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김원봉의 최종 목표는 김일성과 다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좌파들이 활개 칠 공간을 활짝 열었다. 그 공간에서 좌파들이 벌이는 언동은 이해 못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둔갑시키려는 기획도 마찬가지다. 김원봉을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평가는 그 기획이 이제 실행 단계에 왔음을 알리는 신호로 보인다. 이 기획은 러시아 혁명의 주역 중 하나로 스탈린과 권력투쟁에서 패한 뒤 암살당한 레온 트로츠키의 복권(復權)운동과 빼닮았다. 진실의 왜곡이자 모욕이라는 것이다.1936년 숙청당하기 전까지 언행을 보면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도플갱어'였다. 1932년 그는 이렇게 썼다.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과업에 위배되는 범주를 설정하고 이에 위배되는 자유는 가차 없이 제거돼야 한다." 스탈린의 통치가 바로 이랬다. 반대자를 무자비하게 압살한 것도 스탈린과 똑같다. 1923년 크로시타트 수병들이 볼셰비키 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하며 봉기했을 때 진압 계획을 세운 장본인이 트로츠키였다.이런 불결(不潔)한 과거는 1937년 미국 철학자 존 듀이가 이끈 국제 민간조사위원회의 모의재판으로 덮어졌다. 위원회는 1936년 소련이 궐석재판에서 트로츠키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적용한 반혁명죄를 무죄로 판결했다. 이때부터 서구 지식인들은 트로츠키를 민주적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다 스탈린에게 희생당한 불운한 혁명가로 세탁하기 시작했다. 이런 재평가는 1940년 그의 암살로 '확정적'이게 된다. 그러나 이는 멋대로 상상해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다.그런 점에서 트로츠키가 권력을 잡았어도 스탈린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은 의미 없는 '역사의 가정'으로 치부할 수 없다. 마르크시즘 역사에 정통한 폴란드 출신 영국 역사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결론이 바로 그렇다. "트로츠키가 책임을 떠맡았어도 그의 권위에 위험이 된다고 생각되는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스탈린도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했다…모두 자신만이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이다.김원봉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항일 무장투쟁의 최종 목표에서 김원봉은 자신을 숙청한 김일성과 하나였을 것이란 얘기다. 그 목표란 한반도 적화(赤化)다. 김원봉을 '판에 박힌 공산분자'라는 고(故) 장준하의 결론, 6·25 남침 수행 공로로 1952년 김일성에게 최고 상훈(賞勳)의 하나인 '노력훈장'을 받은 사실 등은 이를 뒷받침한다.그러나 좌파들은 "숙청당했으니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요설(妖說)로 이런 증거들을 '물타기' 한다. 트로츠키가 스탈린에 숙청당하고 살해된 것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것으로 분칠한 서구 지식인 사회의 '몰(沒)지성'의 재판(再版)이다. 트로츠키는 권력을 놓고 스탈린과 다투었지 자유를 위해 다투지 않았다. 김원봉이 숙청된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 정권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패한 결과일 뿐 대한민국 건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문 대통령은 "애국 앞에 진보와 보수가 없다"고 했다. 김원봉의 항일 무장투쟁을 애국이란 차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여기까지는 좋다. 다음이 문제다. 그는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남침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그것도 애국인가?

