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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한국과 일본의 전쟁

베스트셀러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993년)에는 흥미롭지만 진부한 장면이 나온다. 일본이 독도를 점령하자, 한국 공군 조종사들이 자신의 비행기를 몰고 적함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이다.'명령을 따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뜨거운 남자의 가슴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차례차례 동해상에 불꽃이 피어났다.' 한국 조종사의 자살 공격은 가미카제 특공대를 닮은 듯해 숭고함보다는 오히려 웃음이 나는 장면이다.대부분 가상 전쟁 소설을 보면 한국은 '정신력'과 '애국심', 일본은 '무기의 우월함' '기술력'을 앞세워 맞붙지만, 결국에는 정신력의 한국이 이긴다는 줄거리다. 이런 사상의 원류는 황당하게도 일본 제국주의 시대다. 태평양전쟁 당시 최강국 미국과 맞선 일본이 '정신력'만으로 전쟁에 이길 것처럼 광분했지만, 결과는 아는 바와 같다.'한일 간 군사력 비교'나 '한일 간 전쟁 시나리오'는 밀리터리 사이트의 단골 소재지만, 몇몇 애국심에 불타는 네티즌을 제외하고 한국의 손을 들어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해·공군력의 열세는 물론이고 첨단 무기는 아예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이지스함만 해도 한국 3척, 일본 8척이고, 주력 전투기인 한국의 F15K는 40대, 동일 기종인 일본의 F15J는 200여 대다. 차세대 F35 스텔스 전투기는 한국은 40대를 가질 예정이지만, 일본은 32대를 운용 중이고 5년 안에 147대를 보유할 예정이다.김경민 한양대 교수는 책 '일본 자위대 그 막강한 군사력'에서 "일본 군사력은 중국과 비교해도 한 단계 앞선 첨단 무기들의 집합체"라고 했다. '일본은 스텔스 전투기까지 포착하는 세계 최고의 레이더 FCS-5, 중국 잠수함의 천적인 대잠초계기 P-1,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소류급 잠수함, 북한 김정은 위원장까지 살필 수 있는 10기의 첩보 위성 등을 갖고 있다.' 더구나 군사력의 기반이 되는 경제력은 한국이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다.요즘 일본의 무역 제재와 관련해 반일 강경론이 대두하고 있다. 소수지만, 전쟁 같은 위험천만한 얘기까지 나온다. 감정적인 대응은 '가미카제식' 자살 공격일 뿐이다. 반일은 '입'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를 악물고 실력을 키우는 것뿐이다.

2019-07-0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부산 정치, 정글인가

어느 지역 사람들의 특징을 흔히 기질(氣質)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장단점이 녹아 있는 그런 기질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사는 곳의 숱한 환경과 요소가 버무려져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질에 대한 연구조사는 지역민들의 자긍심 앙양이나 정체성 확립과 같은 목적에 쓰이거나 다른 곳과 차별화하는 잣대로 삼기도 한다.그런 면에서 과거 부산 토박이 65명과 부산 거주 외지인 65명 등 대졸 이상 중산층 부산인 130명 대상의 조사에서 나타난 부산인 특징(응답자 112명)은 흥미롭다. 특히 이를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해 울산과 경남도 정치인까지 동원한 부산의 정치 지도자의 행태와 비교하면 부산인의 특징과는 너무 어긋나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물론 이들 조사에서는 단점도 있지만, 부산 고유의 좋은 성격이라 할 만한 특성은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손꼽은 반응은 '정이 많고, 의리가 있고, 뒤끝이 없고, 화끈하다'는 데로 모였다. 부산 사람과의 교류나 친교 기회를 가진 경험자는 이런 응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을 듯하다.하지만 부산의 행정, 정치 지도자의 최근 행동은 부산인 기질로 봐도 손색없을 좋은 특성과는 아예 먼 거리다. 정부의 김해 신공항 결정과 영남권 5개 시·도지사가 3년 전 뜻을 모은 합의문조차 휴지 조각으로 만들 만큼 상도(常道)에서 벗어난 뻔뻔함을 서슴지 않는 일이 그렇다. 부산인의 좋은 기질 어디에도 없던 모습이다.김정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부울경 동남권 신공항 관문공항 검증단장)의 주장은 더욱 가관이다. 대구경북이 합의 위반을 지적하자 "남의 밥상에 배 놔라 감 놔라 훈수질"이란 막말까지 했다. 또 언론에 "대구경북의 반발은 명분이 없다"거나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지원을 더 받기 위한 꼼수, 예산을 더 따내려는 의도"로 폄훼했다.문재인 대통령의 현재 권력을 믿고 설치는 부산의 정치 지도자 모습은 힘을 앞세워 약자를 먹이로 삼는 정글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이들이 휘젓는 지금의 부산은 여러 좋은 특징적인 기질이 사라진 정글인가. 정녕 그런가.

