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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닥터 둠'과 캐러밴

'위기가 지나가고 한참 뒤에야 비로소 위기임을 알아챈다'는 말이 있다. 대다수 사람이 위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넘겨버릴 만큼 둔감하다는 뜻이다. 한편 국가나 사회, 집단, 개인에게 전달되는 위기의 강도, 시차 등 스펙트럼이 그만큼 다양해 평균율을 구하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기의식이 결핍됐다거나 위기의 실체를 몰라서가 아니라 직면한 현실이 두려워 위기를 부정하는 심리가 작용해 인간 행동 양식을 왜곡시킨다는 해석도 있다. 위기를 역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위기 조장설' 등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최근 눈여겨본 애덤 맥케이 감독의 영화 '더 빅 쇼트'(The Big Short)는 개인적으로 우리 주변의 위기 상황에 대해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마이클 루이스의 실화 소설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가 소재다. 미국 경제 위기의 진상을 드러내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 거리를 안겨준다. '빅 쇼트'는 주식 등 가치 하락을 전제한 매도(Short) 포지션을 뜻한다.이 소설은 부실 주택저당채권 사태를 미리 내다본 월가의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아이스만, 로버트 벌리 등 실존 인물 4명을 추적해 금융 위기의 배경과 실체를 재조명했다. '닥터 둠'으로 불릴만한 극소수의 비관론자들이 미국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위기의 스위치를 켜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일반 시민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인들마저 폭탄을 옆에 두고도 위기 경고를 무시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복잡한 금융공학으로 변질한 투자 기법 등 시스템에 대한 무지와 맹신은 위기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당시 예민한 후각을 가진 '닥터 둠'은 금융자본의 탐욕이 위기의 본질이자 진원지임을 간파한다. 정부가 월가의 붕괴를 결코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결국 위기의 시그널을 덮어버린다. 부실이 만연한 미국 주택시장의 현실을 확인한 그들은 시스템 붕괴가 멀지 않았음을 예측하고 분노한다. 부실투성이의 금융 시스템을 외면한 채 수익에 열을 올리는 투자은행·신용평가사의 탐욕, 미국 정부의 안이함과 무능이 싱크홀을 만든 것이다. 이달 말 개봉할 최국희 감독의 '국가부도의 날'도 위기론의 관점뿐만 아니라 1997년 IMF 외환 위기 사태를 처음 다뤘다는 점에서 또 다른 관심을 끄는 이유다.'경제 위기는 우리 시대의 문화다'라는 명제가 나올 만큼 이제 위기는 일상 그 자체다. 그러나 위기를 맞기 전까지 아무도 위기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자 남미 최대 부국인데도 2014년 이후 최악의 경제난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 가난과 내정 불안 때문에 미국행 엑소더스를 시작한 온두라스의 '캐러밴'은 위기 여파가 부른 비극이다.문재인 정부의 제2기 경제 실험이 막 시작됐다. 얼굴은 달라졌지만 정책 기조는 그대로다. 새 경제팀이 위기 국면에 빠져드는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울 구원투수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빅 쇼트'에서처럼 600만 명이 직장을 잃고, 500만 명이 집을 잃는 상황으로 간다면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탄탄한 펀더멘털' 하나만 믿는 우리에게 이런 위기는 그저 강 건너 불일까. '곤경에 빠지는 건 무엇을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경구를 계속 곱씹게 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2018-11-13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동구<東區>의 항변<抗辯>

'능금꽃 향기로운 내 고향 땅은….'가수 패티김이 부른 '능금꽃 피는 고향'은 가슴속에 스며 있던 대구의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대중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대구를 알리는데도 커다란 기여를 한 노래이다. 대구 사람들은 아예 '대구찬가'라는 별칭을 붙여 야구장에서 응원가로 열창하기도 했다. '능금꽃 피는 고향' 노랫말에는 대구 사과와 함께 팔공산과 금호강이 등장한다. 모두가 대구 동구를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노래비를 아양철교 인근 금호강변에는 세운 이유이다.동구는 그렇게 대구의 상징이었다. 동구는 국제공항과 고속도로 나들목(IC) 그리고 복합환승센터가 있는 대구의 관문이다. 대구경북을 아우르는 영산인 팔공산이 드넓은 자락을 펼치고, 망우당공원과 동촌유원지를 보듬은 금호강이 낙동강을 향해 유장한 흐름을 이어가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다. 구(區) 단위로서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대구 동구는 지금도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곳으로, 산자락마다 강줄기마다 숱한 옛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봉무동의 이시아폴리스와 신서동의 혁신도시는 동구는 물론 대구의 경제를 견인할 명실상부한 자족도시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껏 기대를 모았다. 연탄 가루 날리던 안심연료단지에 들어설 안심뉴타운 또한 주택과 상업시설이 새로운 면모를 갖추면서 혁신도시와 함께 동구의 새로운 부도심으로 도약할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그러나 막상 금호강을 건너 안심지역으로 들어서면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혁신도시에 실망한 민심은 안심뉴타운에도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들이다. "혁신도시가 수성구 집값만 더 올려줬지 뭐!" "안심뉴타운에도 초등학교가 없으면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겠어?" "여기 50평 아파트를 팔아도 수성구에서는 30평대도 못 사…."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오랜 자괴감이 배어 있는 말들이다.동구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열악한 교육 환경이다. 이시아폴리스 쪽에는 중학교가 부족하고 혁신도시 주변에는 이름 있는 고등학교가 없다. 그래서 자녀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든지 위장전입을 해 통학을 시키려고 한다.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주한 공공기관 임직원들도 아예 수성구 시지에 집을 마련한다. 그러니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차량과 통학 차량이 뒤엉켜 짜증만 더한다.혁신도시는 속빈 강정이다. 정주 여건이 낙제점 수준이다. 거주자들은 대부분 나홀로족이다. 월요일 오전에 내려와 숙소 주변을 맴돌다가 금요일 오후면 수도권으로 올라가기 바쁘다. 그러니 밤이면 유령도시처럼 썰렁하고 낮에도 적막감이 감돈다. 혁신도시는 대중교통의 외딴섬이다. 오죽하면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마을버스 운영에 직접 나섰을까.특히 안심지역은 '찾아오는 동구'가 아닌 '떠나가는 동구'가 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사실 명문고의 유무가 아파트 가격을 결정하고 지역 발전을 좌우하는 시대이다. 주민들은 교육 환경의 격차가 낳은 불균형 발전의 피해를 언제까지 감수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낸다. "그동안 동구청은 무엇을 했고, 대구시와 교육청은 한 게 무엇이냐"는 항변이다.

2018-11-06 05:0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문 정부의 애완견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런 루스벨트도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려 했다. 이른바 '대법원 재구성 계획'으로 연방 대법원을 장악하려 했다. 당시 대법관 수는 9명으로 이 중 6명이 70세 이상이었다. 루스벨트는 이들 수만큼 대법관을 추가로 임명해 대법관 수를 15명으로 늘리려 했다.그 목적은 대법원을 자신의 정책을 밀어주는 '헌법적 거수기'로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뉴딜정책 관련 법률을 번번이 위헌으로 판결했다. 루스벨트는 자기 입맛에 맞는 대법관을 추가로 임명하는 방법으로 이런 난관을 넘고자 한 것이다.루스벨트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헌법상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에는 대법관 수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다. 미국 건국 이후 100년 동안 대법관 수가 수시로 바뀌었던 이유다. 루스벨트의 '계획'은 헌법의 이런 허점을 파고든 것이었다.이런 사실(史實)은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말해준다. 어떤 헌법도 완벽할 수가 없다. 헌법도 인간의 설계물이고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법은 악용의 가능성에 항상 열려 있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노골적인 헌법 '살해'가 아니어도 헌법의 빈틈을 이용해 헌법을 어기지 않고도 민주주의 원칙을 무력화할 수 있다.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의 '공정한'(!) 재판을 위해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려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계획도 이와 같다. 사법권 독립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우회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재판부'라는 명칭부터 그런 의도를 잘 보여준다. 우리 헌법은 '특별법원으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제110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특별법원'이 아니라 '특별재판부'로 헌법을 우회하는 것이다.더 근본적인 문제는 특별재판부 설치 의도이다. 여야 4당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라고 한다. 사법농단 사건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이 90%나 되고 이 사건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는 판사 다수가 의혹 당사자여서 일반 법원의 재판은 보나마나라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법농단 사건은 무조건 유죄라는 단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여야 4당의 '공정한'은 '유죄 판결'의 동의어라고 할 수밖에 없다.이런 의도로 설치된 특별재판부가 그런 의도와 상관없이 글자 그대로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을까. 일반 법원의 판결은 공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당과 야 3당이 낙인찍어 놓은 이상 쉽지 않을 것이다. 특별재판부 설치 계획에 결론을 내려놓고 재판을 한 스탈린식(式) 전시(展示)재판이 오버랩되는 이유다. 이런 식으로 '특별'이 설치면 사법권 독립이라는 대원칙은 무너지고 본래 의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사멸된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이다.루스벨트의 '계획'은 무산됐다.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민주주의는 더욱 강건해졌다. 행정부 견제라는 의회의 기본 책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최근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이런 입법부는 '감시견', 그렇지 않고 권력에 순종적인 입법부는 '애완견'이라고 했다.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려는 여야 4당은 '감시견'일까 '애완견'일까?

