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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적임과 정실

사람을 평가할 때 흔히 다섯 가지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오시'(五視)인데 평소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를 보고,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누구를 천거하는지, 넉넉할 때 어떤 아량을 베푸는지, 곤궁할 때 행동거지가 어떤지, 미천할 때 재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라는 것이다.다섯 가지 중 어느 것이든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바르게 처신하기가 쉽지는 않다. 특히 '인물 천거'는 가장 어려운 일로 꼽힌다. 남을 천거하는 일이 본래 의도와 어긋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중신을 잘 서면 술이 석 잔, 잘못하면 뺨이 석 대'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자기 눈높이에 맞춰 사람을 어설프게 평가하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는 인재라고 천거했다가는 되레 화를 부르는 경우도 많다. 엽관(獵官)이나 정실(情實)에 기운 경우가 대표적이다.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법원장 추천제'에 따라 그제 지역 각급 법원장이 임명됐다. 기수 관례를 벗어난 의외의 결정이라는 목소리도 없지 않으나 피추천인에 대한 주변의 높은 평가에 기초해 내린 판단이라는 여론이 더 우세하다. 소속 법관들이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 사람의 역량과 됨됨이, 소통 능력 등 여러 면을 보고 추천한 결과라는 점도 이번 법원장 인사에 관한 일반인의 이해와 납득을 두텁게 하는 요소다.반면 적임이라며 추천했지만 기대와 어긋나는 '인물 천거' 사례가 최근 잇따라 불거져 논란이다. '목포 게이트'로 물의를 빚은 손혜원 의원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무형문화재위원회 등 문화부 산하 기관에 주변 인사들을 여럿 추천하면서 잡음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보도다.한편에서는 '사람을 추천하는 게 뭐가 잘못됐나'고 반박하지만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능력이나 경험 등에서 적임이 아니라는 주변의 평가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비단 손 의원뿐 아니라 누구든 자기 눈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내가 잘 안다'는 주관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옛 사람들이 '오시'를 품인(品人)의 틀로 삼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2019-01-30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방콕' 대통령?

'국가 지도자에게는 비밀이 없다.'민주주의 국가라면 대통령·총리의 사소한 몸짓조차 국민의 눈을 피할 수 없다. 국가 지도자는 사생활과 일탈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없다. 오죽했으면 미셸 오바마 여사가 백악관을 두고 '최고급 교도소'라고 했을까.미국 대통령의 일정은 매일 오전 9시 백악관 대변인에 의해 사전에 공개된다. '오늘의 대통령 일정'이란 제목으로 시간대별로 상세하다. 이때 대통령이 누구와 만나고, 만나는 사람이 어떤 직함을 갖고 있는지 알려준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휴일에 골프를 치러 갈 때도 동일하다. 2017년 9월 24일 일요일 일정을 보면 '대통령, 오후 3시 트럼프골프장에서 출발. 3시 30분 모리스타운 시립공항 도착, 3시 40분 모리스타운 골프클럽 이동…' 등으로 10분 단위로 공개한다.일본 총리는 미국보다 더 강도 높게 언론의 감시를 받는다. 총리의 일정은 다음 날 조간신문에 분 단위로 상세하게 공개되고, 누구와 만났는지, 어디에서 밥을 먹었는지 국민 누구나 안다. 아베 신조 총리는 하루 두 차례 사무실과 관저를 오가며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라는 즉석 기자회견을 하는 귀찮음을 감수한다. '부라사가리'는 기자들이 관저나 복도에서 요인을 에워싸고 같이 걷거나 말을 건네는 취재 관행을 말한다.일정 공개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일본에 비해 훨씬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일정을 공개하지 않거나 일정 없이 관저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이 탄핵의 뇌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확연히 나아졌을까. 며칠 전 자유한국당이 문 대통령의 일정을 분석해 '방콕' 대통령이라고 공격해 떠들썩하다.한국당의 분석에 과장·중복 사례가 다수 있지만, 완전히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의 '공개 일정'에는 고칠 부분이 많다. 공개 시점이 일주일 단위로 너무 길고, 사후에 공개되고, 비공개 일정이 상당히 많다. 지극히 형식적이어서 옳은 공개라고 하기는 민망하다. 청와대는 '벌컥' 화를 내기보다는 일정 공개를 좀 더 개방적이고 정확하게 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옳지 않을까.