2019-07-06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양산과 반바지

2018-2019년 시즌이 끝난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축구경기장에서 며칠 전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가 열렸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메인 스타디움이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을 임시 개조해 이틀간 메이저리그(MLB) 정규 시즌 경기를 치른 것이다. 야구 관심도가 낮은 유럽에서 MLB 공식 경기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른바 이 '런던 시리즈'에는 미국 동부지역의 최대 라이벌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맞붙었다. 이 두 팀은 MLB 아메리칸리그를 대표하는 구단답게 팀 색깔은 물론 선수들 개성 또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한 예로 양키스는 매일 수염을 깨끗이 깎고 경기에 나서는 것이 불문율이다. 또 경기에 나서면서 치렁치렁한 목걸이 차림이나 유니폼 단추 하나라도 풀어헤치는 것은 금기 사항이다. 1973년 양키스를 인수한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성향을 반영한 팀 전통이다. 2010년 그가 타계한 후 아들 할 스타인브레너도 이런 전통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반면 레드삭스는 선수 옷차림에서부터 덕아웃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양키스와 대비된다. 레드삭스 홈경기장의 상징이자 기형적으로 높은 좌측 외야 펜스의 별칭인 '그린 몬스터'처럼 선수들 행동거지나 스타일이 자유분방하고 유별나다. MLB 전체 30개 구단 25인 선수 명단 중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선수가 가장 많은 팀이 바로 레드삭스다.마른장마 탓에 30℃를 넘는 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자 폭염 대비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경남 창원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삼성, LG, SK 등 많은 기업들이 반바지에 샌들 차림의 출퇴근을 허용하는가 하면 대구시는 남성도 양산을 쓸 것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이 같은 시도는 통념상 좀체 시도하기 힘든 일들이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변화다.개성을 떠나 규칙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환경에서는 비록 싫더라도 전통을 따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환경과 여건이 안 될 경우 상황에 맞게 변신하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다. 양키스의 예처럼 전통을 지키는 것도 미덕이지만 현실에 맞는 새로운 시도나 변신도 필요한 법이다. 양산 쓰기나 반바지는 더위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라는 점에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가 됐다. 부채는 되는데 양산은 안 될 이유는 없다.

2019-07-05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대통령의 공상(空想)

핵무기가 개발된 이후 지금까지 핵전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는 '공포의 균형', 내가 핵 공격을 하면 상대방도 핵 보복으로 나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공포감이다. 여기서 생겨난 전략 이론이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이다. 선제 핵 공격을 받아도 남은 핵전력으로 상대방을 보복할 수 있다면 핵무기의 선제 사용은 쌍방 모두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1970년대 이후 미소 간 '데탕트'(긴장 완화)는 이를 바탕으로 했다. 상호 절멸의 공포심 때문에 핵무기를 쌓아놓고도 사용할 수 없다면 이런 상태는 영원히 지속돼도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다르게 생각했다. 데탕트는 냉전을 영속시켰고 또 영속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데탕트를 소멸시켜야 냉전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이것이 우주에서 소련 핵미사일을 요격한다는 '전략방위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 SDI)이 의도했던 것으로, 핵무기와 데탕트의 공존을 당연하게 여긴 시대의 통념을 깨는 정치적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현실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수준에서 미국은 소련을 압도하고 있었고 소련도 이를 알고 있었다.SDI에 대한 소련의 공포가 얼마나 컸던지 당시 유리 안드로포프 공산당 서기장은 레이건이 소련을 기습 공격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소련의 기술 수준이 더 우수했다면 레이건의 구상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이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판문점 번개회동'을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치켜세우며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 끊임없는 상상력의 발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열망은 이해하겠지만 상상력의 발동만으로 평화체제가 온다면 얼마나 좋겠나?레이건이 보여줬듯 상식을 깨는 정치적 상상력은 상상하는 주체가 현실을 바꿀 힘이 있을 때만 변화를 낳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상상은 '공상'이나 '망상'일 뿐이다.