2019-06-11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부산의 꿈, 과연 누굴 위해선가

부산 사람이 달라 보인다. 지도자, 특히 정치인이 그렇다. 그들은 새로운 꿈에 젖어 있다. '한국 제2의 도시'라는 낡은 외투를 벗고 걸맞은 새로운 수식어를 찾는 꿈이다. 그 꿈은 '내륙 수도 서울 다음의 부산'이 아니다. 정치, 경제 등 모두를 가진 서울 권력에 목을 매는 수동적 도시에서 벗어나 나라 정책조차 뒤집는 힘 있는 독립된 도시, '해양 수도 부산'을 만드는 것이리라. 꿈을 이룰 터는 바다의 가덕도 신공항일 듯하다.부산은 오랜 세월 수모였다. 강산의 끝자락으로 중심이 아닌, 역사의 주변이었다. 왕조 시절 도읍의 외딴 끝에서 왜구 같은 해양 세력과 제국주의 침략에 시달렸다. 땅끝이지만, 거꾸로 드넓은 해양 세계로 가는 출구였음에도 그런 지정학적 이점을 살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조선조 끝 무렵부터는 경부선 철도와 부관(釜關) 연락선 등으로 일제 대륙침략 병참기지 노릇도 했다. 광복 뒤 북한 남침으로 부산은 다시 미군·UN군의 군사기지화 운명에 빠졌다.그래선지 부산 특유의 이적(利的) 감각은 유산이 됐다. 일찍 일본 왜관(倭館)을 통한 교역, 침략기 일본(상)인들의 유입에 따른 상업문화의 영향이리라. 한국과 중국 자원 수탈을 위해 깐 경부선 철도와 한·일을 잇는 부관 여객선으로 쉼 없이 오가는 상업세력과의 잦은 만남으로 생존과 이(利)를 좇고 이에 민감했을 만하다. 여기엔 정부 차별을 장사로 버틴, 개성 송상(松商)과 의주(義州) 만상(灣商)과 함께 이름을 날린 동래상(東萊商) 영향도 끼쳤을 터이다.부산의 이적 감각 유산은, 부산경남 배경인 조식의 가르침인 '마땅함' 즉 의(義)나, 대구경북 연고의 이황의 정신인 '삼가함' 즉 경(敬)과는 다른 성격이다. 같은 경상도 대구경북과 차별되는 부산의 이런 이적 감각은 자본주의, 산업화 시대 흐름과도 잘 어울렸고 부산은 무역 관문으로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경상도를 중심으로 감영이 있고 약령시로 국제도시 역할을 한 옛 대구와는 달랐다.부산은 이런 경제적 토대 위에 정치 자산도 쌓았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진 대구경북 배경의 대통령 배출처럼 부산경남 바탕의 정치인 김영삼, 노무현, 문재인을 잇는 대통령의 등장이 그렇다. 개방적 문화로 정치색과 정치 지형도 대구경북보다 다양했다. 특유의 이적 감각 유산과 경제 토대 위에 쌓은 정치 다양성은 부산의 자산이다. 정경(政經)의 조화를 활용한 부산 지도자, 정치인의 응결된 힘이 두드러지는 까닭이다.그 주체할 수 없는 힘이 가덕도 신공항 추진으로 분출될 만도 하다. 실제 그들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정책을 뒤집고 있다. 정부 결정 수용이라는 2016년 영남권 5개 시·도지사 합의도 외면했다. 대신 부산·울산·경남 지도자는 똘똘 뭉쳤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응답하는 꼴이다. 여당 대표도 거들고 가덕도 신공항 반대의 국토부 장관도 입장을 바꾸니 가덕도 신공항을 통한 비상(飛翔)을 바라는 부산의 꿈은 점차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특유의 이적 감각을 앞세워 자신들 꿈을 이루기 위한 부산 지도자, 정치인의 행태는 문제가 많다. 다른 지역의 배려는 아예 없다. 지금의 이들 모습은, 이웃을 희생시켜 잇속을 채운 옛 나라의 악습과 다르지 않다. 뒷날 심각한 후유증은 자명하다. 이웃 사람은 희생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9-06-04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2020년 총선, 과거 집착 세력에 대한 심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에게 정치적 자산(資産)을 물려준 동시에 집단 트라우마(trauma)를 안겨줬다. 정권을 잃고 당했던 참혹한 경험들이 뇌리에 각인돼 공통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다. 트라우마는 정신을 지배하고 행동을 결정짓는 법. 필연적으로 집권 세력은 "정권을 잃으면 다 죽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20년을 넘어 50년·100년 집권론을 들고나온 것도 집단 트라우마의 표출로 봐야 한다.문 대통령을 필두로 한 집권 세력에게 2020년 국회의원 선거는 중차대하다. 국정 수행 동력을 확보하려면 총선 승리가 필요하다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총선 승패가 다음 대통령 선거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만큼 정권 연장을 위해 집권 세력은 총선 승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이 공천 파동으로 총선에서 패한 것은 물론 정권마저 몰락한 것을 생생하게 지켜봤고 그 덕을 본 것이 지금의 집권 세력이다.총선 승리를 위한 '절대반지'가 필요하지만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에겐 국민 마음을 돌릴 마땅한 카드가 없다. 북한 문제는 북한 비핵화 진척은 전혀 없이 김정은에게 끌려다니는 신세가 됐다. 한·미 동맹은 균열이 갔고 안보에 대한 국민 우려는 팽배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앞세운 경제 문제 역시 좌초 상태다. 먹고사는 문제 하나만으로도 정권에 등을 돌린 사람이 부지기수다. 집권 세력 텃밭인 부산·경남은 물론 서울·경기 등 수도권 민심마저 사나워졌다. 지금 상태가 지속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필패(必敗)다.궁즉통(窮則通), 궁하면 곧 통한다고 했던가.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내년 총선의 해법을 다른 데서 찾았다. 문 대통령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정치권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 "낡은 이념의 잣대를 그만 버려달라"고 쏘아붙였다. 누가 봐도 자유한국당을 겨냥한 말이다. 대통령 측근인 양정철 민주당 민주연구원장도 "다음 총선은 과거로 가는 정당이냐, 미래로 가는 정당이냐는 대결 구도로 갈 것"이라고 거들었다. 급기야 문 대통령은 광주에서 '독재자의 후예'를 들고나왔다. '민주당은 미래, 한국당은 과거'란 총선 프레임 짜기에 두 사람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한국당을 겨냥한 집권 세력의 과거 프레임 씌우기가 내년 총선에서 효과를 볼 것인가? 오히려 민주당에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국민 대다수가 과거에 집착한 것은 한국당이 아니라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문 정부는 출범 후 3년째 '적폐(積弊) 청산'을 명목으로 검찰과 경찰, 정부 기관 등을 앞세워 '과거 캐기'에 열 올리고 있다. 내 편은 쏙 빼놓은 채 네 편만 공격하다 보니 '적폐(敵弊) 청산'이란 말까지 생겼다. 과거사 청산은 전·전전 정부를 넘어 5·18과 6·25, 해방 직후 사건, 일제강점기, 구한말까지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까지 건드릴 것이란 비아냥까지 나온다. 집권 세력은 말로는 미래를 외치고 있지만 정책과 정치 행태는 철저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나폴레옹은 "지도자는 꿈을 파는 상인(商人)"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국민에게 꿈을 안겨주고 있는가? 꿈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다. 현재가 과거와 싸우면 미래는 없다. 과거에 집착한 것을 넘어 과거를 '악용'하는 세력을 국민은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2019-05-28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문재인 박근혜, 왜 그리 빼닮았나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음을 느낀다. '욕하면서 배운다' '혹독한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모진 시어머니 된다'. 이런 속담이 생각나는 이유는 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왜 그리 빼닮았는가 하는 의문점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최순실 없는 것 빼고는 박 전 대통령과 똑같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데, 단순한 우스개가 아니라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은 유사점이 많다. 둘의 사상·가치관은 대척점에 있지만, 행동 양식이나 상황 인식 면에서 거의 흡사한 모습을 보여 놀랄 정도다.둘에게서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불통과 독선이다. '불통'과 '독선'은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였으나 언제부턴가 문 대통령도 같은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둘은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전형적인 '꼰대'의 기질을 보여준다.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에 비해 덜 폐쇄적이라고 하지만, 여론 수렴이나 상대 진영을 인정하지 않는 기질은 그에 못지않다. 문 대통령은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고지식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문 대통령은 남의 얘기를 인내심 있게 잘 듣는다. 막상 결정할 때는 자신 맘대로 한다.'온 국민이 경기 침체를 체감하고 있는데, 문 대통령 홀로 '경제가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참모들에게 '경제정책이 잘된 점을 적극 홍보하라'고 하니 경제부총리나 일자리수석비서관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얼마 후면 구조 개선의 변화를 실감할 것이다' '일자리의 질이 개선됐다'는 망발을 내놓고 있다.역사관마저 닮은꼴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애국' '뉴라이트사관'에 경도돼 역사 교과서를 손대려고 했고, 문 대통령은 '친중 반일' '역사 바로 세우기'로 대표되는 '관제 민족주의'에 열중한다. 방향만 다를 뿐, 개방개혁 시대에 과거사를 껴안고 미래를 소홀히 여기는 것도 판박이다.불통과 독선은 국민뿐만 아니라 같은 편에게도 적용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이 잘못됐다고 비판한 이가 있었던가. 이들에게도 친척·친구가 있고 지역 구민을 만나는데,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모를 리 없다. 2015년 박 전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는 유승민 의원에 대해 '배신의 정치'라고 일갈하고 원내대표직에서 쫓아낸 것을 기억한다면 누가 감히 신념에 가득 찬 대통령에게 고언을 하겠는가.둘의 닮은꼴은 아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내세우며 '친문'으로 물갈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주연구원장에 취임한 최측근 양정철 씨가 '친정체제 강화'를 내세우면 '친문'과 '비문'의 공천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총선 때 당시 새누리당이 180~200석을 예상하다가 '공천 파동'으로 제2당으로 내려앉았던 때를 기억한다. 내년 총선에 '친문'을 넘어 '진문'(眞文)이 등장하지 않을까 궁금해진다.둘이 닮은 이유는 개인 자체의 문제인지, 국민 수준의 문제인지 헷갈리지만, 결국은 문 대통령에 대한 모욕으로 귀결된다. 이웃을 만나도, 택시를 타도, 서울 친구를 만나도 문 대통령에게 실망했다는 비판으로 넘쳐난다. 야당이 좋아서 혹은 보수 성향이라서 하는 비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실패는 대한민국의 퇴보와 직결된다. 집권 2년을 돌아보고 새롭게 출발했으면 좋겠다.

2019-05-2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민생과의 불화'가 부른 징비록

야당이 뜻밖에도 '징비록'을 소환했다. 집권 여당과의 불화로 장외를 떠도는 자유한국당이 소환 주체다. 며칠 전 청와대 앞에 몰려간 한국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의 10대 정책이 '국가 경제 기초를 흔들고 민생 불안을 키웠다'며 실정(失政)을 성토했다. 지난 2년간 경제 난국을 비판하는 백서를 보란 듯 펼쳐 보이며 잘 준비된 '정치 쇼'를 연출한 것이다. 이를테면 징비록의 '왜란'(倭亂)에 빗대 '문란'(文亂)을 부각하려는 게 한국당의 속셈이다.청와대는 백서 접수를 거부했다. 문 정부에 '실정'의 굴레를 덮어씌우는 야당의 뻔한 정치 술수로 봤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며 여항(閭巷)을 부추기고 금융 시장과 집값을 들쑤신 한국당이 '징비록'을 들고나와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리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늪이라도 내가 가면 바로 길'이라며 고집을 피우는 청와대와 여당 또한 국민 눈에 한국당보다 더 미더워 보이지는 않는다.미·중 무역 전쟁과 내리막길 수출,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 환율 불안 등 어려운 경제지표는 일단 옆으로 밀쳐두자. 뭐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 정부가 철벽처럼 세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 프레임이 민생 안정과 계속 엇박자가 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방향이자 국가 정책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더 많이 일해야 입에 풀칠하는 국민이 많은 차에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이 '워라밸의 저주'가 되고 있다면 "아차"라도 해야 한다.그러나 문 정부는 단호하다. 조금 더 가면 성과가 나오는데 여기서 접을 수 없다며 여전히 '닥공' 모드다. 세금 물꼬를 완전히 터서라도 돈이 시정(市井)에 돌게하면 정책 목표에 이르고 효과가 나온다는 투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 '항우는 고집으로 망하고 조조는 꾀로 망한다'는 속담에 더 가깝다. 노동자들이 조금 더 적게 일하고 임금 수준을 지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있겠나. 그러나 실제 민생 현장에서 이런 나긋한 희망은 고문에 가깝다.정부가 또 세금 카드를 꺼냈다. 경기 둔화에 대비한다면서 6조7천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에 손도장을 찍으라고 한국당을 압박한다. 쓰려고 거두는 게 세금이다. 그러나 '쏟아부은 세금이 도대체 얼마인데'라는 불만이 높다면 사실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소리다. 제1야당도 설득하지 못하는 집권당의 오만함은 국민의 공감대와는 거리가 멀다.정부의 정책과 국회의 입법은 여론과 민주주의를 담는 그릇이다. 아무리 겉보기에 훌륭하고 단단해도 그릇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비록 이가 빠지고 덕지덕지 때가 껴도 그릇에 담긴 것이 알차고 바르면 그릇도 빛이 나는 법이다. 지금은 그릇이 아니라 그릇에 담을 것을 봐야할 때다. 이런 진지한 고민이 없다면 아무리 비싼 명품 그릇도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게 세상 이치다.징비록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다. 400여 년 전, 두 차례의 왜란을 전후해 조선의 집권층과 각 정파 세력은 정세를 제대로 판단하고 대처했나. 지금 관점에서 봐도 당시 사대부 권력 집단들은 지독했고 또 한심했다. 국론은 물과 기름처럼 조금도 섞이지 못했고, 계층은 양분됐으며 민심은 어지러웠다. 그러니 민생 파탄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때와 지금이 닮은 구석 없이 전혀 다른가.

