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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질문 받지 않는 대통령

"대통령 각하, 귀하는 공산주의자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자본주의자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사회주의자이신가요?" "(도대체 왜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닙니다" "그러면 각하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철학이라? 나는 기독교인이고 민주주의 신봉자입니다. 그게 다요!"루스벨트 대통령과 기자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미국의 대통령 기자회견은 이렇게 '살벌한'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기자들이 질문 대상과 내용에 '성역'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 정부가 기자들을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감시하는 '워치독'(watchdog·감시견)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대변인이었던 아리 플라이셔는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백악관의 일부이며, 불편하고 긴장된 때가 있을지라도 모든 정부는 워치독이 필요하다고 했다.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한 말은 이러한 철학을 잘 보여준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쓴 기사를 즐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이 관계의 특징이죠…여러분은 저한테 곤란한 질문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칭찬이 아니라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에게 비판적 잣대를 들이댈 의무가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를 여기로 보내준 사람들에게 책임을 다하도록 말입니다.'이것이 미국 민주주의가 건강한 이유의 하나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사에 질문 기회를 주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은 미국 민주주의에 큰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2일 뉴질랜드로 가는 전용기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국내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외교 문제만 물으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은 받지 않은 것이다. 케네디부터 오바마까지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던 여기자로 2010년 타계한 헬렌 토머스는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질문을 받지 않는 대통령은?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2018-12-05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한 초부의 구미 사랑

"구미라는 말에는 '붓다' 즉 부처라는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구미 금오산 정상의 모습을 일컫는 '와불상' 또는 '거인상'을 두고 필자가 쓴 '야고부'(11월 5일 자)를 보고, 구미에 사는 이종원(82) 전 구미문화원 이사는 긴 설명과 함께 구미의 지명에 얽힌 흥미로운 내용을 전했다.과거 문화원 일을 보면서 16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모아 2009년 '구미의 지명 유래'라는 44쪽짜리 자료집까지 냈다는 그는 지금의 구미(龜尾)는 1914년 일제강점기 때부터 썼고 그 이전에는 '仇彌'였다고 했다.고려(989년)부터 조선(1896년)까지 뭇 사료에 나오는 구미(仇彌)는 인도 출신 가야 왕후 허황옥이 이 땅에 온 것처럼 불교 역시 북쪽으로 들어오기 전 남쪽에서 먼저 온 만큼 인도 범어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붓다' 즉 부처를 뜻하는 한자인 불(佛)이 없던 터라 구(仇)를 썼을 것이라 추정했다. 옛날 가야와 백제, 신라의 왕과 왕족들에 구(仇)가 여덟 번이나 쓰인 것도 지금처럼 원수의 뜻인 구(仇)와 달리 붓다를 의미한 때문이라 덧붙였다.따라서 과거 저명 사학자처럼 '신라 이두문자로 뜻이 없어 구미(仇彌)를 구미(龜尾)로 바꿨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고, 당시 일본 사전의 원수(仇)란 풀이 탓에 멋대로 거북(龜) 글자로 바꾼 일제의 잘못을 이제라도 제대로 유래를 따져 걸맞은 이름을 찾을 때라 강조했다.스스로 '나무하는 늙은이'라며 '초부'(樵夫)라 밝힌 그는 "옛 구미 이름에 깃든 사연과 금오산 정상의 부처 모습에다 이후 산업화 시절 구미의 역할까지 따지면 구미는 예사 고을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고장에 대한 자부심마저 감추지 않았다.그의 이야기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필 일이다. 그러나 한 초부의 사연을 굳이 꺼낸 까닭은 자신의 고장을 아끼고 역사를 알려는 관심이 놀라워서다. 16년 발품으로 책자까지 낸 초부의 정성과 사랑은 결코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어느 시인의 노래를 빌려 '한 초부가 있어 구미는 다행입니다'라고 하면 지나칠까.

2018-12-0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플라스틱의 역습

인류의 문명이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거쳤다면 현대는 플라스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플라스틱 없는 현대 문명이 존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다. 일상용품이 모두 플라스틱 아닌 것이 없고, 첨단과학 소재 또한 플라스틱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이 쓴 '플라스틱 사회'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플라스틱과 연결되어 있는지 실감 나게 한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란 한국어판 부제 그대로이다.이렇게 우리 현대인들의 삶과 깊게 닿아 있는 플라스틱의 합성과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곳곳에 존재하며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와 일상적 편리를 보장해온 플라스틱 또한 환경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구 쓰고 함부로 버리는 수많은 플라스틱으로 지구의 환경이 오염되고 있는 현실에 이제야 인류가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플라스틱은 자연 상태에서는 저절로 분해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류가 지금까지 생산한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은 어떤 형태로든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땅 밑에 묻혀 있거나 바닷속에 떠다니거나…. 해마다 전 세계의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800만t에 이른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앞바다에서 발견된 죽은 향유고래의 배 속에서 플라스틱 컵 115개와 생수병 4개, 비닐봉지 25개가 나왔고,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잡힌 아귀의 배 속에서 플라스틱 페트병이 나온 게 우연한 일이 아니다.20여 년 전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 연구의 권위자인 테오 콜본 등이 쓴 역작 '도둑맞은 미래'가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경고했을 때도 '설마…'라는 반응도 적잖았다. 플라스틱 또한 환경호르몬처럼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위험이 되었다. 분해되지 않고 잘게 부서진 미세 플라스틱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미 우리의 식탁에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플라스틱과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가 닥쳤다.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지구가 일회성의 낭비적인 플라스틱 문화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2018-11-30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크레디트 사회