2018-10-30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옛 땅에서 통곡하고 싶다

'요동(遼東)과 간도(間島).'우리에게 남다른 지역이다. 역사에서 옛 조상들이 누빈 곳이자 삶터였다.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 역사를 살펴도 그렇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흔적을 훑어봐도 다르지 않다. 두 지역은 우리나라 유입 외래 종교와도 인연이 깊다. 100년 넘는 세월을 가진 한국 천주교이다.특히 요동은 우리에게 '소리 내 울 수 있는 곳'(好哭場) 즉 통곡할 수 있는 좋은 장소로 잘 알려졌다. 조선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글 덕분이다. 1780년 7월, 연암은 청나라 사절단 일행에 끼어 1737년 태어나 자라고 줄곧 지냈던 비좁은 조선을 떠나 생애 첫 중국 나들이에 나섰고 압록강을 건너 들과 강의 산악지역을 지나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눈앞에 끝없이 드넓게 펼쳐진 벌판 즉 요동벌을 만나서다. '1천200리가 사방에 산 한 점이 전혀 없어 하늘가와 땅끝을 아교로 붙이고 바느질로 박은 듯'하고 '구름만 아득'했으니 그럴 만도 했을 터이다. 나라를 바꿀 만한 포부를 가졌으나 산들이 촘촘한 갑갑한 땅, 조선의 산하와 썩어빠진 나라를 생각하면 할 말을 잃고 통곡하고 싶었을 것이다.요동들은 이미 숱한 조선의 관리들이 거쳤다. 그들도 연암처럼 고구려인이 수(隋)와 당(唐)의 군대와 격돌하며 지킨 '우리 땅' 요동에 얽힌 역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게다가 연암은 왜란(倭亂)과 호란(胡亂)까지 겪은 뒷사람이었으니 오죽했으랴. 선조 발자취가 서린 요동벌을 '호곡장'이라 읊으며 통곡하고자 한 심사를 그저 짐작할 뿐이다.간도 역시 부여, 고구려, 발해로 이어진 중첩된 역사를 갖는 유서 깊은 땅이다. 비록 일제의 대륙 침탈 야욕의 결과인 1909년 간도협약으로 또다시 잃어버린 아픈 역사를 가졌지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안마당처럼 누볐던 고토(古土)였다. 숱한 우리 백성들이 국경을 넘어 땅을 일구고 가꾼 옥토(沃土)였다.천주교는 이런 요동과 간도를 깊이 살폈다. 한국을 발판으로 요동과 간도는 물론, 바다 건너 일본, 류큐, 대만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계획에서다. 천주교 불모지로 미개척지나 다름없었던 동아시아에 천주교 '복음의 빛'을 전하는 일이 당시 천주교의 당면 현안으로 떠올랐고, 한국과 요동·간도를 잇는 연결망은 더없이 필요한 작업이었다.결국 천주교 내부 사정으로 요동은 빠지고 간도만 1920년 서울에서 분리 설치된 원산대목구라는 교구에 포함됐지만 함경남북도를 포함한 그 면적(20만5천㎢)이 남북 강산(22만㎢)에 버금가는 관할지역을 가졌다. 당시 제작된 이런 천주교 지도는 세월이 흘러도 간도가 한국 백성들의 옛 삶터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하는, 우리로서는 남다른 의미다.이런 옛 천주교 역사 탓인지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으로부터 공식 방북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한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게다가 지난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교황의 평양 방문을 제안했지만 이뤄지지 못한 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은 현재 진행되는, 남북한을 둘러싼 평화 정착 노력의 흐름에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다. 종교적인 새 길도 나겠지만 다른 길 역시 만들어질 터이고, 개인적으로는 그 새로운 길을 따라 옛 땅 요동이나 간도에서라도 통곡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2018-10-23 05:0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문재인 대통령 국정 성패 경제에 달렸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라이언 일병을 구한 것은 존 밀러 대위였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려 문 대통령을 구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엔 남북 정상회담 효과에 힘입어 6주 연속 하락하던 문 대통령 지지율이 10%가량 급반등했다. 하지만 이 '약발'도 한계에 이르렀다. 남북 정상이 앞으로 보여줄 만한 빅 이벤트가 별로 없는 데다 식상해하는 국민도 점차 늘어나서다.문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내린 가장 큰 요인은 경제 문제다.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소득주도성장 부작용, 최악의 고용 상황, 서울 집값 급등,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대책과 세금 폭탄 논란 등이 지지율 하락을 가져왔다. 지지부진한 북한 비핵화, 거센 파도에 직면한 경제.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푸느냐에 문 대통령 지지율은 물론 국정 성패가 달렸다.그 사람의 미래를 알려면 과거를 보라고 했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경제 문제에 대처해온 문재인 정부의 인식과 자세, 실력을 보면 앞으로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하기 힘들다.문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 5개월 동안 경제 정책은 난맥상 그 자체였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 등을 놓고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줄곧 불협화음을 빚었다. '경제 투톱'이 손발을 맞춰 위기를 돌파하기는커녕 딴소리만 하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은 물론 신뢰마저 깨졌다. 연말에 두 사람을 동시 교체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 이를 방증하고도 남는다.세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세금 만능주의도 문제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생긴 구멍을 세금으로 메우고 있다. 나랏돈을 투입해 임시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지표를 끌어올리려는 꼼수를 쓰고 있다. 그동안은 이전 정권에서 쌓아둔 세수에 집값 급등, 반도체 호황으로 국세 수입이 늘어 버텨왔다. 그러나 반도체 경기마저 얼어붙고 세수도 한계에 달할 우려가 커 계속 세금을 쏟아붓는 것은 불가능하다.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정부가 경제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다. 경제 정책에 대한 야당의 쓴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고 죽을 지경이라며 아우성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기업인의 절규와 한숨마저 외면하고 있다.고용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경기선행지수가 추락하는 등 경제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 대외 변수마저 악재투성이다.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하던 미국 경제에 대해서도 부정적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발 금융위기설도 있다. 두 나라 경제가 휘청거리면 우리 경제는 핵폭탄급 충격을 받는다. 주식시장과 환율에서 전조(前兆) 증세가 나타났다.문 대통령을 비롯해 경제를 책임진 인사들이 경제에 대한 관점을 더욱더 실용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첫걸음이다. 경제 현장에서 나오는 의견을 토대로 해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지금 기준으로 보면 외환위기를 가져온 김영삼 전 대통령은 탄핵 대상이 되고도 남았다. 외환위기 고통은 국민이 고스란히 감내했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 외환위기에 맞먹는 경제 위기가 와 민생이 파탄 나면 국민은 대통령과 정부에 책임을 물을 게 분명하다. 촛불이 다시 타오를 수 있다. 처음 가는 길은 어렵지만 두 번째 가는 길은 쉬운 법이다.

2018-10-16 05:0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남북관계 말고는 없나?

