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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전 기자

[여의도통신] 흥미로운 국정감사 자료들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정치부 기자들은 '자료와의 전쟁'을 치른다. 299명 국회의원이 신문에 내 달라며 보내는 국감 자료들이 하루 500통에 이를 때도 있다. 기자들은 평소보다 출근 시간을 당겨 메일을 일일이 뒤져 본 뒤 기사 가치를 구분한다. 본지 기자들은 대구경북 관련 자료를 우선한다. 중앙지는 전국 이슈를, 전문지는 해당 분야에 대한 기사만 선별해 한정된 지면에 반영한다.하루 수백 통의 메일들은 언론에 실리는 것보단 '사장'되는 게 더 많다. 버려진 자료가 무가치하다는 말은 아니다. 꽤나 흥미 있고 반향도 예상되지만 당장의 관심사는 아닌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술을 몇 잔 마시고 음주운전을 하면 사망할 확률이 더 높으냐'는 자료는 일반인들 실생활과 밀접하나 국감 기간 중 어느 신문에서도 본 적이 없다. 한 국회의원이 제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소주 2~4잔 마실 때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 주량과 사망률이 비례한다는 공식을 완전히 깨 버리는 중요한 자료였다.국내 야구 경기가 너무 길다는 자료도 흥미로웠다. 내용은 이렇다. 국내 프로야구 경기 평균 시간이 미국·일본과 비교해 14분 정도 길다는 것이다. 바쁜 야구팬들을 위해 비디오 판독이나 투수 교체 시간 등을 단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우리나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유추한 자료도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노벨상 수상자는 60대가 75%에 달하고, 노벨상을 타기 위해 평균 31년을 연구하지만 국내 여건은 그런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료는 '우수연구원에 대한 정년 연장'을 주장했다. 영화 같은 이야기도 국감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산업용 로봇에 외국인 노동자의 목이 끼어 사망한 사실이다.국회는 10여 년 전 '페이퍼리스' (종이 없는) 국감을 천명했다. 자료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종이가 너무 많아 이메일 등 전자 문서로 대체하기로 한 것이다.하지만 최근 국회 기자실 앞에는 여전히 프린트된 국감 자료 용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언론에 주목받지 못하고 사장되는 자료는 이면지로 처리되거나 소각돼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린다. 밤새워 마련한 의원과 보좌진들의 땀방울도 덩달아 사라지는 일이 국감 기간 도중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2018-10-23 16:02:48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여의도통신] 국회의원 이색 모임

"우리끼리는 결혼도 금지돼 있으니 그저 자주 만나 친구처럼 친하게 지냅시다."지난달 17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 모인 7명의 국회의원이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름의 성이 모두 송(宋)씨였다.299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송씨 성은 모두 7명이다. 송영길·송기헌·송옥주·송갑석(이상 더불어민주당), 송언석·송희경·송석준(이상 자유한국당) 등이다.모두 50대 중반의 나이로 같은 성을 가진 의원들이 밥 한번 먹자고 뭉치게 됐고, 사상 처음으로 현역 의원 송씨 모임 정례화를 계획 중이다.송씨 성은 10여 개 본이 있으나 이 가운데 여산·은진·진천 본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그 밖의 송씨는 이들 3본에서 분파됐다. 본은 달라도 서로 금혼이 지켜진다.송씨는 인구의 1.5%에 못 미치나 현역 국회의원 비율은 4%가 넘는 점을 의식해 한 참석자는 "송씨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했다.하지만 일각에서는 "국회가 씨족사회냐"며 이들의 모임에 시샘 어린 눈총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집안에서 물려준 이름 때문에 국회의원 모임을 가진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18대 국회에선 '김성' 모임이 있었다. 이름 가운데 '김성' 자로 시작된 의원들의 모임이다. 당시 현역 의원이던 김성조·김성태·김성회·김성식 등이 그 멤버였다.'나체모임'은 국회의원 친목 모임의 '끝판왕' 격이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으나 17대 국회에서 의원회관 지하 사우나를 자주 이용하는 한 중진 인사가 벌거벗고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식사를 권유해 만들게 됐다고 한다. '의원 체력단련실 모임'으로 명명된 모임은 멤버가 수시로 바뀌었으나, 서로 알몸을 다 본 사이이기 때문에 어느 모임보다 진솔했다(?)고 한다.기자가 꼽는 가장 재미있는 의원 모임은 자신을 멍청이라고 부르는 '멍텅구리' 모임이다. 강신성일·신영국·현승일 전 의원 등 7명이 멤버였다.이들은 본회의 시간은 무조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한 일 년쯤 지나니 본회의를 지킨 7명은 서로가 낯이 익어졌고,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다른 멤버들도 한심스러웠는지 모임 이름을 '멍텅구리'라고 지었다. 이후 현 의원이 모임 명칭의 어감이 좋지 않다며 '명통구리'(明通求理·명확하게 꿰뚫어 밝은 이치를 찾는다는 뜻)로 개명했다.