'크레디트 카드'로 불리는 플라스틱 화폐가 국내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외환은행이 비자카드를 처음 발급한 때가 1978년이니 꼭 40년이다. 백화점 직원·고객카드까지 쳐도 50년이 채 안 된다. 국내 최초의 신용카드는 1969년 신세계백화점 카드다.크레디트 카드는 현금 대신 신용(Credit)으로 결제하는 수단이다. 쉽게 말해 지불 기한을 정한 외상 거래다. 사용 금액을 한 달 내에 갚아야 하는 '차지'(Charge) 카드도 있으나 대부분의 신용카드는 할부나 리볼빙을 통해 외상 거래를 유지한다. 믿고(entrust) '빚'을 남겨 두는 이런 장점이 크레디트 카드 확산을 부추겼다.미국 최초의 은행계 신용카드인 비자카드 출범이 1958년, 일본 6개 은행이 설립한 저팬크레디트뷰로(JCB) 카드가 1961년이다. 우리보다 신용카드 거래가 더 일찍 시작됐지만 이용률은 한국이 한참 앞선다. 2016년 한국 신용카드 이용률이 54%, 미국 41%, 신용카드 발급이 까다로운 일본은 겨우 17%다.재미있는 통계는 인구 1억2천만 명이 넘는 일본의 국민 1인당 평균 카드 보유 수는 21장이다. 단순 셈으로도 26억 장의 카드가 일본인의 지갑을 채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카드는 상점마다 발행하는 '포인트(마일리지) 카드'다. 현금 선호도가 높은 일본에서 포인트를 고객을 끄는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생긴 현상이다.이 통계는 한국이 신용카드가 지배하는 크레디트 사회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무분별한 발행과 절제되지 않은 사용, 높은 수수료는 사회 문제로 직결된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은 그 사례 중 하나다.정부가 연매출 5억원 초과 30억원 이하 24만 자영업자의 카드수수료 인하를 발표했다. 이로써 중소 규모 가게의 카드 수수료율은 1.6%(신용), 1.3%(체크)로 내려갔다. 따지고 보면 일본의 포인트 할인율은 대략 물건값의 1~2%다. 우리의 카드 수수료율과 큰 차이가 없다. 깎아주느냐, 떼이느냐 차이다. 하지만 포인트카드를 두툼하게 넣어다니는 일본과 달랑 신용카드를 챙기는 한국이 마주하는 사회현상은 다르다. 어느 쪽이 더 크레디트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2018-11-29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공산당이 좋아요"

베트남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은 남베트남 공산주의자 즉 베트콩이 1968년 1월에 개시한 '테트(음력설) 공세'이다.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을 포함해 남베트남 전역의 100여 개 주요 시설과 도시, 촌락이 공격당한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북베트남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미국 여론을 지배하게 됐다.당시 미국 언론은 테트 공세로 미군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이 공세에서 베트콩은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 조직과 무장력은 사실상 소멸됐다. 북베트남군을 지휘한 전쟁 영웅 보 응우옌 지압 장군은 이를 인정했다. 1974년 사이공 함락 당시 북베트남군의 선봉 부대 지휘관으로 남베트남의 마지막 대통령 두옹 반 민에게 항복을 받아낸 부이 틴 대령의 회고에 따르면 보 응우옌 지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테트 공세는 군사적 패배였다. 남쪽의 우리 군사력은 1968년의 전투로 거의 전멸했다."그러나 북베트남은 전쟁에서 이겼다. 그것은 군사적 승리가 아닌 정치적 승리였다. 테트 공세의 목표도 이것이었다. 미국 내 반전 여론 형성을 노린 것이다. "우리의 의도는 전쟁을 계속 수행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꺾는 것이었다…만약에 우리가 군사력에 집중했다면 우리는 아마 두 시간 안에 패배했을 것이다." 보 응우옌 지압의 회고다.미국 여론은 이에 넘어갔다. 심지어 북베트남을 방문해 북베트남과 함께 미국에 대한 투쟁을 벌이겠다고 한 제인 폰다 같은 '개념 연예인'들은 적국의 지도자인 호찌민을 영웅화하기까지 했다. 이러고서야 전쟁에 이길 수는 없다. 미국은 북베트남에 패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적에 패한 것이다.친북 단체의 북한 김정은 방한 환영 운동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이제는 김정은이 "겸손하고 배려심 많고 결단력 있고 배짱 좋고 실력 있는 지도자였다. 나이를 떠나 진정한 위대한 인물"이라는 우상화와 함께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이런 언동이 백주에 벌어지는 것이 우리 사회가 이런 일탈도 소화할 만큼 건강하다는 지표일까 아니면 북베트남에 패배한 미국처럼 내부에서 무너지는 징후일까.

