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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3만달러 시대의 상식

일본항공(JAL)의 승무원 잡지에 이런 유머가 실렸다. '아마존에서 비행기가 추락해 일본과 프랑스, 러시아인 각각 2명씩 승객 6명만 살아남았다. 며칠 밀림을 헤매다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했는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런 우스갯소리에 정답이 있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정답 풀이를 보면 그럴 듯하다.러시아인은 '룰렛 담판'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사람은 미인을 애인으로, 또 한 명은 연인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은? 도쿄 본사에 연락해 처리 방법을 묻는다는 게 잡지가 내놓은 답이다. 만약 이 유머에 한국인을 끼워넣는다면? 미인은 제쳐두고 먼저 비행기 추락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지 않았을까. 물론 유머다.그런데 한낱 유머에도 국민 특성을 개입시키는 것은 그런 이미지나 시각이 일정 부분 보편에 근접했거나 아니면 편견이 굳어져 집단 특성으로 잘못 매겨진 경우다. 관찰자에 따라 전혀 다른 관점과 인식이 드러나는 경우를 보면 '보편화의 오류'도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면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과 같은 F조에 속한 축구 독일대표팀 수석 전력분석관이 본 한국 인식이다. 그는 독일과 다툴 한국, 스웨덴, 멕시코 대표팀 전력에 국민 특성을 반영해 상관관계를 분석했다.그저께 일간지 '함부르거 아벤트블라트'에 소개된 인터뷰에 따르면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와 국민, 정신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한국과 스웨덴, 멕시코를 여행해 보면 차이점이 분명하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그는 "한국인은 아주 열심히 일한다. 규율도 아주 잘 지킨다. 또 맡은 임무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거의 다 완수한다"고 평가했다. 얼토당토않은 분석은 아니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인식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몇 해 전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크게 부각된 '헬조선'이라는 용어에서 우리의 상황 인식이 어떤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인과 한국 사회가 가진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두드러지거나 열패(劣敗) 의식이 점차 굳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심각하다. 무엇보다 헬조선의 단초를 제공한 '정부와 국회, 사법기관 등 공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 이는 정치인과 공직자, 재벌의 부정부패와 특권의식이 사회 공동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다.단순히 개인의 도덕'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이 배우고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더 많은 돈을 가질수록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다듬고 키워나가야 할 가치나 공동체 의식을 망각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런 그릇된 의식의 돌부리가 사회 발전과 공동체의 진보를 가로막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지난 연말, 충북 제천의 화재 참사는 '헬조선'이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님을 증명했다. 사고 직후 화재 원인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결론은 우리 사회의 무사안일이었다. 상식이 벽에 막히고 법이 무력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수십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몇 년 전 세월호의 교훈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회라면 '헬조선' 푸념도 이제는 과분하다. 또다시 관련 법을 뜯어고치고 뒷북을 쳐도 집단의 속성이 바뀌지 않는데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합리적인 사고와 교양에 기초한 상식의 위력은 타율성에 뿌리를 둔 법의 효율을 크게 능가한다. 법보다 상식이 앞서는 사회가 더 건강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재인 정부가 올해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호언했다.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른 것은 분명 희소식이다. 하지만 주머니가 조금 더 두둑해진다고 선진시민, 선진사회가 될 수는 없다. 상식을 거부하고 기본을 무시하는 사회는 아무리 '선진'을 외쳐도 후진성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요즘 국정을 농단한 세력만이 적폐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우리 모두가 적폐의 근원이자 청산 대상임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창문을 굳게 막고 털어낸 먼지와 적폐 청산이 다를 게 뭐 있나.

2018-01-09 00:05:00

[세풍] '합의'가 나쁜 걸 누가 모르나

"전쟁이 시작되고 불과 25일밖에 안 지났지만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3월 말까지는 전쟁의 1단계를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도 무리는 없게 됐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일본이 진주만 기습과 함께 파죽지세로 동남아시아와 서태평양으로 진격했던 다음 해인 1942년 첫날 연합함대 참모장 우가키 마토메(宇垣纏)의 일기다. 연합함대는 일본의 핵심 전력이다. 그 참모장이란 사람이 1단계 전쟁 목표를 달성한 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일본은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라는 장기 비전 없이 개전(開戰)을 결정했다는 얘기다.개전은 극히 근시안적 동기로 결정됐다. 그것은 일본의 중국 침략에 대응한 미국의 석유 금수(禁輸) 조치다. 이에 따라 18개월 뒤면 연합함대는 고철 덩어리로 전락할 터였다. 그렇다고 제국주의적 확장을 그만둘 생각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군부는 앉아서 망하기보다는 차라리 먼저 공격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선공(先攻)이 성공해도 장기전으로 갔을 경우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당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도 1943년 이후에도 전쟁이 계속될 경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결국 개전은 '일단 저지른 다음 뒷일은 그때 생각하자'는 것이었다.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불인정' 천명은 이와 똑같은 무모함을 보여준다. 이제 문재인 정부의 선택지는 '합의 파기'와 '재협상' 두 가지뿐이다. 문제는 그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합의 파기는 한일 관계의 파국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게 됐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래도 잘 지내보자'는 것뿐이다. 일본이 잘도 '그러자'고 하겠다. 재협상은? 일본이 '최종적'불가역적 합의였다'며 거부하면 그만이다. 이미 아베 총리는 "1㎜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물론 제3의 선택지도 있다. 2014년 아베 정권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군의 관여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한 뒤 "담화는 한일 간 정치적 흥정이었다. 그럼에도 계승한다"는 저질 코미디를 했던 것처럼 "합의를 인정할 수 없지만, 한일관계 경색을 고려해 유지한다"고 미봉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여론의 반발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없고, 선택하더라도 오래갈 수는 없을 것이다.'합의'가 나쁜 것임은 명백하다.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불인정'하여 '파기'하거나 '재협상'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만이 문제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합의'는 북핵에 대응한 한미일 공조라는 안보 문제와 '엮여' 있다. 우리의 의사에 상관없이 그렇게 돼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내세우며 완강히 버티다 결국 미국의 '합의' 중재를 수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인들 이 결정이 국내 여론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올 것임을 왜 몰랐겠나?안보 상황은 '합의' 당시보다 더 위중해졌다. 북한의 핵무장 완성까지 3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게 미 CIA의 판단이다. 한미일 공조의 필요성은 그만큼 더 절실해졌다. '합의' 불인정은 의도했든 안 했든 이와 반대로 가겠다는 것이다. 왜 하필 이런 위중한 시기에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국내정치용' 말고는 이유를 달리 헤아리기 어렵다.'합의'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음을 누가 모르나.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기에 대중과 같은 도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도자로서 정치세계가 요구하는 '다른 도덕'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행위자의 현명치 못한 행동은 설사 그것이 좋은 의도에서 행해졌어도 국가와 국민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정치의 법칙을 경멸하는 도덕적 오만으로 자신이 돌봐야 할 국가의 이익을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비난받아 마땅하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의 말이다. 공부 좀 하시길!

2018-01-02 00:05:04

[세풍] 3% 성장, 독과 약의 경계

취임 이후 내내 호흡이 가빴던 문재인 정부에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것은 '뜻밖의' 성장세와 기업 실적 호조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귀한 손님'인 반도체 덕에 내리막길을 걷던 수출이 유턴하면서 마의 벽인 '3% 경제 성장'이 손에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른 것은 몰라도 먹을 복은 타고난 사람"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올해는 IMF 외환 위기가 터진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당시 정부와 기업, 금융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렸지만 김영삼 정부는 거시 경제지표를 들먹이며 '펀더멘털'만 외치다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지금 눈높이로 따지면 외환 위기 직전인 1996년 7.6%, 1997년에 5.9% 성장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방심한 사이 외환 위기가 들이닥쳤고 그 이후 국민의 곤궁한 삶은 알려진 대로다. 1998년 성장률이 -5.5%로 곤두박질 친 것은 그 서막이었다.한국 경제에 '구제금융'이라는 피주머니를 채운 외환 위기가 정부의 무능함이 초래한 급성질환이라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양상은 만성질환이다. 별 증상을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체력이 떨어지고 상태가 나빠지는 꼴이어서다. 전문가들 사이에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가 우리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분기점이라는데 이견이 없다.이때부터 한국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하면서 OECD 국가 가운데 성장률 낙폭이 매우 큰 나라에 든다. 2001∼2008년까지 8년과 2009∼2016년까지 8년을 비교하면 우리의 평균 성장률이 4.6%에서 3.1%로 1.5%포인트나 떨어졌다. 2002년 7.4%의 경이적인 성장률은 그렇다 치더라도 2000년대 초반 4∼5%대와 지금의 2%대 성장률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외환 위기 때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의 외환 보유액이 18.4배 늘고, 코스피 지수는 6.7배나 오르며 대외 건전성이나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진 것은 맞다. 하지만 성장률이 2%대에 고정되고 넘쳐나는 가계 부채와 청년 실업, 저출산, 고령화 등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들이 즐비하다. IMF 때도 그러했듯 매의 눈은 이를 놓치지 않는다. 언제든 경제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유다.그저께 한국은행은 7~9월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1.5%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분기 기준으로 2010년 2분기 1.7% 이후 7년 3개월 만에 최고치다. 4분기에 역성장해도 3년 만에 3%대 성장이 가능한 수치다. 정부와 집권 여당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까닭이다. 속으로는 요즘 유행하는 "그뤠잇"을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최근 '화려한 반도체 잔치는 끝났다'는 불길한 소식에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기준금리도 6년 5개월 만에 다시 반등했다. 불안한 한반도 안보 상황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수가 된 지 오래다. 당장 내년에 한국 경제가 어디로 튈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폭풍 전야와 같은 불안감이 국민 일상에 무겁게 와 닿는다.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 과제에는 새 정부 5년의 어젠다가 빼곡히 담겨 있다. 물론 100대 과제에 경중(輕重)이 없겠지만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는 16번째에 등장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이다. 좋은 일자리가 빈 바구니를 채우고 나아가 사회 안정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1, 제2 과제인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나 '반부패 개혁으로 청렴한국 실현'과 비교해도 그 지향점이 같다.미국 경제역사가인 데이비드 란데스는 '국가의 부와 빈곤'(1998년)에서 이상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을 정리했다. 한 대목을 보면 '효율적이며 세금을 낮추고 사회적 잉여에 대한 정부 몫을 줄이는 정부 구현'이 눈에 띈다. 문재인 정부가 실천하려는 정책 과제와도 맥락이 같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명분만 좇다 디테일을 놓친다면 죽도 밥도 모두 잃게 된다. 1997년과 2008년의 잘못을 내년에는 되풀이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2017-12-05 00:05:02

