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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총선 후 이 나라에서 벌어질 일들

더불어민주당이 4·15 총선 목표 의석수를 147석으로 잡았다. 지역구 130석에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17석을 포함해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해 원내 1당이 되겠다는 것이다. 한 주간지가 민주당 예상 의석수를 154석으로 예측한 것을 고려하면 민주당의 꿈은 불가능하지 않다. 범여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을 포함하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수도 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의 원내 1당 목표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잘한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찾기 어려운 데다 정권의 오만과 실정(失政) 탓에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총선을 통째 뒤흔들었고 어느새 여당으로 판세가 기울었다.코로나 사태는 처음엔 문 정권에 재앙(災殃)이 될 것으로 보였다. 메르스 수준에 그쳤다면 그리됐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멈춰버린 미증유의 국가비상사태로 비화하면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코로나가 블랙홀(black hole)이 돼 경제 폭망·안보 불안·선거 개입 의혹 등 정권의 잘못들을 몽땅 빨아들였다. 중국에 대한 입국 금지를 제때 하지 않아 사태를 키우고, 마스크 대란으로 국민을 줄 세우게 만든 정권의 잘못들도 희석시켰다. 그 사이 정권은 국민과 의료진·기업의 노력과 공(功)을 낚아채 정권의 치적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추락했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50%를 훌쩍 넘었다. 역대 총선마다 위력을 떨쳤던 정권 심판론은 힘을 잃고 말았다.선거일까지 극적 반전이 없다면 민주당이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될 가능성이 많다. 주목하고 우려해야 할 것은 그 이후 이 나라에서 벌어질 일들이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이기면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우려도 크다"고 했다. 무슨 일을 벌일지는 이미 불을 보듯 훤히 알 수 있다.첫째는 '조국(曺國) 재등장'이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인사들은 "조국은 무죄" "조국 사태는 검찰 쿠데타" "조국은 조광조, 윤석열은 윤임"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조 전 장관 본인과 그 가족이 죄가 없다고 강변할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특유의 제스처를 하면서 다시 국민 앞에 나타날 것이고,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할지도 모를 일이다.둘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폭주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인 최강욱 전 청와대 비서관은 "공수처가 설치되면 윤석열 검찰총장 부부가 수사 대상 1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윤 총장뿐만 아니라 정권에 눈엣가시인 인사들이 줄줄이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오를 것이다. 울산시장 선거 공작 의혹 등 정권을 수사하는 검찰을 표적으로 한, 공수처를 동원한 정권의 검찰 무력화·해체 시도도 노골화될 것이다.셋째는 소득주도성장·탈원전·친노조 성향의 경제 정책, 굴종에 다름 아닌 대북 정책, 한·미 동맹 균열과 같은 안보·외교 정책이 더욱 공고해질 개연성이 크다. 다음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세금 퍼주기와 특정지역 몰아주기도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선거는 과거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미래를 결정하는 정치 행위다. 민주당이 총선에 이기면 문 정권은 지금껏 그래 왔듯이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란 구호를 앞세워 독선적인 국정 운영을 더 밀어붙일 게 분명하다. 그 와중에 국민은 '기회는 불평등, 과정은 불공정, 결과는 불의'를 더 체감할 것이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숱하게 보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총선이 보름 앞으로 닥쳐왔다.

2020-03-30 20:38:58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코로나19 이겨내는 법

유럽과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독일, 프랑스, 미국 등에서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망자 수습마저 힘들 만큼 상황이 참혹하다. 23일 기준 전 세계 확진자는 33만8천717명, 사망자는 1만4천687명을 기록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21세기 최악의 감염병'으로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이다.지난달 20일 이후 맹렬한 기세로 치솟던 국내 확진자 수는 요 며칠 100명 안팎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불행 가운데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는 점에서 안도감이 든다. 큰 피해를 입은 대구경북도 '신천지'라는 돌발 변수를 뺀다면 다소나마 낭패감을 덜 수는 있다. 그렇다고 전체 확진자의 85.5%, 사망자의 95.5%라는 절대 수치의 중압감을 피해가기는 여전히 어렵다.그나마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은 사태 초기부터 정부가 빠르게 진지를 구축하고 적극 대응에 나선 덕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의 학습효과에다 잘 준비된 진단 키트, 효율적인 의료보험 체계를 무기로 이번 사태에 강하게 맞서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각국 정부는 한국의 대응을 눈여겨보고 있다. 외신들도 '냉정을 찾고 한국만큼만 하라'(Keep Calm and Korea on)는 제목의 기사를 앞다퉈 싣는다. 이렇듯 우리가 코로나 사태 대응의 롤모델이 된 것은 높은 시민의식과 앞선 공중보건 정책과 의료 역량 때문이다. 반대로 방심한 유럽과 미국은 거의 그로기 상태다. 적을 코앞에 두고도 경계와 전술, 무기 등 모든 대비에서 실패하고 궁지에 몰린 것이다.요즘 유튜브에서 맹활약 중인 영국의 은퇴 의사 존 캠벨은 "현재 코로나 사태에서 믿을 수 있는 데이터는 한국의 것이 유일하다. 광범위한 추적과 격리, 치료, 투명한 정보 공개까지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칭찬했다. 그는 1월 27일부터 두 달 가까이 시시각각 변하는 각국의 코로나19 상황을 설명하고 핵심을 요약해 전 세계 수백만 시청자의 눈과 귀가 되고 있다. "BBC는 못 믿어도 캠벨 박사의 말은 신뢰한다"는 영국인들의 반응만 봐도 그의 존재감을 짐작할 수 있다.물론 보통의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시간을 쪼개고 감염병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정보를 자세히 전달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전문가로서의 사명감과 보편적 인류애를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부산 북구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에서 검체 채취에 여념이 없는 70대 베테랑 의사 문성환 씨의 이야기도 좋은 사례다. 분명 힘에 부치지만 그는 '생애 마지막 봉사'라는 각오로 방역 현장을 지키고 있다.보통의 시민도 힘이 될 수 있다. 손 씻기 등 개인 위생을 잘 지키고 외출을 자제하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만 잘 실천해도 제 몫을 하는 것이다. 대구시가 이달 28일까지 전개 중인 '3·28 대구운동'도 그렇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시민들의 경계심이 느슨해지자 대구시는 실천 기간을 4월 5일까지로 1주 더 연장한 것은 의미가 크다.지금 우리는 언제든 집 밖을 나갈 수 있다. 이탈리아처럼 대중교통과 물류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기업 활동을 중단시킨 행정명령도, 3월 말까지 공식 서류 없이는 외출을 못하는 프랑스의 금족령 조치도 없다. 그만큼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전국 신규 확진자가 23일 기준 64명으로 지난달 29일 하루 813명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지만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Worst is yet to come)는 말처럼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2020-03-23 19:06:47

지난 11일 서울 시내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세풍] 마스크 공화국 ‘만세’

군복무를 마친 이후에는 이렇게 자주 그리고 오래 줄을 서 본 적 없다. 외신 보도를 통해 공산주의 국가에서 빵을 구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들을 보고 남의 일처럼 여겼는데, 이 진풍경이 우리 일상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마스크 대란'이다. 온 국민이 마스크를 끼고 바깥에 나가야 하며, 온 국민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목매는 나라가 되었다.전염병이 문제인지 마스크가 관건인지 헷갈리는 판국이다. 줄 선 사람들은 멀리서 온 만큼이나 그리고 기다린 시간에 비례하여 속이 상하다. 우체국을 그렇게 자주 찾은 적이 없었다. 약국을 이렇게 전전한 적도 없다. 여차하면 주말에도 약국 앞 줄서기에 합류해야 한다. 이게 무슨 촌극인가. 이 무슨 해괴한 풍경들인가. 과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우리는 마스크 공적 판매와 구매 5부제의 나라에 살고 있다. 마스크 2장을 사기 위해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고 노약자의 대리구매에는 주민등록등본까지 들고 가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만나면 첫 인사말이 "마스크 구입했어요?"이다. 표정들은 지쳐 있고 목소리에는 짜증과 분노가 묻어 있다. "마스크 하나 공급도 못하면서 무슨 국민 복지를 들먹이느냐"는 비아냥도 나온다.애당초 성장과는 거꾸로 간 집단이었지만 분배 하나는 전문일 것 같았는데, 이마저 엉터리였다. 마스크 대란과 관련한 정부·여당의 오락가락 갈팡질팡 대응은 더 가관이다. 신종 코로나 발병 초기에는 마스크 사용을 적극 권고하며 재사용은 하지 말라고 했다. 천이나 면으로 된 것은 좋지 않다며 보건용을 쓰라고도 했다. 그러나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마스크 구입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자 '재사용해도 된다'로 바뀌었다.'마스크 사흘 사용론'과 '면 마스크 애용론'이 나오고 이제는 '마스크 사용 자제론'까지 등장했다.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국민이 믿고 따를 곳은 정부뿐인데,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그 와중에 마스크는 코로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국민 신앙처럼 굳어졌다. 마스크는 이제 감기 환자들의 위생용품이나 범인들의 안면 은폐 도구가 아니다.인기 연예인들의 멋내기 패션용품도 아니고 시위 군중의 신분 숨기기 복면용품도 아니다.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의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마스크는 사람들 간의 대화와 교유를 온전히 차단해버렸다. 온 나라가 무성(無聲) 가장무도회장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 속에서 국민들은 오늘도 불안하고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8천 명이 넘는 확진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 그들과 접촉한 수십만 국민의 불안과 불편, 생사를 건 의료진들의 투혼과 땀방울, 그리고 코로나 한파에 얼어붙은 서민들의 눈물과 신음 속에서도 정부·여당은 자화자찬이 늘어졌다. '방역 역량이 지구상 최고' '코로나 대응이 세계의 표준'이라는 공치사가 나오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국은 코로나 방역의 모범 사례로 평가될 것"이라고 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더니….국격의 추락과 외교적 망신에 따른 국민의 한탄과 분노의 목소리조차 코로나 극복 개선가로 들리는 모양이다. 사방에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전염병 바이러스를 다 불러들이고는 엉터리 사후약방문도 모자라 역설과 궤변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이만큼 대응을 잘한 나라도 없다'고 한다. 그들은 '마스크 공화국'을 만들었지만 '마스크 공화국' 사람이 아니다. 정녕 마스크가 필요 없는 달나라 사람들이 틀림없다.