2018-11-28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영혼 없는 아부꾼

'지문 없는 인간'이란 말이 있다. 윗사람에게 손바닥을 워낙 비벼 지문이 없어진 '아부의 대가'를 일컫는 비아냥이다. 아부(阿附)는 남의 비위를 맞추려 알랑거린다는 뜻이다. '아부꾼이 지옥문에 이르면 악마가 문을 걸어 잠근다'는 서양 속담이나 '교언영색'(巧言令色) '구밀복검'(口蜜腹劍)도 아부·아첨을 경계하는 말이다.반대로 아부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언론인 리처드 스텐걸은 '아부의 기술'(참솔 펴냄)에서 "아부는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져 전해왔다"고 했다. '내가 당신을 칭찬하면 당신은 나를 돕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함께 우리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한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갈망과 칭찬받으려는 욕망은 본능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성공하려면 적절한 아부가 필요하다고 했다.사회생활을 하면 '아부는 친구를, 진실은 적을 만든다' '아부는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통설이 옳음을 안다. 문제는 그 정도다. 리처드 스텐걸의 주장처럼 서로 도와주는 '호혜적 이타주의' 수준이라면 사회를 밝고 긍정적으로 만든다. 자신의 출세와 이익만을 목표로 한 '악의적인' 아부가 횡행하면 사회를 분열시키고 망친다.과거 정부 부처의 장(長)이었던 인사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욕먹고 고발까지 당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동상 등도 2, 3년 전만 해도 별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심각한 사회 이슈가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등에서 보듯, 2년 만에 정부 판단이 완전히 달라져 엄청난 혼란을 초래한다.2,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두 같은 공무원·직원인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완전히 판단을 달리한다. 처음 논의될 때는 뭘 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와서 '정의의 심판관'을 자처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정부·세력에 대한 아부 심리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진정으로 진보 가치를 추구하는 이는 소수이고, 상당수는 어중이떠중이 아부꾼이다. '영혼 없는 출세주의자·기회주의자'가 판치는 세상이다. '내 앞에서 아첨하는 자는 내 뒤에서 (정권이 바뀌면) 비방할 것이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2018-11-27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파르시

종교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박해는 죽음과 엑소더스를 낳는다. '파르시'(Parsi)도 그런 예다. 파르시는 넓은 의미로 '페르시아인'을 뜻하지만 7, 8세기 무렵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옛 페르시아(오늘의 이란) 땅에서 중앙아시아나 인도로 피신한 조로아스터 교도를 부르는 명칭이다. 반면 이란에 남은 조로아스터 교도는 '가바르'로 불렸다. 이는 아랍어로 이교도(카피르)를 뜻한다.'마즈다교'로도 불리는 조로아스터교는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으나 기원전 6세기 옛 페르시아의 예언자 자라수슈트라 스피타마가 창시한 고대 종교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적 산문시에 등장하는 '차라투스트라'가 그다. 사산 페르시아 왕조의 국교였고 '조장'(鳥葬)을 치르는 게 종교적 전통이었다.영국 록 밴드 '퀸'(Queen)의 간판스타이자 팝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보컬리스트로 평가받는 프레디 머큐리도 파르시다. 그는 영국 보호령이던 동아프리카 섬, 잔지바르(현 탄자니아) 태생이나 부모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 출신이다. 1964년 잔지바르 혁명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 1971년 '퀸'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름도 프레드릭 머큐리로 바꿨다.머큐리는 전 세계 약 20만 명에 불과한 조로아스터교 신도 중 가장 이름난 인사다. 인도에도 약 7만 명의 파르시가 산다. 특히 인도의 파르시는 최대 경제도시 뭄바이에 가장 많이 거주하는데 인도 국민기업인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도 파르시다. 머큐리의 묘비에 기록된 본명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가 우리에게 낯선 것도 그의 종교와 인도라는 배경 때문이다.파로크 불사라로 태어나 조로아스터교에서 진실을 상징하는 태양과 가장 가까워 '진실의 배달부'로 여기는 '머큐리'(수성)라는 이름으로 1970, 80년대 음악계를 뒤흔든 프레디 머큐리. 24일은 그가 불사라의 이름으로 다시 돌아간 지 27년이 되는 날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등 그가 남긴 숱한 명곡은 계속 우리 귀를 울린다.

2018-11-24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노동조합의 타락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장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조와 조합원에 좋은 것이 반드시 노조원이 아닌 사람들과 사회 전체에 좋은 것은 아니다. 노조가 이렇게 노조와 조합원에게만 좋은 것에 매몰될 때 노조는 반사회적 기득권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다.1980년대 중반까지 영국 국가 경쟁력의 총체적 저하를 가져온 영국 노조의 행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중에서도 인쇄공 조합의 '반사회성'은 특히 두드러졌다. 당시 인쇄공 조합은 식자공(植字工)으로 이뤄진 전국인쇄협회(NGA)와 인쇄 업계의 육체 노동자들로 구성된 '인쇄 및 동업협회 ʼ82' (SOGAT ʼ82)가 있었다.이들 조직은 런던지역에서 까다로운 가입 조건의 클로즈드숍(사용자가 노조 가입자만 고용하는 제도)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는 조합원에 대해서는 엄청난 지배력을, 사용자에 대해서는 막강한 협상력을 인쇄공 노조에 부여했다.이런 힘을 바탕으로 한 인쇄공 노조의 오만은 하늘을 찔렀다. 식자공들이 뉴스 기사와 논평까지 검열했던 것이다. 그들은 동의할 수 없는 문구를 찾으면 바로 삭제해버렸다. 또 툭하면 파업으로 신문 발행을 중단시켰다.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1983년 6월 1일부터 8월 8일까지, '더 타임스'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신문도 같은 해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발행되지 못했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더 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지만 그들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인쇄공 노조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인쇄공 노조는 더 나아가 새로운 일간지 '투데이'의 발간을 저지하려 했고, 인쇄공 노조원을 쓰지 않는 루퍼트 머독의 최신식 인쇄공장의 가동을 막기 위해 공장이 들어선 지역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비노조원에 대한 폭행은 물론 발행자에 대한 살해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고용 세습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민주노총이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노동귀족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고용 세습은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도덕적 타락이다. 그 끝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2018-11-23 06:30:00