2019-05-14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한류의 열풍과 굴욕

'유교는 천(千)의 얼굴을 가진 문화 현상'이라고 한다.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일상과는 무관할 듯한 유교 이야기를 이렇게 새삼 끄집어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방탄소년단'이 이끌어낸 한류 열풍의 최고조와 '버닝썬 스캔들'이 촉발한 한류의 굴욕이 바로 유교와 깊은 연관성이 있어서이다.사실 우리가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유교는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과 양식을 지배하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 전 세계가 열광하는 한류의 원천이 바로 유교에서 비롯되었다면…. 유교는 그리 단순한 사상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유교는 혁명적 실천 기능을 과시했다.사화(士禍)로 얼룩진 16세기 조선의 위기와 혼돈의 시대를 극복하려 했던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사상과 철학을 보면 그렇다. '백성은 물과 같아서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는 남명의 논변은 다분히 민중적이다. 실용 학문을 강조했던 남명의 유학은 역동성과 다원성 그리고 개방성을 지녔다. 그리고 세상의 변혁을 지향하면서도 인간의 혁신 문제에 주목했다. 하지만 남명의 유학 정신은 인조반정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고 말았다.퇴계의 방법은 남명과는 조금 달랐다. 기묘사화로 조광조의 개혁이 좌절하는 현실을 보면서 소수 엘리트에 의한 급진적인 변혁에 한계를 느낀 것이다. 퇴계가 택한 노선은 학문과 교육이었다. 철학적인 재무장으로 시대정신을 바로 세우고 신세대 교육을 통한 개혁의 저변 확대를 도모한 것이다. 주자학을 창조적으로 변용하며 기대승과 '사단칠정논변'을 벌인 것도 그 일련의 과정이었다.문제는 인간이었다. 세상을 타락하게 하는 본질도, 시대를 변화시키는 주체도 바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인간 심성의 이기론(理氣論)적 규명이 바로 그 고뇌의 산물이었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사회적 혼란과 더불어 유교가 관념적으로 기울고 형식화되었지만, 그 사상과 정신은 면면히 흘러 17, 18세기 실학(實學)으로 거듭났다.서세동점의 충격에는 서학(천주교)과 접목했고, 19세기 민초들의 함성과 함께 동학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동력이 되었고, 해방 후 산업화와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었다가,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아 한류의 물결로 거듭난 것이다. 한류의 대명사인 '대장금'이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안방극장을 사로잡은 것도 드라마에 면면히 흐르는 유교적인 역사와 정신문화의 가치가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와 맞닿았기 때문이다.학문과 교육의 가치를 존중하며 개인의 인격 수양을 전제로 바람직한 공동체 이상을 구현하려는 실천철학, 그것은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 자강을 이루어낸 한국 역사의 원동력이었다. 한류 생성의 동인이었다. 그것은 방탄소년단의 노랫말 속에도 어김없이 스며 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쾌거 이면에 버닝썬 게이트에 휘말린 한류에 적신호가 들어왔다.'섹스 스캔들에 흔들리는 K팝' '도덕시간을 희생해서 탄생한 현란한 노래와 안무' 등의 외신기사 제목은 인성교육 부재의 공장형 K팝 시스템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류 또한 개인의 도덕성과 국가의 품격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거품으로 스러지기 십상이다. 500년 전 남명과 퇴계도 그래서 인간과 인격에 천착한 것이다.

2019-05-0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불온하고 역겨운 시대의 징후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정치권력에서 독립되지 않은 사법부는 권력의 법률 대리인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런 타락은 권력엔 떨칠 수 없는 유혹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800~1896년 사이 연방 대법관 수는 일곱 차례나 바뀌었다. 그 이유는 매번 '정치적'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대법관 수를 정해 놓지 않은 헌법의 맹점 때문이었다.그러나 대법관 수가 9명으로 정해진 1896년을 기점으로 그 악습은 사라졌다. "그처럼 무도한 행위는 헌법 정신에 대한 침해"(우드로 윌슨 대통령)이고 "파괴적이며 특히 미국이라는 헌법 연합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벤저민 해리슨 대통령)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다. 연방 대법관 수는 9명이란 '비공식 규범'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대법관 수는 9명으로 변함이 없다.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악습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장본인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으로, 대법관 수를 15명으로 늘리려 했다. 이른바 '대법원 재구성 계획'(court-packing plan)이다. 연방 대법원이 뉴딜 정책 관련 법률을 번번이 위헌으로 판결하자 자기편을 집어넣어 연방 대법원을 거수기로 만드는 게 그 목적이었다. 야당의 반대와 여당의 '반란'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이는 사법부 장악이 권력자에게 얼마나 유혹적인지를 잘 보여준다.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은 이를 재확인해 준다. 이해 충돌을 회피하지 않고 주식 투자를 한 도덕적 해이로 보나 중요한 사안마다 입장을 유보하거나 생각해 보지 않은 자질의 문제로 보나 그는 부적격이었다. 그럼에도 임명을 강행한 것은 여론의 비판을 감수할 만큼 이익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그의 임명으로 친정부 성향 재판관은 위헌 결정 정족수인 6명으로 늘어났다. '그놈의 헌법 때문에'라고 한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러워해 마지않을 '헌법재판소 재구성'이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헌법은 완전무결하거나 영원하지 않고, 헌법 해석 역시 고정불변이거나 무오류일 순 없다"는 지난해 문 대통령의 말은 이를 예고하는 듯하다.이에 화답하듯 이 재판관도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처음 지명 소식을 듣고 지인으로부터 역사적 소명이 있을 터이니 당당하란 말을 들었다. 그 말처럼 저에게 주어진 소임과 소명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갖은 비판을 무릅쓰고 임명해 줬으니 문 정부의 충실한 법률 대리인이 되겠다는 서약으로 들린다.처칠은 히틀러의 정권 장악으로 전운이 감돌던 1935년 옥스퍼드대학의 토론 클럽인 '옥스퍼드 유니언'이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왕을 위해 싸우기를 거부한다"고 결의하자 "참으로 한심하고 치졸한 고백이며… 불온하고 역겨운 시대의 징후"라고 개탄했다. 문재인판(版) 헌법재판소 재구성도 같은 개탄을 자아낸다. '합헌적 독재로 나아가려는 불온하고 역겨운 시대의 징후'라는.사족-드물지만 사법부 장악 유혹을 뿌리친 경우도 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으로, 2017년 법무장관에게 대법관 임명권을 부여해 대법원을 여당이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한 2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법원에 이어 헌재까지 자기편으로 재구성한 이 나라 대통령에겐 얼빠진 짓으로 보이겠지만.

