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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초격차 사회를 이해하는 법

요즘 초연결이나 초격차와 같은 용어가 빈번히 쓰인다.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일이나 현상을 설명할 때 예상 범위를 넘어선다는 뜻에서 '초'(超)라는 접두사를 붙인 것이다. 초사회나 초예측, 초지능, 초고령 등도 같은 예다. 개괄하면 급속한 시대 변화나 과학기술의 진보가 파생할 사회·경제·문화적 트렌드를 일컫는 용어다.최근 국내 한 통신기업의 '앞으로의 시대를 초시대로 부르기로 했다'는 광고 카피가 눈길을 끌었다. 뒤집어 해석하면 '초시대를 열어가는 기업'으로 봐달라는 소리다. 이런 초(超)시대를 지탱하는 핵심은 독보적인 가치를 현실에 구현해내는 힘이다. 경쟁 상대와 명확히 구분되는 차별성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남보다 앞서지 못하면 도태되는 게 현실이다. 초시대는 더할 것이다. 결국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초시대의 본질이자 생태계다.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정치인 등 사회 엘리트 계층은 이미 성공적인 초시대를 살아가는 부류다. 비록 제 욕심에 충실하고 국가·사회는 뒷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환경에 최적화했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감춰진 동선은 국민들을 탄복게 할 정도다.이런 초시대에는 보편과 상식, 양심과 윤리는 군더더기다. 남들과 똑같은 판단, 행동 양식, 체면만 따지면 손에 쥐는 게 없어서다. 뛰어난 순발력과 과감한 결단, 집요한 성취감만이 성과를 낳는다. 여러 채의 주택과 많게는 수십억원의 투자 차익, 탈세와 꼼수 절세가 수확물이다. 이쯤 되면 이들의 현란한 '전투'(錢鬪) 감각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간혹 운이 없게도 말 등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조동호·최정호 장관 후보자가 그렇다. 그러나 똑같이 도마 위에 오른 나머지 5명의 장관 후보자는 건재하다. 한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고 했다지. 또 어느 후보자는 학자와 장관은 신분이 다른 만큼 언어도 생각도 바뀔 수 있다고 우겼다. 거액을 대출받아 재개발지역에 투자했다가 문제가 되자 사표를 내고는 "나는 몰랐다"고 둘러댄 것이나 피차일반이다. 국민 눈높이나 정서와는 거리가 아주 먼 '초격차'의 실상이다.정쟁으로 치면 한국 정당들의 싸움 실력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소통과 설득, 논리와 타협은 필요 없다. 상대를 물어뜯고 끌어내리는 기질과 내공이면 그만이다. 정치 발전이나 쇄신의 기준에서 보면 어디 내놓기가 부끄러운 수준이다. 여기에는 여도 야도 예외가 없다.'그래비티' '마더 나이트' 등 수많은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쓰인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이라는 기악곡이 있다.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가 1978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최소한의 선율과 리듬, 화성만 동원한, 매우 느리고 단조롭게 반복하는 미니멀리즘 음악으로 애청자가 꽤 많다.거울 안에 또 다른 거울이 있다면 피사체는 보는 각도에 따라 계속 반복해 나타난다. 소리나 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거울 앞에 선 사람은 배경을 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함정에 빠져 있다. 나만 보고 남을 보지 못하는 초격차 시대의 함정이다. 그러나 이를 부끄러워하거나 고칠 생각도 없는 게 더 큰 문제다.

2019-04-0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증오의 정치

뒤주에 갇힌 채 죽어 간 사도세자의 비극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이 충격적인 조선 왕가의 참상이 추악한 당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웬만하면 안다. 그런데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다름 아닌 부인 혜경궁 홍씨와 장인 홍봉한이었다면…사도세자는 우리가 사극이나 영화를 통해 알고 있는 것처럼 비행이나 일삼은 정신병자가 아니었다면… 또한 그것이 영조가 아들을 죽게 한 이유도 아니었다면….역사학자 이덕일이 펴낸 '사도세자의 고백'은 당쟁의 최대 희생자였던 사도세자의 객관적인 목소리에 접근한다. 가해자들의 변명일 수도 있는 '한중록'의 내용과는 다른, 어쩌면 성군의 자질을 지녔을 사도세자의 참모습을 통해 당쟁의 비정함과 참담한 실상을 폭로한다. 당쟁에서 백성과 국가는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당파와 가문의 안위만 종교처럼 뿌리내렸다. 상대편 박멸이 우선인 증오 정치의 최전선이었다.오늘도 한국 사회에는 증오 정치가 만연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도 국민을 위해 펼쳐야 할 정책도 '선악(善惡)의 전쟁'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힌 채 이판사판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정권이란 교체되는 것이 당연하다. 선거 또한 질 수도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는 것을 천사가 악마에게 지는 것'으로 여긴다. 정의와 양심으로 포장한 이념과 선동의 이면에는 증오의 대물림이 꿈틀거린다.강준만 교수는 '증오 상업주의'라는 저서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에서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건 늘 '순수주의자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가능성을 추구하는 정치를 이상향을 좇는 종교의 도그마처럼 여긴다.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강경파가 득세하고 극단주의가 횡행하는 까닭이다. 특히 진보주의자들은 타협을 추악하게 생각한다. 전체주의적 발상이다.당파성과 진영 논리를 앞세운 정치 세력은 국민의 관점에서 우선시해야 할 민생 문제보다 소수 열성파의 피를 끓게 하는 이념적·파당적 이슈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정치적 화법이나 정략적 언어조차 천박하고 자극적이다. '빨갱이' '쥐박이' '만주국 귀태'라는 독설도 그래서 나온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모습과 정치인의 행태는 시정잡배보다 못하다.지층만을 의식한 막말과 망동이 난무할 뿐이다. 그럴수록 열렬 지지 세력은 박수를 보낸다. 악의 세력 척결이 우선인데 방법이나 과정상의 오류나 무리는 신경 쓸 일도 아니다.'All or Nothing'의 제로섬 게임이다. 반대편은 모조리 쓸어버려야 직성이 풀릴 기세다. 그쪽에는 내 조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아들딸이 있을 수 있다. 친구와 동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모두 없애고 나면 아름다운 세상을 이룰 수 있을까. 정권이 바뀌어도 걱정이다. 이번에는 좌파 독재의 폐해 청산에 국력을 낭비할 것이고, 야당으로 전락한 진보 세력은 다시 온몸으로 저항하며 국정을 마비시킬 것이다.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는가?증오를 줄여야 한다. 증오를 악용하는 정치인도 문제이지만 이념과 당파에 매몰된 지지자들도 안목을 넓혀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여야와 좌우 세력은 공존해야 할 상대이지 척결해야 할 적군이 아니다. 정치 언어의 품격부터 높여야 한다. 그리고 공생과 통합의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 선거제도를 바꾸고 정치 변혁을 시도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다.