2019-07-04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문산호 선원의 부활

1950년 여름이 무르익으면서 한반도의 포성은 더욱 거세졌다. 전선이 남쪽으로 확대되자 전투 인력은 물론 운송 장비도 모두 전장에 긴급 투입되었다. 2천700t급 LST(상륙선) '문산호'도 그중의 하나였다. 문산호는 동해안에서 석탄을 실어 나르던 민간 수송선이었다. 그런데 6·25전쟁이 터지자 참전 장병을 이송하는 군용선이 된 것이다.그해 9월 문산호는 800여 명의 학도병과 해군 지원병들을 싣고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해안에 도착했다. 이른바 '장사상륙작전'의 모선(母船)이 된 것이다. 장사상륙작전은 인민군에 대한 기만전술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양동작전의 하나였다. 작전명령은 '장사 해안에 적전상륙, 보급로를 차단하고 후방을 교란하라'는 것이었다.그러나 때마침 동해안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배가 암초에 걸린 가운데, 빗발치는 인민군의 총탄 속에 필사적인 상륙이 감행되었다. 10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고지를 점령하면서 보급로 차단과 교란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서 140명에 이르는 학도병이 꽃잎처럼 스러져갔다. 학도병뿐만 아니었다. 선원 10여 명도 함께 싸우다 총탄에 쓰러지고 파도에 휩쓸렸다. 그중에는 열아홉 살 소년도, 백일 된 딸을 둔 스물네 살 선원도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전사자 명단에 없었다. 선원들의 이름을 찾아 69년 만에 훈장을 안겨준 사람은 6·25 참전 용사로 문산호에 함께 있었던 한 예비역 해군 대령이었다. 지난주 충남 계룡대 해군본부에서 열린 '6·25전쟁 장사상륙작전 문산호 전사자 서훈식'에서 해군은 바닷속에 잠겼던 선원 10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참석한 유족들은 "우리 아부지 69년 잠수 타다 이제 올라와 빛을 보네"라고 했다. 국가는 이렇게 무심했다. 전사(戰史)에서조차 외면당했던 장사상륙작전 현장에 전몰용사위령탑을 세운 것도 살아남은 학도병 전우들이었다. 총성과 포연으로 얼룩졌던 문산호, 그리고 학도병과 선원들의 선혈이 낭자했던 장사리 해안을 기억하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2019-07-0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조국집권플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첩을 통해 인물을 발탁했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발탁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의 독서가 인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 인사'란 말까지 나온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보좌관 등 많은 인사가 이런 방식으로 문 대통령 부름을 받았다.문 대통령의 '독서 인사' 원조는 조국(曺國)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2010년 책 '진보집권플랜'을 낸 조 수석은 이 책을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문 대통령에게 보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문 대통령이 정계 투신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시기였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 '운명' 끝자락에 '진보집권플랜'을 "아주 좋은 책"이라고 칭찬했다. 2015년 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혁신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조 수석을 발탁했다.'진보집권플랜'은 이명박 정권이 한국 사회를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은 것으로 진단하고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분노 표출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를 평가한 대담집이다. 2012년 혹은 2017년을 대비해 진보가 집권하기 위한 플랜과 함께 집권했을 때 써야 할 정책이 분야별로 망라돼 있다.조 수석의 그동안 행보에 대한 연원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책 곳곳에 담겨 있어 흥미롭다. 조 수석은 "5년 임기 대통령 경우 3년이 지나면 레임덕이 온다. 따라서 초기 1, 2년 내에 진보를 위한 '제도적 말뚝'을 박아야 한다"고 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 검경수사권 조정 등 조 수석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안들이 오래전부터 그의 뇌리에서 잉태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 수석의 '제도적 말뚝'은 노 전 대통령의 '대못'과 닮았다. 조 수석 자신도 "노 전 대통령은 '대못'이라고 했는데 나는 '말뚝'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했다.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법무부 장관 기용설이 나오는 조 수석을 두고 "문 대통령이 조 수석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조 수석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을 생각하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도 아닌 것 같다. 문 대통령의 머릿속에 '조국집권플랜'이란 책이 이미 들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19-07-02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기본소득 실험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는 '21세기 사전'에서 '모든 사람이 직장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단지 필요한 것은 소득일 뿐이다'고 정의했다. 노동과 일자리의 변화에 맞춰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의 예측대로 지금은 소득이 발생하면 일자리의 형태는 문제가 되지 않고 노동과 실업의 개념도 계속 진화하는 게 현실이다.눈에 띄는 예측이 또 하나 있다. '실업자는 고용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들은 보편적인 기본 생활비만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기본 생활비는 핀란드 캐나다 등 일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실험중 인 '기본소득'과 맥이 닿는다. "인공지능(AI)과 기본소득 도입은 인류 최대의 혁명"이라는 주장이 나올 만큼 기본소득 개념은 핫 이슈다.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최초로 실험한 사례가 핀란드다. 2017년부터 2년간 25~58세 장기 실업자 2천 명에게 매달 560유로를 지급했다. 이어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는 600~900명의 시민을 유형별로 나눠 매달 현금을 지급하는 실험을 했고, 바르셀로나시도 950명에게 매달 1천유로를 지급했다. 알려진 대로 스위스는 2015년 기본소득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반대표가 훨씬 더 많았다.청년실업이 심각한 우리도 기본소득과는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정책 실험이 활발한 편이다. 2016년 서울과 성남시가 도입한 청년수당, 올해 6월 말 전남 해남군이 도입한 농민수당이 그렇다. 해남군은 1만2천487명에게 연 2회, 각 30만원씩 지급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봉화군과 청송군도 가구당 연간 5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기본소득의 전제는 빈곤과 실업, 소득 격차 등 문제점의 해소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려면 재원 확보가 최대 관건이다. 지급 규모나 방식 등에 세심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고, 기본소득이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어떻든 저성장·고실업 시대에 기본소득은 유용한 정책 대안임은 분명하다. 모든 복지 시스템은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의 불균형 해소가 출발점이다. 그렇다해도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공감대 없이는 실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2019-07-0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비목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가곡 비목(碑木)의 노랫말은 읽는 것만으로도 비감이 엄습한다. 1960년대 중반, 비무장지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작사가가 무명 용사의 돌무덤 위에 선 여윈 십자나무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는 내용이다.잡초 우거진 적막한 산모퉁이에 호젓이 남은 이름 모를 비목.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어간 젊은 넋의 표상. 그것은 소리없는 통곡이었다. 노랫말에 실은 곡조는 단조 특유의 애조와 우수의 서정이 공감을 일으키며 비목을 국민 가곡으로 부상시켰다. 참혹한 전쟁이 파생한 비목의 처연함은 우리의 일상에도 남아 있다. 소년병의 눈물이 그것이다.소년병(少年兵)은 6·25전쟁 당시 학도병 중에서도 병역의무가 없었던 14~17세의 지원병이었다. 훈련도 받지 못하고 무장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전선으로 나갔던 홍안(紅顔)의 병사들. 달빛 교교한 초소에서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며 눈시울을 붉히고, 얼떨결에 총으로 쏜 인민군의 앳된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가슴 한쪽이 아려오던 사춘기 소년들이었다.낙동강 방어선에는 군번도 계급도 없는 소년병들이 숱하게 참전했다. 수천 명이 산화했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소년병들도 이제는 백발이 되었다. 이들의 생전 소망은 오로지 '역사와 국민이 소년병을 기억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최근 낙동강승전기념관에서 열린 '순국소년병위령제'에서 소년병 전우회장은 "아직도 국가가 소년병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소년병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떠날 날이 머잖은 백발의 노병들에게 조국은 무엇이었나. 비목 작사가의 넋두리처럼 그 순연한 청춘들의 부토 위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경제적·민주적 호사(豪奢)를 누리는 게 아닌가. 소년병의 눈물도 여울져 흐르는 6월 산하의 끝자락, 평화를 구걸하는 남북관계의 얄궂은 운명 속에 비목은 정녕 사위어가는 호곡성일 뿐인가.