2019-04-30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다 그래도 우린 안 된다

1919년 3월 1일, 100년 전 2천만은 하나였다. 나이, 신분, 종교,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빼앗긴 땅' 나라 안팎 발 디딘 곳 어디라도 좋았다. 긴 세월 굴레였던 온갖 족쇄도 햇살에 잔설(殘雪) 녹듯 사라졌다. 그렇게 '만세'로 뭉쳤고, 그해 4월 11일 '독립' 염원을 모아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였고, 오늘의 바탕이 됐다.2019년 3, 4월 지금 '되찾은 땅'에서 100주년을 맞았지만 그때 정신은 잊혔다. 민족대표 33인처럼 온 나라가 손잡고 목숨조차 아끼지 않던 그날의 처절함은 간데없다. 100년 기념행사는 넘쳤지만 그 정신을 되새겨 새로운 100년을 맞는 희망의 행동보다 말만 무성했고 갈래로 찢어진 갈등과 분열만 돋보인다.이럴 순 없다. 작금 시대 상황도 바뀌고 있다. 비록 되찾은 땅이 강대국 패권 놀음으로 산하가 갈려 70년 세월을 보냈지만 최근 주변 여건이 달라졌다. 이런 달라진 상황은, 그때처럼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다시 하나 되는 새로운 길을 낼 좋은 기회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은 사람이 꾸미는 법이니.먼저 인구 추세이다. 1911년 1천300만은 1944년 2천500만, 북한 첫 인구조사가 나온 1993년 기준 남북은 6천400만 명이다. 두 번째 북한 인구 자료인 2008년 기준 남북은 7천113만, 2026년은 7천803만 명으로 최고치다. 이후 남한은 인구가 줄지만 북한은 늘어서 2055년 인구는 7천114만 명으로 강국(强國) 수준이다.이는 절망적 인구 절벽과 다른 징조로 여길 만하다. 일본을 보면 이런 남북 인구 자원은 호재이다. 1910년 한국을 삼킬 때 일본은 5천만, 한국을 떠난 1945년 7천119만, 6·25전쟁 덕을 누린 1950년대 8천만 시대, 2010년 1억2천805만 정점 뒤 2015년 1억2천709만, 2045년 1억609만 명의 감소세 유지다.북한 사정도 고무적이다. 2008년 김정은 후계자 등장 뒤 변화는 여럿이다. '장마당'이 그렇다. 전국 500~750개쯤인 장마당 증가로 '장마당 세대'가 나올 만큼 자본시장 물결도 엿보인다. 조선조 차별에 맞서 개성 상인 등은 장사로 나라의 한 축을 이뤘다. 장마당 세대 역시 그 맥을 이어 남북 강산의 변화를 이끌 한 축의 역할을 맡을지도 모를 일이다.바뀐 주변 국제 정세 흐름도 탈 만하다. 옛 소련 붕괴, 냉전체제 해체, 중국의 개혁개방, 남북 정상 및 북미 정상회담에 따른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은 긍정적이다. 비록 북핵 문제로 남·북·미 간 과제가 많으나 풀지 못할 일은 아니다. 자국 이익이 먼저인 몇 강국을 설득, '진정한 독립'인 통일의 완성은 우리 몫이라 남북 지혜만 모으면 될 터이다.이제 우리가 100년 전 정신을 되살려 기려야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 실정과 정책 오류 탓을 넘어 머리를 맞대 문 정부 이후 그림도 그려야 하는 책무 때문이다. 그런 시각에서 특히 대구경북인의 역할은 기대할 만하다. 마침 대구경북 33개 광역·기초 자치단체 대표의 3월 울릉도 만남과 상생의 한마음 결의는 좋은 사례다.대구경북은 민족 첫 통일의 역사를 썼고, 해마다 이를 기려 10월 7일 통일서원제를 갖는 곳이라 남다른 역할에 나설 만하다. 문 정부의 홀대와 소외 정책은 비판할지라도 나라 앞날을 위한 역할은 양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만큼 옛날처럼 정치 편향 같은 낡은 틀부터 깨야 한다. 100년 전 그때를 모두가 잊더라도 대구경북만이라도 그래선 안 된다.

2019-04-2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대한민국, 지난 100년 다가올 100년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명언의 주어를 대한민국으로 바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써왔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기점으로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은 기적 그 자체다. 식민 지배와 가난, 전쟁 등 질곡의 사슬을 끊고 산업화·민주화를 같이 성취한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오늘의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흘린 피와 땀, 눈물의 총합(總合·the sum)이다. 제대로 된 나라를 아들, 딸에게 물려주려는 간절한 마음들과 행동들이 100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거대한 용광로에 결집했다. 온갖 것들이 용광로에 들어갔고 서로 섞이고 충돌한 끝에 대한민국이란 결정체를 만들어냈다. 지고지선한 것들만 들어가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역사의 섭리다.문재인 대통령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국민의 평범한 삶에 좌절과 상처 주는 특권과 반칙의 시대를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했다. 또 "지난 100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이룬 국가적 성취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일부에서 우리 역사를 역사 그대로 보지 않고 국민이 이룩한 성취를 깎아내리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란 발언도 했으나 지난 100년을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못한 시대로 규정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문 대통령을 비롯해 진보가 기술하는 지난 100년 역사는 보수와 궤를 달리한다. 3·1운동→독립투쟁→4·19혁명→5·18민주화운동→6월항쟁→'촛불혁명'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파악한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6·25전쟁에서의 국가 수호, 산업화 등은 부정과 배척의 대상일 뿐이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홀대와 모욕, 6·25에 책임이 있는 김원봉에 대한 서훈 추진 등은 진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받은 협력자금으로 만든 포스코도 들어내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더 큰 우려는 진보 정권이 그들만의 잣대로 지난 100년에 대해 '역사공정'을 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마저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보수 정권에서 이룩한 원전 강국을 계승할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고 이것이 탈원전으로 표출됐다. 산업화에 편승해 탄생한 재벌은 척결의 대상이다. 미국과의 동맹은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것이고 일본은 '나쁜 나라'로 치부한다. 참사를 빚고 있는 코드 맞춤 인사, 북한에 대한 지나친 경도, 허물어진 안보, 포퓰리즘 정책들 역시 그 뿌리가 외눈박이 역사관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문 대통령은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했지만 정작 대통령의 언행은 미래보다 과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르크스가 역사는 '나선형 발전'을 한다고 했는데도 대한민국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미세먼지가 없어졌지만 국민이 여전히 답답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소설가 김원우는 소설 '우국(憂國)의 바다'에서 조선이 망하는 과정을 그렸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구한말처럼 대한민국 앞날을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지난 100년을 헤쳐온 선조가 그랬듯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더 나은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다. 이를 자각(自覺)하고 방법을 찾아 실천하라는 것이 지난 100년 역사가 가르쳐주는 진짜 교훈이다.

2019-04-15 18:03:54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0원과 13조원: 대구와 부산의 차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대구 방문 때 권영진 시장에게 '통합신공항 추진'을 약속한 것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간 시민들이 그렇게 애원했지만, 애써 모른 척하더니 선뜻 '선물'을 주니 고마운 일인 듯 느껴졌다. 문 대통령의 마음이 넓어진 것일까? 대구시민의 정성에 감동한 것일까?정작, 본질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대통령의 약속은 부산시민이 원하는 '가덕도 신공항'을 위한 사전 조치임이 분명했다. 대구에 '대구 통합신공항'을 줄 테니 부산에 '가덕도 신공항' 짓는 것을 양해하라는 뜻이다. 정부가 '가덕도 신공항'을 그냥 밀어붙이지 못하는 것은 2016년 5개 시도지사 합의 때문이다. 당시 5개 시도지사는 '정부의 용역 결과에 따르겠다'고 합의했고, 그 결과가 '김해공항 확장안'이었다. 정권이 아무리 막무가내라고 해도 5개 시도지사 합의를 깨뜨리지 않고는,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할 명분도 당위성도 얻기 어렵다.문 대통령이 지난 2월 부산 방문 때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시사한 이후 '김해공항 확장'을 고수하던 국무총리실, 국토교통부의 입장까지 바뀌고 있다. 누가 봐도 정권 차원의 '가덕도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현 정권은 치밀하게 '가덕도 프로젝트'를 위해 한 발씩 나아가고 있지만, 대구경북은 어떤가. 지난 2일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는 "올해 통합신공항 부지가 결정되고 국방부와 8조원대 이전 사업비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두 분은 공동 기자회견을 가질 정도로 대단한 성과를 거둔 듯 기뻐했다. 이 지사는 통합신공항을 경북으로 가져가게 됐으니 즐거워해도 괜찮지만, 권 시장은 기뻐할 일이 아니다.대구시는 무엇을 위해 대구공항을 이전하려고 했는지 근본 목적을 망각하고 있다.(동구와 북구 일부 지역의 소음 피해는 논외로 한다) '하늘길을 열겠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희생을 감수하며 옮기자는 것인데, 가덕도 신공항이 생기면 그야말로 파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통합신공항은 남부권 관문공항을 지향하는 가덕도 신공항과 아예 경쟁이 되지 않는다. 기껏 해봐야 현재 대구공항의 국제선을 유지하는 정도일 것이다.예산 조달 방식만 봐도 대구 사람의 '바보짓'에 화가 난다. 대구는 군공항이전특별법에 따라 K2 부지 380만 평을 팔아 그 비용으로 옮기는 것이고, 정부 예산은 한 푼도 없다. 부산은 일부 민간투자를 받는다고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고 13조원(추정치)을 정부 예산으로 조달한다. 대구는 그 땅에 아파트와 상가를 지어 공항 옮기는데 써야 하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0원과 13조원은 대구와 부산의 차이이고, 정치력의 차이다.대구에 아파트·상가가 넘쳐나든, 난개발을 감수하든, 미래가 확실하다면 옮기는 것이 맞다. 통합신공항은 가덕도 신공항이 존재하지 않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이제는 전제 조건이 달라졌고,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더는 이전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이전 포기 선언을 하는 것도 전략적 판단일 수 있다. 그래야 가덕도 신공항을 막고, 정권과의 협상도 가능해진다. 이대로 정권의 '가덕도 프로젝트'에 편승하면 대구는 끔찍한 재앙을 맞을지 모른다. 시장의 공약 준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약속은 '선물'이 아니라 '독배'임을 명심해야 한다.