2018-10-04 15:51:52

박상전 서울지사 정경부 차장

[여의도통신] '편의점족' 된 국회의원

국회의사당은 299명의 국회의원 외에도 하루 평균 5천여 명의 유동 인구가 다녀간다. 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는 식당만 해도8곳에 이른다. 모두 국회의사당 건물 내부에서 운영 중이다. 본관에는 1·2·3식당이 있는데 일반인은 주로 1식당을 찾는다. 날마다 달라지는 한식 위주의 식판엔 3천600원(직원가)의 가격표가 붙는다. 1식당 가격의 두 배인 7천200원을 받는 2식당은, 셀프 배식 대신 주문 음식을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3식당은 한식·중식 두 가지 식단인데 1만1천원으로 허름한 외부 식당보다 비싸다. 의원회관에도 3개의 식당이 있다. 1·2식당은 본청과 같은 가격이지만 메뉴가 다르고 1만원짜리 3식당은 '오늘의 메뉴'와 '일품 메뉴'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올해 초까지 국회 구내식당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연중무휴로 운영됐다. 국정감사 등 국회 업무 때문에 출근하는 누구라도 식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국회는 최근 주말과 공휴일 저녁밥은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주 52시간 근무제에 맞춰 식당 근로자들의 근무 시간이 제한된 때문으로 보인다. 당장 민원이 제기됐다. 휴일까지 반납하고 국회에 출근하는 직원들로선, 식사하러 밖으로 나가야 하는 시간적 소모가 많다는 것이다.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는 지방 출신 국회의원들도 일부 시간 저녁은 간편한 국회 구내식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오피스텔에서 혼자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편의점족'이 됐다. 삼각김밥, 감동계란, 혜자김밥, 울트라크리미 등 편의점 진열 상품을 머리에 꿰고 있는 것을 넘어 이들에 대한 찬양(?)이 대단하다. 그는 최근 "수십 가지 양념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삼각김밥에, 간이 돼 있어 소금 없이 먹어도 되는 감동계란에, 게살이 듬뿍 들어 있는 울트라크리미로 아침 식단을 꾸리면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며 "혜자김밥은 또 어떤가. 1천500원에 이런 사치스러운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대구에서 상경하는 길에는 항상 동대구역에서 판매하는 '멸추김밥'을 여유 있게 구매해 착석한다. "달달하고 바삭하게 볶은 멸치와 자잘하게 썬 땡초가 입안에서 쌀밥과 만나 어우러지는 향연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서울역에 도착해 있다"는 게 그 이유다.

2018-09-13 15:20:34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여의도통신] 현장과 동떨어진 정부 자료

최근 대구에 소재한 자연염색박물관 관장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지난 10일 자 매일신문 6면에 게재된 '대구경북 지역 박물관 7곳, 하루 관람객 10명 이하'란 기사에 대한 항의성 내용이었다.정부 자료를 인용한 기사는 "자연염색박물관의 하루 이용 관람객은 고작 3명 수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적은 이용객이 다녀갔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해당 박물관 관장은 '이런 기사가 조그만 사립박물관을 문 닫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관람객 수가 하루 평균 3명이라는 정부 통계 자체가 오류라는 주장이다. 해당 박물관은 지난해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 1천500명을 교육했으며, 매주 목요일 지역 노인층을 무료 초청한 '어르신 문화 교육'을 통해서도 660명을 유치했다고 한다. 현실과 다르게 정부 통계가 나온 이유는 관람료를 지불한 이용객 수만 조사하고 봉사 활동 행사와 무료 관람, 체험교육 인원은 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이 분야 통계를 담당하는 행정 직원이 실수가 많아 철저히 체크하지 않았다는 게 해당 박물관장의 주장이다. 박물관장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타 지역에 비해 대구의 사립박물관 지원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서울과 경기, 호남 지역은 사립박물관 지원을 위해 1년간 2천만원을 투입하는 반면 대구의 경우 2006년에 500만원이었다가 2016년 950만원으로 증액됐는데 올해 다시 760만원으로 삭감됐다고 한다. 자연염색박물관 관장은 대학교수 부부가 퇴직해 공동으로 설립했다. 자신의 주머니를 털었기 때문에 지금껏 장성한 자녀들에게 집 한 채도 구해주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그들이 "일방적인 1줄뿐인 총람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 왔다. 정부 측에 확인해 보니 전국적으로 조그만 박물관까지 관리·통계를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해당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게 이유다. 그런 상황에서는 대충 통계를 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부 통계의 공신력을 통째로 불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과 동떨어진 자료에 대해서는 근절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엉터리 자료로는 현장 상황을 반영한 대책과 이에 근거한 정확한 보도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8-08-23 19:18:03