2019-01-2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SKY 욕망 대물림

"웃더라고요. 아들에게 이 나라 헌법이 국민에게 바라는 네 가지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더니 보인 반응입니다."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헌법에서 말한 네 가지 의무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과연 웃을 만도 하다. 나라 지키기(국방), 꼬박꼬박 각종 세금 내기(납세), 자녀 가르치기(교육), 나라에서 혹 시키는 일(근로)의 의무를 잘 따르고 지키는 바가 실제로 쉽지 않은 탓이다.가짜 진단서와 부모 배경, 종교적 양심 등 온갖 구실로 요리조리 빠지는 국방에 응하고, 전문가를 앞세운 절세·탈세 물결 속에도 세금은 떼어먹지 말고, 자녀 대학 졸업까지 드는 4억원(보건복지부)도 대고, 나라의 또 다른 부름에 나서라고 강요(?)했으니 말이다.그러나 아들은 달리 말한 모양이다. "아버지가 계시기에 오늘 제가 있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한 가정을 맡아 이끄는 부모를 떠올리며 버티었고, 제대한 군 복무 외의 일도 잊지 않겠노라 대답했다는 아들의 이야기가 오래 남는다.지금, 이름난 '서울의 세 대학교' 입학을 겨냥해 이 나라의 가진 부모들이 표출하는 욕망과 사연을 다룬, TV 드라마의 극 중 모습이 온통 세간의 관심사다. 고액 과외 등 보통의 부모에겐 나라 밖 일 같은 현상에 정부까지 나서 대책을 세운다고 소란들이니.대구에서도 이런 여파 탓인지 지난 24일, 대구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찾고자 여러 교육인들이 모였다. 이들의 목소리는 "결국 학교에 답이 있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르렀지만 학교가 과연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걱정이다.방송 내용이나 나라 현실은 가진 사람이 더 갖고 누리는 삶이다. 게다가 아이들마저 그런 흐름이지 않은가.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의 3년 조사가 그렇다. '10억원 생기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 가도 괜찮다'는 2012년의 초(12%), 중(28%), 고교생(44%) 응답이 해마다 늘어나 2015년에는 17%, 39%, 56%로 나타났다.서울의 세 대학에 들어가 나오면 더 벌고, 더 갖고, 더 누릴 것이라는 부모의 욕망이 자녀에게 전해진 꼴이다. 아들에게 헌법이 정한 네 가지 할 일을 주문했다는 한 가장이 떠오르는 즈음이다.

2019-01-28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홍역

1960, 70년대만 해도 홍역을 앓다가 속수무책으로 죽는 아이들이 많았다. 홍역을 흉한 귀신의 장난으로 여겼던 어머니들은 장독대 앞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어린것의 쾌유를 빌고 또 빌었다. 옛날에는 홍역이 유행하면 한 집 건너 한 아이는 앓다가 거의 죽다시피 했으니 마을 산 중턱에 아총(兒塚)이 흔했다.마진(痲疹)이라 불렸던 홍역은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이렇게 공포와 외경의 대상이었다. 몹시 곤욕을 치르거나 어려움을 겪었을 때 쓰는 '홍역을 치렀다'는 말이 생긴 연원이다. 홍역에 대한 우리의 첫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이다. 고려 때도 홍역이 널리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시대에는 홍역이 창궐할 때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조선, 홍역을 앓다'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홍역 치료 역사를 다룬 책이다. 전통의학을 통해 홍역과 맞섰던 인물과 그들이 남긴 문헌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마과회통'도 그때 나온 홍역 전문 의서이다. 홍역은 1879년 지석영이 종두 사업을 본격 시행하면서 감소 추세를 보였다. 1962년 홍역 백신을 소개하고 대대적인 예방접종을 실시하면서 홍역은 마침내 공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미국의 경우도 남북전쟁 당시 홍역이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부대 단위가 해체되기도 했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의 첫 남편이 참전하자마자 세상을 떠나는 장면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홍역을 앓는 자녀를 돌보느라 혁명의 성난 물결에 적절한 대응을 못 해서 쫓겨나고 말았다고 한다.꺼진 불도 다시 보라고 했던가. 최근 홍역이 되살아나면서 방역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20, 30대 감염자가 많은 것은 1회 접종에 그친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신고된 후 홍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그야말로 또다시 '홍역'을 치르지 않으려면 개인이건 당국이건 예방에 허점이 없어야 할 것이다.

2019-01-26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서울의 세 모녀(母女)

"내게도 우리 조국 한국이 으뜸이고, 우리 어머니 서중하 여사가 세계에서 으뜸가는 어머니이다…어머니의 사랑은…가실 줄 모르는 사랑, 그것이…어머니의 사랑이다."'바보'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남겼다. 1955년 어머니가 72세로 삶을 마치고 돌아가신 지 30년 즈음인 1984년, 월간지 '샘이깊은물'의 창간호에서 끝없는 자식 사랑을 실천한 어머니를 회상하며 그렸다.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간 형이 다쳐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에 일본말도 못 하면서 주소 하나 달랑 들고 떠나 결국 들것에 눕혀 데려와 온갖 정성으로 완치시켰다. 그런 어머니를 추기경은 "어머니의 의술이 참으로 신기했다"고 기억했다.또 어머니는 다시 중국으로 떠난 형을 찾아 멀리 만주와 하얼빈까지 헤맸다. 끝내 아들을 데려오지 못하고 '소식이 끊긴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눈을 감자 추기경이 "우리 어머니가 눈을 감을 때에 가장 잊지 못한 것이 그 아들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한 까닭이다.어느 어머니인들 다를까. 끝없는 자식 사랑은 '가실 줄 모르고', 죽음 앞에도 '잊지 못한 것'은 아마도 자식이리라. 추기경이 생전 어머니를 그린 심정은 세상 어느 자식이라고 같지 않으랴. 그러나 어머니 부재(不在)의 뼈저린 후회 전에는 어머니의 소중함을 잊는 게 또한 우리 범부(凡夫)이리라.묵은해를 보낸 2019년, 새해부터 가슴 칠 서울의 세 모녀(母女) 사연이 안타깝다. 80대 노모와 함께 반지하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50대 딸의 가난, 넉넉한 살림에도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청부 살해하려던 30대 교사인 딸을 재판에 넘긴 검찰 소식이 그렇다.앞서 유력 인사의 딸과 아들이 자살한 어머니에게 생전에 한 잘못으로 유죄에 사회봉사명령까지 받은 소식도 참담하다. 특히 자녀에 헌신적이었다는 그 어머니가 유서 등을 통해 "자식이 망가지면 안 된다"며, 삶을 놓는 순간까지 자식 걱정한 사연이 가슴 저린다.2월 16일, 선종 10년을 맞는 '바보' 추기경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 글이 더욱 와닿는 날들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한 삶, 한 목숨을 누리건만 연초부터 들리는 서울 모녀 소식이 어찌 이리도 아린가.