2020-03-16 19:46:23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지난 3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마스크 공적판매 수급상황 및 마스크사용 권고사항 개정'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풍] 코로나 재앙은 문 정권이 초래한 '정치적 현상'

'통화주의' 이론의 창시자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든 화폐적 현상"이라고 했다. 인플레이션은 금융 당국이 돈을 마구 찍어낸 결과라는 얘기다. 여기서 인플레이션이란 국민 경제를 파탄 내는 초(超)인플레이션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화폐적 현상'은 정치 행위이다. 정치의 개입 없는 순수한 경제적 판단에서는 '화폐적 현상'은 나올 수 없다.그래서 영국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이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을 예로 들며 "초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든 정치적 현상"이라고 했다. "한 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근본적으로 오작동하지 않는 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금융의 지배')전염병 확산도 그렇다. 정치의 오작동에 의한 '정치적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한 코로나 국내 감염 확산만큼 이를 잘 입증하는 것도 없다. 사태가 위급해지기 전부터 감염원인 중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지만. 문재인 정권은 귀를 닫았다. 도리어 중국인 입국을 금지한 미국에 대고 "정치적으로 끌고 간다"며 "우리는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실효적으로 한다"고 큰소리쳤다.'실효적'으로 한 결과는 참담하다. 우한 코로나 감염 사태는 이제 통제 불능에 이르렀다. '이제 감염되면 치료도 못 받고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는 소리가 나오는 지경이다. 확진자 급증으로 병실이 부족해지면서 자가 격리 중 사망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중국 시진핑의 방한이 무산될까 봐 '중국의 어려움'을 '우리의 어려움'으로 껴안은 '정치' 그것도 '참 나쁜 정치'의 귀결이다. 껴안을 게 따로 있지 전염병을 왜 끌어안나.이런 비판을 모면하려고 문 정권은 갖은 요설(妖說)을 쏟아낸다. 세계보건기구(WHO) 핑계를 대며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더니 마스크 대란이 닥치자 "면 마스크도, 일회용 마스크도 재활용이 된다"며 WHO와 반대로 갔고, 이제는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며 아예 WHO를 뭉개버린다. 또 "국내 감염 확산은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오는 한국인 때문"이라고 했으며, "확진자 급증은 역설적으로 우리 국가 체계가 잘 작동하기 때문"이고, 세계 각국의 한국인 입국 제한·금지를 "방역 능력이 없는 국가의 투박한 조치"라고 한다.모두 과학적 판단이 아닌 '정치행위'이다. WHO 권고의 선택적 수용부터 그렇다. 모두 상황 논리일 뿐이다. 국내 감염 확산의 주범으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한국인을 지목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역학적·통계적 근거도 없다. 확진자 급증과 국가 체계 작동의 상관관계도 그렇다. 감염 확산은 국가 방역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 반대가 될 수 없다.한국인 입국 금지·제한도 마찬가지다. '투박한 조치'가 아니라 '현명한 조치'다. 애초에 문제의 근원을 틀어막으면 문제가 생길 일도, 커질 일도 없다. 그런 점에서 문 정권은 '투박한 조치'를 욕할 게 아니라 본받아야 한다. "방역 능력이 없다"는 외교적으로 투박하기 짝이 없는 발언 역시 어떤 근거도 없다.일본의 한국인 입국 금지에 기다렸다는 듯 문 정권이 맞대응한 것도 동일한 궤도 비행이다. 일본의 "불투명하고 소극적인 방역"을 이유로 들었는데 그런 이유라면 '방역 능력이 없어 투박한 조치'를 취한 세계 120여 개국 전부에 즉각 맞대응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 정권의 신속한 맞대응은 일본의 조치가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반일 감정에 기대 자신의 무능에 쏟아지는 비판을 일본으로 돌리려는 '정치적 계산'이란 의심은 '합리적'이다.

2020-03-10 06:30:00

질병관리본부가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6명으로부터 얻은 바이러스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아직 변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이날 질병관리본부는 이렇게 분석한 유전자의 고해상 전자현미경 사진도 공개했다. 연합뉴스

[세풍] 코로나19 포비아

인류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위협은 세균과 바이러스다. 중세 유럽 등지를 휩쓴 흑사병으로 최소 7천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유라시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16세기 신대륙에 도착한 백인 보균자들에 의해 퍼진 천연두, 장티푸스 등으로 인해 중·남미 원주민은 인구의 90%를 잃었다. 1919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도 5천만~1억 명의 희생자를 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전사자 4천만 명을 넘어서는 수치다.근대화 이후 의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각각 200만, 100만 명 사망자를 낸 아시아 독감(1957년)과 홍콩 독감(1968년)이 있었지만 흑사병이나 천연두, 스페인 독감처럼 단기간에 파괴적 재앙을 일으킨 바이러스는 없었다. 천연두의 경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수백만 명씩의 희생자를 낸 무서운 전염병이었으나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1980년 공식 박멸이 선언됐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처음 거둔 완벽한 승리였다.하지만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은 매번 인류를 긴장시킨다. 새로운 염기서열로 무장하고 수시로 변이를 일으키는 신종 바이러스들은 면역력 준비가 안 된 인류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지금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사실 치사율 면에서 코로나19는 '온건파'(?) 바이러스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의 치사율은 0.5% 수준이다. 치사율이 사스(SARS·10%), 메르스(MERS·20%), 조류독감(H5N1·60%), 자이르 에볼라 바이러스(80~90%)보다 매우 낮다.치사율은 낮지만 코로나19 공포감은 여느 바이러스보다 크게 다가온다. 코로나19를 가볍게 여겨서 안 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 바이러스가 가진 '낮은 치사율' 특성 때문이다. 대개 치사율이 낮은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높다. 코로나19가 딱 그 격이다. 감염자가 많이 발생함으로써 사망자 수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역학구조다. 사스와 메르스가 세계적으로 각각 1천 명 미만의 희생자를 낸 반면, 치사율이 낮은 코로나19는 대유행 초입 단계인 데도 벌써 3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신종 감염병의 위험에 세계 각국이 총력을 다해 대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코로나19는 인류가 지금껏 상대하지 못했던 까다로운 바이러스 종이다. 게다가 인류는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부족하다.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코로나19 포비아(공포증)가 지속될 것 같다. 미국의 호러작가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라고 했다. 코로나19 공포가 그렇다. 인류는 결국 코로나19를 이겨내겠지만 문제는 경제다. 미지의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감으로 사람들이 너나없이 '사회적 거리' 유지에 나서면서 사회 시스템이 거의 멈춰 섰다. 코로나19 피해는 소상공인, 사회취약계층, 기저질환자, 노약자들에게 더 많이 가고 있다.과잉스럽다싶을 정도로 철저히 대응하되 지나친 포비아로부터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코로나19의 세계 대유행은 막을 수 없으며 이 바이러스가 늘 우리 곁에 남아서 폐렴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고유종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일단은 이번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하는 게 급선무이다. 아울러 우리는 다음에 올지 모를 더 높은 치사율과 전파력의 바이러스에 대한 국가사회적 대응력을 길러 놓아야 한다.