[세풍] 시노모세키 조약 이전으로…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라면 그렇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지 않았다면?'이란 가정도 그런 범주에 들어간다. 한반도의 모습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달라졌을까? 통일국가가 들어섰을 수도 있었겠지만, 중국의 속국화(屬國化)를 피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장제스(蔣介石)는 2차 대전 종전을 앞두고 일본 패망 후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주할 때 중국군도 파견해 한강 이남은 영국'미국군, 이북은 중국군의 관할 아래 둔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목적은 한반도를 중국의 영향권 내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한반도 진주 연합군의 비율을 '중국군 4, 미'영국군 1'로 한다는 장제스 참모들의 구상이다. 단순한 전후 처리 참여라면 많은 비용을 들여 미'영의 4배나 되는 병력을 보낼 필요가 없다. 그런 목적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일본군의 항복 후 구성될 임시정부의 외교'국방'경찰 부문은 3년 기한으로 중국인 고문을 둔다는 '고문정치' 구상이다. 한반도 주둔 중국군을 지렛대로 외교'안보와 국내 치안까지 중국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것이다.장제스가 충칭(重慶)으로 옮긴 우리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당시 임정 외교부장 조소앙(趙素昻)은 이를 정확히 꿰뚫어봤다. "장제스가 왜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느냐"는 중국 주재 미국 대사 클러렌스 E. 고스의 질문에 조소앙은 이렇게 대답했다. "일본 패망 뒤 한반도를 중국의 종주권 아래에 두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1942년 2월 12일 자 미 국부무 외교문서)물론 미'소가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지 않았다면 장제스의 구상이 실현됐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럴지 그렇지 않을지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장제스가 한반도 종주권 회복을 획책했다는 사실이다.지난 4월 시진핑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것은 중국 정부의 색깔이 푸르든 붉든 종주권에 대한 집착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마오쩌둥도 대장정 때 한반도에서 중국의 종주권 상실에 울분을 토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집요한 반대는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킬 때 그 의미가 명확히 드러난다.문재인 정부가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갖고 있었어도 사드 배치를 놓고 그렇게 난리 치지 않았을 것이다. 사드를 '도둑 배치'했다고 떠들어댄 문 정부를 보고 시진핑은 종주권 회복이 실현 가능하다는, 그것도 자신의 시간표보다 앞당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을 것이다. 바랐든 안 바랐든 문 정부는 중국의 시간표대로 가고 있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3불(不)' 선언까지 했다.이는 안보주권을 중국의 처결에 맡긴 굴욕적 자해다. 문 정부는 '3불'이 '입장 표명'이라고 한다.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약속'이라 한다. 오만한 언사로 3불의 조속한 이행은 물론 '이미 배치된 사드 시스템의 사용도 제한해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하라'는 '1한(限)'까지 요구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결국 입장 표명이든 아니든 문 정부는 엄청난 전략적 실수를 한 것이다.청일전쟁 후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 제1조는 "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고 돼 있다. 이는 조선의 자주독립국 지위 인정과 일본의 한국 지배를 위한 청이란 걸림돌 제거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의미는 전자다. 어쨌든 우리가 처음으로 중국의 종주권에서 벗어난 것은 이 조약에 의해서였다. 중국의 일관된 목표는 한반도의 '현상'을 그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문 정부는 스스로 그 길로 들어서려 한다. 통탄할 일이다.

2017-11-28 00:05:05

[세풍] 메콩강 야자수를 보고

'프랑스와 중국과 영국은 우리들의 비옥한 땅을 탐내어 이 나라를 짓밟았고, 일본도 마찬가지였죠.' '한반도를 말하자면…그 토지가 비옥한데 인구는 희박하다…물산(物産)이 풍부하여 크게 우리 거류민의 이익 획득과 부력의 증진에 소위 천부(天賦)의 옥토(沃土)라 할 수 있다.'앞은 월남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1983년 안정효가 쓴 소설 '하얀전쟁'에 나오는 장면으로, 월남인 촌장이 파월 국군과 나눈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뒤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43년 기록인 '대구부사'에 나오는 한국 거주 일본인 거류민의 생각을 적은 내용이다.한반도의 비옥함으로 일본이 침략했듯이 촌장 말처럼 베트남의 땅도 비옥했고 식민 제국(帝國)이 탐을 낼 만했다. 특히 옛 월남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시) 남부 야자수 늘어진 메콩강 삼각주는 더욱 그랬다. 메콩 델타로 불리는 이곳은 베트남 곡창지대로, 베트남 전체 경지면적 740만㏊의 35%인 260만7천㏊를 차지할 만큼 최대 경작지다. 메콩강은 티베트에서 시작돼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을 적시며 바다로 스며드는 '동남아시아의 젖줄'이다. 동남아 최대의 강으로 길이만도 4천900㎞가 넘는다.이런 메콩강 곡창지대 등 베트남에서 국민 9천200만 가운데 6천만 농민이 1년 3모작으로 거두는 쌀은 연간 4천500만t(2016년). 태국 다음의 쌀 수출 대국이다. 이런 베트남이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배워 농촌을 바꾸기 위해 농업의 3대 목표로 생산성 증대, 품질과 부가가치 증진을 잡고 있었다.이를 위해 베트남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경북과의 협력에 적극적이었다. 지난 10일부터 3박 5일 경북도 농어업FTA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손재근)와 함께 들른 베트남 농업 현장은 이를 확인한 기회였다. 지난달 경북도를 직접 방문한 베트남 농업연구개발기획청 응우웬 트롱 우엔 지청장이 그랬다. 그는 손 위원장의 손을 맞잡고 경북도와의 협력을 바라며 협조를 부탁했고 손 위원장 역시 분야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공조를 다짐했다.사실 두 나라는 오랜 동병상련의 인연을 갖고 있다. 가까운 역사 속 일만도 숱하다. 19C 말~20C 초 조선조 말 흉년 때 베트남은 안남미(安南米)를 수입하던 나라였고 일제강점기 우리 독립운동가가 활동한 곳이었다. 또 식민 지배와 독립, 남북 분단과 남북 전쟁의 아픔도 겪었다. 한국의 월남전 참전, 국제결혼과 기업 투자에 따른 활발한 이주, 새마을운동 전파와 농업 교류, 엑스포 공동 개최까지 인연은 진행 중이다.이를 바탕으로 특히 경북은 베트남과의 교류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농어업 분야는 더욱 그렇다. 우리의 주곡이자 식량 안보의 최후 보루인 쌀은 좋은 사례이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미국 등 해외에 팔던 경북 쌀이 올해 처음으로 상주 아자개영농조합법인에 의해 상주쌀 13t이 베트남에 진출해 하노이를 중심으로 판로 개척에 나섰다.올해 전체 경북 수출 쌀 221t 의 6%에 불과하지만 의미는 남다르다. 우리 쌀이 쌀 수출국에 팔 정도로 품질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베트남의 안남미(인디카종)는 우리쌀(자포니카종)과는 다른 품종이다. 하지만 교민을 비롯한 현지인에게도 팔 수 있는 길을 개척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이는 국내의 쌀 소비 감소와 논 면적의 축소에 따른 후유증을 줄일 수 있다. 즉 기상이변과 흉작 등에 따른 국제 쌀값 폭등과 식량 확보난과 같은 충격을 완화할 수 있어서다. 이는 결국 식량 안보의 바탕을 다지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 경북 쌀 농민을 응원하는 까닭이다.이번 경북도 농어업FTA대책특별위원회의 방문으로 비옥한 땅을 가진 죄(?)로 역사의 아픔을 비슷하게 겪은 두 나라가 농어업을 통해 공동 번영을 위한 길을 트는 디딤돌 하나를 놓았으면 좋겠다. 손 위원장의 "메콩강 야자수 숲이 메콩 델타를 보호해 더욱 풍성하게 하는 듯하다"는 말처럼 두 나라 농어업을 야자수 삼아 베트남과 경북의 곳간이 풍성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2017-11-21 00:05:00

[세풍] 대구시장 현수막 어디 갔노?

