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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왜 우리 도로는 늘 불안하고 위험할까

[세풍] 왜 우리 도로는 늘 불안하고 위험할까

국내 운전자들에게 교통법규나 교통사고 과실 분석·상담으로 가장 친숙한 전문가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한문철'이라는 이름을 먼저 입에 올린다. 자동차 블랙박스 관련 TV 프로그램으로 유명세를 얻은 그는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유튜브에 '한문철TV'라는 채널도 운영 중인데 채널 구독자가 80만 명을 넘는다. 지난 2018년 채널 개설 이후 교통사고를 당한 운전자들과 상담하고 유튜브에 올린 블랙박스 영상만도 8천여 점, 누적 조회수가 5억2천만 회를 웃돌 정도로 큰 관심을 끌고 있다.그가 교통사고 관련 소송이나 법률 상담 등 후속 처리에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사고의 핵심에 접근해 정확히 규정을 적용하고 과실 비율을 명쾌하게 판단해 제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랙박스가 생생하게 보여주는 도로 현장의 현실을 상식과 합리주의에 기초해 해석하고 운전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도 많은 운전자들이 이 채널을 들여다보는 이유다.특히 그는 잘못된 우리의 교통문화와 불합리한 교통법규에 주목한다. 최근 교차로 '딜레마존' 사고에 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나 비보호 좌회전이나 회전교차로 사고 사례, 도저히 피하기 힘든 각종 교통사고 등에서 경·검찰과 법원이 놓친 부분을 세밀히 분석해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은 사례도 많다. 특히 지난 3월, 교차로에서 사고로 숨진 오토바이 운전자의 유족인 12세 초등학생에게 보험회사가 수천만원의 구상금을 청구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은 사례는 상식과 공익성에 대한 한문철TV의 지향점을 보여준다.지난달 중순 충북 음성에서 발생한 교통법규 위반 단속 사례도 큰 반향을 낳았다. 신호등 고장으로 교차로를 천천히 통과하다 다음 신호등에서 신호위반으로 단속된 사연인데 경찰의 어이없는 단속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신호등이 고장났으면 현장에서 수신호는 못할망정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함정 단속이나 하는 경찰관을 문책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제보자의 이런 억울한 사연에 해당 경찰서 간부가 유튜브에 실명 댓글을 올려 대신 사과하고 범칙금과 벌점 원상회복 조치를 약속하면서 겨우 사태가 무마됐다. 비록 몇몇 경찰관에 해당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교통경찰관이나 사고 조사관들의 불합리한 법 집행과 판단, 전문성에 대한 불신을 부른다는 점에서 반성할 대목이다.최근 대구지방경찰청이 벌이는 '보행자 중심 교통문화 정착' 캠페인에 대한 시민 관심이 크다. 대구경찰청은 최근 몇 달간 교차로 횡단보도를 통과하는 우회전 차량에 대한 시민 홍보와 계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까지 계도 기간을 거쳐 11월부터는 보행자보호의무 위반 행위에 대해 집중 단속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보행자가 횡단보도 근처에만 있어도 자동차를 일시 멈추도록 강제하는 도로교통법 개정도 서두르고 있다.2019년 기준 우리나라 자동차 운전면허 소지자는 3천264만9천 명이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국민이 매일 운전대를 잡는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늘 불편하다. 허점투성이의 도로교통 환경, 그릇된 운전문화와 교통법규에 대한 무지는 도로를 지뢰밭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여기에다 상식과 합리성, 공정성이 결여된 사법 당국의 공무 처리나 법 해석 등은 교통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잘못된 운전자 의식과 모순된 교통법규를 더는 그냥 보고 넘겨서는 안 된다. '왜 우리 도로는 늘 불안하고 위험할까'라는 의문이 사라질 때까지 고민하고 잘못을 빨리 고쳐 나가야 할 때다.

2020-10-20 05:00:00

[세풍] 서 일병에게 양심을 묻는다

[세풍] 서 일병에게 양심을 묻는다

서 일병. 전역해 사회에 복귀했으니 당치 않은 호칭이겠지만 실명을 기재하면 여당과 '대깨문'들이 또 어떤 난리를 칠지 몰라서 편의상 그렇게 부르겠습니다.(겁나서가 아니라 개, 돼지들이 꽥꽥거리는 게 성가셔서 그러함을 이해하길) 그리고 기자가 서 일병 모친 연배(年輩)이고, 아들도 서 일병 또래이니 편히 말을 하겠네. 그리해도 과히 결례(缺禮)는 아닐 것으로 보네.모친의 '애완견' 검사들이 군(君)과 모친, 모친의 전 보좌관 모두 '혐의 없음' 면죄부를 준 덕에 지금쯤 '다 끝났다'며 느긋하게 발 뻗고 있겠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군. 2017년 6월 25일 당직 근무 중 군이 '미귀'(未歸)한 것을 알고 전화로 복귀하라고 한 현 병장 측이 모친과 변호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니 말이네. 현 병장은 분명히 군과 통화했는데 모친과 변호인이 현 병장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다는 거지.알다시피 모친은 현 씨의 제보를 "이웃집 아저씨의 오인과 추측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했고, 변호인은 "통화할 일도 통화한 사실도 없다" "떠도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만들어 옮기는 'n'차 정보원의 전형적인 예"라고 했지. 이게 모두 거짓말일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네.무슨 꿍꿍이인지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린 애완견 검사들의 서울동부지검이 이를 폭로(?)했네. "당시 부대 복귀를 연락받은 서 씨의 부탁으로 추 장관의 전 보좌관이 지원 장교에게 전화를 했고, 장교가 현 씨에게 휴가 처리 사실을 말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 동부지검 공보관이 이를 재확인했고! "수사팀에 다시 확인했다. (통화했다는 사실은) 서 씨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다 인정했다. 그것은 팩트가 맞다."거짓말 공방이 이런 결말에 이르기까지 군은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군. 검찰 수사 결과와 공보관의 '확인'이 맞는다면 그동안 모친과 변호인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는 얘기인데 왜 그랬나? 모친과 변호인에게 진실을 말했으나 '너는 아무 소리 말고 잠자코 있어'라고 해 그렇게 됐나? 아니면 모친과 변호인에게 현 병장과 통화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고, 이 말을 믿은 모친과 변호인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 건가? 그것도 아니면 아예 모친과 변호인에게 거짓말을 해달라고 했나?기자는 그 속사정을 잘 모르네. 그러나 지금 드러나는 것은 어떤 연유이든 군이 진실하지 않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네. 27세이면 청춘의 맑고 풋풋한 향기가 배어 나오는 순수한 나이이지. 그러나 드러난 팩트만 보면 안타깝게도 군은 그렇지 않아 보이네. 동료 병사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모친의 거짓말을 만류한 흔적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으니 말이네. 부끄럽지 않나?이래서는 안 되네.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네. 이런 부끄러움을 지닌 채 어떻게 앞으로의 인생을 잘 살아가겠나? 결혼해서 가정도 꾸릴 텐데, 배우자가 '그때의 진실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건가? 2세가 태어나 거짓말을 하면 또 뭐라고 할 텐가?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할 건가?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뮤직박스'(1990)라는 영화가 있네. 아버지가 2차 대전 당시 헝가리 나치 '화살십자당'의 행동대원으로 헝가리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사실을 알게 된 변호사가 고뇌 끝에 아버지를 사법 당국에 고발하는 내용이지. 아버지를 '양심'의 이름으로 고발하는 게 작위적(作爲的)이라는 논란도 있었지만 어쨌든 양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지. 한번 볼 것을 권하네. 현 병장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듯하네.

2020-10-13 05:00:00

[세풍] 세금주도성장?

[세풍] 세금주도성장?

