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논설주간

[매일칼럼] 이런 장관후보들, 미국이었다면 어땠을까

미국의 인사청문회 역사는 230년이 넘는다. 1787년 연방헌법을 만들 때부터 대통령에게 연방정부 공직자 임명 권한을 주는 대신 상원엔 인준권(미 헌법 2조2항)을 줬다. 철저한 삼권분립에 바탕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의회에 행정부 고위직에 대한 인준권을 안긴 것이다. 자칫 있을지도 모를 대통령의 독선과 독주를 견제해야 할 필요가 그만큼 절실했던 셈이다.대통령으로선 억울해도 함께 일할 장관 임명을 위해 상원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이는 대통령이 인준 가능한 인물을 발탁하고, 상원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하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1789년 이래 상원에서 장관 인준을 거부한 경우가 단 12차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미국에 청문회 대상 고위직 공무원이 약 600명 정도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동안 대통령과 의회의 협조는 놀랍다.우리나라는 청문회 제도의 무늬만 따왔다. 미국식 청문회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2000년이었다. 20년이 안 된다. 장관 인사청문회는 이보다도 훨씬 늦다. 2006년에야 시작됐다. 부총리 내정자와 정부 고위직 인사들의 부동산 투기, 자녀 문제 등이 계속 불거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먼저 국회에 인사청문회를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 청문회는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였다.그러나 이름만 가져왔을 뿐 본질은 가져오지 못했다.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자 탱자가 됐다. 미국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철저한 검증 시스템이 근간이다. 검증 기간의 제약도 없다. 대통령이 장관 후보자를 지명해 청문회에 올리기에 앞서 검증하고 또 검증한다. 백악관 인사국과 FBI, IRS(국세청), 공직자 윤리위가 각각 매뉴얼화한 시스템에 따라 후보자들을 후벼 판다. 검증은 철저하고 세밀하며 집요하다. 후보자 개인과 가족에 대한 배경과 과거 20년 전의 행적, 교통범칙금 납부까지 캐고 또 캔다. 한국에선 여권의 온갖 비협조 속에 야당이 하는 일을 미국에선 검증기관이 먼저 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몰랐다'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회피할 수 없다. '죄송하다'며 백번이고 머리를 조아릴 일은 더더욱 없다. 죄송한 일이 있으면 지명받을 수 없다. 이 과정에 최소한 6개월이 걸린다. 사전에 법적 도덕적 검증을 마쳤기 때문에 실제로 청문회에 올랐을 때는 정책 검증만 하면 된다. 상원 인준 거부율이 낮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우리나라에선 이에 소홀했다. 대통령은 청문회의 핵심 전제라고 할 수 있는 후보자에 대한 사전 검증에 소홀했고, 이를 대신 떠맡은 국회는 정책 청문 대신 약점을 직접 파고들어야 했다. 그렇다보니 정권마다 10명 안팎의 낙마자가 나왔다. 이명박 정부 때는 10명, 박근혜 정부에선 9명이 낙마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2년 남짓 사이 벌써 8명이 낙마했다. 낙마한 후보자들이나 장관 임명은 고유 권한이라며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들이나 결점 없는 후보자는 없었다. 부동산 투기에다 막말, 탈세, 거짓 증언, 자녀 문제 등 제기된 온갖 의혹을 해소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슬쩍 눈감으면 그만이다. 대부분 후보자들이 미국이었다면 FBI나 IRS 조사 단계도 넘어서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미국 같았으면 청문회에도 오르지도 못했을 장관 후보자들을 두고 임명 강행을 고민해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처지가 딱하다.

2019-04-01 06:30:00

김교영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대통령 한말씀에 웃고 울고

대통령 말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 말은 언론과 SNS를 통해 전파되고 파급력이 크다. 실의에 빠진 시민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준다. 민감한 이슈를 건드리면, 그 파장은 종잡을 수 없다.드디어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에 대해 한 말씀 하셨다. 취임 후 처음이다. 지난 22일 대구를 두 번째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부산에서 공항 관련 발언을 한 지 40일 만이다.(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통합신공항을 대구 3대 프로젝트 중 하나로 공약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지역 경제인 오찬간담회에서 "대구공항 이전, 취수원 문제 등에 대해 알고 있다.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살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금쪽같은 말씀에 현장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 기업인은 "10년 묵은 체증이 풀린 것 같다"고 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고무됐다. 통합신공항 건설이 탄력받을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전날까지만 해도 대구경북은 답답했다. 문 대통령의 '부산 발언' 후폭풍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부산에서 영남권 신공항 문제와 관련, "5개 광역단체 뜻이 하나로 모인다면 결정이 수월해질 것이고, 만약에 생각들이 다르다면 부득이 총리실 산하로 승격해 검증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이 말은 신공항 논란의 불씨가 됐다.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과 대구·경북은 대통령 발언을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했다. 부울경 단체장들은 '가덕도 신공항'으로 정책 변경이 가능할 것처럼 여론몰이를 했다. 영남권 5개 단체장 합의로 2016년 결정된 '김해신공항 확장'을 뒤엎을 기세였다. 대구경북 단체장은 '원론적 수준의 발언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하지만 대구경북은 불안했다. 현 정부 출범 후 대구경북은 예산·인사에서 'TK 패싱'을 겪고 있다. 게다가 부울경 단체장은 모두 여당 소속이다. 부산은 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여기에 여당 지도부까지 부울경 요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구경북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 이러다 통합신공항 사업이 꼬이는 것은 아닐까.대구경북은 대통령 발언의 진의가 궁금했다. 청와대에 물었다. 명쾌한 답이 없었다. 총리실에 물었다. '조정할 수 있다'는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국토교통부에 물었다. 다행히 '가덕도 신공항 불가'를 고수했다. 하지만 미덥지 못했다.문 대통령의 '부산 발언'은 영남권 내 갈등을 불러왔다. 이를 놓고 내년 총선을 앞둔 '영남권 갈라치기'('대구경북은 포기하고, 부울경이라도 확실히 건지자'는 전략)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 대통합'의 아이콘이다. 특정 지역, 특정 진영의 지도자가 아니다. 모든 지역, 모든 국민의 지도자다.말은 모순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수단이다. 사마천은 '말이 적절하게 들어맞으면 다툼조차 해결할 수 있다'(談言微中亦可以解紛·담언미중역가이해분)라는 명언을 남겼다. 대통령의 말씀이야, 두말할 나위 없다.갈등만 키우는 논란은 끝나야 한다. 문 대통령께서는 '대구 발언'을 계기로 신공항 문제에 마침표를 찍어 주시길 바란다. 그냥 "원안대로(김해공항 확장+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조성)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하시면 된다.