"내 현수막 어디 갔노?" 지난 추석날 대구 도심을 둘러보던 권영진 대구시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명절 하루 전 대구시내 주요 관문과 네거리에 자신의 이름으로 명절 인사말 현수막을 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도심엔 하나도 눈에 안 띄었기 때문이다.권 시장은 이 현수막들이 중구청에 의해 모두 철거됐다는 사실을 연휴 이후에야 알게 됐다. 광역단체장 명의의 현수막을 구청 공무원들이 철거하는 '불경(?)'을 저지른 셈이다.엄밀히 따지자면 구청 공무원들은 법과 규정에 따라 일을 한 것이었다. 명절 때마다 정치인들이 인사말 현수막을 곳곳에 내거는 것이 관행이지만 대부분 불법 게시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장 명의의 현수막 철거는 이제 대구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과 원칙이 공평하게 적용되는 세상이 왔다고 반색할 만한 일이다. 권 시장도 내심 당황스럽고 서운했겠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일 아니라며 별 대응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세간에는 다른 말들이 흘러나왔다. 현수막 철거가 내년 지방선거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공교롭게도 윤순영 중구청장은 내년 대구시장 선거에 뜻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른정당 소속인 윤 구청장은 자유한국당 소속인 권 시장과 당적도 다르다. 이 때문에 지역 정가에서는 대구시장 명의의 현수막 철거가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견제구가 아니냐는 말들이 나돌았다. 그렇다면 대구 정치 생태계의 최근 변화가 빚어낸 생경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지금은 보수의 위기 시대다. 보수의 본산이라는 대구도 예외가 아니다. 보수 정치권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져 있고 공교롭게도 두 당의 대표는 둘 다 대구에 정치적 기반을 자처하거나 둔 인물이다. 자유한국당 사정도 친홍과 친박, 비박 등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정 정당에 대한 지역민의 일편단심도 예전 같지 않다. 향후 선거에서 대구 유권자들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흐를지 가늠키 어렵다.이런 상황에서 내년 대구시장 선거는 전례없이 흥미진진한 경쟁 구도가 될 것 같다. 최초의 비(非) 경북고 출신 대구시장이라는 지평을 연 권영진 시장은 지난 3년 6개월 재임기간 동안 시정을 비교적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정작 압도적 지지율 우위를 점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더구나 자신의 대표적 역점 사업인 통합대구공항 이전과 대구취수원 이전 문제가 의도와 달리 성과가 아니라, 경쟁자들로부터 공격받는 카드가 되는 것이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보수의 위기를 틈타 더불어민주당은 대구에서의 약진을 도모하고 있다. 다른 지역만큼은 아니어도 민주당은 대구에서도 의미 있는 교두보를 확보해 놓은 상태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김부겸 장관의 내년 대구시장 선거 차출설도 숙지지 않는다. 김 장관은 이미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사실상 자력으로 40% 득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민주당은 보수진영 후보들과의 양자 대결에서 김 장관이 우위에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고무돼 있다.민주당 고위 인사들이 대구 현안에 귀를 깊이 기울이거나 대구 예산을 챙기려는 모습을 자주 노출시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 궤멸을 막기 위해서 내년 대구시장 선거만큼은 꼭 이겨야 한다"고 말한 것은 결코 엄살이 아니다.어쨌거나 내년 대구에서의 지방선거가 전국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되는 후진적 정치 풍토가 그동안 지역의 미래를 갉아먹어왔기 때문이다. 지역민의 선택이 아니라 중앙당 낙점을 받아 정치 생명 연장의 꿈을 꾸는 정치인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으랴.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다. 누가 되든지 간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되는 것이 지역과 유권자들에게도 좋다. 지금 대구는 '묻지 마 지지' 불모지에서 정치적 생태계 다양성이 피어나는 초입 길목에 접어들고 있다.

2017-11-14 00:05:04

[세풍] 문재인 정부의 저자세 외교

이제 보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최순실이 아니었다. 사드 배치 결정과 한'일 위안부 합의는 국가에 재앙을 불러온 바보짓이었다. 이런 어리석은 선택은 한국 외교와 안보를 나락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데 기여를 했다.사드 1개 포대를 배치한 대가치고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건을 너무 많이 겪었다. 기자가 북한의 핵 위협과 사드의 전략적 가치를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사드가 단숨에 북한 핵 위협을 잠재울 수 있으면 모르지만, 엄청난 분란만 일으켜 놓고는 제값을 하지 못할 것 같아 답답해서 하는 소리다. 한국이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외줄 타기 외교를 해야 하는 것도, 미국과 중국에 굽실대고 머리 조아리는 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드 때문일 것이다.당시 박 전 대통령이 미국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압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는지 자세한 내막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항간에는 박 전 대통령이 모종의 이유로 '심경 변화'를 일으켜 갑자기 밀어붙였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해야 마땅하지만, 요즘 워낙 턱도 아닌 일을 많이 봐서 그런지,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의 태도 및 보복 정도를 고려하지 않았거나 예상조차 못 했다면 뻘짓이라도 이런 뻘짓은 다시 없을 것이다.이제는 사드를 미국에 도로 가져가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만시지탄' (晩時之歎)이다. 언제까지 박 전 대통령 탓, 전 정부 탓만 하고 있어야 할까. 더 황당한 것은 문재인 정부마저 사드 문제를 떳떳하지 않은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에 굽실대고, 저자세로 일관한다. 박근혜 정부를 부정하고 촛불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정부가 맞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대통령선거 때 그렇게 주장하던 우리나라의 자주성과 긍지는 어디에 내버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 사드의 환경영향평가 등을 운운하며 배치 반대 인상을 주더니만, 지난 6월 방미 때 상'하원 지도부를 만나 "사드 배치 번복은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용 발언과 국외용 발언이 완전히 달랐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 줄곧 저자세를 취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구걸 외교'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했다.지난달 말 정부가 중국과 사드 갈등 봉합 내용을 담은 이른바 '3NO' 협의문은 굴종 외교의 최고봉이다.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MD 체제에 참여할 의사가 없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구축할 의사가 없다'고 선언한 것은 정말 비상식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은 명분, 우리는 실리를 얻었다"고 자찬했지만, 어처구니없는 논리다. 추가적인 경제 피해를 막은 것은 위안이 될지 몰라도, 협의문에 최소한의 견제 장치나 사과문은 넣었어야 했다. 앞으로 중국이 한국의 행보에 폭력적인 경제 보복으로 사사건건 제동을 걸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때마다 이것저것 다 내주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극우 언론들이 정부 내 진보 세력들이 미국을 싫어해 중국 품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믿더라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자칫, 박 전 대통령의 결정 못지않은 중대한 실책이 될 가능성마저 있다. 고육지책이라곤 하지만, 국가를 위험 속에 빠트릴 수 있는 선례를 남겨놓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한 인사가 "진보 정권이 붕괴된다면 외교'안보 문제 때문일 것"이라 했지만, 정부가 미국과 중국을 대하는 자세를 볼 때 위태롭기 짝이 없다. 우왕좌왕, 말 바꾸기, 자신감 부족, 구걸과 굴종… 외교판에서 금기라는 것들이 모두 등장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잇따라 정상회담을 갖는다. 더 이상의 저자세와 굴종은 상대에게 얕보일 뿐이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한국 주도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당당한 자세로 회담에 임했으면 좋겠다.

2017-11-07 00:05:00

[세풍] 적폐의 슈퍼 사이클

경제 이슈에 그리 밝지 않은 사람에게도 요즘 '슈퍼 사이클'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다. 슈퍼 사이클은 통상 20년 이상의 장기적인 가격 상승 추세를 일컫는다. 2000년대 초반 중국과 신흥국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원자재 슈퍼 사이클'은 가장 최근의 예다.지금 슈퍼 사이클의 주인공은 '메모리 반도체'다. '나 홀로 초호황'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반도체 수요가 폭증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호령해온 우리 기업들이 돈방석에 앉았다. 순이익만 올해 100조원 이상을 넘보는데다 영업이익률은 40%를 웃돌아 '반도체 방석'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누구도 이런 초호황세를 예상하지 못했듯 조만간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하지만 적어도 반도체 덕에 거의 감겼던 한국 경제의 눈이 떠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말하자면 한국 경제가 반도체 호황이라는 심장박동기 세례를 톡톡히 본 셈이다.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 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만큼 어두웠다.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유통'화장품 기업들이 휘청댔고 외국인 관광객은 급감했다. 2년 가까이 하락세를 거듭해온 수출과 내수 부진으로 '더블딥' 공포가 확산됐다. 천문학적인 가계부채는 정부와 국민 모두의 뒷골을 당기는 고질이었다. 한국 경제는 이래저래 회생 확률이 떨어지는 '언더독' 처지였다.부지불식간의 슈퍼 사이클에 얹힌 반도체 기업들이 '깜짝 실적'을 내면서 먹구름이 가득했던 기상도가 확 달라졌다. 실적 호전은 코스피 지수를 밀어올렸고 사상 최고치 2,500선도 뚫었다. 올 3분기 1.4%의 경제성장률은 7년 만에 최고치를 다시 써냈다. 일자리난에다 가계부채, 소득 감소에 시름이 깊은 국민들이 내심 곁불이라도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다. 반도체 벼락에 온몸은 몰라도 곱은 손은 녹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커진 것이다.반도체 산업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지 모두 분석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다만 부지런한 기업이 더 많은 과실을 얻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올바른 선택과 투자, 혁신과 전략적 인내와 같은 마중물이 없었다면 슈퍼 사이클이 가능했을까. 웨이트 워처스의 창립자인 진 니데치의 '인생에서 정해진 운명은 없다. 우연이 아닌 선택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이 실감 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헌법과 국정을 도륙한 세력을 규탄하고 개혁을 기치로 내건 첫 촛불집회가 29일로 1년을 맞았다. 그때 전국의 거리를 뒤덮은 촛불은 노래로 국민의 상처를 보듬었다. "걱정 말아요 그대"라고. 꽃피는 5월,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제 국정 과제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 적폐 청산이 바른 사회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문재인 시대, 우리 정치가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다. 꿈은 새 시대를 향하지만 우리 국민과 정치도 반도체와 같은 슈퍼 사이클을 맞을는지는 짐작 가능함의 밖이다.행운도 받아들이려는 노력과 준비가 없으면 누릴 수 없다. 기본자세와 경쟁력이 없는데 행운이라고 비켜가지 않을 턱이 있나.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는 바닥도 한참 바닥이다. 경쟁력은 고사하고 제 앞가림도 못하는 게 한국 정치다. 여야 위치가 아무리 바뀌어도 '집안 싸움'에 '보이콧 국감'처럼 정치 풍경은 달라진 게 없다. 299명 의원 모두에게 오줌싸개 소금 꾸러 갈 때 쓰는 키라도 덮어씌워야 속이 풀릴까.사람의 힘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산업과 기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사람이다. 결국 사람을 만들어내는 힘은 바른 정치, 바른 사회 분위기다. 무능한 정치에서 뛰어난 사람이 날 수 없다. 잘사는 나라치고 정치와 사회가 어지러운 나라는 결코 없다. 적폐를 모두 도려낸다고 행운이 깃든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적폐는 적폐대로, 혁신 성장은 성장대로 만들어가야 한다. 수확철 간절한 농부의 심정이 아니면 슈퍼 사이클은 어렵다. 2017년 반도체 슈퍼 사이클은 행운인가, 아니면 예정된 잔치인가.