2019-06-29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어리석은 믿음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순진했다. 2차 대전 승전국으로서 폴란드를 포함해 과거 러시아 제국 시절 잃어버린 영토를 모두 되찾겠다는 스탈린의 속셈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처칠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내가 스탈린에게 모든 것을 주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면 그는 땅을 차지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민주주의 세계와 평화를 위해 나와 손을 잡을 것입니다."어리석은 믿음이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은 소련이 점령한 폴란드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의한 정부 수립에 합의했지만 지키지 않은 것이다. 1945년 2월 23일 얄타 합의대로 폴란드에서 자유선거를 위한 국제감시단이 발족하자 당시 소련 외상(外相) 몰로토프는 "선거는 소비에트 방식으로 치러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2년 후 선거는 그렇게 치러졌고, 결과는 폴란드 국민이 결사반대한 공산화였다.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가문의 멸족(滅族)도 어리석은 믿음 때문이다. 히데요시가 죽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전국(戰國) 통일의 점정(點睛)을 위해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秀頼)가 머물고 있는 오사카 성을 공격한다. 그러나 오사카 성은 '넘사벽'이었다. 성을 둘러싼 깊고 넓은 해자(垓子) 때문이었다.그래서 도쿠가와는 해자를 메우면 군사를 물리겠다고 히데요리에게 제안했다. 히데요리는 제안대로 했지만 도쿠가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성은 함락됐고 히데요리는 자결했다. 이에 히데요리 측 무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비겁자들"이라고 하자 도쿠가와는 이렇게 비웃었다. "세상에 적의 말을 믿는 바보가 어디 있나? 적장의 말을 믿는 바보는 죽어 마땅하다."문재인 대통령이 26일 7개국 뉴스통신사와 합동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다"고 했다. 세 차례의 회담에서 김정은이 빠른 시기에 비핵화 과정을 끝내고 경제 발전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음은 세상이 다 안다. 행동 없는 의지는 사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들었으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2019-06-2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문재인, '부산'스럽나?

대구와 부산. 닮고 다른 점이 여럿이고 많다. 두 도시 사람의 출신 비율을 보자. 대구는 대구경북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84%나 된다. 부산은 부산과 울산, 경남(부울경) 출신이 65%에 이른다. 즉 대구와 부산은 같은 생활권인 인근 지역 출신 사람의 차지 비율이 높은 도시라는 뜻이다.반면 대구에 사는 부울경 출신은 8.3%(대구경북연구원), 기타 8%쯤이다. 부산 경우 한 대학이 지난 2014~2017년 부산의 885명 대학생 부모 출신 조사 자료를 보면 부울경 출신이 70%고, 대구경북 10%, 호남·기타 출신이 20%다. 두 도시 내에 사는 다른 곳 출신을 알 만하다.이런 구성의 부산인의 장단점은 큰 차이 없다. (성)급한 단점 외 큰 장점은 정(情) 또는 의리(義理)로 손꼽힌다. 부산인의 좋은 기질이 될 만한 정과 의리는 영남 유림의 큰 산맥을 이룬 남명 조식이 목숨처럼 여긴 의(義)로움 즉 마땅함과 상통하는 흐름인 듯하다.부산의 이런 장점을 살피면 문재인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일부 행위는 이해된다. 탈 많은 조국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설 등 인재 등용을 보면 더욱 분명하다. 사람의 씀씀이보다는 '네 편, 내 편'의 진영 논리로 인재를 뽑고 쓰지만 정과 의리에서 그럴 수도 있다.하지만 가덕도 신공항처럼 지난 정부 결정을 뒤집고 5개 영남권 시도지사 합의조차 뭉개고 국책 사업 뒤집기는 부산인의 정신과 어긋난다. 사람 기용은 마음 탓이니 정의 질긴 인연을 끊기 힘들다 할지라도, 국가정책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의리와도 결코 맞지 않다.나라 경영자로서 이런 뒤집기는 잘못이자 재앙이 될 수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2016년 6월 김해공항 확장의 정부 공식 발표 전, 그해 3월에 총선용으로 '신공항의 박근혜 정부 임기 중 착공'을 공약했다. 그러나 뒷날 정부 정책이 바뀌었으니 앞선 공약 변경은 마땅하다.문 대통령은 자기 공약을 지키고 정과 의리를 위해 정부, 여당을 압박해 신공항을 만들고 싶겠지만 이제라도 그만 둘 일이다. 그럴수록 부산의 정신과 멀어질 뿐이다. 자칫 사람들 손가락질까지 받을지도 모른다. 이는 결코 부산스럽지 않음을 깨달아야 할 때다.