요즘 가장 아리송한 것은 현 정권이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방송·인터넷·젊은 층에서는 호의적인 평가 일색이지만, 정작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좀 혼란스럽다.개인적으로 비핵화·남북관계에 진력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다른 현안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본다. 현안 해결 능력만 볼 때, 실망 정도가 아니라 거의 낙제점이다. 여당 주변에서도 "너무 실력이 없다"는 자평이 나오니 심각한 국면임이 분명하다.남북관계에 매달리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대체적으로 옳다. 우리 사회에 북한을 감정적으로 여기는 시각이 여전히 많지만, 북한을 고립시키고 압박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흉기를 쥔 10대'를 방에 가둬두고 두들겨 패서 교화시키려고 해봤자, 더 비뚤어지기 십상이다. 밖에 데리고 나가 밝은 세상을 보여주고 '흉기'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고 가르쳐야 한다. 비록, 구차하고 아니꼽지만 '흉악한' 철부지를 교도하려면 달래고 어르는 방법이 최선이다.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남북관계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남북관계를 빼면 무엇 하나 이룬 것이 없으니 그럴 만하지만, 말만 앞세우고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매사 '미적미적' '흐지부지'하는 것이 정권의 특징처럼 굳어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최저임금, 집값, 일자리, 입시, 환경 등 중요 현안마다 구멍이 숭숭 나 있고, 지역민이 관심 갖는 지방분권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하겠다고 공언하더니만, 지금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2차 공공기관 이전에 대해서도 정부는 올 초 추가 이전은 없다고 발표했다. 2004년 지역 균형 발전을 앞세워 153개 공공기관 이전을 단행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거꾸로였다. 그 와중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국회 대표연설에서 수도권 122개 공공기관을 이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 대표가 문 대통령의 지지부진한 정책 추진에 답답함을 느끼고 일침을 가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정권 실세들은 스스로 서민 출신이라고 내세울지 몰라도, 아무리 봐도 '책상물림'의 전형이다. 진보성과 신념으로 무장해 남북·노동 문제는 해박할지 몰라도 서민 살림살이의 이해도는 무지에 가깝다. 서민 모두 불황이라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무작정 기다리라고 한다. 국민 모두가 교수·정치인·운동권 출신처럼 생계에 걱정없는 이들이 아니다. 하루가 힘들고 다급한 사람들이다.정권은 남북관계의 성공에 취해 있지만, 언제 나락에 떨어질 수 있는 외줄타기 상황이라는 점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비핵화는 우리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11월 중간선거 후 태도를 바꾸면 방법이 없다. 극우 세력이 내심 바라는 시나리오지만, 잘못하면 남북 모두에게 재앙적인 결과가 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플랜B'를 만들어야 하지만, 그런 대비책조차 없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정권 출범 1년 6개월이 됐다. 한창 개혁하고 바꿀 시기인데, 적폐 청산에만 열을 올릴 뿐, 결실이 없다. 어물거리다간 빈손으로 나가는 정권이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가장 치명적인 병은 머릿속에 생기는 병'이란 말이 있듯, 자신들 앞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면 그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2018-10-09 05:0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깔아도 모자랄 멍석 덮어쓰라면

3분기를 접자마자 각종 경제동향 조사와 실적 통계, 새 분기 전망이 쏟아진다. 예상한 대로 밝은 소식은 찾기 어렵다. IMF 등 국제기구나 국내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0%에서 2.8%, 2.6%로 잇따라 낮춰 잡았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 한국의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미국·중국·일본에 모두 뒤진 것으로 나타나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당장 눈앞에 닥친 장애물도 만만찮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최고 25%의 고율 관세 적용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관세 폭탄이 현실화되면 대미 자동차 수출이 22.7%, 이로 인한 손실 규모가 수조원에 이르고 최악의 경우 13만 개의 국내 일자리가 위협받는다. 당장 일자리 상황에 눈을 돌려보면 최저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로 넘친다. 올해 실업급여 지급 규모가 사상 최대치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모든 수치를 요약해보면 성장과 고용, 투자 등 모든 지표의 포물선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 경제의 내상(內傷)이 계속 깊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 와중에도 부동산만은 꿋꿋하다. '미친 집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자고 나면 집값이 뜀박질하는 것은 더 이상 부동산시장 구조나 요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음을 암시한다.한국 경제가 부진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경기 회복세를 탄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상황은 우리보다 훨씬 낫다. 경제 규모나 구조, 정책 방향 등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유독 우리만 죽을 쑤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어제 일본 닛케이지수는 1991년 11월 거품경제 붕괴 이후 근 27년 만에 최고 수준에 올라서면서 한일 경제 상황은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경제 환경도 환경이지만 정책의 문제점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시장을 모르거나 과소평가하면서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시장은 정부를 이길 수 없다'고 발언했다. 혼란한 부동산 시장을 염두에 둔 이 말에서 정책 브레인들의 사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정부가 시장을 움켜쥘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힘을 마구잡이로 휘두르지 않는 이상 시장의 은밀한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데서 기대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1년 반 만에 10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아도 혼란이 여전한 까닭이다.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이 길로만 가면 돌덩이가 금덩이 된다는 식으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구호만 외쳐댄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런 구호로는 높은 세계경제 파고와 교활하고 집요한 시장을 이겨낼 수 없다. 맥도 짚지 못하면서 진단하고 처방하는 꼴이다.이제라도 지리멸렬한 고용 정책과 부동산 대책의 허점을 돌아봐야 한다. 시장과 기업의 '플랫폼'이 되는 게 바로 정부 역할인데도 시장과 기업에 우월감에 젖어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결국 정부는 멍석을 깔고 기업과 시장이 놀도록 만드는 게 바른 처방이다. 지금은 정부 만능주의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말대로 '20년 집권 플랜'이 가능하려면 정책 효용성을 따지고 시장을 속속들이 분석해 길을 찾아야 한다. 콧대 세우고 멀리만 보다가 발아래 벼랑을 놓치면 20년은커녕 3년 후도 힘들다.

2018-10-02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정치 실험 공화국

한반도는 혹독한 식민 지배를 겪었다. 그리고 분단이 되었다. 북에는 공산 정권이 3대 세습을 실험하고 있고, 남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영욕을 체험하고 있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틀을 갖춘 것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건국 대통령이라고도 부른다. 제1공화국은 순항하지 못했다.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를 자행하다가 4·19 혁명으로 몰락했다. 이승만은 6·25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한미동맹을 구축했으나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해 민족정기를 왜곡시켰다. 자유당 독재를 무너뜨린 혁명의 열기는 의원내각제라는 권력분산형 정치 구조를 형성시켰다. 제2공화국이다. 그런데 장면 총리와 윤보선 대통령 간 신·구파 정쟁에다 데모로 날밤을 지새우는 혼란이 5·16 군사정변을 초래했다. 군부 엘리트에 의한 제3공화국의 등장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8년간 집권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으나,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뽑던 8, 9대를 제4공화국이라 부른다. 대통령이 초법적 권한을 지닌 유신체제였다. 10·26의 총성으로 박정희 정권이 비극적 종말을 고하자, 최규하 대통령이 잠시 무대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숨은 실력자는 12·12 쿠데타로 등장한 신군부의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그는 폭정과 부패의 대명사로 꼽힌다. '체육관 선거'를 통해 7년 단임의 12대 대통령으로 등극한 그는 삼청교육과 언론 통폐합을 강행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6월 민주항쟁에 따른 6·29선언으로 5년 단임제의 대통령 직선제로 선회한다. 노태우 대통령의 제6공화국은 사실상 군부 정권의 연장이었다. 육사 친구였던 두 권력자는 내란 및 부패 혐의로 나란히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초유의 일이었다. 1993년에 출범한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 정부'를 자칭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와 함께 지방자치제와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 뒤를 이은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를 표방했다. 여야 간 첫 평화적 정권 교체였다. 호남의 정치적인 한을 승화시키는 계기도 되었다. 민주화의 양대 산맥인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보스였던 YS와 DJ, 정치 9단의 의회 정치인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진보 대통령도 아들의 비리사건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 정부'를 내세웠다. '서민 대통령'으로 권위주의 타파와 과거 청산에 나섰지만, 퇴임 후 본인과 가족에 대한 수사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채 투신 자살이라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10년 좌파 정권의 막을 내린 이명박 경제대통령도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프리미엄과 더불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농단을 초래하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임 중 탄핵으로 쫓겨난 대통령이 되었다. 촛불시위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로남불'의 적폐 청산과 조급한 남북 화해…. 만약 문재인 정부가 또 실패로 막을 내린다면, 이젠 어떤 막장 드라마가 대한민국 정치 무대에 올라올까. 산전수전 다 겪은 국민에게 아직도 남은 정치 실험이 있는가?