2017-10-31 00:05:01

[세풍] 문의 '문 워크'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진영이 프랑코에게 패배한 이유는 군사적 무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내분(內紛)이다. 이를 주도한 세력이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스페인 공산당이다. 공화진영에 군사고문단과 다량의 무기를 지원해준 스탈린의 의도는 스페인의 민주화가 아니라 '공산화'였다. 공화진영을 도와 프랑코 반군에게 승리한 뒤 공화진영 최대 세력이었던 무정부주의자를 포함, 공산당이 아닌 모든 정치 세력을 제거한다는 것이다.스페인에 파견된 소련 군사고문단의 육군 담당 블라디미르 E. 코레프가 모스크바에 보낸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백색분자들(프랑코 반란군)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나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와의 싸움이 절대적으로 불가피할 것이다. 이 싸움은 매우 잔혹할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이 싸움을 백색분자들과 한창 싸우고 있을 때 시작했다. 그 수법은 매우 비열했다. 공화진영이 무기 대부분을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공산당 소속이 아닌 공화군 병사에게는 지급하지 않았고, 부상자는 병원 치료도 못 받게 했다. 그리고 공산당을 지지하지 않는 정파는 탈주자, 반역자, 스파이로 몰아 처형했다.대표적인 예가 한때 트로츠키의 비서를 지낸 안드레스 닌과 그가 이끌던 마르크스주의통합노동자당(POUM)의 숙청이다. 닌은 트로츠키와 이미 결별했음에도 공산당은 그를 트로츠키주의자로 몰아 고문 끝에 살해했다. 당시 POUM 민병대에 자원입대했던 조지 오웰도 그렇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 이러한 '내전 속의 내전'은 공화진영의 총체적 사기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고도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지금 이 땅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핵실험에다 각종 미사일을 펑펑 쏘아대는데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내부의 적' 때려잡기에 정신이 없다. 그 범위는 전(前), 전전(前前)도 모자라 전전전전전전전(前前前前前前前), 전전전전전전전전전(前前前前前前前前前) 대통령으로까지 소급한다. 모두 '문빠'들이 증오하는 전직 대통령들이다.청산 대상 적폐도 무한정이다. 적폐로 찍으면 무조건 적폐다. 다른 이유는 없다. 아산 현충사에 걸린 전직 대통령의 휘호도 적폐가 된 까닭이다. 세계가 찬탄하는 새마을운동도 적폐로 모는 마당이니 새마을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전직 대통령의 휘호를 적폐로 찍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재청장은 눈치가 너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말 대로라면 그런 적폐를 없애라고 문화재청장을 시켜줬기 때문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안보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여건이 못 된다"고 했다. 지난 7월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없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이렇게 무력해도 내부의 적 때려잡기에는 힘이 펄펄 넘치는 게 문 정부다. 밖에 나가서는 찍소리 못하면서 안에서는 큰소리치는 못난 가장의 모습 그대로다.이런 식으로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난제들을 풀어낼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안보 상황을 우리가 주도할 수 없다면서도 "내부가 제대로 결속되고 단합한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 걷는 것 같지만, 사실은 뒤로 가는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moon walk) 춤 뺨치는 말의 기예(奇藝)다. 내부 결속과 단합은 문 대통령이 앞장서 깨뜨리고 있지 않은가?영국 역사학자 앤터니 비버는 '스페인 내전-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에서 "프랑코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별로 한 역할이 없다. 공화군의 용기와 희생을 헛되이 낭비함으로써 전쟁을 패배로 몰고 간 것은 공화군 지도부였다"고 했다. 공화진영은 스스로 무너졌다는 거다. 우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2017-10-24 00:05:05

[세풍] 이왕 돈을 쓰려면

'1928년 재일 경북인 4만9천358명이 고향으로 송금한 돈은 110만3천757원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액수.'일제강점기 시절 경북경찰부가 독립운동가를 감시, 체포, 고문하는 악명 높은 고등계 형사를 위해 만든 비밀교과서와 같은 '고등경찰요사'에 나오는 기록이다. 일제 등쌀에 경북인들은 나라를 등졌다.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경북 사람 가운데 1928년 기준 일본에만 4만9천358명이 살았다. 1927년 말 재일 한국인 17만5천91명의 28%다. 재일 한국인 75%가 노동으로 버틴 것처럼 경북인도 그러했을 터이다.하지만 일본 속 경북 사람들은 고향의 가족에게 번 돈을 보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액수'인 110만3천757원은 1928년 대구부(大邱府)의 1년 세입(경상부+임시부) 98만7천372원보다 많다. 특히 송금된 돈은 독립자금으로 흘러갔다. 나라 안에서 독립군자금을 기꺼이 낼 백성은 이들 말고는 없었다. 상황이 그랬다. 당시 한국 경제의 80%는 일본인 몫이었다. 한국인 2천만 명의 80%가 문맹(文盲)이었다. 농민이 80%이고 이들의 70%쯤이 소작 등으로 가난했다. 독립군자금을 내놓을 사람은 뻔했다. 못 배우고 가난하지만 송금받은 백성과 일부 한국인 자산가를 빼면 누구도 돈을 낼 일은 없었다.이처럼 나라 밖으로 내몰린 한국인이 노동과 장사로 번 돈을 군자금으로 내놓은 사례는 숱하다. 이들의 활동, 특히 '인삼 행상'은 중국 상하이, 홍콩에서 태국, 싱가포르의 남양(南洋)에 이르기까지 '발을 디디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넓었다'. 또 '화교(華僑)가 있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지 한국 인삼 행상들의 존재를 찾을 수 있을'만큼 나라 밖 살길 찾기는 눈물겹다. 이렇게 번 돈은 독립자금으로 헌납되고 이들은 '총대 없는 상인독립군'이 됐다.이들 이야기는 흔히 중국 화교에 견줄 만하다. 일찍 나라 밖 남양으로 살길을 찾아 나선 중국인들이 뒷날 고국 혁명의 든든한 자금줄이 된 일과 같은 맥락이어서다. 해외 화교들이 혁명 인사를 도우면서 중국 혁명지도자 손문(孫文)의 말처럼 '화교는 혁명의 어머니'였다. 맨몸의 노동으로, 한국 특산품 '고려인삼'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번 돈을 독립운동가의 군자금으로 낸 노동자, 행상의 나라 밖 한국인은 총을 든 독립투사와 다르지 않았다.뜬금없이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지금 나라 곳곳에서 이뤄지는 청년지원 정책이 생각나서다. 지금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이 나라 젊은이를 위해 전국 지자체마다 '청년수당'(서울시), '청년디딤돌카드'(부산시), '청년배당'(성남시) 같은 여러 이름을 붙인 예산을 지원하거나 그런 비슷한 일을 추진하는 듯하다. 대구시에서도 어제 '청년희망 공감토크 청년수당에 대하여'라는 주제의 행사를 갖고 대구 청년을 위한 지원 정책 마련에 나선 모양이다. 대구시 조사 결과,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간 대구를 떠나는 청년의 발길이 멈추지 않다 보니 이해할 만하다.청년 지원을 마다하거나 주저할 일은 아니다. 대구 청년이 대구를 떠나지 않고 머물며 고향을 지킬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떠나는 젊은이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대구를 등지는 만큼 이들을 붙잡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일시적인 예산 지원을 통해 청년의 대구 머물기를 유도하기보다 대구를 떠나서도 일자리를 찾도록 하는데 돈을 쓸 필요가 있다. 지금 경북도에서 2013년부터 시작한 '청년무역사관학교' 사례처럼 대구 젊은이가 나라 밖 무대를 향해 꿈을 도전하도록 하는 지원 말이다.옛 기록 특히 가장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대구 젊은이는 뛰어났다. 도전, 모험을 마다치 않았고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었다. 지금의 대구 모습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았다. 그때보다 더욱 자유로운 지금, 대구 젊은이라고 굳이 대구와 나라 안에만 머물러야 할까. 이왕 돈을 쓰려고 했다면 나라 밖에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이들이 대구를 구할 '미래 독립군'이 될지 누가 아는가. 당국의 발상 전환을 바란다.