박상전 서울정경부차장

[여의도통신] '김 아저씨'와 예산 정국

기획재정부에는 '김 아저씨'라는 제목의 유명한 일화가 내려오고 있다. 20여 년 전 재정경제부 시절 이야기다. '김 아저씨'는 전라도 바닷가 작은 마을 출신이다. 원래는 배를 타면서 생계를 유지했으나 지역 동사무소 청소일을 하면서 '독특한' 열정 때문에 9급 별정직으로 채용됐다. 세월이 흘러 50세가 다 됐으나 8급밖에 안 된 '김 아저씨'는 애물단지가 됐다. 해당 도청에서는 없는 자리를 만들어 재정부에 출입하라고 서울로 쫓아 보냈다. '김 아저씨'는 실망하지 않았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매일 재정부를 찾았다. 재정부 보안이 엄격한 탓에 처음엔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매일 지역의 특산품인 '김'을 양손 가득 들고 가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부터 나눠주기 시작했다. 정문을 통과하게 되자 '김 아저씨'는 만나는 재정부 직원마다 김 하나씩을 선물했다. 그런 생활이 7년 지나고, 한 해 여름엔 강력한 태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재정부는 긴급하게 피해 복구 자금을 마련했다. 해양수산을 담당하는 부서엔 200여억원의 복구 비용이 내려왔으나 20억원가량이 남았다. 담당 공무원들은 다시 반납하자니 다음 태풍부터 지원금이 줄어들 것이 뻔해 고민에 빠졌다. 이날도 회의 테이블 옆엔 '김 아저씨'가 어김없이 김을 들고 서 있었다. 회의를 진행하던 한 과장은 "'김 아저씨' 주면 어떨까?" 제안했고, 직원들도 동의했다. 당시엔 김 양식장 피해 복구를 위한 조항이 별도로 없었지만 새로 만들어 '김 아저씨' 고향으로 20억원을 내려보낸 것이다. 정부 지원을 받은 '김 아저씨' 고향만 신속히 복구해 3개월 만에 생산라인을 재가동했고 전국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품귀 현상이 일어서 가격도 평소의 2, 3배였다. 독점하다시피 몇 년간 이익을 본 해당 양식장은 김 가공 공장을 차려 전국적인 브랜드를 가진 구운 봉지 김까지 출시했다. 나이 많은 8급 공직자의 열정이 지역을 살린 이 일화는 예산 정국 시즌에 지역 공무원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그런 차원에서 서울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대구경북 시도 서울사무소장(지사장)의 역할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도 서울사무소장 모두 이달 중으로 교체될 예정이어서 신임 소장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2018-08-02 14:32:33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여의도통신] 한국당이 필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1 1919년부터 3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20% 이상을 기록하며 고도 경제성장을 이뤄내던 일본은 1931년 만주를 거쳐 6년 후엔 중국 본토를 침략한다. 든든한 중공업을 기반으로 한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마모토'란 항공모함을 갖고 있었고 최강의 공군력을 자랑했다. 중국 침공에 거의 성공했다고 판단한 일본은 목재와 석유를 얻기 위해 필리핀 식민화를 계획한다. 이를 위해 미국령 하와이를 기습 공격했으나 미국이 전면전에 뛰어들면서 일본은 패전국이 됐다. #2 제1차 세계대전에 하사 출신으로 참전한 아돌프 히틀러는 '부국강병'을 기치로 국민을 선동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계화 사단을 구축한다. 이를 바탕으로 폴란드를 침공하고 프랑스 식민화에도 성공했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차지하지 못한 곳이 전차부대가 진입하지 못한 섬나라 영국이었다. '유보트'를 개발해 영국을 끊임없이 공격했다. 그러다 소련으로 눈길을 돌린다. 600만 명의 군사를 유럽 동부 전선에 투입해 거대한 소련 땅을 먹어 치우려 했다. 하지만 소련과 영국의 협공 등으로 패전하면서 히틀러의 인생은 권총 자살로 끝이 났다. 두 가지 실패의 공통점은 '전선의 이중화'다. 한곳에 역량을 쏟아부어 차근차근 진행하기보다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전선을 양극화한 것인 패인인 셈이다. 온갖 전쟁 용어가 사용되는 우리 정치, 그 가운데에서도 자유한국당 상황을 대입해 보자.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난 한국당은 현재 사면초가에 놓였으나 전선은 이분화돼 있다. 내부적으로는 계파 간 논란이 벌어지고 있고, 외부에선 여당과 상대해야 할 불안한 처지다. 여당을 견제하는 일은 야당 고유의 업무로 '한국당 대 더불어민주당' 전선 형성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계파 간 설전을 벌이며 내부 총질을 하는 것은 전선을 이중화할 뿐 아니라 대여 투쟁 동력을 스스로 상실케 하는 것이다. 위 두 패전 사례의 경우 패전국은 그나마 세계 최강의 무기나 전투력을 갖고 있던 나라였다. 연약해지고 초라한 한국당의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자신의 처지도 모른 채 전선만 다각화하는 한국당의 현재는 '필패'라는 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전황이라는 게, 이미 우리 역사책에 다 나와 있다.

2018-07-12 15:42:32

최두성 서울정경부 차장

[여의도통신] 무릎 꿇기

20대 총선을 일주일가량 앞둔 2016년 4월 6일, 당시 총선에 나선 대구지역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후보들이 죄다 대구 두류공원에 모여 시민들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진박 내리꽂기', 유승민 등 비박계 공천 배제 등으로 대표된 새누리당의 '막장 공천 쇼'에 민심이 예사롭지 않자 진화에 나선 것. 이들은 "대구를 먹고살게 해달라는 시민들의 절규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했다. 화합하고 단합해 대구를 발전시키라는 명령도 못 지켰다. 대구 시민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저희에게 회초리로 때려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면서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 후보자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이번에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그동안의 지지와 성원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 공천 과정에서의 오만함 등에 대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듯했으나 본심은 '표를 달라'는 것이었고, 그 뒤의 행보를 봤을 때 역시나 하나의 '퍼포먼스'였음이 어느 정도 증명됐다.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2018년 6월 15일.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국회 본관 복도에서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었다. 6·13 지방선거에서 역대급 참패의 성적표를 받아든 뒤였다.'저희가 잘못했습니다'는 글귀가 새겨진 플래카드 앞에 무릎을 꿇은 의원들은 "국민들께서 한국당에 등을 돌린 참담한 현실 앞에 처절하게 사죄를 드리며 반성문을 올린다. '죄송합니다'란 말도 부끄럽지만 다시 태어나겠다"고 했다. 또다시 무릎을 꿇으며 반성하고, 변화와 쇄신을 약속했으나 미더워 보이지 않는다. 한 의원은 "지난 대선 참패 후 처절한 과거 반성으로 시작해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의 가치를 버리고 시대에 맞는 보수 가치 재정립을 선행했어야 했다"고 했다. 또 다른 의원은 "당이 잘못 가는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비판을 하고 많은 조언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반도에 불어닥친 거대한 시대적 흐름과 변화를 깨닫지 못했다" 등의 자성이 덧보태졌으나 '감동'은 없었다.꿇은 무릎을 일으켜 세우자마자 해묵은 계파 갈등, 오랫동안 쌓인 불신을 표출하며 또다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빴다. 물밑에서 당권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뿐이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스스로 신체의 부자유를 선택한 것으로 어떤 굴욕도 감내하겠다는 체념의 의미이자 진심 어린 참회의 표현이다. 무릎 꿇기는 진심이 생명이다.