'부두 경제학'(Voodoo Economics)이라는 말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레이거노믹스'를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가 경멸조로 비판하면서 쓴 표현이다. 부두(Voodoo)는 서인도제도의 악마 숭배 및 주술 종교를 일컫는다. 현대 영화의 단골 소재인 좀비(Zombie)의 원형을 제공한 흑마술적 믿음이기도 하다.부시의 언급 이후 부두 경제학은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비합리적, 비과학적, 비현실적 경제정책을 통칭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이에 상응하는 한국말로는 유사경제학, 사이비경제학 등이 있겠다. 하나 더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이하 소주성)이다.소주성은 일단 달콤하다. 국민 가처분소득과 구매력을 끌어올려 내수 경제를 발전시키고 새 성장동력을 삼겠다니 꿈만 같다. 소주성 이론에 의하면 성장을 이끄는 것은 분배다. 낙수효과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과 분배 사이의 딜레마를 극복하겠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경제 발전에 무한동력 엔진이 하나 생기는 셈이다.하지만 선후가 바뀌었다. 소득은 경제활동의 결과물이지 원인일 수 없다. 전체 파이는 그대로인데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다른 사람의 주머니로 돈을 옮겨 놓는다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을까. "소주성은 마차로 말을 끌게 하는 격"이라는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지적은 핵심을 꿰뚫었다.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도 "소주성은 너무도 위험한(risky)한 모델"이라고 했다. 소득을 올려 경제를 성장킬 수 있다면 지구상에 가난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사실, 문 정부의 집권 2년 차인 2018년부터 소주성의 폐해는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었다. 경제 주체들의 의욕은 떨어지고 퍼주기식 복지정책 여파로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 소주성의 간판 격인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은 근로자들의 소비 여력을 높이기보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깎아내리고 근로자들의 고용 불안을 오히려 키웠다.정권이 무모한 도박을 멈추지 않는 사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마저 터졌다. 성장은커녕 생존이 급선무가 됐다. 팬데믹으로 경제가 멈춰서다시피 하니 밑 빠진 독처럼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소주성 로드맵을 훌쩍 뛰어넘는 확대 재정의 연속이다. 이로 인해 일시적 승수 효과로 경제적 착시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소주성과 코로나19가 합작해 낸 확대재정의 결과물은 부채 비율의 우려스러운 상승이다. 공공기관을 포함한 국가 부채와 가계 부채, 기업 부채 총액이 무려 5천조원에 다가섰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가채무 비율이 OECD 국가 평균치 아래여서 괜찮다고 한다. 빚이 무서운 돈이란 것은 만고의 진리다. 국채든, 증세든 결국 그 돈은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국민들이 갚아야 할 돈인데도 위정자들은 마치 제 돈처럼 선심을 쓴다. 예산 짜고 세금 거두는 관료들은 비어가는 곳간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세금 쥐어짤 궁리를 하고 있다. 부동산 규제책, 주식시장 양도세 부과, 중소기업 사내 유보금 과세, 중소기업 세무조사 등 목하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이 가진 행간의 의미는 거위털 뽑기 식의 세금 징수 시도로도 읽힌다.부두교 신자들은 '살아 있는 시체' 좀비의 존재를 믿는다. 살아 있으면 시체가 아니니 좀비는 '뜨거운 얼음'처럼 일종의 형용 모순이다. 소주성이라는 족보 없는 이론과 코로나19 팬데믹이 합쳐진 결과 이러다가는 '세금주도성장'이라는 변종 부두 경제학이란 용어마저 등장할까 두렵다.

2020-10-06 05:00:00

[세풍] 더 작게 듣겠습니다

[세풍] 더 작게 듣겠습니다

이 나라 땅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운명이 정해진 사람이 있었다. 오로지 주인이라는 사람을 받들어 모시고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운이 나쁘면 다른 집으로 팔려도 갔다.특히 아이를 낳아 본 적 있는 10대의 몸값이 가장 비쌌다. 이들은 양반의 재산 늘리는 좋은 수단도 됐다. 그러다 삶을 마치면 번듯한 무덤조차 없었다.죽어도 따뜻한 밥 한 숟가락, 깨끗한 물 한 그릇 떠 놓고 제대로 기리는 사람 없는 존재, 바로 종, 즉 노비였다. 조선조 한때 종의 인구가 전체의 반을 넘었고, 당시 노비법은 더없는 악법으로 평가됐다.물건과 동물처럼 팔리고 밑바닥 삶이 강요된 종은 또 옛날 양반 계급 집안 문중을 지킨 일꾼이자 후손을 경계하는 희생물도 됐다. 그 한 사례는 주인이 지은 잘못과 죄를 대신해 매질이나 처벌을 받는 일이었다.나쁜 짓은 주인이 저지르고 벌 받는 운명은 바로 애먼 종이었다. 일부 '뼈대' 있는 집안에 전하는 제사 관련 문헌에 나오는 '후손의 한 번 제사 불참 벌칙은 쌀 한 말, 두 번은 두 말, 세 번은 노비 매질할 것'이란 기록이 그렇다.이런 종의 신분 해방은 공교롭게도 양반 계급이 차별한 서자 출신 경북 경주 최제우가 동학(東學)을 창시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동학혁명과 일제 식민지배,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으로 노비는 없어졌고, 평등 사회는 어렵게 이뤄졌다.우리의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사회의 역사는 이처럼 짧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으로 우리 사회는 비로소 그처럼 바란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운 시대를 맞았다.이후 사람들은 앞으로 '평등, 공정, 정의'의 사회는 문 대통령 전후로 나눠지리라 믿었다. 그렇게 보낸 문 정부 임기 5년도 이제 절반을 넘어 퇴임 2022년 5월까지 채 2년이 남지 않았다. 그 사이 문 대통령이 외친 '평등, 공정, 정의'의 가치는 아직 유효한가.답은 "글쎄요"가 됐다. 정부와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불평등,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측근 세력의 불법 비리 감싸는 재판의 불공정, 2017년 낚싯배 침몰 사망자에 묵념하며 알뜰히 챙기던 모습과 달리 북한군 총격에 공무원이 서해 고혼(孤魂)이 돼도 침묵하는 불의(不義)와 식어버린 대통령의 애정에 국민은 당황스럽다.아무래도 문 정부의 풍성한 언어의 효과는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은 듯하다. 또한 빈 곳간에 빚을 내서라도 환심을 사는 듯 '베푼' 자선을 '자식보다 낫다'며 반기는 환영파의 큰 목청도 있지만 아예 받지 않거나 걱정하는 우국파의 한숨 소리도 깊어만 간다.공직 출신의 한 기업인은 나라 곳간이 위험하다며 정부가 처음 '기부'를 바란 것처럼 아예 재난지원금 신청을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대구시청의 한 퇴직 공무원은 정부 지원 받으려 통장 잔고를 비우는 부모의 돈을 받고도 "이래도 되나" 하며 걱정이란다.세상을 바꾸고 허무는 일에는 어떤 앞선 낌새나 조짐(兆朕)이 될 만한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조짐의 소리는 크지 않고 잘 들리지도 않을 수 있다. 또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그러니 흔히 놓치거나 깨닫지 못하기 일쑤이다. 오죽했으면 대구시의회 경우, 지난해부터 구호를 '시민의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겠습니다'로 정해 작은 시민 목소리조차 크게 들으려 할까.그런데 정작 나라를 맡은 문 정부는 넘치는 불길한 낌새에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이러다 못된 주인 탓에 애꿎은 종이 매 맞듯, 국민의 크고 작은 비판적인 소리에 귀를 닫고 더 작게 들으려는 일부 그릇된 무리 아래 서해 고혼의 희생자 신세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2020-09-29 05:00:00

[세풍] “당신도 정권의 적(敵)이 될 수 있다”

[세풍] “당신도 정권의 적(敵)이 될 수 있다”

나치를 대변한 독일의 헌법·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은 적(敵)과 동지(同志)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했다. 도덕적인 것은 선악(善惡), 미학적인 것은 미추(美醜)의 차이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것'은 적과 동지의 구분에서 출발한다고 갈파(喝破)했다.문재인 정권 3년 반을 집약(集約)하면 적과 동지로 나눠 국민을 갈라치기한 시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정권은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적을 지목하거나 심지어 만들기까지 해 위기를 모면하는 데 능수능란하다. 비판 세력을 적으로 몰아 증오(憎惡)에 찬 공격을 가하고, 정권 잘못을 덮는 데 탁월하다. 이 수법으로 지지층 결집 등 재미를 많이 본 것은 물론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하고 있다.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휴가 미(未)복귀 의혹'을 공익 제보한 당직 사병 실명을 무단 공개하고, '단독범' 운운 등 범죄자로 규정했다. 정권 비리를 수사하는 검사들을 '인사학살'한 추 장관을 비호하고 싶은 심정 이해 못 할 바 아니지만 국민을 범인 취급하면서 이름까지 공개한 것은 위험수위를 한참 넘었다. 여당 의원이 당직 사병을 적으로 삼자 친문 세력은 온라인 테러에 나섰다. 정권이 국민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국민을 공격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졌다.여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한 의원은 추 장관 아들 군 특혜 의혹을 제기한 동료 의원을 면전에 두고 "쿠데타 세력"의 "정치 공작"이라고 공격했다. 다른 한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정치 군인, 정치 검찰, 박 전 대통령 추종 정당과 태극기 부대가 만들어낸 정치공작 합작품"이라고 했다. 합리적 의심을 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적으로 규정해 공격하는 수법을 써먹고 있다.코로나 재확산은 소모임 금지 해제 등 정부의 방역 잘못이 크다. 그런데도 정권은 광화문 집회, 전광훈 목사와 특정 교회에 책임을 돌리고 공격했다. 대통령은 "현행범 체포" "구속영장 청구"까지 들먹였다. 코로나 감염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인 이유를 정권은 전혀 성찰(省察) 않는다. 적을 만들어 코로나 재확산 책임을 전가(轉嫁)하고 싶은 저의(底意)만 엿보일 뿐이다.정권은 의사 집단휴진 사태 때엔 의사들에게 화살을 쏘고, 부동산 폭등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주택자 탓으로 돌렸다. 윤미향 사태와 한·일 경제 전쟁에선 토착왜구란 비수(匕首)를 꺼내 들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은 정권의 단골 공격 대상이다. 어느 정부보다 언론 탓도 많이 한다. 정권에 의해 적이 된 이들을 리스트(list)로 만들어도 될 정도다.적과 동지를 갈라치기해 나라를 전쟁터로 만든 정권의 행태는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추 장관 아들 의혹 제기에 공감하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반대하는 사람은 정권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4·15 총선이 끝난 지 5개월이 넘도록 재검표를 않는 대법원을 비판하고, 세금 퍼주기로 국가채무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키는 정부를 질타(叱咤)해도 정권의 적이 될 수 있다. 정권을 향해 독재라고 규탄하거나 정권이 목을 매는 20년 집권을 반대하면 어김없이 적이 될 판이다. 국민 누구나 정권의 적이 되기 십상(十常)인 시대를 살고 있다.이 정권은 친일을 이유로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도 바꿀 심산(心算)인 것 같다. 차제에 애국가 가사도 바꾸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적들이 나오고, 그 적들의 피로 땅을 적시자는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가사를 방불케 하는 애국가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2020-09-22 05:00:00

