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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

[야고부] 노무현과 그 멘티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청색은 쪽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푸르다고 했는데 정치판에선 이 말이 들어맞지 않은 것 같다. 멘토(mentor)·멘티(mentee)로 연결되는 정치인들을 살펴보면 멘토를 뛰어넘은 멘티를 찾아볼 수 없다. 학문이나 예술 분야에선 스승을 능가한 제자가 숱하게 많은데 왜 정치판에선 멘토를 뛰어넘은 멘티가 나오지 않을까?정치판에서 멘토·멘티로 먼저 거론할 수 있는 인물이 부녀(父女) 사이인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과 용인술을 딸인 박 전 대통령은 보여주지 못했다. 아버지의 부정적 모습을 빼닮았다.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를 배운 김무성 의원도 김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大道無門)으로 대변되는 통 큰 기질을 계승하기는커녕 마음에 안 들면 들고 튀는 것과 같은 단점을 이어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지원 의원도 마찬가지다. 김 전 대통령의 인내와 끈기 대신 박 의원은 말 바꾸기 등 좋지 않은 점을 닮았다. 이회창 전 총재와 그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유승민 의원 등 정치판의 멘토·멘티 대부분이 오십보백보다.오늘로 서거 10주기를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멘토로 하는 멘티는 두 사람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 모두 노 전 대통령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신은 통합과 실용, 두 가지다. 국민통합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은 떨어질 줄 알면서도 부산에서 출마하는 등 지역주의 벽을 깨고자 노력했다. 또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국익을 우선하는 실용을 택했다. 한·미 FTA 체결, 이라크 파병 등이 대표적이다.통합과 실용이란 두 잣대로 지난 2년 문 대통령이 걸어온 길을 평가하면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진영 논리에 파묻혀 분열을 촉발하고 실패한 정책들을 고집하는 등 통합과 실용에 배치되는 행보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눈 맞추지 말고, 악수하지 말고, 뒤돌아서서 등만 보고 가게 하자고 광주 시민들에게 행동 지침을 얘기한 유 이사장도 매한가지다. 두 사람 모두 노 전 대통령엔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2019-05-23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멍청한 질문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와 유진 파머 시카고대 교수가 2013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3명 중 2명으로 선정된 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경제학은 과학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두 수상자가 금융시장의 작동 방식에 대해 전혀 상반된 견해를 보이면서 경제학의 '과학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었다. 결론은 없었다. 서로 자기 말이 맞다는 입씨름만 있었을 뿐이다.과연 경제학은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엄밀 과학인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연구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엄밀 과학은 자연현상을 탐구하지만,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활동을 연구한다. 그런데 인간의 경제활동은 정치적, 도덕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경제학에는 자연과학처럼 가치판단이 개입할 수 없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할 수 없다.이런 본질적 한계 때문에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지 과학이 아니며 앞으로도 과학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겉보기에 아무리 중립적인 결정이라도 정치적, 윤리적 판단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미국 뉴스쿨대학의 던컨 폴리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간다. "경제학은 과학이기 이전에 (그런 면도 일부 있으나) 자본주의적인 경제적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복잡하고도 모순적인 경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한 논의"로 "과학이 아니라 사변적인 철학 담론"이라고 한다.('아담의 오류: 경제신학 안내서')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가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무엇이냐는 문재인 대통령의 책망성 질문이 화제다. 경제학은 과학일 수 없다. 따라서 어떤 경제적 주장도 '과학적 근거'가 있을 수 없다. 국가 재정이 건전하려면 국가채무비율이 40% 이내여야 한다는 국제기구의 권고 역시 과학적 근거가 있을 리 없다. 그것은 그렇게 해야 경제 위기가 닥칠 때 재정이 든든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는 경험칙일 뿐이다. 문 대통령의 질문은 굉장히 '과학적'인 듯 보이지만 실은 멍청한 질문이었다.

2019-05-2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북녘의 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일제의 식민지 노예로 전락한 우리 민족의 애환과 비애를 극적으로 형상화한 김동환의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은 이렇게 어두운 막을 연다. 작품의 무대가 깊은 밤 두만강변이다. 산천이 어둠에 휩싸인 국경의 밤은 곧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을 웅변하며 한 줄기 빛이라도 희구하는 민족의 염원을 머금었다.소설이나 시 작품 속에서는 깜깜한 밤을 가리켜 '칠흑 같은 밤'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검고 윤기 있는 머리카락을 일러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라고도 한다. 어두운 밤이 있어야 달빛이 교교하고 별빛은 영롱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날 도시의 밤은 너무 밝아서 탈이다. 이른바 불야성(不夜城)이다. 밤낮이 따로 없다.인공위성에서 열화상 기법으로 촬영한 지구의 밤 풍경은 빈부의 격차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잘사는 나라들은 캄캄해야 할 밤이 너무 밝아서 문제가 된다. 수컷 반딧불이는 밤이 어두울수록 암컷에게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낼 수 있다. 부엉이와 올빼미는 밤이 되어야 먹이 활동을 벌이며 새끼들을 키운다. 맹금류의 공격을 피해 밤중에 움직이는 약한 동물도 많다.그런데 자연의 질서를 역행하는 강렬한 야간 인공조명이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 이제 곧 도시의 매미들은 밤낮 구별을 못하고 울어댈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빛 공해가 소리 공해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환한 밤은 인간의 신진대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밝은 태양이 생존의 필수조건이지만, 어두운 밤도 필요하다.그런데 북한의 밤은 빛이 너무 없다. 칠흑 같은 밤이다. 위성사진을 보면 북녘은 평양을 빼고는 암흑천지이다. 마치 남한 땅이 섬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최근 어느 데이터 분석 업체가 야간 위성사진에 찍힌 '불빛'을 토대로 경제 규모를 추정했는데,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1천400달러였다. 세계 10대 빈곤국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래서 한 줄기 빛을 찾아 탈북을 기도하는 주민이 그치지 않는다. 북녘의 밤이 일제 치하 국경의 밤과 무엇이 다른가.

