들의 지역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서는 지역 발전에 대한 청사진이나 노력보다 한국당 공천이 최우선이고, 이를 위해서는 당에 대한 충성도나 기여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이런 측면에서 지역 문제에 하나하나 천착하고 있는 김부겸·홍의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유승민 바른미래당 국회의원 등에 눈길이 쏠린다.김 의원은 대구 도심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제2작전사령부의 이전에 관심을 두고 있다. 또 홍 의원과 함께 경부선 철도 대구 도심 구간 지하화를 위해 예산 확보 등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이 두 가지 현안은 당장 실현이 어렵다 하더라도 대구시와 정치권이 대구 발전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장기 과제이기도 하다.K2 군 공항 소음 문제 해결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온 유 의원은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K2 이전의 발판을 마련,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역 발전에 힘써온 이들이 내년 총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보수 정당 지도자급 인사들이 '험지 출마'를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이 여야의 촉망받는 젊은 두 정치인(임종석, 김세연)은 17일 정계 은퇴와 불출마를 선언, 지도자급 인사들을 멋쩍게 했다. 황 대표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홍 전 대표와 김 전 위원장이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출마를 공언할 때 그나마 보수 지도자 대접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나.총선을 앞두고 지역 정치 지도자들이 자당(自黨)을 위해 얼마만큼 헌신했느냐가 아니라 지역과 시도민을 위해 얼마만큼 헌신했고, 앞으로 할 것이냐를 유심히 살펴야 지역민들이 '제 눈을 찌르는' 우를 범하지 않을 테다.

2019-11-17 18:09:14

[매일칼럼] 지방 분권 한다더니 수도권 세상을 만들었다

[매일칼럼] 지방 분권 한다더니 수도권 세상을 만들었다

수도권에 사는 인구가 비수도권에 사는 인구수를 추월했다. '수도권 세상'이 활짝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11.8%를 차지하는 서울·인천·경기 지역에 국민의 50% 이상이 산다. 수도권 인구는 매월 9천500명씩 불어나고 비수도권 인구는 3천500명씩 줄어든다. 지난해 대구에서 1만 명이, 경북은 더 많은 1만1천 명이 수도권으로 갔다.인구가 늘면 소리도 커지기 마련이다. 당연히 수도권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지방의 목소리는 작아진다. 지역균형발전은 더 멀어졌다. 2013년 75곳이던 30년 내 소멸 위험 지방자치단체는 지난해 89곳으로 늘었다.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꿰뚫고 있다. 재빨리 "우리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2018년 2월 세종시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서 했던 말이다.문제는 실천이다. 노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에 공을 들였고 또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집권을 우리나라 지역불균형발전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고 대책을 마련한 것이 노 정부였다. 그 결과 세종 행정수도가 나왔다.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153개를 비수도권 11개 지역에 이전하는 가시적 성과도 냈다. 노 정부를 거치며 수도권에 몰리던 인구가 2011년과 2013~2016년 지방으로 순이동하는 일이 벌어졌다.문재인 정부가 9일 반환점을 돌았다. 노 정부를 계승해 그보다 더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선언했으니 기대가 컸던 정부다. 하지만 문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은 노 정부와 달리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달콤한 약속에 걸었던 지방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물론 문 정부가 그동안 고사 위기에 몰린 지방을 살리기 위한 시도를 안 한 것은 아니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한다며 취임 초 지방분권 개헌안을 제시한 적도 있다. 자치분권의 근간인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정부의 571개 사무를 지자체로 이양하는 지방이양 일괄법 개정안, 자치경찰제 실시를 위한 경찰법 개정안 등 소위 '자치분권 3법'을 국회에 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법안만 올리고선 야당 탓만 할 뿐 통과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의문이다. 20대 국회의 법안 통과율이 30%가 안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중앙집권은 더 강화됐고 수도권 쏠림 현상은 심해졌다. 지방재정은 중앙정부에 더 예속됐다. 선심성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재정 부담은 지방이 떠안는다. 복지확대 정책 사업 예산이 대표적이다. 중앙정부가 해마다 지자체에 지급하는 지방교부세 대부분이 중앙정부의 보조 사업에 의무적으로 매칭하는데 쓰인다.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극히 제한됐다. 최저임금에 대해 지역별로 차등을 둬야 한다는 기본적인 요구마저 묵살됐다.반면 수도권 집중 기반을 다지는데는 거리낌이 없다. 지난달 말 대도시권 광역교통비전 2030계획을 발표했다. 대도시권이란 이름을 갖다 붙였지만 실상은 광역급행철도 건설 등 수도권 도시의 광역거점 간 통행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안이다. 수도권에 30만 호의 3기 신도시를 만들 계획도 나와 있다. 역시 수도권에 120조원을 쏟아부을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허용한 것도 문 정부가 한 일이다.문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즐겨 말하지만 실천은 않고 있다. 추진 의지는 더더욱 없어 보인다. 이러고도 지방분권을 말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2019-11-10 22:26:35