2020-03-03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이만희 총회장님, 이럴 순 없습니다

물론 억울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생기지도, 그리고 한국에 전파되지도 않았으면 이렇지는 않았을 터이다. 혹 전파됐더라도 정부가 잘 대처를 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첫 확진환자 이후 4번째 확진환자가 나온 28일 밝힌 것처럼 '과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강력하고 발 빠르게 선제적 조치를 시행'했으면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이런 억울함은 코로나19 사태로 불거진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교회) 교인 환자 발생 등과 관련한 지난 20일 이만희 총회장 글과 23일 교회 입장문을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총회장은 '특별편지'에서 "금번 병마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마귀의 짓으로 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폈다. 또 교회 대변인은 "신천지예수교회와 성도들은 코로나19의 최대 피해자"라고도 주장했다.이들에겐 그럴 만하고, 중국발 괴질(怪疾)로 빚어진 일인지라 자신들 입장을 항변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23일 뒤늦게 감염병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높이고 대구경북 지원은 물론,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조치를 강화하는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쏟아진 국민적 거센 비판은 마땅했다. 그래도 정부는 피해자인 신천지교회 교인을 포함하여 국민 생명을 지키는 책무를 할 것이다.이제 신천지교회 사정을 짚자. 이미 23일 오후 4시 현재 대구경북 코로나19 확진자는 전체 602명 가운데 494명(82%)이고, 신천지 대구교회 확진자만도 329명이니 전체 확진환자의 54.6%이다. 대구 경우 23일 오전 9시 현재 확진자 292명 중 신천지교회 관련자는 248명이다. 게다가 대구 신천지 교인 9천336명의 670명이 연락이 되지 않아 논란을 키웠다. 24일 오전 10시 현재 아직도 30여 명을 추적 중이다.지금도 신천지 교인 확진자는 속출되는 엄중한 날들이다. 이제 총회장이 사태 수습에 책임있는 모습을 보일 때다. 지난 1984년부터 '신천지'를 본격 개척, 37년에 걸쳐 20만 명 넘는 '성도'를 일군 지도자이니 그들 신심(信心) 보호도 분명 중할 터다. 하지만 신천지교회와 교인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신천지예수교회 강제 해체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지난 22일 시작, 3일 만에 46만 명 동의로 표출된 성난 민심(民心) 역시 결코 외면할 일이 아니다.특히 총회장이 태어난 경북과 그의 교인이 있는 대구는 오랜 세월, 믿음의 종교 터였다. 신라의 경주 젊은이 이차돈의 '흰 피' 순교(殉敎)로 불교를 꽃피웠고, 또 다른 경주인 최제우·최시형의 순도(殉道)로 동학(천도교)이 뿌리 내렸다. 또 신천지 교인 확진자가 몰린 대구는 동학(천도교)과 천주교, 개신교 신자들의 나라 및 지역 공동체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 깃든 흔적도 숱하다.총회장은 이런 대구경북의 지난 종교 역사를 살펴야 한다. 그가 신앙생활을 했고, 전국 신천지 교인의 발길이 이어지는 성지 같은 고향 청도를 배려한다면 총회장이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발 괴질과 사투를 벌이는 정부와 국민, 자랑스러운 종교 믿음의 땅 대구경북의 역사, 성지 같은 그의 고향 앞날을 위해서라도 직접 할 일을 찾아야 한다.지금이 지나온 종교적 길에서 얻은 경험과 믿음의 힘을 갖춘 지도자답게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 책무를 다할 때다. '마귀'를 앞세운 해괴한 말은 접고 괴질과의 시간 싸움에서 이길 지도력을 보일 때다. 아흔에 이른 삶의 경륜에 걸맞게 신천지교회와 교인만이 아닌, 고향과 대구경북지역 공동체, 나라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2020-02-24 19:20:32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선거 이기려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사람들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바에 의하면 문재인 정권의 '울산시장 선거 공작'은 민심(民心) 탈취이자 민주주의를 파괴한 범죄다. 대통령 비서실 조직 8곳이 일사불란하게 경찰까지 동원해 대통령의 30년 지기 당선을 위해 선거에 개입하고, 매관매직까지 시도했다. "끔찍한 민주주의 살해 현장"이라는 김웅 전 검사의 표현은 적확(的確)하다.처지를 바꿔 박근혜 정부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가만히 있었겠나. 대통령 탄핵을 열 번은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울산시장 선거 공작에 대한 검찰 공소장은 조국 사태에 이어 문 대통령을 필두(筆頭)로 한 집권 세력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정권을 지키려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대통령 지기 당선을 위해 이런 일을 저질렀는데 '정권의 운명'이 달린 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훨씬 더 한 일도 저지르리란 합리적 추론(推論)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집권 세력은 정권을 잃으면 어떤 일을 당하는지 몸으로 체험했다. 주군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극단적 선택을 했고 자신들은 폐족(廢族) 신세까지 갔다.이런 까닭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4월 총선 관련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 총장은 여론 조작과 공무원의 불법 선거 개입을 '국민의 선택을 왜곡하는 반칙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하겠다고 천명했다. 또한 "선거 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정치 영역에서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것으로 우리 헌법 체제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지키는 일"이라며 "선거 범죄에 엄정하게 대처해 달라"고 검사들에게 지시했다.울산시장 선거 공작과 지난 대선 때의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이 없었다면 윤 총장 발언은 선거를 앞두고 나온 원칙을 밝힌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건이 윤 총장 발언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이번 총선은 집권 세력 입장에서는 져서는 안 되는 선거다. 질 경우 오매불망 바라는 정권 재창출은 고사하고 문 대통령이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할 상황까지 맞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하지만 '정권 심판론'이 '야당 심판론'을 추월하는 등 선거 구도가 집권 세력에게 만만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정권 출범 후 잘한 것이라고는 내놓을 게 거의 없는 처지인 데다 표심(票心)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경제는 폭망 수준이다. 중국 우한 폐렴 사태 같은 악재(惡材)는 많은 반면 지난 지방선거 당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같은 호재(好材)는 기대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논란에 휩싸인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정봉주 전 의원, 문희상 국회의장 아들 석균 씨를 공천에서 날린 것도 집권 세력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민주당을 비판한 칼럼을 쓴 대학교수와 신문사를 검찰에 고발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집권 여당에 만만찮게 돌아가는 선거 구도, 무엇보다 지난 대선·지방선거에서 자행한 일들을 고려하면 집권 세력은 총선에서 지지 않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할 게 뻔하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기를 다시 들고나올 수도 있고, 세금 퍼주기와 정권 지지 지역에 대한 예산·국책사업 몰아주기에도 열을 올릴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법을 어기는 일까지 거리낌 없이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한 지인은 야당 승리를 점친 정보지 내용을 언급하며 걱정을 했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가늠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민의가 담긴 투표함을 잘 지켜야 한다." 지금껏 집권 세력이 저지른 일들과 총선 결과가 갖는 무게를 생각하면 기우(杞憂)로만 들리지 않았다.

2020-02-17 19:12:25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상식은 힘이 세다

상식은 물이나 공기와 같다. 평소에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비상시에는 본원 가치를 유감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공기나 물처럼 상식도 하루아침에 완성된 작용 원리나 가치는 아니다. 상식이 오류의 함정을 전부 비껴갈 수는 없으나 상식은 인식과 판단의 밑거름이자 현상과 구조에 대응하는 인간 행동에 유의미한 기제다.국제 비상사태로 급부상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위기에도 상식의 기제는 유용하다. '우한 폐렴'으로 불리는 이 사태로 인해 10일 기준 29개 나라·지역에서 4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고, 9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까지의 양상만 놓고 봐도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보다 전파력과 피해 규모가 훨씬 크다. 당시 전 세계에서 8천273명이 감염됐고 775명이 죽었다.무엇보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피해가 계속 확산 중이어서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제 보건에 큰 위협이자 중국·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아웃브레이크'(집단 발병) 사태임은 분명하다.대구경북 지역도 이 위기에서 결코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24일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귀국한 17번 확진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대구에 이틀간 머물렀다는 뉴스에 지역사회는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집 안에서도 철저히 마스크를 쓴 덕에 가족 등 접촉자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한 사람의 상식과 소양이 피해 확산을 막은 것이다.반면 상식이 외면받는 사회 구조도 엄연히 존재한다. 허락없이 질병을 발설한 죄로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가 풀려난 뒤 결국 감염돼 목숨을 잃은 리원량(李文亮) 사건이 그렇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악마'로 규정해 비판의 화살 머리를 세균에 돌려버린 권력자의 시각에서는 반동 분자다. 의사로서의 진실과 상식 차원의 문제 제기가 되레 독배가 된 것이다.비상식의 정점은 '크루즈 감옥' '크루즈 국가'라는 조롱 섞인 별칭이 붙은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유람선 케이스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리포트에서 이 유람선 탑승객 확진자들을 '기타(other) 지역'으로 분류했다. 영국 국적의 이 대형 유람선에는 3천700여 명이 탑승 중인데 일본 요코하마 항구에 격리된 채 대책없이 2주간의 잠복기와 검역 종료일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지난 5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10일 현재 130여 명이 감염됐는데도 일본 정부는 거의 방관 중이다. 이 배에는 한국인 승객 등 14명이 격리돼 있는데 일본 정부는 "일본 상륙 전에 발생했다"는 이유를 대며 일본 확진자 명단에서도 제외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고 있다.우리에게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아픔이 있다. 2009년 76만여 명이 발병해 270명이 숨진 신종플루와 2015년 186명이 감염돼 38명이 희생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다. 당시 정부와 의료기관의 초기 대응 실패로 의료시설을 통한 2차, 3차 감염이 확산됐고 보건 당국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서 혼란을 자초했다.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보듯 위기는 늘 우리 곁에 있다. 계속된 학습의 결과로 인식 수준도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으나 결국 우리가 기댈 것은 과학과 상식의 힘이다. 가치 있는 경험과 이성적 판단으로 차분히 위기에 대처할 때 어떤 힘이 발휘되는지 이번 사태가 증명한다. 기억할 것은 '공포 마케팅' 등 고약한 상혼이 판을 치는 혼란 중에도 모든 가치는 본원 가치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이다.

