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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문의 '문 워크'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진영이 프랑코에게 패배한 이유는 군사적 무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내분(內紛)이다. 이를 주도한 세력이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스페인 공산당이다. 공화진영에 군사고문단과 다량의 무기를 지원해준 스탈린의 의도는 스페인의 민주화가 아니라 '공산화'였다. 공화진영을 도와 프랑코 반군에게 승리한 뒤 공화진영 최대 세력이었던 무정부주의자를 포함, 공산당이 아닌 모든 정치 세력을 제거한다는 것이다.스페인에 파견된 소련 군사고문단의 육군 담당 블라디미르 E. 코레프가 모스크바에 보낸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백색분자들(프랑코 반란군)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나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와의 싸움이 절대적으로 불가피할 것이다. 이 싸움은 매우 잔혹할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이 싸움을 백색분자들과 한창 싸우고 있을 때 시작했다. 그 수법은 매우 비열했다. 공화진영이 무기 대부분을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공산당 소속이 아닌 공화군 병사에게는 지급하지 않았고, 부상자는 병원 치료도 못 받게 했다. 그리고 공산당을 지지하지 않는 정파는 탈주자, 반역자, 스파이로 몰아 처형했다.대표적인 예가 한때 트로츠키의 비서를 지낸 안드레스 닌과 그가 이끌던 마르크스주의통합노동자당(POUM)의 숙청이다. 닌은 트로츠키와 이미 결별했음에도 공산당은 그를 트로츠키주의자로 몰아 고문 끝에 살해했다. 당시 POUM 민병대에 자원입대했던 조지 오웰도 그렇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 이러한 '내전 속의 내전'은 공화진영의 총체적 사기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고도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지금 이 땅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핵실험에다 각종 미사일을 펑펑 쏘아대는데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내부의 적' 때려잡기에 정신이 없다. 그 범위는 전(前), 전전(前前)도 모자라 전전전전전전전(前前前前前前前), 전전전전전전전전전(前前前前前前前前前) 대통령으로까지 소급한다. 모두 '문빠'들이 증오하는 전직 대통령들이다.청산 대상 적폐도 무한정이다. 적폐로 찍으면 무조건 적폐다. 다른 이유는 없다. 아산 현충사에 걸린 전직 대통령의 휘호도 적폐가 된 까닭이다. 세계가 찬탄하는 새마을운동도 적폐로 모는 마당이니 새마을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전직 대통령의 휘호를 적폐로 찍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재청장은 눈치가 너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말 대로라면 그런 적폐를 없애라고 문화재청장을 시켜줬기 때문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안보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여건이 못 된다"고 했다. 지난 7월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없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이렇게 무력해도 내부의 적 때려잡기에는 힘이 펄펄 넘치는 게 문 정부다. 밖에 나가서는 찍소리 못하면서 안에서는 큰소리치는 못난 가장의 모습 그대로다.이런 식으로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난제들을 풀어낼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안보 상황을 우리가 주도할 수 없다면서도 "내부가 제대로 결속되고 단합한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 걷는 것 같지만, 사실은 뒤로 가는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moon walk) 춤 뺨치는 말의 기예(奇藝)다. 내부 결속과 단합은 문 대통령이 앞장서 깨뜨리고 있지 않은가?영국 역사학자 앤터니 비버는 '스페인 내전-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에서 "프랑코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별로 한 역할이 없다. 공화군의 용기와 희생을 헛되이 낭비함으로써 전쟁을 패배로 몰고 간 것은 공화군 지도부였다"고 했다. 공화진영은 스스로 무너졌다는 거다. 우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2017-10-24 00:05:05

[세풍] 이왕 돈을 쓰려면

'1928년 재일 경북인 4만9천358명이 고향으로 송금한 돈은 110만3천757원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액수.'일제강점기 시절 경북경찰부가 독립운동가를 감시, 체포, 고문하는 악명 높은 고등계 형사를 위해 만든 비밀교과서와 같은 '고등경찰요사'에 나오는 기록이다. 일제 등쌀에 경북인들은 나라를 등졌다.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경북 사람 가운데 1928년 기준 일본에만 4만9천358명이 살았다. 1927년 말 재일 한국인 17만5천91명의 28%다. 재일 한국인 75%가 노동으로 버틴 것처럼 경북인도 그러했을 터이다.하지만 일본 속 경북 사람들은 고향의 가족에게 번 돈을 보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액수'인 110만3천757원은 1928년 대구부(大邱府)의 1년 세입(경상부+임시부) 98만7천372원보다 많다. 특히 송금된 돈은 독립자금으로 흘러갔다. 나라 안에서 독립군자금을 기꺼이 낼 백성은 이들 말고는 없었다. 상황이 그랬다. 당시 한국 경제의 80%는 일본인 몫이었다. 한국인 2천만 명의 80%가 문맹(文盲)이었다. 농민이 80%이고 이들의 70%쯤이 소작 등으로 가난했다. 독립군자금을 내놓을 사람은 뻔했다. 못 배우고 가난하지만 송금받은 백성과 일부 한국인 자산가를 빼면 누구도 돈을 낼 일은 없었다.이처럼 나라 밖으로 내몰린 한국인이 노동과 장사로 번 돈을 군자금으로 내놓은 사례는 숱하다. 이들의 활동, 특히 '인삼 행상'은 중국 상하이, 홍콩에서 태국, 싱가포르의 남양(南洋)에 이르기까지 '발을 디디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넓었다'. 또 '화교(華僑)가 있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지 한국 인삼 행상들의 존재를 찾을 수 있을'만큼 나라 밖 살길 찾기는 눈물겹다. 이렇게 번 돈은 독립자금으로 헌납되고 이들은 '총대 없는 상인독립군'이 됐다.이들 이야기는 흔히 중국 화교에 견줄 만하다. 일찍 나라 밖 남양으로 살길을 찾아 나선 중국인들이 뒷날 고국 혁명의 든든한 자금줄이 된 일과 같은 맥락이어서다. 해외 화교들이 혁명 인사를 도우면서 중국 혁명지도자 손문(孫文)의 말처럼 '화교는 혁명의 어머니'였다. 맨몸의 노동으로, 한국 특산품 '고려인삼'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번 돈을 독립운동가의 군자금으로 낸 노동자, 행상의 나라 밖 한국인은 총을 든 독립투사와 다르지 않았다.뜬금없이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지금 나라 곳곳에서 이뤄지는 청년지원 정책이 생각나서다. 지금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이 나라 젊은이를 위해 전국 지자체마다 '청년수당'(서울시), '청년디딤돌카드'(부산시), '청년배당'(성남시) 같은 여러 이름을 붙인 예산을 지원하거나 그런 비슷한 일을 추진하는 듯하다. 대구시에서도 어제 '청년희망 공감토크 청년수당에 대하여'라는 주제의 행사를 갖고 대구 청년을 위한 지원 정책 마련에 나선 모양이다. 대구시 조사 결과,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간 대구를 떠나는 청년의 발길이 멈추지 않다 보니 이해할 만하다.청년 지원을 마다하거나 주저할 일은 아니다. 대구 청년이 대구를 떠나지 않고 머물며 고향을 지킬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떠나는 젊은이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대구를 등지는 만큼 이들을 붙잡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일시적인 예산 지원을 통해 청년의 대구 머물기를 유도하기보다 대구를 떠나서도 일자리를 찾도록 하는데 돈을 쓸 필요가 있다. 지금 경북도에서 2013년부터 시작한 '청년무역사관학교' 사례처럼 대구 젊은이가 나라 밖 무대를 향해 꿈을 도전하도록 하는 지원 말이다.옛 기록 특히 가장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대구 젊은이는 뛰어났다. 도전, 모험을 마다치 않았고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었다. 지금의 대구 모습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았다. 그때보다 더욱 자유로운 지금, 대구 젊은이라고 굳이 대구와 나라 안에만 머물러야 할까. 이왕 돈을 쓰려고 했다면 나라 밖에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이들이 대구를 구할 '미래 독립군'이 될지 누가 아는가. 당국의 발상 전환을 바란다.