[매일칼럼] 박정희 추도식 초헌관(初獻官), 장세용 시장

[매일칼럼] 박정희 추도식 초헌관(初獻官), 장세용 시장

장세용 구미시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에서 첫 잔을 올렸다. 장 시장은 취임 첫해인 지난해에는 추도식에 참석조차 않았다. '박정희 흔적 지우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장 시장의 바뀐 모습이다.장 시장은 추도식에서 "올해는 구미공단 50주년이다. 공단 역사 등을 볼 때,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수의 상징 같은 느낌으로만 봐선 안 된다. 실용주의적, 혁신가적인 면도 있었다 본다"고 했다.또 "지난 50년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어온 구미의 오늘은 고인의 선구자적 결단, 구미와 상생해 온 기업들, 노동자들의 헌신 및 시민들의 봉사·노력의 결과"라며 "이는 국가 발전을 최우선에 둔 국가주의적 실용주의자이자 국토 개발과 산업화를 이끌며 세상을 끊임없이 바꿔나간 혁신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향에 베푼 큰 선물이었다"고 덧붙였다.고심과 성찰이 벼린 말이다. 의미는 복합적이다.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업적을 치켜세웠다. 또 기업의 노력, 노동자·시민의 피와 땀을 빼놓지 않았다. 산업화에 대한 장세용식 정의다. '박정희 흔적 지우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굳은 의지가 읽힌다.장 시장은 취임 후 민감한 언행으로 보수층의 반발을 자주 샀다. 이는 보수-진보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구미시 새마을과 폐지 및 새마을테마공원 명칭 변경 추진, 그리고 구미공단 50주년 행사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빠진 홍보 영상 상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다. 많은 구미시민과 보수층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과 애착이 깊다. 장 시장은 이를 가볍게 여긴 것 같다. 물론 민주화운동을 한 역사학자로서의 소신이 있을 것이고, 지지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구미시장이며, 그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들도 구미시민이다.5년 전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는 깜짝 놀랄 공약을 내놨다.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짓겠다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산업화의 교육장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또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교류를 통해 지역주의를 깨는 역할도 염두에 뒀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이 공약 때문에 지지층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가 호된 후폭풍을 무릅쓰고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외친 이유는 뭘까? 당시 김 후보는 매일신문·대구평화방송 주최 '대구시장 여야 유력 후보 토론회'에서 "저는 맞아 죽을 각오로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화해 같은 역사적인 과제를 풀어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정치인은 유연하고,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은 훌륭한 정치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후배 정치인들에게 이런 조언을 자주 했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 훌륭하게 성공하려면 서생(書生)의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 서생의 문제의식은 원칙과 철학을 강조한 것이며, 상인의 현실감각은 타협을 해서라도 일이 되게 하라는 의미다.장세용 시장은 대구경북의 유일한 더불어민주당 단체장이다. 그 이유만으로도 외롭고 힘든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집권여당 시장으로서 대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지층만의 '반쪽 시장'이 돼서는 안 된다. 구미와 구미시민 모두의 시장이어야 한다. 초헌관(初獻官)의 마음으로 구미 경제의 영광을 되찾는데 힘써주길 바란다.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멀다.

2019-11-03 14:31:36

[매일칼럼] 공수처, 그 치명적 유혹

[매일칼럼] 공수처, 그 치명적 유혹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검찰 수사가 지긋지긋할지 모르겠다. 조국 수사는 그 아내가 구속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애초 조국 가족을 목표로 나선 수사가 아니었다. 그의 법무부 장관 사퇴를 노려 시작한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니 아내가 구속됐다고, 조 전 장관이 사퇴했다고 멈출 수 있는 수사가 아니다. 오히려 끝장 수사를 통해 공정과 평등, 정의를 되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 달라는 국민적 요구에 윤석열의 검찰은 직면해 있다.다급해진 것은 문 대통령 쪽인 듯하다. 아직 이유는 알 수 없다. 조국이 사퇴하자마자 이번에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들고 나와 민심을 휘젓고 있다.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검찰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여기는 듯하다. 문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법안 처리를 당부하기까지 했다. 물론 '검찰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는 명분을 달았다. '검찰 개혁=조국' 구도가 '검찰 개혁=공수처'로 바뀌었다. 민심에 어긋나는 외침은 논쟁만 부른다. 검찰 개혁을 두고 '하필 왜 조국이냐'던 국민들은 이제 '왜 그걸 공수처가 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다.많은 국민이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검찰이 정치 중립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을 때의 이야기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죽은' 혹은 '죽어가는 권력'에 대해서는 냉혹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 국민들은 검찰 개혁을 지지했다. 검찰이 지금처럼 대통령이 싸고돌 정도로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 중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국민은 모순투성이 조국이 시도했던 자가당착적 검찰 개혁이나 옥상옥이 될 공수처를 앞세운 개혁에 냉소한다. 차라리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말을 지킬 수 있을지의 여부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광장으로 뛰쳐나간 국민이건, 침묵하는 국민이건 숨죽이며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이유다.문 대통령에게 공수처는 치명적 유혹일 것이다. 여당 안대로라면 공수처는 주로 판검사들을 대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검찰 개혁의 명분은 두 갈래다. 정치검찰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다. 그다음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공룡권력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수처는 어떤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돼 있지도 않으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는 모순덩어리다. 검찰의 힘을 빼겠다면서 그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갖춘 기관을 만들어 대통령 휘하에 두겠다는 계산이다. 게다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하면 검찰이건, 경찰이건 사건을 넘겨야 한다. 검찰이 조국 수사를 시작했는데 공수처가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겨 넘기라면 넘겨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조국 관련 수사가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통령으로서는 그런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그러나 "권력은 부패하기 쉽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다. 19세기말 영국의 철학자 액튼 경이 했던 이 명언은 시대를 관통해 유효하다. 제왕적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걸었던 길이 이를 웅변한다. 문 대통령 역시 대통령이 되기 전 그 폐해를 깨닫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지금은 왼손에 검찰, 오른손엔 공수처를 쥐려 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을 능가하는 권력을 꿈꾼다. 당장은 달콤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달콤함에서 벗어나야 그 자신이 살고 나라가 산다.