[세풍] 아베와 스가, 그 가면 바꾸기

[세풍] 아베와 스가, 그 가면 바꾸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14일 집권 자민당 총재에 선출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잇따른 스캔들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지병을 구실로 사임한 아베 신조 총리의 바통을 스가가 이어받은 것이다. 16일 참의원·중의원 양원의 총리 지명 절차를 거쳐 '스가 내각'이 출범하면 경색된 한·일 관계도 조금의 변화가 예상된다.하지만 7년 넘게 아베 총리 관저의 수문장이었던 그가 '포스트 아베'로 낙점된 사실을 상기할 때 자민당 독주 체제와 일본 정치판의 속성에는 조금도 변화의 조짐이 없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한·일 관계의 거친 풍향을 감지할 수 있다. 스가는 2012년 12월, 집권 2기를 시작한 아베 신조 내각 7년 8개월 내내 관방장관직을 지키다 기시다(岸田)·이시바(石破) 등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총리 자리를 꿰찼다. 관방장관으로서 '일본의 입' '아베의 입' 역할을 해 온 그는 내각 브리핑을 통해 한국에도 널리 얼굴이 알려졌고, "안중근은 테러리스트" 등 막말로 우리 국민의 분노를 산 인물이기도 하다.이런 그의 역사적 관점이나 한국에 대한 시각을 감안하면 아베에서 스가로 릴레이된 일본 정치판의 얼굴 바꾸기는 중국 전통극 '변검'(變臉)과 쌍둥이처럼 빼닮았다. 속(연기자)은 그대로인데 겉(얼굴)만 바뀐 것이다. 변검은 연기자의 얼굴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는 가면극이다.지난 2006년 9월부터 11개월간 짧은 집권에 이어 2012년 다시 총리직에 올라 역대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거머쥔 아베는 이제 막후의 실력자로 변신한다. '바지 사장' 스가 총리의 뒷배로 수렴청정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동안 '아베의 후임은 아베'라는 소리가 줄곧 자민당 내부에서 나돌았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여론 등 분위기도 아베의 연투를 기정사실화했다. 아베 뒤를 이을 재목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그런데 코로나가 흐름을 바꾸었다. 코로나 변수가 돌출하면서 아베의 행보는 뒤죽박죽이 됐다. 힘으로 꾹꾹 눌러왔던 자신의 스캔들 위에 측근 정치인 스캔들이 덮치고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무능'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임기를 1년 앞두고 중도 퇴진의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더 버티기 힘들자 억지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지병을 핑계 삼아 '페이스 리프트'(Facelift) 계획을 감행한 것이다.하지만 총리가 바뀌어도 '어차피 아베 3기'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앞으로도 일본 정치판의 개혁과 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스가 또한 "일·한 관계의 기본은 1965년 체결된 청구권협정"이라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이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한국과의 현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의 모든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스가에게서 뭘 더 기대하겠는가.가면은 계속 바꿔치기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바꿀 가면이 없는 상황에 이르면 무엇이 남을까. 맨얼굴뿐이다. '전후 체제로부터 탈각(脫却)'이라는 깃발을 들고는 양국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아베와 일본 극우세력이 아무리 요란하게 변검술을 부려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맨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고, '다테마에'(建前)로는 진실을 계속 가릴 수도 없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이야말로 한·일 관계의 기본이자 기초다. 일본에 줄 게 많지 않고 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스가 총리의 취임에 맞춰 한국민이 주는 충고다.

2020-09-15 06:30:00

[세풍] 김명수 대법원, 진짜 '판새'가 되고 싶은가

[세풍] 김명수 대법원, 진짜 '판새'가 되고 싶은가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명될 때부터 많은 우려를 자아냈다. 우고 차베스 정권의 비정(秕政)에 '법적으로 문제없음'이란 스탬프를 쾅쾅 찍어준 베네수엘라 대법원의 한국 버전을 만들 것이란 우려였다. 기우(杞憂)가 아니었다. '곡판아문'(曲判阿文·판결을 구부려 대통령에게 아부함)에 일로매진(一路邁進)하면서 베네수엘라 대법원처럼 정권의 사설(私設) 로펌으로 전락하고 있으니 말이다.베네수엘라 대법원의 오욕(汚辱)은 1999년 차베스가 입법·사법·행정부 모두에 대한 탄핵권을 제헌의회에 부여하는 새 헌법안과 부패한 판사를 해임하고 사법부를 개혁한다는 명분의 '사법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시작됐다. 이런 위협에 대법원은 제헌의회가 갖는 모든 권한에 합헌(合憲)이란 허울을 씌워주며 굴종(屈從)했다.이에 세실리아 소사 대법원장은 "(법원은) 암살을 피하려고 자살을 택했다. 그러나 결과는 변함이 없다. 법원은 죽었다"고 절규하며 사임했다. 그 말대로 됐다. 두 달 뒤 대법원은 해산됐고 새 대법원이 들어섰다. 대법관들은 살기 위해 차베스에 있는 대로 꼬리를 쳤으나 보람도 없이 '팽'당한 것이다. 이것으로는 안심이 안 됐던지 차베스는 2004년 대법관을 20명에서 32명으로 늘리고 충직한 '애완견'들을 박아 넣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9년간 차베스에 반(反)하는 판결은 단 한 건도 없었다.이런 현실에 대해 국제법학자위원회(ICJ)는 2017년 '베네수엘라 대법원: 행정부의 도구'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개탄했다. "행정부를 정치적으로 돕기 위해 대법원은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헌법보다 하위 법령을 우선시하며, 헌법 조항에 대해 분석하지 않았고, 적법절차와 소원(訴願) 시스템을 외면함으로써 국회의 입법 기능과 행정부 감시 기능을 박탈하고 무효화했다."ICJ가 김명수 대법원이 하는 꼴을 본다면 똑같은 개탄을 했을 것이다. 전교조 합법 판결이 그렇다. 한마디로 하위 법령을 우선시하는 '해석의 요술'이다. 노동조합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근로자가 아닌 자가 가입한 노조는 법외노조'라는 의미가 당연히 포함돼 있다는 것이 상식적인 해석이다. 그게 아니면 무엇이겠나?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은 '법외노조' 통보 조항이 상위법에 없는데 시행령으로 그렇게 한 것은 '불법'이라고 했다. '법을 창조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그러면 과연 전교조는 합법노조인가. 대법원은 그렇다고 하지만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절대 아니다. 조합원 자격이 없는 해직 교사 9명이 조합원으로 있기 때문이다. 결국 김명수 대법원은 노동조합법을 뭉개버린 것이다. 노동조합법은 노조가 아니라고 하는데 대법원은 노조라고 하는 사상 초유의 법체계 교란을 국민은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해석의 요술은 김명수 대법원의 장기다. '적극적인 거짓말이 아니면 허위 사실 공표가 아니다'는 희한한 논리로 이재명 경기지사를 무죄 방면하고, 검찰의 항소장 부실 기재를 꼬투리 잡아 은수미 성남시장도 살려줬다. 이를 보고 조국, 정경심, 김경수, 유재수는 아마도 빙긋이 웃고 있을 것이다.민주당의 한 의원은 보수단체의 8·15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판사를 '판새'(판사 새X)라고 했다. 이번 전교조 합법 판결에 상식을 가진 국민은 정반대의 의미에서 똑같은 소리를 할 것 같다. 맹자(孟子)는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뒤 남이 업신여긴다"(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고 했다. 지금 김명수 대법원이 딱 그 꼴이다.