2018-09-18 05:0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장하성의 오만한 무지

15세기 독일의 신학자·철학자 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olaus Cuzanus)는 유한한 인간은 절대자인 신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신에 대한 인간의 알지 못함/알 수 없음, 즉 인간의 앎/지식의 한계부터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쿠자누스는 이런 겸양을 'de docta ignorantia'라고 명명했다. 그의 대표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의 뜻은 '박학(博學)한 무지' '깨달은(또는 깨달아 안) 무지'이다. '똑똑한 바보'처럼 형용 모순인 이 표현을 통해 쿠자누스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박학한 무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가 아니라 무지함을 깨달은 '똑똑한 무지'이며, 참된 앎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지혜로운 행위라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 대한 인간의 앎/지식도 무력하고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임마누엘 칸트는 '물(物) 자체'(Ding an sich, 사물의 본질)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여기서 '물'을 '세상'으로 바꿔놓아도 칸트의 명제는 유효하다. 그 누구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완전히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참 지식도 이런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자신의 앎/믿음이 틀린 것으로 드러났을 때 버리거나 고치는 겸손한 앎이기도 하다. 올바른 정책은 여기서 나온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믿음은 이를 거부한다. 그래서 그의 믿음(집착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은 '나는 절대 틀릴 수 없다'는 '오만한 무지'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저소득층의 소득은 도리어 줄고, 소득의 원천인 일자리는 줄어들며, 소득 양극화는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처절하게 실패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최저임금을 올리면 가계소득이 올라가고, 이는 소비지출을 늘려 기업 투자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고용을 늘려 다시 가계소득이 증가한다는 '행복한 시나리오'만 생각한 그의 지식의 얄팍함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비율이 선진국 평균의 두 배를 넘는 25%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과당 경쟁으로 이들은 이미 생존의 한계에 와 있다. 최저임금 폭등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숨겨진 비밀'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그의 믿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조차 무시한 게으름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그의 방어 논리는 한마디로 요설(妖說)이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등치(等置)시켜서는 안 되며,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소득주도성장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경제 이론의 하나가 아니라 무오류(無誤謬)의 도그마다. 이런 사고 구조에서는 현실은 보고 싶은 대로만 보인다. 국민소득이 줄고 성장률은 뒷걸음치는데 그는 "거시적(!)으로 적정한 성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1950년대 미국의 외교관이자 전략가인 루이스 할레는 외교정책은 세계에 반응해서가 아니라 의사결정자들이 상상한 세계상에 반응해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세계상이 실질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거짓인 한, 아무리 유능한 전문가라도 그러한 세계상을 바탕으로는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어낼 수 없다." 문재인 청와대와 장하성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2018-09-11 05:0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우리는 왜 성공한 대통령을 갖지 못했는가.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은 워싱턴, 링컨, 케네디 같은 미국 사람을 훌륭한 대통령 표상으로 삼아야 하나. 보수·진보 다툼으로 역대 대통령들이 난도질당해 존경받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잔뜩 기대받으며 대통령에 올랐으나 재임 중 여러 잘못으로 대통령직(職)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하는 바람에 성공한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까닭이 훨씬 크다.대통령의 성공은 국가의 성공으로 귀결된다. 실패한 대통령은 국가에 큰 그늘을 드리운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없이 봤다. 실패한 대통령 역사를 종식할 때가 됐다.작년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시련에 봉착했다. 북한 비핵화는 북한, 미국, 중국 간 알력으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은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경제지표는 10년 만에 최악으로 추락했다. 서울 집값은 날마다 치솟고 있다. 공무원은 복지부동이고 대기업은 미래 먹을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50%대로 떨어졌다.난관을 돌파할 열쇠는 문 대통령 자신이 갖고 있다. 성공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을 가르는 것도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가 아닌 오롯이 문 대통령에게 달렸다.시간은 모두에 공평하다. 5년 대통령 임기가 긴 것 같지만 그리 길지 않다. 문 대통령 임기도 3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제왕적 대통령'이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 이룰 수 있는 것과 이룰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임기 내 성과를 내려는 MB의 성급함이 4대강 사업에 흠을 남겼다. 방망이를 짧게 잡고 안타를 쳐 차곡차곡 점수를 내는 데 문 대통령은 주안점을 둬야 한다.대통령이라고 잘못하지 말란 법이 없다. 능력 있는 장관과 참모로부터 조언받아 정책을 결정하지만 잘못으로 드러나기 십상이다. 현실에 맞지 않거나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정책을 즉시즉시 수정하는 게 당연하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바탕으로 정책에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 고집만 부려서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 그 피해는 대통령은 물론 국가에 돌아가기 마련이다.이명박·박근혜 정권과의 이별도 문 대통령만이 할 수 있다. 적폐청산 필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제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갈 때가 됐다. 지쳤다는 국민이 많다. 과거에만 눈을 돌려 5년 임기를 다 보낼 것인가 아니면 미래로 시선을 돌려 나라를 발전시킬 방안을 찾을 것인가를 문 대통령이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문 대통령이 성공하는 데 중요한 원동력은 결국 사람을 잘 쓰느냐에 달렸다. 청와대 참모진에게 갇혀 있어서는 대통령이 제대로 일하기 어렵다.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에 치중하거나 진영 논리에 파묻힌 참모들은 과감하게 배제하는 게 맞다. 사람을 잘못 써 실패한 전직 대통령들을 문 대통령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앞선 대통령들이 워낙 낮은 점수를 받아 문 대통령은 조금만 잘하면 국민으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국민통합을 이뤄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는 주춧돌을 놓는다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에 차고도 넘친다. 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우리도 성공한 대통령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2018-08-28 05:0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문 대통령, 같은 편을 배신해야 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 나오는 대목이다."인권변호사 일이 많아져 이곳저곳 출장을 가야 했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 모든 일을 함께했다. 나는 돈 버는 일을 전폐했지만 그는 사무실 운영을 도맡아 하면서 매월 내게 생활비를 주었다. 부산에서 선거를 치를 때마다 있는 힘을 다했고, 대통령 선거 때는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아 주었다. …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 친구 노무현'이라고 한 것은 그저 해 본 소리가 아니다. 나이는 나보다 젊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친구로 생각했다."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어려운 관계다. 나이로 7살의 차이가 있었지만,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렇더라도, 둘의 성격 차이는 뚜렷했다. 노 전 대통령은 카리스마 넘치고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단점이라면 언제나 남을 설득하려 들었고, 성급하고 까탈스러운 일면이 있었다. '돈키호테' 기질도 엿보였다. 문 대통령은 순후담백(淳厚淡白)하고 남을 배려하는 인간미가 돋보인다. 문 대통령을 잘 아는 이들은 리더십과 판단력에는 의문을 표시한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서로의 흠결을 보완할 수 있었기에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했는지도 모른다.요즘 문 대통령이 위기를 맞고 있다. 최악의 경기지표와 고용 쇼크, 최저임금 문제로 정권이 휘청거릴 정도다. 청와대는 예산을 푸는 것 말고는 해법을 내놓지 못하니 일이 더 꼬여간다. '실력이 없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더는 남북관계나 적폐청산으로 국민의 욕구를 채워주기 어려워졌다. 평양 정상회담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 경험한 바가 있어 새롭지 않고, 적폐청산은 슬슬 피로감이 몰려온다.어쩌면, 위기 상황은 자신의 능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기회일지 모른다. 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가 왔고, 국민은 그렇게 하길 원한다. 문 대통령의 부드러운 성격을 보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또다시 '공론화위원회' 비슷한 것을 만들어 갑론을박에 시간을 보내고 명확한 결론조차 내지 못할까 우려한다. 시민단체·노동계 등 자신의 지지층에 반하는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을 지도 의문스럽다.노 전 대통령 얘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상당히 이념적인 인물이었지만,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았다.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 건설, 이라크 파병 등 진보 세력이 반대하는 사업을 스스럼없이 해치웠다. 공기업 지방 이전으로 대구 신서혁신도시, 경북 김천혁신도시를 만든 것도 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임기 말년에 좌·우 협공을 받아 극심한 지지율 하락을 맛보긴 했지만, 실용적인 대통령이었음은 분명하다.문 대통령은 시민단체노동계는 물론이고 '문빠' 반응까지 의식하는 듯했다. 아직까지 뚜렷한 업적이 보이지 않은 것은 여전히 자기편, 남의 편을 가리는 성향 때문일 것이다. 개혁을 하려면 피아를 가려서는 안 된다. 시민단체·노동계 등도 기득권 세력일 수 있다. 우군마저 '배신'할 수 있는 결단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가 참담해진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이념진영 논리는 개나 줘버려'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래야만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18-08-21 05:00:00