2020-02-10 19:15:08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당쟁의 추억

70년 남짓한 대한민국 정당 이름의 역사는 휘황찬란하다. '자유' '민주' '공화' '통일' '정의' '한국' '국민' '평화' '민중'이란 용어를 앞뒤로 뒤섞어 쓰다가 한계에 이르자 '나라' '누리' '우리' '미래'까지 등장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신' '새'라는 접두어를 붙이더니 '열린' '더불어' '대안' '새로운'이라는 수식어까지 나왔다. 지리멸렬한 정당사의 변화무쌍한 자취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감이다.4월 총선을 앞두고 또 천태만상의 이름을 내세운 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이다. 범여권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고차원 방정식 같은 선거법이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 이제는 신세대를 고려한 '헐' '짱' '개'라는 접두어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당명은 100~2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가방 새로 바꾼다고 공부 더 잘하나….한국 정당의 변천사는 대부분 분열과 야합, 탈당과 합당의 무분별하고 몰가치한 이합집산의 귀결이다. 당쟁이 격화되었던 조선시대에도 지금처럼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당파를 오락가락하며 당명을 밥 먹듯이 바꾸지는 않았다. 동서남북 사색당파가 '노론·소론' '시파·벽파' '청남·탁남' '대북·소북' 등으로 분화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양당 체제의 틀을 유지했다.명칭뿐인가, 정치 행태는 또 어떤가. 조선시대의 당쟁도 저열한 권력투쟁이란 측면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의명분을 내세워 이론적으로 싸웠다. 예론(禮論)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쟁에도 도덕적인 의리와 유교적인 명분이 있었다. 철학적인 무장을 하지 않으면 논쟁에 끼어들지도 못했다. 오늘의 정치판처럼 도나캐나 달려들어 천지 분간도 없이 물고 헐뜯는 천박한 패거리싸움은 아니었다.적어도 당파 싸움 때문에 망했다고 역사와 조상을 탓할 염치는 없어졌다. 더구나 조선은 당쟁이 격심했던 숙종~영조에 이르는 50년 동안 오히려 민생이 안정되어 백성들이 살기 좋았던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망국의 길을 재촉한 것은 노론벽파 일당 독재에 이은 세도정치 탓이었다. 조선의 당쟁을 두둔할 생각은 결코 없다. 부끄러운 역사요 청산의 대상이었음이 분명하다.당쟁은 국론을 분열시켰다. 왜란과 호란의 와중에도 지도층의 의견 대립이 있었고, 해방 정국의 좌우 대립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온 국민을 분열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는 않았다. 당쟁의 쓰라린 추억을 오히려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름으로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져 대립하며 서로를 척결의 대상으로 여기는 국론 분열의 종착역은 어디인가.정당정치가 핵심인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의견 대립은 당연지사이다. 그런데 요즈음처럼 국론 분열이 심각한 위기의식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을까. 그래도 반성하고 거듭날 줄 모르는 보수의 이기(利己)와 탐욕이 한심하다. 더 기가 막힐 일은 진보를 자처해온 세력들의 몰염치한 민낯이다. 도덕과 상식마저 내팽개친 그들의 무례와 오만은 '유체이탈' '내로남불' '후안무치' 그 이상이다.그들은 스스로 신주처럼 떠받들던 민주적 가치를 제발로 걷어차고 이른바 '좌파 독재'로 질주하고 있다. 그 결말은 조선의 망국과 남미 좌파 정권의 실패에서 유추할 수 있다. 보수의 분열과 노욕 또한 그 역주행을 돕고 있다. 식민사관의 궤변처럼 우리는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민족인가'. 유사 이래 처음 이루어 놓은 경제 강국의 위업과 한류가 지구촌을 강타하는 문화민족의 자존도 이렇게 사위어가는가.

2020-02-03 21:06:45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 네번째 확진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지난 27일 오후 서울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세풍] 역병(疫病)의 추억

본능적으로 인간은 아픈 기억을 잊고 싶어 한다. 1918~19년 전 세계에 창궐한 스페인독감이 그랬다. 스페인독감은 6억 명에 이르는 감염자와 최소 2천500만 명, 최대 1억 명으로 추산되는 사망자를 발생시킨 전대미문의 대역병(大疫病)이었다. 스페인독감이 휩쓸고 지나간 곳은 목불인견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폐가 피에 잠겨 고통 속에 죽었다. 대혼돈 속에 망자(亡者)들은 최소한의 예우조차 받지 못하고 버려졌다. 그 장면을 봐야 하는 산 자가 죽은 자를 오히려 부러워했다고 전해진다.하지만 불과 100년 전에 일어난 일인 데도 스페인독감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14세기 유럽을 덮친 흑사병(페스트) 등과 견주어 봐서도 매우 이례적이다. 인류는 너무나 끔찍했던 스페인독감의 참상을 기억에서 애써 숨겨 놓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잊고 싶다고 해서 쉬 잊히는 것이 인간사인가. 끔찍한 대재앙의 기억은 인류 의식 깊은 곳에 강한 트라우마를 남겨 놓았다.이후 1세기가 지나는 동안 에이즈(AIDS)와 에볼라 바이러스(Ebola virus), 사스(SARS), 메르스(MERS) 등 여러 종류의 신종 바이러스가 등장했고 인류는 그때마다 스페인독감의 공포를 떠올렸다. 신종 바이러스들 대부분은 가축이나 야생동물들을 매개체로 삼아 잠복해 있다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 몸에 침투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신종 바이러스는 그에 대한 면역체계를 갖추지 못한 인류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여러 신종 바이러스가 출몰했지만 다행히도 스페인독감과 같은 대재앙급 사태는 재발되지 않았다. 국제화가 1세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성화됐기에 자칫 통제가 안 됐다면 스페인독감 때와 같은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의료기술이 발달했고 개인위생 환경이 개선됐으며 보건당국이 기민하게 대응한 덕분이다.그런 가운데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 바이러스가 하나 더 출현했다. '우한 폐렴'이라 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다. 정확한 발생 경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의 수산시장에서 식용으로 취급하는 야생 박쥐로부터 사람에게 옮겨졌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우한에 있는 생화학세균연구시설에서 누출됐다는 설 등 추정만 분분하다. 향후 추가 변이를 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현재로서는 전파율과 치사율 면에서 사스와 메르스 중간 정도인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다.27일 현재 중국에서 80명의 사망자가 났고 우리나라에서도 네 번째 확진자가 나오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스와 메르스도 극복해냈듯 우한 폐렴 역시 수습 가능한 전염병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걱정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우한 폐렴의 경우 증세가 발현되지 않은 잠복기의 감염자가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확인돼서 그렇다. 역대 여느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없던 특징이다.항간에서는 중국인의 우리나라 입국 자체를 막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있고 의사협회조차 같은 주장을 펴고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법으로도 문제가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도 효과가 없다며 권장하지 않기에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해야 할 조치이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응하는 것이 옳다. 개인은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되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지금 인류는 우한 폐렴이 조기에 진압되느냐, 세계로 확산하느냐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2020-01-27 18:34:13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뭘 잊어달라는 건가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많은 말을 했다. 그중 "대통령 끝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가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세간의 반응은 한결같다. "잊어달라고? 왜 그래야 하는데?" 그렇다. 쓰레기통에서 피워낸 우리 민주주의를 다시 쓰레기통으로 처박고, 법치를 파괴했으며, 국민 경제를 거덜냈고,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가리 찢어놓았으며, 북한에 굴종하며 국가안보를 김정은에게 저당잡힌 그 반(反)민주적, 반(反)양심적, 반(反)공동체적, 반(反)역사적 행적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문 대통령의 모든 행적을 잊을 수 없지만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동일한 문제라도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 말과 행동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바꾸는 기만성이다. '윤석열 검찰 대학살'은 이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선 때 "MB(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대통령 및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던 악습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고 했다. 2017년 대선 때도 "권력 눈치 안 보는 성역 없는 수사기관을 만들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그러나 '우리 총장님 윤석열'이 "살아있는 권력에도 똑같이 하라"는 당부를 실천에 옮기자 '윤석열 사단'을 해체해버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검찰의 수사권이 존중되어야 하듯이 장관과 대통령의 인사권도 존중돼야 한다"이다. 그러나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조롱당하고 있다. 인사권 행사로 발탁된 친문 검찰 간부는 "조국을 무혐의 처리하자"고 했다가 후배 검사에게 "네가 검사냐" "조국 변호인이냐"는 반말을 들었다.또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2월 박영수 특검의 압수수색을 청와대가 거부하자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방해하고 그것을 통해 탄핵을 모면하고 사법 처리를 모면하려는 행태" "정말 개탄스러운 일"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청와대'는 검찰이 법원의 허락을 받은 합법적 압수수색을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은 위법한 수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이런 이중성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체질화돼 있는 듯하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자 "헌재의 결론이 일반 국민의 상식과 똑같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기각 결정에 대해서는 180도 달랐다.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에 헌재가 어떻게 맞서느냐는 거다. 이런 논리는 마침내 헌재는 선출된 권력은 탄핵할 수 없다는 반(反)헌법적 결론에 이른다."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다행히 기각됐다. 하지만 인용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실제로 헌법재판관 2명은 인용 의견이었다. 같은 의견을 가진 재판관이 다수였다면 대통령은 탄핵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줬을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의 정당성이 어디 있을까? 국민이 그들을 헌법재판관으로 선출한 것도 아니다."('문재인의 운명')이 논리대로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은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을 "국민의 힘으로 가능했다"며 쌍수로 환영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지 않고 세습이라도 했나? 국민이 지금 문 대통령에게서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기만성의 확대재생산이다. 지긋지긋하지만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2020-01-20 19:10:34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뒷날이 두렵다