2017-10-17 00:05:01

[세풍 世風] 그대, 경북도(道伯)백을 꿈꾼다면

물쓰듯 펑펑 쓴다는 비유도 있지만 사실 물만큼 귀한 자원도 없다. 지구상의 물 가운데 인류가 쓸 수 있는 양은 고작 0.03%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벼농사용 물 확보는 절박한 일이었다. 물을 확보하지 못하면 식구가 아사 위험에 빠질 수 있기에 자기 논에 물을 대려는 농부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농부들 간의 물꼬 경쟁은 때로 칼부림으로까지 이어졌다.물로 인한 살벌한 경쟁도 있었지만, 마음 한쪽을 데우는 미담도 있다. 나그네가 우물에서 물 긷는 아낙네에게 물을 청한다. 여인은 섬섬옥수로 물 한 바가지를 전하는데 버들잎 한 장을 물에 띄운다. 나그네가 연유를 묻자 "목이 몹시 마를 때 급히 마시면 체하기 쉬우니 버들잎 휘휘 불어 천천히 드시라는 뜻"이라는 답이 돌아온다.성격 다른 두 이야기이지만 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담았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다. 두 이야기를 장황하게 거론한 이유는 10년째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에 관한 칼럼을 쓰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다. 1991년 구미 페놀 사건을 경험한 대구로서는 낙동강에 수돗물을 의존하는 것 자체가 큰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구시는 취수원을 구미로 옮기는 방안을 10년 전부터 모색하고 나섰다.대구시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큰 착각이었다. 20여 년 전 부산 시민의 극렬한 반대로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이 무산된 전례를 통해 광역 수계 관리가 엄청난 지역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지 경험했음에도 대구시는 배운 것이 없었다. 대구시의 안일한 접근 방식은 구미 시민들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했고 되레 불신과 반목을 키웠다. 취수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구시의 상황 판단도, 시기도 적절치 못했다.우스갯소리로 대구 수성구'동구 주민들은 한여름에도 보일러를 튼다는 말이 있다. 수돗물로 공급받는 청도 운문댐 물이 하도 차서 데워 써야 한다는 것인데, 낙동강 물을 쓰는 달서구'북구'서구 사람들로서는 마냥 부럽기만한 소리다. 심지어 수성구에 낙동강 물이 공급됐더라면 취수원 문제는 진작 해결됐으리라고 보는 이조차 있다. 대구지역 리더들이 많이 사는 수성구 사람들에게 취수원 이전 문제는 관심 밖 사안이었고, 다선 국회의원이 많은 수성구'동구의 정치권도 사실상 힘을 보태지 않았다.정권이 바뀐 이후 국무총리가 뒤늦게 나섰다. 대구 시민들은 이제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지난달에는 총리 주재로 대구시와 구미시가 모여 대책을 논의하자는 제안까지 나왔지만 열리지도 못했다. 회동 무산의 원인을 놓고 구미시와 경상북도가 거절했다는 설에서부터, 취수원 갈등의 폭발력을 간파한 총리실이 알아서 미뤘다는 설이 엇갈리는 등 진실 게임마저 펼쳐졌다.필자 혼자만의 상상인지 몰라도 이낙연 총리는 이 문제에 괜히 끼어들었나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광역수계 관리는 엄연한 국가사무, 즉 정부의 일이다. 지자체 갈등을 이유로 정부가 뒷짐질 사안은 결코 아니다.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대구시도 노력을 다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절박한 만큼 더 주도면밀하게 사업을 추진했어야 했다. 구미 사람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보듬고 취수원 이전에 따른 충분한 보상 방안도 이제 내놔야 한다.구미시도 구미산단에서 나오는 유해 화학물질이 대구 시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최근 남유진 구미시장이 차기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가 도백(道伯)을 꿈꾼다면 취수원 문제 해결을 선거 공약에 반드시 넣으라고 주문하고 싶다. 도지사 출마를 저울질하는 다른 주자들도 마찬가지다. 취수원 이전 문제를 두고 대구와 구미 두 지자체가 보여준 반목과 불신은 유감스럽게도 농부들의 물꼬 다툼 모습과 겹친다. 물 한 사발에도 인심을 듬뿍 담아 나그네에게 대접한 우리 조상들의 넉넉한 인심이 그립다.

2017-10-10 00:05:01

[세풍] 권 시장의 리더십

역대 대구시장 가운데 대중친화력만 놓고 보면 권영진 시장이 단연 독보적일 것이다. 대중 앞에 서면 눈빛과 자세부터 달라지는 모습에서 과연 '정치인이 다르긴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 만큼 권 시장은 시민이 많이 모이는 축제장에 가는 걸 아주 좋아하고 즐기는 것 같다.이달 초 대구삼성창조캠퍼스에서 열린 보자기 축제장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이날 가위바위보 대회가 열렸는데, 300명의 참가자 중 마지막에 세 명이 남아 권 시장과 겨루게 됐다. 권 시장은 이들과 등을 맞대고는 하늘 높이 손을 들어 계속 바위만 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시장님! 이제 다른 걸 내시죠"라는 사회자 말에 속아 가위를 냈다가 탈락했고, 둘은 계속 보를 내 권 시장을 이겼다. 권 시장은 우승자를 가린 후 마이크를 잡고는 "두 분이 시장인 저를 끝까지 믿어줘 너무나 고맙다"는 말로 좌중을 즐겁게 했다. 권 시장은 축제장에서 어떤 행동과 말을 해야 시민들이 좋아할지 훤히 꿰뚫어보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권 시장과 얘기를 나눠보면 그리 달변이 아님을 알게 된다. 대구 현안에 대해 설명은 곧잘 하지만, 논리적이거나 설득력이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서울말과 안동 사투리가 섞여 그다지 듣기 좋은 목소리도 아니다. 마주앉으면 어중간한 말솜씨이지만,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확연히 달라진다. 세련되고 논리적인 말투로 바뀌고, 친근하고 다정한 멘트도 잘 날린다.대중 앞에 나서거나 악수하길 좋아하고 즉석연설도 은근히 즐기는 걸 보면 과거 시장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권 시장을 두고 '축제 시장' '행사 시장'이라고 비아냥댄다. 사무실보다는 행사장을 선호하고, '치맥축제' '컬러풀 페스티벌' 같은 축제에서 시민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신세대 시장'에게는 적이 많은 것 같다.권 시장은 공무원 일색의 역대 시장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취임 초부터 대구를 개방적이고 실용적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기대를 모은 만큼 바뀐 것이 제법 있다. 대구시청 분위기도 과거에 비해 좀 달라졌다. 시장이 아무리 대화와 소통을 하려고 해도 공무원 속성상 쉽게 바뀌지는 않지만, 적어도 시장실 주변에서 버럭버럭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지르는 풍경은 사라졌다. 권 시장이 대구시 전체를 개방적이고 혁신적으로 이끌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시청 주변에는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그럼에도, 권 시장은 업무 능력과 성과 면에서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과도한 비판과 억측이 있기는 하지만, 시장 스스로 뚜렷한 업적이나 공적을 내세우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재임 3년여 동안 전기자동차, 로봇 등의 소소한 성과는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통합대구공항 이전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권 시장에게 신공항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대구의 모든 현안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나 마찬가지다.모든 문제는 권 시장의 리더십에 기인하는 것 같다. 시장 본인은 의욕적이고 열성적이지만, 주위에 추진 동력이 거의 없어 힘을 모으지 못한다. 대구에서 오래 살지 않아 지원'지지 세력이 없는데다 일부에서는 '서울로 돌아갈 사람'이라며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않는다. 축제'행사장을 열심히 쫓아다닌다고, 금방 우군이 생기지 않는다. 시장 본인의 전술'전략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시장 반대파나 비판론자들이 득세할 수밖에 없다.권 시장 측은 초선 시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리더십 문제는 4년이 지나면 우군이 대거 생겨나기 때문에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는 것이다. 맞는 말인지 모른다. 대구 사람들이 시장 개인의 시행착오까지 기다려 줄 만한 여유가 있을 지가 관건이다. 내년 대구시장에 나서려는 분이 여럿 있지만. 두드러지는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권 시장의 리더십이 의심받고 있으면 미래가 걱정스럽다.

2017-09-26 00:05:00

[세풍] 표트르의 훈수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EEF) 기조연설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다. 북한이 화성-12형 탄도미사일을 쏘고 6차 핵실험을 한지 며칠 뒤다. 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 해결에 러시아의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내가 더 잘 안다"는 푸틴의 따가운 훈수만 들었다.동해로 열린 러시아의 극동 항구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의 이름은 '표트르 대제'만(灣)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러시아의 서쪽 끝,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같은 이름이다. 표트르 1세, 표트르 대제로 불리는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로마노프에서 나온 지명이다. 동해에만 시선이 고정된 우리에게 낯설다 못해 이질적인 이름이다. 그럼에도, 눈여겨봐야 할 것은 18세기 러시아의 운명을 뒤바꾼 표트르라는 인물이 들려주는 훈수 때문이다.러시아 역사는 표트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유럽 변방이었던 러시아 역사에서 개혁 군주 표트르의 등장은 러시아의 고대와 근대를 가르는 분수령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1725년 표트르가 죽자 모든 러시아 국민이 기뻐했다. 외골수에 무자비한 폭군 치하에서 벗어나서다. 표트르는 외동아들 알렉세이 황태자마저 반역죄로 몰아 처형할 만큼 잔혹한 군주였다.핀란드만 어귀의 새 수도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의 도시'라는 뜻이다.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낙후한 러시아를 바꾸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표트르는 새 수도 건설에 동원돼 혹사당하다 죽은 농노 12만 명을 네바강 늪에 던져 넣었다. 101개 섬에 500개의 다리가 놓인 아름다운 물의 도시가 간직한 어두운 역사다.표트르 통치 시기 국민들은 그가 벌인 일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군주로만 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를 개혁하고 근대화를 앞당긴 인물이다. 서유럽의 앞선 조선 기술을 배우려고 암스테르담 조선소에서 열 달간 일할 정도로 개화에 온몸을 던진 군주였다. 바다만이 살길이라고 본 그는 패권국 스웨덴을 억누르고 발트해로 나아갔다. 이런 공적에도 폭정의 그늘은 짙었다. 하지만 역사는 '대제' 칭호를 붙여주었고, 러시아 서쪽과 동쪽 양끝에 그의 이름을 남겼다.한반도 주변 정세가 어지럽다. 북한 6차 핵실험은 대한민국 안위에 대못을 박았다. 지난 20년간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외치며 방치한 결과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침을 튀기며 여전히 내부의 전쟁에 빠져 있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은 국가 안보와 국민 생존이 아니라 정략적 이해다. 대한민국 처지가 꽁지 말아 넣은 개처럼 어쭙잖은 데도 정치는 허황한 입씨름에 여념이 없다.그 사이 고위 공직자 7명이 인사 청문 문턱에서 낙마했다. 야당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또 "우리 당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며 기고만장했다. 그럴수록 청와대와 여당은 안보 문제 등 현안마다 갈피를 못 잡고 오락가락했다. 이런 정부와 지도자를 지켜보는 국민이 느끼는 것은 처절한 낭패감이다. 위태로운 국가 운명 앞에 유연한 전략적 사고도, 배짱도 없이 외고집만 부리고 있어서다.쓸만한 패도 없고 거의 곤마 상태에서 대통령이 전술핵 반입에 고개를 가로젓고는 "북한을 재기 불능으로 만들 힘이 있다"고 말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아무리 "이러면 대화가 불가능"을 외쳐도 돌아오는 건 "가진 것도 없는 것들"이라는 냉소뿐이다. 동맹의 신뢰는 비끌어졌고, 중국'러시아의 협박과 냉대는 갈수록 노골적이다.대한민국은 수백만 명의 뼈 위에 세워진 나라다. 그래서 더는 전쟁의 참화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지도자들이 입으로만 평화를 외치거나 대중 영합만으로는 역사를 바로 세울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는 강한 나라는 결사의 의지와 원대한 목표, 주도면밀함에서 나온다고 역사는 가르친다. 이는 표트르의 훈수이기도 하다.

