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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성추문과 정치

요즘 한국에는 온종일 섹스 스캔들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난다. '성 추문 사회'를 방불케 한다. 인터넷·방송 등에서 쏟아지는 것은 버닝썬·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장자연 사건이다.이들 사건에는 폭력, 몰카, 별장 동영상, 성 접대 등 말로만 듣던 추문이 모두 들어 있다. 거기다 가수, 배우, 전 법무부차관, 언론사 사장 일가 등 잘나갔거나 높은 지위의 인물이 대거 연루돼 있다. 높이 올라간 인사들이 추락하고 폭망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지 모른다. 이 때문에 스캔들은 대중에게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필요악이란 말이 있는 모양이다. '너도 별 볼 일 없구나. 역시 같은 인간이었구나'는 생각과 함께.세 사건 모두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예상 밖에 버닝썬 사건까지 정치권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국회에서 "버닝썬과 관련해 연예인 승리를 매개로 YG엔터테인먼트와 양민석 대표, 국정 농단의 차은택 감독, 조윤선 전 장관까지 연결된다"며 "이 사건의 최초 폭행자인 서현덕은 최순실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실체적인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여당은 '제2의 최순실 게이트'라고 규정한다.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사건의 불똥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튀어 그 여파가 상당하다. 황 대표가 김 차관의 재임 시절 장관이었고, 곽 의원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점 때문인데, 제법 그럴듯한 그물망으로 보인다. 장자연 사건은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조선일보와 관련된 만큼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해도 검찰이 열심히 파헤칠 것이 분명하다.우연인지, 의도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세 사건 모두 현 정권 인사는 아무 관련이 없고, 야당 혹은 정권에 적대적인 인사뿐이다. 집권 세력이 유독 깨끗하고 도덕성이 있기 때문일까.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례적으로 검경의 명예를 걸고 이들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했다. '정치적 음모설'에 기름을 붓는 지시였다. 성 추문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저급하고 정치 도의에 맞지 않다. 성 추문은 성 추문으로 놔두는 게 어떤가.

2019-03-2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울릉 대구경북 33선언

"한국의 이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항상 가난했기 때문에 경제공황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농장이나 혹은 다른 사람의 농장에서 나는 생산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바깥세상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백인 여성으로는 1923년 처음 들른 뒤 1932년 다시 울릉을 찾은, 대구의 미국인 선교사 부해리(傅海利)의 부인 하복음(河福音)이 남긴 편지글이다. 1909년 울릉에 첫 교회가 생긴 뒤 전도를 위해 찾은 섬이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기억된 셈이다.11일 동안 머물며 총 72㎞, 많이 걸을 때는 하루 12㎞(30리)까지 다니며 5곳 교회와 2곳의 기도처를 도느라 몸무게가 2.7㎏이나 빠졌고 '산을 넘어 걷고,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해서' 울릉의 여러 마을(창형·천포·저동·도동·다동)을 누빌 수 있었다.이런 울릉은 고종 때 본격 재개척됐다. 1882년 6월 검찰사 이규원을 '비워둔 섬' 울릉에 보내 조사하고 그해 12월 개척령을 내리면서다. 이듬해 16가구 54명을 옮겨 살게 했고 이후 독도까지 거느린 울릉은 더욱 중요한 섬이 됐다.일제의 수탈 시절도 보낸 울릉은 1963년 종합개발계획 수립 뒤 섬 일주도로 공사 착공 등으로 다시 변화와 발전을 노렸다. 그러나 돈 문제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다 지난해 12월, 55년 만에 완전히 뚫렸다. 울릉 개척사의 경사다.게다가 이를 축하하고 더 빛낼 행사마저 이뤄지게 됐으니 울릉은 올해 특별한 3월을 맞고 보내는 셈이다. 29~30일 대구경북의 광역·기초자치단체 33곳 대표들이 처음 울릉에 모여 대구경북의 발전과 앞날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유독 대구경북은 정부 인사, 예산, 각종 정책 등에서 가뜩이나 홀대와 찬밥 신세인 즈음이라 이런 모임이 더 반갑다. 100년 전, 한민족 운명을 바꾼 민족대표 33인의 3·1운동 독립선언서 같은 그런 결과물도 기다려진다. 일주도로 개통으로 울릉의 모습이 달라지듯, 이번 33인 대표 모임에서 지금의 고립에서 벗어날 대구경북의 큰 그림도 그려지길 바라면 지나칠까.

2019-03-2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월경(越境)

