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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대통령이 앞장서 사슴을 말이라고 하니

참으로 못 볼 꼬라지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이동식 발사대(TEL)로 쏠 수 있는가를 두고 문재인 정권 안보라인이 보여준 '봉숭아 학당' 수준의 입씨름 말이다. 문 정권이 연출하는 못 볼 꼬라지가 한둘이랴만 이는 특히 심했다.1일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은 그런 능력이 없다고 했다. 곧바로 서훈 국정원장은 그 반대로 말했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뱅뱅 돌았다. 북한이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분간이 안되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입이라도 맞추지 이게 무슨 민망한 '시추에이션'인가.더 못 볼 꼬라지는 청와대의 '종합'이다. 정 실장의 말과 서 원장의 말은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대척(對蹠)이다. 둘 중 한 사람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다. 변증법 용어를 빌리면 정 실장의 말은 정(正), 서 원장의 말은 반(反), 아니면 반대로 서 원장의 말은 정, 정 실장의 말은 반이다. 청와대는 이를 '해석상의 차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청와대, 국방부, 국정원은 같은 분석을 하고 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는 합(合)을 만들어냈다.뱉어낸다고 다 말이 아니다. 북한이 ICBM을 TEL로 발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해석'이 아니라 '팩트'의 문제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거다. '해석상의 차이'라는 '해석의 요술'을 아무리 부린들 있는 게 없는 게 되고 없는 게 있는 게 되지 않는다.그 '같은 입장'이란 것도 같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북한은 TEL로 ICBM을 쏠 수 없다'로, 정 실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한솥밥을 먹는 청와대 식구라서 그랬나? 서 원장만 딱하게 됐다.그 논리 전개는 이렇다. 'ICBM을 운반하고 세우고 발사까지 해야 이동식 발사인데 북한은 2017년 ICBM인 화성-14, 15형을 TEL로 운반만 하고 바로 세워 쏘지 않았으니 TEL 발사가 아니다. 증명 끝.' '형식논리'의 극치다. TEL로 옮겨 내려서 쏘든 TEL에서 바로 쏘든 모두 이동식 발사다. 미사일을 신속하게 이동해 언제 어디서든 기습발사할 능력을 지녔느냐가 본질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청와대의 '합'이 나오자 국방부 국방정보본부장이란 인사가 희대의 코미디-이를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면-를 연출했다. 그는 8월 합동참모본부 국정감사에서 "북한 ICBM은 현재 TEL로 발사 가능한 수준까지 고도화된 상태"라고 했으나 6일 정보본부 국감에서는 반대로 말했다. 북한의 '능력'이 몇 달 만에 연기처럼 사라진 건가, 아니면 8월에는 심각한 오판을 한 건가. 그것도 아니면 '똥별'의 생존 본능 발동인가.이런 못 볼 꼬라지의 연원은 알고 보니 문재인 대통령이다. 지난해 9월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약속대로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이 폐기되면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문재인판 지록위마(指鹿爲馬)이다. 동창리 실험장은 말 그대로 실험장이지 발사대가 아니다. 북한이 ICBM을 동창리 실험장에서 쏜 적은 없다. 그러나 정 실장, 청와대, 국방정보본부장은 문의 '어록'을 그대로 따랐다. 진실과 양심과 상식에 대한 모독이다. 미 군사 전문가들은 정 실장의 발언을 "입이 떡 벌어지는 거짓말" "완벽한 헛소리"라고 한다.문 대통령의 지록위마는 전방위적이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대북 정책, 검찰 개혁 등이 모두 그렇다. 아닌 것을 맞다고 하고 맞는 것을 아니라고 한다. 이에 그 수하(手下)들은 '지당하십니다'라고 '떼창'을 한다. 그 풍경이 참으로 그로테스크하다. 망해가던 진(秦)의 꼬라지가 이랬다.

2019-11-12 06:30:00

정인열 위원

[세풍] 금주령에도 술 마신 까닭은

조선시대 대구 사람인 서거정은 1486년 67세 삶의 완숙기에 조정 안팎 이야기 등을 모아 엮은 수필집 같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 나라의 금주령에 얽힌 흥미로운 글을 남겼다. 지금의 감찰 업무와 언론 역할을 했던 대간(臺諫·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 즉 대관(臺官)이 이를 어기고 예사로 술을 마셔도 아무런 처벌 없이 넘어간 사례로, 오늘날에도 회자된다."정절공(정갑손·1396~1451)이 대사헌이 되자…조정 기강을 크게 떨쳤다…금주령이 있을 적에는 대관들은 법을 철저히 지켜 술을 마시지 않았으나 간원(諫院)에서는 술 마시기를 예사로 하였다. 하루는 간관(諫官)이 술을 잔에 가득히 부어 가지고 장난으로 장막 틈으로 대장(臺長·사헌부 장령과 지평)에게 보이니, 대장도 장난삼아 소매로 뿌리쳤는데 술잔이 장막 틈으로 떨어져 대사헌 정절공 책상 앞에 굴러갔다. 여러 대장들은 두려워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대리(臺吏)들도 서로 바라만 볼 뿐 감히 그 술잔을 치우지 못하여 이 술잔이 종일 대사헌 앞에 있었다…정절공이 이르기를 '굴러 나온 틈으로 던져주라' 하니 자리에 있는 사람이 모두 그 아량에 탄복하였다…."이 일화는 아래 위 눈치 보지 않고 맡은 바 할 일과 할 말을 하는 언론(대간)의 역할을 강조할 때 흔히 인용되곤 한다. 조선은 금주령 위반자에게 최고 사형도 내리며 엄히 다스렸다. 이런 엄한 금주령도 대간에게만 너그러웠다. 이는 늘 목숨을 사선(死線)에 내놓고 왕과 고관에게 서슴없이 제 할 일과 할 말을 하는 이들을 배려했음을 드러낸 사례가 됨직하다. 조선은 그랬다.사정이 이러니 이들 존재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연산군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왕의 견제를 위해 만든 사간원을 폐지해 언관(言官)의 입을 없앴다. 자신의 잘못을 직언하고 달려드는 신하가 거슬렸을 터이다. 언관의 입을 막고 멋대로 정치를 한 독재로 그는 결국 왕의 자리를 잃었고 죽어서도 왕(王)이 되지 못하고 군(君)에 그친 재앙을 자초한 셈이다.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언로(言路)를 막으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9일로 문 정부 출범 절반을 넘어서지만 언론 정책은 뒷걸음질이다. 법무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그렇다. 이는 기소(공소) 전 형사사건의 혐의 사실과 수사 상황을 공개하지 못하게 했다. 공소 제기 뒤에도 제한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오보 기자의 법무부 출입도 제한케 했다. 한마디로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고 정부 입맛대로 할 모양이다.12월부터 시행될 법무부 조치는 반정(反正)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곧바로 사간원이 복구된 사례처럼 아마도 성공보다 실패한, 민주주의 자유 언론의 흐름을 거스르는 문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언로를 막는다고 될 일도 있겠지만, 알지 못하게 국민의 눈을 가린다고 해도 저절로 알게 되는 수도 또한 있게 마련이다. 진실은 그런 것이고, 하물며 지금은 조선의 왕조와도 다른 때임에랴.무엇보다도 정부가 법의 잣대로 숨기려는 진실을 파헤쳐 언로를 트는 일에 정열과 시간과 땀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금주령을 어기고 술은 마셨지만 할 일과 할 말을 했던 옛 그들처럼 말이다. 게다가 우리 언론은 자유당 시절 대낮 괴한들의 신문사 윤전기 파괴 사건과 1970, 80년대 군사정권 아래의 프레스카드제·기자실 통폐합, 언론사 통폐합 같은 언론 통제의 암흑도 헤쳐 나오지 않았던가. 그런 만큼 진실을 갈구하는 언론에게 이번 법무부 조치는 자칫 옛 금주령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2019-11-04 20:47:35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모래로 밥을 짓는 문재인 정권