2020-09-08 06:30:00

[세풍] 입법이라는 이름의 독재

[세풍] 입법이라는 이름의 독재

'이물지'라는 중국 고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동북 지방의 황량한 땅에 '해치'라는 뿔 하나 달린 짐승이 산다. 해치는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자를 들이받고, 사람들이 서로 따지는 것을 들으면 옳지 못한 자를 문다."해치는 우리나라에 '해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상상 속의 동물이다. 해치는 '법'(法)이라는 한자와 관련이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법의 원래 글자는 '灋'(법)인데 여기에 들어 있는 '치'(廌)가 바로 해치를 의미한다. 법(灋)을 파자(破字)해 보면 '해치가 물처럼 고요하게 판단해서 그릇된 행동을 하는 자를 뿔로 들이받아 밀어낸다'(水+廌+去)는 함의를 읽어낼 수 있다.법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법은 '만인 대 만인' 투쟁의 장이 될 수 있는 사회를 질서 있게 유지시켜 준다. 하지만 법이 많다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강제력 있는 사회적 규범으로서 법은 개인과 집단에 대한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법이 많은 사회는 규제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법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사회적 공분을 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련 법이 없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라는 말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법 만능주의 탓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입법 발의 건수가 국회의원 평가 잣대가 되는 이상한 나라가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늘도 국회의원들은 새로운 법을 만드는 데 열심이다. 특히 21대 국회 들어서는 무엇에 홀린 듯 법안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21대 국회는 임기 시작 석 달 만에 3천여 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의원(300명) 1인당 10건꼴이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현행 법률 총건수 1천480개의 2배나 되는 수치를 석 달 만에 발의했으니 의욕은 가상하다 하겠다.문제는 졸속 발의 및 심의다. 집권 여당은 176석 거대 의석을 무기로 쟁점 법안들을 대거 통과시키고 있다.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있다는 자신감 아래 법안 심사 소위조차 열지 않았다. 부동산 관련 법 등 사회적 이해가 첨예하게 맞선 법안들과 이념 편향적 법안들마저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소급 입법 같은 위헌적 내용이 들어 있는 법안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사회적 논란과 이해 충돌을 부르며 부작용이 예상되는 법안들이 무더기로 통과되는데도 야당은 너무나 무기력했다.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31일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2명의 여당 의원이 유사시 의료인들을 북한에 차출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터져 나왔다. 사실상 의료인을 강제 징용하는 내용이라는 논란이 거세자 해당 의원은 "우려의 시각이 있다면 당연히 수정 또는 삭제 가능성이 있다"는 해명을 내놨다. 이런 섣부름과 무책임함도 없다.잘못 만든 법은 생사람을 잡는다. 법률을 제정할 때 숙고에 숙고를 거쳐야 하는 이유다. 법 취지가 제대로 작동할 것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각계 의견을 들어보고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무더기로 통과되는 법안 가운데 특정 집단만의 이익을 강화하고 이념에 부응하는 이른바 '청부 입법'이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다.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보면 입법 독재마저 우려해야 할 판이다. 자신의 신념과 선택이 무결(無缺)하다는 오만함으로 법을 마구 만들다가는 결국 '승자의 저주'에 걸려들 수 있다. 차라리 이렇게 주문하고 싶다. 의원님들, 예전에 그랬듯이 일 너무 열심히 하지는 마시고 세비나 타시는 게 어떨지.

2020-09-01 06:30:00

[세풍] 그래도, 환장하지 맙시다!

[세풍] 그래도, 환장하지 맙시다!

"여기서는 환장(換腸)해야 합니다."대구 사람으로 중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을 펼친 이상정 장군이 1925년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도 수백 리 떨어진 퉁허현의 한국인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주민에게 들은 충고이다. 먹을 것이 모자라는 곳이라 쌀밥은커녕 좁쌀(粟米)밥으로 허기를 때울 때니 속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었다. 식민 시절이니 나라의 안이든 밖이든 한국인의 배고픔은 같았다.특히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 이미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쌀밥과 보리밥 대신 좁쌀밥으로 배를 채우는 모습을 보고 울었던 바였다. 그런데 또다시 이역만리 남의 땅에서 '저 항우(項羽) 번쾌(樊噲) 같은 기골'의 학생들이 영양분도 적은 좁쌀밥을 먹고 견뎌야 하니 '부지중(不知中)에 눈이 흐려지고 코끝이 뜻끈뜻끈하여졌든 일'을 겪을 수밖에 없는 터라 어찌 가슴이 미어지지 않았을까그는 남의 땅, 중국 북쪽 하얼빈에서부터 남쪽 상하이, 서쪽 윈난성 쿤밍까지 드넓은 대륙을 종횡(縱橫)하며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1947년 8월 귀국 때까지 현지에 적응하는 '환장'의 삶을 견뎠다. 고달픈 '환장'의 이력은, 귀국 2개월 만에 51세로 급서(急逝)한 뒤 1950년 대구 사람들이 그의 문집 '표박기'를 바탕으로 대구에서 펴낸 '중국유기'(中國遊記)로 남아 전한다.이처럼 이상정 장군이 겪은 '환장'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환장'도 있다. 한자는 같지만 뜻은 부정적이다. 사전 풀이처럼 '마음과 내장이 바뀌어 미치겠다'는 뜻의 '환장'이다. 코로나19라는 중국 우한발 괴질이 나라를 다시 덮치면서 사람들이 곧잘 뱉어내는 말이 바로 '환장하겠네!'이다. 특히 대구는 더 그렇다. 지난 2월 18일부터 터진 코로나 전쟁에서 겨우 벗어났으려니 했는데 다시 번지니 말이다.한때는 하루 최고 741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올 만큼 대구는 모든 일상이 사라지고, 거리는 텅 비다시피 했다. 다행히 대구 사람은 특유의 인내심과 공동체 의식으로 개인적 희생도 기꺼이 감수했다. 방역 당국의 지침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철저한 준수에도 동참했다. 덕분에 끝이 보이지도 않던 국가적 재난의 최전선에서도 잘 버티며 방역 모범 사례로 나라 밖에서조차 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게다가 나라 안에서는 선거 결과를 갖고 특정 정치세력과 연계한 보수적인 지역임을 내세워 대구를 폄훼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대구에 대한 봉쇄라는 언급도 서슴지 않았다. 대구를 마치 코로나 방역 실패에 따른 국민적 분노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샀지만 대구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외환(外患)에 내우(內憂)까지 꿋꿋이 견디고 버틴 덕분에 한동안 '0'의 행진을 했던 대구였다.그런데 최근 도진 코로나 전파와 확산이 심상치 않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또다시 코로나 확진자 급증의 원인을 두고 '네 탓' 공방전이 한창이다. 과학적 원인 찾기보다 정치적 공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못된 버릇이다. 국민들로선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다. 특정 집단이나 집회에 따른 전파와 확산 관련 원인 규명은 마땅하지만 지금처럼 서로 탓하기가 과연 방역에 무슨 도움이 될까. 이러고도 방역 성공을 바라지 않을 수 없으니 환장할 만도 하다.어느 때부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부 세력의 '네 탓' 공방을 보고 있노라면 '내 탓이오!'라며 세상을 안으려고 했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커 보인다. 물론 나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대구경북인이여, 부디 '환장'하지 말고 다시 한번 코로나 잘 이깁시다.

2020-08-25 06:30:00

[세풍] 마사(馬死)의 길 계속 가는 文 대통령

[세풍] 마사(馬死)의 길 계속 가는 文 대통령

화불단행(禍不單行). 재앙(災殃)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했다. 'Misfortunes never come single'이란 영어 격언도 있다. 여러 재앙들이 한꺼번에 닥쳐와 위기에 빠진 이 나라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수해(水害)로 국민 고통이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가 2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폭등, 경제난 고통 가중, 나랏빚 폭증, 탈원전 폐해, 구멍 뚫린 안보 등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찾기 어렵다. 총체적 난국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적힌 A4 문서를 줄줄 읽으며 염장을 지르는 대통령에 국민은 절망하고 분노한다. 대통령 리더십 실종이 이 나라에 닥친 또 하나의 재앙이다.문재인 대통령 역시 자초(自招)한 재앙들로 그로기(groggy) 상태에 빠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그를 감싼 여권, 국정 독주, 부동산 정책 실패 등에 따른 민심(民心) 이반으로 지지율이 3개월 만에 30%포인트 이상 추락했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199주 만에 미래통합당에 역전당했다. 청와대 수석 몇 명을 갈아 치웠지만 민심은 더 냉랭해질 뿐이다. 총선 압승 불과 넉 달 만에 문 대통령은 집권 후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민심의 경고(警告)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데도 문 대통령은 '역시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해법을 선택했다. 조국 사태 때 써 먹었던 수법을 들고나왔다. 정책 실패 인정, 국민에 대한 사과, 국정 기조 전환이 아닌 정반대 길을 골랐다. "집값 안정" "경제 선방" 등 현실과 괴리된 주장에 야당·언론에 책임을 돌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에 대해 "경제 사령탑으로 총체적 역할을 잘하고 있다"며 힘을 실어줬다. 잘못을 인정 않고 기존 정책을 그대로 밀고 가겠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 때처럼 이렇게 하면 민심이 돌아올 것으로 문 대통령은 기대하는 것 같다.결론적으로 이는 문 대통령의 대단한 착각(錯覺)이다. 떠난 민심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민심 이반을 불러온 부동산 문제는 세금·주거비 증가 등 재산과 직결돼 있다. 주택 보유자는 세금 폭탄, 무주택자는 집값 폭등, 전세자는 전세 상승에 분노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용서할 수 있지만 재산을 뺏은 사람은 용서 못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정권이 내 호주머니에 손을 대는데 가만히 있을 국민은 없다.국민의 각성(覺醒)도 빼놓을 수 없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저는 임차인입니다' 국회 5분 연설에 국민이 박수를 쳤다. 정권 탄압에도 책무를 다하는 윤석열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국민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촛불이 일렁였던 광장에서 '문재인 타도'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지율 격변과 함께 문 정권 실체를 깨달은 국민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문 대통령은 수해 상징이 된 전남 구례의 '지붕 위의 소'를 두고 "큰 희망의 상징"이라고 했다. 이 소는 물에 잠긴 외양간을 빠져나와 헤엄쳐 지붕 위로 피난했다. 헤엄이 서툰 소는 물살에 몸을 맡겨 떠내려가다가 물가에 닿아 목숨을 구한다. 반면 말은 제 헤엄 실력을 믿고 물살을 거슬러 가다가 지쳐 끝내 익사하고 만다. 여기에서 우생마사(牛生馬死)란 말이 나왔다.최대 위기에 직면한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힘을 믿고 민심을 거슬러 마사의 길을 계속 가고 있다. 이제라도 문 대통령이 우생의 지혜를 깨닫고 그 길을 걷기 바란다. 마사의 운명을 맞는 것은 문 대통령은 물론 이 나라에도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2020-08-18 06:30:00