2017-10-17 00:05:01

[세풍 世風] 그대, 경북도(道伯)백을 꿈꾼다면

물쓰듯 펑펑 쓴다는 비유도 있지만 사실 물만큼 귀한 자원도 없다. 지구상의 물 가운데 인류가 쓸 수 있는 양은 고작 0.03%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벼농사용 물 확보는 절박한 일이었다. 물을 확보하지 못하면 식구가 아사 위험에 빠질 수 있기에 자기 논에 물을 대려는 농부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농부들 간의 물꼬 경쟁은 때로 칼부림으로까지 이어졌다.물로 인한 살벌한 경쟁도 있었지만, 마음 한쪽을 데우는 미담도 있다. 나그네가 우물에서 물 긷는 아낙네에게 물을 청한다. 여인은 섬섬옥수로 물 한 바가지를 전하는데 버들잎 한 장을 물에 띄운다. 나그네가 연유를 묻자 "목이 몹시 마를 때 급히 마시면 체하기 쉬우니 버들잎 휘휘 불어 천천히 드시라는 뜻"이라는 답이 돌아온다.성격 다른 두 이야기이지만 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담았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다. 두 이야기를 장황하게 거론한 이유는 10년째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에 관한 칼럼을 쓰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다. 1991년 구미 페놀 사건을 경험한 대구로서는 낙동강에 수돗물을 의존하는 것 자체가 큰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구시는 취수원을 구미로 옮기는 방안을 10년 전부터 모색하고 나섰다.대구시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큰 착각이었다. 20여 년 전 부산 시민의 극렬한 반대로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이 무산된 전례를 통해 광역 수계 관리가 엄청난 지역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지 경험했음에도 대구시는 배운 것이 없었다. 대구시의 안일한 접근 방식은 구미 시민들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했고 되레 불신과 반목을 키웠다. 취수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구시의 상황 판단도, 시기도 적절치 못했다.우스갯소리로 대구 수성구'동구 주민들은 한여름에도 보일러를 튼다는 말이 있다. 수돗물로 공급받는 청도 운문댐 물이 하도 차서 데워 써야 한다는 것인데, 낙동강 물을 쓰는 달서구'북구'서구 사람들로서는 마냥 부럽기만한 소리다. 심지어 수성구에 낙동강 물이 공급됐더라면 취수원 문제는 진작 해결됐으리라고 보는 이조차 있다. 대구지역 리더들이 많이 사는 수성구 사람들에게 취수원 이전 문제는 관심 밖 사안이었고, 다선 국회의원이 많은 수성구'동구의 정치권도 사실상 힘을 보태지 않았다.정권이 바뀐 이후 국무총리가 뒤늦게 나섰다. 대구 시민들은 이제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지난달에는 총리 주재로 대구시와 구미시가 모여 대책을 논의하자는 제안까지 나왔지만 열리지도 못했다. 회동 무산의 원인을 놓고 구미시와 경상북도가 거절했다는 설에서부터, 취수원 갈등의 폭발력을 간파한 총리실이 알아서 미뤘다는 설이 엇갈리는 등 진실 게임마저 펼쳐졌다.필자 혼자만의 상상인지 몰라도 이낙연 총리는 이 문제에 괜히 끼어들었나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광역수계 관리는 엄연한 국가사무, 즉 정부의 일이다. 지자체 갈등을 이유로 정부가 뒷짐질 사안은 결코 아니다.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대구시도 노력을 다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절박한 만큼 더 주도면밀하게 사업을 추진했어야 했다. 구미 사람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보듬고 취수원 이전에 따른 충분한 보상 방안도 이제 내놔야 한다.구미시도 구미산단에서 나오는 유해 화학물질이 대구 시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최근 남유진 구미시장이 차기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가 도백(道伯)을 꿈꾼다면 취수원 문제 해결을 선거 공약에 반드시 넣으라고 주문하고 싶다. 도지사 출마를 저울질하는 다른 주자들도 마찬가지다. 취수원 이전 문제를 두고 대구와 구미 두 지자체가 보여준 반목과 불신은 유감스럽게도 농부들의 물꼬 다툼 모습과 겹친다. 물 한 사발에도 인심을 듬뿍 담아 나그네에게 대접한 우리 조상들의 넉넉한 인심이 그립다.

2017-10-10 00:05:01

[세풍] 권 시장의 리더십

역대 대구시장 가운데 대중친화력만 놓고 보면 권영진 시장이 단연 독보적일 것이다. 대중 앞에 서면 눈빛과 자세부터 달라지는 모습에서 과연 '정치인이 다르긴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 만큼 권 시장은 시민이 많이 모이는 축제장에 가는 걸 아주 좋아하고 즐기는 것 같다.이달 초 대구삼성창조캠퍼스에서 열린 보자기 축제장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이날 가위바위보 대회가 열렸는데, 300명의 참가자 중 마지막에 세 명이 남아 권 시장과 겨루게 됐다. 권 시장은 이들과 등을 맞대고는 하늘 높이 손을 들어 계속 바위만 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시장님! 이제 다른 걸 내시죠"라는 사회자 말에 속아 가위를 냈다가 탈락했고, 둘은 계속 보를 내 권 시장을 이겼다. 권 시장은 우승자를 가린 후 마이크를 잡고는 "두 분이 시장인 저를 끝까지 믿어줘 너무나 고맙다"는 말로 좌중을 즐겁게 했다. 권 시장은 축제장에서 어떤 행동과 말을 해야 시민들이 좋아할지 훤히 꿰뚫어보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권 시장과 얘기를 나눠보면 그리 달변이 아님을 알게 된다. 대구 현안에 대해 설명은 곧잘 하지만, 논리적이거나 설득력이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서울말과 안동 사투리가 섞여 그다지 듣기 좋은 목소리도 아니다. 마주앉으면 어중간한 말솜씨이지만,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확연히 달라진다. 세련되고 논리적인 말투로 바뀌고, 친근하고 다정한 멘트도 잘 날린다.대중 앞에 나서거나 악수하길 좋아하고 즉석연설도 은근히 즐기는 걸 보면 과거 시장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권 시장을 두고 '축제 시장' '행사 시장'이라고 비아냥댄다. 사무실보다는 행사장을 선호하고, '치맥축제' '컬러풀 페스티벌' 같은 축제에서 시민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신세대 시장'에게는 적이 많은 것 같다.권 시장은 공무원 일색의 역대 시장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취임 초부터 대구를 개방적이고 실용적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기대를 모은 만큼 바뀐 것이 제법 있다. 대구시청 분위기도 과거에 비해 좀 달라졌다. 시장이 아무리 대화와 소통을 하려고 해도 공무원 속성상 쉽게 바뀌지는 않지만, 적어도 시장실 주변에서 버럭버럭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지르는 풍경은 사라졌다. 권 시장이 대구시 전체를 개방적이고 혁신적으로 이끌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시청 주변에는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그럼에도, 권 시장은 업무 능력과 성과 면에서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과도한 비판과 억측이 있기는 하지만, 시장 스스로 뚜렷한 업적이나 공적을 내세우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재임 3년여 동안 전기자동차, 로봇 등의 소소한 성과는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통합대구공항 이전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권 시장에게 신공항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대구의 모든 현안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나 마찬가지다.모든 문제는 권 시장의 리더십에 기인하는 것 같다. 시장 본인은 의욕적이고 열성적이지만, 주위에 추진 동력이 거의 없어 힘을 모으지 못한다. 대구에서 오래 살지 않아 지원'지지 세력이 없는데다 일부에서는 '서울로 돌아갈 사람'이라며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않는다. 축제'행사장을 열심히 쫓아다닌다고, 금방 우군이 생기지 않는다. 시장 본인의 전술'전략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시장 반대파나 비판론자들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권 시장 측은 초선 시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리더십 문제는 4년이 지나면 우군이 대거 생겨나기 때문에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는 것이다. 맞는 말인지 모른다. 대구 사람들이 시장 개인의 시행착오까지 기다려 줄 만한 여유가 있을 지가 관건이다. 내년 대구시장에 나서려는 분이 여럿 있지만. 두드러지는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권 시장의 리더십이 의심받고 있으면 미래가 걱정스럽다.

2017-09-26 00:05:00

[세풍] 표트르의 훈수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EEF) 기조연설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다. 북한이 화성-12형 탄도미사일을 쏘고 6차 핵실험을 한지 며칠 뒤다. 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 해결에 러시아의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내가 더 잘 안다"는 푸틴의 따가운 훈수만 들었다.동해로 열린 러시아의 극동 항구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의 이름은 '표트르 대제'만(灣)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러시아의 서쪽 끝,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같은 이름이다. 표트르 1세, 표트르 대제로 불리는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로마노프에서 나온 지명이다. 동해에만 시선이 고정된 우리에게 낯설다 못해 이질적인 이름이다. 그럼에도, 눈여겨봐야 할 것은 18세기 러시아의 운명을 뒤바꾼 표트르라는 인물이 들려주는 훈수 때문이다.러시아 역사는 표트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유럽 변방이었던 러시아 역사에서 개혁 군주 표트르의 등장은 러시아의 고대와 근대를 가르는 분수령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1725년 표트르가 죽자 모든 러시아 국민이 기뻐했다. 외골수에 무자비한 폭군 치하에서 벗어나서다. 표트르는 외동아들 알렉세이 황태자마저 반역죄로 몰아 처형할 만큼 잔혹한 군주였다.핀란드만 어귀의 새 수도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의 도시'라는 뜻이다.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낙후한 러시아를 바꾸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표트르는 새 수도 건설에 동원돼 혹사당하다 죽은 농노 12만 명을 네바강 늪에 던져 넣었다. 101개 섬에 500개의 다리가 놓인 아름다운 물의 도시가 간직한 어두운 역사다.표트르 통치 시기 국민들은 그가 벌인 일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군주로만 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를 개혁하고 근대화를 앞당긴 인물이다. 서유럽의 앞선 조선 기술을 배우려고 암스테르담 조선소에서 열 달간 일할 정도로 개화에 온몸을 던진 군주였다. 바다만이 살길이라고 본 그는 패권국 스웨덴을 억누르고 발트해로 나아갔다. 이런 공적에도 폭정의 그늘은 짙었다. 하지만 역사는 '대제' 칭호를 붙여주었고, 러시아 서쪽과 동쪽 양끝에 그의 이름을 남겼다.한반도 주변 정세가 어지럽다. 북한 6차 핵실험은 대한민국 안위에 대못을 박았다. 지난 20년간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외치며 방치한 결과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침을 튀기며 여전히 내부의 전쟁에 빠져 있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은 국가 안보와 국민 생존이 아니라 정략적 이해다. 대한민국 처지가 꽁지 말아 넣은 개처럼 어쭙잖은 데도 정치는 허황한 입씨름에 여념이 없다.그 사이 고위 공직자 7명이 인사 청문 문턱에서 낙마했다. 야당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또 "우리 당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며 기고만장했다. 그럴수록 청와대와 여당은 안보 문제 등 현안마다 갈피를 못 잡고 오락가락했다. 이런 정부와 지도자를 지켜보는 국민이 느끼는 것은 처절한 낭패감이다. 위태로운 국가 운명 앞에 유연한 전략적 사고도, 배짱도 없이 외고집만 부리고 있어서다.쓸만한 패도 없고 거의 곤마 상태에서 대통령이 전술핵 반입에 고개를 가로젓고는 "북한을 재기 불능으로 만들 힘이 있다"고 말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아무리 "이러면 대화가 불가능"을 외쳐도 돌아오는 건 "가진 것도 없는 것들"이라는 냉소뿐이다. 동맹의 신뢰는 비끌어졌고, 중국'러시아의 협박과 냉대는 갈수록 노골적이다.대한민국은 수백만 명의 뼈 위에 세워진 나라다. 그래서 더는 전쟁의 참화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지도자들이 입으로만 평화를 외치거나 대중 영합만으로는 역사를 바로 세울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강한 나라는 결사의 의지와 원대한 목표, 주도면밀함에서 나온다고 역사는 가르친다. 이는 표트르의 훈수이기도 하다.