2019-03-26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있습니까?" 독일이 소련으로 쳐들어간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보라는 스탈린의 지시로 소련 외상(外相) 몰로토프가 소련 주재 독일대사 슐렌베르크에게 한 하소연이다. 폴란드에 이어 프랑스까지 집어삼킨 독일이 영국마저 굴복시키기 전에는 소련을 치지 않을 것이란 스탈린의 소망적 사고가 초래한 굴욕이었다.스탈린은 당시의 세계정세를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틀에 맞춰 '해석'했다. 자본주의 국가는 시장 확보와 식민지 획득 경쟁을 멈출 수 없어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자멸적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자본주의 진영을 삼킬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스탈린의 생각에 그 전쟁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든 그 승리는 최후의 승자까지 멸망으로 이끄는 '피루스의 승리'일 터였다.이런 계산은 철저히 자기본위적이었다. 히틀러의 세계 정복 계획에서 소련을 식민지로 만드는 '레벤스라움'(생활공간)은 상수(常數)였다. 이는 비밀도 아니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럼에도 스탈린은 대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에 막대한 군수물자를 보냈다. 영국과 독일 모두를 소진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소련은 독일과 피투성이 싸움을 벌여야 했고 천신만고 끝에 이기기는 했지만 2천만 명이 희생되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문재인 정부의 행태도 이와 똑같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으며 북한이 이를 행동으로 옮기게 할 유력한 수단은 대북제재가 아니라 남북경협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안타깝게도 이런 믿음은 한 번도 입증된 적이 없다. 소망적 사고일 뿐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부터 그렇다. 실패한 지난 25년간의 북핵 협상은 북한은 핵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나긴 깨달음의 과정이었다. 1·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는 그 깨달음의 고통스러운 반복이었다.그럼에도 문 정부는 여전히 미몽(迷夢) 속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이 "미국의 참관과 검증 하에 영구히 폐기되는 것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했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절망적 확증 편향이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는 영변 핵시설이 여전히 가동 중이라고 했다.남북경협의 맹신도 마찬가지다. DJ의 '햇볕정책'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DJ의 '햇볕'은 핵 개발을 저지한 것이 아니라 핵 능력을 '고도화'하는 밑천이 됐다. 25년간의 북핵 협상도 마찬가지다. 중유 제공 등 막대한 경제적 대가를 지불했지만 허사였다. 모두 경제적 유인책으로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구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미국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으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식 비핵화' 이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김정은식 비핵화'란 '무늬만 비핵화', 곧 비핵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이런 북한에 남북경협은 핵 능력을 늘리라고 돈을 보태주는 꼴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남북경협에 안달한다. 문 대통령은 '하노이 핵 담판'에서 북한이 비핵화할 뜻이 없음이 재확인됐는데도 "남북협력사업을 속도감 있게 준비" 운운했다. 남한 국민을 북핵의 인질로 내줄 작정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2019-03-1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트럼프, 칠곡 비무장지대(DMZ) 비애(悲哀) 아시나요?

'한국은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일본국에 양여하고, 일본국은 이 양여를 수락하고 한국의 병합을 승낙한다.' '한국은 미국의 육·해·공군의 한국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허여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앞은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강압으로 억지로 맺은 한일합방조약으로 나라를 주고받는 내용의 조항이다. 뒤는 1953년 10월 1일, 미국과 체결한 한미 상호방위조약 가운데 우리 땅에 미군을 둘 권한을 다룬 내용이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나라도, 땅도 우리 것이지만 주니까(양여·허여) 두 나라가 받는 듯한 겉모양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삶터인 공간과 땅이 그들 차지가 된 사실이 그렇다. 이런 치욕과 굴욕의 조약이 이뤄진 까닭도 같다. 외침(外侵)과 우리 실정(失政)으로 힘을 잃은 탓이다.그리고 두 조약의 체결 배경은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 있다. 앞은 '테디'란 별칭으로 잘 알려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본과 1905년 몰래 맺은 미일밀약의 결과물이다. 한미방위조약은 일제 35년간 식민 잔재가 낳은 1950년 한국전쟁의 부산물로 생긴 족쇄다.방위조약 이후 우리는 그 족쇄로 전국이 신음이다. 미군 주둔에 따른 숱한 민원, 규제 불만, 후유증 호소가 차고 넘쳐서다. 행정안전부가 2008년부터 관리, 지원하는 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즉 13개 시·도, 66개 시·군·구, 338개 읍·면·동 주민이 바로 그 피해자들이다.전국 89곳(2016년)의 미군 기지 가운데 대구는 5곳, 경북은 10개 시·군 54개 읍·면·동에 4곳 미군 부대가 있는데, 경북은 경기도 다음으로 넓다. 특히 경북 1위인 칠곡 미군 기지는 그 면적만도 약 330만㎡(100만 평)로 군청 소재지 왜관읍 중심지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크고 드넓다.1959년 공사, 이듬해 부대 배치로 왜관 도심 알짜배기 땅을 깔고 앉은 탓에 칠곡 발전 저해와 주민 불편, 불만은 마땅하다. 미군 주둔 주변은 많게는 10개쯤 규제가 겹치니 피해도 숱하다. 칠곡군이 매년 감수해야만 하는 64억원 지방세 감소, 1천억원 넘는 기회비용 부담도 그렇다.또한 미군의 초교생 성폭행, 고엽제 매립 소동, 부대 창고 폭발, 한밤 사이렌 오작동 소동 등으로 칠곡 지역 사회 불안도 여럿이다. 부대 기지 이후로 옛 농지와 삶터를 잃은 한 마을은 마치 휴전선의 비무장지대와 같은 삶이다. 부대 너머 있는 논밭 농사는 미군 허락 때만 철조망 따라 네 철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물론 이는 미군의 배려(?) 덕분이기도 하다. 불과 200~300m 철조망 농로를 막으면 위험한 찻길 수㎞를 목숨 걸고 빙 둘러 다닐 판이다. 그런데 부대는 갈수록 일일 허용 시간을 줄여 올해는 12시간뿐이다. 농민은 해가 좀 더 하늘에 머물거나 미군의 허용시간 연장을 바랄 뿐이다.이런 농민과 칠곡의 가려진 손실과 고통은 잴 수 없다. 그래도 지금껏 참고 견딘 까닭은 국가 안보와 혈맹(血盟)으로 맺은 두 나라를 위해서였다. 이런 사정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갈수록 막무가내다. 북핵 협상과 남북 관계를 업고 미군 철수, 안보무임승차론 등으로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늘리라고 떼를 쓰니 말이다.비록 정부가 주민 피해를 위해 지원사업을 펼치지만 언발에 오줌 누기로 흉내에 그치고 끝없는 희생만 요구할 뿐이다. 미군 부대 주변 한인이여! 이 비애, 어찌하리오?

2019-03-11 19:39:01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조급증·갈라치기가 가져온 文정부 위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은 문재인 대통령에겐 충격이자 타격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하던 문 대통령은 차에서 쫓겨나 구경꾼 신세가 됐다. 국민에게 환상을 불어넣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여당 등 집권 세력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지금껏 집권 세력은 남북한 화해 이벤트로 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을 견인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그에 따른 대북 제재 해제가 없는 한 남북한 이벤트는 쇼일 뿐이란 사실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확인됐다. 국민 대다수가 김정은과 북한,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동의하지 않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큰 위기에 봉착했다. 소득주도성장 등 정책 실패로 말미암은 경제난이 문 정부를 위기에 빠트렸다. 설상가상으로 김정은에게 끌려다니며 매달린 북한 문제마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문 정부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 위기를 가져온 요인이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올인한 북한 문제, 소득주도성장이란 점이 아이러니하다.그토록 공들인 북한 문제와 경제정책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은 뭘까.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조급증과 갈라치기 탓이다. 트럼프가 "우리는 서두를 게 없다"고 했는데도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조급증을 보였다. 미국에 제재 완화를 집요하게 설득하고 남북 경협까지 떠안겠다고 하는 등 서둘렀다. 문 대통령과 비서진이 북미 정상의 서명식을 TV로 지켜보는 이벤트까지 준비했다 망신을 산 것도 조급증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자 등 경제 주체들의 사정을 두루 살피고, 공론화를 통해 득실을 따져본 후 추진하면 될 일을 막무가내로 결정하고 밀어붙인 결과 부작용이 산처럼 쌓이고 말았다.적과 아군으로 편을 나눠 갈라치기를 하는 행태도 위기를 자초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맹신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만 몰두한 탓에 한미 공조에 구멍이 뚫렸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편을 들어 미국을 갈라치기 한 결과 미국이 우리 정부를 불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회담 결렬 후에도 집권 세력은 일본 아베 총리와 국내 비판 세력을 한편으로 묶는 갈라치기를 하고 나섰다. "(회담 결렬에) 아베 총리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그런 분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아프다"(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며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면 친일로 몰아버리는 프레임 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등에서 보여준 갈라치기가 급기야 대구경북을 인사예산에서 배제하는 특정 지역 갈라치기로까지 진화(?)하고 있다.조급증과 갈라치기는 정권을 계속 잡아야 한다는 강박 심리의 산물이다. 참여정부 이후 집권에 실패했을 때의 고통과 트라우마가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 뇌리에 각인돼 있고, 이번에는 정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조급증과 갈라치기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론 청산을 주장했다. 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는 갈라치기이자 조급증의 발로다.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문 정부의 위기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2019-03-05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대구 대통령, 부산 대통령