[세풍] 정부 손에 쥐여준 취수원 해법

[세풍] 정부 손에 쥐여준 취수원 해법

지난 4월 중순, 뉴욕타임스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도는 메콩강 사태를 집중 보도했다. 동남아시아 최대 젖줄인 메콩강 유역의 심각한 물 부족 상황과 국제분쟁을 다룬 것이다. 신문은 사태의 이면에 도사린 중국의 수자원 무기화 등 패권 야욕을 들춰 내고 중국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을 경우 메콩강 사태는 모두에게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2000년대 들어 중국은 수자원 개발을 이유로 메콩강 상류 지역에 많은 댐을 짓는 등 물 독점을 노골화했다. 메콩강 상류인 란창강에 11개의 댐을 건설한 것도 모자라 8개를 더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중국의 물 독점이 몰고 온 파장은 컸다. 메콩강의 흐름이 막히자 하류 지역 쌀 수확량과 어획량은 급감했고 역내 국가 간 갈등은 거꾸로 폭증했다.메콩강은 중국을 포함해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6개 나라 4천880㎞에 걸친 공동의 자산이다. 메콩강 유역 주변의 인구만도 6천만 명이 넘는다. 중국과 미얀마 동부 국경에 이르러 '메'(어머니) '콩'(강)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메콩강에 대한 동남아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풍부한 수량과 식량, 일자리 등을 안겨준 '어머니의 강'이 위기에 처한 것이다.2002년 착공해 8년 만에 완공한 샤오완댐은 동남아시아 각 나라의 저수 시설 용량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메콩강 유역의 물 부족은 단지 100년 만의 가뭄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그러자 뉴욕타임스는 기후학자들의 보고서를 인용해 "위성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위성이 관찰한 란창강의 수량은 평소와 같은데도 중국이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있다는 것이다.물길을 사이에 둔 다툼은 메콩강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대구와 구미는 취수원 이전을 두고 계속 등을 돌리고 있고, 경남도와 거창군은 황강 취수원 선정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운문댐 물 공급을 바라는 울산과 이에 난색인 경북도의 입장도 계속 평행선이다.취수원 해법을 두고 갈팡질팡해 온 환경부는 최근 취수원 다변화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구미경실련도 대구취수원의 구미 이전에 있어 가변식 다변화 방안을 제안했다.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 보겠다는 시도이나 구미와 안동, 거창 지역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여전히 수자원의 공유라는 접근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다.부산 지역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지난 6월 발의한 '낙동강 수계 물관리 및 주민 지원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이 눈에 띈다. 취수원을 제공한 지역에 지원의 길을 열자는 취지다. 취수원을 제공하는 지역 주민에 대한 보상을 제도화한다면 문제 해결이 한결 빨라질 수 있어서다. 지난해 낙동강수계관리기금 지출 금액 2천699억원 중 주민 지원에 고작 234억원(8.7%)이 쓰인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환경부도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물이용부담금 인상이나 수혜 지자체의 상생기금을 통한 보상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지역 자체의 문제 해결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해법이 요구되는 이유다.작가 브라이언 아일러는 '위대한 메콩 최후의 날들'이라는 책에서 "물을 특정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중국 권력 엘리트들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취수원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는 우리의 현실은 조금 다르다. 물은 함께 공유하는 공공의 자산인 동시에 한정된 자원이라는 점이다. 계산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한다. 지역사회의 대립과 주민 갈등만 키울 게 아니라 국가가 해법 도출에 앞장서야 한다.

2020-08-11 06:30:00

[세풍] 더 교활하고 더 위험한 이 땅의 ‘문민 쿠데타’

[세풍] 더 교활하고 더 위험한 이 땅의 ‘문민 쿠데타’

쿠데타는 후진적 민주주의의 증상이다. 쿠데타는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시간이 부족하거나 뿌리내리게 할 민도(民度)가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서만 나타난다. 현대 민주주의 역사는 이를 입증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알제리를 독립시키려 한 드골 대통령에게 알제리 주둔 공수부대가 반기를 들었던 프랑스다. 그러나 쿠데타는 실패했다. 반란군은 알제리 수도 알제를 장악한 뒤 프랑스 본토로 진격하려 했지만 여론이 반군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드골은 이를 쿠데타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TV 연설에서 군사 반란을 "항명 사건"이라고 낮추면서 "중남미 국가에서 벌어지는 희극 오페라 수준"이라고 조롱했다.이제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런'이란 단서이다. 바로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하는 '고전적' 쿠데타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非)무력 쿠데타라는 것도 있다는 말인가. 미국 정치학자 낸시 버메오는 그렇다고 한다. 바로 민주주의의 외양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도 쿠데타라는 것이다.('쿠데타, 대재앙, 정보 권력-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데이비드 런시먼)이런 쿠데타는 민주주의를 한 번에 산산조각 내지 않고 서서히 무너뜨린다. 그래서 국민은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쿠데타로 인식하지 못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와 그것을 파괴하는 행위 간의 경계가 흐릿하기 때문이다. 머릿수만 많으면 어떤 법이든 만들 수 있는 '다수결 민주주의'가 바로 그렇다. 이를 신봉함에서 문재인 정권과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똑같다. 법안 통과 전 거치도록 한 민주적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임대차 3법'을 '기립 투표'로 통과시켰다.버메오는 이런 행태를 '선거를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장악하는 공약성 쿠데타'라고 했는데 여당이 21대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한 것은 이를 압축해 보여줬다. '독식'은 한마디로 말해 '야당의 견제'라는 '민주적 통제' 장치를 없애고 입법부를 통법부(通法府)로 바꾼 것이다. 민주주의를 '장악'한 것이다.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는 '이른바 검찰 개혁'에서 절정을 이룬다. 문 정권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식물'로 만들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사실상 검찰총장을 겸하는 '제왕'으로 만들려고 한다. 검찰을 정권의 사냥개로 만들겠다는 소리다.이와 짝을 이루는 사법부에 대한 쿠데타는 이미 완성됐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 채워 입맛에 맞는 사법적·헌법적 판결을 준비해 놓았다. 그대로 되고 있다. 대법원은 괴상한 논리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장과 도지사를 무죄 방면했다. 민주주의를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그뿐인가. 윤미향에 대한 수사는 소식이 없다. 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 라임·옵티머스 펀드 의혹,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도 마찬가지다. 덮겠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공정과 정의에 대한 쿠데타라고 하겠다.런시먼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제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군사적 전복이 실패했다고 해서 쿠데타의 위협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어쩌면 민주주의가 외부적인 위협에 처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의 내부에 진짜 위험이 숨어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 문 정권이 벌이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점진적인, 그래서 더 교활하고 더 위험한 '문민 쿠데타'는 이 경고가 남의 일이 아님을 일깨운다.

2020-08-04 06:30:00

[세풍] 시장의 코브라

[세풍] 시장의 코브라

영국이 인도를 식민 통치하던 시절, 코브라에 물려 사람이 많이 죽자 총독부가 머리를 짜냈다. 코브라를 포획해 오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한 것이다. 총독부는 코브라 개체수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지만 순진한 생각이었다. 포상금을 노리고 사람들이 코브라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총독부가 포상금 지급을 중단하자 인도인들은 사육하던 코브라를 방생했다. 코브라 개체수는 오히려 더 늘어나고 말았다.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이 역효과를 부르는 현상을 '코브라 효과'(Cobra effect)라고 부른다. 독일 경제학자 호르스트 시버트가 만든 용어다. 탁상행정식 제도와 정책이 현장에서 어떤 실패를 부르는지 설명할 때 곧잘 인용되는 말이다. 요즘 현 정부가 내놓는 일련의 정책을 보자니 코브라 효과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부동산 대책이 대표적이다.한 분야 정책을 3년 동안 22번 내놓았다는 사실만으로 이 정책은 처참한 실패작이다. 부동산 정책의 최우선 가치는 주거 안정인데, 집값 상승에 화들짝 놀란 정부가 두더지게임하듯 세금과 규제 방망이질을 해대다 보니 시장 신뢰를 잃고 집값·전월셋값 상승을 부추겼다. 또 하나의 코브라 효과가 아닐 수 없다.여기에 속칭 '임대차 5법'이라는 여권발 초대형 코브라가 기다리고 있다. 임대료 상승률을 규제하고 임차 기간 제한을 풀어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발상인데, 부작용이 심히 우려스럽다. 한 번 임대하면 세입자를 내보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집주인은 세입자를 가릴 수밖에 없다. 전세보다 반전세와 월세를 선호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주거 비용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임대차 5법이 시행되면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이나 유럽 대도시에서나 볼 법한 월 수백만원짜리 임대료가 일상화할 가능성이 크다.사람들은 이익은 독점하고 피해는 나누려고 한다. 모든 정책이 나오면 시장 참여자는 꼼수를 찾아 대응한다. 정부가 가진 자를 적대시하면서 온갖 규제와 징벌적 과세를 가하면 그 피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약자를 보호하려고 만든 숱한 법과 제도가 오히려 약자의 목을 죄는 이유는 이런 연유에서다. 그래서 정부와 국회의원이 정책과 제도, 법률을 만들 때에는 신중해야 하고 무수한 시뮬레이션을 거쳐야 한다.하지만 현 집권 여당은 가볍고 즉흥적이다. 게다가 176석 거대 여당은 '입법 폭주'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부동산값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취지야 좋지만, 다주택 고위 공직자에 대해 승진 페널티를 가하고 안 팔고 버틸 경우 형사 처벌하겠다는 황당무계 법안을 발의한 여당 의원이 있다. 아예 1가구 1주택을 법으로 못 박자는 '부동산 민주화' 법안 추진 목소리마저 여당 지도부에서 나오고 있다. 시장경제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지리멸렬한 야당이 이런 무지막지한 법안 통과를 막을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혹여라도 국회가 이런 '코브라 효과'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대통령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해야 할 텐데, 그런 장치가 작동할지 장담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적 안목에 대한 신뢰가 안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퍼포먼스로 난생처음 펀드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심경이 복잡했다. 실물경제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 대통령이 좌파 경제 참모와 능구렁이 관료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상상되어서이다. 난감한 노릇이다.

