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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경제 위기는 '왔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영향인지 급속히 확산하는 게 한국 경제 위기 10년 주기설이다. 1997년 외환 위기, 2008년 금융 위기에 이어 10년 만에 경제 위기가 닥쳐온다는 얘기다. '최악' '최저' 수식어가 붙은 경제지표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모양새다.경기 추락과 나빠진 고용 사정을 보여주는 지표들을 보면 벌써 경제 위기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버팀목인 제조업 경쟁력 하락부터 심상치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3% 줄었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1년 이후 가장 큰 폭 내림세다. 8월 취업 증가자 수는 3천 명으로 금융 위기 여진이 이어지던 2010년 1월 이후 8년 7개월 만에 가장 적다. 실업자는 8개월째 100만 명을 웃돌며 외환 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치솟았다.전망 역시 잿빛이다. IMF는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8%로, 내년은 2.9%에서 2.6%로 각각 낮췄다. 내년 전망치는 201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전망치를 낮춘 바 있다.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금융시장 개방도가 높은 탓에 우리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 등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중국발 금융 위기가 현실화하면 우리 경제가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경제 위기를 촉발하는 국내외 요인보다 더 걱정인 것은 경제 운전대를 잡은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잘못된 인식과 능력 부재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는 공직생활을 하며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을 늘 있었던 일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경제 현장에서는 죽을 지경이라는 아우성이 쏟아지는데도 경제를 책임진 인사들은 엉뚱한 소리만 내뱉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사는 국민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기는커녕 힘 빠지게 하는 소리는 그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8-10-11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한글 방탄소년단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지난 3일 오전 팔공산 정상 비로봉에서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만큼이나 개천절 노래가 높게 멀리 울려 퍼졌다. 시민사회단체인 대구국학원과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 회원과 등산객 등 100여 명의 합창은 이날 열린 천제단 제천(祭天) 의식의 하나였다지난 2004년 7월 한여름, 천제단비 건립에 낀 인연의 고리로 필자는 이날 개천절 행사에 초청받아 천지인(天地人) 삼배(三杯) 삼배(三拜)도 올렸다. 다른 참석자들처럼 남북통일과 대구 발전, 선조의 오랜 문화였던 제천 및 천제단의 복원, 개인 바람까지 하늘에 알리며 남다른 개천절을 보냈다.필자에게 이날 비로봉 개천 의식이 남다르게 와닿고 지금도 그런 까닭이 있다. 먼저, 지난 2년 가까운 작업 끝에 최근 마무리된 광복회 대구지부의 첫 '대구독립운동사' 책 발간 작업을 통해 얻은 뼈저린 느낌이다. 다음은 한글날을 맞아 방탄소년단에게 정부가 8일 훈장을 주기로 했다는 소식이다.무엇보다 대구독립운동사 발간 자료를 모으면서 한글 수난 역사를 절감했다. 특히 일본말 강요로 숱한 독립운동가 활동은 일본어의 번역을 거쳐야 했다. 재판 기록은 더욱 그랬다. 통역자를 두고 일본인이 재판했으니 그럴 만했다. 조선조 지배층의 한문(한자) 선호에 이은 일제강점기 일본말 득세로 나라말 한글은 두벌죽음이었다.식민의 엄혹한 암흑기, 독립운동가와 백성이 그나마 힘을 얻게 된 대상은 바로 단군이었다. 광복의 독립운동 맹세와 동지를 배신하지 말자며 다짐할 때 단군의 등장은 자연스럽다. 이런 사실은 대구독립운동사 발간 작업 과정에서 필자가 얻은, 값진 배움이었다. 또 이런 일이 나라 안은 물론, 나라 밖 독립운동에서도 같았음을 알았다.한글의 두벌죽음 수난사에다 지금도 넘치는 외래어와 한자어로 홀대인 한글, 갈수록 소홀하고 무관심한 단군과 개천절 현실에 우울할 즈음, 비로봉 개천 의식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방탄소년단의 한글 노랫말 해외 공연과 한글 사랑, 이에 따른 훈장 수여 소식이니 어찌 반갑지 않을까. 절로 한글 방탄소년단 응원이다.

2018-10-10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은행나무

20여 년 전 영화 '은행나무 침대'는 한국적인 정서로 풀어낸 환생과 윤회의 가설에 현대적인 감각을 보탠 비극적인 멜로 서사였다. 출연 배우들의 열연과 미려한 음악 그리고 당시 처음으로 도입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영상을 구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은행나무의 오랜 역사성을 원용한 것이었다.강화 볼음도에 가면 이별의 서러움을 안고 사는 은행나무가 있다. 이 노거수(老巨樹)는 원래 황해도 어느 마을에서 암수 짝을 이뤄 살던 수나무였는데, 800여 년 전 홍수로 뿌리째 뽑혀 홀로 떠내려온 것을 어민들이 건져서 심었다는 것이다. 그 후 두 지역에선 음력 정월에 각각 제사를 지내왔는데, 남북 분단으로 명맥이 끊겨 버렸다. 그런데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부부 은행나무' 제례 방안을 다시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은행나무도 남남북녀이던가.전등사에 있는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는 꽃은 피어도 열매는 맺지 않는다. 여기도 그만한 사연이 전한다. 조선 후기, 무리한 은행 공출을 요구하는 관아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더 이상 열매를 열지 않게 해달라'는 제사를 올린 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저마다 이렇게 역사의 향기를 간직한 채 사람들의 이목과 발길을 이끈다.가을에 마주하는 은행나무는 낭만의 대명사이다. 노란 캔버스로 변하는 숲이며, 노란 카펫을 펼쳐놓은 듯한 길이며, 속절없이 흩날리는 노랑 잎새는 조락의 계절인 가을 정취의 압권이다. 이 같은 심미적 기능에다 공기 정화 능력이 탁월한 은행나무는 가로수로도 제격이다. 단 하나 흠이 있다면, 암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이다.그러나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로 차츰 교체해나가면 머잖아 악취도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예전과는 달리 조기에 암수를 구별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지난달 중순부터 열매가 떨어져 냄새를 풍기기 전에 미리 채취하는 '은행나무 기동반'을 운영한다고 했다. 그것도 한 방법이다. 가을 한철 냄새 때문에 은행나무를 박대하기에는 얽힌 역사와 정서가 너무도 깊다.