2019-05-2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228번과 518번 버스

지난달 26일 권영진 대구시장이 광주광역시를 찾았다. 이달 18일부터 광주 시내를 누빌 228번 버스 명명식과 시승 행사 때문이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권 시장과 나란히 버스에 올라 228번 시내버스 장정에 큰 기대를 표시했다. 달구벌과 빛고을의 상생 협력의 결실 중 하나인 '달빛 버스'의 시작이다.228번은 대구 2·28민주운동을 상징하는 숫자다. 그런 228번이 광주 5·18민주화운동 주요 사적지를 오가는 시내버스 번호로 채택된 것이다. 기존 151번에서 새 이름을 얻은 228번 버스는 북구 동림동을 기점으로 무등야구장과 옛 전남도청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남대병원, 동구 학동시장, 지하철 1호선 소태역을 지나 화순군까지 연결된다.대구는 518번 버스를 품에 안았다. 5·18민주화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기 위함이다. 간선 518번 버스는 삼익THK 성서2공장 앞을 출발해 도시철도 1호선 안심역까지 운행되는데 계명대 성서캠퍼스와 서부정류장, 반월당 등을 거쳐 2·28기념중앙공원 앞을 경유한다. 5·18과 2·28이 극적으로 만나는 동행길인 셈이다.대구경북에서 5·18의 위상과 달리 광주전남에서 2·28은 꽤 낯설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음에도 2·28을 잘 아는 호남인은 그리 많지 않다. 228번 버스가 광주 시내를 오가게 되면서 학생들이 중심이 된 '대구 민주운동'임을 알게 됐다는 반응도 많다.그제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와 대구, 두 도시 이야기를 꺼냈다. "두 도시가 역사 왜곡과 분열의 정치를 반대하고 연대와 상생 협력을 실천하고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성과를 낸 '달빛동맹' 협력사업과 최근 5·18 망언 등 정치권의 반목과 대립을 대비시킨 것이다.2·28과 5·18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향한 시민사회의 몸부림이었다. 당연히 광주와 대구 시민이 느끼는 동병상련과 두터운 공감대는 정치권의 낮은 역사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비록 지금은 우리 현대사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못했지만 '518' '228' 버스처럼 징검다리 돌이 하나씩 놓인다면 회복의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2019-05-20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합장(合掌)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승무'(僧舞)는 인간의 세속적 번뇌를 종교적인 춤으로 승화시킨 시 작품이다. 불교적인 소재를 인용한 까닭에 '합장'(合掌)이란 용어도 어김없이 들어 있다. 시 속에 은근히 녹아 있는 민족적인 정서와 인간적인 아름다움 또한 불교의 오랜 역사성을 대변한다.음유시인이자 가수인 정태춘의 노래 '합장'도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탑 돌아 불어오는 바람결에, 너울진 소맷자락 날리고, 새하얀 고깔 아래 동그란 얼굴만, 연꽃잎처럼 화사한데. 그 고운 눈빛 속에 회한이사 없으랴만….'불교적 예법인 합장은 외면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낮춘다는 하심(下心)의 뜻을 담고 있다. 내면적으로는 흩어진 마음을 청정한 일심(一心)으로 모아 인간의 숭고한 본래 모습에 귀명하는 경지를 나타낸다. 아무튼 합장은 불교적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자신을 겸양하면서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의 표시임을 느낄 수 있다.가슴 앞으로 두 손바닥을 합치고 좌우 열 손가락을 펴서 포개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인도의 예법이라고 한다. '나마스테'(공경의 표현)라는 말과 함께 서로 합장을 하는 것은 인도에서뿐만 아니라 스리랑카·미얀마·태국·베트남 등지에서도 평소 인사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부처님오신날' 사찰의 봉축 법요식에 참석하고도 합장을 하지 않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이명박 전 대통령도 개신교 신자로 종교적 편향성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말로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역시 개신교 신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합장 대신 묵례를 했지만, 종교적 배타성은 없었다. 정치인의 드러난 종교적 편향성은 자신에게도 불리할뿐더러 국민 통합에도 역행하는 처사이다.