2020-07-27 22:23:09

[세풍] 정권이 열 번 더 넘어져야 하는데도…

[세풍] 정권이 열 번 더 넘어져야 하는데도…

이 지경이면 정권이 열 번 더 넘어져도 모자랄 판 아닌가. 박원순·오거돈·안희정. 대한민국 제1·2의 도시인 서울·부산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돼 극단적 선택을 하고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한 사람은 성폭행으로 징역을 살고 있다. 송철호·김경수.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知己)'인 울산시장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및 하명 수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경남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다섯 명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박근혜 정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문 대통령을 비롯한 지금 집권 세력이 가만 있었겠나. "이게 나라냐"며 연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였을 것이다.문 정권이 넘어질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대책에 실패해 집값을 천정부지로 뛰게 만들고, 세금 폭탄을 안기고, 청년들과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부숴 버렸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은 다주택을 보유하면서 집값 상승 이익을 톡톡히 챙겼다. 툭하면 문 대통령은 민생(民生)을 들먹이지만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 지표들과 현장 비명(悲鳴)으로 확인되는 '경제 폭망'은 정권을 거덜 내고도 남는다.국민에게 고통과 절망을 안겨 준 조국·윤미향 사태, 북핵 해결은 간데없이 국민 자존심만 뭉개 버린 대북 정책 실패, 국가 안위와 직결된 한·미 동맹 붕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온 정권 관련 의혹과 비리, 이를 수사하는 검찰총장을 겁박하는 작태(作態) 등 정권이 넘어질 일들이 숱하게 많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늘어놨던 말들과 정반대 일들이 벌어지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정권이 넘어질 일들이 차고 넘치지만 문 정권은 박근혜 정권처럼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해 헌법재판소까지 갔던 노무현, 탄핵을 당해 대통령에서 물러난 박근혜를 통해 이 정권 사람들은 정권이 넘어지지 않을 수법을 체득(體得)했다. 여기에 야당 복(福)까지 타고났다.첫째는 잘못 인정하지 않기다. 박원순 사건을 비롯해 정권이 흔들릴 일들이 터져도 문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도 하지 않는다. 시간을 벌면서 집권 세력이 총출동해 물타기, 본질 흐리기, 덮어씌우기, 버티기로 사태를 무마하는 데 탁월하다. 덜컥 사과를 한 박근혜는 너무도 순진했다.둘째는 대통령 탄핵 루트(route·경로)를 장악하는 것이다. 여론을 형성하는 방송·신문을 틀어쥔 지는 오래됐다. 총선 압승으로 국회를 수중에 넣어 탄핵 경로를 완전 차단했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광장에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민노총·전교조는 애초 같은 편이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셋째는 정권 대체 세력의 부재(不在)다. 문 정권이 넘어지면 대체할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세력이 없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수권 정당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에게 정권은 애증의 대상이지만 야당은 아예 괄호 밖이다.결정적인 한계는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갈수록 정권의 선전선동에 휘둘리고, 국가에 의존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정권이 넘어질 실정(失政)들이 쏟아지는데도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는 게 이를 방증한다.혹자(或者)는 내년 서울·부산시장 선거, 2022년 대통령·지방선거에서 정권 심판·교체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이 깨어나지 않는 한 선거에서 이기는 데 능수능란(能手能爛)하고 나라 곳간까지 꿰찬 집권 세력이 선거에서 계속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론'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닥쳐올 우려가 농후하다.

2020-07-21 06:30:00

[세풍] 태백에서 한라까지, 그들 죽음을 기리며

[세풍] 태백에서 한라까지, 그들 죽음을 기리며

죄(罪)에 따른 벌(罰)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이 죽음 즉 사형(死刑)이었다. 그래서 범법자를 가둔 감옥에서도 사형수가 입고 있는 수의에 붙은 번호의 색깔도 달리했다. 붉은 색깔이다. 사형수의 하루하루는 '언젠가 다시 돌아갈' 일상(日常)을 꿈꾸는 어떤 죄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번민의 날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들을 '대우'하라고 따로 구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그러나 우리 역사에는 같은 사형이라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맞았던 죽음의 인물도 많았다. 그랬기에 이들 죽음은 날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았고, 세월이 흐를수록 되레 기리고 추모하는 죽음이 되기에 이르렀다. 뒷사람들이 이들 죽음 앞에 당당히 '의(義)로운'이라는 말을 붙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들이 바로 의병이요, 독립운동가 같은 이들이 아니던가.일제가 한국인을 억지로 옭아매기 위해 만든 법을 어겼으니 분명 '범법'이요, '불법'이었다. 나라 찾기 위한 독립의 마땅한 행동을 했으나 일제 저들에겐 사형감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범법과 불법의 허울을 덮어쓴 채 형장에서 사라진, 의병과 독립운동가로서 의로운 삶을 살다 죽음을 맞은 한국인이 얼마인지는 알 수조차 없다.마침 대구에서는 지난 2018년 '대구독립운동사' 발간(광복회 대구지부)과 함께 2019년 3·1운동 및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대구의 항일 독립운동 역사를 다시 살펴 조명하고 기리는 일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올해 들어서 코로나19의 국가적 재난 속에서도 의로운 죽음에 처한 순국선열을 기리는 움직임도 조용히 이뤄져 다행스럽다.하나는 지난 2월, 가칭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추진을 위한 민간 차원의 모임 출범이고, 이미 지난 5월 정부와 당국에 타당성 조사를 요청해 놓고 있다. 다른 하나는, 대구에서 순국한 의병과 독립운동가 등 180명의 행적 등을 처음으로 추적하여 조명한 책 '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를 지난달 세상에 내놓고 알리게 된 일이다.특히 대한광복회 백산 우재룡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한 이 책에서는 대구감옥(형무소)에서 순국한 애국지사 180명의 출신지, 활동 분야 등을 분석했는데, 여기에는 영호남과 제주도는 물론 충청도와 강원도 인물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는 이들 지역까지 관할한 사법(재판) 제도 때문이었다. 대구는 바로 그들의 순국터였던 사실이 드러났다.강원도 태백에서 제주도 한라에 이르기까지 이들 180명의 순국 애국지사와 그 유족들에게 대구는 잊을 수 없는 곳, 아니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현장이나 다름없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와 달리 대구감옥(형무소)은 지금 사라지고 잊혔으니 지난 2월 닻을 올린 민간 차원의 기념관 건립 추진과 같은 활동은 더욱 절실하다.오는 20일 오후 전국의 생존 독립운동 지사와 여러 독립운동가 후손 등 300명 넘는 발기인들을 초청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가질 예정인 행사는 그래서 코로나19도 꺾을 수 없는, 뜻깊게 여기는 까닭이다. 비록 대구에서 열리지만 영호남과 충청, 강원, 제주까지 아우르는 만큼 삼남(三南)을 넘는 독립운동 기리기 모임 성격도 있다.최근 며칠간은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백선엽 장군의 별세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논란으로 어수선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금 대구에서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순국자의 죽음을 기리는 일이 이뤄지고 있으니 죽음의 의미가 남다르게 와 닿는 요즘이다. 한 번뿐인 이승의 삶, 어찌 살아야 하나.

