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야고부] 투 머치 토커

[야고부] 투 머치 토커

SNS나 유튜브 영상에서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라는 용어를 종종 접하게 된다. '지나치게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영어의 프래틀러(Prattler)나 개시(gassy)와 같은 의미다. 간단하게 얘기하고 끝낼 일도 장황하게 늘어놓아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을 이르는 용어다.이 용어가 크게 부각된 것은 전직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 때문이다. 은퇴 후 TV 예능 프로에 종종 얼굴을 내비친 그는 겉보기와 달리 한번 시작하면 좀체 끝이 나지 않을 만큼 말을 많이 해 '투 머치 토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말하는 것을 즐기는 스타일이고 또 엄청난 달변가다. 그가 출연한 TV 상업광고도 자연스레 '수다쟁이' 이미지에 초점이 맞춰진다.요즘 딸 문제로 의혹의 중심에 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SNS상에서 '투 머치 토커'로 불릴 만큼 늘 대중의 주목을 받아온 사람이다. 교수 재직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 입성 이후에도 트위터 때문에 종종 구설에 올랐다. 좋게 보면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고 참여 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표현이 지나치거나 공감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아 못마땅하게 보는 부류도 분명 있다.조국 후보자가 매일같이 신문 방송을 독차지하면서 '오늘도 조국, 내일도 조국' 푸념도 나온다. 딸의 부정 입학 의혹에서부터 논문, 장학금 등 각종 논란이 이어지자 조국 후보자의 해명도 길어진다. 진위 공방이 기어코 인사청문회까지 이어질 모양이다.어떤 특정 사안의 진위가 엇갈리면 누구나 있는 그대로를 밝히고 억측과 오해를 불식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실을 밝히는 것 못지않게 결말에 이르는 과정도 중요해서다. 의혹을 풀기 위해 자신을 항변하는 것은 의혹의 중심에 선 당사자로서 의무인 동시에 보편적 권리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쏟아내는 말과 드러나는 정황 증거들이 진실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면 항변권은 효력을 잃기 마련이다. 지금 국민들은 밑도 끝도 없는 그의 해명을 반복해 듣고 있다. '투 머치 토커'의 고문이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유다.

2019-08-24 06:30:00

[야고부] 위령비

[야고부] 위령비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가곡 비목(碑木)의 노랫말 2절이다. 화약 연기 사라진 달빛 처연한 전장에 쓸쓸히 남은 비목을 노래하는 것은, 두고 온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며 애틋하게 스러져간 이름모를 병사들을 위한 진혼곡이다.참혹한 전쟁의 여운과 미려한 자연 풍광이 빚어낸 역설이 모태가 된 가곡 비목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천진한 뒷모습을 남기고 떠난 청춘의 호곡성이기도 하다. 경주 안강읍 용운사 경내에 서 있는 '안강전투 전사자 위령비'의 모습도 비목과 다름이 없다. 태극기를 새긴 전투모 형상의 비석갓이 치열한 전투 속에 죽어간 젊은 넋들을 상징하고 있을 뿐, 비석에 새겨 놓은 20여 명의 전사자가 정규군이었는지 학도병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20일에 세웠으니 6·25 전사자 위령비로는 가장 빠를지도 모른다. 사각 기둥 위에 철모 모양의 머릿돌을 얹은 것도 특이하거니와 비문에 신라 경순왕과 마의태자가 등장한 것도 특별하다. 위령비 옆면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인 신라의 이두(吏讀) 흔적도 있다고 하니, 문화재적인 가치도 지닌 듯하다.안강은 인민군 주력부대인 12사단의 남진을 저지하고 국군이 북진하는 6·25전쟁의 분수령을 이루었던 치열한 격전의 현장이다. 위령비가 있는 용운사 주지 스님은 '내년이면 비를 세운 지 70주년이 되는 해'라며 관련 당국과 대중의 관심을 촉구했다. 그러나 시절이 수상하니 젊은 넋들의 표상이 오히려 더욱 서러울 따름이다.미증유의 민족적 비극을 초래한 북한의 공산왕조는 아직도 미사일 도발을 거듭하며 남쪽을 향해 온갖 욕설을 내뱉고 있다. 남한 대통령을 '오지랖 넓은 중재자' '겁먹은 개'라고 조롱한 데 이어, 이번 광복절 '남북협력 및 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해서는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대꾸 한마디 못한다. 비목과 위령비조차 피눈물을 흘릴 지경이다.

2019-08-23 06:30:00

[야고부] 8조원과 20만 혁신 인재

[야고부] 8조원과 20만 혁신 인재

올 들어 경북 영주에서 호미를 만드는 60대의 석노기 장인(匠人)이 언론에 등장, 화제를 모았다. 쇠 두드려 만들기 외길 인생의 보람인지 그의 혼(魂)이 깃든 호미가 지난해 세계 최대 온라인 판매망인 미국의 아마존을 통해 지구촌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고 주문이 잇따랐던 덕분이다.그러나 이전까지는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호미였다. 그의 '영주대장간' 역시 지난 2017년 '향토 뿌리기업'과 '경상북도 산업유산'에 지정되고, 지난해 그 역시 '경상북도 최고장인'에 선정되는 영광도 얻었지만 그를 이을 사람은 없었다.지난 52년 동안 이어온 호미 만드는 일을 어느 누가 감히 물려받을 생각이나 했을까. 겨우 한 젊은이가 기술을 배우겠다고 나타났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만둔 안타까운 사연도 들렸고 뒷받침이 없으면 아마 대(代)는 끊어질 터이다.기술을 잇는 장인 육성은 옛날에도 난제였다. 물론 사정은 지금과 달랐다. 조선 선조 시절 경북 청도의 도공(刀工)으로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기술을 지녔고, 특히 철의 품질을 구분하는 데에는 마치 신과도 같았다'던 저재(抯才)와 아들에 얽힌 사연이 그렇다. 일제 때 다카하시 도루가 남긴 기록을 보자. '임란 때 일본군 병사가 그 장인의 제품을 보고 대단히 칭찬했다…저재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이 가업을 이었다…그는 관아의 가혹한 상납 재촉을 견뎌내지 못했다…저재의 아들은 끝내 자신의 오른손을 잘라서 겨우 파산을 면했다.'시대가 바뀌고, 우리 사회 역시 기술을 인정하고 장인을 받들기도 했다. 과거와 달리 직업의 귀천도 옅어졌고, 상납 요구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특정 직업에 젊은이와 부모가 목을 매는 모습은 여전하다. 어쩌면 더 심한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 계통 기피나 오직 공무원의 길을 바라는 현상은 좋은 사례다.한·일 경제 전쟁을 맞아 정부가 연일 투자를 강조하고 뭇 정책을 내놓고 전쟁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7년간 100대 핵심 전략 품목을 골라 8조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1일 2023년까지 20만 명 혁신 인재 양성을 약속했다. 정부 외침처럼 돈을 넣고, 사람도 키운다니 앞의 두 사례 같은 일은 역사 속의 일로만 기록되리라 믿어본다.정인열 논설위원 oxen@imaeil.com