2019-05-1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수정] 한 수녀를 위한 포대

'오늘 제발 환자를 피하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 치료를 마칠 때까지 함께하도록 용기를 주십시오!'꼬박 이틀 걸려 도착한 아프리카 낯선 땅 코트디부아르에 지난 1~2월 한 달 동안 이뤄진 체험 봉사가 끝날 때까지 붙잡고 놓지 않았던 이춘자 아녜스 수녀의 간절한 기도였다. 물벼룩에 물린 상처를 비롯, 간단한 치료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나쁜 환경으로 다친 몸을 그냥 둬야만 하는 사람들.그러다 마침내 팔과 다리까지 속절없이 자르는 고통을 선택하는 주민들. 온몸을 파고드는 병균을 치료 못하니 두고 볼 뿐이다. 그렇게 곪고 썩은 몸에서 나오는 많은 양의 피고름을 닦고 받아내고, 그 상처에서 기어 나오는 생물체들은 차마 볼 수 없었던 탓이다.게다가 일흔이 넘은 나이도 잊고 뜨거운 날씨 속에 봉사의 길을 자처했던 터였다. 그러니 하루하루 부딪치는 낯선 병자들의 아픔과 고통, 간단한 치료와 수술조차 먼 달나라 일만큼이나 힘든 날들이니, 이를 버티고 견디는 일은 간절한 기도와 아픔을 함께하는 마음 말고는 달리 길이 없었다.봉사를 마치고 소임지 안동으로 돌아온 이 수녀의 결심은 그럴 만했다. '상처 하나로 팔, 다리 자르는 불행은 막아보자.' 프랑스 옛 식민지 나라 사람들의 고통과 참상이 남의 일 같지도 않았으리라. 일제 식민지배 아픔을 겪은 나라 사람으로서 동병상련이리라.우선 600만원의 마련이다. 프랑스에 모원(母院)을, 1966년 안동에 본원(本院)을 둔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가 아프리카 현지에 세워 운영 중인 병원과 책임자 박달분 수녀에게 1년에 10명의 환자 치료와 수술을 위한 비용만이라도 모아 보내 그들을 구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도록 하기 위해서다.이 수녀의 절박한 서원은 이루어지리라. 이 땅, 대구경북의 사람과 신령마저 첫 외래 종교 불교의 스님과 비구니를 도운 아름다운 옛 인연 등 사례를 보면 더욱 그렇다. 스님 양지는 지팡이에 포대를 내걸었더니 시주할 사람들이 절로 채웠고, 지혜라는 비구니는 절을 꾸밀 비용 마련에 고민하자 지신(地神)이 나서 도왔다지 않은가. 먼 나라 고통받는 사람을 도우려는 이 수녀의 포대도 그리 되리라.

2019-05-1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대통령발(發) 가짜 뉴스

'가짜 뉴스'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 시원은 1483년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 발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다. 인쇄술의 발명으로 종이에 인쇄된 뉴스가 널리 유포되면서 가짜 뉴스도 등장했다는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르네 홉스 로드 아일랜드대 교수 겸 미디어교육 연구소장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짜 뉴스는 미국 저널리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그런 사례 중 하나가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중 한 사람인 벤저민 프랭클린으로, 독립전쟁 당시 '머리 가죽을 벗기는 관습'을 가진 인디언들이 영국 국왕 편에 서 있다는 거짓을 꾸며냈다.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된 뒤에 그가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있을 때 썼다는 편지가 공개된 일도 있다. 그 내용은 독립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정적들은 이 편지를 공개하면서 워싱턴이 영국에 동조했다고 공격했다. 물론 '가짜 편지'를 이용한 '가짜 뉴스'였다.그러나 2016년 미국 대선 이전까지는 가짜 뉴스가 심각한 사회문제이긴 했지만 '진실'과 '사실'에 대한 근본적 혼란을 야기하지는 않았다.트럼프가 선거운동 기간에 한 발언의 70%가 거짓이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당선됐다. 이를 두고 '탈(脫)진실'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제 미국에서 사실과 진실은 정치적 입장과 무관한 게 아니라 바로 그 정치적 입장에 따라 '우리의 진실'과 '그들의 진실'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트럼프 취임식 때 백악관 대변인이 관중 규모를 부풀려 말한 것을 두고 백악관 선임고문 켈리앤 콘웨이가 '대안적 사실'이라고 한 것은 이런 시대상을 잘 말해준다.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지난 9일 KBS와 대담에서도 "거시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가 크게 성공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근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장률 등 거시 지표는 정반대를 가리킨다. 명백한 '가짜 뉴스'다. 경제 현실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가짜 뉴스 생산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탈진실' 시대를 열고 있다.

2019-05-16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앤드루! 앨리스, 구스타프?

한국을 찾은 외국 왕실이나 대통령 자녀 가운데 인상적 인물이 있다.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딸 앨리스와 스웨덴 구스타프 왕세자이다. 1905년 방한한 앨리스는 돌출 행동과 일화로, 구스타프는 1926년 천년 고도 경주에 들러 고분과 맺은 인연에서다.'미국 공주'로 불릴 만큼 융숭한 대접을 받은 앨리스는 오만했다. 왕릉에서 승마복 차림으로 말 조각상에 올라탄 일이 그랬다. 남의 문화에 대한 무례를 넘어 분노를 자아낼 만했다. 귀국길 대구에서 수모(?)는 그래서였을까. 미국인 선교사(부해리) 기록을 보자."1905년…중국을 방문하고 한국에 들러…'왕족으로서 존경과 온갖 예우'를 받고 부산으로 가다 홍수로 철길이 막혀 대구에 내려 선교사들 집에서 하루 묵었다…그때 선교사 아이들이 중국이 그녀에게 선물한 개에 관심을 두었는데, 한 아이가 자기 개를 데리고 나와 그녀에게 보이자 아이에게 개 이름을 물었다. 아이가 '테디'라 말하자 긴 정적이 흘렀고…."아이의 개 이름이 아버지 별명과 같은 '테디'였다! 아버지 테디는 누군가? 앨리스가 1905년 9월 한국에 오기 전, 그해 7월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한국을 지배하는' 내용의 미일 밀약을 맺게 한 지휘자 아닌가. 아버지가 한국을 삼키려는 일본의 야욕에 날개를 몰래 달아준 인물이니, '테디 개'는 분명 듣기 거북했으리라.스웨덴 왕세자의 흔적은 달랐다. 선교사 부해리에 따르면 왕세자는 당시 고분을 보려고 몰린 한국인의 접근을 일본이 막자 이를 말렸다. 왕세자를 위한 배려였지만 왕세자는 한국인 입장을 먼저 헤아린 셈이다. 물론 일본이 그를 위해 스웨덴의 한자인 '서전'(瑞典)의 '서'와 출토 금관 장식 '봉황'(鳳凰)의 '봉'을 따서 '서봉총'이라 부른 일은 씁쓸하지만 왕세자 경주 방문이 남다른 까닭이다.지금 안동이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 아들의 방문을 맞아 떠들썩하다. 14일 안동을 찾은 앤드루 왕자는 20년 전 어머니가 안동에 들러 걷던 길을 따라 영국과 안동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모쪼록 어머니에 이어 안동에서의 대(代)를 이은 머뭄이 뒷날의 아름다운 사연으로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2019-05-15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증오와 분노, 댓글