공항은 한 국가의 관문이자 국경이다. 정상적인 여권이나 입국사증을 가지면 누구든 절차를 밟아 통과할 수 있다. 종종 허술한 감시를 틈타 입국 심사대를 뛰어넘어 불법 월경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하지만 공항은 항만·육상 등에 비해 통제가 잘 되는 국경이다.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터미널'(2004년)은 '경계선'으로서의 공항의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크로코지아라는 동유럽의 한 가상국가에서 뉴욕으로 여행 왔다가 공항에서 발이 묶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여행 도중 자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신분 상황이 복잡해지면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되자 공항 터미널을 집 삼아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앵글에 담았다.이 같은 스토리는 비단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공항에서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최근 언론에 조명된 인천공항 1터미널 46번 게이트에서 70여 일째 머무르고 있는 콩고 출신의 앙골라인 일가족 6명의 사연은 영화보다 더 절박하다. 콩고 출신에 대한 앙골라 사회의 박해를 피해 부부와 네 아이가 지난해 연말 관광비자로 인천에 도착했지만 입국이 거부되면서 공항 터미널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현재 인천공항 내 난민인정심사 대기실이나 송환 대기실에 머무는 사례는 훨씬 더 많다. 법무부 자료에 입국이 거부돼 송환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만도 74명에 이른다. 몇 해 전 입국 거부 조치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고 터미널에서 200일 넘게 체류한 사례도 있다.성범죄 의혹 사건으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의 내사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주말 인천공항을 통해 방콕으로 몰래 빠져나가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를 확인한 법무부의 긴급 출국 금지로 탑승 게이트 앞에서 월경이 무산됐지만 국민 뒷맛이 쓰다. 잘못을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하는 공직자나 범죄 혐의자의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긴급 출금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논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도피로 책임을 덮으려는 그의 행동에서 지도층 인사의 윤리 수준을 보여준다. '본인이 아닌지, 맞는지'는 다시 조사해 밝히면 될 일 아닐까.

2019-03-2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과잉 경호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 살해는 암살 가능성에 대한 페르디난트의 무신경과 허술한 경호 대책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페르디난트가 살해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방문 날짜부터 적당하지 않았다. 6월 28일은 '성 비투스의 날'(St Vitus'day)로, 1389년 이날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 연합군이 오스만터키에 패배한 이후 '민족 부흥'을 염원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날이 돼왔다.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수복'할 땅으로 여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가 하필 이날 방문한다는 것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큰 모욕으로 비쳤다. 세르비아 민족주의 테러단체인 '흑수단'(黑手團)이 이날을 거사(擧事)일로 잡은 이유다. 방문 날짜가 불길하다는 우려가 현지에서 나왔으나 페르디난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경호 대책도 엉망이었다. 페르디난트 부부가 탄 무개차가 군중이 밀집한 대로를 지나가도록 동선(動線)을 잡아놓고도 도로 양측에 경비병을 배치하지 않았고, 경호대도 대원 대부분을 페르디난트가 처음 도착한 철도역에 머물게 한 채 경호대장만 방문단에 동행했다.흑수단의 1차 폭탄 암살이 실패한 뒤의 대처는 더 한심했다. 1차 암살을 모면한 뒤 동선을 급히 변경했으나 운전사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그 바람에 페르디난트를 태운 차는 처음 동선대로 움직이다 변경된 경로로 급히 우회전해야 했다. 이는 그 주변에서 기다리던 19세의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하늘이 준 기회였다. 그가 발사한 권총탄 한 발은 황태자의 목 정맥을, 또 한 발은 그 아내의 위장 동맥을 끊었다.문재인 대통령이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 경호원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댄 채 기관단총을 노출해 '과잉 경호' 논란이 일고 있다. 문 대통령의 민생 현장 방문 때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하필 문 대통령 지지도가 낮은 대구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대구를 '위험지역'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해프닝'인지 '기획'인지는 청와대만 알 것이다.

2019-03-26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박영선·유시민의 입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테세우스가 처단한 악당 중 프로크루스테스가 있다. 거인인 그는 여인숙을 차려 놓고 손님이 들어오면 쇠 침대에 눕혔다. 쇠 침대는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였다. 키가 큰 사람에게는 작은 침대를 내주고 작은 사람에게는 큰 침대를 내줬다. 키가 침대보다 커서 밖으로 튀어나오면 침대의 크기에 맞게 머리나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고 작으면 몸을 잡아 늘여서 죽였다. 테세우스는 똑같은 방식으로 프로크루스테스를 침대에 눕혀 밖으로 튀어나온 머리를 잘라서 죽였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을 가르쳐 주는 신화다.말 잘하기로 이름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자신이 한 말로 말미암아 곤경에 처했다. '맹자'의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두 사람이 뱉은 말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2016년 국회에서 박 후보자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씀씀이를 비판했다. "조 장관의 씀씀이 유명하죠. 연간 5억, 문화부 장관 되기 전에 여성부 장관 시절에는 연간 7억5천." 이번엔 박 후보자가 이번 주 청문회에서 자신의 씀씀이를 해명해야 할 처지가 됐다. 최근 5년 동안 박 후보자와 배우자가 신고한 소득은 약 33억원, 같은 기간 늘어난 재산은 9억9천여만원이다. 23억원가량이 어딘가에 쓰였다는 말이다. 자유한국당은 1년 평균 생활비가 4억6천만원에 달하는 '내로남불 씀씀이'라고 공격하고 있다.유 이사장은 2015년 마약 투약 혐의가 적발된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 사위에 대해 "마약 복용은 차고도 남는 이혼 사유다. 매우 흐뭇하게 이 사건을 보고 있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조카인 영화감독 S씨가 대마초 밀반입으로 실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인 데 대해 별다른 얘기를 않고 있다. 알릴레오 홈페이지엔 "남의 도덕성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라" "내로남불 끝판왕" 등의 댓글이 달렸다.자업자득에서 업은 나쁜 업을 일컫는다. 가장 많이 저지르는 업이 말로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뱉은 말이 자신을 향하는 비수(匕首)가 된다는 사실을 말 잘하는 박유 두 사람이 잘 보여주고 있다.

