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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황교안의 답'은?

DJ(김대중)와 YS (김영삼)를 국민 누구나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DJ는 죽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했고, 두 번이나 사형선고를 받았다. YS는 여당을 박차고 나와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고, 23일간의 단식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이들이라고 약점과 치부가 없겠는가. 이들이 현대 정치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것은 자기희생과 헌신의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이들은 한국 정치에 이러한 대통령의 자격 준거를 유산으로 남겼다. 대통령이 되려면 인물·치적도 중요하지만, 자기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함을 국민에게 알게 모르게 심어줬다. 대통령의 자격 준거를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 1위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들이대면 흥미로울 것 같다.황 대표는 반듯하고 부티 나는 느낌을 주지만, 어릴 때 무척 가난했다고 한다.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 '황교안의 답'에는 '월남한 고물상의 막내아들이다. 유년시절 도시락을 제대로 챙겨가지 못해 담임 선생님과 나눠 먹어야 했고, 산에서 나물을 직접 따와 식구들의 반찬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 책에는 보수에 대한 가치를 언급한 대목이 여럿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바른 가치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 등이 있으며 이러한 바른 가치를 지키려는 것이 바로 참된 보수다.' 황 대표의 출신, 표방하는 가치관만 보면 어느 정도 합격점이다.그러나 황 대표의 약점은 상당히 많다. 첫 번째는 희귀 피부병의 일종인 '만성 담마진'으로 인한 병역면제다. 두 번째는 법무부 장관 취임 전 변호사로 17개월간 15억6천만원의 수임료를 번 점이다. 세 번째는 음습하고 이념 편향적 분위기를 풍기는 '공안통'이라는 점이다. '실패한 정권의 총리'라든가 '특정 종교 편향' 논란은 의견이 갈리기 때문에 논외로 치자.황 대표의 삶에서 자기희생과 헌신의 미덕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재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는 이유는 보수 세력의 결집 덕분이다. 중도 세력의 외연을 확장하지 않고는, 대선은 꿈꾸기 어렵다. 황 대표의 정치 생명은 앞으로 얼마나 자기희생과 헌신의 자세를 보여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지 않겠는가.

2019-03-0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미피(未避)

어김없이 절기는 경칩(驚蟄·6일)이지만 정작 천지를 놀라게 한 것은 화사한 봄기운이 아니라 불청객 미세먼지다. 초미세먼지 공습으로 전국이 일주일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처지다. 올 들어 초미세먼지 '나쁨' 일수를 꼽으면 대구는 25일, 경북은 22일을 기록할 만큼 먼지 끼는 날이 일상이 됐다.한 주 전만해도 미세먼지 때문에 백두대간 너머 영동지방으로 피신한다고 해서 '피미'(避微)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런데 더 이상 피미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5일 제주까지 첫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상황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피미는 가짜 뉴스, '미피'(未避)가 팩트인 것이다.한반도를 뒤덮은 '먼지 돔'의 원인은 다양하다. 석탄화력발전에다 2천만 대가 넘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와 난방, 산업체 배출가스 등이 진원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책이라곤 긴급재난 문자 발송이 고작이다. 근본 해결책 마련 없이 중국 탓하며 '중국 프레임'에 기대는 사이 일회성 이벤트에 수백억원의 예산(서울시 사례)을 쏟아붓는 일이 다반사다.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했다. 문제를 풀려면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수다. 무리한 탈원전과 값싼 석탄화력발전 확대, 경유 차량 급증 등 정책 역행에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책을 찾는 게 순서다.미세먼지 상황이 우리보다 훨씬 나은 일본 사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일단 중국과 멀리 떨어진 지형적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크게 달라진 일본 국민의 환경 의식이 희비를 갈랐다. 전 세계적인 디젤 붐으로 경유차 비중이 조금 오르기도 했지만 가솔린·경차를 선호하는 일본 시장 구조는 우리와 판이하다. 2018년 기준 이륜차를 뺀 전체 자동차 보유 대수 약 7천800만 대 중 경유차 비중이 6%도 안 된다는 통계의 의미는 크다.반면 우리는 공공기관 주차장 폐쇄나 차량 2부제, 노후 경유차 운행 금지, 인공 강우 등 대증요법이 전부다. 구조 전환이라는 공식 없이는 미세먼지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말로는 '재난'이라면서 비와 바람만 쳐다보는 천수답 방식이라면 '365일 초미세먼지 나쁨'도 머지않았다.