요즘 정권 차원에서 대구경북을 배제하는 소위 'TK 패싱' 논란이 화제다. 일부에서는 'TK 패싱'이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했고, 일부에서는 근거 없는 피해 의식 내지 히스테리라고 반박했다. 역대 정권과 대구와의 관계를 추적하면 'TK 패싱'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나지 않겠는가.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한 1993년쯤으로 기억한다. 대대적인 검찰 인사가 이뤄졌는데, 된서리를 맞은 것은 경북고 출신이었다. 당시 대구지검 형사부를 비롯해 공안·특수부 부장검사 자리는 인사에서 물먹은 경북고 출신으로 채워졌다. 전임 노태우 정부 때 그렇게 잘나가던 TK 검사들은 YS 재임 동안 지방을 전전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관·군·경제계에서도 TK 출신을 대상으로 '피의 숙청'이 단행됐고, 빈자리는 부산경남 출신이 대거 차지했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20년 이상 TK 출신들이 승승장구했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정작 불똥은 애꿎은 곳에 튀었다.대구시와 경북도는 국책사업·예산 등에서 배제되다시피 했고, 대구경북 몫이라고 여긴 것조차 부산경남에 빼앗겼다. YS는 삼성자동차 부지를 대구에서 부산으로 바꾸고, 대신 지금은 없어진 삼성상용차를 대구에 줬다. 위천국가공단을 가로막은 것도 그때다.부산에는 5조5천억원의 신항만, 삼성자동차, 거가대교, 해양수산부 개청, 부산아시안게임 유치 등 큼직한 선물을 안겨줬으니 YS로 인한 낙수효과가 엄청났다. 얼핏 계산해 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3명의 대통령이 고향인 대구경북에 내려준 국책사업을 합해도 YS의 절반에 채 미치지 못했다. 정치 보복 때문인지, 고향 사랑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TK 패싱'의 원조는 YS였다.부산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대구경북은 찬밥 신세였다.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 큰 선물을 안겨주지 못했지만,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의 유치, 북항재개발 및 하얄리아 부대 이전 등의 규모 있는 국책사업을 내려줬다. 지난 10년간 대구경북과 부산이 첨예하게 대립한 동남권 신공항을 국책사업으로 확정한 것도 2006년 노 전 대통령 집권 4년 차 때였다.2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에도 부산 출신이라는 점을 찜찜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역대 부산 출신 대통령이 해온 것처럼 'TK 홀대, PK 우대' 정책을 고수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한동안 참고 있는 듯하더니만 고향 여론에 시달려서인지 몰라도 서서히 과거 전철을 밟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문 대통령의 가덕도 신공항 신설 시사 발언, 원전해체연구소 부산·울산 입지 결정 움직임, 예타 면제 사업 비용 부산경남 편중 등은 'TK 패싱'에 가속도를 내는 촉매제가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다.문재인 정권도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부산에 큼직한 선물을 던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 대통령이 임기 후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그 방법뿐이다. 신공항이 될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으나 그 희생자는 오롯이 대구가 될 것이다. 과거처럼 국책사업을 두고 대구와 부산을 경쟁시킨 뒤 부산에 줘버리면 그만이다. 대구는 제 밥그릇 못 챙기는 것은 고사하고, 밥그릇까지 깨먹을지 모른다. 정신 바짝 차리고 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또다시 호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경계경보를 발령할 때다.

2019-02-26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오기에는 디테일이 못 산다

요즘 손흥민이 상종가다. 이름대로 '흥'하다. 아시안컵 좌절로 프리미어리그에 조기 복귀한 뒤 고작 사흘 쉬고 매 경기 풀타임 선발로 나서 4경기 연속 골망을 흔들었다.리그 3위 성적인 토트넘은 손흥민의 부재에다 핵심 전력의 부상으로 패전을 거듭하며 파장 분위기였다. 그런데 손흥민이 합류하면서 기사회생했다. 영국 언론과 전문가 입에서 "슈퍼소닉"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챔피언스리그 16강전 홈경기는 손흥민의 가치를 입증한 중요한 경기였다. 도르트문트를 맞아 전반전 내내 수세에 몰렸지만 후반전 초반 손흥민이 선제골을 넣고 결국 낙승했다. 매체마다 손흥민을 '게임 체인저'로 치켜세우며 높은 평점을 줬다. 게임의 흐름을 바꾸고 승부를 결정지었다는 뜻이다.'게임 체인저'는 결과나 판도를 통째로 바꿔 놓을 만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사건이나 인물, 물건, 서비스 등을 일컫는 용어다.정치·경제·외교 등 각 분야에도 게임 체인저의 사례는 많다. 고정된 상황이나 판을 뒤흔들어 새 흐름을 만들어내고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욕심이 작용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도 그렇다. '무역적자=불공정무역'이라는 패러다임을 덧씌워 상대를 압박하고 주도권을 쥐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게임 체인저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일본과 중국, EU, 캐나다 등에서 들여오는 철강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매겼다. 또 그제 독일·일본산 자동차를 겨냥해 '자동차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이 조항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미국과 거래하는 무역 상대국에는 거의 카운터펀치다. 사문화되다시피 한 규정까지 끄집어내 게임 판도를 뒤바꾸면 미국 기업의 사정은 확 달라진다. 당장 철강 관세 효과로 미국 철강업체 순이익이 2, 3배 급증한 점을 볼 때 트럼프 행정부의 노림수가 맞아떨어졌다.우리의 게임 체인저는 무엇일까.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과 적폐 청산을 게임 체인저로 봤다. 과거 권력의 부정·불의를 징벌하고, 사회 양극화를 개선한다는 논리다. 그런 국가적 변화가 필요하고 또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성급하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정부 정책 방향이 게임 체인저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 정부의 논리도 조금 변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성장률이 둔화하고 실업률이 치솟자 '혁신성장'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각종 규제에 발목을 잡힌 기업 활동이 계속 가라앉고 재도약의 가능성이 점점 옅어지고 있어서다.우리에게는 독일의 '인더스터리 4.0'이나 중국 '제조 2025'와 같은 중장기 전략도 없다. 이런 국가 전략의 부재는 한국 경제가 내외적 변수에 휩쓸려 표류하거나 좌초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위험신호다. 최근 정부가 띄우는 '수소 경제'도 경제성과 기술적 한계 등 논란만 무성하다.무엇보다 우리의 게임 체인저 전략에는 척박한 혁신 환경과 크게 뒤떨어진 정책 디테일이라는 약점이 있다. 여기에서 혁신이 싹트고 정책 효과를 내기란 애초 무리다. 이제는 오기로 버틸 때가 아니다. 거시적인 관점과 긴 호흡으로 국가 전체를 봐야 한다. 게임 체인저로서 새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구호가 아니라 디테일에 충실해야 한다. 설익은 정책은 과적(過積)과 마찬가지다. 이내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2019-02-19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민주(民主) 라는 기치(旗幟) 의 아킬레스건