[야고부] 보헤미안 랩소디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래저래 화제다. 이번엔 주연 배우 라미 말렉의 인터뷰 사진이 이슈가 됐다. 말렉이 한 주간지와 인터뷰하고 그 주간지를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잡지 표지에 '나는 왜 文정부에 등을 돌렸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진만 보면 말렉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됐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해할 만하다. 영화 배급사가 "배우가 이 문구의 뜻을 알고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다"고 했고, 취재진도 "이전에도 배우와 인터뷰 후 관례적으로 잡지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고 해명해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 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국내에 개봉한 음악 영화 '라라랜드' '비긴어게인' '맘마미아!' 등의 기록을 깨고 가장 빠른 속도로 300만 명을 넘었다. 영화는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던 아웃사이더에서 전설이 된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음악, 삶을 담았다.'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는 1989년까지 우리나라에서 금지곡이었다. 1975년 발표된 이 곡은 사형수에 관한 노래다. 살인을 묘사하는 부분이 가사에 포함돼 있어 금지곡이 됐다. 보헤미아라는 지명이 당시 사회주의 국가인 헝가리·체코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금지곡이 됐다는 웃픈 설(說)도 있다.1970, 80년대 '퀸'은 일류는 아니었다. '레드 제플린'이나 '딥퍼플'보다 아래로 여겨졌다. 하지만 메탈, 록, 팝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그들의 음악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와 무대 매너,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는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장노년층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며 '퀸' 노래를 떼창한다.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도 관람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스포츠에서 우승팀이 결정되면 꼭 나오는 노래 '위 아 더 챔피언'으로 '퀸'을 알고 있다. 영화를 통해 세대 간 소통과 공감을 한다.우리에게도 '퀸'과 같은 존재가 있다. 조용필, 방탄소년단은 세대를 연결하는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하다. 중학생 아들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싶다는데 슬쩍 동행해 영화를 같이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야겠다.

2018-11-2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대기오염의 공포

이상화 시인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며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울분을 토로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미세먼지에 하늘을 빼앗겨 봄을 잃은 지 오래다. 봄뿐만 아니다. 천고마비의 가을이 사라지고 삼한사온의 겨울조차 뒤틀렸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은 옛말이 되었고, 겨울도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로 고통을 겪는 '삼한사미'(三寒四微)로 변했다. 무더운 여름은 오존의 공포가 엄습한다.미세먼지는 이렇게 사시사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동·식물의 생육을 저해하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군림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3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국민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위험 요소는 바로 대기오염이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초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수가 1만 명을 넘었다.오존은 더 위험하다. 장기간 노출되면 기침과 호흡 곤란, 눈의 통증 등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입자 상태이지만 오존은 기체이기 때문에 마스크로도 차단이 어렵다. 그래서 오존 농도가 높은 날은 호흡기 환자나 노약자 및 어린이들에게는 치명적이다.그런데도 우리는 오로지 마스크 하나를 방패막이로 삼아 폐 질환 공포에 떨며 살아간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책이라는 게 대기오염 모니터링 시설 확충이나 신속한 문자 발송 서비스는 외면한 채 마스크 착용과 외부 활동 자제만 외치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만의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과 대처는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일본은 지자체마다 미세먼지와 오존 등 오염물질을 실시간 감시하는 '대기오염 상시 감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를 위한 5~10개의 측정소도 여러 곳에 분산 배치하고 있다. 이렇게 모니터링한 내용을 다양하고 신속한 방식으로 일반 시민은 물론 각 기관단체와 학교 등에 전파한다. 가능한 빠른 대처로 노약자를 비롯한 주민 건강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대만 정부는 연구기관 및 시민들과 함께 미세먼지 측정기 보급 운동을 벌여 도시 곳곳의 대기오염 농도를 실시간 확인하고 있다. 이런 게 선진 행정이다.