2019-08-22 06:30:00

[야고부] 문자의 옥(獄)

[야고부] 문자의 옥(獄)

근대 이전 중국에서는 황제가 자신에게 반항하는 인물을 숙청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자의 옥(獄)'이 자주 이용됐다. 문자의 옥이란 책이나 문서에 적힌 내용이나 글자를 파자(破字)해 황제를 비판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으로, 명의 홍무(洪武)제와 청의 강희(康熙)·옹정(雍正)·건륭(乾隆)제 때 집중적으로 나타났다.그중 하나가 옹정제 때인 1726년에 터진 '사사정'(査嗣庭) 사건이다. 한족(漢族)으로 강서성 주시험관을 맡은 사사정이 시험 문제에 '유민소지'(維民所止)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방기천리 유민소지(邦畿千里 維民所止, 나라의 도읍 사방 천 리는 백성이 멈추어 사는 곳이다)에서 따온 것으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다.그러나 이 문구의 '維'와 '止'는 옹정(雍正)에서 윗변 'ㅗ'와 '一'을 의도적으로 걷어낸 것으로, 옹정제의 참수를 의미한다고 해석되면서 피바람이 불었다. 고문을 받다 자살한 사사정은 잠시 땅에 묻혔다가 부관참시됐고, 그의 가족 중 16세 이상 남자는 모조리 참수됐다. 일본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아들 히데요리(秀頼)를 제거하려고 꾸민 '호코지 종명'(方廣寺 鐘名) 사건이다.히데요리는 도쿠가와의 건의로 호코지를 재건하면서 범종(梵鐘)도 만들었는데 거기에 '국가안강 군신풍락'(國家安康 君臣豊樂)이란 문구를 새겼다. 너무도 좋은 의미였지만 도쿠가와는 자신의 이름을 '安'자를 이용해 두 글자로 쪼개고, '臣'과 '豊'을 이어놓아 도요토미 가문의 번영을 기원하고 도쿠가와 가문에 저주를 거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말하자면 일본판 '문자의 옥'을 벌인 것이다.홍콩 최고 갑부인 리카싱(李嘉誠)이 홍콩 시위와 관련해 홍콩 언론에 게재한 광고에 숨은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표면적인 메시지는 '폭력 시위는 안 된다'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의미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광고를 둘러싸고 있는 문구를 좌우로 오가며 각 문구의 끝 글자를 모으면 '홍콩 사태의 책임은 국가(중국)에 있다. 홍콩 자치를 용인하라'(因果由國, 容港治己)가 된다는 것이다. 표의문자인 한자에서만 가능한 해석의 기예다. 이런 해석이 빌미가 돼 홍콩판 문자의 옥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2019-08-21 06:30:00

[야고부] 조국의 길

[야고부] 조국의 길

조선 중기의 유학자 남명 조식(曺植)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사화(士禍)로 얼룩진 16세기의 위기와 혼돈을 사상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 정신사의 거목이었다. 이 위대한 사상가로 인해 유교가 유례없는 혁명적 실천 기능을 담당할 수 있었다.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는 민암부(民巖賦)의 설파에서 남명은 민중적 지식인의 풍모까지 내비친다.남명은 협객의 이미지도 지녔다. 실제로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內明者敬 外斷者義)라는 글귀를 새긴 칼을 차고 다녔다. 벼슬을 사양하며 올린 '을묘사직소'에서도 조정의 실정을 준엄하게 통박하며 청고한 선비의 기개를 드러냈다. 남명의 유학 정신은 개방적이고 역동적이었다. 불교와 노장사상을 포용했으며, 제자들에게 병법과 천문, 지리, 의학 등 실용 학문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가르쳤다.그의 문하에서 임진왜란 때 많은 의병장이 나오고 광해군 정권에서 현실 정치에 참여한 것은 '앙가주망'에 다름 아니었다. 남명의 유교는 실천철학이요 마음의 철학이었다. 외부 세계의 변혁과 함께 자신의 혁신에도 주목했다. 남명의 정신은 현대의 지식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앙가주망은 문중의 선조인 남명 조식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규정한 앙가주망도 지식인의 사회참여이긴 했지만, 권력에 편승해 감투와 권세를 얻거나 사익을 챙기는 길은 아니었다. 앙가주망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고뇌이며 불의에 맞서 진실을 설파하는 지식인의 도덕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리페서를 비난했던 조국 후보자는 서울대생들이 뽑은 가장 부끄러운 동문 투표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벼슬길에 나선 후 그의 언행은 지성적이기보다는 선동가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죽창가로 애먼 국민을 분열시키고 친일파로 갈라치기 하고 있다. 할 말이 없으면 "맞으면서 가겠다"고 한다. 조국(曺國) 뜻대로 가다간 좌국(左國)이 될 것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조국(弔國)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상한 소송과 투자 의혹까지 받고 있는 강남좌파의 길에 앙가주망이 웬말인가.