2018-06-28 16:44:58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여의도통신] 주목되는 법안 하나

저성장 장기화 시대에 의미 있는 법안 하나가 최근 국회에 제출됐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다. 이 법은 제2의 '궁중족발 사태'를 막기 위해 계약갱신권 기간 10년 확대,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설치, 월차임(月借賃) 인상 상한선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최근 벌어진 서울 서촌 '궁중족발 사태'는 족발집을 운영하던 세입자가 건물주를 폭행하면서 불거졌다. 2년째 계속된 임대료 다툼이 원인이었다. 건물주가 재계약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보증금 3천만원, 월세 297만원에서 보증금 1억원, 월세 1천200만원으로 인상을 통보하면서 시작된 것이다.권 의원은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계약 기간 5년이 넘으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몇 배씩 올리거나 재계약을 거부해도 임차상인을 전혀 보호하지 못한다"며 "5년이라는 시간은 상인들에겐 투자이익을 회수하기에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지만 2001년 법 제정 이래 이 조항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아 정치권이 상인들의 고충을 외면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실제로 궁중족발 건물 세입자는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 기간 5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명도소송 1·2심에서 패소했다. 이후 용역을 동원한 12차례 강제집행이 진행됐고 결국 건물주를 폭행하고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권 의원은 "임대인의 재산권 보호를 앞세워 임차인의 생존권을 합법적으로 박탈하는 우리 사회의 불합리와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급속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보증금과 월세가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은 임대인을 보호할지언정 임차인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법"이라고 했다.일본, 프랑스, 독일에서도 임차인의 영업권을 사회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만큼 지체 없이 임차인의 영업권을 기본적 권리로 인정, 계약갱신 기간을 확대하고 보상 방안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발의된 개정안에는 또 광역자치단체별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 신속하고 적극적인 권리구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경제 악화에 영세상인이 늘고 있는 대구도 눈여겨볼 만한 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2018-06-22 05:00:00

최두성 서울정경부 차장

[여의도 통신] 투표 패싱

"선거요? 그런 거 관심 없어요." 유세 현장을 살짝만 벗어나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네거리마다 선거운동원의 인사가 이어지고, 곳곳에 선거 벽보가 붙고, 후보자의 플래카드가 내걸렸지만 선거 열기는 실종됐다. 선거운동원들이 나눠 주는 공보물은 그들이 시선에서 멀어지자마자 버려지기 일쑤고, 가정으로 배달된 선거공보물 역시 봉투째 폐지함으로 직행하는 예도 목격된다. 내 삶과 가장 직결된 동네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이지만 유권자 관심은 시들하다. 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교육감, 곳에 따라서는 국회의원까지 유권자 선택에 달렸으나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꼭 그것을 내가 선택해야 하나"라는 게 무관심에 대한 솔직한 대답으로 들린다. 선거는 유세차에 올라 "일을 하고 싶다"며 지지를 호소하는 후보자들이나 그 주변 사람들, 그들을 선발해 내세운 정당과 정치권 관계자, 누가 수장이 될지를 궁금해하는 공무원, 선거 판세 분석에 바쁜 정치부 기자들에게나 국한된 일 같기만 하다. 이러다간 많은 유권자의 참정권 포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또한 어렵사리 투표소로 발걸음을 옮기더라도 후보들의 정책이나 정치철학을 알지 못한 채 투표 행위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묻지마 투표'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앞선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기우(杞憂)는 아니다. 4년 전인 제6회 지방선거에서 대구는 52.3%의 유권자가 투표소로 향해 전국 17개 시도 중 투표율 꼴찌를 기록했다. 그에 앞선 5회(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대구는 전국 평균 투표율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낮은 45.9%의 투표율로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특정 정당을 향한 뚜렷한 지역색이 지역민의 투표 의지를 꺾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선거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앞선 선거에서 대구경북을 합쳐 광역단체장 1명(대구시장), 기초단체장 3곳(대구 달서구, 경북 포항구미)에만 후보를 배출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번에는 대구경북 광역단체장을 비롯해 대구 7곳, 경북 17곳 기초단체장에 후보를 냈다. 바른미래당 등 기타 정당에다 무소속 후보까지 투표용지에 이름을 새겨 선택 폭은 다양해졌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사람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투표가 끝나면 그들에게 4년의 시간을 맡겨야 한다.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고, 소중한 선택의 행렬에 동참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2018-06-07 15:02:30

박상전 서울 정경부 차장

[여의도통신] 통계의 함정

통계에는 '함정'이 많다. 조사 대상과 범위, 집계 기준 등을 조금만 달리해도 결과는 큰 오류를 불러오기 십상이다.문재인 정부가 공개한 서울 주택가격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지난해 말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해 서울의 평균 집값을 4억3천485만원으로 발표했다. 일본 도쿄의 3억1천136만원보다는 비싸고, 미국 뉴욕의 4억4천340만원과는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조사 대상과 범위가 틀렸다. 반경 10㎞도 안 되게 밀집한 서울은 있는 그대로 전수조사하고, 뉴욕은 중심가인 맨해튼과 120㎞ 떨어진 뉴저지펜실베이니아까지 포함한 결과였다.특히 도쿄는 1천㎞ 떨어진 인구 3천여 명의 태평양 외딴섬 오가사와라촌도 포함시켜 평균 가격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행정구역만 놓고 단순 비교한 오류였던 것이다.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통계를 잘못 이해하고 쓰는 사례가 매우 많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무지와 고의다. 어떤 오용이 무지에 의한 것이고, 고의에 의한 것인지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대개 통계를 잘못 사용하는 사례에서는 무지와 고의가 뒤섞여 나타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라도 믿고 싶지 않은 통계들도 있다. 암울하게만 나타나는 경제 분야 통계들이 그렇다.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10대 경제지표'는 정말 사실과 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해 정부가 경기를 판단하려고 중점적으로 보는 10대 경제지표 중 무려 9개 분야에서 불황의 경고음이 울렸기 때문이다.10대 경제지표 가운데 광공업서비스업 생산, 설비투자, 건설기성액, 수출수입액, 취업자 수, 기업경기실사소비자 기대지수가 일제히 하강둔화했다. 소매판매액만 소폭 상승했으나 이마저도 일시적 요인으로 분석됐다. '저성장 장기화는 서민들에게만 고통을 지우고 있다'는 통계도 믿기 싫은 자료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3개월 동안 소득 하위 20% 국민이 벌어들인 돈은 10분의 1가량 줄어든 반면 그 돈이 고스란히 소득 상위 10%에 돌아갔다. 이대로 가다간 없는 사람들은 굶고,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주머니가 두둑해질 전망이다.통계는 조사도 그렇지만 해석도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현실을 정확히 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조금이라도 정권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려는 순간 현실은 왜곡되고, 꿈꾸던 미래와도 멀어지게 된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박상전 서울지사 정경부 차장 mikypark@msnet.co.kr