2019-03-25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외교 결례

과거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백악관에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부부와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를 가졌다. 웨이터의 주문 요구에 레이건 대통령이 "Coffee please"라고 하자, 낸시 여사가 "Me too"라고 했다. 그러자 전 대통령이 "미쓰리"라고 했는데, 옆에 있던 이순자 여사가 "왜요? 나 여기 있는데…"라고 했다.김영삼 대통령의 방미 때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How are you?"라고 인사말을 건네고, 클린턴이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하면, "Me too"로 마무리하라고 영어 자문을 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그만 "Who are you?"라고 인사를 하는 바람에 이를 조크로 받아들인 클린턴 대통령이 "I'm Hillary's husband"라고 받아넘겼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Me too"라고 해버린 것이다. 대통령의 방미 후 유행한 우스갯소리다.최근 동남아 3국 순방을 다녀온 문재인 대통령의 잇단 말실수가 외교적 결례 논란으로 비화했다. 말레이시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를 하고, 낮 행사에서 밤 인사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체코를 방문했을 때도 뒷말이 무성했다. 방문국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고 없는데 정상외교를 한다고 가서는 국내에서 적폐 취급하는 원전을 팔려고 했다는 것이다.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문제가 더 심각했다. 차관보가 공항 영접을 나오는 푸대접에 이어 외교부장이 팔을 툭툭 치는 결례를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을 수행 취재하는 기자들이 집단 폭행을 당하는 참사까지 겪었다. 베이징에 머물던 대통령이 열 끼 식사 중 중국 관계자들과 함께한 것은 두 끼에 불과해 '혼밥'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현 정부 출범 이래 외교 결례와 의전 엇박자가 빈발하고 있다. 실수를 범하든 박대를 당하든 외교 결례는 나라 망신이다. 경험을 갖추고 능력이 검증된 외교관들을 적폐로 내몰고 코드 인사에 집착한 결과라는 비아냥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2019-03-23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차라리 DMZ(비무장지대)가 낫겠죠!

"답답하지요. 숱하게 건의했지요. 그러나 우리가 힘이 없으니, 동네 사람 가운데 잘난 사람도 살지 않으니 누가 농민 뜻을 알아주나요? 오로지 미군이 좀 더 배려(?)해주길 바랄 뿐이지요."경북 칠곡군청이 위치한 왜관읍 한 고을의 미군 부대기지 공사는 1953년 한미 방위조약이 체결되고 1959년 시작됐다. 이듬해 부대가 머물며 편입 자연부락 농민은 농토를 다른 곳으로 대토(代土)하거나 삶터를 옮기고 떠나야만 했다.붙박이처럼 남은 사람은 미군 부대를 지나 '자유롭게' 농로를 오가며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농로는 197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시멘트로 포장됐고, 지금처럼 농로가 철조망으로 싸여 갇히지도 않았고 통행 제한도 별로였다.그러나 새벽별을 보고 집을 나서고, 달빛 아래 밤늦도록 일하다 귀가하는 옛 영농 방식을 그대로 잇던 시절은 사라졌다. 20여 년 전부터다. 미군 부대 울타리를 따라 수㎞를 빙 둘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200~300m 지름길 농로 사용 시간을 제한해서다.거의 자유롭던 통행은 농로 주변 철조망 설치 뒤 줄어 올 1월부터는 오전 7시~오후 7시까지 12시간으로 제한됐다. 마을 입구 설치 농로 첫 철문부터 농지 입구 마지막 철문까지 4개를 지나야 한다. 통과에 걸리는 시간은 늘 다르다.가운데 2개 철문 통과 때문이다. 통과를 위해 두 철문 사이 초소에 힘껏 소리쳐 근무자를 불러야 한다. 초소 시설 안 사람이 듣지 못하면 마냥 외칠 뿐이다. 목청 외 달리 연락할 수단이 없어서다. 초인종도, 전화선도, 연결 끈조차 없다.사정이 이래도 그나마 철조망 지름길이 고맙기만 하다. 이마저 막히면 농민들은 목숨을 걸고 위험한 찻길로 다닐 판이다. 게다가 찻길을 잇는 마을길은 심한 경사의 비탈진 언덕길이다. 맨몸 걷기는 물론, 차량이나 농기계는 드나들기 위태롭고 아찔하다.휴전선 비무장지대의 농사도 이렇지는 않다. 우리 땅을 내주고도 겪는 왜관 땅 이들 농민의 비애는 누구의 관심거리도 아니다. 주민까지 줄어도. 농사철이면 "하늘의 해라도 좀 더 머물기를 바란다"는 '칠곡 비무장지대' 농민의 한숨이 현실이 되길 비는 마음이다.

