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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성 격차 118위…출산율 1.05명

늦장가 간 생질의 첫 아이가 태어났다. 집안 축복이다. 아빠, 엄마가 된 생질 부부의 기쁨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가 닥쳤다. '애는 누가 키우나?' 생질 부부는 고향을 떠나 맞벌이를 한다. 그것도 서울과 전북 익산에서 떨어져 사는 주말부부다. 육아휴직은 언감생심. 젖먹이를 남의 손에 맡기려니, 미덥지 않다. 비용도 많이 든다. 답은 정해져 있다. 황혼 육아! 환갑이 훌쩍 넘은 누나 부부가 아기를 맡게 됐다. 누나 부부 역시 집에서 노는 사람들이 아니다. 구미에서 하우스 농사로 바쁘다. 집안 길흉사에도 눈도장만 찍고 일터로 돌아갈 정도다. 누나의 처지가 딱하고, 생질 부부의 형편이 안쓰럽다. 아기는 축복인데, 육아 현실은 냉혹하다. 이 때문에 젊은 부부들은 출산을 주저한다. 지난주 이런 현실을 충격적인 숫자로 접했다. 통계청은 2017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지표)은 1.05명이라고 밝혔다. 역대 최저치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평균(1.68명'2015년 기준)을 크게 밑돈다. 또 기존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 불과하다. 비혼(非婚)을 선언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통계청 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혼인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미혼자는 2008년 10명 중 5.6명이었다. 그러나 2016년엔 3.8명으로 줄었다. 혼인 건수는 ▷2015년 30만2천800건 ▷2016년 28만1천600건 ▷2017년 26만4천500건으로 감소세다. 정부는 2006년부터 출산장려정책을 시행했다. 10년 넘게 120조원을 투입했다. 출산율은 더 떨어졌다. 보육비를 지원하고, 출산장려금 더 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고? 젊은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취업난, 경기 불황, 엄청난 양육비(자녀 1인당 대학 졸업 때까지 양육 비용 3억9천700만원이라는 추계도 있음), 경력 단절, 독박 육아, 치솟는 집값….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출산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일과 양육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사회로는 인구절벽을 피할 수 없다. 직장과 가정에서 양성평등이 이뤄져야 한다. 출산과 육아에 따른 불이익은 최소화돼야 한다. 성 평등 사회로 진입해 여성고용률이 높아지면 출산율이 반등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유럽 국가 중에는 그런 사례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OECD 회원국 중 출산율 꼴찌인 한국의 남녀 격차는? 세계 144개국 중 118위다. 아프리카의 튀니지와 감비아 사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7년 세계 성 격차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0.650점.(성 격차 지수가 1이면 완전 평등이다) 특히 경제 참여'기회 부문은 121위다. 남녀 간 임금 격차도 여전히 크다. 유사 업무 임금평등 항목에서 121위, 추정근로소득 수준을 보면 여성(2만2천90달러)은 남성(4만9천386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출생 시 남녀 성비 불균형은 132위로 최하위권이다. 양성평등에 가장 근접한 나라는 아이슬란드(0.878), 노르웨이(0.830), 핀란드(0.823) 등이다. 이들은 출산율을 반등시킨 대표적인 국가다. 다행히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출산과 양육에 큰 부담이 되는 주거'교육 등 분야에 대해 생애주기 관점에서 지원안을 마련할 계획이란다. 지난해 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국가 주도로 출산을 장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 가족의 삶을 존중하는 사람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시간이 걸려도 미래를 보장하는 정책을 내놓기를 희망한다.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이 행복해야 출산율이 높아진다. 110년 전 '여성에게 빵(생존권)과 장미(존엄권)'를 외쳤던 그날의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2018-03-08 00:05:01

[데스크 칼럼] '미투 운동'에 거는 기대

그녀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오래전의 일이다. 정확한 시기는 생각나지 않지만 30대 여성이 과거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뒤늦게 털어놓는 자리였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도 그녀가 인터뷰 내내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마치 속죄하는 것처럼 그녀는 죄책감에 억눌려 있었다. 피해자인데도 그런 모습에 무척 가슴이 아렸던 기억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은 불편한 범죄다. 뿌리깊은 가부장적 시선에 피해자라고 밝히는 순간 '주홍글씨'가 뒤따를 수 있어서다. 보이지 않는 보복이나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사회 전반의 '성폭력 프레임'은 여전히 굳건하다. 피해자들은 그 속에 갇혀 가슴속에 충격과 분노를 켜켜이 쌓아둔 채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에서 촉발된 '미투(Me Too) 운동'(성폭력 고발 운동)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포털사이트에는 피해자라 주장하는 인물과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미투 운동은 대형 이슈인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도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며 그 열기를 실감케 했다. 이번에 불거진 미투 운동의 진원지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가해자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조직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법조계나 문화예술계, 연예계 등. 자칫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가는 시쳇말로 '그 세계에 발붙일 수 없기에' 섣불리 잘못이라고 항변하지 못하는 곳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 중 대표적인 이가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다. 이 씨는 한국 연극계에서는 '전설'로 통한다. 그가 이끄는 연희단거리패는 연극계는 물론, 영화계를 주름잡는 배우들을 줄기차게 배출하는 사관학교로 불린다. 그의 한마디는 곧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 한때 연희단거리패에 있었던 한 배우의 소회는 이를 짐작게 하고도 남는다. 그는 "이윤택 대표는 대한민국 연극계에서 가장 높은 분이고 내가 어느 극단에서 연극을 해도 '저놈은 잘라'하면 잘리는 정도의 파워를 가진 분"이라고 했다. 절대적인 그에게 피해 여성들이 최근 '미투'를 외쳤고 결국 그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어 논란은 진행 중이다. 미투 운동은 사회 곳곳으로 전파되고 있다. 종교계는 물론, 대학사회로도 확산되고 일반인들도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대구의 모 커뮤니티에는 한 회원이 어렸을 때 당한 성추행 이야기를 꺼내자 자신도 성폭력을 당했다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일반 관객들의 '위드유' (with you'당신과 함께하겠다) 집회도 힘을 보태고 있다. 미투 운동이 풀뿌리 운동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이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지배하는 '갑을 문화'가 있다. 모두가 알지만 쉽사리 바꾸려고 용기 내지 못하는 적폐가 숨어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부당하고 강압적인 갑을 문화를 얼마나 많이 겪는가. 미투 운동은 적폐를 고발하는 것이자, 권력을 앞세워 아랫사람을 짓밟는 풍조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운동은 '을'들의 적극적인 공감을 사는 것이다. 혹자는 미투 운동을 혁명이라고도 일컫는다. SNS를 비롯한 온라인 상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른 현대적 개념의 혁명으로 해석한다. 아무쪼록 미투 운동이 일회성으로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가해자들이 '이 또한 지나간다'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꾸준히 이어졌으면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무서워 응어리를 가슴속에 묻고 사는 많은 여성이 당당해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아가 미투 운동이 불쏘시개가 돼 온갖 부당하고 강압적인 '갑을 문화'를 정화하는 시민운동으로 번지기를 희망한다. 이것이 미투 운동을 기대하는 이유다.