'칼레파 타 칼라'(Kalepa Ta Kala)는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그리스의 속담이다. '좋은 일은 이뤄지기 어렵다'는 뜻으로, 작가 이문열의 문학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 '칼레파 타 칼라'는 고대 그리스 가상의 도시국가에서 벌어진 정치의 흥망성쇠를 통해 민주주의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화 형식으로 그렸다. 권력과 명예, 선동과 시위, 혁명과 역설에 이은 공동체의 멸망을 바라보는 장탄식이 다름 아닌 '칼레파 타 칼라'이다.고대 그리스는 실제 역사도 그랬다. 민주정 사회였던 아테네의 집정관 테미스토클레스는 소피스트와 포퓰리즘의 횡행을 극복하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아낸 영웅이었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보도(寶刀)인 오스트라시즘(도편 추방)으로 쫓겨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 후 스파르타와의 쟁패전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의 또 다른 장군들 역시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부서진 배에서 수백 명의 장병들이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을 방관했다는 악의적 여론이 격앙되면서 일종의 인민재판에 내몰려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정적들의 선동에 휘둘린 민심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구국(救國)의 리더십을 잇따라 제거해버리자 아테네는 몰락하고 말았다. 이른바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위험을 실증하는 역사적 교훈이다.직접민주주의는 이렇게 포퓰리즘과 중우정치라는 아킬레스건을 지니고 있었다. 현대사회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직접민주주의의 꽃이라는 국민투표가 더러는 역사를 혼란과 광기의 늪으로 몰아가기도 한다.나치 독일의 히틀러도 국민투표를 통해 총통으로 등극했다. 권위주의 체제하의 국민투표는 거수기로 전락하기 십상이지만, 소위 민주국가의 국민투표 또한 대중영합주의에 부화뇌동하는 취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이 포퓰리즘을 양산하며 시민사회의 근간인 의회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떻게 선출되어서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두 사람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란 저서에서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헌법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 관용이나 제도적 자제와 같은 규범"이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집단과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와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국민의 태도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보루(堡壘)를 찾는다.'한국, 한국인'이란 책을 펴낸 마이클 브린 전 주한 외신기자 클럽 회장은 "한국에서는 어떤 쟁점에 대한 대중의 정서가 특정한 임계질량에 이르면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야수'로 변모하는데, 한국인들은 이를 '민심'이라 부른다"고 꼬집었다. 민심(民心)이란 게 늘 실증적이고 이성적이며 공정할까? 더구나 선동에 의한 조작된 민심이라면….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던 대한민국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의회정치와 사법부의 독립성마저 무력화시키려는 이 난장판에서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가 온전할 수 있을까. 민주(民主)라는 기치(旗幟)의 이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어떻게 하나. 칼레파 타 칼라….

2019-02-12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음모론'과 '가짜 뉴스'로 버무린 '자신감'

"누군가가 자기 심장을 걸고 어떤 사실을 믿는다 치자. 나아가 이 사람이 자기 믿음에 집착한다고 치자. 또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행동을 한다고 치자. 그런데 마지막에 이 사람 앞에 그 믿음이 틀렸다는 명백한 증거가 제시된다고 치자. 이때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사람은 의연하게 일어설 것이다.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전보다 한층 더 자신이 믿는 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할 것이다."미국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의 말이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틀린 것으로 판명됐을 때 이를 인정하기보다 현실을 편리한 대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왜? 자기 믿음을 배신하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견딜 수 없다. 그렇다고 현실을 믿음에 맞춰 바꿀 수도 없다. 그래서 현실을 왜곡해 자신의 믿음을 합리화한다. 이른바 '인지 부조화'다.문재인 정권도 여기에 빠져 있다. 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데도 경제 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경제 위기는 없다는 무조건적 믿음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은 현실 왜곡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런 믿음이 틀렸다는 증거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더 확고히 왜곡해야 한다. 그 수단이 '수구 세력의 경제 위기설'이다. 수구 세력이 '경제 위기설'을 조작해 퍼뜨린다는 '음모론'이다.이는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망라한 '범(汎)문재인 진영'의 공통된 믿음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수구 보수 세력은 최저임금을 고리로 경제 위기론을 퍼뜨리고 자영업의 어려움을 빌미로 경제 무능론을 유포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말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 성과가 있는 데도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받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올 초 "경제 위기설은 한국 보수 기득권층의 이념동맹·이해동맹·이익동맹"이라고 했다.문제는 이런 '음모론'이 국민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가 '설'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경제 위기설 음모론'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증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동원하는 것이 '가짜 뉴스'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거나 "세계가 우리 경제성장에 찬탄을 보낸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그런 것이다.언론의 '팩트 체크'로 이런 발언이 '가짜 뉴스'로 드러났음에도 문 대통령은 가짜 뉴스 생산을 멈추지 않는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도 그랬다. 문 대통령은 가계소득, 상용직, 청년 고용률 등을 언급하며 "개선됐다" "늘어났다" "높아졌다"고 했다. 대부분 '의도적 오독(誤讀)'이거나 유리한 부분만 '뻥튀기'한 '선택적 오독'이었다.한 가지 예만 들어보면 문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가계소득이 높아졌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다. 작년 3분기 월평균 가계소득을 보면 고소득층은 늘어났고 저소득층은 최하위 계층이 7%, 차하위 계층이 0.5%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으로 보호하려는 저소득층의 소득은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 경제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지금 경제 현장에서는 '죽겠다'는 비명이 진동한다. 하지만 '경제 위기설 음모론'과 '대통령발(發) 가짜 뉴스'를 보면 아직은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국민 모두 올해는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 같다.

2019-01-2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신단수(神檀樹) 100년 강산, 테디<1905년> 에서 트럼프<2019년> 까지

"한국의 도와달라는 외침에 대한 윌슨의 반응은 전임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다르지 않았다…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한국을 처음으로 점령했을 때…루스벨트 대통령은…'일본인과 협력하라'는 충고로 한국인을 모욕했다…이제 10년이 지나 윌슨 대통령 역시 한국인의 요청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파리평화회의에서 한국의 대의를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피터 현, 『만세!』, 2015년)망한 나라를 되찾는데 젊음을 바친 독립운동가 아버지 현순의 피눈물 나는 삶을 지켜본 아들 현준섭(피터 현)은 직접 지켜본 1919년 3·1만세운동을 기록으로 남겼다. 일제 감시 속에 서울을 떠나 가족과 함께 중국 상해에서 아버지와 합류, 머물다 다시 미국으로 터전을 옮겼고, 돌아가는 냉혹한 국제 정세를 파악한 바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고국을 배신한 미국의 두 얼굴을 알았으니 그럴 만했다.우리에게 '테디 베어'로 친근할지는 모를망정 루스벨트는 미국 국익 앞에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힘없는 한국을 삼킬 속셈을 반대할 까닭이 없었다. 1882년 맺은 미국과의 조약을 믿고 도움을 청한 고종 임금이나 백성만 불쌍할 뿐이었다. 게다가 테디는 앞서 이미 1905년 7월 한국 지배 꿈을 밝힌 일본과 밀약을 맺었고, 그해 9월에는 1904년 전쟁을 치른 러·일 두 나라를 미국에서 중재까지 했다.이런 악몽은 1919년 1월, 1차대전 이후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 때도 어김없었다. 민족자결이란 윌슨 대통령의 주창(主唱)에 희망을 건 일본의 한국 유학생들과 나라 안팎의 독립운동가 그리고 온 백성의 목숨을 건 평화적 만세운동과 국내 유림의 독립청원(파리장서운동)과 애절한 호소를 그는 외면했다. 메아리 없는 외침에 일제 탄압만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근대화 즈음, 우리가 몸소 겪고 배운 미국은 그랬다.그리고 1945년 9월 8일, 대통령 해리(트루먼)는 이 강산의 남쪽에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서라며 군대를 보냈다. 그는 또 1950년 6·25전쟁에 참전, 1894년 청·일 전쟁 빌미로 일본군 강점 이후 또다시 나라 밖 군대의 점령이자, 친일 청산 기회마저 앗아가는 군정의 바탕을 깔았다. 마침내 오늘날까지 전국 13개 시·도, 66개 시·군·구, 338개 읍·면·동에 걸친 질긴 애증의 미군 영향의 터를 닦은 셈이다.10년 강산이 열 번도 더 바뀌었을 그런 날들이었음에도 남북 강산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나라 밖 힘에 끌려다니는 꼴이다. '이니' 문재인 대통령과 맞상대하는 바다 건너 트럼프 대통령의 남북 강산을 사이에 둔 속셈이 심상찮다. 이미 끝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입맛대로 다시 하더니 이젠 주한 미군 경비 문제로 딴지다. 이에 질세라 압록강 건너 중국 지도자 시진핑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통해 무슨 꿍꿍이를 셈하는 모양새다. 마치 남북이 쉬운 먹잇감이나 되는 듯이 말이다.이 땅에 첫 삶터로 삼았을 신단수(神檀樹)의 뿌리와 가지가 남북 강산의 땅 밑과 위를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로 얽고 뒤덮어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도 남을 터인데 현실은 이렇게 나라 밖의 힘에 휘둘리니 무슨 까닭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정신을 차려야지. 돌아가는 꼴이나 잘 지켜보는 수밖에. 문제는 정치인과 지도층 인사들이다. 모두 자신들 이익에 유독 밝은 처세인이어서 더욱 그렇다.