2019-03-22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10대 국가대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만큼 유머러스한 인물도 드물다. 1980년대 어느 날 은퇴한 축구선수 펠레를 접견했다. "제 이름은 로널드 레이건입니다. 저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본인이 누구인지 밝힐 필요가 없습니다. 펠레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축구 황제' 펠레는 타고난 천재다. 실내축구팀에서 성인들과 뛰기 시작한 것이 14세 때였고, 명문 산토스 클럽에 입단한 것은 15세 때였다. 1958년 17세의 나이에 국가대표에 선발됐지만, 하마터면 스웨덴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할 뻔했다.브라질 대표팀에 동행한 심리학자가 펠레와 '드리블의 마술사' 가린샤를 놓고 '선발 불가'라며 가로막고 나섰다. 이유는 두 사람의 정신 수준이 10대 초반에도 못 미쳤기 때문이다. 비센치 페올라 대표팀 감독은 이렇게 반박했다. "당신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신은 축구를 알지 못하고, 나는 펠레의 플레이를 보았다." 펠레가 스웨덴월드컵 8강전 웨일스전에서 월드컵 최연소 골(17세 244일), 4강전 프랑스전에서 최연소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우승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0대 선수 멀티골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19세)가 기록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는 17세 때인 197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선발되지도 못했고, 리오넬 메시도 18세 때인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3경기에 교체 멤버로 출전했다. 영국의 웨인 루니는 18세 232일의 최연소 기록으로 유로 2004에서 4경기 4골의 경이적인 활약을 펼쳤으나 3차례의 월드컵에서는 단 1골에 그쳤다.18세에 축구 대표팀에 선발된 이강인(발렌시아)이 화제다. 22일 볼리비아전에 출전하면 18세 31일로 한국 최연소 기록이다. 10대가 발군의 활약을 보이는 이유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펠레나 마라도나처럼 무학력에 가까운 이들은 주입식 교육을 받지 않아 창의성 있는 플레이가 가능했다고 한다. 어쨌든, 한국에도 운동과 학벌, 두 마리 토끼를 좇던 시대는 지난 것 같다.

2019-03-2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먹방

거센 조세 저항 때문에 벽난로세(Hearth Tax)를 폐지한 영국 의회는 세금 징수에 큰 타격을 입자 1696년 '창문세'를 신설했다. 건물의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매겼는데 당시만 해도 유리 가격이 매우 비싸 창문 있는 집에 사는 서민이 드물었다고 한다.그런데 부자들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창문을 아예 없애거나 창문 수를 줄이면서 박쥐 소굴처럼 어두컴컴한 건물이 크게 늘었다. 불합리한 조세 정책이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창문세는 1851년 주택세 도입과 함께 150여 년 만에 폐지됐다.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먹방'이 사회·경제적 현상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 먹방은 창문이 없어 컴컴한 방이나 실내 공간을 지칭하는 속어다. 신호가 끊긴 전화기를 두고 먹통이라고 하듯 햇빛이 들지 않아 깜깜한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먹방의 대표적인 사례가 고시원이다. 빈민가 쪽방이나 PC방·만화방·찜질방 등 비주택 거주민 숙소들의 형편도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고시원은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독신 저소득층 주거시설의 대명사다. 벌집처럼 수십 개의 방을 촘촘하게 잇댄 탓에 최소한의 주거 요건도 갖추지 못한 곳이 더 많다. 보안이나 건축비 절감을 이유로 창문을 따로 내지 않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현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자 기형적인 주거 공간 현상의 하나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서울시가 고시원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고시원 주거기준'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그제 발표했다. 고시원 화재로 인명 피해가 계속 이어진 때문이다. 방 면적은 7㎡(2.12평) 이상 되어야 하고, 창문 설치도 의무화했다. 노후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도 지원한다. 현재 전국 1만2천 곳 고시원의 절반이 서울에 몰려 있는데 74%가 먹방이다.먹방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둔한 방향 감각을 잘 보여준다. 국민 주거 복지를 위해 세금을 아끼지 않는 게 바로 선진국이다. 고시원 등 다중생활시설의 구조 개선은 인간다운 주거 공간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건축법 개정도 서둘러야 할 때다.

2019-03-20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집권 3년 차 징크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쫄 것 없다"고 했지만 중도층 이탈 등 실상을 들여다보면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로 떨어진 것은 역대 대통령들에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라고 변명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지지율을 반등시킬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데 있다. 시쳇말로 북한 이슈는 '약발'이 다 떨어졌다. 오히려 악재로 바뀌었다. 경제·민생에서 성과를 내 지지율을 끌어올리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문 대통령이 여러 난관에 봉착하자 문 정부 역시 역대 정부처럼 집권 3년 차 징크스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집권 3년 차에 여러 악재가 돌출하면서 지지율이 하락하고 민심 이반이 일어나는 현상이 앞선 정부에서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김영삼 정부는 삼풍백화점 붕괴 및 대구 지하철 공사장 폭발 사고, 김대중 정부는 정현준·진승현 게이트와 의약분업 사태,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값 폭등이 집권 3년 차에 일어났다.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 부결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박근혜 정부는 '정윤회 문건 파동' '성완종 리스트' '최순실 사태'로 몰락을 재촉했다.집권 3년 차 이후 선거에서 여당이 대부분 패한 것도 징크스로 꼽힌다. 네 번의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모두 패했다. 다섯 번의 총선에선 여당이 네 번을 졌다. 노무현 정부는 3년 차인 2005년 27곳 재·보선에서 전패(全敗)했다.이 같은 이유에서 다음 달 3일 치러지는 경남 창원 성산, 통영·고성 두 곳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에 주목하게 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 앞날이 달렸다. 민주당이 두 곳 모두 패하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문 대통령은 급격한 레임덕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텃밭을 내주게 돼 내년 총선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역대 정부의 집권 3년 차 징크스에서 챙겨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 국민의 시선이 냉철해진다. '남 탓'만 해서는 국민 지지를 받기 힘들다.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는 것만이 집권 3년 차 징크스를 피하는 비결이다.