2018-10-09 05:0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정음(正音)

고려 인종 때 연영전(延英殿)을 정비한 집현전(集賢殿)은 조선 세종 즉위 이듬해인 1420년부터 제 기능을 한다. 수장인 영전사(領殿事)와 대제학, 제학은 중신이 겸임했다. 실무는 3품 부제학 이하의 관리가 맡았다.'훈민정음' 해례본에 정음(正音) 창제에 관여한 집현전 학자 이름과 관직이 나온다. 47세의 대제학 정인지, 34세의 응교 최항을 빼면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은 모두 20대다. 당시 세종의 나이는 46세였다.'정음 반대 상소'를 올린 최만리는 집현전 부제학이었다. 그는 정음 창제에 관여하지 않았으나 정음의 언어학적·사상적 의미를 정확히 간파한 지식인이다. 노마 히데키는 저서 '한글의 탄생'에서 최만리를 '한자한문 원리주의자'로 규정했다. 그가 세종의 '문자혁명'에 반기를 든 것은 '새 문자의 창제가 지(知)의 지평을 움직이게 하고,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짚었다.그가 상소에 언급한 정음의 원리 즉 '용음합자'(用音合字)는 옛것을 거스르는 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음에 의거해 글자를 합치는' 문자 형태와 사고방식은 한자와 생판 다르기 때문에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세종과 반대론자의 이 언어학적 사상 투쟁은 정음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을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배경이다.내일이 한글날이다. 전 세계 수백 개의 문자 중 정확히 생일을 알고 기리는 유일한 문자의 날이다. 정음 반포 572년, '가갸날'에서 1928년 '한글날'로 기념일 명칭을 바꾼 지 꼭 90년이다. 그런데 국민 10명 중 8명이 한글 창제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글문화연대 설문조사에서 세종(17%), 세종과 집현전 학자 공동(55.1%), 세종이 지시하고 집현전 학자들 창제(24.4%)로 제각각이다. 초중고 교과서 상당수가 잘못 기술하는 바람에 이런 오류가 생겼다.세종실록은 이리 기록했다. 25년(1443년) 12월 30일 기사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 (…) 이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누가 언제 한글을 만들었는지 답은 분명하다.

2018-10-08 05:0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누구나 아는 사실

중앙계획경제 체제였던 구소련에서 정부가 결정해야 할 가격의 종류는 2천400만 가지가 넘었다.(오기(誤記)가 아니다! 2천400도 아니고 240만도 아닌 2천400만 가지다) 새로 놓을 다리를 1차선으로 해야 할지 2차선으로 해야 할지는 물론이고 모스크바 어느 구역에서 채소를 길러야 하느냐는 아주 사소한 사항까지도 정부가 결정했다.이는 가격 결정자들이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초인적 능력을 요구했다. 스탈린이 과중한 업무에 지쳐 한 번은 참모들에게 "숨 돌릴 틈도 없이 쌓여가는 서류 더미에 파묻힐 지경이라고!" 소리쳤다는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 가격이 오류 없이 정확하게 책정됐느냐 하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정부가 결정한 가격은 무엇을 더 많이 생산하거나 더 적게 생산할지를 판단케 하는 '화폐가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어떤 품목은 지나치게 많이, 어떤 품목은 지나치게 적게 생산됐던 이유다.화폐가격이란 사람들이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떤 것을 원하지 않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이는 사인(私人) 간의 자유로운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에서만 형성된다. 소련에는 시장이 없으니 화폐가격도 없었다. 소련 경제가 비효율의 극치였던 까닭이다.소련은 이런 문제를 '톨카치'라는 불법 기업가들이 형성한 '유사시장'을 눈감아 주는 것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톨카치'는 부족이 예상되는 생산자원을 쌓아두었다가 목표 달성이 힘든 공장 관리자에게 비싼 값으로 팔았다. 결국 소련도 누구나 아는 시장의 효용성을 인정했던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이 4일 "좋은 일자리는 결국 기업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하나 너무나 당연해서 식상하기까지 한 소리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진작부터 이런 상식 중의 상식에 투철했다면 우리 경제의 현실은 많이 다를 것이다. 적어도 지금처럼 죽을 쑤고 있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2018-10-06 05:0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홀대받는 1948년