2019-03-24 14:58:58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우리나라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미국에 이어 가장 높았다. 올해는 한국과 미국이 공동 1위를 기록할 것이고, 내년은 미국을 앞설 것이다." "1월 이후 주요 산업 활동 및 경제 심리 관련 지표들은 개선된 모습이다. 긍정적 모멘텀이 있다."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최근 경제지표를 두고 내놓은 해석이다. 단서를 달기는 했다. 성장률은 OECD 국가 중 30-5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 명 이상) 소속 7개국을 비교해 봤더니 그렇더란다. 긍정적 모멘텀은 1월 생산, 투자, 소매 판매와 2월 고용, 소비자심리지수 등 월별 지표가 반등한 것을 강조한 결과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다. 미래도 장밋빛이다. 그야말로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다.실상도 그럴까. 한국은행의 우리나라 경제성장 전망치는 발표 때마다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1월 3.0%던 것이 4월 2.9%, 7월 2.8%, 10월 2.7%로 줄었다. 올해 전망치도 2.6%로 내놓았지만 신뢰도는 바닥을 긴다. 지난해 그랬듯 올해도 장담할 수 없다.무디스는 올해 한국 성장률을 2.1%로 잡았다. 전 기관을 통틀어 가장 비관적이다. 한국 경제를 어둡게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 부진에다 수출 악화, 고용 위축이 겹쳐 있다고 했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무디스의 판단은 맞아떨어진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인 수출이 3개월 계속 감소했다. 그나마 버팀목 역할을 하던 반도체 수출액은 24.8%나 줄었다. 고용 지표는 발표 때마다 최악이라는 꼬리말이 붙어 다닌다. 올 1월 실업자 수는 122만4천 명으로 1월 기준 2000년 이후 19년 만에 가장 많았다. 50대 가구주의 가처분소득은 10년 만에 최대로 감소했다. 30·40 세대 취업자 수는 지난달 전년 대비 30대는 11만5천 명, 40대는 12만8천 명 줄었다. 2월 백화점 매출액과 할인점 매출액은 각각 7.7%, 10.8% 고꾸라졌다.소득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못사는 사람들은 더 못살고, 잘사는 사람들은 더 잘살게 됐다. 지난해 4분기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의 소득 격차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국민들의 유일한 노후 보장 수단인 국민연금은 지난해 원금 5조9천억원을 까먹었다. 2016년 3조원이 넘는 흑자를 냈던 건강보험은 지난해 1천77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요율을 더 올리지 않으면 탄탄하던 기금 고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탈원전 직격탄을 맞은 한국수력원자력과 발전사 역시 줄줄이 적자로 돌아섰다. 국민들 호주머니는 가벼워졌고 더 가벼워질 일만 남았다. 이런데 경제가 긍정적이라 한들 믿을 국민은 없다. 경제 현장은 매일이 전쟁터다.국민은 전쟁터에 던져두고 정부가 들춰 보고 싶은 통계 수치만 들먹이며 남 탓을 한다면 그것은 확증 편향이다. 내 생각이나 신념만 옳다고 여기려는 잘못된 확신은 국민뿐만 아니라 정권도 벼랑 끝으로 내 몬다.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긍정과 부정 평가가 역전됐다. 국민들은 경제를 가장 큰 이유로 지목했다. 이는 정부가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이다.대통령은 국가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코드에 맞는 악기만 듣고 지휘하려 들면 불협화음이 생기고, 연주는 엉망이 된다. 지금 정부가 그런 모양새다. 연주가 엉망이 되면 이는 연주자 잘못이 아니고 지휘자의 탓이다. 문 대통령이 꼭 알았으면 한다.

2019-03-18 06:30:00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매일 칼럼] TK 텃밭의 진정한 주인

대구경북(TK)의 정치 환경이 황량하기 그지없다.TK는 보수정당에는 텃밭, 중도개혁정당엔 황무지, 진보정당엔 불모지와 다름없다.TK는 그동안 보수당만 줄곧 짝사랑해왔다. 중도개혁당은 잘 돌아보지 않았고, 진보정당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최근 TK 신세는 이들 모두로부터 '팽'당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자업자득이라고 자조하는 이들도 꽤 많다.자유한국당 부산경남권수도권 신주류들은 최근 당권 경쟁 과정에서 TK를 왕따시켰다.TK 정치권이 당권을 잡으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내년 총선에서 필패한다는 논리를 당원들에게 주입시켰다. 이 논리가 먹혀들면서 결국 주호영 의원은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 최고위원 선거에서 여유 있다던 경북의 김광림 의원은 겨우 턱걸이했고, 대구의 윤재옥 의원은 희생양이 됐다. 밀당(밀고 당기기)도 없이 간, 쓸개 모두 빼내 주며 수십 년 짝사랑을 되풀이해오다 차인 꼴이다.안타깝지만 전두환 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대구경북을 위해 온몸을 던진 덕분에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고, 또 그 사랑을 마중물로 대권가도까지 달린 TK 정치인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대구는 박정희 정권 이래 약 60년 세월 동안 또 다른 보수당인 자민련과 한때 바람을 피운 것을 제외하곤 공화당에서 한국당으로 이어지는 정통(?) 보수당에 모든 걸 내줬다. 결과는 일부 서울 TK 정치인과 고위 관료만 떡고물을 챙긴 게 고작이었다. 남은 것은 청년실업과 지독한 불경기, 팍팍한 서민생계, 지역내총생산(GRDP) 만년 꼴찌였다. 그러면서도 선거 때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친 보수정당에 표를 쏟아붓고 있다.반면 TK의 질긴 외면에 비춰볼 때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중도개혁당에 대한 지역의 기대와 요구는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황무지에 뿌리내리기 위해 모인 민주당 TK발전특별위원회에 대해서도 많은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다. 실망으로 바뀔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다수 위원이 수도권 등 타 지역 현역 의원이다 보니 정치적 득이 없고 오히려 일부 현안에는 이해가 부딪힐 수도 있는 TK 발전을 위한 활동에 시늉만 내기 십상이다.TK발전특위 한 위원은 최근 "대다수 위원이 자기 지역구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 현안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관심도 낮다"고 고백했다.현역 국회의원 25명 중 2명을 뽑아준 뒤 이 정부에 각료를 비롯한 TK의 상당 지분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것도 염치 있는 요구인지 모르겠다.정치적 텃밭에 대한 경작 기한은 무기가 아니라 4년에 불과하다. 텃밭을 잘 가꾸지도 않고 수확도 시원찮으면 경작권을 빼앗고 정당도, 일꾼도 수시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김부겸 의원과 유승민 의원, 권영진 시장이나 주호영 의원 등 기회는 누구한테나 열려 있다.황무지든 불모지든 땅을 잘 가꿔 기름지게 만들어 풍성한 수확을 낼 수 있다면 경작자는 언제든지 교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텃밭의 진정한 주인은 경작자가 아니라 시도민이자, 유권자이기 때문이다.TK 텃밭 주인은 이제 정치 환경 탓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 환경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시기다.

2019-03-10 14:10:08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洑(보)를 다 허물고 나면 속이 후련할까

물 빠진 강은 을씨년스럽다. 수문을 열어젖히자 달성보의 양수장 취수구는 막혔고 유람선은 멈춰 섰다. 봇물의 낙차를 이용하던 수력발전은 접었다. 대신 모래톱을 드러낸 강엔 말라죽은 민물조개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 수량이 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던 동식물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보 담수로 인해 새로 생긴 습지는 마르고 생태계 초토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역 농민들은 가뭄과 홍수를 걱정하던 시절로 되돌아갈까 걱정이 태산이다. 성난 농심을 달래려고 여기저기 관정을 뚫어 보지만 부질없다. 사시사철 가득 찬 물을 이용해 친수공간 개발에 나섰던 지방자치단체들도 저마다 아우성이다. 물을 빼 보니 가려졌던 보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보와 댐에 가둬둔 물을 풍족히 쓰다 보니 잊기 쉽지만 우리나라는 엄연히 물 스트레스 국가다. 국민 1인당 이용 가능한 수자원량(2003년 기준)이 1천453㎥에 불과하다. 세계 153개 국가 중 129위다.'한강의 기적'은 이를 극복하며 이뤘다. 기적은 1960년대 한강의 물길을 막으면서 시작됐다. 북한강 수계에만 춘천댐 의암댐 소양강댐 팔당댐이 차례로 들어섰다. 물이 풍부해지자 수도권은 풍성해졌다. 홍수 피해는 덜고 용수 걱정은 사라졌다. 상류에서 하류를 연결한 댐들은 이제 수도권 주민 삶의 한 부분이 됐다. 생태계는 변화된 환경에 스스로 적응했다. 그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지금 어느 누구도 댐을 허물어 재자연화하자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북한은 엇길로 갔다. 북은 남에 비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1인당 수자원량이 3천366㎥로 두 배를 훨씬 웃돈다. 그런데도 북은 여전히 척박한 땅으로 남았다. 식량난은 만성이 됐다. 대부분 북한 하천은 지금도 '자연' 상태다. 치수 실패는 국민을 배고프게 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물이 풍족한 국가 대부분이 이 대륙에 집중돼 있다. 콩고는 1인당 수자원량이 31만㎥로 세계 4위, 가봉은 12만㎥로 6위다. 이들 나라의 강도 대부분 자연 그대로다. 치수의 개념도, 능력도 없다. 국민 삶은 척박하다. 선진국은 다르다. 유럽은 수자원 이용도가 75%에 달한다. 미국은 1인당 수자원량이 1만㎥를 넘지만 보와 댐, 운하 등 수리시설이 200만 개를 넘는다.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일찍이 치수에 눈을 뜨고 성공한 것은 큰 축복이다. 22조원이란 예산을 들여 만든 4대강 16개 보 역시 밉건 곱건 역시 그 한 축이 됐다. 손가락질하는 사람보다 물을 이용하고 친수공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그런 보를 정부가 허물려 든다. 재자연화라는 명분에서다. 말은 그럴듯한데 북한처럼, 아프리카처럼 가겠다는 뜻이다. 근거로 '녹조라떼'란 조어를 만들었다. 보 설치 후 유속이 느려지며 보에 녹조가 창궐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를 주장하는 자칭 전문가들도 보 설치와 녹조의 연관성을 밝힌 논문 한 편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에 싣지 못했다. 반면 금강수계에 보 설치 후 하류 수질이 좋아졌다는 논문은 1월 SCI급 국제 학술지인 '환경공학과학'지에 실렸다.보를 허무는 일은 보와 녹조의 연관관계를 확인하는 충분한 연구결과물이 나온 후 검토할 일이다. 아무런 연구 실적도 없이 다짜고짜 보부터 없애겠다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로 읽힌다. 그리되면 환경정치인들의 속은 후련할지 모르나 국민 속은 뒤집어진다.