2019-10-27 19:04:33

[매일칼럼] 50년 숙원, K2 공군기지 이전

[매일칼럼] 50년 숙원, K2 공군기지 이전

한국전쟁 이후 1958년 허허벌판이던 대구 동구에 군기지(제11전투비행장)가 들어섰다. K2 공군기지다. 1961년 이 자리에 대구공항이 부산비행장 대구출장소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공군군수지원사령부도 자리 잡았다. 645㏊(195만 평)가량의 상당한 면적이다.1970년대부터 기지 주변에 주택이 하나둘 들어섰고, 1980년대부터 전투기 소음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50년이 지난 현재 황량했던 대구공항 주변은 주택과 학교, 의류단지 등이 둘러싸며 건물로 빼곡히 들어찼다.1988년 첫 직선제로 뽑힌 노태우 전 대통령은 소음 문제 해결을 위해 K2 이전을 공약했다. 하지만 군사 요충지를 명분으로 한 공군의 반대에 밀려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1990년대에도 끊임없이 기지 이전이 거론됐지만, 공군이 군사 요충지라는 명분을 내세울 뿐 아니라 이전 비용을 점점 높게 추산(4조원→5조원 등)하면서 대구시나 지역 정치권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동구 주민들은 국방부의 주변 학교 방음창 설치나 소음 피해 정도에 따른 일부 배상비 지급에 불만을 삭이면서 지속적인 소음을 감내해야만 했다. 고도 제한에 따라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전투기 굉음으로 참으로 지난한 고통을 겪어왔다.전투기 소음은 동구 주민뿐 아니라 항로에 인접한 수성구, 북구 일부 주민들의 생활에도 지금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다,2008년 동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유승민 의원도 소음 피해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K2 이전을 최대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회 상임위 자리 중 국방위원회만 맡으면서 줄기차게 노력했다. 유 의원은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마련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거뒀지만, K2가 영남권 신공항 논란에 함께 휩싸이면서 매듭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대구시와 지역 정치권은 그동안 K2의 경북 외곽 이전에 상당한 공을 들였지만, 경북 지방자치단체들은 소음을 유발하는 군 공항 유입을 한사코 반대해 왔다.2019년 현재 드디어 K2 이전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민간 공항과 군 공항의 묶음(패키지) 이전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지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다. 군 공항 소음 피해 지역을 최소화하는 대신 민간 공항 유치에 따른 상당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대구시와 경상북도, 군위군과 의성군이 통합신공항(민간 공항+K2) 이전에 적극 나선 것은 다행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군위와 의성이 통합신공항을 서로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고무적이다.다만, 대구시와 경북도가 연내 이전지 선정에 동의하면서도 최근 권영진 시장과 이철우 도지사의 입장이 완벽한 일치를 보이지 않고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듯해 우려스럽다.국방부도 자치단체 간 이견을 빌미로 통합공항 이전을 더 이상 미적대서는 안 된다.군위군수와 의성군수가 서로 자기 지역에 공항을 유치하려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혹시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까지 이번 사안을 대구경북 통합공항이라는 큰 틀에서 보지 않고 대구와 경북이라는 분리된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곤란하다.두 단체장은 대구경북이 경제 통합을 넘어서 행정 통합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욱이 통합신공항은 경북의 공항, 대구의 공항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구경북의 공항이란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지역민들의 50년 숙원 해결이 자칫 두 단체장의 미묘한 입장 차로 늦춰진다면 그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2019-10-20 1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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