2017-09-19 00:05:01

[세풍] 평화도 총구<銃口> 에서 나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사드 배치를 결행한 그 용단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을 표합니다. 하지만 배치 완료까지 426일간의 찬반 논란으로 엄청난 국민적 에너지를 낭비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된 데는 집권 전부터 사드 배치에 반대하거나 미온적이었던 대통령님의 책임이 큽니다. 다시는 이런 '안보 자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그러나 그럴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북핵에 맞설 가장 현실적인 안으로 떠오른 '전술핵' 도입 주장에 청와대가 보이는 거부 반응은 '사드 사태' 재발의 전주곡처럼 들립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안보 상황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습니다. 전략핵이든 전술핵이든 핵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핵은 핵으로만 맞설 수 있는 '절대무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님의 참모와 여당은 "전술핵을 배치하면 북핵을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다"는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북핵은 기정사실인데도 말입니다.대통령님은 어떻게 할 겁니까? 또 사드 논란을 촉발한 그 평화주의적 신념에 따라 반대할 겁니까? 대통령님의 평화주의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그 신념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 신념만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레온 트로츠키의 말은 정곡을 찌른 것이었습니다.잠시 마하트마 간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호주 출신의 정치학자 존 킨은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에서 간디의 비극적 죽음이 독립 인도의 건국에 역설적이지만 다행이었다고 했습니다. 인도의 두 거인(巨人) 네루와 간디의 정치철학 때문입니다. 간디는 독립 인도가 입법'행정'사법권을 모두 갖는 소규모의 자치적 '마을 공화국'이 상호 연결된 형태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간디는 성문헌법, 의회, 정당, 주기적 선거 등 의회 민주주의 제도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네루는 의회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헌정 국가를 꿈꿨습니다. 간디가 죽지 않았다면 국가 형태를 두고 네루와의 갈등은 불가피했고 인도의 국가 건설은 표류했을지 모른다는 얘기입니다.기자는 간디의 죽음이 인도에 다행인 이유는 또 있다고 봅니다. 간디의 무조건적 비폭력 평화주의가 가져올 파멸적 결과의 가능성입니다. 간디는 2차 대전 중 독일 유태인을 향해 "도살자의 칼에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절벽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세계와 독일의 민중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태인은 '도덕적 승리'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기자에겐 '개 풀 뜯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막스 베버가 살아서 간디의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정치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있는 한 언명(言明)이 그 실마리가 될 듯합니다. "(정치인의 행위와 관련해 볼 때) 선한 것이 선한 것을 낳고, 악한 것이 악한 것을 낳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실로 정치적 유아에 불과하다." 정치적 선의가 정치적 결과의 좋음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정치인이 견지해야 할 덕목으로 베버가 제시한 것이 신념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한 성찰 즉 '책임의 윤리'입니다.대통령님도 당신의 신념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전쟁 불가(不可)의 신념이 무조건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북핵의 인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평화는 평화를 강제할 수단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것이 없는 평화는 오직 적이 선의를 베풀었을 때만 가능한 '위장 평화'일 뿐입니다.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만 어찌 권력만 총구에서 나오겠습니까. 평화도 총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2017-09-12 00:05:04

[세풍] 대구은행 돈 1만500원

100년 전인 1917년 12월, 대구와 경북이 들썩했다. '대구은행 돈 1만500여원 군자금 사건' 때문이었다.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던지 일제 경찰은 뒷날 '제1 경북 중대 사건'이라고 불렀다.(당시 '군자금'은 1만400~1만9천여원까지 다양하나 필자는 1만500원으로 보고 오늘날 한국은행의 기준에 따라 계산한 결과 1억3천115만여원으로 추정됐다) 과연 100년 전, 대구은행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대구은행은 1913년 대구의 민족자금으로 설립됐다. 1912년 창립된 선남은행과 함께 대구에 본점을 둔 지방은행이다. 두 은행을 비롯,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인 설립 은행이 허락된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을 일본 식민지 시장경제로 편입시켜 상품을 팔아먹는 시장으로 예속하고 한국 자산가의 친일 세력화, 특히 한국인 돈을 은행에 묶어 독립운동가 지원이나 군자금으로 쓰이는 것을 막는 등 침탈 목적이 컸다.그런데 범인은 21세의 출납계 이종암(李鍾岩) 주임이었다. 그는 1914년 입사, 이듬해 결혼한 신혼의 젊은이였다. 특히 그의 고모부(정재학)가 대구은행장이어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한마디로 말하자면 장래가 촉망되는 행원이었다. 당시 좋은 일자리는 대부분 일본인 차지여서 한국인으로서는 더욱 구하기 힘든 은행원이었다.당시는 작가 이광수가 공개적으로 일제 총독에게 한국 젊은이가 '할 일이 없어' 독립운동과 같은 '전율할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일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촉구할 만큼 일자리가 없었다. 은행 등은 '사무가 고상하고 복잡하여 한국인을 사용하기 어려워 당국에서도 당분간 일본인을 주로 쓰는 자리'라 할 정도였으니 이종암 사건은 충격이었다. 그러잖아도 한 달 전에는 내로라하는 부자인 칠곡의 장승원 전 경북도관찰사가 독립군자금 문제로 암살된 뒤라서 일제는 범인 검거에 더욱 혈안이었다.그러나 종적을 감춘 그는 1918년 중국으로 망명, 은행 돈을 군자금으로 썼다. 그는 '빼돌린 돈'을 특히 1919년 중국에서 결성된 무장투쟁 결사인 의열단(義烈團) 창설에 보탰고 그의 독립 활동은 일제의 은행 설립 허가 속셈을 보기 좋게 찌른 의거(義擧)였다. 창단 단원 13명인 의열단 부단장으로 숱한 투쟁 중 1925년 대구에서 붙잡혀 1927년 징역 13년 형 선고와 감옥살이, 1930년 35세로 순국한 그에게 대구은행 돈은 독립자금의 마중물이었다.그러나 대구은행은 뛰어난 영업 실적과 경영에도 1928년 여러 면에서 못한 부산의 경남은행과 합병되고 다시 1941년 서울의 한성은행에 흡수되면서 사라졌다. 대구은행이 총독부에 의해 흡수'합병된 운명과 역사에서 사라진 배경이 경제 외적인 탓이라는 학계 연구 결론을 보면 이종암의 '대구은행 돈의 군자금화'가 원인이 아니었을까.이런 대구은행이 1967년 부활했다. 일제 때처럼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뜻에 의해서다. 그리고 '대구의 돈은 대구은행으로'라는 향토색 짙은 구호와 김준성이라는 초대 행장의 뛰어난 역할과 지역민들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1997년 외환 위기의 어려움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는 대구경북에서 대구은행의 탄탄한 기반이 말해준다.하지만 최근 대구를 떠들썩하게 한 대구은행 여직원 성추행 사건, 특히 자리를 둘러싼 잡음 같은 일들을 보면 어이가 없어 절로 한숨이다. 물론 현 대구은행과 100년 전 대구를 들썩인 이종암의 대구은행은 역사적으로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그래서 굳이 100년 전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일조차 마땅하지 않고 억지처럼 여길 수 있다.그럼에도 굳이 100년 전 대구은행의 한 젊은 행원의 의거를 떠올린 것은 지역민들의 돈을 비록 당시는 몰래 빼돌렸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오로지 나라를 되찾는 의로운 독립자금으로 쓰고 활동했음에도 뒷날 대구의 은행 종사자들이 잘 모르고 무관심한 사실이 그저 안타까워서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쏟을 여력으로 차라리 그를 기리는 작은 동상이나 기념비라도 세울 생각이었으면 이번 같은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17-09-05 00:05:03

[세풍] 대구은행의 진짜 주인은?