'밥이 하늘이다'는 명제는 시대를 초월한 진리다. 먹고사는 문제, 민생(民生)에 실패한 정권은 결국 백성에게 버림을 받았다. 오죽하면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王者以民人爲天 民人以食爲天)"고 했겠는가.이런 까닭에 역대 대통령을 밥솥에 비유한 유머는 촌철살인이다. 이승만은 미국서 돈 빌려 가마솥을 장만했으나 쌀이 없었다. 박정희는 해외에서 돈을 빌려 가마솥에 쌀밥을 해놓았는데 자기는 먹지도 못했다. 전두환은 친척을 불러 모아 밥을 다 먹어버렸다. 노태우는 솥에 남은 밥을 긁어먹었다. 김영삼은 누룽지로 숭늉을 끓이려 불을 지피다가 솥을 통째 태워버렸다. 김대중은 국민 금 판 돈을 모아 새 전기밥솥을 하나 마련했는데 노무현이 코드를 잘못 끼워 전기밥솥이 타버렸다. 이명박은 밥 짓는 기술자라고 소문났으나 가스불에 전기밥솥을 올렸다가 낭패를 봤다. 박근혜는 식모(최순실)에게 밥솥을 맡겼다가 벼락을 맞았다.이 유머가 다시 회자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동참(?)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버전'은 "촛불로 밥을 지으며 기다리라 한다. 밥솥째 김정은에게 넘겨줄까 걱정이다"라는 것이다. 밥 얘기가 나왔으니 임기 반환점을 앞둔 문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은 원효 스님의 경구(警句)가 있다. "지혜로운 이가 하는 일은 쌀로 밥을 짓는 것과 같고 어리석은 자가 하는 일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지난 2년 반 동안 쌀로 밥을 짓기는커녕 모래로 밥을 짓는데 국력을 탕진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탈원전 등 현실을 도외시한 경제정책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더불어민주당은 금방 쌀밥이 나올 것이라며 호도했지만 모래로 밥을 짓는데 쌀밥이 나올 리가 없었다. 국민만 배를 곯게 됐고 대통령·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지경'이 된 남북 관계, 구멍 뚫린 안보, 외톨이 신세 외교 역시 모래로 밥을 지으려다 실패한 사례들이다.조국 사태는 모래로 밥을 짓는 문재인 정권의 실상이 드러난 결정타였다. 본인과 가족 관련 의혹이 쏟아진 조국 씨는 법무부 장관이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었다. 모래인 조 씨를 쌀이라고 우기며 검찰 개혁이라는 밥을 짓겠다고 달려들었으니 쌀밥이 나오기는 처음부터 글러 먹었다. '조국 지키기'에 올인하느라 정의와 상식, 윤리는 물론 최소한의 금도(襟度)마저 팽개친 문 대통령과 좌파 인사들의 언행에 국민은 참담했다. 국민 대다수가 모래 밥을 입에 넣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목을 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역시 모래로 밥을 짓는 연장선에 있다. 공수처는 '민변 검찰'로 변질할 우려가 큰 것은 물론 독일 나치의 게슈타포 같은 정치 수사기관을 만들어 좌파 독재를 노리는 것이란 비판까지 있다. 아무리 포장하더라도 공수처는 쌀 아닌 모래일 뿐이어서 쌀밥이 나오기 어렵다.트럼프·아베와 같은 '수준 이하' 인사를 국가 지도자로 선택한 미국·일본을 향해 혀를 찼던 적이 있다. 그러나 정권 출범 이후 조국 사태에 이르기까지 미증유의 국정 혼란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이 미국·일본보다 낫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조국 사태는 국민에게 "대통령과 집권 세력에 이 나라를 계속 맡겨도 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정권이 계속 모래로 밥을 짓는 한 이 물음에 고개를 젓는 국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2019-10-28 19:17:28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금수저 팔불출

팔불출(八不出)은 함부로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말라는 경계의 말이다. 입 밖에 꺼냈다가는 덜 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으니 조심하라는 쓴소리다. 특히 자식 자랑에 침이 마르는 부모를 칠칠치 못하다고 낮춰 보는 대목에 이르면 속이 뜨끔할 정도다.그런데 요즘 팔불출은 그냥 자랑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예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지위나 사회적 관계를 이용해 자식을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올려놓으려는 '별종' 부모가 판을 친다는 소리다. 팔불용(八不用)이나 팔불취(八不取)의 말뜻 그대로 조금 모자란다는 소리만 듣는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현대판 팔불출은 더는 웃고 넘길 얼뜨기 짓이 아니다. 입 밖에 내지 않고 교묘하게 일을 벌인다는 점에서 음흉하기까지 하다. 자신이 누려온 것을 대물림하려는 그릇된 욕심이 겉으로 드러나고 사회적 공분을 부른 예가 바로 '조국 사태'다.현대판 팔불출은 '마당발'이 특징이다. 안 건드린 데가 없을 정도로 '스펙'을 과식(過食)한다. 부모가 차려 놓은 의학논문에 이름을 올리고 여러 군데 봉사활동 다니며 인턴 하느라 곤죽이 될 정도다. 보통 집안의 아이라면 지레 지쳐 손사래를 치지 싶다. 그런데도 조국 교수의 자식은 멀쩡했다. 누가 '돈 많은 부모도 능력'이라며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했듯 스펙 쌓기에도 다 요령이 있다. 부모의 스펙 만들기 능력이 땀 한 방울 안 묻은 마른 수건을 자식에게 쥐여 줄 수 있는 법이다.경북대 일부 교수들도 미성년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끼워 넣거나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가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다. 심지어 가족 관계를 숨긴 채 딸을 자신의 전공 대학원에 입학시켜 성적과 논문, 출석 등에 각종 혜택을 준 교수가 적발되기도 했다. 성균관대의 한 교수는 학술대회 보고서에 중학생 아들을 저자로 등재했다가 다른 비위까지 드러나 해임됐다. 교육부가 전국 85개 대학을 조사해보니 2007년 이후 중고교생이 공저자로 등재된 논문만도 모두 794건이다.내 자식만 생각하는 이들의 비뚤어진 사고와 저급한 윤리의식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소위 '엄빠 찬스'(부모의 지위를 이용한 특혜)는 제 자식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는 공정한 경쟁과 기회 균등의 원칙을 좀먹는 독(毒)이다. 과거 일부 엘리트층의 부도덕과 탐욕이 국가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치명상이 되었는지는 국민이 더 잘 안다.일이 터지고 나서야 대통령이 입시 제도 개선을 지시하고 여당은 특별법을 만들어 '국회의원 자녀 입시비리 전수조사'를 하겠단다. 여기에 야당은 "고위 공직자 자녀도 포함시키자"며 대립각이다. 설령 여야가 타협점을 찾아 제도가 바뀐다고 해도 기득권층의 의식과 풍토까지 바뀔지는 의문이다.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꾸는 기회를 독점하기 위해 약삭빠르게 머리를 들이밀어온 버릇대로 더 은밀히 위조·변질된 비리가 눈앞에서 벌어질지 누가 또 알겠나. 인성과 교양은 아예 엿 바꿔 먹은 소수 엘리트층이 존재하는 한 달라질 게 많지 않다.독재는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윤리와 양심을 내팽개친 채 혼자 벌이는 춤판이다. 소수의 기득권층이 부정한 수법으로 남의 몫까지 가로채는 반칙의 처세가 바로 독재다. 국민이 함께 땀 흘려 일궈 놓은 단물을 일부 계층이 독식하는 것은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법과 원칙을 짓밟는 한국의 기득권층은 역사와 사회의 파괴자일 뿐이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누려야 만족하려는지.

2019-10-21 19:08:15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세계적인 동화작가 루이스 캐럴이 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꿈속에서 토끼굴에 떨어진 한 소녀가 이상한 나라로 여행하면서 겪는 신기한 일들을 실감나게 그렸다. 담배 피우는 애벌레, 가발 쓴 두꺼비, 신출귀몰하는 고양이 등 허무맹랑한 동물들을 만나는 것은 물론이다.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눈물의 연못에 빠지기도 한다. 가는 곳마다 기상천외한 갖가지 사건들과 마주친다.터무니없는 오해에다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한다. 일상 사회와는 전혀 상반되는 일들이 한없이 뒤죽박죽 얽히며 이상한 재판에도 참석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기발한 상상력과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들까지 매료시켰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꿈속의 이야기이고 동화일 뿐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지금도 꿈꾸고 있다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이상한 나라'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그러나 현실과는 영 동떨어진 몽상가적 발상과 발언 그리고 황당무계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을 보면 그 유사성을 부인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나라 안팎의 모든 영역에서 불협화음이 갈수록 높아지며, 벌이는 일마다 뒤틀려 국민들이 탄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만사형통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이른바 한반도 프로세스로 돌아온 것은 북한의 핵 무장과 노골적인 욕설뿐이다. 외교와 안보는 어떤가. 동맹인 미국과의 불협화음 속에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의 집단 린치만 당하고 있는 꼴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며 기업과 가계에 망조를 일으켜 국가경제가 시들어가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을 내팽개치고 신재생에너지를 한다며 산업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정치도 경제도 안보도 외교도 멀쩡한 것이 없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그래도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가슴이 뜨겁다'고 딴 세상 사람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얼마나 더 망가져야 그런 나라가 되는지, 이 모든 것이 그냥 한바탕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국민이 많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의 압권은 단연코 조국 사태였다.악마는 스스로의 악행을 알까 모를까? 독일의 문호 괴테는 희곡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통해 이 오래된 질문에 호응한다. 학문적인 경지에 이르렀지만 영원한 진리에 목말라했던 파우스트를 악으로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의 악행을 인식하고 있다. 비록 악마이지만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대해 솔직해서 차라리 시원하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혼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온, 일반인의 상식과 상상조차 뛰어넘은 한 인간의 그 거짓과 위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해대던 그 뻔뻔함에, 숯덩이가 껌정을 지우겠다고 날뛰던 적반하장의 망동에 국민들은 현기증과 더불어 구역질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 판국이면 차라리 메피스토펠레스가 그리울 지경이었다.그런데 그 궤변과 요설을 한사코 옹호하던 세력들은 또 뭔가. '우리가 조국' '정경심 사랑'을 외치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평범한 일상에 충실한 국민들로서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정신세계이다. 상식과 통념마저 흔들리는 정신적 혼란과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도 너무도 당당하던 그들의 모습에, 멀쩡한 국민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가 이상한가?'라고 반문하곤 했다. 참 이상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2019-10-14 19:21:08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검찰 개혁 촛불, 타올라라