2019-03-0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소망적 사고

1941년 6월 22일 터진 독소전(獨蘇戰)에서 소련은 초반에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히틀러의 침공을 강력히 암시하는 정보가 넘쳐났음에도 스탈린이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스탈린의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가 낳은 오판이 자리 잡고 있다. 스탈린은 자본주의 국가는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신봉해 히틀러가 영국을 격파하기 전까지는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스탈린이 1939년 체결된 독소 무역협정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독일의 침공 직전까지 식량, 연료, 목재, 광물 등 전쟁 물자를 독일로 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을 도와 영국과 끝까지 싸우도록 하고, 독일과 영국 모두 기진맥진해지면 힘들이지 않고 세계혁명을 완수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영국 침공이 좌절되자 총부리를 소련으로 돌렸다.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을 기획한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도 소망적 사고의 포로였다. 물론 야마모토는 일관되게 미국과 전쟁에 반대했다. 미국 유학과 주미 일본대사관의 해군 무관 근무 경험으로 미국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전(開戰)이 결정되자 신념을 버리고 전쟁 수행으로 방향을 튼다.그의 전쟁 구상은 철저히 자기본위적이었다. 진주만 기습으로 미 태평양 함대의 전투력을 일정 기간 마비시킨 다음 미국이 기력을 되찾기 전에 강화협상으로 전쟁을 종결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으니 오판도 이런 오판이 없었다.이런 패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다시 본다. 문 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된 남북 협력사업을 속도감 있게 준비하라"고 했다. 지난달 '하노이 핵 담판'에서 재확인됐듯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전혀 없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고민하지 않고 또다시 남북 경협 타령만 한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이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은 근거 없는 소망적 사고임이 이미 판명났다. 이젠 이런 미몽(迷夢)에서 깰 때도 됐다.

2019-03-06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우리말과 글의 현주소

연초에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일제와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말과 글이 금지된 시대였지만, 조선어학회가 온 마음으로 우리말을 모아 말모이(사전)까지 만들어 낸 것은 국어학자로서 당연한 민족사적 책무였다고 치자. 과학계에서도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조선박물연구회 사람들이었다. 일제의 우리말 탄압으로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옥고를 치를 당시에 이들은 우리 땅에서 새로 발견한 동식물에 우리말을 붙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괴불주머니' '애기똥풀' '바람꽃' '등칡' 등의 이름이 그렇게 태어났다. 일본식 이름 '야인과'(野人瓜)를 '멀꿀'로, 중국식 한자명인 '전추라'(剪秋羅)를 '동자꽃'으로 바꾼 것도 이들이다. '각시멧노랑나비' '떠들썩팔랑나비'라는 이름도 이때 생겼다.본지 2월 16일 자 '주말 돋보기' 코너에서는 '동성로 점령한 일어 간판'이란 내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대구 중심가의 음식점 간판과 요리 명칭에 일본식 외래어가 범람하고 있어 우리 언어를 잠식하고 우리 언어 습관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어디 일본어뿐인가.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계열까지 국적 불명의 외래어가 횡행하는 이 땅의 '짬뽕 언어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즘 같은 국제화시대에 상당수 외래어가 혼용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라고 하자. 그런데 억지로 서양식 상호를 붙여야 글로벌 기업이 되고, 따라 읽기조차 어려운 외래어를 달아야 아파트가 팔리는 세태가 되었다. 구태여 서양말을 써야 품격 있는 지식인 대접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방송과 언론조차 그것을 자성하고 개선하기는커녕 되레 혼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말과 글에는 우리의 얼과 넋이 배어 있다. 선인들이 혼신으로 지키고 살려온 말과 글을 잘 가꾸고 다듬어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런데 온갖 외래어에 오염되어 표류하고 있는 우리말과 글의 혼탁하고 혼란한 현주소를 방관하고 조장하면서 3·1운동 정신을 운운할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2019-03-05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협상의 기술

'인간은 하루에 수십, 수백 번 협상한다.'혹자들은 '내가 무슨 협상을?'이라고 의문을 갖겠지만, 협상 전문가들은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즐겨 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협상을 벌이는 존재라고 한다. 지금 밥을 먹을지, 공부를 계속할지 결정하는 자체가 작은 범주의 협상이다. 인간관계도 끝없는 협상의 연속이다. 인간관계는 적게 주고 많이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협상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성공하려면 협상을 배워라'는 말이 나온 모양이다.서점에는 협상과 관련한 자기계발서가 넘쳐나지만, 요즘 가장 화제가 되는 책은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1987년)이다. 도널드 트럼프·토니 슈워츠가 함께 쓴 이 책은 비즈니스 관련 서적으로 역대 5위 안에 드는 베스트셀러다. 당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었고, 한창 사업 재미에 빠져 있던 때여서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상대방이 협상을 주도하려 할 때는 끌려다니지 말고 판세를 뒤집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와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회담 결렬을 선언한 것과 관계있는 대목이다. 결렬 직후,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측이 침통한 분위기를 보이는 것을 보면 협상의 키는 트럼프가 잡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을 옆에 앉혀 놓고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교를 했다. "당신들은 거래를 모른다. 100% 확실해 보이던 거래가 깨지고,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거래가 성사되기도 한다. 나는 숱한 거래를 성사시켰다. 나는 그 누구보다 거래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전문가임을 자임하고 있고, 자신감도 넘친다. 그가 향후 북한과 어떻게 협상할지 예측할 수 없지만, '거래의 기술'을 한껏 발휘할 공산이 크다. 목적을 위해 판을 깰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미래가 미국 대통령의 협상력에 달려 있으니 약소국의 비애인지, 북한의 자업자득인지 판단하기도 어려운 국면이다.