2019-01-25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금탄(金炭)

1960, 70년대 겨울철 도시 골목길의 흔한 풍경 중 하나가 새끼줄에 꿴 연탄이다. 퇴근길에 한두 장 사 들고 집으로 향하던 서민의 어깨가 몹시 힘겨워 보였다. 수백 장씩 쟁여둘 형편이 안 돼 낱장 연탄을 사서 끼니도 해결하고 온 식구 언 몸도 녹이던 시절이었다.당시 가정용 연탄의 주종은 22공탄이다. 1965년부터 생산한 22공탄은 6·25 직후 보급된 19공탄과 구분 없이 '구공탄'으로 불렸다. 구공탄은 화력은 약하지만 연소 시간이 더 길어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서민 가정용으로 흔히 쓰였다. 업소나 공장, 부잣집은 화력이 더 센 32공탄, 49공탄을 썼다. 기름보일러나 가스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시절, 서민 일상에서 구공탄은 지울 수 없는 추억의 한 단면이다.서민 연료인 연탄의 지위를 위협한 것은 가스다. 1970년대 정유사들이 LPG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1972년부터 도시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다. 이후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시가스 배관망과 LPG 연료 체계가 갖춰지면서 연탄산업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사용 편의나 공해 등을 감안할 때 가스의 대중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그렇다고 연탄의 명맥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외환 위기 등을 겪으며 도시가스의 혜택에서 소외된 저소득층과 화훼 농가 등 비닐하우스 보온 연료로 다시 각광받았다. 정부의 보조금 지급으로 저렴한 가격 때문에 한때 연탄 소비량이 급격히 늘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3년 새 연탄 가격이 무려 50.8%나 올라 저소득층의 한숨이 깊다는 소식이다. 2016년부터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축소에다 환경 규제 강화로 연탄 가격이 개당 900원을 넘어 '금탄'이 되자 청와대 앞 시위에다 국민청원까지 오르는 상황이다.'사흘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라는 '삼한사미'(三寒四微) 용어가 말해주듯 화석연료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석탄 사용을 줄여나가는 게 맞다. 정부가 저소득층 에너지 복지를 위해 도시가스 확대나 대체 연료 보급 등 정책 보완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화력발전과 연탄과의 절연이 미세먼지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가정용 연료 체제의 완전한 전환은 시급한 과제다.

2019-01-24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토목공사와 대통령병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지난해 봄 어떤 분이 블로그에 고려말 길재의 시조를 올렸다. 서울 청계천을 산책하다가 물소리 들으면서 풍취에 젖어 쓴 글이라고 했다. '생태 하천은 유유히 흐르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감옥에 가고 없다'는 뜻이다.청계천이라면 자연스레 이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이 전 대통령은 청계천 복원 공약을 앞세워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그 업적으로 청와대로 직행했다. 현대건설 회장을 지낸 MB로서는 그리 어려운 공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2003년 7월 시작해 2005년 완공됐는데, 생태 하천 5.8㎞ 공사비로 3천600억원이 들었다. 누군가 계산해보니 1m당 6천만원이 들었다고 하니, 웬만한 지방정부는 감당하기 힘든 '돈질'이었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인공 하천 하나로 대통령 꿈을 이룬 선례 때문인지 후임 서울시장들은 너도나도 토목공사에 열중했다.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서울의 면모를 바꾸겠다며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등의 대단위 프로젝트로 조 단위의 예산을 투자했다. 2011년 시장직을 건 무상급식 찬반 투표에 실패해 사퇴했지만, 재임 5년간 각종 토목공사로 세월을 보냈다.며칠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촛불 혁명의 성지'라는 이유로 광화문광장을 현재보다 3.7배 넓히겠다고 발표했다. 2009년 오세훈 전 시장 이후 10년 만에 광화문광장을 확장하는 공사이고, 예산은 1천40억원이다. 완공 시기가 2021년이라고 하니 2022년 3월에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공사다. 또다시 토목공사를 앞세워 대통령에 도전하는 사례가 될 것 같다.광화문광장에 자리한 서울시 청사에서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대권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하니 그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소통령'이라 불리는 서울시장은 괜찮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마구 파헤치고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예산 부족으로 작은 공사 하나 벌이기 힘든 지방에서 보면 '돈질'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지역민으로선 '이류 국민'의 비애를 곱씹게 하는 뉴스다.