손해가 뻔한데 주식 투자할 바보는 없다. 그런데 1998년 이런 상식이 깨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해 단행된 대구은행의 유상증자였다. 외환위기 직후 대구은행은 존폐 기로에 놓여 있었고 주가도 1천~2천원 수준으로 바닥을 기었다. 자본금 확충이 절실했던 대구은행은 1천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시장에서 헐값에 살 수 있는 주식을 5천원 가격에 청약하는 내용이었으니 성공할 수 없는 시도였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구경북민들이 너도나도 주머니를 열어 증자에 참여한 것이다. '대구은행 주식갖기' 운동이 펼쳐졌고 청약 금액은 1천억원을 넘겼다. 당시 유상증자에 실패했다면 대구은행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대구은행은 대구경북사람들에게 '향토기업' 이상의 의미를 지닌 기업이다. 그런데 요즘 대구은행을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대구은행을 둘러싸고 실망스러운 일들이 잇따라 터져 나와서다. 직원들의 성추행 파문으로 은행장이 사과하는 일이 벌어진 데 이어, 이번에는 속칭 '상품권 깡'을 통한 비자금 조성 논란까지 빚어졌다. 경찰이 공식 수사에 나서지 않았기에 사실 여부를 예단할 수는 없다. 경찰로서도 내부 투서만으로 대구은행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 등 본격 수사에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매머드급 악재 속에서 은행 안팎에서는 온갖 말들이 흘러나오고 조직도 크게 동요하고 있다. 투서와 제보가 사정기관 및 언론으로 지속적으로 새어나오는 것과 관련해 안팎에서는 차기 은행장 자리를 노린 알력설마저 나돌고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이 같은 루머들이 정권 교체기 친박(親朴) 금융인들에 대한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는 틈을 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도 사퇴는 없다며 박인규 은행장은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해 놓은 상태이지만 그의 머릿속은 아주 복잡할 것만 같다.1992년 은행장과 전무이사 간의 알력 여파로 시중은행 임원 출신 인사가 은행장으로 영입된 것만 제외하면 대구은행은 내부에서 은행장을 배출해 왔다. 은행장이 임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용퇴함으로써 관치금융 외부인사가 날아드는 것을 차단해 온 것이다. 합리적 의사 결정에 의해 은행장 자리가 양위(讓位) 돼온 것으로 외부에 알려졌지만 속사정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대구은행에서는 임원이 되거나, 나아가 은행장이 되려면 강력한 '빽'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은행장 또는 유력 임원에게는 정권 실세 또는 유력 정치인과의 친분설이 자의든 타의든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박 행장이 선임됐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없지 않았다. 하기야 퇴직 후 자회사로 떠난 임원이 대구은행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것은 그가 유일무이해서인 듯하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당시 은행에서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대구은행이 이처럼 흔들리고 시민 불신을 받는 책임은 당연히 은행장에게 있다. 대구은행의 최고경영자인 박 행장은 조직이 정치인 줄대기와 파벌 만들기, 자기 사람 심기 등으로 병들고 있다는 안팎의 지적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한다. 만약 차기 은행장 자리를 노린 알력설이 이번 루머의 진원지라면 좌시해서 안 될 일이다. 오죽했으면 은행장 내부 승진 전통을 깨더라도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을 은행장으로 영입해 탕평 인사를 하고 조직을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외부에서 나오고 있겠는가.대구은행은 대구경북민들의 손에 의해 1967년 태어났고 지역민들의 열렬한 지원 속에 성장했다. 지배주주가 없다 뿐이지 대구은행에 주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구은행의 주인은 대구경북사람들이다. 대구은행을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고 착각해 사심 챙기는 이가 득세한다면 대구은행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1998년 외환위기 같은 외부적 위협으로부터 대구경북민들은 대구은행을 지켜냈다. 하지만, 만일 내부적 요인으로 대구은행이 위기에 처한다면 구해줄 이는 없다.

2017-08-29 00:05:03

[세풍] 자유한국당이 살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말 대단한 분이야."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분이야."젊은이들에게 자칫 돌 맞을 말을 내뱉다니 제 정신인가 하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얼핏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분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보 측이나 친문(친문재인) 인사에게서 들은 얘기라고 하면 놀랍지 않은가.이분들이 생각하는 박 전 대통령의 '공적 아닌 공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제1당인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을 끌고 '정치적 무덤'에 함께 들어가 버렸다. 둘째, 보수를 자임하거나 내세우기가 부끄러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당연히 진보 쪽만 힘쓰는 세상이 됐다. 셋째, 문재인 대통령이 최순실 같은 측근을 만들지 않는 한 아무리 실수하고 잘못해도, 박 전 대통령 자신만큼 잘못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이분들의 얘기로는 보수 세력을 그렇게 공격하고 두들겨도 효과가 없더니만, 박 전 대통령 한 사람의 힘으로 보수 세력을 완벽하고도 확실하게 몰락시켰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야말로 진정으로 정치를 발전시키고 전진시킨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너무나 배배 꼬인 역설적인 표현이기에 유쾌하게 받아들이기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틀리거나 잘못된 이야기는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보수 쪽에서는 '우리를 망쳤다'며 욕을 먹고, 진보 쪽에서는 '우리를 살렸다'며 칭송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든 것은 분명하다. 본인이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 버렸으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박 전 대통령은 서서히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겠지만, 남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보수 세력은 어떻게 생존할지 걱정스럽다. 한국당은 탄핵 정국 때 소멸될 듯하더니만,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힘겹게 살아남았다. 수도권과 다른 지역에서는 '폭망'(폭삭 망함) 상태로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꼴이지만, 그래도 대구경북에서는 가장 큰 정치 세력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에 줄 서는 인사들이 많은 걸 보면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기반을 갖고 있는 것 같다.한국당이 요즘 대구경북에서 이런저런 이벤트나 행사를 자주 벌인다. 전국 최초니 처음이니 하면서 대구를 한껏 치켜세우고 대우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어쩐지 어색하다. 홍준표 대표의 취향이라고 하나, 한국당이 다른 지역에 가 봤자 외면받을 것이 분명한데, 대구경북에서는 그런대로 행세할 수 있으니 그럭저럭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솔직히 지역민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고, 불쾌하고 찜찜한 마음이 앞선다. 한국당이 자신을 확 바꾸고 고치고 난 다음에 지역민에게 다가서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다. 당명만 달리한 채 예전 그대로의 모습과 자세로 지역민을 대하는 것은 지역민의 순수성을 이용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당이 무엇을 하든 간에 지역민이 계속 지지해 줄 것으로 믿는 것은 엄청난 오해다. 전국적으로 외면받는 정치 세력을 대구경북만 여전히 보듬어 줄 것으로 착각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지역민은 더는 선량한 '천사'나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한국당이 뼈를 깎는 각오로 전면적인 혁신에 나서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경북의 지지도 떨어져 나갈 것이다.한국당은 자신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인데도 태만하고 나태하기 이를 데 없다. 개혁의 시금석인 박 전 대통령 제명 건을 처리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얼마 전 혁신위원회가 내년 지방선거에 상향식 공천을 하지 않고 '전략 공천' '낙하산 공천'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홍준표 대표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말과 같으니 도대체 '혁신'이라는 개념조차 모르는 것 같다. '혁신'이니 '개혁'이니 하는 말은 한국당과 거리가 먼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한국당은 조만간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2017-08-22 00:05:00

[세풍] 우리 머릿속의 광복

미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은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그는 러'일 전쟁을 종결하는 중재안을 내고 포츠머스 조약을 성사시킨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독일과 프랑스의 '모로코 위기' 해결 노력도 있다. 하지만 루스벨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이 중재안의 꺼풀을 들쳐보면 추잡한 미'일 간 외교 교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루스벨트는 '약한 나라는 망하고 강한 나라가 살아남는다'고 믿은 인물이다. 또 그는 외교 문제에서 최선의 방법은 "부드러운 말과 큰 막대기"라고 늘 강조했다. 이는 어르고 달래다 안 되면 몽둥이가 약이라는 뜻이다. 당시 미국과 유럽 언론은 이를 '큰 몽둥이 정책'(Big Stick Policy)이라고 비꼬았다.루스벨트는 러시아보다 일본에 더 호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국력과 국체의 우열에 관한 비뚤어진 소신과 개인적 성향은 일본과 밀착해 미국의 이익을 챙기는 외교적 수완으로 나타났다. 1905년 7월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이익과 조선'만주에 대한 일본의 우위를 인정하는 밀약을 맺은 것이다. 훗날 큰 논란이 된 태프트-가쓰라(桂) 비밀 각서다. 미국 정'관계 거물로 구성된 아시아 사절단의 극동 순방 때 도쿄에서 일본과 마주 앉은 태프트는 부드러운 말과 미소로 각서 문구를 다듬었을는지도 모른다.필리핀 초대 총독을 지낸 윌리엄 태프트는 당시 육군 장관으로 루스벨트의 최측근이자 친구였다. 그해 9월 루스벨트의 망나니 딸 앨리스와 함께 대한제국을 찾은 태프트는 각서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고종의 극진한 대접만 받고는 조선을 떠났다. 각서 내용은 1924년까지 극비에 부쳤다. 약소국을 압제와 수탈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미국 이익을 챙기기에 바빴던 루스벨트에게 결국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는 분칠과 함께 노벨상이라는 덤까지 얹어준 것이다. 1908년 루스벨트는 일본인 이민 문제로 불편해진 미'일 관계를 의식해 루트-다카히라(高平) 조약(태평양 지역에서의 미'일 교환공문)을 맺고 조선'만주에서 일본의 우위를 재확인했다.미국 이익을 우선하는 미국 정부의 이런 외교 기조는 '애치슨 라인'에서도 잘 드러난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1월 '애치슨 라인'을 선언하고 아시아 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 인도차이나 반도를 뺐다. 전략적 가치가 없다며 한국에 등을 돌린 순간 6'25라는 비극이 들이닥쳤다.다시 광복절이다. '적폐 청산'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안팎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연일 핵과 미사일 카드를 흔들어대는 북한과 사드 협박에 열을 올리는 중국, 종잡기 힘든 트럼프 대통령의 과격한 '말폭탄'이 쉴새 없이 우리 머리 위로 오간다. 잔 펀치와 말 돌리기에 능한 북한과 중국을 향해 미국 정치권도 선제공격과 무역전쟁, 대화를 제각각 주문하며 뒤엉켰다. 국내 주식시장이 며칠째 곤두박질 치고 환율은 치솟았다. 8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으나 우리 정부의 반응은 조용하다. 절묘한 해법을 찾아서가 아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상황을 관리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전자파라는 뿌리를 타고 마냥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일제 침략과 압제의 먹구름이 걷혔다는 '광복'(光復)의 날이 이리 어수선한 것은 불안한 국제 정세 탓만은 아닐 것이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전히 국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우리 정치와 국태민안보다 탐욕과 세력 다툼이 더 넘쳐나는 게 근본 이유다. 지금 우리의 눈과 귀가 쏠려야 할 곳은 화염이나 분노 같은 감정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냉정함과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다.급부상한 일본의 해군력은 루스벨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밀약이 나왔고 조선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힘이 없다면 눈이라도 밝아야 한다. 우리가 계속 편견에 사로잡혀 바깥세상을 바로 보지 못한다면 광복은 영원히 불안한 명제다.