서종철 논설위원

[세풍] 소비자가 뿔났다

하루가 멀다며 꼬리를 무는 BMW 차량 화재 사태는 올여름 폭염만큼이나 고약하다. 이미 화차(火車) 신세가 된 차주는 말할 것도 없고, 언제 화마의 세례를 받을지 노심초사하는 수십만 BMW 운전자의 불쾌지수는 폭염보다 한참 윗길이다. 메이커나 우리 정부가 보여준, 한심하다 못해 불량한 대응 태도로 말하자면 '열상가상'(熱上加傷), 더워 죽겠는데 속까지 끓이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그동안 기업은 '소비자는 왕'이라며 사탕발림을 해왔다. 늘 '고객 감동'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런 인식이 눈곱만치라도 될까. 그저 소비자는 불만 없이 제품을 팔아주는 존재로만 인식해왔다. 문제점을 제기하고 따지는 '진상'은 요주의 인물이고, 나머지는 모두 '호구'로 취급되어온 셈이다.소비자가 과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는 하찮은 존재일까. 고객 감동은 차치하고라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아"라는 반응을 얻기가 그리도 어려운가. 까다로운 소비자가 원인이 아니라면 이 문제는 기업의 고질적인 생리가 만들어낸 불행한 현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얼마 전 경기도 시흥의 한 아파트단지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은 대구 토박이 건설기업인 화성산업이다. 입주를 앞두고 주민이 시설을 점검해봤더니 정말 기가 막혔다. 이런 기업도 있다니 깜짝 놀란 것이다. 1천594가구의 대단지 공사에서 하자나 흠잡을 곳이 거의 없어서다. 내 집처럼 성심성의를 다해 지은 시공사의 진심과 땀을 주민들이 가슴으로 느낀 것이다.'왜 이렇게 잘 지어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현수막에다 감사패까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새 아파트가 물바다가 되고 벽이 갈라지는 것도 모자라 날벌레 소굴이 되는, 그런 뉴스가 아니라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는 감사패라니, 금시초문의 일이다. 물론 화성산업이 모두 천의무봉(天衣無縫)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윤보다 가치와 신뢰를 먼저 생각한 기업의 자세는 사소하지만 크고 울림도 깊다.하지만 BMW는 거꾸로 갔다. 수천만원을 주고 산 차가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는데도 소비자 탓을 했다. 불타는 차가 점점 더 늘어도 발뺌하기에 바빴고, 소비자 민원을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뒷짐만 진 국토교통부도, 물러 터진 법 체계도 소비자 분노는 안중에도 없었다. 뒤늦게 운행정지 명령 검토니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이니 목소리만 크다. 내년에나 겨우 시행될 '레몬법'도 한참 늦었다.그러다 사태가 조금 숙지면 또 어떤 변명과 소비자 취급 요령이 나올지 모른다. 신 레몬은 쓰일 곳이라도 있지만 기업이 쏟아내는 '불량 오렌지'는 쓸모는커녕 소비자를 괴롭히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소비자를 보호하는 '절대 반지'가 없다면 돈 버리고 속 끓이는 일이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돈벌이에 눈이 먼 기업을 강하게 처벌하는 견제 장치 등 사회적 합의가 급하다.BMW 화재 사태와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데이터 조작, 옥시 가습기 살균제 파동이 과연 일부 소비자만의 문제일까. 언제 우리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돌부리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소비자를 함부로 '취급'하는 기업을 이제 더는 두고볼 수 없다. 불량기업을 일소하지 못한다면 적폐가 그 사회 전체를 뒤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소비자를 자극하지 않는 한 소비자는 그냥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사용하는 '쿨'한 존재다. 그런 소비자를 누가 뿔나게 만드나.

2018-08-14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세풍]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정치사회

17세기 중후반 조선의 정국을 주도했던 우암 송시열과 미수 허목은 숙명의 정적(政敵)이었다. 노론의 영수와 남인의 대표였던 두 사람은 성리학적 이념 논쟁인 이른바 예송(禮訟)으로 권력투쟁을 벌이던 견원지간이었다.그런데 어느 날 우암은 중병이 들어 백약이 무용인 지경에 이르렀는데, 뜻밖에도 미수에게 처방을 구한 것이다. 그러자 비상을 넣은 극약처방이 나왔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암이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처방대로 약을 지어 먹고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것이다.이 일화의 요체는 사활을 건 당쟁 속에서도 인간적인 신뢰를 잃지 않았던 미수와 우암의 담대한 풍모와 도량이다. 아무튼 한방에서는 때로는 이렇게 극약으로 병을 다스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 같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처방은 그 철학적인 이치를 음양(陰陽)의 순환 법칙에서 찾는다.양이 극하면 음이요, 음이 극하면 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극단의 상통 원리를 활용하는 것은 상당한 내공을 갖춘 고수의 영역으로, 난치병에 가끔 꺼내 드는 비방일 뿐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이 화염 속 같은 날씨만큼이나 극단적이다.다른 무리나 다른 것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위험수위를 넘었다. 통합과 상생으로 이루어내야 할 공동체 의식은 공염불이 되었다. 승자 독식의 논공행상만 있을 뿐이다. 정치적 사회적인 목적을 위한 노골적인 편 가르기와 분열 책동이 어디까지 갈지 모를 일이다.조선시대에도 당쟁의 폐해가 극심했다. 송시열과 동시대 학자였던 박세채는 탕평론에서 정치의 판단 기준으로 옳고 그름(是非)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시비론(是非論)보다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한지를 가리는 우열론(優劣論)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정조시대 탕평 정치의 이념이 되었다후한서(後漢書)에 당동벌이(黨同伐異)라는 말이 나온다. 잘잘못에 관계없이 자기와 같은 무리끼리는 한데 뭉쳐 서로 돕고, 반대자를 무조건 배격하고 공격하는 것을 이른다. 우리의 정치 문화가 그렇고 우리 사회의 세태가 그렇다.문재인 정부에는 '선악(善惡) 이분법'의 안경을 쓴 인사들이 곳곳에서 완장을 차고 있다. 그들은 선한 자신이 악한 상대를 타도해야 한다는 운동권적 사고가 몸에 밴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정치는 척결이지 협치가 아니다. 그러니 보수궤멸론과 함께 장기집권론을 공공연히 내세우는 것이다.이른바 진보 세력이 핍박을 받던 시절 공감하고 동조했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던 슬로건도 잊은 듯하다. 극우 독재나 극좌 독재나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이비 보수'도 문제이지만 '싸가지 진보'도 문제이다. 좌와 우는 보완재가 되어야지 일방이 일방을 쓸어버리는 적대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논어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구절이 있다. 자기와 생각과 노선이 달라도 함께 어울리고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인 학자 조너선 색스는 '차이의 존중'이란 책에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오늘날의 극단주의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했다.가장 높은 것이 가장 낮은 것이요, 가장 강한 것이 가장 약한 것이다. 인간의 육체이든 사회의 조직이든 건강할수록 부드럽고 탄력성이 있다. 죽음에 가까워지면 거칠고 경직되기 마련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회한 어느 정치인이 말했다. "골프와 정치는 고개를 드는 순간 망한다."