2017-09-19 00:05:01

[세풍] 평화도 총구<銃口> 에서 나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사드 배치를 결행한 그 용단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을 표합니다. 하지만 배치 완료까지 426일간의 찬반 논란으로 엄청난 국민적 에너지를 낭비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된 데는 집권 전부터 사드 배치에 반대하거나 미온적이었던 대통령님의 책임이 큽니다. 다시는 이런 '안보 자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그러나 그럴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북핵에 맞설 가장 현실적인 안으로 떠오른 '전술핵' 도입 주장에 청와대가 보이는 거부 반응은 '사드 사태' 재발의 전주곡처럼 들립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안보 상황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습니다. 전략핵이든 전술핵이든 핵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핵은 핵으로만 맞설 수 있는 '절대무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님의 참모와 여당은 "전술핵을 배치하면 북핵을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다"는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북핵은 기정사실인데도 말입니다.대통령님은 어떻게 할 겁니까? 또 사드 논란을 촉발한 그 평화주의적 신념에 따라 반대할 겁니까? 대통령님의 평화주의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그 신념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 신념만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레온 트로츠키의 말은 정곡을 찌른 것이었습니다.잠시 마하트마 간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호주 출신의 정치학자 존 킨은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에서 간디의 비극적 죽음이 독립 인도의 건국에 역설적이지만 다행이었다고 했습니다. 인도의 두 거인(巨人) 네루와 간디의 정치철학 때문입니다. 간디는 독립 인도가 입법'행정'사법권을 모두 갖는 소규모의 자치적 '마을 공화국'이 상호 연결된 형태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간디는 성문헌법, 의회, 정당, 주기적 선거 등 의회 민주주의 제도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네루는 의회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헌정 국가를 꿈꿨습니다. 간디가 죽지 않았다면 국가 형태를 두고 네루와의 갈등은 불가피했고 인도의 국가 건설은 표류했을지 모른다는 얘기입니다.기자는 간디의 죽음이 인도에 다행인 이유는 또 있다고 봅니다. 간디의 무조건적 비폭력 평화주의가 가져올 파멸적 결과의 가능성입니다. 간디는 2차 대전 중 독일 유태인을 향해 "도살자의 칼에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절벽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세계와 독일의 민중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태인은 '도덕적 승리'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기자에겐 '개 풀 뜯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막스 베버가 살아서 간디의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정치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있는 한 언명(言明)이 그 실마리가 될 듯합니다. "(정치인의 행위와 관련해 볼 때) 선한 것이 선한 것을 낳고, 악한 것이 악한 것을 낳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실로 정치적 유아에 불과하다." 정치적 선의가 정치적 결과의 좋음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정치인이 견지해야 할 덕목으로 베버가 제시한 것이 신념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한 성찰 즉 '책임의 윤리'입니다.대통령님도 당신의 신념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전쟁 불가(不可)의 신념이 무조건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북핵의 인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평화는 평화를 강제할 수단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것이 없는 평화는 오직 적이 선의를 베풀었을 때만 가능한 '위장 평화'일 뿐입니다.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만 어찌 권력만 총구에서 나오겠습니까. 평화도 총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2017-09-12 00:05:04

[세풍] 대구은행 돈 1만500원

100년 전인 1917년 12월, 대구와 경북이 들썩했다. '대구은행 돈 1만500여원 군자금 사건' 때문이었다.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던지 일제 경찰은 뒷날 '제1 경북 중대 사건'이라고 불렀다.(당시 '군자금'은 1만400~1만9천여원까지 다양하나 필자는 1만500원으로 보고 오늘날 한국은행의 기준에 따라 계산한 결과 1억3천115만여원으로 추정됐다) 과연 100년 전, 대구은행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대구은행은 1913년 대구의 민족자금으로 설립됐다. 1912년 창립된 선남은행과 함께 대구에 본점을 둔 지방은행이다. 두 은행을 비롯,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인 설립 은행이 허락된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을 일본 식민지 시장경제로 편입시켜 상품을 팔아먹는 시장으로 예속하고 한국 자산가의 친일 세력화, 특히 한국인 돈을 은행에 묶어 독립운동가 지원이나 군자금으로 쓰이는 것을 막는 등 침탈 목적이 컸다.그런데 범인은 21세의 출납계 이종암(李鍾岩) 주임이었다. 그는 1914년 입사, 이듬해 결혼한 신혼의 젊은이였다. 특히 그의 고모부(정재학)가 대구은행장이어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한마디로 말하자면 장래가 촉망되는 행원이었다. 당시 좋은 일자리는 대부분 일본인 차지여서 한국인으로서는 더욱 구하기 힘든 은행원이었다.당시는 작가 이광수가 공개적으로 일제 총독에게 한국 젊은이가 '할 일이 없어' 독립운동과 같은 '전율할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일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촉구할 만큼 일자리가 없었다. 은행 등은 '사무가 고상하고 복잡하여 한국인을 사용하기 어려워 당국에서도 당분간 일본인을 주로 쓰는 자리'라 할 정도였으니 이종암 사건은 충격이었다. 그러잖아도 한 달 전에는 내로라하는 부자인 칠곡의 장승원 전 경북도관찰사가 독립군자금 문제로 암살된 뒤라서 일제는 범인 검거에 더욱 혈안이었다.그러나 종적을 감춘 그는 1918년 중국으로 망명, 은행 돈을 군자금으로 썼다. 그는 '빼돌린 돈'을 특히 1919년 중국에서 결성된 무장투쟁 결사인 의열단(義烈團) 창설에 보탰고 그의 독립 활동은 일제의 은행 설립 허가 속셈을 보기 좋게 찌른 의거(義擧)였다. 창단 단원 13명인 의열단 부단장으로 숱한 투쟁 중 1925년 대구에서 붙잡혀 1927년 징역 13년 형 선고와 감옥살이, 1930년 35세로 순국한 그에게 대구은행 돈은 독립자금의 마중물이었다.그러나 대구은행은 뛰어난 영업 실적과 경영에도 1928년 여러 면에서 못한 부산의 경남은행과 합병되고 다시 1941년 서울의 한성은행에 흡수되면서 사라졌다. 대구은행이 총독부에 의해 흡수'합병된 운명과 역사에서 사라진 배경이 경제 외적인 탓이라는 학계 연구 결론을 보면 이종암의 '대구은행 돈의 군자금화'가 원인이 아니었을까.이런 대구은행이 1967년 부활했다. 일제 때처럼 대구경북 지역민들의 뜻에 의해서다. 그리고 '대구의 돈은 대구은행으로'라는 향토색 짙은 구호와 김준성이라는 초대 행장의 뛰어난 역할과 지역민들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1997년 외환 위기의 어려움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는 대구경북에서 대구은행의 탄탄한 기반이 말해준다.하지만 최근 대구를 떠들썩하게 한 대구은행 여직원 성추행 사건, 특히 자리를 둘러싼 잡음 같은 일들을 보면 어이가 없어 절로 한숨이다. 물론 현 대구은행과 100년 전 대구를 들썩인 이종암의 대구은행은 역사적으로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그래서 굳이 100년 전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일조차 마땅하지 않고 억지처럼 여길 수 있다.그럼에도 굳이 100년 전 대구은행의 한 젊은 행원의 의거를 떠올린 것은 지역민들의 돈을 비록 당시는 몰래 빼돌렸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오로지 나라를 되찾는 의로운 독립자금으로 쓰고 활동했음에도 뒷날 대구의 은행 종사자들이 잘 모르고 무관심한 사실이 그저 안타까워서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쏟을 여력으로 차라리 그를 기리는 작은 동상이나 기념비라도 세울 생각이었으면 이번 같은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17-09-05 00:05:03

[세풍] 대구은행의 진짜 주인은?