2019-04-09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초격차 사회를 이해하는 법

요즘 초연결이나 초격차와 같은 용어가 빈번히 쓰인다.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일이나 현상을 설명할 때 예상 범위를 넘어선다는 뜻에서 '초'(超)라는 접두사를 붙인 것이다. 초사회나 초예측, 초지능, 초고령 등도 같은 예다. 개괄하면 급속한 시대 변화나 과학기술의 진보가 파생할 사회·경제·문화적 트렌드를 일컫는 용어다.최근 국내 한 통신기업의 '앞으로의 시대를 초시대로 부르기로 했다'는 광고 카피가 눈길을 끌었다. 뒤집어 해석하면 '초시대를 열어가는 기업'으로 봐달라는 소리다. 이런 초(超)시대를 지탱하는 핵심은 독보적인 가치를 현실에 구현해내는 힘이다. 경쟁 상대와 명확히 구분되는 차별성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남보다 앞서지 못하면 도태되는 게 현실이다. 초시대는 더할 것이다. 결국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초시대의 본질이자 생태계다.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정치인 등 사회 엘리트 계층은 이미 성공적인 초시대를 살아가는 부류다. 비록 제 욕심에 충실하고 국가·사회는 뒷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환경에 최적화했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감춰진 동선은 국민들을 탄복게 할 정도다.이런 초시대에는 보편과 상식, 양심과 윤리는 군더더기다. 남들과 똑같은 판단, 행동 양식, 체면만 따지면 손에 쥐는 게 없어서다. 뛰어난 순발력과 과감한 결단, 집요한 성취감만이 성과를 낳는다. 여러 채의 주택과 많게는 수십억원의 투자 차익, 탈세와 꼼수 절세가 수확물이다. 이쯤 되면 이들의 현란한 '전투'(錢鬪) 감각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간혹 운이 없게도 말 등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조동호·최정호 장관 후보자가 그렇다. 그러나 똑같이 도마 위에 오른 나머지 5명의 장관 후보자는 건재하다. 한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고 했다지. 또 어느 후보자는 학자와 장관은 신분이 다른 만큼 언어도 생각도 바뀔 수 있다고 우겼다. 거액을 대출받아 재개발지역에 투자했다가 문제가 되자 사표를 내고는 "나는 몰랐다"고 둘러댄 것이나 피차일반이다. 국민 눈높이나 정서와는 거리가 아주 먼 '초격차'의 실상이다.정쟁으로 치면 한국 정당들의 싸움 실력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소통과 설득, 논리와 타협은 필요 없다. 상대를 물어뜯고 끌어내리는 기질과 내공이면 그만이다. 정치 발전이나 쇄신의 기준에서 보면 어디 내놓기가 부끄러운 수준이다. 여기에는 여도 야도 예외가 없다.'그래비티' '마더 나이트' 등 수많은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쓰인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이라는 기악곡이 있다.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가 1978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최소한의 선율과 리듬, 화성만 동원한, 매우 느리고 단조롭게 반복하는 미니멀리즘 음악으로 애청자가 꽤 많다.거울 안에 또 다른 거울이 있다면 피사체는 보는 각도에 따라 계속 반복해 나타난다. 소리나 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거울 앞에 선 사람은 배경을 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함정에 빠져 있다. 나만 보고 남을 보지 못하는 초격차 시대의 함정이다. 그러나 이를 부끄러워하거나 고칠 생각도 없는 게 더 큰 문제다.

2019-04-0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증오의 정치

뒤주에 갇힌 채 죽어 간 사도세자의 비극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이 충격적인 조선 왕가의 참상이 추악한 당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웬만하면 안다. 그런데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다름 아닌 부인 혜경궁 홍씨와 장인 홍봉한이었다면…사도세자는 우리가 사극이나 영화를 통해 알고 있는 것처럼 비행이나 일삼은 정신병자가 아니었다면… 또한 그것이 영조가 아들을 죽게 한 이유도 아니었다면….역사학자 이덕일이 펴낸 '사도세자의 고백'은 당쟁의 최대 희생자였던 사도세자의 객관적인 목소리에 접근한다. 가해자들의 변명일 수도 있는 '한중록'의 내용과는 다른, 어쩌면 성군의 자질을 지녔을 사도세자의 참모습을 통해 당쟁의 비정함과 참담한 실상을 폭로한다. 당쟁에서 백성과 국가는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당파와 가문의 안위만 종교처럼 뿌리내렸다. 상대편 박멸이 우선인 증오 정치의 최전선이었다.오늘도 한국 사회에는 증오 정치가 만연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도 국민을 위해 펼쳐야 할 정책도 '선악(善惡)의 전쟁'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힌 채 이판사판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정권이란 교체되는 것이 당연하다. 선거 또한 질 수도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는 것을 천사가 악마에게 지는 것'으로 여긴다. 정의와 양심으로 포장한 이념과 선동의 이면에는 증오의 대물림이 꿈틀거린다.강준만 교수는 '증오 상업주의'라는 저서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에서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건 늘 '순수주의자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가능성을 추구하는 정치를 이상향을 좇는 종교의 도그마처럼 여긴다.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강경파가 득세하고 극단주의가 횡행하는 까닭이다. 특히 진보주의자들은 타협을 추악하게 생각한다. 전체주의적 발상이다.당파성과 진영 논리를 앞세운 정치 세력은 국민의 관점에서 우선시해야 할 민생 문제보다 소수 열성파의 피를 끓게 하는 이념적·파당적 이슈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정치적 화법이나 정략적 언어조차 천박하고 자극적이다. '빨갱이' '쥐박이' '만주국 귀태'라는 독설도 그래서 나온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모습과 정치인의 행태는 시정잡배보다 못하다.지층만을 의식한 막말과 망동이 난무할 뿐이다. 그럴수록 열렬 지지 세력은 박수를 보낸다. 악의 세력 척결이 우선인데 방법이나 과정상의 오류나 무리는 신경 쓸 일도 아니다.'All or Nothing'의 제로섬 게임이다. 반대편은 모조리 쓸어버려야 직성이 풀릴 기세다. 그쪽에는 내 조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아들딸이 있을 수 있다. 친구와 동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모두 없애고 나면 아름다운 세상을 이룰 수 있을까. 정권이 바뀌어도 걱정이다. 이번에는 좌파 독재의 폐해 청산에 국력을 낭비할 것이고, 야당으로 전락한 진보 세력은 다시 온몸으로 저항하며 국정을 마비시킬 것이다.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는가?증오를 줄여야 한다. 증오를 악용하는 정치인도 문제이지만 이념과 당파에 매몰된 지지자들도 안목을 넓혀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여야와 좌우 세력은 공존해야 할 상대이지 척결해야 할 적군이 아니다. 정치 언어의 품격부터 높여야 한다. 그리고 공생과 통합의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 선거제도를 바꾸고 정치 변혁을 시도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다.