2019-03-04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노동가동연한

흔히 사람 얼굴과 성격, 입맛은 시간에 따라 바뀐다고 말한다. 세월의 무게 탓에 이마에는 주름살이 생기고,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조금씩 무뎌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결같던 입맛도 시간 앞에서는 그 일관성을 장담하기 힘들다.'꼴'이라 부르는 인상의 변화도 극적이다. 정약용은 '상론'(相論)에서 상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는데 '공부하는 이는 그 상이 어여쁘다. 장사치는 상이 시커멓다. 목동은 상이 지저분하다. 노름꾼은 상이 사납고 약삭빠르다'고 했다. 즉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라 노는 대로 생긴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느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상이 달라진다는 뜻이다.신체 능력도 마찬가지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하고 몸을 단련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체력이 낫다. 또 위생에 각별히 신경 쓰고 적정 수준의 영양을 섭취하는 것도 신체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 생활 수준의 향상이 신체 능력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대법원이 최근 육체노동이 가능한 최고 연령을 뜻하는 '가동연한'을 현행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올렸다. 1989년 60세 판결 이후 30년 만에 기준을 5년 상향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개개인의 신체 능력도 개선됐다는 의미다.돌이켜보면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념은 1956년 이전은 고작 50세, 1989년 이전은 55세였다. 60여 년 만에 15년 늘어난 것은 큰 변화다. 문제는 그 후속 조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손해배상액 산정이나 보험 등은 그렇다 쳐도 연금 지급 시기나 정년 연장, 노인 연령 기준 등 난제가 수두룩하다.가장 큰 변수는 저출산고령화다. 한국 사회 좌표와 꼴이 달라지는데 관련 기준은 꼼짝하지 않는다면 불일치의 문제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성급하게 결정할 일은 아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부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20년, 30년 뒤를 보고 미리 준비하는 게 혼선을 줄이는 방법이다.

2019-03-02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비즈니스맨' 트럼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베트남에서 큰 선물을 챙겼다. 비즈니스맨 출신 대통령답게 23조원에 달하는 번외(番外) 성과를 거뒀다.트럼프는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미국을 연내 국빈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베트남으로부터 받은 선물에 대한 답례였다. 베트남 항공사 비엣젯은 미국 보잉사로부터 항공기 100대를 사들이는 127억달러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다른 항공사 뱀부에어웨이스도 30억달러의 항공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두 정상은 계약 체결식에 직접 참석했다. 비엣젯은 미국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과도 53억달러 계약을 맺었다. 양국이 서명한 무역 거래가 210억달러(약 23조5천억원)를 넘는다.베트남에서 트럼프가 챙긴 선물은 더 있다.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의 회담에서 트럼프는 "베트남이 (미국의) 군사 장비(구입)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고 했다. 베트남으로부터 미국 농산품에 대한 무역장벽을 제거한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트럼프가 "우리는 친구"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베트남에서 많은 선물을 얻어냈다.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조차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한 게 트럼프다. 그는 "우리는 한국을 방어하고 엄청난 양의 돈을 잃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연간 50억달러(약 5조6천억원)의 비용을 들이고 있지만 한국은 5억달러만 (미국에) 지불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측 지출분을 부풀리는 꼼수까지 썼다는 비판까지 나왔다.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협상에서도 트럼프는 비즈니스맨을 방불케 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을 여러 차례 부각하며 비핵화 합의를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전술을 들고나왔다. "북한이 비핵화한다면 매우 빠른 속도로 베트남처럼 번영하게 될 것"이라는 식이었다.트럼프의 비즈니스맨식 협상법이 김정은에게 제대로 먹혀들지 않아 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을 수 있다. 아니면 이리저리 주판알을 튕겨본 사업가 트럼프가 합의를 거부했을 가능성도 있다. 베트남에서 트럼프만 선물을 잔뜩 챙겼을 뿐 한반도는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2019-03-0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고령 운전

운전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노익장 영감님이 승용차를 몰고 나갔다. 한사코 만류하는 할머니의 손길도 뿌리친 채 기어이 차를 몰고 장거리 운행에 나선 것이다. 한참 뒤에 집에서 TV를 보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서 영감님께 전화를 했다. '고속도로에 역주행하는 차량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뉴스 속보가 계속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할머니는 "고속도로에 역주행하는 차량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런데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영감님의 신바람 난 목소리에 할머니는 기절할 뻔했다. 영감님의 말인즉 "알고 있어! 안 그래도 지금 나 빼고 전부가 역주행이야…"라는 것이었다. 노인 운전과 관련된 우스갯소리이다. 그런데 최근 90대 운전자의 차량에 행인이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문제가 새삼 도마 위에 올랐다.지난 24일 밤에는 고속도로에서 70대 운전자가 시속 30㎞로 운전을 하다가 뒤따라오던 차가 추돌하면서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60, 70대 운전자들이 늘어나면서 노인 사고 비율과 사망자 수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다 보니 고령 운전 제한론과 기본권 침해 주장이 동시에 제기되기도 했다.운전을 잘하는 노인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고령이면 사물 인지능력은 물론 돌발 상황에 대한 반응 속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고령 운전자를 위한 교통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는 노인도 적지 않다. 자발적인 운전 졸업자에게는 일정 기간 교통비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탤런트 양택조(79) 씨는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면서 도로교통공단의 '어르신 교통사고 예방 홍보대사'에 위촉되기도 했다.가장 현실적인 정책은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면허증 갱신과 적성검사 주기를 단축하고 인지능력 진단과 안전운전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고령 운전은 본인은 물론 주변 차량과 사람들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초고령화사회로의 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교통안전과 행복추구권이란 상반된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사회적인 합의와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2019-02-2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당(黨)과 파(派), 또