독점은 폐해를 낳는다. 역사 속 그런 사례는 널렸다. 권력이든, 어디든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견제되지 않아서다. 특히 독점 권력은 독재로 흐르기 마련이고,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까운 역사에서 목격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권력 독점의 비참하고 초라한 종말에서.지금도 그런 독점의 한 권력이 있다. 검찰이다. 법으로 보장한 기소 독점이 그렇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만만찮다. 수사하고 기소하든, 그렇지 않든 오로지 검찰 권한이고 편의대로다. 속된 말로 엿장수 가위나 다름없다. 힘 있고, 가진 이에게는 너무 좋은 잣대다. 반대의 맞은편 사람에게는 가혹하고 편파적인 법의 그물이다.지금 유례없는 검찰 개혁을 외치는 촛불이 켜졌다.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벌어진 촛불 시위 참가자가 10만 명, 200만 명 논란이지만 이는 본질이 아니다. 이날 외친 구호는 검찰 개혁과 조국 법무부 장관 지지이다. 조 장관 문제는 숱한 의혹이 제기된 만큼, 검찰이 두려워하지 말고 본연의 수사로 진실을 국민 앞에 밝히면 절로 풀린다.그러나 검찰 개혁 목소리만큼은 반드시 짚을 일이다. 검찰 개혁 촛불 시위자가 이런 대규모인 사실만으로도 검찰 스스로, 오랜 세월 쌓인 검찰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했을 터이니 말이다. 검찰이 독점 권력만 믿고 자행한 비리와 횡포는 '스폰서 검사' 같은 널린 악행을 굳이 들지 않아도 될 만큼 여럿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검찰에 대놓고 "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주문한 일은 조 장관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드러낸, 분명한 잘못이나 발언 내용 자체는 새길 만하다. 검찰 수사에서 '절제되지 않은 검찰권 행사'로 하나뿐인 목숨조차 끊는 비극도 봤던 국민으로서 대통령 지적에 공감하며 검찰권 행사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검찰 불신은 지난해와 올해의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결과와도 통한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조사에서 검찰 신뢰도는 지난해 꼴찌 국회(1.8%)보다 한 단계 위의 11위로 2%였다. 올해 역시 꼴찌 경찰(2.2%)과 국회(2.4%)에 좀 앞섰지만 3.5%로 10위였다. 두 해 연속 5.9%였던 법원 신뢰도에 많이 뒤지니 같은 법을 다루는 기관이면서 국민 신뢰는 딴판이다.그래서인지 국민권익위원회의 검찰 청렴도 조사 결과도 별로다. 국민이 평가한 외부청렴도는 지난 2017년 4등급, 지난해 5등급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검찰 직원 평가인 내부청렴도는 2017년 3등급, 지난해 2등급으로 올랐다. 이상하지 않은가. 국민은 청렴하지 않은 검찰로 보는데 스스로 청렴하다고 생각하니 믿지 못할 검찰의 자체 판단이고 의아스럽다.사실 검찰 개혁과 관련, 이런 자료는 아무리 많아도 쓸데없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대더라도 검찰은 법에 의해 독점 권력을 누리며 견제되지도, 절제되지 않아도 될 만한 배경을 갖고 있어서다. 지금껏 통치 권력과 검찰은 서로 잘 적응하며 지냈으니 굳이 개혁할 필요도 없었다. 검찰 개혁은 그저 말장난에 그쳤던 지난 역사는 그랬다.그래서 이번 촛불은 조 장관 구하기와 지키기에 쓰이면 안 된다. 이날의 촛불은 절제되지 않은 검찰 권력 독점의 전횡을 막을 개혁이 이뤄지는 날까지 타야 한다. 검찰 개혁의 촛불이 조 장관 지지에 독점되고 변질되는 일은 곤란하다. 지금을 검찰 개혁의 적기로 삼으려면 더욱 그렇다. 검찰 개혁을 위해서 이번 촛불이 제대로 타면 성공이고, 또 다른 역사의 촛불로 기억될 것이다.

2019-10-01 06:30:00

이대현

[세풍] 문재인 대통령의 '죄과(罪過)들'

노무현·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죄과(罪過·죄가 될 만한 허물)를 저질렀다. 누구에게 뭘 받았느냐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한 주범(主犯)이란 죄과가 훨씬 더 중하다.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이 없었다면, 박근혜가 빌미를 주지 않았다면 문 정권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이 이 나라를 미증유의 혼돈으로 몰아넣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지경으로 끌고 간 탓에 두 전직 대통령의 죄과는 더 무거워졌다.체크 리스트(check list)를 갖고 문 대통령의 집권 2년 5개월을 평가하면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단순한 잘못이나 허물 수준을 넘어 죄과가 갈수록 쌓이고 있다.급기야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현직 법무부 장관이 자택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조국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조 장관에게 있지만 근본 책임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과 '무슨 공동체'이기에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을 이렇게나 비호하는지 국민은 매우 궁금하다.지난 한 달여 동안 조 장관과 가족, 문 대통령 탓에 국민의 마음은 너덜너덜해졌다.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된 것은 조 장관이 아니라 국민이다. 검찰 수사 대상자가 검찰 개혁에 나선 기가 막힌 상황에 국민은 "나라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란 자괴감마저 느끼고 있다. 조 장관 자신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한데 왜 국민이 부끄러워해야 하고 고통받아야 하나. 문 대통령과 정권이 내세운 평등, 공정, 정의는 시궁창으로 굴러떨어졌다. 국민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준 죄과를 문 대통령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약속을 제대로 지켰나.조국 사태 하나만 보더라도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자신을 지지하는 진영만을 염두에 두고, 이를 바탕으로 내년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을 도모하려 조 장관을 감싸고돌고 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를 포기했다. 이렇게 국민이 갈래갈래 찢어지고 격렬히 싸운 적이 있었던가. 국민 통합을 이끌어내 국가 발전에 앞장서야 하는 대통령(大統領) 책무를 문 대통령은 방기(放棄)했다. 이 또한 죄과다.세계가 부러워하던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나라'로 만든 것도 문 대통령의 죄과 중 하나다.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으로 경제가 망가지고 국민 삶은 피폐해졌다. 세금 펑펑 쓰는 것밖에 모르는 정권 탓에 국가채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미래세대에 큰 짐이 됐다. 탈원전으로 국부(國富)를 축적할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찼다. 북한 비핵화는 물 건너갔고 미사일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일본 등 우방과의 관계가 틀어져 국제 무대에서 외톨이 신세가 됐다. '국민 불안(不安)지수'를 매긴다면 어느 때보다 높을 것이다.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위대하고 번영하는 나라 대신 국민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통령'을 갖고 말았다. 죄과로 얼룩진 대통령 말이다. 임기가 반(半) 남은 문 대통령이 죄과를 줄이고 성과를 내려면 이제라도 결단해야 한다. 첫 결단은 '조국과의 결별'이다. 나라가 나라 꼴이 되려면, 국민 상처를 조금이라도 보듬으려면 조 장관을 하루빨리 경질하는 게 맞다.