2018-03-01 00:05:00

[데스크 칼럼] 저성장 시대와 소확행(小確幸)

직장인 친구는 한 달에 두어 번 예전에 살던 동네로 '밤 마실'을 간다. 버스를 갈아타고, 걷고 하며 30분쯤 걸려 도착하는 곳은 작은 대폿집이다. 1만원 남짓한 돈을 내고는 혼자서 석쇠구이 한 접시와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는 소주 한 병에 기분 좋게 취해 돌아온다. 또 다른 직장인 친구는 틈만 나면 해외여행을 간다. 마카오, 홍콩, 오사카 등이 가까운 목적지다. 초저가 항공권이 뜨면 행선지를 가리지 않고 미리 사둔다. 그래서 가족동반보다는 홀로 갈 때가 더 많다. SNS에 자랑해놓은 친구의 여행지 셀카를 보면 부럽다. 하지만 나로선 쉽지 않은 일탈이다. 인생 뭐 있어? 싶지만 때로는 인생 참 힘들다. 그래서일까. 올 들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小確幸)이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소확행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에 낸 수필집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을 때, 새로 산 하얀 셔츠를 입을 때처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소확행의 예로 들었다. 버블 붕괴 이후 태어나서 한 번도 호황을 경험하지 못한 일본 청년세대의 경험이 소확행을 낳았다고 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작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손 닿는 곳에서 필사적으로 행복을 찾는 것이리라. 소확행이 '위로형 소비'를 도구로 하지만 40대 소확행과 20대 소확행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돈은 있는데 소박한 40대와 달리 경제적으로 어려운 20대 청년들에게는 혼술, 혼행(혼자 여행)도 사치다. 한국 청년들은 고달프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청년층 경제활동 제약의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보자. 지난해 15~29세 청년 체감실업률은 22.7%로 청년층 공식 실업률(9.9%), 전체 연령층 체감실업률(11.1%)을 훌쩍 넘었다. 일자리가 있더라도 불안정한 경우가 많았다. 15~29세 신규 채용 청년 중 비정규직은 2007년 54.1%에서 2015년 64.0%로 상승했다. 일자리가 변변치 않다 보니 빚은 늘고 소득은 줄고 있다. 전체 가구 평균 부채가 2012~2016년 28.8% 늘어날 때 30세 미만 가구주 부채는 85.9%나 늘어났다. 30세 미만 가구 가처분소득은 2015년 2천823만원에서 2016년 2천814만원으로 되레 줄었다. 고용, 소득 부진을 겪는 청년들은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 됐다. 지역 사정은 더 참담하다. 동북지방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의 경제지표 상당 부분이 전국 평균에 미달했다. 지난해 대구 실업자 수는 5만1천 명으로 전년보다 10.5% 증가했다. 지난해 대구에서 유출된 인구는 1만2천 명에 육박했다. 고용 여건 악화가 주요한 이유다. 한국은 이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2020년대 2% 초반, 2030년대 1%대로 전망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범정부 청년실업 대책을 21차례나 내놓고, 최근 5년간 청년 일자리에 1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청년 고용 상황은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저성장, 고령화에 더해 청년 고용 불안은 더 심화할 게 분명해 보인다. 해법은 없을까. 관 주도의 단기적인 일자리 공급은 실효성이 없다는 게 이미 판명났다. 벤처 창업을 통한 일자리 확충 역시 한계가 있다. 그나마 효과적인 대안은 일자리 미스매칭 해소인데, 구직 청년에게 덮어놓고 눈높이를 낮춰라고 할 문제는 아니다. 기업 주도 인재를 키운다는 마음으로 고용 환경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 작고 소소한 행복도 좋지만, 넓은 세상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행복을 느끼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2018-02-22 00:05:01

[데스크 칼럼] 코피 터트리기

군 복무를 끝마쳐갈 무렵인 1994년 이맘 때쯤 한반도는 폭풍 전야였다. 전년도에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촉발된 제1차 북폭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당시 최전방 미군기지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던 기자는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 다닌다'는 말년 병장이었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난 뒤 비상이 걸렸다. 평소 한밤중이나 새벽에 걸리던 비상이 대낮에 걸린 것이다. 완전군장을 하고 대기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동료 병사들 사이에서는 북한과의 전쟁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제대가 코앞인데…이러면 곤란한데…." 불안에 떨면서 미군 장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주시했다. 전시 작전 계획을 설명하는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고, 걸프전을 비롯해 세계에서 무수한 전쟁을 치른 베테랑답게 차분하고 사무적이었다. 그들에게서 적어도 겉으로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싸움꾼' 미군의 모습은 다르구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전쟁을 무서워하게 된 것은 신병 때 '깜놀'했던 경험 때문이다. 흔히 남자들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처음 총을 쏘아 보았을 때를 꼽는 경우가 많다. 내게는 AT4라는 대전차포였다. 대전차포 실사격 훈련이 있던 날. 기자의 손에 쥐어진 무기는 무게가 8㎏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장난감이 전차를 파괴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그러나 목표물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타깃용 전차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장난감 같은 무기가 뿜어내는 엄청난 화력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저 탱크 안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엄청난 압력에 사람의 겉모습은 물론 장기들까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졌을 것이다. 그날의 경험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어떤 경우에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소신이 되었다. 하물며 핵전쟁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한반도에 위기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동안 숱한 위기설이 나돌았지만 이번은 1차 북핵 위기만큼 심각하다. 미국이 작심하고 북한의 코피를 내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 같아서다. 먼저 주먹을 날려 코피를 터뜨리면 이기는 아이들 싸움처럼 작전 이름도 '코피'(bloody nose)다. 북한에게 과연 이 전략이 통할지 의구심이 들지만 미국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는 모양이다. 이미 지난해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함과 동시에 북한의 핵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미국 고위급 관리들의 잇따른 발언 등으로 공격 준비작업을 착착 진행 중임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에 전개해 놓은 전략자산들을 볼 때 과연 코피만 내고 말지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평창올림픽 개회를 하루 앞두고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등장시키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런저런 대내외 상황 속에서 드디어 지난 9일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됐다. 한반도에도 평화의 기운이 한껏 감돌고 있다. 남북 분단 이후 '백두혈통'으로는 처음으로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남한을 방문하고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은의 친서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히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초청하면서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지난 10년간 사실상 북한과의 단절 이후 대화를 통한 협상의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러나 곧 잔치는 끝난다. "평창올림픽 성공을 빕니다. 그러나 그 후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 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치른 평화적 잔치 뒤에 찾아올 어떠한 상황도 평화적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18-02-15 13:29:41

[데스크 칼럼] 코피 터트리기

군 복무를 끝마쳐갈 무렵인 1994년 이맘 때쯤 한반도는 폭풍 전야였다. 전년도에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촉발된 제1차 북폭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당시 최전방 미군기지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던 기자는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 다닌다'는 말년 병장이었다.하루는 점심을 먹고 난 뒤 비상이 걸렸다. 평소 한밤중이나 새벽에 걸리던 비상이 대낮에 걸린 것이다. 완전군장을 하고 대기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동료 병사들 사이에서는 북한과의 전쟁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제대가 코앞인데…이러면 곤란한데…." 불안에 떨면서 미군 장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주시했다. 전시 작전 계획을 설명하는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고, 걸프전을 비롯해 세계에서 무수한 전쟁을 치른 베테랑답게 차분하고 사무적이었다. 그들에게서 적어도 겉으로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싸움꾼' 미군의 모습은 다르구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전쟁을 무서워하게 된 것은 신병 때 '깜놀'했던 경험 때문이다. 흔히 남자들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처음 총을 쏘아 보았을 때를 꼽는 경우가 많다. 내게는 AT4라는 대전차포였다. 대전차포 실사격 훈련이 있던 날. 기자의 손에 쥐어진 무기는 무게가 5㎏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장난감이 전차를 파괴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그러나 목표물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타깃용 전차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장난감 같은 무기가 뿜어내는 엄청난 화력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저 탱크 안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엄청난 압력에 사람의 겉모습은 물론 장기들까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졌을 것이다. 그날의 경험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어떤 경우에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소신이 되었다. 하물며 핵전쟁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20여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한반도에 위기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동안 숱한 위기설이 나돌았지만 이번은 1차 북핵 위기만큼 심각하다. 미국이 작심하고 북한의 코피를 내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 같아서다. 먼저 주먹을 날려 코피를 터뜨리면 이기는 아이들 싸움처럼 작전 이름도 '코피'(bloody nose)다.북한에게 과연 이 전략이 통할지 의구심이 들지만 미국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는 모양이다. 이미 지난해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함과 동시에 북한의 핵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미국 고위급 관리들의 잇따른 발언 등으로 공격 준비작업을 착착 진행 중임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에 전개해 놓은 전략자산들을 볼 때 과연 코피만 내고 말지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평창올림픽 개회를 하루 앞두고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등장시키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이런저런 대내외 상황 속에서 드디어 지난 9일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됐다. 한반도에도 평화의 기운이 한껏 감돌고 있다. 남북 분단 이후 '백두혈통'으로는 처음으로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남한을 방문하고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은의 친서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히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초청하면서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지난 10년간 사실상 북한과의 단절 이후 대화를 통한 협상의 길이 열린 셈이다.그러나 곧 잔치는 끝난다. "평창올림픽 성공을 빕니다. 그러나 그 후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 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치른 평화적 잔치 뒤에 찾아올 어떠한 상황도 평화적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18-02-15 08:16:13