2019-08-20 06:30:00

[야고부] 대구의 두 일본인 남녀

[야고부] 대구의 두 일본인 남녀

두 일본인 남녀가 있었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여럿이다. 1905년에 태어나 1997년 삶을 마감한 노구치 미노루(野口稔) 또는 노구치 가쿠츄(野口赫宙)와 지금도 활동 중인 1927년생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 대구에서 태어났고, 한때 경주에서 삶을 살았던, 글을 쓰는 작가이다. 또 일제강점기의 한국 관련 작품을 썼고, 한국과 일본에 걸쳐 살았지만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이어간 이력을 가졌다.다른 점도 있다. 앞의 남성은 망한 식민지 나라 사람으로서, 장혁주(張赫宙)라는 한국 이름을 하나 더 가졌다. 한국어, 영어, 특히 일본어로 된 작품을 더 많이 남겼다. 한국 여성과의 사이에 자녀를 두었으나 다시 일본 여성과 결혼했고, 1952년에는 일본에 귀화를 했다. 한국을 비판하고 자신을 낳아준 땅을 싫어했고 마침내 등지고 나라를 버렸다.일본 여성 모리사키는 17년 머물렀던 한국을 떠나 1944년 귀국, 지금까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장혁주와 달리 한국에 '원죄' 의식을 가졌다. 식민지배 시기, 일본 때문에 죽은 숱한 한국인은 자신을 대신해 희생됐다는 '원죄'에 시달렸다. 그가 태어난 대구나 살았던 경주의 한국을 고향이 아닌 원향(原鄕)이라 불렀다. 1984년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나의 원향(原鄕)'이란 책은 이런 배경으로 탄생한 셈이다.두 작가의 운명은 일제의 식민지배 결과였다. 생명을 준 땅과 나라까지 버린 장혁주, 그 땅과 나라에 원죄를 느낀 모리사키 가즈에. 스스로의 조국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여기지 못했던 두 사람. 그러나 세월은 두 사람을 달리 평가하고 있다. 대구(한국)는 장혁주를 잊었고, 그와 그의 뭇 작품은 잊혀졌다. 반면, 대구(사람)는 모리사키를 다시 기억해 그 작품도 머잖아 번역, 출판될 모양이다. 두 사람의 역사가 얄궂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15 광복절 행사에서 말한 것처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였으면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도 없었을 터인데 안타깝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일본과 한창 경제 전쟁을 치르는 지금, 나라 사정을 살피면 과연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는 실현될지, 언제쯤 이뤄질지 답답하다. 안팎에서 어려운 한국을 흔드는 '아무'가 벌써부터 바다 건너는 물론, 안에서조차 여기저기 우후죽순이니 말이다.

2019-08-19 06:30:00

[야고부] 망조(亡兆)든 미국

[야고부] 망조(亡兆)든 미국

로마의 첫 통치자 로물루스는 첫 전쟁을 사비니와 치렀다. 승리한 로물루스의 결정은 뜻밖이었다. 승자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사비니에 로마와 동등하게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로물루스와 사비니 왕 타티우스는 공동으로 왕이 됐고 두 부족은 권력을 나눠 가졌다. 세계제국 로마는 패자까지 품은 관용(寬容)에서 싹이 텄다.인류사에서 유일무이하게 '보편제국'을 이룬 로마의 힘은 관용 한 단어로 집약할 수 있다. 로마제국 설계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통치 방침을 관용이라고 선언했다. 갈리아족, 유대인 등 로마는 이민족들의 다양성을 존중했고 그들에게 시민권을 줬다. 관용을 바탕으로 민족, 문화, 종교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질성을 극복해 제국을 만들었다.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아 로마에 자주 비견되는 것이 미국이다. 실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로마 공화정은 이상적 통치 체제였다. 대통령과 의회, 법원이 권력을 나눠 갖는 체제는 로마를 모델로 했다. 다양한 이민족을 포용해 '팍스 아메리카'를 만든 것 역시 로마를 빼닮았다.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던 30대 후반의 한국계 외교관이 자괴감을 견딜 수 없다며 사표를 던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주의, 여성 혐오 등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게 외교관을 그만둔 이유다. 관용을 비롯해 자유, 공정 등 미국적 가치를 확산하려고 외교관으로 열심히 일했는데 이런 가치들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에 나설 때 트럼프의 참모습을 알아봤어야 했다. 급기야 적도 아닌 동맹국에까지 폭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임대아파트에서 114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한국을 조롱·폄훼하고 문재인 대통령 말투를 흉내 내며 희화화했다. 품격·관용은 차치하고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관용은 사라지고 원주민들을 축출하고 아프리카인 노예로 부를 쌓은 초기의 '야만 미국'으로 퇴보하는 모습을 트럼프에게서 볼 수 있다. 미국도 망조(亡兆)가 단단히 들었나 보다.

2019-08-17 06:30:00

[야고부] 조강(糟糠)

[야고부] 조강(糟糠)