2019-01-22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집권 세력의 고질병 세 가지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이 무겁지 싶다. 국정에서 국민이 느낄 수 있는 구체적 성과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데드크로스까지 발생한 지지율을 반등시키지 못하면 조기 레임덕이 불가피하다. 자칫하다간 그렇게 목매던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가 수포가 되는 상황마저 닥쳐올 수 있다. 새해 벽두 청와대 참모진 개편도 문 대통령의 절박감이 반영된 것이다.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정부 여당 등 집권 세력이 성과를 보여주려 발버둥 치겠지만 그리 녹록지 않다. 대내외적 여건도 난관이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지금껏 집권 세력이 보여준 행태들이 되풀이된다면 성과를 거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고질병(痼疾病)을 고치지 않는 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집권 세력의 첫째 고질병은 내 편, 네 편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이중적 태도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차갑게 대하라고 했건만 집권 세력은 정반대다. 오죽하면 신임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 말을 꺼냈을까. 적으로 간주하는 진영의 허물엔 가을 서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냉혹하다. 이 탓에 안타까운 죽음들이 속출했다. 같은 편의 잘못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 청와대 특감반 사태, 육군참모총장을 휴일에 카페로 불러낸 청와대 행정관 등 사례를 들자면 숨이 찰 정도다. 집권 세력은 내로남불이란 말을 정권이 끝나는 날까지 들으려는 모양새다.둘째는 불통이다. 박근혜 정부를 불통정권이라 그렇게도 비판하던 집권 세력이 어느새 스스로가 불통정권이 됐다. 한술 더 뜬다는 소리마저 나온다. 탈원전, 최저임금 인상 등 사안마다 독선과 아집이 도를 넘었다.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 터지면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전전·전 정권, 야당, 언론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래서는 국민의 마음을 얻기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셋째는 공감과 행동 결여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성탄절 "나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박노해 시인의 '그 겨울의 시' 일부를 인용했다.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혼자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이 시에 나오는 할머니와 주인공이 집권 세력의 모습이다. 장터에 가서 거지들은 차가운 밤을 어떻게 보내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따뜻한 곳으로 데려가지는 않고 이불 속에서 말로만 걱정하고 잠을 잘 뿐이다. 시장 공장 편의점 식당 등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책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문 대통령은 공감과 소통이 정치의 기본이라고 했다. 공감과 소통은 상대의 아픔을 헤아리고 같이하는 데서 출발한다. 집권 세력은 공감과 소통에서 낙제점 수준이다. 그토록 싫어하는 어느 전직 대통령의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와 뭣이 다른가.집권 세력이 고질병을 고쳐 성과를 보여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온몸에 뿌리내린 고질병이 쉽게 고쳐질 리 만무하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쓴소리를 했다. 문재인 정부는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2019-01-15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촛불혁명은 실패했나?

2년 전 이맘때 신문을 펼쳤다. 주요 뉴스는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정유라 체포 등이었고 탄핵 정국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월 7일에는 세월호 1천 일을 기념한 11차 촛불집회, 14일에는 체감온도 영하 13도임에도 12차 촛불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불과 2년 전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인데도,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금세 잊어버리는 한국인 특유의 냄비 기질 때문인지, 그간 경천동지할 사건이 줄줄이 터졌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한 가지 기억만큼은 뚜렷하게 남아 있다. 당시 몇몇 친구들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사회에서 제법 자리를 잡고 있는 이들임에도, 그런 꿈을 꾸고 있었으니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이들은 1987년 6·10항쟁을 대학 시절에 경험했기에 변화의 욕구가 강렬했다. 이제 편법과 부정이 없고 노력하면 잘사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었으니 철이 없다고 해야 할까. 박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권 탄생 등 촛불혁명의 결과물을 두고 친구들은 환호했지만 필자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그 전리품을 챙긴 정치권의 권력욕과 무능이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열망을 훼손시키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새 정부가 기득권층의 끝없는 탐욕을 제어하고 올바른 사회로 이끌 수 있을지 기대 반, 의심 반이었다.새해가 밝았지만, 우리 사회의 표정은 어떠한가. 새로운 희망과 소망을 노래하기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우울한 분위기다. 문재인 정권은 한마디로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열망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스스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라고 자랑하고는, 남북관계만 일부 진전시켰을 뿐, 무엇하나 고치고 개혁한 것이 없다.재벌 개혁을 한다고 떠들더니 감정풀이 비슷하게 변죽만 울리고 있다. 공교육이 사라진 학교교육은 물론이고, 학생을 지옥에 빠트리는 입시 개혁도 손조차 대지 못했다. 검찰 개혁한다고 해놓고 '적폐 청산'의 첨병처럼 부리고 있으니 기가 찰 일이다.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된 노조·시민단체 등을 우군이라는 이유로 옹호하기에 바쁘다. 일자리수석,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고는, 취업자 수가 더 감소한 것은 희대의 코미디다. 처음부터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책과 자원을 총동원해야 함에도, 다른 곳에 이리저리 분배하고 같은 편 챙겨주다보니 마이너스 수치로 바뀌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현 정권은 촛불혁명의 과실만 따먹고는, 정신은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그 정신을 살릴 생각조차 없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촛불 정신을 계승했다는 이들이 이렇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까. 그저 보수 세력 쫓아내고 '자리 옮기기' '이권 챙기기'에만 관심 있을 뿐,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능력도, 의욕도 없는 것 같다. 결국,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고도 노태우 정권을 탄생시켰듯,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으니 한국의 불행이다.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잘하고 있으며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항변한다. 2년 전보다 팍팍하고 힘든 사회가 돼 있음을 누구나 체감하고 있는데, 헛웃음만 나온다. 집권 3년 차를 맞는 문 대통령에게는 올해가 마지막 기회다. '죽 쑤어 개 줬다'는 소리를 들어선 안 된다. 추위에 떨며 촛불을 든 시민들의 열망을 떠올리길 바란다.