2019-06-27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정치인의 애물단지

자식을 '애물단지'라고들 한다. 애물단지는 '애물'의 낮춤말이고 몹시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구는 사람이란 뜻이다. 오래전 유명한 대기업 회장이 모두 고개를 끄덕일 만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평생 모든 걸 원하는 대로 다 이뤘다. 근데 두 가지만은 맘대로 되지 않더라. 하나는 자식이고, 하나는 골프다." 세상에 자식 걱정 없는 부모가 어디 있을 것이며, 멋대로 날아가는 공을 원망해보지 않은 주말 골퍼가 몇이나 되겠는가.정치인에게 자식이란 존재는 골칫거리에 가깝다. 사고를 치지 않으면 '효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인 속칭 '홍삼 트리오'는 모두 감옥살이를 했다.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두 차례나 대선 고지를 앞두고 아들 병역 문제의 늪에 빠져 실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위대한 아버지 덕분에 대통령까지 됐지만, 자기 관리에 실패해 아버지의 명예만 실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문재인 대통령의 자식 문제도 좀 껄끄럽다. 아들 문준용 씨가 2006년 한국고용정보원 일반직 공채에 단독 응시해 합격한 것을 두고 아직도 야권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딸 문다혜 씨 가족이 태국으로 이주한 것을 놓고도 온갖 소문이 나오지만, 정확한 실체는 알 수 없다. 청와대의 압력 때문인지, 관료들의 충성심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당국이 문 대통령 딸에 대한 정보를 흘린 사람을 대대적으로 조사하고, 일부는 처벌했다. 아무리 민감한 대통령 가족 문제라고 해도, 당국의 처사는 도가 지나치다.며칠 전에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엉뚱하게 자식 자랑을 하는 바람에 '팔불출' 얘기를 듣고 있다. 황 대표는 "아들이 고스펙이 없는데도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그 아들은 연세대 법대 출신에 학점 3.29, 토익 925점이었다. 강연 중에 '엄친아'의 표본인 아들을 내세웠으니 네티즌의 질타를 받을 만했다. 정치판에서 자식 문제는 금기다. 자식을 입에 담는 순간 이익보다 손해가 많다. 황 대표가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비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2019-06-26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감독 바꿔!"

20세 이하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한 정정용 감독과 선수들 덕분에 2019년 초여름 대한민국은 행복했다. "임금이 있어서 백성이 있는 게 아니라 백성이 있어서 임금이 있는 것이다. 선수들이 있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다"는 어록들과 함께 정 감독의 소통·배려·스펀지 리더십은 두고두고 회자할 것이다. 재기 발랄하고 투지 넘친 선수들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설 것으로 믿는다.모든 경기가 명승부였지만 복기를 하면 16강전에서 맞붙은 일본전이 가장 큰 고비였다. 전반전엔 한국이 크게 밀렸다. 문제는 수비 전형이었다. 4-4-2를 쓰는 일본을 상대로 5-4-1로 수비했다. 오른쪽 측면 수비를 하려고 내려온 이강인의 수비 부담이 커지며 볼 점유율을 내주고 공격력이 약해졌다. 반전은 하프타임 이후 정 감독의 전술 변화에서 시작됐다. 엄원상을 투입하며 4-4-2로 전형을 바꿨다. 수비 부담이 준 이강인은 오세훈과 공격에 집중해 결국 1대0 승리를 이끌어냈다.축구에선 하프타임 때 작전을 많이 바꾸지만 농구, 배구 등은 아예 작전타임이 따로 있다. 감독과 선수가 공수 전략을 주고받는 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편의 승세를 꺾거나 내 편의 잇따른 실책을 되돌아보려고 작전타임을 쓴다. 작전타임을 잘 활용하면 승리를 가져올 수도, 반대로 허투루 하면 패배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을 바꿨다. 경제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선수를 교체한 것이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작전은 그대로 고집하면서 선수만 바꾼 탓에 기대할 게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새로 투입된 선수도 교체된 선수와 오십보백보여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돌려막기 인사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운동경기에서 감독이 경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점수를 계속 내주면 경기를 망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경제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고 실패한 정책을 뜯어고치지 않은 채 자기 사람만 이 자리, 저 자리로 돌려막으니 경제가 나아질 리 만무하다. 이러다가 "문제는 감독이야! 감독 바꿔"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2019-06-25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신청사와 풍수(風水)

영화 '명당'은 왕기(王氣)가 서린 천하명당을 차지하려는 당대의 권문세가와 야심 찬 왕족의 대립과 욕망을 그렸다. 역사적 실화를 풍수지리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한 픽션이다. 풍수지리는 이미 삼국시대에 도입되었는데 고려시대에 전성기를 이루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인의 생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연말로 예정된 대구시청 신청사 최종 입지 선정을 앞두고 구·군 간의 유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역사적·문화적·산업적 여건과 시민의 접근성을 고려한 교통 인프라를 내세우며 저마다 유일한 대안임을 주장하고 있다. 도시의 미래를 조망하며 인구와 외연의 확장성을 강조하는가 하면, 청사 건설의 경제성을 감안해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이색 현수막과 영상을 제작하며 저마다 차별화된 홍보전에 나선 가운데 최근에는 풍수설까지 동원하며 최적지론을 설파하고 있다. 풍수설전(風水說戰)에서는 주로 북구와 달성군이 맞붙었다. 북구는 배산임수의 오랜 명당인 옛 경북도청 터로 시청사를 옮기는 것이 적격임을 강조한다. 현재 시청 별관이 있는 곳이야말로 신천과 동화천, 금호강 등 삼수(三水)가 모이는 중심지로 지속적인 번영과 발전의 생태 공간이라는 것이다.이에 대해 달성군은 시청사 후보지로 내놓은 화원(花園) 땅에 대한 신풍수론을 주창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도승 무학대사가 비슬산 자락과 낙동강으로 둘러싸인 화원 일대를 '만대의 영화를 누릴 명당'(萬代榮華之地)이라고 한 비결서(秘訣書) 대구 편을 인용한 것이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옛 경북도청 터가 명당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경북도청을 품으며 그 역할을 다했다는 견해까지 내놓은 형국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논리이다.신청사의 향배는 구·군의 중흥과 직결된다. 유치 경쟁이 후끈한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만사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소지역주의나 정치인의 포퓰리즘이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며 대구의 새로운 백년대계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대구시 신청사 건립은 대구시민 모두를 위한 것이다.