2019-03-26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있습니까?" 독일이 소련으로 쳐들어간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보라는 스탈린의 지시로 소련 외상(外相) 몰로토프가 소련 주재 독일대사 슐렌베르크에게 한 하소연이다. 폴란드에 이어 프랑스까지 집어삼킨 독일이 영국마저 굴복시키기 전에는 소련을 치지 않을 것이란 스탈린의 소망적 사고가 초래한 굴욕이었다.스탈린은 당시의 세계정세를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틀에 맞춰 '해석'했다. 자본주의 국가는 시장 확보와 식민지 획득 경쟁을 멈출 수 없어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자멸적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자본주의 진영을 삼킬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스탈린의 생각에 그 전쟁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든 그 승리는 최후의 승자까지 멸망으로 이끄는 '피루스의 승리'일 터였다.이런 계산은 철저히 자기본위적이었다. 히틀러의 세계 정복 계획에서 소련을 식민지로 만드는 '레벤스라움'(생활공간)은 상수(常數)였다. 이는 비밀도 아니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럼에도 스탈린은 대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에 막대한 군수물자를 보냈다. 영국과 독일 모두를 소진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소련은 독일과 피투성이 싸움을 벌여야 했고 천신만고 끝에 이기기는 했지만 2천만 명이 희생되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문재인 정부의 행태도 이와 똑같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으며 북한이 이를 행동으로 옮기게 할 유력한 수단은 대북제재가 아니라 남북경협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안타깝게도 이런 믿음은 한 번도 입증된 적이 없다. 소망적 사고일 뿐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부터 그렇다. 실패한 지난 25년간의 북핵 협상은 북한은 핵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나긴 깨달음의 과정이었다. 1·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는 그 깨달음의 고통스러운 반복이었다.그럼에도 문 정부는 여전히 미몽(迷夢) 속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이 "미국의 참관과 검증 하에 영구히 폐기되는 것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했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절망적 확증 편향이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는 영변 핵시설이 여전히 가동 중이라고 했다.남북경협의 맹신도 마찬가지다. DJ의 '햇볕정책'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DJ의 '햇볕'은 핵 개발을 저지한 것이 아니라 핵 능력을 '고도화'하는 밑천이 됐다. 25년간의 북핵 협상도 마찬가지다. 중유 제공 등 막대한 경제적 대가를 지불했지만 허사였다. 모두 경제적 유인책으로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구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미국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으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식 비핵화' 이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김정은식 비핵화'란 '무늬만 비핵화', 곧 비핵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이런 북한에 남북경협은 핵 능력을 늘리라고 돈을 보태주는 꼴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남북경협에 안달한다. 문 대통령은 '하노이 핵 담판'에서 북한이 비핵화할 뜻이 없음이 재확인됐는데도 "남북협력사업을 속도감 있게 준비" 운운했다. 남한 국민을 북핵의 인질로 내줄 작정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2019-03-1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트럼프, 칠곡 비무장지대(DMZ) 비애(悲哀) 아시나요?

'한국은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일본국에 양여하고, 일본국은 이 양여를 수락하고 한국의 병합을 승낙한다.' '한국은 미국의 육·해·공군의 한국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허여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앞은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강압으로 억지로 맺은 한일합방조약으로 나라를 주고받는 내용의 조항이다. 뒤는 1953년 10월 1일, 미국과 체결한 한미 상호방위조약 가운데 우리 땅에 미군을 둘 권한을 다룬 내용이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나라도, 땅도 우리 것이지만 주니까(양여·허여) 두 나라가 받는 듯한 겉모양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삶터인 공간과 땅이 그들 차지가 된 사실이 그렇다. 이런 치욕과 굴욕의 조약이 이뤄진 까닭도 같다. 외침(外侵)과 우리 실정(失政)으로 힘을 잃은 탓이다.그리고 두 조약의 체결 배경은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 있다. 앞은 '테디'란 별칭으로 잘 알려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본과 1905년 몰래 맺은 미일밀약의 결과물이다. 한미방위조약은 일제 35년간 식민 잔재가 낳은 1950년 한국전쟁의 부산물로 생긴 족쇄다.방위조약 이후 우리는 그 족쇄로 전국이 신음이다. 미군 주둔에 따른 숱한 민원, 규제 불만, 후유증 호소가 차고 넘쳐서다. 행정안전부가 2008년부터 관리, 지원하는 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즉 13개 시·도, 66개 시·군·구, 338개 읍·면·동 주민이 바로 그 피해자들이다.전국 89곳(2016년)의 미군 기지 가운데 대구는 5곳, 경북은 10개 시·군 54개 읍·면·동에 4곳 미군 부대가 있는데, 경북은 경기도 다음으로 넓다. 특히 경북 1위인 칠곡 미군 기지는 그 면적만도 약 330만㎡(100만 평)로 군청 소재지 왜관읍 중심지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크고 드넓다.1959년 공사, 이듬해 부대 배치로 왜관 도심 알짜배기 땅을 깔고 앉은 탓에 칠곡 발전 저해와 주민 불편, 불만은 마땅하다. 미군 주둔 주변은 많게는 10개쯤 규제가 겹치니 피해도 숱하다. 칠곡군이 매년 감수해야만 하는 64억원 지방세 감소, 1천억원 넘는 기회비용 부담도 그렇다.또한 미군의 초교생 성폭행, 고엽제 매립 소동, 부대 창고 폭발, 한밤 사이렌 오작동 소동 등으로 칠곡 지역 사회 불안도 여럿이다. 부대 기지 이후로 옛 농지와 삶터를 잃은 한 마을은 마치 휴전선의 비무장지대와 같은 삶이다. 부대 너머 있는 논밭 농사는 미군 허락 때만 철조망 따라 네 철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물론 이는 미군의 배려(?) 덕분이기도 하다. 불과 200~300m 철조망 농로를 막으면 위험한 찻길 수㎞를 목숨 걸고 빙 둘러 다닐 판이다. 그런데 부대는 갈수록 일일 허용 시간을 줄여 올해는 12시간뿐이다. 농민은 해가 좀 더 하늘에 머물거나 미군의 허용시간 연장을 바랄 뿐이다.이런 농민과 칠곡의 가려진 손실과 고통은 잴 수 없다. 그래도 지금껏 참고 견딘 까닭은 국가 안보와 혈맹(血盟)으로 맺은 두 나라를 위해서였다. 이런 사정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갈수록 막무가내다. 북핵 협상과 남북 관계를 업고 미군 철수, 안보무임승차론 등으로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늘리라고 떼를 쓰니 말이다.비록 정부가 주민 피해를 위해 지원사업을 펼치지만 언발에 오줌 누기로 흉내에 그치고 끝없는 희생만 요구할 뿐이다. 미군 부대 주변 한인이여! 이 비애, 어찌하리오?

2019-03-11 19:39:01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조급증·갈라치기가 가져온 文정부 위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은 문재인 대통령에겐 충격이자 타격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하던 문 대통령은 차에서 쫓겨나 구경꾼 신세가 됐다. 국민에게 환상을 불어넣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여당 등 집권 세력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지금껏 집권 세력은 남북한 화해 이벤트로 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을 견인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그에 따른 대북 제재 해제가 없는 한 남북한 이벤트는 쇼일 뿐이란 사실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확인됐다. 국민 대다수가 김정은과 북한,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동의하지 않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큰 위기에 봉착했다. 소득주도성장 등 정책 실패로 말미암은 경제난이 문 정부를 위기에 빠트렸다. 설상가상으로 김정은에게 끌려다니며 매달린 북한 문제마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문 정부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 위기를 가져온 요인이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올인한 북한 문제, 소득주도성장이란 점이 아이러니하다.그토록 공들인 북한 문제와 경제정책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은 뭘까.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조급증과 갈라치기 탓이다. 트럼프가 "우리는 서두를 게 없다"고 했는데도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조급증을 보였다. 미국에 제재 완화를 집요하게 설득하고 남북 경협까지 떠안겠다고 하는 등 서둘렀다. 문 대통령과 비서진이 북미 정상의 서명식을 TV로 지켜보는 이벤트까지 준비했다 망신을 산 것도 조급증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 등 경제 주체들의 사정을 두루 살피고, 공론화를 통해 득실을 따져본 후 추진하면 될 일을 막무가내로 결정하고 밀어붙인 결과 부작용이 산처럼 쌓이고 말았다.적과 아군으로 편을 나눠 갈라치기를 하는 행태도 위기를 자초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맹신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만 몰두한 탓에 한미 공조에 구멍이 뚫렸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편을 들어 미국을 갈라치기 한 결과 미국이 우리 정부를 불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회담 결렬 후에도 집권 세력은 일본 아베 총리와 국내 비판 세력을 한편으로 묶는 갈라치기를 하고 나섰다. "(회담 결렬에) 아베 총리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그런 분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아프다"(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며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면 친일로 몰아버리는 프레임 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등에서 보여준 갈라치기가 급기야 대구경북을 인사예산에서 배제하는 특정 지역 갈라치기로까지 진화(?)하고 있다.조급증과 갈라치기는 정권을 계속 잡아야 한다는 강박 심리의 산물이다. 참여정부 이후 집권에 실패했을 때의 고통과 트라우마가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 뇌리에 각인돼 있고, 이번에는 정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조급증과 갈라치기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론 청산을 주장했다. 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는 갈라치기이자 조급증의 발로다.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문 정부의 위기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2019-03-05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대구 대통령, 부산 대통령