2018-06-01 05:00:00

[여의도 통신] 차악(次惡)의 선택

지난 14일 여야가 어렵사리 손을 맞잡으면서 국회는 40여 일간 '휴업' 안내문을 떼고 '점포' 문을 다시 열었다.국회 공전을 불러온 이유는 여럿 있으나 결정적인 것은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으로 불리는 일명 '드루킹 사건' 특검을 하자는 쪽과 말자는 쪽의 대립이었다. 여야는 누가 이기나 갈 데까지 가보자며 버텼고, 대치는 6'13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4명의 사직 안건 처리 시한을 몇 시간 앞두고까지 이어졌다.이날 자정까지 이들에 대한 사직서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이들 지역구 보궐선거는 6월 선거와 동시에 치를 수 없는 사태에 이를 만큼 사안은 심각했다. 그럼에도 여야는 이를 볼모로 힘겨루기를 벌였다. 그래서인지 여야의 협상 타결(특검'추경 18일 동시 처리)에 '극적'이라는 단어가 붙여졌다.'공방→협상→일촉즉발→합의'. 누군가에게는 짜릿했을 장면이 기자에겐 별다른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여야는 이견이 있을 때마다 막판까지 가는 대치를 반복해 왔고 그런 장면을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끝장 대결의 결과물이 최악(最惡)만 피한 '차악'(次惡)의 선택으로 그친 것 역시 재방송을 보는 듯했다.이번 역시 재'보궐선거 6월 무산이라는 최악은 피했으나 40여 일간 민생 현안을 뒤로 밀치면서까지 얻어낸 결과를 '최선'(最善)의 선택으로 볼 수는 없다. 특검을 주장하며 단식까지 감행했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여야의 정치적 협상에서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일방적 승리는 있을 수 없다"며 이번 합의 배경을 설명했으나 차악의 선택에 대한 변명 이상으로는 들리지 않았다.특검 쟁취에 올인한 한국당에서 득보다 실이 많은 합의안이라는 내부 비판이 적지 않고, 빠듯한 추경 처리 시한은 졸속 심사 우려마저 나오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게다.여든 야든 최악은 피했다고 위안을 삼는다 하더라도 이런 차악의 선택을 기다리느라 애끊인 민생의 고충은 어찌할 것인가. 꽉 막힌 국회에 조속한 민생법안 처리를 촉구하며 거리로 나온 소상공인들의 절규를 그들은 과연 알기나 했을까.국회 정상화의 첫발을 내디디며 여야 원내대표는 "미뤄졌던 민생법안, 경제법안 처리에 힘을 쏟겠다", "국민의 목소리에 함께 해결책을 찾겠다"고 했다. 켜켜이 쌓인 민생 법안 처리에는 여야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협상의 지향점 역시 '최선'이어야만 한다.

2018-05-18 00:05:04

박상전 기자

[여의도 통신] 통일을 위한 통일

남북 정상이 38선을 제집 드나들듯 오가면서 통일의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궈졌다. 30분간의 '밀담'을 통해선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나눴다. 입 모양을 통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아버지가 저 여자(리설주)와 결혼하라고 했다" "(리설주가) 명품을 많이 산다" 등의 말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는 모두 5페이지를 넘기지 않는다. 그를 '2분남'이라고도 한다"며 길고 복잡하게 이야기해서는 승산 없음을 조언했다. 그야말로 허심탄회한 내용이다. 통일 분위기는 중국 부동산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북한 신의주 압록강의 섬, 황금평'위화도와 맞붙어 있는 중국 단둥신구 지역의 주택 가격이 며칠 사이 최대 1.5배로 폭등했다고 한다. 해당 지역 부동산등기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늘자 남북 정상회담 며칠 뒤 현지 부동산등기센터는 번호표 발급자를 하루 200명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경제적 시각으로 통일을 분석한 이론도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통일을 위해 투입되는 '통일비용'이 1천조원이라고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추정했다. 하지만 통일이 되면 1천조원의 몇 배에 달하는 북한의 광물이 공유'개발되고 2천500만 명에 달하는 북한주민이 남북 통합경제에 편입된다. 또 신생아 수가 2배 이상으로 증가하고, 한반도 내 5천300만 명의 노동인구가 생기는 긍정 효과가 발생한다. 국내에서도 1천조원의 통일비용보다 통일되지 않아서 지출되는 돈인 '분담비용'을 걱정하는 여론이 조성됐다. 한 인문학 강사는 "통일비용이 1천조원이라고 할 때 남한 인구 1인당 200만원씩 분담된다. 젊은이들에게 '군대 2년 갈래, 200만원 낼래?'라고 물으면 모두 200만원을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를 보면 통일은 금방 손에 잡힐 것만 같다. 하지만 시선을 대한민국 내부로 조금만 되돌려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주요 도로에선 아직도 '태극기부대'와 '급진세력'들의 집회가 난무하고, 국회에서는 백주에 국회의원이 시민에게 폭행당한다. 국회 본청을 멀쩡히 놔두고 일부 의원들은 천막 농성을 벌이며 서로 으르렁대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새롭게 뽑힌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은 채 전직 대통령을 목 놓아 부르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한반도 전체를 통일하기에 앞서 38선 이남의 반쪽 통일이 시급한 상황이다.mikypark@msnet.co.kr