2019-03-04 06:3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대통령이 대구공항 이전 한 말씀 하시라

영남권 신공항은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김해공항이 포화될 경우에 맞춘 대안 마련 차원에서였다. 김해공항 이용객 수가 215만 명(2005년)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이듬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국토균형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동남권 허브공항이 필요하다."명분은 분명했으나 입지를 두고 영남권이 갈라진 것은 유감이다. 대구경북은 경남 밀양을 밀었다. 대구도 경북도 아닌 경남 밀양을 굳이 선택한 것은 부산경남권에 대한 배려였다. 기존 김해공항보다도 훨씬 먼, 바다 건너 가덕도는 애초부터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지였다. 그럼에도 부산은 무조건 가덕도를 고집했다. 여기엔 부산 신공항과 신항만,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트라이포트 구상을 완성하겠다는 '부산만을 위한' 욕심이 묻어 있었다.아쉽게도 가덕도는 대구경북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신공항을 지었는데 현재의 대구공항과 김해공항 체제보다 더 불편해진다면 대구경북민들로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대구경북은 가덕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부산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지역 갈등은 폭발했다. 공약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는 수습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갈등이 심해지자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유로 경제성 부족을 들었다. 적자투성이 지방 공항을 또 짓느냐는 수도권론자들의 영남권 공항 무용론도 크게 작용했다.그러나 오늘날 대구공항이나 김해공항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흑자 공항이다. 적자투성이 공항이란 폄훼는 당치 않다. 앞으로 길이 3천500m 이상의 반듯한 활주로가 깔린 공항으로 거듭나면 중장거리 노선이 확충되고, 대형 수송기까지 드나들며 더 큰 날개를 달 것이다.백지화에도 영남인들이 관문공항에 대한 요구를 접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약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입지 다툼은 여전했다. 또다시 모두가 피해자가 될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2015년 5개 시도지사가 극적으로 합의했다. 입지는 정부가 외국의 전문기관에 의뢰해 결정토록하고 서로 유치 경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가 결정하면 토를 달지 않겠다는 대승적 합의였다.프랑스 파리공항공단용역팀은 2016년 김해공항 확장에 818점, 밀양 665~683점, 가덕도 581~635점을 매겼다. 김해공항 확장안이 채택됐다. 곧이어 대구공항 통합이전안도 나왔다. 대구공항 통합이전과 김해신공항으로 가닥이 잡혔다. 대구경북인들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 받아들였다. 대구공항 수요는 폭발적으로 느는데 마냥 허송세월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대구공항은 2018년까지 부지를 확정하고 2023년까지 민간공항과 K-2를 함께 이전하기로 계획했다.정권이 바뀌었다. 대구공항 이전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아직 부지 확정도 못 했다. 그러던 차에 김해공항 확장에 부정적인 대통령의 한마디가 터졌다. 가덕도 공항에 다시 힘을 싣는 것으로 해석됐다. 대구경북민들에겐 지난 10년간의 악몽을 되살리는 일이다. 가덕도 공항과의 딜을 위해 대구공항 이전을 의도적으로 늦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인다.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대통령의 한마디가 나와야 한다. "대구공항부터 계획대로 반듯하게 지어라."

2019-02-18 06:30:00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유스티치아와 사법부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 유스티치아(Justitia). 정의의 여신이다. 정의를 뜻하는 Justice도 여기서 나왔다.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안대로 눈을 가리거나 눈을 감고 양손에 칼과 저울을 들고 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관의 배제와 함께 엄정함과 형평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안대와 칼, 저울이 각각 이를 표상한다. 바로 법원의 대표적 상징이기도 하다.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지 않은 채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최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판결을 지켜본 국민들은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한쪽에서는 '보복'이니 '정권에 대한 도전'이니 하면서 판결을 내린 사법부를 정면 겨냥하고, 다른 쪽에서는 삼권분립이 확립된 우리나라에서 사법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안 전 지사는 1심 무죄 선고 이후 약 6개월 만인 지난 1일 2심에서 징역 3년 6개월 형을 받고 구속됐다. 형량의 차이가 아니라 무죄가 유죄로 바뀐 것이다. 그사이 새로운 증거나 증인이 추가됐거나, 기존 증거가 효력을 잃었다는 등의 변화를 판결 내용에서 찾아볼 수 없다.유무죄의 판결에는 '피해자 진술'을 대하는 두 재판부의 상반된 시각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셈이다.판사의 판결이 주관을 배제한 채 법전과 저울로 이뤄지지 않고 '시각'에 의존해 들쭉날쭉하다면 그 결과를 국민들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안 전 지사 구속 이틀 전 이뤄진 김 지사에 대한 판결도 형평성 차원에서 합리적 의심을 사고 있다.같은 경남도지사를 지낸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경우 1심에서 실형을 선고했지만 구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지사는 실형 선고와 함께 곧바로 법정 구속했다. 홍 전 대표의 불구속 사유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것이 근거가 됐다.법원의 판단대로라면 홍 전 대표와 달리 김 지사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현저하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사법부가 기존에 정한 김 지사의 1심 선고 날짜를 취소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적부심 이후로 다시 정한 점도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등 법조계나 일반 국민이 아니라 청와대와 여권이 이번 판결을 두고 사법부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할 소지가 크다.어떤 판사도 전지전능하거나 지고지순할 수 없기에 1심에 이어 2심, 3심을 거치는 것은 당연한 장치다.그럼에도 이번 두 전현 도지사에 대한 판결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은 그동안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휘둘리면서 국민적 불신이 누적된 결과물로, 이번 기회에 뼈를 깎는 성찰이 뒤따라야겠다.정치권도 사법부 판결을 삼권분립의 차원으로 접근하지 않고 당리당략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국민적 비판에서 비껴갈 수 없다.사법부가 향후 안 전 지사의 3심과 김 지사의 2심 판결을 앞두고 정치적 판단과 권력의 향배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법전과 저울에만 기초해 판결을 하는지 국민들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것이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도 하다.