2017-08-15 00:05:05

[세풍] 5년 뒤 홍수가 나든 말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민주주의를 혐오했다. 그들이 누군가를 비난할 때 쓴 단어가 '민주주의' '민주주의자'였다. 그들은 왕이 통치하지 않는 '공화주의'를 추구했다. 하지만 이는 대중이 직접 통치자를 뽑는다는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그들이 건설하고자 한 것은 공평무사하게 판단할 학식과 능력을 갖춘 '고매한 신사들의 통치'였다.그들이 민주주의를 배격한 이유는 대중이 너무나 무지해서 자기들에게 이로운 것을 추구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다수의 이익과 다중의 혼돈이 소수의 좀 더 높은 차원의 생각을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체제였다. 이런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 미국 제4대 대통령으로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의 말이다. "민주주의는…국민의 시야를 좁혀버리며, 따라서 국가적인 거대한 목적을 이해하고 추구할 능력이 없는 지도자와 시민을 생산한다."('민주주의의 삶과 죽음', 존 킨)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엘리트주의자의 망발이겠지만. 대중민주주의가 품고 있는 '무책임의 정치'를 간파한 혜안임은 부정할 수 없다. 대중민주주의에서 대중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설사 그것이 국가를 파탄 낼 독(毒)이어도 마땅히 따라야 할 '국민의 뜻'으로 둔갑한다. 이런 무책임의 정치는 현 세대를 위해 미래 세대를 희생시키는 '미래 착취'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문재인정부가 쏟아내는 각종 정책은 이를 기반으로 한다.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앞으로 5년 내에 전기요금은 올리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10년, 20년, 30년 뒤가 아니라 '5년'이다. 현재 전력 수급 사정을 보면 그렇게 해도 된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발전소 건설에 투자를 늘린 덕분이다. 그래서 5년만 살고 말 거라면 필자 같은 무지렁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문 대통령의 '탈(脫)원전' 구상이 실천되면 발전 설비는 15%나 감소한다. 전기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이에 대한 문정부의 반박은 두 가지다. 경제성장 둔화로 전력 수요가 준다는 게 그 첫 번째다. 예측이 다 그러하듯 경제 예측도 맞는 경우보다 틀리는 경우가 더 많다. 철학자 칼 포퍼가 말했던 "미래를 알려면 미래의 지식을 알아야 하는데 설령 그것을 안다 해도 그때 지식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지식이 되어버리는" 인간 지식의 한계 때문이다. 그래서 예측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정부의 예측은 매우 위험하다.두 번째는 감소하는 전력 설비를 메울 신재생에너지 단가가 2022년 이후부터 하락한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전혀 없다. 재미 있는 것은 2022년은 문정부 임기 마지막 해라는 점이다. 신재생에너지 값이 문정부가 원하는 대로 임기 종료와 함께 알아서 떨어지게 돼 있는 모양이다.공무원 17만4천 명을 더 뽑는 계획도 마찬가지다. 문정부는 그 비용은 앞으로 5년간 21조원이면 된다고 했다. 역시 중요한 것은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뒤가 아니라 5년이다. 비용도 어떤 셈법인지 21조원→16조원→8조원으로 계속 낮췄다. 진실은 5년간 21조원(아니면 16조원이든 8조원이든)이 아니라 30년간 231조3천억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공식 발표다. 이 돈을 대느라 우리 후손은 허리가 휠 것이다.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장기 소액 연체자의 원금 100% 탕감 등도 그렇다. 더없이 따뜻하고 인간적인 정책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영세 자영업자의 몰락 가능성, 고용 안정이 아니라 고용 축소, 탕감을 기다리면서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도덕적 해이라는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다. 모두 미래에 큰 짐을 지우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완 대책은 문정부에 없다. 프랑스 왕 루이 15세는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에 "다음에는 태자(루이 16세)가 잘해주겠지. 나 죽은 다음에 홍수가 나든 말든 알 바 아니지"라고 했다. 문정부의 행태가 딱 그 꼴이다.

2017-08-08 00:05:01

[세풍 世風] 홍익(弘益) 조세

세금 이야기가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국정 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 과제를 발표하면서다. 이는 앞으로 5년 동안 추진할 국정의 밑그림인 셈이다. 재원을 두고 세금 문제는 자연스럽다.100대 과제가 잘 이뤄지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정부에 따르면 178조원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재원 마련을 위한 방안의 하나가 5억원 이상 높은 소득을 올리는 고소득자 4만 명과 과세표준 2천억원 이상 대기업 116개 사를 대상으로 한 세금 거두기이다.문제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에게 세금을 거두더라도 연간 3조7천800억원, 5년간 18조9천억원에 그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세금 거두기와 추가 재원 마련에 대한 방법을 두고 여야의 입장이 엇갈린다. 우선 이름 붙이기부터 그렇다. 여당은 '명예 과세'존경 과세'사랑 과세'라고 표현했다. 야당은 '세금폭탄'이라고 일축했다. 또 추가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여당은 이런 세금과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 감축 등을 거론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결국에는 전반적인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여야의 세금 논쟁은 조선 세종 시절의 세금 논쟁과 닮은꼴이다. 1418년 8월, 임금이 된 세종은 즉위 때부터 새로운 세금 제도 마련에 매달렸다. '백성을 위한 공평 과세'를 위해서였다. 당시 조세는 논밭에 쌀과 콩으로 수입의 10분의 1을 거두었다. 고려 때 물려받은 제도다. 그런데 힘과 권력을 가진 관리 등은 농간을 부렸고 논밭을 숨기거나 줄이고 빠뜨렸다. 조사관에게 뇌물을 주거나 짜고 세금을 내지 않거나 줄였다.애꿎은 백성들만 고스란히 부담을 안았다. 소수의 가진 자와 힘 있는 관리, 중간 조사자의 농간을 없애고 토지의 좋고 나쁨과 한 해 농사의 풍작과 흉작 여부를 따져 매겨진 토지의 등급에 정해진 일정량의 세금을 내는 공법(貢法)이란 조세법 마련을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된 배경이다. 1418년 공법에 뜻을 품은 뒤 1427년 과거시험 출제, 1428년 조정의 공식 논의로 이어졌다. 예상대로 관리 등은 벌떼로 반대했다.왕과 반대하는 신하들 간의 수없는 '밀당'이 반복됐다. 1440년 3월 공법 도입을 두고 당시 69만2천477명의 백성 가운데 17만2천806명을 대상으로 5개월간 찬반 여론조사도 이뤄졌다. 결과는 찬성 9만8천657명, 반대 7만4천149명이었으나 공법 도입은 불발됐고 1444년 11월 마침내 도입이 결정됐다. 뜻을 세운 지 26년, 임금 재직 32년 가운데 26년을 보냈다. 결과는 탈루 방지와 공평 과세, 고른 과세로 재정이 넉넉해졌고 세율도 20분의 1로 절반이 됐다. 마침내 1460년 세조 때 경국대전에 실렸고 조선 패망 때까지 이어졌다.이런 세종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여당에서 추진하는 고소득 과세는 많은 국민이 환영하고 있다. 굳이 찬성이 85%라는 여론조사(추미애 민주당 대표 발언)를 앞세우지 않아도 그렇다. 이는 고소득에 걸맞은 공평 과세에 대한 국민적 바람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빈부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를 부채질하는 구조적인 문제와 과세 정책의 허점으로 빚어진 결과이다.지금 여야가 할 일은 한가롭게 이름을 둘러싼 따지기가 아니다. 정치 주도권을 위한 정략적인 정쟁을 할 때도 아니다. 공평 과세를 통한 과세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 마련에 고민하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이는 널리 국민을 이롭게 하는, 말하자면 '홍익(弘益) 조세'를 위해서라도 그렇다.아울러 여당에서도 세금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일만도 아닌 듯하다. 시간을 갖고 국민적 합의라는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현재와 같은 4당 체제하에서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원전정책을 비롯한 여러 정책들이 벌써부터 국민 갈등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비록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인 높은 지지는 이어지고 있지만. 야당을 끌어들이는 설득 작업이 더욱 필요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홍익 조세를 위해서라도.