2018-05-11 00:05:00

[여의도 통신] '불공정'과 '불신' 사이

6'13 지방선거 자유한국당의 대구경북 공천이 시끄럽다. 공천 탈락자의 이의 제기가 벌써 여러 건이다. 대구시당'경북도당은 공천 탈락자 지지자들의 시위로 조용한 날이 없고, 단식 농성에 상복 투쟁, 심지어 관까지 들고 온 항의자들까지 있다. 이들의 주장은 "공천이 불공정하게 됐다"는 것이다.'공천 불복자'가 유독 TK에 집중된 것은 한국당 공천장만 받으면 '당선'이라는 인식과 실제 실현되는 결과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많은 유권자는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은 채 한국당을 지지해왔다. 이는 공천 후보자들로 하여금 모든 가용한 '재주'를 부려서라도 공천장을 받아내겠다는 풍토를 고착화했다.이런 상황에서 공천 불복 항의는 더는 한국당과 인연을 이어가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채점에 반항하는 학생을 곱게 봐줄 심사위원은 없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이들의 절규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일쑤다. 공천권자들은 "공천자는 한 명이고, 나머지는 탈락하니 당연히 시끄러운 말이 더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공천은 어떤 방식으로 해도 시끄럽다. 역대 선거에서 불만 없는 공천이 어딨나"고 되레 반문한다. 강석호 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장은 공천 불복 이유로 '불신'을 꼽았다. 공천을 투명하게 해도 (공천 탈락자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공천 시비는 공천 과정의 '불(不)공정' 주장과 결과에 대한 '불(不)신'이 맞부딪혀 생긴 결과인 셈이다. 두 단어에서 '불'(不) 자를 드러내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객관적인 원칙 수립과 엄격한 원칙 이행이다. 일부 지역에서 공천자가 뒤바뀐 것은 공천관리위원회의 심의가 엉성했거나 원칙 밖의 요소가 공천과정에 끼어들었다는 두 가지 이유밖에 없다.지난 23일 피아니스트 임현정 씨는 한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심사위원직을 내던졌다. 최소한의 수준조차 충족 못 시킨 경연자가 결선에 진출한 것에 "경악했다"고 한 임 씨는 심사위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친밀감이 부당한 심사로 이어질 수 있음도 꼬집었다. 임 씨는 "확실히 좋은 연주를 보여준 지구 곳곳의 그 멀리서 온 여러 피아니스트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며 크게 상심하고 자신감을 잃는 모습을 보며 저의 슬픔은 더 깊어만 갔다"고 했다. 지방선거를 참신한 인재 등용과 보수재건의 기틀을 닦는 기회로 삼겠다는 한국당이 곱씹어 봐야 할 말은 아닐까.

2018-04-27 00:05:00

[여의도 통신] 남북 정상회담 의제

남북 정상회담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으나 구체적인 의제와 관련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다만 여권에선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 상봉의 정례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크게 환영할 일이다.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산가족은 총 20차례에 걸쳐 2만3천676명이 상봉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남북 관계 경색에 따라 813명(2014년), 972명(2015년)으로 줄더니 2016년부터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동안 2만5천 명이 채 안 되는 이산가족이 만났으나 신청자는 13만2천여 명에 달한다. 양측의 노력에도 5분의 1만 상봉했던 것이다.더욱 큰 문제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고령화다. 실제로 13만2천여 명의 상봉 희망자 가운데 56%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적으로 보면 상봉 희망자의 절반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희망자 가운데 20%만 상봉 가능했다는 것이다.아직 살아 있는 상봉 희망자 대부분도 고령자다. 현재 남아 있는 희망자 가운데 70대 이상의 이산가족 1세대가 전체의 86.3%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산가족 사망자는 연평균 3천600명 수준이며,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사망하는 이산가족도 연평균 2천400명에 달한다. 상봉 정례화와 대규모 상봉 등 다양한 상봉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절실하고 그런 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의미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정상회담이 가까워질수록 알려지지 않은 다른 정상회담 의제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남북철도 개설 문제를 거론한다.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최근 "서울-평양을 잇는 철도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언급하면서부터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오 사장은 전국대학생협의회 2대 회장 출신이다. 초대 회장과 부회장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우상호 서울시장 민주당 예비후보이다. 오 사장을 거쳐 3대 회장에 오른 인물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이들을 일컬어 소위 '전대협 4인방'으로 부른다. 4인방 가운데 중앙'지방의 실세, 국유기업 CEO, 여권 실세 등이 골고루 포진해 있는 것이다. 어떤 정책이라도 추진 가능할뿐더러 예산 조달도 쉬워 보인다.정상회담 의제 선택 과정에서 국민의 뜻을 먼저 수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남북철도 연결도 좋지만 걸핏하면 폐쇄해 버려 분담금만 유발하는 개성공단 사태가 재발해서는 안 된다. 다수 의사를 무시한 채 입맛대로만 추진한다면 '김경수'김기식 사태'로 시끄러운 정치권에 새로운 화근거리만 안겨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2018-04-20 00:05:00

[여의도 통신] 국회 파행

'벼락치기'는 국회의 못된 버릇 중 하나다. 법안 처리 등을 미루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처리하는 행태는 한결같이 봐온 장면이다.그 버릇이 4월 임시회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지난 2일 임시회가 문을 열었지만 시작과 동시에 파행이다. 그날 예정된 본회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이 불참하면서 열리지 못했다.3일에는 한국당의 보이콧 선언 여파로 상임위가 줄줄이 멈춰 서면서 '개점휴업' 상태다. 방송법을 처리하자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주장에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도 함께 처리하자고 하는 바람에 협상이 엇나갔고 이에 의사일정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게 원인이다.파행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지방선거 전 사실상 마지막 임시회인 데다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큰 이슈가 던져져 있어 임시회에 대한 관심도가 낮기 때문이다. 헌법 개정 논의는 물론이고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한 쟁점 법 처리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가 들린다.여야 대치에는 공식이 있다. 정부'여당은 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관련 법들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야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달라며 협상 테이블에 앉지만 서로의 주장만 외치다 뒤돌아선다.4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 실현을 위해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은 현행 국민투표법 개정을 국회에 요구했다. 국민투표법 개정 없이는 명부 작성조차 할 수 없어 개헌 국민투표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즉각 "청와대발(發) 개헌 물타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여당은 개헌 의지를 드러내며 개헌 저지선을 확보한 한국당을 압박하지만 한국당은 일련의 행태를 지방선거용 개헌 이슈 띄우기로 보고 있다.여야 간 '힘겨루기'에는 어느 당도 과반을 점하지 못하고 있는 구조적 부분이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 무엇보다도 사안별 해결이 아닌 여러 건을 연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자는 식의 '패키지' 처리 습성을 버리지 못한 탓도 크다. 여야의 거대 담론에 민생법안이 '볼모'가 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했고, 자주 목격된 모습이다.명저 '인간관계론'에서 데일 카네기는 "상대방을 움직이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원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가 파행을 풀고, 또 벼락치기 버릇을 없애기 위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2018-04-06 00:05:00