일본에서 250만 부나 팔린 후지와라 마사히코(전 오차노미즈대 교수)의 '국가의 품격' 한글판 서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때 조선인들이 베풀어준 음식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패망 후 1946년 8월, 저자 가족이 귀국길에서 겪은 고생과 굶주림, 자신을 핍박하던 일본인을 되레 도와준 조선인들의 온정에 대한 이야기다.피난 경로를 자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만주 신경(창춘) 태생인 그와 가족이 만주나 한반도 북부에서 살다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머니와 다섯 살이던 저자 등 삼 형제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개성(開城)에 다다르는 과정이 나온다.무사히 귀국 후 어머니가 저자에게 여러 차례 들려준 말도 서문에 담았다. "돈 많은 조선인은 차가웠지만, 궁핍했던 조선인들은 음식을 베풀어주는 등 우리를 따뜻하게 도와주었다"는 내용이다. '비에 젖어 거지꼴인 우리를 따뜻한 마구간에 재워준 분도 있었다. 그렇게 친절을 베풀어준 조선인 여러분이 없었으면 우리 가족은 북한의 산 어딘가에 묻혀서 흙이 되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회상한다.그때 후지와라 가족이 얻어먹은 음식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돌이켜보면 격식을 차린 음식은 결코 아닐 터다. 해방 무렵 이 땅의 사람들이 먹던 흔한 밥과 반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음식이 한 가족을 살렸고 먼 훗날 기억에 박제된 것이다.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청와대 초청 오찬에 제공된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 화제다. 백범이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휴대하기 편해 자주 먹었다는 대나무 잎으로 감싼 '쫑즈'와 돼지고기 간장조림 요리 '홍샤오로우'다. 요즘 사람에게는 생소한 음식이지만 그 음식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최근 안동에서 독립군이 먹던 밥상을 복원하는 사업도 활발하다. 항일 투사들이 평소에 먹던 보리개떡, 소금에 절인 콩자반 등을 되살려내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조강(糟糠)과도 같은 음식이다. 조강은 지게미와 쌀겨를 말하는데 가난한 이들이 늘 먹는 음식이다. "조선인은 밥을 많이 먹어서 늘 배가 고프다 투정한다"며 혐한 망언을 쏟아내는 저질 일본 TV 출연자들은 음식의 가치나 박애의 의미를 알기나 할까.

2019-08-16 06:30:00

[야고부] 굴욕적인 평화

[야고부] 굴욕적인 평화

초한(楚漢) 쟁패전에서 중원을 통일한 한 고조 유방은 북방의 골칫거리였던 흉노 정벌에 나섰다가 되레 포위를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월등한 군사력에도 유목 기마병 특유의 치고 빠지는 전략에 말려들었던 것이다. 결국은 매년 많은 양의 비단과 곡물을 보낸다는 치욕적인 화친조약을 맺고 겨우 돌아왔는데, 그마저 오래가지 못했다.흉노는 점점 더 많은 공물을 요구하며 변방을 침략해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 한나라는 무제에 이르러서야 대군을 일으켜 흉노를 정벌하고 멀리 내쫓았다. 돈으로 산 평화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실증한 역사적 사례이다. 송나라의 경우는 더 가관이었다. 쿠데타를 통해 황제로 등극한 송 태조 조광윤은 도둑이 제 발 저린 탓인지, 무인(武人)의 힘을 약화시키며 지나치게 문치주의를 표방했다.백성의 비약적인 증가와 농업 생산량 증대로 경제적인 번영과 문화적인 융성을 구가했으나 외세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미국 역사학자인 존 킹 페어뱅크가 "경제와 문화 대국이었던 송나라가 가난뱅이 유목 민족에 정복당한 것은 놀라운 역설"이라고 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는 너무도 약체였던 것이다. 그러니 늘 싸움은 피하고 보자는 식이었다.거란족이 세운 요(遼)가 쳐들어오자 '전연의 맹'이라는 강화조약을 맺고 해마다 비단과 은을 보냈다. 서북 지역 탕구스족의 서하가 침입하자 또 강화를 체결하고 많은 공물을 보냈다. 동북 지역의 여진족이 금(金)을 건국하자 이전보다 더 많은 공물을 요구했다. 여진은 기어이 수도 개봉을 함락하고 황제와 일가족을 포로로 잡아갔다. 황제의 아우가 항주로 쫓겨 내려와 남송(南宋)시대를 이어갔다. 하지만 금나라에 세공을 바치며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다가 몽골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송나라에는 상무정신이 없었다. 적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은과 비단을 내주며 달래는 방법을 택했다. 굴욕적인 평화가 오래간 사례는 역사상 없었다. 북한은 남한의 쌀 지원도 거절해버렸다.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며 남한을 '겁먹은 개'라고 원색적으로 조롱한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남북 경제 협력과 평화 타령을 하고 있다. '평화는 힘이 있어야 보장된다'는 김정은의 충고가 오히려 폐부를 찌른다.

2019-08-15 06:30:00

[야고부] 망사(亡事)된 인사

[야고부] 망사(亡事)된 인사

기초단체장을 3연임하고 퇴직한 인사가 들려준 얘기. 단체장 취임 직후 똘똘하고 정직하다고 평판이 난 공무원 몇 명을 불러 부탁(?)을 했다. "당신들은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내가 잘못한 일을 거리낌 없이 질타해 주기 바란다." 내부 비판을 통해 더 나은 행정을 펴고자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저하던 공무원들은 단체장을 찾아와 비판하기 시작했고 나름 목표한 성과를 거뒀다. 6개월가량 흘렀을까. 예상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자신을 찾아온 공무원이 아무 말도 않았는데도 마음이 언짢아졌다. "오늘은 저 사람이 무슨 비판을 할까란 생각에 얼굴만 봐도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이 법무장관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정하는 등 개각을 했다. 지금껏 문 대통령 인사에 실망한 적이 한두 번 아니지만 이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개각이 대통령의 국정 쇄신에 기여는커녕 측근들 돌려막기에 그쳤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일방통행 코드 인사가 되풀이되고 말았다.더 개탄스러운 것은 이번 인사에서도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쓴소리를 할 인사들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선 외교·안보 라인. 경질 요구가 쏟아졌던 존재감 제로(0)의 외교·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엔 반미(反美)·친북(親北)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인사를, 국립외교원장엔 대선 때 캠프에 참여한 인사를 임명했다. 외교·안보 위기 돌파는 고사하고 대통령의 정책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인사다.압권은 조 전 수석의 법무장관 기용. 인사 검증 실패 등 책임을 물어도 시원찮을 사람을 발탁한 것도 문제지만 조 전 수석은 대통령에게 직언(直言)은커녕 한술 더 떠 친일·반일로 국민 편 가르기에 앞장선 사람이다. 이순신 장군 시에 나온 '서해맹산'(誓海盟山)을 들먹이며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을 왜군에 빗대는 절묘한 편 가르기를 한 것을 보면 그의 언행은 달라지지 않을 게 틀림없다.인사는 만사(萬事)라고 했는데 받침 하나가 다른 망사(亡事)가 되기 십상인 게 인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쓴소리를 하던 측근을 차례로 내치고 백악관을 '예스맨'으로 채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아예 쓰지 않는 문 대통령이 이 부분에선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2019-08-14 06:30:00