[데스크 칼럼] 입시 반칙에 눈감는 대학들

교육부가 2월부터 전국 4년제 대학 전임교원 7만6천 명을 대상으로 '교수들의 미성년 자녀 논문저자 끼워넣기' 실태를 추가 조사키로 한 결정은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학의 자체 조사와 교수들의 자진 신고에 의존했던 첫 조사에서 드러난 82건이 전부가 아니라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애초에 논문저자 끼워넣기는 대학이나 교수들로부터 자진 신고를 받아 마무리할 사안이 아니었다. 신고를 누락한 경우가 여럿 확인됐으며 대학마다 조사 방법의 차이, 방학으로 인한 조사 대상자 부재, 착오 등으로 추가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연구부정 논문이 대입에서 활용된 경우 해당 대학에 입학 취소 등 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실 교육부가 추가로 전수조사를 해도 허점이 많이 남아 있다. 동료 교수의 자녀나 지인, 혹은 유력자의 자녀를 끼워 넣는 행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꼼수는 조사에서 빠져 당사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다. 파헤쳐보면 현재의 적발 사례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교육부는 추가 조사 이후 논문에 포함된 전체 미성년 공저자 규모를 파악해서 교수와의 관계 또한 확인해야 한다. 논문저자 학생들은 자기소개서 등에 '수준 높은' R&E(과제연구) 활동 내용을 기록하게 되고 대입에서 유리한 위치에 놓인다. 교수의 직계 자녀로만 조사를 한정해서는 일반 학생과 학부모들의 상실감을 메워주기 어렵다. '입시 반칙'은 일부 고교의 학생부 기록에서도 교묘하게 숨어 있다. 최근 국공립 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한 권역별 핵심교사 콘퍼런스에 참가한 교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대학들이 실제 학생부를 보여주고 교사들이 평가하는 연수 시간에 생각지도 못한 기록이 나타났다고 했다. 재학생 학생부에 3학년 2학기 과목의 세부능력 특기사항(세특)이 등장하고, 담임이 예체능 과목 세특란에 상관없는 국어, 수학 등의 내용을 추가로 기재했다. 심지어 교내 대회 이외의 수상 기록을 엄격하게 통제함에도 불구하고 진로 활동에 올림피아드 수상 내용이 버젓이 있었다고 했다. 이쯤 되면 교육 당국이 수도 없이 강조해 온 학생부 기재요령 교육이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대학들이 사례로 제시한 학생부가 모두 해당 대학 합격자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현재의 수시모집 대입 구조로는 대학이 학생 선발의 절대적 권한을 가진다. 교과 내신과 같은 정량평가 외에 정성적 평가가 중시되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더욱 그렇다. 학교교육 중심의 대입전형이 자리 잡고 교실수업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 학종이 분명히 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학부모들은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이라고 부른다. 수험생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 주요 대학일수록 이런 느낌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어떻게 합격했는지, 왜 떨어졌는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개입될 수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정성평가는 수험생과 대학(평가자) 사이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데 학생부 편법, 논문 끼워넣기 같은 꼼수가 횡행하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 대학이 규정된 기재요령에서 벗어난 학생부를 모두 탈락시키지 않는 한 고교에서 꼼수와 편법이 확산될 것이다. 기재할 수 없는 외부대회 실적 등을 기록한 학생부를 우선 대교협에 송부하고, 이후 감사에 대비해서 내용을 지운다고 한다. 이러한 '신기술'이 대학에서 통한다는 사실이 대입 불신을 부채질한다. 대학은 학생부 기재가 고교의 책임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순진하게 규정을 지킨 학교(학생)만 바보가 된다. 공정한 경쟁의 출발이 무너진다. 오는 8월에 확정되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와 관련해서 논의가 한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 입시제도 개편 방향을 '단순'과 '공정'이라고 제시했다. 제도로서의 공정뿐만 아니라 적용에서도 반칙에 눈감지 않아야 한다. 교육부 또한 반칙을 대입에 활용하고 이를 모른 척하는 대학을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2018-02-08 00:05:04

[데스크 칼럼] '리중딱' '한야딱'

1892년 창단한 리버풀 FC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명가'로 꼽힌다. 1부 리그에서 18차례나 우승을 차지했고,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다섯 차례 정상에 올랐다. 이웃 도시이자 1부 리그 우승 횟수에서 통산 1위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차례)와의 '노스웨스트 더비'는 EPL 최고의 눈요깃거리 가운데 하나다. 리버풀은 국내에서도 인기 구단에 속한다. 하지만 리버풀 서포터스들인 '콥'(Kop)은 종종 놀림감이 된다. 최근 팀이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 탓이다. 리버풀은 지난달 15일 EPL 선두 맨체스터시티를 격파하며 기염을 토했지만 다음 경기에서 최하위권인 스완지시티, 웨스트브롬에게 내리 졌다. 예상대로 국내 축구팬 사이에서는 '리중딱'(리버풀은 중위권이 딱이야)이란 조롱이 쏟아졌다. 요즘 자유한국당 행태를 보면 '한야딱'(한국당은 야당이 딱이야)이라 불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동 없는 비판, 책임감과는 거리 먼 의정, 개인 보신에 급급한 처신 등등 도대체 수권정당다운 떡잎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아마추어로 규정한 문재인 정부가 잇따라 헛발질을 해도 도무지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한다. 홍준표 당 대표를 위시한 지도부는 정부'여당 약점을 파고들겠다는 일념 아래 연일 무시무시한 말로 대중의 이목을 끌려 한다. 마치 언어유희의 끝이 어디인지 보여주겠다는 기세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림이 없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나 궁금하기도 하지만 내일이 기대되진 않는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믿음을 주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최근 청와대의 여야 원내대표 회동 제안에 "청와대가 애들 장난치는 데냐"라며 일축했다. 그의 말대로 여권의 국면 전환용 꼼수라 하더라도 제대로 맞붙어야 건질 게 있다. 한국당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여러 차례 보수 혁신을 약속했지만 오히려 퇴보한 듯한 느낌만 든다. 소속 국회의원'단체장들은 여전히 꽃길만 걸으려 하고, 대놓고 면박을 주는 당 대표에게 한마디 항변조차 못한다. '숭배 대상'만 이명박'박근혜에서 교체된 모양새다.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 당의 면모도 일신하지 못했다. 홍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 인물난에 대해 "후보가 될만한 분들에 대한 내사가 이뤄지고 있다. 야당이다 보니 들어오실 분들이 보복이 두려워서 못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오히려 야당의 힘은 유권자의 지지에서 나온다는 걸 아는 예비후보들이 외면해서가 아닐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당은 어느새 만만한 동네북이 됐다. 지방선거에서 최소 6곳의 광역단체장 선거를 승리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는 홍 대표의 공언은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당과 다른 야당들은 "무기력에 빠져 사실상 좀비 수준에 가깝다"(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현 여권이 적어도 네 번에서 다섯 번은 계속 집권해야 한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며 비웃는다. 누구나 아는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원제는 '황제의 새 옷'이다. 여기에서 새 옷은 '자신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거나 심각하게 바보인 사람에게 안 보이는 옷'으로 설명된다. 황제 또한 처음에는 사기꾼 재봉사들의 말에 "내가 그런 옷을 입는다면, 누가 자신의 지위에 부족한지도 알아낼 수 있고, 현명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도 구분할 수 있겠구나. 당장 옷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위풍당당하게 나선 거리에서 한 아이에 의해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황제는 행진을 멈추지 못한다. 허세 때문이었을까? 자괴감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자신을 속인 사기꾼들의 재능에 감탄한 나머지 넋이 나가서였을까? 넉 달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 뒤에 한국당이 무슨 소리를 늘어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2018-02-01 00:05:00