[여의도 통신] 부끄러워진 직접선거

얼마 전 중국인 사업가를 만났다. "저성장 장기화가 고착화된 대한민국과 달리 고성장을 이어가는 중국에서는 아직 사업할 맛 나겠다"며 부러움을 전했다.돌아온 답변은 "그래도 한국이 부럽다"는 것이었다. "공산당이 독점해서 권력자를 장기 집권하게 하는 중국의 근본적인 정치 변화 없이는 더 이상의 체질 발전을 기대하기는 무리"라는 설명과 함께였다.따져 보면 우리나라처럼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나라는 의외로 많지 않다. 미국은 별도의 선거인단을 구성해 과반 득표를 넘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 대통령은 하원, 부통령은 상원이 선출하는 전형적인 간접선거 방식을 취하고 있다.동독과 서독이 통일해 연방대통령제를 택한 독일도 별도의 선거인단으로 구성된 연방총회가 5년마다 열려 대통령을 선택한다. 이웃나라 일본도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총리에 오른다. 국민이 직접 투표하지 않고 의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공산당이 좌우하는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에서 일사불란하게 선출한다. 국민의 대표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일개 정당이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다. 최근 열린 전인대에서는 국가주석에 대한 연임 제한을 풀어 시진핑의 장기 집권을 한마디 이견 없이 처리했다.우리나라는 19세 이상 국민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 선거운동 기간 도중 후보들은 TV 토론회, 언론 검증, 공약 발표 등 수 많은 노출을 하게 된다. 그 사이 국민은 '누구는 좋더라' '누구는 깜냥이 안 되더라' 하면서 술안주로 삼기도 하고 자신의 선택을 더욱 강화하기도 한다.온갖 검증을 뚫고 당선된 대통령들인데 퇴임하고 나서는 줄줄이 감옥에 가는 현실이다. 임기를 채 마치기 전에 파면당한 인사도 있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국민이 조성한다. 당선 전에는 그렇게 칭찬하더니 나중에는 '감방에 보내야 한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너무 쉽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너희는 그래도 대통령을 너희 손으로 직접 뽑는 민주국가에서 살고 있지 않으냐"는 중국인 사업가의 부러움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이지만 불법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을 뽑은 우리의 손이 다시 부끄러워진다. 결국 우리가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좋은 대통령감을 보는 눈을 갖지 못했다"고.

2018-03-30 00:05:04

[여의도 통신] 마타도어

지난 주말쯤 한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 출마자가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데 아느냐"고 물어왔다. 들은 바 없다고 하니 "이미 참고인 조사까지 마치고 곧 소환된다고 한다"며 '그런 것도 모르느냐'는 핀잔과 함께 서둘러 진위를 파악해보라는 무언의 독촉이 더해졌다. 물론 터무니없는 소문이었다.6'13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그게 사실이냐?"는 물음이 많아지고 있다. 누군가 꺼낸 말이 입으로 또는 글로 전달되고, 그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하나둘 다른 말들이 보태져 나중에는 그 실체마저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중에서는 너무 엉뚱해서 웃어넘기는 것도 있지만 교묘하게 각색돼 마치 진짜인 것처럼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도 있다.듣고 모른 척할 수 없으니 선거철이면 넘쳐나는 마타도어들 속에서 건전한 의혹을 가려 쫓는 건 정치부 기자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투우 경기 마지막에 소의 정수리를 찔러 죽이는 투우사를 뜻하는 스페인어 '마따도르'(matador)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마타도어는 근거 없는 사실로 모략하는 흑색선전의 의미로 정치권 용어가 됐다. 결정적인 순간, 투우사가 빨간 망토로 소를 홀린 뒤 망토에 감춘 칼로 소를 죽이는 이 행위가 마치 선거판 흑색선전과 닮았다 하여 따온 듯한데 1960년대부터 선거철만 되면 등장했다고 한다.선거 역사와 궤를 같이할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건 그것이 지닌 위력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그럴듯한 마타도어 한 방이면 선거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진 '정치꾼'들이 더러 목격된다. '선거전략통'으로 알려진 한 인사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허물에 더 관심을 둔다. 그래서 상대 후보의 족보부터 가족관계, 걸어온 길을 샅샅이 살펴 그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단서를 찾는 것이 선거판에서 매우 중시되고, 또 그것을 잘하는 이가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당하는 쪽은 물론 곤혹스럽다. 금쪽같은 시간을 해명하는 데에 쏟아붓지만 긁힌 흠집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허위임을 밝혀내니 선거가 끝나 있더라." 이 정도면 치명적이다.미투 운동의 확산은 선출직에 대한 엄격한 자질론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아니면 말고'식 폭로는 후보 검증의 기회를 앗아갈 뿐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범죄다. 남은 선거기간 페어플레이를 기대해 본다.