2018-11-21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한국당은 마피아"

조직폭력배가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정치인과 조폭의 공통점이란 유머가 있다. 혼자 다니기보다는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조직의 이름은 보스의 이름이나 그가 사는 동네를 따서 만든다, 하는 일은 주로 모여서 같이 밥을 먹는다, 싸움하기를 좋아한다, 자칭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등이다. 유머의 압권은 뒤에 나오는 법. 정치인과 조폭의 마지막 공통점은 온 국민의 지탄 대상이라는 것이다.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위 외부위원으로 활동하다 '잘린' 전원책 변호사가 "자유한국당은 마피아보다 못한 계파 정치, 보스 정치에 빠져 있다"고 일침을 놨다. 한국당의 제일 큰 문제로 계파 정치를 꼽은 그는 "두목들의 정치죠. 마피아와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마피아보다도 못하죠. 마피아는 역사라도 깊지 않습니까"라고 했다.전 변호사가 이탈리아 조폭 마피아로 격조(?) 있게 표현했지만 한국당의 계파 정치는 조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명박·박근혜 두 보스를 중심으로 한 친이·친박 싸움은 드라마 '야인시대'를 방불케 한다. 공천권이란 칼자루를 쥔 계파가 반대파를 날려버리는 행태를 서로 주고받았다. 싸움에서 이기고 난 뒤 전리품은 자기들끼리 나눠 가졌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는 배신과 변절이 난무했다. 당을 뛰쳐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쪽이나 기득권을 지키려 당에 안주한 쪽 모두 진정한 참회가 없다. 보수가 처참하게 궤멸했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그나마 한국당의 마지막 희망은 남아 있는 조강특위 외부위원들이 전 변호사와 생각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이념과 정책으로 싸운 게 아니라 보잘것없는 권력을 향유하기 위해 서로 싸웠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총선 참패, 대통령 탄핵, 보수 궤멸을 불러온 것은 계파 정치, 그로 말미암은 이전투구 탓이다.조폭스러운 것은 한국당은 물론 다른 정당도 매한가지다. 계파 정치가 여전하고 반대파를 난도질하는 것은 한국당과 똑같다. 현대 민주주의, 대중 민주주의에 걸맞은 정당 내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앞으로 미래가 없다는 전 변호사의 진단은 모든 정당이 귀담아들어야 할 탁견(卓見)이다.

2018-11-20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이수역 사건의 '오류'

전통 가업 등 일의 특성이 사람의 행동과 정서에 영향을 미칠까? 사람마다 다른 개성이나 감정 구조로 인해 타인과의 친소 관계가 구별되는 경우는 많지만 일·직업에 따라 행동 양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가 쉽지 않다.미국 시카고대 부스(Booth) 비즈니스 스쿨 연구팀이 복잡한 장소에서 타인과 거리를 두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실험 결과는 인간의 행동과 일·직업의 상관관계를 증명한다. 얼마 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이 보고서에는 전통적으로 밀이나 쌀농사를 짓는 지역 출신의 행동 양식이 서로 다르다는 결과가 제시됐다.중국 상하이와 베이징, 광저우, 홍콩 등 6개 도시의 카페 256곳에서 8천964명을 대상으로 의자에 앉는 패턴을 관찰해 보니 전통적으로 쌀농사가 우세한 중국 남부 사람들과 밀농사를 짓는 북부 도시 출신의 행동 양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북부 출신은 타인과 떨어져 홀로 앉는 경우가 남부 지역 사람보다 5~10% 더 많다는 것이다.복도에 의자를 늘어놓은 뒤 앉게 하는 실험의 결과도 비슷하다. 쌀농사 지역 출신은 94%가 비좁아도 웅크리고 앉았지만 밀농사 지역 출신은 84%만 앉고, 16%는 의자를 옮겨 홀로 앉았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밀농사의 특성상 개인주의가 강해 친화력이 떨어지는 반면 협동이 필요한 쌀농사 지역은 집단주의가 강해 타인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고 분석했다.이 실험은 생태 환경이 행동 패턴이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해준다. 여기에 성별이나 지리적, 문화적 배경 등 여러 조건을 대입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한다.요 며칠 '이수역 주점 폭행 사건'으로 SNS가 들끓었다. 흔한 단순 시비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를 정도로 이슈가 됐고 성(性) 대립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소추'니 '메갈'이니 성차별적 공격으로 양성(兩性)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민감한 성 대립에 초점을 맞추고 흥분한 결과다. 서로 다른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문제다. 편협한 사고나 판단 오류가 잘못된 행동을 낳을 수 있다는 게 '이수역 사건'의 실체가 아닐까 싶다.

2018-11-19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헌병'이 일제 잔재라면

한자 종주국인 중국이 가장 자존심 상해하는 한자 단어는 '중화인민공화국'이란 국호에 들어 있는 '공화국'(共和國)이다. 에도시대 일본 학자들이 네덜란드어 'republik' (republic)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자존심 상하는 것은 이미 주(周)나라 때 '공화'라고 불린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이를 찾아냈고 중국은, 못한 것이다.republic은 '왕이 다스리지 않는 정치 체제'다. 네덜란드 서적을 통해 서구와 처음 만났던 에도시대 일본 학자들은 이 말을 접하고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심했다. 유사 이래 동양에서는 그런 정치 체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고전을 샅샅이 뒤졌고 마침해 주나라 10대 임금 여왕(勵王)이 폭정으로 쫓겨난 뒤 주공(周公)과 소공(召公) 두 사람이 함께(共) 합심해(和)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해서 공화라고 했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사마천의 사기 주본기(周本紀)에 나오는 기록이다.이를 찾아낸 학자가 오스키 반케이(大槻磐溪)이고 공화국을 republik의 번역어로 채택한 학자가 오스키의 제자인 미츠쿠리 쇼고(箕作省吾)로, 1845년 네덜란드 지리학 서적을 번역한 곤여도지(坤輿圖識)에 이 말을 처음 사용했다.서양어 번역에서 우리도 중국 못지않게 자존심이 상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번역 한자어는 대부분 일본이 만든 것이다. '철학' '경제' '민족' '국가' '국민' 등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이런 한자어 중 '일제 잔재'로 분류되는 것은 얼마나 될까? 아니 어떤 것이 일제 잔재인지 아닌지 명확히 구분이나 할 수 있을까?최근 국방부가 '헌병'이란 명칭을 '군사경찰'로 바꾸기로 했다. 일제 잔재라는 이유다. 글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헌병뿐만 아니라 육군·해군·군단·사단·포병·사령관·군복·항공모함 등도 일본이 만든 말이다. 바꾸려면 이것도 모두 바꿔야 하지 않겠나. 아 참! 신토불이(身土不二)도 일본이 만든 말이라고 한다.