[야고부] 대마도 정벌의 교훈

[야고부] 대마도 정벌의 교훈

'이종무가 다시 대마도로 향해 진군하다.' '이종무 등이 수군을 이끌고 돌아와 거제도에 머물다.'600년 전 여름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년 1419년 6월 19일과 7월 3일(음력) 기록이다. 거제도를 오전 9~11시에 떠나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은 이종무 장군이 이끈 일본 대마도 정벌이다. 이기고 왔으니 고려·조선 조의 3차례 대마도 정벌의 끝인 기해동정(己亥東征)은 우리 군대의 마지막 일본 진출 기록인 셈이다.비록 100명 넘는 전사자가 나왔지만 조선은 승리로 얻은 게 있었다. 먼저 대마도의 항복으로 골칫거리인 왜구의 침탈을 제도적으로 막을 길을 마련했다. 또 왜구를 달래고 살기 척박한 대마도 사람을 돕느라 그들의 물건을 사고 팔아주는데 든 엄청난 재정적인 부담도 어느 정도 덜었다. 물론 수시로 보냈던 곡식과 토산품 등 양국 간 불균형 무역도 어느 정도 바로잡게 됐다.당시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리던 명나라의 일본 정벌 계획도 미리 막아 다행이었다. 만약 명이 일본과 싸울 경우, 원나라 지배 때 고려가 원의 일본 원정군 지원을 위해 겪었던 인적 물적 동원에 따른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감수했던 일을 조선이 다시 각오해야 하는 탓이다. 아울러 조선은 무기 제조에 필요하지만 조선에 없거나 구하기 힘든 유황과 구리를 보다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600년 뒤 기해(己亥) 여름, 길어질 한·일 경제 전쟁에서 이기려면 할 일이 있다. 우선 만성적 무역적자 구조의 불균형을 바뤄야 한다. '가마우지 경제'라는 말처럼, 기껏 일본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한국 경제의 체질과 틀을 바꿀 계기를 이번 기회에 갖춰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기술과 경제 독립을 위한 지속적 지원과 투자를 말만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까닭이다.또 핵심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 길도 찾아야 한다. 유황과 구리 수입을 일본에 기댄 600년 전과 달라야 하고, 되레 일본 밖에서의 안정적 부품 공급이나 국산화로 살길을 내야 한다. 이리만 되면 이번 한·일 경제 전쟁과 미·중 환율 전쟁, 중·러의 하늘 침범, 북한 도발 등 한국의 궁박한 입장을 기다린 듯 큰 폭의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는 미국의 평지풍파가 속 쓰리지만 600년 전 여름의 승리 꿈은 꿀 만하다.

2019-08-13 06:30:00

[야고부] 여름꽃

[야고부] 여름꽃

내리쬐는 햇빛과 태풍의 숨결이 언뜻언뜻 섞인 바람에 연신 출렁이는 연분홍 웨이브피튜니아가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달 들어 도청교 등 대구 시내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름꽃 이야기다. 7, 8월 무더위를 견디며 피는 여름꽃은 봄꽃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크게 주목받지도 못한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꽃을 피우고 주위 분위기를 한결 청량하게 또 편안하게 바꿔준다는 점에서 여름꽃의 존재는 더욱 경이롭다.8월은 삼복더위가 절정에 다다르는 시기다. 견디기 힘든 무더위 속에서도 갖가지 여름꽃은 어김없이 알록달록 꽃을 피워낸다. 백일홍과 접시꽃, 나팔꽃, 맨드라미, 패랭이꽃, 쑥부쟁이, 해바라기, 원추리, 백합, 메리골드, 피튜니아 등은 여름을 장식하고 채우는 대표적인 꽃들이다. 예전과 달리 해바라기백합 등은 도심에서는 좀체 보기 힘들다. 시골이나 이맘때 청주나 태백시의 '해바라기 축제'를 찾지 않는다면 못 보고 넘어갈 꽃들이다.대신 요즘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백일홍이다. 신천동로를 지나다 보면 키 나지막한 배롱나무를 온통 붉게 물들인 백일홍꽃이 때를 맞았다. 안동시내 육사로나 옥동로 등에도 요즘 백일홍이 한창이다. 수령 380년의 고목 등 120여 그루의 배롱나무가 꽉 들어찬 풍천 병산서원의 백일홍도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태양의 기운이 강한 성하(盛夏)에는 바깥나들이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작심하고 떠나는 휴가라면 몰라도 주말에 가까운 교외로 향하는 발걸음도 쉽지는 않다. 그래도 집을 나서지 않으면 여름꽃이 펼치는 세계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 5년 연속해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로 벌어지는 '월복'(越伏)이 들면서 삼복더위가 더 길어진 느낌이지만 입추가 지났고 더위가 가시어 풀이 더 자라지 않는다는 처서(處暑)도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노(NO) 재팬' 사회 분위기에다 여유가 없어 아직 여름휴가를 내지 못한 직장인이라면 광복절 공휴일과 주말에 잠시 짬을 내 가까운 곳으로 여름꽃 구경이라도 나서는 것은 어떨까 싶다. 화사한 여름꽃 축제를 염두에 두고 일정을 맞춘다면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색다른 테마여행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19-08-12 06:30:00