2018-08-07 05:00:00

정경훈 논설위원

[세풍] 소상공인, 이 땅의 내부 식민지

러시아혁명 뒤 볼셰비키는 조속히 산업화를 이뤄 서구 자본주의 국가를 따라잡고자 했다. 그러나 '자본'이 없었다. 서구와 단절돼 돈을 빌릴 수도 없었다. 이런 난제의 해결 방안의 하나가 천재 경제학자로 불렸던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가 주장한 '내부 식민화'였다. 그 개념은 이렇다. '자본주의적 축적은 식민지 약탈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러시아는 식민지가 없다. 그래서 러시아 내부를 식민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농촌에 대한 계획적 약탈을 뜻했다. 변변한 산업이 없었던 당시 러시아에서 자본 축적을 가능케 할 잉여생산물이 나오는 곳은 농촌뿐이었기 때문이다. 프레오브라젠스키는 내부 식민화가 중공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 농민의 노동이 창출하는 잉여가치를 남김없이 쥐어짜는 것이라고 솔직히 시인했다. 레닌 사후 권력투쟁에서 스탈린과 맞섰던 트로츠키가 축출되면서 트로츠키 편에 섰던 프레오브라젠스키도 숙청됐으나 '내부 식민화'는 스탈린에 의해 실천에 옮겨졌다. 바로 우크라이나에서만 330만 명이 굶어 죽은 농업집단화이다. 그러나 프레오브라젠스키의 '내부 식민화'는 이게 아니었다. 국가가 헐값에 농업생산물을 사들이고 공산품 값은 높이는 부등가(不等價) 교환이었다. 그러나 강제가 아니면 이런 밑지는 거래를 할 사람은 없다. 더욱이 당시 러시아에는 농민이 사고 싶은 공산품도 없었다. 결국 '내부 식민화'는 스탈린식(式)이든 프레오브라젠스키식이든 '폭력'이 본질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한다며 최저임금을 2년 만에 29.1%나 올렸다. 소득주도성장에 드는 재원을 경제성장의 과실에서 얻을 형편이 안되자 사용자(使用者)에게서 쥐어짜겠다는 것이다. 볼셰비키의 '내부 식민화'와 다르지 않은 발상이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은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에게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비판처럼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사람을 자본가로 만든 것이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존의 기로에 내몰린다며 선처를 호소했으나 문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크든 작든 사용자는 자본가이고, 자본가는 악(惡)이며 노동은 선(善)이라는 도그마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국가권력의 폭력이다. 물리력만이 폭력이 아니다. 망하든지 접든지 하라는 법을 강제하는 것도 폭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상공인도 국민이다'는 절규(絶叫)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문 정부가 의도했건 안 했건 소상공인들을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희생시켜도 될 '비(非)국민'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은 경제의 작동 방식에 대한 문 정부의 무지다. 소득은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물론 '자본의 착취'를 막기 위해 일정 수준의 최저임금은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해야 소득도 임금도 늘어난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핵심은 어떻게 하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느냐이다. 이에 대해 문 정부는 깊이 사고하지 않는다. 그저 인위적으로라도 임금을 높여주면 소비 증가, 기업투자 활성화, 경제성장이 물 흐르듯 이어질 것이란 달콤한 공상(空想)에 집착할 뿐이다. 그 결과는 사상 최악의 계층 간 소득격차와 고용 감소, 2분기에 0.7%에 그친 성장률 둔화다. 이에 대한 문 정부의 처방은 재정으로 땜질하는 것뿐이다. 무능하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하다.

2018-07-31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남북, 다른 길 닮은꼴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넘겼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남북 분야가 그렇다. 강산이 갈라진지 73년 세월 속에, 그것도 단일 정부에서 일어나는 남북 변화로는 가장 역동적인 듯하다. 그야말로 북한 말처럼 '씨엉씨엉'(성큼성큼)이다.자연히 북한 자료를 살필 기회가 늘었고 놓친 남북 모습 비교도 잦다. 12명 대통령을 수반으로 선거한 남한과 세습한 김씨 3명이 영도한 북한의 지난 세월은 분명 '다른 길'인데도 어두운 '같은 꼴'이 숱해 흥미다. 남북이 외세로 38선 허리 잘렸음에도 이러하니 역시 한 뿌리, 두 체제의 한 민족임을 공감(?)한다.먼저 수도인 두 도시와 나머지 지방과의 심각한 격차의 고착이다. 지금 광역행정구역은 한국 17개 시'도, 북한 12개 시'도이지만 사실상 서울과 평양에 모든 자원이 쏠린다. '특별시' 서울 빼면 모두 시골로 '지방 식민지'이듯, '직할시' 평양을 벗어나면 지옥 즉 '나락'(태영호,'3층 서기실의 암호')인 점이 같다. 과거에는 남북 모두 수도 밖 삶도 살 만했지만 이젠 아니다. 다만 서울은 맘대로 살 수 있지만 평양은 함부로 그럴 수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젊은이의 경제적 빈곤도 마찬가지다. 남(南)은 재벌, 대기업, 귀족노조 기업, 공기업 같은 알짜 일자리의 대물림으로 금수저가 유지·재생산되나 '88만원 세대'와 흙수저는 절망의 늪이다. 천민 자본주의가 낳은 결과다. 북한은 꽃제비, '장마당 세대' 젊은이의 짊어진 경제적 짐이 무겁다. 지상낙원을 외친 세습 독재 사회주의 허구가 자초한, 수백만 주민이 굶어죽고 국가 보호망이 붕괴된 '고난의 행군'의 산물이다. 희망의 탈출구가 좁기는 양쪽 모두다.계층 이동의 '사다리' 실종도 현실이다. 빈 손에 교육으로 빈곤도 벗고 위로 올라 '개천에서 용이 나던' 세월이 '아, 옛날이여!'가 된 남처럼 북녘도 역시다. 남의 빈익빈 부익부와 계층의 고착화처럼, 북한도 세습 김씨 왕조의 백두혈통에 당 간부 자녀 등 평양 특권층의 세상이다. 다만 친일(親日) 후손이 힘 쓰고 항일독립운동가 후손이 푸대접받는 남과 달리 북은 항일(抗日)투사 후손의 사람 대접은 대를 잇거나 각별하다.두 강산에 분명한 편가르기도 있다. 여러 연(緣)을 앞세운 탓에 능력과 사람은 뒷전이다. 이념, 사상, 진영 논리에 매몰된 '내 편'과 '네 편'에 치우친 인사 정책은 남북 모두 질긴 적폐이다. 이를 위한 수단이 청산이냐, 숙청이냐는 깃발만 다를 따름이다. 명분은 같지 않아도 '내 편 챙기기'의 속셈은 하나다.국방의 근간인 군부 부패도 그렇다. 60만 병력의 남한은 방산비리 등으로 이미 알려진 터다. 120만 병력의 북쪽 역시 "장비는 낡고 노후했고 기름은 다 빼돌려 먹어 장부와 어긋났고, 병사들은 굶주리고 있었"(태영호, 앞의 책)을 정도니 남북 모두 부패의 깊이와 넓이를 알 만하다.여기에 남북을 휘감은 우려스러운 최근 경제 흐름도 닮고 있다. 자본주의 외길이나 3대 세습의 외곬 사회주의 두 길 모두 지금 경제로 죽을 쑤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의 새로운 경제 틀을 제시한 출범 2년의 문 정부나, 개혁개방을 노리는 출범 10년의 김 정권 모두 위태롭다. 물론 북쪽이 더욱 심각하지만 노동신문의 22일 보도처럼 "경제위기가 심화되어 각계의 우려가 커가고 있"는 문 정부도 걱정은 다르지 않다.남북 자료를 훑으며 만난 이런 닮은 꼴이 씁쓸하다. 하지만 어둠 뒤엔 빛이 기다리듯 남북을 아는 만큼 나아갈 길은 더욱 넓어지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북한 소식을 뒤진다.