김수용 사회부장

[데스크 칼럼] 영웅이 필요한 시대

지난해 12월 21일 발생한 제천 '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 사고로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경찰은 건물주와 건물관리인 등을 구속하고 출동한 소방관 6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충북소방본부와 제천소방서 상황실 등을 압수 수색했고, 제천소방서장 등 현장 지휘관들을 불러 참사 책임을 물을지 조사할 예정이다.이런 가운데 소방공무원 처벌 문제를 놓고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경찰 수사와 관련해 소방관들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초기 대응 부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유가족대책위원회는 지휘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대책위 측은 "소방합동조사단 조사와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이 밝혀진 자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에 은폐나 고의 누락의 정황이 있다면 조사단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국민 안전 지키려면 제천소방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화재 당시 건물 2층에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소방 당국은 유리창을 깨지 않고 골든 타임을 놓쳤다. 철저하게 진상을 파악하고 관련자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부실한 초기 대응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제천 소방관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 글 13건이 잇따라 올라왔다.이와는 반대로 소방관 처벌을 반대하는 내용의 청원 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7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제천 화재 관련 소방공무원 사법처리 반대' 글이 올라왔다. 23일까지 3만4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사고 직후 소방관 잘못을 질타하는 유가족의 주장을 담은 기사에 오히려 소방관들을 응원하는 댓글이 잇따라 달리기도 했다.앞서 수많은 재난과 사고 이후에도 책임자 처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고, 진상 조사가 부실했을 때 국민들은 분노했으며, 이후 비록 납득하지 못할 수준이었다고 해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있었다.그런데 이번에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무원에 대한 처벌 반대를 외치는 일은 지금까지 거의 없던 현상이다. 앞서 사법처리 반대 글을 올린 청원자는 "완벽하지 않은 현장 대응의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선례는 소방공무원들에게 재직 기간에 한 번이라도 대응에 실패하면 사법처리될 수 있다는 작두 날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런 현상의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겠지만 필자는 '우리 시대의 작은 영웅'을 말하고 싶다.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된 소방관 이미지는 '온갖 악조건 속에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위험에 뛰어드는 고마운 이들'이다. 화마를 뚫고 누군가를 업고 안고 뛰쳐나오는 모습을 떠올린다. 재투성이 얼굴을 씻지도 못한 채 길바닥에 쓰러져 쪽잠을 자는 모습을 보며 가슴 뭉클하기도 했다. 철밥통, 복지부동이라고 공무원들을 싸잡아 비난하면서도 소방공무원은 예외였다.그렇다고 해도 이처럼 인명 피해가 큰 사고에서 소방공무원들의 초기 대응을 둘러싼 문제들이 하나둘 제기되는 와중에 이들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영웅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국정 농단 사태를 보며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라 한숨만 쉬던 국민들에게 제 목숨마저 던져가며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구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은 진정 마지막까지 지키고픈 고귀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거창하게 영웅이랄 것도 없다. 그저 마지막 순간까지도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남아주기를 바란 것이다. 물론 잘못이 있다면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책임 추궁과 처벌은 구조적 문제 해결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 시대 소방관들이 일그러진 영웅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아이들에게 희생이 보답받고, 작은 영웅들이 탄생하는 시대를 보여주고 싶다.

2018-01-25 00:05:00

[데스크 칼럼] 아베의 '혼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며느리 야단치는 제 어미를 말리는 척, 올케 위해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것 같은데, 그 '깐족임'에 울화통이 더 터진다는 거다. 요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꼭 그 같다는 생각이 든다. 툭하면 태평양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쏘아대고 땅 밑에서 핵실험을 해대는 북한이 고울 수 없다. 좀 가만히 있으면 대화도 하고 교류도 넓히며 화해 무드를 만들어 보겠건만, 한 핏줄이라지만 남보다 못하달 정도로 밉다. 그럴 때마다 미국이 엄포도 놓고 으름장도 놓는데, 옆에서 맞장구치며 역성을 드는 게 일본의 아베 총리이다. 요즘은 미국보다 더 목청이 커진 것 같다. '나쁜 북한'을 외치며 더 압박을 가해 핵 도발, 미사일 도발을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옳은 말'을 한다. 그런데 그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고 자신의 검은 뱃속만 더 보이는 것 같아 미운 시누이 같다는 거다. 그 시누이가 요즘 또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미운 짓을 하고 있다. 지난주부터 유럽 6개국 순방에 나서더니, 거기까지 가서도 "북한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하고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되풀이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하필 지금인가. 남북한이 모처럼 얼굴을 맞대고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시점이 아닌가. 막말 잘하기로 소문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남북 간의 대화 무드에 지켜보자며 말을 아끼고 있지 않은가. 한미연합훈련도 올림픽 기간 동안 중지하기로 한 터다. 모두가 조심조심 살얼음판을 딛고 있는 판국인데, 아베 총리는 그 살얼음판 위에서 발을 쾅쾅 구르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아베 총리의 이런 말은 기실 '다테마에'(建前)일 뿐이다. 일본인들의 속성을 이르는 말 중에 '겉으로 드러내는 마음'이 다테마에이다. 이 다테마에 뒤에 숨겨진 혼네(本音'진짜 속마음)는 따로 있다. 그의 혼네는 바로 "나는 군국주의의 관 뚜껑을 다시 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군국주의 일본의 부활'이라는 야심을 이루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한반도의 위기를 부각하려 노력한다. 일본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여, 군비 확장에 '딴소리'를 못하도록 입을 막아버린다. 남북한의 대화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에도 '한반도의 유사시 한국 거주 일본인들을 쓰시마로 대피시키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하는 등 불안감 증폭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잊을 만하면 각종 도발을 계속해주는 북한이 아베는 고마울 것이다. 국민들의 불안지수가 높아질수록,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개헌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한 발 쏠 때마다 일본은 요격 미사일 등 군비 강화 대책들을 쏟아낸다. 이런 두 나라의 관계를 '적대적 동반자'라 하던가. 북한의 도발을 지렛대 삼아 아베는 '군국주의 일본'을 향해 가는 개헌 행보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그는 이미 올 신년 기자회견에서 자위대 재무장을 위한 개헌 의지를 재천명했다. "올해야말로 헌법이 존재해야 할 모습을 국민에게 확실히 제시, 개정을 위한 논의를 한층 심화하는 1년으로 하고 싶다." 다음 날 열린 집권 자민당의 신년 모임에서도 그는 "현재의 평화헌법은 '점령시대에 만들어진 헌법'"이라며 "시대에 걸맞은 국가의 모습, 이상적인 형태를 확실히 생각하고 의논해 가는 것이 우리들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밝혔다. 자위대를 헌법 9조에 명시해 궁극적으로는 일본을 '전쟁가능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 국민 대다수는 아베의 이런 개헌 행보에 반대 입장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올해 개헌을 밀어붙일 태세이다. 지난해 총선 승리와 지지율을 등에 업고 개헌 드라이브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문제로도 골치를 앓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2018-01-18 00:05:00