2019-02-10 20:10:27

김교영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지방은 안중에도 없는 '서울 언론'

"수십조 예산 써야 하는데…'예타 면제'", "경제성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국에 선심성 사업 남발 우려", "지자체들 '수요 뻥튀기'…예타 통과한 사업도 실패 수두룩", "예비타당성 원칙까지 흔드는 현 정권의 '예산 짬짜미'".서울의 언론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주 서울 소재 언론사들이 대규모 공공사업 예비타당성(예타) 면제 사업을 두고 쏟아낸 제목들이다. '논란'이란 중립적 표현을 했지만, 내심 딴지를 걸고 있다. 29일 예타 면제 사업 선정 발표(시·도별로 1건씩 면제 대상을 선정할 것으로 관측)를 코앞에 두고 말이다.이들 언론은 전국 광역지자체의 신청 사업이 33건으로, 60조~7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세금이 들어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타 면제 사업은 혈세 낭비, 엄청난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논조다. 여기에 예타 면제의 대표적 실패작(4대강 사업·영암 포뮬러1 경주장), 수요 뻥튀기로 예타를 통과한 사업(지방 13개 고속도로)까지 덧붙였다.물론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아야 한다. 언론은 마땅히 이런 지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 언론은 예타 면제의 부정적 측면만 강조했다. 지방의 목소리를 담지 않았다. 지자체의 절박한 심정을 다룬 기사는 없었다. 오히려 서울 언론은 예타 면제를 '지역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에 편승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 세금을 쌈짓돈처럼 끌어 쓰는' 행위로 폄훼했다.예타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정부 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신규 공공사업의 사업성을 미리 조사하는 제도다. 선심성 사업으로 인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하지만 지방의 SOC 사업은 인구 부족 등으로 예타를 통과하기 힘들다.현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예타 면제 사업을 검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대전지역 경제인 간담회에서 "수도권은 인구가 많고 수요도 많아 예비타당성 조사가 수월하게 통과된다"며 "우리 정부 들어 경제성보다는 균형발전에 배점을 많이 하도록 기준을 바꿨음에도 (지역은) 수요가 부족하다 보니 번번이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했다. 즉,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의 SOC부터 구축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나온 발언이다.지방은 가뭄 끝에 단비처럼 예타 면제 사업을 환영했다. 또 지자체들은 사업이 선정되기 위해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구경북도 모두 4건의 사업(▷대구산업선 철도 건설 ▷도시철도 3호선 혁신도시 연장 ▷동해안 고속도로 건설, 동해중부선 복선전철화)을 신청했다.지방의 대형 사업에 찬물을 끼얹은 서울 언론의 논조는 새삼스럽지 않다. 서울 언론은 2016년 영남권 신공항 입지 발표를 앞두고도 '지방공항 무용론'과 '국론 분열'을 내세워 반대 여론을 조성했다.언론은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생각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를 '언론의 의제설정(議題設定) 기능'이라고 부른다. 서울 언론은 대한민국의 여론을 쥐락펴락한다. 심지어 지방민들에게 서울의 배수관 터지는 일까지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의 빅3 신문사의 절반 가까운 독자가 비(非)수도권에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2019-01-27 16:12:38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탈원전보다 탈화전(火電)이 먼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미세먼지 농도부터 챙기는 것이 일상이 됐다. 20일 아침 필자가 사는 동네의 미세먼지(PM10) 농도는 66㎍/㎥(이하 단위 생략), 초미세 먼지(PM2.5)는 48이었다. 미세먼지는 '보통', 초미세먼지는 '나쁨'이다. 대지는 안개에 갇힌 듯했다. 이날 미세먼지가 '보통'이라지만 우리나라 기준일 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연간 미세먼지 권고치로 20을 제시하고 있다. 이날 아침도 WHO 권고치를 세 배 이상 넘긴 셈이다. 초미세먼지는 더하다. WHO의 권고치 10을 무려 5배 가까이 웃돌았다.미세먼지야말로 침묵의 살인자다. WHO는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지난주 초처럼 '매우 나쁨' 농도의 미세먼지에 1시간 노출되는 것은 담배 연기를 84분 흡입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미세먼지에선 담배 연기 같은 나쁜 냄새만 나지 않을 뿐이다. 뇌졸중의 이유가 되고 폐암과 심근경색을 유발한다.우리나라에서 대기 중 초미세먼지로 인해 조기 사망하는 사람은 한 해 1만2천 명에 육박한다. 서울대 연구팀이 2015년 초미세먼지 연평균인 24.4㎍/㎥에 노출되는 것을 근거로 내놓은 결과다. 2017년 우리나라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5.1㎍/㎥로 더 높아졌다. OECD 회원국 중 최고다. 회원국 평균 12.5㎍/㎥의 두 배가 넘는다. OECD는 40년 뒤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률이 가장 높은 회원국으로 한국을 지목했다.먼지라 이름 붙었지만 사실 '미세먼지'는 먼지가 아니다. 독성 화학물질에 더 가깝다. 공장, 발전소 등에서 화석연료를 태울 때 생기는 매연, 자동차 배기가스 등이 주요 발생원이어서다. 환경부는 우리나라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발생량의 3분의 2를 이런 화학반응의 결과물로 본다.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잘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대선 당시 "임기 내에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30% 감축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 지난주 초에는 "미세먼지 '나쁨'이 나오면 가슴이 철렁한다"고도 했다.문제는 말뿐이지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화석연료 사용이 크게 늘었다. 2016년부터 매년 1~11월 에너지원별 발전량을 보면 원자력 발전량은 3년 전보다 18.9% 떨어졌다. 반면 석탄은 14%, LNG발전은 26.8%가 늘었다.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은 축소됐고, 석탄과 LNG는 확장됐다. 석탄 LNG 등 화력발전은 화석연료 연소 과정에서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내뿜기 마련이다. LNG 역시 석탄발전보다 적은 양이기는 하나 초미세먼지를 배출한다. 미세먼지 배출이 없는 원전이 미세먼지를 쏟아내는 화력발전으로 대체되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오죽하면 문 대통령조차 최악의 미세먼지 대란을 겪은 후 "화력발전소 미세먼지 배출허용기준을 더 강화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해 보라"고 했을까.안전성이 뒷받침된다면 '원전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최적의 솔류션'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 원전은 지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며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인정한 바 있다. 세계적인 환경학자들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원전 비중을 높이고 화전 의존도를 낮추라는 권고를 내고 있다.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원전이 아닌 화전이다.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을 그대로 두고 기약 없는 가상의 위협부터 제거하려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2019-01-21 06:30:00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매일칼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승민이라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8년 4월 총선으로 4당 체제가 되면서 가장 큰 정치적 위기를 맞는다. 제3당의 당수로 추락한 김영삼 앞에 놓인 선택은 대통령 꿈을 접든지, 정치 지형 자체를 바꾸든가 둘 중 하나뿐이었다. 결국 김영삼은 1990년 3당(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합당을 결행한다. 김영삼은 '반호남 지역연합'이라는 퇴행적 지역 구도를 가동해 대선 후보가 되고, 마침내 대통령에 오른다.김영삼은 '보수 야합'이라고 격렬한 비판을 받은 합당의 명분으로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 것'이라고 응수했다. 1995년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보란 듯 군사정권 시절 부정 축재한 군부 출신 정치인을 솎아내고, 전두환 정권을 탄생시킨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했다. 또 금융실명제로 경제 시스템을 크게 바꿔 국민들의 환호를 받았다.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요즘 신세가 제3당의 당수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 처지와 비슷하다. 유 의원을 굳이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로 부른 것은 그가 언젠가 다시 한 번 보수우파의 '혁신 기수'로 역할을 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유 의원도 명분만 만들어지면 한국당에 입당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유 의원은 대구경북(TK)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다. 콘텐츠와 정치적 신념만 보자면 갈 길 잃은 TK 정치권에서 유 의원을 넘어설 정치인은 없다. 그러나 유 의원은 정치인의 핵심 덕목인 소통 능력과 타이밍 감각에서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다. 또 큰 리더가 되려면 '결단'도 중요한 자질이다. 이 부분에서 유 의원은 아직도 많은 담금질이 필요하고 자기와의 싸움을 처절하게 벌여야만 한다.현재 유 의원은 고립무원의 처지다. 함께 보수를 바꿔 보자며 도원결의를 했던 동지들이 하나둘씩 그의 곁을 떠나 한국당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당은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조만간 입당 후 당권 도전에 나선다는 후문이다. 황 전 총리의 한국당 입당은 양날의 칼이다. 박근혜 정부 때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막판에는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한 그의 입당은 일정 부분 보수 결집과 전당대회 흥행 효과는 있겠지만 보수의 외연 확장과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기는 힘들다.이 대목에서 그토록 보수 혁신을 외쳤던 유 의원의 심중이 궁금하다. 명분은 만드는 것이다. 궤변이라도 좋으니 스스로 명분을 제시하고 보수의 본 진영으로 들어가 싸워라. 설령 무릎 꿇고 들어갈지언정 부끄러움도, 소신 없음도 아니다. 적어도 보수 혁신의 꿈과 대의를 간직하고 있다면 말이다.결단의 시점이 왔다. 더 이상 머뭇거리는 것은 정치적 직무 유기요, 유 의원이 혐오하는 비겁함이요,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 민심의 바다에 몸을 던져라. 그래야 유 의원도 살고, 한국 보수도 국민을 위한 정치로 되살아날 수 있다.-----------------------------------------------------------------------------------------------------지난 1년 동안 저의 '每日칼럼'에 성원과 질책을 아낌없이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인사 이동으로 동부지역본부장을 맡게 돼 다른 칼럼으로 찾아뵙겠습니다.