'이놈아! 너는 한국 북부 사람이 아니다. 너는 한국 남부 사람이 아니다. 너는 한국인이다. 알아듣겠느냐! 우리가 분열되었기 때문에 일본이 우리를 정복했다. 최가 북부 출신이라서 네가 그를 증오한다면, 네가 남부 출신이라서 최가 너를 증오한다면, 우리 한국인에게 희망은 없다. 우리는 항상 남의 나라 노예가 될 것이다.'독립운동가 현 순의 아들 준섭이 1919년 3·1운동 뒤 상해에 머물며 한국인 자녀를 위한 인성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상해 아이들의 '망국노야!'란 놀림 속에 다닌 학교의 북부(평양) 출신 최 학생과 싸우다 들켜 통곡하며 회초리를 든 선생의 절절한 하소연이다.현준섭은 책상 위에 쓰러져 흐느껴 울던 선생님이 가르쳐 준 교훈을 언제나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한국 독립운동에 관한 기억을 모아 '만세'란 책을 남기며 후손들이 아픈 옛 식민지 과거 역사를 잊지 말기를 바랐다.독립운동가 서영해도 이런 하소연을 했다. 3·1운동 뒤 상해로, 다시 프랑스로 무대를 옮겨 임시정부를 대신해 힘들고 외롭지만 미국의 이승만과 쌍벽일 만큼 독보적인 외교 독립운동을 편 그가 1940년 3월 1일 쓴 심정이 그렇다.'나라를 잃고 왜놈의 총칼 밑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가 30년이 되었다…통일 덕으로 강적을 대할 줄 몰랐던 우리는 3·1운동 이후…당파 싸움으로 원통한 실패를 얼마나 거듭하였더냐!…무슨 당, 무슨 파하고 아직도 당파 싸움을 하고 있는 분이 있으니 참 한심하다…제발 당파 싸움을 고치자!'일본은 한국을 '영원히, 완전하게' 지배하려 한국을 열등하고 미개한 나라로 낮췄다. 일부러 '당파'의 나라로 한·일 두 나라 사람에 최면을 걸었다. 하지만 앞의 글을 보면 실제 못난 당파도 더러는 있었던 모양이다. 시대 사정으로 어쩔 수 없었을 수도 있다.세월이 흐른 지금은 과연 어떤가.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이 끊어지고, 남쪽은 동서로, 보수와 진보로, 또 대구경북과 그 밖으로 나뉜 꼴이다. 이제 나라도 있으니 당과 파로 맘껏 흩어지고 갈려 찢어져 싸워도 좋을 때인 모양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눈앞이다.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2019-02-2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GIGO

컴퓨터 공학계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용어 중 'GIGO'라는 게 있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것으로, 잘못된 데이터를 입력하면 데이터도 아닌 쓰레기가 나온다는 뜻이다. 2016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공개한 채팅 로봇 테이(Tay)는 좋은 사례다. 테이는 지대한 관심과 기대 속에 출시됐으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조작' '히틀러는 잘못이 없다' '페미니스트는 지옥에서 불타 죽어야 한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이에 MS는 사과와 함께 출시 16시간 만에 테이를 회수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일부 트위터 이용자가 테이와 대화에서 그런 악성 발언을 집중 학습시킨 것이다.이런 일이 기계인 AI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국가 운영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면 재앙이다. 1970년 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의 '사이버-신'(Cyber-Syn) 프로젝트의 실패가 바로 그랬다. 사이버-신은 '버로스 3500'이라는 슈퍼컴퓨터로 국가 경제를 관리하는 극단적 계획경제 프로젝트로, 전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그 방식은 현장 관리자가 매일 아침 생산량과 부족분 등 각종 정보를 중앙에 보고하고 중앙은 이를 버로스 3500에 입력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다음 다시 현장에 내려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입력 데이터는 말 그대로 '쓰레기'였다. 현장 관리자가 보고하고 싶은 것만 보고하고 감추고 싶은 정보는 숨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버로스 3500이 출력하는 데이터 역시 쓰레기일 수밖에 없었고 '사이버-신'의 실패는 당연했다.환경부 4대강 평가위가 금강·영산강의 세종·공주·죽산보(洑) 해체를 결정하면서 해체 때의 이익 지표는 부풀리고 보를 유지할 경우 생기는 경제적 효과는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으며 보 철거 시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도 감안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를 해체해 4대강 사업 이전 상태로 돌리면 보마다 국민 편익이 100억~1천억원까지 생긴다는 결론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만하다. 역시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는 법이다.