[야고부] 독수리와 제국

[야고부] 독수리와 제국

독수리는 수리류 중에서도 몸집이 가장 크며 가장 강한 맹금류이다. 넓고 긴 날개를 쭉 펴고 창공에 날아오르면 지상의 모든 동물들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라는 위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역의 확장성 때문에 유사 이래 패권을 추구했던 많은 국가와 통치자들이 스스로의 상징으로 삼았다. 서양 문화의 모태인 그리스 문명에서 독수리는 으뜸가는 표상이었다. 독수리는 최고의 신인 제우스 그 자체였다. 로마제국에서 독수리는 초기 건국신화에 등장한 이후 제국의 유일무이한 상징이 되었다.로마의 저력을 견인했던 군단기를 내건 장대 위에는 어김없이 독수리상이 버티고 있다. 이 군단 깃발이야말로 로마의 명예이자 영광이었다. 로마의 통치력을 상징하는 신성한 영물이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되자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은 쌍두 독수리를 내세웠다. 동·서를 모두 계승한다는 의미였다. 기독교 개종과 함께 서로마제국의 권위를 계승하고자 했던 게르만족의 신성로마제국도 쌍두 독수리 문장을 사용했다.이 같은 독수리의 상징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제국은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었다.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나치가 차용한 독수리는 광대한 제국과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던 로마의 이미지를 주목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치 독일과 로마제국을 동일시하며 유럽 정복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나치의 방식으로 재현하려던 그들의 광기 어린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현대 지구촌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국장에도 어김없이 독수리가 등장한다. 나치의 독수리가 검은 독수리인데 반해 미국의 국조(國鳥)는 흰머리 독수리이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강연장 스크린에 학생단체가 가짜 대통령 문장(紋章)을 띄운 게 논란이 되었다. 머리 둘 달린 독수리가 골프채를 쥔 모습은 러시아 스캔들과 골프에 빠진 트럼프를 비꼰 것이라고 한다. 무상한 게 권력이요, 제국의 운명인가. 민주제도가 포퓰리즘으로 전락하고 코미디언 같은 대통령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독수리도 이젠 사양길로 접어든 것인가.

2019-08-10 06:30:00

[야고부] 적반하장의 번역

[야고부] 적반하장의 번역

국가 간 소통에서 오역(誤譯)은 치명적인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1956년 11월 소련 지도자 흐루쇼프가 모스크바 주재 폴란드 대사관 리셉션에서 NATO 회원국 대사들에게 한 연설의 오역도 그런 경우다. 당시 흐루쇼프는 "당신들이 좋든 싫든 역사는 우리 편이다. 우리는 당신들을 묻어버릴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은 이를 서방에 대한 공격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였다.그러나 "We will bury you"로 번역된 연설문의 러시아어 원문은 'My vas pokhoronim'으로, 직역(直譯)하면 영어 번역문과 똑같은 의미지만 실제 의미는 "우리는 당신들보다 오래 살 것이다" 또는 "우리는 당신들보다 오래 살아 당신들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다"이다. 즉 흐루쇼프가 의도한 것은 "우리는 자본주의를 끝장내버릴 것이다"가 아니라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파멸을 고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였다.('오역의 제국', 서욱식)그러나 서방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설 다음 해인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충격은 이런 의심에 기름을 부었다. 흐루쇼프의 '연설'이 괜한 엄포가 아니라고 믿게 된 것이다.이에 흐루쇼프는 경악했다. 미국과 같은 핵보유국이 됐지만, 아직 전체적인 핵전력에서 미국에 열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흐루쇼프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연설'의 진의(眞意)를 해명했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멸망하고 사회주의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는, 자신이 굳게 믿는 역사 발전 전망을 얘기했다는 것이다.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비판을 두고 양국 정부가 치고받으면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게 된 것은 일본 언론이 적반하장을 사전에 나오는 대로 "도둑이 정색하고 뻔뻔하게 나온다"고 번역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색을 하면서 강하게 나온다"고 의역한 마이니치 신문을 제외하고 NHK 등 상당수 일본 매체가 그렇게 번역했다.그러나 한국에서 적반하장은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화를 낸다"는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일본 언론이 번역에 좀 더 세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 대통령의 적반하장이란 표현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굳이 그렇게 표현했어야 했나라는.

2019-08-09 06:30:00

[야고부] 己亥倭亂(기해왜란)

[야고부] 己亥倭亂(기해왜란)

이스라엘 민족은 나치 독일에 의해 수백만 명이 학살당하는 참혹한 시련을 겪었다. 그 수난의 대가로 1948년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와 독립국가를 세웠지만, 이집트를 비롯한 주변 아랍국들은 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1967년 6월 5일 일어난 이른바 '6일전쟁' 또한 그 연장선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250만 명인데, 아랍권은 1억5천만 명이었다. 신생국가인 이스라엘은 군사력 또한 한참 열세였다.그러나 전쟁은 불과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기적이었다. 승리의 비결은 지도자들의 치밀한 작전 계획과 허를 찌르는 기습 폭격으로 제공권을 장악한 데 있었다. 지상전에서도 이스라엘군은 무기의 열세를 운영 능력과 정비 기술로 만회했다. 무엇보다도 승리의 신화는 탁월한 정신 전력의 결과였다. 전쟁이 터지자 미국의 유대인 유학생들은 참전을 위해, 아랍권 학생들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사라졌다는 유명한 얘기가 나온 것도 그즈음이다.아랍 연합군이란 거대한 골리앗이 다윗의 이스라엘에 패배한 것은 군사력이 아닌 정치적·전략적 실패의 결과였다. 위정자들이 국민을 하나로 아우르지 못했고, 나태한 국민은 정치권을 불신했다. 만일 이스라엘이 6일전쟁에서 졌다면 2천 년 만에 세운 나라는 다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밀려나 '디아스포라'의 운명과 마주했을지도 모른다.백의종군의 고난을 겪은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되었을 때 조선 수군은 궤멸한 상태였고 지상군도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고작 40여 일 만에 12척의 군함으로 330척의 왜군과 맞섰다. 명량해전이었다. 그 짧은 기간 장군은 백성들을 위무하며 희망을 복원하고, 전장을 치밀하게 분석해 적을 무찌를 전술을 세웠다. 가능한 한 승산 있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자신 있는 전술로 싸운 것이다.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라 하여 덮어놓고 달려든 게 아니었다. 백성들과 함께 총력전 체제를 구축한 뒤 최선의 전략 아래 사력을 다해 싸워서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다. 일본의 선전포고로 기해년 '경제왜란'이 발발했다. 왜란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과 민족의 자존이 걸린 전쟁이다. 틈만 나면 이순신 장군과 12척의 배를 입에 올리는 문재인 정권의 전략은 무엇일까.