2019-01-13 17:29:52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신한울원전 짓는다 하기가 그리 어려운가

2년 전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부산 서면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 팩트 시비를 부른 원전재난 영화 '판도라'가 그날 메뉴였다. 그는 영화를 보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했다. 그러려니 했다. 문 전 대표는 더 나갔다. "판도라 뚜껑을 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자 자체를 아예 치워버려야 한다"고 했다. 이쯤되면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지진으로 무너진 경주를 찾아서는 '판도라 영화 보았느냐'며 '원전사고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런 영화'라고 했다.이후 탈원전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신규 원전 6기 중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 등 4기 건설 취소가 결정됐다. 부지 조성까지 다 끝난 상태로 정지돼 있는 울진 신한울 3·4호기만 어정쩡하게 남았다.탈원전 상처는 컸다. 가장 먼저 원전 수출길이 막혔다. 지난해 중국을 따돌리고 어렵게 땄던 22조원짜리 영국 무어사이드원전 우선 협정대상자 지위는 올해 상실했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원전을 수출한 UAE 원전 운영권 일부는 슬며시 프랑스 업체로 넘어갔다. 유력시되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도 난망이다. 반도체처럼 국민들의 100년 먹거리가 될 수 있던 사업이다. 정부는 수출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적은 없다. 정부가 탈원전 아닌 에너지전환정책으로 해달라는 말장난을 멈추지 않는 한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다.국내 원전 생태계도 무너지고 있다. 원자력 핵심 기자재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던 두산중공업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한국수력원자력에 원전 부품 등을 제조 납품하는 업체들도 문을 닫고 있다. 현재 6조원에 이르는 시장이 수년 내 사라질 위기다. 이리되면 가동 중인 원전 안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안전을 이유로 탈원전을 하는데 도리어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탈원전 반대 범국민 운동본부가 발족하고 탈원전 반대 서명운동에 나설 정도로 상황이 절박하다.미세먼지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원전 가동률이 뚝 떨어진 빈자리를 석탄이나 LNG발전이 파고들었다. 이들은 훨씬 많은 미세먼지를 배출한다. 올겨울 들어 삼한사미(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라는 뜻)라는 말이 유행이다. 원자력 발전은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배출량이 모두 0다. 미세먼지 경보가 울리면 흔히 중국을 욕하지만 정작 절반 정도는 국내 화력발전에서 나온다.문재인 정부는 영화 한 편 보고 탈원전 한다는 말을 싫어한다. 그 훨씬 이전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탈원전이 공약으로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탈원전은 '판도라' 이전과 이후로 뚜렷이 나뉜다. 문재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판도라의 상자'를 치우기 시작한 것은 이후의 일이다.그나마 문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서라도 국내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다행이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긍정적 신호다. 체코에 가 "한국은 현재 원전 24기를 운영 중이고 지난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했고, UAE에서는 "바라카의 한국원전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했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탈원전의 과감한 전환이다. 그 시작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선언이었으면 한다. 그 하나면 만사형통이다.

2018-12-24 06:3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만약, 위장된 평화공세라면

'체임벌린의 시간'(Chamberlain's moment)이란 말이 있다. 히틀러의 위장 평화공세에 속아 나치에게 시간을 벌어줬던 영국 총리 체임벌린의 어리석음을 빗대 나온 말이다.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통일'을 외치는 한편으로 올리브 가지를 흔들고 다녔다.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을 상대할 힘이 없다 보니 평화를 위장한 것이다. "민족 사회주의(나치) 독일은 평화를 필요로 하며 또 원한다"고 입에 달고 다녔다. '폴란드와 맺은 불가침 협정을 지키겠다' '오스트리아를 합방할 의도가 없다'고 했다.체임벌린이 걸려들었다. 히틀러를 몇 번 만나더니 "냉혹하지만 한 번 약속한 것은 꼭 지키는 믿을 수 있는 사나이"라고 했다. 인물 됨됨이를 제대로 간파할 능력이 그에겐 없었다. 대신 그는 '평화'라는 수사에 매달렸다. 국민을 향해 "어떤 사정이 있어도 대영제국을 전쟁으로 끌어넣을 수는 없다. 나는 영혼 깊숙한 곳까지 평화 애호가"라고 호소했다. 국민 역시 전쟁보다는 평화라는 말에 더 솔깃했다. 그는 히틀러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던 프랑스를 설득하기 위해 영불해협을 넘나들기도 했다. 그 결과 히틀러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뮌헨협정이 체결됐다. 이번엔 '우리 시대의 평화가 왔다'고 흥분했다. '총리의 협상 결과는 전면적 절대적 패배'라는 처칠의 경고는 '평화'란 수사에 묻혔다.그로부터 2년도 안 돼 나치의 비행기가 런던 하늘을 뒤덮었다. 런던 대공습이었다. 영국인 4만8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평화라는 말에 솔깃해하던 국민들은 때늦은 후회를 했다. 체임벌린은 실각했다. 영국은 이미 혹독한 피해를 입은 후였다.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진작 좀 더 강하게 대응했더라면 2차대전에 앞서 히틀러 정권이 먼저 무너졌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지금 체임벌린은 영국 역사상 가장 무능했던 총리로 남아 있다.요즘 김정은을 두고 오가는 수사가 당시 히틀러를 두고 영국에서 오간 말들을 곱씹게 한다.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의 통일'을 내세웠다면 김정은은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한다. 독일이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면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켰다. 평화 시대를 열자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는 모습은 세계 최초 미사일 개발에 열중하던 모습과 닮았다.김정은을 몇 차례 만난 후 '아주 예의 바르고 솔직 담백하더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가는 체임벌린의 히틀러에 대한 평가를 떠오르게 한다. '국민이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평화가 일상화됐다'는 청와대의 변은 '우리 시대의 평화가 왔다'고 흥분하던 모습에 다름 아니다. 북에 대한 제재의 고삐를 조금만 더 죄었더라면 북이 비핵화를 먼저 제안했을 것이란 역사적 가정도 흡사하다.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안보에 가정은 필수다. 그것도 최악의 시나리오에서의 가정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를 너무도 허투루 여긴다. 북방한계선(NLL)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말로 이룬 평화에 우리 군의 무장해제 속도는 가파르다. 반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요지부동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김정은 답방에 목을 매고 있다.문 대통령의 판단이 옳기를 기대한다. 청와대 말처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서라거나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판단해서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결과가 너무 끔찍할 것 같아서다. 문 대통령이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지 않기를 학수고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2018-12-10 06:30:00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더불어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기회는 균등하지 않았고, 절차는 공정하지 않았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현 정부의 국정 기조가 된 통치 철학이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우리 경제와 시장을 구조적인 거악(巨惡)의 원천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더해 민주당을 비롯한 집권 세력은 자신들만이 거악을 척결할 수 있다고 맹신한다. 나아가 그들의 의식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시장경제 시스템과 시장에 대한 신뢰보다 자신들이 더 정의롭고 우월하다는 사고가 온통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 집권 세력은 지금까지의 불균등한 기회, 불공정한 절차, 불공평한 과실 배분은 모두 시장의 실패이자 기득권 세력의 잘못이므로 자신들이 바로잡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뭉쳐 있다. 이런 배경으로 민주당의 '적폐청산(積弊淸算) 집권 가치'가 창출된 것이다. 현 집권 세력은 적폐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최소 20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민주당은 '20년 집권론'을 떠들어댄다.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특정 정당이 20년 집권한 때는 1933년부터 1953년까지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3선)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재선) 대통령 재임 기간이 유일하다. 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공화당) 직전만 보더라도 버락 오바마(8년·민주당)-조지 부시 2세(8년·공화당)-빌 클린턴(8년·민주당) 대통령 등 한 정당이 8년 이상 집권하지 못했다.루스벨트 대통령 집권 이후 민주당은 20년간 행정부와 의회를 완벽히 장악할 수 있었다. 20년 집권이 왜 가능했을까? 루스벨트가 당선되던 1930년대는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넘쳐났고, 계급 갈등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루스벨트는 민주당의 정체성 그대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복지 정책과 노동친화적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민중의 당'이라는 민주당과 루스벨트는 편협되지 않았다. 국내 상황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거대 자본가와 노동자로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았다.루스벨트가 가장 의식한 쪽은 오히려 자본가였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시행해서 경제 파이와 일자리를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자본가와 기업인들의 협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 정부는 거액의 적자 공채를 발행했고, 이로써 묶여 있던 자금이 탈출구를 찾아 공공사업에 투입되고 멈추었던 기계들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루스벨트의 민주당은 정부와 산업계의 협동 체제가 가동되어야만 민간 구매력을 회복하고 소비재 생산을 자극, 민간 투자의 증대를 가져온다는 믿음에다 또 이런 믿음을 정책으로 옮겨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들 삶의 질을 높였던 것이다.우리의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자, 서민의 정당임을 자부하지만 노동자, 서민들의 생존을 더 옥죄고 있다. 기업 상황은 기본이고 생산성과 연동돼야 할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은 막무가내로 선을 그어 정부 요구를 따르라고 한다. 따르지 않거나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기업은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된다. 베트남 삼성전자 핸드폰 공장에서는 16만 명이 고용되지만 삼성전자의 국내 휴대폰 생산 노동자는 5천 명에 불과하다. 좋은 의도가 시장에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는다.기회가 균등하고 절차가 공정하면 되지 왜 결과까지 같아야 하는가? 자유로운 선택을 한 결과가 같아야 한다면 국민의 재산권을, 시장을, 자본주의를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2018-11-18 19:27:45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레밍은 왜 집단자살을 하나