2019-02-26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유교 탈레반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위트니스'(1985년)가 지난 주말, TV로 재방영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미국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경찰 내부 비리를 다룬 작품이다. 40대 초반인 포드의 산뜻한 외모와 연기가 눈에 띄었으나 더 관심을 끈 것은 영화 무대가 된 아미시(Amish) 공동체다.아미시는 유럽의 보수적인 개신교 소수파로 탄압을 피해 1720년 무렵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의 신앙 공동체다. 스위스 종교 지도자인 야콥 암만(Jacob Ammann)의 이름에서 유래해 '아미시'로 불린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등에 몰려 있는데 현재 신도 수는 약 40만 명으로 추산한다.이들은 신앙에 기초한 독특한 생활 방식으로 유명하다. 펜실베이니아 독일어로 불리는 독일어 방언을 사용하고, 자동차 대신 마차(Buggy)를 끌며 전기와 전화, 컴퓨터 등 현대 문명을 거부한다. 단색 위주의 의복을 입는데 심지어 단추도 전혀 쓰지 않는다. 이는 변화하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이처럼 스스로 외부 세계와 벽을 쌓고 농축산업의 소박한 삶을 사는 아미시들은 서로 돕는 공동체 삶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는다. 특히 아미시 공동체에는 범죄와 약물알코올 중독, 이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교리와 신앙적 가치를 중시하는 아미시 관습 때문이다. 영화에 관광객들이 아미시를 조롱하며 도발해도 화를 내거나 정면 대응하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최근 정부가 인터넷 불법 성인물을 규제한다며 'https 차단정책'을 발표하자 젊은 층의 반발이 거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반대를 표시한 이가 25만 명을 넘어섰는가 하면 이런 일방적인 규제를 두고 '유교 탈레반'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다.범죄를 억제하고 예방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현대사회에서 소통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하나의 틀을 고집하며 보수적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무리다. 모든 사람이 아미시와 같은 삶과 신앙, 관습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개인의 자유와 금기, 불법에 대한 보다 깊은 논의와 합리적인 의견 접근이 필요한 때다.

2019-02-25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마이 맥이기'는커녕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2002년 대통령선거 때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내세운 구호다. 서민들의 마음을 파고든 이 구호 덕분에 권 후보는 95만여 표를 얻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이장(里長)의 명대사 "뭘 좀 마이 맥여야지"에서 보듯 먹고사는 문제는 모든 것에 앞선다.1분위(하위 20%) 가구의 2018년 4분기 월평균 소득이 123만8천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7.7% 하락했다.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가장 크게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층 소득을 높여 분배를 개선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목표와 달리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졌다.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저소득층 일자리 감소, 자영업 경영 악화를 불러온 탓이다.소득주도성장 주창자였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재산이 1년 6개월 만에 10억9천만원 증가한 104억원에 달했다. 장 전 실장은 재산이 늘어난 이유로 본인 및 배우자의 급여투자 수익 증가, 토지·건물 가격 상승 등이라고 밝혔다. 장 전 실장처럼 소득 최상위 계층인 5분위 가구는 월평균 소득이 10.4% 증가했다. 불평등을 해소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라 하지 않을 수 없다.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그것을 기반으로 2022년 대선에서 재집권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는 100년을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 20년50년 집권론을 넘어 100년 집권론을 들고나왔다. 비핵화가 빠진 남북한 화해 이벤트, 세금을 동원한 '표퓰리즘' 정책 이 두 가지로 집권 세력은 100년 집권을 노리고 있다.'마이 맥이기'는커녕 서민 살림살이를 파탄으로 몰아넣고 100년 집권을 들먹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서민들의 삶이 고단해진 데 대해 반성하고, 잘못된 정책을 뜯어고치는 게 순리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이 내세운 선거 구호를 집권 세력은 염두에 두기 바란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2019-02-23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어느 정월 대보름

정월 대보름. 보름의 으뜸으로, 한가위 대보름과 쌍벽이다. 특히 어릴 적 언 손을 불며 들판에서 뛰놀며 하던 쥐불놀이와 멀리서 봤던 달집태우기 연기와 불꽃은 정월 대보름에 절로 떠오르는 정경이다. 손꼽아 기다려 소원을 빌거나, 기리는 이들도 많은 정겨운 날이다.경북 군위군 효령면 고곡리 월리봉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사람들도 그들이다. 이곳의 천제는 1876년 할아버지(이규용) 때부터 손자(이세우)까지 3대(代)를 이어 군위 마을지(誌)에 오를 만큼 소문이 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19일 정월 대보름,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 물론 대구향교도 이날 대보름 기원제로 대구 발전과 시민의 안녕, 풍요를 바랐다.그런데 대구에는 이와 좀 다른 일이 있다. 대구의 향토 역사 특히 대구의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마음속 정월 대보름이 그렇다. 이들에게 이날은 다른 기억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밤 깊도록 눈이 펑펑 내리던 1915년 정월 대보름, 대구 앞산(대덕산) 안일암에서 몰래 이뤄진 비밀결사 결성을 기리는 일이다.바로 조선국권회복단이다. 일제 감시를 피하느라 시(詩) 짓는 모임, 시회를 가장해 한 해 첫 보름날 안일암에서 대구의 윤상태(회복단 통령) 등 전국 여러 지사(志士)들이 만든 단체다. 이 모임은 6개월 뒤 7월 보름, 달성공원에서 박상진 단원과 우재룡 등 독립투사들의 빛나는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 탄생의 연결 고리가 됐다.필자도 지난해 광복회 대구지부의 '대구독립운동사' 발간 작업에 낀 덕에 이런 안일암과 달성공원 사연을 알았다. 이를 인연 삼아 눈이 올 정월 대보름을 손꼽으며 옛 지사들이 걸었을, 알 수 없는 숲길도 답사했다. 그러나 정성이 모자란 탓인지 예보와 달리 눈 대신 비로 안일암 결사의 흔적을 더듬는 옛길 걷기는 미뤄야만 했다.올해는 안일암 결사가 일제의 촘촘한 감시망과 밀고(密告) 그물에 걸려 1919년 3월 만세운동 뒤 들켜 조직이 무너진 지 100년이다. 눈 내리는 정월 대보름 안일암 결사 길을 걷지 못한 일이 그래서 더욱 아쉽다. 내년 정월 대보름, 눈을 바라고 싶지만 이는 하늘의 일이라 그저 속으로 빌 뿐이다.