2020-07-14 06:30:00

[세풍] 다시 목민(牧民)을 생각하며

[세풍] 다시 목민(牧民)을 생각하며

요 며칠 각 지역 신문에서 독자의 눈길을 끄는 지면을 꼽자면 지방의회 후반기 의장단 선출 소식이다. 의회 본회의장 단상을 배경으로 꽃다발을 든 광역 지방의회 지도부 사진이 자세한 경선 보도와 함께 지면을 장식 중이다. 대구경북 31개 기초의회 중 선거가 끝난 지방의회의 의장단 선출 소식도 속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후반기 의장·부의장의 사진은 하나같이 미소를 머금은 득의양양한 표정이다.지난 2018년 6·13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의회에 진출한 의원의 임기가 이제 반환점을 돌아섰다. 남은 2년의 의회 운영을 책임질 의장단을 새로 뽑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솔직히 심드렁하다 못해 착잡한 심정이다. 내년이면 30년이라는 연륜을 쌓게 될 지방의회 존재 자체가 별로 특별할 것도 없고, 의원들 또한 지역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일꾼이라는 기대감과 평가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돌이켜보면 지금의 지방의회가 '새로운 의회'를 표어로 내걸고 새로운 생각·새로운 행동으로 성장하는 의원상을 입 밖에 내지만 바뀐 것은 거의 없다. 관례와 구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4년간 제자리 지킴을 하는 지방 유력 인사의 모임이라는 껍질만 더 단단해졌다. 지방자치를 이끌고 지역 발전을 견인하라는 뜻에서 1960년 이후 31년 만에 되살려 놓은 지방의회가 그 공백기와 같은 30년의 세월을 허송세월했다면 국민 입장에서 그것만큼 고약한 일도 없다.꼭 10년 전인 2010년 이맘때 이 지면에서 '새 목민관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통상 6·2 지방선거라고 불리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다. 짧게 요약하면 '앞으로 4년간 목민관(牧民官)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해야 한다. 만약 유권자와의 약속을 게을리하거나 지방 권력으로 주민 위에 군림하려 할 경우 4년 후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주민 대표의 자리에 선 지방의원들의 바른 마음가짐을 환기시키는 글이다.그런데 강산이 변할 만큼의 세월 동안 지방의회가 성숙해지고 꼭 필요한 기관으로 자리 잡았는지 되묻는다면 대답이 궁해진다. 지역 발전의 지렛대 역할이나 목민은 고사하고 주민에게 무거운 짐이자 근심거리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대구경북 490명의 광역·기초의원 중 일부의 사례이지만 되풀이되는 지방의원들의 낯 뜨거운 행적은 지방의회 불신과 무용론을 부르기에 충분하다.조선조 학자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관원이 많으면 토색질하는 것이 풍습을 이루어 백성은 더욱 곤궁해진다'며 경계했다. 오늘날의 사정도 결코 다르지 않다. 나무의 기운이 막히면 좀이 생기고 사람의 기운이 막히면 병이 생기듯 나라의 기운이 막히면 온갖 폐단이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의 자리가 꽉 막힌 민생의 기운을 소통시키고 해소하는 결울(決鬱)의 촉매가 아니라 주민 위에 군림하고 지방에서 호령하는 토색질의 온상이 되고 있다면 민주주의와 지방자치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질식하는 건 시간문제다. 더는 쓸모없는 자리, 꼭 필요하지 않은 벼슬아치를 파직시키는 '파용관'(罷冗官)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지방자치와 민생 안정은 지방의회의 역할과 그 굳은 결단에서 출발한다. 지방자치 30년이라면 성현들이 즐겨 써온 '삼십이립'(三十而立)의 표현처럼 세상을 향해 우뚝 자립할 때다. 남은 2년만이라도 바뀐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2020-07-07 06:30:00

[세풍] 얻어맞고도 꼬리 치는 문 정권의 조현병

[세풍] 얻어맞고도 꼬리 치는 문 정권의 조현병

"나는 당 중앙을 대신하여 사과합니다. 옌안(延安) 전체가 과오를 범했습니다. 여러분에게 훌륭한 목욕을 시켜줄 의도였지만 약품이 너무 많이 뿌려져 여러분의 예민한 피부가 손상됐습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편 사람을 다치게 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때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앙심을 품지 마십시오. 이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싸우러 나갑시다."마오쩌둥(毛澤東)이 장제스(蔣介石)의 토벌에 쫓겨 옌안으로 도망간 뒤 현지에서 벌인 '정풍(整風)운동'(1942~1945)의 희생자들에게 한 말이다. 정풍운동은 말하자면 육체적·정신적 고문을 동원한 '사상의 외과수술'로, 훗날의 '반우파투쟁'(1957~1959)과 '문화대혁명'(1966~1976)의 원형(原型)으로 일컬어진다.그 희생자는 지독한 후유증을 앓았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확고한 공산주의자로 자부했는데 '반동'으로 몰렸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옌안을 떠나지도 못했다. 전면적 자기부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남은 길은 아서 쾨슬러의 소설 '한낮의 어둠'의 주인공 루바쇼프처럼 숙청됐음에도 더 철저히 당에 충성하는 것뿐이었다.이를 위한 미끼가 마오의 '사과'였다. 대성공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청년 당원들은 비애와 안도감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그들을 잔혹하게 학대한 공산 체제를 위해 싸웠고, 그다음에는 중국인민을 고문하는 기계로 작동했다."('새로 쓰는 중국혁명사 1911-1949', 나창주)북한 김정은이 '4대 군사행동'을 '보류'하겠다고 한 직후 문재인 정권이 보여주는 행태가 이를 빼다 박았다. "항구적 평화 시대 전환을 위해서는 종전선언이 필수적"이라고 하고, "정전 협정 상태를 종식하고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하며, "유엔 대북 제재 위원들을 만나 제재 일부 완화를 강력히 요청할 것"이라고 하고, "미국이 반대한다고 우리가 (대북 지원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고 한다.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지 열흘도 안 돼 이런 소리들을 쏟아냈다. 주인에게 얻어맞고도 금방 좋다고 꼬리 치는 충견의 모습이라고나 할까.남북 관계가 '화해'냐 '긴장'이냐를 결정하는 상수(常數)는 '북핵'이다. 북핵이 존재하는 한 '종전선언'도 '항구적 평화 시대'도 '대북 제재 완화'도 잠꼬대이다. 자명한 사실이고 기본 상식이다. 문 정권 사람들에게는 이런 상식을 찾을 수 없다. 어리석거나 '종북'-기분 나쁘다면 '친북'이라고 해주겠다-이거나.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종전'을 강조하면서도 북핵에 대해서는 함구했다.국내외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의 핵무장은 사실상 완성됐다. 남은 것은 탐지와 요격이 어려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데 이것의 완성도 임박했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은 "비핵화는 개소리"라고 한다.현실이 이런데도 예고한 도발을 '철회'도 아닌 고작 '보류'한다는 김정은의 말에 감읍(感泣)했다는 듯 종전과 평화 체제로 가자고 하는 것은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현병'이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불가역적 비핵화의 첫 단계라는 문 대통령의 주장을 '조현병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조현병은 '정신분열증'을 순화한 표현이다.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서 처칠은 나치와 협상을 강요하는 전시 내각 각료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처넣고 어떻게 호랑이와 대화를 하라고 하나!" 문 정권이 바로 그렇게 하려고 안달하고 있다.

2020-06-30 06:30:00

[세풍] 권영진의 상상력

[세풍] 권영진의 상상력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갈 무렵, 시청을 출입하던 기자는 조해녕 대구시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연임 도전 하십니까?" 조 전 시장이 사고 수습에 매진하느라 점심을 배달음식으로 몇달째 해결하다가 대외활동을 막 재개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답변이 뜻밖이었다. "4년도 너무 기네요."실제로 나중에 조 전 시장은 지하철 참사 책임을 지겠다며 재선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2002년 시장에 당선됐을 때 그는 의욕에 차 있었다. 추진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취임 반년 만에 터진 지하철 참사는 그의 연임 의지를 완전히 꺾어놨다. 선출직 공직자에게 대형 참사 후유증은 이렇게 크다.요즘 권영진 대구시장을 보면 2003년 조 전 시장과 비슷한 심경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하철 방화참사와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는 지역사회의 감당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규모의 재난이다. 사태를 수습하느라 공직사회가 천신만고인데 평가는 우호적이지 않다. 안 그래도 '고담 대구'라고 불리는 판국에 신천지 교인 집단감염으로 지역 이미지가 더 나빠졌다.권 시장은 전전임 시장이 배달음식을 시켜 먹던 그 공간에서 한달 이상 야전침대 생활을 하면서 코로나19 사태 수습에 몰두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 상황을 맞았고 시의원과 설전 끝에 쓰러졌는데 '실신쇼' 비아냥마저 들었다. 권 시장으로서는 '노이무공(勞而無功·애썼는데 보람이 없음)' 고사성어가 절로 떠오를 법한 상황이다.국가물산업클러스터 유치에 성공했고 난제 중의 난제이던 대구시청사 이전지도 정했지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과 취수원 이전 같은 백년대계는 지지부진의 늪에 빠졌다. 코로나19사태를 모범적으로 극복했건만 정작 영남권 감염병 전문병원 유치는 부산에 밀렸다. 공직사회의 매너리즘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난국 속에서 최근 권 시장이 깜짝 '협치 카드'를 내들었다. 홍의락 더불어민주당 전 국회의원에게 경제부시장 직을 제안한 것이다.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전국 꼴찌 수준인 대구에서 민주당 재선 의원을 경제사령탑으로 쓰겠다는 발상인데, 두 사람 모두에게 적지않은 리스크일 터이다.사실, 이념이 판이한 다른 당 소속 정치인에게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미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새누리당)가 2014년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를 신설해 이기우 전 통합민주당 의원을 임명하고, 그 뒤에 경기도 연정부지사로 바꿔 강득구 전 경기도의회 의장을 임명한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권 시장의 '홍의락 삼고초려'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홍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시절 산자위 간사 자격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정기적 독대 자리를 가지면서 현 정부와 대구경북간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서울로 출장온 대구경북 공무원에게 국회내 자기 사무실을 사랑방처럼 쓰도록 편의를 제공할 정도로 지역 사랑도 돈독하다. 권 시장은 지난 총선 결과로 생긴 대구의 정치적 고립을 보완하는 데 홍 전 의원이 적임자라고 보는 듯하다.제안에 대한 홍 전 의원의 첫 반응은 "권 시장의 상상력이 놀랍다"이다. 사실, 보수적 기질 탓인지 대구경북 정치권의 상상력은 척박한 편이다. 선택은 개인몫이지만 홍 전 의원은 권 시장의 상상력에 화답하기를 희망한다. 리스크를 떠안지 않고서는 정치적으로 도약할 수 없다. 더구나 지역 발전은 소속 정당 및 이념보다 아래에 있지않은 가치다. '보수의 심장' 대구에 민주당 경제사령탑이라! 멋진 상상 아닌가.