'폐업합니다. 25살 편의점 말아먹기까지.'요즘 유튜브에는 29세 청년의 '편의점 폐업기'가 화제다. 25세에 편의점을 차린 한 청년은 매출 부진, 최저임금 인상 등의 요인으로 고전 끝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사연을 소개했다. 이 동영상과 관련 기사는 조회 수 50만 회와 댓글 1천여 개가 달릴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1천 개 넘는 댓글의 내용은 어땠을까? 일반적이라면 '고생했어요' '새로운 일을 하면 성공할 겁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잖아요' 따위의 댓글이 달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측은지심이고 인정이다. 근데, 댓글의 80% 이상이 비난 일색이고, 거의 대부분 '최저임금을 탓하지 마라'는 내용이었다. '자기가 못해서 말아먹고는 최저임금 탓이네' '기승전 최저임금, 기레기(기자+쓰레기)로 전업 예상' '최저임금 말하는 자영업자들은 자유한국당 사람들' '잘 망했다. 개고생하지 말고 최저임금 받으며 알바해라'….이 청년이 동영상과 인터뷰에서 다소 튀는 부분이 있었는지 몰라도,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고생했고 저축한 돈을 까먹은 것은 팩트다. 자신과 정치적 지향이나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한 청년의 고생담을 이렇게 매도하고 욕해도 되는 걸까.정부 여당과 관련된 기사에 댓글을 줄줄이 다는 보수적인 네티즌들도 위의 젊은 세대들과 다르지 않다. 댓글마다 분노와 증오가 넘쳐나고 육두문자가 판을 친다. '문재앙 화형시키자' '이해창 광화문에 매달자' '주사파 빨갱이 ○○○, XXX 찢어 죽이자'….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을 죽이자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지 알 수 없지만, 갈수록 무섭고 살벌해진다.댓글만 보면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미쳐 돌아가는 세상'처럼 느껴진다. 상대에 대한 분노에 이성을 잃고 눈이 먼 것 같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에 나오는 말처럼, 진보, 보수 모두 자신의 세를 규합하기 위해 국민을 분노와 증오로 몰아가고 있다. 댓글에서 배양된 분노와 증오의 끝은 어디일까. 그것이 더 두렵다.

2019-05-14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제행무상(諸行無常)

죽장에 삿갓 쓰고 삼천리강산을 표류했던 김삿갓. 사대부가의 후손으로 글재주가 탁월했던 그가 입신양명은 물론 처자식까지 버리고 방랑길을 떠나게 된 것은 향시(鄕試)에 장원급제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시제(試題)가 홍경래의 난 때 반란군에 항복한 고을 수령을 탄핵하는 것이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친할아버지였음을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다. 얄궂은 운명이었다.문전걸식으로 떠돈 김삿갓의 행로는 처연했지만 남긴 시(詩)들은 해학과 풍자를 넘어선 어떤 경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아향청산거(我向靑山去) 녹수이하래(綠水爾何來)'란 구절은 다분히 불교적인 풍미를 지녔다. '나는 청산으로 가는데, 녹수 너는 어디서 오느냐?' 그것은 어쩌면 구도자의 심오한 화두(話頭)에 다름아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고'라는 우리네 삶의 근원적인 질문이기도 하다.불교에서는 삶의 본질을 제행무상(諸行無常)으로 설법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사랑과 명예도, 돈과 권력도, 사람과 생각도 그렇다. 모든 것들은 인연 따라 잠시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토록 무상한 것들을 천년만년 가질 수 있을 듯 집착하니 모든 것이 괴로운 것이다. 즉 일체개고(一切皆苦)이다.우리가 붙잡으려는 모든 대상은 고정된 실체 또한 없다. 무슨 직업을 가지거나 어느 지위에 오르면 스스로를 그것과 동일시하는데, 그 또한 아무런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인연 따라 잠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어떤 사람도, 어떤 직위도, 어떤 것들도 고정불변한 실체적인 것은 없다는 게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그런데도 우리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인 것에 집착하며 괴로움(苦)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을 깨닫고 그것에서 벗어나 대자유를 얻기 위해 출가 수행도 하는 것이다. 불교의 역사가 오랜 우리나라는 명산유곡마다 크고 작은 사찰들이 흩어져 있다. '부처님오신날' 모처럼 절을 찾아 산길을 오른 사람들이 잠시나마 마음을 모았을 법한 사유(思惟)이다.