2018-11-17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침묵의 어제 하루

조선시대 과거에서의 시험 부정과 비리는 다양했고 심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고 곪았는지 박지원 같은 학자는 과거가 치러지는 시험장을 '열에 아홉은 죽거나 다치는 그 위태로운 장소'라고 불렀다. 시험 부정행위도 '콧속이나 붓 대롱에 미리 준비한 종이 숨기기'에서 '답안지를 땅에 떨어뜨려 보여주기'와 심지어 '대리시험'에 이르기까지 숱했다.과거 시험 당일의 당락으로 평생의 운명이 갈리기에 시험장에서의 부정은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시험 당일 시험장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일은 목숨을 걸 만했다.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좋은 장소 차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던 탓이다. 박지원이 이런 과거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한 까닭이다.세월이 흘러 이런 조선시대 시험 부정 같은 일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더욱 촘촘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시험 부정의 유혹은 피할 수 없는 역사임이 틀림없다. 과거제도와 달리, 오늘날 대학 입학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여기에 맞게 자연스레 새로운 수법들이 생기는 현상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대학 입시를 겨냥한 내신 조작 등이 그렇다.서울 숙명여고에서 터진 시험지 유출 사건은 좋은 사례이다. 쌍둥이 자녀를 위해 학교 교무부장인 아버지는 자녀가 1학년에 다닐 때부터 미리 시험지를 빼냈으니 일찌감치 성적을 관리한 셈이다. 지금 제보되는 학교 현장에서의 다양한 부정행위들 역시 대학 입시에서의 유리한 고지 선점을 위한 일탈이 아닐 수 없다.그렇지만 여전히 이런 일과 전혀 인연이 없는 학생들이 있다. 어제는 바로 이들이 실력을 발휘했던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었다. 이들을 위해 어제 하루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특히 시험장 주변에서는 '침묵의 시간'을 갖는 일이었다. 오후 1시 5분부터 40분까지 35분 동안은 전국에서 항공기 이착륙조차 금지되지 않았던가.어제 시험장으로 향했던 전국의 수험생 여러분, 응원합니다. 수험생 뒷바라지에 지금까지 가슴 졸였던 학부모, 학교 교사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2018-11-16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북한 대변인

유럽에서 반핵 시위가 절정을 이룬 시기는 소련이 서유럽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는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SS-20을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 등에 배치한 데 대응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헬무트 슈미트 서독 총리의 제안에 따라 1979년 이른바 '이중결의'(dual track decision)를 채택한 뒤인 1980년대 초·중반이다.이중결의란 소련과 협상해 SS-20의 철수를 이끌어내되 안되면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퍼싱Ⅱ를 서독에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서독 내 반핵·반전 단체들은 이에 격렬한 시위로 맞섰다. 1981년 6월 20일 함부르크에서 8만여 명이 참가한 시위를 시작으로 1980년대 전반 내내 서독 전역은 반핵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슈미트 총리의 사민당 주요 인사들도 이에 동조했다. 전 총리인 빌리 브란트는 슈미트 정부를 향해 퍼싱Ⅱ를 일방적으로 포기하라고 촉구했고, 브란트의 동방정책 기획자인 에곤 바는 슈미트 총리가 "동독을 협박하는 전쟁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비난했다. 이에 앞서 1980년 12월에는 사민당 의원 150여 명이 '이중결의'가 위험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는 이른바 '빌레펠트 선언'에 서명하기도 했다.그러나 반핵·반전 단체들은 퍼싱Ⅱ 배치 결정의 원인인 SS-20의 서독 배치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그러면서 퍼싱Ⅱ는 소련을 참수하기 위한 선제공격 무기라는 주장만 반복했다. 소련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준 것이다. 이를 두고 만프레드 빌케 전 베를린자유대학 교수는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의 선(先)무장이라는 원인과 미국 미사일 배치라는 결과를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했다"고 비판했다. 반핵·반전 단체들은 동독 공산당과 긴밀히 연계돼 있었던 것이다.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북한이 황해북도 비밀기지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개발 중인 사실과 관련해 북한을 두둔하고 나서 '북한 대변인'이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의 말은 소련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준 1980년대 서독 반핵 단체들의 궤변을 빼다 박았다. 김 대변인은 우리 기업 총수들에 대한 리선권의 '냉면' 막말도 감싸기로 일관했다. 청와대가 언제부터 북한 대변인실이 됐는지 모르겠다.