요즘 정권 차원에서 대구경북을 배제하는 소위 'TK 패싱' 논란이 화제다. 일부에서는 'TK 패싱'이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했고, 일부에서는 근거 없는 피해 의식 내지 히스테리라고 반박했다. 역대 정권과 대구와의 관계를 추적하면 'TK 패싱'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나지 않겠는가.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한 1993년쯤으로 기억한다. 대대적인 검찰 인사가 이뤄졌는데, 된서리를 맞은 것은 경북고 출신이었다. 당시 대구지검 형사부를 비롯해 공안·특수부 부장검사 자리는 인사에서 물먹은 경북고 출신으로 채워졌다. 전임 노태우 정부 때 그렇게 잘나가던 TK 검사들은 YS 재임 동안 지방을 전전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관·군·경제계에서도 TK 출신을 대상으로 '피의 숙청'이 단행됐고, 빈자리는 부산경남 출신이 대거 차지했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20년 이상 TK 출신들이 승승장구했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정작 불똥은 애꿎은 곳에 튀었다.대구시와 경북도는 국책사업·예산 등에서 배제되다시피 했고, 대구경북 몫이라고 여긴 것조차 부산경남에 빼앗겼다. YS는 삼성자동차 부지를 대구에서 부산으로 바꾸고, 대신 지금은 없어진 삼성상용차를 대구에 줬다. 위천국가공단을 가로막은 것도 그때다.부산에는 5조5천억원의 신항만, 삼성자동차, 거가대교, 해양수산부 개청, 부산아시안게임 유치 등 큼직한 선물을 안겨줬으니 YS로 인한 낙수효과가 엄청났다. 얼핏 계산해 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3명의 대통령이 고향인 대구경북에 내려준 국책사업을 합해도 YS의 절반에 채 미치지 못했다. 정치 보복 때문인지, 고향 사랑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TK 패싱'의 원조는 YS였다.부산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대구경북은 찬밥 신세였다.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 큰 선물을 안겨주지 못했지만,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의 유치, 북항재개발 및 하얄리아 부대 이전 등의 규모 있는 국책사업을 내려줬다. 지난 10년간 대구경북과 부산이 첨예하게 대립한 동남권 신공항을 국책사업으로 확정한 것도 2006년 노 전 대통령 집권 4년 차 때였다.2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에도 부산 출신이라는 점을 찜찜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역대 부산 출신 대통령이 해온 것처럼 'TK 홀대, PK 우대' 정책을 고수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한동안 참고 있는 듯하더니만 고향 여론에 시달려서인지 몰라도 서서히 과거 전철을 밟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문 대통령의 가덕도 신공항 신설 시사 발언, 원전해체연구소 부산·울산 입지 결정 움직임, 예타 면제 사업 비용 부산경남 편중 등은 'TK 패싱'에 가속도를 내는 촉매제가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다.문재인 정권도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부산에 큼직한 선물을 던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 대통령이 임기 후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그 방법뿐이다. 신공항이 될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으나 그 희생자는 오롯이 대구가 될 것이다. 과거처럼 국책사업을 두고 대구와 부산을 경쟁시킨 뒤 부산에 줘버리면 그만이다. 대구는 제 밥그릇 못 챙기는 것은 고사하고, 밥그릇까지 깨먹을지 모른다. 정신 바짝 차리고 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또다시 호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경계경보를 발령할 때다.

2019-02-26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오기에는 디테일이 못 산다

요즘 손흥민이 상종가다. 이름대로 '흥'하다. 아시안컵 좌절로 프리미어리그에 조기 복귀한 뒤 고작 사흘 쉬고 매 경기 풀타임 선발로 나서 4경기 연속 골망을 흔들었다.리그 3위 성적인 토트넘은 손흥민의 부재에다 핵심 전력의 부상으로 패전을 거듭하며 파장 분위기였다. 그런데 손흥민이 합류하면서 기사회생했다. 영국 언론과 전문가 입에서 "슈퍼소닉"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챔피언스리그 16강전 홈경기는 손흥민의 가치를 입증한 중요한 경기였다. 도르트문트를 맞아 전반전 내내 수세에 몰렸지만 후반전 초반 손흥민이 선제골을 넣고 결국 낙승했다. 매체마다 손흥민을 '게임 체인저'로 치켜세우며 높은 평점을 줬다. 게임의 흐름을 바꾸고 승부를 결정지었다는 뜻이다.'게임 체인저'는 결과나 판도를 통째로 바꿔 놓을 만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사건이나 인물, 물건, 서비스 등을 일컫는 용어다.정치·경제·외교 등 각 분야에도 게임 체인저의 사례는 많다. 고정된 상황이나 판을 뒤흔들어 새 흐름을 만들어내고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욕심이 작용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도 그렇다. '무역적자=불공정무역'이라는 패러다임을 덧씌워 상대를 압박하고 주도권을 쥐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게임 체인저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일본과 중국, EU, 캐나다 등에서 들여오는 철강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매겼다. 또 그제 독일·일본산 자동차를 겨냥해 '자동차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이 조항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미국과 거래하는 무역 상대국에는 거의 카운터펀치다. 사문화되다시피 한 규정까지 끄집어내 게임 판도를 뒤바꾸면 미국 기업의 사정은 확 달라진다. 당장 철강 관세 효과로 미국 철강업체 순이익이 2, 3배 급증한 점을 볼 때 트럼프 행정부의 노림수가 맞아떨어졌다.우리의 게임 체인저는 무엇일까.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과 적폐 청산을 게임 체인저로 봤다. 과거 권력의 부정·불의를 징벌하고, 사회 양극화를 개선한다는 논리다. 그런 국가적 변화가 필요하고 또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성급하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정부 정책 방향이 게임 체인저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 정부의 논리도 조금 변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성장률이 둔화하고 실업률이 치솟자 '혁신성장'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각종 규제에 발목을 잡힌 기업 활동이 계속 가라앉고 재도약의 가능성이 점점 옅어지고 있어서다.우리에게는 독일의 '인더스터리 4.0'이나 중국 '제조 2025'와 같은 중장기 전략도 없다. 이런 국가 전략의 부재는 한국 경제가 내외적 변수에 휩쓸려 표류하거나 좌초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위험신호다. 최근 정부가 띄우는 '수소 경제'도 경제성과 기술적 한계 등 논란만 무성하다.무엇보다 우리의 게임 체인저 전략에는 척박한 혁신 환경과 크게 뒤떨어진 정책 디테일이라는 약점이 있다. 여기에서 혁신이 싹트고 정책 효과를 내기란 애초 무리다. 이제는 오기로 버틸 때가 아니다. 거시적인 관점과 긴 호흡으로 국가 전체를 봐야 한다. 게임 체인저로서 새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구호가 아니라 디테일에 충실해야 한다. 설익은 정책은 과적(過積)과 마찬가지다. 이내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2019-02-19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민주(民主) 라는 기치(旗幟) 의 아킬레스건