2019-09-24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반조(反趙)와 반조(反曺)

조광조의 첫 관직은 조지서(造紙署) 사지(司紙)였다. 종이를 만들고 관리하는 하급 관리다. 진사시를 거쳤지만 아직 문과를 통과하지 않았고 음서도 아닌 그가 34세에 종6품 벼슬을 받은 것은 이조판서 안당(安塘)의 발탁 때문이다. 성균관 유생 중 조광조와 김식 등 신진사류가 함께 특채됐다.하지만 조광조는 이런 '조행'(操行) 천거를 마뜩잖게 여겼다. 품행 등 평판에 기초한 천거를 말한다. 당시 그는 소학을 늘 몸에 지니고 애독했는데 중종반정 공신 등 실권을 쥔 소인배들은 '모름지기 소학을 열심히 읽으라. 사지의 공명이 절로 온다네'(一部小學須勤讀 司紙功名自然來)라며 비꼬았다. 그러나 곧 알성시에 급제해 성균관 전적(典籍)으로 승진했고 이어 사간원 정언(正言)과 경연시독관을 겸임하며 중종의 신임을 얻는다.언관으로서 조광조의 첫 소임은 반정 공신인 대사간 이행, 대사헌 권민수의 파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행 등이 상소한 사람을 도리어 탄핵하고 언로를 막아 국가를 위태롭게 했다는 게 파직 주청의 명분이었다. 빗대자면 감사원의 하급 공무원이 대통령 면전에서 직속상관인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의 파면을 요구한 격이다. 조광조는 집안 단속을 잘못한 하인을 심하게 나무라던 스승 김굉필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든 군자의 사기(辭氣)는 조심하는 게 옳습니다'며 직언할 정도였으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조광조의 도학정치에 귀가 솔깃했던 중종은 한 달 사이에 네 번이나 승차시킬 정도로 그를 신임했다. 출사 3년도 안 돼 당상관이 된 그의 사례가 얼마나 파격이었으면 실록에 사관이 견해를 남길 정도다. 그런 조광조의 개혁 정치도 훈구파와의 대립과 반목이 깊어지고 홍경주·남곤 등의 모함으로 파국을 맞는다. 개혁과 반개혁의 피 튀기는 정쟁이 기묘사화라는 결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1519년, 조광조는 사사됐다. 꼭 500년 전의 일이다.요즘 우리 정국의 소용돌이는 조국 법무부 장관이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불미스러운 일이 국민 심기를 크게 어지럽혔다. 장관이 되자마자 윤석열 검찰을 겨냥한 무리한 개혁 행보도 논란을 불렀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하루가 멀다하고 조 장관 파면을 요구하면서 정국이 온통 '조국 블랙홀'에 빨려드는 처지다. 마치 청산과 개혁의 대상이 된 훈구파의 반조(反趙)와 지금의 반조(反曺) 저항이 묘하게 치환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역사에 보이듯 조광조의 개혁 정치는 중도에서 꺾였다. 못나서가 아니라 그의 창이 기득권 세력의 두터운 방패를 뚫지 못해서다. 혁신과 수구의 틈바구니에 낀 중종의 환멸과 변심도 한몫했다. 지금의 우리 국민처럼 말이다.그렇다면 주권자인 국민은 얼마만큼 조국의 검찰개혁을 납득하고 동조할까.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검찰의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하지만 검찰을 제 입맛대로 뜯어고치고 바꾸려는 정치권의 시도는 자칫 엉뚱한 결말을 낳는다.오늘부터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가 열린다. 만약 조국 장관 파면을 둘러싸고 여야가 극한의 힘겨루기 판을 벌인다면 국민 실망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진정 국민과 나라를 위한 국회가 되도록 여야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조광조는 '군자소인지론'에서 '큰 간신은 충신 같고, 큰 탐관은 청백리 같다'고 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누가 군자이고 소인배인지 정확히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희박한 쪽이 간신이고 탐관이다. 여야 모두 자기 위치가 어디인지 곰곰이 따져볼 때다.

2019-09-17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신라의 달밤

'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온다….' 1949년 가수 현인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온 가요 '신라의 달밤'은 공전의 히트를 거듭하며 '경주'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되었다. 그러나 그 안팎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천년고도 경주'를 상징하는 노래로서 품격과 내용을 갖췄는지에 대해 마뜩잖은 시선을 건네는 사람들도 많다.우선은 이 가요의 탄생을 둘러싼 군국주의의 눅진한 체취 때문이다. 이 곡은 일제강점기 말 악극단의 무대공연에서 이국 풍경을 표현하던 춤과 노래였다는 분석이 있다. 원곡은 '인도의 달밤'이었는데 작사가 조명암이 월북하면서 '신라의 달밤'이라는 제목과 노랫말로 대신했다는 주장도 있다.'신라의 달밤' 노래 한 곡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가수 현인과 작곡가 박시춘의 친일 이력도 께끄름하다. 게다가 가수 현인이 경주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데다, 노랫말 또한 천년왕국 신라의 정서를 대변하기에는 너무도 무미건조하다. 일본서 성악을 전공한 가수의 독특한 창법도 경주의 내면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른바 '조폭영화'가 유행하던 2000년대 초 개봉한 '신라의 달밤'도 시답잖기는 마찬가지다.경주로 수학여행을 온 고교생들이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에서 화끈한 패싸움을 벌였다. 당시 동창생이던 특별한 두 남자가 10년 후 우연히 경주에서 재회하게 된다. 모범생 친구는 지능적인 조폭이 되었고, 싸움 짱이던 녀석은 체육교사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이 한 여자를 놓고 벌이게 되는 사랑과 우정의 코믹 액션이 그 내용이다. 이런 한 영화의 제목이 왜 하필이면 '신라의 달밤'인가?영화를 애써 폄하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신라의 달밤이 이런 경박한 정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천년 세월의 흥망성쇠가 스며 있는 무궁한 문화유산의 보고 경주의 달밤이 아닌가. 달밤에 대한 미학적 접근도 그렇다. 백제 가요 '정읍사'에서 서정적인 공간으로 탄생한 이 땅의 달밤은 신라 향가에서 종교적 심미감과 형이상학적 중량감을 보탰다.경주가 낳은 작가 김동리는 수필에서 '보름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고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황홀하고 슬프고 유감한 것'이라며 보름달의 고전적인 완전미와 조화적인 충족감을 찬양했다. 전성기 신라의 달밤이 그랬을 것이다. 신라의 달밤에는 영지못가에서 탑(塔) 그림자를 찾는 순정의 아사녀가 있었고, '달빛 아래 밤드리 노니다가 돌아와 다리가 넷인 것을 보고' 오히려 춤을 추는 처용의 파격도 있었다.무엇보다도 경주의 달밤에는 불국정토를 지향했던 신라인들의 고차원적 세계관과 풍류와 원융의 인생관이 흠뻑 배어 있다. 유불선이 공존했던 신라의 달밤은 청정과 광명, 유현과 적막의 정서에다 개방과 포용, 도전과 혁신의 정신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런 신라의 달밤을 다시 부활해야 한다. 그나마 '신라의 달밤 걷기대회'가 그 초승달을 띄운 것이라면 이제 반달로 키우고 원만구족한 보름달로 가꿔야 한다.새로 등장한 경주호의 선장이 각별한 의지를 가졌다면 신라왕경 복원사업에 청신호가 켜진 지금이 풍요로운 신라의 달밤을 재현할 호기이다. 황룡사와 에밀레종, 불상과 석탑 그리고 금관과 토기를 비추던 달빛은 어디로 갔는가. 화랑 관창과 김유신 장군, 원효와 혜초 스님, 선덕여왕과 무열왕, 장보고와 최치원이 그리던 달을 되살려야 한다. 경주는 한국 문화의 근간이다. 올 추석 한가위 달을 바라보며 '신라의 달밤'을 어떻게 수놓을 것인가를 고민하자.

2019-09-10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들어라, 개·돼지들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님! 언론은 물어뜯고 대학생들은 촛불을 들고 검찰은 뒤지고 여론은 사퇴하라 하니 얼마나 괴로우시겠습니까. 불법과 탈법은 하나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통속이 돼 조리돌림을 하면서 인사청문회를 열어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으니 이 나라는 말 그대로 개, 돼지의 나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꼭 되셔서 개, 돼지들을 올바로 이끄시길 빕니다.개, 돼지들은 귀하와 가족이 문재인 정부가 내건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당신이 무너뜨렸다고 합니다. 귀하의 딸이 고교 1학년 때 2주 인턴으로 그 어렵다는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의 제1저자가 되고 낙제를 하고도 6회 연속 장학금을 받은 게 그렇다는 것입니다.소가 웃을 일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런 길이 있는데 찾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 놓고 제 탓은 하지 않고 아버지 탓을 합니다. 귀하 같은 아버지가 없어서 용이 되지 못할 것 같다고 합니다. 패배자의 푸념일 뿐입니다. 찾아보는 노력도 하지 않고 귀하 같은 아버지도 없다면 '용' 꿈은 접고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면 될 일입니다. 선현(先賢)께서 말씀하신 '안분지족'(安分知足)이 무엇입니까. 지 '꼬라지'를 알고 찌그러져 있으라는 것 아닙니까.정유라는 '돈도 실력'이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찌 돈만이 실력이겠습니까. 서울대 교수라는 직위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그들만의 리그'는 더 큰 실력입니다. 실력만 있으면 불평등은 평등으로, 불공정은 공정으로, 부정의는 정의로 둔갑시킬 수 있는 게 우리 사회 아닙니까. 억울하면 '실력'을 갖추면 됩니다. 그런 점에서 개, 돼지들은 불순(不純)하기 짝이 없습니다. 입에 게거품을 물고 '평등, 공정, 정의'를 외치지만, 속내는 귀하의 딸이 잘된 게 배 아프다는 것 아닙니까.'웅동학원' 경영과 '가족 펀드'로 보여준 재테크에 대한 비판도 무능한 자들의 시기(猜忌)이고 투정입니다. 자본주의의 장점과 약점을 잘 활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라는 것 아닙니까.문제는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귀하처럼 명석한 두뇌와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개, 돼지들에게도 그 길은 열려 있습니다. 귀하처럼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입 닫고 조용히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개, 돼지들은 귀하에게 '왈왈' 짖어대고 '꽥꽥' 소리를 지릅니다.윤석열 검찰총장은 더 한심한 작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그를 검찰의 수장으로 앉힌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정권의 '충견'이 되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문재인 정권의 핵심 중의 핵심인 귀하에게 칼을 들이대다니요. 배은망덕도 이런 배은망덕이 없습니다. 문 대통령께서는 그에게 살아있는 권력도 치라고 했습니다. 그게 진심이겠습니까. 말귀를 못 알아들어도 유분수지, 말이 그렇지 뜻은 그게 아님을 왜 모른다는 말입니까.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기도 하지만 먼저 눕기도 합니다. 지금 개, 돼지들이 일어나는 조짐이지만 괘념치 마십시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누울 것입니다. 복지안동(伏地眼動)하다 이제 귀하를 지지하며 일어서는 개, 돼지들도 있느니 그대로 쭈∼욱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귀하 같은 능력자가 돈과 명예와 권력을 모두 쥐는 사회를 만드십시오. 그게 바로 문재인 정권식(式)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사회 아닙니까. 조국 만세! 문재인 정권 만세! https://tv.naver.com/v/9758278 영상ㅣ한지현