2019-02-2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노익장(老益壯)

평생 책이나 들여다보고 낚시질만 하다가 아내까지 가출한 강태공이 주(周)나라 무왕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고 제(齊)나라의 시조가 된 것은 칠십이 넘어서였다. 중국 역사상 노익장의 원조 격이다. '노익장'(老益壯)이란 고사성어의 유래는 후한(後漢) 광무제 때 대장군 마원(馬援)의 얘기에서 비롯되었다. 마원은 원래 죄수를 압송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한번은 불쌍한 죄수들을 모두 풀어주고 북방으로 달아났다.후일 광무제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 마원은 62세에 군대를 이끌고 반란군 진압과 흉노 토벌로 큰 공을 세웠다. 그가 평소에 한 말이 '대장부는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고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窮當益堅 老當益壯)'는 것이었다.전국시대 조나라의 백전노장 염파와 삼국지에 등장하는 촉나라 장군 황충 또한 중국 역사상 대표적인 노익장으로 꼽힌다.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고구려 제20대 장수왕도 위대한 노익장이다. 80년에 이르는 재위 기간 동안 한반도 안의 주권국가로서는 최대 판도의 강역(疆域)을 이루고 98세에 눈을 감았다. 일본 전국시대의 마지막 패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노익장의 칭호가 결코 부끄럽지 않다. 오사카성을 함락시키고 도요토미 집안을 완전히 멸망시킨 후 에도막부를 열었을 때는 칠십이 넘었다.서양 역사의 노익장으로는 60대의 늦은 나이에 베네치아의 도제(최고 지도자)가 된 엔리코 단돌로를 꼽기도 한다. 베네치아 역사상 가장 놀라운 인물로 평가되는 그는 80이 넘은 나이에 십자군을 이끌고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최근 미국에서는 여성 노익장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66세의 베테랑 PD인 수잔 지린스키가 주요 방송국인 CBS의 새 회장에 취임한다. 78세의 여성인 낸시 펠로시 의원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선 하원의장에 선출됐고, 71세의 여배우 글렌 클로즈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을 차지했다. 생선가게와 순댓국집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김칠두라는 63세의 남성이 시니어 모델로 데뷔하며 40년 전 청년 시절의 꿈을 이루는 것을 보며,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을 더욱 실감한다.

2019-02-2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빚은 갚아야 하는 것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대부분의 언어에서 채무에 해당하는 단어는 모두 '종교적 죄'(sin) 또는 '범죄'(guilt)와 동의어이다. 그리고 이는 화폐라는 단어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한 예로 화폐의 독일어 단어 켈트(Gelt)는 '앙갚음'이라는 뜻의 페르겔퉁(Vergeltung)에서 기원하는데 이 말은 '빚(score) 청산'과 '보복'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score는 본래 즉시 갚지 못한 것을 수량으로 바꾸어 나무 등에 칼로 베어낸 자국을 뜻하는데 여기서 '외상 빚'이라는 뜻과 '원한' '복수'라는 뜻을 함께 갖게 됐다고 한다.채무와 범죄, 화폐라는 말의 연관성은 일본어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일본 경제학자 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 1874-1930)에 따르면 일본에서 지불(支拂)이라는 개념은 고대 일본의 신도(神道) 제사 때 '죄 씻김'(하라이, 払い)이라는 정화 의식에 기원한다. 당시 신도에서 사회적 책무의 많은 것이 '불결함'(게가레, 穢れ)으로 간주됐고, 이를 '하라이' 하는 것이 개개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는 행위였다는 것이다.('돈의 본성', 제프리 잉햄)모든 종교가 그렇듯 정화 의식에는 공물(貢物)을 바쳐야 한다. 죄를 씻으려면 공물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규칙은 살인 등의 사회적 범죄에도 적용되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신 가치 있는 물건이나 화폐를 '지불'하는 것으로 속죄와 보상이 이뤄졌다는 것이 화폐역사학자들의 분석이다. '불결한 것을 털어낸다'고 할 때의 '하라이'와 '지불한다'는 뜻의 '하라이'가 어원상 동일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이런 사실이 던지는 메시지는 채무는 곧 범죄이고, 범죄(종교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는 반드시 씻어야 하며, 그래야 채무자는 종교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라고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문재인 정부가 취약 계층이 아닌 일반인도 금융권 채무 원금의 최대 70%를 감면해주겠다고 발표했다. '빚은 갚아야 한다'는 자기 책임의 원칙을 허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빚을 갚고 있는 채무자들만 바보로 만드는 꼴이다.