2017-08-01 00:05:01

[세풍] 홍준표의 대구 정치

정치인에게 지역적 지지 기반은 요긴한 자산이다. 계파까지 거느리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한국 정치사를 쥐락펴락한 거물 정치인은 이 둘을 다 갖고 있었다. 대한민국 제1야당을 이끌고 있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그런 점에서 이례적인 정치인이다. 4선 국회의원과 경상남도 도지사 재선, 대통령 후보, 두 번의 당 대표 등 화려한 정치 이력을 쌓아왔지만 지금까지는 지역적 지지 기반이 명확하지 않았고 계파에 의존하지도 않았다.그는 검사 시절부터 아웃사이더로 유명했다. "자존심 하나로 사는데 아바타 정치는 안 한다." 그는 정치도 자수성가형으로 했다. 계파를 만들기보다는 빠른 정치적 감각과 촉을 바탕으로 대중 정치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막말조차 정치에 활용했으며 '독고다이 홍' '홍그리버드' 등 그에게 붙여진 '쎈' 어감의 별명은 그 결과물이다.홍 대표는 대구에서 중'고교를 다녔지만 경남 창녕 출신인데다 경남도지사를 연임했기 때문에 PK(부산경남) 정치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최근 들어 TK(대구경북)에 정치적 뿌리를 내리겠다는 제스처를 잇따라 취하고 있다. 지난 2월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 "내가 TK 성골은 아니더라도 진골쯤은 된다"는 발언을 봐도 그렇고,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 출정식을 서문시장에서 연 것도 그렇다.지난달 28일 경산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는 한술 더 떠서 "마지막 정치 인생을 대구에서 마무리하고 싶다"고까지 했다. 이날 권영진 대구시장한테는 "시장님 똑똑히 들으라. 내년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말했다. 구구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대구로 주민등록을 옮기고 싶다는 뜻을 비치기도 했고 최근에는 대구 달서병 당협위원장을 맡겠다는 말도 했다.홍 대표가 서울 격전지를 피하고 대구에서 손쉽게 당선되기 위해 이 같은 발언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발언의 전후 맥락과 당 내부 사정을 종합해 볼 때 홍 대표의 대구 정치 발언은 자유한국당의 위기감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자리를 놓고 여당의 총공세가 예상되는데, '보수의 심장'인 대구를 빼앗길 경우 자유한국당의 미래가 괴멸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그는 우려하고 있는 듯하다.보수 야당의 대표가 대구에서 배수의 진을 치겠다는 전략인데, 이는 대구경북의 미래에 어떤 대차대조표를 그리게 될까. 직전 대통령 2명을 배출한 이후 거물 정치인 공백 상황을 맞은 대구경북으로서는 "정치적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보수 정당 대표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다.하지만 '홍준표=대구 정치인'이라는 각인은 득보다 실이 클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박근혜정부의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대구경북에 멍에처럼 드리워져 있는 마당에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구 정치인이라는 등식이 도로 덧칠되는 것을 환영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홍 대표의 대구행이 자유한국당을 'TK자민련'으로 고착시킬 위험마저 있다는 점도 영 마뜩잖다.자유한국당에 대한 국민 지지도라도 높다면 달리 고려할 수도 있으련만 지금의 자유한국당을 보면 마치 찌그러진 밥솥 같다. 설익은 밥, 탄 밥 투성이인데 서로 잘 익은 밥 먹겠다고 난리다. 존재감은 보이지 않는다. 각료 인선 청문회와 추가경정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여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신3당 공조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은 사실상 고립되고 말았다.지금의 자유한국당을 보면 상대방(정부 여당)의 자책골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국가대표팀을 연상케 한다. 그런 점에서 총선이 3년 가까이 남은 것은 차라리 저주에 가깝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비전과 실천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얻겠다는 고민을 할 시기이지, 대구경북으로 숨어들겠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보수 정당의 TK 안주(安住) 시나리오는 흥행 가능성이 희박한 졸작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대구경북을 위해서도 결코 좋은 그림이 아니다.

2017-07-25 00:05:01

[세풍] 권 시장의 인사 스타일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명언 가운데 하나다.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면 늘 인용되는, 유명한 격언이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몸은 빌릴 수 없다'는 명언도 남겼는데, 얼핏 리더로서의 자세와 건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처럼 들리지만, 인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머리를 빌리려면 사람을 잘 써야 하기 때문이다.재미있는 것은 YS만큼 인사의 중요성을 인식한 대통령도 드물었지만, 그만큼 인사에 실패한 대통령도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정부 출범과 함께 임명한 장관, 서울시장 등이 비리 전력으로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아 우수수 낙마했다. YS는 오랜 야당 생활로 신세를 갚아야 할 인물들이 너무 많았고, '보안'을 중시해 언론의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사는 아예 탈락시킨 것이 원인이었다. 거기다 차남 김현철 씨의 개입설도 끊이지 않았으니 잘되려야 잘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인사 실패로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으면 당시 유행어가 '인사가 망사(亡事)'였겠는가.한국의 중산층 형성 과정이 부동산, 탈세와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음을 감안할 때, 흠집 없는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 두 달을 넘기고도 조각을 끝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막상 누군가를 기용하려고 하면 흠집투성이고, 흠집 없는 인물은 매력이나 능력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YS처럼 '쓸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지 모른다.이렇게 YS를 언급한 이유는 인사 문제에 있어 권영진 대구시장과 비슷한 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권 시장은 인사에 관심이 많고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 못하는 점에서 YS를 빼닮았다. 주위에 들어보니 권 시장은 인사철이 되면 일주일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신경 쓴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권 시장 자신이 승진 대상자를 놓고 안팎에 전화를 걸어 두루 평판을 물어보고는 고심을 거듭한다는 점이다. 권 시장 자신만의 인물 평가 방법이어서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력만큼 성과가 신통치 않다는 것이 직원들의 대체적인 여론이다.권 시장이 5급 승진 대상자의 인사까지 챙기는 것도 직원들의 입방아에 올라 있다. 전임 시장들은 5급 대상자는 담당 국장에게 맡기고 과'국장만 챙겼는데, 권 시장은 정치인 출신이다 보니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거기다 권 시장 측근들의 인사 개입설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직원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올 1월 인사 때만 해도 '측근이 권 시장보다 힘이 세다'는 말이 나돌았고, 여러 공무원들이 그에게 줄을 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달 초 인사 때에는 측근을 둘러싼 소문이 거의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시청 주변의 소문을 의식해 미리 몸조심을 한 듯하다.공무원 사회에서는 인사철을 전후해 온갖 소문과 뒷말이 무성한 것이 보통이다. 인사권자가 아무리 신경을 쓰더라도,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50%만 만족해도 성공'이라는 말이 생겼다. 권 시장의 인사를 보면 만족보다는 불만족 비율이 훨씬 높은 것 같다. 직원들은 공정하고 적절한 인사가 되지 않고 있다고 여긴다.누군가 필자에게 이런 반론을 내놨다. '과거에도 인사철에는 시끄럽기는 마찬가지 아니었나?' 맞는 얘기다. 뒷말과 소문이 무성하지 않은 때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전임 시장들은 공무원 출신이어서 그런지 조용조용하고 비밀리에 인사를 했는데, 권 시장은 내놓고 시끌벅적하게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임 시장들은 말이 나오거나 로비를 하는 직원은 인사에서 아예 배제했는데, 현재는 '설치면 출세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이유로 과거보다 인사 후유증과 생채기가 훨씬 크다는 여론이 많다. 권 시장은 재임 3년간 눈에 띄는 확실한 공적이 없다. 그런데도 인사 때마다 이렇게 시끄러우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인사 스타일을 바꾸길 권한다.

2017-07-18 00:05:01

[세풍] 국민 '재생'해야 나라가 산다

2분기 삼성전자 실적이 놀랍다. 매출 60조원에 영업이익이 14조원이다. 하루 2천억원, 매주 1조원을 벌었다. 언론은 찬사 일색이다. 이 추세라면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50조원을 가뿐히 넘길 전망이다. 분기 실적이긴 하나 이 바닥에서 신화 그 자체인 애플도, 24년간 반도체 아성을 지켜온 인텔도 '슈퍼 삼성'에 체면을 구겼다.많은 경제 전문가와 신문은 삼성전자의 상종가를 반도체 호황에서 찾고 있다. 올해부터 세계 반도체 수요가 폭증한 '슈퍼 사이클'에 올라타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삼성은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전력투구했다. 화성 공장에 26조원을 쏟아부었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평택 고덕지구의 삼성 반도체 공장은 광활하다. 축구장 400개 크기(289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이다.그런데 이런 뉴스에도 대다수 국민은 공허하다. 초라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한쪽에서 엄청난 부를 창출해도 바로 옆은 쪽박 신세여서다. 곁불이라도 쬐면 몸이 따뜻해지는 게 이치인데도 말이다. '제조업 세계 1위 기업'이 주름잡는 나라에서 돈 구경하기가 더 어렵다. 삼성만 그런가. 지난해 상장기업 순익은 110조원에 육박한다. 기업마다 곳간에 현금이 그득하다. 순환출자제한 대상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무려 700조원이다. 게다가 지난해 국세 수입도 242조6천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전년보다 24조7천억원 증가했다. 기업과 정부는 잘 나가는데 경제 3대 주체 중 가계만 유독 냉골이다.삼성이 세계를 석권해도 일반 국민에게는 아무런 낙수효과가 없다. 그동안 19세기 자유주의자를 닮은 우파 정권들은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을 내세워 분배의 불만을 억눌렀다. 그들은 노동으로 번 돈을 투자하지 않고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소비하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그들 말대로 금욕하고 절제하면 모두가 잘살고 경제가 발전할까? 지난겨울, 온 국민이 촛불을 든 이유는 그 주장이 착각이고 엉터리이기 때문이다.대한민국 국민이 누군가. 근면으로 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럽고 '돈내기' 말만 나와도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도 손에는 푼돈이 고작이다. 소수 부유층을 빼면 대다수는 빚더미다. 가계부채는 1년 새 100조원가량 늘어 1천400조원이다. 금리가 들썩이자 '이자폭탄'에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는 판이다. 금리가 1%포인트 올라도 추가 이자가 9조원이니 왜 안 그러하겠나.가계가 이리 쪼그라든 데는 경제 활동의 성과물인 소득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총소득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7년 69.3%에서 2015년 62.0%로 떨어졌다. 이 와중에 '유리 지갑'이 낸 세금은 지난해 사상 처음 30조원을 넘어섰다. 1년 새 근로소득세가 14.6% 더 걷혔다. 정부는 명목임금 상승과 취업자 수 증가로 근소세가 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명백히 증세의 결과다. 쥐꼬리만한 월급에도 세금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지금 대한민국은 생계비 번다면 열 일 거부하지 않는 사회다. '아파트 로또'인 주택청약통장이 전체 인구 수만큼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취업 준비생 스펙은 찬란하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언저리의 아르바이트 자리와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노후 무대책인 노령인구는 해마다 팝콘처럼 불어나고 있다.문재인정부 발등에 떨어진 불들이다. 6'19 부동산 대책에 이어 세제 개편안과 가계부채 대책이 곧 나온다. 새 정부는 선거를 치르면서 '소득주도성장'으로 패러다임을 바꿔나가겠다고 했다. 가계소득을 늘려 성장 문제를 해결하고 불평등도 해소하겠다고 외쳤다. 이제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미국처럼 상위 1%의 부가 하위 20%가 가진 것의 무려 240배를 넘는 사회로 갈 것인지, 골고루 나눠 가지는 사회로 발전할 것인지 새 정부의 정책과 의지에 달렸다. 독일 속담에 '돈이 나가면 정의가 움츠린다'고 했다. 국민 삶을 재생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2017-07-11 00:05:01