레밍(Lemming)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서식하는 들쥐다. 임신 기간이 약 20일에 불과한 데다 한꺼번에 2~8마리의 새끼를 낳고 두 시간 후면 다시 임신이 가능해 폭발적으로 개체 수가 증가한다.레밍이 유명해진 것은 폭발적인 번식력 때문이 아니라 '집단자살' 때문이다. 3, 4년마다 수만 마리의 레밍이 바닷가 절벽에서 떨어져 집단자살을 한다는 것이다.집단자살 이유로 '개체 수가 과도하게 불어나 먹이가 부족하면 늙은 쥐들이 후손을 위해 자살하는 것'이라는 추론이 한때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레밍이 '이성'(理性)을 가졌다는 결론이 나온다.그러나 학자들의 연구는 전혀 달랐다. 레밍은 지독한 근시라고 한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다가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 바다를 작은 호수로 알고 앞에 가는 녀석이 뛰어내리면 뒤따라가는 녀석들도 덩달아 뛰어내려 마치 집단자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또 다른 연구 결과는 '과속'이 그 원인이라는 것. 레밍은 직선으로만 움직이는데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동 시 떼거리 본능이 있어 한 마리가 달려가면 다른 녀석들도 무조건 달라붙어 빠른 속도로 뒤따라간다고 한다. 그렇게 무리 지어 가다가 갑자기 벼랑이 나타나도 멈추지 못하고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레밍의 집단자살은 후손들을 배려한 행위가 아니라 '지독한 근시'와 '떼거리 본능에 따른 과속 질주'가 그 원인이다.요즘 '문재인 한국호'의 모습을 보면 레밍의 질주를 떠올리게 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처리 방식이 한쪽에서는 국민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일자리와 대북·국방 분야에서 특히 레밍과 닮았다.지역 한 대학은 400명인 시간 강사를 250명 수준으로, 서울 한 대학은 1천200명인 강사를 내년 1학기까지 500명 감축한다. 내년 시행 예정인 '강사법'(고등교육법) 발효 여파로 대학가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각 대학은 전임 강사로 기존 시간 강사의 자리를 메꿔야 해 큰 재정 부담을 안게 되면서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시간 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마련한 법이 오히려 그들의 일자리를 뺏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 교수 노조는 2만~3만 명의 시간 강사가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 정부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포용국가를 지향한다지만 정작 시간 강사는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최근 공공기관의 고용 세습과 내부자 거래를 통한 제 식구 채용은 문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맹목적 일자리 창출이 빚은 불포용적 국가의 모습이다. 구직자들은 보지 않는 지독한 근시와 속도전의 결과였다. 한국공항공사는 5천여 비정규직 가운데 매년 2천 명 정도는 순환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을 정규직화하면 수년간 일자리 문은 차단된다. 비정규직 축소는 맞지만 구직자들의 취업 문은 더 굳게 닫혀 버렸다. 이 또한 일부 구직자에겐 포용국가의 모습은 아닐 터이다.문 정부의 과속 질주는 대북·국방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미국 등 우리의 전통 우방들이 북의 비핵화 없인 제재 해제를 반대하고 있는데도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 해제를 줄기차게 요구한다. 종전선언도 과속 질주다. 우방 국가들이 북의 비핵화가 선행조건이라는데도 북·중 편에 서서 종전선언에 매달리고 있다.문 정부는 20년간 집권하겠다면서 왜 옆은 보지 않고, 왜 그리 급한가? 기어코 레밍의 길을 따라가려는가.

2018-11-04 17:08:08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낙동강 보 개방, 주민 뜻 따라야 한다

황천모 상주시장이 정부의 낙동강 보(洑) 개방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상주의 젖줄인 낙동강 상주보와 낙단보 지키기에 시장직을 걸었다. 기어이 정부가 보를 개방하려 든다면 바리케이드를 쳐서라도 막을 각오다.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이 정부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은 처음이다. '적폐'를 앞세운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모두가 입을 닫고 있는 시기다. 황 시장의 용기가 돋보인다.시장의 용기는 민심에서 나온다. 선출직 단체장은 민심을 거스르기 어렵다. 민심이 필요로 한다면 봇물은 유용한 것이고 보는 지켜야 한다. 봇물이 썩어 못쓰게 된다면 주민들이 가장 먼저 들고일어날 일이다. 지금 그 주민들이 보 개방에 결사반대하고 있다.정부는 난처해졌다. 보 개방 후 '모니터링을 거쳐' 보 철거로 이어가려던 정부다. 상주시 반발로 15일로 예정됐던 낙동강 상류 상주보, 구미보의 개방과 이달 중으로 예고했던 낙단보의 개방을 일단 보류했다.가뜩이나 정부의 보 개방 계획은 지지부진하다. 현재 정부 의도대로 보 수문을 완전히 개방해 저수율이 10%대로 떨어진 곳은 16개 보 중 금강의 공주보와 세종보 둘뿐이다. 보 철거는커녕 개방조차도 곳곳에서 농민 등 주민 반발에 직면해 있다. 당초 금강·영산강은 올해 말, 한강·낙동강은 내년 6월까지 보 개방 후 모니터링을 거쳐 철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도 정부가 무리하지 않는다면 기약하기 힘들게 됐다.완전 개방된 세종보와 공주보는 보를 열었을 때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를 역설한다. 수문을 열어 과거 물 흐름으로 돌아간 세종보의 녹조는 지난해, 지지난해보다 더 심해졌다. 수려하던 경관은 사라졌고 과거의 건천화 현상은 다시 나타났다. 연간 1만1천 명이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던 소수력 발전은 허공에 떴다. 보마다 수문을 막아달라는 주민 요구가 빗발치지만 환경부는 꿈쩍도 않고 있다. 상주보도 이미 지난 3월 9일 한 차례 개방한 바 있다. 하지만 보를 가득 채웠던 물이 사라지자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 취수량 부족으로 수돗물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정도였다. 열렸던 보문은 17일 만에 다시 닫혔다.녹조 논란이 숙진 것도 아니다. 높은 수온이 4대강 녹조 발생 원인으로 지목됐으나 유량이 늘면 클로로필 농도가 오히려 감소한다는 논문이 잇따라 국제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학술지(SCI)에 실렸다. 한때 4대강 사업지에서 발견돼 수질오염의 징표라며 호들갑을 떨던 큰빗이끼벌레는 1~3급의 깨끗한 물에 사는 태형동물로 수질오염이 심한 곳에서는 오히려 죽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4대강 보 개방 혹은 철거 여부는 정치적 편향성에서가 아니라 보가 유용한지가 논의의 초점이 돼야 한다. 그 보의 유용성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보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이다. 보가 가뭄과 홍수 예방, 주변 경관에 도움이 된다고 주민들이 판단하면 굳이 물을 빼거나 보를 허물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물이 썩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고기잡이도 할 수 없게 돼 죽음의 강이 된다면 보를 그냥 두자 할 리 없다.영산강 주변 주민들이 승촌보 죽산보가 오염돼 헐어달라면 헐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낙동강 상주보 낙단보 주민들이 보를 지키려 하는데 굳이 헐어야 할 이유도 없다. 금강이건 한강이건 마찬가지다. 결정은 그 강을 생활 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들 몫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정부가 하루 빨리 이를 깨쳐야 한다.