2019-01-0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맞으면서 어딜 간다는 건지

마라톤은 인간이 만든 스포츠 중 가장 이상한 게임이다. 40㎞가 넘는 거리를 줄곧 달려 체력의 바닥까지 확인하는 고약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구경꾼이 아니라 달리기를 선택한다. 자신과 싸우고 극한의 거리와 다툰다는 매력에 이끌려서다.끈기와 오기는 마라톤의 핵심 가치다. 이런 가치를 가슴에 달고 결승점에 닿으려면 컨디션 조절과 경기 운영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제 역량을 넘어서는 오버 페이스는 치명적이다. 빼어난 건각도 페이스를 잃으면 다리가 꺾인다. 요즘 마라톤 경기에서 체력 안배를 돕는 '페이스 메이커'를 두는 것도 이런 이유다.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도 풀코스 마라톤 선수와 다르지 않다. 가치와 목표라는 상대와 끊임없이 다투기 때문이다. 가치는 철학에 기반하고 목표는 공동선과 공익에 수렴한다. 말하자면 정치 행위는 선의의 시체들로 어지러운 지옥 가는 길을 피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목표가 수단을 언제나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마키아벨리도 말하지 않았나. 가치나 선의, 목표가 절대적이라면 특정한 상황에 적합한 방법이 다른 조건하에서는 재앙일 수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내년은 올해보다 경제 사정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여론이 우세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얼마 전 간담회에서 "반도체 호황이 경제를 이끌어왔으나 3~4년 뒤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기업은 불확실성에 몸을 움츠리고 국민은 다급하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이 비상경영 체제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목을 빼고 기다려도 정부에게서 솔루션을 기대하기 힘든 탓이다. 기업 형편도 그렇지만 팍팍한 민생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근심은 천근만근이다.정치에서 부패와 독선, 무능은 이음동어다. 이는 경제적인 결과를 낳는 정치 문제로 퇴보의 지름길이다. 기회가 사라지고, 혁신은 무산되며 기업가 정신과 투자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가치와 포용, 선의의 방패가 아무리 두꺼워도 현실의 날카로운 창을 막아내기가 어려운 게 이치다.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도 20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60개월의 꼭 3분의 1이다. 국가 경영을 책임진 리더로서 증명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금은 촛불의 염원으로 세운 국가 지도자의 이상과 민생의 현장이 서로 간극을 드러낸 난국이다. 가치 지향의 오버 페이스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억누를 건 누르고 미룰 건 미뤄야 하는데 대통령이 가치의 절대성만 좇은 탓이다. 개혁의 명분에 집착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노란 조끼' 시위로 궁지에 몰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맞으면서 가겠다"는 집단 오기로 충만하다. 현 정부 DNA에 돌연변이는 없다는 지독한 고집이다.지도자의 평가에서 도덕성과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을 만한 인품은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지혜로움이다. 아무리 호감 가는 지도자라 하더라도 분별력이 떨어지면 큰 흠이다. 잘못된 길이라는 판단이 서면 냉정한 결단은 지도자의 몫이다. 그렇지 않고 결정을 미루거나 반전의 시늉만 한다면 목표점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성장한다면서 역성장하고, 혁신의 구호 뒤에 규제의 벽은 더 두터워지는데 과연 포용국가가 제자리를 잡을 지는 누가 더 잘 알겠나.

2018-12-25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페르소나의 착각

'페르소나'(persona)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썼던 '가면'을 뜻하는 말이었다. 나중에 라틴어와 섞이며 사람(Person)이나 인격(personality)의 어원이 되었다. 페르소나의 현대적인 의미는 '가면을 쓴 인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며 밖으로 내놓는 공적 얼굴인 것이다.삶을 무대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사회적 역할에 따라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의 남편과 아내 또는 부모 형제로, 직장의 상사나 부하로, 그리고 의료인, 법조인,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교육자, 공직자 등 직업인으로 저마다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자아(自我)와는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까.분석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페르소나를 자아와 본성을 감춘 채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일종의 연기로 규정하기도 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페르소나를 자신의 본성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여기에다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며 집단화하는 것이다.관념으로 무장한 페르소나는 세상을 선과 악의 이원론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자신들과 다른 것들을 죄악시하며 단죄와 거세의 대상으로 여긴다. 절대선(善)이라는 종교와 이념의 페르소나를 쓰고 저질렀던 인간성에 대한 폭압의 사례는 역사가 입증한다.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과 독일의 나치즘, 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그랬다. 조선시대 주자학의 폐해도 그 예외가 아닐 것이다.사람들은 페르소나를 자신의 본성과 동일시하려 한다. 좋은 배역일수록 가면을 벗은 민낯은 초라하기 때문이다. 본성을 망각하거나 본모습에서 일탈한 페르소나는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한다. 도그마의 제복을 걸친 페르소나는 도덕적 우월감과 폭력적 정의감을 드러내며 사회와 국가를 질곡으로 몰아가기도 한다.그래서 명나라의 반유교적 혁신사상가 이탁오(李卓吾)는 "정작 나라를 망치는 것은 소인(小人)이 아니라 군자(君子)이다"라는 폐부를 찌르는 역설을 남겼다. 그것은 '탐관(貪官)의 피해보다 청관(淸官)의 해악이 더 크다'는 지적과도 상통한다. 그렇다. 탐관과 소인은 스스로의 잘못을 알 뿐만 아니라 그 피해의 범위 또한 국지적이다.하지만 청관과 군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선(善)으로 여기는 것은 물론 사회 공동체의 규범을 재단하면서 상당한 지지 세력을 거느린다. 세인들은 탐관의 적폐에는 익숙하지만 청관이 더 가증스럽다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단화된 청관의 방향성이 틀어지는 순간 사회와 국가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재앙이 엄습한다. 그 폐해 또한 후대의 온 나라에 미칠 수밖에 없다.스스로 정의로운 정치 세력의 일방통행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그 누구도 정의를 독점할 수는 없다. 인간이 만든 정의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정의의 독점이란 곧 독선의 반증일 뿐이다. '죄인(罪人)의 악보다 선인(善人)의 악이 더 클 수 있다'는 촌철살인도 그래서 나왔다.도로상에서 운전자 자신이 역주행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사회와 국가라는 무대 위에서 영원한 주역은 없다. 독선과 오만의 페르소나를 자아와 본성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무대 안팎에서 자신과 공동체의 돌이킬 수 없는 파멸과 마주할 뿐이다.

2018-12-18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김정은이 서울에 온들

"라인란트로 진격해 들어간 뒤 48시간 동안은 내 인생에서 그야말로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그때 프랑스군이 라인란트로 진격해왔다면 우리는 꼬리를 내리고 철수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군사적 자원은 적절히 저항하는데도 아주 부족한 수준이었다."라인란트 재점령 후 히틀러가 한 말이다. 라인란트는 산업지대다. 독일의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지역이다. 이를 점령했다는 것은 전쟁을 하겠다는 분명한 신호였다. 프랑스는 이를 보고만 있었다. 그 이유는 당시 프랑스 정부의 머리에는 '협상'만 있었지 협상 실패에 대비한 'B플랜'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쟁이었다.하지만 프랑스는 '전쟁'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1차 대전에서 17~28세 남성의 4분의 1이 사망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 끔찍한 경험 때문에 프랑스 정부와 국민은 협상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본위적 소망에 집착했다. 급기야 이런 소망은 "반드시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발전(?)했다.유럽 정세가 전쟁으로 향하고 있는데도 관련 정보를 숨기려 한 것은 이 때문이다. 프랑스 정보원들은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전부터 독일이 은밀히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음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언론은 이런 정보를 국민에게 전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한 법원은 프랑스에 대한 노골적 적대감을 쏟아낸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통째로 번역하는 것을 금지하기까지 했다.프랑스의 이런 헛발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문재인 정부의 북핵 문제 해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북관계 개선'일 뿐 그것이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은 없다. '협상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다'가 '전쟁을 막아야 한다'로 바뀐 프랑스의 맹목을 빼다 박았다. 북한 비핵화는 그 문턱에도 못 갔다.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알맹이 없는 '이벤트'였다. 김정은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현실은 그것이 '립 서비스'였음을 확인해주고 있다.앞으로 달라질까? 북한이 황해북도 삭간몰 등 북한 전역에서 최소 13개 이상의 비밀 단거리 미사일 기지를 운용 중이라거나 양강도 김형직군 영저리 기지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인근 시설을 계속 가동 중이며 이들 기지는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는 유력 후보지라는 사실은 고개를 가로 젓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이런 미사일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용·증강해왔기 때문이다.문 정부는 삭간몰 기지에 대해서는 북한의 '통상적인 활동'이라 했고, 영저리 기지에서 대해서는 "군이 추적 감시하고 있는 대상 중의 한 곳"이라고 했다. 이런 해명의 의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니 문제 될 것이 없다"였겠지만 문 정부는 자기도 모르게 북한이 변하지 않았음을 토설한 꼴이다. 통상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문 정부는 김정은의 서울 답방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 김의 답방이 성사된다면 북한 비핵화에 돌파구가 열릴까? 지금까지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협상 결과를 되돌아보면 '김정은이 서울에 온들'이라는 비관적 예측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됐을 때 국민은 물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문 정부가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2018-12-11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누가 이들을 불러내랴