[데스크 칼럼] 평창과 대구

평창동계올림픽을 생각하면 부러울 때가 많다. 어쩌면 배가 아팠다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대회가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스포츠 이벤트인 올림픽이라서가 아니다.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 속에 치러지는 스포츠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탈락의 아픔을 겪은 평창은 '삼수' 도전을 선언했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얻어 결국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정부는 유치를 위해 고속철도 건설까지 약속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유치 후에도 대회 성공을 위해 경강선 고속철도(KTX)에 몸을 싣고 현지를 방문해 힘을 실어주는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고위급 인사들을 볼 때면 부럽기 그지없었다. 2011년에도 한국에서 빅 스포츠 이벤트가 열렸다. '지구 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 광풍이 불었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그해 대구에서 열렸다. 물론 육상선수권대회가 최대 규모의 올림픽, 단일 스포츠 최대 이벤트인 월드컵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과 함께 세계 빅 3 스포츠 이벤트로 꼽히는 대회다. 그러나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 과정은 평창과 많이 달랐다. 정부, 국가 차원의 관심이 평창과 비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였다. 정부의 지지 동영상 하나 만드는 데도 애를 먹었다. 당시 경쟁 상대도 러시아 모스크바, 호주 브리즈번,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쟁쟁한 국가에 세계적인 도시들이었다. 주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대통령까지 유치에 나선 이들 도시를 제치고 대구가 대회를 유치한 건 기적과도 같았다. 지난 일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자는 것도, 평창올림픽에 대한 시기, 질투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때문이다. 평창올림픽을 둘러싼 국내외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데 따른 우려다. 러시아 도핑 파문으로 동계올림픽 최강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고, 동계 최고 인기 종목의 하나인 아이스하키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불참 선언으로 김이 새게 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평창으로 향하는 선수 등 외국인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고, 일본은 위안부 등의 문제를 이유로 신경전을 벌이며 아베 총리의 개회식 불참까지 거론하고 있다. 국내 역시 국민들의 관심도가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고, 열기도 좀체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입장권 판매율이 이달 초 현재 동계올림픽은 64%, 평창패럴림픽은 50%로 절반을 넘겼지만 기대에는 못 미친다.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회 종목이 국내에선 인기가 없는 육상인데다 지방에서 개최되다 보니 입장권을 많이 판매했지만 경기장을 찾는 관중이 적어 넓은 대구스타디움(6만여 석)이 텅 비거나 썰렁해 보일까 봐 노심초사했다. 촌동네에서 대회를 제대로 치를까 하는 우려와 불신의 시선도 적잖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뒤늦게 입장권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난리가 났다. 대구스타디움은 연일 만원 관중으로 가득 찼고, 그 열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다. '입장권을 구하고 못 구하고'가 효자의 척도가 될 정도였다. 역대 최고 대회였다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극찬도 대회 내내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 종목의 한계를 딛고 성공적으로 개최한 세계육상선수권대회처럼 평창도 대성공을 거두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최근엔 대회 흥행 차원에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북한 참가라는 선물까지 받았다. 한국을 찾을 선수'임원'관광객 등의 심리적인 안전 문제도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이 고위급회담에서 평창올림픽에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까지 사상 최대 규모의 방문단을 파견하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몽상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번 평창올림픽이 대회 성공 개최를 넘어 남북 관계 회복의 물꼬를 트고 나아가 북핵 문제 해결, 통일로 이어지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2018-01-11 00:05:00

[데스크 칼럼] '참 나쁜(?) 사람들'의 새해

지난해 6월, 당시 경북대학교 석좌교수였던 김윤상 교수의 퇴임을 맞아 행정학부에서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 오랜 제자였던 몇 사람을 깜짝 초청해 '서프라이즈 행사'를 여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모든 사람은 토지에 대한 권리를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는 '지공주의'(地公主義)의 주창자로 1989년 헨리 조지가 쓴 '진보와 빈곤'의 축약본을 번역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한 석학이다. 참석자 명단에는 노태강, 최승호 두 사람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당시 이들은 '윗선'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야인 신세였지만 스승의 퇴임 행사에 기꺼이 참석하기로 용단을 내렸다. 함께 참석하기로 한 필자 역시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행사 며칠을 앞두고 뜻밖의 실수로 거사(?)는 무산되었다. 거창한 행사를 싫어하는 김 교수가 퇴임을 순수한 강의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주변에 전하면서 결국 행사는 막판에 취소되고 말았다. 몇 달 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MBC 사장이 될 두 사람이 한 프레임에 잡힐 수 있는 기회가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예매한 대구행 차표를 취소하며 깊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노태강(79학번), 최승호(80학번)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경북대 행정학과 동문일 뿐만 아니라 부당한 권력에 맞선 경험도 많이 닮았다. 대통령들이 찍어 내린 권력에 맞서다 전도유망했던 공무원과 언론인은 옷을 벗게 되었다. '윗선'의 부당한 지시에 맞서 싸우다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사회 정의를 위하는 그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숱한 고초 끝에 한겨울 차디찬 거리에서 일어난 '촛불'의 힘으로 지난해 현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점도 비슷하다. 노태강 문화부 제2차관은 '나쁜 남자'로 유명세를 치른 인물이다. 노 차관은 문화부 체육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13년 대한승마협회 비리 감사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지목된 후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대한승마협회 비리 감사는 사실상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예고편이었다. 대통령에게 찍힌 그에게는 좌천된 자리도 보장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아직도 있느냐"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법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2급 공무원이자 가장이던 그는 결국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엄격한 위계질서 아래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 선례를 무수히 봐온 공무원 사회에서 '강직한 보고'를 올렸다. 나라와 국민에 대한 충성, 공직자로서의 소신과 용기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지난달 MBC 사장으로 돌아온 최승호 PD도 '윗선'의 부당한 지시로 쫓겨난 언론인이었다.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에 찍혀 좌천되고 결국 해고당했다. 지난 2010년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 등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면서 이명박 정부와 당시 MBC 경영진의 표적이 되었다. 그는 해고된 뒤에도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변신, '자백'을 통해서는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공범자들'을 통해서는 권력의 언론 장악을 규탄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다. 해고자의 신분으로 공정보도를 위해 뛰어온 세월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이제 그들은 돌아왔다. 노 차관은 코앞에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으면서 현재 조직위원회에 상주하면서 대회의 성공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다. 최 사장의 등장은 MBC가 '방송 장악'의 시대를 지나 '공영방송'의 새로운 항로를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MBC를 '만나기 싫은 친구'에서 '만나면 좋은 친구'로 바꿔놓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의 무술년 새해 과업이 원활하게 진행돼 지난해 무산된 스승의 퇴임식에 같이 참석하기를 기대해본다. 학과 후배인 필자도 이들과 함께 교정을 찾는 날을 꿈꿔본다.