2019-01-2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예천(醴泉) 소회

봉황은 신화,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이다. 봉황은 합성된 단어로 수컷이 봉(鳳), 암컷이 황(凰)이다. 성군이 출현하거나 세상이 태평성대일 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대한민국 대통령 휘장에 봉황이 쓰이고 있다. 한 송이 무궁화와 그 좌우에 한 마리씩 봉황이 장식돼 있다. 우리 대통령들 가운데 성군으로 추앙받거나 태평성대를 열었다는 칭송을 받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봉황 휘장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장자'(莊子) 소요유 편에 따르면 봉황은 벽오동 나무가 아니면 깃들어서 쉬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예천은 중국에서 태평할 때 단물이 솟는 샘을 일컫는다. 경북 예천군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예천군은 소백준령으로 둘러싸여 있고 낙동강과 내성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한 충효의 고장이다.상서로운 봉황이 마신다는 예천에서 지명을 따온 예천군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예천군의원들이 해외 연수 중 가이드 폭행 등 대형 사고를 친 탓이다. 예천군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에 큰 상처가 났다. 다른 지역에서 예천 농산물 불매 운동이 언급되는가 하면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에 차질을 빚는 등 사태가 확산하는 양상이다.외유 추태 문제를 다루기 위한 예천군의회 임시회에서 군민들의 성난 민심이 표출됐다. '예천군의회가 예천을 죽이고 있다' '군의원 전원 사퇴하고 구속 수사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이 난무했다. "너희가 인간이냐" "너희 때문에 예천 농산물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등 격한 항의도 쏟아졌다. 이 와중에 예천군의회가 1인당 100만원가량 항공료를 부풀려 신고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지금껏 예천군의원들은 진정성 있는 반성 대신 변명과 거짓말로 사태를 더 키웠다. 어느 누구 하나 앞장서 사태를 수습하거나 책임지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예천군민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는 지경이다. 의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고장이 더 상처를 입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의원들이 진정으로 참회하고 결단을 내리는 게 예천군의 명예를 지키는 최선의 길이다.

2019-01-22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아마르티아 센은 틀렸다

"민주주의가 없다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상황은 불명확할 것이고 모든 측면에서 충분한 의견을 모을 수 없다. 또 위와 아래 사이에도 의사소통이 있을 수 없다. 최고위의 지도자 조직은 일방적이고 부정확한 자료에 의존해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 결과 주관주의자가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이해의 통합과 행위의 통합을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며, 진정한 중앙집권주의를 성취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대약진운동(1958∼1961)으로 3천만 명이 굶어 죽은 뒤인 1962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 공산당 간부 7천 명을 모아놓고 한 말이다. 대약진운동이 실패했음을 은유적으로 시인한 것으로, 그 원인이 민주주의의 부재에 있음을 중국 민주주의를 말살한 장본인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민주주의의 순기능 중 하나는 정확한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다. 마오의 중국에는 이것이 차단돼 있었다. 작황 부진과 전국적인 참새 잡기에 따른 병충해의 확산으로 식량이 부족해졌지만, 지방 관리들은 문책이 두려워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 결과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기근이 절정에 달했을 때 중국 정부는 실제 보유량보다 1억t 이상의 곡물이 더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인도는 달랐다.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을 때인 1943년 최대 300만 명이 아사(餓死)한 벵골 기근을 비롯해 연이은 기근에 시달렸다. 하지만 1947년 독립 이후에는 기근이 한 번도 없었다. 인도 출신 영국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그 이유로 인도가 채택한 민주주의를 지목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근은 노출될 수밖에 없고, 이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정권을 잃으며, 따라서 민주 정부는 기근 같은 파국을 피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할 강력한 동기를 갖는다는 것이다.소득주도성장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자신감'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소득주도성장으로 그것이 보호하려는 취약 계층이 직격탄을 맞고 있음이 명백한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한다. 적어도 문 대통령에 관한 한 아마르티아 센은 틀렸다.

2019-01-2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두 회고록

대구 출신 언론인으로 박정희 정권의 탄압 때문에 1973년 미국에 망명한 문명자의 회고록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1999년 국내에서 출간한 회고록으로 1986년 2월, 부정선거에 맞서 마르코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필리핀 시민혁명의 현장 기록이다.'값진 물건을 급히 챙겨 탈출하느라 대통령궁은 엉망진창이었다. 한 방에는 알맹이를 미처 꺼내지도 못한 보석 상자가 수북했다. 최고급 향수, 밍크코트가 그득한 옷방과 이멜다의 노래를 녹음한 순금 음반이 나뒹구는 것을 보고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문명자는 1970년대 같은 망명객 신분이던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 부부와 인연을 맺었다. 1983년 위험을 무릅쓰고 귀국한 야당 지도자 아키노가 공항에서 암살되자 부인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 후보로서 시민혁명을 완수했다. 당시 코라손 아키노와 함께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낭궁에 일착으로 들어가 직접 목격한 것을 회고록에 담은 것이다.그런데 이후 반전은 놀랍다. '3천 켤레의 구두를 남기고 하와이로 도망간 이멜다는 당당하게 다시 돌아왔고, 아키노의 딸과 이멜다의 아들이 결혼하면서 사돈이 됐다. 하원의원이 된 이멜다가 의사당을 누비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런 희극이 또 있을까 싶다.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두 차례나 재판 출석을 거부한 그가 단골 골프장에서 종종 목격됐다는 폭로 때문이다. 또 건강 때문에 사람을 못 알아본다는 해명에 체납 지방세 징수팀이 가택수색도 못 하고 발길을 돌린 일이나 "남편은 한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이순자 씨의 발언도 공분을 샀다.'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는 전직 대통령의 '알츠하이머 골프' 논란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다. '알아들어도 2, 3분 지나면 까먹어서 기억을 못하고 이빨도 하루 열 번 넘게 닦는 상태'라는 변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과연 있을까.