2019-09-03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역사의 수레바퀴

70년 전이다. 1949년 38선에서는 남북 군대 사이에 모두 847차례의 무력 충돌이 있었다. 남쪽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北進統一)을 외쳤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조선노동당위원장이 맞불 구호를 내세웠다. '조국완정'(祖國完整)이다. 즉 조국해방(祖國解放)과 국토완정(國土完整)을 뜻하는 구호다. 이렇게 두 남북 정상은 통일과 완정을 향해 마주 달렸다. 이어 1950년 북한의 6·25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터졌고 3년을 끌었다.그리고 1953년 7·27 정전으로 다시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은 갈렸다. 이후 남북은 경제, 군사, 대규모 국제행사(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과 1989년 평양 세계청년축전)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선(善)순환의 생산적 경쟁 또는 악(惡)순환의 소모적 경쟁을 벌이곤 했다. 또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역사적인 세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은 물론, 올해는 남북 분단의 현장에서 남북미 세 정상의 만남까지도 이뤄졌다.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역대 정부와는 특징적인 변화와 일이 숱하게 일어났다. 과거 보수 정권은 물론,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도 다른 차별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나라 안도 그렇지만 우리를 둘러싼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종전과는 사뭇 차이나는 흐름이 분명하다. 전통적인 우방국인 미국과 일본, 그 맞은편의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도 마찬가지다. 마치 큰일에 흔히 따른다는 일종의 조짐(兆朕)처럼 말이다.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고 빚어진 갈등과 불편한 관계, 특히 한국과 일본 간 경제 전쟁 등 깊어진 아베 총리와의 외교적 갈등,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과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두 강국에 의한 우리 영공 휘젓기 같은 침범, 북한을 에워싸고 뭉친 이들 북중러 공산사회주의 삼각 동맹 국가와의 긴장 관계가 그런 사례다. 하나같이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고 심상찮은 분위기나 다름없다. 문 정부 출범 2년을 지나면서 맞이한 국제 현실이다.그런데 걱정은 역사의 수레바퀴다. 이 바퀴는 나라 지도자나 국민의 의도나 바라는 대로 구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를 살피면 그런 일은 많다. 특히 우리 역사 수레바퀴는 생각지도, 원하지도 않는 쪽으로 구른 굴곡의 궤적을 여럿 남겼다. 굴곡진 역사에서는 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고통에 시달리는 백성이다. 다른 공통점은 지도자나 집권 세력, 그 주변에 맴돌던 부류는 뒷날을 누린 사실이다.지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심상찮은 여러 변화는 위기 또는 기회의 조짐일 수 있다. 이는 문 정부와 우리 국민의 몫이자 그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나라 안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로, 한일 경제 전쟁으로 모처럼 뭉쳤던 정치권과 민심이 또다시 갈라지고 있다. 나라 밖은 이런 국내 꼴을 이용, 자국 이익을 챙기려는 움직임에 바쁘다. 연일 포(砲) 발사 도발에 나선 북한 움직임도 그러니 한국은 마냥 먹잇감이니 걱정이다.뭇 변화를 기회의 조짐으로 물꼬를 트는 일은 아무래도 안에서 먼저 찾아야 할 듯하다. 정부와 정치권에만 맡기기보다 국민의 몫이다. 국민이 할 일은 정치권 편 가르기에 멋대로 휘둘리지 않는 자세이다. 진영 논리에 빠져 '거름 지고 장에 가는' 어리석음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아야 한다. 청문회, 정치, 반일(反日)운동 등 뭐든 상식적 잣대로 행동해 나라 안팎의 변화를 기회의 조짐으로 돌려 역사의 수레바퀴를 제대로 굴려보자. 국민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 굴린, 민주화 시위와 촛불 민심도 우린 봤지 않았던가.

2019-08-27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또 '실패한 대통령'인가

아무리 능력 없고 내세울 게 없는 아버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를 무시하거나 욕하면 자식은 참을 수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지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들으면 국민은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욕설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멸시로 여기기 때문이다.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경제'를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북한이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미사일 두 발을 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며 온갖 인신모독을 퍼부었다. "삶은 소 대가리도 웃을 일"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북쪽 총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 등 대한민국 대통령을 마구 난도질했다.1960, 70년대처럼 남북한이 대치 상태 또는 체제 경쟁을 하거나 박근혜·이명박 정부처럼 북한을 압박했다면 우리 대통령을 향한 북한의 조롱·모욕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주선하고 대북 제재 완화 등 유화 노선을 걸으며 북한과 김정은을 향해 지극정성으로 공을 들였다. 오죽하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비아냥까지 들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고마워하기는커녕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쏴대고 문 대통령을 향해 저열한 언사를 퍼붓고 있다.애초 목표한 북한 핵 폐기는 물 건너간 반면 남한을 표적으로 한 북한의 도발이 갈수록 가중하는 것을 보면서 문 대통령의 집권 2년 4개월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대북 문제는 문 대통령의 국정 제1과제였다. 그렇게도 목을 맨 대북 문제가 좌초한 것처럼 국정 전 분야에서 '실패의 증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성과는커녕 어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 대다수가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 언급한 '외톨이'는 야당이 아닌 이 나라가 처한 안보·외교 상황에 딱 들어맞는 단어다. 강대국 중 우리 편을 들어줄 나라가 하나도 없다. 미국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고 한미연합훈련에서 '동맹'이 빠지는 등 한·미동맹은 와해 상태다. 일본과는 단교(斷交)까지 거론되고 중국·러시아는 안보 도발을 일삼고 있다. 열강의 각축 속에 나라를 잃은 비참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다.'먹고사는 문제'마저 낙제점이다. 경제성장률과 고용지표는 최악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고 주가지수는 문 대통령 취임 때보다 훨씬 더 떨어졌다.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근무제 등 현실을 도외시한 고집불통 정책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탈원전으로 공공기관들과 기업들은 부실투성이로 전락했고 세계 최고인 원전산업 생태계는 붕괴하고 있다. "경제가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뿐이다.고고학자 콜린 렌프류와 사회학자 사무엘 아이젠스타트는 붕괴하는 국가의 공통점을 이렇게 집약했다. 집권층 내부의 균열과 투쟁, 관료들의 부패와 문제 해결 능력 부족, 근시안적 정책으로 말미암은 악영향, 과중한 세금 부담과 즉흥적인 땜질 정책 난무, 경제 악화 및 군사력 약화 등을 꼽았다. 이들 항목에 오늘의 한국을 대입하면 이 나라가 붕괴하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대전환하지 않고 기존 행태를 답습한다면 실패의 증거는 더 많이 쌓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민은 또 한 명의 '실패한 대통령'을 볼 수밖에 없다.