2019-05-13 06:30:00

이대현

[야고부] 떨고 있는 화성(火星)

지구 입장에서 보면 인류는 '미운 존재'다.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슬픈 열대'의 저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가 지구에 끼친 해악을 비판하며 "인류 없이 시작된 세계는 또 인류 없이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132개국이 참여하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파리에서 총회를 열고 보고서를 채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증가와 경제 발전으로 자연환경이 크게 변하면서 약 100만 종의 동식물이 수십 년 내로 멸종할 위기에 빠졌다. 지구에 800만 종의 생물이 사는데 멸종 속도가 과거 1천만 년 평균보다 수십 배나 빠르고 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멸종 위기를 불러온 주범은 인류다. 1970년 이후 인류는 37억 명에서 76억 명으로 2배 증가했다.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리려 농작물 생산이 3배 늘었다. 이 탓에 육상 환경의 75%가 '심각한 변화', 해양 환경의 66%가 '매우 나쁜 영향'을 받았다.생태계 파괴는 결국 인류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1980년 이후 바다로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이 10배나 늘어 최소 267종의 생존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엔 먹이사슬을 통해 인류도 나쁜 영향을 받고 있다. 생물다양성은 인류의 삶에도 불가결한 것이지만 인류는 이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걸었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 승무원 버즈 올드린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 인류 이주를 목표로 화성 유인 탐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화성은 이제 숨 쉬고, 걷고, 말하는 용감한 남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화성이 인류 이주 얘기를 듣고 떨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가 망가뜨린 지구와 같은 비극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성 이주도 좋지만 인류는 스스로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지구를 모든 종(種)이 더불어 사는 '공존의 행성'으로 바꾸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인류가 망가뜨린 행성은 지구 하나로 충분하다.

2019-05-1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기승전 대북 식량 지원

9·11테러 당시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속에서 악마의 형상을 봤다고 주장했다. 허무맹랑한 소리지만 인간은 무작위적인 패턴에서 구체적인 패턴을 찾아낸다.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습득한 생존 기술 중 하나다. 수풀이 움직이면 일단 달아나는데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포식자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왜 수풀이 움직이는지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늦다.전문 용어를 빌리자면 패턴이 없는데 있다고 인식하는 '양성반응 오류'의 피해가 패턴이 있는데 없다고 인식하는 '음성반응 오류'의 피해보다 작았으며, 그 결과 구체성보다 민감도를 높이는 패턴 인식이 진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 방법을 '휴리스틱'(어림짐작)이라고 한다. 이는 때로는 오판을 낳기도 하지만 불확실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불완전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임은 부정할 수 없다.휴리스틱은 전쟁에서도 유효할 수 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적의 의도를 신속히 알아내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난점을 해소하는 방법은 적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공격 의도라고 '간주'하고 즉시 대응 태세를 취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해서 손해 보는 것은 비상대기에 따른 공포나 긴장뿐이다. 아무 일도 없으면 맥이 빠지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앉아서 당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그런 점에서 지난 4일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군 당국이 즉시 '미사일'이라고 발표한 것은 적절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참으로 이상했다. 40분 뒤에는 '발사체'로, 다음 날에는 '전술유도무기'로 바뀌었다. 오전 9시에 발사했으니 '도발'이 아니라고도 했고, 발사체가 무엇인지도 여전히 '분석 중'이라고 한다.왜 이러는지 의아했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대북 식량 지원 때문인 듯하다. 발사체가 미사일이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대북제재에 걸려 식량 지원을 못하게 된다. 결국 국민은 지난 4일부터 지금까지 '기승전 대북 식량 지원'이라는 시나리오의 저질 연극을 보고 있는 셈이다.

2019-05-10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90초 룰

며칠 전 모스크바 국제공항에 비상착륙하던 러시아 여객기 화재 사고로 모두 41명이 숨졌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모두 78명을 태운 이 여객기는 이륙 30여 분 만에 벼락을 맞고 긴급 회항해 활주로에 내리다 불이 나면서 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사고 직후 공개된 영상을 보면 기체 꼬리 부분이 화염에 휩싸였고 승객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피해가 커졌다.그런데 외신과 항공안전 전문가들이 주목한 대목은 일부 승객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피해를 키웠다는 생존자 증언이다. 비상 탈출 상황인데도 소지품을 챙기려다 대피 통로를 막으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인데 이른바 '90초 룰'을 넘겨 피해가 커진 것이다.이 90초 룰은 세계 어느 항공사든 사고에 대비해 승객에게 교육하는 안전 규정 중 하나다. 탈출을 방해하는 수하물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다른 승객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13년 7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다 화재가 발생한 아시아나 214편 사고 때도 일부 승객이 수하물을 챙겨 탈출하는 장면이 TV 중계에 포착됐다. 기체가 전소되는 큰 사고였으나 희생자가 2명에 그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앞서 2005년 8월 에어프랑스 358편이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착륙하다 활주로를 벗어난 사고에서도 기체가 모두 불에 탔으나 탑승자 309명 전원이 살아남았다. 비상 탈출까지 90초 정도밖에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승객이 침착하게 대응한 결과다.영국 항공당국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238건의 항공기 사고 사례를 조사해보니 승객의 6%는 안전벨트를 풀지 못해 대피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가방을 챙기다가 다른 승객의 대피길마저 막는 이기적인 행동은 화를 키울 수밖에 없다.중국 노동절 연휴나 일본의 '10연휴' 등 골든위크에 맞춰 입국하는 관광객과 해외로 나가는 우리 국민들로 하늘길이 크게 붐비는 시점이다. 이럴 때 일수록 항공기 사고 시 행동요령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생각하는 승객이 가장 먼저 탈출하는 승객'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이 새삼스럽다.