2019-03-1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송사, 대통령과 그 사람들

"할아버지는 8형제 가운데의 여섯 번째이다…하동 지방에선 8형제 8천 석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내가 태어날 무렵엔 거의 몰락 상태에 있었다…중부(仲父)의 독립운동이 그 원인이었다. 3·1운동에 관여하여 대구 감옥에 수감된 중부를 구출하기 위해…자금을 일본인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빌렸다…변호사 사례금 등 꽤 많은 돈을 백 두락 이상의 토지를 저당 잡히고…속수무책으로 빼앗겼다."소설가 이병주는 1921년 태어나 부자 집안이 몰락한 까닭을 글로 남겼다. 작은아버지를 구하려다 일본인 농간에 말린 사연이다. 돈을 기일에 맞춰 갚으러 갈 때마다 일본인이 자리를 피했고, 결국 기일을 넘겨 땅은 강제 차압됐고 오늘날 공탁제도처럼 달리 길이 없어 땅을 앗긴 사연이다. '그 무렵 일본인들은 그런 술책으로 조선인의 토지를 빼앗은 모양'의 '그 술책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늦었다'.당시 이런 일은 그럴 만했다. 일제가 만든 겹겹의 족쇄 탓이다. '새 법령이 매일 비 오듯이 쏟아진다'는 말과 총독부 기관지 보도처럼 '오늘에 한 법이 나오고 내일에 또 한 법이 나오'니 미처 적응할 틈조차 없던 백성은 그저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큰소리를 내도', '솔잎을 긁어도' 죄가 되니 온통 죄인이지만 돈 없으면 변호사는 그림의 떡이고, 그냥 볼기짝 맞는 태형(笞刑)만이 해결이었다.게다가 393명의 변호사 자격인(1932년 기준)도 일본인 173명, 한인 220명이나 한국인조차 통감부와 총독부 판·검사 출신이 122명이었으니 재판은 이미 기운 운동장이었다. 소송에 말린 백성이 몸과 재산을 지키기는 그야말로 독립운동만큼 난제였을 것이다.지금도 소송은 늘 돈 싸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변호사 비용을 대느라 자택(95평)을 팔았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자택(83평)을 내놓고 거제도 집(25평)은 넘겼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역시 집(43평)을 판 모양이다.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에 여럿 사람들이 송사로 부동산 매각 등 돈 마련에 나선 소식이다. 이병주의 증언과 다르지만 소송의 재산 손실 결과는 고금이 같은 듯하다. 송사! 돈 없으면 피하고 멀리 하라는 가르침인가, 경책인가?

2019-03-1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100년 전 그랬듯이

"지금 어떤 사람이 남의 땅을 빼앗았다고 합시다. 빼앗긴 사람이 땅을 다시 찾으려고 한다면, 빼앗은 사람이 도적이오 찾으려는 사람이 도적이오? 찾으려는 사람과 빼앗은 사람이 재판소에 와서 송사를 한다면, 재판관은 장차 누구를 도적이라 하겠소?"(장석영 지음·정우락 옮김, '국역 흑산일록-대구감옥 127일, 그 고난의 기록', 2019년)한국의 독립을 외치는 글 서명으로 일제는 1919년 3월 16일(음력) 국법을 어겼다며 유학을 배운 경북 성주의 장석영을 감옥에 가뒀다. 검사가 '죄'를 묻자 그가 '도적'인 일제에 들려준 대답이다. 사실 일제 도적은 주인 노릇이었고 친일파를 뺀 백성은 '짐승보다 못한' 삶이었다.19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호국의 고을답게 대구경북에서는 여러 행사가 열렸다. 대구에서는 불교 1월 17일, 기독교 2월 22일, 천주교 3월 5일 각각 기념 학술행사를 가졌다. 저마다 만세운동에 나선 교계 사람들의 활동과 용기를 기리고 그날의 함성을 잊지 않고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였다.대구경북은 여러 종교가 어울려 지내고, 믿음을 위해 목숨조차 버린 흔적과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탠 역사적 자산을 가진 곳이다. 불교의 이차돈 순교, 평등 세상을 바란 동학 최제우의 순도, 천주교 신자들의 희생이 그랬다. 일제 시절엔 여러 종교인들이 뛰어난 독립운동을 펼쳤다.유림도 빠지지 않는다. 137명이 서명한 파리장서운동이 그렇다. 서명자에는 대구경북 사람이 62명으로 가장 많고, 대구 출신은 13명으로 성주(15명) 다음이다. 이처럼 대구의 종교인들은 믿음은 달라도 바라는 독립은 같았던 셈이다.이런 대구경북의 종교 자산은 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해가 엇갈린 사회 갈등을 풀고 종교 간 화합으로 이을 고리가 됨직하다. 이를 엮어 또 다른 힘으로 바꾸는 일은 '도적'을 쫓고 '주인'이 된 오늘의 우리들 몫이다. 정치적으로 어두운 요즘, 이런 역사적 자산을 잘 쓰는 지혜가 기다려지는 대구경북이다.