2018-10-15 05:0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평화와 전쟁

"나는 우리 시대가 평화로울 것을 믿어 마지않습니다."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말은 1938년 9월 영국 총리 체임벌린이 런던 다우닝가 총리 관저 앞에 몰려든 지지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광기 어린 히틀러의 등장으로 영국민들이 전쟁의 공포에 떨던 때, 체임벌린은 적의 심장부인 독일 뮌헨을 찾았다. 그리고 히틀러와 담판했다. 그는 히틀러에게 체코 땅 주데텐란드를 넘겨주는 대신 '평화'를 약속한 선언서를 받아 들고 왔다. 돌아와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이를 흔들며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의기양양해했다. 히틀러는 그에게 더 이상 독재자가 아닌 "한 번 약속을 하면 믿을 수 있는 사나이"였다.영국 국민 또한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열광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사나이'에게서 약속받은 '평화'는 1년을 가지 않았다. 이듬해 9월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다. 히틀러는 '평화'를 적은 종이 한 장으로 유럽의 호랑이던 영국을 간단히 무장해제시킨 셈이다. 체임벌린은 속았다.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히틀러의 가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지도자를 둔 죗값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었다. 영국은 군인만 26만4천 명이 목숨을 잃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잊을 만하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월맹(북베트남)의 르 둑 토가 월남전 종전을 다룬 '파리평화회담'이 또 그랬다. 당시 월맹의 요구 조건은 '평화협정' 체결과 '미군 철수'였다. 1973년 1월 마침내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됐다. '베트남의 평화적 수단에 의한 단계적 통일'을 약속했고 미군은 철수했다. 이후 월맹은 표변했다. 1975년 3월 10일 월남(남베트남) 총공세를 감행했다. 협정 체결 2년도 안 되어서다. 월남은 남남 갈등으로 갈가리 찢겨 있었다. 전쟁이 나면 다시 오겠다던 미군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월남이란 나라는 지도 상에서 사라졌다.선언적 의미의 '평화협정'은 허무하다. 지도자의 믿음 속 '평화'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을 "젊지만 아주 솔직 담백한 인물"이라 평했다. 그가 "비핵화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김정은의 친서를 받아 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역시 "그는 나를 좋아하고 나는 그를 좋아한다"고 했다. 반면 김정은은 연일 '초라하다'며 몸을 낮췄다. "우리가 속임수를 쓰면 미국이 강력하게 보복할 텐데 그 보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너스레도 떨었다.외교 관계에서, 특히 정상들이 이런 말의 성찬을 나누는 것은 나쁘지 않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 "상대방을 평가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협상하는" 3단계 방식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행동이라면 달라야 한다. 트럼프의 태도는 시사적이다. 김정은을 좋아한다 말하면서도 '비핵화가 일어날 때까지' 대북 제재 고삐를 더 죄고 있다. 비행금지구역 확대,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철매-2 사업 중단 등 무장해제가 속속 이뤄지는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평화는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군사력과 정신적 무장 상태를 유지할 때 가장 가까이 다가온다. 전쟁 자격이 없는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강한 군대를 유지하는 이유다. 체임벌린과 파리평화회담이 던진 교훈을 과거의 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또 아픈 역사가 되풀이될까 저어해서다.

2018-10-01 05:0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세금을 이렇게 막 써도 되나

세금 함부로 써서 잘된 나라가 없다. 최근 몇 년 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나라만 여럿 나왔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그리스 등이다. 이들 나라엔 천연자원이건 관광자원이건 많은 자원을 타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도 공무원 증원 등 공공 부문 확대와 예산 퍼붓기식 복지는 이겨내지 못했다.브라질 정부는 요즘 '물구나무선 로빈 후드' 소리를 듣고 있다. 로빈 후드는 부자에게서 돈을 빼앗아 빈자에게 나눠 준 12세기 영국의 의적이다. 그 로빈 후드가 물구나무를 섰으니 반대 현상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돈은 빈자에게서 부자에게로 흘렀다. 세수의 3분의 1 이상을 복지비에 쏟아붓지만 잘못된 복지제도로 비대해진 공공 부문이 체리피커(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소비자)가 됐다. 저소득·취약계층을 위한다지만 '못사는 사람만 더 못살게 된' 우리 경제 현실과 도긴개긴이다.세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돈이 아니다. 기업이 열심히 연구 개발 생산 판매하고, 국민들이 땀 흘려 일한 결과물이다. 정부가 이를 제 호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여겨선 안 된다. 함부로 쓰여도 안 되지만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쓰인다면 더욱 안 된다.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세금 씀씀이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이 꽤 됐다. 툭하면 세금으로 메우려 들었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 이행 비용 청구서가 국회에 날아든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우선 내년 4천712억원의 착수비만 슬며시 들이밀었다. 하지만 일단 국회 비준을 받게 되면 그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게 돼 있다. 비용을 가장 소극적으로 잡은 민간 씨티그룹조차 북한 인프라 구축 비용을 철도 27조원, 도로 25조원 등 총 71조원으로 추정했다. 특정 집단이 자기 호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생각하지 않고서야 이런 불확실한 투자청구서를 서둘러 들이밀 이유가 없다.게다가 정부의 세금 운용 실력은 이미 믿음을 상실했다. "4대 강 22조원이면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든다"던 정부가 2년간 일자리 예산으로 세금 54조원을 책정하고도 헛일만 했다. 그래도 아쉽다며 내년 일자리 예산을 사상 최대였던 올해보다 22% 더 늘리겠단다. 이쯤 되면 세금중독이란 공격을 받아도 어색할 리 없다. 올해 경찰 군인 교사 등 2만7천 명을 늘린 것으로 모자라 내년에 3만6천 명을 더 뽑겠다고 한다. 학생 수는 급감하는데 교사 수는 늘어간다. 5년 임기 동안 기어코 17만 명을 채울 기세다. 30년 동안 3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세금 부담은 안중에 없다. 25조원이면 넉넉할 원전 6기를 백지화하고 대신 100조원 이상이 필요한 태양광 시설을 늘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국가채무는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660조원이던 채무는 올해 700조원을 넘고 2022년이면 900조원을 바라본다. 그런데도 정부는 선진국에 비해 국가채무가 GDP 대비 40% 선에서 안정적이라 한다. 공무원 비율도 스웨덴 같은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점을 강조한다.이것으로 세금이 함부로 쓰인다는 의구심을 상쇄할 수 없다. 스웨덴의 조세부담률은 40%를 넘는다. 우리나라는 20% 남짓하다. 조세부담률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면서 같은 복지와 공무원 비율을 추구하다가는 스웨덴이 아닌 브라질 짝이 나기 십상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나서는 대통령부터 국민 세금 쓰기를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2018-09-17 05:00:00