2018-11-15 05:0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김병준의 꿈

"처음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솜씨가 대단하고 인간관계도 좋지요. 유머 감각까지 갖췄습니다."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김 위원장은 정치인이라면 갖춰야 할 덕목을 두루 겸비한 인물로 보인다. 교수 출신답지 않은 유연함과 폭넓은 안목까지 갖고 있기에 미래가 기대되는 정치인이었다. 경북 고령 출생으로 대구상고영남대를 졸업한 지역 출신에, 고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대단한 것도 강점이었다.그가 지난 7월 한국당 비대위원장에 영입되자, 김병준의 미래를 그리는 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본인이 '대망론'을 입에 담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그의 지인들은 그가 대권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했고, 박근혜 정부 막판에 국무총리로 지명받았으니 꿈꿀 자격은 충분했다.며칠 전만 해도 대권 쟁취는 몰라도, 도전에 나설 가능성은 없지 않았다. 지난달 초 전원책 변호사를 조직강화특별위원에 전격 영입할 때만 해도 호시절이었다. 별다른 역할을 못 한다고 비판받던 와중에 전 변호사 영입을 통해 단번에 여론을 바꿨으니 승부사 기질까지 있는 듯했다.지난 9일 전 변호사를 조강특위 위원에서 해촉하면서 김병준의 이미지도 함께 무너졌다. 한국당의 인적 쇄신이 물 건너간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위기관리 능력은 낙제점을 받았고, 지도력마저 치명상을 입었다. 이런 상태에서 내년 2월 비대위원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 무엇을 할 수 있을까.그가 올 초 인터넷 신문에 34년 전 교수 생활을 시작할 때를 회고하며 쓴 기고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가 생각났다. 현자(賢者) 필론을 태운 배가 큰 폭풍우를 만났다. 모두 우왕좌왕, 아수라장이 되었건만 바닥에 누운 돼지 한 마리는 세상 모른 채 자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필론, 그는 돼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그가 34년 전에는 정권의 폭압에 의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욕심과 실책에 의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2018-11-14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고시원의 명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이곳에서 산다, 한때는 야망을 품고 이곳에 왔고, 한때는 갈 데가 없어 이곳에 왔으나…가족들을 잊기 위해 산다, 가족들을 잊지 못해 산다….'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차창룡 시인은 '고시원에서'란 시(詩)에서 크고 작은 이산의 아픔과 고독의 등짐을 진 채 이웃과 단절된 삶을 이어가는 고시원 사람들을 이렇게 그렸다.고시원은 한때 청운의 꿈을 보듬었던 희망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외된 사람들이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맨몸 하나 겨우 눕히는 최후의 공간이 되었다. 방 한 칸 제대로 구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외로움과 서러움을 삭이는 쓸쓸한 주거용 둥지가 되었다.고시원은 1970, 80년대 고등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생겨났다. 1990년대에는 50개 이상의 독방을 갖춘 대형 고시원까지 성업을 하며 대학 문화의 한 기형(畸形)을 형성했다. 저렴한 방값과 효율적인 학습 환경 때문이었다. 그런 고시원이 다양한 인간 군상의 마지막 보금자리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전남일 가톨릭대 교수는 우리나라 주거 공간의 변화를 서술한 '집'이라는 책에서 한 칸짜리 집의 원형은 구한말 도시 빈민층의 움막집이라고 밝혔다.그것이 일제강점기 주인집 행랑채와 한국전쟁 때의 변두리 판잣집, 1960년대 달동네와 옥탑방, 산업화시대의 반지하 셋방과 쪽방촌으로 나타났다가, 오늘날 고시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빈곤층의 주거 공간에 안전시설이 확충되었을리가 없다. 서울 도심 고시원을 덮친 불길이 또 고단한 목숨들을 앗아간 연유이다. 정부의 대응도 딜레마이다. 규제를 하자니 방값이 오르고, 묵인하려니 사고가 걱정이다.고시원은 화려한 도시의 뒤안길에 드리운 짙은 그늘이다. 밑바닥 삶들이 매일매일 쓰디쓴 시험을 치르는 곳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가 박민규는 단편 '갑을 고시원 체류기'에서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도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절망의 공간을 익명으로 떠돌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비극을 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2018-11-13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듣기 시험이라도