2019-01-19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황교안의 도전

검사라고 하면 얼핏 떠오르는 이미지가 냉철, 단호함이다. 범죄자를 조사하고 공소를 유지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차갑고 예리한 인상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검사 대부분이 그런 인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만 해도 냉철함보다는 자부심이 지나쳐 거만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검사라는 특권에 도취한 이들이 많아 권위 의식과 자존심도 대단했다. 요즘은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상당히 퇴색됐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검찰 조직 특유의 보수성과 폐쇄성 때문이다.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고 하니 예전 검사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황 전 총리는 전형적인 공안검사 출신이다. 이 때문인지 그의 인상은 단정·냉정하고 침착해 보인다. 사석에서도 말수가 적고 실수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TV에서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웃지 않으니 아직까지 검사 티를 벗어던지지 못한 듯하다.그의 색깔은 보수 우익이다. 검사 시절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냈고, 법무부 장관 시절 애국심·애국가를 강조한 것을 보면 극우 성향에 가깝다. 초임 검사 시절 야간 신학대학을 다녔을 정도로 열성적인 기독교인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이념과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흥미로운 대목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징집 면제자'라는 점이다. 애국심과 국가 중심의 이념을 가진 정치인이 '담마진'(두드러기 비슷한 피부병)이라는 질병으로 1980년 신체검사를 받고는 바로 민방위대원이 됐다. 그 뒤 자연스럽게 완치됐는지 '담마진'의 재발 소식은 없다.황 전 총리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안부 검사, 박근혜 정권 마지막 총리, 징집 면제자, 기독교인, 보수 우익 등이다. 그가 시대정신, 국민감정과 어울리는 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당은 황 전 총리 입당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제 '비박' '반박'이 아니라 '친황'이 대세라고 하니, 단숨에 '보수의 선두주자'로 부상했음을 알 수 있다. 대권 도전에 나선 황 전 총리가 성공할 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한국당의 개혁은 실패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2019-01-18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국민의 뜻?

좌파에게 민중(또는 대중)의 뜻은 복종해야 마땅한 지고(至高)의 가치다. 이런 가치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루소의 '일반의지'다. 일반의지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한 공동체의 의지를 말한다. 이를 따라야 함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골치 아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무엇을 일반의지로 볼 것인지 판단은 누가 하느냐는 것이다.이에 대한 루소의 대답은 민중이 아니라 '엘리트'였다. 그는 대중을 '어리석고 소심한 병약자'에 빗댔다. 루소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콩도르세도 이와 비슷한 경멸을 드러냈다. 노동계급을 역사 발전의 주체로 규정한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노동자 계급은 혁명적이 아니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했다.이런 생각은 레닌의 '전위(前衛)정당론'에서 더 분명하게 반복된다. 그는 "노동계급 내부에서 진정한 혁명적 계급 의식은 절대로 자동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며 선택받은 소수의 직업 혁명가 집단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사실들이 말해주는 바는 좌파들에게 민중이란 좌파의 비전을 수행할 수 있을 때만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관련 공론조사에서 '원전 축소' 의견이 과반을 겨우 넘긴 53.2%로 나왔는데도 "탈원전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원자력학회 여론조사에서 70%가 찬성하고 서명운동 한 달 만에 24만 명이 동참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는 "에너지 정책의 흐름이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며 거부했다. 문 대통령에게 어느 쪽이 진정한 국민의 뜻일까?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2014년 발언은 그 해답의 실마리가 될 듯하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의 정상적 운영을 거부하며 장외투쟁을 병행하는 데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국회의원이었던 노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 정서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국민 여론을 무조건 따를 필요가 없다. 히틀러를 탄생시킨 것도 독일 국민이고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것도 우리나라 국민이었다. 그들이 옳은 선택을 한 것이냐?"

2019-01-17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쓰레기 대란

과거 농경시대에는 쓰레기가 없었다. 낡은 옷이 해지면 몇 번이고 기워서 입다가 종내에는 걸레로 활용했다. 음식물 찌꺼기는 소죽 끓이는 데 사용했고 어쩌다 나오는 생선 뼈다귀마저 멍멍이들이 처리했다. 뒷간 분뇨나 마구간에서 나오는 소똥 거름마저 발효시켜서 퇴비로 사용했다. 집을 짓는 자재는 물론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 모두가 천연재료였으니 산업폐기물이 생성될 까닭도 없었다.쓰레기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부산물이다. 자본주의적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부추기며 엄청난 쓰레기 발생을 부채질해왔다. 그렇게 자연환경을 무차별로 파괴해온 인류의 횡포가 초래한 업보는 막중하다. 쓰레기 대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촌 곳곳에서 대재앙의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다. 인류 또한 이제야 대자연의 신음을 감지하기 시작했다.매일 100t 안팎의 쓰레기가 발생했던 필리핀 보카라이는 관광지 폐쇄로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면서 하루 관광객 수도 절반 이하로 줄였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은 한 해에 2만 명의 관광객만 받는다. 자국민들의 평온한 삶과 환경보호를 위해서다. 갈라파고스제도에는 자연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해야 들어갈 수 있다.세계의 여러 나라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쓰레기 감소와 처리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자 동남아가 밀려드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 환경부가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불법 수출된 쓰레기를 국내로 다시 가져와 처리하는 한편 히말라야 산악 지역의 폐기물 관리 용역사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쓰레기 불법 수출국의 오명을 쓰레기 처리 선진국의 이미지로 상쇄하려는 모양이다.경북 의성에서 7만t이 넘는 쓰레기 더미에 한 달 이상 화재가 계속되고 있어 주민들이 매연과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내부에서 폭발하는 불길을 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 가늠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무분별하게 양산한 쓰레기의 반격과 자연의 분노가 이제 우리 주변까지 다가온 느낌이다.