이춘수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문 정부의 녹슨 칼에 우는 서민·중산층

송(宋)나라 때 한 농부는 자기 논에 심은 모가 빨리 자라지 않자 상심이 컸다. 농부는 매일 같이 나가서 지켜봐도 모가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억지로라도 모가 자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는 모를 하나하나 뽑아서 크기를 높게 했다. 금세 모들이 커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아침부터 해가 서산에 떨어질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모를 뽑는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식구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한 일을 자랑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황급히 논으로 달려가 보니 모가 모두 뽑혀서 말라 죽어 있었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의 고사다. 소득주도성장론에 기초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와 탈원전 정책 등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어 시행하고 있는 일련의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득 자체를 올려 주기 위한 노력은 정의감에 입각한 선한 의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최저임금은 꼭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그 최저임금제로 살길이 막힌 600만 자영업자 예컨대 편의점과 치킨 점주, 미용실 원장 등 영세 자영업자들은 "노동자만 국민이냐, 우리도 국민이다"며 광화문 거리에서 절규했다. 그동안 좀처럼 단체행동에 나서지 않았던 사람들이 집단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늘린다는 일자리는 거꾸로 줄어들고, 줄어야 할 실업자는 늘어만 가고 있다. 문 정부의 방향과 목표가 백만 번 옳더라도 모를 빨리 키우고자 한 송나라 농부의 노릇처럼 모를 죽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최근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하루아침에 1억원씩 오르기도 했다. 이런데 소득주도성장을 떠들어 본들, 어떤 규제를 내놓은들 서민·중산층은 일할 맛이 나겠는가? 이대로 가다간 서민과 중산층의 허탈과 불만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 문 정부의 위기다. 문 정부의 위기는 민심 향배를 최종 결정짓는 경제정책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다기한 경제 현장에서 과거 개발시대의 만능이었던 규제와 정부 재정만으로 접근하니 시장에서 약발이 전혀 먹혀 들지 않는 것이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노라면 허물어진 담벼락에 기대 녹슨 칼을 마구 휘둘러 대는 꼴이다. 여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와 여당은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이 폭등하자 돈줄을 더 조이기로 했다. 정부·여당은 물이 꽉찬 수도꼭지를 틀어막으려 하지만 투기 세력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대출 규제는 녹슨 칼에 불과하다. 경제 문제는 '뜨거운 가슴'으로만 풀어갈 수 없다. 섣부른 경제정책은 자칫 갈등만 키울 수 있다. 문 정부는 쉬었다 갈 수도, 돌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 핵심 정책을 중간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초에 자신이 반대하던 한미 FTA를 앞장서 체결했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후퇴할 수 있는 것도 지혜요, 용기다. 그렇지 않으면, 또 때를 놓치면 폭삭 망한다. 불행해지는 것은 국민뿐이다. 이런 사태는 없어야 한다.

2018-09-09 19:38: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우물 안 개구리거나 냄비 속 개구리거나

한국 속담에 '우물 안 개구리'가 있다.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하고 저만 잘난 줄 아는 사람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우물 안에서 태어난 개구리에게 우물 안은 세상의 전부다. 널리 보고 깊이 들으려 하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할 수 없다.서양 말에는 '냄비 속 개구리'가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이 든 냄비 안에 든 개구리'(a frog in a pot of slowly boiling water)다. '냄비 속 개구리'는 최악이다.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에 머물다 저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다.우리나라 경제를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한 첫 보고서는 5년 전에 처음 나왔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의 '한국 스타일을 넘어: 새로운 성장공식 만들기'라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한국 경제를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교했다. MGI가 던진 메시지는 이랬다. 국가의 경쟁력과 잠재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생산성, 인구 증가율, 저축률 등 세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 모두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고, 인구를 늘리고,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데 한국은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중대한 위기가 다가오는데도 한국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그로부터 5년 후 MGI의 조너선 웨츨 소장의 경고는 계속된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 상태다. 5년 전보다 온도는 더 올라갔다."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려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2분기 합계출산율은 0.97까지 떨어졌다.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고령사회에 들어섰다. 가계 부채 문제로 인해 저축은커녕 부채 문제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남은 것은 생산성 증가뿐이다. 그런데 이마저 거꾸로 간다.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1인당 노동 생산성지수는 2008년 이후 10년간 고작 1.3% 올랐다. 하지만 같은 기간 임금은 명목기준 37.0%(연평균 3.6%) 올랐다. 생산성은 제자리걸음인데 임금만 오르는 나라가 경쟁력을 가질까.MGI뿐만 아니다. 나라 안팎에서 우리 경제가 뜨거운 냄비 속에 들어 있다는 경고가 쏟아진다. OECD의 한국 경기선행지수는 지난 3월(99.9)부터 4개월 연속 100 미만이다. 지난해 3월 이후 15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OECD 지수는 IMF 위기나 금융 위기를 족집게처럼 짚어냈기에 지수의 연속 하락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한국개발연구원이 경제전문가 489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88.1%가 '한국 경제가 냄비 속 개구리'란 지적에 공감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정부의 소상공인 달래기용 지원책을 두고 '끓는 냄비 속에서 익어가는 개구리에게 먹이를 던져 주는 격'이라 꼬집었다.국민은 자신이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냄비는 소득주도성장, 저생산성, 낡은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혀 달아오르고 있다. 국민은 하루빨리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서 뛰쳐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은 올바른 정책기조라며 손을 번쩍 들어줬다.'우물 안 개구리'들이 국민을 '냄비 속 개구리'로 몰아가고 있다. 모두가 뜨거워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이들은 기다리라 한다. 이러다 국민들만 여럿 죽게 생겼다.

2018-09-03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혐오에 중독된 한국, 일상화되는 혐오 정치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혐오(嫌惡)다.한남유충, 김치녀, 수구꼴통, 좌빨, 틀딱이, 일베, 메갈, 개독…. 불과 2년 만에 생겨난 혐오 단어다. 모두 여성·남성 혐오, 보수·진보 혐오, 세대 간 혐오, 종교 혐오를 상징하는 말이다.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모이면 누군가를 혐오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고 공동의 혐오 대상을 가진 사람들은 친해지고 뭉치는 현상까지 보인다.인터넷, 정치 게시판,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미움과 혐오가 판을 치고 사람들은 이를 즐긴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마치 한국은 전 국민이 혐오 중독에 빠진 것 같고, 혐오 에너지가 온 나라를 지배하는 듯 보일 게다.남녀 간, 세대 간, 보수·진보 간 분열과 갈등에는 상대를 인정 않으려는 혐오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최근 워마드와 일부 여성단체가 중심이 된 서울 혜화역 시위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참석했다. 대통령에게 죽으라고 조롱하는 시위 현장에 국무위원이 참석한 것이다. 정 장관에게 페미니즘에 동조하는 진보적 입장을 탓할 수는 없지만 국무위원으로서는 아주 부적절한 처신이었다.혐오는 개인을 파괴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나라를 분열시키고, 국민들 간 신뢰를 무너뜨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혐오가 국가적 불행으로 이어지는데도 우리 사회의 리더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혐오 기류에 편승하고 있다. 오히려 혐오를 앞세워 혐오 정치를 거리낌 없이 한다.혐오는 다수와 소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강자와 약자 간 상대를 서로 비하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챙긴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정치적이기는 하다. 이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혐오 표현(hate speech)을 활용한 정치가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기 때문에 엄벌해야 한다"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지난해 대선 당시 발언과 "동성애로 에이즈가 늘어난다"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서울시장 선거 당시 발언은 한국에서도 '혐오 정치'가 일상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우리 사회에서의 혐오는 이제 개인적 취향을 떠나 사회적·정치적 취향으로 고착화되면서 사회·정치 리더들의 혐오 정치를 부추기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내가 발산하는 혐오는 언젠가 나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이런 이유로 혐오를 만들고 유포함으로써 자신의 이익과 쾌락, 권력을 생산하고 강화하며 유지하는 자들을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혐오 정치를 막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도 준비해야 한다. 선거 때는 다수에게 지지를 얻으면 되기 때문에 혐오 표현 문제가 더 격화될 수 있다.선거 시기 혐오 표현은 선거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한 규제가 필요하다. 혐오 표현을 형사범죄로 다룰 경우 정쟁으로 번지거나 표현의 자유 위축 논란에다 처벌할 수 있는 표현이 극히 일부로 한정될 수 있다.따라서 선관위가 혐오 표현에 관한 인식 수준을 높이고 다양한 비강제적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 혐오 표현에 대한 예방·대응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더해 가장 근본적 대책은 혐오를 저주하는 국민의 매서운 눈이다.

2018-08-26 18:35:55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