손해가 뻔한데 주식 투자할 바보는 없다. 그런데 1998년 이런 상식이 깨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해 단행된 대구은행의 유상증자였다. 외환위기 직후 대구은행은 존폐 기로에 놓여 있었고 주가도 1천~2천원 수준으로 바닥을 기었다. 자본금 확충이 절실했던 대구은행은 1천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시장에서 헐값에 살 수 있는 주식을 5천원 가격에 청약하는 내용이었으니 성공할 수 없는 시도였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구경북민들이 너도나도 주머니를 열어 증자에 참여한 것이다. '대구은행 주식갖기' 운동이 펼쳐졌고 청약 금액은 1천억원을 넘겼다. 당시 유상증자에 실패했다면 대구은행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대구은행은 대구경북사람들에게 '향토기업' 이상의 의미를 지닌 기업이다. 그런데 요즘 대구은행을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대구은행을 둘러싸고 실망스러운 일들이 잇따라 터져 나와서다. 직원들의 성추행 파문으로 은행장이 사과하는 일이 벌어진 데 이어, 이번에는 속칭 '상품권 깡'을 통한 비자금 조성 논란까지 빚어졌다. 경찰이 공식 수사에 나서지 않았기에 사실 여부를 예단할 수는 없다. 경찰로서도 내부 투서만으로 대구은행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 등 본격 수사에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매머드급 악재 속에서 은행 안팎에서는 온갖 말들이 흘러나오고 조직도 크게 동요하고 있다. 투서와 제보가 사정기관 및 언론으로 지속적으로 새어나오는 것과 관련해 안팎에서는 차기 은행장 자리를 노린 알력설마저 나돌고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이 같은 루머들이 정권 교체기 친박(親朴) 금융인들에 대한 물갈이가 진행되고 있는 틈을 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도 사퇴는 없다며 박인규 은행장은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해 놓은 상태이지만 그의 머릿속은 아주 복잡할 것만 같다.1992년 은행장과 전무이사 간의 알력 여파로 시중은행 임원 출신 인사가 은행장으로 영입된 것만 제외하면 대구은행은 내부에서 은행장을 배출해 왔다. 은행장이 임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용퇴함으로써 관치금융 외부인사가 날아드는 것을 차단해 온 것이다. 합리적 의사 결정에 의해 은행장 자리가 양위(讓位) 돼온 것으로 외부에 알려졌지만 속사정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대구은행에서는 임원이 되거나, 나아가 은행장이 되려면 강력한 '빽'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은행장 또는 유력 임원에게는 정권 실세 또는 유력 정치인과의 친분설이 자의든 타의든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박 행장이 선임됐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없지 않았다. 하기야 퇴직 후 자회사로 떠난 임원이 대구은행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것은 그가 유일무이해서인 듯하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당시 은행에서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대구은행이 이처럼 흔들리고 시민 불신을 받는 책임은 당연히 은행장에게 있다. 대구은행의 최고경영자인 박 행장은 조직이 정치인 줄대기와 파벌 만들기, 자기 사람 심기 등으로 병들고 있다는 안팎의 지적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한다. 만약 차기 은행장 자리를 노린 알력설이 이번 루머의 진원지라면 좌시해서 안 될 일이다. 오죽했으면 은행장 내부 승진 전통을 깨더라도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을 은행장으로 영입해 탕평 인사를 하고 조직을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외부에서 나오고 있겠는가.대구은행은 대구경북민들의 손에 의해 1967년 태어났고 지역민들의 열렬한 지원 속에 성장했다. 지배주주가 없다 뿐이지 대구은행에 주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구은행의 주인은 대구경북사람들이다. 대구은행을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고 착각해 사심 챙기는 이가 득세한다면 대구은행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1998년 외환위기 같은 외부적 위협으로부터 대구경북민들은 대구은행을 지켜냈다. 하지만, 만일 내부적 요인으로 대구은행이 위기에 처한다면 구해줄 이는 없다.

2017-08-29 00:05:03

[세풍] 자유한국당이 살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말 대단한 분이야."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분이야."젊은이들에게 자칫 돌 맞을 말을 내뱉다니 제 정신인가 하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얼핏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분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보 측이나 친문(친문재인) 인사에게서 들은 얘기라고 하면 놀랍지 않은가.이분들이 생각하는 박 전 대통령의 '공적 아닌 공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제1당인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을 끌고 '정치적 무덤'에 함께 들어가 버렸다. 둘째, 보수를 자임하거나 내세우기가 부끄러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당연히 진보 쪽만 힘쓰는 세상이 됐다. 셋째, 문재인 대통령이 최순실 같은 측근을 만들지 않는 한 아무리 실수하고 잘못해도, 박 전 대통령 자신만큼 잘못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이분들의 얘기로는 보수 세력을 그렇게 공격하고 두들겨도 효과가 없더니만, 박 전 대통령 한 사람의 힘으로 보수 세력을 완벽하고도 확실하게 몰락시켰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야말로 진정으로 정치를 발전시키고 전진시킨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너무나 배배 꼬인 역설적인 표현이기에 유쾌하게 받아들이기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틀리거나 잘못된 이야기는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보수 쪽에서는 '우리를 망쳤다'며 욕을 먹고, 진보 쪽에서는 '우리를 살렸다'며 칭송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든 것은 분명하다. 본인이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 버렸으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박 전 대통령은 서서히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겠지만, 남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보수 세력은 어떻게 생존할지 걱정스럽다. 한국당은 탄핵 정국 때 소멸될 듯하더니만,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힘겹게 살아남았다. 수도권과 다른 지역에서는 '폭망'(폭삭 망함) 상태로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꼴이지만, 그래도 대구경북에서는 가장 큰 정치 세력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에 줄 서는 인사들이 많은 걸 보면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기반을 갖고 있는 것 같다.한국당이 요즘 대구경북에서 이런저런 이벤트나 행사를 자주 벌인다. 전국 최초니 처음이니 하면서 대구를 한껏 치켜세우고 대우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어쩐지 어색하다. 홍준표 대표의 취향이라고 하나, 한국당이 다른 지역에 가 봤자 외면받을 것이 분명한데, 대구경북에서는 그런대로 행세할 수 있으니 그럭저럭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솔직히 지역민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고, 불쾌하고 찜찜한 마음이 앞선다. 한국당이 자신을 확 바꾸고 고치고 난 다음에 지역민에게 다가서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다. 당명만 달리한 채 예전 그대로의 모습과 자세로 지역민을 대하는 것은 지역민의 순수성을 이용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당이 무엇을 하든 간에 지역민이 계속 지지해 줄 것으로 믿는 것은 엄청난 오해다. 전국적으로 외면받는 정치 세력을 대구경북만 여전히 보듬어 줄 것으로 착각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지역민은 더는 선량한 '천사'나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한국당이 뼈를 깎는 각오로 전면적인 혁신에 나서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경북의 지지도 떨어져 나갈 것이다.한국당은 자신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인데도 태만하고 나태하기 이를 데 없다. 개혁의 시금석인 박 전 대통령 제명 건을 처리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얼마 전 혁신위원회가 내년 지방선거에 상향식 공천을 하지 않고 '전략 공천' '낙하산 공천'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홍준표 대표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말과 같으니 도대체 '혁신'이라는 개념조차 모르는 것 같다. '혁신'이니 '개혁'이니 하는 말은 한국당과 거리가 먼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한국당은 조만간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2017-08-22 00:05:00

[세풍] 우리 머릿속의 광복

미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은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그는 러'일 전쟁을 종결하는 중재안을 내고 포츠머스 조약을 성사시킨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독일과 프랑스의 '모로코 위기' 해결 노력도 있다. 하지만 루스벨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이 중재안의 꺼풀을 들쳐보면 추잡한 미'일 간 외교 교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루스벨트는 '약한 나라는 망하고 강한 나라가 살아남는다'고 믿은 인물이다. 또 그는 외교 문제에서 최선의 방법은 "부드러운 말과 큰 막대기"라고 늘 강조했다. 이는 어르고 달래다 안 되면 몽둥이가 약이라는 뜻이다. 당시 미국과 유럽 언론은 이를 '큰 몽둥이 정책'(Big Stick Policy)이라고 비꼬았다.루스벨트는 러시아보다 일본에 더 호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국력과 국체의 우열에 관한 비뚤어진 소신과 개인적 성향은 일본과 밀착해 미국의 이익을 챙기는 외교적 수완으로 나타났다. 1905년 7월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이익과 조선'만주에 대한 일본의 우위를 인정하는 밀약을 맺은 것이다. 훗날 큰 논란이 된 태프트-가쓰라(桂) 비밀 각서다. 미국 정'관계 거물로 구성된 아시아 사절단의 극동 순방 때 도쿄에서 일본과 마주 앉은 태프트는 부드러운 말과 미소로 각서 문구를 다듬었을는지도 모른다.필리핀 초대 총독을 지낸 윌리엄 태프트는 당시 육군 장관으로 루스벨트의 최측근이자 친구였다. 그해 9월 루스벨트의 망나니 딸 앨리스와 함께 대한제국을 찾은 태프트는 각서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고종의 극진한 대접만 받고는 조선을 떠났다. 각서 내용은 1924년까지 극비에 부쳤다. 약소국을 압제와 수탈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미국 이익을 챙기기에 바빴던 루스벨트에게 결국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는 분칠과 함께 노벨상이라는 덤까지 얹어준 것이다. 1908년 루스벨트는 일본인 이민 문제로 불편해진 미'일 관계를 의식해 루트-다카히라(高平) 조약(태평양 지역에서의 미'일 교환공문)을 맺고 조선'만주에서 일본의 우위를 재확인했다.미국 이익을 우선하는 미국 정부의 이런 외교 기조는 '애치슨 라인'에서도 잘 드러난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1월 '애치슨 라인'을 선언하고 아시아 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 인도차이나 반도를 뺐다. 전략적 가치가 없다며 한국에 등을 돌린 순간 6'25라는 비극이 들이닥쳤다.다시 광복절이다. '적폐 청산'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안팎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연일 핵과 미사일 카드를 흔들어대는 북한과 사드 협박에 열을 올리는 중국, 종잡기 힘든 트럼프 대통령의 과격한 '말폭탄'이 쉴새 없이 우리 머리 위로 오간다. 잔 펀치와 말 돌리기에 능한 북한과 중국을 향해 미국 정치권도 선제공격과 무역전쟁, 대화를 제각각 주문하며 뒤엉켰다. 국내 주식시장이 며칠째 곤두박질 치고 환율은 치솟았다. 8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으나 우리 정부의 반응은 조용하다. 절묘한 해법을 찾아서가 아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상황을 관리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전자파라는 뿌리를 타고 마냥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일제 침략과 압제의 먹구름이 걷혔다는 '광복'(光復)의 날이 이리 어수선한 것은 불안한 국제 정세 탓만은 아닐 것이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전히 국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우리 정치와 국태민안보다 탐욕과 세력 다툼이 더 넘쳐나는 게 근본 이유다. 지금 우리의 눈과 귀가 쏠려야 할 곳은 화염이나 분노 같은 감정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냉정함과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다.급부상한 일본의 해군력은 루스벨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밀약이 나왔고 조선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힘이 없다면 눈이라도 밝아야 한다. 우리가 계속 편견에 사로잡혀 바깥세상을 바로 보지 못한다면 광복은 영원히 불안한 명제다.