[세풍] 헬무트 슈미트였다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핵 문제 등 당면 현안에서 '큰 틀'의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 정상회담 이후 큰 틀의 합의를 떠받치는 여러 가지 '작은 틀'의 합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북한과의 대화 조건으로 미국은 '올바른 여건'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조건을 특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올바른 여건'의 해석을 놓고 이견이 노출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이런 세부적 사안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정상회담은 '사진만 찍은' 회담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일정도 이를 가늠하는 핵심적 사안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사드는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 양국이 일부러 뺀 것이다. 그만큼 '뜨거운 감자'다. 정상회담이 순탄하게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양국 모두 당장은 이 뜨거운 감자를 삼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문제는 앞으로도 이 감자가 쉽사리 식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감자를 뜨겁게 달군 불길을 일으킨 청와대 내 소위 '자주파들'의 신념-북한이 핵과 미사일 등 여러 가지를 시험 발사했던 것은 오래전부터였다. 법적 투명성과 절차를 생략하면서까지 설치로 가야 하나?-를 보면 그렇다.문 대통령은 방미 중 미국 의회 지도부와 만나 "사드를 번복할 의사를 가지고 그런(환경영향평가) 절차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버려도 좋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 자신부터 사드에 부정적이었던 생각을 바꿔야 함은 물론 지지층까지 설득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지층의 이반(離反)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에는 그렇게 한 인물이 있다.소련은 1975~1976년 서유럽을 겨냥해 핵탄두를 탑재한 신형 중거리 미사일 SS-20을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 등에 배치했다. 이에 맞설 무기가 없었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1979년 이른바 '이중결의'(Double-track decision)를 채택했다. 우선 미국과 소련의 협상을 통해 4년 이내에 소련 미사일을 제거하되, 성사되지 않으면 서독 등에 미제 퍼싱Ⅱ 핵미사일(108기)과 순항미사일(464기)을 배치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주도한 이가 진보 성향인 사회민주당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였다.그러자 서독 전역에서는 동독 공산당과 연계된 반핵 단체들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사민당도 반대파 일색이었다. 빌리 브란트 당 총재부터 그랬다. 그러나 슈미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미제 핵미사일 배치는 반대하면서 그 원인인 SS-20에는 입을 닫은 반대파들의 이중성을 질타하면서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그 대가로 슈미트는 총리직을 잃었다. 1982년 자민당과의 연정이 붕괴되면서 제출된 내각 불신임안에 사민당 내 '좌파'들이 대거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책을 계승한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의 주도로 서독 의회는 불과 1년 뒤인 1983년 11월 퍼싱Ⅱ의 서독 배치를 결정했다.이는 소련에 치명적이었다. 서독에 배치된 퍼싱Ⅱ는 발사 7분 만에 모스크바에 떨어진다.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는 훗날 "'퍼싱Ⅱ가 발사되면 경계경보를 발령할 시간도 없다'는 군부의 보고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것이 슈미트가 노린 것이었다. 소련은 군축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내 1987년 중거리핵미사일폐기협정(INF)에 서명했다. 슈미트의 노림수는 멋지게 들어맞은 것이다. 이는 확실한 억지력만이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해줬다. 문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구상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이제 사드 논란은 잦아들었다. 문 대통령은 '사드는 걱정말라'는 발언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미 간 불협화음을 촉발시킨 문 대통령의 일련의 국내 발언들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였다. 미국에 가서 미국의 의구심을 불식시킬 얘기를 왜 국내에서는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17-07-04 00:05:01

[세풍] 6월을 보내며

올 6월은 어느 해보다 풍성했다. 최소한 호국 보훈에 관해서만은 말이다. 날이 새면 귀가 솔깃할 호국 보훈 이야기들이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나라 지도자들로부터 흘러나왔다. 6월 들어 시작된 호국 보훈을 강조한 말 잇기의 시작은 문재인 대통령이 열었다.문 대통령은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현충원 추념식에서 "국가보훈처를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유는 "애국의 대가가 말뿐인 명예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을 것 같다. 특히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은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다"고 믿은 결과이리라.이어 대통령은 같은 날 중앙보훈병원을 찾아 국가유공자와 상이 군경을 위로하며 "보훈만큼은 국가가 도리를 다해야겠다"며 국가 도리를 강조했다. 그동안 국가의 도리가 미흡했다는 말과도 같다. 따라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뜻을 드러냈음 직하다. 그리고 대통령은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보훈 가족 초청 청와대 오찬에서는 한발 더 나갔다.대통령은 "제대로 된 보훈이야말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강한 국가로 나아가는 길"이라고까지 했다. 또한 "국민의 애국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치켜세웠다. 특히 이날 대통령은 허리를 깊이 숙여 거수경례 유공자에게 답례해 보는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대통령의 보훈에 대한 두드러진 말과 행동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로 이어졌다. 이 총리는 26일 열린 '모범 국가보훈 대상자 정부 포상식'에서 "보훈은 강한 안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책무"라며 "유공자 여러분이 합당한 보상과 예우를 받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보답해 나가겠다"며 실무 차원의 약속도 했다.문재인정부가 5월 출범하고 공교롭게도 곧바로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은 탓도 있겠지만, 호국 보훈에 관한 한 역대 정부와는 차별되는 모습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통령과 그를 도와 정부 부처 행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손발을 맞추며 호국 보훈에 대한 풍성한 말을 쏟고 의미를 부여하니 호국 보훈 가족들로서는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그러나 현실을 되돌아 보자. 과연 이 같은 숱한 장밋빛 이야기들이 제대로 실현될까. 필자로서는 "글쎄요"다. 무엇보다 먼저 국가가 보살펴야 할 보훈의 대상자가 한둘이 아니어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5월 현재 18가지 분야의 보훈 대상자는 85만2천529명이다. 이들에게는 보훈급여금을 비롯한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이들의 다양한 분포도 한몫한다. 전체 보훈 대상의 세부 분야는 현재 41개에 이른다. 이처럼 보훈 대상 유공자가 여러 갈래인 탓에 이들 모두에게 대통령과 총리가 약속한 것처럼 정부가 '합당한 보상과 예우를 받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보답'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재정도 걱정이다. 그동안 앞선 정부들이 '국가 도리'를 하지 않았거나 못한 것은 국가재정의 뒷받침이 안돼서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오찬에서 밝힌 "애국'정의'원칙'정직이 보상인 나라를 위해 대통령과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면" 된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고 쓸모없거나 쓸데 없는 국민은 없다.특히 호국 보훈 분야는 더욱 그렇다. 명실상부하게 보상 예우는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면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그리고 우선순위의 맨 앞쪽은 독립유공자이다. 나라 수호의 의무를 지닌 공직도 없고, 최소한의 인권도, 어떤 보호막도 없는 망국민(亡國民)으로서 나라 되찾기에 나서 '3대가 망하고' 가족조차 붕괴되는 일도 감수하며 목숨마저 버렸으니 말이다.현재 생존 독립유공자는 59명, 순국선열'애국지사 유족이 7천45명이다. 우선 이들부터 잘 보살피자. 이는 국가 도리이고 나라다운 나라가 되는 길이다.