2018-01-04 00:05:00

[데스크 칼럼] 도둑질은 이제 그만

2005년 12월 24일 오전 5시 30분쯤 대구시의회. 불 꺼진 본회의장에 손전등을 든 이들이 도둑고양이처럼 하나 둘 나타났다. 20분 만에 20여 명이 집결했다. 결연한 표정이었다. 누구도 회의장 벽 조명 스위치를 켜지 않았다. 컴컴한 회의장 안에 촘촘히 모였지만, 속삭이는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시민들이 잠든 새벽 남의 집 담을 넘어 장롱 서랍을 더듬는 밤손님과 다름없었다. 정족수가 채워지자 누군가가 본회의장 출입문을 잠갔다. 통 통 통!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의사봉 소리는 나지막했다. 그리고 시의회와 연결된 대구시청 쪽으로 잽싸게 빠져나갔다. 소식을 듣고 뒤늦게 본회의장에 도착한 기자는 소수 정당 당원들의 허탈한 표정만 마주할 수 있었다.대구시의회는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의원 27명 가운데 한나라당 소속 23명에게만 전날 본회의 일정을 알렸다. 열린우리당과 무소속 시의원 4명에게는 이날 오전 5시 31분 선거구 획정안 처리 일정을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민의를 도둑질한 역사적 순간이었다.전날 경북도의회도 본회의장이 아닌 농정위원회 회의실에서 선거구 획정안을 기습 처리했다.같은 달 28일 경남도의회는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는 안을 의회 주차장에 있던 버스 안에서 통과시키는 전무후무한 묘책을 성공시켰다.대구시의회는 이어 2010년 4인 선거구 11곳을 모두 2인 선거구로 쪼갰고, 2014년에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정한 4인 선거구 12곳을 모두 쪼개 2인 선거구로 날치기 통과시켰다.대구경북 광역의원들은 묘안을 발휘해 선거구 획정안을 깔끔(?)하게 처리했지만, 이들은 사실상 자당 국회의원들의 꼭두각시놀음을 한 것이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술'밥과 운전대를 책임져줄 시종을 원했고, 시종을 자처한 지방의원들은 윗분의 명령에 철저하고 치밀하게 순응한 셈이었다.내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시와 경북도는 최근 교수, 변호사, 기자, 시민'여성단체 회원,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등 각계로 기초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꾸렸다. 유권자들이 투표로서 선거에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선거 규칙을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유권자를 대변하는 선거구 획정 위원들은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고, 유권자의 표 가치를 최대한 동등하게 만들어야 할 책무를 갖는다.영남과 호남에서 그동안 축적돼온 지역주의는 양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을 부추겼다. 1980년대 이후 민주주의 성숙에 따라 이제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부숴버려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다양한 정치 세력의 지방의회 진출은 지역주의 타파는 물론 민주적 지방자치의 근원이기도 하다. 거대 정당의 일당 독점은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결정적 폐해가 된다는 점은 지난 40여 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우리나라는 현행 규정상 광역의원은 선거구마다 1인씩 뽑는 소선거구제이고, 기초의원은 선거구마다 최소 2인에서 최대 4인까지 뽑는 중선거구제다.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다수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기 한 결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기초의원이 전체 의석의 98%를 차지하는 기형적 정치지형을 만들었다.선거구 획정 위원들도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적 다양성 확보의 단초를 제공해야 할 책임을 일정부분 지고 있다.후보 난립, 전문성 결여 등을 핑계로 소선거구제를 고집하는 거대 정당의 논리는 '어둠' '버스 안' '몰래' '날치기' 등 2인 선거구를 도둑질하듯 급조해온 행태 자체로 궁색하기 그지없다는 점을 방증했다.조례 제'개정권을 가진 지방의회는 시민들을 대변하는 선거구 획정 위원들이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고 심사숙고해 정한 선거구 획정안을 손바닥 뒤집듯 뒤바꾸는 오만한 도둑 날치기를 이제 그만두기를 간곡히 당부 드린다. 공천권을 쥔 윗분의 눈치보다 유권자들의 준엄한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진정한 지방자치가 열리기 때문이다.

2017-12-07 00:05:05

[데스크 칼럼] 수능과 4차 산업혁명

우여곡절 끝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수시모집 인원이 많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대학 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올해 수능에서도 재수생 강세는 여전했다. 내신도 신경 써야 하고 이런저런 학교 행사 때문에 공부의 맥이 툭툭 끊기는 고 3과 달리 재수생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어 좋은 성적을 거두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매우 단편적이다. 오히려 재수생이 수능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수능이 지닌 태생적 한계 탓이 더 크다.다소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수능은 '수학능력시험', 즉 장차 대학에 진학해 전공과목을 제대로 배울 만한 능력을 갖췄는지를 진단하는 시험이 아니다. 주어진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풀어낼 수 있느냐를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능은 '실수와의 싸움'이다. 물론 변별력을 갖추려고 출제하는 고난도 문제도 있다. 그런데 상위권 학생들은 이런 문제도 시간만 넉넉히 주어지면 거의 대부분 풀어낸다. 조금 쉬운 문제는 틀리는 게 이상할 정도다.'수학의 정석'의 저자로 유명한 홍성대 상산고등학교 이사장이 몇 해 전 한 인터뷰에서 수학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많은 유형의 문제를 익히는 게 우리 수학 교육이에요. 2~3분에 한 문제씩 풀어야 하니까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중요시하지 않고,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반복 연습을 하는 거예요. 논리적 사고력을 길러 가면서 성장하는 것이 사람인데 반복 연습으로 논리적인 사고가 길러지겠습니까."수험생들은 수능을 준비하며 '문제 푸는 기계'로 변해간다.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수학을 예로 들자면, 꽤 고난도 문제의 경우 풀이만 노트 한 페이지 분량이다. 그걸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사칙연산 하나만 실수해도 오답이 나온다. 풀이법을 몰라서 틀리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주어진 시간에 문제를 한 번이라도 다 풀어내면 상당한 실력이다. 수학만 그런 게 아니다. 한 문제를 실수하면 등급이 떨어지고, 지원 가능 대학이 달라진다. 기성세대 시각으로 말하자면 미래가 바뀌는 것이다.그렇다면 어쩌자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다. 수험생이 60만 명을 헤아리고, 모두 나름대로 뛰어난 성적을 거둬서 좋은 대학에 가려는데 어떻게 변별력을 갖춰서 줄을 세울 것이냐는 물음이다. 수능이 논란의 도마에 오를 때마다 기성세대들이,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육 기득권층이 수능의 불가피성을 내세우며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 필자가 되묻고 싶다. 언제까지 당신들의 알량한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수험생을 볼모로 삼을 것이냐고.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온다. '인간 같은 기계'가 '기계 같은 인간'을 대체하는 세상이 온다. 창의력과 기발함을 주 무기로 장착하지 않으면 기계들의 약진에 도태되는 것은 인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 오히려 수능을 통해 배출된 '문제 푸는 기계'들이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암울함마저 느낀다.물론 수능까지만 그럴 뿐 대학에 진학해서 그리고 사회에 진출해서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춘 인재'로 바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 미래는 그런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고 믿고 싶다.그런데 그런 확신을 가지려면 수능, 나아가 대학입시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시험은 아니라고, 여기엔 미래가 없다고 매년 60만 명이 목 놓아 외치는데도 '불수능, 변별력 확보'라며 자화자찬하는 무리들이 여전히 우리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담할 지경이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수능 점수에 낙담한 수험생들에게 위로차 하는 말이 아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가 한 말이다. 똑똑한 사람이 옳은 말을 하면 제발 좀 새겨듣자.