1948년은 대한민국 70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다. 헌법을 제정·공포했고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한 대한민국이 건국했다. 국군도 창설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1948년은 갈수록 무시·홀대받는 천덕꾸러기 신세다.지난 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국군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건군 70주년인데도 시가행진이나 열병식 없이 조촐하게 치러졌다. 대신 가수 공연이 펼쳐졌다. 국군의 날 행사가 연예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를 방불케 했다.국군의 날이 10월 1일로 정해진 것은 6·25전쟁과 관련이 있다. 1950년 10월 1일 국군이 남침한 북한 공산군을 반격해 38선을 처음 돌파했다. 이를 기념하고자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했다. 6·25전쟁에서 사망·부상·행방불명된 국군이 98만8천여 명. 국군의 희생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없었다.아무 의미 없이 국군의 날 행사를 하는 게 아니다. 강한 국군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국군 장병에게 자부심도 심어줘야 한다.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이 두 가지 달성에 실패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국군의 날 행사를 축소했다면 이는 안보와 국기 문란 차원의 엄중한 문제다.문재인 대통령은 "국군의 날 행사가 바뀐 것은 평화 기조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사병들의 관점에서도 해석돼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과거 국군의 날 행사를 하자면 사병들은 4월 봄부터 준비를 한다. 기수단과 사병들이 발을 맞춰 열병하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 고충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을 방문한 문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본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은 수만 명의 어린 학생이 수개월간 혹독한 연습에 동원된 결과가 아닌가.정부는 지난 8월 15일 '제73주년 광복절 및 제70주년 정부수립 기념 경축식'을 가졌다.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건국이 아닌 정부수립일 뿐이라는 게 문재인 정부의 태도다. 문 정부를 있게 한 촛불혁명의 성공은 대한민국이 자유와 민주, 인권이 있는 나라여서다. 이런 대한민국이 탄생한 1948년이 외면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2018-10-05 05:0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종전선언은 '굳은 자'?

공산주의자의 협상 전략은 간단하다. 자신의 힘이 우세할 때는 상대 진영과 한 약속을 파기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자기에게 불리한 합의도 순순히 수용한다. 물론 이런 '후퇴'에는 그 약속을 지킬 뜻이 전혀 없는 것이 보통이다. 장제스(蔣介石)를 패퇴시키고 중국을 차지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전술은 이를 잘 보여준다.2차 대전 종전 직후 중국의 밝은 미래를 논의하자는 장제스의 제안에 따라 마오쩌둥은 장제스의 본거지인 충칭(重慶)으로 날아가 1945년 8월 28일부터 10월 10일까지 장제스와 평화협상을 벌였다. 6주간의 '밀당' 끝에 두 사람은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연합 정부 구성을 골자로 한 이른바 '쌍십(雙十)협정'에 서명했다.마오는 이에 앞서 9월 18일 "우리는 내전을 중단하고 중국의 근대화를 위해 장제스 주석의 영도 아래 모든 정파가 일치단결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거짓말이었다. 협정 후 마오는 본거지인 옌안(延安)으로 돌아와 "쌍십협정은 휴짓조각에 불과하다"고 했다.온화한 표정에 정중한 태도로 많은 '팬'이 있는 저우언라이(周恩來)도 기만술의 대가였다. 쌍십협정에도 내전이 계속되자 1945년 11월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중재한 정전협상에서 그는 공산당을 민주주의자로 둔갑시켜 공산당의 목적에 대한 미국의 판단을 흐리고자 했다. 이를 위해 마오를 설득해 "중국의 민주주의는 미국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고 선언하도록 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마오가 실제로 손해가 되지 않는다면 서류상으로는 무엇이든 동의했기 때문이다.('해방의 비극, 1945~1957' 프랑크 디쾨터)북한의 대외선전 매체 중앙통신이 "종전(선언)은 우리의 비핵화 조치와 바꿔 먹을 수 있는 흥정물이 아니다"고 했다. 선(先) 종전선언으로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 낸다는 구상을 견지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협상 전략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황당해할 것도 없다. 문 정부가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서 북한은 종전선언을 굳이 힘들여 따낼 필요가 없는 '굳은 자'로 여기는 것 같다.