2019-08-20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누가 '친일파'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가

반일운동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상황을 보고 있으니 문득 10년 전 일본에서 경험한 해프닝이 떠오른다. 필자는 2009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시리즈 취재 차 도쿄 시나가와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묘소를 찾았다. 사전 약속을 하지 않은 불청객이었기에 묘지기 할머니는 몇 차례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취재를 허락했다.사진 촬영을 하려고 하자, 이 할머니가 막아서더니 갑자기 청소를 시작했다. 작은 운동장만한 널따란 묘소에는 낙엽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할머니 혼자 치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일행은 경로사상을 발휘해 할머니를 쉬게 하고 대신 나섰다. 1시간 남짓 땀 흘리며 청소하니 묘소 주변이 쓰레기 한 점 없이 깨끗해졌고, 무사히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안 의사 취재를 하던 중에 원수인 이토의 묘소를 청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안 의사의 일대기를 취재한 것은 '애국심의 발로'임이 분명하나, 과열된 반일 분위기를 보면 그렇게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문맥 앞뒤 떼고 이토의 묘소를 청소한 사실만 콕 집어 '친일파'로 매도될 지도 모를 일이다. '친일파'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함부로 내뱉는 세상이 되다 보니 지레 겁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일본 제품을 쓴다는 이유로, 반일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친일파'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한 지인은 연비가 좋다는 최하급의 도요타 승용차를 타는데, 곤혹스러운 일을 자주 겪고 있다. 주차한 뒤 볼일 보고 돌아와 보면 차에 껌이 붙어 있거나 커피를 쏟은 자국이 남아 있다고 했다.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가는 사람을 촬영해 SNS에 올려 놓고 '친일파'로 조롱하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필자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찬성하고 일본 제품을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강요와 압박은 싫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동참하면 될 일을 강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래전에 읽은 '반일' 유머가 생각난다.한국 대통령과 일본 왕이 만났다. 한국과 일본 국민 수만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일본 왕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국민은 제가 손을 한 번 흔들면 박수치고 환호할 것입니다." 일본 왕이 자국민을 향해 손을 흔들자 모두 박수치며 환호했다.이 장면을 본 한국 대통령이 일본 왕에게 말했다. "제가 손을 한 번만 쓰면 여기 있는 국민은 물론이고 집에서 TV 보는 국민들도 모두 환호하고 기뻐해 오늘을 국경일로 지정할 것입니다." 일본 왕은 비웃듯 말했다. "한 번 해 보시지요."그러자 한국 대통령은 일본 왕의 귀싸대기를 갈겼다.한국인에게 반일 감정은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천 년 이상 한국인의 DNA에 깊이 새겨져 있는 유전자나 다름없다. 실제 '친일파'라고 불릴 만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 국민이 '반일주의자'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밉다는 이유로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이들조차 내심으로는 '반일주의자'다.모두가 '반일주의자'임에도, 그 앞에서 '반일'을 강요하거나 상대를 함부로 '친일파'로 모욕하는 것이야말로 '매국적' 행위다. 정치에 이용하려거나 자신의 출세를 위해 날뛰는 것일 뿐, 순수한 '반일'이 아니다.상식에 반하는 강경 발언을 일삼는 정치인이나 단체는 딴마음을 가졌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반일운동'은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진행돼야 성공할 수 있다. 최소한 아베보다 도덕적으로 나은 국민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2019-08-13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기억, 망각을 뛰어넘다

한·일 양국의 기질을 비교할 때 예로 꼽는 말이 있다. '한국인은 하고 싶은 말의 120%를 말하지만 일본인은 70% 정도만 말한다'는 표현이다. 이는 정치사회적 환경이나 국민성, 인간관계 구조, 집단의식의 차이가 빚어낸 갈래라는 점에서 서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은 대체로 솔직하게 또 직선적으로 말하는 기질이다. 반면 일본인은 상대와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늘 내심을 감춘다. 이런 불분명한 태도가 미덕으로 여겨질 만큼 특유의 '찜찜하고 요령부득'의 언어 문화로 굳어진 것이다.일본인이 내뱉는 70%의 말도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것은 나머지 30%의 '남겨둔 말'이다. 대다수 일본인이 좀체 입 밖으로 내지 않는 30%의 말 중에는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할 가능성이 있는 게 함정이다. 개인과 조직, 집단, 국제 관계에서 곧잘 드러나는 일본인의 기질적 특성 즉 '맺고 끊음이 없는 어정쩡한' 화법과 '감춰진 속내(혼네)'라는 변수는 늘 논란이 되고 마찰과 혼선의 화근이다.아베 정부가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에 관한 우리 대법원 판결에 발끈해 내지르는 품위 없는 말과 행동에도 그런 독가시들이 삐져나온다. 한국에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고 경제 보복의 포문을 열었지만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커지자 뻔한 변명을 쏟아내고 거짓말로 분칠하기 시작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응 차원의 '수출규제'라고 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한국의 불충분한 수출관리에 따른 안보 문제', '안전 보장을 위해 무역관리제도를 재검토한 것' 등 포장지가 계속 바뀌고 혀가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써온 일본 신문 방송들이 이번 사태에 계속 갈팡질팡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적당히 명분을 만들기 위해 끌어대고 덧대는 전형적인 일본식 화법이 빚은 소동이다.이런 수법을 뻔히 아는데도 일본 정부와 일부 극우 언론은 여전히 낡은 화법을 되풀이한다. 3일 우리 정부가 일본의 도발에 맞서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고 결정하자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한국이야말로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참 뻔뻔하고 경우가 없는 췌언이다. 아베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난동' 등 일련의 행위에서 그동안 숨겨온 일본의 '본심'이 충분히 읽힌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꺼리는 '메이와쿠'(迷惑) 의식에 깔린 이중성과 일본 사회의 비틀어진 집단 심리도 확인했다.지난 반세기 일본이 우리에게 보인 갖가지 무례와 무도함은 그들이 앞세우는 메이와쿠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초계기 도발과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에 반발한 WTO 패소 사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등에 이성을 잃고 난리를 친 쪽은 일본이다. 일본 반도체 산업 실패 보고서이자 반성문인 '일본 반도체 패전'을 쓴 유노가미 다카시의 진단처럼 심각한 '과잉 기술병(病)'에 걸려 반도체 산업에서 도태된 일본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양국 관계를 파탄내고 한국의 앞길을 가로막는 도발뿐이다. 억지 논리와 말 돌리기, 진실 가리기 등 얕은 수의 프로파간다는 그들이 늘 써먹는 양념이다.'왜구'는 늘 한반도에서 노략질을 일삼았다. 1510년 조선의 중종은 삼포(三浦)에 살던 왜인들이 불법을 일삼자 왜관을 폐쇄했다. 이에 불만을 품고 대마도 왜구들과 합세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 군민 272명이 피살되고 수백 채의 민가가 불탔으며 왜적 295명도 죽거나 사로잡혔다. 기억은 망각을 일깨운다. 누가 제 악행을 계속 망각하고 있나?

2019-08-06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트로트 르네상스

우리 대중음악에서 '트로트'만큼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오랜 사랑을 차지해온 장르도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망향가이자 저항가로 등장해 겨레의 곡절 많은 여정과 함께하며 영욕의 세월을 건너온 트로트. 그것은 고단한 서민의 애환을 위무해온 슬프고도 흥겨운 우리네 삶의 동반자였다. 격동의 현대사를 관류하며 시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온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일본 엔카의 한국 버전인 트로트가 한반도에 상륙한 것은 1935년 '목포의 눈물'을 통해서였다. 그 후 '애수의 소야곡' '나그네 설움' 등과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명실공히 대중가요의 주류로 등극한 것이다. 광복 후 한국의 역사 속에서도 트로트는 부활을 거듭했다. 6·25전쟁 당시의 '단장의 미아리고개'와 '굳세어라 금순아'는 전쟁의 고통을 어루만졌다.1960년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트로트 선풍을 다시 일으켰지만, '왜색'으로 몰려 무더기 금지되는 파란도 겪었다. 1970년대 '트로트 고고'와 1980년대 '메들리 붐'으로 변신한 트로트는 '뽕짝'이라는 비속어를 낳기도 했다. 트로트의 '국적 논쟁'이 벌어진 것도 이때였다. '뽕짝은 청산해야 할 일제의 문화적 잔재'라는 일각의 주장에 관련 전문가들의 반박과 재반론이 한동안 전개되었다. 하지만 결말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1970년대 일본에서도 '엔카 논란'이 있었다. '일본 엔카의 천황'이라 불렸던 고가 마사오(古賀政男)가 "엔카의 뿌리는 조선이다"라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었다. 그 배경이 무엇이었을까. 우선 그는 청소년기를 식민지 조선에서 보냈기 때문에 우리 가락이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한국인들의 음악적 재능에 굴복한 심리적 상황에서 돌출한 발언이 아니었을까?그는 쇼와시대 최고의 히트곡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를 만든 자신보다 식민지 조선의 히트 가요 '애수의 소야곡'을 작곡한 박시춘의 음악성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1950, 60년대 일본 열도를 풍미한 불세출의 엔카 여왕 미소라 히바리도 한국 혈통이었다. 사실 일본 엔카계의 스타급 가수와 작곡가의 절반 이상이 한국계였던 것이다.트로트는 한국인의 음악적 감수성에 더 적합하다는 주장도 있다. 과장된 감성을 표출하기 마련인 트로트 음악이야말로 감정을 자제하는 일본의 미학보다는 농현(弄絃)과 요성(搖聲)의 진폭이 깊고 유장한 한국인의 흥취에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아무튼 트로트는 서구 문화의 일본식 퓨전이고, 일본에서 들어온 음악임을 부인할 수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세월 따라 한국인의 정서로 자리 잡은 트로트는 그 음악적 완성도 또한 일본을 추월했다. 트로트가 우리 전통음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할 이유도 없고, 왜색 논쟁에 휘둘릴 까닭도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본보다 더 잘한다는 것이다. 한일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 정치와 경제도 이렇게 일본을 넘어설 수 없을까 하는 하소연을 해본다. 문화도 그렇다.21세기 '뉴 트로트' 바람에 힘입어 바야흐로 '트로트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미스 트롯'이라는 방송 프로그램과 신세대 트로트 스타 탄생에서 보듯이 다시금 전 세대가 공감하는 대중가요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음악성 향상을 위한 형식과 내용의 혁신만 이루어진다면, 우리 고유의 정서와 한국의 멋을 담은 '트로트의 한류'도 기대해볼만하다. 이것이 곧 극일(克日)이다.