2019-03-16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관치 미학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TV 프로에서 한 외국인 출연자가 이런 말을 했다. 서울을 둘러보고 느낀 첫인상을 그는 '거칠다'고 표현했다. 맥락상 고층빌딩 등 건축물에서 자연미나 세련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의미로 들렸다.그가 사는 북유럽 도시의 공간 구성과 미학이 서울과는 차별되고 생소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 아름다움과 개성이 결여된 우리의 건축 감각에 대한 솔직한 평가라는 점에서 한국적 공간 건축에 대한 해석과 표현, 디테일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한다.개인적으로 지방 소도시 중 가장 자주 찾은 곳은 무주군이다. 우선 덕유산을 빼놓을 수 없지만 무주 곳곳에 들어선 공공건축물이 제시하는 여유로움과 정결한 소읍 풍경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무주 나들이만도 10여 차례가 넘는다.무주는 6개 읍면에 인구 2만4천 명의 작은 농촌 지역이다. 대구로 치면 동(洞) 인구 규모와 비슷하다. 그런 무주가 공공건축의 실험장이 된 것은 2001년 무렵으로 건축가 정기용이 '작은 사회운동'으로 평가한 '무주 프로젝트'가 배경이다. '진도리 마을회관'을 처음 설계하고 완성하면서 마을과 사람과의 관계 재편 등 새로운 공간 해석에 골몰했다.정기용은 한 보고서에서 '무주 프로젝트는 고통스러운 노동과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결실은 컸다. 공공건축과 디자인의 힘이다. 단순히 멋이 아니라 사람이 주체가 되는 공간, 그런 철학을 반영한 건축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이다. 사람이 중심에 서는 도시공간 재창조를 모토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한 영주시 도시재생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서울시가 최근 아파트 재건축·재개발 시 구획과 층수, 디자인 등의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허가를 않겠다고 선언했다. 민간 건축물에까지 도시계획 결정권을 확대한다는 방침인데 도시 경관의 관치(官治) 우려가 불거지며 논란이 거세다. '성냥갑' 오명을 벗는 돌파구가 될 수도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는 것이다. 자고나면 불쑥 솟아오르는 대구시내 '닭장' 아파트 단지들을 보면서 문득 대구의 도시공간 전략이 궁금해진다.

2019-03-15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조선(造船)의 운명

기원전 480년 그리스 함대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왕이 이끄는 대전함을 무찔렀다. 그렇게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그리스는 황금기를 구가한다. 당시 집정관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가 포퓰리즘 정책을 거부하고 전함을 구축해 전투를 지휘한 결과였다.1592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한산도에서 학익진을 펼치며 일본 함대와 싸워 대승을 거뒀다. 임진왜란의 전세를 크게 바꿔 놓은 이 대첩에 등장한 전함이 거북선이었다. 1805년 넬슨 제독의 영국 함대는 나폴레옹의 전선을 트라팔가 해전에서 물리쳤다. 나폴레옹의 날개를 꺾은 싸움이었다. 이때 활약한 주력 전함이 98개의 대포로 무장한 테메레르호이다.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해전과 그 승전의 배경에는 해군력을 뒷받침한 조선술(造船術)이 있었다. 서양의 조선술과 항해술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를 건설했다. 해양력을 상실한 동양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중국은 명나라 때 인도양을 거쳐 이슬람권에까지 이른 정화의 대원정 이후 바다를 외면하고 말았다. 한반도의 백제가 해양세력을 구축하고, 통일신라의 장보고가 해상왕국을 건설한 것도 조선술이 바탕이 되었다.거북선도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닐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조선(造船)의 DNA가 흐르고 있다. 한국의 조선업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원동력이다. 그것이 무역 대국 대한민국을 견인했을 것이다. 최근 우리 조선업이 중국을 제치고 다시 '수주 1위'를 탈환했다는 소식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친다는 빅뉴스도 들린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면서 최첨단 기술을 요하는 기술집약적 산업이기도 하다.세계적인 브랜드를 갖춘 대기업과 고품질의 후판(厚板)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철강 업체도 있어야 한다. 기술력이 뛰어난 기자재 업체의 지원과 창의적인 엔지니어들의 손재주가 필요한 종합예술이다.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국과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일본 조선업을 누르고 다시 조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2019-03-1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대통령들의 비극

영화 '벤허'에 나왔듯이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황제가 있는 곳까지 행진했다. 개선식에서 장군을 뒤따르며 노예가 계속 외친 말이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의역하면 '너도 언젠가 죽는다는 걸 잊지 마라'는 뜻이다. 전쟁에 한 번 이겼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23년 만에 법정에 다시 선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며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이 떠올랐다. 제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들은 대부분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1996년 내란수괴·내란·내란목적살인 등 13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 전 대통령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법정에 또 나왔다. 보석으로 풀려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주거지 및 접견·통신 제한을 받아 '자택구금' 신세다.유일하게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직 옥중에 있다. 탄핵 2년째인 10일 지지 단체들이 전국 곳곳에서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조만간 석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구속 재판 기간이 끝나거나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는 방법이 있지만 두 가지 모두 어려운 상황이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아들이 구속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년가량 복역하다 사면조치로 풀려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년간 장기 집권했지만 부하에 의해 시해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장기 독재 집권을 하다 4·19혁명으로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청와대 본관엔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전직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보면서 현직 대통령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나간 대통령들의 영광만 기억했을 뿐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은 돌아보지 않았지 싶다. 그랬다면 대통령들의 비극은 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따라다니며 '메멘토 모리'를 외쳐줄 수도 없고, 역대 대통령들의 비참한 순간을 청와대에 초상화로 남겨둘 수도 없고…. 대통령들의 비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마음이 무겁다.