2019-01-16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나비를 부르지 못할망정

"여보, 우리 집 마당에 나비를 불러들이겠소!" "아니, 당신이 무슨 요술쟁이요. 글쎄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2016년 가을, 칠곡 왜관의 정재우 한의사는 아내에게 약속했다. 농약 사용과 환경 변화로 농촌의 나비와 곤충도 사라지는 판인데, 느닷없이 자기 집 마당에 나비를 불러들이겠다는 남편의 생뚱맞은 약속과 장담에 아내의 미덥지 못한 반응은 마땅히 그럴 만했다.그리고 2017년 여름에 이어 2018년 같은 즈음, 그의 마당에는 '꼬리명주나비' 무리들이 훨훨 날아다니는 동화가 이어졌다. 남편은 약속을 지켰고, 아내에게 한 장담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보기 드문 꼬리명주나비는 그렇게 칠곡의 매원마을 손님이 되었다.사실 정재우 한의사는 꼼꼼했다. 무엇보다 귀한 존재의 나비를 모시는(?) 준비부터 철저했다. 꼬리명주나비가 먹이로 하는 식물 즉 식초(食草) 공부에 나섰다. 이어 오랜 발품 끝에 군위 부계 한밤마을 울타리 여기저기에서 자라던 '쥐방울덩굴'이 그 식초임을 알고 구해 집 담장에 심었다.그의 정성에 쥐방울덩굴은 담장 아래 움을 텄고 어느 순간, 잎에는 무슨 알들로 소복했다. 곧 애벌레가 되더니 마침내 검은 갈색 무늬에 노란띠를 두른 꼬리명주나비들이 마당과 담장을 넘나들며 춤쳤다. 1년 넘는 그의 간절한 나비 초청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그의 논리는 분명했다. 먼저 나비를 부를 터부터 닦고 나비가 머물 뭇 조건을 갖추는 일이었다. 그랬더니 쥐방울덩굴은 특유의 내뿜는 냄새로 나비를 불렀고, 어디선가 찾아온 나비는 여러 판단 끝에 알을 낳고 애벌레는 식초로 배를 불리며 새 삶터로 삼은 셈이다.아내와 한 약속을 지키고 자신이 뿌리내린 삶터까지 가꾸고자 하는 그의 행동을 떠올린 것은 최근 대구은행장 사태가 생각나서다. DGB금융지주 회장과 대구은행장의 분리에 대한 대구시민과의 약속조차 하루아침에 팽개치고 되레 지역사회에 갈등만 일으키는,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두 인물의 행태가 그렇다. 대구은행을 찾는 나비를 길러도 아쉬울 터인데 그러기는커녕 내쫓을 그런 모습이 그저 씁쓸할 뿐이다.

2019-01-15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왕(王)실장'의 귀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만큼 극심한 영욕을 맛본 인물도 드물다. 1972년 검사 시절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이후 승승장구해 검찰총장·법무부장관, 3선 국회의원 등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것으로 마무리했으면 '대단한 인물'로 기억될 텐데, 2013년 박근혜 정부 제2대 비서실장에 취임한 것은 최악의 한 수였다. 만 74세로 역대 최고령 비서실장이었던 만큼 세간에는 '노욕'(老慾)으로 비쳤지만, 본인은 '마지막 봉사'라고 주장했다.그의 별명은 '왕실장' '기춘대원군'이었다. 박 전 대통령과의 친분과 충성심, 인맥 등을 활용해 당정청(黨政靑)을 한손에 장악한, 명실상부한 '정권 2인자'였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보좌를 제대로 못 한 '실세 비서실장'의 책임은 엄중했다. 그는 1년 8개월의 마지막 공직 생활로 인해 80세 노구를 이끌고 감옥에 드나드는 신세가 됐으니 '인생무상' '권력무상'을 절절히 곱씹을 만했다.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비서실장의 권력이 막강하고 중요하다. 모든 국정 현안이 비서실장에게 집중되고 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통치 철학, 정권의 국정 방향까지 좌우할 수 있는 자리가 비서실장이다.미국은 1938년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비서실의 행동 규범을 제한하는 규범을 만들었다. 브라운로우(Brownlow)위원회가 만든 '백악관 운영 규범'에는 비서실장에 대해 '전면에 나서지 말 것' '명령이나 결정을 내리지 말 것' '공적인 발언을 삼갈 것'이라고 규정했다.〈문재철의 책 '권력'〉 한국과는 달리, 비서실장을 놓고 '왕실장'이니 '실세 실장'이니 하면서 비꼴 수 없는 구조다.8일 노영민 주중대사가 비서실장에 임명되자, 일부 언론은 그를 '실세 왕실장'이라고 지칭했다. '왕실장'이라는 말에 '실세'가 덧붙을 정도이니 엄청난 파워를 가진 비서실장임이 분명하다. '친문' 핵심인 데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기춘대원군'에 전혀 꿀리지 않는 위상이다. '실세 왕실장'이 문 대통령을 어떻게 보좌할지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2019-01-14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뒷날의 조짐은?