2019-05-0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아, 5월!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 시인 이장희는 다섯 살 때 여읜 어머니 생각에 사무쳤다. 대구의 친일파 부자인 이병학을 남편으로 둔 어머니 박금련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은 '어머니 어머니라고/ 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으로 시작되는 그의 시 '청천(靑天)의 유방'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두 명의 계모 자녀까지 모두 21남매의 셋째였던 그는 시로써 보고 싶고, 부르고 싶은 그리운 어머니를 떠올렸다. 또 아버지의 무관심과 4남매를 남기고 일찍 떠난 탓에 미처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생모 이름을, 계모 박강자를 밀어내고 바로잡아 올리는 일, 즉 어머니의 당당한 자리 찾아 주기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채웠다.시인 윤동주에게도 어머니는 그리움이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을 보며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떠올렸으니 말이다. 시 '별 헤는 밤'에서 윤동주가 그리운 어머니를, 이장희가 '푸른 하늘'을 보며 어머니의 '불룩한 유방이 달려 있'는 것을 본 까닭은 어찌할 수 없는 간절함 때문이었으리라.어머니를 먼저 떠올릴 가정의 달, 5월이나 우울하다. 노인 학대 증가가 그렇다. 2008년 3천897건이 10년 만인 2017년 7천287건으로 배쯤 불었다. 학대 장소가 대부분 가정(89.3%)이라니 놀랍다. 가해자 역시 네 명 가운데 한 명꼴(26.3%)로 아들이라니 부모 여읜 사람에겐 안타까운 소식이다.이런 즈음에 지난달 경북 영천의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보티미디엔이 오랜 세월 앓고 있는 시부모를 보살피고 살림을 맡는 등 효행(孝行)으로 대구의 (재)보화원이 주는 60년 넘는 역사의 권위 있는 '보화상'을 받은 소식은 돋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멀리 낯선 이국땅으로 시집온 여성의 아름다운 행적은 기릴 만하다.인도에서 건너온 허황옥이 가야국 김수로왕과 부부 인연을 맺은 뒤, 허 황후를 따라 뿌리내린 신하(신보)의 딸(모정)이 다시 수로왕 아들(거등왕)과 부부가 된 이후 다문화가정은 이제 한국 가정의 든든한 한 축이 됐으니 어쩌면 이번 일은 마땅한지도 모를 일이다.가정의 달 5월에 돋보인 올해의 보화상 수상을 한 주인공에게 뒤늦게나마 축하를 보낸다.

2019-05-08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전술유도무기'라는 말장난

"명료한 언어의 대적(大敵)은 위선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듯이 말이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의 한 구절이다. 요약하자면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소리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다언삭궁'(多言數窮)이다.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는 뜻으로, 말은 짧고 명료해야 한다는 것이다.정치판의 언어는 그렇지 않다. 불순한 의도나 목적을 감추기 위해 기상천외한 표현을 동원하거나 특정한 사실이나 상황을 표현하는 역사적·사회적으로 확립된 단어가 있는데도 회피한다. 1차 걸프전 당시 미 국방부가 폭격을 "목표물에 대한 서비스"로, 폭격의 표적이 된 민간인과 건물을 각각 "부드러운 목표물"과 "딱딱한 목표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좋은 예다.이런 사례는 끝이 없다. 미 국무부는 과거 세계 인권현황 보고서에서 '살해'를 "불법적이거나 자의적인 생명의 박탈"이라고 했으며 국방부는 민간인 사상자를 "부수적 피해", 1983년 그레나다 침공을 "동트기 전 수직 개입"으로 표현했다. 또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을 CIA(중앙정보국)는 "정보 획득을 위한 특이한 방법", 미국 정부는 "공격적 심문"으로 각각 표현한 사례도 있다.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듯이"란 오웰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 본질을 감추는 말장난이다.문재인 정부의 말장난도 수준급이다. 모두 세어보려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제는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체"라거나 "신형 전술유도무기"라고 규정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전술유도무기라는 표현은 북한의 발표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런다고 미사일이 미사일이 아닌 것으로 둔갑하지 않는다. 전술유도무기가 곧 미사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장난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7년 8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300㎜ 방사포로 추정된다"고 안개를 피웠다. 이러니 대통령이 '김정은 대변인'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다.