'김연수·박만규·박수의·이춘수·정칠성·현계옥….' '강두안·박제민·박찬웅·서진구·이상호·이원현·이준윤·장세파·조형길·최수원….'이들의 공통점은? 대구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 인물이다. 혹 낯익은 이라도 있는가? 이미 널리 알려진 이름도 있겠지만, 아마도 처음 듣거나 낯설 듯하다. 앞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이름을 새긴 대구의 여성들이다. 뒤는 1940년대 항일로 감옥에서 또는 풀려난 뒤 고문 후유증 등이 겹쳐 광복 전후 순국, 하늘의 별이 된 대구의 젊은이들이다.더 있다. 김진만-영우-일식의 3대(代)와 김태련-용해, 이현수-정호·동호의 부자(父子)들에다 김진만·진우, 백남채·남규, 이경희·강희, 이상정·상화, 서상규·상락·상일·상한, 정운일·운기, 현정건·진건 등 형제들이다. 권기옥·이상정 같은 부부에다 숙질(아재와 조카)의 이시영과 이인, 사돈인 윤상태·정운기와 이경희·정운일도 있다.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부자인 아버지(서우순)를 덮친 거사에 나섰다 효(孝)의 도리에 갈등하다 자살한 서상준 같은 삶도 있다. 독립유공자도 숱해 대도시에서 서울(401명) 다음(155명)이 대구다.또 대구를 먹칠한 박중양, 아버지(서상돈) 이름을 망친 서병조, 총명한 시인(이장희)을 요절로 내몬 비정한 아버지(이병학), 항일의 아들(윤우열)과 엇길이었던 아버지(윤필오), 자신의 제자조차 고문한 일제 경찰 최석현과 악명의 고등계 형사 서영출처럼 매국과 친일 행적으로 얼룩진 오명(汚名)도 적잖다.이들은 광복회 대구지부에서 최근 펴낸 '대구독립운동사'에 그대로 살아 있다. 책에는 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아무런 울타리도, 뒷 보장도 없이 배움의 학생에서 차별에 울었던 기녀에 이르기까지 기꺼이 항일의 한 역할을 맡거나, 반대편에서 일제 앞잡이의 변절자와 밀고자까지 뭇 군상이 지난날을 증언한다.대구는 바로 이들 항일 인물 덕분에 용광로였다. 독립과 항일에 보탬이면 뭐든 관용해서다. 어떤 장애도 없었다. 일찍 신라의 개방적 문화가 흘렀던 만큼 숱한 사조가 수용됐고, 다른 데로 퍼뜨렸다. 이런 흐름은 광복 이후까지 이어져 2·28 학생의거와 같은 역사가 이뤄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학계 자료도 그렇다.소위 '진보지표'를 잣대로 한 연구자료(손호철)는 좋은 사례다. 일제, 해방정국, 1952·1956·1963년 대선, 1960년 총선을 따졌더니 경북 특히 대구의 진보 수치는 뚜렷했다. 대구가 낀 경북의 진보지표는 다른 도(道)보다 월등했다. 주요 도시별 비교에서도 대구는 역시였다. 대구와 경북은 항일 시대 이후 줄곧 열렸지 결코 갇히고 닫히지 않았다.이런 대구가 어느 순간, 오해받으니 안타깝다. 지난달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의 토론회에서는 대구가 마치 영화 속 범죄 도시를 빗대 '대구는 고담 도시'라는 편견이 떠돈다고 걱정했다. 대구를 빛낸 앞선 인물만 봐도 그런 오해는 절로 풀릴 만하다. 그래서 이들을 책에만 묻어둘 수 없다. 세상 밖으로 불러내 목소리를 내게 하자. 맨몸으로 독립의 밀알이 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광복을 일궈낸 용기를 배워 대구를 바꾸자.이들을 알고 기릴 곳은 대구요, 바로 대구 사람이 아니던가. 우리가 아니면 누가, 어디서 이들의 목소리를 듣겠는가. 이제 우리가 이들을 부르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2018-12-04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미래 향해 '혀 빠지게' 뛰어도 모자랄 판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부터 대한민국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도록 하겠습니다. 적폐청산 관련 수사와 재판은 이른 시일 안에 끝낼 것입니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우리나라를 하나로 뭉치는 데 국정 최우선을 두겠습니다. 반목과 갈등 대신 포용과 화합의 나라를 만드는 데 저부터 앞장서겠습니다. 우리는 결코 뒤돌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이 대열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실현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일말의 바람을 담아 써본 문재인 대통령 연설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의 국정은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적폐청산과 포용. 불행하게도 여기엔 단서가 있다. '자기편'인가, 아닌가에 따라 그 대상이 갈라진 것이다. 적폐(積弊)청산은 자기편이 아닌 반대편에 집중된 적폐(敵弊)청산으로 전락했다. 포용 역시 자기편만 끌어안는 데 그쳤다. 앞선 두 정부의 과거 캐기에 주력한 사이 경제는 망가지고 국민 삶은 더 피폐해졌다.지금 이 나라엔 미래는 없고 과거만 존재한다. 정치·사법·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과거를 파헤치는 데 나라의 힘을 허투루 쓰고 있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동시에 감방에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나. 공천에 불법 관여한 혐의로 박 전 대통령에게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선고된 사건 3개의 형량을 합치면 징역 33년이다. 98세가 돼야 만기 출소한다. 두 전직 대통령의 잘못은 모든 국민이 잘 안다. 정치적으로 숨이 끊긴 두 사람에게 사법 잣대를 계속 들이대는 것은 부관참시(剖棺斬屍)일 뿐이다.전 정부에서 벌어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그로 말미암은 판사 탄핵 촉구 등으로 사법부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재판 당사자들이 판사의 성향을 미리 따질 정도로 재판과 사법부에 대한 믿음이 허물어졌다. 탈원전도 과거 정부 흔적 지우기의 하나다. 탈원전이 아무리 맞는 방향이라 하더라도 그 대체 수단인 태양광이나 풍력이 책임지는 미래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 경제도 과거에 잡혀 있다. 어느 누군가가 우리는 뛰는데 선진국은 날고 있다고 했지만 틀린 얘기다. 뛰기는커녕 뒷걸음치는 게 우리 자화상이다.국민 대다수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경제 상황이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좋아질 것이란 예측보다 훨씬 많다. 경제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미래가 잿빛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도취해 있다.집권 중반으로 접어든 이 시점에 문 대통령은 국정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과거의 잘못된 것을 청산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면 이제는 미래를 향한 국가 개혁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과거만 캐서는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하지만 문 대통령은 권력적폐와 사법적폐 청산에 이은 생활적폐 청산 드라이브로 국정운영 동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에 맞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년이 아니라 더 오랜 기간 집권해서 가야 한다고 했다. 민심을 읽지 못한 패착이고 국민을 얕잡아본 오만이다. 미래가 아닌 과거만 좇는 정파에 이 나라의 운명을 계속 맡길 어리석은 국민은 단 한 명도 없다.

2018-11-27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文대통령, 소심과 우유부단함의 정치