2017-06-27 00:05:11

[세풍] 무지의 베일

보석처럼 푸르게 빛나는 지구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행성이었다. 많은 우주 영혼들이 지구의 삶을 동경했다. 지구에서 태어나려면 번호표 뽑고 대기해야 한다는 루머마저 나돌았다. 영혼들은 탐색이나 하고자 지구 궤도를 빙빙 돌았다.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지구에 관한 정보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 나라가 살 만하고 어느 나라에 태어나면 고생길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태어날 나라와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처지의 부모를 만날지도 백지 같았다.상상을 해보자. 만약 당신이 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지구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장광설처럼 들려도 이 같은 가정은 꽤 유명한 철학적 사유 실험 중 하나다. 미국의 철학자인 존 롤즈(John Rawls)가 저서 '정의론'을 통해 제시한 개념인데, 이름하여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다.설명하자면 이렇다. 자신이 어떤 환경 아래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무지의 베일)에서 선택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특정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가 하는 원초적 물음이다. 계층, 성별, 인종, 민족, 부모의 지위'경제력 등에 대해 아무것도 미리 알 수 없다면 사람들은 자기가 택할 세상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랄까. 선택하기에 이상적인 사회는 공정 사회일 것이다. 이런 사회라면 무지의 베일 뒤에서도 걱정 없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택이 주저되는 사회는 불공정 사회다.무지의 베일에 대입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보자. 우리나라는 과연 공정 사회인가. 태어나기 전에 정보가 주어진다면 한반도를 선택할 영혼은 몇이나 될까. 두말할 것 없이 우리나라는 불공정 사회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는 많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19세 이상 남녀 2천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부의 공정한 분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응답이 83.6%나 됐다.불공정한 시대상을 나타내는 도구는 더 있다. 다름 아니라 유행어다.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을 꼬집는 유행어로 '흙수저'만큼 적나라한 것도 없다. 태어날 때부터 쥐고 태어난 것이 금수저도, 은수저도, 동수저도 아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흙수저로는 밥도 못 떠먹는다. 물에 녹기 때문이다. 유행어 '흙수저'에는 아이티 아이들이 배고파 구워먹었다는 '진흙쿠키'를 연상케 하는 상실감이 녹아 있다. '헬 조선' '노오력'도 빼놓을 수 없는데 사회의 집단의식이 반영되지 않고서는 이런 신조어들이 유행할 수 없다.하지만 젊은 세대들에 의해 '꼰대'라고 불리는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이 같은 유행어 자체가 마뜩잖다. 혹자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와 같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며 개탄스러워 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간극은 태평양만큼이나 벌어지고 있다.이미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세상은 더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인구 구조상 격변은 필연적이다. 올해는 인구절벽 현상의 원년이고 내년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된다. 인구절벽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는 부동산시장과 금융'산업 등 실물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장은 기성세대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지고, 정치 지형에도 전에 경험치 못한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이런 시대 흐름을 간파한 이들에게 미래는 기회일지 모르나,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가혹한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특히나 정치가 그렇다. 여기에 보수나 진보라는 이분법적 구분 따위는 무의미하다.

2017-06-20 00:05:00

[세풍] '모난 돌'의 화려한 귀환

정권이 바뀌면 고위 관료부터 우르르 교체되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탕평 인사니 지역 안배니 능력 위주 따위를 내세우지만, 결국에는 '자기 사람' '충성파'를 쓰는 것으로 귀결된다. 문재인 정권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일부 눈에 띄는 '인물'을 발탁해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인물은 박근혜 정권에 찍혀 변방을 맴돌거나 공직에서 쫓겨난 이들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은 정권이 바뀌면서 화려하게 복귀한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주인공들이다.이들이 잘났거나 남보다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일 처리를 하다가 불이익을 당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잘 알다시피, 윤 지검장은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과정에서, 노 차관은 정유라와 관련된 승마협회를 감사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여느 공무원이었다면 정권의 입맛에 맞게 대충대충 처리했을 일을 원칙대로 처리하려고 덤벼들었으니 '죽을 짓'을 자청한 셈이다. 이렇게 눈치가 없으니 출세는커녕 도태되기에 딱 좋은 유형이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이런 유형을 흔히 '꼴통'이라 부르며 경원하고 배척하기 일쑤다. 흔히들 양심이니 신념이니 하고 쉽게 떠들지만, 사회'조직생활에서 이를 구현하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다.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사가 기억난다. 우장훈 검사(조승우 분)는 깡패 안상구(이병헌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의를 원한다. 대한민국 검사니까!" 그 말에 깡패는 기가 차다는 듯 실실 웃으며 이렇게 답한다. "존 웨인이다 이거야? 정의? 대한민국에 아직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긴 한가."이 대사를 곱씹을수록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다. 검사는 정의를 입에 담지만, 실제로는 출세만을 바라는 속물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깡패는 코웃음을 치며 한껏 비웃는다. 과장이 있긴 하지만, 원작자인 만화가 윤태호의 현실감각과 예지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2년 전, 이 영화가 나올 때만 해도 검사의 도덕성이 깡패보다 그리 나아 보이지 않았다. 엘리트 계층인 검사를 '사회의 기생충'이나 다름없는 깡패와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모욕적인 일이겠지만, 지난해 최순실'우병우 수사 과정을 보면 그런 욕을 먹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검찰이 '산 권력'에 대해서는 충성하고 순응하는 모습을,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아귀처럼 물어뜯는 행태를 보였으니 누가 검찰을 좋아하겠는가.검찰 행태를 보면서 그 영화에 나오는 부장검사(정만식 분)의 대사가 떠올랐다. 그는 끝까지 사건을 파헤치려는 우장훈 검사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까라면 까고 덮으라면 덮는 게 대한민국 검사야! 이제 그만 물고 놔라."그 당시 검찰, 나아가 공무원 조직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출세하고, 살아남으려면 상부의 부당한 명령에도 순응하고,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말인데, 대부분이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처신한다. 한 줌도 되지 않는 출세주의자들이 날뛰는 조직에서 괜히 원칙이나 상식 운운하다가 찍히거나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기에 그냥 눈감고 모른척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이 왜 있겠는가.어느 곳이든, 원칙과 상식을 고집하는 부류가 한두 명쯤 있기 마련이다. 조직 내에서는 '모난 돌'이거나 '튀어나온 못' 정도로 여겨지는 이들이지만, 이들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이런 '꼴통'들이 정부 부처와 사회 곳곳에 박혀 있어야만, 국가는 무너지지 않고 최소한의 건강성을 유지한다.문재인정부의 인사라고 모두 박수받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잘한 인사라고 평가하고 싶다. 우리 사회가 양심과 원칙에 따라 행동한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우하고 보상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더 공정하고 깨끗해질 것이다. 이와 함께 양심에 거스르는 행동은 더는 안전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을 것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2017-06-13 00:05:00

[세풍] 지혜로운 청산

르노와 닛산'미쓰비시 자동차를 총괄하는 카를로스 곤 회장은 '코스트 커터'(Cost Cutter)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1999년 파산 직전의 닛산 재건에 나선 그는 효율적인 비용 관리를 강조한 인물이다. 그는 관계와 평판, 절차 등을 중시하는 일본형 비즈니스 모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닛산 재생계획'으로 불린 과감한 구조개혁과 원가 절감만이 닛산을 살리는 길이라고 봤다.또 다른 별명도 있다. '세븐일레븐'이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세븐일레븐에는 다른 뜻도 있다. 그는 임직원과 늘 소통했다. 사장 집무실뿐만 아니라 전화'이메일 등 소통 수단을 언제든 활짝 열어놓았다. 24시간 늘 열려 있는 편의점처럼 편하고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초기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취임 한 달을 앞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84%다. 60대 이상, TK만 빼고 골고루 80% 이상 지지를 얻은 셈이다. 국민이든 참모든 야당이든 가리지 않고 적극 소통하려는 문 대통령의 스타일과 노력의 결과다. 야당과 언론에서는 '얄밉도록 국정 운영을 잘한다'느니 '인사가 응큼하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렇다 보니 문 대통령에게 '세븐일레븐' 별명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다.일부에서는 측근 2선 후퇴나 MB'박근혜정부의 인재 등용 등 문재인식 인사를 탕평과 파격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임명권자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이나 그게 상식이고 정상이다. 역대 정권이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다 보니 새 정부의 인사가 두드러져 보인 탓이다. '정부는 유한해도 국가는 영원하다'는 문 대통령의 말에서 그가 생각하는 국가 경영의 기초를 읽을 수 있다.아야 소피아 바실리카는 이스탄불의 명소다. 4세기에 처음 세워진 기독교 건축물로 '거룩한 지혜의 대성당'이라는 뜻이다. 숱한 지진과 반란으로 여러 차례 개축과 보수가 이뤄지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된 때가 537년이다. 거대한 돔 지붕은 지금도 불가사의다. 돔을 떠받치는 107개의 기둥 상당수가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여신 신전의 기둥이다. 신전을 허물고 그 기둥을 그대로 가져다 세운 것이다.1453년 5월 아야 소피아는 새로운 운명 앞에 섰다.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리고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 때문이다.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지난 1천 년간 기독교의 상징이었던 아야 소피아를 파괴하지 않았다. 성당 바깥에 4개의 미나레트(첨탑)를 추가하고 모스크로 탈바꿈시켰다. 모자이크나 프레스코 벽화도 뜯어내지 않고 회칠로 덮고는 이슬람 사원으로 활용했다. 토인비가 말한 '팍스 오토마니카'(오스만의 평화)를 아야 소피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오스만은 공정하고 온건하게 제국을 지배했다.지난 한 달간 문재인정부가 보여준 국정 방향과 인사에서 이와 비슷한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사드 보고 누락 조사나 4대강 사업, 방산 비리 감사 지시처럼 성급한 결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절제하고 기다리는 지혜도 강하다. 보수 9년 '정치 빙하기'가 만들어놓은 두꺼운 얼음은 결코 하루아침에 녹지 않기 때문이다.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국가에 있어 대통령은 단순히 최고 권력자가 아니다. 국가를 경영하고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문재인정부는 국가 경영의 한 방식으로 적폐 청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구습을 걷어내고 사람을 바꾸는 것만이 청산은 아니다. 지킬 것은 지키고 우리 사회에 더 좋은 구조를 고정시켜야 진정한 청산이다. 잘못된 관행은 기득권을 용인하는 통로가 되고 결국 특권 의식으로 굳어지기 마련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소수의 특권과 다수 국민의 불행이 짝을 이루는 현실이다. 새 정부는 지혜로운 청산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그것이 문재인정부의 과제이자 남길 유산이기 때문이다.

2017-06-06 00:05:01

제21대 국회의원선거
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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