1907년 3월 2일 만세보에는 '여론이 들끓다'는 제목으로 이런 글이 실렸다."요사이 국채를 보상하려고 서울과 시골에서 백성들 가운데 남녀노소 막론하고 의연금을 떠들썩하게 모집하여 지금 모집한 금액만 해도 적지 않은데, 정부 각 대신은 그 차관을 갚기를 강구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그 빌린 자금 가운데에서 교접비(交接費)라 명목을 정하여 매월 200환씩 태연하게 받아가니…여론이 시끄럽다더라."뭇 백성이 나서 일제에 진 빚 1천300만원을 갚자며 어린아이의 코 묻은 세뱃돈까지 모으던 시절이다. 그런 엄중한 때에 나라 관리, 그것도 대신들이 빚더미에서 떡고물이나 뒷주머니 사례금(리베이트)처럼 '마음에 불안하지도 않은지' 달마다 꼬박 챙기는 꼴을 폭로한 글이다. 대신이 이러니 나라 꼴은 뒷날 우리가 아는 역사 그대로다.이런 자료는 110년 지나 2017년 10월 31일, 세계기록유산(세계의 기억)으로 선택돼 세계인도 우리 옛 치부를 알게 됐다. 이는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의 세계기록물유산등재추진위원회에 의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로 이뤄졌다. 지난 1997년, 훈민정음(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이 나라의 첫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고 20년 만이니 경사스러운 일이다.물론 이런 부끄러운 모습만 등재된 것은 아니다. 모두 2천475건인 기록물 속에 포함된 하나일 뿐이다. 그 속에는 최소한 120건이 넘는 감동적이고 가슴 아린 사연도 있다. 즉 6세 어린이부터 해외 유학생에 이르기까지, 남의 집 밥상(床)이나 나르던 종(奴)노릇의 소년과 바느질 품삯을 내놓은 소녀 등 아이와 청소년 기부 자료가 그렇다.이 밖에 우리의 세계기록유산에는 14가지가 더 있다.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팔만대장경판·제경판, 동의보감, 일성록, 5·18민주화운동기록물, 난중일기, 새마을운동기록물, 한국의 유교책판, KBS이산가족찾기기록물, 조선왕조어보·어책, 조선통신사기록물이다.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이 '기억'할 만한 가치를 가진 까닭에 세계기록유산이 됐다.이런 '세계의 기억'인 기록 유산의 나라지만 정치만은 탈(脫)기억이다. 지난날의 기록과 기억을 통한 반성과 새로운 길을 내는 창조적 활용은 뒷걸음질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의 최고 지도자 행적을 보면 더욱 그렇다. 과연 그런 가치를 실현하려는 국정 철학을 갖고 있는지조차도 의심스럽다. 지금까지 물러난 11명 대통령 가운데 여럿이 남긴 오욕(汚辱)으로 점철된 부끄러운 역사는 좋은 증거다.이들 오욕의 기억과 기록을 남긴 대통령들과 달리, '가보지 않은 길'을 장담하고 그럴듯한 행보였던 문재인 정부가 요즘 걱정스럽다. 분명 공정과 통합, 국민 모두를 위한 지도자가 되겠노라 외쳤던 그였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출범 당시 장밋빛 약속 이행은커녕이다. 앞선 여러 오욕의 지도자들이 권력에 취해 엇길로 빠졌다가 추락한 과거를 기억조차 못하고 되레 그런 길로 접어드는 듯하니 말이다.특히 조국 사태 이후 청와대와 대통령 친위 세력의 모양새가 고약하다. 청와대 관련 의혹을 캐려는 검찰과의 싸움이 그렇다. '다르겠지' 했던 진보에 대한 기대를 접게 할 만하다. 청와대를 향한 검찰 칼날에, 총장을 차마 바꿀 수 없으니 장관을 앞세워 손발을 자르고 청와대는 법원 발부 영장 집행조차 거부하며 검찰을 뭉갰다. 사관(史官)이 없으니 대통령과 청와대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면 불안하다. 자칫 잘못되면 뒷사람이 또 하나의 '세계의 기억'으로 한국 역대 대통령 기록물을 등재하려 달려들까 두렵다.

2020-01-13 21:13:56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위대한 국민을 타락시키는 文정권의 사악함

2020년 새해가 밝았지만 기대·희망보다 걱정·절망이 앞선다. 이 나라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암담하고, 미증유(未曾有)의 이 위기를 헤쳐나갈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몰려온다.지난 100년 대한민국은 기적의 역사를 창출(創出)했다. 1953년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에서 477배가 늘어난 3만2천달러의 부유한 나라가 됐다. 일제 강점, 전쟁, 가난에 고통받던 나라가 세계 12위 경제 대국에 자유민주국가로 탈바꿈했다. 유례가 없는 기적을 만들어낸 이 나라에 전 세계가 찬사를 보냈다.기적의 역사를 일궈낸 원동력 두 가지는 탁월한 국가지도자와 위대한 국민이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慧眼)을 가진 국가지도자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고, 모든 국민이 똘똘 뭉쳐 성과를 내려고 매진((邁進)했다. 국가지도자와 국민, 이 둘이 절묘하게 조합(組合)을 이뤄 피와 땀을 흘린 덕분에 오늘의 이 나라를 만들었다.'세계가 부러워했던' 이 나라가 더 웅비(雄飛)하지 못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한민국을 흥(興)하게 만들었던 원동력이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국가의 리더인 대통령은 탁월함을 갖추지 못했고, 국민은 위대함을 잃어가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국민에 약속했다. 그러나 2년 반이 넘도록 미래가 아닌 과거로 역주행(逆走行)하며 재앙에 가까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국민에게 안겨줬을 뿐이다. 문 대통령에게서 어떤 탁월함을 찾을 수 있나. 탁월한 국가지도자를 갖지 못한 나라는 번영할 수 없다.지난 2년 반 동안 문 정권이 저지른 가장 나쁜 행위는 위대한 국민을 저열(低劣)한 존재로 타락시킨 것이다. 온갖 명목의 선심성 현금 뿌리기로 국민을 '바보' '등신'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국민 세금으로 현금을 쥐여주는 국민이 1천200만 명이나 된다. 올해만 해도 769만 명에게 17조원의 기초연금, 세금 알바에 26조원 등 끝이 없다. 현금 복지 종류만 2천 종에 육박하다 보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좌파 정권 연장을 위한 정권의 매표(買票)로 말미암아 국민은 갈수록 위대함을 잃어가고 있다. 근면 대신 나태, 자조(自助) 대신 국가 의존, 협동(協同) 대신 반목과 분열이 국민 사이에 똬리를 틀고 말았다.나라에서 현금을 쥐여주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 돈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낸 세금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돈이라는 것이다. 달콤하다고 설탕물을 마구 들이켜서는 몸이 망가지는 것처럼 도를 넘은 현금 뿌리기는 나라를 망칠 수밖에 없다.더욱이 이런 사실을 정권이 잘 알면서도 선거 승리를 위해 현금을 뿌리고, 그 결과 국가 발전 원동력인 국민을 타락시킨다면 국가 기반을 무너뜨리는 죄(罪)를 짓는 것이다. 남미 여러 나라처럼 국가에 의존하는 국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권 연장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사악(邪惡) 그 자체다.우리 국민은 역사의 격랑마다 지렛대 역할을 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4월 총선은 돈으로 국민을 구워삶아 선거 승리를 노리는 정권과 위대함을 지키려는 국민의 한판 대결이다. 국민이 정권의 포퓰리즘 유혹에 넘어가 망국의 길로 향할 것이냐, 국민이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 이 나라가 다시 흥할 기회를 잡느냐. 위대한 국민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