2018-03-16 00:05:00

[여의도 통신] '미투'는 진행 중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유명한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첫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자 또 다른 피해자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로전을 시작하면서 발생했다.통신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상륙하자마자 급속도로 번졌다. 현직 검사 서지현 씨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를 시작으로 이윤택 연극연출가, 고은 시인, 오태석 극작가,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영화배우 등 한 달여 사이에 지목된 가해자는 수십 명으로 늘었다.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여비서 성폭행 의혹은 정국 풍향계를 뒤흔들 정도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투 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고,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법 당국은 피해자들의 폭로가 있는 경우 형사고소 의사를 확인하고,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 6월 이후의 사건은 고소 없이도 수사할 계획이다. 분야별 신고상담센터도 운영한다.세상의 눈과 귀가 '미투 운동' 이슈에 쏠렸고, 내일은 또 누가 걸릴지 막장 드라마처럼 기다려진다. 후속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추가 가해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란 전제 때문이다. 실제로 '다음 타자는 누구누구'라는 지라시까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정치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현재 비서진들의 성추문 사건이 드러나고 있으나, 일부 여비서들의 국회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 따르면 가해자는 국회의원급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실제로 국회 내 성추문 의혹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10여 년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근무하던 청소용역부 전원을 교체한 적이 있다. "어느 방에서 정액이 들어 있는 콘X(남성용 피임기구)이 발견됐다" "사무실 휴지통에 여성 스타킹과 속옷이 자주 나온다"는 말들을 미화원들이 여과 없이 하고 다녀 일부 의원들의 요구로 교체됐다는 것이다. 한 보좌관은 심야에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유부녀를 의원회관으로 데려와 정을 나누고 잠들다 상급 보좌관에게 들킨 것으로 알려졌다.아직까지 성추문 근절 문제와 관련해 체계도 없고 전문상담원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또 관련 대책에 대한 예산도 없어 부랴부랴 발표한 대책이 제대로 가동될지도 의문이다. 미투 폭로가 이어질 곳은 많은데 사전 대응책은 미진해 막장 드라마 같은 속보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8-03-09 00:05:00

[여의도 통신] 여야 정책 대결?

우리나라는 노인 연령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같은 60세 이상이더라도 어떤 이는 노인복지회관만 출입 가능하고 다른 이들은 노인정 출입까지만 가능하다. 이유는 노인에 대한 고용과 복지의 정책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같은 부처 안에서도 노인에 대한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고령자 고용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는 노인들을 위해 일자리 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대상을 65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는 반면 공공근로사업은 60세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61~64세 고령자들은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노인 일자리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공공근로사업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그럼에도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르면 50세 이상 55세 미만을 준고령자, 55세 이상을 고령자로 분류하면서 상한 연령은 두지 않아 노인 연령 기준을 더욱 헛갈리게 만들고 있다. '노인복지법'을 운영하는 보건복지부에는 아예 노인 연령 기준조차 없다. 다만 경로연금 지급시기를 고려해 만 65세를 노인으로 간주하고 있을 뿐이다.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것도 제각각이다. 국민연금법은 60세 이상에 적용하지만 노인복지법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65세로 규정하는 등 일관성이 없다. 또 노인시설인 노인복지회관이나 노인교실은 60세 이상 이용 가능하지만 경로당은 만 65세 이상만 출입 가능한 실정이다.이 같은 정책의 모호성을 없애려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 공전하던 2월 국회가 정상화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다시 만난 여야는 정치 공방만 일삼고 있어 아쉽다. 간간이 정책 대결을 벌이지만 이마저도 한숨이 터져 나온다. 가상화폐 정책을 예로 들어보자. 각 당이 뒤늦게 투자자들을 보호한다며 들고 나온 법안 내용 중 명칭과 정의가 제각각이어서 오히려 보는 이들을 더욱 머리 아프게 하고 있다.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가상화폐 관련 법안은 3건 올라와 있다. 모두 금융 당국의 인가나 등록 및 불법행위를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당이 내놓은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비트코인 등을 '가상통화'로 정의했으나 자유한국당은 '가상화폐', 바른미래당은 '암호통화', 민주평화당은 '암호화폐'로 명시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명칭은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을 근거로 나온 것이어서 4가지 법안이 조율되려면 4개의 이론이 뒤섞여야 하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투자자들은 하루빨리 관련 제도를 만들어 활성화를 바라지만 정치권에선 관련 제도를 도입한답시고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끌고 가는 모양새다.

2018-02-23 00:05:00

[여의도 통신] 평창, 축제의 장이 되려면

불과 몇 시간 후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한다.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IOC 총회에서 울려 퍼진 "평창"은 세 번의 도전 끝에 이룬 성과였기에 기대도 크다.이제 성화대에 불이 밝혀지면 우리는 동·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여덟 번째 나라가 되고, '스포츠 그랜드슬램'(동·하계올림픽, FIFA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을 실현한 다섯 번째 국가가 된다.누려야 할 자부심은 그러나 평창올림픽의 '북한 참여'를 둘러싼 대내외적 역학관계에 휩싸여 불안과 갈등을 퍼뜨렸다. 정치권이 촉발했던 '평화' 대 '평양' 논쟁은 '평창'을 관심 밖으로 밀어냈다. 논쟁은 진행 중이어서 선수 간 선의의 경쟁장이 되어야 할 올림픽이 진영 간 안보 경쟁장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평화올림픽'은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키워드다. '평양올림픽'은 남북한 단일팀과 한반도기 입장에 부정적인 쪽이 바라보는 시선이다.이 둘의 충돌이 빚어낸 정부 여당과 보수진영 간 대치의 한 자락에는 4개월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 기선 제압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정부 여당에 지방선거 승리는 '정권교체의 완성'을 뜻한다. 보수 야당은 '정권 심판' 성격의 이번 선거야말로 보수층을 재집결하고 추락한 보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보고 있다. 양쪽 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됐다.여당은 "'색깔론'을 덧씌우며 극단적 종북몰이를 하고 있다"고 보수 야당을 몰아붙인다. 보수 야당은 정부 여당이 "'북한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며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평창에서 200㎞ 떨어진 여의도는 정치권의 '말꼬리잡기'식 언쟁으로 조용한 날이 없다.다행히 7일 여야는 본회의를 열어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대회의 성공적 개최 및 올림픽 정신 구현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여기에는 올림픽대회를 이념적 대립의 도구로 삼지 않고 정치적 공방과 갈등을 자제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에도 4당 원내총무 합의로 정쟁을 중단했던 전례가 있다고 한다.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88올림픽이 그러했듯 평창올림픽이, 나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는 여야의 인식이 같다.실천이 필요하다. 정치 게임에 올림픽이 정치 행사가 돼서도, 평창의 주역들(선수)이 가려져서도 안 된다. 이념적 대립은 잠깐 멈추고 스포츠를 즐기자. 그다음은 조용하고 냉정하게 준비하면 될 일이다.

2018-02-09 00:05:01

기획 & 시리즈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