2019-06-24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우리 군의 진짜 실력

군대가 진짜 강군(强軍)인지 무늬만 그런지는 평소에는 알기 힘들다. 전투 그것도 강적(强敵)과 조우(遭遇)했을 때에야 비로소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1939년 5월부터 9월까지 만주국과 소련, 외몽골 접경지역에서 일본 관동군과 소련군이 맞붙은 노몬한 전투가 바로 그런 경우다.이 전투 직전까지 일본군은 무적이었다. 근대화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국 군벌과의 전쟁 등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이겼다. 그러나 노몬한 전투에서는 박살이 났다. 병력의 3분의 1이 죽거나 다쳤다. 사실상 궤멸이다. 최신예 전차, 중포(重砲), 항공기로 무장한 소련 기계화부대에 백병전(白兵戰)으로 맞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이렇게 무모했던 것은 전력이 뒤진 중국군과의 전투 경험 때문이었다. 중국군에게는 그런 전술로도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의 양상은 기계화부대가 대세인 시대로 바뀌고 있었다. 일본군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계란으로 바위를 친 것이다.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사건이 군의 실력을 폭로하는 경우도 있다. 1987년 5월 28일 마티아스 루스트란 서독의 19세 괴짜가 경비행기를 몰고 소련 영공을 유유히 통과한 뒤 모스크바 크렘린 광장에 착륙한 사건이 바로 그렇다. 이는 소련 군부에 재앙이었다. 1만여 개의 레이더와 요격 전투기, 지대공 미사일이 겹겹이 쳐진 소련 방공망(防空網)이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소련의 치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무자헤딘 전사의 게릴라전술에 고전했던 사실이 보여주듯 소련군 전체가 덩치만 큰 약골이란 의심까지 받았던 것이다.북한 어선의 '노크 귀순'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북한 어선이 동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삼척항 앞바다로 올 때까지 전혀 몰랐다. 한마디로 '안보 참사'다. 우리 군의 진짜 실력이 드러났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더 참담한 것은 청와대가 정확한 실상을 알고도 군의 거짓 발표를 방조했다는 사실이다.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고 있다.

2019-06-22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구, '급한' 부산 제쳐

우리 땅은 좁다지만 지역마다 사람 기질(氣質)은 같지 않다. 특히 경상도 울타리 안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이뤄진 경상도 사람 기질 조사 결과 역시 그렇다. 흔히 부산 사람의 손꼽히는 특징은 '(성격이) 급하다'이다. 반면 대구가 낀 경북은 대체로 '느긋하다'는 반응이다. 경험적으로 수긍할 만하다.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가덕도 신공항 건설 재추진을 둘러싼 부산의 움직임은 더욱 좋은 사례다. 과거 영남의 5개 시·도지사가 합의한 가덕도 신공항 건설 백지화 뒤집기와 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조차 무시하고 스스로 만든 절차를 내세워 관철을 시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히 '쇠뿔도 단김에 뺀다'는 속담마저 무색할 급함이다.부산이 정치적 터인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전반기 아직 '힘'이 펄펄할 때 뒤집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재추진을 정권이 바뀌더라도 결코 되뒤집을 수 없도록 대못을 박자는 속셈이리라. 20일 부산·울산·경남도 세 단체장의 국토부 방문과 장관 면담은 '불가역적' 쐐기를 박기 위해 출사표를 던진 부산판 '도원결의'라면 지나칠까.느긋한 대구경북 국회의원이 비록 뒤늦게 이런 부산을 막겠다지만 이를 겁낼 부산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최근 핀란드 방문길에 문 대통령은 부산~헬싱키를 잇는 하늘길까지 내년부터 열겠다고 할 만큼 부산 사랑이 남다른지라 대구경북 국회의원 목소리에 부산 요구를 내칠 까닭이 없지 않은가.그런데 부산 사람의 이런 급함에 뒤진 대구 사람이 위안(?) 삼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대구의 집값이다. 인구나 경제력 등을 따지면 대구와 비교가 힘든 부산의 집값보다 대구 집값이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감정원이 5월 전국주택가격 동향을 조사한 결과, 대구의 아파트 중위가격이 부산보다 989만원이 비쌌다.주택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지는 집값이겠지만 여러 경제지표에서 부산보다 떨어질 터인데 집값만큼은 부산을 제쳤다니 다행인가, 불행인가. 미래가 달린 현안에 대해서는 느긋하기만 한 대구가 집값 올리는데는 부산보다 급했던 결과인가. 느긋해도 될 만한 대구의 집값 오름 같은 불청객 소식에 마음은 날씨보다 덥다.