2020-01-06 19:04:4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작은 연못 붕어 두 마리

세밑이다. 달력의 숫자가 바뀔 무렵이면 사람들은 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두드러질 게 없는 하루하루의 복제였든 오래 기억될 시간의 연속이었든 그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날이 그날이어도 삶에서 한 단락을 지으며 앞날에 희망을 걸고 기대를 얹어보는 순간만큼은 특별해서다.아무런 근심과 걱정 없이 1년을 보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려운 경제 상황 탓에 평온한 일상보다는 삶에 쫓기고 상대적 박탈감에 짓눌려 무거운 마음으로 1년을 버텨온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개인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도 마찬가지다. 2019년을 돌이켜 볼 때 긍정보다는 부정의 이미지가 더 부각된다. 혼란한 정치와 외교안보, 활기를 잃은 경제, 분열된 사회로 인한 두려움과 불편함이 더 크다.무엇보다 끝 모를 정쟁에다 집권 세력의 독주는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국 정치 문화에서 화합과 조화, 균형과 견제의 미덕은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지난 1년 우리 정치가 걸어온 길은 실망을 넘어 절망의 문턱도 넘어선 느낌이다. 한국 정치는 그동안 상대의 어깨와 손을 맞잡고 리듬에 맞춰 경쾌하게 돌아가는 왈츠 무대를 연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마치 불길에라도 덴 듯 질겁하며 상대의 손을 뿌리치고 거친 언어로 상대 속을 후벼 파는 '동물 정치'의 유전자만 발현했다.집권당과 죽이 맞은 군소정당들이 '4+1 협의체'라는 기형의 코끼리를 만들어내 입법 기능을 장악하고 제1야당에 물을 먹인 것은 2019년 한국 정치의 지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 분쇄기에 선거법이 가루가 됐고 공수처법까지 말려 들어간 형국이다. 나라와 국민이야 어떻게 되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보가 아니라면 도저히 해석하기 어려운 사건의 연속이다. 게다가 조국 사태를 비롯해 갖가지 권력형 비리 의혹과 뭉개기는 민주주의 가치와 질서마저 온통 헝클어 놓았다.이런 사이 정책이 뒤틀리고 제도는 방향을 잃었으며 심지어 입법의 현실까지 왜곡되는 '정치 독주판'이 펼쳐졌다. 그런데 브레이크 없는 독주와 독단은 그 끝을 보게 마련이다. 독주의 끝에 펼쳐지는 충돌의 잔해는 예상을 뛰어넘고 그로 인한 공포감은 인내심의 경계를 이탈할 수밖에 없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때 시진핑 주석에게 "잠시 섭섭해도 멀어질 수 없는 관계"라며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진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불편한 관계보다는 서로 협조해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이익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그렇다면 우리 안에서는 그런 말이 왜 한마디도 나오지 않고 또한 씨알도 먹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여야는 이웃이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인가. 권력과 정치적 영향력의 많고 적음이나 정적 관계를 떠나 여야는 똑같이 대한민국과 5천만 국민의 정당이자 국민의 기관이다. 여든 야든 상대를 청산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오산이자 착각이다.경자년(庚子年) 새해에는 대립과 반목의 어두운 시간을 끝내고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기를 희망한다. 김민기의 '작은 연못' 노랫말처럼 서로 싸우다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연못 속에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는 상황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쪽이 밉다고 썩었다고 숨통을 조이면 나는 온전할 수 있을까. 함께 사는 것이 연못을 살리고 나도 사는 길이다. 독주와 독단은 이제 끝내야 한다.

2019-12-30 20:20:18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아리랑 고개는 아무나 넘어가나

어린아이와 부녀자까지 함께한 일행이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향하는 망명길은 혹독한 여정이었다. 난생 처음 접하는 북방의 겨울바람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모진 추위와 허기에 시달리며 황량한 만주벌판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린 것은 나라 잃은 서러움이었다. 우리 민족 사상 유례없는 험난한 아리랑 고개였다. 기약 없는 아리랑 고개였다.110년 전 경술국치를 당하자 안동 명문가의 주손인 백하 김대락과 석주 이상룡은 66세와 53세의 노구를 이끌고 만주로 집단망명을 결행했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정월이었다. 전대미문의 아리랑 고개. 멀고도 험난한 형극의 길이었다.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가 기울어 가던 구한말, 경북의 올곧은 선비들은 그렇게 아리랑 고개를 넘었다.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집안의 명운과 가족의 생사까지 내던지며 모진 아리랑 고개를 넘었다. 가진 것들을 누리며 편안한 여생을 보내도 될 나이였지만, 국권과 자존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사즉생(死卽生)의 길이었다. 당시 지배계급인 양반으로서 솔선수범해야 할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했다. 학문을 한 선비로서 마땅히 가야 할 실천적 삶이라 여겼다.반세기에 걸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경북인의 항일투쟁은 특별했다. 의병항쟁과 만세운동 그리고 구국계몽과 사회주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친 항쟁이 시종일관 지속된 곳은 경북이 유일했다. 의병을 가장 먼저 일으켰으며,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순절자가 나왔다.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인물이 가장 많은 것만으로도 대구경북이 독립운동사에서 가지는 위상을 웅변하고도 남는다.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의 횃불을 댕긴 곳이요, 광복회를 탄생시켜 의병과 계몽운동의 통합을 이루며 독립군 자금을 확보하고 의열투쟁의 기반을 구축했다. 그것이 3·1운동에서 민주공화정의 요구로 표출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유림단 사건의 본고장으로 만주 독립군기지 건설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의열투쟁과 6·10만세운동의 핵심을 이룬 인물들도 대구경북인이었다.항일 민족문화의 찬란한 꽃을 피워 올린 이상화와 이육사의 이름 또한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일제에 대한 대구경북인의 저항은 이렇게 격정적이었고 지속적이었으며 그만큼 희생 또한 컸다. 그렇게 견위치명(見危致命)하며 숱한 아리랑 고개를 넘어온 경북의 정신과 실천적 삶이 광복을 이루고 전쟁을 이겨내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오늘날 한류의 시대를 연 것이다.파란만장한 겨레의 역사는 숱한 아리랑 고개를 넘어온 고난의 행로였다. 20세기에 들어서만도 망국과 분단과 전쟁과 파산(破産)까지 겪었다. 좌절과 시련의 고개였지만 다시 희망을 안고 넘어야 했던 숙명의 고개이기도 했다. 이제 또 하나의 아리랑 고개를 넘어야 한다. 흥망의 분수령이다. 국가의 정체성이 왜곡되고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경제의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사회의 도덕성이 무너지고 위선과 망발이 난무하고 있다. 지리멸렬한 외교와 안보는 북한의 핵 위협과 욕설만 자초했다. 전례 없는 분열과 갈등을 안고 망국(亡國)열차가 질주하고 있다. 제동을 걸어야 하는데 멸사봉공하는 정치인 하나 없다. 사즉생의 결기를 보이는 강단 있는 지도자 하나 없다. 대구경북의 혼은 어디로 갔는가. 2020년 아리랑 고개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말로만 보수를 외치면서 해묵은 탐욕의 보따리만 덕지덕지 껴안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갈 수 있을까.