2018-10-04 05:0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국가기밀의 정체

구소련 체제를 빗댄 유머다. 한 청년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는 레닌의 묘지 앞에서 "레닌은 멍청이다!"고 외쳤다. 이 청년은 도합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소란죄 3년, 국가 기밀 누설죄 12년이었다.실제로 소련에서는 1940년대 후반 국가 기밀 누설죄가 시행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수용소에 끌려갔다. 지구의 곡물 생산, 전염병 통계, 공장의 생산품, 민간 비행장의 위치, 도시의 수송로, 수용소 죄수의 이름 등은 국가 기밀에 속했고, 징역 15년형에 처해졌다.한국 기자의 목격담이다. 1989년 2월, 소련의 프라우다 신문은 지면 오른쪽 상단에 깨알 같은 글씨로 '모스크바 영하 15도'라고 적었다. "다른 도시의 일기예보는 왜 없느냐?"고 묻자, 러시아의 국영통신사 직원은 "국가 기밀"이라고 답했다. 일기예보조차 보도 못 하던 소련은 2년 뒤 무너졌다.한국이라고 다를까. 1970, 80년대 툭하면 간첩단 사건이 터졌고, 북괴를 위해 국가 기밀을 수집했다고 발표됐다. 안기부가 적용한 국가 기밀 누설죄는 국민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 신문에 난 것은 당연히 국가 기밀이고 '경부고속도로는 4차선이고, 자장면은 싸고 맛있다'도 국가 기밀이었다. 국민 모두가 걸어 다니는 국가 기밀 덩어리였다.국가 기밀을 앞세우는 나라는 건강하지 못하다. 국민에게 뭔가 감추고 싶어 하면 권력은 병들기 시작했다고 보면 옳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업무추진비' 공방과 관련해 정부여당이 '국가 기밀'을 내세우는 걸 보니 참으로 보기 흉하다. 자신들의 야당 시절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 것 같다.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자카야, 와인바에 갔다고 폭로한 게 무슨 국가 기밀 탈취냐"고 하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청와대 식자재 공급업체, 정상회담 식재료 구입업체 등 국가 운영에 치명타가 될 자료가 많다"고 반격했다. 옛날 군대에서의 농담이 생각난다. "병사 식단 3급, 부사관 식단 2급, 장교 식단은 1급 비밀이다. 적이 바꿔치기해 독극물을 투입할지 모르기 때문."

2018-10-03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욱일기(旭日旗)

나치 독일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는 갈고리를 뜻하는 하켄(Haken)과 십자가를 뜻하는 크로이츠(kreuz)의 합성어이다. 불교를 의미하는 '만'(卍)자를 기울여 놓은 것과 같은 모양이다. 히틀러는 하켄크로이츠를 나치의 당기(黨旗)에 넣어 사용했는데, 그 후 오른팔을 쳐드는 경례법과 함께 나치즘의 대표적 상징물로 활용했다.그러나 하켄크로이츠는 독일의 패전과 함께 사용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다만 일부 백인 인종주의나 극우 세력들이 자신의 이념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부분 변형하여 쓰고 있을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의 상징으로는 하켄크로이츠 외에도 일본 제국주의의 군기였던 욱일기가 있다. 이탈리아의 파시즈와 함께 이른바 전범기(戰犯旗)로 부르는 것이다.이 때문에 이들 전범국의 식민통치나 침략전쟁으로 고통을 겪었던 나라들은 전범기를 보는 것조차 역겨워한다. 그런데 하켄크로이츠 문양은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데 반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했던 욱일기는 현재 일본 자위대의 깃발로 여전히 남아 있다. 욱일기는 일본 국기인 일장기의 태양 문양 주위에 퍼져 나가는 햇살을 형상화한 것이다. 침략과 수탈의 주체였던 일본 군부의 상징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에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대상이다.그런데도 욱일기는 일본 자위대는 물론 침략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극우 세력들이 공공연하게 내세우고 다닌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디다스·나이키·디올·프라다 등 국제적인 스포츠 패션이나 명품 브랜드에서 이를 형상화한 상품을 출시하거나 홍보 영상을 올렸다가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오는 11일 제주 해군기지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해상 사열에 일본 해상자위대가 욱일기를 내걸고 참여할 태세여서 한일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자위대는 "당연한 부대기 게양"이라고 하고, 우리 국내 여론은 "그러려면 오지 말라"는 입장이다. 만약 독일 군함이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달고 이스라엘이 주최하는 국제관함식에 나가려 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2018-10-02 05:0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DMZ 지뢰 제거

2015년 8월 4일 경기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목함지뢰 도발 사건이 일어났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수색 통문 인근에 매설한 목함지뢰를 육군 1사단 수색대원들이 밟아 부사관 2명이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수색팀원 8명 중 두 명이 크게 다쳐 생사를 오가는 순간 팀원들이 부상자 2명을 이송해 동료를 살렸다.'Remember 804'(8월 4일을 기억하라) 행사가 지난 8월 3일 파주 육군 1사단 민통선 지역에서 열렸다. 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 3주년을 기념한 행사였다. 이 자리에는 자유한국당 이종명 국회의원도 참석했다. 경북 청도 출신인 이 의원은 1사단 전진부대 수색대대장이던 2000년 6월 파주 DMZ에서 수색 작전 중 지뢰를 밟은 동료를 구하려다 지뢰 사고로 발목 아랫부분을 잃었다. 그는 "위험하니 들어오지 마라. 나 혼자 기어 나가겠다"며 부하들의 접근을 막고 지뢰 지대 10여m를 포복으로 빠져나왔다.오늘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지뢰 제거 작업이 시작된다. 평양 정상회담에서 서명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의 본격적인 이행의 하나다.국제지뢰금지운동(ICBL) 등에 따르면 DMZ 지뢰는 남북을 합쳐 200만 개나 된다. 이를 모두 제거하는 데 489년이 걸릴 것으로 국방부는 추산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담소를 나누며 걸었던 판문점 도보다리 주변에도 지뢰가 묻혀 있다. 북한군이 주로 쓰는 목재와 플라스틱 등 비금속 대인지뢰는 땅속 5~10㎝만 묻혀 있어도 탐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이종명 의원은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이중적 측면을 지닌 존재라고 규정했다. 민족공동체 형성을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하는 통일의 대상인 동시에 군사적으로 대결 상태에 있는 경계 대상이라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 속도는 시속 1㎞도 안 되는 반면 남북 관계는 시속 100㎞로 질주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DMZ 지뢰 제거 작업과 같은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 행위 중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숙고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2018-10-01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가장 아름다운 편지