2019-07-30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일본이 '역(逆)청구권' 주장하면 받아들일 수 있나

이 칼럼은 '문빠' 등 현 정부 지지자들에겐 더 말할 나위 없고 균형 감각을 가진 분들께도 매우 불편할 것이다. 일본 식민지배라는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가 우리에게 씌운, '일본은 나쁜 놈, 우리는 좋은 사람'이라는 사고의 틀 때문이다. 이는 명백한 진실이라도 일본에 '유리'(!)하면 거부하도록 부추긴다. 그렇지 않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면 '토착 왜구' '매국노'로 몬다. 지금 청와대와 여당이 이 짓을 하고 있다.문재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될 수 없다'는 2018년 대법원 판결에 일본이 반발하자 "사법절차에 행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며 판결 뒤로 숨었다. '삼권분립'을 내세워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확인한 협정을 부인한 것이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이는 문 정부의 자기부정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는 청구권 협정과 개인 청구권의 관계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일본에게 받은 청구권 자금 중 무상 3억달러에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이 포괄적으로 감안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보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 말고 다른 '해석'이 끼어들기 어려운 결론이다. 이때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위원, 총리였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위원장이었다.이런 결론에 따라 노무현 정부는 2007년 특별법을 제정해 강제동원 피해자 7만2천631명에게 위로금지원금으로 6천184억원을 지급했다. 이런 사실에 대해 문 대통령과 이 대표는 '침묵'하고 있다. '문빠'도 마찬가지다. 왜 알고 봤더니 문 대통령과 이 대표가 '토착 왜구'였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청구권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해결됐다는 일본의 주장을 수용해 일본을 편들었는데도 말이다.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자. 일본 최고재판소가 1945년 당시 한국에 남겨두고 간 일본인의 '재산, 권리 및 이익'(청구권 협정 제2조의 표현)에 대한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결하고 아베 정부가 그 뒤로 숨는다면 문 정부는 용납할 수 있나? 물론 일본의 개인 청구권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협정에서 포기됐고 청구권 협정은 이를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대법원의 해석 방식대로라면 일본 법원도 얼마든지 '해석의 요술'을 부릴 수 있다.대법원의 '해석'의 요지는 '청구권 협정이 있었다 해도 일본의 식민지배는 불법이니 그 과정에서 있었던 강제동원 등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원용해 일본 법원이 "샌프란시스코 협정과 이어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은 없어졌다고 하나 그것은 국가의 일방적 결정으로 불법이다. 그러니 한국 내 재산에 대한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억지를 부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많은 국내 기업이 일본인의 적산(敵産)을 불하받아 성장했다. 일본 법원이 역청구권을 인정하면 그것을 다 돌려줘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결국 '개인 청구권'을 둘러싼 한일 갈등의 해결 방법은 대법원 판결과 청구권 협정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바로 2005년 민관공동위의 결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남은 길은 청구권 협정을 폐기하고 재협상하는 것뿐이다. 문재인 정부에 그럴 힘, 아니 그럴 용기나 있을까? 대법원 판결 뒤에 숨어 한다는 소리가 고작 '죽창가' '의병' '이순신 장군' '12척의 배'이니 그럴 것 같지도 않다.

2019-07-23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비일(非日), 이대로 하면

7월 1일부터 시작된 일본의 무역 보복으로 촉발된 나라 안 반응이 나날이 다른 꼴을 보이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나 번지는 듯하고, 정부 쪽에서는 조금씩 국민 정서의 자극을 겨냥한 듯한 비일(非日) 발언과 행동이 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의 인물에는 대통령부터 청와대 참모,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물꼬는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국회의원의 지난 7일 경제 보복에 대해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이란 발언이 튼 것 같다. 12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이순신 장군과 12척의 배' 발언이 있었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일본 총리를 편드는 듯한 사람을 겨냥해 '동경(도쿄)으로 이사 가라'는 말로 거들었다. 13일에는 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죽창가' 동영상으로 화답했다.이런 흐름을 훑어보면 대략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을 빼더라도, 모두 지금 정부나 여당 또는 그 외곽 조직에서 나름 안정된 자리에 현실적인 힘까지 갖추고 그런대로 추종 세력도 만만찮게 가진 사람들인 듯하다. 말하자면 끼리끼리 밀고 당겨줄 그런 지지자가 있는 사람들인 셈이다. 앞선 이런 발언과 행동은 바로 그런 쪽 입맛에 맞을 것이므로 앞으로 비슷한 일도 이어질 법하다.그러나 흔히 이런 일은 좋은 열매를 거두지 못하기 마련이다. 시대와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다. 무엇보다 지금은 맨손이나 죽창을 든 의병이 일어나 12척의 이순신 장군을 도와 마음에 들지 않은 이 나라 사람들을 몰아내 바다 건너 일본 땅 동경으로 추방할 수 있는 시대도, 분위기도 아닌 탓이다. 그럼에도 만약 굳이 그러길 바란다면 다음 문제부터 풀길 바란다.먼저 국민의 '흥미'를 끌 일을 없애는 문제다. 조정래 작가가 지난 2017년 11월 대구은행에서 강의할 때의 이야기다. 일본 작가가 한국 작가를 부러워한다고 해서 그 까닭을 물으니 "한국엔 '흥미로운 일'이 넘친다"는 대답이었다고 했다. 자고 나고 눈만 뜨면 정치 싸움부터 온갖 '재미'가 매일 넘실대는데, 문재인 정부가 과연 이를 깔끔하게 없게 하고 국민을 비일의 대열에 합류시켜 끝까지 이끌 수 있을까.다음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손꼽히는 국민의 '낙천성'이다. 분명 시간이 흐를수록 잊는 사람이 늘어날 텐데 지금 분위기가 이어질까. 지난해 12월 대구의 한 국제학술 토론회에서 나가노 신이치로라는 일본의 한 대학 명예교수는 갈등 속 한·일 방문객 교류를 이야기하면서, "한국인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냥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으나 일본인들은 주시한다"고 지적한 까닭도 이와 같은 맥락이리라.또 먹고사는 문제도 있다. 앞선 발언과 행동의 주인공처럼 걱정없이 풍족한 삶을 누리는 쪽도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으로 쪼들린 삶에 아우성인 사람도 상당하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조선은 왜 망하였나'라는 책에서 '빈곤이 조선과 북한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한 사례도 있었지만 지금은 힘든 삶이 반대의 효과를 내는 그런 시절이다. 마치 촛불 민심처럼.우리는 지금 나라 안팎에 버겁게 맞아야 할 상대가 널렸다. 똑똑한 머리에 입만 앞세우고 몸은 빠지는 그런 사람들로 비좁은 나라에서 몇몇 앞장선 사람이 의병이 되어 죽창을 들거나 이순신 장군의 12척 배에 올라타라고 하는 행동은 삼갈 일이다. 우물 속에서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필부도 이런 느낌인데 해마다 일본을 찾아 구석구석을 살피는 700만 명(2018년 한국 방문 일본인은 294만 명) 넘는 국민(2018년 753만 명)은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다. 우리에게 소리없는 비일은 꿈속의 일인가.