2019-12-23 19:27:05

13일 오후 3시 개의하려던 제372회 임시국회 제1차 본회의가 지연되고 있다. 연합뉴스

[세풍] 개, 돼지 취급 받지 않으려면

문재인 정권은 '10년 집권'을 꿈꾼다. 그러나 내년 총선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현실이 그렇다. 경제는 꼬꾸라졌고 대북정책은 파탄났다. 선거 공작과 인사 개입, 태양광 사업 등 각종 이권 개입 의혹이 자아내는 악취는 참으로 고약하다. 여론 조사는 이런 비정(秕政)과 동떨어진 결과를 내놓지만 그게 실상이 아님은 알 만한 사람은 안다.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지키려면 무슨 수든 써야 한다. 바로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이다. 목적이 이렇게 불순하니 내용이 불순한 것은 당연하다. 선거법 개정안은 표심(票心)을 인위적으로 왜곡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공수처법은 정권의 비리를 꼭꼭 숨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개정안의 명분은 소수 정당의 사표(死票) 방지이지만 실제 목적은 '10년 집권'을 위한 범(汎)여권 연합전선의 구축이다. '개정안'은 전문가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내 표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려 하지 말고 그냥 표만 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대한 알기 쉽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투표의 득표율을 기준으로 정당별 의석수를 미리 배분하고, 거기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뺀 의석수의 절반(이른바 50% 연동)을 비례대표 의석으로 우선 배분하며, 나머지 절반은 현행대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이는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다. 정당득표율로 배정된 의석수보다 지역구 당선자를 더 많이 낸 정당은 '연동'으로 받는 비례대표 의석이 '0', 즉 이 정당의 정당 득표가 대거 사표가 된다는 것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얻은 지지율보다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투표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이런 운명을 맞을 수 있다.사표를 막는다면서 더 많은 사표를 구조화하는 모순의 극치다.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투표를 지역구 당선자에게까지 확대하려다 보니 이런 웃지 못할 코미디가 생기는 것이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비판 그대로다. "전 세계 역사상 듣도 보도 못한, 전무후무하게 희한하고, 두고두고 선거법 개악 사례로 소개되어 대한민국이 웃음거리가 될 선거법 개정안이다."개정안대로면 민주당은 의석수가 줄어든다. 이런 '자해'를 하는 이유는 의석수 증가라는 미끼로 군소정당을 꼬드겨 장기집권을 위한 '2중대'로 세운다는 계산에서다. 그런데 민주당이 뒤늦게 '본전 생각'이 났는지 "비례대표 의석수 전체를 줄이자" "연동을 적용하는 비례대표 의석수도 줄이자"고 나섰다. 그렇게 하면 군소정당 의석수는 기대치보다 적어진다.군소정당이 이에 반발하면서 '4+1 협의'로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하려던 민주당의 계획은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군소정당에 떡고물을 줘 선거법 처리에 나설 것이다. '10년 집권'을 위한 또 하나의 기둥인 공수처법 통과를 위해서는 이들과 '야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군소정당을 어떻게 달래든 선거 민주주의의 제도적 파괴이다. 이를 그냥 보고만 있으면 국민은 정말로 개, 돼지가 된다. 어떻게 해야 하나? 1919년 독일군부의 실세로 왕정주의자인 루덴도르프와 정치학자 막스 베버의 대담은 그 대답이 될 듯하다."인민은 그들이 신뢰하는 지도자를 선출한다. 그다음 그 지도자는 말한다, '지금 당신들은 아무 소리 말고 복종하라. 인민과 정당들이 지도자와 상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베버) "그런 민주주의는 상당히 매력적이다."(루덴도르프) "그런 다음에 인민은 심판할 수 있다. 만약 지도자가 잘못한다면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베버)

2019-12-17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대구에 돌고 도는 '착한 돈'

돈은 돌고 돈다. 몸의 피처럼. 피가 돌아야 하듯이 돈도 금고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돌아야 제 역할을 하리라. 그렇게 돌고 도는 돈 가운데 보수 도시라는 소문의 대구의 돈, 특히 이웃을 돕고 나눔을 위한 대구의 '착한 돈'은 더욱 빛이 난다면 믿을까. 그러나 사실이다. 지난날을 살피면 수긍하리라.먼저 1907년 대구에서 불붙은 국채보상운동이다. 우리가 나랏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처음 깨달았을 때다. 나라 관리와 권력자가 집안 장롱에 부정한 엽전을 재고 있을 당시, 대구 사람은 담배를 끊고 아낀 푼돈을, 부녀자는 비녀와 반지 등 패물에 이르기까지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내놓았고, 이는 전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사상 처음, 당시 1천700만 추정 인구의 1.8%인 31만7천여 명(추정)이 동참한 자발적 거국 모금운동은 이렇게 이뤄졌다. 1907년 1~7월까지 나랏빚(1천300만원)의 1.5%인 20만원(학계)이 모였다. 대구경북은 3만1천520명이 1만7천445원을 모았으니 대구경북인 165만7천여 명(1911년 기준)의 2%가 참여해 모금액의 8.7%(목표 1천300만원의 0.1%)를 채웠다.이런 흐름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운동으로 재연됐다. 4천700만 국민의 7.5%인 351만 명이 나랏빚 1천200억달러의 1.8%인 22억달러 상당의 금 227.5t을 모아 제2국채보상운동으로도 조명됐다. 특히 국채보상운동 전파지 대구에서는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라는 민·관 기구를 통한 자발적 범시민적 나눔운동도 일어났다.무엇보다 이런 나눔운동은 이웃돕기 기부로 번졌다. 매일신문에서 2002년 11월 19일부터 매주 1회, 올 10월 8일까지 16년11개월 853회 연재한 '이웃사랑' 모금이 한국기록원의 신기록 인증을 받은 사례가 그렇다. 성금은 111억5천373만5천384원으로, 매주 130여 명 총 11만4천400명이 기부했으니 대구시민 244만 명의 5%에 가깝다.더 있다. 1998년 발족한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성금 모금이다. 26년째 전국 꼴찌 수준의 대구 경제지표(1인당 국내총생산)와 달리 해마다 연말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모금회 이웃사랑 성금 접수는 목표 100℃를 초과하기 일쑤였고, 1억원 넘는 기부자도 현재 144호로 서울(277호), 경기(216호), 부산(177호) 다음에 이를 만큼 많다.아울러 대구에는 다른 곳과 달리 얼굴 없는 '키다리 아저씨'와 '키다리 아줌마'도 기부 행렬을 채우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8차례 걸쳐 매번 1억2천만원을 전한 아저씨와 2013년 1월부터 매월 10만~44만원까지 한 차례도 빠짐 없이 성금을 모금회에 보낸 청소 아주머니가 자랑스러운 주인공이지만 지금까지도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다.이렇게 돌고 도는 대구 돈은 대구의 공동체를 구르게 하는 대구만의 소중한 동력이 될 만하다. 이런 기부 문화에 새로운 사례도 생겼다. 7일 달성 서씨 대종회가 35억원에 이르는 600년 역사의 대구 중구 동산동 한옥마을 내 옛 구암서원 터를 대구시민에 내놓은 일이다. 세종 때 현 달성공원을 국가에 바치고 대구 사람의 세금 감면을 바란 옛 조상 서침(徐沈)의 뜻을 이은 후손다운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다.혼란스럽고 힘든 경제 사정 속에 다시 맞은 12월, 세밑이다. 거리 여기저기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고, 공동모금 활동도 이미 시작됐다. 날씨만큼 움츠린 마음이겠지만 늘 그랬듯, 대구의 '선(善)한 돈'은 돌고 돌아 대구의 올겨울도 지낼 만한 따뜻한 곳으로 이끄는 마력을 보이리라 믿는다. 부정적인 평가의 보수 도시 대구에서 돌고 도는 착한 돈은 죄가 없으리라.

2019-12-09 19:11:31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문재인·박근혜 누구 잘못이 더 큰가