2017-08-15 00:05:05

[세풍] 5년 뒤 홍수가 나든 말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민주주의를 혐오했다. 그들이 누군가를 비난할 때 쓴 단어가 '민주주의' '민주주의자'였다. 그들은 왕이 통치하지 않는 '공화주의'를 추구했다. 하지만 이는 대중이 직접 통치자를 뽑는다는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그들이 건설하고자 한 것은 공평무사하게 판단할 학식과 능력을 갖춘 '고매한 신사들의 통치'였다.그들이 민주주의를 배격한 이유는 대중이 너무나 무지해서 자기들에게 이로운 것을 추구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다수의 이익과 다중의 혼돈이 소수의 좀 더 높은 차원의 생각을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체제였다. 이런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 미국 제4대 대통령으로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의 말이다. "민주주의는…국민의 시야를 좁혀버리며, 따라서 국가적인 거대한 목적을 이해하고 추구할 능력이 없는 지도자와 시민을 생산한다."('민주주의의 삶과 죽음', 존 킨)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엘리트주의자의 망발이겠지만. 대중민주주의가 품고 있는 '무책임의 정치'를 간파한 혜안임은 부정할 수 없다. 대중민주주의에서 대중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설사 그것이 국가를 파탄 낼 독(毒)이어도 마땅히 따라야 할 '국민의 뜻'으로 둔갑한다. 이런 무책임의 정치는 현 세대를 위해 미래 세대를 희생시키는 '미래 착취'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문재인정부가 쏟아내는 각종 정책은 이를 기반으로 한다.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앞으로 5년 내에 전기요금은 올리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10년, 20년, 30년 뒤가 아니라 '5년'이다. 현재 전력 수급 사정을 보면 그렇게 해도 된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발전소 건설에 투자를 늘린 덕분이다. 그래서 5년만 살고 말 거라면 필자 같은 무지렁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문 대통령의 '탈(脫)원전' 구상이 실천되면 발전 설비는 15%나 감소한다. 전기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이에 대한 문정부의 반박은 두 가지다. 경제성장 둔화로 전력 수요가 준다는 게 그 첫 번째다. 예측이 다 그러하듯 경제 예측도 맞는 경우보다 틀리는 경우가 더 많다. 철학자 칼 포퍼가 말했던 "미래를 알려면 미래의 지식을 알아야 하는데 설령 그것을 안다 해도 그때 지식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지식이 되어버리는" 인간 지식의 한계 때문이다. 그래서 예측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정부의 예측은 매우 위험하다.두 번째는 감소하는 전력 설비를 메울 신재생에너지 단가가 2022년 이후부터 하락한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전혀 없다. 재미 있는 것은 2022년은 문정부 임기 마지막 해라는 점이다. 신재생에너지 값이 문정부가 원하는 대로 임기 종료와 함께 알아서 떨어지게 돼 있는 모양이다.공무원 17만4천 명을 더 뽑는 계획도 마찬가지다. 문정부는 그 비용은 앞으로 5년간 21조원이면 된다고 했다. 역시 중요한 것은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뒤가 아니라 5년이다. 비용도 어떤 셈법인지 21조원→16조원→8조원으로 계속 낮췄다. 진실은 5년간 21조원(아니면 16조원이든 8조원이든)이 아니라 30년간 231조3천억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공식 발표다. 이 돈을 대느라 우리 후손은 허리가 휠 것이다.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장기 소액 연체자의 원금 100% 탕감 등도 그렇다. 더없이 따뜻하고 인간적인 정책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영세 자영업자의 몰락 가능성, 고용 안정이 아니라 고용 축소, 탕감을 기다리면서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도덕적 해이라는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다. 모두 미래에 큰 짐을 지우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완 대책은 문정부에 없다. 프랑스 왕 루이 15세는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에 "다음에는 태자(루이 16세)가 잘해주겠지. 나 죽은 다음에 홍수가 나든 말든 알 바 아니지"라고 했다. 문정부의 행태가 딱 그 꼴이다.

2017-08-08 00:05:01

[세풍 世風] 홍익(弘益) 조세

세금 이야기가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국정 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 과제를 발표하면서다. 이는 앞으로 5년 동안 추진할 국정의 밑그림인 셈이다. 재원을 두고 세금 문제는 자연스럽다.100대 과제가 잘 이뤄지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정부에 따르면 178조원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재원 마련을 위한 방안의 하나가 5억원 이상 높은 소득을 올리는 고소득자 4만 명과 과세표준 2천억원 이상 대기업 116개 사를 대상으로 한 세금 거두기이다.문제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에게 세금을 거두더라도 연간 3조7천800억원, 5년간 18조9천억원에 그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세금 거두기와 추가 재원 마련에 대한 방법을 두고 여야의 입장이 엇갈린다. 우선 이름 붙이기부터 그렇다. 여당은 '명예 과세'존경 과세'사랑 과세'라고 표현했다. 야당은 '세금폭탄'이라고 일축했다. 또 추가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여당은 이런 세금과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 감축 등을 거론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결국에는 전반적인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여야의 세금 논쟁은 조선 세종 시절의 세금 논쟁과 닮은꼴이다. 1418년 8월, 임금이 된 세종은 즉위 때부터 새로운 세금 제도 마련에 매달렸다. '백성을 위한 공평 과세'를 위해서였다. 당시 조세는 논밭에 쌀과 콩으로 수입의 10분의 1을 거두었다. 고려 때 물려받은 제도다. 그런데 힘과 권력을 가진 관리 등은 농간을 부렸고 논밭을 숨기거나 줄이고 빠뜨렸다. 조사관에게 뇌물을 주거나 짜고 세금을 내지 않거나 줄였다.애꿎은 백성들만 고스란히 부담을 안았다. 소수의 가진 자와 힘 있는 관리, 중간 조사자의 농간을 없애고 토지의 좋고 나쁨과 한 해 농사의 풍작과 흉작 여부를 따져 매겨진 토지의 등급에 정해진 일정량의 세금을 내는 공법(貢法)이란 조세법 마련을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된 배경이다. 1418년 공법에 뜻을 품은 뒤 1427년 과거시험 출제, 1428년 조정의 공식 논의로 이어졌다. 예상대로 관리 등은 벌떼로 반대했다.왕과 반대하는 신하들 간의 수없는 '밀당'이 반복됐다. 1440년 3월 공법 도입을 두고 당시 69만2천477명의 백성 가운데 17만2천806명을 대상으로 5개월간 찬반 여론조사도 이뤄졌다. 결과는 찬성 9만8천657명, 반대 7만4천149명이었으나 공법 도입은 불발됐고 1444년 11월 마침내 도입이 결정됐다. 뜻을 세운 지 26년, 임금 재직 32년 가운데 26년을 보냈다. 결과는 탈루 방지와 공평 과세, 고른 과세로 재정이 넉넉해졌고 세율도 20분의 1로 절반이 됐다. 마침내 1460년 세조 때 경국대전에 실렸고 조선 패망 때까지 이어졌다.이런 세종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여당에서 추진하는 고소득 과세는 많은 국민이 환영하고 있다. 굳이 찬성이 85%라는 여론조사(추미애 민주당 대표 발언)를 앞세우지 않아도 그렇다. 이는 고소득에 걸맞은 공평 과세에 대한 국민적 바람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빈부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를 부채질하는 구조적인 문제와 과세 정책의 허점으로 빚어진 결과이다.지금 여야가 할 일은 한가롭게 이름을 둘러싼 따지기가 아니다. 정치 주도권을 위한 정략적인 정쟁을 할 때도 아니다. 공평 과세를 통한 과세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 마련에 고민하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이는 널리 국민을 이롭게 하는, 말하자면 '홍익(弘益) 조세'를 위해서라도 그렇다.아울러 여당에서도 세금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일만도 아닌 듯하다. 시간을 갖고 국민적 합의라는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현재와 같은 4당 체제하에서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원전정책을 비롯한 여러 정책들이 벌써부터 국민 갈등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비록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인 높은 지지는 이어지고 있지만. 야당을 끌어들이는 설득 작업이 더욱 필요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홍익 조세를 위해서라도.

2017-08-01 0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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