'1호선 1단계로 경북기계공고~대구역 9㎞…착공을 하였는데…노태우 대통령을 모시고 1호선 기공식을 개최하였다…사고를 예상했는지는 몰라도…당일…한 업체에서 피우는 연막이 터지지 않았다.'1991년 12월 7일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경북기계공고 운동장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지하철 1호선 기공식이 열렸다. 당시 공구가 5개로 분할됐는데 연막점화 행사 때 공교롭게도 1곳의 연막이 불발(不發)이었다.이날 불상사(?)가 뒷날 불행의 조짐은 결코 아니겠지만 현장을 지켜본 누군가는 1995년 4월 28일 터진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참사의 전조쯤으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앞에 소개한 퇴직 대구시 공직자의 기록을 보면 그렇다.이날 기공식 연막 불발의 기억처럼, 대구지하철은 조해녕 전 대구시장에게도 악몽이었다. 1995년 상인동 참사 당시, 시장 퇴임 후 시장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고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때는 현직 시장이었던 악연 탓이다.그러나 조 전 시장은 이런 기억하기 싫은 아픔에도 퇴임 이후 대구에 남았다. 퇴임 뒤 대구를 떠나거나 조용한 새 삶을 누리는 안일(安逸)과 달리 대구의 공동체를 위해 궂은일도 맡는 그런 기여의 모습이었다.그런데 최근 그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 휩싸였다. 바로 대구은행장 인사를 둘러싼 그의 부정적 소문과 역할이다. 풍부한 경험에 균형 감각을 갖춘 그답지 않게 특정 인연에 치우쳤다는 소식으로 안타깝게 하고 있다.게다가 그가 당초 DG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으로서, 지주 회장과 대구은행장의 분리 입장을 바꿔 지주 회장의 은행장 겸직을 말하니 소문은 악화되는 꼴이다. 비록 은행 개혁의 뜻이겠지만 특정 인맥 편향 시각은 더욱 퍼질 뿐이다.앞으로 조 의장의 대구은행 활동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일로 옛날을 한번 되돌아보면 어떨까 싶다. 이번 일이 자칫 또 다른 악몽의 어떤 조짐은 아닐지 말이다.

2019-01-1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문지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과 관리의 폭정을 규명한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문졸(門卒)이란 잡역에 종사하던 하급 군관으로 관청의 아전과 하인 중에서도 가장 교화에 따르지 않는 자이다'(門卒者 古之所謂皁隷也 於官屬之中 最不率敎)라고 했다. 그런데도 혼권(閽權), 장권(杖權), 옥권(獄權), 저권(邸權), 포권(捕權)을 틀어쥐고 행패가 극심했다는 것이다.관문 통제에서부터 곤장의 경중과 죄인 관리, 세금 수령, 도둑 체포 등의 권한을 가진 문지기의 적폐를 수령된 자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으니 백성들의 고초가 오죽했을까. 2019년 새해 벽두에 '문지기'라는 말이 새삼 회자하고 있는 것은 '왕실장의 귀환'이란 형용사를 달고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노영민 전 주중대사의 권력 심층부 입성 때문이다.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 선 노 실장은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저는 사실 부족한 사람"이라며 "어떤 주제든, 누구든, 어떤 정책이든 가리지 않고 경청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 "실장이 됐든, 수석이 됐든 비서일 뿐"이라며 "그것을 항상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단은 백범 김구 선생의 문지기론을 방불케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학생운동권 출신의 정치인인 그에게 '문지기'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2012년 대선 패배 후 '문지기'(문재인을 지키는 사람들)라는 친문 모임을 만들어 그 좌장을 맡으면서다. 그는 2017년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의 중앙선대본부 공동 조직본부장을 맡았던 '원조 친문'이다. 대통령이 중요 정치 현안을 상의했던 가장 신임하는 인물이 궐문을 장악했으니 또 한 사람의 '왕실장'이 등장한 셈이다.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를 선거 전에 걸러내는 정당의 문지기(gate keeper) 기능이 약해질 때 위험한 권력자가 나온다"고 경고했다. 반대로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의 문지기 힘이 강해질 때 정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전 우리는 박근혜 정권의 왕실장과 문고리 3인방의 득세와 몰락을 적나라하게 지켜봤다.

2019-01-1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대통령의 책임회피

1917년 혁명 후 소련의 경제 혼란은 극심했다. 계급 청소로 기존 '부르주아 전문가'들이 쫓겨나면서 어중이떠중이들이 국영기업과 공장 관리자가 됐다. 생산량이 줄고 비용은 증가하는 등 경영이 극도의 비효율로 치닫는 것은 당연했다. 그 결과 사회주의에 대한 인민들의 불신은 커져만 갔다.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스탈린이 꺼내 든 카드는 배신자들의 '사보타주'나 '손괴행위'였다. 소련의 붕괴를 바라는 내부 배신자들이 고의로 작업을 지연시키거나 산업시설을 파괴하는 방법으로 소련 경제를 마비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만이 정책 실패를 은폐하면서 경제 혼란의 원인을 꾸며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이런 시나리오에 따른 첫 공개재판이 1928년 '샤흐티 재판'이다. 1937~1938년 사이 3차례에 걸친 본격적인 숙청 재판에 앞서 열렸다고 해서 역사가들은 '예열(豫熱) 재판'이라고도 하는데 캅카스 북부 탄광 도시 샤흐티가 그 무대다. 당시 샤흐티 탄광에는 수십 명의 국내외 기술자들이 일하고 있었는데 석탄 생산량이 줄자 소련은 53명의 기술자를 기소해 5명을 총살하고 44명은 감옥으로 보냈다. 죄목은 기술자들이 혁명 이전의 광산 소유주들과 공모해 소련 경제의 사보타주를 기도했다는 것이었다.이로부터 2년 뒤에 열린 '산업당 재판'(Industrial Party)도 똑같은 시나리오에 의한 희생양 만들기다. 소련 검찰이 제기한 혐의는 소련 내에 당원이 2천 명에 이르는 '산업당'이란 지하 정당이 존재하며, 이들은 프랑스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아 파리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반소 러시아인들과 함께 소련을 무너뜨리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당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문재인 대통령이 8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강조했다. 경제정책의 성과가 나왔는데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 지난해 말의 '언론 탓'의 연장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성과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성과 자체가 없다. 그 이유는 잘못된 정책이지 언론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가짜뉴스' 프레임은 정책 실패를 은폐하기 위한 저급한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2019-01-10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개 발에 편자