2019-05-07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야만의 시대

"때려치워라! 물러가라!"대구 두류공원 운동장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욕설과 고함이 진동했고 주먹만한 돌멩이가 비처럼 쏟아졌다. 유인물과 현수막은 불탔다. 1987년 11월 15일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13대 대선 유세 때였다. 당시 대학생인 기자는 생생하게 그 광경을 지켜봤다.기억에 남는 것은 위험하고 긴박한 순간에도 끝까지 연단을 지킨 DJ의 모습이었다. DJ는 돌 던지는 이들을 향해 "내게 돌을 던지세요" "우리 이겨냅시다"라고 연신 호소했다.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은 거목답게 꿋꿋하고 당당했고, 30분 가까운 연설을 마쳤다. DJ를 '빨갱이' '거짓말쟁이'라고 여기던 대구의 어르신들조차 그 장면을 보고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돌을 던진 군중은 누구일까. 당연히 일반 시민은 아니었다. 그들은 머리가 짧고 운동화를 신고 눈매가 매서운, 정체불명의 집단이었다. DJ가 연단에 오르자마자 100명이 넘는 무리가 갑자기 튀어나와 조직적으로 폭력 행위를 자행했다. 야당 총재가 '깡패 집단'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데도, 경찰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TV 뉴스를 보니 돌 던진 무리는 일반 시민으로 바뀌어 있었다.노태우 민정당 후보도 그해 11월 29일 광주 유세 중 돌멩이·계란 세례를 받고 10여 분 만에 유세를 중단했다. 뒤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두 사건 모두 안기부가 '지역감정 조장'을 위해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기획 폭력'이었다. 그 시절은 정권 차원에서 야당 총재의 연설을 방해하고 폭력배를 동원한 '야만의 시대'였다.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광주에서 집회하다 욕설·물세례를 받았다. 한국당이 518정신을 폄하했다는 이유였지만, 폭력으로 야당 총재를 공격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하지 않다. 상당수 언론은 '혼쭐났다' '찬물 먹다' '거센 항의'라고 황 대표를 은근히 비하했을 뿐, 민주주의의 가치를 언급한 곳은 드물었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과 생각·사상이 다르다고 폭력을 옹호하면 30년 전과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또 다른 '야만의 시대'가 시작된 것인가.

2019-05-06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구, 독수리 대신 수달?

'삼국유사'에는 수달 때문에 스님이 된 사연이 실려 있다. 신라 혜통 스님이다. 스님이 살던 집 부근 시냇가에서 놀다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죽여 뼈를 버렸다. 그리고 이튿날 가보니 뼈는 없고 핏자국만 남았다. 따라가니 수달이 예전 살던 굴이었다. 뼈는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린 모습이었다.놀란 스님은 마침내 출가, 오늘에까지 이름을 남겼고 이런 수달 이야기는 흔히 부모와 자식 간 정(情), 특히 뜨거운 모정(母情)을 나타내는 글감으로 다뤄지고 있다. 7세기 신라 때 활동한 혜통 스님이 남긴 수달에 얽힌 사연은 천년 넘는 세월을 두고 잊히지 않고 이어지는 셈이다.그러나 수달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시대 변화와 인간이 만든 환경오염 등으로 점차 우리 곁을 떠났으니 말이다. 대구 같은 도심 하천에서는 더욱 보기 힘든 존재가 된 지 오래다. 살 만한 터가 되지 못한 탓이다. 정부가 1982년 수달을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보고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려 할 만하다.이런 수달이 신천 등 대구 곳곳에서 2006년 이후 최근 확인한 결과, 모두 24마리가 사는 것으로 파악됐다. 오랜 수난사 속에 대구 도심에서 살아가는 수달이 2006년 16마리 관찰에서 이제 8마리 가족을 더 늘린 결과다. 대구 사람들의 수달 보호 노력이 결실을 거둔 셈이다.이런 대구 수달들의 생존과 증가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달의 존재는 대구가 그만큼 깨끗하고 달라진 환경을 갖춘 곳이자, 이런 환경을 가꾸는 도시라는 인상을 줄 척도일 수도 있어서다. 아울러 신라 혜통 스님 이래 수달과 사람 사이 인연에 깃든 남다른 이야기까지도 곁들이면 더없이 좋을 터이다.이참에 대구시청 앞 독수리 동상을 수달로 대신하면 어떨까. 독수리가 어떤 특별한 연결 고리로 대구 상징의 새로 뽑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환경과 모정을 떠올릴 수달도 대구에 어울릴 만한 동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구 수달, 아픈 사연만큼이나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2019-05-04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기·승·전·장기 집권

문재인 정권의 정책에는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는 고심(苦心)의 흔적이 없다는 지적은 통렬하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국가 미래에 대한 고심은 없는 대신 다른 고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 나라는 망가져도 장기 집권만 하면 된다는 고심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면서까지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한 더불어민주당의 속셈은 분명하다.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 의석을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게 목표다. 민주당 의석이 줄 수도 있지만 정의당과 같은 '우군 정당' 의석수가 늘어 정국을 끌어가는 데 문제가 없다. 민주당에다 정의당,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일부까지 더하면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말한 것처럼 내년 총선 260석도 불가능하지 않다. 한국당을 '궤멸'시킬 최적의 방안이다. 공수처는 문 정권이 목을 메는 적폐청산의 또 다른 칼이 되기에 충분하다.정부와 산하단체, 입법부, 사법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중앙선관위 등 국가기관에 코드·진보 인사들을 포진시키고 공공기관에 '캠코더 인사'를 꽂아 넣은 것도 장기 집권 플랜의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을 깎아 먹으면서 무리한 인사를 하는 이유를 이것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반(反)기업 정책 등 숱한 부작용이 드러났는데도 이를 고집하고 세금 퍼주기에 열을 올리는 것 역시 정권을 이어가려는 포석이다.집권 세력이 정권을 계속 잡겠다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집권 세력의 모습은 정도(正道)를 벗어났고 앞뒤가 바뀌었다. 국정에서 성과를 내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고, 그 결과 표를 더 얻어 집권을 계속한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선거제 등 정치 구조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고 나라의 앞날을 내팽개치면서 나랏돈을 펑펑 퍼붓는 포퓰리즘 정책을 써 정권을 계속 차지하려는 것을 용납할 국민은 없다.급기야 '좌파독재'란 말까지 등장했다. 이승만, 박정희, 군사정부에서나 들었던 단어가 독재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독재에다 남한에서도 독재라니…. 21세기 한반도의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이다.