2020-06-23 06:30:00

[세풍] 또 6월을 맞고 보내며

[세풍] 또 6월을 맞고 보내며

한국 고전소설 '춘향전'에는 기생 춘향을 괴롭히며 술판을 벌이는 수령 변 사또를 준엄히 꾸짖는 암행어사 이 도령의 '어사시'가 나온다. 널리 알려진 '금잔의 좋은 술은 온 백성의 피요'로 시작해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구나'로 끝을 맺는 네 구절에 각 일곱 글자로 된 7언(言) 한시이다.조선 옛 소설 속에 나온 뒤 상대의 아픈 곳을 비판하고 나무랄 때 자주 인용된다. 문재인 정권을 겨냥해 지난 2018년 자유한국당 김성원 원내대변인도 '적폐 인사 임명하고 버티는 것은 문 정권의 오만이요'로 바꿔 '서해는 천대하면서 북한에 아첨하니 근심 소리 높구나'로 끝낸 개사도 그 사례다.이 흘러간 시가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 7월 5일 대구의 한 초교 강당의 군사 법정에서도 울려 퍼졌다. 북한의 남침에 맞서 아수라장이 된 싸움터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겹게 여길 때, 낯선 군사재판의 임시 법정에서 웬 술타령을 엄히 꾸짖는 검찰관(김태청)의 논고문까지 등장했을까.'금잔에 담긴 좋은 술은 방위군 장정들의 피요(金樽美酒民兵血)/ 옥으로 만든 상 위에 차려진 음식과 안주는 장정들에게서 짜낸 기름이라(玉盤佳肴壯丁膏)/ 물 쓰듯 항목 바꾼 예산 탕진에 장정들의 눈물이 흐르는구나(項目流時兵淚流)/ 웃음소리 높은 뒤꼍에는 울음소리 높은 줄 알아라(笑聲高處哭聲高).'논고를 들은 죄인은 우리 국방사에 길이(?) 남을 부정부패 사례인 이른바 '국민방위군사건' 관련자 16명. 이들은 후방 군병력 확보를 위해 1950년 12월부터 모은 수십만 젊은이에게 줄 돈과 쌀, 옷 등을 빼돌려 5만 명을 굶겨 병들고 얼어 죽게 만들고 술판 등에 50억원 넘는 돈을 흥청망청 쓴 혐의다.어찌 그들만의 잘못이랴. 그들이 전쟁의 한가운데 겁 없이, 매일 죽어가는 젊은 예비 군인들의 뻔한 사정을 알면서도 빼돌려 헛되이 쓴 일이 저들만의 소행일까. 오죽했으면 어느 누가 '옛일을 말해버릴까'라고 했다가 '덮고 가자'며 달래는 상사의 호소(?)에 억울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고 하지 않는가.공범이 누구였든, 또 다른 윗선이 누구였든, 이들 가운데 5명은 사형선고를 받은 뒤 그해 8월 13일 대구 달성군 화원면 앞산 자락, 오늘날 달서구 송현동의 한 골짜기에서 총살로 한 삶을 마쳐야만 했다. 매일신문은 당시 8월 14일 자에서 '세인(世人)의 이목(耳目)을 끌던 국민방위군 의옥사건'의 끝을 전하며 '영화(榮華)의 주인공들 이슬로 사라지다'라는 제목을 달았다.한국전쟁 기간(1950. 6. 25~1953. 7. 27) 가운데 34일(1950. 7. 16~8. 18), 잠깐 한국 수도였던 대구는 이런 슬픈 한국전쟁사 일부를 품고,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 보루였기에 군대와 전쟁에 남다를 수 있다. 잇따른 군의 부정부패나, 최근 불거진 지휘자의 갑질과 같은 꼴불견의 여러 일탈은 더욱 그렇다.최근 청와대에 한 기업인 아들이 군 복무 중 멋대로 휴가를 가고 홀로 생활관을 쓰거나, 부사관을 심부름꾼처럼 부린 일 등 '황제 군 복무'의 일탈을 고발한 글이 올랐다. 공군은 15일 수사를 시작했다고 밝혔고, 원인철 공군 참모총장은 "대국민 신뢰가 이렇게 무너진 적은 거의 없었을 정도"라고 고백했다.군기 문란의 극치로 국민 심기가 불편하고 어수선한데, 북한은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위협으로 연일 험한 말을 내뱉지만 문 정부는 말이 없다. 여기에 범여권 국회의원 173명은 북핵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 몰이에 나설 모양이다. 뭔가 불안이 나라를 휘감는다.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자녀를 군에 보낸 힘없는 부모들 속앓이가 산하를 울리는 요즘이다.

2020-06-15 20:03:48

[세풍] 文 대통령은 무엇을 팔고 있나

[세풍] 文 대통령은 무엇을 팔고 있나

철학자 미셀 푸코의 역사에 대한 정의는 신랄(辛辣)하다. 그는 "역사란 객관적인 과학이 아니라 한 계급, 혹은 한 세력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도구"라고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문재인 정권의 '역사 뒤집기'가 푸코의 명제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집권 세력에게 역사는 반대 세력을 제압하는 '투쟁의 도구(道具)' 역할을 하고 있다.총선에서 177석으로 몸집을 불린 더불어민주당이 '적폐 청산 시즌 2' 깃발을 올렸다. 시즌 1에선 전·전전 정권 단죄(斷罪)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엔 역사 뒤집기를 무기로 들고나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선전포고는 섬뜩하다. 그는 의원들에게 "잘못된 현대사에서 왜곡된 것들을 하나씩 바로잡아 가는 막중한 책무가 여러분에게 있다"고 했다. 여당은 역사 바로잡기라고 강변하지만 역사 뒤집기다.민주당이 고쳐 쓰려는 역사는 나열하기가 숨이 찰 정도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비롯해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 5·18 민주화운동, 유신, 여순 사건, 제주 4·3 사건에다 구한말 동학운동까지 들먹이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등 현충원에 묻힌 인사들을 타깃(target)으로 한 친일파 파묘(破墓) 법안 제정도 서두르고 있다.집권 세력의 역사 뒤집기는 오랜 시간 뜸을 들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직전 대담집에서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주류 세력 교체"라고 했다. 갈아치우고 싶은 주류 세력은 보수·산업화 세력이다. 이들에게 친일·독재·부패의 낙인을 찍어 주류 세력 교체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역사 뒤집기가 목표로 하는 것은 명확하다. 집권 세력의 정권 연장 도구이자 반대 세력의 집권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수단이다. 문제는 정권이 정치적 이익을 목적으로 역사를 활용할 때 일어나는 '역사의 정치적 남용'(political abuse of history)이다. 노무현 정권에서 조사한 KAL 858기 폭파 사건 결과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한 전 총리에 대한 대법원 판결마저 뒤집겠다는 것이 딱 그렇다. 조선시대 사화(士禍), 부관참시(剖棺斬屍)가 재연될 판이다. 역사의 정치적 남용은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념·진영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역사에 대한 집권 세력의 해석 독점과 이중 잣대도 문제다. 우파 흠집 내기에는 집요한 반면 좌파의 흑역사에 대해서는 모르쇠를 넘어 관대하다. 대법원에서 진보 성향 대법관까지 만장일치로 판결한 한 전 총리 사건은 다시 들추면서 위안부 할머니를 수십 년간 정치적·사적으로 이용한 의혹을 산 윤미향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감싸기에 급급하다. 또 하나의 내로남불이다.문 정권의 역사 뒤집기 종착역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만드는 데 있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정권을 잡은 세력이 정치적 이익에 따라 역사를 뒤집는 악순환이 반복하는 길을 문 정권이 활짝 열었다.힘을 모아 위기 극복에 나서도 모자랄 판에 과거를 다시 들추는 프레임으로 갈등을 증폭시키고 국력을 소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부터 '6·25 남침 주역'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로 칭송하고, 툭하면 친일 잔재 청산을 들먹이는 등 과거로 달려가고 있다. 문 대통령의 롤 모델(role model)이자 경제 대공황을 극복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희망이 없는 국민은 반드시 멸망한다"고 했다. 나폴레옹은 "지도자는 꿈을 파는 상인(商人)"이라고 했다. 희망·꿈은 과거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다. 문 대통령은 지금 국민에게 무엇을 팔고 있나?

2020-06-08 18: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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