2018-07-24 05:00:00

이대현 논설위원

[세풍] 대한민국 어디로 갈지 아찔하다

남북한이 평화를 구가한다는 이 시기에 태영호 공사란 존재는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 의미하는 바가 더욱 크다. 김정은과 북한 정권 바로 보기를 넘어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태 공사는 베스트셀러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이렇게 적었다. "대한민국은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와 번영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격이 있는 나라다. 노예 상태에 빠져 있는 북한 주민을 해방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주도해야 할 책임이 한국에 있다. 하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많은 것 같다."그의 지적처럼 대한민국은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번영에서 북한에 월등하게 앞서왔다. 태 공사를 비롯해 수많은 북한 인사들이 우리나라에 귀순했을 때 첫 일성이 "자유! 대한민국"이었다. 번영으로 일컬어진 경제 발전도 남한을 북한보다 우위에 서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자유와 번영이란 두 가지 기준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 '위기'란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인간 본성을 토대로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정립된 자유, 이것이 지닌 의미와 가치는 숭고하다. '자유론'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나무에 비유해 자유를 명쾌하게 정의했다. "인간은 본성상 모형대로 찍어내고, 그것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보다는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 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다." 그렇기에 우리 헌법은 수많은 조항에서 자유를 표방하고 있다. 민주주의도 자유를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북한 체제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개념이 자유이기도 하다. 자유를 보수 우파 전유물로 판단해 빼고 지우려는 것은 아닌지 저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자유를 잃어버린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이 될지 걱정이다.남한과 북한이 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운동 경기를 하는 등 겉으로는 평화스럽지만 안보에서는 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북미 정상이 만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북한 비핵화에선 뚜렷한 진척이 없다. 한반도 평화의 전제조건인 북한 비핵화 합의에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비핵화 대신 종전선언이 엉뚱하게 이슈로 떠오르고, 한미 군사훈련이 취소되는 등 대북 유화책만 쏟아진다. 어느새 북한 비핵화는 정치 이슈로 변질했고, 칼자루는 김정은이 쥐고 있다. 북한 비핵화가 안 된 상태에서 남북·북미 화해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먹고사는 문제, 경제에서도 경고등이 켜진 지 한참 됐다. 고용지표가 외환 위기 수준으로 추락하는 등 여러 수치가 경제 위기를 방증하는데도 정부와 여당은 계절적 요인 혹은 전(前)·전전 정권 탓으로 돌리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의 한계가 드러났지만 정책 수정은커녕 귀담아들으려는 자세조차 보이지 않는다. 경제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정부 리스크(risk)'가 경제 위기를 부르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마이 웨이만 고집하고 있다.위기를 극복하는 첫걸음은 위기를 직시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총선, 대선, 지방선거 3연승에 언제까지 취해 있을 것인가. 대북·경제 정책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조목조목 살피고 따져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때다. 이 정부가 임기를 마쳤을 때 대한민국이란 배가 어디에 있을지를 생각하면 아찔하다는 목소리를 경청하길 바란다. 대한민국은 어느 한쪽만이 아닌 국민 모두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2018-07-17 05:00:00

박병선 논설위원

[세풍] 권영진 시장의 4년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별명은 '문핏대'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다혈질에 불도저 같은 추진력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1997년 경상감영공원이 만들어질 당시, 공무원들은 '문핏대'가 공사 현장에 나타나면 벌벌 떨었다. 문 전 시장은 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지시하고 잔소리하고, 눈에 거슬리는 것이 보이면 곧바로 핏대를 올렸다. 그가 공사 현장을 찾은 횟수만 해도 수십 번 넘었으니 공무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했다.경상감영공원은 문 전 시장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228기념공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같은 도심공원도 그의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무 심기도 빼놓을 수 없다. 스스로 '나무 시장'이라고 불리길 원할 정도로 재임 7년 동안 645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대구를 밝고 푸르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대구 경제를 살리라고 시장으로 뽑아줬더니 환경에만 신경 쓴다는 비아냥이 있긴 했지만, 그가 뿌린 과실은 오롯이 대구 시민의 차지가 됐다.조해녕 전 시장은 취임 1년도 안 돼 지하철 참사가 일어나는 바람에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실의에 빠져 시장실에서 '칩거 아닌 칩거'를 하는 와중에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를 기획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남달랐다. 전임 김범일 시장은 그리 대중적인 인기가 없었지만, 업적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국가산업단지, 테크노폴리스, 첨단의료복합단지, 한국뇌연구원 등등…. 치밀함과 기획력을 갖춘 보기 드문 시장이었다.3명의 민선 시장 모두 재임 중에는 이런저런 비판에 시달렸어도,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들의 업적이 상당했음을 알게 된다. 뚜렷한 자기만의 개성을 갖고 시민들에게 큰 이득을 안겨줬으니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이제, 재선에 성공한 권영진 시장 얘기를 해보겠다. 권 시장이 재임한 4년간 업적을 꼽으라면 금방 떠오르는 것이 없다. 굳이 있다면 몇몇 기업을 유치하고 '치맥 페스티벌' '컬러풀 페스티벌' 같은 행사를 연 정도다. 권 시장이 지난달 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에게 고전한 이유 중 하나다.권 시장이 4년 전 취임할 때만 해도 최초의 정치인 출신이라 기대감이 컸다. 정치인답게 중앙정부와의 소통은 물론이고 시청 직원들의 신명을 북돋울 것이라고 믿었다.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 국책사업 유치는 말할 필요도 없고, 시청 내부에서조차 '측근 정치'니 '밀실 인사'니 하며 구설이 많았다. 시청 주변에서는 '일해도 알아주는 분위기가 아니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권 시장 본인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별로 한 것이 없다는 세간의 평가를 모를리 없고, 권 시장 스스로도 "10, 20년 뒤 길게 보고 있다"는 말로 현재의 어려움을 해명하고 있다. 권 시장은 재선 임기를 시작하면서 "대구 취수원 이전, 통합신공항 건설, 대구시 청사 이전 등 민생현안 해결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했다. '시장직을 걸겠다'는 것은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지만, 그 정도로 압박감과 초조함에 쫓기고 있음을 보여준다.권 시장에게는 4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앞으로의 4년은 지나간 4년과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 과거와는 다른 생각과 행동,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뿐이다. 차별적인 권 시장만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다.

2018-07-10 05:00:00

[세풍] 국민이 불안한 이유

1980년대 중반, 일본 반도체 산업은 황금기를 보냈다. 인텔이 D램을 발명한 1971년 이후 시장을 독식해온 미국을 밀어내고 일본이 세계 점유율 80%로 메모리 시장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쌍두마차인 도시바와 히타치가 일본 반도체를 이끌었다. 그런데 1999년 12월 엘피다만 빼고 일본 기업이 D램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를 두고 일본 업계는 '일본 반도체 산업의 꽃이 졌다'고 표현한다.벚꽃처럼 화려하게 꽃을 피우다 와르르 무너진 이유가 궁금하다.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일본병(病)'이다. 일본 반도체 산업 실패 보고서이자 반성문인 '일본 반도체 패전'을 쓴 유노가미 다카시는 이리 진단했다. "일본 반도체 산업에는 심각한 병이 있다. 과잉 기술로 과잉 품질, 과잉 성능의 제품을 만드는 병이다. 반도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휴대전화· TV 등 디지털 가전 분야도 증세가 똑같다. 이 병을 치유하기 어려운 이유는 '비용 의식의 부재' 때문이다." 원가를 무시하고 최고만 지향하다 일본 반도체가 꼬꾸라진 것이다.일본 반도체는 시장이 원하지도 않는 고기술과 고품질, 고성능의 고가 제품에 매달리다 시장을 정확히 꿰뚫어 본 한국 등 경쟁 메이커에 밀려 퇴출됐다. 달리 표현하면 제조문화의 과잉, 자기만족의 종말이다.이후 20년 가까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절대 강자 삼성과 SK하이닉스, 마이크론사의 각축전 양상이다. 그런데도 일본 반도체 기업과 기술자들은 여전히 "예나 지금이나 기술력은 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경영과 전략에서 밀리고 가격 경쟁력이 없는데도 기술 타령만 해대는 것이다. 저비용에 시장이 원하는 제품, 즉 제조의 기본을 무시하면 실패는 부르지 않아도 다가온다. 일본 반도체의 실패는 한마디로 병을 병으로 보지 않는 데 있다.비슷한 사례가 요즘 위기감이 높아진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이다. 각종 지표의 하락과 민생 악화가 문재인표 정책의 쌍두마차인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소득을 늘려 민생과 경제에 피가 돌게 하겠다는 탈양극화 정책이 위기에 몰린 이유는 뭘까. 현실과 겉도는데도 최상의 해법이라며 우기고, 궤도 수정을 외면하는 고집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탐욕이 보수를 망치고, 아집이 진보를 그르친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경제 교조주의가 오히려 민생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일본병과 증상이 비슷하다.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의욕과 구호만으로는 바꾸기가 어렵다. 철학이 아무리 깊어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 변화와 변신은 그림의 떡이다. 시장 주체들이 함께 공감하고 힘을 모을 때 비로소 환경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는 법이다.소득이 거꾸로 줄어드는 소득주도성장, 개혁 없는 혁신성장은 극심한 일자리난을 부른 '일자리 정부'만큼이나 모순이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의 비명이 결코 자장가가 아님을 문재인 정부는 알아야 한다. 지금 한국경제라는 시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일자리 감소나 투자, 소비, 수출 감소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 해법의 출발은 경직된 도그마를 버리고 정책 유연성을 찾는 일이다. 일본 반도체가 무용한 기술에 볼모가 됐고, 문재인 정부는 철학에 발목을 잡혔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한국경제 반등은 없다.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2018-07-03 05:00:00