'항상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내 편지를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서 말하십시오…하도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1998년 4월, 안동에서 고성 이씨 이응태 무덤에서 편지 한 통이 나왔다. 31세에 죽은 남편 '원이 아바님'을 그리워한 '원이' 엄마가 생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을 섞어 만든 미투리 한 켤레와 함께 남편 관 속에 넣어 부친 절절한 편지다.1586년에 쓴 한 통의 한글 편지는 나라 안팎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함께 살자면서 '밴 자식' 원이마저 두고 홀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저승길을 훌훌 떠났으니 산 사람의 애끊는 마음은 어떠했으랴.400년 전 한 여인의 편지로 뒷사람들은 이승에서의 못다 한 부부 사랑을 안타까워했고, 이는 시와 소설 등 다양한 글감이 됐다. 나라 밖 언론도 남북 강산 남쪽 안동 고을의 애달픈 부부 사랑을 널리 알려 세상 사람 심금을 울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라 부를 만했다.그런데 지금 또 다른 '가장 아름다운 편지'가 화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공개한 북쪽 강산 평양 고을의 '김정은 위원장에게 받은 특별한 편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편지"라며 "한 편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란 격찬도 했다.6월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를 위한 남북 및 한미 정상회담으로 남북 평화 분위기 조성이 한창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 중재 노력과 함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찬사를 하니 평양 편지에 담긴 내용이 자못 궁금하다.평양 편지가 '가장 아름다운 편지'가 되는 길은 하나다. 분명하고 믿을 만한 비핵화 약속과 이행이다. 이는 남북 강산과 세계를 위한 '한 편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되고도 남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평양 편지를 간절히 바라는 까닭이다.

2018-09-29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명절여담(名節餘談)

경북 안동지역의 몰락한 양반가 후손에게 할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왔다. 가난한 살림이라 보리밥 한 종지에 찬물 한 그릇을 올려야 할 형편인데, 차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궁리 끝에 묘수를 찾았다. 헌 달력을 오려서 '현조고학생부군신위'라고 지방(紙榜)을 쓰고는 가슴에 정중하게 붙였다.그러고 나서 안동의 시장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시장통에 즐비한 밥(메)이며 국(갱)이며 각종 육류와 과일까지 할아버지가 두루 드시길 권했다. 한데 그날따라 어물전이 시원찮았다. 내친걸음에 어찌어찌 노잣돈을 변통해서 영덕 강구항으로 나갔다. 멀리서 들어오는 고깃배를 바라보며 할아버지에게 싱싱한 해물을 마음껏 드시라고 축원했다.그런데 항구 가까이 다가선 그 배는 다름 아닌 분뇨수거선이 아닌가. 불효 손자는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가슴에 붙인 지방을 떼서 거꾸로 들고 털면서 "할배요 빨리 토하이소"라며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이 우스갯소리에는 우리의 오랜 제사 문화의 명암이 드리워져 있다.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평민은 부모 제사만 지냈다. 사대부가 조부모까지였고, 3품 이상의 고관대작도 3대 봉사면 족했다. 그런데 조선 중기 이후 너도나도 양반 행세를 하고 가문의 세를 과시하는 데 치중하면서 고조부모까지 제사가 일반화되었다. 상차림도 주자가례나 격몽요결 등 유교의 기본 예법서에 기록된 간소함을 벗어나 허례허식이 늘어났다.추석 명절을 보내면서 이른바 '명절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여전하다. 귀성길 장거리 운전과 차례 음식, 가사노동의 불평등 그리고 젊은이들의 명절청문회 스트레스…. 조상을 기리고 가족의 우애를 다져야 할 명절이 고통과 갈등과 불화의 시공간이 된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진짜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다 해외여행 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차례상 차리며 가족끼리 싸운다"는 사회 일각의 자조적인 풍자도 없지 않다. 그런 만큼 명절 문화의 합리화와 차례상의 실용화를 추구하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문화와 풍속은 시대 변화에 부응하기 마련이다.

2018-09-28 05:0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군축(軍縮)에 이르는 길

'일본 자위대가 독도를 기습 점령하면 한국군이 탈환할 수 있을까?'몇 년마다 한 번씩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며 갑론을박(甲論乙駁)이 치열한 주제다. '일본 자위대쯤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애국적인 네티즌부터 '일본 군사력이 우세하긴 하지만, 붙어봐야 안다'는 신중파까지 다양한 답변이 속출한다. 그렇지만, 길고 긴 논란 끝에 도달하는 결론은 언제나 비슷했다. '한국군은 독도를 탈환할 수 없다.'억울하긴 하지만, 냉엄한 현실이다. 한국의 해·공군력은 일본 자위대를 이길 수준이 아니다. 한국 해군의 전력은 이지스함, 구축함, 잠수함 전력을 보면 일본 해상자위대의 3분의 1 수준이다. 공군력에서는 한국의 최신예 전투기 F15K는 60대 정도지만, 이와 비슷한 기종인 일본의 F15J는 201대다. 한국은 대구공항에서 이륙한 F15K가 독도에서 80분 정도 작전할 수 있지만, 일본은 공중급유기 4대를 이용해 작전 시간을 24시간 이상 늘릴 수 있다. 가능성이 없긴 하지만, 독도에서 일본과 무력 충돌이 생기면 속수무책이다.중국 전투기가 심심찮게 영공 침범을 하는 남쪽의 이어도를 보면 더 황당해진다. F15K가 이어도 상공에서 작전할 수 있는 시간은 64분이다. 작전 특성상 장시간 무력시위를 해야 하지만, 얼마 날지 못하고 서둘러 돌아와야 한다. 공군이 올해와 내년에 공중급유기 4대를 도입할 예정이어서 이런 불리함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됐다.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3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 군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방비를 줄여야 한다' '국방비를 복지에 전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 간에 '무장해제'가 필요하다는 식이다.남북 간 군비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북한에만 초점을 맞춘 무작정의 군축은 위험한 발상이다. 진보그룹은 이웃 나라의 선의를 맹신할지 모르지만, 아베 총리와 시진핑 주석은 그리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일본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야욕에 어떻게 대항할지, 그 고민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헛일이 될지 모른다.