2019-03-12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비핵화의 정의(定義)

미국의 군사전략가 버나드 브로디는 1946년 핵무기를 "절대무기"(absolute weapon)라고 했다. 핵무기의 위력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극치라는 뜻이다. 그러나 핵무기의 '절대성'은 이런 의미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재래식 무기처럼 양이 많고 위력이 클수록 우위에 서는 '상대성'이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도 '절대적'이다.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침발라는 이런 핵무기의 절대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매우 작은 핵무기라도 목표물을 뚫을 수 있고 그 목표물이 아주 정밀하게 설정된다면 그것은 매우 위협적인 존재다." 극단적으로 단 한 발만 적국의 인구 밀집 지역에 명중시킬 능력만이 있어도 핵 억지력을 갖는다는 것이다.프랑스와 영국의 핵무장은 이런 '절대성'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어차피 소련의 핵전력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 소련을 멸망시키지는 못해도 고통을 줄 정도의 핵전력은 유지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이른바 '모스크바 기준'은 이런 전략 개념을 잘 보여준다. 어떤 상황에서도 모스크바 하나는 확실하게 파괴할 핵전력은 유지한다는 뜻이다. 영국이 선제 핵공격에 가장 생존성이 뛰어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만 남기고 나머지 핵전력은 모두 포기한 이유다.('전쟁의 경제학' 권오상)이런 사실은 무엇이 '북한 비핵화'인지 분명히 정의(定義)하게 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과거·현재·미래를 통틀어 핵탄두·핵물질·핵시설을 포함한 핵과 관련된 모든 것의 폐기이다. 지금까지 이에 가장 근접한 것이 비핵화를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명시한 2005년 6자 회담 '9·19 공동성명'이다.2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가 비핵화의 본래적 정의는 물론 9·19 공동성명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비핵화할 뜻이 없다는 소리다. 더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가 불가역적 비핵화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태평스러운 인식이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 전역에 널린 핵시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란 말뜻부터 다시 공부하기 바란다.

2019-03-1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屍身을 위한 '돈질'

러시아 10월 혁명을 이끈 레닌은 숨을 거두면서 자신을 어머니 묘지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은 이를 무시하고 시신을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냉장 방식이 채택됐다. 그러나 당시 소련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시신은 부패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독일에서 더 나은 냉장시설을 수입했지만 부패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레닌장례위원회는 방부 처리로 방향을 바꾸었다. 어떤 기술이 사용됐는지는 여전히 비밀이지만 이 시도는 성공해 레닌의 시신은 지금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누워 있다.소련 공산당이 레닌의 시신을 영구 보존키로 한 배경에는 '건신주의'(建神主義)가 있었다. 건신주의란 과학의 힘으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현대판 주술(呪術)로, 건신주의자들은 비유적 의미가 아닌 실제 육신의 부활(復活)을 믿었다. 소련 공산당이 레닌의 시신을 영구 보존키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닌이 현세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레닌장례위원회의 명칭도 '불멸화위원회'였다.불멸화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소련 공산당이 1973년 당 문서를 정리하면서 제일 먼저 발급한 것은 레닌의 당원증이었다. 체제 전환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당국은 18개월마다 특수 제작한 새 양복으로 레닌의 시신을 갈아입혔다. 이렇게 레닌의 시신을 생전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러시아는 2016년 처음 공개했는데 연간 20만달러라고 한다.러시아가 여전히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 방부 처리를 하고 있으며 그 비용은 연간 40만달러(약 4억5천만원)라고 미국 뉴욕포스트가 보도했다. 러시아는 김일성·김정일 사망 때 전문가팀을 보내 방부 처리를 한 바 있으며 김일성 시신 처리에 100만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헛웃음이 나오는 '돈질'이다. 그 돈으로 인민을 먹였으면 '이밥에 고깃국'은 아니라도 주린 배는 조금이나마 채워졌을 것이다. 김일성·김정일은 죽어서도 인민들을 굶겼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2019-03-09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황교안의 답'은?