2019-05-03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졸(卒) 운전

1960, 70년대 '국민학교'를 다닌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는 표어·포스터에 익숙하다. 이는 정부 시책이나 캠페인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각인시키는 데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 당시 교사들은 '1980년 수출 100억불, 국민소득 1만불' '1가구 1승용차'와 같은 장밋빛 국가 정책 목표를 아이들에게 주입시켰다. 특히 '1가구 1승용차' 슬로건은 당시 어려운 현실에 비춰볼 때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그런데 이 꿈이 현실이 되는 데는 채 반세기가 걸리지 않았다. 2014년 10월, 자동차 등록 대수가 2천만 대를 넘어선 것이다. 1945년 광복 무렵 7천386대였던 등록 차량이 70년 만에 2천700배나 증가했다.이런 '마이카' 꿈에 처음 접근한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다. 이들은 경제 발전과 라이프 사이클 변화에 맞춰 자가 운전에 익숙한 최초의 세대였다. 게다가 베이비붐 이전 세대의 면허 취득자 수도 적지 않다. 현재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전체 면허 소지자의 9%, 약 300만 명으로 상당수 '장롱면허'를 감안해도 무시하기 힘든 숫자다.문제는 베이비붐 세대도 '만년 청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도 노령의 기준점인 65세가 코앞이다. 나이가 들면 순발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져 운전에 적지 않은 지장을 준다. 최근 고령 운전자 사고가 빈발하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특히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65~74세보다 중앙선 침범, 신호 위반 등으로 사고를 내는 비중이 훨씬 더 높다는 통계다. 각 지자체마다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시 교통비 지급 등을 조례로 정하고 대책을 서두르는 것도 고령 운전의 고민이 크다는 방증이다.요즘 '졸혼'(卒婚)이 하나의 사회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는데 고령자의 미련 없는 '운전면허 포기' 즉 '졸운전'도 생각해 볼 문제다. 이를 유도하는 정책적 수단도 필요하나 고령자 스스로의 결단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려면 무작정 면허증 반납을 종용하기보다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2018년 대구 전체 65세 이상 면허 소지자 15만6천여 명 중 면허 반납자 비율이 고작 0.26%(422명)라는 점은 분명히 벅찬 현실이다.

2019-05-02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이 총리의 '천황님'

"천황(天皇)이라고 부르기 싫다. 일왕(日王)이다."한국인이라면 일본 천황을 호칭할 때 대개 비슷한 생각을 한다. 식민지 역사와 껄끄러운 한일 관계를 떠올리면 욕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구시대적인 호칭까지 쓰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북한은 일본이 못마땅할 때마다 조선시대처럼 왜왕(倭王)이라 칭하지만, '막가파식' 표현에 가깝다.사실 천황 호칭의 역사는 일본 제국주의 성장 과정과 맞물려 있다. 일본이 천황 칭호를 처음 사용한 것은 7세기 후반 덴무 천황(天武天皇) 때다. 당나라 고종의 '천황' 칭호를 흉내내 '대왕'(大王) 대신 '천황'으로 개명하면서 현인신(現人神·살아있는 인간 신)으로 신격화했다. 왕권이 융성하던 100여 년 동안 쓰였지만, 왕권 추락과 함께 귀족·막부의 견제로 천황 칭호는 오래된 골동품처럼 사라진 듯했다.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천황 신격화가 시작되면서 이 칭호가 다시 등장했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메이지유신은 고대에 일시적으로 사용했던 천황 칭호를 부활시켰다"고 썼다. 1889년 메이지헌법에 천황이 공식 칭호로 사용됐지만, 황제(皇帝) 칭호에도 미련이 있었다. 1910년 한일병합 조약에는 '일본황제폐하'라고 써 있다. 천황 칭호만 쓰도록 공식화한 것은 일본이 독자적인 제국주의 길로 접어든 1935년이었다. 전 세계에서 영어 명칭으로 'King'(왕)이 아니라 'Emperor'(황제)를 아직까지 쓰는 것도 일본이 유일하다.이런 역사를 아는 한국인이 무작정 천황이라고 부르기에는 난감하다. 그렇다고 일본식으로 '덴노'라고 하기에도 찜찜하다. 한국 언론은 '일왕'이라고 표기하지만, 일본인은 이를 불쾌하게 여긴다. 아무래도 한·일이 가까워지려면 호칭 장벽부터 없애야 할 것 같다.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29일 자신의 트위터에 '아키히토 천황님'이라고 표기해 논란을 불렀다. 김대중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도 '천황'이라고 했다가 이런저런 구설에 올랐지만, 거기에 '님'까지 붙인 것은 너무 과하다. 외교 관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호칭에 얽힌 역사는 알고 외교를 했으면 좋겠다.

2019-05-01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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