2018-09-27 05:0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양버즘나무

양버즘나무는 1910년 무렵 미국에서 처음 들여와 심은 수종이다. 생육이 빠르고 병충해와 공해에 강해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가로수로 심기 시작했다. 잎이 넓어 여름철 그늘이 좋은 것도 각광받은 이유다.나무껍질이 마치 마른버짐을 연상하게 해 버즘나무라고 했고, 키가 큰 외래종 버즘나무를 양버즘나무라고 불렀다. 바로 플라타너스다. 플라타너스(Platanus) 학명이 '넓다'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티스'(platys)에서 유래한 점도 가로수로서의 운명을 말해준다.1970년대 대구 도심은 플라타너스 천지였다. 경북대병원과 삼덕네거리로 이어지는 동덕로, 시민운동장 주변, 대구역에서 옛 경북도청 구간, 무열대 앞 도로 등은 대표적인 플라타너스 거리였다. 키가 50m를 넘는 플라타너스가 지금도 위용을 뽐낸다. 전국 26만 그루 중 대구에 심은 것만도 3만 그루다.그런데 세월이 플라타너스를 천덕꾸러기로 만들고 있다. 2010년 태풍 곤파스가 닥친 서울·경기지역의 플라타너스 수십 그루가 넘어져 큰 피해를 냈다. 그제 대구에서도 플라타너스가 넘어져 일대 교통이 통제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앞으로도 사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급하다.플라타너스는 수명이 40여 년으로 짧고, 속이 빈 데다 뿌리 내림이 약해 비바람에 잘 쓰러진다. 동대구로의 명물이나 뿌리가 얕아 근심거리가 된 히말라야시다와 비슷하다. 시간의 흐름까지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자연은 또 하나를 일깨운다.현재 전국의 가로수는 150여 종에 모두 680만 그루다. 벚나무(21.5%)와 은행나무(14.8%)가 가장 많다. 느티나무·단풍나무와 더불어 플라타너스(4.2%)도 적지 않다. 지난해 충주시는 플라타너스 때문에 열차 운행이 중단되자 도심 진입 구간의 수령 45년이 넘은 플라타너스 50여 그루를 베어 냈다가 큰 반발을 불렀다. 대구도 이를 교훈 삼아 사고에 대비하면서 조금씩 플라타너스의 퇴장을 준비할 때다.

2018-09-22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70년 세월 흘러도…

"우리는 단군의 후손으로 모두 형제요, 한 핏줄…다시는 서로 헤어지지 말자…남북통일 완수하여…삼천리 강토에서 영원 무진토록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힘을 합쳐서 살아가자…어느 나라도 들어와서…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못할 것이며…간섭받을 이유도 없고 받지도 않을 것이다…남북 동포가…이제는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고…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4천 년을 이어…한 혈족으로…서로 돕고 양보하여 하나로 굳게 뭉치자."6·25전쟁 속 1950년 10월 30일 낮 평양시청 앞, 10만 안팎의 평양 군중과 만난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는 강렬했다. 밀리던 국군과 연합군이 9월 28일 서울 수복 뒤 38선을 넘어 10월 19일 평양을 차지하자 30일 오전 미군 수송기를 타고 여의도 비행장을 떠나 당일 일정으로 평양에 들러 뜨거운 속을 털어놓았다.그리고 68년 지난, 2018년 9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공군1호기로 평양에 들러 다음 날 밤 평양 5·1경기장에 모인 15만 평양 시민들 앞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환영 소개로 등장했다. 예정된 2분을 넘어 7분쯤 절절한 속내로 호소했는데, 도무지 낯설지 않고 전과 맞닿아 있다. 다만 옛날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가 반겼지만."우리는 5천 년을 함께 살고 70여 년을 헤어져 살았다…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남북…끊어진 혈맥을 잇고 공동 번영과 자주 통일의 미래를 앞당기자…백두에서 한라까지…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한다.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남북 강산에 시차(時差)는 없었다. 68년 세월이 흘러도 한민족 혈맥(血脈)에 흐르는 갈망은 마르지 않고 변함도 없다. 나라 밖 사람들이 놀랄 만하다. 뭇 강산과 여러 세대가 변하고 정권과 이념도 세월 따라 부침(浮沈)을 거듭해도 핏속 흐르는 오직 하나의 바라는 바는 그대로다. 누가 이를 막으랴. 남은 일은 분명하다. 저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새길 터이다.