2017-11-30 00:05:01

[데스크 칼럼] 99년생 봄이에게

"넌 머지않아 예쁜 꽃이 될 테니까."지난 3월 올해 첫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른 고등학생들이라면 이 문구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시험 이후에도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이 구절은 이날 시험에 제시된 필적 확인용 문구였다. 필적 확인용 문구란 매 시험 시작 전 본인 확인을 위해 직접 자필로 쓰게 하는 짧은 글이다. 너무나 예쁜 글에 이날 시험을 치른 학생들 상당수가 울컥했다는 후일담도 들을 수 있었다. 이 문구는 박치성 시인의 시 '봄이에게'의 마지막 행에서 가져온 글이다.'봄이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불안함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을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시이다. 조그만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리고 날리어 어느 낯선 땅에 이르게 될지라도, 긍정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민들레 홀씨에게 앞날은 너무나 불투명하고 불안한 것이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도 없고, 무슨 위험이 닥칠지도 모른다. 운이 없으면 흙이 아닌 물 위에 떨어져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내려가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단언한다. 저마다 이리저리 흩어져 떠돌며 부딪히게 될지라도 언젠가는 포근한 땅에 닿아 싹을 틔우고 잎을 피워 예쁜 꽃으로 자라나리라고.지난 한 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전국 수험생들의 불안함과 걱정도 비슷했으리라. 시험을 단 하루 앞둔 예비소집일에 일어난 포항의 강진과, 뒤이어 나온 수능 1주일 연기 발표는 고3 수험생들을 대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지난 3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이날 하루만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한 시험인데, 하루아침에 연기라니. 일부 학생들은 홀가분한 마음에 그동안 공부하던 문제집, 참고서를 버리는 의식까지 치르지 않았던가. 시험이 끝나면 그동안 미뤄 두었던 여행을 가리라 항공권, 호텔도 예약해두었는데. 수능날과 생리 기간이 겹친 여학생들은 조절제까지 먹어 두었는데…. "왜 또 우리인가요!" 이렇게 외친 수험생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몇몇 매체에선 1999년생들의 수난사란 기사까지 만들어 내었다.포항지역 수험생들이 겪어야 할 혼란은 더한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학생들은 체육관 대피소의 차가운 바닥에서 책을 펴야 했다. 눈으로야 책을 보고 있었지만 그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정신이 어수선한 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여진까지 계속되니 무섭기도 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시험장이 바뀐 수험생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뜻하지 않은 마음고생도 심했던 것 같다. 수능 연기를 포항 탓으로 돌리려는 다른 지역 학생들의 곱지 못한 시선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릉도 섬 지역에서 육지로 원정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도 있었다. 34명의 울릉고 학생들은 보름씩이나 집을 떠나 포항 해병대에서 숙식하며 기다려야 했다.초유의 사태였고 혼란도 있었지만 1주일의 시간은 흘렀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응원을 하고 싶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평정심을 되찾고 힘을 내라고, 그리고 오늘만은 여진이 없는 조용한 하루가 되어 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 외엔.날씨가 추울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일부 지역에는 눈도 내릴 거란다. 아침밥을 든든히 챙겨 먹고 따뜻한 도시락도 잘 챙겨 가기를. 오늘은 지진도 잊고 부서진 집 걱정도 내려놓기를. 고사장으로 가는 길, 조용히 '봄이에게'를 되뇌어 보면 어떨까.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지 않을까.민들레가 어디서든 잘 자랄 수 있는 건/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는 바람(風)에/ 기꺼이 몸을 실을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겠지/ 어디서든 예쁜 민들레를 피워낼 수 있는 건/ 좋은 땅에 닿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고/ 바람에서의 여행도 즐길 수 있는/ 긍정을 가졌기 때문일 거야/ 아직 작은 씨앗이기에/ 그리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넌 머지않아 예쁜 꽃이 될 테니까.

2017-11-23 00:05:01

[데스크 칼럼] 대구 DNA와 엔젤

대구엔 먹을 게 없다. 볼 것도 없다. 딱히 내세울 만한 게 없다. 맞다. 몇 년 전까진 그랬다. 외부 평가도 그랬고,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알았다.지금은 아니다. 대구에 이렇게 맛있는 먹거리가 많은 줄 몰랐다는 게 일성이다. 이렇게 볼거리가 즐비한 줄도 몰랐다. 전국도, 대구도 놀랐다.그런데 애초 없었던 게 새로 생겨난 게 아니다. 원래부터 있었지만 좋은 줄 몰랐을 뿐이다. 스스로 평가절하해 이렇게 괜찮은 것인 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자랑을 안 하니 우리도, 외부도 모르는 게 당연했다.왜 그랬을까. 겸손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대구의 기질 때문일 것이다. 드러내지 않고, 나서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대구 특유의 문화 말이다. 내세울 게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너무 낮추고, 별거 아니라며 내세우길 꺼리고 부끄러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한번 터지면 화끈한 것도 대구의 기질 중 하나다. 겉으로 드러내고 표현하는 데는 둔하지만 속에선 열정과 애정이 끓고 있는 게 대구사람이다. 누가 손만 잡고 끌어내 주면, 불만 붙여주면 그 힘은 가히 폭발적이다. 특히 위기나 결정적인 상황이 닥치면 그 모습은 더욱 분명해진다.110년 전 국채보상운동이 그랬고, 20년 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가 그랬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나랏빚 1천300만원을 국민이 대신 갚자며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최초의 시민운동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기부문화 운동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환보유액을 늘려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며 전국 최초로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선 곳도 대구다.이달 28일 대구에서 행사 하나가 열린다. 대구FC 엔젤클럽의 '엔젤데이' 행사다. 엔젤클럽은 대구FC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간 모임이다. 대구시민들이 출자해서 만든 국내 최초의 시민구단을 한 번 제대로 살리고 키워보자며 시작한 모임이다.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이라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목숨만 연명하는 '식물 구단'이 아니라 명문 자립 시민구단으로 키워 보자고 뭉친 시민들의 모임이다.부끄럼 많고 나서기 싫어하는 대구에서, 성공 여부를 자신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몇몇이 시작한 이 모임이 이제 28일이면 1004(천사)명의 회원을 가진, 말 그대로 온전한 엔젤(천사)클럽이 된다. 대구FC의 천사가 되기 위해 스스로 '엔젤'임을 자처하고, 1004명의 회원을 목표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이제 이름과 같은 모양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것도 목표보다 1년이나 빨리 달성했다. 이를 자축하는 자리가 28일 엔젤데이다.말이 1004명이지 손에 쥐어지는 게 없는데도 생돈 100만원(엔젤 기준)을 매년 내야 하는 회원이 1천 명 이상 모였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회원 가입을 권유하러 찾아가 조심스레 말을 건네면 '왜 이제 왔느냐', '왜 이렇게 늦었느냐'며 되레 섭섭해하는 분이 많았다고 한다. 체면 때문에, 쑥스럽고 '뻘쭘'해 뒤로 빠져 있다가도 나서야 할 때, 힘을 보태야 할 땐 팔 걷고 나서는 대구의 기질을 잘 드러내는 단면이다. 그래서 엔젤클럽은 28일을 기점으로 2천 명, 5천 명, 1만 명을 향해 다시 출발한단다.여러 스포츠 중 하나인 축구 관련 행사, 그것도 사교 모임 같은 후원 단체의 자축 행사를 두고 무슨 대구의 저력을 운운하고 호들갑 떠느냐고 할 수도 있다. 맞다. 그런데 여태껏 이런 모임은 없었다. 전국 어디에서도 없었고,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28일 엔젤데이는 그들만의 사교 모임 행사로 그칠 수도 있고, 대구 DNA를 다시 작동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이날, 이 모임이 '대구FC'의 엔젤을 넘어 '대구'의 엔젤이 되기 위한 출발점이 되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일까. 28일 엔젤데이가 꿈틀대고 있는 대구 DNA를 폭발시켜 살기 좋은 대구, 꿈과 희망, 미래가 있는 대구를 만드는 시민운동의 '시작 버튼'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2017-11-16 00:05:01