[세풍]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미신

의도가 반드시 의도한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다. 독일 국민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는 것이 목적이었던 2차 대전 때의 독일 대도시에 대한 연합군의 전략폭격은 좋은 예다. 독일 국민 30만5천 명이 사망하고 70개 독일 대도시가 파괴됐지만,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전후 영국 폭격조사기관은 "독일 도시에 대한 공격이 민간인의 사기 저하를 겨냥한 것이었다면 이는 명백히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미국 전략폭격연구소의 의견도 이와 같았다.전략폭격의 효과는 전혀 엉뚱한 데서 나왔다. 독일 공군을 소모전으로 끌어들여 독일 공군력을 소멸시킨 것이다. 미국이 P-51, 선더볼트 등 압도적 성능의 장거리 호위 전투기를 개발하면서 연합군 폭격기를 요격하는 독일 전투기는 독일 상공에서 사라졌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 미군은 8천722대의 항공기를 동원했으나 독일은 고작 전투기 250대만 띄울 수 있었다.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가 장병들에게 "제군들이 머리 위에서 전투기를 보게 된다면 그것은 아군기일 것이다"라고 '보증'했던 이유다.그러나 이는 본래 목적은 성취하지 못했어도 어쨌든 연합국의 승리라는 최종 목표에 기여한 결과를 가져왔으니 그나마 다행인 경우다. 그 반대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프랑스 대혁명 때 모든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겠다며 '반값 우유'를 명령한 로베스 피에르의 고귀한 뜻이 농민의 젖소 사육 포기와 우윳값 폭등을 불러와 결국 부자만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된 역설을 낳은 것이 대표적이다.문재인 정부도 똑같은 '선의(善意)의 함정'에 갇혀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은 그 의도만 놓고 봤을 때 참으로 인간적이고 따뜻한 정책이다. 그러나 결과는 의도의 선함을 배반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렸지만 1분기 중 소득 격차는 사상 최대로 벌어졌고 고용 사정은 '참담하다'는 것 말고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게 악화됐다.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 사업자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켜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도록 한 때문이다.다른 정책도 마찬가지다. 탈원전에 따른 신재생 에너지 지원 정책은 산림 파괴와 환경 훼손을 낳고 있으며, 모든 근로자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주 52시간 근무제는 근로소득 감소와 기업이 인력이 부족해도 충원하지 않으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런 부작용이 '미지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예견됐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 정부는 귀를 닫았다. 예상대로 부작용이 나타나자 통계까지 조작해 '선한 의도의 악한 결과'를 가리려 한다.세상은 복잡하다. 그 메커니즘을 인간이 완벽히 알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은 세상을 단순하게 보려 한다. 특정 시점의 특정 현상은 인간의 의지 밖에 있는 복수의 유동적 요인의 상호작용이 빚은 결과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야 세상을 통제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된다. 여기에는 그 어떤 합리적 근거도 없다. 그래서 이런 사고방식은 일종의 미신(迷信)이다.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섬너는 "미신의 전체 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신은 종교가 아니라 정치와 결합하고 있다"고 했다. '선한 의도'의 아집에 빠진 문 정부를 보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적이다. 이런 현대의 미신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과를 보고 생각을 고치는 것뿐이다. "나는 사실이 바뀌면 생각을 바꿉니다. 그쪽은 어떻게 하나요?" 소득 주도 성장 개념의 단초를 제공한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2018-06-26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세풍] 남북, 경쟁 잘만 하면

남북 강산이 두 쪽으로 갈라진 지도 벌써 70년이 넘었다. 그러는 사이 서로 가는 길이 닮은꼴이기도 했고 전혀 그렇지 않기도 했다. 이는 남북 강산의 하늘과 땅, 사람의 기운이 서로 작용하는 바가 달라서일 것이다. 서로 경쟁하며 견제하기도 했고 상대를 거울삼아 다른 길로 나선 일들도 숱했다. 남북 강산의 다른 두 체제는 그렇게 지금까지 지냈다. 되돌아보면 배울 바가 없지 않은 그런 역사임이 틀림없다.먼저 경쟁이 성공적인 결과로 끝난 일, 토지개혁이다. 이는 1945년 8월 광복 이후 북쪽에서 먼저 시작돼 1946년 3월 마쳤다. 그 거센 바람은 남쪽으로도 불어닥쳤고 남쪽 해방 정국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러나 친일 지주 등 반대 세력에 부딪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1950년 3월, 한국전쟁 직전에야 공포될 수 있었다. 이는 식민 지배 독립국 가운데는 성공 사례가 드물 만큼의 성과였다. 비록 두 쪽의 개혁 방식은 달랐지만 빼앗긴 땅을 백성에게 돌려주는 목표는 같았다. 두 체제의 성공작이었다. 남쪽은 이로 인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다음은 불행한 경우다. 1960, 70년대, 남한 독재와 북한 세습의 씨앗을 뿌린 일이다. 남에서는 196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연임을 위한 개헌이 이뤄지고, 북에서는 1967년 김일성의 유일 독재 체제가 구축되고 김일성은 수령에 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남에서는 장기 집권을 위한 1972년의 10월 유신과 11월 유신헌법이, 북에서는 세습을 위한 1974년 유일 체제 10대 원칙 제정과 김정일 후계자 결정이 이뤄졌다. 가지 말아야 할 닮은꼴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총탄 서거라는 오점을, 북은 유례없는 독재 세습 국가의 오명을 얻었다.1980, 90년대의 모습도 새길 만하다. 남쪽은 1987년 민주화로, 반면 북한은 1980년 김정일의 세습 공식화로 한 획을 그었다. 또 남쪽은 1988년 하계 올림픽으로, 북쪽은 맞불로 1989년 제13회 세계청소년축전을 열어 세 과시 경쟁의 길을 걸었다. 게다가 1990년대 남북은 각각 최대 규모 고통의 동병상련을 겪었다. 남쪽이 1997년 '단군 이래 최대 위기'의 IMF 경제난을 만났고, 북쪽은 1995~2000년 '한국전쟁 이후 처음'인 '고난의 행군'으로 무려 33만~300만 명이나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진 대재앙에 시달렸다.2000년대의 남북은 두드러졌다. 두 차례(2000년2007년)의 남북 정상회담, 북한의 두 차례(2006년2009년) 핵실험, 서해 무력 충돌(2002년 2009년)로 남북이 맞은 기회와 시련의 시기였다. 특히 2010년대는 더욱 그랬다. 먼저 권력 이동이다. 남쪽에서는 촛불 시위 끝에 2017년 진보 정권이 들어섰다. 북에서도 2011년 김정일 사후 김정은의 3대 세습 정권이 출범했고 그는 도발의 날을 보냈다. 2013~2017년 네 차례 핵실험, 2018년에는 한 달 만에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의 직통 전화도 갖게 됐다.이런 역사를 되짚어 보면 앞으로 남북 강산에 다가올 일에 더욱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강산을 휘감는 바람의 세기도 예사가 아니어서다. 무엇보다 북쪽의 '위로부터 부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김정은 출범 10년이 가져올 변화의 바람은 지금까지 70년 세월의 바람과는 분명 다르다. 바람의 방향도 지금까지는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혹 남북 토지개혁에 버금갈 일의 징조 바람일까.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올림픽 구상 이후 불어오는 남북 강산의 바람이 어느 때보다 촉감이 좋다.

2018-06-19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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