2016년 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의 일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인터넷에서 '고구마'로 불렸다. 이재명 후보는 자신을 '사이다'라고 치켜세웠다. 소위 '고구마'와 '사이다' 논쟁이다. 고구마는 답답하고 융통성 없음을, 사이다는 시원하고 청량함을 준다는 의미다. 문 후보는 "고구마를 먹으면 배가 든든하다"는 말로 공세를 피해갔는데, 자신의 재치인지 측근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다.요즘 두 분에 대한 평가를 새로 하면 이재명 경기지사는 아무래도 '사이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고구마'라는 별명이 딱 맞는 것 같다. 정국 상황을 보고 있으면 체한 듯 답답하고 거북한 느낌이 든다. 적폐 청산은 정치 보복에 가까운 듯하고, 경제 살리고 일자리 만드는 것은 거꾸로 가고 있고, 남북관계는 허둥지둥하며 허점만 노출한다. 구호는 드높지만, 무엇 하나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이 없다.문 대통령을 아는 지인들은 '점잖다' '과묵하다'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대통령이라고 꾸며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 문 대통령 비판자들은 이를 뒤집어 '소심하다' '논리에 투철하지 않다' '우유부단하다'고 평한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는 문 대통령 비판자들의 평가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국정에 문 대통령의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이 그대로 투영돼 있는 것 같아 더 답답하다.대통령의 성품이 정부의 정책 방향을 좌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참모와 관료들이 대통령의 뜻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소심과 우유부단함이 현 정권의 드러나지 않은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문 대통령의 소심과 우유부단함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문 대통령은 이제까지 자신의 지지층에 대해 거북한 행동이나 쓴 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민노총이 과격 행동을 일삼아도, 측근이 아무리 경제를 망쳐도, 문빠가 '18원' 문자폭탄을 날려도, 모두 눈감아 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뒤로 딴짓을 해도 별말 없이 감싸안고 만다.마음이 넓어서가 아닌 것 같다. 혹시라도 적극 지지층에게 욕먹지 않을까, 따돌리지 않을까 하는 소심함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1년간 논의 끝에 마련한 국민연금 개편안을 재검토하는 것도 우유부단함의 다른 표현이다.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 외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1970, 80년대식 진영 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평생 그렇게 살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지층보다는 '실리'를 택한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아직 그런 대범함을 보여주지 못했다.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최저임금 인상을 강행해야 하고, 기업을 압박하고 삼성현대 때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가 이익'보다는 지지층이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행할 뿐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성격과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지층만을 위한 정치, 정책을 펴나가다 보면 진영 간, 계층 간, 지역 간 분란이 확대재생산될 것이 뻔하다. '고구마'보다는 '사이다'가 필요한 때이지만, 타고난 성격이 바뀔 지 의문이다. 우리는 선량하긴 하지만, 역사상 스케일이 가장 작은 대통령과 함께하는지 모른다.

2018-11-20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닥터 둠'과 캐러밴

'위기가 지나가고 한참 뒤에야 비로소 위기임을 알아챈다'는 말이 있다. 대다수 사람이 위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넘겨버릴 만큼 둔감하다는 뜻이다. 한편 국가나 사회, 집단, 개인에게 전달되는 위기의 강도, 시차 등 스펙트럼이 그만큼 다양해 평균율을 구하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기의식이 결핍됐다거나 위기의 실체를 몰라서가 아니라 직면한 현실이 두려워 위기를 부정하는 심리가 작용해 인간 행동 양식을 왜곡시킨다는 해석도 있다. 위기를 역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위기 조장설' 등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최근 눈여겨본 애덤 맥케이 감독의 영화 '더 빅 쇼트'(The Big Short)는 개인적으로 우리 주변의 위기 상황에 대해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마이클 루이스의 실화 소설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가 소재다. 미국 경제 위기의 진상을 드러내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 거리를 안겨준다. '빅 쇼트'는 주식 등 가치 하락을 전제한 매도(Short) 포지션을 뜻한다.이 소설은 부실 주택저당채권 사태를 미리 내다본 월가의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아이스만, 로버트 벌리 등 실존 인물 4명을 추적해 금융 위기의 배경과 실체를 재조명했다. '닥터 둠'으로 불릴만한 극소수의 비관론자들이 미국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위기의 스위치를 켜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일반 시민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인들마저 폭탄을 옆에 두고도 위기 경고를 무시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복잡한 금융공학으로 변질한 투자 기법 등 시스템에 대한 무지와 맹신은 위기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당시 예민한 후각을 가진 '닥터 둠'은 금융자본의 탐욕이 위기의 본질이자 진원지임을 간파한다. 정부가 월가의 붕괴를 결코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결국 위기의 시그널을 덮어버린다. 부실이 만연한 미국 주택시장의 현실을 확인한 그들은 시스템 붕괴가 멀지 않았음을 예측하고 분노한다. 부실투성이의 금융 시스템을 외면한 채 수익에 열을 올리는 투자은행·신용평가사의 탐욕, 미국 정부의 안이함과 무능이 싱크홀을 만든 것이다. 이달 말 개봉할 최국희 감독의 '국가부도의 날'도 위기론의 관점뿐만 아니라 1997년 IMF 외환 위기 사태를 처음 다뤘다는 점에서 또 다른 관심을 끄는 이유다.'경제 위기는 우리 시대의 문화다'라는 명제가 나올 만큼 이제 위기는 일상 그 자체다. 그러나 위기를 맞기 전까지 아무도 위기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자 남미 최대 부국인데도 2014년 이후 최악의 경제난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 가난과 내정 불안 때문에 미국행 엑소더스를 시작한 온두라스의 '캐러밴'은 위기 여파가 부른 비극이다.문재인 정부의 제2기 경제 실험이 막 시작됐다. 얼굴은 달라졌지만 정책 기조는 그대로다. 새 경제팀이 위기 국면에 빠져드는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울 구원투수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빅 쇼트'에서처럼 600만 명이 직장을 잃고, 500만 명이 집을 잃는 상황으로 간다면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탄탄한 펀더멘털' 하나만 믿는 우리에게 이런 위기는 그저 강 건너 불일까. '곤경에 빠지는 건 무엇을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경구를 계속 곱씹게 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2018-11-13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동구<東區>의 항변<抗辯>

'능금꽃 향기로운 내 고향 땅은….'가수 패티김이 부른 '능금꽃 피는 고향'은 가슴속에 스며 있던 대구의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대중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대구를 알리는데도 커다란 기여를 한 노래이다. 대구 사람들은 아예 '대구찬가'라는 별칭을 붙여 야구장에서 응원가로 열창하기도 했다. '능금꽃 피는 고향' 노랫말에는 대구 사과와 함께 팔공산과 금호강이 등장한다. 모두가 대구 동구를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노래비를 아양철교 인근 금호강변에는 세운 이유이다.동구는 그렇게 대구의 상징이었다. 동구는 국제공항과 고속도로 나들목(IC) 그리고 복합환승센터가 있는 대구의 관문이다. 대구경북을 아우르는 영산인 팔공산이 드넓은 자락을 펼치고, 망우당공원과 동촌유원지를 보듬은 금호강이 낙동강을 향해 유장한 흐름을 이어가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다. 구(區) 단위로서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대구 동구는 지금도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곳으로, 산자락마다 강줄기마다 숱한 옛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봉무동의 이시아폴리스와 신서동의 혁신도시는 동구는 물론 대구의 경제를 견인할 명실상부한 자족도시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껏 기대를 모았다. 연탄 가루 날리던 안심연료단지에 들어설 안심뉴타운 또한 주택과 상업시설이 새로운 면모를 갖추면서 혁신도시와 함께 동구의 새로운 부도심으로 도약할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그러나 막상 금호강을 건너 안심지역으로 들어서면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혁신도시에 실망한 민심은 안심뉴타운에도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들이다. "혁신도시가 수성구 집값만 더 올려줬지 뭐!" "안심뉴타운에도 초등학교가 없으면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겠어?" "여기 50평 아파트를 팔아도 수성구에서는 30평대도 못 사…."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오랜 자괴감이 배어 있는 말들이다.동구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열악한 교육 환경이다. 이시아폴리스 쪽에는 중학교가 부족하고 혁신도시 주변에는 이름 있는 고등학교가 없다. 그래서 자녀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든지 위장전입을 해 통학을 시키려고 한다.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주한 공공기관 임직원들도 아예 수성구 시지에 집을 마련한다. 그러니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차량과 통학 차량이 뒤엉켜 짜증만 더한다.혁신도시는 속빈 강정이다. 정주 여건이 낙제점 수준이다. 거주자들은 대부분 나홀로족이다. 월요일 오전에 내려와 숙소 주변을 맴돌다가 금요일 오후면 수도권으로 올라가기 바쁘다. 그러니 밤이면 유령도시처럼 썰렁하고 낮에도 적막감이 감돈다. 혁신도시는 대중교통의 외딴섬이다. 오죽하면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마을버스 운영에 직접 나섰을까.특히 안심지역은 '찾아오는 동구'가 아닌 '떠나가는 동구'가 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사실 명문고의 유무가 아파트 가격을 결정하고 지역 발전을 좌우하는 시대이다. 주민들은 교육 환경의 격차가 낳은 불균형 발전의 피해를 언제까지 감수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낸다. "그동안 동구청은 무엇을 했고, 대구시와 교육청은 한 게 무엇이냐"는 항변이다.

2018-11-06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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