2019-08-08 06:30:00

[야고부] 강남 좌파의 이중성

[야고부] 강남 좌파의 이중성

환경운동가이자 전 미국 부통령인 엘 고어가 2010년 아내 티퍼와 이혼했다. 사이가 좋기로 소문난 고어 부부가 갈라선 것은 의외였다. 부부 싸움 중 티퍼가 "나는 지구온난화 같은 것은 믿지 않아"라고 말하자, 엘 고어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거부이자 명문가 출신이면서 환경운동에 매진하는 엘 고어의 이중성을 비꼬는 유머였다.엘 고어는 전 세계에서 수천 회의 강연을 하면서 친환경, 친자연 생활 습관을 외치는 환경전도사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였지만, 위선 논란에 시달렸다. 테네시정책연구센터는 엘 고어가 아내와 둘이 사는 저택에 20개의 방과 8개의 화장실이 있으며 월평균 전기료는 130만원(일반 가정의 20배)에 달해 환경적으로 매우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 후 엘 고어는 집을 친환경적으로 개조해 태양열, 지열을 이용한 난방시설과 빗물 사용 설비, 친환경 단열재를 갖춰 체면을 가까스로 지켰다.미국에서는 엘 고어처럼 타인의 고통에 지나치게 공감하는 사람을 두고 '블리딩 하트 리버럴'(Bleeding Heart Liberal·동정심이 과도한 민주당 지지자)이라고 비꼬곤 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처음 쓴 '강남 좌파'와 같은 의미다.현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이끄는 인사들은 전형적인 고학력 부자들이다. 장하성 주중대사는 지난 4월 103억9천887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장 대사는 청와대 정책실장에서 물러나면서 토지 2억2천여만원, 건물 17억9천여만원, 예금 82억5천여만원 등을 신고한 바 있다.'죽창가'를 외치고 서울대 재학 시절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건으로 구속됐던 조국 전 민정수석의 재산 신고액은 54억7천645만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0억1천601만원이다. 토지·건물은 공시지가 기준이므로 실제 재산은 훨씬 많다.우리 사회에서 부자라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변호사·교수 출신에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입만 떼면 '노동자' '소외계층'을 외치는 모습은 왠지 어색하고 공허하게 들린다. 그들의 주의·주장이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것인지, 자신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현 정부 들어 서민생활이 훨씬 나아졌는가?

2019-08-07 06:30:00

[야고부] 실리와 명분

[야고부] 실리와 명분

한·일 외교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과 세조(재위 1455~1468) 때 빛이 났다. 이는 무엇보다 두 임금의 대일 외교를 뒷받침한 탁월한 외교관인 충숙공 이예(1373~1445)와 문충공 신숙주(1417~1475)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국가 기틀을 다지던 15세기 조선 전기 외교의 중심 인물이자 대일 외교의 황금기를 연 이들에게 내린 시호에 나란히 충(忠)이 들어갈 만큼 충성을 인정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 사람의 업적은 많다. 일본 파견이 46년간 40차례 넘은 이예와 1회에 그친 신숙주였지만 공통점은 조선의 부국강병과 실리(實利) 외교였다. 특히 일본과의 교린(交隣) 외교 정책을 중시했다.이예는 세종에게 일본에서 구해온 무쇠로 된 화통완구(火㷁碗口)라는 무기를 바치며 구리로 된 조선의 화통완구를 대신해 무쇠로 만들 것을 건의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무기에 절실한 구리(銅)와 유황(硫黃)은 물론, 금은(金銀)이 생산되지 않거나 적어 일본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어 금수(禁輸) 등 만약을 대비한 조치였다. 실제 뒷날 정부는 조선 내 구리 생산과 납품 정책을 폈다.실리 외교는 신숙주도 이었다. 신숙주는 이예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8도(道) 66주(州)의 일본 등의 지리정보를 담은 '해동제국기'를 만들 때 일본의 구리와 유황 등 조선에서 나지 않는 광물의 생산지까지 적어 만약을 대비토록 했다. 특히 신숙주는 30여 년간 사신 파견, 여진족 토벌군 사령관, 영의정 등 국정 경험으로 일본과의 관계에 관심을 쏟았다. 죽으며 성종에게 "일본과 실화(失和)하지 말 것"을 진언했고, 문집에서 "우리나라는 사방에 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왜(倭)의 접대는 더욱 어려워 한 번이라도 그 기미를 잃으면 남방은 지키기 쉽지 않다"며 일본을 경계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세월이 흐르면서 실리보다 명분이 앞섰다. 일본과 관계도 나빠졌다. 일본 등 사방에 대한 경계 역시 무너졌고,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 한일병합의 국치(國恥)만 남았다.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터졌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하나 되어 일본과 싸워 이기자'고 외친다. 대통령은 5일 남북 경제협력으로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도 했다. 공감하지만 이런 외침이 왜 이리 공허하게 들리는지 모를 일이다.