2018-09-21 05:0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들러리' 대기업 총수들

"검토해 보겠습니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대기업 총수들에게 부하 직원들이 한 말이다. 별 의미 없이 한 발언을 북한이 긍정적인 뜻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염려에서 이런 조언을 했다. 북한 거래 기업을 제재하겠다는 미국의 뜻이 확고한 시점에 괜한 발언을 했다가 기업에 불똥이 튈 것을 걱정한 측면도 있다.평양 방문에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등 대기업 총수들과 최고경영자들이 대거 동참했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일을 할 만큼 바쁜 이들이 2박 3일 일정으로 한꺼번에 평양을 찾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수행원 한 명 없이 가방 하나 들고 평양 출장에 나선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하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청와대는 경제인들의 방북은 전적으로 정부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한 반면 북측 인사들은 "우리가 오시라고 했다"며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남과 북에서 엇갈린 얘기가 나온다. 대기업들에 대해 어느 정부보다 강한 전방위 압박이 한창인 상황에서 정부의 방북 동행 요청을 거절할 대기업 총수들이 거의 없었으리란 추론이 가능하다. 북한 요청을 정부가 대행(?)한 것이라면 더 문제다. 한국 경제 기둥인 대기업 총수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북한에 심어줄까 하는 우려에서다.경제인들을 만난 북한 리룡남 내각 부총리는 "북남 사이 경제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신심이 생긴다"며 남북 철도 사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대북 제재가 전혀 풀리지 않은 가운데 철도 등 경협 추진을 사실상 공식화한 셈이다. 글로벌 경영을 하는 대기업 총수들로서는 리 부총리는 물론 같이 앉은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그리고 미국까지 의식해야 하는 그야말로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었지 싶다.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 투자는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다른 국외 방문과 달리 이번 평양 방문에서 대기업 총수들은 들러리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짧지 않은 평양 방문 동안 잘 충전해 경제 현장에서 열심히 뛸 수 있는 활력이라도 얻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2018-09-20 05:0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무식한 좌파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북한의 주장은 유엔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 학계와 정치권의 진보 좌파들이 이에 동조하면서 좌파 진영에서 NLL은 영토선도 아니고 국제법상 '합법적인 해상 군사분계선'도 아니라는 것이 교조(敎條)로 굳어졌다. NLL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6·25전쟁 휴전협정문에 포함된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지만, 확정 후 유엔군 사령부가 북한과 중국 측에 통보했고, 이에 북한과 중국 측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NLL이 북한 측에 매우 유리하게 그어졌기 때문이다. 휴전협정에서 육상에서는 협정 체결 당시의 교전선(交戰線)에 따른 분할의 원리에 따라 '소유한 대로 소유한다'는 원칙이 적용됐지만, 해상에서는 일부는 '소유한 대로 소유'의 원칙이, 또 다른 일부는 북한이 주장한 '전쟁 전 상황'으로 복귀가 적용됐다. 이에 따라 휴전협정 당시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던 38도선 이북인 서해 남포 서쪽의 '초도', 청천강 서쪽의 '대화도', 동해 원산 인근의 '여도' 등은 '전쟁 전 상황으로 복귀'가, 6·25전쟁 이전 대한민국이 통제하고 있었으나 휴전협정 당시 북한이 차지하고 있던 38도선 이남 옹진반도 인근의 기린도, 선위도 등은 '소유한 대로 소유'가 각각 적용돼 모두 북한에 양도됐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결정이 휴전협정 제12조 13항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다.(김명섭 연세대 교수의 논문 '6·25전쟁 휴전체제의 재고찰과 평화체제의 모색') 이는 NLL은 휴전협정에 근거해 설정된 '해상 휴전선'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NLL은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이다. 이른바 국내의 진보 좌파들은 이런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17일 정경두 국방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NLL을 "비정상적 선"이라고 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에게 NLL을 '괴물'이라고 한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무지(無知)의 폭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다. 목소리 높이기 전에 제발 공부 좀 하길.

2018-09-19 05:0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똑똑한 협상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지칭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똑똑함'(smart)이다. 지난 5월 CBS 방송에 출연해 '아주 똑똑한 녀석'이라고 했고,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면전에서 '똑똑한 협상가'라고 치켜세웠다. 7월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김 위원장은 매우 똑똑하고 멋진 인물"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놓고 수도 없이 '똑똑하다'고 평했으니 단순한 '외교적 수사'나 '공치사'는 아닐 것이다. 김 위원장이 올 초 북핵 협상에 나서자마자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마저 그의 '똑똑함'에 휘둘리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과의 협상에 마지못해 응하면서 불쾌감을 참고 있고, 중국은 전례없이 북한과의 신뢰 구축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한국은 이번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올인'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니 대등한 '협상 파트너'가 될 수 없다. 김 위원장의 똑똑함을 뒷받침하는 것은 북한의 뛰어난 외교·교섭 능력이다. 탈북한 태영호 전 공사는 "'벼랑 끝 외교'라는 표현이 상징하듯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한 외교여서 절박하다. 외교 라인이 오래 근무해 전문성을 가진 것도 강점"이라고 했다. 남북 간에는 '형님이 양보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전통이 있긴 하지만, 김 위원장의 협상 능력에 말려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이 여전히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회담 성과를 내기 위해선 어린아이 대하듯 '어르고 달래는' 방법 외에는 없다. 비핵화 협상은 진척되기 어려울 것이 뻔해 국내 여론의 향배가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고록 '운명이다'에서 2007년 남북회담 전후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놨다. "북한이나 미국보다 더 버거운 상대가 국내 여론이었다. 한국의 보수 신문들은 미국 네오콘보다 더 강경했고, 한나라당은 한술 더 떠 대통령을 압박했다"고 했다. 국민 모두 남북 간에 증오와 대결주의를 끝내길 바란다. 그렇더라도, '일방적인 양보'는 곤란하다. 김 위원장의 똑똑함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한다.