[데스크 칼럼] 뉴스제휴평가위원님들께

지난 주말 네이버'카카오 뉴스제휴평가위원님들께서 결정한 뉴스제휴평가 결과를 보고 몇 자 적습니다. 지역 언론사 입장에서 한마디로 절망과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2015년 10월 출범한 이후 어뷰징'광고성 기사 퇴출 등 포털 뉴스의 고질적 문제를 개선하는 데 기여해 오신 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포털과 언론사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위원님들의 수고로 말미암아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잘 아시는 바와 같이 포털 뉴스 제휴에는 검색 제휴, 네이버 뉴스스탠드 제휴, 콘텐츠 제휴 3가지가 있습니다.검색 제휴는 언론사가 포털에 무료로 기사를 전송하고 포털은 검색 결과를 제공합니다. 지역지'전국지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매체사들이 검색 제휴를 맺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어뷰징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검색 제휴사 중 8개사를 퇴출시켰더군요. 또 네이버 뉴스스탠드는 언론사가 무료로 제공'편집한 기사를 네이버가 서비스하는 것으로, 39개사가 추가로 제휴됐더군요. 위원님들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최선의 선택을 위해 고심한 흔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럼에도 절망과 참담함을 느끼는 이유는 유독 '콘텐츠 제휴'에 관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콘텐츠 제휴는 언론사로부터 기사를 유료로 사들인 포털이 '네이버 뉴스' 또는 '다음 뉴스'에 직접 편집해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입니다.위원님들께서는 이번 콘텐츠 제휴 심사에서 신청 매체사(네이버 140개, 다음 카카오 183개) 중 겨우 2곳만 제휴를 허락했더군요. 2곳은 모두 서울에서 발행하는 전문지였습니다. 매일신문 등 대부분 지역 언론사들은 귀 위원회에 2년째 콘텐츠 제휴를 요청했지만, "지역 언론사는 모두 노(NO)"였습니다.뉴스제휴평가위원님, 이 글을 보셨다면 지금 바로 스마트폰에서 네이버 뉴스와 다음 뉴스를 살펴봐 주세요. 지역 언론사에서 쓴 기사를 단 한 건이라도 볼 수 있는가요? 결국, 지난 2년간 제휴평가위원회 역시 네이버 뉴스와 다음 뉴스만큼은 서울에서 발행하는 매체들로만 운영하겠다는 포털의 입장에 면죄부만 준 꼴이 됐습니다.이게 무슨 문제냐고요? 2015년 1월 29일 자 매일신문에 '밤 8시 45분, 매일신문에 놓고 간 대구 양심 500만원' 제하 특종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를 보고 추가 취재한 서울의 한 일간지 기사가 이날 낮에 네이버 뉴스 메인에 편집된 일이 있었습니다. 추가 취재 형식이었지만 사진은 매일신문에서 취재한 사진 그대로였고 기사 팩트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매일신문 특종 기사에는 댓글이 30개, 포털 뉴스 메인에 걸린 그 기사에는 무려 4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포털이 전국지 기사만 편집'유통하겠다는 정책 때문에 지역지에서는 속된 말로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수시로 벌어지는 겁니다.위원님들께서도 잘 아시는 것처럼 두 거대 포털은 시장지배적 뉴스유통사업자입니다. 이 때문에 포털이 '사회적 책임'에 부응하고자 언론, 학계, 전문가, 시민단체 등 15개 단체에서 추천받은 30명으로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독립적으로 제휴 여부를 결정키로 한 것이죠. 그런데 각 2명씩 추천한 15개 단체 그 어디에도 지역 신문을 대변할 단체는 없더군요. 서울 지역의 전'현직 언론인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지만 그래도 위원님들께 일말의 기대를 하고 지켜봤습니다. 왜 네이버 뉴스, 다음 뉴스에서 지역 언론사가 쓴 기사를 볼 수 없느냐는 독자들의 항의에 이제는 제휴평가위원님들을 탓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뉴스제휴평가위원님, 서울만 바라볼 게 아니라 지역도 돌아봐 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포털 뉴스 이용자 절반 이상이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포털 뉴스에서 지역 뉴스도 볼 권리가 있습니다.

2017-11-09 00:05:00

[데스크 칼럼] 아들을 군에 보내고

327.87㎞. 지난 9월 파주 신병교육대에 아들을 두고 내려온 거리다. 새벽밥을 먹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는 아들을 싣고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경부, 중부내륙, 중부 등 3개의 고속도로를 타고 장장 4시간 30여 분을 달려 파주에 도착했다. 군대는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마땅히 국방의 의무가 있기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겪어야 할 인생의 일부분이다. 군대 갔다 와야 철이 들고 남자다운 남자로 태어난다고 아들에게 말을 했지만 낯선 곳에 아이를 두고 오는 아비의 심정은 편치 않았다. 혼자 내려오는 길은 물리적으로도 멀었지만 아들을 두고 온 탓에 심리적 길은 더더욱 멀게만 느껴졌다.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자나깨나 걱정하며 지내는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다. 요즘 군대가 많이 선진화되고 좋아졌다고 하지만 자유롭던 가정과 사회를 떠나 조금은 갇힌 사회인 군대라는 테두리에서 지내는 아들을 생각하는 안타까운 심정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긴 휴식이었던 연휴 내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요즘같이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 상황에서는 부모들의 가슴은 더더욱 새까맣게 타들어간다.신문과 방송에는 연일 두 미치광이 때문에 들썩이는 한반도 소식이 쏟아진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서로 미치광이라고 부르면서 막가파 행세로 협상을 이끌려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을 구사하고 있다. 충돌하는 두 나라의 지도자가 한꺼번에 미치광이 행세를 하면 한반도에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북핵과 미사일에 대응해야 한다고 전술핵 배치와 핵무기 개발을 주장하는 국내 강경파들의 목소리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이런 상황에서 소설가 한강이 지난달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마다 한국은 몸서리친다'라는 글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는 기고에서 "한국인들이 뚜렷하게 알고 있는 하나는 평화가 아닌 다른 해법은 무의미하며 '승리'라는 단어는 공허하고 불가능한 구호라는 점"이라고 했다. 전쟁으로 최대 피해를 보는 이는 우리 국민이다. 우리가 평화 만들기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한반도를 둘러싼 북'미의 대립만이 부모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강원도 철원군 사격장 인근에서 사망한 병사의 사고 원인이 유탄이라는 것도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경우였다. 당초 도비탄에 맞아 숨졌다던 성급한 군의 발표도 그렇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는 사격장 관리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군의 기강 해이와 안전 불감증, 무능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는 것이 국민 대부분의 여론이다. "사격훈련이 있다고 하는 날에는 온종일 불안해서 잠도 못 잘 것 같다"는 부모들의 말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런 군대를 믿고 어떻게 자식을 보낼 것이며 안보를 맡길 수 있겠나.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 국군의 날 문재인 대통령이 장병들에게 전한 말이다. "장병 여러분에게는 국방의 의무만 있는 게 아니라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지고 성장해 가족의 품, 사회로 돌아가야 할 의무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대통령의 말이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의 마음을 어느 정도 풀어 주었다.어제 다시 320여㎞를 달려 파주에 갔다. 7주 훈련(추석연휴로 훈련이 1주 늘었다)을 마친 늠름한 아들에게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아들의 단단해진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시절을 군에서 보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선전포고하는 사람은 늙은이다. 그러나 싸우고 죽어야 하는 이는 젊은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허버트 후버 미국 31대 대통령의 말이 새삼 생각났다. 위기의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끝까지 평화를 말해야 한다.

2017-11-02 00: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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