"복지관 선생님 전화가 왔다. '김정○ 어머니세요?' '뭐라고요? 김장했어요.' 내 이름을 묻는 말에 김장했다고 대답했네. 3호선을 타러 올라가는데 '급정거 시 위험하니 손잡이를 잡아주세요' 하는 방송에 '급정거 시'가 '김정○ 씨'인 줄 알고 깜짝 놀라 돌아봤네. '김장'도 '급정거'도 아닌 내 이름은 김정○."대구 수성구청이 달마다 펴내는 소식지 '명품 수성'의 11월 호에 소개된 김 할머니의 글이다. 뒤늦게 배운 글을 바탕으로 지난 10월 9일 열린 '한글사랑 성인문해 한마당'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작품이다. 개성이 듬뿍 담긴 글씨체에다 또박또박 바르게 쓴 글은 읽을수록 가슴에 와닿는다.사람은 나이 먹음으로써 청력도 떨어지는, 어쩔 수 없는 신체의 이 두 현상의 동행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월도 나이도 막을 수 없다. 신체 역시 나이로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다. 제대로 듣지 못해 겪는 실수도 피할 수 없다. 결코 나무랄 일도, 흠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례와는 사뭇 다른 일들이 버젓하다.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고 그 소리를 멋대로 해석해 엉뚱한 짓을 저지르는 청력 상실의 시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논란이 된 경제정책에 대한 청와대 결정이나 사립유치원 비리 이후 유치원 진영의 대응이 그렇다.청와대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듣고 싶은 소리만 지금까지 고르는 듯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뒤늦게 9일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함께 바꾸기로 한 결정은 국민의 소리를 듣는 청력이 그나마 일부 남은 결과이겠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다.비리가 드러난 사립유치원들의 폐원 대응은 제대로 된 유치원 운영을 바라는 정부나 국민의 소리를 듣지 못한 탓이다. 이들은 나이와 상관 없이 청력을 잃은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나랏돈 지원받아 비리없이 제대로 잘 운영되는 유치원, 왜 안 된다는 것일까. 그들에게 듣기 시험이라도 치를 때인가 보다.

2018-11-10 05:0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양심적 병역거부의 비양심

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입은 인적 손실은 엄청났다. 18세에서 27세의 프랑스 남성 4분의 1이 사망했다. 이런 끔찍한 경험 때문에 독일이 전쟁 준비에 들어가고 있음에도 프랑스에서는 '어쨌든 전쟁은 안 된다'는 맹목적 평화주의가 지배했다. 이를 주도한 인물 중 하나가 프랑스 교사 노동조합 지도자 조르주 라피에르였다.그는 1차 대전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당시 교과서를 '호전적 교과서'라고 낙인찍고 퇴출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프랑스에도 그에게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프랑스는 단 6주 만에 나치 독일에 무너졌고, 라피에르는 나치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돼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맹목적 평화주의는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옥스퍼드 대학의 토론클럽인 '옥스퍼드 유니온'이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왕을 위해 싸우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이런 평화주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소설가 H. G. 웰스, 문예비평가 킹슬리 마틴 등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그들의 논리는 어처구니없었다. 영국이 군사력을 줄이면 어떤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다른 나라도 영국과 전쟁을 할 동기를 갖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2차 대전은 이런 순진한 희망을 산산조각 냈다.내가 무기를 내려놓으면 평화를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은 인류 역사가 잘 말해준다.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무기를 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윤리적 무임승차자이다. 전쟁이 없어지지 않는 한(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들의 양심은 그들을 대신해 총을 잡는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양심도 진정으로 '양심적'이지 않은 것 같다.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뒤 인터넷에 '여호와의 증인' 가입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접하면서 옥스퍼드 유니언의 선언에 "참으로 한심하고 치졸하고 수치스러운 고백이며…불온하고 역겨운 시대의 징후"라고 한 처칠의 개탄(慨歎)이 생각난다.

2018-11-09 05:0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재벌과 조폭

'재벌과 조직폭력배가 닮은 점은?'10여 년 전 유행한 유머다. '정치권력과 은밀한 뒷거래를 좋아한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교묘하게 털어간다. 사회에 공헌하는 척한다.' 다른 버전도 있다. '세력 확장을 좋아한다. 돈과 폭력성을 함께 갖고 있다. 당한 손해는 반드시 되갚아준다. 치사한 짓을 예사로 한다.'이제는 재벌의 이미지가 좀 달라졌을까? 올 초 한 인터넷 언론사가 재벌 이미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더니 국민 10명 중 7명이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응답자들은 재벌 이미지로 '정경유착' '부정부패' '노동자 착취' 등을 많이 꼽았다. 한국인이 부정적인 재벌관을 갖게 된 것은 재벌의 자업자득이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횡포는 말할 것도 없고, 대표적인 재벌인 삼성의 행태를 보면 그 후진성에 놀라게 된다.이건희 회장은 2006년과 2008년 '삼성 X파일 사건'과 '삼성 특검' 과정에서 8천억원 사재 출연과 사회공헌을 약속했다.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사재 출연 논란 자체가 어디론가 실종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2년 전 국회 청문회에서 "부친이 사재 출연 방법과 계획을 세우다가 와병에 들었다"고 답했다. 전후 맥락을 볼 때 애초에 약속을 지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옳다.며칠 전 논설위원들이 회의 때 대구 자동차 부품업체의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다가 재벌 이야기로 이어졌다. 누군가 "재벌은 부품업체, 하청업체가 망하든 말든 뜯어먹는 데에만 골몰한다. 여전히 조폭 같다"고 했다. 다른 논설위원이 농담조로 그 말을 받았다. "둘을 비교하는 건 조폭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조폭은 약간의 의리도 남아 있고, 자기 영역을 지킨다."최근 정부와 여당이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가 이익을 나누는 '협력이익 공유제'를 법제화하기로 했다. 대기업에게 이익을 내놓을 것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이를 수긍하는 국민이 많다고 하니 참으로 슬퍼진다. 조폭 취급받는 재벌에게 경제를 떠맡기고 있는 국민이 불쌍해 보인다.

2018-11-08 05:00:00

제21대 국회의원선거
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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