2019-06-2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지방기상청 승격

일본 사이타마현 구마가야(熊谷)시는 도쿄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60㎞ 떨어진 인구 20만명의 소도시다. 그런데 구마가야는 매년 여름이면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다. 가장 더운 지역이어서다. 구마가야가 뜨거운 이유는 사이타마현 서쪽의 지치부(秩父) 분지에서 발생하는 푄 현상과 도쿄 도심의 열섬 현상에 따른 무더운 계절풍 때문이다.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간 구마가야시 기상 자료를 보면 7, 8월 두달 평균 최고 기온은 각각 30.1℃, 31.9℃였다. 우리로 치면 봄과 가을인 4월과 10월에도 최고 기온이 30℃를 넘길 정도다. 지난해 7월 23일 구마가야시 최고 기온은 무려 41.1℃를 기록했다. 일본 기상관측 사상 최고다. 지난 5월 최고 기온이 이미 35℃를 넘어서자 물안개 분사장치 가동과 열사병 예방 키트 홍보 캠페인 등 구마가야시 폭염 대책을 소개하는 보도가 그제 우리 지상파TV에도 등장했다.구마가야시와 비슷한 '열도'(熱都)가 바로 대구다. 근래 들어 다른 도시에 그 타이틀을 넘겨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상청 예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분지라는 지리적 특성에다 250만명의 대도시인 점 등 기상에 관한한 대구의 중요도나 위상은 무시할 수 없다.하지만 그동안 부산지방기상청 산하 대구기상지청이 제한적인 기상관측 업무를 담당해왔다. 대구 지청 관할 면적이 국토 면적의 19.8%로 가장 넓은데도 인력과 예산은 뒤따르지 못한 것이다. 대구시가 10년 넘게 행정안전부에 지방기상청 승격을 건의해왔지만 여건탓에 계속 무산됐다. 광역시·도를 모두 관할하면서도 유일하게 지청으로 남은 곳이 대구다.대구기상대가 그제 대구지방기상청으로 마침내 승격했다. 1907년 대구기상대 설립 이후 112년 만이다. 2013년 효목동으로 청사를 신축 이전하면서 시설을 크게 확대했고, 경주·포항 등에서 지진이 빈발해 대응 수요가 커진 것도 승격 배경의 하나다. 이제 숙제가 풀린만큼 양질의 기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만 남았다. 분야별 전문성을 더욱 키우고 예보 적중률을 높여야 한다. 대구지방기상청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기대한다.

2019-06-20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공무원은 죄가 없다'

1504년 연산군은 생모 폐비 윤씨의 사사(賜死)에 관련된 인물들을 처형했다. 폐비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은 물론 사약으로 비상을 추천했거나 사약을 들고 갔던 신하들에게 죽음을 내렸다. 산 자는 조각을 내 죽였고 죽은 자는 관을 부수고 시체를 조각냈다. 사약을 들고 갔던 한 신하의 부인이 "우리 자손은 씨도 남지 않겠구나"란 말이 현실이 됐다.연산군 입장에서 보면 생모에게 사약을 들고 간 신하는 적폐(積弊)를 넘어 원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하 입장에서 보면 사약을 전하라는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의 명을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불충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때 그 자리를 맡았던 것이 불행한 죽음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여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정책실장의 "관료가 문제"란 말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바짝 엎드린 채 열심히 일하지 않고 소신도 없는 공직사회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근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공무원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청와대 책임이 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전·전전 정권 정책에 관여한 관료들을 '부역자'로 몰아세운 것이 이 같은 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경제 부처 공무원들이 정책 보고서를 만들 때 '과수'(과장 수정), '국수'(국장 수정) 등 누구 지시로 수정했는지를 표기한 파일을 만들어 두는 것은 후환을 당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하나다.적폐청산 과정에서 공무원을 옭아매는 데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 직권남용죄가 이제 집권 세력을 향한 부메랑이 됐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과 관련 문 대통령이 자신을 겨냥한 수사 지시를 내린 것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산 석탄 밀반입 의혹과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한국당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공무원이 '정권 교체 리스크'까지 고려해서 일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정권 입맛에 따라 이현령비현령식으로 공무원을 단죄하는 행태부터 사라져야 한다. 21세기에 연산군 때와 같은 일이 벌어져서야 말이 되는가.

2019-06-19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알아서 기는 우상화

스탈린은 키가 작았다. 공식적으로는 168㎝이지만 실제로는 163㎝였다. 이보다 더 작다는 설도 있다. 소련 붕괴 후에도 공산당원으로 남았던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60㎝로 봤다. 그리고 왼팔이 오른팔보다 짧았으며 왼손은 오른손보다 눈에 띄게 컸다. 이 때문에 그는 항상 오른손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겼다고 한다.스탈린은 이런 신체 조건을 있는 그대로 그린 초상화가 여럿을 총살했다. 아마도 작은 키가 큰 콤플렉스였던 듯하다. 드미트리 날반디안(Dmitri A. nalbandian)이란 화가는 이를 감지한 듯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구도를 잡아 키가 커 보이게 그려 스탈린을 만족시켰다.('모던 타임스Ⅰ' 폴 존슨) 이후 소련의 선전기관들은 알아서 기었다. 각종 영화와 연극에서 스탈린은 키가 크고 잘 생긴 인물로 등장한 것이다.이런 일화는 구소련의 스탈린 우상화가 그의 지시나 암시는 물론 그의 충복(忠僕)들이 알아서 긴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1940년대 '스탈린그라드' '스탈린스크' '스탈리노고르스크' '스탈리노그라드' '스탈리니시' '스탈리나오울' 등 스탈린의 이름을 딴 지명(地名)이 대거 생겨난 것은 대표적인 예다. 모두 지역 관리들의 충성 경쟁의 산물이다.스탈린이 거부한 우상화 시도도 있었다. 모스크바를 '스탈리노다르' 또는 '스탈린다르'(스탈린의 선물이란 뜻)로 바꾸자는 청원이나 역법(曆法)을 바꿔 예수 탄생 연도가 아닌 스탈린의 생일을 기준으로 하자는 제안이 바로 그것이다. 스탈린 자신도 낯 간지러웠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다.북한 김정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 빈소에 보낸 조화를 특수 처리를 거쳐 김대중 도서관에 영구 보존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앞서 김정일이 2009년 김 전 대통령 타계 때 보낸 조화도 같은 과정을 거쳐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고 한다. '최고 존엄'의 흔적은 털끝 하나까지 간수하는 북한의 우상화를 빼다 박았다. 김정은에게 알아서 긴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 코미디다. 이런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2019-06-18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폭로자