DJ(김대중)와 YS (김영삼)를 국민 누구나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DJ는 죽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했고, 두 번이나 사형선고를 받았다. YS는 여당을 박차고 나와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고, 23일간의 단식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이들이라고 약점과 치부가 없겠는가. 이들이 현대 정치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것은 자기희생과 헌신의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이들은 한국 정치에 이러한 대통령의 자격 준거를 유산으로 남겼다. 대통령이 되려면 인물·치적도 중요하지만, 자기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함을 국민에게 알게 모르게 심어줬다. 대통령의 자격 준거를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 1위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들이대면 흥미로울 것 같다.황 대표는 반듯하고 부티 나는 느낌을 주지만, 어릴 때 무척 가난했다고 한다.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 '황교안의 답'에는 '월남한 고물상의 막내아들이다. 유년시절 도시락을 제대로 챙겨가지 못해 담임 선생님과 나눠 먹어야 했고, 산에서 나물을 직접 따와 식구들의 반찬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 책에는 보수에 대한 가치를 언급한 대목이 여럿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바른 가치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 등이 있으며 이러한 바른 가치를 지키려는 것이 바로 참된 보수다.' 황 대표의 출신, 표방하는 가치관만 보면 어느 정도 합격점이다.그러나 황 대표의 약점은 상당히 많다. 첫 번째는 희귀 피부병의 일종인 '만성 담마진'으로 인한 병역면제다. 두 번째는 법무부 장관 취임 전 변호사로 17개월간 15억6천만원의 수임료를 번 점이다. 세 번째는 음습하고 이념 편향적 분위기를 풍기는 '공안통'이라는 점이다. '실패한 정권의 총리'라든가 '특정 종교 편향' 논란은 의견이 갈리기 때문에 논외로 치자.황 대표의 삶에서 자기희생과 헌신의 미덕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재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는 이유는 보수 세력의 결집 덕분이다. 중도 세력의 외연을 확장하지 않고는, 대선은 꿈꾸기 어렵다. 황 대표의 정치 생명은 앞으로 얼마나 자기희생과 헌신의 자세를 보여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지 않겠는가.

2019-03-0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미피(未避)

어김없이 절기는 경칩(驚蟄·6일)이지만 정작 천지를 놀라게 한 것은 화사한 봄기운이 아니라 불청객 미세먼지다. 초미세먼지 공습으로 전국이 일주일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처지다. 올 들어 초미세먼지 '나쁨' 일수를 꼽으면 대구는 25일, 경북은 22일을 기록할 만큼 먼지 끼는 날이 일상이 됐다.한 주 전만해도 미세먼지 때문에 백두대간 너머 영동지방으로 피신한다고 해서 '피미'(避微)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런데 더 이상 피미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5일 제주까지 첫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상황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피미는 가짜 뉴스, '미피'(未避)가 팩트인 것이다.한반도를 뒤덮은 '먼지 돔'의 원인은 다양하다. 석탄화력발전에다 2천만 대가 넘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와 난방, 산업체 배출가스 등이 진원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책이라곤 긴급재난 문자 발송이 고작이다. 근본 해결책 마련 없이 중국 탓하며 '중국 프레임'에 기대는 사이 일회성 이벤트에 수백억원의 예산(서울시 사례)을 쏟아붓는 일이 다반사다.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했다. 문제를 풀려면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수다. 무리한 탈원전과 값싼 석탄화력발전 확대, 경유 차량 급증 등 정책 역행에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책을 찾는 게 순서다.미세먼지 상황이 우리보다 훨씬 나은 일본 사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일단 중국과 멀리 떨어진 지형적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크게 달라진 일본 국민의 환경 의식이 희비를 갈랐다. 전 세계적인 디젤 붐으로 경유차 비중이 조금 오르기도 했지만 가솔린·경차를 선호하는 일본 시장 구조는 우리와 판이하다. 2018년 기준 이륜차를 뺀 전체 자동차 보유 대수 약 7천800만 대 중 경유차 비중이 6%도 안 된다는 통계의 의미는 크다.반면 우리는 공공기관 주차장 폐쇄나 차량 2부제, 노후 경유차 운행 금지, 인공 강우 등 대증요법이 전부다. 구조 전환이라는 공식 없이는 미세먼지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말로는 '재난'이라면서 비와 바람만 쳐다보는 천수답 방식이라면 '365일 초미세먼지 나쁨'도 머지않았다.

2019-03-0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소망적 사고

1941년 6월 22일 터진 독소전(獨蘇戰)에서 소련은 초반에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히틀러의 침공을 강력히 암시하는 정보가 넘쳐났음에도 스탈린이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스탈린의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가 낳은 오판이 자리 잡고 있다. 스탈린은 자본주의 국가는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신봉해 히틀러가 영국을 격파하기 전까지는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스탈린이 1939년 체결된 독소 무역협정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독일의 침공 직전까지 식량, 연료, 목재, 광물 등 전쟁 물자를 독일로 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을 도와 영국과 끝까지 싸우도록 하고, 독일과 영국 모두 기진맥진해지면 힘들이지 않고 세계혁명을 완수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영국 침공이 좌절되자 총부리를 소련으로 돌렸다.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을 기획한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도 소망적 사고의 포로였다. 물론 야마모토는 일관되게 미국과 전쟁에 반대했다. 미국 유학과 주미 일본대사관의 해군 무관 근무 경험으로 미국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전(開戰)이 결정되자 신념을 버리고 전쟁 수행으로 방향을 튼다.그의 전쟁 구상은 철저히 자기본위적이었다. 진주만 기습으로 미 태평양 함대의 전투력을 일정 기간 마비시킨 다음 미국이 기력을 되찾기 전에 강화협상으로 전쟁을 종결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으니 오판도 이런 오판이 없었다.이런 패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다시 본다. 문 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된 남북 협력사업을 속도감 있게 준비하라"고 했다. 지난달 '하노이 핵 담판'에서 재확인됐듯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전혀 없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고민하지 않고 또다시 남북 경협 타령만 한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이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은 근거 없는 소망적 사고임이 이미 판명났다. 이젠 이런 미몽(迷夢)에서 깰 때도 됐다.

2019-03-06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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