2019-02-20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민자 공항의 허구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가덕도 신공항 신설 시사' 발언을 한 이후 온통 시끄럽다. 2016년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난 사안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 '선물'을 주고 싶겠지만, 정부 신뢰성이나 정치 도리 측면에서는 잘못된 행태다.부산은 가덕도 신공항을 짓기 위해 온갖 수단을 마다하지 않는다. 2015년 5개 시도지사 합의안은 물론이고, 2016년 정부의 '김해공항 확장' 결론을 뒤집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압권이 '가덕도 신공항을 민간투자 방식으로 건설하겠다'는 주장이다. 부산시 주장대로 국내에서 전례가 없는 민간투자 공항이 가능할 것인가?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국제 여객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민간 자본으로 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외국에서는 도심과 멀리 떨어진 소규모 공항이나 노후 공항을 리모델링하는 경우 민간 자본으로 건설하는 사례가 있기는 하다. 다만, 부산시가 목표로 하는 '관문공항' 경우에는 영리 위주 운영의 위험성 때문에 민간투자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일본 나고야의 주부(中部)공항은 국비 확보에 실패해 민자가 투자금의 50% 정도 들어가긴 했지만, 나머지는 인근 지방자치단체 등의 출연금이다.흥미로운 것은 외국계 기업이 투자를 하더라도 '민간투자법'에 따라 정부와 부산시가 투자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잘못될 경우 그 손실분을 세금으로 메워줘야 함은 물론이다. 가덕도 신공항 투자비용이 10조~13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가 이런 위험 부담을 감수할 리 만무하다.부산시는 구체적인 민간투자 계획을 내놓지 않지만, 일각에서는 민간투자금은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건설 비용의 30~50%는 부산시 예산, 외자, 지역기업 주주 참여 등으로 부담하고, 나머지는 정부가 부담하는 식이다. 결국 외자는 전체의 절반에 채 미치지 않고, 나머지는 정부에 손을 벌리겠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철도·고속도로 등 교통수단은 빠져 있다. 결국, 민간투자 공항은 여론 호도용 구호이자 실현 불가능한 결론이 아니겠는가.

2019-02-19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가버나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최근 개봉 영화 '가버나움'의 포스터 카피는 사뭇 충격적이다.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죄'로 친부모를 고소해 법정에 세우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열두 살쯤 된 시리아 난민 소년이다. 출생 기록이 없어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학교도 못 다니며 일만 하면서 힘겹게 살아왔다.막 초경을 시작한 여동생이 동네 슈퍼 주인에게 팔려가는 것을 보고 가출하지만 삶은 여전히 처연했다. 임신한 여동생이 병원도 못 간 채 하혈을 하다가 죽자 슈퍼 주인을 찔러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그때 면회를 온 엄마는 신의 축복으로 또 동생이 생겼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리고 재판정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가버나움'은 성경에 등장하는 저주받은 마을 이름이다. 프랑스어로는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상태'를 뜻하며, 문학적으로는 '혼돈과 기적'을 의미한다. 레바논 출신의 여성 감독 나딘 라바키는 왜 '가버나움'을 영화 제목으로 썼을까. 본능에만 충실한 무책임한 부모 때문에 호적도 없이 투명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아이들….중국에서는 30년간 강행한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출생신고 없이 유령처럼 살아온 사람이 1천3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은 학교와 병원에 갈 수 없는 것은 물론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직장을 가질 수도 없어 한 동네에만 있는 듯 없는 듯 머물러야 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자 그제야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하고 이들에 대한 호적을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우리나라도 가족관계등록법상 부모가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우연히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국가가 출생 사실을 일일이 파악할 수가 없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부모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에도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투명인간방지법'이 제기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이 낳으라고 출산장려금을 쏟아붓는 세태에, 태어나고도 유령처럼 살아가는 인권 사각지대가 있다면 우리 사회 또한 '가버나움'의 예외가 아닐 것이다.

2019-02-1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수출1호 시(詩) 잇는 할매

'님이여, 강을 건너지 마오/ 님께서 끝내 강을 건너시네/ 강을 건너다 빠져 죽으니/ 님을 어찌하리오.'고조선 시대 작품으로 알려진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이다. 한국 가요에서 가장 오래됐고 1천800여 년 전 중국 후한 시대 즈음부터 중국 문인들에게도 알려져 그들의 문집에 소개된 노래다. 이러니 아마 한국 민간 가요로서 수출 1호의 시(詩)로, 오늘날 한류(韓流)의 원조쯤으로 봐도 무난한 작품인 셈이다.그런데 주인공과 노래를 부른 아내의 나이가 흥미롭다. 작품 주인공은 강가에 사는 흰머리 사나이, 즉 삶의 달고 쓴 풍파를 고루 겪었을 백수(白首) 남편이다. 이에 미뤄 이런 기가 막히는 슬픈 노래를 불러야만 했던 아내 역시 가슴 설레던 젊음을 보내고 삶의 뒤안길을 맞은 나이 지긋한 여인이었을 듯하다.우리의 첫 시는 이처럼 세월의 나이를 보낸 흰머리의 어른이 주인공이었고, 노래를 부른 이도 그만한 세월의 무게를 견딘 아내였을 터이다. 그래서일까. 이후 시대와 왕조가 바뀌고 강산이 변해도 세상에 나온 숱한 노래와 시에는 삶의 고비를 굽이굽이 지나온 옛 사람들의 작품이 적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올 들어 설밑에 잇따라 출판된 경북 할머니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시집 두 권도 이런 흐름과 다르지 않다. 지난달 출판된 경북 칠곡의 권연이 외 91명 할머니가 다듬은 작품을 담은 '내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애뻐요'와 이달에 나온 김천 이길자 할머니 시인의 동시집 '나무 그늘을 파는 새'는 그런 사례다.경부선 기찻길로 통하는 뭣이 있는가. 두 곳 '할매'의 놀랍고 샘솟는 시의 열정은 감탄할 만하다. 칠곡에서는 지난 2015년 첫 할매 시집 '시가 뭐고?'부터 이번까지 벌써 세 권째다. 김천 이길자 시인 역시 2010년 첫 시집 '홍매화 입술' 이후 3권까지 낸 데 이어 올해 동시집도 냈으니 말이다. '노익장'(老益壯)이다.옛 우리 '할매' 핏속 시심(詩心)이 세월을 넘어 흘러 끊임없이 이어질 길조(吉兆)가 아닐 수 없다.