영화 '트럼보'(2016년)는 1950년대 '빨갱이'로 몰려 고난과 좌절을 겪은 천재 시나리오 작가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달튼 트럼보는 먹고살기 위해 11개의 가명으로 시나리오를 썼는데 올드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작품이 여럿이다. '로마의 휴일' '카우보이' '영광의 탈출' '스파타커스' '빠삐용' '추억'….그는 13년 뒤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고는 회한과 슬픔으로 가득한 소감을 밝혔다. "이 작고 값어치 없는 금 조각상은 내 친구들의 피로 뒤덮여 있다."트럼보는 당시 공직·일자리에서 쫓겨난 1만 명 중 한 명일 뿐이다. 1950년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 "내 손에 205명의 공산당원 명단이 있다"고 폭로하면서 미국은 10년 가까이 공포의 시대를 보냈다.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폭로가 얼마나 사회를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는지 알 수 있다. 출세를 위해 인격 살인을 서슴지 않은 매카시는 미국의 수치로 남았다.매카시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최순실 재산을 300조원이라고 폭로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4선·경기 오산)이 떠오른다. 안 의원은 2017년 "박정희 전 대통령 통치자금 규모가 당시 8조9천억원, 지금 돈으로 300조원이 넘고, 최순실 일가로 흘러 들어갔다"고 했다. 300조원은 세계 최고 부호 1~4위 재산을 모두 합한 금액이고 보면 터무니없는 액수다.안 의원은 지난 6일 "최순실 재산에 대해 독일 검찰을 통해 확인해 보니 돈세탁 규모가 수조원대"라고 했다. 최순실 재산을 2년 새 300조원에서 100분의 1로 줄인 것을 두고 일부 언론은 '민주당 최고의 소설가'라는 별명을 붙였다.안 의원이 이번에는 '윤지오와 함께하는 의원 모임' 결성을 주도해 네티즌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는 SNS에 "선한 의도였다.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했을 만큼 국민이 어리석지는 않다"고 해명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자는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정치 선동과 비뚤어진 가치관에서 비롯됐기에 자신의 폭로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평했다. "의도가 선하다고 모든 게 정의롭다는 생각부터 틀려먹었다."

2019-06-17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우리 소·닭·돼지

황해도 안악 고분에는 검고, 누렇고, 얼룩진 세 마리의 소 그림이 등장한다. 소의 뿔과 코뚜레, 고삐도 선명하다. 357년에 쌓은 고구려 무덤인 만큼 우리 소 역사가 유구함을 말하는 그림이다. 물론 구석기 때로 추정되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도 소가 새겨졌으니 소의 역사는 깊다.닭도 그렇다. 특히 닭에는 신라 시조 설화와 왕이 얽힌 계림(鷄林), 인도인이 우리를 '귀한 닭'이란 뜻인 '구구타 설라'로 부른 사연 등이 있다. 우리 닭은 밖에도 알려져 중국 의서에 나올 정도였다. 꼬리가 90~120㎝에 이르는 장미계(長尾鷄)는 맛 좋고 기름지기로 이름이 높았다.돼지도 같다. 고구려는 제천 행사에 돼지를 바쳤고, 부여는 돼지를 길러 고기는 먹고 가죽은 옷을, 털은 짜서 베(布)를 만든 기록을 남겼다. 발해는 돼지 가죽 1천 장을 당나라에 수출했다. 돼지는 풀을 뜯는 소와 달리 곡물을 먹고 농사 쓰임새가 적어서인지 푸대접도 받았다.이런 가축은 민족적 특징을 가졌는데, 일제강점기 자료는 그 우수성과 장단점을 남겼다. 무엇보다 일제에 집중 수탈된 한우의 뛰어난 점은 지금도 새길 만하다. 먼저 품성이 한민족처럼 선천적으로 온순하고 영리했다. 암수 섞여도 싸우지 않고 사람과 배를 타도 조용했다. "세계 제일"이라 불린 까닭이다.우리 가축의 시련은 일제 수탈과 경제성만 외친 사육 정책으로 가혹했다. '한'(韓)이란 글자를 앞세울 만한 숱한 고유의 우수 유전자 보유 가축들이 사라졌고, 수입고기 홍수는 이를 부채질했다. 우리 또한 '돈 되는' 가축만 길렀다. 뒤늦게 온 나라를 뒤져 없어진 옛 가축 종자 복원에 나서지만 차 떠난 뒤와 같다.이를 안타깝게 여겨 우리 가축에 관심을 쏟다 퇴직한 여정수 영남대 명예교수가 여섯 제자와 8일 '재래 닭·재래 돼지·한우'라는 책을 내고 '한민족 고유의 유전자원' 보호를 호소했다. 칠순(七旬)을 겸해 제자들과 조촐한 모임을 연 그의 "재래 가축은 민족의 삶이 담긴 역사의 변화를 알려준다"는 말이 절박하다.

2019-06-15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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