지난 대선 당시 민주화 운동 대부 장기표 씨가 "박근혜에겐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이 한 명이지만 문재인에게는 최서원이 10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돈 지금 그의 예언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 '국정농단' '국기문란' '권력의 사유화'를 증명하는 게이트들이 쏟아지고 최서원 뺨치는 '문재인 정권의 최서원들'이 속출하고 있다.김기현 전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 의혹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중단은 국가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이다.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야당이라면 촛불을 드는 것을 넘어 대통령 탄핵에 나서고도 남았을 것이다.주권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의사를 행사하고 표시하는 선거가 국가 공권력에 의해 파괴됐다. 비리 혐의가 명백한 공직자는 청와대 감찰을 무력화시킨 것을 넘어 승승장구했다.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주야장천 부르짖은 공정·정의가 조국 사태에 이어 또다시 시궁창으로 굴러 떨어졌다.검찰 수사가 밝혀야 할 핵심은 두 사건에 등장하는 '뒷배'가 누구냐는 것이다. 김 전 시장에 대한 경찰의 '아니면 말고 식' 수사로 울산시장 선거 판세가 뒤집혔다. 당선된 송철호 울산시장은 문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지이자 사석에서 호형호제하는 절친이다. 자기 담당 업무가 아닌 데도 김 전 시장 관련 첩보를 가져와 경찰에 전달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행동대장' 백원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었다. 송 시장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첩보의 생성·가공, 전달 그리고 경찰 수사 등에 누가 개입했는가를 규명해야 한다.사의를 표명한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유 전 부시장 감찰 중단 사건과 관련 "조국 민정수석이 주변에서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면서 지시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조 씨는 유 씨와 일면식이 없었고 처음엔 강하게 감찰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2인자'로 꼽히던 민정수석이 거부할 수 없는 누군가의 요구를 받고 감찰 중단을 지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유 씨는 비리가 적발됐는데도 국회 수석전문위원, 부산시 부시장으로 영전한 것은 물론 감찰 이후에도 계속 금품을 받았다. 유 씨는 문 대통령을 '재인이 형'이라 부를 만큼 가까운 관계라고 한다. 그의 뒤를 봐준 뒷배가 누구이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국민은 궁금하다.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문 정권의 농단과 적폐, 위선과 불의가 더 심하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입만 열면 공정과 정의를 외쳤던 정권이기에 국민의 실망이 더 크다. 적폐 청산을 앞세워 전·전전 정권 인사들을 줄줄이 처벌하면서 뒤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선거 공작으로 의심받는 짓을 저지르고 자기편이라는 이유로 비리를 덮었다니 놀라울 뿐이다.'맹자'에 연목구어(緣木求魚) 후필재앙(後必災殃)이란 말이 있다. 나무에 올라 고기를 잡는 것과 같은 무모한 일을 하면 후에 반드시 재앙을 받는다는 뜻이다.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과 청와대 감찰 중단에서 연목구어를 방불케 하는 턱도 없는 일들이 벌어졌고, 이제 정권을 뒤흔드는 재앙이 됐다.'윤석열 검찰'이 칼을 뽑은 데다 정권이 레임덕 조짐을 보임에 따라 정권을 둘러싼 게이트들이 계속 터져 나올 개연성이 크다. 지금까지 나온 것은 빙산의 일각이란 말을 흘려들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국정 실패에다 조국 사태에 이은 게이트들에 "이건 나라냐" "2년 반 동안 잘한 게 하나도 없다"는 개탄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독서삼매경이다. 정말로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라다.

2019-12-03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공모의 역설, 누가 키우나

요즘 대구 문화예술계의 관심은 문화예술 기관장 공모에 온통 쏠려 있다. 지난달 대구오페라하우스 제4기 대표 선임 절차가 이런저런 루머 속에 마무리된 데 이어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공모가 현재 진행 중이어서다.대구시는 지난 5년간 자리를 지킨 이형근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후임자를 뽑는 재공모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10월 12명이 지원한 공모 심사에서 '적격자 없음'으로 결론을 낸 이후 한 달 만에 재공모 절차에 들어가자 지역 예술인들 사이에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왜 개방형 직위 공모 때마다 재공모나 3차 공모가 공식처럼 되풀이되느냐는 불만이다.과거에도 비슷한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역 문화예술계가 최근 들어 불만의 강도를 크게 높이는 까닭은 10여 년 동안 '적격자 없음→재공모→외지 인사 선임'이라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인데 출신지를 떠나 역량 있는 인물을 뽑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지역 문화계 입장에서는 마치 고정 메뉴처럼 굳어진 이런 공모 과정이 지역 문화예술인과의 지나친 거리두기로 비칠 수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쉽게 해소될 수 없을 만큼 깊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올해 초 마무리된 대구미술관장 공모도 이런 '고정 패턴'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대구시는 지난해 7월 최승훈 관장 퇴임에 앞서 후임자 공모에 나섰다. 하지만 선발시험위원회 심사에서 '적격자가 없다'고 결정한 데 이어 8월 재공모에서도 똑같은 결정이 나면서 6개월 넘게 자리를 비워두었다. 해가 바뀌고 올 2월 3차 공모에 들어갔는데 당시 지원자가 무려 24명에 이를 정도로 치열한 자리다툼이 벌어졌다. 1차 공모 때 7명, 2차 때 15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핵분열 현상이다.결국 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이 제4대 대구미술관장에 선임됐다. 2010년 초대 관장을 맡은 김용대에 이어 2대 김선희, 3대 최승훈 관장 등 내리 4대째 외지에서 활동해온 인사들이 선임되자 지역 미술계 불만이 치솟았다. 1, 2차 공모 때 22명의 지원자 중 과연 대구미술관을 이끌어나갈 마땅한 지역 인사가 없었는지 아니면 대구시가 명분쌓기용 공모 절차를 진행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술계 내부에서 치열한 자리 경쟁이 벌어지다보니 잡음을 피하기 위해 번거롭게도 재공모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지난달 박인건 전 KBS교향악단 사장이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에 선임되자 예술행정 전문가라는 평가와 상관없이 일각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 것도 사실이다. 만약 대구콘서트하우스 공모도 같은 수순이라면 문화계 내부의 불만이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데는 무엇보다 지역 문화인들의 잘못이 크다. 자리만 나면 불문곡직 나서고 '내가 아니면 될 사람 있나' 식의 태도도 여전하다. 자신이 불리하다 싶으면 누가 내정됐다느니 등 군불때기가 난무한다. 자연히 잡음과 구설을 피하려는 반대 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화예술계 일각에서는 10년 넘게 이를 반복해왔다. 서로 치고받다가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본 것이다. 대구시도 이제는 너무 원칙만 내세울 게 아니다. 지역 인사를 과감하게 영입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일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성과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2019-11-25 19:24:16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막춤 유감

베트남 다낭 여행을 다녀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벤트 코스가 있다. 다낭에서 30㎞ 떨어진 호이안 투본강에서 경험한 이른바 '바구니배 타기'이다. 마른 야자나무 잎으로 만들었다는 둥근 모양의 바구니배가 2인승 관광 유람선으로 변한 것부터가 신기하다. 고즈넉하던 어촌 마을에 한국 관광객들이 밀려들면서 생긴 신풍속도라고 한다.바구니배에 오르기 위해 선착장에 들어서면 벌써 귀에 익은 노래가 진동하는 가운데 여기저기 한국 사람들로 득시글하다. 수상 투어는 야자나무들이 줄지어 선 좁은 물길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배가 넓은 강 한가운데에 이르면 실로 진풍경이 벌어진다. 고성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빠른 템포의 대중가요 리듬을 따라 베트남 뱃사공들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곳곳에서 관광객이 합세한 춤판이 벌어지고 1달러짜리 팁이 난무한다. 수상 노래방이 따로 없다. 처음에는 그 분위기가 못마땅했다. '뽕짝' 음악에 '막춤'이라는 품격 없는 광경과 팁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그랬지만, 서양인들의 눈에는 이 광경이 어떻게 비칠지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호이안의 대다수 뱃사공들이 라이따이한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어쩐지 노래 실력은 물론이고 막춤 솜씨마저 그리 낯설지 않다 싶었다. 호이안은 베트남전쟁 당시 우리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적군의 아들딸로 태어난 숱한 서러움과 모진 박대를 견뎌내고 라이따이한은 그렇게 아버지 나라 관광객의 발길을 모아 온 마을을 명물 관광코스로 바꿔 놓은 것이다. 베트남 고유의 풍광을 한국인 특유의 이벤트로 승화시켰다고 할까. 물론 베트남 정부의 배려와 우리 관광업계의 상술도 작용했을 것이다.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우리 한국 문화의 미래는 막걸리, 막사발, 막춤 등 토박이 문화에 달렸다는 파격적인 담론을 제시한 적이 있다. 우리 문화의 동력과 지정학적 여건에 관한 분석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대륙 문화의 영향권에 속해 있던 한반도는 100년 전부터 해양 문화를 통해 근대화를 추구하고 글로벌화에 성공하면서 오늘의 한류(韓流)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그래서 앞으로의 100년은 대륙 문화도 해양 문화도 아닌 우리의 '막 문화'가 견인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 해답이 바로 '막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대륙과 해양 세력의 상반된 요구를 다 거절할 수 없는 모순적 현실을 토박이 문화로 융합해서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이 전 장관은 이것을 한자로 쓰면 잡(雜)이 되지만 우리말로 부르면 '막'이라고 했다. 하긴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의 국보가 되었고, 한국의 막춤이 오늘날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지 않은가. 싸이의 말춤과 BTS의 몸짓은 노래방과 관광버스에서 벌어지던 그 막춤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근사하게 평가하면 중국의 대륙 문화에서도 서양의 해양 문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우리만의 독창성인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이도 저도 아닌 한국의 막장 정치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의 우리 정치판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 막춤에도 일정한 규칙과 가락이 있는 법인데, 이런 막장 놀음은 처음이다. 안면몰수의 천둥벌거숭이 짓을 거듭하면서도 부끄러움조차 없다.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오히려 고개를 쳐들고 대중을 가르치려 한다. 많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일상적 피로와 시름을 달래주는 막걸리 한 사발과 같은 순박한 정치가 그립다.

2019-11-18 19:41:14

제21대 국회의원선거
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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