2019-07-16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잘못된 이념이 경제를 말아먹는 이상한 나라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힘들여 불린 재산을 탕진한 자손이 집안마다 한 명씩은 있다. 노름이나 술, 여자에 빠져 아니면 보증을 잘못 섰거나 투기로 살림을 통째 말아먹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재산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 재산을 몽땅 털어먹은 난봉꾼을 이르는 '파락호'(破落戶)란 단어가 오죽하면 국어사전에 나오겠나.집안에 부침의 역사가 있듯이 국가 역시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와 집권 세력이라면 물려받은 국부(國富)를 잃어버리거나 탕진하지 말고 잘 지켜 후대에 물려줘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제조에 쓰이는 핵심 소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로 한국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다. 재고가 남아 있어 피해가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금수(禁輸)조치가 떨어지면 반도체 생산 중단 등 가늠할 수 없는 피해가 닥쳐올 게 분명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급하게 일본으로 달려간 데서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 수 있다. 일본의 보복 조치에 발목이 잡힌 반도체·디스플레이 두 부문의 지난해 수출액만 따져도 176조원이나 된다. 수십 년에 걸쳐 공들여 쌓은 한국의 주력산업이 뿌리째 흔들릴까 걱정이다.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엔 일본 정부에 무거운 책임이 있다. '자유무역의 챔피언'을 자처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을 대상으로 경제 보복에 나선 것은 매우 잘못됐다. 자유무역 질서를 위반한 것은 물론 수십 년간 다져온 한·일 양국 신뢰를 깬 부당하고도 치졸한 조치인 만큼 하루빨리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우리 정부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총리는 "그들(한국 정부)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가 한·일 간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대법원이 강제징용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대법원 판결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노골화한 '일본 때리기' 범주 안에 있다. '토착 왜구' '친일파' 등 일본 때리기에 대일 외교는 실종됐고 일본을 더욱 격분시켰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 정부가) 감상적 민족주의, 닫힌 민족주의에만 젖어 감정 외교, 갈등 외교로 한·일 관계를 파탄 냈다"고 한 것은 적확한 지적이다.수십 년에 걸쳐 쌓은 원자력산업도 원전에 대한 막연하고도 근거 없는 불안·비난에서 비롯한 문 정부의 탈원전으로 좌초하고 있다. 500조∼600조원에 이르는 원전 건설 시장이 활짝 열렸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원전 기술력을 갖췄으면서도 탈원전으로 원전 수출 날개가 꺾였다. 100년 넘게 나라를 먹여 살릴 세계 일류의 원전 산업이 5년 임기 정권에 의해 붕괴하고 있다.시행 2년 만에 경제·고용지표를 망가뜨리면서 사망 선고를 받은 소득주도성장 역시 그릇된 이념과 비뚤어진 현실 인식이 결합해서 나온 잘못된 처방이다. 성장과 분배 모두에 실패한 소득주도성장 탓에 국민 상당수가 고통을 당하는데도 이 정부는 정책 폐기는커녕 듣는 시늉조차 않고 있다.잘못된 이념에 경도돼 나라를 망가뜨린 대표적 인사가 조선 인조다. 명·청 교체기 실리 외교로 위기를 헤쳐나간 광해군을 쫓아내고 집권한 인조는 성리학에 사로잡혀 현실을 도외시한 사대주의 외교로 병자호란을 자초했다. 인조 자신은 삼전도에 나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임금 자리를 지켰지만 호란으로 말미암은 참극은 백성이 모두 짊어졌다. 역사에서 배우고 깨닫지 않으면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2019-07-09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부울경의 그물에 걸린 권 시장

동남권 신공항과 관련한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의 생떼가 점입가경이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불가능한 일에 매달려 '분탕질'을 놓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부울경의 요구가 관철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부울경은 지난달 20일 국토교통부와 김해신공항 재검증 문제를 국무총리실로 이관하기로 합의했으니, 누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떼쓰기가 결국 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국토부 관료들이 "2016년 결정된 국가사업을 되돌려선 안 된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청와대·여당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공무원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부울경은 김해신공항 재검증 문제에 대해 애초부터 국토부를 패싱하고 총리실로 이관하는데 사활을 걸었으니 자신들의 계획대로 순항하고 있는 셈이다.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여권 고위 관계자는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김해신공항 백지화는 여권 내부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다만 백지화 이후 동남권 신공항 입지가 가덕도로 될지, 다른 곳으로 될지는 알 수 없다." 청와대·여당은 대강의 시나리오를 짜놓고 김해신공항 백지화에 이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다는 의미다.필자가 이 얘기를 듣고 '놀랍다'고 하지 않고 '흥미롭다'고 표현한 이유는 신공항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2월 문재인 대통령의 '김해신공항 검증' 발언, 3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동남권 신공항 적극 지원' 발언도 있지만, 현 정권의 속성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현 정권은 '정권 유지'라는 지상 명제에 부합하는 일 빼고는 관심이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가 되는 일'에 몰두할 뿐, 국가 운영의 원칙이라든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책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부산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달콤한 꿈에 젖어 있는데 반해 대구는 통합신공항 이전 문제에 온통 매달려 있다. 대구시는 몇 달 전만 해도 정부가 이전 후보지 선정에 아예 꿈쩍도 하지 않더니, 이제는 오히려 적극적이라며 즐거운 표정이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 방문 후 정부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권영진 시장이 잘해서도 아니고, 시민의 정성에 감동했기 때문도 아니다. 지역의 반발을 잠재우면서 가덕도 신공항으로 가는 길을 열려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부울경이 'TK는 TK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각자 공항을 하면 그만'이라고 논리를 펴는 만큼 대구는 완전히 그물에 걸려들었다.대구시는 엉뚱하게도 김해신공항 백지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며 통합신공항 이전 문제는 순풍에 돛 단 듯 해결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야 무슨 일을 할까. 어디에서 나온 낙관론인지 모르겠으나, 대구의 미래를 망치는 길로 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가덕도 신공항이 생기면 군위·의성에 들어서는 통합신공항은 '동네 공항'으로 전락한다.권 시장은 이전 추진 작업을 그만 둘 수도 없고, 계속하기도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였지만, 성향에 비춰 '계속 추진'을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 권 시장이 새로운 투쟁 방향을 세우고 공론을 모으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우환을 남길지 모른다. 공항 이전은 K2 부지를 팔아 짓는 만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한 템포 쉬며 대세를 관망하는 것도 지혜다.

2019-07-02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쓰레기산'에 던진 게 어디 쓰레기뿐일까

몇 해 전 번역 출간된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는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크게 화제가 된 책이다. 지방소멸과 자원, 에너지, 환경 등 위기의 현대사회에 재생(再生)의 실마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독서의 울림이 꽤 크다. '산촌자본주의'라는 생소한 주제를 다뤘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소멸 위기에 처한 우리 지방 도시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결코 넘치지 않는다. 산촌자본주의는 쓸모없이 버려지는 휴면 자산을 이용해 공동체와 지역사회를 되살리고 위축된 전통산업을 일으키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다.책이 다룬 사례 중 하나가 일본 건축재 제조사인 메이켄(銘建)공업이다. 목재를 다루는 이 지방기업이 산촌자본주의를 어떻게 실현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메이켄공업이 자리한 오카야마현 마니와(眞庭)시는 인구 4만5천 명의 지방 소도시다. 하지만 지금은 바이오매스 재생에너지 시설과 이로 인해 활기를 띠는 지방 도시를 체험하는 견학 프로그램이 줄을 잇는 등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돗토리현과 경계를 이룬 마니와시는 히루젠(蒜山) 등 고원 산림지역답게 면적의 80%가 산림이다. 이 때문에 '목재의 도시'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때 목재 가공업으로 호황을 이뤘으나 수입 목재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시민들은 어려움에 처했다. 이런 마니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친환경 재생에너지 즉 목질바이오매스 산업이다. 나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나무껍질과 토막, 톱밥 등 부산물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메이켄공업은 쓰레기로 버려지던 연 4만t의 목재 부산물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공장을 돌린다. 또 시청·공공기관은 물론 주민 2천 가구가 쓸 전기를 생산하는데 폐기물 처리 비용 절약 등 매년 40억원의 이득을 본다. 이들이 재활용하는 것은 시설 폐기물이나 생활 쓰레기가 아니다. 100% 목재 부산물이다. 이를 태워 에너지를 만들지만 공해는 없다.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그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17만t의 불법 폐기물이 쓰레기산을 이룬 의성군을 찾아 연내 처리를 재확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빠른 처리 지시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의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235곳에 흩어진 쓰레기산 규모가 120만t에 이르고 처리 예산만 3천600억원이 필요하단다. 엄청난 혈세로 악덕업자의 뒤를 닦아주게 생겼다.게다가 전국에서 하루에 쏟아지는 폐기물은 약 22만t가량이다. 소각 시설도 부족하고 대기오염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소각은 약 16%에 그친다. 나머지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다. 외국에 쓰레기를 내보내는 길도 막혔고, 현재로서는 땅에 묻거나 쌓아놓을 수밖에 없다.한쪽에서는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가치와 기술을 쌓는데도 우리는 자연과 사람을 위태롭게 하는 '머니자본주의'가 설쳐댄 결과다. 지난 3월 미국 CNN방송은 의성군의 쓰레기산 사태를 보도하며 '한국의 쓰레기 문제가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쓰레기산보다 더 위험하고 참담한 것은 바로 우리의 몰가치와 삶에 대한 그릇된 태도다. 지역과 사람을 살려나가기는커녕 적폐를 쌓고 강산을 더럽히고 있는 게 현실이어서다. 길은 멀어도 가야 할 길이라는 점에서 지금부터라도 바꿔야 한다. 쓰레기산에 우리의 얼까지 내팽개치는 게 과연 될 일인가.

2019-06-25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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