2018-09-18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70년 전 그 길

'버들미댁은 정신없이 손을 놀릴 따름이지 속으로는 온갖 슬픈 생각에 뒤흔들렸다.…다시 하늘을 우러러보니 뭉기뭉기 흰구름장 서너너덧이 탐스럽게 떠 있다.'1948년 10월 1일부터 11월 6일까지 매일신문의 전신인 남선경제신문에 19회에 걸쳐 실린 첫 연재소설 '밥'의 시작과 마지막 글이다. 일제강점기 하루하루 끼니조차 잇기 힘든 식민지 백성들의 하늘인 '밥'을 위해 순사 등 일제 '그놈들의 앞잽이 조선놈들' 등쌀에 소작도 떼이고 결국 그들 농간에 만주로 강제로 살 길을 찾아 나라를 떠나야만 하는 '버들미댁' 가족의 슬픈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그런데 수원 출신 작가 박승극(朴勝極)은 연재 당시 남쪽에 없었다. 이미 그해 8월쯤 영천이 고향인 아내, 자녀와 함께 월북한 뒤였다. 그러나 원고는 어김없었고 10월 1일 금요일부터 11월 6일 토요일까지 19차례 연재됐다. 아마도 원고는 자신의 또 다른 소설인 '길'의 주인공이 '해방 전에도 걷고, 해방 후에도 걷는 길'로 직접 또는 인편(人便)으로 마감했거나 우송(郵送)했을 터이다. 1948년 그해는 임시정부 지도자 김구 전 주석도 서울~평양을 자유로이 다닐 때였으니 말이다.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 강산의 두 쪽을 잇는 길 내기 활동이 한창이다. 벌써 4, 5월 두 차례 남북 정상이 뭍길로 만났고, 문 대통령의 평양행(行) 서해 하늘길도 18일 열린다. 이제 뱃길과 철길이 뚫릴 차례다. 북한의 남침용 땅밑 굴길까지 보태면 더없이 좋을, 먼 뒷날의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박 작가처럼 광복 전후 맘대로 드나들던 남북의 길이 하나둘씩 뚫리고 이어지고 볼 일이니 반갑다.마침 지난 14일에는 개성공단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마련돼 24시간 365일 쉼 없이 운영된다니 남다른 감회가 아닐 수 없다. 일제 침략과 외세로 73년이나 잘린 남북 강산의 허리를 하나로 꿰매는 노력의 결과임이 틀림없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제로 넘을 산이 많고 길도 굽이굽이지만 바야흐로 가을, 남북 정상회담의 결실을 기대함이 나만인가.모쪼록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연락사무소 개소로 70년 전처럼 남북을 잇는 길이 많길 빈다.

2018-09-17 05:0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치(治) 서울 아파트값'

이쯤 되면 집을 잘 다스리는 치택(治宅)을 문재인 대통령의 중요 국정 지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옛날에는 치산치수가 통치자가 심혈을 기울인 항목이었지만 요즘엔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이 국정 제1과제로 떠올랐다는 말이다. 대구에서 작은 기업을 하는 50대 후반의 A씨. 20여 년 동안 산업현장에서 땀 흘린 그는 최근 마음이 복잡미묘하다. 2년 전 서울에 사 놓은 아파트값이 5억원 오른 것은 반갑지만 기업인으로서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업을 해 2년 만에 5억원을 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힌 그는 "공장 문을 닫고 서울 아파트를 사야겠다는 기업인들이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고 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3.3㎡에 1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등장했다. 1주일에 1억원씩 오른 아파트들도 수두룩하다. 대다수 국민에게 서울 강남 아파트는 '넘사벽'이 됐다. 공평·공정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이러니하다. 청와대·내각 주요 인사들이 보유한 서울 아파트값이 전년보다 23~48%까지 상승했다. 자유한국당에 따르면 청와대 김현철 경제보좌관의 서울 대치동 아파트는 13억7천만원에서 19억5천만원으로 42% 뛰었다. 홍종학 중소벤처부 장관의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는 18억3천500만원에서 25억원으로 36% 올랐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서울 잠실동 아파트도 20억원에서 24억5천만원으로 23% 상승했다. 고위공직자, 국회의원들이 강남 서초 송파 등 서울 강남 3구 아파트를 애지중지한 까닭을 잘 알 수 있다. 문 정부 들어 여덟 번째 부동산 안정 대책이 발표됐다. 징벌적 세금폭탄에 방점이 찍혔다. 공급 대책이 없어 집값 잡기에 역부족이란 평가도 있지만 서울 아파트값 안정에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문 정부의 지향점인 만큼 비정상인 서울 아파트값을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할 것 아닌가.

2018-09-1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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