'칼레파 타 칼라'(Kalepa Ta Kala)는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그리스의 속담이다. '좋은 일은 이뤄지기 어렵다'는 뜻으로, 작가 이문열의 문학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 '칼레파 타 칼라'는 고대 그리스 가상의 도시국가에서 벌어진 정치의 흥망성쇠를 통해 민주주의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화 형식으로 그렸다. 권력과 명예, 선동과 시위, 혁명과 역설에 이은 공동체의 멸망을 바라보는 장탄식이 다름 아닌 '칼레파 타 칼라'이다.고대 그리스는 실제 역사도 그랬다. 민주정 사회였던 아테네의 집정관 테미스토클레스는 소피스트와 포퓰리즘의 횡행을 극복하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아낸 영웅이었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보도(寶刀)인 오스트라시즘(도편 추방)으로 쫓겨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 후 스파르타와의 쟁패전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의 또 다른 장군들 역시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부서진 배에서 수백 명의 장병들이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을 방관했다는 악의적 여론이 격앙되면서 일종의 인민재판에 내몰려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정적들의 선동에 휘둘린 민심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구국(救國)의 리더십을 잇따라 제거해버리자 아테네는 몰락하고 말았다. 이른바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위험을 실증하는 역사적 교훈이다.직접민주주의는 이렇게 포퓰리즘과 중우정치라는 아킬레스건을 지니고 있었다. 현대사회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직접민주주의의 꽃이라는 국민투표가 더러는 역사를 혼란과 광기의 늪으로 몰아가기도 한다.나치 독일의 히틀러도 국민투표를 통해 총통으로 등극했다. 권위주의 체제하의 국민투표는 거수기로 전락하기 십상이지만, 소위 민주국가의 국민투표 또한 대중영합주의에 부화뇌동하는 취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이 포퓰리즘을 양산하며 시민사회의 근간인 의회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떻게 선출되어서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두 사람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란 저서에서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헌법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 관용이나 제도적 자제와 같은 규범"이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집단과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와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국민의 태도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보루(堡壘)를 찾는다.'한국, 한국인'이란 책을 펴낸 마이클 브린 전 주한 외신기자 클럽 회장은 "한국에서는 어떤 쟁점에 대한 대중의 정서가 특정한 임계질량에 이르면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야수'로 변모하는데, 한국인들은 이를 '민심'이라 부른다"고 꼬집었다. 민심(民心)이란 게 늘 실증적이고 이성적이며 공정할까? 더구나 선동에 의한 조작된 민심이라면….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던 대한민국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의회정치와 사법부의 독립성마저 무력화시키려는 이 난장판에서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가 온전할 수 있을까. 민주(民主)라는 기치(旗幟)의 이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어떻게 하나. 칼레파 타 칼라….

2019-02-12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음모론'과 '가짜 뉴스'로 버무린 '자신감'

"누군가가 자기 심장을 걸고 어떤 사실을 믿는다 치자. 나아가 이 사람이 자기 믿음에 집착한다고 치자. 또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행동을 한다고 치자. 그런데 마지막에 이 사람 앞에 그 믿음이 틀렸다는 명백한 증거가 제시된다고 치자. 이때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사람은 의연하게 일어설 것이다.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전보다 한층 더 자신이 믿는 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할 것이다."미국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의 말이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틀린 것으로 판명됐을 때 이를 인정하기보다 현실을 편리한 대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왜? 자기 믿음을 배신하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견딜 수 없다. 그렇다고 현실을 믿음에 맞춰 바꿀 수도 없다. 그래서 현실을 왜곡해 자신의 믿음을 합리화한다. 이른바 '인지 부조화'다.문재인 정권도 여기에 빠져 있다. 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데도 경제 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경제 위기는 없다는 무조건적 믿음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은 현실 왜곡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런 믿음이 틀렸다는 증거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더 확고히 왜곡해야 한다. 그 수단이 '수구 세력의 경제 위기설'이다. 수구 세력이 '경제 위기설'을 조작해 퍼뜨린다는 '음모론'이다.이는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망라한 '범(汎)문재인 진영'의 공통된 믿음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수구 보수 세력은 최저임금을 고리로 경제 위기론을 퍼뜨리고 자영업의 어려움을 빌미로 경제 무능론을 유포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말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 성과가 있는 데도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받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올 초 "경제 위기설은 한국 보수 기득권층의 이념동맹·이해동맹·이익동맹"이라고 했다.문제는 이런 '음모론'이 국민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가 '설'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경제 위기설 음모론'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증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동원하는 것이 '가짜 뉴스'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거나 "세계가 우리 경제성장에 찬탄을 보낸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그런 것이다.언론의 '팩트 체크'로 이런 발언이 '가짜 뉴스'로 드러났음에도 문 대통령은 가짜 뉴스 생산을 멈추지 않는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도 그랬다. 문 대통령은 가계소득, 상용직, 청년 고용률 등을 언급하며 "개선됐다" "늘어났다" "높아졌다"고 했다. 대부분 '의도적 오독(誤讀)'이거나 유리한 부분만 '뻥튀기'한 '선택적 오독'이었다.한 가지 예만 들어보면 문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가계소득이 높아졌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다. 작년 3분기 월평균 가계소득을 보면 고소득층은 늘어났고 저소득층은 최하위 계층이 7%, 차하위 계층이 0.5%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으로 보호하려는 저소득층의 소득은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 경제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지금 경제 현장에서는 '죽겠다'는 비명이 진동한다. 하지만 '경제 위기설 음모론'과 '대통령발(發) 가짜 뉴스'를 보면 아직은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국민 모두 올해는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 같다.

2019-01-2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신단수(神檀樹) 100년 강산, 테디<1905년> 에서 트럼프<2019년> 까지

"한국의 도와달라는 외침에 대한 윌슨의 반응은 전임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다르지 않았다…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한국을 처음으로 점령했을 때…루스벨트 대통령은…'일본인과 협력하라'는 충고로 한국인을 모욕했다…이제 10년이 지나 윌슨 대통령 역시 한국인의 요청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파리평화회의에서 한국의 대의를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피터 현, 『만세!』, 2015년)망한 나라를 되찾는데 젊음을 바친 독립운동가 아버지 현순의 피눈물 나는 삶을 지켜본 아들 현준섭(피터 현)은 직접 지켜본 1919년 3·1만세운동을 기록으로 남겼다. 일제 감시 속에 서울을 떠나 가족과 함께 중국 상해에서 아버지와 합류, 머물다 다시 미국으로 터전을 옮겼고, 돌아가는 냉혹한 국제 정세를 파악한 바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고국을 배신한 미국의 두 얼굴을 알았으니 그럴 만했다.우리에게 '테디 베어'로 친근할지는 모를망정 루스벨트는 미국 국익 앞에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힘없는 한국을 삼킬 속셈을 반대할 까닭이 없었다. 1882년 맺은 미국과의 조약을 믿고 도움을 청한 고종 임금이나 백성만 불쌍할 뿐이었다. 게다가 테디는 앞서 이미 1905년 7월 한국 지배 꿈을 밝힌 일본과 밀약을 맺었고, 그해 9월에는 1904년 전쟁을 치른 러·일 두 나라를 미국에서 중재까지 했다.이런 악몽은 1919년 1월, 1차대전 이후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 때도 어김없었다. 민족자결이란 윌슨 대통령의 주창(主唱)에 희망을 건 일본의 한국 유학생들과 나라 안팎의 독립운동가 그리고 온 백성의 목숨을 건 평화적 만세운동과 국내 유림의 독립청원(파리장서운동)과 애절한 호소를 그는 외면했다. 메아리 없는 외침에 일제 탄압만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근대화 즈음, 우리가 몸소 겪고 배운 미국은 그랬다.그리고 1945년 9월 8일, 대통령 해리(트루먼)는 이 강산의 남쪽에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서라며 군대를 보냈다. 그는 또 1950년 6·25전쟁에 참전, 1894년 청·일 전쟁 빌미로 일본군 강점 이후 또다시 나라 밖 군대의 점령이자, 친일 청산 기회마저 앗아가는 군정의 바탕을 깔았다. 마침내 오늘날까지 전국 13개 시·도, 66개 시·군·구, 338개 읍·면·동에 걸친 질긴 애증의 미군 영향의 터를 닦은 셈이다.10년 강산이 열 번도 더 바뀌었을 그런 날들이었음에도 남북 강산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나라 밖 힘에 끌려다니는 꼴이다. '이니' 문재인 대통령과 맞상대하는 바다 건너 트럼프 대통령의 남북 강산을 사이에 둔 속셈이 심상찮다. 이미 끝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입맛대로 다시 하더니 이젠 주한 미군 경비 문제로 딴지다. 이에 질세라 압록강 건너 중국 지도자 시진핑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통해 무슨 꿍꿍이를 셈하는 모양새다. 마치 남북이 쉬운 먹잇감이나 되는 듯이 말이다.이 땅에 첫 삶터로 삼았을 신단수(神檀樹)의 뿌리와 가지가 남북 강산의 땅 밑과 위를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로 얽고 뒤덮어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도 남을 터인데 현실은 이렇게 나라 밖의 힘에 휘둘리니 무슨 까닭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정신을 차려야지. 돌아가는 꼴이나 잘 지켜보는 수밖에. 문제는 정치인과 지도층 인사들이다. 모두 자신들 이익에 유독 밝은 처세인이어서 더욱 그렇다.

2019-01-22 06:30:00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