2019-08-06 06:30:00

[야고부] '박정희 때리기'

[야고부] '박정희 때리기'

#1.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이 40년 만에 그가 거쳤던 부대에 다시 걸렸다. 내란죄로 사형되고서 김의 사진은 군에서 사라졌었다. 그의 사진을 부대에 걸려는 움직임은 문재인 정권 출범 후 계속됐다. 재작년 기무사 국감에서 한 여당 의원은 "전두환·노태우 사진도 있는데 사령관을 지낸 김의 사진은 왜 없냐"고 따졌다.#2.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이어 베트남 전쟁 중 한국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베트남 피해자들을 대리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로 했다. 이들은 "한국 군인이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한 잘못에 대해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로부터 사과·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며 "이는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라고 주장했다.두 사건은 별개인 것 같으나 지향하는 바에서 일맥상통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넘어 '박정희 시대' 폄하 의도가 도사려 있는 것이다. 사진이 군에 다시 걸린 것을 기화로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고 머지않아 유신 독재를 끝낸 '민주투사'로 둔갑할지도 모를 일이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자고 베트남 정부가 강조한 마당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도 베트남 파병을 한 박 대통령에 비판의 칼을 들이대려는 시도로 봐야 한다.일본에 단호히 대응해야 총선에 유리하다는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의 보고서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나라가 기울어도 경제가 파탄 나도 그저 표, 표, 표만 챙기면 그뿐인 저열한 권력지향 몰염치 정권의 추악한 민낯" "나라가 망하든 말든, 국민이 살든 죽든, 총선만 이기면 된다는 발상이 놀랍다"고 야당은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대통령 등 집권 세력이 그렇게도 반일을 부르짖은 것이 총선 승리를 노린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문재인 정권의 지난 2년 3개월은 '과거와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부정, 폄하, 단절, 파기, 파괴에 열을 올렸다. 한·일 경제 전쟁 원인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진보 진영에서 한·일 국교 단절 주장까지 나왔는데 양국 국교 정상화는 박 대통령이 했다. '50년 집권'을 노린 집권 세력의 보수 결집 구심점 타격을 목표로 한 '박정희 때리기'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 같다.

2019-08-05 06:30:00

[야고부] 화이트리스트

[야고부] 화이트리스트

검은색과 흰색은 인간의 눈이 인식하는 사물과 자연현상 등 환경의 산물이다. 쉽게 말해 밤과 낮처럼 매일 일정하게 바뀌는 천문 현상에서 검고 희다는 지각이 생기고 이를 부호화한 것이 바로 흑과 백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인식은 단지 색(色)의 영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태양처럼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일수록 인간 행동과 심리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해의 주기적 변화에서 파생된 검거나 흰 것의 특성이 모든 사물에 투영되고 관념으로 굳어진 것도 '문명 현상'의 하나다.'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와 같은 용어도 이런 인식을 반영한 식별 기호다. 블랙리스트는 영국 극작가 필립 매신저가 1639년 발표한 '이상한 전투'(The Unnatural Combat)에 처음 나온다. 하지만 실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청교도혁명으로 불리는 영국의 내란 때부터다. 혁명으로 찰스 1세가 처형되자 그의 아들 찰스 2세는 크롬웰에 쫓겨 프랑스로 망명한다. 이후 공화정이 와해되면서 1660년 왕위에 오른 그는 아버지의 처형을 주장한 의원과 재판관 명단을 작성하고 박해하는데 바로 '블랙리스트'다. 기피 또는 요주의 인물을 담은 목록이다.이와 반대되는 용어인 '화이트리스트'는 19세기 중반부터 사용됐는데 어떤 권리나 서비스 등에 접근이 허용된 사람과 기관의 목록을 가리킨다. 화이트리스트에 들면 어떤 규제나 법령, 조건 등을 서로 면제하는데 쉽게 말해 주의나 경계가 필요하지 않는 우호적 관계라는 의미다.일본이 2일 한국을 수출 간소화 대상국가 명단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뺐다.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약에 어긋난 부당한 조치이자 양국 관계를 수렁에 빠뜨린 어리석은 결정이다. 지금은 비록 국력에 강약은 있더라도 모든 국가가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초(超)연결' 시대다. 당장은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계산에 따라 내린 결정이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피해와 부작용에서 일본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혼란과 불신 등 부정적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아베 정부와 그에 동조하는 세력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19-08-03 06:30:00

[야고부] 자작극

[야고부] 자작극

상대방을 악으로 몰기 위한 가장 비열한 방법이 상대방이 악임을 각인시키는 '자작극'이다. 나치가 폴란드 침공 명분을 만들기 위해 1939년 8월 31일 독일-폴란드 국경에 접한 독일 도시 글라이비츠(Gleiwitz)의 방송국을 공격한 자작극이 그런 경우다.나치의 국가보안부 수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지시한 이 자작극은 폴란드 육군으로 변장한 독일 요원들이 방송국을 급습해 직원들을 제압한 뒤 독일에 대한 전쟁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4분 만에 끝났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폴란드의 소행으로 굳어져 있었지만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하이드리히의 지시를 받아 자작극을 벌인 친위대 장교 알프레트 나우요크스의 증언으로 실체가 드러났다.소련과 핀란드 간의 '겨울전쟁'도 소련의 자작극으로 시작됐다. 소련은 침공 나흘 전인 1939년 11월 26일 핀란드와의 국경지대인 마이닐라(Mainila)에서 소련 초소가 핀란드군의 포격을 받아 다수의 소련 병사가 폭사(爆死)한 것처럼 꾸몄다.그러나 당시 핀란드군의 장사정포는 국경에서 20~25㎞ 떨어진 지점에 배치돼 있었다. 이는 핀란드군 장사정포의 사정거리를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피격당했다는 소련의 주장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미실행 자작극도 있다. 1962년 3월 미국 군부가 쿠바 침공 명분을 만들려고 계획한 '노스우즈'(Northwoods) 작전이다. 여러 실행 계획이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쿠바가 저지른 것으로 위장한 테러를 벌인다'였다. 여기에는 미국 최초의 지구 궤도 비행을 시도하는 우주비행사 존 글렌이 로켓 폭발 등의 사고로 사망하면 이를 쿠바의 소행으로 몬다는 황당한 시나리오도 있었다. 이 작전은 당시 라이먼 렘니처 합참의장을 거쳐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까지 올라갔으나 케네디 대통령이 거부해 무산됐다.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실에 '태극기 자결단'이란 이름으로 커터 칼과 죽은 새, 협박 편지가 담긴 소포를 보낸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유모(35) 씨가 구속됐다.그의 행동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진보' 전체에 오물을 뒤집어씌우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추구하는 진보는 기껏 이런 음모밖에 없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구치소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기 바란다.

2019-08-02 06:30:00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