2019-02-16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표현의 자유

로베르 포리송(1929~2018). 프랑스 리옹 1대학에서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던 학자로 1979년 이후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거짓말"이라는 주장을 펴온 인물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가 1990년 홀로코스트 부인을 범죄로 규정한 이후 여러 차례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1991년 대학에서도 파면됐다.이에 박해받지 않고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자유를 요청하는 국제적인 탄원서가 작성됐다. 500명이 서명한 이 탄원서에 '존경받는 진보지식인' 놈 촘스키도 친구의 요청으로 서명했다. 프랑스 언론은 여기에 주목해 그 탄원서를 '촘스키 탄원서'라고 불렀다. 이 일로 촘스키는 '반시온주의자'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수정주의자' '신나치주의자'로 비난받았다.촘스키는 "홀로코스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집단적 광기"라거나 "내가 볼 때 (유대인을 학살한) 가스실의 존재를 의심케 하는 합리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런 점에서 탄원서 서명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 왜 서명을 했을까. 포리송의 주장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 때문이다.그는 쏟아지는 비난에 이렇게 말했다. "표현의 자유(학문의 자유를 포함)는 입맛에 맞는 견해에만 국한돼서는 안 된다. 널리 경멸·저주받는 견해라도 표현의 자유는 적극 옹호돼야 한다.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 힘센 사람의 의견이나 공적(公敵)의 인권침해를 비난하는 만장일치의 의견은 보호해주기 쉽다." 그뿐만 아니라 말할 자유의 옹호와 그 말을 한 사람의 주장에 대한 동의는 별개의 문제임도 분명히 했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사상까지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촘스키가 자유한국당 의원 3인의 '5·18 폄훼' 발언을 계기로 정치권이 5·18에 대한 어떤 부정적 견해도 법으로 불허하겠다고 벼르는 지금 한국 사회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그 책임의 내용은 무엇일까. 자기주장에 대한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인가,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기자의 생각에 후자는 책임이 아니다. 입을 틀어막는 족쇄일 뿐이다.

2019-02-15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신성모독과 폭력

1990년 1월 18일 오후 3시 일본 나가사키 시청 현관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승용차를 타던 모토지마 히토시(本島等·1922~2014) 나가사키 시장은 우익단체 조직원이 쏜 총에 맞았다. 왼쪽 흉부가 관통되는 중상이었으나 다행히 심장을 피했다.그가 총을 맞은 이유는 1988년 시의회에서 발언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가사키 시의회에 참석해 공산당 소속 시의원의 질문에 "덴노(天皇)에게도 전쟁 책임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때부터 모토지마 시장과 가족은 정상적인 삶을 포기해야 했다.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자민당에서 쫓겨났고, 사무실·집에는 살해 협박이 쏟아졌다. 시청 앞에는 전국 62개 우익단체가 80여 대 가두선전 차량을 몰고 와 연일 '천주'(天誅·하늘을 대신해 벌을 주다)를 외쳤다.모토지마 시장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총 한 방 맞고 '면죄부'를 받아 1991년 선거에 당선돼 4선 시장이 됐다. 후임 이토 잇초(伊藤一長) 시장은 2007년 폭력조직원의 총격을 받고 사망, 시장 두 명이 연속으로 테러의 희생자가 됐다. 범행 동기는 불명확했지만, 이토 시장이 '미군·핵무기 반대' '평화공원 조성' 등을 강하게 주창하다 우익의 반감을 샀다는 분석이 많다.일본에서는 일왕을 비판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일왕에 대한 불경은 테러로 이어지기 때문에 금기 중의 금기다. 일왕은 논리와 이성이 필요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 사과'를 요구했을 때 일본은 난리가 났다. '한국을 적국으로 보겠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경제·문화 교류가 중단됐고, 한류는 된서리를 맞았다.며칠 전 문희상 국회의장이 "전범의 아들인 일왕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얘기지만, 일본에서는 역시 시끌벅적하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부는 강하게 성토했다. 국회의장의 발언이기 때문인지, 이명박 전 대통령 때에 비해 강도는 약하지만, 아직 확전 여부는 미지수다. '살아 있는 신(神)'이라는 전근대적 가치에 목숨을 거는 일본인의 정신세계는 아무리 봐도 불가사의하다.

2019-02-14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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