1991년 1월, 3주가량 유럽의 지방자치 현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우리 지방자치 시대 개막을 앞두고 선진국 지방자치 실태 취재가 목적이었다. 1960년 12월, 3차 지방선거를 끝으로 맥이 끊긴 한국의 지방자치제가 31년 만에 지방선거(1991년 3월 26일 기초의원 선거) 실시로 부활을 앞두면서 국민들 관심과 우려가 자연스레 지방자치에 쏠린 때였다.당시 유럽 출장에서 받은 가장 강한 인상은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 각국의 지방자치 역사나 전통, 시스템이 아니었다. 바로 주민 대표이자 지방의회를 지탱해나가는 의원들이었다. 그들은 정치에 인이 박이고 정당 색이 강한, 특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낮에는 생업을 꾸리고, 저녁에 시간을 쪼개 의회에 나와 지역 현안을 토론하고 처리한 보통사람들이었다.그들에게 수천만원의 의정비나 수당은 꿈에도 없는 일이었다. 고작 메모지와 필기구, 홍보 스티커가 보상의 전부였다. 지역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이 때로는 심야까지 의회 불을 밝혔고, 우리 동네를 바꿔나간다는 사명감이 건너뛴 저녁 식탁의 메뉴가 됐다. 그들은 약사나 제빵사, 편의점주, 대학생까지 거리에서 늘 마주치는 장삼이사였다. 유럽 지방자치의 힘은 이들의 상식과 교양, 이성과 합리가 작용하고 굳어진 결과다.지난 연말 미국·캐나다로 연수차 외유에 나선 예천군의회 사태가 뒤늦게 이슈가 되면서 연일 활자와 전파가 달아올랐다. 국민 혈세로 외유에 나선 것도 뒤가 켕기는 일인데 연일 술판을 벌이고 접대부 수소문에다 급기야 가이드 폭행 등 만행까지 벌였다니 이들의 추태에 국민 뒷목이 뻣뻣할 지경이다.이런 분노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 옮겨붙었다. '지방의원 해외연수 금지' '기초의원제 폐지' 등 관련 청원만 여러 건이다. 몇몇 몰지각한 의원들 탓에 전체 지방의원이 앉아서 욕을 먹는 꼴이다. 그렇지만 예천군의원들이 보여준 수준이 바로 한국 지방자치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미꾸라지가 흐린 물'에 혀를 차고 끝낼 문제는 아니다. 지금 지방의원 수준으로는 한국의 지방자치는 '개 발에 편자'다. 곪아 터지기 전에 서둘러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2019-01-09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청와대 권력

헬기를 타고 가던 사단장이 아래를 내려보다 거수경례를 하는 병사를 봤다. 사단장 왈(曰). "충성심이 남다른 저 병사에게 포상 휴가를 줘라." 뜻밖의 휴가를 얻은 그 병사, 사실은 헬기 소리에 하늘을 올려보다 눈이 부셔서 눈썹 위에 손을 올린 것뿐이었다.정권이 바뀌었어도 '청와대 권력'이 세긴 센 모양이다. 2017년 9월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이 토요일 국방부 근처 카페에서 육군참모총장을 만났다. 육군 인사 선발 절차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다며 행정관이 육참총장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실무자급에 확인할 수 있는데도 나이가 30대 중반인 행정관이 예순을 바라보는 육군 최고 책임자를 불러낸 것이다. 청와대 권력을 보여주는 만남이다.만나게 된 과정도 문제이거니와 성격과 내용, 끝맺음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장성급 인사 절차가 진행되는 시기에 육참총장이 청와대 행정관과 사전에 만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두 사람은 인사 자료를 가지고 장성 진급 인사 범위와 대상에 대해 논의했다. 만남에 동행한 다른 청와대 행정관은 장군 진급 심사 대상자였고 같은 해 연말 진급했다. 육참총장을 불러내 만난 그 행정관은 만남 후 군 인사 파일을 분실해 의원면직됐다.청와대 해명은 더 가관이다. 행정관이 의욕적으로 일을 하는 과정에서 군 인사 전반에 대한 파악이 필요해 육참총장에게 의견을 청취한 것이라고 했다. 4급 행정관이든 인사수석이든 똑같이 대통령 지침을 받아 수행하는 비서라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장성 진급 대상자에 대한 검증은 해당 행정관의 고유 업무가 아니었다. 청와대 인사 검증은 인사수석실이 아닌 민정수석실에서 담당한다.특감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적자 국채 발행 압박 의혹 등 청와대 권력의 어두운 면들이 속속 노출되고 있다. 청와대의 권력 독점 현상을 지적한 정치학자 박상훈은 저서 '청와대 정부'에서 청와대가 내각을 수직적으로 지휘하는 정부 운영 방식은 비(非)민주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 때가 보수판 청와대 정부라면 지금은 진보판 청와대 정부라고 규정했다. 인적 쇄신을 통해 청와대가 얼마나 달라질지 두고 볼 일이다.

2019-01-08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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